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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MORPG 레이드와 확률에 대응하는 플레이어
게임은 ‘불확실성’의 매체다. 보통 게임에서 불확실성은 두 차원으로 작동하는데, 하나가 게임의 결과와 관련된다면, 다른 하나는 게임 시스템에 의해 제공되는 특정 기회의 작동과 관련된다. 고도의 플레이 스킬을 요구하는 게임이든 운 중심으로 플레이되는 게임이든, 플레이어가 그에 참여해 플레이한 결과가 어떤 것일지는, 실제 플레이를 끝내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 Back MMORPG 레이드와 확률에 대응하는 플레이어 17 GG Vol. 24. 4. 10. 불확실성, 확률, 운, 그리고 게임 게임은 ‘불확실성’의 매체다. 보통 게임에서 불확실성은 두 차원으로 작동하는데, 하나가 게임의 결과와 관련된다면, 다른 하나는 게임 시스템에 의해 제공되는 특정 기회의 작동과 관련된다. 고도의 플레이 스킬을 요구하는 게임이든 운 중심으로 플레이되는 게임이든, 플레이어가 그에 참여해 플레이한 결과가 어떤 것일지는, 실제 플레이를 끝내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또, 게임하다 얻게 되는 기회는 다양한 선택지의 밭에서 고르거나 골라지게끔 되어 있다. 이렇듯 게임의 불확실성은 다양한 선택과 그에 따른 다양한 결과, 그리고 기회와 무작위성 등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갖기에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흥미와 긴장감을 제공한다. 게임이 시작할 때 승리자를 미리부터 알 수는 없다. 결과를 알고 보는 이야기가 독자의 흥미를 얻을 리 만무하다.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궁금하고 그 과정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전혀 없는, 순수하게 확실성만 있는 게임은 있을 수 없다. 흥미와 긴장감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은 재미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순전히 불확실성만 지닌 게임도 거의 없다. 플레이어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게임들은 불확실성의 조합을 어느 정도 갖는 형태를 띤다. 불확실성을 수치화한 것, 즉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수로 나타낸 것이 ‘확률’이다. 확률은 불확실성이라는 애매모호한 것을 우리가 다룰 수 있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체계적인 방법이며, 여러 불확실한 것들 사이에 어떤 것이 다른 것(들)보다 더 일어날 가능성이 높거나 낮은지를 비교 가능하게 만든다. 게임에서 확률은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알려진 위험값 내 미지수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한다. 물론 확률을 알고 있다 해도, 그 사건이 우리 플레이 과정이나 결과에서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다. 만약 그 사건이 우리의 실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면, 사건의 발생 가능성은 ‘운’으로 설명 가능해진다.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이하 ‘MMORPG’)이라는 장르 안에서 작동하는 확률의 방식과, 플레이어들이 그에 대응하는 방식을 살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결과로 플레이어들은 아이템을 얻게 되는데, 게임 시스템에 의해 규정된 아이템 획득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현실에서도 우리가 노력만으로 갖고 싶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듯, 아쉽지만 게임에서도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항상 원하는 모든 아이템을 얻을 순 없다. 아이템마다 드랍 확률이 다르고, 또 플레이어마다, 캐릭터마다 운이 다르게 작동한다. 다른 플레이어가 구하고 싶어 안달하는 아이템을 너무 쉽게 획득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 역시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게임 시스템 상에서 그런 불운을 보정하기 위한 장치를 개발, 제공하기도 하고, 플레이어들이 직접 스스로의 불운을 보정하기 위한 아이템 획득 방식을 만들어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 하에서 이 글은 MMORPG 속 운과 확률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플레이어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며 극복하는지, 그리고 그 교호작용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MMORPG 레이드와 운 사회학, 철학, 인류학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나타내는 백과사전적 사상가였던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는 ‘놀이’의 요소를 아곤(agon, 경쟁), 알레아(alea, 운), 미미크리(mimicry, 역할극), 일링크스(illinx, 현기증)의 네 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첫째, 아곤은 놀이가 대부분 경쟁의 형태를 취하는 것과 관련된다.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해 경쟁자들이 이상적 조건 아래 싸우도록 기회의 평등을 인위적으로 설정한다. 아곤은 규칙에 입각해 상대적 경쟁을 통해 자신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 둘째, 알레아는 아곤과는 정반대로, 놀이하는 자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결정, 그가 영향력을 전혀 행사할 수 없는 결정에 기초하는 놀이와 관련된다. 여기서는 상대방을 이기기보다는 운명을 이기는 것이 문제다. 운명만이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 때 승리란 (상대가 있는 경우) 패자보다 승자가 운으로부터 더 많은 혜택을 입었음을 나타낸다. 알레아는 우연의 불공평을 없애려 하지 않으며, 우연의 자의성 자체가 놀이의 원동력이 된다. 주사위, 룰렛, 바카라, 제비뽑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아곤에서 개인이나 팀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면, 알레아에서 개인이나 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자질과 능력도, 노력, 솜씨도 그 안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운명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다. 운명의 결정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일은, 무언가를 얻을 수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가진 걸 잃을 가능성도 존재함을 뜻한다. 셋째, 미미크리는 놀이가 몇 가지 약속에 따라 정해지고, 허구적인 하나의 폐쇄된 세계를 일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놀이는 가상의 환경 속에서 활동을 전제하거나 운명에 복종하는 것뿐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이 가공인물이 되어 상황에서 주체적으로 판단해 행동함으로써 성립한다. 그렇기에 미미크리는 어떤 것을 따라하거나 흉내내는 것, 또는 가상의 인격을 설정하고 행동함으로써 재미를 느끼는 것을 말한다. 넷째, 일링크스는 놀이 순간 느낄 수 있는 아찔함을 통해 얻는 즐거움이다. 통제할 수도 없고, 의지가 반영되지 않으며, 규칙에 따르지도 않는 어지러운 상황에서 정신과 감각과 신체를 자극하는 쾌감을 맛보는 일이 곧 일링크스다. 수많은 게임 장르 중에서 롤 플레잉 게임(role playing game, 이하 ‘RPG’)은 말 그대로 역할 놀이가 중심이 되는 게임류를 일컫는다. 가상의 시공간 안에서 플레이어가 특정 역할을 맡아, 그 역할을 중심으로 게임 세계 내 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직접 사건의 주체가 되어 게임 내 서사의 흐름을 일정 범위 안에서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에 RPG에서 플레이어는 깊은 몰입과 재미를 느낄 가능성을 획득한다. 그런 점에서 카이와가 제시한 미미크리와 일링크스 개념은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RPG에 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상의 공간에서 역할극이 주는 재미와 RPG가 주는 재미가 같은 근원을 가졌다는 점을 짐작케 한다. RPG가 환경과 시대에 발맞춰 진화한 결과 중 하나가 MMORPG다. MMORPG는 네트워크를 사용해 수많은 플레이어가 같은 시간 같은 게임공간 안에서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경쟁이나 대립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퀘스트를 통해 플레이를 즐기기도 하는 방식의 게임을 말한다. 흔히 광활한 게임공간, 아이템·가상화폐, 사냥, 종족·직업, 성장형 캐릭터 등의 특징으로 설명된다. 기본적으로 RPG의 속성을 띠는 MMORPG 역시 미미크리적이고 일링크스적이지만, 다른 대부분의 게임과 마찬가지로 아곤적이면서 알레아적이기도 하다. 플레이어의 노력과 경쟁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그것들을 벗어나 운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들도 많다. 하지만 그 노력과 경쟁, 그리고 운 모두가 다른 게임들과는 다른 양상을 띠기도 한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아곤은 재미의 핵심가치로 기능한다. MMORPG에서 그 궁극에 있는 것이 ‘파티(party)’와 ‘레이드(raid)’다. 파티는 2~5인 정도의 소수로 구성되는 집단이다. 필드 내 좀 더 강력한 몬스터나 인스턴스 던전(instance dungeon)은 파티를 이뤄야 공략할 수 있다. 레이드는 파티보다 더 큰 집단으로, 보통 10~25명, 많게는 수십 명의 플레이어로 구성된다. 그야말로 집단이 참여하는 MMORPG의 속성이 반영된, 파티로는 공략이 불가능한 강력한 적과의 싸움을 위한 협력인 셈이다. 그리고 그 레이드의 과정은 단순히 개인 캐릭터의 성장과 좋은 아이템의 사용으로만 극복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되지 않는다. 레이드에 참가하는 인원들에게는 각기 다른 역할이 부여된다. 똑같이 동료들의 치유를 담당하는 사제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보스의 공격을 최대한 몸으로 막는 탱커의 체력을 전담마크하고, 누군가는 다른 동료들의 체력 전체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그 역할을 유기적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다 해도 공략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십 명이 모여서 주어진 임무를 유기적으로 수행하고, 협동을 통해 주어진 도전과제를 극복하는 레이드는, MMORPG 플레이의 꽃이다. MMORPG 레이드에 대한 보상은 대체로 강력한 아이템의 획득을 의미한다. 더 강한 적일수록 공략이 어렵지만, 플레이어에게는 더 좋은 보상을 제공한다. 강력한 아이템을 장착한 소수의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서 그에 따른 명예를 얻게 된다. 다만 협력과 노력의 결과가 아이템의 드랍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도,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리고 어떤 아이템을 얻을지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운과 관련된다. 물론 특정 보스가 100%의 확률로 드랍하는 아이템도 종종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모두에게 그 아이템이 돌아가지는 않으며, 유일 혹은 소수의 플레이어만이 해당 아이템을 가져갈 수 있게끔 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템 드랍과 획득이야말로 기회 기반의 메커니즘을 포함하며, 무작위성의 경험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게임 시스템의 일부다. 물론 개별 게임에 따라 그 기회와 무작위성의 범위가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무작위성이 없는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건조하게 느껴질 확률이 높다. 원하는 아이템이 한 번에 나와 획득하기만 한다면, 플레이어가 다시 그 레이드에 참여할 이유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스가 쓰러졌을 때의 쾌감 못지않게 아이템 드랍할 경우에도 플레이어는 두근거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많은 아이템들 중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이 드랍되고, 또 그것을 획득까지 하게 됐을 때의 경험은 잊지 못할 기억이 되곤 한다. 원하는 아이템이 드랍될 확률이 100%가 아니기에, 그리고 그것을 획득할 확률 역시 경쟁자가 아예 없지 않는 한 100%일 수 없기에, 레이드는 운명과 위험을 걸고 뛰어들만한 의미 있는 것이 된다. 꼭 MMORPG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나, (대체로 아이템) 운과 자신의 캐릭터, 그리고 그 관계를 시스템적으로 규정하는 게임을 일컫는 여러 용어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축(복)캐’와 ‘저(주)캐’다. 전자가 원하는 아이템을 척척 획득하는 캐릭터를 일컫는다면, 후자는 원하는 아이템이 드랍되지 않거나 드랍된다 해도 획득하지 못하는 캐릭터를 일컫는다. ‘운빨망겜’은 말 그대로 운빨이 망한 게임으로, 자신이 플레이하는 캐릭터가 저주에 저주가 걸렸을 때 해당 게임을 일컫는 단어로 사용된다. 나아가서는 현실 인생에서 본인이라는 캐릭터에 운이 없었음을 한탄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운빨망겜의 대척점에 ‘실력망겜’도 있다. 운적 요소가 크게 배제되어, 숙련도 차이에 따른 플레이가 일반적인 게임을 말한다. 게임에 투자한 현금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뜻을 가진 ‘현질망겜’이라는 용어도 있다. 게임 밸런스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 못하지만, 핵납금러에게는 기회로 작용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보론: 놀이와 게임을 연결 짓는 관점에 대하여] 물론 게임이 놀이와 밀접하게 연관되기는 하나, 둘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놀이가 곧 게임인 것도 아니며, 게임 또한 전통적 놀이의 속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둘의 유사점이나 차이점에 주목하는 논의는 다양하며, 그 견해 역시 하나로 좁혀지지 않는다. 게임이 놀이의 부분집합이라 보는 견해(예를 들어 곤살로 프라스카)도 있지만, 놀이를 포섭한 게임이 기존 놀이와는 다른 무언가라는 견해(예를 들어 예스퍼 율, 샐런과 치머만 등)도 있다. 하지만 놀이와 게임의 관계는 하나가 다른 하나의 상위 혹은 하위 범주에 속하는 문제로 축소해 논의할 것이 아니다. 대신 둘이 별개의 차원에 있는, 그럼에도 상호연관되는 범주로 파악하고 둘의 관계를 논의하는 것이 게임의 복잡다단한 특성을 포착하는 데 보다 유익한 일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로제 카이와의 놀이 요소 분류를 MMORPG에 적용해보려는 아이디어는, MMORPG가 곧 놀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놀이의 관점에서 MMORPG를 입체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가깝다고 보면 될 듯하다. MMORPG 시스템이 규정하는 아이템 분배 방식과 확률 보정 같은 MMORPG 장르라 해도 게임마다 시스템이 규정하는 아이템 분배방식이 다르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아이템 분배방식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 획득 방식이다. 이름 그대로 누구나 자유롭게 획득이 가능하며,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가 된다. 서로 아는 플레이어들끼리 모인 파티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렙 플레이어가 도우미로 합류해 저렙 플레이어(들)을 빠르게 레벨업 시켜주거나 장비를 맞춰주고 싶을 때 유리하다. 모르는 플레이어들끼리는 퀘스트 아이템 등을 얻기 위해 파티를 구성하는 경우에 사용하곤 한다. 둘째, 순서대로 획득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는 루팅을 몬스터 하나당 파티/공대원 한 명씩만 돌아가며 할 수 있게 한다. 마지막 파티/공대원까지 한 번씩 루팅을 했다면, 다시 첫 파티/공대원에게 루팅 턴이 돌아간다. 셋째, 특정인 획득 방식이다. 자유 획득방식과는 정반대로, 파티나 레이드의 리더나 그 대리인이 아이템 획득 권한을 가지고, 그 권한을 이용해 필요한 파티/공대원에게 아이템을 적절하게 나눠주는 경우를 말한다. 후술하겠지만, 포인트제나 골드 파티에서 주로 사용된다. 넷째, 주사위 획득 방식이다. 특정 아이템이 나왔을 때 해당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는 캐릭터 직업군을 우선으로 주사위를 굴리게 만들어, 가장 높거나 낮은 숫자를 뽑은 플레이어가 가져가는 것을 가리킨다. 해당 아이템 착용 불가 캐릭터들에게는 아예 주사위가 뜨지 않거나, 착용 가능 캐릭터들이 없는 경우 차순위로 가져갈 수 있게끔 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모든 아이템에 주사위를 굴리게 하지는 않고, 일정 등급 이상의 아이템부터 주사위를 굴린다. 이 때 해당 등급 미만의 아이템은 자유 획득하거나 순서대로 획득하게 만든다. 게임 내에서 권장하는 방식으로 주로 랜덤 파티나 비정규 공격대가 채택한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아이템마다 드랍 확률이 다르고, 또 플레이어마다, 캐릭터마다 그것을 획득할 운은 다르게 작동한다. 때문에, 극악의 저캐라면 같은 보스 몬스터를 수십 번 공략해도 원하는 아이템을 구경조차 못할 수도 있다. 그런 경험을 한 플레이어라면 해당 레이드를 공략하고 싶지 않아질 수밖에 없고, 나아가 게임에 대한 정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런 사례가 극단적인 듯 보이지만,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론상 여러 번 잡은 보스 몬스터라 해도, 매번 잡을 때마다 아이템 드랍 확률이 초기화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게임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이는 너무 불공평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게임 시스템도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게임 디자이너에 의해 고안된 토큰 제도다. 이는 아이템 드랍 테이블의 불확실성을 보정하기 위한 시도로, 직업이나 역할별 특정 아이템군을 묶은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보스 몬스터가 특정 직업이나 역할의 가슴 방어구를 드랍한다 했을 때, 해당 아이템이 나온다 해도 혜택을 볼 수 있는 직업이나 역할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당 방어구를 가슴 방어구 토큰으로 만들면, 보다 많은 직업이나 역할이 해당 토큰을 획득한 후 자신에게 맞는 방어구로 교환하면 된다. 적용되는 직업이나 역할이 많으면 많을수록 해당 토큰의 활용도는 올라간다. 대신 획득을 위한 경쟁은 훨씬 치열해질 수 있다. 토큰 제도는 아이템 드랍 확률을 보정해주긴 하지만 아이템 획득 확률을 올려주지는 못한다. 원하는 토큰이 나와도 그것을 계속 먹지 못하는 캐릭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에 여러 MMORPG들에서 시스템 상의 불운 보정이 존재해왔다. 디자이너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특정 상황에서 특정 아이템을 더 많이 획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경우 일정 시간 내 아이템을 획득하지 못한 플레이어는, (계속 아이템 획득을 위한 노력을 한다는 전제하에) 갈수록 해당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높아진다. 최근에는 가시적인 불운 보정 아이템도 발견된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이하 ‘WoW’)>의 최근 확장팩 ‘용군단(Dragonflight)’에서는 판금착용 근거리 딜러용 전설급 양손도끼인 ‘피랄라스 – 꿈 절단기(Fyr’alath the Dream Render)’를 선보였다. 다만 완성형의 무기를 드랍하는 방식은 아니고, 아미드랏실 공격대의 최종 보스 몬스터인 피락을 공략 완료하면 퀘스트 아이템을 드랍한다. 국가별 서버군 내에서 신화난이도 피락을 가장 처음으로 잡은 공격대에게 100% 확률로 1개를, 그 이후 신화난이도 피락을 잡은 공격대에게는 2~30% 확률로 1개를, 영웅난이도 이하 난이도 피락을 잡은 공격대에게는 보다 낮은 확률로 드랍한다. 당연히 공격대 난이도가 높을수록 드랍 확률도 올라가는 구조이며, 국가별 서버군 내에서 신화난이도 피락 첫 공략이 이뤄졌다면 그 다음 주 주간 공격대 리셋 후부터는 모든 난이도에서 피랄라스 획득이 가능해진다. 퀘스트 아이템은 피락이 드랍하는 다른 아이템들과 달리 개별 캐릭터에게 자동 드랍되는데, 아무리 캐릭터별 드랍이라 해도 앞서 말한 것처럼 매번 아이템 드랍 확률이 초기화된다면, 너무 쉽게 획득하는 캐릭터와 아예 영영 획득하지 못하는 캐릭터가 함께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게임에서는 퀘스트 아이템을 획득하지 못했을 경우, 해당 캐릭터의 퀘스트 아이템 드랍율을 영구적으로 소폭 혹은 그보다는 대폭 올려주는 불운 보정 아이템 2종 중 하나를 드랍한다. 이 불운 보정 아이템은 최종 보스 몬스터인 피락만이 아니라 앞선 보스 몬스터들에게서도 나온다. 결론적으로, 난이도 불문 아미드랏실 레이드에 꾸준히 참여하면 언젠가는 퀘템을 먹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적어도 이 구조 하에서 플레이어가 계속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을 얻는다. * 에서 드랍되는 불운 보정 아이템 ‘피랄라스의 불씨’ MMORPG 플레이어들이 고안한 아이템 획득 확률 보정하기 특정 아이템이 드랍될 확률을 플레이어가 어찌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단 드랍된 아이템에 대해서는 시스템이 규정하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그것을 다르게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아이템 획득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다른 식으로의 활용이 레이드에 참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끔 한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이 고안한 아이템 획득 확률 보정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저득(低得) 주사위제’다. 주사위제는 일단 우연성에 의해 드랍된 아이템에, 획득 차원의 우연성까지도 가장 많이 작용하게끔 하는 방식이다. 이에 플레이어들은 합의하에 우연성을 낮추고 조금이라도 특정 플레이어(들)의 아이템 획득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이미 주사위를 던져 아이템을 획득한 플레이어를 배제하고 나머지 플레이어(들)끼리 다음에 나오는 아이템을 입찰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 방식에서는 적게 아이템을 획득한 플레이어일수록 다음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높아진다. 둘째, 정규 공격대에서 주요 쓰이는 방법으로, 포인트 획득제가 있다. 정규 공격대란 특정 시간대에 정기적으로 구성원들이 모여 몬스터를 공략하는 공격대를 말한다. 최상위권 몬스터 공략을 위해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포인트 획득제는 그 이름처럼 일정 기간 공략 참여를 통해 플레이어가 획득하게 되는 포인트를 바탕으로 아이템을 획득하는 방식이다. 셋째, 가상화폐 경매제도다. 가상화폐 경매제도는 죽은 몬스터가 주는 아이템들을 경매에 부쳐 더 많은 가상화폐를 경매가로 부른 플레이어가 특정 아이템을 낙찰해가는 제도를 의미한다. 보통 아이템을 사지 않은 레이드원들이나, 실력이 좋아서 그렇지 못한 레이드원(들)에게 소위 ‘버스’를 태워줄 수 있는 레이드원들 중심으로 모인 돈을 나눠 갖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이템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참여한 플레이어들에게 마찬가지로 나쁘지 않거나 때론 가상화폐를 벌기 위한 목적이 되기도 하는 제도다. 원래 가상화폐는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몬스터 사냥을 통해 획득한 아이템을 상점 혹은 경매장에 팔거나, 퀘스트 수행을 통해서만 획득 가능하다. 때문에 아이템 외의 것을 사고팔기 위한 보조도구로서 주로 기능해왔다. 경매제도는 가상화폐를 게임 내 보조적인 도구에서, 반드시 획득해야 할 게임 내 중요한 목적지로 탈바꿈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리고 꽤 많은 게임들의 가상화폐가 현실세상에서 실제 화폐로 거래되기도 한다. MMORPG는 플레이에 시간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드는 하드코어(적) 장르인데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관계 맺지 않고 플레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가상화폐 경매제도는 혼자 플레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기도 하는데, 가상화폐가 아이템 획득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경매제도 도입 이전의 MMORPG 세계에서 플레이를 하고 좋은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른 플레이어와의 관계에 신경을 쓰고, 다른 한편으로 강한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개인 능력을 키워야만 했다. 공격대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플레이어, 즉 공격대에 기여를 하지 못하는 플레이어는 실력을 키울 때까지 공격대에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소문이 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실력 못지않게 평판도 중요하게 여겨졌고, 실력이 좋아도 매너가 좋지 않으면 공격대에 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경매제도 도입 이후 가상화폐가 부족한 실력과 매너를 메우게 되었다. 공격대에 끼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점차 실력이나 평판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는가가 되었다. 이처럼 플레이어(들)은 저득 주사위를 굴리거나, 포인트, 골드 등을 사용함으로써 아이템 획득 확률일 높일 수 있다. 특히 포인트제와 경매제도에서는, 포인트, 골드 등을 사용해 아이템 획득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 포인트나 골드 등을 다른 공격대원에 비해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아이템 획득 확률이 올라감은 물론이고, 정말 포인트나 골드가 많다면 거의 100% 확률로 아이템을 가져갈 수 있다. 운과 불운 사이, 게임 시스템과 플레이어들 사이 중요한 것은, (특히 플레이어 차원의) 확률 보정 노력들이 긍정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든, 앞으로도 게임 내에서 죽 이어지거나 어쩌면 더욱 활발하게 가시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글에서 살펴본 게임 시스템 차원의 드랍·획득 확률 보정, 그리고 플레이어 차원의 획득 확률 보정의 양상 및 의미는 게임의 시스템적 디자인과 플레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 사이의 충돌, 불확실성이 주된 요소일 수밖에 없는 게임에서 발생하는 플레이 방식의 역동성 혹은 진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불평등으로 다가갈 수 있는 아이템 획득방식의 변경에 대한 플레이어 간의 합의 또는 수용 문제 등을 폭넓게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된다. 불확실성은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거나 적은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으로 이해돼 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게임의 불확실한 결과는 플레이어(들)에게, 그들의 결정이 게임에 확실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하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는 건, 그러한 의사결정과 결과의 관계로부터 나타난다. MMORPG 레이드에서 아이템을 획득하는 일 역시 다르지 않다. 특히 플레이어(들)이 만들어 활용하는 새로운 아이템 획득방식은, (가상화폐 지상주의라든지 긍정적이지 못한 결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게임 시스템의 활용의 하나이자, 전체 플레이의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실천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또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허용하는 선하에서 공식화되는 아이템 획득방식이자 플레이의 일부가 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산업의 트리플A, 이용자의 트리플A
한 때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신성함을 게임에서 꿈꿔보자. 하나의 통일된 지향을 추구하기 보다는, 여러 방향의 주변화된 상상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누적될 때 인류에게 진정으로 울림을 주는 더욱 경이로운 경험을 우리는 협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 가능한 것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그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 Back 산업의 트리플A, 이용자의 트리플A 10 GG Vol. 23. 2. 10. 트리플A(AAA)에 관하여 얼마전 게임과학연구원에서 20대 연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트리플A라는 단어가 더 이상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일 후, 이경혁 편집장에게서 트리플A 개념에 대한 원고 제안 전화를 받았다. 연달아 찾아온 우연이 운명같이 느껴진 걸까, 덥석 퀘스트를 수락하고 나서야 미련하게 후회가 밀려왔다. 고민의 끝에 나는 트리플A에 대해서, 나와 그 단어의 아주 사적인 관계를 벗어나 그에 대해 고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우선 고백부터 하고 싶다. 지금 하려는 트리플A의 이야기는 어떠한 학술적인 개념에 대한 분석이기 보다는, 오롯이 나의 존재-제약적 위치성(positionality)에 기반한 개인적인 심중소회라는 점을 말이다. 한때 나라는 개인의 삶에 의미를 지녔던 ‘존재’로서 그 용어가 퇴색되거나 희미해 져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 이자, 또 그 과정속에서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에 대한 글이다.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 2010년 경만 해도, 게임 산업의 일원들은 누구나 트리플A를 꿈꿨다. 적어도 내가 만난 이들은 그랬다. 조금 과장하자면, 당시 "AAA"라는 레이블은 탁월함과 위신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많은 개발자들은 명성을 얻을 게임을 만들기를 열망했다. 당시 말단 주임이었던 나는, 그저 AAA 개발에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 괜스레 혼자 자긍심에 벅차오르곤 했다. 게임의 세계에서 트리플A는 1990년 대 후반, 야심 찬 생산 가치를 지닌 게임의 유형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 주요개발자들에게 트리플A는 가능한 한계를 확장하고, 훌륭한 게임은 어떤 것인지 정의하는 것을 칭했다. 실제 당시의 트리플A 게임들은 대체로 주요 스튜디오의 대표 타이틀로, 뛰어난 기술 활용을 바탕으로 그래픽, 사운드, 플레이어 경험 측면에서 매번 업계 표준의 진화를 쉼없이 이끌었다. PC게이머로서 나의 게임 경험은 플로피디스크와 비트 그래픽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도스화면에서부터 광케이블 인터넷까지 지나오는 동안 나에게 게임의 지속적인 변태(metamorphosis)를 지켜보는 일은 큰 즐거움이었다. 기술적 발전과 더불어 진화하는 게임의 세계와 경험은 늘 기대 이상이었다. 잔디 잎이 한 올 한 올 바람에 실랑이는 넓은 들판에 서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감성에 잠긴 때, 오픈월드를 산책자처럼 거닐 때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걸던 NPC AI가 더 이상 사물처럼 느끼지 않아졌을 때, 그리고 수천명의 사람들과 물러설 수 없는 전투를 벌이던 중 그 부하를 버텨내는 서버의 안전성을 새삼 인지했을 때, 매 순간이 ChatGPT를 만나던 순간만큼 경이로웠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이 디지털 게임이라는 것의 한계라는 것이 있을까? 앞으로 얼마나 더 대단한 경험을 하고, 또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즐거울 수 있을까? 그리고, 절실히 바랬다. 누구나 열망해왔지만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그런 경험을 만드는 여정에 동참할 수 있기를. 어쩌면 잊혀지고 변질되고 있는 이름 라떼 감상이 조금 길었는데 현재 시점으로 복귀해보자. 트위터 투표를 진행해봤다. “당신의 경험에 기반했을 때, 트리플A라는 용어가 최고 품질 게임 프로덕션의 의미로 여전히 자주 사용되나요?”라는 질문에 57.1%만이 ‘그렇다’, 그리고 18.6%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70여명의 소규모의 샘플임에도 나의 트위터 친구들이 대부분 게임, 이스포츠 관련 종사자, 연구자, 혹은 열정적인 게이머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적잖이 놀라웠다. 그리고 여전히 주변에서 용어 자체는 쓰이지만, 품질 보다는 개발비 규모의 표현이라도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친절한 댓글을 보았다. 이 어설픈 사전조사는 트리플A라는 용어는 보편적이지 않고, 트리플A 레이블은 ‘훌륭한 게임’ 즉 예술적 또는 기술적 성과보다는 높은 제작 예산과 마케팅 비용을 들여 얻는 상업적 성공과 산업 가시성의 수준을 나타낼 때 더 자주 사용된다는 결론을 지었다. 게임의 세계에서 트리플A의 개념이 인식되는 방식은 수년간 역동적인 변화를 거치면서 추억속의 소중한 의미는 퇴색되었나 보다. 안타까움과 함께 궁금해진다. 이 개념적 변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트리플A의 기원과 변천: 산업의 트리플A, 게이머의 트리플A 사실 AAA라는 용어의 기원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원래 AAA는 가장 높은 기준의 신용도를 보이는 채권에 부여되는 등급으로, 가장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낮은 채권을 의미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90년대말 미국의 게임쇼에서 일부 개발사들이 사용하면서 게임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 용어가 게임을 수식하게 되었을 때, 그 관계로부터 중의적인 의미가 발생하게 되었다. 하나는 기원의 의미 그대로의 경제적 측면에서 ‘높은 신용’이다. 즉, 개발사나 투자자들에게 그들의 재무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안전한 투자 및 사업 기회를 의미했다. 그와 동시에 게이머들에게도 트리플A는 높은 게임퀄리티에 대한 ‘신뢰’의 약속을 의미했다. 일례로 전설적인 게임디자이너 시드마이어(Sid Meyer)는 ‘승인 표시(Seal of approval)’를 비디오 게임 역사 상 가장 주요한 혁신 3가지 중의 하나로 꼽은 적이 있다(Arendt, 2000). 패키지 박스에 ‘시드마이어’의 이름이나 닌텐도의 ‘품질보증표시(Seal of Quality)’가 있을 때, 게이머들은 특정 수준 이상의 게임 경험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러한 관행이 대충 만들어서 쉽게 돈을 벌기 위한 ‘셔블웨어(Shovelware)’ 게임으로부터 게이머들을 보장하는 게임 퀄리티’의 기준을 설정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보았다. 한국이 온라인 게임의 제국으로 불리던 시절(Jin, 2010) NCSOFT에서도 게임이 출시되기 위해서는 ‘NC Quality’의 높은 벽을 넘어야했다. * 시드마이어의 <문명>(1991) 시작화면과 닌텐도의 품질보증표시 즉, 트리플A는 경제적 가치와 게임적 가치를 모두 지닌 게임, 그래서 모든 이해관계자가 신뢰할 수 있는 게임을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이 나아가야할 방향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용어가 지닌 경제적 가치와 게임적 가치의 균형 상태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경계선은 전자의 방향으로 점점 기울어갔다. 경제적 ‘생산가치’로서 트리플A는 초기에는 흥행이 보장된 ‘상품’을 그 자체만을 의미했으나, 게임이 비즈니스 모델이 확장팩을 비롯한 여러 방식으로 다각화 되는 과정에서 한 게임의 지속가능한 자산화(assetization) 역량까지 표현하게 되었다(Bernevega & Gekker, 2021). 이 과정에서 AAA+나 AAAA와 같은 변형된 용어도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디 게임이 더욱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그 반대 극부에서 기존 흥행 사례를 따라 표준화된 개발 방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위험도 낮은 게임개발시스템(Folléa, 2020)이나, 그로 인해 극도로 동질화 되어버린 게임 산업을 의미하기도 한다(Keogh, 2015). 마치 영화계의 ‘블록버스터’라는 용어가 진부해진 헐리우드식 흥행 공식에 갇혀버린 상업 영화를 의미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오늘날, 트리플A라는 용어는 반쪽짜리 지향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의미변화로 인해 트리플A라는 존재는 ‘훌륭한 게임’이라는 지향으로서 신성한 상징성, 즉 이정표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상징적 빈곤의 극복을 위하여 그렇다면 트리플A가 한때 지니던 상징적 기능의 상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개인적으로는 그 상징적 빈곤은 현 시대의 인류가 게임에 대해 지닌 사회적, 공동체적 상상력의 빈곤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산업의 규모는 점차 방대해지고 있지만, 게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혼미한 상태에 처해있다. 나아가 게임에 대한 인식론적 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빈곤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많은 경우에 그들이 말하는 ‘게임’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게임연구자로서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현행법의 ‘게임물’의 정의를 수없이 읽었지만 여전히 아리송하다. 게임의 ‘등급’을 제시하는 사람들, 개발하는 사람들, 그리고 플레이 하는 사람들 사이의 인식론적 간극과 그로 인한 갈등은 점점 심화된다. 이 빈곤의 시대에, 여전히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일이지만, 오히려 그 원래부터 그 실체가 모호했던 트리플A라는 존재의 쇠퇴 과정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싶다. 왜냐하면, 여전히 트리플A는 그 개념의 상징적 몰락, 즉 어떠한 ‘신비로움’이 탈착되는 과정을 통해서 여전히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정표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먼저, 트리플A의 의미변화는 경제적 가치가 게임적(미학적, 기술적, 플레이경험적) 가치와 분리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게임에 대한 ‘(오락)상품’ 혹은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관점을 벗어나 그 매체적 잠재력에 대해 본질적으로 차원에서 고민해 볼 수 있는 틈을 얻는다. 지금까지 게임은 좁은 의미에서 여가를 위한 문화(엔터테인먼트)산업으로 기존 사회의 존재하는 것들 중에 가장 비슷한 개념들에 빗대어 표현되어왔다. 이러한 규범적, 인식론적 경계는 게임을 고정관념 속에 가둬왔다. 트리플A의 상징적 몰락은 이 틀을 인식함을 통해 약화시킬 수 있는 계기, 즉 사회가 게임을 인식하는 방식을 변혁할 수 있는 계기를 시사한다. 게임이라는 고유한 예술 혹은 기술 형식에 깃든 가치들은 그 고정관념 속에서는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트리플A’ 혹은 그 이름이 상징했던 것에 대한 재정의 혹은 대안의 탐색을 추구할 수 있다. 이것은 생산자-소비자의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서, 게임에 대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미래 게임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다시 모색하는 것이다. 게임의 가치가 예산이나 생산 가치가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경험과 감정에 있다는 것을 되새기자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트리플A의 쇠퇴는 게임이 더 이상 하위문화가 아니라 보편적 지위를 획득하였다는 점도 나타낸다는 점에서 또 한번 우리에게 어떠한 인식적 프레임을 부여한다. 최근 게임과학연구에서 ‘포스트게이머 전회’ 담론은 게이머라는 집단이 기존의 ‘젊은 백인 남성’의 하위문화적 스테레오타입에서 각각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발현되는 다양한 인간-게임의 관계에 따라 다원화된 여러 집단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논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트리플A는 당대의 상황속에서 비교적 동질성을 지닌 초기 게임 커뮤니티는 ‘훌륭한 게임’을 유사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는 점과, 동시에 다원화된 현 시대의 여러 ‘게이머 유형’들에게는 공통된 이정표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도 드러낸다. 그렇다면, 환하게 빛나던 트리플A는 양초처럼 녹아내려 초라해짐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빛의 설계를 구체화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포괄성과 접근성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플레이어 중심 가치를 반영하거나 새로운 기술적 발전에 걸맞은 더 실험적이고 더 야심 찬 열망과 이상을 반영한 이정표 말이다.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경제적 생산 가치와의 협상에 있어, 더욱 윤리적이거나 지속가능한 방식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구축할 시점이라는 것을 인식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리플A를 기리며 게임에 대한 경제적 가치와 게임적 가치의 경계가 재협상되는 과정에서 정든 이름은 서서히 잊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대변하던 가치들과 의미변화 과정은 게임이라는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그만의 프레임을 우리에게 남긴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게임의 가치는 게이머와 개발자, 혹은 그 사이의 모호한 정체성의 여러 이해관계자의 모두의 변화하는 우선순위와 욕구를 반영하여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화하는 역동적인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이제 인간-기술의 본질적인 관계성이 재고되는 패러다임의 전회기에 서있다. 지난 몇 십 년에 걸친 디지털 시대가 디지털 기술을 기존 사회의 경제적 효율성의 논리속에서 활용하던 시기라면, 이제 우리 일상을 구성하던 대부분의 ‘물질적인 것’들이 디지털로 구현된 포스트디지털 시대는 미래의 규범들이 새롭게 쓰일 수 있다. 그리고 한 때 ‘쓸모없는 것’이었던 게임은 그 모든 가능성들의 테스트베드이다. 이스포츠나 디스코드의 예시에서 드러나듯, 게임과 관련 문화는 그 자체로 머무르지 않고 외부의 것들 것 혼성적으로 결합하면서, 기존 사회의 규범들을 무력화시키거나 변형시키고 있다. 한 때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신성함을 게임에서 꿈꿔보자. 하나의 통일된 지향을 추구하기 보다는, 여러 방향의 주변화된 상상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누적될 때 인류에게 진정으로 울림을 주는 더욱 경이로운 경험을 우리는 협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 가능한 것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그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참고문헌 Arendt, S. (2000, March 4). Civilization Creator Lists Three Most Important Innovations in Gaming | WIRED. Wired. https://www.wired.com/2008/03/sid-meier-names/ Bernevega, A., & Gekker, A. (2021). The Industry of Landlords: Exploring the Assetization of the Triple-A Game. Https://Doi.Org/10.1177/15554120211014151, 17(1), 47–69. https://doi.org/10.1177/15554120211014151 Folléa, C. (2020). Experiencing, Experimenting with, and Performing Visual Narratives. Http://Journals.Openedition.Org/Inmedia, 8.1. https://doi.org/10.4000/INMEDIA.2031 Jin, D. Y. (2010). Korea’s online gaming empire. MIT Press. https://mitpress.mit.edu/books/koreas-online-gaming-empire Keogh, B. (2015). Between triple-a, indie, casual, and diy: Sites of tension in the videogames cultural industries. In K. Oakley & J. O’Connor (Eds.), The Routledge Companion to the Cultural Industries (1st ed., pp. 152–162). Routledge. https://doi.org/10.4324/9781315725437-21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h.D. 게임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University of Jyväskylä 박사후연구원) 진예원 게임·이스포츠를 통해 기술-인간(문화)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관심이 많다. 게임과학연구의 글로벌, 다학제간, 오픈사이언스 접근을 지지한다. DiGRA 한국 지부의 창립 멤버이고, 현재 Esports Research Network Board Member, 한국e스포츠학회 이사, APRU Games and Esports Research Working Group member로 활동하고 있다. 한동안 NCSOFT와 RiotGames Korea에서 근무했다. 저서로는 (2021, 챕터공저), ‘이스포츠의 기술성 분석을 통해본 포스트디지털 문화연구’(2022, 박사논문), ‘게이밍 경험에서의 일상과 게임 세계의 개념적 혼성’(2018, 논문) 등이 있다.
- The Resonant Samurai: Historical Accuracy versus Market Appeal
By now, the online backlash against the inclusion of Yasuke as one of two protagonists in the story has become somewhat infamous, if not tired, since outrage first erupted last year. Although the game had teased at the 2022 UbiForward as Codename Red, it wasn’t until the full reveal on May 15, 2024, with the cinematic trailer that the inclusion of Yasuke, as a co-protagonist, became clear. < Back The Resonant Samurai: Historical Accuracy versus Market Appeal 24 GG Vol. 25. 6. 10. ***이 글의 한국어 버전은 아래 URL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953c58c4-a26a-4e46-8aac-48c10227ca8b Introduction: Yasuke Enters the Franchise By now, the online backlash against the inclusion of Yasuke as one of two protagonists in the story has become somewhat infamous, if not tired, since outrage first erupted last year. Although the game had teased at the 2022 UbiForward as Codename Red [1] , it wasn’t until the full reveal on May 15, 2024, with the cinematic trailer that the inclusion of Yasuke, as a co-protagonist, became clear. [2] [3] For over two months, criticism swirled at design choices in both Western and Japanese circles, though the online discontent among segments of the more conservative Western audience specifically focused on the inclusion of Yasuke, [4] leading, among the many heated discussion threads, to harassment of members of the development team. On July 23rd, Ubisoft released a somewhat ambiguous statement about the context, backhandedly addressing global audiences by way of seemingly focusing on the Japanese Community, and reaffirming their commitment to overall authenticity . [5] * Figure 1: Yasuke as Protagonist This statement raises a number of concerns that articulate the controversy surrounding Yasuke, which taken at face value is about historical accuracy, but arguably has more to do with how this segment of the audience has been served by the franchise so far. As discussed by de Wildt and Aupers in a 2021 study focusing on the franchise overall and including dozens of interviews with former Ubisoft game directors and assorted senior developers, Assassin’s Creed overall privileges the marketability of any given setting. [6] That marketability is further contextualized by a audience that is disproportionately European and American (roughly 79% all of Ubisoft sales). [7] With that market in mind, Ubisoft has put to use a model they term the “marketing-brand-editorial burger,” where the core of the franchise must remain generally similar, while changing the sauce (the cultural setting) in order to draw in new or repeat clientele. [8] To that end, most of the franchise’s games have generally featured protagonists that are relatively uncomplicated to access for that core audience. For instance, Black Flag’ s Edward Kenway presents a European perspective into Nassau and Caribbean colonialism, while Assassin’s Creed II and Brotherhood engages with Ezio as a cultural insider in Renaissance Italy. [9] [10] [11] It also uses Ezio as a way to access the comparatively more distant Istanbul setting and culture in Revelations . [12] Even when protagonists are more complicated, as is the case for Connor Kenway in Assassin’s Creed III [13] and Adewale in Freedom Cry , [14] it is nonetheless the dominant European and American perspectives that orient the core structure of the games. [15] [16] So, why is that centering of the Western audience the case, and how does the controversy surrounding indicate breaks or continuities with this design trend? The answer, broadly, comes from a prioritizing of resonance, of expectations, above accuracy. The Question of Accuracy: Accuracy versus Expectations The question of historical accuracy in the Assassin’s Creed series, over its 18-year span, has been the subject of thousands of games journalism pieces, not to mention dozens of academic articles and book chapters. In early inroads, historical accuracy appears as a demand, essential for games to be taken seriously, as a pedagogical tool, an archaeological model or an account of events past. [17] This demand is draped over a number of design elements, such as the areas of the game included, in conjunction with the time period covered (along with the key events that the narrative focuses on). Perhaps most importantly, there is enduring concern and desire for the protagonists at the center of these games to match the historical period which audiences understand as a coherent whole. In other words, the setting, the story and the characters need to work in harmony, but whether that harmony adheres to historical truth is another matter altogether. [18] [19] When discussing historical accuracy, it would be useful to consider at what point is the media portrayal considered accurate. Is any deviation allowed? As Adam Chapman argues, there is a threshold where the game can be considered historically resonant, and that point is when individual players deem the historical aspects to match their pre-existing knowledge. [20] Evidently players tolerate deviation from historical fact as necessary to game adaptation in general, and especially in the context of Assassin’s Creed , where historical figures are repositioned as actors in secret conspiracies and ancient aliens plotlines. The fact that the franchise requires a genealogy of assassins and templars, in this case the Kakushiba Ikki (League of the Hidden) and the Shinbakufu (True Shogunate). The distortions necessary to make the armature of the franchise fit with the real persons that the game adapts are in most cases no more or less intensive than the depth provided to Yasuke. This level of adaptation or distortion is also in line with the degree of departure players can find in Odyssey [21] , for instance, with the portrayals of Sokrates and Aspasia of Miletus, [22] or Origins ’ Cleopatra. [23] The games are all, to put it bluntly, historical fiction, rather than history, an approach detailed by Ubisoft itself. [24] As they explain in their 2025 open letter, Yasuke presented an “ideal candidate” for the series formula that incorporates “fantasy elements” and that his “unique and mysterious life” is considered by the company to be a match for franchise patterns. [25] The idea of Yasuke as a candidate for cultural representation is in keeping with de Wildt and Aupers mentioned earlier, where marketing dominates broader choices, and where any narrative or representational choice “defers to the market and the largest possible audience.” [26] Franchise lead Jean Guesdon had previously spoken about tapping into popular zeitgeist to buttress franchise sales, so relying on Yasuke, a figure that has become increasingly visible in popular media over the past two decades makes sense. [27] Unlike Sucker Punch’s Ghost of Tsushima , [28] from which Shadows borrows much of its visual language and colour scheme, Assassin’s Creed provide Yasuke a proxy for audiences, not as a man of colour, but as an outsider to Japan.Yasuke is legitimate enough as a choice, given his historic presence, yet, like players, experience Japan as a foreigner becoming gradually integrated. [29] In other words, the game’s internal structure is positioned to open with, and favor an outsider perspective, over one of the other notable candidates audiences can imagine, including notable samurai like Musashi Miyamoto or Sasaki Kojiro. * Figure 2: Yasuke Criticized for Use of nanban (European) concepts in the context of Japanese warfare. This tension, between what a game company considers an ideal candidate, and what serves historical accuracy most, has been the subject of research over the past few years. [30] In my previous work on the subject, I locate this decision space as shaped by the tension between representation and identification. As film scholar Charles Acland notes, with respect to cinema, the work of identification is complicated and requires exiting one’s own reality to inhabit the specific circumstances of another person, in another place and time. [31] Identification, on the other hand, provides protagonists and perspectives ready-made for individuals to absorb into their experiential frame. This form of media production is positioned to produce the “that resonates with me” reaction, and has been the subject of academic critique concerning Assassin’s Creed for the better part of the last decade. So far, installments have been positioned to always provide that kind of easy identification, if not in main protagonists, then at least in circumstances and ideological positions. Yasuke, in that vein, presents a particular issue. His perspective provides an outside-in look at feudal Japan, but it also bucks against the generally empowering positions that series protagonists have enjoyed. Yasuke’s inclusion seems in itself revolutionary and novel, but as scholar Kishonna Gray noted in the case of Adéwalé in Haiti, there is an echo of white European and American social positions within the very framework of the game. [32] Even when the characters are non-white, their social positions in the game privilege the presumed Euro-American audience mentioned above. In Shadows , Yasuke is not gated from spaces any more than the game’s other protagonist, Naoe, is. The game’s fiction smooths out the creases in what would otherwise be a presumably more confronting experience. Then, if the game resonating with audiences is the primary goal, the game’s choice to platform Yasuke presents quite logically, with the exception that the audience being favored is not the same audience that has been favored in the past decade. To put it bluntly, the racial intolerance evident in Yasuke’s characterization as a “DEI hire” showcases as barrier in audiences identification with a man of colour, more than a rigorous analysis of whether that character’s story is accurate, which is already difficult to claim for any Assassin’s Creed protagonist in good faith. [33] The backlash, at least in the West, has clearly been centered on race and gender, while the Japanese response has certainly been more tempered, and focused on how players are allowed to damage holy sites. The subsequent question that arises is whether or not this entire outrage, as visible as it has been, represents the whole of the consumer base in the West, or rather a specific subset of consumers. The Payoff: Yasuke as Commodity Whether or not reception to Yasuke has been hot or cold is difficult to definitely weigh in on. How do we define success? Is it based on the sentiment of a vocal segment of the audience, or do we prioritize something closer to an international audience reception? Do we look at critical reception, and do we look in a vacuum or in the context of how recent installments have been received? Perhaps the most representative forum for critical and audience reception remains Metacritic, despite concerted efforts to review bomb the title. [34] In fact, when comparing the open-world installments, the pattern is relatively stable. Critics have Shadows at 81, compared to Valhalla ’s 80, Odyssey ’s 83, and Origins ’ 81. Audiences, even keeping in mind a greater proportion of disproportionately negative reviews, have Shadows at 62, compared to Valhalla ’s 60, Odyssey ’s 68, and Origins ’ 73. Critical consensus seems to be that the game is qualitatively in line with previous installments, and for audiences seems a slight improvement over the previous title. Where it does depart is in Shadows ’ higher proportion of extremely low scores, which may be indicative of review bombing. Metacritic, like any review aggregator, will overrepresent audiences that are already invested enough to log on and review, but the consistency in scores over time indicates relative stability between titles at a broader level. * Figure 3: Review Score Aggregates for all Open-World AC Titles (Mirage Omitted). Surely then, the outrage professed against Yasuke was equally felt in terms of sales, which would at least provide an industrial indication that the game was boycotted or sold less well. In actuality, Shadows boasts the second-highest day one sales for the franchise, behind Valhalla , which Ubisoft attributes to the “perfect storm” of conditions during the pandemic. [35] Longer tail analytics show a “modest” sales record of roughly 1.7M copies sold on Playstation 5 alone (Alinea, 2025). [36] So, the picture is somewhat murky, given that we won’t have the long-tail data for a while yet. Compared to Odyssey’s roughly 2M sales in the first month, as well as keeping in mind the pressures on discretionary expenses in the current economic climate, the game is not the historic success of yore, but it’s certainly still successful. Conclusion: It was Never about Accuracy The academic response, as always, will take a longer while to cement, as qualitative studies and criticism goes through the comparatively longer publication cycle. It is my sense, given the title’s consistency within franchise patterns, that academic consensus will broadly settle where it has for the past decade: that Shadows is a relatively safe market bet, with serviceable characters and the core formula unchanged. It is, in many ways, the same Assassin’s Creed we’ve come to know since 2007, and more specifically since the series’ open-world shift in 2017. Within that framework though, the Japanese governmental response to the game is novel, as critiques of desecration of ritual sites has generally been confined to academic critiques, rather than the state. [37] [38] In fact, the homage paid to the series at the Paris Olympics for Ubisoft’s assistance with the Notre Dame reconstruction signals a significant gap in how Western states interact with the company’s cultural products. Likewise, the Yasuke controversy, which seems to have lost steam since last year, has faded away into the series’ tenuous relationship with race and gender across many of its installments. It is nonetheless interesting to consider which way audience sentiment slices. Here, Yasuke was called out as corporate pandering to modern sensibilities and audience demand, yet that was not so much the case when Odyssey ’s Alexios was provided as a secondary protagonist for players to enjoy, or when company scandals revealed that Aya was intended as the main character of Origins , despite the release featuring almost exclusively Bayek. The audience’s rigidity regarding accuracy is always one that has been shaped by personal taste, and if the issue was really the accuracy of the character, we’d have had similarly caustic debates about many titles in the series. [1] Ubisoft, dir. 2022. Ubisoft Forward: Official Livestream - September 2022 | #UbiForward . https://www.youtube.com/watch?v=rvV4ZBx6_bo . [2] Ubisoft, dir. 2024. Assassin’s Creed Shadows: Official World Premiere Trailer. https://www.youtube.com/watch?v=vovkzbtYBC8 . [3] Ubisoft. 2024. “Assassin’s Creed Shadows Launches November 15, Features Dual Protagonists in Feudal Japan.” https://news.ubisoft.com/en-ca/article/2LH4Ael4X1TlNJY3B3aYg5/assassins-creed-shadows-launches-november-15-features-dual-protagonists-in-feudal-japan . [4] Walker, John. 2024. “Ubisoft Issues Weird Statement On Assassin’s Creed Shadows Controversies.” Kotaku, July 23, 2024. https://kotaku.com/assassins-creed-shadows-ubisoft-statement-yasuke-1851602337 . [5] Ubisoft. 2024. “Assassin’s Creed Shadows - An Update for the Japanese Community.” https://news.ubisoft.com/en-us/article/7dWPCtVQU7udC0KkPFOyXh/assassins-creed-shadows-an-update-for-the-japanese-community . [6] Wildt, Lars de, and Stef Aupers. 2019. “Playing the Other: Role-Playing Religion in Videogames.” European Journal of Cultural Studies 22 (5–6): 867–84. https://doi.org/10.1177/1367549418790454 . [7] Ibid, 4. [8] Ibid, 11-12. [9] Ubisoft. 2013. “Assassin’s Creed IV: Black Flag.” [10] Ubisoft. 2009. “Assassin’s Creed II.” 2009. Ubisoft. [11] Ubisoft. 2010. “Assassin’s Creed: Brotherhood.” [12] Ubisoft. 2011. “Assassin’s Creed: Revelations.” [13] Ubisoft. 2013. “Assassin’s Creed.” [14] Ubisoft. 2013. “Assassin’s Creed Freedom Cry.” [15] Shaw, Adrienne. 2015. “The Tyranny of Realism: Historical Accuracy and Politics of Representation in Assassin’s Creed III.” Loading... 9 (14). https://journals.sfu.ca/loading/index.php/loading/article/view/157 . [16] Zanescu, Andrei. 2023. “Blockbuster Resonance in Games: How Assassin’s Creed and Magic: The Gathering Simulate Classical Antiquity.” Phd, Concordia University. https://spectrum.library.concordia.ca/id/eprint/992024/ . [17] Ibid, 17-57. [18] de Wildt and Aupers, 2019. [19] Westin, Jonathan, and Ragnar Hedlund. 2016. “Polychronia – Negotiating the Popular Representation of a Common Past in Assassin’s Creed.” Journal of Gaming & Virtual Worlds 8 (March):3–20. https://doi.org/10.1386/jgvw.8.1.3_1 . [20] Chapman, Adam. 2016. Digital Games as History: How Videogames Represent the Past and Offer Access to Historical Practice. 1st ed. New York: Routledge. [21] Ubisoft. 2018. “Assassin’s Creed Odyssey.” [22] Ubisoft North America, dir. 2017. Assassin’s Creed Origins: Developer Q&A - History & Setting | Ubisoft [NA]. https://www.youtube.com/watch?v=FK43sE36rdo . [23] Ubisoft. 2017. “Assassin’s Creed Origins.” [24] Ubisoft. 2024. “Assassin’s Creed Shadows - An Update for the Japanese Community.” https://news.ubisoft.com/en-us/article/7dWPCtVQU7udC0KkPFOyXh/assassins-creed-shadows-an-update-for-the-japanese-community . [25] Ibidem. [26] De Wildt and Aupers, 13. [27] Zanescu, 2023. [28] Fox, Nate. 2020. “Ghost of Tsushima.” Sucker Punch Productions. [29] DJangi, Parissa. 2025. “The Real History of Yasuke, Japan’s First Black Samurai.” History.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history/article/the-real-history-of-yasuke-japans-first-black-samurai . [30] Eklund, Lina, Björn Sjöblom, and Patrick Prax. 2019. “Lost in Translation: Video Games Becoming Cultural Heritage?” Cultural Sociology 13 (4): 444. [31] Acland, Charles R. 2020. American Blockbuster: Movies, Technology, and Wonder. 1 online resource (xi, 388 pages) : illustrations (black and white) vols. Sign, Storage, Transmission.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1515/9781478012160 . [32] Gray, Kishonna L. 2018. “POWER IN THE VISUAL: EXAMINING NARRATIVES OF CONTROLLING BLACK BODIES IN CONTEMPORARY GAMING.” Velvet Light Trap, no. 81 (March), 62–67. [33] Mercante, Alyssa. 2024. “This Was Never About Anything Other Than Hate.” Kotaku. July 23, 2024. https://kotaku.com/this-was-never-about-anything-other-than-hate-1851602820 . [34] Wolens, Joshua. 2025. “Ubisoft Says Don’t Compare Assassin’s Creed Shadows’ Success to Valhalla: The Latter Launched in Covid’s ‘perfect Storm’ and Feedback on Platforms ‘Less Affected by Review Bombing’ Is Stellar.” PC Gamer, March 25, 2025. https://www.pcgamer.com/games/assassins-creed/ubisoft-says-dont-compare-assassins-creed-shadows-success-to-valhalla-the-latter-launched-in-covids-perfect-storm-and-feedback-on-platforms-less-affected-by-review-bombing-is-stellar/ . [35] Ibidem. [36] Alinea. 2025. “Xbox Dominated PlayStation’s Top 10 Games by Copies Sold in April, as Forza Horizon 5 Overtakes 1.4 Million Copies on PS5.” Alinea. https://alineaanalytics.com/blog/playstation_april_2025/ . [37] Small, Zachary. 2024. “The Fight Over a Black Samurai in Assassin’s Creed Shadows.” The New York Times, September 11, 2024, sec. Arts. https://www.nytimes.com/2024/09/11/arts/assassins-creed-shadows-yasuke-samurai-japan.html . [38] Murray, Conor. n.d. “New ‘Assassin’s Creed’ Releases To Strong Reviews—But Sparks Anti-’Woke’ Backlash And Roils Japanese Government.” Forbes. Accessed May 30, 2025. https://www.forbes.com/sites/conormurray/2025/03/21/new-assassins-creed-releases-to-strong-reviews-but-sparks-anti-woke-backlash-and-roils-japanese-government/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Andrei Zanescu Andrei Zanescu is a postdoctoral fellow and part-time faculty member in Communication Studies, and Anthropology & Sociology, at Concordia University, in Montreal, Canada. He specializes in AAA studio cultural adaptation practices involving resonance as a corporate strategy, as well as the legitimation of games through the formation of awards bodies tied to film and television cultural capital. He regularly publishes game and platform studies concerning a range of games (Assassin's Creed, Magic the Gathering & DOTA 2) and awards bodies, and in New Media & Society (2021), Games & Culture (2024), The Journal of Consumer Culture (2021) and Convergence (Forthcoming). He is also a co-author of Streaming by the Rest of Us: Microstreaming Videogames on Twitch (MIT Press, 2025).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콩코르디아 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와 인류학·사회학과에서 박사후 연구원 및 시간강사로 재직 중이다. AAA 게임 스튜디오의 문화적 적응 관행에서 '공명(resonance)'을 기업 전략으로 활용하는 방식과, 영화 및 텔레비전의 문화 자본과 연결된 시상 기관 형성을 통한 게임의 정당화 과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Assassin’s Creed, Magic: The Gathering, DOTA 2 등 다양한 게임과 시상 기관에 관한 게임 및 플랫폼 연구를 활발히 발표하고 있으며, 《New Media & Society》(2021), 《Games & Culture》(2024), 《The Journal of Consumer Culture》(2021), 《Convergence》등에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며 또한 『Streaming by the Rest of Us: Microstreaming Videogames on Twitch』(MIT Press, 2025)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 <사이렌> 속 불쾌한 플레이
리플레이 디자인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사이렌>의 내러티브는 더욱이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다. 이 게임의 내러티브 진행은 극도로 제한된 정보량으로 제공되는 내러티브 전개이다. 게이머는 일반적으로 주어진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면서 게임의 스토리를 파악하기 어렵다. <사이렌>은 그저 스테이지가 시작하면 게이머에게 클리어 조건을 제시하고 방치한다. < Back <사이렌> 속 불쾌한 플레이 23 GG Vol. 25. 4. 10. <사이렌(サイレン; SIREN)>(SCEジャパンスタジオ, 2003)은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재팬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호러 어드벤처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시리즈의 공통적인 줄거리는 주인공 일행이 (당장은)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해 농어촌 마을에 갇힌 상태에서 살아 남아 탈출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제목이 알려주듯, 이 알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음을 알려주는 알림이 바로 ‘사이렌 소리’이다. 기본적으로 <사이렌>은 시리즈의 틀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사이렌>의 특징은 사실적인 인물 표현과 실제 일본 풍경을 참조한 현실적 호러 묘사다. 게임은 심리적 공포를 유도하는 방식을 주로 이용하는데, 이를 극대화하는 요소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 ‘시인(屍人; 시비토)’이다. 시인의 디자인은 흔히 볼 수 있는 인간형 귀신이나 좀비처럼 그로테스크하게 표상되는데, 이들 시인은 인간일 적에 했을 법한 일상적 행동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경찰관 시인은 총을 들고 순찰하며, 농부 시인은 낫을 들고 작물을 수확하거나 엽총을 들고 새를 쫓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괴물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임을 표현하는 시인의 존재는 <사이렌>의 리얼리티와 엮이며 역설적이면서도 기묘한 공포감을 강조한다. 심리적 공포와 현실적인 디자인으로 여전히 훌륭한 호러 게임으로 평가받는 <사이렌> 시리즈이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게임을 플레이한 게이머들이 게임에 대해 어렵고 짜증난다는 평가를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야후 재팬 지혜봉투 [1] 에서 한 유저는 “<사이렌>이라는 게임은 어렵다고 들었는데, 플레이하면서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짜증나는 느낌인가요? (…) ” [2] 라고 질문을 올리기도 하고, 관련 질문에도 난이도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일본 실황 영상 타이틀에는 빠지지 않고 난이도가 높다는 댓글들이 자주 달린다. 오죽하면 일본의 한 블로거 珠音真珠(타마네 펄; 2022)은 “명작 호러 게임 「SIREN」은 무엇이 어려운가 게임 디자인을 해설(名作ホラーゲーム「SIREN」は何が難しいのかゲームデザインを解説)” [3] 이라며 이 게임의 어려움을 설파할 정도이다. * (<사이렌> 실황 타이틀. 난이도 올라가고 있다(難易度上がってきた)라던가, 불합리 오브 불합리(理不尽of理不尽) 등의 문장과 수식어는 그 악명을 보여준다. – 출처: YouTube) <사이렌>의 난이도 악명은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뭔지도 모르겠는 지도만 보고 길찾기가 무섭다(O)” [4] 라며 어려워서 무섭다며 비꼬는 의견에 동의하듯이, “옛날 게임 특유의 (비속어) 난이도”라는 덧글이 달리기도 한다. 개인 블로그의 게임 플레이 리뷰나 유튜브 영상에서도 어려움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에 걸치는 사이에 출시된 호러 어드벤처 게임에서 어려움을 언급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일례로 <바이오하자드(Biohazard, 1996)>의 경우, 좀비들을 쓰러뜨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한정적인 수의 총알로 인해 적절한 타이밍에 총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게이머들 사이에서 높은 난이도로 인해 불만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사이렌>은 이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리플레이 디자인에서 비롯된 불쾌함 이 게임의 어려움은 무엇이 다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사이렌>이 채택하고 있는 게임 디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이렌>은 공포 뿐 아니라 불편함과 불쾌함을 유발하는 플레이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사이렌>은 가장 기본적인 상호작용 시스템 층위에서부터 불편함을 유발한다. 우선 게임 내 상호작용 버튼을 누르게 되면 게이머가 취할 수 있는 행위를 선택지로 제공하는데, 이를 통해 주변 NPC 부르기(기본 기능)나 아이템 수집, 오브젝트와의 상호작용 행위가 가능하다. 하지만 오브젝트에 다가서도 이 오브젝트와 상호작용하라는 별도의 지시는 나오지 않는다. 앞에 있는 오브젝트가 상호작용이 가능한 것인지, 어느 정도까지 가까이 가야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 수집이 가능한 물건인지, 심지어 이것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에 필요한 것인지조차도 게이머는 직관적으로 알 수 없다. * (<사이렌>의 상호작용 시스템. 거리나 위치에 따라서 상호작용 가능한 개수가 달라진다.) 이러한 시스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게임 플레이 경험은 어렵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게임의 전반적인 클리어 과정은 시인과의 추격 관계 하에 이루어진다. 게이머는 시인을 피하면서 스테이지 내에서 시인의 행동을 파악하고 [5] , 은신해서 피하며, 스테이지를 탐색하는 식으로 퍼즐 풀이를 해 나간다. 불친절한 지도 시스템은 우리가 찾고 있는 클리어 조건이 어디에 있는지도, 플레이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불충분한 정보 안에서 게이머는 시인을 피하면서, 혹은 시인을 무력화시켜 가면서 게임 클리어를 위한 단서를 수집해야 한다. 다만 주인공은 시인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 일시적으로 쓰러뜨리더라도 시인은 다시 부활한다. 결국 주인공은 시인에게 죽고, 게이머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방금 전까지 쫓아오던 시인의 위치와 행동 패턴은 다시 리셋 되어 주인공 앞에 나타나고, 왔던 길을 다시 지나면서 아까 살펴보지 못한 곳을 다시 살핀다. 점차 공포를 유발하던 시인의 존재는 공포의 표상이 아닌 비대칭적 관계에서 비롯된 장애물로 여겨지게 된다. 게이머가 받는 시인이나 게임 분위기로부터의 공포는 점차 사라진다. 이는 <사이렌>이 채택하고 있는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 디자인이 바로 ‘반복’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플레이를 통해 <사이렌>의 공포 경험은 우리가 다른 게임을 하며 경험하는,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목표지향적 놀이로 변화한다. 즉, <사이렌>의 게임 플레이 경험은 다시 하기, ‘리플레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때 공포는 장애물을 극복하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목표지향적 놀이의 부차적인 요소가 되어 어려움을 유발하는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이미 이 시점에서 공포는 없어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리플레이는 공포를 피로, 지루함 등의 불쾌함으로 만든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공포에서 변질된 어려움으로 인한 불쾌한 게임 경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게이머에게 여전히 최종적으로 게임을 클리어하겠다는 목표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서튼 스미스는 다양한 유형의 놀이와 게임의 동기 부여 요인에 부정적 감정 또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놀이가 단순히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감정들을 재인식하여 지배하고 있는 부정적 제약을 벗어나기 위함이라고 보았다(Sutton-Smith, 2008). 즉, 공포에서 불쾌함으로 변화하는 게이머의 부정적 감정 경험은 게임을 계속해서 할 수 있게 만드는 동기의 일체인 셈이다. 게이머는 불쾌함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플레이하게 되고, 비로소 자신에게 주어진 불쾌함의 근원을 해결했을 때 성취감과 함께 게임을 플레이했다고 느끼게 된다. 즉, 게이머가 겪는 <사이렌>의 경험은 부정적 감정을 재인식하고, 정서적 기술을 연마하여, 예측할 수 없는 혹은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의 개발과 실천을 동반하는 시뮬레이션으로써 놀이가 된다(Henricks, 2015a). 난잡한 내러티브 해독 게임 리플레이 디자인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사이렌>의 내러티브는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된다. 이 게임의 내러티브 진행은 극도로 제한된 정보 제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게이머는 일반적 방식으로 주어진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면서는 게임의 스토리를 파악하기 어렵다. <사이렌>은 그저 스테이지가 시작하면 게이머에게 클리어 조건을 제시하고 방치한다. 제한된 내러티브는 다른 스테이지 내에서 스토리 관련 아이템을 수집하거나 다른 스테이지의 정보(맵 이름, 등장인물 등)와 조합해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반복해도 플레이어는 게임의 기본적인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게임 플레이가 여러 캐릭터를 통해 진행되고, 인물 사이의 관계들이 스토리 이해에 중요하게 작용하며, 이 인물들로 조합되는 사건들이 다양한 시간대를 오가며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런 난잡함은 게임 내러티브 이해 자체를 방해한다. 게이머가 느끼는 답답함과 의문은 특정 엔딩에 도달하더라도 풀리지 않기도 한다. 이처럼 게이머가 겪는 두루뭉실한 내러티브 참여는 불쾌한 게임 경험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 (시간대, 등장인물을 표시해주는 ‘링크 내비게이터 시스템’) 또 하나의 난점은 ‘종료조건’이다. <사이렌>의 종료조건은 일반적으로 다른 게임에서 볼 수 있는 클리어 요건이다. 그러나 독특하게도 이 게임에서의 종료조건은 한 스테이지에 2가지가 존재한다. 2번째 종료조건은 해당 스테이지가 아닌 다른 스테이지에서 특정한 조건을 달성하거나 아이템을 수집해야만 등장한다. 이 때문에 게이머는 다른 종료조건을 가진 채로 이전에 플레이한 스테이지를 다시 플레이해야만 한다. 앞선 게임 플레이 디자인이 의도하듯이, <사이렌>은 리플레이 유도를 내러티브 전개에서도 활용한다. 종료조건 또한 게임 플레이와 내러티브 디자인이 의도한 불편함을 유발하는 중요한 장치인 셈이다. * (<사이렌>의 종료조건. 특정 위치에 도달하는 것이 기본 목표이다.) 이렇게만 보면 이 게임은 마치 게이머에게 불쾌감만을 주기 위해 디자인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러티브 참여의 불쾌한 경험이 단순히 재미나 즐거움을 반감시키기 때문에 놀이로 기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게이머가 계속해서 내러티브에 참여하며 플레이하게 되는 것은 결국 몰입에 의해 이루어진다. 허나 몰입은 지루함과 불안 사이의 중간 지점에 존재하는 상태로 긍정적 감정 경험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Henricks, 2015b; Calleja, 2022). <사이렌>의 내러티브 경험은 난해, 불편, 불쾌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수반하지만, 게이머는 내러티브를 이해하기 위한 정보를 종합하여 앞으로의 플레이에 반영한다(Henricks, 2015b; Calleja, 2022). 게이머가 겪는 불편하고 불쾌한 내러티브 참여 과정 그 자체는 놀이 과정의 한 단계로 기능하게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게임 시스템은 ‘아카이브’이다. 여러 게임에서도 아카이브는 존재하지만, <사이렌>의 아카이브는 내러티브 이해를 위해 필수적이다. 특정 아이템에서 도출되는 텍스트는 게임 내 별도의 기능인 아카이브에 저장된다. 아카이브는 게임 설정이나 스토리의 일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당연하게도 아카이브만으로 내러티브를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파편화되어 있는 아카이브를 모으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며 얻는 내러티브 정보와 이어 붙이는 작업을 통해 비로소 <사이렌>의 스토리는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된다. 남아 있는 불쾌함을 해소하기 위한 게임 텍스트 밖 놀이 정말 놀라운 사실은 두 가지 방향(게임 플레이 & 내러티브 이해)에서 게이머가 열심히 노력해도 진정으로 <사이렌>을 완전히 즐길 수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도 이 게임의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스테이지의 모든 부분을 가 보고, 상호작용해 보고, 모든 텍스트를 정리해서 자기 나름의 설정집을 만들어본다면 혼자 힘으로도 가능하다. 이쯤 되면 이 게임은 사실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가진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사이렌>이 그만큼 치밀하고 방대하게 짜여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독특한 파고들기 요소가 가미된 것은 맞지만, 게이머에게 불편함을 유발해 어려움을 겪게 하고 불쾌한 감정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은 게임 디자인 의도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한 명의 게이머가 이 게임을 전부 파헤치길 바랬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사이렌>에 관한 게임 플레이 공략과 내러티브 이해를 위한 커뮤니티 실천이 곳곳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일본의 경우, 인물이나 시계열순으로 시나리오 공략을 작성하거나 [6] , 아카이브만을 위한 공략 등 [7] 이 존재했고, 한국의 경우도 시스템부터 스테이지 순서대로 공략을 작성하는 등의 노력 [8] 들이 있었다. 물론 공략이 활발했던 것이 당시 <사이렌>만의 특징이라고 할 순 없다. 여기서 또 하나의 독특한 양상은 난잡한 내러티브를 정리하려는 실천이 공략뿐만 아니라 2차 창작까지 이어지기도 했다는 점이다. 일본의 <사이렌> 팬 페이지인 ‘레무리아(Lemuria)’ [9] 는 <사이렌>의 세계관, 설정, 시나리오, 등장인물 등을 활용해 실사 영상을 만들어서 이를 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웹게임처럼 구성되었다. 물론 그 방식은 여전히 <사이렌>과 같이 비-선형적이지만, 게임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들을 게임 텍스트 밖에서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해 두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이처럼 <사이렌>을 둘러싼 게임 텍스트 밖 실천들은 엔딩에 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산발적인 내러티브가 어떻게 선형적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공략이나 관련 글을 접하면서 게이머는 자신의 놀이 반경을 넓혀간다. 게이머는 이런 외부 공략을 보고 자신의 플레이에 반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게임이 끝난 후 다시금 게임 속 이야기를 즐긴다. 즉, 놀이는, 매직 서클과 같이 제한된 영역이 아닌, 분리된 경계가 없고, 게이머 자신만의 해석 프레임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어떠한 행위라도 놀이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Calleja, 2022). <사이렌>에서 겪은 불쾌한 플레이 경험은 게임이 끝난 후의 일상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메타게임 플레이 과정 중 하나이다. 나가며 <사이렌>의 플레이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불쾌함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놀이이다. 게이머는 게임 디자인이 의도한 리플레이를 피하고자, 제한적인 정보를 효율적으로 조합하여 공략을 찾아간다. 이러한 플레이 속에서 접하게 되는 내러티브는 산발적이고, 난잡하다. 나아가 같은 스테이지를 강제적으로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게이머는 <사이렌>을 즐기기 위해 타인의 공략을 참조하거나 스토리가 정리된 글 또는 영상을 보는 등의 행위를 통해 메타적 실천을 행한다. 이 사이클이야말로 <사이렌>이 제시하는 부정적 감정 경험으로서 놀이이다. 물론 이는 모든 게이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수수께끼와 같은 구조에서 파고드는 재미를 느끼거나, 게임이 제시하는 불편함조차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플레이 요소로 여겨질 수도 있다. 또 놓쳐서는 안 될 지점은 <사이렌>이 제공하는 불쾌한 게임 경험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놀이는 아니라는 점이다. 서튼 스미스나 헨릭스가 말하듯이, 놀이는 모든 감정 경험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특정한 놀이는 긍정적 감정 추구가 아닌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생존하는 놀이로 존재해왔다(Henricks, 2015a). 그러나 본고는 우리가 이 게임에 대해서 왜 어렵다고 느끼고, 또 남겨진 평가에서 왜 자신의 불쾌했던 경험을 표출하는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해석을 덧붙여보고자 했다. 비단 이러한 놀이 양상은 <사이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이렌>을 살펴보고자 했던 출발점은 세간의 평가에 녹아 있는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단상이었다. [10] 이 측면에서 여러 게임에 대한 평가를 찾아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순수하게 특정 게임의 안티로서 비난하는 글들이나 코멘트를 제외하고도, 게이머들은 종종 부정적이었던 게임 경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특정 게임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순간의 분노나 불쾌감의 표현을 위해 표출하면서도 ‘그래서 재미없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무용담처럼 ‘난 이런 점이 어려웠고, 되게 힘들고, 그거 때문에 불쾌했지만, 이젠 클리어했지.’와 같은 발언들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들의 의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러 불특정 다수와 이를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상호간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교환해 나간다. 게이머들은 플레이 당시 부정적이었던 자신의 게임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그 경험을 게시글이나 코멘트, 영상으로 남기고, 이 속에서 플레이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창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필자는 지금 이 현상에 대해 관찰하고 있고, 여러 아이디어를 정리해보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 글 또한 그 과정 중 하나다. 아직은 엄밀하게 ‘부정적 게임 경험’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여러 이론적 자원을 바탕으로 이러한 현상을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제언해 보며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Calleja, G. (2022). Unboxed: Board game experience and design. The MIT Press. Henricks, T. S. (2015a). Play as experience. American Journal of Play, 8(1), 18-49. Henricks, T. S. (2015b). Play and the Human Condition.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Sutton‐Smith, B. (2008). Play Theory: A Personal Journey and New Thoughts. American Journal of Play, 1, 80-123. 참고자료 SCEジャパンスタジオ. (2003). サイレン(SIREN). [Game]. 東京, SONY. [1] 네이버 지식인과 같은 형태의 야후 재팬 질문 사이트이다. [2] https://detail.chiebukuro.yahoo.co.jp/qa/question_detail/q1011257965 [3] https://tamane-pearl-survive.com/%E5%90%8D%E4%BD%9C%E3%83%9B%E3%83%A9%E3%83%BC%E3%82%B2%E3%83%BC%E3%83%A0%E3%80%8Csiren%E3%80%8D%E3%81%AF%E4%BD%95%E3%81%8C%E9%9B%A3%E3%81%97%E3%81%84%E3%81%AE%E3%81%8B%E8%A7%A3%E8%AA%AC/ [4] https://bbs.ruliweb.com/best/board/300143/read/62209319?m=humor&t=now [5] 여기서 ‘환시’라는 적의 시야를 하이재킹하는 시스템이 사용된다. 이 시스템 또한 <사이렌>의 매우 독특한 시스템이지만, 이번 분석에서 환시는 <사이렌>이 의도하는 플레이에서 어려움을 가미해주는 조미료에 가까웠다. [6] http://kremnant.html.xdomain.jp/siren/siren-character.html [7] https://niwaka-games.com/2018/05/15/2466/ [8] https://blog.naver.com/gamedonga/223752058889 [9] https://nakadararirurero.wixsite.com/lemuria-sirenda [10] 물론 그 이후 필자는 직접 게임을 해보면서 납득할 수 있는 지점과 그러한 점들이 모여 이 게임을 계속해서 플레이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Tags: 게임디자인, 난이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손민정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Read More 버튼 읽기 [논문세미나] 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 세계 각국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눌 때,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먼 나라다. 아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막상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찾고자 결심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많은 정보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급성장하는 아랍의 게임시장이 가진 매력적인 자본과 가능성에 전 세계의 게임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도 포함이다. 버튼 읽기 피카츄는 나와 함께 잠드는 것이 기대되는 모양입니다....-<포켓몬 GO>와 <포켓몬 슬립>의 현실 침투 작전 왜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조합으로 우리의 수면 습관을 관리하고 싶어 하며, 왜 이 수면 측정 앱은 흥행에 성공했는가? 버튼 읽기 [공모전]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 미쿠’를 중심으로 ‘엄지족’이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2000년대 폭발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이 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을 때였다. 엄지를 이용해 스마트폰의 화면을 누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을 일컬어 ‘엄지족’이라 불렀다. M으로 시작하는 것에 착안해 이들 세대를 모바일 세대, M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모두가 ‘엄지족’이자 모바일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 [북리뷰]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중요한가?
이 책은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게이머, 게임 캐릭터, 게임 산업 관련 종사자 앞에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과 불편함,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순히 ‘이런 사례가 있고 그래서 나쁘다’는 식의 단편적인 나열이 아니라 앞서 밝힌 문제들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연 지금까지 여성을 위한, 여성을 그린, 여성에 의한 게임이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 Back [북리뷰]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중요한가? 13 GG Vol. 23. 8. 10. 이 책은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게이머, 게임 캐릭터, 게임 산업 관련 종사자 앞에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과 불편함,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순히 ‘이런 사례가 있고 그래서 나쁘다’는 식의 단편적인 나열이 아니라 앞서 밝힌 문제들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연 지금까지 여성을 위한, 여성을 그린, 여성에 의한 게임이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게임하는 여성’, ‘게임 속 여성’, ‘게임을 만드는 여성’ 들은 게임과 관련된 다 영역에서 눈에 띄는 양적 증가세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접근하기 위해 BJ갓건배와 클러저스 사건, 여성 게이머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으로 시작한 ‘혜지’부터 게임 커뮤니티에 만연한 트롤링 문제, 게구리 선수의 실력 인증 논쟁, 게이머게이트 등 이 사회를 시끄럽게 뒤흔든 게임과 관련된 사건들을 사례로 들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건들이 단순히 게임을 매개로 한 성별 간의 갈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그들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초대받지 않은 침입자’ 이 책에서는 여성 게이머들에 대한 이야기를 메건 콘디스의 연구를 중심으로 ‘섹시한 보조’, ‘어리바리한 초보’, ‘게임 덕후인 척하는 거짓말쟁이’라는 세 가지 타입으로 분류하여 다루고 있다. 여성 게이머들은 이러한 전형적 이미지로 인해 게임 내에서 주로 ‘보조’일 (간주할) 뿐이다. 또한 진정한 게임을 즐기기 보다는 캐주얼 게임과 같은 ‘가짜 게임’을 주로 플레이하는 존재로, 종종 게임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최상위급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게임을 능숙하게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는 과도한 동경과 추앙의 대상으로 포장되기도 하며 (‘여왕벌’), ‘그럴 수가 없다. 분명 무엇인가 꼼수를 사용했을 것이다.’라는 시선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여성 게이머들은 자신을 감추거나 ‘진짜 게이머’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여성 게이머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증명하고 인증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여성 게이머들이 자신들을 위한 영역이 아닌 곳에 불쑥 들어온 ‘초대받지 않은 침입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텔레비전의 광고에서 조차 이러한 이미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이 책에서는 게임 이용 조사 결과나 자료 등을 바탕으로 실제로 여성 게이머의 비율은 남성과 큰 차이가 없다는 재미있는 통계를 제시한다. 더불어 ‘진짜’ 게임이 아니라고 폄하되는 캐주얼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더 많으며 이와 같은 경향은 성별과 연령에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여성 게이머에 대한 시선이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들은 ‘초대받지 않은 침입자’라는 라벨링으로 인해 여성 프로 게이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미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성별에 따른 능력 및 실력 차이에 대한 견고한 신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성 게이머가 남성 게이머에 비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이는 게임을 논의할 때 기존의 신체적 혹은 물리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특정 성 역할에 대한 편견과 인식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은 다수가 아닌 소수의 게이머들(혹은 소수로 폄하되고 있는 게이머들)에 대한 편견이 우리 사회 전반에 여전히 존재하기에, 이러한 편견과 차별 어린 시선이 여성 게이머들의 게임 즐기기와 경험을 어떤 식으로 방해하고 있으며 게임 커뮤니티 형성에 어떠한 걸림돌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진짜 게임’도 아니다-‘진짜’를 찾아라. 여성 게이머들은 종종 게임 커뮤니티에서 ‘진짜 게이머’가 아니라는 편견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은 앞서 살펴보았다. 저자들이 밝힌 바와 같이 남성 게이머들이 주로 플레이한다고 알려진 하드코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열정적이고 진정한 게이머로서 인식되며, 여성 게이머들이 관심을 가지고 즐기는 것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대해졌다. 여성 게이머들은 주로 ‘진짜 게임’이 아닌 ‘가짜 게임’을 좋아한다는 인식과 ‘진짜 게임’ 혹은 ‘진짜 게이머’에 대한 신념은 현재 우리의 게임 문화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저자들은 하드코어-캐주얼 게임이 명확히 정의된 것이 아니라는 예스파 율의 지적을 인용하며 “하드코어- 캐주얼 구분은 애초부터 명확하게 고정된 것도 아니지만, 현실에서의 반복적 용어 사용은 어느새 이 구분을 남성적-여성적 구조로 전이시켰다.”(71쪽) 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의 ‘진짜-가짜’, ‘남성-여성’과 같이 단순하게 이분화한 논쟁은 무의미하다고도 주장한다. 오히려 여성 게이머의 증가와 같은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게임도 게이머도 다양화되고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이 책에서 그리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진짜 게임’, ‘가짜 게임’을 논의하기에 앞서 ‘총을 쏠 수 있는지’를 묻는 불편한 환경 속에서 ‘진짜’ 게임을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장르와 플레이 스타일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그 세계의 주류를 구성하고 있더라도 잘못된 관념이라면 언젠가는 깨고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재현하는가. 이 책에서는 게임 속 여성 캐릭터에 대한 잘못된 재현 방식과 편파적인 역할 배분, 그리고 라라 크로프트의 재현을 둘러싼 계속되었던 논쟁을 들어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여성 캐릭터 재현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 중 하나로 게임에서는 때때로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는 캐릭터가 등장하며 남녀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초기의 픽셀 중심 그래픽과 비교하여 게임 그래픽 영역에서는 기술적으로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져 왔으며, 게임 캐릭터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도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기존과는 다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분명히 주목할 만한 새로운 흐름이다. 그런데도 이 책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여전히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은 쉽게 성적 대상화가 되거나 폭력, 착취를 받는 형태로 재현되곤 한다. 특히 저자들은 무분별한 재현의 양적 증가는 오히려 기존의 잘못된 고정적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성 재현 문제는 게임이 가지는 플레이라는 상호작용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 재현 이상의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는 저자들이 설명한 것과 같이 “게임의 메카닉적인 요소와도 깊은 관련을 맺는다는 점”(132쪽) 을 인지해야 하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바로 지금’, 주의 깊게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게임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다양한 상호작용을 만들고 그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데에 중요한 미디어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장난 파이프라인’이 아니다. 저자들은 게임 산업에서의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 핵심적인 업무와는 관련이 적은 일을 하는 이들로 인식되고 있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 게이머들 혹은 게임 내에 재현되는 여성 캐릭터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성 게임 개발자들이 경험하는 차별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여성 게임 노동자들이 커리어를 이어 나가기 위해 겪는 어려움을 ‘고장 난 파이프라인’으로 비유하여, 이러한 문제들이 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들은 “성평등 의식이 높다고 평가받는 스웨덴에서조차 여성 게임 제작 노동자의 능력이 과소평가된다는 비판과 반성이 있었다. “게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와 “여성은 진짜 게이머가 될 수 없다.”는 믿음이 결합해 남성 중심의 노동 문화를 형성했다는 것이다.”(211쪽)라는 설명을 통해 게임 산업 전체에 퍼져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 능력에 대한 불신, 선입견 등의 문제들은 전 세계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게임 산업 여성 노동자들과 관련된 사례들은 분명 게임 업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특정 성별의 노동자들이 다수인 직업군에서도 그와 비슷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게임 산업 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고찰을 함께 담으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노력이 게임 산업에 만연한 불평등과 편견을 조금씩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게임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게이머는 총을 쏴야만 하는가?-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 게임 나라로 오세요.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 책의 타이틀이자 저자들의 중요한 고찰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게임은 아이들을 ‘게임뇌’로 만들며 중독시키는 유치하고 저급한 문화로 여겨져 왔다. 또한 전자 오락실, PC방으로 대표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소도 젊은 세대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유해한 기피의 대상이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이 책의 주요 대상인 ‘게임하는 여성’, ‘게임 속 여성’, ‘게임을 만드는 여성’들을 향한 차별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있다. 저자들은 약 290쪽에 걸쳐 이러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해체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여성 게이머, 여성 캐릭터, 여성 게임 산업 노동자와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분석함으로써 지금까지 비주류로 소외되었던 이들을 포함하여 "즐거운 게임을 모두가 즐겁게 하기 위한"(280쪽)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는 게임 문화 형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고자 한다. 상식적이지 않은 차별과 편견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당연시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의문과 논의가 게임 문화의 포용성을 높이며 게임 산업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저자들이 “게임이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일상적 여가·오락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미 도래했거나.”(269쪽)라고 언급한 것처럼 게임은 이제 더 이상 특정 성별이나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진짜 게이머’와 ‘가짜 게이머’에 대한 논쟁 역시 게임 문화 속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과도기적인 현상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진정한 게이머’, ‘진짜’의 기준을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나 애정의 정도로 증명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처럼 생각된다. ‘진짜’를 위해 혹은 ‘가짜’라는 비난을 피하려고 방아쇠를 당기거나 칼을 휘둘러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이 ‘진짜’ 게임인지, 게임에 대한 본인의 애정이 ‘찐’인지 아닌지를 물건의 진위를 감정받는 것처럼 증명할 필요는 없다. 여성 게이머라고 해서 특정 장르의 게임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총을 쏘는 것을 즐기는 게이머가 있다면 수집하고 레시피를 조합하여 음료를 만들거나 상자에서 꺼낸 물건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행위를 무한반복 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들을 누가 ‘진짜’ 게이머가 아니라고 그들이 플레이하는 것이 ‘진짜 게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이들이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이를 반영한 각기 다른 장르와 주제, 캐릭터를 다루는 게임을 접함으로써 비선형적인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게임 문화를 위해 나아갈 시기라고 이 책은 우리 사회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가 총을 쏠 수 있지만 모두가 쏠 필요는 없으며 굳이 쏠 수 있는지 혹은 잘 쏘는지에 대한 증명이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환경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더는 강요하고 차별하는 사회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는『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는 당장 완전한 해결책을 제안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게임 문화를 위한 논의의 출발점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의를 가진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리츠메이칸대학 기누가사 종합 연구 기구 전문 연구원) 신주형 주로 시리어스 게임과 시리어스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소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리츠메이칸대학 게임 연구 센터 (RCGS)의 게임 아카이빙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 B급 게임이란 무엇인가
게임과 B급이 여러 차원에서 연결돼 왔기에, 둘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분명한 것은, 게임에서 ‘B급’이라 불리는 것들 역시 (그렇지 않은 것들 못지않게)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가며 게임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게임과 B급에 대한 논의는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감이 있다. 이 글에서는 앞서 말한 연결지점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지점을 중심으로 게임+B급에 대해 논의하도록 한다. B급 정서나 코드가 게임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그것을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핌으로써, 게임에서의 B급, B급 게임, B급 게임문화 등이 게임문화 전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한다. < Back B급 게임이란 무엇인가 05 GG Vol. 22. 4. 10. 주류 대중문화의 주변부에서 꽃을 피우는 문화가 있다. 이 문화는 기존 대중문화에 반기를 들기도 하고 재/구성하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위상을 만들어간다. ‘B급’ 문화 이야기다. B급 문화의 시초는 B급 영화였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제작여건이 나빠지자 할리우드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저예산 영화를 만들어 메이저 영화와 끼워팔기+동시상영 전략을 구사했다. 관객들은 졸지에 A급이 된 메이저 영화와, 저예산 B급 영화를 한 편의 가격으로 볼 수 있었다. 이후 1940년대 말부터 독립영화제작사들이 출현하면서 B급 영화의 의미는 메이저 영화가 표현하지 못하는 자유로우면서도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정신을 뜻하는 의미로 변화해갔다. 탈장르화·탈문법화와 함께 B급 영화가 적극 활용한 방법론 혹은 기법은 키치(kitsch), 패스티시(pastiche), 패러디(parody), 오마주(hommage) 등이었다(조주영·안숭범, 2015). 그리고 이제 B급은 그 대상이 영화에만 한정되지 않는 데다, 비주류 정서나 코드를 통한 자극적 유희성을 추구하는 창작물의 의미까지 넓게 포함한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B급이란 무엇일까? 다른 대중문화 장르에서도 대체로 그렇겠지만, 게임과 B급은 여러 차원에서 연결돼 왔다. 그 연결지점을 구분하면 다음 정도겠다. 첫째, 예술은 말할 것도 없고, 대중문화 장르 사이에서도 게임은 B급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주류가 될 수 없는 B급 대중문화물 중 대표적인 것이 게임이었다. 둘째, 수준 미달의 게임을 B급 게임으로 부르기도 한다. 셋째 그리고 가장 일반적으로, 영화나 다른 대중문화 장르를 통해 구축된 B급 정서나 코드를 활용한 게임을 일컬을 때 사용된다. 넷째, 소수에 의한 열광적인 수용문화와도 관련된다. B급 문화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추종자들이 나타나고, 그들에 의해 작품이 끊임없이 재/해독되어야 한다. 작품에 내재한 의미들이 드러나고, 일견 가볍고 유치한 것이 수용자들의 굉장히 적극적인 해독행위와 만나 진지하게 읽혀질 때 비로소 B급 문화가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게임과 B급이 여러 차원에서 연결돼 왔기에, 둘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분명한 것은, 게임에서 ‘B급’이라 불리는 것들 역시 (그렇지 않은 것들 못지않게)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가며 게임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게임과 B급에 대한 논의는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감이 있다. 이 글에서는 앞서 말한 연결지점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지점을 중심으로 게임+B급에 대해 논의하도록 한다. B급 정서나 코드가 게임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그것을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핌으로써, 게임에서의 B급, B급 게임, B급 게임문화 등이 게임문화 전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한다. B급 게임은 무엇을 담는가 B급 게임도 다른 B급 문화장르처럼 비교적 저예산으로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비주류 콘텐츠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자유분방하고 오락적·자극적인 스타일을 지닌다. 게임 속 이야기 전개가 (있는 경우) 탈개연적·비약적이고, 느슨하거나 비논리적임은 물론이다. 상호텍스트적(intertextual) 방법론의 활용도 B급 게임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우스꽝스럽거나 진지하지 않은 그림체와 여타 그래픽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물론 최근에 와서는 이러한 B급의 공식들도 조금씩 바뀌기는 하는 듯하다. 가령 B급 게임도 이제는 얼마든지 메이저 게임에 비견되는 예산과 기간을 필요로 할 수 있다. 그리고 B급의 스타일이나 방법론은 이제 꼭 B급이 아닌 게임에서도 빈번히 발견된다. B급 게임을 규정하는 데에는 시대적 맥락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높은 완성도와 전작의 인기로 후속작이 출시될 때마다 세간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바이오하자드(Biohazard)〉 시리즈지만, 처음부터 〈바이오하자드〉가 지금과 같은 위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6년 캡콤이 출시한 첫 〈바이오하자드〉는 크게 기대하는 타이틀이 아니어서 소량만 출시됐다. 출시 직후 화제가 됐던 것은 충격적인 오프닝 영상이었는데, 제작비 문제로 무명배우를 기용해 찍었던 오프닝 영상은 B급 호러물의 느낌을 보여주었다. 어지간한 슬래셔물을 능가하는 잔인한 장면들은 사회적으로도 논란을 야기했다. 가정용 비디오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에 그렇게까지 잔인한 장면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당시 시대관념에 비춰봤을 때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문의식, 2015. 1. 16). B급을 B급이게 만드는 요건들이 느슨해지거나 그 경계가 희미해지거나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B급 게임은 존재한다.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라는 게임 시리즈가 있다. 주인공은 하루 종일 게임만 한다. 그러다 엄마에게 걸린다. 엄마는 게임기를 숨기고, 주인공은 한 스테이지 스테이지 갖은 방법을 동원해 게임기를 찾는다. 설정만 봤을 때는 그냥 조금 우스꽝스런 게임인 듯하지만, 게임기를 찾는 기상천외한 방식(옷장 앞을 막고 있는 축구선수?를 따돌리면 게임기가 등장한다거나), 당황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게임오버 씬(주인공이 “마마, 칙쇼!!”라고 외친다거나...), 그리고 다양한 사물들의 맥락 없는 배치(게임 〈고양이 장애물〉의 생선 등), 그럼에도 지나치게 맑은 색감과 깔끔한 그림체는 묘하게 부조화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플레이어들을 긴장케 만든다. B급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비주류 취향 게임들이 모여 B급 장르화되는 경우가 있다. 설정·연출·전개 등이 비상식적이고 약을 빤 듯한 분위기를 내는 ‘바카게(バカゲー)’가 대표적이다. 바카게는 바보, 멍청이, 무능하다는 뜻의 ‘바카(バカ)’와 게임의 줄임말인 ‘게(ゲー)’의 합성어이며,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병맛겜’ 정도가 될 듯하다. B급 장르로 ‘슈르게(シュールゲー)’도 빼놓을 수 없다. ‘슈르(シュール)’는 초현실주의(surréalisme)의 일본어 발음인 슈루레아리스무(シュルレアリスム)에서 앞 자만 따온 말이다. 슈르게는 말 그대로 초현실적 게임, 즉 기괴하거나 난잡한 그래픽, 이상한 외모나 성격의 캐릭터,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만이 아니라 현실을 가장한 비현실적 상황 등을 주된 요소로 삼는 게임류를 가리킨다. 당연하게도, 바카게나 슈르게가 게임성을 포함하는 개념은 아니다. 둘에는 게임성이 우수한 게임과 그렇지 못한 게임이 모두 포함되며(물론, ‘우수한 게임성’에 대한 기준도 수렴되지는 않을 테지만), 마니아층의 지지를 얻는 것이 일반적이나 바카게/슈르게적 요소가 적당한 수준이라면 그 게임은 대중적으로 폭넓게 사랑받기도 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B급 게임을 만드는 데 특화된 게임사들도 있다. 1970년대 설립돼 2000년대 초반까지 〈트리오 더 펀치(トリオ・ザ・パンチ, 1989)〉와 같은 게임을 만들었던 일본의 데이터 이스트(Data East)사, 〈어스 디펜스 포스: 아이언 레인(Earth Depense Force: Iron Rain, 2019)〉의 D3 퍼블리셔(D3 Publisher), 그리고 미소년/녀 게임을 주로 만들어 온 FURYU 등이 예다. (B급 장르화와 마찬가지로) B급 게임 제작에 특화됐다 해서, 이러한 게임사들을 이상한 게임이나 만드는 B급 메이커 취급을 해선 안 된다. 콘셉트나 스타일이 다소 독특하고 괴상할 뿐, 게임성까지 후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들이 B급 게임만 만든 것도 아니었다. 데이터이스트의 〈미드나잇 레지스탕스(Midnight Resistance, 1989)〉, 〈나이트 슬래셔즈(Night Slashers, 1993)〉 같은 게임들은 오락실 플레이어들에게 뜨겁게 사랑받은 명작들이다. 하지만 이제 게임 개발비용의 점증과 출시게임의 대형화로 인해 점점 B급 게임사나 장르들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모바일게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모바일게임의 양적·질적 수준도 높아져, B급 게임들이 다른 모바일게임들 사이에서도 경쟁을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모바일게임에서 일어나는) 방치형 플레이 방식의 보편화 역시 플레이에 있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B급 게임들에 긍정적이지 못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것이 B급 게임과 상호배타적 개념이 아님에도,) 인디게임까지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외적 환경 속에서 내부적으로도 B급 게임사나 장르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새로운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어, B급 게임들이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설상가상과 악화일로라고 할 수 있다. B급 게임은 어떻게 수용되나 B급 게임은 특유의 정서와 코드를 통해 플레이어를 게임의 안과 밖에 보다 강력하게 가둔다. 일본에서 유행했던 코나미(Konami Holdings Corporation) 〈러브플러스(Love plus)〉 시리즈의 플레이 문화를 살펴보자. 〈러브플러스〉의 후속작 〈러브플러스+〉(닌텐도 3DS용)와 〈러브플러스i〉(아이팟 터치·아이폰·아이패드용)는 가상의 애인과 추억을 쌓아나가는 증강현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게임 속에서 시간도 흘러가고, 카메라를 통해 플레이어를 캐릭터가 인식하고 불러주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캐릭터들의 복장도 변하고, 매시간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도 다르다. 캐릭터들이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모닝콜도 해준다. 때로는 플레이어와 함께 1박 2일 여행을 가기도 한다. 때문에 계절과 시간에 따라 데이트 코스를 치밀하게 짜야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터치 기능을 이용한 스킨십도 가능하다. 때로는 게임기 마이크에 대고 특정 대사를 입력해야 게임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꽤 리얼하게 가상세계 속의 캐릭터와 연애를 해나가게끔 만든 게임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 게임이 플레이어들에 의해 단순히 집에서만 플레이되는 수준을 넘어, 플레이어들을 집 바깥으로 나서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러브플러스〉 시리즈는 이를테면 〈포켓몬 고〉처럼 위치기반 서비스 요소가 강한 것도 아니고, 게임을 하기 위해 반드시 현실의 다양한 공간을 돌아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일본의 특정 지역에서 특정 캐릭터가 등장하는 콘텐츠가 있기는 했지만, 오로지 이러한 부분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현실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현실에서 가상의 여자친구와 당당하게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한 발 나아가 특별한 데이트를 위해 현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도 등장했다. 이러한 〈러브플러스〉 시리즈의 독특한 플레이 문화는 일본에 한정돼서 일어난 현상이기에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동안 플레이어를 집에 틀어박히게 하는 것으로나 여겨져 왔던 게임이 오히려 플레이어를 자발적으로 집 밖에 나서게 했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갖는다(강신규, 2020). 다른 한 편으로 플레이어들이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 게임을 주체적으로 이용함으로써 B급 문화를 형성할 수도 있다. 대표사례가 ‘모드(MOD: modification)’다. 모드란 기존에 출시된 게임의 내부 데이터를 플레이어가 수정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행위를 말한다. 모드를 통해 플레이어는 B급과는 상관없던 콘텐츠에 B급 정서와 코드를 불러들일 수 있다. 이를테면 VR(virtual reality) 게임인 〈로보 리콜(Robo Recall)〉은, 모드 킷을 공개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직접 게임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어떤 플레이어가 만든 ‘트럼프 리콜’ 모드는 적의 얼굴을 모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으로 바꿔 플레이어로 하여금 트럼프들과 싸우게 만든다. 물리쳐도 물리쳐도 좀비처럼 끝없이 트럼프가 나타나 플레이어에게 달겨드는 식이다( www.roborecallmods.com ). 이러한 모드는 현실세계의 적을 가상세계로 불러옴으로써 게임의 문법을 바꿀 뿐 아니라, 단순한 소비자-수용자를 넘어 적극적인 의미의 생산자-행위자-창작자의 위치로 플레이어를 불러들인다(박근서, 2009). B급의 요건들이 어느 정도는 존재함에도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개인에 따라 그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어 논란이 야기되는 경우도 있다. 2021년 10월 반지하게임즈의 〈어몽 오징어게임〉을 둘러싼 논란은 하나의 예다. 〈어몽 오징어게임〉은 제목 그대로 게임 〈어몽어스〉의 임포스터 룰을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적용한 게임이다. 2021년을 강타한 두 게임(어몽어스+오징어게임)을 패러디하고 오마주해, B급 감성을 담은 독창적인 게임으로 재창조하자는 것이 제작사 반지하게임즈의 의도였다. 하지만 기성 콘텐츠의 인기에 편승해 인디 정신을 잃었다는 비판과, 원작을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패러디·오마주한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플레이어들의 옹호를 동시에 받으며 논란이 됐다(김재석, 2021. 10. 13). 창작자/사가 B급을 의도해 기획·제작한 게임이라 해도, 그것이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수 있다. 〈어몽 오징어게임〉 논란은 이미 B급 콘텐츠임이 전제된 후 그것이 수용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전 단계인 B급이냐 아니냐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독특한 사례라 하겠다. 이처럼 B급 게임이 수용되는 맥락은 고정적이지 않으며, 복합적이다. 더 많은 B급 게임들을 위하여 이제 (꼭 게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대중문화 장르에서) B급은 일종의 상업적 코드로 각광받으면서 그 위상을 확대해가고 있다. 제작규모나 기간, 거대 게임사, 유명 창작자 유무로 B급을 판단하는 시선은 수명을 다했다. 평균 제작비를 훨씬 웃도는 자본이 투여된, 거대 게임사의 유명 창작자가 만든 게임들도 B급 정서나 코드를 빈번하게 활용한다. 그러다보니 자유분방한 실험이나 탈구속적인 전복을 기도하는 B급 게임이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B급 게임과 관련된 가장 큰 변화는, B급의 보편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어떻게든 B급임을 드러내는 게임들도 많지만, B급을 완전히 제거한 게임도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게임에 B급 정서가 은밀히 숨어 있거나, 의도와 다르게 만들어지기도 하며, 플레이어의 경험이나 욕망과 마주침으로써 B급이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하지만 B급의 보편화는 B급 게임을 사라지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A급 게임의 한 재미요소 정도로 B급이 게임에 녹아드는 것보다는, B급 정서와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B급 게임 자체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창의적인 콘텐츠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콘텐츠는 더 많다. 상업적으로든 비상업적으로든 성공하는 콘텐츠가 나오면 유사한 콘텐츠로의 쏠림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콘텐츠의 창의성과 다양성은 유지되기 어렵다. 이는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독보적 위상을 갖는 마이너 리그가 존재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런 식으로 거의 모든 대중문화 분야에서 특정의 소수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성일권, 2015. 5. 21.). 게임도 전반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인디게임이나 저예산 게임이 제작되고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국내·외에서 그러한 게임들을 위한 플랫폼이 생겨 전세계 플레이어들에게 다가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메인스트림 게임들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게임문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자산은, 다양한 장에서 기획되고 창작되는 수많은 무명의 게임들일 터다. B급 게임은 그 대표주자로서 더 많이 기획되고 만들어지고 플레이돼야 한다. 참고문헌 김재석 (2021. 10. 13). [해설] 오징어게임 카피 게임, 어떻게 볼 것인가? 〈디스이즈게임〉. URL: https://www.thisisgame.com/webzine/special/nboard/11/?n=134570 조주영·안숭범 (2015). 한국 B급 영화 정체성 탐색을 위한 비평장 고찰: 전통적인 미국 B movie 개념과의 비교를 통해. 〈인문콘텐츠〉, 37, 45~71쪽. 문의식 (2015. 1. 16). B급 호러로 시작해 블록버스터 대명사로, 바이오하자드. 〈게임어바웃〉. URL: http://www.gameabout.com/news/articleView.html?idxno=34724 박근서 (2009). 〈게임하기〉. 커뮤니케이션북스. 성일권 (2015. 5. 21). [나쁜 장르의 B급 문화] 왜 B급 문화인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URL: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588 〈로보리콜〉 모드 (www.roborecallmods.com)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개발자는 자기 자신을 향해 끝없이 질문해야 한다” - 죄책감 3부작의 개발자 somi 인터뷰
세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죄책감을 느슨한 연결로 풀어낸 SOMI의 ‘죄책감 3부작’이 막을 내렸다. 전의 두 작품이 세상 밖으로 닿는 길을 터주었다면, 2020년 신작 <더 웨이크>는 한 개인의 과거와 깊은 내면으로 안내한다. 암호를 해독하며 엔딩에 이르렀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가장 개인적인 삶은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 Back “개발자는 자기 자신을 향해 끝없이 질문해야 한다” - 죄책감 3부작의 개발자 somi 인터뷰 01 GG Vol. 21. 6. 10. 세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죄책감을 느슨한 연결로 풀어낸 SOMI의 ‘죄책감 3부작’이 막을 내렸다. 전의 두 작품이 세상 밖으로 닿는 길을 터주었다면, 2020년 신작 <더 웨이크>는 한 개인의 과거와 깊은 내면으로 안내한다. 암호를 해독하며 엔딩에 이르렀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가장 개인적인 삶은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더 웨이크>로 ‘죄책감 3부작’이 완성되었다 두 번째인 <리갈던전>까지 만든 뒤 내 게임이 ‘죄책감’에서 기인한다는 걸 느꼈다. 사회적 부조리와 구조적 불평등,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방관자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더 웨이크>는 개인적이고 근원적인 죄책감의 발원지를 찾으면서 시작되었다. 사진과 영상이 풍부해 게임에 더 몰입했다 영상과 사진 모두 내 앨범에서 가져왔다. 영상도 어렸을 때 삼촌이 홈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주신 걸 컴퓨터 파일로 변환해서 넣었다. 일상 그대로를 담아선지 제작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더라. 플레이 하는 사람들이 게임 속 아버지를 욕할 때마다 우리 아빤데 저런 식으로 욕을 먹네 싶어서 기분이 묘하다. (웃음) 사람들의 반응은 확인했는지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부모와의 연대에 대한 회고 형식의 글을 리뷰로 남겨주시는 분이 많아서 놀랐다. 감동을 받기도 했다. 이 게임이 지난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싶더라. 게임은 ‘만드는 사람을 비추는 창’ 직업이 있는 상태에서 게임 개발을 시작했다 결심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게임에 얽힌 추억이 궁금하다 초등학교 입학 전 한국에 ‘재믹스’라는 게임기가 막 들어왔을 때 아버지께서 그걸 사오셨다. 동네 꼬맹이들이 모두 다 우리 집 앞으로 모여서 ‘갤러그’를 했고 가끔씩은 아버지, 어머니, 형, 나까지 네 식구가 함께 모여 ‘로드 러너’를 했다. 플레이어가 죽고 뜨는 정지 화면을 앞에 두고 온 식구가 어떻게 해야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지 궁리했다. 게임 광고 화면에 쓰일 법한 아름다운 모습이지 않은가. 이 기억 덕분에 게임에 애착을 느끼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메시지와 재미를 둘 다 잡는 데 성공한 개발자다 어떻게 하면 메시지를 부각하면서도 재미를 잡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게임의 ‘재미’란 뭘까? 혹자는 ‘재미’가 원시적인 말이라더라. 사람마다 기준도 다르고 의미도 포괄적이다.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을 목표로 삼다 보면 유행을 따르게 된다. 그래서 게임에 어떤 세계를 담을지 고민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자적인 세계관과 서사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에게 인격을 부여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는 세계를 만드는 사람과 그의 생각을 닮게 된다. 그러니 개발자는 자신에 대해 더 많이 묻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나 유년기 이후로는 게임에 대한 기억이 없다. 친구들 다 스타크래프트 하던 학창시절에도 공부만 했다. 게임 개발을 위해서 다시 게임을 접했다. 게임 개발에 뛰어든 이유는 고등학생 땐 만화를 그렸고 대학생 때는 신춘문예 등단의 꿈을 갖고 소설을 썼다. 항상 내 창작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그러다 아이폰이 처음 들어왔을 때 앱스토어에 개인이 창작물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듣고 이야기가 들어가는 앱을 제작해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 아예 게임을 만들어볼까 생각이 들어 3개월 동안 무작정 게임을 받아 보고 나름의 게임 공부를 해서 <레츠놈>을 만들었다. 창작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역량이 다르다는 걸 느꼈을 것 같다 게임 개발자에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어떤 특징이 장점이 될 지 단점이 될 지는 알 수 없다. 개발 초반엔 내 게임 경험이 부족해 기존 게임 문법을 모르는 게 단점이 될 줄 알았는데 그런 접근법을 신선하게 여기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더라. 그럼 본인의 장점을 꼽자면 한 분야에서 출중한 재능을 가지지는 못 했지만 작은 요소들의 조화를 이룰 줄 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해서 대학교 때는 그래픽 디자인을 했다. 디자인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내가 도맡아 했다. 문학적인 경험도 있고. 이렇게 여러 분야를 소화해 보고 작은 요소들을 접목할 줄 알았던 점이 게임이라는 특이한 장르에서 도움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야기로서 게임 크레딧을 보면 항상 책이 등장한다 각 게임마다 어떤 책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듣고 싶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세상엔 귀한 작품이 많다. 게임 개발을 할 때도 다 끝내고 읽을 책을 리스트로 만들어둘 정도다. <레플리카>를 처음 완성했을 때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있는 리플리>라는 소설을 기반으로 했다. 그러다 2016년 국정농단이 한창일 때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서 한 국회의원분께서 코리 닥터로의 장편소설 <리틀 브라더>를 언급하시는 걸 듣게 되었다. 소설을 읽고 대한민국의 참혹한 현실과 대비되어 고민이 많아져서 원작 작가 분께 허락을 구하고 플롯을 가져왔다. <더 웨이크>를 제작할 땐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서적을 모아 읽고 있었다. 그때 엘리슨 백델의 그래픽노블 <펀 홈>을 접했다. 작가가 가족의 죽음을 중심으로 자아를 통찰한다는 데서 감화되어 기본 구성을 가져오게 되었다. 게임을 이끌어가는 암호 기계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사용한 ‘에니그마’를 차용했다. 이 또한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의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을 읽다가 찾은 소재다. 주제의식이 뚜렷한 편이다 기억나는 사람들 반응은 <레플리카> 출시 초기에는 빨갱이 소리와 함께 ‘북한에서 만든 게임 아니냐’는 반응이 제법 있었다. 특이했던 반응은 …해외에서 전직 CIA 요원을 하셨던 분이 추천글을 써 주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Voice Of America’란 매체에선 나를 ‘한국의 저항적 운동가’라고 표현하더라. (웃음) 정치적 내용이 포함된 게임인 만큼 어느 정도 예상한 전형적인 반응이라서 게임이 역할을 다 했다 싶었다. https://www.voanews.com/east-asia/south-korean-video-game-raises-awareness-government-surveillance 여러 포맷 중에서도 게임으로 이야기하면 무엇이 가능해질까 전엔 게임은 종합예술이라면서 게임의 상호작용성을 휘황찬란하게 설명했다. 특히 탄핵 당일 날 사람들이 축배처럼 <레플리카>를 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 게임을 통해 플레이어들이 서사에 참여해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이후에, 게임에서 주인공의 고통을 체험했을 거라 믿었던 사람들이 한 개인의 사상을 검증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레플리카>에서 정보 기관이 개인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한 검열 방식과 유사했다. 더 이상 게임의 매체적 특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게임은 단지 이야기를 담는 그릇일 뿐이다. 중요한 건 게임 안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얼마나 큰 감흥을 줄 수 있는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문화다? 한국의 정부기관이 거론하는 ‘게임은 문화다’라는 구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형 개발사들은 플레이어들이 아이템에 더 큰 금액을 소비할 수 있도록 BM(비즈니스 모델, Business model) 설계에 열을 올리며 도박과의 경계가 흐릿한 확률형 가챠 게임을 쏟아낸다. 인간의 중독 기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중독 유발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고 자랑스럽게 인터뷰 한다. 여성혐오나 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게임이 지속적으로 출시 되고 여성 캐릭터의 신체 부위를 더 현실같이 재현하는 데 최신 기술이 동원된다. 우리가 게임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문화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바보 같은 선언보단 지금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어떤 게임을 만들 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정말로 게임이 문화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문화로서의 게임, 가능할까 모두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만 보는 게 아니듯, 게임도 이야기의 힘만으로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투입된 자본의 양이나 중독성을 자극하는 요소를 떠나서 매력적인 작품은 지금도 충분히 많다. 앞으로 그런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더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킬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게임들이 국내에 많지 않은 게 문제다. 대형 자본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소규모 게임을 인디게임으로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다 인디게임 개발 당사자로서 생각은 어떤지 듣고 싶다 인디 게임은 저항 정신이다. 국가와 사회의 주류에, 유행하는 장르나 플랫폼, 서사 구조, 기믹에 저항하면 인디게임이라고 생각한다. 형식적인 부분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개발자들이 대형 퍼블리셔에 엮이는 건 그 우산 속으로 들어가야 자신의 게임을 더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1인 인디게임 개발자로서 SOMI 크레딧을 보면 항상 협업자가 있다 협업자를 어떻게 구하는지 궁금하다 어디서든 좋은 음악이나 원화, 양질의 번역을 보면 작업 의뢰 연락을 드린다. 내 소개와 포트폴리오, 협업을 원하는 작업물에 대한 소개를 보내는 거다. 이렇게 해서 서로의 작업 방식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 상태로 협업을 시작하게 되면 제작에 대한 관점을 공유할 수도 있고 서로 작업물 퀄리티를 알아서 좋은 시너지가 난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갖춘 인디게임 중 추천할 작품이 있다면 이탈리아 개발자 중 레너드 멘치아리의 '라이엇: 시빌 언레스트(RIOT: Civil Unrest,)'를 추천한다. 플레이어는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 경찰, 시위를 막는 경찰 중 누구든 선택할 수 있다. 각자 입장에서 플레이 하다 보면 시위 속 대립하는 당사자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개발자가 이탈리아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경험을 토대로 주요 국가를 돌아 다니면서 취재한 시위 현장을 게임에 녹여냈다. 그것도 사비로. (웃음) 2016년도 ‘인디 케이드(IndieCade)’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라, 그 게임의 한국판 경찰 목소리는 내가 연기했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레너드와 퍼블리셔 사이에 마찰이 있어서 레너드 버전은 모바일에서 무료로 배포되어 있으니 꼭 플레이 해보길 바란다. ‘이터널 캐슬(The Eternal Castle)’도 추천한다. 다음엔 리듬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리듬 게임은 이상향 같은 존재다. 매번 잘못된 번역 때문에 시달렸다. 그래서 <더 웨이크> 때는 아예 문학 작품을 번역하시는 분께 의뢰 드렸고 전엔 팬분들이 배포 이후 자발적으로 번역에 참여해주시기도 했다. 늘 텍스트 없는 게임을 만들고 싶지만 만약에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긴다면 마음이 또 바뀔 거다. 언제까지 게임을 만들고 싶은지 일과 게임 개발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 퇴근해서 저녁을 먹으면 딱 8시 반, 아기랑 놀고 집안일 하다 보면 11시, 12시라 하루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새벽의 한 두 시간 뿐이다. 갑자기 게임이 빵 뜨면 6개월 정도 휴직하면서 게임을 마음껏 만들고 싶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박혜정 미디어와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을 궁금해 합니다. K-POP 팬덤 연구를 하며 즐겁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 Back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03 GG Vol. 21. 12. 10.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가장 먼저 이야기 할 만한 부분은 - ‘게임’만이 아니라 - ‘플레이’에도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와 본격화되는 게임에 대한 학술적 (특히 인문사회학적) 연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게임의 특성은 ‘상호작용성’이었는데, 이는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게임’이 플레이어들의 ‘플레이’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일단 완결된 상태로 수용자들에게 제시되는 기존의 매체들과는 달리, 게임의 이와 같은 특성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는 상이한 방식으로, 그러니까 그것을 플레이하는 사람의 의도나 취향에 따라 그 경험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와 같은 (수용자의) ‘능동성’은 한동안 게임학 연구에 있어 주요 의제였으며 심지어는 ‘게임 세대론’이 등장하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게임의 역사 연구 분야에서는 ‘게임’에 한정되어 그 발전과정이 기술되어온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을 만든 개발자나 업체 또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게임들의 개발과정 등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나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의 접근은 소위 ‘능동적’이라던 게이머들은 사라지고 소수의 천재적 개발자들이 내놓은 혁신적인 게임을 그저 열심히 소비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게임 소비자들만 남게 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하이스코어〉 1편부터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개발한 니시카도 토모히로와 1980년 아타리배 전국 게임대회 챔피언 리베카 하이네먼을 병치시킨 것은, 그래서 눈여겨 볼 만하다. 게임을 만들어낸 개발자조차 불가능한 게이머들의 엄청난 플레이가 게임의 디자인만이 아니라 그 플레이 또한 뛰어난 창의성과 혁신의 산물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존의 논의에서 게이머의 능동성은 대체로 모드나 머시니마 등 플레이 너머의 (생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왔는데, 사실 게임의 ‘플레이’ 자체가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라 능동적인 창조 행위였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따른다면 플레이어들의 이와 같은 창의성이야말로 e스포츠가 발원할 수 있었던 근간이라 할 만한데, 기존 e스포츠 담론에서 이러한 측면은 소외되어온 감이 있다. 〈하이스코어〉에서 e스포츠는 메인 주제가 아니지만, 게임의 발전과정에 있어 ‘플레이’의 측면을 적극적으로 발굴함으로써 현재 산업적 측면에 치중되어있는 e스포츠 담론에서 향후 하나의 문화로서 e스포츠의 방향성을 고민할 수 있는 시사점으로 삼을 만한 지점이다. * 아타리 전국 게임대회 챔피언 출신인 리베카 하이네먼의 등장은 게임이용자라는 플레이의 또다른 한 축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깊다. 이미지: 넷플릭스 또 하나 〈하이스코어〉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다양성’이다. 게임은 전통적으로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젊은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꽤나 균질한 집단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져 왔으며, 이는 최근 몇 년간 게임계에서 PC(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균질성의 신화는 성장기 때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들이 업계에 입문하는 특성상 또래들과 게임을 즐기던 남성 청소년 중심의 하위문화적 특성이나 취향이 업계에도 고스란히 전이되면서 형성된 것인데, 게임을 플레이하는 집단이 다양해지면서 그와 같은 문화적 속성을 공유하지 않는 타 게이머들과 마찰을 겪으면서 갈등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에서 〈하이스코어〉가 게임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최초의 카트리지 교환형 콘솔 채널F의 개발자 제리 로슨을 조망한 것은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다. 채널F가 개발되었던 7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흔치 않았던 유색 인종으로서 초기 게임산업의 발전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그 오래된 신화에 균열을 가하기 때문이다. 사망한 인물이라 자세한 인터뷰를 담을 수 없었던 점은 아쉽지만 - 이미 많이 늦었다는 방증이겠다 - 채널F처럼 게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콘솔의 개발자가 이처럼 까맣게 잊혀져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 속에서 그처럼 묻혀져 있을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를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그들의 유산은 게임의 발전과정 안에 오롯이 녹아있을 것이며, 그것을 발굴해낸다면 게임의 문화적 가치와 의미는 또 얼마나 풍성해질지 가늠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 채널 F의 개발자 제리 로슨을 향한 조명은 이 다큐가 게임산업 발전사 속에서 소외되는 누군가를 잊지 않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EA의 간판 스포츠게임 〈매든 NFL〉 시리즈의 열혈팬으로서 후에 EA에 입사하여 〈매든 NFL 95〉에 사상 최초로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킨 흑인 남성 동성애자 게이머(이자 개발자) 고든 벨라미의 이야기 또한 게임 역사 내 다양성에 대한 화두를 이끌어낸다. “세상의 규칙이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을 평생 체감하며 살아가는 소수자들에게 있어 “모두에게 공평한 규칙이 적용되는” 게임의 세계란 그저 한낱 게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벨라미의 이야기는, 게임 문화 내 다양성이 지니는 중요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게임 캐릭터의 짙은 피부는 물리적으로 화면 내 작은 픽셀들의 바뀐 색조합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변화는 평생을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의 정당성을 위해 싸워야 하는 소수자들에게는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혹은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란 것을. 물론 소수자들에 한해 게임이 정체성이나 의사 표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게임이 소수자들에게 중요한 소통과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 세상에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매체였기 때문이라는 점은 생각해볼 만하다. 이미 주류의 취향과 가치관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기성 매체와 달리, 젊은 매체는 비주류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담길 수 있는 여지를 지니며, 그와 같은 개방성과 다양성에 기반한 ‘가능성들’이야말로 이 매체의 ‘젊음’이 지녔던 문화적 가치였던 것은 아닐까. 초기 인디 게임의 사례로서 미국 사회 내 동성애자 혐오 정서에 대항하는 패러디 게임 〈게이블레이드〉의 존재는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단순한 오락물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서의 가능성 말이다. 이처럼 게임의 ‘젊음’을 조망한 〈하이스코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절 게임의 산업과 문화를 이끌었던 주요 인물들의 노색이 완연한 모습은 역으로 게임의 ‘나이듦’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나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 시절 우리가 즐겨 플레이했던 게임, 그러니까 부모님과 선생님의 눈을 피해 짜릿하게 즐겼던 우리끼리의 그 오락이 더 이상 그 때의 그것이 아님을 새삼 일깨워준다. 게임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은 한 때 젊었던 게임이 지녔던 그 가능성들이 여전히 유효한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다른 가능성과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혹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 것인지 등이 아닐까? 다른 말로 바꾸자면 이 과거의 흔적 또는 유물들을 현재와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나아가 미래를 위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게임의 역사를 다루는 다큐로서 〈하이스코어〉에서 아쉬운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기존에 다뤄지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이나 사건을 발굴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였지만, 그러한 발굴을 통해 새롭게 논의해 볼 수 있는 오늘날 게임의 가치나 의미를 끌어내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놀런 부쉬넬, 니시카도 토모히로, 로베르타 윌리엄스, 존 로메로 등 기존 게임사의 주요 인물들과의 인터뷰 또한 기존의 게임사 다큐나 저술에서 이미 이야기했던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과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오늘날과 미래에 대해 지닌 견해를 물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꿈꾸고 가꿨던 그 게임이 오늘날의 게임과 얼마나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하여 그 다름은 또 어떤 의미인 것인지와 같은 논의가 담겨 있었더라면, 과거에 비추어 오늘날을 돌아보고 미래를 고민하는 역사적 탐구의 궁극적인 목적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게임사를 다루는 저술이나 프로그램에서 으레 첫 장에 위치하는 놀런 부쉬넬을 맨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하이스코어〉는 게임의 역사가 곧 혁신의 역사라는 관점을 분명히 내비췄는데, 개인적으로는 2020년이라는 시점에 나온 게임 다큐로서 좀 안일한 (혹은 진부한) 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의 역사가 정말로 재미를 좇는 혁신의 과정에만 한정된다면, 자동사냥이나 확률형 아이템 등이 디폴트화 되고 메타버스나 NFT, P2E 등이 대두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러한 화두들이 북미에서는 한국 만큼 현안이 아니어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서글프)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그러한 화두들이 결국엔 게임의 미래와 직결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재미를 좇는 혁신의 역사’라는 〈하이스코어〉를 비롯한 기존의 게임 역사 저술이나 다큐의 역사관에서 벗어난 작품이 나와주길 기대해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마블 스파이더맨 2, 코믹스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서사를 하는 방법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그건 방법론도 다양해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제대로 된 독자를 설정하지 못하면 어떤 좋은 이야기라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은 이야기를 쓰기 전에 가상의 독자를 설정하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매번 그의 가상의 독자 역할을 맡아준건 그의 부인, 태비사 킹이었다. 비록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떤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좋은 이야기에서는 필수적인 고민이다. < Back 마블 스파이더맨 2, 코믹스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서사를 하는 방법 15 GG Vol. 23. 12. 10. 요즈음의 콘텐츠는 독립적이지 않다 . 모든 콘텐츠는 유기적이고 , 서로 다른 매체 , 서로 다른 차원에서 가지를 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낸다 .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하더라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수많은 매체에서 저마다 다른 과실을 맺어내는 미디어 프랜차이즈는 모든 창작물이 지향하는 바가 되었다 . 비디오 게임과 관련된 수많은 프랜차이즈들도 여러 방면으로 확장을 시도해왔다 . 영화에서 시작해 이미 코믹스 , 소설 , 애니메이션이 계속 쏟아져 나온 ‘ 스타워즈 ’ 는 게임 쪽에서도 루카스아츠의 작품들을 위시해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 ‘ 헤일로 ’ 는 반대로 게임에서 영상물 , 소설 , 코믹스로 뻗어나간 사례다 . 이런 흐름은 슈퍼히어로 파생 작품들도 시작지점만 다를 뿐 유사하다 . 하지만 슈퍼히어로 창작물들은 어떤 면에서 다른 작품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데 , 바로 캐넌 , 정사의 기준이 매우 느슨하다는 점이다 . 미국의 코믹스는 하나의 정사가 아니라 , 수많은 비사들의 집합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 제작사 , 제작자 쪽에서 캐넌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 코믹스는 개별 이슈가 서로 다른 설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나의 공인된 정사를 중심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수많은 비사 중에서 인기가 많고 , 가장 퀄리티가 좋은 것들이 선택을 받아 이어나가는 식의 구조를 띈다 . 때문에 유독 코믹스 기반의 파생 작품들은 독자적인 서사를 만드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는 했다 . 코믹스의 감각을 그대로 이어가던 많은 창작물들이 혹평을 받고나서야 사람들은 ‘ 코믹스는 생각보다 대중적이지 않다 ’ 는 사실을 깨달았다 . 원작 코믹스 팬들의 기준으로 만들게 되면 , 지나치게 유치하거나 아무리 원작 설정이라지만 선을 넘는게 있었던 것 . 슈퍼히어로 기반의 최고의 프랜차이즈였던 MCU 가 최근 부진한 이유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 스칼렛 위치를 위시한 캐릭터들의 코스튬이 점점 원작을 닮아가고 , 설정만 믿고 배경서사를 생략하거나 , 인물 간의 관계를 대충 그리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 그러다보니 중심 서사도 재미가 없어지고 , 또는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 특히 멀티버스의 적극적인 채용은 그런 이른바 ‘ 뇌절 ’ 의 끝으로 가 , 모든 이슈와 관련 설정을 다른 차원의 이야기 , 그저 멀티버스라는 식으로 사건의 근원과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서 더더욱 성의없는 이야기처럼 보이게 했다 . * 스파이더 토템 , 마스터 위버 , 스파이더 마더 … 문자 그대로 우주로 뻗어나가는 설정 그렇다면 ‘ 마블 스파이더맨 2’ 게임은 어떨까 . 우선 , 스파이더맨은 원작 코믹스에서는 그야말로 뇌절 설정의 상징이다 . 스파이더 토템 같은 설정이 바로 그러한데 스파이더맨과 같은 거미류 슈퍼히어로의 숫자가 늘어다나보니 추가된 설정으로 , 그냥 유전자 변이 거미에게 물려 생긴 슈퍼히어로가 갑자기 우주적이고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 거기에 스파이더맨은 복식만 수십가지에 이르고 ,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스파이더 센스에 대한 묘사도 작품마다 제각각이곤 한다 . 이는 기본적으로 미국 코믹스가 각 작가에 의해서 뇌절에 뇌절에 뇌절을 반복하여 마구잡이로 확장한 뒤에 , 이 중에 괜찮은 걸 타이인 이벤트로 정리하면서 채택하는 식으로 전체 흐름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 그러니 기본적으로 굉장히 난잡하고 , 온갖 좋은 , 그리고 나쁜 설정이 난립하면서 그 안에서도 어떤 설정은 버려지고 어떤 건 정사로 채택된다 . 물론 코믹스 팬들에게는 이것이 재미요소였고 , 다른 것보다 훨씬 짦은 코믹스의 소비 사이클에서는 괜찮은 방법이기도 했다 . 그러나 , 게임이나 영화처럼 제작 기간이 길고 한 작품의 서사 단위가 긴 매체에서는 이런 방식을 채택할 수 없었다 . 때문에 게임이나 영화는 그 자체로 일종의 총집편처럼 , 작품이 어떤 설정을 채택하고 있고 , 또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정리가 되어 있어야 했다 . 인섬니악의 비디오 게임 ‘ 마블 스파이더맨 ’ 시리즈는 그 정리의 시작을 빌런과 주인공 , 스파이더맨의 관계 정리에서부터 시작한다 . ‘ 스파이더맨 ’ 에게는 정말이지 수많은 빌런이 있다 . 단일 히어로로서는 가장 많은 빌런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 그와중에 극적인 서사를 위해서 스파이더맨이 어떤 빌런을 만나게 될지를 미리 정리해두는건 매우 중요했다 . 그래서 1 편에서는 시작과 동시에 스파이더맨이 이미 히어로 활동을 한지 꽤 시간이 지났고 , 수많은 잡다한 빌런들을 이미 다 정리했다는 걸 단 번에 보여준다 . 스콜피온 , 라이노 , 벌쳐 같은 단일로서는 큰 비중을 가지기 어려운 빌런들은 이미 스파이더맨을 만나 싸웠고 , 감옥에 가있다 .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인 옥타비우스 박사가 서사의 중심으로 초반부터 등장한다 . 여기서 대강의 합의가 이루어진다 . 이 작품의 스파이더맨은 여러 잡다한 빌런들은 이미 다 처리했지만 , ‘ 닥터 옥토퍼스 ’ 나 ‘ 그린 고블린 ’ 은 아직 만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 그리고 서사가 옥타비우스 박사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상 , 우리는 이 작품에서 이 빌런과 대적하게 될 것임을 직감한다 .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러 다른 설정들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한다 . 아직 스파이더맨이 되기 전인 마일즈 모랄레스는 피터 파커의 그 유명한 각성의 과정 , 본작에서는 이미 과거의 일이라고 스킵한 그 과정을 대신 되풀이하고 보여주며 , 이 작품의 후반이나 또는 다음 작품에서 그가 두번째 스파이더맨이 될거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 히로인은 그웬 스테이시가 아니라 MJ 라는 것 , 이번 스파이더맨이 가진 기술적 역량들 , 그리고 멀티버스 따위는 없다는 것 , 그의 경제적 상태 등등 수많은걸 빠르게 정리한다 . 우리는 이미 ‘ 스파이더맨 ’ 이라는 캐릭터를 알고 있다 . 이는 코믹스보다는 대중 서사인 영화의 덕택이 더 클 것이다 . 그래서 이미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부분은 게임에서는 빠르게 생략되거나 암시되며 , 그 이상의 부분들은 명시적으로 정리된다 . 그래서 모든 독자들 , 스파이더맨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코믹스팬부터 스파이더맨이라고는 영화 밖에 보지 않은 이들까지 모든 독자를 동일한 출발선에 위치시킨다 . 이는 이 게임을 구성하는 수많은 장점 중에 정말 일부분이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일 수도 있다 . 그러나 , 서사가 이 게임에서 정말 중요한 위치이고 그 서사라는게 원작과 수많은 변형이 이미 있어왔던 이야기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즉 , 이 게임은 ‘ 무엇인가 ?’ 뿐만 아니라 ‘ 무엇이 아닌가 ?’ 도 동시에 이야기해야 한다 . 이 스파이더맨은 멀티버스도 아니고 , 등장하지 않을 빌런은 누구이며 , 우리가 아는 스파이더맨 서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같은걸 계속 전해야 한다 . ‘ 마블 스파이더맨 2’ 는 이런 부분이 더더욱 중요했다 . 2 편이 제대로 가속을 받아 서사를 진행시키려면 1 편에서의 이런 정지작업이 필수였고 , 그 다음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 그 때문에 2 편에서는 새로운 인물들 , 그리고 이전에 등장했지만 아직 서사적인 쓰임이 다하지 않은 인물들 , 그리고 이제는 이야기 전면에 나서야 하는 기존의 인물들 등 수많은 인물들이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 오스본 부자가 전면에 나섰고 , 베놈이라는 새로운 빌런을 위해 필요한 부가 인물들도 등장한다 . 그리고 동시에 기존의 빌런들이 퇴장하기 시작한다 . 벌쳐 , 스콜피온 같은 부가 빌런들은 확정적인 죽음을 통해 서사에서 사라진다 . 이런 과정을 통해 , ‘ 이미 익숙한 이야기 ’ 인 스파이더맨은 ‘ 새로운 이야기 ’ 로서의 당위성을 얻게 된다 .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 간의 관계 , 설정 장치 , 서사의 흐름들을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어기면서 , 전체 총합은 크게 변하지 않음에도 굉장히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는 것 같은 감각을 만들어 낸다 . * 어쩌면 이런 부분이 좀더 설득력을 줄 수도 있겠다 원작이 있는 작품들에게 원작은 좋은 참고가 되기도 하지만 , 많은 경우에는 독이 된다 . 이유는 근본적으로 원작과 파생작들은 대체로 차원 자체가 다른 ( 말그대로 과학적인 의미의 ‘ 차원 ’ 도 )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아무리 1 대 1 로 대응하여 옮기더라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고 , 또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 1 대 1 이식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결국 스핀오프나 파생작품들은 원전의 요소들을 취사선택할 수 밖에 없으며 , 이 취사선택이 어떻게 되느냐가 항상 논쟁거리가 되곤 한다 . 특히나 코믹스에서 온갖 설정을 쏟아내는 슈퍼히어로물은 이 문제가 더욱 심하다 . 간단하게는 코스튬의 재현에서부터 멀리가면 빌런의 선택 , 캐릭터에 걸친 부가 서사들의 선택까지 모든게 선택의 문제가 된다 . 가령 스파이더맨의 경우에는 뇌절 그 자체인 설정들과 절대 빼놓아서는 안되는 설정들이 많이 있다 . 벤 삼촌의 죽음은 스파이더맨을 구성하는데 빠져서는 안되는 사건이다 . 반대로 스파이더 토템 같은 설정이나 , 많은 이들이 고평가하는 이슈인 ‘ 슈피리어 스파이더맨 ’( 닥터 오토퍼스의 정신이 스파이더맨의 육체에 깃들어 히어로가 되는 이야기 ) 의 경우에도 자칫하면 설정이 과한 , 표현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 ‘ 마블 스파이더맨 ’ 시리즈는 여기서 재미있는 선택을 한다 . 먼저 벤 삼촌의 죽음 같은 , 영웅을 형성하는 서사를 모두 본편에서 빼버렸다 . 설정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 이미 작품 상에서는 오래전 지나간 일이며 구체적으로 언급되거나 묘사되기보다는 플레이어 , 스파이더맨의 팬들이 ‘ 당연히 그런 사건이 있었겠지 ’ 라고 추측하고 넘어가게 만든다 . 대신에 이런 시련을 본편에서 겪는 건 2 대 스파이더맨인 마일즈 모랄레스다 . 이는 매우 영리한 선택이다 .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되풀이하는 건 항상 구태의연하고 지루할 위험이 있다 . 그게 비록 필수적인 부분이라 하더라도 , 서사를 정직하게 항상 모든 사건의 발단에서 시작하는 건 좋은 수가 아니다 . 모든 서사는 시작부터 독자를 강력하게 흡인할 의무가 있으며 , 이야기의 시작지점은 이야기의 마무리와의 간극을 고려해 정해져야 한다 . 동시에 비극의 과정을 마일즈 모랄레스에게로 옮겨 , 플레이어들에게 쉽게 인정받기 어려운 2 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본작에 녹이고 , 감정적인 이입을 만들어 낸다 . 그리고 결정적인 부분은 , 원작의 설정을 차용하되 그 주도권은 확실하게 본작에 있고 , 원작의 설정을 가져오는데에 1 대 1 로 매칭하지 않고 적절히 변용한다는 점이다 . 이는 마치 기표와 기의의 상관관계 같다 . 예를 들어 ‘ 베놈 ’, ‘ 카니지 ’, ‘ 스크림 ’ 같은 주요한 이름들은 모두 등장하지만 , 그 기표 아래에 본질들은 원작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 카니지의 정체인 클리터스 캐서디는 광신도 컬트의 수장으로서 새로운 캐릭터성을 부여 받아 뉴욕 전체를 흔들 가능성이 있는 세력을 이끌어 DLC 의 리딩 빌런이 될만한 포스를 풍긴다 . 반면에 스크림은 단편적인 등장이지만 MJ 의 속내를 피터 파커에게 비춰주고 , 둘의 화해와 결합을 더 단단하게 하는 기폭제로서 작용한다 . * 본작의 베놈은 그 정체가 코믹스와 다르지만 ,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또한 심비오트를 활용하는데 있어 베놈 , 카니지 , 안티베놈 , 스크림을 넘어서서 2 세대니 뭐니하는 설정으로 양산되던 것들을 모두 쳐내고 유명한 심비오트까지만 딱 사용한 것도 적절한 원전의 채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 이렇게 원작 설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설정을 본작이 우위를 가지고 취사선택하고 있다는 점 , 또한 설정에 과도하게 매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매우 훌륭하다 . MCU 는 오히려 그런 설정 자체에 휘말려 , 수많은 등장인물을 그대로 등장시키면서 적절한 번안을 하지 못해 영화 내에서 캐릭터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역력하다 . ‘ 이터널스 ’ 에서 청각장애인으로 번안하여 꽤 깊이있는 캐릭터를 보여준 마카리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특색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실크의 경우 , 원작에서는 지나치게 피터 파커에 의존하는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었던걸 의식하듯 마일즈 모랄레스와의 다른 접점을 가지고 등장한다 . 또한 확실하지는 않지만 , 중간에 등장한 헤일리의 주변인물과 동일하다면 ( 비슷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 실크 , 신디 문도 원작과 다른 독자적인 캐릭터 서사의 길을 걷는 듯 보인다 . 이런 과정을 통해 , 우리가 그 탄생부터 성장 과정까지 모두 알고 있는 슈퍼히어로가 또 한 번 새로운 이야기로서 매력을 품게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 무엇보다도 원전의 설정을 있는 그대로 모두 써야 한다는 강박 아래 미리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설정 덩어리가 아니라 , 쳐낼 것은 쳐내고 핵심만을 남김으로서 가지각색인 플레이어들의 사전 지식 정도와 무관하게 ( 물론 스파이더맨이라는 존재 자체는 알고 있어야 하지만 )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는게 중요하다 .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 까지만 챙겨봤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들이다 . ‘ 마블 스파이더맨 2’ 의 서사는 단순히 본작 , 아니 조금 더 나가서 1 편에서 시작된게 아니다 .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을 수십년 동안 여러 차원을 통해 이어진 스파이더버스에 플레이어들을 중간 난입시켜야 하는 게임이다 . 동시에 이미 지난 수많은 스파이더맨 이야기를 겪은 이들에게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여야 했다 . 이 두가지를 모두 잡는건 성공보다 실패가 가까운 일이지만 , 인섬니악은 그걸 해냈고 , 그래서 올해 최고의 게임을 논하는데 한자리를 꿰차기 부족하지 않다 . ‘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 그건 방법론도 다양해서 이기도 하지만 , 무엇보다 제대로 된 독자를 설정하지 못하면 어떤 좋은 이야기라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스티븐 킹은 이야기를 쓰기 전에 가상의 독자를 설정하기를 당부했다 . 그리고 매번 그의 가상의 독자 역할을 맡아준건 그의 부인 , 태비사 킹이었다 . 비록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 어떤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 , 하는 고민은 좋은 이야기에서는 필수적인 고민이다 . 훌륭한 독자설정 , 그리고 이들을 휘어잡기 위한 폭넓으면서 절제된 이야기 . ‘ 마블 스파이더맨 2’ 은 올해 최고의 서사 중 하나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보는 게임, 그 충족되지 않는 욕망 - 핀볼과 월드플리퍼 사이에서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희소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왔다. 쾌락에는 상대적 희소성이라는 맥락이 필요하며, 너무 많으면 지루해진다. 무엇보다 쾌락이 ‘래칫 효과(rachet effect: 수준이 한번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지 않는 효과)’를 일으켜, 자연과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화되지 않은 쾌락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포장된 쾌락은 전에는 귀하고 드물었던 것을 흔하고 따분한 것으로 만든다. 결국 포장된 쾌락 바깥 세계에 대한 흥미가 점차 약해지며 우리는 더 이상 그 세계를 열망하지 않게 된다. 내가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월드플리퍼〉의 포장된 쾌락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Back 보는 게임, 그 충족되지 않는 욕망 - 핀볼과 월드플리퍼 사이에서 03 GG Vol. 21. 12. 10. 1. 두 아이 아빠의 게임 라이프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털어놔야겠다. 지난 몇 년 동안 게임을 즐길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저런 글 쓰는 일을 생업으로 가진 탓에 늘 마감에 쫓긴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두 아이가 반긴다. 둘 다 아직은 엄마, 아빠의 손이 많이 가는 나이다. 아내와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과 잠시나마 놀아준다. 고집 센 아이들을 설득해 씻기고 재우면 대략 밤 10시다(정신적·체력적으로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다). 이때부터 명목상 자유시간이지만 대개는 밀린 업무를 마무리하게 된다. 어쩌다 여유가 있더라도 게임기로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1~2시간 만에 끝낼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오늘밤 게임을 저장하면 언제 다시 데이터를 불러낼지 기약할 수 없다. 한 번 흐름이 끊긴 게임을 다시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최근 육퇴 후 아내와 함께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하겠노라며 큰마음 먹고 패키지 버전을 2개나 구입했지만, 한 달 동안 고작 ‘아시라 세트’를 맞춘 것이 전부였다. 아내는 둘째를 재우다 그대로 잠드는 날이 많았고, 아이가 깰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서 몇 번의 솔로플레이를 하다가 새로운 업무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게임에서 멀어졌다.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사냥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라서 플레이 시간이 늘어나면 업무는 물론, 가족과의 일상이 대검에 썰려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인생이라는 맵에서 홀로 사냥하던 시즌1은 끝났다. 시즌2에서는 두 아이가 동반자 아이루(몬스터헌터의 고양이 서포터)처럼 늘 함께한다. 아침에 두 아이를 등원시키려면 일찍 잠을 청해야 한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바깥 활동을 하니 평일보다 더 여유가 없다. 부족한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40대 중반에 접어드니 체력은 물론, 집중력도 예전 같지 않다. 〈몬스터헌터〉처럼 컨트롤이 필요한 게임은 오래 붙잡고 있기가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모처럼 여유가 있을 때는 게임기를 켜기보다 넷플릭스에 접속한다. 궁금한 게임이 있으면 유튜브 영상을 본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내 삶에 게임이 끼어들 공간은 거의 없는 셈이다. 2. 자동화된 게임: 핀볼과 〈월드플리퍼〉 이런 두 아이의 아빠가 오랜만에 빠져든 게임이 있다. 사이게임즈에서 개발한 〈월드플리퍼〉다. 복고풍 도트그래픽으로 핀볼 게임과 RPG를 접목한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플레이어는 6명의 캐릭터(메인 3명, 서브 3명)를 조합해 파티를 구성하고, 핀볼처럼 디자인된 맵(스테이지)에서 적을 물리치게 된다. 화면 하단 플리퍼로 구슬 대신 캐릭터를 날려서 적을 공격하는데, 캐릭터를 터치하면 적에게 돌진할 수 있고, 게이지가 쌓이면 고유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일본식 RPG의 소위 ‘몸통박치기’를 핀볼 게임과 적절하게 섞은 느낌이다. 핀볼 게임이 그렇듯 이 게임도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그리 많지 않다. 타이밍에 맞게 플리퍼를 터치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스킬을 쓰는 것이 전부다(애초에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는 게 아니라 플리퍼로 날린 뒤 지켜보는 구조다). 그래서 게임 플레이 중 대부분의 시간은 조작보다 캐릭터의 움직임과 득점을 ‘지켜보는 데’ 할애된다. * 〈월드플리퍼〉는 핀볼 개념과 RPG를 섞으며 자동 플레이에 대한 나름의 납득 가능한 지점들을 구현해낸 바 있다. 처음부터 플레이어의 개입이 최소화되어 있다 보니 ‘자동’ 기능을 사용해도 큰 이질감이 없다. 오히려 AI가 나보다 더 정확하게 적을 조준하고, 알맞게 스킬을 구사할 때도 있다. 그래서 컨트롤이 필요 없을 만큼 캐릭터가 성장하면 자동 진행은 어느새 옵션이 아닌 디폴트가 된다. 자동 플레이의 비중이 수동 플레이의 비중을 넘기는 시점부터 게임은 본격적인 ‘보는 게임’으로 전환된다. 그에 맞춰 게임의 핵심 재미도 변화한다. 플레이어는 캐릭터 육성에 필요한 재화를 얻기 위해 무수히 많은 핀볼 게임을 반복해야 한다. 처음 몇 번이야 재미를 주겠지만 반복이 거듭되면 단순노동으로 변질된다. 자동 기능은 이 ‘반복구조’를 대행해준다. 전통적인 RPG에서는 성장을 위해 지루한 구간(소위 레벨노가다)을 참고 인내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어른 게이머들은 이를 감당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시간을 투입하지 않아도 캐릭터가 성장한다는 것은 게임을 선택하는 이유가 된다. 결국 플레이어는 자동화를 통해 얻어진 재화를 전략적으로 분배하고, 성장한 캐릭터를 조합해 적을 효율적으로 제압하는 데서 재미를 얻는다. 자동 기능은 전체 게임 디자인의 일부이자 게임의 구조적인 재미를 작동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월드플리퍼〉가 플레이어의 개입이 최소화된 ‘핀볼’을 차용한 것은 꽤나 영리한 설정이다. 핀볼 게임의 구조가 ‘지켜보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오토 플레이로 전환시키고, 수집형 RPG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자동 기능을 합리화시키기 때문이다. 3. 플레이의 경계가 사라지다 ‘보는 게임’을 ‘플레이어의 참여가 최소화된 게임’으로 정의한다면 앞서 언급한 〈월드플리퍼〉를 포함해 자동 기능이 탑재된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이 아마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물론 말 그대로 비주얼과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에 주력하는 게임도 있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보는 게임’이란 시각적인 이미지에 관계없이 ‘플레이어의 개입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게임’으로 한정짓고자 한다. 따라서 화면을 보지 않고 ‘방치’하는 게임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보는 게임’에 포함될 것이다. ‘보는 게임’의 핵심은 ‘플레이의 자동화’다. 오늘날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에서 오토 플레이는 필수 기능으로 자리잡았다. RPG 장르의 자동 사냥은 물론, 캐릭터 조작 없이 클릭 한 번으로 공간을 이동하는 것도 일종의 오토 플레이 요소다. 진행이 자동화된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부분은 주로 습득한 재화를 배분해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보는 게임’은 그래서 이중적이다. 그것은 스스로 작동하는 게임화면을 바라보는 것이자 캐릭터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행위의 영역이 아닌 인식의 영역이다. 캐릭터의 성장을 지켜보고 개입하는 존재로서 플레이어는 게임 내부와 외부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제 게임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물리적인 하드웨어와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동화된 세계를 인식하고 떠올리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게임이 된다. 플레이의 경계는 무너졌다. 하지만 이런 열린 상태가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놀이는 본질적으로 ‘매직서클’의 경계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보는 게임’은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직장과 가정의 경계가 무너질 때 ‘워라밸’의 균형도 무너진다. 자동화된 놀이가 생활과 인식의 영역으로 침범할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보는 게임’은 쾌락의 중심에 다가가지 못하고 늘 미끄러진다. 그래서 오랜 기간 게임을 즐겨도 욕망은 좀처럼 충족되지 않는다. 4. ‘보는 게임’의 기원 ‘보는 게임’은 스마트폰 등장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되었으나 게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초기부터 그 원형이 발견된다. 나는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에서 초창기 게임의 진화 과정을 아케이드 게임과 PC 게임이 서로 결합되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아케이드 게임이 캐릭터와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하는 형태로 발전했다면, PC 게임은 이야기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이런 관점에서 PC로 등장했던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장르는 ‘보는 게임’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등장하는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은 물론, RPG, 시뮬레이션 게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초기 PC 게임들은 물리적인 조작보다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지켜보는’ 형태로 발전했다. 여기에는 PC 플랫폼의 하드웨어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키보드’라는 입력도구는 조이스틱과 달리 문자를 입력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고, 초기 PC의 낮은 그래픽 성능은 움직이는 이미지보다 고정된 이미지와 텍스트 중심의 게임을 강제했다. 게다가 PC는 아케이드 게임과 달리 긴 플레이 시간을 보장했다. PC 플랫폼에서 게임의 플레이 타임은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저장 기능은 게임 플레이가 일상생활에서 적절하게 끊어지고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왔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런 PC 게임의 특성이 극대화된 장르 중 하나다. 〈삼국지〉나 〈문명〉 시리즈는 대부분 명령을 내리고 그 결과를 지켜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PC라는 업무용 하드웨어가 비디오게임과 결합되면서 그 게임 스타일도 마치 직장에서 업무 지시를 내리듯 사무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실 당시에 PC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은 놀이라기보다 업무에 더 가까웠다. 어쨌든 이런 ‘보는 게임’의 흐름은 2000년대 웹 게임을 거쳐 스마트폰 게임으로 이어진다. 5. ‘보는 게임’은 어떻게 게임시장의 주류가 되었을까? 과거 PC라는 하드웨어의 등장으로 새로운 게임 장르가 등장했던 것처럼 스마트폰이라는 하드웨어는 ‘보는 게임’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24시간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터치스크린’ 단말기는 PC가 그랬듯이 캐릭터를 조작하기가 불편했다. 뭔가를 보고 조작하기에는 화면이 너무 작았고, 물리버튼이 없어서 정교한 컨트롤도 어려웠다. 오토 플레이 기능은 이런 하드웨어의 한계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24시간 플레이가 가능한 개인화된 기기라는 점도 오토 플레이에 영향을 미쳤다. 스마트폰은 네트워크에 연결된 채 언제 어디서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상태로 플레이어 곁에 대기 중이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플레이어는 24시간 스마트폰을 들고 있을 수 없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동일하지 않고, 대부분의 온라인 모바일 게임은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혹은 비용을 더 지불한)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흘러간다. 늘 손안에 있는 하드웨어, 항상 게임에 접속할 수 없는 플레이어, 시간을 두고 벌어지는 게임 내 경쟁구조. 이 세 가지 요인이 맞물리면서 ‘자동 사냥’ 혹은 ‘오토 플레이’라는 새로운 기능이 탄생한다. 물론 하드웨어 특성만으로 ‘보는 게임’이 주류가 된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보는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게임이 재미를 만들어내는 구조와 더불어 오늘날 수용자들의 게임 플레이 환경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게임을 ‘선택’한다는 것은 취향은 물론 자신의 플레이스타일과 라이프사이클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아무리 게임이 재미있어도 플레이하는 과정이 내 삶의 파장과 맞지 않으면 버려지게 된다. 우리 집 책꽂이에 방치된 닌텐도 스위치와 〈몬스터헌터 라이즈〉처럼 말이다. 그리고 내가 바쁜 와중에도 꾸역꾸역 어떻게든 즐기는, 아니 즐기는 것이 용인되는 〈월드플리퍼〉처럼 말이다. 여러 모바일 게임 중에서도 〈월드플리퍼〉가 내 삶의 틈새로 구슬을 날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게임은 각각의 플레이 과정이 작은 단위로 분절되어 있다. 레벨에 따라 편차가 있긴 하지만 하나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3분 정도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이 게임이 나에게 재화를 빨리 모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월드플리퍼〉에는 유저간 PVP가 없다. 경쟁 요소가 거의 없다보니 캐릭터 수집이나 성장에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한정된 자원으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과정이 즐겁다. 멀티 플레이도 마치 솔로 플레이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다. 3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진행하는데, 타인의 생성한 룸에 참여하면 행동력을 소모하지 않는다. 알람 신호가 울리면 클릭해서 참여하고, 오토 플레이가 종료될 때까지 기다리면 재화를 얻을 수 있다(물론 이벤트 난이도에 따라 컨트롤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채팅 기능이 없어서 커뮤니케이션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이런 특성 덕분에 나는 일상생활에서도 부담 없이 멀티 플레이에 참여해 재화를 모을 수 있다. 일하다가 알람이 울리면 클릭해서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도중에 전화가 오거나 접속이 끊겨도 자동 전투는 끝까지 진행되고, 그에 따른 보상도 받을 수 있다. 집중이 필요한 업무를 할 때는 이마저도 어렵지만 간단한 업무를 할 때는 충분히 병행 가능한 수준이다. 이렇게 해서 일과 게임을 동시에 처리하는 신인류가 탄생했다(멀티태스킹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6. 시간은 없지만 게임은 하고 싶어 누군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것처럼, 나 역시 시간이 없지만 게임은 하고 싶다. ‘보는 게임’은 그런 어른 게이머의 모순된 욕망을 어느정도 충족시켜준다. 일과 게임의 밸런스, ‘워게밸’이 가능하다고 합리화하면서 스마트폰에 게임을 설치한다. 하지만 불온한 멀티태스킹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일과 게임, 둘 다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외치는 탓이다. 처음에는 똑같이 아껴주겠다고 다짐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균형은 무너진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는 결국 게임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게임은 그동안 발생한 ‘매몰비용’의 영수증을 들이대면서 붙잡는다. 오래 붙잡은 인연일수록 끊어내기란 쉽지 않다. 물론 누군가는 일을 잠시 밀쳐두고 게임의 손을 잡아줄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삶의 조건에 맞게 수많은 게임들이 소비된다. 슬라보예 지젝은 자본주의 욕망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상품으로 ‘다이어트 코크’를 이야기한다. 다이어트 코크는 카페인과 설탕이 제거된 콜라다. 우리는 가짜 콜라, 유사 콜라를 마시면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원래의 핵심이 제거된 콜라를 마시면서도 기존에 느꼈던 ‘청량감’과 ‘각성효과’를 기대한다. 다이어트 코크를 마시면서 오리지널 콜라를 욕망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욕망을 극대화시킨다. ‘보는 게임’도 어쩌면 그런 다이어트 코크 같은 존재가 아닐까? 콜라에 카페인과 설탕이 필요하듯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요구된다. 이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마땅히 지불해야 할 일종의 기회비용이다. 하지만 우리는 쾌락을 위해 자신의 노동시간을 마음껏 투입할 수 없다. 그래서 게임회사는 우리가 게임에서 누려야 할 플레이 시간을 제거한다. 바로 일상을 방해하는 해로운 성분이 제거된 ‘보는 게임’이다. 사실 게임을 즐기는 이유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그 몰입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보는 게임’에는 그 본질적인 부분이 제거되어 있다. 마치 카페인과 설탕이 제거된 다이어트 코크처럼 말이다. 나는 일하면서도 게임을 즐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했던 게임은 업무 사이에 던져진 또 다른 업무였을지도 모른다(유저들이 ‘일일퀘스트’를 ‘숙제’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본질이 제거되면서 욕망은 더욱 극대화된다. 무엇보다 해롭지 않다는 생각에(일상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더 많은 시간을 안심하고 게임에 투입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투입한 시간은 결코 작지 않다. 7. 포장된 쾌락의 한계 게리 S. 크로스, 로버트 N. 프록터의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에서는 초콜릿, 담배, 사진, 축음기, 영화 등 ‘포장된 쾌락의 혁명’에 대한 내용들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이 책에 따르면 “테크놀로지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오늘날 사람들이 매우 쉽고 빠르게 열량을 섭취할 수 있게 했다.” 19세기 말부터 기업들은 지방, 당분, 염분 등을 농축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멀리 운반할 수 있도록 포장했다. 시중에 ‘포장된 쾌락’이 넘쳐나면서 미각, 시각, 청각 등 한때는 희소했던 감각들을 이제는 너무나 쉽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포장된 쾌락은 감각 경험의 강도를 크게 높였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마약이다. 씹거나 연기로 피우거나 차로 마셨던 아편은 모르핀, 헤로인으로 정제되었고, 새로 발명된 주사기를 통해 혈관에 직접 주입되었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담배회사는 새로운 가공법으로 연기의 맛을 순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연기를 폐 깊숙이 흡입하게 되었다. 제품 자체는 순해졌지만 오히려 건강에는 치명적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포장된 쾌락이 전달되는 과정을 주사기 같은 튜브에 빗대어 ‘튜브화(tubularization)’라고 부른다. 자연의 소리를 듣거나 공연장에 가는 대신 ‘아이팟’을 켜는 것, 짧은 기간에만 허락되었던 축제의 즐거움을 일 년 내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놀이공원’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이러한 관점은 비디오게임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즉, 기술은 사람들이 놀이를 즐기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고, 매우 쉽고 빠르게 재미와 쾌락을 충족시킬 수 있게 했다. 컴퓨터는 인간이 놀이를 위해 수행해야 할 것들, 이를테면 놀이도구의 배치, 규칙의 적용, 컴포넌트의 이동, 점수 계산 등을 기계가 대신하도록 만들었다. 비디오게임은 TV보다 상호작용성이 뛰어난 매체였지만, 한편으로는 놀이에서 인간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과거의 놀이를 생각해보자.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어린 시절 놀이들은 물리적인 공간에 친구들을 모으고, 몸을 움직여야 하며, 탈락하면 다른 친구들이 승부를 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놀이를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 대상, 시간이 필요했다. 즐거움을 얻기 위한 일종의 ‘허들’이었다. 비디오게임은 이런 허들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물론 접근이 간편해진 만큼 규칙은 복잡해졌다. 하지만 비디오게임 산업이 성장하고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게임은 점차 ‘튜브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 비디오게임은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편리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하드코어 게임들은 난이도를 대폭 낮추거나 ‘EASY MODE’를 추가했고, 닌텐도 DS와 Wii는 ‘캐주얼 혁명’을 일으켰다. 스마트폰은 이런 튜브화를 더욱 강화시켰다. 특히 모바일 플랫폼의 ‘보는 게임’은 자동화와 튜브화가 결합된 ‘포장된 쾌락’의 극단적인 형태다. 심지어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에서는 현실의 자본으로 보다 압축된 시간을 구입할 수 있다. 자동으로 진행되는 전투조차 곧바로 결과를 볼 수 있도록 스킵해 버리는 티켓은 더 빠른 ‘포장된 쾌락’을 위한 입장권이다. 무선 네트워크로 연결된 휴대용 모바일 기기는 언제 어디서나 24시간 서버에 접속된 게임환경을 제공한다. 주머니 속의 사탕을 꺼내듯 하드웨어를 꺼내서 플레이어가 개입하지 않은 채, 일상에 해롭지 않다고 여겨지는 쾌락을 마음껏 소비할 수 있다. 게임을 즐길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게임은 어쩌면 구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구원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오히려 이런 게임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과거에 즐겼던 게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마치 비디오게임을 시작하면서 구슬치기가 밋밋해진 것처럼 말이다.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희소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왔다. 쾌락에는 상대적 희소성이라는 맥락이 필요하며, 너무 많으면 지루해진다. 무엇보다 쾌락이 ‘래칫 효과(rachet effect: 수준이 한번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지 않는 효과)’를 일으켜, 자연과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화되지 않은 쾌락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포장된 쾌락은 전에는 귀하고 드물었던 것을 흔하고 따분한 것으로 만든다. 결국 포장된 쾌락 바깥 세계에 대한 흥미가 점차 약해지며 우리는 더 이상 그 세계를 열망하지 않게 된다. 내가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월드플리퍼〉의 포장된 쾌락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8. 1973년의 핀볼과 2021년의 월드플리퍼 다시 〈월드플리퍼〉를 가만히 바라본다. 어쩌면 ‘보는 게임’이란 핀볼 기계를 떠도는 구슬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구슬은 스스로 랜덤으로 점수를 얻고 시간이 지나면 중력에 의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아주 잠시 플리퍼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게임 세계는 끝없이 반복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973년의 핀볼』에는 핀볼 기계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거대한 창고 안에서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십’ 핀볼 기계를 찾아내고 나서야 그는 충족되지 않던 욕망을 잠재울 수 있었다. ‘보는 게임’은 다이어트 코크처럼, 포장된 초콜릿처럼 놀이의 중심에 닿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노동에서 벗어나 놀이 자체를 온전히 마주할 때까지 욕망은 충족되지 않을 것이다. 2021년의 나는 〈월드플리퍼〉를 플레이하면서 유년의 창고에 잠들어 있는 핀볼 기계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핀볼의 윙윙거리는 소리는 내 생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갈 곳 없는 상념도 사라졌다.” - 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핀볼〉 중에서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평론가, 프리랜서 작가) 이상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비디오게임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비디오게임에 대해 생각하면서 게임이 주는 흥미로운 경험을 문장으로 옮기는 중입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관련 저서로는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이 있습니다.
- 게임 to 현실, 현실 to 게임: <게임의 사회학> 서평
〈게임 사회학〉은 저자 스스로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책이었다. 저자가 스스로 게이머들이 왜 이런 행동을 보였을지 이유를 추적하고 그 인과성을 검증하는 모델을 세우는 과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정량적인 연구라도 연구 문제를 설계하고 모델에 어떤 변수를 채택하고 분석 결과를 해석하는 일은 다시 사람의 몫이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이나 통계학 연구자들이 딥러닝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딥러닝 모델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관계를 설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필요성이 부각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XAI는 알고리즘이 왜 이런 결과를 내놓았는지 추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량적인 연구와 정성적인 연구가 연결되는 지점이며, 앞으로 게임과 그 관련 데이터를 활용한 사회과학 연구가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 Back 게임 to 현실, 현실 to 게임: <게임의 사회학> 서평 10 GG Vol. 23. 2. 10. * 필자는 〈게임의 사회학〉 저자처럼 데이터 사이언스 방법론을 기반으로 인문사회과학 연구를 하는 연구자이다. 따라서 저자의 접근법(연구방법)에 좀 더 친숙하기 때문에 편향이 있을 수밖에 없는 점을 미리 인지하고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한다. 1. 완벽히 통제된 전수 데이터의 꿈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특히 사회과학) 꿈같은 일은 자신이 검증하고자 한 가설이나 연구 문제에 딱 맞는 데이터를 구하는 것이다. 예컨대 부모의 소득과 수능점수의 인과관계를 밝히고자 한다면, 수능점수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변수(체력, 지능, 인내력 등)를 ‘통제’하고 부모의 소득만 다른 수험생을 찾아야 한다. 쌍둥이를 찾아서 서로 다른 부모에게 입양 보내지 않는 이상 그런 데이터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사회과학자들이 다루는 데이터는 늘 ‘표본’ 데이터이다. 데이터에는 늘 누락과 접근 불가능한 상황이 있으므로 전수 데이터는 만져볼 기회가 없다. 따라서 완벽히 통제된 전수 데이터는 꿈같은 말이다. 대신 사회과학자들은 늘 부족한(질적으로든 양적으로든) 데이터를 만회할 수 있는 여러 분석 방법론을 개발해왔다. 이른바 통계적 유의성(statistical significance)을 자신의 연구에서 목숨 걸고 사수하려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늘 부족한 데이터이지만 데이터에 맞는 분석 모형을 만들어 분석 결과의 유의함을 밝혀내는 일 말이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내놓은 분석 결과가 확률적으로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건하게(robust) 지지하게 될 수 있게 부단히 노력한다. GPU 같은 컴퓨팅 파워의 대중화와 프로그래밍 언어와 각종 분석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꿈이라고만 여겼던 초거대 데이터 세트를 연구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서평에서 다룰 게임 파생 데이터가 아니더라도 소셜 미디어나 건강보험 공공데이터 등 수천만, 수억 건의 데이터를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다루기 시작했다. 빅데이터 기반의 사회과학 연구인 이른바 계산사회과학(Computational Social Science)의 출현도 이와 연관이 있다. 이런 제반 사항이 잘 갖춰졌는데도 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 게임 데이터는 여전히 낯선 영역으로 보인다. 〈게임의 사회학〉에서도 그 부분을 지적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2. 게임은 현실을 표상하는가? 현실이 게임을 표상하는가? 저자는 서문에서 게임 데이터 기반 사회과학연구가 이제 걸음마 단계임을 강조한다. 왜 아직 연구자들은 게임 파생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게임 데이터 역시 통제가 필요하고 전수 데이터를 모으기 힘든 점이 있지만 현실에서 수집을 상상하기도 어려운 데이터를 가상공간에서는 구해볼 수 있는 장점이 충분히 있다. 1) 하지만 내 생각엔 다음 세 가지 이유로 연구자들이 활용하기를 꺼리는 듯하다. 1) 디지털 공간에 존재하는 게임 데이터의 수집과 핸들링을 위해서는 코딩 같은 추가 연구 역량이 필요하다. 2) 이전에 전통적으로 다루던 설문조사 등의 데이터보다 훨씬 더 많은 대량의 데이터를 다루기 힘든 측면. 3)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특징은 게임이 인간 현실사회를 반영하는 공간인지 연구자들이 의심한다는 점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는 데이터 자체의 선택 편향을 의심하는 연구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책의 전반부에서 ‘게임 -〉 현실’이라고 명명한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적확하다. 게임이라는 렌즈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연구가 ‘게임 사회학’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를 ‘게임 〈-〉 현실’이라고 배분한 것도 이와 연결된다. 이제 게임은 단순히 인간 사회의 작동 원리나 특징을 바라보는 교보재가 아니라 사회 현실과 게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형태 역시 연구자들이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상 세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터넷 검색 엔진에 검색되지 않으면 세상에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볼 때, 필자의 말처럼 이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위해서는 반드시 게임을 들여다봐야 하는 시점에 도래한 것은 아닌가? 특히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당일 리니지의 아이템 거래도 그 수가 매우 줄었다는 부분 2) 에서 나 역시 게임이 현실과 분리되지 않고 그 둘이 연동돼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3. 계산사회과학의 한계와 객관성이라는 신화 다음으로 이 책은 사회과학이 중요하게 다루는 인간과 사회의 ‘행위’, ‘조직’, ‘경제 활동’, ‘범죄’, ‘호혜성’ 등의 개념을 게임 데이터를 가져와 정량적인 방법으로 잘 설명해냈다. 통계와 네트워크 분석, 더 나아가 기계학습 기반의 의사결정나무까지 여러 방법론이 소개됐다. 이러한 정량적인 방법론에 대해 연구자를 포함한 시민들은 그 자체로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고 평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계산사회과학 연구가 주목 받는 이유도 연구의 객관성과 과학성이 질적인 연구에 비해 우월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빅)데이터 방법론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며 정량적인 모델이 객관적이라는 평가도 과대평가 된 신화이다. 특히 요즘 각광 받는 딥러닝 기반의 분석 방법론은 전통적인 통계 모형보다 매우 성능이 뛰어나지만, 해당 모델이 내놓은 결괏값을 설명해낼 수 없는 블랙박스인 경우가 많다. 또한 데이터 수집과 전처리 과정에서 여러 연구자의 의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기에 정량적인 연구는 객관적일 거라 믿는 태도도 위험하다. 데이터에 내재하는 편향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인공지능에 내재한 여러 편향의 문제는 알고리즘 학습 때부터 내재한 것이다. 또한 계산사회과학이 내놓는 결과물은 해당 집단이나 개인의 가장 평균적인 면을 보여준다. 결국 분석과정에서 드러나지 않는 개인과 집단의 특이성은 배제되곤 한다. 4. 정량과 정성, 구별할 필요 없이 인문학은 거의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정성적인 연구를 계속해왔기 때문에 구별이 거의 없지만 3) , 사회과학에서는 연구자를 구분할 때 ‘질방(질적인 방법)’ , ‘양방(양적인 방법)’으로 나누곤 했다. 나는 이제 이러한 구분은 의미가 희석될 것으로 생각한다. 〈게임의 사회학〉에서도 그 두 방법을 모두 활용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게임 유저의 행동을 정량적인 방법으로 분석했을지라도 인터뷰나 민속지(Ethnography) 같은 전통적인 방법론으로 보완하였다. 결국 게임 데이터를 활용하는 연구자는 정량적인 분석을 시행하더라도 해당 게임에 참여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해는 모델링으로 채우지 못하는 빈칸을 채우게 할 것이다. 〈게임 사회학〉은 저자 스스로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책이었다. 저자가 스스로 게이머들이 왜 이런 행동을 보였을지 이유를 추적하고 그 인과성을 검증하는 모델을 세우는 과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정량적인 연구라도 연구 문제를 설계하고 모델에 어떤 변수를 채택하고 분석 결과를 해석하는 일은 다시 사람의 몫이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이나 통계학 연구자들이 딥러닝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딥러닝 모델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관계를 설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필요성이 부각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XAI는 알고리즘이 왜 이런 결과를 내놓았는지 추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량적인 연구와 정성적인 연구가 연결되는 지점이며, 앞으로 게임과 그 관련 데이터를 활용한 사회과학 연구가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1)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 윤리적 한계 때문에 부딪히는 여러 가지 예약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48쪽). 2) 이 기간에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이 포함되어 있다. 다소 무리한 추측일 수도 있지만, 하필 그 전후 기간에 비해 유독 큰 폭의 하락이 있어서 그래프를 처음 봤을 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중략) 게임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한 경험이었다 (168쪽) 3) 최근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의 출현은 정량적인 인문학 연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인문학 연구자) 김병준 KAIST 디지털 인문사회과학센터 연구교수. 학부에서 문학을 사랑한 문학청년으로 국문학 공부했지만, 대학원에서는 자연어처리와 데이터 사이언스를 전공했다. 대량의 데이터와 정량적인 방법론을 활용한 디지털 인문사회과학 연구를 주로 한다. 가장 좋아한 인생 게임은 워크래프트 3, 주종은 오크. 아쉽게도 요즘엔 직접 게임을 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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