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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보된 이야기와 넓어진 유희공간- <용과 같이 8>

    이 글에서 다루는 <용과 같이>는 전통적으로 자유도가 높은 게임으로 취급되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카무로쵸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 수두룩하고, 선형적인 이야기 속에서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으며, 무수한 미니게임이 게임의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 Back 유보된 이야기와 넓어진 유희공간- <용과 같이 8> 17 GG Vol. 24. 4. 10. <용과 같이 8>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게 돼?” 작년 한 해 무수한 게임 스트리머가 내뱉었던 말이다. <발더스 게이트 3>의 기상천외한 전략, 프랜차이즈를 다시 한번 쇄신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원더>, 전작의 아성을 매혹적인 자유도의 시스템으로 돌파한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 유사-포켓몬들을 잡아 노동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고기와 가죽 등으로 해체(!)까지 할 수 있었던 <팰월드>…. 이것은 (상당히 자의적으로 해석 가능한) 게임의 자유도가 소위 ‘갓겜’이 되기 위해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해진 내러티브를 어떠한 방식으로 따라갈 것인가, 특유의 직선적 구조를 어떻게 달릴/우회할 수 있는가, 게임의 메인 플롯을 우회하며 즐길 수 있는 유희도구가 존재하는가. * <용과 같이 8> 플레이 화면 이 글에서 다루는 <용과 같이>는 전통적으로 자유도가 높은 게임으로 취급되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카무로쵸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 수두룩하고, 선형적인 이야기 속에서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으며, 무수한 미니게임이 게임의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게이머가 택할 수 있는 자유도란 스토리를 진행할 것인지, 100% 클리어를 목표로 모든 미니게임을 정복할 것인지 정도였다. <용과 같이 제로>에서 <용과 같이 6: 생명의 시>까지 7편의 정식 넘버링에서 키류 카즈마의, 그리고 <용과 같이 7: 빛과 어둠의 행방>의 새로운 주인공 카스가 이치반의 이야기를 따라온 게이머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쫓아가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 기나긴 시리즈가 게임들에게 제공해주는 하나의 자유가 있다. 바로 키류/카스가의 이야기를 한없이 유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무로쵸/이진쵸 등 시리즈의 배경이 되어 온 공간은 단순히 신주쿠와 요코하마의 재현을 넘어 무수한 놀거리로 가득한 유희공간이다. 가라오케나 아케이드, 장기와 포커 등 다른 게임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미니게임부터, 포켓 서킷이나 곤충여왕 메스킹, ‘물장사’처럼 일본과 야쿠자라는 특징을 살린 콘텐츠까지, 물론 그에 대한 평가나 호불호는 갈리겠으나 각각의 미니게임이 그 자체로 단독 게임이라는 인상을 줄 정도로 다양한 놀거리를 제공해준다. 8편에 이르러서 본편 바깥의 콘텐츠는 더욱 큰 분량을 갖는다. 전편의 ‘야쿠몬 도감’은 수집한 야쿠몬으로 경쟁할 수 있는 ‘야쿠몬 배틀’로 진화하였고, 하와이라는 새로운 배경에 걸맞은 음식을 배달하는 ‘크레이지 딜리버리’, 본편의 지역을 벗어난 섬에서 진행되는 ‘쿵더쿵 섬’과 같은 다양한 서브 콘텐츠가 등장한다. * <용과 같이 8>의 ‘쿵더쿵 섬’ <용과 같이>의 무수한 놀거리들이 무언가의 패러디다. 우리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이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용과 같이 8>에만 한정해보자면, ‘야쿠몬 배틀’은 <포켓몬스터>의, ‘쿵더쿵 섬’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크레이지 딜리버리’는 <크레이지 택시>의 패러디에 가깝다. 제작사인 SEGA가 보유한 IP를 넘어선 패러디의 대상들은, 한편으로 <드래곤 퀘스트>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 전편에서부터 조금 더 본격화된다. 물론 앞선 시리즈에서 기타노 다케시나 후쿠사쿠 긴지 등의 거장이 연출한 일본 야쿠자 영화의 대표작들을 직간접적으로 인용해온 사례가 있지만, 카스가 이치반이 주인공을 맡은 두 시리즈에선 패러디와 인용의 대상이 ‘내수용’을 벗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한 지점에서 <용과 같이 8>을 플레이하다보면 다른 의미의 “이게 돼?”를 외치게 된다. 첫 문단에서 짧게 언급한 <팰월드>가 어떤 논란을 불러일으켰는지 떠올려보자. 게임이 발매되자마자 <포켓몬스터>와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러스트> 등 여러 게임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들끓었고,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여기서 <팰월드>가 표절인지 아닌지, 혹은 그 게임이 만들어진 방식이 윤리적인지 등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포켓몬스터>, <모여봐요 동물의 숲> 등의 컨셉을 거의 그대로 들여온 <용과 같이 8>의 서브 콘텐츠에 관해서 표절 논란은 없었다. 시리즈 대대로 진지한 톤의 메인 스토리와 B급 감성의 서브 콘텐츠를 다른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분리시켰기 때문일까? 혹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가 판타지 RPG 게임 속 몬스터들에 버금가는 (캠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과장된 이미지들이기 때문일까? * <용과 같이 8>의 ‘야쿠몬 배틀’ 잠깐 언급한 것처럼 <용과 같이> 시리즈, 특히 카스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7, 8편의 경우 서브 콘텐츠가 메인 스토리를 지연할 자유를 제공하는 요소로써 작동한다. 전작들의 포켓 서킷이나 물장사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거나 서브 스토리를 보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면, 야쿠몬 배틀이나 쿵더쿵 섬은 그것을 넘어 독자적인 시스템을 지닌 게임 속 게임에 가깝다. 물론 이들을 통해 메인 스토리 진행을 위한 돈이나 강화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지만, 두 서브 콘텐츠는 메인 스토리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진행되는 플롯을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 상호보완적인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했다. 이를테면 수집한 야쿠몬을 쿵더쿵 섬의 노동력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훈련 및 강화한 야쿠몬을 배틀에 활용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는 <드래곤 퀘스트>를 비롯한 JRPG의 전통을 <용과 함께>의 전투 시스템에 녹여내면서 등장한 새로운 렌즈, 즉 턴제 전투에 돌입함에 따라 카스가의 관점에서 ‘몬스터’로 변하는 적들의 모습과 조금 더 강하게 결부된다. 전작들에서 단순히 ‘길거리 양아치’나 ‘술 취한 회사원’과 같은 식으로 명명되었던, 길거리 인카운터로 마주치는 적들은 '자칭 마법사', '장난꾸러기 코코넛', '시티 웜'과 같은 이름으로 바뀌었다. 카스가의 눈으로 보게 된 <용과 같이>의 세계는 한편으로 선혈이 낭자한 야쿠자의 세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모험으로 가득한 게임적 가상으로 가득한 세계다. 키류의 실시간 전투가 ‘야쿠자’라는 소재가 주는 폭력의 쾌감을 강조했다면, 카스가의 턴제 전투는 카스가의 규칙을 받아들인 동료들과 형성한 일종의 ‘매직 서클’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야쿠몬 배틀이나 쿵더쿰 섬처럼 명백히 다른 게임의 시스템을 차용한 서브 콘텐츠를 정당화할 수 있다. 카스가의 <용과 같이>는 더 이상 야쿠자의 세계를 진지하게 묘사해낼 수 없는 게임 외적인 어려움(2010년대 이래로 야쿠자의 수는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다)을 다분히 게임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야쿠자 대해산’으로 마무리된 7편과 언더커버 요원으로 암약하는 키류의 이야기를 다룬 <용과 같이 7 외전: 이름을 지운 자>를 떠올려본다면, 8편의 이야기는 배신과 의리 사이를 맴도는 전형적인 야쿠자 이야기로 지속될 수는 없다. 때문에 시리즈가 눈을 돌린 곳은 게임 그 자체이며, 8편은 그간 시리즈가 쌓아둔 에셋을 재료 삼은 온갖 게임의 혼성모방으로 완성되었다. 그것이 이 게임에 가져다준 거대한 유희공간은 기존에 “자유도가 높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게임들과는 다른 양상의 자유도를 선사한다. * <용과 같이 8>의 ‘엔딩노트’ 메인 스토리를 끝없이 유보하는 <용과 같이 8>의 자유에는 혼성모방적 서브 콘텐츠 이외의 것도 포함된다. 친어머니를 찾아 나선 카스가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이지만, 어쨌거나 이 게임은 카스가와 키류를 모두 주인공으로 채택했다. 6편에서 일단락되었던 키류의 일대기는 7편 외전에서 잠시 다른 방향으로 선회한 뒤 본작에서 다시 전개된다. 게임 중반부부터 키류가 암에 걸려 죽어간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야기는 카스가가 이끄는 하와이 그룹과 키류가 이끄는 이진쵸 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이 시점부터 새로 해금되는 서브 콘텐츠가 있다. 바로 키류의 ‘엔딩노트’다. 엔딩노트는 키류를 간호하던 난바가 지난 삶을 정리해보라고 조언하는 장면을 통해 해금된다. 마치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아서 모건이 무법자들로 가득한 서부극의 시대가 끝나감을 알리며 죽어간 것처럼, 키류 카즈마는 야쿠자의 시대가 끝나감을 자신의 몸으로 드러내듯 죽음을 향해 간다. 키류는 이진쵸와 카무로쵸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난 삶을 회상하고, 종종 간단한 전투가 벌어진 뒤 이전 시리즈의 장면이 엔딩노트에 기록된다. 여기에는 본편 넘버링 이외에도 <용과 같이 유신!>이나 <용과 같이 OF THE END>과 같은 외전 또한 꿈의 형태로 포괄된다. 이윽고 누군가 키류를 찾아오는데, 시리즈 전체를 키류의 이야기에 함께 해온 형사 다테 마토코다. 키류는 다테와 함께 전작들에서 함께 해온 인연들을 마주한다. 이 과정을 통해 포켓 서킷 파이터나 의사 에모토부터 시리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하루카까지, 그간의 시리즈를 수놓은 등장인물과 재회하게 된다. 이 재회는 키류의 것만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용과 같이>를 플레이하며 키류의 여정을 쫓아온 게이머들 또한 키류의 엔딩노트 위에 자신의 추억을 포개어 놓을 수 있다. * <용과 같이 8> 속 키류의 죽음과 관련된 장면 이경혁은 게임제너레이션 16호에 수록된 글 “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를 통해 스탠드얼론 게임에서 다뤄지는 서사가 게이머와 함께 나이듦을 지적한다. 로스 산토스를 누비는 범죄자는 중년의 위기를 겪고, 혈기 왕성했던 크레토스는 사춘기의 아들을 이해해야 하며, 이혼와 육아는 GOTY 수상작의 중심 소재가 되었다. 게임의 주인공이 죽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이 늙음과 질병, 한 시대의 종언과 함께 이야기되는 것은, 이경혁의 지적처럼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된 스탠드얼론 게임 유저들의 연령과 연동되며 발전한다. 어느덧 20년의 역사를 지는 프랜차이즈가 된 <용과 같이>가 키류의 마지막(일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지만)을 그려내는 방식은 시리즈의 한계와 나이듦을 직면하는 것과 같다. 규모의 확장과 한계의 쇄신이라는 이중의 임무를 지닌 <용과 같이 8>은 우리에게 게임의 주역들과 한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메인 스토리를 유보하면서 카스가와 놀고 키류를 추억할 거대한 놀이공원, 이로써 <용과 같이>라는 게임의 경계는 한층 넓어졌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스팀펑크적 제작 기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는 전투가 메인 컨텐츠인 MMORPG 게임이다. 세부적으로는 테마파크 유형이다. 작중의 세계에서 유저는 온갖 다양한 활동을, 현실의 그것을 모사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초나 광물을 채집할 수 있고, 낚시를 할 수 있고, 전투와 낚시를 통해 얻은 재료로는 요리를 할 수 있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Lost Ark and the Impression of Korean Games from the Western Perspective

    Lost Ark and the Impression of Korean Games from the Western Perspective On February 11th, 2022 after three days of early access, Lost Ark officially released in the west to over one million players. Produced by Smilegate, a Korean developer, and distributed in the west by Amazon Game Studios, the release of Lost Ark is an opportunity to consider the impression that Korean games have made among western audiences. Despite several successful Korean games launching in the West over the last 20 years, the idea of a ‘Korean game’ hasn’t really taken hold in the public consciousness of western players in the same way Japanese games have dominated the gaming landscape. Through a combination of Lost Ark’s management, the engagement of high-profile content creators, and the role of the Korean Lost Ark community in helping the game succeed among the western playerbase, Lost Ark is in a unique position to configure western player expectations about what a Korean game can be. < Back 05 GG Vol. 22.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Game Researcher) Cortney Blamey

  • [인터뷰] 쥐와 함께 6년을 살아 온 인디게임사, <카셀게임즈> 황성진 대표

    올해로 창립 6년 차를 맞은 카셀게임즈의 황성진 대표를 만나, 그의 창작 철학과 개발 과정에 대한 고민, 인디게임사 운영의 현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향한 구상까지 진솔하게 들어보았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인디게임, 인터뷰, 게임산업, 래토피아, 래트로폴리스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su Kim Studies a range of fields—culture and knowledge, space, and the academic field. Also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ves of gamers.

  • 공명하는 사무라이: 역사적 정확성과 시장성 사이에서

    이제 어느 정도 피로감마저 느껴질 만큼 야스케라는 인물이 게임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실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반발은 이미 잘 알려진 논란이 되었다. 이 논란은 2024년 처음 불거졌는데, 사실 2022년의 유비포워드Ubifoward 행사에서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스>가 ‘코드네임 레드’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당시에는 야스케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 Back 공명하는 사무라이: 역사적 정확성과 시장성 사이에서 24 GG Vol. 25. 6. 10. ***You can see an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3b16cb9b-4ee8-4852-86b0-0147005c11c6 ***원문의 상세 각주는 원문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야스케, 프랜차이즈에 합류하다 이제 어느 정도 피로감마저 느껴질 만큼 야스케라는 인물이 게임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실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반발은 이미 잘 알려진 논란이 되었다. 이 논란은 2024년 처음 불거졌는데, 사실 2022년의 유비포워드Ubiforward 행사에서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스>가 ‘코드네임 레드’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당시에는 야스케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2024년 5월 15일 공개된 시네마틱 트레일러에서 처음 유비소프트는 야스케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렸는데, 논란은 이때부터 불붙었다. 캐릭터 공개 이후 두 달 넘게 서구와 일본 양 쪽의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이 캐릭터의 디자인 선택을 둘러싼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서구의 일부 보수적 성향을 지닌 게이머층은 야스케의 등장에 초점을 맞추어 격렬한 토론을 벌였으며, 일부는 개발팀 멤버들을 향한 사이버불링도 시도했다. 유비소프트는 2024년 7월 23일 다소 모호한 성명을 발표했는데, 명목상으로는 일본 커뮤니티를 향한 메시지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전세계 이용자층을 겨냥해 자신들의 진정성Authenticity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는 내용이었다. *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의 주인공 중 하나인 야스케. 이 성명은 야스케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보여준다. 표면적으로 이는 역사적 정확성에 관한 문제로 보이지만, 사실 이 문제의 핵심은 지금까지 어쌔신크리드라는 프랜차이즈가 특정한 관객층들을 어떻게 만족시켜 왔는가에 더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2021년 de wildt, Auspers의 연구에 따르면(이 연구는 유비소프트의 전직 게임디렉터 및 고위개발자 수십 명의 인터뷰를 포함하고 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전반적으로 어떤 시대적 배경을 선택하느냐는 결정에서 시장성Marketability을 우선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비소프트는 ‘마케팅-브랜드-에디토리얼 버거’라는 모델을 사용한다. 이는 프랜차이즈의 핵심 요소는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소스(문화적 배경)’는 그때그때 바꿔 새로운 고객층을 유입시키거나 기존 고객층의 재구매를 유도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 대부분의 게임은 핵심 고객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인공을 내세워 왔다. 예를 들어 <어쌔신 크리드: 블랙 플래그>의 주인공인 에드워드 켄웨이는 유럽인의 시각에서 나소Nassau(역주: 바하마의 최대도시)와 카리브해 인근의 식민주의 역사를 경험케 한다. <어쌔신 크리드 2>와 <어쌔신크리드: 브라더후드>에서는 에지오 아우디토레라는 주인공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문화를 체험케 하고, <어쌔신크리드: 레벨레이션>에서는 에지오를 매개로 하여 비교적 (서구인들에게) 낯선 이스탄불이라는 공간을 탐험하게끔 한다. 주인공이 좀더 복잡한 경우(예를 들어 <어쌔신크리드 3>의 코너 켄웨이, <어쌔신크리드: 프리덤 크라이>의 아드왈레 등)에도, 게임의 중심 구조는 여전히 유럽 및 미국의 관점으로 구성된다. 왜 이처럼 <어쌔신크리드> 시리즈는 서구 중심의 디자인을 지속해 왔을까? 그리고 이번 야스케 논란은 이러한 디자인 경향으로부터 어떠한 단절 혹은 연속성을 보여주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정확성보다는 ‘공명Resonance’, 즉 관객의 기대와 감정적 반응을 우선하는 전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확성의 문제: 역사적 정확성과 게이머의 기대 사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18년간 꾸준히 역사적 정확성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논의의 중심에 있어 왔다. 관련한 게임 매체들의 기사만 해도 수 천 건에 달하고, 이를 다룬 학술논문과 단행본의 챕터들도 무수하게 출판된 바 있다. 초창기 논의에서는 주로 게임이 교육의 도구로서 활용되거나 혹은 고고학적 모델, 과거 사건에 대한 충실한 재현의 사례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역사적 정확성은 필수적이라는 요구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요구들은 게임 디자인에서의 여러 요소들, 이를테면 다루는 지역, 시간적 배경, 게임 서사가 집중하는 주요 사건들에 걸쳐 투영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게이머들이 게임의 중심을 끌고 가는 주인공이 그 시대적 배경과 조화를 이루는 인물이기를 기대한다는 점이다. 배경, 이야기, 캐릭터가 일관된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화가 실제 역사적 진실과 부합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게임에서 다뤄지는 역사적 정확성이란 언제 어떤 지점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일정 수준의 허용 가능한 왜곡은 존재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아담 채프먼Adam Chapman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사전지식과 게임 속 역사적 요소가 일치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 게임은 비로소 ‘역사적으로 공명historically resonant’한다고 본다. 실제 플레이어들은 일반적으로 게임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 변형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특히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처럼 암살단, 기사단과 같은 비밀조직 뿐 아니라 외계인 음모론까지 등장하는 경우에는 이를 좀더 관대하게 받아들인다. 이번 작품에서도 암살단과 기사단에 대응하는 일본 내 조직인 카쿠시바 잇키, 신바쿠후와 같은 설정이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러한 구조적 왜곡은 시리즈 전반에서 나타나며, 실존 인물들을 게임 속에서 틀에 맞게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야스케에 대해 가해진 각색 역시 다른 주요 인물들에 비해 특별히 과도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쌔신크리드: 오딧세이>의 소크라테스와 아스파시아, <어쌔신크리드: 오리진>의 클레오파트라 역시 높은 수준의 각색을 거친 사례다. 이 시리즈는 역사 그 자체라기보다는 언제나 ‘역사적 픽션’이었으며, 이는 제작사인 유비소프트 또한 오랫동안 공식적으로 인정해 온 사실이었다. 유비소프트는 2025년 발표한 공개 메시지에서 야스케가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시리즈의 공식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설명하며 그의 독특하고 신비로운 삶이 이 프랜차이즈의 패턴과 잘 부합한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언급한 de Wildt와 Aupers의 분석과도 일치한다. 마케팅적 고려가 언제나 주요한 판단 기준이며, 모든 서사적, 표상적 결정은 ‘시장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층’을 우선한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책임자인 장 게스동Jean Guesdon 또한 대중적 유행을 반영해 프랜차이즈 판매를 강화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20여년 간 점점 대중문화콘텐츠 내에서 가시성이 높아진 야스케라는 인물을 기용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타당한 선택이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에서 다양한 시각적 기호들과 색채 감각을 차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즈>는 야스케를 단순한 유색인종 캐릭터로서가 아니라 일본사회에 접근하는 외부자로서의 캐릭터로 설정한다. 그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정당성을 지니고 있으며, 플레이어(역주: 서구권 플레이어를 가리킨다)와 마찬가지로 외부자의 시선에서 접근해 일본을 서서히 이해해 가는 서사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플레이어가 상상할 수 있는 다른 유명한 사무라이들, 이를테면 미야모토 무사시나 사사키 코지로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과는 다른 전략적 접근이다. * 야스케는 일본의 전쟁에 난반(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 개념을 사용한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이와 같은 게임사의 이상적 대상 선정 기준과 역사적 정확성에 부합하는 선택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학계에서도 주목받은 바 있었다. 필자의 기존 연구에서는 이 결정과정을 ‘대표성representation과 동일시identification 사이의 긴장’으로 분석한 바 있다. 영화연구자 찰스 애클랜드Charles Acland는 영화의 맥락에서 ‘동일시’란 관객이 자신의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시간과 장소, 다른 인물의 상황 속으로 몰입하는 복잡한 과정임을 지적했다. 이와 반대로 ‘대표성’은 관객이 자신의 경험들에 쉽게 흡수할 수 있는 인물과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관객으로부터 ‘나에게 와닿는다’는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이며, 지난 10여년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 대한 학술적 비평의 주요 주제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는 항상 이와 같은 쉬운 동일시가 가능한 경험을 제공하도록 설계되어 왔다. 비록 주인공이 그 시대와 문화에 강하게 결부되어 있더라도 서구권의 핵심 게이머층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상황, 혹은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마련되어 있어 왔다. 그런 점에서 야스케는 매우 독특한 사례다. 그는 봉건시대 일본에 외부자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시리즈가 제공해온 주체적인 주인공으로서의 포지션과는 다른 결을 지닌다. 그의 등장은 분명 혁신적이고 새롭다는 평가를 받을 만 하지만, 연구자 키쇼나 그레이Kishonna Gray가 아이티를 배경으로 삼았던 <어쌔신크리드: 프리덤 크라이>의 아드왈레 사례에서 지적했듯, 게임의 기본 틀이 여전히 백인 중심의 미국, 유럽을 기준으로 한 사회구조를 반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비백인 캐릭터라 할지라도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게임 내 서사가 결국 서구 중심의 관객 시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즈>에서 흑인 이방인인 야스케는 또다른 주인공인 일본 태생의 나오에와 비교했을 때 게임 내 여러 공간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제한을 갖지 않는다. 실제였다면 좀더 강한 충돌과 도전적인 상황이 나왔을 많은 요소들은 게임 속에서 상당히 부드럽게 처리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게이머와의 공명’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면, 야스케라는 캐릭터가 전면에 나선 선택은 충분히 논리적이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기존 10여 년간 게임이 우해대 온 이용자층과는 다른 새로운 이용자층을 겨냥하고 있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야스케가 DEI(다양성, 평등성, 포용성)에 기반한 채용이라고 비난받은 사례는 해당 캐릭터의 서사가 역사적으로 정확한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유색인종과 동일시하기 어렵다는 이용자층이 가진 인종적 편협성으로부터 나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어쌔신크리드> 가 보여준 그간 어떠한 주인공이라도 그 이야기가 역사적 진실에 철저히 부합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기에 이러한 비판은 모순적이기도 하다. 이번 반발 사태는 적어도 서구권에서는 인종과 성별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그에 반해 일본측의 반응은 좀더 절제된 양상이면서 게임 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의 성스러운 장소(역주: 이를테면 신사의 토리이 같은 곳의 훼손 가능성 문제 등)에 대한 훼손 요소를 향한 우려가 주된 쟁점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즈>에서 표출된 논란은 과연 서구권 전체 게이머층의 의견을 반영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일부 특정한 소비자집단의 목소리가 과도하게 부각된 것인가? 보상의 국면: 상품으로서의 야스케 야스케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이 실제로 뜨거웠는지 차가웠는지를 단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른바 ‘성공’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목소리가 큰 일부 게이머층의 반응이 기준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좀더 국제적이고 넓은 범주에서의 게이머 수용 양상을 고려해야 할까? 혹은 비평적 평가를 참고하되 이를 고립된 사례로 볼 것인지, 아니면 최근 시리즈 작품들과의 비교 맥락 속에서 평가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까지 평론가와 게이머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플랫폼으로는 메타크리틱을 꼽을 수 있다. 비록 이번 작품에 대한 평가도 일부 조직적인 리뷰 테러 시도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 메타크리틱을 통해 보면 실제로 오픈월드 기반 시리즈들 사이에서의 비교에서는 꽤 안정적인 패턴을 볼 수 있다. 평론가 평점에서 <섀도우즈>는 81점, <발할라>가 80점, <오디세이>는 83점, <오리진>은 81점으로 대체로 유사한 수준이다. 이용자 평점의 경우 전체적인 비율에서 부정적 리뷰가 많다는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섀도우즈> 62점, <발할라> 60점, <오디세이> 68점, <오리진> 73점으로 <섀도우즈>에 대한 평가는 기존 시리즈에 대한 평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흐름 안에 놓인다. 종합해보면 비평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이번 작품이 전반적인 품질 면에서 기존 시리즈와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고, 이용자 평가에서는 직전 작품에 비해 소폭 개선된 반응이 나타난다.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섀도우즈>에서 ‘극단적으로 낮은 점수’의 비중이 훨씬 높게 나타난다는 점인데, 이는 리뷰 테러의 영향을 시사하는 지표일 수 있다. 메타크리틱 역시 다른 리뷰 플랫폼과 같이 적극적으로 로그인해 리뷰를 남길 만큼 깊숙하게 개입하는 게이머층의 의견이 과대표현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평가점수의 일관성은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상대적 안정성을 드러내고 있고, <섀도우즈>또한 이 흐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야스케를 둘러싼 논란은 실제 판매 실적에도 동일하게 반영되었는가? 산업적 차원에서 게임이 보이콧되거나 판매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는지 또한 중요한 지표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판매량을 보면, <섀도우즈>는 이 프랜차이즈의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출시 첫 날 판매량을 기록했다. 1위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의 외부효과에 힘입어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린 <발할라>임을 감안하면 고무적인 수치다. * 모든 오픈월드 기반 <어쌔신크리드> 타이틀에 대한 리뷰 점수 집계(미라지 제외). 장기 판매량 분석에 따르면 현재까지 <섀도우즈>는 플레이스테이션5 플랫폼에서만 약 170만장이 판매되었다(Alinea, 2025). 아직은 장기 판매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며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점은 감안하자. 참고로 <오디세이>는 첫 달동안 약 2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바 있다. 또한 현재의 경제상황 속에서 가처분소득에 대한 압박을 고려할 때, 이번 작품이 과거를 아우르는 역사적 대성공에 가까울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상업적 성공으로 평가할 만한 수치는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 결론: 문제의 본질은 정확성 이슈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학계의 반응이란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리는 법이다. 질적연구와 비판적 담론은 좀더 긴 출판 주기를 가지고 있어 아직까지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시점이다. 하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번 작품이 프랜차이즈의 기존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는 결과가 아니었음을 고려한다면 학계의 후속 결과 또한 지난 10년간의 의견과 유사한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즉, <섀도우즈>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시장적 선택’을 따랐으며, 적절히 기능하는 캐릭터들을 통해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게임의 핵심 공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어떤 면에서 이번 작품은 우리가 2007년부터 익히 알아온 그 <어쌔신 크리드>이며, 특히 2017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오픈월드 형태로의 전환 이후의 방향성을 그대로 이어가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틀의 유지 속에서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반응을 보였다는 점은 새로운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게임과 같은 가상세계에서 발생한 의례 공간의 훼손 문제에 대한 비판은 주로 학술 담론장 안에 국한되어 왔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 국가 차원의 대응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다. 이는 <어쌔신크리드> 시리즈가 파리 노트르담 성당 화재 이후 복원 지원을 통해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장식하며 공식 찬사를 받은 것과 같이 서구권 국가들이 유비소프트의 콘텐츠와 상호작용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야스케 논란은 출시 초기 이후 점차 온도가 식어가고 있으며, 프랜차이즈 전반에 걸쳐 존재해 왔던 인종과 성별 문제와의 미묘한 관계 속으로 흡수되는 추세다. 그럼에도 이 논란이 여전히 흥미로운 점은, 이번 사례에서 이용자들의 정서가 어떤 방향으로 나타났는가 하는 점에서다. 야스케는 현대적 감수성과 이용자 수요에 영합하는 기업적 행보로 비판받았지만, 기존과는 다른 사례였다. <오디세이>에서 알렉시오스가 서브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제공되었을 때는 별다른 논란이 없었고, <오리진>의 개발 기획에서 최초에는 여성 캐릭터 아야Aya가 주인공으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실제 출시 후에는 남성 바예크가 진주인공격으로 구성된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큰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결국 이용자들이 이른바 ‘정확성’에 대해 보이는 경직성은 실제 정확성이라기보다는 언제나 개인적 취항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 만약 이번 논란이 정말로 특정 캐릭터가 가진 역사적 정확성에 관한 문제였다면, 그동안의 시리즈 속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에 대해 이번과 같은 격렬한 논쟁이 나타났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안드레이 자네스쿠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콩코르디아 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와 인류학·사회학과에서 박사후 연구원 및 시간강사로 재직 중이다. AAA 게임 스튜디오의 문화적 적응 관행에서 '공명(resonance)'을 기업 전략으로 활용하는 방식과, 영화 및 텔레비전의 문화 자본과 연결된 시상 기관 형성을 통한 게임의 정당화 과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Assassin’s Creed, Magic: The Gathering, DOTA 2 등 다양한 게임과 시상 기관에 관한 게임 및 플랫폼 연구를 활발히 발표하고 있으며, 《New Media & Society》(2021), 《Games & Culture》(2024), 《The Journal of Consumer Culture》(2021), 《Convergence》등에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며 또한 『Streaming by the Rest of Us: Microstreaming Videogames on Twitch』(MIT Press, 2025)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소수자들의 게임에 대한 세 가지 소고

    디지털게임은 한때 ‘소수자’들의 매체이기도 했다. 소수자라는 개념이 단순히 적은 숫자를 가진 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게임 초창기에 한국에서 게이머는 소수자에 가까웠다. 전자오락실은 불량한 이들이나 다니는 곳으로 낙인찍혔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엄연한 자영업장인 오락실에 학교 교사들이 들이닥쳐 ‘손님’인 학생 게이머들을 강제로 끌고나가는 영업방해 행위도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연일 불량한 오락실과 게임 때문에 망가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쏟아냈고(이 부분은 아직도 유지되는 바 또한 있다) 게임은 눈치보면서 해야 하는, 말그대로 여가오락 문화 부문에서의 소수자 포지션이었다. < Back 04 GG Vol. 22.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그 많던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들은 어디로 갔을까

    자칫 우리는 게임과 게이밍을 생각할 때 그 대상을 고정된 무언가로 잠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이 대상이 얼마나 역동적이며 다양한 변수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게이머라고 부르는 집단은 결코 과거의 그들이 고정되지 않은 채 새로 들어오는 이와 나가는 이로 진폭을 만들며, 그 개개인 또한 시간과 환경의 변화 속에 각자의 이유로 변해간다.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스타크래프트, 중년, 중년게이머, PC, 로컬플레이, 응우옌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스플릿 픽션」에 대해 쓰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합시다.

    작년 겨울 즈음이다. 영화평론가 유운성 선생님께 ‘청탁이 점차 줄고 있다.’며 한탄한 적이 있다. 유운성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글 청탁이란 누구나 그 양이 줄어간다.’라고 답해주셨다. 마치 시간에 의해 소멸되는 무언가처럼, 평론가에게 있어서 글을 쓸 기회라는 것은 한정 자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요즘이다. < Back 「스플릿 픽션」에 대해 쓰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합시다. 26 GG Vol. 25. 10. 10. 내가 평론가로 등단한지도 벌써 8년차다. (이런 글에 걸맞는 매우 전형적인 클리셰다.) 2017년 만화 비평 공모로 등단해 지금은 게임에 관한 글도 함께 쓰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게임 비평을 더 많이 쓴다. 곧 있으면 평론가의 생활도 10년차에 도달할 예정인데 슬슬 이 직업이 어떤 존재인지 고민이 되던 차였다. 이럴 때에 ‘평론가’에 대한 글을 청탁받았다는 사실에는 뭔가 운명적인 것이 있다. 평소대로라면 청탁을 받는 순간부터 플레이 할 게임을 고르고, 스크린샷을 열심히 찍고, AI비서에게 연구 자료 조사를 돌려놓았을 일인데, 아무런 사전 조사도 연구도 없이 불쑥 내 이야기를 쓰려니 영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데에서 뭔가 근질근질 거리는 걸 보면 그래도 평론가처럼 살아오긴 한 모양이다. 평론가로 살아오기 작년 겨울 즈음이다. 영화평론가 유운성 선생님께 ‘청탁이 점차 줄고 있다.’며 한탄한 적이 있다. 유운성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글 청탁이란 누구나 그 양이 줄어간다.’라고 답해주셨다. 마치 시간에 의해 소멸되는 무언가처럼, 평론가에게 있어서 글을 쓸 기회라는 것은 한정 자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요즘이다. 한편 2023년에 좋은 상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 시상식에 나가서 함께 수상한 분들과 대화해보니 절반 정도는 이미 등단을 거친 분들이었기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등단 이후에 청탁과 기고의 기회가 마땅치 않아서 집필을 그다지 하지 못하신 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청탁이 줄고 있다’며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조금 배부른 생각이지 않나. 여러면에서 따지자면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어찌되든 약 3년 정도 한 잡지로부터 꾸준히 청탁을 받았으며, 지금도 GG로부터 계속 글을 쓸 기회를 받고 있다. 평론가에게 글을 쓸 기회라는 건 상시적 자원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가지 조건을 통해 발생하고 그때그때 예정된 이들에게 돌아가는 선택적 자원에 가깝다. 이 ‘여러가지 조건’에는 정말 여러가지 것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전부 나열하기도 벅차다. 그것들을 어떻게 해석하든 평론가는 어느정도 ‘선택받는’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며, 그 조건은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평론가 개인의 관점에선 언제나 공평하게만도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내가 머리를 기르는 걸 탐탁치 않게 생각하시는데, 아버지께서 불만을 말씀하실 때 마다 ‘내 직업은 눈에 띄는 게 중요하다.’며 적당히 둘러댄다. 그런데 이게 또 아무말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평론가는 어찌되든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야 하는 직업이지 않은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 대한 ‘주목’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으로 기회는 증가하지 않을까. 평론가의 세계는 주목경제의 세계인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청탁을 줄 리 없을 터이니’ 그 세계에 순응하면서도, 또다른 한편 ‘경제성의 효과’에 의탁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가 가진 평론가의 자아와 충돌한다. 길을 걷다가 또는 대중 교통을 타고 이동하다가 문득 ‘어떤 사람이 계속 청탁받는 평론가인가’에 대해서 질문해보곤 하는데, 특별히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다양한 기회와 많이 접촉하는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나에게 그런 능력이 없는 것도 알고 있고, 다른 한편 그게 전부는 아니겠거니 싶기도 하다. 올해에는 비평을 써본 적 없는 사람들과 함께 비평 쓰기 스터디를 진행했다. 스터디를 진행하는 멤버들의 자기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진행을 주도하는 입장에선 결과가 꽤 만족스럽다. 어떤 글이 비평인지 설명할 수 있겠다 싶은 확신은 작년 GG의 비평 공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가질 수 있었다. 뭐가 되었든 8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비평 쓰기라는 행위에 꽤 익숙해진 모양이다. 하지만 ‘비평 쓰기’에 대해서는 알아도 ‘비평을 쓰게되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일천하다. 대체 누가, 어떤 경위로, 특정한 매체에 글을 쓰게 되는 걸까. 지난 8년간, 나는 ‘ㅇㅇ에서 글을 봤습니다. 저희 매체에도 써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청탁을 한 번 받아봤다. 이 직업을 얻기 전까진 평론가란 그렇게 글을 쓸 기회를 가진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미디어를 통해 보편적으로 유통되는 전형적인 판타지의 일종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면 그저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지. 어찌되든 올해는 좋은 기회가 있어 대학 강의를 시작했다. 교강사 미팅을 나갔더니 나를 알아보고 인사해주시는 분이 계셨다. 맞인사를 하곤 너무 부끄러워서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는데, 혹시 이런 태도가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여전히 머릿 속을 맴돈다. 게임 평론가로 살아오기 앞서 유운성 선생님과의 대화 와중,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조언은 다음과 같았다. 청탁을 기다리기 보다, 개인적으로라도 글을 꾸준히 쓰고 책을 출판하세요. 저자가 된다면 강연의 기회가 생기니 그렇게 대중과 접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나는 선생님의 훌륭한 조언에 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선생님, 그런데 게이머들은 게임 평론가를 좋아하질 않아서 강연의 기회는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아 그렇구나’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며칠 전에 나는 ‘만화 작가 토크 콘서트’의 사회를 맡았다. 게스트인 두 작가와 친분이 깊어서 생긴 좋은 기회다. 나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만화평론가이지만(심지어 대본 초안에는 내가 ‘평론가이자 스토리 작가’인 걸로 나와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비평 쓰기와는 다른 ‘평론가의 일’과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어떻게보면 지금 하고 있는 대학 강의도 만화 평론의 연장이기도 하니까. 이게 바로 내가 받은 조언의 핵심이다. 잘 생각해보면 평론가의 일은 집필에만 한정되진 않는다. 물론 여전히 비평 쓰기야 말로 이 직업의 근간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비평적으로 사유하기’가 그보다 더 심층에 있는 근간이라면 그 발산에는 다양함이 존재할 수 있다. 나는 2023년 즈음에 ‘게임 평론도 하는 만화 평론가’가 되기 보다는 확실히 ‘게임 평론가’가 되기로 다짐했다. 그 짐에 호응해주듯 GG로부터 계속 청탁을 받을 수 있었고, 이에 대해 언제나 감사한 마음 뿐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 뒤에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금붕어 똥같은 질문이 붙어다닌다. 과연 무엇이 나를 ‘게임 평론가’로 있을 수 있게 만드는 걸까.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GG에 더는 글을 기고하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여전히 ‘게임 평론가’일까? 물론 게임을 플레이 하고, 비평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은 게임 평론가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어디까지나 존재론에 의거한 자신(自信)의 규정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로부터 ‘게임 평론가’로 지칭될 수 있는 조건이란 마음만으로는 안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게임 평론가’로 인식되기 위해 GG에 기생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는 좀 어렵다.(GG 미안해요!) 브런치에 스스로 글을 쓰기로 결정하기도 했으나 ‘직업적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자꾸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아니, 블로그 등을 통한 자가 기고가 핵심적인 해결책이라고만도 말할 순 없다. 역시 비평가의 활동이라는 것이 가지는 더 넓은 방법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몇달 전에 어떠한 소셜 커뮤니티 모임의 모임 주도를 시도해본 적이 있다. 게임 평론가라는 사실을 좀 강하게 어필하고 게임을 통해 대화하는 모임을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몇 개 정도의 기획서를 보냈지만 돌아온 건 ‘보드게임 모임처럼 모여서 즐겁게 게임을 하는 모임’같은 요청이었고, 나는 그냥 더 진행하기를 포기했다. 이 플랫폼과 함께 내가 원하는 방식의 ‘게임으로 사유하기’를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마음을 가져서다. 더 강하게 밀어붙여서 설득하고 관철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에너지를 내기도 전에 먼저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해야하는 건가, 하는 회의감도 들어 한동안 시달렸다. 그런데 이 플랫폼이 특별히 유별난 곳이겠는가. 이게 아마 지금 우리 세계의 일반적인 인식일 것이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평론가에 대한 세계의 규정은 시대의 요구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대한민국에서 비디오 게임 평론가로 산다는 건 스스로 유령이 되기로 결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좀 거칠게 말하자면) 이 세계에는 아직 이 ‘직업’을 맞이해줄 마음이 준비되어있지 않다. ‘대체 게임 평론가는 무슨 이야기를 해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템플릿처럼 준비해 다닌다. 그래봐야 애당초 상대가 비디오 게임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절반 정도는 무력한 언어로 소비된다. 게임이 일상적인 세대의 탄생, 게임 인구의 점진적 증가 같은 이야기야 떠돌고 있지만 「어벤저스 : 엔드 게임」을 천만명이 봤다는 뉴스를 볼때와의 기분과 사뭇 다르지는 않다. 어쩐지 세계가 아직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공허한 다짐을 반복하는 기분도 든다. 그럼에도 게임 평론가로 살겠는가? 새 동료들이 탄생하는 좋은 자리에 음울한 이야기나 쏟아내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마음 한구석이 편치는 않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쏟아내면서도 나는 여전히 게임 평론가로 살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이야말로 지금의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그런데 특별한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게임 평론이 재밌다. 나는 게임 평론이 다른 평론보다 ‘특별히’ 더 재밌다고 여긴다. 당연히 비디오 게임이 다른 분야에 비해 더 특별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내가 게임을 만화만큼, 혹은 영화만큼 좋아하기 때문인데, 딱히 우열은 가린 적은 없지만 세 분야를 비슷하게 좋아한다. 그리고 게임 비평을 특별히 더 좋아하는 이유는,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마주침의 기회가 적기 때문인 것 같다. 더 희소한 일을 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는 편향된 결정은 아니다. 이경혁 선생님이 몇번이고 이야기하는 대로 지금의 시대에 게임 평론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나는 그러한 생각에 충분히 공감한다.) 필요는 하지만 요청받기는 어려운 일, 내가 하지 않으면 마주치기 어려운 일을 한다는 건 사유의 과감성을 준다. 어쩐지 내가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매우 커다란 심적 만족감(!)을 주는 면도 적지는 않다. 그런데 그런 자기 고유성이라는 명예로운 만족감의 탓만은 아니다. 그냥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아무말이든 일단 던져볼 수 있다는 내적 만족감이 크게 작동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게임 평론을 하는 재미라는 건 아이러닉한 측면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세계로부터 유령처럼 취급되는 존재니까 아무렇게나 떠돌 수 있고, 그게 재미있다. 이러면 다시금 평론가로 살며 비평을 쓰는 이유로 환원되어버린다. 결국 우리는 왜 쓰고 왜 떠드는가? 어떠한 이야기를 진탕, 공식적으로, 마음껏 떠들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러니 저러니 이유를 붙였지만 ‘비디오 게임’에 대해서 대범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이다. 비록 누가 읽고 있는지, 듣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도 특권화의 쾌락이 있다. 게임 평론가라고 칭할 수 있으니까 어느 자리에서건 권위있는 척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는 법이다. (자리를 함께하는 분들이 어떻게 쳐다볼지는 몰라도.) 여튼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이러다보면 언젠가 비디오 게임의 대중 강연도, 토크 콘서트도 많이 생길 지 누가 아는가. 이런 전장의 안개로 가득찬 미래를 뚫고 나갈 힘은 오직 쾌의 감각에서부터만 나오지 않을까. 실리나 명예, 가치의 취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불확실성을 뚫고 나가기엔 너무 나약한 힘이다. 공자의 말 ‘호지자불여락지자( 好之者不如樂之者) ’를 당위의 관점으로 보기보다 생존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럴싸하게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어떤 세계는 락지자만이 인고를 견딜 힘을 얻는다. 마지막. 평론가가 되고 한 4년차 즈음에 되었을 때, 어쩐지 나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평론가 동료들을 매우 친애하게 되었다. 그때 즈음이 평론가는 외로운 직업이라는 사실을 실감한 시기다. 물론 우리는 가끔 만날 수 있다. 서로에 대해 안부를 물을 수도 있고, 기회가 된다면 팟캐스트 같은 것으로 함께 프로젝트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결국 글을 쓸 때는 혼자다. 사유의 끝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남이 아니라 나를 끝없이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즐거워서 뛰어든 일이지만 때로는 외로운 일인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외로움을 안고 나아가야 하는 동지들에게 친애와, 연민과, 애정과, 존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GG의 필진분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려 한다. 올 봄엔 GG에 기고하는 평론가 셋이 모여서 한참을 떠든 날이 있다. 차마시고 밥먹으면서 한 7시간은 떠들었던 것 같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동료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 때 나중에 온라인으로 「GTFO」를 함께하기로 했는데 역시나 실행은 안되고 있다. (다들 바쁜 것도 있고, 네 명일 때 최적으로 재밌는 게임이라는 말도 있어서 그만...) 그래서 생각하는데, 가끔은 멀티 플레이어 게임을 같이할 사람이 없을 때 함께 해주는 것도 꽤 괜찮은 연대라고 생각한다. 그래, 우리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스플릿 픽션」에 대해서는 쓰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하면 어떨까. 「스플릿 픽션」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게임 디자이너, 수익모델의 변화 앞에서

    결국 온라인 게임의 수익 모델이 부분유료화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분유료화로 뭉뚱그려 취급되는 과금 모델 내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 Back 04 GG Vol. 22.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uyong Kim A gamer of 30+ years, a game designer of 20+ years. Keenly interested in gaming culture broadly. These days, especially curious about the difference in how games are approached between the older generation, who started out with stand-alone play, and today's generation, for whom multiplayer is the default. Occasionally writes and gives talks.

  • 서울을 걷는 작은 이유, 피크민 블룸 서울 투어

    이 사람들의 정체는 바로 <피크민 블룸>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들이 쓰고 있단 머리에 쓴 모자는 닌텐도의 유명 캐릭터인 ‘피크민’을 본뜬 것으로, ‘피크민 블룸 투어 2025: 서울’ 행사 참여자들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도심을 누비던 그들은, 사실 같은 게임 속에서 도시를 탐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onwoo Lee Interested in games played together, and studies the relationality of games. Hopes that games can bring joy to everyone, all at once.

  • 전쟁, 게임, 그리고 게임화라는 이름의 수치화

    전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유명 게임 프랜차이즈의 대사도 있지만,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영역에서 전쟁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러한 진화는 ‘전쟁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답이 특정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은 내 이웃과 친구들의 비극 혹은 그걸 막기 위한 결단인가, 아니면 권력을 잡거나 방어하기 위해 장기판의 말을 옮기는 것과 같은 형식의 게임에 불과한가?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수치화, 워게임, 재현윤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Kim is known for his activities as a critical expert on current affairs in various press media. But he is also an active gamer who never let go of games. Some of his publications includes 『a cynical society』, 『Otaku Loved Lenin』, as well as a co-author of 『Now, Here, Far-Rightism』, 『right-wing discontent』, 『Twitter, that 140-character egalitarianism』. His latest publication is 『Democracy where you vote because you don't like that side』.

  • 게임이 대체 왜 예술이 되어야 할까?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C. 티 응우옌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윤리학이다. 그는 우리가 게임을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한된 행위성(agency)의 조건을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핵심에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환경,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형식 안에서 머리 싸매는 고투(struggle)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행위성, 응우옌, 행위성의예술, 북리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Taehyun Kwon Writes and plans a range of projects. Works in the art world, yet is always more drawn to things not readily regarded as art. Explores how things outside art might be thought through as objects within it. Continues researching with weight placed on a perspective that grasps the political as a matter of the sensory. (7000eichen@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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