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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 Back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19 GG Vol. 24. 8. 10.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게임 사회> 전시가 보여주듯, 현재 예술 장 내에서는 ‘전시로서의 게임’이라는 새로운 실험들이 다양한 기획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활동은 전시장 벽에 설치된 지도(게임 맵)를 통해 기록된다. 전시 초기에 텅 비어있었던 지도는 게임의 참여자이자 전시의 또다른 생산자인 관객들의 경험들로 채워지고, 이후 회차를 플레이하는 새로운 관객들에게 다시 영향을 주었다. GG에서는 이와 같은 기획을 꾸린 작가 상희와 성훈을 만나 ‘대화형 게임’이라는 전시의 기획의도와 진행과정, 의미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경혁 편집장 :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선 작가님들 본인에 대한 소개를 해주시고요, 전시 제목과 전시의 의의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저는 상희라는 이름으로 작업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입니다. 2023년에 만들었던 <원룸바벨>이라는 VR 작업을 계기로, 게임 형식을 차용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만들었습니다.. 게임의 디자인적 요소를 작업에서 활용할 때 제가 만들려는 이야기나 전하고 싶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가상의 내러티브를 경험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게임같은 매체가 없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제 작업에서도 그런 식으로 관객들에게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성훈: 저는 성훈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면서, 상희님 작업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역시 게임의 시나리오를 맡았습니다. 게임 속에 나타나는 공간의 특수성에 특히 관심을 두고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상희: 본 전시의 제목은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이며,구요. 지금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고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이 거대한 지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이벤트를 저희가 ‘조우’라고 지칭하는데, 그 조우들의 결과가 (지도에) 계속해서 축적되고 기록되는 형식이어서 그걸 전시의 메인 이름으로 하게 됐어요. 전시를 준비할 때 기획자들과 논의하면서 ‘지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도에서 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나 이야기가 기록된다는 것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전시회의 메인 제목이 되었고, 부제인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은 이 지도를 무대로 사용해서 플레이하게 되는 대화형 게임의 이름입니다. 성훈 작가님과 저, 김지연 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게임이고요. TRPG의 형식을 차용해서 만든 게임이라 디지털적인 요소가 부재한 ‘오프라인 보드게임’을 지향했습니다. 퍼포머와 대화를 하면서 플레이하게 되는 게임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은 전시에서 사용하는 게임의 이름인 거고, 이 전시 자체는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군요. 제가 첫 회차에 플레이어로 참여를 하고, 지금 두 번째 방문을 하면서 비교해 보니 흥미로웠던 게 지도의 변화였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이쪽(벽면)이 썰렁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상희: 맞아요. 그때만 해도 게임을 끝까지 가신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경혁님과 일행분들이 바다로 처음으로 탈출하셨었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 걸 보면 결국 이 전시가 끝나고 가장 강렬하게 남는 건 이 지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도와 관련된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기로 하고요, 우선 이 게임의 배경이 일종의 재난 상황에 처한 지방 도시에서, 흰개미라는 인간 외적 존재와의 만남과 분투를 테마로 하고 있는데요. 게임의 장르적 특성을 논의하기에 앞서 이런 배경 상황을 구성하셨던 맥락이 궁금합니다. 상희: 우선, 일단은 저희 둘 다 같은 부산 출신인데요.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할 때 항상 관심이 가는 주제가 ‘고향'과 고향을 떠나와서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되는 사람들의 정서였어요. 제가 작업했던 <원룸바벨>도 서울 원룸에서 살고 있는 2-30대 청년들의 공간과 정서를 VR로 번안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들이 계속 주제로 선택되는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성훈 작가가 게임의 배경으로 지방 소도시와 벌레라는 주제를 선택했던 맥락도 있었어요. 성훈: 얼마 전에도 러브버그나 빈대가 서울에 등장했다는 뉴스들이 막 나왔다가 사라진 일이 있었잖아요. 도시 공간에서 벌레들이 철저히 방역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도시’와 ‘벌레’가 서로 적대적으로 묘사되는 방식에 흥미가 있었어요. 도시 공간에 빈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21세기 서울에서 이게 말이 되냐, 서울이 빈대가 나오는 도시로 전락했다는 식의 반응들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빈대를 모두 무서워했죠. 관련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르포 기사가 있는데요. 그 기사의 핵심은 빈대가 쪽방촌 등 주거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예전부터 항상 있었다는 점이에요. 빈대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도시 빈민의 공간에 항상 공존하고 있었는데 도시의 주요 거리에 출몰하면서 갑자기 조명을 받게 되었다는 얘기였어요. 그런 반응을 보면서, 도시와 벌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이 게임에 나오는 벌레들은 (인간 플레이어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나요? 상희: 맞아요. 물론 게임 속에서는 기존의 문명을 완전히 파괴하고 소진시키며, 그 폐허 속에 자신들의 도시를 세우지만, 한편으로는 흰개미라는 종 자체가 공생을 추구하기에 자신들이 만든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을 공격하지는 않아요.. 자신의 집이 그들의 집이기도 함을 받아들인다면, 살게 내버려 둡니다. 성훈: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 전개에 따라 흰개미는 어떤 플레이어들을 다른 존재로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 다름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의 판단은 생각하기에 달린 것 같아요. 인간에게 이질적인 어떤 생물에게 우리가 보기에 인간적인 방식으로 행동해주기를, 인간적인 방식으로 호의를 표현해주기를 요구할 수는 없지요. 그들은 자기들만의 어떤 논리가 있고, 인간들은 그게 우리한테 호의적이냐 아니면 적대적이냐 이런 종류의 판단 기준들을 각자 제멋대로 갖고 있을 뿐인거고요. 그래서 퍼포먼스를 계속하면서 인간의 이해 범주를 넘어선 일들이 다른 생물 종에 의해 일어날 때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반응할지 이런 것들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전시와 게임의 형식과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TRPG를 이용한 대화형 게임’이라는 형식을 구상하셨는데요, 원래부터 TRPG를 플레이하신 경험이 있었나요? 상희: TRPG 자체는 작년 초쯤에 시작했어요. 저도 보드게임을 많이 하니까 그런 게임이 있다는 거는 알고 있었는데, 작년에 <발더스 게이트 3>을 길게 플레이하면서 DND(던전 앤 드래곤) 장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발더스 게이트>가 특히 TRPG 시스템의 UI 구현이 잘 되어 있고, 저에게는 저희가 지금 즐기고 있는 RPG 같은 게임들이 어떤 역사 속에서 발전해 왔는지를 알게 된 게임이었어요. TRPG도 원래는 RPG라고 불리다가 디지털 RPG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앞에 T가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제일 초창기의 게임들을 찾아보고 싶었고, ‘초기의 RPG'로서 어떤 근원적인 경험이 있을 것 같아서 그때 리서치 개념으로 TRPG 플레이를 시작했어요. TRPG 자체는 숙련도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사실 진입하기가 되게 어려운 장르였어요. 처음에는 (TRPG 커뮤니티에) 가서 ‘저희 좀 시켜주십시오’ 했어요. 사실 이분들도 넓은 아량으로 해주시는 거거든요, 왜냐면 저희가 초보라서 못 하고 저희랑 하면 재미없기 때문인데(웃음). 다행히 저희가 갔던 커뮤니티는 소위 뉴비들을 끌어주는 분위기가 있었고. 커뮤니티 자체가 포용적인 분위기여서 좋다고 느껴졌어요. ‘대화’를 하는 게임이다 보니 그런 (포용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는 걸까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발더스 게이트> 이후로 TRPG 커뮤니티들에 굉장히 많은 유입이 있었죠. 그래서 그렇다면 원조는 뭘까 하고 궁금해지기 시작하신 거네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의 출발이 된 게임이 <발더스 게이트>였다면 ‘나레이터’의 존재도 꽤 큰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다른 게임과 달리 <발더스 게이트>에서는 계속 나레이터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전시에서 나레이터 역할을 하시잖아요? 그 역할을 TRPG를 특별히 오래 해오신 게 아니라면 사실 하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그걸 하면서 어떠셨어요? 상희: 저는 일단 제 자신이 부끄러움이 많은 타입이라서. 근데 사실 마스터가 부끄러움이 많으면 안 되고 뻔뻔해야 되고, 거의 <발더스 게이트>의 나레이터 같은 연극적인 태도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해야 참여자들이 따라오고 몰입을 해요. 저희 전시에서 주요 타겟으로 삼고 전달 방식을 고민했던 관객들은 TRPG를 처음 해보거나 이러한 형식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미술 전시를 보러 오는 일반 관객들이었어요. 왜냐하면 이런 류의 게임에 익숙하신 분들은 금방 잘 따라와 주실 테니까요. 이런 작업에 익숙치 않은 일반 관객분들과 함께 하려면 저희의 역량이 또 되게 중요했어요. 저희가 잘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시거든요. 그래서 테스팅 플레이를 하면서 많이 연습했고, 성훈 작가가 진짜 잘 하셔서 제가 이 분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저 같은 경우는 대사를 말하고 뒤에서 묘사하는 방식의 관찰을 하는 편인데, 성훈 작가는 굉장히 캐릭터처럼 연기도 하고 말을 하더라고요. 제가 플레이어로 참여했을 때 훨씬 경험이 좋았어요. 재밌고 잘 따라가게 되고, 저도 이런 식으로 배워서 시도해 보고. 성훈: 연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더 끌어내려고 하는 스타일의 마스터도 있어요. 그런 마스터 개개인의 특성이 달라진다는 것도 TRPG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회 같은 경우에는 한 사람이 마스터를 고정으로 쭉 이어나가셨던 건가요? 상희: 저랑 (성훈 작가가) 번갈아서 마스터를 했어요. 중간중간 지도가 변화하는 과정도 메모로 업데이트 하고, 저희가 대개 플레이할 때 둘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되는지 서로 체크했구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실 이 전시에 오시는 분들 중에 TRPG를 처음 해보는 사람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분들은 이 문법 자체를 모르셨을 것 같아요. 상희: 네, TRPG에 관심이 있어서 오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과연 TRPG라는 게 뭔지 궁금해서 오신 분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저희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건, 이게 ‘TRPG 전시’가 아니잖아요. TRPG를 차용한 ‘대화형 게임’이라는 걸 플레이하며 ‘대화형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거니까. 일반 관객들에게 경험되었을 때도 저는 이게 분명히 재밌는 형식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한편으로는 ‘이게 그래서 진짜 재밌을까, 사람들이 이걸 금방 캐치해서 따라올 수 있을까’, 이런 걱정도 컸었는데요. 생각보다 정말 다들 재밌게 하셨어요. 이런 대화라는 형식 자체가 정말 직관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디지털 게임은 항상 어떤 조작을 익혀야 하는 일종의 ‘배리어’가 느껴지는 형식이잖아요. 이번 전시는 같이 천천히 얘기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성격이다 보니 곧잘 잘 하셨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전시를 진행하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너무 제각각이었을 것 같은데요. 퍼포먼스를 같이 한 관객 중에 기억에 남는 관객이 좀 있으셨나요? 상희: 최근에 플레이하셔서 기억이 나는 분이 있는데요. 지금 보시는 지도에 있는 이 표시는 이전 회차 플레이어를 뜻하거든요. 이 사람이 마지막에 (플레이가) 끝나면 이런 마크를 남기면서 마지막 말을 남기고, 여기에 이 사람의 유해와 같은 육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데. 다음 회차 플레이어가 이걸 확인하면 저희가 알려 드려요. 이 사람은 지금 이런 상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신 분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저 이 사람 머리를 잘라갈게요’ 하시는 거예요(웃음). 실제 시체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시신(이라는 설정)이니까 사람들이 일단 그대로 두거나 건드리더라도 조심스럽게 하는데, 그분은 도시에 이 사람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니까 잘라간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결정이 굉장히 재미있는 전개였어요. 그리고 성훈 작가가 이 전시의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 세계관을 구축했는데요, 게임 내 NPC들 중에 같이 데리고 도시를 나가거나 고립 상태에서 구출할 수 있는 NPC들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지금 (지도의 동쪽) 연립주택에 아이 NPC가 있는데, 이게 이 쪽(서쪽)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머무는 엄마의 아들이에요. 여기서 만나면 우리 아들을 구해 와달라고 부탁을 하거든요. 근데 아무도 저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으시더라구요. 아이를 데리고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지 않거나, 돌아 가다가 게임 오버가 되기도 하구요. 그런데 언젠가 소방관으로 플레이하셨던 분이 그 아이 NPC와 같이 탈출했던 게 기억에 남았어요. 다들 저 아이는 못 나가겠다고 반 포기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구해주시더라고요. 그 아이를 구하려면 소지품 란을 아이가 가지고 있는 공룡 인형으로 가득 채워야 해서, 자기 물건과 장비를 다 버려야 되는데 그래도 그 패널티를 안고 가시는 게 좋았어요. 이경혁 편집장: 살다 보면 참 커뮤니케이션이 원하는 대로 안 될 때도 많잖아요. 전시에서 관객들과 서로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난점들은 없으셨나요? 상희: 이 퍼포먼스에 오시는 분들 자체가 어느 정도 이 게임을 하고 싶어하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보니까, 그래도 적극적으로 개입과 참여를 하려고 하시는 편이에요. 성훈: 어떤 분들의 경우 캐릭터가 독특하신 경우도 있었어요. 자체적인 캐릭터가 사람들과 만나기를 피하고 굉장히 과묵하다는 설정이었거든요. 이 세계는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어떤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겪으면서 더 재미를 찾아갈 수 있는 구조인데, 그분은 '은신 플레이'처럼 게임 진행을 하셨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가 마스터로서 어떤 방식으로 재미를 제공을 해야 되는지, 그 분의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도 이 전시에 참여해서 세 명이서 팀 플레이를 했었잖아요? 그때 약간 짜증 났던 건(웃음), 우리 멤버가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려고 (게임 내 상호작용을) 전부 피하는 거에요. 그때 저희가 한 명이 플레이를 하고 한 명이 조수고, 저는 ‘마음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구조였죠. 상호작용을 안 하려고 할 때마다 저는 ‘앉아봐’, ‘그 상자 제발 열어봐’ ‘말좀 걸어봐’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웃음). 근데 그걸 보면서 저는, 만약에 어떤 사람들이라면 전시의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일종의 하이스코어 경쟁처럼 게임을 최단 시간으로 돌파하려고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 경우는 다행히 안 겪으신 것 같아요. 상희: 네, 맞아요. 그리고 게임 관련 설명과 안내를 드릴 때, 이 게임이 승리라던가 패배라는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참여자와 마스터 둘이 되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다들 게임 내에서 자기 캐릭터만의 얘기를 구축하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아까 편집장님 팀의 멤버 분도, ‘살아나갈 것이다’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집념’이라는 캐릭터를 갖추신 거죠. *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에서 전시 참여자이자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채워나갔던 지도. 회차가 반복될수록 지도의 내용은 풍부해지고 이후 회차의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 이경혁 편집장: 그런 걸 보면 게임 기획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준비해야 하는 거네요. 1시간 반의 플레이로는 사실 지도의 모든 영역을 다 볼 수는 없고, 플레이가 계속 누적되다 보면 사람들이 지도 안에서 절대 안 가는 어떤 영역이 생기게 될 텐데요. 기획자 입장에선 정말 정성을 다해 준비한 거라 조바심이 나실 것 같기도 해요. 상희: 맞아요. 전시 처음에 지도가 많이 안 밝혀졌을 때는 끝까지 못 가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오픈 월드 류의 게임을 할 때 그동안 가보지 못한 영역, 지도 상에서 안개 혹은 어둠으로 표현되는 영역을 빛으로 밝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 ‘여기 아무도 안 갔네요’, 하면서 가시기도 하고, 결국에는 그런 식으로 맵이 다 밝혀졌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결국 이 지도 데이터의 누적이라는 게, 그냥 지도에만 추가되는 게 아니라 다음 번 플레이에도 영향을 주는 형태인 것이고. 앞선 세계의 변화가 뒷 세계의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는 형태로 설계가 되는거네요. 상희: 맞아요. 예를 들어서 아까 말씀드린 퀘스트에서 아들을 구하게 되면 패스트푸드점의 엄마가 같이 도시를 떠나가게 되는데, 그 이후에 이곳에 온 사람은 이 엄마가 남기고 간 쪽지만 읽을 수 있는 거예요. ‘아이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혹시 못 보셨을까 봐 여기 쪽지를 두고 갑니다.' 이렇게요. 그리고 이 엄마의 아이가 원래는 강박이 있는 아이여서 재료별로 햄버거를 계속 분류하고 있었는데, (이후 회차에서는) 분류하던 흔적만 남아 있고 그걸 했던 사람이 누구였고 이걸 왜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혹시 관객 중에 2회차 플레이를 해본 분들은 좀 있으신가요? 상희: 있긴 있었지만 전부 테스트 플레이(참여자)였구요. 다만 저희가 한 이틀 정도는 오픈 세션이란 걸 열어서 아예 플레이를 공개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거든요. 그때 관람객 한 분이 두 회차를 연달아 보고 가셨어요. 두 번을 관람하니까, 이를테면 (첫 회차에) 어느 길이 무너졌는데, 그 다음 회차에 같은 길목에 도착한 사람은 그 무너진 길을 파헤쳐서 건너가야 되는 이런 연속된 사건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이 좋았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이경혁 편집장: 그걸 기록하는 것도 두 분이 굉장히 노고를 들이셨을 것 같은데요. 상희: 게임상의 큰 변화는 지도상의 기호로 계속 표시를 하기 때문에 기억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책상에 지도를 붙인 판넬이 있어요., 지금까지의 정보를 기록하고 새로운 변화를 써놓는 (마스터 전용) 판넬입니다.. 거기에 기억해야 되는 정보들, 예를 들면 특정 물건 3개를 요구하는데 그 3개를 다 갖다 줘야 떠나는 어떤 NPC의 경우에,. 누가 무엇을 주었다, 이런 식으로 업데이트해 놓고. 쪽지나 포스트잇 같은 걸로 표시하기도 해요. 이경혁 편집장: 보통은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면 이렇게 손을 뗄 수가 있는데, 이거는 (지속적으로 참여해야 된다는 점에서) 작가가 일종의 오브제가 아닌가 싶네요. 상희: 그렇죠. 작가도 자꾸 작업에 참여해야 되고, 전시기간에 계속 상주하게 되고요. 근데 그런 작업이 저한테는 계속 관객들과 참여적으로 연계된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이 작품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런 점을 흥미롭게 짚어볼 것 같아요. ‘전시를 시작할 때와 전시를 닫고 나서 작가에게는 무엇이 변했을까’ 그게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아직 완전히 전시가 닫힌 것은 아니지만, 막바지에 달하고 있는 입장에서 작가님 스스로가 자신을 성찰했을 때, 무엇이 변화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상희: 일단 저에게 있어선 관객들과의 관계가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저는 기존에 해온 작업들도 인터렉티브한 성격이 있다보니, 관객들이 와서 직접 플레이하셔야 하는 작업들이 많아요. 전시장에는 언제나 제가 있었어요. 제가 (프로그램) 개발을 했다 보니까, 갑자기 오류가 나면 고쳐드리거나 플레이 방식에 대해 안내를 드려야 하다보니 전시장에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관객분들이 전시를 끝내고 나서 감상을 나눠주는 걸 어려워하시는 편이에요. 전시장이란 공간 자체가 그런 걸 어렵게 만들다 보니 당연하긴 해요. (작가와 관객 사이의) 어떤 권위적인 분위기가 있고. 제가 궁금하다고 해서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거죠. ‘어떠셨어요?’ 하면 ‘아, 재밌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이러고 바로 도망치듯 하시고(웃음). 그런게 항상 저도 아쉽고, 관객들도 당시 말을 못해서 아쉬우신 게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1시간 반 동안 계속 플레이를 하면서 (관객과) 단독적으로 관계를 맺잖아요. 그 안에서 생성되는 라포(rapport)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게임이 끝나고 나면 너무 자연스럽게 이게 어땠는지 감상을 남기시는 거예요. 어떤 게 재밌었는지에 대해서도 서로 얘기를 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여기 섹션(전시장 한 쪽의 공간)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나서 관객들끼리 소회를 공유하는 목적으로 만들어둔 거거든요. 이 공간의 모티브가 된 게, TRPG 하시는 분들이 게임이 끝나고 나면 그 게임이 어땠다고 합평회처럼 얘기를 하세요. 그런 문화가 매우 좋았어서 저희도 전시에 도입했어요. 관객분들이랑 더욱 깊게 관계 맺는 형식이다 보니 저에게도 굉장히 큰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이 전시가, 메인 게임의 앞에 프리(pre-) 단계가 있고 포스트(post-)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프리 단계에서는 게임 참여자들에게 전날 설문을 한번 하시잖아요. 이렇게 전시 앞뒤로 프리 단계와 포스트 단계를 두고 보면, 작가 입장에서는 관객 개개인을 좀 더 보게 되지 않습니까? 어떤가요? 관객분들의 전시 관람 전과 관람 후의 변화 같은 것도 좀 느끼시는지요? 상희: 일단 관람 전에는 (게임을 플레이할) 사람들의 플레이 성향을 알고 싶어서 설문을 조사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게임 내 어떤 캐릭터가 어울릴지를 골라드리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질문에 답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실제로 이 ‘고향’이라는 곳에 돌아와서 플레이하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과정이 즐거웠고. 그 사람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플레이를 하면서) 카타르시스가 되어서 다 풀리고, 후반부에는 또 같이 정리하면서 얘기하는 과정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은 사전 설문을 통해 캐릭터를 구성하고, 플레이 종료 후에는 각자의 개인적 경험과 소회를 집단적 궤적으로 모아 나간다. 이경혁 편집장: 사실 어떻게 보면 장르적으로는 굉장히 큰 도전을 하신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이 전시의 게임이 TRPG를 베이스로 했지만, TRPG를 하려면 아까 말씀하셨듯 보통 TRPG 카페를 가잖아요. 실제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TRPG를 모티브로 했지만 이게 ‘퍼포먼스’로서 나오기 위해서는 어떤 특징이 있어야 된다라는 생각을 아마 하셨을 것 같은데. 무엇을 더 강조하려고 하셨을까요? 상희: 우선은 현실적인 완결성이 중요했어요.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만들다가도, 1시간 반의 러닝타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무조건 끝나야 되는 형식을 만들고자 했고요. 그리고 퍼포먼스 형식이니까 플레이함에 있어서 ‘룰’을 최소화하고자 했어요. 룰이 너무 많아서 생길 이해의 어려움을 줄였고, 룰에 대해서도 실제로 설명을 많이 안 드립니다. 참여자들이 행동을 하나씩 할 때마다 조금씩 알려드려요. 어떤 분께서 ‘저 이렇게 하고 싶어요’, 행동을 제안하시면 그것을 주사위를 굴려서 확인해 봅시다 라고 하면서, 점진적으로 계속 룰을 알려드리고 있어요. 그렇게 해도 다 알려드릴 수 있는 룰이어서. 원래 보드게임들은 룰 설명만 1시간 하고 난 뒤 플레이를 시작하는 느낌이잖아요. 이 전시에서는 그런 게 없이, 어떤 장벽 없이 관객들이 바로 플레이할 수 있는 그런 직관적인 플레이를 만들려고 신경을 썼습니다. 성훈: 저는 이 전시를 퍼포먼스 차원에서도 얘기해보고 싶은데요. 공연예술의 경우 똑같은 공연을 10번씩 보러 가는 문화도 있잖아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항상 매번 공연이 다 조금씩 다르다라는 얘기를 듣는데. 그런 것처럼 이 전시도 어떤 의미에서 ‘공연’이라고 할까요? 이 전시가 그 공연의 매번 다른 특성을 극대화한 걸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매번 갈 때마다 실제 인간이 진행하고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절대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고, 매번 지도가 바뀌어 나가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고, 스티커이기 때문에 뗄 수가 없잖아요. 그런 형식에서 퍼포먼스적 측면이 접목되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TRPG라는 것을 상징하는 게 일종의 ‘룰 북’이기도 하잖아요. 룰 북의 두께만 봐도 이걸 언제 읽나 고민이 되긴 하더라구요. 상희: 맞아요. 저희 게임도 일종의 가제본처럼 룰 북을 만든 게 있거든요. 내용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이 정도 두께가 금방 나오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장벽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룰 북은 일단 가제로 만든 거고요, 저희가 좀더 정리해서 아예 보드게임으로 출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 전시의 지도 형식 자체도 보드게임에서 착용을 했거든요. '레거시 보드게임'이라고 해서 한 번만 플레이하는 보드게임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마이 시티> 같은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별로 맵을 밟으면 그걸 스티커를 붙이면서 계속 변형시키는 형식이거든요. 많은 레거시 보드게임이 그런 일회적 형식을 따릅니다. 이 작업도 결국에 맵을 변형시켜서 똑같은 게임 플레이의 반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근데 한편으로는 그게 참여한 플레이어와 저희만 알 수 있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플레이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기도 해요. 이 맵을 보면 '아, 이때 내가 이렇게 해서 맵을 바꿨었지',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런 형식을 따와서 뭔가를 붙이면서 계속 흔적을 남기는 형태로 이 전시를 만들고 싶었는데요. 정말 보드게임을 출시하면 그런 레거시 보드게임의 형태로 출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는 굳이 미술과 음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본다면, 음악에 가깝지 않나 싶은데요. 고정된 악보가 있고, 매번 연주마다 애드립과 카덴차가 나오는 거죠. 심지어 플레이리스트는 이미 정해져 있고. 그러니까 이건 그냥 콘서트라고 불러야 되는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아까 듣다가 생각난 질문인데요, 원래 (작가님이) 디지털 개발을 하셨었지요. 첫 작품도 디지털로 시작을 하셨는데, 언-디지털로 넘어온 작품을 택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아까 간단하게는 TRPG에 관심이 생겼다고 해주셨는데요. 실제로 게임을 만들어보면, 같은 게임 제작 방법론이라고는 하지만 어딘가부터는 서로 완전히 다른 부분들도 있잖아요. 상희: 처음에 했던 디지털 작업들은 3D 그래픽을 기반으로 하고, 게임 엔진을 사용해서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잖아요. 이걸 만들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요새 대형 제작사에서 나오는 게임들을 보면, 그래픽이 나날이 발전되는 정도가 차원을 달리 하잖아요. 현실과 차이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지고 정교해지고, 엄청 많은 자본을 투여해서 만들어지는 형식이지요. 그런 그래픽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런 그래픽들이 공허하다는 감각도 있었어요. 거기에 어떤 이야기들이 더 있을 수 있을까 고민도 들었고요. 저희도 게임을 만들다 보면 어떤 그래픽적인 스펙타클에 게임을 조응하게끔 만들어야 하고, 화려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압박이 있기도 한데요. 그런데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의 형식은 아니었어요. 반면, TRPG라는 장르는 뭔가 그래픽적인 게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냥 이야기를 만들면서 플레이하는 형식이라는 점이 재밌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전시를 담당했던 김지연 디자이너와 초기에 같이 작업을 하면서 플레이 테스팅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이 작업에서 저에게 제일 중요했던 건 지도였기 때문에, 저는 초기엔 일종의 게임 월드처럼 지도를 자세한 형식으로 만들고 싶어했어요. 그때 김지연 디자이너가 되게 중요한 지점을 짚어줬던 게, ‘지도는 오히려 훨씬 더 단순해야 된다’는 거였어요. 요소가 많이 없어야 된다. 왜냐하면 TRPG를 플레이할 때 우리가 어떤 시각적인 게 많이 없어야 상상을 더 할 수 있고 그게 더 재미있기 때문에.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김지연 디자이너가 시각화를 해줘서 만든 게 지금 개미굴 같은 이 지도의 형식이에요. 그래서 게임이 어떤 시각적인 요소를 완전히 제외하더라도 참여자의 상상력을 이용한다면 오히려 더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예전에 김지연 디자이너가 토크 때 ‘우리의 최고의 GPU는 인간의 뇌다’라는 얘기를 했었는데요. 결국에 저희가 상상했을 때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고 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시각적인 부분은 오히려 (과거로) 회귀해서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작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 작가님들이 이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뭘까를 생각해 봤는데요. 시간적인 제약도 있고, 공간적인 제약도 있죠. 제가 궁금해지는 건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이러한 전시도 공짜는 아니에요. 이 작업의 물리적 베이스, 다시 말해 소요 비용이나, 펀딩이나 후원이 어떻게 들어왔었는지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우선, 지금 이 공간은 <팩션>이라는 전시공간이고 이 전시는 여기서 열린 공모를 통해 지원을 받았어요. 그리고 저는 여기서 제일 큰 비용이 뭐였냐 하면 결국 ‘저희’였다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저희의 몸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걸 때우는 방식이었고. 그래서 (전시 공간은) 무조건 집에서 가까워야 되고, 자주 와서 이곳을 계속 보수할 수 있고, 공간을 관리하고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여야 해서 이곳 삼선동에서 전시를 하기로 결정했구요. 비용 같은 경우에는 다 자비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원래 펀딩을 받으려고 했지만, 제가 다른 작업 펀딩을 받고 싶은 게 있어서 그걸 먼저 냈었고. 이 전시는 저희 생각으로는 기획이 대박이기 때문에 무엇을 내도 다 뽑힐 것이라 기대를 했지만(웃음) 제작비를 따오겠다 했는데 못 딴 거죠. 그래서 저희 돈으로 했는데 또 생각보다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지는 않았어요. 저희가 다 직접 만들고 한 게 있어서. 이경혁 편집장: 저는 당연히 이 전시도 다른 곳에서 펀딩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상희: 그렇죠, 그래서 저희는 후속 지원을 고려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희의 기획이 이런 형식을 잘 이해하시는 분들께는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졌겠지만, 한편으로 펀딩을 해 주시는 분들이나 지원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에게는, 특히 TRPG 자체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래픽이 없는데 대화로 게임을 한다고? 도대체 무슨 소리지?’ 이렇게 난해하게 들리셨을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저는 지금처럼 (전시를 통해) 결과가 완전히 다 나왔고 우리 기획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마련된 상태에서, 후속 지원을 요청하거나 이 전시를 완전히 대중적인 퍼블리시를 할 수 있는 포맷으로 지원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해요. 지금은 미술 전시회 형식으로만 하고 있는데, 저희가 추후 하고 싶은 건 아예 ‘게임’으로 출시하는 것이에요. 일례로 여기 붙어 있는 지도도 보드게임 컴포넌트처럼 다 들어 있는 것이고. 이 보드게임 패키지를 사시면 플레이를 어디서든 직접 할 수 있게 되고 그때는 어떤 물리적인 제약도 거의 없어지는 거죠. 엄청 긴 세션을 하셔도 되는 것이고, 각자의 플레이 방식대로 맞춰서 게임하실 수 있게 될 거에요. 다른 한편으로는 기획이 맞는다면 지역에 가서 일종의 팝업으로 해볼 생각도 했었어요. 이 게임이 설치형이잖아요, 그리고 광주라든가 부산에서는 요새 그런 형식의 전시를 많이 하니까. 그렇게 팝업을 통해 지방에서 TRPG 하시는 분들과 협업해서, 계속해서 더 큰 지도를 설치하고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성훈: 전시에 와주셨던 큐레이터 중 한 분이 재밌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이 게임이 한국의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굉장히 지역적인 맥락을 가지고 오려고 하니까, 차라리 실제로 어떤 도시에 가서 그 도시의 랜드마크 등을 반영해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실제 매핑을 통해 굉장히 퍼블릭한 게임으로 만드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물리적 제약이 워낙 지금 크게 느껴지다 보니까 계속 이 게임의 물리적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뭘까를 생각을 하는데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이 펀딩인 것 같네요. 제일 좋은 것은 지자체의 예산을 가져오는 것 같은데요(웃음). 혹시, 미술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상희: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고, 아무래도 완전히 모르는 이야기이다 보니 신선하다는 반응도 많았어요. 게임 디자인이라는 형식이나 게임 메카닉을 갖고 와서 기획한다는 것을 재밌어 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이 전시가 또 주목을 받는 게, 결국에는 지금의 어떤 (예술 관련) 이론이나 담론이 게임과 연관되어 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행위성 같은 개념들은 굉장히 게임적이거든요, 한편으로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당연한 얘기죠. 그런 것들이 미술적인 개념들과 이렇게 영합하면서 시너지가 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최근 들어 확실히 미술계에서 게임을 베이스로 작업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졌다고 느낍니다. 주변에 미술하는 분들이 게임 갖고 작업하시는 걸 보면 좀 어떠세요? 본인의 세대 근처에서, ‘게임’을 미술의 주요 소재로 쓰겠다라는 경향이 좀 있다고 느끼시는지요? 상희: 네, 그런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저희는 PC통신이 당연한 시대였고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가 집에 있는 세대여서 디지털 게임을 많이 하기도 하고. 어떤 정서라든가 감성이 게임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세대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 기존에도 게임을 주제로 하는 작가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어요. ‘게임을 사용한 작업이 예술의 형식이구나’(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 전에 작업했던 사람들은 게임 제작자라는 인식이 좀 강했는데 최근에 ‘아트 게임’이라는 용어도 나오면서, 이게 예술 작업으로 보이게 된 건 최근의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제 (전시가) 거의 마무리가 됐지 않습니까? 전시가 끝나고 나면 지도는 향후에 어떻게 될까요? 상희: 일단 전시가 끝나고 나면 이 지도 자체는 철거를 잘 해서 손상 없이 떼갈 예정이고요. 그 전에 확대 촬영이라고 해서 사진이나 그림을 스캐너에 넣는 것처럼 촬영하는 기법이 있는데, 그걸로 지도 자체의 아카이빙을 잘 하려고 해요. 그때 (경혁님이) 오셨을 때도 이 게임이 되게 오프라인한 경험인데, 이걸 어떻게 디지털로 남길 것이고 이후 사람들이 여기에 어떻게 접근해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해 주신 기억이 나요. 저희도 그래서 이 지도를 웹에 아카이빙하거나 이후에 이 게임을 어떤 식으로 퍼블리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이즈를 보면 기존의 도록이나 영인본처럼 남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은 들어요. 마지막으로, 이 기획 이후에 후속작처럼 기획하고 싶은 게임의 형태는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상희: <언-리얼리스트의 유럽>이라고 11월에 작업하려는 작품이 있어요. 유가가 더 비싸지고 환경세 등이 부과되는 근미래에 일반인이 해외여행을 가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설정이에요.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점점 일어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제는 메타버스로 유럽 여행을 해야 되는 거죠. 그 여행을 실제로 VR 같은 기계, 실제 VR은 아니지만 VR이라 부르는 오락실 기계 같은 것에 앉아서 플레이하게 되는 형식의 게임인데요. 그래픽적 요소가 많이 없고 플레이어가 뭔가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하면서 참여하는 그런 형식의 게임을 상상하고 있어요. 이번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게 최소한의 그래픽을 가지고 (참여자들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어서 후속작에서도 그런 견지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느꼈던 게임의 과거와 미래

    2025년 3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정식으로 일반 공개를 시작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은 아직 정확하게 공지는 되지 않았지만 현재(2025년)기준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정부에 등록된 게임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국내에서 이름에 컴퓨터가 들어간 등록박물관은 2023년 기준으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유일하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넷마블, 아카이빙, 박물관, 학예연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박물관/미술관 속의 게임들과 그 역사

    최근 들어 미술관에 게임이 전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와 같이 게임을 소재로 한 전시가 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단순히 그 오브제의 집합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작품들이 연계되어 만드는 다양한 맥락을 통해 그 작품의 의미는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아카이빙, 박물관, 전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 Yeop Lee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 Contents at Soonchunhyang University. Researches game storytelling and game design as central concerns, and led the founding of the Busan Indie Connect Festival—a leading indie game festival—where serves as head of the jury. Also a juror for the Independent Games Festival (IGF), one of the most prestigious indie game events internationally. Books include Digital Storytelling (co-authored, 2003), Digital Games: A New Territory of Imagination (2005), Indie Games (2015), Stories Become Transformers (co-authored, 2015), Mario, Born in '81 (co-authored, 2017), The Theory of Games (co-authored, 2019), and Games Are Games: Game × Ecosystem (co-authored, 2021).

  •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Back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23 GG Vol. 25. 4. 10.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구자 개인들이 겪은 25년의 세월: 세대 혹은 코호트 이경혁 편집장: 21세기가 시작된 지 벌써 한 쿼터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두 분을 모셨는데요. 먼저 조금은 편하게 ‘지난 25년간 내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제가 너무 무거우니 가볍게 제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기억하는 2000년대 초반 게임의 가장 큰 이미지는 댄스 게임이었어요. 99년 6월에 부천역 오락실에 처음 이 등장했는데, 제가 당시 군대를 갔거든요. 딱 두 달 밟아보고 군대를 갔는데 댄스 게임이 굉장히 아른거리더라고요. 이때 흥미로운 점은 ‘게임했던 공간’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잖아요? 이런 변화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보라 박사: 저는 97년에서 2001년 사이에 미국에 유학을 가 있었는데요. 당시에 제가 느꼈던 것은 게임이 ‘아이들만의 것’에서 ‘성인들의 취미’로 변해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 ‘플레이스테이션 2’가 미국에서 인기였는데, 그 이유가 DVD 플레이어 기능도 제공하기 때문이었거든요. 그 듀얼 기능이 먹히면서 보였던 변화상 중에 하나가 TV 메인 광고 시간대인 저녁 7시에 게임 광고가 나왔던 지점이었어요. 그전까지 게임 광고는 어린이 채널이나 아이들이 주로 TV를 보는 시간대에 나왔어요. 그런데 ‘드림캐스트’의 <쉔무>나 ‘플레이스테이션 2’의 <파이널 판타지 7> 광고가 영화처럼 만들어졌고 성인들을 타겟으로 하더라고요. 저는 이때부터 비디오 게임이라는 것이 주류의 성인들도 즐길만한 오락으로 등장했다고 보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한국은 2010년대 들어서서 게임이 성인을 대상으로 포커싱하는 변화가 만들어졌는데, 북미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그런 변화가 있었군요. 당시에 20대를 타게팅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북미 게임 시장은 중년을 타게팅할 수 있겠네요. 오영욱 박사: 저는 2000년에 청주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리듬 게임이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를 끌었거든요. 나 이 나오면서 장판 같은 것을 은박지로 납땜해서 채보를 연습하고, 학교 컴퓨터에 연결해서 야자 시간에 놀고, 그랬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90년대에는 오락실하면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확 바뀐 것이 2000년대 초였던 것 같아요.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경험은 밤새 오락실을 빌리는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당시에 PC통신으로 만난 친구들이랑 같이 다니면서 <이니셜 D>, <태고의 달인> 같은 게임들을 했는데, ‘압구정 조이플라자’같은 곳에서 하루를 대여해서 밤새 대결을 했었어요. 몇만 원 내고 게임기를 빌려서 밤새 돌아가면서 게임했던 문화가 있었던 거죠. 게임하는 공간: 오락실, PC방, 그리고 이경혁 편집장: 확실히 2000년대 초반을 상징했던 게임 중에 리듬 게임이 있었지요. 90년대까지 오락실은 스틱과 버튼 위주의 아케이드 스타일이었다면, 여러 기기들이 만들어진 건데요. 그렇게 보면 2000년대부터는 오락실이 특정 연령이나 특정 성별의 공간이라기보단 누구나 손쉽게 올 수 있는 형태로 대중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오영욱 박사: 그렇죠. 당시에 신촌을 지나가다 보면, 지금 독수리 다방 건물 1층을 다 리듬게임으로 해놓고 밖에서 볼 수 있는 구조였어요. 그러면 안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대중적 공간으로 문화가 변해갔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오락실이 변모해온 과정을 오늘날 돌아봤을 때, 일종의 대중화나 캐주얼화라고 볼 수도 있는 걸까요? 나보라 박사: 대중화라기보다는 양성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중화라고 한다면, 시장의 주류가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로 ‘격상’되었다기보다는 공간의 분위기와 이용방식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네요. 사실 붐비기는 예전의 오락실이 더 붐볐거든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이야기할 때, 공간성의 변화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아까 오영욱 선생님이 PC 통신에서 만난 사람들과 게임하던 2000년대 초반을 말씀해주셨는데, 당시에는 온라인 문화의 확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오프라인에서 모여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도 구시대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 2025년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나보라 박사: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에는 오락실이 약속 장소로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있었어요. 아케이드 오락실을 역사적으로 보면, 원래 영화관 옆에 붙어있던 공간이었잖아요? 미국에서도 그랬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기능이 거의 없어진 것 같아요. 오영욱 박사: 일본의 오락실의 경우에는 지금도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의 공간이거든요. 확실히 우리의 문화와 다르죠. 그 중심에는 카드 게임기가 있는데, 카드 게임기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해서 완전히 다른 형태를 보이는 것 같아요. 재밌는 것은 아케이드 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게임기의 순환이라는 점이에요. 일본에서 어떤 아케이드 게임이 유행하면 한 사이클이 돈 뒤에 한국으로 넘어가고, 한국에서 한 사이클이 돌면 동남아로 넘어가고 그런 글로벌 물류 체인 시스템이 아케이드 산업을 지탱하는 점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바다이야기’ 사태도 있었고 법적인 환경이 제공되지 않아서 카드 게임이 넘어오질 않았어요. 디지털게임 연구 이경혁 편집장: 지금 이야기하신 부분이 한국의 게임 환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테마일 것 같아요. 2005년에서 2006년 일어났던 바다이야기 사태는 한국 게임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기도 했는데요. 이 사태가 한국 게임 문화에 어떤 영향을 남겼을까요? 오영욱 박사: 산업적인 영역에서는 너무 많은 논의가 있을 것 같고요.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드려보고 싶어요. 저는 당시에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였고,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면서 게임 연구가 확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나보라 박사님은 당시에도 학계에 계셨는데, 실제로 어땠나요? 나보라 박사: 확실히 바다이야기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인문 분야든 이공계든 게임 연구를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후에는 이공계나 산업쪽으로 지원이 쏠렸어요. 다만 바다이야기 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인가 라고 묻는다면 명확한 상관관계는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원래 정부의 연구 지원 풍토가 대체로 산업, 기술 등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선호하기 때문에 인문사회학적 게임 연구가 각광받긴 힘든 분위기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진거죠.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인과관계를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긴 하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이전에는 게임 인문 연구를 왜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었을까요? 나보라 박사: 이 역시 인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데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가지는 특수성도 여러 영향 중에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0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가 전세계 게임 씬의 주목을 받았잖아요. 세계 최초로 게임 방송 채널이 만들어지고, PC방이 대중문화 공간으로 확산되고 그러니까 외국의 게임 기자나 저널리스트들이 와서 신기해했거든요. 그전까진 항상 서구권을 쫓아가던 입장에서, 정부나 기업을 설득할 때도 중요한 특이점이었던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도 중요한 영역이었겠군요. 그러면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지금은 인문학 계열의 게임 연구가 조금 나오고 있나요? 오영욱 박사: 옛날에 비하면 확실히 확 나아졌죠. 지원이나 환경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일단 연구자들이 늘어났고, 관련 논의가 늘어나고 있어요. <제국의 게임> 나왔을 때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이후로 이경혁 편집장님 책이 나온 것처럼 유의미한 논의들이 나오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종합해 보면 그런 흐름은 있네요. 2000년대 초반에 스타크래프트와 PC방을 필두로 소위 말하는 ‘게임 문화의 붐’이 있었고, 이를 따라서 연구나 비평이라는 흐름도 형성이 되어 2006, 7년까지 흐름이 이어졌다가 모종의 이유로 침작하는 시기를 거치고 2010년 후반부터 다시 논의가 나오고 있다. 나보라 선생님은 당시에도 연구하셨고 지금도 연구하시는 입장에서 게임 연구의 환경은 나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나보라 박사: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게임 연구에 대한 소스를 찾을 만한 게 마땅치 않았고, 박상우 선생님 등을 제외하면 나오는 연구라고는 다 영어 연구들인데 이를 접할 수 있는 창구도 많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은 바로바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연구자의 풀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늘 느끼는 것은 결국 구심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당시에는 박상우 선생님의 ‘게임문화연구회’라는 구심점이 있었고, 그다음엔 성균관대의 ‘게임 인문학’이나 중대의 ‘엘리스 온’, 인문학협동조합 등 구심점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어떤 구심점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오늘날 어떤 게임 연구가 필요하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나보라 박사: 2000년대 초반의 게임 연구는 게임 자체, 그리고 게임 연구 자체의 정체성을 찾는 데 많은 방점이 찍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게임이 대중화되었고 여러 가지 매체와 뒤섞이게 되었죠. 그래서 게임만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찾아내는 것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 같아요. 오늘날과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점은 게임이 더이상 젊지 않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이제는 더 다면적인, 학제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게임 아카이빙 이경혁 편집장: 연구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엔 아카이빙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죠. 오영욱 박사님은 언제부터 아카이빙을 하셨나요? 오영욱 박사: 저는 2000년대 초에는 일종의 취미 생활로 작품을 모으다가, 2006년쯤부터 본격적으로 아카이빙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아카이빙을 꾸준히 하신 분의 입장에서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오영욱 박사: 일단 2000년대 초에는 게임이 아카이브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어요. 2006년만 하더라도 <컴퓨터 학습>이나 <게임 월드> 같은 잡지들을 권당 몇천 원으로 팔았거든요. 극단적인 예시지만 제가 2008년에 강원도에서 게임 잡지 6박스를 5만 원에 받아왔어요. 사실 이런 흐름은 미국이랑 일본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2010년대 후반부터 게임이 수집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죠. 2013년에 문을 연 넥슨의 ‘컴퓨터 박물관’ 같은 경우가 게임이 수집의 대상이 되기 딱 직전부터 수집품들을 받았던 형태였어요. 그런데 이후로 수집가들이 수집을 하고 재테크 목적이 들어가면서 체감상 2020년쯤부터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가격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카이브를 하는 입장에서 옛날 자료를 모으는 건 거의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원래 잡지나 게임의 내용을 알고 싶어서 샀었거든요. 그런데 가격이 오르고, 한정판이 나오면서 점점 이게 힘들어져요. 일단 실물 패키지라는 것도 이제는 한정판으로 나오는데, 이 게임을 하려면 기기도 사야 하고, 박물관 입장에서 ’직원이 한정판을 줄서서 사야 하나?라고 물으면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거죠. 온라인 미디어 때문에 애매한 영역도 크고요. 인프라와 플랫폼, 그리고 장르 이경혁 편집장: 물성의 변화도 두 시대를 놓고 본다면 너무나 큰 변화죠. 이제는 수집의 용도 외에는 물질 매체의 의미가 사라졌잖아요? 게다가 이런 변화는 단순히 물건을 소유할 수 없다는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버’라는 형태에 게임 소프트웨어가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물성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기승전결도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특히, 요즘 게임에서 엔딩이 없어졌죠. 어떻게 보면 오늘날을 ‘엔딩이 없어진 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오영욱 박사: 이제는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들은 결국 하나의 게임이라기보다, IP라고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은 2000년대 초반에도 엔딩이 없는 온라인 게임들이 있었거든요. <바람의 나라>도 이미 당시에 서비스를 하고 있었고. 재밌는 것은 <스타크래프트>의 사례인데, 판매는 패키지로 했지만 서비스는 엔딩 없이 돌았잖아요? (웃음) 그 결과, 블리자드는 플레이 양에 비해서 돈을 못 벌었죠. 당시에는 ‘패키지를 사면 베틀넷은 평생 무료’ 이게 마케팅 콘셉이었잖아요. 오영욱 박사: 그 이상의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은 거죠. 당시에 돈 내고 베틀넷을 하라고 했으면 아무도 안 했을 테니까요. 그때는 그게 그나마 최선이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결제 수단 변화도 되게 크네요. 2010년대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에 ‘오픈 카드’가 가능해지면서, 스마트폰에 카드를 오픈해 놓고 클릭 한 번 하면 그냥 들어가는 이 방식이 2000년대 게임과 지금의 게임을 크게 나누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지로가 있었거든요. 나보라 박사: 옛날에 온라인 게임을 하려면 지로로 보냈어야 했죠. 오영욱 박사: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이 발전했던 거는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결제 모듈, 그런 종류의 그런 온라인으로 쓸 수 있는 결제 모듈, ‘다날’ 이런 게 있어서 가능했죠. 미국에서도 2008년에야 ‘마이크로트랜잭션(소액 결제)’이 주목받는 분위기가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때는 카드 자동결제도 없었고요. 이경혁 편집장: 신용카드의 보편화도 되게 중요한 변화네요. 2001년까지만 해도 신용카드가 그렇게 막 쉽게 발급되지 않는 시절이 있었어요. 오영욱 박사: 결제가 사실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연구가 잘 안 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종류의 편의성들이 게임의 디자인이라든가 장르적인 부분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있을 텐데, 논의가 안 된 거죠. 이경혁 편집장: 지금의 게임 장르 유행이 나오기 위해서는 당연히 인프라의 변화가 있는 거고, 이것처럼 게임 밖의 영역이 게임 내부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겠죠. 특히, 요즘같이 인앱 결제를 베이스로 스토리나 메카닉까지 영향이 가는 거면 당연히 결제 수단 연구가 필요해서 저도 결제 관련 연구들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변화 중에 하나가 요금 종량제와 요금제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PC 통신 때만 해도 전화 요금이라는 거는 사용량 베이스로 갔었어요. 돌이켜 보면 지금처럼 인터넷 요금이 초기 전화 요금처럼 누진제로 갔으면 이 상황은 오지 않았겠죠. 오영욱 박사: 예전에는 데이터양으로 요금을 내거나, 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 무선 어플리케이션 프로토콜) 같은 경우에는 뎁스마다, 명령 하나 당 돈을 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게임 개발도, 플레이도 힘들었을 거예요. 나보라 박사: 실제로 그땐 휴대폰에 인터넷 접속하는 버튼 잘못 누르면 막 끄고 그랬죠. (일동 웃음) 오영욱 박사: 진짜 이런 지점은 외부에서 들어와서 생긴 혁명적인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폰 안 들어왔으면 게임계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나보라 박사: 아이폰 같은 경우엔 앱 스토어도 게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게임 산업 이경혁 편집장: 한국의 게임 역사를 이야기하면 MMORPG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한편으로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고, 많은 변화를 만들기도 했던 한국의 게임 산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는 각광받던 벤처 기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대기업들이 되었잖아요? 그 변화 이면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섞여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는 최근 드라마에 게임사가 배경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장면’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2000년대 초까진 게임을 한다거나, 게임 회사에 다니는 것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는데, 이제는 양지화가 된 측면이 있어요. 나보라 박사: 양지화의 측면에서는 NC의 야구단 창설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가 크긴 했지요. 대중문화에서 굉장히 아이코닉한 순간이었잖아요? 넥슨의 컴퓨터 박물관도 그렇고, 게임계의 위상이나 인식이 바뀐 순간들이 있어요. 오영욱 박사: 이어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MMO RPG가 제한한 한국 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은 한국 게임이 많이 수출되었고 중국은 <던전 앤 파이터>, 대만은 <라그나로크 온라인> 등 국민 게임이 될 정도로 영향력을 보였는데, 지금은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 있어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는데, 인도에서 <배틀그라운드>가 성공한 것처럼 다른 가능성을 여는 작업들이 산업적으로나, 경영적으로나 많이 시도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로스트아크> 정도의 새로운 플레이어가 나오긴 했지만,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어떤 전략과 기획을 가져가야 할지 더 고민이 필요해보여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에 있어서는 MMORPG라는 것도 2000년대 초반의 장르는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러면 지금의 메이저 장르는 뭐가 될까요? 나보라 박사: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네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메이저 장르’라는 개념이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장르 자체가 다변화됐고 수용자층도 확실히 넓은 저변을 갖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시장에 독이고 한편으로는 시장의 약인 그런 포스트모던한 상황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네요. 이 역시 중요한 변화네요. 2000년대에는 올해의 GOTY를 뽑기 쉬웠는데, 이제는 점점 어려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게이머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이 질문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게이머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2000년대 게이머와 2025년의 게이머. 오영욱 박사: 사실 게이머 자체는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다만, 분화가 생기고 나눠서 싸운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일반인이 하기 어려운 게임이니, 일반인한테 추천하지 말아라” 근데 여기서 누가 일반인이냐, 게이머냐고 싸우는 거죠. 저희 어머니는 예전에도 쓰리매치류 게임을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신데, 이런 분들이 게임을 안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예전에는 지금처럼 갈라서 싸우는 문화는 없었긴 했어요. 나보라 박사: 문화연구 쪽에서는 전형적인 이야기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게임이 하위 문화였는데 지금은 점점 아니게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엔 게이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균질적인 속성을 공유하고 서브 컬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는데, 지금 시점에는 이런 게이머들도 존재하지만, 이들 역시 여러 게이머들 중에 하나일 뿐 다양한 게이머들이 나오고 있다.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정체성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이경혁 편집장: 사실 오늘날에 텔레비전 보는 사람한테 ‘텔레비저너’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게이머가 게이머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고, 지금 게임을 하는 사람을 게이머로 부르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어요. 게이머라는 단어의 사회적 용례는 소멸해 가는 게 아닌가? 옛날에는 ‘게임하는 사람’이 게이머였는데, 지금은 ‘“제가 게이머입니다”하는 사람’이 게이머인 거예요. 왜냐하면 게임하는 행위가 너무나 일반화됐기 때문이죠. 나보라 박사: 말씀하시는 부분을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드네요. 최근 말씀하신 그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업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가장 큰 근거가 ‘본인은 돈을 많이 쓰는 소비자다’는 거잖아요. 따라서 ‘소비자인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권리가 있고 업계는 들어야만 한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게 2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요. 본인이 정말 게임을 사랑하고 매니악하게 파고 든다면, 게임 자체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논의를 만들거나 ‘게임에 대한 감수성’ 같은 부분으로 문화적인 권위를 내세웠으면 좋았을텐데, 문화적인 소양이나 매체에 대한 이해로 하드코어함이 성장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소비자로의 권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쉬운 거죠. 오영욱 박사: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소비자 주의가 팽배하다는 문제가 있죠. 트럭 집회도 그런 지점에서 볼 수 있고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문제점들을 대면하면서, 확실히 오늘날에는 게임하는 사람을 게이머라고 부르는 것이 무용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치 밥먹는 사람을 ‘밥먹러’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게이밍이 일반 행위가 되면서, ‘행위하는 사람’으로의 의미는 소멸해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ags: 좌담회, 게임역사, 게임연구, 아카이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서울을 걷는 작은 이유, 피크민 블룸 서울 투어

    이 사람들의 정체는 바로 <피크민 블룸>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들이 쓰고 있단 머리에 쓴 모자는 닌텐도의 유명 캐릭터인 ‘피크민’을 본뜬 것으로, ‘피크민 블룸 투어 2025: 서울’ 행사 참여자들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도심을 누비던 그들은, 사실 같은 게임 속에서 도시를 탐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onwoo Lee Interested in games played together, and studies the relationality of games. Hopes that games can bring joy to everyone, all at once.

  • 낚시스피릿의 별매 낚시 컨트롤러로부터 본 게임 경험의 확장

    전세계에서 게임을 하는 입력 인터페이스로 가장 많이 이용 되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 전이라면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터치 인터페이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에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 말할 수 는 없겠다. 다만 터치인터페이스 위에 구현되어있는 가상 패드까지 고려하면 현재에도 게임 입력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입력 인터페이스는 게임 패드일 것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보았을때의 경향이며, 한국에서는 가정용 게임기보다 개인용 컴퓨터를 통한 게임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흔히 키마라고 부르는 키보드 마우스 컨트롤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 Back 낚시스피릿의 별매 낚시 컨트롤러로부터 본 게임 경험의 확장 11 GG Vol. 23. 4. 10. 전세계에서 게임을 하는 입력 인터페이스로 가장 많이 이용 되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 전이라면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터치 인터페이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에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 말할 수 는 없겠다. 다만 터치인터페이스 위에 구현되어있는 가상 패드까지 고려하면 현재에도 게임 입력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입력 인터페이스는 게임 패드일 것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보았을때의 경향이며, 한국에서는 가정용 게임기보다 개인용 컴퓨터를 통한 게임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흔히 키마라고 부르는 키보드 마우스 컨트롤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게임패드는 지금 보기에는 게임을 하기에 매우 당연한 도구이고, 게임을 나타내기 위한 아이콘으로도 흔하게 사용된다. 많은 게임들이 게임패드를 지원하며, XBOX용 패드가 윈도우와 매우 잘 호환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 게임은 게임패드에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합니다.” 같은 안내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이 처음부터 게임패드로 게임을 즐겼던 것은 아니다. 굳이 〈둘을 위한 테니스tennis for two〉 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신호탄을 쏜 〈퐁Pong〉은 다이얼 형태의 동그란 컨트롤러가 달려있었다. 어떤 아케이드 게임들은 조이스틱이 달려있기도 했다.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한 스틱에서 온 컨트롤러 형태는 기계식 게임기를 거쳐 전자 아케이드 게임에서도 그대로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해 자리 잡았다. 게임 개발자들은 이 스틱으로 굳이 비행기만 조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2차원 평면에서 움직여야 하는 모든 것들을 스틱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번째 가정용 게임기로 여겨지는 마그나복스의 컨트롤러는 흰색 직육면체에 3개의 다이얼이 달려있는 형태였으며 아타리가 가정용으로 제작한 TV퐁은 게임기에 다이얼이 달려있는 형태였다. 이러한 다이얼이 달린 컨트롤러는 아타리가 만든 가정용 게임기인 아타리 2600에서 패들paddle 이라 불리는 전용컨트롤러 형태가 일반적으로 되면서 회전을 위한 컨트롤러를 칭하는 놉(knob), 휠(wheel), 다이얼(dial)대신 패들(paddle)이란 단어가 일반적인 호칭으로 자리잡았다. 기존 입력장치의 이름이 아닌 탁구채를 뜻하는 패들이 대표적인 이름으로 이유는 해당 컨트롤러가 탁구를 모사한 퐁을 위한 컨트롤러 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타리 2600의 컨트롤러중에 가장 대중적이고 일반적이었던 것은 조이스틱이었다. 게임기에 기본으로 포함되어있는 이 조이스틱은 경쟁 게임 사들의 조이스틱 보다도 가장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직관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기는 아타리의 조이스틱을 가장 초기의 게임에 대한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 아타리 2600용 컨트롤러 미국 기업들이 과도한 경쟁 때문에 스스로 가정용 게임시장에 대한 매력을 못느껴 시장을 포기하는 동안 일본의 닌텐도는 패미콤을 준비해서 전 세계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차지했다. 자사의 게임&워치의 동키콩에서 사용한 방향키(D-pad)를 이용한 게임패드는 닌텐도 패미콤의 게임패드에도 들어갔다. 이 입력방식의 변화는 가정용 게임기의 입력방식의 가장 큰 패러다임 변화중 하나일 것이다. 방향키와 B,A 버튼이 달린 (그리고 스타트와 셀렉트버튼이 있는) NES의 게임 패드는 매끈한 플레이스테이션의 듀얼쇼크가 나오기 전까지 아타리의 조이스틱에 이어 게임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 북미 NES용 컨트롤러 닌텐도는 패미콤의 출시와 함께 자사의 서드파티를 강력하게 관리했다. 미국 게임기 제작사들의 부진을 소프트웨어 관리에 실패한 것으로 보았던 닌텐도는 패미콤으로 출시되는 게임들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미컴 용으로 제작하는 게임들은 대부분 게임패드에 최적화할 수 밖에 없었다. 오리사냥 같이 아주 특수한 닌텐도 전용 광선총(재퍼 - 일본에서는 그냥 총(Gun)으로 발매되었다. 모양 역시 그냥 리볼버 권총에 가까웠다.)을 지원하는 총 컨트롤러나 R.O.B나 파워글로브 같이 대중적으로 자리잡는데는 실패한 컨트롤러만이 게임패드와 차별화된 플레이를 제공했다. 패미콤 이후 가정용 게임의 컨트롤은 게임패드르 완전히 굳어졌다. 아케이드에서는 여전히 아케이드만의 독특한 조종 방식을 가진 게임들이 나왔지만, 이러한 아케이드용 게임들이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되는 경우에도 대부분은 게임패드에 최적화된 조종 방식으로 변경되었으며 추가로 부가장치가 나올 때가 있었지만 그 가격은 대부분 게임 보다 비쌌고 가끔씩은 게임기보다도 비쌌다. 방향키와 두개의 버튼만 존재하던 게임패드는 게임기의 세대가 거듭되며 발전하면서 지금은 방향키와 조이스틱 두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4개의 입력버튼과 범퍼로 불리는 상단 좌우에 두개씩 위치한 버튼들 스타트 버튼과 옵션 버튼. 그리고 조이스틱을 버튼으로 활용하는 L3, R3 까지 10개의 버튼과 3개의 축입력장치가 거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현재는 대부분 자이로를 통한 6축센서와 함께 게임기에 따라 터치등의 추가 인터페이스가 들어가있기도 하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게임을 시작하기에는 과거의 게임기 비해선 복잡해졌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익숙해지면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의 게임 패드는 게임을 오래 할 수 있는데 도움을 주며, 게임 안의 캐릭터를 설명서를 보지 않더라도 대충 이전에 했던 감각으로 조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익숙함은 게임패드에 어울리지 않는 게임들이 거실에 자리잡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여전히 키보드와 마우스가 게임패드보다 편한 실시간 전략 장르나 AOS 같은 장르의 게임은 가정용 게임기보다는 컴퓨터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게임기와 컴퓨터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게임패드와 키보드 마우스이외의 컨트롤러는 한정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주로 시뮬레이션 장르이다. 드라이빙 시뮬레이션과 플라이트 시뮬레이션 장르를 위한 주변기기인 드라이빙 휠과 플라이트스틱은 꾸준히 발매되고 있으며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각 장르의 마니아에게는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필수로 갖추어야 하는 장비로 인지되고 있다. 드라이빙휠의 경우는 특히 기능에 따라 장비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으며 실제 운전할 때 처럼 운전 상황에 따라 운전대에게 힘을 전달하는 포스피드백 기능이 있는 드라이빙 휠은 특히 더 비싼 가격이며 이를 위한 거치대나 시트. 좀 더 사실적인 게임을 위한 사람들에게는 시트를 움직여주는 모션시뮬레이터등의 장비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러한 부가장비의 경우 게임값을 넘어서 가끔은 컴퓨터 혹은 게임기 값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기는 힘들며, 이러한 게임들 대부분 게임 패드로도 게임을 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닌텐도 Wii 가 본격적으로 자이로와 가속센서를 사용하는 컨트롤러를 사용하면서 컨트롤러에 제한된 게임 플레이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스포츠게임이 있겠지만 그러한 변화를 하나를 언급하자면 기존에 존재하던 낚시 게임이 이러한 컨트롤러 특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포츠로서의 낚시는 아무래도 “손맛”이라 부르는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아케이드를 제외한다면 지금으로선 실제 물고기의 움직임을 포스피드백으로 전달하는 낚시대 컨트롤러가 대중화된 적은 없다. 적어도 진동 덕분에 물고기가 미끼를 무는 부분은 비단 6축을 사용하지 않는 게임이라 하더라도 진동기능이 있는 컨트롤러를 사용한다면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동물의 숲에서의 낚시는 컨트롤러 진동의 특성을 잘 살려서 정품 컨트롤러가 아니면 그 느낌을 충분히 느낄수 없다. 컨트롤러를 흔들고 돌리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낚시 게임에 릴을 감는 행위를 컨트롤러를 돌리는 것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 이 기능은 옵션이다. 손목의 건강과 함께 선택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오락실은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극장 근처의 오락실이나 혹은 키즈카페 앞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기계가 있다. *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딥 시 파티 딥 시 파티라는 이 게임은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사실은 2012년에 일본에 출시된 반다이 남코의 〈낚시 스피릿〉과 흡사한 게임이다. 6인 까지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점은 비슷하긴 하지만 컨트롤러가 매립되어있어서 미끼를 던지는 것도 버튼으로 해야하며, 스크린이 1개라는 차이점이 있다.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반다이 남코의 〈낚시 스피릿(Ace Angler〉은 현실 낚시 보다는 일본의 전통축제에서 볼 수 있는 금붕어낚시 등의 영향이 더 큰 편이라 낚시 시뮬레이션이란 장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 로드, 플로트, 릴등을 선택해서 현실 낚시와 가깝게 즐기는 게임과는 결이 다르다. 낚시 스피릿의 플레이 실제 낚시와는 거의 다른 물고리를 낚아 메달을 모으는 게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게임에선 다른 종류의 낚시 게임과는 같은 지점이 있다. 릴을 컨트롤하며 물고기가 낚였을 때 릴을 감아야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는 점이다. 던지는 방향과 힘을 버튼으로 정하고 필살기가 있으며 보스 스테이지가 존재하는 현실 낚시와는 매우 동떨어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낚시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점이라면 바로 이 컨트롤러 일 것이다. 2012년에 출시가되어 이제는 10년이 넘어가는 시리즈인 이 게임은 컨트롤러의 특성상 아케이드에서밖에 즐길수 없었지만 2019년에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게임이 출시되면서 상황이 좀 바뀌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동전을 잡아먹는 아케이드 게임은 집에서 했으면 그 손맛을 위해 좋겠지만 6인용 게임기를 집에 들여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닌텐도 스위치의 조이콘은 다양한 플레이 방식을 지원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오락실에서 낚시대를 휘두르고 릴을 감는 그 느낌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개발사는 게임의 고유한 조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스위치 조이콘의 자이로센서와 각속도를 이용하여 조이콘을 휘두르는 형태로 낚시대를 던지고, 들고 돌리는 행위로 릴을 감는 동작을 재현했다. 전통적인 닌텐도 스위치와 컨트롤러를 붙여서 쓰는 방식으로도 게임을 하는데는 문제는 없다. 이경우는 다른 많은 낚시게임이 그렇듯이 버튼으로 릴을 감는다. * 인게임 도움말 닌텐도 스위치 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기로도 낚시 게임은 많이 나오는 편이며 고전이며 명작으로 불리는 세가 배스 피싱 같은걸 언급하지 않더라도 굳이 낚시 스피릿을 가져온 이유는 이 게임이 전용컨트롤러가 아닌 기존 컨트롤러에 붙여 쓰는 “사오콘”을 별매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종류의 컨트롤러를 확장하는 개념은 Wii 리모콘부터 PS Move, 가깝게도 VR 컨트롤러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 편이지만 낚시 스피릿의 경우 2019년에 〈Ace Angler 낚시스피릿 Nintendo Switch버전〉을 이번엔 2022년에 나온 〈Ace Angler 낚시스피릿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이 두차례에 걸쳐 나왔는데 추가장치로 나온 사오콘의 형태가 다르다. 물론 새로 나온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에서도 이전 버전의 추가장치를 지원하고는 있고 이러한 별매 사오콘이 없더라도 조이콘을 통해서 물리적으로 컨트롤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며, 게임에 연결한 상태에서 버튼으로 플레이할 수도 있다. * 호리사에서 나온 첫번째 사오콘 첫번째로 나온 사오콘의 특징이라면 결과적으로 조이콘 두개를 쥐고 흔드는 형태의 플레이를 좀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가이드에 가깝다. 일본의 게임용 주변기기 전문 업체인 HORI사에서 제작한 이 컨트롤러는 결과적으로는 이 컨트롤러 없이도 같은 형식의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릴역할을 해주는 부분있어서 좀 더 줄을 감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에이스 앵글러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과 함께 나온 두번째 사오콘 두번째로 나온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과 함께 나온 사오콘은 조이콘 두개를 쓰는 형태가 아닌 하나만 쓰는 형태로 돌릴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나는 릴이 달려있는 형태인데, 왼쪽 조이콘과 오른쪽 조이콘의 버튼 배치가 다른 것에 대응하기 위해 릴을 분리할 수 있는 형태의 아이디어가 특히 돋보였다. 두 컨트롤러의 중대한 차이점이라면 첫번째 사오콘이 조이콘 두개가 달려있으면서 또한 릴에 조이콘 하나가 붙어있어야만 하는 구조라서 실제로는 무거워서 플레이가 힘든 구조 였다면 두번째 사오콘은 처음부터 회전을 조이콘틀 통해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한바퀴 회전할 때마다 A버튼을 두번 누를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는 사실상의 연타기계라는 점이다. * 사오콘 연타 기믹 – 릴을 돌릴 때마다 흰 부분이 A버튼을 눌러준다 기계적으로 릴의 회전을 강제로 조이콘의 A버튼과 연결한 이 기믹 덕분에 정작 선택하는 A버튼을 누르기 힘들다는 단점이 생기긴 했으나 이전 버전보다 훨씬 가볍고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새로운 조이콘의 장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전 조이콘들의 조작 역시 지원을 하지만 낚시 스피릿의 후속작에서 조이콘을 직접 회전하는 방식이 아닌 버튼을 통한 입력으로 돌린 이유는 아무래도 무게가 동반된 회전 조작이 조종에 부담으로 작용했으리라 짐작한다. 이 게임은 컨트롤이 없더라도 1개의 컨트롤러로 즐길 때의 조작 방법으로 낚은 후에는 어찌되었던 열심히 릴을 감는 동작을 모사해야 물고기를 낚을수 있다는 점에서 낚시 게임이 가지고 있는 주요한 조작으로는 릴을 감는 행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낚시용 부가 컨트롤러로는 이미 Wii 리모트를 활용한 경우가 있었고 낚시 전용 컨트롤러로 가면 가정용 게임기는 물론 국내 PC용 게임으로도 나온 컨트롤러도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울 건 없다고 할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컨트롤러가 이러한 릴을 감는 장치를 어떻게든 구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낚시 컨트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VR 게임에서도 이러한 낚시 시뮬레이션이 점차 출시되고 있으며, 낚시가 주는 가장 큰 현장감을 제공하고 있다. VR 특유의 양손 컨트롤러는 현재로는 모두 게임패드를 절반으로 나눠 한쪽씩 쥐는 형태로 수렴하고 있으며 한손에 쥐기 편하도록 총의 손잡이 형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양손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많은 VR 게임들은 이 컨트롤러에 손을 매칭해서 두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가상 공간에 있는 물체와 상호작용 하도록 하고 있지만 물리적인 피드백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결국은 허우적대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따로 이러한 컨트롤러를 끼워서 사용 할 수 있는 확장 컨트롤러가 나오기도 한다. 현재로선 가장 인터페이스의 확장에 진심인 것은 따로 물리적 비용이 필요없는 VR 장르의 게임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회전시키는 입력장치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탄생과 함께 했지만 결국 기존 게임 컨트롤러에 포함되는데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레이싱휠이나 낚시 컨트롤러를 통해 이어져오고 있다. 지금은 아케이드에서 컨트롤러의 물성이 강하게 필요한 게임들만이 가정용 게임기에 피드백 되고 있지만 한차례 조이스틱이 사라졌다가 결국 게임패드에 포함되었던 것 처럼 새로운 물성이 게임 컨트롤러에 들어갈 수록 플레이의 가능성이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VR 공간이 될지 물리적 공간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플레이의 확장은 게이머에게도 게임디자이너에게도 좀 더 많은 가능성을 안겨 줄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게임과 데이팅 세계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온다. 그리고 그 일상은 현재 ‘디지털화’되었다. 연애관계의 돌입과 사랑의 속삭임을 우리는 ‘가상적으로, 디지털로, 플랫폼을 통해’ 수행(play)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관심은 인스타그램의 DM으로, 페이스북의 댓글로, 카카오 톡의 메신저로 꾸준히 접속하여 수치화된다. < Back 게임과 데이팅 세계 16 GG Vol. 24. 2. 10. 욕망의 수치화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소개팅을 하다보면, 첫 만남 이후 관계 설정을 위한 만남의 횟수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소개팅 이후 가볍게 혹은 종종 계속해서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 상대와 만나기란 어렵다는 뜻이다. 소개팅은 ‘연애’를 목적으로 한 만남이고, 이 때문에 첫 만남에 애프터를 신청할 것인지, 그리고 애프터 이후 몇 번의 만남 뒤에 공식적으로(officially) 연인관계로 돌입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존재할 가능성이 의외로 높다. 이처럼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떠올릴 때 ‘굳이 정의하지 않고 넘어가도 될 만큼 서서히 스며드는 애정의 관계’라는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앞서 언급한 소개팅의 법칙(!)도 마찬가지고, 의외로 친구 관계에서도, 더 나아가 아주 관습적이라 일컫는 결혼도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관계 혹은 감정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하면 연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어쩌면 반대, 즉 연애를 해야만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한국 드라마에서 (이성애)연애의 완결은 마치 결혼인 것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는 수많은 형태의 (굳이 게임적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선택지’의) 사랑이 존재한다. 1) 가족 간의 사랑 2) 친구 간의 사랑 3) 연애 파트너, 즉 섹슈얼한 대상으로서의 사랑 4) 상대방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랑(짝사랑으로 주로 표현되는) 등. 생각보다 사랑의 모양새는 다양하고, 우리는 이를 정확하게 정의내리지 않으면서도 모순적으로 상대적 기준을 통해 수치화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 놓여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 특히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형태는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지 눈여겨보고, 이것이 과연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현재 욕망의 수치화가 높은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미디어 환경 내부에서 인간의 일상적 ‘플레이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사랑을 게임을 통해 인지했거나, 이미 게이미피케이션이 고도로 진화된 상황에서 현실의 사랑을 진행 중일 수도 있다. 잘 생각해보자. 그렇지 않은가. 이미 사적/감정적인 대상이 모두 미디어에서 재현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미 수치화한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내 메신저에 응답하는가. 사귀는 사이에서 하루에 전화는 몇 통을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의 소셜 미디어 팔로우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말이다.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의 사적인 플레이 역사 : 사랑을 게임으로 배웠나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연구자 본인은 시스젠더 여성이고, 남성애자에 가깝다. 그러나 십대 때 본인이 접근할 수 있었던 다수의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은 ‘게임 주체’가 생물학적 남성으로 고정되어있고, 이 남성이 다수의 여성을 공략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접했던 게임이 바로 ‘동급생’, ‘두근두근 메모리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게임들을 진행하면서 연애시뮬레이션 안에서의 ‘연애’의 전형을 배웠다. 예를 들어 첫인상에 상대방의 특성 1) 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것들이 그랬다. 특히 이러한 연애시뮬레이션은 ‘첫만남’-‘대화를 통해 친밀도를 높이고’,-‘공략대상이 원하는 모습에 맞추어 능력치를 개발한 뒤’-‘퀘스트(이벤트)를 충족시켜’‘엔딩을 맞이하는’ 루트를 탔다. 물론 나는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두는 남성애자에 가까운데, 이 당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둔 연애시뮬레이션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열광했던 '프린세스메이커'를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감정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90년대 연애시뮬레이션은 게임의 특성상 육성 시뮬레이션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는데, 여성 게이머인 나에게 플레이는 관습적인 것에 가까웠고, 이를 통해 ‘목표’를 성취한다는 점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남성 주체 중심의 육성-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은 나의 게임 플레이 성향을 ‘관조’에 가깝게 만들기도 했다. 다시 말해, 연애시뮬레이션이 개념적으로 정의하는 연애관계에 이입하기보다 사랑에 대해 ‘관조적’일뿐만 아니라 ‘제 3자’의 위치에서 ‘관음’할 수 있는 주체에 더욱 가까웠단 뜻이다. 그러다 오토메 게임 2) 이 발매되기 시작했다. 이는 육성-연애시뮬레이션에 열광하는 많은 여성 게이머들이 어느 정도 3) 욕망하고 원했던 게임 텍스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오토메 게임은 외적 4) 으로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을 게임 주체로 하는 여성향 게임으로, 이 중에 한명은 너의 타입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여성이) 남성들을 공략하는 텍스트 기반의 게임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미연시(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게임)의 이성애 기반의 성별반전으로 아주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기 등장하는 남성들은 매우 전형화된 카테고리로 나뉠 수 있는데, 이것은 결국 이후 유통되는 많은 오토메 게임, BL(Boy’s Love) 게임, 혹은 텍스트 기반의 라이트 노벨성이 짙은 게임의 남성 공략 캐릭터를 정형화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후술할 체리즈의 ‘수상한 메신저(2016)’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정형화된 남성 캐릭터 선택지를 내어놓는다. 1) 연상의 로맨티스트(다정캐) 2) 모태솔로에 순수 연하(햇살캐) 3) 츤데레(광공캐) 4) 히든 캐릭터(사연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오토메 게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후지쯔에서 제작하고 1998년 발매되었던 '판타스틱 포츈'이다. 이 게임은 놀랍게도 국내에서 정발되어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팬덤을 양산해냈다. 이 게임은 초반 선택할 수 있는 주인공이 3명이다. 육성 시뮬레이션이 여성 게이머들에게 매력적인 플레이 요소가 되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 게임은 남성 캐릭터를 연애적으로 공략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메인 캐릭터를 육성해야하는 이중고(苦)를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이 주인공 중 한명은 성별이 육성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중성인 존재 5) 가 섞여 있다는 것이 독특했다. 이처럼 연애+사랑의 루트를 타는 게임은 1) 캐릭터와 서사 2) 그리고 이 캐릭터와 서사에 접근하는 플레이 방식에 따라 진화하게 되는데, 이 당시에는 '판타스틱 포츈'처럼 미형의 남성을 공략하는 ‘여성’ 캐릭터, 그리고 이 캐릭터를 이 남성들이 원하는 이상향에 맞추어 ‘육성’해야 하는 플레이가 다수를 차지했다. 이러한 캐릭터와 플레이 방식은 이 게임들이 타겟팅으로 삼았던 여성 주체들이 게임에 몰입할 때, 플레이 주체로서 주인공에 자신을 동일시하기 보다는 앞서 언급했던 ‘관조’적 성향의 플레이를 지속적으로 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여성 게이머들은 이 세명의 주인공들을 돌아가면서 플레이하고, 자신과 동일시한 캐릭터를 찾아냈을 수도 있지만(그러면서 자연스레 남성 캐릭터들을 유사남친의 대상으로 바라봤을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다시 말해 전지적 플레이어 시점으로 이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읽어내기만’했을 가능성 또한 존재 6) 한다. 특히 세 명의 주인공은 얼굴이 전부 드러나 있고, 그 캐릭터를 육성하면서 마치 케어링을 하는 제 3자적 인물로서 플레이어들이 그려지는 것은, 게이머가 그 서사 안이 아닌 밖으로 자신을 위치 지으며 이 게임을 플레이할 가능성이 더 높은 요소들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처럼 사랑은 하나의 게임에서도 단 하나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판타스틱 포츈'은 자식 같은 세 명의 메인 캐릭터, 그리고 그 대상 자체에 몰입하는 나, 동시에 그들을 짝을 지어주기 위한 제 3자(즉 관계성에 몰입하는)로서의 나 사이에서 연애와 사랑을 저울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데이터화된다. : 디지털 로미오적 행태 여성향 게임이 확산되기 시작한 시점은 여성게이머들이 대중적으로 게임에 접근할 수 있는 시점과 맞물리는데, 그 시기가 바로 개인화된 미디어의 확산, 즉 휴대폰 플랫폼으로 게임이용이 확산되기 시작한 때다. 그 당시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임 중 하나가 체리즈의 ‘수상한 메신저’다. 이 게임은 텍스트 노벨처럼 만들어진 전형적인 여성향 게임인데, 게임 타이틀에도 반영되어있듯 메신저를 기반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특성을 갖는다. 이 게임은 핸드폰으로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전화를 받는 상황이나 메신저에서 메시지를 주고 받는 방식이 실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일상적인 메시지 주고받기와 전화통화를 게임 어플리케이션 내에서 진행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어서, 이전까지 제 3자의 전지적 플레이어 시점 방식의 이야기 진행이 아닌 강력한 자기 동일시 기제를 게임 안에 포함하고 있다. 이런 방식 자체는 나에게 데이팅 기술(Technology)에서 상대방이란 ‘기계’ 혹은 ‘게임 그 자체’일수 있겠구나를 알려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앨피 본(Alfie Bown)이 자신의 저서인 <게임, 사랑, 정치>(2022/2023)에서 서술했듯 “연애 시뮬레이션에서는 실제 대상과 상상적 대상의 은유적 대체가 실제적이고 분명하게 구현(182)” 된다. 실제로 나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등장인물(상대방)들에게 무작위로(물론 시스템화되어있다는 점에서 완벽한 무작위는 아니지만)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받지 못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과의 채팅이 끝나고 나면 풀 보이스로 랜덤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모든 시간대마다 전화 내용이 다르다. 심지어 새벽에도 온다. 마치 구 남친의 ‘자니’와 같은 순간처럼). 이러한 일상적 대화의 기술은 누군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게 만드는, 혹은 사랑이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보편적인 상황이다. 이것이 가상의 게임엔진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기술이 감정을 확장하는(물론 이것이 사랑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을지라도)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내가 마주한 것은 상대방이 아닌 기계였다. 만질 수 없어도, 바라보지 않아도, 무척이나 ‘생생한 ’기계. 실제로 이러한 감각은 현재 아이돌 팬덤들이 아이돌과의 메신저로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 위버스나 버블 7) 서비스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과 게임의 상관관계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온다. 그리고 그 일상은 현재 ‘디지털화’되었다. 연애관계의 돌입과 사랑의 속삭임을 우리는 ‘가상적으로, 디지털로, 플랫폼을 통해’ 수행(play)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관심은 인스타그램의 DM으로, 페이스북의 댓글로, 카카오 톡의 메신저로 꾸준히 접속하여 수치화된다. 우리가 욕망하는 사랑이 데이트 상대와의 눈맞춤인지, 아니면 친구와의 심도 깊고 즉흥적인 대화인지, 아니면 게임의 보상처럼 메시지 알림 소리를 울리는 버블의 인터페이스 그 자체인지 우리는 이제 알기 어렵다. “사랑과 욕망은 우리가 그것들을 경험하는 매체에 너무도 깊이 얽혀있다(Alfie Bown, 2022/2023, 225)”. 사랑은 수치화되었다.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을지 모른다. 이것이 디지털 공간에 편재되었을 때, 게임은 빠르게 흡수해 텍스트로 옮겨냈고, 동시에 현실의 사랑은 이미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게임으로 사랑을 배웠고, 그래서 어느 정도 관조적인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빠져있는 사랑. 8) 나는 이미 그렇게 습득한 사랑을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나의 가상의 최애(feat. '플레이브' 남예준)를 위해, '풍화설월' 9) 의 주인공(feat. 금사슴반 클로드)들에게 이미 퍼붓고 있다. 이 때문에 의외로 현실세계의 연애와 사랑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느낌마저 든다. 참고문헌 Alfie Bown(2022). Dream Lovers: The gamification of Relationship. Pluto Press; London. 박종주역(2023). 게임, 사랑, 정치. 시대의창; 서울. 1) 이는 지금까지의 많은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한데, 대부분 연애시뮬레이션에서 비주얼(즉, 캐릭터 디자인)은 그 캐릭터의 특성을 반영하여 제작되고 이 때문에 외모는 공략법과도 깊이 연관되어있다. 실제로 연애시뮬레이션의 완결성은 비주얼이 팔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여성향 게임에서의 비주얼은 대체적으로 남성향 게임과는 달리 특정 신체를 부각하기보다, 얼굴과 목소리에 집중되어있다. 2) 乙女ゲーム 소녀의 게임. 3) 여기서 어느 정도, 라고 어중간하게 서술한 것은 기본적으로 당시 오토메 게임이 여성의 성적 욕망, 혹은 연애적 욕망에 대한 구체적 반영보다는 단순 성별반전에 가까웠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여성들의 모든 욕망을 단일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4) 외적이라고 굳이 덧붙인 것은 오토메 게임이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들을 주체로 하여 만들어진 게임이긴 하나,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주체의 성별은 실제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들 여성향이라고 말하는 장르의 콘텐츠를 실제로 이용하는 주체는 시스젠더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별주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쓰인 여성향/남성향과 같은 용어들은 이미 관습적으로 굳어진 용어로 본문에서 사용될 뿐, 실제 이용 주체를 명명하는 것은 아니다. 5) 3명 중 한명인 실피스는 선택지 플레이에 따라 여성/남성으로 나뉘게 되므로, 초반 성별이 정해지지 않은 존재(중성)로 나온다. 이 때문에 오토메 게임이지만 BL 게임으로 서사를 진행할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2차 창작이 활발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6) 이것은 여성 게이머 주체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기보다 초반 여성들이 게임 텍스트를 접할 때 일어나는 남성 중심적 서사에 적응하기 위한 기제로서 관습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바라보는 여성 주체에서도 유사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가정되는데, 여성은 남성의 시선이 내재화된 카메라와 그 카메라 시선의 대상(여성) 사이에서 동일시할 주체를 찾지 못하고 관조적이거나 유동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여성향 게임에서 ‘텍스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지보다는 텍스트가 제 3자의 입장에서 거리두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에서는 간단히 언급하고 있지만, 이러한 거리두기의 연애방식(연애 관계에서 자신을 배제하고 그 관계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은 현대의 여성들에게 훨씬 더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 좋아하는 연예인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프라이빗 메신저 ‘구독’ 서비스. 물론 인터페이스 자체는 자신이 하는 텍스트 메시지와 연예인의 메시지 밖에 보이지 않지만, 진짜 대화를 나누는 것은 1:수많은 팬서비스 구독자다. 8) 사랑에 빠져든 나와 나를 배제한 사랑 모두를 뜻한다. 9) 닌텐도 게임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중 하나. 3개의 나라 3개의 반 중에 하나를 골라 육성하는 SRPG 게임이다. 메인 캐릭터를 남성과 여성 둘 중 하나로 선택할 수 있으며, 각각의 학생을 지도하면서 교류할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e스포츠 25년, 그 좌충우돌의 역사

    초창기 e스포츠는 열악한 환경에서 탄생했다. 1999년 처음 중계된 제5회 하이텔배 KPGL(Korea Professional Gamers League) 당시에는 방송국 지원이 없어 탁구대에 천을 씌워 경기 테이블과 중계석으로 사용했으며, 경기복 두 벌을 출전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입었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e스포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ochan Park Studies spectated games, including e-sports, with a keen interest. Majoring in media cultural studi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 노년게이머에에게 경외와 동료애를 - 그레이게이머 연구의 필요성에 대하여

    <리그 오브 레전드>가 처음 들어와 국내에서 조금씩 바람을 일으키던, 아직 프로씬은 만들어지기 전이었던 그 시절 전국구 고수로 이름을 떨치던 사람 중에는 ‘황충아리’라는 게이머가 있었다. 챔피언 ‘아리’ 장인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아리장인’ 보다 그는 ‘황충아리’로 더 이름을 떨쳤는데, 이유는 그가 노장 게이머였기 때문이었다. ‘삼국지연의’에서 노장 캐릭터로 유명한 황충의 이름이 그에게 붙었지만, 그의 당시 나이는 겨우 30대 중반이었다. < Back 노년게이머에에게 경외와 동료애를 - 그레이게이머 연구의 필요성에 대하여 02 GG Vol. 21. 8. 10. 나이들면 게임하기 어려운가? <리그 오브 레전드>가 처음 들어와 국내에서 조금씩 바람을 일으키던, 아직 프로씬은 만들어지기 전이었던 그 시절 전국구 고수로 이름을 떨치던 사람 중에는 ‘황충아리’라는 게이머가 있었다. 챔피언 ‘아리’ 장인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아리장인’ 보다 그는 ‘황충아리’로 더 이름을 떨쳤는데, 이유는 그가 노장 게이머였기 때문이었다. ‘삼국지연의’에서 노장 캐릭터로 유명한 황충의 이름이 그에게 붙었지만, 그의 당시 나이는 겨우 30대 중반이었다. 일반적인 사회문화에서라면 창창한 나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시원치 않을 30대 중반이 ‘황충’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게 되는 곳이 게임공간이다. 이는 편견이나 농담이 아니라 일정 부분 사실에 가깝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가 갓 제대했을 즈음 이야기한 목표가 ‘30대에도 프로게이머로 살아남겠다’ 였고,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20대 중반만 지나도 신체적인 한계를 느낀다며 은퇴를 선언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이렇게 보면 게임이라는 매체는 확실히 젊은이들의 공간인 것 같다. 그러나 또 고개를 돌려 보면 꼭 피지컬만이 게임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심시티>를 하는 데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니 심지어 신체적인 반응능력이 정말 좋아야 하는 <철권> 의 영원한 황제 ‘무릎’ 배재민 선수는 2021년 기준으로 36세고, <스트리트 파이터>로 EVO 2003에서 전설적인 명경기를 만들어냈던 우메하라 다이고는 올해 나이로 마흔을 넘겼지만 여전히 현역 게이머로 활동중이다. 격투 게임과 RTS 같은 장르 안에서의 피지컬 문제를 일일이 따지기는 어렵겠지만, 디지털게임이 상당부분 신체적인 능력치를 요구하는 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모든 게이머가 나이가 들었다고 게임으로부터 멀어진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그레이게이머의 두 가지 의미 전자오락이라는 이름으로 디지털게임 문화가 한국에 처음 등장한 1970년대 말로부터 계산해보면 어느새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80년대 오락실에서 동전 하나로 몇 시간을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꼬마 아이들은 이제 중장년의 나이가 되었고, 20대에 담배연기 자욱한 오락실 안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갤러그>로 시간을 때우던 청년들은 어느새 노년의 초입에 접어들었다. 1980년대 오락실에 앉아있던 20세 청년인 1960년생은 올해부터 60세를 넘기며 인구통계학적으로 노년의 범주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반세기라는 시간의 흐름은 한동안 우리에게 일종의 고정관념이었던 어떤 부분에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렸다. 노년 세대라면 그저 ‘하여간 요즘 것들은 게임 같은거나 하고’라고만 영원히 말할 것 같았지만, 이제는 <테트리스>와 <팩맨>, <갤러그>를 즐기던 오락실 세대가 노년의 범주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중장년을 생각한다면 이 변화는 좀더 성큼 우리에게 다가온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출시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빌드오더를 가르치는 부모와, 과거의 추억으로 <리니지>에서 혈맹 뛰던 이야기를 나누는 4-50대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만나보는 시대를 맞았다. 그레이게이머greygamer라는 말의 첫 번째 의미는 그렇게 게임과 함께 나이를 먹어 온, 좀더 경의를 붙여 표현하자면 ‘인류 최초의 디지털게임 세대’라고 일컬을 수 있는 어떤 세대를 담는다. 초창기 디지털게임의 역사를 문헌이 아니라 자신의 플레이로 겪은 노년 세대의 등장은 노년층을 이른바 ‘겜알못’으로 부를 수 있는 시기가 끝나감을 보여주는 단서다. 그리고 이는 게이머라는 구분이 더 이상 특정 연령, 특정 세대만의 경험을 기준으로 한 구분이 아니라 전연령대에 걸친 보편적인 경험이면서도 동시에 시대별로 그 양상을 매우 뚜렷한 차이로 갖게 되는 어떤 문화 전반을 통한 구분으로 옮겨가게 만드는 흐름이다. 그레이게이머라는 말이 가진 첫 번째 의미가 이른바 레트로 세대를 가리키는 과거 경험을 향했다면, 두 번째 의미는 디지털 네트워크와 모바일 시대가 열어낸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보편화를 시작한 게임저변의 확장으로부터 만들어진 또다른 변화를 향한다. 지하철 안을 둘러보면 이제 쉽게 스마트폰을 꺼내 게임을 하고 있는 노년층을 발견할 수 있는 시대다. 게임하는 노년의 배경은 반드시 유년기의 게임경험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뒤늦게 잡아보게 된, 이제는 시대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으로부터 손쉬운 게임으로의 접근성을 얻게 된 이들 또한 게이머의 이름을 달 수 있게 되었고, 그로부터 두 번째 의미로서의 그레이게이머가 출현한다. 2020년에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게임문화연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직접 심층인터뷰를 통해 만난 노년층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노년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정착하기 시작한 디지털게임 문화의 일면을 보여준 바 있었다. 은퇴한 노년 여성이 주시청자를 이루는 평일 저녁의 지상파 텔레비전 일일연속극 시청은 이제 게임플레이와 섞이기 시작했다. 인터뷰 대상자는 텔레비전을 켜 놓고 TV는 귀로만 들으며 스마트폰으로 간단한 퍼즐 게임을 즐기곤 했다. 어차피 드라마의 진행은 큰 줄기를 벗어나지 않으니 귀로 상황만 들으며 게임에 집중하다가, 드라마에서 중요한 장면이 나오면(대부분의 드라마는 이런 순간에 시청자로 하여금 집중을 유도하기 위해 별도의 음악을 깔거나 배우의 대사톤이 높아지는 등의 포인트를 만들곤 한다) 비로소 눈을 스마트폰에서 텔레비전으로 옮기는 식이었다. 그레이게이머의 존재는 그래서 유년기의 경험을 가진 1세대 게이머로서, 동시대의 게이머로서 나타난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유의미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존재는 그러나 현재의 게임담론 하에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의 게이머들보다 더 치열하게 게임했을 그 세대는 정말 이제는 게임과 담쌓고 지내는 것일까? 백발이 성성한 사람이니 당연히 게임을 모를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정말 제대로 된 판단인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게이머라는 집단을 너무 좁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년 게이밍에 대한 이해는 아직까지 부족하다 노년 게이머의 양적, 질적 증대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산업과 제도의 변화는 아직까지 잘 나타나지 않는 편이지만, 서구권에서는 2010년대부터 게이머 노년화에 관한 주목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게임은 젊은 사람들만의 매체라는, 그래서 노년층은 아예 거론되지 않는 고정관념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연구(Facer & Whitton, 2010), 실제로 늘어나고 있는 노년 게이머에 비해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 산업과 제도의 변화는 크게 뒤쳐지고 있다는 지적(Quandt & Grueninger, 2009)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 연구 또한 결국 서구권에서도 노년 게이머가 잘 조명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한국이나 서구권 모두 상황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일부 연구들은 노년 게이밍이라는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실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들과도 유사한데, 이를테면 노년의 게임하는 이유를 치매예방과 같은 신체노화에 대한 기능적 대안으로만 바라보거나(Schutter & Brown), 자녀세대와의 교감만을 위한 용도로 활용된다고 보거나(Pearce, Lee) 하는 기능주의적 접근들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이는 단지 비노년이 노년의 게이밍을 ‘두뇌 트레이닝’의 일환으로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년층 스스로도 ‘늙지 않으려면 고스톱이라도 쳐야지’라고 마음먹는 모습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런 기능주의적인 접근만이 실제로 노년층의 게임하는 이유를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한국에서도 노년 게이밍에 대한 접근은 주로 기능주의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치매예방을 위한 게임개발과 플레이, 독거노인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게임과 같은 방식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게이머라는 큰 범주로부터 노년 게이머를 매우 타자화된 대상으로 분리시켜버리는 시선으로 굳어질 수 있는 우려를 내포한다. 나이가 들어 예전만큼의 반응속도를 낼 수 없어 <다크소울>이 어렵다 할지라도 그가 여전히 <저니>를 하고 있다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클리어하고 감상에 젖어 있다면, 혹은 과거 동네 오락실에서 <갤러그> 하이스코어 1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굳이 우리는 특정 기능의 향상을 위해서만 게임을 만지는 사람으로 분류해야 하는 것인가? 경의와 동료애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노년 게이머에의 이해를 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라는 매체는 보거나 듣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수용양식을 넘어 반응이라는 행위를 요구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에 분명한 접근에의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2012년에 <리그 오브 레전드>를 곧잘 하던 나는 이제는 방송경기의 리플레이를 봐도 한타싸움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신체나이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런 장벽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임이 반드시 높은 반사신경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진정한 의미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이머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음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아니 다른 의미로라면 오히려 과거 레트로 게임 시절에는 동네 오락실을 휘어잡았을지도 모를, 왕년의 용사들에 대한 경의를 가져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플레이를 통해 완성되는 디지털게임의 경험은 단지 특정한 프로그램을 보존한다고 해서 후대에 그 경험이 온전하게 복원되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여러 고전게임의 리마스터를 통해 겪은 바 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이들과 함께 그들의 게임경험을 이야기하고, 그 시절의 게임과 플레이어에 일련의 존경을 표하는 것이 ‘치매예방 게임’을 하는 세대로 바라보는 것보다 오히려 노년 게이머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같은 시대에 살면서 같은 게임을 하고 있는, 인종과 성별로의 구분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통해 누군가를 대상화하려는 어떤 흐름을 넘어서서 게이머로서의 동료애를 품을 수 있는 대상으로 그레이게이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노년층 게이머에 대한 이해와 그로부터 시작될 변화들을 미리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게이머라면 함께 플레이할 노년 게이머를 이해해야 하고, 게임사라면 늘어나는 노년 게이머들에게 필요한 게임과 인터페이스를 고민해야 하며, 정부와 공공단체라면 변화하는 게임문화 향유층에 필요한 제도와 인프라를 생각해야 할 시기다. 최초의 레트로 게임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일 것이다. 디지털게임이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의 범주에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이 매체가 보편적인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 보편성에는 인종과 젠더, 계급과 장애유무 뿐 아니라 연령대라는 요소도 넘어설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보편 대중문화로 외연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노년 게이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 기네스북 공인 세계 최고령 비디오게임 유튜버 하마코 모리. 2019년 89세로 등재되었다.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457124-oldest-videogames-youtuber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표절이라는 확고부동하지 않은 선

    요 몇 년 부쩍 게임기자라는 부담스러운 직함을 달고서 듣기에 더더욱 부담이 가는 질문들이 있다. “이 게임이 저 게임을 베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표절이 맞지 않나요?” 마치 녹음기를 켠 채 내 커리어를 끝장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질문들인데, 그때마다 대처하는 방법은 같다. ‘예/아니오’ 로 답하는게 아닌, 상대방과 열띤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 Back 표절이라는 확고부동하지 않은 선 24 GG Vol. 25. 6. 10. 요 몇 년 부쩍 게임기자라는 부담스러운 직함을 달고서 듣기에 더더욱 부담이 가는 질문들이 있다. “이 게임이 저 게임을 베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표절이 맞지 않나요?” 마치 녹음기를 켠 채 내 커리어를 끝장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질문들인데, 그때마다 대처하는 방법은 같다. ‘예/아니오’ 로 답하는게 아닌, 상대방과 열띤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게임과 게임 사이의 표절 시비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더더욱 자주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또 이전보다 게임사들이 보다 직접적으로 보호를 위해서 나서는 것도 눈에 띈다. 표절을 직접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법은 저작권과 관련된 법이지만, 최근 불거진 몇가지 대표적인 사례들을 보면, 결국 제기된 소의 내용은 저작권이 아니라 특허권이나 부정경쟁방지 위반, 영업기밀 침해 등으로 구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선택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의 상황에서 저작권은 각사의 이익을 보호할 수 없지만 특허권 침해나 부정경쟁방지 위반 등은 그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거나 최소한 협상카드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저작권이 보호하는 영역이 명확하기 때문에도 있지만, 게임이라는 미디어에서 유독 그 한계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다 근본적으로 질문을 바꿔보자면, 게이머들이 보기엔 아무리봐도 표절인 게임들이 어째서 법적으로는 그러한 판단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게이머들이 확증편향에 물들어 잘못된 생각을 하는걸까?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는 법과 수용자가 각 작품 또는 결과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법이라면 특허권을 침해했거나 또는 제조법을 도용했는지를 판단하려면 제작 과정을 살펴볼 것이고, 저작권처럼 어떤 발상을 침해했거나 타인의 아이디어로 부정한 성과를 얻으려고 한다면 아이디어를 직접적으로 표절했는지, 정도는 어느정도인지 살펴볼 것이다. 이들 법은 이미 게임 밖 다른 미디어에서는 여러 사례들을 낳았고, 물론 다른 미디어에서도 그 한계 또는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가 많지만 어느정도 성과를 내왔다. 하지만 유독 게임에서는 표절과 오마주, 벤치마킹에 대한 구분이 옅고 항상 격론이 오가는 주제가 되곤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법알못으로서,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우리가 겪는 괴리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모든 창작물은 정반합을 거듭하며 발전하고, 때문에 미메시스(Mimesis)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유사한 발상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더 나은 발전을 아예 가로막아버리는 일이 되기 쉽다. 다른 창작물만큼이나 게임의 제작은 레퍼런스에서부터 시작하며, 창작과 발상은 수렴과 변용으로 시작한다. 그 때문에 이러한 행위 자체를 일종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나 카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실제로 표절은 게임계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이지만, 그만큼이나 어떤 게임을 설명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 역시 “이 게임은 XXX한 OOO임.” 이라며 비슷한 다른 게임에 빗대어 표현하는게 일반화되어 있을 정도이니. 그만큼 대부분의 디지털 게임들은 그 원류가 비교적 명확하며 장르적 정반합에서 언제나 비교당하기 일쑤다. 때문에, “이 게임은 어느 게임을 닮았죠?” 또는 더 나아가 “이거 XXX 베낀거 아닌가요?” 라는 말을 들을 때면, 한마디로 쉽게 답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단 게임 자체가 너무 복합적인 미디어이기 때문에 아무리 간단한 게임이라도 그를 구성하는 요소가 수백 수천가지라고 하기에도 부족할 정도이고, 또 대체 그 중에서 어느것이 같거나 비슷할 때 표절이라 할 수 있는가, 어느정도 비율이 넘어서야 표절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 같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즉, 게임에서의 표절 논쟁은 그 정의에서부터 갈림길에 서있다. 비교적 그 정의를 내리기 쉬운 다른 미디어에 비하면 말이다. 물론 다른 미디어들이 가진 표절 논쟁에서도 항상 “어디까지가 표절인가?” 라는 이야기는 나오곤 하지만 게임만큼 이 문제가 골치 아픈 것도 없다. 같은 그래픽 스타일을 가졌지만 게임 플레이는 판이하게 다른 케이스는 흔해 빠졌고, 플레이 구성요소가 비슷하다고 해도 이를 어떻게 배치하냐에 따라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같은 플레이 메커니즘을 가지고 다른 그래픽 요소와 플레이 도구, 구성으로 바꾸어 만들어내는 것이 게임적 변용의 기본이다. 아무리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는 말도 있지만, ‘미메시스’ 라는 말로 포장하기에는 애매한 선에 걸친 것도 참 많다. 즉, 이처럼 어떤 게임의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 법적인 부분을 떠나 게이머 입장에서도 판단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게임 자체가 워낙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표절 또는 벤치마킹한 요소가 분량 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더라도 플레이 측면에서는 오히려 다른 요소가 부각되고 중심이 된다면 그건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릴 수 있고, 역으로 아주 사소한 부분이지만 그게 게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면, ‘베꼈다’ 라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근래에 있었던 가장 큰, 그리고 유명한 사례라고 한다면 미호요의 ‘원신’ 과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법적인 표절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원신’ 은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의 표절이 되기는 어렵다. 명칭을 그대로 가져다 쓰거나, 디자인 요소를 트레이싱하거나, 당연하게도 미호요가 닌텐도를 해킹이라도 한게 아닌 이상 제작과정이나 그 소스코드가 동일할리는 없다. 그러나 이 게임은 많은 부분에서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를 닮아있으며, 개발사인 미호요도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가 준 영향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좋은 참고가 되었다는 말은 결국 ‘원신’ 의 레퍼런스에는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가 들어가있었다는 말이 되며 그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두 게임을 할 때의 경험이 거의 비슷한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게임의 전반적인 그래픽 스타일 지향점이나 스태미나 아이콘 같은 시각요소의 차용에서부터, 넓게보면 퍼즐 중심의 오픈월드 탐색이라는 게임 경험 자체도 유사성을 드러낸다. 글라이더 활공에서부터 벽타기, 맵의 구성과 몬스터 배치까지 단순히 유사한 정도를 넘어서는 부분도 있다. 최소한 ‘원신’ 의 어드벤처 파트는 그 근원이 ‘젤다의 전설: 브레드 오브 더 와일드’ 있다는데에 모두가 동의한다. 따라서 ‘원신’ 이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를 표절했음을 주장하는 쪽은 주로 이러한 부분을 인용한다. 게임 내 콘텐츠와 메커니즘의 구성과 더불어 조작감, 타격감 같은 상당히 개인적으로 심리적인 요인들까지도 언급된다. 그러한 이유는 결국 게임이란 경험에 의해 정의되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대리 체험할 때의 경험보다도 내가 직접 플레이어로서 게임을 플레이할 때, 그로써 얻어지는 성취감, 순간적인 피드백, 감각들이 비슷하다면, 이유와 근거를 명확하게 들 수는 없어도 이들이 닮았다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 그래서 문제는 이것이다. 그래서 이 게임은 표절작인가? 레퍼런스를 참고해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는 관행은 오랫동안 이어져왔고 당연한 행위이지만, 이 자체를 리버스 엔지니어링과 동일한 행위로 단정지을 수 있을까?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이 질문을 던질 때 나온다. 표절이라고 하는 측과, 그렇지 않다고 하는 측이 제기하는 근거가 게임의 서로 다른 부분이라서다. 어떤 요소를 차용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게임 전체가 어느 게임의 표절인가 하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에는 결국 전체 게임의 종합적인 부분을 살펴보게 되기 때문이다. ‘원신’ 과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의 경우 어드벤처 파트는 굉장히 높은 유사성을 보이지만, 전투는 액션이라는 공통 분모를 빼면 그 근간 자체가 다르다고 볼 수 있으며, 플랫폼과 BM에서 발생하는 플레이 특성 자체도 완전히 다르다. ‘원신’ 은 기본적으로 캐릭터 수집 및 육성이 주요 콘텐츠이기 때문에 이 캐릭터를 가챠로 뽑고, 육성 재화와 장비를 수집해 일정 이상의 완성도로 캐릭터를 빚고 깎아내는 과정이 핵심이다. 물론 이 또한 완전히 전에 없던, 다른 게임에 없던 ‘발명’ 은 아니지만 최소한 ‘젤다의 전설’ 에서는 크게 거리가 있으며 독자적인 발전을 가장 많이 꾀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4개 캐릭터와 원소 반응을 통한 파티 빌딩, 하나의 핵심 장비를 중심으로 여러 부품 단위로 세부 스펙을 쪼개어 조합하고 빌딩할 수 있는 장비 성장은 ‘원신’ 의 핵심이고, 이미 여러 갈래로 발전해온 빌드깎기 게임의 ‘원신’ 적인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나아가 7신과 국가와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원신만의 세계관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감성적인 만족감은 오롯이 ‘원신’ 이 이루어낸 성과다. 물론 이들 요소도 비슷한 사례를 찾으라면 못할 건 없지만, 유사성보다는 오리지널리티가 더 돋보이는건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게임으로서 ‘원신’ 이 가진 독자적인 영역도 결코 적고 좁다고 할 수 없다. 게임은 그 자체로 굉장히 많은 레이어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몇몇 레이어가 겹친다고 해서 완전히 동일한 총합으로 보기는 도저히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벤치마킹한 부분이 지배적이라면 또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지만, ‘원신’ 에 있어서는 모사한 레이어 만큼이나 직접 고민하고 그려낸 레이어가 많고 그것이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비록 논쟁의 여지가 있어도 사람들이 ‘원신’ 을 무조건적인 표절작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는 단순히 수학적인 비율 산정을 말하고자 하는건 아니다. 게임의 경험은 매우 미시적인 체험들의 총합으로 하나의 거대한 경험이 된다. 때문에 아무리 같은 재료를 썼다 하더라도 곁들이는 음식이나 조리법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벤치마킹한 부분 외의 레이어가 충분히 두터울 때 전체 경험의 성격이 바뀌는” 현상을 이루어낸다면 단순한 표절작이 아닌 새로운 갈래의 발산이 될 수 있다. ‘원신’ 은 분명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의 어드벤처 파트를 토대로 하지만, 그 위에 자신만의 요소들을 쌓아올림으로서 다른 형태의 게임을 빚어냈다. 그래서 이제 ‘원신’ 은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를 표절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간단하게 예, 아니오로 답할 수는 없다. 필자라면,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 일부를 본땄지만, 그만큼의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다.” 라고 답하겠다. 결국 표절을 판단하는 기준은 정량적일 수 없으며, 우리는 각각의 게임에 대해 저마다 들어맞는 고민과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근래 ‘소울 시리즈’ 의 대성공 이후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던 소위 소울라이크 게임들 역시 어떤 정량적인 기준을 가지고 소울라이크다, 이건 소울을 계승했다, 이건 소울라이크가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었다. 대부분, 모두가 어떠한 정성적인 감각들, 경험들의 총합으로서 여러 플레이어의 논의를 거쳐 일종의 합의를 이루어낸 것에 가깝다. 이 일련의 이야기는 왜 저작권을 판단하는데 있어 법이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지 증명하는 셈이다. 법이라는 정량적인 판단으로는 선을 명확히 긋는게 불가능하며, 결국 재판관이나 배심원 같은 심리를 진행하는 권한자들의 재량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마저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법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법에게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면 그만큼의 부작용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법리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이러한 게임의 독창성과 특별함들은 지금보다 더 보호받아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게임이 새로운 방향으로 계속 발산하고 발전하고 정반합의 과정을 반복하는걸 방해하여서는 안된다. 얼핏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그 사이에 매우 미세한 틈이 있다고 믿는다. 결국 어떤 일에서도 어떤 선을 긋고 경계를 정의하는 건 반복적인 조정과 다시긋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글조차도 그러한 과정 중 하나이며, 그때그때 우리는 엄격한 선을 조금씩 이동시킨다는 얼핏보면 모순적인 일을 해야 한다. 법이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면, 누가 그 역할을 해내야 할까? 이에 대한 답 또한 간단하고 원론적이다. 결국은 게이머다. 소비자이자 독자이자 애정자인 게이머들이 표절이 아닌 독창성을 높게 판단하고, 가치를 발굴하고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며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는 것. 점차적으로 시장에, 게임이라는 넓은 세계에 그러한 ‘스스로 추구하는’ 게임들이 지배적으로 남도록 하는 것. 일종의 시장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좀더 넓은 범위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단순한 소비자주의가 아니라 어떤 문화의 향유자로서, 명확한 가치관으로서 자신이 즐기는 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 그런 행위들이야 말로 무분별한 표절작을 근절하고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추구를 치하할 수 있는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플레이어에 대한 존중과 함께 절대적인 선(線)이 있다고 믿기보다는 항상 새롭게 판단하고 스스로가 엄격한 기준이 될 자신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다들 자기 나름대로의 선 안에서 옥석을 가려가며 치밀하게 소비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지루하고 현학적이라도, 단정적일 수 만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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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우스코어 걸: (Not Really) Full Game Walkthrough

    게임의 현실성에서 빠져나와, 잠시 현실의 게임성을 생각해보자. 세계가 0과 1의 현실로 재구성되고 있다 해도, 거기서의 ‘룰즈 오브 플레이’와 그에 따른 난관이 본질상 그대로라면 세계는 언제까지나 익숙한 현실일 뿐이다. 불균등하고 블록화된 구조로 작동하는 접속가능성(connectivity)이라든지, 메타버스와 관련해 각종 투기가 당연하다는 듯 횡행하는 상황 등을 둘러보면, 과거의 기술 물신적 낙관과는 다르게 가상 인프라의 역능 역시도 딱히 평평해지지 않는 세계의 현실에 귀속되어 있는 것 같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in Kim A member of "Mods," a game club for curators. Thinks now and then about art as legacy, or art as subculture, and now and then curates an exhibition.

  • 온라인 시대에서 ‘PC방’이 살아가는 법

    게임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과 함께한 놀이 문화로 통한다. 처음에는 간단한 오락이 가능한 값비싼 콘솔기기로 시작해, PC 보급이 본격화됨에 따라 가정 내 기초 게임 환경 구축이 가능해졌고, 지금에 와서는 거리와 관계없이 편하게 온라인으로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열렸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hanjung Lee Alongside enjoying games across a range of genres, taking a multifaceted look at what PC bangs look like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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