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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 히어로 '게임'의 과거와 오늘
원전인 수퍼히어로 만화는 여전히 독자적 산업을 잘 이끌고 있다. 그리고 영상 컨버전이 최근에 들어 절정을 찍었다면, 게임 컨버전은 비교적 신생이다. < Back 슈퍼 히어로 '게임'의 과거와 오늘 16 GG Vol. 24. 2. 10. 한 장르의 팬으로서, 그 장르가 대중의 화제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을 마주할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내가 사랑하는 장르를 많은 사람들이 갖고 놀기에 더불어 대화하는 즐거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틀린 정보나 나와는 너무 다른 해석 앞에서 불안과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다행인지 요즘은 그런 감정의 골짜기에 빠질 일이 별로 없다. 사람을 덜 만나서도 있지만 화제로 다뤄지는 빈도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두 번째 사가인 멀티버스 사가가 진행되면서, 수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서서히 식어가고 있다. 정확히는 영상화된 수퍼히어로, 수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관심이다. 원전인 수퍼히어로 만화는 여전히 독자적 산업을 잘 이끌고 있다. 그리고 영상 컨버전이 최근에 들어 절정을 찍었다면, 게임 컨버전은 비교적 신생이다. 수퍼히어로라는 장르 만화, 특히 미국 만화를 고향으로 두고 있는 수퍼히어로라는 영웅 서사 장르는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그리고 영상이나 게임으로의 컨버전 또한 이 세 가지 특징을 플랫폼에 맞춰 변용하는 것에 핵심이 있다. 수퍼히어로라는 부류의 캐릭터와 서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첫 번째로 수퍼파워, 초능력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요건은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 반드시 코스튬, 복장을 정해놓는다는 관습이다. 세 번째는 코스튬을 입고 수퍼파워를 휘두르는 수퍼히어로의 반대항인 수퍼빌런이 등장하여 양자 간의 결전을 절정으로 하는 서사 구조를 기본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 세 특징 혹은 요건 중에서 앞의 둘은, 만화에서는 손쉽게 표현된다. 만화의 ‘수퍼파워’는 과장의 미학이기 때문이다. 초능력의 표현 또한 소설 문학 다음으로 경제적인 표현 수단 덕분에 손쉽게 표현한다. 반면 돈이 많이 드는 표현 수단을 쓰는 영상 문학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지드로잉가이드닷컴이라는 그림 교육 사이트에서 ‘superhero’의 예시로 든 코스튬. 하지만 이런 디자인의 코스튬이 실사로 제시되면 유치해지기 쉽다. 3D 그래픽의 경우엔 다소 허들이 낮아지긴 하지만 낮아질 뿐이다. 만화의 표현으로는 괜찮았던 코스튬이 영상에서는 유치하거나 불합리해진다. 초능력의 표현은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효과가 어느 이상의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역시 유치한 연출 기법에 기대야 했다. 게임으로의 컨버전은 영상의 고생에 비하면 별 거 없었다. 영상의 ‘수퍼파워’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달이었기 때문에, 같은 수퍼파워를 쓰는 게임 입장에서는 미적 디자인과 게임 기획만 고민하면 되었다. 그리하여 영상과 게임 모두 공히, 코스튬이라는 요소는 미학적 코드를 약간 틀어서 해결했다. 초능력의 표현은 기술적 발전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수퍼히어로 장르가 영웅 서사의 일종이기 때문에 생긴 마지막 특징, 빌런과의 대결 서사는 표현형을, 클리셰를 결정짓게 되었다. 일단 대결 서사이기 때문에 기본 표현형은 액션 장르가 된다. 그래서 수퍼히어로와 수퍼빌런을 연기하는 모든 배우 및 스턴트는 다양한 액션을 소화해야 한다. 게임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로, 기본 장르가 액션으로 고정된다. 이 때문에 수퍼히어로 영화는 모두 액션 영화이거나 액션 요소가 강하며, 수퍼히어로 게임의 주류 또한 상황이 비슷하다. 수퍼히어로 영화의 성과 게임이 참고할 수 있었던 수퍼히어로 영화 장르의 역사를 보면 그 결과로 나온 클리셰의 구조를 요약할 수 있다. 영상화의 시도는 40년대부터 있었지만, 수퍼히어로 영화라는 하위 장르를 집대성한 첫 작품은 1989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영화였다. 2003년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2’는 앞선 배트맨의 성과를 좀 더 대중적인 형태로 구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수퍼히어로의 캐릭터성 – 작중 세계의 구현 – 영화 서사의 성격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모델이었고, 이는 사실 원전 만화에서 명작들이 가닿은 지점이기도 했다. 팀 버튼의 1989년 배트맨 코스튬. 원전의 코스튬에서 회색과 남색 부위를 없애버렸다. 이 코스튬은 어둑한 고담시를 구현한 미장센, 심리적 불안정을 드러내는 연기와 유기적으로 맞아떨어졌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는 현실적인 수퍼히어로를 보여주려 애썼다. 이는 마블의 캐릭터 묘사 전략이기도 한데, 영화의 사실적인 뉴욕 풍경 및 스파이더맨의 오리지널 캐릭터성과도 맞아 떨어졌다. 이 두 영화의 성취를 통해 수퍼히어로 영상 문학에서 정형화된 클리셰 구조가 등장했다. 초반에는 히어로와 빌런의 오리진 스토리를 보여준다. 이후 전개에서 둘의 갈등이 형성되어 부딪히면서 액션 장면들이 나오고, 빌런의 계획을 히어로가 박살내는 절정부에서 둘의 최종 결전이 벌어진다. 히어로의 승리로 이야기가 종결된 후에는 다음 영화를 예고하는 짤막한 에필로그가 덧붙는다. 이렇게 클리셰를 완성한 수퍼히어로 영화는 2008년,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와 존 패브로의 ‘아이언맨’에서 다음 단계로 진입한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정립된 서사 구조를 따라가는 한편 교묘하게 뒤틀어서 다른 용도로 썼다는 점이다. 다크 나이트 3부작은 원전 만화에서 성공했던 상징 체계 도입 전략을 써서 성공했고, ‘아이언맨’은 에필로그를 이용해 작중 세계 확장 전략을 시작했다. 다크 나이트 영화는 미국 의회도서관의 영구 보존 영화에 포함되는 걸작으로 남았다. 아이언맨의 첫 영화는 기획도 거창하지 않은 평범한 수퍼히어로 영화로 제작되었으나 ‘장비 제작’을 서사의 중심에 놓는 등의 독특한 테이스트가 현실감을 부여하면서 독자적인 성취를 이뤘다. 이 두 영화의 성취는 만화 원전의 두 회사, DC와 마블의 스타일과도 걸맞는다. DC는 수퍼히어로 장르를 개창한 회사이며, 그래서인지 영웅의 신적 면모를 강조하는 스타일을 갖고 있다. 이는 서사가 상징 체계와 궁합이 잘 맞는다는 의미다. 마블은 스탠 리 이후 ‘현실성의 닻’을 독자적 스타일로 하고 있다. 현실의 독자와 유사성을 설정과 서사에 집어넣어, 독자의 감정이입을 꾀하는 전략인데, 이것이 아이언맨 이후 진행된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다만 DC 캐릭터들의 작가주의적 스타일은 이후 한참 길을 찾지 못하다가 2019년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에서 간신히 부활한 반면, 마블이 시도한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인피니티 사가의 완성이라는 확장 전략의 업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수의 영상 작품이 하나의 서사로 확장 통합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그러나 현재에는 다음 클리셰로 발전하지 못하면서 목적 잃은 확장이 되어 답보 상태에 이르러 새로운 돌파구가 될 작품을 기다리는 상태다. 수퍼히어로 게임, 시작 그리고 수퍼히어로 게임은 영상 장르가 겪은 이 모든 경험을 흡수했다. 기본적으로 게임에서의 수퍼히어로 서사 또한 만화와 영화가 먼저 만들어놓은 클리셰 구조를 따라간다. 당연한 것이, 게임은 대결 서사를 녹여내기 딱 좋은 플랫폼이다. 하지만 초창기의 수퍼히어로 소재 게임은, 서사 구조가 복잡하거나 장대하지 않았고 게임 디자인이 심층적이지 않았던 초기 게임의 특성을 그대로 공유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르는 스크롤 액션이었다. 특히 이런 게임들은 영화 시장에서 히트한 작품의 홍보용 게임이었는데, 1989년 배트맨 영화를 기반으로 한 패미컴의 배트맨 게임 시리즈가 대표적이었고, 이런 류의 게임들은 대부분 퀄리티가 낮았다. 반면 코나미의 1992년작 ‘엑스멘’은 영화에 기대지 않은 게임이었다. 여전히 장르는 벨트스크롤 액션이었지만, 익숙한 장르를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이미 시장에서 널리 알려진 캐릭터의 인기를 이용해 충분히 히트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려 6인 플레이가 가능했던 엑스멘. 스크롤 액션 장르 다음으로 수퍼히어로가 이식된 장르는 격투였다. 역시 마블의 캐릭터들이 쓰였는데, 1994년의 ‘엑스멘: 칠드런 오브 디 아톰’, 1995년의 ‘마블 슈퍼 히어로즈,’ 바로 다음 해 나온 캡콤의 ‘엑스맨 vs 스트리트 파이터’와 이후 시리즈는 대결 서사를 납작하게 압축하면 격투 게임 디자인으로 치환 가능함을 간파한 결과물이다. 비록 캐릭터 밸런스는 엉망이었지만 캡콤의 ‘vs 시리즈’는 주욱 이어지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한다. 이 계보는 DC 방면에서는 2008년의 ‘모탈 컴뱃 vs DC 유니버스’를 거쳐 2012년의 ‘인저스티스: 갓즈 어몽 어스’로 이어진다. 인저스티스 시리즈는 수퍼히어로 게임 중 격투 장르의 최신판이다. 수퍼히어로 게임, 액션 어드벤처 스크롤 액션, 격투를 지나 수퍼히어로 서사가 게임에서 제대로 꽃을 피운 장르는, 액션 어드벤처다. 2009년 락스테이디의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은 배트맨의 캐릭터성, 원전 서사의 특성, 게임 디자인의 완성도 모두를 잡아낸 명작으로, 이후의 수퍼히어로 게임의 전형성을 제시해냈다. 하지만 이 정점까지 가는 길은 험했다. 2000년, 액티비전에서 ‘스파이더맨’이 발매되었고 후속작 ‘스파이더맨 2: 엔터 일렉트로’가 이듬해에 발매되었다. 최초의 3D 스파이더맨 게임이었으며 액션 어드벤처 장르에서 전투와 웹 스윙 액션을 구현해냈다. 이 시리즈의 시도는 곧이어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발매된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영화를 게임화한 시리즈와 액티비전의 2008년 ‘스파이더맨: 웹 오브 섀도우즈’, 2010년 ‘스파이더맨: 섀터드 디멘션즈’ 등의 시도로 확대되었다. 한편 2005년에는 영화 ‘배트맨 비긴즈’의 홍보용 게임 또한 유사한 성과를 올렸다. 영화에 기대는 게임임에도 2005년의 배트맨/스파이더맨의 두 작품은 다소의 완성도를 보인다. 스파이더맨은 웹 스윙 액션을 오픈월드에서 펼친다는 게임 디자인을 완성해가고 있었고, 배트맨은 연막탄 같이 환경에 맞는 도구를 사용해 적을 제압한다는 게임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둘 모두 각자의 캐릭터성을 구현해낸 성과다. 이 성과가 2009년의 ‘아캄 어사일럼’에서 시작되는 아캄 시리즈와 2018년 인섬니악의 ‘마블즈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캄 시리즈의 성취는 이후 스파이더맨 게임에서 재조합된다. 영화에서 있었던 일이 그대로 게임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마블즈 스파이더맨은 아캄 어사일럼과 함께 이후 등장할 수퍼히어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이 두 작품에서의 배트맨/스파이더맨은 원전 만화의 배트맨/스파이더맨을 체험하는, 게임 자체의 특성을 십분 이용했다. 아캄 시리즈의 수사 모드는 탐정 소설의 후예로서 “세계 최고의 탐정”인 배트맨의 캐릭터성을 반영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웹 스윙 액션 또한 같은 성격의 요소다. 수퍼히어로 캐릭터의 캐릭터 컨셉 자체를 게임 디자인에 녹여낸 것이다. 물론 프리플로우라는 간편하면서도 화려한 전투 시스템이 아캄 어사일럼에서 마블즈 스파이더맨으로 이어진 것도 성과였다. 이 두 시리즈를 통해 수퍼히어로 게임의 주류는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장르가 되었고, 이에 따른 클리셰도 정립되었다. 영화와 달리 문서의 형태로 전달이 가능한 오리진 스토리는 생략한다. 오픈월드 내지는 느슨하게 열린 형태로 연결되는 스테이지가 게임 내 공간이 된다. 액션 어드벤처에서 전투를 하며, 영상과 달리 시간 제한이 없는 게임의 특성상 빌런도 여럿 등장하기에 결전 서사도 여럿 중첩된다. 캐릭터는 롤플레잉처럼 레벨링 성장을 하는데, 이 과정을 배트맨의 장비나 스파이더맨의 수트를 업그레이드하는 형식으로 풀어낸다. 이 클리셰를 종합한 첫 번째 시도가 2020년의 ‘마블즈 어벤저스’다. 오픈월드는 포기한 대신 각 스테이지가 매우 넓으며, 빌런만이 아니라 히어로도 여럿 등장하며, 성장 시스템이 있고, 프리플로우 대신 진 삼국무쌍과 유사한 액션 시스템을 사용했다. 이 작품의 만듦새는 다소 떨어지긴 했으니 캐릭터별 특색을 가진 액션은 잘 표현되었고, 같은 형태가 이후의 AAA 수퍼히어로 게임에서 반복되었다. 바로 다음 해에 발매된 ‘마블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만 하나로 축소한 마블즈 어벤저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에 가깝다. 2022년의 ‘고담 나이츠’는 아캄 시리즈의 연장선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같은 해 발매된 ‘미드나잇 선즈’는 앞선 클리셰를 대부분 따르지만 장르가 X-COM 스타일의 턴제 전술인 것이 특징이다. DC 캐릭터의 레고 버전을 컨셉으로 한 레고 DC 게임 시리즈도 이런 분류에 포함된다. DC 캐릭터의 레고 버전을 이용해 게임을 만든 레고 DC 시리즈의 게임 또한 액션 어드벤처가 기본 장르다. 그리고 영화의 예에서 보듯 클리셰 정립이 완료되면 정체기가 등장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게임의 단점이 마블즈 어벤저스와 동일한 점, 고담 나이츠의 완성도가 애매했던 점, 마블즈 어벤저스와 미드나잇 선즈가 결국 흥행에 실패한 점은 수퍼히어로 게임 또한 영화처럼 다음 돌파구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넓은 맵에서 벌어지는 액션과 성장의 경험은 이미 충분하다. 오픈월드에서의 액션 어드벤처는 폭넓은 경험을 보장하지만, 경계가 명확하다. 그렇다면 다른 시도는 무엇이 있을까? 수퍼히어로 게임의 다른 시도 주류의 시도와는 동떨어진 장르에서도 수퍼히어로 서사를 써보려는 시도가 있다. 가장 먼저 모바일 환경의 게임에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한 다양한 게임들이 있다. 2018년에 발매하여 2020년에 종료한 ‘DC 언체인드’는 액션의 외피를 쓴 수집형 게임이다. ‘마블 퍼즐 퀘스트’, ‘마블 스트라이크 포스: 스쿼드 RPG’, ‘마블 퓨처파이트’ 같은 게임들 또한 매치3 퍼즐이나 수집 장르의 게임에 수퍼히어로 스킨을 씌운 수준이다. 이런 사실상의 수집 장르 게임이 카드 배틀의 형태로 바뀌는 시도는 이제 시작되는 중이다. 2023년작 ‘마블 스냅’은 게임성 면에서는 호평을 받았으나, 얼리 억세스로 시작한 ‘DC 듀얼 포스’는 2월 29일에 서비스를 종료할 예정이다. 한편 MMO 장르에서는 수퍼히어로가 흔하지 않다. 유의미한 게임은 ‘시티 오브 히어로즈’(COH)와 ‘DC 유니버스 온라인’(DCUO)이다. COH는 2004년에 시작, DCUO는 2011년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MMORPG 장르가 클리셰와 시스템이 완성된 후 긴 정체기를 겪는 장르여서인지 신작이 없다시피하다. 그나마 2013년에 시작한 ‘마블 히어로즈’는 핵 앤 슬래시의 MMO였는데, 2017년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선구자인 COH 또한 2019년에 결국 서비스를 종료해 유저 서버만 남았으니, 현재 수퍼히어로 MMO 게임은 DCUO가 유일하다시피 한 상태다. COH와 DCUO의 특색은 커스터마이징에 있다. 이 두 게임은 기존 히어로/빌런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방식인데, 그래서 캐릭터의 초능력 또한 스킬 트리 조합의 형태를 통해 자기만의 초능력 조합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택했다. 스킬 조합을 통해 자신만의 수퍼히어로를 커스터마이징한다는 컨셉은 게임 제목인 ‘시티 오브 히어로즈’와 잘 어울렸다. DC 유니버스 온라인은 COH와 같은 계열의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한다. 이는 새로운 수퍼히어로가 되어 기존 DC의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멘토로 둔다는 스토리와 어울린다. 아쉽게 끝난 장르 도전도 있다. 클래식한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을 만들어 온 텔테일 게임즈는 DC에서는 배트맨을, 마블에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사용해 2016년과 2017년에 게임을 발매했다. 수퍼히어로의 요건 중에서 서사 부분에 집중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게임들의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텔테일 게임즈가 경영난으로 인해 폐업하게 되면서 일단락 되었다. 다음 지점을 향한 고민 수퍼히어로 장르에서는 역사에서 반복되어온 공식이 하나 있다. 이 산업에서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시도는 DC 코믹스가 먼저 시도한다. 장르를 개창한 최초의 수퍼히어로인 수퍼맨이 DC의 캐릭터이며, 수퍼히어로 팀이라는 아이디어도 DC가 먼저 시작했으며, 장르의 두 번째 확장기인 실버 에이지(Silver Age)를 시작한 것도 DC가 플래시를 통해 멀티버스 서사를 들여오면서였다. 실버 에이지의 다음 시대를 연 것도 DC였으며, 영상화 시대의 방점도 배트맨 영화들이 수행했다. 반면 마블 코믹스는 시장의 혁신을 완성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실버 에이지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아이언맨인 것과, 배트맨에서 생긴 영상화 조류의 변곡점을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 영화가 이어받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반면 게임에서 수퍼히어로 게임의 주류가 액션 어드벤처 장르로 정립되는 과정은 예외로 보인다. 다수의 스파이더맨 게임이 시도한 3D 오픈월드 액션의 시도가, 비슷한 시도를 한 배트맨 게임보다 더 충실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시도를 종합하여 변곡점이 된 작품이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이었고, 이 시스템을 계승해 발전시킨 작품이 ‘마블즈 스파이더맨’이라는 것은 역사의 공식대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초기의 유산을 이어온 격투 장르와, 주류가 된 액션 어드벤처 장르 외의 수퍼히어로 게임은 성과가 미미하거나 없거나 계보가 끊긴 상태다. 앞서서 영화와 게임에서 수퍼히어로 장르가 정체기라는 서술을 했지만, 기실 수퍼히어로라는 장르 전체가 현재 정체기다. 최초 원전인 만화에서는 풍부한 역사와 저렴한 표현 형식의 강점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혁신을 꾀해 왔지만, 최근 10여 년 동안은 자기 복제 혹은 자기 변주의 레벨에 머무는 중이다. 그리고 만화에 비해 표현 형식을 구현함에 있어 자본이 더 필요한 영화와 게임의 경우에는, 이미 만화가 쌓아놓은 다양한 형식의 서사를 이식해 오거나 자신들만의 형식을 개척하기에는 굼뜬 편이다. 그리하여 현재 수퍼히어로 만화와 영화는 다음 단계의 성과가 어떤 것인지 제시하는 작품을 기다리는 중이다. 반면 수퍼히어로 게임은 현재 주류가 된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적 한계를 깨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그런 돌파구를 보여줄 작품을 기다린다. 수퍼히어로 영화는 등장 요소의 문화적 다양성을 다음 지점으로 정했고, 그 지점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쌓는 중이다. 수퍼히어로 게임의 화두는 무엇일까? 같을까, 다를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오락실 시대의 대표주자 대전격투 게임, 어떻게 변해왔나
2000년대 이후 대전격투게임에 초점을 맞춰, 사반세기 동안 대전격투게임과 그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대전격투게임의 주요 변화 양상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무엇이고, 그것이 게임 플레이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역사적 맥락, 산업 구조, 기술 변화, 문화 수용 등의 차원을 고려한다. < Back 오락실 시대의 대표주자 대전격투 게임, 어떻게 변해왔나 23 GG Vol. 25. 4. 10. 21세기 사반세기의 대전격투게임 대전격투게임(fighting game)은 말 그대로 플레이어가 컴퓨터나 다른 플레이어를 상대로 싸우는 류의 게임을 말한다. 체스나 장기처럼 추상화되지 않고, 캐릭터끼리 직접 몸을 맞대 치고박는 원초적인 싸움 형태를 취함으로써 플레이어들에게 강한 자극을 주는 장르이기도 하다. 정확하진 않지만, 보통 1976년 세가에서 아케이드용으로 출시했던 <헤비급 챔프(Heavyweight Champ)>를 대전격투게임의 기원으로 꼽는다. 1:1 대결이라고는 해도 복싱시합에 국한돼 있었던 데다 스틱과 버튼도 사용하지 않아 지금과 같은 의미의 대전격투게임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그래도 흑백으로 그려진 두 명의 복서를 글러브 모양의 컨트롤러로 움직이며 펀치를 날리는 방식을 취하는 등 대전격투게임의 기본적 형태를 지녔다고는 할 수 있다. 이후 다양한 대전격투게임이 등장했지만, 대전격투게임이라는 장르를 확립한 대표적인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터 2(Street Fighter 2, 1991)>였다. 마치 영화나 만화의 세계를 그대로 게임으로 만든 듯한 연출과, 특수한 커맨드 입력을 통한 기술 시전이라는 신선한 조작방식에 더해, 플레이어의 실력으로 승부내기를 권장하는 게임 디자인은 많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강한 흥미를 유발시켰다. <스트리트 파이터 2>의 그야말로 엄청난 히트 이후 1990년대 초중반까지 대전격투게임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아랑전설(Fatal Fury, 1991)>, <버추어 파이터(Virtua Fighter, 1993)>, <킹 오브 파이터(The King of Fighters, 1994)>, <철권(Tekken, 1994)>을 비롯해 굉장히 많은 수의 대전격투게임이 발매됐다. 1990년대 게임문화 전반의 흐름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장르였고, 아케이드뿐 아니라 콘솔과 같은 플랫폼으로도 수많은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는 조금씩 대전격투게임 붐이 사그러들기 시작했고, 2000년대부터는 마니아들 중심으로 플레이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스테디셀러 장르가 되어 AAA급 게임부터 인디게임에 이르기까지 매년 대전격투게임이 꾸준히 발매되고 있고, 특히 북미와 일본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2000년대 이후 대전격투게임에 초점을 맞춰, 사반세기 동안 대전격투게임과 그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대전격투게임의 주요 변화 양상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무엇이고, 그것이 게임 플레이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역사적 맥락, 산업 구조, 기술 변화, 문화 수용 등의 차원을 고려한다. 변화의 배경 구체적인 변화 양상을 논의하기에 앞서, 그 변화를 추동한 요인들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기술적 혁신과 플랫폼의 전환, 그리고 온라인화와 네트워크 대전의 부상이 대표적이다. 첫째, 기술적 혁신과 플랫폼의 전환이다. 2000년대 초반 가정용 콘솔과 PC의 기술적 발전은 대전격투게임 환경에 극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특히 플레이스테이션 2(PlayStation 2)와 Xbox의 등장은 아케이드에서 콘솔 중심으로의 본격적인 이동을 촉진했으며, PC방 문화의 안착은 대전격투게임 플레이 무대 중심을 바꿔놓았다. 고해상도의 그래픽, 향상된 프레임 속도 등 기술적인 발전은 플레이어들에게 아케이드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몰입감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기술적 혁신은 아케이드 산업의 쇠퇴와도 관련 맺는다. 이와는 별개로 ‘바다이야기 사태’와 같은 사건으로 인해 이 시기 한국에서 아케이드의 위상이 급격히 하락하게 된 측면도 있다. 이는 대전격투게임 플레이어의 감소를 야기하는 한편, 가정 내에서의 게임 환경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는 계기로 작용했다. 둘째, 온라인화와 네트워크 대전의 부상이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 확대와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은 대전격투게임의 플레이 양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온라인 대전 기능은 지리적 한계를 없애고 글로벌한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특히 Xbox 라이브(Xbox Live)와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PlayStation Network) 같은 플랫폼은 온라인 대전 환경을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온라인화는 단순한 환경 변화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격투게임에서 중요한 심리전과 반응속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롤백 넷코드(rollback netcode)와 같은 기술이 도입되었으며, 이는 보다 원활한 대전 환경을 제공하고 경쟁을 더욱 심화시켰다. 랭킹 시스템의 확립으로 경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플레이어들 간의 실력 격차를 더욱 명확히 드러내면서 숙련된 소수의 ‘고인물’ 문화 형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변화의 양상들 기술 변화와 온라인화를 중심으로 대전격투게임은 사반세기 동안 여러 측면으로 변모해왔다. 첫째, 2D에서 3D 그래픽 중심으로 이동한 듯 보였던 대전격투게임 트렌드 속에서, 다시 2D 스타일이 부활하는 움직임이 발견된다. 2000년대 초 대전격투게임은 하드웨어의 발전과 함께 본격적인 3D 그래픽 기반으로 전환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철권>, <버추어 파이터>,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 시리즈로, 이들은 다면체 기반의 입체적 전장과 움직임을 제공하면서 시각적 현실감을 극대화하였다. 동시에 2D 기반 대전격투게임들은 조금씩 비인기 타이틀로 밀려났다. <스트리트 파이터 3: 3rd 스트라이크(Street Fighter III: 3rd Strike, 1999)와 같은 2D 고전 명작들도 복잡한 메커니즘과 고난이도 탓에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8년 <스트리트 파이터 4>가 출시되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이 게임은 3D 모델링 기술을 사용하되 2D 게임 플레이를 유지하는 ‘2.5D’ 방식으로, 전통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포섭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과거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새로운 플레이어층도 유입시키는 전략이었다. 이후 <길티 기어 Xrd(Guilty Gear Xrd, 2013)>는 셀셰이디드 렌더링(cel shaded rendering) 기법을 통해 3D 모델로 2D 애니메이션과 같은 비주얼을 구현하여 비평적 호평과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두었으며, <드래곤 볼 파이터 Z(Dragon Ball Fighter Z, 2018)>는 애니메이션 IP를 기반으로 동일 기술을 적용해 폭넓은 플레이어 층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적·미학적 변화에 대한 고려는 3D에서 2D로의 단순 복고가 아니라, 시각 스타일과 게임 플레이의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둘째, 글로벌 시장 전략과 캐릭터 다양성의 강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전격투게임 캐릭터의 재현은 스테레오 타입의 단순 반복에 가까웠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대전격투게임 제작사들은 캐릭터들의 다양성에 신경을 쓰고 있다. <철권 7(2017)>은 샤힌(사우디), 조시(필리핀), 라르스(스웨덴), 리로이(흑인 무술가) 등의 캐릭터를 도입하였고, 현지 언어(아랍어, 타갈로그어 등)를 사용하는 음성 연출도 탑재했다. 이는 외양적 다양성만이 아니라, 문화적 리얼리즘 구현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의미한다. 또한 캐릭터 성별과 체형의 다양성, 성격과 배경의 서사성도 중요해졌다. <스트리트 파이터 6>의 마농(프랑스 여성 유도 선수), <길티 기어 스트라이브(Guilty Gear Strive, 2021)>의 브리짓(트랜스젠더), <더 킹 오브 파이터즈 XV(The King of Fighters XV, 2022)>의 돌로레스(흑인 여성 샤먼) 등은 기존 남성 중심, 체격 중심의 캐릭터 구성을 넘어서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시장 다변화 전략과 맞물리며, 문화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게임산업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이처럼 대전격투게임은 다문화적 접점으로 기능하는 장르로 변모하고 있다. 셋째, 싱글플레이 요소와 RPG적 시스템의 결합이다. 대전격투게임의 본질은 PvP 대결이지만, 플레이어층 확대를 위해 PvE 콘텐츠와 싱글플레이 요소가 강화되는 경향도 보인다. 대표적인 예는 <모탈 컴뱃(Mortal Kombat)> 시리즈의 시네마틱 스토리 모드다. 단순한 컷씬 삽입을 넘어, 할리우드식 내러티브 구조를 도입함으로써 기존 대전격투게임에 새로움을 더했다. 2023년 출시된 <스트리트 파이터 6>의 월드 투어 모드는 더 나아가 오픈월드 탐색, NPC 대전, 캐릭터 육성 시스템 등을 통합한 RPG형 콘텐츠를 구현하였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대전격투게임은 대전 외적인 플레이 구조에서도 기술 습득의 서사화, 성장의 게임 플레이화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장비 아이템, 스탯 강화 등 RPG 요소는 기존 대전격투게임의 단순반복성을 완화하며, 플레이어의 새로운 정체성 형성 및 몰입 강화 기능을 수행한다. 대전격투게임이 경쟁 중심 장르에서 경쟁과 모험이 함께하는 장르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로의 이행이다. 대전격투게임의 온라인화는 게임 플레이 방식뿐 아니라 커뮤니티 성격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아케이드게임장 중심의 직접적인 대면 교류는 온라인 포럼,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플랫폼과 같은 비대면 커뮤니티로 대체되었다. 이 변화는 커뮤니티의 글로벌화와 함께 플레이어 간 정보·전략 공유를 급격히 가속화시켰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성장은, 숙련된 플레이어 중심의 폐쇄적인 문화가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특정 기술과 전략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와 공유가 이루어지는 반면, 신규 플레이어들에게는 다소 배타적인 환경이 조성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전체 플레이어층의 확장보다는 특정 그룹의 전문화가 더욱 강조되는 현상을 초래했다. 다섯째, e스포츠의 부상과 글로벌 경쟁문화 확산이다. 2000년대 들어 대전격투게임이 겪은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e스포츠화의 급격한 발전이다. EVO(Evolution Championship Series)와 같은 글로벌 대회가 본격화되면서, 대전격투게임은 전문성을 요구로 하는 종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전문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스폰서십과 프로리그가 활성화되었고, 이는 게임의 기술적이고 전략적인 수준을 극도로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e스포츠의 발전은 격투게임의 위상을 높이고 새로운 플레이어를 유입시키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전문적이고 고도화된 경쟁 환경으로 인해 일반 플레이어와 전문 선수 사이의 간극을 넓히는 문제점도 함께 발생시켰다. 여섯째, 인디 개발자의 실험적 다양성 추구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스팀(Steam)’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유통 플랫폼의 확산과 유니티(Unity),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 등과 같은 개발 툴의 민주화로 인해 인디게임 씬의 대전격투 장르로의 진입이 활발해졌다. 랩 제로 게임즈(Lab Zero Games)의 <스컬걸즈(Skullgirls, 2012)는 여성 중심 캐릭터, 복고풍 애니메이션 스타일, 커뮤니티 중심 업데이트 구조로 대전격투 장르의 실험성과 다양성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인디 팀 마네6(Mane6)에서 개발한 <뎀스 파이팅 허드(Them’s Fightin’ Herds, 2020)>는 원래 <마이 리틀 포니(My Little Pony)> 팬 게임으로 시작해 독자 IP로 전환된 사례로, 비주류 미학과 대중성의 융합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인디 대전격투게임들은 기술적 실험, 표현 양식의 다양화, 커뮤니티 참여 모델의 구현 등을 가능케 했으며, 기존 주류 대전격투게임의 방향에도 일정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인디 개발자들은 커스터마이징, 모드 지원, 공개 개발 등의 방식을 통해 개방형 게임문화를 격투게임에 도입한 주체로도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의 사반세기 지난 25년 동안 대전격투게임의 변화는 기술 혁신과 온라인화의 토대 하에, 2D 스타일의 부활, 글로벌 시장 전략과 캐릭터 다양성의 강화, 싱글플레이 요소와 RPG적 시스템의 결합,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로의 이행, e스포츠의 부상과 글로벌 경쟁문화 확산, 인디 개발자의 실험적 다양성 추구 등 다양한 축에서 이뤄져 왔다. 이러한 변화는 대전격투게임의 대중화와 전문화를 동시에 만들어내면서 복잡한 문화적 현상으로 이어졌다. 앞으로의 대전격투게임은 기술 발전과 플레이어 문화의 상호작용 속에서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과제를 계속 안고 나아갈 것이다. 대전격투게임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규 플레이어 유입을 촉진하고, 동시에 숙련된 플레이어를 위한 깊이 있는 경험을 유지하는 전략적 접근이 요청된다. 물론 둘 간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게임 디자인 차원의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초보자들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복잡한 입력 없이도 주요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끔 조작체계를 단순화한다거나,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IP와의 협업을 통해 대중성을 강화한다거나, e스포츠 이벤트와 스트리밍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 장르 인지도를 높이거나, 기존의 플랫폼 제한을 넘어 여러 플랫폼(PC-콘솔-모바일 등)에서 크로스 플레이가 가능하게 하는 등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동시에 숙련된 플레이어들이 요구하는 깊이와 전략성까지 유지하려는 균형 잡힌 디자인을 추구함은 물론이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숙련된 플레이어와 신규 플레이어 간의 실력 간극이 완전히 좁혀지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의 25년 동안 대전격투게임이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똑같이 즐기는 장르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해 볼 만하다. Tags: 대전격투게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아포칼립스의 거울: 불완전한 정보는 어떻게 인간을 심판자로 만드는가?
태양 폭발로 문명이 무너진 세계, 플레이어는 매일 밤 TV 앞에 앉아 정부가 배포하는 식별 가이드를 시청한다. 지하에서 올라와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방문자’를 색출하라는 임무다. 뉴스는 완벽하게 고른 흰 치아, 털 없는 매끈한 겨드랑이, 빛에 민감해서 충혈된 눈 등을 방문자의 징후라고 보도한다. 위생 관리가 불가능한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청결함은 역설적으로 괴물의 증거가 된다. 이 플레이어에게 건네는 첫 번째 질문이다. < Back 아포칼립스의 거울: 불완전한 정보는 어떻게 인간을 심판자로 만드는가? 28 GG Vol. 26. 2. 10. 태양 폭발로 문명이 무너진 세계, 플레이어는 매일 밤 TV 앞에 앉아 정부가 배포하는 식별 가이드를 시청한다. 지하에서 올라와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방문자’를 색출하라는 임무다. 뉴스는 완벽하게 고른 흰 치아, 털 없는 매끈한 겨드랑이, 빛에 민감해서 충혈된 눈 등을 방문자의 징후라고 보도한다. 위생 관리가 불가능한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청결함은 역설적으로 괴물의 증거가 된다. 이 플레이어에게 건네는 첫 번째 질문이다. 문제는 정보는 필연적으로 맥락을 삭제한 채 극도로 단편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에 있다. 뉴스가 ‘방문자’라고 말한 기준을 현장에 적용하는 순간 플레이어는 지독한 딜레마에 빠진다. 문을 두드린 남자는 자신의 손톱 밑 흙에 대해 정원사라서 당연하다고 항변하고, 치아가 고른 이는 최근에 교정을 마쳤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붉게 충혈된 눈을 가진 여성은 빛에 민감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잃고 밤새 울었기 때문일 수 있다.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정보는 ‘충혈된 눈은 곧 괴물’이라는 공식뿐이지만, 눈앞의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사연을 품고 있다. 그러나 생존 본능은 복잡한 맥락을 무시하고 안전한 공식을 따르도록 강요한다. 결국 플레이어는 정원사를, 교정 환자를, 유가족을 잠재적 괴물로 규정하고 총구를 겨누게 된다. 위험한 존재를 집에 들이는 것은 플레이어뿐 아니라 같은 장소에 기거하는 생존자들의 안전도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그림1. 정보만으로 인간과 ‘방문자’를 구분할 수 없다고 해서 혼자 생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에서 집에 혼자 남는 경우는 ‘방문자’의 표적이 되거나 연제청에 잡혀가 제거된다. 게임의 엔딩 중 하나인 ‘비질란테의 분노’는 불완전한 정보를 맹신한 인간이 어떻게 파멸에 이르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방문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광기에 사로잡힌 자경단원은 “너 같은 인간들이 내 친구를 죽였다”고 울부짖으며 플레이어의 집을 찾아온다. 그가 움켜쥔 전리품, 즉 뽑힌 치아와 잘린 손가락은 그가 사냥한 대상이 괴물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진짜 인간의 것이다. 이는 방문자의 식별 징후인 ‘완벽하게 고른 치아’를 색출하겠다는 강박이 개인적 원한과 결합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자를 괴물로 오인하고 무차별적인 폭력의 도구로 전락하는지를 보여준다. 자경단원은 스스로를 공동체의 심판자로 규정했지만, 결국 그는 괴물보다 더 끔찍한 학살자가 되어버린다. 그의 손에 들린 전리품은 단순한 증거물이 아니라, 인간성을 잃고 광기에 잠식된 자경단원의 몰락을 상징하는 물증이다. 이 엔딩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불완전한 식별 기준이 무력, 그리고 맹목적인 복수심과 결합할 때 어떤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를 경고하며, 괴물을 잡겠다는 집착이 오히려 인간을 괴물로 변모시킨다는 아이러니를 그려낸다. <격리 구역(Quarantine Zone: The Last Check)>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관료주의적 시스템 안으로 끌어온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서 격리 시설 관리자가 된 플레이어는 검문소에 선 생존자들을 오직 수치로만 판단해야 한다. 체온계, 청진기, 육안 검사라는 도구가 주어지지만 이 역시 인간의 생사를 가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다리에 있는 상처가 좀비에게 물린 자국인지 단순히 넘어져 생긴 멍인지 구별하기 어렵고, 얼굴이 붉은 것은 감염 증상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더위에 익은 것일 수도 있다.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것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비용이다. 감염자를 들이면 기지가 위험해지고, 의심스러운 자를 모두 격리하면 수용 시설 유지비가 폭증한다. 결국 플레이어는 화씨 180도 이상이라는 숫자에만 매몰되거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일단 추방하는 효율성의 논리를 택한다. 아이의 떨림이나 생존자의 호소는 배제된 채, 인간은 오직 데이터로 전락한다.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다 보면 어느새 플레이어는 비인간적인 행위에 가담하게 된다. 성벽 밖에서 으르렁거리는 감염자보다, 모호한 정보 앞에서 효율성을 택하는 자신의 손끝이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반면 는 시각 정보가 주는 공포를 역이용해 판별 행위 자체를 무력화하는 독특한 지점을 보여준다. 주인공 샘은 창문을 열어 ‘방문자’라 불리는 우주적 존재를 목격하거나 인식하면 끔찍한 괴물로 변이한다는 명확한 정보를 획득한다. 샘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물리 법칙이 무시된 미로로 변해 있으며, 복도에는 하키 마스크를 쓴 거구의 여성, 머리가 카메라와 융합된 이웃 라일, 바퀴벌레 떼가 뭉쳐 지성을 갖춘 바퀴 씨 등 기괴한 형상의 이웃들이 돌아다닌다. 기존의 서바이벌 호러 문법대로라면 이들은 생존을 위해 제거하거나 배제해야 할 ‘적’으로 간주되지만, 샘은 시각적 기표가 주는 혐오감을 넘어 그들의 내면을 보기를 택한다. 그는 변이한 이웃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고 거처를 제공하며 대화를 시도하고, 그들은 괴물의 외형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샘에게 고마움을 표하거나 그를 왕으로 추대하는 등 인간적인 유대와 이성을 유지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게임 후반부에 이웃이자 조력자였던 ‘11’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판별의 무의미함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증명된다. 인류의 기원은 사실 우주를 떠도는 거대한 생명체인 방문자의 미세한 말단 신경세포였으며, 인간이 방문자를 목격하는 순간 발생하는 변이는 외부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라는 환상이 깨지고 본체와 하나가 되려는 회귀 본능의 발현이었다. ‘11’이 기억을 지우고 육체와 분리되면서까지 숨기려 했던 것은 바로 “우리가 곧 괴물의 일부”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눈으로 보고 괴물이라 판별하며 배척하려 했던 존재는 가장 근원적인 자아의 본모습이었고, 이 게임에서 창문은 외부를 감시하는 방어 기제가 아니라 내면의 끔찍한 기원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시각적 정보에 의존해 타자를 괴물로 규정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그리고 불완전한 정보가 어떻게 우리를 진실로부터 격리시키는지를 이 게임은 역설한다. 판별의 서사는 <도시전설 해체센터>에 이르러 물리적 실체를 넘어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정보’ 그 자체에 대한 가차 없는 폭로로 확장된다. 앞선 작품들이 가시적인 괴물과 인간의 경계를 획정하려 했다면, 이 작품은 SNS와 미디어라는 거울에 투영된 비가시적 공포, 즉 도시전설의 이면을 해체하는 인식론적 탐구에 집중한다. * 그림2. <도시전설 해체센터>의 침대 밑의 남자 에피소드. 괴담은 단편적인 시각 정보와 결합되어 확산된다. 플레이어는 ‘침대 밑의 남자’, ‘저주받은 상자’, ‘도플갱어’ 등 전형적인 괴담의 형식을 띤 사건들을 추적하지만, 그 심연에서 마주하는 것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닌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악의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침대 밑의 남자’의 경우, SNS를 통해 괴한의 침입이라는 공포가 실시간으로 확산되지만 그 실상은 타인의 파멸을 발판 삼아 이득을 취하려는 치밀한 기획이었다는 사실을 플레이어는 확인할 수 있다. 목격자를 자처했던 김하나는 사실 고위층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브로커였으며, 피해자를 심리적 궁지로 몰아 통제하기 위해 괴한을 고용한 자작극을 벌인 것이다. 대중은 자극적인 이미지와 텍스트에 매몰되어 피해자를 향한 무분별한 신상 털기와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의 진짜 괴물은 침대 밑의 괴한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유희로 소비하고 확산시킨 익명의 대중과 조작된 정보 그 자체다. ‘저주받은 상자’ 에피소드 역시 궤를 같이한다. 상자를 접한 이들이 뱀의 환각과 심장마비를 일으킨다는 소문은 오컬트적 저주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남미산 환각 성분과 알코올의 상호작용에 의한 화학적 반응으로 밝혀진다. 저주의 매개체로 여겨진 치아와 인형 또한 광신도 집단 ‘삼매지마’에 세뇌된 택배 기사가 살의를 담아 배치한 범죄 도구에 불과했다. 나아가 후반부의 ‘그레이트 리셋’ 음모는 실체 없는 공포가 어떻게 사회를 붕괴시키는지 극명하게 투영한다. 테러 집단은 예언의 형식을 빌린 카드를 유포해 대중의 불안을 선동하고, 이를 주가 조작과 사회 혼란의 도구로 삼았다. 우리가 재앙이라 믿었던 현상들은 사실 조회수를 갈구하는 미디어, 타인을 해하려는 악의, 그리고 검증 없이 정보를 유포하는 대중 심리가 합작한 거대한 시뮬라크르였던 셈이다. “소문 자체가 악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인간이 문제”라는 센터장 빈차아의 일갈은 이 게임의 문제의식을 관통한다. 현대의 아포칼립스는 핵전쟁이나 좀비 창궐이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혐오를 배양하고 인간성을 잠식하는 순간 도래한다. <도시전설 해체센터>는 불완전한 정보를 맹신하고 확산시키는 우리의 태도야말로 시대의 진정한 공포임을 역설하며, 판별의 화두를 타자가 아닌 ‘정보를 소비하는 나 자신’에게로 돌려놓는다. 앞서 언급한 네 편의 게임이 공유하는 핵심은 판별이라는 행위가 지닌 윤리적 함정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정보와 모호한 기준을 손에 쥐고 너무나 쉽게 타인을 심판대에 세운다. 생존을 위해 타인을 의심하는 동안 그 의심의 근거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잊어버린다. “당신은 인간입니까?”라는 질문은 결국 “당신은 단편적인 정보로 타인을 괴물로 낙인찍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괴물은 바깥에서 침략하는 것이 아니다. 타자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손쉬운 정보로 심판하려는 게으른 시선 속에 이미 도사리고 있다. 아포칼립스가 비추는 거울 속에서 플레이어는 괴물이 아니라 정보를 맹신하며 방아쇠를 당기는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Tags: 포스트휴먼, 인본주의, AI, 인공지능, 비인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그려진 힘, 그리는 힘, 그림의 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와 이미지, 그리고 리얼리즘
클레르 옵스퀴르〉는 그 제목부터 미술과 연관성이 명확하다. 잘 알려져 있듯 클레르 옵스퀴르(Clair-obscur)는 이탈리아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키아로스쿠로는 chiaro(밝은)와 oscuro(어두운)의 합성어로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적으로 사용하는 미술 기법을 말한다. 이탈리아 맥락에서는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로 대표되는 바로크 양식의 연출을 꼽을 수 있고, 프랑스어인 클레르 옵스퀴르로 번역해서는 촛불 그림으로 유명한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 같은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 Back 그려진 힘, 그리는 힘, 그림의 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와 이미지, 그리고 리얼리즘 24 GG Vol. 25. 6. 10. *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이하 〈클레르 옵스퀴르〉) 스포일러 주의 “현실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 〈클레르 옵스퀴르〉 르누아르, 베르소의 대사 그려진 힘 게임 〈클레르 옵스퀴르〉는 그 제목부터 미술과 연관성이 명확하다. 잘 알려져 있듯 클레르 옵스퀴르(Clair-obscur)는 이탈리아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키아로스쿠로는 chiaro(밝은)와 oscuro(어두운)의 합성어로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적으로 사용하는 미술 기법을 말한다. 이탈리아 맥락에서는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로 대표되는 바로크 양식의 연출을 꼽을 수 있고, 프랑스어인 클레르 옵스퀴르로 번역해서는 촛불 그림으로 유명한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 같은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클레르 옵스퀴르는 독특한 기법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는 모든 재현적 이미지에서 항상 중요한 문제다. 밝음과 어두움을 통해서 배경과 형상은 분간되고, 빛과 어둠의 균형과 불균형은 매번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계의 모습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완전히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빛과 어둠의 존재가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빛을 통해서 어둠을, 어둠을 통해서 빛을 감각한다. 이러한 문제는 〈클레르 옵스퀴르〉를 관통하는 주제와도 연결된다. 삶과 죽음, 현실과 가상, 과거와 현재, 진짜와 가짜, 그리는 이와 그려진 것, 그림 밖과 그림 속 등등 서로 전혀 다른 것들 사이에서. * Caravaggio,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610. * Georges de La Tour, Magdalene with the Smoking Flame, c. 1640. 〈클레르 옵스퀴르〉에서 플레이어가 탐험하게 되는 세계는 그림 속이다. [1] 플레이어는 게임의 중반 이후인 2막을 끝내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고, 그때까지의 스토리는 반전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돌이켜보면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관에서 마나에 해당하는 마법적 에너지를 크로마(Chroma, 색채)라고 부르는 등 곳곳에서 여기가 그림 속이라는 세계관 설정이 드러난다. 캐릭터 설정은 이러한 세계관 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해 볼 지점이 특히나 많은데, 르누아르는 당연히 그 유명한 화가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를 연상시키고, 페인트리스이자 르누아르의 아내, 베르소의 어머니인 알린은 실제 르누아르의 모델이었던 알린(Aline Charigot, 1859–1915)과 또 다른 화가인 알린(Aline Réveillaud de Lens, 1881–1925)이 겹쳐 보인다. 초반부 주인공 역할을 하는 귀스타브 역시, 게임 속에서도 중요한 건축물로 등장하는 에펠탑을 건축한 에펠(Gustave Eiffel, 1832-1923)과 이 글의 맥락에서 중요한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가 겹쳐 읽히는 캐릭터다. 연상되는 인물들 모두 게임 속 설정과 같은 19세기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의 예술가들이라는 점은 이러한 접근에 개연성을 확보해 주기도 한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마엘은 이 세계가 그림 속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 각성하여 엄청난 힘을 얻는다. [2] 플레이어는 마엘을 통해 게임 초반부에 원정을 떠나게 한 원인인 고마주(Gommage, 프랑스어로 ‘지우다’는 뜻)를 직접 사용할 수도 있게 된다. 그의 아버지인 르누아르처럼 캔버스 세계에서 존재를 지워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각성 이후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기술인 스탕달은 너무 높은 버그성 데미지 때문에 결국 핫픽스로 너프까지 당했다. 그 기술은 작가 스탕달(Stendhal, 1783-1842)의 이름에서 따온 것일 텐데, 스탕달의 문학 작품보다는 이른바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불리는 현상과 더욱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스탕달은 『로마, 나폴리, 피렌체』에서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을 방문했을 때, 그 숭고한 아름다움에 푹 빠져 심장이 마구 뛰고 결국에는 생명이 고갈되는 것 같은 엄청난 황홀경에 빠졌던 경험을 묘사한다. 그 이야기에서 비롯하여 뛰어난 예술 작품의 영향으로 심신에 충격을 받는 것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예술 작품 때문에 실신하는 현상을 뜻하는 그 기술의 이름을 생각하면, 스탕달이 긴급 너프를 당할 정도로 높은 데미지 계수를 가지고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껏 모험한 세계가 모두 그림 속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뒤, 얻는 픽토스의 이름이 ‘그려진 힘’(painted power)이라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전까지 최대 데미지의 상한선이었던 9999를 돌파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중의 핵심 아이템으로, 이 아이템을 얻은 이전과 이후의 게임 경험은 말 그대로 차원이 달라진다. 단지 스토리의 맥락뿐 아니라, 플레이어의 게임적 경험에서도 각성과 한계 돌파를 직접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탁월한 장치인 것이다. 여기에서 또 중요한 논점은 이 세계가 단지 그림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 허무주의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림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각성을 하게 되는 서사 구조에 있다. 물론 이 세계는 아들 베르소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데상드르 가족이 그림 속으로 현실 도피하여 만들어진 곳이지만, 점점 현실을 자각하며 회복하는 단선적인 서사를 그리지 않고, 오히려 캔버스 속 세계에서 만난, 사실 한낱 그림에 불과한 친구들에게 입체적인 서사를 부여한다. 귀스타브, 루네, 시엘과 같은 그림 속 동료들 모두 각각 고유의 이야기를 가지고 플레이어와 복잡한 관계를 맺는다. 데상드르 가족이 키우던 개가 의인화된 캐릭터 모노코, 현실에선 잘 때 안고 자는 인형인 에스키에도 그림 속 세상에선 주체성을 가진 인물이 된다. 최종적으로 엔딩 분기점은 그림 속에 남을 것인지, 현실로 돌아갈 것인지를 플레이어가 선택하게 만든다. 캔버스 속 가짜 친구들과 현실의 진짜 가족들 사이의 선택이지만,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선택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플레이어가 세계관에 몰입하여 그림 속 가짜 친구들과 진짜 관계를 맺게 되는 문제도 있지만, 필자가 중요하게 짚어내는 부분은 게임의 서사와 플레이의 경험이 겹쳐지며 드러나는 두 층위의 그림이다. 게임 속 세계가 단지 그림일 뿐이었다는 층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플레이어가 보고 있는 모니터 속 그림일 뿐이라는, 게임 그 자체의 층위. 여기에서 실제로 스탕달 신드롬을 겪는 것은 우리 플레이어라는 말이다. 〈클레르 옵스퀴르〉를 통해서 근본적으로 데이터 쪼가리와 픽셀에 불과한 이 그림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니 그림이, 게임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리는 힘 엔딩 분기점은 마엘을 선택하여 그림 속 세계에 머물 것인지, 베르소를 선택하여 캔버스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갈 것인지를 플레이어에게 묻는다. 만약, 마엘을 선택하여 그림 속 동료들과 모험을 계속하기를 선택한다면, ‘그리는 삶’이라는 제목의 에필로그가 이어진다. [3] 그림 속 세상에서 페인트리스의 힘을 각성한 마엘은 죽은 동료들을 모두 살려낸다. 베르소가 연주를 준비하고 있는 콘서트장에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고 이제 연주가 막 시작되는 순간, 화면은 마엘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여 담는다. 친구들이 모두 모였지만 전혀 기뻐 보이지 않는 공허한 표정의 얼굴이다. 심지어 마엘의 얼굴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곧이어 암전. 이 게임의 세계관에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현실과 연동된 존재들은 모두 얼굴이 깨져 있다. 페인트리스(알린), 큐레이터(르누아르), 소년(베르소), 그리고 에필로그의 마엘까지. 얼굴 없는 존재는 곧, 거울을 볼 수 없는 존재이다. 돌이켜보면 플레이어는 게임 곳곳에서 거울을 마주하지만, 기술적인 문제인지 거울은 그 어떤 이미지도 반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거울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이곳이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가장 명확하게 알려주는 장치인 알리시아의 편지에도 이 세상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라고 쓰여 있다. 세계 곳곳에는 거울이 비밀 통로로 등장하고, 캔버스의 프레임과 거울의 프레임이 구분되지 않게 그려진다. 게임 속 세계에서 캔버스와 거울은 겹쳐 있다. 마침 위에서 언급했던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에는 예술 작업이 “길 위를 따라다니는 거울”이라고 쓰는 구절이 나온다. [4] 거울은 세계와 예술 작업의 관계를 드러내는 비유이자 장치이다. 거울과 그림은 모두 세계를 반영한다. 게임 속 르누아르도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며 “현실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고 말하는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관점은 귀스타브 쿠르베의 리얼리즘을 연상시킨다. 쿠르베는 “회화란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며, 실재하고 존재하는 사물들의 재현 외에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다.”라며 세계와 그림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5] 물론 쿠르베의 말은 역사화나 종교화와 비교하여 현실을 담아내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리얼리즘이라는 문제는 지금 맥락에서 한번 더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리얼리즘이라는 태도로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가짜, 픽션, 매개, 그리고 그림이라는 점이다. 가짜에 진짜를 담으려는 시도 자체가 리얼리즘인 것일까. 아무리 리얼리즘을 강조해도 세계는 그대로 담기지 않는다. 예술적 매개를 통해 우리가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현실 세계가 어떻게 매개되어 있는지이다. 현실에서 맨눈으로 볼 수 없던 이데올로기적 장막이 그림에서는 거두어지는 경우가 있다. 쿠르베는 그 이전엔 결코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노동자들을 그렸다. 현실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재현되지는 않았던 존재들이 그림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그림을 통해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 Gustave Courbet, The Stone Breakers, 1849. 마엘 엔딩의 에필로그 ‘그려진 삶’은 마치 배드 엔딩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림 속에 남기를 택했기 때문에 플레이어와 동료들은 엔딩 이후에도 세계를 계속 탐험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이른바 엔드 게임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클레아와의 전투, 0원정대의 일원인 시몽과의 전투 등 다양한 모험을 통해 이 캔버스 세계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더 발견한다. 세계관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적인 시몽을 만나기 위해 ‘뤼미에르의 밑그림’에 들어가면, 현실의 르누아르와 연결된 얼굴 없는 빛바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는 “창조에는 행동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날 움직인다”고 말한다. 물론 그는 그림 속에 매몰된 알린을 비판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실천 자체의 힘에 대해 이야기 한다. 현실 도피도 현실 반영도 아닌, 현실 속 존재에게 힘을 주는 실천으로서의 그리기. 그림의 힘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의 『자연사』에는 그림의 기원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부타데스라는 어떤 도공의 딸이 사랑하던 사람과 떨어지게 되어 등불에 비친 실루엣을 따라 벽에 그림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 흔적이 최초의 그림이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 전설은 그림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부재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림과 현실이 맺는 관계, 그리고 실천으로서의 애도. 게임 속 페인트리스가 했던 일도 정확히 같은 것이다. 이미지는 가짜이지만, 우리를 움직인다. 바르트는 “죽음은 사진의 본질(eïdos)”이라고 쓰면서 우리를 찌르는 이미지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6] 픽션이라는 관점에서도 다시 생각해 볼 것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픽션은 실재와 대비되는 허구의 것을 의미하지만, 자크 랑시에르는 픽션(fiction)의 어원인 라틴어 fingere의 뜻이 “-인 체하다”가 아니라 “벼려 만들다”라는 점을 짚어내면서 다른 사유의 경로를 열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픽션은 사건과 형태, 기호의 체계를 구축하고 재조직하는 것이다. 픽션은 상상적 세계의 발명이 아니다. 오히려 주체, 사물, 상황이 공통 세계에 공존하는 것으로서 지각될 수 있는 틀, 사건이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사고되고 연결될 수 있는 틀을 조직하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실재와 픽션 사이의 유사성이나 진위를 문제 삼지 않고, 심지어 예술의 바깥으로서의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실재는 늘 픽션의 대상이다. 즉, 볼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맺어지는 공간을 구축하는 행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7] 픽션이라는 문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픽션이 구축해 낸 실재라는 대상이 아니라, 구축하는 작업의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랑시에르는 실재를 가장하지 않고 실재를 대상으로 삼는 바로 이 픽션의 작업이 예술과 정치를 매개한다고 주장한다. [8] 다시 게임 담론으로 돌아와서 필자는 여기에서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게임이 온라인으로 실제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모니터 안의 그림들이 정말로 그저 데이터 쪼가리, 픽셀일 뿐이더라도 우리는 그것과 진짜 관계를 맺는다. 그림들은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찌르고, 무엇보다도 변화시킨다. 〈클레르 옵스퀴르〉의 엔딩 분기점은 마치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을 연상시키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른 점이 많다. 〈매트릭스〉에서는 빨간약을 먹고 현실을 자각하는 것이 각성이고, 파란약을 먹고 가상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우매한 상태로 남는 것이지만, 〈클레르 옵스퀴르〉에서는 이 세계가 가상임을 알면서도 각성된 상태로 이곳에 머무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 〈클레르 옵스퀴르〉 ‘그리는 삶’ 에필로그 마지막 장면. 여기에서 깨어 있는 상태로 가상에 머무는 존재는 사실 플레이어 그 자체가 아닐까. 마엘 엔딩 에필로그의 마지막 장면, 마엘의 얼굴이 화면 가득 담기는 상태에서 엔딩 크레딧으로 넘어가며 화면은 온통 검은색이 된다. 그 순간, 검은 화면이 블랙미러가 되면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다. 취해 있으면서 동시에 깨어 있는 존재, 몰입과 각성 사이에 놓인 존재인 플레이어. 플레이어는 진짜를 통해서 가짜를, 가짜를 통해서 진짜를 사유한다. 매개된 현실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세계를 비추어 본다. 리얼리즘의 근본적인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클레르 옵스퀴르〉의 세계관에서 페인터들은 마치 마법적 능력을 지닌 사람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것은 가상의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상상을 형식으로 매개하는 일. 그 일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게임이라는 매개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생각한다. 그림의 힘, 픽션의 힘, 게임의 힘, 그리고 플레이어의 역능. [1] 정확히 이야기하면,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 중 하나인 베르소가 어릴 적 그린 캔버스 속 세계. 현실의 베르소가 죽은 뒤, 그의 어머니인 알린과 아버지인 르누아르, 그리고 누이인 클레아가 덧칠을 하고, 또 그림을 지우면서 형성된 세계가 플레이어가 탐험하고 있는 곳이다. [2] 베르소의 동생인 마엘도 이 세계를 그린 데상드르 가족의 일원으로 크로마를 다루어 그림 속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마엘의 그림 바깥 세계 본명은 알리시아. [3] 반대로 그림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베르소를 선택할 경우, 에필로그의 제목은 ‘사랑하는 삶’이다. [4] 스탕달, 『적과 흑』 2권, 문학동네, 213쪽. [5] Letters of Gustave Courbet, edited and translated by Petra ten-Doesschate Chu,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 pp. 203-206. [6]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97, 22쪽. [7] 자크 랑시에르, 『해방된 관객』, 양창렬 옮김, 현실문화, 2016, 107쪽. [8] 이나라, 「픽션의 작업: 랑시에르의 예술의 정치」, 『현대미술학회지』, 2018, 78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권태현 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
-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는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의 삶을 이해한 후, 비로소 의미있는 디지털 시민교육이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 소속인 교사 및 연구자들은 직접 로블록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로블록스 속 어린이의 삶을 질적연구방법론으로 분석하였다. 이 글에서는 위 보고서를 인용해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 Back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25 GG Vol. 25. 8. 10.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디지털 미디어 교육에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어린이의 미디어 속 삶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그들의 삶과 문제상황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초등학생의 미디어 이용 중 가장 주목해야 할 플랫폼은 로블록스이다. 로블록스는 2023년 기준(2023, 한국언론진흥재단) 초등학생의 90%가 이용하는 플랫폼이며 10대에서는 남녀 상관없이 유튜브, 카카오톡에 이어 이용률이 가장 높다. 이용률 면에서도 주목해야 하지만, 로블록스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든 성별이 함께 이용하는 ‘메타버스’ 기반 게임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살아간다.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는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이해한 후, 비로소 의미있는 디지털 시민교육이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 소속인 교사 및 연구자들은 직접 로블록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로블록스 속 어린이의 삶을 질적연구방법론으로 분석하였다. 이 글에서는 위 보고서를 인용해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린이들의 온라인 놀이터, 그리고 작은 지구촌 로블록스가 어린이들에게 중요한 플랫폼이 된 것은 팬더믹 시기 이후이다. 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고립된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만나 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팬더믹 시기가 끝났지만 로블록스 공간은 어린이들의 온라인 놀이터로 살아남았다. 일상 속에 정착한 스마트기기 덕분이기도 했지만 사교육으로 부족해진 공동의 놀이 시간, 소음에 대해 늘 조심해야 하는 공동거주공간의 특성, 안전한 놀이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도시공간 등 다양한 요인이 어린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놀이터를 포기하고 온라인 놀이터를 선택하게 했다. 로블록스는 밤 늦게라도, 잠깐이라도 어린이들이 모여서 놀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거나 멀리 이사를 간 친구, 진학으로 멀어진 친구들과도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만날 수 있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공간 안에서 친구들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고 한다. 서희(11, 여)가 그린 로블록스 경험은 놀이공원처럼 표현되었다. 소통과 어울림은 로블록스 경험의 중심에 있다. 어린이들이 로블록스 안에서 만나는 것은 친구나 가족뿐인 것은 아니다. 로블록스는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장이다. 진희(12, 여)는 로블록스에서 만난 온라인 친구와의 만남이 준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진희는 어린이들이 많이 경험하는 점프맵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했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함께 놀아주고 플레이할 때 기다려 주는 등 배려해 주면서 유대를 쌓았으며 이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많은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친해진 온라인 친구를 여럿 가지고 있다.플레이어들의 다양성은 어린이들에게 국제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완전 핫하게 꾸민 스킨’이나 매너를 잘 지킨다는 이유로 외국인을 선호하는 어린이들도 있다. 특별히 영어를 잘 못해도, 바디랭귀지와 이모트, VR 등을 통해 소통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스킨은 로블록스에서의 중요한 비언어적 소통수단이다. 어린이들은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스킨을 이용해 상대방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자신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무료스킨만으로 자신을 꾸미다가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이유없이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불문율도 어린이들 사이에 있다. 여러모로 로블록스에서의 삶 역시 비용이 드는 사회생활인 것이다. 로블록스에서의 부정적 경험들 무료 스킨의 일화에서 드러나듯,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엔 부정적 경험도 있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것은 폭력적 이용자들이다. 어린이들은 유독 한국 이용자들이 이런 특성이 많다고 호소한다. 게임을 하다가, 아이템을 거래하다가 이들은 폭력적으로 행동한다. 소통을 시도하다가 잘 안되어서 자리를 피하면 끝까지 쫓아와 욕을 하는 이용자도 있다. 어린이들은 이런 상황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게임 중 갑자기 욕을 먹은 경험 (김민아, 10, 여) 저학년 어린이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 자리를 피하거나 게임을 중단해 버리지만, 같이 맞서서 욕을 하거나 싸우는 어린이도 적지 않다. 게임 공간 안에서 폭력적 문화가 대물림되는 과정이다. ‘어드민’ 의 괴롭힘은 보다 적극적인 괴롭힘이다. Free Admin 게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어드민 권한을 가질 수 있는데, 어드민 등급이 로벅스 가격에 의해 결정되다보니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높은 등급의 어드민 이용자들이 다른 이용자들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명령어를 적용시켜 게임을 못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재윤(11, 여)은 ‘로블록스에 대한 내 생각’을 마인드맵으로 표현하였는데, ‘맵’ 키워드와 관련하여 경험한 기분나쁜 경험에 대한 생각을 가득 적었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점프맵’과 관련하여, ‘어드민이 많다.’, ‘나쁜 어드민’, ‘게임을 못하게 맵을 망가트린다.’ 등의 진술이 반복된다. 고은은 어드민처럼 보이는 사람이 못 가게 하더니 욕을 했고, 쫓아오면서 욕을 하길래 같이 욕을 했더니 그 사람이 신고를 해서 계정이 정지되었다.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또 다른 충격적인 경험은 ‘사기’ 이다. 위의 재윤의 마인드맵에도, 다른 어린이들의 만화에도 사기 경험은 가장 높은 빈도수로 나타난다. ‘입양하세요’ 게임에서 이런 일이 특히 빈번하게 일어난다. 아원(16, 여)은 초등학교때 열심히 키우던 닭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용자가 다가와서 좋은 아이템으로 바꾸어준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용자는 닭을 받고 사라져버렸다. ‘실감이 안난다.’ ‘현실을 부정한다.’ ‘게임에서 열심히 번 것이어서 주저앉아 운다.’ 사기는 어린이들이 게임 공간에 들인 노력과 마음을 한 순간에 무너트린다. 로벅스가 만드는 삶의 고난 이런 문제들은 오프라인 공간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의 삶의 공간이 무료가 아니라는 지극히 냉정한 현실에 기인한다. 로블록스는 로벅스 경제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고, 무료 포인트나 이벤트 등은 없다. 이상적으로는 이러한 로벅스 경제는 어린이들이 광고 없이 디지털 미디어 공간에서 건전한 경제생활을 연습할 수 있는 경험의 토대가 되겠지만, 이용자 중심의 로벅스 세계, 그리고 어린이들의 게임 머니를 통제하는 양육 관행은 어린이들을 로블록스 세계의 경제적 약자로 만들었다. 어린이들의 로블록스 경험에서는 앞서 언급한 ‘사기’ 외에도 ‘구걸’, ‘기부’. ‘노동’ 등의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그리고 높은 빈도수로 나타난다. 오프라인에서라면 아동권리 보호차원에서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온라인에서는 그런 보호가 없다. 미디어 기업 대 이용자의 관계가 아닌, 이용자와 이용자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플리즈 도네이트’ 게임은 기부를 위해 찾는 게임이다. 이곳에서는 기부, 즉 로벅스를 주고받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무과금 유저인 어린이들은 게임을 하고, 점프를 하고, 리액션을 하면서 로벅스를 기부받고 남는 로벅스를 기부하기도 한다. 인터뷰에 응한 어린이들은 이것을 ‘노동’이라고 표현했다. 재미있으려고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로벅스를 얻기 위해 무의미한 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을 하고도 댓가를 받지 못하는 일도 많다. 현수(11, 여)는 이것을 공사장에서 노동을 했는데 월급을 못 받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심지어 로벅스를 기부해달라고 ‘구걸’을 하는 일도 빈번하다. 기성세대가 듣기에 충격적인 이러한 일화들은 어린이들의 일상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는 2021년 일반논평 제 25호를 통해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동권리 또한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것을 발표하였으나,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아직 정글에 가깝다. 디지털 시민의식, 그리고 온라인에서의 아동 권리 로블록스 경험 속에 포함된 부정적 경험들에 대해 기성세대들이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점은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차단은 근본적으로 디지털 미디어에서의 삶을 막을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이것은 어린이들이 미디어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소통과 즐거움의 기회, 그리고 미디어 이용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권리 침해에 해당한다.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 안에서 어린이들은 미디어 정글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삶의 지식을 얻는다. 연구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면담 전에는 노동, 혐오와 차별, 성적 대상화, 상업적 이용, 언어폭력 등 많은 문제들을 권리침해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면담과 선생님과의 대화를 거치면서 로블록스에서 만난 위기에 대처하거나, 악성 이용자를 차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나중에 찾아와서 나쁜 이용자를 차단한 이야기를 해 준 어린이도 있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디지털 시민교육이 좋은 로블록스 세계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로블록스는 자신들에게 소중한 공간이니, 서로서로 약속을 잘 지켜서 로블록스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어른들의 도움이다. 어른들은 보호자이기도 하지만, 로블록스와 같은 디지털 세계를 구성하는 이용자들이며, 아이들에게는 미디어 안의 강자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민의식이 어린이 청소년 뿐 아니라 모든 미디어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중요한 이유이다. 이 연구는 로블록스 본사에 전달되어, 어린이들의 의견들은 일부 새로운 정책에 적용되었다. 교사, 학부모, 어린이를 위한 가이드북 [1] 이 만들어지고, 로블록스의 신고기능을 강화하고, 필터를 없애는 대신 채팅기능을 연령별로 차단하는 등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어린이들의 경험이 지금 이 글처럼 더 많은 이용자들에게 공유되고, 게임 교육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일 듯 하다. 디지털 시민들의 노력을 통해 더 안전한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길 기대한다. [1] 로블록스-디지털 시민교육 가이드북은 KATOM 홈페이지( katom.me )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참고문헌 박유신, 김아미, 김세진, 김완수, 김원영, 박소현, 서용리, 양철진, 하윤영, 차은영(2023)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 Tags: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어린이, 로블록스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사) 박유신 초등학교 교사이며, 미디어와 교육 연구자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게임, AI에 이르기까지, 어린이들의 디지털 미디어에서의 삶과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더 알고 싶어하지만 쉽지 않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에서 회장직을 수행중이다.
-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심즈>는 특정 대상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라이프 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대명사 격에 위치한 시리즈다.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며, 때에 맞춰 공과금을 내야 하는 생활을 다루는 <심즈> 시리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예화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심즈> 시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최초에 <심즈>를 구상했을 때 이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 Back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20 GG Vol. 24. 10. 10. "Video games are great. They let you try out your craziest fantasies. For example, on The Sims, you can have a job and a house." "비디오 게임은 위대하다. 게임은 당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정신 나간 공상까지 이뤄준다. 예를 들어 <심즈The Sims>에서, 당신은 직업과 집을 가질 수 있다." -인터넷 상에서 발견한 익명의 농담 * 심즈3(The Sims™ 3) 스팀 소개 이미지, EA 제공 <심즈>는 특정 대상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라이프 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대명사 격에 위치한 시리즈다.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며, 때에 맞춰 공과금을 내야 하는 생활을 다루는 <심즈> 시리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예화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심즈> 시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최초에 <심즈>를 구상했을 때 이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게임”의 기획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세계를 구하거나 제트기를 조종하는” 게임들과 비교하면 <심즈>에 흥미로운 요소가 없다고 생각했다(Barnes). “가장 정신 나간 공상”이라고 일컬어진 대목은 물론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 공상은 <심즈>에서 플레이어가 서는 출발선과 관련을 맺는다. <심즈>를 최초로 시작할 때, 플레이어는 ‘심’이라고 불리는 아바타를 하나 혹은 여럿 만들어낸다. 심의 성격과 취향, 생김새를 빚어낸 플레이어는 주어진 초기 예산을 바탕으로 그의 심들에게 거주지를 지정한다. 자신의 거주지를 거점으로 심들은 <심즈>의 가상 세계에 진입하고 직업을 구해 본격적으로 생계와 살림을 꾸려 나간다. 심의 생계와 살림은 ‘허기’, ‘용변’, ‘재미’, ‘수면’, ‘위생’과 ‘사교’로 대표되는 그들의 여섯 가지 욕구를 충족하거나 억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플레이어는 단순히 즉각적인 욕구를 충족하기를 넘어서 다종다양한 야망을 이룰 수 있도록 심의 일상을 구조화해 나갈 수 있다. 『커밍 업 쇼트』에서 제니퍼 M. 실바(Jennifer M. Silva)는 포스트산업 노동 계급의 세대가 “성인이 되는 경험”을 “블루 칼라 일자리가 아니라 그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생겨난 유동성과 유연성”으로서 정의하는 보편적인 경향을 확인한다(실바 54-55). <심즈> 시리즈는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 중산층 교외의 삶을 테마로 삼아 출발했다. “당신은 직업과 집을 가질 수 있다”로 끝나는 펀치라인은 플레이어의 심에게 주어지는 출발점 자체가 “가장 정신 나간 공상”의 영역에 속하게 된 유동성과 유연성의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당신’의 현실에서 불가능한 바를 게임 속에서 이룬다는 대리 충족의 논리는 우리가 라이프 시뮬레이션, 혹은 생활 시뮬레이션을 유희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깔끔한 설명을 내놓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왜 우리가 가상 세계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기를 감수하는가? 그게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의 가능성이 확정적으로 열려 있는, 개연성 있는 허구적 세계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더 좋은 삶’에 대한 정의는 물론 개인화되고 다양화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떠한 정의에서나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그 좋은 삶의 가능성을 유지하는 목적 지향적인 행동으로 의미 지어지고, 반복할 만한 가치와 쾌감을 띄는 것은 동일할 것이다. ‘진짜 현실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는 아바타와 플레이어 사이의 강한 동일성을 근거로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설명은 생활 시뮬레이션의 다양한 플레이 양상 중 한 가지 버전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여러 생활 시뮬레이션 중에서도 적어도 <심즈>는 아바타와 플레이어 사이의 강력한 동일시를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아바타를 가상 세계의 중심에 두고서 등 뒤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혹은 아바타의 1인칭 시점으로 주변을 관망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다. 하나의 아바타만 조작하는 플레이가 장려되는 것도 아니다. <심즈 4>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시점에 일치된 카메라로 심들이 자리한 공간을 원형 극장처럼 360도 돌려가며 관망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정밀 카메라를 조작하는 듯한 감각으로 한 아바타의 움직임을 쫓거나 상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도 있고, 하나의 심, 하나의 가정만을 조작하지 않고 다른 동네에 사는 여러 가정을 돌아가며 조작할 수도 있다. 거주지만이 아니라 심들이 방문할 수 있는 술집, 클럽, 헬스장을 지을 수 있고, 심의 생활을 플레이하는 도중 잠시 시간을 정지시키고 인테리어를 바꿀 수도 있다. 이러한 가단성은 ‘놀이터’, ‘모래사장’ 혹은 ‘장난감’으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다루는 논리를 뒷받침한다. ‘놀이터’의 은유는 게임 연구가 곤살로 프라스카(Gonzalo Frasca)의 논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시뮬레이션의 교육적이고 윤리적인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던 프라스카는 카이와와 피아제의 개념을 참조하며 “루두스”와 “파이디아”의 이원론을 비디오 게임에 도입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루두스적인 게임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규칙들을 가지며 “체스보드”, “운동장”, “축구장”과 같은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게임이라면, 파이디아적인 게임은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규칙들을 갖지 않으며, 전통적으로 “놀이터”에서 펼쳐지는 역할극과 같은 놀이 행위다(프라스카 11). 그는 ‘루두스’의 위상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고 “파이디아”의 위상이 최종 심급이며, “괴물과 트롤”이 아니라 “우리와 매우 친숙한 실제 사람”을, 그리고 그들이 삶을 관리해가는 체계를 모델화했다는 점에서 <심즈>가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이슈들”을 다루기에 적합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프라스카, 46). 프라스카는 “루두스”의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 “파이디아”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의 동기, 이 특정한 유형의 게임을 함으로부터 얻어지는 쾌와 재미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조작을 촉구하고 전제하는 매체의 잠재력을 논의할 때, 게임 디자인에 호응하거나 그것을 ‘오용’하는 조작의 동인, 곧 관습적 경로를 따라가면서 변주하는 쾌감을 살피지 않는 건 반쪽짜리 논의가 될 테다. ‘놀이터’의 은유를 통해 말하자면, 젠더화된 소꿉놀이, 아름다운 모래성을 짓고 파괴하는 손짓, 이파리와 자갈 따위를 배치해 개미의 진로를 방해하는 감각 등이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거나 강화하며 재미를 만들어내는지 질문하는 게 역시 필요한 것이다. 오히려 프라스카가 시뮬레이션의 급진적 가능성이 충분히 개화되지 못한 형태로서, 혹은 보편화될 수 없는 형태로서 평가했던 플레이 유형들로부터 우리는 <심즈> 시리즈와 같은 생활 시뮬레이션이 선사하는 재미에 대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으로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에 대한 프라스카의 언급을 살펴보자. 심들의 생에서 특별한 순간들을 스냅사진으로 찍을 수 있도록 하는 이 기능을 플레이어는 디자인된 의도를 넘어서 “그들의 심들이 주연하는 스토리들을 창조”하려고 활용한다(프라스카, 228). 플레이어들은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는 어떤 상황을 창조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고 “텍스트적인 주석”을 덧붙이는 등의 편집을 가미함으로써 “스토리보드”를 구성하고 이를 온라인상에서 공유한다(프라스카 ,81). 심들의 자율성으로 인해서, 가족 앨범 스토리의 시퀀스에 추가할 만한 제대로 된 스냅사진을 찍는 건 많은 시간과 정성이 소요될 수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심즈>의 많은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시간과 정성을 감수하고 스냅사진 기능을 활용해 대체로 “통속적이거나 멜로드라마적”인 “선형적인 내레이션”을 만들어냈다(프라스카, 81). 게임이 고정된 내러티브로 환원되는 걸 경계했던 프라스카는 “만화를 창조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는 것은 사진을 찍기 위해 무비카메라를 활용하는 것과 같다”고 평하며 좀 더 친숙한 영상과 애니메이션의 문법적 관습에 기댄 이러한 실천들이 시뮬레이션이란 매체의 가능성이 완벽하게 표현된 형태는 아니라고 본다(Frasca 82). 하지만 프라스카의 이러한 부인 속에서 플레이어들이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포토앨범’ 기능을 활용하는 강력한 동인이 시뮬레이션된 세계로부터 선형적인 이야기를 함축한 시퀀스를 발생시키고자 하는 욕구이며 “사진을 찍기 위해서 무비카메라를 활용”하는 비효율적인 행위에서 오는 쾌락임이 드러난다. 프라스카의 논의는 주로 심즈 프랜차이즈의 첫 판본을 다루고 있다. 시리즈는 UI와 그래픽, AI의 정교함 상에서 기술적으로 발전했고, ‘포토 앨범’의 기능 역시 정교화되었다. ‘심즈 일지’로 불리는 스토리텔링 형태도 이에 발맞춰 복잡성을 획득했다. 게임 내에서 제공하는 스크린샷 기능, 모더(modder)들이 배포하는 특수한 조명 효과, 포토샵 보정 기능 등을 활용하여, 플레이어들은 심들의 반복되면서도 변화하는 일상을 기록하고 그것을 시퀀스를 가지도록 배치한다. ‘일지’라는 규정은 개인화된 경험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대체로 ‘심즈 일지’는 ‘나’를 주어로 하지 않고 심에게 부여된 가상의 이름을 주어로, 즉 3인칭으로 서술된다. 플레이어들은 아바타에 동일시되기보다는 카메라의 줌인과 줌아웃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카메라 감독과 같은 위치에 선다. ‘심즈 일지’의 제작 과정은 특정 시퀀스나 내러티브를 환기하는 요소들을 정교하게 배치하고 주변 환경을 조성하며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갖고서 움직이는 심들을 수고스럽게 조작함으로써 이뤄진다. 하지만 ‘심즈 일지’를 만드는 유저들은 이러한 조작 과정을 최종적인 내러티브 산물로부터 세심하게 삭제한다. <심즈 4>의 경우 ‘심즈 일지’를 더욱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게임 내에 스크린샷과 녹화 기능을 단축키로 제공한다. 플레이어는 심들을 기동하고 조작하는 버튼 인터페이스와 ‘욕구’와 관련된 UI를 편리하게 배제한 채로 스크린샷을 저장할 수 있다. 저장된 스크린샷의 개연성 있는 배치와 텍스트 주석을 통해서 ‘일지’는 심들에게 개인화된 역사성을 부여한다는 환상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환상을 지탱하는 강력한 근거인 기록물은 버튼을 누른 뒤 다시 하위 버튼을 누르는 식의 마우스 연타, 특정 행동을 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의 계측, 원하는 상황을 연출해 내도록 돕는 모드의 다운로드 등 게임 내외적으로 이뤄지는 복잡한 조작을 거쳐 연출되지만, 이러한 조작 절차는 자주 비가시화된다. ‘심즈 일지’로부터 우리는 자신의 시뮬레이션에 대한 조작 과정이 전면화되기를 원치 않는 플레이어들의 소망을 읽을 수 있다. 인터페이스를 배제하는 스크린샷의 기능은 ‘포토앨범’ 스토리텔링에 이미 잠재되어 있던 수요에 게임 디자인이 반응한 결과다. 게임사에서 새로운 DLC를 예고할 때 보이는 티저 이미지 등에서도 역시 조작 인터페이스는 드러나지 않게 처리된다. <심즈> 시리즈의 트레일러들은 마우스와 키보드 클릭이 필요치 않은, 일일 연속극의 예고편을 차라리 연상시킨다. ‘심즈 일지’를 작성하는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상호작용하며 시뮬레이션을 조정해 나가는 차원의 인터페이스는 기록 과정에서 전면화되지 않기를 넘어서 은폐되어야 한다. 시뮬레이션된 세계가 띄는 허구적인 리얼리티는, 이 시뮬레이션의 전제 조건들과 설정들을 조작하는 인터페이스의 은폐를 통해서 추체험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XC94CHpni1Y * The Sims 4 그로잉 투게더: 공식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The Sims 제공 은폐를 실천하는 다양한 전략들 중 흥미로웠던 심즈 일지의 양태는 심들이 하는 대화를 상상적으로 구성하고 스크린샷의 하단에 ‘자막’을 달아서 표시하는 형식이다. 심들은 옹알이처럼 들리기도 하는 “심리시(Simlish)”라는 가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걸로 가정되어 있는데, 자막 형식의 사용은 마치 실재하는 언어를 플레이어의 모국어로 번역해낸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이 같은 편집은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를 없는 체하는 기만과는 다르다. 오히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은폐의 전략들을 활용하면서, 플레이어는 ‘현실’에 대한 편집자이자 촬영 감독의 자의식을 표현해낸다. 게임 커뮤니티와 게임 내 상호작용을 포괄하여, 게임 내외적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자의식의 표현이 <심즈> 시리즈가 전하는 쾌의 중핵을 이룬다. 앞서 언급한 ‘모더’들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심즈> 시리즈는 모딩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프랜차이즈다. 나는 <심즈 4>를 정확히 밝히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긴 시간 동안 플레이했는데, 이는 <심즈 4>가 시리즈 중 가장 진보했거나 흥미로운 판본이기 때문은 아니다. 심즈 유저들과 모더의 커뮤니티가 현시점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성화되어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타냐 시보넨(Tanja Sihvonen)의 정의를 빌려오자면, 모딩(Modding)은 “공식적으로 발매된 컴퓨터 게임, 그 게임의 그래픽과 소리, 캐릭터를 사용자 정의 콘텐츠를 통해서 확장하고 변경하는 다양한 방식”을 가리키는데, 이는 “새로운 게임 메카닉, 새로운 게임 플레이 레벨”을 창조하는 것까지 의미할 수 있다(Sihvonen 6). 모더들은 게임 플레이 상의 편의성과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증대하기 위하여 게임의 전제들을 뒤바꾸기도 하고, 심의 외양과 건축물을 꾸밀 수 있는 사용자 정의 콘텐츠(custom contents)를 창조한다. <심즈>의 모더 역시 모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코딩 절차나 포토샵, 블랜더와 같은 툴의 사용을 전면화하기보다는 허구적 리얼리티의 편집자로서 자의식을 표현하는 다양한 전략들을 취한다. 그 전략들이 자주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현대적 직업의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표현된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 가령 게임 속 심에게 입힐 수 있는 새로운 복장들을 만들어내는 모더들은 심들의 옷을 갈아 끼우는 게임 플레이 기본 화면을 통해 자신의 옷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보단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은 심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모델 화보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공유 페이지의 전면에 내세우는 게 일반적이다. Sentate와 같은 모더들은 그가 제작한 의상 모델링을 걸치고서 <심즈 4> 내에서 워킹을 하는 심 모델들이 출연하는 패션쇼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0LzV7vMvQuU * Sentate Haute Couture 2022 Collection (Sims 4 CC), Sentate 제공 케이팝 아이돌과 한국의 예능인을 닮은 심을 창조하는 유튜버 심즈 아무나AMUNA 역시 그가 세심한 조작을 통해서 빚어낸 심을 ‘출연’시켜 뮤직비디오나 한국 예능의 문법을 패러디한 영상들을 만들어낸다. 한편, <심즈> 시리즈에서 깔끔하게 지워지거나 코믹하게 그려질 따름인 폭력과 비극적인 사고를 구현하는데 관심이 있는 모드 “Life is Tragedy”의 경우 과잉의 부정적 감정 표현을 선보이는 막장 멜로드라마의 제스처들과 컬트 영화의 황당무계한 폭력들을 함께 빌려온다. 모더의 홈페이지는 자신의 모드로 <심즈> 상에서 연출할 수 있게 되는 장면들을 슬래셔와 코미디에 각각 반 발자국씩 걸쳐 있는, B급 영화의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섬네일을 통해 예고한다. <심즈> 시리즈의 모더와 플레이어 모두 다양한 층위에서 시뮬레이션의 전제들을 조작하고 변경하며 상상적으로 현실을 구성하는 이들이란 점에서 시뮬레이터로 느슨하게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시뮬레이터가 화려하게 인테리어한 건축물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플레이어의 심이 생활해갈 수 있는 환경으로서 공유한다면, 또 다른 이는 하이틴 드라마나 컬트 무비의 PD이자 촬영 감독이 되고, 패션 디자이너와 뮤직비디오 촬영 감독으로서 의식을 표현하기도 한다. 시뮬레이터의 무궁무진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자기표현은 <심즈> 시리즈의 폭넓은 자유도나 소위 ‘현실’과의 근접성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시뮬레이터의 자기 상은 매스미디어의 문법들, 그 심상들과 함축을 조립하고 편집하는 소위 ‘창작자’의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자의식을 대체로 참조한다. ‘자기 브랜딩’의 영역을 유희화하는 수준에까지 말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심즈> 시리즈가 무한한 자유도를 보장한다기보다는, 그것에 함축된 통속성, 현대적 분업과 ‘창조적’ 생활의 맥락이 시뮬레이터의 즐거움을 장르화하고 구체화하는 차원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 텍스트, 게임의 이데올로기적 함축과 인터페이스와의 관계, 그리고 그 게임에 지배적인 장르들이 교차하여, 시뮬레이터의 자의식과 그것을 표현하는 즐거움이 띌 수 있는 형상들을 빚어낸다.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하며 그 제반 조건을 변화시키고 조작하며 편집적인 현실을 생성하는 과정은 시뮬레이터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시뮬레이터의 자기 표현 과정 역시 게임적인 쾌가 펼쳐지는 장소이며, 게임 디자인과 플레이가 상호 개입하며 기틀을 잡아가는 구조물로서 식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 문헌 곤살로 프라스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김경섭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제니퍼 M. 실바. 커밍 업 쇼트 :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 문현아, 박준규 역, 리시올, 2020 Barnes, Adam. “The Sims Turns 20: Creator Will Wright Reflects on the Battle He Waged to Get One of the Best Games of All Time Made.” Gamesradar , GamesRadar+, 4 Feb. 2020, www.gamesradar.com/the-making-of-the-sims/ . Sihvonen, Tanja. Players Unleashed ! Modding the Sims and the Culture of Gaming . Amsterdam University Press, 2009.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북리뷰]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중요한가?
이 책은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게이머, 게임 캐릭터, 게임 산업 관련 종사자 앞에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과 불편함,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순히 ‘이런 사례가 있고 그래서 나쁘다’는 식의 단편적인 나열이 아니라 앞서 밝힌 문제들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연 지금까지 여성을 위한, 여성을 그린, 여성에 의한 게임이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 Back [북리뷰]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중요한가? 13 GG Vol. 23. 8. 10. 이 책은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게이머, 게임 캐릭터, 게임 산업 관련 종사자 앞에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과 불편함,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순히 ‘이런 사례가 있고 그래서 나쁘다’는 식의 단편적인 나열이 아니라 앞서 밝힌 문제들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연 지금까지 여성을 위한, 여성을 그린, 여성에 의한 게임이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게임하는 여성’, ‘게임 속 여성’, ‘게임을 만드는 여성’ 들은 게임과 관련된 다 영역에서 눈에 띄는 양적 증가세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접근하기 위해 BJ갓건배와 클러저스 사건, 여성 게이머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으로 시작한 ‘혜지’부터 게임 커뮤니티에 만연한 트롤링 문제, 게구리 선수의 실력 인증 논쟁, 게이머게이트 등 이 사회를 시끄럽게 뒤흔든 게임과 관련된 사건들을 사례로 들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건들이 단순히 게임을 매개로 한 성별 간의 갈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그들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초대받지 않은 침입자’ 이 책에서는 여성 게이머들에 대한 이야기를 메건 콘디스의 연구를 중심으로 ‘섹시한 보조’, ‘어리바리한 초보’, ‘게임 덕후인 척하는 거짓말쟁이’라는 세 가지 타입으로 분류하여 다루고 있다. 여성 게이머들은 이러한 전형적 이미지로 인해 게임 내에서 주로 ‘보조’일 (간주할) 뿐이다. 또한 진정한 게임을 즐기기 보다는 캐주얼 게임과 같은 ‘가짜 게임’을 주로 플레이하는 존재로, 종종 게임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최상위급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게임을 능숙하게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는 과도한 동경과 추앙의 대상으로 포장되기도 하며 (‘여왕벌’), ‘그럴 수가 없다. 분명 무엇인가 꼼수를 사용했을 것이다.’라는 시선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여성 게이머들은 자신을 감추거나 ‘진짜 게이머’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여성 게이머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증명하고 인증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여성 게이머들이 자신들을 위한 영역이 아닌 곳에 불쑥 들어온 ‘초대받지 않은 침입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텔레비전의 광고에서 조차 이러한 이미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이 책에서는 게임 이용 조사 결과나 자료 등을 바탕으로 실제로 여성 게이머의 비율은 남성과 큰 차이가 없다는 재미있는 통계를 제시한다. 더불어 ‘진짜’ 게임이 아니라고 폄하되는 캐주얼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더 많으며 이와 같은 경향은 성별과 연령에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여성 게이머에 대한 시선이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들은 ‘초대받지 않은 침입자’라는 라벨링으로 인해 여성 프로 게이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미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성별에 따른 능력 및 실력 차이에 대한 견고한 신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성 게이머가 남성 게이머에 비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이는 게임을 논의할 때 기존의 신체적 혹은 물리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특정 성 역할에 대한 편견과 인식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은 다수가 아닌 소수의 게이머들(혹은 소수로 폄하되고 있는 게이머들)에 대한 편견이 우리 사회 전반에 여전히 존재하기에, 이러한 편견과 차별 어린 시선이 여성 게이머들의 게임 즐기기와 경험을 어떤 식으로 방해하고 있으며 게임 커뮤니티 형성에 어떠한 걸림돌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진짜 게임’도 아니다-‘진짜’를 찾아라. 여성 게이머들은 종종 게임 커뮤니티에서 ‘진짜 게이머’가 아니라는 편견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은 앞서 살펴보았다. 저자들이 밝힌 바와 같이 남성 게이머들이 주로 플레이한다고 알려진 하드코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열정적이고 진정한 게이머로서 인식되며, 여성 게이머들이 관심을 가지고 즐기는 것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대해졌다. 여성 게이머들은 주로 ‘진짜 게임’이 아닌 ‘가짜 게임’을 좋아한다는 인식과 ‘진짜 게임’ 혹은 ‘진짜 게이머’에 대한 신념은 현재 우리의 게임 문화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저자들은 하드코어-캐주얼 게임이 명확히 정의된 것이 아니라는 예스파 율의 지적을 인용하며 “하드코어- 캐주얼 구분은 애초부터 명확하게 고정된 것도 아니지만, 현실에서의 반복적 용어 사용은 어느새 이 구분을 남성적-여성적 구조로 전이시켰다.”(71쪽) 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의 ‘진짜-가짜’, ‘남성-여성’과 같이 단순하게 이분화한 논쟁은 무의미하다고도 주장한다. 오히려 여성 게이머의 증가와 같은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게임도 게이머도 다양화되고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이 책에서 그리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진짜 게임’, ‘가짜 게임’을 논의하기에 앞서 ‘총을 쏠 수 있는지’를 묻는 불편한 환경 속에서 ‘진짜’ 게임을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장르와 플레이 스타일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그 세계의 주류를 구성하고 있더라도 잘못된 관념이라면 언젠가는 깨고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재현하는가. 이 책에서는 게임 속 여성 캐릭터에 대한 잘못된 재현 방식과 편파적인 역할 배분, 그리고 라라 크로프트의 재현을 둘러싼 계속되었던 논쟁을 들어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여성 캐릭터 재현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 중 하나로 게임에서는 때때로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는 캐릭터가 등장하며 남녀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초기의 픽셀 중심 그래픽과 비교하여 게임 그래픽 영역에서는 기술적으로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져 왔으며, 게임 캐릭터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도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기존과는 다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분명히 주목할 만한 새로운 흐름이다. 그런데도 이 책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여전히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은 쉽게 성적 대상화가 되거나 폭력, 착취를 받는 형태로 재현되곤 한다. 특히 저자들은 무분별한 재현의 양적 증가는 오히려 기존의 잘못된 고정적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성 재현 문제는 게임이 가지는 플레이라는 상호작용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 재현 이상의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는 저자들이 설명한 것과 같이 “게임의 메카닉적인 요소와도 깊은 관련을 맺는다는 점”(132쪽) 을 인지해야 하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바로 지금’, 주의 깊게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게임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다양한 상호작용을 만들고 그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데에 중요한 미디어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장난 파이프라인’이 아니다. 저자들은 게임 산업에서의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 핵심적인 업무와는 관련이 적은 일을 하는 이들로 인식되고 있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 게이머들 혹은 게임 내에 재현되는 여성 캐릭터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성 게임 개발자들이 경험하는 차별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여성 게임 노동자들이 커리어를 이어 나가기 위해 겪는 어려움을 ‘고장 난 파이프라인’으로 비유하여, 이러한 문제들이 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들은 “성평등 의식이 높다고 평가받는 스웨덴에서조차 여성 게임 제작 노동자의 능력이 과소평가된다는 비판과 반성이 있었다. “게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와 “여성은 진짜 게이머가 될 수 없다.”는 믿음이 결합해 남성 중심의 노동 문화를 형성했다는 것이다.”(211쪽)라는 설명을 통해 게임 산업 전체에 퍼져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 능력에 대한 불신, 선입견 등의 문제들은 전 세계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게임 산업 여성 노동자들과 관련된 사례들은 분명 게임 업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특정 성별의 노동자들이 다수인 직업군에서도 그와 비슷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게임 산업 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고찰을 함께 담으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노력이 게임 산업에 만연한 불평등과 편견을 조금씩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게임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게이머는 총을 쏴야만 하는가?-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 게임 나라로 오세요.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 책의 타이틀이자 저자들의 중요한 고찰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게임은 아이들을 ‘게임뇌’로 만들며 중독시키는 유치하고 저급한 문화로 여겨져 왔다. 또한 전자 오락실, PC방으로 대표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소도 젊은 세대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유해한 기피의 대상이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이 책의 주요 대상인 ‘게임하는 여성’, ‘게임 속 여성’, ‘게임을 만드는 여성’들을 향한 차별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있다. 저자들은 약 290쪽에 걸쳐 이러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해체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여성 게이머, 여성 캐릭터, 여성 게임 산업 노동자와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분석함으로써 지금까지 비주류로 소외되었던 이들을 포함하여 "즐거운 게임을 모두가 즐겁게 하기 위한"(280쪽)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는 게임 문화 형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고자 한다. 상식적이지 않은 차별과 편견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당연시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의문과 논의가 게임 문화의 포용성을 높이며 게임 산업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저자들이 “게임이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일상적 여가·오락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미 도래했거나.”(269쪽)라고 언급한 것처럼 게임은 이제 더 이상 특정 성별이나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진짜 게이머’와 ‘가짜 게이머’에 대한 논쟁 역시 게임 문화 속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과도기적인 현상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진정한 게이머’, ‘진짜’의 기준을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나 애정의 정도로 증명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처럼 생각된다. ‘진짜’를 위해 혹은 ‘가짜’라는 비난을 피하려고 방아쇠를 당기거나 칼을 휘둘러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이 ‘진짜’ 게임인지, 게임에 대한 본인의 애정이 ‘찐’인지 아닌지를 물건의 진위를 감정받는 것처럼 증명할 필요는 없다. 여성 게이머라고 해서 특정 장르의 게임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총을 쏘는 것을 즐기는 게이머가 있다면 수집하고 레시피를 조합하여 음료를 만들거나 상자에서 꺼낸 물건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행위를 무한반복 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들을 누가 ‘진짜’ 게이머가 아니라고 그들이 플레이하는 것이 ‘진짜 게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이들이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이를 반영한 각기 다른 장르와 주제, 캐릭터를 다루는 게임을 접함으로써 비선형적인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게임 문화를 위해 나아갈 시기라고 이 책은 우리 사회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가 총을 쏠 수 있지만 모두가 쏠 필요는 없으며 굳이 쏠 수 있는지 혹은 잘 쏘는지에 대한 증명이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환경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더는 강요하고 차별하는 사회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는『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는 당장 완전한 해결책을 제안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게임 문화를 위한 논의의 출발점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의를 가진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리츠메이칸대학 기누가사 종합 연구 기구 전문 연구원) 신주형 주로 시리어스 게임과 시리어스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소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리츠메이칸대학 게임 연구 센터 (RCGS)의 게임 아카이빙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 보다 책임감 있는 재현을 실천하는 게임을 향해
어떤 매체에 대한 담론은 해당 매체가 겨냥하는 수용자 또는 이용자가 어떤 존재이며 그들이 매체와 맺는 관계에는 어떤 의도들이 담겨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가지를 드러낸다. 북미와 유럽의 게임 관련 공공 담론에 있어 오랫동안 게임은 - 거칠게 말해 - 번쩍이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오락에 하릴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십대 소년들을 위한 것으로서 인식되어왔다. < Back 보다 책임감 있는 재현을 실천하는 게임을 향해 04 GG Vol. 22. 2. 10. - You can see the english version in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86 어떤 매체에 대한 담론은 해당 매체가 겨냥하는 수용자 또는 이용자가 어떤 존재이며 그들이 매체와 맺는 관계에는 어떤 의도들이 담겨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가지를 드러낸다. 북미와 유럽의 게임 관련 공공 담론에 있어 오랫동안 게임은 - 거칠게 말해 - 번쩍이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오락에 하릴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십대 소년들을 위한 것으로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정형화 되어있는 게이머에 대한 인식에 의문을 표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실제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처음 게임을 접하게 된 유아들, 〈워드퓨드(Wordfeud)〉 같은 게임에 빠진 은퇴한 여성, 손주와 〈카운터 스트라이크〉 게임을 함께 하는 할머니 게이머 등이 포함된다. 또한 〈포트나이트〉를 배회하며 함께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게이 게이머나 잠든 아기 옆에서 닌텐도 스위치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젊은 엄마도 포함될 수 있다. 게임 문화의 규범 비평 디지털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당연히 - 정형화된 유형의 플레이어들이 아니라 - 나름의 개별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경험하는 실제 플레이어들이다. 지난 십 년간 게임 저널리스트, 문화 비평가, 학자들은 주류 게임 내 젠더와 인종, 장애, 나이, 신체에 대한 재현의 문제에 대해 논의해왔다. 이러한 논의가 밀도 있게 시작된 것은 북미였지만, 이제는 유럽에서도 규범 비평(norm critique)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게임 내 재현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3가지로 나뉜다. 첫째, 게임이 사람들의 다양한 정체성 또는 정체성의 여러 측면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둘째, 게임의 이용자층에서 주변화되어있는 사람들에 대한 재현이 어떠한가, 셋째,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그들의 업무 환경은 어떠한가. 이 세 가지 요소는 공공 담론상에서 상호적으로 얽혀서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게임에서 여성이 부정적으로 재현될 경우 여성 플레이어들이 그 게임으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라고 여겨지며,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의 양상이 개선되면 게임 내에서도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개선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어느 정도 사실일지라도,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을 게임학자들은 지적한다.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게임들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가 수적으로 적고,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서 한정되는 등 오랫동안 불균형이 존속되어왔으며, 여성 캐릭터들의 외모가 시각적으로 성적인 매력이 지나치게 부각되어왔음은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1983-2014년 사이에 출시된 5백편이 넘는 게임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90년대 후반에 정점을 찍은 여성 신체의 성적 대상화는 2006년 이후부터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감소 추세는 업계 전반적으로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게임이 진지한 주제에 대한 자각을 일깨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면서 시작된 느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Hellblade: Senua’s Sacrifice)〉를 출시한 영국의 게임사 닌자씨어리(Ninja Theory)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타밈 안토니아데스(Tameem Antoniades)는 인터뷰를 통해 이 게임이 단순한 오락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신병으로 인한 고통이 어떠한 경험인지 플레이어들이 진정으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2018년 덴마크에서 인디게임 데모로 출시된 〈포가튼(Forgotten)〉은 알츠하이머로 인한 고통이 어떠한지를 표현했다. 이 게임은 현재 오토스코피아 인터랙티브(Autoscopia Interactive)에서 개발 중이다. 유럽의 인디게임 업계 또한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고 주변화된 인물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게임개발사 픽셀 헌트(The Pixel Hunt)가 개발한 〈Bury me, My love〉는 유럽을 횡단해서 프랑스 파리까지 이동하는 한 시리아 난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2021년 가을에는 영국의 AAA 게임사 플레이그라운드 게임즈(Playground Games)가 인기 레이싱 게임 〈포르자 호라이즌(Forza Horizon)〉의 다섯번째 판을 내놓으면서, 게임 내에서 의수나 의족을 찬 캐릭터를 생성하는 것과 성 중립적인 대명사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졌음을 주류 언론의 헤드라인을 통해 알렸다. 많은 논쟁이 게임 캐릭터에 대한 재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가운데, 포용적인 게임 디자인이 이 특정한 문제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부상하고 있는 인디게임 산업은 AAA 산업의 잘 다듬어진 모델 너머에 존재하는 경험들을 전달하고자 하는 게임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한 게임들은 또한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있을 수 없는 플레이어들에 맞는 플레이 모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은 IO인터랙티브(IO Interactive) 같은 소수의 거대 스튜디오를 제외하고 대부분 소규모의 인디 게임 개발자들로 구성되어있는 덴마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 〈포가튼(Forgotten)〉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는 짧은 게임이다. 기억 상실과 왜곡의 감각을 주기 위해서 게임 캐릭터들의 얼굴이 흐려져 있다. 플레이어층의 확장 이처럼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는 변화상은 플레이어층의 다양화라는 두번째 문제로 부분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게임산업은 새로운 수용자층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플레이어들에 호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게임 내 주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재현과 플레이어층의 다양성 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으며, LGBTQ 등 주변화된 집단의 사람들은 게임 내 LGBTQ 캐릭터가 부정적으로 재현될지라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주류 매체조차 게임 내 주변화된 사람들에 대한 문제적 재현에 관심을 가지면서, 게임사들이 그와 같은 부정적인 정형화를 반복 재생산하는 것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은 공공 담론 그 자체가 게임업계로 하여금 강력한 구매력을 지닌 집단을 겨냥하여 새로운 이용자층으로 포섭하도록 장려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 내 주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 묘사의 문제는 상황의 한 단면을 설명하는데 그칠 뿐이다. 많은 주변화된 집단들은 여전히 괴롭힘과 차별, 폭력을 경험하고 있는데, 특히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할 때 심각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플레이어의 주변화 문제를 다루는 유럽 내 담론이 주로 (젊은) 여성 플레이어의 경험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종이나 사회·경제적으로 주변화된 사람 등 여타의 주변화된 집단의 상황은 여전히 공공 담론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주변화된 정체성을 지닌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을 존중하면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음에도, 게임 업계가 여전히 그러한 집단이 지닌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대를 통한 노동 조건의 개선 지난 수년 간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의 문제는 상당한 주목을 받아왔다. 업계 내 주변화된 노동자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1ReasonWhy 해쉬태그를 통해 업계 내 차별과 성차별주의, 괴롭힘에 대해 알리기 시작하면서 십년 전부터 주목 받아온 이 문제는, 지난 몇년 동안 유럽의 AAA 업체 내 유해 업무 문화나 성적 부정행위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다시 헤드라인에 오르기 시작했다. 북유럽에서는 아직 이와 유사한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러 매체에서 폭력이나 가해 행위의 몇 가지 사례를 다룬 바 있다. 노동조합은 명백히 이와 같은 문제에 대처하는 기관으로서 주변화된 노동자들을 위한 환경의 개선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강력한 노동조합의 전통을 지닌 스칸디나비아 반도임에도 이 권역 내 게임 업계의 노동자 조합은 아직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주변화된 인물에 대한 책임감 있는 게임 내 재현이나 남성 게이머라는 정형화된 규범의 바깥에 놓인 플레이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의 조성 등과 같은 다양한 논의들이 벌어지고 있는 공공 담론의 다른 한편에서는 업계 내 조직의 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울려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다 요르겐센 이다 요르겐센은 덴마크의 코펜하겐 IT 대학(IT University of Copenhagen)에서 게임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주로 젠더 재현, 게임 문화, 매체로서의 게임 등과 관련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서던 덴마크 대학(the 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에서 박사후 과정 중에 있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USA in Fallout, USA today
We once thought that the era of Donald Trump had come to an end, but it appears it hasn't. While Trump may have lost the election, his supporters' enthusiasm remains robust. What fuels this enduring energy? Moreover, is the driving force behind Trump's rise aligned with traditional 'American' values or does it run counter to them? It's worth recalling that Trump's campaign slogan was 'Make America Great Again'. Yet, years later, when President Joe Biden won the election after a vigorous anti-Trump campaign, he declared his presidential message as 'America is back.' So, which vision truly represents 'America' – Trump's or Biden's? < Back USA in Fallout, USA today 14 GG Vol. 23. 10. 10. We once thought that the era of Donald Trump had come to an end, but it appears it hasn't. While Trump may have lost the election, his supporters' enthusiasm remains robust. What fuels this enduring energy? Moreover, is the driving force behind Trump's rise aligned with traditional 'American' values or does it run counter to them? It's worth recalling that Trump's campaign slogan was 'Make America Great Again'. Yet, years later, when President Joe Biden won the election after a vigorous anti-Trump campaign, he declared his presidential message as 'America is back.' So, which vision truly represents 'America' – Trump's or Biden's? The Fallout game series also raises questions about 'what is the USA', although it's unclear whether this was the developers' precise intention. Let's consider the New California Republic (NCR) as an example, the epicentre of the Fallout world. NCR is a nation rebuilt by the power of its people from the ashes of destruction and appears to serves as a metaphor for how Americans perceive their nation's founding narrative – the USA that was built by the people, on the lands that European settlers deemed as 'uninhabited'. Furthermore, NCR represents a highly advanced civilisation with a touch of snobbism and expansionism, yet an attempt to avoid excessive conflicts with the outside world. This mirrors the historical fact that the USA, while aspiring to become a global power/player, maintained an isolationist foreign policy for a significant period before World War II. The protagonists in the Fallout series are typically residents of the vaults . For instance, in Fallout 1 and Fallout 2 , the protagonists have close ties to and support the NCR or its preceeding entities. These protagonists emerge from the vault that preserves remnants of the 'old world' and in the game, for the first time, encounter the 'new world' outside in a state of ruin. This reminds me of historical events when the European settlers from the 'civilised' world initially set foot in the 'barbaric' new world in ruin, seeking to establish colonies. As its name suggests, the New California Republic (NCR) establishes itself in the west, pushing into the wasteland, which notably evokes memories of the 'Western frontier'. America's westward expansion was driven by heightened nationalism under the leadership of Andrew Jackson and, in the process, resulted in significant conflicts and the destruction of native peoples and their cultures. This parallels the situations that gamers encounter through the various factions' conflict for control of the Hoover Dam in Fallout: New Vegas . Caesar’s Legion, an antagonistic faction in Fallout: New Vegas , consistently asserts authoritarian control over its territory. This reflects how colonist might have appeared from the perspective of indigenous people during the westward expansion. Historical accounts reveal that Native Americans resisted this expansion by forming alliances with or receiving military support from, British or French troops stationed in the region. In the context of the modern-day United States, Caesar’s Legion seems to draw inspiration from extremist groups like the Islamic State (IS) – also known as the 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ISIS). However, it's a well-known fact that modern Islamic extremists have their roots in military groups formed during the Cold War, in response to the imperialistic expansion of both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This parallel is mirrored in the game Fallout , where Caesar, the leader of Caesar’s Legion, was formerly associated with the 'Followers of the Apocalypse', a humanitarian and intellectual medical group. In a way, Caesar’s Legion can be seen as an anti-civilisational phenomenon born out of the frustrations with a failing civilisation. When players confront Caesar’s Legion in the game, they are also confronted with the historical ironies that the USA faces in its own history. The Enclave, a villainous group that appears in both Fallout 2 and Fallout 3 , serves as a significant element prompting questions about the ‘truly American'. To settlers, the Enclave represents an 'old world' power aiming to dominate the wasteland by controlling knowledge and employing force, with their actual power centre concealed in a distant location. This scenario bears resemblance to how historical Great Britain might have been perceived by the colonists in America across the Atlantic before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Interestingly, the vault residents, despite sharing similar cultural and societal norms, opt to coexist with the wasteland and resist the Enclave. This mirrors the stance of the colonial intellectual class that led the War of Independence against Britain. Yet, there’s one crucial factor that I must point out. Historically, the dominant conflict within American political society during westward expansion revolved around the clash between the ‘old world’ and the ‘new world’, with the old world associated with power, knowledge, and the clerical system. For instance, America's evangelical church, which gained popularity during the Great Awakening, found itself in conflict with the established colonial clergy and intellectual elite. The evangelical doctrine of the time, which permitted ordinary worshipers to serve as preachers, obviously challenged the traditional churches of the 'old world'. From the evangelical perspective, these established churches were perceived as mere institutions that monopolised knowledge, power, and divinity. Coming from this historical trace, Richard Hofstadter once noted that American anti-intellectualism can trace its roots to a deep-seated antipathy toward knowledge and power, creating a point of convergence between anti-intellectualism and democracy. Within this context, we can interpret the vault residents as symbolic representations of colonial elites who have a favourable disposition towards the wasteland but can never truly become a part of the wasteland. This dynamic helps explain the ambivalent feelings that Fallout players have towards the Brotherhood of Steel (Brotherhood), another faction aiming to monopolise intellectual and military resources in the post-apocalyptic new worl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wasteland's inhabitants, the Brotherhood appears as nothing more than elite exploiters who make oaths of 'good faith', reminiscent of how settler communities may have perceived colonial intellectuals and clergy that misuse power. This narrative framework forces the players, empathising with the vault residents, to feel both sympathetic and rebellious against the Brotherhood. Fallout 4 sought to encapsulate these recurrent historical themes within the USA more condensedly and comprehensively. The game leveraged the spatial characteristics of the game’s New England region as a narrative instrument to reincarnate the early US history. The game's protagonist, who retains memories of the era preceding the Great War (translator's note: a fictional conflict in the Fallout series, posited to have occurred between the USA and China, culminating in a nuclear apocalypse), also serves as a bridge for players to engage with the game's narrative and the history. In Fallout 4 , players can construct and establish settlements, akin to the initial settlers who migrated to the American continent. Here, the Commonwealth Minutemen, one of the in-game factions that the protagonist first encounters in the game, play a pivotal role in bridging the historical context. Within this framework, the history of the US is portrayed as having begun sometime when patriots organised a militia for the nation’s independence. It is this thematic backdrop that explains the game design elements of small-scale city-building simulations in Fallout 4 . Moreover, in Fallout 4 , the Institute (translator’s note: one of the factions in Fallout 4) appears to allude to a period in history marked by the confluence of anti-intellectualism and anti-communism, known as McCarthyism in the US. The game's aesthetics are notably influenced by the country's post-war culture of the 1950s – the very essence of the Fallout universe aesthetics – which vividly encapsulates the era of McCarthyism. US scholars have attributed that rise of McCarthyism in the US to a series of political events, including the Soviet Union's successful nuclear test, China's expansion of communism, and the stalemate situation of the Korean War. These incidents compelled Americans to perceive a formidable ‘outside threats’ beyond their reach, subsequently prompting the US populace to embrace McCarthyism as a means of countering this perceived menace from within. In essence, McCarthyism aligns with a recurring historical pattern in the US, characterised by public apprehension in the face of power struggles, conflicts between old-world and new-world elites, and tensions involving intellectuals. This explains the in-game characters' reactions to the Institute in Fallout 4 . For example, we can observe the hostile responses of Fallout 4 characters toward "synths", the artificial humanoids produced by the Institute. They exhibit a deep-seated fear of synths, often calling them the 'boogeyman', and engage in witch hunts to locate and expose these synths. This behaviour fundamentally mirrors the way McCarthyism indiscriminately labelled intellectuals, government officials, and artists as 'communists' without any substantiated rationale. Another intriguing aspect of the story is the presence of a counteracting faction in the game, an underground movement that defines synths as oppressed beings and strives to liberate sentient synths from their creators. This faction, known as The Railroad, strikingly resembles a historical phenomenon, a covert network called the Underground Railroad, which aided the escape of black slaves from the South to free states in the North. By contextualising the game's narrative within the historical backdrop of the US, the synths first mirror the unjustly accused victims who were branded as 'communists' during McCarthyism. Simultaneously, they symbolise the oppressed history of ethnic minorities facing racial discrimination. The plot takes an intriguing turn as it becomes clear that the Institute's objective, mobilising synths, was ultimately aimed at the reconstruction of the world. It's worth revisiting that the Institute bears resemblances to communism in the historical context of McCarthyism. Throughout history communism underwent significant trial and error, resulting in substantial civilian casualties. However, even if one is compelled to acknowledge that communism represented an effort to address prevailing issues, the question arises: What might occur if the US were to embrace certain elements of communist ideology in the present day? Or, what if the US society were to recognise the social and economic value of immigrants (the synths) as an essential component for global stability? Furthermore, these same questions can be posed from an entirely opposite perspective, considering the metaphorical resemblance of synths to both 'communists' and 'slaves'. For instance, if we were to perceive the rise of Trumpism and the Bush administration's invasion of Iraq as attempts to resolve inherent prevailing issues in America, and strive for a better world, where do we go from there? Fallout: New Vegas and Fallout 4 give players multiple decision-making scenarios in this ‘where do we go from there?’ situation. Players can either opt to align themselves with a particular faction introduced in the storyline, aiming to undermine or annihilate their adversaries, or they can forge their own group. The commonly perceived 'true ending' of the game unfolds when the protagonist embarks on a journey, envisioning a new future shaped by human hands. Nevertheless, whether this path truly represents the best choice among the available options remains a matter of uncertainty. But regardless of the option the player decides to choose, the game's outcome often serves as a reflection of certain episodes from US history, as previously discussed. The ongoing political struggle in the US, exemplified by the conflict between the Trump and Biden administrations, therefore, can be seen as another iteration of the US’s historical pattern. Biden brings Trump, and Trump brings Biden – a cycle of perpetual conflict. The fictional world of Fallout emerges as a consequence of ‘resetting’ these recurring conflicts followed by the massive destruction. Yet, the humanity still hurtling down to the path of self-destruction through warfare. However, even within what may appear to be an endless cycle, one can choose to explore uncharted territories, akin to the Yes Men in Fallout: New Vegas or the Commonwealth Minutemen in Fallout 4 . Just as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once emerged, all these elements contribute to the complex tapestry of the US as what it is. Perhaps it is the reminiscent of Fallout 's timeless slogan, "War never changes". Tags: fallout3, projectpurity, GECK, fukushima, radioactive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olumnist) Minha Kim Kim is known for his activities as a critical expert on current affairs in various press media. But he is also an active gamer who never let go of games. Some of his publications includes 『a cynical society』, 『Otaku Loved Lenin』, as well as a co-author of 『Now, Here, Far-Rightism』, 『right-wing discontent』, 『Twitter, that 140-character egalitarianism』. His latest publication is 『Democracy where you vote because you don't like that side』.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 <시티즌 슬리퍼>: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인류는 늘 유한성에 저항해 왔다. 이러한 저항은 단지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착화된 이념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한성에 대한 저항은 어떤 의미인가? 이 글에서는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으로부터 그 답에 다가서고자 한다. 여기에서 몸은 지극히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신체를 뜻한다. 그리고 꿈은 희망과 절망을 의미한다. ‘꿈을 꾸는 것’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이기 때문이다. < Back <시티즌 슬리퍼>: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22 GG Vol. 25. 2. 10. ※ 스포일러가 간접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 슬리퍼(Sleeper) [1] 인류는 늘 유한성에 저항해 왔다. 이러한 저항은 단지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착화된 이념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한성에 대한 저항은 어떤 의미인가? 이 글에서는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으로부터 그 답에 다가서고자 한다. 여기에서 몸은 지극히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신체를 뜻한다. 그리고 꿈은 희망과 절망을 의미한다. ‘꿈을 꾸는 것’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자신의 꼬리를 물고 놓지 않는 우로보로스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몸에 새겨진 꿈이란, '나'에게 얽매여 있는 내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여러 주체들의 염원이다. 신체와 사회라는 이중벽 모든 생명은 신체를 갖고 살아가는 한 여러 한계를 지닌다. 인간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비롯해 사회에 종속된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제약을 지닌다.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난 일들도 결국 '나'를 제외한 세계에 연루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 미래에, 나의 신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이러한 상상은 사실 공상 과학 영화나 문학, 그리고 게임에서 자주 다루어져 왔다. 주로 인간의 신체를 영구적으로 개조하거나 안드로이드에 의식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는 단지 기술 발전에 대한 인류의 환상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신체에 내재한 사회적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 새로운 신체를 획득하는 것에 대한 상상은 나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조망하고,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어떤 조건들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즉 한정된 신체를 넘어선다는 것은 그저 강력한 힘이나 영생을 얻고자 하는 일만을 지시하진 않는다. 게임 개발사 점프 오버 디 에이지(Jump Over the Age)의 <시티즌 슬리퍼(Citizen Sleeper)>(2022)는 앞서 서술한 논의를 아우르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자신의 신체와 출신지를 떠나 눈(eye)이라는 도시에 이제 막 도착한 '슬리퍼'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슬리퍼는 인간의 의식과 로봇의 몸을 가진 존재다. 그런데 눈의 시민은 대다수가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슬리퍼는 철저히 외부인으로 취급된다. 그는 자유와 행복을 찾아 이곳으로 도망쳐 왔지만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내일'이라는 꿈을 간직한 채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슬리퍼라는 '주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TRPG(Tabletop Role-Playing Game) 기반의 내러티브적 설정을 활용한다. 즉 시스템의 불가변성과 플레이어의 자율성을 동시에 수용함으로써, 견고하고 거대한 사회에 맞서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이 게임의 시스템은 현대 사회에 내재한 이데올로기를 투사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신체와 사회로 쌓아 올려진 이중벽을 마주한 채 슬리퍼로서의 꿈을 지켜내야 한다. 시스템 사이를 떠도는 ‘나’ TRPG 시스템은 가상 세계에서 통용되는 공동의 규칙을 갖는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그 범위 안에서 행동을 수행해야 한다. <시티즌 슬리퍼>의 주요 규칙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이클마다 무작위로 주사위가 부여되며, 그 값은 슬리퍼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슬리퍼의 몸 상태가 나쁘면 주사위의 개수가 줄어들고 행동 성공률이 낮아진다. 주사위는 돈을 벌고, 노동을 하고, 사람을 사귀는 등 행동하는 데에 쓰인다. 반복이 불가능하거나 연한이 정해진 행동이 있다. 주사위를 모두 소진하면 더 이상 행동을 수행할 수 없으며 사이클을 종료해야 한다. 방금 살펴본 것들은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으로 제한적이다. 또한 게임의 시스템은 내러티브 안에서 심리적인 제약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과거 노예 로봇이었던 슬리퍼는 눈에서 사회적 약자에 속한다. 이는 에피소드 초반부터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는 매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여러 번 고민한다. 간혹 도와주는 사람이 등장하지만, 눈의 사회는 그들의 호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게다가 슬리퍼의 몸체는 의도적 구식화를 겪고 있다. 일정 기간 내에 제조사에서 판매하는 전용 영양제를 투여하지 않으면 기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곳에서는 쉽게 구할 수가 없다. 이로써 슬리퍼의 컨디션은 급격히 나빠지고 행동 성공률도 낮아지게 된다. 눈의 사회는 슬리퍼의 주체성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앞서 살펴본 두 요소는 슬리퍼의 행동에 제약을 준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이 모든 과정 사이에 자신의 관점을 투영함으로써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다. 우선 <시티즌 슬리퍼>는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능력과 성격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한눈에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정보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는 자신을 중심으로 캐릭터를 바라보게 된다. 즉 플레이어의 내면이 캐릭터의 자아에 투사되는 것이다 [2] . 그리고 이는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플레이어이자 캐릭터인 '나'를 통해 슬리퍼의 주체성으로 발현된다. 또한 눈이라는 낯선 사회로의 진입은 플레이어와 슬리퍼에게 동등하게 주어진다. 예측 불가능한 삶에 갑작스럽게 불시착한 그들은 서로 결속을 다진다. 그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는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에 즉각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에피소드는 주로 등장인물 간의 대화로 진행되는데, 이때 플레이어는 슬리퍼의 태도와 행동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심지어 주어진 임무를 모두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 초반에는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 점차 적응하면서 진취적인 태도로 나서게 된다. 이처럼 <시티즌 슬리퍼>의 시스템은 플레이어의 행동에 일정 부분 제약을 주지만, 결정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플레이어에게 거부와 순응, 저항의 강도, 가치의 추구 등에 대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슬리퍼로서의 꿈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삶의 주도권은 자꾸만 사회로 되돌아가려 한다. 슬리퍼라는 존재가 가진 근원적인 한계일까? 이곳에서는 '내일'을 맞이할 권리가 이상하리만치 멀게 느껴진다. 슬리퍼, 꿈의 의미 <시티즌 슬리퍼>는 개인이 대항할 수 없는 사회의 불가변성을 시스템의 중심에 두었다. 그리고 신체가 가진 제약도 결국 그로부터 비롯됨을 플레이어 스스로 인지해 나가도록 했다. 이 게임에서의 자율성은 슬리퍼의 행동에 대한 결정권을 넘어, 사회에 내재한 비판 거리를 취할 수 있는 권한으로 확장된다. 특히 에피소드마다 제공되는 시적인 글은 슬리퍼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뿐만 아니라, 그 존재가 함축하는 의미를 다각도로 바라보게 한다. 이 글의 마지막 장에서는 처음에 제시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인류가 한정된 신체로부터의 해방을 염원해 온 이유에 조금이나마 다가서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발견한 '슬리퍼'와 '꿈'에 담긴 의미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슬리퍼는 인간의 신체로부터 벗어난 존재다. 즉 과거에 지니고 있던 어떤 제약에서 이미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슬리퍼는 신체와 사회라는 이중벽에 또다시 직면했다. 슬리퍼의 본체인 인간은 떠나온 곳 어딘가에 여전히 잠들어 있다. 즉 슬리퍼는 살아 움직이는 누군가의 꿈인 것이다. 또한 슬리퍼에게는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데이터화되어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다. 이는 대체로 무더움, 차가움, 쓰라림, 딱딱함 등 '로봇의 몸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감각'에 대한 것들이다. 슬리퍼는 몸에 대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 날 때마다 감각과 사고 사이에 지연을 느껴 혼란스러워한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몸에 대한 감각은 슬리퍼의 기억 안에 정보로만 남아 있다. 그렇다면 슬리퍼는 인간인가, 로봇인가? 사실 이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슬리퍼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눈의 사회,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물론 플레이어에게는 이에 대항할 권리가 주어졌다. 그러나 이 또한 슬리퍼에 내재한 꿈으로 흡수되고야 말았다. 결국 한정된 신체로부터의 해방은 '나'를 규정하는 사회,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집단적 이념에 균열을 내는 일이다. 즉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하고 지켜내기 위한 예사로운 투쟁이다. 사실 슬리퍼의 꿈은 정말 사소했다. 그는 단지 살고 싶었다. <시티즌 슬리퍼>의 결말은 그 꿈이 희망이었는가 절망이었는가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저 '내일을 꿈꿀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메시지가 암시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슬리퍼는 모순된 존재다. 누군가의 이루어진 꿈이 다시 꾸는 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의 속성은 본래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희망과 절망, 현실과 이상, 기대와 좌절,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돌고 도는 것이 바로 꿈의 의미다.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은 이 궤도를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지 않아도 된다. [1] 이미지 출처: https://www.pointnthink.fr/en/interview-gareth-damian-martin-2/ [2] 이승제, 정의준, 김정애, “ 청소년 대상 TRPG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위한 콘텐츠 개발연구 -청소년의 정서적 외로움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 겨레어문학 제73집, 2024, p.61-6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박정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시각예술 분야에서 전시, 비평, 워크숍을 한다. (비)과학에 관심을 두고 뉴미디어 아트와 비디오게임을 탐구한다. 최근 참여한 프로젝트로는 연구 <기이한 게임과 으스스한 게임>(2024, 서울문화재단 RE:SEARCH), 전시 (2024, WWW SPACE), 워크숍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 비평>(2024, 아트코리아랩 아트랩클럽), 전시•워크숍 (2024, 하자센터 미디어아트 작업장) 등이 있다.
-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 Back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19 GG Vol. 24. 8. 10.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디지털게임에 이르면 호러는 한층 더 강력해집니다. 게임은 플레이어를 공포의 현장 한가운데에 밀어넣기 때문에 많은 경우 게임에서의 공포는 관조가 아닌 개입과 참여를 통해 전달됩니다. 무서운 것을 보는 것과, 직접 무서운 일을 일으키거나 맞닥뜨리는 것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역대급 폭염이 덮친 2024년 8월 GG의 탐색은 호러를 향합니다. 후발 매체로서 디지털게임은 공포라는 감정을 자신이 매우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많은 기존 매체들의 문법을 학습해 왔고, 게임 특유의 호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적지 않은 수로 쏟아지는 공포 게임들이 이 실험과정의 활발함을 보여주는 단서들일 것입니다. 한켠에서는 무서워서 공포 게임을 손도 못 대는(저를 포함합니다) 사람부터, 호러 게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상 붙잡고 있는 마니아까지의 다양함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게임에서의 호러가 어떤 의미인지를 폭염 속에서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이번 19호를 기점으로 GG는 만 3년을 채웠습니다. 게임에 관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가 나름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끊이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놀라곤 합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 디지털게임을 무겁게 이야기하는 일은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GG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걸어온 길보다 더 머나먼 앞날의 길에도 독자분들과 함께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는 9월 초까지 진행되는 게임비평공모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인터뷰] 디지털게임 다양성/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스마일게이트 D&I실 이경진 실장
"이런 사람도 게이머고 저런 사람도 게이머고,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대중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에버랜드에서도 ‘게임문화축제’라고 해서 게임 IP를 가지고 행사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게임이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가 되어서 놀이공원에 아이들하고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게이머라고 했을 때도 게이머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해요." < Back [인터뷰] 디지털게임 다양성/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스마일게이트 D&I실 이경진 실장 20 GG Vol. 24. 10. 10. 지난 2024년 8월, <스마일게이트>는 창작자를 대상으로 게임 접근성과 콘텐츠 다양성을 주제로 한 레퍼런스북 두 권을 출간했다. <게임 접근성 개념과 사례>에서는 장애를 포함하여 다양한 조건에 처해 있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제한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게임 접근성’에 관한 개념과 현황, 사례를 담고 있다. <콘텐츠 다양성 개념과 사례>는 ‘문화다양성’ 개념을 소개하고, 미디어와 게임 속에서 문화다양성이 구현된 사례를 다루고 있다. GG는 이번 호 인터뷰에서 스마일게이트 이경진 실장을 만나 기업이 D&I(Diversity & Inclusion)를 강조하는 맥락을 살피고, 문화로서의 디지털 게임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접근성과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사회적, 상업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들어보았다. 이경혁 편집장: 이 인터뷰를 기획하게 된 것은, 한국의 게임사들이 접근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 내에서 이런 모습들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목적에서 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제적으로 (접근성/다양성 책자라는) 결과물을 내신 거잖아요. 항상 첫 발을 내딛는 게 저는 쉽지 않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국내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많았던 것도 아닐 테고, 제로베이스에서 처음 이 작업을 하실 때 겪었던 어려웠던 점이나 생각나는 점이 있으신가요? 이경진 실장: 입사를 하고 6개월 정도 있다가 미국의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 게임 개발자 회의)에 처음 갔어요. 전 세계의 개발자들 수만 명이 모여 컨퍼런스를 여는데, 당장 수익 증진에는 거리가 먼 주제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거를 저희 같은 부서에서 하는 게 아니라 개발자들이 나와서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노하우를 공유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접근성 같은 경우에는, 게임이 대중적인 여가 매체로서 확산되어 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게임을 만드는 데 있어 과연 다양한 배경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걸 어떻게 청취하고 있는가’를 보았을 때 상당히 부족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우선적으로 장애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그랬는데, GDC의 게임 접근성을 발표하는 스피커 분들은 실제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이었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고용하거나 커뮤니티를 연계해서 장애 당사자들의 피드백을 청취하는 채널이 있더라고요. 근데 우리는 회사에는 그게 부족하니까, ‘이 일은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야 될까를 고민하다가 직접 사용자를 고용하는 게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장애인 게임 테스터 고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실제로 고용 기회가 많았었나요? 이경진 실장: 오히려 그 지점에서 (직접 사용자를 고용할) 기회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저희 접근성 테스터 중 선천적으로 청각장애가 있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은 여섯 살 때까지 말을 못하다가 보청기를 사용하면서 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경우였어요. 이 친구에겐 게임이 친구였고 삶 그 자체였더라구요. 비장애인들은 게임 업계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게 많잖아요. 이렇게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 장애인의 비율만큼이라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 기회가 더 있어야 되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싶었어요. 일례로 (보수적으로) 인구의 5%가 장애인이라고 계산했을 때 그 비율만큼의 우리 게임에 연결된 직업도 있어야 하고 그걸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직업 공고를 낸 거죠. 이 기회에 고용을 통해 제대로 된 직업을 만들어서 (장애인 게임인력을) 전문적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시작할 때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저희의 의도나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고 고용공단에서도 이걸 굉장히 의미 있게 받아들였어요. 왜냐하면 장애인 전형으로 나오는 일반 직업들은 거의 ‘네일 아트’라든지 ‘세차’라든지, 특정 산업에서 만들어내는 생산품과는 거리가 먼 서비스 관련 직업들이 많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고용공단에서) 이거는 새로운 케이스고, 한국 게임 업계에서 적어도 이 판교 지역에서는 더 퍼져나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지원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덕분에 저희 공고에도 막판에 지원자가 많이 들어왔어요. 면접을 보게 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게임을 꼽고 그걸 직업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근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아까 말씀드린 청각장애인 테스터 친구를 오늘 만났는데 문득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자기는 이 직업이 아니었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으로 깊게 고민을 하고 일로서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걸 생각조차 못했을 것 같다고. 이경혁 편집장: 접근성과 다양성 문제를 세팅하는 과정에 있어, 말씀하신 것처럼 회사에서는 의무적으로 해야 되는 부분도 있을 거고 사회 환원의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그냥 비즈니스의 확장이라 볼 수도 있잖아요. 조금 어려운 질문일수도 있겠습니다만, 회사 입장에서도 여러 목적이 있었을 텐데, 혹 시장적인 목적과 윤리나 도덕적 목적 두 가지로 이원화를 한다면 어느 쪽이 더 비중이 크다고 보세요? 이경진 실장: 굉장히 좋은 질문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저도 처음에 이 가설을 가슴에 품었을 때는 사회적인 가치 추구라는 목적에 무난하게 부합하는 일이라고만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테스터들이) 게임을 사랑하는 유저이기도 하기 때문에, 게임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살펴보며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자에게 피드백과 리포트를 주는데, 거기서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결국에는 접근성 테스터들이 게임 콘텐츠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게임을 한 손으로 플레이하는 사람, 발가락으로 플레이하는 사람, 눈으로만 플레이하는 사람 등 신체적 조건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직접 만나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디테일한 문제를 잡아갈 수 있고, 결국은 접근성이라는 게 출발은 ‘소수’에서 시작하지만 그게 도착하는 곳은 ‘다수’이거든요. 그래서 ‘접근성이란 결국은 다수를 위한 품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요. 품질 향상은 더 많은 유저들을 끌어올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거고요. 이경혁 편집장: 접근성과 관련된 업무는 게임 개발보다는 테스터 쪽에 주로 방점이 찍히는 것이지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게임 내 문제를 발견하는 데 방점이 있어요. 계속 여러 게임을 테스트하면서 접근성의 맥락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발견하고, 그 문제가 강하게 보이면 보고하고요. 그리고 다른 유사한 장르 게임을 많이 플레이 하다 보니 ‘이 장르의 어떤 게임은 어떤 요소로 색각이상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 게임은 그걸 못하고 있다’ 라는 식으로 피드백하기도 해요. 그리고 청각장애 같은 경우에는 청각적 요소를 시각화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모든 소리를 시각적인 정보로 표현해 놓으면 게임을 하는 데 장애가 대부분 없어지거든요. UX/UI 디자인적으로 청각 정보를 어떻게 시각화한 여러 레퍼런스 (사례) 들은 게임 디자인시 도움이 많이 되는 부분이죠. 이경혁 편집장: 사실 그런 부분은 어떤 특정 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지하철에서 소리를 꺼놓고 게임할 때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 쪽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 것 같구요. 제가 자주 하는 얘기가 ‘저상버스가 들어오면 우리 엄마 무릎이 편하다’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접근성이 모두를 위한 보편성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주셨듯 테스터 쪽에는 소위 말하는 당사자성을 가진 테스터들이 들어오면서 이런 접근성의 문제를 보기 시작하신 거네요. 그러면 개발 부서에서는 접근성 테스터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뭔가 변화했다라는 느낌을 받으셨을까요? 이경진 실장: 저도 사실 그게 가장 걱정됐었어요. 개발 부서의 경우 제한된 인력과 시간 때문에 (접근성 문제가) 우선순위에 밀릴 수도 있고, 개발하는 단계에서 사실은 버그 하나 더 잡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이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접근성 문제가 어느 정도 인지가 된 것 같아요. 신작 개발하시는 부서에서, 우리 게임이 글로벌 유저한테 다가가려면 접근성 문제 파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접근성 리뷰를 요청드리고 싶다고 얘기를 하셨어요. 글로벌 서비스 개발 조직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접근성 문제 때문에 우리 이거 몇 번이나 뒤집었다’ 이런 얘기들도 하고, 그래서 이제는 산업에서도 진짜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런 문화가 아예 없었다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라고 했을 때,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요? 이경진 실장: 우리가 테스터를 1월에 뽑아서 처음 접근성 리뷰 공유회를 연 게 6월이었거든요. 당시 개발자들도 많이 오셨는데, 한 팀장님께서 자기가 십수 년 동안 게임 개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이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오늘 이런 관점의 필요성을 너무 느꼈고 앞으로 개발할 때 고려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대요. 개발자에게 직접 실제 적용에 대한 피드백을 듣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네요.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는데 걸린 시간인 것 같아요. 개발팀 미팅 단계에서 누군가 ‘우리 이거 접근성 측면에서 괜찮을까요’라고 말할 수 있거나, 전체 게임 개발을 리드하시는 분이 ‘이거 접근성도 고려해 보세요’라고 언급하는 단계까지요. 이경혁 편집장: 1년 반 정도 작업한 결과 그래도 이제는 성과가 나는 것 같다는 것이군요. 예상하신 만큼의 시간인가요? 저는 이 인터뷰를 다른 게임사의 관련 부서들이 좀 고려했으면 싶어서요. 선행 부서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를 알면 대략의 가이드라인을 가져가기 쉽지 않을까, 그런 느낌으로 여쭤보는 거거든요. 이경진 실장: 저는 솔직히 생각보다 조금 빨랐어요. 아무래도 <스마일게이트> 구성원들에 이 문제에 관심도가 높으신 분들이 꽤 있어서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또 궁금한 게, 얼마 전에 접근성 기기 전시회도 여셨지만 사실 <스마일게이트>가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회사는 또 아니지 않습니까? 근데 많은 경우에 접근성은 하드웨어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잖아요. 접근성을 담당하시는 부서 입장에서 생각하시는 ‘여기까지는 가야 한다’는 수준이 있을 텐데, 소프트웨어 쪽이다 보니 우리 회사의 영역이 아닌 부분도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그런 케이스도 많이 겪어보시나요? 이경진 실장: 저희는 지금 저희가 통제 가능한 부분들에 집중을 하고 있다 보니 직접적으로 그런 상황을 겪지는 않았는데요. 그런데 보조기기가 시중에 나와 있는 곳들이 꽤 있어요. 경기도 재활공학센터와 저희가 더 긴밀하게 소통을 하고 있어 접근성 보조기기 전시도 가능했었던 거구요. 그리고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직접 더 많이 만나야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더 찾아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원데이 패널 프로그램을 통해 게임 유저들 중 보조기기 사용하시는 분들을 초청해서 만나려고 하고 있는데 아직은 이 풀(pool)이 너무 적은 상황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 회사가 아무리 스스로 접근성을 더 갖추고 싶다 하더라도 그런 기기 인프라가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편으로 지금 하시는 작업이 어떻게 보면 사내에서 소위 말하는 프로세스를 바꾸는 작업 이상으로 대외적으로 협업 혹은 협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일거고, 그런 차원에서 중요하지 않나 싶어서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접근성에 대한 저변확대를 위해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저희가 경기도재활공학센터와 지금 논의하고 있는 건, 현재 센터에 장애인 유저가 대략 1천 명 정도 이용하시는 센터에 50평 정도의 공간이 있거든요. 거기에 이 책 수익금을 활용해서 컴퓨터 및 보조기기를 셋업하고, 장애인 유저들이 항시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 플레이 랩’, ‘게임 리빙룸’ 개념으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굉장히 재밌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책을 팔아서 수익이 나셨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책 팔아서 수익 내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근데 그래도 좀 유의미한 판매가 난 것 같습니다. 이경진 실장: 수익 자체는 일단 저희가 수익을 바랐던 게 아니어서 특별히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책을 내려고 했었던 거는 사실 뭔가를 처음 할 때는 언어가 없잖아요. 이걸 뭐라고 명명을 하고 이런 콘셉트 자체를 뭐라고 명료하게 표현을 해야 될지를 모르는데, 그걸 언어로 표현을 해 놓으면 이 가치가 좀 더 확산되고 이게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한테 우선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첫 발자국을 찍는다는 차원에서 책을 낸 것이었어요. 최대한 우리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언어를 만들고, 그 다음에 더 노력을 해서 또 버전업을 해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내게 된 거죠. 이경혁 편집장: 이번에 내신 책도 약간 연작의 일환이라 보면 될까요? 혹 그렇다면 3권과 4권에 대해서 플랜을 듣고 싶은데요. 이경진 실장: 네, 이번 책을 보시면 시리즈 개념으로 넘버링이 되어 있거든요. 3권, 4권에 대한 플랜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건 없지만, 저희가 했었던 것들이 좀 쌓이면 저희들의 내부적인 사례를 좀 더 많이 얘기 해볼까 합니다. 게임 접근성 단행본의 3챕터에 저희 사례가 좀 들어가 있거든요. 앞으로도 저희의 행보에 대한 기록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요. 책 말고도 교육 영상을 만든 게 있어요. <다양한 플레이어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 포용적 게임 디자인> 인데요. 이건 게임에 국한해서 게임 개발자들을 위해서 만든 영상으로 된 교육 콘텐츠에요. 현재는 사내에서 교육 영상을 확산하는 단계에 있고, 앞으로는 대학 및 산업 기관을 중심으로 미래의 게임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확산시키려는 계획이에요, 필요성에 공감하는 기관들과 업무 협약을 맺어서 저희가 무료로 콘텐츠를 공급하고 대학에서 실습 등을 통해 이런 것들을 다뤄주는 형태를 생각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건 좀 사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다양성과 포용성 관련하여 교육할 수 있는 역량이 지금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일까요? 이경진 실장: 다양성, 포용성 문제가 사실 전통적인 패러다임의 결은 아니잖아요. 이 주제로 커리큘럼을 다루고 실습을 연계하고자 하는 국내 교육기관(대학) 이나 학회와의 협력을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학회에서 <포용적 게임 디자인> 교육 콘텐츠를 토론을 위한 기초 지식으로 활용하고 해외 연사들을 초대하여 컨퍼런스를 여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아요. 이 작업을 처음 할 때 미국의 비영리 게임접근성 교육기관인 <에이블게이머즈>의 전문가들, 그리고 인클루시브 게임 디자인 관련된 해외 전문가들과 협업을 했었는데 그런 분들을 초청해서 전문 포럼을 여는 거죠. 이렇게 학회나 콘텐츠 산업 쪽과 같이 만들어 나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계속 이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결국 이거는 하나의 회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번에 접근성 전시 때도 놀랐던 게, 소위 말하는 범-회사에서 담당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오시기도 하셨잖아요. 그러한 움직임이 지금은 좀 어떤가요? 이경진 실장: 해외의 경우 페어 플레이 얼라이언스(Fair Play Alliance) 같이 게임사들과 플레이어들이 같이 모여서 우리가 게임 산업과 플레이어들을 더 많이 늘리기 위해 어떻게 같이 서로 돕고 시장 자체를 키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같이 하거든요. 한국에서도 서로 활발히 소통하며 교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저도 전문 프로그래머는 아니지만, 사실 많은 IT들이 어떤 표준을 세팅하는 과정을 보면 보통 국제포럼을 통해 하나의 기술을 어떻게 표준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공동으로 발의하고 통과시키는 과정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접근성 쪽이 그런 국제적 협업 과정이 되게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미국 같은 경우도 미국에서 쓰는 접근성 가이드가 있고 그것을 보편화하려고 노력하지만, 희한하게 그런 것들이 국제적인 협업으로는 잘 안 나온다는 이상한 느낌이 있지요. 다른 IT 기술 표준들은 그렇게 작동을 하는데 왜 접근성 문제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경진 실장: 저도 그 생각을 되게 많이 했는데요. 일단 북미 차원에서는 이 흐름을 주도하고 협력하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유독 아시아 시장과는 커넥션이 되게 약해요. 아시아 게임 시장이 굉장히 급속도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커넥션이 많이 약해서, 근데 이제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희가 게임 접근성을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사내에서 관심 있는 개발자들이 예전보다는 좀 많아졌다는 걸 느껴요. 프론트엔드 개발자인데 이런 가치에 자기가 공감을 해서 더 공부하고 싶다던지, 개인적으로 관심을 알려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사실 그런 분들 한두 분씩 보면서 이걸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죠. 이경혁 편집장: 회사가 이 정도의 의지를 갖고 이만큼 추진을 한 거고, 성과도 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공공은 어떤가 궁금해요. 지금 공공과 협업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정부에서 좀더 관심을 갖고 뭔가 더 지원하면 정부의 입장에서도 성과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경진 실장: 접근성 문제와 관련된 노력을 보인 게임사 대상 세액 공제 지원 정책 필요성에 대한 컨퍼런스가 지난달에 열렸었어요. 게임 접근성은 다른 콘텐츠에 비해 기술적 의존도와 난이도가 높아, 민간 업계의 주도적인 참여 없이는 공공 영역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추진하는 움직임이에요. 게임 접근성 필요성에 대한 담론은 이미 많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공공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다루는 움직임이라 이제는 속도가 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는 공공에서도 실제 기업들을 움직여야 된다는 걸 인지를 하셨구나 싶어 반가웠어요. 민간을 움직이지 않으면 이게 안 되는 거라는 거를 인지를 하고, 민간을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구나라고 느꼈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앞으로 각 게임사에 접근성과 다양성 관련 부서들이 더 생길 수 있을거라고 전망하고 있는데요. 사내에서 개별적으로 움직여 만드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국 안에서 일종의 연합체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게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가끔 그런 협회들이 무의미하게 공회전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이런 질문을 드리게 됩니다. 특히 회사 단위를 넘어 좀 초월적인 협력이 필요할 때 동력을 만들 수 있는 외부 기관의 존재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경진 실장 :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보태면 좋긴 한데, 거기서 빠지면 안 되는 그룹이 개발자라고 생각해요. 실제 소비자에게 닿을 수 있는, 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협력의 주축이 돼야 한다고 봐요. 실리콘밸리를 보면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꺼내고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과 논의하면서 혁신이 만들어지잖아요. 그런 식으로, 저희도 접근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이 문제에 대해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확산시킨다면 공회전 가능성이 좀더 낮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요. 저희의 경우 아까 말씀드린 사내 접근성 공유회를 주축으로 해서, 접근성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내 전문가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형태로 점점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당사자성을 가진 사람의 게임 개발이라는 게 더 늘어나는 게 최적이겠죠. 그런데 장애를 가진 사람이 게임 개발을 하는 것 또한 그것도 일종의 학습 루트가 필요한 과정인데, 거기에 접근하는 것만 해도 사실은 지금 문제잖아요. 장애가 있지만 게임 개발을 하고 싶고 뭔가를 배우고 싶은데, 거기서만 나올 수 있는 접근성의 문제도 저는 클 거라고 생각해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당사자성이 있는 개발자들이 더 많아지는 게 저희가 보고 싶은 그림이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게임 접근성 테스터라는 직무 타이틀을 만들었지만, 이 일을 하다가 기획을 하고 싶거나 코딩을 배워서 개발 직무를 하고 싶다면 할 수 있게끔 지원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장애에 구애 없이 모두가 성장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그간 한 번도 협업하지 않았던 유형의 사람들과 협업이 늘어나게 되고 이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어요.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오버랩 되어야 다름이 교차하는 시점에서 혁신이라는 게 일어나고 문제가 발견이 되거든요. 그 교차점까지 데려다 주는 게 저희의 역할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자꾸 제가 초회사적인 기구의 필요성을 생각하는 게 그 지점이거든요. 결국 개발자 양성을 어떤 특정 회사만이 해결할 문제는 아닌데 그거를 (기업) 밖에서 누가 추진할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좀 들어서요. 예를 들어 각종 게임 교육 기관들이 있는데 거기에 일정 수준의 장애인 TO를 만든다거나, 아니면 교육 환경 분야에서 애초에 접근성 문제가 해결된 개발 환경을 구축하고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등의 방안은 제가 알기로는 아직 그렇게 준비가 안 된 걸로 알고 있어서요.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이 문제의 판을 좀 더 키우려면 협의체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경진 실장 : 그것도 이 토양을 만드는 데 한 몫할 수 있겠죠. 저희는 사실 그래서 접근성 문제에 그간 관심이 없었는데 듣고 보니 필요하더라, 그러고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것이지만 이거더라, 하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도록 노력하는게 목표입니다. 접근성 측면에서 한번 더 고민을 해봐야 되겠다라는 인식이 생기고, 개발 미팅에서도 이 언어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나와주겠죠. 그리고 사실 한국에서는 이 (접근성 문제를 수용하는) 속도가 어떻게 보면 되게 빠를 거라고도 생각하는데요, (해외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를) 따라잡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수한 점이 있으니까 시동만 걸리면 우리가 정말 잘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매번 실장님 하시는 거 보고 뿌듯한 것도 있고, 한편으론 이걸 하면서 얼마나 고생이실까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 중의 한 부분이 다양성 부분에 있어요. '접근성'하고 '다양성'은 또 조금 온도가 다르거든요. 다양성을 다루는 데 있어서 한국의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에 대해서 해주실 말씀이 있으세요? 이경진 실장: 네, 접근성과 다양성은 많이 다르죠. 우선, 접근성에 비해 다양성을 해석하는 관점은 다양합니다. 그래서 일단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해서 매우 존중하고, 다양한 해석은 본인의 경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결정한다고 봐요. 사실 어려운 얘기긴 한데, 너무 사상적인 내용이 주입이 되어서 실패한 게임들이 있잖아요. 게임이 재미가 본질이여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약한데 개연성이 부족한 채로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넣으면 이슈로 번지는 케이스가 많았어요. 그래서 다양성과 게임의 성공여부는 연관성은 있지만 인과성으로 보긴 어려워요.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요. 거기서 좀 더 그 재미라는 요소를 한 유형으로 환원하지 말고, 즉 주류 플레이어들에게만 집중하지 말고,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있다는 거를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다양성을 다룰 때에는 글로벌 협업이든 당사자 협업이든 당사자성이 있는 사람들, 전문가들이랑 직접 협업을 하는 게 되게 중요하고 이게 약했을 때는 역효과가 있다고 봐요. 이경혁 편집장: 저희 GG에도 가끔 캐나다 연구자들이 기고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에 <스마일게이트> 하면 뭐가 떠오르냐 물어보니 보통 소위 말하는 'K-게임'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현재 서비스되는 게임들이 지금 로컬라이제이션이 얼마나 되고 있는지의 문제도 저는 산업적 의미에서의 다양성 문제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 접근성과 다양성 작업을 하시면서 사실 그런 부분에서 좀 실무적인 문제들도 많이 보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경진 실장: 일단 게임을 만들고 원 빌드로 글로벌하게 배포하면 효율성 측면에서 좋긴 해요. 대부분은 유니버셜하게 통용되긴 하지만 지역별로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요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저희 책에 담기도 했고, 그래서 그렇게 특정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있는 요소들은 꼭 로컬라이제이션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피해야 할 것도 있지만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서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는 부분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선호하고 공감하는 요소를 활용하는 거죠. 이걸 잘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검증하는 절차가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 점에서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있는 회사 같은 경우 굉장히 유리하죠. 예를 들어 게임에서 일본 캐릭터를 묘사한다면 일본 오피스에 있는 동료들한테 의견을 구하면 되고, 한국 캐릭터를 구현한다면 한국에 연결해서 그 자원을 활용하면 되니까. 국내 인력 중심으로 운영하는 회사 같은 경우에 글로벌한 다양성 협업을 위한 내부 자원의 활용 면에서 글로벌 회사에 비해서 불리할 수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제부터가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는데요, 사실 지역에 대한 다양성은 쉽지만 오히려 젠더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얘기는 좀 해봐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젠더 문제에 대한 내외부의 반응은 어떤가요? 이경진 실장: 직접적으로 그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분쟁이나 토론이 나오는 등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어요. 지금에 와서는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게, 다양성과 관련된 담론과 언어들을 얘기했을 때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분명히 극단적으로 싫어하거나 고개를 젓는 사람들도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양 극단을 제가 보는 것은 다양성 문제에 있어 어느 정도의 밸런스를 조정해야 되는지를 배우는 데 굉장히 큰 학습이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이것도 결국 스펙트럼의 문제라 할 수 있겠는데, 이런 반응이 양쪽에서 동시에 나오는 상황이었다는 거죠. 이경진 실장: 그렇지만 저는 정말 극단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서로에 대해서 더 알아보는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걸 좀 느꼈거든요. 사실 우리가 단순하게 구체성이 없이 서로 싫어하는 게 많았었기 때문에 한번 얘기를 해보자. 뭐가 싫으냐 이게 싫다. 그럼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이 따져보면서 얘기를 해보니까 대화가 되더라는 거죠.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서 저는 균형을 잡는 게 굉장히 어렵지만 되게 필요하고 노력을 해야 되는 부분이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이경혁 편집장: 그게 근데 너무 힘들잖아요. 모든 일 중에 제일 힘든 게 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심지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한다 해도 그 결과가 이렇게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닌 거라고 생각을 해서요. 이경진 실장: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저와 생각이 많이 다른 게이머들을 만날 때 무서웠지만, 그렇기 때문에 많이 만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얘기를 해봤어요. 실제로 만나니 너무 흥미로운 대화를 했던 기억이 있고요,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교차점을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구나. 그리고 웬만하면 좀더 실질적인 것을 가지고 얘기를 하려고 해요. 단순히 떠도는 관념적인 것들에서 벗어나서 뭐라도 책이라도 하나 만들고 게임이라도 하나 만들고, 실체가 있는 걸로 만들어서 대화를 하려고 하죠. 제 경우 예전에 일했던 산업하고도 환경이 다르다 보니 되게 조심하고 한마디라도 더 물어보게 되고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그런 상황을 보니 어떻게든 더 많은 게임사들이 이 얘기를 같이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사실 또 게이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보니, 남들이 게이머를 획일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또 기분이 나빴던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게이머들도 (다양성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 있는 거고, 사실 저는 이 다양성 얘기가 게이머의 다양성 문제로도 갈 수밖에 없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이경진 실장: 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지금 말씀해 주셨어요. 이런 사람도 게이머고 저런 사람도 게이머고,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대중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에버랜드에서도 ‘게임문화축제’라고 해서 게임 IP를 가지고 행사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게임이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가 되어서 놀이공원에 아이들하고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게이머라고 했을 때도 게이머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이니까 할 수 있는 다양성이 오히려 더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영화가 못하는 다양성이 있을 거고, 근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하면 게임사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 다양성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게임 디자인의 굉장히 중요한 목표가 아닐까 싶고. 그래서 저는 다양성을 윤리로 보지 않으려 합니다. 이경진 실장: 맞아요. 규범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봐요. 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다양성을 얘기했을 때 ‘이거 PC 주입 아니야’라고 리액션이 나오는 사람이 적어지는 것(웃음). 나중에는 다양성의 가치는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발더스 게이트 3>을 보면 자유도가 엄청 높잖아요. 처음 설정 단계부터 민감한 부위에 대한 노출 여부, 외형에 대한 다양성 및 접근성에 대한 옵션들이 고도화 되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원하는 취향의 폭을 최대한으로 구현을 해놨는데 게임에 이런 자유도가 있어서 좋다라는 평이 더 많았거든요. 다양성 이슈에서는 사실 그런 방향을 좀 더 추구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공감을 일으키는 아이템을 구매하는 욕구가 다 다르듯이, 게임 내 디자인적 요소들도 다양하게 표현하는 거죠.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을 연결 시키면, 기업에서도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서 성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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