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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과 같이》는 한국을 어떤 맛으로 기억하는가― 야키니쿠에서 김치까지, 게임 속 한식의 풍경
무엇보다 (외국) 음식은 게임에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등장한다. 한식은 한국이라는 타지의 음식이며, 많은 경우 (재일)한국인이 운영 또는 소비하는 한식당에서 판매되고 게임 내에서 (재일)한국인의 거점으로 기능한다. 시리즈 내 한식과 함께 또 다른 ‘외국 음식’으로 존재하는 중식의 경우도 상황은 같다. < Back 《용과 같이》는 한국을 어떤 맛으로 기억하는가― 야키니쿠에서 김치까지, 게임 속 한식의 풍경 30 GG Vol. 26. 6. 10. 1. 왜 《용과 같이》에는 한식당이 이렇게 많을까?: 음식과 장소를 통해 드러나는 정체성 《용과 같이》 시리즈는 야쿠자와 범죄조직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중심에는 늘 인간의 욕망이 놓여 있다. 돈을 벌고, 권력을 얻고, 사랑을 쟁취하고, 더 좋은 삶을 꿈꾸는 욕망은 메인 스토리와 서브스토리를 관통하는 주요 동력이다.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사업을 확장하며, 연애를 하고, 유흥을 즐기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도록 유도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욕망이 게임 시스템 속에서 종종 '배고픔'과 '배부름'의 문제로 번역된다는 점이다. 게임의 캐릭터는 대개 화면 상단에 바(bar) 형태의 체력 게이지를 갖고 있으며, 게이지가 0이 되면 쓰러진다. 그런데 《용과 같이》에서 체력을 깎는 것은 적의 주먹만은 아니다. 상한 도시락을 먹거나, 원치 않는 여성과의 하룻밤을 보내어도 체력이 감소하며, 배가 불러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하는 정장제와 스킬이 존재한다. 권력욕·식욕·성욕이라는 욕망이 공복과 배부름의 수치로 가시화되는 셈이다. 소실된 체력은 드럭스토어에서 구입한 회복 아이템이나 음식 섭취를 통해 회복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용과 같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음식점의 규모이다. 작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플레이어가 이용할 수 있는 음식점은 적게는 20여 곳에서 많게는 40곳이 넘으며, 이들 식당의 모든 메뉴를 제패하는 것은 게임이 권장하는 대표적인 수집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다시 말해 《용과 같이》에서 음식은 캐릭터의 생존을 돕는 아이템인 동시에, 도시와 장소를 경험하는 하나의 매개이다. 《용과 같이》 시리즈는 현대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판타지 요소가 거의 없이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시리즈 대부분의 작품을 제작ㆍ총괄하여 “《용과 같이》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는 나고시 토시히로 총감독은 다른 게임처럼 광활한 맵은 아니지만, 공간의 밀도라는 측면에서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촘촘하게 구성된 맵이라고 생각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내었다. 북적이는 골목과 빽빽한 상점으로 구축된 “밀도 높은 공간”은 시리즈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적용되는 장치이자 일종의 문법이다. 그리고 추상적인 공간을 사실과 경험의 장소로 변모시키기 위해 《용과 같이》 시리즈는 음식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한식 역시 게임에서 ‘음식’이라는 메뉴이자 ‘음식점’이라는 공간의 형태로 재연된다.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플레이 스팟 중 하나인 음식점은, 플레이어의 체력을 보충하는 곳이며 스토리가 진행되는 공간적 배경을 이루기도 한다. 게임 내 음식은 기능적으로는 게임 인물의 생존을 위한 체력 강화를 담당해왔다. 그러나 기능으로만 존재하는 포션과는 달리 음식점이라는 공간에서 판매하는 음식에는 일종의 서사가 부여된다. 상차림은 사진의 형태로 시각적으로 제시되고, 게임 주인공은 음식을 ‘맛보고’ ‘감상’을 제시한다. 음식은 단순한 회복 수단이 아니라 음미와 감상의 대상으로 제시된다. 게임 내 판매되는 메뉴는 신중하게 선별된다. 나고야의 히츠마부시, 홋카이도의 징기스칸 등과 같이 지역의 로컬리티를 드러내는 메뉴가 선별되거나, 지역을 대표하는 실제 명물 맛집이 등장하기도 한다. 1920년에 오사카에 본점을 두고 창업한 복어 요리 전문점 즈보라야나 1960년에 탄생한 게 요리 전문점 카니도라쿠 등이 그 예이다. 1개에 200엔 정도에 판매되는 꼬치튀김부터 1인분에 20000엔을 호가하는 카이세키 정식까지 게임 내 음식점은 다양한 아비투스를 이루는데, 이는 간판을 비롯한 매장 외관, 내부 인테리어, 메뉴, 인스토어 뮤직과 같은 방식으로 입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구현된다. 해당 음식점과 제휴하여 창업자나 경영인이 게임 내 캐릭터의 형태로 직접 등장하여 음식 메뉴나 경영 철학을 홍보하는 목적의 서브스토리를 전개하기도 한다. 또 인기 셰프테이너 카와고에 타츠야를 모델로 한 필수 퀘스트 〈타츠야의 수행〉을 통해 플레이어가 새로운 지역의 특산 메뉴 음식점을 직접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음식점 방문이 퀘스트 진행의 조건이 됨으로써, 플레이어는 게임 내 공간에 장소성을 부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듯 음식과 음식점은 가상의 공간과 실제 세계 사이의 경계를 흐리며, 게임의 영향력이 화면 밖으로까지 확장되는 계기를 만든다. 게임 속 일본인 주인공이 한국 식당을 방문해 한식을 먹는 행위는 일종의 음식 관광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음식 관광(Culinary Tourism), 즉 미식 기행은 지리학자 윌버 젤린스키가 창안한 개념으로, 특별한 음식을 경험하는 것이 여행의 주된 동기가 되는 것을 일컫는다 [1] . 세계화로 인해 서로 엇비슷해지는 대도시의 풍광 속에서 관광객은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원하게 되는데, 이때 음식은 특정 지역의 고유성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된다. 또한 ‘현지인’처럼 ‘생활’하기를 목표로 호텔과 같은 ‘업체’ 대신 현지의 ‘집’을 공유하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며 “○○에서 한 달 살기”라는 식의 네이밍을 적극 활용하는 등 휴가와 일상의 결합을 지향하는 오늘날의 여행 트렌드에서도 맛집 탐방은 놓칠 수 없는 이벤트이다 [2] . 무엇보다 (외국) 음식은 게임에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등장한다. 한식은 한국이라는 타지의 음식이며, 많은 경우 (재일)한국인이 운영 또는 소비하는 한식당에서 판매되고 게임 내에서 (재일)한국인의 거점으로 기능한다. 시리즈 내 한식과 함께 또 다른 ‘외국 음식’으로 존재하는 중식의 경우도 상황은 같다. 중국 마피아는 변발을 상기시키는 삭발에 차이나 칼라의 옷으로 중국이라는 국적을 가시화하는데, 이들의 아지트는 중식당으로 위장된다. 이곳은 음식을 먹는 공간이자 동시에 중식도, 청룡도, 돼지머리 등의 이국적인 무기와 음식에서 비롯된 무기용 소품이 즐비한 격투 공간으로 기능한다. 음식관광에서 타자성은 중요한 개념으로, 음식관광은 자신과 다른 문화를 체험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3] . 2. 《용과 같이》 내 한식당 탐방기 《용과 같이》 시리즈 내 등장하는 한식당 [4] 은 도쿄 카무로쵸에 위치한 “한래(韓來)”와 “규우엔(牛遊宴)”, 오사카 소텐보리의 “곱창구이전문점(元祖 ホルモン焼き)”, 요코하마 코리아타운과 인근에 위치한 “어머니의 약속”, “윤 식품”, “전설의 김치 상인”, “하버라이트”, “서바이버” 등이 있다. 한식당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2006년 <용2>로, 시리즈에서 한국인 범죄조직 진권파의 등장과 시작을 같이 한다. 게임의 무대가 도쿄에서 오사카로 확장되면서 게임 내 핵심 세력인 동성회에 대항하는 해외 조직(원)으로 한국인이 설정된 것이다. 한국인의 캐릭터와 한식당의 상관 관계는 국적과 음식의 결합이 얼마나 공고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용과 같이》에 등장하는 한식당을 소개한다. 야키니쿠 한래: 《용과 같이》를 대표하는 한식당, “저명 인사들도 방문하는 유명 고깃집” 한래는 “야키니쿠 한래(焼肉 韓來)”라는 간판처럼 고기구이와 한식을 취급하며, 2006년 발매한 <용2>에 처음 등장한 이래 이후 발매된 모든 시리즈와 스핀오프작에서 한 번도 빠짐 없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대표하는 음식점이다. 한식당 한래는 게임에서 서브스토리나 이벤트가 발생하는 장소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곳이기도 한데, 특히 한류 스타 배용준을 차용한 이루전과 진권파의 보스 한준기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연출되었다. * 야키니쿠 한래의 깔끔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외관 도쿄 최고의 환락가를 표방하는 가상 공간 카무로쵸는 신주쿠에 위치한 유흥가 카부키쵸를 실제 모델로 하여 구현되었다. 한래가 위치한 카무로쵸 북서쪽을 실제 카부키쵸에 대입하면, 일본 최대의 (재일)한국인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와 경계를 접하는 지역에 해당한다. 입지 측면에서도 한래는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라 재일한국인 문화권과의 접점 위에 놓인 장소인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게임 속 한래가 시리즈의 전개와 함께 K-음식점으로서의 정체성과 이국성(異國性)을 시대적 변화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갱신해 왔다는 사실이다. 초기 작품에서 ‘칸라이’로 읽히던 식당명은 배용준으로 대표되는 1세대 ‘한류’ 열풍과 맞물리며 ‘한라이’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한국적 이미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표방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다소 허름했던 시리즈 초기에 비해 후기로 갈수록 규모도 커지고 내부 역시 정비되며, 한옥의 문살 문양을 활용한 벽면 장식과 전통 매듭공예를 활용한 벽걸이 장식 등 한국 전통문화와 관련된 인테리어 요소가 추가된다. 이러한 변화는 한래가 단순히 ‘한국식 고기구이 식당’을 재현하는 수준을 넘어, 당대 일본 사회에서 소비되는 K-컬처의 이미지와 문화적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곱창구이 전문점: 오사카 구도심에 자리한 원조 호루몬야키 음식은 특정 장소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상 가운데 하나이다. 오사카의 “곱창구이 전문점(元祖 ホルモン焼き)”은 <용2>에만 등장하는 장소로, <용극2> 리메이크 과정에서 식당이 위치한 신세이쵸 맵 전체가 삭제되면서 함께 사라졌다. 신세이초는 오사카의 대표적 구도심인 신세카이를 모델로 한 지역으로, 실제로도 호루몬야키와 쿠시카츠 같은 서민적인 음식 문화의 중심지로 잘 알려져 있다. 게임 속 식당은 별도의 상호 없이 “인테스턴(intestine)”이라는 키워드로 수수께끼처럼 제시되는데 [5] , 내장을 뜻하는 이 단어가 곧 식당의 위치를 찾는 실마리가 된다. 비록 작품 내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직접 명시되지는 않지만, 이 공간은 메인 서사 속에서 재일한국인 형사 카오루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중간 기점으로 기능한다. 동시에 생존을 위해 신분을 철저히 감춘 한국인 무라이의 은신처를 매개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호루몬야키라는 음식 자체가 일본 사회에서 재일한국인 문화와 역사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식당은 단순한 배경 공간을 넘어 재일한국인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을 환기하는 장소로 읽을 수 있다. 즉 이곳에서 음식은 단순한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특정 장소성과 민족적 기억을 상징하는 문화적 기호로 기능한다. 규우엔: 한국인이 운영하는 “발군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고깃집” 2010년대 후반 《용과 같이》 시리즈는 야쿠자의 권력 다툼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서사의 시대적 한계와, 그간 누적된 타이틀과 함께 비대해지고 늙어버린 키류의 서사 등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용극1>ㆍ<용극2>처럼 전작을 리메이크하거나 <용0>처럼 새로운 과거의 서사를 창작하는 한편, <저지아이즈>나 <북두와 같이> 등의 스핀오프 작품을 출시하는 등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던 끝에 <용6>에서 주인공 키류의 죽음을 위장하여 은퇴 처리하고, 2020년 <용7> 발매를 기점으로 시리즈의 대대적인 변신을 꾀한다. 카스가 이치반이라는 새로운 주인공을 만들고 턴제 전투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거대한 요코하마 맵을 새롭게 도입하였다. 주인공들은 권력 승계를 위한 다툼에서 조직의 해산과 평화를 위한 다툼으로 방향을 전환하였고, 여성ㆍ외국인ㆍ노숙자ㆍ호스트 등의 하위 주체들이 플레이어블 파티 캐릭터로 대거 등장하며 시리즈가 구현하고자 했던 어두운 “뒷세계”에 다양한 색채를 부여하였다. “Yakuza”라는 영미권 타이틀을 “Like a Dragon”으로 교체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과 (재일)한국인, 한식을 비롯한 관련 콘텐츠도 <용7>부터 크게 증가한다. 카무로초와 이세자키 이진초라는 공간을 공유하며 일부 인물과 세계관을 연동하는 《저지 아이즈》시리즈의 야키니쿠점 “규우엔(牛遊宴)”이 <용7>에서부터 《용과 같이》 시리즈에도 등장한다. 규우엔은 고급 한식당을 표방하는 한래와 달리, 보다 대중적인 야키니쿠 전문점으로 재현된다. 특히 규우엔은 (재일)한국인 캐릭터가 운영하는 음식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 규우엔의 외관: 가게 앞에 배치된 거대한 소 조형물이 ‘날 것’의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규우엔의 사장 김원승은 <저지 아이즈>에서 주인공 야가미와 프렌드 이벤트를 통해 친분을 쌓고, 길거리 격투 이벤트를 주관하는 인물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후속작 <로스트 저지먼트>에서는 전직 폭주족 출신 인물로 재등장하여 야가미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이처럼 김원승은 단순한 조연을 넘어 시리즈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서사를 부여받는 (재일)한국인 캐릭터라 할 수 있다. 그의 이야기는 <용8>의 식사토크를 통해 다시 소환되며 《저지 아이즈》와 《용과 같이》 시리즈 사이의 세계관적 연속성을 형성한다. 요컨대 규우엔은 단순히 한식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곳에서 음식점은 한국 음식의 소비 공간인 동시에 (재일)한국인의 존재를 서사 속에 연결하는 공간이다. 어머니의 약속: 본격 한식당의 개막, “어머니의 손맛으로 만든 한국 요리” <용7>에 이르러 선희와 한준기(김용수)라는 한국계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들은 코리아타운 에어리어를 거점으로 조직 ‘거미줄(コミジュル)’을 운영하며 서사의 중심축을 형성한다. 이 지역은 실제 요코하마의 후쿠토미초 코리아타운을 모델로 한 공간으로, 거리 곳곳에는 한글 간판과 한국어를 음차한 상호가 즐비하게 배치되어 있고 (재일)한국인 불량배들과 벌이는 전투에서는 “너 뭐야?” “뒤지게 맞고 싶냐?” 등과 같은 한국어 음성이 사용되어 한국의 느낌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코리아타운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한식이 핵심적인 문화 표상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게임이 재현한 야간 풍경에는 “고향의 맛 불고기”라는 대형 네온 간판이 랜드마크처럼 부각되며, 이를 중심으로 한국 음식점들이 밀집한 경관이 형성된다. 더욱이 과거 일본 사회에서 한국식 고기구이를 지칭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야키니쿠(焼肉)’ 대신 ‘불고기’라는 명칭이 전면에 내세워진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한식이 더 이상 일본 음식문화에 동화된 형태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음식문화로서 독자적인 정체성과 인지도를 확보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 코리아타운의 야경을 붉게 밝히는 '불고기'의 위엄 이곳에 위치한 게임 내 한식당 “어머니의 약속(オモニの誓い)”은 특별하다. 상호에 표기된 ‘오모니(オモニ)’는 한국어 ‘어머니’를 일본어로 번역하지 않고 음차한 것으로, 한국의 정체성을 즉각적으로 드러낸다. 이곳은 (재일)한국 조직의 본거지와 연결되는 비밀 통로를 품고 있는 장소이자, 코리아타운을 대표하는 본격 한식당으로 설정되어 있다. 점포 내부는 전통적인 공예품 일부와 한국어가 노출된 영화 및 광고 포스터를 적극적으로 배치함으로써 한국이라는 문화적 배경을 환기한다. * 어머니의 약속: 야키니쿠 없는 야키니쿠전문점 음식 구성 또한 기존 시리즈에 등장하던 야키니쿠 중심의 한식당과 차이를 보인다. 삼계탕, 닭갈비, 불고기, 삼겹살 등 한국을 대표하는 다양한 메뉴를 제공함으로써, 한국식 고기구이 전문점에 머물렀던 기존의 재현 방식을 넘어 보다 종합적인 한식 문화를 제시하고 있다. 즉 한식당 어머니의 약속은 상호, 공간 디자인, 메뉴 구성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의 흔적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장소이며, <용7>이 재현하는 코리아타운의 문화적 중심축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윤식당, 전설의 김치 상인: 한식 = 김치 이밖에도 노점 형태 [6] 의 “윤 식품”과 “전설의 김치 상인”이라고 표기되는 행상이 코리아 에어리어에 존재한다. 두 노점 모두 다른 음식을 취급하지 않고 오로지 김치만을 판매하며, 김치가 곧 한식의 동의어처럼 통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한국잡화 윤식품: 김치나 한국산 야채 외에도 한국드라마를 취급한다는 간판이 인상적이다. 실제로는 매대에서 “고급김치”만을 판매한다. 하버라이트, 서바이버: 코리아타운 주변의 한식 취급 주점 하버라이트는 중년의 마담이 운영하는 작은 주점이다. 육개장 국밥을 판매하는데, 식사 콤보명에도 “한국의 밥”이라는 표현이 명시된다. 코리아타운의 인근 스낵거리에 위치하여 한국인 조직 거미줄에게 전기를 상납하고 있는 점포 중 한 군데로 설정되어 있어 (재일)한국인 공동체와의 연관성을 드러낸다. 같은 스낵거리에 위치한 서바이버 역시 냉면을 판매하며 코리아타운과의 관계를 공유한다. 이들 장소는 협의의 한식당이라기보다 광의의 K-푸드 취급 점포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행상, 노점, 주점 등 영업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코리아타운 주변에 위치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즉 한식은 특정 식당에 국한되지 않고 코리아타운 전역의 생활 공간 속으로 확산되어 있으며, 한국과 재일한국인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일종의 문화적 경관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야키니쿠, 가장 오래된 재일한식 야키니쿠의 유래 《용과 같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한식의 메뉴는 크게 야키니쿠와 매운 한식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야키니쿠(焼肉)’라는 용어에 대해 간략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본래 ‘불고기’는 동물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음식을 의미하지만, (재일)한국인에 의해 일본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를 일본어로 직역한 ‘야키니쿠’라는 명칭이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이는 서양권에서 불고기를 통칭하여 ‘코리안 바비큐(Korean BBQ)’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한식의 정체성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불고기’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불고기’는 간장 양념을 사용한 특정 요리를 가리키는 의미로 정착한 반면, ‘야키니쿠’는 일본 사회에서 형성된 한국계 음식문화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더욱이 이 용어는 재일한국인과 한식이 일본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민족적 정체성과 국가적 정체성의 갈등, 그리고 문화적 융합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이유로 이 글에서는 ‘야키니쿠’라는 명칭을 사용하고자 한다. 야키니쿠는 《용과 같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최초의 한식이기도 하며, 실제 (재일)한국인들이 종사해 온 대표적인 업종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일본에서는 불교의 확산과 함께 675년 덴무 천황이 육식 금지령을 내렸고, 이후 1871년 메이지 천황이 육식 해금을 선언하기까지 약 1200년 동안 육식 문화가 크게 제한되었다. 육식이 허용된 이후에도 일본인들은 주로 살코기를 소비하였으며 내장은 식재료로 활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5년 패전 이후 (재일)한국인들이 소와 돼지의 내장을 조리하여 ‘호루몬야키’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사회에도 내장 섭취 문화가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한편 당시 재일한국인들은 국적 조항 등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취업의 기회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았던 음식점 창업이 중요한 생계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일본 음식문화에 존재하지 않았던 ‘불고기’, 즉 야키니쿠가 일본 사회에 정착하게 되었다 [7] . 따라서 야키니쿠는 단순한 음식의 명칭을 넘어 재일한국인의 노동과 생존, 그리고 일본 사회와의 문화적 교섭 과정을 담고 있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8] . 한국식 야키니쿠는 매콤한 식사, 일본식 야키니쿠는 달콤한 간식 야키니쿠가 한식 및 한식당을 대표하는 메뉴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은 《용과 같이》 시리즈 전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게임에 가장 먼저 등장한 한식당이자 시리즈 전반에 걸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한식당인 한래가 야키니쿠 전문점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시리즈 전체에서 등장했던 한식 관련 점포 7곳 가운데 2곳이 야키니쿠 전문점이라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인식이 제작 과정에서 나타난 일종의 무의식적 표상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이다. <용7>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약속은 삼계탕, 닭갈비, 불고기 등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는 본격 한식당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실제 메뉴에도 야키니쿠 관련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장 간판에는 야키니쿠전문점이라는 문구가, 내부에는 직화구이용 화로가 설치되며, 벽면에는 야키니쿠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기 부위 안내도가 일본어로 구현되어 있다. 이는 제작상의 단순한 실수로 볼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사회에서 한식당과 야키니쿠점이 강하게 중첩되어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 어머니의 약속 내부: 한글 포스터와 실제로는 취급하지 않는 야키니쿠 메뉴와 불판이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게임의 다른 요소들에서도 반복된다. 요코하마 코리아타운을 배경으로 하는 <용7>의 서브 스토리에는 정육점이 등장하며, <용2>에서는 (재일)한국인의 은신처를 찾는 과정에서 호루몬야키점이 중요한 단서로 기능한다. 이처럼 《용과 같이》 시리즈는 한국과 (재일)한국인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육식과 야키니쿠를 호출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야키니쿠를 (재일)한국인의 역사적 경험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음식문화로 기입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야키니쿠점을 한식당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야키니쿠는 재일한국인에 의해 시작된 업종이지만, 대중화와 함께 일본 식문화에 깊숙이 정착하면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야키니쿠점 역시 크게 증가하였다. 《용과 같이》 시리즈에도 이러한 변화가 반영되어 있다. 도쿄와 오사카 두 지역 모두에 구현된 야키니쿠 식당 규가쿠(牛角)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규가쿠는 1996년 도쿄에서 출발한 야키니쿠 체인으로, “The World's Best Japanese YAKINIKU Restaurant”와 “Japanese BBQ”를 표방하며 일본 국내외에 가장 많은 점포를 운영하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이다. 일본식 야키니쿠 식당 규가쿠와 한국식 야키니쿠점을 비교하면 유사하면서도 몇 가지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이들 점포 모두 야키니쿠를 중심으로 식사 메뉴와 디저트를 곁들이는 기본적인 구성 방식을 공유한다. 또한 갈비ㆍ우설ㆍ등심ㆍ안창 등 주요 육류 메뉴를 중심으로 희귀하거나 품질이 높은 부위를 별도의 고급 메뉴로 구분한다. ‘특상’ㆍ‘황제’ㆍ‘최고급’ 등의 명칭으로 표기되는 고급 메뉴의 존재와 비중은 각 점포가 지향하는 위상을 드러내는 코드가 된다. 이를 통해 게임 속 야키니쿠점은 “최상급”을 표방하는 고급 음식점 한래와, “가성비” 또는 “저렴한 가격”을 강조하는 대중 음식점 규우엔 및 규가쿠로 세분화된다. 반면 한국계 야키니쿠점과 일본계 야키니쿠점 사이에는 두 가지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첫째는 내장 메뉴의 유무이다. 한래, 규우엔, 호루몬야키 전문점에는 대창구이와 곱창구이 등 내장구이 메뉴가 포함되어 있지만, 규가쿠에는 이러한 메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일본에서 내장 섭취 문화가 (재일)한국인에 의해 확산되었다는 역사적 배경과도 관련된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내장을 식재료로 활용하지 않았으며, 패전 이후 (재일)한국인들이 이를 조리·판매하면서 비로소 대중화되었다. 실제로 내장구이를 가리키는 ‘호르몬(ホルモン)’의 어원이 오사카 방언인 ‘호루모노(버리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9] . 따라서 내장 메뉴의 존재 여부는 단순한 메뉴 구성의 차이를 넘어, 야키니쿠가 지닌 한국계 음식문화의 계보를 보여주는 지표로 이해할 수 있다. * 요코하마 코리아타운의 풍광에서도 곱창은 빠질 수 없다 둘째는 사이드 식사 메뉴의 구성이다. 한래와 규우엔 등 한국계 식당에서는 김치를 중심으로 한 매운맛의 한식 메뉴가 적극적으로 제공된다. ‘모둠 김치’, ‘김치볶음밥’, ‘육개장국밥’, ‘순두부찌개’, ‘돌솥비빔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메뉴는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기반으로 한 매운맛을 통해 한국 음식문화의 특징을 드러낸다. 반면 일본계 야키니쿠점인 규가쿠에서는 이러한 메뉴가 대부분 제외되고 퐁듀, 아이스크림과 같은 디저트류가 비중 있게 배치된다. 냉면이 예외적으로 제공되기는 하지만, 이는 매운맛이 거의 제거된 일본식 냉면의 형태로 재구성되어 있다. 시리즈에 등장하는 냉면은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모리오카 냉면’에 가까워 보인다. 토마토(수박), 매실, 시소 등을 고명으로 사용하고 단맛을 강화한 이 음식은 한국 냉면이 일본 사회에서 변용된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불고기와 야키니쿠의 관계가 그러하듯, 냉면과 모리오카 냉면 역시 한식과 재일한식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직역하면 ‘매실 차조기 냉면(梅しそ冷麺)’이 되어야 하지만 게임은 이를 ‘매실 깻잎 냉면’으로 번역한다. 일본에서는 차조기[しそ]를 사용하지만 한국 이용자에게 익숙한 깻잎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는 일본 사회에서 변용된 한식을 다시 한국어권 이용자에게 현지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한식이 다층적인 문화 번역의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육개장은 게임 내에서 ‘육개장 국밥(ユッケジャンクッパ)’으로 표기된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육개장’만으로 통용되지만, 일본어판에서는 ‘국밥’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음식의 성격을 보다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는 한식이 일본 사회에서 수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화 번역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육개장을 한식당의 메뉴로 선택한 것에는 후술할 김치와 더불어 한식의 본령을 매운맛에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이기도 하다. 3. 그래도 한식=김치 야키니쿠와 더불어 김치는 게임 내 한식 관련 콘텐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한다. 본격 한식당 어머니의 약속에서 “어머니의 김치(オモニのキムチ)”, “오이소박이(オイキムチ)”, “깍두기(カクテキ)” 등으로 김치를 세분하여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구현하는데, 이들을 일본어로 표기할 때에도 한국어 음가를 그대로 노출하고, 게임 내 음식점 소개 정보에서도 “어머니가 담근 김치의 맛이 일품이다”라며 김치를 가게의 정체성과 직결시키고 있다. 직접 담근 김치가 갖는 진정성 김치에 관련하여 주목해야 하는 특징은 김치를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직접 담그는 음식’으로 반복적으로 재현한다는 사실이다. 게임 내 메뉴 설명에서는 “가게 주인이 손수 담근”(규우엔), “식당의 ‘어머니’가 (…) 직접 담근”(어머니의 맹세), “김치 파는 노인이 만든”(전설의 김치) 등과 같은 표현이 사용된다. 즉, 김치는 단순히 소비되는 음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음식으로 강조된다. 이러한 재현 방식은 한식의 진정성(authenticity)과도 관련된다. 레이첼 살츠만은 뉴욕 캐츠킬 지역의 이민자 음식문화를 분석하면서, 전통 음식이 민족적 정체성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동시에 조리법과 의미가 변형되면서 진정성의 문제가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한다고 지적하였다 [10] . 김치를 ‘직접 담근 음식’으로 반복적으로 묘사하는 방식 역시 음식의 기원과 생산 과정을 강조함으로써 한식으로서의 진정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김치는 오랜 시간 동안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으로 인식되어 왔다. 최근에는 1인 가구 증가와 가족구조 변화로 인해 구매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김치를 사 먹는가 혹은 직접 담가 먹는가는 여전히 한국 식문화의 변화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남한과 북한의 김치 문화가 각각 등재될 당시에도 단순히 김치 자체가 아니라 ‘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라는 명칭 아래 김치를 만들고 나누는 문화가 함께 등재되었다. 일본의 교과서 역시 김치와 김장을 한국을 대표하는 식문화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 또한 이러한 문화적 의미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매운맛 김치는 단순한 반찬이나 식재료가 아니라 한국과 (재일)한국인을 드러내는 대표적 문화 기호이며, 한식의 진정성을 구현하는 핵심 기호로 기능한다. 김치가 국민 음식으로 떠오르는 과정은 외국 음식의 상징적 지배에서 해방되어 대중적인 국내 음식을 특정하여 맛의 독립을 선언하고, 국민 음식의 우수성을 찬양하는 대대적인 홍보가 동원되었으며, 표준화나 국제 무역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문화의 형성 과정과 유사하다 [11] . 김치라는 기호의 저변에는 발효를 통한 저장성, 마늘과 고추가 만들어내는 매운맛 등의 의미망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김치가 한국과 한민족의 문화 코드로 작동하는 이유는 후자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김치는 민족성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하였고,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며 ‘매운맛’은 한국인의 성격과 기질을 상징하는 문화적 표상으로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고추는 한국인의 문화적 DNA를 대표하는 식재료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12] . 나아가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은 작은 나라지만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국가라는 한국의 자기 인식과 결합하였으며, 오늘날에는 한국인만이 견딜 수 있는 매운맛에 대한 자부심, 이른바 ‘맵부심’이라는 형태로까지 발전하였다. 덴마크의 불닭볶음면 수입 금지 조치가 오히려 홍보가 되었다는 기사 [13] 나 일본인이 절대 안 믿는다는 한국인의 말 1위가 “안 매워요” [14] 라는 커뮤니티의 글은 우월감이 몇 방울 정도 섞인 웃음으로 향유된다. 이러한 인식은 《용과 같이》 시리즈에도 반영된다. <용8>의 식사 토크에서 난바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만 잘 먹지는 못한다며 “선희라면 괜찮지 않을까? 김치로 단련됐을 거 아냐?”라고 묻는다. 여기서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신체와 기질을 형성하는 문화적 자원으로 이해된다. 즉 한국인은 김치를 먹기 때문에 매운맛에 강하다는 문화적 고정관념이 자연스럽게 서사 속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게임이 김치를 재현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식의 대표 메뉴로서의 김치이고, 다른 하나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특별한 힘의 원천으로서의 김치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용7>의 서브 스토리 “김치는 아주 매운 게 최고”이다. 코리아타운의 노인이 직접 담근 “전설의 김치”를 먹은 인물들은 그동안 망설이던 일을 실행에 옮기거나, 정체되었던 운동 능력을 회복하거나, 노쇠로 인해 겪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한다.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고백하지 못하던 학생은 용기를 얻고, 기록 경신을 갈망하던 육상 선수는 새로운 추진력을 획득하며, 신호가 바뀌기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던 노인은 다시 활력을 되찾는다. * “전설의 김치”를 파는 행상 김치 파는 노인 이처럼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K-컬처의 대유이자, 매운맛을 통해 활력과 도전 정신을 부여하는 상징적 에너지의 원천으로 재연된다. 최고의 김치는 일본 고추로 만들어진다? 김치 파는 노인 : 오오! 총각은 알아주는구먼. 이 김치가 얼마나 훌륭한지. 그래. 이 김치야말로 압도적인 매운맛과 발군의 감칠맛을 겸비한 전설의 고추…… ‘오니노츠메’를 사용한 최고의 일품 이지. (중략) 건강에도 미용에도 아주 좋은데 이 매력을 도통 전할 수가 없단 말이지. (중략) 남녀노소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고! (중략) 카스가 : 그 그렇군. 그나저나 고추 하나로 이렇게까지 김치의 맛이 달라지는구나. 김치 파는 노인 : 당연하지. 고추는 맵기만 한 게 아니야. 개중에는 토마토보다 단 고추도 있어. 오니노츠메로 만든 이 김치야말로 세계 최고의 김치라고 믿고 있지 [15] . <용7>에서 카스가와 전설의 김치파는 노인이 주고 받는 이 대화는 김치의 매력이 단순히 매운맛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운맛과 감칠맛의 조화, 그리고 건강과 미용에 대한 효능에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김치의 특성이 모두 원재료인 고추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한국의 음식점과 급식소에서는 배추김치의 원재료인 배추와 고춧가루의 원산지를 모두 표시하도록 법률로 규정한다. 이는 김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가 고추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게임이 김치의 비법 재료를 ‘오니노츠메(鬼の爪)’라는 품종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니노츠메’는 직역하면 ‘귀신의 손톱’이라는 뜻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고추 품종인 ‘다카노츠메(鷹の爪, 매의 발톱)’를 연상시키는 가상의 품종이다. 다카노츠메는 오늘날 일본의 전통 고추 품종을 대표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으며, 오사카부가 지정한 전통 야채로 보호·육성된다. 즉 게임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김치의 핵심 재료를 일본의 전통 품종을 연상시키는 고추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세계 최고의 김치”가 만들어진다고 서술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고추의 기원과 전래 경로를 둘러싼 논쟁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특히 한일 관계에서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일본에서 유입되었다는 설과 조선을 통해 일본에 전파되었다는 설이 대립해 왔다. 그러나 주영하가 지적하듯 이러한 기원 논쟁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탐구라기보다 우열 관계를 전제한 전파론적 사고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실제로 음식의 역사는 특정 민족이 일방적으로 창조한 결과라기보다 다양한 공동체가 접촉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동화와 변용의 역사에 가깝다 [16]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문화적 자산이자 정체성의 표상으로 기능한다. 롱이 지적하듯 음식은 관광과 지역 정체성의 핵심 자원이 되었으며, 원산지와 식재료, 조리법은 진정성과 소유권을 둘러싼 중요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17] . 프랑스 와인의 원산지 명칭 제도와 같은 지리적 표시는 이러한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동일한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을 사용하더라도 프랑스 보르도산 와인이 호주산 와인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사례는 원산지 표기가 품질과 정통성의 지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용7>의 “전설의 김치” 서사는 주목을 요한다. 이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사례가 <용5>에 등장하는 “아메리카 소스 순두부찌개”이다. 어패류와 갑각류를 활용한 아메리카 소스와 생크림, 코코넛 파우더를 결합한 이 메뉴는 순두부찌개라는 한식에 새로운 조리법과 맛을 접목한 퓨전 음식으로, 실제 오프라인에서도 판매되며 화제를 모았다. 이는 한식의 외연을 확장하는 미식적 실험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음식문화는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변용되며 새로운 형태로 발전한다. 그러나 모든 변형이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순두부찌개에 아메리카 소스를 첨가하는 것은 기존 음식의 외연을 확장하는 시도일 수 있지만, 김치의 우수성과 정체성을 설명하는 핵심 근거를 일본 품종에 귀속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특히 김치가 한국과 한국인을 대표하는 민족음식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퓨전이나 현지화의 범주를 넘어 김치의 진정성과 문화적 소유권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더욱이 한국 사회에서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핵심 문화 기호로 자리매김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리아타운이라는 (재일)한국인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입을 통해 ‘세계 최고의 김치’의 비결을 일본 품종을 연상시키는 고추에 귀속시키는 서사는 민감한 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특히 한일 양국 사이에는 식민지배의 역사와 그에 대한 기억, 책임, 해석을 둘러싼 쟁점들이 현재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다단한 맥락 속에서 김치와 같이 민족ㆍ국가 정체성과 밀접하게 결합된 음식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를 일본의 전통 품종에 귀속시키는 서사는 한식에 대한 전반적인 호의적 재현과는 별개로, 음식의 원산지와 진정성, 그리고 문화적 소유권을 둘러싼 동시대적 논의를 요한다. 다시 말해 《용과 같이》 시리즈는 한식을 한국과 (재일)한국인의 문화적 표상으로 적극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그 정체성과 경계를 둘러싼 복합적인 긴장과 협상의 과정을 함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4. 날 것, 익힌 것, 썩은 것 레비스트로스는 『신화학』에서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날 것(le cru)’과 ‘익힌 것(le cuit)’의 대립을 통해 설명하였다. 날 것은 자연 상태에 가까운 음식이며, 익힌 것은 인간의 문화적 개입을 통해 변형된 음식이다. 여기에 발효를 통해 생성되는 ‘썩은 것(le pourri)’이 더해지면서 음식은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드러내는 상징체계로 기능한다. 《용과 같이》 시리즈에 재현되는 대표적인 한식 메뉴인 야키니쿠, 곱창, 냉면, 육개장, 김치를 레비스트로스를 빌어 분류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날 것 익힌 것 썩은 것 야키니쿠 냉면 · 육개장 김치 굽기 삶기 발효 매운맛 소 매운맛 중 매운맛 대 표의 좌측은 ‘날 것’에 가까운 음식군, 가운데는 삶기와 끓이기를 거친 ‘익힌 것’, 우측은 발효를 통해 만들어지는 ‘썩은 것’을 의미한다. 야키니쿠는 굽기를 통해 섭취되는 음식이지만 생고기의 상태가 강조된다는 점에서 ‘날 것’에 가까운 위치를 차지한다. 반면 냉면과 육개장은 삶기의 과정을 거친 음식으로서 ‘익힌 것’의 범주에 속한다. (본격 한식당 “어머니의 약속”에서 판매하는 삼겹살은 야키니쿠에, 불고기와 닭갈비는 여기에 ‘굽기’라는 조리를 강화한 것으로, 삼계탕은 ‘삶기’의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김치는 발효를 통해 생산되는 대표적인 ‘썩은 것’의 영역에 위치한다. 한편 레비스트로스의 분류에 더하여 매운맛의 정도를 보조 축으로 설정하였다. 흥미롭게도 《용과 같이》에 등장하는 한식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이동할수록 매운맛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야키니쿠와 삼겹살은 상대적으로 매운맛이 약한 반면, 육개장과 순두부찌개는 보다 강한 매운맛을 지니며, 김치는 몹시 매운맛을 갖는다. 즉 《용과 같이》의 한식은 조리 방식뿐 아니라 매운맛의 강도에 따라서도 일정한 분포를 형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 음식은 단순히 체력을 회복하는 소비 아이템이나 서사의 배경 소재에 머물지 않는다. 특히 최근작인 <용7>과 <용8>에서는 정규 캐릭터의 전용기와 극기, 그리고 게스트 캐릭터의 ‘딜리버리 헬프’를 통해 음식이 전투 연출의 핵심 소재로 활용된다. 일반적인 음식 콘텐츠가 이미지나 텍스트를 통해 완성된 음식을 제시하는 데 그친다면, 딜리버리 헬프는 음식의 조리 과정을 영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는 음식이 지닌 문화적 함의를 보다 적극적으로 시각화하는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야키니쿠는 익혀 먹는 음식이지만 손님에게는 생고기의 상태로 제공되며, 특히 소고기는 날것에 가까울수록 신선하고 품질이 좋은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용과 같이》의 야키니쿠 역시 이러한 특징을 반영한다. 예컨대 한래의 메뉴 설명은 “안창살: 소의 횡격막에 해당하는 고기”, “우설: 소의 혀를 얇게 썬 것”과 같이 조리법보다는 재료의 부위와 생물학적 정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즉 음식이 완성된 요리라기보다 해체된 동물의 신체 일부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날 것’의 특징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루시 롱이 지적하였듯 이국의 음식은 친숙함과 낯섦 사이에 위치하며, 그 낯섦은 맛의 문제를 넘어 ‘먹을 수 있는가 없는가’라는 터부의 영역과도 연결된다 [18] . 《용과 같이》 시리즈에 재현된 (재일)한식 역시 이러한 경계 위에 놓여 있다. 가면살인마 붓처즈 쇼: 여전히 익히지 않은 날 것으로 남아있는 한식 K-컬처의 영향으로 (재일)한국인과 한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대거 등장하는 <용7>에서도 한식을 ‘날 것’의 이미지와 연결하여 재현하는 경향은 유효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리아타운의 정육점 후계자인 지에이이다. 그는 코리아타운의 공터에서 하키 마스크를 쓴 채 칼을 휘두르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에게 “가면 살인마”로 오해받는다. 가업을 잇기 위한 연습으로 오해가 해소되지만, 그는 딜리버리 헬프에서 여전히 “가면살인마”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서브스토리 26. <가면살인마>). 정육과 해체, 그리고 날고기라는 이미지가 결합하여 형성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가면살인마의 붓처즈 쇼”라는 스킬 연출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장면에서 지에이는 고기를 익히거나 조리하지 않는다. 대신 칼로 재료를 절단하고 해체하는 과정이 전면에 제시되며, 화면은 온통 붉은색의 선혈로 가득하다. 완성된 음식 접시(문명)가 아닌 손바닥(야생) 위에 올려진 생고기의 형태로 제시된다. 또한 스킬 설명은 조리법이 아니라 “소름 끼치는 해체 작업”(딜리버리 헬프 내 “Skill help” 설명 중)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음식은 완성된 요리라기보다 해체된 동물의 몸으로 제시되며, ‘익힌 것’보다 ‘날 것’의 이미지가 전면화된다. * 가면 살인마 지에이의 붓처즈 쇼: 적색, 육식, 생식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이러한 연출은 일본인 시라카와 키요에의 “마돈나의 무료 급식”이나 중국인 쵸우의 “인간 중화볶음의 극”과 비교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먼저 시라카와의 “마돈나의 무료 급식”은 시라카와(白川)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듯 흰색의 포근한 니트를 입은 인물이 무와 두부 등 흰색 식재료를 손질하고, 이를 물에 끓여 익힘으로써 음식을 완성하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완성된 음식 역시 흰색 그릇에 담긴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고깃국”이며, 시라카와는 이를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넨다. 조리 과정과 결과물 모두가 따뜻함과 안정감, 그리고 ‘익힘’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 시라카와 키요에가 만든 마돈나의 무료 급식. 백색, 채식, 화식(火食)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색채 구성이 한국과 일본의 대표 음식이 상징하는 이미지와도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을 대표하는 민족음식이 붉은 김치라면 일본은 하얀 쌀밥이 이를 대신한다. 실제로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 재현되는 한식 역시 붉은색을 중심으로 시각화된다. 지에이의 붓처즈쇼가 선혈을 연상시키는 붉은 육즙과 생고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김치와 육개장 등 주요 한식 메뉴 역시 붉은 색채를 공유한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즉 게임은 일본의 음식을 흰색과 따뜻함, 익힌 것의 이미지로, (재일)한국의 한식을 붉은색과 강렬함, 날 것의 이미지로 대비시키고 있는 셈이다. 중국 음식과의 비교에서는 차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쵸우가 구사하는 “인간 중화볶음의 극”은 중화풍 화구와 웍을 사용하여 재료를 볶고 가열하는 과정이 전면에 제시되며, “중화요리는 화력이 생명”, “소금을 적당량”과 같은 대사를 통해 조리 행위 자체를 강조한다. 물론 적을 웍으로 볶아내는 과장된 연출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장은 야쿠자를 주인공으로 삼는 성인 등급의 게임 특성상 파워와 웃음을 전달하는 연출 장치로 기능한다. 중요한 점은 쵸우의 기술이 재료를 가열하고 조리하는 ‘익힘’의 과정을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반면 (재일)한식은 조리의 결과보다 절단과 해체, 그리고 생고기의 상태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재현된다. 즉 일본 음식이 흰색과 따뜻함을 통해 ‘익힌 것’의 이미지를, 중국 음식이 화력과 조리를 통해 ‘익힌 것’의 과정을 강조한다면, (재일)한식은 여전히 절단과 날고기의 이미지를 통해 ‘날 것’에 가까운 위치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용7>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경향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본격 한식당 “어머니의 약속”의 한식 구성과 전달 방식이다. 메뉴 삼겹살은 생고기를 굽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야키니쿠처럼 짐승의 생물학적 정보를 중심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상추와 홍고추로 장식된 완성된 음식의 사진과 함께 “얇게 썬 돼지고기 삼겹살을 바삭하게 구워 여러 재료와 함께 싸서 먹는다”처럼 조리 방법과 먹는 방식이 함께 제시된다. 불고기와 닭갈비 역시 양념과 조리 과정을 강조하며, 한식을 ‘날 것’이 아닌 ‘익힌 것’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한국 문화의 위상 변화와 더불어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와 주변부 인물을 조명해 온 시리즈의 방향성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미약하지만, 《용과 같이》 속 한식은 점차 ‘날 것’에서 ‘익힌 것’으로 이동하며 문화적 가공과 조리의 이미지를 획득하고 있다. 5. 곱창과 김치, 버려진 것의 부활 한편 게임 내에서 줄곧 (재일)한국인과 직결되던 메뉴였던 곱창은 레비스트로스의 도식 안에서도 예외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것은 단순한 ‘익힌 것’이 아니라 ‘태운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에지마 : 그 곱창이랑 똑같다. 내도 니도. 고기는 너무 바싹 구우면 딱딱해져가 먹질 못하지. 그런데 곱창은 다르데이. 바싹 타야지 가치가 있거든. 태우고 태우고 시커멓게 될 때까지 태워가 기름을 쫙 빼야 맛있는기라. 아무리 쫙 빼입고 좋은 생활을 해도 어차피 야쿠자- 태생이, 좋은 고기와는 다른기라. 마지마 : 우리는 곱창 같은 쓰레기 라 이거가? 사에지마: 맞다. 그러니까 우리는 좀 더 타야 하는 기다. 덜 탄 곱창은 그냥 쓰레기니까. 쓰레기는 태우고 또 태워서 시커매져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기다 [19] . * 마지마와 사에지마의 대화: 곱창으로 비유되는, 버려진 것의 부활 <용5>에서 사에지마는 수감 전 한래에서 마지마와 마지막 식사를 하며 “곱창은 바싹 태워야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고기가 지나치게 익으면 먹을 수 없게 되는 반면, 곱창은 오히려 불에 태워질수록 맛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곱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삶을 비유하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뒷세계”로 표현되는 사회의 이면에 있는 주인공들은 끊임없는 시련과 단련을 통해 자신을 ‘태우며’ 살아간다. 태운 것은 일반적으로는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것이지만, 그것은 형태가 불에 태워지는 소멸을 거치고 불사와 정화의 힘을 갖고 재생한다. 키류ㆍ사에지마ㆍ카스가 등의 주인공은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범죄조직 출신 인물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누구보다 불의에 저항하며 자신을 던져 약자를 돕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버려진 것”을 의미하던 곱창이 불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듯, 이들 역시 고난을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의미를 증명한다. 이러한 특징은 김치와도 연결된다. 레비스트로스의 분류에 따르면 김치는 ‘썩은 것’에 해당한다. 물론 여기서의 썩음은 단순한 부패가 아니라 발효라는 문화적 기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획득한 상태를 의미한다. 김치는 본래 채소를 장기간 보존하기 위한 저장 음식으로 발전하였지만, 오늘날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즉 김치는 자연적 변형의 결과물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문화적 개입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곱창이 ‘태움을 통해 재생된 음식’이라면, 김치는 ‘발효를 통해 재생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용과 같이》 시리즈에 재현된 한식은 레비스트로스의 ‘날 것–익힌 것–썩은 것’이라는 도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야키니쿠는 날 것에 가까운 음식으로, 냉면과 육개장은 익힌 음식으로, 김치는 썩은 음식으로 배치된다. 여기에 곱창은 ‘태운 것’이라는 예외적 범주를 형성하며 독자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특히 곱창과 김치는 각각 태움과 발효를 통해 새로운 가치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는 단순한 조리 방식의 차이를 넘어, 주변부와 배제의 경험을 새로운 정체성과 가치로 전환해 온 한국과 (재일)한국인의 역사적 경험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읽을 수 있다. 6. 마무리 《용과 같이》에 재연된 한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국과 (재일)한국인의 역사와 기억을 담아내는 문화적 표상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야키니쿠는 재일한국인의 노동과 생존의 역사를, 김치는 한국 사회가 공유하는 문화적 상상력을, 곱창과 김치는 버려진 것의 재생이라는 서사를 각각 담고 있었다. 특히 레비스트로스의 도식을 통해 살펴본 결과, 게임 속 한식은 날 것과 익힌 것, 태운 것과 썩은 것 사이를 오가며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문화적 의미를 생산하는 상징 체계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용과 같이》가 재현하는 한식의 풍경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한국과 (재일)한국인을 둘러싼 기억과 문화적 번역의 풍경이다. 플레이어가 한래에서 고기를 굽고, 코리아타운에서 김치를 사고, 어머니의 약속에서 삼계탕을 먹는 순간, 그 음식들은 더 이상 체력을 회복하는 아이템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을 상상하는 방식이자, 일본 사회 속에서 (재일)한국인이 만들어 온 삶과 기억의 풍경이 된다. [1] 루시 M. 롱, 「음식관광」, 옥스퍼드 음식의 역사: 27개 주제로 보는 음식 연구, 김병순 옮김, 따비, 2020, 631면. [2] Boniface, Priscilla, Tasting Tourism: Travelling for Food and Drink, Routledge, 2003. [3] Long, Lucy M., 「Culinary Tourism: A Folkloristic Perspective on Eating and Otherness」, Southern Folklore 55(3),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1998, pp.181-204. [4] 이 글에서 ‘한식당’은 본격 한식 전문점부터 메뉴 중 한식을 취급하는 곳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명칭으로 사용한다. [5] <용2> 11장 철의 규칙 중 [6] 뒤에 점포는 있지만 게임 내 물품 구매는 허름한 매대에서 이루어진다. [7] 신재경, 「재일동포 그들은 누구인가: 한국 불고기가 일본 인기요리 ‘야키니쿠’ 된 사연」, 제주의소리, 2011.06.07. [8] 이시재, 「근대일본의 ‘화양절충’ 요리의 형성에 나타난 문화 변용」, 아시아리뷰 5(1),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015, 47면. [9] 이붕언,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사진으로 기록한 재일동포 1세들의 마지막 초상, 윤상인 옮김, 동아시아, 2009: 이기원, 「[책 속으로 떠난 역사 여행 38] 일식 ‘호르몬야키’에 담긴 슬픈 역사」, 오마이뉴스, 2009.04.24. 재인용. [10] Rachelle H. Saltzman, “Rites of Intensification: Eating and Ethnicity in the Catskills”, Southern Folklore, 55(3), 1998, pp.205-223. [11] CHO, Hong Sik, 「Food and Nationalism: Kimchi and Korean National Identity」, The Korean Journal of International Studies 4-1, 2006, pp.207-229. Published online December 31, 2006. [12] 한경구, 「어떤 음식은 생각하기에 좋다: 김치와 한국민족성의 정수」, 한국문화인류학 26, 한국문화인류학회, 1994, 51-68면; 한경구, 「The Anthropology of the Discourse on the Koreanness of Koreans」, Korea Journal 43(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3. [13] 이미나, 「“얼마나 맵길래…” 외신기자 불닭볶음면 시식 ‘홍보효과 톡톡’」, 한국경제, 2024.06.24.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62473417 , 검색일: 2024.1.10.> [14] “일본인이 믿으면 안 되는 한국인의 말 1위”, 루리웹, 2022.2.21. < https://m.ruliweb.com/community/board/300781/read/55991578 ?, 검색일: 2024.1.10.>; 「“매운 거 잘 먹어…술 잘 마셔” 일본인이 한국서 하면 안 되는 말」, 세계일보, 2018.1.3. < https://www.segye.com/newsView/20180103003068 , 검색일: 2024.1.10.> [15] <용7> 서브스토리 “김치는 아주 매운 게 최고(そのキムチ、激辛につき)” 중 [16] 전파는 19세기 인종주의와 제국주의의 진화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으로 이미 인류학계에서 폐기되었다. 오히려 인류의 이동과 음식의 역사에서는 서로 다른 공동체의 접촉과정에서 발생하는 음식의 문화적 ‘동화와 변용’이 더 주요할 것이다. - 주영하, 「감수의 글」 중, 제프리 M. 필쳐 엮음, 옥스퍼드 음식의 역사: 27개 주제로 보는 음식 연구, 김병순 옮김, 따비, 2020. [17] 루시 M. 롱, 「음식관광」, 옥스퍼드 음식의 역사: 27개 주제로 보는 음식 연구, 김병순 옮김, 따비, 2020, 652면. [18] Long, Lucy M.(1998), op. cit. [19] <용5> 2부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이은우 오래도록 학생으로 살았고, 《메이플스토리》에서는 신궁으로 살았다. 서버 직업 랭킹 2위를 달성했지만 이력서에 기재한 바는 없다. 눈과 손은 예전 같지 않아도 근성으로 버티며 플레이 중이다. 구비문학 연구자로서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설화와 신화에서부터 현대 게임의 서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 《용과 같이》는 한국을 어떤 맛으로 기억하는가― 야키니쿠에서 김치까지, 게임 속 한식의 풍경
무엇보다 (외국) 음식은 게임에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등장한다. 한식은 한국이라는 타지의 음식이며, 많은 경우 (재일)한국인이 운영 또는 소비하는 한식당에서 판매되고 게임 내에서 (재일)한국인의 거점으로 기능한다. 시리즈 내 한식과 함께 또 다른 ‘외국 음식’으로 존재하는 중식의 경우도 상황은 같다. < Back How Like a Dragon Remembers Korea's Flavors: From Yakiniku to Kimchi, Scenes of Korean Food in Games 30 GG Vol. 26. 6. 10. 1. Why Does Like a Dragon Have So Many Korean Restaurants?: Identity Revealed Through Food and Place The Like a Dragon series tells stories of yakuza and criminal organizations, but at its center there always lies human desire. The desires to make money, gain power, win love, and dream of a better life are the principal engines running through both the main story and the substories. The player is led to grow characters, expand businesses, romance, indulge in entertainment, and desire something without end. What is interesting is that this desire is often translated, within the game's systems, into a matter of "hunger" and "fullness." A game's character usually has a bar-shaped health gauge at the top of the screen, and collapses when the gauge hits zero. But in Like a Dragon , it is not only the enemy's fist that whittles down health. Eating a spoiled lunchbox or spending a night with an unwanted woman also reduces health, and there exist digestive aids and skills that let you keep eating your fill even when full. The desires of power, appetite, and lust are, in effect, made visible as figures of hunger and fullness. Lost health can be recovered through restorative items bought at the drugstore or through eating. What is interesting here is the scale of the eateries that appear in the Like a Dragon series. It varies by title, but the restaurants a player can use range from around twenty at the low end to more than forty, and conquering every menu item at all these eateries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collection tasks the game encourages. In other words, in Like a Dragon food is at once an item that aids the character's survival and a medium for experiencing the city and its places. The Like a Dragon series is characterized by rendering contemporary Japanese society "realistically," with almost no fantasy elements. Toshihiro Nagoshi—the chief director who produced and oversaw most of the series and is called "the father of Like a Dragon "—has expressed pride in this, saying that while the map is not vast like those of other games, in terms of spatial density he believes it is the most tightly composed map in the world. The "high-density space" built from bustling alleys and densely packed shops is a device, a kind of grammar, applied consistently across the entire series. And to transform abstract space into a place of fact and experience, the Like a Dragon series makes active use of eateries. Korean food, too, is re-enacted in the game both as the menu item called "food" and in the form of the space called the "restaurant." Eateries—among the play spots a player can freely enter and leave—are places that replenish the player's health and also form the spatial backdrop against which the story unfolds. Functionally, in-game food has handled the health boosts needed for a game figure's survival. But unlike a potion that exists only as a function, the food sold in the space of a restaurant is given a kind of narrative. The spread is presented visually in the form of a photograph, and the game's protagonist "tastes" the food and offers a "remark." Food is presented not as a mere means of recovery but as an object of savoring and appreciation. The menu items sold in-game are carefully selected. Menus that reveal a region's locality are chosen—Nagoya's hitsumabushi, Hokkaido's Genghis Khan, and the like—or actual famous local establishments representative of a region appear. Examples include Zuboraya, a pufferfish specialty restaurant founded in 1920 with its head store in Osaka, and Kani Doraku, a crab-cuisine specialist born in 1960. From skewered fritters sold at around 200 yen apiece to kaiseki set courses fetching upward of 20,000 yen per person, the game's eateries form a range of habitus, realized three-dimensionally and actively through the signboard and storefront, the interior, the menu, and the in-store music. In some cases, in partnership with the restaurant in question, the founder or proprietor appears directly as a game character in a substory designed to promote the food menu or the management philosophy. And through the mandatory quest Tatsuya's Training —modeled on the popular cheftainer Tatsuya Kawagoe—the player is led to experience, firsthand, eateries serving the specialty menus of new regions. As visiting an eatery becomes a condition for advancing the quest, the player comes to have an experience that endows the in-game space with a sense of place. In this way, food and eateries blur the boundary between virtual space and the real world, creating an occasion for the game's influence to extend beyond the screen. The act of the game's Japanese protagonist visiting a Korean restaurant and eating Korean food can be understood as a kind of food tourism. Culinary tourism—gastronomic travel—is a concept devised by the geographer Wilbur Zelinsky, referring to cases where experiencing distinctive food becomes the chief motive of a journey.[1] Amid the cityscapes of metropolises that grow alike through globalization, tourists come to want new and varied experiences, and here food becomes a medium for expressing the singularity of a particular region. Moreover, in today's travel trends—which aim to fuse vacation with daily life, using Airbnb, which shares local "homes" instead of "businesses" like hotels in order to "live" like a "local," and actively deploying naming like "a month living in such-and-such place"—seeking out good restaurants is an event not to be missed.[2] Above all, (foreign) food appears in games sharing in national and ethnic identity. Korean food is the food of that foreign land called Korea, and in many cases it is sold in Korean restaurants run or patronized by Koreans (in Japan) and functions in-game as a stronghold of Koreans (in Japan). The same holds for Chinese food, which exists as another "foreign food" alongside Korean food in the series. The Chinese mafia make their Chinese nationality visible through shaved heads evoking the queue and clothing with Mandarin collars, and their hideout is disguised as a Chinese restaurant. This is a space for eating and at the same time a fighting space lined with exotic weapons—Chinese cleavers, green-dragon crescent blades, pig heads—and weapon-props derived from food. In food tourism, otherness is an important concept; food tourism is also the most direct and bodily way of experiencing a culture different from one's own.[3] 2. A Tour of the Korean Restaurants in Like a Dragon The Korean restaurants[4] that appear in the Like a Dragon series include "Hanrai (韓來)" and "Gyuen (牛遊宴)" in Tokyo's Kamurocho, the "Tripe-Grill Specialist (元祖 ホルモン焼き)" in Osaka's Sotenbori, and "Omoni's Vow," "Yun Foods," "Legendary Kimchi Merchant," "Harborlight," and "Survivor" in and around Yokohama's Koreatown. The Korean restaurant first appeared in 2006's Yakuza 2 , beginning together with the entry of the Korean criminal organization, the Jingweon family, into the series. As the game's stage expanded from Tokyo to Osaka, Koreans were set up as the overseas organization (members) opposing the Tojo Clan, the game's core faction. The correlation between Korean characters and Korean restaurants is also a case showing just how firmly nationality and food are bound together. Allow me to introduce the Korean restaurants that appear in Like a Dragon . Yakiniku Hanrai: The Korean restaurant that represents Like a Dragon —"a famous meat house visited even by notable figures" Hanrai handles grilled meat and Korean food, as its signboard "Yakiniku Hanrai (焼肉 韓來)" suggests, and ever since it first appeared in Yakuza 2 , released in 2006, it has appeared without a single omission in every subsequent title and spin-off—the eatery that represents the series. Hanrai is also a place actively used as a site where substories and events occur; in particular, it was staged as the place where Lee Ru-jeon—modeled on the Korean Wave star Bae Yong-joon—meets Han Jun-gi, the boss of the Jingweon family. * The clean, upscale-looking exterior of Yakiniku Hanrai. Kamurocho, the fictional space that styles itself Tokyo's finest pleasure district, was realized using Kabukicho, the entertainment quarter in Shinjuku, as its real model. Map the northwest of Kamurocho, where Hanrai sits, onto the actual Kabukicho, and it corresponds to the area bordering Shin-Okubo, Japan's largest Koreatown of Koreans in Japan. In terms of location, too, Hanrai is not a mere eatery but a place set upon a point of contact with the cultural sphere of Koreans in Japan. What is interesting is that the in-game Hanrai has, along with the series' development, continually updated its identity and foreignness as a K-eatery to match the changing times. The restaurant's name, read "Kanrai" in early titles, was changed to "Hanrai," dovetailing with the first-generation "Korean Wave" fervor epitomized by Bae Yong-joon—a shift that can be read as a move to profess a Korean image more actively. Also, compared with the somewhat shabby early series, the later titles grow larger in scale and tidier inside, with the addition of interior elements related to traditional Korean culture: wall decorations using the lattice patterns of hanok doors, and hangings using traditional knot craft. These changes show that Hanrai functions as a space that, beyond merely reproducing a "Korean-style grilled-meat restaurant," actively reflects the image and cultural influence of K-culture consumed in the Japanese society of the day. Tripe-Grill Specialist: The original horumonyaki in Osaka's old downtown Food is one of the important representations that reveal the history and culture of a particular place and the identity of the people who live there. Osaka's "Tripe-Grill Specialist (元祖 ホルモン焼き)" is a place appearing only in Yakuza 2 ; it vanished when the entire Shinseicho map where it sat was deleted in the course of the Yakuza Kiwami 2 remake. Shinseicho is an area modeled on Shinsekai, Osaka's representative old downtown, and in reality too it is well known as a center of working-class food culture such as horumonyaki and kushikatsu. The in-game restaurant is presented enigmatically, without a separate shop name, through the keyword "intestine,"[5] and this word for innards becomes the clue to finding the restaurant's location. Although the work does not directly specify it as a restaurant run by Koreans, this space functions within the main narrative as a midway point in the journey of Kaoru, a detective of Korean descent in Japan, toward his roots. At the same time, it is a place that mediates the hideout of Murai, a Korean who has thoroughly concealed his identity to survive. Considering in particular that the food horumonyaki has itself been historically and closely tied to the culture of Koreans in Japan within Japanese society, this restaurant can be read as a place that, beyond a mere backdrop, evokes the memory and identity of the community of Koreans in Japan. That is, here food functions not as a mere object of consumption but as a cultural sign symbolizing a particular sense of place and ethnic memory. Gyuen: A Korean-run meat house "boasting outstanding value for money" In the late 2010s, the Like a Dragon series began to show its problems: the period limits of a narrative that had unfolded around yakuza power struggles, and the narrative of Kiryu, grown bloated and old along with the titles accumulated over the years. To break through this, it remade earlier works as in Yakuza Kiwami 1 and Kiwami 2 , created a new past narrative as in Yakuza 0 , and sought various outlets by releasing spin-offs such as Judgment and Fist of the North Star: Lost Paradise —and finally, in Yakuza 6 , it staged protagonist Kiryu's death and wrote him into retirement, then, with the 2020 release of Yakuza: Like a Dragon ( Yakuza 7 ) as its turning point, attempted a sweeping transformation of the series. It created a new protagonist, Ichiban Kasuga, introduced a turn-based battle system, and newly introduced the vast Yokohama map. The protagonists shifted direction from struggles over the succession of power to struggles for the dissolution of organizations and for peace, and subaltern subjects—women, foreigners, the homeless, hosts, and others—appeared in numbers as playable party characters, lending diverse colors to the dark "underworld" the series had sought to realize. It is also from this point that the English-language title "Yakuza" was replaced with "Like a Dragon." And amid these changes, content related to Korea, Koreans (in Japan), and Korean food likewise increases greatly from Yakuza 7 on. Gyuen (牛遊宴), the yakiniku place of the Judgment series—which shares the spaces of Kamurocho and Isezaki Ijincho and links some characters and worldbuilding—appears in the Like a Dragon series too from Yakuza 7 . Unlike Hanrai, which professes to be an upscale Korean restaurant, Gyuen is reproduced as a more popular yakiniku specialist. Gyuen is especially noteworthy in that it is an eatery run by a character who is Korean (in Japan). * Gyuen's exterior: the giant cattle sculpture placed in front of the shop reinforces the image of the "raw." Gyuen's owner Kim Won-seung appears repeatedly in Judgment as a figure who builds a rapport with protagonist Yagami through a friend event and presides over street-fighting events. He reappears in the sequel Lost Judgment as a former member of a bōsōzoku biker gang, continuing his bond with Yagami. In this way Kim Won-seung can be called a Korean (in Japan) character who, beyond a mere supporting role, is continually given narrative across the series. His story is summoned again through the meal-talk in Yakuza 8 , forming a worldbuilding continuity between the Judgment and Like a Dragon series. In short, Gyuen, beyond a place that merely sells Korean food, clearly shows a "Korean-run" Korean restaurant. In other words, here the eatery is at once a space for consuming Korean food and a space that links the existence of Koreans (in Japan) into the narrative. Omoni's Vow: The opening of a full-fledged Korean restaurant—"Korean cuisine made with a mother's touch" By Yakuza 7 , Korean-descended playable characters appear: Seonhui and Han Jun-gi (Kim Yong-su). Based in the Koreatown area, they run the organization "Geomijul" (コミジュル) and form a central axis of the narrative. This area is a space modeled on the actual Fukutomicho Koreatown in Yokohama; signboards in Hangul and shop names transliterating Korean are lined up throughout the streets, and in battles waged against Korean (in Japan) thugs, Korean-language voice lines like "Who are you?" and "You wanna get beaten to death?" are used, revealing a Korean feel more directly. What is especially worth noting is that, in the process of reproducing Koreatown, Korean food functions as a key cultural representation. In the nighttime scenery the game reproduces, a large neon sign reading "Hometown Taste, Bulgogi" stands out like a landmark, and around it a landscape forms, dense with Korean eateries. Moreover, it is significant that the term "bulgogi" is brought to the fore instead of "yakiniku (焼肉)," which was generally used in past Japanese society to refer to Korean-style grilled meat. This shows that Korean food is no longer consumed in a form assimilated into Japanese food culture but is securing its own identity and recognition as a distinctly Korean food culture. * The majesty of "Bulgogi," lighting the night view of Koreatown red. The in-game Korean restaurant located here, "Omoni's Vow (オモニの誓い)," is special. The "Omoni (オモニ)" written in the shop name is a transliteration of the Korean word for "mother," left untranslated into Japanese, which immediately reveals a Korean identity. This is a place harboring a secret passage connected to the stronghold of a Korean (in Japan) organization, set up as the full-fledged Korean restaurant representing Koreatown. The interior actively places some traditional crafts and film and advertising posters exposing the Korean language, evoking the cultural backdrop of Korea. * Omoni's Vow: a yakiniku specialist with no yakiniku. The food lineup, too, differs from the yakiniku-centered Korean restaurants that appeared in earlier series. By offering a variety of menus representative of Korea—samgyetang, dakgalbi, bulgogi, samgyeopsal—it presents a more comprehensive Korean food culture, going beyond the earlier mode of reproduction that stayed within the Korean-style grilled-meat specialist. That is, the Korean restaurant Omoni's Vow is a place that reveals the traces of Korean culture three-dimensionally, from shop name and spatial design to menu composition, and can be seen as functioning as the cultural axis of the Koreatown that Yakuza 7 reproduces. Yun Foods, Legendary Kimchi Merchant: Korean Food = Kimchi Besides these, there exist in the Korea area a stall-type[6] "Yun Foods" and a peddler marked as the "Legendary Kimchi Merchant." Both stalls handle no other food and sell only kimchi, showing that kimchi passes as practically a synonym for Korean food. * Korean Sundries Yun Foods: the signboard advertising that it handles Korean dramas in addition to kimchi and Korean-grown vegetables is striking. In reality, only "premium kimchi" is sold from the stall. Harborlight, Survivor: Korean-food-serving pubs around Koreatown Harborlight is a small pub run by a middle-aged madam. It sells yukgaejang gukbap, and even the meal combo name explicitly carries the expression "Korean rice." Located in a snack alley near Koreatown, it is set up as one of the shops paying electricity tribute to the Korean organization Geomijul, revealing its connection to the community of Koreans in Japan. Survivor, located in the same snack alley, likewise sells naengmyeon and shares a relationship with Koreatown. These places can be understood less as Korean restaurants in the narrow sense than as shops handling K-food in the broad sense. These differ in their forms of business—peddler, stall, pub—but share the common trait of all being located around Koreatown. That is, we can see that Korean food is not confined to particular restaurants but has spread into the living spaces across all of Koreatown, forming a kind of cultural landscape that makes visible the existence of Korea and of Koreans in Japan. 3. Yakiniku, the Oldest Korean Food in Japan The Origins of Yakiniku The Korean food menu appearing in the Like a Dragon series can be broadly divided into two: yakiniku and spicy Korean food. First, the term "yakiniku (焼肉)" needs a brief explanation. Originally "bulgogi" means food made by grilling animal meat over fire, but in the process of taking root in Japan through Koreans (in Japan), the name "yakiniku"—a literal translation into Japanese—came into wide use. This can be seen as a case similar to how, in the West, bulgogi is collectively called "Korean BBQ." Of course, to reveal the identity of Korean food more directly, one could use the expression "bulgogi." But while today "bulgogi" has settled into meaning a particular dish using a soy-sauce-based marinade, "yakiniku" is used as a term referring to the whole of the Korean-derived food culture formed within Japanese society. Furthermore, this term holds significance in that it compactly shows the conflict between ethnic and national identity, and the history of cultural fusion, that emerged as Koreans in Japan and Korean food took root in Japanese society. For these reasons, this essay will use the name "yakiniku." Yakiniku is also the very first Korean food to appear in the Like a Dragon series, and it is closely related to a representative line of work that Koreans (in Japan) have actually engaged in. In Japan, with the spread of Buddhism, Emperor Tenmu issued a ban on meat-eating in 675, and until Emperor Meiji declared the lifting of that ban in 1871, meat-eating culture was greatly restricted for about 1,200 years. Even after meat was permitted, the Japanese mainly consumed lean meat and did not use innards as an ingredient. Against this backdrop, after the 1945 defeat, Koreans (in Japan) began to cook the innards of cattle and pigs and sell them under the name "horumonyaki," and so the culture of eating innards spread in earnest into Japanese society as well. Meanwhile, Koreans in Japan at the time often had their employment opportunities limited by institutional constraints such as nationality clauses. Under these conditions, opening an eatery—which had a relatively low barrier to entry—became an important means of livelihood, and in that process "bulgogi," that is, yakiniku, which had not existed in Japanese food culture, took root in Japanese society.[7] Yakiniku, therefore, can be called a food that, beyond a mere name for a dish, holds within it the labor and survival of Koreans in Japan and the process of cultural negotiation with Japanese society.[8] Korean-style yakiniku is a spicy meal; Japanese-style yakiniku is a sweet snack That yakiniku is recognized as the menu representing Korean food and Korean restaurants can be confirmed throughout the Like a Dragon series. To begin with, Hanrai—the Korean restaurant that appeared earliest in the game and the one appearing most frequently across the series—is set up as a yakiniku specialist, and the fact that two of the seven Korean-food-related shops to have appeared across the entire series are yakiniku specialists shows this. What is especially interesting is that this recognition can be confirmed even in a kind of unconscious representation that emerged in the production process. Omoni's Vow, appearing in Yakuza 7 , is set up as a full-fledged Korean restaurant offering a variety of menus—samgyetang, dakgalbi, bulgogi—and there is in fact no yakiniku-related item on its actual menu. Nonetheless, the shop signboard carries the phrase "yakiniku specialist," an open-flame brazier is installed inside, and on the wall a meat-cut chart commonly seen at yakiniku shops is rendered in Japanese. This can be seen as a simple production oversight, but on the other hand it can be read as a case showing that, in Japanese society, Korean restaurants and yakiniku shops are recognized as strongly overlapping. * Inside Omoni's Vow: visible are Hangul posters and the yakiniku menu and grill plate that are not actually handled there. This tendency recurs in other elements of the game as well. A butcher shop appears in a Yakuza 7 substory set against Yokohama's Koreatown, and in Yakuza 2 a horumonyaki shop functions as an important clue in the process of finding a Korean's (in Japan) hideout. In this way, the Like a Dragon series repeatedly summons meat-eating and yakiniku in the process of reproducing Korea and Koreans (in Japan), and as a result we can confirm that it inscribes yakiniku as the food culture that most vividly reveals the historical experience of Koreans in Japan. Of course, not every yakiniku shop can be classified as a Korean restaurant. Yakiniku is a line of work begun by Koreans in Japan, but as it became popular and took deep root in Japanese food culture, yakiniku shops run by Japanese also increased greatly. This change is reflected in the Like a Dragon series too. The yakiniku restaurant Gyukaku (牛角), realized in both the Tokyo and Osaka regions, is a representative case. Gyukaku is a yakiniku chain that started in Tokyo in 1996; professing itself "The World's Best Japanese YAKINIKU Restaurant" and "Japanese BBQ," it is one of the brands operating the most stores at home and abroad. Comparing the Japanese-style yakiniku restaurant Gyukaku with Korean-style yakiniku shops reveals similarities alongside several important differences. First, all these shops share the basic compositional method of centering on yakiniku with meal menus and desserts on the side. They also distinguish rare or high-quality cuts as separate premium menus, centered on main meat items such as galbi, ox tongue, sirloin, and skirt steak. The presence and proportion of premium menus marked with names like "extra-fine," "emperor," and "top-grade" become a code revealing the standing each shop aims for. Through this, the in-game yakiniku shops are subdivided into Hanrai, the upscale eatery professing the "top grade," and the popular eateries Gyuen and Gyukaku, which emphasize "value" or "low prices." By contrast, two clear differences exist between Korean-line and Japanese-line yakiniku shops. The first is the presence or absence of an innards menu. Hanrai, Gyuen, and the horumonyaki specialist include innards-grill menus such as grilled large intestine and grilled small intestine, but these do not appear at Gyukaku. This relates to the historical background that the culture of eating innards in Japan was spread by Koreans (in Japan). In Japan innards were long not used as an ingredient, and only after the defeat, when Koreans (in Japan) cooked and sold them, did they become popular at last. In fact, the theory that the etymology of "horumon (ホルモン)," referring to grilled innards, derives from the Osaka dialect "horumono (things to throw away)" is widely known.[9] Therefore, whether or not an innards menu is present can be understood, beyond a mere difference in menu composition, as an indicator showing the Korean-line lineage of food culture that yakiniku carries. * In the scenery of Yokohama's Koreatown, too, tripe is not to be left out. The second is the composition of the side-meal menu. At Korean-line establishments such as Hanrai and Gyuen, spicy Korean menus centered on kimchi are actively offered. "Assorted kimchi," "kimchi fried rice," "yukgaejang gukbap," "sundubu jjigae," and "dolsot bibimbap" are representative. These menus reveal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food culture through a spiciness based on gochujang and gochugaru. By contrast, at the Japanese-line yakiniku shop Gyukaku, most such menus are excluded, and desserts like fondue and ice cream are placed with prominence. Naengmyeon is offered as an exception, but it is reconstructed in the form of Japanese-style naengmyeon, with the spiciness almost entirely removed. The naengmyeon appearing in the series seems close to "Morioka naengmyeon," which developed independently in Japan. Using toppings such as tomato (watermelon), plum, and shiso, and with sweetness intensified, this dish is regarded as a representative case of Korean naengmyeon adapted within Japanese society. Just as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bulgogi and yakiniku, naengmyeon and Morioka naengmyeon can likewise be called a case showing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n food and Korean food in Japan. Translated literally it should be "plum-shiso naengmyeon (梅しそ冷麺)," but the game translates it as "plum-kkaennip naengmyeon." Although Japan uses shiso (しそ), it has been replaced with kkaennip (perilla leaf), which is familiar to Korean users. This can be called a process of re-localizing, for Korean-language users, a Korean food that was adapted within Japanese society, and it shows that Korean food is undergoing a multilayered process of cultural translation. Yukgaejang is marked in-game as "yukgaejang gukbap (ユッケジャンクッパ)." In Korea it generally passes simply as "yukgaejang," but the Japanese edition adds the explanatory word "gukbap" to convey the dish's character more intuitively. This can be seen as a case of the cultural translation that occurs as Korean food is received within Japanese society. The choice of yukgaejang as a Korean-restaurant menu, together with the kimchi discussed below, is also a marker showing that the essence of Korean food is placed in spiciness. 3. And Yet, Korean Food = Kimchi Along with yakiniku, kimchi sits as the most important keyword in the game's Korean-food-related content. At the full-fledged Korean restaurant Omoni's Vow, kimchi is subdivided and realized in various kinds—"Omoni's kimchi (オモニのキムチ)," "oi-sobagi (オイキムチ)," "kkakdugi (カクテキ)"—and even when written in Japanese, the Korean phonetic values are exposed as is; the in-game restaurant description, too, directly ties kimchi to the shop's identity, saying "the taste of the kimchi the mother pickles is exquisite." The authenticity of hand-pickled kimchi A characteristic to note regarding kimchi is the fact that it is repeatedly reproduced not as a mere food but as a "food one pickles oneself." In-game menu descriptions use expressions like "hand-pickled by the shop owner" (Gyuen), "pickled by the restaurant's 'mother' herself" (Omoni's Vow), and "made by the old man who sells kimchi" (Legendary Kimchi). That is, kimchi is emphasized not as a food simply consumed but as a food made by passing through someone's hands. This mode of reproduction relates to the authenticity of Korean food. Analyzing the immigrant food culture of New York's Catskills region, Rachelle Saltzman pointed out that traditional food is used as a means of conveying ethnic identity while, at the same time, the question of authenticity rises as an important issue as recipes and meanings are transformed.[10] The way of repeatedly depicting kimchi as a "hand-pickled food" can likewise be understood as a strategy to secure authenticity as Korean food by emphasizing the food's origin and process of production. In fact, in Korean society kimchi has long been recognized as a food made and eaten at home. Recently, with the rise in single-person households and changes in family structure, the proportion purchased has grown, but whether one buys kimchi or pickles it oneself remains one of the important indicators for gauging change in Korean food culture. Also, when the kimchi cultures of South and North Korea were each inscribed on UNESCO's 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it was not simply kimchi itself but, under the name "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the culture of making and sharing kimchi that was inscribed together. Japanese textbooks, too, introduce kimchi and kimjang as a food culture representative of Korea, which shows that Japanese society is also fully aware of this cultural meaning. Korea's Spiciness Kimchi is not a mere side dish or ingredient but a representative cultural sign revealing Korea and Koreans (in Japan), and it functions as a key sign embodying the authenticity of Korean food. The process by which kimchi rose to become a national food resembles the process of Korean culture's formation, in that it broke free from the symbolic dominance of foreign food, specified a popular domestic food to declare an independence of taste, mobilized large-scale promotion praising the excellence of the national food, and is undergoing conflict in standardization and international trade.[11] Beneath the sign of kimchi lies a web of meanings: preservability through fermentation, the spiciness created by garlic and chili, and so on. The reason kimchi works as a cultural code for Korea and the Korean people is, in particular, deeply related to the latter. With the 1988 Seoul Olympics as a turning point, kimchi established itself as a food representing ethnicity, and through the 2002 World Cup, "spiciness" expanded into a cultural representation symbolizing the character and temperament of Koreans. In this process, the chili pepper began to be recognized as an ingredient representing Koreans' cultural DNA.[12] Furthermore, the proverb "small peppers are spicy" combined with Korea's self-perception as a small country that nonetheless must by no means be taken lightly, and today it has developed even into a form of pride in a spiciness only Koreans can endure—so-called "spice pride." An article reporting that Denmark's import ban on Buldak fried noodles became, if anything, free publicity,[13] or community posts saying that the No. 1 thing Koreans say that Japanese people absolutely never believe is "it's not spicy,"[14] are enjoyed as laughter mixed with a few drops of superiority. This recognition is reflected in the Like a Dragon series too. In the meal-talk of Yakuza 8 , Nanba, saying he likes spicy food but can't really handle it, asks, "Seonhui would be fine, wouldn't she? She'd have been toughened up by kimchi, right?" Here kimchi is understood not as a mere food but as a cultural resource forming the bodies and temperament of Koreans. That is, the cultural stereotype that Koreans are strong against spiciness because they eat kimchi is naturally projected into the narrative. Meanwhile, the way the game reproduces kimchi divides broadly into two strands. One is kimchi as a representative Korean menu, as examined above; the other is kimchi as the source of a special power that makes the impossible possible. The representative case is the Yakuza 7 substory "Kimchi Is Best When It's Really Spicy." The figures who eat the "Legendary Kimchi" hand-pickled by an old man of Koreatown carry out something they had been hesitating over, recover athletic ability that had stalled, or overcome physical limits suffered through aging. A student who could not confess to the one he loved gains courage; a track athlete craving to break records obtains new propulsion; an old man who could not cross the crosswalk before the light changed regains his vitality. * The peddler old man who sells "Legendary Kimchi." In this way, in the Like a Dragon series kimchi is re-enacted not as a mere food but as a synecdoche for K-culture and as a source of symbolic energy that, through spiciness, confers vitality and a spirit of challenge. Is the best kimchi made with Japanese chili? KIMCHI-SELLING OLD MAN: Oh! Young man, you get it—how splendid this kimchi is. Yes. This very kimchi is the finest piece, made with the legendary chili that combines overwhelming spiciness and outstanding umami... "Oni-no-tsume." (...) It's wonderful for health and for beauty, too, but I just can't get this charm across. (...) Young and old, men and women, can all eat it with peace of mind! (...) KASUGA: I-I see. Even so, who knew a single chili could change the taste of kimchi this much. KIMCHI-SELLING OLD MAN: Of course. Chili isn't just spicy. Some are sweeter than tomatoes. I believe this kimchi made with Oni-no-tsume is the world's best kimchi.[15] This exchange between Kasuga and the old man who sells legendary kimchi in Yakuza 7 emphasizes that kimchi's appeal lies not simply in spiciness but in the harmony of spiciness and umami, and in its efficacy for health and beauty. It also explains that all these characteristics of kimchi derive from the raw ingredient, the chili. In fact, Korean restaurants and cafeterias are required by law to indicate the place of origin of both the napa cabbage and the gochugaru that are the raw ingredients of cabbage kimchi. This shows that one of the key elements composing kimchi's identity is the chili. The problem, though, is that the game sets kimchi's secret ingredient as a variety called "Oni-no-tsume (鬼の爪)." "Oni-no-tsume" literally means "demon's claw," a fictional variety evoking "Taka-no-tsume (鷹の爪, hawk's talon)," a representative Japanese chili variety. Taka-no-tsume is known today as the representative traditional Japanese chili variety, protected and cultivated as a traditional vegetable designated by Osaka Prefecture. That is, the game sets the core ingredient of kimchi—a food representing Korea—as a chili evoking a traditional Japanese variety, and through this it narrates that the "world's best kimchi" is made. Of course, controversies over the origin and transmission route of the chili have long existed. In Korea-Japan relations in particular, the theory that it came in from Japan with the Imjin War as the occasion has stood opposed to the theory that it spread to Japan by way of Joseon. But as Joo Young-ha points out, such origin controversies risk falling into the trap of a diffusionist mode of thought that presupposes a relation of superiority and inferiority, rather than a simple inquiry into historical fact. In reality, the history of food is closer to a history of assimilation and adaptation formed in the process of various communities contacting and exchanging, than to a result unilaterally created by a particular people.[16] Nonetheless, today food functions, beyond mere edibles, as a cultural asset and a representation of identity. As Long points out, food has become a key resource of tourism and regional identity, and place of origin, ingredients, and recipes have become important objects of contention over authenticity and ownership.[17] Geographical indications such as France's appellation-of-origin system for wine are a case symbolically showing this tendency. The fact that, even using the same Cabernet Sauvignon variety, wine from Bordeaux, France trades at a far higher price than wine from Australia shows that origin labeling operates as an indicator of quality and authenticity. Seen in this context, the "Legendary Kimchi" narrative of Yakuza 7 demands attention. A case to compare it with is the "America-sauce sundubu jjigae" appearing in Yakuza 5 . Combining an America sauce using fish, shellfish, and crustaceans with fresh cream and coconut powder, this menu is a fusion food grafting a new recipe and taste onto the Korean dish sundubu jjigae; it was actually sold offline as well and drew attention. This can be understood as a gastronomic experiment expanding the scope of Korean food. Of course, food culture moves and adapts across borders and develops into new forms. But not all transformations carry the same meaning. Adding America sauce to sundubu jjigae may be an attempt to expand the scope of an existing food, but attributing the core grounds explaining kimchi's excellence and identity to a Japanese variety is a matter of an entirely different order. Considering in particular that kimchi functions as the ethnic food representing Korea and Koreans, this setup, beyond the category of mere fusion or localization, comes to raise questions about kimchi's authenticity and cultural ownership. Moreover, in Korean society kimchi has established itself not as a mere food but as a key cultural sign by which Korean society explains itself. In this situation, a narrative that, against the backdrop of Koreatown—a space of Koreans in Japan—and through the mouth of a figure presumed to be Korean, attributes the secret of the "world's best kimchi" to a chili evoking a Japanese variety, harbors the possibility of sensitive interpretation. It is necessary to consider in particular that, between Korea and Japan, issues over the history of colonial rule and the memory, responsibility, and interpretation of it remain to this day not entirely resolved. Within such a many-layered context, a narrative that attributes a core element composing a food bound so closely to ethnic and national identity, like kimchi, to a traditional Japanese variety—quite apart from the overall favorable reproduction of Korean food—calls for contemporary discussion over food's place of origin, authenticity, and cultural ownership. In other words, the Like a Dragon series, while actively using Korean food as a cultural representation of Korea and Koreans (in Japan), at the same time also reveals the process of complex tension and negotiation over that identity and its boundaries. 4. The Raw, the Cooked, the Rotted In Mythologiques , Lévi-Strauss expla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nature and culture through the opposition of "the raw (le cru)" and "the cooked (le cuit)." The raw is food close to the natural state; the cooked is food transformed through human cultural intervention. With the addition of "the rotted (le pourri)," produced through fermentation, food functions as a symbolic system revealing the boundary between nature and culture. Classifying, by way of Lévi-Strauss, the representative Korean-food menus reproduced in the Like a Dragon series—yakiniku, tripe, naengmyeon, yukgaejang, kimchi—would yield the following. The Raw The Cooked The Rotted Yakiniku Naengmyeon · Yukgaejang Kimchi Grilling Boiling Fermentation Mild spice Medium spice Strong spice The left of the table means the food group close to "the raw," the center "the cooked" that has passed through boiling and simmering, the right "the rotted" made through fermentation. Yakiniku is food consumed through grilling, but in that the state of raw meat is emphasized, it occupies a position close to "the raw." Naengmyeon and yukgaejang, by contrast, are foods that have passed through the process of boiling and so belong to the category of "the cooked." (At the full-fledged Korean restaurant "Omoni's Vow," the samgyeopsal sold can be understood as yakiniku, the bulgogi and dakgalbi as intensifying the "grilling" preparation upon it, and the samgyetang as the domain of "boiling.") Kimchi, in comparison, sits in the domain of the representative "rotted," produced through fermentation. Meanwhile, in addition to Lévi-Strauss's classification, I have set the degree of spiciness as a supplementary axis. Interestingly, the Korean food appearing in Like a Dragon tends to grow spicier as one moves from left to right. Yakiniku and samgyeopsal are relatively mild, while yukgaejang and sundubu jjigae carry a stronger spiciness, and kimchi has a fierce spiciness. That is, we can confirm that the Korean food of Like a Dragon forms a certain distribution according not only to cooking method but also to the intensity of spiciness. In the Like a Dragon series, food does not stay a mere consumable item for recovering health or a backdrop material for the narrative. In the recent titles Yakuza 7 and Yakuza 8 in particular, food is used as a key material for staging combat, through the regular characters' signature moves and ultimate skills and through guest characters' "Delivery Help." If ordinary food content stops at presenting completed food through image or text, Delivery Help differs in that it reproduces the cooking process as video. This can be understood as a device that more actively visualizes the cultural implications food carries. Yakiniku is food eaten cooked, but it is served to the customer in the state of raw meat, and beef in particular is often recognized as fresher and of better quality the closer it is to raw. The yakiniku of Like a Dragon reflects this characteristic too. For example, Hanrai's menu descriptions are organized around the cut and biological information of the ingredient rather than the recipe—"skirt: the meat corresponding to the cow's diaphragm," "ox tongue: the cow's tongue thinly sliced." That is, in that the food is presented less as a completed dish than as a part of a dismembered animal's body, the characteristic of "the raw" is emphasized. Furthermore, as Lucy Long pointed out, foreign food is located between the familiar and the strange, and that strangeness connects, beyond the question of taste, to the domain of taboo—"can it be eaten or not."[18] The Korean food (of Koreans in Japan) reproduced in the Like a Dragon series likewise sits upon this boundary. The Masked Killer's Butcher's Show: Korean food still left raw, uncooked Even in Yakuza 7 , where Koreans (in Japan) and Korean food appear in numbers in a positive direction under the influence of K-culture, the tendency to reproduce Korean food by linking it to the image of "the raw" remains in force. The representative case is Ji-ei, heir to a Koreatown butcher shop. Because of how he swings a knife while wearing a hockey mask in a Koreatown vacant lot, he is mistaken by people for a "masked killer." The misunderstanding is cleared up as practice for taking over the family business, but in Delivery Help he still appears under the name "masked killer" (Substory 26, The Masked Killer ). It can be called a result formed by the combination of butchery, dismemberment, and the image of raw meat. This tendency emerges even more clearly in the skill staging called "The Masked Killer's Butcher's Show." In this scene Ji-ei does not cook or prepare the meat. Instead, the process of cutting and dismembering ingredients with a knife is presented front and center, and the screen is filled all over with red fresh blood. It is presented not as a completed plate of food (civilization) but in the form of raw meat placed on a palm (the wild). The skill description, too, emphasizes not a recipe but "the spine-chilling work of dismemberment" (from the "Skill help" description within Delivery Help). That is, food is presented less as a completed dish than as a dismembered animal body, and the image of "the raw" is foregrounded over "the cooked." * Masked killer Ji-ei's Butcher's Show: revealed through images of red, carnivory, and the raw. This staging becomes clearer when compared with the Japanese Kiyoe Shirakawa's "Madonna's Free Meal" or the Chinese Chou's "Ultimate Human Stir-Fry." First, Shirakawa's "Madonna's Free Meal" is composed of a process in which a figure—wearing a soft white knit, as the name Shirakawa (白川, white river) evokes—prepares white ingredients such as radish and tofu and completes the food by boiling them in water. The completed food, too, is a "meat soup that warms body and heart" served in a white bowl, which Shirakawa offers courteously with both hands. Both the cooking process and the result are composed around images of warmth, stability, and "cooking." * Kiyoe Shirakawa's Madonna's Free Meal: revealed through images of white, vegetarianism, and cooking with fire. What is interesting is that this color composition also touches on the images symbolized by the representative foods of Korea and Japan. If the ethnic food representing Korea(ns) is red kimchi, white rice stands in for it in Japan. In fact, the Korean food reproduced in the Like a Dragon series is likewise visualized around the color red. Ji-ei's Butcher's Show puts forth red juices and raw meat evoking fresh blood, and major Korean menus such as kimchi and yukgaejang likewise share a red coloring—this shows it. That is, the game contrasts Japanese food with images of white, warmth, and the cooked, and the Korean food (of Koreans in Japan) with images of red, intensity, and the raw. In the comparison with Chinese food, the difference becomes even clearer. The "Ultimate Human Stir-Fry" that Chou employs presents front and center the process of stir-frying and heating ingredients using a Chinese range and wok, emphasizing the act of cooking itself through lines like "Chinese cuisine lives by firepower" and "salt in the right amount." Of course, the exaggerated staging of stir-frying an enemy in a wok may look aggressive and violent. But such exaggeration functions, given the nature of a mature-rated game with yakuza as protagonists, as a staging device conveying power and laughter. The important point is that Chou's technique clearly shows the "cooking" process of heating and preparing ingredients. By contrast, Korean food (of Koreans in Japan) is reproduced in a way that emphasizes cutting and dismemberment, and the state of raw meat, rather than the result of cooking. That is, if Japanese food emphasizes the image of "the cooked" through white and warmth, and Chinese food the process of "the cooked" through firepower and cooking, then Korean food (of Koreans in Japan) still remains in a position close to "the raw" through the image of cutting and raw meat. In the works after Yakuza 7 , however, a change begins to appear in this tendency. The representative case is the Korean-food composition and mode of delivery of the full-fledged Korean restaurant "Omoni's Vow." The menu item samgyeopsal, despite being food made by grilling raw meat, is not explained centering on the beast's biological information like the yakiniku of the past. Together with a photo of the completed food garnished with lettuce and red chili, the cooking method and the way of eating are presented together: "thinly sliced pork belly grilled crisp and eaten wrapped with various ingredients." Bulgogi and dakgalbi likewise emphasize the marinade and cooking process, reproducing Korean food as "the cooked" rather than "the raw." This change is likely not unrelated to the recent shift in the standing of Korean culture, together with the series' orientation, which has shone a light on various social minorities and peripheral figures. Faint though it is, the Korean food in Like a Dragon is gradually moving from "the raw" to "the cooked," acquiring an image of cultural processing and cooking. 5. Tripe and Kimchi: The Resurrection of the Discarded Meanwhile, tripe—the menu that was directly tied to Koreans (in Japan) all along in the game—occupies an exceptional position even within Lévi-Strauss's schema. For it is not simply "the cooked" but closer to "the burnt." SAEJIMA: It's just like that tripe. Me and you both. Meat, if you grill it too hard, goes tough and you can't eat it. But tripe's different. It's only worth something once it's charred. You burn it and burn it, burn it till it's pitch-black and the fat's all rendered out—that's when it's good. No matter how sharp you dress or how good a life you live, in the end you're yakuza—by birth, you're different from good meat. MAJIMA: So we're garbage, like tripe, is that it? SAEJIMA: That's right. So we've got to burn a bit more. Half-burnt tripe is just garbage. Garbage only takes on meaning once you burn it and burn it till it's pitch-black.[19] * Majima and Saejima's conversation: the resurrection of the discarded, figured through tripe. In Yakuza 5 , Saejima, having a last meal with Majima at Hanrai before his imprisonment, says, "tripe is only worth something once it's burnt to a crisp." Whereas ordinary meat becomes inedible if overcooked, tripe, on the contrary, acquires flavor the more it is burned over fire. Here tripe functions not as a mere food but as a symbol figuring the protagonists' lives. The protagonists, on the underside of society expressed as the "underworld," live by "burning" themselves through endless trials and tempering. The burnt is generally discarded like garbage, but it passes through the extinction of having its form burned by fire and regenerates with a power of immortality and purification. Protagonists like Kiryu, Saejima, and Kasuga are figures from criminal organizations shunned by society, yet paradoxically they resist injustice more than anyone and do not hesitate to throw themselves in to help the weak. Just as tripe, which had meant "the discarded," acquires new value through fire, they too prove the meaning of their existence only by passing through hardship. This characteristic connects with kimchi as well. By Lévi-Strauss's classification, kimchi corresponds to "the rotted." Of course, the rot here means not simple decay but a state that has acquired new value through the cultural technique of fermentation. Kimchi originally developed as a stored food for preserving vegetables over long periods, but today it has established itself as a food representing Korea. That is, kimchi is at once the result of natural transformation and a product made by human cultural intervention. If tripe is "food regenerated through burning," kimchi can be called "food regenerated through fermentation." In this way, the Korean food reproduced in the Like a Dragon series can be understood through Lévi-Strauss's schema of "the raw—the cooked—the rotted." Yakiniku is placed as food close to the raw, naengmyeon and yukgaejang as cooked food, kimchi as rotted food. To this, tripe forms the exceptional category of "the burnt" and acquires its own meaning. Tripe and kimchi in particular share the commonality that each is reborn into new value through burning and fermentation respectively. This can be read, beyond a mere difference in cooking method, as a device symbolically revealing the historical experience of Korea and Koreans in Japan, who have converted experiences of the periphery and exclusion into new identity and value. 6. Conclusion The Korean food re-enacted in Like a Dragon functioned not as a mere food but as a cultural representation holding the history and memory of Korea and Koreans (in Japan). Yakiniku held the history of the labor and survival of Koreans in Japan, kimchi the cultural imagination Korean society shares, and tripe and kimchi the narrative of the regeneration of the discarded. Examined in particular through Lévi-Strauss's schema, the in-game Korean food was confirmed to operate as a symbolic system that produces cultural meaning beyond mere edibles, moving between the raw and the cooked, the burnt and the rotted. In the end, the scenery of Korean food that Like a Dragon reproduces is a story about food and, at the same time, a scenery of memory and cultural translation surrounding Korea and Koreans in Japan. The moment the player grills meat at Hanrai, buys kimchi in Koreatown, and eats samgyetang at Omoni's Vow, those foods no longer stay items for recovering health. They become a way of imagining Korea, and a scenery of the life and memory that Koreans in Japan have built within Japanese society. [1] Lucy M. Long, "Culinary Tourism," in The Oxford Handbook of Food History, trans. Kim Byeong-sun (Seoul: Tabi, 2020), 631. [2] Priscilla Boniface, Tasting Tourism: Travelling for Food and Drink (Routledge, 2003). [3] Lucy M. Long, "Culinary Tourism: A Folkloristic Perspective on Eating and Otherness," Southern Folklore 55, no. 3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1998): 181–204. [4] In this essay, "Korean restaurant" is used as a term encompassing everything from full-fledged Korean specialty establishments to places that handle Korean food among their menu items. [5] From Yakuza 2, Chapter 11, "The Iron Rule." [6] There is a shop behind, but in-game purchases are made at a shabby stall. [7] Shin Jae-gyeong, "Who Are the Korean-Japanese?: How Korean Bulgogi Became Japan's Popular Dish 'Yakiniku,'" Jeju Sori, June 7, 2011. [8] Lee Si-jae, "Cultural Transformation in the Formation of 'Wayō-setchū' Cuisine in Modern Japan," Asia Review 5, no. 1 (Seoul National University Asia Center, 2015): 47. [9] Lee Bung-eon, Korean-Japanese First Generation, Beyond Memory, trans. Yoon Sang-in (Seoul: Dongasia, 2009); requoted from Lee Gi-won, "[A History Trip into a Book 38] The Sad History in Japanese 'Horumonyaki,'" OhmyNews, April 24, 2009. [10] Rachelle H. Saltzman, "Rites of Intensification: Eating and Ethnicity in the Catskills," Southern Folklore 55, no. 3 (1998): 205–223. [11] Hong Sik Cho, "Food and Nationalism: Kimchi and Korean National Identity," The Korean Journal of International Studies 4, no. 1 (2006): 207–229. [12] Han Kyung-koo, "Some Foods Are Good to Think: Kimchi and the Epitome of Korean National Character," Korean Cultural Anthropology 26 (Korean Society for Cultural Anthropology, 1994): 51–68; Han Kyung-koo, "The Anthropology of the Discourse on the Koreanness of Koreans," Korea Journal 43, no. 1 (Academy of Korean Studies, 2003). [13] Lee Mi-na, "'Just How Spicy Is It...' Foreign Correspondents' Buldak Noodle Tasting, a Real Promotional Effect," Hankyung, June 24, 2024,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62473417 . [14] "The No. 1 Thing Koreans Say That Japanese People Shouldn't Believe," Ruliweb, February 21, 2022; "'You Handle Spice Well... You Drink Well': Things Japanese People Shouldn't Say in Korea," Segye Ilbo, January 3, 2018. [15] From the Yakuza 7 substory "Kimchi Is Best When It's Really Spicy (そのキムチ、激辛につき)." [16] Diffusion is a concept used to justify the evolutionism of nineteenth-century racism and imperialism and has already been discarded in anthropology. Rather, in human migration and the history of food, the cultural "assimilation and adaptation" of food that occurs in the process of contact between different communities is more significant. — From Joo Young-ha, "Supervisor's Note," in The Oxford Handbook of Food History, ed. Jeffrey M. Pilcher, trans. Kim Byeong-sun (Seoul: Tabi, 2020). [17] Lucy M. Long, "Culinary Tourism," in The Oxford Handbook of Food History, trans. Kim Byeong-sun (Seoul: Tabi, 2020), 652. [18] Long, "Culinary Tourism: A Folkloristic Perspective" (1998). [19] From Yakuza 5, Part 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이은우 오래도록 학생으로 살았고, 《메이플스토리》에서는 신궁으로 살았다. 서버 직업 랭킹 2위를 달성했지만 이력서에 기재한 바는 없다. 눈과 손은 예전 같지 않아도 근성으로 버티며 플레이 중이다. 구비문학 연구자로서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설화와 신화에서부터 현대 게임의 서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 우리가 했다 번역을 - 한글 패치 30년의 흐릿한 역사
유저 한국어 번역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저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록을 성실하게 남기지도 않았고, 그 기록은 현재 대다수가 소실되어 있다. 또한 다수의 초기 번역 팀은 폐쇄적으로 작업했기에 사료가 존재한다 한들 그 존재를 인지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 Back 우리가 했다 번역을 - 한글 패치 30년의 흐릿한 역사 29 GG Vol. 26. 4. 10. ‘카르멘 샌디에고 시리즈’라는 게임 시리즈가 있었다. 장르를 분류하자면 퀴즈에 가까웠고, 상업 분류로는 교육용 게임이었으며, 지리나 역사 퀴즈의 해답을 모아 단서를 조합해 알맞은 지역이나 역사 시대에 숨은 범인을 찾는 형식이었다. 85년 이후로 발매되었고, 어떤 작품은 소프트랜드 유통으로 한국에 정식 발매되었다. 교육용 게임이었던지라 게임을 혐오하던 부모님은 이 게임을 사주기로 하였고, 게임이라면 다 좋아했던 시절의 어린 나 자신도 관심이 갔다. 아마도 가물가물한 기억에 따르면 우주편이었던 것 같은데, 결국 사놓은 게임을 플레이할 수는 없었다. 번역이 되지 않은 영문판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흘러, 국내산 게임이 등장은 했어도 여전히 수많은 게임은 영어와 일본어로 제작되어 유통(합법과 불법 모두!) 되었다. 잡지와 소문에서는 어떤 게임이 재밌다고 하더라도 그 게임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킹스 퀘스트’나 ‘인디아나 존스’ 같은 고전 어드벤처의 명작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명령어 단어 정도에 불과했다. 같은 불편을 겪는 사람들은 많았고, 이들을 돕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90년대 초반의 콘솔용 롬팩의 파일에 접근해 게임의 폰트 데이터를 고친다거나, 도스 게임의 폰트를 고치는 방식을 통해 한글이 출력될 수 있도록 하는 ‘꼼수’를 시도한 사람들이 PC통신 자료실에 결과물을 올렸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이 구전을 증명 혹은 재구하려면 당시 PC통신의 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하는 작업과 소문의 근원을 추적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1997년,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동급생’의 한국어 번역이 이루어졌다. 정식 유통 라인에서 발매한 것이 아니라 유저들이 직접 폰트 파일과 출력 시스템에 접근해 뜯어고쳐 만든 번역이었다. 여러 기록과 많은 기억은 이 당시의 ‘한글 패치’를 한누리라는 팀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게임동아의 2017년 8월 1일 기사 (90년대 PC용 성인게임 특집, 당신은 ‘동급생’을 아십니까?)에서는 파랑새라는 팀이 만들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후일 ‘하급생’의 유저 번역을 한 파랑새 팀, 혹은 ‘동급생’의 복사방지 락을 해제한 유저 파랑새와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 Gemini는 이러한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크로스체크 결과, 이것이 사실에 가장 부합해 보인다. 이것이 유저 번역의 초창기 상황을 재구성하는 어려움이다. 1차 사료가 될 당시 기록은 사라진 지 오래 되었고, 1차 사료를 증언하는 2차 사료조차도 인터넷의 초창기 시절 기록이다 보니 사라졌거나 디지털 풍화를 여러 번 거쳐 검색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위치에 있다. AI조차도 이를 직접 찾아내지 못하고 학습 데이터의 일부로만 인식한다. 게다가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은 당시의 회고마저도 수집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글에서 시도하는 역사의 재구성은 오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려는 이유는 유저 번역이 시도되는 역사의 꾸준함이 주는 낭만성이 있기 때문이다. 1. 태초의 팀, 한누리 한누리가 최초의 유저 번역 시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초의 유저 번역 팀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게임에 쓰인 문자를 번역하자고 상정한다면, 일단 해당 언어를 구사하는 언어 능력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 것이, 넘어야 할 컴퓨터공학의 기술적 장벽이 여럿이다. 일단 라틴어 계열 문자 혹은 일본어 문자 위주로 만들어진 폰트 체계를 한글의 폰트 체계로 바꿔야 한다. 그런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우회로를 만들어야 한다. 이건 해킹에 속하는 프로그래밍의 영역이다. 따라서 프로그래머가 필요하다. 폰트 입력 루트를 확보한 후에는 폰트를 만들어야 한다. 당시 방식으로는 픽셀 하나하나를 찍고 조합해 새로운 폰트를 만들어야 했다. 누군가가 픽셀을 하나하나 찍고 조합해 폰트를 만드는 지난한 작업을 끝내고, 이 폰트로 번역된 내용을 입력한다 해도 만들어진 번역 텍스트가 게임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원문 텍스트를 빼내어 번역자에게 주고, 번역자에게 번역 텍스트를 받아 다시 집어넣을 수 있다. 그러면서 개발사가 어떤 방식으로 게임 데이터를 압축하고 암호화했는지도 알아내야 오류 없이 봉합을 마칠 수 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필요한 프로그래밍의 분야다. 언어를 번역하는 파트 또한 그렇게 쉽지 않다. 영화 자막 번역과 마찬가지로, 글자 수의 제약이 있었다. 원문보다 번역문이 지나치게 길면 게임에 오류가 생겨버린다. 심한 오류의 경우엔 아예 게임이 다운되어 버렸다고 한다. 번역, 프로그래밍, 폰트 디자인 등 여러 분야의 능력이 필요해졌기에 결국 팀이 만들어지고, 그 첫 시도 중 성공 사례가 한누리인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최초일 가능성은 적지만, 태초일 가능성이 높은, 태초의 팀이다. 한누리가 선택한 팀 모델은 이후 하급생을 번역한 파랑새 팀 등의 후속 주자들에게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쯤에서 왜 ‘한국어 번역’이 아닌 ‘한글 패치’였는가에 대한 가설을 제기할 수 있다. 본디 한글로 표현하는 말이 한국어 하나뿐인 한국어의 관습에서 한국어와 한글은 종종 혼용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번역 작업 프로세스에 한글 체계를 폰트화하여 이식하는 프로세스가 중요한 단계로 존재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한글 자체를 집어넣어서 패치 수준으로 프로그래밍을 더해야 하다 보니 ‘한글 패치’라는 단어가 당시의 이 분야 언중들에게는 올바른 개념 표현으로 여겨졌을 수 있다. 2. 유저 번역의 맹점, 팀 한글날 이상의 시도는 상대적으로 게임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이 손쉬운 PC 게임에서 더 자주 이루어졌다. 반면 상대적으로 훨씬 데이터 접근이 어려운 콘솔 게임의 영역에서는 별도의 장비와 추가적인 프로그래밍 기술이 필요하기에 시도가 훨씬 적었다. 롬 파일에 접근하는 장비가 없어도 되는, 에뮬레이터 기술이 보급된 90년대 말부터는 이런 시도가 조금 쉬워진 모양이다. PC통신의 에뮬레이터 동호회 등지에서 번역 실험이 있었다는 단발성 회고가 이따금 보이며, 그 중에서 ‘pjs’라고 통칭되는 어떤 사람의 영웅담이 가끔 관찰된다. 이 사람이 실존했고 번역 작업을 실제로 한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크로노 트리거’의 슈퍼패미컴 판의 유저 번역을 한 사람이 가능성이 높다. 다만 명확한 기록이나 회고를 찾을 수는 없는 상태다. 거의 성과가 없던 콘솔 게임의 유저 번역은 기술이 발전한 2000년대 중반부터는 활성화 되기 시작했다. 팀 한글날은 휴대용 콘솔 기기, 당시는 NDS와 PSP, 의 게임을 유저 번역하던 팀이었다. 최초 번역작인 ‘몬스터 헌터 포터블 세컨드’로 이름을 알렸고, ‘스즈미야 하루히의 약속’을 비롯해 ‘사일런트 힐: 오리진’ 등의 번역을 해냈다. * ‘몬스터 헌터 포터블 세컨드G’의 번역본 로고 화면 하지만 팀 한글날의 활동 즈음부터는 유저 번역의 법적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팀 한글날이 번역문을 게임에 집어넣는 방식은 폰트를 펌웨어 내 메모리 영역에 직접 넣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팀 한글날이 따로 만든 커스텀 펌웨어, 일종의 대체 프로그램이 따로 필요했는데 이는 개발사가 인정하지 않은 경우 명백한 저작권법 위반이다. 기존 프로그램을 개변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나 이를 배포하면 불법이 되는데다가, 이 과정에서 게임 프로그램 전체를 불법 복제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캡콤 코리아는 유저 번역의 배포 중단을 요청했고, 팀 한글날은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구성원 몇몇의 병역 수행, 번역본 이용자 몇몇의 악성 민원 등도 해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3. 가변적 연대, 팀 왈도 팀 한글날과 비슷한 시기에 제시된 오픈소스 형식의 번역 팀이 있었다. 팀 왈도. 전설적 오역으로 유명한 ‘마이트 앤 매직 6’의 “힘세고 강한 아침”에서 따온 팀명이다. * AI 자동 번역도 아닌 공식 번역인데도 일부러 오역을 하기 위해 공들인 것 같은 저 결과물은 후세의 밈이 되어 팀 왈도의 팀명까지 오게 되었다. PC 게임 중에서 공식 번역이 없는 게임을, 왈도처럼 날림으로라도 번역을 해보자는 동기로 만들어진 팀 왈도는 이전이후의 번역 팀과 다르게 고정된 조직이 없었다. 자발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총대를 맸으니 ‘총대’라는 리더가 되고, 총대가 모은 인력은 해당 작업만 수행하고 작업이 끝나면 흩어진다. 번역과 프로그래밍과 검수를 맡는 이 인력은 흔히 ‘핫산’으로도 불렸다. 이는 극우 만화가 최지룡의 95년작 만화 ‘여로’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박봉을 받으며 노예처럼 일하는 핫산이 2014년 경부터 밈이 되면서, 아마추어인 자신들은 보상 같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식으로 역설적 의미 확장이 일어났다. 아마추어 번역 팀인 팀 왈도의 인력 또한 이런 의미로 자칭 핫산이 되었다. * 최지룡 - 여로 팀 왈도는 그간 쌓여온 번역 팀의 노하우를 체계화했다. 탬플릿화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2010년대 이후의 게임은 텍스트 번역량이 이전의 게임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에 번역량이 엄청나게 방대하다. 총대가 사람을 모으고 번역의 기초 설정을 잡으면, 프로그래머가 기술적 뼈대를 잡는다. 번역문을 다룰 때는 구글 스프레드시트와 같은 온라인 협업 툴을 사용해 많으면 수백까지도 달하는 다수의 ‘핫산’들이 한 문서에서 협업 번역을 한다. 이때 고유 명사나 작중 개념 용어 같은 것은 총대와 몇몇 간부급들이 작성한 용어 시트의 공유로 번역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이 용어 시트는 초벌 번역을 검수하는 검수 인력들에게도 유용하다. 이렇게 체계화된 업무 분장이 발전된 역사는 ‘매스이펙트 시리즈’의 유저 번역에서 볼 수 있다. 1편의 경우엔 네이버 매스이펙트 팬 카페라는 동호회에서 번역이 이루어졌다. 전문성이 조금 떨어졌기에 미숙한 면이 있었으나, 2편의 번역은 팀 한글날 출신의 인력이 초반 작업에 참여하면서 약간의 체계화가 이루어졌다. 이 인력이 병역 문제로 이탈한 후, 번역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이 노하우를 학습해 릴레이로 번역을 이어갔다. 3편에 이르러서는 번역할 원문의 양이 수 배로 늘어났기에 팀 왈도의 체계화 방식이 적용되었다. 이를 집단지성의 업무와 전문성의 검수로 요약할 수도 있다. 팀 왈도를 집단지성으로 간주하면, 이해되는 오픈소스적 특성이 있다. 팀 왈도의 명칭은 원칙적으로 누구나 쓸 수 있다. 다만 이미 팀 왈도라는 이름으로 작업 중인 팀이 존재하는 경우엔 쓸 수가 없다. 동시에 불특정 다수가 참여할 수 있도록 특정 커뮤니티가 쓰는 내부자 성격의 밈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불특정 다수가 기여했으므로 만들어진 번역은 수정 및 재배포가 자유롭다. 이 형태의 명맥은 현재까지도 팀 왈도의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가변적이지 않은, 조직적 분업으로 뭉치는 기존 형태의 팀도 계속 생기고 없어졌다. 특히 한필드, 한글이 필요하면 드리겠습니다라는 팀은 2012년 11월에 등장해 1년 조금 넘는 시간만 활동하고 사라졌고 ‘책임감이 부족해 보인다’, ‘너무 폐쇄적이다’라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이런 팀들의 작업 체계는 팀 왈도와 같은 열린 가변성의 팀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4. 공식 체계로의 편입 내부적으로 어떤 풍파를 겪어서 어떤 체계를 세우든, 어차피 유저 번역은 비공식이고 때때로는 불법이다. 대다수가 불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의외로, 유저 번역에 참여한 ‘능력자’ 중에서 실제 게임 번역 업계에 입문했다는 증언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유저 번역이 음성적 영역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몇몇 유저 번역은 공식 번역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더 위쳐 2’의 경우가 그렇다. 네이버 위쳐 팬 카페에서 수행한 번역 작업은 제작사 CDPR과의 협상을 통해 공식 한국어 버전으로 인정받았다. 터키어 유저 번역이 공식으로 인정받은 것을 보고 문의한 것이 정식 인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례가 저렇게 깔끔한 것은 아니었다. 비슷한 일이 ‘다키스트 던전’과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에서도 있었는데, 이쪽은 인정 및 계약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다키스트 던전’의 사례는 제작사 레드훅이 유저 번역을 인정하겠다, 아니 인정하지 않고 정식 번역을 하겠다, 유저 번역은 소유권 문제가 있다, 사실 소유권 문제는 해결되어 있었다, 하는 식으로 태도가 계속 변했다. 여기에 정식 한국어 번역의 심각한 오역과 낮은 질이 문제가 되었고, 이에 훨씬 질이 좋은 유저 번역이 성행하자 레드훅은 새로운 번역 퍼블리셔를 통해 새로운 번역을 했다. 이 과정에서 유저 번역은 최소 경쟁자 역할, 최대 참고 레퍼런스 역할을 했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의 경우엔 팀 왈도가 소집되어 작업을 했는데, 당시 초반 총대를 맡은 유저의 회고 에 따르면 제작사 라리안 스튜디오의 푸대접 문제가 있었다. 자신들의 작업이 공식 번역으로 채택이 되어 작업을 했는데, 이에 대한 임금이 체불된다거나 의사소통과 대우에서 상당히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거나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협화음도 시간이 지나며 차츰 진정되어 갔다. ‘더 위쳐 2’라는 모범 사례가 있기도 했지만, 모드의 활성화가 유저 번역의 적용을 용이하게 했다. 특히 스팀에서 유저 모드를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기능을 지원하면서부터는 유저 번역이 모드의 하나로 편입되게 되었다. ‘림월드’, ‘언더테일’ 등의 히트한 인디 게임의 유저 번역이 모드의 형태로 적용이 되었고, 이 단계에 와서는 공식 번역으로 인정을 받을 필요조차 없어졌다. 5. 동기를 추측 혹은 재구성하기 그러나 유저 번역 또한 번역이라, 매우 지난한 작업이다. 번역 자체도 고된 일인데 이를 검수하는 것은 그 이상의 업무이며, 유저 번역의 경우엔 제작사의 지원이 없이 독자적으로 번역문을 끼워넣을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해야 한다. 이것이 되는 인력을 모으고 체계를 잡는 리더의 역할 또한 어려운 업무다. 쉽게 뛰어들 수 있는 일은 아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유저 번역에 참여했다. 기실 나 또한 ‘매스 이펙트 2’의 번역 작업에 대화문 몇 줄이나마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의 개인적 동기는 별 것 없었다. 첫 번째는 ‘이 게임을 내 모어(母語)로 하고 싶다’는 개인적 동기다. 가장 원초적인 동기일 것이고, 아마 모든 참여자들이 이 동기를 첫 번째로 갖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혼자 해낼 수 없는 분량일 테니 팀을 모으고 총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째 동기도 만들어진다. ‘이거 해낼 수 있겠다’는 동기다. 협업을 하면 내 업무는 감당 가능한 규모로 줄어들고,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어진다. 계산이 잘못 되어 개개인이 감당 할 수가 없으면 팀이 깨지고 번역을 포기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가끔 세 번째 동기도 있었을 것이다. 프로그래밍과 번역을 업으로 하거나 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직업적 경험을 쌓을 기회로 유저 번역을 활용할 수도 있다. 또한 네 번째 동기, 게이머 커뮤니티 내에서 모모한 번역에 참여했다는 크레딧은 충분한 명예가 될 수 있다. 인정 욕구는 언제나 목마른 법이다. 그리고 이 크레딧은 세 번째 동기인 직업 포트폴리오 구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부분은 실제로 유저 번역 참여 경험을 이용해 해당 업계에 진출한 사례가 많이 있는지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또한 다섯 번째 동기도 가능하다. 이 게임의 저변을 넓히고 싶은 욕구. ‘스타 시티즌’의 경우엔 게임 내 거대 길드 셋이 연합하여 유저 한국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인데, 디스코드 채널과 연계되어 게임의 신규 유입자를 안내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 이런 동기 – 회고가 많지 않으니 추측 혹은 재구성한 동기는 개인적인 욕망이 공공 이익에 복무한 과정을 이어주는 가교가 된다. 나와 내 주변을 위해, 내가 하는 게임을 위해, 이 작업이 재미있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내 장래에 도움 될 경험일 것 같아서, 그래서 참여한 것이 게이머 다수의 이익이 된 것에는 철학적 혹은 사회학적 낭만이 있다. 유저 한국어 번역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저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록을 성실하게 남기지도 않았고, 그 기록은 현재 대다수가 소실되어 있다. 또한 다수의 초기 번역 팀은 폐쇄적으로 작업했기에 사료가 존재한다 한들 그 존재를 인지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인공지능으로 최대한의 사료를 찾아내고, 자연지능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료의 내용을 추측해봤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기한 내용은 빈약할 것이고 오류를 포함할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후속 연구는 필요하다. 저 낭만적 공공 이익의 역사가 소실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게임이 대체 왜 예술이 되어야 할까?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C. 티 응우옌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윤리학이다. 그는 우리가 게임을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한된 행위성(agency)의 조건을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핵심에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환경,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형식 안에서 머리 싸매는 고투(struggle)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 Back 게임이 대체 왜 예술이 되어야 할까?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12 GG Vol. 23. 6. 10. *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22. 괄호에 숫자로 페이지만 표시한 것은 모두 상기 책의 인용이다. C. 티 응우옌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윤리학이다. 그는 우리가 게임을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한된 행위성(agency)의 조건을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핵심에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환경,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형식 안에서 머리 싸매는 고투(struggle)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응우옌은 이 책에서 이렇게 분투하는 플레이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분석해 나간다. 사람들은 결국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회의론자들의 반박들을 논파하면서 어찌 보면 굉장히 전형적인 서구 철학의 방법론으로 게임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이다. * 『게임: 행위성의 예술』 표지 이미지 응우옌의 논의는 게임 담론 내부의 논쟁뿐만 아니라 철학과 미학, 예술학 등 게임과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담론장까지 면밀히 검토하면서 게임의 미학적 가능성을 설파한다. 그것을 통해 게임을 행위성의 예술이라고 규정하고, 예술로서 게임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다. 책 전반에 깔려있는 철학자 특유의 논법은 (그가 베트남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 철학/미학 담론 안에서만 대부분 작동하는데, 이는 내재적인 논리를 단단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 글에서 논하겠지만 이토록 정교한 논의를 통해서 게임을 예술로 규정해 버리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근본적인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이 책은 차라리 게임의 존재론이거나 게임을 통해서 삶을 대하는 방법을 돌아보는 윤리학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저자는 게임을 통해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까지 생각하도록 만든다. 또한 응우옌이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은 인터페이스 장치 앞에 앉아서 화면을 보고 즐기는 디지털 비디오 게임뿐만 아니라 보드 게임, 등산, 술자리 게임, 나아가 사랑까지 포괄하면서 삶 그 자체까지 나아간다. 앞서 말을 꺼냈듯 분투형 플레이라는 개념은 『게임: 행위성의 예술』의 핵심이다. (분투형 플레이는 응우옌이 고안한 개념이 아니라, 버나드 슈츠의 개념을 가져와 확장하는 것에 가깝다. 책의 초반부의 대부분은 슈츠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분투형 플레이의 회의론자들, 특히 성취형 플레이를 옹호하는 입장을 논파해 나가는 내용이다.) 우리는 게임을 할 때 무조건 이기기만을 원하지 않는다. 때로는 심지어 이겨버리는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76) 게임이 쉬워져서 난이도를 보다 어렵게 조정하는 상황이나 애인과 보드게임을 하는 상황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는 헨리 시지웍의 ‘쾌락주의의 역설’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설명한다. 쾌를 직접적으로 추구하면 오히려 쾌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머리를 비우려고 하면 절대로 머리를 비울 수 없다. 오직 다른 목표에 헌신해야만 그러한 쾌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요가는 특정한 자세를 취하는 육체적인 목표에 집중하는 것을 통해서 손을 뻗어서는 결코 도달하기 어려운 영적 효과에 가닿으려는 행위성의 형식이다. 학부 시절 즐기던 술자리 게임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술자리 게임에서 기를 쓰고 이기려고만 한다면 그 게임은 아무런 재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술자리 게임을 통해 술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서 서로 웃고 친해지는 것이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진짜 목적이다. 〈트위스터〉 같은 게임을 통해서도 분투형 플레이의 중요한 지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제한된 행위성을 통해서 결국 넘어지도록 고안되어 있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일부러 넘어지면 재미가 없어진다. 진짜로 실패하여 넘어졌을 경우에만 재미가 생긴다. 진심으로 게임이 제안하는 어떤 동작을 하려고 최선을 다할 경우에만 진짜 실패가 되어 모두가 크게 웃을 수 있게되는 것이다. 성공을 추구하지만, 실제로 성공에 가치를 두지는 않는다. 이렇게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목표(goal)와 목적(purpose)이 어긋나 있다. 일상 생활에서는 결과를 얻기 위해 수단을 취한다면,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수단을 취하기 위해서 결과를 추구한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그러면서도 일시적인 목표에 제대로 몰입하지 않고, 무관심하다면 게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시적으로 게임 속 목적에 완전히 몰입해야만, 목표는 추구될 수 있다. 게임의 과정을 즐기려면 일시적으로 승리에 대한 관심을 철저하게 장착해야한다. 누군가 게임에 진지하게 몰입하지 못한다면 그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금방 재미를 잃고 만다. 이것이 분투형 플레이의 핵심적인 구조이다. 응우옌은 게임과 사랑을 비교하기도 한다. 사랑의 경우 목표에 대한 진심 어린 헌신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자신의 감정을 도구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릇된 나르시시즘이다. 심할 경우 스토커가 되어버린다. 게임에서 분투형 플레이는 게임 속 목표에 그토록 진정성 있는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목표가 일시적이고 인공적인 형식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부루마블〉을 할 때, 게임 속 씨앗은행 화폐는 너무도 소중한 것이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던 게임이 끝나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종이가 되어버린다. 누군가 부루마블 속 화폐를 계속 소중하게 여겨서 게임이 끝난 뒤에도 마차 상자 안에 넣지 못하고 지니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자. 생각만해도 살짝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논할 때, 오늘날 온라인 게임들의 화폐가 실제 세계의 화폐와 연동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빼놓으면 안 될 것이다. (응우옌의 책에서 이러한 문제는 의도적으로 간과되어 있다.) 한국 맥락에서 〈리니지〉 작업장 같은 사례를 떠올린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게임과 노동의 구분이 사라지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분투형 플레이라는 개념틀을 가지고 게임과 삶의 경계를 오가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다. 게임은 특정한 방식으로 형식화된 환경과 행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게임 속 목표들은 현실과 달리 굉장히 명료하다. 현실에서는 그토록 뚜렷할 수 없는 것들이 게임에서는 목적론적으로 명백한 것으로 재구성된다. 수치화될 수 없는 것을 수치화하기도 한다. 삶을 그 자체로 게임처럼 생각하는 것은 삶의 목적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문제를 낳는다. 이른바 게이미피케이션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다시 돌아와, 분투형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 목표들에 일시적으로 헌신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무심해야 한다.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목표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변덕스러움이 요구된다. 기존의 행위성 관련 논의들은 행위자의 통일성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분투형 플레이는 행위성에 여러 가지 유의미한 불일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100) 행위성이란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긴 시간에 걸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무언가에 대한 일시적인 관심을 장착할 수 있는 인간 행위성의 유동적인 역량과 자율성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이 바로 분투이다.(98) 그렇기에 게임 속 목표가 일회용이라는 점은 게임이 허망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게임라는 매체가 행위성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형식화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측면이 된다. 게임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게임의 목표와 규칙, 그리고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의 제약 체계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환경 등을 고안한다. 게임 플레이어가 취할 수 있는 실천적 행위성, 그리고 플레이어가 맞설 실천적 환경을 통해 특정한 실천적 경험을 조형해 내는 것이다. 이런 형식화의 차원에서 게임을 예술적 매체라고 규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게임 디자이너의 매체는 행위성이다. 하나의 표어로 만들어 보자면, 게임은 행위성의 예술이다.”(35) 예술은 특정한 형식을 가지고 미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응우옌은 마크 로스코의 회화를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그것이 현실의 어떤 부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형식을 통해서 미적 경험을 증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게임은 플레이어가 맞설 실천적 환경과 플레이어가 취할 일시적 행위성을 형식으로 삼아서 우리에게 특정한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아름다움은 행위가 형식화된 제약 속에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게 제한되는 조건이 여기에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게임 디자이너의 형식이기도 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 경기에서 페이커의 플레이가 아름답다고 할 때, 그것은 그 움직임의 절대적인 형태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의 엄밀한 규칙의 체계 안에서 게임의 목표와 관련된 엄청난 행위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문제는 제한된 행위성의 형식 안에서 성공만이 예술적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행위성을 제한하면서 발생하는 실패나 부조화에서도 예술성을 드러난다. 키보드의 QWOP 버튼만을 이용해 다리의 관절을 제각각 조정하여 달리기를 해야하는 게임을 떠올려 보자. 일부러 조작하기 어렵게 만들어진 형식 안에서 제대로 한번 달려보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 자체가 그 게임의 중요한 형식이 되는 것이다. * 베네트 포디(Bennett Foddy)가 2008년에 만든 게임 〈QWOP〉. 출처: https://www.foddy.net/2010/10/qwop/ 게임은 이렇게 특정한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행위의 형식으로서 예술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타당하고, 오늘날 게임과 예술을 둘러싼 논쟁적인 담론에서도 중요한 입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응우옌의 논의를 딛고서 다시, 게임이 왜 예술이 되어야 하는지 묻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예술이라는 범주와 관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필요하다.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면서 음악이나 회화 같은 예술의 매체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은, 모더니즘적 장르 구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오히려 게임을 통해서 예술이라는 영역을, 예술을 통해서 게임이라는 영역을 불안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진이나 영화 같은 매체가 예술에 편입되면서 발생했던 과거의 논쟁들을 변증법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1) 한편으로 이 책에는 니콜라 부리요나 권미원 같이 미술계에서는 낯익은 필자들도 등장한다. 응우옌은 사회적 관계나 공동체에 관련된 예술 형식을 논하는 관점을 게임에 적용하며 니콜라 부리요의 논의를 빌려온다. “예술은 특수한 사회성을 생산하는 공간이다.”라는 니콜라 부리오의 말을 빌려와 게임도 바로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282) 니콜라 부리오는 『관계의 미학』에서 관계를 다루는 예술 작업들이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 이례적이고 특수한 관계적 상황을 창출한다며 옹호한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지는 관계가 ‘작은 유토피아’를 창출한다는 그의 주장은 다양한 차원의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그러한 관계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적대(antagonism)를 은폐하고, 오히려 이데올로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클레어 비숍의 논의는 굉장히 유효한 비판이다. 물론, 응우옌이 책에서 언급하는 게임이 모두 니콜라 부리오식 관계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 만들어내는 행위와 관계를 통해서 적대를 감각할 수 있는 사례들에 대한 언급도 책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브렌다 로메로가 2009년에 만든 보드게임 〈기차〉에서 플레이어들은 기차를 운행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나중에 그 기차가 유태인들을 수용소로 이송하는 나치의 기차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브렌다 로메로(Brenda Romero)가 2009년에 만든 게임 〈기차(Train)〉. 출처: http://brenda.games/train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는 문제에는 저자성의 문제도 있다. (보통 한명의) 예술가가 정해진 미적 형식을 인준하고 통제하는 전통적인 저자성은 굉장히 근대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관념이다. 응우옌의 논의에는 게임을 전형적인 예술의 개념틀에서 비추어 보기 위해 게임 디자이너를 전통적인 예술의 저자로 상정하는 문제가 전반에 깔려있다. 응우옌은 12쪽 각주 2번에서 게임 디자이너가 복수의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을 짚으면서도 논의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한명인 것처럼 상정할 것이라고 쓰는데, 오히려 게임의 저자가 한명일 수 없다는 점을 중요하게 짚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성의 문제는 단지 게임을 제작하는 관점에서만 중요한 논의가 아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저자성에 대한 논의까지 확장해 생각해야한다. 반갑게도 응우옌은 책의 후반부에 게임의 아름다움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에 대한 사유를 펼쳐놓는다. “(미적 책임이란) 게임 디자이너와 플레이어 사이에 복합적으로, 예술가와 관객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분배되어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책임이 주로 플레이어에게 있고 다른 경우에는 디자이너에게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책임은 복합적인 협업의 형태를 띤다. 이 경우, 게임 디자이너들이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통해서’ 그들이 의도한 미적 효과의 상당수를 성취하고, 그 최종 결과는 디자이너와 플레이어 모두에게 미적으로 귀속된다.”(253) 이러한 언급은 이 책에서 게임의 미적 역능에 대한 가장 중요한 논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디자이너가 의도하지 않은 행위성을 발생시키는 플레이어의 역능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행위성의 제약을 위반하거나 허점을 찾아내는 플레이어들이 있다. 주어진 역량을 의심하고, 게임 자체를 전유해 버리는 플레이어들. 자크 랑시에르의 ‘해방된 관객’을 비틀어 ‘해방된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역능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해방된 플레이어들은 단지 주어진 행위성을 가지고 노는 정도가 아니라, 게임을 아예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서로를 죽여야 하는 역할이 주어진 게임에서 서로를 죽이지 않고 함께 산에 올라 풍경을 감상하는 플레이어들을 떠올린다. 바로 이런 곳에서 미학(감각)의 정치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는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는 것보다 더욱 근본적으로 게임의 미학적 가능성에 대해 사유할 틈을 만들어 낸다. 응우옌의 논의를 이러한 관점과 함께 밀어붙여 볼 수도 있다. 그가 게임과 게임 플레이의 자율성에 대해 논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플레이어는 다른 사람이 고안한 제한된 행위성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모든 행위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화되고 형식화된 행위성이 그곳에 있다는 점이다. 게임은 형식화된 행위성들의 다발이다. 그리고 게이머들은 게임을 통해서 다양한 행위성들의 라이브러리를 탐험하게 된다. 혹은, 서로 다른 게임들을 플레이하면서 여러 가지 행위성들을 넘나들 수 있게 된다. 게임이 행위성을 매체로 삼는 예술이라면, 그것이 서로 다른 행위성 사이를 가로지를 수 있는 특유의 감각을 제공하기 때문에 예술적이다. “(미적인 분투형 플레이는) 우리에게 여러 행위성을 넘나들고, 완전히 상충하는 여러 유형을 오갈 것을 요구한다.”(341) 심지어 플레이어는 서로 다른 행위성 사이의 상충되는 태도를 종합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 플레이어들은 명료하게 조직화된 가치들 사이를 오가며 가치에 대한 어렵고 세심한 질문을 던질 것을 주문받는다. 응우옌이 보기에 게임은 이런 방식으로 명료성과 유혹의 쾌를 폐기한 뒤, 가치를 대하는 세밀함을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 “게임의 구조는 우리의 자율성 전체를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강화할 수 있다.”(125) 게임은 플레이어들을 특정한 방식의 행위성에 순응하도록 만들지만, 우리는 그런 게임을 통해서 행위성 자체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행위성이 제한적으로 형식화되어 있기에 해방적으로 전유할 가능성도 열린다. 응우옌은 우리가 미적인 분투형 플레이를 통해 특정한 실천적 틀에 너무 집착하거나 너무 명료한 목표를 고수하지 않을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어딘가에 푹 빠졌다가 또 빠져나오고, 깊게 몰입했다가도 다시 거리를 두는 방법을 게임을 통해서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이라는 형식화된 행위성을 통해서 행위의 역량 그 자체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또한, 게임이라는 가장 목적론적인 체제를 통해서 세계가 목적론적 수렁에 빨려 들어가는 상황을 다시 감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가능성을 더 넓게 열어내는 일이 『게임: 행위성의 예술』이라는 책을 통해서 게임을 예술로 규정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1) 이러한 논의를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C. 티 응우옌의 또 다른 논고 「예술은 게임이다: 왜 중요한 건 (예술과의) 고투인가」를 함께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글에서 응우옌은 예술 감상 또한 고투의 과정이라고 쓴다. 예술 감상은 결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예술 감상에 목표(goal)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예술품 앞에서 가이드북이나 미술사 교과서만 읽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예술을 감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 삶이 예술작품으로써 결말이 열려 있는, 끝나지 않는 대화가 되기를 바라지,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논변으로써 끝나버릴 무언가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옮긴이 이동휘의 블로그: http://economic-writings.xyz/text/textblocks1/art_is_a_game.html Tags: 행위성, 응우옌, 행위성의예술, 북리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권태현 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
- 셧다운제부터 게임 사전심의까지 - 21대 국회에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그럼에도 유독 지난 국회에서는 ‘친게임’이라 부를 만한 국회의원이 다수 활동했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기록했다. 게임이라는 의제에 대한 정치권의 높은 관심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어져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게임 정책을 힘주어 발표하거나, 게임 전문 유튜버, 매체와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 Back 셧다운제부터 게임 사전심의까지 - 21대 국회에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17 GG Vol. 24. 4. 10. 이 원고가 나올 무렵이면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번 총선이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다고 이야기했다. 게임기자로 종종 국회에 출입하는 필자는, 이번에 그 ‘중간평가’의 바람이 워낙 강렬했던 탓에 게임 부문이 지난 총선에 비해 빛을 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업계인과 고관여층이라면 게임과 e스포츠 의제가 복합예술이거나 미래 먹거리거나 무겁게 다루어야 할 과제겠지만, 국회 전체에서 게임이 일개 부문에 불과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유독 지난 국회에서는 ‘친게임’이라 부를 만한 국회의원이 다수 활동했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기록했다. 게임이라는 의제에 대한 정치권의 높은 관심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어져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게임 정책을 힘주어 발표하거나, 게임 전문 유튜버, 매체와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앞으로 4년간 활동할 새로운 입법부의 구성을 앞두고, 지난 국회에서 어떤 게임 법안이 입안되었으며 통과되었는지 돌아보려 한다. 국민의 중간평가가 끝났다면, 이제는 게임 생태계가 다시 나름의 바람을 일으켜야 할 일이 아니겠나? * 국회의사당의 전경 (필자 촬영) ① 10년 만의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2021년 11월11일, 강제적 셧다운제를 폐지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시행 10년 만의 일이다. 18대 국회는 청소년 보호법에 "인터넷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제공하여서는 아니된다"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이유는 "청소년의 수면권과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제정 당시부터 업계와 게이머의 반대를 받았던 이 법은 시행 이후부터 줄곧 실효성 논란과 청소년 자기결정권 침해 논란이 있었고 21대 국회 들어 인터넷 공간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권인숙, 전용기, 류호정, 허은아(가나다순) 의원이 폐지 법안을 제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게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이른바 '마크 사태'가 터지면서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에 대한 대중적 논의가 촉발됐다. 2020년 말,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 계정 인증 절차를 강화하면서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마인크래프트>의 접속을 아예 막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은 점화됐다. '<마인크래프트>가 성인게임이냐'라는 슬로건은 파급력이 있었고, 같은 해 11월 국회에서 강제적 셧다운제의 전면 폐지가 결정됐다. 한편, 이러한 장면은 정반대의 노선을 걷게 된 중국과 비교효과를 불러왔는데, 2019년 중국 국가신문출판서는 "만 18세 이하의 청소년은 하루에 90분 이상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규제를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에 셧다운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데, 요청에 의해 부모가 자녀의 게임 시간을 차단할 수 있는 '게임시간 선택제'가 남아있다. 친권자가 요청하면, 게임사가 미성년자의 게임 접속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강제적 차단보다는 일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국내 법에서 준용하는 실명 인증을 스팀게임과 콘솔게임에 적용하기 어려워 '갈라파고스 법'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콘솔 3사는 ‘아동 계정’, 가입 제재, 온라인구매 차단 등 자체적인 자녀 보호 정책을 취하고 있으나, 이는 접속 시간을 통제하는 게임시간 선택제와는 무관하게 적용 중이다. 이들 3사는 현행 한국 법의 게임시간 선택제를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회색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게임이용시간을 감소시키지도 못했으며, 수면 시간을 증가시키지도 못한 강제적 제도의 폐지는 지난 국회가 게임 부문에서 이뤄낸 가장 큰 성과라고 부름 직하다. 지난 선거에서 여야의 전용기 의원, 허은아 전 의원은 입을 모아 자신이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의 일등공신이라고 언급했다. 실로 자랑할 만한 성과다.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법안이 통과된 이후 중독포럼, 중독정신의학회 등의 단체들은 셧다운제 폐지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차기 입법부에서는 ‘게임시간 선택제’와 그 회색지대에 대해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 두고 볼 만하다. * 셧다운제가 국회에서 논의되던 2011년 진행된 이른바 ‘폭력성 실험’ (출처: MBC) ② 게이머 여망의 실현…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 2023년 2월 27일,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의무로 하는 게임산업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2일부터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가 시행 중이다. 새로운 법에 의하면, 사업자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정보에 대해 게임물과 누리집(홈페이지)에 밝혀야 한다. 이용자가 Ctrl+F를 써서 검색할 수 있도록 확률을 공개해야 하며, 확률을 백분율 단위로 일일이 표기해야 한다. 게임을 선전하는 이미지에도 해당 게임이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하고 있다고 명시해야만 한다. 이 법을 지키지 않은 사업자는 법에 따라 처벌받게 된다. 이뿐 아니라 새로운 게임산업법은 확률형 아이템 자체를 "게임물 이용자가 직접적·간접적으로 유상으로 구매하는 게임아이템 중 중 구체적 종류, 효과 및 성능 등이 우연적 요소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문체부 장관이 이를 감독하게 했다. 문체부 장관의 시정명령을 어기는 사업자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간 국내 게임사는 자율규제에 따라서 게임의 각종 확률을 밝혀 왔다. 그러나 자율규제는 이미지 형태로 확률표를 공개해 검색을 어렵게 만들거나, 유저가 찾기 어려운 곳에 확률을 내놓거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는 날 선 비판을 겪어왔다. 게임사와 유저의 신뢰관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면서 21대 국회에서는 여러 차례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 공개가 의무화되어야만 한다는 법안이 제출되었다. 실제로 넥슨은 자사 게임 <메이플스토리>를 운영하며 유료로 판매되는 큐브의 확률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거나, 그 확률이 발표 없이 수정했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116억 원을 받았고, 엔씨소프트는 <리니지M>에서 캐릭터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문양의 달성을 쉽게 하는 시스템을 공개했다가, 다른 유저들의 반발을 사고 그 도입을 취소했다가, 이윽고 롤백에 반대하는 유저들이 전액 환불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확률 공개를 실시한 직후에도 문제는 끊기지 않고 있는데, 최근에는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특정 아이템 획득 확률이 0.8%라고 안내됐지만, 새로운 표기에는 0.1%로 밝혀져 '거짓 확률'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전술한 바와 같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자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2020년 12월 15일 발의된 이상헌 의원의 게임산업법 전부개정안을 필두로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이 법안은 의원 발의 형태의 전부개정안이었지만, 실제로는 문체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거쳐서 설계된 것이었다. 이후 하태경 의원은 '이용자 위원회'의 설치, 유동수 의원은 '컴플리트 가챠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제기하면서 여러 법안이 비교 논의되었고, 최종적으로 오늘날의 확률형 아이템 표시 의무 조항까지만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법이 비교적 최근 실효성을 가지게 되었고, 유저와 게임사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화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지금, 22대 국회 문체위는 게임사들이 새 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임사들은 ‘첫 번째 사례’에 자사 게임이 거론되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자사 라이브게임의 확률을 점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 정부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를 적극 홍보 중이다. 축적된 분노를 정부가 발 벗고 나서 해결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효능감을 전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출처: 문체부) ③ 문화예술이 된 게임, e스포츠는? 2022년 9월 7일, 게임은 '문화예술진흥법'상 '문화예술'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이 법에서 문화예술은 그 정의에서 문학·미술·음악 등 장르를 열거하고 있는데 그 항목에 게임,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이 추가된 것이다. 이 법을 대표발의한 조승래 의원은 "게임이 문화예술로 인정되면 부정적 인식이 개선되고, 게임산업에 활력이 더해지리라 기대한다"며 입법의 취지를 설명했다. 또 지난 국회에서는 게임산업법에 명시된 '중독' 용어가 삭제됐다. 그 대신 '과몰입'이라는 표현만 남게 됐는데, 과몰입·중독 예방에서 전자만 남기게 된 것이다. 의학적으로 '중독'이라는 용어는 내성이나 금단증상을 포함하는데, 게임중독을 여기에 쓰기에는 논란이 있다는 것이 주요 논리였다. WHO가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했는데, 이 질병코드의 국내 적용을 논의하는 것도 다가올 4년간의 과제이다. e스포츠와 관련해서는, 의제의 성격상 입법활동보다는 단기적 이벤트가 많았다. 2020년 7월에는 임요환, 박정석, 강도경 등의 프로게이머 출신 인플루언서들이 국회를 찾아 국회의원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했다. 국회 '문화콘텐츠포럼' 창립총회 행사였는데, 게임 등 문화콘텐츠의 잠재적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연구조직으로 발족되었으나 토론회 이상의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월 최초의 국회의장배 e스포츠 대회가 개최되었으며, 그 종목은 <철권 7>이었다. 2020년 11월, 행정부와 입법부는 부산, 대전, 광주에 이어 지역 e스포츠 경기장을 2곳 더 짓기로 합의하였으나, 그 가동률은 40% 내외로(2023, 한국콘텐츠진흥원) 경기장을 지어도 게임대회를 열 수 있게끔 종목사를 설득하는 시도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강원, 충남, 충북, 전남, 전북 등의 지역에서 지역 e스포츠 경기장 구축을 희망하고 있거나, 실제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고민 없이 사업 유치에 매몰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e스포츠인 LCK에 디도스 공격이 가해지는 등 e스포츠, 인터넷방송에 대한 '연쇄 사이버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입법부 차원에서의 논의는 미진한 상황이다. 정치권이 디도스 공격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안을 내놓기 쉽지 않겠지만, 그들의 e스포츠에 대한 접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다가올 4년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 현재 한국에는 3개의 지역 e스포츠 경기장이 개관하여 운영 중이다. e스포츠 대회 가동률은 40% 내외로 조사됐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④ 게임과 메타버스를 구별 짓는 유일한 나라, 미국보다 앞서 빅테크 제동 건 나라 국회는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안(조승래·김영식·허은아 의원 병합안)을 통과시켰다. "가상융합산업의 진흥을 위한 각종 시책의 추진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메타버스 산업 기본계획의 수립, 전문인력의 양성, 사업자에 대한 지원, 건전한 메타버스 산업 생태계의 조성 등을 골자로 사업 추진에 필요한 임시 기준을 마련"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 법은 "메타버스 산업의 발전을 위해 사업자의 조세를 감면"하고,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아울러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한 표준화 사업을 위한 전문 인력 육성, 산업 내의 자율규제" 내용 등이 포함됐다. 한국은 세계에서 최초로 메타버스와 게임을 구분하고, 메타버스의 발전을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나라가 됐다. 그간 문체부와 과기부는 게임과 메타버스의 구분을 두고 논의를 진행해 왔는데, 이 법이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줄곧 계류되던 이 법안은 연초 급물살을 타게 되어 2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수혜 기업으로는 <제페토>는 게임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네이버제트 등이 있다. 정부에서 이 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메타버스 지원을 위한 공적 재원이 적잖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21대 국회는 막바지에 이 법을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여야 의원이 공히 발의한 법안을 반대하기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국회가 이 법을 통과시킨 데 대한 평가를 독자에게 맡기려 한다. 지난 2021년 8월 31일에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법안은 구글, 애플 등 앱마켓 사업자가 게임사 등 사업자에게 자사 빌링 시스템을 강제하는 것을 막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리하여 이 법은 '구글갑질방지법'이라는 이름을 득했다. 홍정민, 조승래, 박성중, 양정숙 의원 안이 병합된 것이다. 관련 규제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시행됐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대표는 "한국이 디지털 상거래 독점을 거부한 첫 번째 오픈 플랫폼 국가가 됐다"며 "퍼스널 컴퓨팅 45년 역사에서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서 "이제 전 세계 모든 개발자는 자랑스럽게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썼다. 담당 규제 기관은 방송통신위원회가 맡기로 결정되었으나, 방통위는 구글과 애플을 대상으로 사실을 조사하고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 구글은 다른 업체의 결제 시스템을 허용하면서도 사실상 인앱결제와 다름없는 최대 26%의 수수료를 받게 하면서 이 법의 시행을 우회했다. 방통위는 지난해 10월 구글과 애플에 680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예고했지만, 우회로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실효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대표는 이른바 ‘구글갑질방지법’ 통과에 “나는 한국인이다”라며 격하게 환영했지만, 실효성은 기대 미만이라는 것이 현재 중론이다. (출처: 팀 스위니 X) ⑤ 논란의 중심 된 게임위, 사전심의 폐지 여부는 미완의 과제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지난 국회에서 여러 차례 문제의 중심에 선 기관이다. <블루 아카이브> 등급 조정, 게임물관리시스템(GMS) 구축 사업비 횡령 의혹, 국민감사청구 등 여러 문제에서 게임위는 도마 위에 올랐고, 위원회가 스스로 밝힌 혁신 의지에는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2022년 10월 29일 이상헌 의원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게임위의 국민감사청구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았고, 여기에 동참한 게이머는 5,489명에 이른다. 감사위 감사 결과, GMS 과업이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검수 후 대금 지급 등의 계약 관리 업무를 부당 처리한 것 납품이 확인되지 않은 물품과 용역에 대금을 지급한 것에 대한 비위가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게임위의 비위행위를 멈출 수 있도록 등급분류 기능을 없애거나, 게임물 사전심의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2022년 10월 14일, 게임물 사전심의의무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회 청원이 발의되어 5만 명의 동의를 넘겼다. 이에 따라서 국회 문체위에서 이 청원을 심사하게 되었는데, 정부와 국회 모두 이 청원을 수용하기에 곤란하다는 의견을 내며 게임물 사전심의에 대한 논의는 정체에 이르게 됐다. 당시 정부는 청원에 "게임물 등급분류제도는 아동 청소년을 유해 콘텐츠로부터 보호하고, 사행성 게임물 유통을 방지하는 등 건전한 게임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답변했고, 국회 문체위에서도 논의의 맥을 바꿀 만한 의견이 제출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지난 국회에서는 게이머의 청원이 사실상 기각되고, 현행 노선이 유지하게 됐다. 다가올 국회에서는 자체등급분류사업자에게 모든 게임의 심의를 맡기자는 주장, 게임위를 문체부 산하에 완벽하게 편입하자는 주장, 등급분류 의무 자체를 폐기하자는 주장, 사감위원회에 일부 권한을 넘기자는 주장 등이 쟁명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주제에 관해서는 다른 기회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2022년 10월 29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행된 게임위 감사청구 서명. 이날 5,000명 넘는 게이머들이 감사청구에 서명했다. (출처: 이상헌 의원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 Back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12 GG Vol. 23. 6. 10.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현대 미술을 보기 시작한 때부터 비디오 게임 아트는 항상 있어왔고, 자연스레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게 본업과 연결이 되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게임 자체가 흥미로운 소재여서일까? 어쨌거나 ‘미술관에 게임을 집어넣기’ 는 마치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이란 무엇인가?” 이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굳이 구분지어야 할까?” 같은 번외격 논제는 차치하고 “정말로 게임의 바운더리는 한계가 없어서 미술관에도 적합한, 딱 알맞은 게임의 형태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마치 우주를 향한 궁극의 질문처럼 달콤하면서도 답답한 명제였다. 물론, 그동안 게임을 소재로 한 미술 작업은 이미 많았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히토 슈타이얼이나 하룬 파로키 등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김희천, 강정석 등 많은 이들이 이미 비디오 게임, 그리고 게임 플레잉을 가지고 여러 작업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거기서 더 나아가는 건 게임 자체의 형태, 게임이라는 미디어 자체를 미술관에 들이려고 하는 시도들이다. 즉 이는 개인이 상호작용하는 예술이 어떻게 전시 예술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근래에는 각종 상용 게임 엔진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또 게임 플레이 경험을 가진 세대가 작가가 되기 시작하면서 그런 경향이 더 늘어났다고 생각해왔다. 시도는 정말 많았다. 보는 게임을 소재로 한 영상 작업, 아니면 아예 보는 게임의 형태로 실제 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피처링 하는 작품, 김희천의 작품처럼 VR을 끼고 가상현실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 하물며 아예 게임 엔진으로 제작되어 직접 플레이어가 되어볼 수 있는 작품들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을 찾는 과정에서 전시관을 들락거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게임사회〉 는 그런 시도의 종합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플레이 가능한 게임, 그리고 게임의 형태를 한 미술 작업, 게임을 소재로 한 영상 작업, 해킹한 게임기 기판으로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작품, 또는 게임을 비롯한 서브컬처를 특집처럼 다룬 작품들까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서 위의 그 질문,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찾았는가 하면, 오히려 그 명제 자체를 뒤집어버리게 됐다. 〈게임사회〉 의 적지 않은 작품들은 그 형식 자체가 ‘비디오 게임’이라는 익숙한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각 작품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에는 그런 ‘게이머로서의 경험’ 또는 기반지식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각 작품의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몇몇 전시 작품들이 ‘게이머적인 경험’ 의 연장선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 컸다. 게이머로서의 경험과 결합하여 이 작품을 이해했을 때 그 깨달음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코리 아칸젤의 〈/로데오/ 할리우드 플레이하기〉 였다. 이 작품은 코리 아칸젤이 얼마나 게이머적 경험을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작업이기도 했다. AI툴 또는 자동화 매크로를 통해 양산형 P2W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함으로서 비인격적으로 변한 게임을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소모시킴으로서 나오는 해학이 이 작업의 재미였다. 이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무분별한 결제유도와 반복적이고 재미없는 플레이로 가득 찬 양산형 모바일 게임에 대한 비판으로서 게이머들에게 매우 천착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또다른 좋은 예는 재키 코놀리의 〈지옥으로의 하강〉 이었다. 이 작품은 두가지의 보편적 경험에 기반하는데 먼저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한 사회봉쇄, 그리고 ‘GTA5’ 라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게임의 경험이다. 우리가 ‘GTA5’ 를 플레이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파괴적이고 소모적이다. ‘무엇이든 가능한 오픈월드’ 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며, 좀더 정확히 정의하자면 ‘각종 금기가 해제된 오픈월드’ 라고 할 수 있다. 즉, 가장 먼저 이 게임에서 생각하게 되는 건 살인과 약탈, 방화, 파괴 같은 현실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행위들이다. 형식적으로는 그보다 많은 행위가 가능하지만, 금기가 없다는 점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런 비일상적 일탈로 플레이가 귀결된다. 하지만 〈지옥으로의 하강〉 은 그런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플레이에서 벗어나 그 무대 자체를 보여준다. 얼마나 일상과 닮아있는지, 어떻게 이 세상이 대리세계로 인정받고 있는지를 비춘다. 고속도로 옆 편의점, 발전소 옆 철길, 이곳을 정처없이 걷는 주인공. 마치 플레이어들에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이 살인과 약탈, 기타 파괴적 플레이로 물들였던 이곳이 사실은 판데믹 같은 우울한 시기에 우리가 조용히 묻어 지낼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니었냐고. 개인적으로 가장 나쁜 예는 〈노텔 (서울 에디션)〉 이었다. 전시 작품 중 가장 비디오 게임 그 자체의 형태를 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이 작품을 실망스럽다고 한 것이 의외일 수도 있다. 전시된 작품 중 우리가 알고 있는 ‘비디오 게임’ 의 형태와 가장 닮아있는 작품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기대치와 작품의 실제가 어긋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노텔 (서울 에디션)〉은 말그대로 비디오 게임 컨트롤러를 쥐고 인게임 3D 공간을 탐험하는 작품이다. 비주얼적으로도 훌륭하고, 흔히 미술가들이 만든 게임에서 발생하는 기술적인 문제도 크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관객은 이 작품을 그 자체로 게임으로 인식하게 되고, 흔히 알고 있는 게임의 기준으로 이 작품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그렇게 되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한계, 즉 어디까지나 공간을 구현하고 그 안에서 이동할 수 있도록 했을 뿐, 그 어떤 상호작용이나 탐험의 목적성이 결여되어 있음이 크게 다가온다. 그러한 이유로 〈노텔 (서울 에디션)〉은 전시장에서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낸 작품이기도 했는데, 과연 비 미술인 또는 미술 관객으로서의 경험이 없는 이들, 또는 게이머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작품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지 궁금해서였다. 작품은 누군가 플레이하면 그 주변에 둘러앉아 그걸 지켜볼 수 있게 되어 있었고, 많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컨트롤러를 이어 받아가며 플레이했다. 하지만 그 반응은 대체로 한결같았다. “그래서 뭐지?”, “왜 아무 것도 없지?” 흥미롭게도 〈노텔 (서울 에디션)〉 그 형태적으로는 가장 게이머적 경험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직접 컨트롤러를 쥐고 플레이하며 겪게되는 경험은 ‘게임’ 이라고 하기엔 너무 황량한 것이었다. 굳이 이 작품을 게임의 장르적 해석으로 보자면 어드벤처 게임에 가까울 것이지만, 이 작품은 탐험의 이유와 목적, ‘왜’ 와 ‘무엇’ 이 결여되어 있었다. 물론 현대 미술 시조에서 그런 명확한 목표 지점을 설정하는 건 불필요한 일로, 또 작가가 관객의 이해를 제한하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결정적으로 이 작품은 ‘게임’ 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면서 동시에 좋은 미술 작업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졌다. 오히려 정말로 디스토피아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비효율적인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작업들의 긍정과 부정을 정리해보면, 실상 게임을 미술관에 들여놓는데에 중요한 건 ‘형태’ 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지난해 보았던 이안 쳉의 〈세계건설〉 전시에서도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 이안 쳉의 〈사절〉 연작은 무한한 길이를 가진 일종의 자동화 시뮬레이션이다. 그러나 ‘무한한 길이’ 라고 되어있었지만 그 무한한 길이는 그 안에서 유의미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적절히 하이라이트하지 못한다면 순간 만큼의 가치를 가지기 오히려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 는 스크린 뒤에서 PC를 통해 실시간 렌더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게임 라이브 컷씬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정작 그것이 관객에게 보여지는 방식은 폐쇄된 공간 안의 스크린 하나에서 상영되는 것이었기에 오히려 더 넓게 향유되고 더 깊이 플레이될 수 있는 작품이 이 공간에 갇혀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꼭 게임이라는 형태 자체에 집착할 필요는 없고, ‘게임플레이’ 라는 경험을 어떻게 미술관에서 재현하거나 또는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작가와 전시 관계자들이 ‘게이머로서의 경험’ 을 가지고, 이를 ‘게이머’ 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고 구성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어쩌면 너무 정석적이면서도 원점회귀적인 결론에 다다르고 말았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부분은 이전의 어떤 전시들보다도 영유아, 중년층, 20대 남성 같은 기존의 현대 미술 전시의 주 소비층이 아니었던 이들이 많이 보인 전시였다는 점이다. 그만큼 게임이라는 소재 자체가 더 많은 이들을 현대 미술관이라는 장소로 이끌어낸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많은 관심이 갔다. 하지만 그 안에서 목격한, 그리고 간단히 이야기 해본 관객들에게서는 확실히 조금은 아쉬운 반응들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게이머들이 비디오 게임 아트라는 좋은 가교를 두고도 현대 미술로 넘어오기 어렵게 할까.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비디오 게임과 현대 미술의 불협화음은 ‘친절함’, 좀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UI/UX 였다. 일반 관객들의 시선에서 현대미술은 기본적으로 불친절함을 소양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는 어느정도 오해와 편견이라는걸 알고 있다. 단순히 의미파악 자체에 여러모로 복합적인 사유와 다양한 의식의 단계가 필요한 것 자체로 불친절함이라고 부르는 건 다소 부적절한 표현이다. 많은 현대의 명시, 명작 영화들이 이해에 난점이 있다고 해서 ‘불친절’ 하다고 비판받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러나 미술관의 미술은 기본적으로 작품 외의 정보 전달을 극히 줄이고 설명이라고 할만한 것은 오직 스테이트먼트 하나만을 남겨 놓는다. 영상 작품들은 이미 상영되고 있고, 관객이 영상의 중간에 들어오게 되면 문맥을 파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즉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도 적고, 관람환경도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어떤 전시 또는 작품을 이해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계속 ‘수용’ 하면서, 이를 머리속에서 정제하고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고난한 정신적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비디오 게임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UI/UX 의 덕목과 상충되는 면이 있다. 비디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항상 일련의 튜토리얼이나 툴팁을 통해 게임을 이해하고 ‘이 게임을 플레이 하기 위해 지켜야하는 룰, 그리고 필요한 덕목’ 을 학습받는다. 심지어 명시화된 튜토리얼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라도 그런 학습 곡선을 고려해 게임의 구조를 만들기 마련이다. 그리고나서 플레이어는 비로소 게임을 이해해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바로 이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수많은 비디오 게임 아트 전시가 시도되어 왔지만 충분히 상호작용성을 바탕으로 한 게임적 경험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 전시가 적었던 이유는 바로 이 UI/UX 가 관객과 전시/작품 사이의 게임적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것이 가이드라인과 튜토리얼과 툴팁으로 채워져야 한다면 우리가 가지는 이해의 폭은 극도로 좁을 것이고 특정 가치관에 편향된 이해를 다수가 공유하게 되는 다소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결여된다면 이해 자체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기능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걸 하나의 재미로 여기고 있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현대미술이 소수의 향유자들이 아닌 일반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이유는 이 부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일반 대중에게 이제 미술관은 모던한 카메라 세트장처럼 쓰이고 있다. 즉 미술관은 비디오 게임처럼 ‘개인화된 경험’ 을 완전히 얻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환경이자 풍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이번 전시에서 단적으로 느낀 지점은 바로 각종 ‘불편한’ 컨트롤러와 연결된 게임들을 사람들이 직접 플레이할 때였다. 많은 사람들은 왜 익숙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배치된 컨트롤러로 자신에게 이미 익숙한 게임을 플레이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스테이트먼트에는 그 의도가 써있기는 했지만 일목요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필자가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적응형 컨트롤러 또는 비직관적인 컨트롤러로 게임을 함으로서, 장애인이 일반적인 컨트롤러로 게임을 할 때의 불편함을 비장애인들이 체험한다.” 라는 의도를 덧붙이자 그제서야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결국 현대 미술관 내에서 이루어진 정규 전시이기에 기존에 잡혀있는 미술 전시의 틀을 바꿀 수는 없었고, 그것이 더 많은 이해를 원하는 이들에게 장벽처럼 작용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타까운 점은 분명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잘 녹아있는 좋은 작품들이 많았음에도 이를 수용하기 꽤 버거워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게임사회〉 전시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게이머적인 경험이 베이스가 되었을 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MOMA 소장 게임 컬렉션은 그냥 평범하게 전시되었다면 오히려 플레이 되기 어려운 환경에 가져다 놓은, 죽은 게임이 되었을테지만 적절한 컨트롤러의 변형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앞서 언급한 코리 아칸젤의 작품, 그리고 재키 코놀리의 작품은 그 형태는 분명 평범한 영상 전시의 폼을 하고 있음에도 게이머로서의 경험과 천착되어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 얻은 또다른 깨달음은 게임은 확실히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모을 힘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다녀갔지만 그동안 지켜 본 비 미술인 관객들의 행태는 딱 둘 중 하나였다. 그냥 슥 보고 지나가거나, 배경으로 두고 사진을 찍을 뿐. 하지만 이번 전시는 사뭇 달랐다. 많은 이들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려고 했고, 작품을 보며 자신의 게임 경험을 떠올려 이야기하고, 직접 작품을 체험하고자 컨트롤러를 움직였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가진 힘, 그리고 동시에 오프라인 공간이라는 한계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 〈게임사회〉 전시 또한 기존의 미술 전시들이 가진 일종의 딜레마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 작품의 면면에서 느낀 ‘게이머로서의 경험’ 은 즐거웠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들러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을 더 느긋하게, 지긋이 관람하고 싶다. Tags: 게임사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심사위원장 총평
제 2회 게임 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는 총 51편의 원고가 투고되었다. 작년에 비해 수적으로는 다소 줄어들었으나, 원고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과 비평의 주제 및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 있었다. < Back 13 GG Vol. 23.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불멍을 넘어, 소비자본주의 너머: 게임 〈리틀 인페르노〉 비평(우수상)
물건을 태워서 종잣돈을 늘리고 새로운 물건을 해금한다. 그리고 일종의 업적이기도 한 특정 물건의 조합을 찾아 태우는 재미는 분명 게임으로서의 즐거움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주된 게임성을 경험하게 하는 시스템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회의하고 그 밖을 사유하기를 적극적으로 재촉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세지가 게임적 시스템과 충돌한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 내 마음의 퍼즐 상자: 〈애니멀 웰〉과 〈리프 이어〉의 세계에 대해
이 글은 《게임제너레이션》 20호에 실린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의 후속편으로, 지난 글의 결론부에서 언급만 하고 넘어갔던 장르명인 ‘메트로브레이니아(metroidbrainia)’에 대한 논지를 심화해 〈애니멀 웰 (Animal Well, 2024)〉과 〈리프 이어 (Leap Year, 2024)〉를 뜯어보는 것이 목표다. 그러므로 우선 곧장, 메트로브레이니아가 무엇인지를 정리하며 글을 열겠다. < Back 내 마음의 퍼즐 상자: 〈애니멀 웰〉과 〈리프 이어〉의 세계에 대해 24 GG Vol. 25. 6. 10. 다시 들어가며 이 글은 《게임제너레이션》 20호에 실린 「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의 후속편으로, 지난 글의 결론부에서 언급만 하고 넘어갔던 장르명인 ‘메트로브레이니아(metroidbrainia)’에 대한 논지를 심화해 〈애니멀 웰 (Animal Well, 2024)〉과 〈리프 이어 (Leap Year, 2024)〉를 뜯어보는 것이 목표다. 그러므로 우선 곧장, 메트로브레이니아가 무엇인지를 정리하며 글을 열겠다. 지난번에 잠시 언급했듯, 이 단어는 선구적인 《슈퍼 메트로이드 (Super Metroid, 1994)》와 그 영향을 받은 《악마성 드라큘라 X 월하의 야상곡 (Castlevania: Symphony of the Night, 1997)》의 합성어인 ‘메트로배니아(metroidvania)’에 ‘브레인(brain)’을 집어넣은 말장난이다. 일종의 내부자용 농담 같은 이 단어에 대해 게임 저널리스트 케이트 그레이는 「대관절 메트로브레이니아가 뭐야?」라고 물어보는 글 [1] 에서 《메트로이드》가 뭐고 《캐슬배니아》란 또 무엇인지부터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이런 작명이 “기이할 정도로 도움이 되지 않고, 기계적이고 자기 참조적”이라고 비판한다. 대신에, 그는 자신과 동료가 고안한 ‘지식 노드 퍼즐(knowledge node puzzle)’과 ‘정보 게임(information game)’이라는 훨씬 직관적인 표현을 통해 “정보의 획득이 목표고, 이미 얻은 정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내”며 그를 위해 “정보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감춰서, 세계와 그 구조에 대한 플레이어 본인의 이해력을 통해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는” 유형의 게임들을 묶고자 한다. 이렇게 지식·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레이의 접근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런 유형을 정의 내리며 플레이어의 경험과 그에 딸려 오는 (고고학자나 탐정 같은) 어떠한 기분 또한 중대하게 언급한다는 것이다: “게임은 (마치 역사처럼) 당신보다 앞서서 펼쳐져 있고, 당신은 정말 무엇도 바꿀 수 없을 뿐, 그저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다.” 이런 설명을 지난 글과 연결 짓자면, 〈아우터 와일즈〉와 〈레인 월드〉는 각각 태양계와 생태계의 법칙을 그 임의성까지도 어느 정도 포함해 모의하며 플레이어에게 “우리-없는-세계” [2] 한복판에 떨어진 기분을 제공했을 테다. 비밀스러운 세계와 그 벽들 [3] : 메트로배니아와 메트로브레이니아에 대해 그렇지만, 나는 메트로브레이니아에서 플레이어가 숨겨진 지식·정보를 차근차근 연결 짓고 이해하도록 하는 진행이 중요한 만큼 메트로배니아적인 특성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레이의 문장대로 “게임이 거의 마치 당신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당신은 그저 이를 발견했을 뿐”인, 세계에 대한 플레이어의 불능(감)을 고전적인 메트로배니아 장르를 활용하면서도 충분히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트로배니아의 ‘불변하는 매력’이 대관절 무엇인지를 여러 게임 제작자에게 물어보는 인터뷰 [4] 에서, 많은 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맵 속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찾거나 역추적을 해야만 극복할 수 있는 방해물로 이뤄진 사이드 스크롤링 액션-어드벤처”의 구조가 특정한 플레이 경험을 생성한다고 밝힌다. 이 경험은 대개 새로운 이동기나 공격기를 얻으며 성장하는 플레이어의 주체적인 행위성과 관련되어 있다. 플레이어가 주어진 세계를 익혀나가고 그에 익숙해지는 분투가 그 세계를 무대 삼은 서사로 이어지는 진행 과정의 등치를 통해 “그저 사건들의 정해진 순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그 사건들을 (어떤 경우에는 항상 같은 순서도 아니게) 일으키는 기분”과 “다수의 방식으로 탐험 준비를 마친 거대한 맥락 속에 플레이어가 들어간 인상을 (심지어 그 인상이 거짓일지라도) 선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상술한 메트로배니아 고전들의 주동 인물이자 플레이어 캐릭터인 사무스와 알루카드부터 플레이어의 숙련에 따라 각종 파워 업을 얻고 장비 세트를 되찾으며 강해지고, 결국엔 제베스 행성에서 마더 브레인을 또 악마성에서 드라큘라를 물리친다. 그러니 아무리 거대한 맵을 헤매거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밀리더라도, 끝에 가면 이들을 제어하는 플레이어가 작중 서사의 중심이 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할 테다 [5] . 다시 말해, 메트로배니아는 거대하게 연결된 세계를 탐험하며 성장하는 플레이를 작중 서사의 전반적인 진행과 일치시켜, 플레이어가 주어진 사건과 맥락 속에서 인과나 행위력을 출중히 발휘하는 전능(감)을 고양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메트로배니아의 전제에서 출발해,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세계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비인격적이고 무심한 우리-없는-세계에 직면하려는 시도” [6] 를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플레이어가 세계의 구조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이 그 상위의 맥락이나 사건에 직접적인 인과를 발휘하지 않으면서 등치가 어긋나는 식으로 말이다. (다시 지난 글을 되짚자면, 〈아우터 와일즈〉의 결말은 화로인의 ‘관측’이 가히 우주적인 힘을 발휘하도록 인과를 극적으로 연결 짓는 한편, 〈레인 월드〉의 결말은 슬러그캣의 귀결이 그가 뒤로 한 세계에 큰 인과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스킬 및 아이템의 해금이나 레벨·파워 업 같은 중대한 게임적 요소를 그보다 덜 게임적일 지식·정보의 획득 및 연결로 치환할 때,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진행의 감각은 모호하게 흐트러지면서 전능(감)에 불능(감)이 흘러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는다. 그렇다면, 메트로브레이니아를 규칙이 고정된 장르보다는 플레이어가 지식·정보를 매개로 게임 속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 이해해 보자. 주어진 지식과 정보를 알맞은 방식으로 연결 짓자 “필연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으며, 숨겨지고 은닉된 채 남겨진” [7] 듯한 세계의 비밀이 드러나는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작동법은 플레이어의 진행을 쉽게 수량화하거나 가시화할 수 없도록 하며, 세계의 인과가 오로지 플레이어의 행위성에만 연동되지 않는다는 점도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메트로브레이니아 유형의 게임들은 다른 경우들보다 불능(감)이 우선 두드러질 수도 있겠지만,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해 플레이어에게 모르는 의미나 숨은 비밀을 알아차릴 때의 짜릿한 전능(감)을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메트로브레이니아를 메트로배니아에서 구분 짓는 특성이 바로 이것이라고 둘 수도 있겠고 말이다. 이와 더불어, 앞서 인용한 메트로배니아의 정의에서 특히나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연속적으로 이어진 맵’이라는 특성이다. 유기적으로 짜여 역추적과 그를 통한 새로운 지역의 개방이 가능한 메트로배니아의 세계가 여타의 2D 플랫포머가 제시하는 세계와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성훈의 논의 [8] 를 빌려오자면, 각 스테이지가 선형적으로 진행되고 스테이지끼리도 선형적으로 연계되곤 하는 2D 플랫포머들은 “이차원적인 움직임으로서의 전진에 대한 비평을 게임 내적인 논리에서 마련한다. 그 비평은 특히 게임이 제공하는 최후의 조우와 최후의 공간을 중첩하는 방식에 따라서 특유의 완결된 형식미를 갖춘다.” 곧 일반적인 2D 플랫포머에서 제시되는 세계란 시작에서 끝으로 향하는 경로 자체로, 그 일직선 구조를 반영하듯 “명쾌하고 명료하며 직선적인 이야기는 한편으로 스테이지 간의 근원적인 단절을 숨기고, 좌우로 길게 봉합된 스테이지의 연쇄를 통과하며 전진하고 있단 환상을 유지한다.” 이러한 2D 플랫포머의 세계에서 일직선 공간의 끄트머리는 ‘최종장’이라 비유되듯 플레이 전반의 마무리와도 자연스레 겹친다. 선형적인 경로의 마지막 칸에 닿으면, 그 세계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완결이 나는 셈이다. 이에 비해 메트로배니아가 제시하는 세계는 플레이어의 방문 순서가 느슨하게 짜이는 등 다른 2D 플랫포머에 비해 훨씬 비선형적이고, 그런 만큼 주어진 세계의 ‘최종장’이 아니라 중심부에서부터 훨씬 더 멀리 떨어진 ‘변방’을 향해 탐험하며 이동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나가는 플레이를 제공한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주어진 세계의 끄트머리에 닿더라도, 이는 서사 전반의 마무리로 직결되며 플레이의 공간과 시간을 겹치지는 않는다. 이런 특성을 통해 다른 2D 플랫포머에 비해 메트로배니아에서는 세계가 자기 완결적으로 닫혀 있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할 수가 있다. 「 최종장과 변방 」에서 3D 오픈 월드의 세계로 설명하듯, “이곳이 곧 끝이지만, 게임 내적으로 이곳이 곧 끝이라고 선언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설. 경계 부근은 열린 세계의 닫힌 지역이라는 점에서 오픈 월드의 모순이 격화되는 장소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본론에서는 기본적으론 2D 플랫포머인 〈애니멀 웰〉과 〈리프 이어〉를 중심으로, 퍼즐 상자 같은 세계가 제 비밀을 드러내는 메트로배니아적인 동시에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특성을 짚겠다. 닫힌 세계와 그 겹들: 〈애니멀 웰〉에 대해 〈애니멀 웰〉의 1인 제작자 빌리 배쏘(Billy Basso)는 비밀이 겹겹(layer)으로 숨겨져 있다는 단골 문구로 이 게임을 소개하곤 하는데, 이 겹겹의 비밀은 크고 작은 플랫포밍 퍼즐과 얼기설기 엮인 채 가로세로 16칸씩으로 이뤄진 세계의 전반적인 형상과 함께 차차 밝혀지도록 짜여있다. 첫 겹에서는 평범한 2D 플랫포머에 가깝게 진행하며 결말을 보았다면, 두 번째 겹에서는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듯한 달걀들을 전부 찾아내고, 심지어 그보다도 더 숨겨진 겹을 향해 토끼 굴을 파고 내려가는 식으로. 이 세계를 돌아다니는 자그마한 덩어리인 플레이어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얻은 장난감들을 통해 이 세계에 주어진 다양한 퍼즐 및 겹겹의 비밀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익혀나간다. 〈애니멀 웰〉의 핵심이라 할만한 이 장난감들은 거의 다 둘 이상의 쓰임새를 가지는데, 이는 종종 플레이어가 세계를 좀 더 능숙히 이동하도록 돕는 동시에 각종 지식·정보를 제시하며 전능(감)의 조건들을 짜맞춘다. 이를테면 원반으로 개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한편 원거리에서 날려 레버를 조작하거나 몇 오브젝트를 부술 수도 있고, 심지어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올라타 방을 가로질러 날아갈 수도 있는 식으로. 이런 유용한 장난감들을 도구 삼아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식이 늘어날수록, 플레이어가 돌아다닐 수 있는 스테이지의 범위 또한 넓어진다. 중앙에서부터 출발하는 지도를 (첫 번째 겹의 공략 목표인 네 개의 불빛이 위치한) 변방으로 밝혀가면서 이 세계를 구석구석 탐험하는 진행은 방마다 주어진 플랫포밍 퍼즐 외에도 더 큰 규모의 퍼즐로 향하는 단서나 그보다도 훨씬 깊숙하게 숨겨진 비밀의 존재를 알아차려 가는 공략 전반과 자연스레 겹친다. 그렇게 자신이 획득한 지식·정보가 장난감들이 그렇듯 복수의 의미와 용도를 지닌다는 점을 깨달은 플레이어는 단서들을 알맞게 연결하며 이 퍼즐 상자 같은 세계의 조작법을 익히고 그에 익숙해지는 전능감을 얻는다. (배경에 서 있는 동상이나 측면으로 난 동물 머리 같은 시각적 요소에서도 〈슈퍼 메트로이드〉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듯) 메트로배니아의 기본 공식에 꽤 충실한 만큼, 〈애니멀 웰〉은 관습적인 장르 공식을 뒤틀어 제 나름의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특성들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게임의 또 다른 홍보 문구인 ‘전투 없는 메트로배니아’가 지시하듯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공격기 자체를 제거했다는 점이 그렇다. 플레이어에게 기초적인 행위성과 그에 따른 전능(감)을 부여하곤 하는 전투가 없다는 점에서 〈애니멀 웰〉은 무시무시한 타조나 캥거루 등에 맞서지 못하는 불능(감)을 키우는 편이며, 그외에도 우물 곳곳에 거주하는 수많은 동물이 이 자그마한 덩어리에 종종 호전적이거나 대개 무심하다는 점 또한 다시금 이 세계가 플레이어 당신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우리-없는-세계’의 기분을 가중한다. 그러나 〈애니멀 웰〉의 세계는 (〈아우터 와일즈〉의 태양계나 〈레인 월드〉의 생태계가 시험하는 만큼의)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그가 온갖 지식·정보와 비밀을 수집해 해결하도록 만들어진 퍼즐 상자에 가까운 만큼, 여전히 어느 정도는 대개의 게임이 그런 만큼 “우리에-대한-세계” [9] 이기도 하다. 플레이어가 세계에 관한 일정한 지식·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하면 충분히 퍼즐을 풀고 비밀을 찾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막막하고 이해 불가능하게 느껴지듯이, 메트로브레이니아의 플레이에 잠재된 전능함은 플레이어가 겪는 불능감과 늘 충돌하며 그렇게 플레이어 ‘당신’과 세계 사이에 당연한 듯 싶었던 인과는 어긋난다.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먹을 때야, 플레이어는 비로소 전능(감)과 행위성을 얻을 수 있고 어쩌면 그제야 세계에 나름의 인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메트로배니아의 불능한 이면을 적극 활용하는 메트로브레이니아의 역설적인 작동법일 테다. 메트로배니아가 생경한 세계에 익숙해지는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변방까지 지도를 구석구석 밝히는 탐험이나 플레이어 캐릭터의 인과에 반응하는 서사 등으로 반영해 ‘우리에-대한-세계’를 제작할 때, 메트로브레이니아는 그러한 세계에 대한 지식·정보만을 전략적으로 숨겨 플레이어가 마치 ‘우리-없는-세계’에 떨어진 것만 기분이 들게끔 한다. 앞서 인용한 메트로배니아 인터뷰에서 “제가 플레이 중인 게임의 세계가 제 존재와 무관한 척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제가 이 세계의 손님일 뿐이고, 게임이 제가 발을 딛거나 말거나 계속 거기서 존재하고 있을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고 싶었어요.”라는 발언을 끌어오자면, 여기서 중요한 건 플레이어에게 실제로 지극히 무심하거나 그와 완전히 무관한 세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러한 ‘척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화면 밖에서 입력을 집어넣는 당신이 그리 중요치 않다고 떵떵대더라도, 게임은 결국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 묘한 인력 관계 속에서, 〈애니멀 웰〉과 같은 메트로브레이니아 유형의 게임들은 전략적이고 효과적으로 무관하거나 무심한 ‘척’을 하다가 자신의 불능을 받아들이고 이 세계의 지식·정보를 파고드는 플레이어에게 비밀과 전능을 향한 길목을 열어 보인다. 이 넓고 낯선 세계 속 네 귀퉁이에서 얻은 불빛으로 중앙 허브의 기둥들을 밝히자, 우물 속의 우물이 어둑한 아가리를 의미심장하게 벌리는 것처럼. 자그마한 세계와 그 점프들: 〈리프 이어〉에 대해 「기계장치의 우주」를 작성할 때만 하더라도 메트로브레이니아 유형 게임으로 자주 호명되던 〈튜닉 (TUNIC, 2023)〉을 내정하고 있다가, 그보다 덜 알려지고 더 조그만 게임인 다니엘 린센(Daniel Linssen)의 〈리프 이어〉를 선택한 이유는 어느 정도 『폴리곤』에 올라온 글 [10] 때문이다. 이 게임이 “메트로브레이니아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트로브레이니아”라는 제목을 단 그레이슨 몰리의 리뷰는 자신이 퍼즐 상자를 뜯어 볼 끈기가 없어 〈애니멀 웰〉을 그리 좋아하지 못했던 것에 비해 〈리프 이어〉가 “〈애니멀 웰〉을 알아먹은 사람들이 느낀 기분을 상상하게 해준 작은 모사품”이라고 밝힌다. 이때 그가 말하는 ‘기분’이 앞서 다뤘듯 불능감과 전능감의 오묘한 조합이라 한다면, 〈리프 이어〉는 정말로 그저 가벼운 메트로브레이니아의 경험만을 제공하는 것일까? 〈애니멀 웰〉의 빽빽한 256칸에 비해 〈리프 이어〉는 2024년의 본편과 올 초 발매된 DLC 모두 약간 헐렁한 40~50칸짜리 세계를 제시하기에 상대적으로는 작다고 둘 순 있겠지만, 〈리프 이어〉가 2D 플랫포머의 문법을 통해 제시하는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특성과 기분은 〈애니멀 웰〉의 축소판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와 사뭇 다르기도 하다. 〈애니멀 웰〉에 숨겨진 겹겹의 비밀이 배쏘가 공언한 대로 어둑하고 깊숙하게 숨겨진 여러 지식·정보의 배치라면, 〈리프 이어〉에 숨겨진 겹겹의 비밀이란 다름 아니라 플레이어 캐릭터가 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상호작용하는 이동법 자체와 연관되어 있다. 린센이 게임을 ‘서투른(clumsy)’ 플랫포머라고 소개하듯, 플레이어는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자신의 캐릭터가 점프하고 땅바닥에 닿으면 바로 시뻘겋게 바뀌며 죽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플랫포머에서 가장 중요한 움직임일 점프에 굉장한 제약을 걸면서, 〈리프 이어〉는 우선적으론 플레이어의 이동 자체를 퍼즐로 만들어버리는 플랫포머가 된다. 다른 게임이라면 간단한 점프 한 방으로 이동할 수 있을 만한 곳들마저도 이런 규칙의 세계에서는 위험천만할 뿐이며, 이에 따라 게임의 메트로배니아적인 특성은 플레이어 캐릭터가 지금의 점프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공간들을 여럿 제시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리프 이어〉의 겹겹의 비밀은 바로 이러한 제약 덕에 비로소 빛날 수가 있는데, 플레이어 캐릭터가 점프해 떨어지는 높이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차차 밝혀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두세 칸 높이로 떨어져 죽지 않게 주의해야만 했던 점프가, 그보다 더 깊게 너덧 칸 높이로 떨어지면 플레이어 캐릭터를 빨강이 아닌 분홍으로 바꾸며 다시 튕겨 오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프란 일반적인 메트로배니아에서처럼 플레이어가 진행 과정에서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메트로브레이니아에 가깝게 게임 속에서 언제나 실행할 수 있고 단지 플레이어가 모르고 있었을 뿐인 능력이기도 하다. 이렇게 〈리프 이어〉는 플랫포머로서 플레이의 핵심인 점프를 중심으로 이동 자체를 퍼즐로 만들어 둘을 합쳤을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지식·정보마저도 일종의 비밀로 숨겨두며 여기에 또 다른 겹을 덧붙인다. 까다로운 플랫포밍 자체를 아예 메트로배니아이자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경험으로 바꿔버린 셈이다. 〈애니멀 웰〉의 장난감들이 어떠한 의미에서는 파워 업을 위한 아이템으로서 전통적인 메트로배니아의 구성 요소에 더욱 가깝다면, 〈리프 이어〉는 이보다 좀 더 대담하게 그 어떤 아이템도 없이 오로지 플레이어가 이미 ‘파워 업’이 된 점프의 비밀을 언제 알아차리고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시험하도록 이끌며 메트로브레이니아에 훨씬 더 가까워진다. 플레이어가 28개의 달력 조각을 찾으러 조심스레 돌아다니는 이 세계는 화면에 한 칸씩 들어오는 스테이지를 어떠한 유형의 점프로 접근할 수 있는지에 따라 작더라도 꽤 유기적인 플랫포밍으로 짜여있고, 이런 구성은 자연스레 메트로배니아적인 진행처럼 새로운 점프 활용법을 익히기 전까지는 갈 수 없었던 곳들에 도달할 수 있도록 플레이어를 유도한다. 새롭게 알아차린 점프의 비밀을 어떻게 익혀서 적용할 수 있을지를 궁리하며 이 자그마한 세계를 몇 번씩이고 돌고 도는 동안, 플레이어는 자연스레 〈리프 이어〉의 플랫포밍 퍼즐 상자 같은 세계에 익숙해진다. 겹겹의 비밀로 이뤄진 점프에 전능하게 익숙해질수록 그와 상호작용하는 세계 또한 마치 비밀 통로처럼 드러나는 듯한 지름길들 또한, 점프와 마찬가지로 게임에서 가장 처음부터 완결된 상태로 주어져 있었기도 하고 말이다. 다만 자신보다 ‘앞서서 펼쳐진’ 퍼즐 상자 안으로 들어온 플레이어가 이를 풀어내는 방법만 알아차리면 될 뿐. 그런 의미에서 〈리프 이어〉는 〈애니멀 웰〉보다 훨씬 작게 압축된 세계임에도 어쩌면 그보다 능숙하게 메트로배니아의 기본적인 전제와 공식을 메트로브레이니아적으로 변환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떨어지는 높이를 더욱 키워서 점프하면 무엇이 가능할지를 파고들수록, 〈리프 이어〉의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은 더욱 뒤집히며, 이곳 또한 마침내 숨겨져 있던 변방을 드러내 보인다. 다시 나가며 그렇다면 이제 두 게임의 마지막 구간들을 얘기해 볼 수 있겠는데, 흥미롭게도 양쪽 모두 주어진 세계의 밖으로 나가버리는 순간을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애니멀 웰〉에서는 두 번째 맨티코어를 타고 (그 자체도 새로운 겹의 퍼즐이긴 한) 공중을 날아다니는 엔딩에서, 〈리프 이어〉에서는 (올 초에 나온 DLC까지 포함해) 외벽이나 외곽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지역으로 빠져나오는 후반부에서. 이런 공간적인 비약은 게임 내 지도에 표시마저 되지 않은 바깥을 향하는 만큼 플레이어에게 무척 강렬한 감흥을 전달하는 한편, 다시금 메트로배니아에서 종종 실감할 수 있는 ‘자기 완결적으로 닫힌’ 느낌 또한 넘어선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먼저 〈애니멀 웰〉의 자기 완결적으로 닫힌 성질은 플레이어가 상하좌우 중 한 방향으로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반대쪽으로 나오는 순환적이고 폐쇄적인 구조에서 나타난다. 곧 이 세계에서는 아무리 각종 장난감 도구를 활용하며 전능하게 이동하더라도 그저 거대한 퍼즐 상자의 폐쇄적인 안쪽만을 뱅뱅 돌 뿐이지 아예 밖으로 나가는 출구는 없다. 게다가 그 구조가 순환적인 만큼 적어도 경계 너머의 바깥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변방’마저도 없다. 그런 만큼 철저하게 닫힌 세계의 바깥으로 나가버리는 결말은 게임에서 가장 깊숙이 숨겨진 비밀까지는 아닐지라도, 플레이어에게 가장 해방적으로 전능한 기분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런 지라 개인적으로는 그 이후에 한두 겹의 비밀이 남아 있더라도 이 엔딩을 〈애니멀 웰〉이 제공하는 일종의 ‘최종장’으로서 의미화할 수 있겠다. 그와 동시에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사항이란, 게임의 거의 모든 퍼즐과 겹겹의 비밀이 ARG에 혈안이 된 플레이어 집단의 협동 덕에 사나흘 만에 거의 다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에는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닿을 수 없는 채 새까맣게 남은 영역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게임 내에서 제공되는 도구나 경로, 방법 등으로는 절대 갈 수 없고 오직 치트 키나 개발자 도구로 이동해야지만 확인할 수 있는 이 공간들은 공식적이거나 적법한 플레이에서는 아예 완벽하게 은폐된 ‘비밀’로서 숨어 있다. 그럴싸하게 말이 되지 조차 않는 이 ‘비밀’들은 게임이 제공하는 무대 너머를 어떻게든 엿보려는 이들을 골려 먹기 위한 이스터 에그일까, 아니면 여태까지의 대규모 보물찾기에서마저도 플레이어들이 찾아내지 못한 더욱 깊은 겹으로 향하는 단서인 걸까? 어쩌면 〈애니멀 웰〉의 세계 안팎으로 여전히 숨겨진 채 남아 있는 이런 비밀들은 비디오 게임의 세계가 아무리 전능(감)이 뚜렷한 ‘우리에-대한-세계’처럼 느껴지더라도, 어느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불능(감)이 도사리는 ‘우리-없는-세계’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리프 이어〉의 바깥이란 맵 최하단에 위치해 바닥이 없는 채로 바람이 몰아치는 지역일 테다. 여기서 게임은 다시금 점프의 변주를 통해 플레이어 캐릭터가 이 변방과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한다. 플레이어의 점프가 두세 칸이나 너덧 칸 높이도 심지어 (파란색이 되어 말 그대로 땅을 뚫고 들어가게 해주는) 예닐곱 칸 높이까지도 지나서 떨어지면, 캐릭터가 노란색으로 뒤집히며 바닥이 아닌 천장에 붙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점프는 곧 〈애니멀 웰〉의 장난감과 유사하게 점프 높이만으로도 세계와 다양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복수의 용도를 제시하며, 플레이어는 다시금 메트로브레이니아적인 플레이로 익힌 몇 유형의 점프를 다양하게 짜맞추는 플랫포밍을 통해 메트로배니아적인 세계를 이동할 수가 있다. 이렇게 점프 하나에 겹친 다양한 플레이를 반영하듯, 게임은 반전된 상태로 최하단 변방으로 이동했을 때 지도에서 숨겨져 있던 마지막 퍼즐 지역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가 시작 위치로 되돌아가게끔 이끌며 여태까지 익숙해졌던 자그마한 세계를 반전된 관점으로 제법 낯설게 재맥락화하기까지 한다. 이런 식으로 〈리프 이어〉가 자그마한 세계 속에서의 점프 안에 비밀을 가득 숨겨 넣으며 풍부한 플레이 경험을 만들어 냈다면, 올 초 발매된 DLC인 〈리프 이어: 3월 (Leap Year: March)〉은 본편에서 점프와 얽힌 비밀들을 플레이어가 이미 꿰차고 있다는 전제하에 플랫포밍 자체부터 맵의 유기성과 퍼즐의 유형과 난이도까지 고루 보강된 세계를 제시한다. 이번에는 밖에 위치한 해변에서 시작되는 게임은 본격적인 플레이가 벌어지는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플레이어를 이끈 뒤 후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 세계를 뛰어넘도록 한다. 플랫폼을 켰다 끄는 버튼이 새로운 규칙으로 추가되고 뒤집어진 상태로 닿을 수 있는 최하단 변방의 플랫포밍 퍼즐들을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달력 조각을 전부 얻었을 때 개방되는 세계의 옆구리에서는 플랫포머의 점프 관습을 일찌감치 비튼 〈VVVVVV (2010)〉의 악명 높은 스테이지 (이른바 ‘고통을 즐기는 자’)와 유사한 도약을 선보이기도 한다. 전례 없는 높이로 점프하고 떨어지며 세계의 변방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플레이어 캐릭터는 마침내 빨강에서 분홍, 파랑, 노랑을 지나 초록색이 되며 땅바닥에 닿는데… 그 이후의 마지막 구간은 나마저도 이 글에서만큼은 좀 치사하게 숨겨두고 싶다. 퍼즐 상자 속의 모든 걸 밖으로 꺼내 보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1] Kate Gray, “What The Heck Is A ‘MetroidBrainia’? Introducing The Newest Genre On The Block”, Nintendo Life, 2022.05.21. [2] 유진 새커,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 김태한 옮김, 필로소픽, 2022, 13쪽. [3] 이후 소제목들은 한나 렌,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이영미 옮김, 엘리, 2020의 제목을 변형. [4] Christian Nutt, “The undying allure of the Metroidvania”, Game Designer, 2015.02.13. ( https://www.gamedeveloper.com/design/the-undying-allure-of-the-metroidvania ) [5] 제작자들 또한 이를 인지하듯, 여러 발언에서 행위 주체로서의 플레이어인 ‘당신’을 강조한다: “당신이 이야기고, 당신이 바로 모험입니다. 어디로 갈지를 발견하고 당신이 갇힌 세계의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건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 “당신 스스로 자신만의 플레이 방식을 생각하고, 느끼고, 탐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새커, 같은 책, 18쪽. [7] 새커, 같은 책, 15쪽. [8] 성훈,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 『게임 제너레이션』 13호, 2023.08.10. (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2783c2df-7cc1-45bf-bbed-4b34c153d7e3 ) [9] 새커, 같은 책, 18쪽. [10] Grayson Morley, “Leap Year is a Metroidbrainia for people who hate Metroidbrainias”, Polygon, 2024.09.21. ( https://www.polygon.com/gaming/453137/leap-year-metroidbrainia-you-jump-you-die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나원영 2016년에 웹진 [weiv]를 통해 대중음악 비평을 시작했고, 2022년 웹진 ma-te-ri-al을 통해 <대체 현실 유령>을 출간했다. 아무래도 작은 게임을 랩톱에서 짧게 하는 편이다. 계속됩니다.
- [Editor's View] Ways of Seeing
아이템을 기획하는 내내 편집위원들과 편집장은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의 모호함에 대해 토로했다. 어디까지가 게임일 것인가? 어디부터가 게임의 변화인 것인가? 인간의 역사가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동시대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즉시성있는 답변보다 늘 우직하게 본질을 바라보는 질문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보는 게임’의 시대에 감히 어떤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한 질문과 사유를 통해 이 시대 게임의 변화를 사유하는 계기로 ‘GG’3호가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 Back [Editor's View] Ways of Seeing 03 GG Vol. 21. 12. 10. 이제는 고전이 된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Ways of Seeing’라는 책을 기억한다. 본다는 행위는 결코 영원히 고정된 의미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며,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며 변화해 왔다. 그리고 그 변화는 심지어 ‘보는 것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게임이라는 매체에까지도 닥쳐온 듯 하다. 오랫동안 디지털게임은 그 중심에 직접적인 상호작용성이 있다고 이야기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현실에서는 이러한 개념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플레이어의 개입이 줄어든 방치형 게임, 타인의 게임플레이를 보며 즐기는 e스포츠나 게임스트리밍 등은 게임에 대한 관점을 보다 새롭게, 혹은 보다 폭넓게 정립하기를 요구한다. ‘게임제너레이션’ 3호는 바로 그 ‘보는 게임’ 현상에 주목했다. 플레이어의 개입이 줄어든 오늘날의 게임을 게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부터 이 변화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게임의 대중화에 대한 해석까지 우리는 적지 않은 과제를 받아안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다양한 시선의 다채로운 고민을 담고자 했다. ‘보는 게임’에 대한 두 접근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도 사뭇 다른 관점을 취한다. 윤태진과 이상우는 각각 ‘본다’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변화와, 그 변화로부터 나타나는 공백에 주목한다. ‘보는 게임’이라는 변화의 중심에 있는 방치형 게임이 만들어내는 플레이를 관찰하는 박이선의 글은 플레이어라는 주체의 위치와 자세를 되묻는다. 홍영훈은 e스포츠팀 속 개인으로서의 게이머라는 존재가 갖는 정체성을 되물으며, 가깝지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일본의 게임문화 속 ‘보는 게임’의 의미는 신주형의 추적 끝에 우리 앞에 되살아난다. ‘트렌드’에서는 세 가지 테마를 관찰한다. 2021년 국감에 등장한 게임 접근성 문제는 어느새 대형 게임에서는 조금씩 적용되고 있는 트렌드다. 오랫동안 우리 곁을 맴도는 질문, 왜 한국의 콘솔게임 점유율이 낮은지에 대한 소고는 최근 들어 늘어나기 시작한 한국 게임제작사들의 콘솔 도전과 맞물린다.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가 보여준 전체채팅 금지라는 정책의 도입과 재철회 이슈는 그 원인인 온라인게임 채팅의 문제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아티클 부문은 ‘보는 게임’의 또다른 반대편인 ‘듣는 게임’에 관한 임태훈의 글로 서두를 연다. 12월 개최되는 실험게임축제 ‘아웃오브인덱스’의 주최자인 박선용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서울 합정역 인근에서 열린 미술전시 ‘로우스코어 걸’은 게임의 방법론을 활용하고자 하는 미술의 도전을 보여주며, ‘메탈기어’ 시리즈와 주인공 스네이크의 통시적 변화를 다룬다. ‘데스루프’ 가 보여주는 회귀와 게임이라는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회귀성에 대한 영원회귀로의 접근, 실황중계를 통한 간접체험의 시대를 들여다보는 글들이 준비되어 있다. 인터뷰는 e스포츠, 유튜브, 방치형게임을 선택했다. 게임을 통해 교육을 준비하는 젠지 글로벌아카데미, 보는게임 시대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게임유튜버 김성회, 대표적 방치형게임으로 거론되는 ‘어비스리움’의 운영진과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날의 보는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품고자 애썼다. 아이템을 기획하는 내내 편집위원들과 편집장은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의 모호함에 대해 토로했다. 어디까지가 게임일 것인가? 어디부터가 게임의 변화인 것인가? 인간의 역사가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동시대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즉시성있는 답변보다 늘 우직하게 본질을 바라보는 질문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보는 게임’의 시대에 감히 어떤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한 질문과 사유를 통해 이 시대 게임의 변화를 사유하는 계기로 ‘GG’3호가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전쟁과 절차와 수사와 죽음과 : 탈군사주의와 전쟁 게임
글의 시작부터 이야기 했듯, 비디오 게임과 군사주의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파트너와도 같다. 즉 게임에 전쟁의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드리우는 순간,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마사 이즈 데드」가 전쟁을 직접 지시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전쟁의 역량은 그 안에 깊숙히 파고든다. 다른 이유가 없다. 「마사 이즈 데드」가 비디오 게임이기 때문이다. < Back 전쟁과 절차와 수사와 죽음과 : 탈군사주의와 전쟁 게임 25 GG Vol. 25. 8. 10. 야코 수오미넨은 《The Past as the Future? Nostalgia and Retrogaming in Digital Cutlure》에서 ‘디지털 게임을 포함한 미디어 문화는 본질적으로 유아성infantlism, 유치함chindishness 또는 청소년성juvenility을 내포하고 있으며(...)’라고 쓴다. 폭탄 같은 발언처럼 들리지만, 비디오 게임과 걸쳐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논제다. 요컨데 우리가 게임학이라고 부를때의 루돌로지Ludology의 어원으로부터 발생하는 근원적 질문이다. 우리 사이에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것이, 아니 게임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즐거움’에 대한 지향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있다. 이 때에 즐거움을 가장 원초적인 단위까지 훑고 내려가면 결국 유아성, 유치함, 청소년성 같은 것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비디오 게임과 전쟁이라는 두 키워드를 하나로 조합하면 그러한 ‘원초적 즐거움’의 상이 그려진다. 몰려드는 적, 화면을 메우는 총탄, 화면 어딘가에 표시되는 점수 또는 킬마크… 등등. 애초에 군사적 기술의 변용으로 탄생한 이 매체는 「미사일 커맨더」같은 군사주의적 테마의 게임과 함께 성장해왔다. 꼭 그 대상 또는 배경이 현실에 기반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타이토의「스페이스 인베이더」, 코나미의 「콘트라」같은 외계인과의 혈투를 그린 아케이드 게임도 엄밀히 말하자면 군사주의와 매개하고 있다. 직접 전장을 모사하지 않더라도 총기나 냉병기를 다루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조금 과장해서 폴 비릴리오를 경유하자면, 레이싱 게임 같은 기술 중심의 게임 마저도 군사주의에 대한 어슷한 인상 정도는 가지고 있겠다. 전쟁과 비디오 게임의 사이에는 언제나 군사주의라는 존재의 무게가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군사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위치는 원초적 재미라는 근원적 공간이다. 반전을 외치는 비디오 게임이 군사적 쾌감을 준다는 루도내러티브 부조화 문제는 구태의연하고 철지난 이야기일 정도다. 그래서, 전쟁과 비디오 게임의 사이에서 이 군사주의를 걷어내면 그 자리에 ‘진지한serious’이라는 단어가 들어서게 된다.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이라는 단어의 현존 자체가 비디오 게임에 드리워진 루두스의 음산함을 시사한다. 게임이 진지해려면 특정한 수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군사주의를 우회하는 전쟁 비디오 게임은 대체로 이 시리어스 게임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물론 시리어스 게임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러가지 논의가 있다. 초기에는 교육적 효과를 가진 게임들을 지칭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근원적으로 교육적 목적이 아닌 게임들을 교육적으로 전환 사용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교육적 효과’, 아니 더 넓게는 ‘어떠한 효과’를 내포하는 게임들까지 아우르게 된다. 자우티Djaouti, 알바레즈Alvarez, 제슬Jessel은 기존의 비디오 게임을 ‘엔터테인먼트 게임’으로 구분한 뒤, 시리어스 게임을 ‘진지함serious’과 ‘게임성game’을 모두 가진 게임으로 규정한다. [1] 물론 여기서도 이 ‘진지함’이 어느 범주까지를 뜻하는지에 대해서 규정하지 않는다면, 매우 모호해지긴 하지만 말이다. [2] 여튼 게임이 어떠한 엔터테인먼트를 초과하는 ‘진지한 테마’를 목적한다면 시리어스 게임의 범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여기에 어떠한 충돌이 발생한다. 앞서 말했듯 루두스는 일정량 ‘진지함’을 배격하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전쟁과 비디오 게임 사이에 언제나 군사주의가 들어설 수 밖에 없었던 바로 그 논리적 귀결과 맞붙는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이 군사주의와 거리를 두고, 그 이면의 이야기를 ‘진지하게’하려 할때, ‘시리어스’와 ‘루두스’ 사이에는 강렬한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충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Juggler Games의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My Memories of Us」이다. 이 게임은 2차 세계대전의 와중 한 유대인 소녀와 도둑 소년이 함께 수용소로부터 탈출해 도망치는 이야기를 다룬다. 메커닉적으로는「발리언트 하츠」에 큰 빚을 졌다 할 정도로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각각 다른 특성을 지닌 두 주인공을 통한 퍼즐 메커닉은 새로운 흥미로움을 낳는다. 손을 잡으면 서로의 능력이 공유되고 손을 놓으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는 메커닉은 게임이 부여하는 퍼즐을 보다 다채롭게 구축한다. 그러한 반면 이 게임은 ‘노년의 남성이 회상하는 과거’를 이유로 역사에 환상적인 면모들을 이식한다. 이를 통해 제3제국을 로봇으로, 제국의 총통을 로봇 왕으로, 유대인을 표시하는 노란 뱃지는 지워지지 않는 붉은색의 페인트로 묘사한다. 이 환상성(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해야할까)이 있기에 더 다양한 퍼즐 메커닉이 나올 수 있었겠으나, 역사의 무게를 감소시켰다는 평은 피할 수 없었다. 《게임스팟》에서는 "게임의 더 귀여운 미적 요소와, 캐릭터들이 게토에 살게 되고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는 이야기 사이의 단절은 거슬린다. ...이러한 분위기의 혼란은 경험의 대부분을 약화시킨다." [3] 고, 《닌텐도 라이프》에서는 “주요 비판점은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만들어진 실질적인 위협과 그것이 기반으로 하는 진정한 공포 사이에서 나타나는 거슬리는 분위기의 불일치다.” [4] 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이 더 현실적인 아트를 가졌다면 게임 전체를 ‘흥미롭게’ 만든 퍼즐 메커닉의 삽입은 불가능했을 것이 자명하다.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은 군사주의를 우회한 비디오 게임이 필연적으로 겪게되는 전쟁의 진지함과의 각축전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은 나치 독일의 제3제국을 로봇 군대로 묘사한다. 의미가 구조를 앞지를 때 이런 충돌에 대해 이안 보고스트의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절차procedure’와 ‘수사rhetoric’ 사이의 긴장이라고도 정리할 수 있다. 게임적 절차(=구조)를 동원해 수사(=의미에 대한 표출)를 구축한다는 보고스트의 발안을 따르자면, 진지함은 언제나 수사의 목적에 위치한다. 여기서 절차는 이 수사의 구축에 결부된다. 하지만 게임의 절차, 그러니까 루딕 메커닉은 앞서 정리한대로 유희성을 기반으로 한다. 결국 진지함에 대한 수사를 어떻게 유희적으로, 그러니까 원초적이지 않은 흥미로움으로 구축하느냐가 긴장의 근원이다. 정리하자면 수사의 확고한 대상을 위해 절차가 동원되는가, 아니면 절차의 목적이 수사의 대상보다 더 높은 층위에서 작동하는가의 문제다. 이 긴장의 내부에서, 게임을 통해 전쟁의 ‘진지함’을 논한다면 과연 어떤 방식을 이루어야 할까? 이를테면 의미가 구조를 앞지르는 경우, 이는 명백히 역사 교육을 위한 콘텐츠가 된다. Charles Games의 「아텐타트 1942Attentat 1942」와 「스보보다 1945 : 해방Svoboda 1945 : Liberation」이 대표적인 예시다. 두 게임은 모두 체코의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 교육 자료의 일환으로 만들어졌으며, 의도적으로 복잡한 사회적 양태의 시기, 체코슬로바키아 총독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암살된 뒤에 벌어진 억압적 통제 ‘하이드리하디’가 발생한 1942년과 체코슬로바키아에 있던 독일인들에 대한 폭력적 추방이 시행된 1945년을 그 조사의 배경으로 삼는다. 플레이어는 모종의 이유로 과거에 있었던 진실을 찾아내야 하는 현대의 체코인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노벨 게임’ 스타일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정보를 모아야 한다. 비록 재연 배우들을 사용하긴 했지만, 가상의 인터뷰라는 형식은 전쟁 중의 민중들이 겪은 미시사의 복잡함을 인지시킨다. 인터뷰이들은 대부분 타자에 대한 극도의 불안과 의심을 갖는다. 그리고 이는 전적으로 전쟁이라는 현상이 주는 공포로부터 기인한다. 유대인이 아님에도 유대인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할아버지의 역사를 추적하는「아텐타트 1942」의 경우, 주인공의 할머니는 불신으로 가득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누군가의 불온한 고발이 남편에게 부당한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인 지금까지도) 할머니의 의심의 대상인 이웃집 남자 역시 나치당의 폭압에 의한 피해자라고 고백한다. 그 역시 총독부에 의해 강압적으로 친독적인 기사를 써야 했던 과거에 고통받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정보는 파편화되어, 결국 켜켜히 쌓인 오해가 한 사람을 비극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아텐타트 1942」는 가상화된 인터뷰의 반복으로 진행된다. 「아텐타트 1942」는 이를 위해 역사 탐구를 가상적으로 분화시킨다. 게임 중 발생하는 모든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정보 전체를 한번에 획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진행 중 발생한 미니게임을 통해 지급받은 코인을 사용하면 인터뷰를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다. 이 ‘처음부터’ 다시는 문자 그대로의 처음부터, 즉 ‘이전의 인터뷰가 없었던 것’으로는 간주한다. 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이전 인터뷰의 정보는 남아있다. 이러한 인식상의 오류가 있음에도, 딱히 이런 과정을「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즈」처럼 초상적 능력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즉 사실상 주인공은 부족한 정보들로 구성된 한 플로우의 인터뷰 경험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우연치 않게 진짜 ‘진실’과 접촉하게 된 셈이다. 이는 게임이기에 가능한 잠재태의 경험만이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일 뿐이다. 따라서 게임이 아닌 현실의, 그러니까 실재태의 인터뷰는 결코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주의에 가깝다. 어쩌면 이 현상이 「아텐타트 1942」의 인터뷰이들이 가진 정보 부족의 비극을 일부 설명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은 근본적으로 가진 판단의 한계지점을 가지며 오해와 불신의 가능성은 언제나 곁에 도사린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는 이런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증가시킨다. 플레이어가 추적한 진실은 이러한 세계의 초상이며, 오직 각 인간에 대한 불가능한 정보 습득의 반복으로만 도달할 수 있다는 수사인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아텐타트 1942」는 매우 흥미로운 메커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미니 게임들에는 그다지 미덕은 없다. 물론 증언자들의 코너에 몰린 긴장을 체감시킬 의도로 삽입된 것들이긴 하나, 증언 기반이라는 한계로 인해 고정된 결과만을 산출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미니게임의 성패는 오히려 인터뷰의 반복을 위해 코인을 버는 용도로만 사용될 뿐, 증언의 디테일이나 결과를 극단적으로 변화시키진 못한다. 따라서 이 게임이 다루는 ‘절차’는 역시 확실한 의미 층위를 가지기 어렵다. 사실상 대부분의 ‘수사’는 게임 자체의 구조보다는 이 게임이 담지하는 인터뷰에서 (말 그대로의 수사로서) 나오기 떄문이다. 그렇다면 유사한 구분, 즉 의미가 구조를 앞지르는 게임 중에서도 구조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케이스라면 어떤 형태일까. Rayonist의 「그리프 라이크 어 스트레이 독Grief like a stray dog」를 예시로 들 수 있다. 사실상 아트 게임에 가까운 이 게임 역시 동유럽의 전쟁 시기를 다룬다. 주인공 나디아는 아버지가 전쟁에 나간 뒤, 무기력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우체부의 일을 맡는다. 이 마을의 집 대다수는 가족 중 한명이 참전한 상태인 터라 모두 긴장 상태에 있다. 그리고 나디아는 그 긴장의 트리거가 된다. 나디아가 전달하는 편지는 크게 두 종류인데, 흰 편지는 가족의 생존을 의미하지만 검은 편지는 가족의 전사를 의미한다. 편지를 전해주는 장면은 클로즈업 된 두 개의 팔로 묘사되며, 플레이어의 마우스 움직임에 따라 나디아의 손도 움직이게 된다. 보통 배달하게 되는 흰 편지는 그저 손을 움직여 상대방의 손에 편지를 쥐어주면 된다. 하지만 그 편지가 검은 편지일 때, 나디아의 손은 흰 편지 때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인다. 「그리프 라이크 어 스트레이 독」에서, 전사 통보 편지의 전달은 느린 속도로 표현된다. 이 게임에는 약 60분 정도 지속되는 짧은 서사와 그림책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아트가 있다. 하지만 게임의 코어는 바로 이 손의 움직임이다. 편지를 건네 준다는 간단한 행위가 조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움직임을 부여받는 것이다. 검은 편지를 건네 주게 될 때, 플레이어는 그 느린 팔의 움직임을 통해 나디아의 복잡한 감정을 공유받는다.물론 이 두 편지가 동시기에 공존한다는 점, 그리고 언제나 그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에서 편지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대한 제유나 다름없다. 그리고 팔의 움직임은 그 전쟁이 주는 상처와 고통에 대한 직접적인 표출이다. 물론 그러한 역학을 제외하면 게임 전체는 매우 빈약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만, 전쟁이라는 비극을 ‘플레이 가능한’ 행위로 번역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의미와 구조가 만날 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리프 라이크 어 스트레이 독」은 전형적인 시리어스 게임이기는 하지만 의미와 구조가 융합되는 강렬한 체험을 선사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군사주의를 이탈한 비디오 게임은 (군사주의를 동원하는 비디오 게임과 마찬가지로) 절차와 수사가 거의 유사한 층위에 있을 때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를테면, 역시 11bit Studios의「디스 워 오브 마인This war of mine」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게임은 「림 월드Rimworld」같은 전형적인 서바이벌 장르의 구조를 답습하고 있다. 플레이어가 다수의 캐릭터를 ‘관리’하며 방해되는 물건을 치우고,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고,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일을 반복하며 하루하루 생존해나간다. 하지만 여기에 이 캐릭터들이 ‘전쟁에 의해 황폐화된 도시의 생존자’라는 서사 층위가 씌워진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다룰 수 있는 ‘세계 전체’는 한정적 자원의 세계로 규정된다. 즉 이 세계에서 획득 가능한 물건은 플레이어 캐릭터에게도, NPC에게도 본질적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런 와중에 플레이어는 밤마다 다른 건물에 들어가 필수적인 자원들을 챙겨와야만 생존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도시에 남겨진 다른 생존자들과 조우하는 경우가 생기며, 자원의 소유권을 놓고 경쟁하는 일도 발생한다. 때로 병든 가족 같은 사연을 가진 생존자와 조우할 때엔, 그들을 위해 의료품을 남겨올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생존을 위해 가져올 것인가 같은 도덕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 게임의 특징은 바로 장르적 순수성에 있다. 「디스 워 오브 마인」에서 전시의 생존자라는 서사 층위를 벗겨내면 상당히 전형적인 서바이벌 장르의 구조만이 남는다. 자원의 한정성과 생존의 고통은 해당 장르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코드다. 즉 이 게임의 루두스적 구조는 매우 전형적이고 표층적인 역학을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진지한’ 층위가 이 구조를 더 강렬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반대의 사유를 가능케 한다. 전쟁이라는 사건은 인간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가? 「디스 워 오브 마인」은 바로, 전쟁은 우리들을 서바이벌 장르의 고통스러운 세계로 밀어넣는다고 답한다. 이 사유의 과정은 전적으로 군사주의적이지 않은, 군사주의를 우회해서 작동한다. 따라서 「디스 워 오브 마인」은 비디오 게임의 장르를 경유하며 전쟁을 규정하는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혹은 좀 더 서사적 층위로 접근하는 Birdisland/PortaPlay의 「게르다 : 어 플레임 인 윈터Gerda A Flame in Winter」(이하 「게르다」)의 경우는 어떨까. 2차 세계 대전 당시 덴마크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 게임은, 독특하게도 「디스코 엘리시움」과 유사한 TTRPG 스타일의 서사 중심Story-Driven 게임이다. 주인공인 게르다는 덴마크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독일/덴마크의 혼혈이다. 나치당이 마을을 점령하고 있는 1945년의 어느날, 남편인 안데르가 레지스탕스 혐의로 게쉬타포에게 체포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편을 지키고 싶어하는 게르다는 여러 사람들의 힘을 빌리려고 하며 이야기는 점점 더 복잡한 층위로 들어선다. 게임 메커닉은 장면 단위로 진행되며, 게르다는 장면 내의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나 아이템 수색을 통해 정보를 획득해나간다. 그리고 때때로 대화의 와중에 게르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두 종류의 선택지가 발생하곤 한다. 하나는 세 가지 능력치인 연민Compassion, 통찰Insight, 재치Wit 중 하나를 사용하는 선택지로, 즉시 호의적인 효과가 나지만 해당 능력치를 1 소모한다. 능력치는 각 장면이 끝난 뒤, 일기에 적을 내용에 따라 한 능력치를 1점 회복할 수 있다. 또 다른 선택지는 일종의 판정 국면이며, 대화 상대가 속한 소속과 대화 상대와의 관계도, 가지고 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난이도가 결정된다. 「게르다 : 어 플레임 인 윈터」는 단순한 하나의 선택으로 급격한 관계의 증감을 경험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이 관계도의 증감이다. 관계도는 매 대화의 선택에 따라 즉시적으로 1씩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거의 모든 대화에 증감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번 선택의 고민은 깊어진다. 특히 각기 다른 소속의 인물들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국면인 경우에 고통은 증가한다. 양측 모두에게 호의적으로 작동하는 대답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관계도 상승을 포기하거나, 혹은 하락의 가능성을 감내해야만 한다. 이 시스템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전쟁이라는 테마를 건드린다. 하나, 이런 즉각적인 관계의 변화는 현실에 비추자면 매우 급작스럽고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대화란 본질적으로 인상을 결정하는 행위이기는 하나, 각각의 발언 또는 선택이 이후의 가능성을 훼손할 정도로 변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것은 게임의 메커닉이라고 하기에도 지나치게 과도하다. 하지만 「게르다」는 이 게임의 시기가 전시라는 사실을 통해 이 메커닉을 설득시킨다. 나치 통치의 덴마크는 극도의 분열 상태고, 독일인과 덴마크인은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한다. 게르다가 일하는 진료소의 의사는 독일인은 절대로 치료할 수 없다며 거절하고, 독일인들은 모든 덴마크인을 잠재적 반동분자로 치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계도의 급격한 증감은 오히려 설득력을 낳는다. 그리고 이 메커닉과 설정은 놀랍게도 서로를 돕는다. 전시라는 배경은 메커닉을 설득시키고, 메커닉은 전쟁이 가져다주는 공동체의 균열을 설명한다. [5] 둘째, 게르다의 정체성이 분열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게르다는 덴마크에서 나고 자랐으며, 덴마크인 남편과 살고 있다. 하지만 나치당을 지지하지만 인간적인 면이 있는 게르다의 아버지, 게쉬타포의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하는 친척 등 독일인들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한편 가장 친한 친구는 게쉬타포 소속이지만 합리적인 남성인 볼프강과 연인관계이기도 하다. 이 모든 복잡한 관계는 게르다를 선택의 지점으로 몰아넣는다. 덴마크인들은 필요하다면 게르다를 독일인으로 취급하고 반대의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진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정체성을 설정하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설득해야 하지만, 남편을 구해야한다는 목적은 또 다른쪽과의 관계 역시 신경쓰도록 만든다. 결국 이러한 분열과 정체성의 혼란 역시 전쟁이라는 사건에 의해 발생한다. 이 또한 의미와 구조의 확실한 일치를 낳는다. 따라서 「게르다」는 「디스 워 오브 마인」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디스 워 오브 마인」이 장르적 전형을 끌어들여 ‘시리어스’를 설득시킨다면, 「게르다」는 ‘시리어스’와 ‘루두스’가 거의 동일한 역학으로 서로를 돕는다. 하지만 결국 둘 다 게임 메커닉이라는 자원을 이용해 전쟁이란 무엇인지 플레이어에게 전달한다. 동일한 면에서 흥미롭게 바라볼만한 게임이 바로 Madnetic Games의 「WW2 리빌더」다. 이 게임은 「하우스 플리퍼」 또는 「파워 워시 시뮬레이터」와 같은 청소/리노베이션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으로,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각 격전지를 원상복구하는 일을 맡는다. 플레이어의 주된 행위는 전형적인 리노베이션 게임의 그것으로, 현장에서 물건을 해체해 자원으로 만들고, 쓰레기를 치우고, 파괴된 도로를 메우거나 벽을 새로 건설하는 재생작업이다. 이 역시 「디스 워 오브 마인」과 유사한 작동을 가진다. 순수한 장르의 틀에 전쟁(정확히는 전후)이라는 서사 층위를 덧씌워서 전쟁의 감각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WW2 리빌더」에는 탈군사주의라는 맥락에서 더 깊은 효과가 발생한다. 그것은 청소/리노베이션 시뮬레이터라는 장르 자체가 가진 탈군사적인, 아니 정확히는 반군사적인 틀이다. 이 장르는 대체로 1인칭의 시점을 지니며, 플레이어는 호스의 물을 ‘쏘거나’, 해체 장비를 ‘휘둘러’ 먼지를 지우고 폐허화된 공간을 해체한다. 이 과정은 정확히 FPS와 반대의 역학이며, 사실상 거의 FPS에 대한 패러디다. 이들의 시점, UI, 조작법은 전적으로 FPS와 동일하지만 양자가 만들어내는 풍광은 정확히 반대의 것이다. FPS는 파괴하고, 시체와 폐허를 남기지만 청소/리노베이션 시뮬레이터는 정리하고, 깨끗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애초에 이 장르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비세라 클린업 디테일Viscera Cleanup Detail」부터가 가상적 전투의 뒷정리라는 컨셉이었던 것이다. 청소/리노베이션 시뮬레이션의 공간은 ‘사건’ 이전 상황을 연상하도록 설정되어 있으며, 플레이어의 역할은 그런 ‘사건’이 남긴 불쾌감을 떠안고, 장소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회복자라고 할 수 있다. 「WW2 리빌더」가 군사주의 게임의 가장 인기있는 테마인 제2차 세계대전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놀랄만치 통렬한 패러디다. 즉 이 게임의 모든 스테이지는, 그 앞에 있었을 FPS의 거대한 대전을 상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특히 각 스테이지마다 존재하는 검은 형체의 존재는 이 개념을 전면화한다. 게임의 특정 지점에 서 있는 이 검은 형체와 접촉하면, 플레이어는 잠시 전쟁 당시의 기억 공간으로 이전된다. 군수 공장의 부두라면 배가 진수하는 광경이, 폭격지라면 폭격 당시가 재생되는 식이다. 이를 통해 게임의 스테이지는 모두 전쟁이라는 역사를 가진 공간이 되며, 게임의 플레이 역시 가상화된 다크 투어가 된다. 따라서 「WW2 리빌더」는 다크 투어리즘의 게임이며 동시에 그 공간을 회복시키는 전후의 회복적 게임이 된다. 지나간 전쟁의 전장에 놓인 총을 그저 ‘고철’로 환원시킬 때, 이 게임은 군사주의와의 싸움에서 완벽히 승리한다. 「WW2 리빌더」는 전장에 남아있는 총기를 ‘고철 3개’로 표시한다. 게임은 이를 위해 주인공들에게 특정한 정체성을 부여한다. 영국의 주인공은 전쟁 중 사망한 파일럿의 동생이며, 독일의 주인공은 참전자의 아내, 프랑스의 주인공은 전쟁 중 고향이 파괴된 참전 당사자다. 이들은 모두 전쟁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상실한 자들이지만, 그 증오의 소용돌이에 잠식되기 보다는 조용히 삶의 공간을 회복시키는 일에 전념한다. 「WW2 리빌더」는 테마, 서사 그리고 메커닉이 모두 일거에 작동하는 가장 전복적인 탈군사주의 게임이자 안티 FPS다. 전쟁과 절차와 수사와 죽음과 이러한 탈군사주의 비디오 게임은 어느새 확고한 자기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분량의 문제로 모두 소개하진 못했지만, 시리아 내전에서의 탈출 중인 아내와의 텔레그램 대화를 컨셉으로 삼은 「버리 미, 마이 러브Bury me, My love」, 제2차 세계대전 중 수용소에 끌려가게 된 스탈린그라드 출신의 소녀가 주인공인 「톤 어웨이Torn Away」, 나치가 부상 중인 독일에서 반나치 지하 조직을 운용하는 「쓰루 더 다키스트 오브 타임스Through The Darkest of Times」, 2차대전 후 독일인 아이를 입양한 노르웨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My Child Lebensborn」같은 게임들은 충분히 거론될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들이다. 이 게임들은 모두 군사적 테마, 전투나 사격 등의 메커닉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전쟁의 이면에서 벌어진 일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조금은 독특한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글을 정리하려 한다. LKA의 1인칭 심리 호러 어드벤처 게임인 「마사 이즈 데드Martha is Dead」는 전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명시적으로 전쟁을 다루는 게임은 아니다. 주인공 줄리아의 아버지가 독일군 소속이라는 점, 주인공들인 쌍둥이 자매와 관계가 있는 남성이 파르티잔 활동을 한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 어떠한 전쟁의 지배력도 게임에 직접적으로 투영되지 않는다. 게임은 오직 쌍둥이 동생을 잃은 한 여성의 파괴되어가는 내면을 그리는 싸이코 스릴러의 전형을 따른다. 심지어는 그 쌍둥이가 실재했는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격인지조차 불분명하게 만든다. 「마사 이즈 데드」에서 동생 마사가 죽는 순간에 하늘엔 전투기가 날아간다. 하지만 이 게임은 미묘하게 전쟁이라는 요소를 게임의 내부에 가지고 들어오려고 한다. 줄리아가 동생 마사의 시체를 발견하는 그 장면에서, 하늘에는 비행기 엔진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몇 대의 비행기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광경이 보인다. 하지만 이후 마사의 죽음과 비행기의 운용에는 그 어떠한 인과관계도 도출되지 않는다. 마사는 그 때 죽었고, 비행기는 때마침 지나간 것 뿐이다. 하지만 줄리아의 꿈에 나타난 사신은 서로 자신이 마사라고 주장하는 쌍둥이를 보고 허탈한듯 말한다. ‘전쟁 시에는 항상 누군가 죽는 거야.’라고. 「마사 이즈 데드」가 게임의 내부에 전쟁을 끌고 들어오는 방식은 모던 시네마적 역학과 유사하다. 마사의 죽음과 비행기 사이에는 전적으로 미장센의 결부가 있다. 줄리아의 심리적 파괴의 작동에는 자주 군사적인 이미지가 끼어들어온다. 남자친구의 죽음은 줄리아의 내면적 파괴로 이어지지만, 거기에는 파르티잔 활동과 독일군의 점령이라는 세계적 혼란이 어슷하게 걸쳐져있다. 이 게임을 탈군사적인 독법으로 읽는다면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볼 생각이 없거나 관심이 없는 플레이어들에겐 구태여 그런 독법이 필요 하지 않다. 이것은 뭐랄까, 앞서 말한 방법에 따른다면, 마치 구조가 의미를 앞지른 게임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 게임에서 전쟁은 전달해야할 주된 테마는 아니지만, 독법에 따라서는 전쟁과 죽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음울하고 자기파괴적인 체험을 준다. 이 긴장은 어쩌면 비디오 게임에 군사적인 이미지가 등장하면서부터 원초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어떠한 힘에 의해 발생한 것 같기도 하다. 글의 시작부터 이야기 했듯, 비디오 게임과 군사주의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파트너와도 같다. 즉 게임에 전쟁의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드리우는 순간,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마사 이즈 데드」가 전쟁을 직접 지시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전쟁의 역량은 그 안에 깊숙히 파고든다. 다른 이유가 없다. 「마사 이즈 데드」가 비디오 게임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비디오 게임에 남은 숙제는, 군사주의라는 이 난감한 파트너와 어떻게 적당한 거리를 두는가 일지도 모른다. 비디오 게임은 「이카리」로, 「듄 2」로, 「코만도스」로, 「진 삼국무쌍」으로, 그리고 더 많은 게임들로 전쟁을 낭만적 이미지와 등치시켜 왔다. 군사 테마의 쾌감이 짙을 수록, 그것에 대한 반작용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아니 당위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그것이 수오미넨이 말한 비디오 게임의 원초적 테제, 유치함, 유아성 그리고 청소년성과 결별할 어떠한 방법에 도달하는 길일 지도 모른다. [1] 《Classifying Serious Games: the G/P/S model》(Damien Djaouti, Julian Alvarez, Jean-Pierre Jessel, 2016) [2] 이를테면 「파이널 판타지 VII」은 전형적인 JRPG의 구조를 가지지만, 기술 중심주의와 환경 파괴에 대한 진지한 서사를 가진다. 이 경우 「FFVII」를 시리어스 게임이라고 규정해야 하는가는 조금 복잡한 질문을 만든다. [3] https://www.gamespot.com/reviews/my-memory-of-us-review-war-has-changed/1900-6417007/ [4] https://www.nintendolife.com/reviews/switch-eshop/my-memory-of-us [5] 흥미로운 것은 이 게임에서 독일인과 게쉬타포의 관계도는 분리되어있다. 독일인은 ‘독일인’으로, 게쉬타포들은 ‘점령군’으로 표기된다. 독일인 소속의 인물들은 본래부터 이 땅에 살던 독일인을 포함하는 개념이기에, 때로 ‘독일인’은 상승해도 ‘점령군’은 줄어드는 선택지도 발생한다. Tags: 군사주의, 욕망, 반전운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혼례-귀신-사랑 : <종이혼례복> 시리즈와 ‘중국식 공포’의 유행
최근 중국 내 추리 게임에는 ‘중국식 공포’가 유행하고 있다. <페이퍼돌스>(纸人; 리치컬쳐, 2019)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回门; 핀치게임즈, 2021)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의 오래된 저택에 들어가 결혼과 장례, 장례용 종이인형, 풍수 등 민속을 바탕으로 스릴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 Back 혼례-귀신-사랑 : <종이혼례복> 시리즈와 ‘중국식 공포’의 유행 15 GG Vol. 23. 12. 10. ※ 역자 설명 : 이 글에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 안 역주로 부기했다. 미주는 필자가 참고한 텍스트 출처이다. 최근 중국 내 추리 게임에는 ‘중국식 공포’가 유행하고 있다. <페이퍼돌스>(纸人; 리치컬쳐, 2019)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回门; 핀치게임즈, 2021)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의 오래된 저택에 들어가 결혼과 장례, 장례용 종이인형, 풍수 등 민속을 바탕으로 스릴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음양항아리>(阴阳锅; 폴레스타게임즈, 2022)와 <누나의 북>(阿姐鼓; 폴레스타게임즈, 2023)은 지역 특색이 담긴 민간설화를 선정해 플레이어가 탐험할 수 있는 공포 공간을 설정한다. 도시의 기이한 현상과 춘절 [역주: 중국의 설 연휴] 의 귀신을 연결한 <홍콩실록>(港詭實錄; GHOSTPIE, 2020)과 산속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가족 멸종 사건을 조사하는 <파이어워크>(烟火; Shiying Studio, 2020)는 올해 처음 출시되는 게임이다. 세기말의 ‘초자연적 열풍’을 다룬 <삼복>(三伏; Shiying Studio, 2020) 역시 이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중국식 공포’는 새로운 하위 장르 또는 미학이 된 듯 하다.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높은 평가 중 하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중국인을 겁주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중국인이다”일 것이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하트비트플러스가 개발한 <종이혼례복> 시리즈는 2021년 첫 출시 이후 <종이혼례복2: 장령촌>(纸嫁衣2奘铃村), <종이혼례복3: 원앙의 빚>(纸嫁衣3鸳鸯债), <종이혼례복4: 붉은실의 엉킴>(纸嫁衣4红丝缠), <지옥의 꿈: 사후세계 극장>(无间梦境:来生戏) 등의 속편을 6개월에 한 게임 간격으로 출시하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이 게임들은 ‘혼제(婚祭)’를 테마로 하는데, 각각 한 커플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종이 신부’가 되는 운명에 맞서 싸우고, 최종적으로 공포를 이겨내 진정한 사랑의 승리를 완성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다섯 게임들은 서로 연결되어 세기에 걸친 스토리 라인을 형성하고 있으며, 전작인 <13호 병동>(13号病院)과 함께 독특한 ‘종이혼례복 유니버스’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종이혼례복> 시리즈는 성공적인 미니 추리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심플한 UI와 순수한 터치 플레이가 경이로운 걸작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종이혼례복> 케이스를 통해 ‘중국식 공포’의 핵심 요소인 “중국인을 겁주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중국인”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 다섯 편의 시리즈, '종이 혼례본 유니버스'를 구성하다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공포(Unheimlichkeit) 개념은 독일어 heimlich에서 유래했다. ‘heimlich’는 친숙하고 친밀하다는 뜻인데, 여기에 부정 접두사를 붙인 ‘unheimlich’는 원래 뜻을 분명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heimlich’의 특수한 경우인 ‘익숙했던 것이 갑자기 낯설어지다’는 의미로 해석돼 주체가 순수하게 두려움(fear)이 아닌 오싹(creepiness)한 느낌을 갖게 한다. [1] 따라서 ‘공포’는 통상적인 경험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이상, 기존 질서 내부의 어긋남 [원문의 핵심 개념 错置을 모두 ‘어긋남’으로 번역함] 이다. 예를 들어 공포장르 속에서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좀비, 조타수도 없이 파도를 헤쳐 나아가는 유령선 등이 그것이다. 영화 <샤이닝>(The Shining)에서 문틈으로 흘러넘치는 핏물, 복도 끝의 쌍둥이 역시 경험이나 질서를 뛰어넘는 어긋남으로 평범해 보이는 산꼭대기 호텔을 공포영화의 명장면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혼례복>은 ‘공포’라는 개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인간’이라는 속성을 가진 장례용 종이인형을 소재로 삼는다. 이들은 외모는 비슷하지만 팔다리가 뻣뻣하고 표정이 이상하며, 종종 과장된 얼굴 화장을 한다. 무생물이었던 종이 인형은 어두운 게임 장면에서 번쩍이며 게이머들과 친근한 ‘점프 스케어(jump scare)를 한다. 이를 통해 제작진은 중국식의 특색을 살린 ‘유물(類物)’인 장례용 종이 인형을 세팅했다. 예를 들어 <종이혼례복 1>의 주인공 닝쯔푸(宁子服)가 저승 혼례식(冥婚) 현장에서 발견한 종이 요리는 정상 음식의 외관을 정교하게 모방하면서도 차갑고 무미건조해 화장 [원문에서 烧祭는 종이돈 태우기 같은 풍습보다는 화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오싹한 연상을 유발한다. * ‘유물’의 종이 묶음 제물 그러나 '공포'의 핵심은 잘못된 시각적 이미지보다는 상식과 이상, 경험과 어긋남의 관계에 있다. 거의 모든 ‘중국식 공포’ 게임에는 현대적 개체의 전근대적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s)’ [ 미셸 푸코가 정의한 개념으로, ‘다른’을 뜻하는 ‘heteros’와 ‘장소’를 의미하는 ‘topos’의 합성어. “사회 안에 존재하면서 유토피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실제로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장소들” ] 에서의 어긋남과 과학 패러다임에서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어긋남이 포함되어 있다. <종이혼례복> 시리즈에서 또 다른 높은 어긋남은 앞의 두 가지의 불안정 구조를 깨뜨린다. 그것은 로맨스 신화와 이성의 어긋남이다. 결혼: 형성되는 건 아무 것도 없고(无物之阵), 망령은 돌아온다 婚:无物之阵,幽灵复返 [루쉰은 자신의 '무물지진(无物之阵)' 개념이 권위주의 통치의 산물이자 민중의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이라 여겼다.] <종이혼례복> 시리즈는 현대도시에 살던 주인공들이 갑자기 세상과 단절된 ‘산골마을’로 내동댕이쳐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곳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혼제’를 신봉하는 장령촌이나 봉건적 가부장이 점거한 말수촌(末水村)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살아남은 이가 아무도 없거나 귀신의 기운이 넘치는 익창진(益昌鎭)이 될 수도 있다. 이곳들은 현대사회와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하며 통신신호가 사라지고 역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고집을 부리며 오래된 신앙과 의식을 이어가는 헤테로토피아이다. 플레이어는 주인공들의 시각을 통해 완전히 낯설기만한 스릴러 놀이터가 아니라 익숙한 듯하지만 마주하기 어려운 ‘무물지진(无物之阵)’—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죽음의 상징물들(관, 향초, 종이돈 등)]—이 정돈되지 않은 현대 이전의 역사, 틈만 있으면 파고드는 집단적 무의식을 가리킨다. 물론 조작해 현대적 공간을 하루아침에 이화시켜 ‘귀신을 불렀다’는 것이다.동네 입구 조화, 이웃집 할아버지의 혼백이 깃든 아파트, 길가의 장사용품점……현대적 공간을 떠도는 전근대적 자투리 조각은 ‘익숙한 물건의 낯설게 하기’라는 원칙에 더 부합하고, 오싹한 느낌을 더 잘 만들어낸다. 물론 이 게임은 때때로 역으로 작동해 현대성의 공간을 하룻밤 사이에 낯설게 하여(异化) "유령을 초대”한다. 주거단지(小区) 입구의 화단, 이웃의 영혼이 깃든 주거용 건물, 거리의 장례용품 가게 ......등등은 현대성의 공간에 떠다니는 전근대의 잔재이며, 이는 “익숙한 것의 낯설게 하기”의 원칙에 더 부합하고 소름 끼치는 느낌을 줄 가능성이 더 크다. * 모든 이야기의 근원지는 장령촌 <종이혼례복 2: 장령촌>에서는 이러한 무물지진의 구축 과정을 의도적으로 추적한다. 어려서부터 ‘종이 신부’로 발탁된 여주인공 타오멍옌(陶梦嫣)은 ‘혼제’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홀로 장령촌으로 돌아와 지상의 궁궐에서 마을의 역사를 파헤친다. 이와 동시에 <종이혼례복> 시리즈를 관통하는 세계관은 당나라 현장 스님이 경을 취하여 장령촌을 지나다가 자신이 지은 구장진경(九藏真经) [아홉 편의 숨겨진 불교 경전] 가운데 육장(六藏)이 이교(异教) [주류적인 종교와는 다른 종교] 적인 컬트임을 발견하고, 작별 인사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소각해달라고 당부한다. 마을 사람들은 제멋대로 경전을 남기면서 ‘육장(六藏)’을 ‘육장(六葬)’ [여섯 번의 장례] 으로 왜곡한다. 이에 따라 마을 이장을 종교적인 리더로 삼아 정기적으로 의식을 주관하고 적령기 여성이 사신(适神)에 제사를 지내는 ‘혼제’ 의식이 탄생하게 된다. 희생된 여성에겐 종이로 묶인 제사물품과 같이 ‘종이 신부’란 별명이 붙었는데, 이것이 바로 게임 타이틀 ‘종이혼례복’의 유래다. 흥미롭게도 게임은 ‘육장보살(六葬菩萨)’ [게임 속 캐릭터] 신앙을 현장 취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억지로 갖다붙인다. 심지어 당나라 적인걸(狄仁杰)이 악신에 제사를 지낸 걸 말끔히 제거했던 기록까지 그럴듯하게 가미하고 있다. 현장법사 캐릭터는 역사적 인물(실존하는 불교의 고승)과 전설적 캐릭터(신마소설의 주인공) [신마소설은 신, 귀신, 요괴 등을 주제로 한 한자문화권 고전 소설을 가리킨다] 의 이중적인 성격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출처를 추적하는 데 있어 진짜같기도 하고 가짜같기도 한 효과를 낸다. 당나라 때부터 천여 년간 이어져 온 오랜 관습은, 애써 시간의 깊이를 늘리고 거짓의 숭고함을 만들어, 기나긴 전현대 역사 속에서 공간 내부의 질서—원래 그랬다면 그게 맞는 것이라는—를 구축했다. 번잡한 의식(무엇을 해야 하는지)과 엄혹한 금기(무엇을 해선 안 되는지)가 질서의 하나된 양면을 이루고, 집단적 무의식의 ‘무물지진’을 점차 흔들기 어렵게 만든다. 의심할 여지 없이 철저한 상례로 굳어질 때까지 말이다. 그 사이에 잘못 들어가게 된 개인과 관행 하의 집단은 어긋남과 충돌을 만든다. 닝쯔푸나 양샤오핑 등 질서에 도전하는 외래자, 타오멍옌, 쭈샤오홍(祝小红) 등 반향식의 ‘종이 신부’는 역대 게임 주인공들이 관례에 편입되지 못하고 타자로 전락해 배척당하거나 교살당할 수밖에 없다. ‘중국식 공포’ 게임의 이질적 공간은 미래로 가지 않고 필연적으로 과거로 돌아간다. 주인공들은 에얼리언의 침입이나 터미네이터 사냥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육장보살 역시 크툴루(Cthulhu) 같은 냉혹한 우주의 신이 아니라, 아득한 별빛을 통해 인간의 생사를 굽어본다. ‘중국식 공포’의 귀신들은 제사상 위의 감실 상자[龛笼; 동양 사원에서 신령이나 부처 등의 상을 올려놓은 작은 상자] 안에 반듯하게 앉아, 감도는 향불을 사이에 두고 발원(發願)과 고충(诉苦)을 듣고, 평범한 사람들과 약간의 지전(纸钱)이나 억울하게 뒤집어 쓴 조금의 빚을 시시콜콜하게 따진다. 그렇게 무물지진 안 모든 이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마음에 두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반복적인 우화는 구체적인 서사 차원으로 정착되어 ‘혼제’ 의식의 세 요소인 귀신, 제물을 바치는 사람, 제물의 끌어당김과 격추 등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일반적 격식에 따르면 귀신은 역사를 기원하고 집단적으로 추앙받는 이질적인 힘이며, 제사를 올리는 사람에게 공정한 거래를 약속하는 원칙이며, 제사를 올리는 자는 경전과 악당의 기능을 담당하여 제물을 박해하는 대가로 거래를 성사시킨다. 제사물품인 ‘종이 신부’와 그 애인은 이질적 공간을 벗어나 현대 문명으로 돌아와 자기 구원을 완수해야 한다. 하지만 돌아온 귀신들은 오히려 <종이혼례복>의 이야기가 이러한 격식을 벗어나게 한다. 최고신으로 여겨지는 ‘육장보살’은 “만물이 묻히면 모두 그의 관할이 된다”는 ‘거대한 능력’을 보여주기는커녕, 무물지진을 타파하기로 결심한 주인공들에 의해 여러 차례 목이 비틀어 끊어짐으로서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시리즈 전체의 진정한 악역 캐릭터 네모리는 제사물품의 자리를 차지했던 ‘유령’이다. 마을 촌장으로부터 마을에 유해하다는 단언받고,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그녀는 현대 대학교육을 통해 작은 산골마을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곤 다시 돌아와 육장보살 신앙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되었고, 자신을 새로운 귀신으로 만들 때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제사물품을 찾으며 의식을 완성해나간다. * 종이혼례복 시리즈의 진정한 악역 녜모리 이는 일찍이 ‘육장보살’ 역시 정전을 장악한 현장법사에 의해 추방되고 관가에 의해 토벌된 ‘유령’이었지만, 암암리에 천 년을 떠도는 악신이 된 것임을 일깨워준다. 그것은 그녀와 같이, 혹은 전현대의 파편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무물지진’이 완전히 깨질 때까지 그들은 끊임없이 실패하지만, 영원히 계속해서 그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귀신: 말로도 안 되고, 배척해서도 안 된다 鬼:不可言说,不可摈弃 우리가 ‘중국식 공포’ 게임의 첫번째 어긋남으로 현대적 개체와 전근대적 이질적 공간의 어긋남을 지목한다면, 중국에서 공포 장르 서사는 전근대적인 문예작품 속에서 대응물을 찾기 힘들다는 역설적인 사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요재지이>(聊斋志异)[청나라 시대 포송령이 지은 8권 491편의 지괴소설집으로, 신선과 요괴의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음] 등의 지괴서사(志怪故事) [위진남북조 시대에 유행한 기괴한 이야기 소설집] 속 꽃요괴는 기본적으로 “깜짝 놀라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서유기> 같은 신마소설 속 삼계 체계 [불교에서 삼계란 윤회의 세계를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으로 구분한 것을 가리킨다] 는 권력사회의 복사판으로, 사람 마음이 귀신보다 무섭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밖에 신선과 요괴 이야기 등 설화집이나 필담집 역시 보통 현대 독자들에게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 다시 말해 ‘중국식 공포’는 직접적으로 인용할 수 있는 ‘중국식’ 텍스트도 없고, 전현대사의 완벽한 이식도 아니다. ‘공포’는 현대화의 산물이며, 주류이데올로기—어쩌면 ‘과학’—에서 주변화되어 남은 잉여이다. 토마스 쿤(Thomas Samuel Kuhn)은 <과학혁명의 구조> 에서 현대과학의 진로는 본질적으로 낡은 패러다임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하는 혁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른바 ‘패러다임(paradigm)’은 과학 연구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따르는 어떤 패턴으로, 이 분야의 합리적인 문제(무엇을 연구할 것인가)와 방법(어떻게 연구할 것인가)을 규정하여 법칙, 이론, 기구 등을 포함해 정립한 일관된 과학 전통을 형성한다. 과학이 물질 세계에 대한 수수께끼 풀기 게임이라면, 패러다임은 게임의 규칙과 무엇이 ‘미스터리’가 될 자격이 있는지를 창안한다. 이에 대해 쿤은 ‘상자’라는 비유를 제시한 바 있다. “이런 활동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미리 만들어놓은 경직된 상자에 자연을 처넣으려는 것 같습니다. 기존 과학의 목적은 새로운 유형의 현상을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상자에 채워지지 않은 현상은 종종 완전히 무시되고 새로운 이론을 발명하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새로운 이론을 발명하는 것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 하지만 이러한 신앙 패러다임으로 인한 제약은 과학 발전에 꼭 필수적입니다.” [2] 현대 과학은 수백 년의 발전을 거쳐 ‘신화’로 분류되는 다른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신화’가 됐다. 새로운 신화의 서사 공간이 매우 넓고, 말과 전망이 유달리 아름다워 현대적인 개인이 상자의 사면 장벽을 쉽게 홀시할 수 있다. 하지만 상자 밖의 사물은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패러다임에 포함될 수 없는 현상은 언어구조에서 '도깨비', '풍습', '전통' 또는 그밖에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과 가리키는 것 사이의 어긋남에 무관하게 무엇이라 말할 수 없게 만든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정리 또는 판별할 수 없으므로 배제할 수 없다. <종이혼례복4: 붉은실의 엉킴>에서 장천루이의 민속학 전공이라는 배경은 고등교육과 과학은 상자 안의 모든 것을 해결하지만 공포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자조적인 자기 인식이다. * 민속학 연구생 장천루이(张辰瑞)의 자조 하지만 <종이혼례복> 제작진은 그런 자조에 만족하지 않고 상자의 경계를 반복적으로 넘나들었다. 과학적 패러다임과 전근대의 뒤얽힘은 엉뚱한 효과를 낳았다. 화재경보기로 인해 연소된 지전 더미, 복사기로 복사된 부적…… 각종 ‘물리적 귀신 퇴치’ 수단은 플레이어들로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뒤얽힘’은 음과 양을 통하게 하는 두 개의 매개인 불과 핸드폰이다. 둘은 겉으로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전자는 제물을 태우는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양에서 음으로 옮겨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상징적인 투사이며, 제사물품은 화염 속에서 재로 변하지만 다른 가치 영역에서는 오랫동안 지속된다. <종이혼례복>의 주인공들은 흔한 지전이나 종이인형은 물론, 귀신과 통화할 수 있는 종이로 만든 핸드폰까지 불태운다. 현대 과학기술 장비가 버젓이 제사물품의 대열에 오르자 플레이어들은 “원래 현지에 사업자가 있나? 그럼 누구에게 전화요금을 내야 하지?”라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후자는 다음과 같은 설정을 기반으로 육안으로 귀신에 쉽게 속고 무심한 기계만이 위장을 간파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휴대폰 카메라는 주인공이 귀신을 정확하게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눈으로 상자 밖의 공간을 응시하는 것 역시 일종의 어긋남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익숙한 것의 낯설게 하기”는 오싹함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두 매개 모두 통일된 전제를 숨기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현대적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과학은 궁극적으로 불가해한 것을 해명하고 정복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 음양을 소통하는 두 가지 매개체: 불과 휴대전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이리저리 뛰어도, <종이혼례복>의 결말은 패러다임 속으로 돌아온다. 헤테로토피아의 모든 요괴들은 진기한 꽃(奇花) 명타란(冥陀兰)이 일으키는 환각이다. ‘작은 산골마을’은 필연적으로 현대 문명에 의해 재발견되고 청산되며 수용된다. 무고한 사람은 구출되고, 악한 자는 법의 처벌을 받게 된다. 주인공들은 탈출에 성공하거나, 일시적으로 (귀신을) 격퇴하지만 실제 ‘공포’—‘중국식 공포’는 결코 핏대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를 이겨본 적은 없다. 아무리 무서운 괴물이라도 핏대를 세우면 공격할 수 있고 소멸할 수 있는 대상이며 이때 두려움은 화력 부족에서 비롯된다. ‘중국식 공포’는 피와 살이 없는 몸이라 애석하게도 <무간몽경: 내생희>의 마지막 예고편에서 역대 주인공들이 힘을 합쳐 ‘무물지진’이 아닌 악역 녜모리를 물리치려 한다. 상자 안에서 주인공들은 잠시나마 자신이 무적이라고 믿지만, 이중으로 엇갈린 위치는 오직 사랑의 신화에 의해서만 메워지게 된다. 사랑: 로맨스 신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情:浪漫神话,至死不渝 “사랑이 죽었다”는 요즘, <종이혼례복>의 역대 주인공들은 희귀한 사랑 신화의 독실한 신도들로, 플레이어들은 이들을 ‘로맨티스트 싸움꾼’이라며 농담삼아 부른다. 백중날[음력 7월 15일] 귀신문을 뚫고 아내를 구한 닝쯔푸, “정 때문에 목숨까지 버리는” 량샤오핑(梁少平), ‘원앙 빚(鸳鸯债)’을 대신 갚고 악당과 함께 죽은 왕자오통(王娇彤),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천루이와 추이완잉(崔婉莺), 그리고 전생과 현생, 재연과 인연을 이어온 쉰위앙펑(荀元丰)과 타오멍옌 등이 그들이다. 여기서 각 커플의 성이나 이름은 모두 고전문학 속 고전적인 애정 텍스트인 <요재지이의 섭소천>(聊斋志异之聂小倩), 양축전설(梁祝故事) [중국 동진시대부터 1,700여 년 동안 민담으로 전해져 온 4대 애정소설 중 하나] , <교홍기>(娇红记) [명나라 맹잔순(孟称舜)이 쓴 희곡] , <서상기>(崔莺莺待月西厢记) [원나라 왕실보(王实甫)가 1295~1307년 무렵에 쓴 허구 잡문] , <요재지이: 소취>(聊斋志异之小翠) [청대 소설가 포송령이 여우 귀신의 이미지를 빌어 쓴 소설] 등에 대응한다. 혼의 이탈과 나비가 되는 것, 치료 등 줄거리 역시 위 고전작품들에 오마주를 뉘앙스가 뚜렷하다. 이 텍스트들의 공통점은 사랑이란 하나하나의 개인이 만들어낸 낭만적 기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에 있다. “산 자는 죽을 수 있고, 죽은 자는 살 수도 있다”(<모란정 牡丹亭>에서 인용)는 말처럼, 사랑이 깊어지면 인간과 귀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가문의 편견을 산산조각낼 수 있다는 것은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개인은 현대 주체의 사유에 가까운 방식으로 봉건적인 예법과 도덕에 선전포고를 한다. 설령 선전포고가 항상 무기력하더라도, 설령 최종 결말은 두 집안의 사회 지위·경제 형편이 걸맞아[门当户对] 함께 살게 되거나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함께 화를 입어[玉石俱焚] 함께 죽는 것으로 끝날지라도, 설령 과도하게 낭만적이어서 실현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전근대적인 배경에서 그들은 여전히 경전 말씀에서 벗어나 도리를 위반하는 해로운 서적으로 폄하받으며, 올바른 사람이라면 읽어선 안 되는 것으로 취급받는다. * 《무간몽경: 내생희》(无间梦境:来生戏)의 주인공 커플 애정 신화의 합법화는 지난 2세기에 걸친 현대화 과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애정 신화는 사실 하나의 배다리처럼 유럽 문화를 현대와 개인으로 건너가 개인주의 담론의 중요한 초석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동시에 애정 신화는 낭만주의의 테마 중 하나로서 시종일관 광기나 비이성/반이성적 함의를 항상 담고 있다. 따라서 일종의 파괴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일대일로 이뤄지는 현대의 배타적 사랑은 ‘개체’와 ‘여성’의 탄생을 전제로 성과 사랑, 육체와 정신의 통합과 순결을 원칙으로 한다. 즉, 약수가 삼천리를 뻗어 흘러도[弱水三千; 아무리 많은 상대가 있어도], 그/그녀가 아니면 안 된다. 녜모리가 쌍둥이 동생 녜모치(聂莫琪)를 훔쳐서 기둥을 바꾼 후, 닝쯔푸는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 했고, 그녀가 아니면 안됐기에 수많은 난관을 거쳐 녜모치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해야 했다. 량샤오핑의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 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장령촌에서 자란 쭈샤오홍을 일깨웠다. 같은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제사물품대 위에 놓인 ‘종이 신부’가 되는 것보다는 족쇄를 풀고 나비가 되어 추락하는 것이 낫다. 낭만 신화가 신화인 이유는 사랑이 이성적 계산의 범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이 계급, 이익, 나아가 생사를 초월하도록 재촉한다. 높은 사람은 ‘고귀한 배신’을 결심하고, 낮은 사람은 무릎을 치켜들어 ‘나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를 단호히 던져버리고, ‘나는 어떻게 하겠다’고 함성을 지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사랑은 ‘공포’와 같은 구조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모두 상자 바깥에 있다. 사랑은 <종이혼례복>의 주인공들이 행동하는 최대 동인이다. 게임은 첫 작품에서 ‘순애보에 빠진 싸움꾼’이 약혼녀를 구한다는 단일한 시점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서로를 구한다는 두 가지 시점으로 바뀌어 고정된다. 그리고 오마주를 표하는 고전 텍스트들처럼 두 개체의 기적을 짙게 그려낸다. 과학과 자본이 만연하고 개인의 감정이 함께 시들어가는 시대에 현대 이성에 대한 최고의 어긋남으로 충족되는 사랑의 신화만 남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안에 담긴 전복적 역량은 무물지진을 돌파하고 우리에게 절대 사로잡히지 말라고 격려한다. 왜냐하면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포’는 싸워서 이길 수 없지만, 진정한 사랑은 결국 충분하다. 죄를 지으면 사랑에 빠지게 되고, 남녀가 치정에 빠지게 한다. ‘중국식 공포’의 핵심적인 어긋남은 현대 개인의 두 눈으로 응시하면서도 직시할 수 없는 전근대적 잔재다. 사후 결혼, 종이인형, 오래된 신앙, 잔혹한 의식, 우매한 마을 사람들…… 죽음의 기호들이 널려 있는 헤테로토피아에서, 집단 무의식이 굳어져 무물지진을 만들고, 과학상자 밖의 침묵은 익숙했던 일상의 흉악한 틈새를 드러내며 '중국인이 중국인을 놀라게 하는' 이기(利器)로 변모한다. <종이혼례복> 플레이어들이 공포게임에서 사랑을 감상하는 데 열중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도 일찍이 낯선 신화로 전락한 지 오래됐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부디 오호(五湖) [오월지방의 호수] 의 밝은 달과 인내심이 원앙의 빚을 갚게 하기를.” [4] [1] 탕메이신(唐梅欣)의 《恐惑概念的演变——从弗洛伊德、海德格尔到拉康 프로이드와 하이데거에서 라캉으로의 공포 개념의 변화》, 2021년 우한대학(武汉大学) 석사학위논문 참고. [2] 토마스 쿤 저, 진우룬(金吾伦)·후신허(胡新和) 역, <과학혁명의 구조>, 베이징대학출판사, 2003년 [3] 다이진화(戴锦华), <电影批评(第二版)>, 베이징대학출판사, 2015년 [4] <종이혼례복 3: 원앙의 빚>의 서문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徐佳(서가)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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