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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했다 번역을 - 한글 패치 30년의 흐릿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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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4. 10.

    



  ‘카르멘 샌디에고 시리즈’라는 게임 시리즈가 있었다. 장르를 분류하자면 퀴즈에 가까웠고, 상업 분류로는 교육용 게임이었으며, 지리나 역사 퀴즈의 해답을 모아 단서를 조합해 알맞은 지역이나 역사 시대에 숨은 범인을 찾는 형식이었다. 85년 이후로 발매되었고, 어떤 작품은 소프트랜드 유통으로 한국에 정식 발매되었다. 교육용 게임이었던지라 게임을 혐오하던 부모님은 이 게임을 사주기로 하였고, 게임이라면 다 좋아했던 시절의 어린 나 자신도 관심이 갔다. 아마도 가물가물한 기억에 따르면 우주편이었던 것 같은데, 결국 사놓은 게임을 플레이할 수는 없었다. 번역이 되지 않은 영문판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흘러, 국내산 게임이 등장은 했어도 여전히 수많은 게임은 영어와 일본어로 제작되어 유통(합법과 불법 모두!) 되었다. 잡지와 소문에서는 어떤 게임이 재밌다고 하더라도 그 게임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킹스 퀘스트’나 ‘인디아나 존스’ 같은 고전 어드벤처의 명작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명령어 단어 정도에 불과했다.

     

  같은 불편을 겪는 사람들은 많았고, 이들을 돕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90년대 초반의 콘솔용 롬팩의 파일에 접근해 게임의 폰트 데이터를 고친다거나, 도스 게임의 폰트를 고치는 방식을 통해 한글이 출력될 수 있도록 하는 ‘꼼수’를 시도한 사람들이 PC통신 자료실에 결과물을 올렸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이 구전을 증명 혹은 재구하려면 당시 PC통신의 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하는 작업과 소문의 근원을 추적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1997년,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동급생’의 한국어 번역이 이루어졌다. 정식 유통 라인에서 발매한 것이 아니라 유저들이 직접 폰트 파일과 출력 시스템에 접근해 뜯어고쳐 만든 번역이었다. 여러 기록과 많은 기억은 이 당시의 ‘한글 패치’를 한누리라는 팀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게임동아의 2017년 8월 1일 기사(90년대 PC용 성인게임 특집, 당신은 ‘동급생’을 아십니까?)에서는 파랑새라는 팀이 만들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후일 ‘하급생’의 유저 번역을 한 파랑새 팀, 혹은 ‘동급생’의 복사방지 락을 해제한 유저 파랑새와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 Gemini는 이러한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크로스체크 결과, 이것이 사실에 가장 부합해 보인다.

     

  이것이 유저 번역의 초창기 상황을 재구성하는 어려움이다. 1차 사료가 될 당시 기록은 사라진 지 오래 되었고, 1차 사료를 증언하는 2차 사료조차도 인터넷의 초창기 시절 기록이다 보니 사라졌거나 디지털 풍화를 여러 번 거쳐 검색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위치에 있다. AI조차도 이를 직접 찾아내지 못하고 학습 데이터의 일부로만 인식한다. 게다가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은 당시의 회고마저도 수집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글에서 시도하는 역사의 재구성은 오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려는 이유는 유저 번역이 시도되는 역사의 꾸준함이 주는 낭만성이 있기 때문이다.

     

     

1. 태초의 팀, 한누리

     


 한누리가 최초의 유저 번역 시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초의 유저 번역 팀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게임에 쓰인 문자를 번역하자고 상정한다면, 일단 해당 언어를 구사하는 언어 능력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 것이, 넘어야 할 컴퓨터공학의 기술적 장벽이 여럿이다. 일단 라틴어 계열 문자 혹은 일본어 문자 위주로 만들어진 폰트 체계를 한글의 폰트 체계로 바꿔야 한다. 그런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우회로를 만들어야 한다. 이건 해킹에 속하는 프로그래밍의 영역이다. 따라서 프로그래머가 필요하다.

     

  폰트 입력 루트를 확보한 후에는 폰트를 만들어야 한다. 당시 방식으로는 픽셀 하나하나를 찍고 조합해 새로운 폰트를 만들어야 했다. 누군가가 픽셀을 하나하나 찍고 조합해 폰트를 만드는 지난한 작업을 끝내고, 이 폰트로 번역된 내용을 입력한다 해도 만들어진 번역 텍스트가 게임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원문 텍스트를 빼내어 번역자에게 주고, 번역자에게 번역 텍스트를 받아 다시 집어넣을 수 있다. 그러면서 개발사가 어떤 방식으로 게임 데이터를 압축하고 암호화했는지도 알아내야 오류 없이 봉합을 마칠 수 있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필요한 프로그래밍의 분야다.

     

  언어를 번역하는 파트 또한 그렇게 쉽지 않다. 영화 자막 번역과 마찬가지로, 글자 수의 제약이 있었다. 원문보다 번역문이 지나치게 길면 게임에 오류가 생겨버린다. 심한 오류의 경우엔 아예 게임이 다운되어 버렸다고 한다.

     

  번역, 프로그래밍, 폰트 디자인 등 여러 분야의 능력이 필요해졌기에 결국 팀이 만들어지고, 그 첫 시도 중 성공 사례가 한누리인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최초일 가능성은 적지만, 태초일 가능성이 높은, 태초의 팀이다. 한누리가 선택한 팀 모델은 이후 하급생을 번역한 파랑새 팀 등의 후속 주자들에게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쯤에서 왜 ‘한국어 번역’이 아닌 ‘한글 패치’였는가에 대한 가설을 제기할 수 있다. 본디 한글로 표현하는 말이 한국어 하나뿐인 한국어의 관습에서 한국어와 한글은 종종 혼용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번역 작업 프로세스에 한글 체계를 폰트화하여 이식하는 프로세스가 중요한 단계로 존재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한글 자체를 집어넣어서 패치 수준으로 프로그래밍을 더해야 하다 보니 ‘한글 패치’라는 단어가 당시의 이 분야 언중들에게는 올바른 개념 표현으로 여겨졌을 수 있다.

     

     

2. 유저 번역의 맹점, 팀 한글날

     

  이상의 시도는 상대적으로 게임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이 손쉬운 PC 게임에서 더 자주 이루어졌다. 반면 상대적으로 훨씬 데이터 접근이 어려운 콘솔 게임의 영역에서는 별도의 장비와 추가적인 프로그래밍 기술이 필요하기에 시도가 훨씬 적었다.

     

  롬 파일에 접근하는 장비가 없어도 되는, 에뮬레이터 기술이 보급된 90년대 말부터는 이런 시도가 조금 쉬워진 모양이다. PC통신의 에뮬레이터 동호회 등지에서 번역 실험이 있었다는 단발성 회고가 이따금 보이며, 그 중에서 ‘pjs’라고 통칭되는 어떤 사람의 영웅담이 가끔 관찰된다. 이 사람이 실존했고 번역 작업을 실제로 한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크로노 트리거’의 슈퍼패미컴 판의 유저 번역을 한 사람이 가능성이 높다. 다만 명확한 기록이나 회고를 찾을 수는 없는 상태다.

     

  거의 성과가 없던 콘솔 게임의 유저 번역은 기술이 발전한 2000년대 중반부터는 활성화 되기 시작했다. 팀 한글날은 휴대용 콘솔 기기, 당시는 NDS와 PSP, 의 게임을 유저 번역하던 팀이었다. 최초 번역작인 ‘몬스터 헌터 포터블 세컨드’로 이름을 알렸고, ‘스즈미야 하루히의 약속’을 비롯해 ‘사일런트 힐: 오리진’ 등의 번역을 해냈다.

     


* ‘몬스터 헌터 포터블 세컨드G’의 번역본 로고 화면

     

  하지만 팀 한글날의 활동 즈음부터는 유저 번역의 법적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팀 한글날이 번역문을 게임에 집어넣는 방식은 폰트를 펌웨어 내 메모리 영역에 직접 넣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팀 한글날이 따로 만든 커스텀 펌웨어, 일종의 대체 프로그램이 따로 필요했는데 이는 개발사가 인정하지 않은 경우 명백한 저작권법 위반이다. 기존 프로그램을 개변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나 이를 배포하면 불법이 되는데다가, 이 과정에서 게임 프로그램 전체를 불법 복제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캡콤 코리아는 유저 번역의 배포 중단을 요청했고, 팀 한글날은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구성원 몇몇의 병역 수행, 번역본 이용자 몇몇의 악성 민원 등도 해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3. 가변적 연대, 팀 왈도

     



  팀 한글날과 비슷한 시기에 제시된 오픈소스 형식의 번역 팀이 있었다. 팀 왈도. 전설적 오역으로 유명한 ‘마이트 앤 매직 6’의 “힘세고 강한 아침”에서 따온 팀명이다.

     

    

* AI 자동 번역도 아닌 공식 번역인데도 일부러 오역을 하기 위해 공들인 것 같은 저 결과물은 후세의 밈이 되어 팀 왈도의 팀명까지 오게 되었다.
     

  PC 게임 중에서 공식 번역이 없는 게임을, 왈도처럼 날림으로라도 번역을 해보자는 동기로 만들어진 팀 왈도는 이전이후의 번역 팀과 다르게 고정된 조직이 없었다. 자발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총대를 맸으니 ‘총대’라는 리더가 되고, 총대가 모은 인력은 해당 작업만 수행하고 작업이 끝나면 흩어진다.

     

  번역과 프로그래밍과 검수를 맡는 이 인력은 흔히 ‘핫산’으로도 불렸다. 이는 극우 만화가 최지룡의 95년작 만화 ‘여로’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박봉을 받으며 노예처럼 일하는 핫산이 2014년 경부터 밈이 되면서, 아마추어인 자신들은 보상 같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식으로 역설적 의미 확장이 일어났다. 아마추어 번역 팀인 팀 왈도의 인력 또한 이런 의미로 자칭 핫산이 되었다.

         

* 최지룡 - 여로

     

  팀 왈도는 그간 쌓여온 번역 팀의 노하우를 체계화했다. 탬플릿화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다. 2010년대 이후의 게임은 텍스트 번역량이 이전의 게임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에 번역량이 엄청나게 방대하다. 총대가 사람을 모으고 번역의 기초 설정을 잡으면, 프로그래머가 기술적 뼈대를 잡는다. 번역문을 다룰 때는 구글 스프레드시트와 같은 온라인 협업 툴을 사용해 많으면 수백까지도 달하는 다수의 ‘핫산’들이 한 문서에서 협업 번역을 한다. 이때 고유 명사나 작중 개념 용어 같은 것은 총대와 몇몇 간부급들이 작성한 용어 시트의 공유로 번역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이 용어 시트는 초벌 번역을 검수하는 검수 인력들에게도 유용하다.

     

  이렇게 체계화된 업무 분장이 발전된 역사는 ‘매스이펙트 시리즈’의 유저 번역에서 볼 수 있다. 1편의 경우엔 네이버 매스이펙트 팬 카페라는 동호회에서 번역이 이루어졌다. 전문성이 조금 떨어졌기에 미숙한 면이 있었으나, 2편의 번역은 팀 한글날 출신의 인력이 초반 작업에 참여하면서 약간의 체계화가 이루어졌다. 이 인력이 병역 문제로 이탈한 후, 번역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이 노하우를 학습해 릴레이로 번역을 이어갔다. 3편에 이르러서는 번역할 원문의 양이 수 배로 늘어났기에 팀 왈도의 체계화 방식이 적용되었다. 이를 집단지성의 업무와 전문성의 검수로 요약할 수도 있다.

     

  팀 왈도를 집단지성으로 간주하면, 이해되는 오픈소스적 특성이 있다. 팀 왈도의 명칭은 원칙적으로 누구나 쓸 수 있다. 다만 이미 팀 왈도라는 이름으로 작업 중인 팀이 존재하는 경우엔 쓸 수가 없다. 동시에 불특정 다수가 참여할 수 있도록 특정 커뮤니티가 쓰는 내부자 성격의 밈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불특정 다수가 기여했으므로 만들어진 번역은 수정 및 재배포가 자유롭다. 이 형태의 명맥은 현재까지도 팀 왈도의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가변적이지 않은, 조직적 분업으로 뭉치는 기존 형태의 팀도 계속 생기고 없어졌다. 특히 한필드, 한글이 필요하면 드리겠습니다라는 팀은 2012년 11월에 등장해 1년 조금 넘는 시간만 활동하고 사라졌고 ‘책임감이 부족해 보인다’, ‘너무 폐쇄적이다’라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이런 팀들의 작업 체계는 팀 왈도와 같은 열린 가변성의 팀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4. 공식 체계로의 편입

     

  내부적으로 어떤 풍파를 겪어서 어떤 체계를 세우든, 어차피 유저 번역은 비공식이고 때때로는 불법이다. 대다수가 불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의외로, 유저 번역에 참여한 ‘능력자’ 중에서 실제 게임 번역 업계에 입문했다는 증언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유저 번역이 음성적 영역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몇몇 유저 번역은 공식 번역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더 위쳐 2’의 경우가 그렇다.

     

    

     

  네이버 위쳐 팬 카페에서 수행한 번역 작업은 제작사 CDPR과의 협상을 통해 공식 한국어 버전으로 인정받았다. 터키어 유저 번역이 공식으로 인정받은 것을 보고 문의한 것이 정식 인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례가 저렇게 깔끔한 것은 아니었다. 비슷한 일이 ‘다키스트 던전’과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에서도 있었는데, 이쪽은 인정 및 계약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다키스트 던전’의 사례는 제작사 레드훅이 유저 번역을 인정하겠다, 아니 인정하지 않고 정식 번역을 하겠다, 유저 번역은 소유권 문제가 있다, 사실 소유권 문제는 해결되어 있었다, 하는 식으로 태도가 계속 변했다. 여기에 정식 한국어 번역의 심각한 오역과 낮은 질이 문제가 되었고, 이에 훨씬 질이 좋은 유저 번역이 성행하자 레드훅은 새로운 번역 퍼블리셔를 통해 새로운 번역을 했다. 이 과정에서 유저 번역은 최소 경쟁자 역할, 최대 참고 레퍼런스 역할을 했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의 경우엔 팀 왈도가 소집되어 작업을 했는데, 당시 초반 총대를 맡은 유저의 회고에 따르면 제작사 라리안 스튜디오의 푸대접 문제가 있었다. 자신들의 작업이 공식 번역으로 채택이 되어 작업을 했는데, 이에 대한 임금이 체불된다거나 의사소통과 대우에서 상당히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거나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협화음도 시간이 지나며 차츰 진정되어 갔다. ‘더 위쳐 2’라는 모범 사례가 있기도 했지만, 모드의 활성화가 유저 번역의 적용을 용이하게 했다. 특히 스팀에서 유저 모드를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기능을 지원하면서부터는 유저 번역이 모드의 하나로 편입되게 되었다. ‘림월드’, ‘언더테일’ 등의 히트한 인디 게임의 유저 번역이 모드의 형태로 적용이 되었고, 이 단계에 와서는 공식 번역으로 인정을 받을 필요조차 없어졌다.

     

     

5. 동기를 추측 혹은 재구성하기

     

  그러나 유저 번역 또한 번역이라, 매우 지난한 작업이다. 번역 자체도 고된 일인데 이를 검수하는 것은 그 이상의 업무이며, 유저 번역의 경우엔 제작사의 지원이 없이 독자적으로 번역문을 끼워넣을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해야 한다. 이것이 되는 인력을 모으고 체계를 잡는 리더의 역할 또한 어려운 업무다. 쉽게 뛰어들 수 있는 일은 아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유저 번역에 참여했다. 기실 나 또한 ‘매스 이펙트 2’의 번역 작업에 대화문 몇 줄이나마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의 개인적 동기는 별 것 없었다.

     

  첫 번째는 ‘이 게임을 내 모어(母語)로 하고 싶다’는 개인적 동기다. 가장 원초적인 동기일 것이고, 아마 모든 참여자들이 이 동기를 첫 번째로 갖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혼자 해낼 수 없는 분량일 테니 팀을 모으고 총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째 동기도 만들어진다. ‘이거 해낼 수 있겠다’는 동기다. 협업을 하면 내 업무는 감당 가능한 규모로 줄어들고,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어진다. 계산이 잘못 되어 개개인이 감당 할 수가 없으면 팀이 깨지고 번역을 포기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가끔 세 번째 동기도 있었을 것이다. 프로그래밍과 번역을 업으로 하거나 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직업적 경험을 쌓을 기회로 유저 번역을 활용할 수도 있다. 또한 네 번째 동기, 게이머 커뮤니티 내에서 모모한 번역에 참여했다는 크레딧은 충분한 명예가 될 수 있다. 인정 욕구는 언제나 목마른 법이다. 그리고 이 크레딧은 세 번째 동기인 직업 포트폴리오 구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부분은 실제로 유저 번역 참여 경험을 이용해 해당 업계에 진출한 사례가 많이 있는지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또한 다섯 번째 동기도 가능하다. 이 게임의 저변을 넓히고 싶은 욕구. ‘스타 시티즌’의 경우엔 게임 내 거대 길드 셋이 연합하여 유저 한국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인데, 디스코드 채널과 연계되어 게임의 신규 유입자를 안내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

     

  이런 동기 – 회고가 많지 않으니 추측 혹은 재구성한 동기는 개인적인 욕망이 공공 이익에 복무한 과정을 이어주는 가교가 된다. 나와 내 주변을 위해, 내가 하는 게임을 위해, 이 작업이 재미있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내 장래에 도움 될 경험일 것 같아서, 그래서 참여한 것이 게이머 다수의 이익이 된 것에는 철학적 혹은 사회학적 낭만이 있다.

     

  유저 한국어 번역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저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록을 성실하게 남기지도 않았고, 그 기록은 현재 대다수가 소실되어 있다. 또한 다수의 초기 번역 팀은 폐쇄적으로 작업했기에 사료가 존재한다 한들 그 존재를 인지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인공지능으로 최대한의 사료를 찾아내고, 자연지능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료의 내용을 추측해봤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기한 내용은 빈약할 것이고 오류를 포함할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후속 연구는 필요하다. 저 낭만적 공공 이익의 역사가 소실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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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인)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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