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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시대 JRPG의 얼굴들 – 야쿠자, 왕자, 그리고 이방인

    <33원정대>는 두 현실 사이에 중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둘 중 하나의 편을 택해야 하며, 선택은 곧 다른 하나의 세계와 가능성을 돌이킬 수 없이 폐기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각자에게 할당된 엔딩 이후 캔버스 속 세계의 운명은 정리되어 치워지고, 주인공들에게서 이전의 모험을 반복하거나 지속할 동기나 가능성은 사라진다. < Back 동시대 JRPG의 얼굴들 – 야쿠자, 왕자, 그리고 이방인 25 GG Vol. 25. 8. 10. 파이널 판타지 XV의 개발 총괄 하지메 타바타와 샌드폴 인터랙티브의 게임 <클레르 옵스퀴르 : 33원정대(이하 33원정대)>의 감독 기욤 브로체의 대담에서, 타바타는 <33원정대>를 "일본인의 입맛에 맞춘 프랑스 식사"로 비유한다. 기욤 브로체 역시 <33원정대>가 JRPG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그에 고유한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음을 여러 번 밝힌다. JRPG가 일본 롤플레잉 게임(Japanese Role-playing Game)의 약어임을 떠올리면, 프랑스 JRPG란 표현은 형용모순처럼 들리기도 한다. [1] 하지만 JRPG는 공간적이고 지리적인 분화를 암시하면서도 한 세대의 유년기 게임 경험을 함축하는 장르로서 종종 호소력을 갖기 때문에 반드시 일본에서 생산될 필요는 없다고 자주 주장된다. J.D 맬린딘의 「카트리지 속의 유령: 향수와 JRPG 장르의 구축」은 게임 커뮤니티의 담화를 분석하며, "JRPG라는 이름의 “일본” 요소는 단순한 지리적 표시가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적 환경 속에서 정체성과 기억이 어떻게 협상되는지를 보여주는 요소로 기능"함을 보인다 [2 ]고 지적했다. 게임 유저들이 콘솔 기기로부터 PC로 게임 기기가 옮겨가는 기술적 전환을 경험하며, 사후적으로 콘솔 중심의 RPG 게임, 주로 일본 발의 시리즈가 주류를 이뤘던 시대의 게임을 JRPG로 프레이밍했다. 그리고 이러한 프레이밍과 협상, 항목화의 절차를 추동하는 정서적 축은 노스탤지어다. "이전에 나왔던 게임과 같은 느낌을 선사해야 한다"거나, "JRPG를 플레이하게 되면, 즉각적으로 그것이 JRPG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발화에 J.D 맬린딘은 주목한다. JRPG가 기술적으로 지체되고, 과거를 반복하고, 특정 세대의 향수에 호소하는 죽은 장르란 비판 역시 그것이 노스탤지어에 기대어 있다는 암묵적인 합의에서 출발하지 않던가? 동시에 저자는 플레이어들이 오로지 새롭고 참신한 감정을 얻기 위해서만 게임을 한다는 전제를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으로 의심하며 어쩌면 "같은 느낌"을 반복하는 것, 과거의 게임에서 느꼈다고 생각한 감정을 다시 얻기 위해 JRPG를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제언한다. JRPG라는 장르명을 사용하는 게임 커뮤니티 언중의 담화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카트리지 속의 유령: 향수와 JRPG 장르의 구축」은 이 반복되는 "같은 느낌"을 구성하는 반복의 구조를 깊이 다루지는 않는다. 물론 우리는 '왕도'라 일컬어지는 일직선적인 내러티브, 홀로 나아가기 보다 동료 및 파티와의 우정을 쌓아가며 강해지는 주인공, 각자 역할이 분할된 3-4인 파티 단위의 턴제 전투, 시네마틱 컷신의 삽입을 흔히 그 "느낌"의 근거로 떠올릴 수 있다. 위의 대담에서 <폴아웃> 같은 영미권의 고전 RPG와 비교하며, 기욤 브로체는 일상성을 함축한 대화, 진지함과의 적절한 거리, 마치 연속적인 컷신처럼 구성되는 턴제 전투를 JRPG의 특징으로 꼽기도 한다. 반복되어야 할 "같은 느낌"이란 일관성을 배제하고 이야기될 수 없을 터, 이 일관성을 영이의 『게임 코러스』는 ‘일관된 목소리,’ ‘믿을 수 있는 목소리’임을 약속하며 디오니소스적 근원과의 합일로 초대하는 UI의 역할과 연결한다. [3] 특징적인 UI의 반복적 배치는 일관성의 경험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과거의 순간과 우연적으로 결부되어 버리며 어떠한 시간적인 반복의 느낌을 자아낸다. 물론 어떤 장르가 되었든 그 애호가들에게는 향수로 가득한 반복과 재확인의 열망이 있을 터다. JRPG는 그 일관성의 약속이 더 강력한 구속력을, 자주 퇴행적이고 관습적이란 오명을 쓰는 그러한 구속력을 띄고 나타나는 듯 보인다. 2. 위의 논의를 바탕으로, 나는 <33원정대>를 비롯한 최근의 JRPG, 혹은 JRPG의 영향을 받은 게임들이 JRPG 특유의 "느낌"을 반복하려는 주인공들을 등장시키고 있음에 주목하려 한다. 마치 플레이어블 캐릭터(PC) 혹은 주인공이 JRPG 플레이어가 지닌 노스탤지어를 공유하거나 이해하는 양, 그들의 이야기는 게임적 환상의 반복 혹은 연장을 향한 소망으로 얼룩져 있곤 한다. JRPG를 재생산하고 반복하려는 소망을 품은 캐릭터를 내세움으로써, 한 게임이 여전히 JRPG가 되어야 할 필연성이 부연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용과 같이 7의 스팀 소개 이미지 가령 가장 노골적인 예시로, <용과 같이 7>의 주인공 이치반을 살펴보자. 본래 실시간 격투 게임의 동사들을 더 많이 빌려 오던 <용과 같이> 시리즈는 <용과 같이 7>에서 JRPG의 특징으로 꼽히곤 하는 턴제 전투로 전환하며 매너리즘을 쇄신하려 시도한다. <용과 같이 7>의 주인공 이치반은 타인의 죗값을 대신 치르러 십 수년의 청춘을 감방에서 보내며 세속 사회와 오랜 세월 단절된 인물이다. 장래 희망이 용사였다고 천진난만하게 밝히는 그는 어릴 적 플레이했던 <드래곤 퀘스트>의 세계관에 여전히 몰두해 있다. 아니, 몰두하기를 넘어서 이치반의 세계는 곧 전 야쿠자와 한구레와 양아치들이 몬스터 대신 들끓는 요코하마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드래곤 퀘스트와 다름이 없다. 실시간 격투 위주의 샌드박스 게임이었던 용과 같이 시리즈가 턴제 RPG로 전환하는 개연성은 주인공 이치반의 시대 착오적인 환상을 경유하여 설명된다. 커뮤니티 기능과 소위 '레벨업 노가다'를 가능케 하는 던전, 캐릭터의 '직업'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새로이 시리즈에 출현한다. 이치반과 친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으로는 도적, 마법사, 검사 대신 노숙자, 프리터, 캬바걸, 호스트가 있다. 명랑 만화의 주인공처럼 지칠 줄 모르는 이치반은 거의 미치광이에 가까운 낙관과 의협심을 유지하며, 밑바닥 출신 동료들로 이뤄진 파티와 우정을 뽐내는 필살기를 써가며 용사의 역경을 돌파해 간다. 폭도법으로 몰락하고 변이한 야쿠자 세계와 동시대 일본의 도시 생태는 그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게임적인 구조, JRPG의 장르적인 느낌으로써 여과되고, 재해석된다. 한편 <메타포: 리판타지오>의 주인공은 애초부터 모험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서 출발한 존재다. 왕의 핏줄을 이어받았지만 핍박 받는 소수종족으로서 무력하게 숨어 지내야 했던 왕자는 어떠한 종족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그린 서적을 탐독하곤 했다. 그러한 세계를 정말로 만들기 위해 동료들과 힘을 합치는 모험, 그 모험을 능히 해낼 수 있는 강인함에 대한 소망이 투사되어 만들어진 왕자의 분신이 곧 <메타포>의 주인공이다. 왕자의 분신이면서 꿈 속의 존재인 그는 익명의 인물로 출발하지만, 유토피아를 현실로 번안하려는 용사의 여정을 따라가 온갖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그들의 연대 속에서 되고 싶었던 존재가 되고 만다. 최종 보스는 특이하게도 우리가 익히 아는 현대 일본이 진짜 현실 세계이며 그들의 판타지 세계는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주인공이 최종 보스의 설득에 넘어가 버리면 평소의 ‘FANTASY IS DEAD’란 게임 오버 메시지의 변주로 ‘FANTASY IS ONLY FICTION’이란 문구가 뜬다. 게임 오버 메시지를 통해 <메타포>는 환상을 "단지 픽션"에 머물지 않게 하는 어떤 힘을 믿어야 함을 역설한다. 여기서 장르는 기능적 UI로 설명되고 규명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타인과 연결되는 방법론적 틀을 제시한다. 최근의 성공적인 JRPG 풍 타이틀이 내세우는 주인공들은 ‘이’ 현실이 가능한 현실의 전부라는 식의 현실주의와 대립각을 세우고, 현실주의를 타파하는 연대로 향해 가는 과정에서 JRPG의 서사 구조를 긍정적인 자기 설명의 형태로 사용한다. 삶과 예술의 영역을 가리지 않는 정동적 기대의 공간으로 규정되는 로렌 벌렌트의 '장르' 개념을 빌리자면, 허구적 인물에게 있어 JRPG의 세계관이 현실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하나의 장르로 출현하는 것이다. 3. <33원정대> 1막의 파티원들 <33원정대>의 접근법은 위의 게임들과 엇나가게 포개어진다는 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33원정대> 역시 애착을 투여한 환상을 반복하려는 소망이 캐릭터의 내러티브의 차원에서 표현한다. 그런데 위의 두 게임과 달리, <33원정대>에선 그 소망이 명명백백히 식별되는 원톱 주인공에게 덧씌워진 소망이 아니다. <33원정대>에서 플레이어가 조작하게 되는 '아바타'와 주인공의 일치와 불일치, 교체와 혼선이 이뤄지는 기제를 먼저 짚고자 한다. 메인 플레이 내에서, 플레이어는 아무 파티원이나 골라잡아 파티의 대표자로 조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야영지와 같이 휴식과 일상적 대화가 이뤄지는 장소에선 하나의 캐릭터, 1막, 2막, 3막의 주인공으로 대두되는 캐릭터만을 활용하여 대화해야 한다. JRPG의 문법에서 주인공은 플레이어에 의해 조작되고 움직일 수 있는 아바타로의 속성만이 아니라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인연의 중심 축으로서 성격을 띈다. 더불어, 성별화된 각본을 따르는 장르에 익숙한 기대에 따라서, 우리는 '히로인들'과의 관계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구스타브가 주인공이라고 쉬이 짐작한다. 주인공으로서 구스타브는 사랑하는 옛 연인을 고마주로 잃고 인생의 마지막 해인 33살을 맞아 33원정대에 합류한다. 수평선 너머에 웅크린 마녀 페인트리스는 매년 인류의 수명을 줄여서 쓰고, 그 수명을 넘긴 인간은 소멸하게 만든다. 이 소멸이 곧 '고마주'고, 고마주를 앞둔 사람들을 모아 원정대를 매해 꾸려왔으나 페인트리스의 토벌은 이뤄지지 않는다. 노인도 중년도 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는 역전된 고령화 도시 뤼미에르에서 인류는 느릿느릿 다가오는 멸망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수긍에 저항하려 한 33원정대는 페인트리스의 영역에 상륙하자마자 수수께끼의 노인과 괴물들에 의해 거진 몰살당한다. 그렇지만 그와 누이처럼 자란 마엘과 남아 있는 생존자 루네, 시엘이 구스타브와 다시 여정을 함께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페인트리스에게 차근차근 다가선다. 구스타브는 그 자신의 유약함을 떨쳐 내고 세계를 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구스타브는 다시금 원정대의 길을 막아선 노인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마엘 역시 죽게 되기 전에 낯선 남자가 막아선다. 어떤 논리로 그게 가능한지는 몰라도, 베르소는 구스타브의 인벤토리에 있던 아이템과 경험치까지 계승한다. 고마주가 시작되고 최초에 보내진 원정대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신원을 밝힌 베르소는 그를 포함한 옛 원정대원 중 일부가 마녀로부터 불멸을 얻었음을 밝힌다. 불멸을 고집하는 이들은 원정대로서 본분을 잊고 페인트리스를 지키려 한다. 그 자신은 이기적인 불멸에 회의를 느껴서 마녀를 토벌하려는 원정대원들에게 여러 번 협력해왔다. 적어도 베르소의 주장은 그러하다. 말그대로 플레이어 앞에 튀어나온 이방인인 베르소가 죽은 구스타브를 대신해 2막의 주인공 자리를 꿰찬다. 다만 시네마틱 컷신 상에서 중심에 놓이는 종류의 주인공은 2막의 베르소도 살해당한 1막의 구스타브도 아니다. 시네마틱 컷신은 플레이어의 조작을 배제한 채로, 급변하는 상황을 보여주거나 일방적인 내러티브의 강제력이 작동해야 하는 순간에 곧잘 끼어드는 게임적 장치다. 컷신이 초점을 맞추는 드라마는 원정대의 막내 마엘의 것이다. 고향인 뤼미에르에서 마음 둘 곳을 찾을 수 없어 어린 나이에 원정대에 합류한 마엘은 마녀와 괴물들의 땅에 와서 어떤 친숙함을 감지한다. 그 친숙함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고 한편으로 겁에 질리게 한다. 마엘과 분신처럼 닮아 있으나 얼굴 반쪽이 일그러진 소녀가 원한에 찬 유령처럼 그녀 주변을 떠돈다. 가족과 같던 구스타브 마저 잃은 상황에서, 마엘은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 세계를 멸망으로 몰고 가는 저주와 그녀가 관련되어 있다는 불길한 암시를 읽는다. 한편 베르소는 수수께끼와 불안으로 가득 찬 컷신 중심에 놓인 마엘을 곁눈질하며 침묵하는 얼굴로 나타난다. 베르소를 조작해야 하는 플레이어조차 그가 마엘에 대한 모종의 계획을 품고 진실을 감추며 술수를 부리는 모략가임을 짐작할 뿐, 어떤 꿍꿍이를 품었는지 실마리를 짚어낼 수 없다. 진실에 근접해 있으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를 택하는 인물을 조작하는 건 플레이어와 플레이어블 캐릭터 사이의 동일시를 원하는 쪽에선 곤혹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이야기의 중추는 마엘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읽히니 혼란은 배가된다. 뻐꾸기 새끼처럼 원정대에 비집고 들어온 베르소는 여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들과 관계를 쌓는 과정이 JRPG 상에서 '인연', '커뮤니티', '코옵'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온 시스템을 통해서 시작되고, 플레이어는 장르의 문법에 따라 관계망의 중심에 자리한 베르소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어색하게, 또 간신히 식별할 수 있게 된다. 인연 레벨을 올리는 과정에서, 베르소는 구스타브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마엘에게 그 대신 오빠 노릇을 해주려 들고, 시엘과 르네같은 성인 여성들과는 친구가 되어가는 단계인지 연인 이전 단계인지 모호한 대화를 나눈다. 시네마틱 컷신과 메인 플레이, 인연 레벨 세 가지 차원 상의 플레이는 밀도가 다르기 때문인지 헛도는 태엽 바퀴처럼 영 맞아떨어지지 않는 인상을 준다. 티격태격하거나 추궁하거나 농담하는 식의 평범한 대화의 일상성 마저도 한편으로 가장된 것으로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게 다가온다. 원정대는 여러 모로 믿기 어렵지만 적어도 페인트리스 공략법은 정통한 듯한 베르소의 안내를 따라간다. 정체가 규명되지 않은 마엘의 신비한 힘 덕분에 길을 막아서는 노인의 불사 역시 해제하고 죽일 수 있게 된다. 그들은 구스타브의 복수를 해내고 마침내 마녀 페인트리스까지 무찌르는데 성공한다. 루네와 시엘, 마엘은 그들이 이제 함께 늙어가는 미래를 손에 쥐었음을 감격하며, 그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고 기뻐한다. 대륙에 돌아간 그들을 사람들은 영웅으로 떠받들며 환대한다. 이 축제의 장에서 플레이어들은 비로소 그들의 주인공이 숨기고 있던 바를 비로소 알게 된다. 베르소는 페인트리스가 멸망을 부르는 게 아니라 멸망을 지연하고 인간들에게 경고하고 있음을 숨겼고, 마녀가 진정 멸망을 부르는 존재를 봉인 중이었단 걸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인류는 축제 속에서 멸망한다. 알리시아란 부제가 붙은 에필로그를 통해서 페인트리스와 마엘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그 비밀은 규모 면에서는 하잘 것 없게 느껴진다. 마엘은 '알리시아'로 자신을 부르며 신경질적으로 재촉하는 목소리에 깨어난다. 그녀가 깨어난 저택은 플레이어들에게 아주 친숙한 장소다. 던전 도처에 '어디로든 문'을 연상시키는 입구가 있어 원정대원들이 드나드는 셸터로 기능해 온 수수께끼의 저택과 동일한 외양이다. 플레이어는 이제 알리시아로 불리는 마엘만을 조작하는데, 알리시아는 화상으로 얼굴 반쪽이 얽어지고 성대 역시 불타 말 한 마디 제대로 내뱉을 수 없다. 화마에 휩싸였던 저택 곳곳은 보수공사 중이다. 장남 베르소는 알리시아를 구하고서 화재 속에서 죽었다. 어머니 알린은 실의에 빠졌고 세상 일을 등졌다. 알린은 유년 시절 아들이 그렸던 동화 풍의 캔버스에 들어가서, 현실과 달리 영원한 생을 누리는 가짜 도플갱어 가족을 그려내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계를 돌보며 페인트리스로서 머문다. 캔버스에의 접속이 페인터의 육체를 소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까지 잃을까 두려워하는 르누아르는 알린의 뒤를 따라가 캔버스 속 세계를 강제로 지워버리고자 한다. 두 페인터의 힘겨루기가 절멸을 향해 엄습해 오던 고마주의 정체다. 부부의 일은 가상 세계를 디자인하고 개발하거나 삭제하는 게임 디자인에 가까워 보이기에, 페인터의 비유는 한편으로 잘 맞아떨어지지 않게 들린다. 한편, 부부 싸움의 교착 상태에서 첫째 딸 클레아는 부모가 팽개치고 간 가문의 일과 화재를 일으킨 정적과의 싸움을 처리하고 있다. 클레아는 의기소침한 여동생을 돌보는 일을 내놓고 마뜩치 않아 하고, 어머니를 되찾아오려는 아버지의 일이나 도우라고 알리시아의 등을 떠민다. 하지만 페인터로서의 재능 혹은 힘이 부족했던 알리시아는 그대로 그려진 세계에 휩쓸려 어머니의 피조물 중 하나로 마엘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모두가 고마주로 소멸한 뒤, 마엘은 알리시아로서의 기억을 되찾는다. 베르소의 정체도 밝혀진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페인트리스가 그려낸 불멸의 도플갱어였다. 그는 비록 그려진 존재지만, 본래 베르소가 지닌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어머니를 현실로 돌려보내고 자신 또한 안식을 얻고자 원정대원들을 속이고 배신해왔다. 백 년 가까이 지속된 부부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한 르누아르는 아내가 다시 유혹에 빠지지 못하도록 그려진 세계와 그려진 베르소를 지워 없애려 하지만, 알리시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마엘은 페인터의 능력을 각성하고 아버지에게 저항한다. 그 능력으로 루네와 시엘을 되살리고, 아버지에 맞서 어머니 페인트리스의 자리를 계승하려는 게 3막의 줄거리다. 마엘은 본래 절도 있는 펜싱 스타일의 전투 애니메이션을 갖고 있었는데, 알리시아의 기억을 되찾고 나선 마녀 페인트리스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는 비현실적인 움직임이 특징적인 스킬을 주력으로 활약하게 된다. 마엘의 필살기 중 하나는 아예 이름이 “고마주”다. 캐릭터를 육성한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이 국면부터 플레이어들은 마엘 외의 캐릭터는 주력 공격보다는 보조로 활용하게 된다. 게임의 메인 콘텐츠인 전투 상에서 마엘은 이제 완벽한 주인공이다. 극적이고 시각적인 변신을 거친 마엘은 강력하고 힘겨웠던 적에게 천문학적인 데미지를 입히며 전투를 비교도 안 될 만큼 수월하게 바꿔놓는다. 강력한 미소녀 마법 검사를 조작하는 만족감은 한편으로 플레이어로 하여금 마엘의 캐릭터와 선택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마엘은 알리시아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마엘은 플레이어가 그러한 것처럼, 바로 이것을, 이 순간을, 승리와 진전을 반복하고 세계를 구하는 역할을 맡고 싶을 것이다. 마엘은 아버지를 설득할 때 마음을 정리하고 모두와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자신은 어머니와 다르며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깊은 내심으로는 캔버스 안에서 죽을 때까지 머무를 작정이다. 실상 막간의 기능에 가까웠던 에필로그에서, 소위 '현실' 세계의 알리시아에게 허락된 상호작용은 화마의 상흔이 곳곳에 새겨진 저택 내를 빙글빙글 오르내리면서 자신 때문에 가족의 평온이 불가역적으로 파괴되었음을 되새기는 독백을 묵언으로 되풀이하는 것뿐이다. 저택에서 유일하게 대화가 가능한 인물인 언니 클레아는 알리시아와 마주하는 게 성가시고 짜증스러운 티를 숨기지 않으며 자신은 동생을 위해 죽는 불가해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비아냥거린다. 마엘이 돌아가야 하는 삶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목격한 다음, 플레이어는 제작진이 공들인 게 분명한 마엘의 멋진 애니메이션으로 전투를 채우며 기이한 쾌감과 간극을 느낀다. 이 간극이 결국 마엘로 하여금 호소하게 만드는 것일 테다. 밖에서 그녀는 그저 간신히, 존재만 하고 있다고. 인연 레벨 올리기로 대표되는 JRPG 동료 시스템의 함의는 캐릭터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유대감에 대한 수량적 표현이며, 이러한 동료와의 상호작용을 게임적으로 장려하기 위하여 게임 플레이를 더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보상을 제공한다. 실제로 <33원정대> 역시 인연 레벨을 올림에 따라 동료가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필살기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 인연 맺기의 중심에 위치한 베르소는 '만렙'으로 수치화된 유대감과 상호 이해의 맥락 자체는 전혀 중요치 않았다는 듯이, 마지막에 이르러서 다시금 마엘, 시엘, 루네, 모두를 배신한다. 누구와 연인이 되거나 어떠한 선택지를 고르거나 인연을 어느 수치까지 달성하거나 따위의 조건 달성도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다. 동료들과 가장 내밀한 유대의 순간을 겪는다 한들, 그는 자신의 현실이 지속 불가능하고 애초에 존재해선 안 되는 현실임을, 고작 한 가족의 비극을 종식하기 위하여 모두가 희생되어야 함을 고집한다. 베르소는 이미 구스타브를 살릴 수 있었으나 죽도록 내버려둔 바 있는데, 구스타브의 주인공으로서 자리, 마엘 곁에서 모두의 신뢰를 얻고 페인트리스로 향하는 틀린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그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연은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자원으로 동원된다. 이 인연 시스템은 게임 플레이 내에서 언제나 자원으로 기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단지” 자원이었단 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JRPG의 인터페이스가 오랜 역사성과 완고함을 내포하고 있는 만큼, 그 기반이 시험 당하는 순간은 더욱 낯설고 이질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33원정대>는 어머니의 외연도 한계도 모르는 애도 하에서, 어른이 되기도 전에 늙어버린 자식들이 엇비슷한 운명을 공유하는 서로를 결국에 참지 못하는 이야기다. 마엘과 베르소의 마지막 대결은 가짜가 진짜를 변호하고, 진짜가 가짜를 변호하는 역설이기 보다 상호 양립할 수 없는 두 정서적 현실의 충돌이다. 전자는 마치 여생을 보낼 완벽한 요양원을 찾은 것처럼, 장르가 허락한 역할놀이를 반복하며 자신이 죽을 때까지 존재할 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기대하고, 후자는 연명치료의 중단을 외치는 대신 껍데기만 남은 역할 놀이의 반복이 종결되기를 원한다. 두 사람은 모두 최종장에서 비등하게 중심 서사를 이끄는 인물이지만, 각자 상이한 플레이 차원을 차지한 주인공으로서 비대칭적이다. 마엘의 플레이가 반복과 변주의 쾌,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을 무력하게 만드는 향락적 차원에 해당한다면, 베르소의 플레이는 관계의 관리와 비밀의 통제, 이야기 자체의 종결을 지향하는 통제적 차원에 해당한다. 이런 대조 속에서 <33원정대>는 JRPG를 반복하고자 하는 정서적 기대와 인물 내부의 이야기 및 전체적인 세계관 사이에 긴장을 유발한다. 플레이어는 최후의 순간에 베르소와 마엘 둘 중의 한 사람의 편을 들기를 택해야 한다. 베르소는 그가 가짜임을 실감케 하는 원본의 기억에 의해서, 마엘은 죄책감과 고독으로 인해서 자신이 연원한 곳에 편안히 소속될 수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종용하면서 모순적이게도 자신의 현실은 조용히 인생에서 사라져 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닮아 있지만 결코 상대가 소망하는 바를 용납치 못한다. <33원정대>는 결국 이전의 두 게임과 달리 ‘이’ 현실이 가능한 현실의 전부라는 식의 현실주의에 저항하는 이야기이기 보다는, 두 개의 현실주의 사이에 팽팽한 적대를 그리는 이야기다. <33원정대>는 두 현실 사이에 중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둘 중 하나의 편을 택해야 하며, 선택은 곧 다른 하나의 세계와 가능성을 돌이킬 수 없이 폐기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각자에게 할당된 엔딩 이후 캔버스 속 세계의 운명은 정리되어 치워지고, 주인공들에게서 이전의 모험을 반복하거나 지속할 동기나 가능성은 사라진다. 엔딩 직전으로 돌아가지만, 엔딩의 촉매인 최종 보스가 사라져 있는 결말 이후의 플레이는 플레이어들이 남은 콘텐츠를 마저 즐기라고 남겨둔 여지에 지나지 않는다. 다회차도 썩 내키지 않는다. 세계를 구하는 용사의 여정, 마녀의 손에서 아이들을 구출하는 사명과 함께 늙어가리라는 희망 모두 최초의 순간부터 불가능하단 걸 알면서 그 모든 시간을 다시 쏟을 수 있을까? 결국 <33원정대>는 한 번 엔딩을 보고 나선 게임 내에서 “같은 느낌”에의 재방문은 불가능하다. “같은 느낌”에 근접한 무언가를 느끼기도 어렵다. 본 게임 자체가 그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으로 게임 플레이를 전환해내고 있다고 봐야 할 지도 모르겠다. [1] https://news.denfaminicogamer.jp/interview/250415a/2 [2] Mallindine, J. D., 2016. Ghost in the Cartridge: Nostalgia and the Construction of the JRPG Genre. gamevironments 5, 80-103. Available at http://www.gamevironments.uni-bremen.de . [3] 영이, 게임 코러스, 워크룸프레스, 2025, 24-26. Tags: 프랑스게임, JRPG, 턴제, 애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분투형 게임과 전쟁: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

    이와 같은 현상은 지난 세기 걸프전 이후 더욱 가속화된 ‘전쟁의 게임화’에 관한 분석에서 거울상을 발견한다. 게임의 한 장면처럼 보도되는 폭격의 현장에서부터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병사 훈련, 그리고 드론을 동원한 전쟁에 이르기까지. 게임이 전쟁을 재현(mimesis)할 때, 전쟁은 게임을 모사(mimesis)한다. < Back 분투형 게임과 전쟁: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 25 GG Vol. 25. 8. 10. 블리자드 사(社)는 전쟁을 사랑했다 아니, 이름부터 ‘워’ 크래프트(Warcraft)였으니까. <워크래프트>는 한때는 게이머들에게 숭앙의 대상이었던 블리자드 사의 실시간 전략(Real-Time Strategy, RTS) 게임이자,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 인간과 오크 사이의 전쟁을 그린 <워크래프트> 친구 집에서 처음 접하고 머릿속에서 도무지 떠나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플레이하다가 밤을 새운 게 아니다. 머릿속에서 게임 플레이를 회상하고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하다가 불현듯 아침을 맞았다. 우주 전쟁, 그러니까 <스타크래프트(Starcraft)>가 출시되었을 때, 또 그랬다. 블리자드는 악마와도 싸운다. 액션 롤플레잉 게임 <디아블로(Diablo)>는 주인공이 겪는 고투의 후경에 성전(聖戰)을 배치한다. 한국의 올드 게이머들로서는 KOEI를 빠뜨릴 수 없다. KOEI의 <삼국지 2(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Ⅱ)>는 워크래프트보다도 먼저 심취했던 게임이었다. 삼국지가 소재인 게임에서 무얼 하겠는가? 전쟁이지. 조부모님 댁에 있는 삼촌의 컴퓨터에 설치해 두고, 몰래 밤새워 플레이하곤 했다. 몰래는 무슨 몰래. 연로한 분들의 이마에 주름을 늘게 하는, 앞날이 걱정되는 손자가 되었다. 심지어 ‘대항해시대 2’의 해전조차 좋았다. 그때는.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배틀필드(Battlefield)>, <메달 오브 아너(Medal of Honor)>, <월드 오브 탱크(World of Tanks)>, <월드 오브 워쉽(World of Warships)>,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Company of Heroes)>, <토탈 워(Total War)> 등등. 연극,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른 매체들도 전쟁과 전투를 소재로 삼는다. 그런데 게임계에는, 정말 많다. 왜 그렇게 전쟁을 재현하는 데 진심이냐고 게임 개발자들에게 묻는 건 아예 당위적이기까지 하다. 대체 게임과 전쟁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길래. 이런 마당에 전쟁을 재현하는 게임에 대한 윤리적, 정치적 분석이 게임 연구의 한 흐름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건 짝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와 같은 현상은 지난 세기 걸프전 이후 더욱 가속화된 ‘전쟁의 게임화’에 관한 분석에서 거울상을 발견한다. 게임의 한 장면처럼 보도되는 폭격의 현장에서부터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병사 훈련, 그리고 드론을 동원한 전쟁에 이르기까지. 게임이 전쟁을 재현(mimesis)할 때, 전쟁은 게임을 모사(mimesis)한다. * 게임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던 걸프 전쟁 당시 바그다드 공습 보도 화면 * 서로 거의 흡사한 실제 전투기에서의 폭격 화면과 게임 화면 그런데 정말 게임이 전쟁을 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쟁 역시 게임을 모사한다면, 분석은 게임을 전쟁의 재현물로 보는 것에 국한할 수 없다. 양자의 접점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접근을 통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를 향해 점근(漸近)한다. 게임과 전쟁이 집결하는 공간의 성격은 하나로 귀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곳은 싸우는 공간이다. 물론 조용한 전쟁이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싸움’의 범주 바깥에 자리한 게임들도 많다. 하지만 다툼, 쟁투, 분투, 고투가 게임과 전쟁 양쪽 모두에서 대주주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점에 있어서 게임과 전쟁을 일방적 관계가 아닌 상호-참조적 관계를 맺고 있다. 분투형 플레이와 목표의 지위 게임과 전쟁이 분기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은 그 싸움의 목표다. 전쟁의 목적이나 목표는, 당신이 이데올로기 비판을 수행하거나 배면의 진의를 의심하는 이가 아니라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명확하다. 모든 위정자는 그들의 전쟁의 목표와 이유를 다중에게 선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목표는 실질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게임에서는 그게 좀 어려운 경우가 있다. 친구와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를 함께 플레이한다고 해보자. 달뜬 얼굴로 내 캐릭터를 두들겨 패는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왜 이렇게까지 때리는 거야?”라고 묻는 것이다. 속 깊고 다정하며 사회적 지능 뛰어난 우리의 실제 친구는 내가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하고 장난스러운 위로와 함께 기분을 풀어주려 할 테지만, 반사실적 가정을 이어가 보자. * 대전 격투 게임의 플레이 과정은 정말 분투 그 자체다. 가상의 이 친구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래야 이기지.”라고 답할 것이다. 친구와 즐겁게 게임을 하다 패색이 짙다는 이유로 기분이 상한 우리는, 행위의 근본적 성격을 묻는 것으로 옹색함을 감출 수 있다. 친구에게 진지한 탐구자의 얼굴을 하고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이기려는 거야?”라고 묻도록 하자. 아니, 정말로, 그들은 왜 그렇게까지 할까? 격투 게임에서 승리하면 하늘에서 뭐라도 떨어지나? 뭔가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닐 텐데 내 친구는 대체 무엇을 위해 내 캐릭터를 그렇게 열심히 때릴까. 철학자 C. 티 응우옌 (C. Thi Nguyen)은, 게임 외적 보상이 관건이 아니라면, 그 목적이 둘로 나뉜다고 본다. 하나는 승리다. 승리하고 성취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며 그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내 친구는 나의 캐릭터를 두들겨 패고 나를 이겼다는 사실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다른 목적도 있다. 바로 ‘싸움 그 자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철학자 버나드 슈츠(Bernard Suits)는 그의 저서 The Grasshopper: Games, Life and Utopia 에서 게임 플레이를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자발적인 시도”로 정의한다. 골프를 생각해 보자. 골프 공을 홀에 넣는 것이 관건이라면 우리는 그냥 손으로 공을 들고 홀에 넣으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클럽이라는 비효율적인 도구를 사용해 온갖 규칙 속에서 공을 치려 애쓴다. 어째서일까? 슈츠에 따르면, 바로 그 ‘비효율성’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고투와 분투의 과정 자체가 게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목표 달성이라는 결과보다, 그 과정의 고군분투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때 장애물 너머에 있는 목표는 사실 무의미하다. 그것은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즐기기 위해 가정된 목표에 불과하다. 고투하는 그 과정을 위해 마련된 가상의 목표와 비효율적인 도구, 각종 규칙은 게임을 벗어나기만 하면 실제로는 불필요한 장애물이다. 그것은 고투 자체를 즐긴다는 목적에 의해서 의미와 필요를 획득한다. 성취, 보상, 승리보다는 그 싸우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과 의미의 원천이다. 응우옌은 이러한 슈츠의 게임 이론을 수용한다. 응우옌에 의하면, 유희를 위한 일시적 목표를 상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분투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은 게임에 존재하는 고유한 플레이 방식 중 하나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게임 플레이를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라고 응우옌은 명명한다. 분투형 플레이를 즐기는 게이머들은 승리에 뒤따르는 외적 보상이나 게임에서의 승리보다 분투, 고투, 싸움 그 자체를 즐긴다. 따라서 이제 우리의 친구는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다. “친구야, 내가 너를 그저 이겨 먹으려는 게 아니야. 승리라는 일시적 목표를 수용함으로써 너와 겨루는 과정 자체를 즐기려는 거야.” 게임과 전쟁의 분기(였던 것) 어색하게 문어체로 말하면서도 어딘가 포용력 있어 보이는 이 친구의 풍모와 달리, 응우옌의 이론은 모든 게임을 아우르는 포괄적, 일반적 설명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유독 고유하게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논할 뿐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목적, 목표, 성취, 결과보다는 과정과 수행 중심적 참여를 가능케 하는 매체적 특성에서 발생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게임이 이러한 매체로서 기능할 때 그것이 전쟁과 확실하게 분기한다는 점이다. 특히 이 목표의 차원에서 그러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 전쟁과 전투에선 실질적 목표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저 분투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주조된 일회적 목표 따위가 아니다. 저기 어딘가에 실제로 방공 포대가 존재하고 이라크의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이 존재하며 그를 호위하고 있는 적군이 존재한다. 그것이야말로 실질적이고 명확한 목표다. 그것들은 미군의 전쟁 수행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형편 좋게 마련된 도구가 아니다. 분투형 플레이를 가능케 하는 게임 내에 설정된 목표는, 전쟁의 그것과 명확하게 구별된다. 군인들에게 주어지는 실제 전쟁의 목표와 달리, 분투형 게임의 목표는 본질적으로 불필요한 것이자 언제든 폐기할 수 있는 것이며 일회적인 것이면서 가상의 것이다. 전쟁의 목표가 전쟁 중의 행위를 성립시키기 위해 마련된 도구가 아닌 것에 비하여, 분투형 게임의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 내의 행위성을 조형하기 위해 마련된 도구의 일환이다. 그렇기에 그 게임의 행위성을 버리는 순간, 분투를 즐기려는 ‘유희적 태도’를 버리는 순간, 게임의 목표는 의미를 상실한다. 양자의 차이는 목표를 달성하고 마주하는 순간 더욱 돌출한다. 분투형 게임의 경우, 목표의 달성은 유희의 종식을 의미한다. 분투형 플레이를 성립시키는 것에서 의미를 부여받았던 목표였기에, 분투형 플레이가 중단되는 순간 그 목표는 의미를 상실한다. 논리적 귀결일 뿐이다. 성취 지향적 플레이의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건 어떤 현재성이 아니라 지난 분투 과정을 곱씹을 시간이다. 달성되는 순간 그것은 투명해진다. *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씬 레드 라인’ 같은 영화는 서로의 목표물이 되는 병사들이 얼마나 적나라하고 구체적인 존재인지 보여준다. 전쟁에서 달성된 목표는 더 붉다. 화염의 붉음이든 선혈의 붉음이든, 전쟁에서 달성된 목표는 진하고 구체적인 감각적 결과물을 행위자의 눈과 손 앞에 차려 놓는다. 목표가 달성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접근한 이가 마주하는 결과물의 감각적 구체성은 전혀 가볍지 않다. 쉽게 윤리적 무게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그간의 분투 과정을 반추하고 곱씹을 여유 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가 초래한 결과물이 어떠한 것인지, 그것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이러한 결과일 것이라고 정말 인지하고 각오하고는 있었는지, 그 결과물은 빨갛고 무겁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물어온다. 그리고 이제 이 분기가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행위성의 정제, 예술, 그리고 정교한 야만 이러한 게임과 전쟁의 분기점은 현대의 전쟁이 게임의 면모를 닮아감에 따라 희미해진다. 이는 단순히 전쟁에서 수행되는 행위성이 게임에서의 그것과 유사하다든가, 아니면 유사한 인터페이스와 조작을 통해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행위가 수행된다는 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태는 목표의 추상화와 그로 인한 행위성의 부각에 있다. 응우옌은 그의 저서 『게임: 행위성의 예술』에서 게임을 Art of Agency, 즉 행위성의 예술이라고 명명한다. 게임에는 유희적 목표, 전-유희적 목표, 유희적 태도, 규칙, 불필요한 장애물 등이 다양하게 배치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게임에서 특정한 행위성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분투형 플레이는 바로 이 행위성을 경험하는 최적의 플레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은 이 행위성의 구현에서 미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행위성을 소재로 삼는 예술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게 응우옌의 주장이다. 게임이 목표와 성취로부터 해방되고 분투 행위에서 의의를 발견함으로써 그것은 행위성의 예술이 된다. 목표로부터 해방된 게임이 예술의 가능성을 획득하는 것에 비하여, 전쟁에서는 다른 양상이 관찰된다. 전쟁이 게임의 수행성을 닮아가는 것은 여러 방식으로 나타나지만, 그 행위성이 목표와 유리되는 것을 빠뜨릴 수 없다. 전투기 조종사는 목표 대상을 육안으로 관찰하지도 않은 채, 레이더를 보고 버튼을 눌러 미사일을 발사한다. 목표 대상의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드론 전쟁은 더욱 노골적이다. 드론 조종사는 게임 컨트롤러와 유사한 장비로 ‘스크린 속’ 목표를 제거한다. 자폭형 드론이 목표에 적중하는 순간, 공포와 고통에 비명을 질렀을 법한 적군 병사는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이러한 방식의 전쟁을 수행하는 자는 목표에 접근할 기회로부터 면제되거나, 또는 그것을 박탈당한다. 면제와 박탈 사이의 모호성 속에서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정밀 타격률’, ‘효율적 자원 운용’과 같은 데이터다. 즉, 그의 행위성에 대한 반추를 수치화하고 정돈한 것들이다. 그렇게 본디 구체적인 목표물들은 추상화된다. 그것은 모니터 안의 영상, 명멸하는 신호, 수치화된 데이터 등으로 추상화된다. 목표물이 추상화되는 곳에서 전쟁 수행자에게 더 분명하게 남는 것은 그의 행위성이다. 비로소 전쟁의 수행자는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분투와 전투에서 성립하는 행위성을 더욱 정교하게, 합리적으로 다듬어 간다. 그들은 마치 ‘분투형 플레이어’와 흡사한 조건에 놓이게 된다. 더 나아가, 이때 사상되는 것은 전쟁 목표물의 빨갛고, 무겁고, 뜨끈하고도 축축한 구체성이다. 죽음, 파괴, 트라우마는 스크린 속 데이터나 수리에 담기지 못하는 구체적이고 참혹한 현실이다. 그리고 앞서 지적했듯이 이러한 구체성은 전쟁 행위의 당사자에게서 여하한 윤리적 무게로 치환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면제인지 박탈인지 모를 공백의 정체가 확연해진다. 목표물과 거리가 멀어지는 현대의 전쟁 수행자는 이 피 튀기는 사후 정산서로부터 눈을 돌릴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선 목표를 달성하고 결과를 야기한 행위자로서의 윤리적 ‘책임’은 증발하고 행위성의 정교한 도야만이 남는다. 그것은 정교하고도 섬세한 야만이다. * 드론 공격을 성공시키고 환호하는 병사의 모습 분투형 게임과 전쟁: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 지금까지의 논의는 게임과 전쟁이 거울상의 관계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게임과 전쟁은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으로서 서로를 비춘다. 분투형 게임에서는 실제로는 무의미한, 무가치한 목표를 설정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처럼 일회적인 가장과 유희적 태도를 취한다. 이를 통해 분투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하거나 행위성을 조형한다. 목표가 일회적, 유희적 대상으로 왜소화되었기에 오히려 게임은 행위성의 예술적 가능성을 표현하는 매체가 될 수 있었다. 현대의 전쟁에서는, 무의미한 것이 유희적 태도를 통해 의미를 일시적으로 획득하는 것과 정반대의 사태가 벌어진다. 전장에 선 군인들은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척 가장하지 않는 것에 그칠 수 없다. 생사가 오고 가는 현장에서 그들의 목표를 진정으로 추구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한다. 목표를 달성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 역시 적나라한 구체성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전쟁에서 목표물은 굳이 접근하고 목격하고 손에 쥘 필요가 없는 것으로 유리되고 추상화된다. 그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거나 상관없게 되어버림으로써, 분투형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인들에게도 점차 분투와 행위성만이 남는다. ‘목표’와 ‘결과’와 ‘책임’이 휘발되어 가는 이러한 사태는, 예술적 가능성을 마련했던 분투형 게임에 대하여, 실로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Tags: 응우옌, 행위성, 전쟁, 예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철학연구자) 최건 철학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게임애호가 및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의, 강연, 연구, 저술, 번역 활동에 임해왔으며, 현재는 인하대 등에서 학생들과 사유를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 김갑환에서 도깨비까지 : 게임 속 한국의 코드는 누가 써왔는가

    이 태도를 고민함에 있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게임이 주로 미국과 일본 위주로 개발-발전해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게임 속의 한국이란, 한국 자신이 만들지 않은 이상은 대부분이 미국과 일본의 시선이게 마련이다. 또 하나는 시간적인 변천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의 경우, 거리가 먼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적거나 고증의 필요성이 적었던 것이 2010년대 이전이다. < Back 김갑환에서 도깨비까지 : 게임 속 한국의 코드는 누가 써왔는가 31 GG Vol. 26. 8. 10. 2020년, 인벤의 정재훈 기자는 “게임 속 ‘한국’을 보고 싶다” 는 칼럼 기사를 썼다. 이 칼럼은 한국의 요소가 게임에서 활용된다면 어떤 것이 가능할까를 질문하고 사유하는 마케팅적 내용이다. 그래서 칼럼의 핵심 질문은 이 부분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앞서 우리는 모른다. 세계가 한국 문화, 한국 역사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낄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닌자`는 팔리고, `사무라이`도 통한다. `삼국지`도 동아시아권에서 엄청나게 소비된다. 그런데 한국적 요소 중 세계에서 이렇게 통하는 게 하나라도 있던가?” 정재훈 기자 자신이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꼽은 필요 조건은 “코드와 완성도”이다. 완성도-만듦새는 엄밀히는 의미가 없는 지적일 수 있다. 날카로운 문화 코드를 찾아내어 반영했어도, 매력적으로 반영하지 않았거나 게임 디자인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영향력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심은 ‘코드’다. 중국의 쿵푸, 일본의 닌자/사무라이와 같은, 국가 문화에 부여되는 대표 이미지에 대한 고민이다. 정재훈 기자의 결론은, 무엇이 히트하여 대표 코드로 호명될지 알 수 없으니 이것저것 계속해서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완성도 높은 코드 구현이 다양하게 시도되다 보면 그 중에서 몇 가지는 한국의 대표 이미지로 자리잡을 것이다. 비단 게임에만 적용되지 않을 이 생각은 ‘한국을 보여주겠다’, 즉 1인칭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한국을 무엇으로 보는가’ 라는 타인 중심의 사고다. 자신을 규정할 권리는 타인에게도 있으므로, 그리고 마케팅에서는 그 타인이 중심이 되어야 하므로 옳은 방향이다. ‘Do you know...?’가 아닌 ‘How about this?’의 질문이다. 수용자의 해석에서부터 출발하므로 오해와 오독도 일단 긍정하며 출발하는 태도다. 이 태도를 고민함에 있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게임이 주로 미국과 일본 위주로 개발-발전해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게임 속의 한국이란, 한국 자신이 만들지 않은 이상은 대부분이 미국과 일본의 시선이게 마련이다. 또 하나는 시간적인 변천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의 경우, 거리가 먼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적거나 고증의 필요성이 적었던 것이 2010년대 이전이다. 고증이 필수 업무인 역사 게임에서의 한국은, 엄밀히 말하면 한국이 아니고 과거의 한국이기에 되도록 생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국성’의 표현으로서 한국을 쓴다거나, 한국을 표현할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투박한 형태로 표현하다가, 2010년을 전후하면서부터는 서서히 묘사에 구체성이 생기기 시작한다. 특히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신드롬 수준의 글로벌 유행을 타면서 촉발된 K-컬처의 전파가 기점이 된다. 일본은 이런 변곡점이 필요하지 않았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오해와 왜곡은 있을지언정, 오래 쌓인 교류의 역사가 있기에 그 정도는 다른 문화권에 비해 적었다. 외국 중에서 가장 한국을 친숙하게 여기는 일본이, 한국을 게임에서 다루면서 선택한 대표 코드는 태권도였다. 태권도 90년대에 아케이드 격투 게임의 붐이 일면서, 일본산 격투 게임에는 한국 시장을 노리는 겸 하여 들어가는 한국인 캐릭터가 있었다. 94년 ‘통쾌 간간 행진곡’의 이해권, 96년 ‘풍운 슈퍼 태그 배틀’의 김수일, 98년 ‘소울칼리버’의 성미나와 황성경이 등장했다. 당나라 대도술을 조선에서 이어받아 쓴다는 설정의 소울칼리버 캐릭터들은 홍윤성 등의 파생 캐릭터로 이어졌으나, 가장 큰 성공은 태권도 사범으로 등장한 92년 ‘아랑전설2’의 깁갑환이다. 태권도 한국의 상징, 김갑환 그리고 깁갑환은 수많은 파생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확장했다. 이후 아랑전설 시리즈와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에는, 아들인 김동환과 김재훈, 스승인 강일, 동문인 전훈과 이진주 등의 캐릭터가 깁갑환의 태권도 코드를 확장한 결과로서 등장했다. 여기에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에서 처음부터 깁갑환의 서브 캐릭터로 등장한 장거한과 최번개 역시 설정상으로는 깁갑환의 태권도 제자라는 연결점이 있으며, 아예 ‘풍운 태그 배틀’의 김수일 캐릭터도 이 계보로 흡수되었다. 태권도 코드는 철권 시리즈의 백두산과 화랑 두 캐릭터에도 구현되었고,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의 한주리로도 이어졌다. 다만 한주리의 경우에는 태권도 코드만이 다른 캐릭터와의 공통점일 뿐, 다른 설정은 철저하게 한국 태권도 캐릭터의 클리셰를 비켜간 악역 캐릭터여서 전형성은 적다. 장르적으로 김갑환의 계보에 속하는 백두산과 화랑 ‘한국인 여성’이라는 것만 결정된 상태에서는 김연아 이미지도 고려되었으나 거미 테마의 태권도 악녀라는 컨셉으로 결정된, 한주리 하지만 깁갑환, 화랑, 한주리가 등장하는 스테이지의 배경은 일본인이 인식한 한국의 대표 공간이 엿보인다. 소울칼리버와 같이 역사적 과거 시점의 게임에서는 스테이지로 사찰과 같은 전근대 건물의 공간이 나오는데, 이 건축 코드가 현대 시점의 게임에서도 주로 사용되었다. ‘소울칼리버 2’에서의 성미나 스테이지 ‘킹 오브 파이터즈 96’에서 김갑환과 한국팀의 스테이지. 김갑환의 경우, 아랑전설에서는 숭례문, 김갑환의 도장 등이 스테이지로 나왔다. ‘철권 3’에서의 화랑 스테이지. 백두산과 화랑은 대부분 이런 전근대 건물을 스테이지로 썼다.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에서의 한주리 스테이지. 사찰 근처의 장터다. 전근대 건축물의 고풍스러움은 일본 제작사 입장에서는 익숙하면서 약간 다른 느낌, 즉 ‘어느 정도의 친근함’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혹은 나아가 동아시아에서는 그런 느낌이겠지만, 비 동아시아 권역에서는 매우 이국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인데, 그런 경우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사용법에서 볼 수 있다. 아제로스의 수많은 종족이 이룩한 다양한 문화를 구현하기 위해 제작사 블리자드는 현실 세계의 각종 문명에서 디자인을 가져왔는데, 한국의 건축은 나이트 엘프의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참조된 대상 중 하나다. 시작 지역에서 대도시 다르나서스로 들어가는 성문은 남대문을 그대로 가져왔으며, 나이트 엘프의 건축물 중에는 석가탑과 똑같은 구조물이 있으며, 몇몇 건물은 전작인 ‘워크래프트 3’에서의 디자인과 약간 달라지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한국식 처마를 활용했다. 다르나서스의 성문 군대 고풍스러운 옛 건물을 배경으로 태권도를 수련하는 이미지만으로는 외부에서의 한국이 구성되지 않는다. 현재의 한국을 이루는 요소 중에는 휴전 국가, 그리고 징병제가 있다. 이 요소는 일본의 게임 제작자들에게 일종의 판타지로 작용한 것인가 싶다. 철권 시리즈의 화랑은 3편 이후 영장이 나와 입대를 했고, 4편 직전에 탈영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러스트를 보면 병사 계급인데 권총을 쓰고, 실제 무력 사용 작전에 투입되고, 탈영한 화랑을 잡기 위해 완전무장을 한 병력들이 투입되는 등 현실과는 아득한 거리에 있는 묘사가 나온다. 특수부대는 부사관 위주이고 보통 징집병이 가지 않으며, 저 복장은 대체 무엇이며 등등의 의구심이 든다. 비단 일본만 한국군 요소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다. 2014년, 김상민은 연구 「미국 문화에 나타난 한국이미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디지털 게임을 중심으로」에서 여러 미국산 전쟁 게임에 등장한 한국군 요소를 들여다봤다. 소련이 사라진 후 주적의 자리에 올릴 여러 국가 중 하나로 북한이 선택되었고, 그리하여 한국군 혹은 한국군과 연관 있는 요소가 묘사되는 경우들이다. 대부분은 중요한 이해의 대상이 된다기보다는 유닛의 일종으로서 기능한다. 김상민, 「미국 문화에 나타난 한국이미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디지털 게임을 중심으로」, 인문과학연구논총 35권, 인문과학연구소, 2014. 04년 ‘고스트 리콘 2’의 주적은 쿠데타를 일으킨 북한 내 강경파 군부를 제거하기 위해 미군이 침투하는 내용이다. 05년 ‘스플린터 셀: 혼돈 이론’은 같은 전쟁, 즉 2차 한국 전쟁을 다룬다. 그래서 서울과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의 도시가 스테이지로 주어지는데, 북한과 북한군의 묘사는 중국풍이 많이 느껴지고, 스토리상 남북한의 전쟁을 일본의 한 극우 관료가 이간책으로 조장했다는 내용은 오히려 남북한을 서사의 중심에서 탈락시켰다. 현수막과 간판에 적힌 어색한 한국어 단어는 악명이 높다. 07년 ‘로그 워리어’는 원작 소설의 베트남을 북한으로 억지로 바꿨고, 북한의 미국 침공을 다룬 11년의 ‘홈프론트’는 발전된 몰이해를 보여줬다. ‘홈프론트’의 북한은 냉전 시대의 소련을 대체하는 역할이고, 대한민국은 북한의 팽창 정책에 희생당하는 역할이어서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홈프론트의 최초 기획은 중국이 북한, 나아가 남한까지 손에 넣고 일본과 호주를 넘어 미국까지 도달하였기에, 향토 방어(homefront)에 나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배급사의 우려에 이를 북한으로 바꾸는 바람에 핍진성을 하나도 획득하지 못한 게임이 되어버렸다. 중국을 억지로 북한으로 바꾸다 보니 적군의 무기 체계에 관한 고증은 물론이고, 통일을 이룩하고 정복전쟁에 나선 북한의 정식 국호 등의 디테일한 설정에 불명확한 구멍이 많다. 몰이해의 이유 중에는 가상 전장으로 쓰기 좋기 때문에 그 역할만 하면 된다는 식의 납작한 인식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몰이해의 이면에는 역으로 한국군의 전투력에 대해, 마치 화랑의 군 복무 내용과 같이 고평가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11년의 ‘소콤 4’에는 한국군의 707 부대원들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소콤 4’의 707 특임대 소속, 박윤희. 내란을 겪은 후의 한국에서 707 부대는 조금 다르게 다가오지만, 일단 한국군의 유력 특수부대로의 위상이 보이는 캐릭터다. 유능한 군인으로서의 한국군 이미지는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에서는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707 부대원은 물론이고, 12년의 ‘메달 오브 아너: 워파이터’에서 기용할 수 있는 한국군 UDT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는 한국군이 은근히 등장하지 않고, 14년의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에서 주요 적군으로 북한군이 등장하는 정도였다가, 26년 10월에 출시 예정인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4’에서 2차 한국 전쟁을 다루면서 한국군은 물론이고 한국 도시의 거리가 상당한 고증 수준으로 등장한다. 모던 워페어4는 굉장히 오랜만에 등장한 한국군 관련 전쟁 게임이라는 특징 외에도, 캐릭터 모델링 역시 인종 특성을 꽤 반영하여, 비 한국인 인종 인물과 확연히 구분이 된다. 이는 몰이해에 기반했거나 몰이해의 흔적이 보이는, 장기판과 장기말 정도로 인식되던 이전의 한국군 등장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다. 상당한 핍진성을 가진 간판이 눈에 띈다. 어쩌면 ‘오버워치’의 D.Va , 송하나 또한 한국군 계열의 캐릭터로 볼 수 있겠다. 메카닉 부대가 창설되고, 전투에서 메카닉 장비를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고, 그래서 메카닉 전투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낸 프로게이머를 징집해 군인으로 삼았다는 설정에는 분명 그런 흔적이 있다. 그리고 동시에 송하나의 캐릭터는 또 다른 한국의 코드, 게임과 IT를 비롯한 첨단성을 보여준다. 군인 신분이라는 설정으로 군대 요소를, 프로 게이머 출신과 메카닉 파일럿이라는 보직으로 첨단성 요소를 띄는 송하나 D.Va . 사회에서는 연예인처럼 활동한다는 설정은 아이돌 산업의 요소도 있어 보인다. 첨단의 도시 문명 시리즈에서 한국 문명에 붙어나오는 특성이 대부분 과학 기술 쪽인 것은, 단순히 세종의 역사적 행적 때문만은 아니다. 깔끔하게 정비된 도시, 빠르게 보급된 대중 인터넷, 도시 곳곳에서 활용되는 각종 기계, 집단 주거 시설인 아파트가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주거 시설인 나라. 기술에 행정과 치안까지 결합되어야 가능한 상황에, 최신 매체인 게임에서 상위권을 휩쓰는 한국 선수들과 그들을 길러낸 PC방 같은 문화들이 이 이미지를 만들었다. 송하나 캐릭터만큼이나 이런 요소들을 하나에 담아내는 이미지는, 고층 건물이 빽빽하고 온갖 간판과 행인으로 가득한 야간의 대도시 거리다. 이는 사이버 펑크에서 애용하는 이미지가 되어 ‘사이버 펑크 2077’의 거리에서 한국어 간판이 등장하는 식으로도 사용된다. 간단히 압축하면 서울이고, 특히 강남이다. 서울은 비슷한 메갈로폴리스인 뉴욕과는 다른 선택지를 거쳐 비슷해졌다. 뉴욕의 반 정도 크기에 인구밀도는 6배가 되는 도시인지라, 서울은 용적률을 늘리는 방식으로 택했다. 높은 용적률과 인구밀도로 얻는 압도적인 유동 인구로 인해, 서울 혹은 서울과 유사한 대도시의 업장은 행인에 대한 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간판이 필요한 수많은 업장이 높은 용적률 공간을 가득 메우고, 그래서 건물의 외관에는 그 모든 업장의 간판이 무수히 붙는다. 여기에 광고용 간판이 추가된다. 간판 투성이의 크고 작은 건물이 연속되는 모습이 자본주의 도시 서울의 풍경이다. 이 도시는 24시간 잠들지 않는 불야성이다. 때문에 3단 점프를 액션의 기본으로 삼은, 17년작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은 근미래의 서울을 게임의 공간으로 삼았다. 게임에서 가장 많이 수행하는 동작은 여러 간판이 붙은 건물을 뛰어넘고 기어오르는 것이다. 비록 게임 자체의 기술력과 기획력 부족으로 인해 작중의 서울은 유동 인구가 보이지 않는 텅 빈 도시가 되었지만, 그런 도시를 달리고 뛰어오르는 액션은 뉴욕 시내에서 웹스윙을 하는 스파이더맨 게임의 체험과 본질은 같다. 잠들지 않는 도시에서의 질주다. 압축되었으면서도 메갈로폴리스인 사이버 펑크 대도시이면서도 전근대 건축물을 품고 있는 이 특성이 제작진의 구미를 당겼을 것 같다. ‘세인츠 로우: 더 서드’의 책임디자이너 스콧 필립스는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이 시리즈가 추구하는 톤과 비슷하다는 발언을 했다. 자본주의가 전제되어야 하는 첨단 도시의 불야성 이미지는, 그래서 오버워치와 에이전트 오브 메이헴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닥다닥 붙은 한글 간판의 형태는 97년의 슈팅 게임 ‘아인핸더’의 배경에서도 찾을 수 있고, 08년의 ‘GTA 4’에도 등장한다. 이미 사이버 펑크스러운 야경을 배경으로 쓸 때, 한국어 간판이 활용되는 경우가 97년에 있었다. ( 출처 ) 우리 입장의 시도 지금껏 열거한 세 가지가 아마도 한국의 이미지 중 게임에서 구현된 가장 큰 덩어리일 것이다. 물론 다른 장르의 예술 매체에서도 저 셋은 유효해 보인다. 그런데 이쯤에서 다시 최초의 질문, 정재훈 기자의 ‘우리는 아직 모르지 않나?’라는 질문을 다시 소환해 끼워넣어보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과연 저 셋뿐일까? 혹은, 우리는 저 셋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한국의 게임은 한국을 어떤 식으로 담아내길 원할까? 가장 자주 관찰되는 욕망은, 역시 한국이라는 공간을 게임 공간으로 그대로 사용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03년의 레이싱 게임 ‘시티레이서’와 06년의 레이싱 게임 ‘레이시티’는 당시의 서울을 게임 내에 구현하여 트랙으로 사용했다. 14년의 ‘클로저스’ 역시 서울을 비롯한 한국 곳곳의 거리를, 간판까지 그대로 구현하여 배경 이미지로 활용했다. 현재 개발 중에 있는 게임들은 더욱 과감하게 한국의 공간을 활용하려 시도한다. 클로저스의 배경으로 사용된 실제 거리를 정리한 유저도 있다. 메타버스 시뮬레이션인 ‘인조이’는 현재 세 개의 공간이 공개가 되었는데, 도원의 경우엔 서울 강남구를 모델로 하여 사실상 삼성동의 지리를 그대로 구현한 형태를 하고 있다. ‘낙원: Last Paradise’는 폐허가 된 여의도와 종로의 구현이 발표된 상태로, 탑골공원과 낙원상가가 게임 공간으로 쓰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펄어비스에서 개발 중인 ‘도깨비’ 역시 한국의 현재 공간을 게임 공간으로 옮겨놓으려 한다.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흰고래 마을은 부산의 흰여울문화마을을 기반으로 만든 공간이다. 같은 시도를 하고 있는 ‘프로젝트 류’라는 오픈월드 RPG 개발 프로젝트도 있다. 현재의 한국 외에 과거의 한국을 소재로 하는 시도도 존재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이 가상의 조선에서 좀비를 등장시키는 설정으로 글로벌 히트를 친 경험, 그리고 이 드라마에 등장한 ‘cool hats’, 즉 갓, 전립 등의 각종 모자에 대한 열광은 중요한 힌트를 제공해주었다. 역사적 요소도 어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선비라는 코드는 중국의 협객과 일본의 사무라이처럼 스테레오 타입으로의 전환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과거 코드를 역사물이 아닌 게임에서 반영하기 좋은 장르는 역시 판타지다. 그래서 ‘검은사막’은 2023년에 진행된 ‘아침의 나라’ 업데이트를 통해 한국의 전통 요소를 디자인과 게임 플레이에 대거 도입했다. 그 결과 한양 육조거리와 궁궐이 게임 공간으로 들어왔다. 이 분야에서의 최근 도전은 개발 중인 ‘우치 더 웨이페어러’와 ‘프로젝트 윈드리스’가 있다. 전우치를 주인공으로 한 ‘우치 더 웨이페어러’는, 현재 얼리억세스 단계인 인디 게임 ‘전우치’와 혼동될 수 있지만, 훨씬 규모가 크다. 특히 트레일러로 미루어 보면, 도사인 전우치를 통해 한국의 과거 유교, 불교, 도교, 무속이 중심 요소로 등장할 것이 확실하다. ‘프로젝트 윈드리스’는 소설가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의 세계 설정을 가져와 제작 중인 게임이다. 이 설정 속에는 한국의 전통 문화에서 따온 요소가 가득하다. 도깨비라는 종족, 씨름이라는 스포츠, 한국식 궁술 등등. 과거 요소를 구현하기 위한 장르는 역사 아니면 판타지다. 이 계통에서의 다음 힌트는 이 두 게임의 결과물이 서로 다른 지점에서 보여주게 될 것이다. 정재훈 기자의 지적에 따르면 완성도가 성공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힌트로서의 기능은 완성도와 별개로도 발휘될 것이다. ‘우치 더 웨이페어러’는 도사, 무당과 같은 전통 오컬트 요소가 중심이다. 이영도의 ‘새 시리즈’ 세계 속 도깨비를 비롯한 여러 요소가 글로벌 유저에게 어떻게 설명되고 이해될지가 기대되는 지점이다. 자신을 규정할 권한은 타인에게도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의 게임 창작자들은 한국의 현재와 과거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찾아내고 있다. 이 요소들이 게임으로서 재배치된 후에, 한국 바깥의 사람들은 게임을 통해 어떤 이해와 오해를 하게 될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것 자체가 힌트이며, 동시에 그 이해와 오해를 거쳐 바깥에서 인식한 한국이 다시 그들의 게임 속에 담겨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들의 인식이 김갑환, 북한과의 전쟁, 강남 빌딩과는 또 다른 부분에 이르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우리를 게임을 통해 체험하게 해줄 것이다. Tags: 게임 속 한국, 한국 재현, K-컬처, 김갑환, 태권도, 오버워치 D.Va, 검은사막, Korea in Video Games, Korean Representation in Games, K-Culture, Seoul in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확률형 부분유료결제 앞에서의 EA가 마주한 고민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으면, 얼티메이트 팀을 구성할 수 없으므로 한국 시장에 은 핵심 요소가 사실상 탈거된 상태로 시장에 출시되었다. EA는 얼티밋 에디션과 FC 포인트 판매 제외의 이유에 관해 "국내법 변경으로 인해 한국에서 FC 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한국 유저들이 7월 17일부터 선수팩, 드래프트, 소모품, 진화에 사용하는 FC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소개했다. 국가의 규제와 게임사의 사업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 Back 확률형 부분유료결제 앞에서의 EA가 마주한 고민 26 GG Vol. 25. 10. 10. 2025년 7월, 일렉트로닉 아츠(이하 EA)는 (옛 FIFA, 이하 FC 26) 의 국내 판매 구조에서 확률형 과금 요소를 사실상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 이용자는 선수 카드 뽑기 등 확률형 아이템 구매에 쓰이는 FC 포인트를 결제할 수 없다. 이뿐 아니라 마이크로트랜잭션(소액결제) 혜택이 포함된 얼티밋 에디션도 구매할 수 없게 막혔다. 아예 과금 축이 제거된 채 게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옛 FIFA, 현 FC 시리즈는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게임 프랜차이즈다. 수십 년간 축구 팬들에게 사랑받아온 게임 시리즈가 한국에서는 이례적인 형태로 출시되는 것이다. 단적으로 게임의 얼티밋 에디션 구매가 막힌 것은 전쟁 중인 러시아와 한국뿐이다. 벨기에와 한국에서만 FC 포인트를 추가로 결제할 수 없다. 이 FC 포인트로 유료재화화로 선수 카드를 뽑는 팩을 구매할 때 주로 이용된다. 현재 'FC' 시리즈의 엔드 콘텐츠는 나만의 '궁극의 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선수 카드를 뽑아 스쿼드를 맞추고, 다른 플레이어와의 대전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으면, 얼티메이트 팀을 구성할 수 없으므로 한국 시장에 은 핵심 요소가 사실상 탈거된 상태로 시장에 출시되었다. EA는 얼티밋 에디션과 FC 포인트 판매 제외의 이유에 관해 "국내법 변경으로 인해 한국에서 FC 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한국 유저들이 7월 17일부터 선수팩, 드래프트, 소모품, 진화에 사용하는 FC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 라고 소개했다. 국가의 규제와 게임사의 사업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사진 1] 한국 출시 버전에서 얼티밋 버전은 제외된 모습 (스팀 상점 페이지). 한국 출시판에서는 FC 포인트의 판매도 제외되었다. 이 글에 주의를 기울일 독자라면 "국내법 변경"의 개요를 익히 알겠지만, 맥락을 되짚기 위해서 그 맥락을 짧게 톺아보자. 2024년 3월 개정된 게임산업법은 아이템 종류와 등급, 획득 확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규정했다. 이뿐 아니라 2025년 1월 추가 개정을 통해 표시의무 위반 시 손해배상 특례와 입증책임 전환이 도입되었다. 이 조항은 6개월의 기간을 거쳐 지난 8월 1일 최종적으로 시행 중이다. 새로운 게임산업법은 공개된 수치와 실제 게임 로그 간 차이가 확인될 경우 징벌적 배상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게임사가 확률 정보를 누락하거나 거짓으로 표시해서 피해가 생기면 최대 3배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게임사는 이 과정에 고의나 과실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자료까지 만들어 소명해야 한다. EA가 아니라 그 어떤 게임사라 하더라도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의 '첫 사례'에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았을 터. EA는 패키지게임이 유행하던 1998년, 한국에 EA코리아의 형태로 일찌감치 진출을 했다. <에이펙스 레전드>는 물론 의 서비스를 EA가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책임 또한 EA코리아가 지게 되는 구조다. 한국에 지사가 없거나, 미래의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서 대리인 정도만 두고 있는 기업들과는 상황이 다른 셈이다. [사진 2] 테헤란로에 위치한 EA 코리아 사무실. 일찍이 한국에 진출해 경영활동을 하고 있어 이들은 국내 법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출처: EA 코리아) 더구나 EA가 한국에서만 각 카드 패키지에서 선수의 등장 확률을 공개해버린다면, 북미와 유럽의 플레이어들은 한국에서 발표된 장표를 참고해서 각 선수의 등장 확률을 모두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페르소나 3 리로드>나 <앨런 웨이크 2> 사례처럼 과거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분류 결과 발표가 글로벌 게임 시장에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되었던 것과 유사하다. (지금은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서 '블라인드 심의' 제도가 따로 운영 중이다.) 의 얼티메이트 팀은 글로벌 동일 서비스로 운영되기 때문에, EA는 이 확률을 일종의 '영업 기밀'로 보아 한국에서 극단적인 수를 내린 것이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1%라고 표기가 되었는데, 실제로 을 많이 플레이하는 유럽 권역에서 그 확률을 검증하려고 시도할 경우에도 EA에게는 관리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러한 위험 사항등을 고려해 결론적으로 EA는 확률형 BM을 에서 사실상 제거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넥슨이 서비스하는 은 이미 한국 법에 따라서 아이템과 카드 등장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단일 서비스 형태로 운영되는 에서는 해당 리스크가 치명적이지만, 한국에서만 주로 서비스되는 에서는 규제 환경에 따른 준비와 실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팬들은 에 대해서 곧잘 '유통기한 1년의 게임'이라고 부르곤 한다. 1년마다 'FIFA', 'FC' 신작이 발매되기 때문에 얼티메이트 팀을 즐기기 위해서 새 풀 프라이스 게임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을 자조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새 게임이 나오면 지난 편에서의 얼티메이트 팀 스쿼드 가치는 (유저들이 떠나간) 과거작에만 머무르게 된다. 차라리 수년 간의 라이브 서비스를 보증하는 F2P 부분유료화 게임 사례가 더 건강하게 느껴질 수준이다. [사진 3] 은 ‘FC 27’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그간의 역사에 따르면 말이다. 물론 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스팀 등의 플랫폼에서 할인가로 판매된다. 그것을 플레이한다고 해서 배탈이 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BM이 빠진 상태로 출시된 이번 작에는 한국어 인터페이스와 자막이 추가됐으며, 전문 해설위원과 캐스터의 해설까지 실려있다. EA코리아 입장에서는 법이 바뀌었지만, 이 1년짜리 게임에 나름의 투자를 감행한 셈이다. '유통기한 1년의 게임'이라고 했지만, 'FC' 과거작은 게이머의 기기에서 계속 소비되고 있다. 를 이 나온 지금 플레이해도 어떤 문제는 없다. 다만 EA는 계속해서 '이제 새 게임이 나왔으니 그것을 사보지 않으련' 하는 광고 팝업이 노출될 뿐이다. 결국 이번 케이스는 세계 최대급 퍼블리셔가 한국에서만 확률형 과금을 접었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이는 확률 공개를 단순히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공개 수준과 검증 방식, 그리고 법적 책임 설계라는 차원으로 논의를 끌어올렸다. EA의 선택은 확률 공개 규제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실제 산업 전략을 바꾸는 강력한 제도적 압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토론은 이제 “확률 공개가 부분유료화 문제의 핵심인가, 혹은 더 큰 구조적 논의의 한 축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EA는 미국, 중국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단일 마켓인 한국 시장에서 게임의 핵심 BM을 제거시켰다. 세계 최대 스포츠 게임 프랜차이즈가 한국 시장에만 ‘반쪽짜리’ 형태로 들어오게 된 것은, 한국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효력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효력'으로 소비자들은 진정 그들의 권익을 보호받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은 보다 발전된 엔진과 메카닉을 자랑하고 있고, 때문에 EA의 시리즈를 넥슨의 온라인게임보다 선호하는 계층도 (소수에 이르지만) 분명 존재한다. 이번 조치로 법적 리스크는 사라졌지만, 국내 게이머는 글로벌 서비스와 유리된 경험을 유료로 경험해야만 하는 환경이 형성됐다. 지금의 확률 공개 제도의 핵심 목적은 소비자 보호였다. 하지만 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확률 공개냐 아니냐'의 이분법으로는 또렷이 설명할 수 없는 음영지대가 발생했음을 볼 수 있다. 새로운 규제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에서도 0.0000000067465506%의 확률이 공개되었지만 ([AG][NO.7 포함] 멀티 클래스 최종 OVR 116+ 선수팩 (3~7강)의 호날두 7강 카드) 정작 소비자들은 투명해졌다고 느낄 수 있을까?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는 소비자 보호와 건전한 시장 질서를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졌지만, 정작 확률형 아이템을 제공하는 게임의 구조적 문제 (파워 인플레이션과 지속적인 과금 유도, 소비자가 느끼는 심리적 매몰비용, 서비스 종료 등으로 인한 지속 가능성 여부 불투명)는 온전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원고를 탈고하는 지금, EA는 스스로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사우디 국부 펀드는 사모펀드와 함께 약 77조 2,600억 원(550억 달러)의 현금을 들여 EA를 인수하고, 회사를 비상장 회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EA는 나스닥 상장사가 가지는 사회적·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EA의 비상장화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다음 시간에 풀어보도록 하겠다. [사진 4] 넥슨 의 한 선수팩 확률표 (출처: 넥슨) [1] [게임메카] 확률 공개 때문? 'EA FC 26' 한국에 유료 재화 안 판다 / 2025.07.17., 김미희 기자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yungKyu Lee Game journalist (2014–), writer (2006–), gamer (1996–).

  • [인터뷰] 근대에서 현대로의 궤적을 따르다,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 아로코트 개발자

    작년 8월 열린 부산인디게임페스티벌(BIC)에 출품된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The Fire Nobody Started)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게임들과는 다른 내러티브와 아트의 독창성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각각 특정 시대로 대변되는 기차 칸들을 오가며 유럽 근세사의 질곡을 체험하게 된다. 산업혁명기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는 이 게임에는 인류로부터 비롯되는 발전과 폭력이라는 양가적 주제가 녹아나 있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근대, 인디게임, 역사, 1인개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su Kim Studies a range of fields—culture and knowledge, space, and the academic field. Also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ves of gamers.

  • How do children live in the world of ?

    I consider the most important goal of education to be helping solve real-world problems. Then, how does that apply to digital media education? We must first listen carefully to children’s actual experiences, try to understand the stories of their world, before hastily deciding on pedagogical implications. From that notion, the platform that we need to pay the most attention in recent days, in the context of digital media and children’s lives, is probably .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ushin Park An elementary school teacher and a researcher of media and education. Holding to the belief that recognizing children's lives and culture within digital media—from comics and animation to games and AI—is the foundation of education, wants to understand more, though it's no easy task. Currently serves as president of the National Media Literacy Teachers Association.

  • 보다 책임감 있는 재현을 실천하는 게임을 향해

    어떤 매체에 대한 담론은 해당 매체가 겨냥하는 수용자 또는 이용자가 어떤 존재이며 그들이 매체와 맺는 관계에는 어떤 의도들이 담겨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가지를 드러낸다. 북미와 유럽의 게임 관련 공공 담론에 있어 오랫동안 게임은 - 거칠게 말해 - 번쩍이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오락에 하릴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십대 소년들을 위한 것으로서 인식되어왔다. < Back 보다 책임감 있는 재현을 실천하는 게임을 향해 04 GG Vol. 22. 2. 10. - You can see the english version in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86 어떤 매체에 대한 담론은 해당 매체가 겨냥하는 수용자 또는 이용자가 어떤 존재이며 그들이 매체와 맺는 관계에는 어떤 의도들이 담겨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가지를 드러낸다. 북미와 유럽의 게임 관련 공공 담론에 있어 오랫동안 게임은 - 거칠게 말해 - 번쩍이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오락에 하릴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십대 소년들을 위한 것으로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정형화 되어있는 게이머에 대한 인식에 의문을 표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실제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처음 게임을 접하게 된 유아들, 〈워드퓨드(Wordfeud)〉 같은 게임에 빠진 은퇴한 여성, 손주와 〈카운터 스트라이크〉 게임을 함께 하는 할머니 게이머 등이 포함된다. 또한 〈포트나이트〉를 배회하며 함께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게이 게이머나 잠든 아기 옆에서 닌텐도 스위치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젊은 엄마도 포함될 수 있다. 게임 문화의 규범 비평 디지털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당연히 - 정형화된 유형의 플레이어들이 아니라 - 나름의 개별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경험하는 실제 플레이어들이다. 지난 십 년간 게임 저널리스트, 문화 비평가, 학자들은 주류 게임 내 젠더와 인종, 장애, 나이, 신체에 대한 재현의 문제에 대해 논의해왔다. 이러한 논의가 밀도 있게 시작된 것은 북미였지만, 이제는 유럽에서도 규범 비평(norm critique)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게임 내 재현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3가지로 나뉜다. 첫째, 게임이 사람들의 다양한 정체성 또는 정체성의 여러 측면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둘째, 게임의 이용자층에서 주변화되어있는 사람들에 대한 재현이 어떠한가, 셋째,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그들의 업무 환경은 어떠한가. 이 세 가지 요소는 공공 담론상에서 상호적으로 얽혀서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게임에서 여성이 부정적으로 재현될 경우 여성 플레이어들이 그 게임으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라고 여겨지며,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의 양상이 개선되면 게임 내에서도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개선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어느 정도 사실일지라도,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을 게임학자들은 지적한다.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게임들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가 수적으로 적고,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서 한정되는 등 오랫동안 불균형이 존속되어왔으며, 여성 캐릭터들의 외모가 시각적으로 성적인 매력이 지나치게 부각되어왔음은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1983-2014년 사이에 출시된 5백편이 넘는 게임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90년대 후반에 정점을 찍은 여성 신체의 성적 대상화는 2006년 이후부터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감소 추세는 업계 전반적으로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게임이 진지한 주제에 대한 자각을 일깨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면서 시작된 느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Hellblade: Senua’s Sacrifice)〉를 출시한 영국의 게임사 닌자씨어리(Ninja Theory)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타밈 안토니아데스(Tameem Antoniades)는 인터뷰를 통해 이 게임이 단순한 오락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신병으로 인한 고통이 어떠한 경험인지 플레이어들이 진정으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2018년 덴마크에서 인디게임 데모로 출시된 〈포가튼(Forgotten)〉은 알츠하이머로 인한 고통이 어떠한지를 표현했다. 이 게임은 현재 오토스코피아 인터랙티브(Autoscopia Interactive)에서 개발 중이다. 유럽의 인디게임 업계 또한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고 주변화된 인물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게임개발사 픽셀 헌트(The Pixel Hunt)가 개발한 〈Bury me, My love〉는 유럽을 횡단해서 프랑스 파리까지 이동하는 한 시리아 난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2021년 가을에는 영국의 AAA 게임사 플레이그라운드 게임즈(Playground Games)가 인기 레이싱 게임 〈포르자 호라이즌(Forza Horizon)〉의 다섯번째 판을 내놓으면서, 게임 내에서 의수나 의족을 찬 캐릭터를 생성하는 것과 성 중립적인 대명사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졌음을 주류 언론의 헤드라인을 통해 알렸다. 많은 논쟁이 게임 캐릭터에 대한 재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가운데, 포용적인 게임 디자인이 이 특정한 문제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부상하고 있는 인디게임 산업은 AAA 산업의 잘 다듬어진 모델 너머에 존재하는 경험들을 전달하고자 하는 게임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한 게임들은 또한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있을 수 없는 플레이어들에 맞는 플레이 모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은 IO인터랙티브(IO Interactive) 같은 소수의 거대 스튜디오를 제외하고 대부분 소규모의 인디 게임 개발자들로 구성되어있는 덴마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 〈포가튼(Forgotten)〉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는 짧은 게임이다. 기억 상실과 왜곡의 감각을 주기 위해서 게임 캐릭터들의 얼굴이 흐려져 있다. 플레이어층의 확장 이처럼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는 변화상은 플레이어층의 다양화라는 두번째 문제로 부분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게임산업은 새로운 수용자층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플레이어들에 호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게임 내 주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재현과 플레이어층의 다양성 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으며, LGBTQ 등 주변화된 집단의 사람들은 게임 내 LGBTQ 캐릭터가 부정적으로 재현될지라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주류 매체조차 게임 내 주변화된 사람들에 대한 문제적 재현에 관심을 가지면서, 게임사들이 그와 같은 부정적인 정형화를 반복 재생산하는 것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은 공공 담론 그 자체가 게임업계로 하여금 강력한 구매력을 지닌 집단을 겨냥하여 새로운 이용자층으로 포섭하도록 장려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 내 주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 묘사의 문제는 상황의 한 단면을 설명하는데 그칠 뿐이다. 많은 주변화된 집단들은 여전히 괴롭힘과 차별, 폭력을 경험하고 있는데, 특히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할 때 심각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플레이어의 주변화 문제를 다루는 유럽 내 담론이 주로 (젊은) 여성 플레이어의 경험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종이나 사회·경제적으로 주변화된 사람 등 여타의 주변화된 집단의 상황은 여전히 공공 담론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주변화된 정체성을 지닌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을 존중하면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음에도, 게임 업계가 여전히 그러한 집단이 지닌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대를 통한 노동 조건의 개선 지난 수년 간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의 문제는 상당한 주목을 받아왔다. 업계 내 주변화된 노동자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1ReasonWhy 해쉬태그를 통해 업계 내 차별과 성차별주의, 괴롭힘에 대해 알리기 시작하면서 십년 전부터 주목 받아온 이 문제는, 지난 몇년 동안 유럽의 AAA 업체 내 유해 업무 문화나 성적 부정행위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다시 헤드라인에 오르기 시작했다. 북유럽에서는 아직 이와 유사한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러 매체에서 폭력이나 가해 행위의 몇 가지 사례를 다룬 바 있다. 노동조합은 명백히 이와 같은 문제에 대처하는 기관으로서 주변화된 노동자들을 위한 환경의 개선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강력한 노동조합의 전통을 지닌 스칸디나비아 반도임에도 이 권역 내 게임 업계의 노동자 조합은 아직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주변화된 인물에 대한 책임감 있는 게임 내 재현이나 남성 게이머라는 정형화된 규범의 바깥에 놓인 플레이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의 조성 등과 같은 다양한 논의들이 벌어지고 있는 공공 담론의 다른 한편에서는 업계 내 조직의 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울려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다 요르겐센 이다 요르겐센은 덴마크의 코펜하겐 IT 대학(IT University of Copenhagen)에서 게임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주로 젠더 재현, 게임 문화, 매체로서의 게임 등과 관련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서던 덴마크 대학(the 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에서 박사후 과정 중에 있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게임의 로맨스가 진짜 사랑은 아니지만 중요해, CRPG의 로맨스

    하지만 예로부터 어떤 게임을 설명할 때 “야, 이 게임에서는 섹스도 가능해!!” 라고 하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게임인지 저절로 호기심을 동하게 만들었듯, ‘연애’ 는 사람들을 흥분케하는 콘텐츠였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yungKyu Lee Game journalist (2014–), writer (2006–), gamer (1996–).

  • 호러를 즐기는 보통의 방식

    사실 호러 게임은 꽤 마이너한 장르에 속한다. 물론 좀비물의 성격을 차용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장르적 요소를 가져오거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처럼 본격적으로 호러 게임을 표방하는 AAA 게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 Back 호러를 즐기는 보통의 방식 19 GG Vol. 24. 8. 10. ‘게임 보기’의 역사는 ‘게임 하기’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오락실에서 동네 고수의 플레이를 어깨 너머로 바라보던 시기부터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전 세계 게이머의 플레이를 침대에 누워 볼 수 있는 지금까지, 타인의 게임플레이를 관람하는 형태는 변화를 거듭해 왔다. 그러한 맥락 속에서 ‘게임 보기’는 단지 프로게이머들의 대전을 관람하는 스포츠의 형태나 고수의 플레이를 감상하고 감탄하는 것을 넘어 또 하나의 ‘게임 하기’가 되어 간다. ‘게임 보기’를 기존의 게임에서 구성되는 매직서클의 바깥에서 매직서클 내의 세계와 규칙에 동참하는 메타-게이밍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게임과 게이머 사이에 형성된 매직서클을 스트리머와 시청자 사이의 관계로 확장한다. 이때 스트리머와 시청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채팅을 통한 것 이외에도 각 플랫폼 별로 존재하는 후원 기능과 그에 따른 리액션 및 미션을 통해 작동하는데, 이는 스트리머-시청자 사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규칙으로서 매직서클을 구성하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호러 게임 스트리밍을 바라보자. 사실 호러 게임은 꽤 마이너한 장르에 속한다. 물론 좀비물의 성격을 차용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장르적 요소를 가져오거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처럼 본격적으로 호러 게임을 표방하는 AAA 게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AAA 게임의 적지 않은 수가 폭력과 유혈을 동반하는 고어 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점도 호러 게임이 마이너한 장르라는 것의 반례가 될지도 모른다. 다만 본격적으로 호러 게임을 표방하는, 대다수가 인디 게임으로 분류되곤 하는 게임들은 주로 플레이되기보단 스트리머에 의해 송출되고 시청자에 의해 관람된다. <프레디의 피자가게>부터 <파피 플레이타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히트 호러 게임은 출시 직후 스트리밍 플랫폼을 도배하곤 한다. 다만 이런 스트리밍에서의 성공 사례가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수로 직결되진 못한다. 스팀의 동시접속자 수나 인기차트와 같은 지표들은 멀티 플레이 게임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와 같은, 극소수의 성공 사례만을 알려줄 뿐이다. * [그림1, 2] <파피 플레이타임> 스크린샷과 스크린샷(출처: 스팀 상품페이지) 새로이 등장하는 호러 게임들은 그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만 같다. 앞서 언급한 <프레디의 피자 가게>나 <파피 플레이타임>처럼 온라인상에서 밈이 되어버린 게임, 혹은 ‘사이렌 헤드’나 ‘백룸’ 같은 온라인 괴담의 인기에 힘입어 등장한 여러 게임은 게이머 개개인이 그것을 플레이하는 것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반응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스트리머-시청자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소화된다. 나아가 의 성공 이후 우후죽순 등장하는, PC의 마이크를 인식해 소리를 내면 살인마나 크리처에게 살해당하는 구성의 호러 게임들은 스트리머가 점프스케어에 놀라 비명을 지르는 모습 자체가 스트리밍의 주된 콘텐츠임을 드러낸다. 물론 이와 같은 과정은 굳이 호러 게임이 아닌 게임의 스트리밍에도 크게 다르지 않게 작동한다. <배틀그라운드>나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고인물이 수두룩한 게임의 스트리밍 시청자들은 그들의 실력을 보기 위해 미션의 형태로 제약 플레이를 하게끔 한다. 따라서 호러 게임 스트리밍 또한 게임이 제공하는 규칙을 두고 스트리머와 시청자 사이에 발생하는 새로운 유희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실력이 부족한 게임을 대신 해주는 고인물들의 플레이를 보듯 호러 게임이 너무 무서워서 하지 못하는 시청자는 스트리머의 플레이를 본다. 혹은 호러 게임이 제공하는 공포의 상황을 상쇄시켜주는 스트리머의 리액션을 즐기기 위해 그것을 본다고 할 수도 있겠다. 호러 게임과 가장 자주 비교된다고 할 수 있을, 호러 영화 이야기로 잠시 넘어가보자. 호러 영화의 관객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점프스케어를 비롯한 효과를 포함한) 폭력성 앞에 취약한 상태로 놓인다. 동시에 관객은 자신이 스크린 속 살인마나 초자연적 존재에게 직접 위협을 당하지 않는 안전한 객석에 앉아 있을 뿐이기에, 자신의 취약성을 내주고서도 호러 영화의 이미지가 제공하는 폭력을 하나의 유희로서 즐길 수 있다. 이는 영화뿐 아니라 호러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혹은 SCP 재단과 같은 온라인 호러에도 유사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림 3] 스트리머/유튜버 풍월량의 호러 게임 스트리밍 썸네일 (출처: 풍월량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J40TDKZkVw0 ) 다만 호러 게임의 경우 게이머가 직접 게임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이미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지점에서 영화를 비롯한 다른 매체들과 차이를 지닌다. 호러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 앞의 관객이 자신의 취약성을 안전하게 노출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호러 게임의 플레이어는 자신의 취약성을 게임플레이에 내어주어야 한다. 호러라는 장르가 전제하는 이미지(혹은 텍스트)의 폭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곧 호러 게임의 플레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호러 게임의 스트리밍을 본다는 것은 시청자가 자신이 게임을 플레이했다면 내어주었어야 할 취약성을 스트리머에게 양도한다고 할 수 있다. 스트리머는 시청자들을 대리해 호러 게임을 플레이하고, 자신의 취약성을 게임 내부와 스트리밍 플랫폼이라는 외부 양쪽에 내어준다. 물론 스트리머의 실력이나 담력 등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겠으나, 스피드런이나 공략 영상이 아닌 이상 기본적인 전제는 유지된다. 훌륭한 실력으로 호러 게임을 돌파하건, 시청자를 대신해 비명을 지르건, 혹은 호러의 상황을 입담과 재치를 통해 코미디로 승화시키건 말이다. 그러한 지점에서 호러 게임 스트리밍을 시청하는 것은 호러 영화를 보는 것과는 다르다. 호러 영화 속 주인공은 관객을 대신해 공포에 떠는 것이 아니지만, 호러 게임 스트리머는 시청자를 대신하여 공포가 존재하는 곳으로 이동해야만 한다. 따라서 호러 게임 스트리밍이라는 장소는 스트리머와 시청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메타-게이밍의 매직서클을 형성함과 동시에, 스트리머가 시청자의 취약성을 대리하는 장소가 된다. 그렇다면 게임은? 이때 호러 게임은 게이머에게 점프스케어와 음산한 분위기로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콘텐츠이자, 스트리머-시청자 관계에서 발생한 매직서클 안에 포섭된 대상으로 변화한다. 점프스케어에 놀라 비명을 지르는 스트리머를 보던 시청자는, 스트리머가 플레이를 거듭할수록 호러 게임의 묘사에 익숙해지고, 나아가 호러 게임을 일종의 장난감에 가까운 대상으로 대하게 된다. 마치 호러 영화의 오래된 팬들이 슬래셔 영화 속 유혈낭자한 살인이나 고어영화 속 사지절단을 보며 환호하거나, 이러한 반응을 밀고 나가 코미디로 승화시키는 스플래터를 비롯한 호러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지점에서 앞서 이야기한 취약성의 전제를 뒤집어야 한다. 호러 영화의 일반적 관객이 자신의 취약성을 노출시킴으로서 호러의 효과를 얻어낸다면, 호러 영화의 마니아는 자신이 앉아 있는 객석의 안전함을 무기 삼아 호러의 이미지를 즐긴다. 살인, 귀신, 악령, 크리처, 초자연적 현상, 그리고 공포에 휩싸인 등장인물은 공포의 매개가 아니라 유희, 나아가 조롱의 대상이 된다. 호러 게임 스트리밍의 시청자들은 호러 영화 마니아의 태도로 그것을 본다. 시청자들에게 게임 속 살인마나 크리처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스트리머를 골탕 먹이는 존재이다. 시청자들은 어두운 지하실이나 숲속을 굳이 들어가는 호러 영화의 주인공을 바라보듯 스트리머를 바라본다. 일반적으로 호러 영화/게임의 관객/게이머에게 기대되는 것이 공포의 이미지라면, 호러 게임 스트리밍의 시청자가 기대하는 것은 리액션이다. * [그림 4] 조르주 멜리에스 <악마의 집> 스틸컷 사실 이 리액션을 즐기는 것, 특히 무서운 것에 놀라는 타인의 리액션을 즐기는 것이 호러라는 장르를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1896년 조르주 멜리에스가 <악마의 집>을 만들었을 때, 그것의 공포는 카메라 트릭을 통해 박쥐가 사람이 되고 해골이 움직이는 것에서 오는 놀라움이었다. 서커스의 프릭쇼(freak show)가 토드 브라우닝의 <프릭스>로 만들어질 때, 관객들은 ‘비정상’이라 여겨지던 존재들을 목격하고 서로 놀라워했다. 호러 게임의 스트리밍은 그러한 광경을 스트리밍 플랫폼 위에 되살린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스트리머는 리액션을 선보이고, 시청자들은 그것을 보며 즐거워한다. 스트리머의 리액션을 극단적으로 끌어내는 일련의 사운드 반응형 호러 게임들은 여전히 기초적인 호러 트릭을 통해 그 반응을 만들어낸다. 스트리머와 시청자들은 게임의 소재로서 등장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애정하는 호러의 소재들을 바라보며 놀라워하고 반가움을 표하며 즐거워한다. 호러를 즐긴다는 것은 공포를 제공하는 대상에 익숙해진다는 것이고, 그것은 영화를 보든, 게임을 하든, 스트리밍을 시청하든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호러 게임 스트리밍을 보는 것은 차마 호러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는 ‘쫄보’들의 행위에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호러를 즐기는 보통의 방식을,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장소 위에서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인터뷰] 창간 2주년, 우리는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 <게임제너레이션> 이경혁 편집장 인터뷰

    그렇다면 독자들과 여러 필진이 함께 만들고 있는 게임 담론은 지금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읽고 쓰는 행위는 게임문화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사회적 실천이 되고 있는가? 창간 2주년을 맞아, GG의 이경혁 편집장과 평소에는 담지 못했던 웹진 자체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왔다. GG가 만들어졌던 배경이나, GG를 만드는 당시 상상했던 독자층 등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은 위와 같은 질문을 더욱 고민하게 할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 Back [인터뷰] 창간 2주년, 우리는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 <게임제너레이션> 이경혁 편집장 인터뷰 13 GG Vol. 23. 8. 10. 글을 쓴다는 행위의 목적은 무엇인가? 물론, 세부적으로는 글의 양식과 성격에 따라 글의 목적이 다양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글은 소통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소통이란 필자의 ‘쓰기’ 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읽기’와 함께 구성된다. 2년 전, <게임제너레이션>(이하 GG)은 “선언을 넘어선, 실천으로서의 게임문화”를 외치며 창간했고, 설령 독자가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라 믿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라던 대로 독자층이 만들어지며, 우리는 함께 다양한 게임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독자들과 여러 필진이 함께 만들고 있는 게임 담론은 지금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읽고 쓰는 행위는 게임문화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사회적 실천이 되고 있는가? 창간 2주년을 맞아, GG의 이경혁 편집장과 평소에는 담지 못했던 웹진 자체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왔다. GG가 만들어졌던 배경이나, GG를 만드는 당시 상상했던 독자층 등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은 위와 같은 질문을 더욱 고민하게 할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Q: 평소에는 함께 인터뷰 질문을 드리는 입장이었는데, 이렇게 편집장님께 질문을 하는 상황이 신선하네요. 독자분들도 비슷한 감상이실 것 같은데, 먼저 편집장님을 잘 모르시는 독자분들께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2016년에 첫 단행본이 나왔고 2015년부터 게임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게임 이야기를 하면서 밥 벌어 먹고산 지 8, 9년 차 되는 전업 게임 평론가입니다. 지금은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이 제일 큰 직함이네요. Q: 오늘은 저희 GG에 관한 질문들을 드리고 싶은데요. 기억하시겠지만, 첫 회차 ‘에디터의 글’에서 “웹진보다는 무겁게, 학술지보다는 가볍게”라는 문장을 일종의 슬로건처럼 말씀하셨어요. 이런 문장으로 GG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일반 회사를 다니다가 게임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일반인들도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아카데미에서는 이미 나온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죠. 역으로 생각하면 아카데미의 잘못도 있는 것이, 맨날 학계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것이 자기들 안에서만 돌고 사회에 전혀 영향력을 못 주고 있다는 거예요. 물론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지털 게임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 사회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 영향력을 우리가 간파하면서 어떻게 이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파고드는 것들은 세상에 전혀 유통되지 않고 있어요. 세상은 게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전부 똑같은 이야기만 하거든요. “한국 게임 다 망해라!”, “확률형 아이템 나쁘다!”, “중독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은 너무 가볍고, 반복적일 뿐, 발전적인 논의가 아니에요. 제가 보기엔 게임 담론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데, 전문성과 대중성이 서로 붙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 사회에 이 둘을 접합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다면 전문성과 대중성을 어떻게 붙이지?’를 고민했을 때, 저는 아직까지 글이 효과적인 매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유튜브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고. (웃음) 저도 밥 먹고, 책 읽고, 게임하고 사실 시간이 없어요. 나오는 게임을 다 할 수도 없고 나오는 현상을 다 이해할 수도 없으니,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또 전문가를 키우는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렇게 만들게 되었어요. Q: 그런데 사실 그런 사명감을 가지셨어도, 실제로 이렇게 웹진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인력도 필요하고, 재화도 필요하지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지금 GG는 크래프톤의 후원으로 게임문화재단이 만들고 있는데요. 어떻게 <배틀그라운드>를 만든 크래프톤이나 게임업계들이 모여 중독 치유 사업을 하는 게임문화재단과 같은 마음을 모으셨고, 어떤 과정을 통해 이 마음을 서로 확인할 수 있었는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원래부터 이런 걸 하고 싶어 했어요. “어떻게든 게임문화 담론을 만들어서 올릴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하고 주변에 많이 떠들고 다녔죠. 그런데 어느 날 대학원 지도 교수님이 밤에 전화를 주신 거예요. 지금 바로 나와봐야 할 것 같다고. 근데 저희 교수님이 전혀 그런 분이 아니시거든요. 사적으로 부른다거나 일절 그러시는 분이 아닌데, 의아해하면서 나가봤더니, 크래프톤 담당자께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냐고 물어본 거죠. 이야. 세상에 이런 기회가 있다니! (웃음) 그래서 그걸 매개할 수 있는 곳으로 게임 문화 재단과 함께 하면서 게임문화를 다루는 웹진을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이게 절대 제가 잘나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다른 영역도) 항상 그런 것 같아요. 뭔가가 떠오르는 건 누군가가 혼자 유니크한 발상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시대에 그 생각에 대한 니즈(요구)가 떠오르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저는 GG도 제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가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요구들이 딱 엮이는 특정한 순간이 있고, 저는 그 결과물이 게임제너레이션이라고 생각해요. Q: 하필 그 시기에 크래프톤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지점이 신기하네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니까 어떤 마음을 먹으면 여기저기 많이 말하고 다녀야 해요. (웃음) 저는 ‘저 이런 것(게임문화 담론을 만드는 플랫폼) 하고 싶다’, ‘이런 것 필요하다’고 많이 떠들고 다녔거든요. 저희 지도 교수님도 저에게 그 이야기를 귀에서 피가 날 때까지 들으셨기 때문에, 그 순간에 제가 생각난 것이 아닐까요? (웃음) 자기 계발서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닌 것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해요. Q: 그럼 처음에 GG를 기획하셨을 때, 당시에 예상하셨던 독자층은 어땠나요? 이경혁 편집장: 독자층은 (사실상)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소수일 거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아요. 많은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게임은 재밌으면 그만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또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틀렸다고 보지도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가지고 심각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괜히 진지하게 무게 잡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그래도 뭐가 있지 않을까”라고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소수일 수밖에 없어요. 영화도 처음에 그랬으니까요. 실제로 영화도 비평의 흐름을 타고, 씬을 통해 표현되는 사회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웹진의 독자층 역시 소수일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크래프톤 담당자한테 이 사업의 의미를 설명할 때도 그 얘기를 했어요. “독자는 우리가 만들거고, 이 독자를 만들어내며 숫자를 늘리는 것이야말로 이 사업의 핵심이다.” 저는 지금도 그게 맞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그래서 고민이 되기도 해요. 너무 뻑뻑한 이야기를 하기 어렵고, 그러면 재미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남들이 다 한 이야기를 하자니 그건 의미가 없고. 그래서 그 고민이 아까 그 슬로건에 나오는 거죠. 웹진보다는 무겁게, 학술지보다는 가볍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교집합의 독자들한테 깃발을 흔드는 거죠. “여기 우리가 있다! 와서 우리와 함께 하자.” 물론, GG를 공론장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영향력이 크진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감사하게도 크래프톤도 그걸 알고 있기에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아요. 그래도 한 4, 5년 지나서 뭔가 쌓였을 때, 누군가가 게임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동안 우리가 쌓아놓은 것들이 일종의 레퍼런스로 기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목적이 있어요. Q: 말씀하셨던 맥락에서 학술지와 웹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러면 GG가 지향하는 글쓰기 방식은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GG는 최대한 필자의 글을 건드리지 않아요. 설령 문법이 이상하더라도 이렇게 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왜냐하면 문법을 지키는 게 대체로 가독성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되니까 우리가 문법을 지키지만, 어떤 경우에는 문법을 희생하면서 자기가 강조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고 봐요. 그걸 최대한 살리고자 하는 게 제 입장입니다. 누군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편집장이라고 깎아낸다는 것은 옳지 못할뿐더러, ‘제가 글쓴이의 생각을 얼마나 알고 있기에 손을 대는가’라는 생각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글의 기준과 GG에 나가는 글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Q: 그러면 편집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글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경혁 편집장: 좋은 글이라는 것을 게임 쪽으로 한정을 한다면, 저는 인사이트라고 생각을 해요. 오늘날 같은 미디어 시대에는 누구나 다 한마디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남들이 이미 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제 물리적으로도 환경 낭비가 되는 상황에 이르렀죠. 같은 게임을 했더라도, 아직 미처 닿지 않은 생각들을 끌어낼 수 있는, 인사이트가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문학이 아닌 이상에야 독자들이 “우와”라고 반응하는 글들은 문장이 유려해서가 아닐 거예요. 글을 통해 우리가 다루는 것은 ‘생각’이니,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이 중요하니까, GG에서 글을 청탁할 때도 주제를 잡은 뒤에 해당 주제에 대해서 당신의 ‘생각’을 들려달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글과 GG의 글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린 것은, 단순히 모든 글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측면이 아니라, 인사이트라는 것이 쓰는 사람으로부터만 정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제 입장에서 좋은 글이어도 독자를 이해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세상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GG는 오히려 이 부분을 컨트롤하지 않으려 해요. 각주가 수십 개 달린 뻑뻑한 글이어도, 게임을 통해서 사회에 단면을 드러내는 한 문장이면 또 누군가는 “우와”하면서 따라 읽을 수도 있고, 반대도 될 수 있지요. 결국 필력을 넘어서는 매력을 만들어낸 건 인사이트일 겁니다. Q: 말씀해 주신 지점처럼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 GG의 목적일 것인데, 이를 제공하기 위해서 매 회차에 어떤 주제들을 어떤 과정으로 정해가는지, GG의 아이디어 선정 과정과 절차를 독자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희가 2개월에 한 번 나오니, 보통 2개월마다 기획 회의가 있어요. 5명의 편집 위원이 있고, 이번 회차에는 어떤 주제를 다루면 좋을지 논의합니다. 그렇게 대주제를 잡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일반 웹진들과의 가장 큰 차이죠. 저희는 대주제를 가지고 상당히 다양하게 논의를 해요. 주제들을 우선순위도 뽑아가면서, ‘너무 큰 주제다’ 싶으면 6개월짜리 기획을 하기도 하고, 어떤 주제는 지금 상황에서 신속하게 다루어야겠다 싶어서 빠르게 주제를 정하기도 하고. 저희가 매번 트렌디한 걸 다루진 않아요. 경우에 따라서는 ‘이 주제는 중요한데 언제 다루지?’ 하다가 나중에 나오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게 대주제를 잡으면, 그다음엔 필자를 찾아요. 이 주제에 대해서 잘 이야기할 수 있는 필자는 누가 있을까? 결국 좋은 글은 좋은 필자에서 나오니까요. 다만, 이 과정이 또 어렵죠. 한국에 게임 관련된 글들이 많이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추리를 하기도 해요. 어떤 필자는 어떤 분야에서 공부를 했고, 어느 곳에서 이런 글을 썼으며, 어디에 나가서 이런 이야기를 했으니, 이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연락처를 구해서 전화해보는 거죠. 어떤 경우에는 추리가 안 들어맞아서 연락을 드렸는데 전혀 관심 없다고 하시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딱 알맞은 관심사를 가지고 계시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글을 받아서 마지막 2주간 편집을 하고 완성이 되는 구조예요. 다만, 처음에는 100% 이 과정을 거쳤는데, 지금은 고정 코너들이 생겼어요. 특히, 최근에 공을 들이고 있는 논문 세미나는 어떻게 보면 GG를 시작했던 지향점과 가장 부합하는 코너거든요. 재미없고 유통이 안 되는 논문 중에 유의미한 이야기를 가져다가 말랑말랑하게 가공을 해서 재배포를 하는 작업이잖아요? 그런 지점이 의미가 큰 것 같아요. 여기(GG)는 그래도 게임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 오시기 때문에 그런 글들이 더 의미가 있을 거라고 보는 거죠. Q: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무리 좋은 지향점이 있어도, 10회차 넘게 2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 텐데, 매번 새로운 주제를 잡고 새로운 필자를 발굴하는 과정에서의 고충은 없으신가요? 이경혁 편집장: 고충이야 많죠. (웃음) 그리고 사실 저는 돈을 많이 못 받아요. 그런데 저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과정이 쉬워져도 문제예요. 이 과정이 쉬워지면 아마 공장제 웹진이 될 거예요. 그럴듯한 이슈 하나 세워서 대충 있어 보이는 말들로 포장해버리면, 사실 웹진의 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그 변화를 파악하지, 양적 평가로는 그냥 이어진단 말이에요. 그러면 GG가 의미를 잃죠.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 작업이 계속 힘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저는 연구자라는 정체성을 딛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도 연구의 일환이라고 보거든요. 그 과정이 쉬워지면 저는 연구를 안 하는 거죠. Q: 게임 비평에 대한 질문들도 조금 깊게 여쭤보고 싶은데요. GG가 이번에 제2회 게임비평공모전을 열었잖아요? 그런데 게임 비평에 대한 꿈이 있으신 분들 중에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더 게임을 많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 더 많은 게임을 해서 모든 게임의 재미들을 그래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좋은 게임 비평이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이경혁 편집장: 일단 모든 게임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도 게임 비평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새로 나오는 게임을 다 해볼 수가 없어요. 인간의 24시간은 결국 한정돼 있거든요. 오히려 역으로 조심해야 하는 건, 게임만 하고 다른 활동이나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런 경우에 저는 생각보다 많은 게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아까도 말씀드렸던 인사이트가 나오지 않는 것이죠. 남들이 안 하는 얘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남들이 많이 안 하는 데는 또 이유가 있어요. 그러니 결국 어떤 새로운 것이 왜 유의미한지 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 글을 써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게임만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공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하다못해 게임을 하고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좋은 비평을 위해선) 타인과 생각을 교류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게임을 하고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이에 대해서 다들 동의하는지 아니면 나만 그런지 그 차이를 이해하려면 친구랑 같이 말을 섞어봐야 해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두 번째로 결국 게임은 인간과 사회를 다루거든요. 그래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이 그냥 게임만 해서는 좋은 비평이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을 해요. 그냥 레퍼런스를 넓히고, 더 많이 알아야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게임과 세상을 계속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이해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죠. Q: 그러면 결국 “게임 비평은 게임의 재미를 다루는 것이다”는 분들이 말씀하시는 ‘본질적인 게임의 재미’나 ‘모든 콘텐츠를 관통하는 유니버셜한 재미’ 같은 개념은 게임 비평이 다룰 수 없을뿐더러 애초에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겠네요. 이경혁 편집장: 많은 사람들은 “게임은 재밌어야지”, “게임의 본질은 재미지”라고 이야기하지만, 재미없는 매체가 뭔지 생각해볼까요? 다큐멘터리는 재미가 없나요? 뉴스는 재미가 없나요? 그렇게만 이야기하기는 너무 어렵죠.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교류하는 모든 미디어는 그 재미가 다른 유형의 재미일 수 있을지언정 기본적으로는 다 재미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게임이라는 미디어의 본질만 재미라고 이야기하면, 게임에 대한 이해의 폭을 굉장히 한정시켜요. 게임 역시 다양한 사용방식이 존재할 수 있거든요. 시리어스 게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게임을 통해 특정한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하거나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고 하는 경우들도 있잖아요? 그러면 이런 것들은 본질을 놓친 것인가? 이처럼 재미만이 게임의 본질이라고 얘기할 경우에는 다룰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소거하는 것 같아요. 영화의 본질도 처음에는 재미였죠. 그런데 요즘은 재밌는 영화만 나오지 않잖아요? 세상 어려운 이야기들도 많이 하죠. 그러니까 그런 가능성을 버리지 말자는 거예요. Q: 마무리하기 전에, 최근에 편집장님의 학창 시절이 지구 오락실에 나오면서 지인들 사이에서는 이슈가 됐었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저희가 인터뷰를 위해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독자분께서 ‘어릴 적부터 누구 닮았다고 이야기 듣는지’ 질문을 했었잖아요? 물론, 편집장님께서 “이걸 답변해 드릴 리가 없지 않습니까?”라고 답변하셨지만, (특별히)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누구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이경혁 편집장: 아... 이 이야기하면 무조건 악플만 달릴텐데... 나는 진짜 대학교 때 애들이 디카프리오 닮았다고 그랬거든요. (한숨) 진짜 억울한 게,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요즘은 오히려 친구들이 화를 내면서 인정하는 분위기예요. 그러니까 디카프리오가 살이 찌고 나서... 그런데 이 이야기를 꼭 담아야겠나요? 굳이? Q: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웃음) *‘지구오락실2’에 나온 학창시절의 편집장과 디카프리오 근황, 온게임넷 ‘우리 아이 게임 사용 설명서’에 나온 최근 편집장>(편집장님. 비밀로 해드리겠다는 약속... 지키지 않아 죄송합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이경혁 편집장: GG를 보시는 분들은 한국 게임에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인가에 관심이 있고 공감하시는 분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GG는 저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여러 편집 위원들과 기획을 같이 하고, 많은 필진이 있으며,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재단과 크래프톤이 함께 하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만약에 저희와 대의가 같다면 사실 독자분들께도 함께 공유해주시고 게임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협력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전에는 이력서 취미란에 게임을 못 쓰던 시절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함께 여기까지 온 거예요. GG보다 라이트한 시도들은 많잖아요. 사실 게임 유튜브도 어마어마하고, 그쪽도 게임문화를 이야기할 때 저변을 굉장히 넓혔지요. GG는 어찌 보면 이러한 방향성에서 그중 조금 뻑뻑한 한 부분을 맡고 있고 그래서 더 유들유들해지지도 않을 겁니다. 누군가는 뻑뻑한 걸 해야 하는 게 맞죠. 그렇다고 더 뻑뻑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저 아무도 안 하니까, 저희는 이런 것을 하는 정체성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글을 알아주시고, 그런 걸 같이 봐주시는 것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사실 공유해달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저희 글들을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GG의 가능성이 됩니다. 여러분의 존재가 스폰서를 이해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어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 스폰서십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GG의 글 값은 결코 싸지 않습니다. 이건 필자분들이 아실 거예요. 그걸 만들 수 있게 해주는 힘에는 여러분의 트래픽이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고, 감사드립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고전 명작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해후: 『검은 신화 : 오공』과 중국 AAA게임의 상상

    2017년부터 중국 게임산업의 실제 매출은 확고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 중국 게임산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AAA게임이야말로 한 나라의 게임산업의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게이머들에게 뼈아픈 점은 중국이 내내 자체적인 3A게임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관련된 시도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상업적 성장 측면에서 중국 게임산업은 ‘최고의 시대’이지만, 문화예술과 창조성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시대’라는 것이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ivist, Writer) Deng Jian (邓剑) Associate Professor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Soochow University. Focuses on digital game cultural studies as a primary research interest, and writes a column on games, among other pieces, for The Paper. (Activist, Writer) Myeonggyo Hong Activist and writer. Works at the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Platform C on East Asian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social movements. Author of To My Vanished Chinese Friend and A Ghost Throws a Punch at the World, and translator of Xinjiang Uyghur Dystopia and Dying for an iPhone (co-trans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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