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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되새기고 싶은 게임들
쏟아지는 게임들을 개인이 매년 다 챙겨 플레이해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꾸준히 신작들을 좇는 과정에서 느꼈던 올해의 여러 게임들을 간략히 정리해보면서 한 해의 게임들이 남긴 의미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GG는 딱히 평점을 매기거나 개별 타이틀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웹진은 아니지만, 한 해의 마무리로서의 의미 정도는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 Back 2023년, 되새기고 싶은 게임들 15 GG Vol. 23. 12. 10. 팬데믹의 여파인지 , 2023 년에는 뭉쳐 두었던 게임들이 갑자기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오는 한 해였다 . 게임 마니아들도 ,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도 올해 나온 굵직한 게임들을 다 플레이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쏟아지는 게임들을 개인이 매년 다 챙겨 플레이해 볼 수는 없다 .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꾸준히 신작들을 좇는 과정에서 느꼈던 올해의 여러 게임들을 간략히 정리해보면서 한 해의 게임들이 남긴 의미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 GG 는 딱히 평점을 매기거나 개별 타이틀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웹진은 아니지만 , 한 해의 마무리로서의 의미 정도는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 올해의 아쉬움: <다키스트 던전 2>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대만큼의 결과를 만들지 못한 올해의 아쉬웠던 게임들이다 . 아무래도 아쉬움을 이야기한다면 올해는 1 순으로 < 다키스트 던전 2> 를 꼽지 않을 수 없다 . < 다키스트 던전 > 1 편은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가 게임 규칙을 통해 어떻게 얽히고 설킬 수 있는지를 훌륭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 심연의 공포는 심연 그 자체 이상으로 로그라이크 특유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 , 팀 구성과 이벤트가 결합하며 한 발 한 발 나갈 때마다 플레이어를 조여내는 공포감 , 절체절명의 순간에 단 한 번의 기회가 만들어내는 회생의 짜릿함을 극한까지 만들어낸 바 있었다 . 2023 년에 2 편이 출시된다는 소식은 그래서 적지 않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대감을 선사했었다 . 그러나 정작 올해 출시된 2 편은 1 편의 위상을 넘지 못했다 . 영웅 캐릭터들의 배경을 보여주며 스킬을 오픈하거나 마차를 타고 이동하며 어둠의 심연을 향한다는 변경점들이 문제라기보다는 , 영웅 팀을 꾸려 상황에 맞게 성장시키는 본진 중심의 성장감이 크게 흐트러졌다는 점이 문제로 보인다 . 매 막이 끝날 때마다 영웅들의 인간관계가 흔들리며 스킬셋이 뒤바뀌고 , 캐릭터 성장의 누적치가 짧게 디자인되어 후반부로 갈수록 어드밴티지가 줄어드는 점은 여러모로 게임을 고정된 패턴의 반복에 가깝게 만든다 . 지속적인 플레이를 통해 점차 본진이 강화되는 점으로 성장치를 옮긴 듯 하지만 , 이는 결국 게임을 일정 수준 이상 플레이하기 위해선 결국 수십 번의 게임오버를 누적해야 한다는 전제가 되고 말았다 . 리메이크 붐 - <데드스페이스>, < 데드 스페이스 >, 처럼 올해 적지 않은 AAA 게임들은 리메이크를 기반으로 출시되었다 . 9 세대 콘솔게임기들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서이기도 하고 , 과거의 젊었던 게이머들이 이제 중년에 접어들며 자신의 과거에 남은 명작들을 다시금 곱씹어도 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 비단 스탠드얼론 게임 뿐 아니라 2000 년대의 온라인게임들도 적지 않게 리부트되고 있는 상황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 산업적으로는 이러한 리메이크들은 게이머 소비자층의 인구구성 변동과 밀접하게 엮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 게임은 기본적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매체고 ,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10 대 -20 대층은 3-40 대에 비해 큰 폭의 인구 감소를 보이고 있어 소비자 모수 층 자체가 두텁지 않다 . 더불어 소비력 또한 경제활동인구인 3-40 대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당분간 2000 년대 게임의 리메이크 , 리부트는 훨씬 두터운 소비력을 지닌 3-40 대의 취향에 맞춰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개별 게임으로 이야기해본다면 , 중년층을 향하면서도 동시에 각각의 게임들은 20 년이 지난 시점에서의 새로운 세대에게도 어필이 가능하게끔 하는 변경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 몇몇 게임들은 지금 시점에서 보기엔 여전히 불편한 인터페이스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전작을 고스란히 새 플랫폼에 포팅하기보다는 나름의 변경요소들을 통해 리 ’ 메이크 ’ 의 의미를 살리는 경향들을 보였다 . 향후 한 100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이러한 리메이크가 이뤄진다면 우리는 ‘ 데드스페이스 2000’, ‘ 데드스페이스 2023’ 등으로 리메이크 년도를 중심으로 한 게임 플레이와 비평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고 , 이러한 시도들이 만들어내는 같은 게임에 대한 버전별 차이를 통해 또다른 의미들을 되새겨볼 수도 있을 것이다 . 국산 스탠드얼론의 해, <데이브 더 다이버>, 오랫동안 국산 게임의 중심이었던 모바일 MMORPG 들의 수익성이 예전같지 않음은 몇 년 전부터 지적되어 온 바였고 , 그에 따라 많은 회사들이 콘솔 , PC 를 기반으로 해외진출을 모색해 온지도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 2023 년은 그런 흐름 중 일부가 결과물을 드러낸 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 데이브 더 다이버 > 는 라이트한 톤을 선택했다 . 어렵지 않은 난이도로 주인공 데이브의 이미지처럼 편안하게 해변에서 맥주마시는 느낌으로 플레이 가능한 이 게임은 바다라는 대상에 대한 독특한 시선의 조합을 보여주었는데 , 휴양지로서의 해변과 취미로서의 다이버를 중심에 세운 뒤 주로 공포의 심연으로 다뤄지던 바닷속은 한편으로는 도전적이면서도 동시에 밝고 명랑한 판타지의 세계로 그려낸 뒤 융합시켰다 . 식량의 보고 , 휴양의 공간 , 심연의 공포와 판타지가 적절하게 융합된 < 데이브 더 다이버 > 의 바다는 라이트해 보이는 게임의 외양과는 달리 나름의 유니크한 세계 구축에 성공했고 , B 급 유머를 통해 전체적인 톤을 잡아가며 성공적인 해외 진출의 성과를 내는 중이다 . 단순 매출지표로서가 아니라 , 독창적인 세계관이 유기적으로 잘 작동하는 게임메이커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가능해 보인다 . 은 AAA 급 소울라이크라는 일련의 도전을 시도했고 이 또한 유의미한 수준의 성과에 도달했다 . 게임 규칙은 과도한 난이도 꼬기나 지나치게 부드러운 진행 사이의 적절한 지점을 (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 납득 가능한 구조로 구축해냈고 , 그런 규칙은 디젤펑크 풍의 세계관 속에 캐릭터와 아이템을 통해 부드럽게 달라붙었다 . 오히려 눈길을 끈 것은 세계관과 스토리 부분이다 .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 은 근대 초기의 오토마타를 통해 동화 ‘ 피노키오 ’ 를 재해석해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 게임 초반 호텔 입구에서 “ 로봇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는 문구와 함께 시작되는 이 게임의 주요 주제는 챗 GPT 를 통해 거짓말을 달고 사는 AI 를 늘상 마주하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히는 매 스테이지의 대전은 강한 추진력을 가진 이야기 진행을 통해 좀더 힘을 받는다 . 난이도에 대해 생각하기: <디아블로 4>와 <스트리트 파이터 6>, <아머드코어 6> < 디아블로 > 시리즈는 하드코어 모드를 따로 켜지 않는 한 어려운 난이도의 게임은 아니다 .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벤트 클리어는 숙련도보다는 아이템과 스탯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 이는 일정 시간 이상을 투여함으로써 충분히 축적 가능하기 때문이다 . 이 시리즈의 핵심은 그래서 결국 ‘ 아이템 ’ 이다 . 아이템을 어떤 식으로 획득할 수 있느냐가 게임의 핵심이며 , 적어도 3 편에서 시도한 전설 아이템 드랍율 상향은 그다지 매력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 2 편의 영광과 3 편의 실망 이후 발표된 4 편을 처음 접하고 든 생각은 그 적당한 절충점을 찾는다는 게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 그러나 이는 단순히 드랍 확률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 결국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하게 만드는 계기는 끊임없이 주어지는 ‘ 해야할 것 ’ 이 얼마나 있는가 , 그리고 그 ‘ 해야할 것 ’ 이 ‘ 해야할 가치 ’ 가 있는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스토리 진행과 무관하게 성장하는 캐릭터가 중심인 이 게임은 그러나 그 ‘ 해야할 것 ’ 보다는 ‘ 안해도 되는 것 ’ 에 더 무게를 실어버린 느낌이다 . 단순 선악구도에서 다면화된 캐릭터를 통해 복잡해진 이야기로 넘어간 시도는 흥미롭지만 그것이 ‘ 해야할 것 ’ 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 오히려 몹의 빈도 저하와 같은 패치들은 ‘ 해야할 것 ’ 의 양적 , 질적 저하를 가져온 결과를 낳았는데 , 부실한 오픈월드 구현과 함께 게임의 중심을 잃은 느낌을 받은 부분이었다 . 격투 게임을 전문적으로 즐기지 않는 입장에서 < 스트리트 파이터 6> 는 매우 놀라웠는데 , 5 편에 비해 확실히 초보 - 저랭크 존의 대기시간이 크게 줄어듦을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 스틱과 6 버튼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기술을 연속으로 넣어야 하고 , 이를 상대 캐릭터에 반응해 맞춰야 하는 고전적인 대전격투 게임의 방식은 QWER 과 쿨타임으로 구성된 요즘의 버튼과는 다른 차원의 인터페이스이고 , 이는 이른바 ‘ 고인물 ’ 들이나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대전격투 게임의 자리를 만들어온 바 있었다 . < 스트리트 파이터 6> 가 도입한 새로운 컨트롤 방식은 충분히 의미있는 시도였고 , QWER 세대에게도 대전격투의 공방과 심리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 정작 오래된 게이머 입장에선 손에 맞지 않아 클래식 컨트롤로 돌아가긴 했지만 , 라이트해진 컨트롤을 사용하는 상대와도 충분히 유의미한 대전을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은 비전문 격투게이머에게도 한동안 < 스트리트 파이터 6> 를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었음은 분명하다 . < 아머드코어 6> 는 난이도 측면에서도 메카배틀이라는 장르 특성에서도 메이저한 게임으로 부르기는 어려운 축에 속한다 . 6 편의 경우는 난이도가 다소 애매한데 , 어떤 세팅을 하는지에 따라 체감 난이도가 크게 요동친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쉽다 어렵다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 조작성의 개선과는 별개로 아직까지 특유의 낮은 시인성 문제는 초심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장벽으로 보인다 . HUD 인디케이터를 통하지 않으면 정확한 타격 시점의 인지가 쉽지 않고 , 이는 일정 시간의 숙련을 거친다 해도 그다지 보편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 형태의 숙련으로 자리하지는 않는다 . 그럼에도 숙달에 이르는 과정 자체는 부드러운 우상향을 만들어내고 있어 지속적인 플레이를 가능케한다 . 오히려 꽤 잘 기획된 것으로 보이는 스토리 측면에서 다소 허술한 개연성을 드러내고 있어 아쉬운 부분이라면 아쉬운 부분 . 메이저 IP들의 성공, 실패, 그리고 아쉬움 - <마블스 스파이더맨 2>, <호그와트 레거시> < 호그와트 레거시 > 는 해리포터 세계관을 가져오되 해리포터 시대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원작 마니아들로부터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다 . 실제로 해리포터 IP 에 친숙한 이들이 플레이 중 발견하는 요소들은 꽤나 흥미로웠던 것으로 보이지만 , 문제는 IP 가 플레이 규칙 안으로까지 들어오지는 못한다는 점이었다 . 다양한 동적 오브젝트들을 통해 빽빽하게 채워진 호그와트 성과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주변 마을들은 해리포터 세계에 들어와있음을 보여주지만 , 이러한 세계관 요소들은 전투에 개입하지는 못한다 . 마법 속성을 통해 일련의 상성관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방어 - 회피 - 카운터 - 콤보를 유발하는 전투 방식은 해리포터 세계관 속의 전투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운 , 게임적인 우회 루트의 결과물로 이해된다 . 게임 내 지팡이 상점에서 지팡이를 교체해도 아무런 전투속성 변화가 없다는 점은 게임으로 < 호그와트 레거시 > 에 접근한 이들에겐 다소간의 실망감이었을 것이다 . 다만 원작의 전투 씬 자체가 다소 모호한 구성임은 감안할 필요가 있고 , 오히려 좀더 적극적으로 원작을 기반으로 전투의 공방을 새롭게 재구성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 마블스 스파이더맨 2> 는 같은 지점에서 충분히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해볼 수 있겠다 . 1 편의 출시 때부터 < 배트맨 아캄 >3 부작의 프리플로우 액션은 < 스파이더맨 > 에 더 어울린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 2 편에서도 특유의 경쾌한 액션은 원작 IP 의 캐릭터 감성을 고스란히 살리며 이어졌다 . 기본적인 체술 , 웹 스윙을 통한 맵 이동 , 스파이더 센스를 활용한 공격알람 시스템 등은 1 편에서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 2 편에 추가된 새로운 특수기들과 장비들은 원작의 스파이더맨 ’ 들 ’ 이 과학 / 공학 너드라는 사실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설득력있으면서도 화려한 액션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 애초에 < 스파이더맨 > 시리즈는 원작부터가 도심을 기반으로 한다 . 웹 스윙은 건물이 없으면 사용이 어려운 기술인데 , 2 편에 도입된 윙슈트는 이런 점을 보완하면서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 어반 판타지 액션으로서의 완성도는 뉴욕의 젊은이라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와 일상을 녹이는 다양한 서브퀘스트와 잘 엮이며 스파이더맨 세계관이 정밀하게 작동하는 생동감넘치는 도시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 다만 이 시리즈가 가진 치명적 한계로서의 한국어 더빙 문제는 시리즈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비영어권 사용자들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 안그래도 빠른 액션 씬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주인공들의 입담은 자막 이용자들에겐 게임의 중대한 재미 하나를 순식간에 놓치게 만든다 . 닌텐도의 길: <젤다의전설: 왕국의 눈물>,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 젤다 : 왕눈 > 은 발매 직후의 고평가 외에 부정적인 평가들도 없지 않은 편이다 . 특히 1 편인 < 젤다 : 야숨 > 을 플레이했지만 시리즈의 팬이 아닌 경우 부정적 평가가 두드러지는데 , 1 편의 확장팩 같다는 평이다 .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평가는 다소 억울해 보일 정도로 2 편은 새로운 만질 거리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 납득하지 못할 평가는 또 아니다 . 전반적으로 상대적 캐주얼함을 가지고 있는 ‘ 스위치 ’ 계열 게임 중에서 < 젤다 > 시리즈는 꽤 마니악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데 , 이런 요소들이 인터페이스상의 불편함으로 들어간다면 조금은 개선점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 이를테면 인벤토리 처리의 불편함이라던가 , 새로 추가된 크래프팅 시스템이 주는 번거로움 같은 부분들은 설령 시리즈의 팬이라 하더라도 다소 부담스럽고 , 물흐르듯 이어저야 하는 플레이를 중간중간 멈추게 만드는 요인이다 . 그래도 전통적인 시리즈 특유의 스타일을 ‘ 스위치 ’ 플랫폼에서 계속 발전 ,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위치 기반 < 젤다 > 시리즈의 두 작품은 여전히 고평가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 오히려 과도하게 그래픽에 많은 리소스를 투자해 제작비와 제작시간이 산으로 가는 케이스와 비교한다면 < 젤다 > 시리즈 특유의 시각적 분위기는 게임 플레이 자체에 더 많은 공수를 들일 수 있게 만드는 배경이며 , 그로 인해 매 신작마다 여전히 게임하는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 플랫포머 액션의 종손이라 불러도 될 <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 의 성취는 올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수준이다 . 시각과 청각을 모두 활용해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게임 메카닉에 고스란히 녹아들며 , 각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새로운 적과 오브젝트들은 거의 40 년에 가깝게 이어진 2D 플랫포머라는 장르가 필연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진부함을 넘어서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기믹을 들고나온다 . 오히려 이 오래된 장르가 진부하기는커녕 앞으로도 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선언으로도 읽힌다 . 본격적인 스위치 플랫폼의 대표주자다보니 특유의 2 인 코옵 또한 훌륭하게 구현되었다 . 오프라인 코옵 뿐 아니라 온라인 코옵도 구현되었고 , 이를 통한 협업으로 난이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성이라 말그대로 함께 하는 게임으로의 지향 또한 뚜렷하게 잘 드러나고 있다 . 특히 온라인 멀티플레이에서 익명의 매칭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트롤링에 대한 섬세한 대처는 이 게임을 빛나게 만드는 포인트 . 메이저한 게임은 아니지만, 눈길을 사로잡았던 게임들 건설운영 시뮬레이션 < 어게인스트 더 스톰 > 은 < 심시티 > 류처럼 엔딩없이 무한으로 도시를 키우는 방식을 벗어나 로그라이트적 개념을 통한 스테이지 클리어의 반복을 중심에 둔 게임이다 . < 시저 >, < 세틀러 >, < 안노 > 등의 비슷한 게임들이 최소한의 적을 두고 공 - 방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것과 달리 이 게임은 애초에 전투 유닛 자체가 없지만 , 주어진 과제의 기한 내 완수라는 미션이 주는 압박감은 매번 리셋되는 조건과 맞물리며 굉장한 몰입도를 자랑한다 . 중세 용병단을 다룬 전략롤플레잉 < 워테일즈 > 는 정해진 스토리 없이 말그대로 유랑하는 용병단의 상황을 풍성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 주어지는 상황들은 딱히 진엔딩이라 할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며 , 게임의 난이도 조절은 단순히 적의 레벨이 올라가는 것 이상으로 용병단의 재정적 운영 자체가 점점 힘들어지는 구조를 통해서도 이루어지며 전투와 운영 두 면에서의 충분한 고려를 요구하여 게임의 몰입을 높인다 . 사실상 후반부에 이르면 도덕적인 플레이가 어려울 만큼의 처절한 상황 설정은 현실을 떠나 가상공간에 푹 빠져 오랫동안 사고하고 플레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 팔루자에서의 6 일 > 은 아직 얼리억세스이지만 FPS 장르에서의 새로운 논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임으로 보인다 .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편의를 높이는 게임적 방식이 아닌 , 전장이라는 현실이 제공하는 실제 장벽이 되는 상황들을 겪도록 만든 구성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다른 의미의 몰입과 집착을 불러낸다 . 일정 거리를 벗어나면 무전이 아닌 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 채팅이 지원되지 않으며 핑 포인트 또한 자주 시야를 가리는 등 사실상 전장에 놓인 병사가 겪게 되는 고립 상황은 특히 강렬한 사운드 효과들 – 귀가 멍해진다거나 실내 교전시 울리는 소리 등 – 에 의해 배가된다 . 다만 매우 가까운 시대에 실제로 벌어진 전쟁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조금 더 차가운 시점에서의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 그래도 딱 하나를 꼽으라면 - <앨런 웨이크 2>, <발더스 게이트 3> 하나를 꼽겠다 해놓고 굳이 두 개의 게임을 집는 이유는 둘 다 큰 임팩트를 내게 남겼기 때문이다 . < 앨런 웨이크 2> 는 13 년만에 돌아온 후속작을 통해 전작이 미처 다 끝맺지 못한 이야기를 < 퀀텀브레이크 >, < 컨트롤 > 등을 통해 그동안 꾸준하게 쌓아 온 제작사의 세계관을 통해 완성시켰는데 , 그 완성도와 메시지가 올해 나온 여러 게임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 전작인 < 앨런 웨이크 1> 에서 게임은 작가를 통해 만들어지는 예술이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라는 주제를 통해 미스터리 어드벤처를 구현해 낸 바 있었다 . 이번 후속작은 창작과 예술의 심연으로 빨려들어간 작가 앨런 웨이크와 함께 FBI 요원 사가 앤더슨이 등장하며 작품을 예술이게 하는 기둥으로 존재하는 것이 작가와 영감 뿐 아니라 작품의 수용자임을 환기시킨다 . 세계를 이해한 작가가 자신의 경험과 영감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 만들어진 작품은 수용자에 의해 해석되고 피드백되며 다시 작가를 향한다 . 이 루프 피드백은 동시대 매체와 콘텐츠의 구조에 대한 제작자가 게임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는 새로운 산출물이며 ,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해 플레이하고 비평함으로써 비로소 작품을 완성시키는 구조 안에 놓인다 . < 발더스 게이트 3> 은 대중들이 디지털게임에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의 퀄리티로 구현된 세계와 , 그 안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멋지게 얽어내며 모두의 기대를 만족시켰다 . 탄탄한 원전 룰북의 힘을 통해 쌓아올려진 게임의 구성은 잘 만들어진 레고 블록으로 구현해 낸 , 언제 어느 자리에서도 플레이어가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들마다 ‘ 우리도 그거 고민했어 ’ 로 대답하는 제작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다 . 그리고 그런 구조 위에 올려진 다양한 캐릭터와 이야기들 , 특히 사실상 진주인공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 더 다크 어지 ’ 의 이야기는 가히 오래된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클리셰를 가장 정통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풀어내되 멀티엔딩과 선택분기라는 방식을 통해 게임 매체적인 방법으로 가장 아름답게 구현한 결과를 빚어냈다 . 너무 많은 게임들이 충분히 유의미한 경험들을 남겨준 2023 년이었고 ,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도 나는 계속 쏟아지는 2024, 2025 년의 출시 예고작들을 본다 . ‘ 이 게임은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것일까 ?’ 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또 그런 게임을 선호하는 입장에서 2023 년은 정말 할 말도 , 할 게임도 많은 해였다 . 게임이 넘칠수록 바빠지는 삶이지만 , 이런 식의 바쁨이라면 앞으로도 어느 정도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거라고 자위해볼 수 있는 미래가 될 것이다 . 모두의 게임 경험들이 내년에도 더 풍족하고 흡족하기를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Ordinary Corrupted Dungeon Love: ‘플레이어블’을 구하지 못한 서사와 갈등, <디아블로4>
다만 지난 10년간의 행보를 돌아볼 때 걱정되는 것은 그 장엄한 세계관을 구축했던 블리자드 기획진의 에고다. < Back Ordinary Corrupted Dungeon Love: ‘플레이어블’을 구하지 못한 서사와 갈등, <디아블로4> 16 GG Vol. 24. 2. 10. 세계관 집착이 가져온 엔드 콘텐츠의 부재 <디아블로4>는 초반의 성과를 이어가지 못한 채, 이견을 다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객관적으로 실패했다. <디아블로4>의 실패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동했겠으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패착을 뽑자면 장르적 소구점을 견고히 세우지 못한 점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디아블로4>는 초반의 흥행과 기대감조차 무색하게 시즌3 ‘피조물의 시즌’ 공개에도 게임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게임메카를 포함한 주요 매체는 <디아블로4>가 MMORPG와 핵앤슬래쉬, 온라인 게임과 패키지 게임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렸다고 입을 모았다. 플레이의 패키징 방향을 놓쳐버린 콘텐츠 기획은 개발의 방향마저 잃어버린 듯 보였고, 플레이어들은 <디아블로4>의 플레이에서 어떤 재미를 느끼고 기대감을 걸어야 할지 난감해야 했다. 그나마 자랑으로 삼을 수 있던 탄탄한 스토리는 완결을 보고 난 뒤, 2회차 3회차 플레이는 소비의 역치를 충족하지 못하고 그 힘을 잃어버렸다. 이 모든 난관을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찾는다면, 아마 ‘앤드 콘텐츠의 부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블리자드 개발진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디아블로4>의 엔드 콘텐츠를 부재하도록 만들게 되었나? 혹자는 블리자드가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Activision과 <캔디 크러쉬>의 King을 인수한 뒤, 게임 개발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사업에 눈이 멀어 게으른 기획과 방만한 운영 끝에 현 상황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지적할 것이다. 또는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업을 짊어지고 있었음에도 컴퓨터를 존중하지 않는 방식으로 뜬구름을 잡더니 결국 스토리와 같은 허무맹랑하고 현학적인 소구점에 집착한 나머지 현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하는 평자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의견 모두 블리자드가 지난 10년간 <스타크래프트2> <디아블로3>를 공개하며 직면해야 했던 비판이다. 위의 비판 모두 경영진의 방심이라고 지적되어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 비판 모두 다소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두 비판 중 조금 더 타당해 보이는 쪽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디아블로4>는 서사, 그것도 애정 서사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이 게임으로서 갖추어야 할 장르적 소구를 크게 흔들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동안 블리자드가 10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해온 것은 경영진의 방만한 태도 때문이 아니라, 블라자드가 본인들의 장점이라고 여겨왔던 세계관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궁극적으로 개선해야 할 플레이의 재미를 혁신시키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디아블로의 실패 요인, ‘엔드 콘텐츠의 부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블라자드가 집착한 세계관에 대한 집착이 어떤 패착을 가져왔는지 톺아보아야 할 것이다. 주인공은 반드시 플레이어블해야 한다 <디아블로> 시리즈에 있어 중세기독교의 역사와 톨킨을 떠올리게 만드는 중간계를 섞어놓은 세계관은 그 자체로 <디아블로>의 정체성이었다. <디아블로>가 구축한 장엄한 세계관은 독창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널리 알려진 요소들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여 걸출한 IP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더불어 플레이어는 우수하게 조율된 타격감을 통해 <디아블로>가 구축한 매력적인 세계관을 탐방하는 재미에서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걸 수 있었다. 이는 블리자드가 빠르게 팬덤을 끌어모으는 바탕이 되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특징은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1> <디아블로2>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 서사적 주인공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게임으로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플레이의 미덕이 있다. 게임은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것이며, 플레이어는 어떤 방식으로든 플레이에 개입되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조금 더 쉽게 풀어보기 위해 시리즈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디아블로2>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디아블로>라는 게임 내에서 주인공의 지위는 어디까지나 ‘소서리스’ ‘네크로멘서’ ‘바바리안’ 등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캐릭터에 집중되어 있었다. 플레이어는 게임이 마련한 서사를 경험하기 위해서 플레이어블한 캐릭터를 플레이해야만 했다. 주인공은 단순히 서사를 탐험하고 전달하는 매개가 아닌, 선택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가는 존재에 가깝다. <디아블로2>의 이러한 특징을 대변하는 요소를 뽑자면 많은 플레이어가 <디아블로> 시리즈를 넘어 핵앤슬래시 역사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회자하곤 하는 “Act 5: Lord of Destruction”를 생각해볼 수 있다. “Act 5: Lord of Destruction”까지 <디아블로> 세계관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앞서 언급했던 서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플레이어블 한 존재로 보기는 어렵다. 차라리 이야기를 전승하기 위해 던전을 돌아다니는 캐릭터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디아블로2>의 마지막, 다시 말해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플레이어는 자신이 던전을 돌아다니며 레벨을 올리는 수련을 수행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자각하며 ‘끝판왕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소명을 부여받는다. 이는 게임을 플레이한 이유에 대해 단순하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며 그동안 플레이어가 겪었을 서사적 경험을 하나의 소구로 정리한다. 더불어 “Act 5: Lord of Destruction”에서 이용된 시네마틱 시퀀스는 그러한 플레이어의 기대를 배가시키며 게임 서사로서 날카롭고도 뾰족한 소구점을 만들어낸다. 게임에 어울리는 서사, 게임에 어울리는 갈등 여기서 중핵이 되는 것은 <디아블로2>가 가지고 있는 소구의 바탕이 ‘운명을 바꾸기 위한 숙명적 결투’와 같이 커다랗고도 직접적으로 체감이 가능한 갈등 위에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갈등을 십분 활용하며 선형적이며 결말이 정해진 서사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쾌감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이드 소프트웨어의 <둠 리부트>(2016)와 <둠: 이터널>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에서 스토리란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는 존 카맥의 격언 아닌 격언으로 유명한 둠 시리즈이지만, <둠>은 게임 스토리로서 갖추어야 할 명료하고 직관적인 이야기의 갈등 구조를 갖추고 있다. 던전에 악마와 갇히게 되었으니 악마들을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의 단순한 소구는 둠가이라는 인상적인 먼치킨 캐릭터를 구현하는 바탕이 되었고, 그 바탕 위에서 플레이어는 둠가이를 컨트롤하며 경쾌한 악마 대학살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야기 자체에 무심한 듯 보이지만, 갖추어야 할 기본기는 <둠>과 달리 <디아블로4>는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콘텐츠에 어울리는 갈등’이라는 기본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디아블로4>는 릴리트와 이나리우스의 어긋난 사랑이라는 갈등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릴리트와 이나리우스가 어쩌다가 갈등을 겪게 되었고,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 관찰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그들의 행위에 유의미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결말조차 그들의 어긋난 사랑을 담는 그릇으로 남겨지는 식으로 귀결되고 만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게임으로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플레이의 미덕’이 부재해 있다. 플레이어가 무엇을 플레이하든, 릴리트와 이나리우스는 그들의 선택을 한다. 여기서 고민해봐야 하는 것은 <디아블로4>가 가지고 있는 애정서사 그 자체가 아니라 애정 서사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릴리트-이나리우스 간에 벌어진 사실상의 부부 갈등이 게임에 적합한 갈등이었냐는 것이다. 물론, 릴리트와 이나리우스의 애정 서사는 <디아블로>라는 IP의 세계관을 두텁게 만들었다. 때문에 <디아블로4>의 시네마틱 시퀀스들은 그 어느때보다 강렬했으며, 그 자체로 게임의 소구점이 되었다. 그 세계관에 대한 ‘감상’이 소구점이 되다 보니, 가장 플레이어블한 엔드 콘텐츠 역시 방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블리자드는 플레이어가 시네마틱 시퀀스를 보기 위해 던전을 통과하는지, 아니면 서사의 주인공을 되는 경험을 위해 던전을 통과하는지 (최소한 본편에서는) 심도 있게 피드백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정도다. 이 때문에 <디아블로>는 장엄한 서사시를 경험하게 만들기 위해 던전을 통과해야 하는 값비싼 예술 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쉽게는 이는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대중을 상대로 세일즈하는 텐트폴 상업 게임에서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블리자드 역시 세계관에 집착하며 벌여놓았던 문제들을 수습하고 극복하기 위해 서사의 주요한 인물들을 릴리트와 이나리우스가 아닌 메피스토로 두는 등 세계관 내에서 인물들의 배치를 바꿔가는 식의 스토리 이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시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주인공의 자리로 옮겨놓기 위한 시도들이라고 기대해본다. 다만 지난 10년간의 행보를 돌아볼 때 걱정되는 것은 그 장엄한 세계관을 구축했던 블리자드 기획진의 에고다. 플레이어가 플레이어인 이유는, 플레이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임은 게임이다. 나아가 영화가 되려는 게임의 욕망은 그다지 독특하지 않다. 많은 개발자와 기획자들은 영화스러운 게임을 꿈꾸고, 플레이어 역시 영화스러운 플레이를 기대한다. 그러나 영화인 게임이 영화스러운 게임인 것은 아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원)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연구원. 콘텐츠와 IT 산업의 동향과 정책을 연구하며, 콘텐츠 전반에 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국 AI 및 디지털 정책 동향 조사·분석」(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디지털 보안 동향 조사 및 분석」(한국인터넷진흥원)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 참여했으며,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 신인상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 GDC 2023 탐방기: 기술과 트렌드의 변화로부터 일어난 흐름들
길었던 팬데믹의 터널이 끝나고 게임쇼에도 봄이 돌아왔다. 물론 모든 게임쇼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발표되었던 E3 2023의 취소 소식은 게임 업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보스턴에서 3월 말에 열린 PAX EAST는 GDC 2023과 비슷한 시기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B2C 부분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필자 역시 4년 만에 GDC를 찾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20년부터 2022년 GDC에 모두 등록했었다. 다만 온라인으로 열렸던 2020년과 2021년에는 참석이 불가능했고, 작년은 패스를 등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 Yeop Lee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 Contents at Soonchunhyang University. Researches game storytelling and game design as central concerns, and led the founding of the Busan Indie Connect Festival—a leading indie game festival—where serves as head of the jury. Also a juror for the Independent Games Festival (IGF), one of the most prestigious indie game events internationally. Books include Digital Storytelling (co-authored, 2003), Digital Games: A New Territory of Imagination (2005), Indie Games (2015), Stories Become Transformers (co-authored, 2015), Mario, Born in '81 (co-authored, 2017), The Theory of Games (co-authored, 2019), and Games Are Games: Game × Ecosystem (co-authored, 2021).
- 심사위원장 총평
제 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연세대학교의 윤태진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번 응모작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심사위원들이 기대했던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좋은 원고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응모해주신 90여명의 예비 비평가 모두에게 감사와 격려를 전합니다. < Back 심사위원장 총평 07 GG Vol. 22. 8. 10. 심사위원장 심사평 제 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연세대학교의 윤태진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번 응모작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심사위원들이 기대했던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좋은 원고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응모해주신 90여명의 예비 비평가 모두에게 감사와 격려를 전합니다. 좋은 평론이란 무엇인가. 좋은 게임 비평문이란 어떤 글을 말하는가. 명문화된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동의하는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심사위원들이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몇 가지, 명쾌하진 않지만 상식적으로 용인 가능한, 그리고 완전치는 않지만 충분히 포괄적인 방향성 정도는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저자의 독창적인 관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단순한 경험담이나 감상문과는 달라야 한다. 문학이나 영화 비평의 방법론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하기 어렵다. 지나치게 학술논문에 가깝거나 개념 과잉의 글도 좋은 비평문이라 볼 수 없다. 내용만큼이나 문장과 문체의 완성도 및 독이성(讀易性)도 중요한 요건이다. 내용의 확장가능성이나 미래지향적 태도 역시 중요하다. 정도입니다. 아, 게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열렬한 애정은 말할 나위도 없겠습니다. 이같은 아이디어들을 염두에 두며, 심사위원 다섯의 개별적 평가와 치열한 토론을 통해 아홉편의 당선작을 선정했습니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웜뱃 님의 “게임은 XX다: 동어반복적 회로를 차단하기”는 챗봇 플라밍고와의 대화에서 시작된 발상을 “게임은 지식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시키고, 이를 다시 재현성의 위기로 풀어낸 다음 “게임은 예술도 지식도 아니”라는 잠정적 결론으로 마무리짓는 독창적이고 탁월한 논리의 흐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장르의 게임과 사례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아주 현학적이지도 않지만 아주 가볍지도 않은, 재기가 넘치지만 통찰이 있는 글을 완성했습니다. 제 1회 공모전의 최우수상이라는 상징성 있는 타이틀을 부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글이라 판정하였고, 심사위원 전원의 동의를 거쳐 수상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좋은 글을 쓰신 웜뱃 님에게 감사와 축하말씀 전합니다. 김민호, 김지운, 김도근 님의 응모작 세 편에게는 우수상을 시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김민호 님의 독창성, 김지운 님의 통찰력, 김도근 님의 전문성은 다른 응모작들보다 한 단계 높은, 차별적인 장점이었습니다. 장려상을 수상하게 된 박동수, 김선오, 이선인, 김규리, 김서율 님에게도 큰 축하를 보냅니다. 첫 행사였음에도 이렇게 훌륭한 아홉 편의 수상작을 낼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동시에, 이번 수상이 저자들의 단발성 스펙으로 끝나지 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앞으로도 계속 게임에 대한 애정으로 갖고 좋은 글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척박하기 그지없는 우리나라 게임 평론의 토양을 여러분이 나서서 개척해주시기 바랍니다. 〈게임제너레이션〉도 땅을 개간하고 꽃을 피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꾸준한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윤태진 심사위원 명단 (가나다 순)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상우 (게임칼럼니스트)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산업의 트리플A, 이용자의 트리플A
한 때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신성함을 게임에서 꿈꿔보자. 하나의 통일된 지향을 추구하기 보다는, 여러 방향의 주변화된 상상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누적될 때 인류에게 진정으로 울림을 주는 더욱 경이로운 경험을 우리는 협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 가능한 것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그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won Jin Keenly interested in understan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echnology and humans (culture) through games and esports. Advocates for global, interdisciplinary, and open-science approaches to game science research. A founding member of DiGRA Korea, and currently active as an Esports Research Network Board Member, a board member of the Korean Esports Studies Association, and a member of the APRU Games and Esports Research Working Group. Worked for a time at NCSOFT and Riot Games Korea. Publications include a co-authored book chapter (2021), "Post-Digital Cultural Studies through an Analysis of the Technicity of Esports" (2022, doctoral dissertation), and "The Conceptual Blending of the Everyday and the Game World in the Gaming Experience" (2018, paper).
- 구독이 세상을, 게임을 바꿀까? - 구독형 결제,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여기 두 개의 질문이 있다. “당신은 지금까지 몇 개의 게임을 플레이해봤습니까?”와 “당신은 지금까지 몇 개의 게임을 소유해봤습니까?”이다.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온 두 개의 숫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소유하지 않은 게임도 플레이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자아와 투쟁하던 이야기로 세상을 구하게 만드는 방법 - 헬블레이드 2: 세누아의 전설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묘사하는 것은 때로 놀라울 만큼 쉽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천재나, 비현실적인 실력을 가진 전사를 만들 수도 있다. 어떤 문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고,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곤란함은 그들의 비범함 앞에서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 Back 21 GG Vol. 24.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aein Park A gamer who searches games for inspiration in life. Keenly interested in analyzing the ways games convey their intentions and concepts.
- [인터뷰] 게임은 현대미술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 MMCA서울관 〈게임사회〉 展
국내 국립 미술관에서 게임을 주제로 한 전시가 기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임사회〉 전에 대한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관심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주제의 전시를 사람들은 어떻게 감상하고 있을까? 이번 호에서 GG는 〈게임사회〉 전에 다녀온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왔다. < Back [인터뷰] 게임은 현대미술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 MMCA서울관 〈게임사회〉 展 12 GG Vol. 23. 6. 10. ‘게임’하면 떠오르는 장소로 미술관이라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다소 독특한 형식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게임과 현대미술이라는, 얼핏 보면 낯선 두 영역이 손을 맞잡은 것이다. 국내 국립 미술관에서 게임을 주제로 한 전시가 기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임사회〉 전에 대한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관심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주제의 전시를 사람들은 어떻게 감상하고 있을까? 이번 호에서 GG는 〈게임사회〉 전에 다녀온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왔다. Q. 반갑습니다. 먼저, GG 인터뷰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게임사회〉 전시에 대한 시민들의 솔직한 감상평을 듣는 자리로 구성했는데요. 〈게임사회〉 전시는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는 대부분 오는 편이라, 이번 전시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왔어요. 〈게임사회〉한다고 해서 게임으로 미술적인 것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어요. -오늘 친구를 만나서 점심 따로 먹고 차 가져왔는데 카페 가는데, 주차되는 곳 가려고 하다보니까 여기 오게 되었어요. -저도 근처에서 약속 잡은 김에 실내에서 시원하게 있으려고 왔어요. 전시 정보는 트위터 통해서 예술가와 게임업계분들 통해서 접하게 되었어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를 따라 예술 전시를 많이 봐왔고, 지금은 게임을 좋아하는데, 〈게임사회〉는 게임이라는 정박지가 있으니 그 지점에서 무엇을 펼쳐나갈지가 궁금해서 오게 되었어요. Q. 〈게임사회〉 전시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은 어떠셨나요? -전시 자체가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 위해서 구성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대중을 겨냥하고 만든 것은 아닌 것 같아요 . 애초에 타겟팅이 게임을 좋아하는 대중은 아닌 것 같고, 게임을 도구로 쓰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전시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연령은 크게 상관있는지 모르겠는데 확실히 게임 전시는 아닌 것 같았어요. 게임 개발자로서 이건 게임 전시는 아니라고 느껴졌어요. -웹에서 접했던 느낌과의 차이가 있었어요. 북미 인터넷 밈에 절여진 느낌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더 친절하고 소프트했어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래서 라이트한 유저들 그러니까 오락실 게임을 기대하고 오는 유저들한테는 좀 많이 기대와 다를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하드코어 게이머를 위해서 만든 전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 그래서 이거는 여느 미술 작품도 마찬가지겠지만, 오히려 여기서 가져갈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층이 나눠져 버리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흔히 말하는 게임 박람회와 달리 국현에 무슨 전시하는지 모르고 그냥 우연히 왔다가 가볍게 플레이해보고 가기에는 괜찮은 전시가 아닌가 싶어요. Q. 그렇다면, 오늘 전시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으실까요? -저는 완전 어렸을 때 보던 게임이랑 요즘에 나오는 그래픽 좋은 것들을 시간별로 보는 게 좋았어요. 1세대 게임 중에서 특히 ‘팩맨’이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이번에서야 알게 되었어요 . 단순한 구조인데 이런 의미를 드러낼 수 있구나 했죠. -어릴 적에는 TV 앞에 가서 게임팩을 연결해서 마리오를 봤는데, 영화관처럼 의자에 앉아서 마리오를 본다는 것? 사실 마리오는 영화관 의자랑 안 어울리는 작품 구성이잖아요. 그런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것이 주는 감각들이 흥미로웠어요. -전시 초입부에 텍스트 기반 게임(반지하게임즈의 ‘서울 2033’)을 전시해놓았잖아요. 거기서 광고가 틀어졌는데, 처음엔 이게 가짜 광고인가 했어요. 그런데 진짜더라고요. 저는 이게 미술관의 실수라기보다는 오히려 게임 내적인 것들이 미술관에 침투하는 느낌 이 들었어요. 실제로 이런 생각을 의도한 건가 싶었어요. 사실 우리가 게임할 때 광고는 일상적인 경험이기도 하잖아요. 의도치 않은 것들이 미술관에 들어오는 건 꽤 즐거운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 ‘서울 2033’이 무료버전으로 깔려 있는 것은 전시가 미흡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보통 사람들은 전시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저도 ‘서울 2033’이 기억나는데, 그 게임은 음성 인식도 되고, 장애인도 즐길 수 있다고 써있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1인 게임 개발에 관심이 있는데, 정확히 작품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정체성 게임(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의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를 마주하게 하는 게 재밌었어요. 저도 제 정체성과 관련해 어드벤쳐 게임 만드는 것을 생각 중에 있거든요. -마지막 영상(김희천 작가의 ‘커터3’)도 두 번을 봤는데, 첫 번째랑 두 번째가 다르더라고요. 처음에 봤을 때보다 두 번째 봤을 때, 게임 속의 캐릭터가 변화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모호해지는 것이 게임과 현실의 경계를 나타낸 것 같아서 두 번째 봤을 때 더 재밌게 받아들여졌습니다. * 반지하게임즈의 ‘서울2033’ Q. 이번 전시에는 관람객의 상호작용(interaction)할 수 있는 컨텐츠가 많았는데요. 전시에서 인터랙션 경험들은 어땠나요? -사실 워낙 미술이 어렵잖아요. 게다가 제가 게임이랑 친한 사람은 아니어서 조금 난해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그래도 생각보다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게 많았는데, 요즘 전시 트렌드와도 게임이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현대 미술 쪽으로 접근하면 재밌을 수도 있겠는데, 저는 일단 영상물에 집중을 잘 못해서 전시 볼 때도 영상물을 오랫동안 안 보는 편 이거든요. -인터랙션 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어요. 메시지를 인식할 시간을 줘야 해석하거나 할 텐데 시간이 충분치 않다보니 그러지 못했어요. 어떤 기기는 사전 예약해야 한다던데 심지어 주변에 사람이 없는데도 예약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었던 게 아쉬웠어요. -제가 갔던 시간은 그래도 사람이 조금 좀 없는 시간이었거든요. 저는 거기 있는 모든 게임들을 이렇게 그래도 해보려고 노력했는데도 각 콘텐츠 당 플레이 타임이 평균적으로 1분을 안 넘겼던 것 같아요. 사람이 없었음에도 뒷사람이 기다린다는 생각에 그거를 제가 계속 잡고 있기에 좀 미안하더라고요. -저는 미술관에서 만들어지는 인터랙션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캐치가 안 되더라고요. 게임 플레이야 당장 유튜브를 켜도 볼 수 있고, 미술관에서는 대체로 모르는 사람들이 플레이하는데 그 인터랙션 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 그리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진 않았어요. 미술관이 현실과 전혀 다른 공간이고, 전혀 다른 논리가 작동한다면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런 관점 자체가 미술관을 너무 신비화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게임적 질감은 흥미로웠지만, ‘게임적 질감을 통해 인터랙티브 전시를 하는 것이 현대미술에서 그렇게 새로운 것인가? ’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말씀하신 내용들을 듣다보니 이번 전시에서 아쉬운 점들도 적잖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미술관 설명이 어렵잖아요. 조금 더 쉽게 풀었으면 어땠을까요? 미술관에 자주 오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 조금 더 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반대로 기존의 미술작품과 달리 이걸 너무 친절하게 해설해준다고 생각했어요. -게임을 전시하는 것은 난해한데, 게임 전시는 또 반대로 너무 단순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접 관객이 들어가서 인터랙션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 단순하거나 너무 친절하게 해설해 놓았다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은 게임전시를 기대하고 들어가면, 거기서 새로운 경험을 얻는 것은 너무 쉽고 간단해요. 팩맨에서 새로운 경험을 얻는 것은 아니잖아요. -동시에 텍스트로 너무 많은 설명을 하려고 해요. 중국 작가의 작품 중에 한자랑 철학적 주제들을 자막으로 설명하는데, 비슷한 게임 중에 ‘디스코 엘리시움’과 비교해 아쉬움이 컸습니다. 자막으로 설명을 하니까 이게 오히려 게임 오브제로 설명되는 것 말고 어떤 함의를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소개 글을 열심히 읽었어요. 기본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글을 읽고 뒤돌아서니까 아이들 작품이 있었는데, 이 전시가 무엇을 지향하는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다소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어린이들 전시는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게 있었지만, 그게 전반적인 전시와는 잘 안 어울렸던 것 같아요. 그저 나열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가 ‘ 게임 전시인지’, ‘게임을 전시하는’ 것인지가 모호했던 것 같아요 . 저는 오락실(루 양의 ‘물질세계의 위대한 모험’)에서 무슨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 것인지, 미디어아트인지 게임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하룬 파로키의 〈평행〉은 국현에서 2019년, 2020년 이 즈음에 이미 전시했던 작품으로 알고 있어요. 똑같은 작품이 이번에도 실어졌던 게 아쉽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파로키 작품은 이전에 십자로 되어 있었고, 평행 1,2,3,4 작품을 사방에서 볼 수 있어서 서로 다른 것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줬는데, 지금은 벽면에 평면적으로 배치되서 파로키가 드러내고자 했던 지점을 조금 탈각시킨 것은 아닌가 싶었어요. * 루 양 작가의 대규모 영상 설치 작품 ‘물질 세계의 위대한 모험’ -그런 의미에서 저는 게임의 질감이 미술관 스크린으로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적절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에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접근성 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장 흑인 트렌스젠더만 해도 서서 플레이해야 하고, 눈높이가 안 맞으면 게임을 할 수가 없어요. 현대 미술은 그걸 메타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흑인 트렌스젠더 작품이란 전형적인 교차성 작품인데, 다양성을 흑인-페미니즘에 집중한 느낌이었어요. 거기에서 ‘장애’는 교차하는 변수일텐데 이런 부분이 탈각되는 것은 아쉬웠어요. -제가 갔을 때는 흑인 트랜스젠더 전시 중에 하나가 아예 꺼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돌아다니면서 다시 보니까 처음에 ‘이 세계에 동의하시겠습니까?’ 그랬는데 거기에 ‘아니요’ 버튼을 누르면 그냥 바로 꺼지더라고요. 사실 그거 자체가 주는 메시지가 있죠. 문제는 그 화면에 그러니까 그 화면이 떴을 때, 같이 있었던 사람들은 그것이 주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화면이 한 10분씩 꺼져 있으니까 ‘그냥 고장 났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맞아요. 그렇게 꺼져버리면 다른 관람객들은 중간에 들어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게 아니라 ‘이게 뭐야?’ 하고 지나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4관에 오락실처럼 마련해놓은 부스에 앉아서 하는 게임이 꺼지고, 바탕화면으로 가더라고요. 이건 흑인 트랜스젠더 전시관에서 ‘이 세계에 동의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NO’를 눌러서 화면이 꺼지는 것과 오락실 게임에서 바탕화면으로 가는 것이 상동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게임에서 최근에 많이 얘기되는 게 기술문화 내적인 것도 내적인 것이지만 ‘기계가 진동한다’ 거나 ‘ 기계가 오류를 일으킨다 ’거나가 많이 논의되는데, 화면이 꺼진 것은 의도된 것이며, 바탕화면으로 간 것은 분명 기술적 문제겠지만 그 자체가 오히려 게임이라는 혹은 게임이 실어진 기계가 매끈한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 있는 울퉁불퉁함 혹은 물질적 면모를 드러내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어색한 사람들과 있어서 흑인 트렌스젠더 게임을 플레이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다음 방에서 해설 영상 같은 것이 나오잖아요. 해설 영상이 뭘 말하려는 것인지는 명료하게 제시되었지만, 동시에 이게 그럼 기존의 ‘미술 작품과 뭐가 그렇게 다른가’를 묻게 되더라고요. *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 작가의 작품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 Q.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게임에 대해서 한 마디를 하신다면? -‘우리 이런 것도 한다’라면서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게임을 전시하는 것이 어떤 새로움을 주는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미술과 마찬가지로 게임에도 사회적 변화가 있구나라는 것 말고는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저는 미술관에서의 게임 전시가 질감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해요. 영상 내적인 게 그 공간이랑 되게 겹쳐지는 부분들이 많고, 당장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그 공간을 바라보게 구조가 있잖아요. 빈백에서 누워서 보면 스크린(김희천의 ‘커터 3‘)이 보이고, 1층 2층 벽 같은 것들이 보이니 그 겹쳐짐 자체가 보여주는 시각적인 쾌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1관과 4관을 본 다음에 그걸(김희천의 ‘커터 3‘) 봤는데 전시에서 추구하는 미감 같은 게 조금 중첩되는 것 같았어요 . 게임이나 게임 오브제, 혹은 게임 아키텍처가 미술관에 들어오는 느낌으로 흥미롭게 봤습니다. -공공미술이 시민 교육을 목적으로 할 때, 게임을 같이 가져가는 거는 굉장히 힘들지만,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을 해요 -저도 게임이라는 주제 자체를 미술관에서 다룬다는 게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게임을 미술로 보여주는 것 자체가 공공성을 담지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 국현에서 강아지들을 인터렉티브하게 볼 수 있게 전시를 했었어요. 강아지 전시죠. 전시 앞에는 뭘 붙여도 말이 된다는 점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예전에 냉장고로도 전시를 했더라고요. 냉장고도 말이 되고, 강아지도 말이 되네. 그리고 게임도 말이 되네. 그렇다면, 그 너머(More than)가 가능하려면 좀 더 게임 자체의 무언가를 추가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예술전시가 굳이 게임을 통해야만 하는지? ‘게임전시’인지 ‘게임을 전시하는 것’인지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민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Q. 미술관에서의 게임 전시에 대한 생각들을 조금 더 확장시켜봅시다. 향후에 이런 전시가 또 기획된다면, 어떤 지점들을 보완하면 좋을지 제언을 해주시겠어요? -게임과 예술을 어떤 식으로 경험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전시를 하게 된다면, ‘조금 더 게이머로서의 경험이나 게임 자체에 대한 탐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임을 활용해서 혹은 게임을 중요한 테마로 했던 기존의 국현 바깥의 전시에 비해 국현의 접근이 보수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게임 제너레이션(Game Generation)에서도 소개되었을 것 같긴 한데, 서울시 행화탕 ‘가상정거장’에서 했던 ‘에란겔 다크 투어리즘’이나 아니면 마인 크래프트와 같은 작품들이 오히려 게임과 현대미술의 접점으로 보여줬던 급진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 에란겔 다크 투어리즘은 게임 내적으로 들어가서 의미를 전유해서 좀 되게 흥미로웠던 작품인 것 같은데, 저는 거기서 게임 기기의 질감이 드러났던 것이 흥미로웠어요. * 서울시 행화탕 ‘가상정거장’ 전시 프로젝트: 에란겔 다크 투어https://youtu.be/bxVCJVKH11o -그런데 지금 국현 전시는 어째서인지 되게 보수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보수적이라는 말은 게임 질감이든, 인터렉티브 작품이든, 스크린에서 만드는 것 자체가 큰 자극을 주지 못한다는 말이에요. -국현이기에 어쩔 수 없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큰 미술기관이다 보니까 급진적으로 나가기는 까다로운 부분들이 있겠다 싶었어요. -어떤 게임의 경우, 2분 동안 붙잡고 있어도 어떠한 규칙도 어떠한 플레이 목적도 딱히 알 수 없었는데, 그런 작품은 그냥 미감만 보고 나와야 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감만 보고 나와야 한다는 것. 그게 보수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미감만 보는 전시가 기존에 없던 전시인가? 물으면 그건 또 아니라는 거죠. -기껏해야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게임 전시를 경험한다는 것은 매우 제한적인 시간이에요. 그것은 앞으로도 고민해야 할 지점일 것이라 생각해요. -그냥 무책임하게 자신의 어떤 감성과 감수성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 영역들이 저한테는 항상 무책임함으로 읽혀요. 저는 예술에서 늘 열려 있다. 그러니까 해석은 열려 있고, 그거는 관람객의 몫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저한테는 되게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최대한 자기 자신 그러니까 작가는 스스로가 고민을 해야죠. -게임 전시라고 했을 때 미술 안의 다양한 소재 중 하나가 아니라 게임이 줄 수 있는 어떤 특이점들이 어떻게 다뤄지는가를 봐야겠죠. -저는 게임이 현대미술의 탈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도 들어요. 현대미술 같은 경우에는 적극적인 관람객의 능동성 같은 것들을 강조한다는 지점에서 사실은 게임이랑 되게 닿아있다고 생각해요. 둘 다 수용자들이 어떻게 읽게 할 것인가를 열어놓지만, 그게 작가의 무책임함으로 빠지지 않게 경계해야 하는 것도 같아요. 그래서 전 게임과 예술은 서로에게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게임전시인 만큼 다양한 반응이 나온 것 같습니다. 덕분에 〈게임사회〉 전시에 대한 다채로운 의견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참여자 태백(가명), 26살, 여성, 전 게임 QA 김성은, 30대 후반, 여성, 프리랜서 김재원(가명), 20대 초반, 여성, 학생 박진욱(가명), 30대 후반, 남성, 언론직 종사자 한승진(가명). 30대 초반, 남성, 에디터 Tags: 인터뷰, 국립현대미술관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하태현 문화와 역사, 종교와 게임 등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게임을 즐깁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 궁리하며 살고 있습니다.
- 제3회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심사평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이 올해로 벌써 세 번째를 맞이했다. 세 차례 모두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응모작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계속 좋아졌다는, 어쩌면 뻔한 총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상향평준화라는 표현이 정확할텐데, 이는 ‘좋은 비평’의 요소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는 징표이기도 하겠다. 응모작들의 평균적인 형식적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Taejin Yoon After earning a PhD in television drama studies, has spent more than twenty years teaching, researching, and writing on media-cultural phenomena. The subjects have been varied—games, webtoons, the Korean Wave, variety programs—but all share a common thread: the exploration of "activities that many people enjoy." A few years ago came a small book titled A Study of Digital Game Culture, and these days runs a research organization called the Yonsei Game & Esports Research Center (YEGER), pursuing a range of studies on game culture together with younger researchers.
- 여벌의 생명선_2인용 로컬 협동게임 속 목숨의 구도
이혼을 결정한 부부 코디와 메이의 영혼은 부모의 이혼을 막고 싶은 딸 로즈가 빈 소원 때문에 조그마한 목각 인형에 씌게 된다. 자기들 나름의 추론을 거쳐서, 인형으로 전락한 부부는 딸의 눈물이 저주를 풀게 해주리라고 판단한다. 두 사람은 세계에 육박하게 거대해진 아이의 놀이방을 헤매면서, 로즈가 가장 좋아하는 코끼리 인형 큐티를 찾는다. 큐티를 망가뜨리면 속상한 아이가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 Back 여벌의 생명선_2인용 로컬 협동게임 속 목숨의 구도 24 GG Vol. 25. 6. 10. 이혼을 결정한 부부 코디와 메이의 영혼은 부모의 이혼을 막고 싶은 딸 로즈가 빈 소원 때문에 조그마한 목각 인형에 씌게 된다. 자기들 나름의 추론을 거쳐서, 인형으로 전락한 부부는 딸의 눈물이 저주를 풀게 해주리라고 판단한다. 두 사람은 세계에 육박하게 거대해진 아이의 놀이방을 헤매면서, 로즈가 가장 좋아하는 코끼리 인형 큐티를 찾는다. 큐티를 망가뜨리면 속상한 아이가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부부는 미로를 헤매고 퍼즐을 풀고 미친 청소기와 싸우는 우여곡절 끝에 장난감 왕국의 여왕 큐티와 마주하게 된다. 자기를 해치려 들자, 큐티는 자신의 운명에서 도망치려는 헛된 발버둥을 치면서 넝마가 되어간다. 마침내 부부는 무력화된 인형을 절벽으로 끌고 가고, 합심해서 무저갱만큼 깊은 놀이방 바닥에 밀어 넣는다. 이 처형을 진행하기 위해서, 게임은 언제나 그래왔듯 두 사람분의 협동을 요구한다. 게임 디자이너 요제프 파레스(Josef Fares)가 설립한 헤이즐라이트 스튜디오의 <잇 테이크 투It Takes Two>는 2인용 로컬 협동게임이다.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은 함께 게임을 할 플레이어를 자동으로 배정해 주지만, 로컬 협동게임은 자동 배정 기능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시작부터 두 사람의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따라서 2인용 로컬 협동게임은 친구나 연인,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서 기획된다. <잇 테이크 투>의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시큰둥한 부부인 것도, 어쩐지 불쾌하게 친근한 부부 상담가처럼 구는 하킴 박사가 여정의 안내자인 것도 기획에 어울리는 설정인 셈이다. 두 플레이어 모두 카메라를 자기 뜻대로 조작할 수 있도록 게임 화면은 자주 두 개로 분할된다. 가능한 이동의 양상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3D 공간상에서 주목해야 할 퍼즐 요소 역시 다르게 주어진다. 두 플레이어는 자기 몫의 퍼즐을 풀기 위해 선제 되어야 할 행위를 요청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긴밀하고 상보적인 공조를 통해서만 그들은 닫힌 문을 열고 장애물을 뚫을 수 있다. 큐티를 처형장으로 끌고 가는 시퀀스 역시 이 공조로부터 예외가 아니다. 큐티는 마분지 로켓을 타고 도망치려다 추락하고 속절없이 인형 뽑기 통에 갇힌다. 화면은 분할되지 않고, 시네마틱으로부터 플레이 화면으로 분절 없이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본래 두 손으로 조작하도록 만들어진 인형 뽑기 집게의 계기판은 플레이어의 아바타에 비해 너무 거대하다. 코디는 조이스틱을 조작하고, 메이는 방향키를 그 위에서 풀쩍풀쩍 점프하면서 버튼을 짓눌러야 한다. 큐티는 정형행동을 하는 동물처럼 빙글빙글 돌며 집게를 피하려 하고, 공황에 빠져 흐느낀다. 간신히 큐티를 집어 올리는 데 성공하면, 큐티의 다리는 인형 배출구에 걸려 버린다. 각자의 아바타가 큐티의 팔을 한 짝씩 쥔 상황에서, 플레이어들은 버튼을 연타해서 큐티를 잡아당긴다. 억지로 당겨진 인형의 한쪽 다리가 뜯겨 나간다. 발버둥 치는 큐티를 놓치지 않고 어떻게든 끌고 가기 위한 조작이 계속 진행된다. 큐티는 친구 로즈한테 도움을 요청하며 울부짖고, 기어서라도 탈주하려 몸부림치다 귀까지 잃는다. 코디와 메이는 플레이어의 조작에 인도되어 느릿느릿 지지부진하게 코디를 절벽으로 끌고 간다. 주인공들에 비하면 거대하지만 무력하고 취약한 코디의 몸은 공격성이 배제된 밀가루 포대와 같다. 코디와 메이는 몸서리치며 외친다. "이 일이 다 끝나면 우리는 상담을 받아야 해." 그들은 어쨌거나 함께 그 일을 해낸다. 부부는 영영 목각 인형으로 살 수는 없지 않냐는 합리적인 이유로 살해를 감행한다. 전문가와의 사후적인 상담을 통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처치하는 걸 고려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장난감과 레고 블록과 타일이 널브러진 세계에서, 플레이어 역시 "살아있고 소리 지르는" 생명을 죽이는 느린 협업을, 일치된 버튼 연타와 섬세한 조작을 강제 받는다. 이야기는 이후 당면한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데 급급하지 말고, 진정으로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나아가긴 한다. 그렇지만 포로를 처형하는 과정을 연상시키는 충격은 교과서적인 메시지로 무마되기에는 지나치게 강렬하다. 자기 잇속만 따지는 어른들의 공모로서 협동의 기제가 나타나는 이 시퀀스는 속도감 있는 전환과 유쾌한 게임성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잇 테이크 투>에서 돌출적일 정도로 느리게, 긴 시간을 들여 전개된다. 그런데 게임의 줄거리는 마치 그 일이 일어난 적 없었다는 식으로 흘러간다. 결말부에서 주인공 부부는 여태까지의 반목이 없었다는 듯이 급작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를 도모한다. 그들은 로즈와 다시 화목한 가족으로 돌아간다. 식상한 결말이라면 식상한 결말일 것이다. 그런데 플레이어의 의식 속에선 절박하고 동물적인 생존의 갈구가 모두 실패하고 공포와 고통 속에서 떨다가 추락하는 봉제 인형 스너프가 여전히 어른거린다. 새된 어린아이 목소리로 말하는 유아적인 인형을 처분하기 위해 일치단결하는 시퀀스는 필요 이상으로 불쾌하고 잔혹한 농담으로 의도된 것만 같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적인 게임을 기대한 사람들에게서 평을 깎아 먹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불쾌함까지 포함해서, <잇 테이크 투>의 농담은 게임 내의 협동 행위에 대해 흔히 이뤄지는 가치 평가에 대한 유의미한 재고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협동'은 게임이 폭력과 반사회성을 부추긴다는 혐의에 저항하며 게임을 변호하는 대항 무기로서 기능해 온 키워드다. 비디오 게임의 심리적 효과를 공정하게 다루려 노력하는 문헌들 다수가 게임이나 게임의 표면적 폭력성이 문제가 아니라 경쟁적 환경이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의견을 개진한다. 대표적으로 데이비드 이월슨 등이 진행한 연구는 피실험자에게 <헤일로Halo>와 같은 폭력적인 게임들을 경쟁적으로, 혹은 협동적으로 플레이하게 만든 결과, 협동적으로 플레이한 경우 오히려 사회적 의사소통이 활발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1] 최근의 연구는 게임 내외로 이뤄지는 협동적인 상호작용을 일면적으로 긍정하기를 넘어서, 그것이 동질적이고 유독한 게임 커뮤니티를 형성할 때 발생하는 문제 역시 활발히 다룬다. 그렇지만 사회성의 함양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협동'은 대체로 팀플레이를 요구하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의 협동인 경우가 잦다. 그건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친분이 배제된 낯선 사람들이 임시로 팀을 이뤘을 때 목표 달성을 위한 의사소통을 어떻게 행하는지 살피는데 더 용이한 게임 문법을 갖추고 있고, 동시대의 게이머에게 온라인 멀티플레이 환경이 더 익숙하고 보편적이기 때문일 테다. 이런 멀티플레이 협동 게임의 재미는 현실과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사회적인 관계를 꾸리는 재미와 맞닿아 있지만, 2인용 로컬 협동 게임은 그 조건상 완전히 다른 제반에서 재미가 작동한다. 요제프 파레스는 2인용 로컬 협동 게임을 제작하는 의도가 "함께 스토리 경험을 공유하는 것"과 만난다는 걸 밝힌 바 있다. [2] 2인용 로컬 협동 게임이 가진 계보와 환경은 소위 "스토리 경험의 공유"에 방점이 찍힌다는 점에서 멀티플레이 상의 협동과 궤를 달리한다. 이 2인용 협동 비디오 게임의 역사는 이 인용 조종간을 갖춘 형태가 대부분인 아케이드 게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는 "서로의 캐릭터에 더 도움이 되는 버프 아이템(또는 무기)를 양보하는 미덕"과 "나는 살아남았지만 혼자 남아서 플레이하기 싫어 2p를 부활시키기 위해 선뜻 100원을 내"는 실천들이 뒤얽힌 아케이드 오락실을 회상한다. [3] 서로의 생명을 100원짜리 동전을 대신 지불해 기꺼이 상대의 목숨을 연장하는 협력의 동인은 기기가 변화하며 새로운 경향성을 띠게 된다. 콘솔로 옮겨간 2인용 협동 플레이는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제공되는 사례가 많다. 본래 싱글 플레이에 기반을 둔 게임에 두 사람이 함께 플레이할 수 있도록 아바타를 추가하는 식이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마리오와 루이지,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의 커비와 웨이들 디, <컵헤드>의 컵헤드와 머그맨, <컬트 오브 더 램>의 어린 양과 검은 염소가 대표적인 쌍일 테다. 2p 아바타는 자주 오리지널 주인공의 혈육이거나 절친한 친구이거나 상대의 보색을 띤 분신으로 설정된다. 두 캐릭터의 역할이 주인공과 보조자로 분명히 나뉠 수도 있고, 싱글 플레이 주인공과 복제 수준으로 유사한 능력과 기술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때 두 번째 플레이어, 2p의 경험은 조작 실력과 게임에 대한 이해도 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플레이어 역시 아우를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놀이터가 아닌 비디오 게임에서 '깍두기'를 들이는 것과 유사하다. 2p 플레이는 필수로 강제되지 않는다. 그건 게임을 함께 경험하고 싶은 아이, 가족, 친구, 연인, 동생을 포함하기 위한 기능이다. 로컬 2인용 협동의 선택지는 그저 게임을 '시청'하는 게 아쉽고, 조작하고 놀고 고투하며 밀고 나가는 게임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소망에 대한 응답으로 작동한다. 그로부터 2인용 협동 게임의 보편적인 생존 양상이 나타난다. 한 플레이어가 게임 오버를 맞이해도, 다른 플레이어가 살아남았다면 플레이는 계속된다. 마치 아케이드 게임에서 2p 플레이어를 위해 동전을 넣으면 계속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게임 오버를 맞지 않는 이상 게임 오버를 맞은 이도 금방 부활할 수 있다. 시간적인 지연을 두거나 다음 스테이지까지 조작을 할 수 없는 식의 일시적인 페널티를 받을 뿐이다. 게임의 난이도에 따라서 페널티의 수준은 달라지지만, 2p 옵션에서 동반자로 인해 겪는 불편이나 다툼의 여지가 최소화된다는 점은 공통된다. 함께 게임을 하는 상대를 탓하며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2인용 협력 플레이에서, 두 사람의 플레이어는 서로에게 있어 여벌의 체력, 생명, 하트이며 게임 오버를 막는 보증이다. 그들은 분명 분리된 캐릭터를 조종한다. 그렇지만 플레이어는 두 개의 심장을 가진 듯이, 죽은 이후에도 상대를 통해 게임이 지속될 수 있음을 안다. 더불어 그 지속 가능성을 전략적으로 염두에 두고 협상한다. 나는 너보다 체력이 많이 달아서 금방 죽을 테니까, 더 공격적으로 근접전을 벌이거나 방어적으로 보조하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의 커비와 웨이들 디는 아이템을 먹어 획득할 수 있는 추가 '하트'를 뽀뽀로 상대에게 나눠 줄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주고받아지고 타협이 이뤄지는 건 생명이 아닌 생명의 은유고, 그 생명의 은유는 계속해서 가상의 시공간을 전개해 가고, 게임을 진행하고, 역경을 돌파하기 위해 필요한 권한 자체다. 두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생명이 편리하게 유연한 공유물이란 점에서, 2p 협동 플레이는 연대책임을 강제하고 그 강제가 재미의 일부가 되는 멀티플레이 게임들의 방식과 대척점에 있다. 연대책임 멀티플레이의 가혹한 판본 중 하나인 <체인드 투게더Chained Together>와 대조해 본다면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다만 2p 협동 플레이의 선택이 극적으로 난도를 낮추거나 쾌적하기만 한 플레이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싱글 플레이를 위해 구성된 화면이기에 상대 아바타의 활달한 움직임 자체가 나의 이동과 조작에 가야 할 시선을 분산시키고 산만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헷갈리지 않게끔 두 캐릭터가 완전히 구별되는 색깔을 키 컬러로 가짐에도 불구하고 혼선은 일어난다. <컵헤드>와 같이 난전이 벌어지는 고난도 게임에선 협동플레이가 싱글 플레이보다 더 어렵다고 여겨진다. 2P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비디오 게임이 대체로 횡 스크롤 혹은 탑다운 뷰 게임에 기반을 두는 시리즈인 까닭도 카메라의 주도권과 초점을 누가 가져가야 하냐는 문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커비 디스커버리>는 카메라가 세 축으로 모두 움직일 수 있는 3D 환경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커비를 조작하는 이가 카메라의 조작 능력을 가지고, 플레이 영역에서 웨이들디가 벗어나면 자동으로 커비 곁에 소환되게 했다. 두 플레이어가 같은 화면을 바라보게 끔 하는 보이지 않는 불편한 강제력이 작동하고 있음을 플레이어는 실감할 수밖에 없다. <잇 테이크 투>와 마찬가지로, <웨이 아웃Way Out>, <스플릿 픽션Split Fiction>에서도 헤이즐라이트 스튜디오의 게임들은 분할 화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카메라의 주도권 문제를 해결한다. 이것은 이인 협력 플레이가 선택지이기를 넘어서, 시작부터 이인 협력 플레이를 위해 디자인된 구성이기에 가능하다. 두 게임에서 분할 화면이 줄곧 유지되는 건 아니다. 횡 스크롤과 탑다운 뷰를 동원해 2인용 협동 플레이에 친숙한 다종의 게임 문법을 참조하기도 한다. 그렇게 3D 공간 상의 퍼즐, 파쿠르, MMOPRG, 레이싱의 동사들이 대거 공존하는 협력 게임이 된다. 게임 오버의 기준은 위에서 소개한 2인 협력 플레이와 마찬가지로 두 플레이어의 아바타가 동시에 죽는 것이다. 다른 플레이어가 생존해 있다면, 내가 아무리 기가 막힌 실수를 해서 아바타를 죽이기를 반복하더라도 게임 오버는 일어나지 않는다. 매분 매초가 아슬아슬한 생존의 기로로 화하는 액션 시퀀스에선, 죽은 이가 부활하는 데 약간의 '쿨타임'이 요구된다. 남은 이는 그 쿨타임 시간 동안 홀로 살아남아서 게임 오버를 막을 수 있다. 사실 게임 오버 자체도 크나큰 실패로 의미화되진 않는다. 짧은 간격으로 이뤄지는 자동 저장이 플레이어를 게임 오버 거의 직전의 순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설령 둘이 나란히 죽는다 해도 다시 새로운 방식의 협동을 빠르게 시도해 볼 수 있다. 가상의 시공간을 전개해 가고 게임을 진행하고 역경을 돌파하기 위해서 필요한 권한, 정체되지 않고 움직여 가는 이야기의 생명은 이런 죽음과 부활의, 정지와 재생의 재빠른 교대를 통해서 힘을 얻는다. 그런데 이 교대는 서로가 생명선 손금의 연장이 되어주는 협력 플레이의 플레이어성 역시 변화시킨다. 어쩐지 일론 머스크를 닮은 사악한 출판사 사장이 불공정 계약으로 작가들의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뽑아내 XR로 재구성하겠다는 괴상한 계획을 펼친다는 배경에서 시작하는 <스플릿 픽션>를 살펴보자. 이 계획에 걸려든 상극의 성격, 상극의 취향인 두 여자 주인공 미오와 조이는 각자가 만든 픽션 속 사이버펑크 세계관과 판타지풍의 세계관을 함께 오가며 미래형 사무라이가 되거나 톨킨 풍의 판타지 마법사로 활약한다. 게임적인 숏폼의 릴레이를 구성하려는 듯이 카메라, 화면 분할, 조작 방식, 액션 양상은 쉴 새 없이 변화한다. 두 플레이어의 아바타는 단순히 시각적 일관성이나 유사성에 일치되지 않고, 협력의 두 축을 이루는 매개체로서, 위아래로 흔들어 움직일 수 있는 시소의 양 끝으로 인식된다. 우화를 연상케 하는 시퀀스 하나가 이것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조이가 어린 시절에 쓴 동화 속 세계에 미오와 조이는 귀여운 돼지가 된 채로 떨어진다. 한 돼지는 마법 방귀로 멀리 날아갈 수 있고, 다른 돼지는 목에 달린 스프링을 사용해 높이 튀어 오를 수 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마법 돼지 농장의 마법 돼지를 조작하며, 플레이어는 협력해서 퍼즐을 풀어나가야 한다. 집채만 한 거대 돼지나 날개 달린 돼지에 슬슬 익숙해지고 이 세계도 썩 나쁘지 않고 유쾌하단 걸 받아들일 무렵이면, 미오와 조이는 퍼즐 풀이 끝에 도착한 종착지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간다. 그 미끄럼틀은 사실 도축 공장의 기계로 이어진다. 두 돼지는 이제 식탁 위의 소시지가 되고, 불판 위를 구른 후 서로에게 케첩과 마요네즈를 칠해줘야만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다. "그래, 우리 자신을 굽지 않을 이유가 없지!" 플레이어의 조작을 통해 접시 위에 올라간 두 사람은 마침내 인간에게 먹힌다. 너는 나의 게임플레이를 지속하도록 해줄 지렛대이며 여벌의 심장이다. 나는 너의 게임플레이를 지속하도록 해줄 지렛대이며 여벌의 심장이다. "두 사람이 드는(It takes two)" 일이란 건, 두 사람이면 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잇 테이크 투>에서, 갚아야 할 대출금과 이혼 문제와 독박 육아 및 출퇴근으로 닳을 대로 닳은 부부 코디와 메이는 토이 스토리를 연상시키는 동적인 무생물의 세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어린 딸의 환상 세계를 돌파해 간다. <스플릿 픽션>에서 출판 계약이 절실한 무명작가 미오와 조이는 자신들의 머릿속에 잠들어 있거나 폐기된 픽션의 세계를 돌파해 간다. 너와 나는 동격이지만, 그 외의 여타 존재자는 너와 나만큼 동격으로 부상하거나 하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와 나는 모든 걸 함께 감수할 수 있다. 우리의 놀이를 지키기 위해 희생 제의의 공범이 될 수도 있고, 우리의 놀이를 지속하기 위해 도축되고 먹히도록 서로를 부추길 수도 있다. 우리는 그로서 그토록 함께한다. 2인용 로컬 협력 게임의 상호 의존은 로맨틱하면서도 섬뜩해질 수 있는 폐쇄성을, 개인화되기보다 공모됨으로써 드러나는 폭력성을 도주로 없이 경험하는 환경을 이루기도 하는 것이다. 인형 살해와 돼지 자살을 다루는 두 개의 농담은 2p 로컬 게임의 협력 방식에 함축될 수 있는 폐쇄성과 폭력성을 까뒤집어 보인다. 이 분절적인 농담들은 협동 플레이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목숨' 개념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편안한 긍정으로 이어지기 쉬운 협동 개념이 그보다 복잡함을 드러내고 있다. 2인용 로컬 협동게임이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함께 떠들면서 게임을 하는 친근한 두 플레이어를 전제한 로컬 환경에서 대체로 진행됨을 고려해 상상하자. 전략적인 협력을 도모하던 대화가 끊긴다. 어색한 정적이 끼어든다. 황망한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어... 이게 대체 뭐지?' 하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이미 받아들이고 익숙해진 협동의 조작은 진행될 것이다. 게임의 진행을 위해 두 사람이 함께 필수적으로 겪고 공유해야 하는 "스토리 경험"이란 그러한 불편한 침묵과 괴리를 함께 감내하는 차원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이다. [1] Ewoldsen D, Eno C, Okdie BM, Velez J, Guadagno R, et al. (2012) Effect of playing violent video games cooperatively or competitively on subsequent cooperative behavior. Cyberpsychology, Behavior and Social Networking 15: 277–280 [2] Regan, T., & Fares, J. (2025, February 18). ‘No micro transactions, no bullshit’: Josef Fares on Split Fiction and the joy of co-op video games. Tom Regan. The Guardian . Retrieved May 30, 2025, from https://www.theguardian.com/games/2025/feb/18/josef-fares-interview-split-fiction-coop-video-games . [3]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 . 게임제너레이션 GG. (2022, October 10).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14df370d-2dfd-4c3f-b711-79e58f3b5cc5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디지털 연산장치와 확률이라는 조합의 아이러니
디지털게임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이 매체의 물적 기반인 컴퓨터의 시작이다.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설계된 이 전자장치는 애초에 암호해독이나 탄도 계산 같은 전쟁 기술을 보조하는 도구로 만들어졌는데, 그런 도구로 사람들은 놀이하는 방법을 찾아내 즐기고 돈을 번다. 전쟁용 전자장비를 활용해 만든 놀이들의 상당수가 전쟁과 전투를 재현하려 든다는 점까지를 생각한다면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 Back 디지털 연산장치와 확률이라는 조합의 아이러니 17 GG Vol. 24. 4. 10. 디지털게임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이 매체의 물적 기반인 컴퓨터의 시작이다 .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설계된 이 전자장치는 애초에 암호해독이나 탄도 계산 같은 전쟁 기술을 보조하는 도구로 만들어졌는데 , 그런 도구로 사람들은 놀이하는 방법을 찾아내 즐기고 돈을 번다 . 전쟁용 전자장비를 활용해 만든 놀이들의 상당수가 전쟁과 전투를 재현하려 든다는 점까지를 생각한다면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 컴퓨터 – 디지털게임이라는 물적 기반과 콘텐츠 사이의 관계에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있는데 , 난수 random number 다 . 디지털 기술 기반의 컴퓨터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난수 생성이 불가능한 장치다 . 요즘은 듀얼코어 이상에서 몇 가지 방법으로 난수를 만드는 법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 애초에 주어진 데이터를 신속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기에서 외부 입력 없이 자체적으로 랜덤한 수를 뽑아낸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 하지만 그 컴퓨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디지털게임이라는 매체에서 난수는 결정적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난수를 만들 수 없는 기계를 딛고 성립한 매체에서 난수가 필수요소에 가깝다는 점은 이 매체의 근본에 운과 확률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 달리 정리해보면 , 결국 운과 확률로 만들어지는 게임의 흐름을 보조하기 위해 일련의 전자 연산장비가 도구로 활용된다고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 모든 디지털게임이 무작위의 결과물들만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 오히려 최근의 이른바 AAA 급 게임에 이르면 영화의 작법을 따라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를 쭉 따라가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 이런 영역에서 디지털 주사위는 정해진 결론을 향하는 과정에서의 우연을 만드는 정도로 역할을 줄여나가는 추세다 . 하지만 우리가 이른바 ‘ 게임만의 독특한 재미 ’ 를 이야기할 때는 대부분 이 주사위의 힘이 개입한다 . ‘ 테트리스 ’ 에서 다음 블록이 예측되는 순간 , 이 게임은 상황대처가 아닌 암기력의 게임이 되고 말 것이다 . 액션 게임 등에서 확률로 표기된 치명타가 일정 타격 수마다 반복될 때 , ‘ 하스스톤 ’ 같은 카드게임 류에서 카드 덱이 랜덤이 아니라 순서를 지정할 수 있게 될 때 이들이 가진 재미는 사라진다 . 이런 맥락에서라면 주사위의 개입을 통해 다양해진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곧 플레이어의 플레이 행위가 된다 . 실재하는 우주와 세계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경우의 수를 가상공간 안에 그대로 구현할 수는 없겠지만 , 적어도 통제된 환경 안에서 디지털게임은 무작위 확률을 통해 상황을 ‘ 흩뜨러뜨린다 ’. 그리고 이를 정렬하고 재구성하여 주어진 과제를 클리어할 수 있을 만큼의 정돈을 만들어내는 것이 확률 개념을 상대할 때의 플레이가 갖는 역할이다 . 이 때 디지털 주사위가 만드는 확률의 역할은 ‘ 모르는 영역 ’ 의 창조다 . 확률을 통해 표현되는 디지털게임의 규칙들은 모두 ‘ 모름 ’ 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 테트리스에서 다음 블록이 무엇이 나올지 , ‘ 다크 소울 ’ 에서 보스가 다음 순간에 어떤 패턴으로 공격해 들어올지에 대해 디지털 주사위는 각 순간별로 플레이어에게 다음 순간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을 연출한다 . 디지털게임 소프트웨어는 끊임없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 늘어난 엔트로피를 줄여나가는 것이 플레이의 목적이 된다 . 온라인 네트워크가 보편화된 이후의 디지털게임에서는 이 엔트로피값의 증가에는 주사위 이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추가되는데 , 바로 플레이어다 . 싱글 플레이 시절에는 불가능했던 ,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맞상대하게 되는 대전형 멀티플레이의 순간에는 디지털 주사위가 제공하는 것 이상의 새로운 ‘ 모름 ’ 이 덧붙는다 . 상대가 어떤 패턴을 익숙하게 쓰는지 , 선호하는 캐릭터나 스타일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온라인 익명 매치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 이 때의 랜덤성은 아마도 매치메이킹이 되는 순간일 것이다 . 어느 정도 게임 결과에 따라 매기는 랭킹에 의해 기대승률 50% 를 맞추는 보정이 이뤄진다고는 하지만 , 여전히 멀티플레이에서 내가 누구와 게임하게 될 지는 ‘ 모름 ’ 의 영역이다 . 이 랜덤한 매치메이킹의 효과는 랜덤을 애초부터 잘 만들 줄 모르는 디지털 연산장치의 확률 제시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 모든 모르는 영역을 파훼하고자 하는 플레이어의 힘은 멀티플레이 영역에 들어오면서 사실상 영원히 상대적인 극복의 굴레에 들어앉는다 . CPU 가 만들어내는 제한된 랜덤 상황은 결국 고정되어 있고 , 이는 어떻게든 파훼된다 . 수많은 게임 플레이 경험이 누적되며 플레이어의 숙련도는 계속 향상되지만 , 소프트웨어의 난이도는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 난이도 – 숙련도 경합에서 난이도의 제시가 상대방 플레이어라는 주사위보다 더한 경우의 수를 가진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 끝없이 향상되는 두 사람의 숙련도 덕택에 이 경합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순환의 고리를 돌게 된다 .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연산장치는 굳이 ‘ 모름 ’ 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일을 더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맞는다 . ‘ 모름 ’ 이라는 엔트로피를 기준으로 정리해 본다면 , 그래서 디지털 주사위는 사실 사람 혹은 사건이라는 실제로는 훨씬 더 예측불가능한 세계를 매우 낮은 레벨에서 재현해 낼 뿐이라고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 랜덤을 만들 줄 모르는 기계는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현실의 일부를 프로그래밍된 가상공간 안에 일부 재현할 뿐이다 . 다만 통제된 환경 안에서 펼쳐지는 아주 작은 수준의 경우의 수는 오히려 그 엔트로피를 충분히 낮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 모름 ’ 이며 ,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이 ‘ 모름 ’ 에 도전할 가치가 충분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 이른바 ‘ 공략 ’ 이라고 불리는 많은 패러텍스트들이 플레이와 동떨어지지 않은 맥락에서 생산되는 것이 바로 이 이유에서다 . 게임 공략들은 게임 텍스트가 제시하는 ‘ 모름 ’ 의 상황에 펼쳐진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기 위한 활동의 결과물들이다 . 어떤 이는 랜덤하게 떨어지는 아이템의 드랍률을 수집 , 분석해 최종적인 아이템 루팅 테이블을 만들고 이를 확률로 정리해 정례화한다 . 누군가는 주사위의 결과물에 다양한 수식적 치장을 가한 공격 / 방어의 메커니즘을 분석해 수식의 구조를 밝히고 , 이를 통해 최적의 공략 루트를 도식화한다 . 확률이라는 이름으로 온 사방에 분산된 채 높은 엔트로피를 지니고 있던 게임의 주사위가 만들어낸 세계는 공략이라는 정리된 장 앞에서 질서정연하게 정리된다 . 같은 맥락은 디지털 주사위가 아닌 사람과의 플레이에서도 나타난다 . ‘ 리그 오브 레전드 ’ 의 랜덤 매칭이 갖던 높은 엔트로피는 op.gg 와 같은 전적 사이트를 통해 체계적으로 나의 상대나 아군이 어떤 전적과 승률을 가지고 있는지를 일목요연한 데이터로 가공되며 해소된다. 게임 텍스트 내부에서의 플레이와는 별개로 , 확률이 만들어내는 ‘ 모름 ’ 의 영역에 존재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는 텍스트 밖에서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줄어든다 . 결국 , 디지털게임이 만들어내는 재미도 요약해 보면 1,000 피스 퍼즐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완성된 그림을 무질서한 1 천개의 조각으로 쪼갠 뒤 , 이를 다시 맞추는 일에 재미라는 의미를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 우리는 확률 기계가 제한적으로 생성해 낸 수많은 경우의 수 사이를 헤매며 다시금 이를 정리하고픈 욕망에 휩싸인다 . 게임 텍스트 안에서는 클리어와 엔딩 도달이라는 결과로 , 게임 텍스트 밖에서는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체계화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연산장치가 만들어낸 가상세계의 데이터 엔트로피가 분명 정리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사실에 흥분하며 또 도전한다 . 설령 이 기계가 근본적으로 랜덤값을 만들기 어려운 장치라 해도 , 마치 화투장 48 개를 가지고 흩어놓은 뒤 다시 맞추는 패 떼기 놀이와 같이 ,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사실은 엔트로피 놀이에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 아니 , 오히려 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윤상의 노래 ‘ 달리기 ’ 에서처럼 ,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 흥분하며 게임에 달려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QUOVADIS, 게임법 - 국회 안에서 바라본 게임법 진행의 경과와 미래
물론 전부개정안의 모든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발의하고 보니 보완해야할 부분들도 여럿 보였다. 특히 국내대리인지정제도는 더욱 강화해서 발의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개정안에 빠져 있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심사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또한 다른 게임법 일부개정안과도 병합심사되어 더 좋은 내용으로 고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컴플리트 가챠 규제 법안이나 이용자 권익보호위원회 규정 법안과 함께 병합심사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내딛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국민의 꾸준한 관심은 국회를 일하게 한다. < Back QUOVADIS, 게임법 - 국회 안에서 바라본 게임법 진행의 경과와 미래 01 GG Vol. 21. 6. 10. 게임법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대로 쓰다가 순서를 거꾸로 뒤집었다. 아무래도 현재 게임법이 어떤 단계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시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다. 법안이 발의되고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발의-상임위원회 심사-법제사법위원회 심사-본회의 심사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전부개정안은 상임위원회 심사단계에 있다. 상임위원회 심사는 다시 전체회의 상정-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전체회의 의결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전부개정안은 상정 단계를 지나 법안소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발의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심사가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공청회 순번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여‧야 문체위 소관 법안에 대한 이견으로 심사 속도가 더딘 것이다. 공청회부터 설명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법안의 종류부터 설명해야 한다. 법안은 크게 제정법안, 전부개정안, 일부개정안으로 구분된다. 제정법안은 말 그대로 여태껏 없었던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이다. 전부개정안은 기존에 있던 법이지만 어떠한 이유로 법의 체계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싹 바꾼 형태다. 마지막으로 일부개정안은 어떤 법의 몇몇 조항만 개정하여 발의한 유형이다. 게다가 제정법안과 전부개정안을 대상으로는 한 가지 절차가 더 필요하다. 국회법상 공청회를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일부개정안에 비해 전부개정안과 제정법안을 심사할 때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을 진술인으로 불러 이 법안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 이를 통해 법안을 심사할 때 참고하게 된다. 공청회는 상임위 교섭단체 간사간 협의에 따라 생략이 가능하다. 공청회를 생략하면 법안 심사에 걸리는 시간이 단축될 수 있지만, 반면 심사가 부실해질 수 있고 법사위에서 공청회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류될 우려도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21대 상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간사는 발의된 모든 문체위 소관 제정법안과 전부개정안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실시하고, 그 순서는 발의순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게임법 공청회는 15번째 순서다. 한참 오래 걸릴 것처럼 보이지만, 여차저차 공청회가 계속 열렸다. 이제 게임법 앞에 놓인 공청회는 불과 네다섯개 정도다. 여‧야 정쟁을 설명하자니 국회의 구성원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하지만 숨기지 않고 세세하게 얘기하겠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문화 및 예술 분야의 법안을 심사하는 1소위원회와 관광‧체육 분야의 법안을 심사하는 2소위원회로 나뉘어 있다. 2소위원회는 꽤 잘 진행되어 왔다. 문제는 1소위다. 일단 문체위 소관으로 발의되는 법안 중 1소위 소관의 법안 수가 2소위 법안보다 많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야간 이견이 컸던 법안들은 거의 다 1소위 법안들이었다. 법안을 심사하다가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정회를 한다. 정회하고 간사간 협상을 시도하는 것인데, 타결이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다. 후자의 경우엔 머리가 아파진다. 정회 시간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지거나, 산회하고 다음 회의 전까지 협의를 이어가기로 하고 회의가 끝나게 된다. 심할 때는 법안소위가 아예 열리지 못하는 회기도 왕왕 있다. 이 경우, 해당 쟁점 법안 뒤에 심사를 기다리던 나머지 법안들까지 심사가 밀리게 된다. 앞서 말한대로 쟁점법안들은 거의 1소위 법안인데, 가뜩이나 법안 수도 많은데 병목현상까지 생기면서 심사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면 게임법이 2소위 소관이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다 아예 심사도 못하고 전부개정안이 폐기되는거 아니냔 불안이 엄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된다. 이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은 법안은 ‘언제’심사될 지의 문제일 뿐, 심사 자체는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부개정안을 제외하고서도 확률형 아이템 관련 법안이 이미 3건이나 발의되어 있고, 발의 절차에 있는 법안이 2건 더 있다. 이처럼 특정 사안에 대해 여러 건이 발의 되어 있는 법안은 심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낮다. 국회에서 일한 지 10년 차다. 그동안 적지 않은 수의 법안을 만들어 왔다. 국민에게 칭찬을 받을 때도, 반박할 수 없는 비판을 들을 때도 있었다. 정말 좋은 내용의 법안인데 생각하지도 못한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임기 만료 폐기될 때도, 일사천리로 통과될 때도 있었다. 법안 하나하나가 모두 내 자식 같고,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법안을 만드는 정책보좌진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때문에, 어떤 법안에 가장 애정이 깊은지 물어보면 답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법안을 추진할 때 가장 힘들었나 물어보면 1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게임법 전부개정안이다. 게임법처럼 이해관계자가 많고, 첨예한 법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게임법이 게임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이 유독 크기도 하다. 역사에 비해 발전 속도가 빠른 산업일수록 이런 경향이 큰데, 게임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게임법 조항 하나만 개정돼도 파급력이 클 때가 많다. 조항 하나에도 이런데, 수십 개의 조항이 새로 쓰여지는 제정법안이나 전부개정안은 말할 것도 없다. 조항만 많은 것이 아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 아래 한데 묶여있는 게임의 종류들도 많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 온라인 pc게임, 모바일 게임, 아케이드 게임, 웹보드 게임, 콘솔 게임, 교육용 게임, VR 게임, 여기에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블록체인 게임까지.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법은 하나다. 물론 게임법 내에서 몇 가지 구분을 둔다고는 하지만, 게임 저마다의 특징을 모두 반영하기란 불가능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한국게임산업협회, 게임문화재단, 모바일게임협회,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한국게임학회 등등… 게임 종류별, 직업별 의견을 내는 목소리들도, 추구하는 바도 각양각색이다. 목적 자체가 이윤추구인 게임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법 하나에 이 모든 내용을 담으면서도 모두가 만족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우리 의원실에서 발의하기 내키지 않았다. 나도 사람인데, 이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았다. 심사 과정 내내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야 할 것이 뻔해 보였다. “욕먹기 싫은건 당연하다. 이해한다. 하지만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국민이 그 노력을 몰라줘도, 언론에 기사가 많이 나오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쉽고 편한 길만 가려고 하지 마라. 나는 그렇게 정치를 배우지 않았다.”이 문제로 이상헌 의원님께 보고드렸더니 하신 말씀이다. 결국 우리 의원실에서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발의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확률형 아이템 이슈는 언론에 많이 다뤄져서 내용을 알고 계신 분들도 많다. 확률형 아이템 이슈를 두고 게임업계와 논쟁하는 동안, 많이 괴로웠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교묘하게 법안과 나를 헐뜯었다. 추측성 음모론도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게임업계인이나 기자들 여러명과 서먹해지기도 했다. 전부개정안의 다른 조항과 연관된 다른 이해당사자들은 내 뒤를 밟는다던지, 면전에서 몸 조심하라는 협박까지도 했다. 그래도 앞을 보고 걸어가야 한다. 전부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이상헌 의원님 말씀대로 힘들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산고(産苦)가 크지만, 통과되고 나면 이용자 권익보호가 보다 강화될 수 있고 게임업계도 한층 성숙해질 것이라 믿는다. 물론 전부개정안의 모든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발의하고 보니 보완해야할 부분들도 여럿 보였다. 특히 국내대리인지정제도는 더욱 강화해서 발의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개정안에 빠져 있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심사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또한 다른 게임법 일부개정안과도 병합심사되어 더 좋은 내용으로 고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컴플리트 가챠 규제 법안이나 이용자 권익보호위원회 규정 법안과 함께 병합심사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내딛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국민의 꾸준한 관심은 국회를 일하게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국회 보좌관) 이도경 역대 국회 게임 관련 법안 최다 발의·최다 통과 시킨 것이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와우에서 리치왕 하드모드 서버 퍼스트킬 한 것과 카오스 유명 클랜인 RoMg에서 샤먼을 했다는 사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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