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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 Back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19 GG Vol. 24. 8. 10.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게임 사회> 전시가 보여주듯, 현재 예술 장 내에서는 ‘전시로서의 게임’이라는 새로운 실험들이 다양한 기획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활동은 전시장 벽에 설치된 지도(게임 맵)를 통해 기록된다. 전시 초기에 텅 비어있었던 지도는 게임의 참여자이자 전시의 또다른 생산자인 관객들의 경험들로 채워지고, 이후 회차를 플레이하는 새로운 관객들에게 다시 영향을 주었다. GG에서는 이와 같은 기획을 꾸린 작가 상희와 성훈을 만나 ‘대화형 게임’이라는 전시의 기획의도와 진행과정, 의미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경혁 편집장 :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선 작가님들 본인에 대한 소개를 해주시고요, 전시 제목과 전시의 의의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저는 상희라는 이름으로 작업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입니다. 2023년에 만들었던 <원룸바벨>이라는 VR 작업을 계기로, 게임 형식을 차용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만들었습니다.. 게임의 디자인적 요소를 작업에서 활용할 때 제가 만들려는 이야기나 전하고 싶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가상의 내러티브를 경험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게임같은 매체가 없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제 작업에서도 그런 식으로 관객들에게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성훈: 저는 성훈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면서, 상희님 작업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역시 게임의 시나리오를 맡았습니다. 게임 속에 나타나는 공간의 특수성에 특히 관심을 두고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상희: 본 전시의 제목은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이며,구요. 지금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고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이 거대한 지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이벤트를 저희가 ‘조우’라고 지칭하는데, 그 조우들의 결과가 (지도에) 계속해서 축적되고 기록되는 형식이어서 그걸 전시의 메인 이름으로 하게 됐어요. 전시를 준비할 때 기획자들과 논의하면서 ‘지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도에서 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나 이야기가 기록된다는 것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전시회의 메인 제목이 되었고, 부제인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은 이 지도를 무대로 사용해서 플레이하게 되는 대화형 게임의 이름입니다. 성훈 작가님과 저, 김지연 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게임이고요. TRPG의 형식을 차용해서 만든 게임이라 디지털적인 요소가 부재한 ‘오프라인 보드게임’을 지향했습니다. 퍼포머와 대화를 하면서 플레이하게 되는 게임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은 전시에서 사용하는 게임의 이름인 거고, 이 전시 자체는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군요. 제가 첫 회차에 플레이어로 참여를 하고, 지금 두 번째 방문을 하면서 비교해 보니 흥미로웠던 게 지도의 변화였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이쪽(벽면)이 썰렁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상희: 맞아요. 그때만 해도 게임을 끝까지 가신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경혁님과 일행분들이 바다로 처음으로 탈출하셨었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 걸 보면 결국 이 전시가 끝나고 가장 강렬하게 남는 건 이 지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도와 관련된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기로 하고요, 우선 이 게임의 배경이 일종의 재난 상황에 처한 지방 도시에서, 흰개미라는 인간 외적 존재와의 만남과 분투를 테마로 하고 있는데요. 게임의 장르적 특성을 논의하기에 앞서 이런 배경 상황을 구성하셨던 맥락이 궁금합니다. 상희: 우선, 일단은 저희 둘 다 같은 부산 출신인데요.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할 때 항상 관심이 가는 주제가 ‘고향'과 고향을 떠나와서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되는 사람들의 정서였어요. 제가 작업했던 <원룸바벨>도 서울 원룸에서 살고 있는 2-30대 청년들의 공간과 정서를 VR로 번안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들이 계속 주제로 선택되는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성훈 작가가 게임의 배경으로 지방 소도시와 벌레라는 주제를 선택했던 맥락도 있었어요. 성훈: 얼마 전에도 러브버그나 빈대가 서울에 등장했다는 뉴스들이 막 나왔다가 사라진 일이 있었잖아요. 도시 공간에서 벌레들이 철저히 방역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도시’와 ‘벌레’가 서로 적대적으로 묘사되는 방식에 흥미가 있었어요. 도시 공간에 빈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21세기 서울에서 이게 말이 되냐, 서울이 빈대가 나오는 도시로 전락했다는 식의 반응들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빈대를 모두 무서워했죠. 관련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르포 기사가 있는데요. 그 기사의 핵심은 빈대가 쪽방촌 등 주거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예전부터 항상 있었다는 점이에요. 빈대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도시 빈민의 공간에 항상 공존하고 있었는데 도시의 주요 거리에 출몰하면서 갑자기 조명을 받게 되었다는 얘기였어요. 그런 반응을 보면서, 도시와 벌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이 게임에 나오는 벌레들은 (인간 플레이어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나요? 상희: 맞아요. 물론 게임 속에서는 기존의 문명을 완전히 파괴하고 소진시키며, 그 폐허 속에 자신들의 도시를 세우지만, 한편으로는 흰개미라는 종 자체가 공생을 추구하기에 자신들이 만든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을 공격하지는 않아요.. 자신의 집이 그들의 집이기도 함을 받아들인다면, 살게 내버려 둡니다. 성훈: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 전개에 따라 흰개미는 어떤 플레이어들을 다른 존재로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 다름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의 판단은 생각하기에 달린 것 같아요. 인간에게 이질적인 어떤 생물에게 우리가 보기에 인간적인 방식으로 행동해주기를, 인간적인 방식으로 호의를 표현해주기를 요구할 수는 없지요. 그들은 자기들만의 어떤 논리가 있고, 인간들은 그게 우리한테 호의적이냐 아니면 적대적이냐 이런 종류의 판단 기준들을 각자 제멋대로 갖고 있을 뿐인거고요. 그래서 퍼포먼스를 계속하면서 인간의 이해 범주를 넘어선 일들이 다른 생물 종에 의해 일어날 때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반응할지 이런 것들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전시와 게임의 형식과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TRPG를 이용한 대화형 게임’이라는 형식을 구상하셨는데요, 원래부터 TRPG를 플레이하신 경험이 있었나요? 상희: TRPG 자체는 작년 초쯤에 시작했어요. 저도 보드게임을 많이 하니까 그런 게임이 있다는 거는 알고 있었는데, 작년에 <발더스 게이트 3>을 길게 플레이하면서 DND(던전 앤 드래곤) 장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발더스 게이트>가 특히 TRPG 시스템의 UI 구현이 잘 되어 있고, 저에게는 저희가 지금 즐기고 있는 RPG 같은 게임들이 어떤 역사 속에서 발전해 왔는지를 알게 된 게임이었어요. TRPG도 원래는 RPG라고 불리다가 디지털 RPG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앞에 T가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제일 초창기의 게임들을 찾아보고 싶었고, ‘초기의 RPG'로서 어떤 근원적인 경험이 있을 것 같아서 그때 리서치 개념으로 TRPG 플레이를 시작했어요. TRPG 자체는 숙련도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사실 진입하기가 되게 어려운 장르였어요. 처음에는 (TRPG 커뮤니티에) 가서 ‘저희 좀 시켜주십시오’ 했어요. 사실 이분들도 넓은 아량으로 해주시는 거거든요, 왜냐면 저희가 초보라서 못 하고 저희랑 하면 재미없기 때문인데(웃음). 다행히 저희가 갔던 커뮤니티는 소위 뉴비들을 끌어주는 분위기가 있었고. 커뮤니티 자체가 포용적인 분위기여서 좋다고 느껴졌어요. ‘대화’를 하는 게임이다 보니 그런 (포용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는 걸까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발더스 게이트> 이후로 TRPG 커뮤니티들에 굉장히 많은 유입이 있었죠. 그래서 그렇다면 원조는 뭘까 하고 궁금해지기 시작하신 거네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의 출발이 된 게임이 <발더스 게이트>였다면 ‘나레이터’의 존재도 꽤 큰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다른 게임과 달리 <발더스 게이트>에서는 계속 나레이터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전시에서 나레이터 역할을 하시잖아요? 그 역할을 TRPG를 특별히 오래 해오신 게 아니라면 사실 하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그걸 하면서 어떠셨어요? 상희: 저는 일단 제 자신이 부끄러움이 많은 타입이라서. 근데 사실 마스터가 부끄러움이 많으면 안 되고 뻔뻔해야 되고, 거의 <발더스 게이트>의 나레이터 같은 연극적인 태도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해야 참여자들이 따라오고 몰입을 해요. 저희 전시에서 주요 타겟으로 삼고 전달 방식을 고민했던 관객들은 TRPG를 처음 해보거나 이러한 형식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미술 전시를 보러 오는 일반 관객들이었어요. 왜냐하면 이런 류의 게임에 익숙하신 분들은 금방 잘 따라와 주실 테니까요. 이런 작업에 익숙치 않은 일반 관객분들과 함께 하려면 저희의 역량이 또 되게 중요했어요. 저희가 잘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시거든요. 그래서 테스팅 플레이를 하면서 많이 연습했고, 성훈 작가가 진짜 잘 하셔서 제가 이 분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저 같은 경우는 대사를 말하고 뒤에서 묘사하는 방식의 관찰을 하는 편인데, 성훈 작가는 굉장히 캐릭터처럼 연기도 하고 말을 하더라고요. 제가 플레이어로 참여했을 때 훨씬 경험이 좋았어요. 재밌고 잘 따라가게 되고, 저도 이런 식으로 배워서 시도해 보고. 성훈: 연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더 끌어내려고 하는 스타일의 마스터도 있어요. 그런 마스터 개개인의 특성이 달라진다는 것도 TRPG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회 같은 경우에는 한 사람이 마스터를 고정으로 쭉 이어나가셨던 건가요? 상희: 저랑 (성훈 작가가) 번갈아서 마스터를 했어요. 중간중간 지도가 변화하는 과정도 메모로 업데이트 하고, 저희가 대개 플레이할 때 둘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되는지 서로 체크했구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실 이 전시에 오시는 분들 중에 TRPG를 처음 해보는 사람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분들은 이 문법 자체를 모르셨을 것 같아요. 상희: 네, TRPG에 관심이 있어서 오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과연 TRPG라는 게 뭔지 궁금해서 오신 분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저희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건, 이게 ‘TRPG 전시’가 아니잖아요. TRPG를 차용한 ‘대화형 게임’이라는 걸 플레이하며 ‘대화형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거니까. 일반 관객들에게 경험되었을 때도 저는 이게 분명히 재밌는 형식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한편으로는 ‘이게 그래서 진짜 재밌을까, 사람들이 이걸 금방 캐치해서 따라올 수 있을까’, 이런 걱정도 컸었는데요. 생각보다 정말 다들 재밌게 하셨어요. 이런 대화라는 형식 자체가 정말 직관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디지털 게임은 항상 어떤 조작을 익혀야 하는 일종의 ‘배리어’가 느껴지는 형식이잖아요. 이번 전시는 같이 천천히 얘기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성격이다 보니 곧잘 잘 하셨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전시를 진행하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너무 제각각이었을 것 같은데요. 퍼포먼스를 같이 한 관객 중에 기억에 남는 관객이 좀 있으셨나요? 상희: 최근에 플레이하셔서 기억이 나는 분이 있는데요. 지금 보시는 지도에 있는 이 표시는 이전 회차 플레이어를 뜻하거든요. 이 사람이 마지막에 (플레이가) 끝나면 이런 마크를 남기면서 마지막 말을 남기고, 여기에 이 사람의 유해와 같은 육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데. 다음 회차 플레이어가 이걸 확인하면 저희가 알려 드려요. 이 사람은 지금 이런 상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신 분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저 이 사람 머리를 잘라갈게요’ 하시는 거예요(웃음). 실제 시체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시신(이라는 설정)이니까 사람들이 일단 그대로 두거나 건드리더라도 조심스럽게 하는데, 그분은 도시에 이 사람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니까 잘라간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결정이 굉장히 재미있는 전개였어요. 그리고 성훈 작가가 이 전시의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 세계관을 구축했는데요, 게임 내 NPC들 중에 같이 데리고 도시를 나가거나 고립 상태에서 구출할 수 있는 NPC들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지금 (지도의 동쪽) 연립주택에 아이 NPC가 있는데, 이게 이 쪽(서쪽)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머무는 엄마의 아들이에요. 여기서 만나면 우리 아들을 구해 와달라고 부탁을 하거든요. 근데 아무도 저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으시더라구요. 아이를 데리고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지 않거나, 돌아 가다가 게임 오버가 되기도 하구요. 그런데 언젠가 소방관으로 플레이하셨던 분이 그 아이 NPC와 같이 탈출했던 게 기억에 남았어요. 다들 저 아이는 못 나가겠다고 반 포기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구해주시더라고요. 그 아이를 구하려면 소지품 란을 아이가 가지고 있는 공룡 인형으로 가득 채워야 해서, 자기 물건과 장비를 다 버려야 되는데 그래도 그 패널티를 안고 가시는 게 좋았어요. 이경혁 편집장: 살다 보면 참 커뮤니케이션이 원하는 대로 안 될 때도 많잖아요. 전시에서 관객들과 서로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난점들은 없으셨나요? 상희: 이 퍼포먼스에 오시는 분들 자체가 어느 정도 이 게임을 하고 싶어하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보니까, 그래도 적극적으로 개입과 참여를 하려고 하시는 편이에요. 성훈: 어떤 분들의 경우 캐릭터가 독특하신 경우도 있었어요. 자체적인 캐릭터가 사람들과 만나기를 피하고 굉장히 과묵하다는 설정이었거든요. 이 세계는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어떤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겪으면서 더 재미를 찾아갈 수 있는 구조인데, 그분은 '은신 플레이'처럼 게임 진행을 하셨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가 마스터로서 어떤 방식으로 재미를 제공을 해야 되는지, 그 분의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도 이 전시에 참여해서 세 명이서 팀 플레이를 했었잖아요? 그때 약간 짜증 났던 건(웃음), 우리 멤버가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려고 (게임 내 상호작용을) 전부 피하는 거에요. 그때 저희가 한 명이 플레이를 하고 한 명이 조수고, 저는 ‘마음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구조였죠. 상호작용을 안 하려고 할 때마다 저는 ‘앉아봐’, ‘그 상자 제발 열어봐’ ‘말좀 걸어봐’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웃음). 근데 그걸 보면서 저는, 만약에 어떤 사람들이라면 전시의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일종의 하이스코어 경쟁처럼 게임을 최단 시간으로 돌파하려고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 경우는 다행히 안 겪으신 것 같아요. 상희: 네, 맞아요. 그리고 게임 관련 설명과 안내를 드릴 때, 이 게임이 승리라던가 패배라는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참여자와 마스터 둘이 되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다들 게임 내에서 자기 캐릭터만의 얘기를 구축하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아까 편집장님 팀의 멤버 분도, ‘살아나갈 것이다’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집념’이라는 캐릭터를 갖추신 거죠. *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에서 전시 참여자이자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채워나갔던 지도. 회차가 반복될수록 지도의 내용은 풍부해지고 이후 회차의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 이경혁 편집장: 그런 걸 보면 게임 기획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준비해야 하는 거네요. 1시간 반의 플레이로는 사실 지도의 모든 영역을 다 볼 수는 없고, 플레이가 계속 누적되다 보면 사람들이 지도 안에서 절대 안 가는 어떤 영역이 생기게 될 텐데요. 기획자 입장에선 정말 정성을 다해 준비한 거라 조바심이 나실 것 같기도 해요. 상희: 맞아요. 전시 처음에 지도가 많이 안 밝혀졌을 때는 끝까지 못 가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오픈 월드 류의 게임을 할 때 그동안 가보지 못한 영역, 지도 상에서 안개 혹은 어둠으로 표현되는 영역을 빛으로 밝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 ‘여기 아무도 안 갔네요’, 하면서 가시기도 하고, 결국에는 그런 식으로 맵이 다 밝혀졌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결국 이 지도 데이터의 누적이라는 게, 그냥 지도에만 추가되는 게 아니라 다음 번 플레이에도 영향을 주는 형태인 것이고. 앞선 세계의 변화가 뒷 세계의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는 형태로 설계가 되는거네요. 상희: 맞아요. 예를 들어서 아까 말씀드린 퀘스트에서 아들을 구하게 되면 패스트푸드점의 엄마가 같이 도시를 떠나가게 되는데, 그 이후에 이곳에 온 사람은 이 엄마가 남기고 간 쪽지만 읽을 수 있는 거예요. ‘아이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혹시 못 보셨을까 봐 여기 쪽지를 두고 갑니다.' 이렇게요. 그리고 이 엄마의 아이가 원래는 강박이 있는 아이여서 재료별로 햄버거를 계속 분류하고 있었는데, (이후 회차에서는) 분류하던 흔적만 남아 있고 그걸 했던 사람이 누구였고 이걸 왜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혹시 관객 중에 2회차 플레이를 해본 분들은 좀 있으신가요? 상희: 있긴 있었지만 전부 테스트 플레이(참여자)였구요. 다만 저희가 한 이틀 정도는 오픈 세션이란 걸 열어서 아예 플레이를 공개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거든요. 그때 관람객 한 분이 두 회차를 연달아 보고 가셨어요. 두 번을 관람하니까, 이를테면 (첫 회차에) 어느 길이 무너졌는데, 그 다음 회차에 같은 길목에 도착한 사람은 그 무너진 길을 파헤쳐서 건너가야 되는 이런 연속된 사건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이 좋았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이경혁 편집장: 그걸 기록하는 것도 두 분이 굉장히 노고를 들이셨을 것 같은데요. 상희: 게임상의 큰 변화는 지도상의 기호로 계속 표시를 하기 때문에 기억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책상에 지도를 붙인 판넬이 있어요., 지금까지의 정보를 기록하고 새로운 변화를 써놓는 (마스터 전용) 판넬입니다.. 거기에 기억해야 되는 정보들, 예를 들면 특정 물건 3개를 요구하는데 그 3개를 다 갖다 줘야 떠나는 어떤 NPC의 경우에,. 누가 무엇을 주었다, 이런 식으로 업데이트해 놓고. 쪽지나 포스트잇 같은 걸로 표시하기도 해요. 이경혁 편집장: 보통은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면 이렇게 손을 뗄 수가 있는데, 이거는 (지속적으로 참여해야 된다는 점에서) 작가가 일종의 오브제가 아닌가 싶네요. 상희: 그렇죠. 작가도 자꾸 작업에 참여해야 되고, 전시기간에 계속 상주하게 되고요. 근데 그런 작업이 저한테는 계속 관객들과 참여적으로 연계된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이 작품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런 점을 흥미롭게 짚어볼 것 같아요. ‘전시를 시작할 때와 전시를 닫고 나서 작가에게는 무엇이 변했을까’ 그게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아직 완전히 전시가 닫힌 것은 아니지만, 막바지에 달하고 있는 입장에서 작가님 스스로가 자신을 성찰했을 때, 무엇이 변화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상희: 일단 저에게 있어선 관객들과의 관계가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저는 기존에 해온 작업들도 인터렉티브한 성격이 있다보니, 관객들이 와서 직접 플레이하셔야 하는 작업들이 많아요. 전시장에는 언제나 제가 있었어요. 제가 (프로그램) 개발을 했다 보니까, 갑자기 오류가 나면 고쳐드리거나 플레이 방식에 대해 안내를 드려야 하다보니 전시장에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관객분들이 전시를 끝내고 나서 감상을 나눠주는 걸 어려워하시는 편이에요. 전시장이란 공간 자체가 그런 걸 어렵게 만들다 보니 당연하긴 해요. (작가와 관객 사이의) 어떤 권위적인 분위기가 있고. 제가 궁금하다고 해서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거죠. ‘어떠셨어요?’ 하면 ‘아, 재밌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이러고 바로 도망치듯 하시고(웃음). 그런게 항상 저도 아쉽고, 관객들도 당시 말을 못해서 아쉬우신 게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1시간 반 동안 계속 플레이를 하면서 (관객과) 단독적으로 관계를 맺잖아요. 그 안에서 생성되는 라포(rapport)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게임이 끝나고 나면 너무 자연스럽게 이게 어땠는지 감상을 남기시는 거예요. 어떤 게 재밌었는지에 대해서도 서로 얘기를 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여기 섹션(전시장 한 쪽의 공간)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나서 관객들끼리 소회를 공유하는 목적으로 만들어둔 거거든요. 이 공간의 모티브가 된 게, TRPG 하시는 분들이 게임이 끝나고 나면 그 게임이 어땠다고 합평회처럼 얘기를 하세요. 그런 문화가 매우 좋았어서 저희도 전시에 도입했어요. 관객분들이랑 더욱 깊게 관계 맺는 형식이다 보니 저에게도 굉장히 큰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이 전시가, 메인 게임의 앞에 프리(pre-) 단계가 있고 포스트(post-)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프리 단계에서는 게임 참여자들에게 전날 설문을 한번 하시잖아요. 이렇게 전시 앞뒤로 프리 단계와 포스트 단계를 두고 보면, 작가 입장에서는 관객 개개인을 좀 더 보게 되지 않습니까? 어떤가요? 관객분들의 전시 관람 전과 관람 후의 변화 같은 것도 좀 느끼시는지요? 상희: 일단 관람 전에는 (게임을 플레이할) 사람들의 플레이 성향을 알고 싶어서 설문을 조사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게임 내 어떤 캐릭터가 어울릴지를 골라드리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질문에 답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실제로 이 ‘고향’이라는 곳에 돌아와서 플레이하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과정이 즐거웠고. 그 사람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플레이를 하면서) 카타르시스가 되어서 다 풀리고, 후반부에는 또 같이 정리하면서 얘기하는 과정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은 사전 설문을 통해 캐릭터를 구성하고, 플레이 종료 후에는 각자의 개인적 경험과 소회를 집단적 궤적으로 모아 나간다. 이경혁 편집장: 사실 어떻게 보면 장르적으로는 굉장히 큰 도전을 하신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이 전시의 게임이 TRPG를 베이스로 했지만, TRPG를 하려면 아까 말씀하셨듯 보통 TRPG 카페를 가잖아요. 실제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TRPG를 모티브로 했지만 이게 ‘퍼포먼스’로서 나오기 위해서는 어떤 특징이 있어야 된다라는 생각을 아마 하셨을 것 같은데. 무엇을 더 강조하려고 하셨을까요? 상희: 우선은 현실적인 완결성이 중요했어요.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만들다가도, 1시간 반의 러닝타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무조건 끝나야 되는 형식을 만들고자 했고요. 그리고 퍼포먼스 형식이니까 플레이함에 있어서 ‘룰’을 최소화하고자 했어요. 룰이 너무 많아서 생길 이해의 어려움을 줄였고, 룰에 대해서도 실제로 설명을 많이 안 드립니다. 참여자들이 행동을 하나씩 할 때마다 조금씩 알려드려요. 어떤 분께서 ‘저 이렇게 하고 싶어요’, 행동을 제안하시면 그것을 주사위를 굴려서 확인해 봅시다 라고 하면서, 점진적으로 계속 룰을 알려드리고 있어요. 그렇게 해도 다 알려드릴 수 있는 룰이어서. 원래 보드게임들은 룰 설명만 1시간 하고 난 뒤 플레이를 시작하는 느낌이잖아요. 이 전시에서는 그런 게 없이, 어떤 장벽 없이 관객들이 바로 플레이할 수 있는 그런 직관적인 플레이를 만들려고 신경을 썼습니다. 성훈: 저는 이 전시를 퍼포먼스 차원에서도 얘기해보고 싶은데요. 공연예술의 경우 똑같은 공연을 10번씩 보러 가는 문화도 있잖아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항상 매번 공연이 다 조금씩 다르다라는 얘기를 듣는데. 그런 것처럼 이 전시도 어떤 의미에서 ‘공연’이라고 할까요? 이 전시가 그 공연의 매번 다른 특성을 극대화한 걸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매번 갈 때마다 실제 인간이 진행하고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절대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고, 매번 지도가 바뀌어 나가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고, 스티커이기 때문에 뗄 수가 없잖아요. 그런 형식에서 퍼포먼스적 측면이 접목되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TRPG라는 것을 상징하는 게 일종의 ‘룰 북’이기도 하잖아요. 룰 북의 두께만 봐도 이걸 언제 읽나 고민이 되긴 하더라구요. 상희: 맞아요. 저희 게임도 일종의 가제본처럼 룰 북을 만든 게 있거든요. 내용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이 정도 두께가 금방 나오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장벽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룰 북은 일단 가제로 만든 거고요, 저희가 좀더 정리해서 아예 보드게임으로 출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 전시의 지도 형식 자체도 보드게임에서 착용을 했거든요. '레거시 보드게임'이라고 해서 한 번만 플레이하는 보드게임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마이 시티> 같은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별로 맵을 밟으면 그걸 스티커를 붙이면서 계속 변형시키는 형식이거든요. 많은 레거시 보드게임이 그런 일회적 형식을 따릅니다. 이 작업도 결국에 맵을 변형시켜서 똑같은 게임 플레이의 반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근데 한편으로는 그게 참여한 플레이어와 저희만 알 수 있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플레이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기도 해요. 이 맵을 보면 '아, 이때 내가 이렇게 해서 맵을 바꿨었지',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런 형식을 따와서 뭔가를 붙이면서 계속 흔적을 남기는 형태로 이 전시를 만들고 싶었는데요. 정말 보드게임을 출시하면 그런 레거시 보드게임의 형태로 출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는 굳이 미술과 음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본다면, 음악에 가깝지 않나 싶은데요. 고정된 악보가 있고, 매번 연주마다 애드립과 카덴차가 나오는 거죠. 심지어 플레이리스트는 이미 정해져 있고. 그러니까 이건 그냥 콘서트라고 불러야 되는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아까 듣다가 생각난 질문인데요, 원래 (작가님이) 디지털 개발을 하셨었지요. 첫 작품도 디지털로 시작을 하셨는데, 언-디지털로 넘어온 작품을 택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아까 간단하게는 TRPG에 관심이 생겼다고 해주셨는데요. 실제로 게임을 만들어보면, 같은 게임 제작 방법론이라고는 하지만 어딘가부터는 서로 완전히 다른 부분들도 있잖아요. 상희: 처음에 했던 디지털 작업들은 3D 그래픽을 기반으로 하고, 게임 엔진을 사용해서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잖아요. 이걸 만들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요새 대형 제작사에서 나오는 게임들을 보면, 그래픽이 나날이 발전되는 정도가 차원을 달리 하잖아요. 현실과 차이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지고 정교해지고, 엄청 많은 자본을 투여해서 만들어지는 형식이지요. 그런 그래픽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런 그래픽들이 공허하다는 감각도 있었어요. 거기에 어떤 이야기들이 더 있을 수 있을까 고민도 들었고요. 저희도 게임을 만들다 보면 어떤 그래픽적인 스펙타클에 게임을 조응하게끔 만들어야 하고, 화려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압박이 있기도 한데요. 그런데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의 형식은 아니었어요. 반면, TRPG라는 장르는 뭔가 그래픽적인 게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냥 이야기를 만들면서 플레이하는 형식이라는 점이 재밌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전시를 담당했던 김지연 디자이너와 초기에 같이 작업을 하면서 플레이 테스팅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이 작업에서 저에게 제일 중요했던 건 지도였기 때문에, 저는 초기엔 일종의 게임 월드처럼 지도를 자세한 형식으로 만들고 싶어했어요. 그때 김지연 디자이너가 되게 중요한 지점을 짚어줬던 게, ‘지도는 오히려 훨씬 더 단순해야 된다’는 거였어요. 요소가 많이 없어야 된다. 왜냐하면 TRPG를 플레이할 때 우리가 어떤 시각적인 게 많이 없어야 상상을 더 할 수 있고 그게 더 재미있기 때문에.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김지연 디자이너가 시각화를 해줘서 만든 게 지금 개미굴 같은 이 지도의 형식이에요. 그래서 게임이 어떤 시각적인 요소를 완전히 제외하더라도 참여자의 상상력을 이용한다면 오히려 더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예전에 김지연 디자이너가 토크 때 ‘우리의 최고의 GPU는 인간의 뇌다’라는 얘기를 했었는데요. 결국에 저희가 상상했을 때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고 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시각적인 부분은 오히려 (과거로) 회귀해서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작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 작가님들이 이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뭘까를 생각해 봤는데요. 시간적인 제약도 있고, 공간적인 제약도 있죠. 제가 궁금해지는 건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이러한 전시도 공짜는 아니에요. 이 작업의 물리적 베이스, 다시 말해 소요 비용이나, 펀딩이나 후원이 어떻게 들어왔었는지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우선, 지금 이 공간은 <팩션>이라는 전시공간이고 이 전시는 여기서 열린 공모를 통해 지원을 받았어요. 그리고 저는 여기서 제일 큰 비용이 뭐였냐 하면 결국 ‘저희’였다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저희의 몸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걸 때우는 방식이었고. 그래서 (전시 공간은) 무조건 집에서 가까워야 되고, 자주 와서 이곳을 계속 보수할 수 있고, 공간을 관리하고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여야 해서 이곳 삼선동에서 전시를 하기로 결정했구요. 비용 같은 경우에는 다 자비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원래 펀딩을 받으려고 했지만, 제가 다른 작업 펀딩을 받고 싶은 게 있어서 그걸 먼저 냈었고. 이 전시는 저희 생각으로는 기획이 대박이기 때문에 무엇을 내도 다 뽑힐 것이라 기대를 했지만(웃음) 제작비를 따오겠다 했는데 못 딴 거죠. 그래서 저희 돈으로 했는데 또 생각보다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지는 않았어요. 저희가 다 직접 만들고 한 게 있어서. 이경혁 편집장: 저는 당연히 이 전시도 다른 곳에서 펀딩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상희: 그렇죠, 그래서 저희는 후속 지원을 고려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희의 기획이 이런 형식을 잘 이해하시는 분들께는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졌겠지만, 한편으로 펀딩을 해 주시는 분들이나 지원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에게는, 특히 TRPG 자체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래픽이 없는데 대화로 게임을 한다고? 도대체 무슨 소리지?’ 이렇게 난해하게 들리셨을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저는 지금처럼 (전시를 통해) 결과가 완전히 다 나왔고 우리 기획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마련된 상태에서, 후속 지원을 요청하거나 이 전시를 완전히 대중적인 퍼블리시를 할 수 있는 포맷으로 지원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해요. 지금은 미술 전시회 형식으로만 하고 있는데, 저희가 추후 하고 싶은 건 아예 ‘게임’으로 출시하는 것이에요. 일례로 여기 붙어 있는 지도도 보드게임 컴포넌트처럼 다 들어 있는 것이고. 이 보드게임 패키지를 사시면 플레이를 어디서든 직접 할 수 있게 되고 그때는 어떤 물리적인 제약도 거의 없어지는 거죠. 엄청 긴 세션을 하셔도 되는 것이고, 각자의 플레이 방식대로 맞춰서 게임하실 수 있게 될 거에요. 다른 한편으로는 기획이 맞는다면 지역에 가서 일종의 팝업으로 해볼 생각도 했었어요. 이 게임이 설치형이잖아요, 그리고 광주라든가 부산에서는 요새 그런 형식의 전시를 많이 하니까. 그렇게 팝업을 통해 지방에서 TRPG 하시는 분들과 협업해서, 계속해서 더 큰 지도를 설치하고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성훈: 전시에 와주셨던 큐레이터 중 한 분이 재밌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이 게임이 한국의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굉장히 지역적인 맥락을 가지고 오려고 하니까, 차라리 실제로 어떤 도시에 가서 그 도시의 랜드마크 등을 반영해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실제 매핑을 통해 굉장히 퍼블릭한 게임으로 만드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물리적 제약이 워낙 지금 크게 느껴지다 보니까 계속 이 게임의 물리적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뭘까를 생각을 하는데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이 펀딩인 것 같네요. 제일 좋은 것은 지자체의 예산을 가져오는 것 같은데요(웃음). 혹시, 미술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상희: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고, 아무래도 완전히 모르는 이야기이다 보니 신선하다는 반응도 많았어요. 게임 디자인이라는 형식이나 게임 메카닉을 갖고 와서 기획한다는 것을 재밌어 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이 전시가 또 주목을 받는 게, 결국에는 지금의 어떤 (예술 관련) 이론이나 담론이 게임과 연관되어 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행위성 같은 개념들은 굉장히 게임적이거든요, 한편으로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당연한 얘기죠. 그런 것들이 미술적인 개념들과 이렇게 영합하면서 시너지가 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최근 들어 확실히 미술계에서 게임을 베이스로 작업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졌다고 느낍니다. 주변에 미술하는 분들이 게임 갖고 작업하시는 걸 보면 좀 어떠세요? 본인의 세대 근처에서, ‘게임’을 미술의 주요 소재로 쓰겠다라는 경향이 좀 있다고 느끼시는지요? 상희: 네, 그런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저희는 PC통신이 당연한 시대였고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가 집에 있는 세대여서 디지털 게임을 많이 하기도 하고. 어떤 정서라든가 감성이 게임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세대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 기존에도 게임을 주제로 하는 작가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어요. ‘게임을 사용한 작업이 예술의 형식이구나’(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 전에 작업했던 사람들은 게임 제작자라는 인식이 좀 강했는데 최근에 ‘아트 게임’이라는 용어도 나오면서, 이게 예술 작업으로 보이게 된 건 최근의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제 (전시가) 거의 마무리가 됐지 않습니까? 전시가 끝나고 나면 지도는 향후에 어떻게 될까요? 상희: 일단 전시가 끝나고 나면 이 지도 자체는 철거를 잘 해서 손상 없이 떼갈 예정이고요. 그 전에 확대 촬영이라고 해서 사진이나 그림을 스캐너에 넣는 것처럼 촬영하는 기법이 있는데, 그걸로 지도 자체의 아카이빙을 잘 하려고 해요. 그때 (경혁님이) 오셨을 때도 이 게임이 되게 오프라인한 경험인데, 이걸 어떻게 디지털로 남길 것이고 이후 사람들이 여기에 어떻게 접근해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해 주신 기억이 나요. 저희도 그래서 이 지도를 웹에 아카이빙하거나 이후에 이 게임을 어떤 식으로 퍼블리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이즈를 보면 기존의 도록이나 영인본처럼 남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은 들어요. 마지막으로, 이 기획 이후에 후속작처럼 기획하고 싶은 게임의 형태는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상희: <언-리얼리스트의 유럽>이라고 11월에 작업하려는 작품이 있어요. 유가가 더 비싸지고 환경세 등이 부과되는 근미래에 일반인이 해외여행을 가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설정이에요.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점점 일어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제는 메타버스로 유럽 여행을 해야 되는 거죠. 그 여행을 실제로 VR 같은 기계, 실제 VR은 아니지만 VR이라 부르는 오락실 기계 같은 것에 앉아서 플레이하게 되는 형식의 게임인데요. 그래픽적 요소가 많이 없고 플레이어가 뭔가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하면서 참여하는 그런 형식의 게임을 상상하고 있어요. 이번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게 최소한의 그래픽을 가지고 (참여자들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어서 후속작에서도 그런 견지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한국 게임비평의 궤적과 방향

    세계 최초의 게임잡지는 1981년 영국에서 발간된 <컴퓨터와 비디오게임(Computer & Video Games: CVG)>이다. 2004년부터 온라인으로만 발행되다, 2015년에는 온라인사이트까지 폐쇄하고, (www.gamesradar.com)로 리디렉션됐다. Gamesradar+는 여전히 기대작이나 신작 리뷰, 업계동향뿐 아니라 알찬 내용의 작품비평을 제공해 주고 있다. 한국에서 게임잡지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90년대 초반이다. 1980년대 PC 보급시기와 맞물려 닌텐도(Nintendo)의 ‘패미콤(Famicom)’을 국산화한 ‘현대 컴보이’가 소개됐다. 이후 세가(Sega)의 16비트 ‘메가 드라이브(Mega Drive)’를 삼성전자가 국내버전으로 바꾼 ‘수퍼 겜보이’가 발매되고, 콘솔게임에 대한 관심 급증이 게임전문잡지의 탄생을 추동했다. < Back 한국 게임비평의 궤적과 방향 01 GG Vol. 21. 6. 10. 1. 세계와 한국 최초의 게임잡지 세계 최초의 게임잡지는 1981년 영국에서 발간된 <컴퓨터와 비디오게임(Computer & Video Games: CVG)>이다. 2004년부터 온라인으로만 발행되다, 2015년에는 온라인사이트까지 폐쇄하고, ( www.gamesradar.com )로 리디렉션됐다. Gamesradar+는 여전히 기대작이나 신작 리뷰, 업계동향뿐 아니라 알찬 내용의 작품비평을 제공해 주고 있다. * 〈CVG〉(왼쪽)와 〈Gamesradar+〉(오른쪽) 한국에서 게임잡지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90년대 초반이다. 1980년대 PC 보급시기와 맞물려 닌텐도(Nintendo)의 ‘패미콤(Famicom)’을 국산화한 ‘현대 컴보이’가 소개됐다. 이후 세가(Sega)의 16비트 ‘메가 드라이브(Mega Drive)’를 삼성전자가 국내버전으로 바꾼 ‘수퍼 겜보이’가 발매되고, 콘솔게임에 대한 관심 급증이 게임전문잡지의 탄생을 추동했다. * <게임월드> 창간호 한국 최초의 게임잡지는 1990년 8월에 발간된 <게임월드>로 알려져 있다(조기현, 2012, 58쪽). 이어 <게임뉴스>(1991), <겜통>(1992), <게임챔프>(1992), <게임정보>(1993) 등이 발간되면서 게임잡지들의 각축전이 시작됐다. 당시 플레이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보는 신작소개나 발매일정, 공략이었지만, 게임잡지는 게임의 긍정적 면모나 문화적 성격을 부각하는 기사를 싣는 등 게임 인식전환에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게임을 분석할 필자를 모집해 그들의 글을 싣거나(1992년 <게임월드>, 1993년 <게임정보> 등), 미국이나 일본 게임저널의 기사를 번역하거나(1994년 <게임채널> 등), 게임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글들을 연재(1996년 박병호의 <경향신문> 연재, 1999년 박상우의 <시네21> 연재 등)하는 등, 유사비평 혹은 비평의 초기형태라 할 수 있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이뤄진 것 역시 특기할 부분이다. 2. 번들 CD에 집중했던 PC게임 잡지들 1990년대 중반부터 PC게임이 급격히 성장함에 따라 대부분의 게임잡지들도 PC게임에 집중했다. 당시 잡지들의 대표적 특징으로 번들(bundle) CD 제공을 들 수 있다. 초기 번들 CD는 시류지난 게임의 재고털이를 위해 제공된 것으로, 플레이어들에게 호응을 얻고 산업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게임잡지의 판매부수를 결정하는 주된 변수로 자리매김했다. 경쟁심화 속에서 잡지사들은 고전 명작게임 위주로 제공하던 번들 CD에 조금씩 최신작을 담게 됐다. 1980년대 게임잡지들이 차별화된 게임정보와 공략을 내세워 고정 독자층을 확보·유지했다면, 1990년대 게임잡지들은 번들 CD로 독자층을 나눠 먹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신작을 유치하기 위한 잡지사들의 과도한 경쟁은 번들 CD 구매비용의 증가로 이어졌고, 이는 잡지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이후 PC게임 복사가 확산되고, 네트워크 환경발달과 함께 온라인게임이 태동하면서 PC게임 시장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동시에 게임잡지에도 시련이 찾아왔다(김득렬, 2012. 1. 4.). 3. 종이잡지에서 웹진으로 종이잡지에서 웹진으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약 10년간 이어온 게임잡지 역사는 2000년대 들어 비디오게임 및 PC게임 산업과 함께 쇠퇴했다. 게임잡지는 힘을 잃어 갔지만 게임 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게 되는데, 온라인게임의 인기가 그것이다. 게임잡지들도 이에 편승해 온라인 기반 게임관련 잡지들로 변모해 갔다. 그러나 전문적인 게임비평보다는 상대적으로 다소 가벼운 비평, 게임 자체와 공략에 대한 정보제공, 부록 중심이었던 게임잡지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자리를 내주면서 대부분 폐간됐다. 인터넷의 발달은 기존 출판잡지에 좌절과 시련을 부여했지만, 플레이어들에게는 오히려 정보 공유와 전달을 가속화하는 기반으로 작용했다. 물론 플레이어들이 게임정보를 걸러내 원하는 것만 소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보다 전문적인 접근에 대한 수요도 모두 채울 수는 없었다. 이는 방대한 게임정보를 체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채널을 찾는 계기로 작용했고, 게임웹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김득렬, 2012. 1. 4). 2021년 6월 기준 오프라인을 통해 발간되고 있는 게임전문지로는 <게이머즈(Gamer’z)>가 유일하다. 물론 온라인상으로는 <인벤>, <게임메카>, <디스이즈게임>, <포모스>, <게임조선>, <게임포커스>, <데일리게임>, <게임어바웃>, <게임동아>, <경향게임스>, <더게임스> 등 많은 게임웹진이 존재한다. 하지만 <게이머즈>뿐 아니라 다른 웹진들도 여전히 전문적인 비평보다는 리뷰와 공략 중심의 정보제공에 치중하고 있다. 4. 게임비평 확산을 위한 여러 시도들 오히려 게임의 안과 밖을 보다 꼼꼼히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게임전문지가 아닌 다른 공간을 통해 더 활발히 이뤄져 왔다. 물론 그조차도 전문성과 안정성을 가진 것이라 보긴 어렵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런 시도가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문, 영화 잡지나 기타 대중문화 잡지, 컴퓨터 잡지 등이 게임비평에 종종 지면을 할애하긴 했지만, 단편적인 기획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민간재단인 게임문화재단에서 2012년 3월부터 월간지 <게임컬처(Game Culture)>를 발간, 업계나 학계 등에서 활동하는 편집진들을 활용해 양질의 게임 관련기사와 비평을 게재했으나, 2012년 12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 수순을 밟았다. 한편, 게임비평의 궤적을 살핌에 있어 ‘게임비평공모전’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게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관심을 증대시켜 문화적·학술적 가치를 제고한다는 취지 아래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 NHN(주), 더게임스가 공동 주관하여 2008년부터 ‘게임비평상’을 제정했다. 전경란(2013)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게임비평공모전에서 가작 이상의 상을 받은 30편의 비평들을 분석, 비평들이 게임의 다양한 측면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 영역 및 접근방식은 제한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한 바 있다. 게임의 내용과 형식적 특징, 즉 게임 플레이에서부터 게임 구조, 게임 세계 등을 중심으로 고루 비평을 행한 반면, 기존의 문화 장르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과 방법론을 적용한 탓에 제반 게임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공모전은 아마추어 게임비평가들을 발굴하고 게임비평 저변을 확대한 국내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2012년 제5회를 끝으로 더 이상 개최되지 않고 있다. * 제1회 게임 비평상 공모전 포스터 비평가들의 단행본 작업도 의미가 적지 않다. 박상우의 <게임, 세계를 혁명하는 힘(2000)>과 <게임이 말을 걸어올 때(2005)>, 이상우의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2012)>, 이경혁의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들의 <81년생 마리오: 추억의 게임은 어떻게 세상물정의 공부가 되었나?(2017)>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경유해 게임이 우리 일상과 사회·문화에서 갖는 의미를 비교적 새롭게, 다각도로 포착했다는 장점을 갖는다. 하지만 상호참조 없이 본격 비평서임을 자처하며 게임인문학에 대한 다분히 기초적인 논의(특히, 내러톨로지나 루돌로지와의 연관 속에서)를 유사하게 반복하고 있다는 점, 이후 보다 발전적이면서 지속적인 작업으로 연결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 (왼쪽부터) 박상우, 이상우, 이경혁, 인문합협동조합의 게임비평서 현재진행형이라 아직 그 성과를 말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게임비평에 대한 주목할 만한 시도들이 있다. 이경혁은 2014년 11월 미디어 비평지 <미디어스>에 게임비평 ‘Play the Game’의 연재를 시작으로, 여러 온라인신문, 게임사 블로그, 잡지 그리고 <국방일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평작업을 하고 있다. 개별 게임 텍스트에서부터 한국 게임문화의 역사적 유물로서의 오락실과 e스포츠(e-Sports), 게임산업, 플레이/어, 게임을 둘러싼 부정적인 담론, 그리고 게임 텍스트에 담긴 사회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논의범위 또한 넓다. 2021년 6월 기준 비슷하게 활동하는 비평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가 보일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5. 게임비평의 문제점 한국 게임비평의 외재적 문제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게임에 대한 강한 규제와 부정적 담론 확산으로 산업이 위축됨에 따라 게임비평이 활성화될 수 있는 토대도 척박해졌다. 강한 규제와 부정담론은 게임을 ‘나쁜 것’,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든다. 둘째, 게임전문지가 다수 존재함에도 전문적인 비평을 행하고 있지 못하다. 해외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영국의 ( www.pcgamer.com )나 미국의 <컴퓨터 게이밍 월드(Computer Gaming World)>( computergamingworld.com )과 같은 게임전문지는 단순한 리뷰나 공략보다 심층적인 정보나 비평을 제공한다. 게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이뤄지는 웹진 <코타쿠(Kotaku, kotaku.com )>, 개발자와 연구자들이 게임 제작취지와 게임에 대한 비평, 연구결과 등을 게재하는 <가마수트라(gamasutra)>( www.gamasutra.com )등도 전문적인 게임비평공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물론 국내외의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플레이어의 성향, 게임에 대한 비평토양 등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게임전문지들이 보이는 리뷰나 공략에의 지나친 집중은 전문지들이 주된 광고주인 게임 퍼블리셔나 게임사들의 홍보매체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만든다. 내재적 측면의 문제점으로는 게임만이 가진 텍스트적 특징으로 인한 비평의 어려움을 꼽을 수 있다. 기호와 서사로 구성되기 때문에 다른 문화장르와 유사한 것 같지만, 게임은 독특한 향유구조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향유구조가 텍스트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게임은 사전에 모두 제작된 상태로 향유자에게 제공되는 다른 문화장르와 달리 플레이어가 그것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불완전한 텍스트인 채로 남는다. 플레이어는 불완전한 게임 텍스트에 참여해 게임과 상호작용하는 주체이며, 플레이어의 참여는 곧 완전한 텍스트로서의 게임을 가능하게 만드는 필요조건이다. 때문에 게임에서는 창작주체와 수용주체의 구분이 애매해진다. 게임 텍스트는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게임이 단순히 알고리즘의 구현물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스토리 및 허구적 상황을 경험하게 하는 서사 환경을 지님을 의미한다(강신규, 2016). 따라서 게임비평은 텍스트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경험이 제공되는지, 경험이 이뤄지고 나면 다음 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까지를 논의 범위에 포함(김연희, 2012. 12. 12)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은 플랫폼별·장르별로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아 그것을 비평하는 데 하나로 모으기 어려운 다양한 관점과 방법들이 요구된다. 다른 문화장르들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면 게임은 ‘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전문가나 수준급의 플레이어라 해도 접해 보지 않은 게임을 비평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게임은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지식을 가진 향유자들이 너무 많은 문화 장르이기도 하다. 게임을 하려면 대체로 같이 즐길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크게는 장르나 플랫폼, 작게는 개별 타이틀에 따라 향유 공동체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경험 제공’이라는 특성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정보를 공유하고 평가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 요컨대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다른 사람의 플레이나 관련 정보를 ‘접하고’ 그것을 다시 게임‘하는’ 데 활용한다(강신규·채희상, 2011). 직접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정보와 경험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 정보와 경험 바깥에 위치하거나 안으로 깊이 들어와 있지 못한 게임비평 주체가 그것을 온전히 읽어 내기 어려운 이유다. 6. 게임비평의 조건들 ‘게임비평’이란 게임의 가치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말한다. 이 때 ‘비평’은 기존의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등의 비평에서 사용하는 개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각 비평이 그런 것처럼, 게임비평 역시 다른 비평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비평의 대상과 조건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때문에 게임비평의 조건을 살피기 위해서는 비평 일반조건과 게임의 변별적 특성을 반영한 조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 비평의 조건은 고유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비평대상의 형질변화와 비평에 요구되는 역할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는 것이다. 비평하는 사람에 따라 비평조건에 대한 인식이 다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그 조건에 대해 최소한의 합의 가능한 지점들을 모색하는 일은 가능할 듯하다. 1) 비평의 일반조건 기본적으로 비평은 비평주체(비평가), 비평대상(넓은 의미의 작품), 창작주체(제작자/창작자/작가), 수용주체(향유자/수용자/독자)라는 네 요소를 필요로 한다. 창작주체에게는 창작에 피드백을 주는 반응으로 작용하고, 수용주체에는 수용 선택여부나 수용방법 등을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비평이다. 비평주체는 비평을 통해 비평대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인해볼 기회를 얻는다. 비평주체/대상, 창작/수용주체가 비평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들이라면, 비평의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비평은 감상문 수준을 넘어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둘째, 비평가에 대한 공인절차고 요구된다. 셋째, 전문학술지, 일간지, 잡지, 웹진 등 비평이 발표될 매체가 필요하다. 매체는 비평활동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신뢰할만한 것이어야 한다(김봉석·박정숙·박기수·한상정, 2015. 5. 8). 세 조건은 각각 비평의 전문성, 안정성, 지속성과 관련된다. 이를 종합했을 때, 비평이란 ‘비평주체가 신뢰할 만한 매체를 발표공간으로 삼아, 비평대상과 관련된 사안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한 뒤 평가를 내리는 전문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무엇보다 비평의 힘은, 대상이 지닌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열어주는 수준을 넘어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닌 사회적 함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나가는 과정에서 나온다. 게임비평도 마찬가지다. 게임이 주는 단순한 즐거움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과 게임이 보일 수 있는 비전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그것을 통해 일상의 변화와 시대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비평은 비평대상의 성취를 읽어내고, 그런 읽기를 통한 생생한 인식을 사회로 확산하는 작업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전제들이 요구된다. 먼저, 게임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토론을 위한 비판적 풍토를 조성한다. 다음으로, 게임과 게임비평을 지지하고 체계화한다. 마지막으로, 개인 혹은 사회의 게임 향유경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비판적 도구·해석·평가를 제공한다. 2) 변화의 고리와 게임비평 하지만 비평의 일반조건은 게임비평이 당면한 상황과는 꽤 거리가 있다. 특히, 한국에서 게임비평은 느슨하게 형성돼 있고, 기존의 예술·문화장르에서처럼 고정된 형태로 제도화돼 있는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평은 대상이 무엇이 됐든 본질적으로 유연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게임과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게임비평이라면, 그것은 게임의 변화, 그리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출렁거리는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게임 개념도 계속 재구성된다. 메타버스(metaverse) 시대 게임은 온라인게임 태동 이전 게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 예술이나 문화장르에 비해 접근성이 높고 폐쇄성이 강한 게임문화의 경우, 전문가 집단의 체계적인 비평이 형성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개별 게임의 향유가 향유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다는 점도 게임비평의 제도적 형성을 어렵게 하는 큰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게임비평은 없는 게 아니라 어쩌면 너무 많은 곳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도화된 비평이 미미할 뿐, 제도 바깥의 비평열기는 그야말로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전통적 관점에서 제도화된 비평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게임비평은 그야말로 ‘넘쳐난다’. 블로그,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소셜 미디어 등 온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게임비평을 자처하는 작업들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과 디바이스를 통해 게임 향유경험이 축적되고 그로 인한 일정 수준의 커뮤니티가 형성됨으로써 플레이어들은 이제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지식을 갖게 됐다. 이는 플레이어들을 준 비평가로 만드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플레이어들을 골고루 만족시킬 만한 고유의 비평체계가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적극적인 향유=비평을 통해 비평의 저변이 넓어졌다거나 비평이 민주화됐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상황은 게임비평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그 정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기존 예술·문화 장르의 비평 장(場)이 이미 제도화된 전문적 비평영역과 온라인을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된 아마추어 비평영역 사이의 갈등과 연대가 교차하는 역동적 공간이 되고 있다면, 제도화된 비평영역의 부재로 인해 가뜩이나 분명하지 않았던 게임비평의 정체는 더욱 불분명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게임비평의 조건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연결된다. 기존의 비평개념으로는 작금의 현상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전문적인 비평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게임담론의 생산주체가 되는 일, 그리고 게임발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능동성을 발휘하는 일로 기능할 수 있을까? 제도화돼 있지 않다면 그 자체로 가능성이 될 수는 없을까? 비평의 민주화를 통해 제도권 내 비평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낯선 상상력을 발굴할 여지가 열리게 된 것은 아닐까? 이 질문들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도화되지 않은 비평의 장에서 쏟아지는, 이른바 ‘중심 없는 주변부’의 비평들을 규정하는 조건이 새롭게 구성돼야 한다. 비평의 장 자체를 흔드는 변화 속에서 비평과 비평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보다, 새로운 조건 마련을 통해 비평의 외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게임 향유자는 수동적으로 비평을 소비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온라인 공간을 통해 능동적으로 비평을 생산·배포·공유하는 새로운 비평주체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비평을 행하는 온라인 공간 역시 해당 공간에 들어오는 비평독자들이 비평을 읽고 소감을 밝히는 새로운 비평의 장이자 역동적인 비평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남은 것은 그들의 비평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비평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냐의 문제다. 하지만 애초에 ‘고급/좋은’ 비평과 ‘저급/나쁜’ 비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적 비평이 추구해온 것처럼 고급독자만을 위한 전문적 의미의 비평만이 비평은 아니다. 게임의 특성, 그리고 그 향유자를 감안한다면 전통적 비평개념의 수정 혹은 확장은 필연적이다. 그 명확한 기준과 범위를 제시하는 일은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질을 지니며, 비평주체와 독자 간 갈등과 연대 속에서 성립한다. 물론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비평 고유의 목적과 역할은 지켜져야만 한다. 그것이 아니면 비평이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강신규, 2016). 7. 게임비평이 나아갈 방향 그렇다면, 게임비평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 첫째, 독창적인 이론과 방법론의 발굴이다. 게임비평만을 위한 이론과 방법론을 찾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게임이 처한 현실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 맥락에 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비평이론과 방법론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비평대상이 다르면 비평의 언어도 달라져야 한다. 게임이 가진 고유속성에의 천착을 통하 스스로의 정체와 역할을 구성했을 때, 비로소 게임비평의 변별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 비평, 마르크스주의 비평, 여성주의 비평, 신비평, 독자반응 비평, 구조주의 비평, 해체 비평, 신역사주의와 문화 비평, 레즈비언·게이·퀴어 비평 등 텍스트를 풍성하고도 심도 깊게 살필 수 있는 기존의 비평이론과 방법론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게임의 미학 안에서 통합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게임 플랫폼이나 장르에 따라 비평을 세분화·전문화함으로써 전체 비평의 틀을 다지는 일도 고려해볼 만하다. 매체전환(media transformation)과 미디어믹스(media mix)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비평의 양식이나 형식을 발굴하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 둘째, 비평의 역할 재/정립이다. 흔히 발견되는 비평의 자의식 부재, 해설이나 주례사 비평으로의 쏠림은 비평의 역할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데 기인한다. 비평은 비평대상을 흡수하거나 투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시선과 함께 배출하거나 반사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평의 주된 역할은 ‘먹음’이 아니라 ‘되먹임’이다. 비평주체와 대상 사이에 이뤄지는 되먹임의 반복을 통해 비평을 둘러싼 주체가 공진화(coevolution)하는 것이 비평의 효과다. 하지만 게임비평의 역할은 여기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특정 텍스트에 대한 치밀한 해독에서, 장 내 주요 행위자들이 직면한 문제들, 그리고 해당 장에 제기되는 도전과 응전의 방향성들을 보다 긴 호흡으로 치밀하게 조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향후 게임비평이 창작주체와 수용주체가 형성하는 문화의 변화를 탐구하는 동시에, 기민하게 변화하는 텍스트들의 정립상과 사회적 활용, 그리고 산업으로서 게임이 당면하고 있는 변화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구체적인 전망과 대비책을 마련하고, 이를 두껍게 읽어내는 역량까지 배양해야 함을 시사한다. 비평이 이차적인 글쓰기로서의 지위에 만족하는 한, 비평이 비평대상을 이끌어가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게임비평은 텍스트를 넘어 텍스트화되지 않은 현실에까지도(물론 게임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게임비평의 역할은, 비평으로서 타개해나가야 할 문제와 게임적 사회와 삶에 대한 반성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그것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는 것이다. 셋째, 제도권/비제도권을 막론하고 이제 비평논의에 대해 있어 요구되는 것은 ‘총체적’ 통합의 불가능성 혹은 불필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비평과 비평 아닌 것, 비평공간과 비평공간 아닌 곳, 비평가와 비평가 아닌 사람 사이를 구분하는 선은 수명을 다했다. 전문가 수준의 향유자, 전문가에게 없는 경험치를 지닌 향유자, 어디서나 격전이 벌어지는 비평공간, 기존의 정형화된 비평을 넘어서는 비평이 넘쳐난다. 더 이상 서로를 구분하는 선 자체가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임비평이 나아갈 방향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돼야 한다(강신규, 2021). 하지만 문제는 게임비평에 잘 된 비평과 그렇지 못한 비평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게임비평을 할 줄 모른다는 말은, 더 정확히 지적하자면 잘된 비평을 쓸 줄 모른다는 말이다. 비평을 할 바에야 잘 된 비평을 쓰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처음부터 그런 비평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처음부터 잘 된 비평을 쓰려고 하는 욕망은 내내 문제가 된다. 하나의 창조적 작업임에도 창조하는 즐거움보다 결과만 탐하게 되어, 남의 것을 모방하게 되고, 얻어들은 지식을 체계없이 나열하게 되고, 허황되게 꾸미게 되는 것이다. 나만의 게임경험과 그 경험과정에서 얻게 된 지식들이 잘된 비평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비평이 잘된 비평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전통적인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먼저 나름의 체계와 전문성을 갖춰야만 한다. 다른 비평에 대한 필요이상의 냉소함도 지양할 필요가 있다. 비평의 총체적 통합이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비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어디서든, 그리고 그게 누구든) 타인의 비평을 주의 깊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관점이 지닌 타당성을 물으면서, 타인과 자신의 비평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려는 노력이다. * 이 글은 저자의 저서 <서브컬처 비평(2021)> 내용을 중심으로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참고문헌 강신규 (2016). 하위문화 비평의 궤적과 방향: 만화·애니메이션·게임비평을 중심으로. <문화과학>, 85호, 128~158. 강신규 (2021). <서브컬처 비평>. 커뮤니케이션북스. 강신규·채희상 (2011). 문화적 수행으로서의 e스포츠 팬덤에 관한 연구: 팬 심층인터뷰 분석을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 & 문화>, 18호, 5~39쪽. 김득렬 (2012. 1. 4). 게임잡지 연대기 2부–게임잡지 몰락에서 웹진탄생까지. <게임메카>. URL: http://www.gamemeca.com/feature/view.php?gid=125137 김봉석·박정숙·박기수·한상정 (2015. 5. 8). [좌담회] 우리 만화 비평을 말한다: 만화 담론의 현재와 비평의 길찾기. <크리틱엠>. URL: http://criticm.com/?p=734 김연희 (2012. 12. 12). 게임의 러브레터, 게임비평. <사이언스타임즈>. URL: http://www.sciencetimes.co.kr/?p=110623&post_type=news&news-tag= 박상우 (2000). <게임, 세계를 혁명하는 힘>. 씨엔씨미디어. 박상우 (2005). <게임이 말을 걸어올 때>. 루비박스. 이경혁 (2016).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로고폴리스. 이상우 (2012).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 자음과모음. 인문학협동조합 (2017). <81년생 마리오: 추억의 게임은 어떻게 세상물정의 공부가 되었나?>. 요다. 조기현 (2012). 해외 게임기의 한국 상륙. 윤형섭·강지웅·박수영·오영욱·전홍식·조기현. <한국 게임의 역사> (52∼63쪽). 북코리아. 전경란 (2013). 게임비평에 대한 연구: 게임비평 텍스트의 메타분석적 접근.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13권 3호, 19~30쪽. <미디어스> ‘Play the Game’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431) (computergamingworld.com) (www.gamasutra.com) (www.gamesradar.com) (kotaku.com) (www.pcgamer.com)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개발자, 문화, 그리고 현금: 서구 AAA 게임계의 세 가지 경향

    AAA게임은 예술, 산업, 문화가 결합되는 영역으로서 지속되어왔다. 게임 연구는 그러한 요소들이 - 진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 과거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대 차기작 출시에 대한 기대 및 차기 하이프 사이클에 대한 예측 그리고 다가올 시상식에 대한 흥분 속에서, AAA게임 개발이 보다 높은 예술적 수준의 미래를 향해 최고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높이에 도달하기까지 훨씬 큰 극단의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게임 언론계나 학계의 간섭, 그리고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 관련 운동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적법성, 노동자와 플레이어에 대한 착취 등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Back 개발자, 문화, 그리고 현금: 서구 AAA 게임계의 세 가지 경향 10 GG Vol. 23. 2. 10. 2022년 12월 8일 할리우드 스타일로 “최고의 게임을 기념하는”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가 9번째로 개최되었고, 1억 3백만명의 시청자들이 시상식을 생방송 스트리밍으로 지켜보았다. 1) 오스카 시상식과 비슷하게, 이 행사는 크고 작은 게임들에 대한 업계 인식의 융합이자, 게임의 예술적 또는 기술적 장점에 대한 검증이자, 게임 마케팅의 방향성이 드러나는 문화적 공간의 지표라 할 수 있다. 작은 규모의 게임도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더 게임 어워드는 AAA마케팅 및 최신 블록버스터 게임들에 대한 문화적 장치(cultural apparatus)다. 실제로 더 게임 어워드는 축하공연이나 수락 연설같은 것을 없앤 속사포 스타일로 시상식을 진행한다. 이는 트레일러나 퍼스트룩, 게임플레이 프리미어 등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인데, 주로 정교한 음악 프레젠테이션이나 리드인(lead-ins) 등이 포함된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메탈기어 솔리드(Konami)〉와 〈데스 스트랜딩(Kojima Productions, 2019)〉 등으로 유명한 슈퍼스타 개발자 히데오 코지마(Hideo Kojima)가 등장하기도 했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Sony, 2022)〉나 GOTY 수상작 〈엘든링(FromSoftware, 2022)〉 같은 거대 AAA 작품들이 스크린에 나타나는 비중에 있어 절대적이었던 가운데 그보다 소규모인 게임들 또한 잊혀졌던 것은 아니었으나, 더 게임 어워드는 주로 큰 예산으로 만들어진 주류 게임들을 축하하고 홍보하는 행사였다. 행사의 밤은 이제는 유명해진 어느 젊은 청년의 히데타카 미야자키(Hidetaka Miyazaki) 수락 연설 난입 사건과 함께 종료됐는데, 이는 우리가 주류 게임 문화로서 아무리 격식을 갖춘다 할지라도 그 수면 아래에는 밈-주도의 사회적 일탈이 끓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더 게임 어워드에서 드러난 사회경제학적 권력의 융합은 서구의 AAA게임에 대한 연구에서 나타나는 3가지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첫째는 거대 예산 게임의 창의적 영역과 예술적 장점이고, 두번째는 그러한 거대 규모 프로젝트를 제작하고 출시하는 개발사와 노동 환경과 관련된 문화적 영역으로, 이는 게이머 커뮤니티에서 발생하고 있는 게임 문화와 엮어있다. 셋째는 프리미엄 엔터테인먼트 경험으로서 게임을 마케팅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수익 요소에 관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AAA게임의 맥락에서 이와 같은 경향을 둘러싸고 생성되고 있는 담론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게임의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장점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게임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위해성과 혜택에 대해 미디어와 학계에서 엄청난 관심을 쏟았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아동과 청소년에 대해 폭력적인 게임 콘텐츠가 미칠 영향에 큰 관심이 모였다. 2) 이 시기 여러 게이머들과 일부 연구자들이 어렴풋이나마 게임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 이해하고 있긴 했지만, 게임을 수준 낮은 미디어 형식으로 보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펠런 파커(Felan Parker)의 언급대로, 게임 및 게임이 지닌 예술적 특성에 대한 논의는 미국 영화비평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의 악명 높은,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자주 회자되는 “게임은 절대로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언급 이후 2005-2010년 사이에 등장했다. 3) 이와 같은 언급으로 촉발된 논쟁에 언론과 학계의 관심이 모아진 가운데, 그와 같은 ‘비-예술’의 전제로부터 게임이 벗어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감독들이 그러하듯, 게임 디자이너를 자신이 만든 게임에 뚜렷한 예술적 스타일을 남길 수 있는 작가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4 ) 그리고 이러한 경향을 몇달 전 게임 어워드에서 나타났던 핵심 게임 감독들의 높아진 격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AAA게임은 높은 가시성 그리고 생산 및 마케팅을 위한 엄청난 예산 덕에 새로운 콘솔을 위한 플래그십 게임으로서의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AAA게임은 또한 게임 디자인에 있어 기술적 한계를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2010년 초반 인디게임 붐이 일기 전까지 예술적 게임 담론을 점유해왔다. 브랜든 커우(Brendan Keogh)는 AAA게임 개발사들이 수익 창출을 중시하는 거대 퍼블리셔 밑에서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게임들이 관습적이거나 안정지향적으로 전통적인 AAA게임의 틀에 맞춰 개발되어왔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5) 그럼에도 비디오게임 작가의 전설은 지속되었는데, 게임담론장에서 2010년대에 비해 ‘인디’게임들의 비중이 훨씬 적어진 가운데, 히데오 코지마의 〈데스 스트랜딩(Kojima Productions, 2019)〉 같은 게임은 관습에서 탈피한 게임플레이와 미학을 만들어냈다. AAA게임들은 부분적으로 ‘인디’적인 디자인 및 미학의 요소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왔다. 6) 물론 매년 출시되는 스포츠 시리즈 게임이나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Acitivision)〉 같은 FPS 프랜차이즈처럼 관습을 무시하지 않는 친숙한 AAA게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게임 시상식- 나아가 보다 확장된 게임 저널리즘 - 은 기존하는 친숙한 장르적 관습을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살짝 새롭거나 도전적인 것을 제공함으로써 자신들이 작가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주는 인디적인 감성을 살짝 가미한 형태의 AAA게임들을 칭송한다. 게이머와 업계는 그와 같은 방식을 지지하는데, 그 이유는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논쟁이 여전히 대중문화계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접근이 게임플레이를 하나의 가치있는 활동으로 보이게 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판매율을 높이고 소비자 기반을 넓힐 수 있도록 하는 게임의 숨겨진 문화적 속성을 승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AAA개발사 내부의 작업 방식은 안타깝게도 게임 작가에 대한 강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는데, 학계에서 이 문제를 다룬 바 있다. AAA 노동 문화에 있어 과도한 업무량과 젠더적으로 편향된 작업환경은 눈에 띄는 특징이다. 게임업계의 과도한 업무량에 대한 초기 연구로는 2006년 다이어-위데포드와 드 퓨터(Nick Dyer-Witheford and Greig de Peuter)의 작업을 들 수 있는데, 노동 착취, 번아웃, 이직률, 그리고 이 극단적인 노동 문화 내 노조 결성을 향한 투쟁 등을 다뤘다 7) . 12년 후인 2018년에는 코타쿠의 전 작가 제이슨 슈라이어(Jason Schreier)가 당시 〈레드 데드 리뎀션 II(Red Dead Redemption II, 2018)〉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락스타 게임즈(Rockstar Games)의 ‘크런치 문화’를 폭로했다. 8 ) 근 20여년의 세월동안 거대 예산 게임 개발분야의 문제로 알려져 왔음에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크런치 모드는 여러 분석과 연구의 핵심적인 주제로서 다뤄지고 있는데, 특히 학계에서는 노조 결성 및 노동자 권리와 관련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9) 이와 관련해서 개발사 내 젠더 격차 문제가 있다. 2013년 게임 디벨로퍼 매거진(Game Developer’s Magazine)이 실시했던 설문조사를 인용한 연구에서, 드 윈터와 코큐렉은(Jennifer deWinter and Carly Kocurek)은 “급여에 있어 젠더 격차는 (96%가 남성인) 프로그래밍과 엔지니어링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게임 관련 고용 부문에서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10) 그 이유가 여성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여성이 게임업계에 진출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짐작과는 반대로, 연구자들은 여성들이 게임 문화의 여성혐오적이고 해로운 요소의 영향을 받은 개발사 내 업무 문화에 의해 훨씬 더 소외받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보다 빨리 번아웃하게 되고 업계를 떠나게 됨을 밝혀냈다. 11) 게임문화를 다룬 여러 연구들은 AAA게임들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처럼 게임문화와 작업환경 간에 무한으로 반복되는 고리 때문이다. 게임문화나 개발사 내 업무 환경에 있어 그 어떠한 변화라도 게임문화 내 노동 공간과 놀이 공간 사이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중요하다. 최근 AAA게임을 비롯한 게임 전반에 걸쳐 많은 관심이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화에 쏠렸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소액결제, 확률형 아이템, 배틀 패스가 핵심이었다. 이러한 경향이 모바일 및 그리고 프리-투-플레이(free-to-play) 게임과 연관되는 것이긴 하지만, AAA게임의 정의가 규정되어있는 것은 아니므로 프리-투-플레이 모델의 카테고리에 AAA 게임이 배제되어야 할 본질적인 의미는 없다. 배틀패스를 다뤘던 다니엘 조세프(Daniel Joseph)의 연구가 보여주었듯, 〈에이펙스 레전드(Apex Legends)〉, 〈도타2(DOTA 2)〉, 〈포트나이트(Fortnite)〉 등 거대 개발사에서 만든 대작들도 프리-투-모델이나 소액결제를 주요 수익화 모델로서 활용할 수 있다. 12) 조세프가 주목한 것은, 게임사들이 소비자로부터 효과적으로 돈을 뽑아내기 위해 그러한 모델을 통해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방식으로 게임을 쇼핑 플랫폼으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3) 게이머들로부터 보다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게임 서비스나 시즌제 모델이 크게 강조되면서 소액결제 방식이 AAA게임들의 제작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모델들이 얼마나 약탈적으로 진화할 지 크게 우려 된다. 이는 단지 착취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익화 방식이 AAA게임의 제작 및 소비 방식을 변질시킨다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은 또한 AAA 게임 개발에 있어 노동 문제에 더해 새로운 형태의 크런치 모드를 만들고 있다. 조세프가 지적하듯 〈포트나이트〉 개발자들은 “...(중략)...게임의 엄청난 성공 및 다음 시즌과 배틀 패스를 끊임없이 개발해야 하는 문제로 인해 주당 100시간에 이르는 노동 시간을 보고”하고 있다. 14) AAA게임은 예술, 산업, 문화가 결합되는 영역으로서 지속되어왔다. 게임 연구는 그러한 요소들이 - 진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 과거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대 차기작 출시에 대한 기대 및 차기 하이프 사이클에 대한 예측 그리고 다가올 시상식에 대한 흥분 속에서, AAA게임 개발이 보다 높은 예술적 수준의 미래를 향해 최고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높이에 도달하기까지 훨씬 큰 극단의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게임 언론계나 학계의 간섭, 그리고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 관련 운동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적법성, 노동자와 플레이어에 대한 착취 등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메이저 게임 개발사들이 예술적 인정과 명성 그리고 전능한 달러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속에서, AAA 영역에 대한 학계의 작업은 계속해서 해결되지 못한 채 존속하는 문제들을 비출 것이다. 참고문헌 1. Zheng, Jenny. “The Game Awards 2022 Received Over 103 Million Views, Sets New Viewership Record.” Gamespot. December 16th, 2022. 2. Ivory, James D., “A Brief History of Video Games.” The Video Game Debate: Unraveling the Physical, Social, and Psychological Effects of Digital Games. Edited by Rachel Kowert and Thorsten Quandt.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6, 16-17. 3. Parker, Felan. “Roger Ebert and the Games-as-Art Debate.” Cinema Journal 57, no 3 (2018):77-79. 4. Ibid., 95-96. 5. Keogh, Brendan. “Between Triple-A, Indie, Casual, and DIY: Sites of Tension in the Videogames Cultural Industries.” The Routledge Companion to the Cultural Industries. Edited by Kate Oakley and Justin O’Connor.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5. 153-154. 6. Lipkin, Nadav. “Examining Indie’s Independence: The Meaning of ‘Indie’ Games, The Politics of Production, and Mainstream Co-optation.” Loading… The Journal of the Canadian Game Studies Association 7, no 11 (2012): 8-15. 7. Dyer-Witheford, Nick, and de Peuter, Greig. “‘EA Spouse’ and the Crisis of Video Game Labour: Enjoyment, Exclusion, Exploitation, Exodus.” Canadian Journal of Communication 31, no 3 (2006): 599-617. 8. Schreier, Jason. “Inside Rockstar Games’ Culture of Crunch. Kotaku. October 23rd, 2018. 9. Cote, Amanda, and Harris, Brandon, C. “‘Weekends Became Something Other People Did’: Understanding and Intervening in the Habitus of Video Game Crunch.” Convergence: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New Research into Media Technologies 27, no.1 (2021): 161-176. 10. deWinter, Jennifer and Kocurek, Carly. “” Gaming Representation: Race, Gender, and Sexuality in Video Games. Edited by Jennifer Malkowski and Treaandrea M. Russworm.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7, 65. 11. Ibid. 12. Joseph, Daniel. “Battle Pass Capitalism.” Journal of Consumer Culture 21, 1 (2021):68-83. 13. Ibid., 81. 14. Ibid.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마크 라제네스, Marc Lajeunesse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온라인 게임의 독성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공평하고 즐거운 놀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게임 내에서 더 많은 긍정적인 조건을 들어내기 위한 독성 현상에의 이해를 추구한다. 스팀 마켓플레이스와 DOTA 2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고 곧 출시될 '트위치 마이크로스트리밍'의 공동 저자이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소수자들의 게임에 대한 세 가지 소고

    디지털게임은 한때 ‘소수자’들의 매체이기도 했다. 소수자라는 개념이 단순히 적은 숫자를 가진 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게임 초창기에 한국에서 게이머는 소수자에 가까웠다. 전자오락실은 불량한 이들이나 다니는 곳으로 낙인찍혔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엄연한 자영업장인 오락실에 학교 교사들이 들이닥쳐 ‘손님’인 학생 게이머들을 강제로 끌고나가는 영업방해 행위도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연일 불량한 오락실과 게임 때문에 망가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쏟아냈고(이 부분은 아직도 유지되는 바 또한 있다) 게임은 눈치보면서 해야 하는, 말그대로 여가오락 문화 부문에서의 소수자 포지션이었다. < Back 소수자들의 게임에 대한 세 가지 소고 04 GG Vol. 22. 2. 10. 디지털게임은 한때 ‘소수자’들의 매체이기도 했다. 소수자라는 개념이 단순히 적은 숫자를 가진 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게임 초창기에 한국에서 게이머는 소수자에 가까웠다. 전자오락실은 불량한 이들이나 다니는 곳으로 낙인찍혔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엄연한 자영업장인 오락실에 학교 교사들이 들이닥쳐 ‘손님’인 학생 게이머들을 강제로 끌고나가는 영업방해 행위도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연일 불량한 오락실과 게임 때문에 망가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쏟아냈고(이 부분은 아직도 유지되는 바 또한 있다) 게임은 눈치보면서 해야 하는, 말그대로 여가오락 문화 부문에서의 소수자 포지션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을 소수자들의 매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콘솔게임 같은, 한국에서 수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킬 수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소수자라는 개념은 단지 숫자의 많고 적음으로 분류하는 말은 아니다. 특히 급격히 게이머 범주가 넓어지기 시작한 모바일 시대 이후를 생각한다면 게임은 오히려 대중문화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 위상을 바꿔온 바 있었다. 대중문화콘텐츠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면서 디지털게임과 소수자의 문제는 좀더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대중문화라는 이름과 함께 하는 디지털게임의 이야기를 할 때 크게 세 맥락의 소수자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이 매체에 접근가능한 매체이용자로서의 접근성 관점에서 바라보는 소수자 문제이고, 두 번째는 이 매체가 콘텐츠 안에서 재현하고 재구성해내는 대상으로서의 소수자 문제다. 그리고 온라인게임이라는 특성에 따른, 게임 안에서 게이머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재현을 통해 나타나는 소수자 문제가 마지막으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은 대중문화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단지 ‘모두가 즐긴다’는 말로 그 의미를 뭉뚱그려선 안된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시도되었던,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실천과 개선의 방향까지를 대중문화로서의 매체는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더욱 넓어지는 게이머 저변 안에서 커진 덩치만큼 우리의 디지털게임은 대중문화로서 갖춰야 할 지향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 또 그 실천이 얼마만큼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를 고찰해 볼 때다. 접근성 관점에서의 소수자 이슈들 서구권의 게임연구들에서는 오랫동안 ‘비디오게임’의 주이용자층을 ‘젊은 백인 남성’이라는 그룹 안에서 살피며 게이머집단에서의 주류화와 그에 따른 마이너리티의 발생을 논의해온 바 있었다. 그러나 이용자집단의 문제는 게임 저변이 점차 넓어지면서 과거와는 사뭇 다른 형태로 게이머집단의 구성이 변화하는 흐름이 존재한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서구의 ‘젊은 백인 남성’에서 ‘백인’은 빠지게 되며, ‘젊은’ 또한 게이머집단이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서 점차 희미한 정체성이 되어가는 중이다. 콘텐츠가 타겟으로 삼는 소비자집단이 호응하는 피드백 속에서 남성 중심의 게임콘텐츠와 게이머집단이라는 점은 여전히 주류집단의 존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게임 플랫폼의 다양화와 모바일기기를 통한 대중화 속에서 남성중심적인 게임이라는 말도 과거만큼의 집중도를 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지는 추세다. 전반적인 대중화의 과정에서 오히려 두드러지는 것은 특유의 인터페이스로 인해 접근성 자체가 제한되는 경우인 장애인 게이밍, 혹은 노화나 미디어 리터러시 문제로 인해 접근이 어려워진 노년 게이밍과 같은 영역일 것이다. 여전히 손쉽게 게임에 접근할 수 없는 여러 환경들이 존재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난 호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게임 접근성에 대한 고민들이 점차 누적되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대중문화로서의 게임이 가져야 할 범용성의 위상에 대한 변화들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매체의 재현에서 드러나는 소수자 문제 오랫동안 디지털게임이 주류 게이머가 아닌 대상을 향해 만들어낸 대상화된 재현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받아온 주제였다. 수동적 대상이나 트로피처럼 등장하는 게임 속 여성의 문제, 존재 자체가 지워진 성소수자 문제, 비서구권 캐릭터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의 반복과 같은 문제들이 꾸준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고, 이는 2000년대 이후 디지털게임 시장이 소비자 확장의 상황을 맞이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오버워치>의 저격수 캐릭터 ‘아나’는 그런 변화를 상징할 만한 캐릭터다. 60대 노년 여성에 장애를 가진 비서구 아랍권 출신의 캐릭터는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라기보다는 마치 과거 인종차별과 대상화에 적극적이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변화한 양상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더욱 넓어진 시장에서 대중문화콘텐츠로 어필하기 위해 이뤄진 시장적 조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의도가 어떤 것이건간에 게임에서의 소수자 재현 문제에 변화가 일어나는 확인 가능하다.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가 리부트되면서 변화한 캐릭터나, 가 게임 내 NPC들의 인종적 다양성을 컴퓨터 사양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옵션을 추가하는 것과 같은 변화는 분명 소수자 재현 문제에 있어 유의미한 변화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변하지 않는 부분들도 적지 않다는 점 또한 공존한다. 게이머 저변의 확대로부터 비롯되는 시장의 압박에 의한 변화가 시작되었지만 아직까지는 글로벌 릴리즈가 중심인 AAA급 대형 게임들에 한정된 변화이며, 대중문화로서의 게임콘텐츠 전반에 걸친 변화라고 이야기하기엔 이제 겨우 첫 발을 뗀 수준이라는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게이머 속에서의 소수자 문제 콘텐츠 내부에서 발생하는 소수자 이슈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불거지는 이슈는 게이머 스스로로부터 발생하는 이슈들이다. 온라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멀티플레이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디지털게임은 생산자로부터 소비자로 이어지는 메시징 이상으로 게이머간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나타나는 맥락이 더욱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에서 수시로 나타나는 여성, 성소수자, 인종, 장애인에 대한 비하들부터 게임 캐릭터 등을 활용한 2차창작에 이르기까지 게이머들이 직접 생산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폭넓게 나타난다. 게임 규칙 내적으로서의 트롤링이나 일반적인 욕설, 모욕이 아니라면 아직까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나 혐오발언 등이 별도로 제재받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는 않다. 현실의 현행법상에서도 차별금지법 등이 입법에서 난항을 겪는 것을 생각하면 게임 속에서의 소수자 차별 문제는 더 험난한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된 콘텐츠 이상으로 이용자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소수자에 대한 대상화, 혐오 문제는 디지털게임과 소수자 문제를 다룰 때 더욱 큰 영향력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전망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왜 게임이 소수자 문제를 신경써야 하는가 접근성, 콘텐츠, 상호작용 세 측면 모두에 걸쳐 디지털게임과 소수자 문제를 살펴보는 이유는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결국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모두의 게임’이라는 대중문화로서의 디지털게임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소수집단에 의해 향유되는 것이 아닌, 이름 그대로 ‘대중’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매체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대중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과 그에 따라 해당 매체가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무가 요구된다. ‘게임은 문화다’ 라는 말은 실제 한국사회를 이루는 대중문화의 일각으로 디지털게임이 자리하고자 할 때 요구되는 최소한의 윤리와 공공성을 갖추고자 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대중화 시대를 맞아 게임이 갖게 된 영향력은 기존에 비할 바 없을 정도로 커졌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이 매체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부담 또한 막중해질 수 밖에 없다. 디지털게임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장벽 허물기, 게임 콘텐츠 안에서 사회적으로 소수자인 이들을 향한 부당한 표현을 줄이기, 그리고 게이머들 스스로가 이 매체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무례가 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기. 이런 여러 요소들이 함께 할 때서야 우리는 비로소 당당하게 ‘게임은 문화다’라는 말을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실천이 따라가지 않는 한, 디지털게임은 적어도 좋은 의미로의 문화에 다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산업계와 이용자 모두 이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해제: 온라인 시대의 오프라인 게임

    폴더와 디렉토리 기반으로 오프라인 PC에서 파일 관리를 하던 세대들은 요즘처럼 클라우드에 파일을 올려두는 방식을 낯설어 한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올라오는 시대다. 바야흐로 온라인이 기본이 되는 시대. 과거에는 PC 한 대에서 데이터를 처리하고 네트워크로 파일을 옮기는 일을 부가적으로 생각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정보의 존재위치 자체가 관계망 위에 놓이는 것이 기본인 시대가 되었다. < Back 해제: 온라인 시대의 오프라인 게임 08 GG Vol. 22. 10. 10. 폴더와 디렉토리 기반으로 오프라인 PC에서 파일 관리를 하던 세대들은 요즘처럼 클라우드에 파일을 올려두는 방식을 낯설어 한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올라오는 시대다. 바야흐로 온라인이 기본이 되는 시대. 과거에는 PC 한 대에서 데이터를 처리하고 네트워크로 파일을 옮기는 일을 부가적으로 생각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정보의 존재위치 자체가 관계망 위에 놓이는 것이 기본인 시대가 되었다. 디지털게임도 시대변화에 발맞추며 변화했다. 기기 한 대 안에서 모든 플레이를 처리하던 시절 만들어졌던 디지털게임들은 온라인이 기본이 된 시대를 맞이하며 싱글플레이 중심에서 네트워크 기반의 온라인 멀티플레이로 그 중심을 옮겨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단지 싱글  멀티라는 간단한 명명으로 뭉뚱그리기 어려울 만큼 넓은 진폭을 보여 왔다. 그러나 오프라인 시대는 온라인이 대세가 됐다고 갑자기 휙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지나간 듯한 한 시대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로 자리매김하고 다음 시대의 현상에 흔적을 남기며 지속적으로 공생한다. 이번 호, 그리고 이 글에서는 온라인이 기본이 된 시대에 여전히 의미를 남기고 있는 오프라인 시대의 게임들을 되짚어본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게임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몇 개의 기준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기반에서 가상공간의 의미는 외적으로 변화했다 온라인 시대 들어 게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점은 게임 텍스트 안쪽보다는 오히려 바깥쪽, 특히 구매방식의 변화다. 오프라인 싱글플레이를 가능케 한 것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구매 혹은 대여해 텍스트가 제시하는 가상세계를 온전히 영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오프라인 시절에는 게임 속 가상세계는 언제나 완성된 것이어야만 했고, 그 안에서 완결되는 무엇이어야만 했다. 이를테면 오늘날 온라인RPG 등에서 만나볼 수 있는 ‘미구현’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추가 DLC를 구매하거나 패치를 통해 열리는 새로운 공간은 상품 형태로 거래되는 게임소프트웨어 기반에서는 등장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오프라인 기반 시절과는 사뭇 다른 가상세계를 낳았다. 이제 우리가 겪는 게임 속 시공간은 설령 그것이 멀티플레이가 없는 공간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고정된 텍스트 속의 공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마치 인쇄된 책과 같았던 오프라인 시절 클라이언트에서만 작동하던 가상세계는 그 실물공간을 서버라는 위치로 옮기면서 언제 어떤 이유로도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되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과거 ‘마그나 카르타’ 처럼 버그로 작동이 불가능한 세계 대신 언제든 패치로 되살아날 수 있는 세계의 등장이지만, 동시에 공식 서버가 사라지면 다시 옛날 책 꺼내들듯 쉽게 뽑아들기는 어려운 곳으로 게임 속 세계가 옮겨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싱글플레이는 이제 과거와 같지 않은 무엇이 되어간다 싱글플레이 게임은 공간과 시간을 대여하는 아케이드 시절을 벗어나 기기와 소프트웨어를 개인이 소유하고 플레이할 수 있는 콘솔, PC 시대로 접어들면서 세이브/로드를 기반으로 점차 긴 시간동안 스토리 진행을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수백 시간에 이르는 싱글플레이 스토리라인 진행 동안 이야기를 밀고나가는 것은 오로지 단일한 플레이어의 개입 뿐이었지만, 이러한 싱글플레이 진행은 온라인 시대를 맞으며 앞서 이야기한 이유와 같은 맥락에서 오로지 나만의 이야기만으로는 남지 않는 형태가 되었다. ‘데스 스트랜딩’과 같은 비동기식 멀티플레이(이를 멀티플레이라고 부를지 싱글플레이라고 부를지가 애매하지만)는 온라인 시대의 싱글플레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플레이어는 분명 혼자 플레이하지만, 그 공간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영향력에 의해 변화하고 발전한다. 설령 직접적인 변화를 게임 안에 구현하지 않는다 해도, 싱글플레이의 클리어 스코어를 전세계 단위로 비교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변화는 싱글플레이의 과거와 오늘을 다르게 만들어낸다. * '데스 스트랜딩'은 싱글플레이 같지만 비동기방식을 통해 타인의 영향력을 게임 안에 당겨오면서 독특한 고립감을 연출해내며 오프라인 시대와는 다른 싱글플레이를 선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게임 텍스트 안쪽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온라인이 보편화된 오늘날에는 완전한 스탠드얼론 싱글플레이라 하더라도 공략과 포인트들이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퍼지면서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손쉽게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공략을 파악하고 최적경로를 향해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시대의 싱글플레이와 제한된 정보상황에서 오직 플레이어의 경험만으로 뚫고나가야 하는 시대의 싱글플레이를 같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싱글플레이가 갖는 매력이 온라인 시대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게임들은 혼자 세계 안을 휘저을 수 있는 싱글플레이를 꾸준히 모드이건 단독이건 가리지 않고 출시하고 있고, 멀티플레이만큼의 수익은 아니지만 플레이어들 또한 이에 적잖은 호응을 보내고 있다. 싱글플레이에 타인의 기여 혹은 개입을 적절히 섞는 게임제작자들의 시도 또한 어디까지를 싱글플레이로 보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조심스런 탐색으로 이어지고 있음은 온라인 시대에도 여전히 싱글플레이의 의미가 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오프라인 코옵과 온라인 랜덤매칭은 다르다 아마도 플레이 면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온라인 시대 이후 코옵 분야일 것이다. 오프라인 시대의 코옵 플레이는 반드시 시공간을 같이 점유하는 둘 이상을 필요로 했음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콘솔 게임의 코옵은 모르는 사람과 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고, 아케이드에서 또한 경쟁형 멀티플레이는 가능할지라도 모르는 사람과 코옵을 하는 것은 매우 생경한 일이었다. (혼자 ‘라이덴’을 플레이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동전을 넣고 2P를 시작했다고 생각해보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게임을 할 수 있는 온라인 시대가 되면서 이른바 PVE라 불리는 새로운 방식이 주는 재미는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바 있었다. 이른바 MMORPG의 레이드는 대규모의 인원이 합을 맞춰 공략을 풀어내는, 마치 잘 맞춘 매스게임과 같은 쾌감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타난 것은 이른바 트롤링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코옵이라는, 이름에 ‘협동’이 들어가는 어떤 플레이에 오프라인 기반의 지인 네트워크가 아닌 오로지 게임플레이만을 위한 새로운 관계 속 익명의 누군가가 함께 하게 된 상황으로부터 비롯된다. ‘잇 테익스 투’는 그러한 난감함을 잘 드러내준 게임이었다. 2인 코옵으로 반드시 풀어내야만 하는 이 게임은 온라인 매칭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모르는 사람과 플레이하는 것은 매우 난감한 형태의 디자인이었다. 아케이드/콘솔 시절의 코옵을 되살린 듯한 이 게임은 우리가 오늘날 겪는 온라인 멀티플레이라는 말에 사실은 ‘익명기반의 랜덤매칭 멀티플레이’라는 말이 가려져 있음을 드러냈다. 지인간에 가능한 코옵이 있고, 익명 매칭으로도 가능한 코옵이 있다는 구분은 생각처럼 우리에게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 '잇 테익스 투'로부터 우리는 오늘날의 멀티플레이가 사실은 랜덤매칭 기반의 익명 멀티플레이임을 깨닫는다. 온라인 시대의 오프라인 게임 정보의 물리적 위치기반이 바뀌는 것이 얼마나 거대한 변화인지는 비단 게임이 아니어도 2000년대 전후를 살아온 많은 이들이 깨닫고 있을 것이다. 오롯이 가상공간 안의 것으로 여겨지는 게임도 다르지 않아서, 온라인 시대라는 이 변화는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시작된 디지털게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켰다. 이는 우리가 온라인을 100% 가상공간의 무엇으로만 생각해선 안된다는 포인트를 남겨주며, 과거 온라인 이전에 만들어진 어떤 형식이 온라인 시대에도 새로운 변화 속에 꾸준히 이어진다는 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오프라인 시절의 흔적과 유산을 온라인 시대에 찾는 것은 그저 ‘옛날엔 이랬지~’같은 회상이나 ‘라떼는 말이야~’에 그칠 일은 아니다. 반세기가 넘어가는 게임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기반의 변화가 일어난 변곡점으로서 우리는 온라인 시대의 대두를 이해해야 하며, 그 변화 속에서 무엇이 이어지고 무엇이 소멸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오프라인 시대의 게임을 온라인 시대에 다루는 일은 그런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게임 주인공 캐릭터를 둘러싼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 변화가 주로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 < Back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16 GG Vol. 24. 2. 10. 게임 규칙을 넘어선 감정 투영 대상으로서의 등장인물 초창기 게임의 역사 속에서 가족은 게임 안이 아니라 게임 밖의 존재였다 . 플레이어 캐릭터는 대체로 혼자 위험천만한 스테이지들을 돌파해 나갔지만 ,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는 환경은 게임사의 광고에 의해 늘 가족적인 무언가로 일컬어지곤 했다 . 닌텐도 등의 가정용 콘솔 기기는 항상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거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게임하는 장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와 함께 하는 이들은 가족이라기보단 주로 ‘ 동료 ’ 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었다 . 롤플레잉 게임의 파티 시스템 , 여러 게임에 등장하는 조력자 등은 나름의 끈끈함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기능적인 관계맺음을 플레이어와 이어나가는 동료로서의 존재였다 . 2000 년대 들어와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 이코 ’ 는 그런 점에서 눈에 띄는데 ,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시작부터 끝까지 모험을 함께 하는 요르다는 ‘ 동료 ’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엔 사뭇 이질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 플레이어는 딱히 공격력이 없는 요르다의 손을 붙잡고 게임을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 분명 퍼즐과 같은 요소들에서의 해결을 돕는 조력자의 포지션이지만 실제로 ‘ 이코 ’ 를 플레이한 이들이 요르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동료보다는 조금 더 진한 무엇이었다 . 함께 싸우면서도 플레이어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존재로서의 요르다는 동료이자 퍼즐의 열쇠라는 기능적 관계 이상의 존재로 플레이어들에게 각인된 바 있었다 . 유사가족 관계의 조엘과 엘리 ‘ 이코 ’ 로부터 대략 10 여 년이 지난 뒤에 출시된 게임 ‘ 라스트 오브 어스 ’ 는 유사 가족 관계에 놓인 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모험을 풀어가는 새로운 시점을 선보였다 . 중년의 남성 주인공 조엘은 게임 프롤로그에서 딸을 잃었고 , 그런 그에게 임무로서 맡겨진 엘리라는 아이는 잃었던 딸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십대 소녀다 . ‘ 이코 ’ 처럼 둘은 서로 도와 가며 험난한 세계를 헤쳐나가지만 , ‘ 이코 ’ 에 비해 좀더 엘리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변화 혹은 발전이 있었다 .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무대 속에서 조엘과 엘리의 이야기는 단순히 모험의 기승전결을 풀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잘 맞지 않았던 두 사람이 일종의 유사 가족 관계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진한 감동을 만들어낸 바 있었다 .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 라스트 오브 어스 ’ 로부터 받은 감정은 삭막하고 외로운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감정을 함께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유사 가족 관계가 유독 더 따뜻하게 빛났기 때문이었다고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 '갓오브워'에 이르러 혈연 가족으로 등장하는 조연 2001 년 ‘ 이코 ’ 에서 동료를 넘어선 무언가로 , 2013 년 ‘ 라스트 오브 어스 ’ 에서는 유사 가족 관계라고 이름붙여도 좋을 , 플레이어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존재는 2018 년의 ‘ 갓 오브 워 ’ 에서는 본격적으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으로 등장한다 . 전쟁의 신으로 그리스 신화 시대를 휩쓸었던 주인공 크레토스는 후속작에서 아들을 둔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 크레토스의 캐릭터는 이러한 관계설정의 변화를 통해 크게 바뀌는데 , 전작에서는 가족을 잃은 뒤 신의 아들로서 자녀의 포지션을 맡았던 크레토스가 후속작에서는 가족관계 안에서의 아버지 포지션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 실제로 게임 안에서 크레토스와 아들 아트레우스의 관계는 철모르는 아이의 육아를 도맡는 크레토스의 관점으로 그려진다 . 아트레우스는 나름의 전투력은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며 , 내러티브를 통해 크레토스는 아들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풀어낸다 . 후속작 ‘ 갓 오브 워 : 라그나로크 ’ 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사춘기를 맞아 방황하는 아트레우스의 옆에서 자녀의 성장과 함께 부모가 맞는 새로운 도전들이 함께 그려지는 것을 보면 , ‘ 갓 오브 워 ’ 의 북유럽 시리즈는 상당부분 자녀라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맞았지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될 지는 모르는 부모의 입장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나이들어가는 게이머 게임 안에서 기능적 조력자 이상의 감정을 담아내는 캐릭터와 주인공 캐릭터 사이의 관계는 ‘ 이코 ’ 의 2001 년부터 ‘ 갓 오브 워 ’ 의 2018 년 사이 근 20 여년 속에 점차 변화해 왔다 . 이 변화는 지켜야 할 동료에서 ‘ 라스트 오브 어스 ’ 의 유사 가족관계를 거쳐 마침내 혈연관계로 점차 가족이라는 구성을 향해 움직였는데 , 이는 특히 주인공 자체의 변화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 명확하게 ‘ 소년 ’ 의 포지션이었던 ‘ 이코 ’ 의 주인공과 달리 ‘ 갓 오브 워 ’ 의 크레토스는 명백하게 중년 남성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다 . 현실의 시간 변화를 함께 생각해 보면 게임 속 주인공 캐릭터의 나이듦은 마치 현실의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2001 년에 소년이었던 주인공은 2018 년이 되면 열 일곱 살을 더 먹게 되는데 , 만약 2001 년 당시 20 세였던 플레이스테이션 이용자가 2018 년이 되면 37 세가 되는 것이다 . 단순한 생물학적인 나이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 이 20 년 사이의 간극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갖는 주변 인간관계를 크게 변화시키고도 남을 시간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 ‘ 이코 ’ 를 플레이하던 청년은 20 년 후 중장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20 년 전의 게이머들이 지금보다 젊은 세대였다면 , 이제 게이머 집단은 과거보다 조금 더 폭넓은 연령층이 되었다 . 디지털게임 이용자층은 연령과 성별 , 지역과 같은 여러 측면에서 과거보다 보편화되며 넓어졌고 , 과거 단지 어린이들의 놀잇감으로만 여겨졌던 게임은 적어도 ‘ 갓 오브 워 ’ 에 이르면 명백하게 중년기 게이머들을 타겟으로 삼는다 . ‘ 갓 오브 워 : 라그나로크 ’ 에서 다루는 사춘기 자녀의 방황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게임 주인공 캐릭터에 덧씌우는 일은 간접적으로 오늘날의 게이머들이 갖는 평균 연령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의미한다 . 게임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일련의 유대관계와 사랑을 표현한다고 한다면 , 이 사랑은 게이머 집단의 나이듦에 따라 다른 형태로 묘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20 년 전의 게이머들은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젊고 남성중심인 집단이었고 , 그런 그들에게 사랑은 가족보다는 신비함을 간직한 여성 캐릭터에게 투영된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장년이 된 그들에게 사랑의 투영 대상은 이제 자녀라는 , 가족이라는 새로운 테두리 안에서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 이러한 변화는 꽤 곳곳에서 감지된다 . 2023 년 출시된 ‘ 디아블로 4’ 에서는 기존 시리즈에서 보지 못했던 수많은 서브 퀘스트들이 등장하는데 , 이 중 적지 않은 분량이 자녀를 둔 등장인물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 자녀의 훈육을 위해 감옥에 보낸 부모가 결국 자식을 잃은 뒤 후회하는 내용이라거나 , 집나간 아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해오는 등 ‘ 디아블로 4’ 에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감정을 다루고자 하는 퀘스트들이 포함된다 . 비슷하게 2020 년대에 출시된 게임 중 ‘ 잇 테이크스 투 ’ 또한 게이머 집단의 세대 변화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사례다 . 어린 자녀를 가진 중장년기 부부의 이혼 위기를 코믹하게 풀어낸 이 게임 또한 사실상 중년 부부가 만날 수 있는 삶의 시기를 스케치한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오늘날 스탠드얼론 게이머의 중심은 중장년이다 게임 주인공 캐릭터를 둘러싼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 변화가 주로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 .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거치면서 점차 PC 는 가정의 필수 가전제품이어야 할 이유를 상실하기 시작했고 , 게임을 하기 위해 구비해야 하는 게임전용 PC 는 이제 꽤나 고가품의 영역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콘솔게임기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지만 , 일정 수준 이상의 디스플레이가 기본적으로 요구되고 , 타이틀 가격이 8~10 만원을 오가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 아이들의 문화활동으로만 보기 어려운 비용 장벽을 가진 셈이기도 하다 .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유료 기반의 온라인게임들과 달리 , 일정 수준 이상의 공간과 시간 , 비용을 요구하는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들은 이제 확실히 중장년을 메인으로 삼는 활동이 되었다 . 게이머가 나이를 먹어 가는 과정과 함께 게임 콘텐츠 또한 나이를 먹었고 , 나이들어간다는 변화 속에서 게임을 통해 표현되는 게이머와 주인공 주변의 인간관계 또한 다르게 그려진다 . 모두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연애 – 결혼을 거치는 이른바 ‘ 정상가족 ’ 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 적어도 기술복제를 통해 대량유통되는 미디어 콘텐츠인 디지털게임은 산업적 관점에선 정상가족 안에서 부모라는 위치 혹은 그와 비슷한 세대가 겪게 되는 감정의 과정들을 다루고 싶어한다 . 지난 수십 년간 게임에 일어난 변화는 그래서 단지 기술의 발전과 이용자층의 확대만이 아니라 , 이 매체가 다루고자 하는 감정과 관계에도 나타난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조얼

    지상파 PD로 시작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주로 콘솔게임을 즐기며, 멀티플레이를 싫어하는 내향인. 조얼 조얼 지상파 PD로 시작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주로 콘솔게임을 즐기며, 멀티플레이를 싫어하는 내향인. Read More 버튼 읽기 [북리뷰] 도망쳐 도착한 곳의 낙원: 가브리엘 제빈,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심지어 게임을 업으로 삼은 이에게도. 그때 게임이 경이로웠던 것은 삶의 고통과는 무관한 신비 그 자체였기에 노스탤지어는 더욱 짙은 그리움을 부른다. 그럼 지금의 당신에게 게임은 어떤 경험인가. 지금 다시 플레이하면 분명 지루하게 느낄 그 시절의 게임들과 비교하면 오늘의 게임은 어떤 의미인가. 여전히 신비로운가, 혹은 신비를 잃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는 이 소설이 그렇게 묻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2024년 진행된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을 다음과 같이 발표합니다. < Back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20 GG Vol. 24. 10. 10. 안녕하세요, 게임제너레이션입니다. 2024년 진행된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을 다음과 같이 발표합니다. 기계장치의 우주 - 레인월드와 아우터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나원영)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박정서) : 미술관이라는 공포 체험 (윤수빈) 게임으로부터의 선택, 선택으로부터의 풍경 (김성은) 이상 네 개 작품을 공모전 수상작으로 발표합니다. 수상작은 GG 20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응모해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게임제너레이션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이상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비디오게임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비디오게임에 대해 생각하면서 게임이 주는 흥미로운 경험을 문장으로 옮기는 중입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관련 저서로는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이 있습니다. 이상우 이상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비디오게임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비디오게임에 대해 생각하면서 게임이 주는 흥미로운 경험을 문장으로 옮기는 중입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관련 저서로는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이 있습니다. Read More 버튼 읽기 보는 게임, 그 충족되지 않는 욕망 - 핀볼과 월드플리퍼 사이에서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희소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왔다. 쾌락에는 상대적 희소성이라는 맥락이 필요하며, 너무 많으면 지루해진다. 무엇보다 쾌락이 ‘래칫 효과(rachet effect: 수준이 한번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지 않는 효과)’를 일으켜, 자연과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화되지 않은 쾌락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포장된 쾌락은 전에는 귀하고 드물었던 것을 흔하고 따분한 것으로 만든다. 결국 포장된 쾌락 바깥 세계에 대한 흥미가 점차 약해지며 우리는 더 이상 그 세계를 열망하지 않게 된다. 내가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월드플리퍼〉의 포장된 쾌락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This is a Title 01 | 게임제너레이션 GG

    < Back This is a Title 01 This is placeholder text. To change this content, double-click on the element and click Change Content. This is placeholder text. To change this content, double-click on the element and click Change Content. Want to view and manage all your collections? Click on the Content Manager button in the Add panel on the left. Here, you can make changes to your content, add new fields, create dynamic pages and more. You can create as many collections as you need. Your collection is already set up for you with fields and content. Add your own, or import content from a CSV file. Add fields for any type of content you want to display, such as rich text, images, videos and more. You can also collect and store information from your site visitors using input elements like custom forms and fields. Be sure to click Sync after making changes in a collection, so visitors can see your newest content on your live site. Preview your site to check that all your elements are displaying content from the right collection fields. Previous Next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최은경

    현 한신대학교 이스포츠 융합 대학원 주임 & 평화교양대 영상콘텐츠 전공 교수. 영국 러프버러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전남과학대학교 e스포츠과 조교수 최은경 최은경 현 한신대학교 이스포츠 융합 대학원 주임 & 평화교양대 영상콘텐츠 전공 교수. 영국 러프버러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전남과학대학교 e스포츠과 조교수 Read More 버튼 읽기 게임의 조건 : 게임은 스포츠 종목이 될 수 있는가? 예들 들어 ‘대통령배 전국 아마추어 이스포츠 대회’, ‘이스포츠 대학리그’, ‘동호인대회’, ‘전국장애학생e페스티벌’, ‘한중일 이스포츠대회’,‘세계이스포츠대회’의 공식 종목들이 궁극적으로 국내 게임 산업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일이다.

  • [인터뷰] SNS의 규칙을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바꾸는 여정 : <페이크북> 제작사 반지하 게임즈 이유원 대표

    SNS가 현대인의 소통창구로 자리 잡은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교통, 통신의 기술이 해마다 급격하게 발전하고, 문화적 양상은 그보다 더 빠르게 급변하기에 오늘날 SNS의 특징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SNS 활동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 출시되었다. 심지어 게임을 만든 회사가 일상의 규칙성을 게임의 매커니즘으로 녹이는 데 특화된 ‘반지하 게임즈’이다. 그들은 어떤 고민을 통해 SNS의 규칙을 게임화하였을까? GG 2호 이후 오랜만에 반지하 게임즈의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 Back [인터뷰] SNS의 규칙을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바꾸는 여정 : <페이크북> 제작사 반지하 게임즈 이유원 대표 22 GG Vol. 25. 2. 10. SNS가 현대인의 소통창구로 자리 잡은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교통, 통신의 기술이 해마다 급격하게 발전하고, 문화적 양상은 그보다 더 빠르게 급변하기에 오늘날 SNS의 특징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SNS 활동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 출시되었다. 심지어 게임을 만든 회사가 일상의 규칙성을 게임의 매커니즘으로 녹이는 데 특화된 ‘반지하 게임즈’이다. 그들은 어떤 고민을 통해 SNS의 규칙을 게임화하였을까? GG 2호 이후 오랜만에 반지하 게임즈의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이경혁 편집장: 오랜만에 GG 인터뷰로 다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신작 <페이크북>을 내셨는데요. 사실 <페이크북>이라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저도 좀 인연이 있지요. 이전에 이 프로젝트를 고민하실 때 저희 사무실을 찾아오셨잖아요? 이유원 대표: 네. 맞습니다. 처음 기획할 때에는 특이한 컨셉에 소위 말하는 ‘인디게임’스러운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는데, 그때 스토리가 중요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고민이 많았는데요. 게임의 재미를 주는 여러 형태가 있다고 보았을 때, 이야기를 쭉 보는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이 대표적으로 스토리가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이 게임으로 주고 싶었던 것은 특정한 ‘이야기’가 아니고, SNS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거기서 유저가 상호작용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나 참신함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 뵙고 난 이후에 이 게임 시스템을 가장 잘 보여주는 스토리가 뭘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때 말씀해 주셨던 것들이 결국 중요한 결정들을 하는데 항상 생각이 나는 조언들이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그런 느낌을 좀 받았어요. ‘제작자분들이 실제로 SNS에서 신상을 꽤 털어봤구나’라는 생각이었는데요. (일동 웃음) 그런 말씀을 많이 들으시나요? 이유원 대표: 이번에 게임을 출시하고서 스트리머분들이 되게 많이 플레이해주셨어요. 어제도 ‘한동숙’ 님이 플레이해주셨고요. 그런데 그분들 플레이를 보면서 시청자분들이 채팅으로 ‘이 사람 SNS를 얼마나 한 거냐?’, ‘이 사람 인터넷 귀신이다’ 라고들 하시는데, 그걸 들을 때 처음엔 되게 놀랐어요. ‘이게 그 정도인가?’, ‘이건 다 아는 내용 아닌가?’, ‘이 정도는 다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공감을 잘 못했는데, 계속 이런 반응이 나오니까 ‘아, 제가 좀 많이 했었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 그런데 사실 저는 SNS를 그렇게 많이 안 하거든요. 오히려 이 게임을 만들면서 열심히 보려고 했었고, 정확하게는 SNS를 많이 한다기보단 인터넷에 있는 웃긴 상황이나 우리가 맞닥뜨릴 법한 경험 같은 것들 좋아했던 것 같아요. 사실 인터넷에서 웃긴 이야기가 올라와서 사람들이 퍼내고, 댓글로 싸우고, ‘누가 알고 봤더니 누구였더라’ 하는 그런 것들이 메타적으로 보면 재밌는 문화잖아요? 그런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경험들을 녹여서 게임을 만든 것이 조금은 주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경험을 게임으로 녹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유원 대표: 네. <페이크북>이 신상을 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어드벤처 게임이고, 스토리를 따라가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비주얼 노벨 같은 느낌이어서, 저희도 작업하면서 단순한 ‘신상 털기’를 넘어서는 참신함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는 기획 공수가 컸었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새롭게 재미를 느낀 점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 텍스트 게임을 만들거나 일반적인 라이브 하는 게임을 만들 땐, 재미있는 장치를 만드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 <페이크북>은 처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게 엄청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새로운 감각이어서 기획하는 입장에서도 되게 재미있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영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사실 이런 스토리텔러 게임들이 제작자 입장에서 굉장히 어려운 게, 100개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도 플레이어가 100개를 다 해보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열심히 만들었는데, 플레이어가 하지 않는 부분들은 아쉽지 않나요? 이유원 대표: 사실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제가 텍스트 게임을 오래 만들어서 그런지, 그런 거에 대해서는 생각을 크게 안 하는 것 같아요. 텍스트 게임은 상호작용성이 중요하니까, 결국 플레이어들이 가지 못하는 분기가 있는데요. 오히려 모든 분기를 다 파악하게 만드는 순간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고, 실제로 <페이크북>을 플레이하시는 분들 반응을 보면, 당연히 못 가는 분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재미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한편으로 게임을 하면서 궁금했던 게, ‘왜 하필 페이스북이었나?’이었거든요. 사실 요즘 페이스북이 10대, 20대들이 사용하는 SNS의 이미지는 아니잖아요? <데이브 더 다이버>에서도 SNS가 나오는데, 거기선 인스타그램을 따라갔어요. 그런데 더 나중에 나온 게임이 페이스북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저는 특이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페이스북을 모티브로 삼으신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이유원 대표: 사실은 기획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요. 인스타그램이나 모바일 UI처럼 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아예 게임을 모바일로 출시하자는 의견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일단, PC 게임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첫 번째로, PC 게임에 진출하고자 하는 저희 회사의 내부 전략적인 이유가 있었고요. 두 번째로는, <페이크북>을 만들 때 ‘게임을 몰입해서 하지 않으면 유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게 결국 현실에 있는 인터넷 세상을 재현하는 모습이다 보니까요. 그리고 모바일 환경에서 하다 보면 흐름이 끊긴다거나 너무 작은 화면으로 봐서 와닿지 않을 수 있기에 집중된 상태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PC가 적합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PC 게임 시장은 이미 너무 많은 게임이 나오고 있기에 특이하고 컴팩트한 컨셉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면서 여러 세대의 공감대를 살 수 있는 방향으로 페이스북을 선정했죠. 아무래도 다른 SNS를 활용하면 그 SNS를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SNS를 따라한 것이다’라는 게 확 와닿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인스타그램은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있을 수 있지만, 페이스북은 나이대에 상관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향수를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부분 중에 굉장히 공감하는 건 PC 앞에서 해야 하는 게임이라는 점인 것 같아요. 제작자로서 그 차이를 많이 느끼시는 거잖아요? 이유원 대표: 네. 모바일 게임을 만들 때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못 해봤는데, 일단 몰입을 저해할 만한 요소들이 굉장히 많아요. <페이크북>은 이야기의 진지함이 담겨있는 파트도 있다 보니까, 수시로 껐다 켰다 하면서 방해를 받으면 좀 아쉬울 것 같다는 기획자적인 아쉬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실제 SNS를 따라 한 게임인데, 플레이하다가 실제 SNS 알림이 뜨거나 카톡 알림이 뜨면 몰입이 얼마나 깨지겠어요? 그런 것들을 방지하고 싶어서 기획 초반에 팀원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그 선택에서 역으로 우리의 인식 속에 페이스북이 어떤 미디어인지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이 들어요. 페이스북은 PC로 보아야 글이나 내용에 집중을 할 수 있고, 모바일로는 잘 다가오지 않는 SNS인 거죠. 그래서 ‘PC 게임을 만들 땐 결국 페이스북 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거든요. 이유원 대표: 저도 페이스북을 생각했을 때, 컴퓨터로 했던 기억이 더 많이 나는 것 같아요. 그 기억이 남아 있어서 영향을 받은 점도 있겠네요. 이경혁 편집장: 그리고 <페이크북>의 UI를 되게 유심히 보다 보면 이게 지금의 페이스북 UI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 전의 모습이랄까요? 그런 지점에서 페이스북이라는 특정 코호트에 맞춘 SNS를 가져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원 대표: 눈썰미가 진짜 좋으시네요. 저희는 옛날 페이스북 UI를 가져오고 싶었는데, 말씀을 들으면서 제 예전의 향수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확실히 페이스북 UI는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저희도 조사 차원에서 페이스북 UI의 변천사를 정리해 놓은 사이트를 찾을 수 있었는데, 타겟으로 한 건 2010년대의 페이스북이에요. 왜냐하면 그때의 UI가 한편으로는 투박하지만, 한편으로는 필요한 것만 배치되어서, 뭐랄까요... 본질에 집중한?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정확하게 왠지는 몰라도 옛날 페이스북 생각이 많이 났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디자인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저는 콘텐츠 측면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페이스북에서는 이런 활동을 잘 안 하거든요. 이유원 대표: 그렇죠. 요즘은 페이스북이든 스레드든 사람들이 뭔가를 일부러 재밌게 쓰려고 하거나 내용이 있는 글을 쓰려고 하는데, 당시의 페이스북은 ‘배고파’, ‘심심해’ 같이 그냥 아무 말이나 올리기도 하고, 진지하거나 웃긴 글도 올리고 그런 감성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보니까, 기획적으로도 (<페이크북>에선) 글이랑 그림이 막 올라오면서 이 사람의 사생활도 볼 수 있고, 생각도 볼 수 있고, 무슨 캐릭터인지 빨리 캐치할 수 있는 점에서 적합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페이스북을 선택하는 지점에서의 모종의 향수가 있다고 표현을 하셨는데, 한편으로는 페이스북이 트위터나 다른 SNS와 다르게 싸이월드처럼 지인과의 연결된다는 점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페이스북은 실명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레트로한 지점도 있고요. 그런 부분이 페이스북의 향수를 만드는 지점도 있을까요? 이유원 대표: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일상의 재밌는 경험에서 핵심 메커니즘이 뭘지 생각을 하고 게임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페이크북>을 만들 때에도 페이스북에서 저랑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랜덤한 사람들을 많이 타고 다녔어요. 페이스북의 경우에는 친구들 리스트가 공개되어 있잖아요? 그러면 그걸 타고 네다섯 거리 건넜을 때, 진짜 저와는 평생 만나보지 못할 것 같은 분들이 떠요. 그런데 그분들의 일상을 보면 아주 사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인스타처럼 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인적인 섬이 있고 거기의 네트워크가 있는 형태다 보니 신기하고 생경한 재미를 주는 거예요. 그때 이 사람에 대해 알면 알수록 놀랍고 그런 점들에서 <페이크북>이 주는 재미는 이런 거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페이크북>을 보면 누군가는 바보 같을 정도로 자기 사생활을 엄청 올리고 그걸 보면서 얘네가 이렇게 친하고 이런 관계망들을 알게 되잖아요. 그렇게 탐방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지금 게임 이용자의 주 연령대는 어떻게 될까요? 이유원 대표: 그 부분을 정확하게 체크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 초반보다는 중후반쯤에서 좀 더 인기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좀 재미있어요. 스트리머분들이 게임을 하실 때, 채팅창에서 ‘옛날에는 다 그랬어’ 이런 식의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사실 게임 내용에서 댓글에다가 자기 전화번호를 적어서 응모하는 그런 것들은 지금 시대에서 상상하기 힘든 그런 문화니까. (웃음) 한편으로는 지금 10대 분들이 보시기에는 마치 예전 세대가 PC 통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말씀해주신 것처럼 유튜브에서는 반응이 아주 좋았잖아요? 이유원 대표: 네. 되게 많이 스트리머 분들이 해주셨었고, PC 게임은 모바일 게임과 다르게 되게 이제 호의적으로 많이 플레이해주시다 보니까 뿌듯했습니다. 보통 모든 개발자가 그러겠지만, 게임을 출시하고 난 뒤에는 버그가 나오면 어떡하지, 막히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함께 기획 의도대로 반응이 나올 때의 성취감이 있는데, 그런 지점이 개발하면서 엄청 큰 힘이 됐고 성장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돼서 좋았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스트리머분들 말씀이 나와서 그러는데, 이번 작품에서 까메오를 많이 쓰셨잖아요? 이유원 대표: 네. 맞아요. 처음 기획 과정에서부터 이게 실제 SNS를 옮겨 놓은 것이다 보니, 스트리머 분들이나 인플루언서분들이 나오시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먼저 저희와 친분이 있는 분들부터 아닌 분들까지 광범위하게 연락을 드렸어요. 사실 이게 콜드 메일이잖아요? 그래서 안 받아주실 만도 한데, 거의 한 90-95%는 다 흔쾌히 답장을 주시더라고요. 순전히 호의로 해주시는 건데도 생각보다 더 호의적으로 말씀을 해주셨고, 안 된다고 하셨어도 사정을 설명해주시고 하셔서 그런 과정들이 감사하고 재밌었습니다. 실제로 게임이 나왔을 때의 유저분들의 반응도 좋고, 스트리머분들이 게임하실 때 채팅창의 반응을 볼 때 희열이 있었죠. 이경혁 편집장: 텍스트 베이스의 게임이다 보니까 해외 진출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장벽이 좀 있잖아요. 그 부분에 대한 상황이나 이후 계획은 어떻게 보고 계세요? 이유원 대표: 일단, 7월에 BIC(인디게임커넥트페스티벌)에서 ‘비트 서밋’(인디 게임 페스티벌)에 가는 것을 지원해주면서, 번역을 해야 해요. 그런데 번역에 두 가지 방법이 있거든요. 하나는 로컬라이제이션을 정말 잘 하는 방법이 있고, 하나는 지금의 문화적 색채를 유지하면서 언어만 대응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 지금은 양방향으로 많이 알아보고 있어요. 만약에 해외 유저분들도 형식이 파격적이라며 재미있어하신다면, 앞으로 더 확장될 영역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조금 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한편으로 요즘 한국의 대중 문화에 관한 해외의 관심도가 높다 보니, 현지화를 안 하더라도 그냥 한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로컬라이제이션을 하는 방향도 여러 가지잖아요. 현지 회사랑 합작을 해서 거기서 변화를 주는 방법도 있을 거고요. 이유원 대표: 네. 맞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방법들을 열어놓고 알아보고 있어요. 해외 퍼블리셔를 만나는 것도 생각하고 있고요. 사실 <페이크북>이 저희의 첫 번째 PC 게임이다 보니, 성적이나 흥행에 대해서 되게 걱정이 많았었는데 정말 후회 안 하고 만족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플레이해주시고 그런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어서, 사실 작년을 되게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반지하게임즈는 <서울 2033>처럼 발매 이후에도 패치를 한다거나 확장팩을 선보이는 모습들을 보이곤 했는데요. 혹시 이번 작품도 패치나, DLC 같은 형태로 확장시킬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유원 대표: 네. DLC를 생각하고 있고 욕심은 많습니다. 이 포맷이 좋기 때문에 이야기를 바꾸어가면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요. 일단은 DLC 쪽으로 해서 추가되는 스토리들을 보여드리는 식으로 준비를 할 것 같고요. DLC 외에도 나중에 이 포맷을 다시 쓰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인터넷 서핑하는 재미라는 걸 주는 게임이 좀 고유할 것 같아서, 발달하는 AI 기술에 접목시킬 생각도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그 외의 차기작에 대해서 계획도 여쭙고 싶어요. 이유원 대표: 저는 텍스트 게임을 더 많이 해보고 싶어요. <서울 2033>이 벌써 6, 7년 되었는데, 하다 보니까 노하우가 많이 쌓였거든요. 물론, 혹자는 텍스트 게임이 수익성이 없고, 글을 쓰는데 노고가 많이 들어가며, 비즈니스 모델도 적립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 노하우도 쌓였으니 더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요. 최근에 저희가 AI 관련 기술들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노하우를 접목시켜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로망이 있어요. 신작으로는 PC 게임 더 도전하고 싶은 것도 있는데요. 이번에 나온 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컴팩트한 규칙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저희가 원래 잘하던 건데, PC 버전으로 그런 류의 게임을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페이크북>은 사람들의 네트워킹이 모종의 재미를 주었는데, 이런 재미를 메타적으로 느끼게 만들어서 지금까지의 전작들이 서로 연결되는 차기작도 나올 수 있을까요? <서울 2033>의 인물이 나오는데, <페이크북>의 인물과 접점이 있고, 또 그 사람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수확의 정석>의 인물이고 하는 그런 그림이요. 이유원 대표: 언제 별도의 작품으로 진지하게 기획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저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저희는 결국 팬덤의 사랑으로 먹고 살기 때문에, 그래서 반가움을 드리는 작업들을 자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결국 저희 게임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반지하의 특정 프로젝트나 캐릭터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잖아요? <서울 2033>을 구매해주시는 분들이 <페이크북>을 찾아주시고, 또 입소문이 나면서 유입이 되고. 그래서 그런 점들이 되게 중요한 면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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