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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의 환상이 사라진 지금, 숙제를 남긴 2023년의 두 유비식 오픈 월드
2023년에 선보였던 대표적인 유비식 오픈 월드 게임인 <호그와트 레거시>와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모두, 다음 시리즈에서는 게임의 시스템과 세계관이 서로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잘 융합된 충격적인 작품으로 돌아오길 응원해 본다. < Back 15 GG Vol. 23.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unsu Jang A hybrid build who leveled up the no-synergy skill trees of "civil engineering" and "Korean language & literature," then went and picked "video production" as a second-job advancement... (not a wasted build, at any rate). After ten years as a broadcasting PD—OGN, the game channel, included—now a post-resignation freelance PD, juggling a circus act somewhere between life's "gacha" and "deck-building."
- 효율, 계산 가능성 그리고 민맥싱
테크 전문 월간지인 와이어드WIRED는 지난 3월 [1](효과/효율적 이타주의의 종언)이라는 장문의 칼럼을 게재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째서 특정한 철학 사조를 비판하는 철학자의 글이 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잡지에 실리게 됐으며, 이토록 큰 관심을 유도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효과/효율적 이타주의(통칭 EA)가 처한 특수한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EA는 실리콘 밸리의 유력한 엔지니어들과 테크 억만장자들(이 두 그룹은 종종 겹친다.) 사이에서 이미 실질적인 종교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Back 효율, 계산 가능성 그리고 민맥싱 18 GG Vol. 24. 6. 10. 극한의 (비)효율충 테크 전문 월간지인 와이어드WIRED는 지난 3월 [1] (효과/효율적 이타주의의 종언)이라는 장문의 칼럼을 게재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째서 특정한 철학 사조를 비판하는 철학자의 글이 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잡지에 실리게 됐으며, 이토록 큰 관심을 유도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효과/효율적 이타주의(통칭 EA)가 처한 특수한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EA는 실리콘 밸리의 유력한 엔지니어들과 테크 억만장자들(이 두 그룹은 종종 겹친다.) 사이에서 이미 실질적인 종교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픈 AI를 둘러싸고 벌어진 샘 알트만의 해임 해프닝과 고객들의 돈을 빼돌려서 세계 최대 규모의 암호 화폐 거래소 FTX를 파산으로 몰고 간 샘 뱅크먼-프리드의 케이스 등 최근 실리콘 밸리에서 벌어진 굵직한 스캔들들은 직, 간접적으로 이 ‘철학 사조’와 연루되어 있다. 즉, EA는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지배하는 기술 기업들의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등대로서 작동한다. * EA의 화신(?) 샘 뱅크먼-프리드의 재판 풍경 그러므로 법정에서 25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샘 뱅크먼-프리드가 사실은 이 사상을 잘못 이해한 돌연변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EA 그 자체를 현현한 실체에 가깝다는 부분(“SBF is a natural.”)에 이르자, 여기저기서 분노에 가까운 반응들이 방어 기제처럼 터져 나왔다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은 수치를 앞세워서 이타주의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해 내기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하던 그 수많은 주장이 사실은 그저 빈약한 근거에 기반한 그럴듯한 추측(“precise guesses built on weak evidence”)에 불과했다는 진실이다. 특히 EA의 주창자들이 앞다투어 ‘예시’로 들기 좋아하는 저개발국들을 향한 원조와 관련해서 저자는 매우 신랄한 지적을 한다. 한 마디로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특정한 액수의 돈이 몇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식의 계산은 (설령 복잡한 수식을 동반하더라도) 편의적으로 적은 수의 변수를 취사선택해서 급조한 허접한 모델링에 불과하다. 세계는 훨씬 더 복잡하며 미묘하다. 따라서 최대로 ‘정확한’ 계산을 지향한다면 우리는 지원 받은 구충제를 아이에게 먹여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부모의 마음까지도 변수에 포함할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2] 그런데 이 이야기는 통렬한 비판만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잔여를 남긴다. 이를테면 계산 가능성은 효율성이 성립 가능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명제가 그러하다.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효율이라는 말을 밥 먹듯이 사용하지만, 계산할 수 없어지는 순간 그 단어가 가지는 명징함과 위력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효과/효율적 이타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계산을 통해서 ‘효율성’을 증명해 내는 것에 실패함으로써 그것은 사실 별로 이타적이지도 않다는 회의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EA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다층적인 세계의 복잡도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마치 1:1의 축척을 가진 지도처럼 현실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모델을 만들어 내는 일은 (적어도 현재 인류의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최고로 정교한 모델이 산출해 낸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한다고 해도, 우리는 겨우 근사치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즉, 엄밀히 말해서 틀린 계산인 셈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기상 예보일 것이다. 날씨를 예측하는 행위는 고대부터 인류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특히 농경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의례로 여겨왔지만, 대기의 물리법칙에 의거해서 수치적인 계산을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기상학자인 루이스(Lewis Fry Richardson)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 기상 예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수치 예보(numerical weather prediction, NWP) 시스템을 1922년에 고안해 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는 모델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8년 뒤인 1950년에 이르러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많은 연산량을 당시의 기술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존 폰 노이만에 의한 수치 예보의 재발견과 세계 최초의 범용 디지털 컴퓨터인 애니악ENIAC이 없었다면, 그 시기는 훨씬 더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흥미롭게도 계산의 ‘불완전’함은 강력한 컴퓨터들과 더 발전된 모델, 그리고 수많은 인공 위성의 도움을 받는 현재에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MIT의 대기과학 교수인 케리(Kerry Emanuel)는 기상 예보는 과거와 비교해서 (기후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정교해졌지만, 극도로 무질서한 대기 현상은 같은 조건으로 출발한 두 개의 시뮬레이션이 전혀 다른 지점으로 나아가는 붕괴 현상을 촉발하기 때문에 여전히 2주 이상의 예측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4] 끝없는 계산 이야기 삶에 필수적인 일기 예보조차 이처럼 불완전한 계산에 기반해 있다는 사실은 효율적이라는 단어에 더 무거운 짐을 지운다. 심지어 우리들 대부분은 계산조차 하지 않고 휴리스틱에 의거해서 무엇이 더 효율적이라는 식의 판단을 곧잘 한다는 것을 돌이켜 본다면, 효율적이라는 말은 사실상 비유적인 표현에 가까워 보인다. 비디오 게임은 이러한 맥락과 겹쳐서 보면 상당히 묘한 위치를 점유한다. 왜냐하면 게임은 시작부터 계산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특정한 하드웨어의 연산력에 의해서 제한될 수밖에 없는 소프트웨어적인 특성이기도 하지만, 또한 게임이 플레이어가 미적인 경험을 하도록 디자인된 매체라는 지점과도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모종의 이유로 [5] 어떠한 스펙의 하드웨어를 동원하든 간에 프레임이 15를 넘지 못하는 게임이 출시되었다고 가정을 해보자. 이는 순수하게 컴퓨터 공학적인 관점으로 보면 (최적화가 더 필요하지만) 작동하는 소프트웨어가 맞다. 하지만 설령 버그가 없더라도 이것은 작동하는 게임이 아니다. 왜냐하면 15프레임도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제작자가 의도한 미적 경험을 ‘플레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임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의 해상도, 게임 캐릭터들과 월드의 폴리곤 갯수, 인터페이스를 통한 인풋 레이턴시까지, 이 모든 것들은 게임의 미적 경험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인 동시에 계산과 직결된다. * 이처럼 아름다운 프레임 하나하나가 많은 계산을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이 컴퓨터 프로그램과 미적인 미디어로서의 두 측면이 분리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확장성을 고려한 ‘불완전한’ 계산이 필수적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서 최적의 해상도는 무엇일까? 답은 모른다. 이다. 그 게임이 어떤 게임인가(폴리곤을 무지막지하게 때려 넣은 오픈 월드 게임 vs 도트 그래픽의 2D 플랫포머 게임), 구동하는 하드웨어가 무엇인가(고성능 데스크탑에 연결된 32인치 4K 모니터 vs 스팀덱) 혹은 심지어 플레이어가 누구인지에 따라 선호하는 해상도는 달라진다. 그러므로 (특히 초기) 게임 개발의 역사는 매우 제한적인 컴퓨팅 리소스 내에서 최대한의 확장성을 확보하기 위한 창의적인 ‘계산법’들로 가득하다. <둠>의 프로그래머 존 카멕이 3D 환경을 에러 없이 빠르게 렌더링하기 위해서 이진 공간 분할법(Binary Space Partioning, BSP) [6] 을 도입한 일이나 <롤러코스터 타이쿤>의 개발자 크리스 소이어가 복잡한 시뮬레이션 환경을 제대로 구현해 내기 위해서 시스템 리소스를 더 직접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로우 레벨 언어인 어셈블리어로 게임 전체를 개발했다는 일화는 이제는 그저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대부분의 하드웨어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절박함에 더 가까웠다. [7] 아이러니하게도 최대한의 ‘효율’은 이처럼 불완전한 계산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둠>이 출시된 93년 이후로 컴퓨팅 하드웨어의 연산력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게임들 역시 방대하고 복잡해졌다. 고해상도의 텍스쳐나 풀 더빙된 사운드 등 게임에 사용되는 에셋들부터 고전 게임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뿐 아니라 상당히 정교한 물리적인 상호 작용을 선보이는 물리 엔진들과 이름 그대로 3D 공간 내의 오브젝트들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의 선ray들을 일일이 추적해서 ‘리얼’한 풍경을 구축하는 레이 트레이싱 또한 매우 고도의 연산력을 요구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분기를 품고 있는 수많은 NPC와의 상호 작용 처리, 게임 엔진의 최적화 문제 [8] , 라이브 서비스 게임들의 네트워크 최적화 등에 이르면 그림이 좀 더 명확해진다. 딜레마는 여전한 것이다. 많은 것이 변해 왔고 또 앞으로도 많이 변할 테지만, 계산의 불완전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드웨어의 연산력이 세계의 다층적인 복잡성 전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레벨에 도달하지 않는 한, 양자 컴퓨터의 상용화가 도래하더라도 여전히 개발자들은 첨단 가상 현실 게임을 최적화하느라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도 또 다른 창의적인 ‘계산법’들을 고안해 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노는 법 미적인 경험의 전달을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직조하는 개발자들의 맞은편에는 그 프로그램을 자신의 하드웨어에 맞춰서 조정하고 실행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그 경험을 수용하는 수많은 플레이어가 있다. 당연하지만 플레이어도 언제나 계산한다. 다만 무엇을 계산하냐고 묻는다면 답은 플레이어의 숫자만큼 천차만별일 것이다. 누군가는 최적의 루트나 최적의 공격 타이밍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로어 프렌들리lore friendly [9] 에 집착하며 출시한 게임 속에 이미 존재하는 버그-꼼수마저 제거하는 모드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최적화’를 위해 애쓸 수도 있다. [10] 이토록 넓은 스펙트럼의 ‘효율’은 무엇보다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가 대부분의 경우 생산성의 향상과는 무관하다는 지점을 환기한다. 즉, 거기에는 순이익을 지속적으로 늘리며 주가를 부양할 거라고 믿어지는 어떤 특정한 효율성을 향한 압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폭넓은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게이머는 한 가지 뚜렷한 경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바로 그 존재하지 않는 생산성을 향한 집착이다. 뒤집힌 게이미피케이션과도 같은 워키피케이션Workification은 퍼포먼스에 중점을 두고 놀이를 마치 일처럼 하는 경향으로 여러 국가들에서 중산층이 향유하는 (게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여가 활동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노가다를 유도하는 게임적 디자인과 플레이어들 사이의 동조 압력으로 인해서 이러한 경향이 매우 쉽게 발현되는 MMORPG나 [11] 세세한 랭킹의 구분으로 경쟁 심리를 유발하는 여타 PvP 온라인 게임들의 경우가 아마도 워키피케이션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일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명백한 촉매가 없이도 어떤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퍼포먼스의 개선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워키피케이션은 ‘적절한’ 예시에 머물지 않는다. 싱글 플레이 RPG게임을 즐겨 하는 유저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되곤 하는 민맥싱min-maxing [12] 은 이 지점을 넘어가는 가장 흥미로운 케이스 중 하나다. 민맥싱은 주로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와 같은 CRPG 장르에서 자주 논의가 되는데, 그 이유는 캐릭터들의 모든 능력치가 대부분 간단한 숫자로 표현될 뿐만 아니라 주사위의 확률과 연동됨으로써 세계와의 거의 모든 상호작용이 실제로 계산 가능한 수식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13] <사이버펑크 2077> 역시 다양한 분기들을 자랑하지만, V의 스탯이나 출신에 의해서 영향받는 몇몇 대화 옵션들과 스탯의 숫자에 따라 해금되는 루트들을 제외하면 많은 경우 중요한 내러티브적 분기들은 플레이어의 성향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 선택된다. 반면 CRPG 게임에서는 예를 들어 카리스마가 15 이상인 캐릭터가 내 파티에 없으면 특정한 분기로 아예 진입할 수 없다거나 혹은 그 이상임에도 주사위 굴림에 실패해서 결국 같은 결과로 이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특정한 캐릭터의 스탯을 어느 시점에서 어느 정도를 올려야 한다는 식의 매우 디테일한 민맥싱 가이드들이 범람한다. * 최초의 RPG 게임 중 하나였던 <아칼라베스: 파멸의 세계>에도 어김없이 민맥싱을 적용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민맥싱이 기본적으로 2회차 이상의 플레이를 전제로 한 메타플레이를 상정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웹소설과 웹툰에 자주 등장하는 회귀물 속 주인공처럼 우리의 캐릭터는 이미 끝을 봤기 때문에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가장 효율적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유비는 인터넷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만 유효하다. 앞서 말했듯이 민맥싱을 위한 가이드가 온갖 채널에서 넘쳐나는 상황에서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럽게 1회차부터 민맥싱을 적용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메타플레이‘였던 것’은 이제 예측을 통한 선점의 작동으로 귀결된다. 마크 안드레예비치는 “접근 가능한 모든 콘텐츠를 완전히 숙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완벽히 알고자 하는 시도는 그것을 경험하는 행위를 선점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선점이란 경험의 정반대다.” [14] 라고 지적하며, “선점은 미래가 현재로 붕괴하는 것” [15] 이라고 못 박는다. 이렇게 본다면 민맥싱의 적용은 게임 플레이 경험에 직접적으로 상충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여러 게임 서브 레딧 게시판에는 민맥싱에 대한 집착으로 게임을 하는 것에 ‘현타’가 왔다고 토로하는 글들이 시차를 두고 종종 출몰하곤 한다. 잡힐 것 같은 최대한의 효율을 목적으로 하는 엔지니어링적인 강박이 일상을 침식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무색하게도,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계산과 인간의 유한한 신체에 기반한 경험의 불가피성은 명확해 보이는 ‘효율성’의 청사진을 끊임없이 흐릿하게 만든다. 우리는 여전히 아주 많은 것들을 계산할 수 없을뿐더러 모든 것을 미리 계산하려고 할수록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들이 그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다. 앞서 살펴봤듯이 계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소프트웨어로서 비디오 게임 역시 이와 같은 역설을 품는다. 따라서 효율은 실제로 적용되기보다는 임원진들의 이데올로기적 수사로 점철된 이상향으로 포장되거나 게임 내의 내러티브적인 장치로서 반영된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플레이어의 존재 자체가 게임의 효율성에 매우 큰 변수로 작용한다. [16] 그러므로 어떤 게임 회사가 플레이어들의 효율적인 아이템 거래를 위해서 NFT를 도입한다고 선언하거나 혹은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은 작업이 클릭 한 번으로 인게임에서 (내러티브적으로) 실현될 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지지부진함과 난잡함은 더욱더 명백해진다. 그렇게 효율성은 다시 한번 멀어진다. [1] Leif Wenar, “The Deaths of Effective Altruism” Wired 2024.03.27. https://www.wired.com/story/deaths-of-effective-altruism/ [2] 너무나 당연한 지원처럼 느껴져서 고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면 앞서 언급한 칼럼을 참고하자. [3] 루이스는 고작 6시간 후의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서 무려 6주간 (기계식 계산기를 활용한) 계산에 몰두했다. 그런데도 결과값은 실제 날씨와 일치하지 않았다. Roland Stull, Practical Meteorology: An Algebra-based Survey of Atmospheric Science (Vancouver, Canada: Univ. of British Columbia, 2017), 759. [4] Andrew Moseman, “Will climate change make weather forecasting less accurate?” Climate Portal 2023.01.30. https://climate.mit.edu/ask-mit/will-climate-change-make-weather-forecasting-less-accurat [5] 개발자가 갑자기 정신이 나가서 CPU 코어 하나만을 활용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바람에 매우 심대한 CPU 병목 현상을 유도했을지도 모른다. [6]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7%84_%EA%B3%B5%EA%B0%84_%EB%B6%84%ED%95%A0%EB%B2%95 [7] 그러한 절박함이 통했는지(?) 현재에 이르러 <둠>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일단 실행해 보는 독보적인 게임이 되었다. 아이템의 인벤토리, “반드시 지켜라! 인터넷의 국룰 :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면 둠을..게임에선 CJ모드를.. Youtube 2024.05.15. https://www.youtube.com/watch?v=YhIrXX-MC6E [8] 언리얼이나 고도 혹은 유니티와 같은 준 범용 엔진들에서 주로 문제가 되긴 하지만, 모회사인 EA의 프로스트 바이트 엔진을 울며 겨자 먹기로 유지하다가 <앤썸>이라는 희대의 망작을 출시한 바이오웨어의 경우를 돌아봐도 이 이슈가 특정한 경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 온갖 마개조(?)가 횡행하는 모딩modding씬 내에서도 특정한 게임 세계의 정합성과 핍진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변화를 가함으로써 플레이어들의 몰입을 깨뜨리지 않으려는 흐름이 존재한다. [10]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의 Unofficial Skyrim Patch 모드가 대표적이다. [11] Bree Royce, “Working As Intended: The gamification of the workification of games” Massively Overpowered 2018.11.01 https://massivelyop.com/2018/11/01/working-as-intended-the-gamification-of-the-workification-of-games/ [12] 주로 RPG게임에서 특정한 능력에 캐릭터의 스탯을 ‘몰빵’하고 나머지 필요 없는 능력은 버림으로써 인위적으로 효율적인 빌드를 구축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13] 이는 CRPG가 기반을 두고 있는 TRPG의 관습을 따른 것이다. [14] 마크 안드레예비치,『미디어 알고리즘의 욕망』, 이희은 역, 컬처룩, 2021, 94. [15] 같은 책, 166. [16] 가장 ‘효율적’인 게임은 인간 플레이어가 완전히 배제된 게임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국내의 모바일 가챠 게임들의 자동 사냥과 아타리의 <퐁>에서 시작해서 바둑과 <스타크래프트 2>를 거쳐서 이제는 여러 게임에서 적용 가능한 AI 에이전트 레벨까지 올라선 구글 딥마인드의 AI는 뜻밖의 접점(?)을 공유한다. Tags: 민맥싱, 최적화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웜뱃 잡다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역시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게임에는 특히 관심이 더 많습니다.
- 유쾌함으로 버무린 현실의 요소들: 투포인트 시뮬레이션 시리즈
<투 포인트 호스피털(Two Point Hospital)>, <투 포인트 캠퍼스(Two Point Campus)>, 그리고 최신작 <투 포인트 뮤지엄(Two Point Museum)>으로 이어지는 이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는 얼핏 보기에 한 편의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그래픽 같다. 과장된 캐릭터, 우스꽝스러운 효과음이 발생하며 현실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유쾌한 소동이 게임 내내 난무한다. 웃으며 게임을 즐기다보면 문득, 서늘한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지금 뭘 한거지?”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No Game for Young Men
While some critics pointed out similarities between Kart Rider and Nintendo’s Mario Kart series, this controversy did not concern its players, especially the young kids already enjoying the game—myself included. Kart Rider marked a pivotal moment in Nexon’s history, peaking at 200,000 concurrent players (in a country of 50 million people), dominating the PC-bang market, and reaching 10 million registered accounts in 2005, within just a year of its release. In 2023, after 18 years of service, Kart Rider was replaced by its sequel, Kart Rider: Drift, though the reception to this successor has been mixed and is still unable to surpass the legacy of its predecessor.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riter) (Writer)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부서지는 몸, 나뒹구는 몸 - <스케이트 스토리>와 퀴어한 실패의 미학
“You Died.”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한 번 이상은 보게 되는 문구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사망에 다다르면 화면은 까맣게 암전되고, 중앙에 붉은 글씨가 떠오르며 죽음을 알린다. 단정적인 선언과 형식은 게임 오버 화면을 밈으로 기능하게 했다. 이는 다시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에 관해 떠올리는 정의와 끈끈한 관계를 맺기도 한다. < Back 부서지는 몸, 나뒹구는 몸 - <스케이트 스토리>와 퀴어한 실패의 미학 29 GG Vol. 26. 4. 10. 죽음과 성장의 이분법 바깥에서 “You Died.”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한 번 이상은 보게 되는 문구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사망에 다다르면 화면은 까맣게 암전되고, 중앙에 붉은 글씨가 떠오르며 죽음을 알린다. 단정적인 선언과 형식은 게임 오버 화면을 밈으로 기능하게 했다. 이는 다시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에 관해 떠올리는 정의와 끈끈한 관계를 맺기도 한다. 어려운 난이도에 대한 성토는 곧장 ‘유다이’라는 표현으로 수렴되고, 반복되는 죽음의 경험은 어려운 게임이라는 평판과 동의어처럼 엮인다. 어떠한 게임에 관한 이해는 그 게임이 형상화하는 죽음과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게임 속 죽음은 플레이어가 과업 수행에 실패했을 때, 그에 대한 반응으로 부과되는 일종의 처벌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피격되거나, 낭떠러지로 떨어지거나,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맞는 죽음은 실패의 가장 직접적인 피드백으로 작동한다. 이는 단순한 패배의 신호를 넘어, 플레이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구축해 온 세계를 일시적으로 상실하게 각인시키는 경험이다 [1] . 그러므로 플레이어는 게임 경험을 최적화하기 위하여 죽음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죽음은 무엇이 올바른 플레이인지,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얼마나 성취하고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가늠하게 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무수한 죽음을 거듭한 끝에 도달한 승리는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수백 번의 사망 끝에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보스를 쓰러뜨리는 유튜버의 영상을 관람하던 시청자들이, 그의 고투에 찬탄을 보내는 광경은 게임 스트리밍계에서 전율을 이끌어내는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플레이어의 여러 번의 죽음은 하나의 극적인 성공 장면으로 수렴되는 것이다. 이렇게 죽음을 겪으며 성장한 플레이어는 고투를 이겨낸 실존적 주체로 긍정된다. <엘든 링>의 스토리텔링과 플레이를 결합해서 논의하려 한 장순호와 최지원은 파편적으로 주어진 세계와, 동시에 여러 죽음으로 산산조각 났던 경험을 수습하는 플레이어 주체를 실존적 인간 영웅으로 호명하기도 한다 [2] . 더 강해진 플레이어, 더 숙련된 조작, 더 큰 보상으로 이어지는 속에서 죽음은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순간의 죽음이 다음 플레이에서의 개선이라는 약속 아래 배치된다. 단적으로 ‘You Died’는 한국어권에서 여성 인명인 ‘유다희’를 환기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을 ‘유다희 양과의 데이트’라는 수식어로 소화하려는 충동을 인터넷 곳곳에서 포착해볼 수 있다. 이러한 수사는 죽음을 여성화된 대상으로 상정하고, 그와 데이트하는 남성적 주체로 플레이어를 위치시켜, 결국 죽음을 친숙하고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재현한다. - 2인칭의 ‘유다희’ 이러한 서사를 반복적으로 마주하다 보면 게임에서의 죽음 자체를 좀 더 긍정해볼 수 없을까, 하는 물음이 남는다. 축적되는 죽음을 성장 자원으로 삼는다는 골조를 비트는 흥미로운 시도로 를 꼽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게임은 소울라이크 게임에서 공략당하는 보스의 시점을 전면으로 배치해, 반복적인 살해와 피살의 구도를 뒤집어 본다. 보스를 조종하게 된 플레이어는, 아무리 죽여도 끝없이 돌아오는 용사를 계속해서 마주해야 한다. 용사는 죽음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장비, 파훼법, 스킬 따위를 들고 오며 플레이어를 압박한다. 이때 게임은 보스라는 2인칭 화자를 통해 1인칭의 용사를 시니컬하게 응시하는 구도를 택한다. 보스로서의 플레이어가 가질 수 있는 공격 패턴은 한정적이지만, 수없이 죽더라도 끝내 승리할 운명이 정해진 용사 사이의 권력관계는 비대칭적이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보스-플레이어의 구도를 다소 기계적으로 반전시키는 데에 머무른다. 아마도 플레이어를 가차 없이 살해하던 그 모든 매력적인 살해자들에게 끝끝내 품게 되고 마는 기이한 열락과 애착에서 착상되었을 이 게임의 기획은, 보스와 플레이어가 로맨스 가능한 관계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유다희 양과의 데이트’라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구현한 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서 보스가 용사에게 유효한 죽음을 끌어낼 수 없게 되듯, 프롬 소프트웨어에서 죽음을 유도하는 주요한 방식들 또한 장르가 안착됨에 따라 익숙해져 갔다. 독 늪, 화염 피해, 즉사 기믹 등은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소울라이크 게임이라면 으레 있을 만한 것으로 예측 가능한 패턴이 된다. 이런 맥락 속에서 죽음은 더 잘 대응하고, 효율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반복 자극으로 수렴되고 만다. 그런 한편으로는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다크소울1>을 만든 이후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려보게 된다. 그는 자사의 게임을 두고 ‘마조히즘적’이라고 표현한다 [3] . 그 말에는 자사 게임이 고통을 주고 플레이어를 괴롭힌다는 의식뿐만 아니라, 죽음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틀리고도 기묘한 쾌감의 뉘앙스가 들어 있다. 그렇다면 숙달과 파훼의 문법 바깥, 실패와 파괴 자체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를 수는 없을까? 이에 이번 글에서 삼 엥(Sam Eng)의 게임 <스케이트 스토리>를, 파괴되고 망가지는 경험을 즐기는 여정으로 재구성해 보려 한다. 유리와 고통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된 플레이어가 매 순간 넘어지고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그 경험을 성장의 내러티브로 환원하지 않는 방식에 주목해 보고 싶다. 그렇게 ‘퀴어한 실패’를 다루는 게임인 <스케이트 스토리>를 바라볼 것이다. 유리와 고통으로 이루어진 몸 “당신은 유리와 고통으로 만들어진 언더월드의 마귀입니다. 악마가 당신에게 스케이트보드를 주며 한 가지 거래를 했습니다. 보드를 타고 달로 가서 그것을 삼키면 자유를 주리라는 거래를 말입니다. ...필요한 건 오직 스케이트보드 뿐입니다.” [4] <스케이트 스토리>의 진행 자체는 상당히 단순하다. 제목에 포함된 ‘스토리’라는 단어가 드러내듯, 이 게임은 플레이어를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비교적 선형적인 어드벤처 게임이다. 사건의 연속체로서의 스토리는 특정한 방향성을 전제하고 [5] 지옥에서 달로 향하는 운동 역시 단테적 상승의 메타포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구조는 구원과 도달, 위로의 상승이라는 지배적 가치와 잘 맞물린다. 가능한 한 넘어지지 않고 콤보를 최적화하여 피날레를 향해 부드럽게 전진한다면 이 게임의 엔딩을 쉬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플레이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스케이트 스토리>의 후기를 보면, 영 어색한 좌우 조작감과 커맨드의 밋밋한 활용처에 대한 비판을 볼 수 있다. 많은 리뷰어들이 지적하듯 조작감은 어딘가 미끄럽게 느껴지고, 스케이트 운전의 감각은 끝내 손에 익지 않는다. 테크닉 커맨드를 익힌 뒤에도 그 사용처는 분명하게 요청되지 않는다. 모든 챕터의 피날레에서 플레이어는 달과 경주를 벌이지만, 이 구간은 3~5분 동안 연속 점수만 채우면 되는 단순한 구조에 가깝기에 숙련의 정점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체현하지 못한다. 그 결과 피날레는 종종 허탈한 감상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완벽히 통제되지 않는 조작감은 플레이어를 실패를 극복하는 주체로 영웅화하기보다, 언제나 다시 넘어지고, 산산이 부서질 수밖에 없는 유리 신체의 상태 속에 머무르게 한다. 더불어 사실적인 중력 구현은 스케이트보드의 조작을 한층 어렵게 만든다. 현실에 가까운 물리감이 몰입을 높이기도 하지만, 난해한 조작감으로 받아들여질 위험 또한 안고 있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코너링의 난도가 함께 상승하며, 그 상태에서 킥플립이나 그라인드와 같은 다양한 기술 커맨드를 수행해야 하기에 이중의 도전이 된다 [6] . 이렇게 중력에 밀착된 관계는 게임이 형상화하는 넘어짐–파괴의 경험을 극적으로 빚는다. <스케이트 스토리>와 <사요나라 와일드 하츠>(2019)가 게임 오버를 어떻게 형상화하는지 비교한다면, 전자가 플레이어블 아바타가 파괴되는 감각을 극대화한다는 사실이 두드러진다. 두 작품은 인상적인 사운드트랙을 활용해 리듬 게임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플레이 메커니즘을 지닌다. 게임의 주인공들은 고정된 캐릭터로, 이들은 방이나 침대와 같은 내밀한 실내에서 외부로 뻗어가는 여정을 소화한다. 스테이지화된 시공간을 거쳐 가며 내면과 외면을 넘나드는 기행문적 체험을 공유한다. 한편 <사요나라 와일드 하츠>가 비행, 유영, 오토바이 운전 등 다양한 이동 방식을 통해 음악과 동기화되는 감정의 궤적을 그려낸다면, <스케이트 스토리>는 중력에 밀착된 감각, 즉 보드에서 미끄러지고 박살 나는 느낌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사요나라 와일드 하츠>에서 죽음은 장애물과 부딪히거나 투사체에 맞았을 때 화면을 암전시키고는 곧장 리셋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반면 <스케이트 스토리>에서 죽음이 구현되는 방식은 복합적이다. 주인공인 유리 스케이터가 바닥을 구르는 연출은 훨씬 복잡하게 구현되었다. 일반적으로 카메라는 삼인칭의 시점에서 보드를 타는 스케이터의 등 뒤를 따라간다. 그러다 넘어지는 순간, 일인칭에 가깝게 급격히 당겨지고, 시야는 회전하며 바닥을 스친다. 제작자인 삼 엥은 이러한 연출이 스케이트보드 영상을 시청하다 보드에 탄 사람이 넘어질 때 카메라와 함께 시야가 튀고 회전하는 장면에서 영감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7] . 그는 이러한 움직임이 실제로 넘어졌을 때 느꼈던 순간적 감각과 겹친다고 말하며, 게임에서 이 시차적 충돌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다. 디볼버 디지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개발 당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오피스로 이동하다 넘어진 탓에 한 손으로 코딩했던 일화를 나누기도 한다 [8] . 이처럼 가상의 지옥이 빚어내는 낙상은 제작자의 일상과 유리되지 않은 채, 신체와 작업의 질감으로 녹아 있다. 이러한 대목을 마주하다 보면 앨리슨 케이퍼가 고안한 ‘불구의 시간’ 개념을 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퀴어 시간성을 규범적 생애 리듬에서 벗어나, 어긋나고 비동시적으로 시간을 살아내는 경험의 양식이라고 할 때, 케이퍼는 그와 불구의 시간 사이 “잠재적으로 연결되거나 중첩되는 지점”을 추적하려 한다. 탈골과 같은 신체적 비유는 온전하게 배열된 몸으로부터 어긋난, 몸을 가로질러 나타나는 시간을 상상하게끔 한다 [9] . 보드에서 떨어진 스케이터의 관절을 어긋나게 만들다 못해 산산이 깨트리는 <스케이트 스토리>는 탈골된 시간을 잠시 시각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닥을 나뒹구는 카메라의 시선은 넘어짐이라는 조건 속에서 새롭게 생성된 후천적 일인칭으로 전환된다. 그리하여 본래 쭉 뻗어나가야 할 삼인칭의 도로와 몸의 시야가 잠시 포개어지며, 게임 속 몸과 시간의 어긋남이 감각적으로 드러난다. 스케이터의 죽음은 우발적인 미끄러짐이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거듭 보는 장면이기도 하다. 유리와 고통으로 이루어진 언더월드의 마귀는 매끄럽고 반짝이며, 동시에 언제든 깨질 위기에 놓여 있다. 균형이 조금만 흐트러지거나 스킬 커맨드의 타이밍을 놓칠 경우 몸에는 금이 가고 부서진다. 애초부터 망가지게끔 설계된 존재에게 넘어지는 것은 예외적인 사고가 아니다. 오히려 항상-이미 스케이터에게 주어진 조건에 가깝다. 통상적으로 취약성은 다치지 않고 무사히 완주해야 한다는, 방어적인 플레이와 직결된다. 상처는 피해야 할 실패로, 파손은 잘못된 플레이의 결과다. 그러나 〈스케이트 스토리〉에서 유리 신체의 취약성은 되레 그 규범이 얼마나 달성 불가능한지 폭로하는 듯하다. 부서지도록 설계된 몸 위에서 ‘넘어져서는 안 된다’는 요구는 허약한 이상에 가깝다. 취약한 몸은 정상성의 기준을 추락시키고, 기준 자체의 깨지기 쉬운 성질을 드러낸다. 직선으로 순항해야 할 스토리의 시간은 전진을 종용하지만, 몸은 중력에 붙들린 채 미끄러지고 회전하며 흐름에서 이탈한다. 그렇게 구현된, 박살 난 유리 조각들이 큐빅의 파도처럼 바닥을 뒤덮으며 반짝이는 광경은 실패의 시각적 형상화이며 그 자체로 매혹적인 풍경이 된다. 게임이 구현하는 미성숙과 좌절의 경험은 바로 이러한 퀴어한 실패의 감각과 연결된다. 핼버스탬은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에서 퀴어한 실패를 통해 성공/실패의 이분법과 성장 서사, 완결과 성취를 향한 강박 자체를 무너뜨리자고 제안한다. 분명 실패는 불쾌한 경험이며, 핼버스탬은 그와 같은 지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바로 그 일련의 부정적 정동을 이용해 “우리 삶에서 해로운 긍정주의toxic positivity가 지닌 허점을 찾아”내자는 것이 이론의 정치적 기획이다. 실패는 “어둠, 무지, 미완성, 비능력, 파편성”에 머무르려는 선택이며, 이 선택이 “더 창조적이고, 더 협력적이며, 더 놀라운 존재 방식”을 열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10] . 보 루버그는 잭 핼버스탬의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 그리고 에스퍼 율의 『The Art of Failure』가 제목부터 상호 텍스트적 독서의 흥미를 자아냄에도 불구하고 두 저자가 서로를 전혀 참조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루버그는 둘을 연결하여 게임이 어떻게 실패를 유희적이고 즐거운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11] . 실패를 퀴어한 놀이의 양식으로 제안하는 루버그의 관점에서 보면 완벽한 숙련에 도달하지 못한 채, 어딘가 붕 떠 있는 <스케이트 스토리>의 플레이 경험은 퀴어한 실패의 감각을 조작과 진행의 과정에 걸쳐 퀴어한 실패의 감각을 조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를 긍정하는 활기 플레이어는 유리 스케이터의 취약한 몸을 하나의 렌즈 삼아 그 파편이 흩뿌려진 바닥, 지저 세계를 더듬어 나가게 된다. 데굴데굴 구르며 바라보는 언더월드는 텅 비고 공허한 듯하면서도 기이한 활기가 가득한 공간이다. 핼버스탬은 미술 콜라주 작업을 독해하며 파편성에 대한 헌신을 강조한다. 깨뜨리고 자해하는 퍼포먼스는 반사회적 페미니즘의 미학을 구현하는데, 여기서 신체는 치유와 복구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원래부터 부서져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신체는 부서지는 것을 통해 다른 관계와 정동을 여는 재료로 등장한다 [12] . <스케이트 스토리>의 유리 신체는 깨짐을 통해 비둘기와 개구리, 철학자의 머리 따위가 NPC로 출현하는 언더월드와 친밀히 접속하는 매개가 된다. 그렇게 게임 속 뉴욕은, 그리고 실제 뉴욕과 그곳의 스케이트보딩 문화까지도 겹치며 읽히게 된다 [13] . 게임의 후반부에 이르면 <스케이트 스토리>는 스스로의 구성적 성질을 노출한다. 사탄의 계약이 영원히 그를 자유롭게 할 수 없음을 깨달은 스케이터는 붕괴하고 만다. 플레이어는 온 사방에 흩날린 스케이터의 육신 조각을 하나둘씩 그러모으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도 스케이트보드는 못처럼 붙박인 이동기다. 분명 스케이트보드는 그를 지옥의 여정에 묶어 두는 규율 장치이자 애증의 대상이지만, 끝내 놓지 못하는 이동 수단이자 쾌락의 매개로 남아 있다. 파편난 육신이 점차 형태를 되찾아가는 동안, 스케이터는 지금까지 지나온 맵을 요약본처럼 다시 미끄러져 지나간다. 이어서 게임은 아예 프로그램이 세계를 렌더링하는 장면을 일종의 맵처럼 제시해 그 위를 달리게끔 한다. 이러한 자기 응시는 플레이 화면을 매끄러운 연속체가 아닌, 구성 요소를 이어붙인 콜라주처럼 이해하게 만든다. 깨진 유리 육신과 이미 플레이한 여정의 파편들을 재편집해 엮어내는 것이다. 파편성의 미학에 기대어, 이러한 연출을 새로운 관계와 의미를 만들어내는 재료로 배치해 보면 어떨까. “어떻게 이 어렵고도 어이없는 일, 달을 먹는 짓을 할 수 있을까요? 왜 굳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려 할까요,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당신은 유리로 만들어졌는데,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요? 왜 굳이 그런 짓을 하려는 걸까요?” 삼 엥은 <스케이트 스토리>를 “어떻게 인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온 지난한 게임들의 역사 안에 배치한다 [14] . 그에 대한 답을 성장 문법으로 재차 회수하고 싶진 않다. 되레 그러한 게임 속에서 붙들고 싶은 것은 ‘굳이’ 하는 ‘그런 짓’에 몰두하는, 그리고 몰두하게 하는 몸이다. 핼버스탬은 마조히스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마조히스트는 쾌락과 죽음 간의 해소될 수 없다고 가정된 긴장을 해소시키며 자아에 대한 관념을 고통과 상처의 소용돌이에 묶는다. 그는 일관성을 유지하길 거부하고, 죽음에 관한 지식에 맞서 스스로를 무장시키길 거부하고, 그 대신 완패당해 시공간과 욕망에 매인 몸이 되기를 자처한다. [15] ”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언더월드를 배회하는 게임의 마지막 장면은, 완패를 수락하고서 지옥에 매인 몸이 되기를 자발적으로 택하는 것처럼 읽힌다. 그런 의미에서 <스케이트 스토리>의 나뒹구는 몸은, 일련의 게임들이 제공해 온 영웅적 회복의 판타지 바깥에서, 깨어진 상태에 머무르려는 몸의 고집을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서 긍정해 보도록 유혹한다. [1] Jesper Juul. 2010. In search of lost time: on game goals and failure costs. In Proceedings of the Fif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Foundations of Digital Games (FDG '10).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New York, NY, USA, 86–91. https://doi.org/10.1145/1822348.1822360 [2] 장순호, 최지원. (2025). 소울라이크 게임의 파편화 스토리텔링에 대한 연구 :<엘든 링>을 중심으로. PREVIEW : 디지털영상학술지, 22(1), 06. [3] Michael Thomsen. “Dark Night (After Night After Night) of the Soul: Is a 100-hour video game ever worthwhile?” https://slate.com/culture/2012/02/dark-souls-review-is-a-100-hour-video-game-ever-worthwhile.html에서 인용. 원본 링크 소실. [4] 스케이트 스토리 스팀 상점 설명. https://store.steampowered.com/app/1263240/Skate_Story/ [5] H. 포터 애벗. 우찬제 역. (2010). 『서사학 강의』. 서울: 문학과지성사. 44쪽. [6] 동시에 플레이어가 행하는 달의 파괴 역시 중력과 밀접하다. 최대한 많은 콤보를 쌓아 공격력을 비축해 두었다가, 콤보 동안 축적된 추진력을 데미지로 전환하여 땅을 내리찍으며 충격파를 발생시켜 보스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전투 방식은 파괴의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7] SEDaily. “Skate Story with Sam Eng”. Software Engineering Daily. 2026.03.17.등록. 2026.03.24.접속. https://softwareengineeringdaily.com/2026/03/17/skate-story-with-sam-eng/ [8] DevolverDigital. “Skate Story | A Q&A Sesh with Sam Eng | The DEVELOPER?! OMG”. 2025.12.20.등록. 2026.03.04.접속. https://www.youtube.com/watch?v=4MkT39b2OpM 1분 27초 경. [9] 앨리슨 케이퍼. 이명훈 역. (2023).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파주: 오월의봄. 104쪽. [10] 잭 핼버스탬. 허원 역. (2024).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 서울: 현실문화. 15-62쪽. [11] Bonnie Ruberg. (2017). “PLAYING TO LOSE: The Queer Art of Failing at Video Games.” Gaming Representation: Race, Gender, and Sexuality in Video Games, edited by JENNIFER MALKOWSKI and TREAANDREA M. RUSSWORM, Indiana University Press. 202p. [12] 핼버스탬, 위의 책. 279-281쪽. [13] 서핑을 육지에서 대체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되었던 스케이트보드는 점차 계단과 난간, 광장 등 도시 기물을 수직적이고 공세적으로 타는 과정을 거치며 하위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뉴욕의 경우, 스케이터들은 공식 스케이트파크보다 박물관 계단이나 공공 조각 주변 등을 도전적으로 재전유하며 도시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구성한다. (Richard Blankman. “A Non-Skateboarder's Skateboarding Guide to NYC.” 2023.12.06.등록. 2026.03.24.접속. https://www.blankmanlist.com/p/skateboarding-in-nyc [14] SEDaily, 위의 글. [15] 핼버스탬, 위의 책. 294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게임이 이야기를 경험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최근에는 <마라톤>을 플레이했습니다.
-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동적 원근법에 관한 노트
변화하는 원근법과 그에 맞추어 재편되는 게임 내 공간감, 플레이어의 시각성은 앞으로 우리의 시각 문화에서 더욱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성은 과연 우리의 눈에 어떤 변화들을 불러들일까? 복수 개의 원근법, 회전하는 원근법이 구성하는 세계는 어떤 풍경일까? 우리의 눈은 그런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더 많고 풍성한 논의가 이 글 위에 쌓여 가기를 기대해 본다. < Back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동적 원근법에 관한 노트 01 GG Vol. 21. 6. 10. 미술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에 관해서는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아주 짧게 정리하자면 원근법은 3차원 세계를 2차원 평면에 재현할 때 필요한 방법으로, 입체인 3차원 세계를 실제로는 입체가 아닌 2차원 평면 위에 재현하면서 마치 입체인 것처럼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기술이기도 하다. 화면 안에 적용된 원근법은 화면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드(grid)로 분할한다. 그리고 이 그리드를 기반으로 대상의 크기나 비율, 선명도, 색상, 명암의 방향 같은 요소들이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원근법은 무엇이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지, 관객의 눈은 어디에 어떻게 참여할지 같은 질문들, 더 나아가 화면의 전체적인 풍경을 결정하는 기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원근법은 단순히 멀리 있는 것은 작고 흐리게, 가까이 있는 것은 크고 선명하게 그린다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화면 안의 모든 것이 배치되는 규칙, 어떤 것이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를 결정하는 화면 구성의 내적 논리의 설계 방법론이다. 우리의 눈과 뇌는 화면이 제공하는 원근법에 의거하여 화면 내부를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인식하고 그 내부의 공간감에 우리의 신체를 동기화한다. 따라서 그 자체로는 입체감을 가지지 않는 평면 매체에서 원근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 회화에서 영화에 이르기까지, 원근법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은 언제나 기묘하거나 이상하거나 놀라운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렇다면 모니터라는 평면을 사용하는 게임에서는 어떨까? 게임 내 원근법과 캐릭터의 이동, 크기, 비율 문제는 우리의 플레이 경험에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MMORPG 게임의 경우 몬스터가 아닌 이상 혹은 몬스터조차도 배경 세계의 원근법에 착실히 순종한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게임이 설정한 휴먼 스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며 캐릭터를 제외한 인게임 요소들, 예컨대 건축물, 아이템, 탈 것, 펫, 배경 같은 것들도 캐릭터의 크기에 맞추어 하나의 완결되고 고정된 원근법을 구축하는 데에 집중한다. 반면 1인칭 FPS 게임에서는 이 원근법이 더욱 강화된 형태로 드러난다. 서든어택이나 오버워치 같은 게임들에서는 주로 화면 정 가운데에 십자 모양이나 원, 탄젠트형의 에임(aim)이라고 부르는 조준점이 있다. 이 에임에 맞추어 1인칭 플레이어의 무기를 든 손이 정렬되는 모양을 보고 있으면, 1점 투시 원근법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화면 중앙에 소실점(vanishing point) 하나가 놓이는 1점 투시 원근법의 제1규칙, 가장 중요한 것을 소실점에 놓는다는 규칙은 회화에서 수차례 변용되었고, (프레임이라는 천성 때문에 회화에서보다는 그 정도가 약하지만)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관객의 시선이 쏠리는 곳에 무엇을 둘지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다. 어느 쪽이든 이런 게임들이 상정하는 게임 내 원근법은 우리의 실재와 최대한 유사하게 조성한다는 하나의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게임들의 카메라가 얼마나 인간 같지 않은 시야로 날뛸 수 있느냐에 상관없이, X축과 Y축은 고정되어 있다. 아주 잠시 이색적인 뷰로 한 장면을 비춘다고 하여도 플레이의 기본 전제는 변하지 않는 X축과 Y축이다. 그러나 AOS 게임의 경우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도타나 카오스(CHAOS),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 같은 게임들이 포함되는 AOS 게임의 경우 축약되고 매우 인위적으로 가공된 세계를 배경으로 사용하며 이미 우리의 실재로부터 벗어나 있는 원근법, 그러므로 쉽게 도식화하기가 곤란한 형태의 원근법이 화면을 구성한다. 내가 가장 많이 플레이 해 본 리그 오브 레전드를 두고 논의를 좁혀 보자. 일반적으로 2차원 평면을 사선으로 기울인 쿼터 뷰(Quater View)를 사용하는 2.5차원 게임에서 X축과 Y축은 마름모 모양의 면을 구축하고 그 위에 캐릭터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쿠키런 킹덤과 리그 오브 레전드의 맵을 비교해 보면 전자의 맵은 다이아몬드형, 후자의 맵은 정사각형으로 보기에 약간 다르지만 쿼터 뷰 게임이 설정하는 X축과 Y축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그림 1). (그림 1) 쿠키런 킹덤과 리그 오브 레전드의 소환사의 협곡 지도 (출처: 좌-쿠키런 킹덤 공식 유투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VUIy7RaHcL4, 우-리그오브레전드 나무위키 https://namu.wiki/w/소환사의%20협곡)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특히 더 흥미로운 것은 이 Y축이 Y축이 아니라 X축으로 인식된다는 점에 있다. 퀸의 ‘후방지원’이나 자야의 ‘저항의 비상’ 같은 특정 챔피언의 특정 스킬은 X축 면에서 도약하며 (미니)맵으로 가시화되지 않는 인게임 Y축을 가시화한다. 아예 Y축의 패러미터를 벗어났다가 돌아오는 형식의 스킬을 사용하는 갈리오나 판테온 같은 챔피언들도 있다. 아주 얕은 수준이지만 렉사이 같은 챔피언은 X축 평면 아래, 즉 -Y축의 공간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리그 오브 레전드가 플레이어의 시점을 2차원도 3차원도 아닌 2.5차원 쿼터 뷰로 설정하면서, 앞서 언급한 챔피언들이 스킬 사용으로 지면을 도약하면서 인 게임 원근법을 떠받치는 X축과 Y축이, 그리고 숨겨져 있던 Z축이 등장하며 서로 뒤엉키게된다. (좌, 그림 2) 쿼터 뷰 게임이 상정하는 공간의 구성 원리 (우, 그림 3) 리그오브레전드 게임이 상정하는 공간의 구성 원리 챔피언이 지면을 도약하면 지면 위에서 이동 시 Y축이 자연스럽게 Z축으로 변하고, 챔피언이 도약하는 방향은 Y축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챔피언은 X축의 연장된 면 위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데,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X축의 방향이 달라지고, 여러 개의 방향이 이어지면서 X축은 (그림 2의 Y축이었던) Z축까지 가 닿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원근법에 상관없이, 각 라인은 미니맵에서 보여지는 순서대로 탑-미드-바텀이다.) 즉, 리그 오브 레전드의 원근법은 고정된 축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게임의 원근법은 캐릭터의 이동과 도약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축들을 뒤섞는다. 플레이어는 평균 20분의 플레이 타임 안에서 끊임없이 재배치되는 유동적인 축들에 놀랍도록 매끄럽고 빠르게 적응하는데, 이는 이전의 초지일관(初志一貫)적 시각성과는 물론 다른 양상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하나의 세계가 제공하는 원근법이 이것에서 저것으로, 다시 저것에서 이것으로 전환되는 유동적인 원근법으로 구성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것을 아무런 문제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우리의 변화된 시각성이기도 하다. 이에 덧붙여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스킨이나 캐릭터의 크기가 스킬의 적중 여부를 좌우하기도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챔피언 스킨 때문에 게임 내에서 챔피언의 크기와 부피, 모양, 그리고 스킬의 크기와 부피가 달라지면 조준의 방법도 미세하게 바뀌게 된다. 최근 추가된 서리불꽃 건틀릿(Frostfire Gauntlet) 같은 아이템에는 챔피언 크기를 키우는 옵션이 달려 있다. 인터넷에서 롤 챔피언 크기라고 검색하면 이 옵션이 도대체 왜 있는 거냐는 플레이어들의 의문과 위엄을 위하여, 재미를 위하여, 논타킷 공격을 대신 맞아 아군 보호, 사거리 증가 등의 답변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는 자신의 기존 캐릭터에 맞추어져 있던 원근법의 축 변화와 그로 인해 재구성된 시각성에 기반하는 공간감에 시시각각 적응하고야 만다. 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시각성이 기존과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이 글의 주장을 보완하며,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번 캐릭터의 비율, 스케일, 거리감, 공간감 등 원근법에 관여된 여러 문제들이 관건에 오르게 된다. 많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라면 한 번쯤 “이걸 맞는다고?” 혹은 “이걸 안 맞는다고?” 같은 말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떨 때는 내 캐릭터에 스킬이 닿지 않았는데도 맞았다는 판정, 닿았는데도 맞지 않았다는 판정이 의아하기도 하다. 이처럼 이해되지 않는 판정의 순간은 오히려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이 형성하는 공간감, 하나의 원근법에서 다른 원근법으로 교체되는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변화할 시각성에 관하여 고민하기에 더 없이 적절한 출발점이다. 모니터 평면 안의 크기와 비율, 스케일과 동기화되어 있던 우리 신체의 공간감이 끊기고 기존 원근법의 축이 변화하는 지점, 플레이 시간 내내 계속해서 눈의 새로운 적응을 요구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 게임 원근법의 변화무쌍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현한다. 변화하는 원근법과 그에 맞추어 재편되는 게임 내 공간감, 플레이어의 시각성은 앞으로 우리의 시각 문화에서 더욱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성은 과연 우리의 눈에 어떤 변화들을 불러들일까? 복수 개의 원근법, 회전하는 원근법이 구성하는 세계는 어떤 풍경일까? 우리의 눈은 그런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더 많고 풍성한 논의가 이 글 위에 쌓여 가기를 기대해 본다. [1] 물론 입체 매체, 예를 들자면 조각에서도 원근법은 중요한 문제다. 휴먼 스케일을 벗어나는 고대 그리스 조각들은 사람의 실제 몸과 비교하자면 머리가 훨씬 더 크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조각을 주로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기 때문인데, 실제 사람의 비율대로 제작하면 멀리 있는 머리가 더 작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원근법은 크기와 비율의 문제에 관여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김얼터 리얼리티, 리얼리즘, 픽션, 그리고 매체의 관계에 관심이 있다. 시험에 들게 만들거나 시험하는 사물을 좋아한다. 미술 전시와 전시에 관여하는 텍스트를 생산하는 것으로 일하고 있다.
- ‘K-의 거짓’ : 으로 바라보는 스탠드 얼론 게임을 향한 갈망
이라는 이례적인 작품의 사례는 그 플레이 경험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인식하는지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한편으로는 대항 담론이라는 것이 어떠한 기준점에 부합함과 부합하지 않음으로 나뉘며 게이머 커뮤니티의 ‘진정성’을 강화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 Back 15 GG Vol. 23.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ri Kim Interested in the ways games let us experience stories. After poking around here and there, lately played Marathon.
- [인터뷰] : “중꺾마”의 장본인,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인터뷰
흥미로운 점은 해당 표현을 처음 사용한 문대찬 기자가 ‘게임 전문지’가 아니라, 종합일간지의 기자라는 점이다. 문대찬 기자가 소속된 쿠키뉴스는 2005년에 만들어진 온라인 뉴스 서비스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인터넷 종합일간지가 게임을 다룬다는 점을 넘어, 게이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미디어 일반에 진출하면서 만들어지는 변화를 보게 한다. ‘중꺾마’의 대중화만 하더라도 게임과 게임 산업의 맥락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게임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장된 사례이다. 이번 호에서 편집장은 ‘중꺾마’의 장본인인 문대찬 기자와 만나, 게임이 서브컬쳐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디지털 연산장치와 확률이라는 조합의 아이러니
디지털게임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이 매체의 물적 기반인 컴퓨터의 시작이다.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설계된 이 전자장치는 애초에 암호해독이나 탄도 계산 같은 전쟁 기술을 보조하는 도구로 만들어졌는데, 그런 도구로 사람들은 놀이하는 방법을 찾아내 즐기고 돈을 번다. 전쟁용 전자장비를 활용해 만든 놀이들의 상당수가 전쟁과 전투를 재현하려 든다는 점까지를 생각한다면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 Back 17 GG Vol. 24.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트롤링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게임이나 플레이어의 폭력성이나 가학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게임 시스템 활용의 하나이자, 전체 플레이의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실천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하스스톤, 핑, 스마트핑, 트롤링,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hinKyu Kang Editorial board member of Culture/Science, a journal specializing in cultural theory. Researches media and culture, including games, broadcasting, comics, and fandom. Books include Fandom in Flux: From Play to Labor, From the Real to the Virtual (2024), Subculture Criticism (2020), IP: The Beginning of Every Story (2021, co-authored), Third Life: New Lifestyles in the Age of Technological Revolution (2020, co-authored), and The Theory of Games: From Play to Digital Games (2019, co-authored). Papers include "Fun Without Winning: Sociality, Agency, and Striving Play in Parent-Child Game Play" (2024), "Fandom That Consumes Communication: Idol Fan Platforms and the Reconfiguration of Fandom" (2022), "How Does 'In-Game Spending' Become Play?: Focusing on In-Depth Interviews with Whale Game Players" (2022, co-authored), and "Gamifying Broadcasting: From Producerly Text to Playerly Text" (2019).
- 비디오 게임이라는 강신술의 세계에서(장려상)
미래의 비디오 게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구차한 물음에 수많은 미디어들은 상당량 유사한 패턴으로 반응한다. 이를테면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이자 해당 작품을 영화화한 작품 〈레디 플레이어 원〉은 육체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아바타 캐릭터로 이루어진 초대형 MMORPG라는 형태로 구현되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구태의연한 표현에 가깝다. 1994년 방영을 시작한 〈기동무투전 G 건담〉에서도 이미 플레이어의 육체를 트레이싱해 반응하는 아케이드 대전 액션 게임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주장하는 미래의 비디오 게임은 통상 플레이어 육체의 즉시적 피드백, VR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세계의 확립, 대체 육체가 활동할 수 있는 사이버 스페이스적 환경이라는 3개의 요소를 고정된 표징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nin Lee Writes and lectures freely across comics, games, and film. A lifework: clearing every Final Fantasy title except the MMORPGs. Mainly plays on the Steam Deck.
- 협업, 경쟁, 방송: MMO로부터 라이브 스트리밍과 온라인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21세기 북미 게임씬
만약 당신이 2000년 이후에 태어난 게임팬이라면 성장 과정에서 게임 매체를 비교적 쉽게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문화적(countercultural)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현 시점의 게임은 주류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으며, 플레이어들이 직접 제작한 게임 관련 콘텐츠의 양도 엄청나게 방대해져서 게임을 종료한 뒤에도 좋아하는 게임들을 눈과 귀로 계속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 아무리 마이너한 게임일지라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거의 무한히 느껴질 지경이다. < Back 협업, 경쟁, 방송: MMO로부터 라이브 스트리밍과 온라인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21세기 북미 게임씬 23 GG Vol. 25. 4. 10. You can 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at: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c4322a54-d363-4b02-bd95-cca5eefb6413 익숙한 듯한 새로움 만약 당신이 2000년 이후에 태어난 게임팬이라면 성장 과정에서 게임 매체를 비교적 쉽게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문화적(countercultural)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현 시점의 게임은 주류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으며, 플레이어들이 직접 제작한 게임 관련 콘텐츠의 양도 엄청나게 방대해져서 게임을 종료한 뒤에도 좋아하는 게임들을 눈과 귀로 계속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 아무리 마이너한 게임일지라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거의 무한히 느껴질 지경이다. 이처럼 오늘날 게임을 둘러싼 문화적 공간은 게임 자체뿐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나 스팀, 디스코드 같은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넘나들며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새천년(2000년) 전후의 상황은 이와 매우 달랐다. 1999년 캐나다에 사는 어린 게이머였던 나는 주1회 방영되던 30분짜리 TV프로그램 과 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는데, 내가 살던 지역에서 볼 수 있던 게임 관련 TV프로그램은 이 두 편이 전부였다. * 캐나다의 게임 TV프로그램 출처: Videoandarcade YouTube channel. [1] 이 두 프로그램 외에 게임 관련 콘텐츠를 접할 수 있던 채널은 주로 월간 게임 잡지였다. 당시 게임 잡지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었다. 우선 <닌텐도 파워(Nintendo Power)>처럼 자사의 최신 출시작 또는 출시 예정작을 홍보하는 장문의 광고 형식의 공식 잡지가 있었고, 다음으로는 <게임프로(GamePro)> 같은 게임비평지 계열, 마지막으로는 <넥스트 제너레이션(Next Generation)>처럼 최신 하드웨어나 업계 소식을 찾는 취미가들을 겨냥한 잡지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게임 관련 미디어라고는 최신 게임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소수의 출판물과 눈 깜빡할 사이에 장면이 지나가버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두 편 정도에 불과하던 시대로부터, 오늘날처럼 게임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이슈와 수많은 논쟁이 넘쳐나는 일종의 플랫폼으로서 게임 미디어가 방대한 규모로 진화하게 된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을까? 우선 게임의 소비 환경과 그 문화적 공간은 단독적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게임은 연구자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가 “컨버전스 문화(Convergence Culture)”라 명명한 현상의 한 단면인데, 여기서 컨버전스(융합)란 미디어 기술의 발전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적 요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결합되는 거대한 소용돌이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2] . 게임은 영화, TV, 잡지뿐 아니라, 인터넷이 가능케 한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콘텐츠들과 게임 디자인적 특징들까지 포함하는 복잡다단한 미디어 환경의 일부다. 21세기의 첫 25년간 우리가 함께 게임을 경험한 방식은 엄청나게 변화하였으며, 게임 문화의 발전은 ‘웹2.0’ 및 인터넷의 대중화에 의해 가능해진 컨버전스 시대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제 플레이어들은 문화 생산자로서의 중심적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게임 안팎으로 증대된 연결성을 바탕으로 공공 영역에서 문화를 형성하는데 있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게임 미디어 소비 시장에 있어 선두주자인 트위치나 유튜브가 2006년이 되어서야 등장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그 시기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가 출시되면서 이미 어느 정도 번성하고 있던 온라인 게임 하위문화를 전지구적으로 대중화시킨지 2년 뒤의 시점이었다. 오늘날에는 신규 출시된 클래스나 메타게임적 고려사항들, 보스 공략 등을 설명해주는 수많은 영상들 없이 수백만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모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플레이어들은 온라인 상에서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들을 실험하면서, 도전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복잡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전달할 수 있는 방식들을 즉흥적으로 만들어냈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적 규범과 동료 플레이어들과의 소통 방식을 학습해 나갔다.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들은 플레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한데 엮어주는 새로운 온라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참여했다. 한편 e스포츠는 아직 새로운 영역이었는데, 서구의 일부 열정적인 게이머와 주최자들은 한국의 인상적인 스타크래프트(StarCraft) e스포츠씬 [3] 에서 영감을 얻어 언젠가는 (게임)플레이가 게임이 단순한 취미나 열정 프로젝트를 넘어 게임 개발이 아닌 그 자체로서 하나의 전문적인 직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불태웠다. 이러한 움직임이 전통 미디어 및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 기반의 미디어 제작 방식과 맞물리고, 1990년대 후반의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갈수록 더 많은 일반인들이 대중적으로 유명한 셀럽으로 간주되어가던 트렌드와 엮여 우리를 새로운 게임 문화적 풍경으로 이끌었다. MMO게임과 연결성과 사회성의 새로운 규범 멀티플레이 게임 자체가 새천년 전환기에 새롭게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의 MMO게임붐은 플레이어들을 한데 모으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0년대~ 1980년대 초반까지는 게임 아케이드(오락실)가 게임하는 주요 공간이었으며 [4] , 1990년대에는 가정용 콘솔과 주요 브랜드간 각축전이 주목을 받았다면, 2000년대는 단연 MMO게임의 시대였다. 머드(MUDs, Multi-user Dungeons) 같은 초기의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은 대개 텍스트 기반의 RPG 시스템을 통해 플레이어들을 연결시켰다. 이와 같은 원형적 형태의 MMO게임은 수백명 정도의 플레이어들을 연결시켰음에도 여전히 마이너한 게임 하위문화로 남아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에버퀘스트(EverQuest)> [5] 와 <울티마 온라인(Ultima Online)> [6] 같은 게임들이 어느 정도 인기를 끌긴 했지만, <월드오브워크래프트 [7] 가 독특한 그래픽 스타일과 접근성 좋은 게임플레이를 통해 이끌어낸 대중적인 인기는 다른 차원의 수준이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그 자체로도 강력한 팬덤이 형성되기는 했지만, 이전까지 틈새 장르로 머물러있던 MMO게임을 전례없는 방식으로 대중적인 영역으로 끌어낸 것은 2006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사우스파크(South Park)>의 “Make Love Not Warcraft” 에피소드였다. 이는 단순히 게임을 홍보했다는 수준이 아니라 MMO 장르가 새로운 문화적 존재감을 획득했다는 신호탄이었으며, 이후 수많은 게임사들로 하여금 자사의 MMO 게임들이 그와 같은 성공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서 플레이어들이 다른 땅으로 이동하기 위해 배를 기다리고 있다. 출처: 저자의 스크린샷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성공 이후 차기 대세 장르가 MMO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그 뒤를 이어 경쟁적으로 수많은 MMO게임들이 등장하면서 명백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사실은 예전에는 소수의 머드게임 열성팬들만 경험할 수 있었던 대규모의 플레이 기반 연결성을 MMO게임들이 보다 쉬운 접근성을 통해 제공해주었다는 점이다. MMO장르가 멀티플레이에 있어 경쟁과 협업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체 세대의 플레이어들이 아바타 기반의 플레이 공간 내 온라인 연결성을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이와 같은 플레이 기반의 연결성은 막을 수 없는 홍수와 같은 흐름을 형성했고, MMO장르가 유입시킨 연결성의 DNA는 소셜미디어와 모바일게임이 자사의 플랫폼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유도하는 레버리지로 사용하면서 더욱 많은 장르로 확산되어 갔다. 오늘날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며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공유할 수 있다.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친구들이 무엇을 어떻게 플레이하고 있는지 중요해졌고, 이는 <팜빌(Farmville)> [8] 같은 소셜 게임이나 싱글플레이 콘솔게임에서 업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차세대 MMO로서 게임 방송과 라이브 스트리밍 한편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웹사이트들은 게임 업계에 관한 이슈나 기술 발전에 대한 짧은 칼럼과 함께 게임 리뷰를 게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2010년대 말에 이르면서 가시적으로 변화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사건은 전통적인 게임 저널리즘 매체였던 게임스팟(Gamespot)의 편집장이었던 제프 거츠먼(Jeff Gerstman)의 퇴사와 함께 시작된 게임 웹사이트 자이언트밤(Giant Bomb)의 탄생과 발전이었다. 자이언트밤의 콘텐츠는 게임에 대한 이해가 깊은 플레이어인 동시에 저널리스트인 웹사이트 운영팀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논의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는데, 그에 따라 기존 게임 리뷰나 기사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겉치레나 인위적인 요소가 없어졌고 대신 방송 진행자들이 보여주는 (게임에 대한) 진정성이나 방송 중 발생하는 즉흥적인 순간들이 게임 콘텐츠 그 자체만큼 중요한 부분으로 떠올랐다. 이 모든 사례들에서 커뮤니티는 이용자 경험에 있어 핵심이었다. 트위치와 같은 라이브 스트리밍 사이트는 활성화된 채팅이 없으면 완전히 다른 사이트가 되어버리며, 유튜브의 ‘Let’s Play’나 자이언트밤의 영상들은 (관객들의) 코멘트와 토론이 가득한 커뮤니티의 장으로서 기능한다. 사람들은 화면 속 등장인물들이나 그들이 형성하고 있는 커뮤니티 구성원들로서 자신을 동일시했으며, 이러한 부분은 때때로 플레이하거나 토론 중인 게임 그 자체보다 중요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게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2000년 초반 연결성을 유지시키는 핵심적인 접착제로, 이는 플레이로 연결되는 일종의 건설 중인 사회와 같다고 볼 수 있었다. 북미에서 MMO게임 붐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은 2008년부터 2010년 사이였지만, 플레이어들은 계속해서 MMO게임이 만들어냈던 커뮤니티를 갈망했다. 현 시점에 플레이 기반의 사회성(sociality)를 지탱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개발하고 있는 것은 렌더링된 디지털 판타지 세계 바깥의 사이트들이다. 연구자 셀리아 퍼스(Celia Pearce)는 <미스트 온라인: 우루 라이브(Myst Online: Uru Live)> [9] 가 서비스 종료된 후 그 플레이어들이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나 <데어닷컴( There.com )> [10] 같은 게임으로 옮겨갔음에도 여전히 강한 공동체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들을 게임 디아스포라(video game diaspora)라 지칭했다. 또 다른 게임연구자 미아 콘살보(Mia Consalvo)와 제이슨 베기(Jason Begy) 또한 서비스가 종료된 게임 <파우나스피어(Faunasphere)>의 플레이어들이 여전히 연락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함께 플레이할 새로운 게임을 찾는 등 ‘파우나스피어 플레이어’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플레이어들이 “적극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자신의 플레이 활동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새로운 가상의 ‘고향(home)’을 찾는데 종종 상당한 에너지를 쏟는다”고 언급했다 [11] (편집자 주: 북미와 같은 현상은 한국에서도 일어난 바 있으며, 이는 게임 <일랜시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 이 “새로운 가상의 고향”이 반드시 게임일 필요는 없다. 그 콘텐츠가 플레이와 관련되어 있는 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게임플레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직접 플레이하는 것만큼 - 때로는 그 이상으로 - 만족스러울 수 있는데, 특히 그러한 관람 행위가 이전의 게임 관계망 속 친구나 지인들과 함께 이루어질 때 더욱 그렇다 [12] . 시청자들은 스트리머가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에서 성공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커리어를 구축하는 ‘메타적 성공(meta-success)’에도 관심을 갖는다. 길드원에게 물자를 공급하거나 보스전에서 역할을 맡아 수행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성공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MMO게임은 플레이어들을 게임을 매개로 공유되는 사회적 공간으로 끌여들였다. 그러나 그 가상세계의 경계 너머에 비슷한 플레이 기반의 연결성이 구축되면, 플레이어들과 게임팬들은 더 이상 특정 게임 또는 그 디지털 지리상 위치에 얽매이지 않고도 그러한 연결성과 사회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라이브 스트리밍의 성장은 어떤 종류의 게임이 인기를 얻을지에도 영향을 주었다. “스트리밍하기 좋은(streamable)” 게임이라는 개념은 “플레이 할만한(playable)” 게임만큼이나 중요해졌으며, 플레이하는 것만큼이나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게임들이 시장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s)> [13] , <배틀그라운드(PUBG)> [14 ] , <어몽어스(Among Us)> [15] 같은 게임들은 경쟁을 통해 매 순간 긴장감을 유발하며, 이러한 긴장감이야말로 집단적 관람 경험 속에서 게임을 대리 체험하는 핵심이 된다. 예를 들어 <엘든 링(Elden Ring)> [16] 의 성공은 단순히 게임 자체의 품질에서만 기인했다고 보기 어렵다. 스트리머들이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어럽게 분투하며 수없이 많은 바이럴한 순간들을 만들어내고, 이를 지켜본 관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좌절과 (언젠가는 가능할) 궁극적인 성공을 공유하며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컨버전스가 절정에 달한 순간, e스포츠와 라이브 스트리밍은 완벽한 파트너가 되었다. 트위치가 관심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경쟁 게임을 제공하는 새로운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전 연구에서 나는 이러한 연결이 두 부문(역주: e스포츠와 라이브 스트리밍)의 성장을 도왔다고 언급한 바 있다: "e스포츠는 “2000년 10개였던 토너먼트가 2012년 696개로 증가’ [17] 하였고 현재는 전지구적으로 5억2천3백만명 규모의 시청자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18] . 게임은 지난 수십년간 경쟁적 요소를 지녀왔지만, 현재 그 경쟁성은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대중화되었다. 같은 시기동안 개별 인물들이 자신의 게임플레이를 타인들에게 방송하기 시작하면서 라이브 스트리밍 또한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는데, 이는 새로운 참여적 관객-커뮤니티 [19] 와 유사사회적 관계의 형성 [20] [21] 으로 이어졌다." 플랫폼의 시대 불확실한 미래 온라인게임 산업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은 기술산업 분야의 전략을 차용하여 자체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밸브(Valve)는 스팀을 게임 및 스킨과 같은 디지털 상품의 거래가 소셜플랫폼과 교차하는 하나의 포괄적인 시장으로 발전시켰다. 나는 게임의 독성 문화(toxic culture)를 연구하면서 게임의 플랫폼 시대의 문화적 영향과 형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한 바 있다: "초기 음성 채팅 소프트웨어였던 벤트릴로(Ventrilo)나 팀스피크(Teamspeak) 등은 기초적인 VoIP(Voice over IP) 프로그램으로, 2015년에 출시되어 이용자 친화적 멀티 서버 소셜미디어 허브가 된 디스코드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당시에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하면서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채널이 많지 않았고, 게임 콘텐츠를 다루는 방송사들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게임 문화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 지에 대한 논의도 거의 없었고, 플레이어들이 옮겨 다닐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의 수도 얼마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밸브나 블리자드 같은 게임사들은 디즈니나 HBO같은 대형 미디어 기업들의 전례를 따라 개별적인 게임에 플레이어들을 묶어 두기 보다는, 자사의 독점 플랫폼(Valve의 Steam이나 Blizzard의 Battle.net 등) 내 다양한 게임들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22] [23] . 지금도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진행 중인 플랫폼화(platformization)의 영향 속에서 살고 있다. 현 시점에 명백한 사실은 지난 25년간 게임과 플랫폼, 장르를 초월하면서 플레이어들이 서로 더욱 가깝게 연결되어왔다는 것이다. 온라인 상에서 사람을 사귀고 교류하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 된 가운데, 이는 온라인 게임에서 파생된 독특한 언어로 이루어진 사회적 환경이 인터넷 문화와 결합되면서 이어진 결과다. 플레이어들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방대한 규모의 게임 라이브러리에 접근할 수 있으며, 게임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 엄청난 수의 플레이어들과 연결될 수 있다. 트위치, 스팀, 디스코드 등을 통해 우리가 좋아하는 게임들과 연결된 네트워크는 2차적 지속적인 가상세계(persistent virtual world)를 형성하고 있다. 이 세계는 라이브 스트리밍과 유튜브 영상, e스포츠팀 팬덤, 그리고 다양한 서브커뮤니티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커뮤니티는 게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화적 공간을 누가 소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전례 없는 온라인 접근성에 바탕하고 있는 현재의 게임 풍경은 VR 같은 더욱 현실적이고 몰입적인 환경을 통해 우리를 더욱 가깝게 묶어줄까? 아니면 많은 이들이 소위 “게임 문화 전쟁”이라 부르는 갈등 속에서 플레이어들을 분열시킬까? 현 시점에서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직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게임 문화의 미래가 과거만큼이나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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