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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게임 리메이크에서 트리플 A를 고려하는 방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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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2. 10.

세간에서 말하는 트리플A 게임만의 매력은 뭘까? 아무래도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세대의 가장 앞선 기술을 다각도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포기하기 어려운 요소이다. 특히 게임 장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게임-문법은 이미 앞세대의 게임에서 대개 구현이 완성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트리플A 게임은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든 비주얼과 사운드라는 면에 방점을 찍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생산비 증가와 개발 기간의 장기화라는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선 ‘트리플A 포기론’까지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산업적 측면에서든 기술의 발전이라는 면에서든, 아니면 게임의 본질이라는 차원에서든 ‘트리플A’를 향한 게임계의 열정을 근본부터 부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트리플A 게임이 사라진 빈 공간을 ‘인디게임’으로 전부 채울 수도 없는 노릇아닌가. 그렇다면 ‘트리플A’ 사이 사이의 빈 공간을 직시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는 무엇을 떠올려야 할까? 물론 스퀘어에닉스처럼 다수의 B급 정도에 해당하는 게임을 연이어 출시하는 물량공세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다. 여기서 특별히 살펴볼만한 것은 이전 세대 게임의 리메이크 혹은 리마스터에 해당하는 움직임이다. 어떤 의미로든 이런 움직임은 ‘트리플A’ 외의 게임 생태계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 걸로 생각된다.


물론 주로 화제가 되는 리메이크 사례는 그 자체가 ‘트리플A’를 지향하는 경우다. 가령 〈파이널판타지 7 리메이크〉는 그럴듯한 그래픽과 음향 효과로 외형적인 면만 보자면 원작 고유의 느낌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트리플A 게임처럼 느껴진다. 앞서 ‘트리플A’의 난제로 언급한 개발 기간과 비용 문제는 에피소드를 쪼개 나눠 출시하는 걸로 어느 정도 해결했다. 어떻게 보면 어떤 종류의 무성의로 느낄 법도 한 일인데,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이런 불만을 진지하게 제기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잖아도 대작이었던 원작이 출시된지 거의 25년이 지나서 나온 리메이크인데다, 분할 출시 했음에도 독립적인 게임으로서 퀄리티가 크게 떨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시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리마스터와 리메이크를 모두 거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사례가 나오면서 〈파이널판타지 7 리메이크〉는 오히려 돋보이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런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리메이크의 효용은 뭘까? 하나의 트리플A급 게임을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기획하는 수고를 거치지 않고도 결과물에 있어서는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사실 흘러간 게임을 이런 저런 방식으로 리메이크 해온 것은 이전 세대에도 있었던 일이다. 가령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경우 패미컴판으로 출시됐던 1, 2, 3이 슈퍼패미컴과 게임보이 등의 플랫폼으로 리메이크 된 바 있다. 이런 사례를 세자면 끝이 없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원작과 리메이크작 출시 시점의 격차(〈드래곤 퀘스트 3〉의 경우 1988년과 1996년)가 비교적 크지 않다. 플랫폼의 세대로 따져도 그렇다. 따라서 새로운 유저층에게 경험해보지 못한 게임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효과보다는 원작을 이미 경험해본 사람들에게 새로운 플랫폼에서의 게임 경험을 제공하는 게 우선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런데 오늘날 전 세대 게임을 리메이크 혹은 리마스터해 출시한다는 것의 의미는 좀 다를 수 있다. 최근 출시된 〈페르소나 3〉와 4의 리마스터작들은 어떤가? 이 게임들의 원작은 각각 2006년과 2008년에 발매되었다. 리마스터판의 원본인 〈페르소나 3 포터블〉과 〈페르소나 4 골든〉이 각각 2009년과 2012년에 나왔다는 점을 고려해도 상당히 오래 전 일이다. 더군다나 〈페르소나 4 골든〉은 비운의 휴대용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 비타로 발매돼 판매량 자체에 한계가 있었다. 시리즈의 최신작인 페르소나 5가 대성공을 거두고 로얄이라는 딱지가 붙은 완전판이 추가 발매되기까지 하면서 〈페르소나〉 3, 4도 다시 빛을 볼 기회가 열렸다. 페르소나 5로 시리즈에 입문한 유저 상당수가 3과 4를 접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생기면서 리마스터판 발매 성과에 기대를 걸어볼만한 상황이 된 거다.


〈페르소나〉 3, 4, 5는 스토리상의 주제나 기술 발전에 따른 연출 등이 다를 뿐 기본적인 게임의 구조는 거의 같다.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과 교감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얻은 힘으로 더 강한 악마를 수집하고, 이 악마들을 이렇게 저렇게 합체시켜 더 강한 악마를 얻어가며 던전 공략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형식이다. 〈페르소나 5〉에 만족한 게이머라면 3과 4 역시 재미있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5를 해본 사람이라면 3의 상대적으로 음울한 마치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듯한 공간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4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골 마을의 일상을 실아가는 것은 즐거운 경험일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기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시리즈물을 큰 역량을 투입하지 않고 단지 리마스터해 출시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트리플A’의 등장까지 걸리는 기간을 버티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물론 기왕 하는 거면 잘 하는 게 좋다.’ 새로운 게임’으로 비춰질 수 있을 정도의 현대적 매력을 창출하면서 기성세대가 돼버린 게이머에게 ‘추억’으로 어필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게 관건이다. 최근 출시된 〈택틱스 오우거 리본〉은 이 과제에 도전하는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과거 슈퍼패미컴판으로 발매됐던 〈택틱스 오우거〉는 당시로서는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SRPG라고 부르는 장르의 한계에 도전한 게임이다. 사실 SRPG의 기본 문법은 초창기 〈파이어 엠블렘〉이나 〈랑그릿사〉 시절에 이미 완성돼있었다. 〈택틱스 오우거〉는 여기에 장비의 무게에 따른 수치를 턴 순서에 반영한다거나 지형의 성격 뿐만이 아닌 높낮이 심지어 부여된 원소 속성까지 변수로 계산하는 하드코어한 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높은 데서 화살로 공격하면 중력의 영향으로 데미지가 늘어난다는 점을 이용하는 전략 등이 가능했던 거다.


이러한 룰이 전략전술의 깊이를 더했다면, 나름 심오한 갈등구도를 다루는 스토리라인은 이 룰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만 하는 당위를 부여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민족 갈등과 이를 이용하는 외세의 개입, 거기에 대응하며 현실에 휩쓸려 가는 주인공이 겪는 도덕적 내면 갈등은 정치적 현실을 반영한 판타지 소설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시나리오의 주요 분기가 주인공의 도덕적 결단을 통해 갈리게 한 장치도 의미심장하다.  나는 목표 달성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며 손에 피를 묻힐 각오를 할 수 있는가? 혹은 그러한 일에 관여한 사람들과 같은 목표 아래 타협할 수 있는가? 타협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고고한 이상을 지키기 위해 나라의 모든 민족을 적으로 돌리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런 질문에 답을 하면서 앞서의 복잡한 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현실의 전투를 해나가야 한다. 이런 고뇌는 블럭처럼 단순화 된 세계의 SD화 된 귀여운 캐릭터를 통해 표현되지만, 역설적으로 이를 통해 이거야 말로 전쟁 그 자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황산벌〉에서 전장의 스펙타클을 추구하기 보다는 바둑돌이나 장기말로 비유한듯한 병사들의 움직임을 통해 오히려 전쟁의 잔혹함을 강조한 것과 비슷한 효과이다.


만일 이 게임을 앞서 〈파이널 판타지 7〉 처럼 ‘트리플A’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리메이크하기로 했다면 같은 느낌을 주기 어려웠을 거다. 상징화된 그래픽이라는 장치를 제거함으로써 복잡한 전투룰을 단순화 하거나 완전히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복잡을 넘어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전투 시스템 일부는 이번에 수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과거 슈퍼패미컴 혹은 PSP 리메이크판을 경험했던 올드 게이머라면 ‘트리플A’가 된 〈택틱스 오우거〉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다. 이 덕에 이 게임은 슈퍼패미컴 시절 그래픽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게 ‘트리플A’에 익숙한 신규 유저들에게는 장벽으로 다가온다. 복잡한룰 덕에 지나치게 느린 게임의 템포도 요즘 사람들이 적응하기에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성의가 없는 리메이크를 한 것은 아니다. 배경음악 전체를 오케스트라 실연으로 다시 녹음했고 콘솔판의 경우 섬세한 콘트롤러 진동을 통해 타격감과 날씨의 변화 등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성공을 거두기엔 어려운 조합이 아닐까 했는데, 애초 비관했던 것보다는 제법 팔린 모양이다. 올드 게이머의 입장에서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택틱스 오우거〉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여 놓으면서 게임 산업이나 플랫폼의 변화, 소비자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리메이크나 리마스터가 어떤 돌파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가 반복되고 있다는 어떤 착각 때문이다. 〈택틱스 오우거〉가 다루고 있는 독립전쟁과 이를 이용하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몰두하는 제국, 여기에 기만적으로 이용당하는 민족 간 갈등이라는 소재는 냉전 구도가 붕괴되고 양쪽으로 뭉쳐있던 세계가 흩어지면서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맞닥뜨리게 된 현실의 모사였다. 우리는 이게 이제는 과거가 되었다고 한동안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또다시 신냉전을 말하고, 이빨 빠진 호랑이였던 제국은 다시 깨어나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주변국들은 자원 수급과 전쟁이 미치는 경제적 영향을 따지면서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남는 장사가 될지 셈하는데 분주하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침공에 맞서 똘똘 뭉쳐 싸우고 있지만, 거기에도 내부의 정치라는 것이 있기에 전쟁이 마무리되는 어떤 시점에선 자기들끼리의 정치적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런 현실은 우크라이나의 것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평에 따르면 세계는 더욱 더 격렬하게 ‘헤어질 결심’을 거듭해가는 중이다. 어디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다.


모든 매체와 예술 작품이 그렇듯(〈슬램덩크〉는 왜 이 시기에 다시 등장했는가?) 게임도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 어떤 방식으로든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세계가 반복된다면 게임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트리플A’가 앞으로 나아가는 세계에 발맞추는 게임의 모습이라면, 리메이크 혹은 리마스터는 과거가 끝없이 변주되는 세계에 대한 게임의 응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는 것은 무엇을 누가 리메이크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아마도 이 선택에서도 새로운 시대정신은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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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가)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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