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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s View] 손이 바쁜 공모전 특집호를 마무리하며

    비록 한 해에 여섯 호 밖에 나오지 않는 것 같지만, GG의 발행은 꽤나 연속성이 있는 편입니다. 두 달에 한 번 발행하는 잡지를 위해 발행 전 달에 기획회의를 하고, 걸맞는 필자를 섭외한 뒤 각각의 필자들이 한 달간 원고를 준비합니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공모전] 게임과 행위 원리 – 놀이와 협박

    플레이어는 게임을 왜 플레이하는가? 이 질문은 노는 자가 왜 노는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될 수 있다. 최근의 논의들 중에는 게임을 예술로 ‘인정’받고자 어떠한 실용성이나 사회 · 정치적 참여 등에 기여한다며 생산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게임은 그러한 효용적 가치들을 충분히 발생시킬 수는 매체인 것으로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것이 플레이어가 게임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가 정말로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실천과 효용을 함양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500시간 동안 앉아 있는가?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 Back 13 GG Vol. 23.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ong-Yi Writes with an interest in the interrelations among violence, suffering, and division. Produced works including Mapping the Affective, Pouring Water into a Poisoned Bottomless Jar, and Monthly Paper, and served as dramaturg for the plays Opera Charlotronique and The Man Who Became a Pillow. Author of Hormone Journal and Game Chorus, and co-author of A Mad, Love Song.

  •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타임라인

    그래서 게임과 중독에 관한 글을 쓸 때 모든 식자들은 엘리트주의적 정서를 느낀다. 이 복잡한 맥락을 나는 잘 정리해서 이해했으니 알려주고 싶다! 실제로 이 글의 서두는 그렇게 쓰여졌고, 완성 후에 후회했다. 그런 정리는 이미 너무 많다. 현재에는 게임 중독, 혹은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우리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응과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 가치 있을 것이다. < Back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타임라인 14 GG Vol. 23. 10. 10. 게임 중독, 지겨운 단어 2019년 5월 2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제72회 총회에서 국제질병분류(ICD)의 제11차 개정판이 발표했다. 대규모 개정이 28년만이었다. 28년 묵은 업데이트를 한꺼번에 하다 보니 질병 코드가 14000여 개에서 55000여 개로 대폭 늘었다. 이 개정에 게임이용장애가 질병 코드 6C51을 얻어 등재되면서 논의가 폭발했다. 게임에 대한 탄압, 중독 아니고 과몰입, 중독 아니고 이용장애, 게임은 문화, 게임은 산업, 물질 중독이 아닌 행위 중독, 이 모든 담론 속의 맥락이 제각각 근거가 있었다. 인류 사회 전체에서 어지러운 난상 토론이 일어났다. 그나마 최근에야 좀 정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수많은 단어와 개념들이 이리저리 얽힌다. 게임과 폭력, 두 단어가 만났을 때 일어났던 혼란은 게임과 중독, 두 단어가 만났을 때도 그대로 일어났다.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래서 게임과 중독에 관한 글을 쓸 때 모든 식자들은 엘리트주의적 정서를 느낀다. 이 복잡한 맥락을 나는 잘 정리해서 이해했으니 알려주고 싶다! 실제로 이 글의 서두는 그렇게 쓰여졌고, 완성 후에 후회했다. 그런 정리는 이미 너무 많다. 현재에는 게임 중독, 혹은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우리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응과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 가치 있을 것이다. 각계의 입장 의료와 보건 영역에서는 예방과 치료를 위한 사회적 투자를 주문한다. 게임이용장애가 수면장애, 섭식장애와 같은 행위 중독이고, 인류사에서 이를 질병으로 규정한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적용과 관찰이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새로운 중독 개념을 관찰하여 도입하는 과정이라는 인류사적 맥락에서 타당하다. 산업과 문화 영역에서는, 이 두 관점이 상호보완이 되다니 감개무량하지만, 우려에서 반대까지를 표현하고 있다. 예술 분야 혹은 산업 전반에 대한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관점이다. 훌륭한 아이디어라 해도 현실에 적용될 때는 다운그레이드/침강 현상이 일어났던 역사를 고려할 때 타당하다. 의료 논리와 업계 논리의 타당성이 충돌한다. 행정부 부처 별로도 의견이 충돌한다. 문화 계열은 반대, 보건 계열은 찬성이다. 1차적인 이유는 역시 예산이다. 돈을 받아 집행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자신이 수행하는 임무의 중요성을 우선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런 사업 임무는 제각각 중요할 것이다. 반면 이들에게 돈을 내어주는 입장인 기획재정부는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정치의 시간 이렇게 논리와 입장이 충돌할 때 정리하는 업무를 인간은 정치라고 부른다. 한국의 정치 또한 다른 모든 나라처럼 질병 코드 등재에 관련된 행정 체계를 만들어 놓았다. WHO에서 개정된 ICD를 반영하라는 ‘권고’를 한국 정부에 보낸다. 권고받은 정보를 한국 행정부처가 검토하여 한국의 질병분류인 KSD에 전체 혹은 일부를 반영한다. 이번의 경우, 새로 늘어난 것만 41000여 개 질병이니 검토 및 분류 작업은 오래 걸릴 것이고, 따라서 최소 2025년의 정기 개정 시기에 반영될 것이거나 그보다 늦어질 수도 있다. 이 절차의 소관 부서는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통계청이다. 반영 이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수행하겠지만, ISD의 성격이 수많은 질병을 규정하고 코드화하여 모아놓은 통계 편람이기 때문에, 반영 업무 자체는 통계청이 주관해야 한다. 한국은 2019년 7월 23일에 통계청에 민관 협의체를 만들었다. WHO의 ISD 갱신 2개월 후이니 매우 빠른 편이다. 그런데 이 민관 협의체는 41000여 개 신규 질병 코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용장애, 대중적 용어로는 게임중독 질병 코드 하나만을 다루는 협의체다. 민간위원 14명과 정부위원 8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의료, 게임, 법조, 시민단체, 기타 전문가, 교육부, 과학기술부, 여성가족부, 통계청, 국가조정실, 복지부, 문화체육부의 인물이 모두 들어가 있다. 관련자는 물론 관리자 역할인 국가조정실까지 모두 모인 것이다. 이 22인이 연구와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면, 국가통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서 등재 결정으로 이어진다. 민관협의체의 타임라인 민관협의체는 결정을 내릴 근거를 수집하기 위해 먼저 연구 용역을 3건 발주했다. 연구들은 2019년 12월부터 구체적 단계에 들어갔고, 2년 후에야 완성이 되었다. 이 3건의 연구를 토대로 회의가 연거푸 열렸는데, 2022년 1월 12일의 8차 회의에서 일이 벌어졌다. 올라온 연구 보고서 셋 중에서 하나의 신빙성과 정합성을 일부 민간위원이 문제 삼은 것이다. 해당 보고서는 게임이용장애의 역학조사가 방법론적으로 가능하다는 내용의 ‘게임이용장애 실태조가 기획’ 연구였다. 역학조사를 통해 계량화된 수치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연구 셋 중에서 유일하게 질병코드 도입 찬성측에 유리한 연구 결과였다. 아무튼 이 연구에서 문제점이 지적되자 후속 보완 연구를 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런데 이후 민관협의체는 8개월 동안 후속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을뿐더러 추가 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정권 교체기였기 때문에 생긴 지연이라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졌다. 정지해있던 민관협의체는 2022년 말에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이상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2월 21일, 통계청은 언론 보도에 대한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해당 보도는 사라진 것으로 보여 확인할 수 없지만, 민관협의체 회의에서 통계청 관계자가 ‘한국은 WHO 결정을 그대로 수용해야 해서 게임이용장애는 질병코드에 등재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민관협의체 무용론이 등장한 것이다. 통계청은 민관협의체의 결정은 효력이 있고 한국은 국내표준분류를 만들 때 국내 여건을 감안한다는 내용의 반박을 했지만, 해가 바뀐 4월 4일 국민일보는 여전히 민관협의체 무용론이 존재한다 는 보도를 했다. 8차 회의 이후 아직도 후속 보완 연구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함께였다. 이에 대해서는 통계청과 국무조정실 양쪽에서 반박 보도자료를 내놨다. 후속 연구는 9차 회의에서 결정된 후 세부계획 수립 중에 있으며 2023년 4월 중에 착수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같은 내용의 반박이 4월 24일 뉴스원의 기사 에 대해서도 나왔다. 즉, 2023년 10월 현재에는 아직 연구가 진행중일 것이다. 통계법 제22조 1항 그렇다면 민관협의체 무용론의 논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통계법이다. 통계법 제22조는 표준분류 조항이다. 1항에서는 이렇게 서술한다. “통계청장은 통계작성기관이 동일한 기준에 따라 통계를 작성할 수 있도록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산업, 직업, 질병·사인(死因) 등에 관한 표준분류를 작성·고시하여야 한다.” 국제표준분류, 예를 들어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재 사안에서는 WHO의 ICD가 기준이 된다는 의미를 ‘국제표준분류를 따라가라’ 의미로 보면 강제조항이 된다. 반면 ‘참고하라’는 의미로 보면 권고조항이 된다. 언론 보도에 나온 분위기를 보면 민관협의체와 그 주변 분위기는 강제조항 해석이 우세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강제조항 해석이 우세하고 이를 우려하는 분위기라는 의미는 즉, 현재 민관협의체의 분위기는 질병 코드 등재에 부정적인 쪽으로 흐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분위기를 포착한 언론 보도가 나오기 전인 2023년 2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통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바로 해당 22조 1항을 고치는 내용이다. 국제표준분류가 기준이 아닌 참고가 되며,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국제표준분류의 반영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가 들어가는 개정안이다. 하지만 윤석열 행정부는 이 개정안에 대해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반대 입장이다. 한국의 통계 기준이 국제 기준과 지나치게 거리를 두게 되면 국가간의 통계 비교 문제가 생긴다는 우려, 즉 통계 기준의 갈라파고스화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헌 의원의 통계법 개정안은 아직 계류 중이며, 21대 국회의 회기 막바지임을 고려하면 이대로 회기 종료가 되어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무용론이 고개를 들었고, 이와 별개로 국무조정실에서 4월 20일, 별도의 연구 용역이 나왔다. ‘게임산업 규제 개선 및 진흥 방안 연구’였는데, 여기에 게임 질병 코드 사안도 들어가 있었다. 통계청 산하 민관협의체에서 결론을 늦게 내고 있으니, 중앙부처 주도로 질병 코드 등재를 강행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런 해석에 대해서 국무조정실은 곧바로 그런 의도가 아니며, 결정 주체는 통계청의 민관협의체라고 확언을 했다. 국무조정실의 이 발언은 두 가지 의미로 독해가 가능하다. 첫 번째, 민관협의체의 연구 용역과 별도의 계획은 없다. 즉, 민관협의체에게만 권한이 있다. 두 번째, 민관협의체의 결론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계획은 없다. 즉, 지지부진해져서 결론이 안 나오면 계획을 세우겠다. 두 번째 해석에는 약간의 비약이 들어가 있으므로 가능성은 낮다. 여기까지가 질병 코드 등재에 관한 타임라인이며, 타임라인은 4월 말로 끊겨 있다.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난 2023년 10월 현재, 한국은 아직 민관협의체가 발주한 추가 연구 용역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구도 이 사안에 가장 깊게 연관된 플레이어는 국회, 행정부, 산업계, 문화계, 의료계다. 이 중에서 의료 외에는 미지근하거나 방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질병 코드 등재에 대해 의료계는 찬성, 산업계와 문화계는 반대 입장이다. 행정부는 대체적으로 미지근하다.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부처 간의 찬반 의견이 팽팽한 것이 이유로 보인다. 반면 정치권은 이 사안을 다루는 소수 국회의원들의 주도로 반대쪽으로 기울고 있다. 과방위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관철시키며 게임 중독 용어를 게임 과몰입으로 대체했다. 통계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상헌 의원은, 여당 국민의힘의 하태경 의원과 함께 게임계의 여론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 노력하는 주요 정치인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인들의 활동을 언론이 보도하는 모습에서는 논조의 변화가 읽힌다.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되어 소위원회에 상정이 되면, 이에 대해 국회 내 전문위원들이 검토보고서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이상헌 의원의 통계법 개정안 발의에 대한 보도에는 김일권 수석전문위원이 검토보고서 넣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인정할 경우 관련 규제와 낙인효과가 일으킬 악영향에 대해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법률 전문위원의 의견이 기사화에 포함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바, 언론사가 찬반 중 어느 쪽의 의견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WHO가 ISD를 전면 개정한 2019년에는 ‘게임 중독’이 용어로 사용되면서 게임에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생산되었다. 반면 2020년에는 게임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담론이 계속 유통되었고, 이런 여론이 조성되면서 2022년의 게임의 문화 예술 지위가 인정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 2023년의 게임 과몰입 용어를 사용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한국의 여론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언론의 태도 변화로 읽어낼 수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경우 정책은 여론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재 사안을 다루는 통계청 민관협의체의 절차가 느린 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찬반 의견이 강력히 부딪히는 가운데, 코드 등재를 하지 않으면서도 그 부작용 방지를 철저하고 확실하게 하기 위한 일처리를 하는 중이라서 느린 것일 수 있다. 혹은 행정부 내에 코드 등재를 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서 싸우는 중이라서 느린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서술한 해석에는 약간의 비약과 희망이 들어가 있으며, 실제는 두 가지 해석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Tags: 게임중독, KCD-11, ICD-11,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아이프리버스』와 『비밀의 아이프리』, “프리파라 아저씨”: 무엇이 ‘비밀’인가?

    체크 남방을 입은 덩치 산만한 남자가 자기 몸뚱이만 한 알록달록한 보라색 아케이드 게임기 앞에 앉아 있고, 그 뒤에서 작은 여자아이가 차례를 기다리는 사진이 밈처럼 퍼진 적이 있다. 그 게임의 이름은 『프리파라』다. 모두가 사진을 찍혀 밈이 되어 인터넷 세상을 부유하지는 않지만, 많은 수의 프리파라 “프리파라 아저씨”들이 있었고, 프리파라의 시대 당시 10대 중반이었던 나에게 프리파라의 모든 것을 가르쳐준 것도 프리파라 아저씨(들)이었다.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bin Yoon Became a gamer through a bond with the Pokémon series that began in 2007, though in 2023 declared a breakup with it. Even so, the line of output text from the Pokémon games—"The sunlight turned harsh!"—remains a life motto. Has lived a life of making fanzines whenever a new favorite game comes along, but since 2024 has taken up game criticism as a new language for appreciation. Sometimes writes and draws fan works under the handle "Runts."

  • 게임플레이의 영화화에서 게임-보기의 영화화로

    “치킨 조키!” 주인공 스티브가 외치자 영화관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팝콘을 집어 던진다.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2025)가 개봉한 미국 영화관의 풍경이다. 틱톡 등 숏폼 플랫폼을 타고 바이럴된 컬트적 현상은 지난해 예고편이 공개되자 거센 조롱이 뒤따랐던 것에서 출발한다. 스티브역의 잭 블랙은 게임 팬들이 생각하던 이미지와 큰 괴리가 있었고, CGI로 ‘실사화’된 마인크래프트 특유의 네모난 이미지가 언캐니 밸리를 자극했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ngsoo Park Majored in art studies as an undergraduate and is currently studying media cultural studi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Writes primarily about film, while keeping a curious eye on visual culture broadly—art, games, and broadcasting among them. Also a film critic, host of the podcast Café Critique, and an organizer of community film screenings.

  • Computer games and art: the practice of deepening our gameplay experiences

    The question ‘are computer games art?’ is not a productive one if there is the expectation that there can be a reasonable answer to it without some questioning of the question itself. I will explain why this is so and make the case that we would be better served by thinking about the ‘aesthetic experiences’ that playing computer games may foster as opposed to their categorization as art or as non-art.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english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Feng Zhu (Game Researcher)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후원 경제’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중심으로

    2023년 비디오 게임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RPG 게임을 꼽으라면, 대다수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꼽을 것이다. 여론은 <발더스 게이트 3> 쪽이 우세다. <스타필드>는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고 홍보에 힘입어 많은 판매량을 올렸지만, 게임 디자인에서 실망스러운 지점도 있어, 베데스다식 RPG 게임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을 받았다면 <발더스 게이트 3>는 풍부한 상호작용과 롤플레잉으로 RPG 장르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으며,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과 함께 올해의 게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 Back 15 GG Vol. 23.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ihwan Lee After completing the Master of Fine Arts in Cinema Studies at the School of Film, TV & Multimedia,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currently contributes film and game criticism. Loves adventure games. (antistar23@gmail.com )

  • 영상기술, 매체, 도구, 방법론으로서의 머시니마에 대한 소고

    도입부에 적어둔 것처럼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즈니의 스턴트 시뮬레이터 게임 [스턴트 아일랜드 Stunt Island](1992)에서 인게임 기능으로 처음 도입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해당 게임은 가상의 섬에서 다양한 스턴트 시퀀스를 제작하고, 그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주된 플레이였다. < Back 영상기술, 매체, 도구, 방법론으로서의 머시니마에 대한 소고 26 GG Vol. 25. 10. 10. 머시니마(machinima)는 머신(machine)과 영화(cinema)의 합성어로, 비디오게임을 통해 제작된 영화를 부르는 용어다.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 기술이 일반화되며 출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영화 분야에서 CGI를 활용한 VFX 기술이 도입되며 이미 맹아를 싹틔우고 있었다. <트론 Tron >(1982)을 통해 본격적으로 CGI가 도입된 이래, 3D 애니메이션과 VFX의 기술적 발전사는 게임엔진의 발전사와 궤를 함께한다. 게임엔진은 실시간 랜더링이 가능하다는 지점에서 영화제작에 있어 프리비주얼 단계에 사용되거나, 버추얼 프로덕션으로서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언리얼이나 유니티 등의 게임엔진이 활용된다 [1] . 이를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2016) 제작과정을 담은 블루레이 부가영상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마치 영화 속 ‘오아시스’에 접속하듯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기기를 쓴 스필버그는 버추얼 프로덕션으로 제작된 영화 세트장을 살펴보며, 마치 VR 게임을 하듯 카메라 동선을 짜고 세트장의 디테일을 변경한다[ 링크 ]. 라이브 스크린을 활용한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이나 디즈니+ 드라마 <만달로리안 Mandalorian >(2019~) 또한 게임엔진을 적극 활용해왔다. 비슷한 방식으로, 미술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 작업들 또한 게임엔진을 적극 활용한다. 국내에선 여러 전시와 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된 미디어 아티스트 루양의 <물질 세계의 위대한 모험>(2020)과 <도쿠_환상을 뒤엎는 이분법적 충돌>(2023)은 자신을 직접 3D 스캐닝한 젠더리스 아바타 ‘도쿠’를 사용한 여러 작품을 내놓았다.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 안가영은 (2021)을 통해 예술가들이 아바타를 사용해 도피한 세계를 그려낸다. 이들 작품은 게임엔진인 유니티로 제작되었다. 이처럼 영화, 그리고 무빙이미지 기반의 미디어아트 작업에서 게임엔진이 도입된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국내외 영화/애니메이션 전공에서 게임엔진을 활용한 실기 강의도 개설되어 있다. 머시니마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글에서 게임엔진을 사용한 작업을 왜이리 길게 이야기하는가? 이는 게임과 영화 모두 움직이는 이미지에 기반해 있다는 점에서 비교되는 매체이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CGI의 기술적 발전사를 공유하고 서로의 프로덕션에 서로가 활용된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허나 이보다 중요하게, 머시니마로 지칭되는 작품의 유형이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문제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루양이나 안가영의 작업은 특정한 게임을 통해서 제작된 작품이 아니다. 게임적인 특징들, 이를테면 아바타나 메타버스와 같은 용어들로 지칭되는 디지털 가상세계의 묘사를 위해 게임의 이미지가 채택된 것에 가깝다. 이는 게임엔진으로 가상의 게임을 제작한 뒤 그 플레이영상을 토대로 제작된 송민정의 <악사라 마야 AKSARA MAYA>(2019), 김경묵의 <폐쇄회로>(2020) 등을 정말로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때문에 본 글에서는 머시니마를 이미 출시된 게임을 통해 제작된 영화들로 한정하고자 한다. 머시니마의 짧은 역사 머시니마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도입부에 적어둔 것처럼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즈니의 스턴트 시뮬레이터 게임 [스턴트 아일랜드 Stunt Island ](1992)에서 인게임 기능으로 처음 도입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해당 게임은 가상의 섬에서 다양한 스턴트 시퀀스를 제작하고, 그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주된 플레이였다. 게임 안에서 영화의 한 시퀀스를 직접 만들어 보는, 전-머시니마(pre-machinima) 형태를 의도치 않게 취했던 게임이랄까. 이러한 녹화 기술은 이후 [둠 Doom ](1993)이나 [퀘이크 Quake ](1996) 등의 FPS 게임에서 리플레이를 기록하는 데모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주로 공략 영상이나 스피드런을 남기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되던 녹화 기술이 머시니마로 만들어진 최초의 사례 중 하나는 <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 >(1996)이다. 이 작품은 [퀘이크]의 클랜 레인저스(Rangers)가 제작한 것으로 100초 분량의 멀티플레이를 자유 시점의 카메라로 담아낸다. 제목의 ‘캠퍼’는 FPS 게임에서 맵 구석에 엎드려 누군가 오길 기다리는 플레이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 작품 또한 그러한 게임플레이를 내용으로 삼는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양한 ‘퀘이크 영화’가 등장하며 인기를 끌게 된다. 같은 해인 1996년, 또 다른 최초의 머시니마 중 하나라 불리는 < 기적 Miracle >(1996)이 갤러리를 통해 공개된다. 전투기 시뮬레이터 [F/A-18 Hornet](1996)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전투기가 물 위를 활주로처럼 달리는 모습을 담은 100초 가량의 영상이다. 이 작품의 경우 미술작가 밀토스 마네타스(Miltos manetas)의 작품으로, ‘퀘이크 영화’와 달리 작가의 개인전을 통해 갤러리에서 공개되었다. 다시 말해, 머시니마는 그 출발점부터 게이머와 미술가라는 두 주체에 의해 온라인과 갤러리라는 두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던 예술형식이라 할 수 있다. [스턴트 아일랜드] 플레이 화면 레인저스 <캠퍼의 일기> 스틸컷 이 시기에 머시니마라는 용어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머시니마라는 용어는 ‘퀘이크 영화’에 매료된 휴 행콕(Hugh Hancock)이 영화제작자인 고든 맥도널드(Gordon McDonald)와 함게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트레인지 컴퍼니(Strange Company)를 설립한 이후 만들어낸 용어이다. 1999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행콕과 스트레인지 컴퍼니는 몇 편의 머시니마를 제작했고, 2000년 머시니마 제작자를 위한 온라인 허브 웹사이트 ‘머시니마 닷컴’ [2] 을 오픈한다. 2002년에는 머시니마 예술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achinima Arts & Sciences)를 설립하기도 하고, 이 단체를 통해 최초의 머시니마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휴 행콕은 [퀘이크]로 제작한 < Eschaton - Darkening Twilight >(1997)나, 게임사 모놀리스 프로덕션(Monolith Productions)에서 개발한 게임엔진 ‘리스테크’를 활용한 독립적인 머시니마 제작을 위한 프로젝트 리스테크 필름 프로듀서(Lithtech Film Producer)를 통해 제작한 < 오지만디아스 Ozymandias >(1999) [3] 등을 제작하기도 한다. 2006년에는 최초의 장편 머시니마 < 블러드스펠 Bloodspell > 또한 공개한다. 다른 한편으로 P2P 플랫폼과 유튜브의 등장을 통해 머시니마는 일종의 팬 무비의 지위를 갖기 된다. 루스터 티스(Rooster Teeth)가 [헤일로 Halo ](2001)을 통해 제작한 < Red vs. Blue >(2003) [4] 는 ‘편가르기’가 중심인 게임 내 전쟁 상황에서 병사들이 “우리는 왜 싸우지?”라는 의문을 갖는다는 내용의 블랙코미디로, P2P 서비스를 통해 배급/배포된 이후 2006년부터는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다. 이후 18개 시즌에 한편의 장편으로 구성된 장기 시리즈로 연재된다. 코리 아켄젤 <슈퍼마리오 무비> 스틸컷 필 솔로몬 <엠파이어> 스틸컷 다만 이렇게 대중적인 주목을 받아 온, 혹은 팬 무비로서 인기를 얻은 머시니마는 최근 힘을 잃고 있다. 머시니마 닷컴은 워너에 인수된 이후, 2019년 1월 워너에 의해 폐쇄된다. 그곳에서 운영하던 머시니마 유튜브 채널 ‘Machinima Inc.’ 또한 폐쇄된다. 2024년에는 루스터 티스가 폐업 소식을 알려 왔다. 물론 [하프라이프 2 Half-Life 2 ](2004), [카운터스트라이크: 소스 Counter-Strike: Source ](2004), [블랙 메사 Black Mesa ](2012) 등의 에셋을 활용한 머시니마 스키비디 토일렛(Skibidi Toilet)과 같은 시리즈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하다. 다만 2014년 트위치의 등장 이후 게임 스트리밍 시장이 활성화된 이후 다양한 방식의 게임플레이 영상이 유튜브 등지에 업로드되는 상황에서 ‘팬 무비’로서의 머시니마는 힘을 잃는다. 이를테면 팬 무비로서의 ‘퀘이크 영화’는 있지만 ‘GTA 영화’나 ‘마인크래프트 영화’는 (물론 존재는 하지만) 팬 무비보다는 실험영화나 미술의 영역에서 소화되는 상황이다. 영국의 작가 듀오 래리 아키암퐁(Larry Achiampong)과 데이빗 블랜디(David Blandy)가 함께 제작한 <파농을 찾아서 Finding Fanon > 시리즈(2015~2016)와 그것의 외전인 시리즈(2016)는 [GTA V](2013)의 촬영용 모드를 활용하여 제작되었는데, [GTA V]가 풍자하는 백인중심적이며 폭력적인 세계관 속에서 탈식민주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의 유실된 희곡을 선보인다는 컨셉의 작품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Super Mario Bros. ](1983)의 카트리지를 임의로 조작해 글리치를 일으키고 그것을 통해 제작한 코리 아켄젤(Cory Arcangel)의 <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 Super Mario Cloud >(2002)나 <슈퍼 마리오 무비 Super Mario Movie >(2005) 또한 갤러리를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특히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의 경우 마치 회화와 같은 방식으로 전시되었다. 그 밖에도 [GTA V](2013), [마블 스파이더맨 Marvel’s Spider-man](2018), [어쎄신 크리드 오리진 Assassin’s Creed Origins ](2017) 등 다양한 게임에서 글리치로 인해 한없이 추락하는 캐릭터들을 담은 <페더폴 Featherfall>(2019)나 필름 작업을 이어오던 실험영화 감독 필 솔로몬(Phil Sonomon)이 [GTA IV](2008)로 앤디 워홀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엠파이어 Empire>(2008)와 같은 작품들은 미디어아트와 실험영화의 교차점에서 머시니마를 실험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비디오에세이, 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 도입부에서 완성된 게임이 아니라 게임엔진을 활용한 작업들을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라는 하나의 의문을 제시했다. 또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자면, 게임플레이의 녹화 장면을 기록하여 만든 모든 영상물을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다. 2021년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된 기획전 ‘GAME x CINEMA’ [5] 는 네 개의 섹션으로 여러 ‘게임 영화’를 구분했다. <트론>이나 <레디 플레이 원> 등 ‘게임 소재’의 영화들, <슈퍼 마리오>(1993)나 <반교: 디텐션>(2019) 등의 ‘게임 원작’ 영화들, 게임과 플레이어, 제작자와의 관계를 다룬 여러 편의 ‘게임 다큐멘터리’들, 그리고 마지막이 머시니마다. 극장 대신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된 이 기획전에서 머시니마로서 소개된 작품들의 구성은 꽤나 다양하다. 앞서 언급한 나 <오지만디아스>, <캠퍼의 일기>, <페더폴> 등 P2P, 유튜브, 머시니마 닷컴, 혹은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소개된 여러 작품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튜브를 통해 주로 소개된 여러 비디오 에세이들이 있다. 1세대 유튜버라 할 수 있는 AVGN의 [ 캐슬바니아 2: 사이먼의 원정 Castlevania II: Simon's Quest ](1987) 리뷰부터, 비디오게임 스피드런에 관한 유튜버 서머닝 솔트(Summoning Salt)의 비디오에세이, <4-2: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장 악명 높은 레벨의 역사 4-2: The History of Super Mario Bros.' Most Infamous Level >(2018), 역시 비디오게임에서 카메라 시점의 문제를 다룬 유튜버 닉 로빈슨(Nick Robinson)의 비디오에세이 <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This Is What a 'Second Person' Video Game Looks Like >(2019) 등이 머시니마로서 소개되었다. 이들은 머시니마인가? 혹은 아닌가? 닉 로빈슨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다큐멘터리 영화제들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만났다 We Met in Virtual Reality >(2022), <니트 아일랜드 Knit’s Island >(2023),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 Grand Theft Hamlet >(2024) 등은 각각 [VR Chat](2014), [데이즈 DayZ ](2013), [GTA V] 등을 통해 제작된 다큐멘터리이며, 이들 작품은 일종의 메타버스로서 기능하는 멀티플레이 게임 안에서의 생활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갖는다. 특히 이들 작품은 별도의 모드를 사용하는 대신 게임 내 캐릭터의 시점을 그대로 녹화해 사용하는데, 때문에 영화의 감독은 촬영감독이자 게임 플레이어로 활동하게 된다. 일종의 자기민속지(Auto-Ethnography)적 성격을 갖는 문화인류학적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랄까. 이와 같은 자기민속지적 맥락은 영화의 적지 않은 부분을 넥슨의 MMORPG [일랜시아](1999)의 게임플레이 녹화화면이 차지하는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rld of Warcraft ](2004) 속 녹화되지 못한 순간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재연(reenactment)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2024) 등과도 연결된다. 다만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게임플레이 녹화화면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머시니마적 성격을 갖는, 게임을 ‘통해서’ 제작된 성격을 갖는다면,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머시니마보단 부분적으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갖는다. 머시니마는 결국 영화제작의 도구이자 배경으로서 게임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온라인 기획전 ‘이것은 가상이 아니다’를 통해 소개된 머시니마 다큐멘터리와 비디오 에세이들은 게임이 메타버스로서, 재연의 방식으로서 갖는 민속지적 성격과 미학적 실험을 드러낸다. 앞서도 언급한 필 솔로몬의 <엠파이어>나 토탈 리퓨절(Total Refusal)의 <근무 중 이상 무 Hardly Working >(2022)와 같은 작품은 플레이어의 개입 없이도 게임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그려낸다. 전자가 알고리즘에 따라 변화하는 게임 내 날씨, 빛, 소음, NPC 움직임의 기록이라면, 후자는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는 [레드 데드 리뎀션 2 Red Dead Redemption II ](2018) 속 NPC들을 쫓는다. 마리 풀스턴(Marie Foulston)의 <더 그래니즈 The Grannies >(2021)처럼 게임 내 글리치를 찾아다니는 게임개발자 클랜을 담아내는 사례도 있다. 혹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세컨드 라이프 Second Life ](2003)나 [마인크래프트 Minecraft ](2009)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담은 <메이드 인 세컨드 라이프 Made in Second Life: The Movie >(2023)과 <유토피아를 찾아서 Tracing Utopia >(2021)가 있다. 혹은 없어진 이민자 마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해당 마을의 풍경을 [마인크래프트]로 재현한 프로젝트 <쏘텔 재팬 타운의 기억 Redefining Community: The Evolution of Sawtelle Japantown >(2018)처럼 다큐멘터리에서 재연의 영역을 머시니마로 구현한 작품 또한 존재한다. 이들 작품은 각자의 방식대로 게임을 다큐멘터리적 대상으로, 혹은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하고, 머시니마는 그곳에 개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해당 기획전의 프로그래머 강진석은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들을 “가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 세계의 일부이며 기록할 만한 것으로 재설정하는 작업” [6] 으로 정의한다. 즉, 이들 작품은 게임을 다큐멘터리가 다룸직한 세계로, 우리가 생활하고 살아가는 세계의 일부이자 확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발언하는 머시니마이다. 토탈 리퓨절 <근무 중 이상 무> 스틸컷 조셉 드라페 <이라크에서의 죽음> 스틸컷 그렇다면 비디오 에세이로서의 머시니마는 어떠한가? 시네마테크KOFA의 기획전에서 상영된 유튜버들의 비디오 에세이와, 미술관이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된 비디오 에세이/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들은 서로 다른 차이를 갖는가? 물론 유튜브의 비디오 에세이들 또한 게임과 세계, 그리고 (머시니마)영화 관한 충분한 비평적 함의를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라크에서의 죽음 dead-in-Iraq >(2007)이나 <나만의 풍경: 미군이 되는 법 My Own Landscapes >(2020)처럼 게임의 군사적 활용이나 <몬도 카네 Mondo Cane >(2018)처럼 디지털 윤리에 관한 문제를 던지는 머시니마 작업, 다시 말해 하룬 파로키(Harun Faroki)의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 >(2009~2010)이나 <평행 I-IV Parallel I-IV >(2012~2014)에서 던진 문제의식과 공명하는 작업은 하나의 경향성을 이룬다. 혹은 <구성된 순간 The Constructed Moment >(2017)이나 <말로우 드라이브 Marlowe Drive >(2017), <지옥으로의 하강 Descent into Hell >(2021)처럼 게임플레이 경험을 사적 감정의 에세이로 풀어내는 일련의 경향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영화적 비디오 에세이로 여겨지는 일련의 머시니마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는 머시니마 사이의 차이라면 그것이 영화제나 미술관 등 제도적 승인을 받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AVGN처럼 밈이나 격한 말투로 남기는 리뷰가 되었건, 게임의 디자인이나 스피드런 같은 특정한 방식의 게임플레이에 관한 탐구이건, 마치 영화의 숏과 몽타주를 분석하고 사조를 탐구하는 일련의 영상 비평들과 같은 비평적 행위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7] 혹은 비디오 에세이가 비평적 성격이 강한 영화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면, 게임에 관한 비디오 에세이 또한 머시니마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경계는 매우 흐릿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게임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분석하고 리뷰할 수 있는 대상이자,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작품들이 존재하며, 하나의 예술이자 문화의 형식이며, 접근이 용이한 예술적 도구로 자리잡았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샘 크레인, 피니 그릴스 <그랜트 테프트 오토의 햄릿> 스틸컷 머시니마의 한계와 미래? 재차 도입부의 문장으로 되돌아가서, 머시니마는 게임(machine)과 영화(cinema)의 합성어다. 다만 살펴본 것처럼 머시니마는 태생부터 영화관(cinema)이 아니라 온라인이나 갤러리/미술관에서 출발했다. 게임의 이미지를 영화관의 스크린 환경에서 실험하고자 한 필 솔로몬의 실험영화와 같은 사례들이 있지만, 최초의 장편 머시니마인 <블러드스펠>은 극장이 아닌 온라인 혹은 DVD를 통한 배급만을 진행했을 뿐이다. <니트 아일랜드>나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과 같은 최근의 장편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들 또한 몇몇 영화제에서만 극장상영 되었을 뿐, 일반 배급은 VOD나 무비(MUBI) 같은 OTT 플랫폼을 통해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머시니마는 영화(cinema)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순한 영화(movie)이거나 미술관을 위한 무빙-이미지이거나 그저 또 하나의 콘텐츠인가? 물론 영화의 지위과 예전과 같지 않지만, 우리는 머시니마가 정말로 영화의 지위를 가져본 적은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머시니마 제작을 위해 동원되는 게임의 가짓수가 생각보다 협소하다는 지점 또한 하나의 한계다. 초창기 머시니마가 [둠], [퀘이크], [헤일로] 등 녹화 기능과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FPS 게임을 주된 플랫폼 삼았다면, 현재에 이르는 시점 동안에는 주로 [세컨드 라이프], [심즈 The Sims ] 시리즈(2000~2014), [마인크래프트]처럼 자유롭게 상황과 배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샌드박스형 게임, 혹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GTA V], [레드 데드 리뎀션]처럼 광활한 공간과 다양한 NPC, 멀티플레이 기능과 여러 모드를 동원할 수 있는 게임들이 주로 사용되곤 한다. 이는 멀티플레이나 오픈월드 게임의 특징, 다양한 인물과 상황이 창출되거나 설정될 수 있으며 그것을 다양한 카메라 시점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이들 작품이 채택되는 것일테다. 그렇다면 다른 머시니마를 떠올려 볼 수는 없을까? 이를테면 [프로젝트 좀보이드 Project Zomboid ](2013)로 제작해 쿼터뷰만으로 구성된 머시니마 픽션이라던가, [스타듀 밸리 Stardew Valley ](2016)나 [모여봐요 동물의 숲 あつまれ どうぶつの森 ](2020)으로 제작된 머시니마, 혹은 선명한 세계관과 내러티브를 지닌 [마블 스파이더맨]이나 [호라이즌 제로 던 Horizon Zero Dawn ](2017),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 ](2019)의 머시니마 팬 무비는 불가능한 것일까. 휴 행콕 <오지만디아스> 스틸컷 어떤 면에서 지금의 게임과 게임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공간, 그들이 게임의 구성요소들을 가지고 유희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갈 공간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는 지점이 새로운 머시니마 플랫폼으로서의 게임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머시니마의 사례는 아니지만, 과거 [메이플스토리](2001) 공식 가이드북에 ‘싸비’라는 유저가 인게임 스크린샷을 활용해 제작한 스크린툰 기억하는가? 게임 전체의 내러티브와 관계없이 한 길드의 이야기를 써내려 갔던 그러한 만화가, 지금의 [메이플스토리]에서 가능할까? 때문에 최근 게임들의 팬 무비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8] 으로 유튜브에 업로드되거나, 시청자와 대화하며 개별적인 맥락의 이야기를 게임플레이와 함께 써내려가는 스트리머의 영상이 하나의 장르로 인식됨으로써 ‘이야기 기계’로서의 머시니마가 힘을 잃은 것일 수 있다. <캠퍼의 일기>나 처럼 게임플레이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리던 초창기 머시니마는 머시니마의 예술적/영화적 가능성을 점쳐보고자 했던 <오지만디아스>나 <블러드스펠>과 같은 작품들과 공존했다. 하지만 현재 영화제나 미술관에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머시니마는 게임을 창작 도구로 활용한 작품들이 아니라 게임이 자체적으로 갖는 사회적/예술적 기능에 관심을 둔 작품들이다. 유튜버들의 게임 리뷰, 스트리머의 게임플레이 영상, 게임에 관한 비평적 비디오 에세이, 게임 내에서 촬영된 다큐멘터리 등의 경계가 흐려지고, 게임에서 촬영한 무수한 콘텐츠가 오르내리는 지금, 머시니마의 방향은 영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직면하는 것을 향한다. 게임은 영화의 재료이자 도구라기보단 영화의 대상이 되었고, 그 안에서 머시니마라는 장르는 비디오 에세이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자연스레 이행한다. 일종의 메타비평으로서의 머시니마가 현재의 모습이라면, 미래의 머시니마는 어떤 모습일까? 혹은, 새로운 머시니마 극영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무수한 머시니마 속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머시니마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언급된 머시니마 리스트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 1996 <기적 Miracle> 1996 1997 <오지만디아스 Ozymandias> 1999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 Super Mario Cloud> 2002 2003 <슈퍼 마리오 무비 Super Mario Movie> 2005 <블러드스펠 Bloodspell> 2006 <이라크에서의 죽음 dead-in-Iraq> 2007 <엠파이어 Empire> 2008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 2009~2010 <평행 I-IV Parallel I-IV> 2012~2014 <파농을 찾아서 Finding Fanon> 2015~2016 2016 <구성된 순간 The Constructed Moment> 2017 <말로우 드라이브 Marlowe Drive> 2017 <쏘텔 재팬 타운의 기억 Redefining Community: The Evolution of Sawtelle Japantown> 2018 <몬도 카네 Mondo Cane> 2018 <4-2: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장 악명 높은 레벨의 역사 4-2: The History of Super Mario Bros.' Most Infamous Level> 2018 <페더폴 Featherfall> 2019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This Is What a 'Second Person' Video Game Looks Like> 2019 <나만의 풍경: 미군이 되는 법 My Own Landscapes> 2020 <더 그래니즈 The Grannies> 2021 <유토피아를 찾아서 Tracing Utopia> 2021 <지옥으로의 하강 Descent into Hell> 2021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만났다 We Met in Virtual Reality> 2022 <근무 중 이상무 Hardly Working> 2022 <니트 아일랜드 Knit’s Island> 2023 <메이드 인 세컨드 라이프 Made in Second Life: The Movie> 2023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 Grand Theft Hamlet> 2024 [1] 김철현, 「게임 엔진과 영화 제작 현황」, 『방송과 미디어』, 30(1), 2025. 35-43쪽. [2] http://machinima.com/ . 머시니마 닷컴은 워너에 인수된 이후 2019년 1월 폐쇄된다. [3] 퍼시 비시 셀리의 동명 시를 원작 삼는 작품으로, “게임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이 작품을 호평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4] 링크의 영상은 2015년 ‘리마스터’된 영상으로, 2014년 [헤일로]의 리마스터 게임이 출시됨에 따라 머시니마 또한 리마스터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리마스터’의 가능성은 머시니마가 갖는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5] 프로그램 상영작과 소개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337 [6] 강진석, 「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 『다큐멘터리 매거진 DOCKING』, 2025, http://www.dockingmagazine.com/contents/40/340/ [7]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은 영상을 글로 비평하는 것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로, 영화에 대한 비평을 영화로서 시도하는 하나의 장르다. 비디오를 통해 영화의 수집과 편집이 용이해진 1980년대 출발하였으나, 디지털 영화로의 전환과 유튜브/비메오 등의 플랫폼 이후 더욱 활발해졌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논문을 참조할 수 있다. 이선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형식’과 ‘활동’으로서 영화비평: 시네 토크, 팟캐스트, 비디오 비평을 중심으로」, 『프리뷰』, 20(2). 2023. 83-120쪽. [8] 이를테면 [스타듀 밸리]나 [할로우 나이트 The Hollow Knight ](2018), [발더스 게이트 3 Baldur’s Gate 3 ](2023) 등 인기 인디게임의 팬 무비들은 머시니마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곤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e스포츠 25년, 그 좌충우돌의 역사

    초창기 e스포츠는 열악한 환경에서 탄생했다. 1999년 처음 중계된 제5회 하이텔배 KPGL(Korea Professional Gamers League) 당시에는 방송국 지원이 없어 탁구대에 천을 씌워 경기 테이블과 중계석으로 사용했으며, 경기복 두 벌을 출전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입었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e스포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ochan Park Studies spectated games, including e-sports, with a keen interest. Majoring in media cultural studi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 죽음이라는 기억, 죽음이라는 기록 : 『리턴 오브 디 오브라 딘』

    회중시계의 이름은 플레이어에게 내리는 일종의 명령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을 기억하라(memento mortem). 그리고 기억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개념을 상상하라. ‘기록’될 죽음 위에서 죽음의 ‘기억’을 상기하라. 그러므로 결국, 죽음의 장면(mortem)이 아닌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 Back 죽음이라는 기억, 죽음이라는 기록 : 『리턴 오브 디 오브라 딘』 31 GG Vol. 26. 8. 10. 시각 매체와 기억은 좀처럼 정의하기 어려운 관계를 가진다. 시각 매체에는 ‘보여준다’는 명백한 전제가 있다. 하지만 기억은 ‘떠올릴’ 뿐 명백한 형태로 ‘본다’고 말하지는 못하는 대상이다. 기억은 언제나 어렴풋한 형태, 몽글몽글한 이미지가 되어 머릿속을 잠시 스쳐갈 뿐이다. 이 관계는 단순히 감각의 문제만이 아니다. 기억과 정확성의 관계 역시도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우리의 기억은 물리 매체의 형식처럼 단정히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섞이고, 풍화되고, 왜곡된다. ‘명백한 기억’이란 단어는 그렇게 쉽게 발화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기억은 구체성이 있는 ‘단단한 물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이 (비디오 게임을 포함한) 시각 매체가 기억의 작동을 혼동시키는 근거가 된다. 영화의 ‘플래시백’이라는 형식은 기억의 작동이 마치 ‘있는 그대로 시각적으로 재현되는 것’인양 받아들이게 만든다. 특별한 첨언이 없는 한, 플래시백이 재생되는 그 순간부터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영상은 당위적으로 사실인 것이 된다. 그리고 이 관계에는 장치적 맥락이 들어서 있다. 시각 매체의 기억의 작동은 마치 우리의 기억이 그들의 장치 구조와 동위에 있다는 듯이 구는 측면이 있다. 기억을 불러일으킬 만한 장치가 스위치를 넣으면, 재생되듯 눈 앞에 펼쳐진다. 이 방식의 기억은 기록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 이는 기억과 기록을 구분하지 않는 태도다. 루카스 포프의 『리턴 오브 디 오브라 딘』(이하 『오브라 딘』)은 이런 현상을 보이는 가장 대표적인 비디오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은 19세기 초의 보험조사원이 생존자 없이 돌아온 배 ‘오브라 딘 호’의 조사를 맡으며 시작된다. 의뢰주인 헨리 에반스로부터 비어있는 일지와 함께 회중시계 ‘메멘토 모르템(Memento Mortem)’을 받은 주인공은 죽음의 흔적으로부터 ‘죽음의 순간’을 살펴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를 통해 각 선원들의 죽음을 살피고, 그들의 이름과 사망 원인으로 일지를 채우는 것이 목표가 된다. * 메멘토 모르템(Memento Mortem)은 ‘죽음이라는 사건을 기억하라’에 가까운 의미다. 이 회중시계는 기억의 재생에 대한 명백한 장치적 매개물이다. 포프의 이 구상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기억을 일종의 재생되고 고정된 단단한 무언가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오브라 딘』이 재생하는 기억은 전적으로 시공간적으로 고정된 디오라마의 형식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플레이어는 고정된 기억의 세계 사이를 제약없이 거닐며 ‘사건의 한복판(in media res)’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다. 마치 밀랍인형관이나 생활사 박물관처럼 보이는 이 형식에선 ‘기억’이 가진 본질적 물렁함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억과 결부되어 명백히 거론되어야 하는 질문이 있음에도, 플레이어들은 좀처럼 접촉하지 못한다. 과연 이 도구가 재현하는 이 기억은 진실인가? 장치의 기능이 어떠한 왜곡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없는가? 왜 이러한 질문을 금세 건너뛰며 이 풍경을 명백한 것으로 이해하도록 만드는가? 비디오게임의 ‘단단한 기억’은 영화의 그것보다도 훨씬 더 단언된 명백함을 가진다. 요는 기억을 식별하는 과정에 있다. 예를 들어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처럼, 영화 전체를 거대한 플래시백으로 구성하는 영화들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영화가 투사하는 기억들을 전부 부정해보자. 물론 그렇게 받아들이는 순간 감상으로부터 획득한 감동이나 주제 따위는 모두 해체되어버리긴 할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불쾌함을 느낄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시도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실제로는 잭과 로즈가 심각하게 대립하는 사이였고 로즈가 잭을 밀치고 배에 탔다고 한들, 누가 그것을 확인시켜줄 것인가? 『타이타닉』을 사랑하는 다른 관객과 언쟁은 발생할지언정 그 누구도 이 ‘오도된 기억의 가능성’에 대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선언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방식의 주장이 가능한 것은 팀 버튼의 『빅 피쉬』나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플래시백 자체가 호도되었을 가능성을 전제하는 영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앞선 영화들과 이들 사이에는 의심의 가능성이 서사적으로 제시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플래시백 자체의 편집 방식에는 차이가 없다는 점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1] . 하지만 『오브라 딘』은 ‘명백한 정답의 진실’을 전제한다. 플레이어는 획득한 단서를 기반으로 선원의 이름과 사인을 일지에 적어넣으며, 게임 메커닉은 이 기술의 정답 여부를 판별한다. (정답이 3개 누적될 때마다 판정이 이루어지며 확정된 정답은 수정이 불가능하다.) 즉 게임은 진실에 대한 의문으로 빠지기 전에 이미 그 여부를 선험적으로 확정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답이 있는 과거라는 측면에서 『오브라딘』은 기억의 단단함을 여전히 추종한다. 기억은 재생 가능한 것이며, 그 안에 오류의 가능성은 없다. 특히 『오브라 딘』의 이러한 기억-재생 메커니즘과 유사한 메커닉을 가진 게임들 사이에서 나오는 공통점은 이 기억의 단단함에 더 깊은 의문을 제시한다. 풀브라이트의 『타코마』와 KeokeN 인터랙티브의 『딜리버 어스 더 문』은 『오브라 딘』과 유사한 기억-재생 메커니즘을 다룬다. 두 SF 테마의 게임은 공교롭게도 ‘홀로그램식 녹화-재생 장치’라는 같은 설정을 공유한다. 이를 통해 이미 비어버린 우주 스테이션과 달기지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다시금 구축해나가게 된다. 이 때, 이 두 게임의 주인공은 『오브라 딘』의 주인공과 유사한 위치에 선다. 『타코마』는 타코마 스테이션의 소유주인 ‘벤투리스 사’에서 파견된 사원으로 스테이션의 미응답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 『딜리버 어스 더 문』 역시 마찬가지로 세계 우주 위원회의 조사 요원이 되어 연락이 끊긴 달 기지의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세 게임은 모두 특정한 기업 혹은 기관으로부터 조사의 명령을 받고 파견된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전적으로 (자본 또는 에너지라는) 경제적 맥락을 등에 안고서 투입된다. 게임들의 목표는 이들이 재현하는 기억의 구체성, 그러니까 ‘단단함’과 모종의 연결을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물렁한 기억의 게임들 잠시 이 단단함과 차별된 기억의 게임들을 체크해봐도 좋을듯 하다. 대표적으로 돈노드 엔터테인먼트의 『텔 미 와이』와 자이언트 스패로우의 『왓 리메인즈 오브 에디스 핀치』(이하 『에디스 핀치』)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두 게임은 앞서 제시한 게임들과 달리 기억이 가진 ‘물렁함’을 상당히 다룬다. 『텔 미 와이』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오랜만에 방문한 집에서 어머니와의 기억의 잔류를 본다. 이 환영은 주인공인 두 쌍둥이(타일러와 알리슨)가 가지고 있는 초자연적 감각의 결과물로 제시된다. 타일러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던 어머니에 대한 나쁜 기억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그 기억이 정확하지 않음을 깨달아간다. 물론 『텔 미 와이』가 재생하는 기억의 환영은 여전히 일정량 ‘단단함’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게임이 가지고 있는 태도는 기억이라는 형식 자체가 가진 불완전함이다. 기억은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의 복잡한 관계에서 진실을 생성해낸다. 타일러의 여정은 어떤 면에선 『오브라 딘』의 명제에 대한 재고와도 같다. 기억은 그 자체로 진실을 수반하는가? 타일러의 여정은 그것이 점진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과정과 다름이 없다. * 『텔 미 와이』 『에디스 핀치』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주인공 에디스 핀치는 어머니가 남긴 기록을 따라 어머니가 어릴 적 살던 집을 찾아간다. 각 가족 구성원이 기묘한 죽음을 맞이한 이 집에서, 에디스는 가족들이 겪었던 일들을 다양한 감각적 방식으로 회상한다. 『에디스 핀치』의 감각은 마술적 리얼리즘과도 같다. 주인공 에디스는 가족들의 기록을 통해 그들이 겪은 ‘사건’을 비현실적인 논조로 재체험한다. 동물이 되거나 만화책의 주인공이 되거나, 혹은 당사자가 겪은 상상 그대로의 동화적인 세계를 경험하기도 한다. 『에디스 핀치』의 경험에서 진실은 감각적이다. 에디스는 그들의 과거를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감각의 정수만을 우회해 체험한다. 에디스의 몸을 경유해 플레이어가 인식하는 것은 기록된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느꼈을 자유, 혼란, 고통, 외로움 등으로 갈무리된 무언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게임 내부에 명백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표현은 기록된 감각에 대한 에디스의 상상적 전이일 뿐이다. 이 두 게임에서 기억을 추종하는 두 인물은 모두 가족사의 문제들과 결부된다. 이들의 문제는 전적으로 사적이며, 기억이 생성하는 가치는 앞으로의 삶으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이들에게 있어서 과거는 기록이 되지 않고 온전한 ‘기억’으로 보존된다. 이 ‘기억’이란 기록의 구체성을 가지지 않은 과거를 말한다. 앞서 제시한 물렁함을 담지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 ‘기억’들이 우리 경험의 기억과 더 가깝지 않은가? 마이클 알메레이다는 영화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할 때, 우리는 그 원본이 아니라 가장 최근의 기억을 떠올린다.”라는 대사를 삽입하기도 했다. 기억의 가치는 그것을 떠올리는 시기의 주관적 렌즈를 통해 전회로 수용됨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왜 그 기억은 기록이 되는가? 그렇다면 다시 『오브라 딘』의 경우로 되돌아가보자. 이 게임은 왜 ‘단단한 기억’을 그 매개로 사용하고 있는가? 이는 앞서 설명했듯 이 게임의 전제가 필요로 하는 것이 ‘기록이 되어야 할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코마』와 『딜리버 어스 더 문』 모두 (『텔 미 와이』나 『에디스 핀치』와 달리) 기록을 통해서 달성해야 하는 ‘공적인’ 의무가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공적인 의무란 전적으로 경제적-또는 생산적 문제와 결부된다. 올바른 값을 책정하기 위해, 생산성의 정상화를 위해. 『오브라 딘』과 기억의 관계에는 결국 계산 가능성이라는 구체성의 매개가 끼어든다. 기록은 기억을 계산 가능한 것으로 바꾼 변질된 포맷이며, 계산 가능성은 비디오 게임의 운명론적 도달지점이다. 이 조건은 『오브라 딘』의 아트가 왜 1비트 디더링 이미지여야만 했는지를 말해준다. 비트는 컴퓨팅의 가장 미시적인 단위다. 『오브라 딘』의 배경인 죽음의 선상은 처음부터 Y/N이라는 비트로 결정지어진 ‘셈할 수 있는(digitable)’ 공간으로 제시된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논의가 끝날리가 없다. 『오브라 딘』을 냉정한 보험사 시뮬레이션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까. 흥미로운 사실은 『오브라 딘』을 비롯해 『타코마』와 『딜리버 어스 더 문』은 모두 이러한 ‘셈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의문과 저항을 남기며 끝낸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 세계 내부에서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추종을 그리는 『타코마』, 『딜리버 어스 더 문』과 달리 『오브라 딘』은 훨씬 더 냉정한 태도를 취한다. 이 게임에는 ‘주인공’으로 제시된 인물의 상황에 대한 해석과 태도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주인공이라는 껍데기를 통해 결국 이 모든 불온한 죽음을 그저 보험료로 책정해 보고서로 올리는 건조한 결말을 지켜보게 된다. 《A.V. Club》의 단테 더글라스(Dante Douglas)는 이러한 엔딩을 두고 ‘의미가 소거된 폭력(violence cleansed of meaning)’이라고 말한다 [2] . 플레이어가 직접 목도한 참혹한 죽음에 대해 추모도, 애도도 시도하지 못한 채 그저 건조한 보고서로 환원시키는 구조 자체가 (동인도회사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적 냉혹함을 체감시킨다는 것이 더글라스의 논지다. 멜리사 케이건(Mellisa Kagen) 역시도 자신의 저서 『원더링 게임즈』에서 다음과 같이 적는다. "이 최종 집계는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지만, 플레이어들은 각 기록이 담고 있는 제한적인 진실 앞에서 움찔하게 된다. 각자의 운명과 행동에 대해 쓰인 몇 마디 말로는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각각의 죽음에 부여된 금전적 가치 역시 완전히 틀린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듯 이례적이고 환상적인 사건들을 그토록 차가운 계산과 제한적인 표기법으로 회계 처리한다는 개념 자체가 당혹스러울 정도로 부정확해 보인다 [3 ] " * 결국 모든 죽음은 건조한 배상 청구액으로 환원될 뿐이다. 『오브라 딘』은 장치적으로 재현되는 단단한 기억의 문제로 시작한다. 게임의 유려한 플레이 구조는 이 오도된 기억 규정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깊게 몰입시킨다. 그 과정에서 ‘왜 이 기억을 진실이라 단언할 수 있는가’라는 가장 보편적인 질문으로부터 강하게 차단된다. 하지만 그것이 훨씬 더 단단한 ‘기록물’로 환원될 때, 플레이어는 기억과 기록 사이의 가혹한 단차에 강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이, ‘기록으로서의 기억’이라는 근간 자체에 대한 미묘한 뉘앙스를 인지시킨다. 그저 단단하게 고정된 기억의 디오라마를 무감하게 돌아다니는 조사원의 시선은 대체 뭐였던 것인가?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은 채, 그저 장부에 올바른 수치를 적어낼 뿐인 것인가? 결국 게임을 플레이하며 감각한 나(=플레이어)의 ‘기억’은 게임 세계 내부에선 그저 보고서라는 냉정한 ‘기록’으로 축소되어 버릴 뿐인가? 발터 벤야민은 「발굴과 기억」에서 기억을 ‘지나간 것을 알아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저 매개물(medium)’이라고 했다 [4] . 이것이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기억에 대한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현실은 벤야민의 의도를 역전해 기억을 도구화해버리곤 한다. 그 가혹함 또는 냉정함은 공유된 목적주의를 통해 쉽게 완화되어버린다. 때로 그렇게 사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당위의 언어’로서의 기억. 하지만 그 당위가 지속적으로 세계를 축소해나갈 때, 그러니까 Y냐 N이냐라는 비트의 문제까지 좁혀져버리고 나서야, 우리는 무엇인가 잘못되어감을 느끼게 된다. 『오브라 딘』은 결국 기억의 게임이다. 그야말로 ‘죽음이라는 사건을 기억하라(memento mortem)’는 그 단어 그대로다. 그렇게 죽음이라는 사건(mortem)이 축소 불가능할만치 건조해지면, 그제서야 그 디오라마같던 장면으로부터 그 생동을 상상하고 역체감하길 바라게된다. 그런 측면에서 『오브라 딘』이 기억을 이용하는 방법은 물렁한 기억의 『텔 미 와이』와 유사하지 않은가? 다만 『오브라 딘』이 동원하는 건 디제이시스 내부의 다른 조건들이 아닌 것 뿐이다. 그보다는 수많은 죽음의 풍광들 사이를 거닐며 욕망과 열망과 음울함을 느낀 플레이어 자신의 감각을 기억의 여타 조건으로 삼는다. 따라서 회중시계의 이름은 플레이어에게 내리는 일종의 명령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을 기억하라(memento mortem). 그리고 기억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개념을 상상하라. ‘기록’될 죽음 위에서 죽음의 ‘기억’을 상기하라. 그러므로 결국, 죽음의 장면(mortem)이 아닌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이 명령은 게임 밖 우리 세계를 지향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세계에 흩뿌려진 모든 죽음의 기록으로부터도, 기억을 되새기라는 의미에서. [1] 그렇다고 진짜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타이타닉』이 의도적으로 거짓된 기억을 말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영화의 내부에 가능성을 영화적 장치로 심어놓지 않는 한, 진실에 대한 의심이 삐딱한 수용법인 건 사실이다. 오히려 어떤 기억이 완벽히 진실이라고 구는 이 태도 자체가 플래시백을 더 미심쩍게 만든다. [2] Dante Douglas, 「Return of the Obra Dinn Starkly Renders the Violence and Greed of Colonialism」, https://www.avclub.com/return-of-the-obra-dinn-starkly-renders-the-violen [3] Melissa Kagen, 「Late Capitalism: Caring for Corpses in Return of the Obra Dinn」, 『Wandering Games』, Routedge [4]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선집 1: 일방통행로 / 사유이미지』, 도서출판 길회중시계의 이름은 플레이어에게 내리는 일종의 명령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을 기억하라(memento mortem). 그리고 기억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개념을 상상하라. ‘기록’될 죽음 위에서 죽음의 ‘기억’을 상기하라. 그러므로 결국, 죽음의 장면(mortem)이 아닌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Tags: 리턴 오브 디 오브라 딘, 루카스 포프, 기억과 기록, 추리 게임, 1비트 그래픽, 타코마, 딜리버 어스 더 문, Return of the Obra Dinn, Lucas Pope, 1-bit Graphics, Detective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Back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23 GG Vol. 25. 4. 10.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구자 개인들이 겪은 25년의 세월: 세대 혹은 코호트 이경혁 편집장: 21세기가 시작된 지 벌써 한 쿼터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두 분을 모셨는데요. 먼저 조금은 편하게 ‘지난 25년간 내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제가 너무 무거우니 가볍게 제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기억하는 2000년대 초반 게임의 가장 큰 이미지는 댄스 게임이었어요. 99년 6월에 부천역 오락실에 처음 이 등장했는데, 제가 당시 군대를 갔거든요. 딱 두 달 밟아보고 군대를 갔는데 댄스 게임이 굉장히 아른거리더라고요. 이때 흥미로운 점은 ‘게임했던 공간’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잖아요? 이런 변화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보라 박사: 저는 97년에서 2001년 사이에 미국에 유학을 가 있었는데요. 당시에 제가 느꼈던 것은 게임이 ‘아이들만의 것’에서 ‘성인들의 취미’로 변해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 ‘플레이스테이션 2’가 미국에서 인기였는데, 그 이유가 DVD 플레이어 기능도 제공하기 때문이었거든요. 그 듀얼 기능이 먹히면서 보였던 변화상 중에 하나가 TV 메인 광고 시간대인 저녁 7시에 게임 광고가 나왔던 지점이었어요. 그전까지 게임 광고는 어린이 채널이나 아이들이 주로 TV를 보는 시간대에 나왔어요. 그런데 ‘드림캐스트’의 <쉔무>나 ‘플레이스테이션 2’의 <파이널 판타지 7> 광고가 영화처럼 만들어졌고 성인들을 타겟으로 하더라고요. 저는 이때부터 비디오 게임이라는 것이 주류의 성인들도 즐길만한 오락으로 등장했다고 보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한국은 2010년대 들어서서 게임이 성인을 대상으로 포커싱하는 변화가 만들어졌는데, 북미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그런 변화가 있었군요. 당시에 20대를 타게팅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북미 게임 시장은 중년을 타게팅할 수 있겠네요. 오영욱 박사: 저는 2000년에 청주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리듬 게임이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를 끌었거든요. 나 이 나오면서 장판 같은 것을 은박지로 납땜해서 채보를 연습하고, 학교 컴퓨터에 연결해서 야자 시간에 놀고, 그랬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90년대에는 오락실하면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확 바뀐 것이 2000년대 초였던 것 같아요.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경험은 밤새 오락실을 빌리는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당시에 PC통신으로 만난 친구들이랑 같이 다니면서 <이니셜 D>, <태고의 달인> 같은 게임들을 했는데, ‘압구정 조이플라자’같은 곳에서 하루를 대여해서 밤새 대결을 했었어요. 몇만 원 내고 게임기를 빌려서 밤새 돌아가면서 게임했던 문화가 있었던 거죠. 게임하는 공간: 오락실, PC방, 그리고 이경혁 편집장: 확실히 2000년대 초반을 상징했던 게임 중에 리듬 게임이 있었지요. 90년대까지 오락실은 스틱과 버튼 위주의 아케이드 스타일이었다면, 여러 기기들이 만들어진 건데요. 그렇게 보면 2000년대부터는 오락실이 특정 연령이나 특정 성별의 공간이라기보단 누구나 손쉽게 올 수 있는 형태로 대중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오영욱 박사: 그렇죠. 당시에 신촌을 지나가다 보면, 지금 독수리 다방 건물 1층을 다 리듬게임으로 해놓고 밖에서 볼 수 있는 구조였어요. 그러면 안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대중적 공간으로 문화가 변해갔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오락실이 변모해온 과정을 오늘날 돌아봤을 때, 일종의 대중화나 캐주얼화라고 볼 수도 있는 걸까요? 나보라 박사: 대중화라기보다는 양성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중화라고 한다면, 시장의 주류가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로 ‘격상’되었다기보다는 공간의 분위기와 이용방식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네요. 사실 붐비기는 예전의 오락실이 더 붐볐거든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이야기할 때, 공간성의 변화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아까 오영욱 선생님이 PC 통신에서 만난 사람들과 게임하던 2000년대 초반을 말씀해주셨는데, 당시에는 온라인 문화의 확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오프라인에서 모여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도 구시대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 2025년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나보라 박사: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에는 오락실이 약속 장소로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있었어요. 아케이드 오락실을 역사적으로 보면, 원래 영화관 옆에 붙어있던 공간이었잖아요? 미국에서도 그랬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기능이 거의 없어진 것 같아요. 오영욱 박사: 일본의 오락실의 경우에는 지금도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의 공간이거든요. 확실히 우리의 문화와 다르죠. 그 중심에는 카드 게임기가 있는데, 카드 게임기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해서 완전히 다른 형태를 보이는 것 같아요. 재밌는 것은 아케이드 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게임기의 순환이라는 점이에요. 일본에서 어떤 아케이드 게임이 유행하면 한 사이클이 돈 뒤에 한국으로 넘어가고, 한국에서 한 사이클이 돌면 동남아로 넘어가고 그런 글로벌 물류 체인 시스템이 아케이드 산업을 지탱하는 점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바다이야기’ 사태도 있었고 법적인 환경이 제공되지 않아서 카드 게임이 넘어오질 않았어요. 디지털게임 연구 이경혁 편집장: 지금 이야기하신 부분이 한국의 게임 환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테마일 것 같아요. 2005년에서 2006년 일어났던 바다이야기 사태는 한국 게임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기도 했는데요. 이 사태가 한국 게임 문화에 어떤 영향을 남겼을까요? 오영욱 박사: 산업적인 영역에서는 너무 많은 논의가 있을 것 같고요.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드려보고 싶어요. 저는 당시에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였고,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면서 게임 연구가 확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나보라 박사님은 당시에도 학계에 계셨는데, 실제로 어땠나요? 나보라 박사: 확실히 바다이야기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인문 분야든 이공계든 게임 연구를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후에는 이공계나 산업쪽으로 지원이 쏠렸어요. 다만 바다이야기 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인가 라고 묻는다면 명확한 상관관계는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원래 정부의 연구 지원 풍토가 대체로 산업, 기술 등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선호하기 때문에 인문사회학적 게임 연구가 각광받긴 힘든 분위기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진거죠.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인과관계를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긴 하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이전에는 게임 인문 연구를 왜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었을까요? 나보라 박사: 이 역시 인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데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가지는 특수성도 여러 영향 중에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0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가 전세계 게임 씬의 주목을 받았잖아요. 세계 최초로 게임 방송 채널이 만들어지고, PC방이 대중문화 공간으로 확산되고 그러니까 외국의 게임 기자나 저널리스트들이 와서 신기해했거든요. 그전까진 항상 서구권을 쫓아가던 입장에서, 정부나 기업을 설득할 때도 중요한 특이점이었던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도 중요한 영역이었겠군요. 그러면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지금은 인문학 계열의 게임 연구가 조금 나오고 있나요? 오영욱 박사: 옛날에 비하면 확실히 확 나아졌죠. 지원이나 환경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일단 연구자들이 늘어났고, 관련 논의가 늘어나고 있어요. <제국의 게임> 나왔을 때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이후로 이경혁 편집장님 책이 나온 것처럼 유의미한 논의들이 나오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종합해 보면 그런 흐름은 있네요. 2000년대 초반에 스타크래프트와 PC방을 필두로 소위 말하는 ‘게임 문화의 붐’이 있었고, 이를 따라서 연구나 비평이라는 흐름도 형성이 되어 2006, 7년까지 흐름이 이어졌다가 모종의 이유로 침작하는 시기를 거치고 2010년 후반부터 다시 논의가 나오고 있다. 나보라 선생님은 당시에도 연구하셨고 지금도 연구하시는 입장에서 게임 연구의 환경은 나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나보라 박사: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게임 연구에 대한 소스를 찾을 만한 게 마땅치 않았고, 박상우 선생님 등을 제외하면 나오는 연구라고는 다 영어 연구들인데 이를 접할 수 있는 창구도 많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은 바로바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연구자의 풀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늘 느끼는 것은 결국 구심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당시에는 박상우 선생님의 ‘게임문화연구회’라는 구심점이 있었고, 그다음엔 성균관대의 ‘게임 인문학’이나 중대의 ‘엘리스 온’, 인문학협동조합 등 구심점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어떤 구심점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오늘날 어떤 게임 연구가 필요하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나보라 박사: 2000년대 초반의 게임 연구는 게임 자체, 그리고 게임 연구 자체의 정체성을 찾는 데 많은 방점이 찍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게임이 대중화되었고 여러 가지 매체와 뒤섞이게 되었죠. 그래서 게임만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찾아내는 것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 같아요. 오늘날과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점은 게임이 더이상 젊지 않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이제는 더 다면적인, 학제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게임 아카이빙 이경혁 편집장: 연구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엔 아카이빙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죠. 오영욱 박사님은 언제부터 아카이빙을 하셨나요? 오영욱 박사: 저는 2000년대 초에는 일종의 취미 생활로 작품을 모으다가, 2006년쯤부터 본격적으로 아카이빙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아카이빙을 꾸준히 하신 분의 입장에서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오영욱 박사: 일단 2000년대 초에는 게임이 아카이브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어요. 2006년만 하더라도 <컴퓨터 학습>이나 <게임 월드> 같은 잡지들을 권당 몇천 원으로 팔았거든요. 극단적인 예시지만 제가 2008년에 강원도에서 게임 잡지 6박스를 5만 원에 받아왔어요. 사실 이런 흐름은 미국이랑 일본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2010년대 후반부터 게임이 수집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죠. 2013년에 문을 연 넥슨의 ‘컴퓨터 박물관’ 같은 경우가 게임이 수집의 대상이 되기 딱 직전부터 수집품들을 받았던 형태였어요. 그런데 이후로 수집가들이 수집을 하고 재테크 목적이 들어가면서 체감상 2020년쯤부터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가격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카이브를 하는 입장에서 옛날 자료를 모으는 건 거의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원래 잡지나 게임의 내용을 알고 싶어서 샀었거든요. 그런데 가격이 오르고, 한정판이 나오면서 점점 이게 힘들어져요. 일단 실물 패키지라는 것도 이제는 한정판으로 나오는데, 이 게임을 하려면 기기도 사야 하고, 박물관 입장에서 ’직원이 한정판을 줄서서 사야 하나?라고 물으면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거죠. 온라인 미디어 때문에 애매한 영역도 크고요. 인프라와 플랫폼, 그리고 장르 이경혁 편집장: 물성의 변화도 두 시대를 놓고 본다면 너무나 큰 변화죠. 이제는 수집의 용도 외에는 물질 매체의 의미가 사라졌잖아요? 게다가 이런 변화는 단순히 물건을 소유할 수 없다는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버’라는 형태에 게임 소프트웨어가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물성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기승전결도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특히, 요즘 게임에서 엔딩이 없어졌죠. 어떻게 보면 오늘날을 ‘엔딩이 없어진 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오영욱 박사: 이제는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들은 결국 하나의 게임이라기보다, IP라고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은 2000년대 초반에도 엔딩이 없는 온라인 게임들이 있었거든요. <바람의 나라>도 이미 당시에 서비스를 하고 있었고. 재밌는 것은 <스타크래프트>의 사례인데, 판매는 패키지로 했지만 서비스는 엔딩 없이 돌았잖아요? (웃음) 그 결과, 블리자드는 플레이 양에 비해서 돈을 못 벌었죠. 당시에는 ‘패키지를 사면 베틀넷은 평생 무료’ 이게 마케팅 콘셉이었잖아요. 오영욱 박사: 그 이상의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은 거죠. 당시에 돈 내고 베틀넷을 하라고 했으면 아무도 안 했을 테니까요. 그때는 그게 그나마 최선이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결제 수단 변화도 되게 크네요. 2010년대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에 ‘오픈 카드’가 가능해지면서, 스마트폰에 카드를 오픈해 놓고 클릭 한 번 하면 그냥 들어가는 이 방식이 2000년대 게임과 지금의 게임을 크게 나누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지로가 있었거든요. 나보라 박사: 옛날에 온라인 게임을 하려면 지로로 보냈어야 했죠. 오영욱 박사: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이 발전했던 거는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결제 모듈, 그런 종류의 그런 온라인으로 쓸 수 있는 결제 모듈, ‘다날’ 이런 게 있어서 가능했죠. 미국에서도 2008년에야 ‘마이크로트랜잭션(소액 결제)’이 주목받는 분위기가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때는 카드 자동결제도 없었고요. 이경혁 편집장: 신용카드의 보편화도 되게 중요한 변화네요. 2001년까지만 해도 신용카드가 그렇게 막 쉽게 발급되지 않는 시절이 있었어요. 오영욱 박사: 결제가 사실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연구가 잘 안 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종류의 편의성들이 게임의 디자인이라든가 장르적인 부분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있을 텐데, 논의가 안 된 거죠. 이경혁 편집장: 지금의 게임 장르 유행이 나오기 위해서는 당연히 인프라의 변화가 있는 거고, 이것처럼 게임 밖의 영역이 게임 내부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겠죠. 특히, 요즘같이 인앱 결제를 베이스로 스토리나 메카닉까지 영향이 가는 거면 당연히 결제 수단 연구가 필요해서 저도 결제 관련 연구들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변화 중에 하나가 요금 종량제와 요금제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PC 통신 때만 해도 전화 요금이라는 거는 사용량 베이스로 갔었어요. 돌이켜 보면 지금처럼 인터넷 요금이 초기 전화 요금처럼 누진제로 갔으면 이 상황은 오지 않았겠죠. 오영욱 박사: 예전에는 데이터양으로 요금을 내거나, 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 무선 어플리케이션 프로토콜) 같은 경우에는 뎁스마다, 명령 하나 당 돈을 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게임 개발도, 플레이도 힘들었을 거예요. 나보라 박사: 실제로 그땐 휴대폰에 인터넷 접속하는 버튼 잘못 누르면 막 끄고 그랬죠. (일동 웃음) 오영욱 박사: 진짜 이런 지점은 외부에서 들어와서 생긴 혁명적인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폰 안 들어왔으면 게임계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나보라 박사: 아이폰 같은 경우엔 앱 스토어도 게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게임 산업 이경혁 편집장: 한국의 게임 역사를 이야기하면 MMORPG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한편으로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고, 많은 변화를 만들기도 했던 한국의 게임 산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는 각광받던 벤처 기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대기업들이 되었잖아요? 그 변화 이면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섞여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는 최근 드라마에 게임사가 배경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장면’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2000년대 초까진 게임을 한다거나, 게임 회사에 다니는 것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는데, 이제는 양지화가 된 측면이 있어요. 나보라 박사: 양지화의 측면에서는 NC의 야구단 창설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가 크긴 했지요. 대중문화에서 굉장히 아이코닉한 순간이었잖아요? 넥슨의 컴퓨터 박물관도 그렇고, 게임계의 위상이나 인식이 바뀐 순간들이 있어요. 오영욱 박사: 이어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MMO RPG가 제한한 한국 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은 한국 게임이 많이 수출되었고 중국은 <던전 앤 파이터>, 대만은 <라그나로크 온라인> 등 국민 게임이 될 정도로 영향력을 보였는데, 지금은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 있어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는데, 인도에서 <배틀그라운드>가 성공한 것처럼 다른 가능성을 여는 작업들이 산업적으로나, 경영적으로나 많이 시도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로스트아크> 정도의 새로운 플레이어가 나오긴 했지만,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어떤 전략과 기획을 가져가야 할지 더 고민이 필요해보여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에 있어서는 MMORPG라는 것도 2000년대 초반의 장르는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러면 지금의 메이저 장르는 뭐가 될까요? 나보라 박사: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네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메이저 장르’라는 개념이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장르 자체가 다변화됐고 수용자층도 확실히 넓은 저변을 갖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시장에 독이고 한편으로는 시장의 약인 그런 포스트모던한 상황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네요. 이 역시 중요한 변화네요. 2000년대에는 올해의 GOTY를 뽑기 쉬웠는데, 이제는 점점 어려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게이머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이 질문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게이머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2000년대 게이머와 2025년의 게이머. 오영욱 박사: 사실 게이머 자체는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다만, 분화가 생기고 나눠서 싸운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일반인이 하기 어려운 게임이니, 일반인한테 추천하지 말아라” 근데 여기서 누가 일반인이냐, 게이머냐고 싸우는 거죠. 저희 어머니는 예전에도 쓰리매치류 게임을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신데, 이런 분들이 게임을 안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예전에는 지금처럼 갈라서 싸우는 문화는 없었긴 했어요. 나보라 박사: 문화연구 쪽에서는 전형적인 이야기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게임이 하위 문화였는데 지금은 점점 아니게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엔 게이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균질적인 속성을 공유하고 서브 컬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는데, 지금 시점에는 이런 게이머들도 존재하지만, 이들 역시 여러 게이머들 중에 하나일 뿐 다양한 게이머들이 나오고 있다.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정체성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이경혁 편집장: 사실 오늘날에 텔레비전 보는 사람한테 ‘텔레비저너’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게이머가 게이머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고, 지금 게임을 하는 사람을 게이머로 부르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어요. 게이머라는 단어의 사회적 용례는 소멸해 가는 게 아닌가? 옛날에는 ‘게임하는 사람’이 게이머였는데, 지금은 ‘“제가 게이머입니다”하는 사람’이 게이머인 거예요. 왜냐하면 게임하는 행위가 너무나 일반화됐기 때문이죠. 나보라 박사: 말씀하시는 부분을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드네요. 최근 말씀하신 그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업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가장 큰 근거가 ‘본인은 돈을 많이 쓰는 소비자다’는 거잖아요. 따라서 ‘소비자인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권리가 있고 업계는 들어야만 한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게 2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요. 본인이 정말 게임을 사랑하고 매니악하게 파고 든다면, 게임 자체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논의를 만들거나 ‘게임에 대한 감수성’ 같은 부분으로 문화적인 권위를 내세웠으면 좋았을텐데, 문화적인 소양이나 매체에 대한 이해로 하드코어함이 성장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소비자로의 권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쉬운 거죠. 오영욱 박사: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소비자 주의가 팽배하다는 문제가 있죠. 트럭 집회도 그런 지점에서 볼 수 있고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문제점들을 대면하면서, 확실히 오늘날에는 게임하는 사람을 게이머라고 부르는 것이 무용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치 밥먹는 사람을 ‘밥먹러’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게이밍이 일반 행위가 되면서, ‘행위하는 사람’으로의 의미는 소멸해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ags: 좌담회, 게임역사, 게임연구, 아카이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코스믹 호러에 떨어진 인터페이스

    <에일리언 2>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테크 덕후인 제임스 카메론의 ‘진심’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는 점을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단적인 예로, 첫 시퀀스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캐릭터는 인간도 에일리언도 안드로이드도 아니다. 리플리가 잠들어 있는 우주선 문을 레이저로 깔끔하게 절삭한 뒤에 재빨리 퇴장하는 산업용 로봇 A와 곧바로 이어서 우주선 내부를 스캔하는 산업용 로봇 B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 Back 31 GG Vol. 26. 8. 10. Tags: 데드 스페이스, 게임 인터페이스, 다이제틱 UI, 코스믹 호러, 에일리언 2, AI 에이전트, Dead Space, Diegetic UI, Cosmic Horror, AI Agents, LLM Hallucination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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