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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게임 주인공 캐릭터를 둘러싼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 변화가 주로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 < Back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16 GG Vol. 24. 2. 10. 게임 규칙을 넘어선 감정 투영 대상으로서의 등장인물 초창기 게임의 역사 속에서 가족은 게임 안이 아니라 게임 밖의 존재였다 . 플레이어 캐릭터는 대체로 혼자 위험천만한 스테이지들을 돌파해 나갔지만 ,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는 환경은 게임사의 광고에 의해 늘 가족적인 무언가로 일컬어지곤 했다 . 닌텐도 등의 가정용 콘솔 기기는 항상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거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게임하는 장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와 함께 하는 이들은 가족이라기보단 주로 ‘ 동료 ’ 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었다 . 롤플레잉 게임의 파티 시스템 , 여러 게임에 등장하는 조력자 등은 나름의 끈끈함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기능적인 관계맺음을 플레이어와 이어나가는 동료로서의 존재였다 . 2000 년대 들어와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 이코 ’ 는 그런 점에서 눈에 띄는데 ,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시작부터 끝까지 모험을 함께 하는 요르다는 ‘ 동료 ’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엔 사뭇 이질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 플레이어는 딱히 공격력이 없는 요르다의 손을 붙잡고 게임을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 분명 퍼즐과 같은 요소들에서의 해결을 돕는 조력자의 포지션이지만 실제로 ‘ 이코 ’ 를 플레이한 이들이 요르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동료보다는 조금 더 진한 무엇이었다 . 함께 싸우면서도 플레이어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존재로서의 요르다는 동료이자 퍼즐의 열쇠라는 기능적 관계 이상의 존재로 플레이어들에게 각인된 바 있었다 . 유사가족 관계의 조엘과 엘리 ‘ 이코 ’ 로부터 대략 10 여 년이 지난 뒤에 출시된 게임 ‘ 라스트 오브 어스 ’ 는 유사 가족 관계에 놓인 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모험을 풀어가는 새로운 시점을 선보였다 . 중년의 남성 주인공 조엘은 게임 프롤로그에서 딸을 잃었고 , 그런 그에게 임무로서 맡겨진 엘리라는 아이는 잃었던 딸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십대 소녀다 . ‘ 이코 ’ 처럼 둘은 서로 도와 가며 험난한 세계를 헤쳐나가지만 , ‘ 이코 ’ 에 비해 좀더 엘리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변화 혹은 발전이 있었다 .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무대 속에서 조엘과 엘리의 이야기는 단순히 모험의 기승전결을 풀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잘 맞지 않았던 두 사람이 일종의 유사 가족 관계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진한 감동을 만들어낸 바 있었다 .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 라스트 오브 어스 ’ 로부터 받은 감정은 삭막하고 외로운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감정을 함께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유사 가족 관계가 유독 더 따뜻하게 빛났기 때문이었다고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 '갓오브워'에 이르러 혈연 가족으로 등장하는 조연 2001 년 ‘ 이코 ’ 에서 동료를 넘어선 무언가로 , 2013 년 ‘ 라스트 오브 어스 ’ 에서는 유사 가족 관계라고 이름붙여도 좋을 , 플레이어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존재는 2018 년의 ‘ 갓 오브 워 ’ 에서는 본격적으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으로 등장한다 . 전쟁의 신으로 그리스 신화 시대를 휩쓸었던 주인공 크레토스는 후속작에서 아들을 둔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 크레토스의 캐릭터는 이러한 관계설정의 변화를 통해 크게 바뀌는데 , 전작에서는 가족을 잃은 뒤 신의 아들로서 자녀의 포지션을 맡았던 크레토스가 후속작에서는 가족관계 안에서의 아버지 포지션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 실제로 게임 안에서 크레토스와 아들 아트레우스의 관계는 철모르는 아이의 육아를 도맡는 크레토스의 관점으로 그려진다 . 아트레우스는 나름의 전투력은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며 , 내러티브를 통해 크레토스는 아들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풀어낸다 . 후속작 ‘ 갓 오브 워 : 라그나로크 ’ 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사춘기를 맞아 방황하는 아트레우스의 옆에서 자녀의 성장과 함께 부모가 맞는 새로운 도전들이 함께 그려지는 것을 보면 , ‘ 갓 오브 워 ’ 의 북유럽 시리즈는 상당부분 자녀라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맞았지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될 지는 모르는 부모의 입장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나이들어가는 게이머 게임 안에서 기능적 조력자 이상의 감정을 담아내는 캐릭터와 주인공 캐릭터 사이의 관계는 ‘ 이코 ’ 의 2001 년부터 ‘ 갓 오브 워 ’ 의 2018 년 사이 근 20 여년 속에 점차 변화해 왔다 . 이 변화는 지켜야 할 동료에서 ‘ 라스트 오브 어스 ’ 의 유사 가족관계를 거쳐 마침내 혈연관계로 점차 가족이라는 구성을 향해 움직였는데 , 이는 특히 주인공 자체의 변화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 명확하게 ‘ 소년 ’ 의 포지션이었던 ‘ 이코 ’ 의 주인공과 달리 ‘ 갓 오브 워 ’ 의 크레토스는 명백하게 중년 남성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다 . 현실의 시간 변화를 함께 생각해 보면 게임 속 주인공 캐릭터의 나이듦은 마치 현실의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2001 년에 소년이었던 주인공은 2018 년이 되면 열 일곱 살을 더 먹게 되는데 , 만약 2001 년 당시 20 세였던 플레이스테이션 이용자가 2018 년이 되면 37 세가 되는 것이다 . 단순한 생물학적인 나이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 이 20 년 사이의 간극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갖는 주변 인간관계를 크게 변화시키고도 남을 시간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 ‘ 이코 ’ 를 플레이하던 청년은 20 년 후 중장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20 년 전의 게이머들이 지금보다 젊은 세대였다면 , 이제 게이머 집단은 과거보다 조금 더 폭넓은 연령층이 되었다 . 디지털게임 이용자층은 연령과 성별 , 지역과 같은 여러 측면에서 과거보다 보편화되며 넓어졌고 , 과거 단지 어린이들의 놀잇감으로만 여겨졌던 게임은 적어도 ‘ 갓 오브 워 ’ 에 이르면 명백하게 중년기 게이머들을 타겟으로 삼는다 . ‘ 갓 오브 워 : 라그나로크 ’ 에서 다루는 사춘기 자녀의 방황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게임 주인공 캐릭터에 덧씌우는 일은 간접적으로 오늘날의 게이머들이 갖는 평균 연령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의미한다 . 게임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일련의 유대관계와 사랑을 표현한다고 한다면 , 이 사랑은 게이머 집단의 나이듦에 따라 다른 형태로 묘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20 년 전의 게이머들은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젊고 남성중심인 집단이었고 , 그런 그들에게 사랑은 가족보다는 신비함을 간직한 여성 캐릭터에게 투영된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장년이 된 그들에게 사랑의 투영 대상은 이제 자녀라는 , 가족이라는 새로운 테두리 안에서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 이러한 변화는 꽤 곳곳에서 감지된다 . 2023 년 출시된 ‘ 디아블로 4’ 에서는 기존 시리즈에서 보지 못했던 수많은 서브 퀘스트들이 등장하는데 , 이 중 적지 않은 분량이 자녀를 둔 등장인물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 자녀의 훈육을 위해 감옥에 보낸 부모가 결국 자식을 잃은 뒤 후회하는 내용이라거나 , 집나간 아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해오는 등 ‘ 디아블로 4’ 에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감정을 다루고자 하는 퀘스트들이 포함된다 . 비슷하게 2020 년대에 출시된 게임 중 ‘ 잇 테이크스 투 ’ 또한 게이머 집단의 세대 변화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사례다 . 어린 자녀를 가진 중장년기 부부의 이혼 위기를 코믹하게 풀어낸 이 게임 또한 사실상 중년 부부가 만날 수 있는 삶의 시기를 스케치한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오늘날 스탠드얼론 게이머의 중심은 중장년이다 게임 주인공 캐릭터를 둘러싼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 변화가 주로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 .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거치면서 점차 PC 는 가정의 필수 가전제품이어야 할 이유를 상실하기 시작했고 , 게임을 하기 위해 구비해야 하는 게임전용 PC 는 이제 꽤나 고가품의 영역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콘솔게임기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지만 , 일정 수준 이상의 디스플레이가 기본적으로 요구되고 , 타이틀 가격이 8~10 만원을 오가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 아이들의 문화활동으로만 보기 어려운 비용 장벽을 가진 셈이기도 하다 .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유료 기반의 온라인게임들과 달리 , 일정 수준 이상의 공간과 시간 , 비용을 요구하는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들은 이제 확실히 중장년을 메인으로 삼는 활동이 되었다 . 게이머가 나이를 먹어 가는 과정과 함께 게임 콘텐츠 또한 나이를 먹었고 , 나이들어간다는 변화 속에서 게임을 통해 표현되는 게이머와 주인공 주변의 인간관계 또한 다르게 그려진다 . 모두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연애 – 결혼을 거치는 이른바 ‘ 정상가족 ’ 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 적어도 기술복제를 통해 대량유통되는 미디어 콘텐츠인 디지털게임은 산업적 관점에선 정상가족 안에서 부모라는 위치 혹은 그와 비슷한 세대가 겪게 되는 감정의 과정들을 다루고 싶어한다 . 지난 수십 년간 게임에 일어난 변화는 그래서 단지 기술의 발전과 이용자층의 확대만이 아니라 , 이 매체가 다루고자 하는 감정과 관계에도 나타난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애증의 가 2023년에 보여준 가능성

    <와우>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다. 열성 플레이어들도 나이를 먹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새로운 플레이어의 유입보다 기존 플레이어의 여전한 참여가 <와우>를 유지시키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와우>가 기존 플레이어들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Back 애증의 가 2023년에 보여준 가능성 15 GG Vol. 23. 12. 10.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이하 ‘와우’)>로 원고를 써야 한다고 했을 때, 절대 고인물 플레이어처럼 예전 이야기를 하지는 말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와우>의 9번째 확장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용군단(World of Warcraft: Dragonflight, 이하 ‘용군단’)>은 여러 면에서 ‘예전으로 돌아가는’ 텍스트다. 우선, 오리지널 시절부터 위세를 떨쳤던 용군단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초자연적이었던 어둠땅을 뒤로 하고 아제로스로 돌아오게 한다는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용군단이 한 때 자신들의 왕국이었던 유서 깊은 고향으로 돌아온 가운데, 호드와 얼라이언스 영웅들은 다시 부름을 받고 아제로스에서 신비한 용의 섬을 탐험하고 고대의 비밀을 파헤쳐야 한다. 캠페인의 주요 캐릭터는 당연히 대부분 용족이다. 알렉스트라자, 노즈도르무, 래시온, 칼렉고스 등은 특히 초기 캠페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3번째 확장팩이었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대격변(World of Warcraft: Cataclysm)> 이후 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용군단>이 플레이어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이며, 모험의 주 무대가 어둡고 우울했던 어둠땅을 벗어나 아제로스 하이 판타지로 복귀했음을 의미한다. 설정과 캐릭터가 친숙하다 해도, <용군단>이 <와우>의 20여 년 역사에 현대적인 인상을 더해줌에는 틀림이 없다. 그간 <와우>의 주된 이야기 줄기는 아제로스의 큰 두 대립진영인 얼라이언스와 호드 간 전쟁으로 규정돼 왔다. 특히 전전 확장팩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World of Warcraft: Battle for Azeroth)>에서는 두 진영의 큰 전쟁으로 인해 아제로스가 황폐화될 뻔했다. 하지만 <용군단>은 두 진영 간 갈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용의 섬에서 벌어지는 모험은 얼라이언스와 호드 사이에 누가 섬을 개척하고 점령할지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 아니라, 많은 세력과 NPC들의 공유, 그리고 두 진영의 협력과 공동 탐험에 가깝다. 이는 실제 게임 플레이에도 반영된다. 이제 각기 다른 진영에 있는 플레이어라 할지라도 함께 모여 던전, 공격대 등을 즐길 수 있다. 대립과 경쟁에서, 협력과 탐험으로 게임 세계의 초점이 전환한 것이다. 용의 섬에 봉인돼 있던 드랙티르 종족도 추가되었다. 판다렌처럼 얼라이언스와 호드 양 진영 모두에서 선택 가능한 중립 종족이고, 전용 직업인 기원사로만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다. 늑대인간처럼 용 형태와 인간 형태 모두를 가지며, 전투 중에는 비인간 형태로 고정된다. 기원사는 사슬 방어구를 착용하는 하이브리드 클래스로, 원거리 딜러와 힐러를 오간다. 죽음의 기사나 악마사냥꾼처럼 확장팩 구간 시작 직전인 58레벨에서 시작, 전용 퀘스트라인 진행을 통해 기본 기술을 배워나간다. 신규 직업 외에 종족별 직업도 추가되었다. 이제 모든 종족에서 도적, 마법사, 사제, 수도사, 흑마법사를 플레이할 수 있다. 특성도 네 번째 확장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판다리아의 안개(World of Warcraft: Mists of Pandaria)> 이전으로 돌아갔다. 선택한 직업과 전문화에 대한 하나의 특성 트리 대신, 이제 각 전문화에는 두 개의 트리가 존재한다. 하나는 클래스 전체에 걸쳐 공유되며 방해, 이동강화, 생존과 같은 유용성에 중점을 두고, 다른 하나는 해당 전문화에만 해당하며 전투, 방어, 치유 스킬에 중점을 둔다. 특정 목적 달성을 고려할 경우 선택지가 좁았던 기존과 달리, <용군단>의 특성 트리는 비교적 폭넓은 선택지를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그 특성은 전투할 때를 제외한 거의 모든 때 변경 및 조정이 가능하다. 재미있게도 각 특성 트리의 많은 능력은, 군단의 유물, 어둠땅의 성약의 단 능력과 같은 소스로부터 상당 부분 가져와졌다. UI(user interface) 개편도 특기할 만하다. <와우>의 진입장벽을 높여왔던 대표적인 요소 중 하나가 애드온(addon)이었다. 기존에는 UI 스크립트 기능이 있고 애드온을 통해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었을 뿐, 게임 내에서 기본적으로 UI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지는 않았다. <용군단>에서는 UI를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디자인을 변경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개체 상호작용 기능도 생겨 콘솔패드로 플레이하는 일부 플레이어들의 편의성을 높였다. 여전히 많은 플레이어들이 애드온을 사용하고 싶어 하고 또 사용하고 있겠지만, 앞으로 <와우>를 플레이하는 데 있어 애드온이 필수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졌다. 메인 스토리 퀘스트에의 참여를 권장하는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차기 확장팩을 앞둔 패치 전까지는 대장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4개 지역을 탐험하고 최대 레벨에 도달한 후에야, 영웅 던전, 월드 퀘스트 등과 같은 항목에 대한 참여가 가능하다. 물론 각 구역의 메인 스토리 퀘스트가 대부분 독립형이고 다른 퀘스트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사이드 퀘스트 역시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용군단>의 메인 콘텐츠들을 즐기는 데 있어 메인 스토리 퀘스트를 생략하기는 쉽지 않다. 그 퀘스트가 선형적이긴 해도 상당한 재미를 주는 것은 사실이나, 메인 스토리 퀘스트로의 참여 권장은 <와우>의 자유도가 높아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여전히 주저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용군단>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콘텐츠 중 하나는 용 조련술이다. 만렙 전까지는 캐릭터를 강제로 지상에 묶어두었던 기존 확장팩에서와 달리, <용군단>에서는 초반부터 하늘을 날 수 있다. 용 조련술은 쾌감 넘치는 공중 이동방식으로, 캐릭터들은 용에 올라타 높은 하늘에서 급강하해 속도를 올리고, 다시 고삐를 당겨 쌓은 가속도로 활공을 즐길 수 있다. 반대로 오르막길을 비행하는 일이 어려워졌음은 물론이다. 물론 이 새로운 콘텐츠는 가상의 세계에 현실감을 더하는 요소이자, 진작 이뤄졌을 법한 요소이기도 하다. 날/탈것이 타서부터 내릴 때까지, 거리에 상관없이 똑같은 속도를 내는 기존의 설정이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용 조련술은 이제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정해진 거리를 이동하는 데 있어 동선만이 아니라 속도의 완급과 가속을 고려하게 만든다. 그 밖에도 플레이어들은 시간제한 도전이나 멀티 플레이어 경주를 통해 용 조련에 익숙해지고, 용의 섬 곳곳에서 비룡들의 형상 꾸미기 요소를 수집하거나 기술을 강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용군단>의 레벨 상한인 70레벨을 향해 나아가면서 이루어진다. 용 조련술로 인해 비행은 더 이상 단순히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매력적인 게임 플레이 요소가 된다. 완전히 새로운 요소들을 몇몇 제시하고, 지난 것들 중 의미 있는 요소들을 그보다 더 많이 현대화함으로써 <용군단>은 <와우> 플레이어들이 그동안 좋아해 왔던 캐릭터, 몬스터, 그리고 게임 플레이 시스템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선다. <와우>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다. 열성 플레이어들도 나이를 먹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새로운 플레이어의 유입보다 기존 플레이어의 여전한 참여가 <와우>를 유지시키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와우>가 기존 플레이어들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용군단>에서 발견되는 기존 아이디어의 적용과 변경, 새로운 아이디어의 추가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면서도 다음에 올 일을 포용하는 <와우>의 면모임에 다름 아니다. <용군단>은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배움을 통해 앞으로 갈 방향을 찾았다. 그 방향에서는 다음 확장팩 이후 쓸모가 없게 될 (이번 확장팩의) 새로운 시스템보다는, 애초에 <와우>가 내재하고 있던 시스템들을 개선하는 일이 더 중요한 듯하다. 여전히 <와우>가 진화 중이고, 다음 확장팩이 기대되는 이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체인소 맨>의 한국적 수용과 문화적 증폭’(2026), ‘극사실주의의 게임적 재구성: <나는 SOLO>의 상호/텍스트성과 수용구조’(2026),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등이 있다.

  •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 Back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03 GG Vol. 21. 12. 10. 김연자 말고, 니체의 ‘아모르 파티’ 수년 전,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 파티’ 가 인터넷에서 크게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특유의 비트와 김연자의 보컬로 곡 자체도 훌륭하지만 가사도 그렇고 후렴의 막강한 뽕짝 비트가 절묘했다. 사실 일종의 유머로서 소비되기는 했지만, 트로트 답게 좀 쌉쌀한 맛도 있는 노래였다. * 막상 생각해보면 이 노래만큼 아모르 파티를 잘 설명한 것도 없는듯. 이미지 출처 - TV조선 유튜브 채널 그렇다면 바로 이 곡의 제목 ‘아모르 파티(Amor Fati)’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말 자체는 라틴어이고, 대충 들으면 어디서 나온 유명한 경구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이 단어의 출처는 저 멀리 프로이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로 간다. “신은 죽었다.” 는 패기 넘치는 한마디를 꺼냈던 이 철학자는 그 말마따나 인간의 운명을 긍정하고자 몇가지 화두를 세상에 던졌다. 물론 여기서 니체 이론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생각은 없다. 분량도 모자라거니와 애초에 필자도 관련 전공 또는 심도 있게 연구한 사람도 아니다. 단지 더할 나위 없이 니체가 어울리는 어떤 게임을 위해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뿐이다. 니체가 제시한 개념 중 ‘아모르 파티’ 는 니체 사상에서 일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이다. 풀어 쓰자면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운명이란 고대 그리스에서 말하는 신에 의해 정해진 운명과는 정반대로, 인간이 스스로 살아가고 결정하는 운명 그 자체를 말한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흥하거나 망하거나 즐겁거나 괴롭거나 자신의 운명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그를 긍정하라는 것. 이처럼 니체의 사상은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한 것처럼, 현실의 삶에 대한 긍정을 추구하며, 인간 개인이 그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라는 관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방법론이 바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라고 축약할 수 있다(미리 말했던 것처럼, 매우 간단하게 요약한 해석이다). 영원회귀란 파괴(실패, 좌절, 괴로움 등)와 생성(성공, 성취, 즐거움 등)의 동일한 과정을 무한 반복하여 마침내 긍정의 결론(내 운명-인생을 사랑-긍정하자)에 다다름으로서 마침내는 파괴의 과정 역시 긍정의 질(형식)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삶에 대한 긍정이란 이뤄낸 성과, 성공, 원초적인 즐거움과 쾌락 같은 너무나 당연한 긍정의 질을 말하는게 아니다. 삶에서 필연적으로 얻고 겪게 되는 좌절과 실패, 괴로움과 불쾌함까지도 긍정하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이 과정이 바로 영원회귀이며, 그 결과 이르게 되는 것이 아모르 파티이고, 또는 이 둘은 서로의 원인이자 서로의 결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니체의 사상 전체를 상당히 짧고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이지만, 큰 맥락은 같다. ‘영원회귀’ 라는 고통과 성취의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마침내 얻어낸 결실은 그 모든 과정을 한순간에 긍정적인 여정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의 의지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자신의 운명의 결론을 긍정함으로서 그 과정도 값지고 긍정적인 질로 바꾸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인생의 자세가 바로 ‘아모르 파티’ 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자, 그럼 이제 〈데스루프〉 라는 영원회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게임의 기본 모델 ‘영원회귀’ 가 데스루프에서 특별한 이유 〈데스루프〉 는 그 이름에서부터 죽음으로 되풀이되는 루프를 넌지시 언급하고 있다. 흔히 ‘루프물’ 이라고 하는 장르 또는 특성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이 선보여졌다. 수십년 전 TV에서 특선 영화로 보던 ‘사랑의 블랙홀’ 이나 최근으로 보면 영화 ‘엣지 오브 투머로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는 더더욱 많이 사용된 요소이기도 하다. * 데몬즈 소울 리메이크(Demon’s Souls, 2020). 이쪽 게임 디자인에선 워낙 유명한 소울 시리즈. 당연하게도 이는 게임에서도 흔히 활용되는 소재였다. 아니 오히려, 죽음과 부활로서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논리는 플레이의 반복성을 부여해야만 하는 게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기본 논리다. 여기서 나아가 아주 직접적인 ‘영원회귀’ 적인 과정을 노골적으로 활용하는 게임들은 많다. 오래 전부터 그 예시로 들어왔던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 소울〉 을 위시한 ‘소울 시리즈’가 그 예다. 참고로 최근에는 한국에서 이름 자체가 ‘영원회귀’ 인 게임도 나왔다. * 이터널 리턴(Eternal Return, 2020). 여기는 이름부터 영원회귀다. 사실 게임 내용은 크게 상관… 없나? 그리고 사실은 ‘소울 시리즈’ 까지 가지 않더라도 게임은 근원적으로 그 구조에서 영원회귀를 기본 구조로 채택하고 있다. 계속해 같은 시도를 하며 죽으면서 경험을 쌓고 강해지고, 마침내 극복해내고 한 번의 성공을 만들어 냄으로서 그전까지의 실패가 모두 이 성공을 위한 과정으로서 빛나게 되는 것. 그러나 〈데스루프〉 가 영원회귀 모델에서 독특한 점은 바로 플레이어의 성장 또는 변화를 직접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플레이어의 스킬 향상이나 명시적인 게임 내 각종 스테이터스, 기능의 향상이 아닌, 정보의 취득으로 표현한다는 부분이다. 보통 이러한 죽음(실패)과 부활(재도전), 그리고 이를 통한 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게임들은 그 성장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게임 내의 수치나 변화보다는 플레이어 자신의 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장 노골적인 예시인 〈다크 소울〉 시리즈의 경우 거듭되는 싸움을 통해 상대의 패턴을 파악하고, 나 자신의 로직, 나 자신의 조작이 가장 크게 성장에 관여한다. 물론 거기에 최적화된 도구를 다시 고르거나 필요한 만큼의 스테이터스를 향상시키고 돌아오는 등의 선택도 가능하지만, 플레이어 자신이 가장 큰 성장의 매개체라는 점은 〈다크 소울〉 이나 〈몬스터 헌터〉 같은 부류의 게임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다. * 이 게임의 룰과 목표는 간단하다. 크게 세가지다. 1. 루프를 끊어라. 2. 하루 안에 8개의 타겟을 제거해라. 3.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방법을 찾아내라. 그러나 〈데스루프〉 는 이러한 노골적인 영원회귀의 방법론을 취하면서도 몇몇 부분에서 좀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갔다. 게임은 하루의 루프가 반복되며, 하루는 4개의 시간대와 4개의 장소로 구분되고, 각 시간대 별 장소마다 얻을 수 있는 단서가 다르게 고정된다. 즉, 시간이 지나면 얻을 수 없게 되는 정보가 생긴다. 때문에 죽거나 하루를 넘겨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놓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그만큼 다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고, 또 이것이 게임 내 퀘스트 로그의 변화로 직접 기록된다. 즉, 마치 탐정처럼 어떤 정보를 얻고 실마리에 접근하는 것이 성장이자 게임의 진척도를 상징한다. 플레이어의 자각이 바로 상승을 의미하며, 무력에 의한 극복이라기보다는 무수한 스무고개 끝에 정답을 찾아내는 식이므로 그 스무고개를 확인하기 위한 생성과 파괴가 반복되는 것이다. * 가지런히 정돈된 정보가 계속 쌓이고 중첩되면, 이러한 '정답' 이 나온다. 무엇보다 〈데스루프〉 가 보여주는 영원회귀 구조에서 다른 점은 바로 ‘죽음’ 을 보다 바른 성장을 위해 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게임에서 죽음이란 가급적 피해야만 하는, 어떤 심각한 패널티로서 존재한다. 어찌보면 징벌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데스루프의 죽음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또는 이미 지나친 부분을 다시 보기 위한 일종의 선택지로 기능한다. 마치 영화 ‘엣지 오브 투머로우’ 에서 주인공이 작전을 실행하다가 수틀리면 바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어 다시 하루를 시작하듯 말이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의미이며 패널티였던 죽음이 하나의 선택지이자 상승의 원동력이 되면서, 즉 게임 자체를 직접적으로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면서 보다 ‘아모르 파티에 가까운 파괴와 재생성으로 한걸음 다가간다. 이는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이 얼마나 파괴적인가 하는 부분에서의 차이도 크지만, 무엇보다 플레이어가 취하는 모든 행동이 계획적이고 플레이어 주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뜻한다. 예기치 못한 실패로 인해 맞이하는 죽음과 이를 잘근잘근 곱씹는 절치부심의 과정이 아닌, 거시적인 측면에서 세운 계획을 따라 하나하나 자신의 의도에 따라 스스로를 파괴하고 동시에 재생성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때문에 이 게임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모두 계획대로야.” 또는 “이제는 이걸 하면 되겠군.” 하는 식으로, 플레이어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크게 달라진다. * 죽이고 죽고 정보를 모으고,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선택과 확인의 연속.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통상적으로 부정적인 질을 지니며 실패의 상징인 ‘죽음’ 은 그 자체로 긍정의 질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게 바로 이 게임이 가장 니체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원회귀와 아모르 파티의 기본은 행위자의 주체성, 그리고 결과에 대한 긍정과 확신을 통해 모든 과정마저 긍정해버리는 자세다. 즉, 이 게임의 플레이 로직 그 자체다. 긍정의 끝이 아닌, 긍정의 순환을 만드는 끝 게임의 결론은 마치 이런 해석을 부추기기라도 하는듯 크게 두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되어있다. 섬에 걸려있는 루프를 끝내고 수십년이 지난 세계로 나가거나, 아니면 루프를 유지하고 주인공과 줄리아나의 끝나지 않는 놀이를 계속하는 것. 여기서 대부분은 지금까지 목표로 해왔던 루프의 파괴를 선택하지만, 오히려 어떤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이게 끝인가? 정말로 이걸로 모든 지금까지의 과정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 되었나? * 영원회귀적 관점을 떠나서도 너무나 훌륭한 게임이니 꼭. 그렇기 때문에 엔딩에 이르러서 이렇게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과 탄생이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를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줄리아나라는 존재 자체로 인해서 나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희가 된다면? 이런 가정은 지금까지 루프를 깨기 위해서 달려왔던 플레이어들에게 정반대의 해석을 제시한다. 이 선택은 어쩌면 궁극적으로 아모르 파티를 실현하는 방법이기도 한 셈이다. 지금까지 반복한 루프가 영원히 반복되고 또 되풀이 되겠지만, 더 이상 고통과 결론을 위한 감내의 과정이 아닌 그 자체가 유희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 이 황야마저도, ‘내 행위의 결과’ 이기에 긍정할 수 있다면?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때문에 그동안의 역경을 모두 감내하고 오히려 루프 안에 갇히기를 선택하는 것이야 말로 ‘몰락하는 자신을 긍정하는 아모르 파티의 정신에 부합하며, 이것이 오히려 진짜로 이 게임에 어울리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데스루프〉 는 좋은 게임이지만, 그 과정에 비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들은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면 어떤가.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게임에 대한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의 문화 코드화

    트랜스페미닌 (transfeminine)은 논바이너리부터 트랜스여성까지, 트랜스젠더 중에 상대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젠더 표현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논바이너리 중에 스스로를 여성 젠더에 더 가깝다고 느끼는 이들 (she/they)이 여기 속하고 트랜스여성 (she/her)이 가장 확실하게 속하는 계열이다. 그리고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라고 하면 다양한 SNS 및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를 기반으로 산발적으로 발생한 정체성 기반 네트워크를 이른다. < Back 게임에 대한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의 문화 코드화 21 GG Vol. 24. 12. 10. 트랜스페미닌 (transfeminine)은 논바이너리부터 트랜스여성까지, 트랜스젠더 중에 상대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젠더 표현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논바이너리 중에 스스로를 여성 젠더에 더 가깝다고 느끼는 이들 (she/they)이 여기 속하고 트랜스여성 (she/her)이 가장 확실하게 속하는 계열이다. 그리고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라고 하면 다양한 SNS 및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를 기반으로 산발적으로 발생한 정체성 기반 네트워크를 이른다. 정체성 기반 네트워크들이 으레 그러듯이 젠더 정체성만을 구심점으로 삼고 모이다 보니 사실상 소속원들끼리 정체성 외에 딱히 공통항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오히려 당연하게도 개개인 각자가 서로 전혀 다른 고유하고 개별적인 특질들을 가지고 있는 만큼 더더욱 그나마 공유되고 있는 조그마한 지표라도 발견하면 그것들을 중심으로 문화 코드를 형성하고 향유한다. 특히 최근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에서 반복적으로 호명되는 게임들이 있다. <울트라킬> (2020), <시그널리스> (2022), <폴아웃: 뉴 베가스> (2010), <셀레스트> (2018), 그리고 <길티 기어 스트라이브> (2021)는 각자가 트랜스펨들을 중심으로 하는 탄탄한 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양식의 밈들에서도 유난히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렇다면 이 게임들은 어째서 트랜스펨 [1] 들에게 선택된 것일까? 이 게임들이 트랜스페미닌 정체성과 따로 특별히 공모하는 지점이라도 있는 걸까? <울트라킬>: 천사의 자기탐색과 CCTV 플레이어 [2] <울트라킬>은 아직 얼리 액세스 상태인 인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상당한 크기의 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초고속-초폭력 고옥탄가의 FPS 게임이다. 미래에 모든 인류가 전쟁으로 인해 멸망한 뒤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울트라킬>의 세계관에서 오직 남은 것은 피를 연료로 삼아 작동하는 전쟁 기계들 뿐이다. 그리고 게임은 더 많은 피를 찾아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 기계 “V1”의 이야기를 다룬다. 플레이어가 V1의 눈을 통해 경험하는 세계는 지옥을 지배하는 천사들의 고압적이고 수직적인 위계가 모든 영혼을 억압하고 있다. 딱히 V1에게 저항적이거나 혁명적인 정신이 있어서 천계와 맞서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직 더 많은 피를 흘리기 위한 여정 속에서 천계 의회를 대표해 검을 휘두르는 “지옥의 심판자” 가브리엘과 싸우게 된다.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한 명의 주인공이 한 명 이상의 여러 적수들, 혹은 체제 전체에 부딪히고 결과적으로 그것들을 무너뜨리는 구조는 액션 게임에서 상당히 보편적이다. 그러나 (심지어 아직 완결이 안 났음에도) <울트라킬>의 주요 적대 인물인 가브리엘이 지금까지 굳게 믿고 있었던 천국에 대한 믿음을 주인공과의 만남을 통해 뿌리부터 의심하게 되고 당연하게 믿고 있었던 세계관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며 스스로의 생의 목적, 나아가서는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여정은 액션 게임의 문법 속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편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작 주인공 V1은 단 한 줄의 대사도 갖지 않고 그 스스로가 고유하고 특별한 인격을 가지지도, 당연히 존재의 변화를 겪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울트라킬>의 서사는 주인공의 성장이 아니라 적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울트라킬>의 1막 마지막 장면의 보스전에서 가브리엘은 주인공과 첫 전투 이후 난생 처음으로 삶 전체에서 패배라는 것을 경험한다. 이때 대답 없는 신과 천국, 천사의 완전함에 대해 가브리엘이 가지고 있던 굳은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실패로 말미암아 천계에서 파면당한 가브리엘은 실패의 경험을 증오로 돌려 2막 보스전에서 다시 한번 주인공과 대면하게 된다. 그러나 게임 내 주인공의 적수라는 운명에 이기지 못하고 당연히 연거푸 패배하고 만다. 이 두 번째 패배 직후 가브리엘은 주인공으로 인해 피어올랐던 증오를 자기 존재 변화의 연료로 삼는다. 즉, 가브리엘은 절대적이며 운명적이어야 했을 신의 의지가 그대로 이뤄지지 않고 신의 가호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고는 그렇다면 자신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서 살아온 것이며 이 모든 게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의문하게 된 것이다. “완벽해야 했을 조각은 처음부터 맞지 않는다 (The pieces never fit together to begin with.)” 찾아온 현현顯現에 따라 가브리엘은 처음으로 검을 다른 누구의 의지도 아닌 순수한 자기 자신의 의지로 휘둘러 지금까지 스스로 명령을 따라왔던 천국 의회를 직접 몰살한다. 총 3막으로 예정된 전체 서사 중에 현재 2막까지 완성되어 있는 <울트라킬>에서 플레이어에겐 별다른 서사가 주어지지 않고 주인공은 적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촉매 역할을 담당한다. 즉, 오히려 서사는 적대 인물이 경험하고 플레이어는 스스로가 인물의 변화 원인이 되어 적이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을 상대적 시선에서 목격하는 것이다. 가브리엘이 겪는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감정도 인격도 서사도 없는 V1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가브리엘과 정반대로 V1은 플레이어에게 오로지 게임 화면으로 송출되는 1인칭 시선만을 제공한다. V1은 스스로의 의지라고는 없이 철저히 플레이어의 의지에 따라서만 움직일 뿐이지만 오히려 그럼으로써 플레이어의 의지를 완벽하게 운반하는 그릇이 된다. 말하자면 주인공 캐릭터가 개별적 인물로서 존재하지 않고 플레이어의 의지에 개입하지도, 플레이어를 방해하지도, 가리지도 않으며 분리 없이 플레이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눈앞의 가브리엘이 자기 자신의 의지를 찾으며 점점 독자적 존재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소격 효과를 일으킨다. 플레이어 자신도 스스로 삶과 존재의 목적에 대해,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미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충분히 겪어온 트랜스젠더들은 이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기보단 경험적 공감을 느끼는 일이 더 잦을 것이다. 나아가 <울트라킬>의 게임플레이는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 매우 다채롭고 자유롭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팬 커뮤니티 형성에 용이한 조건을 가진다. 특히 게임 내 물리 엔진 및 총알 발사 메커니즘 등을 농락하며 수직 가속도를 수평 가속도로 전환해 맵을 눈 깜짝할 사이에 횡단하고 공중에 던진 동전에 총알을 420574331번 튕긴다든지 (아무렇게나 쓴 숫자가 아니라 실제 기록된 횟수이다) 하는 기행들이 가능한 환경은 플레이어들의 창의력과 집중력, 도전 의식을 자극한다. <울트라킬>의 제작자 하키타 (Hakita)는 본인이 바이섹슈얼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그 외에도 3D 디자이너 겸 그래픽 프로그래머인 빅토리아 홀랜드 (Victoria Holland)와 컨셉 및 텍스처 디자이너 프랜시스 시에 (Francis Xie)는 본격적으로 각각 트랜스여성과 트랜스남성 당사자이기도 하다. 즉, 작품 자체가 성소수자 당사자들에 의해 제작된 만큼 팬 커뮤니티 또한 성소수자들을 기반으로 구성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나아가 하키타는 기계 로봇인 주인공 V1에게는 어떤 젠더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냐는 팬들의 논의에 V1은 기계이기 때문에 젠더가 없으나 he/him 대명사를 사용한다고 답변했으며, 그럼에도 <울트라킬>에는 동시에 기계“임에도” 젠더가 존재하는 개체들마저 있다. “마인드플레이어” (Mindflayer)라는 적이 대표적인데, 게임 내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로 그녀는 머리 부분만이 기계 본체임에도 그 아래로 인간의 신체 형태와 유사한 플라스틱 외피를 굳이 스스로 형성해 활동한다. 플라스틱 신체 부분은 실질적으로 별다른 기능이 없이 오직 미적인 목적만을 지니고 있음에도 마인드플레이어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파괴되는 일이 있더라도 모든 힘을 다해 이 플라스틱 신체를 보호하려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필연적으로 주어진 신체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여 형성한 몸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마인드플레이어의 습성은 현실 속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단적인 비유로 읽힐 수밖에 없다. <시그널리스>: 몸과 시간, 인식의 비명 <시그널리스>는 엄밀한 의미에서 올해 출시된 <사일런트 힐 2>의 공식 리메이크보다도 더욱더 충실하게 <사일런트 힐> 시리즈를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서바이벌 호러 인디 게임이다. 즉, 게임플레이 측면에선 기본적으로 탑다운 형식의 2.5D 그래픽을 기용하며 때때로 1인칭과 3인칭을 오가고 라디오를 비롯한 퍼즐을 적극적인 사용하며 의도적으로 불친절한 인벤토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시그널리스>를 독립적인 걸작으로 만드는 면모는 극단적일 만치 비선형적이며 표현주의적인, 언뜻 난해하기까지 한 연출 방식이다. <시그널리스>가 한계까지 실험한 표현주의적 연출은 바로 시간과 인식의 비선형성, 존재의 분열 등을 다루는 서사와 운명적으로 맞물리며 빛을 발한다. 다시 말해 최근 인디 게임 중 <사일런트 힐>을 제대로 계승하는 또 다른 작품 <피어 앤 헝거> 시리즈가 그 계보 상의 공포와 끔찍한 그로테스크를 이어 나가고 있다면 <시그널리스>는 실질적으로 존재론적 비애와 절망의 측면에서 서바이벌 호러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먼 미래의 전체주의 사회 “유산 (Eusan)”은 성간 단위로 통치가 이루어지고 우주 개발을 진행 중이다. <시그널리스>의 세계관에서 “생체 공명”이라는 일종의 텔레파시 능력을 지닌 자들은 타인의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의 유기체 조직에까지 간섭할 수 있고, 나아가 집단의 의식을 변형하는 형태로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의 유산 당국은 기존의 제국 체제에 대한 반란을 통해 세워졌는데, 이 제국의 여왕이 바로 강력한 생체 공명 능력을 통해 인류를 다스리던 자였다. 즉, 전 제국은 인식론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이루고 있었고 현 당국은 제국 통치에 대한 반발로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이 유물론적 통치 사회가 탐험이라는 명목을 뒤집어쓴 기약 없는 우주 항해를 통해 한 생체 공명자 “아리안느 양”을 사실상 사형이나 마찬가지인 추방 조치에 처하자 인식론적 공포가 물질세계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플레이어는 생체 공명으로 인해 변이되고 있는 세계를 헤치고 아리안느를 다시 찾아야만 하는 복제-인조인간 “엘스터”를 조종한다. <시그널리스>의 세계 속엔 두 유형의 인간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엘스터와 같은 “레플리카”이고 다른 하나는 레플리카의 원형이라는 의미로 레플리카가 아닌 인간을 이르는 “게슈탈트”이다. 레플리카는 뛰어난 개인들의 신경패턴을 복사해, 인공내골격에 생물학적인 배양물을 채워넣은 뒤 외골격으로 둘러싼 신체에 이식한 복제품들이다. 같은 판본을 기반으로 복제된 개체들이므로 예측 가능한 일꾼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는 심산인 것이다. 그러나 복사 과정에서 기억은 전부 삭제하고 오로지 능력과 성격만을 남김에도 게슈탈트 생전의 중추 기억을 자극하는 외부 자극이 주어지면 기억의 편린이 재구성되고 만다. 또는 한정적이고 반복적인 임무 바깥의 새로운 상황을 접하게 된다면 독자적인 개인으로서 자아가 형성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레플리카가 게슈탈트의 기억을 되찾는 낌새를 보이거나 명확한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을 들킨다면 그 즉시 “폐기”당한다. 즉, 게슈탈트와 레플리카 모두 억압적이고 통제적인 사회 안에서 고유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내쫓기고 학대당한다. 특히 아리안느의 영향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많은 레플리카들은 그전까지 탄압당한 욕망과 트라우마 등을 고통스러운 형태로 드러낸다. 아리안느의 생체 공명은 단순히 현재 인식되는 공간적 물질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 기억과 시간까지 변이시키는데, 이로 인해 플레이어가 엘스터의 눈을 빌려 인지하는 세계엔 엘스터가 아닌 다양한 개인들의 경험 또한 섞여 들어온다. 특히 이 지점이 <시그널리스>의 서사와 연출을 난해하게 만드는 최전방이다. 현재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경험이 정확히 누구의 시공간이었는지 유추하기가 극도로 어려우며, 시퀀스마다 불규칙하게 게임은 1인칭과 3인칭 관점을 오가는데 플레이어는 관점 변경을 전혀 통제할 수 없다. 이렇게 플레이어가 엘스터를 통해 경험하는 타인의 기억 중 하나는 아리안느가 유물론적 기치를 바탕으로 한 유산 당국에서 경시되는 예술에 관심을 가진다는 점, 그리고 하얀 머리와 붉은 눈 등 남들과 다른 외모로 인해 성장 과정 속에서도 괴롭힘을 당해오던 것이었다. 규범 사회에서 예외적 존재로 배제당하고 항상 폭력의 최전방에서 사는 트랜스젠더에게 <시그널리스> 속 유산 사회와 그 시민들 사이의 고통스럽고 불합리한 관계는 먼 얘기가 아니다. 특히 유기체적, 즉, “생물학적” 인간이 아닌 존재인 레플리카는 트랜스젠더에게 비유 이상의 즉물적인 개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게임 내에선 레플리카의 피와 살은 언뜻 인간의 평범한 살점과 구분되지 않는 외양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디까지나 생체공학으로 가공된 조직이기에 표류한 우주선 안에서 게슈탈트가 배고프다고 레플리카의 살을 뜯어 먹어 봤자 소화를 시킬 수 없다는 지침을 찾을 수 있다. 레플리카라는 이름에서부터 이미 그들은 고유한 인간 존재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자원”, 보급형, 모조품으로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에 존재하던 인간 도식의 모방이자 게슈탈트의 복제, 변주에 불과한 개체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레플리카는 단독적 인격과 자아가 필연적으로 깨어날 수밖에 없는 비극적 판형들인 것이다. 무엇보다 <시그널리스> 작중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게슈탈트, 레플리카를 막론하고 절대 대다수가 여성이다. 따라서 레플리카의 경우 그 키가 최대 260cm에 달하는 거대한 강철로 이루어진 “여성”들이라는 점에서 많은 트랜스펨에게 공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생체 공명의 영향으로 개인들이 몸의 물질적 차원과 몸에 대한 인식 사이의 경합을 겪어 변이하는 과정은 트랜스성의 관점에선 그저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시그널리스>에서는 인간 존재뿐만 아니라 함선이나 우주정거장 등 세계 전체의 물질적 차원이 인식의 변화에 의해 피와 살점, 내장 등으로 점차 침식되어 간다. 마치 트랜스적 신체 인지 방식이 바깥 세계로까지 확장된 듯이 말이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세계 관찰 관점의 자유를 제공하지 않고 1인칭 시각과 3인칭 시각을 임의로 강제하는 것 또한 매체의 폭력이라는 점에서 몸이 존재에게 가하는 폭력, 유물론적 유산 사회가 시민 개인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공명한다. 즉, 언뜻 호러 장르라는 특징 때문에 변이하는 신체가 존재들에게 고통이나 폭력인 것처럼 오인될 수 있지만 <시그널리스>에선 오히려 그전까지 개개인의 존재를 가두고 각자의 의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신체에 대한 인식의 반항이자 탈출이다. 그리고 인간 존재는 공간을 물질적 차원에서 인지하는 것 이상으로 시간 또한 신체를 통해 인식하고 몸에 직접 기록되기 때문에 트랜스 당사자들은 시간과 관계 맺는 방식도 비규범적인 경우가 많다. <시그널리스>에서 아리안느는 우주 속으로의 기약 없는 망명 속에서 결국 시간 감각을 잃어버리고, 그녀의 왜곡된 시간은 그녀가 생체 공명으로 영향을 끼치는 게임 내 세계에까지 직접적으로 반영된다. 이는 트랜스젠더들이 반드시 고유한 트랜스성으로서는 아니지만 현실의 조건으로 인해 흔히 처할 수밖에 되는 트라우마적 경험들로 인해 직조당하는 시간의 영원성과 동일하다. 마치 전쟁 경험자들이 흐르지 않는 특정 시간 속에 갇혀 평생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이들에게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지도, 일정하게 작동하지도 않는다. <시그널리스>는 서사의 비선형성 뿐만 아니라 사건들의 공시성 (synchronizität)을 통해서도 인과적이지 않은 세계 인식을 드러낸다. 즉, 직접 연관되어 있지 않은 전혀 다른 시공간 속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공명하는”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 말이다. 끝으로 블랙홀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건의 지평선 바깥에서는 알 수 없다는 우주 검열 가설을 제창한 로저 펜로즈의 이름이 아리안느가 탑승한 우주선에 붙어 있듯이 억압당하는 개인들의 이야기는 바깥에서는 알 수 없다. 분명 다양한 현실의 시공간 속에서 실재해 왔음에도 스스로의 목소리가 주어지지 않은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제대로 남아 있지 않고 당장 현재 또한 트랜스젠더들의 삶은 당사자가 아닌 바깥의 시스젠더들에겐 전혀 미지의 영역인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우주에선, 누구도 당신의 비명을 들을 수 없다.” [3] 바깥을 향한 언어의 갈망 따라서 <시그널리스>는 <울트라킬>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밀착된 방식으로 트랜스성과 관계하기에 게임 외적 측면에서 살펴보지 않아도 어째서 트랜스펨 커뮤니티가 형성됐는지는 의문의 영역조차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쯤 되면 안 봐도 뻔하다고까지 할 수 있겠지만 2인 제작 게임인 <시그널리스>는 전적으로 트랜스 당사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제작자 유리 스턴 (Yuri Stern)은 논바이너리이고, 디자이너 바바라 비트만 (Barbara Wittmann)은 트랜스여성이다. 그러므로 <울트라킬>과 <시그널리스> 모두 작품 내외 양면으로 트랜스 정체성과 관계한다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극도의 고난이도 플랫포머 게임 <셀레스트> 또한 말 그대로 게임 안팎으로 스스로와 싸우며 산에 올라가는 고난과 역경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찾는 과정을 그리며 트랜스젠더로서 정체화와 트랜지션 과정을 그려냈다. 역시 제작자 매디 소슨 (Maddy Thorson) 본인이 게임 출시 이후에 커밍아웃하였기도 하다. 그러나 <폴아웃: 뉴 베가스>와 같은 경우는 커뮤니티 상에서 다른 게임들보다도 특별히 사랑받고 있고 거의 트랜스펨의 상징과도 같은 지위에 올라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품 자체가 직접적으로 트랜스성과 관계하고 있지도, 작품 제작 차원에 트랜스 당사자가 개입되어 있지도 않다. <길티 기어 스트라이브>도 전반적으로 <폴아웃: 뉴 베가스>와 크게 다르지 않고, <길티 기어> 시리즈 내에서 이미 2002년에 처음으로 출시되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역사를 가지고 존재해 왔던 “브리짓”이라는 캐릭터가 비교적 최근에 들어 와서야 본작에서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 해당 캐릭터에게 초점을 맞춘 팬덤 문화가 형성된 바가 있지만, 이 한 명의 매우 국소적인 캐릭터를 제외하고 전체 게임 차원에서는 특별히 트랜스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도, 트랜스적 게임성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길티 기어> 커뮤니티에서 게임과 가장 충실하고 긴밀하게 관계하고 있는 트랜스펨들은 브리짓을 기점으로 유입층이 늘어난 팬덤 영역에서가 아니라 그 바깥의 전체적이고 실질적인 게임 영역에 자신을 투여하는 실제 격투 게임 대회를 중심으로 <길티 기어> 커뮤니티에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애초에 트랜스펨 개인들이 게임 영역에 대거 투입되고 전문적인 수준까지 훈련되는 일이 많은 것은 현실의 물리적 사회 공간에 참여가 허락되지 않고 자리가 주어지지 않으며 아주 철저히 배제되어 온 지금 이 순간도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오랜 역사에서 오직 접근할 수 있는 취미라고는 외부의 공공장소로 나가지 않고 방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유가 크다. 따라서 이미 트랜스펨들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게임들을 즐겨왔고 그저 객관적이고 절대적으로 “좋은” 게임을 즐겨왔기 때문에 우연히 플레이 경험이 겹친 사례의 대표가 <폴아웃: 뉴 베가스>이다. 복잡하고 흥미로운 선택지와 플레이어 행동에 대한 예상치 못한 치밀하고 구체적인 결과들, 대화의 풍요로운 문체 등 현대적 RPG 게임의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폴아웃: 뉴 베가스>에 대한 트랜스펨들의 선호는 단지 자기 탐색의 시간을 불가피하게 많이 가질 수밖에 없는 트랜스 당사자들이 비교적 고상한 취향을 획득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는 반농담 반진담으로 설명하는 것이 용이할 것이다. 따라서 트랜스펨 커뮤니티가 문화 코드로 정체화하는 게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트랜스 정체성과 관계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필요 조건인 것만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그저 트랜스펨 당사자들이 실제로 지금까지 각자가 시간을 많이 투여해 온 게임들이라는 것만이 약분 불가능한 최소한의 정수다. 애초에 트랜스 정체성 자체가 하나로 압축될 수 있는 단일한 결정이 아니라 수없이 다양하고 고유한 개인들의 사실상 임의적인 집합체이기 때문에 당연한 사실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동일한 구심점을 축으로 공전하며 조직된 코드의 궤적들을 따라 문화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으로 주변적 존재들은 삶을 느낄 수 있는 자리를,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정체성을 공유하는 개인들끼리 같은 작품을 향유했다는 사실만으로 연결감을 느끼고 만연한 소외와 고독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당 작품을 매개 삼아 존재할 수마저 있다. 즉, 자신의 향유에 설명을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증명을 이루고 작품을 자기 정체성의 코드로 기입해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기존에 존재하던 기성 규범 사회의 문화 코드를 대여하거나 그것에 편입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탈취해 고유하고 독자적인 맥락을 발생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덧씌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개별적 언어, 방언을 만들어 냄으로써 소수자들은 스스로 설명 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또한 밖으로 내쫓긴 이들에게 기존 사회와 언어 안에는 자신들을 위한 자리가 없으므로 대안적 관점을 창조해 내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역으로 작품 자체 또한 확장하고 그 의미를 다양화하며 그 질료를 풍요히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즉, 트랜스펨 커뮤니티의 문화 코드 구성 과정은 정체성과 게임이 상호적으로 재조직하는 교차 전이이다. 참조할 계보가 없는 돌연변이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인공 고향은 말라붙은 터전에 다시 양분을 불어넣는다. 추신 트랜스펨들이 실제로 아주 오랫동안 게임을 즐겨왔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최근에서야 이러한 온라인 커뮤니티 상의 연결과 공유가 적극적으로 활성화된 측면이 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맥락은 기존에 “여자”는 게임 따위를 하지 않는다는 말 같지도 않은 편견이 생각보다 꽤 널리 퍼져 있었기에 트랜스펨들 또한 자신의 취미가 충분히 “여성적”이지 않게 인식될까 봐 자랑스럽게 드러내기를 꺼리고 수치심에 부인하고 감추며 억눌러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게이머에 대한 오명이 점점 벗겨지며 오히려 스포츠 게임과 같은 남성 위주 게임을 “캐주얼”한, 비전문적 게임의 영역으로 밀어 넣어 버리고 역으로 여성 게이머를 “코어”하며 전문적인, 집요한 플레이어들로 재조명하는 관점이 유통되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트랜스펨들도 수치심과 열등감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게임에 대한 취미를 당당하게 드러내며 서로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1] transfem. 트랜스페미닌(지정성별상의 남성이 젠더 스펙트럼상 여성에 좀더 가까운 경우)의 줄임말. 트랜스페미닌함을 지닌 개인들을 이를 때 자주 사용된다. [2] <울트라킬>의 주인공 V1은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닮은 머리로 인해 팬 커뮤니티 내에서 CCTV라는 별명을 얻었다. [3] In space, no one can hear you scream. 리들리 스콧, 에이리언 (1979).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 아서 왕의 죽음: 〈레드 데드 리뎀션 2〉, 기사 로맨스, 종말과 지연의 이중주(장려상)

    락스타 게임즈의 웨스턴 RPG 〈레드 데드 리뎀션 2〉(이하 〈레데리2〉)는 여러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주인공 아서 모건을 아서 왕에 빗댄다. 이들이 미국 서부 개척 시대 끝물의 무법자를 별안간 중세 원탁의 기사에 견준다면, 에필로그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잭의 독서는 여태 플레이한 내용을 또 한 편씩의 기사 로맨스로 요약한다1). 오늘날 낭만적 사랑을 다루는 장르로 통용되는 로맨스(romance)는 본디 서양 중세에 등장한 서사 문학 양식이자 장르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기사 개인의 모험과 탐색, 사회적 규범과 폭력적 충동 사이의 긴장, 숙녀와의 사랑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o Kim Majored in English literature and studies the ways women's love is represented in medieval romance. Has played games steadily for a long time, but often thinks that, had it not been for encountering Koei's Uncharted Waters franchise in middle school, the trajectory of life would have turned out entirely different. Keenly interested in how contemporary media—video games, films, television dramas—deal with history, historical settings,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history and the individual (women in particular).

  • 레트로를 다시 소환하는 인디게임의 방식들

    이런 점에서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는 인디 게임들이 평론가와 대중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를 이어주는 인디 게임들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팬덤은 게이머의 확장된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올드 게이머에겐 추억을, 뉴 게이머에겐 신선함을 말이다. 어찌 보면 레트로 게임, 장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누군가에겐 레트로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겐 새로운 게이밍일 수 있다. 인디 개발자들의 레트로 장르 경의와 찬사는 게임 과거 게이밍과 현대 게이밍을 이어주는 가교를 만들어 주고 있다. < Back 레트로를 다시 소환하는 인디게임의 방식들 02 GG Vol. 21. 8. 10. 개인적인 이야기로 운을 띄우자면 어릴 적 게임보이 어드밴스로 〈포켓몬스터 실버〉를 처음 접했을 때 컬러 도트 그래픽으로 서로를 마주보며 배틀하던 포켓몬들, 사각 타일의 마을에서 움직이는 2등신 도트의 주인공 캐릭터를 움직이던 경험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당시 시리즈의 8비트 OST는 게임을 더욱 즐겁게 해준 일등공신이었다. 휴대용 게임기는 필자를 새로운 취미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게임보이, 닌텐도DS, 닌텐도 3DS를 거쳐 닌텐도 스위치까지 가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GBA 도트 그래픽 기반의 〈젤다의 전설: 이상한 나무열매 - 대지의 장〉과 같은 탑다운 어드벤처와 횡스크롤 슈팅 게임 〈다라이어스 R〉 처럼 2차원 평면 구조의 게임들만 접해 온 어중간한 게이머의 눈에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3차원 오픈월드 기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발전한 게임기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고, 기술의 위력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다크소울〉을 휴대용 게임기로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라도 했을까. 고품질 텍스처들은 생동감을 강조해주었고, 수려한 파티클 이펙트와 사운드는 캐주얼과 코어 게이머를 아울렀다. 돌이켜보면 시대의 흐름이었다. 컴퓨팅 능력은 끊임없이 발전했고, 경쟁적 기술 사회에 발맞춰 게임 성능도 점점 좋아졌다. 보다 높은 퀄리티의 현실 같은 그래픽에 기반한 게임 경험에의 요구는 당연했다. 게임은 상품이었고,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산업이었다. 게임사들이 주도하던 게임 시장은 거대자본이 들어오면서 더욱 기술발전에 가까워져 갔다. 물론 단순히 2차원에서 3차원으로의 그래픽 변화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높아진 메모리 용량으로 더 많은 게임 시스템을 처리할 수 있었다. 기술의 발전 속에서 다양한 장르들이 이를 통해 분화하고 깊어졌다. 각각의 게임 시리즈는 다채롭게 진화하며 게이머를 사로잡아 왔다. 발전하는 거치형 콘솔과 PC를 만나면서 재현된 게임 속 세계는 현실과 견주는 것에 모자람이 없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게임을 고르는 것에 고해상도의 현실적인 그래픽, 뛰어난 상호작용성을 가진 게임 시스템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동시에 대다수의 게이머들에게 안정적인 게임 경험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다수의 메이저 게임사들은 보장된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이러한 기술발전의 결과들을 새로운 게임 개발에 지속적으로 가져온다. 기술의 발전으로 나날이 '고퀄'화되는 게임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올해 접한 게임 중 가장 즐거웠던 게임을 꼽자면 〈오모리(OMORI)〉와 〈이온 퓨리(Ion Fury)〉다. 메이저 게임사들이 만들어 낸 AAA급 퀄리티의 게임들이 아닌, 개인 또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오히려 초기 기술에 가까운 시각적 재현을 보여주는 게임들이다. 〈오모리〉는 2020년 12월 출시한 레트로 스타일의 탑다운 어드벤처 RPG 게임으로, ‘OMOCAT’이라는 일본계 미국인 만화가가 동명의 인디 게임회사에서 킥스타터 펀딩을 통해 개발한 게임이다. 게임 툴 ‘RPG 쯔꾸르(RPG 만들기, RPG Maker)’를 통해 개발된 게임은 전형적인 레트로 형식의 2D 도트 그래픽이며, 시나리오는 닌텐도의 〈마더〉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분위기를 풍긴다. 〈이온 퓨리〉는 2018년 2월 스팀 얼리 엑세스를 통해 2019년 8월 정식 발매한 ‘보이드포인트(Voidpoint)’라는 인디 게임회사에서 개발된 올드 스쿨 FPS 게임으로, 배급사인 ‘3D렐름(3D Realms)’의 1990년대 FPS 게임 엔진인 ‘빌드 엔진’으로 개발해 고전 〈듀크 뉴켐 3D〉과 같이 90년대 FPS 문법을 활용한 게임 시스템과 2D 캐릭터와 3D 배경 디자인으로 경쾌한 슈팅 액션을 엿볼 수 있다. * 〈오모리〉 스크린샷. 출처: 스팀 공식 페이지. 게임 장르를 설명하는 고전, 레트로, 클래식, 올드 스쿨 등 단어들은 최근 인디 개발자들이 자신의 게임을 설명하는데 사용되곤 한다. 게임 장르에서 경계를 나누어 구식과 신식을 나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특징과 스타일을 통해 레트로라는 이름의 장르화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인데, 예를 들면 올드 스쿨 FPS, cCRPG(Classic Computer RPG), 고전 JRPG, 고전 2D 플랫포머 등을 거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레트로 장르라고 부를 수 있을, 기술이 지금보다 낮은 단계에 있을 때 구현된 특유의 스타일을 동시대 인디 게임들이 다시 가져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스팀'과 같은 플랫폼의 등장은 인디 게임 시장과 가능성을 확장했고, 인디 개발자들로 하여금 시장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개성있는 장르의 게임 개발을 가능케 했다. 2010년대 이후 시작된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게임 시장 확대 또한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같은 개방적 게임 플랫폼, '구글 인디 게임 페스티벌'과 같은 지원정책 등에 힘입어 인디 게임의 개발과 유통에 새 루트를 만들며 인디 게임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인디 게임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함을 강조하기 위해, 인디의 자율성을 적극 활용한다. 시장의 대세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은 다양한 장르의 활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레트로 문법의 차용이 어색하지 않은 개발 환경이 되었다. 레트로 장르를 인디 게임들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이유를 꼽자면 개발 관점에서 필요한 (자본이 크게 드는)기술에 대한 요구치가 높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기술적 한계로 오브젝트를 지금보다 더 강하게 추상화했다는 점은 그래픽 리소스와 같은 측면에서 오늘날에도 가장 저렴하게 구현해볼 수 있는 개발방법론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미 앞서 출시된 과거의 게임들을 레퍼런스 삼아 개발하는 과정의 용이성 또한 장점으로 거론될 것이다. 이런 장점들을 토대로 레트로 게임에 대한 오마주, 창조적 모방, 벤치마킹 등을 통해 현대의 인디 게임들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리소스 상황에서도 충분한 창의적 결과물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맞게 되었다. 그렇게 레트로 게임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오늘날의 인디 개발자들을 통해 레트로 장르 자체의 재현(Representation)으로 나타난다. 레트로 게임들이 예전 모습 그대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측면에서 게임 장르에 대한 재현의 양상으로 드러난다는 이야기다. 이는 단순히 레트로 장르에 대한 모방으로서의 재현이 아니며, 레트로 장르가 현대적 상황과 감각에 맞도록 각 개발자들의 관점과 역량에 의해 재구성된 결과물이다. 레트로 장르를 답습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변주와 재해석을 통해 레트로 게임들의 의미는 현대에서도 다시금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된다. 인디 올드 스쿨 FPS 퍼블리셔인 ‘뉴블러드 인터렉티브(New Blood Intertactive)’는 인터뷰에서 자신들을 통해 재현된 올드 스쿨 FPS 장르가 사라졌다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존재했지만 누군가 새로이 원하게 되어 다시 등장한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레트로 장르는 사라지거나 단절되는 것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순환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현대 인디게임에서의 레트로 재현이 장르적 융합과 변주를 통해 재해석되는 과정과 결과는 2018년 출시한 리듬 게임 〈올드 스쿨 뮤지컬〉의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게임은 레트로 게임 장르들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주를 통한 장르적 융합의 한 사례다. 8비트 칩튠 사운드와 레트로 장르의 게임 플레이를 BGA(BackGround Animation)로 재현하여 리듬 게임 장르와 결합한 〈올드 스쿨 뮤지컬〉 의 메인 디렉터인 프랑수아 베르트랑(Francois Bertrand)은 이전 기획작인 〈8Bit The Musical〉이 자신이 좋아하던 리듬 게임을 통해 레트로 게이밍에 대한 러브레터가 되기를 바랬다고 회고한다. 비디오 게임을 통해 힘든 어린 시절을 버틸 수 있게 해준 레트로 게임들에 대한 감사와 추억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 속에서 우리는 레트로 장르에 대해 인디 게임 개발자이 갖는 자신들의 과거 게임 경험이 주었던 즐거움과 추억이 게임 개발의 주요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또한 레트로 장르가 인디 개발자들에 의해 다시금 활용되는 이유다. * 〈올드 스쿨 뮤지컬〉. 이미지출처: 스팀 공식 페이지. 이러한 점들을 돌이켜보면 인디게임에서 레트로 장르를 활용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레트로 장르의 현대적 계승으로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완결된 게임 시리즈, 다양한 이유로 후속 작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거나 오랜 기간 개발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시리즈들을 인디 게임 씬(Scene)에서 장르 혹은 게임 디자인을 가져와 계승하는 경우가 종종 존재한다. 계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가진 경험과 시각 - 고전 게임의 계승을 시도하는 이유가 자신들이 가졌던 게임 경험에 대한 추억과 헌정이라는 점에서 - 에 의해 융합과 변주를 거친 재해석의 결과물로서 의미지어진다. 인디 게임들이 ‘정신적 계승작’, ‘정신적 후속작’과 같은 대담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레트로 장르에 대한 실천적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 레트로 장르의 계승은 인디 게임의 장르를 풍부하게 함과 동시에 고전 명작을 다시 현대로 불러오고 장르의 대중화를 장려한다. 물론 이는 전체 게임 생태계에서 보자면 비약적인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디 개발자들의 작업이 단순히 낡은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게임디자인과 장르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이를 통해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에게 각각 추억과 새로움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트로배니아(Metroidvania)’ 장르는 이러한 레트로 - 인디 트렌드의 수혜자이자 결과물이다. 인디 게임의 저변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면서 고전 게임의 규칙은 동시대의 보편 장르로도 의미지어지기 시작하며 캐주얼 게이머들의 입에까지 오르는 상황을 맞았다. 해당 장르의 원류인 〈메트로이드〉 2D 시리즈와 〈캐슬배니아〉 시리즈는 메이저 게임 시장의 주류 장르들이 교체되는 시대적 유행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메트로배니아는 현재 AAA급 게임들에 비하면 꽤나 단순한 구조의 게임 디자인과 2D 횡스크롤이라는 특징에서 낡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충실히 이 장르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액시옴 버지(Axiom Verge)〉, 〈할로우 나이트〉, 〈데드 셀〉 등과 같은 인디 게임들이 성공적인 결과물을 이끌어냄으로써, 2010년대 이후 메트로배니아는 여전히 유효한 장르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은 과거 메트로배니아 팬덤과 현재의 새롭게 진입한 게이머 모두에게 레트로 장르가 가지고 있던 규칙을 다듬고, 새로운 해석과 재현의 문법과 결합시키며 장르를 일신했다. * 19년만에 〈메트로이드〉 시리즈 정식 후속작이 나온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레트로 장르에 대한 현대적 계승은 비판적 수용을 통한 계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수용으로서의 장르적 재현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한 점은 레트로 장르는 시초(Beginning)와도 같은 오래된 문법이라는 점으로, 어떤 식으로 든 동시대에 대중적으로 의미지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현재 인디 개발자의 관점을 통해 새롭게 다듬어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비판적인 접근을 통해 과거 장르가 가진 오늘날에는 불필요한 낡은 지점들을 걷어내고, 새로운 현대적 문법을 통한 변주나 타 장르와의 융합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측면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작품이 〈디스코 엘리시움〉일 것이다. 게임의 외형은 cCRPG의 기본적인 게임 디자인을 통해 나타나지만, 마냥 cCRPG의 클래식을 답습하고 있지는 않다. 고전적인 불편한 요소들을 버리고 편의성을 현대적으로 수정했지만, cCRPG의 비선형적인 레벨 디자인은 훌륭하게 재현했다. 이뿐 아니라 cCRPG의 강점인 내러티브 경험을 위해 다시 레트로 장르인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스타일이 플레이 내러티브에 결합했다. 이러한 요소들의 누적은 〈디스코 엘리시움〉이 가지고 있는 레트로로서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에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편의성을 구현해냈다. * 〈액시옴 버지(Axiom Verge)〉와 〈디스코 엘리시움〉. 인디게임이 다루는 레트로 게임의 가장 큰 의미는 앞서도 언급한 바처럼 고전을 활용한 융합과 계승을 통해 장르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순환시킨다는 점이다. 인디 게임 시장이 커짐에 따라 각각 게임들의 유사성을 피하기는 정말 어려워졌다. 이러한 이유로 인디 게임 개발자들은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여 돌파를 꾀했다. 레트로 장르는 게임 장르의 시작과도 같다. 게임들이 정말 재밌다고 느낄 수 있는 것에는 장르의 즐거움 또한 클 것이다. 그러므로 게임 본연의 재미 같은 원초적인 레트로 장르들이 현대에도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는 인디 게임들이 평론가와 대중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를 이어주는 인디 게임들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팬덤은 게이머의 확장된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올드 게이머에겐 추억을, 뉴 게이머에겐 신선함을 말이다. 어찌 보면 레트로 게임, 장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누군가에겐 레트로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겐 새로운 게이밍일 수 있다. 인디 개발자들의 레트로 장르 경의와 찬사는 게임 과거 게이밍과 현대 게이밍을 이어주는 가교를 만들어 주고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Three Trends in Western AAA Games Research: Creators, Culture, and Cash.

    The AAA space continues to be one where art, industry, and culture coalesce. What games research attunes us to most is that each of these elements, while moving forward, seems to be stuck in stasis where the problems of the past remain unresolved. In the pleasure of the next big release, the anticipation of the next hype cycle, and the excitement of the next awards ceremony, it’s clear that AAA development is no-doubt heading full-bore into a future of even greater artistic heights, but these heights come with even more troubling extremes. Despite interventions on the part of games journalists and academics, and mobilization attempts from game workers, long-standing and pervasive issues with the legitimacy of games, and the exploitation of workers and players alike, persist. Academic work on the AAA space shines a spotlight on the issues that continue to go unresolved while major gaming studios propel forward in the perpetual quest for artistic recognition, prestige, and the almighty dollar. < Back Three Trends in Western AAA Games Research: Creators, Culture, and Cash. 10 GG Vol. 23. 2. 10. On December 8th, 2022, the 9th iteration of The Game Awards, a Hollywood-style awards show “celebrating the best in games,” streamed live to 103 million viewers. 1) Not unlike the Oscars, The Game Awards is an amalgamation of industry recognition for games large and small, a validation of the artistic or technical merits of games, and an indicator of the cultural spaces games are being marketed towards. While The Game Awards does recognize smaller games, it is largely part of the cultural apparatus of AAA marketing and recognition for the most recent blockbuster games. Indeed, the Game Awards have been a hype and marketing machine, where numerous awards are given out rapid-fire style without ceremony or acceptance speeches to make room for trailers, first-looks, and gameplay premieres, some of which include elaborate musical presentations, or lead-ins from super-star creators like Hideo Kojima, famous for the Metal Gear franchise (Konami), and more recently Death Stranding (Kojima Productions, 2019). The largest AAA titles such as last year’s God of War: Ragnarok (Sony, 2022) and Game of the Year Winner Elden Ring (FromSoftware, 2022) get the lion’s share of the screen time, and while smaller games are not forgotten, it is mainly a night to celebrate and market big budget and mainstream games. Not inconsequentially, the night ended with a now-infamous young man crashing Hidetaka Miyazaki’s acceptance speech - another reminder that no matter how much we dress up mainstream games culture there is a level of meme-driven social deviance bubbling beneath the artifice. This confluence of socio-economic forces as seen through the pageantry of The Game Awards is emblematic of three linked trends within Western research on the AAA game space: First is the creative domain and the artistic merits of big budget games. Second is the cultural domain, which is concerned with both the studio spaces and work environments that produce and ship these large-scale projects, which tie into the cultures of play that grow out of communities of players. Third is the monetary element through the marketing and monetization of games as premium entertainment experiences. This article is a brief introduction to a small portion of the discourse around these trends in the context of AAA games. To begin with the creative and artistic merits of games, it’s important to understand that a great deal of media and scholarly attention on games into the late 1990s and early 2000s focused on the harms and benefits of games on society, with the largest emphasis on the impact of violent gaming content on children and youth. 2) While many players and some scholars of this time implicitly understood games as having artistic value, there was a prevalent current of thought that saw games as a lesser media form. As Felan Parker notes, the discussion around games and their artistic merit came about in the wake of American film critic Roger Ebert’s notorious, and still oft-quoted comments, “that games can never be art,” between 2005 and 2010. 3) More attention within journalism and academic spaces was reserved for this debate in the wake of these comments, and one strategy to uplift games from this ‘non-art’ assumption was to elevate game designers as auteur figures, not unlike world-famous Hollywood directors who are able to leave a distinct artistic flourish on their games. 4) This trend is still visible through the elevation of key directors at The Game Awards just a few months ago. AAA games, due to their high visibility and large budgets for production and marketing, maintain a status as flagship games for new consoles. They are also more likely to be games that push the technological limits of design, and so dominated the discussion of artistic games until the indie boom of the early 2010s. Brendan Keogh notes that AAA game studios operate under large publishers most interested in making profits, and so many games designed within a AAA framework have traditionally been conventional or risk-averse. 5) Yet, the legend of the videogame auteur continues, and games like Kojima’s Death Stranding (Kojima Productions, 2019) can make unconventional choices regarding gameplay and aesthetic, while ‘indie’ games make up a much smaller portion of games discourse than they did through the 2010s. In part, AAA has both been influenced by and co-opted elements of ‘Indie’ design and aesthetic. 6) There are certainly familiar AAA games that do not defy convention with any regularity, such as annual sports releases or FPS franchises like Call of Duty (Activision). Awards season, and to a larger extent games journalism, has adapted to celebrate a form of AAA game that takes the familiar tropes and genre conventions of yesteryear’s big budget titles while providing the slightest bit of something new or challenging to our collective sensibilities, thereby offering a hint of indie spirit that upholds the idea that these titles are the products of auteurs. In part because the ‘are games art’ debate is still alive in popular culture, players and the industry support this arrangement because it seems to validate gaming as an activity, while elevating the cultural cache of games which will ultimately sell more copies and grow the consumer base. The inner workings of the AAA studio space are unfortunately lost in the emphasis of the auteur figure, but this has also been taken up in academic work on AAA games. There are two prominent topics when thinking about AAA work culture: overwork and the gendered work space. An early piece on overwork in the games industry was written by Dyer-Witheford and de Peuter in 2006, and examined labor exploitation, burnout, worker turnover, and struggles to unionize within this extreme work culture. 7) Twelve years later, in 2018, former Kotaku writer Jason Schreier posted an exposé on the overwork, or ‘crunch culture’ within Rockstar Games as the company was finishing work on Red Dead Redemption II (Rockstar Games, 2018). 8) Despite being a known issue within big budget game development for nearly two decades, crunch persists and continues to be a key topic of analysis, particularly as scholars explore possibilities for unionization and workers rights. 9) Related to this is the gender divide within game studios. Drawing from a 2013 Game Developer’s Magazine survey, deWinter and Kocurek point out that “the gendered disparity in salary is significant in all areas of game employment except programming and engineering (which is 96 percent male).” 10) Contrary to assumptions that this is because women to not play games or are averse to entering the games industry, deWinter and Kocurek found that women were far more likely to be alienated by the workplace culture that has itself been influenced by the toxic and misogynist elements of game culture, and as a consequence would burn out more quickly and leave the industry. 11) Much of the work written on games culture indirectly engages with AAA games precisely because of this feedback loop between the culture and the workplace. Critically, any change to either the player culture or work culture of gaming needs to occur simultaneously between the labor and leisure spaces of gaming culture. Recently much of the focus on AAA games, and gaming in general, has been on business models and monetization. In particular, the prevalence of microtransactions, loot boxes, and battle passes. While these tend to be associated with mobile and free-to-play games, there is no set definition for AAA games and so there is no inherent exclusion of a game from the AAA category based on a free-to-play model. As Daniel Joseph’s work on battle passes shows, big-budget games produced by large studios, such as Apex Legends, DOTA 2, or Fortnite, can use free-to-models and microtransactions as the primary method of monetizing their games. 12) Importantly for Joseph, these models effectively turn games into shopping platforms that obfuscate their primary goal of extracting money from the consumer. 13) Exactly how predatory these models are becoming is of great concern, as is the way microtransactions change what kinds of AAA games are being made as there is a much larger emphasis on the service, or seasonal model of games precisely because they can make more money off of their players. It isn’t just a question of exploitation, but how these monetization models change the way AAA games are made and how they’re consumed. Building on the labor issues within AAA design, this also is creating new forms of crunch, as Joseph points out that Fortnite developers “...reported exhausting 100-h work weeks due to the massive success of the game and the drive to constantly be developing for the next season and battle pass.” 14) The AAA space continues to be one where art, industry, and culture coalesce. What games research attunes us to most is that each of these elements, while moving forward, seems to be stuck in stasis where the problems of the past remain unresolved. In the pleasure of the next big release, the anticipation of the next hype cycle, and the excitement of the next awards ceremony, it’s clear that AAA development is no-doubt heading full-bore into a future of even greater artistic heights, but these heights come with even more troubling extremes. Despite interventions on the part of games journalists and academics, and mobilization attempts from game workers, long-standing and pervasive issues with the legitimacy of games, and the exploitation of workers and players alike, persist. Academic work on the AAA space shines a spotlight on the issues that continue to go unresolved while major gaming studios propel forward in the perpetual quest for artistic recognition, prestige, and the almighty dollar. 1) Zheng, Jenny. “The Game Awards 2022 Received Over 103 Million Views, Sets New Viewership Record.” Gamespot. December 16th, 2022. 2) Ivory, James D., “A Brief History of Video Games.” The Video Game Debate: Unraveling the Physical, Social, and Psychological Effects of Digital Games. Edited by Rachel Kowert and Thorsten Quandt.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6, 16-17. 3) Parker, Felan. “Roger Ebert and the Games-as-Art Debate.” Cinema Journal 57, no 3 (2018):77-79. 4) Ibid., 95-96. 5) Keogh, Brendan. “Between Triple-A, Indie, Casual, and DIY: Sites of Tension in the Videogames Cultural Industries.” The Routledge Companion to the Cultural Industries. Edited by Kate Oakley and Justin O’Connor.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5. 153-154. 6) Lipkin, Nadav. “Examining Indie’s Independence: The Meaning of ‘Indie’ Games, The Politics of Production, and Mainstream Co-optation.” Loading… The Journal of the Canadian Game Studies Association 7, no 11 (2012): 8-15. 7) Dyer-Witheford, Nick, and de Peuter, Greig. “‘EA Spouse’ and the Crisis of Video Game Labour: Enjoyment, Exclusion, Exploitation, Exodus.” Canadian Journal of Communication 31, no 3 (2006): 599-617. 8) Schreier, Jason. “Inside Rockstar Games’ Culture of Crunch. Kotaku. October 23rd, 2018. 9) Cote, Amanda, and Harris, Brandon, C. “‘Weekends Became Something Other People Did’: Understanding and Intervening in the Habitus of Video Game Crunch.” Convergence: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New Research into Media Technologies 27, no.1 (2021): 161-176. 10) deWinter, Jennifer and Kocurek, Carly. “” Gaming Representation: Race, Gender, and Sexuality in Video Games. Edited by Jennifer Malkowski and Treaandrea M. Russworm.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7, 65. 11) Ibid. 12) Joseph, Daniel. “Battle Pass Capitalism.” Journal of Consumer Culture 21, 1 (2021):68-83. 13) Ibid., 81. 14) Ibid.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북리뷰]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중요한가?

    이 책은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게이머, 게임 캐릭터, 게임 산업 관련 종사자 앞에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과 불편함,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순히 ‘이런 사례가 있고 그래서 나쁘다’는 식의 단편적인 나열이 아니라 앞서 밝힌 문제들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연 지금까지 여성을 위한, 여성을 그린, 여성에 의한 게임이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 Back 13 GG Vol. 23.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uhyung Shin Conducts research mainly on serious games and the places where serious games are played. Also takes part in the game archiving project at the Ritsumeikan Center for Game Studies (RCGS).

  • 제5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자 발표

    제5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는 총 123편의 응모작이 접수되었습니다. 최종 심사를 거쳐 3편의 작품을 이번 공모전의 당선자로 선정해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 Back 31 GG Vol. 26. 10. 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음식, 요리 - 인류의 오래된 문화행위는 디지털공간에서 새롭게 의미지어지는가

    오락실에서 <닌자 거북이>를 붙들어 본 이들은 너덜너덜해진 주인공 닌자거북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피자 한 조각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깎여나가던 체력이 어디선가 굴러나온 피자를 밟는 순간 차오르곤 했다.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회복 메커니즘은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인데, 게임 속 피자를 그저 밟았다고 적에게 두들겨맞아 상처입은 체력이 회복된다는 맥락은 뭔가 앞뒤가 안맞기 때문이다. < Back 음식, 요리 - 인류의 오래된 문화행위는 디지털공간에서 새롭게 의미지어지는가 30 GG Vol. 26. 6. 10. 디지털게임은 음식을 어떻게 다뤄 왔으며, 우리는 그 화면을 통해 무엇을 보고 있는가 오락실에서 <닌자 거북이>를 붙들어 본 이들은 너덜너덜해진 주인공 닌자거북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피자 한 조각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깎여나가던 체력이 어디선가 굴러나온 피자를 밟는 순간 차오르곤 했다.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회복 메커니즘은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인데, 게임 속 피자를 그저 밟았다고 적에게 두들겨맞아 상처입은 체력이 회복된다는 맥락은 뭔가 앞뒤가 안맞기 때문이다. 시청각만으로 굴러가는 디지털게임의 가상세계에서 맛과 향이 중심을 이루는 음식과, 그 음식을 먹는 행위는 뭔가 안 맞는 듯 하면서도 게임의 역사 속에서 때로는 주역으로, 때로는 조연으로 언제나 함께 해 온 바 있다. 마찬가지로 맛과 향의 전달이 불가능한 영상매체에서 “먹방”이라는 이름의 콘텐츠가 흥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수 있겠지만, 과정의 매체인 게임 속에서 이 먹는 행위와 그 먹는 대상은 좀더 큰 부피를 차지한다. 게임에서 먹는다는 행위는 무엇인가. 화면 속의 사과 한 알과 통닭 한 마리, 정성껏 차려낸 한 상의 밥은 플레이어의 입으로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그를 대신하는 무언가의 역할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기술이 두꺼워지고 장르가 갈라지는 동안 디지털 공간에 그려진 이 먹는 일은 함께 발전해 왔고, 무엇보다 바닥에 놓인 것을 줍는 일에서 무언가를 손수 짓는 일 쪽으로 슬그머니 무게를 옮겨온 바 있다. 줍고 메우는 음식 — 닿으면 사라지는 것 초창기 디지털게임에서 음식은 그저 화면 어딘가에 떨어져 있었고, 플레이어가 할 일은 거기에 닿는 것뿐이었다. 이를테면 ‘뱀 게임’으로 불리는 <니블러>류가 대표적이다. 화면을 기어다니는 뱀이 점점이 놓인 먹이를 삼킬 때마다 몸이 한 칸씩 길어지는데, 먹는다는 게 곧 쌓는다는 것임이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규칙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저 움직이는 막대기가 다른 색 도트에 가서 닿는다는 시각이미지이지만, 이는 ‘뱀’과 ‘먹이’라는 명명을 통해 ‘먹는 행위’를 거쳐 직관적인 이해에 도달한다. 여기 더해 먹이를 먹으면 몸길이가 그만큼 늘어나고, 그 늘어난 길이로 인해 결국 게임오버가 된다는 규칙은 먹는다는 행위가 몸을 키운다는 사실과 연결되며 도트 단위의 움직임을 좀더 먹는 행위에 가깝게 이해시킨다. * 구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스네이크 게임. 오브젝트와 충돌시 점점 길어지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라는 규칙은 사과를 먹는 뱀으로의 은유를 통해 게임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하필 사과와 뱀이라는 창세기적 모티프도 생각해봄직하다. 도트에 충돌하면 무언가를 먹는다고 이해하는 방식은 뱀이 먹이를 먹는 것에 머물지 않고 확장되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아케이드 게임 <손손>은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보너스 점수를 획득하는 오브젝트로 다양한 간식류를 등장시켰다.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오브젝트에 충돌시키는 방식이었지만, 좀더 디테일하게 오브젝트를 음식으로 설정함으로써 우리는 점수를 획득한다가 아닌 ‘먹는다’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방식은 <버블보블>에 이르면 아예 게임을 간식 파티로 만드는데, 간단한 과일부터 시작해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사탕류를 지나 대형 보너스 점수는 거대한 간식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연출을 통해 게임에서 무언가를 획득하는 일에 음식을 강하게 연관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90년대 벨트스크롤 액션 시대에 들어 음식은 다른 일을 떠맡는다. 이 무렵부터는 적과 부딪히면 바로 한 번의 기회가 소진되는 방식이 아닌 체력 게이지를 통해 기회 상실을 점감하는 방식의 게임들이 나타나는데, 벨트스크롤 장르가 대표적이다. 체력 게이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음식과 먹는 행위는 깎인 체력을 채우는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파이널 파이트>에서 길가의 드럼통이나 공중전화 박스를 부수면 통닭이며 사과가 굴러나와 주인공의 체력을 채워주곤 했는데, 이 또한 앞서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해보면 다소 엉뚱한 구석을 갖고 있다. 적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체력이 깎인 주인공을 치료하는 방법은 사실 통닭을 뜯는 것이 아니라 약을 바르고 깁스를 하고 밴드를 붙이는 일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 <파이널 파이트>에서 체력 게이지가 빠진 캐릭터는 음식 오브젝트 옆에서 버튼을 누르면 음식을 '먹는'다. 왜 드럼통을 부수면 안에서 바베큐가 나오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우리는 거기까지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먹어서 회복된다는 개념은 따지고 들면 응급처치라기보다 한참 느긋한 보양에 가까운 일이다. 식약동원, 뭔가를 먹는 것이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이 개념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있는 덕분에 우리는 음식에 가서 부딪히면 체력이 차오르는 현장에 딱히 토를 달지 않는다. 디지털게임의 초창기부터 음식은 게임의 규칙과 굉장히 강하게 결부되어 가상공간 안에 자리해 왔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음식에 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초적 관념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가상공간에 펼쳐지는 규칙은 결국 현실의 누군가가 플레이하므로, 대부분의 규칙은 현실에서 익숙한 무언가의 재현일 수 밖에 없는데 음식이라는 모티프는 각각의 상황에서 규칙을 설명하기 위한 굉장히 유용한 보편 인식이었다. 요리의 등장 — 먹기 앞에 들어선 한 단계 아주 엄밀한 분석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게임 속의 음식이 처음부터 완성된 음식이 아닌 무언가 재료를 구해 만들어내는, 이른바 요리의 과정을 품게 되는 데에는 각각의 게임이 갖는 플레잉타임의 역할 또한 적지 않아 보인다. 세이브/로드 기능을 기반으로 수십, 수 백 시간을 이어가는 롤플레잉 게임과 이를 서버 기반으로 준영속적으로 확장한 온라인 게임 시대에 오면 게임 속 음식은 완성품보다도 그 만드는 과정 자체를 재현함으로써 추가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요리의 결과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서 플레이어는 들판을 쏘다니며 캐낸 버섯과 고기, 과일을 요리한다. 추위를 견디게 해주거나 한동안 끌어올려 주는 버프가 이들 요리의 기능이며, 딱히 정답 레시피를 게임 안에서 좀처럼 직접적으로 일러주지 않는 덕분에 별도 공략에 의존하지 않는 많은 플레이어는 이것저것 냄비에 던져 넣어 보다가 더러 정체불명의 '수상한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과정을 거친다. 뭘 넣으면 뭐가 되는지를 몸으로 더듬어 익혀 가는 이 과정은, 요리라는 게 본래 숱한 시행착오가 쌓여 만들어진 지식이었음을 슬며시 일깨운다. *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 나오는 레시피 공략 모음. 체력회복과 버프를 가진 요리들의 재료와 효과를 정리한다. 출처: 디시인사이드 닌텐도 마이너 갤러리. 다양한 롤플레잉 기반 게임들에서 요리는 이제 빼놓기 어려운 ‘생활 콘텐츠’로 불린다. ‘자연’이라 불리는 월드에서 채집과 농업, 수렵을 통해 획득한 재료는 ‘자연’월드와 대척점을 이루는 플레이어들의 ‘도시’ 혹은 공동체 안에서 요리가 되어 가상주체인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진일보에 기여한다. 이 대목에서 게임 속 음식은 비로소 식약동원의 자리에 올라선다. 먹어서 강해지되, 그 강함을 얻으려면 먼저 무언가를 기르거나 거둔 뒤 다듬어 지어야 한다는 것이 함께 작동한다. 주워서 메우던 음식이 길러서 짓는 음식으로 바뀌는 이 순간은 플레이어를 먹는 자로서만의 의미를 넘어 요리하는 자로서의 존재감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먹지 않으면 죽는 음식 — 생존과 식량의 재현 단순히 부딪히는 오브젝트에서 시작해 자연의 산물을 인공적으로 가공해 삶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바꿔내는 요리의 과정을 품게 된 게임 속 음식과 요리는 또다른 규칙과 만나면서 음식과 요리가 가졌던 가장 오래된 질문으로 되돌아가는데, 바로 ‘먹지 않으면 죽는다’이다. 사실상 서바이벌이라는 장르를 담는 모든 게임의 핵심 규칙은 먹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아니 애초부터 서바이벌 자체를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마존 정글에 떨어진 <그린 헬>의 플레이어는 허기 수치 하나만 들여다봐선 살아남지 못한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에 수분까지 네 갈래의 영양을 따로 챙겨야 하고, 고기만 내리 먹다 보면 탄수화물이 바닥을 긁는다. 날고기를 덥석 삼키면 기생충이 들러붙고 정신력이 깎이며, 그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몸은 환각과 병으로 주저앉는다. 눈 덮인 캐나다 산야를 헤매는 <더 롱 다크>도 사정이 비슷하다. 식재료마다 신선도가 매겨져 있어 상한 고기나 날것을 함부로 입에 넣으면 식중독을 각오해야 하고, 불에 익히는 일은 그 위험을 낮추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 기술로 제시된다. 이런 게임에서 요리란 능력치를 위한 선택지 같은 게 아니라 날것에 도사린 위험을 길들여 겨우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절박한 손질로 그려진다. 이는 개인으로서의 플레이어가 아닌 사회, 집단의 생존을 전제로 하는 운영시뮬레이션 영역에 들어오면 좀더 무게감을 갖는다. <배니쉬드>나 <안노> 시리즈에서 음식은 식량이라는 이름으로 이해된다. 대규모 사회집단이 생명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먹거리를 가리키는 식량은 좀더 사회적 개념이 되는데, 이 때도 요리의 개념은 여전히 작동한다. 서구권의 식량을 모티프로 삼는 많은 게임들에서는 밀을 경작하고 수확한 뒤 밀가루로 만들고, 이를 다시 빵으로 굽는 과정이 반드시 그려진다. 간단한 허기 해결에 머무르던 고깃덩어리는 향신료를 덧붙여 요리로 거듭나며 기분이나 행복도 같은 버프를 만들어낸다. 버프로서의 의미는 기본 전제인 ‘먹지 않으면 죽는다’와 어우러지며 복합적으로 게임의 분위기를 긍정적, 부정적 방향 모두로 이끌어가며, 사실상 이들 게임에서 식량과 요리는 게임의 핵심 뼈대로 기능한다. 앞 단계의 게임들이 음식을 예쁘고 푸짐한 무엇으로 그렸다면, 생존 게임에 이르러 음식은 다시 촌각을 다투는 생의 조건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이게 그냥 출발점으로의 복귀는 아니다. 줍던 음식에서 짓던 음식을 거쳐 돌아온 이 식량은, 사람이 그래 왔듯 익히고 갈무리하고 손질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안전한 식량이 된다는 사실까지 함께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음식을 이해한다는 것 닿기만 하면 되던 음식은 깎인 몸을 메우는 회복과 보양으로서의 의미를 보강했고, 손수 재료를 가져다 만들어 먹는 음식이 되었다가, 먹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필수재이자 사회적 자원으로도 나타난다. 이 흐름은 한편으로는 인류 문명이 먹거리를 대해 온 흐름과도 유사한 경로를 보인다. 닥치는 대로 주워 먹던 먹이에서 갈무리해 쟁여 두는 식량으로, 다시 익히고 차려 내는 음식으로 건너온 경로는 디지털공간에서 유사한 흐름으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레비-스트로스가 날것과 익힌 것의 대립으로 정리한, 익힌다는 행위가 곧 자연을 문화로 바꾸는 사람만의 표지라던 그 통찰은 디지털게임의 발전사 안에서 한 번 더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레비-스트로스가 음식에서 문화를 꺼내드는 일은 게임 속에 재현된 음식과 요리들을 익숙하게 만나 온 이들에게도 익숙한 흐름일 것이다. 사실 음식이라는 이름 자체에는 이미 생물학적 본능의 해결을 넘어선, 층층이 쌓아 온 문화의 두터움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구세주의 살과 피를 빵과 술로 일컬었던 것처럼, 하늘과 땅에 올리는 제사에 반드시 ‘정성스런’ 음식을 차리는 과정이 들어있던 것처럼 음식과 요리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그 위에 쌓아올린 오랜 문화의 적층이다. 그리고 디지털게임에 재현된 음식과 요리 또한 같은 맥락에서 계속 새로운 의미를 쌓아 나간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즉시효과를 갖는 물약류와 달리 느린 회복과 버프의 의미로 작동하던 음식은 개별 음식에서 한상차림으로 업그레이드되며 레이드 전에 공대원이 다같이 모여 벌이는 의례의 형태를 갖게 되었고, 가상공간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가공의 요리들은 도리어 현실의 요리로 침범해 들어오며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깟 디지털 덩어리로 만들어진, 맛도 향도 없이 그저 이름만 음식이라 붙여졌을 뿐인 것이라고 부르기엔 그 디지털 덩어리가 오고 가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리 납작하지만은 않다. 세상 사는 일이 온통 먹는 일이다. 나는 가끔 농담조로, 텔레비전에서 시간 뜰 때 자주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도 먹방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살기 위해 달리는 톰슨가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다큐의 주인공 격인 사자나 하이에나의 입장에서 이건 분명 먹는 이야기다. 먹는 이야기가 생물학적 욕구를 넘어 사회문화적 의례로 자리잡았고, 우리는 그렇게 생겨난 새로운 의미들을 디지털게임에 옮기면서 다시금 또다른 의미의 상차림을 경험한다. 디자이너가 그려낸 이 의미들은 다시금 식탁에 앉은 플레이어들로부터 새로운 의미로 탄생한다. 먹는 이야기가 먹는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았듯, 게임 속에 그려낸 먹는 이야기 또한 결코 먹는 이야기에 머무르지는 않아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Disco Music as the Vestige of a Failed Revolution: Disco Elysium

    The title of Disco Elysium, a highly controversial role-playing game that came out in 2019, does not tell you much about what kind of a game it is or what it's about. In fact, it's not easy to deduce why the word "disco" is included in the title of the game when its story centers around a derelict alcoholic detective investigating a murder in the port city Revachol, a place of mixed industrial prosperity and dilapidation. < Back Disco Music as the Vestige of a Failed Revolution: Disco Elysium 09 GG Vol. 22. 12. 10. - This post contains a significant spoiler of Disco Elysium. Please read at your own discretion if you haven't played the game. - **You can see a Korean version at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match=id:91 The title of Disco Elysium, a highly controversial role-playing game that came out in 2019, does not tell you much about what kind of a game it is or what it's about. In fact, it's not easy to deduce why the word "disco" is included in the title of the game when its story centers around a derelict alcoholic detective investigating a murder in the port city Revachol, a place of mixed industrial prosperity and dilapidation. In the game, disco seems to be a metaphor for the somewhat outdated mindset of the hero. In Revachol, disco represents retro music and a culture of nostalgic sentiments about the past, similar to what it is today in the real world. There are times when the middle-aged detective enjoys some disco music from his glory days with fond reminiscence, but the current trends in music have long since moved on from disco, as evidenced by a certain event in the game. At a glance, disco seems to have been used as a trivial prop to highlight the generation of the hero. Then, why is it included in the game's title? As "Elysium" means some kind of a plane of existence or universe, the game title can be interpreted as "the world of disco." What does this game about uncovering the murder at a decrepit harbor have to do with disco? Revachol, the City of a Failed Revolution The events of Disco Elysium mainly take place in the harbor city of Revachol, and a wall in the Martinaise district of this city features a lot of bullet holes. The player has the option to visualize the scene of a mass execution of communards against this wall, which is a reference to the Communards' Wall of the Paris Commune. In the game, Revachol is a city state that saw great prosperity as a central hub of trading and finances in the whole world of Elysium, comprised of various groups of islands. With the Dockworkers' Union dominating the city, the rapidly growing economic disparity and similar problems led to a massive communist revolution. While the revolution successfully took over Revachol, its victory was short-lived when outside forces formed a Coalition of Nations to suppress the revolution through military conflict as they recognized the value of Revachol as an international trading hub. In sum, the former world capital of Revachol had been liberated through a significant revolution and was promptly conquered by outside forces. As a result, you can see both parts of its former glory and the devastation of conquest in this city. This revolution by the people quelled by external military forces seems to mirror the Paris Commune, a real-life example of such a movement during the era of imperialism in our own history. The events of Disco Elysium take place against the backdrop of remnants from a failed revolution. Thus, Revachol is presented as a city of a failed revolution where old royalists and republicans who used to fight each other in their youth now play ball together, and the Dockworkers' Union, who played a central role in the revolution, has become an oppressive mob in cahoots with the government. The music of the 1970s, disco At some point in the middle of the game, you can encounter a group of kids hanging out in a tent near a ruined church building. The ensuing dialogue with these druggies listening to hard-core music reveals just how much the hero loves disco music. To understand the significance of disco as an old-fashioned genre of music against the background of a city of a failed revolution, we should first think back on what disco in real-life means to us. Disco is a genre of music that was popular in the 70s and 80s of the 20th century. The name comes from the French word discothèque. In English, it means "library of phonograph records." This genre gained much popularity as dance music as disco came to refer to a place where you could dance to recordings of music when traditional dance venues generally involved live music. By offering a more economical space for dancing, discotheques quickly became popular in marginal areas like the slums and slowly rose to become the dominant dance music genre, replacing go-go and swing dancing. Disco's popularity reached its peak in the mid-1970s, of which a prime example is the movie Saturday Night Fever starring John Travolta. Travolta's disco dance moves, which were later reprised as the human male dance in World of Warcraft, became an icon of the heyday of disco in 1977. This popularity of disco even reached South Korea, manifesting in particular dance venues called discotheques and their distinct variants colatecs. For teenagers who weren't allowed to enter such clubs, roller skating rinks provided disco music with roller skates instead of alcohol. (Hence, a compilation album of 80s disco music in Korea is named "Memories of Skating Rinks.") Disco and the Fall of the Individual and Economic Prosperity After reaching the climax of its popularity in 1977, disco fever started to cool off. The decline of disco even led to a rally of Disco Demolition Night in 1979. From its emergence at the end of the 60s to its heyday stretching into the 80s, the history of the rise and fall of this genre contains many aspects that seem relevant to society as a whole at the time. In the 1970s, when disco boomed, the economic growth in the US was starting to slow down. The economic expansion in the US after World War II was wrapping up its golden age in the 1960s and came to a halt with the 1973 oil crisis, leading to a recession. As oil prices rose, the high-emission and poor-mileage cars of the US gave way to the high-efficiency and high-mileage cars manufactured in newly industrialized countries like Japan, which in turn contributed to the fall of cities like Detroit, which used to be the heart of the American automotive industry. These circumstances greatly affected the lives of industrial laborers in the US. Automotive plants that had relied on highly trained laborers were shut down, and their former full-time workers started taking part-time gigs such as washing cars and flipping burgers. Labor unions became less and less influential in unifying the workers, and the overall quality of employment started to drop, ushering in new trends that were totally different from the 60s. The era of hippies, where people were vocal about their demands for tangible social changes, such as the protests of 1968, was coming to an end. Those who had once supported and called for revolutions, anti-war movements, and peace donned immaculate suits and became businessmen. They must have looked like hypocritical boomers who only nominally preached revolution and ended up mingling with mainstream society in the eyes of the younger generations. With the living conditions becoming relatively harsher than in the past, the individuals grew more and more apart, and those in their 20s in the 1970s started to become more interested in their own individual lives rather than macroscopic social changes. This socioeconomic turn of events at the time might have played a role in ending the age of rock and ushering in the era of disco. Revolution and Disco Disco Elysium portrays how the changes in the socioeconomics and the working conditions of the young laborers in the 1970s were related to the rise of disco. The middle-aged hero is from a generation that grew up listening to disco music in an era of a failed revolution. Now, he is no longer in his prime, and even disco music is considered a vestige of the past. Having Revachol in the game be the place of a failed revolution where disco used to be popular but is no more demonstrates the relationship between revolution and music. This relationship between revolution and music can also be found in the history of Estonia, where the game was developed. As one of the three Baltic states, Estonia had been annexed into the Soviet Union after World War II but consistently sought independence while suffering the oppression of the USSR. In 1989, Estonia joined Latvia and Lithuania to form a human chain over 600 km (about 373 miles) and sang songs to protest the Soviet occupation, an event called the Singing Revolution. Given this historical background, it is not surprising that this unique link between revolution and music is replicated in the game. Thus, the disco in Disco Elysium is not a random prop but a central element of the worldbuilding of this game. Disco was the music that accompanied the era of those who fell apart as individuals after a failed revolution. The hero of the game is someone who spent his youth watching the previous generation after that failure and is now past the prime of his own life and moving on to be forgotten in history. In a gloomy city still full of remnants of the failed revolution, the passion of revolution must have looked like a distant memory of the past to the hero and those around him in the present. The Revolution May Fail, but That Doesn't Mean It's Over However, the game also offers a counterpoint by revealing the mythic creature Insulindian Phasmid, which had been the goal in a side quest at the end of the game. The side quest of going after the mystical, gigantic cryptid that nobody is even sure of its existence may at first seem to be an impossible task, like chasing a rainbow. However, the reveal and message of the Insulindian Phasmid at the very end of the game is a critical culmination of the theme of revolution and disco. Can you really call the efforts of the revolutionists who even sacrificed their own lives to change their lives and the world, which we've so far been calling the failed revolution, nothing more than a failure? The moment when the hero gets to see the fabled Insulindian Phasmid with his own eyes at the very end of the game poses this question: Are the idea humanity calls revolution and has been endlessly chasing even though we know we'll never reach it and the failed steps we've taken over the course really pointless? To those of us living in the 21st century, the word revolution seems to be associated with suffering and failure. Numerous revolutions, including the Paris Commune reflected in the game and the Russian Revolution after it, and the more recent revolts in the Arab world and the Umbrella Revolution in Hong Kong, have failed in our history, where the people had to go back to their previous afflictions. However, we are also survivors who stand on the remains of all those failed revolutions over the course of human history. Also, disco may be a vestige of the dismay and frustration born out of the failures in the 1960s. Thus, Disco Elysium is set against a city of a failed revolution and deliberately includes this outdated genre of music called disco in its title to indicate that the central theme of this game is not the murder case but a history of a failed revolution. The inclusion of an old couple who devote their lives to a seemingly impossible task of discovering a mythical creature and the existence of that illusive cryptid at the end of the story asks us how we shall address the history of failure and frustration called revolution, which could also be considered an unattainable holy grail. Thus, Disco Elysium becomes a poignant question about our own era as the remnants of failed revolutions. Thus, Disco Elysium becomes a poignant self-examination of our own era as the remnants of failed revolution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KyungHyuk Lee He has been close to games since childhood, but it was not until 2015 that he started talking about games in earnest. After living as an ordinary office worker, he entered the life of a full-time game columnist, critic, and researcher through a series of opportunities. Books such as "Game, Another Window to View the World" (2016), "Mario Born in 1981" (2017), "The Theory of Game" (2018), "Wise Media Life" (2019), and "The Birth of Reality" (2022); papers such as "Is purchasing game items part of play?" (2019); "Dakyu Prime" (EBS, 2022), Gamer (KBS), "The Game Law", 2019 BC) and "Economy of Game", etc.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institute 'Dragon Lab'. (Translator) Un-So Diener Freelance translator specializing in video game localization. My first game crush was Gray Scavenger of War of Genesis II. Now, I get to experience all kinds of video games across various genres and platforms for a living. Credited in Ghostwire: Tokyo and Neo Cab.

  • 이제부터 나와 랜디 오턴을 한몸으로 간주한다—WWE 비디오 게임을 통해 온몸으로 슈퍼스타 되기

    내가 WWE 비디오 게임을 처음 접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 조금 전,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미스터 맥마흔〉이 공개되고 조금 지나서, 그리고 프로레슬링이라는 예술 형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지 반 년 정도 지나고서였다. ‘홈파티’라고 수식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20대 남성 넷이 모인 자리, 친구의 플레이스테이션 컬렉션에서 내가 선택한 파티 게임이 〈WWE 2K22〉였다 < Back 22 GG Vol. 25.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bin Yoon Became a gamer through a bond with the Pokémon series that began in 2007, though in 2023 declared a breakup with it. Even so, the line of output text from the Pokémon games—"The sunlight turned harsh!"—remains a life motto. Has lived a life of making fanzines whenever a new favorite game comes along, but since 2024 has taken up game criticism as a new language for appreciation. Sometimes writes and draws fan works under the handle "Ru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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