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결과
공란으로 1280개 검색됨
-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이쿠, 왕자님>, 게 섯거라 이놈아!
버틀러는 이러한 패러디적인 창조성을 원본이라는 것 자체도 원래 본질적으로 원본인 것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가정되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이 동시에 모방본이라는 점에서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모방본도 원본도 원본의 상상적 특성들을 모방하는 것이고,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의 모방적 자질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면 이제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한다는 역설적인 생각까지 가능해진다. 이는 원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와 패러디의 모방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오히려 패러디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하여 더 높은 창조적 위치를 점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 Back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이쿠, 왕자님>, 게 섯거라 이놈아! 10 GG Vol. 23. 2. 10. 〈프린세스메이커〉라는 게임을 아는가? PC용 게임으로 시작하여 모바일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랑받아 온 이 게임은 1991년 최초로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개척해낸 게임이다. 이 새로운 장르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귀엽고 밝은 ‘소녀’다. 게임을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의 딸을 다양한 방식으로 육성시킬 수 있다. 물론 딸이 ‘프린세스’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게임이 시작되면 우리는 우리가 짜놓은 스케줄을 따라 움직이고, ‘아버지’라고 부르며 밝게 웃어주는 딸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아마도 이후 〈프린세스메이커〉 시리즈가 연이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게임 플레이를 통해 발생하는 딸과의 다양한 정서적 감응 때문이 아니었을까. 게이머들은 플레이를 통해 딸과 대화를 나누기도, 바캉스를 즐기기도 하며 8년동안 자라나는 딸에게 애정, 슬픔 혹은 (내가 원하는 엔딩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 등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감정의 발생은 게임의 이야기 진행 방식이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게이머에게 일정한 역할을 부여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게이머는 적어도 마우스를 클릭하는 등의 아주 작은 행동을 통해, 게임의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는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권위는 우리가 행위하고 조작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나 ‘친밀감’과 같은 정서적 교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그러나 나는 이 게임이 재밌으면서도 어딘가 불편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게임 안으로 들어간 게이머인 ‘나’는 내가 사회적으로 주체화한 성별과는 무관하게 딸이 ‘아버지’라 부르는 걸 묵과해야했던 경험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프린세스메이커〉는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딸을 키우는’ 게임이다. 내러티브상으로는 여성 게이머를 고려하지 않은 ‘남성적’ 게임이었다는 의미이다. 여성 게이머는 게임 밖에서는 여성이지만 게임 안에서는 ‘딸을 잘 키워 왕자를 만나도록 애쓰는 아버지’로 남아야 하는 것이〈프린세스메이커〉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의 역설이다. 심지어 〈프린세스메이커〉의 엔딩 중 하나엔 그 딸이 아버지와 결혼을 원해 아내가 되기도 한다. 아니 내 딸이 나(시스젠더 여성+남성애자)와 결혼을 원하다니. 이 얼마나 이성애-전복적인 상황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프린세스메이커〉를 통해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접했던 많은 여성들이 이미 이 당시 탈이성애를 경험하고도 남았을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 딸이 자라면서 다양한 경험을 시도하는 것(다이어트를 하거나,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풍류환을 먹고 가슴이 커진다던가 하는)이 나 자신을 대상화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이 시리즈가 묘하게 불편해졌다. 그렇게 10대가 가고 20대에 접어든 나는 2007년 우리나라의 몇몇 아마추어 여성 게이머가 〈프린세스메이커〉의 성역할을 전도시킨 일종의 패러디 게임 〈어이쿠 왕자님∼호감가는 모양새〉 (이후 〈어이쿠 왕자님〉)를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블로그를 통해 접했다. 이 게임은 딸이 아닌 아들을 키우는 형식이고, 게임 속 주체를 아버지/어머니 중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이쿠 왕자님〉은 단순히 〈프린세스메이커〉 패러디로서의 특성만 갖는 것이 아니었다. 이 게임은 인디문화의 속성을 공유하는 게임인 동시에 남성 동성애물을 표방한다는 의미의 동인(同人)게임 1) 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이 게임이 PC 게임으로 발매되고 드라마시디까지 제작되는 걸 보면서 굉장한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는 이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들을 찾기 시작해 논문을 썼다. 그게 무려 15년 전이다. 그런 〈어이쿠 왕자님〉이 2023년 크라우드펀딩으로 다시 돌아왔다. 심지어 펀딩율 1200%를 달성하고, 오디오 드라마까지 풀로 착장한 채. 〈어이쿠 왕자님〉은 단순한 인디/BL 게임으로 호명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어이쿠 왕자님〉과 〈프린세스메이커〉의 첫 번째 차이점은 프린세스메이커 시리즈의 커다란 틀로써 작용하고 있었던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아버지 혹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로 변용하여 제작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 게이머의 젠더 트러블 요소로 작용했던 '아버지 되기'에서 선택적 사항을 더한 것으로 '아버지 혹은 어머니'되기를 통해 여성 게이머로서 느낄 수 있었던 젠더 트러블적 요소를 제거하여 여성 게이머의 주체성을 부각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어이쿠 왕자님〉은 〈프린세스메이커〉가 가진 남성적 요소들을 제거하여 원작과는 다른 의미를 게이머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남성적 요소들이란 남성 게이머가 〈프린세스메이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 요소, 즉 여성을 보는 대상으로 하며 남성의 시각을 주체로 하여 얻는 쾌락적 요소를 말한다. 〈어이쿠 왕자님〉은 〈프린세스메이커〉를 〈프린세스메이커〉로 전복시킴으로써 여성 게이머들에게 보는 대상을 남성으로 치환시키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원작이 가진 의미를 완전히 전복한 것으로 남성을 위한 게임에서 여성을 위한 게임으로 의미화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프린세스메이커〉와 〈어이쿠 왕자님〉이 지닌 가장 큰 차이점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차이점을 복합적으로 변용하여 이성애적인 젠더체계의 틀을 벗어나 남성 성장서사를 남성 동성성애 서사로 패러디 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이쿠 왕자님〉은 부성애와 모성애가 선택적으로 존재하는 게임적 장치와 더불어 남성동성성애의 서사로 패러디함으로써 당시 소수였던 여성 게이머들뿐만 아니라 이를 플레이하는 게이머 모두에게 원본과 원본을 넘어서는 패러디의 의미를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게 했다. 인디게임이 일반적으로 기존의 지배적인 문화, 주류문화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난 게임을 말한다는 점에서 〈어이쿠 왕자님〉 인디게임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인디게임의 생성 동기와 존립 근거가 새로움에서 찾을 수 있다면 〈어이쿠 왕자님〉이 가지고 있는 새로움-창조성은 단순히 개인의 주관적인 기회가 아니라 사회구조와 그 구조내의 행위자와의 충돌, 그리고 그러한 충돌 과정에서 정체성을 생성하고 새로운 생활양식의 변화와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면서 기존 질서에 대한 대안적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어이쿠 왕자님〉을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들은 기존의 사이버 공간에서 이미 원본을 동성성애화하여 패러디한 2차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행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던 세대였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기존의 텍스트 부분 및 내용이나 형식을 변형하고 확대하며 생략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콘텐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데 익숙했던 것이다. 특히 게임이라는 영역은 여전히 생산이 제한된 영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간의 지속적인 생산경험을 통해 여성 게이머들은 자신이 게임 유통과 생산 과정에 진입이 가능하다는 생산자적 자율성과 창조성을 획득하여 〈어이쿠 왕자님〉이라는 게임을 생산해낸 것이다. '인디 집단'자체가 수년간 축적해둔 일상적 생산적 주체의 경험은 고착화된 구조나, 단계가 아닌 잠재적으로 단순한 수용자, 게이머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진화를 통한 창조적 생산자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특히 게임이라는 매체는 실제와 허구 사이의 경계가 붕괴되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게임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새롭게 자기표현을 찾는 능동적 생산자를 관객으로부터 유도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몰입하고 플레이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 게임이라는 공간에서 실제 본인의 성별과 상관없이 스스로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만들고, 억제된 욕구 표현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만들며 주체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젠더를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생물학적 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성들은 앞서 논의한 다양하고 새로운 주체를 경험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어이쿠 왕자님〉에는 풍자와 익살적인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게임의 배경은 시공간이 모호한 중세 판타지 풍의 바이케 왕국이다. 바이케 왕국을 거꾸로 읽으면 게이바다. 또한 바이케 왕국에 내려오는 전통춤으로는 바닥에 꽂힌 길다란 봉 주위를 돌며 추는 매우 관능적인 춤이라 할 수 있는 'bar dance'(봉춤)이 있으며, 정기적으로 국가에서 주최하는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현재 왕위는 노므헨 국왕이 갖고 있으며, 왕족 '맨슨(이명박)'이 등장하여 해저도로를 건설하자고 굳건히 이야기 하는 이벤트는 당대의 정치상황을 절묘하게 패러디 하여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어이쿠 왕자님〉의 패러디 요소는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존의 패러디의 의미를 더욱 확장시킨다. 패러디의 성립조건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전복과 치환, 다른 의미 담기를 통해서 단순하게 익살과 풍자의 모방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어이쿠 왕자님〉은 기존 텍스트의 담론적 권위나 지위에 의존하여 기존 텍스트의 의미체계와는 전혀 다른 의미체계를 지니는 새로운 텍스트를 생산한다. 패러디 기법인 '낯설게 하기'는 기존 텍스트의 병치, 재구성, 해체를 이용한 담론효과를 산출하는 것이다. 이는 보이는 대상에서의 보는 주체로의 여성, 이성애중심의 젠더체계의 전복이라는 이중적 패러디를 생산하면서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이중적 패러디는 모방의 한 형식이지만 동시에 패러디된 작품을 희생시키지 않는 다는 점에서, 그리고 '차이'의 창조성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유희적이고 해체적이면서 동시에 창조적이라도 말할 수 있다. 버틀러는 이러한 패러디적인 창조성을 원본이라는 것 자체도 원래 본질적으로 원본인 것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가정되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이 동시에 모방본이라는 점에서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모방본도 원본도 원본의 상상적 특성들을 모방하는 것이고,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의 모방적 자질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면 이제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한다는 역설적인 생각까지 가능해진다. 이는 원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와 패러디의 모방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오히려 패러디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하여 더 높은 창조적 위치를 점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1) 현재는 동인이라는 용어는 거의 쓰이지 않고, BL(Boys’ Love)이라는 용어로 대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인은 사실 일본에서 수입되어 처음에 ‘동인지’라는 소수의 문인들이 창작 활동을 위해 만든 문예잡지에서 유래되었다. 그 이후 한국에서 동인은 아마추어라는 뜻을 강하게 내포하게 되었고, 주류 콘텐츠가 될 수 없었던 남성동성애서사 또한 동인의 대표적인 콘텐츠로 자리잡게 되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애증의 가 2023년에 보여준 가능성
<와우>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다. 열성 플레이어들도 나이를 먹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새로운 플레이어의 유입보다 기존 플레이어의 여전한 참여가 <와우>를 유지시키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와우>가 기존 플레이어들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Back 애증의 가 2023년에 보여준 가능성 15 GG Vol. 23. 12. 10.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이하 ‘와우’)>로 원고를 써야 한다고 했을 때, 절대 고인물 플레이어처럼 예전 이야기를 하지는 말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와우>의 9번째 확장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용군단(World of Warcraft: Dragonflight, 이하 ‘용군단’)>은 여러 면에서 ‘예전으로 돌아가는’ 텍스트다. 우선, 오리지널 시절부터 위세를 떨쳤던 용군단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초자연적이었던 어둠땅을 뒤로 하고 아제로스로 돌아오게 한다는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용군단이 한 때 자신들의 왕국이었던 유서 깊은 고향으로 돌아온 가운데, 호드와 얼라이언스 영웅들은 다시 부름을 받고 아제로스에서 신비한 용의 섬을 탐험하고 고대의 비밀을 파헤쳐야 한다. 캠페인의 주요 캐릭터는 당연히 대부분 용족이다. 알렉스트라자, 노즈도르무, 래시온, 칼렉고스 등은 특히 초기 캠페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3번째 확장팩이었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대격변(World of Warcraft: Cataclysm)> 이후 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용군단>이 플레이어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이며, 모험의 주 무대가 어둡고 우울했던 어둠땅을 벗어나 아제로스 하이 판타지로 복귀했음을 의미한다. 설정과 캐릭터가 친숙하다 해도, <용군단>이 <와우>의 20여 년 역사에 현대적인 인상을 더해줌에는 틀림이 없다. 그간 <와우>의 주된 이야기 줄기는 아제로스의 큰 두 대립진영인 얼라이언스와 호드 간 전쟁으로 규정돼 왔다. 특히 전전 확장팩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World of Warcraft: Battle for Azeroth)>에서는 두 진영의 큰 전쟁으로 인해 아제로스가 황폐화될 뻔했다. 하지만 <용군단>은 두 진영 간 갈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용의 섬에서 벌어지는 모험은 얼라이언스와 호드 사이에 누가 섬을 개척하고 점령할지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 아니라, 많은 세력과 NPC들의 공유, 그리고 두 진영의 협력과 공동 탐험에 가깝다. 이는 실제 게임 플레이에도 반영된다. 이제 각기 다른 진영에 있는 플레이어라 할지라도 함께 모여 던전, 공격대 등을 즐길 수 있다. 대립과 경쟁에서, 협력과 탐험으로 게임 세계의 초점이 전환한 것이다. 용의 섬에 봉인돼 있던 드랙티르 종족도 추가되었다. 판다렌처럼 얼라이언스와 호드 양 진영 모두에서 선택 가능한 중립 종족이고, 전용 직업인 기원사로만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다. 늑대인간처럼 용 형태와 인간 형태 모두를 가지며, 전투 중에는 비인간 형태로 고정된다. 기원사는 사슬 방어구를 착용하는 하이브리드 클래스로, 원거리 딜러와 힐러를 오간다. 죽음의 기사나 악마사냥꾼처럼 확장팩 구간 시작 직전인 58레벨에서 시작, 전용 퀘스트라인 진행을 통해 기본 기술을 배워나간다. 신규 직업 외에 종족별 직업도 추가되었다. 이제 모든 종족에서 도적, 마법사, 사제, 수도사, 흑마법사를 플레이할 수 있다. 특성도 네 번째 확장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판다리아의 안개(World of Warcraft: Mists of Pandaria)> 이전으로 돌아갔다. 선택한 직업과 전문화에 대한 하나의 특성 트리 대신, 이제 각 전문화에는 두 개의 트리가 존재한다. 하나는 클래스 전체에 걸쳐 공유되며 방해, 이동강화, 생존과 같은 유용성에 중점을 두고, 다른 하나는 해당 전문화에만 해당하며 전투, 방어, 치유 스킬에 중점을 둔다. 특정 목적 달성을 고려할 경우 선택지가 좁았던 기존과 달리, <용군단>의 특성 트리는 비교적 폭넓은 선택지를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그 특성은 전투할 때를 제외한 거의 모든 때 변경 및 조정이 가능하다. 재미있게도 각 특성 트리의 많은 능력은, 군단의 유물, 어둠땅의 성약의 단 능력과 같은 소스로부터 상당 부분 가져와졌다. UI(user interface) 개편도 특기할 만하다. <와우>의 진입장벽을 높여왔던 대표적인 요소 중 하나가 애드온(addon)이었다. 기존에는 UI 스크립트 기능이 있고 애드온을 통해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었을 뿐, 게임 내에서 기본적으로 UI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지는 않았다. <용군단>에서는 UI를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디자인을 변경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개체 상호작용 기능도 생겨 콘솔패드로 플레이하는 일부 플레이어들의 편의성을 높였다. 여전히 많은 플레이어들이 애드온을 사용하고 싶어 하고 또 사용하고 있겠지만, 앞으로 <와우>를 플레이하는 데 있어 애드온이 필수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졌다. 메인 스토리 퀘스트에의 참여를 권장하는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차기 확장팩을 앞둔 패치 전까지는 대장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4개 지역을 탐험하고 최대 레벨에 도달한 후에야, 영웅 던전, 월드 퀘스트 등과 같은 항목에 대한 참여가 가능하다. 물론 각 구역의 메인 스토리 퀘스트가 대부분 독립형이고 다른 퀘스트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사이드 퀘스트 역시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용군단>의 메인 콘텐츠들을 즐기는 데 있어 메인 스토리 퀘스트를 생략하기는 쉽지 않다. 그 퀘스트가 선형적이긴 해도 상당한 재미를 주는 것은 사실이나, 메인 스토리 퀘스트로의 참여 권장은 <와우>의 자유도가 높아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여전히 주저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용군단>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콘텐츠 중 하나는 용 조련술이다. 만렙 전까지는 캐릭터를 강제로 지상에 묶어두었던 기존 확장팩에서와 달리, <용군단>에서는 초반부터 하늘을 날 수 있다. 용 조련술은 쾌감 넘치는 공중 이동방식으로, 캐릭터들은 용에 올라타 높은 하늘에서 급강하해 속도를 올리고, 다시 고삐를 당겨 쌓은 가속도로 활공을 즐길 수 있다. 반대로 오르막길을 비행하는 일이 어려워졌음은 물론이다. 물론 이 새로운 콘텐츠는 가상의 세계에 현실감을 더하는 요소이자, 진작 이뤄졌을 법한 요소이기도 하다. 날/탈것이 타서부터 내릴 때까지, 거리에 상관없이 똑같은 속도를 내는 기존의 설정이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용 조련술은 이제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정해진 거리를 이동하는 데 있어 동선만이 아니라 속도의 완급과 가속을 고려하게 만든다. 그 밖에도 플레이어들은 시간제한 도전이나 멀티 플레이어 경주를 통해 용 조련에 익숙해지고, 용의 섬 곳곳에서 비룡들의 형상 꾸미기 요소를 수집하거나 기술을 강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용군단>의 레벨 상한인 70레벨을 향해 나아가면서 이루어진다. 용 조련술로 인해 비행은 더 이상 단순히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매력적인 게임 플레이 요소가 된다. 완전히 새로운 요소들을 몇몇 제시하고, 지난 것들 중 의미 있는 요소들을 그보다 더 많이 현대화함으로써 <용군단>은 <와우> 플레이어들이 그동안 좋아해 왔던 캐릭터, 몬스터, 그리고 게임 플레이 시스템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선다. <와우>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다. 열성 플레이어들도 나이를 먹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새로운 플레이어의 유입보다 기존 플레이어의 여전한 참여가 <와우>를 유지시키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와우>가 기존 플레이어들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용군단>에서 발견되는 기존 아이디어의 적용과 변경, 새로운 아이디어의 추가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면서도 다음에 올 일을 포용하는 <와우>의 면모임에 다름 아니다. <용군단>은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배움을 통해 앞으로 갈 방향을 찾았다. 그 방향에서는 다음 확장팩 이후 쓸모가 없게 될 (이번 확장팩의) 새로운 시스템보다는, 애초에 <와우>가 내재하고 있던 시스템들을 개선하는 일이 더 중요한 듯하다. 여전히 <와우>가 진화 중이고, 다음 확장팩이 기대되는 이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그린게이밍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2020년 이래 아이폰은 충전기 미포함으로 출시되고 있다. 애플에 따르면 이는 포장 쓰레기와 전자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서, 판매되는 아이폰 한 대당 소요되는 원자재량 및 포장용 패키지 절감을 통해 운송용 팔레트 한 대당 70% 더 많은 제품을 실을 수 있어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Calma, 2020). < Back 그린게이밍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22 GG Vol. 25. 2. 10. you can 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at below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3a3f169a-8f0a-4d4b-b844-a2fb22042dcc From physical to digital, 실물에서 디지털로 2020년 이래 아이폰은 충전기 미포함으로 출시되고 있다. 애플에 따르면 이는 포장 쓰레기와 전자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서, 판매되는 아이폰 한 대당 소요되는 원자재량 및 포장용 패키지 절감을 통해 운송용 팔레트 한 대당 70% 더 많은 제품을 실을 수 있어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Calma, 2020). 이러한 계산이 정확한 것인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애플의 충전기 미포함 조치는 친환경 전자제품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스마트폰 제조사뿐 아니라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 여타의 제조업체들 또한 친환경적인 제품을 만들거나 최소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렇다면 수익(2024년 기준 1,870억 달러)과 이용자수(2024년 기준 33억2천만명), 그리고 시간(하나의 제품이 매달 30억 시간에 달하는 엔터테인먼트 제공 가능)에 있어 세계에서 최고 수준에 이른 분야(Ball, 2021; Konvoy Ventures, 2023; Sinclair, 2023; Technavio, 2025)는 어떨까? 비디오게임 및 디지털 산업 전반과 환경 간의 관계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비디오게임이 물리적 형태였던 시대(역주: 패키지게임 시대)에 가장 악명 높았던 사건으로는 위키피디아에 전용 페이지도 개설되어 있는 “아타리 비디오게임 매립”사건을 들 수 있는데, 2014년에 출간된 의 저자인 레이포드 귄스(Raiford Guins)는 1980년대에 벌어졌던 여러 사건들에 대해 조사하면서 해당 사건이 있었던 매립지 인근 주민들과 인터뷰를 진행(Guins, 2014)한 바 있다. 이 전설적인 매립지 사건은 비디오게임 산업에 있어 플라스틱 사용의 절감이나 친환경적인 포장 등을 고민하는 지속가능성의 개념이 제기되는 계기가 되었는데(Martin, 2020), 이 시기 비디오게임이 물리적 형태를 지녔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비디오게임과 환경 간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스토어가 열리고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더 많은 게이머들이 실물 카피 대신 게임을 다운로드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비디오게임 산업에 있어 친환경이라는 개념은 서서히 탄소 발자국과 에너지 소비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원의 청정도를 추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현재 우리는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문제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게이머, 퍼블리셔, 개발자, 정책입안자, 연구자 등 모든 측면에 걸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Tapsell & Purchese, 2021). 실제로 이와 관련해서 다양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 기반의 게임 언론 유로게이머(Eurogamer)의 크리스 탭셀(Chris Tapsell)과 로버트 퍼체스(Robert Purchese)는 게임과 환경에 관한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개요를 비롯해서 소비자로서 우리가 보다 책임감 있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심층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Tapsell & Purchese, 2021). 뿐만 아니라 환경을 주제로 하는 게임 제작 이벤트인 그린게임잼(Green Game Jam) 등의 운동이나 이니셔티브도 진행 중이다. “그린 게이밍(Green Gaming)”이라는 용어 또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자들이 찾아낸 비디오게임과 환경과 관련된 문제들은 무엇이며, 학계가 규정하는 그린 게이밍이란 무엇인가? Detour: A little bit about method, 연구방법론 간단히 살펴보기 최근 나는 동료들과 비디오게임과 환경 문제와 관련된 학술 논문과 단행본 및 챕터, 학회 발표문, 논문을 포함한 50개의 문서에 대한 체계적 검토를 진행했다(이 논문은 현재 심사 중이다) (Ho et al., 2024). 우리는 “그린게이밍(Green Gaming)”이나 “에코게임(Ecogames)”와 같은 여러 키워드를 활용해서 Web of Science와 Google Scholar 등 다양한 논문 추천 시스템을 포함한 여러 학술 데이터베이스에서 관련 자료들을 찾았다. 그 결과 400편 이상의 문서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를 제목과 초록 및 본문을 검토하는 여러 번의 스크리닝 과정을 거쳐 50개의 관련 문서를 골라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Main Contributors, (게임과 환경간 연구의) 주요 기여자들 미디어 연구에 뿌리를 둔 전통적인 게임연구(traditional game studies)는 비디오게임에 대한 이해를 구축하는데 기여해왔다. 미디어 연구분야는 비디오게임이 문학이나 예술작품과 같은 텍스트의 일종으로서 이론적, 비평적 분석을 통해 보다 심도 있게 통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경향은 분석 대상의 대부분이 게임연구 분야의 논문이었던 우리 연구팀의 초록, 제목, 카테고리에 대한 단어 분석작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알렌다 챙(Alenda Y. Chang)의 와 벤자민 에이브러햄(Benjamin J. Abraham)의 등의 대표적인 저작들은 비디오게임과 환경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개발자, 퍼블리셔, 소비자들이 비디오게임 산업을 보다 친환경적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에 실린 여러 챕터들에서는 한발 더 나아간 탐구를 볼 수 있다. 비디오게임은 단지 예술 작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도구이자 실현이다. 따라서 다른 영역들 또한 비디오게임이 인간에게 미치는 효과를 이해하거나(심리학) 교육 목적으로 활용하거나(교육이나 건축) 비디오게임을 작동시키는 기술에 직접적으로 기여(컴퓨터 사이언스)하고 있다.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의 논문 대부분은 게임을 보다 친환경적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기술과 방법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라우드 게이밍이 이론상 친환경적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제안(Chuah et al., 2014)되기도 했으나, 스태디아(Stadia)의 실패에서 보았듯, 클라우드 게이밍은 성공적으로 구현되지 못했다. 다른 연구에서는 클라우드 게이밍이 단순히 에너지 부담을 데이터 센터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며 그러한 데이터 센터들이 게임 운영 지원을 위해 일주일 내내 24시간 가동되어야 함을 지적하기도 한다(Aslan, 2020; Mills et al., 2019). Education: From video games to pro-environmental awareness, 교육: 비디오게임으로부터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까지 비디오게임의 핵심 하드웨어인 그래픽처리장치(GPU)는 현실을 시뮬레이션하기에 모자람 없는 성능을 제공해왔다. 현대 기술은 현실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창조해내고 있다. 그 세계에서는 인간, 오우거, 마녀들이 놀랍도록 현실에 가까운 일상을 보낸다. 날씨 또한 사실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는데, 추우면 몸을 떨고 비가 내리면 몸이 젖으며 들고 있던 철검이 번개를 맞기도 있다.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비디오게임의 몰입감과 포토-리얼리스틱한 그래픽은 기술적 관점을 넘어 예전 나의 스승이 수행했던 연구에서 암시했던 부분, 즉 (비디오게임이) 현실과 대중의 인식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자, 과학자, 그리고 교육자들 또한 이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의 제프리 펑(Jeffrey Fung)은 태양계와 항성, 행성들은 시뮬레이션하는 GPU 기반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Fung, 2020). 따라서 환경 문제에 있어 비디오게임의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용도 중 하나는 인식의 제고일 것이다. 연구자들은 특정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시리어스게임 또는 교육용 게임에서 잠재력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킥스타터 프로젝트로 시작하여 후에 미국 교육부의 지원도 받게 된 게임 에서 플레이어들은 생태학적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예측된 유성 충돌을 막기 위해 협력해야 하는 시나리오로 만들어졌다. 이 게임에서 설계된 유한한 자원과 외부적 영향 요인은 현실적인 게임플레이 경험을 만들어내는데, 여기에는 실제 상황에서 부딪히게 될 여러 어려움들이 반영되어있다 (Fjællingsdal & Klöckner, 2019). 연구자들은 또한 시리어스 게임, 상업용 게임, 풍자적 게임, 게이미피케이션 앱들이 게이머의 친환경적 행동 채택을 장려하는 효과를 평가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환경 문제 및 환경 착취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디자인된 이러한 게임들은 플레이어들의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게임 내 지속 가능한 기술들을 일상 생활의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데 있어 중간 정도의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Boncu et al., 2022). 최근에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게임 타이틀을 연구 대상으로 활용한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에드워드 J.크로울리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게임의 교육적 측면을 연구하기 위해 <레드 데드 리뎀션2(Red Dead Redemption2)>의 세계를 활용했다(Crowley et al. 2011). 연구자들은 게임에 묘사된 야생동물종에 대하여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지식을 테스트했보았다. 그 결과 가상세계 내 여러 동물종과의 상호작용은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들(즉 플레이어들)의 종 식별 능력을 향상시켰는데, 특히 유제류와 어류에서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 내에서 물고기를 잡는 플레이어들은 실제로 물고기의 이름, 서식지, 심지어는 소리까지 배우고 기억했다. 그런가 하면 게이머들이 가상 공간에서도 자연스럽게 녹색 식물이 많은 장소에 끌리고 이러한 지역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도 관찰됐다(Truong et al., 2018). Video games are more than playing, 비디오게임은 단순한 플레이 이상이다 비디오게임의 기술적 측면에 직접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컴퓨터 과학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문 분야는 ‘플레이’라는 비디오 게임의 특정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비디오 게임은 영화나 문학처럼 면밀히 검토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간주되어 왔다(Gee, 2006). 그러나 영화나 문학의 경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행위는 상이한 개인들을 가로지르는 번역이 가능하다. 즉 의미에 대한 해석은 개인별로 다를 수 있지만, 소비하는 행위 자체는 개인들 간의 차이를 가로질러 동기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다양한 설정, 선호도, 장르에 따라 개인들 사이에서 상이하게 이해된다. 예를 들어 <콜오브듀티(Call of Duty)>의 플레이경험은 <캔디크러쉬(Candy Crush)>과 매우 다르다. 따라서 전통적인 게임 연구자들은 비디오 게임과의 상호작용을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왔다. 예를 들어, 게이머들이 <레드 데드 리뎀션2>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와 같은 가상 세계에 몰입할 때, 그 플레이는 예상치 못한 학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Crowley et al., 2021; Truong et al., 2018). 이에 더해 모든 게임에는 의도된 플레이 방식이 존재함에도, 스피드런(게임을 가능한 한 빨리 완료하는 것), 챌린지(한 가지 메커니즘만 사용하여 게임 완료하기), 모딩(외형 변경 또는 새로운 게임 만들기)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게이머들은 언제나 새로운 참여 방식을 찾아내 왔다. 이러한 행동들은 플레이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여기에는 비디오 게임에 내재된 무한하고 경계 없는 창의성이 구현되어 있다(Lamerichs, 2024; Scully-Blaker, 2024). 게이머들이 비디오 게임에 보다 빠져들수록 게임에 대한 다른 생각의 가능성 또한 증가한다. 그에 따라 연구자들도 비디오 게임 및 게임산업 전반에 대한 자신들의 관점을 진화시키고 있다(Abraham, 2022a; Fizek, 2024). 연구자들은 게임플레이에만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개발자, 규제, 퍼블리셔에 대해 보다 많은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지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의 저자 벤자민 J.에이브러햄(Benjamin J. Abraham)은 비디오 게임의 탄소 발자국을 생산부터 유통, 그리고 최종적으로 게이머들이 플레이하는 시점에 이르기까지 분석했다(Abraham, 2022a). 여기서 에이브러햄은 비디오 게임이 세계에 미치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포함해 더 큰 맥락에서 스스로를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편 비디오 게임의 하드웨어에 특별히 초점을 맞춘 연구는 드문데, 2019년 에반 밀스(Evan Mills)는 동료들과 비디오 게임 하드웨어의 에너지 사용과 관련된 기술적 연구, 에너지 정책, 컴퓨터 에너지 라벨링 프로그램 및 표준, 그리고 규제가 심각하게 부족함을 발견했다(Mills et al., 2019). 결론적으로 비디오 게임 소비가 실제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여전히 제한적인 상황이라 하겠다. Green Gaming,그린 게이밍 2019년, 나는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Breath of the Wild)>의 세계를 탐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이후의 봉쇄 기간 동안 <동물의 숲: 뉴 호라이즌>의 섬은 낚시, 나무 심기, 꽃 가꾸기와 같은 일상적인 작업으로 가득 찬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해주었다. 콜린 밀번(Colin Milburn)의 '그린 게이밍(green gaming)'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이러한 게임들은 "환경 통제적인 게임(games of environmental control)"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플레이어들이 직접적으로 환경을 제어하고 조작할 수 있는 유형의 게임을 뜻한다 (Milburn, 2018). 게임 연구의 짧은 역사 동안, 연구자들은 비디오 게임과 환경 간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에코게임,' '생태학적 게임,' '지속 가능한 게임,' 또는 '기후 변화 게임' 등과 같은 다양한 용어들을 '그린 게이밍'과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해 왔다(Abraham, 2022b; Abraham & Jayemanne, 2017; de Beke et al., 2024). 하지만 이러한 용어들은 주로 학술적 맥락 내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왔을뿐 아니라, 앞서 설명한대로 플레이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다. 벤자민 에이브러햄이나 에반 밀스 같은 연구자들은 게이밍(gaming)을 소프트웨어의 생산과 유통, 특정 하드웨어의 선택, 이용자의 다변화된 선호도와 행동까지 관여됨으로써 보다 포괄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실제로 '그린 게이밍'을 구글링 해보면 높은 확률로 그 첫 검색 결과로서 HowStuffWorks가 나올 수 있는데, HowStuffWorks에서 다루는 내용의 초점은 게임플레이를 통한 에너지 절약, 하드웨어 재활용, 게임플레이를 통한 환경 인식 제고에 놓여져 있다(Watson, n.d.). 따라서 연구자들에게는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생산, 선택, 구매, 소비하는 것을 포함하는 그린 게이밍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요구된다 할 수 있다. 결국 "그린 게이밍이란, 비디오 게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 모두에 대해 환경을 의식하는 생산, 구매, 소비를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개발자와 게이머들의 행동은 단순히 오락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욕망뿐만 아니라 환경의 지속가능성과 자원 보존에 대한 책임감에 의해 주도된다"(Ho et al., 2024). 기후 변화 및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른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일상 활동에서조차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재고해야 함을 깨달은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라 할 수 있다. 비디오 게임 및 그것이 미치는 환경적 영향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현재 다소 제한적이고 불충분한 상황이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은 젊은 세대에게 지배적인 엔터테인먼트이며, 따라서 이제 질문은 더 이상 비디오 게임의 잠재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임감 있게 비디오 게임을 제작, 선택, 구매, 소비,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을 보다 현실적이고 실천적으로 고민하는 것에 놓여있다 하겠다. 참고문헌 Abraham, B. J. (2022a). Digital Games After Climate Change. Palgrave Macmillan Cham. https://doi.org/https://doi.org/10.1007/978-3-030-91705-0 Abraham, B. J. (2022b). What Is an Ecological Game? In B. J. Abraham (Ed.), Digital Games After Climate Change (pp. 61-88).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https://doi.org/10.1007/978-3-030-91705-0_3 Abraham, B. J., & Jayemanne, D. (2017). Where are all the climate change games? Locating digital games? response to climate change. Transformations, 30, 74-94. Aslan, J. (2020). Climate change implications of gaming products and services University of Surrey]. https://doi.org/10.15126/thesis.00853729 Ball, M. (2021). Netflix and Video Games. MatthewBall.vc . Retrieved April 27 from https://www.matthewball.vc/all/netflixgames Boncu, Ș., Candel, O.-S., & Popa, N. L. (2022). Gameful green: a systematic review on the use of serious computer games and gamified mobile apps to foster pro-environmental information, attitudes and behaviors. Sustainability, 14(16), 10400. Calma, J. (2020). Apple ditching chargers saves costs but not the planet. The Verge. Retrieved January 26 from https://www.theverge.com/2020/10/16/21519466/apple-iphone-12-chargers-airpods-greenhouse-gas-emissions-e-waste Chang, A. Y. (2019). Playing Nature: Ecology in Video Game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Chuah, S. P., Yuen, C., & Cheung, N. M. (2014). Cloud gaming: a green solution to massive multiplayer online games. IEEE Wireless Communications, 21(4), 78-87. https://doi.org/10.1109/MWC.2014.6882299 Crowley, E. J., Silk, M. J., & Crowley, S. L. (2021). The educational value of virtual ecologies in Red Dead Redemption 2. People and Nature, 3(6), 1229-1243. https://doi.org/https://doi.org/10.1002/pan3.10242 de Beke, L. o., Raessens, J., Werning, S., & Farca, G. (2024). Ecogames: Playful Perspectives on the Climate Crisis. Amsterdam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2307/jj.10819591 Fizek, S. (2024). Material Infrastructures of Play: How the Games Industry Reimagines Itself in the Face of Climate Crisis. In L. o. de Beke, J. Raessens, S. Werning, & G. Farca (Eds.), Ecogames: Playful Perspectives on the Climate Crisis (pp. 525-542). Amsterdam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2307/jj.10819591.28 Fjællingsdal, K. S., & Klöckner, C. A. (2019). Gaming Green: The Educational Potential of Eco – A Digital Simulated Ecosystem. Frontiers in Psychology, 10. https://doi.org/10.3389/fpsyg.2019.02846 Fung, J. (2020). Simulating Reality: Where Games and Science Meet.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Retrieved January 26 from https://www.ias.edu/ideas/simulating-reality-where-games-and-science-meet Gee, J. P. (2006). Why Game Studies Now? Video Games: A New Art Form. Games and culture, 1(1), 58-61. https://doi.org/10.1177/1555412005281788 Guins, R. (2014). Game After: A Cultural Study of Video Game Afterlife. MIT Press. Ho, M.-T., Le, N.-T. B., & Nguyen, T. H. T. (2024). Understanding Green Gaming: A Systematic Review of Environmental Awareness and Terminology in Video Game Research [Preprint]. PsyArxiv Preprints. https://doi.org/https://doi.org/10.31234/osf.io/2t5j4 Konvoy Ventures. (2023). Gaming Industry Report - Q1 2023. Konvoy Ventures. Retrieved April 19 from https://www.konvoy.vc/newsletter/gaming-industry-report-q1-2023 Lamerichs, N. (2024). Sustainable Fandom: Responsible Consumption and Play in Game Communities. In L. o. de Beke, J. Raessens, S. Werning, & G. Farca (Eds.), Ecogames: Playful Perspectives on the Climate Crisis (pp. 543-558). Amsterdam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2307/jj.10819591.29 Martin, S. (2020). The inescapable impact of plastics in the video game industry. Eurogamer. Retrieved April 20 from https://www.eurogamer.net/the-inescapable-impact-of-plastics-on-the-video-game-industry Milburn, C. (2018). Green machine. In C. Milburn (Ed.), Respawn: Gamers, hackers, technogenic life (pp. 172-198). https://doi.org/https://doi.org/10.1215/9781478002789 Mills, E., Bourassa, N., Rainer, L., Mai, J., Shehabi, A., & Mills, N. (2019). Toward Greener Gaming: Estimating National Energy Use and Energy Efficiency Potential. The Computer Games Journal, 8(3), 157-178. https://doi.org/10.1007/s40869-019-00084-2 Scully-Blaker, R. (2024). Reframing the Backlog: Radical Slowness and Patient Gaming. In L. o. de Beke, J. Raessens, S. Werning, & G. Farca (Eds.), Ecogames: Playful Perspectives on the Climate Crisis (pp. 505-524). Amsterdam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2307/jj.10819591.27 Sinclair, B. (2023). DFC: Global game audience reaches 3.7 billion. GamesIndustry.Biz . Retrieved April 19 from https://www.gamesindustry.biz/dfc-global-game-audience-reaches-37-billion Tapsell, C., & Purchese, R. (2021). What does gaming's all-digital future mean for the climate crisis? Eurogamer. Retrieved January 26 from https://www.eurogamer.net/gaming-downloads-climate-crisis Technavio. (2025). Video Game Market Analysis APAC, North America, Europe, South America, Middle East and Africa - US, China, South Korea, Canada, Germany, India, UK, Japan, France, Brazil - Size and Forecast 2025-2029. Technavio. Retrieved January 25 from https://www.technavio.com/report/video-game-market-industry-size-analysis#:~:text=The%20video%20game%20market%20size,a%20surge%20in%20mobile%20gaming . Truong, M.-X., Prévot, A.-C., & Clayton, S. (2018). Gamers Like It Green: The Significance of Vegetation in Online Gaming. Ecopsychology, 10(1), 1-13. https://doi.org/10.1089/eco.2017.0037 Watson, S. (n.d.). What is green gaming? https://science.howstuffworks.com/environmental/green-science/green-gaming.htm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만 또안 호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What’s fair price for video games?
In Korean gamer communities, there's this saying about playing games from the Steam library: "Back then, we never paid to play the game. Nowadays, we never play despite paying the game." The phrase sarcastically highlights the contrast between the game market back in the 80s-90s, when no one actually paid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ith the abundance of pirated and copied games in Korea, compared to now with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when people do not play the game despite after purchase. < Back What’s fair price for video games? 17 GG Vol. 24. 4.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34e447be-d2b1-48f0-85e6-eb63ee2f907b In Korean gamer communities, there's this saying about playing games from the Steam library: "Back then, we never paid to play the game. Nowadays, we never play despite paying the game." The phrase sarcastically highlights the contrast between the game market back in the 80s-90s, when no one actually paid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ith the abundance of pirated and copied games in Korea, compared to now with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when people do not play the game despite after purchase. The internet is flooded with countless games available to play at any time. We are living in an era where people can purchase more game easily through online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than what humans could possibly play in a lifetime. The normalization of digital distribution, like Steam, has certainly contributed to lowering the entry price of a video game. But coming up with a fair amount of price tag in reality is a bit more complex than that, and it is difficult to say whether the game prices have truly become affordable than before. The regular release price of so-called “AAA” game titles has been steadily on the rise, not to mention all those excessive special editions (e.g., deluxe packages, limited editions) that cost well over ₩100k (approximately $80). As such, in some degree games are affordable form of entertainment, but at the same time, they deemed as expensive. To fully comprehend this contradictory situation, we must start asking ourselves: what is actually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e do know that a considerable amount of manpower and resources go into video game production. So, being able to come up with a mutual range of fair prices would contribute to the industry in terms of securing sufficient profits for the creator and, thus, the necessary funds for the development of a better game. It would also contribute to its users that fair price can contribute to a continuation of a good product that offer enjoyable and enriching virtual experiences. Challenges in Determining Regular Prices of Video GamesHistorical records suggests that the pricing of video games was not never really calculated based on systematic business forecasts but often by arbitrary guesswork. The normative rules of game prices have frequently changed as well. For example, early arcades operated on fixed-price coin-op business model, where the playable time per coin heavily depended on how the player is good at that particular game. Ironically speaking, the more skilled players play longer while spending less, resulting in fewer profits for arcade operators. (This led to instances where skilled arcade-players in Korean arcades were occasionally kicked out from the premises, with a coin refund, to make way for the next player in line.) As such, the cost of complete gameplay experiences varied from person to person, largely contingent on their gaming proficiency. Of course, it not all gamers back then expected to achieve complete gameplay experiences in every arcades. The emergence of console and PC “package” games introduced the concept of fixed prices in the game industry, which meant people could pay the same price regardless of the amount of gameplay hours of each user. Each cartridge, disk, or CD was sold at a fixed price, gradually forming an average price range for games. But with the rise of online digital distribution channels and their mass-scale discount systems, real-time price controls, and game subscription schemes, the range of regular prices for package-type games has begun fluctuating again. Determining the fair price of a game has become even more complicated with the rise of the micro-transactions in games, which has become increasingly prevalent in the online/mobile game era. Now the cost of a game is not only about the gaming proficiency but also the total amount spent in-game. The gameplay experience of a heavy user who spends $1,000 on micro-transactions in a free-to-play game like Uma Musume: Pretty Derby (Cygames, 2021) would vastly differ from that of someone who didn't spend a dime in that game. In such a vastly different player-base, coming up with a mutual ‘fair’ price is certainly not an easy task. What I would like to note here is that the topic of regular price of a game and the appropriate cost (i.e., what is deemed as appropriate amount of money that one can spend in games) are a different thing. Because, to put it simple, the amount of coins that a player bring to arcade shop is not just about how much each session of a gameplay in that particular arcade cost. Rather, it’s about how many sessions of gameplay that the player is going to (or willing to) pay, multiplied by the cost of each gameplay session. As such, answering the question of 'what is a fair price for a game' is not solely about the determining the sales price tag of a game product, but also about finding a mutual balance between producers and consumers – in a way to maintain a sustainable cycle of produc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While individual purchasing power is certainly an important indicator to look at, but the primary concern lies here is about how goods (in this case games,) can be fairly exchanged between producers and users. Then another thing that needs to be addressed is the issue of today’s digital game distribution method, specifically, its pluralistic nature of game as both a product and a service. In the arcade era, games were primarily operated as a rental business. Then, gradually, they transitioned into owning the game (or game machines) as goods in the home console and PC game era. However, with the normalization of online/mobile games, there has been a shift back to rental services – games that are channeled through server-based, internet-connected platforms. Therefore, we are now living in an era where games cannot be explained by a single value; rather, they are both products and services that intersect and coexist. So there cannot be a simple answer regarding the fair price of games. And this is not even considering all those numerous discounts deals and subscription services. So it is evidently clear that there is no magic number about ‘what is the fair price’ in a game – we cannot do simple math by ticking checkboxes. One ideal approach is perhaps to first examine the amount of money spent on game production and then propose a range of unit prices that could potentially recoup those production costs for its creators within a reasonable timeframe. Then whether that price range is acceptable are ultimately determined consumers, by finding just the right balance between the market’s natural supply and demand. Clearly, it’s not an easy task. But a tasks that must be done. Why should we talk about the fair price of games? The Korean Consumer Price Index (CPI) is calculated based on the cost of 480 essential goods and services, served as a common indicator to determine South Korea’s regular living cost and inflation rate. Among these, 47 fall under the category of “entertainment and cultural activities”, which include activities such as purchasing musical instruments, computers, film tickets, and books, and the costs of travelling and even repairing digital devices. However, game-related expenditures are not included in Korean CPI. Despite numerous reports about the significant increase in South Koreans' usage of games, and despite all those provocative media coverage of somebody ‘spending tens of thousands of dollars on video games in micro-transaction instead of doing something productive’. Some easily solution is to add already existing collectable data such as PC-bang hourly fees and average of online entertainment purchases. Even if so, there are clear limitations; as they do not fully capture the overall game-related spending patterns of general South Korean players. This call for thorough actions in order for us to truly able to say that games have become one of the mainstream media – regarded as one popular media and enjoyed as any other daily leisure activity. This would include polishing our societal system and facilitating infrastructures to finally acknowledge gaming as an act of leisure and cultural fulfillment in contemporary society, and economic analysis on game-related consumptions. For instance, Korea do have basic reports on how much money people spend on games per month and what the highest and lowest prices are – such as the Game User Census Report conducted annually by the Korean Creative Contents Agency. However, there are still rooms for improvement as those numbers are isolated from the overall economic index, such as other consumable indexes in Korean CPI. While the cost of watching films, television shows, and portable multimedia devices is accepted as a ‘valid’ indicator of the livelihood of South Korean households, the cost of playing games is still missing. Now is the time when we should finally acknowledge the significance of the cost of software that is called video games. And not just the price tag of the game itself but also the significance of games in the overall socioeconomic context. This then leads to my question, “What is the fair price of games?” In this complex, ever-connected era of gameplay, the question shouldn’t be limited to “how much should the game product cost” but rather should target the fundamental question of “what games mean” – the value of game-related consumptions intersect with other means of our entertainment, social, and leisure activities. Instead of fixated by the price tag of a game itself, we should start asking ourselves how the game-related expenditures are compared to other leisure and cultural activities. Why do people choose to spend money on games rather than other means of media? What’s unique about games? It is now time to surface these questions that are currently encapsulated within gamers' communities and web forums, further into mainstream societal discourse. Lastly, perhaps we now need to start asking the very fundamental question of “What is the (means of) fair price of games?” Because, controversial topic such as the toxicity of impulsive or excessive game micro-transactions, or the irony of free-to-play (that, there’s no such thing as free to play anything), eventually leads to the fundamental question; what could account for the price of gameplay? What are the fair means of purchasable in gameplay? What can be quantified and what cannot? And how to measure them? We must realize that we no longer live in the era of a simple supply and demand market that can determine the simple one-for-all price of games. Instead, now is the time to embrace this ever-complicated question even to video games as medium itself.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KyungHyuk Lee He has been close to games since childhood, but it was not until 2015 that he started talking about games in earnest. After living as an ordinary office worker, he entered the life of a full-time game columnist, critic, and researcher through a series of opportunities. Books such as "Game, Another Window to View the World" (2016), "Mario Born in 1981" (2017), "The Theory of Game" (2018), "Wise Media Life" (2019), and "The Birth of Reality" (2022); papers such as "Is purchasing game items part of play?" (2019); "Dakyu Prime" (EBS, 2022), Gamer (KBS), "The Game Law", 2019 BC) and "Economy of Game", etc.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institute 'Dragon Lab'.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 지금 우리는 무엇을 '롤플레이'하는가
21세기의 사반세기를 돌아 마주한 것은 언어의 순수에 대한 갈망 하나만이 아니다. 70년대에 탄생하고, 90년대에 완숙하여, 2000년대에 끝없이 분화한 이 장르를 태초의 조건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RPG’라고 부르던 조건은 이제, 수많은 가능성들에 의해 취사적으로 선택되고 조립되고 분화되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제 비디오 게임의 세계에 순수한 RPG라는 것은 규정 불가능하다. < Back 지금 우리는 무엇을 '롤플레이'하는가 23 GG Vol. 25. 4. 10. 비디오 게임 장르로서의 RPG [1] 는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장르다. 이 장르는 태생부터 특정한 테이블 탑 게임을 도달해야 하는 이상적 모델로 삼으며 탄생했다. 초기 비디오게임 RPG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테이블탑 RPG(이하 TRPG)인 《던전즈 & 드래곤즈》(이하 D&D)를 혼자서 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 것에 목표로 두었다. 대부분 미국의 대학 내 인트라넷 시스템이었던 PLATO [2] 를 그 플랫폼으로, D&D를 즐기던 대학생들에 의해 자주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세간에도 잘 알려져있다. 또한 리처드 개리엇의 초기 작품인「아칼라베스」 역시 초기 버전의 제목이 DnD였다는 사실 또한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이 독특한 장르는 이러한 외부적 게임을 디지털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장르다. 물론 다른 장르들, 예를 들어 스포츠나 대전 격투 역시 현실의 ‘게임’을 디지털적으로 구현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RPG는 이들과는 다른 방식의 번역을 요구했는데, 그것은 RPG가 디지털의 방식으로 구현하려는 대상이 육체의 운동이나 정형화된 규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TRPG를 구동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했던 것, 그것은 TRPG의 가장 핵심적인 기반이 참가자들의 ‘언어’라는 사실이었다. TRPG 역시 대개는 적절히 구성된 게임 세계와 가변성이 큰 상황을 판단하기 위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게임을 ‘불편하지 않게’ 유지하기 위한 기반적 틀거리에 한정된다. TRPG는 그 이상의 모든 요소들, 그러니까 게임 내에 등장하는 장애물의 종류, 풀어야 하는 퍼즐이나 수수께끼, 참가자들 이외에 존재하는 세계의 모든 요소가 완전히 구조화되어 있지 않다. 설령 특정한 적 캐릭터에게 수치적 데이터가 있다고 한들, 그들이 어떤 배치로, 어떤 전략으로, 어느 정도의 사기로, 어떤 목적으로, 어떤 마음 가짐으로 플레이어들과 대립하는지는 규정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들 사이의 언어적 합의와 심판의 역할을 맡는 ‘게임 마스터’에 판단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이러한 세계와 게임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상호 반응할 것인가, 당면한 문제를 어떠한 과정으로 해결할 것인가 역시 모두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서 확정된다. TRPG라는 게임이 가진 가장 핵심적인 기반은 언어이며, 비디오 게임으로서의 RPG는 이 기반의 ‘거대함’을 번역하는 것을 요구받은 장르다. *「울티마」(1981)는 자율적으로 접촉 가능한 세계를 통해 거대함의 컨셉을 작동시킨다. 초기 미국의 컴퓨터 RPG(이하 CRPG)들은 이 거대함을 ‘게임 세계’라는 컨셉으로 해석했다. 이를테면 세계는 선형적이거나 순환적이지 않았다. 플레이어는 사전적으로 규정된 세계 내에서 자율적으로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기능을 얻었다. 「울티마」는 탑뷰로 내려다본 세계와 1인칭의 시점으로 구현되는 던전을 모두 가지고 있었으며, 던전의 구성은 난수적이긴 했으나 일정한 패턴을 통해 구현되었다. 플레이어는 어떤 곳에 먼저 들를지, 무엇을 먼저 구매할지 따위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세계와 반응해나가야 했다. 「위저드리」는 그보다는 더 좁은 세계인 다층 구조의 지하 던전을 다루고 있지만, 이러한 구조물과 플레이어는 비선형적 관계를 맺었다. 좁은 지하의 터널 내부에서도 ‘어떤 방’을 ‘어떤 순서로’ 탐험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몫이었으며, 때로는 모험을 포기하고 다시 지상으로 귀환해 상태를 재정비하고 다시 내려가야 했다. 물론 이러한 반응성의 세계는 초기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이를테면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나 「조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CRPG는 이런 어드벤처 게임들과는 전적으로 구분되는 체계를 내장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일종의 ‘수치에 의한 캐릭터 규정과 성장의 체계’다. 이 체계는 전적으로 그들이 원본으로 삼던 D&D의 것을 빌려온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언어라는 구조를 완전히 빌려올 수 없었던 디지털의 방법론에서 이 수치 개념이야 말로 가장 구현의 가능성이 높은 것이기도 했다. 지미 메이허Jimmy Maher는 《CRPG의 르네상스 파트 1》에서 이 문제를 꽤나 신랄하게 비판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CRPG는 전투와 병참 관리가 전부인 게임 엔진 위에 스토리와 세계 구축이라는 얇은 외피를 씌웠고, '롤플레잉role-playing' 게임이 아니라 '롤플레잉roll-playing'이 되었다.’ [3]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구현은 RPG라는 것이 초기 텍스트 어드벤처 혹은 다른 ‘거대한 서사’를 지탱하려는 비디오 게임 장르들과 구분되는 지점을 형성한다. RPG의 주인공은 결과적으로 ‘위대해짐’의 상태를 달성하는 것이다. 요컨 당대의 서사를 내포하는 다른 장르의 주인공들 역시 ‘더 복잡하고 장대한’ 장애물과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장애물과 마주하는 주인공 그 자체가 그에 상응할만한 존재로 변화하지는 않는다. [4] 하지만 RPG가 D&D로부터 빌려온 이 캐릭터 성장의 구조는 플레이어의 캐릭터에게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를 부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더 위대한 상태에 도달해 더 거대한 위협을 무찌르는 에픽epic [5] 의 서사의 구축이 가능해진다. [6] 한편 이러한 장대함의 구조는 TRPG의 ‘언어’라는 컨셉을 대체할만한 또 하나의 컨셉, 즉 ‘에픽의 서사’라는 컨셉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줬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 장르인 RPG는 ‘(거대한) 게임 세계’와 ‘(거대한) 에픽의 서사’라는 두 가지 컨셉을 지닌 장르로 체계화되었다. 그리고 핵심은 이 두가지 컨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컨셉들이 발현시키는 고유한 RPG만의 체감 조건에 있다. 넓고 반응 가능한 세계, 그리고 점차 ‘위대해지는’ 캐릭터의 변화는 플레이어를 게임의 내부에서 ‘정처없이 서성거리’도록 내민다. 이런 구조는 원뿔형의 나선으로 토픽화 된다. 플레이어는 넓은 반응 중심의 게임 세계에서 다양한 대상을 만나며 ‘정처없이’ 움직이고, 이러한 움직임이 캐릭터를 ‘점차 위로 상승’시켜 최종적으로는 꼭대기peak와 접촉한다. 이런 구조는 초기 미국의 RPG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코드를 어느 정도 변용해 받아들인 일본의 RPG(Japanese RPG, 이후 JRPG)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단, 이 하위 장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 퀘스트」는 프로듀서의 지향 [7] 에 의해 ‘게임 세계’보다는 ‘에픽의 서사’가 더 강조되었고, 이후의 JRPG가 그러한 서사에 더 집중하도록 만드는 기반을 부여했다. 이렇게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 RPG라는 것이 탄생한다. 선형 혹은 순환형 세계에서 변화를 가지지 않던 주인공들이 존재하던 세계에 ‘정처 없는’ 플레이가 들어선 것이다. 1990년대 : CRPG의 고전기 이렇게 형성된 RPG라는 장르는 1990년대에 이르러 그 형태가 더욱 졍교해진다. 《롤플레잉 게임 스터디즈Role-playing Game Studies》(2018) 에서 슐스Schules, 피터슨Pterson, 피카드Picard는 ‘게임 제작 수의 폭발적인 증가와 출시되는 게임의 질적 향상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학계와 팬들은 1990년대를 CRPG의 황금기로 간주한다.’ [8] 고 쓰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은 이후의 RPG를 규정했다고 말할 수 있는 몇 개의 게임들, 블리저드의 「디아블로」, 바이오웨어의 「발더스 게이트」, 인터플레이의 「폴 아웃」,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의 「엘더스크롤 II : 대거 폴」, 스퀘어 소프트의 「파이널 판타지 VII」 등이 발매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수/다종의 제작과 발매는 장르 내부에서의 적극적 분화를 이끌어낸다. 이 시기에 RPG가 유독 비디오 게임계의 주요 화두가 된 것은 비디오 게임 환경의 전적인 이동에 있기도 했다. 1990년대 개인용 PC의 보편화와 더불어 닌텐도, 세가의 적극적 공세는 비디오 게임의 소비 공간을 아케이드에서 가정으로 끌고 들어왔다. 이러한 소비 공간의 변화는 게임의 소비 방식 자체를 ‘일회적 양식’에서 ‘다회적 양식’으로 크게 변화시켰고, 플레이어들은 다회의 플레이가 맥락적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요구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는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월드」같은 플랫포머 게임조차 맥락적 다회 플레이를 의식하는 구성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경혁은 《현질의 탄생》에서 이렇게 적는다. "(게임의 소비 공간의 변화를 통해) 첫 번째로 발견할 수 있는 변화는 긴 호흡의 게임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 엔딩 없이 무제한으로 반복되던 초창기 게임들은 서서히 나름의 서사를 가진, 다시 말해 엔딩이 있는 게임의 형태로 변화했다. (...) 콘솔/PC 게임들이 보여주는 세이브/로드를 통해 초장 시간의 서사를 갖는 게임 플레이는 (...)" [9] 70~80년대에 발흥한 RPG라는 장르는 이러한 비디오 게임 소비의 공간적 변화에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작동한다. 호리이 유지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점점 강해진다는 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했거든요. AVG는 수수께끼가 막히면 할 일이 없어져버리지만, RPG라면 일단 레벨을 올리기만 해도 즐길 수 있잖아요. 수수께끼를 풀고 레벨도 올리면서 계속 나아가면 많이 놀 수 있는데다가,(후략)." [10] 이 시기를 루이스 자네티Louis Gianetti의 장르 사이클에 놓고 본다면 전적으로 고전기 [11] 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고전기는 ‘중간단계로서 균형, 풍요, 안정 같은 고전적인 이상을 구현’ [12] 한다. 즉, 80년대에 만들어진 RPG라는 장르 규칙은 1990년대의 폭발적 증가를 통해 수없이 반복되며 하나의 이상적 형태를 이룬다. 그리고 이 때의 RPG들이 무엇을 그 고전적 이상으로 삼았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RPG를 ‘RPG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만든 것은 사실상 거대한 세계, 에픽의 서사라는 컨셉보다도 그것을 달성시키는 ‘양식 조건’, 수치적 캐릭터 구성과 그 성장 체계에 기울어진 경향이 있다. 그것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RPG를 ‘다른 장르와 다르게 만들어주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무엇인가에 ‘RPG’라는 태그를 달 수 있는 조건은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수치화된 ‘능력치’라는 것이 있는지, 점수화된 경험을 모아 ‘레벨’을 올릴 수 있는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를통해 이 시기에 ‘RPG화’라는 욕망은 이 메커니즘을 어떻게 이식하는지에 달려있었다. 예를들어 시에라 온라인이 이러한 ‘RPG성’을 이식해 만든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 시리즈 「퀘스트 포 글로리」 [13] 의 경우, 역시나 강조되는 것은 이러한 양식 조건이다. 당시의 게임 잡지인 《PC 매거진》 1993년 1월호는 이 게임의 세번째 작품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문구를 사용한다. ‘이전의 「퀘스트 포 글로리」와 마찬가지로, QG3는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CRPG)과 그래픽 어드벤처가 혼합된 게임입니다. 캐릭터의 특성과 능력은 능력치의 리스트에 의해 정의됩니다. 상황의 성공 여부는 스킬 레벨에 따라 달라지며, 연습을 통해 스킬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14] 이러한 규정은 연구자들에게서도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구석이 있다. 2008년 International Journal of Role-playing Games - Issue 1에 실린 마이클 히친스Michael Hitchens와 앤더스 드레이센Anders Drachen의 《롤플레잉 게임의 다양한 얼굴들》에는 싱글 플레이어 디지털 롤플레잉 게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적혀있다. ‘이러한 게임은 캐릭터의 수치적 표현에 의존하며, 펜 앤 페이퍼 게임의 전형적인 스킬과 능력의 수치적 향상에 따라 캐릭터가 성장한다.’ [15] 또한 2012년 발매된 《비디오 게임 대백과》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장을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모든 RPG에는 정량화할 수 있는 특징(테이블탑 스타일 RPG에서 사용되는 캐릭터 시트와 동등한 디지털적 요소)을 가진 플레이어 캐릭터가 있으며 캐릭터의 성장이 성공의 중심 척도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RPG 규칙 시스템에는 자주 '경험치 레벨'이 포함되는데, 이는 게임에서의 성공적인 진행을 통해 새로운 능력과 스킬로 '레벨 업'할 수 있는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다는 의미다.’ [16] *《PC GamePro》에서 배포한 「디아블로」(1996)의 리뷰 프린트 광고. 잡지에 따라서는 Action RPG로 소개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이러한 양식 조건만으로 RPG를 설명할수 있는가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1996년 블리저드의 「디아블로」가 출시된 뒤, 해당 게임을 CRPG로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17] 그럼에도 「디아블로」는 여러 게임 잡지들의 기사 등에서 ‘RPG’로 홍보되었으며 전통적 팬덤의 입장과 무관하게 RPG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즉 업계에서는 RPG라는 게임을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이러한 수치적 캐릭터 규정과 성장 방식을 하나의 문법으로 사용했다. 설령 전통적 RPG의 팬덤이 이를 수용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한편 이러한 비교적 가벼운 규정은 1990년대에 RPG의 제작을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토대가 되어주기도 했으며, 덕분에 다종으로 분화할 토대가 형성되었다는 사실도 생각할 여지가 있다. 이를테면 일본에서 탄생한 SRPG의 경우 세계와의 접촉이 선형적이고 불가역적임에도 불구하고 RPG의 하위 장르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는 개별적인 게임 무대stage에서의 자유로운 전술적 지침이 이러한 ‘정처없는 서성거림’을 일부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1990년대는 그것의 고전기라고 부를 수 있는 조건과 동시에 그것에 다종의 분화를 만드는 수정기의 초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분화는 크게는 RPG의 거대 컨셉을 어떤 맥락에서 접근하느냐를 통해 분화되었다. 요컨대 지리적 요건에 의해서는 일시적으로 서구식 RPG(Western RPG, 이후 WRPG)라고 불리웠던 그것과 JRPG로, 인터넷이라는 기술 조건에 의해서는 단일 플레이어 RPG와 멀티 플레이어 RPG로 분화되었다. 이 때 이 분화를 만들어낸 배경에는 전적으로 RPG의 핵심인 ‘거대한 컨셉’에 대한 각자 다른 접근법이 있었다는 사실을 명시할 필요는 있다. 90년대 말의 RPG 1 : 지리적 분화로서의 WRPG와 JRPG 먼저 지리적 분화는 RPG가 내포한 ‘거대함’의 컨셉을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시켜나가는 양상을 보인다. 이를테면 WRPG는 거대한 ‘세계’에 방점을 찍는 반면 JRPG는 거대한 ‘서사’에 방점을 찍는다. 특히 WRPG는 바이오웨어의 「발더스 게이트」로, JRPG는 스퀘어 소프트의 「파이널 판타지 VII」로 이러한 특징의 엇갈림이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일시적으로 침체기에 들어갔던 CRPG, 특히 D&D를 기반으로 하는 CRPG를 완전히 전복한 작품으로 꼽히는 「발더스 게이트」는 21세기 이후 서양식 RPG의 가장 모범적인 구성을 명백히 한다. 당연히 「발더스 게이트」 역시 에픽의 서사를 추구하지만, 그 내부에서 세계와의 접촉은 두 개념으로 분할되어 작동한다. 먼저 ‘주된 서사’는 챕터의 단위로 분절된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각 챕터의 내부에서 세계를 향한 ‘정처없는 서성거림’을 실행해 세계의 수많은 요소와 접촉하고 상호 작용한다. 물론 이러한 절차 기반의 세계 탐험은 이 게임보다 약 5년에 앞서 발매된 다이나믹스의 「크론도의 배신자」에서 이미 확립된 개념이긴 하나, 「발더스 게이트」는 이러한 세부적 접촉을 관리하는 저널의 역할, 그리고 각각의 접촉이 발생시키는 상당한 수준의 다면적 반응을 통해 세계 자체가 가진 생동성을 극히 도드라지게 만들어냈다. 단순히 세계에 흩뿌려진 작은 서사의 조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을 넘어, 플레이어 캐릭터가 가진 특성이 대화의 양상에 반영되거나, 대화 양상이나 접촉의 순서가 이후의 결과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세계의 생동을 전달한다. 따라서 「발더스 게이트」에서 가장 핵심적인 코드는 결국 ‘세계’가 된다. 이는 그와 유사한 시기에 발매된 두 편의 「폴 아웃」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요소로, 결국 이 시기 WRPG는 초기 CRPG가 가져온 ‘세계’의 맥락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에 반해 「파이널 판타지 VII」는 전적으로 서사의 맥락을 향해만 나아간다. 발매 당시 「파이널 판타지 VII」는 서사의 중간을 채우는 화려한 컷씬으로 그 특징이 규정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파이널 판타지 VII」에는 온갖 기이한 요소들이 산재한데, 특히 이야기의 진행을 메우는 미니 게임의 역할이 그렇다. 「파이널 판타지 VII」에는 챕터와 챕터를 메우는 독특한 구성의 미니 게임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들은 슬로프에서 스노우 보드 타기, 잠수함을 조종해 적기를 격추하기 등 완전히 다른 장르로 발현되곤 한다. 게다가 각각의 미니게임은 (RPG의 규칙적 전제인) 플레이어의 성장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완전 독립된 구성이라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지점을 갖는다. 이들의 이상한 점은 이러한 외부적 플레이를 플레이어에게 강제하는 구성이라는 점에 있다. 마치 스퀘어 소프트는 자신들이 상정한 서사 전체를 ‘체험’시키려는 요량으로, 그러니까 서사가 허용한다면 그것을 게임 플레이로 해석해 체험시키겠다는 강력한 욕망을 가진 것 처럼 보인다. 즉 이 세계는 「발더스 게이트」처럼 플레이어에게 반응하기 보다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반응하길 바란다. 이 반응 요청의 하부 구조에 ‘에픽의 서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기묘한 게임의 세계적인 성공은 JRPG라는 것이 작동하는 원리가 그 무엇보다 ‘에픽의 서사’에 있음을 천명한다. JRPG는 ‘서사’라는 컨셉을 위해서라면 ‘세계’라는 축 마저 납작하게 만들 각오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파이널 판타지 VII」(1997)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서사에 상응하는 미니게임을 갑작스럽게 던지곤 한다. 이들은 21세기 초를 규정하는 다른 중요한 RPG들, 블랙 아일 스튜디오의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이하 「토먼트」)와 스퀘어 소프트의 「파이널 판타지 X」의 분명한 토대가 된다. 21세기 초 사반세기의 RPG의 규정에는 이들로부터 이어지는 지리적 양태를 무시할 수 없는 흔적이 있다. 90년대 말의 RPG 2 : 통신 기술의 기반으로부터의 멀티 플레이어 RPG 한편 20세기 말은 인터넷이라는 기술을 통해 혁명적 디지털 기술의 변모가 존재하던 시기다. 이 조건은 RPG라는 장르에도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데, 본디 RPG가 모델로 삼고 있던 TRPG는 그 자체가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즐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 반응성의 거대 세계라는 컨셉을 다수의 플레이어에게 동시에 감각 시킨다는 조건은 RPG의 이상적 모델과 연결되는 것이다. 사실 MORPG 또는 MMORPG는 그 선조로서 MUG를 가지고 있다. MUG는 기본적으로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 같은 텍스트 어드벤처를 다수의 환경이 동시에 즐기는 것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세계를 공유할 경우, 그 안에는 인식을 위한 ‘동일한 체계’가 필요하다. 결국 텍스트 어드벤처들이 가지고 있는 텍스트의 추상적 이미지만으로는 한계지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결국 ‘수치로 규정되는’ RPG의 양식적 기반이 그 내부에 들어선다. 그리고 인터넷의 전송 가능한 데이터의 수치가 증가함에 따라 텍스트라는 한계지점을 넘어 최종적으로 그래픽으로 운용되는 세계가 구동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MMORPG는 단연 1997년 출시된 「울티마 온라인」이다. 「울티마 온라인」에서 가장 확고히 인식되는 욕망은 세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어떤 면에서 이 게임으로부터는 TRPG의 그것을 넘어서고 싶다는 욕망, ‘거대 세계’라는 컨셉 안에서라면 그것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까지도 느껴진다. 물론 TRPG의 언어라는 컨셉은 무한한 가능성의 조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와 대면하는 게임 마스터라는 접면을 토대로 한다. 하지만 「울티마 온라인」은 모든 플레이어 캐릭터가 직접 세계의 구성 요소가 되어줌으로서, 가상적 세계 그 자체를 인간의 힘으로 ‘구동’시키고 싶어한다. 플레이어는 필요에 따라 여러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는데, 보편적인 RPG의 주인공인 ‘모험을 하는’ 캐릭터 외에도 경제 활동에 투신하는 직업인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들이 게임 내부에서 연결되고, 관계 맺고, 경제적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 「울티마 오리진」의 이상적 모델이다. 따라서 여러면에서 「울티마 온라인」이 상정하는 ‘거대 세계’의 모델은 TRPG의 그것보다 더 커다란 측면이 있으며, 따라서 이 두 세계라는 컨셉은 오히려 구분되어 버린다. 즉, 「울티마 온라인」의 진행은 어느 순간 CRPG의 이상적 모델이었던 TRPG를 지나쳐버린다. 한편 싱글 플레이 RPG, 이를테면 「발더스 게이트」나 「디아블로」 등에서는 네트워크 기능을 통해 동일한 세션을 함께 즐기는 멀티 플레이가 탑재된다. 특히 D&D를 그 원전으로 삼는 「발더스 게이트」는 TRPG의 온라인 세션을 염두에 둔 구성임이 명백했다. 「발더스 게이트」를 동시에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은 세계의 구성물이 되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세계에 반응하는 존재로만 기능하도록 구성되어있다. 사실상 이 구성은 디지털 구조에 게임 마스터의 역할을 뒤집어 씌운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심플한 「디아블로」는 하나의 지하 던전을 함께 헤집고 다니는 반응적 ‘파티’를 구성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이 경험은 사실상 고전 아케이드 게임인 「건틀렛」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것 처럼 여겨질 정도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은 「울티마 온라인」이 품고 있는 ‘다수의 플레이어에 의해 거대 컨셉이 스스로 구현되는 것’과는 거리를 둔다. 어떤면에서 보면 이 두 분화의 관계는 WRPG와 JRPG의 더 거대한 버전처럼도 보인다. 이를테면 「울티마 온라인」은 ‘거대 세계’라는 컨셉을 더욱이 거대하게 만드는 대신, 에픽의 가능성을 극도로 줄여버린다. 「울티마 온라인」에서 감각하는 서사는 본질적이기 보다는 구성적이다. 따라서 체감적인 서사성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조지프 캠벨의 의미에서) ‘신화적’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마찰하며 만들 수 있는 서사에는 역시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여전히 서사의 중심을 게임 시스템이 귀속시키려는 「발더스 게이트」는 더 전통적인 측에 속한다. 캠벨의 주장에 따라 신화적 서사가 ‘신의 세계’에 다녀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신 또는 그에 준하는 존재로서의 서사를 인가하는 자가 절실히 필요해진다. 「발더스 게이트」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게임 마스터라는 역할이며, 그것을 ‘기계 장치의 신’에 맡겨둠으로서 거대 서사라는 컨셉을 기능시킨다. 1990년대의 유산과 21세기 초의 RPG들 앞서 설명한 분화들의 결과는 21세기 초입의 가장 중요한 RPG로 그 효과를 연장한다. 앞서 설명한대로 「발더스 게이트」는 「토먼트」로 ‘거대 세계’라는 컨셉을 유산으로 남긴다. 이때 「토먼트」는 「발더스 게이트」가 가진 하이 판타지적 컨셉들로부터 이탈해 전투와 그에 준하는 세팅보다는 주인공 캐릭터인 ‘이름없는 자’가 어떻게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는지에 더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방법론이 게임 진행의 형식이 되어주는 것을 넘어, 「토먼트」가 궁극적으로 그리는 에픽의 형태에까지 영향을 준다. 이렇게 「발더스 게이트」로부터 「토먼트」로 이어지는, 거대 세계의 컨셉을 통해 에픽의 서사를 달성한다는 개념은 21세기의 WRPG가 반복해서 품는 모델이 된다. 그 경향의 연장에는 바이오웨어의 「스타워즈 : 구 공화국의 기사단」 시리즈와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의 「엘더스크롤」 시리즈, 「폴아웃」 시리즈, 라이온헤드 스튜디오의 「페이블」 등으로 연장된다. 또 한편 「파이널 판타지 VII」에서부터 발흥한 JRPG의 태도는 동 시리즈의 신작이었던 「파이널 판타지 X」로 연장된다. 「파이널 판타지 X」는 이전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가지고 있던,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세계의 직관적 체험’을 포기한 최초의 게임이다. 말미에 하늘을 나는 ‘비공정’을 획득해 세계의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었던 이 시리즈에서 ‘월드 맵’이라는 개념을 포기한 최초의 게임이다. 「파이널 판타지 X」의 세계는 길게 이어진 길쭉한 홈통이 몇개씩 연속으로 연결된 형태이며, 그 홈통들 사이사이를 연결하기 위한 넓은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비공정에 탑승하더라도 플레이어는 그 행선지를 여러개의 선택지 중 하나로 선택하도록 요구받는다. 시각적으로는 세계의 가상 모델을 드러내긴 하지만 플레이어가 임의로 세계를 날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파이널 판타지 X」는 거대 세계라는 컨셉을 최소한도의 크기로 납작하게 만든 뒤, 에픽의 서사라는 컨셉만을 비대하게 증가시킨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면에서 21세기 JRPG를 규정하는 전제가 되어준다. 이를테면 21세기 초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아틀러스의 「페르소나」 시리즈 역시 그렇다. 본디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외전으로 시작한 이 시리즈는 (외전임을 증명하는 ‘여신이문록’이라는 단어를 처음 제거한) 3편부터 그 게임 플레이가 크게 변화한다. 여기서부터 이 시리즈는 세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거대한 부감적 시선을 제거해버린다. 그리고 공간이 아닌 시간을 통해 길쭉한 홈통을 만들고 플레이어를 통과시킨다. 하루하루의 행동을 통해 앞으로 진행하도록 요구하는 게임의 구성은 거대 세계에 응하는 체험이라는 감각을 끊어버리고, 불가역적인 시간의 컨셉 안에 플레이어를 가둬버린다. 「페르소나」는 일정 시기마다 벌어지는 대형 이벤트와 그곳에서 발생하는 인간적 드라마를 공간의 개념보다 더 강조한다. 「페르소나」 역시 에픽의 서사 앞에서 세계의 규모를 납작하게 누르는 시리즈라 할 수 있다. 90년대를 넘어 21세기를 관통하는 또 다른 인기 JRPG 시리즈인 「포켓몬스터」 시리즈 역시, 몇 개의 구역이 홈통이 되어 서사의 핵심 축인 ‘마을’의 연결고리로 작동한다. 물론 이후의 모든 JRPG가 이런 ‘연속된 홈통의 구조’를 가지지는 않겠지만, 이후 JRPG에선 서사의 컨셉이 세계의 컨셉보다 우위라는 것, 서사가 세계를 짓누르는 구성이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지우기 어렵다. *「파이널 판타지 III」와 「파이널 판타지 X」의 비공정 화면의 비교 한편 21세기의 초입에 등장한 또다른 서양의Western RPG인 「디아블로 2」는 「발더스 게이트」의 논제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전작인 「디아블로」로부터 이어진 던전 크롤링 중심의 이 게임은 「로그」로부터 빌려온 무작위 생성의 던전을 그 세계의 핵심 축으로 가진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세계의 반응을 기대하기 보다는 세계에 ‘반응하며’ 탐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구성은 어떤 면에서는 세계만을 비대하게 키워낸 MMORPG에 대응하며 존재하는 것 처럼도 보인다. 이러한 반응성이 극히 적은 게임의 플레이는 웨스트우드의 「녹스」, 가스 파워드 게임의 「던전 시즈」 시리즈, 레이븐 소프트웨어의 「마블 얼티밋 얼라이언스」 등으로 이어지며 WRPG의 한 축을 이룬다. 단 이들은 첫번째 「디아블로」보다는 더 디테일한 서사를 중시하는 면이 있으나, WRPG와 유사한 정도의 반응적 세계를 구축하진 않는다는 면에서 다른 경향을 지닌다. 한편 MMORPG는 계속된 「울티마 온라인」의 논제, 플레이어를 구성물로서 세계를 구성하려는 욕망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매달리는 측면이 있었다. 요컨 NPC에 의한 상행위를 완전히 지우고 플레이어들만으로 경제를 지탱하려 했었던 「애쉬론즈콜 2」나 플레이어를 세력에 귀속시키고 소통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해 플레이어들간의 군집적 결속을 유도하려 했던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이 대표적인 예시가 된다. 특히 1999년 발매된 SOE의 「에버 퀘스트」는 이러한 시스템의 ‘특화된 지점’의 인적 네트워크를 강조하기 보다는, 그 세계의 구성에 있어 협력의 ‘필요성’을 통해 커뮤니티를 작동시키는 독특한 게임이었다. 「에버 퀘스트」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세계의 규모, 문제, 해결의 양상에서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어떤 면에서는 고전적 형태의 레벨 디자인의 변용을 통해) 방법론의 측면을 강화한다. 그 결과 플레이어들은 자의적으로 세계를 생동시켰으며, 「울티마 온라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거대 세계’를 구성해 나갔다. 그리고 21세기의 MMORPG를 확고히 규정한 게임은 블리저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일 것이다. 「WoW」는 그 구성에 있어 이전의 MMORPG들이 거쳐온 다양한 개념들을 규합하고 있긴 하지만, 오히려 「울티마 온라인」의 논제인 ‘플레이어를 구성물로 세계를 구동’하려는 욕망으로부터는 꽤나 이탈해있다. 물론 팩션을 통한 응집이나, 인스턴스 던전과 레이드 등을 통해 발현되는 「에버 퀘스트」적인 커뮤니티 구성은 충분히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WoW」를 더 특별하게 만든 것은 어떤 면에서는 싱글 플레이 RPG로부터 그 방법을 빌려온 ‘세계를 추동하는 거대한 서사’의 컨셉이기도 했다. ‘퀘스트 텍스트가 단순한 플레이버 텍스트가 아닌’ MMORPG로서 「WoW」는 독특한 지점에 있는 게임이다. 말하자면 「WoW」는 MMORPG가 끌고 나간 ‘거대 세계’의 컨셉을 이어받아 플레이어들을 구성물로 삼는 세계를 구축하는 한 편, 플레이어 캐릭터로 하여금 고전적인 RPG의 에픽 서사의 컨셉, 즉 ‘위대해지기’를 체감시키는 텍스트적 힘을 발휘하는 게임이다. 따라서 「WoW」의 강점은 적절한 정도의 수동성이다. 특히 2010년 벌어진 거대 이벤트 ‘대격변’은 그 수동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한다. 세계의 형태, 구조를 뒤바꾼 이 충격적인 이벤트는 플레이어들의 참여적 성질로 벌어진 것이 아니다. 여기엔 오직 부여된 서사만이 존재한다. 어떤 면에서 「WoW」의 플레이어들은 이미 ‘거대 서사’의 컨셉을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이 수동적 변화를 쉽게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21세기 : 레벨링 시스템의 보편화와 장르 재정립의 시대 그러는 한편, 비디오 게임의 주 무대가 완전히 가정으로 바뀌어버린 21세기는 고전적인 RPG의 양식적 모델이 가진 독립성이 붕괴되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21세기는 비디오 게임의 플레이 형식을 맥락적 다회성으로 완전히 정착시킨 시기이기도 하거니와, 기술적 발전으로 말미암아 그 어떤 장르에서도 ‘위대해지기’를 실현할 수 있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캡콤의 「귀무자」 시리즈나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 산타모니카 스튜디오의 「갓 오브 워」 시리즈, 세가의 「용과 같이」 초창기 시리즈는 모두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의 형태에 귀속되어 있는 시리즈이다. 하지만 이들은 플레이어 캐릭터가 강화되는 일종의 성장 테이블을 지녀 장기간 세션의 반복을 통해 점차 에픽의 위대함에 가까워진다. 물론 예시로 든 게임들은 21세기 초에 등장해 그 초석을 마련한 게임들일 뿐이다. 21세기의 ‘커다란’ 게임들이란 대체로 수집, 구매, 강화, 스킬 트리 등의 성장 체계를 기본적인 언어로 삼는다. 따라서 이 약 20년의 시기는 1990년에 세워두었던 RPG의 양식적 모델을 완전히 해체해버린다. 더 이상 RPG는 수치화된 캐릭터 구성과 레벨식 성장이라는 것으로 장르 모델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정처없는 서성거림’이라는 모델 역시 그 존속에 불투명함이 발생한다. 「GTA 3」부터 가속화된 ‘오픈월드’라는 형식의 확산은, RPG라는 규정의 여부와 무관하게 플레이어 캐릭터를 펼쳐진 세계에서 이리저리 떠돌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세계를 향해 어떠한 행동을 취하고 그 반응을 기대한다. 게임 세계의 규모를, 용량이 닿는 한 얼마든지 키울 수 있는 작금의 게임 세계에서 ‘정처없는 서성거림’을 장르 특유의 체감적 모델로 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있는 셈이다. * 아케이드형 벨트 스크롤 액션 게임에 가까운「캐슬 크래셔즈」역시 정처 없이 떠돌거나(좌), 캐릭터를 성장(우)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를테면 소니의 「마블스 스파이더맨」은 RPG인가? 이 게임에는 명백한 형태의 성장 체계(RPG의 양식적 모델)가 존재하며, 또 한편으로는 이미 얼마든지 떠돌 수 있는 맨해튼의 지도(RPG의 체감적 모델)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게임을 ARPG로 부르지 않는다. 이런 구성은 락스테디의 「배트맨 : 아캄 수용소」를 위시한 아캄 시리즈나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의 「컨트롤」, 심지어는 베히모스의 「캐슬 크래셔즈」같은 아케이드 테이스트가 짙은 빗뎀업 게임까지 수도없이 찾아낼 수 있다. 물론 이 게임들에게서는 ‘세계의 디테일한 반응’이나, ‘고전적 성장 시스템’ 등이 부재하다는 점을 들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소소한 어긋남은 RPG라는 장르의 내부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해왔던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게임을 ‘RPG’라고 부르는 것을 저지하는 것일까? 오히려 이러한 물음이, 사반세기가 지난 바로 지금에 와서 RPG라고 하는 것에 대한 본질적 질문과 맞닿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21세기 RPG의 사반세기 : 지금 우리는 무엇을 ‘롤플레이’하는가. 2018년 Routledge로부터 발매된 《롤플레잉 게임 스터디즈》에서는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한 명의 플레이어가 컴퓨터 장치로 플레이한다. ● 플레이어는 가상의 게임 세계에서 하나 이상의 캐릭터의 행동을 생성하고 관리한다. ● 컴퓨터는 모든 비플레이어 캐릭터를 포함한 게임 규칙과 게임 세계의 내부 모델을 실행하고, 인터페이스를 통해 표현을 렌더링하며 플레이어의 입력에 따라 모델과 표현을 업데이트한다. ● 게임 세계는 플레이어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시청각적 표현을 생성하는 계산 모델에 의해 구성된다. ● 게임 세계는 일반적으로 판타지, SF, 호러 또는 이들의 혼합물인 일종의 장르 픽션의 것을 따른다. ● 시도할 수 있는 캐릭터의 행동은 게임 인터페이스를 통해 제공되는 옵션으로 제한된다. ● 캐릭터의 능력과 행동의 결과는 일반적으로 정량적 확률 규칙 시스템 또는 플레이어의 반사 신경과 명령 입력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 게임은 보통 여러 세션에 걸쳐 진행된다. ● 게임 내 이벤트는 일반적으로 게임 세계의 광범위한 스크립트(플레이어가 아닌 캐릭터 행동 포함)를 통해 사전 계획된 플롯을 따라 명확한 종료 지점을 향해 안내되지만, 플레이어는 이러한 플롯이 끝나기 전/도중/후 언제든지 개방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 전투 처리를 위한 광범위한 규칙이 있다. ● 플레이어 캐릭터는 성장 시스템을 통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향상된다. [18] 비교적 최근에 정리된 규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규정이 앞서 제기한 RPG라는 장르 특성의 광범위화에 따른 해체 가능성을 돌파하도록 돕진 못한다. 요컨 상기의 모든 요건은 앞서 말했던 「마블스 스파이더맨」이나 그와 유사한 액션 어드벤처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RPG라는 장르의 개념적 소멸을 앞두고 있는 것인가? 물론 이제와서 ‘21세기에는 모든 게임이 RPG다.’라는 성긴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해체의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가 ‘RPG’라고 하는 것을 어떠한 감각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 좁은 통로를 통과하고, 캐릭터를 강화하고, 적과 조우해 전투하는 일을 겪는다고 해도 「데드 스페이스」는 명백히 RPG가 아니지만 「세계수의 미궁」은 명백히 RPG로 인식된다. 단순히 턴 베이스의 전투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감각도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위쳐」나 「다크 소울」을 RPG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렇게 접근해보자. 지금의 RPG가 무엇인가를 규정 또는 재규정하려는 태도로부터 잠시 이탈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21세기의 RPG는 무엇을 시도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극도로 분화되거나 통합되어버린 세계를 향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접근은 구분짓기categorizing 뿐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 지점에 위치하는 게임들은 액션 어드벤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태도로의 ‘액션 RPG’ 군집이다. 특히 근래에 도드라지는 것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 소울」을 위시한 일련의 느슨한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세계에 대한 극도로 희소한 규정이다. 요컨 소울 시리즈에서 플레이어에 대한 세계의 반응성이란 극도로 폭력적인 방향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어쩐지 프롬 소프트웨어는 이 ‘세계’ 자체가 그러한 반응만을 가지는 곳이라고 규정하려는 뉘앙스가 있다. 쉽게 말해서 이 세계는 ‘말하지 않는다’. 설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이 세계를 규정하는 특징이 그렇다. 오직 이 세계의 언어란 간접화법의 언어, 쉽게 말해 ‘플레이버 텍스트’를 통해 우회하는 언어로서 세계의 규정을 전달한다. 이 세계에 「발더스 게이트」의 논제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이 게임이 ARPG이기 때문 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가 좀처럼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소울 시리즈는 초기 CRPG의 순수함을 유지하려 한다. 말하자면 세계에 대한 반응을 오직 ‘읽어야만’ 하는 세계. 읽는 시간 이외에는 세계가 가져다주는 극도의 폭력에 대항하며, 서성일 수 있는 품을 넓혀야 하는 그런 곳 말이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프로듀서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이런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 "감히 말하자면 「데몬즈 소울」에서는 소위 ‘게임 애호가’의 공통된 가치관, 그러니까 동양과 서양의 구분 이전에 존재하는 ‘게임스러움’ 또는 ‘흥미로운 부분’을 구성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저드리」와 같은 많은 고전 게임이 가지고있는 매우 단순하고 원시적인 게임의 속성 말입니다." [19] 즉 이 군집은 어떤 면에선 ‘행동의 가능성이 극히 제한되던’ 시대의, 디지털 게임의 원시적인 개념들만으로 D&D의 형태를 재현하려고 했던 바로 그 시기를 RPG라고 규정한다. 요컨 이것은 뒤틀린 형태의 에뮬레이션이다. 시대의 기술적 한계를 의도된 불편함과 폭력으로 규정하고는 그것을 최신의 기술로 되짚어 구현하려는 기이한 욕망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군집에는 RPG라는 개념에 대한 원초적인 애정이 존재한다. 이들은 RPG란 언어의 컨셉에 그 핵심이 있다는 사실에 의지한다. *「다크 소울」과 그에 연계된 게임들에 있어 에픽을 창조하는 것은 ‘말’이 아닌 ‘글’이다. 또 다른 먼 군집은 대한민국에서 ‘수집형 RPG’라고 불리우는 군집이다. 이들은 (약간은 강경한 태도를 가지자면) RPG라는 그 어떠한 기반도 가지지 못한 기이한 위치에 머무르고 있다. 이들은 스퀘어 에닉스의 「확산성 밀리언 아서」로부터 비롯된 CCG(Collective Card Game)의 연장선상에 머무르고 있는데, 그 수집의 대상이 ‘카드’가 아니라 수치화된 캐릭터라는 점에서 RPG라는 위치를 점한다. 조은하는 이러한 한국형 수집 RPG의 시초적 게임으로 핀콘의 「헬로 히어로」를 들며, 이 장르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한다. ‘국내 개발사들은 일본 CCG가 스마트폰 환경 하에 효율적으로 재구성한 RPG 시스템을 일부 수용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일본 CCG의 일러스트 카드를 움직이는 2D, 3D 캐릭터로 바꾸고, 과도하게 단순화된 형식적인 전투 시스템을 화려한 스킬과 시네마틱 연출을 통해 볼거리를 만드는 작업들을 시도했다.’ [20] 여기서의 핵심 문구은 아마도 ‘스마트폰 환경 하에 효율적으로 재구성한 RPG 시스템’ 일 것이다. 이 문장에서 발안하는 ‘RPG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1990년대에 형성된, 양식 조건으로서의 RPG 구성요소, 즉 ‘수치화된 캐릭터와 그에 대한 성장 시스템’일 것이다. 요컨 모바일 중심의 이 ‘수집형 RPG’는 그러한 양식 조건이 바로 RPG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일군이다. 여기에는 세계에 대한 반응 추구, 생동성, 체감적인 ‘위대해지기’의 요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요컨대 거대함의 두 컨셉(세계, 서사)이 모두 약화되어 작동하는 셈이다. 물론 수집형 RPG에도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서사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세계과의 면밀한 접촉과 극단적으로 유리된, 텍스트 어드벤처의 그것과 동등한 위상으로 작동한다. 쉽게 말해 수집형 RPG에서 ‘거대 세계의 컨셉’은 실종되어 있고, ‘거대 서사의 컨셉’은 장르 밖에서 작동한다. 오직 RPG라는 형태는 양식으로서 기능하는데 그친다. 물론 이러한 형태의 ARPG적 변용들, 「원신」이나 「젠레스 존 제로」등은 세계와의 생동을 그려내며 조금은 더 원형적인 RPG의 형태로 나아가는 면이 있다. 한편 MMORPG의 군집은 조금 복잡한 양태를 가진다. 라이브 서비스라는 명목 하에, MMORPG는 그 플레이어 요구의 개념이 크게 변화한다. 한 축은 MMORPG의 본질적인 욕망인 ‘게임 세계’의 소유로 뻗어나가는 군집이다. 21세기 초에 서비스를 시작해 여전히 유지되는 「EVE 온라인」을 필두로 경제 체계나 생활 콘텐츠를 채워나가는 경향의 게임들 (「아키에이지」, 「알비온 온라인」, 「검은 사막」, 「코난 엑자일」 등)이 한 축을 이루는 반면, 게임 세계와의 반응보다는 특정한 챕터 등의 절기를 중심으로 서사를 지속적으로 지원받는 서사 중심의 MMORPG(「파이널 판타지 14」, 「스타 워즈 : 구 공화국」, 「엘더스크롤 온라인」,「로스트 아크」 등)가 한 축을 이룬다. 하지만 초기 MMORPG가 추구했던 ‘세계 그 자체의 거대한 운용’을 극히 시도하는 경향은 줄어들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게임이 다루는 세계가 ‘게임 세계’라는 범주를 추월하려는 경향을 억제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쉽게 알 수 있듯 「EVE 온라인」 등이 장기간 발전시켜온 이 가상의 세계는 결코 친절한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MMORPG는 이러한 비대해진 게임 세계가 곧 완전한 가상의 세계가 될 수 없다는 한계 지점에 대한 토로와도 같다. MMORPG가 다루는 게임 세계가 TRPG가 다루는 게임 세계, ‘합의와 관리의 세계’를 추월해버렸을 때, 그 벽의 너머에서 접촉하는 것은 실제 세계의 영향력일 수 밖에 없다. MMORPG는 이미 CRPG의 순수성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는지도 모른다. 이곳은 순수한 게임 세계라기보다는 현실 세계의 튀어나온 작은 혹, 현실세계의 영향이 장단기 반영되는 거울과도 같은 세계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여러면에서, 서사의 컨셉을 다시 끌고온 MMORPG들이 다시금 ‘ 체험 가능한 게임 세계’를 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 시켜주고 있다. 결국 MMORPG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세계라는 컨셉을 중심에 두고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결국 ‘RPG’라는 장르의 논리만으로는 수집할 수 없는 더 거대하고 독립적인 장르가 되어버렸으며, 더욱이 그렇게 나아가게 될 것만 같다. 또 다른 군집은 JRPG의 순수성을 추종하는 군집이다. JRPG의 테이스트가 일종의 보편 가능성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정확히 10년이 지난 2010년에 《JRPG가 고쳐야 할 10가지 방식》 [21] 이라는 굴욕적인 칼럼이 게재되기도 했다. 불과 15년전까지만 해도 JRPG는 고전적 RPG의 순수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온, 어떠한 변용된 돌연변이와도 같았다. 물론 해당 칼럼이 모두에게 호의적으로 읽혔던 것은 아니나, 이러한 칼럼이 쓰여지고 유통된 배경에는 분명 서양 게이머 군집의 JRPG에 대한 기묘한 위화감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배제는 철저히 로컬리티의 결과물이다. 즉 ‘JRPG’라는 단어로부터 전달되는 지정학적 문제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칼럼이 정말로 JRPG가 ‘비교적 질이 낮은’ 장르였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시기까지 RPG란 정말로 동-서라는 세계로 그 형태가 분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15년 정도가 지난 지금, JRPG는 하나의 코드로서 지정학적 한계를 넘어선다. 흥미롭게도 근 10년 사이에 나온 JRPG의 코드를 가진 게임들에는 일본 외의 지역에서 만들어진 게임이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크로스 코드」(독일), 「코스믹 스타 히로인」(미국), 「피어 & 헝거」(핀란드), 「겟 인 더 카, 루저!」(캐나다), 「인디비지블」(미국), 「잭 무브」(대만), 「씨 오브 스타즈」(캐나다), 「클레르 옵스퀴르 : 33 원정대」(프랑스) 등등. 이는 게임 제작자의 세대 분리를 드러내는 통계적 결과일 수도 있다. 요컨대 JRPG를 서구세계에 알린 「파이널 판타지 VII」가 등장한지 약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코드를 자기 내부의 문화적 양식으로 인지하는 서구의 게임 제작자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런 세대론보다 중요한 건 아마도 ‘세계’의 컨셉을 줄이고 ‘서사’의 컨셉을 증가시키는 밸런스의 RPG가 하나의 보편 가능성이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이 군집은 그러한 좁게 뻗은 길을 따르는 ‘위대해지기’ 역시 RPG라는 장르의 코어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드러낸다. 이제 JRPG는 초기 CRPG의 간단한 번안물 이상이다. JRPG 역시 고전적 RPG의 범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명백한 영역을 지닌 하위 장르로 영속할 것이다. *「씨 오브 스타즈」(2023)는 전적으로 90년대 JRPG의 감각을 되살린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는 「크로노 트리거」나 「슈퍼마리오 RPG」 등의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설명해야 하는 군집은, 그 무엇보다 본래의 순수성에 도달하려는 의지를 지닌 군집이다. 이 군집에는 다음과 같은 게임들을 넣을 수 있다. 뮤네이처의 「인격해체」, 안샤르 스튜디오의 「게임 덱」, 점프 오버 디 에이지의 「시티즌 슬리퍼」 그리고 ZA/UM의 「디스코 엘리시움」. 이러한 게임들은 전적으로 TRPG의 핵심인 ‘언어’를 믿는다. 세계는 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 플레이어는 언어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고, 플레이어의 선택은 세계의 구조로 틈입해 세계의 반응을 이끈다. 그 사이에 플레이어가 구체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규정된 난수의 규칙rule을 통해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그리고 게임은 전적으로 언어에 귀속되어야 하므로, 규칙의 사용까지도 플레이어에게 ‘언어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렇다. 이 군집은 RPG라는 장르가 탄생하던 시기에 목적하던 것을 다시금 획득하려 든다. 바로 TRPG를 순수한 이상으로 삼고 그것을 추종한다. 이들의 목적은 ‘TRPG적인’ 플레이를 비디오 게임의 과정으로 번역해 이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군집의 게임이 갑자기 근 몇년 사이에 도드라진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이전에도 아울캣 게임즈의 「패스파인더」 시리즈나 라리안 스튜디오의 「디비니티」 시리즈가 바이오웨어의 명맥을 이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과 (그리고 최근에 발매된 「발더스 게이트 3」와) 현재의 군집이 다른 것은, 이들은 자신들의 이상적 어머니로서 D&D를 유일한 위치에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게임 덱」, 「시티즌 슬리퍼」, 「디스코 엘리시움」에는 정확한 의미에서의 ‘전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캐릭터를 구성하는 수치적 체계가 시각적으로 보이는 ‘물리 세계’에 어떻게 작용하느냐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서사의 중심 체계로서의 ‘언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 [22] 그런 면에서 이 구성의 배경에는 초기 게임 베이스의 TRPG가 아니라 2000년대 이후에 확산된 스토리 중심story-driven의 TRPG가 있다는 느낌을 준다. 마치 이들은 TRPG라는 테이블 게임계의 움직임과 조응하는 방식으로서의 비디오 게임을 지향하는 감각을 준다. 그리고 이 마지막 군집의 등장이 비교적 최근이라는 사실은, RPG라는 장르의 충분 조건이 보편화를 통해 해체되어가는 시대라는 사실과 충돌한다. 즉 모든 비디오 게임이 (비디오 게임 장르로서의) RPG가 되어가는 이 시대에, 이 게임들은 비디오 게임 바깥의 이상을 다시금 불러들여 RPG를 재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작가이자 디자이너인 로베르트 쿠르비츠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롤플레잉 게임을 완전히 혁신하고 싶습니다. 그 혁명을 실현할 때까지 게임을 미세조정 했습니다. 스토리, 선택, 결과의 활용을 혁신하는 것이죠. 스킬의 용례. “스킬"이라는 의미. 저는 실제 삶, 인간의 상상력, 슬픔, 암시의 힘, 춤 등 테이블탑 RPG와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진정한 경험을 실제로 표현하는 평화로운 스킬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23] 그리고 이러한 이상의 달성은 섬세한 그래픽이나 구체적인 컷씬으로는 달성이 불가능한 것이 명백하다. 해결 가능성은 오직 언어, 언어 그리고 언어이다. 오직 언어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 이 게임의 제작자들은 긴 시간을 우회해, 그리고 필요한 바로 이 때에 RPG라는 장르의 핵심으로 다시금 언어를 소환한다. 이때 이 언어의 필요성은 시대의 기술과 미묘한 접합점을 만든다. 이 시점에서 「언커버 더 스모킹건」을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이상향이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과 접촉하며 끝없이 앞질러 나갈 것인가? 글쎄, 그러한 예측까지는 아직 미진한 일인 것 같다. *「시티즌 슬리퍼」(2022)는 매일의 주사위를 굴리고 해당 주사위를 어떠한 업무에 쓰느냐로 하루의 진행이 결정된다. 하지만 결국 그런 행위의 중심에는 최종적으로 출력될 텍스트의 변형이라는 기대가 있다. 결국 RPG의, 약 반세기에 걸친 장르의 역사를 돌자 장르의 가장 순수한 조건과 마주치게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RPG는 언어라는 이상점으로 끝없이 향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조금은 부정하고 싶어진다. 아마도, 언어라는 이상향이 RPG를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할 것이다. 21세기의 사반세기를 돌아 마주한 것은 언어의 순수에 대한 갈망 하나만이 아니다. 70년대에 탄생하고, 90년대에 완숙하여, 2000년대에 끝없이 분화한 이 장르를 태초의 조건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RPG’라고 부르던 조건은 이제, 수많은 가능성들에 의해 취사적으로 선택되고 조립되고 분화되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제 비디오 게임의 세계에 순수한 RPG라는 것은 규정 불가능하다. 우리가 감각하는 모든 가능성, 타 장르와의 융합, 혁신은 다 각기 다른 분류로서의 RPG로 기능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 몇 가지 군집들을 들긴 했지만, 이 내부에서 전부 다루지 못한 다른 가능성들(요컨 로그라이크 군집, 레벨링을 동원하는 메트로바니아 군집 등)도 존재한다. 어쩌면 이제 RPG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사유가 전부 통괄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한 장르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21세기의 사반세기를 지나오는 RPG에 대한 가장 유효한 문장을 동원하는 것이 좋을듯 하다. 이 지난한 글을 호세 P. 제이갈과 세바스티안 디터딩이 《롤플레잉 게임의 규정》의 전반부를 열기 위해 사용한 문장으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사실 롤플레잉 게임(RPG)은 어쩌면 가장 논쟁적인 게임 현상, 즉 예외, 특이점, 게임 같지 않은 게임일지도 모릅니다.” [24] [25] [1] RPG는 한국에서는 보통 비디오 게임의 장르로 일컬어지지만, 그 발현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먼저 등장한 테이블탑 또는 라이브 액션 게임을 부르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특정한 수식없이 RPG라는 단어를 사용할 경우 무엇을 지칭하는지에 대한 혼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본 글은 비디오 게임의 장르를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RPG라는 단어는 비디오 게임의 그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맥락에 따라 CRPG라는 단어를 병용한다. 테이블탑 게임은 TRPG로 구분하여 표기한다. [2] Programmed Logic for Automatic Teaching Operations의 약자. 1960년대 초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의 도널드 비처가 중심이 되어 개발한 시스템으로 PLATO IV라는 독립적인 단말을 통해 구동되었다. [3] “So, most CRPGs spread a thin veneer of story and world-building atop game engines that were really all about combat and logistics; they became “roll-playing” rather than “role-playing” games.” (The CRPG Renaissance Part 1. https://www.filfre.net/2025/01/the-crpg-renaissance-part-1-fallout/ ) [4] 이를테면 캡콤의 플랫포밍 액션 게임인 「마계촌」에서 주인공 아서는 최종적으로 마왕 아스타로스라는 거대한 적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단계에서 아서의 변화는 게임 플레이 와중 획득한 아이템에 기반한 것들이며, 이 가역적 변화는 언제든지 아서를 최초의 모습으로 되돌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RPG에서의 성장은 이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불가역성을 전제한 것이다. [5] 여기서 사용하는 에픽을 ‘서사시’로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시’라는 형식보다 그것이 담지하는 서사적 특질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컨 《장르의 해부Anatomy of Genre》에서 존 트루비John Truby는 에픽을 ‘한 인간 또는 집단에 의해 국가 또는 세계가 크게 변화하는 이야기’로 규정한다. [6] 그들이 원본으로 삼는 D&D 역시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초기 D&D는 캐릭터의 진행에 따라 Basic, Expert, Companion, Master, Immortal라는 각기 다른 책을 사용하도록 유도했다. 최종적으로 위대해진 캐릭터는 Immortal 단계에 이르러 불멸자의 시험을 통과해 필멸자를 초월할 수 있게 된다. [7] 호리이 유지는 본래 만화의 스토리 작가를 지향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원래 저는 코이케 카즈오 극화 서당에 다니다가 만화가 지망생을 거쳐 라이터가 된 케이스다 보니 극화 원작을 하자는 마음도 있었고요.” (PLANETS Vol. 7, 「호리이 유지 인터뷰 : 일본 게임의 진화가 향하는 곳」, 2010) [8] ‘The 1990s is generally viewed by academics and fans as a golden age for CRPGs due to the explosion of games that were developed and the quality of games released’(《Role-Playing Game Studies》, 2018, Routedge, Edited by Sebastian Deterding and José Zagal) [9] 《현질의 탄생》, 이경혁, 2022, 이상북스 [10] “だんだん強くなる、というのが面白いなと思ったんですよ。AVGって謎に詰まるとやることがなくなっちゃうけど、RPGならとりあえずレベルさえ上げれば楽しめるので、謎解きつつレベル上げつつでずっとやっていけば、いっぱい遊べるし、。”(PLANETS Vol. 7, 「호리이 유지 인터뷰 : 일본 게임의 진화가 향하는 곳」, 2010) [11] 루이스 자네티는 영화 장르의 변화 사이클을 초창기, 고전기, 수정기, 패러디기로 나눈다.자네티의 장르 사이클은 기본적으로 영화 장르의 이론에 적용하는 개념이지만, 시장을 형성하는 매체 전반의 장르 변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충분히 도움이 되기에 여기에 적용한다. [12] 《영화의 이해》, 루이스 자네티, 2017, K-Books [13] 이 시리즈의 3편은 국내에 동서게임채널을 통해 「영웅의 길 3」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14] ‘Like the other Quest for Glory games, QG3 is a hybrid of Computer Role-Playing Game (CRPG) and graphic adventure. Your character's attributes and abilities are defeined by a list of statistics. SUccess in a task depends on skill levels, and practive improves those skill.’ (《PC Mag》 Jan. 1993) [15] ‘These games rely on quantitative representations of the character, with character development following the quantitative improvement in skills and abilities typical of pen-and-paper games.’ (《Many Faces of Role-Playing Game》, 2008, International Journal of Role-playing Games - Issue 1, Michael Hitchens and Anders Drachen) [16] ‘one feature that is commonly considered a defining one is that all RPGs have playercharacters with quantifiable features (digital equivalents of the character sheets used in tabletop style RPGs), and character progression is used as a central measurement of success. Traditional RPG rule systems often include “experience levels,” meaning that successful advancement in games translates into “experience points” through which a PC can “level up” to new powers and skills.’ (《Encyclopedia of Video-Game》, 2012, Greenwood, Edited by Mark J. P. Wolf) [17] 구글 그룹에서 다음과 같은 유즈넷 대화를 찾을 수 있다. 해당 대화는 1997년 2월에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Diablo : an CRPG, what a joke!」 ( https://groups.google.com/g/comp.sys.ibm.pc.games.rpg/c/7wJEyHTsdkE/m/EnpYnKMTBnUJ?utm_source=chatgpt.com&pli=1 ) [18] 《Role-Playing Game Studies》, 2018, Routedge, Edited by Sebastian Deterding and José Zagal [19] ‘If you dare to say, in "demon’s soul", I think that there is something that constructs game-like or interesting parts before the east-west of Ocean, with the common values of so-called "game lovers" . "Wizardry" It is a very simple and primitive game property that many of the classic games such as had.’ (「Interview with Mr. Hidetaka Miyazaki who gave birth to a world-class hit "Dark Soul" from inexperienced game production」, Gigazine, 2012) [20] 《한국형 수집 RPG 장르 형성 연구》, 조은하, 2018 [21] 《Top 10 Ways to Fix JRPGs》 ( https://www.ign.com/articles/2010/01/12/top-10-ways-to-fix-jrpgs ) [22] 「인격해체」만은 예외적으로 전투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게임이 자신의 부모로 삼고 있는 것은 명백히 카오지움의 《크툴루의 부름》이다. [23] ‘I want to completely revolutionise role-playing games. We need to fine-tune our game until we make that revolution possible. To revolutionise the use of stories, choices, and consequences. The use of skills. What “skill” means. I want there to be peaceful skills that actually represent real life, human imagination, sadness, the power of suggestion, dance... you know, that whole range of authentic experiences you get from tabletop RPGs and from reality.’ (《Choose your own misadventure Part 2》, https://steamcommunity.com/games/632470/announcements/detail/1615021499154801682 ) [24] ‘In fact, role-playing games (RPGs) are maybe the most contentious game phenomenon: the exception, the outlier, the not-quite-a-game game.’ (《Role-Playing Game Studies》, 2018, Routedge, Edited by Sebastian Deterding and José Zagal) [25] 물론 해당 문장은 본문에서 테이블탑 RPG, 라이브 액션 RPG를 통괄하는 RPG라는 범주 전체를 포괄하는 문장으로 쓰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분화해버린 비디오 게임 RPG에게도 충분히 통용되는 의미이리라. Tags: 롤플레잉, 장르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마일즈 모랄레스의 정체성과 브루클린이라는 ‘장소’
마일즈의 불안은 인물(아마도 다른 시간선에서 스파이더맨이어야 했으나 프라울러가 되고 만 마일즈)의 형상을 취하다가 거미로 변모한다. 그의 공포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자격과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었던 셈이다. < Back 17 GG Vol. 24.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young Hong Entered the world of games thanks to ads pitching the Famicom as a must-have for the happy household. A steady devotee of Just Dance. Co-wrote Mario, Born in '81, The Theory of Games, and Media and Gender, among others.
- [인터뷰] 공동연구처럼 돌아가는 스피드런의 세계, 스피드런 유튜버 천제누구
생산을 위해 기획된 방법론인 효율은 오늘날 디지털 게임에서 주요한 플레이 방법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효율적인 플레이를 위한 전략이 동원되고, 최고의 효율을 달성하는 것이 플레이의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효율적 플레이의 정점에, 최단시간 내 게임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는 스피드런(speedrun)이 있다. < Back [인터뷰] 공동연구처럼 돌아가는 스피드런의 세계, 스피드런 유튜버 천제누구 18 GG Vol. 24. 6. 10. 생산을 위해 기획된 방법론인 효율은 오늘날 디지털 게임에서 주요한 플레이 방법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효율적인 플레이를 위한 전략이 동원되고, 최고의 효율을 달성하는 것이 플레이의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효율적 플레이의 정점에, 최단시간 내 게임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는 스피드런(speedrun)이 있다. 스피드런은 어느덧 게임을 즐기는 또다른 장르가 되었지만, 동시에 게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판단력, 좋은 컨트롤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노히트 플레이와 함께 ‘고인물’들의 장르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이번 호에서 GG는 한국의 스피드런 플레이어이자 유튜버 천제누구를 만나 스피드런의 즐거움과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피드런은 이론과 실증의 영역에서 게임을 이모저모 뜯어보고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동시에 모두가 각자의 경험과 실천을 공유해 하나의 ‘빅 데이터’를 쌓아올린다는 점에서, 스피드런은 게이밍에 대한 공통지식을 구성하는 또 다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혁 편집장 :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번 먼저 부탁드릴게요. 천제누구 : 원래는 트위치에 있었지만, 현재는 여러 가지 방송 플랫폼에서 스피드런을 주 콘텐츠로 삼으면서 방송을 하는 천제누구라고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 최근에 트위치 서비스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은 어느 방송 플랫폼이 제일 메이저라고 생각하시나요? 천제누구 : 저는 원래 트위치 스트리머였으니까 네이버 ‘치지직’으로 옮길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고민이 됐어요. 아시다시피 스피드런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활발한 장르잖아요. 트위치는 세계를 무대로 하다 보니 방송을 열어 놓으면 외국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였어요. 아직까지 치지직은 아직 그런 역할까지는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전에 트위치가 서비스 종료 전에 동시 송출을 풀어줬을 때 생방송을 했더니 유튜브에서 제 방송을 보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지금은 유튜브 생방송도 신경쓰면서 방송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해외 시청자와의 창구가 남아 있었으면 한다는 소망이 있는데 치지직이 그 역할을 해주거나 트위치가 그래도 방송송출은 할 수 있도록 남아있었으면 좋겠네요. 이경혁 편집장: 국내 스피드런 유저들이 생각보다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해외 네트워크가 중심이 되는 건가요? 천제누구: 그렇죠. 새로운 빌드라든가 글리치, 플레이 방법들이 주로 스피드런 사이트 내 디스코드에서 공유되거든요. 근데 보면 거진 다 영어권이에요. 그것 때문에 저도 요즘 영어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는데(웃음), 실제로 그래서 스피드런은 어쨌든 해외에 선이 닿을 수밖에 없죠. 제 채널의 주 시청자는 그래도 한국 분들이지만, 다른 스피드런 채널은 해외 시청자가 더 많은 사례도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 사실 스피드런 자체가 언어에 구애받는 콘텐츠가 아니기도 해서 그런 거군요. 천제누구 : 그렇죠. 이경혁 편집장 : 그러면 스피드런을 메인으로 하는 유튜버이신데, 본인의 게임 경험이 궁금합니다. 처음에 어떻게 게임을 시작했고 어쩌다 스피드런까지 오게 되셨나요? 천제누구 : 저도 대학생 때까지는 평범하게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일반적인 게이머였어요. 초중고 시절에는 흔히 말하는 <바람의 나라>로 먼저 시작했구요. <포트리스>, <겟앰프드>를 하다가 <스타크래프트: 자유의 날개>도 마스터 티어까지 잠깐 찍었고. 그 외에는 <사이퍼즈> 정도. <엘소드>라는 게임을 잠깐 했었는데, 그 게임엔 PvE(Player versus Environment) 요소가 있고 PvP(Player versus Player) 요소가 전부 있었어요. 저 같은 경우엔 거래를 잘 해서 좋은 아이템을 맞추기보다는 최소 요건만 맞추는 PvP 쪽에 매력을 느꼈어요. 컨트롤을 잘 해서 플레이하는 게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 본인의 숙련도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쪽으로 게임의 매력을 느끼신 것 같아요. 그럼 스피드런으로 접근하시게 된 계기는 어떤 게임을 통해서였나요? 천제누구 : 2018년에 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당시 가장 유행했던 게임이 <배틀그라운드>였어요. 기왕 방송을 하는 겸 가장 핫한 게임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일단 제 실력이 그렇게 잘 안 되더라고요(웃음). 나중에는 방향을 바꿔서 게임 플레이보다 정보 콘텐츠를 조금씩 만들어봤어요. 적당히 조회수는 나오는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보 콘텐츠 유튜버라면 꾸준히 정보를 제공해 줘야 되는데, 그런 정보가 끊기면 사실 '천제누구'라는 유튜버 자체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닌가. 저만이 잘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쯤 <메탈 슬러그>를 시작했는데요. 현재 <메탈 슬러그>계에서 한국 뿐 아니라 세계를 꽉 잡고 계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제 방송에 놀러오시면서 처음 스피드런이라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고 시작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 <메탈 슬러그>부터가 본인의 스피드런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사실 이 게임이 나온 지는 굉장히 오래 되었는데 플레이하셨던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을까요? 천제누구 : 우선은 플레이를 강렬하고 짧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저도 예전에는 방송 보던 세대였으니 그때 <메탈 슬러그>로 유명했던 분들의 영향도 있었고. 스피드런 유튜버 중에 '서키모스'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의 플레이 방식이 굉장히 구체적이었어요. 예를 들면 <메탈 슬러그> 2나 X에서는 스테이지에서 기차가 나오는 구성이 있습니다. 거기서 각 기차의 구체적인 체력을 언급하고 계산하면서, 무기당 데미지가 얼마니까 어떻게 계산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론적으로 접근을 하시더라구요. 사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면서 게임은 그냥 즐기는 거고 이거를 이론적으로 접근을 한다는 생각을 안 하잖아요. 플레이를 하다 보면 그냥 경험을 축적해서 자기만의 빠른 방법을 개발하는 게 대부분인데. 여기에서 정확하게 어떤 움직임을 취하면 적이 나오다가 스킵이 된다던가. 스피드런에서는 플레이를 그렇게 이론적으로 접근을 한다는 게 굉장히 흥미로웠던 기억이 나요. 실제로 그렇게 몇 번 연습을 따라하니 다 되는 것도 매력적이었구요. 이경혁 편집장 : 스피드런이라는 세계에 매력을 느끼신 것도 있고, 더 중요한 점은 실제로 소질도 있으셨던 것 같아요. 스피드러너로서 스스로의 ‘소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천제누구 : 소질이 없진 않지만, 제가 스피드러너 사이에서 피지컬이 엄청 뛰어나다고 보지는 않아요. 그런데 스피드러너들도 각각 잘 하는 장르가 있고, 자신만의 특색이 있어요. 우선 순수하게 게임 플레이를 잘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빌드가 있어도 그냥 빠르게 잘 성공시켜서 빠른 친구가 있고요. 그 다음으로는 독특한 빌드를 잘 만들어서 한 번씩 혁신을 일으키는 러너들이 있구요. 마지막으로는 이미 나온 빌드를 개량해서 성공확률을 높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피드런은 어떻게 보면 ‘확률’의 문제라고 볼 수 있거든요. 저 같은 경우엔 마지막 유형에 가까운데, 약간 돌아가더라도 최대한 안정성이나 성공률을 높이는 쪽으로 플레이를 하는 편입니다. 은근히 다 똑같은 빌드처럼 보이지만 러너들만의 각자의 특징이 있다는 게 신기하죠. 이경혁 편집장 : 어떻게 보면 스피드런이야말로 연구와 공부가 굉장히 필요한 방법인데. 보통 스피드런을 하실 때 본인이 빌드를 짜거나 플레이 스타일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천제누구 : 보통 제가 스피드런을 시작할 때는 먼저 다른 플레이들을 봐요. 전체적인 게임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플레이의 중심을 어디에 둘지 맥락을 먼저 잡구요. 다른 플레이 영상들을 보면 '이건 줄일 수 있겠는데, 이건 계산할 수 있겠는데, 이 행동은 별로 필요 없지 않을까' 이런 게 보일 때가 있거든요. 거기에서 제가 떠오른 질문들을 혼자 플레이 해보면서 검증을 해봅니다. 그러면서 원래 나왔던 스피드런 기록보다 조금씩 시간을 더 줄여나가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 천제누구님 혼자의 방식이라기보다는 타인의 플레이를 상호 참조하면서 계속 쌓아 올려가는 방식이군요. 혹시, 본인이 플레이 했던 스피드런 중 자랑하거나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천제누구 : 가장 최근에는 을 했었는데 올 보스 카테고리에서 월드레코드를 세웠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던 런이 <엘든링> Any% 글리치 리스 카테고리 인데, 이것도 한 때는 월드레코드를 달성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레지던트이블 시리즈가 제가 주로 관심을 갖는 시리즈인데. 최근에 나온 레지던트이블 작품 뿐만 아니라 레지던트이블 메인 넘버링 작품은 모두 스피드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레지던트이블1부터 레지던트이블8까지 릴레이로 스피드런한 적도 있네요(웃음). 이경혁 편집장 : 애초에 게임이 스피드런을 제일의 목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데, 열과 성을 다해 세부적인 것까지 파고드는 건 분명히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것 같아요. 스피드러너로서 이 ‘스피드런의 재미’는 어디에서 나온다고 보시나요? 천제누구 : 저는 스피드런의 재미를 이야기할 때 육상으로 비유를 많이 듭니다. 예를 들어 100m 달리기를 혼자 달려봤더니 한 16초 정도가 나왔어요. 기록 테이블을 봤더니 평균이 15초네, 하면 내가 평균 점수까진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욕심이 생기겠죠? 그래서 몇 번을 다시 달려보면 단순하게만 하다 보면 어느순간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론을 찾아보게 되는거죠. 보니까 달리는 방법에서 크라우치라는 스타일이 있다더라. 달릴 때 각도는 이렇게 하고 팔은 어떤 식으로 자세를 잡으면 더 빠르게 잘 달릴 수 있더라. 그렇게 이미 나와 있는 다른 연구 결과를 반영해서 달려보면 당연히 더 좋은 기록이 나오겠죠? 그때 기록 테이블을 봤더니 내 위에 한 두세 명밖에 없는 거예요. 어, 이거는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잡을 수 있겠는데? 이제 그런 상황부터는 취미가 아니라 뭔가 진심이 되는 건데(웃음). ‘앞에 있는 몇 명만 잡으면 내가 월드 레코드 잡을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 월드 레코드를 한 번 달성하면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 성취라는 부분이 굉장히 크군요. ‘내가 손만 조금만 뻗으면 닿겠는데’, 그런 생각이 한 번 오면 다를 수 있겠네요. 천제누구 : 그게 첫 번째 재미이자 스피드런을 왜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 될 것 같고요. 두 번째는 아까 연구 같다는 말씀을 해 주셨잖아요. 그런데 스피드런이라는 장르가 생각보다 그 연구라는 것에 많이 부합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릴 적에 막 항상 질문을 하잖아요. 수학을 왜 배울까, 물리와 화학을 왜 배울까. 그런 질문을 공학적인 접근으로 본다면 내가 필요한 만큼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컵을 밀어서 떨어뜨려야 한다면,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컵을 들거나 밀어야겠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공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최소한의 에너지원을 들여서 컵을 떨어뜨려야 되는 것이고, 거기서부터 물리가 들어가는 거거든요. 이 컵은 무게가 얼마고 이렇게 힘을 들 때 마찰력이 얼마니까, 이만큼의 힘을 얼마간 주면 떨어지겠구나. 게임도,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 ‘시간'이라는 목표가 들어가게 되면 그것의 최소 조건을 고려하게 돼요. 그러면 이제 거기서부터 여러 가지 이론이 펼쳐지는 거죠. 이 게임을 이렇게 가면 더 쉽다더라, 조금 돌아가는 것 같아도 더 강화되는 이 아이템을 먹고 가는 게 더 빠르다더라, 이런 게 각각의 스피드러너들이 달리면서 공유가 되고. 이걸 합산하다 보면 거기서 점점 발달하는 거거든요. 이게 마치 과학계랑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이 사람이 이런 논문 내고, 저 사람이 저런 논문 내고 하다가 어느 순간 이런 논문을 조합해봤더니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 것처럼. 스피드런이 기록을 냈을 때의 성취감도 있지만,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방금처럼 내가 스스로 연구를 하고 그것을 실증해내는 것 자체가 엄청 재미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 월드 레코드가 성취의 즐거움이라면, 지금 말씀해 주신 건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설계했던 어떤 이론이 실제로 구현됐을 때의 과정의 즐거움이네요. 그런데 스피드런 레코드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시간이 엄청 들지 않나요? 실제 플레이하셨을 시간은 영상으로 보는 분량의 100배는 넘을 것 같은데요. 천제누구 : 그게 사실 ‘효율의 비효율’인데요(웃음). 아까 스피드런은 ‘확률’이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스피드런이 이론적으로는 분명히 되고 실수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유를 모르겠지만 안 될 때가 있어요. 내가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거나 그냥 내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안 되는 경우도 있구요. 예전에 제가 <세키로> 기록을 냈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래서 제가 짜증을 많이 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니까 영상 댓글에 달리더라고요, ‘이 사람 그냥 좀 더 이성을 찾고 침착하게 하면 기록 세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사소한 걸 자꾸 짜증 내는지 모르겠다'. 아마 생방송을 풀로 보셨던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말을 못하실 거에요(웃음). 하지만 그렇게 반복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플레이가 점점 다듬어 지게 되고, 기록이라는 결과물도 더 빛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 올림픽 100m만 해도, 정말 그 100m를 위해 1만 미터 정도는 더 뛸 텐데. 그 중간 과정은 사람들이 모르지 않습니까? 천제누구 : 그렇죠. 그래서 저는 더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더라도 그냥 무지성으로 계속하기는 사실 쉽지 않아요. 근데 ‘시간’이라는 목적이나 목표가 생기게 되면 하나의 게임도 엄청 오래 즐길 수 있거든요. 스피드런 플레이가 마냥 내가 힘들기만 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그동안 기존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아낼 때도 있고, ‘정말 이 게임은 더 이상 개발할 게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항상 뭔가 새로운 방법들이 또 나오게 돼요. 그런 변화를 익혀서 나 자신이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볼 수 있게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이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 몇몇 게임들은 스피드런 대회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상금 같은 게 좀 있나요? 천제누구 : 예를 들면 SSM(Super Speedrun Marathon)이라고 국내 분이 주최하시는 스피드런 행사가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GDQ(Games Done Quick)라는 게 있습니다. 스피드런 행사는 보통은 모금이나 기부 행사 형식으로 하거든요. 플레이 타임 2~30분 정도의 짧은 게임이라면 대결 같은 걸 해서 상금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도 이미 그 사람이 얼마나 잘하는지 기록으로 나와 있다 보니까. 주최자가 개인적인 상금을 거는 것 외에는 대회보다 행사 같은 게 좀 더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죠. 이경혁 편집장 : 스피드런 자체가 ‘대결’이라는 게 성립을 하기가 조금 애매한 것 같기도 합니다. 천제누구 : 스피드런이라는 게 육상과는 다르게 여러 번 시도를 해서 그 중 하나의 완벽한 결과물을 도출하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스피드런 빌드라는 것도 안정성이 보장되서 결과가 딱 나온다기보다는 어느정도 확률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서요. 이런 랜덤적인 요소를 RNG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확률상으로는 정말 안 좋은 경우의 수가 나오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는 상황이 있을 수가 있어요. 대결 전용 빌드를 따로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특정 게임에서는 아예 안 쓰면 안 되는 빌드들이 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스피드런 같은 경우엔 (대회보다) 행사 쪽으로 더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 아까 연구 얘기를 잠깐 하셨지만,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여기도 정말 학계랑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국내에도 스피드러너들 사이 네트워크 같은 것들도 있을까요? 천제누구 : 국내 스피드러너 자체가 좀 적다 보니까, 가끔씩 제가 하는 스피드런 사이트에 한국 분이 올라오면 찾아보기도 하고 친해지면 종종 방송에 놀러가기도 해요. 그런데 일종의 학문의 갈래라고 해야 되나요? 게임도 그런 갈래가 많다 보니까 각자 다릅니다. 제가 <레지던트 이블>이나 소울류를 많이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슈퍼마리오>에 소양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다만 자기 분야 내에서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정보 공유를 해야 되니까 자주 만납니다. 사실 스피드러너끼리 기록을 경쟁한다고 해서 서로 ‘내 거 절대 안 보여줄 거야' 이런 건 애초에 없어요. 내가 스피드런 사이트에 결과물을 등록하면 어차피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이라서요. 그러다 보니 어떤 새로운 스피드런을 만들었어도 특허 같은 게 딱히 있는 건 아니에요. 이경혁 편집장 : 한 게임만 파는 사람들 중에는 스피드런 말고도 ‘노히트 플레이’ 같은 쪽도 있을텐데, 이런 분야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천제누구 : 그렇죠, 그런 걸 ‘제약 플레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요. 제가 최근에 플레이한 은 스피드런과 동시에 노히트 플레이도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스피드런도 확률을 높이기 위해 정확하게 상대방의 행동 원리를 파악해야 될 때가 있다 보니 노히트와도 연결이 돼요. 스피드러너들이 노히트 플레이를 보면서 적의 패턴을 파악하기도 하고, 역으로 노히트 플레이어들이 스피드런을 보면서 공격을 스킵하는 방식을 참고하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뭔가 순수학문과 공학이 만나는 것처럼,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게임 시스템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만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도 그래서 예전에 스피드런 할 때 노히트 하시는 분들 거 많이 봤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 스피드런 분야의 가장 원조격인 게임이 저는 <슈퍼마리오>인 것 같거든요. 슈퍼마리오 스피드런을 보면 글리치를 엄청 쓰잖아요? 스피드러너에게 ’글리치'라는 건 어떤가요? 글리치를 쓰는 사람도 있고, 글리치를 빼야 한다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천제누구 : 글리치는요, ‘가능성’이죠. 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스피드런에 대한 이미지나 인식이 아직 크게 없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요. 사람들이 가끔씩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스피드런은 이렇게 해야 되는 건가요?' ‘스피드런에서 이것도 써도 되나요?' ’이걸 쓰면 스피드런이 아닌가요?' 사실 이게 의미가 없는 게, 아까 100m 달리기를 예시로 들었었는데요. 저희가 마라톤이나 500m 달리기, 장애물 달리기를 달리기가 아니라 하지 않잖아요. 스피드런도 보면 글리치를 쓰는 쪽과 글리치를 안 쓰는(글리치리스) 카테고리가 있어요. 내가 글리치가 싫다면 글리치 안 쓰는 카테고리를 보면 되고, 내가 글리치가 재미있다면 글리치 쓰는 카테고리를 재밌게 즐기면 됩니다. 글리치 런의 경우, 스피드런을 보시는 분들은 보통 '여기서 글리치를 쓰니까 이렇게 됐네, 와 신기하다' 하고 끝나잖아요. 사실 이게 중간 과정이 다 있어요. 예를 들어 특정 구간에서 벽이 뚫리는 걸 발견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거고, 벽이 뚫리는 걸 보고 나서 스피드런 빌드를 개발하는 사람이 또 따라오고요. 누가 빌드를 개발해 놓으면 내가 한번 이걸 써볼까 해서 실제로 기록 세워놓는 사람은 또 따로 있어요. ‘글리치를 안 쓰면 재미가 없다’는 하는 사람들은 그런 글리치마저 새로운 가능성으로 즐기는 거라 할 수 있죠.그리고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쉬운 ‘얍삽이’만 글리치가 아닙니다. 물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글리치도 있지만 발동 자체가 어려운 글리치도 수두룩합니다. 특히 스피드런에서 글리치를 사용할 때는 안정적으로 사용해야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고 글리치를 쓰는 연습을 정말 많이 해야 합니다. 또 특정 구간을 스킵하는 글리치가 있다고 하면, 소울류 같은 게임은 얻어야 할 능력치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한 스펙으로 보스를 잡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가끔 런을 하면서도 ‘누가 이런 글리치를 발견해서 나를 힘들게 하나’ 라거나 ‘차라리 맘편하게 글리치리스 런을 하는게 낫겠다’ 는 생각은 정말 심심치 않게 드는 생각입니다. 어떤 것이 더 쉬운지 어려운지를 떠나서 각 카테고리별로 어려움이 분명 존재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 하나 더 생각나는 사례가 있는데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보면 쐐기돌 던전이라고 있어요. 옛날에는 그냥 던전에 들어가서 아이템을 먹는 게 목적이었는데 요새는 던전을 몇 초 안에 끝낼 수 있는가가 새로운 콘텐츠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이런 게 전통적인 의미의 스피드런보다는 ‘캐주얼한 스피드런'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스피드런이 지금 한국에서 별로 메이저하지 않은 이유는 캐주얼하지 않아서일까? 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는데. 혹시 여기에 대해서는 좀 어떻게 보세요? 오리지널하고 하드코어한 스피드런이 있다면 캐주얼한 스피드런이라는게 있고, 그렇다면 만약에 그게 인기를 끌 수 있는 걸까? 천제누구 : 우선 저는 그렇게 협력해서 하는 스피드런도 절대 캐주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면 거기서도 시간을 경쟁하는 것이다 보니 전술적으로 나름대로의 고민을 하게 되거든요. 제가 가끔씩 방송에서 하는 말이 있는데, ‘이 게임도 스피드런이 되나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때 농담식으로 ‘Rule 3334’ 라는 게 있는데, 모든 게임에는 스피드런이 있다고 말을 해요. 스피드런 카테고리에 관해 아까 잠깐 언급을 했었잖아요. 글리치 런과 글리치리스 런이 있듯이, 난이도마다도 카테고리가 나눠져 있어요. 예를 들면 ‘뉴게임’이라는 카테고리는 특전이 없는 특수한 초회차 플레이이고. DLC 혹은 다회차 플레이를 해야 하는 스피드런을 ‘뉴게임 플러스’라고 하는 데 그것 역시 스피드런이지요. <니어 오토마타> 같은 경우처럼 모든 엔딩을 보려면 수없이 다회차 플레이를 해야 하는 ‘올 엔딩’ 카테고리도 있어요. 뭔가 우리나라는 아직 '스피드런은 이래야 된다' 는 인식이 있거든요. 스피드런이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종목이라기보다는, 잘 하는 사람들이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 짱잘해' 하면서 보여주는 장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사실. 그러다 보니 스피드런은 썩을 대로 썩은 고인물들이 마지막에 즐기는 콘텐츠라는 인식이 있는데. 쉬운 난이도로 하는 플레이도 모두 스피드런의 장르거든요. 실제로 스피드런 사이트에 가면 제가 1시간 반 만에 깬 게임을 4-5시간 만에 깨는데도 기록에 그냥 신청하는 사람도 있어요. 순위권에 들어가야지만 스피드런이 아니고, 그냥 시간을 더 줄이고 싶어서 기록을 재서 올리고 싶다면 그것도 스피드런이라는 범주에 충분히 포함돼요. 이경혁 편집장 : 정말 달리기랑 비슷하네요. 저도 달리기를 되게 좋아하는데, 뭐 제 덩치로 빨리 뛰겠습니까? (웃음) 그냥 뛰는 게 재밌는 거거든요. ‘무슨 8시간 플레이한 게 어떻게 스피드런이냐' 그런 문화도 있는데, 정작 스피드런 뛰시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신다는 게 되게 핵심인 것 같아요. 근데 완전히 그걸 모르는 사람 입장이라고 가정하고 제가 질문을 해볼게요. ‘아니, 게임은 그냥 재밌자고 하는 건데 스피드런처럼 공부하듯이 파고 들어서 하는 게 재미라고 할 수 있나?' 이런 입장에서 질문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대답을 하시나요? 천제누구 : 어떻게 보면 원래 있던 게임을 단순히 즐기는 거에서 한 발짝 더 나가는 거다 보니 그런 질문도 있을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예를 들어 리듬 게임을 깊게 파는 사람들이 있다면, 리듬 게임이 재미없다던가 나는 그렇게 어려운 건 못 하겠다는 반응은 있지만, ‘리듬 게임을 왜 하냐?' 이러지는 않잖아요. 스팀에서도 업적이라는 게 있잖아요, 업적이 재미있어서 업적 플레이를 한다면 그걸 왜 하냐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오히려 ‘그럴 수 있지, 업적도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지'라고 말하죠. 사실 현재 스피드런에 대한 인식이 그 부분에서 다르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되어 있지 않고 뭔가 특이하게 하는 콘텐츠라는 이미지가 너무 많다 보니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걸 잘 이해해 주지 않는 경향이 좀 있지 않나. 이경혁 편집장: 스피드런은 일종의 선입견을 쓰고 있는 느낌이네요. 정말 자기 만족에 가까운 플레이 방법인데도요. 약간 억울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천제누구: (웃음) 억울하기보다는 빨리 이거를 좀 터뜨리고 싶다? 이런 것도 스피드런이다, 스피드런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게 있죠. 제가 열심히 기록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으면, '아니 이거 왜 이렇게 열심히 하시나요, 어디 대회 나가려고 하시나요', ‘스피드런 사이트에서 월드 레코드 먹으면 뭐가 있나요' 라고들 하시는데 기본적으로는 자기 만족이다. 저 같은 경우 방송 쪽에 욕심이 좀더 있으니까 요즘은 많이들 더 봐주실 만한 게임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사실 저도 좀 아쉬워요. 종종 하나의 게임만 진짜 오래 하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스피드런을 연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런 분들은 한 분야만 계속 연구하신 분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 분들이 제 입장에서는 참 존경스러워요. 한 가지 게임을 계속 플레이 하시면서 현재 기록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해서 시간을 줄이시는 분들을 제가 개인적으로 좀더 높게 여기는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사실 그래서 이건 제 바람인데, 스피드런을 그냥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종류로 봐주시면 좋겠다. 단순한 고인물 콘텐츠보다는 좀 넓은 의미로 스피드런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 정도 결론으로 마무리해 보면 좋을 것 같네요. 이경혁 편집장 : 게임을 조금 더 들여다 파보고, 각각의 톱니바퀴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계산하는 그 재미. 그게 스피드런의 정수라고 얘기해 볼 수 있겠네요.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는데, 혹시 추가로 말씀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을까요? 천제누구 : 제가 거의 스피드런 포교사처럼 인터뷰를 했잖아요(웃음). 사실 게임을 잘한다는 말은 굉장히 추상적입니다. 한 게임의 고인물이라는 말도 얼마나 고인물인데? 라는 질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단 말이죠. 하지만 스피드런은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록을 세운다면 당당하게 한국 1등, 당당하게 세계 1등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두근거리지 않나요? 단순히 그냥 즐기는 것을 넘어서 내가 노력한 결과가 하나의 객관화된 데이터로 나오는 것도 스피드런의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혹시라도 인터뷰를 읽으시는 분들이 있으면 < speedrun.com >을 한번 검색해 보시라고 하고 싶어요. 거기에서 뭐든지 본인이 좋아하는 게임을 한번 그냥 검색해 보시라. 글리치가 싫으신 분들은 글리치리스를 선택하시고, 글리치가 좋으면 애니퍼센트(Any%)를 선택하셔서 본인이 좋아하는 게임을 한번 봐보셨으면 해요. 그러다가 어떤 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으면 시도를 한번 해볼 수도 있겠죠? 하다 보면 ‘이 사람은 여기서 이렇게 했을 때 그냥 됐는데 왜 나는 안 되지' 이런 게 몇 개 있어요. 이제 거기서부터는 이론의 영역이 됩니다. 거기에서 더 궁금하시다면, 스피드런 사이트 내 해당 게임 디스코드 링크에 들어가서 한번 물어보면 거기 계신 분들이 신나서 가르쳐 주실 겁니다(웃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스피드런의 매력 중 하나는 이론을 통해 플레이를 구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제가 계속 위에서 연구와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했잖아요? 저는 화학과를 나왔는데 과목 중에 실험과목이 있습니다. 실험 조교가 알려주는 실험방법과 이론은 동일하지만 나중에 결과를 보면 각 조의 숙련도에 따라서 기댓값대로 나오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제대로 따라하면 기댓값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겁니다. 스피드런 빌드는 어쨌든 ‘빅데이터’입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연구와 시행착오를 통해서 이론과 빌드를 쌓아 올립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이론을 찾아보시면 스피드런 플레이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니라 이해가 되고 연습하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단지 그것을 내 손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연습은 필수겠지만 말이죠. 제가 방송중에 종종 말하는 ‘여러분들도 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은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스피드런의 매력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고 많이 시도해주셨으면 좋겠네요. Tags: 스피드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제부터 나와 랜디 오턴을 한몸으로 간주한다—WWE 비디오 게임을 통해 온몸으로 슈퍼스타 되기
내가 WWE 비디오 게임을 처음 접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 조금 전,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미스터 맥마흔〉이 공개되고 조금 지나서, 그리고 프로레슬링이라는 예술 형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지 반 년 정도 지나고서였다. ‘홈파티’라고 수식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20대 남성 넷이 모인 자리, 친구의 플레이스테이션 컬렉션에서 내가 선택한 파티 게임이 〈WWE 2K22〉였다 < Back 이제부터 나와 랜디 오턴을 한몸으로 간주한다—WWE 비디오 게임을 통해 온몸으로 슈퍼스타 되기 22 GG Vol. 25. 2. 10. 내가 WWE 비디오 게임을 처음 접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 조금 전,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미스터 맥마흔〉이 공개되고 조금 지나서, 그리고 프로레슬링이라는 예술 형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지 반 년 정도 지나고서였다. ‘홈파티’라고 수식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20대 남성 넷이 모인 자리, 친구의 플레이스테이션 컬렉션에서 내가 선택한 파티 게임이 〈WWE 2K22〉였다. 소프트를 켜고 우리는 바로 플레이어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에 착수했지만, 옷의 색상까지는 까지도 못하고 끝없는 이름과 이름의 사이를 헤매다가 (WWE 2K22는 정말 세세하게 ‘이름’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프로레슬러 이름, SNS 계정 이름, 링에 입장할 때 나오는 이름, 그걸 부를 때 음절마다 읽는 방법……) 인내심이 바닥난 우리는 우선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캐릭터를 골라서 해보자고 합의했다. * 〈WWE 2K22〉 실제 플레이 화면 WWE 비디오 게임 시리즈의 ‘원작’에 해당하는 WWE 프로레슬링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안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어릴 때 프로레슬링을 보면서 자라지도 않았다. 몇십가지는 되어 보였던 선택지 속에서 유일하게 머릿속에서 이름과 얼굴을 연결해서 떠올릴 수 있었던 이름을 플레이어 캐릭터로 고르고, ‘세컨드’ 캐릭터를 고를 때는 WWE를 잘 아는 친구들이 가장 크게 웃은 이름 앞에서 커서를 멈췄다. 이 넷의 조합의 어디가 그렇게 웃긴지, 나는 아직 정확히 이해할 정도로 WWE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WWE 2K22〉에 앞서 혹은 평행하게, TV에서 2022년의 WWE가 방영되고 있었으며, 우리가 만들어낸 화면이 현실 의 2022년의 WWE에서는 있을 수 없었던 광경이라는 사실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요컨대, 개그 동인지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같이 웃기에는 충분한 단서가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도 WWE를 잘 알고 있다면 위의 이미지를 보고 픽 웃었을지도 모른다. ‘프로레슬링 게임’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대전격투게임’이나 ‘트레이딩 카드 게임’처럼 구체적인 범위가 존재하는 장르가 아닌 만큼, 프로레슬링을 다룬 것이라면 무엇이든 프로레슬링 게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쨌거나 가장 큰 한국어 데이터베이스 중 하나인 나무위키의 ‘프로레슬링/게임’ 항목은 게임 플레잉 방식과 상관없이 ‘원작’에 해당하는 실제 프로레슬링 단체가 어디인지(“WWE 관련”, “올 엘리트 레슬링 관련”, “그 외 단체 관련”), 혹은 처음부터 허구인지(“가상 세계 관련”)를 기준으로 분류되어 있다. 나는 주로 휴대용 콘솔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닌텐도 스위치로도 즐길 수 있는 패미컴 〈프로레스〉(1986), 그리고 프로레슬링에 박식한 친구들 사이에서 꺼내면 배로 재미있는 〈프로레스 검정 시험 DS〉(2010)가 가장 처음 접한 프로레슬링 게임이었다. 또 2D 모에 문화를 좋아하는 오타쿠로서 미소녀 캐릭터가 등장하는 〈럼블 로즈〉 시리즈 등에도 관심이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은 WWE 비디오 게임 시리즈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 〈프로레스〉(1986)의 단순한 구성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사람 셋만 있으면 프로레슬링이 성립한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상기시킨다. WWE와 WWE의 회장 빈스 맥마흔이 80년대 이후의 미국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온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계 미국인 영화감독 에릭 바일러 [1] 는 “현실을 구부리는 프로레슬링의 법칙이 케이블 뉴스, 토크쇼, 리얼리티 TV로 확대된” 1980년대를 미국 문화 격동의 시기로 꼽는다. 예를 들어, 토크쇼를 켜면 ‘정치 토론’을 볼 수 있지만, 사실 패널들은 모두 같은 방송국으로부터 고용되어 있으므로 이것은 일종의 프로레슬링이라는 것이다 [2] . 비평가 마크 피셔는 리얼리티 TV의 대중화가 “‘부’와 ‘명성’ 이상의 것을 열망하면서 탁월한 능력을 내보일 수 있었던 대중 문화 영역을 지워”버린 결과, “환상 대상”을 잃어버린 우리가 이제는 “환상에 빠진 주체 자체와 ‘동일시’하도록 요청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3] . 이를 뒷받침하듯, 바일러가 경험한 WWE는 만약 (곧잘 퀴어와 소수인종으로 이루어진) 악역이 선역을 이기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반칙을 했기 때문이라는 세계관에 동조하고 호응하는 관중 역할을 연습하는 장이었다. 바일러의 팟캐스트에서 아브라함 조세핀 리즈맨 [4] 은 트럼프의 성공적인 2007년 WWE 레슬매니아에서의 등장을 그가 이후 버서(birther) 음모론 [5] 의 선두주자로 활동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넓혀나갈 수 있었던 배경으로 분석한다. 바일러와 리즈맨에 의하면 트럼프주의 및 파시즘이 그 지지자들에게 어필하는 최대의 매력은 시대를 되돌려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환상이다. 그 동심은 때로는 “원하는 것은 전부 손에 넣을 수 있고 악은 반드시 쳐부술 수 있다”는 선악의 단순화와 분명함이기도 하고, 때로는 트럼프의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있었을 뿐인 40분짜리 댄스쇼 [6] ”나 적어도 80~90년대의 모든 대중문화 향유자들이 즐겼다고 하는 프로레슬링과 같은 문화적 오브젝트이기도 하다. 사상가 롤랑 바르트는 관습과 이데올로기를 기능하게 하는 기호들에 관해 저술한 1957년 저서『신화론』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레슬러는, 적어도 잠시 동안에는, ‘자연’으로 통하는 열쇠, 선과 악을 구분해 내는 순수한 제스처, 그리고 그렇게 겨우 이해할 수 있게 된 ‘정의’의 형태를 드러내기 때문에 신적인 존재로서 남게 되었다.” [7] TV 이전, 1950년대 프랑스의 레슬링은 서커스나 “파리에서 가장 지저분한 홀에 숨어서 hidden in the most squalid Parisian halls” [8] 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였다. 그리고 이로부터 30, 40년 후 빈스 맥마흔은 TV 방송 프로그램을 장악하는 것으로써 WWE를 프로레슬링의 주류로 만드는 데에 성공하고, 바르트가 본 것과 같이 대중의 정서를 온전히 표현하는 예술이었던 프로레슬링은 반대로 대중에게 특정한 정서를 일방적으로 발신할 수 있는 권력을 TV를 통해 얻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레슬링은 여전히 (코로나라고 하는 아주 특정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TV와 동시에 현장에 존재하는 공연예술의 측면을 지켜왔으며, 빈스 맥마흔은 WWE를 통해 트럼프주의의 목소리를 키웠을지언정 거기에 대한 이견을 말할 여지까지는 없앨 수 없었다. 게다가 동시대 서브컬처 연구자 우노 츠네히로가 지적하듯, 2010년대를 거쳐 2020년대에 접어든 “현재 문화의 중심은 종이나 스크린 위의 타인의 이야기를 수신하는 쪽이 아니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9] . 2024년, 처음으로 넷플릭스에 방영된 WWE에는 현장의 사람들이 넷플릭스와 맥주 브랜드를 홍보하는 헐크 호건을 야유하는 대중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대중은 인종차별적 언어 사용과 트럼프 지지자로 알려진 호건을 영웅적인 선역으로도, 카리스마 있는 악역으로도 받아들이고 있지 않아 보였다. 이 현상을 두고 연구가 샤론 메이저 [10] 는 이렇게 결론내렸다: “트럼프는 프로레슬링에 몹시 영향을 받았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 한가운데의 링 위에서에서 한가운데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죠. 그는 물론 아주 기분이 좋겠죠. 하지만 그 영향력을 정말로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거기에 반응하는 방식입니다. [11] ” 물론 모든 사람이 헐크 호건에게 야유하기 위해 그 현장에 있을 수는 없다 (WWE는 그러한 구조를 이용해 현장에 있는 관중보다 훨씬 많은 대중을 향해서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발신해왔다.) 그렇지만 우노는 확장현실의 시대에 접어든 우리가 “혁명적인 접근이 아니라 해킹적인 접근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며, 나이언틱의 〈인그레스〉 및 〈포켓몬 GO〉와 같은 AR 게임을 이 시대의 ‘해킹적인 접근’의 예시로 든다 [12] . 그렇다면 WWE 비디오 게임 시리즈로 WWE를, 그리고 WWE를 벗어나서 한 번도 프로레슬링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WWE의 리얼리티를 해킹할 수 있을까? * 〈WWE Smackdown vs. Raw 2009〉 플레이 화면 〈WWE 2K22〉, 〈WWE Smackdown vs. Raw 2008〉, 〈WWE Smackdown vs. Raw 2009〉 총 3작품을 플레이해본 바, WWE 비디오 게임 시리즈는 크게 커스터마이징 기능, 대전 모드와 가벼운 RPG 모드, 그리고 ‘액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선 WWE 게임은 ‘자유도’가 높다. 게임을 평가할 때, ‘자유도’는 곧잘 쓰이는 단어이지만 그 쓰임의 범위는 넓고 추상적이다.〈2K22〉에 이르러서는 음절 단위로 이름 부르는 방법을 조정하거나 외부 이미지로부터 텍스처를 불러올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기능의 풍부함도 일종의 자유로움이고, 대전 모드는 물론이고 스토리 모드에 해당하는 RPG 파트에서도 얼마든지 쓰고 싶은 기술을 전부 연출하고 상대를 당장 ‘핀폴’로 제압하지 않는 것을 시스템적으로 허용하는 것도 자유로움의 한가지이다. 그리고 ‘액션’. 액션 영화나 만화와 같이 감상하는 ‘액션’과 달리, 비디오 게임의 액션은 플레이어의 ‘액션action’ 즉 행동을 요구한다는 특징이 있다. 통념적으로는 거의 움직임이 없다고 생각되는 조이패드나 키보드 조작조차, 그것이 손가락 끝이나 손목, 목이나 허리 따위에 전달하는 촉각과 영향은 분명하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기에 비디오 게임 플레이어들은 곧잘 몸에 맞는 키보드나 게이밍 의자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닌텐도 DS판 WWE 시리즈는 그런 의미에서는 각별하게 느껴졌다—나에게 있어서 터치스크린에 나이테 같은 흔적을 남기는 터치 조작과 천식이 있는 몸으로 힘껏 숨을 불어넣게 하는 마이크 입력은 몹시 신체적으로 와닿는 인터페이스다. * “잡기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잡아야 합니다.” 시간을 들여 세부적인 커스터마이징을 마친 플레이어 캐릭터는, 꼭 ‘실제 나’와 닮지 않았더라도 나와의 고유한 관계성을 갖기에 몰입할 만한 대상이 된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자신의 자아와 연관된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액션’을 통해 신체적인 차원에서도 몰입한다. 우노 츠네히로는 오늘날 〈포켓몬 GO〉와 같은 게임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기 위한 렌즈로써 의도되었다고 해석하며, 이런 게임을 플레이하면 2차창작을 할 때와 같이 “수동적인 관객”이 아닌 “능동적인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13] . 근본적인 영향력은 관객이 받아들이는 방식으로부터 정해질 수밖에 없는 WWE 프로레슬링이 게임적인 리얼리티 쇼라면, WWE 비디오 게임 시리즈는 WWE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표현하기 위한 2차 창작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 WWE2K22 】#홀로파이터 대집합!? 더빙으로 싸우는 아이돌들 Fighter All Stars! voice over wrestling!【홀로라이브/사쿠라 미코】 버츄얼 유튜버 그룹 hololive는 WWE 2K22의 정교한 커스터마이징 기능으로 멤버들의 모습을 구현해서 플레이하는 기획방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들은 재현된 레슬러 캐릭터들에 이입해서 플레이할 뿐만아니라, 녹화한 플레이 영상에 육성肉声을 입히는 더빙 작업을 통해 더더욱 WWE를 자신들의 이야기로 전유하고 있다 (말그대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일찍이 마크 피셔가 일컫길 리얼리티 TV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환상 대상”이 부활할 수 있을 듯한 낌새를 느낀다. 게임속의 링 아나운서가 당신의 이름을 한 음절씩 정확히 호명할 때, 그것은 우리를 주인공으로 호명하는 목소리이자,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으로서 생각하고 액션을 취해야 한다고 일깨워주는 점호와도 같다. * 나와 한몸이 된 ‘랜디 오턴’ 주관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반드시 긴 시간을 들여서 세세한 커스터마이징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나는 닌텐도 DS용 〈WWE Smackdown vs. Raw〉시리즈에서 대개 랜디 오턴으로써 플레이했다. 그래도 그 ‘랜디 오턴’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움직임과 그 결과를 비디오 게임 속에서 보여주는, 그러니까 나를 반영하는 나만의 고유한 ‘랜디 오턴’이다. 나는 사실 WWE의 랜디오튼이 선역인지 악역인지, 이기는 경기가 많은지, 혹시 반칙을 통해서만 이길 수 있는 레슬러인지 전혀 모르지만 내가 플레이하는 랜디 오턴이 어떤 캐릭터인지는… 내가 나 자신을 아는 만큼은 잘 알고 있다. 우노 츠네히로는 오늘날에 대해 “이 확장현실의 시대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깊게 파고들어서 이 현실을 확장하고 바꿔가기 위한 상상력이 비판력 있는 허구로서 기능하는 시대”라고 평했다. 우리 시대가 WWE의 영향력으로부터 당장 탈출할 수 없다면, 이를테면 WWE 비디오 게임 시리즈를 플레이함으로써도 우리에게 발신되는 메시지들을 비판하고 속아주리라 기대하는 거짓말로 점철된 현실을 ‘해킹’할 수 있지 않을까? [1] “1980년대 버지니아 주에서 중국계 미국인으로 자란” 에릭 바일러는 WWE에 나타나는 여성혐오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말하기 위해 팟캐스트〈Wrestling Darkness〉를 기획했다.Eric Byler, “Wrestling Darkness: origin story,” Wrestling Darkness — Eric Byler, Substack, Dec 4, 2024. https://open.substack.com/pub/ericbyler/p/podcast-the-netflix-wrestling-thats?utm_campaign=post&utm_medium=web . [2] Eric Byler. Episode 2: Wrestling Has Infected Everything. Wrestling Darkness. Podcast Audio. Nov 13, 2024. https://open.substack.com/pub/ericbyler/p/episode-2-a-careening-path-to-hell?utm_campaign=post&utm_medium=web [3] 마크 피셔, K-펑크 (경기: 리시올, 2023), 199-200. [4] 아브라함 조세핀 리즈맨은 2023년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Ringmaster: Vince McMahon and the Unmaking of America』를 통해 미국의 포퓰리즘 정치와 빈스 맥마흔의 상관관계를 저술하였으며, 이 “책의 초고가 완성된 주에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했다. 그리고 그 두가지 일은 무관하지 않았다.” [5] https://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birtherism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시민권의 자격에 미달하며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자격에도 미달한다고 주장하는 음모론. 미리엄-웹스터에 의하면 ‘버서(리즘)’이라는 표현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09년이다. [6] https://nypost.com/video/trump-swayed-and-danced-for-nearly-40-minutes-at-penn-town-hall/ . 도널드 트럼프는 2024년 10월 14일 펜실베이니아 주에서의 선거운동에서 약 40분 동안 「아베 마리아」, 「YMCA」와 같은 곡으로 춤을 췄다. [7] “Wrestlers remain gods because they are, for a few moments, the key which opens Nature, the pure gesture which separates Good from Evil, and unveils the form of a Justice which is at last intelligible.” Roland Barthes. "The World of Wrestling" in Mythologies (New York: Hill and Wang, 1972), 25. [8] Ibid. 15. [9] 우노 츠네히로, 모성의 디스토피아 (서울울: 워크라이프, 2022), 520. [10] 샤론 메이저의 저서 『Professional Wrestling: Sport and Spectacle』(1998)는 공연예술로서의 프로레슬링을 다룬 최초의 연구서적으로 알려져 있다. [11] Eric Byler. Ep. 5: Why did the fans boo Hulk Hogan?. Wrestling Darkness. Podcast Audio. Jan 9, 2025. https://open.substack.com/pub/ericbyler/p/wrestling-darkness-5-the-netflix?utm_campaign=post&utm_medium=web [12] 우노 츠네히로, 모성의 디스토피아, 520-522. [13] 우노 츠네히로, 모성의 디스토피아, 53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윤수빈 2007년부터 시작된 포켓몬스터 시리즈와의 인연으로 게이머가 되었으나, 2023년에 결별을 선언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포켓몬 게임 시리즈의 출력 텍스트인 "햇살이 강해졌다!"가 삶의 모토. 좋아하는 게임이 생기면 동인지를 만드는 삶을 살아왔지만, 2024년부터는 게임 비평이라는 새로운 감상의 언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종종 '룬츠'라는 닉네임으로 2차 창작을 쓰고 그린다.
- 25년의 심즈, 내일의 인조이
게임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국가의 경영과 역사 속 전쟁, 용과 엘프가 나오는 판타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의 생존은 훌륭한 게임 소재다. 그렇지만 컴퓨터 조립(PC 제작 시뮬레이터)이나 트럭 운전(유로트럭), 자동차 조립(카 메카닉 시뮬레이터)처럼 비교적 사소한 일들도 게임이 된다. < Back 25년의 심즈, 내일의 인조이 24 GG Vol. 25. 6. 10. 게임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국가의 경영과 역사 속 전쟁, 용과 엘프가 나오는 판타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의 생존은 훌륭한 게임 소재다. 그렇지만 컴퓨터 조립(PC 제작 시뮬레이터)이나 트럭 운전(유로트럭), 자동차 조립(카 메카닉 시뮬레이터)처럼 비교적 사소한 일들도 게임이 된다. 이러한 시뮬레이션 게임 가운데 '청소'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청소게임은 꽤 매니악한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필자의 지인은 '방 청소를 미뤄두고 <하우스 플리퍼>를 밤새 플레이했다'는 경험을 전했다. <하우스 플리퍼> 외에 고압세척기와 비누액으로 묵은때를 벗겨내는 개운함을 주는 쾌감을 가진 <파워 워시 시뮬레이터>나 살인현장을 청소한다는 콘셉트의 <연쇄청소부들>,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고 세차만 하는 <카 워시 시뮬레이터> 등이 유명하다. 게임의 소재가 이렇게도 무궁무진한데, 그 자체로 무궁무진한 삶은 또 얼마나 좋은 게임 소재겠나. 인간의 희노애락과 생로병사는 그 자체로 많은 공감 요소를 가진다. 비디오게임의 시대가 오기 이전부터 인간의 삶은 역할극이 됐고, 그러한 놀이로 현실에서 꿈꿀 수 없는 로망이 충족됐다. 바비 인형을 가지고 하던 놀이는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대체됐다. 그리고 이 장르의 최고봉에는 단연 심즈 시리즈가 있다. 한국의 크래프톤은 올해 <인조이>의 얼리액세스를 시작하며 심즈 시리즈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적지 않은 프로젝트들이 심즈 시리즈의 아성을 넘보려했지만, 그 아성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과연 <인조이>는 이 독창적 장르 안에서 안착할 수 있을까? 그를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라이프 시뮬레이션의 최고봉 '심즈' 시리즈 먼저 짧게나마 25년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심즈 시리즈의 역사를 돌아보려 한다. <심즈>(2000)는 <심시티>, <심어스>, <심앤트> 등을 '심'시리즈를 창작한 윌 라이트가 만들었다. 그의 스튜디오 맥시스는 '장난감'을 디지털게임으로 구현해야겠다는 철학(Toy-Based Design Philosophy)으로 90년대 게임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가했다. 언급한 게임들의 연이은 성공으로 딸 캐시 라이트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윌 라이트는 소꿉놀이를 하던 딸의 모습을 보고 <심즈>의 밑그림을 그렸다. 게임의 프로젝트명은 '인형의 집'(Dollhouse)이었다. 그간 도시나 농장 같은 큰 공간을 무대로 삼았던 맥시스는 규모를 줄여 마을 속에서 인간의 삶을 게임에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심즈>는 식욕, 수면욕, 명예욕, 그리고 성욕과 같은 인간의 기본 욕구를 파라미터화했으며, 플레이어로 하여금 전지적 시점에서 심(인간 캐릭터)들의 생을 관리하도록 설계했다. 이뿐 아니라 집을 짓는 건축 모드나 상품을 구매해서 살림살이를 발전시켜 나가는 구매 모드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고도화된 상태로 준비됐다. <심즈>를 개발하던 중, 맥시스는 공격적 M&A 전략으로 공룡이 되어가던 EA에 인수됐다. <심즈>는 2000년 EA의 유통망을 타고 전 세계에 출시됐다. <심즈>는 발매 첫해 177만 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기록했고, 공격적인 확장팩 전략으로 5년 동안 약 630만 장이 판매됐다.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물론 개발자들까지 '이런 게임을 누가 재밌어하느냐'라는 반응을 내놓았지만, 윌 라이트의 '심'은 <심즈>로 당당히 마침표를 찍었다. <심즈>는 세계 비디오게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 <심즈> <심즈 2>(2004)는 전편의 엄청난 성공 덕에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2.5D 그래픽에서 회전 가능한 3D로 개발되었으며, 부모의 생김새를 물려받거나 관계도 히스토리가 남는 등 여러 측면에서 고도화가 이루어졌다. 윌 라이트의 회고에 따르면 2004년 나온 <심즈 2>는 "플레이어가 세밀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고, 캐릭터는 욕망과 두려움을 갖게 되었"으며 "이웃들은 절박한 주부들과 바람피는 남편들로 얽힌 TV 리얼리티쇼처럼 구성"되었다. <심즈 2>에 접어들면서 모드(Mod; modification) 커뮤니티가 훨씬 더 활발해졌다. 전작 <심즈>에 모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심즈> 플레이어들은 .iff 확장자를 분석하면서 여러 비공식 툴을 배포했고, EA도 이런 UGC(유저 창작 콘텐츠)를 딱히 막지 않았다. 그 결과 The Sims Resource, SimFreaks, 7DeadlySims 같은 홈페이지가 생겨났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보다 모딩 콘텐츠를 배포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심즈>는 태생적으로 2.5D 게임이었고, 게임으로 표현할 수 있는 UGC 또한 한계가 명확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한 <심즈 2>의 모딩, UGC 커뮤니티는 더 넓고 깊어졌다. 2000년대 중반이 되면서 패키지 게임을 하면서 온라인을 참고하는 일이 점차 익숙해졌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심즈>가 출시된 2000년의 인터넷 이용률은 52%, <심즈 2>가 출시된 2004년은 63%를 기록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DSL, 케이블 등 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보급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인터넷 접속을 경험했던 것이다. * <심즈 2> 한편, <심즈 2>의 선임 게임 디자이너를 맡았던 윌 라이트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매료되고 있었다. 그는 <심즈 2> 발매 이후 <스포어>의 개발에 착수했으며, 2009년에는 맥시스에서 퇴사했다. 그는 시간이 흘러 심즈 시리즈의 25년을 기념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나는 속편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I never really liked the idea of working on sequels)라고 고백했다. 윌 라이트는 떠났지만 <심즈 3>(2009)는 계속 개발됐다. <심즈 3>는 시리즈 최초로 오픈월드를 채택했다. 모든 부지를 연결한 대담한 시도는 박수를 받았지만, 발매 초기 최적화와 버그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오브젝트와 색감과 광택이 추가되면서 커스터마이징의 옵션이 전편에 비해 상당히 많아졌다. 오픈월드와 그 영향으로 높아진 자유도는 게임의 실행성과 범용성을 낮추는 대신 독특한 재미를 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오픈월드 게임은 모두 액션이나 슈팅, RPG 장르의 게임이었다. 라이프 시뮬레이션에서는 오픈월드 게임이 개발되지 않았다. (물론 개발이 이루어진 해당 장르의 게임 자체가 적다) 심을 '래빗홀'로 빠뜨리지 않고 일상을 모두 보이는 곳에서 진행하기로 한 기획은 기술적 어려움을 딛고 결국 성공했다. 주변의 심들은 함께 늙어가고, 하나의 월드에서 함께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기술적 난도가 너무 높았던 탓에 맥시스는 <심즈 4>(2014)에서 오픈월드를 포기했다. 오픈월드와 자유도, 커스터마이징 삼박자를 두루 갖추었기 때문에 몇몇 매니아들은 아직도 <심즈 3>를 플레이한다. * <심즈 3> <심즈 4>는 오픈월드를 포기한 대신 편의성과 접근성을 대폭 끌어올렸다. 월드가 작아지면서 스토리모드나 차량 등이 삭제됐지만, 커뮤니티에 자신의 플레이를 업로드하기 위한 여러 기능들이 추가됐다. '인칭 시점'과 '갤러리 공유' 등이 업데이트됐으며,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는 것과 같은 사소한 기능들이 대폭 추가됐다. 동작과 감정 표현 또한 부드러워졌다. 다만 <심즈 4>는 가장 논쟁적인 심즈다. 오픈월드의 삭제에도 최적화 문제가 제기됐고, 게임이 원래는 온라인게임으로 개발되었으나 급하게 스탠드 얼론으로 출시됐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4편에 들어서 EA의 DLC 정책이 문제가 되었는데, 2025년 기준 <심즈 4>에는 90개 넘는 DLC가 출시되었다. 코어 이용자는 100만 원 이상을 사용해야 게임의 모든 월드, 직업, 테마, 아이템 등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차세대 심즈로 '프로젝트 르네'가 존재하지만, 발표가 늦어지면서 <심즈 4>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라이브게임의 형태로 계속 서비스되고 있다. * <심즈 4> 쉽지 않았던 심즈 뛰어넘기 25년의 역사 동안 심즈 시리즈에 도전장을 내민 프로젝트는 적지 않았다. <세컨드 라이프>(2003)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무기로 삼았고 한때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세컨드 라이프>는 2020년대 메타버스 열풍과 함께 재발굴되었으나 결론적으로는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자리를 내줬다. 독일에서 만든 <싱글즈>(2003)는 '성인용 심즈'로 주목을 받았으나 2005년 2편 이후 발매가 멈추었다. 연애와 섹스에 거의 모든 기능을 맞추면서 큰 반향을 이끌지 못했다. 인터페이스와 AI의 만듦새 또한 <심즈>보다 떨어졌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모바일게임으로 출발한 <버츄얼 패밀리>(2009)는 PC 환경을 갖추지 않은 게이머에게 어느 정도 반향을 끌었다. 간략화된 시뮬레이션 기능으로 말 그대로 '가상 가족'의 육성과 성장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은 PC 심즈 시리즈와 비교하기에는 기능적으로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18년 EA가 <심즈 모바일>을 내놓으면서 이쪽 시장에서도 양분화가 이루어졌다. * <세컨드 라이프> 파라독스의 '라이프 바이 유'는 가장 유력한 대항마였으나 출시를 2주 앞둔 2024년 6월 돌연 출시가 취소됐다. 해당 발표 이후 개발사는 폐쇄됐고 "게임이 순조롭게 개발되고 있었다"라는 전 직원의 폭로가 나오면서 파라독스 측의 일방적인 개발 취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게임이 두 차례 연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추가 연기로는 ROI를 맞출 수 없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추측이 나온다. 그밖에 '알터라이프'와 '파라라이브'가 현재 개발 중이나 언제 출시될지는 알 수 없다. 개발진의 규모가 EA-맥시스와는 비교할 수 없이 기 때문에 심즈 시리즈와 비교할 수 있는 라이프 시뮬레이션이 나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 여담이지만, 심즈 시리즈를 즐기는 주요한 이유는 ‘권능감’이었다. 수영장에 사다리를 치워버리거나, 불타는 방 안에 심을 가두어버리는 괴상한 플레이는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도전자들은 그러한 컬트적인 인기에 도달하지 못했다. * <라이프 바이 유> 인조이의 도전장 크래프톤의 <인조이>는 지난 3월 얼리엑세스를 시작했고 출시 1주차에 100만 장의 판매량을 돌파하며 그간의 심즈 경쟁자 중에서는 가장 훌륭한 초기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방송 플랫폼 SOOP(옛 아프리카)과 치지직에서 게임 카테고리 시청자 수 1위, 트위치에서는 3위를 기록하며 '보는 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인조이> 창작물 공유 플랫폼 '캔버스'(CANVAS)는 이용자 수 120만 명을 돌파했다. 기사를 탈고 중인 현재(5월 29일) <인조이>에는 1,678명의 일 피크 이용자가 접속한 것으로 확인된다. <심즈 3>에는 1,487명, <심즈 4>에는 32,035명의 피크 이용자를 기록했다. 초반에 보여준 파괴력을 라이브까지 안정적으로 잇고 있지는 못하는 인상이다. 개발진은 흐름을 되살리기 위해서 이달(2025년 5월) 말 공식 모드 개발 툴을 업데이트하겠다고 밝혔다. 모드킷에는 어셋 다운로드 기능, 마야 블렌더 플러그인, 언리얼엔진 5 기반 모드 프로젝트 생성, 커스포지 연동 등이 지원된다. 모딩을 통해 자신만의 게임을 즐기는 해당 장르 커뮤니티의 동향에 주목하는 행보로 보인다. 특정 게임을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필자는 다만 심즈 시리즈라는 거울을 통해 <인조이>의 가능성과 한계를 비춰보고자 한다 * <인조이> 인조이의 미래는 심즈에 있다 ⓐ 심즈: 사회에 대한 메시지 사실 25년 전 <심즈>로부터 기술적으로 배울 점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윌 라이트가 추구했던 작가주의는 <인조이> 개발진이 참고할 만하다. <심즈>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소비문화를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게임이었다. 게임 속 구매 모드에서는 냉장고와 TV는 행복을 보장하는 아이템처럼 묘사됐지만, 금방 고장나리기 마련이고, 심은 그것을 고치려다가 죽어버린다. 도둑이 들어서 물건을 훔쳐 가고, 게임은 플레이어를 놀리는 듯한 문구를 노출했다. <인조이>에는 그런 날카로움이 거의 배제된 인상이다. 상호작용 옵션은 많지만 '사업 파트너'나 '천생연분'과 같은 미리 마련된 틀 안에 갇혀있으며, 시스템은 조이가 사고를 당하거나 좋은 일이 생길 때나 그저 다독일 뿐, 플레이어를 자극하지 않는다. 게임 속 구매 가능한 물건들을 모아놓은 카탈로그는 거의 비어 있으며, 얼리엑세스 버전부터 가전기업의 PPL 상품이 들어있다. <인조이>는 언리얼엔진 5의 기능성을 선보이는 훌륭한 쇼룸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서 창작자의 메시지를 찾기는 어려웠다. AI 기반 자율 시뮬레이션 속에 인간 사회의 아이러니나 직업의 애환 같은 것은 이 게임에서 거의 없었다. 굳이 비판적인 메시지가 아니어도 좋다. 게임의 김형준 디렉터는 <인조이>로 하여금 "사람들이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메시지는 게임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돋보일 수 있을까? ⓑ 심즈 2: 모딩으로 완성되는 게임 <심즈 2>의 진정한 가치는 모딩에 있었다. 유저들은 새로운 옷과 가구, 맵뿐 아니라 캐릭터의 유전 구조와 사회적 관계까지 손을 댔다. 개중에는 일반적인 윤리의 선을 넘는 튜닝도 존재했지만, 이는 곧 게임이 창작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스팀에 착한 게임만 있는 것은 아니듯 말이다) <인조이>도 '툴킷'이자 '플랫폼'을 지향해야 한다. 다행히 개발진은 그에 대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캔버스(CANVAS) 플랫폼과 5월 말 예정된 공식 모드킷 업데이트로 <인조이>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다만 모딩이 성공한 모든 게임이 그러하였듯, 자유로운 창작이 그 생태계를 지탱할 것이다. <심즈 4>에서는 범죄자 모드, 빌런 모드뿐 아니라 게임 속 시스템을 완전히 변경하는 모드들이 마련되어 있다. 아름다운 조이(인조이의 캐릭터)나 집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캔버스에서 활동하고, <인조이> 가능성의 극한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별도의 창작마당에서 논다면 <인조이>는 활력을 얻을 수 있다. ⓒ 심즈 3: 양날의 검, 오픈월드 <심즈 3>의 오픈월드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다. 심들이 동네 곳곳을 로딩 없이 오가고, 이웃들도 자율적으로 삶을 꾸려갔다. 한 세계 안에서 모두가 동시에 살아가는 구조는 유례없는 몰입감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버그와 성능 저하라는 대가를 치렀다. <인조이>는 언리얼엔진 5 오픈월드를 채택했다. 높은 권장사양을 요구하고 있고, <심즈 3> 때와 유사한 최적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EA가 그러했듯이 크래프톤 또한 이 장벽을 넘어서야 게임이 오래 가는 플랫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게임을 즐기는 타겟층의 하드웨어 조건을 고려한다면, 권장사양의 다운그레이드는 반드시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심즈 4: DLC는 얼마나 많아야 할까? <심즈 4>는 라이브 게임으로 전환되면서 콘텐츠 확장에 집중했다. 문제는 그 확장의 방향이었다. DLC는 90종이 넘고, 모든 콘텐츠를 체험하려면 100만 원이 넘는 돈이 들게 됐다. 이는 유저들의 피로감으로 직결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심즈 4>에 들인 매몰비용이 <인조이>보다 많은 원인이 되었다. <인조이>는 현재 44,800원에 판매 중이고 이 기간 동안의 DLC는 무료로 제공한다. <심즈 4>가 부분 유료화 모델을 채택했고, 잠재적인 경쟁자인 후속작 프로젝트 르네 역시 부분 유료화 모델이 유력하게 점쳐지는 상황이므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크래프톤의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BM에 대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DLC의 수와 가격보다 그것을 유저들에게 설득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콘텐츠를 분절해 파는 구조는 유저의 피로도를 높일 수 있다. 그렇다고 유료 DLC가 전혀 없는 모델을 추구하면 만든 이들에게 상업적 효능감을 줄 수 없을 것이다. DLC 전략 또한 까다로운 커뮤니티와 ‘스파링’ 과정 끝에 제출되어야 할 것이다. DLC 전략은 콘텐츠 분할이 아닌, 커뮤니티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 크래프톤이 <인조이>를 일회성 화제작이 아닌, 살아 있는 플랫폼으로 키우고자 한다면, “무엇을 얼마나 팔 것인가”보다 “누구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 97개에 달하는 <심즈 4>의 추가 콘텐츠 마치며 삶은 게임이 될 수 있을까? ― <심즈>는 이 질문을 25년간 반복해 왔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인조이>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형의 집’ 안에 담긴 욕망, 기술, 플랫폼, 그리고 가족은 독특한 게이머 그룹을 형성했고 10여 년 전에 나온 <심즈 4>는 아직도 파급력있는 라이브게임으로 군림하고 있다. 도전자의 위치에 선 <인조이>는 <심즈>가 이룩한 것과 같은 역사를 그릴 수 있을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B급 게임이란 무엇인가
게임과 B급이 여러 차원에서 연결돼 왔기에, 둘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분명한 것은, 게임에서 ‘B급’이라 불리는 것들 역시 (그렇지 않은 것들 못지않게)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가며 게임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게임과 B급에 대한 논의는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감이 있다. 이 글에서는 앞서 말한 연결지점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지점을 중심으로 게임+B급에 대해 논의하도록 한다. B급 정서나 코드가 게임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그것을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핌으로써, 게임에서의 B급, B급 게임, B급 게임문화 등이 게임문화 전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한다. < Back B급 게임이란 무엇인가 05 GG Vol. 22. 4. 10. 주류 대중문화의 주변부에서 꽃을 피우는 문화가 있다. 이 문화는 기존 대중문화에 반기를 들기도 하고 재/구성하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위상을 만들어간다. ‘B급’ 문화 이야기다. B급 문화의 시초는 B급 영화였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제작여건이 나빠지자 할리우드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저예산 영화를 만들어 메이저 영화와 끼워팔기+동시상영 전략을 구사했다. 관객들은 졸지에 A급이 된 메이저 영화와, 저예산 B급 영화를 한 편의 가격으로 볼 수 있었다. 이후 1940년대 말부터 독립영화제작사들이 출현하면서 B급 영화의 의미는 메이저 영화가 표현하지 못하는 자유로우면서도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정신을 뜻하는 의미로 변화해갔다. 탈장르화·탈문법화와 함께 B급 영화가 적극 활용한 방법론 혹은 기법은 키치(kitsch), 패스티시(pastiche), 패러디(parody), 오마주(hommage) 등이었다(조주영·안숭범, 2015). 그리고 이제 B급은 그 대상이 영화에만 한정되지 않는 데다, 비주류 정서나 코드를 통한 자극적 유희성을 추구하는 창작물의 의미까지 넓게 포함한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B급이란 무엇일까? 다른 대중문화 장르에서도 대체로 그렇겠지만, 게임과 B급은 여러 차원에서 연결돼 왔다. 그 연결지점을 구분하면 다음 정도겠다. 첫째, 예술은 말할 것도 없고, 대중문화 장르 사이에서도 게임은 B급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주류가 될 수 없는 B급 대중문화물 중 대표적인 것이 게임이었다. 둘째, 수준 미달의 게임을 B급 게임으로 부르기도 한다. 셋째 그리고 가장 일반적으로, 영화나 다른 대중문화 장르를 통해 구축된 B급 정서나 코드를 활용한 게임을 일컬을 때 사용된다. 넷째, 소수에 의한 열광적인 수용문화와도 관련된다. B급 문화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추종자들이 나타나고, 그들에 의해 작품이 끊임없이 재/해독되어야 한다. 작품에 내재한 의미들이 드러나고, 일견 가볍고 유치한 것이 수용자들의 굉장히 적극적인 해독행위와 만나 진지하게 읽혀질 때 비로소 B급 문화가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게임과 B급이 여러 차원에서 연결돼 왔기에, 둘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분명한 것은, 게임에서 ‘B급’이라 불리는 것들 역시 (그렇지 않은 것들 못지않게)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가며 게임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게임과 B급에 대한 논의는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감이 있다. 이 글에서는 앞서 말한 연결지점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지점을 중심으로 게임+B급에 대해 논의하도록 한다. B급 정서나 코드가 게임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그것을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핌으로써, 게임에서의 B급, B급 게임, B급 게임문화 등이 게임문화 전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한다. B급 게임은 무엇을 담는가 B급 게임도 다른 B급 문화장르처럼 비교적 저예산으로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비주류 콘텐츠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자유분방하고 오락적·자극적인 스타일을 지닌다. 게임 속 이야기 전개가 (있는 경우) 탈개연적·비약적이고, 느슨하거나 비논리적임은 물론이다. 상호텍스트적(intertextual) 방법론의 활용도 B급 게임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우스꽝스럽거나 진지하지 않은 그림체와 여타 그래픽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물론 최근에 와서는 이러한 B급의 공식들도 조금씩 바뀌기는 하는 듯하다. 가령 B급 게임도 이제는 얼마든지 메이저 게임에 비견되는 예산과 기간을 필요로 할 수 있다. 그리고 B급의 스타일이나 방법론은 이제 꼭 B급이 아닌 게임에서도 빈번히 발견된다. B급 게임을 규정하는 데에는 시대적 맥락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높은 완성도와 전작의 인기로 후속작이 출시될 때마다 세간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바이오하자드(Biohazard)〉 시리즈지만, 처음부터 〈바이오하자드〉가 지금과 같은 위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6년 캡콤이 출시한 첫 〈바이오하자드〉는 크게 기대하는 타이틀이 아니어서 소량만 출시됐다. 출시 직후 화제가 됐던 것은 충격적인 오프닝 영상이었는데, 제작비 문제로 무명배우를 기용해 찍었던 오프닝 영상은 B급 호러물의 느낌을 보여주었다. 어지간한 슬래셔물을 능가하는 잔인한 장면들은 사회적으로도 논란을 야기했다. 가정용 비디오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에 그렇게까지 잔인한 장면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당시 시대관념에 비춰봤을 때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문의식, 2015. 1. 16). B급을 B급이게 만드는 요건들이 느슨해지거나 그 경계가 희미해지거나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B급 게임은 존재한다.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라는 게임 시리즈가 있다. 주인공은 하루 종일 게임만 한다. 그러다 엄마에게 걸린다. 엄마는 게임기를 숨기고, 주인공은 한 스테이지 스테이지 갖은 방법을 동원해 게임기를 찾는다. 설정만 봤을 때는 그냥 조금 우스꽝스런 게임인 듯하지만, 게임기를 찾는 기상천외한 방식(옷장 앞을 막고 있는 축구선수?를 따돌리면 게임기가 등장한다거나), 당황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게임오버 씬(주인공이 “마마, 칙쇼!!”라고 외친다거나...), 그리고 다양한 사물들의 맥락 없는 배치(게임 〈고양이 장애물〉의 생선 등), 그럼에도 지나치게 맑은 색감과 깔끔한 그림체는 묘하게 부조화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플레이어들을 긴장케 만든다. B급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비주류 취향 게임들이 모여 B급 장르화되는 경우가 있다. 설정·연출·전개 등이 비상식적이고 약을 빤 듯한 분위기를 내는 ‘바카게(バカゲー)’가 대표적이다. 바카게는 바보, 멍청이, 무능하다는 뜻의 ‘바카(バカ)’와 게임의 줄임말인 ‘게(ゲー)’의 합성어이며,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병맛겜’ 정도가 될 듯하다. B급 장르로 ‘슈르게(シュールゲー)’도 빼놓을 수 없다. ‘슈르(シュール)’는 초현실주의(surréalisme)의 일본어 발음인 슈루레아리스무(シュルレアリスム)에서 앞 자만 따온 말이다. 슈르게는 말 그대로 초현실적 게임, 즉 기괴하거나 난잡한 그래픽, 이상한 외모나 성격의 캐릭터,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만이 아니라 현실을 가장한 비현실적 상황 등을 주된 요소로 삼는 게임류를 가리킨다. 당연하게도, 바카게나 슈르게가 게임성을 포함하는 개념은 아니다. 둘에는 게임성이 우수한 게임과 그렇지 못한 게임이 모두 포함되며(물론, ‘우수한 게임성’에 대한 기준도 수렴되지는 않을 테지만), 마니아층의 지지를 얻는 것이 일반적이나 바카게/슈르게적 요소가 적당한 수준이라면 그 게임은 대중적으로 폭넓게 사랑받기도 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B급 게임을 만드는 데 특화된 게임사들도 있다. 1970년대 설립돼 2000년대 초반까지 〈트리오 더 펀치(トリオ・ザ・パンチ, 1989)〉와 같은 게임을 만들었던 일본의 데이터 이스트(Data East)사, 〈어스 디펜스 포스: 아이언 레인(Earth Depense Force: Iron Rain, 2019)〉의 D3 퍼블리셔(D3 Publisher), 그리고 미소년/녀 게임을 주로 만들어 온 FURYU 등이 예다. (B급 장르화와 마찬가지로) B급 게임 제작에 특화됐다 해서, 이러한 게임사들을 이상한 게임이나 만드는 B급 메이커 취급을 해선 안 된다. 콘셉트나 스타일이 다소 독특하고 괴상할 뿐, 게임성까지 후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들이 B급 게임만 만든 것도 아니었다. 데이터이스트의 〈미드나잇 레지스탕스(Midnight Resistance, 1989)〉, 〈나이트 슬래셔즈(Night Slashers, 1993)〉 같은 게임들은 오락실 플레이어들에게 뜨겁게 사랑받은 명작들이다. 하지만 이제 게임 개발비용의 점증과 출시게임의 대형화로 인해 점점 B급 게임사나 장르들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모바일게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모바일게임의 양적·질적 수준도 높아져, B급 게임들이 다른 모바일게임들 사이에서도 경쟁을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모바일게임에서 일어나는) 방치형 플레이 방식의 보편화 역시 플레이에 있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B급 게임들에 긍정적이지 못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것이 B급 게임과 상호배타적 개념이 아님에도,) 인디게임까지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외적 환경 속에서 내부적으로도 B급 게임사나 장르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새로운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어, B급 게임들이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설상가상과 악화일로라고 할 수 있다. B급 게임은 어떻게 수용되나 B급 게임은 특유의 정서와 코드를 통해 플레이어를 게임의 안과 밖에 보다 강력하게 가둔다. 일본에서 유행했던 코나미(Konami Holdings Corporation) 〈러브플러스(Love plus)〉 시리즈의 플레이 문화를 살펴보자. 〈러브플러스〉의 후속작 〈러브플러스+〉(닌텐도 3DS용)와 〈러브플러스i〉(아이팟 터치·아이폰·아이패드용)는 가상의 애인과 추억을 쌓아나가는 증강현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게임 속에서 시간도 흘러가고, 카메라를 통해 플레이어를 캐릭터가 인식하고 불러주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캐릭터들의 복장도 변하고, 매시간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도 다르다. 캐릭터들이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모닝콜도 해준다. 때로는 플레이어와 함께 1박 2일 여행을 가기도 한다. 때문에 계절과 시간에 따라 데이트 코스를 치밀하게 짜야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터치 기능을 이용한 스킨십도 가능하다. 때로는 게임기 마이크에 대고 특정 대사를 입력해야 게임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꽤 리얼하게 가상세계 속의 캐릭터와 연애를 해나가게끔 만든 게임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 게임이 플레이어들에 의해 단순히 집에서만 플레이되는 수준을 넘어, 플레이어들을 집 바깥으로 나서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러브플러스〉 시리즈는 이를테면 〈포켓몬 고〉처럼 위치기반 서비스 요소가 강한 것도 아니고, 게임을 하기 위해 반드시 현실의 다양한 공간을 돌아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일본의 특정 지역에서 특정 캐릭터가 등장하는 콘텐츠가 있기는 했지만, 오로지 이러한 부분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현실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현실에서 가상의 여자친구와 당당하게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한 발 나아가 특별한 데이트를 위해 현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도 등장했다. 이러한 〈러브플러스〉 시리즈의 독특한 플레이 문화는 일본에 한정돼서 일어난 현상이기에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동안 플레이어를 집에 틀어박히게 하는 것으로나 여겨져 왔던 게임이 오히려 플레이어를 자발적으로 집 밖에 나서게 했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갖는다(강신규, 2020). 다른 한 편으로 플레이어들이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 게임을 주체적으로 이용함으로써 B급 문화를 형성할 수도 있다. 대표사례가 ‘모드(MOD: modification)’다. 모드란 기존에 출시된 게임의 내부 데이터를 플레이어가 수정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행위를 말한다. 모드를 통해 플레이어는 B급과는 상관없던 콘텐츠에 B급 정서와 코드를 불러들일 수 있다. 이를테면 VR(virtual reality) 게임인 〈로보 리콜(Robo Recall)〉은, 모드 킷을 공개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직접 게임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어떤 플레이어가 만든 ‘트럼프 리콜’ 모드는 적의 얼굴을 모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으로 바꿔 플레이어로 하여금 트럼프들과 싸우게 만든다. 물리쳐도 물리쳐도 좀비처럼 끝없이 트럼프가 나타나 플레이어에게 달겨드는 식이다( www.roborecallmods.com ). 이러한 모드는 현실세계의 적을 가상세계로 불러옴으로써 게임의 문법을 바꿀 뿐 아니라, 단순한 소비자-수용자를 넘어 적극적인 의미의 생산자-행위자-창작자의 위치로 플레이어를 불러들인다(박근서, 2009). B급의 요건들이 어느 정도는 존재함에도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개인에 따라 그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어 논란이 야기되는 경우도 있다. 2021년 10월 반지하게임즈의 〈어몽 오징어게임〉을 둘러싼 논란은 하나의 예다. 〈어몽 오징어게임〉은 제목 그대로 게임 〈어몽어스〉의 임포스터 룰을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적용한 게임이다. 2021년을 강타한 두 게임(어몽어스+오징어게임)을 패러디하고 오마주해, B급 감성을 담은 독창적인 게임으로 재창조하자는 것이 제작사 반지하게임즈의 의도였다. 하지만 기성 콘텐츠의 인기에 편승해 인디 정신을 잃었다는 비판과, 원작을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패러디·오마주한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플레이어들의 옹호를 동시에 받으며 논란이 됐다(김재석, 2021. 10. 13). 창작자/사가 B급을 의도해 기획·제작한 게임이라 해도, 그것이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수 있다. 〈어몽 오징어게임〉 논란은 이미 B급 콘텐츠임이 전제된 후 그것이 수용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전 단계인 B급이냐 아니냐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독특한 사례라 하겠다. 이처럼 B급 게임이 수용되는 맥락은 고정적이지 않으며, 복합적이다. 더 많은 B급 게임들을 위하여 이제 (꼭 게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대중문화 장르에서) B급은 일종의 상업적 코드로 각광받으면서 그 위상을 확대해가고 있다. 제작규모나 기간, 거대 게임사, 유명 창작자 유무로 B급을 판단하는 시선은 수명을 다했다. 평균 제작비를 훨씬 웃도는 자본이 투여된, 거대 게임사의 유명 창작자가 만든 게임들도 B급 정서나 코드를 빈번하게 활용한다. 그러다보니 자유분방한 실험이나 탈구속적인 전복을 기도하는 B급 게임이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B급 게임과 관련된 가장 큰 변화는, B급의 보편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어떻게든 B급임을 드러내는 게임들도 많지만, B급을 완전히 제거한 게임도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게임에 B급 정서가 은밀히 숨어 있거나, 의도와 다르게 만들어지기도 하며, 플레이어의 경험이나 욕망과 마주침으로써 B급이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하지만 B급의 보편화는 B급 게임을 사라지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A급 게임의 한 재미요소 정도로 B급이 게임에 녹아드는 것보다는, B급 정서와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B급 게임 자체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창의적인 콘텐츠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콘텐츠는 더 많다. 상업적으로든 비상업적으로든 성공하는 콘텐츠가 나오면 유사한 콘텐츠로의 쏠림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콘텐츠의 창의성과 다양성은 유지되기 어렵다. 이는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독보적 위상을 갖는 마이너 리그가 존재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런 식으로 거의 모든 대중문화 분야에서 특정의 소수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성일권, 2015. 5. 21.). 게임도 전반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인디게임이나 저예산 게임이 제작되고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국내·외에서 그러한 게임들을 위한 플랫폼이 생겨 전세계 플레이어들에게 다가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메인스트림 게임들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게임문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자산은, 다양한 장에서 기획되고 창작되는 수많은 무명의 게임들일 터다. B급 게임은 그 대표주자로서 더 많이 기획되고 만들어지고 플레이돼야 한다. 참고문헌 김재석 (2021. 10. 13). [해설] 오징어게임 카피 게임, 어떻게 볼 것인가? 〈디스이즈게임〉. URL: https://www.thisisgame.com/webzine/special/nboard/11/?n=134570 조주영·안숭범 (2015). 한국 B급 영화 정체성 탐색을 위한 비평장 고찰: 전통적인 미국 B movie 개념과의 비교를 통해. 〈인문콘텐츠〉, 37, 45~71쪽. 문의식 (2015. 1. 16). B급 호러로 시작해 블록버스터 대명사로, 바이오하자드. 〈게임어바웃〉. URL: http://www.gameabout.com/news/articleView.html?idxno=34724 박근서 (2009). 〈게임하기〉. 커뮤니케이션북스. 성일권 (2015. 5. 21). [나쁜 장르의 B급 문화] 왜 B급 문화인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URL: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588 〈로보리콜〉 모드 (www.roborecallmods.com)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고스트] 시리즈: 찬바라의 뒤섞인 계보 위에서 패링하기
찬바라를 적극 수용한 게임도 다채로운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1980년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 [사무라이](侍, 1979), 데이터 이스트의 제목부터 [찬바라](ちゃんばら)인 횡스크롤 액션 게임부터 [사무라이 스피리츠](サムライスピリッツ, 1993), [부시도 블레이드](ブシドーブレード, 1997) 등의 대전 격투 게임, 닌자 잠입 액션을 표방한 [천주](天誅, 1998), 최근의 [세키로: 쉐도우 다이 트와이스](セキロ: シャドウズ ダイ トゥワイス, 2019)까지, 사무라이와 닌자를 주인공 삼은 대부분의 액션 게임을 찬바라 게임의 범주에 집어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미소녀 좀비 액션을 표방한 [오네찬바라](お姉チャンバラ, 2004) 같은 게임도 있으니 말이다. < Back [고스트] 시리즈: 찬바라의 뒤섞인 계보 위에서 패링하기 30 GG Vol. 26. 6. 10. 찬바라(ちゃんばら)는 칼이 부딪히는 소리의 의성어 ‘찬찬(ちゃんちゃん)’ 소리와 피가 흩뿌려지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바라바라(ばらばら)’가 합쳐진 말이다. 본래 마구잡이로 제작되던 에도 막부 시대 배경의 시대극들을 폄하하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사무라이나 닌자 등이 냉병기로 액션을 벌이는 영화, 소설, 게임, 연극 등을 포괄하는 장르 명칭으로 사용된다. 스펀지검이나 튜브 무기를 사용하는 스포츠 찬바라도 있으니, 용어 자체는 장르나 매체를 가리지 않고 널리 사용된다 할 수 있겠다. 찬바라물이 처음 대중적으로 사용된 것은 일본 영화산업의 여명기인 1920년대부터 1945년 패전까지의 시기다. 19세기 말에도 찬바라 연극이 존재하긴 했으나, 무성영화 시기부터 대량생산된 시대극들이 칼싸움을 주된 소재 삼으며 대중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일본제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한 시기, 찬바라 시대극은 ‘무사도’를 강조하는 내셔널리즘 프로파간다로 이용되기도 했다. 통계에 따르면 1908년부터 패전까지 일본에서 6,000편의 시대극이 제작되었으며, 이는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다 [1] . 물론 이 모두가 찬바라 영화는 아니었겠지만. * 아케이드 게임 [찬바라] 포스터(위)와 PS2로 발매된 [오네찬바라] 커버(아래) 때문에 찬바라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대중문화의 하위장르로 볼 수 있다. 찬바라를 적극 수용한 게임도 다채로운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1980년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 [사무라이](侍, 1979), 데이터 이스트의 제목부터 [찬바라](ちゃんばら)인 횡스크롤 액션 게임부터 [사무라이 스피리츠](サムライスピリッツ, 1993), [부시도 블레이드](ブシドーブレード, 1997) 등의 대전 격투 게임, 닌자 잠입 액션을 표방한 [천주](天誅, 1998), 최근의 [세키로: 쉐도우 다이 트와이스](セキロ: シャドウズ ダイ トゥワイス, 2019)까지, 사무라이와 닌자를 주인공 삼은 대부분의 액션 게임을 찬바라 게임의 범주에 집어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미소녀 좀비 액션을 표방한 [오네찬바라](お姉チャンバラ, 2004) 같은 게임도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계보 그리기의 출발점을 게임 바깥으로 삼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찬바라는 20세기 초반 영화(와 몇몇 소설)를 통해 대중문화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멸칭으로 쓰였으나 작품이 누적되며 장르로 자리 잡은 익스플로이테이션(exploitation)의 계보에서, 찬바라는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4의 마지막 독점작인 [고스트 오브 쓰시마](Ghost of Tsushima, 2020)와 후속작 [고스트 오브 요테이](Ghost of Yotei, 2025)는 대중문화에 자리 잡은 찬바라 장르의 가장 최신작들이라 할 수 있다. 두 게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네이트 폭스는 『아들을 동반한 검객』(子連れ狼, 1970~1976)이나 『우사기 요짐보』(兎用心棒, 1984~) 등 유년기 시절 본 찬바라 만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영역이 아니기에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무라이 참프루>(サムライチャンプルー, 2004~2005) 등의 애니메이션, 『블리치』(ブリーチ, 2001~2016)나 최근의 초대형 히트작 『귀멸의 칼날』(鬼滅の刃, 2016~2020) 등의 만화도 찬바라 장르를 표방하거나 그 영향권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게임 스튜디오인 써커펀치에서 찬바라 게임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 이들이 주요 레퍼런스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대중문화의 영역 전반에 흩뿌려진 찬바라를 하나의 계보로 묶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고스트 오브 쓰시마]와 [고스트 오브 요테이]를 플레이하며 감각하게 되는 찬바라의 특징, 혹은 찬바라의 영향 속에서 탄생한 스파게티 웨스턴 등의 서부극과 그것이 다시금 일본으로 돌아와 파생된 일본식 서부극 사이에서 영화와 게임을 오가는 미완의 계보를 그려볼 수는 있다. 서부극에서 찬바라, 다시 서부극으로 패전 이후 미군정에 의해 검술을 비롯한 무술이 영화에 묘사되는 것을 금지당했던 일본에서 찬바라 영화가 다시금 부흥한 것은 구로사와 아키라를 통해서다. 1952년 미군정의 검열이 해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 1954)가 개봉한다. 몇 해 전 <라쇼몽>(羅生門, 1950)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그랑프리를 거머쥔 구로사와였기에, 그가 제작한 또 한편의 걸작은 평단은 물론 대중까지 곧장 사로잡았다. 구로사와는 자신의 찬바라 영화, 미후네 토시로가 연기한 사무라이가 주인공인 일련의 영화들이 할리우드 서부극의 영향을 받았음을 감추지 않는다. 찬바라 영화가 일본 대중을 사로잡던 20세기 초반, 그와 함께 흥행했던 장르는 단연 서부극이었다. 무성영화 시대부터 패전 이후 미군정기까지, 서부극은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장 히트한 영화 상품이었다. 구로사와 또한 이 시기의 서부극들을 자신의 주된 모티프로 삼는다. * <7인의 사무라이>(위)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아래) 이를테면 마을 주민들과 산적이 대치하는 상황을 낭인(로닌, ろうにん)에 가까운 사무라이가 돕는다는 설정은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 1946) 같은 작품을 즉각 떠오르게끔 한다. 서부극은 아니지만,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How Green Was My Valley, 1941)의 장면을 <7인의 사무라이>에 따오기도 한다. 방랑하던 낭인이 최후의 결투 직후 떠나는 <요짐보>(用心棒, 1961)나 <츠바키 산주로>(椿三十郎, 1962)의 장면에선 역시 존 포드의 <역마차>(Stagecoach, 1939)뿐 아니라 조지 스티븐스의 <셰인>(Shane, 1953)과 프레드 진네만의 <하이 눈>(High Noon, 1952) 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거미집의 성>(蜘蛛巣城, 1957) 같은 전쟁영화나 <숨은 요새의 세 악인>(隠し砦の三悪人, 1958) 같은 활극에서도 구로사와는 미후네 토시로에게 카타나를 쥐어주고 휘두르게 했다. 존 포드의 영화에서 존 웨인의 형상이 그랬던 것처럼, 구로사와는 미후네의 야성적인 면모를 자신의 영화 속 안티히어로의 표상으로 삼았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쏜 찬바라 영화 부활의 신호탄에 화답하듯 몇 편의 찬바라 시리즈가 연이어 등장한다. 카츠 신타로 주연의 <자토이치>(座頭市, 1962)는 맹인 검객을 주인공 삼으며, 26편의 후속작과 기타노 다케시 연출/주연의 리메이크작으로까지 이어진다. 자토이치를 연기한 카츠 신타로가 제작한 <아들을 동반한 검객>(子連れ狼 子を貸し腕貸しつかまつる, 1972)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대형 히트를 기록하며 6편의 영화와 TV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이들 작품은 일본에서의 인기와 더불어, 홍콩의 쿵푸/무협영화, 한국의 권격영화 등과 함께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으로 카테고리화 되어 전 세계에 해적판과 무허가 더빙, 짜깁기 영화 등의 방식으로 유통되곤 했다. 물론 베니스 그랑프리 수상자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는 공식적인 배급망을 타고 세계 곳곳에 소개되었고, 유럽과 할리우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는 사실상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 리메이크인 <스타 워즈>(Star Wars, 1977)을 내놓았다. 우주를 배경 삼은 유사-서부극이라는 점에서, 이는 존 포드를 영화적 스승 삼는 구로사와의 영화가 찬바라를 거쳐 다시금 서부극으로 회귀하는 기묘한 계보를 만들어 낸다. 보다 적극적인 수용은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진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기용해 제작한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4)는 <요짐보>를 그대로 차용한다. 각본을 받아든 이스트우드가 읽자마자 <요짐보>를 떠올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니까. 다만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은 구로사와가 만든 찬바라 영화의 껍데기만을 끌어온다. 그는 플롯, 안티히어로 캐릭터, 대결 등 영화의 구성요소만 가져오고 전혀 다른 성격의 영화를 만들어 낸다. 존 포드 서부극이 미국을 그려내는 방식을 일본의 것으로 변용한 구로사와의 영화와는 다르달까. * <요짐보>(위)와 <황야의 무법자>(아래)의 유사한 구도 여하튼 레오네의 영화들을 통해 서부극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무법자 안티히어로 캐릭터가 스파게티 웨스턴의 주류가 되고, 1930~50년대 서부극보다 폭력의 수위가 높아진다. 세르조 코르부치의 <장고>(Django, 1966)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할리우드에서도 <7인의 사무라이>를 직접 리메이크한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 1960)을 내놓는데, 이 작품은 화려한 스타 캐스팅으로 주목받았지만 영화 자체의 파급력은 크지 않았다. 다만 스파게티 웨스턴이나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 1969) 등의 수정주의 서부극과 함께 무수한 아류작을 낳은 영화가 되었지만. 구로사와의 찬바라 영화의 영향을 받은 스파게티 웨스턴은 다시금 일본으로 되돌아온다. 1970년대 한국에서 레오네(와 구로사와) 영화의 영향받은 만주 웨스턴이 등장했던 것처럼. 서부극의 클리셰를 잔뜩 끌어온 이타미 주조의 <담뽀뽀>(タンポポ , 1985)는 ‘라멘 웨스턴’을 홍보 문구로 사용하며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한 일본영화의 대응을 보여주었다. <카우보이 비밥>(カウボーイビバップ, 1998)처럼 제목부터 서부극을 의식한 애니메이션이 대형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고, 일본 장르영화의 거장 미이케 다카시는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スキヤキ・ウエスタン ジャンゴ, 2007)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하기까지 했다. 몇 년 전 결말을 맞이한 만화 『골든 카무이』(ゴールデンカムイ, 2014~2022)는 훗카이도를 배경 삼고 아이누족을 주요 캐릭터로 등장시키는 일본 웨스턴의 전통을 이어가기도 했다. 문화적 용광로 혹은 키메라로서의 찬바라 그러니까… 서부극과 찬바라를 오가는 계보를 그려내는 작업은 어떤 난감함을 초래한다. 앞서 언급한 무수한 영화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영화들의 계보를 그려내는 것은 가능하긴 하지만 어느샌가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미로찾기나 다름없다. 홍콩 무협영화의 걸작 <외팔이>(獨臂刀, 1967)과 일종의 콜라보를 시도한 시리즈의 22번째 영화 <자토이치 - 부셔라! 중국검>(新座頭市 破れ!唐人剣, 1971) [2] 처럼 국경을 넘어 장르가 뒤섞이기도 하고, 앞서 본 것처럼 장르의 수입과 역수입의 반복 속에서 다양한 변종이 탄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본의 패전 이전의 찬바라 영화들이 무사도를 주제로 내세웠던 것과 달리, 구로사와 이후의 찬바라 영화들은 (수정주의 서부극들이 그러했듯) 무사도에 내재된 잔혹한 폭력성과 유독한 남성성을 폭로하고, 잔존한 봉건주의의 흔적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할복을 소재 삼은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切腹, 1962)이나 무사도에 기반한 전체주의를 비판한 <무사도 잔혹 이야기>(武士道殘酷物語, 1963) 등이 구로사와의 찬바라 영화들과 비슷한 시기 등장했다. 에도 막부 말기 사라져가는 사무라이를 그려낸 <황혼의 사무라이>(たそがれ清兵衛, 2002)나 무사도에 기반한 남성 호모소셜을 다룬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御法度, 1999), 이와 유사하게 센고쿠 시대 사무라이 집단 내에서의 (성적) 폭력을 다룬 기타노 다케시의 <목>(首, 2023) 등 무사도에 비판적인 찬바라 영화는 현재까지도 등장하고 있다. * 이소룡의 노란 옷에 찬바라의 카타나를 뒤섞은 <킬 빌> 포스터(위)와 오리엔탈리즘의 상징으로 사무라이를 끌어온 대표적 사례인 <47 로닌> 포스터(아래) 다른 한편으로, 사무라이라는 표상이 이전과 같지 않게 된 상황에서 무사도는 찬바라가 아닌 대상으로 옮겨간다. 1971년 시작된 전대물 <가면 라이더>(仮面ライダー) 시리즈는 여타 전대물보다 높은 나이대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찬바라 영화, 혹은 스파게티 웨스턴의 무법자와 유사한 스타일의 다크히어로를 선보인다. 시리즈의 몇몇 외전은 아예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염두에 두고 찬바라 스타일의 고어와 유혈을 선보이기도 한다. 일본 내에서 찬바라가 전대물로 변형된다면, 일본 바깥에서 찬바라는 오리엔탈리즘, 와패니즘의 대표적 상징이 된다. 미후네 토시로가 출연한 스파게티 웨스턴 <레드 선>(Sole rosso, 1972)에서는 서부 사막에 뜬금없이 사무라이가 등장한다.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The Last Samurai, 2003)에서 사무라이는 서부극의 ‘인디언’과 정확히 같은 위치에 놓인다. 찬바라는 물론 쿵푸영화나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등을 마구잡이로 뒤섞은 타란티노의 <킬 빌 - 1부>(Kill Bill: Volume 1, 2003)는 구로사와의 영화들부터 <자토이치>, <수라설희>(修羅雪姬, 1973), <문신일대>(刺靑一代, 1965) [3] 등을 오마주한다. 물론 이런 성공한 영화들 외에도 키아누 리브스가 출연한 <47 로닌>(47 Ronin, 2013)이나 <더 울버린>(The Wolverine, 2013)의 빌런 ‘실버 사무라이’ 같은 사례도 있지만… 이런 사례는 말하자면 끝이 없다. 그러니까, 찬바라는 이제 무사도와는 관계없는 장르 혹은 표상이 되었다. 울버린과 실버 사무라이의 대결에서 어떤 무사도를 느낄 수 있는가? 그것이 설령 니토베 이나조 [4] 가 『무사도, 일본의 정신』(Bushido: The Soul of Japan, 1899)에서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왜곡한 무사도일지라도 말이다. 이를테면, [사이버펑크 2077](Cyberpunk 2077, 2020)의 아라사카가 보여주는 무사도적 이미지는 그저 이미지를 취한 것에 불과하다. 아라사카의 ‘카케무샤’인 아담 스매셔의 기괴한 모습은 이미 무사도 같은 것과는 멀찍이 떨어진 것이다. 혹은 <존 윅 4>(John Wick: Chapter 4, 2023)에서 견자단이 연기한 케인이 쿵푸마스터임과 동시에 맹인검객 ‘자토이치’라는 이상한 모순을 드러낸다. 사무라이를 주인공 삼은 [사무라이 스피리츠]나 [부시도 블레이드] 등에서 강조되는 것은 무사도보단 ‘찬바라’ 칼싸움과 그것의 즐거움 뿐이다. 찬바라 영화가 남긴 이미지와 캐릭터들은 액션의 장르나 컨셉을 위해 동원되는 형태소로 분해되고 조립되길 반복하고 있다. * [사이버펑크 2077] 속 일본기업 아라사카의 경호원인 아담 스매셔. 그의 몸을 둘러싼 장갑은 사무라이 갑옷의 디자인을 레퍼런스 삼는다. 더불어 캡처의 카타나는 게임에서 주요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초회차에서 카타나만 써서 엔딩을 봤다…. 그러한 지점에서, 미국의 게임제작사 서커펀치가 제작한 두 편의 찬바라 게임은 ‘찬바라’라는 장르가 놓인 복잡한 계보의 지형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가마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1274년 원나라의 대마도 정벌 시도를 주된 소재로 삼는다. 갑작스럽게 대마도에 들이닥친 몽골군에 점령당하자, 전투에서 홀로 생존한 사무라이 사카이 진이 무사도를 버리고 최초의 시노비(닌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몽골군의 압도적인 전력 앞에서, 무사도를 지키며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찬바라와 서부극을 오가며 쌓인 클리셰는 그다지 작동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미후네 토시로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낭인 혹은 무법자가 아니며, 대마도를 통치하는 영주의 조카로 묘사되는 만큼 나름의 권력자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 안에서 찬바라·서부극적 요소라면 무사도를 버리고 일종의 안티히어로인 ‘망령’이 된다는 지점뿐이랄까. 훗카이도를 배경 삼은 후속작 [고스트 오브 요테이]는 보다 찬바라·서부극적인 정취를 적극 끌어온다. 엔니오 모리꼬네 풍의 서부극 음악을 샤미센 등의 악기로 연주한 듯한 음악, 이미 여러 일본 웨스턴의 배경이 되었던 드넓은 훗카이도의 풍경, 나름의 사연을 갖고 고향에 돌아온 낭인 주인공 등, 이야기부터 배경까지 다방면으로 전작보다 앞서 언급한 영화의 계보들을 연상시키게끔 한다. 더불어 두 게임에 등장하는 전투시스템인 ‘대결’이 <요짐보>에서 <황야의 무법자>로 이어진 대결 장면의 촬영 구도를 끌어오는 등 여러 인상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존재하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lbB3EUruQ4U * [고스트 오브 요테이]에서 구로사와·미이케·와타나베 모드를 모두 켜고 플레이한 영상. 필름룩을 본딴 흑백 화면에 과도한 유혈이 낭자한 와중에 재즈풍 음악이 흘러나오는 혼종적 상황이 연출된다. 다만 앞서 말한 찬바라·서부극의 계보 위에 두 게임을 어떻게 위치시킬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두 게임은 자체 제공하는 모드를 통해 스스로의 혼종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엔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와 유사한 질감의 흑백 화면과 사운드를 제공하는 ‘구로사와 모드’가 있다면, [고스트 오브 요테이]는 각각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의 미이케 다카시와 <카우보이 비밥>, <사무라이 참프루>의 와타나베 신이치로에서 따온 모드가 존재한다. 미이케 모드에서는 피와 진흙이 더욱 많이 튀게 되고, 와타나베 모드에선 서부극스러운 음악이 로우파이한 현대적 음악으로 변경된다. 세 가지 모드를 모두 켠 채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찬바라 장르의 누적된 계보를 한번에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상태로 [고스트 오브 요테이]를 플레이하는 것은 꽤나 고역이지만…. 무사도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사카이 진과 [고스트 오브 요테이]의 아츠는 반대의 방향에서 중간 지점으로 수렴하는 인물들이다. 무사도에 기반한 사무라이인 사카이 진은 패전 이후 서서히 무사도를 버리고 최초의 시노비가 된다. 처음부터 복수심에 불타오르던 아츠는 ‘늑대 무리’라는 동료들, 무엇보다 살아있었는지 몰랐던 쌍둥이 남동생 주베이와의 만남을 통해 (사무라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사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다만 이는 내러티브를 작동시키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이들의 이야기를 깊게 파고들어 분석하는 것은 무사도라는 해묵은 정신성을 파묘하는 것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여기저기 썩어버린 오니 같은 모습일 것이다. 찬바라=패링? 무사도는 폐기나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사무라이나 닌자는 다분히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서 단순한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박제되어 버렸다. 이들을 한데 묶는 구심점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찬바라’로 묶어낼 수 있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여기서 다시금 어원으로 되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찬바라로 폄하된 20세기 초반의 일본 시대극에서 관객들이 열광했던 것은 무사도보단 칼싸움 그 자체였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소위 ‘다찌마와리(たちまわり’라 불리는 난투가 찬바라의 핵심에 가깝다. 찬바라의 어원부터 칼과 칼이 부딪히고 피가 흩뿌려지는 상황을 그려낸 의성어의 합성이니 말이다. * ‘찬바라’ 그 자체인 <츠바키 산주로>의 마지막 대결 장면(위)와 [고스트 오브 요테이]의 맞대결 장면(아래) ‘찬찬 바라바라’라는 의성어를 게임 메카닉으로 번역하면 패링일 것이다. 실제로 패링이 처음 등장한 게임으로 알려진 것도 사무라이 대전격투 게임 [진 사무라이 스피리츠 하오마루 지옥변](真SAMURAI SPIRITS 覇王丸地獄変, 1994)이다. 게임 메카닉으로서의 패링은 이후 [킬러 인스팅트 2](Killer Instinct 2, 1996)나 [철권] 시리즈(鉄拳, 1994~) 등의 대전격투 게임을 중심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물론 패링이라는 기술 자체는 중세부터 서양의 검술이나 펜싱 같은 스포츠에 존재했던 것이지만, 그것이 게임 메카닉으로 자리 잡은 것에는 찬바라의 영향이 지대한 셈이다. * [진 사무라이 스피리츠 하오마루 지옥변]의 패링(위)와 [세키로]에서의 패링 움짤(아래) 지금은 대전격투 게임뿐 아니라 거의 모든 액션 게임에서 패링을 찾아볼 수 있다. 냉병기와 방패를 사용하건, 주먹과 발차기가 중심인 게임이건 말이다. 격투와 마법이 뒤섞인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Clair Obscur: Expedition 33, 2025) 같은 JRPG식 턴제 게임에서도 패링은 가장 중요한 시스템으로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패링이 지금의 액션게임 전반에서 패링 시스템을 유행시킨 것은 프롬소프트웨어의 게임들일 것이다. [다크 소울](Dark Souls, 2011)에서 패링을 성공시켰을 때 등장하는 둔탁한 효과음은 강력한 데미지를 먹일 수 있는 ‘앞잡’을 위해 필수적이었다. 다만 극악의 난이도로 유명한 게임답게, [다크 소울]부터 [엘든 링](Elden Ring, 2022)에 이르기까지 패링은 모든 유저의 필수수단이라기보단 고인물의 선택적 플레이 방식에 가까웠다. 흥미로운 지점은 [세키로]다. 프롬소프트웨어의 정통 소울류와는 거리를 두지만, 단일 무기와 체간 시스템을 내세운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액션은 패링이다. 게이머들 사이에선 리듬게임이라 불릴 정도로, 적의 공격 패턴을 그대로 외워 튕겨내는(게임 내에선 패링이 아니라 튕겨내기(deflect)로 해당 액션이 표현되어 있다) 것이 액션의 대부분이다. 패링을 통해 적의 체간 게이지를 채우고 자세를 무너뜨려 일격을 날리는 방식은 [다크 소울] 시리즈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또 다른 형태의 유행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칼을 부딪히며 합을 겨루다가 일격으로 상대를 처치하는 ‘인살’ 액션은 <츠바키 산주로>의 아이코닉한 마지막 장면을 곧장 연상시킨다. * [고스트 오브 요테이]에서의 패링 [고스트 오브 쓰시마] 또한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채택한다. 물론 [세키로]와의 발매일 차이가 1년가량밖에 나지 않기에 세키로의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차용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스트 오브 쓰시마] 역시 패링을 통해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리고 일격을 가한다는 액션 메카닉의 구성은 거의 동일하다. 단지 [세키로]보다 일대다로 대결하는 순간이 많고, 다양한 검술 자세를 익혀 상대의 무기(카타나, 창, 방패 등)에 맞게 대응하는 방식으로 액션이 구성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는 [고스트 오브 요테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사카이 진의 다양한 검술 자세가 아츠에게는 대태도, 사슬낫, 창, 이도류 등 다양한 무기로 대체된다는 차이점만이 존재한다. 게임 시스템 중 하나인 ‘맞대결’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주인공과 적의 모습은 찬바라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부극의 것이기도 하다. 2020년대의 시점에서 이것을 구별하여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두 게임의 무대가 대마도와 훗카이도라는, 일본의 ‘본토’가 아닌 지역을 다루는 것은 분명한 서부극의 영향일 것이다. 센고쿠 시대가 아닌 13세기를 택한 [고스트 오브 쓰시마]나, 센고쿠 시대를 다루며 세키가하라 전투와 같은 대전투를 언급하지만 그 중심에서는 한 발 떨어져 있는 [고스트 오브 요테이]는 찬바라 영화의 주요한 두 배경(센고쿠 시대, 에도 막부 시대)을 피하는 방식으로 서부극을 끌어온다. 다만 두 게임을 찬바라로 만들어주는 것은 이 게임의 액션이 패링에 기반한 찬바라 영화의 방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게임 메카닉으로서의 패링이 찬바라의 영향 아래서 등장한 것을, 두 게임은 충실히 계승한다. 그러니까, 결국 두 게임의 핵심은 이것이 칼싸움 게임이라는 것이다. * 위에서부터 <요짐보>의 마지막 결투,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의 결투,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맞대결 장면. 장면 구도의 유사함이 이어진다. 찬바라 액션게임에 기대할 수 있는 액션의 즐거움을 풍성하게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두 게임은 성공적이다. 찬바라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을 거쳐 훗카이도에 자리 잡은 서부극적 분위기나 방랑자이자 무법자인 안티히어로의 내러티브 등은 찬바라 액션을 생동감 있게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일련의 껍데기들에 불과하다. 세세히 뜯어보면 이 껍데기들은 충분히 ‘리얼’하지도 않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주된 모티프인 원나라의 대마도 정벌은 몽골군뿐 아니라 고려군도 참여했지만, 게임엔 등장하지 않는다. 사카이 진의 갑옷과 카타나의 디자인은 13세기 가마쿠라 시대보단 센고쿠 시대의 것을 따른다. 그것이 게임을 플레이할 이들에게 보다 익숙한 사무라이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고스트 오브 요테이]가 센고쿠 시대를 배경 삼은 여타 게임과 달리 훗카이도를 무대 삼은 것도 아츠라는 한 개인이 사이토 가문과 요테이 육인방을 무찌를 수 있는 합리적인 배경을 제시하기 위함이지, 그 이상의 이유는 발견하기 어렵다. 완성된 게임의 구성은 적절한 찬바라 액션의 다찌마와리를 플레이스테이션 듀얼쇼크/듀얼센스를 통해 플레이하고 감각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골라낸 결과에 가깝다. 그러한 맥락에서, ‘찬바라’로 명명되는 장르가 다종다양한 매체를 가로지르며 형성한 계보 위에서 [고스트 오브 쓰시마]와 [고스트 오브 요테이]는 역설적으로 찬바라가 거쳐온 길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무사도라는 국가 기획의 흔적, 서부극과 교환하며 발전한 모티프와 클리셰, 게임 메카닉으로서의 찬바라인 패링. 찬바라는 일본 대중문화 전통의 장르이면서, 동시에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어쨌거나 미국 게임인 두 작품은 그것을 재확인시켜준다. [1] 김려실, 『일본 영화와 내셔널리즘』, 책세상, 2005, 28쪽. [2] 여담이지만, 이 작품의 일본 개봉판에선 자토이치의 승리로, 홍콩 개봉판에선 외팔이의 승리로 서로 결말이 달랐다고 한다. [3] 엄밀히 말하면 사무라이가 아니라 야쿠자가 주인공인 영화이지만, 롱테이크로 담긴 후반부의 칼싸움 장면은 ‘찬바라’의 전형을 따른다고 할 수 있다. [4] 일본의 사상가이자 교육인, 정치인으로 메이지 시대 일본의 근대화에 힘쓴 국제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구 5,000엔 지폐에 그려진 인물이기도 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디스코 엘리시움〉 하나의 세계에서 태동하는 모순, 적대, 역설의 게임(장려상)
그럼에도 비평적으로 찬사를 받으며 우뚝 선 ZA/UM의 개발자들은 이제 비디오 게임이야말로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예술이라고 밝히는 데에 이르렀다. “타인의 기억에 남고 싶다면, 체계적으로 반감을 사야 합니다. 반감을 살 준비가 되었다면, 정말로 역사적인 기회를 얻게 됩니다.”3)는 말은 그들에게 매우 적절하지 않을까. < Back 〈디스코 엘리시움〉 하나의 세계에서 태동하는 모순, 적대, 역설의 게임(장려상) 07 GG Vol. 22. 8. 10. 하나의 세계라는 조건 속의 여정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역사를 형성해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 스스로 선택한 환경 아래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곧바로 맞닥뜨리게 되거나 그로부터 조건 지어지고 넘겨받은 환경하에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카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 〈디스코 엘리시움〉의 등장인물 〈디스코 엘리시움〉은 반세기 전 한때 공산주의 혁명의 파도가 엄습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난 혁명으로 풍비박산이 난 상태인 가상 국가 레바숄과 그 한 구역인 마르티네즈를 주 배경으로 한다. 탄광에서 일하며 벽화 페인트와 미술에 심취한 공산주의자 스컬 신디와 대기업 와일드 파인 사의 대사이자 초자유주의자인 조이스, 해리의 동료 킴 키츠라기를 순수 혈통이 아닌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인종주의자 운전수와 미확인파시스트 개리, 왕정파로 공산주의자들과 맞서 싸웠던 노인과 마조프주의자로 연합군에 저항했던 탈영병, 밀매 혐의를 받으면서도 항만 노동조합 대표자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현실 권력을 움켜쥔 에브라트 등의 사민주의자, 클럽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된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 이곳은 화해 불가능한 NPC들, 성원들이 살아가며 서로에 필연적으로 적대, 모순, 역설 등을 낳을 수밖에 없는 세계다. 한 세계의 구성원들이지만 동시에 결코 엮일 수 없으며, 불화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초토화된 곳에서 매우 불안정하게 공존하고 있다. 여기서 대두되는 것은 이러한 캐릭터들이 놓인 세계를 구성하는 조건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육성해나가는 방식(능력치, 생각 캐비닛, 장비)에서 무엇을 추구하든, 어떤 피상적인 혹은 구체적인 사상과 이념을 가졌든, 아니면 그러한 것들에 전혀 관심이 없이 그냥 플레이하든 게임 진행에 문제는 없다. 인물들과의 상호작용과 주사위 판정에 따라 선택지와 이념 루트들이 부분적으로 변화하며, 게임에 대한 인상이 많이 달라지는 것은 맞다. 분명 〈디스코 엘리시움〉의 선택은 그 자체로 핵심적인 캐릭터 구축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게임 내 모든 활동은 플레이어가 공통으로 접촉하고, 대면하고, 공유하게 되는 한 세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플레이어는 전지적인 능력으로 세계를 뒤흔들고, 변형하는 일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는 곧 레바숄이라는 하나의 황폐한 세계를 플레이어의 주관적인 의지와 계획에 따라 마음대로 변화시키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임에서 해리의 자아와 의식, 그리고 이를 조작하는 플레이어의 주관적인 의도가 세계에 그대로 반영되지는 않는다. 그러한 반영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인공이 본인으로 다시 서는 과정에서 탐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계를 탐색하는 것은 플레이를 이어나가면서 분실한 신분증을 찾기 전까지 자신의 이름마저도 기억하지 못하는 해리 드 부아다. 주정뱅이 해리는 새로운 동료 킴 키츠라기와 함께 살인 사건을 조사해나감과 동시에 세계를 구성하는 NPC들에 접근하여 소통하거나 교감하며 세계를 탐색해나간다. 하지만 해리 또한 세계의 조건으로부터 독립된, 자유로운 인물이 전혀 아니다. 해리는 RCM 소속의 경찰로 권위를 위임받은 인물이다. 그 자신이 몸담은 RCM은 혁명 이후 연합 정부에 의해 국제 영역의 치안을 복구하고자 조직되었으며, 정치적으로 중립을 자처하고 있으나 치안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단지 설립이 허락된 조직에 불과한, RCM의 경찰이라는 조건을 해리와 플레이어는 이를 끊임없이 자각해나간다. 그렇기에 〈디스코 엘리시움〉에는 선택이 반영되는 결과의 다양성을 내세우며 세계로부터, 인물로부터 독립된 각각의 가능 세계들을 앞세우려 드는 멀티 유니버스, 멀티 엔딩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동원되는 평행세계, 대체역사, 가상현실 같은 개념들 또한 성립하지 못한다. 여기에 독립된 각자의 다원적 세계들이란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디스코 엘리시움〉은 결과에 도달하는 선택의 과정들에 활로를 열어젖힘으로써 게임을 통해 정식화된 공통의 세계 속에서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있다. 그런 점에서 게임에서 선택지를 통하여 과정과 분기가 결정됨에도 그것이 세계를 뒤바꾸는 성공이나 실패의 특정한 루트를 창출하지 않는 것도 자연스러워진다. 일각에서는 네 개의 이데올로기를 가리키는 선택지를 골라서 특정 이념을 체화한 인물로 만들어도, 결국 같은 화면을 공유하며 세계의 결과는 차이가 없다는 점을 예로 들어 게임의 자유도를 비판하곤 한다. 그것은 적법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세계를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던함과 포스트모던함, 표층과 심층의 이야기의 공존 “만약 새로운 정치 예술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진실에 집중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의 근원적 대상으로서의 다국적 자본이라는 세계 공간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현실을 돌파하여 이 세계 공간을 재현할 수 있는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개인적·집단적 주체로서 우리 자신의 행동하고 위치를 다시 파악하기 시작하고, 현재 우리의 공간적·사회적 혼란에 의해 중화되어버린 투쟁하는 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치적 형식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면, 그것의 소명은 사회적이고 공간적인 차원에서 전 지구적인 인식적 지도 그리기를 창안하고 투사하는 일일 것이다.”(프레드릭 제임슨,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 문화 논리〉) 앞서 〈디스코 엘리시움〉은 어떤 사상과 이념을 택하든 하나의 세계를 공유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는 분명히 동시대 유행하는 어떤 RPG, 오픈월드 게임들의 방향과는 확연히 다른, 이전 세기의 전유물 같은 인상을 준다. 플레이어들이 종종 문학 작품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거나, 한 문학평론가의 ‘게임이 되는 소설, 소설이 되는 게임 1) 이라는 말은 그것을 대변하는 의견일 것이다. * 도덕주의자 퀘스트에 등장하는 연합 군함 아처 먼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무결자로 불리는 '돌로레스 데이'라는 존재를 다시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게임에서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뤄지는 이 인물은 무결자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존재이고 도덕주의자들(=인문주의자)의 상징이며, 통치 시기에는 엘리시움에 있는 여러 이솔라를 발견했다. 레바숄 또한 이 돌로레스 데이 시절에 만들어진 식민지였다. 돌로레스 데이에 대한 숭배는 단순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라 일종의 법칙으로 여겨졌으며, RCM의 법규도 돌로레스 데이 시절에 만들어진 법에 기반을 둔다. 돌로레스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은 경호원에게 총에 맞고 죽고, 돌로레스 데이의 시절이 돌연 막을 내린 이후 더는 이러한 세계의 질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엘리시움은, 레바숄은, 사회를 어떻게 질서화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가 실패하고 이러한 구상 자체가 외부 세력에 의해 짓눌려버린 곳이다. 그것은 곧 이성, 합리, 질서 등을 내세운 근대가 좌초된 것이기도 하다. * 교회 안의 클럽 반면 서브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이와 대비되는, 이전의 시스템이 더는 기능 하지 못하는 근대 이후의 포스트모던한 감각으로 살아가는 듯한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과 마주할 수 있다. 이들은 최신의 아노딕 댄스 뮤직을 구현하는 행위에 전념한다. 훼손당한 돌로레스 데이의 벽 조각상이 안치되어있는 교회 안에 들어와 클럽을 만든다. 진중한 대화라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들은 너무나 '소프트코어'한 세상을 '하드코어'하게 바꿔야 한다고 하거나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파시즘이든 무엇이든 거대한 이념과 사상들은 다 나쁘고 가치판단에는 별 관심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면서도, 대뜸 돌로레스 데이를 대량학살자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포스트모던'이라는 렌즈로 '오타쿠'와 현대 일본의 정신구조에 대한 분석하면서 이 개념을 축으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게임을 하는 것'이 '사회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점을 탐구한 아즈마 히로키는 근대와 탈근대의 세계를 트리형, 데이터베이스형으로 분류한 바 있다. 근대의 트리형은 우리의 의식에 비치는 표층적인 세계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표층을 규정하고 있는 심층, 즉 커다란 이야기가 있다는 것에 반해 포스트모던의 데이터베이스형 세계에서 표층은 심층만으로는 결정되지 않고 그 읽어내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디스코 엘리시움〉을 ’이야기하기‘의 방법으로도 볼 수 있다. 형사가 살인 사건의 진범을 잡는 표층과 기억을 잃은 자가 인물들과 소통하고 세계를 마주하며 다시 나아가는 심층의 이야기로서, 그리고 근대와 근대 이후의 감각이란 무엇인지에 관해서 말이다. 지나간 근대를 재료로 삼는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주인공 해리 또한 근대를 지나온 인물이다. 해리는 근대의 산물이라 여겨지는 인간의 재귀적인 자기 구성과 수정 능력을 통하여 세계와 마주하며 자신을 다시 찾아가며, 게임의 세계관도 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자기 자신을 누구로, 무엇으로, 어떤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지를 사고해나가는 해리나 자신을 다소 철학적인 항만 노동자로 소개하며,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는 투쟁하는가‘식의 거시적인 담론을 나누는 걸 즐기는 편이라고 말하는 마냐나 같은 인물은 이와 같은 부류일 것이다. 그러나 아노딕 댄스 뮤직의 아이들에게는 이는 관심사도 아니다. “거대한 이야기와는 철저히 단절한 새로운 세대는 처음부터 세계를 데이터베이스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 전체에 대한 특정 이야기의 공유화 압력의 저하, 다시 말해 '그 내용이 무엇이든 일단은 특정한 이야기를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메타 이야기적 합의의 소멸을 지적한 것이기 때문이다”(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이은미 옮김, 선정우 감수, 문학동네, 2007). 히로키식의 설명을 빌리자면, 트리형 세계 속에 작품의 심층적인 이념, 사회구조, 세계관으로 사고를 확장하는 것은 해리일 것이다. 반면 아노딕 뮤직의 아이들은 포스트모던 이야기구조, 데이터베이스형 모델을 추구하며, 근대의 커다란 이야기들이 실종된 채로 당장 본인들이 추구하는 아노딕 댄스 뮤직에 대한 파편적인 데이터베이스들로 자신들만의 세계와 이야기를 마음대로 만들어간다.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며 서브 퀘스트를 수락하고 진행하게 되면, 해리는 아노딕 댄스 뮤직에 맞춰 교회에서 춤사위를 벌인다. 한때의 찬란했던 신세대의 음악이라 불리던 디스코의 시절은 어느덧 저물고, 빈사 상태가 되었다. 해리는 새로운 세대의 아노딕 댄스 하드코어 음악을, ’돌로레스 데이‘의 조각상이 있는 교회 안에서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디스코 엘리시움〉이 그저 옛 찬란했던 20세기의 근대적 이상을 복원하는 것에 착수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이를 찬미하는 게임인가. 모던의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면서 포스트모던을 부정하고, 아노딕 댄스 뮤직을 선도하는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에 조소하고 한탄하는 게임인가. 그렇지는 않다. 과거 기획의 실패, 우울, 좌절, 절멸, 절망, 패퇴, 패배주의, 허무주의 같은 것들이 내내 게임의 정서를 지배하는 듯한 종반부에는 극적인 반전들이 기다리고 있다. 인술린데 대벌레와 ’돌로레스 데이‘로 형상화한 도라, 그리고 탈영병 같은 존재들로부터 말이다. 해리(플레이어)는 탈영병을 마주하기 직전 꿈에서 자신의 오랜 결핍의 대상이었던 옛 연인이자 돌로레스 데이로 형상화된 도라를 마주하고, 이후 인술린데 대벌레를 만나 그 옛 연인을 이제는 잊고 극복하라는 충고를 받아들인다. 종반부에 예상치 못한 범인으로 대면하게 되는 탈영병 노인은 실패한 혁명의 잔여물이다. 탈영병 노인과 해리는 완전히 상반되는 궤적을 지닌다. 게임의 시작에서 해리는 연인 도라와의 결별을 중심으로 세상에 대해 환멸과 회의로 얼룩진 나머지 모든 권총으로 자살 소동까지 벌이며 세계와의 완전한 단절을 모색했던 자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도 자유를 찾지 못했다. 게임의 시작에서 모든 것에 절망하고 세계와 단절한 채로 자신을 고립시킨 해리가 개인으로 자유로워진 것은 외부 세계로부터 독립된 자생적 의식과 실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자신이 추방되기를 기꺼이 자처했던 해리가 다시 세계와 마주한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그는 근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라 혹은 이를 형상화한 돌로레스 데이를 떠나보내고 새 출발을 하게 된다. 모순적 세계의 성공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모순 때문이다. 모든 일과 사물과 사람에는 그것들을 지금의 상태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고, 동시에 다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왜냐면 그것들은 발전해나가고 머물러 있지 않으며 못 알아볼 정도로 변한다. 지금 있는 것들 안에는 ‘아무도 모르게’ 다른 것, 그 이전의 것, 현재에 적대적인 것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베르톨트 브레히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마성열 편역, 책읽는오두막, 2013) 〈디스코 엘리시움〉의 리드 작가 헬렌 힌드페레(Helen Hindpere)는 ’포스트 소비에트‘의 시기에서 자란 기이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레바숄이 마치 10년 전의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2) . 〈디스코 엘리시움〉은 그러한 경험들의 잔향이 당연히도 짙게 배어있다. 하지만 이는 에스토니아라는 동구권의 한 국가에서 소련의 몰락 이후의 시기를 직접 겪은 이들이 게임을 매개로 하여 그것의 실상에 관해 증언하는 역사물이 아니다. 가상적 공간을 주 무대로 하는 〈디스코 엘리시움〉은 실존적 무게로 다가오는 정치적 실재를 소환하기도 하지만, 역사를 그 자체로 재현하거나 규명하는 것을 자처하면서 이를 훈고학적으로 늘어놓으며 일련의 무용담, 음모론, 교훈극으로 소화하지 않는다. 일종의 미학적 구성물로 승화하는 셈이다. 이로부터 한 예술비평가를 떠올리게 된다. 동구와 서구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면서 공산주의 붕괴 이후 서구 좌파들이 가지는 어떤 멜랑콜리나 채무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역사 이후의 시간이란 ‘최적의 사회질서에 대한 모색’이 이미 완수된 시대이며, 지금 중요한 것은 ‘앞서 일어난 혁명의 성과’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현세적 실천이라고 말하는 보리스 그로이스다. 역자 김수환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코뮤니스트 후기〉라는 책을 소련을 회고하는 역사 에세이가 아닌, 철학적 성격의 사고실험을 수행하기 위한 미학적 구성물에 가깝게 구성한다. “만약 공산주의를 언어라는 매체로 사회를 번역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이 약속하는 것은 목가라기보다는 자기모순 속에 놓인 삶, 최대치의 내적 분열과 긴장의 상황이다”라고 말하며, 자기모순을 숨기지 않은 채로 그 모순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체제를 거론한다. 그것은 대립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첨예화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세계에 내재한 모순과 분열, 적대를 숨기지 않고 그 모순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둘러싼 대립을 첨예화하는 〈디스코 엘리시움〉은 어쩌면 그와 매우 가까이 있는 것도 같다. RPG 캐릭터의 육성 방법으로 어느덧 암묵적으로 필수 사항이 된듯한 전투 시스템이 부재한 자리를 방대한 텍스트와 온갖 갈등, 모순, 역설, 적대로 얼룩진 세계관으로 채우는 〈디스코 엘리시움〉은 모두에게 어필할 게임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따분하거나 거북하거나 섬뜩할 수도, 혹은 고양되거나 짜릿하거나 흥분되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그럼에도 비평적으로 찬사를 받으며 우뚝 선 ZA/UM의 개발자들은 이제 비디오 게임이야말로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예술이라고 밝히는 데에 이르렀다. “타인의 기억에 남고 싶다면, 체계적으로 반감을 사야 합니다. 반감을 살 준비가 되었다면, 정말로 역사적인 기회를 얻게 됩니다.” 3) 는 말은 그들에게 매우 적절하지 않을까. 게임 개발사 하나 제대로 없던 에스토니아라는 동구권의 한 국가에서, 소설가 출신으로 실패를 경험한 로버트 쿠르비츠 등을 위시하여 게임과는 전혀 상관없던 이들에게 말이다. 1) (인하영, 2021) 문학평론가, 「게임이 되는 소설, 소설이 되는 게임」, 『경향신문』, 2021.10.28https:// 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10280300115 2) 〈Masterclass: Helen Hindpere Talks About Writing Disco Elysium: The Final Cut〉, https://youtu.be/Xf_hU7IW5qs 3) 보리스 그로이스, 〈예술 작품이 된다는 것(Becoming the Artwork)〉, 2020, 부산현대미술관 《동시대-미술-비즈니스 :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질서들(Contemporary-Art-Business: The New Orders of Contemporary Art)》 https://youtu.be/W9Uu13m5JxI 참고문헌 카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최형익 옮김, 비르투(VIRTU), 2012. (프레드릭 제임슨,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 문화 논리〉, 임경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2)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이은미 옮김, 선정우 감수, 문학동네, 2007). (베르톨트 브레히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마성열 편역, 책읽는오두막, 2013)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 편집위원) 김서율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영화를 중심으로 문화 전반에 관심을 두고 종종 글을 끄적이거나 기고해왔다. 현재는 구로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일한다. 어느샌가 사회 운동에 뛰어들어 연구자와 활동가, 이론과 실천 사이에 단절된 통로를 고민하며 길을 모색 중이다.







![[인터뷰] 공동연구처럼 돌아가는 스피드런의 세계, 스피드런 유튜버 천제누구](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82e197f076b8452f8ff376fa01416ea6~mv2.jpg/v1/fit/w_176,h_124,q_80,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82e197f076b8452f8ff376fa01416ea6~mv2.jpg)



![[고스트] 시리즈: 찬바라의 뒤섞인 계보 위에서 패링하기](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b1961b77e0e142e98b20d590c4f54d0b~mv2.jpg/v1/fit/w_176,h_124,q_80,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b1961b77e0e142e98b20d590c4f54d0b~mv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