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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이 새로운 브랜딩 전장이 될 때: 나이키, 로블록스, 그리고 베트남 사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 게임 시장은 향후 디지털 브랜드 참여 및 혁신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며, 특히 동남아시아 내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새로운 마케팅 전환점에서 발 빠르게 대응하고 현명하게 투자하는 브랜드는 차세대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나이키랜드, 로블록스, 베트남, 메타버스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Editor-in-Chief in GameGeneration) DOAN Nguyen Huyen Anh, NGUYEN Thanh Binh, TRAN Tien Bang, PHAN Quang Anh (Editor-in-Chief in GameGeneration)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게임, 폭력, 범죄 연구의 타임라인
2023년 8월 11일, 검찰은 신림동에서 거리에서 서있던 20대 남자를 흉기로 공격하여 사망하게 하고 3명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에 대해 “현실과 괴리된 게임중독 상태에서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젊은 남성을 공격하였다”라고 설명하며, 사건의 원인을 게임중독으로 지목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논란에 대해서 각계에서 의견을 밝혔지만, 게임과 범죄 간의 연구들을 기반으로 한 의견들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폭력성, 연구리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hangSeok Yoo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and Entertainment at Kyung Hee University. Drawing on eleven years of experience in the entertainment industry—at companies including Nexon, NCSOFT, and CJ Entertainment—conducts research on consumer behavior and industrial policy across entertainment at large, from the game industry to tourism. Works primarily with the tools of economics, and lately has taken a strong interest in the business models of games and the behavior of game users. Having succumbed to the school's relentless pressure, has to date published research in 29 domestic and 17 international academic journals, with continuing publications in internationally renowned journals such as the Journal of Media Economics,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and Information Processing & Management.
- e스포츠의 미래를 위하여 - 젠지글로벌아카데미 백현민 디렉터
이러한 시선을 바꾸고 e스포츠라는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리더들이 필요한데, 이 리더들은 e스포츠에 대해서 열정만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분야에 대한 전문가여야 합니다. 그 분야가 마케팅이 될 수도 있고, 영업이나 스폰서십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많아지면서 e스포츠가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e스포츠 배경이 아니라 교육 배경을 가지고 있고 저희 CEO님 같은 경우에도 메이저리그 야구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e스포츠를 사랑하면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업계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공모전] 모순된 세계의 충돌을 '다시' 그릴 때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지를 좇는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고, 누군가에게는 믿음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며, 현재 우리가 가진 논리나 통용되는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믿음. < Back 13 GG Vol. 23.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aein Park A gamer who searches games for inspiration in life. Keenly interested in analyzing the ways games convey their intentions and concepts.
- [논문세미나] Do Videogames Simulate? - 비디오게임 연구의 오래된 전제에 대한 고찰
시뮬레이션 철학자 폴 험프리스(Paul Humphreys, 1991)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핵심 용도를 세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여기에는 분석적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수학 모델의 해를 구하는 해결책 제공이다. 둘째, 실제 실험이 불가능하거나 비윤리적이거나 너무 비싼 경우 컴퓨터로 가상의 실험을 수행하는 수치 실험이다. 셋째, 자연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모델을 만들고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이론 모델 탐구다. < Back [논문세미나] Do Videogames Simulate? - 비디오게임 연구의 오래된 전제에 대한 고찰 27 GG Vol. 25. 12. 10. TEXT: Karhulahti, V.-M. (2015). Do Videogames Simulate? Virtuality and Imitation in the Philosophy of Simulation. Simulation & Gaming , 46 (6), 838–856. doi: 10.1177/1046878115616219 현생과 부동산 이슈로 포기하기는 했으나 한동안 버킷 리스트에 레이싱 게임용 휠과 페달, 전용 시트가 장착된 거치대를 올려둔 적이 있다. <이니셜 D>로 운전을 배운 사람에게 레이싱 게임이 전달하는 사실감은 드리프트 순간 아스팔트의 질감이나 타이어의 마찰력까지도 구현된 듯한 착각을 꽤 오랫동안 불러일으킨다. 비단 레이싱 게임만은 아니다. 과 같은 비행 시뮬레이터는 조종석의 복잡한 계기판을 정밀하게 재현하고, 실제 기상 조건까지 반영한 비행기 운전 경험을 구현한다. 이처럼 몰입감 높은 게임 플레이 경험 덕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게임이 현실을 시뮬레이션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용인해 왔다. 이는 단순히 플레이어의 감상에만 머무르는 말은 아니다. 게임 연구에서 ‘게임은 본질적으로 시뮬레이션’이라는 명제는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여졌다. 재현을 토대로 하는 다른 매체와 게임의 변별력이 시뮬레이션에 있다는 주장 역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물리학자, 컴퓨터 과학자, 혹은 분석철학자에게 “모든 게임은 시뮬레이션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들은 분명 의아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시뮬레이션(simulation)’이라는 단어가 해당 분야에서는 게임 연구에서 포괄적으로 사용되는 것과는 달리 더 엄격하고 구체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시뮬레이션이라는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정의 자체가 본질적으로 다르기도 하다. 과학과 공학에서 시뮬레이션은 단순한 ‘모방’이나 ‘재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분야에서 시뮬레이션은 과학적 지식을 얻기 위한 정밀한 도구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슈퍼컴퓨터의 복잡한 모델을 떠올려 보자. 이 시스템은 대기의 움직임, 해류의 패턴, 빙하의 융해 속도, 태양 복사 에너지 등 수많은 변수를 실제 물리 법칙에 기반한 수학 방정식으로 계산한다. 항공사에서 조종사 훈련에 사용하는 수백억 원대의 비행 시뮬레이터 역시 특정 항공기 모델의 공기역학, 엔진 특성, 기상 조건, 비상 상황까지 정밀하게 재현한다. 시뮬레이션 철학자 폴 험프리스(Paul Humphreys, 1991)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핵심 용도를 세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여기에는 분석적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수학 모델의 해를 구하는 해결책 제공이다. 둘째, 실제 실험이 불가능하거나 비윤리적이거나 너무 비싼 경우 컴퓨터로 가상의 실험을 수행하는 수치 실험이다. 셋째, 자연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모델을 만들고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이론 모델 탐구다. 이 모든 과학적 시뮬레이션의 공통점은 ‘참조 시스템’이 반드시 그리고 명확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후 모델은 ‘지구의 기후’를, 비행 시뮬레이터는 ‘보잉 747’이라는 실제 항공기를 참조한다. 얀 클라버스(Jan Klabbers, 2009)의 정의처럼, 시뮬레이션은 “유효한 대응 규칙을 통해 참조 시스템을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모델이다. 그 목적은 단순히 현실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거나 미래를 예측하고, 혹은 특정 기술을 훈련하는 데 있다. 반면 게임 연구에서는 이 용어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네임드 몬스터 오닉시아도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고, <포켓몬스터>의 피카츄도 시뮬레이션이라고 지칭한다. <다크 소울>의 망자의 저주나 <젤다의 전설> 속 마법 시스템 역시 시뮬레이션이라는 범주 안에 쉽게 포함되곤 한다. 여기서 과학자들의 질문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 피카츄의 참조 대상은 무엇이며, 마법 시스템이 모방하려는 현실의 메커니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것이 핀란드의 게임 연구자 벨리-마티 카훌라띠(Veli-Matti Karhulahti)가 2015년 학술지Simulation & Gaming에 기고한 「비디오게임은 시뮬레이션하는가?(Do Videogames Simulate?)」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에서 제기한 핵심 비판이다. 카훌라띠 는 게임 연구가 ‘시뮬레이션’이라는 용어를 과학적·철학적 정의와 무관하게, 지나치게 느슨하고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 연구자들은 시뮬레이션의 핵심인 ‘참조 시스템’과 ‘모방’이라는 개념을 사실상 제거해버리고, “컴퓨터로 구동되는 모든 동적 시스템”이라는 의미로 용어를 확장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 리얼’ 개념이 게임 연구에 수용된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시뮬라크르(simulacra)’는 더 이상 원본을 참조하지 않는 복제품, 즉 원본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의미한다. 게임 연구자들은 이를 차용해, 게임 속 드래곤은 원본이 없으므로 현실의 드래곤을 모방한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 실재하는 시뮬레이트된 드래곤이라고 주장했다. 에스펜 올셋(Espen Aarseth, 2006)은 “우리는 컴퓨터 게임에서 용을 시뮬레이트할 수 있으며, 실제 세계의 대응물이 없더라도 그 용은 여전히 허구의 용이 아니라 시뮬레이트된 용”이라고 썼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 시뮬레이션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논리적 비약이다. 이러한 용어의 불일치는 단순히 학자들 사이의 말장난에 그치지 않는다. 카훌라띠 가 지적했듯이, 이는 “무관세 학제성(duty free interdisciplinarity)”의 전형이다. 한 분야의 용어를 그 분석적·역사적 맥락 없이 무비판적으로 가져다 쓰는 전형적인 사례로, 실제로 게임 연구가 다른 학문 분야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데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 예를 들어 교육용 게임의 딜레마를 볼 수 있다. 교육학 연구자가 게임 기반 학습의 시뮬레이션 효과에 대해 논문을 쓸 때, 그들에게 시뮬레이션이란 화학 실험이나 역사적 사건과 같은 실제 학습 상황을 재현하는 특정 메커니즘만을 의미한다. 하지만 게임 연구자는 점수, 레벨업, 퀘스트를 비롯한 게임의 모든 동적인 요소를 시뮬레이션으로 이해할 수 있어, 두 연구자는 시뮬레이션이라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완전히 다른 대상을 논의하게 된다. 카훌라띠 는 배리 앳킨스(Barry Atkins, 2003)를 인용해, 이러한 교육용 게임을 “시뮬레이터의 사생아”라고 부른다. 교육적 메시지와 유희적 경험 사이에서 필연적인 타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 시뮬레이션 개발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의사들은 해부학적으로 100% 정확하고 실제 수술의 물리적 반응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과학적 시뮬레이터를 기대한다. 반면, 게임 디자이너는 조작이 재미있고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으며 게임 메커니즘이 흥미로운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양측에서 완전히 다른 기대치를 만들어 내 프로젝트를 표류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철학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만약 게임 속 드래곤이 시뮬레이션이라면, 그것의 참조 시스템은 무엇일까? 일부 학자들은 디자이너의 생각이라 답한다. 하지만 카훌라띠 는 이 주장을 날카롭게 반박한다. 비물질적 참조 시스템인 디자이너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질적 참조 시스템인 실제 현상을 부정하는 것이며, 이는 시뮬레이션 검증의 수단인 테스트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시뮬레이션은 과학적 도구로서 가장 중요한 속성인 검증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게임이 시뮬레이션인지 아닌지는 과연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이 논쟁은 두 가지 주요 관점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플레이어 중심 관점이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현실의 무언가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그것이 곧 시뮬레이션이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하며 실제 건축 공학의 원리를 탐구한다면, 그에게 <마인크래프트>는 건축 시뮬레이션이 된다. 또 다른 플레이어가 를 플레이하며 도시 교통 시스템의 혼잡도를 연구한다면, 그것은 도시 생활 시뮬레이터가 된다. 이 관점의 극단적인 예는 자넷 머레이(Janet Murray, 1997)가 제시한 <테트리스> 해석이다. 머레이는 <테트리스>를 1990년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미국 직장인의 삶을 시뮬레이션한다고 해석했다. 블록으로 형상화된 끝없이 밀려오는 업무를 필사적으로 줄 맞추듯 처리하지만, 결국 과부하에 이르러 게임 오버에 이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관점은 심각한 철학적 문제를 안고 있다. 만약 플레이어의 주관적 해석이 게임의 본질을 결정한다면, ‘시뮬레이션’이라는 개념은 어떤 것도 구별해내지 못하는 무의미한 용어가 되어버린다. <테트리스>가 직장 생활의 시뮬레이션이라면, <캔디 크러쉬>는 제과 산업의 시뮬레이션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시뮬레이션을 ‘은유’나 ‘알레고리’와 혼동하는 것이다. 카훌라띠 가 제안하고 옹호하는 것은 두 번째 관점, 즉 ‘시뮬레이션의 의도적 철학(intentional philosophy of simulation)’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게임은 스스로 무언가를 시뮬레이트하지 않는다. 게임이 시뮬레이션인지 아닌지는 그것을 설계한 설계자의 명확한 의도에 달려 있다. 여기서 ‘의도’란 단순히 디자이너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심리적 상태가 아니다. 그 의도는 반드시 ‘기능적 증거(functional evidence)’로서 게임 아티팩트 자체에 물질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즉, 디자이너가 특정한 현실의 참조 시스템을 모방하려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게임을 설계했으며, 물리 법칙, 경제 모델, 생태계 순환과 같은 모방을 위한 기능적 메커니즘이 게임 코드와 시스템 속에 실제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심시티>의 개발자 윌 라이트는 실제 도시 계획 이론과 제이 포레스터(Jay Forrester)의 시스템 동역학을 연구하여, 교통 체증, 공해, 범죄율, 세금 징수 시스템 등이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도시 모델을 게임에 구현하려 했다. 여기에는 명확한 ‘의도’와 ‘참조 시스템’, 그리고 ‘기능적 증거’가 모두 나타난다. 따라서 <심시티>는 명백한 시뮬레이션 혹은 시뮬레이터다. 반면, <테트리스>의 창시자 알렉세이 파지트노프는 어떤 현실 시스템도 모방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펜토미노>라는 수학적 퍼즐에서 영감을 받아, 떨어지는 블록이라는 순수하게 재미있는 게임 메커니즘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따라서 <테트리스>를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며, 범주의 오류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참조하지 않는 게임 속 요소들, 즉 드래곤, 마법, 좀비, 외계인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들은 무엇일까? 단순한 허구(fiction)일까, 아니면 환상(fantasy)일까? 카훌라띠 와 현대 게임 철학의 맥락을 빌려 여기서 ‘가상성(virtuality)’이라는 대안적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서 가상은 단순히 ‘가짜(fake)’나 ‘현실의 반대(unreal)’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같은 철학자들이 발전시킨 개념에 따라,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잠재성을 지닌, 현실의 또 다른 양태”로 이해된다. 인공 생명 연구의 선구자 크리스토퍼 랭턴(Christopher Langton, 1986)은 가상성을 “너무나 생생해서 생명의 모델이기를 멈추고 생명 그 자체의 예시가 되는” 영역이라고 정의했다. 게임 속 드래곤이나 좀비는 현실 세계의 불완전한 복사본,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게임 세계라는 고유한 맥락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독립적인 대상이다. 철학자들은 이를 ‘가상화된 픽타(virtualized ficta)’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셜록 홈즈를 생각해 보자. 셜록 홈즈는 현실의 런던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코난 도일의 이야기 세계라는 허구적 진실 속에서는 베이커가 221B번지에 살며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왓슨 박사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실제적인 인물로 자리한다. 마찬가지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드래곤 오닉시아는 그 게임 세계 안에서 실제로 기능한다. 먼지진흙 습지에 서식하고, 화염 숨결을 사용하며,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현실의 어떤 도마뱀도 시뮬레이션하지 않지만, 아제로스라는 세계 내에서는 완벽하게 일관적이고 실제적인 가상적 대상이다. 이러한 구분은 게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게임 속 드래곤은 현실감이 떨어지는 나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게임 세계 속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성공적인 가상적 창조물로 재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시뮬레이션’과 ‘가상성’의 엄밀한 구분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게임의 범주를 훨씬 더 정교하게 구분하고 이해할 수 있다. 명확한 현실 참조 시스템과 모방 의도를 가진 시뮬레이션 게임은 처럼 정확성과 사실성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반면, 현실의 일부와 가상적 요소를 결합한 부분적 시뮬레이션 게임은 <심시티>나 <콜 오브 듀티>처럼 현실적 기반 위에 게임적 규칙을 더한다. <다크 소울>이나 <파이널 판타지>와 같은 가상성 게임은 현실 참조 없이 창조된 독립적 가상 세계의 일관성과 독창성으로 평가받는다. 마지막으로 <테트리스>나 <포탈>과 같은 추상적 혹은 절차적 게임은 세계의 재현이 아닌 순수한 규칙과 메커니즘, 즉 절차 자체에 집중한다. 이러한 개념적 구분이 단순히 학자들의 현학적 유희에 그치지 않고, 실제 게임 산업과 문화에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실천적인 이유가 있다. 연구의 명확성 측면에서, 게임 연구가 교육학, 의학, 공학 등 다른 학문과 성공적으로 대화하고 협력하려면 ‘시뮬레이션’과 ‘가상성’이라는 공통의 언어와 명확한 구분이 필수적이다. 또한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게임 개발팀 내부에서 우리는 중세 전투를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을 만든다고 합의했다면, 이것은 단순히 중세 판타지 게임을 만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발 방향성을 제시하며, 역사적 고증이나 물리 엔진의 정확성에 자원을 집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비평의 기준도 확립된다. 비행 시뮬레이터가 실제 비행과 다르다고는 비판할 수 있지만, <엘든 링>의 마법이 현실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고는 비판하지 않는다. 이는 애초에 시뮬레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법적·윤리적 논쟁도 정교화할 수 있다. <콜 오브 듀티>가 실제 전쟁을 시뮬레이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둠>에서 악마를 사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윤리적 질문을 제기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1998년 이후 한국은 스스로나 해외로부터의 평가로나 자타공인 게임 강국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게임 강국 한국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다소 불균등한 지점이 존재하는데, 여기서의 게임강국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플레이’의 강국이라는 점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 Back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14 GG Vol. 23. 11. 5.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그토록 많은 이들이 플레이하지만 왜 아직도 문화라는 말에 의문부호가 붙는가? 1998 년 이후 한국은 스스로나 해외로부터의 평가로나 자타공인 게임 강국으로 불려 왔다 . 그러나 게임 강국 한국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다소 불균등한 지점이 존재하는데 , 여기서의 게임강국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 플레이 ’ 의 강국이라는 점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 한국에서 제작된 게임 중 전세계적 흥행을 이끌어낸 게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적어도 2017 년의 ‘ 배틀그라운드 ’ 이전까지는 마땅한 작품을 꺼내들기 힘들었다 . 산업의 규모나 소비자시장에서라면 압도적일지 몰라도 , 씬을 대표할 특정한 타이틀 하나를 뽑아들기 어려운 형국은 e 스포츠 선수 풀이나 소비자 시장규모 , 제작산업 규모가 보이는 강세와 비교해볼 때 의아스럽다 . 탄탄한 소비자층과 시장을 보유하면서도 마땅히 내세울 타이틀이 드물었던 한국 게임계에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이 작용했겠지만 , 이를 하나로 통틀어 말해 본다면 아무래도 게임문화의 부재라고 부를 수 있을 어떤 상황일 것이다 . 게임을 잘 하고 많이 하지만 , 막상 그 게임을 두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저 수출액이 얼마 , 어느 대회에서 몇 위를 이야기하는 것 이상의 문화를 우리는 유의미한 규모로 가져 본 적이 드물다 . 그러나 디지털게임의 가능성은 산업적 규모나 플레이로서의 성취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 많은 게임들은 다른 예술장르처럼 인간과 사회 전반에 대한 밀도있는 통찰을 각자의 방식으로 담고 풀어냈으며 , 이를 향유하는 대중들은 작품에 담김 함의를 읽어내고 이를 다시 사회로 재환원시키는 과정을 거쳐 왔다 .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을 통틀어 문화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 충분히 발달한 게임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한국에는 게임을 문화로 소화할 인프라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 웹진 ‘ 게임제너레이션 ’ 의 시작은 바로 이 고민으로부터 출발했다 . 노는 것을 터부시해온 산업화 일변도의 한국에서 게임비평은 쉽지 않았다 왜 게임을 문화로 다루지 못해왔는가 ? 이 질문에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 한국 특유의 강한 교육열은 디지털게임 초기에 주대상이었던 청소년층으로 하여금 이 새로운 매체에 대한 손쉬운 접근을 불허한 바 있었다 . 학교와 정부 , 사회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을 불량청소년들의 집합지로 낙인찍었고 , 게임하는 이들을 사회낙오자에 준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한참 산업화에 열을 올리던 8-90 년대에는 비단 청소년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노는 일은 시간의 낭비 , 게으름의 영역에 속했다 . 2000 년대 들어와서야 한국은 일주일에 이틀의 휴일을 얻을 수 있었고 , 직장 노동자들에게 질병이나 가정사가 아닌 이유로 휴가를 내고 쉰다는 건 게으름뱅이라는 낙인을 부르는 일이었다 . 노는 일을 터부시하던 급속한 산업발전기의 경험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놀기 위해 장비를 사고 시간을 내야 하는 디지털게임이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 그러나 적어도 21 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놀이에 대한 터부는 과거와 같은 규모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 우리는 주 5 일제의 도입이 오히려 여가부문의 산업을 촉진시키고 노동자로 하여금 충분한 휴식을 통해 더 나은 생산성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 노는 일 playing 이 그저 쉬는 일 resting 이 아닌 , 또다른 의미의 창발성임을 터득한 바 있다 . 산업자본주의에서 이른바 인지자본주의 시대로 전환하면서 쏟아지는 고부가가치의 무형 콘텐츠산업의 중심은 언제나 노는 일이었다 . 영화를 보고 , 만화를 보고 , 음악을 즐기는 과정이 한국 산업의 중심을 차지함에 따라 노는 일의 중요성은 과거와 다르게 인식되었고 , 디지털게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인식의 변화를 겪어 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다른 매체와 비교할 때 게임에서는 그 문화적 영향력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지한다 . 여기에 개입하는 또다른 원인은 오랫동안 서브컬처의 영역에서 단지 ‘ 그들만의 이야기 ’ 로 치부되던 게임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위치를 옮겼지만 여전히 담론장에서는 이를 소화할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 있다 . 간단히 말하자면 , 평론의 부재다 . 음악 , 영화 , 미술 , 문학 등 기존의 많은 매체양식들이 예술 혹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씬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평론의 역할은 지대했다 . 작품의 의미를 해설하고 널리 알리며 , 완성된 작품을 단지 그 작품 하나만의 의미에 두지 않고 동시대와 과거 , 현재 , 미래를 엮으며 다른 모든 사회요소와의 관계망 속에서 다시 읽어내는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작품이 곧 우리가 사는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은 , 혹은 우리 자신이 투영된 어떤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 만약 디지털게임에서도 이와 같은 평론의 장이 형성된다면 우리는 그때부터 비로소 게임문화라는 새로운 담론을 유의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페다고지, 담론, 그리고 실천: 게임문화담론을 위해 필요한 방법들 2021 년 8 월 ‘ 게임제너레이션 ’ 이 첫 호를 내면서 선택한 주제가 그래서 ‘ 문화로서의 게임 ’ 이었다 . 그동안 한국에서 게임은 ‘ 게임은 문화다 ’ 라는 선언으로는 존재했지만 , 실천방안으로서의 문화적 개입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 게임을 문화담론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 우리는 문화입니다 !’ 라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게임을 중심에 두고 문화를 이야기하는 실천이다 . 그러한 실천을 수행할 장으로서 ‘ 게임제너레이션 ’ 은 만들어졌다 . 지난 14 개 호 동안 ‘ 게임제너레이션 ’ 은 디지털게임을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 그리고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 네트워크 , 게임 결제와 같은 디지털게임을 구성하는 인프라가 얼마나 사회적 상황과 맞물리는지를 살펴보았고 , 과거의 게임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인 방치형 게임 , 온라인 / 오프라인의 구분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 예술과 게임의 관계 , 게임이 가지고 있는 지역성과 같은 주제 뿐 아니라 ‘ 게임제너레이션 ’ 은 게이머 , 특히 그 중에서도 소수자들이 게임 안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 그리고 그런 소수자들은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에 얼마나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살피며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에 주목해 왔다 . 문화담론의 장 구축을 위해 ‘ 게임제너레이션 ’ 은 이러한 주제들을 다룸에 있어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접근하고자 했다 . 첫째는 ‘ 페다고지 Pedagogy’ 다 . 디지털게임에 대해 그동안 축적된 다양한 관점에서의 연구결과들을 취합하고 , 이를 일반 대중들에게 접근하기 쉽게 가공하여 대중화함으로써 전문지식에의 접근성을 높여 담론장의 기초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 둘째는 담론 Discourse 의 구축이다 . 다양한 전문가집단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각각의 디지털게임이 만들어낸 결과를 관찰 , 분석하고 , 이를 통해 비평이라는 방식으로 게임과 사회의 관계를 고찰하여 디지털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다 . 셋째는 실천 Implementation 이다 . 준비된 담론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자와 필진을 육성하기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하고 , 새로운 필자 확보를 위해 폭넓은 연구결과들을 리뷰하며 동시에 국내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트렌드와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북미 , 유럽 , 일본 , 중국 등의 주요 게임선진국과 네트워크를 구축 , 강화하는 작업을 ‘ 게임제너레이션 ’ 은 이어가고 있다 .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를 메꿔나가며 만드는 게임문화담론의 가능성을 위해 서브컬처로 오랜 세월을 지내 온 디지털게임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마주하는 문화적 빈곤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 디지털게임에 대한 무거운 인문사회적 접근은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성과들은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지 못하고 ,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함 많은 게임웹진들은 플레이 바깥에 존재하는 게임과 사회의 관계를 다루지 못한다 . ‘ 게임제너레이션 ’ 은 게임 담론이 가진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의 간극을 채워나감으로써 비로소 디지털게임을 문화예술의 한 영역으로 안착시키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 ‘ 웹진보다 무검게 , 학술지보다 가볍게 ’ 라는 ‘ 게임제너레이션 ’ 의 슬로건은 곧 문화담론으로서 게임을 위치시키는 데 가장 시급한 방법론에의 선언이기도 하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UX를찾아서] 오버워치에는 미니맵이 없다
미니맵은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UI(User Interface)중 하나로, 게임의 상단이나 하단 구석에 항상 압축적이고 간략하게 표시되는 작은 지도를 말한다. 특히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 게임이나 FPS(First Person Shooter) 장르에서 게이머의 시야는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미니맵이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확장된 버전의 전체 지도는 특정 버튼을 눌렀을 때 보이는 토글(toggle) 화면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반면, 미니맵은 대부분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Head Up Display)로서 화면에 상시 표시된다. < Back [UX를찾아서] 오버워치에는 미니맵이 없다 05 GG Vol. 22. 4. 10. 미니맵은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UI(User Interface)중 하나로, 게임의 상단이나 하단 구석에 항상 압축적이고 간략하게 표시되는 작은 지도를 말한다. 특히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 게임이나 FPS(First Person Shooter) 장르에서 게이머의 시야는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미니맵이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확장된 버전의 전체 지도는 특정 버튼을 눌렀을 때 보이는 토글(toggle) 화면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반면, 미니맵은 대부분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Head Up Display)로서 화면에 상시 표시된다. 게이머는 미니맵을 통해 전체적인 게임 세계 속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그리고 주변 환경과 사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게임에는 크게 두 가지의 공간 감각이 동원된다. 아바타의 신체를 경유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얻는 감각을 지각된 공간감각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전체적인 게임 세계 속 스스로의 위치와 관계를 파악함으로서 얻게 되는 인지된 공간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니맵은 그러한 두 차원의 공간감을 통합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 미니맵은 게이머가 게임 세계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주며 게임의 그래픽이나 서사가 미처 채워 넣지 못한 공간감을 보조해 준다. 나아가 공간을 사회적 행위의 결과물로서 구성된 것으로 본다면, 게임 환경을 그려내는 3D 그래픽이나 프로그래밍 된 물리법칙과 마찬가지로 미니맵 또한 게임 공간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참여한다. 이 글에서는 게임 속 미니맵이 무엇을 그려내고 재현하는지 보다는 미니맵이라는 비유를 통해 조망하는 시점과 가시성이 어떤 위계 관계를 만들어내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는 게임 내에 구현되는 공간을 넘어, 게임을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서열체계와 그것이 의미하는 사회적 맥락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다만, 이 글이 이론이나 구체적인 분석을 포함하기 보다는 관련된 역사와 사건들을 간략하게 제시하는 “미니맵”과 같은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히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미니맵의 작은 역사 * 〈Rally X〉(1980) 우측의 미니맵(위)과 〈Defender〉(1981)(아래) 상단의 미니맵. 미니맵의 초기 형태는 지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미니맵은, 지금과 비교해서 굉장히 단순한 그래픽을 사용했던 1980년대 아케이드 게임들, 가령 〈Rally X〉(1980)이나 〈Defender〉(1981) 같은 게임들에서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아케이드 게임에서는 주로 단조롭고 비슷한 지형지물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미니맵은 지도의 역할보다는 근처의 적들을 보고 피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는 레이더 기능을 하는 것에 가까웠다. 미니맵이 조금 더 ‘지도’와 유사한 형태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1986년에 발매된 〈젤다의 전설〉에서 부터이다. 화면 좌측 상단의 회색 사각형은 젤다의 전설이 배경이 되는 하이랄의 전체 지형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안의 초록색 점은 현재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구역이 전체 지형 중에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오늘날 다양한 정보와 기능을 포함하는 오늘날의 미니맵과는 달리, 당시의 미니맵은 플레이어의 위치 외의 정보를 포함하지 않았으며 상호작용도 전무한 수준이었다. 1986년작 젤다의 전설에서 미니맵의 그래픽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는데, 플레이어 캐릭터가 이동하더라도 플레이어가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초록색 점은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젤다의 전설〉(1986). 왼쪽 상단의 회색 사각형이 미니맵의 역할을 한다. * 〈젤다의 전설〉(1986)의 전체 맵. 이것이 미니맵에서 회색 영역으로 표시된다. 〈슈퍼 메트로이드〉(1994)에서는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해 플레이어가 탐험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플레이어가 이미 탐색한 지역을 붉은색으로 표시해주는 기능을 도입한 것이다. 플레이어가 아직 탐색하지 않은 미지의 지역을 가리거나 까맣게 남겨두어 정보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전장의 안개(fog of war)는 1977년 작 〈엠파이어(empire)〉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지만, 이를 미니맵에 도입한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평가받았다. * 〈슈퍼 메트로이드〉(1994). 우측 상단 미니맵에 플레이어가 지나온 지역이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 ‘전장의 안개’를 처음 도입한 〈엠파이어〉(1977). 이런 ‘전장의 안개’는 다른 게이머와 대적하는 멀티 플레이어 RTS(Real-Time Strategy) 장르 게임에서 자주 이용되는 게임 메커니즘이다. 아군 유닛을 전장의 안개가 낀 지역에 정찰 보내 시야를 확보하고 적군의 위치와 진입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이 같은 게임들에서 필수 전략으로 여겨진다. 일부 악의적인 유저들은 불공정한 방식으로 승리하기 위해 전장의 안개를 없애주는 불법 프로그램(맵핵; map hack)을 사용하기도 한다. * 아군이 정찰하지 않은 지역의 정보가 ‘전장의 안개’로 차단되는 〈스타크래프트〉(1998). 왼쪽 하단이 미니맵이다. 이런 ‘전장의 안개’가 적용된 미니맵은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적인 지도와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근대의 지도 제작은 식민 지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고 자주 미지의 땅에 대한 탐험과 타 민족과의 전쟁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마치 RTS 대전 게임에서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미지의 검은 땅을 정찰하고, 적군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도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축소하고 기호화 시켜 표현한 재현물이라면, 그러한 지도를 재현한 미니맵은 게임 공간의 재현, 그리고 지도의 재현이라는 의미에서 재현에 대한 재현이 된다. 2000년대 이후 MMO, RPG, 오픈 월드 어드벤처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에서 미니맵은 점점 더 많은 정보를 포함하게 되었다. 도로, 몬스터, 적군, 친구, 퀘스트 가능 여부, 상점과 여관 등 건물들, 목적지까지의 거리, 방위 등 많은 정보들이 기호와 아이콘으로 표시되어 플레이어에게 제공되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들면서부터는, 화면의 한 구석을 차지하던 이런 미니맵이 유명 트리플-에이 게임 시리즈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7년, 한 코타쿠(Kotaku) 기자는 “지난 15년 동안 부상한 대악마, 비디오 게임 미니맵의 지배가 마침내 끝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2017년부터 줄줄이 발매된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 〈호라이즌 제로 던(Horizon Zero Dawn)〉, 〈파 크라이(Far Cry) 5〉에서 미니맵이 사라지거나 그 자리를 작은 나침반이 대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선택에 대해 어쌔신 크리드의 디렉터 진 게스돈(Jean Guesdo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미니맵에서 하나의 아이콘에서 다른 아이콘으로 이동하는 이러한 방식을 깨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쏟은 노력과 자원 때문에 우리는 플레이어가 주변 풍경을 바라볼 수 있기를 정말로 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미니맵을 나침반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한 이유입니다. 나침반은 여전히 힌트와 정보를 제공하지만, 당신 역시 세계에 참여하고 더욱 관여해야 합니다.” 게임에서 미니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미니맵이 세계로부터 눈을 돌리고 조잡한 아이콘과 목적지를 가르키는 화살표만 따라가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처음 게임에 미니맵이 도입되었을 때, 게이머들에게는 비디오게임이라는 매체 자체가 일종의 미지의 땅이었다. 그러나 게임이 등장하고 40-5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미 베테랑 탐험가가가 된 게이머들에게 미니맵은 오히려 세계의 아름다움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걸리적거리는 요소가 된 것이다. * 〈GTA 3〉 왼쪽 하단에 위치한 동그란 미니맵. 내려다보는 자와 그러지 못하는 자 FPS 장르 게임들인 〈배틀그라운드(PlayerUnkown’s Battlegrounds〉(2017)와 〈포트나이트(Fortnite)〉에는 미니맵이 있지만, 〈오버워치(Overwatch)〉(2016)에는 미니맵이 없다. 2016년, 〈오버워치〉의 치프 디자이너 제프 카플란(Jeff Kaplan)은 왜 〈오버워치〉에 미니맵을 추가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초보 유저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앞으로도 미니맵을 도입할 생각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미니맵을 제공했을 때, FPS 장르에 익숙한 고수 유저들과 초보 유저들 간의 실력 간극이 더 크게 벌어지기 때문에 초보 유저들을 배려하기 위해 미니맵을 제공하지 않도록 선택했다는 것이다. 전장의 안개를 구현하는 RTS 장르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전 게임들에서는 정보 싸움이 승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다만 〈오버워치〉에서는 적의 위치나 진입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UI가 구현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고지대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운용하는 캐릭터 조합과 전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고지대를 선점했을 때 적군에 비해 공격할 수 있는 각도가 잘 나온다거나 후방 유닛을 공격하기가 쉬워진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야를 확보해 진입경로와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 〈오버워치〉에서는 이러한 고지대를 선점할 수 있는 점프기나 z축 이동기가 있는 유닛들을 선택하는 전략이 유행하기도 했다. 물론 〈오버워치〉에서도 미니맵과 유사한 화면을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오버워치〉의 프로 레벨 경기를 시청하는 것이다. 공식 〈오버워치〉 리그는 게임 리그 시청자들에게 게임의 상황을 최대한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의 화면을 제공한다. 그러한 시점 중 하나가 바로 이 탑-다운(Top-down) 시점이다. 이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 옆에 띄워주는 화면은 아니라는 점에서 엄밀히 말해 미니맵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진영과, 유닛들의 진입 경로와 대치 구도를 아이콘을 통해 설명하는 화면이라는 점에서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 〈오버워치〉 리그의 탑-다운 뷰. * 〈오버워치〉 리그의 중계 화면. 뿐만 아니라 과거 〈오버워치〉 리그의 공식 중계 사이트였던 트위치(Twitch)에서는 〈오버워치〉 리그 올-액세스 패스(Overwatch League All-Access Pass)를 구매하는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시점과 각도로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준 바 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스펙타클을 제공해주었다. 경기가 중계되고 있는 메인 화면과 더불어,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캐릭터의 몸에 그대로 들어가 마치 그의 몸에 빙의한 듯한 시점으로 경기를 시청할 수도 있었고, 위에서 본 탑-다운 시점과 같이 위에서 모든 유닛들을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정작 게임을 플레이하는 선수들의 캐릭터는 게임 내 중력법칙에 묶여 게임 속 땅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 했던 반면 (물론 특정 기술을 사용해 잠시 동안 공중에 떠 있을 수는 있다) 게임을 시청하는 사람과 중계진은 자유롭게 떠다니며 선수-캐릭터들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시점에 대한 일종의 공간적인 비유로서, 프로 선수와 시청자 간의 높고 낮은 위치 설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오버워치〉 리그를 플레이하는 프로 선수 안에서도 고지대를 선점한 플레이어와 그렇지 못한 플레이어가 있는 것처럼,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선수와 리그 경기를 시청하는 시청자 사이에는 가시성의 격차가 존재한다. 〈오버워치〉의 플레이어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높은 지대로 올라가야한다. 하지만 아무리 고지대를 선점하더라도 선수는 관객이 볼 수 있는 광경을 볼 수 없다. 반면 관객은 선수의 시점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그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시야와 정보의 불균형함은 제레미 벤담이 제안하고, 미셸 푸코가 근대적인 공간의 전형으로서 비평했던 파놉티콘의 구조를 연상시킨다. 미셸 푸코는 학교, 병원, 군대와 같은 공간들도 본질적으로는 파놉티콘 구조를 띄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감시 체계는 그러한 시설 안의 재소자들(학생, 환자, 군인들)을 유순하게 길들인다고 보았다. 파놉티콘 구조는 오늘날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정보의 세계에도 편재한다. 빅 테크 회사들이 이용자의 성별, 나이, 위치, 검색 기록과 시청 기록 등 갖가지 정보를 수집해 맞춤 광고를 내놓는다는 것은 오늘날 더 이상 놀라운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버워치〉와 같은 대전 게임에서 미니맵이 사라지는 것은, 앞서 제프 카플란이 말했듯,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소수의 고수가 정보를 독식하는 것을 견제하고 게임이 극단적으로 서열화 되는 것에 맞서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여전히 이스포츠의 관객에게는 선수가 볼 수 없는 것도 전부 내려다 볼 수 있는 마치 신과 같은 눈이 부여된다. 물론 이러한 시선의 위계가 게임 리그를 시청하는 재미의 큰 부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모든 것을 조망하는 절대적인 관찰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김지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 비평공모전 4년을 거쳐 온 편집장의 회고
그렇게 시작한 게임비평공모전을 네 번째 거쳐오는 동안 나에게도 적지 않은 경험이 쌓였고, 어쩌면 게임비평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을 듯 싶다. 이 글은 어찌 됐건 2020년대 이후 꾸준하게 게임비평의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고자 뛰어 왔던 한 개인의 회고록일 것이지만, 그 경험은 단지 개인 혼자 되새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해 지면 한 켠을 빌어 이야기를 새겨두고자 한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Editor's View]
0과 1을 기반으로 한 계산을 딛고 서는 매체이지만 디지털게임 역시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감정을 다룬다. 우리는 수시로 사랑은 계산가능한 감정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 익숙한 관용구는 사랑을 다루는 연산장치인 디지털게임 앞에서 조금 곤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그래서, 제 민첩은 몇 점인가요?
RPG의 규칙은 수치의 미학이다. 이 규칙이 고도화될수록, 플레이어들이 교감해야 하는 수치와 수식도 고도화된다. 플레이어들은 더욱 강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계산한다.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전문적인 개발용 어들을 가져오며, 각종 수치를 분석하고, 차트를 만들고, 성장 공식을 유추한다. 적 또는 다른 플레이어를 압도할 수 있는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와 해결책을 찾는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RPG에서는 플레이어 본인의 신체적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RPG에서 캐릭터를 강력하게 성장시키는 것은 플레이어의 전략적 사고, 소위 ‘뇌지컬’이다. < Back 그래서, 제 민첩은 몇 점인가요? 22 GG Vol. 25. 2. 10. 민망한 말이지만, 난 내 캐릭터들에게 그리 좋은 부모는 아니다. 한 명 잘 키워보려면 따져야 할 게 뭐 이리 많은지. 어떤 스킬을 획득해야 하고, 어디에 비용을 투자해야 하고, 어떤 무기를 쥐어줘야 하고, 그 무기는 어떻게 갈고닦아야 하고...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로 골치 아프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과거에 취했던 방법은, 최대한 많은 자원을 모아서 최대한 많은 옵션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레벨을 끝까지 올리고, 스킬 트리에서 가능한 모든 스킬을 획득하고, 가진 장비를 모두 강화했다. 그러나 현시대의 ‘캐릭터 육성’ 시스템은 내 무식한 방법론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되었다. 급기야 <원신Genshin Impact> 같은 수집형 RPG에 이르러, 나는 내 손에 있는 모든 캐릭터를 키울 수 있는 자원 분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결국 목적은 하나다. 강한 캐릭터를 만드는 것. 게임 속에서 나를 대신할 이 캐릭터가 강력하고 유능하며 뛰어나길 바란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난관을 헤쳐나가 보상을 얻길 바란다. 다른 플레이어를 짓밟을 수 있길 바란다.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능감을 추구한다. 강한 공격력, 화려한 스킬, 다양한 장비들을 통해 강화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들로 이 가상의 세계를 제약 없이 마음껏 누비는 것, 이는 현실에서의 내가 쉽게 얻을 수 없는 효능감이다. 검 하나를 제대로 쥐기까지도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할뿐더러, 그렇게 연습한다고 해도 검에서 불을 뿜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는 손쉽게 영웅이 되고, 악당이 되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이 된다. 현실에서는 매일 아침 침대에 누워 체육관에 가야 할지 고민하는 나지만, 가상의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더욱 큰 강함을 추구하며 부단히 내 몸을 단련하는 것을 일상처럼 여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현실에서 내 몸을 단련하는 것과는 원리와 방법부터 다르다. RPG에서 강한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나와의 싸움이 아니라, 기나긴 숫자와의 싸움이 아니겠는가. 맥락을 가진 수치들의 집합 RPG의 규칙은 수치의 미학이다. 비디오 게임뿐 아니라, 종이와 펜으로 즐기는 TRPG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은 수치로 표현된다. 단순히 힘이 센 캐릭터, 튼튼한 캐릭터, 민첩한 캐릭터라는 수사가 아니라, 정확한 수치로 나타내는 게 먼저다. <크툴루의 부름Call of Cthulhu>에서는 체력, 근력, 그 밖의 무기 사용 능력 등을 수치화하며,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Vampire: the Masquerade> 같은 작품에서는 더 나아가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의 종류 및 등급까지 수치화한다. 신체적 능력이 수치화되고 나면, 이때부터 게임과 플레이어의 모든 상호작용은 수치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적과 공방을 주고받은 결과, 어떠한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 현재 나의 상태 등이 끊임없이 기록되고 계산되며 게임이 진행된다. 내가 얼마나 유능한지, 또는 무능한지, 내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는 결산된 수치를 통해 확인된다. 캐릭터의 성장 역시 수치화되어 기록된다. 한 턴이 끝날 때마다 해당 턴의 활동 내역을 반영해 기존의 수치가 재조정되거나, 일정 수치 이상의 경험치를 달성하고 레벨이 한 단계 오를 때마다 기존의 수치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이 주어진다. 특히 대부분의 비디오 게임에서는 조건을 달성할 때마다 자원을 공급하는 방법으로 성장을 제어한다. 자원은 유한하기에, 플레이어는 이를 캐릭터의 어떤 측면을 성장시키는 데에 활용할지 고민한다. 과거의 나처럼 최대한 많은 자원을 확보해서 모든 옵션을 획득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이 방법은 쉽지도 않으며,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스킬 트리의 몇 가지 경로 중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강제된다면, 이제 나는 내 캐릭터의 진로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체적 능력을 보강해 주는 장비의 능력 역시 수치로 표기된다. 장비는 각자가 또 다른 캐릭터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 이에 기반한 상호작용, 그리고 자원을 투입한 성장. 여기에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장비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한다. 지금 획득하는, 기본 수치가 높지 않은 장비에 자원을 투자해서 성장시킬 것인지, 후에 획득할, 기본 수치가 높은 장비에 사용하기 위해 절약할 것인지. RPG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신체적 조건을 살피기 위해 명확한 수치와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비단 신체적 조건뿐 아니라 정신적, 기타 다양한 능력적 조건들까지 캐릭터가 가진 모든 조건들은 수치 정보로 관리된다. 그러니까 이러한 수치들과, 수치들의 증감을 관리하는 수식만 제공된다면 RPG를 설계하고 플레이할 수 있다. RPG 캐릭터의 신체라는 것은, 이 수치들 중 일부에 ‘힘’, ‘민첩’, ‘체력’ 등의 서사적 맥락을 갖춘 단어와, 개연성을 갖춘 수식을 부여함으로써 형성된다. 플레이어들은 각 수치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 현실에서 개념을 가져온다. 이 수치들은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캐릭터에 언제나 동반되는 내재적 수치, 활성화 상태에서만 동반되는 외재적 수치. 플레이어들은 전자를 캐릭터의 몸과 연관 짓고, 후자를 캐릭터가 선택해 사용하는 도구와 연관 짓는다. 각 수치에 이러한 맥락을 부여하는 것이 게임 디자이너들의 일이며, 이를 설득력 있게 해내기 위해서는 신체 능력에 대한 본능적인 이해에 기인할 수밖에 없다. A가 상승하면 B도 상승할 수 있다. 이 수치들 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현실 감각에 기반한 맥락이다. A와 B를 각각 근력과 공격력, 또는 기력과 이동속도라고 생각하면, 이 수치들의 관계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A와 B의 자리에 지구력과 적 시야가 들어가진 않는다. 현실 감각에 기반한 연관성을 도출할 수 없는 관계는 파악할 수도, 받아들여질 수도 없다.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통해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시작 단계인, 캐릭터와의 동기화조차 어려워진다. 수치의 증감과 자원의 순환 개별적인 수치들에 맥락을 부여하고 설득력 있는 상관관계를 설정하면, 이제 게임 속 캐릭터는 또 다른 나로 인식되며, 게임 속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은 이를 파악할 수 있는 비슷한 속성의 현실적 개념들로 치환되고, 게임은 또 다른 현실로 재구성된다. 이러한 설계와 과정들은 RPG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고도화되어, 이제는 어느 정도 공식처럼 자리 잡은 구조가 있다. 대표적 RPG 중 하나인 <사이버펑크 2077Cyberpunk 2077(2020)>의 성장 시스템도 이를 보여준다. 앞서 말했던 내재적, 외재적 수치를 각각 신체와 장비라는 범주로 치환해 설명해 볼 때, <사이버펑크 2077> 속 캐릭터의 신체를 형성하는 다양한 수치(우리가 흔히 스탯Stat이라 칭하는)들은 이 2가지 수치의 복잡한 결합 끝에 도출된다. * <사이버펑크 2077>의 신체는 경험치를 축적해 얻은 포인트의 투자로 강화된다. <사이버펑크 2077> 속 캐릭터의 신체는 크게 ‘특성’이라 불리는, 5가지 영역의 수치에 기반한다. [신체, 반사 신경, 테크 능력, 냉정, 지능]이라 명명된 영역은 각각 [체력, 치명타 확률, 방어력, 치명타 피해량, 램]이라 명명된 수치에 영향을 준다. 각 특성의 하위에는 많은 ‘특전’들이 서로 얽혀있다. 우리가 흔히 스킬이라 부르는, 캐릭터가 플레이 중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이다. 신체 능력 자체를 강화해 주거나 독특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이 특전들은 종종 상호 간 선후행 등의 상관관계로 얽혀있다. 이 내재적 수치들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자원은 플레이 중 캐릭터의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축적된다. 이른바 ‘경험치’다. 경험치가 축적되면 레벨이 오르고, 포인트를 획득한다. 플레이어는 이 포인트를 원하는 특성과 특전에 투자해 캐릭터를 강화한다. 이 자원은 철저히 무형으로, 외부 환경과의 거래와 양도가 불가능하며, 캐릭터 내부에서 발원해 캐릭터 내부로 환원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캐릭터가 어떤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어떤 전투 스타일을 가진 용병으로 성장할지, 그러니까 캐릭터의 장래에 영향을 미친다. * 신체 수치에 영향을 주는 장비는 무기와 사이버웨어를 포함한다. 캐릭터가 사용하는 장비는 성장에 있어서 캐릭터와 유사한 방식을 가진다. 능력을 나타내는 초기 수치가 있고, 이는 장비의 성격, 또는 이젠 상식처럼 자리 잡은, ‘색’의 문법으로 나타나는 장비의 등급에 따라 달라진다. 각 장비마다 허용되는 개수의 부속품과 부품을 장착해 수치를 추가적으로 조정한다. 마치 캐릭터와 장비의 관계처럼, 이 역시 각자 다른 수치를 가진 부속품을 선택해 장착함으로써 해당 수치를 일시적으로 활성화한다. 외재적 수치의 성장에 투입되는 자원은 형태를 가진다. 업그레이드용 부품, 그리고 돈. 플레이어는 이를 다양한 장소에서 줍거나, 의뢰비 또는 해킹을 통한 전산 조작으로 계좌에 입금되는 액수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자원들은 성장 외에도 다양한 목적과 방법으로 쓰일 수 있으며, 철저히 캐릭터 외부의 환경에서 순환한다. 장비에 얼마의 자원을 투자해 얼마나 개량을 했던, 해당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면 이 수치들은 캐릭터와 게임 플레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육성되는 내면, 개조되는 외면 RPG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통해 효능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몸과 나의 몸을 동일시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캐릭터의 몸(수치)을 둘러싼 맥락들이 현실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다양한 내재적, 외재적 수치를 마련했고, 현실적인 맥락도 갖췄다. 그렇다면 이 요소들이 어떻게 플레이어에게 효능감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내가 막강한 존재고, 게임에 존재하는 모든 적을 손쉽게 물리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를 지루하다고 표현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과정이 너무나 쉬워서 오히려 어떠한 효능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나와 대등한, 또는 나보다 강력한 존재가 나를 막아서고, 그래서 목표를 이루는 것에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어려움이 생긴다면, 우리는 이 어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조치들을 취한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를 해결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능력에 대해 만족과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는 이를 ‘성장’이라고 부른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앞으로 맞닥뜨릴 더 큰 난관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RPG의 성장 역시 현실적인 맥락을 가진다. 근력을 많이 사용하면 근력이 증가하고, 무기에 업그레이드 부품을 투입하면 성능이 증가한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 감각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RPG의 캐릭터 성장에서 더욱 중요한 부분은, 캐릭터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특정 스킬 분야의 성장은 해당 스킬 분야의 투자로 환원된다. <사이버펑크 2077>에서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스템이 ‘스킬’이다. 스킬은 [솔로, 엔지니어, 시노비, 넷러너, 헤드헌터]의 5가지 분야를 가지며, 각 분야에서 제시하는 특정 행위를 통해 획득하는 경험치를 체크한다. 그렇게 각 분야에서 일정 레벨을 달성할 때마다 캐릭터를 강화할 수 있는 보상을 제공하는데, 이 역시 각 분야와 관련된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성을 가진 보상이다. 내 캐릭터가 넷러너 분야의 경험치를 많이 획득해 레벨을 올리면, 그로부터 얻는 보상을 통해 넷러너로서의 조예가 깊어진다. RPG가 플레이어들에게 묻는 기본적인 질문 중 하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이다. 그리 거창하게 생각할 질문은 아니다. 글의 서두에서 말했던 내 성장 방식은 내 캐릭터가 무엇이든 잘 하는 만능이 되길 바라는 욕망에서 비롯되었겠지만, 실제로 플레이를 하다 보면 선호하는 전투 방식과 무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렇게 플레이 스타일이 자리 잡고 나면, 플레이어는 더욱 뛰어난 암살자나 격투가가 되기 위해 우선순위를 매기고 자원을 투자한다. 같은 RPG를 플레이하더라도 각 플레이어가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은 각자의 욕망만큼이나 다채롭다. 여기에 내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끼는 시스템이 있다. RPG가 플레이어에게 제안하는 성장 방식은 보통 플레이어가 가진 욕망을 캐릭터에게 투사함으로써 관념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방향에 가깝다. 앞서 말했듯이, RPG 캐릭터의 몸은 맥락을 가진 수치들의 집합으로 구축된다. 플레이어들은 이 가상의 몸에 근육과 장기, 뼈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사이버펑크2077>은 여기에 ‘사이버웨어’라는 맥락을 제공한다. * 사이버웨어 시스템은 관념적인 신체를 실재적인 신체로 상상하게끔 한다. 사이버웨어는 엄연히 장비, 그것도 다른 RPG에서 흔히 퍽, 부적 등의 개념으로 쓰이는 부가적 강화 장비다. 무기처럼 들고 휘두를 수 없고, 방어구(<사이버펑크 2077>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처럼 전투의 충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해 주지도 않으며, 장착 시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신 몇 가지 내재적, 외재적 수치를 조정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한다. <사이버펑크2077>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강해지고 싶다면 몸을 개조하라.’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골격, 신경계, 순환계, 외피 등 다양한 부위에 사이버웨어를 장착한다. 각 부위에 장착할 수 있는 사이버웨어는 해당 부위의 특성과 연결된다. 이로써 캐릭터가 단순히 수치로만 이루어진 관념적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각 부위가 기능하고 피가 순환하는 신체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플레이어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캐릭터를 강화하기 위해 현실 감각을 기반으로 어떤 신체 부위에 어떤 사이버웨어를 장착해 어떻게 ‘개조’해야 할지 구상한다. 이 개조를 몸이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지 ‘사이버웨어 용량’도 고려하면서. 사이버웨어와 같은 맥락의 성장 시스템은 고전적인 방어구 시스템의 연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몸 위에 덧입으면서 추가적이고 일시적인 신체 기능 조정의 효과를 가지는 방어구 시스템의 개념에 비하면, 사이버웨어는 동일한 기능을 가졌음에도 보다 직관적으로 신체를 강화해 준다는 맥락을 제공한다.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경험치를 쌓고 포인트를 얻어 무형의 신체적 역량을 전문화하는 동시에, 다른 편에서는 실체를 가진 몸에 사이버웨어를 박아 넣는 신체 개조가 이루어진다. 분석하고, 전략을 짜고, 실행할 것 게임 인생의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RPG를 플레이하면서 예전처럼 최대한의 자원을 모아 모든 옵션을 획득하는 성장 방식을 취할 수 없었다. 내 캐릭터가 더욱 강하고, 빠르고, 유능해지길 원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매기고, 무언가를 선택하고,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다. 이는 단순히 내가 가지고 싶은 스킬을 획득하고, 좋아 보이는 장비를 캐릭터의 손에 들려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에겐 전략이 필요했다. <아노 1800Anno 1800>이나 <파이어엠블렘: 풍화설월Fire Emblem: Three Houses>을 플레이할 때의 내가 필요했다. RPG의 규칙은 수치의 미학이다. 이 규칙이 고도화될수록, 플레이어들이 교감해야 하는 수치와 수식도 고도화된다. 플레이어들은 더욱 강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계산한다.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전문적인 개발용 어들을 가져오며, 각종 수치를 분석하고, 차트를 만들고, 성장 공식을 유추한다. 적 또는 다른 플레이어를 압도할 수 있는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와 해결책을 찾는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RPG에서는 플레이어 본인의 신체적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RPG에서 캐릭터를 강력하게 성장시키는 것은 플레이어의 전략적 사고, 소위 ‘뇌지컬’이다. 그러니까, 이건 사실 경영에 가깝다. 수치로 구성된 가상의 몸에 대한 보고서를 실시간으로 받아보며,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뺄지, 가용 자원이 얼마나 되며 이를 어디에 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흑자를 볼 수 있을지 계산한다. 플레이어는 정서적으로 이 몸과 동기화된 주체이면서도, 이 몸 자체는 플레이어가 실험대에 올려놓고 조목조목 뜯어봐야 하는 타자화된 객체다. 이 구조 안에서 몸이라는 것은 현실에서처럼 수양의 대상이 아닌 경영의 대상이 된다. * 캐릭터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수치는 한 페이지로 요약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신체 경영의 개념이 점차 현실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RPG가 구사했던 신체 능력의 수치화는 현실의 모방에서 시작되었다. 사람의 몸과 관련된,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들을 여러 요소로 규정해 수치화함으로써 게임의 규칙을 만들었다. 솔직히, 끝내주게 편리하고 매력적인 개념 아닌가. 인간을 구성하는 모호한 개념들을 객관적인 수치로 가시화할 수 있다니. 타인과의 우열을 명확히 가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강력한 몸을 얻기 위한 전략까지 제공받을 수 있다니. 그렇다 보니, 이제 사람들은 현실에서도 인간을 수치화하길 원한다. 인간의 체력, 지구력, 민첩성 등을 수치로 계산해 분석함으로써 인간을 파악할 수 있길 희망한다. 실제로 스포츠 현장에서는 선수의 신체 능력을 계량화하여 경기력 증진을 위한 자료로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으니, 이 제공하는 맥락과 현실이 그리 다르진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개념을 현실에 완벽히 적용할 수 있다고 여기진 않으리라 나는 믿는다. 현실을 매혹하는 몸의 수치화 우리는 우리의 몸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의 신체 기능과 능력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완벽히 파악이 끝난 상태인가? 수천 년에 걸친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파킨슨병을 초래하는 명확한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스포츠계에서는 해당 종목에서 요구되는 능력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기에 이러한 계량화가 가능하겠지만, 우리가 우리의 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가 자의적으로 규정한 요소에 자의적으로 계산한 수치를 넣어 서로를 비교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이를 반대로 보면, 여전히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고 수치화되지 않은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먼저 규정되고 수치화된 요소가 있다는 것은, 해당 사회에서 그 요소를 다른 요소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으며, 그 요소를 특정 방식으로 수치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 판단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게임에서 어떤 요소를 규정하고 수치로써 다룰 것인지는, 디자이너가 그 게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규칙에 따라 결정된다. 현실에서 어떤 요소를 규정하고 수치로써 다룰 것인지는, 현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규칙에 따라 결정된다. 현실에서는 때로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를 ‘기적’, 또는 ‘절실함’ 같은 단어로 표현하곤 하지만, 사실은 그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져 그간 규정되고 수치화되지 않은 신체적 요소와, 우리가 주목하지 않은 상관관계가 작동한 결과일 수도 있다. 자신의 몸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인간이 편의상 판단한 규칙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수집형 RPG의 규칙으로도 확대된다. <원신>의 기본 멤버들에게 열심히 경험치 아이템을 먹이는 나를 보며 어떤 사람들은 ‘더 좋은 애들이 많은데 왜 아직도 걔네를 키워요?’라고 묻는다. 수집형 RPG에서 캐릭터는 장비의 일종이다. 등급이 나뉘어있고, 기본 능력과 성장의 한계에도 차이가 있으며, 필요에 따라 바꿔 끼울 수 있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요건들로 복잡하게 구성될 태생적 차이를 별의 개수나 색으로 간단하고 명쾌하게 알아볼 수 있다. 나에게 필요할지, 버려야 할지가 한눈에 보인다. 엄연히 장비화되었지만 캐릭터의 역할도 하는지라, 현실의 사람에게도 이렇게 명확한 규칙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의 등급을 매긴다는, 인간의 오랜 본능과도 맞닿아있으니. 온갖 요소들을 구구절절 늘어놓고 계산하기에 앞서, 사람 자체를 단순하게 등급화해 우열을 가리는 것이 훨씬 편리하긴 하다. 그러나 역시, 이러한 기준을 만드는 우리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는가, 신뢰할 수 없는 판단 기준을 통해 산출된 등급에 따라 사람을 대우하는 것은 적절한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다. 현실을 모방하기 위해 구성된 수치의 묶음으로 RPG 캐릭터를 구현했지만, 역설적으로 이제 우리는 실체를 가진 우리의 몸을 수치로 채우고 있다.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객관과 논리의 가치에 열광하며, 모든 것을 측정해 가시화한다. 그러나 그렇게 재구성된 우리의 몸은 정말로 본래의 우리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가? RPG 캐릭터의 몸을 단련하는 전략적 뇌지컬만으로, 현실 세계의 몸에서도 성장을 통한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가? RPG의 수치를 읽어나가는 눈으로 현실을 읽어나가는 것은 가능한가? 이 수치들의 조합은... 무궁합니다. 객관적 수치로 이루어진 RPG 캐릭터의 몸은 현실 속 인간의 몸에 비해 훨씬 단순하고, 공정하며, 신뢰할 수 있다. 자원을 투자한 만큼 성장할 수 있으며, 대체로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수치를 읽어나가는 충분한 감각만 있다면, 어떤 상태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눈에 보인다. 현실에서는 가능성이지만, RPG에서는 확신이다. 때문에 가장 효율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왕도가 존재한다. 추천 트리, 빌드, 다양한 비법서들이 개발되어 공유된다. 얼마나 빨리 캐릭터를 성장시켜 게임을 끝내는지 경쟁한다. 늘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RPG는 자신이 얼마나 전략적이며 유능한지 부단히 경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다. 전략성이 곧 캐릭터의 신체적 강력함으로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만 가끔은, 정해진 길로만 가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가 RPG의 재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생에 정해진 길이 있다는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도 효율을 운운하며 우리를 제약하는데, 게임 속에서 펼쳐진 새로운 인생에서까지 늘 효율을 따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가끔은 캐릭터를 경영하며 스킬 포인트를 어떻게 확보해 투자하는 것이 가성비가 좋을지 궁리하는 내게 묻는다. 게임 속에서까지 정답을 찾느라, 쓸데없는 재미를 추구하는 게이머의 사명을 멀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박해인 게임에서 삶의 영감을 탐색하는 게이머. 게임의 의도와 컨셉을 전달하는 방식들을 분석하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 Disco Music as the Vestige of a Failed Revolution: Disco Elysium
The title of Disco Elysium, a highly controversial role-playing game that came out in 2019, does not tell you much about what kind of a game it is or what it's about. In fact, it's not easy to deduce why the word "disco" is included in the title of the game when its story centers around a derelict alcoholic detective investigating a murder in the port city Revachol, a place of mixed industrial prosperity and dilapidation.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곤잘로 프라스카, 공감과 공환의 매체를 꿈꾸다
앞으로 소개할 곤잘로 프라스카(Gonzalo Frasaca)는 참으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게임 개발자이며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게임 규칙과 놀이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게임론’(ludology)의 주요 이론가이다. 게임을 스토리텔링 미디어로 보며 서사로서의 게임 연구를 고수한 ‘서사론’(narratology)에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놀이냐 서사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도 이제는 옛일이 되었지만 프라스카는 게임 연구에 나름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 Back 곤잘로 프라스카, 공감과 공환의 매체를 꿈꾸다 04 GG Vol. 22. 2. 10. 앞으로 소개할 곤잘로 프라스카(Gonzalo Frasaca)는 참으로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게임 개발자이며 사업가이기도 한 그는 게임 규칙과 놀이 행위 자체를 중시하는 ‘게임론’(ludology)의 주요 이론가이다. 게임을 스토리텔링 미디어로 보며 서사로서의 게임 연구를 고수한 ‘서사론’(narratology)에 대립각을 세운 셈이다. ‘놀이냐 서사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도 이제는 옛일이 되었지만 프라스카는 게임 연구에 나름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나아가 우르과이 출신 게임 개발자로서 그는 상업적인 게임과 실험적인 게임들을 넘나들면서 독창적인 게임들을 개발하기도 했다.『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이라는 학위논문을 쓰기도 한 그의 관심은 게임을 통해 억압과 폭력, 차별, 전쟁과 같은 사회의 현실 문제와 씨름하는 게임들을 만들어 왔다. 프라스카가 제안하고 실천한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s’, ‘뉴스게이밍 newsgaming’, ‘교육적 게임 educational games’, ‘다큐게이밍 docugaming’ 같은 프로젝트들은 상업적 성공을 향한 오락 일변도의 주류 게임을 넘어 게임의 사회적 효용성과 실천적 잠재성을 확장하려는 시도들이다. 물론 게임이 교육과 사회적 인식이라는 목적을 강조하다 보면 재미라는 게임의 핵심 요인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나날이 다양해져온 게임의 장르와 콘텐츠, 그리고 게임 테크놀로지와 게이밍 환경의 꾸준한 진화 속에서 프라스카의 제안과 실험은 일정한 시의성을 갖는다. 우리는 누구나 게임을 만들고 누구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의 민주화’에 값하는 ‘놀이 정보계’(ludic infosphere)의 도래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게임생태계의 발전 과정을 돌아보면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토론하고, 나아가 사회 인식과 공감의 상승을 시도하는 프라스카의 꿈은 ‘몽상’만이 아니게 된 것이다. 여전히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게임들만이 주로 기억되고 이야기되는 현실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의미 있는 문제작들이 발표되고 있기도 하다. ‘재미’와 ‘인식’의 균형을 향해 아직 나아갈 길은 멀지만 말이다. 여기서는 ‘시리어스 게임’, ‘임팩트 게임’의 초기 제안자라 할 만한 프라스카의 게임관과 실험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정치적 에듀테인먼트와 시사 게임 프로젝트 프라스카의 게임 철학은 “비디오게임이 반드시 오락적일 필요는 없다”는 다분히 논쟁적인 선언에서 잘 나타난다. 사실 이러한 진술은 다분히 정치적인 발언이다. 프라스카 역시 게임의 오락성과 재미를 중시하고 그가 만든 게임들 역시 재미적 요소를 강화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렇기에 그의 게임인 는 1천 300만 카피를 팔 수 있었고 “역사상 가장 거대한 성공을 거둔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프라스카의 게임관과 실험은 세계적인 독일 극작가이자 연극이론가이며 실천가였던 브레히트(B. Brecht)와 그를 계승한 실험적 연출가 보알(Augusto Boal)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재미라는 것이 주류 대중문화와 오락산업의 관행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재미와 오락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굳이 시끌벅적한 스펙터클 속에 순간적 쾌감이 아닌 주변 현실을 돌아보고 인식하는 가운데서도 재미와 오락을 찾을 수 있음을 모색하는 것이다. 브레히트가 말하는 ‘배움의 재미’ 혹은 ‘깨달음의 재미’는 프라스카에게도 이론적ㆍ실천적 화두였던 셈이다. 프라스카에 따르면 비디오게임은 원래 비오락적인 용도로 탄생했다. 군사훈련을 위해 도입된 각종 시뮬레이터들이나 명시적으로 교육적 목표를 표방하는 게임들이 그것을 입증한다. 오래전부터 ‘디지털 에듀테인먼트’(Digital Edutainment)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교육용 게임들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에듀테인먼트’는 ‘교육’(education)과 ‘오락’(entertainment)를 결합해서 만든 신조어로서 학생들의 참여와 흥미를 유발하는 새로운 교육 방식이나 수단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 바 있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가능해진 학습자의 능동적 상호작용과 참여 가능성은 주입식 교육의 대안으로까지 여겨졌다. 곤잘로 프라스카 역시 학습 플랫폼으로서 디지털 미디어가 갖는 요소들을 인정하며 이러한 장점들을 비디오게임의 사회적 기능전환에 유용한 장치로 활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대체로 오늘날에도- 비디오게임의 교육적 활용이 순전히 수학이나 과학, 어학 교육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프라스카의 관심은 유저들이 상호 토론과 공감을 통해 비판적 사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비디오게임의 디자인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장 이상적인 비디오게임의 모델은 다음과 같은 사회심리학자 셰리 터클(Sherry Turkle)의 구상에 기반한 게임이다. “하지만 우리는 제3의 반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더욱 복잡한 사회적 비평을 계발하기 위한 하나의 도전으로서 시뮬레이션의 문화적 파급력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비평이 모든 시뮬레이션들을 일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 사이의 차이를 식별할 수는 있다. 이는 모델 고유의 가정들에 대한 플레이어의 도전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시뮬레이션의 발전을 그 목표로 삼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비평은 시뮬레이션을 의식-상승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기서 시뮬레이션은 비디오게임으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프라스카의 말처럼 그의 실험이 이루어지던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게임들은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혐의에서 완전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괴물이나 몬스터, 트롤들 일색이거나 인간이 등장하더라도 일상인들과 거리가 먼 캐릭터라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심시티〉나 〈심즈〉 등 현실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들의 등장하고 멜로, 역사물, 갱스터 등의 장르들로 게임의 소재와 주제가 다양해지면서 상황이 많이 변하기는 했다. 하지만 인간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현실을 재현하는 게임들 다수는 현실의 문제나 모순들을 회피하고 ‘디즈니랜드 같은 방식’으로 삶을 이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프라스카가 보기에 더 심각한 문제는 다수의 게임 연구자들에 의해 게임에 대한 무비판적 동일시를 의미하는 ‘에이전시’(agency)와 ‘몰입’(immersion)이 게임의 바람직한 효과들로 당연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플레이어-주체가 게임 규칙과 그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환경의 창조야말로 게임 개발자의의 미덕이라고 보는 사이 인종/젠더/민족(국민)/종교 등의 차별 의제들은 살며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프라스카는 주류 게임들이 상업적 성공에 꽂혀 현실의 억압과 차별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미지 재현과 플레잉 규칙을 통해 차별과 폭력의 구조를 고착화하는 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문제는 단순히 게임의 판타지적 설정이 아니라 게임 대상들과 게임 규칙에 담긴 차별과 억압에 대한 무감각 혹은 그에 대한 암묵적 동의이다. 우리는 비디오게임의 플레이가 연극이나 영화의 감상과 분명 다른 경험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어와 비디오게임 캐릭터 사이의 거리는 다른 예술의 수용자-캐릭터 사이보다 훨씬 더 밀접하다. 프라스카의 지적처럼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라라 크로프트가 혹 신장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마리오가 편집증 증세를 지닌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지 않는다. 이들 캐릭터나 게임상의 괴물들은 모두 수단이고 커서일 뿐이다. 게임의 캐릭터들은 대체로 평면적 캐릭터로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왜 그 캐릭터가 그런 식으로 행동했을까”가 아니라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슈퍼맨, 스파이더맨, 제임스 본드 등의 영웅이고 싶지만 게임의 경우 그런 욕망을 가질 필요가 없다. 게임에서 우리가 바로 그 영웅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게임에서 마리오는 영웅이 아니다. 내가 바로 영웅이고 마리오는 하나의 커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에게 자유도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게임의 캐릭터는 플레이어의 행위를 위한 커서가 되고 플레이어는 스스로를 게임의 영웅 혹은 신으로 자각한다. 게임의 자유도와 상호작용성에 따른 게임의 몰입은 게임 이면의 규칙에 묻어나는 차별과 억압의 이데올로기를 ‘자연화’(neutralization)하기 쉽게 만든다. 프라스카는 주류 컴퓨터게임들의 이러한 한계들을 비판하면서 플레이어에게 자신이 당면한 현실을 탐색하게끔 허용하는 캐릭터 중심의 비디오게임, 더 나아가 게임의 행동 규칙을 플레이어 스스로 변경할 수 있는 컴퓨터게임을 구상한다. 이를 위해 그는 아우구스또 보알이 연극을 통해 실험했던 것을 컴퓨터게임으로 전유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에서 관건은 “재미 경험을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이데올로기적 이슈들과 사회적 갈등들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강화하는 비디오게임”의 개발이다. 이러한 인식은 〈9ㆍ12〉나 〈마드리드 Madrid〉와 같은 프라스카 본인의 게임의 개발로도 이어진 바 있다. 하지만 프라스카의 작업에서 더 중요한 것은 게임 창작이 어려운 이들이 기존의 게임들을 비판적으로 ‘재매개’하여 자기 이야기를 만들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끈 고전 게임들을 활용할 경우 유저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참여와 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에야 게임 창작 도구나 제작 엔진의 수준이나 직관성이 크게 향상되고 ‘로블록스’나 ‘디토랜드’ 등과 같은 양질의 플랫폼이 발표되어 프라스카의 실험 제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무척 커졌다. 프라스카의 실험은 일종의 게임 모드(mod)에 대한 제안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수준도 비약적으로 향상되기도 했다. 문제는 플레이어-주체들의 의지와 인식에 달린 셈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게임들이 드문드문 인디 게임씬에서 발표되는 중이다. 게임 유저의 게임 모딩이나 창작의 환경이 지금보다 원활하지 않았던 시절 〈심즈〉를 이용하여 프라스카가 상상한 ‘억압받는 사람들의 비디오게임’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 프라스카의 ‘억압받는자들의 비디오게임’은 소설이나 영화처럼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억압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보알의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이 그랬듯이 프라스카의 게임은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차별과 억압들에 대해 ‘쟁점들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알의 연극 실험처럼 ‘과정 속의 작업’(work-in-progress)으로서 비판적 사유와 논쟁을 위한 포럼(forum)의 역할만으로도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라스카의 말처럼 모든 게임들은 늘 제한적이고 이념적으로 편향적일 수 있다. 그리고 게임들은 개발자들도 예견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고 플레이될 수도 있다. 프라스카는 문학이나 영화 못지않게 게임들도 훌륭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는 세리 터클의 주장에 동의한다. 터클에 따르면 게임과 시뮬레이션들에 있어 “시뮬레이션의 기저에 깔린 이데올로기적 가설들에 대한 이해는 정치권력의 핵심 요소이다. 시뮬레이션들에 강요된 왜곡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더욱 직접적인 경제적ㆍ정치적 피드백과 새로운 종류의 재현, 더욱 많은 정보의 채널들을 요구할 만한 위치에 있다.” 프라스카는 이 정도로 게임 사용자들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대안적인 게임 창작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개발자들이 한데 힘을 모으고 실천적인 사례들을 창안하고 확산시켜 나갈 것을 촉구한다. 이처럼 프라스카의 ‘억압당하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은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은 보알의 ‘억압당하는 자들의 연극’ 이념과 테크닉들을 비디오게임으로 전유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관객-배우’가 직접 경험한 억압적 상황을 무대에서 소개하고 그에 대해 배우와 동료 관객들이 참여하여 대안적 해결책들을 연기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에게 자신의 게임들을 디자인하도록 허용함으로써 기존 게임의 이데올로기적 가정들에 도전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당시로서는 주류 게임을 이용하여 그 게임의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는 게임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일로 여겨질 수 있었다. 최근에야 소극적이나마 플레이어들 스스로 개작한 모드 게임들을 공유하고 플레이하는 일이 낯설지는 않다. 〈로블록스〉를 통해 게임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직접 구매하여 플레이하며 동료 플레이어들 상호 간에 소통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프라스카는 대략 20여년 전의 기술적 조건과 환경 속에서 난해해 보이는 실험들을 제안한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그의 작업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이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 프라스카의 첫 실험은 게임 역사상 매우 성공했고 중요한 게임이었던 윌 라이트(Will Wright)의 〈심즈〉를 기능전환하는 것이었다. 〈심시티〉의 개발자이기도 한 윌 라이트는 〈심즈〉에서 일상의 삶과 생활을 시뮬레이트함으로써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도록 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심(Sim)이라고 불리는 캐릭터를 만들어 삶을 살며 주변을 관찰하고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원래 윌라이트는 이 게임의 아이디어를 버클리 대학 건축학과 교수인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의 책『패턴 랭귀지』로부터 얻었다고 한다. 이것은 건축이 인간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256가지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 책이라고 한다. 윌 라이트는 비디오게임을 통해 이러한 다양한 패턴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을 만든 것이다. 〈심즈〉에서 우리는 인간관계나 가족관계, 혹은 인간관계가 어떻게 상호반응하는지를 추체험할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스스로 디자인한 ‘심’들을 통해 인생을 계획하고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나간다. 우리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캐릭터들을 보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고 동일시에 가까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 바로 〈심즈〉인 것이다. 플레이어가 ‘스킨 Skin’ 기능을 통해 직접 캐릭터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 벽지나 바닥재 등의 재료들로 집을 꾸미고 가족의 삶을 설계하는 일은 현실에 대한 시뮬레이션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그중 단연 즐거운 것은 각종 게임 정보, 각 플레이어들의 캐릭터들과 심들의 삶 등에 대해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유저 커뮤니티가 있어 게임을 사회적 활동으로 승화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커뮤니티 기능은 게임에 쉽게 싫증나지 않게 해주고 인간사의 여러 우발적인 사건들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회사가 계속해서 확장 팩을 내놓으면서 게임 세계와 행동 영역을 확장해나간 것도 게임의 주요 성공 요인이었다. 프라스카가 〈심즈〉를 시뮬레이션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이 게임이 플레이어의 게임 변형, 즉 ‘모드’(mod, modification)의 자유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야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플레이 영상이나 그 경험물들을 게임의 일부로 수용하고 그것들을 집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별로 신선하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심즈〉의 발표 당시 이는 매우 신선한 것이었다. 프라스카는 〈심즈〉의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기능에 주목한다. 그는 플레이어들이 선호하는 영웅이나 스타, 혹은 자신들처럼 보이도록 캐릭터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받아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를 구상한다. 물론 프라스카의 출발점은 원작 〈심즈〉의 규칙과 메커닉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문이다. 이 게임은 가족의 삶과 인간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게임 산업에서 분명한 약진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소비주의적 원리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플레이어들의 소유가 늘면 늘수록 친구가 늘어나는 식의 규칙을 내장하고 있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이 게임은 도시 근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뮬레이트하면서 전형적인 ‘와스프’(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즉 백인중상층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깔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플레이어들에게 캐릭터들의 겉모습만을 바꿀 수 있는 자유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게임 개발자의 설정이나 규칙, 이미지 재현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어찌해볼 도리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프라스카가 게임 규칙의 전폐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심즈〉가 비판적 사유의 촉진을 위한 실험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는 게임 규칙들이 플레이어들의 다양한 접근을 허락하도록 충분히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캐릭터의 겉모습을 바꾸는 식의 변화가 아니라 시뮬레이션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가설들에 대한 도전과 변형을 허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자질구레한 규칙들을 변형하고 보태고 토론하는 것을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중에 발매된 〈심즈〉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특히 캐릭터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들에는 게임 혹은 게임을 만든 개발자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기 마련이므로, 이러한 규칙에 대한 변경을 실험하도록 하는 것이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의 목적이다. 우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외양 skins’ 다운로드 기능에 추가로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 디자인과 이에 대한 플레이어 상호 공유 시스템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기존의 심즈는 6가지의 행동 스타일 혹은 인물 성향에 따라서만 게임을 진행하도록 제한함으로써 게임의 현실감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동료 플레이어들이 어떤 플레이어가 디자인한 캐릭터들을 비판하고 이에 대해 그들 각각의 대안들을 디자인할 수 있다.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플레이어들 서로 서로에게 더욱 현실감 있는 캐릭터로의 개선을 요구하고 토론할 수 있는 ‘디자인 툴’을 제공할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억압받는 자들의 심즈〉는 보알의 연극 처럼 ‘과정 속의 작업’(work-in-progress)이다. 즉 어떤 억압적 상황에 대해 해답이 될 만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훌륭한 논쟁과 토론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심즈〉에 대한 기능전환이 비디오게임 자체의 위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최대의 가능성들을 현실화하기 위해 기존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보다 더 많은 변형의 자유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프라스카가 아그네스(Agnes)라는 가상의 소녀를 통해 소개하는 사례를 통해 그의 생각을 구체화해보자. 아그네스 Agnes는 지금 한 동안 〈심즈〉를 플레이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이 게임의 규칙과 기본 메커니즘을 알고 있고 그것을 즐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족 관계가 보다 현실적이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캐릭터 교환 Character Exchange’ 사이트로 가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검색한다. 그녀는 흥미 있어 보이는 한 캐릭터를 발견한다. 이것은 ‘데이브의 알콜 중독 어머니 버전 0.9 Dave's Alcholic Mother version 0.9’라고 이름 붙여져 있는데 그 게임을 설계한 플레이어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어머니는 많은 시간을 일로 보내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너무 피곤하다. 여전히 그녀는 저녁을 조리할 것이고 약간의 청소도 할 것이다. 그녀의 가혹한 삶에서 도피하기 위해 어머니는 많은 양의 위스키를 마신다. 그녀는 아이들과 애완동물 때문에 매우 화가 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폭력적이 될 수도 있다.” 아그네스는 이 캐릭터를 시험해볼 생각을 하고 그녀가 이전에 플레이해왔던 집 안으로 그 캐릭터를 다운로드한다. 이 가정은 부부와 세 아이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로 구성되어 있다. 다운로드 이후 어머니는 ‘데이브의 알콜중독 어머니 버전 0.9’로 대체된다. 이 캐릭터는 흥미롭다. 한동안 그 캐릭터를 가지고 플레이하고 난 후 아그네스는 그 캐릭터가 어느 정도의 피로에 도달하면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가 마시면 마실수록 가족에 대해서는 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아그네스는 이 캐릭터가 꽤 잘 묘사되어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녀가 동의할 수 없는 디테일들이 있음을 느낀다. 이를테면 이 캐릭터의 배경은 낮은 교육 수준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덧붙여 이 캐릭터의 직업은 형편없다. 그리고 일들을 더 나쁘게 만들기 위해 ‘알콜 중독 어머니’는 거실의 작은 바에서 계속해서 퍼마신다. 아그네스의 생각에 알콜 중독에 걸린 사람은 빈약한 교육을 받았고 형편없는 직업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아그네스는 일반적으로 알콜 중독자는 집 주위에 술병을 감추지 공개적으로 마시려 하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캐릭터 교환’ 사이트로 가서 다른 알콜 중독 어머니를 찾아본다. 그녀는 유망해 보이는 ‘도로시의 알콜 중독 감리교도 어머니 버전 3.2 Dorothy's Alcholic Methodist Mother version 3.2’를 발견한다. 그것을 실험한 후 그녀는 이 캐릭터의 행동이 그녀가 그것에 대해 가졌던 생각보다 훨씬 더 적합함을 깨닫는다. 그녀는 엄마가 감리교도일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이 버전의 디자이너가 고집한 이유에 매료된다. 그 사실은 엄마의 알콜 중독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캐릭터 디자이너의 웹 페이지를 체크하고, 이 캐릭터가 감리교도였던 어떤 실제 인물의 실제 이야기에 근거해서 만들어 진 것임을 말해주는 짧은 내러티브를 발견한다. 아그네스는 이 스토리를 흥미롭게 생각하고 알콜 중독의 행동 부분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에게 감리교도 부분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캐릭터의 코드를 변경하기 위해 ‘에디터 editor’ 기능을 이용하고 종교와 관련된 언급들을 삭제한다. 그녀는 또한 몇몇 작은 디테일들을 추가한다. 가령 엄마가 어떤 브랜드의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런 후 그녀는 그것을 ‘아그네스의 알콜 중독 어머니 1.0-도로시의 알콜 중독 감리교도 어머니 버전 3.0에 의거함 Agnes' Alcholic Mother 1.o-Based on Dorothy's Alcholic Methodist Mother version 3.2’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에 탑재하고, 주요 행동 규칙에 대한 짧은 설명을 덧붙인다. 몇 주 후 아그네스는 알콜 중독 어머니의 플레이에 약간 싫증을 느끼고 그녀에게 약간 더 많은 개성을 부여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가 생태론자 ecologist가 되면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판단한다. 아그네스는 ‘피터의 급진 그린피스 활동가 버전 9.1 Peter's Radical Greenpeace activist version 9.1’을 다운로드한다. 그녀는 자신의 알콜 중독 어머니에 약간의 부수적인 변형들과 더불어 피터 버전의 코드를 편집하고 그것을 카피하고 짜깁기한다. 이제 어머니는 식물들을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고 술에 취했을 때도 고양이를 차거나 하지 않는다. 이렇게 여러 차례 변형을 거친 후 아그네스는 스스로 설계한 게임을 사이트에 탑재한다. 이 게임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의 비평과 토론이 이어지고, 어떤 이들은 이것을 변형하여 새로운 게임을 제작하고 탑재한다. 다른 플레이어도 아그네스나 다른 동료 플레이어들의 게임들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변형 작업을 반복할 수 있다. 이처럼 누군가의 게임에 대해 크고 작은 규칙들을 변경하고 보태고 토론하는 과정은 보알의 ‘포럼연극’(forum theatre)처럼 어떤 억압적 상황에 대한 참여자들 각자의 생각들을 피력하는 가운데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는 공감과 협력의 과정이다. 이는 전설적인 비디오게임 〈스페이스 워〉의 완성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품을 팔던 스티브 러셀(Steve Russell)과 그의 MIT 동료 해커들을 떠올리게 한다. 플레이어들은 크고 작은 정치적ㆍ사회적 억압들을 반영한 새로운 게임들을 디자인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게임에 비판적인 자기 의견을 반영하여 규칙이나 설정을 변경할 수도 있다. 어느 누군가의 게임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태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업그레이드 버전들이 이어진다. 여기서 문제적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나 합의 도출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각자의 생각들을 담아 스스로 만들고 보탠 게임들로 어떤 문제들을 공유하고 업그레이드하면서 서로의 생각들을 발전시켜 나가며 인식의 확장과 상승을 경험하는 것이 프라스카의 구상이기 때문이다. 프라스카는 이러한 창작 플랫폼을 ‘메타 시뮬레이션’(meta-simu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참여와 소통을 도와주는 게임 창작 시스템을 가리킨다. 하지만 사실은 ‘너 자신의 행동을 디자인해라’라는 기능이 윌라이트의 〈심즈〉 원작 게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다만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하는 것만 허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원래의 〈심즈〉에서는 플레이어들의 행동 폭 역시 무척 제한적인데, 그들 캐릭터는 ‘단정’, ‘사교적’, ‘활동적’, ‘쾌활’, ‘섬세한’이라는 주어진 성격 안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복잡한 결들과 인간관계의 다층적 갈등들을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프라스카가 보기에도 〈심즈〉는 다른 게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자유도에도 불구하고 규칙의 제한에 갇혀 있는 게임이고, 부자가 더 많은 친구를 갖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포획되어 있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개발자가 마련해둔 규칙과 행동 패턴에서 드러나는 이데올로기에 딴지를 걸 수 없다. 그래서 프라스카는 〈심즈〉에 캐릭터의 부분적인 변경 이외에 게임 규칙 혹은 행동 규칙의 변경의 자유를 플레이어에게 허용하게 될 때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고 있다. ‘PMO’ 프로젝트: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라! ‘억압받는 자들의 비디오게임’의 또 하나의 사례로 프라스카는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기’(Play my Oppression, PMO)를 제안한다. 이 프로젝트 역시 보알의 연극 테크닉인 ‘이미지 연극’(Image Theatre)에 바탕을 둔 실험이다. 이미지 연극에서 ‘관객-배우’들은 본인들의 억압적 상황이나 차별적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몸 혹은 간단한 소품들을 ‘빚고’ ‘조각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해 볼 것을 요청받는다. 이 실험에서 ‘관객-배우’들은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들은 다른 참가자들의 몸만을 이용하여 어떤 ‘이미지’를 조각해내야 한다. 어떤 이상적인 이미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이미지를 수정하는 ‘이미지 연극’의 작업은 ‘몸으로 하는 포럼연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극의 목표는 우리의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행위와 몸짓들을 통해 억압과 차별이 재생산되고 있고 가장 기본적인 육체적 수준에서 우리의 편향적 정체성이 형성되어 왔음을 반성하는 것이다. 다른 인종, 종교, 젠더, 국적 등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은 몸을 통해 드러난다. 그런데 보알의 ‘이미지 연극’을 통해 참여자들은 뿌리 깊은 차별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사회구조와 제도 및 권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몸을 통해 체험하고 사유한다. 프라스카는 보알의 실험을 통해 처음 한 사람이 몸을 통해 제시한 자신의 ‘억압 이미지’에 대해 참여자들이 서로 그 이미지를 수정하며 일종의 ‘대안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을 거쳐 상호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참여자들 스스로 차별과 억압에 대한 인식의 개선을 이루어나가는 점에 주목한다. 프라스카의 말처럼 ‘PMO’ 비디오게임은 몸이 아니라 마우스와 자판, 조이스틱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다. 그는 연극에서의 몸이 아니더라도 비디오게임의 특별한 기능을 활용하면 보알의 퍼포먼스와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다시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에서 그 해법을 찾는다. 물론 ‘포토앨범’ 기능이 게임 규칙의 설계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고 플레이어 자신의 선형적인 내레이션의 창작만 허용한다. 이 기능을 이용하여 플레이어는 게임 플레이의 다양한 순간을 담은 스냅 사진들을 활용하여 그것에 설명을 달고 자기만의 ‘가족앨범’을 설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스스로 재구성한 이 앨범은 인터넷에 마련된 사이트에 올릴 수 있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공유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기능을 자기만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심즈〉를 플레이하는 주된 이유는 그래픽 이미지를 통해 게임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주요한 장면을 캡쳐하고 거기에 주석을 붙임으로써 자기만의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가 소개한 포토 앨범 중에는 폭력 남편과 살던 여성의 동생이 올린 글이 있었다. 인터넷 심즈 사이트에 올라온 이 콘텐츠에는 언니와 동생의 관계, 언니가 폭력 남편과 결혼하게 된 경위, 남편이 더욱 폭력적으로 되어가면서 파경에 이르게 된 사연 등을 실감나게 보고하고 있다. 물론 허구적일 수도 있는 이 스토리는 무척 현실감이 있는 것이었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활발한 토론의 계기를 제공했다. 윌 라이트는 게임의 토론 유발과 공감대 형성 과정에 주목하면서 플레이어들의 스토리텔링 구성 기능을 강화하기도 한 바 있다. 하지만 프라스카가 생각하는 프로젝트의 이행을 위해서는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이 더욱 확장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만화나 영화 같은 정적인 내러티브 시퀀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즉 게임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즈〉의 원래 ‘포토앨범’ 기능에서 플레이어는 어떤 ‘완결적’ 사건을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즉 그가 작성한 스토리는 고정된 것이고 닫힌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에 의한 이야기 변경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 스토리를 경험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저 이에 대해 댓글만 올릴 뿐 상황 자체의 변경을 통한 대안 제시로까지 나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프라스카는 ‘폭력남편’ 이야기를 올린 플레이어의 진짜 의도가 또 다른(‘대안적인’) 게임의 창조였다는 가정하에서 일종의 기능전환을 시도한다. 만일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 사건을 경험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다른 행동 모델들을 실험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인간 관계들과 물질적 상황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상호토론을 통해 인간과 현실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자신들이 직면해 있는 억압적 현실에 대한 반성과 사회적 인식의 강화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 프라스카의 기대이다. ‘나의 억압을 플레이하라’, 즉 ‘PMO’의 실행을 위해서는 우선 한 참여자가 직접 겪거나 경험한 개인적 문제와 고민을 모델화한 게임을 창조할 수 있다. 이후 다른 참여자들은 그것을 플레이해보고 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으며, 심지어 어떤 플레이어들은 그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개인적 입장을 반영한 새로운 버전의 게임을 창조할 수도 있다. 이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플레이와 토론, 수정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는 사회ㆍ정치적 대화의 차원으로까지 발전될 수 있다. 물론 플레이어들 스스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참여를 위한 다양한 툴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고, 그리고 비교적 쉽게 게임을 변경하거나 디자인할 수 있는 방편들이 주어지고 있다. 프라스카 역시 앞으로 컴퓨터게임이 더욱 대중화될수록 ‘시뮬레이션의 처리능력'(simulation literacy) 역시 더욱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로 오늘날의 시뮬레이션 창작 환경은 프라스카의 기대와 상상 그 이상으로 진화를 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곤잘로 프라스카가 제시한 사례를 통해 ‘PMO’의 과정을 구체화해보자. 프라스카는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부모나 주변에 ‘커밍아웃’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터(Peter)라는 주인공을 가정하여 샘플 시나리오를 짠다. 일단 게임 커뮤니티에서 피터의 시나리오가 승인되고 나면 그는 이 문제를 토론하려고 하는 방에 게임을 만들어 놓는다. 프라스카는 이를 ‘옵 게임’(op-games, oppressive games), 즉 억압을 시뮬레이션 해놓은 게임으로 부른다. 이 게임에는 피터의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복할 필요가 있는 특수한 문제들이 재현되어 있다. ‘옵-게임들’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보알의 연극처럼 성소수자 피터가 겪을 수 있을 문제들을 시뮬레이션으로 만드는 것이다. 피터의 경우에도 부모에게 자신의 동성애적 취향을 밝히는 데 있어서 겪는 어려움들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든다.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고전 게임의 레벨 디자인처럼 말이다. 여기서 피터는 자신이 대결해야 할 세 가지 과제, 혹은 꼭 극복해야 할 세 개의 난제를 비디오게임으로 시뮬레이션하고 각각의 게임에 〈모욕〉, 〈나는 누구인가?〉, 〈사회〉라는 제목을 달아주었다. 〈모욕〉은 이상한 놈 취급을 당하는 주인공 피터가 주변 사람들, 특히 학교 친구들에게 어떻게 집단 따돌림과 구타를 당하는지를 보여준다. 피터는 우선 이 문제의 시뮬레이션에 적당한 고전 비디오게임을 선택한다. 피터는 손수 제작한 그래픽을 업로드하거나 이전에 누군가 제작해놓은 것을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의 기능 향상을 위해 몇몇 기능들을 추가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단 고전 게임들에 기반하여 다양한 모드들을 창조해보고 그중 피터의 사건을 재현하는 데 유용한 것들을 선별하여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다양한 가능성들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고 보다 숙련된 플레이어들에게는 피터의 버전을 더욱 정교하게 개선하거나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프라스카의 피터는 다음과 같은 일러스트로서 자신의 첫 번째 게임을 표현한다. 이 일러스트에서 알 수 있듯이 피터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게임 모딩의 템플릿으로 선택했는데 외계인의 우주선 그래픽을 자신을 괴롭히는 동료 학생들의 모습으로 설정해 놓았다. 하지만 원작 게임에서와는 달리 피터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총을 발사할 수 없다. 피터가 지금 겪고 있는 곤란은 동료학생들의 집단 이지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처럼 행동을 통해 사태를 해결해버린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저 이 게임을 즐기면 그만일 뿐 그 이상의 토론과 작업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피터는 이 시뮬레이션에 첨부해 놓은 ‘디자인 노트’에 이러한 사정을 밝혀 놓았고, 이 문제에 대해 다른 플레이어들은 집단 토론과 참여를 통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물론 몇몇 플레이어들은 피터의 게임을 수정하여 다른 버전의 게임을 디자인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다음 그림은 플레이어들이 제안한 또 다른 해결책을 보여주는 게임 그래픽들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이 주제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할 수 있는 예술작품(가령 노래나 시)을 창조하고 반 아이들과 이를 공유함으로써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다보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또 다른 플레이어는 귀를 막고 있는 캐릭터를 통해 주변 학생들의 모욕스러운 공격들을 무시해버리라고 제안한다. 피터의 게임들에 대한 이러한 변형은 무척 간단한 것이지만 플레이어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변형이 가능하다. 플레이어들은 ‘다중 선택’(multiple-choice) 매뉴얼을 활용함으로써 원작 게임의 모든 그래픽을 변경할 수 있고 자신의 사진이나 UCC 그래픽들을 업로드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탑재된 게임들을 매개로 오고 가는 다양한 의견들은 개인적 수준의 소박한 해결책부터 동성애나 소수자, 왕따 문제 등에 대한 사회ㆍ정치적 구조 분석과 원인 진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프라스카는 이 과정에 참여하면서 플레이어들의 사회적 인식이 상승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게임의 다음 모형은 대전게임의 고전 〈스트리트 파이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서 피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여 게임을 디자인해 놓았다. 그는 거울에 반사된 자기를 볼 때마다 ‘괴물’을 본다. 내면의 성적 성향과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적 시선이 충돌하는 가운데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모습이 기괴한 ‘괴물’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다. ‘디자인 노트’에 피터는 이러한 일이 가끔 일어나는 일이며 그때마다 ‘나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라는 분열적 감정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이 게임에서 승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 두 정체성’이 계속해서 치고 박는 싸움을 벌이는 일이 전부다. 여기서도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피터의 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쟁점이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게임들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답보다는 좋은 대화가 우리를 성장시키는 법이니 말이다. 마지막 게임인 〈사회〉의 실물 모형은 〈테트리스〉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소년과 소년, 소녀와 소녀 커플을 짝지을 수 있다. 만일 플레이어가 소녀-소년 커플로 짝을 지우면 그 커플은 계속 재생산되거나 복제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도 어떤 커플이 가장 이상적인 커플인지를 찾아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 대해서는 플레이어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역시 게임의 목표는 엔딩을 맛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시되는 게임들은 모두 ‘열린 게임’이고 이는 참여자들의 토론과 참여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플레이어는 성적 취향이라는 것이 지니는 다양한 사회적 의미들을 토론할 것이고, 모든 커플의 차이는 그저 차이에 불과한 것일 뿐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바 ‘정상가족’이라는 사회의 통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단 세 게임이 모두 온라인에 탑재되고 난 후 모든 참여자들은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가운데 다양한 참여를 할 수 있다. 그저 게임만 플레이해 볼 수도 있고 자신의 게임 소감부터 피터의 상황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해결책들을 댓글의 형태로 올려놓을 수도 있다. 어떤 참여자들은 피터의 세 게임들에 자극을 받아 게임을 모딩함으로써 수정된 버전의 게임을 탑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그림은 〈팩맨〉에 기반하여 다른 플레이어(일명 ‘캐시’)가 디자인한 대안적 게임이다. 물론 ‘포럼’은 피터의 게임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겠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의 게임들이 토론의 대상으로 추가되면서 더욱 많은 크고 작은 토론들이 가능할 것이다. 캐시(Cathy)라는 여성은 〈사이먼이 말하기를〉이라는 게임을 이용하여 몬스터 게임을 디자인한다. 이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이 아니라 그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1등 따라하기〉 놀이처럼 말이다. 플레이어가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그 이미지는 서서히 변할 것이다. 캐시는 예전에 피터와 동일한 경험을 했었고 스스로 감내하고 맞서야 했던 수많은 차별적 상황들을 게임에 담아놓았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난 후 그녀는 친구의 도움으로 이 문제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를 자기 게임의 테마로 삼았다고 보고한다. 결국 게임의 플레이와 토론 과정을 통해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성적 소수자에 대한 연대의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연대의 방안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개진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며 코로나 19의 상황을 거치며 우리의 삶이 무척이나 각박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중의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종, 젠더, 민족, 종교, 장애 등의 이유로 차별을 당하고 있는 소수자들이 그들이다. 가진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은 이른바 정상과 비정상을 갈라치며 사적인 이익을 얻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는 억압과 차별의 철폐를 향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최근의 경우처럼 퇴행적인 ‘갈라치기’의 흐름이 강고한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우리 사회도 결국에는 동료 시민들과 ‘같이 살며 같이 즐기는’ 공환(共歡, conviviality)의 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미래는 그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 아무개’들의 협력은 억압과 차별 없는 미래의 필요조건일 것이다. 게임에 앞서 문학과 연극, 영화, 만화 등은 소수자들의 고난과 상처를 감싸 안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강력한 ‘상호작용’의 매체인 게임은 더욱 효과적으로 우리를 공감과 인식의 장으로 초대하며 연대의 매개자가 되어줄 것인가? 아직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매체들도 그랬던 것처럼 게임 역시 다양한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주제로 즐기며 배우는 기회들을 보다 많이 제공할 것이다. 이미 의미 있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보알의 연극에 영감을 받은 곤잘로 프라스카는 비디오게임 역시 억압적 현실을 재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보알의 연극 테크닉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연기자가 되게 함으로써 개인적ㆍ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과 해결책들을 표현하게 한다. 물론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이상적 결론’이 아니다. 프라스카의 목표는 주류 비디오게임들의 당연시되는 규범들을 해체하고 게임을 사회적 의제(agenda)에 대한 토론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개개인들에게 벌어지는 다양한 사태들을 게임에 담아내고 그 게임을 같이 플레이하며 토론하고 숙의하며 저마다의 대안들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라스카의 게임 프로젝트는 구체적 실천의 필수적 전 단계인 반성과 인식의 과정을 의미한다. 개인적ㆍ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은 타자에 대한 공감과 현실 인식의 과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직 대세는 아니지만 게임은 그러한 가능성을 충분하게 가지고 있다. 물론 주류 게임산업이 주도하는 현실에서 프라스카의 비전들은 ‘몽상’에 가까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 게임 창작 환경, 게임의 플레이를 넘어 ‘보기’와 ‘만들기’로 확장되고 있는 ‘게임하기’의 실천들은 게임의 다양성 환경 구축에 유리한 기회를 조성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주류 게임과 ‘다른’ 게임들에 대한 수요도 있다. 필요한 것은 게임 사용자들의 의지이며 전환적 사고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게임의 다양한 사회적 실천들과 향유를 위한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김겸섭 독일공연예술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공연예술과 문화연구 관련 공부와 함께 공연 및 축제 연출과 기획일을 하였다. 이후 공연학 공부를 확장하려는 욕심으로 디지털게임 연구를 시작하였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비디오게임』,『컴퓨터게임의 윤리』를 번역하였고 『모두를 위한 놀이 디지털게임의 재발견』,『노동사회에서 구상하는 놀이의 윤리』를 썼다. 지금은 독일공연예술과 문화콘텐츠 관련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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