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Back

[고스트] 시리즈: 찬바라의 뒤섞인 계보 위에서 패링하기

30

GG Vol. 

26. 6. 10.

찬바라(ちゃんばら)는 칼이 부딪히는 소리의 의성어 ‘찬찬(ちゃんちゃん)’ 소리와 피가 흩뿌려지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바라바라(ばらばら)’가 합쳐진 말이다. 본래 마구잡이로 제작되던 에도 막부 시대 배경의 시대극들을 폄하하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사무라이나 닌자 등이 냉병기로 액션을 벌이는 영화, 소설, 게임, 연극 등을 포괄하는 장르 명칭으로 사용된다. 스펀지검이나 튜브 무기를 사용하는 스포츠 찬바라도 있으니, 용어 자체는 장르나 매체를 가리지 않고 널리 사용된다 할 수 있겠다.

     

찬바라물이 처음 대중적으로 사용된 것은 일본 영화산업의 여명기인 1920년대부터 1945년 패전까지의 시기다. 19세기 말에도 찬바라 연극이 존재하긴 했으나, 무성영화 시기부터 대량생산된 시대극들이 칼싸움을 주된 소재 삼으며 대중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일본제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한 시기, 찬바라 시대극은 ‘무사도’를 강조하는 내셔널리즘 프로파간다로 이용되기도 했다. 통계에 따르면 1908년부터 패전까지 일본에서 6,000편의 시대극이 제작되었으며, 이는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다[1]. 물론 이 모두가 찬바라 영화는 아니었겠지만.

     

* 아케이드 게임 [찬바라] 포스터(위)와 PS2로 발매된 [오네찬바라] 커버(아래)

     

때문에 찬바라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대중문화의 하위장르로 볼 수 있다. 찬바라를 적극 수용한 게임도 다채로운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1980년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 [사무라이](侍, 1979), 데이터 이스트의 제목부터 [찬바라](ちゃんばら)인 횡스크롤 액션 게임부터 [사무라이 스피리츠](サムライスピリッツ, 1993), [부시도 블레이드](ブシドーブレード, 1997) 등의 대전 격투 게임, 닌자 잠입 액션을 표방한 [천주](天誅, 1998), 최근의 [세키로: 쉐도우 다이 트와이스](セキロ: シャドウズ ダイ トゥワイス, 2019)까지, 사무라이와 닌자를 주인공 삼은 대부분의 액션 게임을 찬바라 게임의 범주에 집어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미소녀 좀비 액션을 표방한 [오네찬바라](お姉チャンバラ, 2004) 같은 게임도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계보 그리기의 출발점을 게임 바깥으로 삼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찬바라는 20세기 초반 영화(와 몇몇 소설)를 통해 대중문화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멸칭으로 쓰였으나 작품이 누적되며 장르로 자리 잡은 익스플로이테이션(exploitation)의 계보에서, 찬바라는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4의 마지막 독점작인 [고스트 오브 쓰시마](Ghost of Tsushima, 2020)와 후속작 [고스트 오브 요테이](Ghost of Yotei, 2025)는 대중문화에 자리 잡은 찬바라 장르의 가장 최신작들이라 할 수 있다. 두 게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네이트 폭스는 『아들을 동반한 검객』(子連れ狼, 1970~1976)이나 『우사기 요짐보』(兎用心棒, 1984~) 등 유년기 시절 본 찬바라 만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영역이 아니기에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무라이 참프루>(サムライチャンプルー, 2004~2005) 등의 애니메이션, 『블리치』(ブリーチ, 2001~2016)나 최근의 초대형 히트작 『귀멸의 칼날』(鬼滅の刃, 2016~2020) 등의 만화도 찬바라 장르를 표방하거나 그 영향권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게임 스튜디오인 써커펀치에서 찬바라 게임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 이들이 주요 레퍼런스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대중문화의 영역 전반에 흩뿌려진 찬바라를 하나의 계보로 묶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고스트 오브 쓰시마]와 [고스트 오브 요테이]를 플레이하며 감각하게 되는 찬바라의 특징, 혹은 찬바라의 영향 속에서 탄생한 스파게티 웨스턴 등의 서부극과 그것이 다시금 일본으로 돌아와 파생된 일본식 서부극 사이에서 영화와 게임을 오가는 미완의 계보를 그려볼 수는 있다.

     


서부극에서 찬바라, 다시 서부극으로


패전 이후 미군정에 의해 검술을 비롯한 무술이 영화에 묘사되는 것을 금지당했던 일본에서 찬바라 영화가 다시금 부흥한 것은 구로사와 아키라를 통해서다. 1952년 미군정의 검열이 해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 1954)가 개봉한다. 몇 해 전 <라쇼몽>(羅生門, 1950)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그랑프리를 거머쥔 구로사와였기에, 그가 제작한 또 한편의 걸작은 평단은 물론 대중까지 곧장 사로잡았다. 구로사와는 자신의 찬바라 영화, 미후네 토시로가 연기한 사무라이가 주인공인 일련의 영화들이 할리우드 서부극의 영향을 받았음을 감추지 않는다. 찬바라 영화가 일본 대중을 사로잡던 20세기 초반, 그와 함께 흥행했던 장르는 단연 서부극이었다. 무성영화 시대부터 패전 이후 미군정기까지, 서부극은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장 히트한 영화 상품이었다. 구로사와 또한 이 시기의 서부극들을 자신의 주된 모티프로 삼는다.

     

* <7인의 사무라이>(위)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아래)

이를테면 마을 주민들과 산적이 대치하는 상황을 낭인(로닌, ろうにん)에 가까운 사무라이가 돕는다는 설정은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 1946) 같은 작품을 즉각 떠오르게끔 한다. 서부극은 아니지만,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How Green Was My Valley, 1941)의 장면을 <7인의 사무라이>에 따오기도 한다. 방랑하던 낭인이 최후의 결투 직후 떠나는 <요짐보>(用心棒, 1961)나 <츠바키 산주로>(椿三十郎, 1962)의 장면에선 역시 존 포드의 <역마차>(Stagecoach, 1939)뿐 아니라 조지 스티븐스의 <셰인>(Shane, 1953)과 프레드 진네만의 <하이 눈>(High Noon, 1952) 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거미집의 성>(蜘蛛巣城, 1957) 같은 전쟁영화나 <숨은 요새의 세 악인>(隠し砦の三悪人, 1958) 같은 활극에서도 구로사와는 미후네 토시로에게 카타나를 쥐어주고 휘두르게 했다. 존 포드의 영화에서 존 웨인의 형상이 그랬던 것처럼, 구로사와는 미후네의 야성적인 면모를 자신의 영화 속 안티히어로의 표상으로 삼았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쏜 찬바라 영화 부활의 신호탄에 화답하듯 몇 편의 찬바라 시리즈가 연이어 등장한다. 카츠 신타로 주연의 <자토이치>(座頭市, 1962)는 맹인 검객을 주인공 삼으며, 26편의 후속작과 기타노 다케시 연출/주연의 리메이크작으로까지 이어진다. 자토이치를 연기한 카츠 신타로가 제작한 <아들을 동반한 검객>(子連れ狼 子を貸し腕貸しつかまつる, 1972)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대형 히트를 기록하며 6편의 영화와 TV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이들 작품은 일본에서의 인기와 더불어, 홍콩의 쿵푸/무협영화, 한국의 권격영화 등과 함께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으로 카테고리화 되어 전 세계에 해적판과 무허가 더빙, 짜깁기 영화 등의 방식으로 유통되곤 했다.

     

물론 베니스 그랑프리 수상자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는 공식적인 배급망을 타고 세계 곳곳에 소개되었고, 유럽과 할리우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는 사실상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 리메이크인 <스타 워즈>(Star Wars, 1977)을 내놓았다. 우주를 배경 삼은 유사-서부극이라는 점에서, 이는 존 포드를 영화적 스승 삼는 구로사와의 영화가 찬바라를 거쳐 다시금 서부극으로 회귀하는 기묘한 계보를 만들어 낸다. 보다 적극적인 수용은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진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기용해 제작한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4)는 <요짐보>를 그대로 차용한다. 각본을 받아든 이스트우드가 읽자마자 <요짐보>를 떠올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니까. 다만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은 구로사와가 만든 찬바라 영화의 껍데기만을 끌어온다. 그는 플롯, 안티히어로 캐릭터, 대결 등 영화의 구성요소만 가져오고 전혀 다른 성격의 영화를 만들어 낸다. 존 포드 서부극이 미국을 그려내는 방식을 일본의 것으로 변용한 구로사와의 영화와는 다르달까.

     

* <요짐보>(위)와 <황야의 무법자>(아래)의 유사한 구도

여하튼 레오네의 영화들을 통해 서부극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무법자 안티히어로 캐릭터가 스파게티 웨스턴의 주류가 되고, 1930~50년대 서부극보다 폭력의 수위가 높아진다. 세르조 코르부치의 <장고>(Django, 1966)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할리우드에서도 <7인의 사무라이>를 직접 리메이크한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 1960)을 내놓는데, 이 작품은 화려한 스타 캐스팅으로 주목받았지만 영화 자체의 파급력은 크지 않았다. 다만 스파게티 웨스턴이나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 1969) 등의 수정주의 서부극과 함께 무수한 아류작을 낳은 영화가 되었지만.

     

구로사와의 찬바라 영화의 영향을 받은 스파게티 웨스턴은 다시금 일본으로 되돌아온다. 1970년대 한국에서 레오네(와 구로사와) 영화의 영향받은 만주 웨스턴이 등장했던 것처럼. 서부극의 클리셰를 잔뜩 끌어온 이타미 주조의 <담뽀뽀>(タンポポ , 1985)는 ‘라멘 웨스턴’을 홍보 문구로 사용하며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한 일본영화의 대응을 보여주었다. <카우보이 비밥>(カウボーイビバップ, 1998)처럼 제목부터 서부극을 의식한 애니메이션이 대형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고, 일본 장르영화의 거장 미이케 다카시는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スキヤキ・ウエスタン ジャンゴ, 2007)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하기까지 했다. 몇 년 전 결말을 맞이한 만화 『골든 카무이』(ゴールデンカムイ, 2014~2022)는 훗카이도를 배경 삼고 아이누족을 주요 캐릭터로 등장시키는 일본 웨스턴의 전통을 이어가기도 했다.

     


문화적 용광로 혹은 키메라로서의 찬바라


그러니까… 서부극과 찬바라를 오가는 계보를 그려내는 작업은 어떤 난감함을 초래한다. 앞서 언급한 무수한 영화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영화들의 계보를 그려내는 것은 가능하긴 하지만 어느샌가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미로찾기나 다름없다. 홍콩 무협영화의 걸작 <외팔이>(獨臂刀, 1967)과 일종의 콜라보를 시도한 시리즈의 22번째 영화 <자토이치 - 부셔라! 중국검>(新座頭市 破れ!唐人剣, 1971)[2]처럼 국경을 넘어 장르가 뒤섞이기도 하고, 앞서 본 것처럼 장르의 수입과 역수입의 반복 속에서 다양한 변종이 탄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본의 패전 이전의 찬바라 영화들이 무사도를 주제로 내세웠던 것과 달리, 구로사와 이후의 찬바라 영화들은 (수정주의 서부극들이 그러했듯) 무사도에 내재된 잔혹한 폭력성과 유독한 남성성을 폭로하고, 잔존한 봉건주의의 흔적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할복을 소재 삼은 고바야시 마사키의 <할복>(切腹, 1962)이나 무사도에 기반한 전체주의를 비판한 <무사도 잔혹 이야기>(武士道殘酷物語, 1963) 등이 구로사와의 찬바라 영화들과 비슷한 시기 등장했다. 에도 막부 말기 사라져가는 사무라이를 그려낸 <황혼의 사무라이>(たそがれ清兵衛, 2002)나 무사도에 기반한 남성 호모소셜을 다룬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御法度, 1999), 이와 유사하게 센고쿠 시대 사무라이 집단 내에서의 (성적) 폭력을 다룬 기타노 다케시의 <목>(首, 2023) 등 무사도에 비판적인 찬바라 영화는 현재까지도 등장하고 있다.

     

* 이소룡의 노란 옷에 찬바라의 카타나를 뒤섞은 <킬 빌> 포스터(위)와 오리엔탈리즘의 상징으로 사무라이를 끌어온 대표적 사례인 <47 로닌> 포스터(아래)

다른 한편으로, 사무라이라는 표상이 이전과 같지 않게 된 상황에서 무사도는 찬바라가 아닌 대상으로 옮겨간다. 1971년 시작된 전대물 <가면 라이더>(仮面ライダー) 시리즈는 여타 전대물보다 높은 나이대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찬바라 영화, 혹은 스파게티 웨스턴의 무법자와 유사한 스타일의 다크히어로를 선보인다. 시리즈의 몇몇 외전은 아예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염두에 두고 찬바라 스타일의 고어와 유혈을 선보이기도 한다. 일본 내에서 찬바라가 전대물로 변형된다면, 일본 바깥에서 찬바라는 오리엔탈리즘, 와패니즘의 대표적 상징이 된다. 미후네 토시로가 출연한 스파게티 웨스턴 <레드 선>(Sole rosso, 1972)에서는 서부 사막에 뜬금없이 사무라이가 등장한다.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The Last Samurai, 2003)에서 사무라이는 서부극의 ‘인디언’과 정확히 같은 위치에 놓인다. 찬바라는 물론 쿵푸영화나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등을 마구잡이로 뒤섞은 타란티노의 <킬 빌 - 1부>(Kill Bill: Volume 1, 2003)는 구로사와의 영화들부터 <자토이치>, <수라설희>(修羅雪姬, 1973), <문신일대>(刺靑一代, 1965) [3]등을 오마주한다. 물론 이런 성공한 영화들 외에도 키아누 리브스가 출연한 <47 로닌>(47 Ronin, 2013)이나 <더 울버린>(The Wolverine, 2013)의 빌런 ‘실버 사무라이’ 같은 사례도 있지만… 이런 사례는 말하자면 끝이 없다.

     

그러니까, 찬바라는 이제 무사도와는 관계없는 장르 혹은 표상이 되었다. 울버린과 실버 사무라이의 대결에서 어떤 무사도를 느낄 수 있는가? 그것이 설령 니토베 이나조[4]가 『무사도, 일본의 정신』(Bushido: The Soul of Japan, 1899)에서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왜곡한 무사도일지라도 말이다. 이를테면, [사이버펑크 2077](Cyberpunk 2077, 2020)의 아라사카가 보여주는 무사도적 이미지는 그저 이미지를 취한 것에 불과하다. 아라사카의 ‘카케무샤’인 아담 스매셔의 기괴한 모습은 이미 무사도 같은 것과는 멀찍이 떨어진 것이다. 혹은 <존 윅 4>(John Wick: Chapter 4, 2023)에서 견자단이 연기한 케인이 쿵푸마스터임과 동시에 맹인검객 ‘자토이치’라는 이상한 모순을 드러낸다. 사무라이를 주인공 삼은 [사무라이 스피리츠]나 [부시도 블레이드] 등에서 강조되는 것은 무사도보단 ‘찬바라’ 칼싸움과 그것의 즐거움 뿐이다. 찬바라 영화가 남긴 이미지와 캐릭터들은 액션의 장르나 컨셉을 위해 동원되는 형태소로 분해되고 조립되길 반복하고 있다.

     

* [사이버펑크 2077] 속 일본기업 아라사카의 경호원인 아담 스매셔. 그의 몸을 둘러싼 장갑은 사무라이 갑옷의 디자인을 레퍼런스 삼는다. 더불어 캡처의 카타나는 게임에서 주요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초회차에서 카타나만 써서 엔딩을 봤다….

그러한 지점에서, 미국의 게임제작사 서커펀치가 제작한 두 편의 찬바라 게임은 ‘찬바라’라는 장르가 놓인 복잡한 계보의 지형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가마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1274년 원나라의 대마도 정벌 시도를 주된 소재로 삼는다. 갑작스럽게 대마도에 들이닥친 몽골군에 점령당하자, 전투에서 홀로 생존한 사무라이 사카이 진이 무사도를 버리고 최초의 시노비(닌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몽골군의 압도적인 전력 앞에서, 무사도를 지키며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찬바라와 서부극을 오가며 쌓인 클리셰는 그다지 작동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미후네 토시로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낭인 혹은 무법자가 아니며, 대마도를 통치하는 영주의 조카로 묘사되는 만큼 나름의 권력자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 안에서 찬바라·서부극적 요소라면 무사도를 버리고 일종의 안티히어로인 ‘망령’이 된다는 지점뿐이랄까. 훗카이도를 배경 삼은 후속작 [고스트 오브 요테이]는 보다 찬바라·서부극적인 정취를 적극 끌어온다. 엔니오 모리꼬네 풍의 서부극 음악을 샤미센 등의 악기로 연주한 듯한 음악, 이미 여러 일본 웨스턴의 배경이 되었던 드넓은 훗카이도의 풍경, 나름의 사연을 갖고 고향에 돌아온 낭인 주인공 등, 이야기부터 배경까지 다방면으로 전작보다 앞서 언급한 영화의 계보들을 연상시키게끔 한다. 더불어 두 게임에 등장하는 전투시스템인 ‘대결’이 <요짐보>에서 <황야의 무법자>로 이어진 대결 장면의 촬영 구도를 끌어오는 등 여러 인상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존재하기도 한다.

     

* [고스트 오브 요테이]에서 구로사와·미이케·와타나베 모드를 모두 켜고 플레이한 영상. 필름룩을 본딴 흑백 화면에 과도한 유혈이 낭자한 와중에 재즈풍 음악이 흘러나오는 혼종적 상황이 연출된다.

다만 앞서 말한 찬바라·서부극의 계보 위에 두 게임을 어떻게 위치시킬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두 게임은 자체 제공하는 모드를 통해 스스로의 혼종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엔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와 유사한 질감의 흑백 화면과 사운드를 제공하는 ‘구로사와 모드’가 있다면, [고스트 오브 요테이]는 각각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의 미이케 다카시와 <카우보이 비밥>, <사무라이 참프루>의 와타나베 신이치로에서 따온 모드가 존재한다. 미이케 모드에서는 피와 진흙이 더욱 많이 튀게 되고, 와타나베 모드에선 서부극스러운 음악이 로우파이한 현대적 음악으로 변경된다. 세 가지 모드를 모두 켠 채 게임을 플레이한다면, 찬바라 장르의 누적된 계보를 한번에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상태로 [고스트 오브 요테이]를 플레이하는 것은 꽤나 고역이지만….

     

무사도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사카이 진과 [고스트 오브 요테이]의 아츠는 반대의 방향에서 중간 지점으로 수렴하는 인물들이다. 무사도에 기반한 사무라이인 사카이 진은 패전 이후 서서히 무사도를 버리고 최초의 시노비가 된다. 처음부터 복수심에 불타오르던 아츠는 ‘늑대 무리’라는 동료들, 무엇보다 살아있었는지 몰랐던 쌍둥이 남동생 주베이와의 만남을 통해 (사무라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사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다만 이는 내러티브를 작동시키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이들의 이야기를 깊게 파고들어 분석하는 것은 무사도라는 해묵은 정신성을 파묘하는 것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여기저기 썩어버린 오니 같은 모습일 것이다.

     


찬바라=패링?


무사도는 폐기나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사무라이나 닌자는 다분히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서 단순한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박제되어 버렸다. 이들을 한데 묶는 구심점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찬바라’로 묶어낼 수 있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여기서 다시금 어원으로 되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찬바라로 폄하된 20세기 초반의 일본 시대극에서 관객들이 열광했던 것은 무사도보단 칼싸움 그 자체였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소위 ‘다찌마와리(たちまわり’라 불리는 난투가 찬바라의 핵심에 가깝다. 찬바라의 어원부터 칼과 칼이 부딪히고 피가 흩뿌려지는 상황을 그려낸 의성어의 합성이니 말이다.

     

* ‘찬바라’ 그 자체인 <츠바키 산주로>의 마지막 대결 장면(위)와 [고스트 오브 요테이]의 맞대결 장면(아래)

‘찬찬 바라바라’라는 의성어를 게임 메카닉으로 번역하면 패링일 것이다. 실제로 패링이 처음 등장한 게임으로 알려진 것도 사무라이 대전격투 게임 [진 사무라이 스피리츠 하오마루 지옥변](真SAMURAI SPIRITS 覇王丸地獄変, 1994)이다. 게임 메카닉으로서의 패링은 이후 [킬러 인스팅트 2](Killer Instinct 2, 1996)나 [철권] 시리즈(鉄拳, 1994~) 등의 대전격투 게임을 중심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물론 패링이라는 기술 자체는 중세부터 서양의 검술이나 펜싱 같은 스포츠에 존재했던 것이지만, 그것이 게임 메카닉으로 자리 잡은 것에는 찬바라의 영향이 지대한 셈이다.


* [진 사무라이 스피리츠 하오마루 지옥변]의 패링(위)와 [세키로]에서의 패링 움짤(아래)

     

지금은 대전격투 게임뿐 아니라 거의 모든 액션 게임에서 패링을 찾아볼 수 있다. 냉병기와 방패를 사용하건, 주먹과 발차기가 중심인 게임이건 말이다. 격투와 마법이 뒤섞인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Clair Obscur: Expedition 33, 2025) 같은 JRPG식 턴제 게임에서도 패링은 가장 중요한 시스템으로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패링이 지금의 액션게임 전반에서 패링 시스템을 유행시킨 것은 프롬소프트웨어의 게임들일 것이다. [다크 소울](Dark Souls, 2011)에서 패링을 성공시켰을 때 등장하는 둔탁한 효과음은 강력한 데미지를 먹일 수 있는 ‘앞잡’을 위해 필수적이었다. 다만 극악의 난이도로 유명한 게임답게, [다크 소울]부터 [엘든 링](Elden Ring, 2022)에 이르기까지 패링은 모든 유저의 필수수단이라기보단 고인물의 선택적 플레이 방식에 가까웠다. 흥미로운 지점은 [세키로]다. 프롬소프트웨어의 정통 소울류와는 거리를 두지만, 단일 무기와 체간 시스템을 내세운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액션은 패링이다. 게이머들 사이에선 리듬게임이라 불릴 정도로, 적의 공격 패턴을 그대로 외워 튕겨내는(게임 내에선 패링이 아니라 튕겨내기(deflect)로 해당 액션이 표현되어 있다) 것이 액션의 대부분이다. 패링을 통해 적의 체간 게이지를 채우고 자세를 무너뜨려 일격을 날리는 방식은 [다크 소울] 시리즈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또 다른 형태의 유행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칼을 부딪히며 합을 겨루다가 일격으로 상대를 처치하는 ‘인살’ 액션은 <츠바키 산주로>의 아이코닉한 마지막 장면을 곧장 연상시킨다.



* [고스트 오브 요테이]에서의 패링

     

[고스트 오브 쓰시마] 또한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채택한다. 물론 [세키로]와의 발매일 차이가 1년가량밖에 나지 않기에 세키로의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차용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스트 오브 쓰시마] 역시 패링을 통해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리고 일격을 가한다는 액션 메카닉의 구성은 거의 동일하다. 단지 [세키로]보다 일대다로 대결하는 순간이 많고, 다양한 검술 자세를 익혀 상대의 무기(카타나, 창, 방패 등)에 맞게 대응하는 방식으로 액션이 구성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는 [고스트 오브 요테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사카이 진의 다양한 검술 자세가 아츠에게는 대태도, 사슬낫, 창, 이도류 등 다양한 무기로 대체된다는 차이점만이 존재한다.

     

게임 시스템 중 하나인 ‘맞대결’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주인공과 적의 모습은 찬바라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부극의 것이기도 하다. 2020년대의 시점에서 이것을 구별하여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두 게임의 무대가 대마도와 훗카이도라는, 일본의 ‘본토’가 아닌 지역을 다루는 것은 분명한 서부극의 영향일 것이다. 센고쿠 시대가 아닌 13세기를 택한 [고스트 오브 쓰시마]나, 센고쿠 시대를 다루며 세키가하라 전투와 같은 대전투를 언급하지만 그 중심에서는 한 발 떨어져 있는 [고스트 오브 요테이]는 찬바라 영화의 주요한 두 배경(센고쿠 시대, 에도 막부 시대)을 피하는 방식으로 서부극을 끌어온다. 다만 두 게임을 찬바라로 만들어주는 것은 이 게임의 액션이 패링에 기반한 찬바라 영화의 방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게임 메카닉으로서의 패링이 찬바라의 영향 아래서 등장한 것을, 두 게임은 충실히 계승한다. 그러니까, 결국 두 게임의 핵심은 이것이 칼싸움 게임이라는 것이다.

     

* 위에서부터 <요짐보>의 마지막 결투,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의 결투,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맞대결 장면. 장면 구도의 유사함이 이어진다.
     

찬바라 액션게임에 기대할 수 있는 액션의 즐거움을 풍성하게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두 게임은 성공적이다. 찬바라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을 거쳐 훗카이도에 자리 잡은 서부극적 분위기나 방랑자이자 무법자인 안티히어로의 내러티브 등은 찬바라 액션을 생동감 있게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일련의 껍데기들에 불과하다. 세세히 뜯어보면 이 껍데기들은 충분히 ‘리얼’하지도 않다. [고스트 오브 쓰시마]의 주된 모티프인 원나라의 대마도 정벌은 몽골군뿐 아니라 고려군도 참여했지만, 게임엔 등장하지 않는다. 사카이 진의 갑옷과 카타나의 디자인은 13세기 가마쿠라 시대보단 센고쿠 시대의 것을 따른다. 그것이 게임을 플레이할 이들에게 보다 익숙한 사무라이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고스트 오브 요테이]가 센고쿠 시대를 배경 삼은 여타 게임과 달리 훗카이도를 무대 삼은 것도 아츠라는 한 개인이 사이토 가문과 요테이 육인방을 무찌를 수 있는 합리적인 배경을 제시하기 위함이지, 그 이상의 이유는 발견하기 어렵다. 완성된 게임의 구성은 적절한 찬바라 액션의 다찌마와리를 플레이스테이션 듀얼쇼크/듀얼센스를 통해 플레이하고 감각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골라낸 결과에 가깝다.

     

그러한 맥락에서, ‘찬바라’로 명명되는 장르가 다종다양한 매체를 가로지르며 형성한 계보 위에서 [고스트 오브 쓰시마]와 [고스트 오브 요테이]는 역설적으로 찬바라가 거쳐온 길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무사도라는 국가 기획의 흔적, 서부극과 교환하며 발전한 모티프와 클리셰, 게임 메카닉으로서의 찬바라인 패링. 찬바라는 일본 대중문화 전통의 장르이면서, 동시에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어쨌거나 미국 게임인 두 작품은 그것을 재확인시켜준다.




[1] 김려실, 『일본 영화와 내셔널리즘』, 책세상, 2005, 28쪽.
[2] 여담이지만, 이 작품의 일본 개봉판에선 자토이치의 승리로, 홍콩 개봉판에선 외팔이의 승리로 서로 결말이 달랐다고 한다.
[3] 엄밀히 말하면 사무라이가 아니라 야쿠자가 주인공인 영화이지만, 롱테이크로 담긴 후반부의 칼싸움 장면은 ‘찬바라’의 전형을 따른다고 할 수 있다.
[4] 일본의 사상가이자 교육인, 정치인으로 메이지 시대 일본의 근대화에 힘쓴 국제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구 5,000엔 지폐에 그려진 인물이기도 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이경혁.jpg

(비평가)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이경혁.jpg

​게임세대의 문화담론 플랫폼 게임제너레이션은 크래프톤의 후원으로 게임문화재단이 만들고 있습니다.

gg로고
게임문화재단
KRAFTON_Horizontal_Logo_Black.jpg
드래곤랩 로고

Powered by 

발행처 : (재)게임문화재단  I  발행인 : 유병한  I  편집인 : 조수현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 114, 2층(방배동)  I  등록번호 : 서초마00115호  I  등록일 : 2021.6.28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