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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80개 검색됨

  • 우크라이나 사태의 de jure와 de facto

    러시아 안에서 차르가 된 푸틴은 그렇게 러시아 바깥까지 제패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디 그런 장면은 역사 다큐멘터리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만 보면 좋겠다. 현실에서는 진짜로 사람이 죽고 다치기 때문이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Editor's View] 게임과 소수자, 소수자와 게임

    그런 고민의 결과로 ‘GG’ 4호는 ‘소수자들의 게임’을 다뤄보고자 했습니다. 소수자라는 건 단지 숫자가 적은 집단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주류’가 아닌, 주류로부터 스스로가 아닌 ‘대상’으로 취급받는 많은 존재들을 우리는 소수자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게임은 그런 소수자와 얽히는 부분에서 아직까지 짧은 역사 때문인지 고민을 오래 해 오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 Back 04 GG Vol. 22.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여름은 언제 시작할까 - 북미 최대의 게임쇼, E3가 맞이한 변화와 도전

    미국에는 100일간의 여름(100 days of summer)라는 개념이 있다. 5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자리잡고 있는 공휴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여름의 시작으로 본다. 한국으로 치면 현충일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메모리얼 데이는 가진 의미와는 상관 없이 그렇게 한국의 절기로 치면 입하같은 날이다. 그리고 여름의 끝은 9월의 첫째 월요일인 레이버 데이다. 노동절 연휴가 되면 이제 여름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대략 이 기간이 100일이기 때문에 이 때를 100일간의 여름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소소한 인기를 끈 영화 500일의 썸머 또한 이런 개념에서 제목을 빌려온 것이다. 여름에 특별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개념. 이 개념에 입각해서 보자면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과 끝은 뭘까?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은 E3고 끝은 게임스컴이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hoon Hong Lives in California and works in the game industry. Aims to offer insight to as many people as possible through podcast appearances and contributions to various outlets. Hopes to spend a lifetime writing engaging pieces across every field, from fashion to games.

  • 개척, 애정, 확장성: 스타워즈 제다이 폴른 오더 그리고 제다이 서바이버

    이번에 얘기한 스타워즈 제다이 폴른 오더와 스타워즈 제다이 서바이버를 플레이해보며, 스타워즈라는 새로운 문화에 발을 내딛는 시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Yeon Lee After learning programming as a child, a wide-ranging interest in culture and the arts led to the goal of becoming a game designer. While at university, is preparing to enter the game industry, and at the same time frequents game-related exhibitions, festivals, and e-sports competitions.

  • 심사위원장 총평

    제 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연세대학교의 윤태진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번 응모작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심사위원들이 기대했던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 좋은 원고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응모해주신 90여명의 예비 비평가 모두에게 감사와 격려를 전합니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Taejin Yoon After earning a PhD in television drama studies, has spent more than twenty years teaching, researching, and writing on media-cultural phenomena. The subjects have been varied—games, webtoons, the Korean Wave, variety programs—but all share a common thread: the exploration of "activities that many people enjoy." A few years ago came a small book titled A Study of Digital Game Culture, and these days runs a research organization called the Yonsei Game & Esports Research Center (YEGER), pursuing a range of studies on game culture together with younger researchers.

  • GGOTY 2025: 2025년 GG가 뽑은 올해의 게임과 사건들

    게임제너레이션(GG)은 2025년을 돌아보며 총 27명의 필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올 한해 출시된 게임 중 가장 주목했던 게임’(최대 3개까지 중복 답변 가능)과 그 선정 이유, ‘2025년에 접하신 사건, 책, 논문, 보고서, 영상 중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2025년 GG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글’과 그 이유 등을 물었습니다. 우리는 2025년을 어떤 시간으로 기억할까요?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Editor's View] 무던히도 게임이 많았던 2023년을 마무리하며

    2년 반동안 GG의 글들을 눈여겨 봐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년 2월, GG는 여전히 디지털게임과 우리라는 주제를 들고 변함없이 돌아오겠습니다. 차분함과 평온함이 가득한 연말연시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Back [Editor's View] 무던히도 게임이 많았던 2023년을 마무리하며 15 GG Vol. 23. 12. 10. 2023년은 특히 작년인 2022년과 비교해 본다면 굵직하고 유의미한 게임들이 무더기로 쏟아진 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면서 게임은 시들해지겠지 싶었지만 오히려 쏟아지는 게임 덕분에 누군가에겐 밖에 나가기가 힘든 한 해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워낙 대작들도 많았고, 작지만 의미가 묵직한 게임들도 많았습니다. 아마 올해 이루어질 여러 게임 어워드는 어느 해보다도 치열할 것이고, 비록 수상에 이르지 못하고 후보로만 머무르는 게임조차도 다른 해였다면 GOTY급의 위상을 차지할 수도 있었을 수많은 게임들이 2023년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GG는 그동안 GG를 거쳐간 여러 필자분들에게 당신들에게 있어 2023년을 기억할 만한 게임은 무엇이었는지를 물었고, 그 답변을 글로 받아보았습니다. 이 중에는 올해 여러 어워드를 휩쓸 대중적인 게임도 있고, 혹은 정말 소수의 마니아들만 만져볼 법 했던 게임들도 있습니다. 게이머 개개인에게는 모두에게 각자의 GOTY가 있을 것이지만, 비좁은 지면에서 그 모든 걸 다루기는 어렵기에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2023년의 게임이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물어보는 선에서 그치게 되었습니다. 2021년 6월에 첫 선을 보였으니 이제 GG의 나이는 두돌 반, 곧 햇수로는 4년차를 맞이합니다. GG는 특정한 게임 타이틀을 두고 평점을 매기지는 않습니다만, 내년부터는 여건이 된다면 GG의 입장에서 한 해를 정리하는 GGG(Game Generation GOTY)를 손대볼 의향도 있습니다. 2023년 12월호는 그 작업의 얼리 억세스라고 봐주셔도 좋겠습니다. 2년 반동안 GG의 글들을 눈여겨 봐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년 2월, GG는 여전히 디지털게임과 우리라는 주제를 들고 변함없이 돌아오겠습니다. 차분함과 평온함이 가득한 연말연시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미술관에 놓인 게임: 게임은 미술관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한글로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영아적 판타지가 위협받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어Μουσείον을 무세이온이라고 표기해야 할 때다. 오랜 옛날 무사이Μουσαι의 신전을 부르던 이름이다. 갱스터 근성을 타고 태어난 로마인들이 그곳을 참숯으로 만들었다. 파편처럼 흩어진 여러 기록에 따르면, 무세이온은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을 거느린 거대기관으로, 세상의 온갖 학자들이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싸면서 각종 연구를 자행하였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보존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 Back 미술관에 놓인 게임: 게임은 미술관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12 GG Vol. 23. 6. 10. 1. 미술관의 기원 한글로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영아적 판타지가 위협받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어Μουσείον을 무세이온이라고 표기해야 할 때다. 오랜 옛날 무사이Μουσαι의 신전을 부르던 이름이다. 갱스터 근성을 타고 태어난 로마인들이 그곳을 참숯으로 만들었다. 파편처럼 흩어진 여러 기록에 따르면, 무세이온은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을 거느린 거대기관으로, 세상의 온갖 학자들이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싸면서 각종 연구를 자행하였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보존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세이온은 오늘날의 대학과 같은 시설이 아니었을까? 아쉽게도 주변머리만 남겨놓고 머리통을 빡빡 민 수도사들은(예를 들면 에라스무스) 무세이온을 이집트 왕이 헬레니즘 세계의 온갖 이교도적인 보물을 쌓아놓은 곳쯤으로 상상했다. 그리하여 왕이나 귀족이나 교회나 메디치 가문 등등의 소장품을 쌓아놓는 공간을 뮤제움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무세이온의 이름을 따서. 그리고 나중에 일본인들은 뮤제움을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나누어 받아들였다. 그 무렵은 중세와 달리 ‘예술품인 것’과 ‘예술품이 아닌 온갖 수집품’의 구별이 생길 때였다. 일본을 통해 대부분의 근대어를 갖게 된 우리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으로, 미술관은 사실 박물관과 정확히 같고, 그것의 주 기능은 온갖 물건을 수집, 보존, 해석, 연구하는 데 있다. 전시는 그 다음이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 위의 모든 미술관들은 대중에 개방하는 전시를 널리 일삼고 있는 바,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미술관은 완전히 근대의 산물, 좀 더 정확히는 대혁명의 산물이다. 이 사실을 언급하는 유명한 미술사가(예를 들면 앙리 웃세)가 지금까지 2천 명쯤은 있었을 것이다. 사실인즉 로마인의 갱스터 혈통을 물려받은 무리들이 왕을 단두대에 신나게 썰고 역대 왕들이 홀로 덕질해온 수집품들을 강탈해 공화국의 공공재로 선언했다. 이로써 최초의 근대적 미술관이 탄생했다. 공화국의 미술관Muséum de la république이 본래 명칭인 그곳은 한글로 발음을 표기할 수 없으니 간단히 루브르라고 하자. 국공립과 사립을 가리지 않고 세상의 모든 미술관들은 루브르와 같은 기능을 한다(잘 하든 못 하든). 루브르 이전에도 브장송이라든지 몇몇 동네에 공개전시를 여는 미술관이 드물게 있긴 했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겠다. 그렇다면 루브르와 같은 기능이란 무엇인가? 작품을 수집, 보존, 해석, 연구하는 일에 더해 전시도 하는 것이다. 단지 볼거리를 제공하는 차원이 아니다. 작품을 시대나 주제에 맞게 선별함으로써 사회 공통의 기억과 서사를 불러일으켜 공화국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전시다. 즉, 미술관의 원래 기능은 근대국가의 국민을 만드는 일이다. 좋은 미술관은 민주주의 발전의 경험, 여권신장의 역사, 이민자나 소수자를 대표représentation하는 기억, 변화해온 사회의 풍경 등을 담는 작품을 꾸준히 수집해 전시하고, 그럼으로써 사회구성원 모두를 통합하는 데 기여한다. 반면 영 좋지 못한 미술관은 미술 자체의 동시대적 실험 따위를 다루면서 사회구성원 모두로부터 멀어진다. 2. 미술관의 쇠퇴 그런데 위와 같은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19세기나 20세기까지의 일이다. 초강력 21세기가 도래한 지금, 미술관은 쇠퇴하고 있다. 정확히는 ‘루브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할 힘이.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19세기에 발명된 근대미술이 이제 과거처럼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과 200년 전, 아니 150년 전만 해도 그림과 조각이 가장 강력한 시각적 충격을 주는 매체였다. 바다를 그린 그림을 평생 내륙에서 살아온 사람이 처음 보았을 때 느꼈을 미술의 마법 같은 힘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제 미술에서 그런 힘은 완전히 사라졌다. 인터넷, 스마트폰,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통한 시각이미지가 넘쳐난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바다풍경’을 미술은 더 이상 그려낼 수 없다. 더구나 근대국민국가의 역할이 시효를 다하면서 단일한 공동체서사 또한 끝물이다. 이것이 둘째 이유다. 오늘날은 별의별 개인의 개별서사가 확산되는 시대다. 각자가 서사를 재구성하고 재전유하면서 스스로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다시 써내려간다(오만가지 젠더와 인종과 종교와 문화 정체성이 탄생해온 지난 십여 년을 떠올려보라). 국가가 하나의 역사적 공동체라는 역할 대신 세금을 뜯으며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로 바뀌었듯, 미술관 또한 공동체 서사기능 대신 입장료를 뜯으며 구경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관광 비즈니스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셋째는 미술관이 반드시 수장해야 하는 시대적〮지역적 작품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가 하드웨어로서의 미술관은 지어놓았으나 이렇다 할만한 지역미술 씬 자체가 없는 지역미술관의 예를 들 수 있다. 이런 미술관은 아무런 공적 역할이 없는 짐짝일 뿐이다. 때로는 작품이 있어도 곤란하다. 예컨대 한국의 7,80년대 미술을 국립미술관은 어떻게 선별하고 배열해야 하는가? 훌륭한 작품은 웬만하면 독재에 부역하여 민주화 이후 국가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 역사적 저항의 현장에 있었던 작품은 웬만하면 훼손되어 사라졌거나 질적으로 좋지 않다. 그 시대의 삶을 증언해 줄만한 작품은 별로 없다. 미술품 생산이 일어날 만큼 여유롭지 않았고, 그나마도 웬만하면 검열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도 미술관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넷째 이유는, 미술관에 돈이 없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쇠퇴하는 한편으로 미술의 향유는 압도적으로 시장을 경유하게 되어, 세계 미술시장에 전례 없는 거품이 발생했다. 미술품이 공예품이나 공산품에 비해 특별히 우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가치에 비해 미술품이 너무 비싼 탓에 미술관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때로는 기업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작품을 충분히 구입할 수 없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왕을 단두대에 신나게 썰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근 들어 전세계 미술관에서 상설전이 축소되고 기획전과 대관전이 늘어나는 경향이 확산된 데는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미술관은 ‘루브르와 같은 기능’을 잃었다. 달라진 시대에 미술관이 어떻게 변모할지는 아직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21세기 거의 모든 미술관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 있다. 영상미술이 차지하는 비중의 가파른 증가다. 미술관은 본질적으로 19세기적 근대미술을 위한 공간이다. 설렁설렁 걸어 다니면서 작품을 눈으로 읽게끔 설계되어있다. 그런 곳에 반복재생되는 영상을 설치해보았자 전시지킴이의 신경증 발병확률을 효과적으로 올릴 수 있을 뿐, 영상은 미술관이 아닌 상영관에 알맞다. 지구상의 어떤 미술관도 상영관은커녕 집보다도 나은 영상시청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여기서 집이란 TV와 소파가 있는 일반 가정집을 뜻한다. 그럼에도 영상은 이제 미술관뿐 아니라 베니스 비엔날레 등 세계의 주요 미술행사까지 사실상 장악했다. 영상미술의 성장은 시간의 예술이 현대미술의 주류가 되었기 때문일까? 물론 흥미로운 영상작품이 많기도 하지만, 그 뒤의 이유는 비용이 싸기 때문이다. 우선 운송비와 보관비가 들지 않는다. 복제 가능하므로 원본이 훼손될 염려도 없다. 국경을 쉽게 넘을 수 있고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전시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적은 비용으로 현대미술 국제전을 열 수 있다. 영상을 주업 또는 부업으로 하는 미술작가가 늘어난 것도 미술관을 주 판매처로 하는 경제적 전략의 이유가 있다. 이런 현상도 미술관의 원래 기능이 쇠퇴하고 있다는 하나의 징표다. 3. 미술관에 놓인 게임 코로나 펜데믹 이전에도 프랑스인의 61%가 1년에 단 한번도 미술관과 박물관을 포함, 전시회를 방문하지 않았다. 1년에 5회 이상 방문한다는 프랑스인은 고작 8% 1) 에 불과했다. 인구의 다수가 미술관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는 통계는 너무 많은 나라에 너무 많이 있어서 열거할 수 없을 지경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미술전시회에 관객이 가득 차고 미술대상 수상작이 신문 1면에 실리는 시대를 경험했지만, 우리 세대는 미술 전시란 으레 고요히 비어있는 행사라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는 현재 미술관이 처한 상황의 중핵이 아니라 곁가지에 불과하다. 미술관을 찾지 않는 비관객은 미술관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오늘날 미술관의 주요 관객은 해당 공동체의 시민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관광객이다. 나머지 소수의 관객은 전세계 어느 통계를 보아도 점점 더 점점 더 고학력〮고소득층으로 굳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입장료를 아무리 낮추어도 점점 더 소수 특수계층이 향유하는 공간이 되어간다. 달리 말하면, 현재로서는 상위계층에 복무하거나 그저 관광상품이 될 수 밖에 없는, 원래의 공적인 기능을 잃은 미술관은 존재의 이유마저 잃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술관은 게임을 전시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파리 그랑팔레에 이어 뉴욕현대미술관,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한국국립현대미술관까지, 게임을 주제로 하는 대형 전시를 열었다. 물론 게임은 미술관에 전시할 수 있는 예술이다. 이에 대해서는 논할 마음이 없다. 그런데 미술관이 게임을 불러들이는 까닭은 게임을 예술로 승인하기 위함이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지금의 구조적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미술관 나름의 절실한 필요가 있다고 해도 좋다. 새로운 관객층과 새로운 예술을 미술관에 데려오기 위해 게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미술관에 전시되는 게임은 어떻게 기능하는가? 게임은 감상의 대상인가, 체험의 대상인가? 전자라면 단지 몇 명의 플레이어만이 컨트롤러를 잡을 수 있는 게임의 특성상 게임의 미적 감상이 극소수에게만 허용된다. 후자라면 게임전시 자체가 제품시연회와 비슷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고 만다. 그런데 애초에 감상과 체험이 나누어지는 것이기는 할까? 의문은 호기심천국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게임이 미술작품과 다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미술관에 놓이는 것인가? 미술관으로서는 감상이든 체험이든 전시를 통해 게임을 어떻게 재정의하는지나 어떤 관객을 위해 무엇을 보이려고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상을 전시할 때도 그러하니까. 그러나 게임은 영상과 다르다. 미술관에서의 게임 전시는 실패가 예정된 기획일지도 모른다. 미술관 스스로 무수히 많은 게임을 수집하고, 일정 주제에 따라 분류, 선별함으로써 만들어진 전시가 아니라면 특히 그렇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게임의 예술성이나 작동방식 때문이 아니다. 게임은 영상처럼 싸지 않다. 각각의 작품에 맞는 물성이 있는 기기가 필요하다. 운반비와 보관비가 든다. 전시기간 중에도 계속해서 비용이 든다. 관객/이용자가 기기를 직접 조작하므로, 관객규모에 비례해 훼손이나 고장의 위험도 커진다. 지난 달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를 예로 들어보자. 정식오픈 전날, 기자간담회를 막 끝마친 시점에 이미 펌프기기 형태의 게임작품은 망가져 오작동하고 있었다. VR형태의 가상현실 작품은 같은 구간이 반복되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실험실에서 눈을 뜬 후 작품 속 나레이터의 안내를 듣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일반에 공개하기도 전에 그랬으니, 전시 오픈 후에도 비슷한 고장이 여럿 발견되었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처하려면 능숙한 엔지니어가 전시장에 상주하면서 매순간 모든 작품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 미술관이 부담하기엔 너무 많은 비용이다. 그래서 본인은 미술전시로서의 게임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4. 미술관 전시보다 상설 게임박물관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는 게임을 예술로 정의한다. 오랜 옛날에는 예술에 포함되지 않았던 그림과 조각이 르네상스를 거치며 예술이 되었듯이, 또 사진과 영화와 만화 등이 20세기에 예술로 인정받았듯이. 게임은 시각예술과 음악, 영상, 문학적 서사가 혼합된 인터렉티브한 총체예술이다. 하지만 미술관에 전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게임에게도, 미술관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없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모든 예술이 미술관에 어울리지는 않는다. 연극이 예술이라 하여도 굳이 미술관에서 상연한다든지, 문학이 예술이라 하여도 책 페이지를 찢어 미술관 벽에 붙인다든지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드물게 있기도 하지만, 각각의 예술매체는 각각의 장르에 더 좋은 공간이 따로 있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연극을 위한 국공립극장과 문학을 위한 국공립도서관이 따로 있듯이, 게임도 게임을 위한 국공립시설이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저비용 혹은 무비용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곳.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한 기기들을 갖춘 곳. 그런 곳을 우리는 PC방이나 게임방, 플스방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렇다, 그런 공간을 공공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인은 주장하는 것이다. 나아가 더 필요한 것은 게임 자체만을 위한 박물관의 신설이다. 게임박물관은 방문객이 적은 비용으로 게임을 시연해볼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시대에 가장 널리 퍼진 문화적 관행 가운데 하나인 게임을 보존, 연구하면서 인류의 기억에 남겨두기 위해 필요하다. 게임박물관이 있는 나라는 이미 많다. 파리의 게임박물관, 영국 셔필드의 국립비디오게임박물관, 로마의 비디오게임박물관, 베를린의 컴퓨터게임박물관 등, 각각의 게임박물관들은 저마다 다른 주제와 테마를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게임을 수집해 공개한다. 게임과 게임기기는 물론 게임작품에 관한 여러 역사적 자료들도 끌어 모으는 중이다. 모든 게임박물관은 방문객이 직접 게임을 해볼 수 있게끔 신〮구형 PC와 게임기기들을 갖추고 있다. 일부 게임박물관은 교육 프로그램이나 지역연계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 아직까지 게임박물관들은 소규모에 불과하지만, 21세기의 남은 3/4을 지나면서 크게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아직까지 게임박물관이 없다. 문체부가 3년 전부터 게임박물관 설치를 추진했으나 아직까지 기본계획조차 제대로 수립되지 않았다. 게임박물관이 없다는 말은 문방구 앞에 쪼그려 앉아 플레이하던 게임기기(과자가 덤으로 나왔다)라든지 오락실에서도 밀려나는 옛 게임들, 한때는 휴대폰처럼 들고 다녔던 소형게임기기 등이 그대로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옛 게임만이 아니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앞으로 유행에 밀려날 게임들도 곧 사라지게 된다. 또 자가 게임기기를 가진 사람은 게임을 향유할 수 있지만 게임기기가 없는 사람은 향유할 수 없는 문화격차가 방치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제목의 질문을 던져본다. 게임은 미술관이 처한 어려움을 구제할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그럴 필요가 없다. 게임은 미술관의 미술과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은 미술에 의해서만 지탱된다. 본인은 우리 세대가 죽기 전에 미술창작의 많은 부분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리라 예상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미술이라는 단어는 지나간 과거의 인간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때 미술관은 다시 박물관의 역할로 돌아가, 근대미술박물관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지금 게임에 필요한 것은 미술전시를 위한 근대적 공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예술인 그 자신을 위한 시설이다. 1) Statista Research Department, Frequency of visiting museums/temporary exhibitions in France 2018, Published Dec 9, 2022 Tags: 예술, 전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술가) 손이상 미술을 공부하고 사진작업을 하다가 밴드 음악을 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공연 연출을 하다가 공공미술 기획자가 됐다. 윈도우95에서 구동되는 턴제 게임만 한다.

  • 박물관/미술관 속의 게임들과 그 역사

    최근 들어 미술관에 게임이 전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와 같이 게임을 소재로 한 전시가 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단순히 그 오브제의 집합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작품들이 연계되어 만드는 다양한 맥락을 통해 그 작품의 의미는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아카이빙, 박물관, 전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 Yeop Lee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 Contents at Soonchunhyang University. Researches game storytelling and game design as central concerns, and led the founding of the Busan Indie Connect Festival—a leading indie game festival—where serves as head of the jury. Also a juror for the Independent Games Festival (IGF), one of the most prestigious indie game events internationally. Books include Digital Storytelling (co-authored, 2003), Digital Games: A New Territory of Imagination (2005), Indie Games (2015), Stories Become Transformers (co-authored, 2015), Mario, Born in '81 (co-authored, 2017), The Theory of Games (co-authored, 2019), and Games Are Games: Game × Ecosystem (co-authored, 2021).

  • 고전게임 리메이크에서 트리플 A를 고려하는 방식에 관하여

    세간에서 말하는 트리플A 게임만의 매력은 뭘까? 아무래도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세대의 가장 앞선 기술을 다각도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포기하기 어려운 요소이다. 특히 게임 장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게임-문법은 이미 앞세대의 게임에서 대개 구현이 완성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트리플A 게임은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든 비주얼과 사운드라는 면에 방점을 찍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생산비 증가와 개발 기간의 장기화라는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선 ‘트리플A 포기론’까지 나올 정도이다. < Back 고전게임 리메이크에서 트리플 A를 고려하는 방식에 관하여 10 GG Vol. 23. 2. 10. 세간에서 말하는 트리플A 게임만의 매력은 뭘까? 아무래도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세대의 가장 앞선 기술을 다각도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포기하기 어려운 요소이다. 특히 게임 장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게임-문법은 이미 앞세대의 게임에서 대개 구현이 완성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트리플A 게임은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든 비주얼과 사운드라는 면에 방점을 찍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생산비 증가와 개발 기간의 장기화라는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선 ‘트리플A 포기론’까지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산업적 측면에서든 기술의 발전이라는 면에서든, 아니면 게임의 본질이라는 차원에서든 ‘트리플A’를 향한 게임계의 열정을 근본부터 부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트리플A 게임이 사라진 빈 공간을 ‘인디게임’으로 전부 채울 수도 없는 노릇아닌가. 그렇다면 ‘트리플A’ 사이 사이의 빈 공간을 직시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는 무엇을 떠올려야 할까? 물론 스퀘어에닉스처럼 다수의 B급 정도에 해당하는 게임을 연이어 출시하는 물량공세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다. 여기서 특별히 살펴볼만한 것은 이전 세대 게임의 리메이크 혹은 리마스터에 해당하는 움직임이다. 어떤 의미로든 이런 움직임은 ‘트리플A’ 외의 게임 생태계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 걸로 생각된다. 물론 주로 화제가 되는 리메이크 사례는 그 자체가 ‘트리플A’를 지향하는 경우다. 가령 〈파이널판타지 7 리메이크〉는 그럴듯한 그래픽과 음향 효과로 외형적인 면만 보자면 원작 고유의 느낌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트리플A 게임처럼 느껴진다. 앞서 ‘트리플A’의 난제로 언급한 개발 기간과 비용 문제는 에피소드를 쪼개 나눠 출시하는 걸로 어느 정도 해결했다. 어떻게 보면 어떤 종류의 무성의로 느낄 법도 한 일인데,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이런 불만을 진지하게 제기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잖아도 대작이었던 원작이 출시된지 거의 25년이 지나서 나온 리메이크인데다, 분할 출시 했음에도 독립적인 게임으로서 퀄리티가 크게 떨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시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리마스터와 리메이크를 모두 거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사례가 나오면서 〈파이널판타지 7 리메이크〉는 오히려 돋보이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런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리메이크의 효용은 뭘까? 하나의 트리플A급 게임을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기획하는 수고를 거치지 않고도 결과물에 있어서는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사실 흘러간 게임을 이런 저런 방식으로 리메이크 해온 것은 이전 세대에도 있었던 일이다. 가령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경우 패미컴판으로 출시됐던 1, 2, 3이 슈퍼패미컴과 게임보이 등의 플랫폼으로 리메이크 된 바 있다. 이런 사례를 세자면 끝이 없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원작과 리메이크작 출시 시점의 격차(〈드래곤 퀘스트 3〉의 경우 1988년과 1996년)가 비교적 크지 않다. 플랫폼의 세대로 따져도 그렇다. 따라서 새로운 유저층에게 경험해보지 못한 게임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효과보다는 원작을 이미 경험해본 사람들에게 새로운 플랫폼에서의 게임 경험을 제공하는 게 우선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런데 오늘날 전 세대 게임을 리메이크 혹은 리마스터해 출시한다는 것의 의미는 좀 다를 수 있다. 최근 출시된 〈페르소나 3〉와 4의 리마스터작들은 어떤가? 이 게임들의 원작은 각각 2006년과 2008년에 발매되었다. 리마스터판의 원본인 〈페르소나 3 포터블〉과 〈페르소나 4 골든〉이 각각 2009년과 2012년에 나왔다는 점을 고려해도 상당히 오래 전 일이다. 더군다나 〈페르소나 4 골든〉은 비운의 휴대용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 비타로 발매돼 판매량 자체에 한계가 있었다. 시리즈의 최신작인 페르소나 5가 대성공을 거두고 로얄이라는 딱지가 붙은 완전판이 추가 발매되기까지 하면서 〈페르소나〉 3, 4도 다시 빛을 볼 기회가 열렸다. 페르소나 5로 시리즈에 입문한 유저 상당수가 3과 4를 접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생기면서 리마스터판 발매 성과에 기대를 걸어볼만한 상황이 된 거다. 〈페르소나〉 3, 4, 5는 스토리상의 주제나 기술 발전에 따른 연출 등이 다를 뿐 기본적인 게임의 구조는 거의 같다.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과 교감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얻은 힘으로 더 강한 악마를 수집하고, 이 악마들을 이렇게 저렇게 합체시켜 더 강한 악마를 얻어가며 던전 공략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형식이다. 〈페르소나 5〉에 만족한 게이머라면 3과 4 역시 재미있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5를 해본 사람이라면 3의 상대적으로 음울한 마치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듯한 공간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4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골 마을의 일상을 실아가는 것은 즐거운 경험일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기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시리즈물을 큰 역량을 투입하지 않고 단지 리마스터해 출시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트리플A’의 등장까지 걸리는 기간을 버티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물론 기왕 하는 거면 잘 하는 게 좋다.’ 새로운 게임’으로 비춰질 수 있을 정도의 현대적 매력을 창출하면서 기성세대가 돼버린 게이머에게 ‘추억’으로 어필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게 관건이다. 최근 출시된 〈택틱스 오우거 리본〉은 이 과제에 도전하는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과거 슈퍼패미컴판으로 발매됐던 〈택틱스 오우거〉는 당시로서는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SRPG라고 부르는 장르의 한계에 도전한 게임이다. 사실 SRPG의 기본 문법은 초창기 〈파이어 엠블렘〉이나 〈랑그릿사〉 시절에 이미 완성돼있었다. 〈택틱스 오우거〉는 여기에 장비의 무게에 따른 수치를 턴 순서에 반영한다거나 지형의 성격 뿐만이 아닌 높낮이 심지어 부여된 원소 속성까지 변수로 계산하는 하드코어한 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높은 데서 화살로 공격하면 중력의 영향으로 데미지가 늘어난다는 점을 이용하는 전략 등이 가능했던 거다. 이러한 룰이 전략전술의 깊이를 더했다면, 나름 심오한 갈등구도를 다루는 스토리라인은 이 룰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만 하는 당위를 부여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민족 갈등과 이를 이용하는 외세의 개입, 거기에 대응하며 현실에 휩쓸려 가는 주인공이 겪는 도덕적 내면 갈등은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 판타지 소설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시나리오의 주요 분기가 주인공의 도덕적 결단을 통해 갈리게 한 장치도 의미심장하다. 나는 목표 달성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며 손에 피를 묻힐 각오를 할 수 있는가? 혹은 그러한 일에 관여한 사람들과 같은 목표 아래 타협할 수 있는가? 타협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고고한 이상을 지키기 위해 나라의 모든 민족을 적으로 돌리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런 질문에 답을 하면서 앞서의 복잡한 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현실의 전투를 해나가야 한다. 이런 고뇌는 블럭처럼 단순화 된 세계의 SD화 된 귀여운 캐릭터를 통해 표현되지만, 역설적으로 이를 통해 이거야 말로 전쟁 그 자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황산벌〉에서 전장의 스펙타클을 추구하기 보다는 바둑돌이나 장기말로 비유한듯한 병사들의 움직임을 통해 오히려 전쟁의 잔혹함을 강조한 것과 비슷한 효과이다. 만일 이 게임을 앞서 〈파이널 판타지 7〉 처럼 ‘트리플A’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리메이크하기로 했다면 같은 느낌을 주기 어려웠을 거다. 상징화된 그래픽이라는 장치를 제거함으로써 복잡한 전투룰을 단순화 하거나 완전히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복잡을 넘어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전투 시스템 일부는 이번에 수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과거 슈퍼패미컴 혹은 PSP 리메이크판을 경험했던 올드 게이머라면 ‘트리플A’가 된 〈택틱스 오우거〉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다. 이 덕에 이 게임은 슈퍼패미컴 시절 그래픽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게 ‘트리플A’에 익숙한 신규 유저들에게는 장벽으로 다가온다. 복잡한룰 덕에 지나치게 느린 게임의 템포도 요즘 사람들이 적응하기에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성의가 없는 리메이크를 한 것은 아니다. 배경음악 전체를 오케스트라 실연으로 다시 녹음했고 콘솔판의 경우 섬세한 콘트롤러 진동을 통해 타격감과 날씨의 변화 등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성공을 거두기엔 어려운 조합이 아닐까 했는데, 애초 비관했던 것보다는 제법 팔린 모양이다. 올드 게이머의 입장에서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택틱스 오우거〉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여 놓으면서 게임 산업이나 플랫폼의 변화, 소비자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리메이크나 리마스터가 어떤 돌파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가 반복되고 있다는 어떤 착각 때문이다. 〈택틱스 오우거〉가 다루고 있는 독립전쟁과 이를 이용하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몰두하는 제국, 여기에 기만적으로 이용당하는 민족 간 갈등이라는 소재는 냉전 구도가 붕괴되고 양쪽으로 뭉쳐있던 세계가 흩어지면서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맞닥뜨리게 된 현실의 모사였다. 우리는 이게 이제는 과거가 되었다고 한동안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또다시 신냉전을 말하고, 이빨 빠진 호랑이였던 제국은 다시 깨어나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주변국들은 자원 수급과 전쟁이 미치는 경제적 영향을 따지면서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남는 장사가 될지 셈하는데 분주하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침공에 맞서 똘똘 뭉쳐 싸우고 있지만, 거기에도 내부의 정치라는 것이 있기에 전쟁이 마무리되는 어떤 시점에선 자기들끼리의 정치적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런 현실은 우크라이나의 것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평에 따르면 세계는 더욱 더 격렬하게 ‘헤어질 결심’을 거듭해가는 중이다. 어디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다. 모든 매체와 예술 작품이 그렇듯(〈슬램덩크〉는 왜 이 시기에 다시 등장했는가?) 게임도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 어떤 방식으로든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세계가 반복된다면 게임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트리플A’가 앞으로 나아가는 세계에 발맞추는 게임의 모습이라면, 리메이크 혹은 리마스터는 과거가 끝없이 변주되는 세계에 대한 게임의 응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는 것은 무엇을 누가 리메이크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아마도 이 선택에서도 새로운 시대정신은 태어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타이쿤, 자유로운 세상을 생각하다

    <돈스타브>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농사의 중요성을 알고있을 것이다. 당장의 굶어 죽을 위기에서 안정적인 식량 보급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밥을 찾아 헤매는 일은 너무나도 고달프다. 따라서, 수렵과 채집을 하던 게이머들은 어느 순간부터 터를 잡고 작물들을 키워나간다. 더 ‘효율적’으로 작물을 수집하기 위함이다. < Back 타이쿤, 자유로운 세상을 생각하다 18 GG Vol. 24. 6. 10. 1. 효율을 위한 공간 <돈스타브>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농사의 중요성을 알고있을 것이다. 당장의 굶어 죽을 위기에서 안정적인 식량 보급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밥을 찾아 헤매는 일은 너무나도 고달프다. 따라서, 수렵과 채집을 하던 게이머들은 어느 순간부터 터를 잡고 작물들을 키워나간다. 더 ‘효율적’으로 작물을 수집하기 위함이다. <돈스타브>에서 농장은 곧 ‘효율을 위한 공간’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들은 농사를 하기 위한 땅을 선점하고 생존에 유리한 작물을 선택하여 공간에 배치한다. 이 모든 활동들은 ‘효율’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겨냥하는데, 이때 효율이란 더 적은 시간으로 더 많은 수확량을 거둬들이는 시스템을 뜻한다. 즉, 시간 대비 최대의 수확량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돈스타브>의 농사는 아주 세심하게 이루어진다. 과연 무엇이 더 효율적일지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땅, 작물, 배치를 선택하는 것이다. * <돈스타브> 농장 사례. 출처: https://www.fanatical.com/ko/game/dont-starve-together <마인크래프트>에서 ‘효율을 위한 공간’은 더욱 다채로워진다. 여기에는 농장 뿐만이 아니라, 동물들을 모아 기르는 목장, 나아가 아이템을 자동으로 수집하게 해주는 공장들도 있다. 자동으로 수집되는 물품들 역시 매우 다양한데, 단순 작물부터 광물 경험치까지 게임 속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자동화의 대상이 된다. 한편 <마인크래프트>에서 ‘효율을 위한 공간’은 <돈스타브>의 것과 성격상의 차이를 지닌다. 이는 수확물에 대한 즉각적인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데, 긴박한 생존 게임이 아닌 <마인크래프트>에서 효율화 과정은 본격적인 놀이의 과정으로 편입된다. * <마인크래프트> 농장 사례. 출처: https://youtu.be/kf8yXlobhOQ?si=4QZ_wF0Ddjf0UgmV 앞서 필자는 효율이 ‘들인 노력 대비 얻은 결과의 비율’임을 밝혔다. 농장, 목장, 공장을 운영하는 이유는 더 적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더 많은 수확량을 거둬들이기 위함이다. 이들은 플레이어의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효율화 과정이 본격적인 놀이의 일부로 편입될 경우 ‘효율’은 매우 역설적인 양태를 띤다. 주목해 볼 점은 <마인크래프트>에서의 몇몇 효율화 작업이 결코 ‘효율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플레이어들이 만드는 자동화 장치가 매우 많은 생산량을 산출해내는 것은 맞지만, 동시에 이를 만드는 일은 너무나도 큰 노력을 요구한다. 자동화 기계를 만드는 시간에 그냥 수렵·채집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수준이다. 예를 들어 밀을 자동으로 수확하는 농장을 만드는 일은 ‘광물 캐기, 몬스터 잡기’ 등의 부가적인 절차를 요구하는데, 이는 밀을 그냥 키워내는 것보다 몇 배는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여기에 드는 효율화 과정을 포함한다면 농장/목장/공장을 만드는 것은 결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일이 아니다. [1] 필자의 경우 <마인크래프트> 야생에서 자동화된 농장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솜씨가 서툴러서 인지 회로를 짜고 재료를 모으는데 한 평생이 결렸고, 모으고 나서는 정작 작동 방식을 구경하다 게임을 떠났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그 이후에도 작동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 만들고 서버를 버리는 일들이 몇 번 더 반복되기도 하였다. 정작 생산물을 얻는 것보다도 ‘효율적인/효율적일’ 구조를 짜고 만들어 보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꼈던 것이다. <마인크래프트>의 사례가 알려주는 것은 효율을 구상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마냥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값어치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언가를 효율적으로 만들어보는 과정 자체가, ‘효율적인/효율적일’ 시스템을 구상하고 실현하는 과정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2. 타이쿤에서의 ‘기업가 정신’ 이때의 즐거움을 정확히 포착해낸 장르가 바로 ‘타이쿤’이다. ‘타이쿤(Tycoon)’은 에도시대의 쇼군을 의미하는 대군(大君; Taikun)을 철자만 바꾸어 영어 식으로 표현해 놓은 것인데, 게임 문화에서는 ‘경영 시뮬레이션’ 장르를 뜻한다. 어원을 통해 짐작 해보자면, 마치 쇼군(대군)과 같은 위치에서 특정 대상을 사업/경영해 보는 시뮬레이션 게임들이겠다. 구상과 운영에 특화된 이 장르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효율’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주어진 시간, 땅, 돈, 인력 안에서 더 좋은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방법을 고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효율에 대한 추구는 시간이나 자원적 제한을 걸어 두어두는 등 게임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의도되기도 하며, 의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게임 안에서의 플레이 과정은 효율과 딱히 멀어지지 않는다. 플레이어들이 끊임없이 더 좋은, 더 참신한 방식을 고안해 내기 때문이다. 타이쿤은 무엇이 가장 ‘효율적’일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장르이다. 보다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살펴보자. <슈의 라면집>과 같은 타임어택 타이쿤에서 플레이어들은 당장의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적의 방식을 찾아 나선다.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더 높은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 도전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더 효율적인 전략과 더 좋은 피지컬이 요구된다. 다른 한편 <롤러코스터 타이쿤>과 같이 높은 자유도를 지닌 게임에서 효율에 대한 추구는 보다 창조적인 과정으로 거듭난다. 여기에서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구조를 고민해보며 그를 통해 무엇이 가장 많은 산출물들을 만들어 낼지를 찾아나선다. 이때 타이쿤 게임은 본격적으로 ‘효율적인/효율적일’ 시스템을 구상하는 실험실이 된다. *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의 실험 사례. 출처: https://youtu.be/h0kTdVw8nxo?si=F4196cZ6cs4dICX8 사실, 타이쿤과 같은 효율의 놀이화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만은 없다. 더 많은 축적과 더 높은 수익을 갈구하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마치 신자유주의 서사 안에서의 기업가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즉, 효율에 골몰하는 게이머들이 마치 생산과 축적에 도취된 현대의 경영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다이어-웨더포드와 드퓨터(Dyer-Witheford & De Peuter, 2009/2015)의 연장선상에서 타이쿤이 신자유주의적 주체성을 기르는 기계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가능할 것이다. 3. 타이쿤, 자유로운 세상을 생각하다 다만, 이 글은 타이쿤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것이 지니는 가능성에 대하여 주목해보고자 한다. 첫 단락에서 살펴보았듯이, 효율이 놀이가 되는 순간 그 중심에는 ‘구상의 과정’이 있다. 플레이어들은 무엇을 어떻게 위치시켰을 때 더 효율적일지를 생각하고 실험하며 최적의 방식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이러한 ‘효율적인/효율적일’것을 찾는 구상의 과정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됨으로써 놀이화 된다. 이때의 효율에는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존재한다. 본래 효율이 적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많은 산출물들을 얻는 비율이라면, 효율적인 구조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서버를 떠나거나 만들어 놓은 것을 부수는 식으로 시스템들을 구상하다 세계를 떠난다. 굉장히 비효율적인 수준에서 게임을 그만두는 것이다. 이는 효율의 놀이가 실제 생산된 결과물에 다소 무관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즐거움이 생산보다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더 많은 결과를 얻고자 하는 타이쿤 플레이어들을 보며 그것이 너무나도 신자유주의적이라 비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실제 생산 활동과 빗대어서만 타이쿤을 생각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인 시각에서 놀이를 사유하는 것이다. 타이쿤으로 대표되는 효율에 대한 놀이는 마냥 생산에 도취되는 것이기 보다는 효율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에 가깝다. 플레이어들은 오히려 실제 생산량에 무관심하며 그저 이후 벌어들이게 될 생산량을 기대하는 수준에서 멈추기도 한다. 여기서 효율의 또 다른 의미를 가져와보자. 효율은 시간 대비 벌어들이는 생산량의 비율이다. 따라서 효율적이라 함은 그 시간을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효율에 대한 추구는 곧 해야할 일이 없는 시간을 만들고자 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 이기도 하다. 타이쿤에서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탑을 쌓아나가는 것만 같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그저 안주하기 보다는 더 좋은, 더 자유로운 삶을 가능하게 할 방법을 구상한다. 때문에 너무나도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구조는 마치 잘 만들어진 수식처럼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타이쿤의 묘미는 자유로운 세상을 생각해보고 나름대로 만들어보는 것은 아닐까? 생산과 축적을 끌어안기보다는 사람들이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삶을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타이쿤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Dyer-Witheford, N., & De Peuter, G. (2009). Games of empire: Global capitalism and videogames. 남청수 (역) (2015). <제국의 게임>. 서울: 갈무리. [1] 물론 이는 개인의 플레이스타일에 따라 차이가 있다. 만약, 플레이어가 한 야생에서 막대한 시간을 생활한다면 100시간을 들인 기계도 장기적으론 효율적일 수 있겠다. 다만, 이 글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이 효율적인 시스템(구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이기에 그와 같은 가능성은 생략하였다. Tags: 굶지마, 시뮬레이션, 타이쿤, 대량생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 게임커뮤니티가 걸어온 지난 25년과 오늘

    한 세기를 농구 한 경기로 본다면 이제 1쿼터의 막판이다. 쿼터나 25년이라고 하면 엄청 긴 세월은 아닌 것 같지만 사반세기로 지칭해 세기 개념이 오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묵직함이 있다. 한 쿼터도 긴 시간이고 역사의 한 두께다. < Back 게임커뮤니티가 걸어온 지난 25년과 오늘 23 GG Vol. 25. 4. 10. 한 세기를 농구 한 경기로 본다면 이제 1쿼터의 막판이다. 쿼터나 25년이라고 하면 엄청 긴 세월은 아닌 것 같지만 사반세기로 지칭해 세기 개념이 오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묵직함이 있다. 한 쿼터도 긴 시간이고 역사의 한 두께다. 그리고 사람. 두세 자릿수 이상의 사람들이 공통점을 갖고 모인 커뮤니티는 개체수의 조합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만큼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이 역사가 사반세기 쌓이면서 이 또한 방대해진다. 가끔은 역사의 요약을 감히 할 수 있는가 겸허함이 들긴 하지만 그 두껍고 넓은 영토를 정리하는 일은 필요할 것이다. 공동체, 커뮤니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자 목적은 자기 방위다. 부족과 국가는 구성원들을 굶주림과 죽음에서 보호하는 기능이 최적이다. 종교는 그 기능을 위한 질서화 기능과 내면의 평안 기능을 제공하는 커뮤니티다. 반면 동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는 방위 기능이 거의 없고 대신 정보와 정서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기능이 더 중요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경우엔 물리적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방위 기능은 심리적인 것 외에는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존재 가치이자 1차적 기능은 정보 제공 기능과 정서적 연대 기능이 된다. 그리고 정서적 연대 또한 정보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렇게 느슨한 형태의 부족을 형성한 것이 지난 25년 온라인 커뮤니티의 요약이다. 커뮤니티가 성립하면 그 내부에서는 두 가지의 길항 관계가 형성된다. 첫째는 정보 생산 주체가 누구인가다. 지배자, 엘리트 등의 상부에서 유통하는 경우와 민중, 대중 등의 집단 지성이 유통하는 경우로 나뉜다.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는 두 가지가 모두 작동한다. 한국의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 현상이 나타났는데, 외국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번역하여 가져오고 직접 생산도 하는 소위 ‘기자’와, 비슷한 일을 하지만 커뮤니티 운영 그룹은 아닌 ‘사용자’의 2중 구조다. 운영 그룹에 속하는 생산자들을 기자로 불렀다는 점에서 이는 이 집단이 언론인가 커뮤니티인가를 가르는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정체성의 측면에서 언론 기능에 치우치기를 선택한 대표적 예시가 디스이즈게임이다. 두 번째 길항 관계는 이 운영권에 있다. 커뮤니티가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집단, 국가라면 정부다. 운영 관리를 하는 집단은 내부의 질서도 잡아야 하고 그래서 규칙을 제정하여 강제한다. 이 집행 행위를 운영 집단이 직접 하는가와 사용자의 자율이나 사용자 일부에게 위임하는가의 경우가 있다. ‘운영자’와 ‘알바’의 페어다. 후자의 경우엔 서술의 순서를 뒤집으면 그게 곧 민주주의인데, 현실 정치에서도 질서와 자유는 길항 관계로 국가를 조직해간다. 중요한 것은 한계선의 존재인데, 자유가 선을 넘으면 혼돈이 되고 질서가 선을 넘으면 경직이 된다. 0. 20세기, 최초의 게임 커뮤니티 게임 커뮤니티가 온라인에 자리잡기 이전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커뮤니티 혹은 유사 커뮤니티는 있었다. 게임 잡지다. 90년대의 게임매거진, 게임라인 등의 게임 전문 매거진은 게임 정보를 번역하고 게임을 공략하는 기자와 전문 필진을 고용해 컨텐츠를 만들었다. 독자들은 편집부에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2차 컨텐츠를 만들고 교류를 했는데 특히 게임라인과 그 후신 게이머즈는 동호회의 창작 합평 같은 분위기의 독자 편지 코너를 갖고 있었다. * 단순한 Q&A 외에도 2차 창작물의 공유, 나아가서는 독자 자신과 담당자의 캐릭터성 만담이 이뤄지기도 하는 대화성 코너였다. 비슷한 시기에 PC통신 서비스가 생기면서 게시판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 동호회들이 생겨났고, 이것이 곧바로 꽃핀 인터넷 환경의 웹 게시판으로 옮겨갔다. 정보를 번역/생산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동호회는 인터넷 환경이 일반화되면서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로 자리를 옮기거나 플레이포럼, 루리웹 같은 팬 기반의 정보 공유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본 구조는 다들 비슷했다. 게시판 여럿이 병렬로 모인 게시판 집합체의 성격이었는데 이런 표준의 대표는 디시인사이드였다. * 디시인사이드 중세게임 갤러리, 속칭 중갤의 화면 질서 한계선을 높게 두었고, 생산을 사용자에게 일임했고 관리 또한 사용자 중 일부로 대체했다는 의혹도 있다. 게임뿐 아니라 수많은 관심사의 게시판들이 병렬로 모여 있고, 그 수의 게시판을 관리하려면 새로운 게시판이 생길 때마다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 디시인사이드는 기본적으로 직원이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방임 정책이었다. 질서의 한계선이 자율에 가깝다 보니 한계가 매우 느슨한 무제한적 자유가 허용되었다. 반면 소속감은 매우 크다. 맹점은 생산되는 정보도, 정보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사용자도 많아. 큐레이팅 기능이 매우 떨어졌고 정치적 정서는 종종 극단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게임 게시판의 대표격인 중세게임 마이너 갤러리가 그러한데, 이 경우엔 후일 악명 높은 일간베스트의 게임 게시판 사용자들을 흡수하기도 했다. 이러한 디시인사이드의 특징, 병렬화/파편화된 게시판 체제와 높은 자유도는 일간베스트, 인벤 등의 후계 주자들이 참고하는 지점이 되어 디시인사이드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대전제로서 존재한다. 1. 00년대 시작, 웹진과 카페 90년대 후반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 정보화 혁명은 커뮤니티를 촉발시켰다. 정보를 번역하고 생산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모이면서 커뮤니티 운영이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프리챌과 디시인사이드를 필두로 한 웹 커뮤니티 시장이 열렸다. 게임만 다루는 커뮤니티 또한 플레이포럼, 루리웹, 그리고 플레이포럼에서 분화된 인벤 등 여러 플랫폼이 사업체 등록을 하면서 판이 시작되었다. 거의 모든 플랫폼의 구조는 디시인사이드에서 온 병렬형 게시판 구조였고, 정보 생산은 기존 정보 번역/생산을 하던 사람들이 기자 혹은 필진이 되어 웹진의 형태를 취했다. 오프라인의 레거시 매거진과 다른 점은 사용자들이 게시판을 기반으로 정보 생산 기여를 한다는 점이었다. 편지보다 훨씬 실시간 소통이 되는 웹의 특성 덕에 기자/필진 외에도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정보를 제보하고, 플레이포럼과 인벤은 이런 컨텐츠를 큐레이팅해 기사 형태로 업로드되어 사이트 첫화면에 이미지 링크도 되었다. 이들은 인기 게임 별로 별도의 하위 사이트를 개설하고 여기에 관련 게시판을 정리해서 넣어두는, 나무뿌리 형태의 계층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가장 붐비는 곳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다루는 와우플포와 와우인벤이었다. 사이트 첫화면이라는 개념이 없는 구성의 디시인사이드와 루리웹은 게시판 상단에 고정글로 올려두는 방식을 택했고, 이후 추천글 목록이라는 별도의 위젯 시스템으로 발전해갔다. 후발주자인 인벤의 2004년 창립 다음 해에 디스이즈게임이 창립했지만, 시작부터 언론 기능에 치중하며 시작했던지라 커뮤니티 기능은 약했다. 이제 시작한 시장에 파란이 없을 수 없다. 시장 형성 직후인 2002년에 선두 주자였던 프리챌이 유료화라는 무리수를 던졌다가 비참하게 사라졌다. 경쟁자였던 포털 사이트가 이 커뮤니티 수요를 대거 흡수했다. 다음, 뒤이어 네이버가 내놓은 카페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서비스가 대세가 되었고, 각 게임사는 게임 홈페이지에 커뮤니티 게시판을 열어두거나 아예 포털 카페에 팬 카페를 개설했다. 전자의 의도는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와야 하는 구조로 만들면서, 커뮤니티 기능 또한 홈페이지에서 소화하는 것이다. 웹진이나 포털의 커뮤니티를 사용하면 데이터 수집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의 트래픽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개발사가 이 방법을 썼다. 작은 회사는 다음과 네이버로 갔다. 그래도 게임 커뮤니티의 헤게모니는 웹진과 게시판에 있는 형국이 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오래 가지는 못했으니, 업계가 너무 빨리 커졌다. 게임의 종류가 많아지고 각 게임의 역사도 깊어지면서, 필요 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면 인기 온라인 게임이 대여섯 개씩 새로 출현한다. 업계에 돈이 돌고 시장이 커지면서 스탠드얼론 게임도 대작들이 점점 많아진다. 공략 생산과 정보 큐레이팅에 인력을 추가하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었다. 웹진 모델로는 게임 전반의 정보를 유의미하게 다루기가 어려워져 갔다. 결국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플레이포럼은 탈락했다. * 플레이포럼의 개편 이전 UI 디스이즈게임이 언론 기능을 목표로 삼고, 디시인사이드는 무한 자유의 놀이를 하는 도중, 똑같이 팬 기반의 울티마 온라인 정보 사이트로 출발한 플레이포럼은 실패 사례가 되었다. 트리거가 된 사건은 UI 개편의 실패였지만, 이를 전후하여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징후가 나타났다. 생산과 큐레이팅의 주체를 기자로 고집하면서 생산 주기가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기능을 과감히 포기한 디스이즈게임이나 처음부터 사용자에게 일임했던 디시인사이드/루리웹과 달리 어느 한쪽을 정하지도 균형점을 찾지도 못하고 개편 실패 이후 2012년 12월 31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플레이포럼의 커뮤니티 기능은 플레이포럼에서 파생되어 나온 후발주자인 인벤이 흡수했다. 2. 10년대의 질서, 게시판의 헤게모니 플레이포럼이 사라지면서 정보 생산의 무게추가 사용자들에게로 옮겨갔다. 기자/필진의 숫자도 사용자에게 밀렸지만, 공략과 분석이 업무이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들이는 시간은 재미이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들일 수 있는 시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인벤,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등에 이미 모여 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생산하는 정보의 옥석을 가려내는 큐레이팅 기능이 중요해졌다. 인벤은 발 빠르게 각 게임의 담당 팀을 정보 생산 역할에서 큐레이팅 역할로 변신시키면서 변화에 적응했다. 루리웹과 디시인사이드는 초기부터 이미 직원 및 알바에게 게시판 관리 역할, 즉 게시판 큐레이터를 맡기고 있었다. 이후 인벤은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의 강자, 루리웹은 스탠드얼론 게임 커뮤니티의 강자 역할을 하고 있다. * 와우인벤의 첫화면 플레이포럼에서 분화되어 나온 인벤은 웹진으로 출발했고 현재도 언론 기능의 기본은 유지하고 있다. 사이트 체계부터 UI 구성까지 플레이포럼을 답습하다시피 한 인벤이 살아남은 이유는 적응력이다. 이들은 시시각각 광대해지는 담당 영역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빠르게 정보 생산 주체를 기자/필진에서 사용자로 이동시켰다. 이제 기자는 에디터로 변신하여 큐레이션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용자들이 게시판에 자신들의 공략, 분석, 외국 자료의 번역을 올리면 잘 정리된 것을 각 게임 사이트 첫화면에 올려준다. 이전에는 기자/필진들이 작성한 기사의 링크 이미지가 올라가던 자리다. 관리 주체 또한 디시인사이드, 루리웹과 달리 질서 한계선을 더 낮게 그어 제한을 더 두었다. 플레이포럼에서 따온, 회원이 활동량에 따라 아이디의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구조는 장기간 고정 활동을 장려하고 정도 이상의 일탈을 자제시키는 정책이기도 했다. 또한 인벤은 ‘사건 사고 게시판’이라는 일종의 해방구 공간을 운영했다. 2005년부터 와우인벤을 비롯한 MMORPG 게임 페이지 하위에 개설된 이 게시판은, 게임 내에서 생긴 갈등을 가져와 여론 재판을 받는 재판정이다. 명분은 ‘이러이러한 비매너 유저를 고발한다’고, 따라서 여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집단 린치나 사이버 불링의 형태도 나타난다. 사건 사고 게시판은 소위 막장 드라마와 같은 길티 플레저이기도 하다. 마음껏 욕해도 되는 수준의 플레이어가 징벌대에 올라오고, 그에게 가학성을 드러낼 수 있고, 가끔은 고발한 사람이 진짜 나쁜놈이었다는 반전도 생기고, 어쩔 때는 고발 당한 플레이어가 억울하다며 등장해 싸우는 등, 온갖 엔터테인먼트가 이 게시판에 있다. 게다가 비난할 대상은 계속 재생산된다. 따라서 해방구가 되는 재판정 혹은 아예 결투장이기도 하다. 또한 합심하여 누군가를 공격하면 그 경험으로 인한 옅은 공동체 의식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아이디 레벨 제도가 합쳐지면 인벤의 커뮤니티 서비스 전반의 사용량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다. * 루리웹의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 게시판 자유도라는 점에서는 디시인사이드와 같은데, 반면 큐레이팅의 존재와 규칙과 운영은 오히려 인벤에 가까운 것이 루리웹의 특징이다. 루리웹 또한 정보 생산을 사용자들의 게시물에 의존하는데, 이는 인벤과 달리 초기부터 유지한 특징이다. 관리 주체는 운영사와 사용자가 함께 부담하며 이 인력이 큐레이팅도 하는데, 대신 몇몇 붐비는 게시판은 운영사 직할로 관리한다. 큐레이션 능력은 인벤만큼은 아니지만 아예 없는 디시인사이드보다는 나은 정도다. * 블레이드 앤 소울의 자체 커뮤니티 게시판 반면 10여 년의 시간 동안 게임 홈페이지의 자체 게시판은 별 역할이 없었다. 그나마 활성화가 되어도 정보 공유보다는 사용자 결집과 상호작용의 기능 정도만 수행했는데, 그마저도 ‘구 웹진’의 게시판에 빼앗기면서 서서히 도태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포털로 이동했다. 특히 모바일 게임의 경우엔 이쪽이 더 적합했다. 기술의 발전과 모바일 혁명으로 인해 위젯 기능 적용이 확장되면서, 게임을 실행하고 있는 동시에 옆 위젯으로 잠시 커뮤니티 화면을 불러오는 식의 구현이 가능해졌는데, 포털 대기업의 기술 지원은 이 구현을 용이하게 했다. 그러니 2018년 말, 또 한 번의 파란이 일었다. 게임사가 운영하는 게임 카페에 대해 네이버가 유료화 모델을 시도한 것이다.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카페의 상단 광고에 다른 회사 게임 광고를 노출시킨다는, 감탄이 나오는 전략에 몇몇 회사들은 포털을 탈출했다. 다시 자체 커뮤니티를 시도했고, 역시 이쪽이 회사 입장에서는 데이터 확보가 가장 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세가 된 것은 더욱 혁신적인, 아예 게시판 기반 체제를 버리는 방안이었다. 3. 10년대 후반에서 20년대, 게시판 너머의 채팅방 어차피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사용자들이다. 개설과 존속에 드는 비용은 어느 회사인가가 댈 수 있지만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드는 것은 비용 이상의 무엇이다. 그리하여 회사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와 별개로 사용자들은 새로운 플랫폼인 메신저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떠오른 커뮤니티 시장의 새 강자는 메신저, 특히 디스코드다. * 디스코드 채팅방에 개설된 아르테일의 채널 (출처: 게임인사이트, “활성화되어 있으나 원하는 정보를 찾기 까다롭다”는 캡션이 있다) 텍스트와 음성 채팅 두 가지를 기반으로 하는 디스코드의 체계는 게시판과는 다른 장단점을 가진다. 게시판은 생산한 정보가 게시글의 형태로 고정되어 후일에도 찾아올 수가 있다. 다만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기는 힘들다. 채팅방은 그 반대로, 과거의 유용한 정보를 되짚어 찾기는 어렵지만 실시간 교환은 매우 쉽다. 이 장점은 사용자 간에도 작용하지만 제작자와 사용자 사이에도 적용된다. 반면 유저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웹진과 포털보다 더 어려운 상대였다. 그리하여 현재의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는 다섯 가지의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높은 자유도만큼이나 혼란하고 정보량은 적은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 자유도를 약간 희생했으나 큐레이팅 기능이 있어 진주가 묻혀 있는 루리웹, 언론의 기본 기능을 유지하면서 큐레이팅 기능을 강화해 양질의 정보를 보유한 인벤, 사실상 기능이 없는 채로 구색만 갖춘 것이 대부분인 게임사 자체 커뮤니티, 그리고 게시판을 벗어나 실시간 소통에 특화된 메신저 채팅방. 4. 온라인 부족 사회 모든 커뮤니티는 자체 존속을 위해서 여러 자원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자원은 구성원의 소속감, 즉 충성도다.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는 온라인 연결만 보장된다면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성이 높다. 기존의 커뮤니티는 지역에 묶였다. 국가의 정의 중에 영토가 있듯이 말이다. 따라서 공간을 뛰어넘는 커뮤니티의 범람은 인류가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다. 그 경험이 25년 남짓 되었다. 그동안 존속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제각각의 전략으로 구성원의 충성도를 얻었다. 커뮤니티 참여를 일상화시켜 소속감 또한 일상화시키는 방법은 인벤의 레벨제에서도 볼 수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몇몇 갤러리는 자신들만의 말투와 은어를 만들어 일체감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한 커뮤니티가 어느 정도 지속하면 커뮤니티마다의 특성이 생겨나는 것은 민족성의 발명 과정과 거의 유사하다. 장수하는 커뮤니티는 점차 온라인 부족의 색채를 얻게 되었다. 다중 소속도 가능한, 느슨한 형태의 부족인 셈이다. * 온라인 커뮤니티의 시대를 신(新)부족주의로 정의한 미셸 마페졸리의 저서 ‘부족의 시대’ 마페졸리는 이 책에서 신부족주의 행위자는 합리적 성인이 아니라 영원한 아이라고 보고 있다. 커뮤니티 부족들은 인벤의 사사게처럼 내부 갈등도 있지만 부족 간 갈등 내지는 고정관념도 생겨났다. 디시인사이드에는 루리웹을 “씹선비”라 부르며 멸시하는 경우가 있고, 이따금 ‘인벤 놈들은 역시 그 따위’ 식의 폄하도 찾아볼 수 있다. 오경택의 2023년 석사 논문은 게임 커뮤니티의 공정성 담론에 관한 연구인데, 여기서 소개한 정서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온라인 게임의 과금 유도에 지갑을 열어주는 사람은 게이머가 아니라 개돼지라는 정서. 진정성이라는 기준으로 다른 부족을 공격하면서도 동시에 ‘게이머’라는 이상적 주체를 상상하고 있다. 같은 계열의 게시물 중에서 오경택은, ‘진정한 게이머’인 자신과 모바일 게임이나 잠깐 하는 사람이 같은 게이머로 분류되는 것에 대한 불만에도 주목한다. 이는 ‘게이머’라는 대분류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인데, 부족성을 넘어 민족성 혹은 민족 개념이 싹트는 중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 성립의 과정은 언제나 폭력성을 수반한다. 우리와 타자의 경계를 나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근대의 민족 개념이 분쟁을 매개로 구체화 되었듯이 말이다. 또한 민족 개념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수용과 불수용의 충돌 또한 발생한다. 하드코어 게이머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반대에는 선민의식과 계급화를 경계하는 거부감이 있어 이 둘이 부딪힌다. 투쟁의 현장이기도 하니 폭력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런 폭력성의 발현 사례를 여럿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와우인벤의 사사게는 내부의 분노를 처리함과 동시에 집단 린치를 스포츠화하여 해소하는 형태다. 디시인사이드는 전통적으로 폭력성 노출을 문제 삼지 않는 갤러리가 많으며 게임 관련 갤러리는 특히 그렇다. 이런 기초 토양 위에 원세훈 치하 국정원의 심리전이 끼어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여론 조작 시도는 뉴스 댓글 몇 개 단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여론 흐름을 조작하려 하면서 일베에서 사용된 밈의 재료들과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심리학자의 자문까지 받은 이 시도에서 현재의 사회를 괴롭히는 극우화의 물결이 싹텄다고도 볼 수 있다. 때는 마침 게임 커뮤니티에서 정보 생산 주체가 사용자들로 이전되던 2010년 전후다. 새 판이 만들어지는 변화기는 오염 정보가 들어간 게시물, 심리를 건드려 선동하는 댓글이 침투하기 좋다. 15년이 지나는 동안 그 씨앗들이 재생산되고 변이하였다. 그리하여 인터넷 커뮤니티 전반, 특히 남성 게이머가 많은 게임 커뮤니티에는 페미니즘과 진보 정치성에 대해 현실과 다른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영어권 웹도 비슷한 역사를 겪었다. 팬 사이트 기반의 정보 사이트들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적응 또는 도태되고, 합종연횡하고, 서로 싸우고, 게이머 정체성을 놓고 충돌하고, 비평가에 대한 반엘리트주의적 반감을 드러내고, 그러다가 2013년에 게이머 게이트가 터졌다. 이 사건은 게임 언론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규모가 제법 커서 주류 언론의 눈길까지 끌고, 급기야는 극우의 숫자에 합류하여 수를 늘려주고, 도널드 트럼프의 초선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까지 커졌다. 이 과정에서 브레이트바트와 같은 대안 우파 언론, 대안 현실을 신봉하는 음모론 극우의 독이 스며들어 판을 키웠다. 그렇다면 거의 비슷한 과정을 밟으면서 탄생한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특히 게임 커뮤니티의 극우성이 윤석열 당선에 영향을 주었다는 서술은 가능할까?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해체 공약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가설은 반대로 생각해 볼 지점도 갖고 있다. 앞서 주장했듯 게이머 정체성은 일종의 민족 개념으로 정착하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갈등과 폭력성 표출은 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게임은 승리를 향한 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과격성 발현은 정서상 자연스러울 수 있다. 물론 이런 해석에는 비현실적인 현실 인식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긴 하다. 게임 커뮤니티가 온라인에서 성립한 지 사반세기다. 그동안 우리는 게임에 관련한 여러 가지 때문에 검색을 해왔다. 수집품의 위치를 모를 때, 데미지 계산식을 근거로 했을 때 어떤 스킬 조합이 좋은지 궁금할 때, 버그가 발생했을 때, 새로운 업데이트에 대한 해석이나 요약이 궁금할 때 등이다. 검색의 결과로 우리는 인벤,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등의 어느 구석에 있는 게시물에 도착한다. 거기에는 동료 게이머가 알아낸 공략과 분석, 혹은 외국의 어느 사이트나 디스코드 채팅방에서 가져온 정보가 있다. 한편으로는 정보를 올린 사람 혹은 거기에 댓글로 첨언하는 사람이 옆 게시물에서 ‘페미는 정신병’이나 ‘걔들은 전부 빨갱이’라는 식의 극우 정서를 표출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유용한 정보에서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쉽게 만나는 세상이다. 이미 다양한 형태로 이 극우 정서의 근원을 분석하는 연구가 많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다음 사반세기다. 과연 이 느슨한 부족의 크기와 실제 영향력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중이기 때문이다. 해악은 어떻게 극복하고 효용은 어떻게 유지할지의 답은 게임 커뮤니티의 실제 모습을 찾아내고 다시 찾아내고 또 찾아내는 발굴의 과정에서부터 만들어갈 수 있다. Tags: 커뮤니티, 디시, 루리웹, 펨코, 인벤, 게임웹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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