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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과 예술: 게임 플레이 경험을 깊이있게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합리적인 대답을 기대한다면 생산적일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게 되는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에 대한 사유가 게임을 예술 또는 비예술로 분류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접근 방법임을 주장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 Back 게임과 예술: 게임 플레이 경험을 깊이있게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12 GG Vol. 23. 6. 10. You can see this article's english version at below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match=id:229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합리적인 대답을 기대한다면 생산적일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게 되는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에 대한 사유가 게임을 예술 또는 비예술로 분류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접근 방법임을 주장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적 작품이란 곧 미적 경험의 주입과 같은 것이 아닌가요?” 이에 대한 대답은 ‘당연하다’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와 같은 ‘경험’의 유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게임이 다양한 감정을 지닌 주인공이 겪게 되는 복잡다단한 내면의 상태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면, 우리는 게임을 문학이나 철학적 작품과 비교(하고 또 그에 따라 판단)하고자 할 것이다. 나의 제안은 (게임의) 예술적 지위 여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그 경험을 조망함으로써 관심의 초점을 (기껏해야 미심쩍을 뿐인 목표인) 게임의 고급 문화로의 편입으로부터 보다 심오한 게임플레이 경험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이처럼 게임플레이 경험 깊이의 심화라는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그 경험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면서 게임이 기존의 경험적 한계를 넘어서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미학’ 그리고 ‘경험’ 게임은 멀티미디어 작업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게임은 숙련된 개인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져 단일 매체의 경계를 가뿐히 넘어서는 종합예술(Gesamstkunstwerks)라 부를 수 있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 우리는 그 초점을 전체적인 경험에 맞추거나, 또는 시각적 재현이나 애니메이션, 레벨 디자인, 대사, 음악 등 보다 협소한 부분에 맞출 수 있다. 여기서 내가 ‘경험’이라 칭한 것의 개념은 ‘미학(또는 미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통해 드러날 수 있는데, 그 의미는 다원적이다. 서양 미학은 일반적으로 아이스테시스(aísthēsis, 감각 및 그로부터 얻는 분별력)과 노에시스(noesis, 순수하게 지적인 이해 또는 이성의 적용)을 구분해왔다. ‘미학’은 종종 ‘감각(sensation)’, ‘지각(perception)’ 및 ‘판단(judgement)’의 개념이 중첩되어 확장된 방식으로 이해되곤 하는데, 여기서 감각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고, 지각에서는 관찰자의 활동이 대상을 인식하거나 인지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며, 판단의 경우 미학적 판단이 개념이나 이성의 적용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닌다. ‘게임 미학’이란 컴퓨터게임, 디지털게임 또는 비디오게임이 지니는 특별한 독특성을 함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게임 미학은 ‘게임의 플레이란 어떤 느낌인가’와 같은 게임플레이 경험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감각을 통해 특정한 유형의 경험이나 인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데, 미학적 관점에서 연구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지속적으로 소위 ‘고급’ 문화(high culture)와 대중문화(popular culture)간의 연속성을 주장해왔다. 듀이의 생각은 인간이 분열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와 같은 분열은 우리의 (감정적, 지적, 감각적) 능력이 서로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지 못하도록 구획되거나 분리될 때 발생한다. 이 분열은 ‘예술’의 영역이 ‘생활’의 영역과 분리된 것으로 여겨지는 순간에 발생하는데, 예컨대 미술 갤러리나 오페라 하우스 같은 지정된 공간에 진입할 때에만 미적 경험이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그리고 그 외부에서는 미적 경험이 불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그 순간에 발생한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그 외의 다른 모든 경험들을 비(非)미적인 것으로 방치하는 것이자, 심지어는 임금을 벌거나 집 청소하기, 건강 유지, 친구와의 대화 등 다양한 여타의 경험들을 직접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적인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거기에는 다른 어떤 가치도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즉각적인 경험(immediate experiences)이 향상되면서 미적 경험이 개인의 주요 관심사와 삶에 통합될 때 가능한 풍요로움을 놓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들을 탓하자는 뜻은 아니며, 예술세계에 우리의 경험을 깊이 있게 발전시킨 작품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 그러한 작품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예술세계를 분리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원하는 금전적 이해관계가 실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비/예술의 구분을 짓는 권력을 공고히 하고 ‘이것이 예술이다’라는 상징적 지위를 부여하는 권능은 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중요 가정들이 내재하는데, 이러한 가정들이 게임 플레이 경험에 대한 세밀한 주의력을 발전시키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우선 어떤 것이 예술 작품인지 아닌지를 추정할 때 적용되는 ‘예술’의 개념에 대한 가정이 있다. 이러한 가정은 이분법적으로 분류함으로써 질문의 확장을 억압할 수 있다. 둘째, ‘게임’을 단일한 카테고리로 묶는 가정이 있다. 이는 단일한 장르에서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게임플레이를 분석하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게임을 (대부분의) 다른 예술 작품들의 방식을 통해 식별이 가능한 객체 또는 작품이라고 보는 가정이 있다. 이러한 인식틀에서 (게임의 미적) 가치는, 게임플레이의 경험을 최대한 활성화하기 위해 플레이어가 게임플레이에 들여오는 과정보다는, 개발자의 예술적 통찰이 담긴 표현에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다크 소울(Dark Souls, 2011, From Software)〉 같은 게임이 우울증에 대해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는데, 그와 같은 플레이어의 경험적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긴 과정 동안 형성된 플레이어와 게임 간의 연결 속에서 플레이어가 가지게 된 심리적 상태(와 게임플레이에 대한 전념)였다. 비평가의 미학적 기준 지난 2005년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는 저자의 통제를 필요로 하는 문학이나 영화 등의 진지한 예술과는 달리, 본래적 속성상 플레이어의 선택을 요하는 게임은 예술의 위상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후에 이와 같은 발언이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에버트의 주장은 게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 - 게임은 유치하고, 세련되지 못하며, 즉각적인 만족을 충족시킬 뿐이며, 화려한 시각효과만 가득하고, 모호성을 배제하기 위해 정량화되고, 저속한 감정에 영합하는 것이라는 - 에 부합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행했던) 로저 에버트의 주장에 대한 해체나 반박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주장의 본질을 강조하려 한다. 그 주장이란 예술의 지위를 진지하게 다투려면 게임이 다른 예술 형식들과 같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이와 같은 주장은 논쟁의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며, 심지어 일부 게임 철학연구자들조차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예술 철학자인 그랜트 태비노어(Grant Tabinor)는 주로 게임을 예술로 간주할 수 있을지와 같은 존재론적 문제를 연구해왔다.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음에도, 그는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일부 비디오게임만이 예술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접근 방식은 예술에 대한 기존의 정의에 기반하여, 게임이 해당 조건을 충족시키는지 여부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어떤 단일한 이론에만 의존하는 접근은 피하는 대신, 미적인 속성이 목록화된 ‘클러스터 이론(cluster theory)’의 방식을 취했다. 즉 목록의 미적인 속성 중 충분한 수를 충족시킨 게임은 예술작품이라 간주되는 것이다. 2009년의 저작 〈The Art of Videogames〉의 177페이지에서 태비노어는 미학자 베리스 거트(Berys Gaut)가 제시했던 클러스터의 정의를 언급하는데, 이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속성들에 부합하는 것을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것들은 예술 작품이 아니다: (1) 아름다움이나 우아함 등(감각적인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속성)과 같은 긍정적인 미적 속성을 지닐 것, (2) 감정을 표현할 것, (3) 지적으로 도전적인 것(예를 들어 기존의 견해나 사고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 (4) 형식적으로 복합적이되 일관될 것, (5) 복잡다단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 (6) 개별적인 관점을 보여줄 것, (7) 창의적인 상상력을 수행할 것(독창적일 것), (8) 숙련된 고도의 기술로 생산된 인공물 또는 퍼포먼스일 것, (9) 기존 예술 형식(음악, 회화, 영화 등)에 속할 것, (10) 예술작품을 만들겠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산물일 것 태비노어는 베리스 거트가 예술 작품이라면 이와 같은 10개의 조건을 전부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군집적인 정의를 구성하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태비노어가 기존의 클러스터 이론이 제시한 이와 같은 조건들이 광범위하게 옳다는데 동의하는 것 - 그러한 이론이 세부 사항에 대한 수정 권한을 보유하고 있을지라도 - 은 명백해 보인다. 이러한 접근 방식에 따라 그는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 1978, Taito)〉나 〈레드 데드 리뎀션(Red Dead Redemption, 2010, Rockstar San Diego)〉 등 게임계에서 클래식으로 인정받은 게임들을 예술적 지위에서 배제했는데, 왜냐하면 이 게임들은 클러스터 이론과 매우 부분적으로만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Routledge Companion to Game Studies(p. 60)〉의 한 챕터에서 태비노어는 〈레드 데드 리뎀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레드 데드 리뎀션〉은 최신 게임 예술의 정점으로서 자주 거론되지만, 게임의 드라마나 내러티브는 섣부르게 흉내낸 파생적인 서부극에 가깝다. 영화로 치면 단호하게 B급이다. 많은 경우 게임의 서사나 캐릭터, 연기, 각본 등에서 낮은 수준이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승인된 예술에서 나타나는 세련됨의 정도에 도달하는 경우를 게임 중에서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상기의 글은 결국 〈레드 데드 리뎀션〉에 대해 ‘내러티브, 캐릭터, 연기, 각본’에 따라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그와 같은 요소들은, ‘상호작용(또는 그 고유한 속성을 지칭하는 다른 프레임)’에 의해 생성되는 게임플레이 경험의 리듬이나 느낌보다는, 클러스터 이론에 더 부합하는 것들이다. 결국 태비노어는 게임이 단순히 기존 예술형식의 파생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하나의 예술 형식이라고 보는 입장임에도, 클러스터 이론을 적용한 그의 주장은 기존의 예술 이론에서 나온 (미적) 속성의 목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속성들은 게임이 예술로서의 자격 - 심지어는 게임이 미학적으로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 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은 문화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수립된 것들이다. 결국 태비노어의 철학적 방법론은 이와 같은 결과로 이어져 버렸다. 게임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은 게임플레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기존의 철학 분야만 게임플레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계는 중립적인 역사적 맥락 내에서 게임을 소개함으로써 게임플레이의 속성에 관한 문제를 우회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에서 최초로 열렸던 게임 전시는 2002년 바비칸 아트 갤러리(the Barbican Art Gallery)에서 열렸던 〈Game on: the History and Culture of Video Games〉였다. 미국의 스미소니언 미술관(The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또한 2012년 The Art of Video Games 전시를 통해 〈컴뱃(Combat, 1977)〉에서부터 〈리틀 빅 플래닛(Little Big Planet, 2011)〉까지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접근했다. 또 다른 (우회) 전략으로는 게임의 아바타나 가상세계 거주의 개념, 게임의 표상적 측면 등 게임에 대한 이해에 있어 보편적인 측면들을 앞세우는 것이 있다. 미국의 아티스트 코리 아켄젤(Cory Arcangel)은 게임의 시각적 측면에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게임-관련 예술(game-related art)’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현대미술 박물관, 휘트니 박물관, 시카고 현대 미술 박물관 등지에서 전시되었다.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1983년의 게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모딩하여 푸른 하늘과 8비트의 하얀 구름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없앤 비디오 설치 작품 〈슈퍼마리오 클라우드(Super Mario Clouds)〉가 있다. 여기에는 마리오도, 쿠파도, 굼바도 없다. 이 작품에서 게임플레이는 시각적 명상(visual contemplation)을 위해 퇴치되었다. 아켄젤은 또한 2011년 바비칸에서 〈Beat the Champ〉라는 전시를 선보였는데,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간 순서대로 14개의 볼링 게임을 정렬한 이 설치 작품에서도 게임플레이는 배제되었다 . 전시 공간을 걸어가면서 관객은 볼링공이 핀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거터볼(gutter ball)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는 점수를 낼 수 없도록 아켄젤이 볼링 게임들을 프로그래밍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갤러리의 관객들은 로저 에버트가 찬양했던 작가적 통제(authorial control)와 조우하게 된다.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실패)에 대한 사유를 유도하기 위해 디자인된 실패한 볼링 게임의 상황을 관객들이 오디오-비주얼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플레이의 경험적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실패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회적 및 게임의 맥락이 거세된 (미리) 결정된 실패다. 전시회장에 전시된 콘솔의 존재는 - 해당 전시에서 게임 플레이는 단순한 녹화본이 아니었다 - 관객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할 수 없다는 불능성(inability)을 강조한다. 이 불능성은 게임플레이와 연계되어 발생하는 긴장과 불안, 춤을 추듯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의 움직임, 게임 리듬에 적응해가는 과정, 피할 수 없는 좌절, 그리고 어떤 게임이 가장 매력적인 게임플레이를 제공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판단을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아켄젤은 게임을 가지고 이 작품을 만들었으며, 이는 또한 그가 게임을 전시한 방식이기도 하다. 〈수퍼마리오 클라우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예술성은 전시의 개념적이고 시각적인 측면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예술 세계에서 익숙한 언어다. 하지만 이는 분명 게임이 아니다. 하나의 경험으로서 게임플레이의 신체적 도전 또한 다뤄지지 않았다. * Image from: https://coryarcangel.com/shows/beat-the-champ 한편, 로비 쿠퍼(Robbie Cooper)의 설치작품 〈Immersion(2008)〉은 게임플레이를 핵심적인 관심사로 둔다. 이 작품은 전세계 디지털 미디어 이용자들의 신체적인 반응을 기록한 것 인데, 아이들의 게임 플레이로 구성된 부분이 눈에 띈다. 플레이어 얼굴의 고화질 캡쳐는 플레이어들의 순간적인 마음 상태를 우리가 엿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이 작품에서 카메라는 마치 플레이어들이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는 듯한 위치에 놓여있다). 비록 바뀌는 게임 화면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대신 게임에서 들려오는 사운드와 플레이어의 얼굴 표정 및 신체 자세 간의 대응을 볼 수 있다. 한 소녀가 격투 게임인 〈철권5: 다크 레저렉션(Tekken 5: Dark Resurrection)〉을 플레이하고 있다. 타격이 이어지면서 캐릭터들의 신음소리나 고함소리 등과 함께 특수 효과가 곁들어 진 사운드가 들린다. 우리는 게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맞출 수 있는데, 왜냐하면 〈철권〉을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움직임이 어떤 사운드를 내는지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쿠퍼의 주체들이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인지적으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으며, 또한 플레이어에 의해 어떤 행동이 수행되었으며 이후 그러한 행위가 플레이어-게임 간의 장치적 루프(machinic loop) - 즉 게임플레이 - 내에서 플레이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겪는 경험의 복잡성 및 그러한 경험이 플레이어의 신체적 존재감과 어떤 식으로 엮여들어가는지에 대해 우리가 주의를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 쿠퍼지만, 그 너머를 밝히는 것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거울을 들어 보여주기는 했지만 관련해서 주석은 달지 못한 셈이다. * Image from: https://robbiecooper.com/project/immersion 게임 경험을 발전시키기 위해 기존의 게임플레이 규범에 도전하는 인디 게임개발자들은 플레이어와 개발자들이 ‘좋은 게임플레이’ 모델로서 수용하여 일반화된 장르 경험을 인식시킴으로써 우리의 게임 경험을 발전시켜왔다. 그에 따라 그들은 현재의 게임 디자인에 있어서 진부해진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대안적인 경험은 무엇일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해왔다. 물론 보다 규모가 큰 개발사들도 이러한 시도를 해왔다. 나는 여기서 그와 같은 혁신의 역사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와 연관된 인디 게임의 사례들은 수없이 많고, 이에 대해서 다른 곳에서도 많이 논의가 되어왔으므로, 여기서는 간결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려 한다. 우선 〈언더테일(Under Tale, 2015, Toby Fox)〉은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유일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그리고 그것이 게임플레이가 생성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플레이어로 하여금 RPG라는 장르가 지녀온 가정을 대면하도록 만들었다. 〈브레이드(Braid, 2008, Number None)〉는 시간-기반 메카닉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면서 많은 게임들에 영향을 미쳐왔던 인과성에 대한 생각을 재고토록 했다. 〈스탠리 패러블(Stanley Parable, 2013, Galactic Cafe)〉는 게임 내 반복성의 한계를 통해 선택과 자유의 문제를 다루면서 게임 속 자유가 궁극적으로 제한적이라는 문제를 다뤘다. 〈항아리 게임(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 2017, Bennett Foddy)〉는 플레이어가 ‘(스스로를) 이겨내는 것’이 가능한지, 아니면 그 자신의 자아 또는 ‘하드코어 게이머’로서의 정체성을 위해 자신에 대한 가혹한 기대 속에 갇히게 되는지를 통해 플레이어와 그 자신 간의 관계를 시험하게 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게임들이 게임플레이 경험에 대한 성찰을 유발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신중한 제안들을 기다려야 한다거나 게임의 예술로서의 지위나 미학적 경험을 그러한 게임들에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깊이 있는 게임플레이 경험을 위해 일상의 삶과 예술을 통합하자는 존 듀이적 프로젝트는 우리가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루어 예술적인 관심을 일상으로 가져올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다. 이번 글에서 나는 게임플레이 ‘경험’ 및 그 경험을 깊이 있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각 개인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게임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규범에 맞춰 자신들의 능력을 구획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듀이적 이념과 부합한다. 다양한 범주의 게임들이 공유하는 게임플레이 경험이 지니는 보편적인 측면들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와 같은 기술적인 일반화(descriptive generalization)는 개인들이 특정 상황에서 겪게 되는 특정한 경험들에 대한 희미한 그림자일 뿐임을 인정해야 한다. (게임 플레이 경험에는) 게임의 메카닉을 내재화하고, (게임에) 적응해가면서 추론해낸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대응하면서 점진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술이 발전하는 것에는 기쁨이 존재한다. 또한 다양한 선택에 대한 전략적 평가와 그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한 추측이 존재한다. 관련성 여부에 따라 정보의 조각들이 선택적으로 기억되거나 잊혀지는 긴장이 존재한다. 또한 (게임플레이 경험에는) 움직이는 특정 자극에 대해서 지적이지만 무의식적인 주의 집중 - 다른 것에는 향하지 않는 - 이 존재하는데, 이는 복잡다단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회와 위협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휴식과 패배 또는 승리가 걸린 순간들이 흘러들어왔다가 나가는 흐름에 대한 감상도 존재한다. 일부 레벨 같은 특정 맥락에서는 찰나의 행동이 일부 가능성을 응축시키고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으로, 콘트롤이 포기되면서도 행사되는 고요한 순간에 자동적이고, 직관적으로, 그리고 원숙하게(능수능란하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존재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게임플레이 경험과 관련해서 기억상실을 겪곤 한다. 게임을 플레이한 경험을 우리 자신의 머리 속에서 단순한 '재미'의 경험으로 치부하고는 나중에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예술’이라 여기지 않는 것에 대해 미학적 관점을 적용하지 않는 탓이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을 보다 나아지거나 도전을 이기는 유형의 훈련으로 여겨, 그 진척의 정도에 따라 가치를 측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 대신, 게임플레이의 윤곽과 질감에 대해 곰곰히 곱씹어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게임플레이가 어떤 식으로 펼쳐졌고, 어떻게 발전해갔으며, 어떤 부분이 다를 수 있었을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 우리를 매료시켰던 점 또는 그렇지 못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물론 게임플레이 중에는 수행해야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플레이하는 그 순간에 그와 같은 성찰을 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게임에 능숙해질수록 그와 같은 성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월해질 것이다. 그와 같은 성취(게임 내에서의 성취와 게임플레이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대한 성취 모두)를 이루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습관의 철학자인 클레어 칼라일(Clare Carlisle)은 생각, 신체적 감각 및 감정적 반응에 대한 우리의 주의력이 행동을 통해 습관화할 수 있으며 감정적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복잡다단한 게임플레이 경험 속에서 우리는 그 경험의 미학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우리의 경험에 깊이를 더함으로써 게임이 잠재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포용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Tags: 예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펑 주 펑 주 박사(Dr. Feng Zhu)는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디지털 인문학부에서 게임과 가상환경(Games and Virtual Environment)을 가르치고 있으며, 권력, 주체성, 놀이의 교차점으로서 게임플레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로 우리가 게임플레이를 통해 어떤 식으로 습관화되는지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수행하며, 특히 반영성과 주의력의 양가적 형태를 심어줄 수 있는 종단적 자아 형성으로서 게임플레이 형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 가운데서 일부는 존재의 미학적인 측면에서 해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관을 가진 신의 손』,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감추는 기억
『프린세스 메이커』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경험이 있다. 시간을 들여서 정성껏 딸을 키웠는데, 마지막에 도착한 엔딩이 기대와 전혀 다른 것이었던 경험이다. 게임자체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수치가 모자랐는지, 어느 계절의 일정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무심코 고른 선택지 하나가 모든 것을 갈랐는지에 대해 게임은 침묵한다. < Back 『관을 가진 신의 손』,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감추는 기억 31 GG Vol. 26. 8. 10. 들어가며: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의 기억 『프린세스 메이커』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경험이 있다. 시간을 들여서 정성껏 딸을 키웠는데, 마지막에 도착한 엔딩이 기대와 전혀 다른 것이었던 경험이다. 게임자체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수치가 모자랐는지, 어느 계절의 일정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무심코 고른 선택지 하나가 모든 것을 갈랐는지에 대해 게임은 침묵한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의 몇 년, 현실의 몇 시간이었던 자신의 플레이를 스스로 되짚어야 하고, 혼자서 얻지 못한 답은 공략 게시판과 친구의 플레이 경험담 같은 것으로 채워진다. 육성 시뮬레이션은 처음부터 그런 장르였던 셈이다. 게임이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기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플레이어의 기억이, 나아가 플레이어들의 기억이 메워온 장르 말이다. 그런데 이 익숙한 감각을 유독 극단까지, 그리고 유독 정교하게 밀어붙인 게임이 있다. 『관을 가진 신의 손(冠を持つ神の手)』, 통칭 ‘카모카테’라고 불리는 이 게임은 2009년 일본의 동인 서클 ‘코무기바타케(小麦畑)’가 발표한 육성 시뮬레이션 무료 동인 게임다. 시골에서 자라 어머니를 여읜 주인공은 어느 날 이마에 새겨져 있던 인장, ‘선정인’으로 인해 신의 선택을 받은 차기 왕 후보임이 드러나고, 왕성으로 강제로 옮겨진다. 제목의 '관(冠)'은 바로 이 왕관을 가리킨다. 프린세스 메이커의 플레이어가 아버지가 되어 딸을 키웠다면, 카모카테의 플레이어는 1년이라는 기한 안에 왕 후보가 되어 성장하고 왕성 안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나가야 한다. 오랫동안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으로 남아 있던 이 작품은 2026년 6월 스팀을 통해 리메이크판이 정식 발매되면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 이 게임을 이번 호의 주제인 ‘기억’ 앞에 세운 이유는,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플레이어의 기억에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대리 기억해왔는지를 이 게임만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는 호감도 게이지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호감도는 존재하지만, 게임은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공략 캐릭터가 주인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게임 시스템 내부 어딘가에 숫자로 정확히 기록되어 있으나 플레이어는 그 숫자에 접근할 수 없고, 대신 캐릭터에 대한 '인상'을 스스로 판단하여 입력하고 저장과 불러오기를 반복해야 한다. 게임이 기억하는 것과 플레이어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이토록 선명하게 갈라지는 게임은 흔치 않다. 그렇다면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은 플레이어의 기억 중 무엇을 대신 기억해주고, 무엇을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두는가. 이 글은 ‘카모카테’ 라는 하나의 사례를 통해 따라가보고자 한다. 인상 시스템, 공략 캐릭터는 어떤 인상으로 남았는가? 이 게임을 처음 플레이했을 때, 호감도가 어디쯤 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캐릭터에게 말을 걸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벤트를 겪어도 그 결과로 상대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감으로 이벤트의 선택지를 누르고, 감으로 인상도를 입력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각 캐릭터와의 만남과 이벤트를 겪은 뒤, 그 캐릭터에 대한 '인상(印象)'을 직접 입력한다. 『도키메키 메모리얼』처럼 호감도 확인이 시스템의 일부로 설계된 일반적인 연애/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면 시스템이 알아서 호감도 수치를 올리거나 내리고 그 결과를 게이지로 보여주었을 자리에서, 이 게임은 반대로 플레이어에게 묻는 것이다. 방금의 만남은 어떤 인상으로 남았는가. 조금 전 캐릭터와의 대화는 주인공 캐릭터에게 어떤 감정을 남겼는가. 그리고 이렇게 입력되어 누적된 인상도는 이후 어떤 이벤트가 발생할지, 이야기가 어느 분기로 흘러갈지를 결정하는 실질적인 변수로 작동한다. 말하자면 이 게임에서 관계의 기록을 담당하는 것은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이다. 게임은 입력된 기록을 받아 계산할 뿐, 그 기록이 실제 관계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첫 플레이는 이벤트를 줄줄이 놓친 채, 그 누구와도 이렇다 할 결말을 맺지 못하고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게임 내에 각 공략 캐릭터 당 애정, 우정, 증오, 배반, 살해 5가지의 루트나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 동인판 시절의 인상도 입력창 그 대신 발견하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동안 올려온 인상도를 단 한 번에 정반대로 뒤집어버리는 버튼이다. 그 버튼을 누르면, 캐릭터가 공략 캐릭터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 애정에서 증오로, 증오에서 애정으로 돌변한다. 이 ‘반전’ 시스템은 한 회차에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기능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인상을 정반대로 뒤집는다. 호의로 쌓아온 관계를 순식간에 적의로, 적의로 쌓아온 관계를 순식간에 호의로 바꾸어 놓는 이 장치는 그 자체로 극적인 장치이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버튼을 사용하는 플레이어의 상황, 이유다. 호감도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신중하게, 또는 감각에 따라, 그게 아니라면 그냥 누르는 것이다. 뒤집힌 결과가 어디에 도달할지는 결과를 보지 않고선 알 수 없다. 게임은 끝내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캐릭터와 무엇을 쌓아왔는지를 스스로 얼마나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가에 따라, 이 시스템은 정교한 한 수가 되기도 하고 무모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 '반전' 시스템 게임 시스템으로서의 대리 기억 그렇다면 게임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는 플레이어에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사실은 게임 내부에는 정확한 숫자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호감도는 플레이어가 화면에서 확인할 수 없을 뿐, 게임 엔진 안에서는 캐릭터마다 하나의 변수로 계산되고 저장된다. 플레이어가 감으로 입력한 인상도와, 게임이 실제로 들고 있는 호감도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각자의 숫자를 유지하는 셈이다. 플레이어의 기억이 흐릿하고 주관적인 인상으로 남는 동안, 게임의 기억은 숫자 하나까지 정확하다. 세이브 파일이 보존하는 것도 이와 같은 층위에 있다. 육성 파라미터, 캐릭터별 호감도와인상도, 이후 분기의 조건, 도달 가능한 엔딩의 판정 조건 등, 이 모든 것은 저장되며, 그 기억은 게임의 몫이 된다. 다시 게임을 켜면 이 값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무엇을 몇 번 선택했는지, 어떤 이벤트를 몇 주차에 봤는지는 플레이어가 잊어도 게임은 잊지 않는다. 다만 게임이 기억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다. 어떤 선택을 거쳐 지금의 상태에 도달했는지, 그 선택의 과정 자체는 저장되지 않는다. 세이브 파일에는 인상도 몇이라는 최종값만 남을 뿐, 플레이어가 어떤 대화와 어떤 장면에서 느낀 점을 통해 이 값을 만들었는지는 기록되지 않는다.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의 기억은 과정을 소거한 결과값의 기억이다. 물론, 숫자만이 이 게임이 기억하는 전부는 아니다. 카모카테는 공략 캐릭터마다 고유한 테마곡을 두고, 해당 캐릭터의 이벤트가 시작되면 그 곡을 재생한다. 몇 마디만 들어도 곧 누구의 이야기가 시작될지 알 수 있게 하는 장치다. 이 설계는 유료 음원을 쓸 수 없었던 동인판 시절부터 자체 음원을 갖춘 스팀판에 이르기까지 형태를 바꾸지 않고 이어져왔다. 숫자가 아닌 소리로 이루어진 이 기억은, 인상도만큼 정밀하지는 않아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기억을 정확히 짚어낸다.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진 기억 게임이 기억하는 것은 결과값이라고 앞서 말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값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어떤 대사와 어떤 나레이션과 어떤 표정이 플레이어의 인상도를 움직였는가는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주인공이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감각, 관계가 지금 얼마나 따뜻한지 혹은 얼마나 서늘한지에 대한 체감은 세이브 파일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이것은 저장되지 않기에, 전적으로 플레이어 자신의 기억에 맡겨진다. 게임을 다시 켜면 스탯과 인상도는 그대로 이어지지만, 그 관계가 어떤 감정의 궤적을 그리며 여기까지 왔는지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복기해야만 이어진다. 그것은 공략 캐릭터가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갖는 호감도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게임이 호감도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감춘다기보다는, 근사치로만 짐작하게 하는 쪽에 가깝다. 게임 안에는 두 가지 방법이 마련되어 있다. 하나는 시장에 방문해 '점을 보는' 것이다. 점술사는 공략 대상 캐릭터들 중 주인공에게 느끼는 호애도와 호우도가 가장 높은 인물과 가장 낮은 인물을 알려준다. 정확한 수치도, 중간에 위치한 캐릭터들의 순위도 아니다. 오직 양 극단만이 게임 세계 안의 언어로 플레이어에게 전달된다. 다른 하나는 인상도를 입력하는 화면 자체에 있다. 인상도를 입력할 때마다 화면의 배경색이 노란색, 초록색, 보라색으로 바뀌는데, 이 색은 플레이어가 방금 입력한 인상과 실제 호감도 사이의 간격을 나타낸다. 노란색이면 그 간격이 거의 없다는 뜻이고, 보라색이면 그 간격이 크다는 뜻이다. 정확한 수치는 여전히 주어지지 않지만, 플레이어는 이 색을 단서 삼아 자신의 인상도가 공략 캐릭터의 호감도와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를 가늠하며 다음 선택을 이어가게 된다. * 인상도와 호감도 격차에 따른 배경색 변화 점보기가 게임 세계 안에 놓인 장치라면, 배경색은 화면이라는 인터페이스 층위에 놓인 장치다. 두 장치는 형식은 다르지만 하는 일은 같다. 정확한 답을 주는 대신, 플레이어의 기억이 놓인 위치를 어림잡게 해주는 것이다. 완전히 보여주지도, 완전히 감추지도 않는 그 중간의 자리에서 플레이어는 계속 짐작하고 기억하며 플레이를 이어가야 한다. 저장되는 기억과 해금되는 기억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은 분명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 게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상도와 호감도라는 숫자는 게임 내부 어딘가에 정확히 존재하며, 세이브 파일은 그 숫자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보존한다. 그런데도 카모카테는 그 기억을 플레이어에게 온전히 넘겨주지 않는다. 저장되지 않아서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저장되어 있음에도 접근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은폐의 문제라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육성 시뮬레이션은 처음부터 정보를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를 설계의 중요한 축으로 삼아온 장르였다. 수치를 전부 공개하고 그 위에서 최적의 육성을 계산하게 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일부만 보여주거나 특정 조건에서만 확인하게 하는 게임도 있다. 카모카테는 이 스펙트럼에서 은폐 쪽으로 가장 기울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은폐는 플레이의 감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관계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에, 플레이어는 매 순간 가늠하고, 불안해하고, 스스로의 기억을 의심하며 다음 선택을 고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이 불확실성이 공략 캐릭터와의 관계를 더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수치로 확인되지 않는 마음은,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실제 사람의 마음처럼 종잡을 수 없는 채로 남는다. 이 역설을 게임 디자인의 언어로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스팀판의 도전과제 체계다. 제작자는 스팀 리메이크의 초회 플레이를 원래보다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하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호감도는 보이지 않고, 육성에 대한 보정도 없으며, 주인공의 능력치를 올리는 것부터 쉽지 않은 상태에서 플레이가 시작된다. 그런데 엔딩을 하나씩 보고 도전과제를 하나씩 달성할 때마다, 그동안 잠겨 있던 기능이 하나씩 열린다. 이벤트명 표시, 이벤트 회상, 능력치 지원, 호감도 표시, 무효 선택지 표시, 그리고 반전을 주차당 한 번이 아니라 무제한으로 쓸 수 있게 해주는 기능까지. 이 기능들은 원래 동인판 시절 유료 공략지원판에서 제공되던 것들이었으나, 스팀판에서는 플레이 자체를 통해 도달해야 하는 보상으로 재배치되었다. * 업적 달성으로 해금되는 공략지원기능 이 설계가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이 글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게임 시스템의 형태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되 접근이 제한된 기억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잠겨 있다가 플레이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열리는 기능으로 이 게임 안에 구체화되어 있다. 플레이어가 쌓아가는 것은 인상도만이 아니다. 그 인상도에 접근할 권한 자체도, 플레이를 통해 함께 쌓여간다. 나오며 결국 이 게임의 인상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관계란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모른 채로 계속 마주하는 것인가. 대부분의 게임은 전자를 택한다. 호감도는 게이지로 표시되고, 플레이어는 그 게이지를 보며 다음 선택을 계산한다. 카모카테는 후자를 택했다. 숫자는 존재하지만 감춰져 있고, 플레이어는 확신 없이 다음 대화를 건네야 한다.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이것은 프린세스 메이커가 이미 던져두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엔딩에 도달할 때까지 자신이 무엇을 쌓아왔는지 알 수 없었던 그 경험은,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처음부터 플레이어의 기억에 무언가를 떠넘겨온 역사와 맞닿아 있다. 카모카테는 그 역사를 계승하되, 감춰진 것과 드러난 것의 경계를 인상 시스템이라는 형태로 훨씬 더 정교하게 다듬은 사례다.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무엇을 대신 기억해주고 무엇을 끝내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두는가는, 결국 그 게임이 관계를 어떤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카모카테의 답은 인상 시스템의 구조 그 자체에 이미 들어 있다. 게임은 정답을 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채점표로 내밀지 않고, 플레이어가 스스로 적어낸 인상과 감춰진 숫자 사이의 어긋남을 안은 채 다음 플레이로 나아가게 한다. 반전 버튼 앞에서 망설이던 순간을 다시 떠올려보면, 그때 고려했던 것은 게임 내부의 숫자가 아니라 이벤트나 지금까지 골라온 선택지, 공략 캐릭터와의 관계에 대한 스스로의 기억이었다. 게임은 숫자를 기억하고, 플레이어는 시간과 관계를 기억한다. 다음 플레이를 시작할 때, 인상도와 호감도는 처음으로 돌아가지만 그 관계를 기억하는 플레이어의 감각은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Tags: 기억, 관을 가진 신의 손, 카모카테, 육성 시뮬레이션, 프린세스 메이커, 동인 게임, 호감도 시스템, Raising Simulation Games, Princess Maker, Doujin Games, Japanese Indie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콘텐츠연구자) 이미몽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닌텐도 게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스팀덱을 할부로 구매하여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선 문화매개를 전공했고, 현재는 일본의 리츠메이칸 대학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입니다. 게임과 웹툰 등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와 문화를 연구합니다.
- 미연시는 시뮬레이션의 꿈을 꾸는가
그리고, 1992년 <동급생>(同級生, elf, 1992)이 출시되었다. < Back 미연시는 시뮬레이션의 꿈을 꾸는가 27 GG Vol. 25. 12. 10.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이라는 단어의 조합 ‘미연시’라는 단어가 있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란 게임 장르를 지칭하는 단어로 이 장르는 코어한 팬층이 존재하며 지금도 계속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게임의 “장르”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 미연시 역시 엄밀하게 구분되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의 장르를 구체적으로 분류하려고 시도를 했으며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는데, 비슷한 상황으로 “미연시”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이 장르에 대해서 들었을 때 떠올리는 게임들이 각기 다를 가능성이 높다. 제작자가 “이것은 미연시입니다.” 라고 하면 미연시이고 아니다 라고 하면 미연시가 아니다 라는 무난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먼저 미연시 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통용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일본에선 이런 단어를 안쓰나요? 라는 의문점이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일본에서는 연애시뮬레이션(恋愛シミュレーションゲーム) 이란 단어를 먼저 사용하였었으며 우리가 흔히 미연시라고 통칭하는 장르의 게임의 역사가 깊은 만큼 다양한 게임이 나왔기 때문에 요즘은 연애시뮬레이션보다는 해당 장르에서 발전된 다른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그 단어 역시 어덜트 게임(アダルトゲーム), 에로 게임(エロゲ), 걸 게임(ギャルゲー), 미소녀 게임(美少女ゲーム), 비주얼 노벨(ビジュアルノベル), 노벨 게임(ノベルゲーム)등 해당 장르를 포함하거나 가리키는 단어들이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고 사용된다. 근래에 커지고 있는 영어권 시장에서는 Dating Sim 이란 장르가 우리가 부르는 미소녀 연애시뮬레이션에 가장 가까운 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한국에서 부르는 “미소녀”와는 거리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시 미연시라는 장르로 돌아와 국내에서는 이러한 연애 이야기를 다루는 게임들을 미연시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분류는 장르적 구분이 엄밀하지 않다. 시뮬레이션이란 이름으로 캐릭터의 전투와 육성 시스템을 넣었지만 그 수준이 장식인 정도의 게임도 있을 수 있고, 야한 장면이 존재하는 게임이지만 그냥 야겜이라고 부르기 민망해서 미연시라고 부르는 게임들도 존재한다. 아니면 그냥 야한 장면이 없는 연애를 다룬 게임을 미연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연시라고 부르는 게임에서 ‘미소녀’와 ‘연애’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은 미연시의 어떤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한 손쉬운 방식이라면 역시 그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미연시의 뿌리를 국내에서 찾아보자면 국산 PC 게임에서는 <캠퍼스러브스토리>(남일소프트, 1997), <부킹맨>(FEW, 1997), <스카드젬>(아트림미디어, 2001)등이 나올테고 온라인게임으로 넘어가면 NPC와 쌓아가는 시스템이나 호감도가 존재하는 현재의 캐릭터 뽑기 게임들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연애 대상으로서의 ‘미소녀’라는 단어를 제외한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가면 <구운몽-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네오앨리스, 2014)이나 <수상한 메신저>(체리츠, 2016)등을 언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래에는 한동안 기세가 죽었다고 여겨지던 비주얼노벨 장르의 게임들이 주문형 게임 플랫폼을 중심으로 외산과 국산을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출시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사실 국내에서 국산 게임으로 미연시의 계보를 그리기는 힘든 부분이 있다. 꾸준히 한 장르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가 드물고, 각각의 게임들이 국내의 다른 게임의 영향보다는 외산 게임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장르에 한해서라면 그 뿌리를 일본으로 찾아가는 것이 맞다. 연애시뮬레이션의 뿌리 뿐만 아니라 일본의 성인게임은 서브컬쳐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여러 가지 문화코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성인용 게임 안에 등장한 캐릭터의 원형이나 스토리텔링 방법론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거리가 많겠지만 지면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고, 필자 역시 성인용 게임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리는 다른 지면, 다른 분에게 맡기고자 한다. 우선은 연애시뮬레이션이 시뮬레이션을 다루는 형식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보자. 미연시라는 장르의 탄생 장르란 이름의 미연시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일반적으로는 해당 장르명을 전면에 내세운 대표 사례들인 <두근두근 메모리얼>(ときめきメモリアル, KONAMI, 1994) 이나 동시기에 나온 <안젤리크>(アンジェリーク, KOEI, 1994) 정도를 이야기하겠지만, 이 두 게임 역시 일반적인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인식되는 게임들의 역사의 흐름에서 앞부분이 아니라 중간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 보니 연애를 주요 소재로 삼는 게임을 찾아보려면 좀더 앞의 역사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보통 일본 게임사를 살피는 시도는 가정용 콘솔 게임을 중심에 두곤 하는데, 지금까지도 시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콘솔시장에 중심을 두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연애 게임의 계보를 살피려면 PC게임의 역사를 함께 확인해 봐야 한다. 8 0~90년대의 일본 개인용 컴퓨터 환경은 다른 나라의 개인용 컴퓨터 환경과는 크게 달랐다. 개인용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업무를 하기 위한 장비이고, 영어로는 일본어 업무를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로 개인용 컴퓨터 환경이 인해 일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규격으로 표준 언어 코드 체계가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독자적인 언어코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일본의 개인용 컴퓨터 환경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환경이 아니라 일본어 표시를 지원하는 독자규격 PC와 운영체제 소프트웨어가 갈라파고스처럼 독자적인 생태계를 형성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PC-88 / PC-98 이었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그랬듯이 개인용 컴퓨터로 업무만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개인용 컴퓨터로도 게임을 즐겼으며, 가정용 게임기처럼 개발킷이 따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 그 자체로도 소프트웨어 개발이 가능 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PC환경에서 만들어져 인기를 끈 게임들이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되곤 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게임을 만들어 출시 할 수 있었던 점이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플랫폼 홀더가 게임의 출시를 강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게임을 자유롭게 출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개인용 컴퓨터 시장은 게임의 출시에 허락이 필요하지 않았는데 (물론 이후 심의단체가 생겨나면서 지금 시점에서 보기에 무모할 정도의 소재를 다룬 게임들은 안 나오게 된다.) 이러한 특징은 가정용 게임기에서는 다루기 힘든 소재의 게임들이 PC 게임 시장에 출시될 수 있게 만들었다. 성인 게임 등장 성인용 게임은 간단한 규칙에 야한 그림만 붙이면 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 초기 게임 개발사들의 적잖은 시도들이 있었다. 그런 흐름 중에는 술자리에서 문란하게 노는 문화들을 컴퓨터 게임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에는 “야구권(野球拳)”이라는 놀이가 있는데, 단순한 가위바위보를 통해 진 사람이 걸치고 있는 옷을 하나씩 벗는 일종의 술자리 벌칙 게임이었다. 최초의 성인용 게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로 언급되는 것이 이 '야구권'을 컴퓨터용으로 옮긴 <허드슨의 야구권>(野球拳, HUDSON) , 1981(추정))이다. 허드슨은 2012년에 코나미에 인수되기 전까지도 유명한 게임 회사 중 하나였는데, <허드슨의 야구권>은 텍스트를 이용한 이른바 아스키 아트(ASCII Art)라고 부르는 트릭으로 여성을 화면에 그린 뒤,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이기면 텍스트로 만들어진 야한 그림을 볼 수 있는 게임이었다. 동 시기에 나온 코에이의 <나이트라이프>(ナイトライフ, KOEI, 1982)가 최초의 성인용 게임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나이트라이프>는 게임이라기보다는 성행위의 체위를 알려주는 일종의 교양 소프트웨어였기 때문에 게임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개발사 이름이 익숙하실 텐데 '그 코에이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삼국무쌍> 등으로 유명한'그' 코에이가 맞다. 초창기의 이러한 시도들 이후 PC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에는 성인용 소프트웨어가 무수히 쏟아졌다. 야한 장면을 모아놓은 사진집 소프트웨어나 간단한 퍼즐 게임을 풀면 야한 사진을 볼 수 있는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초기 게임들이 단순한 포르노에 가까운 사진집들이었다면, 이후에는 좀더 스토리텔링에 무게를 둔 성인용 어드벤처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일본의 어드벤처는 미국의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와는 다른 형태로 발전했는데, 미국 어드벤처 게임들이 포인트 앤 클릭, 텍스트 직접 입력 인터페이스 중심의 게임이었다면 일본의 어드벤처 게임들은 화면 안에 캐릭터가 나오고 선택지가 등장하는 형태로 발전한다. 성인용 게임을 분류하는 사람들이 일컫는 '코에이 성인용 게임 3부작'이 있는데, 앞서 언급한 <나이트라이프>와 함께 <단지처의 유혹>(団地妻の誘惑, KOEI, 1983), <네덜란드 아내는 전기 뱀장어의 꿈을 꾸는가>(オランダ妻は電気ウナギの夢を見るか?, KOEI, 1984)에 이르러서는 좀 더 게임스러워지고 설정도 복잡해 진다. <단지처의 유혹>은 주인공이 여성과 관계를 가지는 보상이 주어지는 형태이긴 했으나, 장면 자체는 자체 규제를 거쳐 직접적으로 행위가 묘사되지는 않았다. 게임 화면은 당시 유행하던 3D 던전 게임의 인터페이스에 기반했다. * <단지처의 유혹> 플레이 장면 1980년대의 성인용 게임은 야한 이미지를 보상의 개념으로 제공하는 게임들이 많았으며, 이야기가 중심이고 야한 이미지는 덤인 정도의 어드벤처 게임, 혹은 성인용 비디오를 컴퓨터로 옮긴 시도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어드벤처 게임들은 선택지를 통해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는 형식이었고, 이런 형태의 진행은 게임의 시나리오에 플레이어가 개입하여 결과가 바뀌긴 했지만 이러한 게임들을 시뮬레이션으로 인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성인용 게임 중에 본격적으로 시뮬레이션으로 인식하게 되는 게임들은 이후에 등장한다. 연애를 시뮬레이션하다 연애시뮬레이션의 초기 형태를 띤 게임으로 <도쿄 난파 스트리트>(TOKYOナンパストリート, ENIX, 1985) 가 주로 언급되는데 이 게임 제목에 등장하는 난파(ナンパ)라는 단어는 남성이 여성에게 교제 혹은 성행위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뜻하며 헌팅이라는 표현으로 번역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라 부가 설명을 덧붙이자면 일반적으로 호쾌한 혹은 불량스러운 남성을 지칭하는 일본의 표현인 경파(硬派 – 코우하로 발음)와 그 반대편에 있는 여성을 밝히는 남성을 지칭하는 연파(軟派 – 난파로 발음)라는 단어가 존재했는데 여기서 난파라는 단어가 여성을 꼬시는 행위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 요즘으로 치자면 “여미새”정도로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경파에 대한 용례는 가까운 예로 인기있는 고전게임 시리즈인 <열혈경파 쿠니오군> 시리즈를 떠올릴 수도 있다. 난파는 후술할 동급생의 실행 파일명이기도 하다.) '여성을 꼬셔서 에로틱한 상황을 연출해 야한 이미지를 본다' 라는 게임이 기존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일정 금액을 가지고 특정 장소로 이동하여 캐릭터를 만나 이야기 속에서 선택지를 골라 데이트 중 여성의 호감도를 얻고 야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에 이어 결혼까지 가는 흐름은 이후 나오는 연애시뮬레이션 게임 구조의 기초가 여기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의 개발사 에닉스 역시 일본 게임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친숙한 이름인데, 스퀘어를 합병하여 스퀘어 에닉스로 사명을 바꾼 그 에닉스이며, 개발협력에는 호리이 유지가 올라가 있기도 하다. * <도쿄 난파 스트리트> 플레이 장면 성인용 게임들은 이후에도 활발히 나왔는데, 그다지 의미 없는 선택지들과 수위 높은 야한 장면이 연출되는 단순한 어드벤처 게임부터 나름 미스테리처럼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야한 장면이 존재하는 이야기 중심의 어드벤처 게임들이 있었다. 이런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 외에도 퍼즐게임이나 테이블 게임에서 승리하면 상대방 여성이 옷을 벗는 연출로 야한 장면을 “보상”의 감각으로 제공하는 게임들이 꾸준히 나왔는데, 점차 RPG나 시뮬레이션 같이 굳이 야한 장면이 필요 없는 장르의 게임에서도 미소녀와 성인용 이미지를 추가한 다양한 장르의 성인용 게임들이 나오는 흐름을 맞는다. 성인용이 아니더라도 미소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도 나타났다. 인기있던 성인용 게임들이 이미지의 수위를 낮춰 가정용 게임으로 이식되는 경우들도 존재했다. 이 무렵의 게임 중 특히 주목할 부분은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들이다. 장르의 시발점이자 대표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1991년 작 <프린세스 메이커>(プリンセスメーカー, Gainax, 1991)는 어린 고아를 딸로 삼아 10년간 키우는 게임으로 어떻게 육성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파라미터가 변동하며 이를 통해 다양한 엔딩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인기를 끌었다. <프린세스 메이커>의 개발자인 아카이 타카미는 게임 개발 회고에서 자신은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 전투보다 부하 육성이 더 좋았었고 이것으로 게임을 만들고자 했는데, 사내에서 여성의 일생을 다루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딸을 키우는 게임을 만들게 되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프린세스 메이커>의 특징은 파라미터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되는 직업 엔딩과 별개로 게임의 진행과 능력치에 따라 바뀌는 결혼 엔딩이 따로 존재했다는 점이다. 연애에 대한 시뮬레이션이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플레이의 결과로 만들어진 수치에 따라 연애의 결과가 나온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 하다. 국내에도 소개되었던 뒤이어 나온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탄생>(誕生 〜Debut〜, Headroom/NEC Avenue, 1993) 이나 <졸업>(卒業, Headroom/Japan Home Video, 1992) 같은 게임들은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숫자가 늘었다. <프린세스메이커>와 <탄생>, <졸업> 모두 직접적인 성 묘사가 없었지만 플레이어와의 결혼과 같은 엔딩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성 캐릭터 - 플레이어 관계에 대한 묘사가 연애 혹은 유사 연애로 들어가고 있어 이후 미소녀 게임들에 영향을 준 바 있다. 그리고, 1992년 <동급생>(同級生, elf, 1992)이 출시되었다. * <동급생> 커버 이미지 연애 어드벤처로 분류되어 있는 게임이긴 하지만 연애시뮬레이션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 게임의 인기와 영향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졸업>과 <탄생>의 원화를 담당했던 타케이 마사키가 디자인한 캐릭터들은 지금까지의 게임과 달리 다양한 구도와 맥락의 이벤트 씬 을 추가해 캐릭터의 설득력을 늘려 나갔고, 게임의 시스템 역시 매우 높은 자유도를 갖도록 디자인되었다. 고정된 이벤트들이긴 하지만 플레이어는 2D로 이루어진 도시의 지도에서 자신의 시간과 자금을 관리하며 여성과 이벤트를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야한 이미지를 볼 수 있었으며, 반대로 매일 방에서 침대를 클릭하면서 잠만 자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게임의 엔딩을 보는 것도 가능할 정도로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었다. 이렇다 보니 한정된 시간과 자금으로 최대한 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는 파고드는 공략을 하는 이용자도 존재했다. * <두근두근 메모리얼> PC엔진 버전의 커버 초반에 이야기했듯이 1994년엔 본격적으로 연애시뮬레이션이란 장르를 표방한 <두근두근 메모리얼>이 등장했다. 성인용 게임이 아니라 전연령으로 발매되었으며 PC용이 아니라 가정용 게임기인 PC엔진용으로 출시되었다. <두근두근 메모리얼>은 이후 다른 게임기로 이식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게임의 장르명은 연애시뮬레이션이긴 했지만 개발자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여성과의 연애보다는 학창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에 가까웠다. 게임의 목표가 게임안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성중 한 명을 선택해 연애를 하는 것이었지만 그를 위해 본인의 파라미터를 성장시켜야 하는 육성시뮬레이션적인 요소가 강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 게임은 대 히트를 쳤고, 등장하는 히로인 캐릭터들 역시 크게 인기를 끌며 100만단위의 판매량을 달성했다. 이전의 미소녀를 대상으로 한 연애 게임들이 PC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되어 큰 히트작으로 알려지더라도 판매량이 10만단위였던것을 생각하면 이 수치는 굉장히 큰 수치였으며 100만단위의 판매량을 만들어낸 연애를 소재로 한 첫번째 게임이 되었다. 이후 연애를 그리지 않더라도 이러한 시뮬레이션 장르에 미소녀가 나오는 다양한 게임들이 가정용 게임기로 출시되는 계기가 되었다. *< 안젤리크> 패키지 아트 미소녀란 이름을 앞에 붙일 수는 없지만 1994년 코에이에서는 여성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한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이 나왔다. <안젤리크> 역시 스스로를 연애시뮬레이션으로 분류하였으며, <두근두근 메모리얼>과는 달리 <안젤리크>는 배경을 판타지로 옮기고 주인공 여성 캐릭터는 여왕후보로 다른 후보와 경쟁하며 수호성들의 도움을 받아 행성을 육성해서 여왕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 개발 상황에 관한 인터뷰를 들여다보면 시나리오만으로는 게임성이 충분하지 않아 여왕 후보 2명을 두어 경쟁시키고, 수호성과 협력하여 행성을 발전시킨다는 건설운영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추가해 완성된 형태가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안젤리크>가 가진 연애시뮬레이션으로서의 성격은 연애 자체를 시뮬레이션했다기 보다는 연애 요소를 가진 시뮬레이션 게임이란 의미에 가까웠을 수도 있겠다. 시뮬레이션에서 이야기로 <두근두근 메모리얼> 이후 다양한 육성 시뮬레이션이 미소녀를 다루며 많은 게임이 나왔지만 전반적으로는 성인용 게임보다는 미소녀를 다룬 다양한 게임이 더 주목받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Leaf”사의 게임들이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의 어드벤처 게임들이 캐릭터와 배경, 스탯이 보이는 3D 던전 게임 느낌의 게임화면을 바탕으로 작은 대사창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태였다면, Leaf의 <시즈쿠>(雫, Leaf, 1996), <키즈아토>(痕, Leaf, 1996)는 성인용 게임에서도 캐릭터와 스토리에 비중을 좀 더 주며 화면의 전체를 덮는 형태의 이야기를 전달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러한 미연시 장르의 게임이 본격적으로 읽는 게임으로 변화함을 보이는 상징적인 변화이기도 하다. * 좌 , 대사창 중심의 게임 진행과 우 의 화면을 덮는 게임 진행 한편 트루 엔딩이란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인데, 단순히 히로인을 선택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끝이 아닌, 개발자가 제시한 진정한 결말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후 스토리에 중심을 둬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Key사의 <카논>(Kanon, Key, 1999)이나 <클라나드>(CLANNAD, Key, 2004), 등이 등장하고 연애를 다루지는 않지만 <슈타인즈게이트>(STEINS;GATE, 5pb, 2009)에서는 트루엔딩에 도달하기 위한 반복 플레이를 루프라는 형태로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이처럼 미연시에서는 게임 속 여성 캐릭터와 자신과의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 아닌 게임 안에서 전체 캐릭터의 이야기를 모두 본 후 전체 이야기의 진정한 결말에 도달하는 형태의 어드벤처가 일반적인 형태가 되어갔다. <선택지의 선택사>에서 저자 시모쿠라 바이오는 로컬 플래그와 글로벌 플래그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선택지 기반 어드벤처 게임들은 선택지에 따라 플래그라 부르는 게임 시나리오의 조건 스위치를 켜고 끄는데, 로컬 플래그가 한 시나리오 안에서만 동작하고 그 밖에서는 동작하지 않는 플래그라면 글로벌 플래그는 게임 전체에서도 관리되는 조건을 가리킨다. 이를 통해 어드벤처 게임들은 트루 엔딩같은 개념이나 엔딩을 봐야 열리는 다른 시나리오를 다루는 플래그를 글로벌 플래그로 분리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플래그는 <당신과 그녀와 그녀의 사랑>(君と彼女と彼女の恋。, Nitroplus, 2013)이나 <두근두근 문예부>(Doki Doki Literature Club!, Team Salvato, 2017) 처럼 메타픽션을 연출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며, 미소녀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이 선택지를 통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작가가 제시하는 엔딩이 중심이 되고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형태로만 남게 되는 시스템을 만든다. 결국 미연시의 “시뮬레이션”부분은 각 게임들은 시뮬레이션이란 단어를 자의적으로 다뤄왔다고 밖에 할 수 없겠다. 그 시뮬레이션은 학창 시뮬레이션일 수도, 전략 시뮬레이션일수도, 육성 시뮬레이션의 그것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그 게임 안에 연애는 존재하였고, 이러한 연애요소들은 지금도 캐릭터 게임에서 유사한 시스템으로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에 대해 이렇게 접근해 볼 수도 있다. 미연시 시스템을 플레이어 캐릭터의 스탯 달성 여부로 연애 성공을 판단하는 방식과, 플레이어의 선택을 플래그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 중 스탯을 관리해서 연애를 달성하는 게임만이 엄밀하게 연애를 시뮬레이션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키메키 메모리얼>이 등장한 이후 30년동안 한국에서 게임 안의 캐릭터와의 연애를 그린 게임들을 미연시라고 불렀던 이유는 그것이 캐릭터의 수치를 성장시키는 것이든, 시나리오 라이터가 준비한 이벤트를 보며 선택을 하는 것이든 본인이 선택한 선택지를 통해 캐릭터와의 연애가 진행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으로 받아들였던 시기가 존재하였었던 것이 아닌가 라고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 연애시뮬레이션이란 장르는 플레이어가 캐릭터와 유사 연애를 즐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게 되었다. 현대의 미연시에서 플레이어들은 시나리오 라이터가 제시하는 트루 엔딩까지, 게임이 준비한 모든 이야기를 읽어 나간다. 그리고 게임이 끝난 뒤에는 게임 바깥에서 캐릭터를 소비한다. 결국 시뮬레이션이란 단어는 흔적기관으로만 남아 이 장르를 지키고 있는 것 아닐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게임에서 사랑이 재현되는 두 가지 형태 – 자기애와 애착
캐릭터에 대한 애착(attachment)은 단순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는 애착의 대상인 캐릭터가 절대 연애의 주체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플레이어를 만족시킬만한 일러스트와 계량화된 수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 Back 게임에서 사랑이 재현되는 두 가지 형태 – 자기애와 애착 16 GG Vol. 24. 2. 10. 들어가며 비디오 게임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별로 적합하지 않은 매체라는 견해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사랑을 테마로 하여 다른 예술 장르들은 작중 인물에 대한 감정 이입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진행하는 반면, 게임의 경우 이러한 스토리의 진행 과정을 세분한 뒤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형태로 만들어 플레이어가 직접 경험하게 만들어준다. 때문에 사랑을 테마로 하는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하나의 운명적 사랑을 결정적 플롯으로 풀어내기보다는 플레이어가 사랑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직접 탐구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90년대 이후 일본을 중심으로 제작된 수많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하 미연시)들은 이 때문에 고정된 스크립트가 아닌 수많은 분기를 가진 가능태로서의 스크립트인 스크립톤이 다수 뭉쳐있는 형태로 개발된다. 이러한 미연시들이 풀어내는 사랑은 각각의 에피소드로만 보면 전형적인 ‘낭만적 사랑’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낭만적 사랑이 한 명의 주인공으로부터 여러 이성을 대상으로 한 복수적인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90년대의 미연시들은 주인공의 바람둥이적인 기질을 성격적으로 반영하기보다는 차라리 기억상실을 시켜 매번의 사랑에 충실하도록 하는 다소 기형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이 이러한 형태의 기형성을 큰 거부감 없이 흡수하면서 게임을 즐겼다는 점이다. 게이머의 사랑에 대한 주체적 유연성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낭만적 사랑이란 테마가 더 이상 별로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극장가에서 정통 로맨스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퇴조한지 오래이며, 사랑이란 현실 속에서 찾아야 할 존재라기보다는 불가능한 대상을 희망하는 판타지의 영역에 머무는 것으로 변해왔다. 회귀, 빙의, 환생을 통해 어떻게든 불가능한 대상과의 합일을 합리화 시키는 웹소설들이 한 발 더 나아간 극단적 서사를 보여준다면, 게임은 서사의 극단성보다는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의 체험을 통해 실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플레이어에게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리얼리티나 현실성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것을 일단 플레이어가 체험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디오 게임에서 사랑의 재현은 플레이어의 체험을 절차적으로 재구성하는 형태로 개발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운명적이고 결정적인 플롯을 통한 감정 이입에는 다른 매체가 더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개발자들은 게임 내에서 사랑의 재현을 독특한 형태로 변주시켜왔다. 특히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투사할 대상을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 다시 말해 플레이어가 애착을 가질 대상을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다. 블루아카이브의 김용하 PD가 NDC에서 일찍이 “모에론”을 통해 설파한 바 있지만 1) , 여동생계/동년배계/누님계로 3분화한 여성 캐릭터들은 그 어떤 성애를 가진 플레이어가 들어오더라도 하나 정도는 얻어걸릴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게임 개발자들은 낭만적 사랑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최근 경향을 반영하여 자기애를 투영할 수 있는 중성적이면서 목소리 없는 캐릭터와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고안해 내었다. <페르소나> 시리즈나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주인공은 특별히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대사도 매우 절제되게 발화하는데, 이는 미리 설정된 캐릭터에서 빚어질 수 있는 감정 이입을 최소화하고, 캐릭터는 나 자신으로 간주하는 일종의 자기애가 투여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커스터마이징 시스템 역시 캐릭터의 외양을 플레이어가 스스로 꾸밀 수 있도록 하면서 자기애를 부추긴다. 물론 플레이어에 따라 본인 모습과 유사하게 꾸미는 경우도 있고, 이상형의 이성을 상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디자인하기도 하지만 이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움직이면서 그러한 다양한 외관을 향한 감정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향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자기애’와 ‘애착’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최근 게임들에 재현된 사랑의 주체화 과정을 간단히 분석해 보고자 한다. 2. 페르소나와 자기 치유의 메커니즘 - <페르소나> 시리즈 아틀러스 사의 <페르소나> 시리즈는 <여신전생> 시리즈의 스핀오프 형태로 1996년부터 출시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기 시리즈 게임이다. <여신전생> 시리즈가 염세적인 아포칼립스 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악마들과의 다툼을 다룬 판타지 게임이라면, <페르소나> 시리즈는 <여신전생> 시리즈로부터 많은 설정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악마와의 다툼을 캐릭터 내면의 문제로 치환시킨다. 또한 학원물 형태로 진행되면서 <여신전생> 시리즈에 비해 훨씬 더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게임에서 ‘페르소나’는 C.G.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임과 동시에 게임 속 캐릭터의 내면에 응축된 억압된 자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게임에서 페르소나는 캐릭터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을 실체화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 <페르소나 4>의 주인공 스케치 이 시리즈에서 주인공은 늘 구체적인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고(미디어 믹스 형태로 만들어진 애니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구체화되기는 한다), 다른 캐릭터들이 화려한 성우진의 목소리로 꾸며지는 반면 주인공의 목소리는 전면화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주인공 캐릭터를 중성화하고 목소리를 넣지 않는가에 대한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느 누가 플레이를 하더라도 주인공을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각 작품마다 줄거리는 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페르소나> 시리즈의 주인공은 스스로의 페르소나를 각성한 이후 주변 인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내면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예를 들어 <페르소나 4>에서 주인공은 아마기 유키코라는 같은 반 여학생의 페르소나와 마주치게 된다. 이나바 시의 고급 여관집 외동딸인 유키코는 여관의 차기 후계자로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으며, 학교에서도 정숙한 모범생으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성격이 굉장히 내성적이어서 같은 반 친구 치에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과 잘 대화를 하지 않는 소극적인 면모도 보인다. 유키코에게 여관을 물려받아야 하는 정해진 운명은 질곡과 억압으로 작용하여 그녀는 역헌팅을 하러 다니는 유키코 공주로 TV속에서 등장한다. <페르소나 4>에서 TV는 특정한 캐릭터의 본성이 드러나는 가상의 무대로 주인공이 TV 속으로 들어가 문제가 발생한 캐릭터의 본성이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 속에서 그와 다투게 된다. 유키코의 공주의 성에서 그녀의 본성을 해방시키면 그녀는 자신이 억눌러왔던 어두운 측면을 인정하고 페르소나를 각성시키게 된다. * <페르소나 4> 아마기 유키코의 캐릭터 일러스트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형태의 페르소나 각성 과정이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여러 번 반복된다는 점이다. 유키코보다 보다 명랑쾌활한 치에나 화려한 아이돌 활동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리세, 겉으로는 덩치가 크고 불량한 캐릭터이지만 동성애 기질이 있고 섬세한 측면이 있는 칸지, 하드보일드한 남자 탐정을 동경하는 나오코 등은 게임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타자이지만 실제로 그 중 하나 정도는 실제 플레이어의 삶과 유사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는 “나”의 면모들이기도 하다. 그들의 트라우마가 주인공을 통해 치유되는 과정을 극복해내고 친구들과 관계가 심화되면서 플레이어는 마치 자신의 트라우마가 조금씩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맛보게 된다. <페르소나> 시리즈를 둘러싼 이러한 자기 치유의 메커니즘은 비디오 게임의 매체적 특성과도 제법 잘 어울린다. 비단 <페르소나> 시리즈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다양한 인물군을 제시하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캐릭터와 연결되게끔 하는 방식은 상당히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과정은 겉으로는 플레이어의 이상형 찾기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과정 속에 상당한 자기 치유 과정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는 금세기를 전후하여 소설의 독자와 영화의 관객이 게임의 플레이어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타인과의 사랑을 갈망하기보다는 자기애를 더욱 내면화하는 과정 속에서 유저들의 주체성이 변화해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3. 계량화된 사랑과 수치화된 외모 – 수집형 게임의 메커닉 사실 <페르소나 시리즈>는 일반적인 게임에 비하면 상당히 고도화된 스토리텔링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일반적인 게임의 사랑 재현 양상이라고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특히 최근작 <페르소나 5>에서는 악인처럼 설정된 가면 속 주인공이 타락과 구원을 반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피카레스크 식 구성을 선보이기도 하는 등 스토리텔링 과정에 고심한 면모를 보여준다. 모든 게이머가 고급스런 스토리 전개 과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게임 개발자들은 스토리의 전개 과정을 간소화시키고 량화시킨다. * <우마무스메> 캐릭터의 일러스트와 능력치 개발자 입장에서는 고전적인 형태의 낭만적 사랑이 퇴조한 시기를 채운 자기애의 투사 과정을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다. 이미 자기애 세대의 플레이어들은 카드 한 장에 그려진 일러스트와 능력치만으로 캐릭터를 평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카드 뒷면에 구구절절 적힌 캐릭터의 전사(前史)는 읽지 않아도 무방한 거추장스러운 것이 된다. 본래 게임에 사용되는 카드는 다양한 배경과 상징을 내재화한 게임 내용물이지만, 그것이 도구적으로만 활용될 때 이는 수치화된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우마무스메>나 <포켓몬>으로 상징되는 수집형 게임의 메커닉에는 복잡한 스토리를 대체하는 일러스트와 캐릭터의 상성, 능력치, 기술 등의 수치적 특성만으로도 그 본질이 치환될 수 있다는 믿음이 내재되어 있다. 캐릭터에 대한 애착(attachment)은 단순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는 애착의 대상인 캐릭터가 절대 연애의 주체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플레이어를 만족시킬만한 일러스트와 계량화된 수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즉,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가지는 애착의 대상은 살아있는 주체적 인간보다는 캐릭터에 가까운 무언가로 정의되게 된다. 아즈마 히로키 식으로 말하자면 그 캐릭터의 외양은 특정한 형태의 모에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조합되며, 그 캐릭터의 능력치는 적절한 비즈니스 모델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로 희소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수집형 게임을 플레이 할 때 우리는 언제나 산뜻한 기분으로 카드들을 뽑고 포켓몬을 수집할 수 있게 된다. 말의 외양만 보고 모든 플레이어가 그 말에 애착을 가질 가능성은 줄어드니, 모에화된 여성 캐릭터를 달리게 하면서 손쉽게 애착을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플레이어는 매우 손쉽게 애착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은 매우 간편하며, 매우 감사하게도 명목상 무료이다. 그러나 그 애착 과정을 좀 더 극대화하기 위해 억만금을 투자하더라도 카드로부터 구체적인 사랑을 얻게 되지는 못할 뿐이다. 1) http://ndcreplay.nexon.com/NDC2014/sessions/NDC2014_0015.html#k%5B%5D=%EA%B9%80%EC%9A%A9%ED%95%98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용과 같이>, 관광게임 속의 정치적 맥락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도 용과 같이 시리즈의 주인공 처럼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휴가를 내서 관광지로 여행을 떠난 경우가 그렇다. 일상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여러 복잡한 난제를 머리 속에 넣고 있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도쿄 신주쿠, 오사카 도톤보리, 오키나와, 후쿠오카, 삿포로, 나고야, 요코하마 등의 거리를 거닐고 지역 음식 등 문화를 경험하면서 하루종일 즐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우리는 코로나19 시대에 일본 관광을 즐기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게 이 시리즈가 본질적으로 관광 게임인 이유이다. < Back <용과 같이>, 관광게임 속의 정치적 맥락들 01 GG Vol. 21. 6. 10. ‘용과 같이 ’ 시리즈는 전직 야쿠자가 등장하는 느와르물을 표방하고 있다 . 리메이크를 포함해 따지면 국내에 시리즈 전체의 내용이 한글화 돼 소개됐다고 볼 수 있는데 유독 6 편은 정식 발매가 이뤄지지 않았다 . 그러나 스팀을 통해 PC 판이 구매 가능해진 걸 계기로 유저 한글패치가 나와 한국인도 게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 ‘용과 같이 ’ 시리즈는 ‘ 느와르 ’ 다운 스토리를 선보여 왔다 . 폭력조직 내외의 항쟁과 정치적 음모가 교차하는 가운데 사건에 휘말린 등장인물들의 비극적 운명 , 그리고 그것에 맞서는 의지를 강조하는 패턴이다 . 그런데 이러한 스토리에도 불구 ‘ 용과 같이 ’ 는 본질적으로 ‘ 관광 게임 ’ 이라는 생각이다 . 코로나 19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바로 그 관광이다 . 어째서인가 ? 지금부터 따져보자 . 먼저 시사평론가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역대 시리즈가 선택한 주제가 일본의 현실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 가령 1, 2 편의 소재인 폭력 조직 간의 대립구도나 정치인의 돈세탁은 ‘ 클리셰 ’ 인데 , 3 편의 미군 기지 이전과 부지 개발 문제는 여기서 더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실제로 민주당 정권 당시의 중요한 정치적 논쟁거리였기 때문이다 . 민주당 정권은 2009 년 후텐마 기지 이전을 공약하고 집권했다 . 미군 기지 이전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다 . 애초에 ‘ 류큐왕국 ’ 으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다 일본 제국에 병합된 역사가 있는데다 , 2 차대전 당시 본토를 향해 진격해온 미군과 이를 막으려는 일본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여 민간인 학살 등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아픔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 게다가 전후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동아시아 전략의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계획이 개발의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중 삼중의 피해를 감수하는 처지가 된 상태였다 . 이 점에서 민주당의 공약은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 최소한 오키나와현 밖으로의 이전 ’ 을 거듭 거론했으나 문제는 미국의 입장이었다 . 미국은 이미 후텐마 기지 반환과 대체 시설의 오키나와 내 건립에 대한 협상을 이전 자민당 정권과 진행한 바 있기 때문이다 . 이런 상황에서 기지 이전을 주장하는 민주당 정권은 미국의 이익을 훼손할 우려가 있었다 . 이러한 상황이 미일관계의 근본적 불안으로 이어지자 하토야마 정권은 결국 2010 년 후텐마 기지의 현외 이전을 포기했고 지지율은 폭락했다 . 용과 같이 3 편이 출시된 2009 년 3 월은 민주당이 집권하기 5 개월 전이다 . 자민당 정권의 미국과의 합의가 2006 년에 1 차로 이뤄졌고 민주당은 야당 시절부터 이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는 점을 볼 때 관련한 논란이 제작에 반영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 작중에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가 건설자본과 정치권의 유착을 넘어 CIA 와 국제 무기 밀매 조직의 등장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앞서의 구도가 게임적으로 과장돼 표현된 결과일 것이다 . 용과 같이 6 편에도 정치적 맥락을 떠올릴 수 있는 소재가 등장하는데 초야마토급의 전함과 전비횡령 , 이를 근거로 한 정경유착의 묘사가 그것이다 . 일본 사회는 오랫동안 족의원 - 관료 - 자본의 삼각동맹에 의한 정경유착을 대표적인 정치적 문제로 다뤄왔다 . 일본의 정치개혁 논의는 정경유착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민당 내 파벌 구도를 깨는 것에 집중돼왔다고 볼 수 있다 . 이를 상징하는 인물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인데 그를 중심으로 한 금권정치의 실상을 1974 년 고발한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난 4 월 사망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지기도 했다 . 다치바나 다카시의 보도는 다나카 가쿠에이가 록히드 사건에 연루돼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계기가 됐는데 , 다나카 가쿠에이는 총리직에서 물러나 수사를 받게 된 이후에도 상당 기간 막후에서 돈과 인맥으로 일본 정치를 주물러 ‘ 어둠의 쇼군 ’ 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 용과 같이 6 편에 묘사된 흑막은 특정 인물을 그대로 모델로 옮겨 놓았다기 보다는 일본 정치의 이러한 현실이 오래 전 전쟁을 야기한 정치와 자본의 욕망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6 편의 메인 스토리 구도는 그 자체의 완결성과는 별개로 명확한 자기 주장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그런데 용과 같이 7 편의 경우는 일본 사회가 직면한 정치적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 가령 앞서의 정경유착 구도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그것과 맞서 싸울 ‘ 힘 ’ 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지도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쓰여왔다 . 선출되지 않은 ‘ 관료 ’ 와 그와 연합한 정치 파벌이 정경유착의 주범이라는 점에서 순수한 의미로의 ‘ 정치 ’ 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화되기도 했다 . 그러나 ‘ 대통령형 총리 ’ 로 불린 나카소네 야스히로 이후 총리 관저의 권한이 ‘ 개혁 ’ 이라는 명분 하에 지속적으로 확대돼 온 결과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신자유주의 전면 도입과 아베 신조의 유례없는 장기집권 및 극우화로 치달았다 . 용과 같이 7 편에 등장하는 도쿄도지사 역시 ‘ 선출된 권력 ’ 으로서 총리보다도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 그는 ‘3K 작전 ’ 등으로 조직폭력배와의 전쟁을 벌이며 급진화 된 지지층을 동원하는 방식 등으로 ‘ 개혁 ’ 을 내세우지만 그 실상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구태정치 그 자체이다 . 이는 최근까지 세계적 문제로 다뤄졌던 극우포퓰리즘을 떠올리게 하는데 , 이게 아마 제작진이 아베 신조 , 이시하라 신타로 , 하시모토 도루 등을 보는 시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 그런데 용과 같이 시리즈 스토리의 핵심은 주인공이 이러한 사회 문제가 야기하는 현실적 갈등으로부터 자신과 주변의 삶을 지키기 위해 도망치다 결국 맞서게 된다는 것이다 . 즉 , 정치사회적 문제는 이렇든 저렇든 주인공의 일상을 위협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 행복을 지키기 위해선 결국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이 점에서 ‘ 메인 스토리 ’ 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제작진은 유저에게 상당히 비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그런데 게임에서 유저가 실체 ‘ 체험 ’ 하는 것은 이러한 비장함과는 사뭇 다른 감각이다 .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 등장인물들의 인생이 걸린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도중 ‘ 서브 스토리 ’ 나 ‘ 미니게임 ’ 등의 삼천포로 빠지는 일은 비일비재이다 . 특히 이 요소들은 메인 스토리의 비장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상적 소재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다소의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 서브 스토리 ’ 와 ‘ 미니게임 ’ 이 오히려 ‘ 메인스토리 ’ 를 압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 즉 , 용과 같이 시리즈의 게임적 본질은 영화와 같은 메인스토리를 감상하면서 동시에 소소한 일상을 경험하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야 말로 우리 일상 그 자체이다 . 실제 삶에서 우리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뭔가 고민해야만 하는 순간을 만나게 돼있다 . 하지만 그러면서도 , 설혹 대통령이더라도 라면을 맛있게 끓이기 위해 물을 얼마나 넣을 것인지 , 면과 스프 중 무엇을 먼저 넣을 것인지 등의 사소한 일상적 고민을 외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 그런 점에서 ‘ 메인스토리 ’ 의 기준으로 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요소들을 가득 넣어 놓은 현실은 울티마 7 이후 ‘ 상호작용 ’ 의 구현 , 모로윈드식의 자기 서사 구성 등과는 별개의 , ’ 자유도 구현 ’ 의 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 그런데 용과 같이 시리즈를 통한 체험과 우리의 일상이 갖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 그것은 직업을 갖고 있는 현실의 우리는 ‘ 서브스토리 ’ 와 ‘ 미니게임 ’ 을 오직 여가시간에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 반면 용과 같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전직 야쿠자는 무직자이기에 반복되는 ‘ 루틴 ’ 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 앞서의 ‘ 자유도 ’ 는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구현이 불가능하다 .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도 용과 같이 시리즈의 주인공 처럼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 휴가를 내서 관광지로 여행을 떠난 경우가 그렇다 . 일상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여러 복잡한 난제를 머리 속에 넣고 있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도쿄 신주쿠 , 오사카 도톤보리 , 오키나와 , 후쿠오카 , 삿포로 , 나고야 , 요코하마 등의 거리를 거닐고 지역 음식 등 문화를 경험하면서 하루종일 즐길 수 있다 . 그런 점에서 , 용과 같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우리는 코로나 19 시대에 일본 관광을 즐기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 이게 이 시리즈가 본질적으로 관광 게임인 이유이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Editor's View] 시간 속의 게임, 게임 속의 시간
좋으나 싫으나 우리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존재들이 살아온 시간의 시간의 누적을 기록해 역사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 누적 속에서 놀이는 사실 오랫동안 잉여시간 취급을 받아온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 Back 21 GG Vol. 24.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Editor's View] 게임의 상품성,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디지털게임은 그 출발점부터 시장에서 상품으로 규정된다는 속성과 긴밀한 연계를 이루며 발전해 왔습니다. 제작부터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이 매체는 정말 많은 자원을 소모하며, 그 소모되는 자원은 시장의 기능에 의해 충당되기에 게임의 속성에는 지속적으로 상품으로서의 성격이 개입합니다.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2023 국정감사의 게임 이슈 톺아보기
지난 10월 한 달 동안 21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이 기간 동안 국정감사장에서 거론된 게임 관련 이슈를 톺아본다. 공교롭게도 딱 10개 이슈가 나왔는데, 9개는 주무 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다뤄졌으며 하나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뤄졌다. < Back 2023 국정감사의 게임 이슈 톺아보기 15 GG Vol. 23. 12. 10. 지난 10월 한 달 동안 21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이 기간 동안 국정감사장에서 거론된 게임 관련 이슈를 톺아본다. 공교롭게도 딱 10개 이슈가 나왔는데, 9개는 주무 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다뤄졌으며 하나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뤄졌다. 앞서서 요약하자면 크게 무게감 있는 이슈는 적었다. 아니, 이렇게 서술할 수 없다. 모든 이슈는 중요하다. 특히 게임계 노동 이슈가 그렇다. 펄어비스의 공용 PC - 유형: 노동. 위원: 정의당 류호정 초과근무를 방지하기 위한 PC 오프 제도라는 것을 많은 회사에서 활용한다. 주당 최대 노동시간인 52시간을 채우면 컴퓨터를 더 쓰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검은사막의 개발사 펄어비스 또한 이 제도를 채용하고 있고, 이런 노동 조건 개선의 많은 부분은 게임 노동자 출신인 류호정 의원이 2020년 펄어비스의 부당노동행위를 지적한 것에 힘입은 바가 있다. 반면 금년에 의원이 가져온 제보는 펄어비스에서 초과근무를 우회적으로 하기 위한 꼼수로 공용 PC를 쓴다는 내용이었다. ‘15층에 있는 잠금 제한 없는 PC’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이 방법은, 야간 혹은 금요일 이후의 초과근무 상황에서 개인 업무용 PC가 아닌 서버 업데이트용 공용 PC로 이동시켜 노동을 시키는 방법이다. 이 경우는 초과근무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초과근무 수당 산정 근거가 아예 없어지므로 ‘공짜 야근’이 되어버린다. 허진영 펄어비스 대표는 자신도 제보를 통해 인지했다고 답변했는데, 즉 자신이 시킨 방법이 아니라는 어필이었고, 관리를 강화했다고 답변을 했다. 하지만 의원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차라리 공용 PC를 다 없애버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은 이 질의에 대해, 게임과 영상 업계는 집중적으로 일을 하는 특성이 있어서 주 52시간 제한을 지키려면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말을 했다. 다른 계획이라는 것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크런치 모드 때 몰아서 일하고 그 후에 쉬어서 ‘평균 주 52시간 이하’를 맞추는 방법이 아니길 바란다. * 류호정 의원실이 공개한, 펄어비스가 이미 조치한 노동 여건 개선 사항 * 류호정 의원실이 공개한, 펄어비스 공용PC에 대한 언급 페미니즘 사상검증 - 유형: 노동/평등. 의원: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림버스 컴퍼니를 서비스하는 프로젝트 문에서 터진 사건이 규모를 불려 나가더니 국정감사장에 올라왔다. 남성 캐릭터 싱클레어에는 수영복 일러스트가 있는데 여성 캐릭터 이스마엘은 수영복이 아닌 잠수복이라는 점에 불만을 가진 남성 유저들이 온오프라인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해당 일러스트를 작업한 사람이 여성일 것이라 보고 색출을 시작했으나, 남성인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다른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를 찾았다. 그의 과거 트위터 행적 중에서 현재는 지워진 리트윗 하나를 찾았으니 그것이 페미니즘 지지 트윗의 리트윗이었다. 이 여성이 작업한 일러스트에서 특정 손 모양도 찾아냈는데, 병을 눈 앞으로 올리기 위해 두 손가락으로 집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비약과 망상에 찬 논리가 완성되어 ‘페미 잘라라’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직접 회사에 찾아가는 시위를 맞닥뜨린 프로젝트 문은 7월 25일, 자진 퇴사의 형태로 해당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를 내보냈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사이버불링과 사상검증. 여기에 지지 여론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날조 정보도 유포되었다. 회사는 사상검증 사유가 아니고, 계약직이라 해고가 아닌 계약 종료이며, 사규에 따른 적법한 절차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사건 전개를 보면 누가 보아도 사상을 이유로 자진 퇴사를 권고한 것이며, 이는 사규 이전에 지켜야 하는 사내 노동자 보호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인셀 진상고객 이슈가 노동 이슈로도 확장이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국게임소비자협회라는 단체가 조직되었고, 게임업계에 대한 근로감독 청원에 12,745명의 청원인이 모였다. 이 청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제출되었고, 우원식 의원이 이를 질의한 것이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국정감사장에 출석하여 이 사건과 유사하게 게임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사이버불링 사건을 67건 제보 받았다고 증언했다. ‘페미인지 답하라’며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식으로 SNS 계정을 스토킹하면서 인격 모독을 지속적으로 가하거나 하는 것이다. 피해 제보자의 90%가 2~30대 청년이며 88%는 여성이었다. 반면 회사의 보호를 받았다는 경우는 4건에 불과했고, 방치가 50%에, 자발적 퇴사의 형태를 한 사실상의 해고가 41.3%였다. 여기에 업계 내에 팽배한 성희롱 발언, 성차별적 승진 고과와 연봉 체계, 임신 및 출산에 대한 불이익, 면접 과정에서의 페미니즘 사상검증 등의 사례를 증언했다. 업계 상황이 이렇지만 2021년 10월 14일 사이버불링을 포함하도록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후 현재까지 게임회사가 받은 산업안전보건법 근로감독은 단 1건에 불과하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하형소 청장은 그동안의 재해 발생은 주로 제조업과 건설업 중심이었으며, 감정노동 분야에서는 콜센터에 주력했음을 인정했다. 우원식 의원은 특별근로감독을 주문하는 한편 산업안전보건법의 추가 개정 필요를 역설했는데, 특히 제보자 중 11명이 프리랜서 신분이라서 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국정감사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난 현재, 프로젝트 문 사건과 거의 유사한 형태의 사건이 넥슨에서 일어나고 있다. * 프로젝트 문이 일러스트레이터를 해고한 당일에 외국 유저들이 만들어낸 밈 게임물 등급관리 시스템 정비 필요 - 유형: 행정. 의원: 정의당 류호정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게임의 등급 심사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정부 기관은 아니지만 정부 업무를 위탁받은 만큼 정보 공개가 기본 사항이고, 그래서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등급 심사를 넣은 게임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원칙이라 함은 정보 공개 유예를 선택할 수 있는 행정 서비스, 블라인드 제도가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절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국내 게임사와는 달리 외국 게임사는 이 제도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공식 발매 발표 이전에 등급 분류 사실이 공개된 퀘이크 1, 2 리마스터를 비롯해 사일런트 힐, 콜 오브 듀티, 레드 데드 리뎀션 등의 신작이 미공개 대외비 상태에서 출시 대기 중이었다가, 한국의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 분류 정보 공개를 통해 강제적으로 출시 정보를 공개 당했다. 블라인드 제도가 외국 게임사에게 제대로 안내되지 않고, 이런 강제 정보 공개가 반복이 되면, 한국에서의 등급 분류 신청을 늦게 해서 한국 내의 출시가 늦어지는 결과를 갖고 올 것이 예상된다. 블라인드 제도에 대한 안내를 영어 혹은 다른 언어로도 서비스하면 해결되는, 간단한 행정 절차 정비에 대한 질의다. 그리고 비슷한 정비 소요가 또 있었다. 게임사가 게임의 내용을 수정할 때도 게임 등급 심사를 새로 받아야 한다. 사행성 시스템이나 선정성 수위의 변경 같은 것을 등급에 반영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시행규칙에 관련 기준이 확실히 공지되어 있지 않아서 게임사는 단순 스킬 이펙트 변경, 폰트 변경, 색상 변경 정도의 경미한 수정이 있어도 내용 수정 신고를 하고 있다. 그 결과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매년 3천 건이 넘는 수정 신고에 대해 일일이 등급 분류를 해야 해서 행정력이 낭비되는 실정이다. 이 또한 시행규칙이나 시행령 정비로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이며, 설사 법 개정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버그 패치 수준의 경미한 개정 정도가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현재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이 부분을 개선과제로 제시했고, 이상헌 의원 등이 게임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 내의 비위 - 유형: 비위.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사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 심사 시스템은 심각한 비위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밝혀진 상태다. 게임위는 자체등급분류 통합관리시스템이라는 것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전산망 구축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1단계 구축의 진도율이 50%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팀장 한 명은 ‘사업비를 집행해야 하니 준공계를 달라’고 했고, 업체는 허위 준공계를 제출했다. 이 허위 준공계를 근거로 해서 사업이 완료되지도 않았는데 사업비가 나갔고, 검수 보고서도 만들어졌고, 관련 정산보고서도 허위로 만들어서 문체부의 내년 보조금도 받았고, 사무국장은 이 과정 모두를 결재했다. 리베이트 의혹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팀장은 현재 조폐공사로 이직했고 사무국장은 정직 처분을 받은 후 게임위를 떠났다. 감사원 감사 결과 이런 정황이 모두 밝혀지자 이 사무국장은 게임위 이름으로 허위 보도자료와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의 허위성을, 자체등급분류 통합관리시스템의 법적 근거를 만든 사람인 이상헌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언급했고, 해당 자료는 국정감사 도중에 삭제됐다. 그런데 의외의 사실이 여기서 폭로되었다. 사무국장은 7월에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았고 임기가 8월까지였기에 이대로 게임위에서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정직당한 사람이 회사에 나타나더니 사내 전산망에 접속을 했다. 8월 출근일 22일 중 20일을 출근했고, 광복절도 마찬가지였다. 정직이 되어서 대외비 정보 같은 것에 접근할 수도 없을 터인데 말이다. 김규철 게임위원장은 사무국장이 자기방어를 위해 6년 동안 근무한 데이터를 수집할 것이라고 했고 이를 막을 근거가 없었다는 답변을 했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대답에 이상헌 의원은 조직 장악력이 없는 거 아니냐, 즉 ‘사무처장이 활개치고 다니는데 막지 못한 거 아니냐’는 추궁을 했다. 교육용 게임 플랫폼 - 유형: 비위.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윤덕 의원이 콘텐츠진흥원의 비위 사실로 의심되는 부분을 질의했지만 콘텐츠진흥원이 반박을 설득력 있게 해내면서 결론이 나지 못한 이슈도 있다. ‘잇다(It-Da)’라는 교육 콘텐츠 플랫폼에서 구동되는 교육용 게임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58억의 예산으로 개발했다. 김윤덕 의원은 개발된 게임들이 잇다에서 구동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지만 조현래 콘진원장은 구동된다고 맞섰다. 잇다를 통해서만 3천여 건, 총 25만 건의 접속 건수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 사업으로 개발된 게임은 본래 인문/자연/창의/예체능 4분야로 기획이 되었는데, 예체능 분야의 게임이 불합격되었다. 이 심사 과정의 디테일들이 석연치 않다고 김윤덕 의원이 주장했고, 조현래 원장은 부정했다. 두 차례의 질의 끝에 김윤덕 의원은 ‘우리 보좌관들이 운용이 안 되는 것은 우리가 문제가 있는 것이냐’는 질문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게임인재원 - 유형: 사업. 의원: 국민의힘 이용 게임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 중에는 2019년에 개원한 게임인재원이 있다. 현재 콘텐츠진흥원장인 조현래 원장이 콘텐츠국장이던 시절 시작되었다. 2년 동안 예산은 30억씩 증액되었고 내년에는 50억 이상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개원 이후 총 365명의 교육생 중 1기의 취업률은 75%, 2기의 취업률은 87%다. 곧 제2캠퍼스가 준공되면 정원도 2배로 확대될 예정이다. 반면 3기 졸업생부터는 13~22%p 가량 취업률 지표가 감소했다. 이용 의원의 추측성 진단은, 교육 커리큘럼을 위탁한 업체가 바뀌어서 아니냐는 것이다. 2020년부터 교육 용역을 따내 내년까지 예정된 현재 업체인 파이어랩스는 이전에는 수주 실적이 0이었다. 즉 게임인재원 용역이 첫 수주 사업인 것이다. 이용 의원은 파이어랩스의 설립자가 콘진원의 노조 지부장 출신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전직자 편의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현래 원장은 평가위원들의 평가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는 입장이었고, 이용 의원은 종합감사 때 구체적인 자료를 갖다달라고 말했지만 종합감사에서 이 이슈가 다시 다뤄지진 않았다. 게임 교육의 지역 제한 - 유형: 교육.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윤덕 본지의 편집장 이경혁 평론가는 ‘우리아이 게임 사용설명서’라는 교양 예능 프로에 출연하여 총 10회 동안 게임 리터러시 교육을 강연했다. 이런 역할을 하는 직종을 게임물 전문 지도사라고 부르며,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양성한다. 이들은 학생, 학교밖 청소년, 학부모, 교원 등을 대상으로 적정등급의 게임물 이용, 불법 게임물 이용 예방 교육 등을 한다. 2018년에 3명을 배출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37명이 양성되었다. (편집자 주: 편집장은 게임물 전문 지도사가 아닙니다.) 김윤덕 의원은 이들이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에 11명, 부산/경상에 23명, 충청에 3명이고, 강원-호남-제주에는 아무도 없었다. 커리큘럼 개설 또한 편중되었다. 이 강사들을 파견하는 지원사업은 서울/경기/대구/부산에만 존재했고, 학교밖 청소년 대상 강연 또한 수도권/부산/대전에만 있었다. 금년 사업계획서조차 청소년 만8천 명을 교육 대상으로 확장하겠다고 했는데, 서울/경기/부산/대구만 언급되어 있었다. 김윤덕 의원과, 농어촌 대표자라는 정체성을 내세운 이개호 의원은 이런 편중이 동등한 교육 권리라는 헌법 가치와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같은 지역 제한이 등급 분류 모니터링 요원 채용에도 있었다. 채용 요건에는 지역 제한이 없었지만 세부 항목에는 부산과 수도권 오프라인 행사에 참석 가능할 것, 장애인은 부산직업능력개발원을 통해서만 모집, 관리인력 채용은 부산 본사 인근 사무실에서 등등의 제한이 있었다. 김규철 게임물관리위원장은 “우선 변명 같습니다만 예산의 한계 때문에”로 운을 떼었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기존 조직이 있는 지역 위주로만 사업을 하다 보니 강원/호남/제주가 빠졌다는 것이다. 최대한 소외 지역으로 지도사가 갈 수 있도록 현재의 예산 규모에서 예산 구성을 다시 짜겠다는 약속은 나왔다. * 본지 편집장이 고정 출연한 OGN의 ‘우리아이 게임 사용설명서’ 게임 제작 지원 예산 - 유형: 예산. 의원: 정의당 류호정 매년 문화체육부에서 콘텐츠진흥원을 통해 집행하는 예산 중에는 게임 제작 지원 사업이 있다. 금년에는 총 41개 업체가 선정되어 교부금을 받을 예정인데, 2차에 나눠서 지급이 된다. 그리고 2차 지원금인 38억 8천만 원이 한 달 넘게 집행이 지연 되는 중이다. 유인촌 장관은, 이제 막 취임했기 때문인지, 아직 파악을 못했다는 답변을 했다. 한편 유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이상헌, 류호정 의원이 언급했던 ‘게임업계 청년 간담회’에 조현래 콘텐츠진흥원장을 참석시켰는데, 여기서 조현래 원장은 예산을 청구했지만 아직 입금되지 않아서 늦어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추진사항 점검 - 유형: 행정.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위원장이기 때문에 심도 깊은 질의를 하기는 어려웠던 이상헌 의원은 26일 종합감사에서 유인촌 장관을 상대로 간단한 추진 사항을 점검하는 시간을 잠깐씩 가졌다. GG 지난 호에서 정리했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여부 에 대한 연구 용역이 그런 시간에 언급됐다. 통계청 민관협의체가 결론을 내기 위해서 발주한 연구 용역 중 하나가 질적 기준을 만족하지 못했고 그래서 후속 연구 용역이 발주된 상태다. 바로 그 거부된 연구에 대해 이상헌 의원은 ‘게임 중독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연구해 연구 목적을 어겼다면서 질타했다. 게임이용장애 찬성측 이론과 진단도구만 반영했고, 반대측 근거에 대한 검토가 없으며, 핵심 로 데이터(Raw Data)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유인촌 장관이 판교에서 ‘게임업계 청년 간담회’를 연 것에 대해서는, 스타트업의 어려움 중 하나라는 서류작업 간소화도 살짝 당부를 했다. 이런 민원 해결 또한 국정감사의 기능 중 하나다. 좀 더 중요한 점검 사항은 확률형 아이템 규제 시행령이다. 게임산업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내년 3월부터 게임사들은 아이템과 관련된 확률을 상세하고 쉽게 공개하는 것이 의무가 된다. 핵심 내용은 ‘쉽게’에 있다. 이 의무를 감시하는 모니터링단도 설치된다. 답변에서 유인촌 장관은 제작사들과의 의견 교환을 언급했는데, 이는 국내 영세 업체에게 부담이 되는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를 반영한 발언이다. 게임산업협회를 째려보기 - 유형: 사업.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게임산업협회의 강신철 협회장이 국정감사장에 출석했는데, 딱 한 번의 질의에만 출연했다. 이상헌 위원장이 최근의 게임계 산업 이슈에 대해 게임산업협회의 주도적 역할 수행을 주문하는 질의였다. 이상헌 의원이 요구한 쟁점은 네 가지였다. 1) 게임사 간의 소송/고소/고발/저작권 도용을 중재하라. 강신철 협회장은 저작권 존중과 보편적 사용이 가능한 요소 사이에서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게임물의 저작권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했다. 2) 신림동 무차별 살인사건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적한 검찰에 항의하라. 협회가 직접 소통에 나서지 않은 이유는, 일단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어서였다고 한다. 또한 게임은 이제 국민의 80% 가량이 즐기는 문화산업이 되었다는, 국민을 신뢰하는 발언으로 답변했다. 3) 게임사 내부 직원의 비위 적발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 이는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업데이트 계획 유출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강신철 협회장이 할 수 있는 답변은 회원사들과 긴밀히 대화하여 열심히 하겠다는 말 외엔 없다. 4) 확률형 아이템 규제 시행령에 대한 입장을 말하라. 번역하면 개정된 규제에 반항하지 말라는 의미다. 강신철 협회장은 의미를 잘 파악하여 시행령에서 정해진 바에 따른 법의 의무를 충실히 다하고 사회적 소통도 노력할 것이라는 모범 답안을 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 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말로 회원사들에 대한 의무 방어를 수행했다. 강신철 협회장이 이상의 답변을 한 후에 덧붙인 말은, 정황상 이상헌 의원과의 약속된 세트 플레이로 보이는데, 사용자와의 소통 문제였다. 게임이 이제 청년기에 접어들었으나 기업과 이용자 간의 대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강신철 협회장의 문제 의식이었다. 따라서 이제부터 게임산업협회에 질문해야 하는 것은 ‘올바른 대화’를 무엇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e스포츠 25년, 그 좌충우돌의 역사
초창기 e스포츠는 열악한 환경에서 탄생했다. 1999년 처음 중계된 제5회 하이텔배 KPGL(Korea Professional Gamers League) 당시에는 방송국 지원이 없어 탁구대에 천을 씌워 경기 테이블과 중계석으로 사용했으며, 경기복 두 벌을 출전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입었다. < Back e스포츠 25년, 그 좌충우돌의 역사 23 GG Vol. 25. 4. 10. 다른 그 무엇도 아닌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며 시작된 2000년은 한국이스포츠협회(이하 협회)의 전신인 ‘21세기 프로게임협회’가 창설되고 전문적인 리그대회가 한참 생겨나던 시기였다. 당시 e스포츠는 젊은 남성층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인기를 얻던 문화 콘텐츠였지만, 기성세대에게는 그저 유치하고 심지어 병리적인 사회 현상으로 여겨지곤 했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당시 게임을 플레이하던 프로게이머조차도 e스포츠가 이렇게 커다란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e스포츠는 치열하게 대결하며 전략과 열정을 공유하던 게이머 공동체에서 시작되었으나, 산업의 성장과 함께 e스포츠의 정체성도 변화되어 갔다. 연구자와 산업 관계자 각자 e스포츠에 대해 다른 정의를 내리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은 e스포츠가 기존 산업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디어학자인 허친스(Brett Hutchins) 는 e스포츠가 미디어와 스포츠, 컴퓨터 게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하이브리드 산업이라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게임과 e스포츠 문화를 연구하는 테일러(T.L.Taylor) 는 e스포츠가 텔레비전, 게임, 인터넷 그리고 온라인 네트워크의 융합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e스포츠는 그 전부터 존재했던 미디어·문화 산업의 울타리 안팎을 넘나들며 다른 그 무엇도 아닌 e스포츠만의 정체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힘든 e스포츠의 혼종성은 게임 산업의 빠른 생애주기, 플랫폼의 전환 등 변화의 순간마다 과감한 결단을 통해 변화에 적응하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그래서 e스포츠는 매순간 위기와 함께 했다. 짧은 호황기를 누리다가도 돌발적인 변수로 인해 다시금 어려움을 맞닥뜨렸다. 불안정한 기반 위에서 내가 즐기고 있는 이 리그와 종목이 언제 무너지거나 중단될지 알 수 없기에 팬들은 늘 불안감을 품은 채 선수와 팀을 응원한다. 그렇기에 e스포츠가 무엇인지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보다는 그 변화의 흔적을 그저 따라가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에서 e스포츠가 시작된 시점으로 여겨지는 1999년은 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e스포츠의 역사를 훑는 일은 나의 성장기를 되짚어 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글은 한 명의 팬으로서, 그리고 이 산업과 함께 자라온 동시대인으로서 e스포츠 문화의 궤적을 따라가 보려는 짧은 기록이다. 초기 e스포츠의 도약과 제도화 초창기 e스포츠는 열악한 환경에서 탄생했다. 1999년 처음 중계된 제5회 하이텔배 KPGL(Korea Professional Gamers League) 당시에는 방송국 지원이 없어 탁구대에 천을 씌워 경기 테이블과 중계석으로 사용했으며, 경기복 두 벌을 출전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입었다. 좁은 방 하나에서 선수들끼리 함께 자거나 PC방에서 생활하는 일이 빈번했다. 게임 자체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부정적 인식과 신생 산업의 불안정한 기반에도 게임에 대한 열정으로 버티던 게이머와 산업 관계자들은 2000년 말 붕괴한 닷컴 버블로 인해 한 차례 무너져 내렸다. KPGL, PKO, KIGL과 같은 초기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빠르게 폐지되었고 우후죽순 생겨나던 게임대회 주최사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게임만 해서 먹고 산다는 목표는 당시로서는 허황된 꿈에 가까웠다. 많은 선수들이 다른 직업을 겸하여 생활하거나 게이머 경력을 통해 게임 관련 회사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때문에 선수들의 프로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인정받는 신주영, 한국통신(Korenet) CF를 촬영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이기석, 지금은 방송인으로 더욱 유명한 기욤 패트리 등이 이 시기에 짧은 인기를 누린 게이머들이었다. 그리고 2003년부터 게임 방송사를 중심으로 한 차례의 도약이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온게임넷과 MBC 게임(당시 이름은 geMBC)이라는 두 케이블채널은 기존의 대회 주관 업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꾸며 방송 중심의 게임리그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1대1 대결이던 기존 대회 형식에 더해 팀 단위의 리그를 새로 만들면서 그와 함께 대기업의 재정지원을 받는 프로팀이 등장한다. 임요환, 최연성의 SKT와 강민, 홍진호, 박정석의 KT는 스타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팀을 꾸리며 통신사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이러한 구도는 단순히 팬들의 즐거움을 넘어 기업이 홍보를 위해 전면에 나서 팀을 만들고 자본을 투자하여 리그의 판을 키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특히 광안리에서 진행된 2004년 스카이 프로리그 결승전(한빛 스타즈 vs SKT T1)에는 10만여 명의 관중이 몰려 상징적인 순간을 만들어냈고, 2005년 So1 스타리그 결승전(임요환 vs 오영종)은 역대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는 등 스타리그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 기사에서 SK텔레콤 T1은 팀 창단만으로 150억 원이 넘는 홍보 효과를 봤다고 전해지며 리그를 후원한 신한은행 역시 300억 원이 넘는 홍보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이를 기점으로 2006년까지 대기업팀의 적극적인 창단이 이루어졌다. * [2004년의 광안리 대첩(출처: https://home.kepco.co.kr/kepco/front/html/WZ/2023_09_10/sub1_4.html )] 특히 협회에 의해 2005년부터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한 본격적인 제도화가 이루어졌다. 협회 공인 대회에서 입상한 선수는 준프로게이머의 자격을 얻게 되고, 매년 진행되는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 특정 팀에 소속되면 프로게이머가 되는 식이었다. 또한 각 팀 내에서도 연습생을 10여명 내외로 육성하며 선수 인력의 재생산을 위해 힘쓰기 시작했다. 오늘날 대기업 구단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e스포츠 아카데미의 국내 모델이 이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프로게이머는 점차 많은 게이머와 청소년들이 꿈꾸는 어엿한 직업으로 자리잡았다. 한 차례의 위기 그리고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 그런데 이때부터 커진 파이 를 둘러싸고 산업 행위자들 사이의 치열한 힘 싸움이 시작된다. 2007년 협회와 양 방송사 사이의 중계권료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했고, 2010년에는 블리자드와 협회, 방송사 간 지적재산권 소송이 이어졌다. 그 전까지 게임사가 협회와 방송사의 IP 활용을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형식이었다면, 이제는 e스포츠 산업의 생산과 유통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초창기 e스포츠 리그의 제작과 주최, 방송을 도맡아 하며 독점적인 권한을 수행하던 방송사는 이 시기부터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힘 싸움에 더해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까지 벌어지며 스타크래프트 리그뿐 아니라 e스포츠 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입힌다. 다른 한편에서는 2011년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리그 오브 레전드가 서서히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이후 2013년, 넓게 보면 2016년까지 국내 e스포츠 산업은 과도기를 거치게 된다. 당시 나를 포함한 청소년들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또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세대였을 것이다. 당장 PC방에서 친구들과 하던 게임이 스타크래프트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로 바뀌었고, 당시 보급되기 시작한 스마트폰을 통해 아프리카 TV를 보는 것이 또래 문화가 되었다. 교실에서 남자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밈(meme)은 ‘날아오르라 주작이여’에서 ‘이걸 나진이’로 옮겨갔다. 페이커(Faker)가 미드 마이를 썼다느니 미드 리븐을 썼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경기 다음날 아침부터 화제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 TV와 트위치, 유튜브 게이밍과 같은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보는 게임’ 문화의 대중화를 이끌며 산업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매체였는데, e스포츠 역시 마찬가지여서 수용자층을 하드코어 게이머에서 캐주얼 팬으로까지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더불어 전현직 프로게이머가 스트리밍 플랫폼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선수와 팬 사이의 온라인 소통의 기회도 확대되었다. 라이브 채팅을 통한 정동의 공유는 기존의 TV라는 일방향적 정보 제공을 넘어 실시간 상호작용에 기반한 능동적인 콘텐츠 소비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테일러는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e스포츠가 단순히 스포 츠가 아니라 복합적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워졌다고 분석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또 다른 장점은 방송사에서 여러 사정으로 인해 제한적으로만 방영할 수밖에 없던 다양한 종목의 리그를 중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전까지 어렵게 찾아보아야만 했던 해외 리그나 철권, 워크래프트 3와 같이 한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는 데 실패한 종목의 국내 리그도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챙겨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터넷 스트리머 중심의 게임 대회가 인기를 끌고 아마추어 게이머 대상의 리그 역시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중계가 가능해지면서 풀뿌리 리그와 자생적 e스포츠 생태계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즉 스트리밍 플랫폼의 발전은 한편에서는 전 세계 팬들과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국제화의 흐름을 만들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과 소규모 리그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e스포츠 문화의 저변을 넓혀주었다. e스포츠의 황금기 스트리밍 플랫폼의 발전에 힘입어 e스포츠 산업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e스포츠 산업규모는 연평균 17.9%의 성장률을 보였으며 국제적으로는 매년 30.7%의 고속 성장이 진행되었다. 경기장 역시 양적·질적 확장이 이루어져 2016년 OGN e스타디움이 개장한 이후 2018년에는 LOL 파크와 VSG 아레나가, 2020년에는 아프리카TV 콜로세움, V.Space 아레나, 부산·광주 e스포츠 경기장이 연이어 개장했다. 프로게이머 평균 연봉 역시 2018년 50% 넘게 뛴 데 이어 2019년에는 80%나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경제적 성장과 함께 두드러진 건 기술의 발전이었다. 대표적으로 e스포츠 관전 및 연출 기능이 개선을 거듭하면서 e스포츠는 거대한 스펙타클 이벤트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초창기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관전 및 연출 기능은 옵저버의 수동 조작과 선수 얼굴 클로즈업이 전부일 정도로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해설진은 경기 시작 전이나 직후 맵 위에 마우스로 그림을 그리면서 바둑처럼 맵을 설명하고 각 선수의 전략을 예상했다. 선수의 미네랄과 가스 보유량, 인구수를 보여주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EVER 스타리그 2007’이었다. 반면 2010년대에 들어 게임사가 리그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려는 의욕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관전 및 중계 모드의 기능을 대폭 개선하면서 보다 직관적이면서도 극적인 시청을 가능하게 했다. 2015년부터 LCK에서는 스포트라이트 카메라 기능을 통해 게임 화면을 3D 애니메이션처럼 연출할 수 있게 되었고 2018년에는 한국에서 개최된 월즈 무대에서 가상 걸그룹 K/DA의 증강현실 무대를 꾸몄다. 같은 해 OGN에서는 VR을 통한 배틀그라운드 경기 생중계가 국내 최초로 시도되었다. 이 같은 실험적 시도는 비록 모두 상용화되지는 않았더라도, 그 당시 기술의 발전과 e스포츠 산업 전반에 만연하던 낙관을 반영한 산물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9oDlvOV3qs * 리그오브레전드 2018 월드 챔피언십 K/DA 오프닝 세레머니 영상 다시, 겨울을 나는 e스포츠 그러나 최근의 e스포츠 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또 한 번 어려움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장 e스포츠 게임단과 게임 대회 운영사들의 누적된 적자가 문제되었다. 특히 젠지 e스포츠의 CEO인 아놀드 허(Arnold Hur)는 2023년 ‘e스포츠의 겨울’을 주장하며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함을 역설했다. 또 라이엇 게임즈나 블리자드, 일렉트로닉 아츠(EA)와 같이 게임과 e스포츠 업계를 지탱하는 게임사들이 2024년 들어 줄줄이 구조조정과 해고를 단행하며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위기를 초래한 내부적·외부적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지나치게 빠른 성장과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를 그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종목에 편중되어 있는 산업 구조 역시 산업의 안정화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이에 게임사와 구단은 나름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LCK는 2020년부터 폐쇄형 프랜차이즈 리그 [1] 로 전환했으며 FC 온라인 슈퍼챔피언스 리그 역시 2025년부터 리그 프랜차이즈화를 시도하고 있다. 반대로 오버워치 리그는 프랜차이즈 및 연고제를 2024년부터 폐지하고 개방형 리그 시스템으로 개편했다. 다른 한편 2023년 정식출시한 게임 이터널 리턴은 국내 최초로 지역 연고 풀리그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e스포츠 구단 역시 참여 종목 다양화와 함께 아카데미 설립, 국내외 대학과의 활동 연계, 팬덤 마케팅 활성화 등의 노력을 통해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e스포츠는 빠르게 달려온 궤도를 잠시 조정하는 또 하나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처럼 갑작스럽게 닥친 위기에 무너지기보다, 이제는 산업 전체가 변화의 국면을 인식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차분히 모색하고 있다. 다가올 e스포츠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두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나 e스포츠는 처음부터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다. 스포츠이자 게임이고, 방송이자 오락이며 문화인 이 복합적 정체성은 위기의 순간마다 유연하게 적응하며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무너졌을 때도, 방송사가 사라졌을 때도, 플랫폼이 전환되었을 때도 e스포츠는 멈추지 않았다. 누구도 이 산업이 여기까지 올 줄 몰랐듯, 지금의 과도기 역시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한번 자신을 재구성할 시간, 본질을 점검할 기회일지 모른다. 아직도 춥고 눈이 내리는 날씨이지만, 곧 봄이 올 것이다. 변화의 속도에 익숙한 e스포츠가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따뜻한 봄을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 Hutchins, B. (2008) Signs of meta-change in second modernity: The growth of e-sport and the World Cyber Games. New Media and Society, 10(6): 851-869. - Taylor, T. L. (2018) Watch me play : Twitch and the rise of game live streaming, Princeton, New Jersey : Princeton University Press. - 박건하. (2004) 게이머들의 PC방 문화와 프로게임리그의 형성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문화학협동과정 석사학위논문. - 이용범. (2020) 동북아시아 e스포츠 현황에 대한 기초연구 1: 정동(affect)의 실각, 한국 e스포츠 10년사.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20권 2호. 61-73. - 정헌목 (2009) ‘스타’ 게이머 팬클럽을 통해 본 e-스포츠 팬덤의 형성과정과 특성. <비교문화연구>, 15권 1호. 51-95. - 진예원. (2022) 이스포츠의 기술성(technicity) 분석을 통해 본 포스트디지털 문화 연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전공 석사학위논문. [1] 프랜차이즈 모델은 리그에 소속되는 팀을 고정하여 이 팀들이 강등이나 해체의 위험 부담 없이 수익 창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을 의미한다. 반대로 개방형 모델은 리그 참가 및 탈퇴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에 리그 소속팀이 자주 바뀌며, 승강제를 도입해 경쟁을 보다 치열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프로야구 KBO 리그는 프랜차이즈 모델, 프로축구 K리그는 개방형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Tags: e스포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박여찬 e스포츠를 포함한 보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 중입니다.
- 레트로 시대 한국 게임비평의 흔적들
지금의 한국에서 게임 평론 시도들은 일부 웹진의 기자들을 통해 이루어지거나, 일부 게임평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꾸준히 평론을 지면에 생산하는 게임평론가는 매우 적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 게임 평론계는 의미 있게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25년 동안 한국 게임계는 대체 무얼 한 걸까. 이렇다 보니 실제 게임평론을 생산하지 않는 자칭 평론가들은 자신들이 최초의 게임평론가라고 이야기하는 웃지 못할 상황들도 벌어지고는 한다. 이런 점을 정리하려면 먼저 과거에 있었던 게임비평에의 시도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Back 레트로 시대 한국 게임비평의 흔적들 02 GG Vol. 21. 8. 10. 한국에서 게임의 역사는 길지 않다. 길다 짧다는 것이 주관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길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은 한국 게임의 역사가 길지 않다고 한다. 다른 매체에 비하면 그 탄생이 늦어서 짧다. 미국, 일본보다도 짧은 편이다. 주변부의 다른 국가에 비하면 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게임의 역사를 몇 년으로 봐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나 〈리니지〉가 한국 게임 역사의 시작이라고 하기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1987년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 시행 시기와 함께 출시된 〈신검의 전설〉을 그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1983년 컴퓨터 보급과 컴퓨터 잡지의 발간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그에 앞서 아케이드용 전자 오락기들이 막 수입되고, 가정용 오락기들이 수출용으로 제작되던 때를 시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짧게 잡는다면 25년 정도가 될 것이다. 가장 길게 잡는다면 50년이 될 수 있는 이 역사는 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80년대 〈갤러그〉를 하던 오락실 어린이들이 지금은 성인이 되어 비슷한 연배의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된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도 게임이란 매체가 다른 매체만큼 우리 사회에서 자리 잡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될 것이다. 다만 우리 안에서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치가 산업적으로의 게임의 위치만큼은 아니라는 것은 어느 정도 동의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이유로 여러 가지를 지목할 수 있겠지만 다른 매체처럼 충분한 평론 등이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게임 평론이란 분야는 다른 매체만큼 활성화되어있지 못하다는 것 역시 대부분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국내에서 게임 평론은 존재하지 않으며 해외의 평론만을 수입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게임 평론이 필요하다고 하는 견해만큼이나 게임평론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많은 부분일 것이다. 지금의 한국에서 게임 평론 시도들은 일부 웹진의 기자들을 통해 이루어지거나, 일부 게임평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꾸준히 평론을 지면에 생산하는 게임평론가는 매우 적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 게임 평론계는 의미 있게 존재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25년 동안 한국 게임계는 대체 무얼 한 걸까. 이렇다 보니 실제 게임평론을 생산하지 않는 자칭 평론가들은 자신들이 최초의 게임평론가라고 이야기하는 웃지 못할 상황들도 벌어지고는 한다. 이런 점을 정리하려면 먼저 과거에 있었던 게임비평에의 시도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게임잡지를 통해 나타난 초창기의 게임평론 시도들 한국에서 최초의 게임잡지를 꼽으라면 1990년에 창간된 〈게임월드〉일 것이다. 그 무렵 컴퓨터 게임을 복사해주거나 판매하는 소프트하우스 중심으로 동인지 등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공식적으로 출판된 게임잡지는 〈게임월드〉가 가장 먼저였다. 이후 〈게임뉴스〉, 〈게임챔프〉, 〈게임정보〉 등 다양한 가정용 게임기를 다루는 게임잡지들이 출간되고 이후 컴퓨터 게임을 다루는 컴퓨터 게임 전문지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잡지들은 국내에서 게임 문화가 자리 잡는 데 큰 영향을 끼쳤지만, 시기상 게임의 유입보다는 늦었다. 흔히 한국 게임개발 원년으로 다뤄지는 1987년보다 4년 이른 1983년 창간된 〈컴퓨터학습〉과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는 이미 컴퓨터와 게임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각 컴퓨터 제작사별로 제공되는 게임들을 비교하기도 했다. 이 무렵의 게임에 대한 소개를 평론이나 공략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었다. 〈컴퓨터학습〉 1984년 1월부터 3월까지 3차례에 걸쳐 실린 〈제비우스 1,000만점 돌파의 비밀〉은 일본 컴퓨터 잡지에 있는 공략을 그대로 옮겼으나, 국내 최초의 게임공략으로 인지되며, 〈컴퓨터학습〉이 이후 게임을 좀 더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제비우스〉 공략이 실린 컴퓨터학습 1984년 1월호와 2월호. 컴퓨터 전문 잡지들의 게임 필자들은 학생들이 주로 맡은 경우가 있었는데, 대부분 투고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게임 초기에 게임평론가로 활동했던 박병호는 학생 때 〈컴퓨터학습〉에 게임공략을 투고하여 잡지에 게재된 것을 인연으로 〈컴퓨터학습〉에 MSX 게임공략을 꾸준히 연재하였다. 상당히 많은 필자가 게임공략으로 활동하였으나 이 중 게임평론가로 활동을 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박병호는 이후 〈PC매니아〉 등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평론가로 활동하며 나중에 〈게임피아〉 등의 잡지와 〈경향신문〉에서 종합지 최초로 게임 관련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 〈컴퓨터학습〉 86년 3월호에 실린 〈헬기대작전〉의 공략. 〈헬기대작전〉은 윌라이트가 제작했던 〈번겔링만의 습격〉 MSX판의 국내 유통 제목이다. 1990년대 초 게임잡지들의 창간은 이러한 컴퓨터 잡지들의 게임 코너의 영향들을 받았다. 초기 게임잡지 중 특히 주요한 영향을 꼽은 잡지라면 〈게임월드〉, 〈게임챔프〉, 〈게임채널〉 등이 있으며, 게임잡지들은 대부분 창간과 함께 필자들을 모집하며 기술 중에 게임 평론을 요구하기도 했다. 93년 추가로 〈게임정보>를 창간한 미래시대는 "나도 게임평론가"라는 코너로 독자들의 게임에 대한 평가를 연재하기도 했다. * 〈게임정보〉에 실렸던 독자마당 '나도 게임 평론가' 코너. 93년에 창간된 〈게임챔프〉는 기자들을 명인으로 지칭하며 신작들을 모아 평가를 했다. 평론이라고 부르기는 힘들지만, 평점과 함께 기자의 이름을 걸고 평가를 하는 시스템은 이후 창간되는 〈PC챔프〉-〈PC파워진〉으로도 이어져 기자의 이름과 함께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 업계를 평론하는 연재하는 지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게임챔프〉에 실린 명인의 게임평가. 초기의 게임잡지들이 일본의 것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 게임 유통사였던 동서게임채널에서 발행한 〈게임채널〉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미국 유학을 계기로 게임산업에 진출하게 된 대표의 영향도 있겠다. 〈게임채널〉은 창간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미국의 〈컴퓨터게이밍월드지〉의 칼럼이나 게임에 대한 평가를 국내에 소개했으며 바이라인과 함께 기자 사진이 같이 소개되기도 했다. 한국 게임 시장이 컴퓨터 게임을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컴퓨터 게임 전문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존 게임잡지들의 부록으로 시작해서 자매지로 창간되는 경우부터 방송사에서 직접 창간하는 경우까지 다양한 잡지들이 창간되었으며 비디오 게임 잡지의 편집 형태가 일본 게임잡지를 따라가는 그것과 달리 좀 더 미국의 게임잡지에 가깝지만 고유한 형태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기자들의 이름을 걸고 게임 자체를 깊게 평가한다던가, 게임뿐만 아니라 업계나 문화 자체에 대한 칼럼을 기자의 이름을 건 코너 등 평론을 싣기도 했다. 1993년 12월 정보문화센터에서 주최한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에서는 여러 수상작이 나오며 실제 게임으로 발매되는 단계까지도 갔는데, 당시 인식으로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자는 게임전문가라는 인식이 있어, 이 수상자들이 게임 칼럼니스트들로 활동하는 예도 있었다. 이 중에서도 이문영 씨의 경우 다양한 기고와 함께 게임피아에서 울티마 온라인 여행기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 * 〈피씨파워진〉에 실렸던 기자들의 평론이나 칼럼들. 〈게임월드〉와 〈게임챔프〉가 시작한 가정용 게임 잡지들은 〈게임매거진〉, 〈게임라인〉 등 후속 잡지들이 출현하면서 좀 더 다양하게 바뀌었다. 모두 다른 잡지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노력했는데, 가능한 일본의 최신 정보를 가져오려고 노력한 부분과 함께 깊이 콘텐츠를 만들려는 노력이 함께 했다. 〈게임매거진〉의 경우는 TRPG를 국내에 소개하기 시작했으며 〈게임라인〉은 좀 더 자신의 색이 강한 콘텐츠가 강점이었다. 이중 게임라인에서 연재했던 'B급 게임의 심오한 세계'는 게임에 대해 좀 더 깊게 접근하면서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 〈게임라인〉에 실린 B급 게임의 심오한 세계 코너. 게임잡지의 인기가 좋다 보니 그동안 〈게임채널〉이나 〈PC챔프〉에서 기사 협약을 통해 단신으로만 소개되던 〈컴퓨터게이밍월드〉를 〈마이크로소프트웨어〉를 출간하던 잡지사인 정보시대에서 직접 라이선스를 가져와서 창간하는 예도 있었다. 다만 이러한 시도는 게임잡지들의 과다한 경쟁으로 인해 길게 가지는 못하였다. 〈게이머즈〉를 발행하던 게임문화는 일본의 잡지 〈게임비평〉의 라이선스를 얻어 일본의 잡지 내용에 한국에서 제작한 원고를 추가하여 같은 이름으로 〈게임비평〉을 격월로 출간하였다. 일본의 〈게임비평〉처럼 광고를 전혀 받지 않아 독립적인 편집을 보장한다는 기조는 격월로 좀 더 깊은 주제의 이야기들이 실렸으며, 국내 실정에 대한 분석, 평론이나 당시 〈악튜러스〉를 개발했던 김학규가 〈악튜러스〉의 개발 철학과 다루는 주제에 대해 기고를 하는 등 인상적인 시도가 많았으나, 3년 정도 이어지고 휴간하였다. * 〈게임비평〉 표지. 한국에서 90년대 게임 평론에 대한 시도의 한 축이 잡지라면, 다른 한 축은 PC통신일 것이다. PC통신이 등장하기 전에는 게이머들의 교류는 각 지방 소프트하우스를 중심으로 매우 작게 일어났으며, 잡지에 기고하던 필자들 역시 이렇다 할만한 교류가 있지 않았다. KETEL이 등장하고 개오동이 등장하고서야 게이머들이 장소를 초월해서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곳에서는 활발하게 이야기가 오갔는데, 이러한 PC통신 동호회의 특징이라면 게시판에 대한 강한 규칙이라 양식이나 내용을 구분할 수 있는 제목의 말머리 등을 강하게 통제하였다. 초반에는 게임의 공략 질문 친목 위주로 운영되었다. 처음엔 PC통신 서비스가 KETEL이 이름을 바꾼 하이텔뿐이었지만 이후 PC-Serve가 이름을 바꾼 천리안과 나우누리 등의 서비스가 늘어나고 게임을 다루는 동호회도 늘어났다. 이러한 동호회에서는 게임에 대한 소감, 평가에 대한 수요가 있어 한곳에 모아놓기 시작했으며 당시의 컴퓨터 자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제한된 게시판 숫자, 글, 자료실 용량으로 기존 게시판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90년대 후반에서는 동호회들마다 평론, 평가 게시판들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렇다 보니 게임의 홍보에 게임평론가란 호칭과 함께 이름과 하이텔 아이디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 하이텔 시뮬동의 소개/평론 게시판.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걸쳐 게임 평론에 대한 시도들은 게임전문지뿐만 아니라 그 밖에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초기 게임평론가로 활동하던 박병호는 1996년부터 5개월에 걸쳐 경향신문에 "다시 보는 컴퓨터 게임"을 매주 연재하였으며, 이는 알려진 종합지에 연재된 최초의 게임칼럼이다. 1999년에는 문화연구로 게임에 접근한 박상우가 〈씨네21〉에 게임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무가지로 시작한 잡지 〈페이퍼〉에서도 “박정선의 게임스테이션”이란 제목으로 게임칼럼이 연재되었다. 2000년대 초 게임의 중심이 PC게임에서 온라인게임으로 넘어가고,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종이 잡지의 영향력이 줄어가면서 2010년에 이르러선 대부분의 게임 잡지들이 폐간하였다. 이후 게임비평 공모상 등의 시도와 함께 저술 활동을 한 게임평론가들이 등장하고 사라져왔다. 가끔 왜 한국에 게임 평론이 뿌리내리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주변과 여러 이야기를 나눠왔다. 그중 한 가지는 시장이 게임 평론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90년대에서 2010년에 이르러서 게임 평론에 대한 요구가 없었을까. 90년대 당시의 독자 코너들을 살펴보면 미국의 게임 평론을 찬양하고 한국의 게임 평론은 수준이 낮으니 노력해야 한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각 게임잡지의 구인코너에서 요구하는 능력에 게임 평론은 빠지지 않으며, 1998년에 호서대학교에서 게임공학과가 개설되면서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게임평론가와 매니저 양성이 목표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국내 게임 잡지들이 사라진 이후에는 관에서 진행하는 행사나 지면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 역시 수요 덕분일 것이다. 2008년부터 진행된 게임비평 상이나 월간 〈게임문화〉지 같은 것은 기존의 게임잡지에서 시도되었던 평론의 외연을 넓히는 데 성공하였으나, 재정의 영향을 크게 받아 시행사나 주관사의 의지 때문에 지속되지 못하고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 게임잡지, PC통신의 게임 평론의 특징이라면 그 특징이 외국의 것을 흉내를 내거나, 자신만의 이론으로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초기의 게임잡지들에서는 게임 평론보다도 게임음악 평론들이 먼저 등장하며, 초기 게임 평론 역시 평론이란 호칭을 단 원고는 고전 게임 평론 등을 먼저 살펴볼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일반적으로 다른 매체의 비평에서 사용되는 접근들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게임들과의 비교들이 평가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평가를 작성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미성년자라는 점. 그리고 매체 중에서도 주로 게임을 접했다는 것 역시 당시 평론이 게임의 바깥을 다루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흐르면서 이러한 평론 경험을 했던 학생들이 성장하여 계속 게임 평론을 생산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엔 시장이 너무 척박하였다. 앞서 게임 비평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고는 하였으나, 그것이 금전적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수요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겠다. 〈게임챔프〉에서 “명작에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칼럼은 필자를 공개하지 않고 1년에 걸쳐 연재되었는데, 독자들에게 평론으로의 반응 역시 좋았다. 나중에 가서야 필자를 공개하였는데, 당시 막 창세기전을 출시한 소프트맥스의 최연규였다. 이처럼 게임평론가 등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게임개발자를 겸업하거나, 게임지 기자, 필자로 일하는 상황이었다. 게임 평론을 할 수 있는 게임전문가들이 대부분 게임업계 내에서 게임 지식이 있는 사람 외에는 힘든 상황이었고, 게임 평론의 원고료만으로는 충분한 수입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했다. 피씨게임잡지 등에서 소개되는 어떻게 하면 게임 필자가 될 수 있나요.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도. 필자들은 대부분 생업이 따로 있다고 언급하며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매우 힘들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박상우 역시 2000년 피씨피워진에서 실린 게임평론가란 직업에 대한 인터뷰에서 영화평론가도 먹고살기 힘든데, 게임으로 돈을 벌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게임평론가와 하드코어 게이머의 관계 역시 평론이 계속되기 힘든 환경이라 지목된다. 〈라스트 오브 어스 2〉가 평단과 하드코어 게이머의 골을 크게 부각해 이러한 거리감이 최근에 생겼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2000년 〈피씨파워진〉의 기자 칼럼에서 게임 평론 부진의 원인을 맹목적인 팬덤 문화로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역시 20년 전에도 존재하는 전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에 나왔던 것처럼 게임 평론에 대한 반응은 자신의 게임 지식을 자랑하는 형태로 흐르거나, 자신의 느낌과 다르다며 “겜알못”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임 평론을 지속하기 힘든 환경이다 보니 박병호의 경우는 1999년 미국 유학으로 더는 게임 평론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박상우 역시 일반 문화지와 게임전문지에서 집필활동을 하였으나 지면의 부족으로 지속되지 못하기도 했다. 평론가나 전문 필자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 중 상당수는 게임개발사로 직장을 옮기기도 했다. 비단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 이르러서도 지면과 인식의 부족으로 게임 평론 활동이 지속되는 경우는 찾기가 힘들다. 이렇다 보니 이러한 시도들이 대부분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게임평론가들은 대부분 앞선 평론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해외의 칼럼이나 다른 매체 평론의 방법론을 통해 혼자 고민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의 활동이 다른 평론가들에 영향을 주었는지 파악하기는 매우 힘들다. 각 평론가가 저술한 평론의 숫자 역시 많지 않다 보니 각자의 개성을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존재를 알기조차 쉽지 않다. 2000년 박상우가 게임평론가란 직업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게임은 산업이 아닌 문화"라고 이야기했다. 2021년에도 우리는 똑같은 이야기를 공허하게 외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21년 동안의 시도들이 쌓아나갈 수 있었다면 좀 덜 공허할 수 있었을까. 2000년의 평론에서 다루는 게임과 2021년에 평론을 다루는 게임은 다르다. 게임 평론에 대한 시도를 더 찾아보기 힘든 것은 2010년 이후의 게임들이 단발적인 작품이 아니라 대부분 서비스 형태의 게임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야기하기 더욱 힘들어진 영향도 존재할 것이다. 가정용 게임의 보급과 스팀 같은 서비스들이 일반적으로 늘어나면서 인디게임을 비롯한 싱글 플레이게임 운신의 폭이 늘어나, 이러한 게임에 대한 평론은 지금은 게임웹진 등에서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한국 게임에서 주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온라인게임에 대한 평론은 시도할 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커뮤니티 중심으로 재편된 게임웹진의 온라인게임 사이트들은 이제 공략조차 기자가 작성하지 않고 이용자가 작성하는 상황에 이르러 전문가가 더는 전문성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최근 5년간은 게임산업 바깥의 지면에서 게임평론들을 찾아보기 쉬워졌다. 케이블은 물론 공중파 라디오에서도 게임 전문 코너가 생겼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평론들에서 지금 까지의 한국 게임에서 있었던 평론의 영향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2030년에 연구자나 산업관계자들이 "한국에 게임 평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확언할 수 있을까. “옛날에 게임잡지들이 있었고, 게임문화재단의 〈게임문화〉나 〈게임제너레이션〉 같은 시도가 있었다.” 정도만 언급될 수도 있다. 그조차 언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게임비평 잡지나 게임문화재단의 〈게임문화〉는 현재는 볼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게임비평〉 등의 과거 게임을 다루던 잡지들은 이제 레트로 게임 아이템이 되어 수집가들에 의해 비싸게 거래되는 것이 보통이고, 게임문화재단의 〈게임문화〉는 분명히 당시에는 pdf로 배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구할 방법이 없다. 책이 아닌 인터넷의 자료들은 더욱더 쉽게 휘발된다. 한국엔 게임 비평에 대한 시도들이 있었다. 끊임없이 있었다. 모든 시도가 무의미하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쌓는 데는 실패했다. 어떻게든 부스러기를 모으다 보면 계속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느낌을 받는다. 게임 평론 문화를 탑처럼 이야기했다. 이것이 탑이고 재료를 쌓는 데 실패했다면 탑을 세우는 데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탑이 아니라 화학작용이라면 어떨까. 수많은 재료가 쌓여왔고 무언가 촉매로 인해 화학작용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게임제너레이션-GG〉가 그것이길 희망해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협업, 경쟁, 방송: MMO로부터 라이브 스트리밍과 온라인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21세기 북미 게임씬
만약 당신이 2000년 이후에 태어난 게임팬이라면 성장 과정에서 게임 매체를 비교적 쉽게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문화적(countercultural)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현 시점의 게임은 주류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으며, 플레이어들이 직접 제작한 게임 관련 콘텐츠의 양도 엄청나게 방대해져서 게임을 종료한 뒤에도 좋아하는 게임들을 눈과 귀로 계속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 아무리 마이너한 게임일지라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거의 무한히 느껴질 지경이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MMORPG, 온라인게임, 북미, 스트리밍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Game Researcher)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하이파이 러쉬: 2023년의 깜짝 락스타를 놓치지 마시라
기라성 같은 게임이 대단히 많았기에 게임 업계 종사자들은 으레 올해를 풍년이라고 부르곤 했다. 올해는 한국에서도 과 <데이브 더 다이버>가 '쌍백만'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다.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두고 두 게임이 경쟁했던 일화는 훗날에도 오래 기억될 만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올해의 게임을 고르기 어렵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2023년. 리듬+액션 게임 <하이파이 러쉬>(Hi-Fi Rush) 또한 빠져서는 안 될 수작이다. < Back 하이파이 러쉬: 2023년의 깜짝 락스타를 놓치지 마시라 15 GG Vol. 23. 12. 10. 2023년은 풍년이었다. 기라성 같은 게임이 대단히 많았기에 게임 업계 종사자들은 으레 올해를 풍년이라고 부르곤 했다. 올해는 한국에서도 과 <데이브 더 다이버>가 '쌍백만'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다.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두고 두 게임이 경쟁했던 일화는 훗날에도 오래 기억될 만하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올해의 게임을 고르기 어렵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2023년. 리듬+액션 게임 <하이파이 러쉬>(Hi-Fi Rush) 또한 빠져서는 안 될 수작이다. <하이파이 러쉬>는 '디 이블 위딘' 시리즈와 <고스트와이어: 도쿄> 등을 내놓으며 호러 게임의 일가를 이룬 탱고 게임웍스가 만들고, 모회사 베데스다 소프트웍스가 유통한 게임이다. 그간 개발사의 이력과는 결을 달리 하는, 보여주지 않은 플랫포머가 가미된 3D 리듬 액션 게임이다. 2023년 1월 26일에 벼락 같이 출시되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 게임을 수식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따라오는 말은 바로 '벼락같은 출시'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1월 26일(한국 시간) '엑스박스 & 베데스다 개발자 다이렉트'라는 이름의 온라인 쇼케이스를 열었다. 엑스박스과 제니맥스가 한 몸이 되면서 덩치가 커진 이 쇼케이스는 이른바 '엑스박스' 진영의 퍼스트파티 게임들에 대한 정보가 발표되는 자리이다. 이곳에서 탱고 게임웍스는 "게임패스에서 바로 지금 <하이파이 러쉬>를 플레이할 수 있다"는 도발적인 홍보 전략을 날렸고, 실제로 발표와 함께 게임패스에는 <하이파이 러쉬>가 추가되었다. MS, 베데스다는 물론 개발사까지 이 게임의 정체에 대해서 철저히 감춰왔기 때문에 그 전까지 <하이파이 러쉬>의 존재를 알던 외부인은 아무도 없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현장 행사의 중량감이 줄어들며서 많은 개발사들이 온라인 쇼케이스나 론칭 트레일러, 온라인 유통망 페이지의 '찜하기' 등으로 자사 타이틀을 홍보해왔지만, 탱고 게임웍스는 '궁금하면 지금 가서 해보시라'는 놀라운 방법을 선택했다. 훗날 독일의 데브컴(devcom)과 한국의 지스타 컨퍼런스(GCON) 등에서 존 요하네스 디렉터가 술회한 바에 따르면, <하이파이 러쉬>는 회사에서도 소수 인원이 조용히 만들던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로 디렉터 자신이 기획, 스토리, 스크립트, 보스 디자인 등을 모두 책임지는 대신 프로젝트의 전권을 가져가는 형태로 개발되었다. 게임을 만들던 요하네스 디렉터와 개발진은 '이만하면 바로 선보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라는 판단을 내리고, 그 어떠한 사전 마케팅 없이 게임을 '벼락같이' 출시한 것이다. * 독일 쾰른에서 열린 데브컴에서 게임의 개발기를 소개한 존 요하나스 <하이파이 러쉬> 디렉터 (출처: 디스이즈게임) '게임을 지금 바로 해보라'는 도발적인 마케팅은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와 EA가 2019년 <에이펙스 레전드>를 내놓을 때도 펼쳐진 바 있다. 리스폰은 "전통적인 '타이탄폴' 후속작을 기대할 거라 예상했기에 게임을 비밀리에 출시하여 발표하자마자 바로 플레이할 수 있게 했다"며 "게임에 대한 예상 없이 직접 플레이해 보면 좋아하실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기습 출시의 배경을 밝혔다. 탱고 게임웍스도 이러한 종류의 "자신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속된 말로 게임이 '노잼'이었다면, <에이펙스 레전드>도 <하이파이 러쉬>도 별 다른 임팩트를 주지 못하고 사라졌을 터. 2019년의 <에이펙스 레전드>가 전에 없던 진보한 핑 시스템과 역할 구분을 통한 협동을 강조한 F2P 게임이었다면(그때 <배틀그라운드>는 유료였기 때문에 비교 우위가 있었다), 2023년의 <하이파이 러쉬>는 다음과 같은 강점이 있었기에 300만 명의 게이머를 매료시켰다. * 지난 8월 16일, 탱고 게임웍스는 <하이파이 러쉬>의 플레이어가 300만 명을 돌파했다고 소개했다. ⓐ 리듬게임과 스타일리시 액션의 조화: 게이머와 미디어가 이 게임을 높이 사는 가장 주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하이파이 러쉬>의 게임플레이는 매우 고도화되었다.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가 떠오르는 빠르고 화려한 스타일리시 액션을 음악의 비트에 정렬하면서 음악에 타이밍을 맞추는 액션을 선보였다. 리듬과 액션의 조화는 오랜 아이디어다. <젯 셋 라디오>(세가, 2000)에도 플레이어 캐릭터가 음악의 비트에 맞추어 도시를 달리며 그래피티를 그리는 모습이 나온다. 더 넓게는 모든 액션 게임은 어느 정도 리듬성을 띠는데, 게이머들은 패턴을 리듬으로 인식해 몬스터의 공격에 응수하곤 한다. 이른바 '소울'(다크소울) 류에도 플레이어들이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 '읏따읏따' 같은 리듬을 만들어 외우며 플레이하곤 한다. <하이파이 러쉬>는 한 발 더 나아가 게임의 거의 모든 요소를 음악에 조화시켰다. 차이의 움직임은 물론 맵의 조명, 조력자 808, 몬스터의 움직임까지 박자에 맞춰서 움직인다. 거의 모든 액션 파트에서, 챕터마다 보스마다 변화하는 BGM에 따라서 강력한 시청각(컨트롤러를 쓰면 촉각까지)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잘 설계된 레벨 디자인에 맞춰서 약 공격, 강 공격, 회피, 패링 등이 학습되고 진행에 따라서 게임이 요구하는 난도, 즉 음악의 빠르기와 복잡도 또한 올라간다. * 회피와 패링을 섞어 써야 하는 보스 페이즈. 역시 리듬에 따라 흘러간다. * 전반적으로 박자를 맞추는 재미가 있어서 ‘스타일리쉬’의 재미가 배가된다. 요하네스 디렉터는 강연에서 싱글 플레이 게임임에도 발생하는 필연적인 입력 지연 등의 문제로 플레이어의 액션을 게임 단에서 보정하는 '리듬 싱크로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설명한 적 있다. 그를 위해 음악을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뜯어서 분석하고, 거기에 몬스터와 오브젝트를 모두 조율한 가운데,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조금의 보정을 넣어주었다. 쾌도난마와 같은 직관적인 재미 속에는 잘 설계된 메커니즘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설령 리듬감이 좋지 않은 게이머라 하더라도 컨트롤러의 진동 반응이나 <크립토 오브 더 네크로댄서>에서 제공되는 것과 유사한 박자 노트의 도움을 받아 킥, 스네어, 심벌과 기타 연주를 즐길 수 있다. 심지어 리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클리어가 가능한 난이도가 있으니 박치라고 하더라도 도전할 가치가 충분하다. 게임에는 프로디지(The Prodigy)나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음악들이 수록됐다. 탱고 게임웍스가 만든 오리지널 BGM 또한 락에 대한 경의가 느껴지는 트랙들이 가득하다. 여담으로 필자는 아직도 <하이파이 러쉬>의 오피셜 사운드트랙을 즐겨 듣는다. https://youtu.be/f5H9S3JtBuo?si=JCfLG0StaSAF-8_w ⓑ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 연출: <하이파이 러쉬>의 모든 리듬+액션은 미국 카툰 풍의 그래픽 위에서 작동한다. 개발진의 셀 셰이딩(Cel Shading) 결과물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매끄럽고, 또 만화적이다. 색은 절제되지 않았지만 눈을 방해하지 않는다. 차이가 탐험하는 SF 월드 디자인 또한 탄성을 자아낸다. 보스를 처치할 때 나오는 '코믹스 장면'은 ‘내가 해결했어’ 같은 성취를 제공한다. 개인적인 평가를 조금 강하게 넣어 보자면, <하이파이 러쉬>의 컷씬을 그대로 잘라 붙이면 그대로 OTT에 실려도 될 정도이다. 필드에서 적을 찾을 때까지 플레이어는 맵 곳곳을 탐험하며 강화에 쓰일 아이템을 모으는데 이 파트 역시 즐길 거리로 꽉 차 있다. 역시 셀 셰이딩 처리가 된 로봇들이 돌아다니는 만화 같은 월드에서 주인공 차이는 레일을 타거나, 자석이 붙은 곳에 와이어를 발사하거나, 동료들을 소환해서 총을 쏘거나, 벽을 부수는 형태로 탐험을 이어 나간다. <하이파이 러쉬>는 3D 플랫포머 파트까지 촘촘하게 잘 구성됐다. * 만화적인 연출을 아낌 없이 넣었다 * 플랫포머 파트 역시 대단히 흥미롭다. * 눈이 번쩍 뜨이는 월드 연출. ⓒ 무난한 스토리라인과 유머 코드: 사실 <하이파이 러쉬>의 서사 구조가 대단히 독창적이지는 않다. 오른팔이 부러진 락스타 지망생 차이는 거대 기업 반델레이의 신체 개조 프로젝트에 참여해 로봇 팔을 얻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뮤직 플레이어가 가슴에 장착된다. 이어 이들 기업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덕 기업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차이는 동료들과 함께 반델레이의 간부들을 무찌르거나 회유하면서 정의로 한 발짝씩 나아간다. 'SF 세계에서 거대 기업에 맞선다'라는 설정은 클리셰의 영역에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무난한 설정은 오히려 게임플레이에 잘 맞아떨어진다. 아울러 이러한 스토리라인은 앞서 설명한 셀 셰이딩 연출과 어우러지며 플레이어로 하여금 카툰네트워크의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뿐 아니라 여기에는 <하이파이 러쉬>까지 유머 코드 튀지 않게 어우러지는데, 차이는 스토리 내내 시종일관 기행을 벌이며 웃음을 자아낸다. '로봇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직접 대포알이 되어 적진의 심장에 날아가는 차이는 세상 천진난만하다가도 결말부에서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진정한 락스타로 거듭난다. 이 성장담은 훈훈한 맛이 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나 <제노기어스>, <둠 이터널>의 패러디도 곳곳에 빛나고 있다. 귀여운 로봇 고양이는 어떤가? 차이의 조력자로 출연하는 고양이 808은 "엑스박스(진영)의 새로운 마스코트"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전까지 엑스박스의 마스코트는 마스터 치프(헤일로)나 마커스 피닉스(기어스 오브 워)처럼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강력한 이미지의 전투 요원 아니었던가! * 이른바 ‘죠죠러’라면 잔조 파트가 분명 즐거울 터 (출처: Kakuchopurei 유튜브) * 그렇다. 리듬 게임은 너무 어렵다. 하지만 <하이파이 러쉬>는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해도 노멀 엔딩이 가능하다. 정리하자면, 2023년 탱고 게임웍스와 베데스다, MS 엑스박스는 그 흔한 사전 마케팅이나 얼리 억세스 없이 유저와 평단의 찬사를 받는 리듬+액션 게임을 만들어 냈다. 훌륭한 카툰 랜더링과 유머는 덤이다. 아직도 <하이파이 러쉬>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했는가? 지금이라도 2023년의 깜짝 락스타를 놓치지 마시라. 유저들은 게임의 저렴한 가격 또한 <하이파이 러쉬>의 장점으로 꼽고 있다. 물론 엑스박스 게임패스 구독자라면 그냥 할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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