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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이에게 게임을! 국립재활원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인터뷰
그 중에서도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자립생활지원기술연구팀은 보조기기의 국산화를 위해 2020년부터 노인·장애인 보조기기연구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경제적 가치 부문과 사회적 가치 부문으로 나뉜다. 전자가 개인이 부담하기에 지나치게 비싼 해외 보조기기를 국내에서 연구개발하고 상용화하는 프로젝트라면, 후자는 장애인과 노인에게 꼭 필요한 보조기기 수요를 공모를 통해 파악하여 수요자와 함께 개발하고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이다. < Back 모든이에게 게임을! 국립재활원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인터뷰 04 GG Vol. 22. 2. 10. 필자는 약 반 년의 기간 동안 “그레이 게이머 연구”에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50대에서 70대를 망라하는 노인 게이머들의 게임 경험을 청취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60대 할머니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들었던 이야기였다. 평소 둔하고 무딘 손가락 때문에 애니팡 같은 쓰리매치 게임을 할 수 없었던 그 분은 펜슬이 달린 갤럭시 노트로 핸드폰을 바꾸면서 펜으로 꼭꼭 집어가며 원래는 할 수 없던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즐거워하셨다. 이 일화가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다. 노년 게이머는 게임이 싫어서, 또는 게임의 재미를 몰라서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게임을 하는데 있어 자신의 신체에 잘 맞는 도구가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 주목하여 모두가 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위해 게임 보조기기를 제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번 지면에서는 “누구나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슬로건 아래 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게임 보조기기를 개발한 국립재활원의 보조기기 개발팀을 소개하고 프로젝트에 대해 나눈 대담을 소개할 예정이다. Q: 국립재활원과 보조기기 개발팀의 역할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일반 병원이 사고를 당한 환자들의 치료에 중점을 둔다면,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은 사고에서 장애를 가지게 된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보조기기는 필수이다. 그 중에서도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자립생활지원기술연구팀은 보조기기의 국산화를 위해 2020년부터 노인·장애인 보조기기연구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경제적 가치 부문과 사회적 가치 부문으로 나뉜다. 전자가 개인이 부담하기에 지나치게 비싼 해외 보조기기를 국내에서 연구개발하고 상용화하는 프로젝트라면, 후자는 장애인과 노인에게 꼭 필요한 보조기기 수요를 공모를 통해 파악하여 수요자와 함께 개발하고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이다. * 노인·장애인과 함께 보조기기를 개발하는 국립재활원 열린제작실 전경 Q: 기존에도 재활을 위해 게임이 사용되는 사례가 있지 않았나? 그러한 “재활 게임”과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재활 게임은 재활 과정 자체를 좀 더 쉽게 거쳐갈 수 있게 고안된 기능성 게임이다. 재활을 위해서는 같은 동작을 수백 번씩 반복해야 한다. 이 과정을 좀 덜 지루하게 해낼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 재활 게임이다. 반면,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에서는 장애인들이 게임 플레이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즉 ‘레저’의 의미에서의 게임을 위해 보조기기를 개발하였다. * 보조장비를 만들기 위해 열린제작실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도구들. Q: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과 성과를 소개해달라.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는 2020년 말 뇌병변장애인(장애가 심한 뇌성마비)의 어머님 다섯 분이 “장애인도 게임할 수 있나요?” 라는 신청을 함께 해 주셔서 시작하였다. 그 이후 자조모임의 형태로 뇌병변장애인과 가족,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게임보조기기를 개발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회의, 워크숍과 사용성평가 등을 진행하면서 각 신청인에게 적합한 형태의 보조기기를 개발, 개조하였다. 특히 모임에서 집중하였던 것은 조작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기존의 게임과 컨트롤러는 뇌병변장애인이 사용하기에 지나치게 복잡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적합한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데 집중하였다. 간단한 조작으로도 여러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가진 독자적 컨트롤러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물론 개발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장애인들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호자나 활동지원사들이 그에 맞는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분들부터 게임 플레이에 익숙해져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의 성과를 취합한 결과 게임접근성 보조기기 12종(개발 10종, 개조 2종)을 개발하였고, 활용 매뉴얼 책자 ’누구나 게임을 할 수 있다’를 발간하였다. 책자는 추후 pdf파일 형식으로 무료로 공개될 예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은 게임을 보다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성취감을 얻고 간접경험을 얻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게임플레이가 장애인의 사회 복귀와 적응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야 말로 가장 큰 발견이자 수확이 아닐까. * 장애인의 기능수준을 고려하여 다양한 조이스틱을 떼었다 붙였다 하며 조작을 할 수 있는 게임 컨트롤러. 출처: 국립재활원 공식 유튜브 *게임 컨트롤러의 실물. Q: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게임 접근성에 보다 주의를 기울일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앞서 사업 성과에서 소개했듯, 장애인들에게 있어 게임은 성취감을 주고 간접경험을 제공받으며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이다. 장애인이 한 명의 인격체로서, 또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해 게임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크다. 게임을 하다 보면 컴퓨터를 해보고 싶고, 그러다 보면 직업 훈련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영어를 배우기를 원하는 등, 게임으로 쌓이기 시작한 성취의 감각은 연이어 쌓여나가 삶에 대한 의지로 형태가 변한다. 또한 게임 접근성의 문제는 노년 게이머 문제 와도 결부되어 있다. 지금의 젊은 게이머들 또한 나이가 들 것이다. 노화에 따른 반응속도의 저하와 시력 저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에 대비하여 게임을 조작하는 플레이어가 처한 다양한 신체적 조건을 상상하고 그것을 지원할 방법을 찾아낼 상상력과 기술이 지금부터라도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Q: 게임 접근성을 위해 국내 게임 개발사 및 퍼블리셔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많은 해외 사례를 참고했다. 놀랍게도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장애 형태를 지닌 사람들도 각자에 맞는 게임 보조기기를 통해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여가를 즐겨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에 맞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장애인 게임과 관련된 연구와 이를 지원하기 위한 'Xbox Adaptive Controller (Xbox 접근성 컨트롤러)'와 ‘로지텍의 Adaptive gaming kit (어댑티브 게이밍 키트)’, ‘Nintendo의 Flex Controller’ 등의 연구 인프라와 그 결과물이 사회에 잘 자리 잡혀 있었다.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에서 주로 콘솔 게임이 연구 대상이 된 것 또한 이러한 해외의 상황,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장애인 게이밍에 대한 국내 게임 산업의 무관심과 맞닿아 있다. 플레이어의 다양한 신체적 조건을 고려한 해외 콘솔 게임과 다르게 (닌텐도 Wii의 경우, 영유아의 게임 플레이를 위한 접근성 설정을 지원한다) 국내 게임은 주로 PC게임과 스마트폰 게임으로 양분되어 있고, 어느 쪽도 이 게임들의 경험에 맞는 컨트롤러나 소프트웨어 차원의 접근성 지원은 전무했다. 프로젝트 참여자들 또한 국내 게임에 대한 반응이 더욱 좋았던 만큼, 국내 게임 제작사와 퍼블리셔들은 먼저 장애인 게이머와 노년 게이머 또한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게임에 잘 맞는 인터페이스가 게임 플레이의 경험을 더욱 높여주는 만큼 보다 다양한 게이머들이 처한 조건을 상상하고 구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이후 후속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어떤 연구가 가능할 것인가? 이전 질문과 이어서, PC게임이나 스마트폰 게임에 이식할 장애인용 컨트롤러를 개발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내 게임과 연계하여 진행한다면 더욱 뜻깊을 것이다. 더하여 이번에 진행된 프로젝트는 뇌병변장애인들만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분류하는 장애의 기준은 15가지나 된다. 다른 장애유형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접근성과 컨트롤러 연구가 더 진행되어도 좋을 것이다. 더불어 이번에 진행되었던 게임보조기기들이 상용제품으로 나와, 사용자들이 쉽게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 보조기기연구개발팀은 게임보조기기 외에도 노인과 장애인의 여가활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보조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사진은 다양한 그림도구를 휠체어에 부착하는 그림그리기 보조기기. * 입술로 움직이고 바람을 불면서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는 입술마우스. 상용제품이 높은 가격으로 접근이 쉽지 않아 저비용 제작이 가능한 키트화에 성공했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 일상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하기 위해 안경을 쓰는 것이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이라면, 장애인들이 보다 즐겁고 편안하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 여러 보조기기를 쓰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가 놓인 신체적 조건이 다르며,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 모두가 일상을 위해 일정 정도 보조기기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는 지극히 모호한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게이머 또한 각자 다른 신체적 조건 아래 놓여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깊이 고려한 게임이 설계되고 시장에 나왔을 때, 그 안에서 우리는 모두가 진정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에서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 합리적 트릭스터: 플레이어와 설계자 사이의 숙련화 게임
게임에 몰입한 플레이어에게 수지타산이나 합리성만큼 낯선 단어는 없을 것이다. 게임 플레이야말로 가장 비합리적인 행위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유용한 생산물을 안겨주지 않는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주변으로부터 ‘공부를 그렇게 했어봐라’ 는 말을 듣는 이유는 게임이 기본적으로 인생에서 효율적인 시간에 해당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인간의 노동은 삶의 여러 토대를 제공하지만, 게임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일지언정 물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오픈월드, 트릭스터, 포디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woo Shin A cultural researcher and cultural critic, specializing in critical theory of technology and the political economy of media. Researches cultural phenomena surrounding gaming, 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s, and blockchain, and teach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nd the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yungKyu Lee Game journalist (2014–), writer (2006–), gamer (1996–).
- <페르소나 3 리로드> 일본 정치와 함께 톺아보기
<페르소나 3>는 <페르소나 시리즈> 전체로 보면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여신전생 시리즈>의 외전 격으로 개발된 시리즈의 핵심 정체성을 확립한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여신전생 시리즈>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던전RPG를 표방하는데, 던전 탐색에 악마 소환 및 합체를 결합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페르소나 시리즈>도 큰 틀에서는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전 시절의 1인칭 시점을 고수하진 않지만, 게임의 핵심 축은 여전히 던전과 전투이다. < Back <페르소나 3 리로드> 일본 정치와 함께 톺아보기 18 GG Vol. 24. 6. 10. <페르소나 3>는 <페르소나 시리즈> 전체로 보면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여신전생 시리즈>의 외전 격으로 개발된 시리즈의 핵심 정체성을 확립한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여신전생 시리즈>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던전RPG를 표방하는데, 던전 탐색에 악마 소환 및 합체를 결합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페르소나 시리즈>도 큰 틀에서는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전 시절의 1인칭 시점을 고수하진 않지만, 게임의 핵심 축은 여전히 던전과 전투이다. 그런데 <페르소나3>는 여기에 주인공과 다른 등장인물과의 관계가 중심이 되는 ‘커뮤 시스템’을 추가했다.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얼마나 발전시켜 놓았는지에 따라 악마 개념을 대신한 페르소나의 성능에 더해 일부 스토리 라인에도 영향을 주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페르소나 3>에선 던전과 전투만큼이나 일상 파트에서의 스케쥴 관리가 중요해졌다. 방과 후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가 던전-전투의 성과를 좌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남는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우리가 현실에서도 늘 고민하는 문제이다. 실제로 게임 중에 ‘오늘은 무엇을 할까’하고 고민할 때에는 단지 선택지를 고르는 것임에도 묘한 현실감이 느껴진다. 반면 던전과 그 안에서의 전투는 그게 아무리 현실적으로 묘사되더라도 결국 게임 속에 있다는 느낌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만일 게임이 오로지 ‘오늘은 무엇을 할까’만을 선택하는 것으로만 디자인 되어 있다고 하면, 던전RPG로서의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라는 고민이 게임 고유의 요소인 던전-전투와 연계된다는 게 이 시스템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페르소나 3>는 이전의 시리즈에 비해 게임과 현실을 잇는 가교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후속작인 <페르소나 4> 역시 기본적으로는 같은 형식이지만 일상의 재현에 보다 무게를 둔 느낌이다. 덕분에 고교 시절 친구들과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대리 체험하는 비중이 커졌다. 즐겁고도 그리운 느낌이 게임 전반을 지배한다. 3편에서 ‘타르타로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일직선 구조의 던전도 <페르소나 4>에서는 캐릭터별 특징에 맞는 던전이 스테이지별로 따로 구현되었는데, 이런 구조는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의 캐릭터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섀도’와 싸울 수 있도록 해주는 ’페르소나’의 개념도 조금 달라졌는데, 3편에선 단순히 소질과 각성의 문제였다면 <페르소나 4>에선 부정하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마주하면서 얻게 되는 ‘인격의 갑옷’이라는 개념이다. 이렇게 되면 각 등장 인물의 ‘부정하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해진다. 동료 캐릭터의 서사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거다. <페르소나 5>는 3편과 4편을 합친 모양새다. 분위기는 4편의 아기자기함 보다는 3편의 염세에 가깝다. 그러나 등장인물 간의 관계나 각각의 캐릭터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선 4편을 연상하게 된다. 던전 역시 일직선 구조의 ‘메멘토스’와 캐릭터의 내면과 연계된 ‘팰리스’가 병존하고 있다. 3편과 비교해 다소 간략화 된 느낌이었던 전투 파트는 5편에선 오히려 더 복잡해졌고 변수 역시 많아졌다. 섀도를 설득해 페르소나로 흡수하는 시스템은 심지어 3편 이전으로의 회귀다. 이런 점에서 보면 <페르소나 5>는 시리즈 전체를 종합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관점을 스토리를 중심에 놓는 것으로 바꿔보면 더 흥미로운 대목이 드러난다. 사실 <페르소나 3>는 서사 구조만 놓고 보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류로 볼만하다. 주인공과 동료들이 모여있는 공간을 주기적으로 공격하는 대형 섀도, 그럴듯한 명분으로 싸움의 목적을 오인하게 하는 ‘흑막’, 주인공과 너무 가까워진 나머지 자신의 본래 목적 달성 여부를 고민하는 강적, 인류의 집단적 바람이 원인이 된 종말과 같은 요소들이 그렇다. 그런데 이는 시기적으로 보면 다소 식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코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방영된 시기는 1995년 말에서 1996년 초까지다. <페르소나 3>는 2006년에 출시되었다. 이 10년의 간극에도 불구 <페르소나 3>는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걸 스토리를 중심에 놓고 평가한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같은 작품의 성공은 버블붕괴로 인한 사회적 혼란 및 이와 맞물린 비관주의의 확산과 떼어 놓고 평할 수 없다. 1990년대의 일본은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부문에서 혼란기였다. 정치적으로는 자민당이 스캔들과 비리 등으로 정권을 잃었다가 사회당과의 연정 등을 통해 간신히 되찾으면서 55년 체제가 붕괴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경제적으로는 버블 붕괴로 인한 주요 금융회사의 도산이나 부동산 주가 폭락 등 자산시장의 경색이 문제가 되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옴진리교가 일으킨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한신 아와지 대지진 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이 작품을 향한 절대적 지지에는 이 모든 사태가 빚어낸 혼란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페르소나 3>가 나온 2006년의 상황은 1990년대의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되는 국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자민당을 부숴버리겠다”는 구호와 함께 등장해 비교적 안정적 정치 기반을 구축하면서 ‘개혁’ 담론을 주도했는데, 이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우정민영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를 이상화 해 밀어 붙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보면 2000년대 중반까지의 일본은 ‘버블붕괴’라는 폐허를 뒤로 하고 불안 속에서도 무언가를 새롭게 재건한다는 느낌으로 나름의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런 시점에, 일상의 평화에 젖어 오히려 종말을 바라는 인류, 이대로 세상의 종말을 평화롭게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감수하더라도 종말을 막기 위해 싸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시선에 비유한다면 ‘돌아보는 시선’이다. 분명 어떤 점에서는 나름의 진정성이 있는 것이지만, 지금 당장 눈 앞에 닥친 자신의 문제라는 절박함은 상대적으로 희박한 것이다. 이게 <페르소나 3>의 서사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류로 느껴지는 이유다. <페르소나 3>에 투영된 것이 지나간 것에 대한 ‘돌아보는 시선’이라면, <페르소나 4>는 ‘자신의 발 밑을 내려다보는 시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시선이 보는 세계는 지극히 개인화 되어 있다. 세계의 위기는 주인공이 잠시 살고 있는 이나바시라는 시골 마을에 국한된다. 본편에서 숙적은 주인공을 돌봐주는 삼촌의 직장 동료이다. 심지어 <페르소나 4> 최대의 반전은 주인공에게 최초의 시련을 부여하는 ‘흑막’이 기껏해야 동네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위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실제 게임을 해보면 바로 이 보잘 것 없는 설정들에 현재성이 실려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페르소나 4>는 2008년 7월에 출시됐는데 시기적으로 3편의 출시일과(2006년 7월)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즉, <페르소나 4>는 3편과 동시대성을 공유하며 동전의 앞뒷면을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페르소나 3>과 <페르소나 4>는 비유하자면 같은 화자의 다른 이야기인 셈이다. 여기서 화자는 버블 붕괴 여파가 어느 정도 수습된 시점을 현재로 삼고 있다. 현재 시점에 비관주의가 득세했던 과거를 모사하며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게 <페르소나 3>, 과거를 뒤로 하고 눈 앞의 이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게 <페르소나 4>다. 따라서 <페르소나 3>가 세계의 종말을 주인공의 자기 희생을 통해 막는 얘기일지라도, 그건 근본적으로는 현재의 소중한 삶을 지키기 위한 제스처라는 해석을 피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런데, <페르소나 3>으로부터 꼭 10년이 지나 나온 <페르소나 5>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크게 바뀌게 된다. <페르소나 5>는 3편이나 4편처럼 현재에 안주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애쓴 티가 역력하다. 예를 들면 <페르소나 5>에서의 ‘페르소나’는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는 ‘반역의 의지’를 내비치는 것으로서 각성한다. 주인공들은 마음의 괴도단을 구성해 유력한 개인들을 개심시키는 것으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는 한계가 있고, 오히려 기득권에 의해 반격을 당하는 상황에 내몰리기 까지 한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그에 굴하지 않는 것을 넘어, 세계가 왜곡된 원인인 세상의 질서 그 자체와 맞서는 데까지 전진한다. 이를 통해 확인하게 된 진실은 대중의 무세계성(worldlessness)에 기반한 욕망이 한데 모여 통제를 원하게 되었고, 그러한 의사를 대리하는 신을 자처하는 존재로부터 세계가 실제 통제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상징하는 존재는 금빛으로 번쩍이는 성배의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주인공들은 이 거짓된 신에 맞서 또 다른 반역을 일으켜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 여기서 게임 제작진의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3편과 4편에 비하면 선동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이다. <페르소나 5>에서 반복되는, 이전에서 없었던 이러한 코드는 어디서 나온 걸까? <페르소나 4>이후의 현실엔 크게 세 가지 전환점이 있었다. 첫 번째, 2009년 자민당이 다시 한 번 정권을 잃고 민주당이 집권하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두 번째, 2011년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세 번째, 2012년 아베 신조가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해 다시 자민당 집권기가 열렸다. 아베 신조 정권은 1차 집권기(2006년)에 달성하지 못한 과제를 뒤늦게라도 확실하게 추진하겠다는 인상을 남기며 이런 저런 우파 지향의 의제를 밀어 붙였다. 그 결과 2015년에는 이른바 안보법제 논란으로 국회 주변에 12만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일어나는 일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이는 일본 사회 및 시민운동의 특성에 비추어 보면 매우 이례적인 일로 당시 언론은 1960년 안보투쟁 이래의 55년만의 최대 규모 운동으로 이 사안을 다뤘다. 이것이 <페르소나 5> 발매 직전까지 있었던 일이다. 다들 반역을 외치는 <페르소나 5> 특유의 분위기가 현실의 어떤 부분을 반영한 것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상황은 또다시 변화되었다. 아베 신조의 장기 집권은 더 이상 없다. 현재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아베 신조와 같은 강압적이고 일극지향적인 이미지를 갖지는 않는다. 지지율은 저조하지만 원내에서의 정치적 기반은 탄탄한 편이다. 일본 사회의 우향우는 지속되고 있지만 안보법제 폐지 투쟁 때와 같은 격렬한 반대 운동은 없다. 밖의 상황은 심상찮지만 적어도 일본 내의 분위기를 보면 당분간은 이러한 어딘가 불안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 같다. 바로 그러한 때에, 과거 그러한 시기를 ‘돌아보는 시선’으로 기억한 <페르소나 3>가 <페르소나 3 리로드>로 되돌아왔다. <페르소나 3 리로드>는 <페르소나 3>를 거의 그대로 현대에 되풀이 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페르소나 5>의 혁명은 실패했고, 우리는 그 이전으로 뒷걸음질쳐 온 것인가? 아니면. 또다른 현 시대에 맞는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과거의 유산을 활용하려는 것인가? 확실한 것은 누구도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르소나 시리즈>는 여전히 새 작품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갖게 하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Tags: 일본, 정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모에’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서브컬처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한 애착 유발 구조의 고찰
2022년 즈음부터, 한국의 게임 업계는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 표현 기법을 내세우는 게임들을 ‘서브컬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만화‧애니메이션풍으로 묘사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이라는, 이름이라기보다 차라리 서술에 가까운 호칭으로 일컬어졌던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간결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hoon Lee A gamer who searches games for inspiration in life. Keenly interested in analyzing the ways games convey their intentions and concepts.
- 전쟁, 게임, 게임 속 전쟁 그리고 비남성
전쟁이라는 주제는 비남성을 향한 가해와 피해의 이야기가 자주 교차한다. 이때 보이는 ‘전쟁이 나면 보호해 주지 않겠다’, ‘전쟁이 나면 마음대로 강간하고 다닐 거다’와 같은 말들은 다분히 위협적이다. 전쟁이라는 키워드에서 폭발하게 되는 남성성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경계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키워드에 게임이라는 레이어가 얹어질 때, 이 위협은 사라진다.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전쟁의 성질이 상당수 무화되는 것이다. < Back 전쟁, 게임, 게임 속 전쟁 그리고 비남성 25 GG Vol. 25. 8. 10. 전쟁에 관한 소식을 언제 어디서든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시대다. 전쟁은 바로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지만, 그 사실을 떠올리지도 못할 만큼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있다. 유튜브, SNS, 숏폼 등으로 노출되는 전쟁은 액정 너머의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관련 소식을 알고 싶을 때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손가락 하나면 충분하다. 이러한 부분에서 전쟁은 우리와 동떨어진 화제처럼 느껴지기만 한다. 그러나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으로 시작되는 대화는 늘 현실적인 걱정을 동반하는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징집 대상은 어떻게 선정될까? 그 상황에서 재산을 지킬 방법이 있긴 할까?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금만 둘러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주제들이다. 이 이야기들이 결정적으로 묻고자 하는 건 하나 같이 안전이나 생존에 관련된다. 손가락 하나로 전쟁을 보고, 또 넘길 수 있게 되었어도 그것이 가져오는 파급력을 알기에 불안감 자체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얘깃거리는 소위 남초 커뮤니티로 일컬어지는 곳에서 자주 확인되지만, 이 불안감이 비단 특정한 성별에만 적용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전쟁이 남성을 위주로 진행되어 온 역사가 있으며, 자연히 그에 관련된 요소들도 남성화되었다는 점이다. 비남성 또한 전쟁에 관여해 온 역사가 존재하나, 이들의 기여는 늘 남성보다 폄하됐다. 이러한 관점에서 게임과 전쟁은 어느 정도 유사한 부분을 보이는 듯하다. 게임은 전쟁과 여러모로 깊은 관계성을 맺고 있는데, 이 관계성은 2차 세계대전 즈음부터 시작됐다. 게임이 구동되는 매체인 컴퓨터가 2차 세계대전 전후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지대한 발전을 이뤄온 컴퓨터는 우리 일상에 유용한 도구로 기능하는 건 물론, 오락 기기로도 활약하게 되었다. 이때 컴퓨터에서 즐길 수 있는 오락, 즉 게임은 도전하고 대결하는 것을 주요 콘텐츠로 삼아왔다. 우리가 게임의 대표적인 콘텐츠로 전투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더욱이 게임은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기술력을 요구했기에,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게임에서 전쟁과 관련된 요소가 나타날수록 ‘남자가 하기 좋은 게임’으로 인정받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다. 전쟁과 게임, 남성(게이머)의 연계는 오늘날 너무나 자연화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될 것이 바로 비남성(게이머)의 존재다. 이 연계 안에는 비남성 또한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 그를 의식했을 때, 다음의 질문이 나오게 된다. 남성성과 견고한 관계를 맺은 전쟁 게임 안에서 비남성 게이머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비남성에게 전쟁 게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전쟁 게임이 이들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기에,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곳에 발을 디딘 걸까?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전쟁’과 ‘게임’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전쟁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에서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그를 이미지에 한정 짓는다면 생각의 폭을 좁힐 수 있을 듯하다. 말이나 배를 타고 검과 창, 활 등의 무기를 사용하는 중세 전쟁의 이미지나, 군복을 입고 총과 대포를 쏘는 현대 전쟁의 이미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일반적으로 떠올릴만한 전쟁의 이미지라고 한다면 바로 이 두 가지 정도일 것이다. 이런 전쟁의 이미지들은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는데, 게임도 그중 하나다. <파이널 판타지 14> PVP 콘텐츠 ‘봉인된 바위섬’ 이를테면 중세 전쟁의 이미지로, <파이널 판타지 14>의 PVP 콘텐츠인 ‘전장’을 들 수 있겠다. 24:24:24 삼파전으로 진행되는 <파이널 판타지 14>의 72인 전장은 거점 점령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그 과정에서 온 필드를 오가게 된다. 이때 연합 채팅에는 점령지가 스폰되는 시간과 그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경로가 연속적으로 올라온다. 맵에 간간이 나타나는 적의 움직임은 실시간으로 전략을 짜내기 위한 좋은 정보로 이용된다. 전투가 벌어지면 적은 물론, 팀의 역량도 함께 파악할 수 있게 되는데, 스킬 자원을 얼마나 축적했느냐에 따라 이 힘겨루기의 결과도 달라진다. 그렇게 수 번의 전투를 거쳐, 일정한 승리 횟수를 쌓으면 얻을 수 있는 ‘선봉장’이라는 타이틀은 전쟁에 숙달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증표와도 같다. 이 모든 요소는 중세 전쟁의 한 측면을 재현한 듯하다. 물론 <파이널 판타지 14>의 전쟁에는 현실과 관계없는 판타지가 상당수 가미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판타지 요소가 바로 힐과 부활이다. 이곳저곳에서 위협적인 공격이 몰아치더라도 플레이어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전장에 뛰어든다. 여기에 죽음을 불사한다는 비장함은 없다. 왜냐하면 게임 안의 이들은 죽여도 죽지 않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들은 다수에게 공격받아도 즉시 치유되며, 행동 불가가 되더라도 5초 뒤 부활한다. 물론 행동 불가가 됨으로써 어느 정도의 페널티는 부과되지만, 몇 번의 죽음이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그 죽음을 과감하게 감수하는 것도 전략이 될 때가 있다. 이런 판타지는 공격 한 번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현실의 전쟁과 아주 다른 모습이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II> 공식 이미지 이런 면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전쟁’이라는 키워드는 <콜 오브 듀티>나 <배틀필드>와 같은 게임이 더욱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게임들 또한 <파이널 판타지 14>와 유사한 판타지가 존재한다. 세이브와 로드가 플레이어를 완전한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현실의 전쟁에서는 없을 새로운 기회가 이 전쟁 게임들 안에는 존재한다. 아무리 실패해도 게임 안의 신체는 되돌아오며, 게임이 한 판 끝날 때마다 모든 상황은 리셋된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한 것에 아쉬워할지언정, 몸과 마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에 맞닥뜨리지는 않는다. 이렇게 재시작하게 되었을 때 또다시 실패할까 봐 긴장하게 되지만, 이는 죽음에 대한 공포라기보단 게임 오버에 대한 경계에 가깝다. 다른 전쟁 게임들도 마찬가지다. 비명과 포격음은 BGM과 효과음, 기합 소리 등으로 대체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판은 나가기 버튼으로 언제든 이탈할 수 있다. 전쟁 상황을 자유자재로 즐기는 플레이어의 모습은 게임 세계를 주무르는 신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렇게 판타지적인 부분이 다수 섞여있긴 하나, 게임은 전쟁이라는 콘텐츠와 우리의 감각을 즉각적으로 연결시킨다. 이는 플레이어가 직접 키보드를 치고 마우스를 움직이기에 가능해진다. 화면 너머 세상에 몰입하면서 발생하는 긴장감은 두려움만으로 채워지지 않고, 재미와 열의가 함께한다. 그 감각을 느끼는 데에 섹스나 젠더의 구분은 불필요하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나 <서든어택>, <리그 오브 레전드>와 같은 전국민적 인기의 전쟁 게임들을 떠올려보면, 그 주요 유저층은 늘 남성이라고 인식됐다. 이러한 선상에서 전쟁과 게임이 결합한 전쟁 게임이 ‘남자의 게임’처럼 인식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 안에 비남성 게이머들이 존재하더라도, 전쟁/게임은 늘 남성의 영역이다. 이에 처음의 질문을 다시 불러오고 싶다. 비남성 게이머들은 왜 남성의 장르로 여겨지는 전쟁 게임에 발을 디디는가? 이들에게 전쟁 게임은 어떤 의미인가? 여기에는 저마다의 사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저 재미있어서 플레이한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성취감을 느끼기에 한다고 할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이런 게임이 유행해서 시작했을 수도 있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하게 됐을 수도 있다. 어쩌면 상당수는 전쟁 게임이라는 장르 자체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런 점에서 ‘비남성에게 전쟁 게임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애초부터 답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도 이 같은 질문을 던진 건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곳에 비남성들이 참여하게 되는 이유가 뭔지, 전쟁 게임의 무엇이 그들을 불러 모으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쟁/게임의 속성에 대해서도 재고할 계기를 만들어준다. 더욱이 전쟁이라는 주제는 비남성을 향한 가해와 피해의 이야기가 자주 교차한다. 이때 보이는 ‘전쟁이 나면 보호해 주지 않겠다’, ‘전쟁이 나면 마음대로 강간하고 다닐 거다’와 같은 말들은 다분히 위협적이다. 전쟁이라는 키워드에서 폭발하게 되는 남성성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경계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키워드에 게임이라는 레이어가 얹어질 때, 이 위협은 사라진다.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전쟁의 성질이 상당수 무화되는 것이다. 이 또한 다른 관점에서 포착할 수 있는, 전쟁 게임의 판타지적인 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을 게임이 주는 원초적인 재미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이야기는 현실과 게임의 경계가 어떻게 설정되는지, 게이머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로도 연결할 수 있다. 남성성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게임, 그중에서도 전쟁 게임에 비남성이 뛰어들게 된 이유는 아직 일반화하여 보기 어렵다. 다만 게임이 현실을 어떻게 재현하는지, 그 안에서 발생하는 괴리는 무엇인지 고찰할 근거는 되어준다. 이러한 고찰을 거듭하다 보면 비남성과 전쟁/게임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Tags: 페미니즘, 비남성, 전쟁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 온라인 게임에 복귀했습니다.
- 라이브 서비스 전쟁 · 역사 기계 - <폭스홀>과 <헬다이버즈 2>
<폭스홀>은 극단적으로 상세화된 활동적 측면으로, <헬다이버즈 2>는 운영진의 적극적 개입과 플레이어 활동 반영 등의 실시간 소통의 방식으로 각각 전쟁 앞 개인의 감각을 생산해 플레이어들에게 역사를 체험하게 만든다 할 수 있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온라인게임, 라이브서비스, 전쟁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ong-Yi Writes with an interest in the interrelations among violence, suffering, and division. Produced works including Mapping the Affective, Pouring Water into a Poisoned Bottomless Jar, and Monthly Paper, and served as dramaturg for the plays Opera Charlotronique and The Man Who Became a Pillow. Author of Hormone Journal and Game Chorus, and co-author of A Mad, Love Song.
- 아포칼립스의 거울: 불완전한 정보는 어떻게 인간을 심판자로 만드는가?
태양 폭발로 문명이 무너진 세계, 플레이어는 매일 밤 TV 앞에 앉아 정부가 배포하는 식별 가이드를 시청한다. 지하에서 올라와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방문자’를 색출하라는 임무다. 뉴스는 완벽하게 고른 흰 치아, 털 없는 매끈한 겨드랑이, 빛에 민감해서 충혈된 눈 등을 방문자의 징후라고 보도한다. 위생 관리가 불가능한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청결함은 역설적으로 괴물의 증거가 된다. 이 플레이어에게 건네는 첫 번째 질문이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포스트휴먼, 인본주의, AI, 인공지능, 비인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young Hong Entered the world of games thanks to ads pitching the Famicom as a must-have for the happy household. A steady devotee of Just Dance. Co-wrote Mario, Born in '81, The Theory of Games, and Media and Gender, among others.
- 확률이 만드는 스킵: 즐거움과 귀찮음 사이를 맥동하는 플레이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을 풍부한 경우의 수로 뽑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확률은 디지털게임에서 직면하는 상황의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며 빛을 발한다. ‘다키스트 던전’에서 랜덤하게 튀어나오는 스트레스 상황과 영웅의 기상은 플레이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나락에서 극락까지의 폭넓은 감정 변화를 만들어내고, ‘슬레이 더 스파이어’에서 매 라운드마다 주어지는 랜덤한 카드보상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예측불가능한 도전에 대해 예측과 적응으로 돌파하게 만드는 즐거움의 원천이다. < Back 확률이 만드는 스킵: 즐거움과 귀찮음 사이를 맥동하는 플레이 17 GG Vol. 24. 4. 10. 초창기 놀이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운과 확률의 중요성은 꾸준히 강조되어 온 바 있었다 . 아곤 agon 과 알레아 alea 의 경합이라는 카이와의 놀이에 대한 이해는 디지털게임의 시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이 놀이매체의 중심을 관통한다 . ‘ 테트리스 ’ 에서 다음 블록으로 어떤 모양이 떨어지게 될 지를 예측하지 못하던 순간은 ‘ 리그 오브 레전드 ’ 에서도 평타가 치명타로 들어갈 확률을 생각하는 순간까지 이어지며 이 디지털 놀이를 주사위값에 의해 무작위로 변화하는 상황과 그에 맞춘 플레이어의 대응으로 만들어낸다 .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을 풍부한 경우의 수로 뽑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확률은 디지털게임에서 직면하는 상황의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며 빛을 발한다 . ‘ 다키스트 던전 ’ 에서 랜덤하게 튀어나오는 스트레스 상황과 영웅의 기상은 플레이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나락에서 극락까지의 폭넓은 감정 변화를 만들어내고 , ‘ 슬레이 더 스파이어 ’ 에서 매 라운드마다 주어지는 랜덤한 카드보상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예측불가능한 도전에 대해 예측과 적응으로 돌파하게 만드는 즐거움의 원천이다 . 많은 로그라이크 장르들이 사랑받는 이유의 중심에는 이러한 확률의 폭넓은 상황 재현력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그러나 모든 확률이 이처럼 풍부한 상황 재현의 원동력만으로 오늘날의 게임에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 우리는 오히려 확률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디지털게임의 어떤 순간에서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 하는 의문감을 떠안곤 한다 . 서사 압축으로 기능하는 확률이 만드는 '스킵' 한때 해괴한 광고로 물의를 일으켰던 모바일게임 ‘ 왕이 되는 자 ’ 의 전투를 생각해보자 . ( 나는 연구 차원에서 억지로 플레이한 적이 있다 .) 이 게임에서 전투는 자신의 군사력과 적의 군사력을 각각 수치로 보여준 뒤 ‘ 공격하시겠습니까 ?’ 라는 문구를 보여주고 , 공격을 선택할 경우 각각의 군사력에 일정 확률을 더해 전투결과를 뽑아내는 형태로 구성된다 . 일종의 자동 전투와 같은 방식이다 . 자동전투는 본래 수동전투 ( 수동전투라는 표현 자체가 좀 어색하긴 하다 ) 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을 대체하기 위한 개념이었다 . ‘ 토탈 워 ’ 시리즈의 경우 , 전술 화면에서 실제 병력들을 지휘해 벌이는 전투가 게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애당초 적과 아군의 병력 차이가 확연해 전투를 통해 플레이어가 만들어낼 수 있는 변수가 무의미하게 적을 경우 플레이어는 자동전투 버튼을 눌러 이 전투의 승패 결과값만을 받아들 수 있다 . 선택지로서의 자동전투는 나름 유의미하다 . 사례로 든 ‘ 토탈 워 ’ 시리즈의 경우 , 전략 영역에서의 플레이 또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중후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국지적인 전투에 일일이 공을 들이는 것 자체가 전략적 플레이에 비해 지루하고 귀찮은 일이 되며 , 이럴 때 자동전투 버튼은 플레이의 초점을 전술에서 대전략으로 옮겨가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 초반부에는 유의미했지만 점차 비중이 줄어드는 플레이의 특정 지점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 스킵 ’ 할 수 있게 만드는 자동전투는 확률이라는 장치를 통해 ‘ 스킵 ’ 을 제공함으로써 전략적 플레이의 연속성을 부각시킨다 . 흥미로운 점은 이 방식이 바로 ‘ 스킵 ’ 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 컴퓨터의 연산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황과 그렇게 주어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플레이어가 사고하여 만들어내는 행동이 일정한 플로우 밖으로 벗어날 때 , 게임은 플레이의 두 주체 – 난이도와 숙련도 간의 긴장관계를 기본적으로 주어진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한 확률값으로 뽑아내며 과정을 스킵한다 . 이 때 확률은 원본이 되는 일련의 수동 전투를 대체하는 장치가 된다 . 사람의 머리와 손으로 그려냈어야 할 어떤 상호작용의 과정을 스킵한 뒤 , 그 결과만을 예상되는 값으로 출력하면서 확률은 마치 오늘날 인공지능들이 그러하듯 시작점과 종착점 사이의 모든 과정들을 스킵하는 도구가 된다 . 디지털게임 안의 세계를 지탱하는 뼈대는 수치화된 데이터다 . ‘ 테트리스 ’ 안의 세계는 2 차원 좌표계 안에 블록의 유무를 구현함으로써 만들어지고 , ‘ 발더스 게이트 3’ 의 캐릭터 간 감정은 각각의 이벤트를 거치며 합산된 값을 통해 만들어진다 . 이런 데이터들은 세계를 구현하는 일종의 형태소이지만 , 데이터는 단지 의미에 정렬된다고 해서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적어도 두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 첫번째로는 각각의 데이터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작동하는 세계로 거듭나야 하며 , 두번째로는 그 작동하는 세계에 플레이어가 개입하여 주어진 환경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 아주 단순하게 비유하자면 , 전자가 NPC 로 가득찬 , 마치 영화 ‘ 주먹왕 랄프 ’ 와 같은 세계라면 , 그 세계에 플레이어의 개입이 가능하게 만들어지는 시점부터를 우리는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이런 단계를 전제로 놓고 다시 ‘ 스킵 ’ 의 문제를 살펴보면 , 우리는 이 ‘ 스킵 ’ 이 무엇을 건너뛰고 대체하는지를 좀더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 완성된 , 작동하는 세계로서의 NPC 월드는 본래 사람에 의해 변화되도록 디자인되었으나 , 플레이어 대신 데이터 월드는 확률이라는 랜덤성에 기초해 외부로부터 자극받는다 . 자동전투 속에서 확률의 개입에 의해 스킵되는 대상은 외부자극 , 곧 플레이어인 것이다 . 놀고싶은 본능과 귀찮음의 본능 사이에서 디지털게임에서 확률이 쓰이는 방식은 앞서 이야기한 바처럼 그 자체로서보다는 어떤 목적에 의해 쓰이느냐에따라 게임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 로그라이크에서의 확률은 조합을 통한 경우의 수를 바탕으로 상황의 가짓수를 넓혀 더욱 다양한 플레이어 개입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쓰이고 , 자동전투에서의 확률은 플레이어의 개입 자체를 대체하여 NPC 월드를 NPC 들만의 월드로 만들어내는 데 쓰인다 . 다시 카이와의 아곤 – 알레아 개념으로 돌아가본다면 , 로그라이크적 확률이 다양성을 늘려 아곤의 비중을 두텁게 하는 것과 반대로 자동전투로서의 확률은 알레아의 비중을 두텁게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확률이 플레이어의 개입을 대체하는 경우의 양 극단인 아곤 – 알레아에서 100% 알레아만으로 이뤄지는 경우를 상상한다면 아마도 뽑기 , 도박 , 복권 내지는 포춘 쿠키와 같은 형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당연하게도 우리는 아곤과 알레아 , 플레이어의 개입과 운적 요소 , 조금 더 구체화해서 이야기한다면 과정과 결과라는 두 축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순간이 좋은 게임을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 그러나 확률이 대체하고자 했던 요소 , 인간의 개입이라는 요소가 갖는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다 . 애초에 일정 수준에 이른 플레이어가 손쉬운 전투를 의미없다고 생각해 스킵하거나 , 특정 레벨에 도달하기 위해 무의미한 사냥을 필드에서 반복하는 행위를 이른바 ‘ 노가다 ’ 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우리는 개입하는 플레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속성 중 하나인 귀찮음을 발견한다 . 플레이어의 개입은 디지털게임이라는 요소의 특성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이고 사실상 이 매체의 즐거움은 그 개입을 통해 이뤄지지만 , 동시에 개입의 속성은 양가적이다 . 주어진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이리저리 손과 머리를 굴리는 과정은 너무나 흥미롭지만 , 동시에 다른 매체활동에 비해 무척이나 귀찮고 복잡한 일이다 . 당장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책과 드라마 , 영화를 볼 수는 있지만 그 자세로 전통적인 인터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디지털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움을 알 수 있다 . 플레이가 가지고 있는 그 귀찮음의 속성이 확률이 플레이를 계속 대체하고자 시도되는 이유다 . 초창기에는 없었으나 , 롤플레잉 게임에 이르면 점차 전투가 ‘ 노가다 ’ 로 불리게 되는 과정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게임적 의미로 주목하는 부분은 이 전투의 결과가 이미 예측되는 순간에 ‘ 노가다 ’ 라는 호명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 난이도와 숙련도의 상호작용이 더 이상 두근두근한 기대값을 갖지 못하게 되는 순간 , 상호작용의 의미는 즐거움보다 귀찮음으로 크게 기울어버린다 . 복잡다난한 입력을 생략하고 , 양 측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몇 가지 확률공식만 돌려 경험치와 아이템만 뽑아내는 것은 플레이에 내재한 속성인 귀찮음을 극복하기 위한 게임 디자인과 , 그에 호응하는 이용자들의 합의로부터 이루어진다 . 그리고 이런 귀찮음의 문제는 단지 디지털게임에만 , 그리고 게임 플레이의 시작과 끝이라는 짧은 시간선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도 아닌 것 같다 . 일정 부분 유비해보자면 우리는 점점 미디어가 주는 귀찮음을 자각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미디어 전반에서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 영상은 정속이 아니라 1.5 배속 , 2 배속으로 보는 것이 속편하고 , 그보다도 ‘10 분안에 몰아보기 ’ 가 훨씬 더 명쾌하게 느껴지는 것이 오늘날이다 . 한때 묘사의 섬세함으로도 독자들과 교감할 수 있었던 문자문학은 이제 ‘ 지리한 ’ 묘사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빠르게 본론을 전개하는 것이 보다 널리 받아들여진다 . 숏폼이라는 15 초의 시간이 의미하는 인간의 미디어적 인내력은 시간선상의 매체에서는 배속과 숏폼으로 , 상호작용 매체에서는 개입을 생략한 채 결과만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 아마도 추측하건대 이러한 변화는 개별 미디어나 수용자의 변화가 아니라 미디어 및 정보환경 전체의 변화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 소설의 결말을 굳이 지인으로부터 스포당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과거와는 달리 , 오늘날의 정보사회에서는 검색 한 번에 어지간한 정보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환경이다 . 검색어 입력 – 결과값 출력의 속도가 즉문즉답이 된 시대에서 고전적인 미디어들의 방식은 이제 정상속도가 아닌 ‘ 굳이 느려터진 ’ 상대 속도로 이용자들에게 체감된다 . 이미 다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을 굳이 붙잡을 이유가 없는 시청자가 배속을 택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 디지털게임의 플레이 또한 보다 빠른 형태의 외주형 플레이인 확률에 넘기기로 이용자들의 선택은 넘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한편으로는 고전적 플레이에 익숙하고 또한 이를 애정하는 입장이지만 , 더불어 유년기와 달리 쉽게 피로해지는 신체에 얹혀 사는 입장에서 게임 플레이가 가진 귀찮음의 속성은 갈수록 그 무게감을 더한다 . 시대의 매체 속도가 빨라지고 , 신체의 생체 속도는 느려지는 더블 부스터의 시대를 맞은 과거 유년기의 게임 키드들이 중년이 되어 보다 확률의 개입이 두터워진 게임을 붙잡고 소파에 눕는 이유는 한때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으로부터 감명받고 매료되었던 이유와 함께이기에 더욱 서글퍼진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수퍼히어로물의 다음 세대를 건져올린 <디스패치>
가장 미국적인 문학 장르인 수퍼히어로는 경이(amazing)적 판타지의 장르다. 주인공 히어로와 빌런이 사용하는 초능력이라는 경이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때문에 판타지이며 개연성 대신 핍진성만이 작동하는 장르다. 이 장르는 만화와 라디오 드라마를 거쳐 영상 영화를 지나 게임까지 와 있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히어로물, 코믹스, 골든에이지, 북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모험가들은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 게임과 노스탤지어
2015년 9월 1일 게임 개발자 론 길버트(Ron Gilbert)는 자신의 블로그에 ‘Happy Birthday Monkey Island(원숭이 섬 생일 축하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 그가 1990년에 개발한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서 〈원숭이 섬의 비밀〉을 함께 만들었던 당시의 팀과 ‘이 게임이 25년간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 오래전에 받은 한 통의 팬레터 사진1)을 첨부한다. 당시 12살이라고 밝히고 있는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pson)이 그에게 보낸 것이다. < Back 모험가들은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 게임과 노스탤지어 02 GG Vol. 21. 8. 10. 편지와 절벽을 함께 떠올리며 2015년 9월 1일 게임 개발자 론 길버트(Ron Gilbert)는 자신의 블로그에 ‘Happy Birthday Monkey Island(원숭이 섬 생일 축하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 그가 1990년에 개발한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서 〈원숭이 섬의 비밀〉을 함께 만들었던 당시의 팀과 ‘이 게임이 25년간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 오래전에 받은 한 통의 팬레터 사진 1) 을 첨부한다. 당시 12살이라고 밝히고 있는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pson)이 그에게 보낸 것이다. 게임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해서 당신처럼 훌륭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는 말로 끝나는 여느 팬레터 같지만, 사실 이 편지의 용건은 다른 데에 있다. “어떻게 하면 원주민들에게서 ‘안내자의 머리’를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거나 힌트를 줄 수 있나요(Could you please tell me or give me a hint on how to get the navigating head from the natives)?” 톰슨은 게임의 공략법을 구하기 위해 개발자에게 직접 편지를 쓴 것이다. 이 편지에서 모험은 단지 컴퓨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게임의 주인공 가이브러쉬(Guybrush)가 해적이 되기 위해 모험을 떠나 아이템과 힌트를 찾고 장애물을 넘고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이 12살 어린이도 자신의 모험 중 맞닥뜨린 시련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힌트와 아이템을 구하고 있었다. 12살의 모험가 톰슨은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에는 아직도 ‘원숭이 섬’을 떠나지 못하는 몇몇 어른들이 등장한다. 1999년 론칭된 이후 시간이 흘러 이용자도 얼마 남지 않고 더 이상 업데이트도 되지 않는 게임 〈일랜시아〉에 접속하는 ‘내언니전지현(감독 박윤진의 게임 캐릭터)’과 그의 친구들이다. 그들은 〈일랜시아〉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돌고 돌아 〈일랜시아〉를 다시 찾는다 2) " . 영화는 내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찬 현실 세계와 집단적 향수의 공간이 되어버린 게임 세계를 번갈아 비춘다. 그러다가 영화의 후반부에는 내언니전지현과 길드원들이 게임 맵의 절벽 앞에 다 함께 모여 차례로 유언을 남기고 그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죽지 않는 절벽 낙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놀이 혹은 퍼포먼스인데, 어쩐지 이 낙하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어떤 곳에 가닿기 위한 움직임처럼 보였다.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원숭이 섬에서, 그곳에 남은 최후의 어른들은 얼마간 슬프고 무모한 모험을 떠나고 있었다. 이 여정은 시간을 거스르고자 한다. 톰슨의 편지를 읽으며 절벽 앞에 서 있는 내언니전지현을 생각했다. 12살 톰슨으로 돌아가고 싶은 내언니전지현을 떠올리며 과거의 게임들이 다시 인기를 얻는 최근의 현상이 단지 플랫폼, 그래픽 스타일, 뉴트로 산업, 복고 열풍 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느꼈다. 왜 어떤 어른들은 ‘안내자의 머리’를 얻기 위해 직접 편지를 써야 했던 어린 시절 주변에서 서성대는가? 29살의 내언니전지현은 왜 더 이상 개발되지 않는 과거의 섬에 계속 남아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가? 우리는 왜 어린 시절의 모험담을 잊지 못하며 심지어 이미 퇴색해버린 모험의 세계로 다시 시간을 거슬러 모험을 떠나는가? 그때의 모험과 지금의 모험은 어떻게 다시 만나는가? * 다큐멘터리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 공식 스틸컷.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조국은 왜 향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동화 속의 나라가 되는가?” 3) 노스탤지어는 동시대 문화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들 중 하나다.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과거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적어놓은 댓글들, 어린 시절 접속했던 게임을 잊지 못해 다시 찾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오래전 유행가가 다시 순위 역주행을 했다는 기사는 우리에게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래전 문화, 예술, 그리고 미디어의 많은 부분이 복고, 레트로 열풍의 흐름 안에서 소개되면서 더 이상 그것을 경험한 적 없는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이 되고 있다. 최근 〈슈퍼 마리오〉, 〈소니 더 헤지호그〉부터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리니지 리마스터〉까지 수많은 옛날 게임들이 다시 사랑받는 것을 보면,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게임에도 해당되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이러한 현상에 보다 구체적인 세대 구분을 적용할 경우, 90년대에 오락실에서 게임을 했던 3-40대가 그 게임을 다시 찾는 경향은 ‘레트로’, 오래전 콘솔 게임과 비디오 게임에 대한 실제 경험이 없는 1-20대가 그 게임을 하나의 유행으로 즐기는 경향은 ‘뉴트로’로 해석되고는 한다. 이때 ‘과거의 게임과 음악과 영화와 물건들이 어떻게 다시 인기를 얻었는가?’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은 그보다 ‘우리는 왜 낡고 조악하고 엉망진창인 과거의 것들에 노스탤지어를 느끼는지’ 질문하고 싶다. 왜 우리는 숱한 좋은 것들을 놔두고 다시 보잘것없는 것에 매혹되는지, 이를테면 더 그래픽이 뛰어난 다른 게임들을 ‘돌고 돌아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일랜시아〉로 돌아가는지’ 묻고 싶다. ‘과거는 어떻게 유행이 되었는지’가 아니라 ‘우리는 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지’, 이 글은 그것이 궁금하다. 노스탤지어는 일반적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의미했지만 점점 그 대상이 구체적인 시공간으로서의 고향을 넘어 확대되어, 마치 고향과 같은 과거의 어떤 기억과 경험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폭넓게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고향을 그리워하기 위해서는 고향을 떠나거나 고향을 잃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처럼, 노스탤지어의 감정에는 그 대상에 대한 상실과 결핍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에 노스탤지어를 느낀다고 말할 때, 우리는 하나의 고향으로서 해당 시공간, 기억, 경험을 이미 떠났거나 잃어버린 상태이다. 결국, 노스탤지어는 우리가 현재 무엇을 상실하고 결핍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거뿐 아니라 현실과 미래와 연결되는 감정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공유하는 노스탤지어의 감정은 그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상실과 결핍을 반영한다. 우리가 현재 무엇을 상실하고 결핍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서 ‘고향’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향은 사전적으로는 ‘태어나고 자라난 고장’을 의미하지만, 단지 지리적인 의미를 넘어 언어와 습관을 공유하는 집단 혹은 자신이 기원을 느끼는 어떤 추상적인 시공간이 될 수도 있다. 고향은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되는 고정된 기원과 정체성 그 자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노스탤지어는 정체성이 위기를 맞이한 순간에 사회적 현상으로 두드러진다. 범람하는 노스탤지어는 그 자체로 현대사회가 정체성의 훼손을 겪고 있음을 암시한다. 4) 오늘날 노스탤지어는 때로는 그 대상이 모호한 채로 느끼는 근원적인 ‘뿌리 뽑힘’, ‘집 없음’ 등의 감정이며, 이는 현대인들이 필연적으로 겪는 감정이기도 하다. 5) 〈내언니전지현과 나〉에서 주인공인 ‘나’(내언니전지현)가 때로는 ‘나’가 부캐(부 캐릭터)이고 〈일랜시아〉 속 ‘내언니전지현’이 본캐(본 캐릭터) 같다고 말할 때, 그리고 길드원들이 입시, 졸업, 취업, 결혼 등의 어려운 난관으로 가득한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성취감을 얻기 위해 〈일랜시아〉를 다시 방문했다고 말할 때, 이 감정에는 ‘성취감이 가능한 곳으로서의 고향’인 ‘일랜시아’와 그 세계 속 ‘내언니전지현’에게서 뿌리를 느끼는 ‘나’의 불안이 씁쓸하게 개입한다. 도트 그래픽과 단순한 조작법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심지어 직접 플레이하지 않아도 숫자가 올라가는 이 허술하고 단순한 세계는 그 자체로 복잡하고 치열한 현실 세계에 대한 도피처일 뿐 아니라 대응물이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과거의 초라한 세계와 그 세계에서 살았던 유년 시절은 이제 안온하고 편안한 고향의 모습이 되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3-40대가 어린 시절 열심히 했던 슈퍼마리오 게임을 그리워하는 것, 10-20대가 슈퍼마리오 게임을 해본 적 없지만 해당 이미지와 플롯에 이유 모를 애착감을 느끼는 것이 세대의 특정한 경험으로 구분되어 생산과 소비의 관점에서 다르게 해석되기 이전에, 어떤 근원적인 노스탤지어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옛날 게임의 엉성한 세계가 우리 각자의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엉성함 그 자체가 오늘날 우리가 결핍하고 상실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동화라는 가장 엉성한 세계, 그리고 그 동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 어릴 적 우리는 영화, 음악 혹은 소설에서와 달리 게임 속에서 ‘직접’ 걷고, 움직이고, 말하고, 성취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노스탤지어를 가장 많이 불러일으키고, 다른 여가들보다 더 직접적이고 긴밀하게 그리움의 대상으로 데려다 놓을 수 있다. 우리는 (영화에서처럼) 악당을 물리친 영웅을 보았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악당을 물리쳤던 순간을 기억한다” 6) . 다시 〈원숭이 섬의 비밀〉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모험가가 길을 찾는 장면을 보았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험가가 되어 (편지를 쓰고 힌트를 얻어) 길을 찾는 순간을 기억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감독인 조지 루카스가 만든 게임회사 루카스아츠의 〈원숭이 섬의 비밀〉은 1990년에 나왔지만 여전히 어드벤처 게임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19년 후인 2009년에 리메이크되며 많은 게임 이용자들과 스트리머들, 시청자들이 〈원숭이 섬의 비밀〉에 다시 찾기도 했다. 한편,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정말 그야말로 ‘엉성한 세계’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엉성함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이 게임의 주인공 가이브러쉬 쓰립우드는 해적이 되고 싶지만 입만 살아 있는 캐릭터다. 그는 해적들과 검술 결투를 벌여 이겨야 하는데, 이때 승부를 결정하는 것은 검술 능력이 아니라 얼마나 말을 잘 받아칠 수 있는가의 정도이다. 이 세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악당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침 뱉기 대회’를 치러야 하고, 여기서 녹색 침을 뱉기 위해서 녹색 술을 마셔야 하는데 이때의 공략법은 노란 술과 파란 술을 섞어 마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실없는 농담과 엉뚱한 상상력은 모험의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원숭이 섬의 비밀〉은 코믹 어드벤처라는 이름으로 천진하고 엉뚱한 규칙과 규범이 작동하는 세계를 만들어놓고 이용자는 그 안에서 모험을 떠나야 했는데, 8-90년대는 이러한 어드벤처(모험) 장르의 게임들이 가장 부흥했던 시기였다. 12살의 톰슨에게는 현실 논리의 바깥에 있는 이 ‘유치한’ 세계 속에서 ‘안내자 머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래서 톰슨은 직접 편지를 써서 힌트를 얻기로 한다. 실제로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그 시절의 수많은 톰슨‘들’은 스스로 그 얼토당토하지 않은 세계의 모험가가 되었다. “동화는, 신화가 우리의 가슴에 가져다준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 인류가 마련한 가장 오래된 조치들이 무엇이었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동화가 태곳적에 인류에게 가르쳐주었고 또 오늘날에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가장 현명한 조언이 있다면 그것은 신화적 세계의 폭력을 꾀와 무모함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7) 성취가 쉬운 단순한 세계(〈일랜시아〉)와 엉뚱한 상상력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세계(〈원숭이 섬의 비밀〉), 그리고 그러한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 단순하고 엉성하고 허술한 것들에 몰입하고 있던 어린 시절은 ‘지금, 여기’와는 먼 곳에 동화로 남아 있다. 게임은 그 동화로부터 시작한다. 무모한 것으로 신화의 폭력을 해결하는 것, 그것이 가능한 세계가 게임이고 그것을 믿는 세계가 유년 시절이라면 어쩌면 게임은 필연적으로 유년 시절과 노스탤지어와 깊이 관계 맺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 시절의 모험가였던 수많은 톰슨들은 그 조악하고 허술한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됐지만 신화적 세계의 폭력, 현실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악몽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고향을 찾는다. 현실의 절벽을 피해 게임 속 절벽 앞에서 모인 어른들은 옛날 옛적 고향으로 가기 위해 아래로 뛰어내린다. 무모하고 무용하지만, 재밌는 모험이 될지도 모른다. 1) https://grumpygamer.com/monkey25 2) 김소미. (2020. 8. 13). ‘내언니전지현과 나’ 박윤진 감독 – 그 시절의 꿈과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씨네21. URL :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5976 3) Fodor, N. (1950). Variety of Nostalgia, Psychoanalysis, vol, 37. p25. 4) 이하림 (2020). 생경한 그리움 : 경험한 적 없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잔재의 이미지. 미디어, 젠더 & 문화, 35(2), 189-243. 5) Smith, K. (2000), Mere Nostalgia: Notes on a Progressive Paratheory, Rhetoric & Public Affairs, Vol.3, No. 4,.505-527. 6) Hill, M. (2015. 11. 22). Nostalgia Is Running Video Games. The Atlantic. URL: https://www.theatlantic.com/entertainment/archive/2015/11/nostalgia-video-games/416751/ 7) Benjamin, W. 이야기꾼 :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작품에 관한 고찰. In 최성만 (역) (2019). 〈발터 벤야민 선집 9〉. 서울: 길. 448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각문화연구자) 이하림 기억과 이야기와 이미지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쓴다. 공적 기억과 사적 기억이 교차하는 영상 작업에 관심이 있다. 경계에 놓여있는 것들, 정착하고 못하고 부유하는 존재들에 마음이 간다. 요즘은 머뭇대며 다가가는 것, 뒤돌아보며 걸어가는 것이 글과 생활의 방법인 것 같다고 생각 중이다.
- 숏폼 콘텐츠 유행이 우리에게 남긴 것
다만 이러한 현실 추수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BM을 긍정해 나가면서 한국 게임 시장은 더욱 노골적으로 메타버스, P2E, NFT 등 현행 법률로 합법화되기 어려운 영역까지 허용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최근의 게임 회사들은 플레이의 외부적 요소로 취급되던 현금과 결제, 캐릭터의 성장 요소를 더욱 외재화하여 환금성을 부추기게 된다면, 이는 한국 게임업계가 그동안 트라우마로 안고 있었던 “바다 이야기” 사태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 Yeop Lee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 Contents at Soonchunhyang University. Researches game storytelling and game design as central concerns, and led the founding of the Busan Indie Connect Festival—a leading indie game festival—where serves as head of the jury. Also a juror for the Independent Games Festival (IGF), one of the most prestigious indie game events internationally. Books include Digital Storytelling (co-authored, 2003), Digital Games: A New Territory of Imagination (2005), Indie Games (2015), Stories Become Transformers (co-authored, 2015), Mario, Born in '81 (co-authored, 2017), The Theory of Games (co-authored, 2019), and Games Are Games: Game × Ecosystem (co-authored,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