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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릿 픽션」에 대해 쓰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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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10. 10.

내가 평론가로 등단한지도 벌써 8년차다. (이런 글에 걸맞는 매우 전형적인 클리셰다.) 2017년 만화 비평 공모로 등단해 지금은 게임에 관한 글도 함께 쓰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게임 비평을 더 많이 쓴다. 곧 있으면 평론가의 생활도 10년차에 도달할 예정인데 슬슬 이 직업이 어떤 존재인지 고민이 되던 차였다. 이럴 때에 ‘평론가’에 대한 글을 청탁받았다는 사실에는 뭔가 운명적인 것이 있다. 평소대로라면 청탁을 받는 순간부터 플레이 할 게임을 고르고, 스크린샷을 열심히 찍고, AI비서에게 연구 자료 조사를 돌려놓았을 일인데, 아무런 사전 조사도 연구도 없이 불쑥 내 이야기를 쓰려니 영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데에서 뭔가 근질근질 거리는 걸 보면 그래도 평론가처럼 살아오긴 한 모양이다.

 


평론가로 살아오기


작년 겨울 즈음이다. 영화평론가 유운성 선생님께 ‘청탁이 점차 줄고 있다.’며 한탄한 적이 있다. 유운성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글 청탁이란 누구나 그 양이 줄어간다.’라고 답해주셨다. 마치 시간에 의해 소멸되는 무언가처럼, 평론가에게 있어서 글을 쓸 기회라는 것은 한정 자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요즘이다.

 

한편 2023년에 좋은 상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 시상식에 나가서 함께 수상한 분들과 대화해보니 절반 정도는 이미 등단을 거친 분들이었기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등단 이후에 청탁과 기고의 기회가 마땅치 않아서 집필을 그다지 하지 못하신 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청탁이 줄고 있다’며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조금 배부른 생각이지 않나. 여러면에서 따지자면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어찌되든 약 3년 정도 한 잡지로부터 꾸준히 청탁을 받았으며, 지금도 GG로부터 계속 글을 쓸 기회를 받고 있다. 평론가에게 글을 쓸 기회라는 건 상시적 자원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가지 조건을 통해 발생하고 그때그때 예정된 이들에게 돌아가는 선택적 자원에 가깝다. 이 ‘여러가지 조건’에는 정말 여러가지 것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전부 나열하기도 벅차다. 그것들을 어떻게 해석하든 평론가는 어느정도 ‘선택받는’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며, 그 조건은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평론가 개인의 관점에선 언제나 공평하게만도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내가 머리를 기르는 걸 탐탁치 않게 생각하시는데, 아버지께서 불만을 말씀하실 때 마다 ‘내 직업은 눈에 띄는 게 중요하다.’며 적당히 둘러댄다. 그런데 이게 또 아무말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평론가는 어찌되든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야 하는 직업이지 않은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 대한 ‘주목’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으로 기회는 증가하지 않을까. 평론가의 세계는 주목경제의 세계인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청탁을 줄 리 없을 터이니’ 그 세계에 순응하면서도, 또다른 한편 ‘경제성의 효과’에 의탁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가 가진 평론가의 자아와 충돌한다. 길을 걷다가 또는 대중 교통을 타고 이동하다가 문득 ‘어떤 사람이 계속 청탁받는 평론가인가’에 대해서 질문해보곤 하는데, 특별히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다양한 기회와 많이 접촉하는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나에게 그런 능력이 없는 것도 알고 있고, 다른 한편 그게 전부는 아니겠거니 싶기도 하다.

 

올해에는 비평을 써본 적 없는 사람들과 함께 비평 쓰기 스터디를 진행했다. 스터디를 진행하는 멤버들의 자기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진행을 주도하는 입장에선 결과가 꽤 만족스럽다. 어떤 글이 비평인지 설명할 수 있겠다 싶은 확신은 작년 GG의 비평 공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가질 수 있었다. 뭐가 되었든 8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비평 쓰기라는 행위에 꽤 익숙해진 모양이다. 하지만 ‘비평 쓰기’에 대해서는 알아도 ‘비평을 쓰게되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일천하다. 대체 누가, 어떤 경위로, 특정한 매체에 글을 쓰게 되는 걸까. 지난 8년간, 나는 ‘ㅇㅇ에서 글을 봤습니다. 저희 매체에도 써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청탁을 한 번 받아봤다. 이 직업을 얻기 전까진 평론가란 그렇게 글을 쓸 기회를 가진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미디어를 통해 보편적으로 유통되는 전형적인 판타지의 일종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면 그저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지.

 

어찌되든 올해는 좋은 기회가 있어 대학 강의를 시작했다. 교강사 미팅을 나갔더니 나를 알아보고 인사해주시는 분이 계셨다. 맞인사를 하곤 너무 부끄러워서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는데, 혹시 이런 태도가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여전히 머릿 속을 맴돈다.

 


게임 평론가로 살아오기


앞서 유운성 선생님과의 대화 와중,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조언은 다음과 같았다. 청탁을 기다리기 보다, 개인적으로라도 글을 꾸준히 쓰고 책을 출판하세요. 저자가 된다면 강연의 기회가 생기니 그렇게 대중과 접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나는 선생님의 훌륭한 조언에 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선생님, 그런데 게이머들은 게임 평론가를 좋아하질 않아서 강연의 기회는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아 그렇구나’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며칠 전에 나는 ‘만화 작가 토크 콘서트’의 사회를 맡았다. 게스트인 두 작가와 친분이 깊어서 생긴 좋은 기회다. 나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만화평론가이지만(심지어 대본 초안에는 내가 ‘평론가이자 스토리 작가’인 걸로 나와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비평 쓰기와는 다른 ‘평론가의 일’과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어떻게보면 지금 하고 있는 대학 강의도 만화 평론의 연장이기도 하니까. 이게 바로 내가 받은 조언의 핵심이다. 잘 생각해보면 평론가의 일은 집필에만 한정되진 않는다. 물론 여전히 비평 쓰기야 말로 이 직업의 근간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비평적으로 사유하기’가 그보다 더 심층에 있는 근간이라면 그 발산에는 다양함이 존재할 수 있다.

 

나는 2023년 즈음에 ‘게임 평론도 하는 만화 평론가’가 되기 보다는 확실히 ‘게임 평론가’가 되기로 다짐했다. 그 짐에 호응해주듯 GG로부터 계속 청탁을 받을 수 있었고, 이에 대해 언제나 감사한 마음 뿐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 뒤에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금붕어 똥같은 질문이 붙어다닌다. 과연 무엇이 나를 ‘게임 평론가’로 있을 수 있게 만드는 걸까.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GG에 더는 글을 기고하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여전히 ‘게임 평론가’일까?

 

물론 게임을 플레이 하고, 비평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은 게임 평론가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어디까지나 존재론에 의거한 자신(自信)의 규정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로부터 ‘게임 평론가’로 지칭될 수 있는 조건이란 마음만으로는 안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게임 평론가’로 인식되기 위해 GG에 기생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는 좀 어렵다.(GG 미안해요!) 브런치에 스스로 글을 쓰기로 결정하기도 했으나 ‘직업적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자꾸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아니, 블로그 등을 통한 자가 기고가 핵심적인 해결책이라고만도 말할 순 없다. 역시 비평가의 활동이라는 것이 가지는 더 넓은 방법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몇달 전에 어떠한 소셜 커뮤니티 모임의 모임 주도를 시도해본 적이 있다. 게임 평론가라는 사실을 좀 강하게 어필하고 게임을 통해 대화하는 모임을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몇 개 정도의 기획서를 보냈지만 돌아온 건 ‘보드게임 모임처럼 모여서 즐겁게 게임을 하는 모임’같은 요청이었고, 나는 그냥 더 진행하기를 포기했다. 이 플랫폼과 함께 내가 원하는 방식의 ‘게임으로 사유하기’를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마음을 가져서다. 더 강하게 밀어붙여서 설득하고 관철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에너지를 내기도 전에 먼저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해야하는 건가, 하는 회의감도 들어 한동안 시달렸다. 그런데 이 플랫폼이 특별히 유별난 곳이겠는가. 이게 아마 지금 우리 세계의 일반적인 인식일 것이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평론가에 대한 세계의 규정은 시대의 요구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대한민국에서 비디오 게임 평론가로 산다는 건 스스로 유령이 되기로 결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좀 거칠게 말하자면) 이 세계에는 아직 이 ‘직업’을 맞이해줄 마음이 준비되어있지 않다. ‘대체 게임 평론가는 무슨 이야기를 해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템플릿처럼 준비해 다닌다. 그래봐야 애당초 상대가 비디오 게임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절반 정도는 무력한 언어로 소비된다. 게임이 일상적인 세대의 탄생, 게임 인구의 점진적 증가 같은 이야기야 떠돌고 있지만 「어벤저스 : 엔드 게임」을 천만명이 봤다는 뉴스를 볼때와의 기분과 사뭇 다르지는 않다. 어쩐지 세계가 아직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공허한 다짐을 반복하는 기분도 든다.

 


그럼에도 게임 평론가로 살겠는가?


새 동료들이 탄생하는 좋은 자리에 음울한 이야기나 쏟아내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마음 한구석이 편치는 않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쏟아내면서도 나는 여전히 게임 평론가로 살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이야말로 지금의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그런데 특별한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게임 평론이 재밌다. 나는 게임 평론이 다른 평론보다 ‘특별히’ 더 재밌다고 여긴다. 당연히 비디오 게임이 다른 분야에 비해 더 특별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내가 게임을 만화만큼, 혹은 영화만큼 좋아하기 때문인데, 딱히 우열은 가린 적은 없지만 세 분야를 비슷하게 좋아한다. 그리고 게임 비평을 특별히 더 좋아하는 이유는,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마주침의 기회가 적기 때문인 것 같다.

 

더 희소한 일을 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는 편향된 결정은 아니다. 이경혁 선생님이 몇번이고 이야기하는 대로 지금의 시대에 게임 평론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나는 그러한 생각에 충분히 공감한다.) 필요는 하지만 요청받기는 어려운 일, 내가 하지 않으면 마주치기 어려운 일을 한다는 건 사유의 과감성을 준다. 어쩐지 내가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매우 커다란 심적 만족감(!)을 주는 면도 적지는 않다. 그런데 그런 자기 고유성이라는 명예로운 만족감의 탓만은 아니다. 그냥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아무말이든 일단 던져볼 수 있다는 내적 만족감이 크게 작동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게임 평론을 하는 재미라는 건 아이러닉한 측면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세계로부터 유령처럼 취급되는 존재니까 아무렇게나 떠돌 수 있고, 그게 재미있다.

 

이러면 다시금 평론가로 살며 비평을 쓰는 이유로 환원되어버린다. 결국 우리는 왜 쓰고 왜 떠드는가? 어떠한 이야기를 진탕, 공식적으로, 마음껏 떠들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러니 저러니 이유를 붙였지만 ‘비디오 게임’에 대해서 대범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이다. 비록 누가 읽고 있는지, 듣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도 특권화의 쾌락이 있다. 게임 평론가라고 칭할 수 있으니까 어느 자리에서건 권위있는 척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는 법이다. (자리를 함께하는 분들이 어떻게 쳐다볼지는 몰라도.)

 

여튼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이러다보면 언젠가 비디오 게임의 대중 강연도, 토크 콘서트도 많이 생길 지 누가 아는가. 이런 전장의 안개로 가득찬 미래를 뚫고 나갈 힘은 오직 쾌의 감각에서부터만 나오지 않을까. 실리나 명예, 가치의 취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불확실성을 뚫고 나가기엔 너무 나약한 힘이다. 공자의 말 ‘호지자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를 당위의 관점으로 보기보다 생존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럴싸하게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어떤 세계는 락지자만이 인고를 견딜 힘을 얻는다.

 

마지막. 평론가가 되고 한 4년차 즈음에 되었을 때, 어쩐지 나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평론가 동료들을 매우 친애하게 되었다. 그때 즈음이 평론가는 외로운 직업이라는 사실을 실감한 시기다. 물론 우리는 가끔 만날 수 있다. 서로에 대해 안부를 물을 수도 있고, 기회가 된다면 팟캐스트 같은 것으로 함께 프로젝트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결국 글을 쓸 때는 혼자다. 사유의 끝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남이 아니라 나를 끝없이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즐거워서 뛰어든 일이지만 때로는 외로운 일인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외로움을 안고 나아가야 하는 동지들에게 친애와, 연민과, 애정과, 존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GG의 필진분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려 한다.

 

올 봄엔 GG에 기고하는 평론가 셋이 모여서 한참을 떠든 날이 있다. 차마시고 밥먹으면서 한 7시간은 떠들었던 것 같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동료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 때 나중에 온라인으로 「GTFO」를 함께하기로 했는데 역시나 실행은 안되고 있다. (다들 바쁜 것도 있고, 네 명일 때 최적으로 재밌는 게임이라는 말도 있어서 그만...) 그래서 생각하는데, 가끔은 멀티 플레이어 게임을 같이할 사람이 없을 때 함께 해주는 것도 꽤 괜찮은 연대라고 생각한다. 그래, 우리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스플릿 픽션」에 대해서는 쓰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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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릿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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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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