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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동연구처럼 돌아가는 스피드런의 세계, 스피드런 유튜버 천제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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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6. 10.



생산을 위해 기획된 방법론인 효율은 오늘날 디지털 게임에서 주요한 플레이 방법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효율적인 플레이를 위한 전략이 동원되고, 최고의 효율을 달성하는 것이 플레이의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효율적 플레이의 정점에, 최단시간 내 게임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는 스피드런(speedrun)이 있다. 스피드런은 어느덧 게임을 즐기는 또다른 장르가 되었지만, 동시에 게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판단력, 좋은 컨트롤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노히트 플레이와 함께 ‘고인물’들의 장르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이번 호에서 GG는 한국의 스피드런 플레이어이자 유튜버 천제누구를 만나 스피드런의 즐거움과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피드런은 이론과 실증의 영역에서 게임을 이모저모 뜯어보고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동시에 모두가 각자의 경험과 실천을 공유해 하나의 ‘빅 데이터’를 쌓아올린다는 점에서, 스피드런은 게이밍에 대한 공통지식을 구성하는 또 다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혁 편집장: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번 먼저 부탁드릴게요.


천제누구: 원래는 트위치에 있었지만, 현재는 여러 가지 방송 플랫폼에서 스피드런을 주 콘텐츠로 삼으면서 방송을 하는 천제누구라고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최근에 트위치 서비스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은 어느 방송 플랫폼이 제일 메이저라고 생각하시나요?


천제누구: 저는 원래 트위치 스트리머였으니까 네이버 ‘치지직’으로 옮길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고민이 됐어요. 아시다시피 스피드런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활발한 장르잖아요. 트위치는 세계를 무대로 하다 보니 방송을 열어 놓으면 외국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였어요. 아직까지 치지직은 아직 그런 역할까지는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전에 트위치가 서비스 종료 전에 동시 송출을 풀어줬을 때 생방송을 했더니 유튜브에서 제 방송을 보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지금은 유튜브 생방송도 신경쓰면서 방송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해외 시청자와의 창구가 남아 있었으면 한다는 소망이 있는데 치지직이 그 역할을 해주거나 트위치가 그래도 방송송출은 할 수 있도록 남아있었으면 좋겠네요. 


이경혁 편집장: 국내 스피드런 유저들이 생각보다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해외 네트워크가 중심이 되는 건가요?


천제누구: 그렇죠. 새로운 빌드라든가 글리치, 플레이 방법들이 주로 스피드런 사이트 내 디스코드에서 공유되거든요. 근데 보면 거진 다 영어권이에요. 그것 때문에 저도 요즘 영어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는데(웃음), 실제로 그래서 스피드런은 어쨌든 해외에 선이 닿을 수밖에 없죠. 제 채널의 주 시청자는 그래도 한국 분들이지만, 다른 스피드런 채널은 해외 시청자가 더 많은 사례도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실 스피드런 자체가 언어에 구애받는 콘텐츠가 아니기도 해서 그런 거군요.


천제누구: 그렇죠.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스피드런을 메인으로 하는 유튜버이신데, 본인의 게임 경험이 궁금합니다. 처음에 어떻게 게임을 시작했고 어쩌다 스피드런까지 오게 되셨나요?


천제누구: 저도 대학생 때까지는 평범하게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일반적인 게이머였어요. 초중고 시절에는 흔히 말하는 <바람의 나라>로 먼저 시작했구요. <포트리스>, <겟앰프드>를 하다가 <스타크래프트: 자유의 날개>도 마스터 티어까지 잠깐 찍었고. 그 외에는 <사이퍼즈> 정도. <엘소드>라는 게임을 잠깐 했었는데, 그 게임엔 PvE(Player versus Environment) 요소가 있고 PvP(Player versus Player) 요소가 전부 있었어요. 저 같은 경우엔 거래를 잘 해서 좋은 아이템을 맞추기보다는 최소 요건만 맞추는 PvP 쪽에 매력을 느꼈어요. 컨트롤을 잘 해서 플레이하는 게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본인의 숙련도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쪽으로 게임의 매력을 느끼신 것 같아요. 그럼 스피드런으로 접근하시게 된 계기는 어떤 게임을 통해서였나요?


천제누구: 2018년에 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당시 가장 유행했던 게임이 <배틀그라운드>였어요. 기왕 방송을 하는 겸 가장 핫한 게임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일단 제 실력이 그렇게 잘 안 되더라고요(웃음). 나중에는 방향을 바꿔서 게임 플레이보다 정보 콘텐츠를 조금씩 만들어봤어요. 적당히 조회수는 나오는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보 콘텐츠 유튜버라면 꾸준히 정보를 제공해 줘야 되는데, 그런 정보가 끊기면 사실 '천제누구'라는 유튜버 자체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닌가. 저만이 잘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쯤 <메탈 슬러그>를 시작했는데요. 현재 <메탈 슬러그>계에서 한국 뿐 아니라 세계를 꽉 잡고 계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제 방송에 놀러오시면서 처음 스피드런이라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고 시작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메탈 슬러그>부터가 본인의 스피드런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사실 이 게임이 나온 지는 굉장히 오래 되었는데 플레이하셨던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을까요?


천제누구: 우선은 플레이를 강렬하고 짧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저도 예전에는 방송 보던 세대였으니 그때 <메탈 슬러그>로 유명했던 분들의 영향도 있었고. 스피드런 유튜버 중에 '서키모스'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의 플레이 방식이 굉장히 구체적이었어요. 예를 들면 <메탈 슬러그> 2나 X에서는 스테이지에서 기차가 나오는 구성이 있습니다. 거기서 각 기차의 구체적인 체력을 언급하고 계산하면서, 무기당 데미지가 얼마니까 어떻게 계산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론적으로 접근을 하시더라구요. 사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면서 게임은 그냥 즐기는 거고 이거를 이론적으로 접근을 한다는 생각을 안 하잖아요. 플레이를 하다 보면 그냥 경험을 축적해서 자기만의 빠른 방법을 개발하는 게 대부분인데. 여기에서 정확하게 어떤 움직임을 취하면 적이 나오다가 스킵이 된다던가. 스피드런에서는 플레이를 그렇게 이론적으로 접근을 한다는 게 굉장히 흥미로웠던 기억이 나요. 실제로 그렇게 몇 번 연습을 따라하니 다 되는 것도 매력적이었구요. 



이경혁 편집장: 스피드런이라는 세계에 매력을 느끼신 것도 있고, 더 중요한 점은 실제로 소질도 있으셨던 것 같아요. 스피드러너로서 스스로의 ‘소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천제누구: 소질이 없진 않지만, 제가 스피드러너 사이에서 피지컬이 엄청 뛰어나다고 보지는 않아요. 그런데 스피드러너들도 각각 잘 하는 장르가 있고, 자신만의 특색이 있어요. 우선 순수하게 게임 플레이를 잘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빌드가 있어도 그냥 빠르게 잘 성공시켜서 빠른 친구가 있고요. 그 다음으로는 독특한 빌드를 잘 만들어서 한 번씩 혁신을 일으키는 러너들이 있구요. 마지막으로는 이미 나온 빌드를 개량해서 성공확률을 높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피드런은 어떻게 보면 ‘확률’의 문제라고 볼 수 있거든요. 저 같은 경우엔 마지막 유형에 가까운데, 약간 돌아가더라도 최대한 안정성이나 성공률을 높이는 쪽으로 플레이를 하는 편입니다. 은근히 다 똑같은 빌드처럼 보이지만 러너들만의 각자의 특징이 있다는 게 신기하죠.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스피드런이야말로 연구와 공부가 굉장히 필요한 방법인데. 보통 스피드런을 하실 때 본인이 빌드를 짜거나 플레이 스타일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천제누구: 보통 제가 스피드런을 시작할 때는 먼저 다른 플레이들을 봐요. 전체적인 게임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플레이의 중심을 어디에 둘지 맥락을 먼저 잡구요. 다른 플레이 영상들을 보면 '이건 줄일 수 있겠는데, 이건 계산할 수 있겠는데, 이 행동은 별로 필요 없지 않을까' 이런 게 보일 때가 있거든요. 거기에서 제가 떠오른 질문들을 혼자 플레이 해보면서 검증을 해봅니다. 그러면서 원래 나왔던 스피드런 기록보다 조금씩 시간을 더 줄여나가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천제누구님 혼자의 방식이라기보다는 타인의 플레이를 상호 참조하면서 계속 쌓아 올려가는 방식이군요. 혹시, 본인이 플레이 했던 스피드런 중 자랑하거나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천제누구: 가장 최근에는 <P의 거짓>을 했었는데 올 보스 카테고리에서 월드레코드를 세웠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던 런이 <엘든링> Any% 글리치 리스 카테고리 인데, 이것도 한 때는 월드레코드를 달성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레지던트이블 시리즈가 제가 주로 관심을 갖는 시리즈인데. 최근에 나온 레지던트이블 작품 뿐만 아니라 레지던트이블 메인 넘버링 작품은 모두 스피드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레지던트이블1부터 레지던트이블8까지 릴레이로 스피드런한 적도 있네요(웃음).

     

이경혁 편집장: 애초에 게임이 스피드런을 제일의 목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데, 열과 성을 다해 세부적인 것까지 파고드는 건 분명히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것 같아요. 스피드러너로서 이 ‘스피드런의 재미’는 어디에서 나온다고 보시나요?


천제누구: 저는 스피드런의 재미를 이야기할 때 육상으로 비유를 많이 듭니다. 예를 들어 100m 달리기를 혼자 달려봤더니 한 16초 정도가 나왔어요. 기록 테이블을 봤더니 평균이 15초네, 하면 내가 평균 점수까진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욕심이 생기겠죠? 그래서 몇 번을 다시 달려보면 단순하게만 하다 보면 어느순간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론을 찾아보게 되는거죠. 보니까 달리는 방법에서 크라우치라는 스타일이 있다더라. 달릴 때 각도는 이렇게 하고 팔은 어떤 식으로 자세를 잡으면 더 빠르게 잘 달릴 수 있더라. 그렇게 이미 나와 있는 다른 연구 결과를 반영해서 달려보면 당연히 더 좋은 기록이 나오겠죠? 그때 기록 테이블을 봤더니 내 위에 한 두세 명밖에 없는 거예요. 어, 이거는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잡을 수 있겠는데? 이제 그런 상황부터는 취미가 아니라 뭔가 진심이 되는 건데(웃음). ‘앞에 있는 몇 명만 잡으면 내가 월드 레코드 잡을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 월드 레코드를 한 번 달성하면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성취라는 부분이 굉장히 크군요. ‘내가 손만 조금만 뻗으면 닿겠는데’, 그런 생각이 한 번 오면 다를 수 있겠네요.


천제누구: 그게 첫 번째 재미이자 스피드런을 왜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 될 것 같고요. 두 번째는 아까 연구 같다는 말씀을 해 주셨잖아요. 그런데 스피드런이라는 장르가 생각보다 그 연구라는 것에 많이 부합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릴 적에 막 항상 질문을 하잖아요. 수학을 왜 배울까, 물리와 화학을 왜 배울까. 그런 질문을 공학적인 접근으로 본다면 내가 필요한 만큼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컵을 밀어서 떨어뜨려야 한다면,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컵을 들거나 밀어야겠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공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최소한의 에너지원을 들여서 컵을 떨어뜨려야 되는 것이고, 거기서부터 물리가 들어가는 거거든요. 이 컵은 무게가 얼마고 이렇게 힘을 들 때 마찰력이 얼마니까, 이만큼의 힘을 얼마간 주면 떨어지겠구나.


 게임도,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 ‘시간'이라는 목표가 들어가게 되면 그것의 최소 조건을 고려하게 돼요. 그러면 이제 거기서부터 여러 가지 이론이 펼쳐지는 거죠. 이 게임을 이렇게 가면 더 쉽다더라, 조금 돌아가는 것 같아도 더 강화되는 이 아이템을 먹고 가는 게 더 빠르다더라, 이런 게 각각의 스피드러너들이 달리면서 공유가 되고. 이걸 합산하다 보면 거기서 점점 발달하는 거거든요. 이게 마치 과학계랑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이 사람이 이런 논문 내고, 저 사람이 저런 논문 내고 하다가 어느 순간 이런 논문을 조합해봤더니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 것처럼. 스피드런이 기록을 냈을 때의 성취감도 있지만,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방금처럼 내가 스스로 연구를 하고 그것을 실증해내는 것 자체가 엄청 재미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월드 레코드가 성취의 즐거움이라면, 지금 말씀해 주신 건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설계했던 어떤 이론이 실제로 구현됐을 때의 과정의 즐거움이네요. 그런데 스피드런 레코드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시간이 엄청 들지 않나요? 실제 플레이하셨을 시간은 영상으로 보는 분량의 100배는 넘을 것 같은데요.


천제누구: 그게 사실 ‘효율의 비효율’인데요(웃음). 아까 스피드런은 ‘확률’이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스피드런이 이론적으로는 분명히 되고 실수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유를 모르겠지만 안 될 때가 있어요. 내가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거나 그냥 내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안 되는 경우도 있구요. 예전에 제가 <세키로> 기록을 냈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래서 제가 짜증을 많이 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니까 영상 댓글에 달리더라고요, ‘이 사람 그냥 좀 더 이성을 찾고 침착하게 하면 기록 세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사소한 걸 자꾸 짜증 내는지 모르겠다'. 아마 생방송을 풀로 보셨던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말을 못하실 거에요(웃음). 하지만 그렇게 반복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플레이가 점점 다듬어 지게 되고, 기록이라는 결과물도 더 빛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올림픽 100m만 해도, 정말 그 100m를 위해 1만 미터 정도는 더 뛸 텐데. 그 중간 과정은 사람들이 모르지 않습니까?


천제누구: 그렇죠. 그래서 저는 더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더라도 그냥 무지성으로 계속하기는 사실 쉽지 않아요. 근데 ‘시간’이라는 목적이나 목표가 생기게 되면 하나의 게임도 엄청 오래 즐길 수 있거든요. 스피드런 플레이가 마냥 내가 힘들기만 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그동안 기존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아낼 때도 있고, ‘정말 이 게임은 더 이상 개발할 게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항상 뭔가 새로운 방법들이 또 나오게 돼요. 그런 변화를 익혀서 나 자신이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볼 수 있게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이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몇몇 게임들은 스피드런 대회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상금 같은 게 좀 있나요?


천제누구: 예를 들면 SSM(Super Speedrun Marathon)이라고 국내 분이 주최하시는 스피드런 행사가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GDQ(Games Done Quick)라는 게 있습니다. 스피드런 행사는 보통은 모금이나 기부 행사 형식으로 하거든요. 플레이 타임 2~30분 정도의 짧은 게임이라면 대결 같은 걸 해서 상금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도 이미 그 사람이 얼마나 잘하는지 기록으로 나와 있다 보니까. 주최자가 개인적인 상금을 거는 것 외에는 대회보다 행사 같은 게 좀 더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죠.

     


이경혁 편집장: 스피드런 자체가 ‘대결’이라는 게 성립을 하기가 조금 애매한 것 같기도 합니다.


천제누구: 스피드런이라는 게 육상과는 다르게 여러 번 시도를 해서 그 중 하나의 완벽한 결과물을 도출하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스피드런 빌드라는 것도 안정성이 보장되서 결과가 딱 나온다기보다는 어느정도 확률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서요. 이런 랜덤적인 요소를 RNG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확률상으로는 정말 안 좋은 경우의 수가 나오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는 상황이 있을 수가 있어요. 대결 전용 빌드를 따로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특정 게임에서는 아예 안 쓰면 안 되는 빌드들이 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스피드런 같은 경우엔 (대회보다) 행사 쪽으로 더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아까 연구 얘기를 잠깐 하셨지만,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여기도 정말 학계랑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국내에도 스피드러너들 사이 네트워크 같은 것들도 있을까요?


천제누구: 국내 스피드러너 자체가 좀 적다 보니까, 가끔씩 제가 하는 스피드런 사이트에 한국 분이 올라오면 찾아보기도 하고 친해지면 종종 방송에 놀러가기도 해요. 그런데 일종의 학문의 갈래라고 해야 되나요? 게임도 그런 갈래가 많다 보니까 각자 다릅니다. 제가 <레지던트 이블>이나 소울류를 많이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슈퍼마리오>에 소양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다만 자기 분야 내에서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정보 공유를 해야 되니까 자주 만납니다. 사실 스피드러너끼리 기록을 경쟁한다고 해서 서로 ‘내 거 절대 안 보여줄 거야' 이런 건 애초에 없어요. 내가 스피드런 사이트에 결과물을 등록하면 어차피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이라서요. 그러다 보니 어떤 새로운 스피드런을 만들었어도 특허 같은 게 딱히 있는 건 아니에요. 


이경혁 편집장: 한 게임만 파는 사람들 중에는 스피드런 말고도 ‘노히트 플레이’ 같은 쪽도 있을텐데, 이런 분야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천제누구: 그렇죠, 그런 걸 ‘제약 플레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요. 제가 최근에 플레이한 <P의 거짓>은 스피드런과 동시에 노히트 플레이도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스피드런도 확률을 높이기 위해 정확하게 상대방의 행동 원리를 파악해야 될 때가 있다 보니 노히트와도 연결이 돼요. 스피드러너들이 노히트 플레이를 보면서 적의 패턴을 파악하기도 하고, 역으로 노히트 플레이어들이 스피드런을 보면서 공격을 스킵하는 방식을 참고하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뭔가 순수학문과 공학이 만나는 것처럼,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게임 시스템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만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도 그래서 예전에 <P의 거짓> 스피드런 할 때 노히트 하시는 분들 거 많이 봤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스피드런 분야의 가장 원조격인 게임이 저는 <슈퍼마리오>인 것 같거든요. 슈퍼마리오 스피드런을 보면 글리치를 엄청 쓰잖아요? 스피드러너에게 ’글리치'라는 건 어떤가요? 글리치를 쓰는 사람도 있고, 글리치를 빼야 한다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천제누구: 글리치는요, ‘가능성’이죠. 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스피드런에 대한 이미지나 인식이 아직 크게 없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요. 사람들이 가끔씩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스피드런은 이렇게 해야 되는 건가요?' ‘스피드런에서 이것도 써도 되나요?' ’이걸 쓰면 스피드런이 아닌가요?' 사실 이게 의미가 없는 게, 아까 100m 달리기를 예시로 들었었는데요. 저희가 마라톤이나 500m 달리기, 장애물 달리기를 달리기가 아니라 하지 않잖아요. 스피드런도 보면 글리치를 쓰는 쪽과 글리치를 안 쓰는(글리치리스) 카테고리가 있어요. 내가 글리치가 싫다면 글리치 안 쓰는 카테고리를 보면 되고, 내가 글리치가 재미있다면 글리치 쓰는 카테고리를 재밌게 즐기면 됩니다.


 글리치 런의 경우, 스피드런을 보시는 분들은 보통 '여기서 글리치를 쓰니까 이렇게 됐네, 와 신기하다' 하고 끝나잖아요. 사실 이게 중간 과정이 다 있어요. 예를 들어 특정 구간에서 벽이 뚫리는 걸 발견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거고, 벽이 뚫리는 걸 보고 나서 스피드런 빌드를 개발하는 사람이 또 따라오고요. 누가 빌드를 개발해 놓으면 내가 한번 이걸 써볼까 해서 실제로 기록 세워놓는 사람은 또 따로 있어요. ‘글리치를 안 쓰면 재미가 없다’는 하는 사람들은 그런 글리치마저 새로운 가능성으로 즐기는 거라 할 수 있죠.그리고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쉬운 ‘얍삽이’만 글리치가 아닙니다. 물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글리치도 있지만 발동 자체가 어려운 글리치도 수두룩합니다. 특히 스피드런에서 글리치를 사용할 때는 안정적으로 사용해야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고 글리치를 쓰는 연습을 정말 많이 해야 합니다. 또 특정 구간을 스킵하는 글리치가 있다고 하면, 소울류 같은 게임은 얻어야 할 능력치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한 스펙으로 보스를 잡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가끔 런을 하면서도 ‘누가 이런 글리치를 발견해서 나를 힘들게 하나’ 라거나 ‘차라리 맘편하게 글리치리스 런을 하는게 낫겠다’ 는 생각은 정말 심심치 않게 드는 생각입니다. 어떤 것이 더 쉬운지 어려운지를 떠나서 각 카테고리별로 어려움이 분명 존재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하나 더 생각나는 사례가 있는데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보면 쐐기돌 던전이라고 있어요. 옛날에는 그냥 던전에 들어가서 아이템을 먹는 게 목적이었는데 요새는 던전을 몇 초 안에 끝낼 수 있는가가 새로운 콘텐츠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이런 게 전통적인 의미의 스피드런보다는 ‘캐주얼한 스피드런'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스피드런이 지금 한국에서 별로 메이저하지 않은 이유는 캐주얼하지 않아서일까? 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는데. 혹시 여기에 대해서는 좀 어떻게 보세요? 오리지널하고 하드코어한 스피드런이 있다면 캐주얼한 스피드런이라는게 있고, 그렇다면 만약에 그게 인기를 끌 수 있는 걸까?


천제누구: 우선 저는 그렇게 협력해서 하는 스피드런도 절대 캐주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면 거기서도 시간을 경쟁하는 것이다 보니 전술적으로 나름대로의 고민을 하게 되거든요. 제가 가끔씩 방송에서 하는 말이 있는데, ‘이 게임도 스피드런이 되나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때 농담식으로 ‘Rule 3334’ 라는 게 있는데, 모든 게임에는 스피드런이 있다고 말을 해요. 스피드런 카테고리에 관해 아까 잠깐 언급을 했었잖아요. 글리치 런과 글리치리스 런이 있듯이, 난이도마다도 카테고리가 나눠져 있어요. 예를 들면 ‘뉴게임’이라는 카테고리는 특전이 없는 특수한 초회차 플레이이고. DLC 혹은 다회차 플레이를 해야 하는 스피드런을 ‘뉴게임 플러스’라고 하는 데 그것 역시 스피드런이지요. <니어 오토마타> 같은 경우처럼 모든 엔딩을 보려면 수없이 다회차 플레이를 해야 하는 ‘올 엔딩’ 카테고리도 있어요.


 뭔가 우리나라는 아직 '스피드런은 이래야 된다' 는 인식이 있거든요. 스피드런이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종목이라기보다는, 잘 하는 사람들이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 짱잘해' 하면서 보여주는 장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사실. 그러다 보니 스피드런은 썩을 대로 썩은 고인물들이 마지막에 즐기는 콘텐츠라는 인식이 있는데. 쉬운 난이도로 하는 플레이도 모두 스피드런의 장르거든요. 실제로 스피드런 사이트에 가면 제가 1시간 반 만에 깬 게임을 4-5시간 만에 깨는데도 기록에 그냥 신청하는 사람도 있어요. 순위권에 들어가야지만 스피드런이 아니고, 그냥 시간을 더 줄이고 싶어서 기록을 재서 올리고 싶다면 그것도 스피드런이라는 범주에 충분히 포함돼요.

 


이경혁 편집장: 정말 달리기랑 비슷하네요. 저도 달리기를 되게 좋아하는데, 뭐 제 덩치로 빨리 뛰겠습니까? (웃음) 그냥 뛰는 게 재밌는 거거든요. ‘무슨 8시간 플레이한 게 어떻게 스피드런이냐' 그런 문화도 있는데, 정작 스피드런 뛰시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신다는 게 되게 핵심인 것 같아요.


 근데 완전히 그걸 모르는 사람 입장이라고 가정하고 제가 질문을 해볼게요. ‘아니, 게임은 그냥 재밌자고 하는 건데 스피드런처럼 공부하듯이 파고 들어서 하는 게 재미라고 할 수 있나?' 이런 입장에서 질문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대답을 하시나요?


천제누구: 어떻게 보면 원래 있던 게임을 단순히 즐기는 거에서 한 발짝 더 나가는 거다 보니 그런 질문도 있을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예를 들어 리듬 게임을 깊게 파는 사람들이 있다면, 리듬 게임이 재미없다던가 나는 그렇게 어려운 건 못 하겠다는 반응은 있지만, ‘리듬 게임을 왜 하냐?' 이러지는 않잖아요. 스팀에서도 업적이라는 게 있잖아요, 업적이 재미있어서 업적 플레이를 한다면 그걸 왜 하냐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오히려 ‘그럴 수 있지, 업적도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지'라고 말하죠. 사실 현재 스피드런에 대한 인식이 그 부분에서 다르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되어 있지 않고 뭔가 특이하게 하는 콘텐츠라는 이미지가 너무 많다 보니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걸 잘 이해해 주지 않는 경향이 좀 있지 않나.


     

이경혁 편집장: 스피드런은 일종의 선입견을 쓰고 있는 느낌이네요. 정말 자기 만족에 가까운 플레이 방법인데도요. 약간 억울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천제누구: (웃음) 억울하기보다는 빨리 이거를 좀 터뜨리고 싶다? 이런 것도 스피드런이다, 스피드런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게 있죠. 제가 열심히 기록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으면, '아니 이거 왜 이렇게 열심히 하시나요, 어디 대회 나가려고 하시나요', ‘스피드런 사이트에서 월드 레코드 먹으면 뭐가 있나요' 라고들 하시는데 기본적으로는 자기 만족이다.  저 같은 경우 방송 쪽에 욕심이 좀더 있으니까 요즘은 많이들 더 봐주실 만한 게임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사실 저도 좀 아쉬워요. 종종 하나의 게임만 진짜 오래 하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스피드런을 연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런 분들은 한 분야만 계속 연구하신 분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 분들이 제 입장에서는 참 존경스러워요. 한 가지 게임을 계속 플레이 하시면서 현재 기록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해서 시간을 줄이시는 분들을 제가 개인적으로 좀더 높게 여기는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사실 그래서 이건 제 바람인데, 스피드런을 그냥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종류로 봐주시면 좋겠다. 단순한 고인물 콘텐츠보다는 좀 넓은 의미로 스피드런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 정도 결론으로 마무리해 보면 좋을 것 같네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을 조금 더 들여다 파보고, 각각의 톱니바퀴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계산하는 그 재미. 그게 스피드런의 정수라고 얘기해 볼 수 있겠네요.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는데, 혹시 추가로 말씀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을까요?


천제누구: 제가 거의 스피드런 포교사처럼 인터뷰를 했잖아요(웃음). 사실 게임을 잘한다는 말은 굉장히 추상적입니다. 한 게임의 고인물이라는 말도 얼마나 고인물인데? 라는 질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단 말이죠. 하지만 스피드런은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록을 세운다면 당당하게 한국 1등, 당당하게 세계 1등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두근거리지 않나요? 단순히 그냥 즐기는 것을 넘어서 내가 노력한 결과가 하나의 객관화된 데이터로 나오는 것도 스피드런의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혹시라도 인터뷰를 읽으시는 분들이 있으면 <speedrun.com>을 한번 검색해 보시라고 하고 싶어요. 거기에서 뭐든지 본인이 좋아하는 게임을 한번 그냥 검색해 보시라. 글리치가 싫으신 분들은 글리치리스를 선택하시고, 글리치가 좋으면 애니퍼센트(Any%)를 선택하셔서 본인이 좋아하는 게임을 한번 봐보셨으면 해요. 그러다가 어떤 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으면 시도를 한번 해볼 수도 있겠죠? 하다 보면 ‘이 사람은 여기서 이렇게 했을 때 그냥 됐는데 왜 나는 안 되지' 이런 게 몇 개 있어요. 이제 거기서부터는 이론의 영역이 됩니다. 거기에서 더 궁금하시다면, 스피드런 사이트 내 해당 게임 디스코드 링크에 들어가서 한번 물어보면 거기 계신 분들이 신나서 가르쳐 주실 겁니다(웃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스피드런의 매력 중 하나는 이론을 통해 플레이를 구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제가 계속 위에서 연구와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했잖아요? 저는 화학과를 나왔는데 과목 중에 실험과목이 있습니다. 실험 조교가 알려주는 실험방법과 이론은 동일하지만 나중에 결과를 보면 각 조의 숙련도에 따라서 기댓값대로 나오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제대로 따라하면 기댓값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겁니다. 스피드런 빌드는 어쨌든 ‘빅데이터’입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연구와 시행착오를 통해서 이론과 빌드를 쌓아 올립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이론을 찾아보시면 스피드런 플레이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니라 이해가 되고 연습하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단지 그것을 내 손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연습은 필수겠지만 말이죠. 제가 방송중에 종종 말하는 ‘여러분들도 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은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스피드런의 매력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고 많이 시도해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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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자)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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