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Back

음식, 요리 - 인류의 오래된 문화행위는 디지털공간에서 새롭게 의미지어지는가

30

GG Vol. 

26. 6. 10.

디지털게임은 음식을 어떻게 다뤄 왔으며, 우리는 그 화면을 통해 무엇을 보고 있는가


오락실에서 <닌자 거북이>를 붙들어 본 이들은 너덜너덜해진 주인공 닌자거북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피자 한 조각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깎여나가던 체력이 어디선가 굴러나온 피자를 밟는 순간 차오르곤 했다.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회복 메커니즘은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인데, 게임 속 피자를 그저 밟았다고 적에게 두들겨맞아 상처입은 체력이 회복된다는 맥락은 뭔가 앞뒤가 안맞기 때문이다.


시청각만으로 굴러가는 디지털게임의 가상세계에서 맛과 향이 중심을 이루는 음식과, 그 음식을 먹는 행위는 뭔가 안 맞는 듯 하면서도 게임의 역사 속에서 때로는 주역으로, 때로는 조연으로 언제나 함께 해 온 바 있다. 마찬가지로 맛과 향의 전달이 불가능한 영상매체에서 “먹방”이라는 이름의 콘텐츠가 흥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수 있겠지만, 과정의 매체인 게임 속에서 이 먹는 행위와 그 먹는 대상은 좀더 큰 부피를 차지한다.

게임에서 먹는다는 행위는 무엇인가. 화면 속의 사과 한 알과 통닭 한 마리, 정성껏 차려낸 한 상의 밥은 플레이어의 입으로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그를 대신하는 무언가의 역할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기술이 두꺼워지고 장르가 갈라지는 동안 디지털 공간에 그려진 이 먹는 일은 함께 발전해 왔고, 무엇보다 바닥에 놓인 것을 줍는 일에서 무언가를 손수 짓는 일 쪽으로 슬그머니 무게를 옮겨온 바 있다.



줍고 메우는 음식 — 닿으면 사라지는 것


초창기 디지털게임에서 음식은 그저 화면 어딘가에 떨어져 있었고, 플레이어가 할 일은 거기에 닿는 것뿐이었다. 이를테면 ‘뱀 게임’으로 불리는 <니블러>류가 대표적이다. 화면을 기어다니는 뱀이 점점이 놓인 먹이를 삼킬 때마다 몸이 한 칸씩 길어지는데, 먹는다는 게 곧 쌓는다는 것임이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규칙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저 움직이는 막대기가 다른 색 도트에 가서 닿는다는 시각이미지이지만, 이는 ‘뱀’과 ‘먹이’라는 명명을 통해 ‘먹는 행위’를 거쳐 직관적인 이해에 도달한다. 여기 더해 먹이를 먹으면 몸길이가 그만큼 늘어나고, 그 늘어난 길이로 인해 결국 게임오버가 된다는 규칙은 먹는다는 행위가 몸을 키운다는 사실과 연결되며 도트 단위의 움직임을 좀더 먹는 행위에 가깝게 이해시킨다.


* 구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스네이크 게임. 오브젝트와 충돌시 점점 길어지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라는 규칙은 사과를 먹는 뱀으로의 은유를 통해 게임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하필 사과와 뱀이라는 창세기적 모티프도 생각해봄직하다.

도트에 충돌하면 무언가를 먹는다고 이해하는 방식은 뱀이 먹이를 먹는 것에 머물지 않고 확장되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아케이드 게임 <손손>은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보너스 점수를 획득하는 오브젝트로 다양한 간식류를 등장시켰다.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오브젝트에 충돌시키는 방식이었지만, 좀더 디테일하게 오브젝트를 음식으로 설정함으로써 우리는 점수를 획득한다가 아닌 ‘먹는다’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방식은 <버블보블>에 이르면 아예 게임을 간식 파티로 만드는데, 간단한 과일부터 시작해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사탕류를 지나 대형 보너스 점수는 거대한 간식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연출을 통해 게임에서 무언가를 획득하는 일에 음식을 강하게 연관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90년대 벨트스크롤 액션 시대에 들어 음식은 다른 일을 떠맡는다. 이 무렵부터는 적과 부딪히면 바로 한 번의 기회가 소진되는 방식이 아닌 체력 게이지를 통해 기회 상실을 점감하는 방식의 게임들이 나타나는데, 벨트스크롤 장르가 대표적이다.


체력 게이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음식과 먹는 행위는 깎인 체력을 채우는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파이널 파이트>에서 길가의 드럼통이나 공중전화 박스를 부수면 통닭이며 사과가 굴러나와 주인공의 체력을 채워주곤 했는데, 이 또한 앞서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해보면 다소 엉뚱한 구석을 갖고 있다. 적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체력이 깎인 주인공을 치료하는 방법은 사실 통닭을 뜯는 것이 아니라 약을 바르고 깁스를 하고 밴드를 붙이는 일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 <파이널 파이트>에서 체력 게이지가 빠진 캐릭터는 음식 오브젝트 옆에서 버튼을 누르면 음식을 '먹는'다. 왜 드럼통을 부수면 안에서 바베큐가 나오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우리는 거기까지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먹어서 회복된다는 개념은 따지고 들면 응급처치라기보다 한참 느긋한 보양에 가까운 일이다. 식약동원, 뭔가를 먹는 것이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이 개념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있는 덕분에 우리는 음식에 가서 부딪히면 체력이 차오르는 현장에 딱히 토를 달지 않는다.


디지털게임의 초창기부터 음식은 게임의 규칙과 굉장히 강하게 결부되어 가상공간 안에 자리해 왔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음식에 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초적 관념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가상공간에 펼쳐지는 규칙은 결국 현실의 누군가가 플레이하므로, 대부분의 규칙은 현실에서 익숙한 무언가의 재현일 수 밖에 없는데 음식이라는 모티프는 각각의 상황에서 규칙을 설명하기 위한 굉장히 유용한 보편 인식이었다.



요리의 등장 — 먹기 앞에 들어선 한 단계


아주 엄밀한 분석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게임 속의 음식이 처음부터 완성된 음식이 아닌 무언가 재료를 구해 만들어내는, 이른바 요리의 과정을 품게 되는 데에는 각각의 게임이 갖는 플레잉타임의 역할 또한 적지 않아 보인다. 세이브/로드 기능을 기반으로 수십, 수 백 시간을 이어가는 롤플레잉 게임과 이를 서버 기반으로 준영속적으로 확장한 온라인 게임 시대에 오면 게임 속 음식은 완성품보다도 그 만드는 과정 자체를 재현함으로써 추가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요리의 결과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서 플레이어는 들판을 쏘다니며 캐낸 버섯과 고기, 과일을 요리한다. 추위를 견디게 해주거나 한동안 끌어올려 주는 버프가 이들 요리의 기능이며, 딱히 정답 레시피를 게임 안에서 좀처럼 직접적으로 일러주지 않는 덕분에 별도 공략에 의존하지 않는 많은 플레이어는 이것저것 냄비에 던져 넣어 보다가 더러 정체불명의 '수상한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과정을 거친다. 뭘 넣으면 뭐가 되는지를 몸으로 더듬어 익혀 가는 이 과정은, 요리라는 게 본래 숱한 시행착오가 쌓여 만들어진 지식이었음을 슬며시 일깨운다.

*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 나오는 레시피 공략 모음. 체력회복과 버프를 가진 요리들의 재료와 효과를 정리한다. 출처: 디시인사이드 닌텐도 마이너 갤러리.


다양한 롤플레잉 기반 게임들에서 요리는 이제 빼놓기 어려운 ‘생활 콘텐츠’로 불린다. ‘자연’이라 불리는 월드에서 채집과 농업, 수렵을 통해 획득한 재료는 ‘자연’월드와 대척점을 이루는 플레이어들의 ‘도시’ 혹은 공동체 안에서 요리가 되어 가상주체인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진일보에 기여한다. 이 대목에서 게임 속 음식은 비로소 식약동원의 자리에 올라선다. 먹어서 강해지되, 그 강함을 얻으려면 먼저 무언가를 기르거나 거둔 뒤 다듬어 지어야 한다는 것이 함께 작동한다. 주워서 메우던 음식이 길러서 짓는 음식으로 바뀌는 이 순간은 플레이어를 먹는 자로서만의 의미를 넘어 요리하는 자로서의 존재감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먹지 않으면 죽는 음식 — 생존과 식량의 재현


단순히 부딪히는 오브젝트에서 시작해 자연의 산물을 인공적으로 가공해 삶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바꿔내는 요리의 과정을 품게 된 게임 속 음식과 요리는 또다른 규칙과 만나면서 음식과 요리가 가졌던 가장 오래된 질문으로 되돌아가는데, 바로 ‘먹지 않으면 죽는다’이다. 사실상 서바이벌이라는 장르를 담는 모든 게임의 핵심 규칙은 먹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아니 애초부터 서바이벌 자체를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마존 정글에 떨어진 <그린 헬>의 플레이어는 허기 수치 하나만 들여다봐선 살아남지 못한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에 수분까지 네 갈래의 영양을 따로 챙겨야 하고, 고기만 내리 먹다 보면 탄수화물이 바닥을 긁는다. 날고기를 덥석 삼키면 기생충이 들러붙고 정신력이 깎이며, 그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몸은 환각과 병으로 주저앉는다. 눈 덮인 캐나다 산야를 헤매는 <더 롱 다크>도 사정이 비슷하다. 식재료마다 신선도가 매겨져 있어 상한 고기나 날것을 함부로 입에 넣으면 식중독을 각오해야 하고, 불에 익히는 일은 그 위험을 낮추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 기술로 제시된다. 이런 게임에서 요리란 능력치를 위한 선택지 같은 게 아니라 날것에 도사린 위험을 길들여 겨우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절박한 손질로 그려진다.


이는 개인으로서의 플레이어가 아닌 사회, 집단의 생존을 전제로 하는 운영시뮬레이션 영역에 들어오면 좀더 무게감을 갖는다. <배니쉬드>나 <안노> 시리즈에서 음식은 식량이라는 이름으로 이해된다. 대규모 사회집단이 생명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먹거리를 가리키는 식량은 좀더 사회적 개념이 되는데, 이 때도 요리의 개념은 여전히 작동한다. 서구권의 식량을 모티프로 삼는 많은 게임들에서는 밀을 경작하고 수확한 뒤 밀가루로 만들고, 이를 다시 빵으로 굽는 과정이 반드시 그려진다. 간단한 허기 해결에 머무르던 고깃덩어리는 향신료를 덧붙여 요리로 거듭나며 기분이나 행복도 같은 버프를 만들어낸다. 버프로서의 의미는 기본 전제인 ‘먹지 않으면 죽는다’와 어우러지며 복합적으로 게임의 분위기를 긍정적, 부정적 방향 모두로 이끌어가며, 사실상 이들 게임에서 식량과 요리는 게임의 핵심 뼈대로 기능한다.


앞 단계의 게임들이 음식을 예쁘고 푸짐한 무엇으로 그렸다면, 생존 게임에 이르러 음식은 다시 촌각을 다투는 생의 조건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이게 그냥 출발점으로의 복귀는 아니다. 줍던 음식에서 짓던 음식을 거쳐 돌아온 이 식량은, 사람이 그래 왔듯 익히고 갈무리하고 손질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안전한 식량이 된다는 사실까지 함께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음식을 이해한다는 것


닿기만 하면 되던 음식은 깎인 몸을 메우는 회복과 보양으로서의 의미를 보강했고, 손수 재료를 가져다 만들어 먹는 음식이 되었다가, 먹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필수재이자 사회적 자원으로도 나타난다. 이 흐름은 한편으로는 인류 문명이 먹거리를 대해 온 흐름과도 유사한 경로를 보인다. 닥치는 대로 주워 먹던 먹이에서 갈무리해 쟁여 두는 식량으로, 다시 익히고 차려 내는 음식으로 건너온 경로는 디지털공간에서 유사한 흐름으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레비-스트로스가 날것과 익힌 것의 대립으로 정리한, 익힌다는 행위가 곧 자연을 문화로 바꾸는 사람만의 표지라던 그 통찰은 디지털게임의 발전사 안에서 한 번 더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레비-스트로스가 음식에서 문화를 꺼내드는 일은 게임 속에 재현된 음식과 요리들을 익숙하게 만나 온 이들에게도 익숙한 흐름일 것이다. 사실 음식이라는 이름 자체에는 이미 생물학적 본능의 해결을 넘어선, 층층이 쌓아 온 문화의 두터움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구세주의 살과 피를 빵과 술로 일컬었던 것처럼, 하늘과 땅에 올리는 제사에 반드시 ‘정성스런’ 음식을 차리는 과정이 들어있던 것처럼 음식과 요리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그 위에 쌓아올린 오랜 문화의 적층이다.


그리고 디지털게임에 재현된 음식과 요리 또한 같은 맥락에서 계속 새로운 의미를 쌓아 나간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즉시효과를 갖는 물약류와 달리 느린 회복과 버프의 의미로 작동하던 음식은 개별 음식에서 한상차림으로 업그레이드되며 레이드 전에 공대원이 다같이 모여 벌이는 의례의 형태를 갖게 되었고, 가상공간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가공의 요리들은 도리어 현실의 요리로 침범해 들어오며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깟 디지털 덩어리로 만들어진, 맛도 향도 없이 그저 이름만 음식이라 붙여졌을 뿐인 것이라고 부르기엔 그 디지털 덩어리가 오고 가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리 납작하지만은 않다.


세상 사는 일이 온통 먹는 일이다. 나는 가끔 농담조로, 텔레비전에서 시간 뜰 때 자주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도 먹방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살기 위해 달리는 톰슨가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다큐의 주인공 격인 사자나 하이에나의 입장에서 이건 분명 먹는 이야기다.


먹는 이야기가 생물학적 욕구를 넘어 사회문화적 의례로 자리잡았고, 우리는 그렇게 생겨난 새로운 의미들을 디지털게임에 옮기면서 다시금 또다른 의미의 상차림을 경험한다. 디자이너가 그려낸 이 의미들은 다시금 식탁에 앉은 플레이어들로부터 새로운 의미로 탄생한다. 먹는 이야기가 먹는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았듯, 게임 속에 그려낸 먹는 이야기 또한 결코 먹는 이야기에 머무르지는 않아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이경혁.jpg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경혁.jpg

​게임세대의 문화담론 플랫폼 게임제너레이션은 크래프톤의 후원으로 게임문화재단이 만들고 있습니다.

gg로고
게임문화재단
KRAFTON_Horizontal_Logo_Black.jpg
드래곤랩 로고

Powered by 

발행처 : (재)게임문화재단  I  발행인 : 유병한  I  편집인 : 조수현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 114, 2층(방배동)  I  등록번호 : 서초마00115호  I  등록일 : 2021.6.28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