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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s View] 전쟁과 게임의 오랜 연에 관하여

    디지털게임의 연원을 찾을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쟁입니다. 놀이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디지털이라는 급격환 전환을 가능케 한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이 부스트한 연산기계의 발전이었고, 생산과 효율을 위해 탄생한 연산기계는 놀이라는 우회로로 경로를 틀며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을 탄생시켰습니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게임 개발자가 바라보는 확률의 구현

    게임에서는 확률이 필수 불가결이라는 의견도 있고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게임에서 확률을 실제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는 알고 있을까? < Back 게임 개발자가 바라보는 확률의 구현 17 GG Vol. 24. 4. 10. 한국 게임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제 중 하나를 고르라면 아마 확률일 것이다. 법적으로 게임 내 확률을 공지가 강제되면서 이러한 규제가 도움이 되는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게임에서는 확률이 필수 불가결이라는 의견도 있고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게임에서 확률을 실제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는 알고 있을까? 게임의 확률 이야기를 하기 위한 기본 교양으로, 프로그래머 관점에서 게임 개발자가 어떻게 확률을 다루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부분을 다뤄보도록 한다. 확률을 설명하는 두 축. 수학과 통계 한국의 교육과정이 계속 변해왔기 때문에 배우는 시기나 범위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의무 교육 과정을 끝까지 수행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확률과 통계를 배우게 된다. 기댓값이나 통계, 독립시행 등의 개념을 굳이 여기서 설명하지는 않는다. 확률은 비단 수학뿐만 아니라 과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개념이고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분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확률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다는 이야기는 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첫 번째는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이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예이긴 하지만 어떤 의사 수술의 성공률이 90%라고 해보자. 그리고 당신이 이 의사에게 수술받는다고 하면 어지간하면 성공할 거로 생각할 것이다. 두 번째는 통계적으로 일어난 일에 대한 확률이다. 앞서 말한 예에서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해 보겠다. 이 의사는 앞에 9번의 수술에 성공했다. 그러면 당신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극단적인 예이지만 수학적인 확률과 통계적인 확률이 차이가 있다는 점만 짚을 수 있으면 넘어가도 무방할 것이다. 다양한 학문과 분야에서 확률을 다루듯이 게임에서도 확률을 일차원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확률 역시 게임개발의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다루며, 크게 의도를 가지고 다루는 곳은 기획과 프로그래밍 분야일 것이다. 기획에서도 어떤 목적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그 목적이 달라지겠지만 크게는 “어떤 일이 얼마나 일어나게 할 것인가”일 것이다. 기획에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숫자를 다루기 위해 확률을 사용한다. 게임 기획에서 확률에 대한 접근 우선 확률이란 주제가 너무 민감하게 다뤄지는 경향이 있어서 앞으로 이야기하는 모든 예시는 게임 개발자가 어떤 속임수의 의도를 가지고 확률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가정하고 시작하도록 하겠다. - 오크 사냥터에서 오크를 100마리를 사냥하면 오크 대검을 한 자루 얻게 세상을 기획하고 싶다면 간단하게 오크 대검의 하락 확률을 1%로 지정하면 된다. - 어떤 사람이 만 원짜리 구매권 20장을 사서 SSR 카드를 1장 뽑게 만들고 싶다면 SSR 카드의 등장 확률을 5%로 하면 된다. - 미사일의 명중률은 상황과 기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전에서는 보통 사용 횟수와 격추 수로 계산하기 때문에 50%를 넘는 경우는 드물다. 현실을 반영하겠다고 미사일의 명중 확률을 50%로 집어넣어 놓을 수도 있다. 물론 현실과 기획은 다르다. 통계로서의 확률은 어디까지나 아주 큰 수에서만 그 수치에 수렴한다. 아주 납작하게 계속 동전을 던진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학습해서 이번에 동전에 앞면이 나왔다 해서 다음에 뒷면이 나올 확률이 올라가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게임 기획자가 50%의 확률로 성공하는 사건을 기획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한번 성공이 반드시 그다음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동전을 던졌을 때 처음 몇 번이 계속 앞에만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횟수가 무한대에 가까워질수록 앞이 나온 숫자가 뒤가 나온 숫자는 점차 같은 비율로 수렴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게임에서 모든 시도를 무한정 하지 않는다. 게임 기획자가 통 크게 강화확률을 ½ 라고 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10번을 시도해도 실패할 수 있다. 계산도 어렵지 않다. ½을 열 번 곱해 계산할 수 있고 그 결괏값은 0.00098 정도고 퍼센티지로 표시하면 0.098 % 정도이다. 0.01 %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만에 하나라는 정도의 확률이다. 만에 하나라는 관용구는 거의 일어나지 않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수학적으로 만에 하나라는 의미는 어떻게 될까. 게임의 이용자 수가 10만 명이라고 하면 통계수치를 그대로 적용하면 적어도 10명은 강화를 연속으로 10번 해도 실패한다는 의미이다. 거의 일어나지 않는 확률이긴 하지만 게임 이용자의 숫자가 10만 명이면 10명은 10번 해도 실패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용자 수가 많아질수록 그 숫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1/2 확률의 실패가 10번 연속으로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일이지만 통계적으로는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확률이 1/2보다 더 낮아지면 이러한 일을 우리는 더 많이 겪게 된다. 게임 기획에서도 이러한 것도 일종의 공정함 아닌가 하고 개입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지만, 점차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을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해 여러가지 기획적인 시도를 하게 되기도 했다. 이부분은 이후 실제 프로그래밍에서 직접적으로 사례를 이야기하겠지만 공격 등에서는 실패할때마다 성공확률을 점차적으로 높여준다던가 드랍률이 낮은 장비등의 경우라면 잡템들을 줘서 모여있는 잡템으로 교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등의 안전망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아날로그 게임에서 확률 다루기 그렇다면 이 확률을 게임에서는 어떻게 다룰까. 굳이 비디오게임이 아니더라도 예전부터 여러 종류의 게임에서 확률을 다뤄왔다. 가장 확실하게 확률을 취급할 수 있는 도구는 역시 주사위였기 때문에 많은 보드게임이나 TRPG에서는 주사위로 확률을 다뤄왔다. 주사위가 없던 어린 친구들은 6각으로 만들어진 연필을 굴리기도 했다. 특히 TRPG에서는 확률을 정교하게 다루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했는데 90년대 '던전 앤 드래곤'을 하려면 흔히 주사위 세트라고 불렀던 4면체부터 20면체까지 (가끔 100면체를 가지고 있는 마스터도 있었다.) 다양한 다면체로 이루어진 주사위가 필요했으며 단순히 주사위를 한번에 하나씩만 사용하지도 않았다. 보드게임 마니아라면 많이 익숙할 '카탄' 카탄에서는 랜덤으로 자원 판을 배치하며 해당 말에 해당하는 숫자를 주사위 2개로 결정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각 자원 판에서 자원이 나올 확률이 차이가 생겨난다. 이 때 주사위의 합으로 숫자를 정하기 때문에 2의 경우는 확률로서는 1/36이.. 7의 경우 1/6 으로 존재며 7의 경우 카탄의 독특한 규칙 중 하나인 도둑이 움직이게 된다. 이로서 게임에서는 자연스럽게 도둑이 가장 많이 선택되게 된다. TRPG에서는 다양한 공격이나 판정을 주사위로 진행하며 보정 또한 일어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암호처럼 느껴질 표기방법 2D6+3 은 6면체 주사위를 2번 굴리고 그에 3을 더해준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보니 무기들에 개성을 주기 위해 다양한 주사위로 사용한다. 바스타드 소드는 공격력이 1D8이고 시미타의 공격력이 2D4 라면 둘 다 최고 데미지는 8이겠지만 바스타드 소드가 데미지가 8이 나올 확률은 1/8 이고 시미타의 데미지가 8이 나올 확률은 1/16이 된다. 언뜻보면 시미타가 나빠 보일수도 있겠지만 최소 데미지는 2이고 중간값이 좀 더 안정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되는 셈이다. TRPG에서는 판정이나 공격 성공등은 이렇게 다양한 주사위를 다양한 개수로, 성공이 힘들게 하거나 쉽게 하는 부분은 또 추가 보정을 통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최근에 출시된 '발더스 게이트 3'에서는 이러한 계산을 굳이 노출하여 색다른 느낌을 연출하기도 했다. * 그림 1:발더스 게이트의 성공판정 확률 계산의 주요한 수단 – 난수 그 뿌리를 TRPG에 둔 만큼 당연히 비디오 게임의 RPG들은 이러한 다양한 확률 계산들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확률이 게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게임 개발자들이 컴퓨터 안에서 직접 확률 굴림을 해야 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확률처리는 난수를 통해 진행이 되었고, 컴퓨터에서 난수를 얻어오는 기능을 게임 프로그래머가 직접 작성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는 않다. 현대에서는 대부분 게임 엔진이나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수학 라이브러리에서 제공하고 있는 랜덤 기능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과거에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현대 게임에서 유니티를 예로 들면 랜덤 데이터는 아래와 같이 가져온다. Random.value 이 코드로 게임 프로그래머는 0~1 사이의 임의의 실수를 가져 올 수 있다. 좀 더 주사위스러운 수를 가져오고 싶다면 Random.Range(0,6) 이런 식으로 6개의 숫자중 하나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진정한 난수를 찾아서 과거부터 일반적으로는 설명한 바 처럼 프로그래밍 언어나 게임 엔진에서 제공하는 난수 생성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게임 프로그래밍의 팁을 다룬 책들 중 전범으로 여겨지는 '게임 프로그래밍 잼스'에서는 난수를 직접 만드는 코너들도 존재한다. 외부 요소 없이 컴퓨터 자체만으로 만들어내는 난수는 진정한 난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컴퓨터에서 생성하는 난수는 의사난수(Pseudo Random) 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 컴퓨터에서 특별한 절차 없이 앞서 언급한 프로그래밍 언어의 수학 라이브러리를 사용하여 난수를 생성하는 경우 똑같은 수를 생성할 때가 있었다. 이처럼 컴퓨터의 난수 생성 과정은 내부에 보유한 거대한 난수표를 통해 이루어지며, 특별한 절차가 없다면 난수표의 시작지점이 동일해 계속 같은 난수를 얻게 된다. 그렇다보니 예전 피처폰용 고스톱을 동시에 시작하면 양쪽 폰에서는 같은 순서의 패의 나열이 만들어져서 한쪽 폰으로 패의 순서를 파악해 다른 쪽의 게임을 쉽게 진행하는 일종의 치팅도 존재했다. 보다 확실하게 난수를 얻기 위해서 복잡하게는 wifi신호의 노이즈를 이용하는 것부터 간단하게는 현재 시간으로 난수표의 시작 지점에 난수를 섞어서 다른 값이 나오도록 하여 진정한 난수를 얻을 수 있게 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보다 확실하게 난수를 얻어야 하는 분야에서는 마우스의 움직임 등으로 난수를 생성하기도 한다. 의사난수를 게임에서 활용하기 전략 게임을 즐겨하는 플레이어들이라면 가끔 1% 명중률을 맞추기 위해서 리셋 노가다를 하는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혹은 명중률 99%로 표시되는 상황에서 공격했는데 빗나가는 우울한 상황을 맞이해서 게임을 꺼버리고 다시 시도하는 경우들도 존재할 것이다. * 그림 2: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의 명중률표기 다시 실행을 하면 새로 계산하면서 공격이 명중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게임을 종료하고.. 혹은 전원을 껐다 켜고 게임을 다시 실행해서 저장한 게임을 다시 불러와서 공격을 시도해도 99%에서도 어이없이 빗나가는 공격 화면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는 게임 개발자들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이미 아주 먼 옛날부터 이런식으로 리셋을 해서 확률을 지배하려는 노력을 게임 플레이어가 해왔기 때문이고 게임 기획자들은 이 것이 자신들이 만든 경험을 온전히 즐기는데 방해된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진정한 랜덤을 위해 시간이든 우주방사선이든 노이즈를 섞어서 난수를 만들어냈다면 안 그래야하는 것 아닌가요? 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을 텐데,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 것도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쉬운 방법이라면 미리 난수를 계산해서 저장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난수가 저장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모르지만 이미 결정이 되어있으므로 마치 운명처럼 어떻게 하든 결괏값은 항상 같을 수도 있다. 아니면 랜덤함수에서 제공하는 Seed라고 부르는 것을 사용하였을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컴퓨터의 의사 난수는 진정한 난수가 아니라 일종의 거대한 난수표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 시작점을 의도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만약에 이 난수의 씨앗 값이 같다면 난수표의 시작 위치가 같아서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오게 할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잡신호를 섞는 것도 사실 이 씨앗 값에 현재 시각, 혹은 전파 잡신호, 마우스 움직임, 온도 등 뭐든지 섞어서 만드는 경우가 보통이다. 같은 랜덤에서 같은 시드값이 주어졌다면 랜덤이 나오는 숫자의 순서는 항상 같을 것이다. 게임에서 난수를 사용하는 것은 확률 뿐이 아닌데, 절차적 생성 또한 이러한 난수를 사용한다. 가끔 아주 적은 세이브 용량에서 거대한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볼 때가 있을 것이다. 간단한 예를 찾아보자면 항상 다른 행성을 만들어 주는 게임인 <노 맨즈 스카이>를 생각해 보자. 절차적 생성에서는 같은 시드값에서는 같은 난수의 배열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시드값만 저장하고 난수를 만드는 알고리즘 혹은 난수표를 같게 사용하여 시드값만으로 게임 세상을 저장하기도 한다. 또는 같은 시드값으로 같은 세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확률 조작과 보정의 사이 앞서 이야기한 확률의 보정에 대해 좀 더 언급해 보도록 하자 * 그림3. 슈퍼로봇대전의 전투전 확률 표기 이런 확률 보정을 그냥 스킬 등으로 대치할 수도 있다. '슈퍼로봇대전'은 반드시 공격을 피하는 스킬인 “섬광”이나 반드시 공격을 맞추는 스킬인 “필중”을 넣어 굳이 게임기를 리셋하지 않더라도 확률을 지배할 수 있게 하였다. 앞서 이야기 했듯 게임 기획에서 굉장히 희소한 가치의 재화 (이는 장비가 될 수도 있고 캐릭터가 될 수도 있다.)가 존재할 수 있다. 한 서버에서 하나만 존재하는 검이 기획 상 존재한다면 어떨까. 이 장비의 드롭확률은 굉장히 낮겠지만 한번 생성되면 그 때부터는 0이 될 것이다. 이 것은 게임 월드의 보정을 위한 확률 보정이다. 가챠에서의 천장을 생각해보자 가챠 게임에서의 확률 보정은 조심스러운 부분이 존재한다. 필연적으로 확률 보정은 복잡한 공식이 필요하며, 이는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금전이 오가는 문제라면 민감한 부분이다. 가챠의 확률 보정은 마케팅을 위한 특정 횟수 (일반적으로 10회) 뽑기를 시도했을 경우 높은 등급의 (최고등급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카드를 한 장 주는 방식과 함께 이용자가 특정 최고 등급 카드를 몇 백 만원을 써도 얻지 못하는 경우를 피하게 해주기 위해서 특정 회수 이상 뽑기를 시도하면 반드시 해당 카드가 나오게 하는 천장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시스템이다. * 그림 4: 페이트 그랜드 오더 스크린샷 – 필자제공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330번 뽑기를 시도해도 카드가 안 나왔을 경우 100% 해당 카드를 제공하는 뽑기 시스템이다. 뽑기를 시도하려면 게임 내 재화가 필요하며 이 재화는 게임을 진행하면서도 얻을 수 있지만 구매로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약 180개가 10만원이며 11번 뽑는데 (1번은 보너스다.) 30개가 필요하다. 대략 10만원으로 66번 뽑는다고 생각하면 적어도 한 캐릭터를 뽑는데 55만원 이상은 쓰지 않게 기획된 것이며 실제로 이 시스템이 적용되는 특정 카드만 뽑을 수 있게 하는 픽업 가챠의 경우 해당 최고 등급 카드의 등장확률은 0.8%이기 때문에 실제 기댓값은 125번 정도 뽑기를 시도하면 (20만원) 한 장 뽑을 수 있게 디자인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10번이상 뽑을 경우 무조건 4성이상 카드가 나오게 되어있기 때문에 실제 수치는 조금 더 작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서 이 금액이 과도한지 아닌지에 대한 가치판단은 하지 않겠다. 강화 역시 확률 보정이 일어나는 쉬운 사례 중 하나인데, 대부분의 장비 강화는 장비가 높은 등급이 될 때마다 확률이 떨어지게 기획되는 경우가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기획은 대부분 명시가 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확률이 낮아지는 것 역시 놓치기 쉽지만 확률의 보정이다. 어떤 사람이 오크를 10마리를 잡으면 열쇠를 얻을 수 있게 열쇠를 얻을 수 있게 열쇠의 드롭 확률을 10%로 잡아놓으면 어떨까. 운 좋은 사람들이라면 한번에 열쇠를 얻었겠지만 운이 없는 사람이면 100번 해도 열쇠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간단하게 오크 머리를 20개를 가져오면 열쇠랑 바꿔주게 기획하는 손쉬운 해결책도 있겠지만 게임 설정상 이 곳은 던전 안이라 오크 머리를 열쇠로 바꿔줄 NPC를 넣을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10번째 오크부터는 열쇠가 나올 확률을 점차적으로 올리거나 아니면 반드시 열쇠가 나오게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반드시 나오는 것보다는 확률을 점차적으로 올리는 것이 좀 더 재미를 주는 기획에 가까울 수도 있다. 퀘스트를 위해 특정 몬스터를 잡으면 아이템을 얻는 경우도 있다. 오크를 잡으면 얻을 수 있는 오크 이빨은 퀘스트에서만 이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퀘스트를 수행중에만 받으며 퀘스트 필요량을 다 채울 경우 필요 없다. 오크 이빨을 다른 사람이 대신 얻어주는 것도 기획에 어긋나기 때문에 오크 이빨은 딱 필요량만 얻어져야한다면 여기서도 확률 보정이 들어간다. 퀘스트를 받으면 오크 이빨이 10%확률로 나오고, 퀘스트의 수를 다 채우면 0%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확률 보정이 게임 안에 존재할 수 있다. 근데 이걸 다 합쳐 놓았다고 상상해보자. 오크 이빨도 나오고 칼도 나오고 열쇠도 나와야 하는데 이 확률 분포들은 100이 이미 넘어갔고 프로그래머는 내부 계산에서 100까지만 계산을 해서 확률 처리를 하게 해 놓았다. 계산식에 의하면 오크 열쇠는 105~115까지의 숫자가 나와야 드롭되는데 프로그래머는 숫자 처리를 100까지만 하게 했다. 여기서 열쇠를 얻어야만 던전을 나갈수 있다. 이런 식의 기획이라도 추가되었다면.. 결말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실수를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렇게 난수를 다루다보면 가끔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정 코드에서 에러가 나는 오류라면 쉽게 해결되지만 1~6까지 숫자가 나와야 하는데 6이 안 나오고 있는 문제는 의외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심지어 6이 적게 나온다면…? 지금은 이러한 실수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 패턴이지만 예전에는 난수를 실숫값이 아니라 정숫값을 얻어올 수도 있었다. 주로 2진법을 사용하는 컴퓨터의 특성상 그 숫자는 최댓값이 십진법이 아니게 되는데, 좀 더 직관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여기서는 8비트, 0부터 255까지만 생각해 보겠다. 만약 임의의 난수가 0~255까지 나온다고 가정하고 우리가 여기서 0~9까지 10개의 숫자를 임의로 얻고 싶다고 할 때 어떤 방법을 쓸까. 컴퓨터에서는 나머지 연산(Mod 흔히 %로 표기)이 있어서 나머지를 통해 쉽게 숫자들을 얻을 수 있다. 근데 이걸 나머지 연산으로 0~9부터 구하면 과연 이 숫자의 분포가 고르게 될까…? 255는 숫자가 작아서 상대적으로 차이가 좀 커 보이지만 0~5까지의 숫자가 다른 숫자보다 경우의 수가 하나씩 더 존재하게 된다. (이 경우 0~5는 사례가 21개, 6~9는 20개씩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런 오류는 찾기 힘들다. 몇 년이 지나서 발견될 수도 있고 게임을 하는 이용자 수가 적어서 개발자도 이용자도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 아니면 적어도 1개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의 확률을 계산하려면 어떨까. 어떤 가상의 게임에서 부활의 물약은 플레이어가 1개는 가지고 있으면 좋으니까 1개는 쉽게 나오고 2개부터는 있으면 좋으니까 좀 어렵게 나오게 만들고 싶다. 그래서 인벤토리에 부활의 물약이 있는지 체크하고 없다면 부활의 물약이 나올 확률을 높여주고 있다면 그때부터는 확률을 점차 줄여나가기로 했다. 이 기획은 잘 동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새로운 기획자가 와서 해당 기능이 있는 것을 보고 이 확률 계산을 10개가 필요한 퀘스트 아이템에 적용했다. 그리고 프로그래머가 만들어 둔 수식대로라면 인벤토리에 아이템이 8개가 되는 순간부터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마이너스가 된다고 하면 어떨까. 누구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 이용자들이 퀘스트 아이템이 모두 8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로 비교해 보면서 깨닫게 되고 이용자 게시판은 불길에 휩싸일 것이다. 현대의 게임은 복잡하고 확률을 다루는 것은 더 복잡하며 프로그래밍에서 레거시라고 부르는 과거의 코드들은 블랙박스처럼 아무도 이게 왜 돌아가는지 모르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프로그래머의 경험으로서는 잘못된 데미지 계산 수식이 1년 동안 동작하고 있었고, 기획자가 잘못된 데미지 계산 수식을 기초로 (경험을 통해) 밸런싱을 하다가 1년 후에 발견하는 바람에 원 기획대로 수정했다가 게임이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개발자가 인간인 이상 실수 없이 완전하게 세상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확률을 게임에서 어떻게 다뤄야 할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얻지 못하게 하는 식의 확률 보정을 하지는 않는다는 가정을 했다. 나는 사기에 가까운 의도의 확률 보정은 게임의 재미를 해치게 만드는 편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로제 카이와는 놀이와 인간에서 게임을 4가지로 분류했고, 그 중 알레아는 확률이 엮여있는 게임을 이야기한다. 모든 게임이 운의 요소를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싱글 게임이라면 상관없지만, 멀티게임이라면 그리고 그 세상에서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재화가 존재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확률로 관리할 수밖에 없다. 아니라면 선착순이란 방법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카트라이더를 스피드전만 하는가. 확률이 노출되면 게임이 더 재밌어질까? 아니면 게임이 더 공정해질까? 그런 부분은 게임마다 다르리라 생각한다. 과거의 MMORPG 이용자 중에서는 레벨이 노출되는 그것조차 거부하면서 자신이 실제 가상의 게임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플레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한테 오크를 때리면 50% 확률로 출혈 효과를 입힐 수 있습니다. 라고 표시를 해준다면 어떻게 느낄까. “어우 깬다.”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확률을 사용한다면, 특히 재화 등에서 확률을 사용한다면, 프로그래머라면 좀 더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물론 게임이 성공하면 발생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해킹이나 돈 복사 등이 아니더라도 실제 게임 내 풀리는 재화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게임 기획자들이 확률 등을 입력해서 적어도 천번 만번 정도를 직접 테스트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계산해서 성공 횟수와 실패 횟수 등을 테스트할 수 있게 해준다면 (물론 기획자들은 이 계산을 엑셀에서 한다! - 하지만 게임 내부의 수식 처리 결과가 과연 같을까…?) 적어도 실수 사례는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필요한 건 주사위를 굴려서 6만 6번 이상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상상력일 것이다. 퍼센티지로 따지자면 0.002 %지만 통계적으로는 5만 번 중 한번 존재할 수 있다. 게임에서는 이 숫자가 적은 게 아니다. 오크를 100마리 잡아 오라는 퀘스트를 던지는 게임에서는 이 숫자가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냥 1만 명이 5번씩만 하면 5만 번이다. 그리고 1만 명 중의 한 명한테는 그게 5번만의 일어난 일이다. 물론 이러한 부조리함조차 현실을 반영한 게임의 재미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일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일을 적어도 잊지는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럼즈펠드 말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언젠가는 더 크게 비용을 치를 수도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적어도 사기는 치지 말자.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최적화하는 재미, 최적화된 세상 - 자동화 시뮬레이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최적화와 효율을 위함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최적화 게임’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산업 자본주의의 최적화를 이뤄온 과정을 따라간다. 물론, 최적화의 재미를 느끼는 게임에서 최적화의 행위를 성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하는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비가시화된 존재들이, 자본주의로 최적화된 우리 사회의 비가시화된 영역을 생각해보게 한다면 그것 또한 게임이 줄 수 있는 의미이지 않을까?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게임이 대체 왜 예술이 되어야 할까?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C. 티 응우옌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윤리학이다. 그는 우리가 게임을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한된 행위성(agency)의 조건을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핵심에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환경,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형식 안에서 머리 싸매는 고투(struggle)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 Back 게임이 대체 왜 예술이 되어야 할까?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12 GG Vol. 23. 6. 10. *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22. 괄호에 숫자로 페이지만 표시한 것은 모두 상기 책의 인용이다. C. 티 응우옌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윤리학이다. 그는 우리가 게임을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한된 행위성(agency)의 조건을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핵심에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환경,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형식 안에서 머리 싸매는 고투(struggle)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응우옌은 이 책에서 이렇게 분투하는 플레이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분석해 나간다. 사람들은 결국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회의론자들의 반박들을 논파하면서 어찌 보면 굉장히 전형적인 서구 철학의 방법론으로 게임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이다. * 『게임: 행위성의 예술』 표지 이미지 응우옌의 논의는 게임 담론 내부의 논쟁뿐만 아니라 철학과 미학, 예술학 등 게임과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담론장까지 면밀히 검토하면서 게임의 미학적 가능성을 설파한다. 그것을 통해 게임을 행위성의 예술이라고 규정하고, 예술로서 게임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다. 책 전반에 깔려있는 철학자 특유의 논법은 (그가 베트남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 철학/미학 담론 안에서만 대부분 작동하는데, 이는 내재적인 논리를 단단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 글에서 논하겠지만 이토록 정교한 논의를 통해서 게임을 예술로 규정해 버리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근본적인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이 책은 차라리 게임의 존재론이거나 게임을 통해서 삶을 대하는 방법을 돌아보는 윤리학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저자는 게임을 통해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까지 생각하도록 만든다. 또한 응우옌이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은 인터페이스 장치 앞에 앉아서 화면을 보고 즐기는 디지털 비디오 게임뿐만 아니라 보드 게임, 등산, 술자리 게임, 나아가 사랑까지 포괄하면서 삶 그 자체까지 나아간다. 앞서 말을 꺼냈듯 분투형 플레이라는 개념은 『게임: 행위성의 예술』의 핵심이다. (분투형 플레이는 응우옌이 고안한 개념이 아니라, 버나드 슈츠의 개념을 가져와 확장하는 것에 가깝다. 책의 초반부의 대부분은 슈츠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분투형 플레이의 회의론자들, 특히 성취형 플레이를 옹호하는 입장을 논파해 나가는 내용이다.) 우리는 게임을 할 때 무조건 이기기만을 원하지 않는다. 때로는 심지어 이겨버리는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76) 게임이 쉬워져서 난이도를 보다 어렵게 조정하는 상황이나 애인과 보드게임을 하는 상황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는 헨리 시지웍의 ‘쾌락주의의 역설’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설명한다. 쾌를 직접적으로 추구하면 오히려 쾌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머리를 비우려고 하면 절대로 머리를 비울 수 없다. 오직 다른 목표에 헌신해야만 그러한 쾌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요가는 특정한 자세를 취하는 육체적인 목표에 집중하는 것을 통해서 손을 뻗어서는 결코 도달하기 어려운 영적 효과에 가닿으려는 행위성의 형식이다. 학부 시절 즐기던 술자리 게임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술자리 게임에서 기를 쓰고 이기려고만 한다면 그 게임은 아무런 재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술자리 게임을 통해 술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서 서로 웃고 친해지는 것이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진짜 목적이다. 〈트위스터〉 같은 게임을 통해서도 분투형 플레이의 중요한 지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제한된 행위성을 통해서 결국 넘어지도록 고안되어 있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일부러 넘어지면 재미가 없어진다. 진짜로 실패하여 넘어졌을 경우에만 재미가 생긴다. 진심으로 게임이 제안하는 어떤 동작을 하려고 최선을 다할 경우에만 진짜 실패가 되어 모두가 크게 웃을 수 있게되는 것이다. 성공을 추구하지만, 실제로 성공에 가치를 두지는 않는다. 이렇게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목표(goal)와 목적(purpose)이 어긋나 있다. 일상 생활에서는 결과를 얻기 위해 수단을 취한다면,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수단을 취하기 위해서 결과를 추구한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그러면서도 일시적인 목표에 제대로 몰입하지 않고, 무관심하다면 게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시적으로 게임 속 목적에 완전히 몰입해야만, 목표는 추구될 수 있다. 게임의 과정을 즐기려면 일시적으로 승리에 대한 관심을 철저하게 장착해야한다. 누군가 게임에 진지하게 몰입하지 못한다면 그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금방 재미를 잃고 만다. 이것이 분투형 플레이의 핵심적인 구조이다. 응우옌은 게임과 사랑을 비교하기도 한다. 사랑의 경우 목표에 대한 진심 어린 헌신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자신의 감정을 도구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릇된 나르시시즘이다. 심할 경우 스토커가 되어버린다. 게임에서 분투형 플레이는 게임 속 목표에 그토록 진정성 있는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목표가 일시적이고 인공적인 형식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부루마블〉을 할 때, 게임 속 씨앗은행 화폐는 너무도 소중한 것이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던 게임이 끝나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종이가 되어버린다. 누군가 부루마블 속 화폐를 계속 소중하게 여겨서 게임이 끝난 뒤에도 마차 상자 안에 넣지 못하고 지니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자. 생각만해도 살짝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논할 때, 오늘날 온라인 게임들의 화폐가 실제 세계의 화폐와 연동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빼놓으면 안 될 것이다. (응우옌의 책에서 이러한 문제는 의도적으로 간과되어 있다.) 한국 맥락에서 〈리니지〉 작업장 같은 사례를 떠올린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게임과 노동의 구분이 사라지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분투형 플레이라는 개념틀을 가지고 게임과 삶의 경계를 오가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다. 게임은 특정한 방식으로 형식화된 환경과 행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게임 속 목표들은 현실과 달리 굉장히 명료하다. 현실에서는 그토록 뚜렷할 수 없는 것들이 게임에서는 목적론적으로 명백한 것으로 재구성된다. 수치화될 수 없는 것을 수치화하기도 한다. 삶을 그 자체로 게임처럼 생각하는 것은 삶의 목적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문제를 낳는다. 이른바 게이미피케이션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다시 돌아와, 분투형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 목표들에 일시적으로 헌신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무심해야 한다.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목표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변덕스러움이 요구된다. 기존의 행위성 관련 논의들은 행위자의 통일성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분투형 플레이는 행위성에 여러 가지 유의미한 불일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100) 행위성이란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긴 시간에 걸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무언가에 대한 일시적인 관심을 장착할 수 있는 인간 행위성의 유동적인 역량과 자율성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이 바로 분투이다.(98) 그렇기에 게임 속 목표가 일회용이라는 점은 게임이 허망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게임라는 매체가 행위성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형식화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측면이 된다. 게임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게임의 목표와 규칙, 그리고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의 제약 체계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환경 등을 고안한다. 게임 플레이어가 취할 수 있는 실천적 행위성, 그리고 플레이어가 맞설 실천적 환경을 통해 특정한 실천적 경험을 조형해 내는 것이다. 이런 형식화의 차원에서 게임을 예술적 매체라고 규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게임 디자이너의 매체는 행위성이다. 하나의 표어로 만들어 보자면, 게임은 행위성의 예술이다.”(35) 예술은 특정한 형식을 가지고 미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응우옌은 마크 로스코의 회화를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그것이 현실의 어떤 부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형식을 통해서 미적 경험을 증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게임은 플레이어가 맞설 실천적 환경과 플레이어가 취할 일시적 행위성을 형식으로 삼아서 우리에게 특정한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아름다움은 행위가 형식화된 제약 속에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게 제한되는 조건이 여기에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게임 디자이너의 형식이기도 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 경기에서 페이커의 플레이가 아름답다고 할 때, 그것은 그 움직임의 절대적인 형태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의 엄밀한 규칙의 체계 안에서 게임의 목표와 관련된 엄청난 행위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문제는 제한된 행위성의 형식 안에서 성공만이 예술적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행위성을 제한하면서 발생하는 실패나 부조화에서도 예술성을 드러난다. 키보드의 QWOP 버튼만을 이용해 다리의 관절을 제각각 조정하여 달리기를 해야하는 게임을 떠올려 보자. 일부러 조작하기 어렵게 만들어진 형식 안에서 제대로 한번 달려보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 자체가 그 게임의 중요한 형식이 되는 것이다. * 베네트 포디(Bennett Foddy)가 2008년에 만든 게임 〈QWOP〉. 출처: https://www.foddy.net/2010/10/qwop/ 게임은 이렇게 특정한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행위의 형식으로서 예술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타당하고, 오늘날 게임과 예술을 둘러싼 논쟁적인 담론에서도 중요한 입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응우옌의 논의를 딛고서 다시, 게임이 왜 예술이 되어야 하는지 묻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예술이라는 범주와 관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필요하다.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면서 음악이나 회화 같은 예술의 매체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은, 모더니즘적 장르 구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오히려 게임을 통해서 예술이라는 영역을, 예술을 통해서 게임이라는 영역을 불안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진이나 영화 같은 매체가 예술에 편입되면서 발생했던 과거의 논쟁들을 변증법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1) 한편으로 이 책에는 니콜라 부리요나 권미원 같이 미술계에서는 낯익은 필자들도 등장한다. 응우옌은 사회적 관계나 공동체에 관련된 예술 형식을 논하는 관점을 게임에 적용하며 니콜라 부리요의 논의를 빌려온다. “예술은 특수한 사회성을 생산하는 공간이다.”라는 니콜라 부리오의 말을 빌려와 게임도 바로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282) 니콜라 부리오는 『관계의 미학』에서 관계를 다루는 예술 작업들이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 이례적이고 특수한 관계적 상황을 창출한다며 옹호한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지는 관계가 ‘작은 유토피아’를 창출한다는 그의 주장은 다양한 차원의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그러한 관계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적대(antagonism)를 은폐하고, 오히려 이데올로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클레어 비숍의 논의는 굉장히 유효한 비판이다. 물론, 응우옌이 책에서 언급하는 게임이 모두 니콜라 부리오식 관계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 만들어내는 행위와 관계를 통해서 적대를 감각할 수 있는 사례들에 대한 언급도 책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브렌다 로메로가 2009년에 만든 보드게임 〈기차〉에서 플레이어들은 기차를 운행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나중에 그 기차가 유태인들을 수용소로 이송하는 나치의 기차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브렌다 로메로(Brenda Romero)가 2009년에 만든 게임 〈기차(Train)〉. 출처: http://brenda.games/train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는 문제에는 저자성의 문제도 있다. (보통 한명의) 예술가가 정해진 미적 형식을 인준하고 통제하는 전통적인 저자성은 굉장히 근대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관념이다. 응우옌의 논의에는 게임을 전형적인 예술의 개념틀에서 비추어 보기 위해 게임 디자이너를 전통적인 예술의 저자로 상정하는 문제가 전반에 깔려있다. 응우옌은 12쪽 각주 2번에서 게임 디자이너가 복수의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을 짚으면서도 논의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한명인 것처럼 상정할 것이라고 쓰는데, 오히려 게임의 저자가 한명일 수 없다는 점을 중요하게 짚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성의 문제는 단지 게임을 제작하는 관점에서만 중요한 논의가 아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저자성에 대한 논의까지 확장해 생각해야한다. 반갑게도 응우옌은 책의 후반부에 게임의 아름다움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에 대한 사유를 펼쳐놓는다. “(미적 책임이란) 게임 디자이너와 플레이어 사이에 복합적으로, 예술가와 관객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분배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책임이 주로 플레이어에게 있고 다른 경우에는 디자이너에게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책임은 복합적인 협업의 형태를 띤다. 이 경우, 게임 디자이너들이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통해서’ 그들이 의도한 미적 효과의 상당수를 성취하고, 그 최종 결과는 디자이너와 플레이어 모두에게 미적으로 귀속된다.”(253) 이러한 언급은 이 책에서 게임의 미적 역능에 대한 가장 중요한 논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디자이너가 의도하지 않은 행위성을 발생시키는 플레이어의 역능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행위성의 제약을 위반하거나 허점을 찾아내는 플레이어들이 있다. 주어진 역량을 의심하고, 게임 자체를 전유해 버리는 플레이어들. 자크 랑시에르의 ‘해방된 관객’을 비틀어 ‘해방된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역능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해방된 플레이어들은 단지 주어진 행위성을 가지고 노는 정도가 아니라, 게임을 아예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서로를 죽여야 하는 역할이 주어진 게임에서 서로를 죽이지 않고 함께 산에 올라 풍경을 감상하는 플레이어들을 떠올린다. 바로 이런 곳에서 미학(감각)의 정치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는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는 것보다 더욱 근본적으로 게임의 미학적 가능성에 대해 사유할 틈을 만들어 낸다. 응우옌의 논의를 이러한 관점과 함께 밀어붙여 볼 수도 있다. 그가 게임과 게임 플레이의 자율성에 대해 논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플레이어는 다른 사람이 고안한 제한된 행위성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모든 행위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화되고 형식화된 행위성이 그곳에 있다는 점이다. 게임은 형식화된 행위성들의 다발이다. 그리고 게이머들은 게임을 통해서 다양한 행위성들의 라이브러리를 탐험하게 된다. 혹은, 서로 다른 게임들을 플레이하면서 여러 가지 행위성들을 넘나들 수 있게 된다. 게임이 행위성을 매체로 삼는 예술이라면, 그것이 서로 다른 행위성 사이를 가로지를 수 있는 특유의 감각을 제공하기 때문에 예술적이다. “(미적인 분투형 플레이는) 우리에게 여러 행위성을 넘나들고, 완전히 상충하는 여러 유형을 오갈 것을 요구한다.”(341) 심지어 플레이어는 서로 다른 행위성 사이의 상충되는 태도를 종합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 플레이어들은 명료하게 조직화된 가치들 사이를 오가며 가치에 대한 어렵고 세심한 질문을 던질 것을 주문받는다. 응우옌이 보기에 게임은 이런 방식으로 명료성과 유혹의 쾌를 폐기한 뒤, 가치를 대하는 세밀함을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 “게임의 구조는 우리의 자율성 전체를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강화할 수 있다.”(125) 게임은 플레이어들을 특정한 방식의 행위성에 순응하도록 만들지만, 우리는 그런 게임을 통해서 행위성 자체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행위성이 제한적으로 형식화되어 있기에 해방적으로 전유할 가능성도 열린다. 응우옌은 우리가 미적인 분투형 플레이를 통해 특정한 실천적 틀에 너무 집착하거나 너무 명료한 목표를 고수하지 않을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어딘가에 푹 빠졌다가 또 빠져나오고, 깊게 몰입했다가도 다시 거리를 두는 방법을 게임을 통해서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이라는 형식화된 행위성을 통해서 행위의 역량 그 자체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또한, 게임이라는 가장 목적론적인 체제를 통해서 세계가 목적론적 수렁에 빨려 들어가는 상황을 다시 감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가능성을 더 넓게 열어내는 일이 『게임: 행위성의 예술』이라는 책을 통해서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1) 이러한 논의를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C. 티 응우옌의 또 다른 논고 「예술은 게임이다: 왜 중요한 건 (예술과의) 고투인가」를 함께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글에서 응우옌은 예술 감상 또한 고투의 과정이라고 쓴다. 예술 감상은 결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예술 감상에 목표(goal)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예술품 앞에서 가이드북이나 미술사 교과서만 읽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예술을 감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 삶이 예술작품으로써 결말이 열려 있는, 끝나지 않는 대화가 되기를 바라지,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논변으로써 끝나버릴 무언가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옮긴이 이동휘의 블로그: http://economic-writings.xyz/text/textblocks1/art_is_a_game.html Tags: 행위성, 응우옌, 행위성의예술, 북리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권태현 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

  • 『중국 학부모』의 과잉 경험과 리얼리즘의 신화

    ‘리얼리즘 게임’이라 불리는 『중국 학부모(中国式家长)』는 서민적인(接地气)1) 콘텐츠 덕분에 “매우 현실적”이고 “삶에 근접해 있다”는 등 일관된 평가를 받았다. 이 게임은 현장 조사에서 얻은 실제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실제 경험을 과잉 경험으로, ‘현실감’을 ‘현장감’으로, 실제 상황을 ‘공감(感同身受)’으로 대체하며, 궁극적으로 사회구조 문제를 가족윤리 문제로 축소한다. 또, “부모를 용서하라”는 감정주의적 결말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게임의 기초적인 설정 - 세대속성의 대물림(다음 세대 아이가 윗세대의 우세속성을 물려받는다) - 이 모든 ‘리얼리즘’ 게임에서도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란 점이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게임의 ‘리얼리즘’은 바로 계급 상승의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과잉 경험과 그 이면에 깔린 리얼리즘의 신화는 『중국 학부모』로 하여금 진짜 문제를 은폐하는 동시에 폭로자가 되도록 한다. < Back 『중국 학부모』의 과잉 경험과 리얼리즘의 신화 11 GG Vol. 23. 4. 10. [편집자주] 비디오 게임은 그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다. 그것에 대해 관찰해 보면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시각을 지닐 수 있다. 문화에 대한 시각과 기술에 대한 시각이 있을 수 있고, 게임을 하는 사람에 대한 시각과 게임개발자에 대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심지어 미디어에 대한 시각과 산업에 대한 시각도 있으며, 최소한 사회변화와 게임의 역사에 대한 시각도 있는데, 이것들은 마치 없어서는 안 될 두 개의 성악 파트처럼, 그 소일거리라는 강바닥에서 지식의 악장을 연주한다. 펑파이신문( www.thepaper.cn )의 ‘아이디어 시장’ 섹션은 인문과 사상조류의 관점에서 오늘날 게임적 현실의 주요한 방향을 최대한 종합적으로 조사 및 파악해 게임 비평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에 매주 토요일 ‘게임론’ 연재를 시작한다.) ‘비평의 방향’, ‘역사의 시선’, ‘문화의 논리’, ‘매체와 현실성의 확장’ 등 다양한 글들이 담긴 연재로서, 한·중·일 관련 분야에서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 연구자, 게임연구에 뜻을 둔 젊은 연구자, 게임업계의 선배들과 종사자 등 업계와 학계 각 방면 게임동호인들의 원고를 모을 것이다. 이를 통해 게임비평의 개념과 관점을 제시하고, 게임비평의 가치·가능성·방향·경로 등을 두고 토론할 것이다. 또, 역사를 지향 삼아 문화와 기술, 동아시아와 글로벌, 현대와 포스트모던 등 맥락에서 게임 역사의 원류와 방향을 드러내고, 게임텍스트와 사회문화 사조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고 탐구하는 것은 게임이 장난감에서 문화미디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특징을 나타낸다. 비판적 시각으로 오늘날 게임 세계의 내부적 원리를 고찰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 게임산업의 독특하고 지배적인 문화생산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게임(산업) 문화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탐색하며, 게임의 전통적 매체에 대한 재생산과 게임을 통한 현실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밖에도 이 연재는 게임과 젠더에 대한 토픽과 게임 ‘진화’의 원동력으로서 젠더를 포함하며, 게임 속의 젠더 의제에 대해 토론할 것이다. 그리고 게임 플레이어들에 대한 여러 기사들, 서버운영자(网管)와 스트리머(主播), 대리게이머(金币农夫; 중국 게임계의 한 현상. 아이템 수집 등으로 일정한 보수를 받으며 게임을 하는 사람들), 따이롄(代练; 온라인 게임에서 누군가의 레벨업을 돕고, 돈을 받는 행위들), e스포츠 선수 등 게임이라는 영역 내 변두리에 있는 이색적인 집단을 소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게임을 매개로 일본과 한국에서 게임비평의 기준점을 제공했거나 제공하고 있는 해외 작품들을 골라 게임 배후의 광범한 구도에 대해 논할 것이다. [역자의 말] 각주는 모두 국내 출간물 표기 또는 역주로, 원문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기하였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리얼리즘 게임’이라 불리는 『중국 학부모(中国式家长)』 는 서민적인(接地气) 1) 콘텐츠 덕분에 “매우 현실적”이고 “삶에 근접해 있다”는 등 일관된 평가를 받았다. 이 게임은 현장 조사에서 얻은 실제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실제 경험을 과잉 경험으로, ‘현실감’을 ‘현장감’으로, 실제 상황을 ‘공감(感同身受)’으로 대체하며, 궁극적으로 사회구조 문제를 가족윤리 문제로 축소한다. 또, “부모를 용서하라”는 감정주의적 결말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게임의 기초적인 설정 - 세대속성의 대물림(다음 세대 아이가 윗세대의 우세속성을 물려받는다) - 이 모든 ‘리얼리즘’ 게임에서도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란 점이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게임의 ‘리얼리즘’은 바로 계급 상승의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과잉 경험과 그 이면에 깔린 리얼리즘의 신화는 『중국 학부모』로 하여금 진짜 문제를 은폐하는 동시에 폭로자가 되도록 한다. 『중국 학부모』는 모위완 게임즈(墨鱼玩游戏, Moyuwan Games)가 제작한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2018년 9월 29일 코코넛아일랜드 게임즈에서 대행해 출시했다. 이 게임이 출시되며 인터넷에선 많은 화제가 일었는데, 가장 인기있는 댓글평에는 “매우 리얼하다”, “실제 삶과 닮았다”, “너무 공감된다” 등이 있다. 『중국 학부모』의 게임 소개 페이지에는 “현실적인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쓰여 있다. 이러한 자기 포지셔닝은 대부분의 게이머가 이 게임에 대해 평가하는 바와 일치한다. 이 게임은 아이가 태어나 대학 입시(高考)를 치르기까지를 따라가는데, 게임의 최종적인 목표 미션은 바로 아이가 만족할만한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에 있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부모와 자녀의 이중 역할을 맡는다. 부모로서의 플레이어는 자녀의 하루 일정을 짜야 하는데, 아이가 공부할 내용과 개발할 기술 등을 결정해야 하며, 자녀로서의 플레이어는 자녀의 시각에서 대인 관계와 문제 해결 등을 진행하고, 학급 임원 선거에 출마하거나 이성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오락용품을 사는 등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게임 플레이 방법으로서는 평범한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보이지만, 게임에 ‘리얼리즘’의 분위기를 채워주는 독특한 ‘중국식’ 가정의 요소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학부모는 자녀를 활용해 이웃이나 친구의 자녀와 ‘체면 대결’을 치러야 하고, 아이는 부모의 체면을 세워줌으로서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춘절 연휴에 친척들과 ‘홍바오 2) 쟁탈전(红包拉锯战)’을 치를 때 홍바오를 너무 빨리 먹으면 친척이 기분 나빠하고, 또 너무 양보하면 어머니가 기분 나빠한다. 홍바오를 가져갈 때 반드시 신중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또, 부모에게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하면 부모는 “어린 애가 무슨 스트레스니?”라고 질책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 수치는 더 높아진다. 이처럼 모든 디테일들이 『중국 학부모』와 자녀들 간 세대 갈등을 강조하는데, 이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하다”고 “공감”하는 것이다. 『중국 학부모』에 대한 평가들은 비판과 성찰을 담고 있으며, 그 디테일에 대한 언론들의 경탄은 『중국 학부모』를 더더욱 ‘중국식 교육’에 대한 비판의 훌륭한 소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중국 학부모』가 제시하는 다양한 ‘현실’이란 비단 중국 가정교육의 실제 딜레마를 반영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 경험으로 구조적 문제를 감추는 것에 있다. 과잉 경험 : ‘현실’과 ‘현장’ 『중국 학부모』의 시나리오 텍스트 내용 대부분은 현실 조사를 통해 발췌한 것으로, 조사 대상자가 진술한 실제 경험을 게임 속에 직접 배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학부모』의 줄거리는 완전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경험에서 구축한 거대한 ‘경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게임 속에선 일련의 무작위(随机; 랜덤, 임의) 선택이 촉발되고, 플레이어의 선택은 아이의 속성치에 영향을 미친다. ● 오늘 부모님은 일찍 잠들었고, 당신은 방에서 몰래 휴대폰을 꺼내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10연승의 결정적 순간이 다가오기 직전, 당신은 숨을 꾹 참는데… 그런데 돌연 방의 문이 열렸네요! ○ 휴대폰을 끄고 재빨리 숨을 참고 잠자는 척한다. 그리곤 긴장을 풀고 강좌를 듣는다. (기억력 40 증가) ○ 큰 소리로, 당신이 깨어났다고 말한다. 그러자 부모님은 깜짝 놀라 방에서 나간다. (지능 50 증가) ○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계속해서 플레이한다. 알고보니 그것은 가을바람이 지나간 잘못된 경보였다. (오성 悟性 50 증가) 이러한 유형의 선택지에서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세 가지 옵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다른 길 - 부모님에게 실수를 인정하고 휴대폰을 넘기는 등 - 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무작위 선택의 몰입감은 전적으로 플레이어 선택에 대한 제한에 기반하며, 플레이어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척하는 옵션으로 물러선다고 할 때, 플레이어가 ‘자주적으로’ 선택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수면 역시 플레이어의 현실 경험을 쌓는데 있어 중요한 부분이 된다. 왜냐하면 이는 나(플레이어) 스스로 선택하고 “공감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밖에 게임 속에서 촉발되는 무작위위 이벤트들도 있다. 이벤트가 발생하면 플레이어에게 그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나타나고, 선택을 하고나면 게임 화면상에 나와 같은 선택을 한 플레이어가 몇 명인지 알려준다. ● 엄마와 할머니는 기저귀를 사용할지,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할지를 두고 말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 어린아이는 무료 입장! 하지만 당신의 키가 기준선을 넘어버렸기 때문에 엄마는 당신에게 무릎을 조금 굽혀서 기준선을 넘지 않은 것처럼 가장하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결국 들키고 말았네요.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 수업시간에 몰래 떠들었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벌점을 받았습니다. 엄마는 선생님에게, 애가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리시라고 말씀하시네요. 이와 같은 설계는 플레이어의 몰입감을 확고하게 포착한다. 플레이어가 ‘예’를 선택하든 ‘아니오’를 선택하든,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비슷한 경험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아직 겪지 못한” 경험은 플레이어를 특정 집단에 속할 수 있도록 묶어주고, 여러 플레이어들이 “공감한다”고 외치게 하는 ‘현실’의 요소가 된다. 여기서 『중국 학부모』가 ‘리얼리즘’의 에토스를 구축하려는 전략이 드러난다: 즉, 플레이어의 선택지를 제한함으로써, 플레이어는 특정 선택지 그룹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의 선택이 ‘무작위위 선택’에서 플레이어의 ‘생각’인 것으로 바뀌도록 설정돼 있으며, 이러한 무작위 선택에서 플레이어의 경험(또는 미경험)은 일반적인 경험(또는 미경험)으로 변한다. 이러한 설정 하에서 『중국 학부모』는 거대한 ‘경험의 집합체’로서 스스로의 고유한 역할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중국 학부모』가 제공하는 경험은 결국 과잉 경험이다. 저우즈창(周志强) 교수는 벤야민의 「경험과 빈곤」(1933) 3) 을 해설하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소위 ‘경험과 빈곤’이 반드시 사람들의 경험 생산 부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바로 ‘경험과잉’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문화생산 시스템이 끊임없이 현실적 상태를 감추는 경험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경험과 빈곤을 구성하게 된다. (…) 감정과 경험이 풍부할수록 실제 경험은 더 적어진다.” - 저우즈창, 「유사 경험 시대의 문학정치비평 - 벤야민과 우화론 비평」(伪经验时代的文学政治批评——本雅明与寓言论批评), 『난징사회과학』, 2012년 제12기. 과잉 경험은 거짓 경험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감정이 충만하며, 생생한 경험을 가리킨다. 하지만 풍부하고 충만한 것처럼 보이는 과잉 경험이 많을수록, 실제적인 경험은 적어진다. 『중국 학부모』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경험은 모두 이와 같은 과잉 경험이다. 그것들은 진실되고, 신뢰할 수 있으며, 분노의 정서와 자조적인 구원으로 가득 차 있지만, 실제 상황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수십 가지의 무작위 이벤트와 옵션들이 구성한 과잉 경험의 집합체에서 플레이어의 지나간 경험과 일치하는 것이 몇 가지만 있으면 그것들은 죄다 “공감”과 같은 것으로 식별될 것이다. 별자리 안내서의 어떤 별자리에 대한 서술처럼 한두 가지 자신과 맞아떨어지는 내용만 있으면, 독자는 “정말 진짜같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 학부모』의 ‘리얼리즘’은 차라리 “현장주의”라고 하는 편이 낫다. 저우즈창 교수는 “오늘날 리얼리즘은 서민적인 행위나 사실적 표현이라는 담론에 포위되어, 서서히 현장주의로 대체되고 있다” 4) 고 말한 바 있다. 즉, 점차 더 많은 ‘리얼리즘’ 작품들이 ‘현실감’을 ‘현장감’으로, ‘공감’을 ‘실제 상황’으로, 과잉 경험을 실제 경험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과잉 경험은 현장감이 충만하고 감정도 풍부하지만, 반드시 진실된 경험이라 할 수는 없다. 이처럼 『중국 학부모』는 한 명 한 명의 플레이어가 직접 경험한 ‘통점’을 통해 과잉되고도 풍부하며 충만한 고통의 경험을 플레이어의 유일한 경험으로 설정한다. 벤야민은 「경험과 빈곤」에서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사람들의 경험 평가 절하가 진지전에 의해 까발려진 전략 경험, 인플레이션에 의해 까발려진 경제 경험, 기근을 통해 폭로된 신체 경험, 권력자들에 의해 까발려진 윤리적 경험 등 그들이 직접적으로 겪은 전쟁과 그 영향에 의해 폭로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전의 직접적인 경험으로는 전쟁의 이러한 문제를 설명할 수 없었을 때 그러한 경험 부족을 은폐하기 위해 균열을 메우는 일련의 심령주의(오컬트)가 부활했다는 것이다. 즉, 직접적인 경험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 할 때마다 사람들은 명확한 비난의 대상을 찾는 경향이 있다. 심령주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고대 중국 책력 상의 불길한 징조라던지, 관상이 좋지 않았다던지, 흉년(流年不顺) 등 비난 대상이 그것이다. 즉, 경험의 과잉을 통해 경험의 결핍을 덮는 것이다. 『중국 학부모』라는 이 게임에서도 ‘중국 학부모’는 플레이어들이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중국 학부모』가 드러내는 과잉 경험은 구조적 문제에 대해 ‘가정’이라는 매우 적나라한 답을 제공한다. 청년들이 대인관계, 일과 학업, 심지어 친밀한 관계에서 겪는 각종 문제들은 하나같이 가족 문제로 귀결된다. 여기서 ‘중국 학부모’는 슬라보예 지젝이 말하는 “고정 지시어” 5) , 즉 대상 안에 머무르면서 대상을 초월하는 것으로서, 다른 이들과 구별해낸 잉여이다. 원래 지적될 수 있는 것으로서 ‘중국 학부모’는 좋은 외모에, 독선적이며,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등의 “유효한” 특징들을 암시했다. 하지만 ‘가정 원죄’라는 맥락에서 순서가 뒤바뀌었는데, 이는 일련의 특징들이 ‘중국 학부모’를 만들어낸 게 아니라, 그 학부모가 이와 같은 특징들을 갖게 된 것이 바로 ‘중국 학부모’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점을 가리킨다. 고정 지시어로서의 “중국 학부모”와 반유대주의 논리 속의 유태인은 궤를 같이 한다. ——즉, 당신이 까다롭고, 이익만 생각하기 때문에 유태인인 게 아니라, 당신이 유태인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당신은 까다롭고 돈만 밝힌다는 것이다. —— 그러니까 독일 사회 전체의 문제는 유태인의 존재로 축소되어버렸듯, 각종 사회문제들은 게임 속에서 ‘중국 학부모’ 자신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과 같다. “부모를 용서하라” : 주정주의 7) 적 해결 방안 『중국 학부모』 게임을 시작할 때 한 문장의 인용구가 나타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들의 부모를 사랑하고, 나이가 들면 부모를 심판하며, 때로는 부모를 용서한다.” 8) - 오스카 와일드 이 문구는 게임 전체의 기본 아이디어로서 ‘부모를 용서하라’로 설정했다. 플레이어가 1라운드를 끝내고 다음 세대 아이를 키우기 시작할 때, 게임의 2라운드에도 흥미로운 대화가 등장한다. 아빠(이전 세대의 플레이어가 키운 자식) : 생각치도 못했지만 나도 아이를 가질 나이가 됐으니, 교육을 잘 시켜야 할텐데, 우리 부모님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해!!! 엄마(이전 세대의 플레이어가 택한 동반자) : 당신과 함께 시부모님댁에 갈 때마다 당신이 아버님이랑 똑같단 생각이 들어! 생각하긴 뭘 생각해! 얼른 기저귀나 갈아! 대화를 나눈 후 플레이어들은 새로운 게임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 게임은 이전의 메커니즘, 시스템, 무작위 이벤트, 무작위 선택 등과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체면 대결’, ‘홍바오 쟁탈전’, ‘재능 대결’, ‘작문 백일장’ 등 이벤트들이 마찬가지로 적지 않게 일어나고, 플레이어들은 부모의 희망 수치와 스트레스 수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춤으로써, 아이가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가출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게임은 바로 이처럼 “당신을 당신의 부모로 바꾸는” 반복적 메커니즘을 통해, 플레이 방법의 측면에서 플레이어가 “부모를 용서”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 비록 당신이 부모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더라도, 게임의 모든 메커니즘은 당신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다. 즉, 아이들에게 기술을 학습하도록 해야 하고, 아이들의 스케줄을 정리해야 하고, 아이들이 높은 성적을 받도록 해야 하며, 좋은 일자리를 얻도록 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아이는 메커니즘 속에서 새로운 ‘중국 학부모’가 된다. 그렇게 새로운 부모가 된 플레이어는 “내가 원치 않던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바로 부모님의 고심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게임 엔딩을 맞으면 아이의 소감 한 구절이 나타난다. “대입 시험 전과 후의 일상이 꽤 다른 것 같단 생각을 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저 자신은 더는 아이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부모님 눈에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닌 거죠. 부모님과 늘 함께 했던 날들이 그리워요. 그게 어떠했든 꽤나 아름다운 시기였어요.” 『중국 학부모』는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한 게임 내용을 갖고 있음에도 온정적인 핵심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말들은 부모 탓은커녕 그리움과 용서가 담겨 있다. “나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네요.” —— 즉, 어린 시절에는 비록 항상 혼나고 이해받지 못했지만, 커서 보니 그 시절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게 됐고, 부모님 눈에는 어린아이로 남고 싶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 세대 간의 각종 갈등은 단지 노련한 농담에 불과하며, 감정의 대화합이 주제인 셈이다. 2015년에 인기리에 방송된 『환락송(欢乐颂)』에는 남존여비의 가정에서 자란 판셩메이(樊胜美)가 등장하는데, 한때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 중심에 있었다. 그 이후로 부모와 자녀 간 관계에 초점을 맞춘 여러 화제작들이 점점 더 많이 등장했다. 『도정호 : 가족의 재발견(都挺好)』, 『아빠와 함께 유학을(带着爸爸去留学)』, 『소환희(小欢喜)』 등이 그것이다. 이 드라마들은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중국 학부모’들이 등장한다. 이 드라마들의 내러티브에서 모든 문제는 가족 갈등에서 비롯되며, 문제해결 방식은 단 하나, 바로 부모와 자녀가 서로 이해하는 것에 있다. 따뜻한 결말로 과정상의 갈등을 희석시키는 것은 가정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드라마 『도정호 : 가족의 재발견』 전체 서사의 전환점은 마지막에 쑤다창(苏大强)이 유언을 남기는 부분에 있다. 쑤밍위(苏明玉)의 회사에서의 위기, 쑤밍청의 결혼 파탄, 쑤밍저의 사업 문제는 모두 쑤다창이 오열하며 “너희 세 형제자매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행동하고, 도울 수 있는 한 서로 도와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해결된다. 이때부터 온 가족의 관계가 빠르게 바뀌기 시작하는데, 쑤밍위는 아버지가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했던 이유가 바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에 따라서 이 드라마의 전반부 갈등과 문제의 전말이 분명해진다. 한바탕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는 신파극이 일가족의 진실된 곤경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다. “부모를 용서하라”는 주정주의적 결말은 가족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대체하는 해결이기도 하다. 과잉 경험 속에서 부모가 유일한 원망의 대상으로 세팅되어 있다면, “부모를 용서하라”의 결말이야말로 유일한 해결책이 되는 셈이다. 게임 전체의 설정은 플레이어가 부득불 ‘전철을 반복’하는 것에 있으며, 게임의 원망하는 내용과 감동적 결말은 플레이어가 부모를 용서하는 ‘전철을 반복’하도록 한다. 이는 일종의 스스로 문제를 옮긴 뒤 스스로를 설득하는 자화자찬의 대체 해결이라 할 수 있다. 『중국 학부모』의 반복적인 메커니즘에서 우리는 구조적 문제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이것이 부모가 낳은 문제가 아니라, 게임 메커니즘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용서하는 결론의 온정 강박 하에서 우리는 다시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네가 부모가 되어도 이렇게 할 거야” 같은 부모의 고뇌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리얼리즘 신화 『중국 학부모』에서 과잉 경험은 그것의 ‘리얼리즘’을 구축하는 기본요소다. 한데 흥미로운 점은 게임 전체의 리얼리즘이 하나의 ‘신화’를 기반으로 하며, 이것이 게임의 세대 간 속성의 계승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중국 학부모』는 다른 모의 양성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키우는 대상의 속성을 평가하는 수치 시스템을 갖고 있다. 게임 속에서 아이의 속성은 IQ, EQ, 체력, 기억력, 상상력, 매력 등 다섯 가지로 나뉜다. 속성별 수치는 아이의 과목별 성적과 장래 직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게임의 기본적인 플레이 방법은 바로 부모의 ‘스케줄링’과 아이의 ‘브레인스토밍’을 기반으로 속성의 수치를 향상시키는 것에 있다. 전자는 부모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아이의 일정을 배치하여 아이의 특정 기능들을 배양하는 것이고, 후자는 아이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미니게임을 통해 자신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세대 간 속성 계승은 바로 플레이어 세대가 키운 아이가 다음 라운드 게임에서 키울 아이의 부모가 되면서, 이전 세대의 우세적인 속성이 아이의 몸에 물려지는 것을 가리킨다. 만약 플레이어가 키운 아이가 결국 프로그래머가 되면 다음 세대 아이는 IQ에 15점이 추가되고, EQ는 3점, 상상력 3점, 기억력 5점, 신체 3점이 추가된다. 만약 아이가 운동선수가 된다면, 신체에 더 많은 능력치가 추가되고, 다른 속성들엔 더 적게 부여된다. 세대 간 속성 계승을 통해 다음 세대 아이는 반드시 이전 세대보다 우수해지는데, 이는 즉 플레이어들이 세대를 거듭해 꾸준히 키워나가기만 한다면, 당신의 아이는 항상 칭화대와 베이징대 같은 명문대에 합격해 인생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게 됨을 뜻한다. 이처럼 “다음 세대가 전 세대보다 강하다”는 설정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본 동력이 된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의 게임 목표는 모두 “우리 가문의 몇 대손이 베이징대학에 합격하는지 보는 것”에 있다. 속성 수치로 플레이어의 게임 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의 기초 설정이다. 게임이 플레이할 가치를 갖기 위해선 플레이어가 게임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갖고, 플레이어들의 투입 시간이 누적되고 플레이 전략의 최적화됨으로써 끊임없이 수치가 증가할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게임 속 아이의 인생은 단순하고도 곤란해진다. 단순함이란 시간을 들여서 수치를 쌓고 최적화 전략을 짜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 있고, 곤란함이란 아무리 훌륭한 방안을 사용하더라도 자연적인 속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과잉 경험으로 가득 찬 이 ‘리얼리즘’ 게임은 구조적 문제를 감추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문제를 돌출시킨다. 즉, 가장 비현실적이고 게임화된 수치 시스템을 빌리지 않는 한, 게임의 리얼리즘적 기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리얼리즘’과 가장 무관한 부분인 세대 간 속성의 계승은 하나의 예정된 신화인데, 이 게임의 모든 ‘리얼리즘’이 이러한 계층 상승의 신화를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다. 한마디로, 만약 이와 같은 신화 예고를 제거해버리면 그것이 중국 학부모든 미국 학부모든, 아이를 성공시킬 수 없다. 이 게임의 근본 모순이 여지없이 드러난 셈이다. 한 측면에서 아이는 그저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의 속성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아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 모순을 잠재우기 위한 계층 상승 신화는 곧 무결점 피부를 보여주면서도 그 속의 끔찍한 흉터를 암시하는 마스킹액과 같다. 여기서 세대 간 속성 계승에 따른 계층 상승은 그 자체의 비현실이 작품의 리얼리즘적 토대를 이룬다는 점에서 하나의 ‘리얼리즘 신화’가 되었다. 합리적이고 진실되며 현장감 넘치는 디테일을 모두 제거하고나면, 상징계에 의해 수용될 수 없는 하드코어만 남게 되는데, 지젝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실재계의 손상”이다. 벤야민의 맥락에서 이 하드코어는 바로 아름다운 경험의 실체를 까발리는 인플레이션, 기근, 권력자이다. 그것은 바로 신화를 들춰내는 리얼리즘의 역설이며, 이는 우리에게 “계층 상승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제출한다. 『중국 학부모』는 이 문제에 대해 말없이 침묵하며, 자신이 지닌 리얼리즘의 거짓을 폭로한다. 계층 상승의 신화 속에서 당신은 다섯 시간에 걸쳐 세 아이를 키우고 갑부나 대문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계층이 고착화된 구조적 문제 앞에서는 자녀의 학교생활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평생 열심히 일해도 자녀가 매일 수업을 빼먹고 인터넷PC방에 다니다가 결국 대입 시험에 실패해 “아빠는 맨날 일만 하느라 바빠서 내 공부엔 관심도 없었는데, 우리 집안은 내게 뭘 가져다 줬나"같은 글을 올릴 수 있다. 경제학자 마일스 코라크(Miles Corak)는 ‘위대한 개츠비 곡선(Great Gatsby Curve)’을 제시하면서 미국의 계층분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이 곡선은 언론이 ‘아메리칸 드림’의 거짓을 지적할 때 볼 수 있다. 하지만 2003년 이래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도 0.46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핀디에(拼爹) 지수로 불리기도 하는 세대 간 소득탄력성 계수(intergenerational elasticity; IGE) 역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세대 간 소득탄력성 지수는 세대 간 소득 변화를 보여주며, 한 세대의 경제적 소득이 다음 세대의 경제적 소득 또는 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나타낸다.) 바로 이 두 지수가 ‘위대한 개츠비 곡선’을 구성하는 X·Y축이다. 『중국 학부모』에서 과잉 경험은 문제를 가정 문제로 단순화하고, 용서하는 결말은 이성주의 대결을 주정주의적 포용으로 유화시킨다. 최종적으로 이 게임은 우리에게 가족 구성원들 간에 서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가르쳐준다. 물론, 가족의 윤리적 문제는 상호 이해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구조적 문제는 그럴 수 없다. 우리는 부모님의 고된 노력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그 메커니즘의 강압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 계층 상승의 신화와 고착화된 현실 사이에서 『중국 학부모』는 현실적인 디테일들로 가득하지만, 거짓된 신화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중국 학부모』의 리얼리즘은 결국 하나의 코딩 시스템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과잉 경험으로 진실의 문제를 덮어버리고, 온정적인 결말을 통해 대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상상계와 상징계의 겹들은 실재계의 존재를 말소해버린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코딩에서 벗어난 하드코어는 언제나 실재계의 왜상으로 게임 속에 존재함으로써, 그 리얼리즘으로하여금 목구멍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처럼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계층 상승의 ‘리얼리즘 신화’이다. 신화의 불가능성은 그 현실의 거짓을 암시하고, 달콤한 꿈 뒤에는 감출 수 없는 고착화된 모순이 있다. 하지만 일단 우리가 이 모순에 접근하려고 하면 주정주의적 가르침은 가족애를 내세워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혹은 우리를 대신해 문제를 전이시켜버린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공감의 향수나 ‘중국 학부모’에 대한 원망일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게임 전체의 논리 뒤에 감추어져 있는 진짜 문제이다. 우리가 되물어야 하는 것은 ‘중국 학부모’가 어떠하냐가 아니라, 왜 이러하냐에 있다. ‘중국 학부모’의 문제는 가정의 윤리 문제가 아니며, 자녀와 부모 간 갈등 완화로 해결할 수도 없다. 이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우리는 더 이상 ‘출신 가정’의 아픔에 매달리지 않고 사회 전체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 구어 ‘接地气’는 정치인이나 인기 연예인 등이 유명인답지 않게 소탈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대중의 일상과 접촉하며 어울리고, 대중의 요구를 경청하고, 대중의 습관과 문구 등을 사용하는 것 등을 지칭한다. 중국 바깥의 기준으로 보면 일종의 포퓰리즘 현상을 대중의 언어생활에서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홍바오는 중국 춘절 연휴에 주고받는 돈주머니로, 한국으로 따지면 세뱃돈과 유사하다. 대다수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위챗’ 등 소셜미디어앱에는 ‘홍바오’ 기능이 있는데, 이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룹채팅방 안에서 나눠줄 수 있다. 카카오톡에도 이와 유사한 기능이 있다. 3) 국내에서는 2008년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외』(최성만 옮김, 길)에 수록되어 출간됐다. 4) 저우즈창, 「현실-사건-우화: 리얼리즘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现实·事件·寓言:重新思考现实主义)」, 『남국학술(南国学术)』, 2020년 제1기. 5) 현실 세계와 대비되는 가능성의 세계(possible universe; 논리학·철학에서 가능성·필연성·우연성 등의 양상 명제를 논리적으로 다루기 위한 이론적 장치)에서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언어 표현을 ‘고정 지시어(rigid designator)’라고 한다. 슬라보예 지젝은 사울 크립키(Saul A. Kripke)의 반기술주의가 우리가 본질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고 어떤 특정한 영역의 결정적 역할을 공식화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를 제공해준다고 본다. 크립키의 ‘고정 지시어’ 개념은 라캉의 ‘지배기표(master signifier)’ 개념과 일치한다. 지배기표는 대상의 실증적 속성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언표작용적 행위를 통해 화자와 청자 간 새로운 상호주관적 관계를 확립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중국 학부모”라고 하면 우리는 대상이 가진 실증적 속성들에 포함되는 게 아니라 발화 수행으로 상징적 위임을 그 대상에 부여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상징적 현실과 관계가 창출되며, 그 관계에서 특정한 책무를 떠맡는다. 6)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새물결, 2013. 원서: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7) 원문의 ‘情感主义’는 주정주의(emotionalism)의 중국식 표현으로, 이성이나 지성보다 감정이 우월하다고 여기거나, 감정이 가장 근원적인 것이라고 하는 사상을 가리킨다. 8) 이 유명한 문구는 오스카 와일드가 1890년에 집필한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의 등장인물 헨리 워튼경이 한 말이다. 9) ‘比拼老爹’의 준말로, 스스로 경쟁(比拼)하지 않고, 부모(老爹)의 능력에 의존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저우스위, 周思妤 난카이대학 문학대학원 석사과정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이걸 누가 읽는다고.” ─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와 기록에 관하여

    아마 슬슬 건강검진이 필요한 나이의 게이머 중에 페르시아의 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1989년에 나온 게임이니 젊은 게이머에게는 낯선 게임일 수도 있겠다. 가장 위대한 게임을 고르라면 1등이 아니더라도 100개 안에는 거의 반드시 들어갈 게임이고, 7세대 콘솔까지는 정규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며, 2025년에도 외전인 “로그: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왔고, 흥행 성적은 아쉬웠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영화도 있으니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IP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 Back "Who's Going to Read This?": On the Development Journals of Karateka and Prince of Persia, and on Keeping a Record 30 GG Vol. 26. 6. 10. March 5, 1990 … The Apple version of Prince of Persia sold fewer than 150 copies last month. To think it's dying out there like that. I can't believe it. Rory passed along to me what Latricia T., the marketing manager, supposedly said: "It's just an arcade game. Arcade games don't sell, you know." —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 (Starbeez, p. 297) There is probably almost no gamer of the age that warrants a regular health checkup by now who does not know Prince of Persia . It came out in 1989, so to younger gamers it may be an unfamiliar game. If you were asked to pick the greatest games, it would almost certainly land in the top 100 even if not at number one; its main series kept appearing through the seventh console generation; in 2025 a spin-off, The Rogue Prince of Persia , came out; and although it underperformed at the box office, there is even a film starring Jake Gyllenhaal—so might we not call it an IP that still holds its vitality? Of the Prince of Persia series, Jordan Mechner took part directly in developing the first and second games, and since game development back then was not so large in scale, his effort is contained in them almost in full. The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 is a book based on the development journal Mechner kept while making Prince of Persia 1 and 2. Some readers may already remember seeing this book. The cover might have been blue, or it might have been black—but the backstory of the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 needs explaining first. The journal came to be published not only because Mechner had kept his journal so well at the time, but because the first book began as a self-publication. In Korea, Jang Hee-jae took an interest in this book, got Mechner's permission, and carried out a domestic translation. Run through crowdfunding—an unfamiliar thing by the standards of the time—the project blew past its target of 1.2 million won (small by today's lights but a fairly large sum then) to reach 3.66 million won, and was even written up as a case of a successful funding campaign. Goodfunding, the service that hosted the campaign at the time, no longer exists. Clockwise from top left: the first original edition, the Goodfunding Korean translation, the U.S. 30th Anniversary Edition, and the Neukkimi Inneun Chaek Korean translation. I'll confess there is a reason it is hard for me to review this book objectively: I took part in the funding work around that time. By a strange turn, Jordan Mechner happened to be presenting his experiences at a classic-games session of GDC, held in San Francisco that year, and I went with a book I had ordered in advance from Amazon and had delivered to a San Francisco friend's place (the lodging I'd booked couldn't receive deliveries), got it signed, and used it for the funding. He wasn't the quickest to reply, but fortunately the communication wrapped up, the book came out safely, and it was later reissued with a new cover by the publisher Neukkimi Inneun Chaek. If you have a black Korean-language cover, you probably took part in the funding; a blue cover would be the later edition from the publisher. There is also an epub version on Dipia, excellent even by today's standards of quality. Because the e-book market had not yet fully settled, it was released at first only on Apple's iBooks and only later on domestic services—but it was a meaningful piece of work that folded in, as photos and videos, development materials from the time that the book itself could not hold. The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 brought out this way by the pooled efforts of many people, was—as I recall—probably the only one in Asia translated solely into Korean. Domestic publishing contracts, especially for foreign books, are mostly on a five-year basis, and after five years they usually go one of two ways: pay more to extend the contract, or let it go out of print. This contract term is one reason that, in today's publishing market especially, if you don't buy a book when it comes out you end up unable to get it. The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 went out of print in just that way, and as with many good books, it was not rare to see it listed at a premium of over 50,000 won in used bookshops. Around the time the Prince of Persia journal was published, we talked about how nice it would be if it sold well and the Karateka development journal (published in 2012) could come out too—but that did not actually happen. And only in 2026 did the Prince of Persia and Karateka development journals, which the game-book specialist publisher Starbeez had been steadily preparing all along, finally come out. Since it is a book made from a diary whose original already exists, one might think it does not differ much from the edition published in 2013; but in the interim Mechner donated the materials he had used in developing the games to The Strong museum in the U.S., and a 30th Anniversary Edition was newly published with Mechner's annotations added to those materials and the diary. Thanks to that, the Korean edition of the Prince of Persia journal published this time is based on the 30th Anniversary Edition, adding Mechner's additions explaining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 extra visual materials that let you see that era, and the 30th-anniversary essay at the back. The newly published Karateka and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s. The covers use those of the original games. So, now that a quarter of the twenty-first century has passed, what we can gain from a diary spanning 1982 to 1993 is, frankly, hard to say. Since it is the development journal of a developer who made a masterpiece, you might expect it to hold some important secret of game development—but if you read this book with that aim, you will probably be disappointed. Something often handled in the software-development field is the retrospective. The word "retrospective" is not used only in software engineering, but it tends to have taken hold here in Korea as Agile development methodology was introduced. To me at least, as a programmer, the word wasn't all that familiar before then; the retrospective done in software engineering has more the sense of a methodology for looking back on past work and reviewing it so as to do the next work better. There is one good piece of culture in the American game industry: the postmortem. As you'll feel right away from the word, it is a medical term, and this too, like the retrospective, aims to organize and share what was done well and badly in development after a game is finished. A postmortem has no fixed format, but there is still a form shared to some degree: along with an overall description of the project, you organize three to five things the project did well and three to five things it did badly. This form wasn't so much proposed by anyone in particular as it was the format that used to be posted on the American game-development site Game Developer (formerly Gamasutra), and conferences and published magazines mainly used it too. Postmortems written this way were published under the title Postmortems from Game Developer , and in Korea under the title Seonggong-euro Ikkneun Geim Gaebal Story [Game Development Stories That Lead to Success]. The cover of Postmortems from Game Developer. In Korea, from the late 1990s and especially up to the mid-2000s, Western game-development theories were imported in quantity, and as the postmortem culture came in with them, the Korea Game Industry Agency translated the postmortems published on Gamasutra into Korean, while domestic game developers also wrote and shared postmortems of their own. This culture influenced not only Game Development Stories That Lead to Success but also the way postmortems of domestic games were additionally included at the back of the Korean-translated Widaehan Geim-ui Tansaeng [The Birth of Great Games]; the later volumes 2 and 3 then came out with domestic games only. Beyond that, there are cases like the Mabinogi development completion report, which was disclosed only internally at Nexon. The Mabinogi project completion report, exhibited at the 2019 exhibition 게임을 게임하다 /invite you_. Its contents are not disclosed to the public. The part most worth considering about such postmortems is that, just as that word "autopsy" suggests, the postmortem is a document written after a project ends. In fact, in a game market that has shifted toward online games, people used to joke, "Our game isn't dead yet—how can we do an autopsy?" Organizing what was done well and badly by reviewing things after a project ends is meaningful, but often only surviving projects get the chance to do such a postmortem, and a review done after the events are over inevitably carries bias. In this sense, the record that is a development journal is an important source for grasping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 in that it is the product of whole decisions written out in a state of not knowing the future. We know the future, but back then it could not be known. At GDC 2012, Daniel Cook, a developer at Spry Fox, once made the radical argument to leave a diary instead of a game design document. The idea is that since the design will change anyway, you should write down reactions to ideas and your own thoughts—and I remember being struck by it at the time. Because it can leave a record of what intent lay behind a decision—something a postmortem can miss—this guidance lets you look back on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 more accurately than memory. In that respect, RPG no Tsukurikata: Hashino Katsura to "Metaphor: ReFantazio" [How to Make an RPG: Katsura Hashino and Metaphor: ReFantazio ], released in 2025 by Japan's Chikuma Shobō, is a book worth noting as a new type of archiving, hard to find among books published so far. Written by the Japanese writer, critic, and manga-story author Sayawaka—who interviewed developers inside Atlus over the period the game was being developed, starting from around when Metaphor: ReFantazio , before it earned the name Metaphor , had its development announced under the project name "PROJECT Re-FANTASY"—the book is also a singular attempt at a midpoint between development journal and archive. The Karateka and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s, unlike postmortems, contain the records of the time almost as they were, and so are excellent records for examining the mood and society of that era. That is true on the archival side. Even so, I do not want to place the value of these journals simply in being records of the time. August 29, 1983 … From now on I'll write this journal with more dignity. Oh, hell—who's going to read this anyway. — Karateka development journal (Starbeez, p. 164) We know what became of the game industry by 2026. Around the time the game industry's growth faltered once in the 1980s United States, Mechner—then a college student—bombs an exam, skips class, sometimes does no development at all, and agonizes over whether to do film work or computer work. He sometimes dreams that he will become a millionaire through games, looks at how other games did and optimistically figures he too can sell that many, gets disappointed with the results, and goes on making games all the same. The Apple II version of Prince of Persia didn't sell well, but it caught on as it was converted to other platforms. Thanks to that, we gained a decent IP in game history, and we get to read this development journal like this. The reissued Prince of Persia journal, befitting a 30th Anniversary Edition, adds period development materials and photos beyond Mechner's own materials—giving gamers who recall that era the pleasure of seeing the game's backstory, and letting young readers guess at the development environment of the time. But setting aside talk of the archive or of game-development knowledge and experience, these journals will offer you comfort too, in that they make you feel how, for anyone, master or not, pressing on along your own path while unable to know the future is a hard time. Books and Articles Mentioned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 (2026, Starbeez) Karateka development journal (2026, Starbeez) Widaehan Geim-ui Tansaeng [The Birth of Great Games], vols. 1–3 (2011–2013, Hanbit Media) Seonggong-euro Ikkneun Geim Gaebal Story [Game Development Stories That Lead to Success] (2004, Acorn) — Korean edition of Postmortems from Game Developer RPG no Tsukurikata: Hashino Katsura to "Metaphor: ReFantazio" (2025, Chikuma Shobō) "Want Innovation? Throw Out the Game Design Document" (2012, ThisIsGame, https://www.thisisgame.com/articles/31448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게임적 리얼리즘과 리얼리즘적 ‘게임’ - 상징계·상상계·실제계의 진실

    게임적 리얼리즘의 비밀이 바로 여기 있다. 현실의 논리를 ‘게임 플레이’로 ‘번역’해 이데올로기적 설득에서 현실의 핵심을 빼앗는다는 게임적 리얼리즘의 비밀은 비디오 게임의 검열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ivist, Writer) Zhou Zhiqiang (Activist, Writer) Myeonggyo Hong Activist and writer. Works at the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Platform C on East Asian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social movements. Author of To My Vanished Chinese Friend and A Ghost Throws a Punch at the World, and translator of Xinjiang Uyghur Dystopia and Dying for an iPhone (co-translated).

  •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우주에 손을 뻗는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세계에 고립되어 존재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하며 살아가는 현실에서 내가 아닌 타자와 진정으로 동기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심전심, 역지사지는 궁극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개념이기에 이상향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언어가 가진 소통 수단으로서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aein Park A gamer who searches games for inspiration in life. Keenly interested in analyzing the ways games convey their intentions and concepts.

  • [논문세미나] No homosexuals in Star Wars? BioWare, ‘gamer’ identity, and the politics of privilege in a convergence culture

    콘디스는 <스타워즈: 구 공화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진정한’ 게이머의 조건은 무엇인지,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살핀다. 콘디스는 ‘진정한’ 팬 또는 게이머 무리가 미디어 환경을 장악했으며, 이들이 유토피아적 공간을 이룩하고 게임 내 특권적 지위를 이루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 Back [논문세미나] No homosexuals in Star Wars? BioWare, ‘gamer’ identity, and the politics of privilege in a convergence culture 16 GG Vol. 24. 2. 10. 들어가며 메간 콘디스(Megan Condis)는 인종이나 성별, 성적 정체성을 게임 및 기술을 통해 바라보는 연구자다. 젠더가 기술 속에 어떻게 녹아드는지 주목한 콘디스는 2018년에 온라인 게임 문화 속 남성성에 주목한 책을 펴낸 바 있다. 이번 호에서 다루는 그의 텍스트도 그러한 관점에서 작성된 것으로, 콘디스는 ‘팬’과 ‘게이머’라는 칭호를 퀴어 이론과 접목해 분석한다. ‘팬’, ‘게이머’와 같은 칭호는 같은 게이머 그룹의 인정이 있어야만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다. 콘디스가 ‘팬’이나 ‘게이머’를 눈여겨본 이유도 이 특권에서 기인한다. 이 텍스트에서 콘디스는 게이머 그룹 내 특권적인 칭호들이 성별이나 인종, 계급에 따라 어떻게 부여되는지, 그 법칙에 알맞지 않은 이들은 어떠한 상황에 마주하는지 살핀다.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검열과 <드래곤 에이지>의 동성 로맨스 콘디스가 이 연구를 위해 제시하는 게임은 바이오웨어(BioWare)에서 제작된 MMORPG인 <스타워즈: 구 공화국(Star Wars: The Old Republic)>이다. 과거 <스타워즈: 구 공화국> 공식 사이트는 게이, 레즈비언과 같은 용어를 검열했는데, 이 일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왔다. 해당 게임의 유저들은 ‘온라인 게임에 현실의 성 정치 문제를 끌고 오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여기서 검열에 찬성한 이들은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문제가 게임에 적용되는 것은 게임의 매력을 반감시킨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문제가 이성애 중심적 권력 구조로 나타난다고 본 콘디스는 게이머 그룹의 인정을 받은 이, 즉 ‘진정한’ 게이머가 이성애자로 이해된다고 주장한다. 이성애자 게이머는 정상성이라는 영역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반면 커밍아웃한 퀴어 게이머는 이성애자 게이머들과 달리, 게임 문화를 해치는 침입자로 간주된다. 여기서 콘디스가 보고자 하는 대상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콘디스는 ‘진정한’ 게이머라는 칭호를 부여받을 수 있는 이들과 그럴 수 없는 이들의 격차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이다. <스타워즈: 구 공화국>과 같은 논란은 동일 제작사의 게임인 <드래곤 에이지(Dragon Age)>에서도 발생했다. 이때의 논쟁은 <드래곤 에이지>에 등장하는 게이 캐릭터의 로맨스가 도화선이 되었다. <드래곤 에이지>는 <스타워즈: 구 공화국>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는데, 콘디스는 이를 게임 제작자와 일부 팬 사이에서 나타나는 특권적 관계 상실에 의한다고 분석한다. 특권적 관계 상실은 퀴어 게이머를 수용하는 게 이성애자 남성 게이머들의 신임을 잃는 것보다 더 나은 매출 지표를 얻을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콘디스는 이 사례에 대해 계몽된 게이머 집단이 이전보다 나은 미디어 환경을 추구하고, 기업은 그 요구에 마지못해 응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매출 지표만으로 따졌을 때, 바이오웨어는 왜 초기부터 이러한 행보를 보이지 않았을까? 이는 대다수의 기업과 게이머들이 눈여겨본 ‘테크노 유토피아’라는 개념과 연결해 이야기할 수 있다. 소수자와 약자가 없는 테크노 유토피아 게임연구는 스포츠계와도 어느 정도 연관성을 지닌다. 스포츠계의 동성애 혐오나 성차별 관련 연구가 놀이에 관한 것으로 확장되었고, 이것이 게임연구로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 게임연구들은 여성, 퀴어와 같은 소수자 및 약자를 게임 안으로 진입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했다. 여기서 주로 나타난 의견이 소수자와 약자의 특성을 돌아보고, 그에 대응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게임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콘디스는 해당 관점이 페미니스트적/퀴어적 게임 비평의 기틀이 되었음을 인정하지만, 이것이 젠더 및 섹슈얼리티의 본질주의적 가정에 의존한다고 함께 꼬집는다. 가령 여성이 게임과 일체화되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는 여성 아바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타나곤 하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젠더 및 섹슈얼리티의 본질주의적 가정이다. 게임 산업과 학계의 이런 관점은 게이머 개인의 능력이나 맥락을 살피지 못하게끔 만든다. 이에 콘디스는 산업이 손을 들어주고자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과연 어떤 게이머가 ‘진정한’ 게이머로서 인정받는지 확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콘디스가 이런 사유를 끌어가면서 언급하는 개념이 ‘테크노 유토피아’다. 콘디스는 ‘진정한’ 게이머의 기준이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활발하게 이야기된 테크노 유토피아적 수사학(techno-utopian rhetoric)과 부합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게임에서의 테크노 유토피아는 신체적 요소가 게임을 통해 가려지며, 그에 따라 혐오 문제도 사라진다고 보았다. 현실의 차별적 요소는 게이밍 공간에 들어오면서 무화된다. 다시 말해 게임은 차별로 이어질 만한 현실 요소를 보이지 않게 하고, 그 결과 유토피아적 공간이 된다. 혐오와 관련된 문제를 굳이 상기시킬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콘디스는 다음의 사실들을 지적한다. 첫째, 흔히 게이머라고 인식되는 이들은 비장애인이자 백인인 이성애자 남성이다. 둘째, 테크노 유토피아적 관점은 게임의 이성애적 관점 및 남성성을 강화한다. 그리고 이것이 드러난 한 사례가 바이오웨어 측이 시행한 검열이었다. 즉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유저 중 테크노 ‘유토피아’에 들어갈 수 있는 ‘게이머’는 한정된다. 현실 공간과 게임 공간의 분리 콘디스가 이 연구를 통해 관찰하고자 한 건 바이오웨어를 옹호한 측의 게이머들이었다. 이들은 현실과 게임에 명확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현실의 정치적 문제와 깊게 연결된 사안들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진정한’ 게이머들은 현실 요소의 개입이 게임의 매력이나 효과를 약화한다고 보았다. 이 주장은 현실 공간과 놀이 공간의 완전한 분리를 얘기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의 ‘매직서클(magic circle)’ 개념과도 이어진다. 매직서클은 게임 안에 현실 문제가 침투할 수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콘디스가 살핀 게이머들이 현실 요소의 개입을 경계한 이유도 여기서 나타난다. 현실의 정치적 문제가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로운 게임 세계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직서클은 자연히 테크노 유토피아와도 연결된다. 콘디스는 게이머들이 게임 안에서 비정치적인 경험을 원하도록 학습되어 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육체가 사라지면서 이루어지는 이 학습을 통해, 게임은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검열에 실망한 유저들이 ‘진정한’ 팬이나 게이머가 아니라고 한 이들도 이러한 흐름에서 부각되었다. 콘디스는 이런 흐름이 퀴어 게이머들을 ‘유죄’의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전하며, 해당 규칙이 존속될 경우 게이머를 정의하고 분류하는 기준이 더욱 엄밀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 문제는 게이머가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드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앞서 서술했듯이 테크노 유토피아는 현실의 신체적 요소나 정체성에 관한 문제가 게임 안에서 무화된다고 본다. 이것은 게임, 나아가 온라인 공간을 평등의 장으로 인식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게이머들이 주장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온라인 공간에 진입함으로써 현실 요소도 가려지기에, 현실의 정치적 요소를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콘디스는 ‘진정한’ 게이머들이 테크노 유토피아를 보전함으로써 자신의 특권적 위치를 보호하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보르도(Bordo, 1995)를 인용하여, 온라인에 접속하면서 일어나는 신체와 정신의 분리가 백인 이성애자 남성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작용한다고도 설명한다. 여성, 퀴어, 소수 인종, 장애인은 정상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그들에 비해 결핍적인 존재로 판단된다. 한 마디로 정상으로 분류되는 것은 언제나 백인이자 이성애자인 남성이었다. 특히 이 텍스트에서 퀴어에 집중한 콘디스는 게임의 기본값이 이성애자로 전제되어 있기에 퀴어성이 지워지며 거부당한다고 본다. 평등을 이야기하는 듯한 현실 공간과 게임 공간의 분리는 오히려 차별적 요소를 부각시키고 있었다. 이에 콘디스는 정치적 문제에 대한 거부감이 오히려 정치적인 맥락으로써 작동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바이오웨어의 검열과 검열 철회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검열 문제는 2009년 4월에 발생했다. 이 문제가 불거진 공식 포럼은 본래 길드를 모집하거나 게임 소식을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 기능했다. 그러던 중 바이오웨어 측 관리자들은 평소 부정적이라 인식되는 특정 단어들을 검열하기로 하였다. 이는 포럼을 더욱 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결정이었다. 문제는 검열되는 단어 중에 ‘게이’와 ‘레즈비언’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성소수자에 관한 용어 검열은 드문 사례가 아니며, 이 검열은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지닌다. 이것이 <스타워즈: 구 공화국>에도 나타나자, 검열이 성소수자를 더욱 소외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글들이 업로드되기도 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게이머’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문제가 너무나 정치적이라는 명목하에, 바이오웨어의 결정을 옹호하였다. 다만 이 문제는 기타 온라인 커뮤니티를 비롯하여 언론의 주목까지 받게 되면서 반전되었다. 바이오웨어는 곧 성소수자 관련 용어들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끔 조치했다. 콘디스는 이 일련의 흐름이 융합 문화의 사회적·정치적 역학관계를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검열 논란이 있고 난 후 바이오웨어의 게임은 퀴어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등, 그 나름대로 퀴어 친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이에 ‘바이오웨어가 주요 고객층을 무시했다.’거나 게임 내 동성애 요소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호소하는 이들이 등장했으나, 바이오웨어는 이전과 달리 그 의견을 반박하고 거부하였다. 콘디스는 해당 게시글 작성자들이 이성애와 남성성을 보편적인 것으로 확정해 말하거나, ‘이성애자 남성 게이머’라는 단어 세분화에 거부감을 가졌다고 분석한다. 이처럼 콘디스는 <스타워즈: 구 공화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진정한’ 게이머의 조건은 무엇인지,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살핀다. 콘디스는 ‘진정한’ 팬 또는 게이머 무리가 미디어 환경을 장악했으며, 이들이 유토피아적 공간을 이룩하고 게임 내 특권적 지위를 이루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게임에 한정되지 않고 대부분의 미디어 문화에 포함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콘디스는 미디어 문화의 권력 흐름과 공유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진정한’ 팬 및 게이머 무리의 행동 양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가며 콘디스의 텍스트를 살피면서 <스타워즈: 구 공화국>과 퀴어에 관한 글을 하나 더 보게 되었다.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오랜 유저가 쓴 이 글은 퀴어 요소를 원하는 게이머가 지불해야 할 금액과 시간을 언급하고 있었다. 1) 작성자에 따르면 <스타워즈: 구 공화국>은 확장팩인 Rise of the Hutt Cartel부터 퀴어 캐릭터를 선보였는데, 이 확장팩은 유료로 제공되었다. 작성자는 이후로도 <스타워즈: 구 공화국>에서 퀴어적인 요소를 원한다면 그에 대한 DLC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고 밝혔다. 물론 DLC의 기능이 퀴어 캐릭터를 추가하는 데서 그치지는 않겠지만, 이 이야기는 게임이 상정하고 가는 이성애적 요소를 개인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게 해준다. 한 마디로 퀴어적 요소를 원하는 이들은 이성애적 플레이에 만족하는 이들보다 더 오랜 기다림과 금액 지불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팬이 제기한 문제는 한국 게임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몇몇 게임들은 동성 캐릭터 간의 결혼이 불가능한 상태다. 이에 게이머들이 문의를 해봐도 공식적인 답변이나 실현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그 이외에는 장애인에 관한 것이 있다. 콘디스는 퀴어적인 요소에 집중했지만, ‘진정한’ 게이머가 되지 못하는 유저에는 장애인도 포함된다. 여기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약속했던 <마비노기>가 ‘시각장애인이 게임을 할 수 있느냐’며 공격당한 사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러한 사례들로 미루어볼 때, 소수자이자 약자인 이는 일반적인 게이머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하다. ‘진정한’ 게이머들이 현실의 정치적 요소를 게임 내부로 들여오는 데 이의를 제기하고, 기존 규칙을 강화시키고자 한다는 콘디스의 분석은 여기서도 적용된다. 한편 콘디스가 말하는 ‘진정한’ 게이머의 기준 일부는 한국인에게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은 ‘진정한’ 게이머의 조건에 관해서다. 단순히 남성이고 이성애자이며 비장애인인 사람이면 되는가? 연령이나 게임의 숙련도, 과금 액수, 디바이스도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한국의 게임 주체로 상정되는 집단은 어떠한 이들인지 앞으로 점차 고민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Bordo, S. (1995). Unbearable Weight: Feminism, Western Culture, and the Body. California: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 원문은 다음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gaymingmag.com/2021/09/lgbtq-representation-star-wars-the-old-republic-is-complicated-but-rewarding/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 온라인 게임에 복귀했습니다.

  •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su Kim Studies a range of fields—culture and knowledge, space, and the academic field. Also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ves of gamers.

  • 물류는 게임 속에 어떻게 재현되는가

    물류 전문기자로 살아온 것이 어언 10여년. 필자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으니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이다. 물류(物類)란 그 단어가 품은 의미처럼 ‘만물의 이동’이다. 우리가 물류라고 굳이 인식하진 않겠지만,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오늘 입고 신은 옷가지와 신발, 식당에서 사용한 식기와 반찬 종지까지 모든 것에는 물류가 따라왔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유통, 최적화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yong Um A wild content jack-of-all-trades, keenly interested in making money beautifully through vertical content. Drawing on experience as a content creator and community planner across various vertical media, has run "Connectus"—a business membership and community built on distribution and logistics content—since Septembe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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