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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겜 리뷰를 보는 즐거움
똥겜 전문 리뷰어에 대해 언급하기에 앞서 ‘똥겜’과 혼용되서 사용되는 ‘망겜’, ‘쿠소게(クソゲー)’와의 용례를 통한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혹자는 망겜과 똥겜을 동의이음어와 같이 분류하기도 하지만 흥행에 실패한 게임을 총칭하는 망겜과 똥겜을 사용하는 맥락은 다른 지점이 있다. 똥겜의 번역어인 쿠소게와도 똥겜이 활용되는 지점은 상이한 부분이 존재한다. < Back 05 GG Vol. 22.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young Hong Entered the world of games thanks to ads pitching the Famicom as a must-have for the happy household. A steady devotee of Just Dance. Co-wrote Mario, Born in '81, The Theory of Games, and Media and Gender, among others.
- 게임 속의 일지: 대리하는 기억, 보충하는 기억, 통치하는 기억
나는 망설임 없이, 하지만 큰 기대도 없이, J키를 누른다. 일지. 저널. 혹은 퀘스트 로그 등등. 퀘스트와 이야기 전개를 중심으로 삼는 게임들에는 하나같이 일지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일지에는 내가 잊은 모험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어느 마을에서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으며, 어떤 부탁을 수락했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적혀 있다. < Back 31 GG Vol. 26. 8. 10. Tags: 퀘스트 로그, 발더스 게이트 3, 확장된 마음, 대리보충, 자크 데리다, RPG, 게임과 철학, Baldur's Gate 3, Extended Mind Theory, Quest Log, Jacques Derrida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eon Choi Drawing on identities both as a philosophy researcher and as a game enthusiast and researcher, has engaged in teaching, lecturing, research, writing, and translation, and currently enjoys the pleasure of sharing thought with students at Inha University and elsewhere.
- How far can the ‘economics of crowdfunding’ go?: The comparative case of and
If we were to choose two of the most talked-about RPG games in 2023, many would agree to pick (Bethesda Game Studios, 2023) and (Larian Studios, 2023). It appears that gamers generally favor over due to disappointing elements in its game design, despite it still managing to achieve good sales records thanks to the developers’ publicity. The game seems to have demonstrated the limitations of the so-called Bethesda-style RPG games, whereas was praised for its rich interactivity and engaging role-playing elements. Some claim that this Belgium-made game has made a new mark in the RPG genre, listing it as one of the most critically acclaimed RPGs of 2023 alongside The Legend of Zelda: Tears of the Kingdom (Nintendo, 2023).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ritic) (Critic) Yihwan Lee After completing the Master of Fine Arts in Cinema Studies at the School of Film, TV & Multimedia,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currently contributes film and game criticism. Loves adventure games. (antistar23@gmail.com )
- 인게임 커뮤니케이션과 현실의 가치: 의 사례
정확히 똑같은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러한 돌봄의 위기는 유사한 형태로 게임 공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여성 게이머들 대다수가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지원가 역할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원아워원라이프, 여성게이머, 상호작용, 프레이저, 오버워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yoon Kim Studied communication and anthropology at Yonsei University, and majored in media cultural studies at its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fter playing games with no great skill, grew interested in the bodily performance of gameplay and took up game research. Wrote a master's thesis analyzing the gameplay experiences of women gamers, which received the 2020 Outstanding Thesis Award from the Korean Women's Communication Association. Currently a doctoral student in Cinema and Media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in the United States, specializing in game culture.
- ‘후원 경제’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중심으로
2023년 비디오 게임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RPG 게임을 꼽으라면, 대다수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꼽을 것이다. 여론은 <발더스 게이트 3> 쪽이 우세다. <스타필드>는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고 홍보에 힘입어 많은 판매량을 올렸지만, 게임 디자인에서 실망스러운 지점도 있어, 베데스다식 RPG 게임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을 받았다면 <발더스 게이트 3>는 풍부한 상호작용과 롤플레잉으로 RPG 장르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으며,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과 함께 올해의 게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 Back ‘후원 경제’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중심으로 15 GG Vol. 23. 12. 10. 2023년 비디오 게임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RPG 게임을 꼽으라면, 대다수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꼽을 것이다. 여론은 <발더스 게이트 3> 쪽이 우세다. <스타필드>는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고 홍보에 힘입어 많은 판매량을 올렸지만, 게임 디자인에서 실망스러운 지점도 있어, 베데스다식 RPG 게임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을 받았다면 <발더스 게이트 3>는 풍부한 상호작용과 롤플레잉으로 RPG 장르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으며,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과 함께 올해의 게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게임 그 자체보다는, 두 게임이 대표하고 있는 2020년대 RPG 게임, 나아가 ‘전통적인 자본’이 지배하는 고예산 AAA 게임과 킥스타터와 얼리 액세스 같은 ‘후원 경제’에 기반한 중저예산 게임 개발 과정과 자본 경제 현상을 다루고자 한다. 게임 커뮤니티 내 여론을 살펴보면, <발더스 게이트 3>를 마치 <스타필드>를 위시한 AAA 게임과 똑같은 제작 과정을 거친 게임인 것처럼 비교하는 의견이 많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발더스 게이트 3>의 창의성과 풍부한 디테일 칭찬하면서, <스타필드>를 위시해 어딘가 부족하게 나온 AAA 게임이 <발더스 게이트 3>보다 태만했으며 최종적으로 AAA 게임 제작진이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판하는 의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발언들이 좋은 게임에 대한 갈증이라던가, ‘좀 더 잘 나올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라는 당연한 감정에서 비롯된 발언이겠지만 이렇게 비교하고 비판하는 것엔 논리적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같은 장르에 속하고, 화제작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는 전혀 다른 방법론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세부적인 게임 디자인 역시 1대 1로 비교할 수 없는 게임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타필드>는 거대 투자 자본의 지원으로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방향성으로 구축된 생산품이라면 <발더스 게이트 3>는 활성화된 후원 경제에 힘입어 만든 소수 취향을 노린 공예품에 가깝다. 물론 생산품과 공예품에는 어떤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취향에 기반한 ‘후원 경제’의 개입 여부가 어떤 중요한 차이점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스타필드>는 대자본의 투자로 거대한 상품을 만들려는 성격이 강한, 전형적인 AAA 게임이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25년 만의 새 IP라는 점을 강조한 토드 하워드의 인터뷰라던가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 쇼 등지에서 보여준 강력한 홍보 정책은 <스타필드>가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제니맥스 미디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어떤 가치를 지닌 ‘상품’이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월 가의 투자자들 역시 이 게임에 거는 기대가 컸을 것이다. 한편 <스타필드> 제작진은 정보 공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디벨롭 컨퍼런스 2020에서 이뤄진 토드 하워드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인터뷰에서 그는 “<스타필드>의 정보 공개와 홍보는 출시 직전 짧고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를 반대로 말하자면 <스타필드>가 폐쇄적인 환경에서 제작되고 피드백을 받아왔다는 걸 보여준다. 이처럼 대다수의 AAA 게임은 개발 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으며, 피드백을 받는 과정 역시 내부 QA라던가 체험판 같은 곳으로 한정시켜 자신을 신비화한다. 그리고 발매일이 다가올수록 이런 신비화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게임에 대한 호기심과 구매 의사를 증폭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동시에, 오해와 실망을 낳을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스타필드> 발매 후 이어진 거센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는, AAA 게임이 취하는 일방적인 개발이 개발진 (내지는 임원진과 주주)의 내부 예측과 수요층의 기대랑 어긋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스타필드>를 기대하고 구매한 유저 대부분은 풍부한 요소들로 가득한 우주 탐사와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특유의 노련한 RPG 디자인과 결합한 게임을 기대했다. 그러나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우주라는 공간에서 가능한 콘텐츠를 전부 구현하기엔 AAA 게임 제작 체계상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대대적으로 단순화하고 가지치기하는 방법을 취했다. 게임의 핵심이자 가장 논란이 되었던 우주 탐사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스타필드> 제작진은 행성 지형의 절차적 생성이라던가, 이착륙/이동 과정의 간소화 같은 다양한 ‘간소화’를 동원해 우주라는 공간의 크기는 유지하되, 만들어야 할 콘텐츠 가짓수는 줄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스타필드>를 기대한 사람들이 원했던 방법론이 아니었고, 게임에 대한 멸칭과 제작진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돌아왔을 뿐이다. 사실 <스타필드>는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의 유일한 예측 실패작은 아니다. 이미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폴아웃 76>에서 오픈 월드와 온라인 게이밍, 기존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RPG 게임 간의 결합이라는 무리한 전략과 현장 관리의 실패로 발매 초기 거센 비판을 받은 전력이 있다. <스타필드>는 <폴아웃 76> 때보다는 비교적 긴 시간과 공력을 들여 개발된 게임이라 상황이 낫긴 하다. 하지만 굳어진 AAA 게임의 일방적이고 효율을 추구하는 개발 과정이 유저의 기대와 얼마나 괴리될 수 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럼에도 그런 과정을 쉽게 바꿀 수 없는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스타필드>에 대한 밋밋한 반응은 그 점에서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의 개발 노선에 재고가 필요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발더스 게이트 3>는 반대로 ‘후원 경제’의 지원받아 개발 과정을 공유하면서 진행한 게임이다. 우선 이 게임은 발매일까지 베타 테스트가 이뤄지던 얼리 액세스로 구매할 수 있었던 게임이었다. 킥스타터 같은 크라우드펀딩이 동원된 게임은 아니지만 (라리안 스튜디오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이 성공한 이후 크라우드펀딩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완성될 때까지 이뤄질 게임 개발 과정을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 팬덤에게 공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베타 테스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공식 커뮤니티에서 게임 유저로서 제작진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고, 제작진 역시 커뮤니티 업데이트를 통해 개발 진척과 변경 사항을 공개하기도 했다. 요컨대 <발더스 게이트 3>의 개발 과정은 커뮤니티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지 가능한 과감한 개발 과정이다. 여기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얼리 액세스 3년 동안, TRPG가 제공하는 풍부한 자유도와 콘텐츠를 할 수 있는 한계치 내에서 최대한 구현하려고 애썼다. 이런 노력으로 완성된 높은 자유도는 이미 많은 리뷰와 플레이 영상들이 소개하고 있기에,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발더스 게이트 3>는 후원자들이 원하는 게임 디자인을 위해 모든 자원이 총동원되었고, 그 결과물에 대다수가 흡족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쉽지 않은 결정이며, 흥미로운 결과다. 게임이 제공하는 시스템 내에서 플레이어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개발 노선은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게임을 만드는 쪽이나 플레이하는 쪽이나 복잡하게 여길만한 구석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스타필드>랑 달리 주류화된 CRPG가 아닌 (시점 변환을 제공하지만) 고전적인 탑다운 RPG 게임이라는 점 역시 거대 자본한테서는 근심을 샀을 요소였을 것이다. 여기다 라리안 스튜디오 전작들보다도 더욱 방대해진 이야기와 세계관, 많은 이벤트 신을 요구하는 게임이었기에 개발 난도가 만만치 않았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와 라리안 스튜디오는 명백히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게임을 개발했으며, 성장 과정 역시 시대적 차이점도 있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개발 과정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1990년대부터 정착한 전통적인 게임 스튜디오의 발전 과정과 거대 IT 기업에서 볼 수 있는 월가 투자자본과 연계된 인수합병 과정을 밟아오면서 커진 회사다. 베데스다가 RPG 제작사로 시작한 1990년대 초중반은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는 ‘경제’를 형성할 정도는 아니었고, ‘셰어웨어’로 대표되는 대안적인 유통/발매 체계는 물리 매체와 게임 소매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인터넷 환경의 한계로 ‘셰어웨어’는 게임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방적으로 게임 일부를 보여주고, ‘정식판’의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유저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게임을 개발하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개인 제작에 머물고 있던 시절이었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 역시 기존 회사 경영/재정 관리 방식에 통달한 CEO 로버트 올트먼과 제니맥스 미디어가 개입하면서였다. 지금의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월가로 대표되는 거대 기업과 투자자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태다. 반대로 라리안 스튜디오는 기존 회사 경영이나 상장하고는 관련 없이 설립되고 운영되는 회사다. 우선 제이슨 슈라이어의 기사 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라리안 스튜디오는 최고경영자이자 디렉터인 스벤 빈케와 그의 아내가 소유한 개인 회사에 가깝다. 그렇기에 라리안 스튜디오는 게임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주주들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슈라이어는 동시에 이런 구조의 회사는 위험 부담 역시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디비니티 시리즈 첫 작품인 <디바인 디비니티>는 그럭저럭 성공했지만,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후속작 <비욘드 디비니티> 개발 당시엔 회사 인원이 3명 밖에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비화가 있다. 그럼에도 라리안 스튜디오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성공 이후로도 개인 기업 체제하에 특정 장르와 취향의 게임을 만들고 있다. 이 점에서 있어서 라리안 스튜디오는 중소기업 규모 하에 꾸준히 특정 취향의 JRPG를 만들어 흑자를 내는 니혼 팔콤하고도 비슷하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상장 회사 체제하의 다작하는 니혼 팔콤과 달리, 라리안 스튜디오는 크라우드펀딩 같은 ‘후원 경제’의 도움이 컸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라리안 스튜디오를 견인한 ‘후원 경제’의 양태다: 라리안 스튜디오의 지지 기반은 흔히 볼 수 있는 과거의 영광 재현보다는 순수한 장르 매니아들의 입소문과 지지에 가까웠다. 사실 라리안 스튜디오는 과거의 영광이라고 할만한 게 별로 없었던 회사였다. <디비니티> 초기작은 소소하게 성공한 편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지지 기반은 미약했던 편이다.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은 킥스타터로 대표되는 ‘후원 경제’ 형성기였던 2010년대 초중반에 등장한 프로젝트였지만, 정작 펀딩 당시엔 (<발더스 게이트>를 배급한 인터플레이 출신도 포함된) 기존 선점자들에게 밀려서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은 결과적으로 고전 RPG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는 데 성공하면서, 선점자들보다 훨씬 더 ‘후원 경제’ 붐을 적극적으로 타고 고유의 팬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팬층 형성은 여타 크라우드펀딩을 받은 과거 영광을 누렸던 개발자들과 달리 영광스러운 과거가 없었기에, 더욱 과감하게 재해석할 수 있었다는 점도 컸다. 요컨대 라리안 스튜디오는 과거에 가진 게 별로 없었기에, 시대의 조류에 얻을 게 많았던 포지션이었다. 사실 <발더스 게이트 3>는 ‘후원 경제’로 성장해 어느 정도 체급을 키운 회사의 거대 프로젝트에 가깝다. 새로 설립된 지사를 제외하고도 본사 인원만으로 200명이나 동원했으니,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을 만들던 시절의 라리안 스튜디오하고 같다고도 볼 수 없다. 이렇게 보면 많은 게임 커뮤니티의 조롱감이 되었던 “그들은 운이 좋았다”로 요약할 수 있는, 제이슨 슈라이어나 자비에 넬슨 주니어 를 비롯한 업계 사람들의 주장도 틀린 것도 아니다. 슈라이어의 지적대로 개발 방향성에 비교적 자유로운 인디 게임 제작사는 라리안 스튜디오만큼 자본이나 인력을 투입할 수 없을 것이며, 반대로 라리안 스튜디오 이상으로 자본과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같은 개발사에서는 이런 기획이 통과될 가능성이 극히 낮다. 통과되더라도 상업적 타협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지점에서는 <발더스 게이트 3>는 프랜차이즈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가 라리안 스튜디오의 방법론에 신뢰를 보냈기에 가능했던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이랑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의 얼리 액세스는 거의 완성된 게임을 다듬어가고 보충해가는 비교적 전형적인 얼리 액세스였다면, <발더스 게이트 3>의 얼리 액세스는 무모할 정도로 긴 시간을 들여 팬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어 간 쪽에 가깝다. 물론 얼리 액세스 스케줄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었는지 발매 후 내정되어 있던 콘텐츠가 삭제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이 정도면 프랜차이즈 소유주자 투자자로서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가 라리안 스튜디오에 많은 신뢰와 편의를 봐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발더스 게이트 3>의 ‘후원 경제’를 신뢰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수용한 개발론이 대대적으로 성공했다는 점은 2023년 비디오 게임계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이라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발더스 게이트 3> 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돈을 내고 참여한 계층은, 거대 투자자본의 냉정한 시장 분석에 따르면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거금을 투자하기엔 손실이 따른다고 판단한 게임 장르의 팬들이었다. 이 팬들은 단순히 고전 RPG 장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하이퍼 FPS, 2D 플랫포머, 공룡 시뮬레이터 등… 200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ESD와 얼리 액세스, 크라우드펀딩의 등장, 인디 게임 시장의 체계화는 거대 투자자본에 소외당한 ‘팬덤’들이 대안적으로 자본과 경제를 형성하고 지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왔다. 얼리 액세스를 기반으로 커뮤니티와 소통하며 진행하는 개발 방법도 프론티어 디벨롭먼트의 <플래닛 코스터>를 비롯해 사례들이 나오고 있었다. <발더스 게이트 3>의 대대적인 성공은 (자신들을 믿고 원하는 게임을 만들어달라는) ‘후원 경제’의 파급력이 인디와 팬덤의 영역을 넘어서 주류의 영역으로 올라왔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거대 자본의 투자와 베테랑 제작사의 야심에 차 보이지만 실은 안전하게 검증된 개발 노선으로 구성된 <스타필드>가 좋은 평을 듣지 못한 것과 대조해보면, 게임 유저들이 AAA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거대 자본이 판을 짠 안전한 AAA 게임 개발론에 진력을 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후원자들은 르네상스 시절 귀족들이 예술가나 공예가들에게 수공예품을 주문 제작하듯이, 게임 개발사가 돈 걱정하지 않고 후원자 자신들의 취향을 반영해준 게임을 만들어주길 원한다. 다만 르네상스 귀족 후원자들의 후원이 계급 권력을 통해 예술품이나 공예품을 독점하면서 특권을 누리기 위한 도구였다면, 이 새로운 후원자들의 후원은 공통된 취향을 지닌 익명의 소비자들이 기존 자본 권력에서 소외된 취향을 복권하고자 한다. 물론 이런 후원 경제가 항상 긍정적인 현상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며, <발더스 게이트 3>의 개발 과정은 근래 비디오 게임 개발 역사 중에서도 보기 드문 실험이자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라리안 스튜디오가 향후 만들 게임에서 이 실험을 계속 택할지는 알 수 없다. 차기작 개발에 6년이나 투자하고 싶지 않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 개발을 하고 싶다는 스벤 빈케의 인터뷰 를 참조하면, 라리안 스튜디오의 차기작은 <발더스 게이트 3> 같은 개발 노선을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그저 운과 상황이 좋았던 짧고 행복했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후원 경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투자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발더스 게이트 3>의 성공은 2023년 비디오 게임계의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산업 전체가 <발더스 게이트 3>와 같은 길을 가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몇몇 혁신가들에게는 탐구해볼 만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비디오게임과 기이한 유령들의 세계
비디오게임에서 유령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물론 다들 이것이 꽤나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유령은 수많은 비디오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슈퍼 마리오」시리즈의 부끄부끄부터 「F.E.A.R.」 시리즈의 알마까지, 비디오게임에는 다양한 아이코닉한 유령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nin Lee Writes and lectures freely across comics, games, and film. A lifework: clearing every Final Fantasy title except the MMORPGs. Mainly plays on the Steam Deck.
- 우리가 했다 번역을 - 한글 패치 30년의 흐릿한 역사
유저 한국어 번역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저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록을 성실하게 남기지도 않았고, 그 기록은 현재 대다수가 소실되어 있다. 또한 다수의 초기 번역 팀은 폐쇄적으로 작업했기에 사료가 존재한다 한들 그 존재를 인지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 Back 우리가 했다 번역을 - 한글 패치 30년의 흐릿한 역사 29 GG Vol. 26. 4. 10. ‘카르멘 샌디에고 시리즈’라는 게임 시리즈가 있었다. 장르를 분류하자면 퀴즈에 가까웠고, 상업 분류로는 교육용 게임이었으며, 지리나 역사 퀴즈의 해답을 모아 단서를 조합해 알맞은 지역이나 역사 시대에 숨은 범인을 찾는 형식이었다. 85년 이후로 발매되었고, 어떤 작품은 소프트랜드 유통으로 한국에 정식 발매되었다. 교육용 게임이었던지라 게임을 혐오하던 부모님은 이 게임을 사주기로 하였고, 게임이라면 다 좋아했던 시절의 어린 나 자신도 관심이 갔다. 아마도 가물가물한 기억에 따르면 우주편이었던 것 같은데, 결국 사놓은 게임을 플레이할 수는 없었다. 번역이 되지 않은 영문판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흘러, 국내산 게임이 등장은 했어도 여전히 수많은 게임은 영어와 일본어로 제작되어 유통(합법과 불법 모두!) 되었다. 잡지와 소문에서는 어떤 게임이 재밌다고 하더라도 그 게임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킹스 퀘스트’나 ‘인디아나 존스’ 같은 고전 어드벤처의 명작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명령어 단어 정도에 불과했다. 같은 불편을 겪는 사람들은 많았고, 이들을 돕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90년대 초반의 콘솔용 롬팩의 파일에 접근해 게임의 폰트 데이터를 고친다거나, 도스 게임의 폰트를 고치는 방식을 통해 한글이 출력될 수 있도록 하는 ‘꼼수’를 시도한 사람들이 PC통신 자료실에 결과물을 올렸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이 구전을 증명 혹은 재구하려면 당시 PC통신의 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하는 작업과 소문의 근원을 추적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1997년,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동급생’의 한국어 번역이 이루어졌다. 정식 유통 라인에서 발매한 것이 아니라 유저들이 직접 폰트 파일과 출력 시스템에 접근해 뜯어고쳐 만든 번역이었다. 여러 기록과 많은 기억은 이 당시의 ‘한글 패치’를 한누리라는 팀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게임동아의 2017년 8월 1일 기사 (90년대 PC용 성인게임 특집, 당신은 ‘동급생’을 아십니까?)에서는 파랑새라는 팀이 만들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후일 ‘하급생’의 유저 번역을 한 파랑새 팀, 혹은 ‘동급생’의 복사방지 락을 해제한 유저 파랑새와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 Gemini는 이러한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크로스체크 결과, 이것이 사실에 가장 부합해 보인다. 이것이 유저 번역의 초창기 상황을 재구성하는 어려움이다. 1차 사료가 될 당시 기록은 사라진 지 오래 되었고, 1차 사료를 증언하는 2차 사료조차도 인터넷의 초창기 시절 기록이다 보니 사라졌거나 디지털 풍화를 여러 번 거쳐 검색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위치에 있다. AI조차도 이를 직접 찾아내지 못하고 학습 데이터의 일부로만 인식한다. 게다가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은 당시의 회고마저도 수집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글에서 시도하는 역사의 재구성은 오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려는 이유는 유저 번역이 시도되는 역사의 꾸준함이 주는 낭만성이 있기 때문이다. 1. 태초의 팀, 한누리 한누리가 최초의 유저 번역 시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초의 유저 번역 팀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게임에 쓰인 문자를 번역하자고 상정한다면, 일단 해당 언어를 구사하는 언어 능력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 것이, 넘어야 할 컴퓨터공학의 기술적 장벽이 여럿이다. 일단 라틴어 계열 문자 혹은 일본어 문자 위주로 만들어진 폰트 체계를 한글의 폰트 체계로 바꿔야 한다. 그런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우회로를 만들어야 한다. 이건 해킹에 속하는 프로그래밍의 영역이다. 따라서 프로그래머가 필요하다. 폰트 입력 루트를 확보한 후에는 폰트를 만들어야 한다. 당시 방식으로는 픽셀 하나하나를 찍고 조합해 새로운 폰트를 만들어야 했다. 누군가가 픽셀을 하나하나 찍고 조합해 폰트를 만드는 지난한 작업을 끝내고, 이 폰트로 번역된 내용을 입력한다 해도 만들어진 번역 텍스트가 게임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원문 텍스트를 빼내어 번역자에게 주고, 번역자에게 번역 텍스트를 받아 다시 집어넣을 수 있다. 그러면서 개발사가 어떤 방식으로 게임 데이터를 압축하고 암호화했는지도 알아내야 오류 없이 봉합을 마칠 수 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필요한 프로그래밍의 분야다. 언어를 번역하는 파트 또한 그렇게 쉽지 않다. 영화 자막 번역과 마찬가지로, 글자 수의 제약이 있었다. 원문보다 번역문이 지나치게 길면 게임에 오류가 생겨버린다. 심한 오류의 경우엔 아예 게임이 다운되어 버렸다고 한다. 번역, 프로그래밍, 폰트 디자인 등 여러 분야의 능력이 필요해졌기에 결국 팀이 만들어지고, 그 첫 시도 중 성공 사례가 한누리인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최초일 가능성은 적지만, 태초일 가능성이 높은, 태초의 팀이다. 한누리가 선택한 팀 모델은 이후 하급생을 번역한 파랑새 팀 등의 후속 주자들에게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쯤에서 왜 ‘한국어 번역’이 아닌 ‘한글 패치’였는가에 대한 가설을 제기할 수 있다. 본디 한글로 표현하는 말이 한국어 하나뿐인 한국어의 관습에서 한국어와 한글은 종종 혼용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번역 작업 프로세스에 한글 체계를 폰트화하여 이식하는 프로세스가 중요한 단계로 존재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한글 자체를 집어넣어서 패치 수준으로 프로그래밍을 더해야 하다 보니 ‘한글 패치’라는 단어가 당시의 이 분야 언중들에게는 올바른 개념 표현으로 여겨졌을 수 있다. 2. 유저 번역의 맹점, 팀 한글날 이상의 시도는 상대적으로 게임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이 손쉬운 PC 게임에서 더 자주 이루어졌다. 반면 상대적으로 훨씬 데이터 접근이 어려운 콘솔 게임의 영역에서는 별도의 장비와 추가적인 프로그래밍 기술이 필요하기에 시도가 훨씬 적었다. 롬 파일에 접근하는 장비가 없어도 되는, 에뮬레이터 기술이 보급된 90년대 말부터는 이런 시도가 조금 쉬워진 모양이다. PC통신의 에뮬레이터 동호회 등지에서 번역 실험이 있었다는 단발성 회고가 이따금 보이며, 그 중에서 ‘pjs’라고 통칭되는 어떤 사람의 영웅담이 가끔 관찰된다. 이 사람이 실존했고 번역 작업을 실제로 한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크로노 트리거’의 슈퍼패미컴 판의 유저 번역을 한 사람이 가능성이 높다. 다만 명확한 기록이나 회고를 찾을 수는 없는 상태다. 거의 성과가 없던 콘솔 게임의 유저 번역은 기술이 발전한 2000년대 중반부터는 활성화 되기 시작했다. 팀 한글날은 휴대용 콘솔 기기, 당시는 NDS와 PSP, 의 게임을 유저 번역하던 팀이었다. 최초 번역작인 ‘몬스터 헌터 포터블 세컨드’로 이름을 알렸고, ‘스즈미야 하루히의 약속’을 비롯해 ‘사일런트 힐: 오리진’ 등의 번역을 해냈다. * ‘몬스터 헌터 포터블 세컨드G’의 번역본 로고 화면 하지만 팀 한글날의 활동 즈음부터는 유저 번역의 법적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팀 한글날이 번역문을 게임에 집어넣는 방식은 폰트를 펌웨어 내 메모리 영역에 직접 넣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팀 한글날이 따로 만든 커스텀 펌웨어, 일종의 대체 프로그램이 따로 필요했는데 이는 개발사가 인정하지 않은 경우 명백한 저작권법 위반이다. 기존 프로그램을 개변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나 이를 배포하면 불법이 되는데다가, 이 과정에서 게임 프로그램 전체를 불법 복제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캡콤 코리아는 유저 번역의 배포 중단을 요청했고, 팀 한글날은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구성원 몇몇의 병역 수행, 번역본 이용자 몇몇의 악성 민원 등도 해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3. 가변적 연대, 팀 왈도 팀 한글날과 비슷한 시기에 제시된 오픈소스 형식의 번역 팀이 있었다. 팀 왈도. 전설적 오역으로 유명한 ‘마이트 앤 매직 6’의 “힘세고 강한 아침”에서 따온 팀명이다. * AI 자동 번역도 아닌 공식 번역인데도 일부러 오역을 하기 위해 공들인 것 같은 저 결과물은 후세의 밈이 되어 팀 왈도의 팀명까지 오게 되었다. PC 게임 중에서 공식 번역이 없는 게임을, 왈도처럼 날림으로라도 번역을 해보자는 동기로 만들어진 팀 왈도는 이전이후의 번역 팀과 다르게 고정된 조직이 없었다. 자발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총대를 맸으니 ‘총대’라는 리더가 되고, 총대가 모은 인력은 해당 작업만 수행하고 작업이 끝나면 흩어진다. 번역과 프로그래밍과 검수를 맡는 이 인력은 흔히 ‘핫산’으로도 불렸다. 이는 극우 만화가 최지룡의 95년작 만화 ‘여로’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박봉을 받으며 노예처럼 일하는 핫산이 2014년 경부터 밈이 되면서, 아마추어인 자신들은 보상 같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식으로 역설적 의미 확장이 일어났다. 아마추어 번역 팀인 팀 왈도의 인력 또한 이런 의미로 자칭 핫산이 되었다. * 최지룡 - 여로 팀 왈도는 그간 쌓여온 번역 팀의 노하우를 체계화했다. 탬플릿화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2010년대 이후의 게임은 텍스트 번역량이 이전의 게임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에 번역량이 엄청나게 방대하다. 총대가 사람을 모으고 번역의 기초 설정을 잡으면, 프로그래머가 기술적 뼈대를 잡는다. 번역문을 다룰 때는 구글 스프레드시트와 같은 온라인 협업 툴을 사용해 많으면 수백까지도 달하는 다수의 ‘핫산’들이 한 문서에서 협업 번역을 한다. 이때 고유 명사나 작중 개념 용어 같은 것은 총대와 몇몇 간부급들이 작성한 용어 시트의 공유로 번역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이 용어 시트는 초벌 번역을 검수하는 검수 인력들에게도 유용하다. 이렇게 체계화된 업무 분장이 발전된 역사는 ‘매스이펙트 시리즈’의 유저 번역에서 볼 수 있다. 1편의 경우엔 네이버 매스이펙트 팬 카페라는 동호회에서 번역이 이루어졌다. 전문성이 조금 떨어졌기에 미숙한 면이 있었으나, 2편의 번역은 팀 한글날 출신의 인력이 초반 작업에 참여하면서 약간의 체계화가 이루어졌다. 이 인력이 병역 문제로 이탈한 후, 번역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이 노하우를 학습해 릴레이로 번역을 이어갔다. 3편에 이르러서는 번역할 원문의 양이 수 배로 늘어났기에 팀 왈도의 체계화 방식이 적용되었다. 이를 집단지성의 업무와 전문성의 검수로 요약할 수도 있다. 팀 왈도를 집단지성으로 간주하면, 이해되는 오픈소스적 특성이 있다. 팀 왈도의 명칭은 원칙적으로 누구나 쓸 수 있다. 다만 이미 팀 왈도라는 이름으로 작업 중인 팀이 존재하는 경우엔 쓸 수가 없다. 동시에 불특정 다수가 참여할 수 있도록 특정 커뮤니티가 쓰는 내부자 성격의 밈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불특정 다수가 기여했으므로 만들어진 번역은 수정 및 재배포가 자유롭다. 이 형태의 명맥은 현재까지도 팀 왈도의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가변적이지 않은, 조직적 분업으로 뭉치는 기존 형태의 팀도 계속 생기고 없어졌다. 특히 한필드, 한글이 필요하면 드리겠습니다라는 팀은 2012년 11월에 등장해 1년 조금 넘는 시간만 활동하고 사라졌고 ‘책임감이 부족해 보인다’, ‘너무 폐쇄적이다’라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이런 팀들의 작업 체계는 팀 왈도와 같은 열린 가변성의 팀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4. 공식 체계로의 편입 내부적으로 어떤 풍파를 겪어서 어떤 체계를 세우든, 어차피 유저 번역은 비공식이고 때때로는 불법이다. 대다수가 불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의외로, 유저 번역에 참여한 ‘능력자’ 중에서 실제 게임 번역 업계에 입문했다는 증언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유저 번역이 음성적 영역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몇몇 유저 번역은 공식 번역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더 위쳐 2’의 경우가 그렇다. 네이버 위쳐 팬 카페에서 수행한 번역 작업은 제작사 CDPR과의 협상을 통해 공식 한국어 버전으로 인정받았다. 터키어 유저 번역이 공식으로 인정받은 것을 보고 문의한 것이 정식 인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례가 저렇게 깔끔한 것은 아니었다. 비슷한 일이 ‘다키스트 던전’과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에서도 있었는데, 이쪽은 인정 및 계약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다키스트 던전’의 사례는 제작사 레드훅이 유저 번역을 인정하겠다, 아니 인정하지 않고 정식 번역을 하겠다, 유저 번역은 소유권 문제가 있다, 사실 소유권 문제는 해결되어 있었다, 하는 식으로 태도가 계속 변했다. 여기에 정식 한국어 번역의 심각한 오역과 낮은 질이 문제가 되었고, 이에 훨씬 질이 좋은 유저 번역이 성행하자 레드훅은 새로운 번역 퍼블리셔를 통해 새로운 번역을 했다. 이 과정에서 유저 번역은 최소 경쟁자 역할, 최대 참고 레퍼런스 역할을 했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의 경우엔 팀 왈도가 소집되어 작업을 했는데, 당시 초반 총대를 맡은 유저의 회고 에 따르면 제작사 라리안 스튜디오의 푸대접 문제가 있었다. 자신들의 작업이 공식 번역으로 채택이 되어 작업을 했는데, 이에 대한 임금이 체불된다거나 의사소통과 대우에서 상당히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거나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협화음도 시간이 지나며 차츰 진정되어 갔다. ‘더 위쳐 2’라는 모범 사례가 있기도 했지만, 모드의 활성화가 유저 번역의 적용을 용이하게 했다. 특히 스팀에서 유저 모드를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기능을 지원하면서부터는 유저 번역이 모드의 하나로 편입되게 되었다. ‘림월드’, ‘언더테일’ 등의 히트한 인디 게임의 유저 번역이 모드의 형태로 적용이 되었고, 이 단계에 와서는 공식 번역으로 인정을 받을 필요조차 없어졌다. 5. 동기를 추측 혹은 재구성하기 그러나 유저 번역 또한 번역이라, 매우 지난한 작업이다. 번역 자체도 고된 일인데 이를 검수하는 것은 그 이상의 업무이며, 유저 번역의 경우엔 제작사의 지원이 없이 독자적으로 번역문을 끼워넣을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해야 한다. 이것이 되는 인력을 모으고 체계를 잡는 리더의 역할 또한 어려운 업무다. 쉽게 뛰어들 수 있는 일은 아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유저 번역에 참여했다. 기실 나 또한 ‘매스 이펙트 2’의 번역 작업에 대화문 몇 줄이나마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의 개인적 동기는 별 것 없었다. 첫 번째는 ‘이 게임을 내 모어(母語)로 하고 싶다’는 개인적 동기다. 가장 원초적인 동기일 것이고, 아마 모든 참여자들이 이 동기를 첫 번째로 갖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혼자 해낼 수 없는 분량일 테니 팀을 모으고 총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째 동기도 만들어진다. ‘이거 해낼 수 있겠다’는 동기다. 협업을 하면 내 업무는 감당 가능한 규모로 줄어들고,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어진다. 계산이 잘못 되어 개개인이 감당 할 수가 없으면 팀이 깨지고 번역을 포기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가끔 세 번째 동기도 있었을 것이다. 프로그래밍과 번역을 업으로 하거나 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직업적 경험을 쌓을 기회로 유저 번역을 활용할 수도 있다. 또한 네 번째 동기, 게이머 커뮤니티 내에서 모모한 번역에 참여했다는 크레딧은 충분한 명예가 될 수 있다. 인정 욕구는 언제나 목마른 법이다. 그리고 이 크레딧은 세 번째 동기인 직업 포트폴리오 구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부분은 실제로 유저 번역 참여 경험을 이용해 해당 업계에 진출한 사례가 많이 있는지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또한 다섯 번째 동기도 가능하다. 이 게임의 저변을 넓히고 싶은 욕구. ‘스타 시티즌’의 경우엔 게임 내 거대 길드 셋이 연합하여 유저 한국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인데, 디스코드 채널과 연계되어 게임의 신규 유입자를 안내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 이런 동기 – 회고가 많지 않으니 추측 혹은 재구성한 동기는 개인적인 욕망이 공공 이익에 복무한 과정을 이어주는 가교가 된다. 나와 내 주변을 위해, 내가 하는 게임을 위해, 이 작업이 재미있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내 장래에 도움 될 경험일 것 같아서, 그래서 참여한 것이 게이머 다수의 이익이 된 것에는 철학적 혹은 사회학적 낭만이 있다. 유저 한국어 번역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저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록을 성실하게 남기지도 않았고, 그 기록은 현재 대다수가 소실되어 있다. 또한 다수의 초기 번역 팀은 폐쇄적으로 작업했기에 사료가 존재한다 한들 그 존재를 인지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인공지능으로 최대한의 사료를 찾아내고, 자연지능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료의 내용을 추측해봤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기한 내용은 빈약할 것이고 오류를 포함할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후속 연구는 필요하다. 저 낭만적 공공 이익의 역사가 소실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방치형RPG 비판 - 동시대 게임의 사회적 상상력의 문제
2010년대에 ‘방치’는 많은 비디오게임(이하 ‘게임’)의 핵심적인 플레이 방식으로 자리잡았고, 심지어 새로운 장르인 ‘방치형 게임(idle game)’까지 형성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게임 매체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모바일 게임의 성장을 추동했는데, 가령 캐주얼 모바일 게임인 ‘타비카에루(旅かえる)’는 5년 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게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Back 17 GG Vol. 24.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ivist, Writer) Deng Jian (邓剑) Associate Professor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Soochow University. Focuses on digital game cultural studies as a primary research interest, and writes a column on games, among other pieces, for The Paper. (Activist, Writer) Myeonggyo Hong Activist and writer. Works at the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Platform C on East Asian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social movements. Author of To My Vanished Chinese Friend and A Ghost Throws a Punch at the World, and translator of Xinjiang Uyghur Dystopia and Dying for an iPhone (co-translated).
- Playing with Shivering Bodies: Expectation, Exploration, Perception
The dark hallway I walk through seems to be deserted. I can only hear my own steps and the eerie soundscape of the cranking metal pipes surrounding me, and can barely see what lays beyond the light of my flashlight. I’m afraid, as I don’t know if something is waiting in the shadows for me. As I enter the next room, I hear heavy breathing and as the light catches a mutilated body, in between the dead and living, I feel my stomach contract from disgust.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ska Mayer
- Why is the Korean Console Market Size so Small? - A Retrospective of Korean Console Games
I have a vague memory of a time when I was in upper elementary school, sometime in the early 90's or so, but I can’t recall the exact year. I had gotten a "gaming console". I think I won it in a magazine giveaway. Given the age, I can assume what model it was, but I can only make an assumption. I also do not recall the exact model.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불멍을 넘어, 소비자본주의 너머: 게임 〈리틀 인페르노〉 비평(우수상)
물건을 태워서 종잣돈을 늘리고 새로운 물건을 해금한다. 그리고 일종의 업적이기도 한 특정 물건의 조합을 찾아 태우는 재미는 분명 게임으로서의 즐거움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주된 게임성을 경험하게 하는 시스템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회의하고 그 밖을 사유하기를 적극적으로 재촉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세지가 게임적 시스템과 충돌한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woon Kim Driven by an interest in the indie music scene, devoted to research in the sociology of art and to (concert) photography. Took on the English translation of The Woman Does Not Exist, a book on Lacanian psychoanalytic philosophy.
- 보는 게임, 그 충족되지 않는 욕망 - 핀볼과 월드플리퍼 사이에서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희소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왔다. 쾌락에는 상대적 희소성이라는 맥락이 필요하며, 너무 많으면 지루해진다. 무엇보다 쾌락이 ‘래칫 효과(rachet effect: 수준이 한번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지 않는 효과)’를 일으켜, 자연과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화되지 않은 쾌락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포장된 쾌락은 전에는 귀하고 드물었던 것을 흔하고 따분한 것으로 만든다. 결국 포장된 쾌락 바깥 세계에 대한 흥미가 점차 약해지며 우리는 더 이상 그 세계를 열망하지 않게 된다. 내가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월드플리퍼〉의 포장된 쾌락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Back 보는 게임, 그 충족되지 않는 욕망 - 핀볼과 월드플리퍼 사이에서 03 GG Vol. 21. 12. 10. 1. 두 아이 아빠의 게임 라이프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털어놔야겠다. 지난 몇 년 동안 게임을 즐길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저런 글 쓰는 일을 생업으로 가진 탓에 늘 마감에 쫓긴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두 아이가 반긴다. 둘 다 아직은 엄마, 아빠의 손이 많이 가는 나이다. 아내와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과 잠시나마 놀아준다. 고집 센 아이들을 설득해 씻기고 재우면 대략 밤 10시다(정신적·체력적으로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다). 이때부터 명목상 자유시간이지만 대개는 밀린 업무를 마무리하게 된다. 어쩌다 여유가 있더라도 게임기로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1~2시간 만에 끝낼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오늘밤 게임을 저장하면 언제 다시 데이터를 불러낼지 기약할 수 없다. 한 번 흐름이 끊긴 게임을 다시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최근 육퇴 후 아내와 함께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하겠노라며 큰마음 먹고 패키지 버전을 2개나 구입했지만, 한 달 동안 고작 ‘아시라 세트’를 맞춘 것이 전부였다. 아내는 둘째를 재우다 그대로 잠드는 날이 많았고, 아이가 깰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서 몇 번의 솔로플레이를 하다가 새로운 업무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게임에서 멀어졌다.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사냥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라서 플레이 시간이 늘어나면 업무는 물론, 가족과의 일상이 대검에 썰려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인생이라는 맵에서 홀로 사냥하던 시즌1은 끝났다. 시즌2에서는 두 아이가 동반자 아이루(몬스터헌터의 고양이 서포터)처럼 늘 함께한다. 아침에 두 아이를 등원시키려면 일찍 잠을 청해야 한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바깥 활동을 하니 평일보다 더 여유가 없다. 부족한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40대 중반에 접어드니 체력은 물론, 집중력도 예전 같지 않다. 〈몬스터헌터〉처럼 컨트롤이 필요한 게임은 오래 붙잡고 있기가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모처럼 여유가 있을 때는 게임기를 켜기보다 넷플릭스에 접속한다. 궁금한 게임이 있으면 유튜브 영상을 본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내 삶에 게임이 끼어들 공간은 거의 없는 셈이다. 2. 자동화된 게임: 핀볼과 〈월드플리퍼〉 이런 두 아이의 아빠가 오랜만에 빠져든 게임이 있다. 사이게임즈에서 개발한 〈월드플리퍼〉다. 복고풍 도트그래픽으로 핀볼 게임과 RPG를 접목한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플레이어는 6명의 캐릭터(메인 3명, 서브 3명)를 조합해 파티를 구성하고, 핀볼처럼 디자인된 맵(스테이지)에서 적을 물리치게 된다. 화면 하단 플리퍼로 구슬 대신 캐릭터를 날려서 적을 공격하는데, 캐릭터를 터치하면 적에게 돌진할 수 있고, 게이지가 쌓이면 고유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일본식 RPG의 소위 ‘몸통박치기’를 핀볼 게임과 적절하게 섞은 느낌이다. 핀볼 게임이 그렇듯 이 게임도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그리 많지 않다. 타이밍에 맞게 플리퍼를 터치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스킬을 쓰는 것이 전부다(애초에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는 게 아니라 플리퍼로 날린 뒤 지켜보는 구조다). 그래서 게임 플레이 중 대부분의 시간은 조작보다 캐릭터의 움직임과 득점을 ‘지켜보는 데’ 할애된다. * 〈월드플리퍼〉는 핀볼 개념과 RPG를 섞으며 자동 플레이에 대한 나름의 납득 가능한 지점들을 구현해낸 바 있다. 처음부터 플레이어의 개입이 최소화되어 있다 보니 ‘자동’ 기능을 사용해도 큰 이질감이 없다. 오히려 AI가 나보다 더 정확하게 적을 조준하고, 알맞게 스킬을 구사할 때도 있다. 그래서 컨트롤이 필요 없을 만큼 캐릭터가 성장하면 자동 진행은 어느새 옵션이 아닌 디폴트가 된다. 자동 플레이의 비중이 수동 플레이의 비중을 넘기는 시점부터 게임은 본격적인 ‘보는 게임’으로 전환된다. 그에 맞춰 게임의 핵심 재미도 변화한다. 플레이어는 캐릭터 육성에 필요한 재화를 얻기 위해 무수히 많은 핀볼 게임을 반복해야 한다. 처음 몇 번이야 재미를 주겠지만 반복이 거듭되면 단순노동으로 변질된다. 자동 기능은 이 ‘반복구조’를 대행해준다. 전통적인 RPG에서는 성장을 위해 지루한 구간(소위 레벨노가다)을 참고 인내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어른 게이머들은 이를 감당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시간을 투입하지 않아도 캐릭터가 성장한다는 것은 게임을 선택하는 이유가 된다. 결국 플레이어는 자동화를 통해 얻어진 재화를 전략적으로 분배하고, 성장한 캐릭터를 조합해 적을 효율적으로 제압하는 데서 재미를 얻는다. 자동 기능은 전체 게임 디자인의 일부이자 게임의 구조적인 재미를 작동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월드플리퍼〉가 플레이어의 개입이 최소화된 ‘핀볼’을 차용한 것은 꽤나 영리한 설정이다. 핀볼 게임의 구조가 ‘지켜보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오토 플레이로 전환시키고, 수집형 RPG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자동 기능을 합리화시키기 때문이다. 3. 플레이의 경계가 사라지다 ‘보는 게임’을 ‘플레이어의 참여가 최소화된 게임’으로 정의한다면 앞서 언급한 〈월드플리퍼〉를 포함해 자동 기능이 탑재된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이 아마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물론 말 그대로 비주얼과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에 주력하는 게임도 있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보는 게임’이란 시각적인 이미지에 관계없이 ‘플레이어의 개입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게임’으로 한정짓고자 한다. 따라서 화면을 보지 않고 ‘방치’하는 게임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보는 게임’에 포함될 것이다. ‘보는 게임’의 핵심은 ‘플레이의 자동화’다. 오늘날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에서 오토 플레이는 필수 기능으로 자리잡았다. RPG 장르의 자동 사냥은 물론, 캐릭터 조작 없이 클릭 한 번으로 공간을 이동하는 것도 일종의 오토 플레이 요소다. 진행이 자동화된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부분은 주로 습득한 재화를 배분해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보는 게임’은 그래서 이중적이다. 그것은 스스로 작동하는 게임화면을 바라보는 것이자 캐릭터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행위의 영역이 아닌 인식의 영역이다. 캐릭터의 성장을 지켜보고 개입하는 존재로서 플레이어는 게임 내부와 외부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제 게임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물리적인 하드웨어와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동화된 세계를 인식하고 떠올리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게임이 된다. 플레이의 경계는 무너졌다. 하지만 이런 열린 상태가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놀이는 본질적으로 ‘매직서클’의 경계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보는 게임’은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직장과 가정의 경계가 무너질 때 ‘워라밸’의 균형도 무너진다. 자동화된 놀이가 생활과 인식의 영역으로 침범할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보는 게임’은 쾌락의 중심에 다가가지 못하고 늘 미끄러진다. 그래서 오랜 기간 게임을 즐겨도 욕망은 좀처럼 충족되지 않는다. 4. ‘보는 게임’의 기원 ‘보는 게임’은 스마트폰 등장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되었으나 게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초기부터 그 원형이 발견된다. 나는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에서 초창기 게임의 진화 과정을 아케이드 게임과 PC 게임이 서로 결합되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아케이드 게임이 캐릭터와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하는 형태로 발전했다면, PC 게임은 이야기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이런 관점에서 PC로 등장했던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장르는 ‘보는 게임’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등장하는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은 물론, RPG, 시뮬레이션 게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초기 PC 게임들은 물리적인 조작보다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지켜보는’ 형태로 발전했다. 여기에는 PC 플랫폼의 하드웨어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키보드’라는 입력도구는 조이스틱과 달리 문자를 입력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고, 초기 PC의 낮은 그래픽 성능은 움직이는 이미지보다 고정된 이미지와 텍스트 중심의 게임을 강제했다. 게다가 PC는 아케이드 게임과 달리 긴 플레이 시간을 보장했다. PC 플랫폼에서 게임의 플레이 타임은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저장 기능은 게임 플레이가 일상생활에서 적절하게 끊어지고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왔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런 PC 게임의 특성이 극대화된 장르 중 하나다. 〈삼국지〉나 〈문명〉 시리즈는 대부분 명령을 내리고 그 결과를 지켜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PC라는 업무용 하드웨어가 비디오게임과 결합되면서 그 게임 스타일도 마치 직장에서 업무 지시를 내리듯 사무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실 당시에 PC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은 놀이라기보다 업무에 더 가까웠다. 어쨌든 이런 ‘보는 게임’의 흐름은 2000년대 웹 게임을 거쳐 스마트폰 게임으로 이어진다. 5. ‘보는 게임’은 어떻게 게임시장의 주류가 되었을까? 과거 PC라는 하드웨어의 등장으로 새로운 게임 장르가 등장했던 것처럼 스마트폰이라는 하드웨어는 ‘보는 게임’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24시간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터치스크린’ 단말기는 PC가 그랬듯이 캐릭터를 조작하기가 불편했다. 뭔가를 보고 조작하기에는 화면이 너무 작았고, 물리버튼이 없어서 정교한 컨트롤도 어려웠다. 오토 플레이 기능은 이런 하드웨어의 한계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24시간 플레이가 가능한 개인화된 기기라는 점도 오토 플레이에 영향을 미쳤다. 스마트폰은 네트워크에 연결된 채 언제 어디서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상태로 플레이어 곁에 대기 중이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플레이어는 24시간 스마트폰을 들고 있을 수 없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동일하지 않고, 대부분의 온라인 모바일 게임은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혹은 비용을 더 지불한)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흘러간다. 늘 손안에 있는 하드웨어, 항상 게임에 접속할 수 없는 플레이어, 시간을 두고 벌어지는 게임 내 경쟁구조. 이 세 가지 요인이 맞물리면서 ‘자동 사냥’ 혹은 ‘오토 플레이’라는 새로운 기능이 탄생한다. 물론 하드웨어 특성만으로 ‘보는 게임’이 주류가 된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보는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게임이 재미를 만들어내는 구조와 더불어 오늘날 수용자들의 게임 플레이 환경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게임을 ‘선택’한다는 것은 취향은 물론 자신의 플레이스타일과 라이프사이클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아무리 게임이 재미있어도 플레이하는 과정이 내 삶의 파장과 맞지 않으면 버려지게 된다. 우리 집 책꽂이에 방치된 닌텐도 스위치와 〈몬스터헌터 라이즈〉처럼 말이다. 그리고 내가 바쁜 와중에도 꾸역꾸역 어떻게든 즐기는, 아니 즐기는 것이 용인되는 〈월드플리퍼〉처럼 말이다. 여러 모바일 게임 중에서도 〈월드플리퍼〉가 내 삶의 틈새로 구슬을 날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게임은 각각의 플레이 과정이 작은 단위로 분절되어 있다. 레벨에 따라 편차가 있긴 하지만 하나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3분 정도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이 게임이 나에게 재화를 빨리 모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월드플리퍼〉에는 유저간 PVP가 없다. 경쟁 요소가 거의 없다보니 캐릭터 수집이나 성장에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한정된 자원으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과정이 즐겁다. 멀티 플레이도 마치 솔로 플레이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다. 3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진행하는데, 타인의 생성한 룸에 참여하면 행동력을 소모하지 않는다. 알람 신호가 울리면 클릭해서 참여하고, 오토 플레이가 종료될 때까지 기다리면 재화를 얻을 수 있다(물론 이벤트 난이도에 따라 컨트롤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채팅 기능이 없어서 커뮤니케이션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이런 특성 덕분에 나는 일상생활에서도 부담 없이 멀티 플레이에 참여해 재화를 모을 수 있다. 일하다가 알람이 울리면 클릭해서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도중에 전화가 오거나 접속이 끊겨도 자동 전투는 끝까지 진행되고, 그에 따른 보상도 받을 수 있다. 집중이 필요한 업무를 할 때는 이마저도 어렵지만 간단한 업무를 할 때는 충분히 병행 가능한 수준이다. 이렇게 해서 일과 게임을 동시에 처리하는 신인류가 탄생했다(멀티태스킹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6. 시간은 없지만 게임은 하고 싶어 누군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것처럼, 나 역시 시간이 없지만 게임은 하고 싶다. ‘보는 게임’은 그런 어른 게이머의 모순된 욕망을 어느정도 충족시켜준다. 일과 게임의 밸런스, ‘워게밸’이 가능하다고 합리화하면서 스마트폰에 게임을 설치한다. 하지만 불온한 멀티태스킹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일과 게임, 둘 다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외치는 탓이다. 처음에는 똑같이 아껴주겠다고 다짐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균형은 무너진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는 결국 게임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게임은 그동안 발생한 ‘매몰비용’의 영수증을 들이대면서 붙잡는다. 오래 붙잡은 인연일수록 끊어내기란 쉽지 않다. 물론 누군가는 일을 잠시 밀쳐두고 게임의 손을 잡아줄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삶의 조건에 맞게 수많은 게임들이 소비된다. 슬라보예 지젝은 자본주의 욕망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상품으로 ‘다이어트 코크’를 이야기한다. 다이어트 코크는 카페인과 설탕이 제거된 콜라다. 우리는 가짜 콜라, 유사 콜라를 마시면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원래의 핵심이 제거된 콜라를 마시면서도 기존에 느꼈던 ‘청량감’과 ‘각성효과’를 기대한다. 다이어트 코크를 마시면서 오리지널 콜라를 욕망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욕망을 극대화시킨다. ‘보는 게임’도 어쩌면 그런 다이어트 코크 같은 존재가 아닐까? 콜라에 카페인과 설탕이 필요하듯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요구된다. 이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마땅히 지불해야 할 일종의 기회비용이다. 하지만 우리는 쾌락을 위해 자신의 노동시간을 마음껏 투입할 수 없다. 그래서 게임회사는 우리가 게임에서 누려야 할 플레이 시간을 제거한다. 바로 일상을 방해하는 해로운 성분이 제거된 ‘보는 게임’이다. 사실 게임을 즐기는 이유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그 몰입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보는 게임’에는 그 본질적인 부분이 제거되어 있다. 마치 카페인과 설탕이 제거된 다이어트 코크처럼 말이다. 나는 일하면서도 게임을 즐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했던 게임은 업무 사이에 던져진 또 다른 업무였을지도 모른다(유저들이 ‘일일퀘스트’를 ‘숙제’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본질이 제거되면서 욕망은 더욱 극대화된다. 무엇보다 해롭지 않다는 생각에(일상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더 많은 시간을 안심하고 게임에 투입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투입한 시간은 결코 작지 않다. 7. 포장된 쾌락의 한계 게리 S. 크로스, 로버트 N. 프록터의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에서는 초콜릿, 담배, 사진, 축음기, 영화 등 ‘포장된 쾌락의 혁명’에 대한 내용들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이 책에 따르면 “테크놀로지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오늘날 사람들이 매우 쉽고 빠르게 열량을 섭취할 수 있게 했다.” 19세기 말부터 기업들은 지방, 당분, 염분 등을 농축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멀리 운반할 수 있도록 포장했다. 시중에 ‘포장된 쾌락’이 넘쳐나면서 미각, 시각, 청각 등 한때는 희소했던 감각들을 이제는 너무나 쉽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포장된 쾌락은 감각 경험의 강도를 크게 높였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마약이다. 씹거나 연기로 피우거나 차로 마셨던 아편은 모르핀, 헤로인으로 정제되었고, 새로 발명된 주사기를 통해 혈관에 직접 주입되었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담배회사는 새로운 가공법으로 연기의 맛을 순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연기를 폐 깊숙이 흡입하게 되었다. 제품 자체는 순해졌지만 오히려 건강에는 치명적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포장된 쾌락이 전달되는 과정을 주사기 같은 튜브에 빗대어 ‘튜브화(tubularization)’라고 부른다. 자연의 소리를 듣거나 공연장에 가는 대신 ‘아이팟’을 켜는 것, 짧은 기간에만 허락되었던 축제의 즐거움을 일 년 내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놀이공원’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이러한 관점은 비디오게임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즉, 기술은 사람들이 놀이를 즐기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고, 매우 쉽고 빠르게 재미와 쾌락을 충족시킬 수 있게 했다. 컴퓨터는 인간이 놀이를 위해 수행해야 할 것들, 이를테면 놀이도구의 배치, 규칙의 적용, 컴포넌트의 이동, 점수 계산 등을 기계가 대신하도록 만들었다. 비디오게임은 TV보다 상호작용성이 뛰어난 매체였지만, 한편으로는 놀이에서 인간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과거의 놀이를 생각해보자.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어린 시절 놀이들은 물리적인 공간에 친구들을 모으고, 몸을 움직여야 하며, 탈락하면 다른 친구들이 승부를 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놀이를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 대상, 시간이 필요했다. 즐거움을 얻기 위한 일종의 ‘허들’이었다. 비디오게임은 이런 허들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물론 접근이 간편해진 만큼 규칙은 복잡해졌다. 하지만 비디오게임 산업이 성장하고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게임은 점차 ‘튜브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 비디오게임은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편리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하드코어 게임들은 난이도를 대폭 낮추거나 ‘EASY MODE’를 추가했고, 닌텐도 DS와 Wii는 ‘캐주얼 혁명’을 일으켰다. 스마트폰은 이런 튜브화를 더욱 강화시켰다. 특히 모바일 플랫폼의 ‘보는 게임’은 자동화와 튜브화가 결합된 ‘포장된 쾌락’의 극단적인 형태다. 심지어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에서는 현실의 자본으로 보다 압축된 시간을 구입할 수 있다. 자동으로 진행되는 전투조차 곧바로 결과를 볼 수 있도록 스킵해 버리는 티켓은 더 빠른 ‘포장된 쾌락’을 위한 입장권이다. 무선 네트워크로 연결된 휴대용 모바일 기기는 언제 어디서나 24시간 서버에 접속된 게임환경을 제공한다. 주머니 속의 사탕을 꺼내듯 하드웨어를 꺼내서 플레이어가 개입하지 않은 채, 일상에 해롭지 않다고 여겨지는 쾌락을 마음껏 소비할 수 있다. 게임을 즐길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게임은 어쩌면 구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구원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오히려 이런 게임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과거에 즐겼던 게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마치 비디오게임을 시작하면서 구슬치기가 밋밋해진 것처럼 말이다.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희소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왔다. 쾌락에는 상대적 희소성이라는 맥락이 필요하며, 너무 많으면 지루해진다. 무엇보다 쾌락이 ‘래칫 효과(rachet effect: 수준이 한번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지 않는 효과)’를 일으켜, 자연과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화되지 않은 쾌락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포장된 쾌락은 전에는 귀하고 드물었던 것을 흔하고 따분한 것으로 만든다. 결국 포장된 쾌락 바깥 세계에 대한 흥미가 점차 약해지며 우리는 더 이상 그 세계를 열망하지 않게 된다. 내가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월드플리퍼〉의 포장된 쾌락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8. 1973년의 핀볼과 2021년의 월드플리퍼 다시 〈월드플리퍼〉를 가만히 바라본다. 어쩌면 ‘보는 게임’이란 핀볼 기계를 떠도는 구슬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구슬은 스스로 랜덤으로 점수를 얻고 시간이 지나면 중력에 의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아주 잠시 플리퍼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게임 세계는 끝없이 반복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973년의 핀볼』에는 핀볼 기계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거대한 창고 안에서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십’ 핀볼 기계를 찾아내고 나서야 그는 충족되지 않던 욕망을 잠재울 수 있었다. ‘보는 게임’은 다이어트 코크처럼, 포장된 초콜릿처럼 놀이의 중심에 닿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노동에서 벗어나 놀이 자체를 온전히 마주할 때까지 욕망은 충족되지 않을 것이다. 2021년의 나는 〈월드플리퍼〉를 플레이하면서 유년의 창고에 잠들어 있는 핀볼 기계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핀볼의 윙윙거리는 소리는 내 생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갈 곳 없는 상념도 사라졌다.” - 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핀볼〉 중에서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평론가, 프리랜서 작가) 이상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비디오게임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비디오게임에 대해 생각하면서 게임이 주는 흥미로운 경험을 문장으로 옮기는 중입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관련 저서로는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