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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과 예술] 로딩중인 세계의 권태와 노동에 관한 소고

    상희는 유희와 즐거움의 이미지로서 소비되던 게임의 형식을 빌려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노동하는 신체에 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 완전히 개인화된 세계에서 내면적 사유로서 ‘권태’가 가진 정서를 재조명한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inju Lee Lee Minju majored in Western painting and art theory. Writes and organizes a range of projects. Has curated Animal Loop (Gong-Won, 2019, co-curated), which exam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performance and performance documentation; Non-Caption Interview (An Unexpected Combination, 2021, curated), which illuminated the aesthetics and politics of the documentary image; and #2 (Doosan Gallery, 2023, co-curated), which explored the event-ness of the exhibition through the form of theater. Attending to the events and performative qualities that images produce, reflects on critical writing and researches the translational relationship between image and text.

  • - 부담 없는 플레이의 즐거움

    를 통해 게임이 즐거움을 제공하는 데에 언제나 방대하며 무거운 내용과 숭고함, 비장함, 웅장함과 같은 중후한 인상들이 반드시 효용적이지만은 아닐 수도 있으리란 것을 생각해 볼 만하리라. 물론 그렇다고 또 즐거움이란 게 꼭 가벼울 필요도 없지마는, 게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경험’이란 무조건 부피와 무게를 늘려서만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 Back - 부담 없는 플레이의 즐거움 15 GG Vol. 23. 12. 10. 2023년 6월 21일에 발매된 초고속 고어 액션 FPS 게임 는 어떤 면으로 미루어 봐도 ‘완벽한’ 게임이라고 칭할 수는 없다. 심지어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다’라고 말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망설임이 어른거린다. 우선 제목에 ‘2’라는 숫자가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는 전작이 없다. 는 인디 개발 스튜디오인 Trepang Studios의 첫 공식 발매작인데,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의 미발매 데모 버전이 ‘Trepang 1’인 것도 아니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제목의 비밀은 개발자들의 공식 디스코드 서버 FAQ 채널에 들어가야만 알 수 있다. 의 개발자들은 2011년 12월, 48시간만에 게임을 개발하여 완성하는 루둠 다레 (Ludum Dare) 대회에 출전한 바가 있다. 이때 제출했던 아주 작은 크기의 (게임의 전체 파일이 1.78 메가바이트이다) 게임이 바로 ‘Trepang’이라는 제목을 가졌었는데, 이 게임은 해삼 을 조종하여 장애물들을 피해 바다를 건너는 매우 단순한 구조의 2D 횡스크롤 게임이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어로 해삼이 trepang이라고 한다. 당연히 이 게임은 의 전신이기는커녕 스튜디오의 첫 공식 발매작과 모든 면에서 아무런 유사점을 가지지 않는다. 즉, 초고속 고어 액션 FPS 게임인 는 해삼과 완벽하게 무관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개발자들이 처음 만들었던 거의 낙서 수준의 게임의 제목이 ‘Trepang’이었다는 이유로 지금과 같은 제목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는 게임의 제목과 내용 사이에 그 어떤 연관성도 없다. * 문제의 ‘Trepang 1’ 일반적으로 작품의 제목은 분명 작품 그 자체를 대표할 수 있는 이름으로 지을 텐데, 그와 엇비슷한 노력조차 전혀 발견할 수 없는 데서부터 는 진지함이라는 가치와는 망설임 없이 결별하고 있다. 가 이처럼 자신의 불성실함을 숨김없이 내보이는 데 거리낌이 없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게임이 주력으로 삼는 분야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앞서 게임을 수식했던 바와 같이 는 초고속 고어 액션을 플레이 경험으로 구성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고 그 외의 부분들에서는 그다지 부차적인 수고를 들이지 않기로 단호하게 결정한 것이다. 숨 쉴 틈 없는 플레이의 확실한 즐거움 * 한 손에 한 정씩 산탄총을 쥐고 장전하는 동시에 적을 발로 차는 모습 먼저 에서 가장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액션 요소인 양손 사격부터 살펴보자.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일반적으로 미디어에서 양손 사격이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권총이나 기관단총뿐만 아니라 산탄총, 돌격소총, 유탄 발사기마저 양손으로 난사할 수가 있다. 물론 중형 화기의 양손 사격 자체를 가 최초로 선보인 것은 아니고 이미 <울펜슈타인>과 같은 여러 FPS 시리즈에서 무식하게 커다란 무기들을 양손에 쥐고 발사해대는 주인공들은 꾸준히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의 주인공이 산탄총을 양손에 들고 한 손씩 번갈아 가며 장전하고 있는 꼬락서니를 1인칭으로 보고 있노라면 (좋은 의미에서) 정말 가관이라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이 기능으로 인해 게임 내의 거의 모든 무기들은 조준 사격이 불가능하며 지향 사격을 강제한다. 이러한 조작 방식은 적과 차분하게 교전하거나, 은신 플레이를 원하는 플레이어에게는 분명 기능적 문제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고 차분한 조준 같은 것은 하수구 아래로 내다 버린 대신 이 게임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쉬지 않고 사방으로 움직이며 중-근거리 난사로 적들을 갈아버리는 고밀도의 액션 플레이에 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주인공 캐릭터인 “실험체 106번”은 우선 기본적으로 굉장히 재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지만, 거기에 더해 슬라이드부터 장애물 넘기, 기어오르기, 그리고 발차기 를 이용한 월 점프 (wall jump)까지 (보통 월 점프는 게임에 기술로 탑재되어 있을 경우 벽을 향해 점프를 두 번 하는 걸로 자동적으로 발동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는 벽을 향해 점프 뒤 원래는 공격용인 발차기를 벽을 향해 사용했을 때 월 점프가 발동하도록 구성해 놓았다. 굉장히 독특한 이동 기술 설계라고 볼 수 있겠다) 구사할 수 있어 사방으로 매우 현란하고 정신없이 움직일 수 있다. 또 이동 기술 바깥에 주인공이 사용할 수 있는 특수 기술로 총알이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게 될 정도로 시간을 느리게 흘러가도록 만드는 “집중 (focus)”, 그리고 주인공 캐릭터가 투명해져 적들에게 보이지 않는 채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은폐 (cloak)”가 있다. 그런데 거의 항상 엄청나게 많은 수의 적들이 주인공을 둘러싸 총알을 포화같이 쏟아대는 의 전투 환경에서 플레이어가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적을 살해했을 때 적이 떨어뜨리는 방어구를 줍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얘기했던가? 즉, 한 자리에 머물었다간 체력이 눈 깜박할 사이에 바닥나는 에서 이동 기술들과 특수 기술들은 플레이어가 이용 가능한 기술인 동시에 그것들을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이용하지 않으면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이 불가능한 기술이기도 하다. 적들에게 포위된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결코 상황을 찬찬히 판단하고 행동할 수 없고 거의 저 모든 기술을 키보드나 컨트롤러에 손이 가는 대로 본능에 맡겨 구사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적들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조준하여 사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은 “집중”밖에 없는데, “집중”은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다. “은폐”도 마찬가지로 사용 가능한 양은 한정되어 있지만 기술을 전부 소진한 뒤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사용량이 다시 회복되는 반면, “집중”의 경우에는 알아서 다시 채워지지 않고 반드시 플레이어가 또 다른 적들을 공격하여 죽여야지만 기술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집중”을 통해 느려진 시간 속에서 그나마 몇 초 가량이나 숨을 돌린 다음에는 다시 또 상황 파악이 불가능한 척수 반사의 전투 세계 속으로 플레이어는 계속해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는 플레이어가 구사할 수 있는 초인적 능력과 플레이어를 몰아넣는 도전적 상황을 조화롭게 제공함으로써 숨 가쁘게 박진감 넘치는, 역동적인 플레이 경험을 구성해 낸다. 숨김없는 가벼움 * “모스맨”, “백룸”, “모노리스” 는 현대를 배경으로 호러 요소가 가미된 초능력 FPS 게임이라는 점에서 시리즈의 정신적 후속작이라고 평가 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혈흔과 총상, 그리고 사지 분리는 물론 갖가지 내장 부위들부터 척추, 뇌까지 바닥에 굴러다니도록 (그리고 발로 찰 수 있도록) 세세하게 구현해 총을 한참 쏘다 보면 맵 전체가 거의 지상에 소환된 지옥도처럼 변해 있는 는 아주 훌륭한 고어 게임으로 평가할 수는 있어도 엄연한 의미에서 와 같은 진지한 호러 게임이라고 부르기는 힘들어 보인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이 게임은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스토리 및 세계관 설정에 사용된 이른바 ‘호러 요소’들도 진정으로 공포를 제공하려 한다기 보단 그저 ‘호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들이다. 플레이어가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보스가 그 유명한 도시 전설 “모스맨 (mothman)”인 것에서부터, 인터넷 시대의 비교적 최신 괴담인 “백룸 (backroom)”을 맵으로 구현한 레벨, 사실상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모노리스 (monolith)”를 조금 두껍게 만들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물체의 발굴 현장까지, 에 등장하는 소재들의 십중팔구는 대중문화에서 정말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그대로 가져온 것이거나 아니면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것들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은 2018년 개봉한 박훈정 감독의 영화 <마녀>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미 <마녀> 자체가 끔찍하리만치 뻔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영화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가 얼마나 서사적 독창성으로부터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지가 뚜렷하게 그려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다루고 있는 게임은 애초에 제목이 ‘해삼 2’라는 걸 절대 잊지 말도록 하자. 는 스스로 소재의 난잡함과 키치함 같은 것들을 전혀 숨길 생각이 없고 흔하기 짝이 없는 극도로 싸구려처럼 느껴지는 클리셰를 사용하는 데에도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그들 자신감의 근거인 뛰어난 고어 액션 플레이에 플레이어가 부담 없이 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최근 가면 갈수록 점점 더 그 부피가 더 방대해지는 수많은 오픈 월드 게임들을 플레이하던 도중 플레이어가 갑자기 급격한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현상은 이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픈 월드 탈진 (open world fatigue)”이라고도 불리는 이 막막함의 감정은 사실 단순히 오픈 월드라는 장르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흔히 ‘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게임에서 느껴질 수 있다 . 특히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거나 웅장하고 인상적인 스토리로 정평이 난 게임들과 마주할 경우에 플레이어는 자신이 해당 게임의 모든 콘텐츠를 하나도 빠짐없이 즐겨봐야만 할 것 같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느끼기 쉽다. 말하자면 ‘완벽주의자 (perfectionist)’ 플레이를 향한 이러한 부담은 플레이어가 쉬이 게임에 손을 댈 엄두를 못 내도록 막는 주객전도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일례로 얼마 전 필자가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를 다시 켰을 때 마지막으로 저장한 일자가 2022년 8월 12일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반부까지 플레이해 놓고 게임의 지나치게 넓은 분량, 전부 다 일일이 확인하기에 너무나도 많은 상호 작용 가능한 요소들,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텍스트의 홍수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아 게임을 다시 시작할 엄두를 1년 넘게 내지 못했던 것이다. 에 숨겨진 비밀들이나 수집 가능한 요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게임의 전체적인 가벼움으로 인해 그러한 콘텐츠들은 부담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모아도 그만, 안 모아도 그만이며, 우연히 눈에 띄면 확인하겠지만 굳이 그것들을 빠짐없이 찾기 위해 같은 스테이지를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반복해서 플레이하고 맵 전체를 샅샅이 뒤지지는 않는 종류의 항목들인 것이다. 따라서 는 게임을 시작하는 데서부터 끝내는 데까지 매우 가볍게 임할 수 있으며, 게임을 전부 클리어한 이후에 다시 플레이할 때에조차 편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소위 ‘대작’들을 회차 플레이할 때 드물지 않게 느끼는 ‘이걸 또 언제 다 플레이하나’ 싶은 마음을 의 리플레이에선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게임 자체가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덕분도 있지만 플레이어가 게임을 다시 플레이하고자 할 때 반드시 스토리를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단선적인 순서로 쭉 플레이하도록 만들지 않고, 그때그때 원하는 스테이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한 미션 시스템 덕분이기도 하다. 이는 과 유사하게 고어와 액션을 주 플레이 요소로 꼽았던 <라스트 오브 어스 2>에서도 채택했던 방식인데 (비록 이 둘이 각자 중점으로 두는 고어 액션의 측면은 서로 상당히 다르지만), <라스트 오브 어스 2>에서도 원하는 맵 구성과 적 배치, 전투 상황 등을 언제든지 다시 즐길 수 있도록 스토리 진행의 구간별로 리플레이를 가능하도록 설계해 놓았었다. 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샌드박스 맵까지 구현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정말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자유롭게 액션과 고어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와 같이 원할 때마다 켜서 잠깐잠깐 플레이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다시 끄는 것이 가능한 는 즐거움 을 제공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는 매우 뛰어난 고어 액션 게임플레이를 구사하여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의 진지함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고, 또 그 진지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가볍고 천박한 게임의 인상이 다시 플레이어에게서 부담을 덜어 훌륭한 게임플레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상호피드백적인 효과의 고리를 형성한다. 를 통해 게임이 즐거움을 제공하는 데에 언제나 방대하며 무거운 내용과 숭고함, 비장함, 웅장함과 같은 중후한 인상들이 반드시 효용적이지만은 아닐 수도 있으리란 것을 생각해 볼 만하리라. 물론 그렇다고 또 즐거움이란 게 꼭 가벼울 필요도 없지마는, 게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경험’이란 무조건 부피와 무게를 늘려서만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 [공모전수상작]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마인크래프트(Minecraft)는 겉시늉의 세상이다. 엉성한 외피 이미지로 포장된 네모난 객체들이 생태계를 이룬다. 또한 현실과 비현실, 매끈함과 모서리, 플레이어와 데이브(주인공), 원형과 변형 등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공존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데이브의 몸으로 젖지 않는 비를 피해 귀가한다. 그리고 온기 없는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인다. 방 안이 따뜻한 빛으로 물들면, 솜 없는 침대에 누워 깨어 있는 채로 잠에 든다.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seo Park Studied art theory and works in the visual arts through exhibitions, criticism, and workshops. With an interest in (un)science, explores new media art and video games. Recent projects include the research Uncanny Games and Eerie Games (2024,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RE:SEARCH), the exhibition Echoes of Dysfunction (2024, WWW SPACE), the workshop Game Criticism for the Oppressed (2024, Art Korea Lab's Art Lab Club), and the exhibition-workshop Playful Media (2024, Haja Center Media Art Workshop).

  • The Resonant Samurai: Historical Accuracy versus Market Appeal

    By now, the online backlash against the inclusion of Yasuke as one of two protagonists in the story has become somewhat infamous, if not tired, since outrage first erupted last year. Although the game had teased at the 2022 UbiForward as Codename Red, it wasn’t until the full reveal on May 15, 2024, with the cinematic trailer that the inclusion of Yasuke, as a co-protagonist, became clear. < Back The Resonant Samurai: Historical Accuracy versus Market Appeal 24 GG Vol. 25. 6. 10. ***이 글의 한국어 버전은 아래 URL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953c58c4-a26a-4e46-8aac-48c10227ca8b Introduction: Yasuke Enters the Franchise By now, the online backlash against the inclusion of Yasuke as one of two protagonists in the story has become somewhat infamous, if not tired, since outrage first erupted last year. Although the game had teased at the 2022 UbiForward as Codename Red [1] , it wasn’t until the full reveal on May 15, 2024, with the cinematic trailer that the inclusion of Yasuke, as a co-protagonist, became clear. [2] [3] For over two months, criticism swirled at design choices in both Western and Japanese circles, though the online discontent among segments of the more conservative Western audience specifically focused on the inclusion of Yasuke, [4] leading, among the many heated discussion threads, to harassment of members of the development team. On July 23rd, Ubisoft released a somewhat ambiguous statement about the context, backhandedly addressing global audiences by way of seemingly focusing on the Japanese Community, and reaffirming their commitment to overall authenticity . [5] * Figure 1: Yasuke as Protagonist This statement raises a number of concerns that articulate the controversy surrounding Yasuke, which taken at face value is about historical accuracy, but arguably has more to do with how this segment of the audience has been served by the franchise so far. As discussed by de Wildt and Aupers in a 2021 study focusing on the franchise overall and including dozens of interviews with former Ubisoft game directors and assorted senior developers, Assassin’s Creed overall privileges the marketability of any given setting. [6] That marketability is further contextualized by a audience that is disproportionately European and American (roughly 79% all of Ubisoft sales). [7] With that market in mind, Ubisoft has put to use a model they term the “marketing-brand-editorial burger,” where the core of the franchise must remain generally similar, while changing the sauce (the cultural setting) in order to draw in new or repeat clientele. [8] To that end, most of the franchise’s games have generally featured protagonists that are relatively uncomplicated to access for that core audience. For instance, Black Flag’ s Edward Kenway presents a European perspective into Nassau and Caribbean colonialism, while Assassin’s Creed II and Brotherhood engages with Ezio as a cultural insider in Renaissance Italy. [9] [10] [11] It also uses Ezio as a way to access the comparatively more distant Istanbul setting and culture in Revelations . [12] Even when protagonists are more complicated, as is the case for Connor Kenway in Assassin’s Creed III [13] and Adewale in Freedom Cry , [14] it is nonetheless the dominant European and American perspectives that orient the core structure of the games. [15] [16] So, why is that centering of the Western audience the case, and how does the controversy surrounding indicate breaks or continuities with this design trend? The answer, broadly, comes from a prioritizing of resonance, of expectations, above accuracy. The Question of Accuracy: Accuracy versus Expectations The question of historical accuracy in the Assassin’s Creed series, over its 18-year span, has been the subject of thousands of games journalism pieces, not to mention dozens of academic articles and book chapters. In early inroads, historical accuracy appears as a demand, essential for games to be taken seriously, as a pedagogical tool, an archaeological model or an account of events past. [17] This demand is draped over a number of design elements, such as the areas of the game included, in conjunction with the time period covered (along with the key events that the narrative focuses on). Perhaps most importantly, there is enduring concern and desire for the protagonists at the center of these games to match the historical period which audiences understand as a coherent whole. In other words, the setting, the story and the characters need to work in harmony, but whether that harmony adheres to historical truth is another matter altogether. [18] [19] When discussing historical accuracy, it would be useful to consider at what point is the media portrayal considered accurate. Is any deviation allowed? As Adam Chapman argues, there is a threshold where the game can be considered historically resonant, and that point is when individual players deem the historical aspects to match their pre-existing knowledge. [20] Evidently players tolerate deviation from historical fact as necessary to game adaptation in general, and especially in the context of Assassin’s Creed , where historical figures are repositioned as actors in secret conspiracies and ancient aliens plotlines. The fact that the franchise requires a genealogy of assassins and templars, in this case the Kakushiba Ikki (League of the Hidden) and the Shinbakufu (True Shogunate). The distortions necessary to make the armature of the franchise fit with the real persons that the game adapts are in most cases no more or less intensive than the depth provided to Yasuke. This level of adaptation or distortion is also in line with the degree of departure players can find in Odyssey [21] , for instance, with the portrayals of Sokrates and Aspasia of Miletus, [22] or Origins ’ Cleopatra. [23] The games are all, to put it bluntly, historical fiction, rather than history, an approach detailed by Ubisoft itself. [24] As they explain in their 2025 open letter, Yasuke presented an “ideal candidate” for the series formula that incorporates “fantasy elements” and that his “unique and mysterious life” is considered by the company to be a match for franchise patterns. [25] The idea of Yasuke as a candidate for cultural representation is in keeping with de Wildt and Aupers mentioned earlier, where marketing dominates broader choices, and where any narrative or representational choice “defers to the market and the largest possible audience.” [26] Franchise lead Jean Guesdon had previously spoken about tapping into popular zeitgeist to buttress franchise sales, so relying on Yasuke, a figure that has become increasingly visible in popular media over the past two decades makes sense. [27] Unlike Sucker Punch’s Ghost of Tsushima , [28] from which Shadows borrows much of its visual language and colour scheme, Assassin’s Creed provide Yasuke a proxy for audiences, not as a man of colour, but as an outsider to Japan.Yasuke is legitimate enough as a choice, given his historic presence, yet, like players, experience Japan as a foreigner becoming gradually integrated. [29] In other words, the game’s internal structure is positioned to open with, and favor an outsider perspective, over one of the other notable candidates audiences can imagine, including notable samurai like Musashi Miyamoto or Sasaki Kojiro. * Figure 2: Yasuke Criticized for Use of nanban (European) concepts in the context of Japanese warfare. This tension, between what a game company considers an ideal candidate, and what serves historical accuracy most, has been the subject of research over the past few years. [30] In my previous work on the subject, I locate this decision space as shaped by the tension between representation and identification. As film scholar Charles Acland notes, with respect to cinema, the work of identification is complicated and requires exiting one’s own reality to inhabit the specific circumstances of another person, in another place and time. [31] Identification, on the other hand, provides protagonists and perspectives ready-made for individuals to absorb into their experiential frame. This form of media production is positioned to produce the “that resonates with me” reaction, and has been the subject of academic critique concerning Assassin’s Creed for the better part of the last decade. So far, installments have been positioned to always provide that kind of easy identification, if not in main protagonists, then at least in circumstances and ideological positions. Yasuke, in that vein, presents a particular issue. His perspective provides an outside-in look at feudal Japan, but it also bucks against the generally empowering positions that series protagonists have enjoyed. Yasuke’s inclusion seems in itself revolutionary and novel, but as scholar Kishonna Gray noted in the case of Adéwalé in Haiti, there is an echo of white European and American social positions within the very framework of the game. [32] Even when the characters are non-white, their social positions in the game privilege the presumed Euro-American audience mentioned above. In Shadows , Yasuke is not gated from spaces any more than the game’s other protagonist, Naoe, is. The game’s fiction smooths out the creases in what would otherwise be a presumably more confronting experience. Then, if the game resonating with audiences is the primary goal, the game’s choice to platform Yasuke presents quite logically, with the exception that the audience being favored is not the same audience that has been favored in the past decade. To put it bluntly, the racial intolerance evident in Yasuke’s characterization as a “DEI hire” showcases as barrier in audiences identification with a man of colour, more than a rigorous analysis of whether that character’s story is accurate, which is already difficult to claim for any Assassin’s Creed protagonist in good faith. [33] The backlash, at least in the West, has clearly been centered on race and gender, while the Japanese response has certainly been more tempered, and focused on how players are allowed to damage holy sites. The subsequent question that arises is whether or not this entire outrage, as visible as it has been, represents the whole of the consumer base in the West, or rather a specific subset of consumers. The Payoff: Yasuke as Commodity Whether or not reception to Yasuke has been hot or cold is difficult to definitely weigh in on. How do we define success? Is it based on the sentiment of a vocal segment of the audience, or do we prioritize something closer to an international audience reception? Do we look at critical reception, and do we look in a vacuum or in the context of how recent installments have been received? Perhaps the most representative forum for critical and audience reception remains Metacritic, despite concerted efforts to review bomb the title. [34] In fact, when comparing the open-world installments, the pattern is relatively stable. Critics have Shadows at 81, compared to Valhalla ’s 80, Odyssey ’s 83, and Origins ’ 81. Audiences, even keeping in mind a greater proportion of disproportionately negative reviews, have Shadows at 62, compared to Valhalla ’s 60, Odyssey ’s 68, and Origins ’ 73. Critical consensus seems to be that the game is qualitatively in line with previous installments, and for audiences seems a slight improvement over the previous title. Where it does depart is in Shadows ’ higher proportion of extremely low scores, which may be indicative of review bombing. Metacritic, like any review aggregator, will overrepresent audiences that are already invested enough to log on and review, but the consistency in scores over time indicates relative stability between titles at a broader level. * Figure 3: Review Score Aggregates for all Open-World AC Titles (Mirage Omitted). Surely then, the outrage professed against Yasuke was equally felt in terms of sales, which would at least provide an industrial indication that the game was boycotted or sold less well. In actuality, Shadows boasts the second-highest day one sales for the franchise, behind Valhalla , which Ubisoft attributes to the “perfect storm” of conditions during the pandemic. [35] Longer tail analytics show a “modest” sales record of roughly 1.7M copies sold on Playstation 5 alone (Alinea, 2025). [36] So, the picture is somewhat murky, given that we won’t have the long-tail data for a while yet. Compared to Odyssey’s roughly 2M sales in the first month, as well as keeping in mind the pressures on discretionary expenses in the current economic climate, the game is not the historic success of yore, but it’s certainly still successful. Conclusion: It was Never about Accuracy The academic response, as always, will take a longer while to cement, as qualitative studies and criticism goes through the comparatively longer publication cycle. It is my sense, given the title’s consistency within franchise patterns, that academic consensus will broadly settle where it has for the past decade: that Shadows is a relatively safe market bet, with serviceable characters and the core formula unchanged. It is, in many ways, the same Assassin’s Creed we’ve come to know since 2007, and more specifically since the series’ open-world shift in 2017. Within that framework though, the Japanese governmental response to the game is novel, as critiques of desecration of ritual sites has generally been confined to academic critiques, rather than the state. [37] [38] In fact, the homage paid to the series at the Paris Olympics for Ubisoft’s assistance with the Notre Dame reconstruction signals a significant gap in how Western states interact with the company’s cultural products. Likewise, the Yasuke controversy, which seems to have lost steam since last year, has faded away into the series’ tenuous relationship with race and gender across many of its installments. It is nonetheless interesting to consider which way audience sentiment slices. Here, Yasuke was called out as corporate pandering to modern sensibilities and audience demand, yet that was not so much the case when Odyssey ’s Alexios was provided as a secondary protagonist for players to enjoy, or when company scandals revealed that Aya was intended as the main character of Origins , despite the release featuring almost exclusively Bayek. The audience’s rigidity regarding accuracy is always one that has been shaped by personal taste, and if the issue was really the accuracy of the character, we’d have had similarly caustic debates about many titles in the series. [1] Ubisoft, dir. 2022. Ubisoft Forward: Official Livestream - September 2022 | #UbiForward . https://www.youtube.com/watch?v=rvV4ZBx6_bo . [2] Ubisoft, dir. 2024. Assassin’s Creed Shadows: Official World Premiere Trailer. https://www.youtube.com/watch?v=vovkzbtYBC8 . [3] Ubisoft. 2024. “Assassin’s Creed Shadows Launches November 15, Features Dual Protagonists in Feudal Japan.” https://news.ubisoft.com/en-ca/article/2LH4Ael4X1TlNJY3B3aYg5/assassins-creed-shadows-launches-november-15-features-dual-protagonists-in-feudal-japan . [4] Walker, John. 2024. “Ubisoft Issues Weird Statement On Assassin’s Creed Shadows Controversies.” Kotaku, July 23, 2024. https://kotaku.com/assassins-creed-shadows-ubisoft-statement-yasuke-1851602337 . [5] Ubisoft. 2024. “Assassin’s Creed Shadows - An Update for the Japanese Community.” https://news.ubisoft.com/en-us/article/7dWPCtVQU7udC0KkPFOyXh/assassins-creed-shadows-an-update-for-the-japanese-community . [6] Wildt, Lars de, and Stef Aupers. 2019. “Playing the Other: Role-Playing Religion in Videogames.” European Journal of Cultural Studies 22 (5–6): 867–84. https://doi.org/10.1177/1367549418790454 . [7] Ibid, 4. [8] Ibid, 11-12. [9] Ubisoft. 2013. “Assassin’s Creed IV: Black Flag.” [10] Ubisoft. 2009. “Assassin’s Creed II.” 2009. Ubisoft. [11] Ubisoft. 2010. “Assassin’s Creed: Brotherhood.” [12] Ubisoft. 2011. “Assassin’s Creed: Revelations.” [13] Ubisoft. 2013. “Assassin’s Creed.” [14] Ubisoft. 2013. “Assassin’s Creed Freedom Cry.” [15] Shaw, Adrienne. 2015. “The Tyranny of Realism: Historical Accuracy and Politics of Representation in Assassin’s Creed III.” Loading... 9 (14). https://journals.sfu.ca/loading/index.php/loading/article/view/157 . [16] Zanescu, Andrei. 2023. “Blockbuster Resonance in Games: How Assassin’s Creed and Magic: The Gathering Simulate Classical Antiquity.” Phd, Concordia University. https://spectrum.library.concordia.ca/id/eprint/992024/ . [17] Ibid, 17-57. [18] de Wildt and Aupers, 2019. [19] Westin, Jonathan, and Ragnar Hedlund. 2016. “Polychronia – Negotiating the Popular Representation of a Common Past in Assassin’s Creed.” Journal of Gaming & Virtual Worlds 8 (March):3–20. https://doi.org/10.1386/jgvw.8.1.3_1 . [20] Chapman, Adam. 2016. Digital Games as History: How Videogames Represent the Past and Offer Access to Historical Practice. 1st ed. New York: Routledge. [21] Ubisoft. 2018. “Assassin’s Creed Odyssey.” [22] Ubisoft North America, dir. 2017. Assassin’s Creed Origins: Developer Q&A - History & Setting | Ubisoft [NA]. https://www.youtube.com/watch?v=FK43sE36rdo . [23] Ubisoft. 2017. “Assassin’s Creed Origins.” [24] Ubisoft. 2024. “Assassin’s Creed Shadows - An Update for the Japanese Community.” https://news.ubisoft.com/en-us/article/7dWPCtVQU7udC0KkPFOyXh/assassins-creed-shadows-an-update-for-the-japanese-community . [25] Ibidem. [26] De Wildt and Aupers, 13. [27] Zanescu, 2023. [28] Fox, Nate. 2020. “Ghost of Tsushima.” Sucker Punch Productions. [29] DJangi, Parissa. 2025. “The Real History of Yasuke, Japan’s First Black Samurai.” History.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history/article/the-real-history-of-yasuke-japans-first-black-samurai . [30] Eklund, Lina, Björn Sjöblom, and Patrick Prax. 2019. “Lost in Translation: Video Games Becoming Cultural Heritage?” Cultural Sociology 13 (4): 444. [31] Acland, Charles R. 2020. American Blockbuster: Movies, Technology, and Wonder. 1 online resource (xi, 388 pages) : illustrations (black and white) vols. Sign, Storage, Transmission.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1515/9781478012160 . [32] Gray, Kishonna L. 2018. “POWER IN THE VISUAL: EXAMINING NARRATIVES OF CONTROLLING BLACK BODIES IN CONTEMPORARY GAMING.” Velvet Light Trap, no. 81 (March), 62–67. [33] Mercante, Alyssa. 2024. “This Was Never About Anything Other Than Hate.” Kotaku. July 23, 2024. https://kotaku.com/this-was-never-about-anything-other-than-hate-1851602820 . [34] Wolens, Joshua. 2025. “Ubisoft Says Don’t Compare Assassin’s Creed Shadows’ Success to Valhalla: The Latter Launched in Covid’s ‘perfect Storm’ and Feedback on Platforms ‘Less Affected by Review Bombing’ Is Stellar.” PC Gamer, March 25, 2025. https://www.pcgamer.com/games/assassins-creed/ubisoft-says-dont-compare-assassins-creed-shadows-success-to-valhalla-the-latter-launched-in-covids-perfect-storm-and-feedback-on-platforms-less-affected-by-review-bombing-is-stellar/ . [35] Ibidem. [36] Alinea. 2025. “Xbox Dominated PlayStation’s Top 10 Games by Copies Sold in April, as Forza Horizon 5 Overtakes 1.4 Million Copies on PS5.” Alinea. https://alineaanalytics.com/blog/playstation_april_2025/ . [37] Small, Zachary. 2024. “The Fight Over a Black Samurai in Assassin’s Creed Shadows.” The New York Times, September 11, 2024, sec. Arts. https://www.nytimes.com/2024/09/11/arts/assassins-creed-shadows-yasuke-samurai-japan.html . [38] Murray, Conor. n.d. “New ‘Assassin’s Creed’ Releases To Strong Reviews—But Sparks Anti-’Woke’ Backlash And Roils Japanese Government.” Forbes. Accessed May 30, 2025. https://www.forbes.com/sites/conormurray/2025/03/21/new-assassins-creed-releases-to-strong-reviews-but-sparks-anti-woke-backlash-and-roils-japanese-government/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안드레이 자네스쿠 캐나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콩코르디아 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와 인류학·사회학과에서 박사후 연구원 및 시간강사로 재직 중이다. AAA 게임 스튜디오의 문화적 적응 관행에서 '공명(resonance)'을 기업 전략으로 활용하는 방식과, 영화 및 텔레비전의 문화 자본과 연결된 시상 기관 형성을 통한 게임의 정당화 과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Assassin’s Creed, Magic: The Gathering, DOTA 2 등 다양한 게임과 시상 기관에 관한 게임 및 플랫폼 연구를 활발히 발표하고 있으며, 《New Media & Society》(2021), 《Games & Culture》(2024), 《The Journal of Consumer Culture》(2021), 《Convergence》등에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며 또한 『Streaming by the Rest of Us: Microstreaming Videogames on Twitch』(MIT Press, 2025)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 데이터화된 기억은 무슨 꿈을 꾸는가?- 사이버펑크를 통해 본 게임에서의 기억

    사이버네틱스(1948)의 저자인 노버트 위너(Nobert Wienner)는 그의 저서를 통해 인간의 두뇌와 기계가 질료적으로만 차이를 보일 뿐 구조적으로는 동일하다는 가설을 토대로 인간 뇌의 신경계의 작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그대로 기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을 토대로 1980년대 미국에서는 인간의 두뇌와 기계가 적극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를 상상의 기반으로 하는 ‘사이버펑크(Cyberpunk)’ 장르가 유행했다. < Back What Do Datafied Memories Dream Of? Memory in Games as Seen through Cyberpunk 31 GG Vol. 26. 8. 10. The SF Genre and the Emergence of Datafied Memory Norbert Wiener, the author of Cybernetics (1948), proposed in that book the hypothesis that the human brain and the machine differ only in their material substrate while remaining structurally identical — and supposed that if the workings of the brain’s nervous system could be understood, they could be applied to machines as they stood. On the basis of such theory, the “cyberpunk” genre came into vogue in 1980s America, grounding its imagination in worlds where human brains and machines are actively connected. And in cyberpunk, “memory” — converted into data and moving across networks and bodies of various kinds — emerges as a central problem. It appears already in William Gibson’s Neuromancer (1984), commonly called the genre’s representative work. In truth, setting aside the cybernetic concreteness of datafied memory, the problem of memory had long been treated in the SF genre. In the representative works of the celebrated American SF writer Philip K. Dick — “Paycheck” (1953), “We Can Remember It for You Wholesale” (1966),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1968) — the problem of memory departs somewhat from its treatment in realist narrative: these stories are built by perceiving memory as something possessed of materiality and assigning it meaning on those terms. And this shows memory — long handled in the course of discussing human identity — being taken in a rather different direction. The development of science and technology was necessarily involved here. As cybernetic theory and brain science advanced, it began to come to light that even the memory held by the human organism might admit of deletion or transplantation. Interlocking with posthumanist discourse, this line of questioning generated a rich imagination for speaking of human identity, producing the key motifs of SF fiction and film: the erased memory, the implanted memory, the false memory. Through a variety of SF works, the problem of memory thereby turned from a metaphysical concept into a kind of device with definite form and materiality — data. And in the process, what came to the fore as the core element defining human identity was not the soul, the body, or the brain, but the metaphysical element of memory. Memory and Identity in Games The problem of datafied memory that began in the SF genre opens new possibilities for establishing a character’s identity. The erased or lost memory has long been deployed on protagonists across all manner of works; add the premise that memory, through datafication, has acquired materiality, and memory can become an explicit goal and subject matter rather than lingering as mere backdrop or outcome of the story. In games, this change means that particular rewards follow from the player’s performance, and that this itself becomes integral to what makes the game a game. That amnesiac characters in games confirm their memories in the manner of loading stored data — even when the vehicle is magic rather than SF high technology — can be read as these theories given form within games. In games, then, memory is very often identified with identity itself. And precisely for that reason, another question becomes possible: is the mere existence of memory as data enough to establish identity without difficulty? SOMA (2015) is a representative example of a game posing this counter-question. Its protagonist, brain-scanned, wakes in the future transplanted into another body. But as the game proceeds, the player confronts skepticism about whether brain scanning and body transfer — the methods humanity performed for its own survival — can in fact sustain the identity and ontological meaning that belonged to the original human. Through the course of play, the game makes one think through how difficult it is to define a being by memory alone, and the critical perspectives on uniqueness that arise once that memory is datafied. * SOMA turns the experience of datafied memory being transferred, ironically, into a critical reckoning with the problem of identity. Conversely, posthumanist questions become possible as well: if the accumulation of data is itself memory, and humans acquire identity through memory, might nonhuman entities likewise acquire identity as independent subjects through accumulated data? The representative figuration of this thought experiment is the premise, in the SF novel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and its film adaptation Blade Runner (1982), that the androids — the replicants — have their service life capped at four years. Their term is so limited because, once memories and the experience of performance accumulate over a certain period, emotions like those of humans can arise — which is to say, they can become independent beings like humans. Through such premises emerged the possibility that, if memory is datafied, nonhuman entities too can become independent beings holding memories of their own. And this premise is applied wholesale in a game like Detroit: Become Human . The androids of the game exist to perform the acts humans would otherwise perform. Yet the memories generated through the many episodes of that performance are experienced by androids and players at once. That the player carries out everything from resolving life-and-death crises to chores as seemingly trivial as housework is a process of embodying how such memories, datafied and accumulated, form an entity’s identity and establish the meaning of its existence. In the end, through the seemingly trivial acts we live through in the game, we come to recognize that memory composes a being — and that this applies identically to human and nonhuman alike. On the other hand, datafied memory is also perceived as an object of control, generating problems within games. As shown in Detroit: Become Human , data is controlled not by state power but by a corporation like CyberLife — a typically cyberpunk arrangement, as with the Tyrell Corporation managing the androids in a film like Blade Runner (1982). Such control of memory grows more troubling still when it serves particular ends. In NieR: Automata (2017) and Goddess of Victory: Nikke (2022), where combat androids appear, memory is manipulated and erased to secure efficiency — to manage their performance as weaponry. Critical thought experiments about controlling existence itself by controlling memory offer sensations unlike anything before, in an age when datafied memory is becoming reality. Datafied Memory Itself Becomes the Game There are also games in which datafied memory, bound to character identity, shapes everything from premise to the story’s progress. Representative is Remember Me (2013), released by Capcom. The game is set in a society where memory, given materiality through digitization, has become tradable. The protagonist, Nilin, was one who possessed the ability to infiltrate other minds and steal or manipulate memories; the game begins from the premise that the governing authority, deeming that ability a threat, erased her memory. The goal is for the protagonist, waking without her memory, to recover it and escape the authority’s control. And the recovery itself proceeds by infiltrating the memories of others in the game, stealing them, and recombining them — the Memory Remix — to reclaim what she lost: her own full capacities. The game reproduces, as they stood, the uses of memory that SF had introduced. Beginning from memory’s deletion, collecting others’ memories, above all infiltrating memory for clues, and remixing the memories of key figures to bend events in the story’s favor — here the implanting of false memory is deployed, intriguingly, as the protagonist’s own way of solving problems. Moreover, the game unfolds the manipulation and remixing of memory in puzzle form, making plainly legible that this is a problem the player must solve. Through remixing, clues that never existed come into being, relations between figures change, weaknesses appear in one’s adversaries. Even the techniques and combos for striking enemies are produced through this collection and remixing of memory. Datafied memory in Remember Me , in this way, does not remain a clue for inferring causal relations; it becomes the very possibility of actively solving problems. * Datafied memory in Remember Me is at once the premise composing the game and its most important tool for progress. The datafied memory shown in a game like Tacoma (2017) is likewise a key element forming the gameplay itself. In a crisis, under constrained circumstances, the protagonist resolves problems by absorbing the stored behavioral data of others — the many solutions she does not herself possess. In the end this is the same element as skills acquired in any game, but its distinction lies in the intriguing transformation: what one acquires is someone else’s behavioral data. Here memory receives its meaning not from the problem of identity but from the fact of being recorded as data. The trouble is that it is recorded and collected at all times, regardless of one’s will. In the game this becomes the precious clue by which the protagonist breaks through her crisis; transpose the same facts onto our own reality, and their meaning invites critical thought. * The memories that appear in Tacoma are the behavioral data of others, rendered visually and put to use in solving problems. The question of how to perceive memory that has been datafied into materiality does not stay within novels, films, and games. Contemporary people, intimately bound to technology, have already taken shape entangled with smart devices and all manner of technics. From the information that keeps us in touch with family and friends to the social media that record the everyday, our memory is already datafied through and through. And in a connected society, our memory is already supplying data to what Shoshana Zuboff called the behavioral futures market. Datafied memory is a key element composing the self — but, as so many games have pointed out, the fact that it can also control and constrain us is being proven in reality as well. If so, the problems of memory we have experienced in games may be aimed, more than any other form, at ourselves in the here and now. Tags: 사이버펑크, 데이터화된 기억, 포스트휴머니즘, 리멤버 미, 소마,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필립 K. 딕, Cyberpunk Games, Remember Me, SOMA Game, Detroit Become Human, Digital Memory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yong Lee Earned a PhD on science fiction and now works in cultural and arts criticism—including SF criticism—and research in the field. Under the pretext of research, buys game consoles, amasses comics, and subscribes to every OTT service going.

  • 펌프잇업의 플레이 분화에 놓인 '기계'의 의미

    앤서니 던에 따르면 전자제품의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는 사용자들을 제품에 구현된 가치와 개념을 사용자들이 스스로 제품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동안 학습시킨다.1) 이것이 전적으로 맞는 전제라고 가정한다면 게임도 마찬가지일까? 게임은 다른 전자제품들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상품은 그것이 완성되거나 완벽하게 조립된 것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로서의 게임은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가 제공하고자 하는 게임이라는 상품의 형태는 게이머의 ‘수행’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각각의 게이머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체험된다. 소프트웨어로서는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게이머가 게임을 수행하고 난 뒤에야 ‘게임’ 그 자체는 완성된다.  < Back 펌프잇업의 플레이 분화에 놓인 '기계'의 의미 11 GG Vol. 23. 4. 10. 편집자 주 - 이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1990년대 이후 전자오락 문화의 변형에 대한 연구, 2023) 4장의 내용의 일부를 가져와 새롭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앤서니 던에 따르면 전자제품의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는 사용자들을 제품에 구현된 가치와 개념을 사용자들이 스스로 제품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동안 학습시킨다. 이것이 전적으로 맞는 전제라고 가정한다면 게임도 마찬가지일까? 게임은 다른 전자제품들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상품은 그것이 완성되거나 완벽하게 조립된 것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로서의 게임은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가 제공하고자 하는 게임이라는 상품의 형태는 게이머의 ‘수행’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각각의 게이머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체험된다. 소프트웨어로서는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게이머가 게임을 수행하고 난 뒤에야 ‘게임’ 그 자체는 완성된다. 그런데 게임이라는 것은 보통 비물질적인 무엇인가로 인지된다. 특히 개인용 컴퓨터와 콘솔게임기는 물론이고 스마트폰과 같이 모바일기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현재의 게임은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하기에 더욱더 비물질적인 것이라는 상상이 견고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게임의 수행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게임이라도 신체와 게임을 연결해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매개되어야만 가능하다. 즉 인터페이스를 통해 게임의 소프트웨어와 게이머가 연결되지 않으면 게임이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처럼 게임은 그 물질적인 토대가 확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수행(performance) 혹은 게임 플레이라는 물질적 차원의 행위가 가지는 힘에 주목해야한다. 인터페이스로서의 조작장치와의 상호작용은 게이머가 단순히 게임에 신호를 전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자신의 신체의 움직임을 체험하는 동시에 그 움직임이 화면이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재현되는 것을 종합하여 게이머들의 신체에 각인되는 총체적 감성과 지성이 작동하는 행위이다. 즉 인터페이스를 매개로 이뤄지는 게이머의 게임 수행은 손과 몸으로 ‘사물’을 더듬으며 지혜를 얻는다는 제작(make) 행위와 연결되는 지점인 것이다. 제작 문화(메이커 문화)에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은 주요한 정치적 행위이다. 손과 몸으로 사물을 더듬어가며 지혜를 얻는 것은 사물의 속성을 파헤치고 그 안에 내재된 설계를 간파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제작 문화의 차원에서 게임을 바라보려는 접근은 있어왔다. 흔히 모드(mod)라고 부르는 ‘플레이어 혹은 이용자에 의한 수정 및 변경’을 통해 게임을 변형시키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모드’라는 행위는 기술적 소양이 일정부분 쌓여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가능한 게임 실천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게다가 모드행위에만 집중한다면 게임을 즐기는 평범한 게이머들이 수동적이며 그들의 게임 실천은 행위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라는 견해를 갖게 만들 위험성도 있다. 제작문화라는 것이 손과 몸으로 사물을 더듬어가면서 사물의 속성을 파헤치고, 그 설계를 간파하는 것이라고 할 때, 게임 수행은 손과 몸을 이용해 게임기의 인터페이스를 더듬어가며 게임을 이해하는 제작 행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일반 게이머들도 게임 수행을 통해 게임의 설계에 접근하고, 비판적 제작 혹은 해킹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행위를 할 능력이 있지 않을까? 이제부터 〈펌프잇업〉이라는 게임이 명확한 게임성을 갖고 있지 못했던 시기, 즉 하나의 게임기에서 다른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시기를 되짚어보며 확인해보도록 하자. 게임의 공연성 1990년대 말부터 리듬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게임이 전지구적 유행을 하게 된다. 이는 1997년 일본 코나미라는 회사의 〈비트매니아〉의 출시 이후로 시작해 〈댄스댄스레볼루션〉의 대히트에 기인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펌프잇업〉이 크게 유행했다. 〈펌프잇업〉은 춤이라는 놀이가 게임에 매개되어 들어간 아케이드 게임이다. 리듬게임은 전자오락실을 일종의 공연장과 같은 분위기로 만드는 효과가 있었는데, 〈펌프잇업〉은 이런 게임의 공연성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전자오락실 업주들의 업주들은 이런 〈펌프잇업〉의 공연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펌프잇업〉을 위시로 한 리듬게임의 유행에 따라 어두컴컴하던 전자오락실은 점점 환해지고, 외부에서도 〈펌프잇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지켜볼 수 있게 하려고 하였다. 또한 〈펌프잇업〉의 숙련도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가 있는 이용자에게 게임을 공짜로 즐길 수 있게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는데, 이는 일종의 광고 수단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업장으로 유인하는 전략의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퍼포먼스 혹은 프리스타일 플레이 게이머들은 게임 설계에 내장된 규칙에 따라 게임을 진행한다. 대다수가 알고 있겠지만, 〈펌프잇업〉의 규칙은 간단하다. 특정한 곡을 선택하면, 게임이 제공하는 리듬에 맞춰 화면에 표시되는 화살표(노트)에 맞춰 발판을 발로 밟는 것이다. 〈펌프잇업〉이 게이머들에게 요구하는 목표는 두 가지이다. 정확하게 발판을 밟아서 일정 점수를 획득하여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고득점을 획득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 게이머에게 제시하는 목표와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고자 하는 목적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게이머들이 궁극적으로 게임을 하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이 게이머에게 제시하는 목표를 완수해가면서 재미를 찾을 수도 있지만, 꼭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할 필요는 없다. 〈펌프잇업〉은 앞에서 이야기했듯 춤이라는 것이 매개되어 들어가 있는 공연성이 강한 게임이다. 숙련도를 쌓은 게이머들에게 〈펌프잇업〉의 플레이는 게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게임을 바라보는 구경꾼들에게 보여주는 ‘공연’이기도 했다. 따라서 게이머들은 그들이 흔히 갤러리라고 칭하던 구경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화려한 게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고득점을 노리는 게임에서 구경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공연으로 변모하자 일정 점수를 획득해서 게임을 다음 단계로 진행시키는 규칙은 중요하지만, 고득점을 획득해야한다는 게임의 규칙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된다. 이렇게 〈펌프잇업〉은 춤을 추면서 구경꾼과 상호작용한다는 새로운 게임으로 변모해간다. 이렇게 변화된 새로운 게임에서는 자신들이 구상한 안무를 위해 의도적으로 게임에서 밟으라고 강제하는 발판을 밟지 않아도 ‘게임오버’가 되지 않는 선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보여주고 싶은 안무를 위해 1P와 2P의 발판을 모두 이용하는 ‘더블 모드’가 선호되었다. 이렇게 되자 게임성이 변화하자 게임의 인터페이스를 이용하는 방식도 변화되었다. 게이머들의 안전을 위해, 또 정확하게 발판을 밟을 때 이용하라고 설치된 안전 바를 잡는 것은 추한 행동이 된다. 안전 바를 뛰어넘는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안무에 이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안전 바는 자신들의 퍼포먼스를 제약하는 방해물로 인식되었다. 게임제작사도 자신들의 설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게임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설계를 고수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런 이용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는 〈펌프잇업〉이 전국적인 유행을 하자 게임 제작사가 개최한 전국대회가 어떻게 치러졌는지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이 피플크루 막 이랬어요. … (중략) … 결국 비보이들이 심사위원을 봤어요. … (중략) … 심사도 일단 뭘 얼마나 멋있게 하던 간에 하다가 죽으면 탈락이에요. 그거는 확실했어요. 그 규칙은 있었어요. 하다가 죽으면 안 된다. 점수도 중요하긴 하죠. … (중략) … 그러니까 심사위원석에 있으면 이게 보여요. 이 사람이 딱 추고 있는 걸 보면 이 사람은 (춤)선이 있는 사람이다. 잘 춘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그런 사람들을 따로 체크를 해두죠.” “이제 2회 대회 때 우승했을 때 상금 500만 원에 부상으로 컴퓨터 하나 그리고 안다미로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자격 같은 것도 있었어요. … (중략) … 이제 조금 잘 하는 사람들한테 채보 작업 5) 을 맡겼어요. 그러니까 이제 춤추고 이렇게 좀 유명하고 잘하는 사람들한테 채보 작업을 맡겨서 (중략)” 명확한 심사기준은 오로지 ‘게임 오버’가 되지 않는 것이었고, 게이머들이 어떻게 춤을 추는가를 심사했다. 고득점이라는 〈펌프잇업〉에 내장된 규칙은 동점자 처리용 정도로만 사용되었다. 발판이라는 인터페이스는 게이머의 ‘발’의 움직임만을 요구했으나 게이머들은 발판이라는 인터페이스 위에서 자신의 ‘온 몸’을 이용해 게임을 적극적으로 즐겼고, 이런 게임 수행은 게임제작사에도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게임의 방향성을 변경시키는 비판적 제작 행위 혹은 해킹적 실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테퍼들의 창조적이면서도 수동적인 플레이 〈펌프잇업〉에서 퍼포먼스 플레이만이 유행을 했던 것은 아니다. 일명 ‘스테퍼’라고 불린 집단도 존재했다. 이들 역시 게임기의 발판이라는 조작장치 위에서 발 뿐만 아니라 무릎, 손, 머리 등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들이 퍼포먼스를 펼친 이유는 퍼포머들과는 달랐다. 이들은 게임이 제공하는 난도로 표현되지 않을 만큼 더 높은 수준의 숙련도를 가지고 있음을 뽐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퍼포머들은 같은 기계를 이용하지만 다른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즉 〈펌프잇업〉이라는 ‘무대’는 공유하지만 ‘다른 공연’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퍼포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멋’이지만 스테퍼들에게 중요한 것은 ‘점수’이다. 쉽게 발로만 누르는 것이 아니라 무릎, 손, 머리 등으로 발판을 누르면서 스스로 난도를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것을 통해 그들의 숙련도를 보여준다. 게임이란 무릇 후속작이 나올 때마다 게임의 난도가 올라 신규 게이머들의 유입이 어려워진다는 경향이 존재한다. 채보 작업에 스테퍼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경향이 급속도로 진행된다. 왜냐하면 스테퍼들에게는 난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특별히 안무를 짜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이 가능했으며, 어려운 채보를 진행하는 도중에 퍼포먼스를 구사하는 편이 자신들의 숙련도를 더욱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플레이는 난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측면에서는 창조적인 게임 수행이지만, 동시에 게이머 스스로가 게임의 재미를 능동적으로 찾기 보다는 게임이 제공하는 장애믈을 넘어서는 것에 의존한다는 점에서는 수동적인 플레이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이제 그거(퍼포먼스)를 하면서 위에서 멋있게 하고 그런 것들이 먹히는 시대였잖아요. 지금은 사실 그런 게 이제 잘 통용되지 않는 세상이 온 거죠. 펌프라든가 그런 것도 그때 당시에는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그런 걸해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구경하고 했지만, 요새는 글쎄요.” 퍼포머와 스테퍼들이 가지고 있는 게임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은 경합을 했고, 결국 스테퍼들이 지배적인 게이머 집단이 되었다. 퍼포머들의 공연은 조금씩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취급받기 시작했고 게임기에 손상을 가하는 옳지 못한 행위로 간주되기까지 되었다. 스테퍼들이 바라는 대로 〈펌프잇업〉은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게임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노트들에 대응해서 발을 이용에 입력하는 게임, 즉 본래의 〈펌프잇업〉이 강제하는 고득점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게임으로 또다시 변경되었다. * 초창기 〈펌프잇업〉의 채보.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DK8GyszjmUg&t=53s 에서 캡쳐. 인터페이스와 신체의 결합의 효과 〈펌프잇업〉은 한때 추한 행위로 여겨졌던 안전 바를 부여잡고 일반적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벗어난 빠른 발놀림, 즉 피지컬을 요구하는 게임으로 변했다. ‘온 몸’을 이용해 게임이 강제하는 규칙에서 벗어난 다른 의미들을 생산하는 게임 수행은 어려워졌다. 이제 게이머들은 안전 바를 두 팔로 움켜쥐고 자신의 몸을 기계와 연결시킨다. 이렇게 기계와 연결된 게이머가 게임을 수행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은 자신의 다리 뿐이다. 춤이 매개된 온 몸을 이용하던 놀이는 전자오락기의 인터페이스에 자신의 몸을 연결해서 고정시키고 ‘다리’만을 사용한다. 더 이상 나뉘어질 수 없는 의미의 개인(indivisual)으로 존재했던 게이머들은 이제 나뉘어질 수 있는 가분체(divisuals)라는 것이 된다. 〈펌프잇업〉의 발판이라는 인터페이스는 과거나 현재나 모두 살아있는 인간 게이머의 발동작을 요구했으나, 과거에는 숙련도가 쌓였다면 게임의 규칙을 벗어나 창조적으로 새로운 의미생산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펌프잇업〉은 온몸을 움직이며 발판이라는 인터페이스와의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상체를 인터페이스에 연결하고 고정한 뒤 자신의 몸에서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킨다. 이렇게 상체는 게임기의 일부가 되고, 신체에서 분리된 하체는 게임을 수행한다. 하체의 게임 수행은 이전처럼 무언가를 표현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신체를 얼마나 잘 제어하는지를 보여줄 뿐이고 게임에 입력되고 수치화되는 하체의 움직임만이 중요해진다. 게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자기 신체의 역량을 증진, 즉 피지컬을 계발해야한다. 얼마나 잘 계발했는가는 게임 화면이라는 인터페이스에 점수와 등급으로 나타나고, 이것을 통해 다른 게이머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춤이라는 의미 생산의 요소는 〈펌프잇업〉이라는 게임에서 희미해진다. 한때 두 가지 차원에서 즐길 수 있던 〈펌프잇업〉은 명확한 게임성을 가진 하나의 게임으로 수렴되었다. 제품의 디자인이 품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학습할 것인가? 아니면 제품의 설계에 내장된 행위유발성에 저항하여 방향성을 재설정 할 것인가? 이것은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당신이 게임과 연결되는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활용하면서 플레이하는가에 달려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술문화연구자) 전은기 문화인류학과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현재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과 한양대학교글로벌다문화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게임 인터페이스로서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전시 리뷰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이 다양한 담론장을 떠돌고 있다. 게임과 예술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행정과 법의 영역에서도 게임의 위상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오가는 중이다. (물론 예술가, 행정가, 정치인, 사업가, 그리고 게이머 각각의 입장과 목표는 모두 다르겠지만) 이러한 정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게임 주제전은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기에 일단 《게임사회》라는 전시는 주목할 만하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전시, 미술관, 게임사회, 국립현대미술관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Taehyun Kwon Writes and plans a range of projects. Works in the art world, yet is always more drawn to things not readily regarded as art. Explores how things outside art might be thought through as objects within it. Continues researching with weight placed on a perspective that grasps the political as a matter of the sensory. (7000eichen@gmail.com )

  • 시뮬레이티드 셀프: 놀이하는 인간이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는 방식에 대하여

    세계는 불확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생동하는 물리적 실재를 파악할 수 없으며, 단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가정법에 따른 결과론, 혹은 결정론은 입자들의 불확정한 위치에 선형성을 부여하는 매력적인 시뮬레이션이다. ‘만약 ~라면 어땠을까?’ ‘만약 ~한다면 어떨까?’는 확률의 세계에서 확고한 인과관계를 부여할 뿐 아니라 대안적인 실재를 상상하도록 어떤 유희의 프레임을 제공한다. 만약 조선이 자생적 근대화에 성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적인 유희를 즐길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절차들을 상정함으로써 확률의 시공간을 결과의 시공간으로 바꿔놓게 된다.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에르고딕, 시뮬레이션, 턴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woo Shin A cultural researcher and cultural critic, specializing in critical theory of technology and the political economy of media. Researches cultural phenomena surrounding gaming, 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s, and blockchain, and teach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nd the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 보는 게임, 그 충족되지 않는 욕망 - 핀볼과 월드플리퍼 사이에서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희소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왔다. 쾌락에는 상대적 희소성이라는 맥락이 필요하며, 너무 많으면 지루해진다. 무엇보다 쾌락이 ‘래칫 효과(rachet effect: 수준이 한번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지 않는 효과)’를 일으켜, 자연과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화되지 않은 쾌락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포장된 쾌락은 전에는 귀하고 드물었던 것을 흔하고 따분한 것으로 만든다. 결국 포장된 쾌락 바깥 세계에 대한 흥미가 점차 약해지며 우리는 더 이상 그 세계를 열망하지 않게 된다. 내가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월드플리퍼〉의 포장된 쾌락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Back 보는 게임, 그 충족되지 않는 욕망 - 핀볼과 월드플리퍼 사이에서 03 GG Vol. 21. 12. 10. 1. 두 아이 아빠의 게임 라이프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털어놔야겠다. 지난 몇 년 동안 게임을 즐길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저런 글 쓰는 일을 생업으로 가진 탓에 늘 마감에 쫓긴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두 아이가 반긴다. 둘 다 아직은 엄마, 아빠의 손이 많이 가는 나이다. 아내와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과 잠시나마 놀아준다. 고집 센 아이들을 설득해 씻기고 재우면 대략 밤 10시다(정신적·체력적으로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다). 이때부터 명목상 자유시간이지만 대개는 밀린 업무를 마무리하게 된다. 어쩌다 여유가 있더라도 게임기로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1~2시간 만에 끝낼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오늘밤 게임을 저장하면 언제 다시 데이터를 불러낼지 기약할 수 없다. 한 번 흐름이 끊긴 게임을 다시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최근 육퇴 후 아내와 함께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하겠노라며 큰마음 먹고 패키지 버전을 2개나 구입했지만, 한 달 동안 고작 ‘아시라 세트’를 맞춘 것이 전부였다. 아내는 둘째를 재우다 그대로 잠드는 날이 많았고, 아이가 깰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서 몇 번의 솔로플레이를 하다가 새로운 업무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게임에서 멀어졌다.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사냥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라서 플레이 시간이 늘어나면 업무는 물론, 가족과의 일상이 대검에 썰려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인생이라는 맵에서 홀로 사냥하던 시즌1은 끝났다. 시즌2에서는 두 아이가 동반자 아이루(몬스터헌터의 고양이 서포터)처럼 늘 함께한다. 아침에 두 아이를 등원시키려면 일찍 잠을 청해야 한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바깥 활동을 하니 평일보다 더 여유가 없다. 부족한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40대 중반에 접어드니 체력은 물론, 집중력도 예전 같지 않다. 〈몬스터헌터〉처럼 컨트롤이 필요한 게임은 오래 붙잡고 있기가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모처럼 여유가 있을 때는 게임기를 켜기보다 넷플릭스에 접속한다. 궁금한 게임이 있으면 유튜브 영상을 본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내 삶에 게임이 끼어들 공간은 거의 없는 셈이다. 2. 자동화된 게임: 핀볼과 〈월드플리퍼〉 이런 두 아이의 아빠가 오랜만에 빠져든 게임이 있다. 사이게임즈에서 개발한 〈월드플리퍼〉다. 복고풍 도트그래픽으로 핀볼 게임과 RPG를 접목한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플레이어는 6명의 캐릭터(메인 3명, 서브 3명)를 조합해 파티를 구성하고, 핀볼처럼 디자인된 맵(스테이지)에서 적을 물리치게 된다. 화면 하단 플리퍼로 구슬 대신 캐릭터를 날려서 적을 공격하는데, 캐릭터를 터치하면 적에게 돌진할 수 있고, 게이지가 쌓이면 고유의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일본식 RPG의 소위 ‘몸통박치기’를 핀볼 게임과 적절하게 섞은 느낌이다. 핀볼 게임이 그렇듯 이 게임도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그리 많지 않다. 타이밍에 맞게 플리퍼를 터치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스킬을 쓰는 것이 전부다(애초에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는 게 아니라 플리퍼로 날린 뒤 지켜보는 구조다). 그래서 게임 플레이 중 대부분의 시간은 조작보다 캐릭터의 움직임과 득점을 ‘지켜보는 데’ 할애된다. * 〈월드플리퍼〉는 핀볼 개념과 RPG를 섞으며 자동 플레이에 대한 나름의 납득 가능한 지점들을 구현해낸 바 있다. 처음부터 플레이어의 개입이 최소화되어 있다 보니 ‘자동’ 기능을 사용해도 큰 이질감이 없다. 오히려 AI가 나보다 더 정확하게 적을 조준하고, 알맞게 스킬을 구사할 때도 있다. 그래서 컨트롤이 필요 없을 만큼 캐릭터가 성장하면 자동 진행은 어느새 옵션이 아닌 디폴트가 된다. 자동 플레이의 비중이 수동 플레이의 비중을 넘기는 시점부터 게임은 본격적인 ‘보는 게임’으로 전환된다. 그에 맞춰 게임의 핵심 재미도 변화한다. 플레이어는 캐릭터 육성에 필요한 재화를 얻기 위해 무수히 많은 핀볼 게임을 반복해야 한다. 처음 몇 번이야 재미를 주겠지만 반복이 거듭되면 단순노동으로 변질된다. 자동 기능은 이 ‘반복구조’를 대행해준다. 전통적인 RPG에서는 성장을 위해 지루한 구간(소위 레벨노가다)을 참고 인내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어른 게이머들은 이를 감당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시간을 투입하지 않아도 캐릭터가 성장한다는 것은 게임을 선택하는 이유가 된다. 결국 플레이어는 자동화를 통해 얻어진 재화를 전략적으로 분배하고, 성장한 캐릭터를 조합해 적을 효율적으로 제압하는 데서 재미를 얻는다. 자동 기능은 전체 게임 디자인의 일부이자 게임의 구조적인 재미를 작동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월드플리퍼〉가 플레이어의 개입이 최소화된 ‘핀볼’을 차용한 것은 꽤나 영리한 설정이다. 핀볼 게임의 구조가 ‘지켜보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오토 플레이로 전환시키고, 수집형 RPG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자동 기능을 합리화시키기 때문이다. 3. 플레이의 경계가 사라지다 ‘보는 게임’을 ‘플레이어의 참여가 최소화된 게임’으로 정의한다면 앞서 언급한 〈월드플리퍼〉를 포함해 자동 기능이 탑재된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이 아마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물론 말 그대로 비주얼과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에 주력하는 게임도 있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보는 게임’이란 시각적인 이미지에 관계없이 ‘플레이어의 개입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게임’으로 한정짓고자 한다. 따라서 화면을 보지 않고 ‘방치’하는 게임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보는 게임’에 포함될 것이다. ‘보는 게임’의 핵심은 ‘플레이의 자동화’다. 오늘날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에서 오토 플레이는 필수 기능으로 자리잡았다. RPG 장르의 자동 사냥은 물론, 캐릭터 조작 없이 클릭 한 번으로 공간을 이동하는 것도 일종의 오토 플레이 요소다. 진행이 자동화된 상황에서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부분은 주로 습득한 재화를 배분해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보는 게임’은 그래서 이중적이다. 그것은 스스로 작동하는 게임화면을 바라보는 것이자 캐릭터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행위의 영역이 아닌 인식의 영역이다. 캐릭터의 성장을 지켜보고 개입하는 존재로서 플레이어는 게임 내부와 외부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제 게임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물리적인 하드웨어와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동화된 세계를 인식하고 떠올리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게임이 된다. 플레이의 경계는 무너졌다. 하지만 이런 열린 상태가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놀이는 본질적으로 ‘매직서클’의 경계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보는 게임’은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직장과 가정의 경계가 무너질 때 ‘워라밸’의 균형도 무너진다. 자동화된 놀이가 생활과 인식의 영역으로 침범할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보는 게임’은 쾌락의 중심에 다가가지 못하고 늘 미끄러진다. 그래서 오랜 기간 게임을 즐겨도 욕망은 좀처럼 충족되지 않는다. 4. ‘보는 게임’의 기원 ‘보는 게임’은 스마트폰 등장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되었으나 게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초기부터 그 원형이 발견된다. 나는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에서 초창기 게임의 진화 과정을 아케이드 게임과 PC 게임이 서로 결합되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아케이드 게임이 캐릭터와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하는 형태로 발전했다면, PC 게임은 이야기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이런 관점에서 PC로 등장했던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장르는 ‘보는 게임’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등장하는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은 물론, RPG, 시뮬레이션 게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초기 PC 게임들은 물리적인 조작보다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지켜보는’ 형태로 발전했다. 여기에는 PC 플랫폼의 하드웨어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키보드’라는 입력도구는 조이스틱과 달리 문자를 입력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고, 초기 PC의 낮은 그래픽 성능은 움직이는 이미지보다 고정된 이미지와 텍스트 중심의 게임을 강제했다. 게다가 PC는 아케이드 게임과 달리 긴 플레이 시간을 보장했다. PC 플랫폼에서 게임의 플레이 타임은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저장 기능은 게임 플레이가 일상생활에서 적절하게 끊어지고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왔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런 PC 게임의 특성이 극대화된 장르 중 하나다. 〈삼국지〉나 〈문명〉 시리즈는 대부분 명령을 내리고 그 결과를 지켜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PC라는 업무용 하드웨어가 비디오게임과 결합되면서 그 게임 스타일도 마치 직장에서 업무 지시를 내리듯 사무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실 당시에 PC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은 놀이라기보다 업무에 더 가까웠다. 어쨌든 이런 ‘보는 게임’의 흐름은 2000년대 웹 게임을 거쳐 스마트폰 게임으로 이어진다. 5. ‘보는 게임’은 어떻게 게임시장의 주류가 되었을까? 과거 PC라는 하드웨어의 등장으로 새로운 게임 장르가 등장했던 것처럼 스마트폰이라는 하드웨어는 ‘보는 게임’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24시간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터치스크린’ 단말기는 PC가 그랬듯이 캐릭터를 조작하기가 불편했다. 뭔가를 보고 조작하기에는 화면이 너무 작았고, 물리버튼이 없어서 정교한 컨트롤도 어려웠다. 오토 플레이 기능은 이런 하드웨어의 한계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24시간 플레이가 가능한 개인화된 기기라는 점도 오토 플레이에 영향을 미쳤다. 스마트폰은 네트워크에 연결된 채 언제 어디서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상태로 플레이어 곁에 대기 중이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플레이어는 24시간 스마트폰을 들고 있을 수 없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동일하지 않고, 대부분의 온라인 모바일 게임은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혹은 비용을 더 지불한)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흘러간다. 늘 손안에 있는 하드웨어, 항상 게임에 접속할 수 없는 플레이어, 시간을 두고 벌어지는 게임 내 경쟁구조. 이 세 가지 요인이 맞물리면서 ‘자동 사냥’ 혹은 ‘오토 플레이’라는 새로운 기능이 탄생한다. 물론 하드웨어 특성만으로 ‘보는 게임’이 주류가 된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보는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게임이 재미를 만들어내는 구조와 더불어 오늘날 수용자들의 게임 플레이 환경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게임을 ‘선택’한다는 것은 취향은 물론 자신의 플레이스타일과 라이프사이클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아무리 게임이 재미있어도 플레이하는 과정이 내 삶의 파장과 맞지 않으면 버려지게 된다. 우리 집 책꽂이에 방치된 닌텐도 스위치와 〈몬스터헌터 라이즈〉처럼 말이다. 그리고 내가 바쁜 와중에도 꾸역꾸역 어떻게든 즐기는, 아니 즐기는 것이 용인되는 〈월드플리퍼〉처럼 말이다. 여러 모바일 게임 중에서도 〈월드플리퍼〉가 내 삶의 틈새로 구슬을 날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게임은 각각의 플레이 과정이 작은 단위로 분절되어 있다. 레벨에 따라 편차가 있긴 하지만 하나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3분 정도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이 게임이 나에게 재화를 빨리 모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월드플리퍼〉에는 유저간 PVP가 없다. 경쟁 요소가 거의 없다보니 캐릭터 수집이나 성장에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한정된 자원으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과정이 즐겁다. 멀티 플레이도 마치 솔로 플레이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다. 3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진행하는데, 타인의 생성한 룸에 참여하면 행동력을 소모하지 않는다. 알람 신호가 울리면 클릭해서 참여하고, 오토 플레이가 종료될 때까지 기다리면 재화를 얻을 수 있다(물론 이벤트 난이도에 따라 컨트롤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채팅 기능이 없어서 커뮤니케이션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이런 특성 덕분에 나는 일상생활에서도 부담 없이 멀티 플레이에 참여해 재화를 모을 수 있다. 일하다가 알람이 울리면 클릭해서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도중에 전화가 오거나 접속이 끊겨도 자동 전투는 끝까지 진행되고, 그에 따른 보상도 받을 수 있다. 집중이 필요한 업무를 할 때는 이마저도 어렵지만 간단한 업무를 할 때는 충분히 병행 가능한 수준이다. 이렇게 해서 일과 게임을 동시에 처리하는 신인류가 탄생했다(멀티태스킹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6. 시간은 없지만 게임은 하고 싶어 누군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것처럼, 나 역시 시간이 없지만 게임은 하고 싶다. ‘보는 게임’은 그런 어른 게이머의 모순된 욕망을 어느정도 충족시켜준다. 일과 게임의 밸런스, ‘워게밸’이 가능하다고 합리화하면서 스마트폰에 게임을 설치한다. 하지만 불온한 멀티태스킹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일과 게임, 둘 다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외치는 탓이다. 처음에는 똑같이 아껴주겠다고 다짐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균형은 무너진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는 결국 게임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게임은 그동안 발생한 ‘매몰비용’의 영수증을 들이대면서 붙잡는다. 오래 붙잡은 인연일수록 끊어내기란 쉽지 않다. 물론 누군가는 일을 잠시 밀쳐두고 게임의 손을 잡아줄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삶의 조건에 맞게 수많은 게임들이 소비된다. 슬라보예 지젝은 자본주의 욕망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상품으로 ‘다이어트 코크’를 이야기한다. 다이어트 코크는 카페인과 설탕이 제거된 콜라다. 우리는 가짜 콜라, 유사 콜라를 마시면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원래의 핵심이 제거된 콜라를 마시면서도 기존에 느꼈던 ‘청량감’과 ‘각성효과’를 기대한다. 다이어트 코크를 마시면서 오리지널 콜라를 욕망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욕망을 극대화시킨다. ‘보는 게임’도 어쩌면 그런 다이어트 코크 같은 존재가 아닐까? 콜라에 카페인과 설탕이 필요하듯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요구된다. 이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마땅히 지불해야 할 일종의 기회비용이다. 하지만 우리는 쾌락을 위해 자신의 노동시간을 마음껏 투입할 수 없다. 그래서 게임회사는 우리가 게임에서 누려야 할 플레이 시간을 제거한다. 바로 일상을 방해하는 해로운 성분이 제거된 ‘보는 게임’이다. 사실 게임을 즐기는 이유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그 몰입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보는 게임’에는 그 본질적인 부분이 제거되어 있다. 마치 카페인과 설탕이 제거된 다이어트 코크처럼 말이다. 나는 일하면서도 게임을 즐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했던 게임은 업무 사이에 던져진 또 다른 업무였을지도 모른다(유저들이 ‘일일퀘스트’를 ‘숙제’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본질이 제거되면서 욕망은 더욱 극대화된다. 무엇보다 해롭지 않다는 생각에(일상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더 많은 시간을 안심하고 게임에 투입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투입한 시간은 결코 작지 않다. 7. 포장된 쾌락의 한계 게리 S. 크로스, 로버트 N. 프록터의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에서는 초콜릿, 담배, 사진, 축음기, 영화 등 ‘포장된 쾌락의 혁명’에 대한 내용들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이 책에 따르면 “테크놀로지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오늘날 사람들이 매우 쉽고 빠르게 열량을 섭취할 수 있게 했다.” 19세기 말부터 기업들은 지방, 당분, 염분 등을 농축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멀리 운반할 수 있도록 포장했다. 시중에 ‘포장된 쾌락’이 넘쳐나면서 미각, 시각, 청각 등 한때는 희소했던 감각들을 이제는 너무나 쉽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포장된 쾌락은 감각 경험의 강도를 크게 높였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마약이다. 씹거나 연기로 피우거나 차로 마셨던 아편은 모르핀, 헤로인으로 정제되었고, 새로 발명된 주사기를 통해 혈관에 직접 주입되었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담배회사는 새로운 가공법으로 연기의 맛을 순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연기를 폐 깊숙이 흡입하게 되었다. 제품 자체는 순해졌지만 오히려 건강에는 치명적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포장된 쾌락이 전달되는 과정을 주사기 같은 튜브에 빗대어 ‘튜브화(tubularization)’라고 부른다. 자연의 소리를 듣거나 공연장에 가는 대신 ‘아이팟’을 켜는 것, 짧은 기간에만 허락되었던 축제의 즐거움을 일 년 내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놀이공원’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이러한 관점은 비디오게임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즉, 기술은 사람들이 놀이를 즐기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고, 매우 쉽고 빠르게 재미와 쾌락을 충족시킬 수 있게 했다. 컴퓨터는 인간이 놀이를 위해 수행해야 할 것들, 이를테면 놀이도구의 배치, 규칙의 적용, 컴포넌트의 이동, 점수 계산 등을 기계가 대신하도록 만들었다. 비디오게임은 TV보다 상호작용성이 뛰어난 매체였지만, 한편으로는 놀이에서 인간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과거의 놀이를 생각해보자.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어린 시절 놀이들은 물리적인 공간에 친구들을 모으고, 몸을 움직여야 하며, 탈락하면 다른 친구들이 승부를 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놀이를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 대상, 시간이 필요했다. 즐거움을 얻기 위한 일종의 ‘허들’이었다. 비디오게임은 이런 허들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물론 접근이 간편해진 만큼 규칙은 복잡해졌다. 하지만 비디오게임 산업이 성장하고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게임은 점차 ‘튜브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 비디오게임은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편리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하드코어 게임들은 난이도를 대폭 낮추거나 ‘EASY MODE’를 추가했고, 닌텐도 DS와 Wii는 ‘캐주얼 혁명’을 일으켰다. 스마트폰은 이런 튜브화를 더욱 강화시켰다. 특히 모바일 플랫폼의 ‘보는 게임’은 자동화와 튜브화가 결합된 ‘포장된 쾌락’의 극단적인 형태다. 심지어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에서는 현실의 자본으로 보다 압축된 시간을 구입할 수 있다. 자동으로 진행되는 전투조차 곧바로 결과를 볼 수 있도록 스킵해 버리는 티켓은 더 빠른 ‘포장된 쾌락’을 위한 입장권이다. 무선 네트워크로 연결된 휴대용 모바일 기기는 언제 어디서나 24시간 서버에 접속된 게임환경을 제공한다. 주머니 속의 사탕을 꺼내듯 하드웨어를 꺼내서 플레이어가 개입하지 않은 채, 일상에 해롭지 않다고 여겨지는 쾌락을 마음껏 소비할 수 있다. 게임을 즐길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게임은 어쩌면 구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구원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오히려 이런 게임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과거에 즐겼던 게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마치 비디오게임을 시작하면서 구슬치기가 밋밋해진 것처럼 말이다.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희소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왔다. 쾌락에는 상대적 희소성이라는 맥락이 필요하며, 너무 많으면 지루해진다. 무엇보다 쾌락이 ‘래칫 효과(rachet effect: 수준이 한번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지 않는 효과)’를 일으켜, 자연과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화되지 않은 쾌락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포장된 쾌락은 전에는 귀하고 드물었던 것을 흔하고 따분한 것으로 만든다. 결국 포장된 쾌락 바깥 세계에 대한 흥미가 점차 약해지며 우리는 더 이상 그 세계를 열망하지 않게 된다. 내가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월드플리퍼〉의 포장된 쾌락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8. 1973년의 핀볼과 2021년의 월드플리퍼 다시 〈월드플리퍼〉를 가만히 바라본다. 어쩌면 ‘보는 게임’이란 핀볼 기계를 떠도는 구슬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구슬은 스스로 랜덤으로 점수를 얻고 시간이 지나면 중력에 의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아주 잠시 플리퍼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게임 세계는 끝없이 반복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973년의 핀볼』에는 핀볼 기계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거대한 창고 안에서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십’ 핀볼 기계를 찾아내고 나서야 그는 충족되지 않던 욕망을 잠재울 수 있었다. ‘보는 게임’은 다이어트 코크처럼, 포장된 초콜릿처럼 놀이의 중심에 닿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노동에서 벗어나 놀이 자체를 온전히 마주할 때까지 욕망은 충족되지 않을 것이다. 2021년의 나는 〈월드플리퍼〉를 플레이하면서 유년의 창고에 잠들어 있는 핀볼 기계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핀볼의 윙윙거리는 소리는 내 생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갈 곳 없는 상념도 사라졌다.” - 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핀볼〉 중에서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평론가, 프리랜서 작가) 이상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비디오게임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비디오게임에 대해 생각하면서 게임이 주는 흥미로운 경험을 문장으로 옮기는 중입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관련 저서로는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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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단절을 넘어서-퀘이크 리마스터

    최근 다수의 리마스터 타이틀이 얼굴을 비추고 있다. 과거 발매되었던 게임의 비주얼이나 시스템을 조정해 다시금 선보이는 리마스터 / 리메이크들이 예다. ROM 혹은 디스크 등의 형태를 넘어서 디지털로 복각되고 라이브 서비스를 진행하는 MMORPG 또한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과거의 빌드를 그대로 서비스하는 사례도 여럿이다. < Back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단절을 넘어서-퀘이크 리마스터 02 GG Vol. 21. 8. 10. 최근 다수의 리마스터 타이틀이 얼굴을 비추고 있다. 과거 발매되었던 게임의 비주얼이나 시스템을 조정해 다시금 선보이는 리마스터 / 리메이크들이 예다. ROM 혹은 디스크 등의 형태를 넘어서 디지털로 복각되고 라이브 서비스를 진행하는 MMORPG 또한 ‘클래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과거의 빌드를 그대로 서비스하는 사례도 여럿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것에서 영감을 얻는 타이틀도 다수를 만날 수 있다. 8-bit / 16-bit를 넘어 픽셀 그래픽 자체가 레트로를 대표하는 비주얼로도 사용된다. 큰 흐름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과거의 작품들이 현재의 시장에 다시금 얼굴을 비추고 나름의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상태다. 마치, 패션과 대중음악에서 과거의 스타일을 레트로라는 이름 아래 재조명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게임에 있어서 레트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패션이나 대중음악에서 말하는 레트로 혹은 뉴트로와는 다르게 구분 방식도. 기준도 모호하다. 과거의 문화를 누리는 방식과 대상에 차이를 보인다고는 하지만, 게임에 있어서는 시기 정도만이 레트로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얼마 전까지 레트로가 패미컴 시절의 게임을 말하는 것이었다면, 현재는 PS1 혹은 PS2까지 포함할 정도로 범주가 확장됐다. * 2000년에 발매된 〈디아블로2〉도 시기 상으로는 레트로라는 단어를 붙여도 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게임에서의 레트로는 과거의 작품을 의미하는 형태. 클래식(Classic)을 의미하는 것에 가깝다. 그리움을 소비하는 것 그리고 경험하지 못한 과거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과는 기준과 양상이 다르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단순히 올드 게이머들을 위한 추억 팔이로. 반대로 다른 누군가는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로 바라보기도 한다. 과거의 게임이 시장 지배적인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에는 여기에 이유가 있다.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게임이 과거 타이틀에서 보여준 플레이와 디자인을 이용해 무수히 많은 시간과 시도를 더하며 켜켜이 쌓여나가는 형태로 정립되어 있어서다. 기존의 것을 기반으로 두고 가치를 더하는 발정 과정이므로 다른 문화적 요소와 달리 게임은 향유층 혹은 세대 간의 단절이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 십년 전 게임을 플레이하며 과거에 대한 연민과 추억을 소비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새로운 시장과 소비층을 규정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본질적으로 과거의 타이틀은 지금과 비교해서 표현 한계가 명확했던 시절의 것일 뿐. 잃어버리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다. 회사나 작품이 달라지더라도 플레이라는 형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개선되고 발전했다. 더불어 여기에 새로운 생각들이 더해지면서 게임의 발전 중간마다 지점이 될 수 있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항상 진행 중인 게임의 발전에서 플레이어는 필연적으로 자신이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이 된 작품. 그리고 다른 세대와 함께 공유하는 중간 지점에 있는 작품을 갖게 된다. 이 사이가 단절되어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으므로 새로이 등장한 향유층과도 접점을 유지할 가능성을 남긴다. 게임의 발전 과정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형태로 진행되기에, 각 계층 사이 또한 어느 정도 연결되는 경향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렇기에 레트로와 같이 그리움에 단어로 규정하기 보다는 과거 타이틀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지도 모른다. * 〈슈퍼 마리오〉 처럼 시리즈가 오랜 역사를 가질수록 과거 타이틀은 현재와 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연속 속에서 게임이란 매체의 발전은 곧, 표현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연속적인 사고의 집합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타이틀은 과거의 작품에 어느 정도 기반을 두고 있다. 시장에 선보인 바 있는 타이틀의 일부 요소를 차용하거나 발전시키는 것을 통해서 게임이라는 매체가 새로운 층위와 시장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아이디어의 그 근원에서 마주하는 가치. 즉, 어떻게 이러한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는가. 거기에 고전작들을 바라보기 위한 단서가 있다. 수많은 레트로 스타일의 게임이 나오고 있음에도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근원이다. 소위 ‘레트로 스타일’로 대표되는 비주얼 측면을 넘어서 과거 고전 타이틀이 존재감을 갖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국내 기준으로 8월 20일 발매된 〈퀘이크 리마스터〉를 보자. 발매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눈여겨볼 디자인적 측면이 눈에 띈다. 〈퀘이크 리마스터〉는 밸런스 측면에서 약간의 조정을 제외하면, 1996년 원작에서 변한 것이 없음에도 말이다. 텍스쳐와 광원 등이 지금에 맞게 조정되었을 뿐이고 게임을 이루는 뼈대와 플레이 흐름이 그 시절의 것 그대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게임 플레이 자체는 여전히 흥미롭고 전반에 걸쳐 생각해볼 거리를 남긴다. 과거의 시점에서 현재의 게임들에 던지는 질문들이다. 돌이켜보면 〈퀘이크〉는 id 소프트웨어가 1993년 발매한 〈둠〉에 비견될 정도로 게임 업계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쳤던 타이틀이다. 풀 폴리곤 기반 FPS로의 전환과 이에 따른 VGA의 발전. 3D 환경에서의 자유로운 시점 조작과 레벨 디자인. 이후 〈하프라이프〉와 〈콜 오브 듀티〉 등에도 영향을 줬던 게임 엔진. 인터넷을 이용한 멀티 플레이와 경기. 여기서 파생된 WASD 조작 등 현재에도 통용되는 여러 요소들이 퀘이크에서 출발한다. 이와 같은 발전상은 현재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이지만 당시에는 그야말로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졌던 요소들이다. 〈퀘이크〉가 폴리곤 환경을 십분 활용해 구축한 레벨 디자인과 자유로운 시점 등은 게임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새로운 시점과 플레이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시도이자 해답이었다. 〈퀘이크〉를 통해 만들어낸 하나의 문법은 이후에도 일종의 기준이 됐다. 당시의 개발자들은 퀘이크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구분하고 해석하며,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동시에 3D 환경의 발전과 기기의 성능 상승으로 더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표현할 기계적 한계와 자원도 늘어났다. 특유의 빠른 속도는 하이퍼 FPS라는 경향으로의 발전으로. 고저차를 활용하는 레벨 디자인은 이후 다른 회사의 작품들을 거치며, 더 나아지는 경향을 보여줬다. 근본적인 플레이 흐름을 생각해 볼 때에는 〈퀘이크〉의 그것과 현대의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다. 예전과 비교해서 시대와 기기의 성능이 크게 달라졌음에도. FPS는 id 소프트웨어가 이룩했던 근본적 의도와 발상의 틀 안에서 여전히 재구축되고 나름의 해석과 관점을 더하고 있는 모습이다. 〈퀘이크 리마스터〉가 보여주는 일면들은 과거의 유산이 어떻게 현재에도 적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한편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20년이 넘게 지난 타이틀임에도 여전히 재미있는 이유는, 그 안에 있는 게임 디자인의 본질과 당시 개발자들이 고민했던 지점들이 현재도 분명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표현의 한계를 넘기 위한 고민과 노력. 어떤 플레이를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은 현재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시리즈가 단절되었을지라도 과거를 통해 얻은 가치는 그대로 유지되며 현재까지 계속되는 하나의 경향이 된다. 다른 문화 분야에서의 레트로 / 뉴트로가 과거에 대한 향수에서 출발해 이를 소비하는 형태라면, 게임에서의 레트로는 소비 측면에서의 변화가 아니라 사상의 근원을 찾아나가는 여행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고전 게임을 현재에도 플레이하는 것은 과거의 것을 기준으로 다시 현재의 게임들을 비춰보는 행위가 된다. 과거 개발진이 고민했던 시점과 결과물이 이를 통해서 현재의 게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게임 플레이의 근원이 어디서 오는지. 당시에 어떤 고민과 해답을 내렸는지를 살펴보면, 개인마다 새로운 방향성이 보이기 마련이다. 이를 통해서 수용자인 플레이어는 현재의 게임을 자신의 기준에 맞게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다. 그리고 거기서 얻어진 깨달음은 〈셔블 나이트〉와 같이 과거 게임의 장점을 조립하고 재구축한 타이틀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과거의 결과물에서 출발해 새로운 형태의 표현과 아이디어가 등장하는 셈이다. 마치며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과거의 타이틀은 이렇게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게임들이 시장에 발매될수록. 단순 비주얼 측면에서 ‘좋았던 옛날’을 회상하기보다는 거기서 어떤 것들을 배울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해질 것이 분명하다. 과거의 투박함 안에 포함된 그 당시 개발자들의 고민과 결과물. 그리고 명확한 한계를 넘어서 전달하고자 했던 경험들.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과거의 게임을 찾고 플레이하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싶다. 현재 향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의 게임을 바라보기 위한 시각의 정립이다. 게임이라는 매체이자 표현 형태의 발전은 과거에 항상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앞으로 나올 게임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것을 바라보며 각 요소를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과정이 곧 게임이라는 매체의 발전상이다. 따라서 발매된 지 오래 지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과거가 현재까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임을 확인하는 과정과도 같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정필권 농부이자 제빵사이자 바리스타. 현재는 게임 기자로 글을 쓴 지 8년차 입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e스포츠의 현장감은 어디서 오는가: 라이엇게임즈 함영승 PD

    그런데 따지고 보면 뭔가 이상하다. ‘현장 중계를 가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말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경기를 보는 것이 아쉽다는 의미인데, 게임의 배경은 이미 온라인 세계가 아니던가? 그러면 e스포츠에서 현장감은 무엇을 의미할까?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소환사의 협곡’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인데, 대체 팬들은 어떠한 지점에서 현장감을 느끼는 것일까? 전통적인 스포츠에서 이야기하는 현장감과 e스포츠의 현장감은 그 성질이 다를까? 이러한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이번 호에서는 MBC에서 전통 스포츠를 중계하다가 지금은 LCK 중계를 하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함영승 PD를 만나고 왔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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