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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켓몬 고〉는 당신의 시공간에 침투한다
〈포켓몬 고〉는 2016년 글로벌 출시된 증강 현실 모바일 게임이다. 증강 현실이란 더해진 현실이라는 뜻이니, 현실 위에 정보 레이어가 한 겹 더해졌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지리 데이터 위에 포켓몬스터 데이터를 덧씌워보니 게임이 탄생했다. 출시 초기 〈포켓몬 고〉는 플레이어의 GPS를 추적하여 구글 맵 위에 포켓몬들을 등장시키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만 보여주던 포켓몬스터 트레이너의 삶을 살아보도록 선보였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농사 게임은 왜 힐링이 되었는가: 픽셀 농사와 진짜 밭 사이에서
평화로운 게임과 다르게, 현실은 훨씬 가혹했다. 노루망을 치지 않아서 상추 밭은 송두리째 사라져버렸다. 현실에서는 야생동물, 폭염, 장마, 해충 등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언제든 침입한다. 각종 병충해도 단 몇 주 사이에 농사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너무 덥거나 습하면 작물이 빠르게 상하고, 한 번의 폭우로 뿌리가 썩어버리기도 한다. 농부는 이러한 피해 요소들을 ‘기본값’으로 가정하고, 당연한듯이 울타리와 농약, 비료, 배수로 등 가능한 모든 대비책을 동원하여 농사를 유지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 Back 농사 게임은 왜 힐링이 되었는가: 픽셀 농사와 진짜 밭 사이에서 27 GG Vol. 25. 12. 10. <스타듀 밸리>나 <목장 이야기>와 같은 농장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전원적 배경의 농부가 되어볼 수 있다. 이들 게임은 도시를 떠나 가족의 농장을 물려받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동일한 서사를 공유한다.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가 최초로 마주하는 것은 잡초와 돌, 고목 등으로 뒤덮여 오랫동안 방치된 농지다. 이 허름한 농장을 하나씩 정리하고, 땅을 일구고, 작물을 심고, 축사를 가꾸며 매일 꾸준히 노동한 결과가 주는 수확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게임의 핵심 경험이다. 그 과정에 발생하는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는 공동체의 온기를 느끼는 순간이다. 농사 게임은 흔히 ‘힐링 게임’으로 분류된다. 경쟁이나 전투 중심의 게임이 순간의 긴장과 급박함을 요구하는 데 반해, 농장을 경영하는 일은 평화롭고 소박한, 말 그대로 ‘목가적 삶’의 감각을 제공한다. 밭에 심어진 옥수수도, 풀을 먹는 젖소도 플레이어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이들은 보살핌을 받으며 자랄 뿐이고 플레이어는 성장을 지켜보는 존재로 남는다. 필자 역시 직접 농사를 지어보기 전까지는 농사 게임을 ‘힐링’ 장르로 소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를 떠나 산골 마을에 거주하며 농촌 사회를 경험하고 손수 농작물을 생산해보니, 게임 속 농사와 현실의 농사 사이에는 생각보다 더 큰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게임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실제 농사에서 어떤 요소들이 게임화되기 위해 제거, 단순화, 재배치되었는지를 관찰하게 되었고, 게임에서 ‘힐링’이라는 감각이 어떻게 성립하는 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농사를 게임으로 배워 시작하다 다음은 실제로 겪은 농사 이야기다. 도시 생활을 하다 산골 마을로 이주하고, 집 근처에 작은 텃밭을 얻게 되었다. 흙을 조금 파보니 지렁이가 여럿 꿈틀거릴 만큼 토양 상태는 비옥했다. 그대로 두기에는 아까운 땅이라는 생각이 들어 농사 짓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게임 속에서는 수십 번의 계절을 보내며 방대한 경작지를 일군 베테랑 농부였지만, 현실에서는 식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조차 없는 초보자였다. <스타듀 밸리>의 농부는 가장 먼저 땅을 일군다. 필자 역시 튜토리얼을 따라 하듯 밭에 쪼그려 앉아 돌을 골라내고 호미로 잡초를 제거한 뒤 삽으로 흙을 부드럽게 다져 올렸다. 뾰족한 호미로 땅을 내칠 때 가끔씩 땅 속에 살고 있던 지렁이가 걸려서 튀어올랐다. 땅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초를 다졌으니 이제 무엇인가를 심을 차례였다. 원래대로라면 씨앗을 심어야 했지만, 부스트 아이템 ‘모종’을 선택했다. 씨앗 단계를 지난 어린이 상태의 모종을 심으면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에서 심는 만큼 실패 확률도 적고 성장도 빨랐다. 모종 가게 주인에게 “초보자는 잎채소부터 시작하라”는 조언을 들었고, 오이나 딸기 같은 열매 작물은 아직 ‘해금되지 않은 고난이도 작물’이라 생각하고 청상추 모종 15개를 사 들고 돌아왔다. 봄 기운이 완연한 4월은 상추를 심기에는 더없이 좋은 계절이었다. 스타듀 밸리의 농부는 파스닙 15개를 심으며 첫 농사를 시작한다 픽셀처럼 심기 vs 두둑과 고랑 만들기 밭으로 돌아온 뒤, 15개의 모종을 어떤 배열로 심을지 고민했다. <스타듀 밸리>에서 플레이어에게 가장 먼저 주어지는 과제는 봄의 작물 ‘파스닙’(무의 일종) 씨앗 15개를 파종하는 일이다. 플레이어는 도구를 장착해 땅의 ‘상태’를 한 칸씩 경작지로 변화시키고, 땅 한 칸당 씨앗 한 개를 심어 파종을 총 15칸에 걸쳐서 진행한다. 이때 일반적으로 플레이어들은 5x3 또는 3x5의 대칭적 구조로 밭을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 짝이 맞는 이 패턴을 안정적인 구조로 받아들인다. <스타듀 밸리>를 오래 플레이한 탓에, 씨앗 15개를 ‘반듯하게’ 심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래서 실제 밭에서도 상추 모종을 똑같은 구조로 심었다. 상추 역시 3x5의 비슷한 구조로 심어졌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텃밭은 게임의 논리를 거부했다. 상추들은 서로의 잎이 뻗어나갈 공간이 부족해졌고, 잎과 잎이 맞부딪히며 통풍이 안되어 병충해가 발생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 밀식된 상추는 성장하면서 서로의 잎을 밀어내는 생존 경쟁을 벌였다. 설상가상으로 가운데 줄에 위치한 상추는 공간이 없어서 직접 손이 닿지 않아 관리가 거의 불가능했다.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작물 위를 가볍게 통과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농부가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이 있어야 했다. 결국 ‘한 칸에 한 개의 작물 배치’ 논리는 게임식 접근법이었다. 현실에서는 게임에서의 칸 개념보다는 모종을 심는 ‘두둑’과 여유를 두는 ‘고랑’의 개념이 적절했다. 현실의 농사에서 한 포기의 상추는 한 칸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통풍, 배수, 관리 접근성을 포함해 더 큰 생태적 공간을 필요로 한다. 게임이 제시한 그리드 기반의 단순한 규칙은 실제 농사에서는 훨씬 복잡한 생태적 배치의 문제로 변환되었다. 생장할 여유 간격을 두고 심어진 상추 밭. 출처: 드래곤 별밭 아뜨리에 블로그 현실 농사는 농작물 피해를 디폴트 값으로 둔다 그래도 상추들은 비좁은 환경에서도 제법 잘 자라주었다. 조심스레 잎을 따내어 수확이 가능했다. 수확한 상추로 쌈과 샐러드를 풍성하게 차려먹으니 요리의 즐거움은 구현되지 않았던 게임 속 농부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상추는 많이 수확해도 금방 다시 자라서 화수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확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며칠 만에 물을 주러 나가보니, 밭이 텅 비어있었다. 상추가 있던 자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상추가 있었는데, 없었다. 다른 밭에 잘못 왔나 싶을 정도로 이상한 경험이었다. 야생 동물인 노루가 습격한 결과였다. 생각해보면 노루가 참 좋아할 만했다. 나의 텃밭은 억세고 질긴 들풀보다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상추가 한 가득 자라있는 완벽한 식탁이었다. 대부분의 농사 게임에서 울타리란, 미적 요소이거나 부가적인 설치물에 가깝다. <스타듀 밸리>에서는 농작물의 피해를 미미한 이벤트로 발생시킨다. 허수아비 설치물이 커버하는 영역에 놓이지 못한 땅은 야간에 등장한 까마귀로 인해 1~2개의 작물이 사라진다. <파밍 시뮬레이터>에는 병충해나 야생동물의 피해를 아예 구현하지 않는다. 잡초가 수확량을 조금 줄이는 정도로 단순화되어 있다. 반면 <천수의 사쿠나히메>는 벼농사에 발생하는 해충과 병해, 잡초의 종류를 현실처럼 다양하게 구현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에 실패한다고 하여 품질과 수확량이 감소할 뿐, 벼가 다 죽어버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평화로운 게임과 다르게, 현실은 훨씬 가혹했다. 노루망을 치지 않아서 상추 밭은 송두리째 사라져버렸다. 현실에서는 야생동물, 폭염, 장마, 해충 등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언제든 침입한다. 각종 병충해도 단 몇 주 사이에 농사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너무 덥거나 습하면 작물이 빠르게 상하고, 한 번의 폭우로 뿌리가 썩어버리기도 한다. 농부는 이러한 피해 요소들을 ‘기본값’으로 가정하고, 당연한듯이 울타리와 농약, 비료, 배수로 등 가능한 모든 대비책을 동원하여 농사를 유지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노동하는 신체성을 지워야 힐링은 완성된다 상추밭이 야생동물의 습격으로 초토화된 후, 여름 작물인 아삭이 고추 몇 그루를 심으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초여름 기운을 받은 고추는 순조롭게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우며 주렁주렁 열매 맺을 준비를 마친 듯했다. 그러나 어느 날, 초록색으로 보여야 할 고추 줄기가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십 마리의 노린재가 깨알같이 달라붙어 수액을 빨아먹고 있었다. 노린재는 당장 열매를 떨어뜨리지는 않지만, 식물의 영양분을 가로채 성장을 저해하고 열매를 부실하게 만든다. 농약을 칠 수 있었지만 많은 친환경 농부들이 권장하지 않았다. 손으로 잡아서 없애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했다. 페트병을 반으로 자른 통에 물을 채우고, 고추 줄기 아래에 대고, 통에 떨어지게끔 손으로 노린재 떼를 우수수 떨어뜨렸다. 이 작업을 매일 반복해야만 했다. 노린재와의 전쟁이 끝나면 덥고 습한 날씨를 틈타 민달팽이가 올라타서 고추 열매를 갉아먹었다. 이 과정에서 게임에는 겪지 않은 농사의 육체적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한여름 야외에 몇 분만 서 있어도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농부에게 모기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여름의 밭이라는 야외 공간은 야생 모기가 무차별적으로 달려들기 좋고, 식물을 스치기라도 하면 진드기가 몸에 달라붙어 자기도 모르게 피를 빨릴 수 있다. 게임 속 농부는 밀짚모자에 멜빵바지라는 낭만적인 룩을 입고, 현실의 농부는 긴 챙 모자에 마스크부터 팔토시, 스카프까지 생존을 위한 전투복을 입는다. <스타듀 밸리>에서 플레이어의 신체는 화면 구석의 ‘스태미나 게이지’로 단순하게 표상된다. 곡괭이질을 하거나 물을 주면 게이지가 줄어들고, 기력이 바닥나면 탈진한다. 그래도 침대에서 하룻밤 자고 나면 체력은 언제 그랬냐는 듯 100% 회복된다. 게임 속 노동은 조작 장치를 거쳐 대리 수행되기에, 플레이어는 온 몸에 흘러내리는 땀,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 벌레에 물리는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 게임이 선사하는 힐링은 역설적으로 노동하는 주체의 몸을 소거했기에 가능하다. 현실의 농사는 클릭 몇 번으로 끝나지 않고 잠을 잔다고 해서 누적된 피로가 말끔히 씻기지도 않는다. 이러한 육체적 한계는 필연적으로 외부의 힘을 필요로 한다. <파밍 시뮬레이터>가 거대한 트랙터와 콤바인을 조작하는 재미를 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대의 농업은 인간의 몸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노동의 부하를 기계가 대신해주는 것에 익숙하다. 실제 한국의 농촌 현실을 들여다보면, 고령화된 농촌에서 인간의 몸을 대신하는 것은 억 대를 호가하는 농기계들이고, 농기계를 운용하거나 기계가 닿지 않는 궂은 일 처리는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에 맡겨진다.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매끈한 농산물은 힐링 게임이 보여주지 않는 기계 소음과 이주 노동자들의 땀 속에서 생산된다. 최근 각광받는 스마트팜 역시 온도와 습도, 영양 공급을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스템에 맡김으로써 예측 불가능하고 고통스러운 자연 속의 인간 노동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결국 농사 게임이 주는 평화로움은 현실 농사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고통스러운 육체성과 노동의 구조를 차단한 채 수확의 성취감만을 정제하여 제공하는 셈이다. 게임 농부는 치유받지만, 현실 농부는 치열하게 싸운다 우리는 이른바 ‘힐링’이라는 감각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농사짓는 행위가 게임에서 힐링이 되는 이유는 단순히 전원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삼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의 농업이 갖는 복잡성을 제거하고 변형함으로써 불확실한 노동을 ‘확실한 노동’으로 재구성하는 점에 있다. 현실의 농업은 기후, 병해충, 노동력, 시장 변수 등 수많은 요소가 개입하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활동이다. 수확의 결실을 맺기까지 요구하는 힘의 투입은 굉장히 어렵고, 고통스럽고, 장기간을 요구하며 때로는 실패를 수반한다. 반면 게임은 매체적 성격상 불쾌감을 최소화하고 쾌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만약 현실의 불확실성과 고통을 그대로 재현한다면 게임은 ‘재미’라는 핵심 동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사를 다루는 게임들은 반드시 선택, 제거, 증폭의 단순화 과정을 거쳐 현실의 농업을 플레이 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농사 게임이 현실을 은폐한다는 비판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은폐 여부가 아니라, 농사가 어떤 구조적 조정을 거쳐 ‘힐링’으로 재배치되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이 간극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게임 속 농사가 만들어내는 힐링이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 농업을 둘러싼 조건을 재사유하게 만드는 하나의 분석적 지점임을 확인하게 된다. 현대인들이 농사 게임에서 힐링을 느끼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일상이 게임 속 농사보다 훨씬 더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성과를 내도 인정받지 못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현대의 노동 환경 속에서, 게임 속 농사는 노력한 만큼 정확히 돌아오는 공정한 세계를 제공한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면 반드시 작물이 자라고, 수확하면 반드시 돈이 들어온다. 이 깨끗한 루틴의 반복에서 오는 예측 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이야말로 게임이 제공하는 진짜 힐링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것 중에서 '농사'라는 형식을 빌려 이러한 힐링을 추구하는 것일까? 농업이라는 인류 최초의 생산 활동은 본래 자연과의 협상이자 불확실성과의 공존이었다. 그러나 게임은 이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농업을 통제 가능한 시스템으로 재탄생시킨다. 어쩌면 자연을 완전히 계량화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현대 사회가 자연에 대해 갖는 판타지이자 근대적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동시에 농사 게임은 우리가 상실한 것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손으로 땅을 만지고, 씨앗을 심고,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경험. 도시화된 삶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지 못한다. 농사 게임은 이 단절된 관계를 상상적으로나마 복원한다. 결국 농사 게임이 제공하는 힐링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현실 농사의 고통을 삭제한 안전한 판타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노동과 결실의 직접적 연결'이라는 근원적 만족감을 제공한다. 게임 속 농부가 되는 경험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이 만족감을 게임 속에서 찾아 헤매는가? 우리의 노동은 왜 게임 속 농사만큼 명확한 보상과 연결되지 않는가? 그리고 진정한 치유는 게임이 제거한 바로 그 불확실성과 고통을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들은 농사 게임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우리 시대의 노동과 자연, 그리고 치유에 대한 욕망을 성찰하게 만든다. 게임 속 농사와 현실의 농사 사이의 간극은, 그래서 우리가 어떤 세계를 살고 있으며 어떤 세계를 꿈꾸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공포’와 ‘놀이’로서의 비장소 : <8번 출구>를 포착하기
현대의 공포는 흐른다. 곧, 어디서든 틈입한다. 일찍이 공포라는 키워드 하에 내포되어 온 스테레오 타입화된 형상들―가령 괴물, 귀신, 살인마, 악마 등―만으로 이 정서의 출처는 설명되지 않는다. 해당 공포는 좀 더 내밀한, 혹은 하이퍼객체와 같은 유동성을 발휘하기에 우리는 이 공포를 ‘앎’의 영역으로 안배하기에 항상 실패한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hanmi Jeong Pursues scholarship in the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at Sungkyunkwan University. A devotee and an observer of subculture. In the midst of tracking down new methodologies for thinking through the times.
- [게임과 예술] 로딩중인 세계의 권태와 노동에 관한 소고
상희는 유희와 즐거움의 이미지로서 소비되던 게임의 형식을 빌려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노동하는 신체에 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 완전히 개인화된 세계에서 내면적 사유로서 ‘권태’가 가진 정서를 재조명한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inju Lee Lee Minju majored in Western painting and art theory. Writes and organizes a range of projects. Has curated Animal Loop (Gong-Won, 2019, co-curated), which exam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performance and performance documentation; Non-Caption Interview (An Unexpected Combination, 2021, curated), which illuminated the aesthetics and politics of the documentary image; and #2 (Doosan Gallery, 2023, co-curated), which explored the event-ness of the exhibition through the form of theater. Attending to the events and performative qualities that images produce, reflects on critical writing and researches the translational relationship between image and text.
- 게임기의 라디오 되기, 라디오의 게임기 되기: 이노 겐지의 「리얼 사운드- 바람의 리그렛」(1997)에서 생각할 것들
비디오 게임에서 소리의 영역은 어떤 역사에 맞닿아 있을까? 영화가 문학과 회화, 연극, 음악 등의 온갖 예술사를 흡수하며 갱신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처럼,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서도 직계와 방계를 넘나드는 여러 갈래의 영향 관계가 존재한다. 그 속에서 게임의 소리는 어떤 가능성의 영역이었을까?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Taehoon Lim Assistant Professor in the School of Interdisciplinary Studies (Liberal Arts) at Chosun University. Researches the intersection of media technology and literary history, as well as SF culture and soundscape art. Co-authored books include Machine Critiques, A Chronicle of Korean Technoculture, and A Citizen's Guide to Technology; major works include The Freedom Not to Be Searched and The Mediology of Friendship.
-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 Back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03 GG Vol. 21. 12. 10. 김연자 말고, 니체의 ‘아모르 파티’ 수년 전,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 파티’ 가 인터넷에서 크게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특유의 비트와 김연자의 보컬로 곡 자체도 훌륭하지만 가사도 그렇고 후렴의 막강한 뽕짝 비트가 절묘했다. 사실 일종의 유머로서 소비되기는 했지만, 트로트 답게 좀 쌉쌀한 맛도 있는 노래였다. * 막상 생각해보면 이 노래만큼 아모르 파티를 잘 설명한 것도 없는듯. 이미지 출처 - TV조선 유튜브 채널 그렇다면 바로 이 곡의 제목 ‘아모르 파티(Amor Fati)’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말 자체는 라틴어이고, 대충 들으면 어디서 나온 유명한 경구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이 단어의 출처는 저 멀리 프로이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로 간다. “신은 죽었다.” 는 패기 넘치는 한마디를 꺼냈던 이 철학자는 그 말마따나 인간의 운명을 긍정하고자 몇가지 화두를 세상에 던졌다. 물론 여기서 니체 이론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생각은 없다. 분량도 모자라거니와 애초에 필자도 관련 전공 또는 심도 있게 연구한 사람도 아니다. 단지 더할 나위 없이 니체가 어울리는 어떤 게임을 위해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뿐이다. 니체가 제시한 개념 중 ‘아모르 파티’ 는 니체 사상에서 일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이다. 풀어 쓰자면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운명이란 고대 그리스에서 말하는 신에 의해 정해진 운명과는 정반대로, 인간이 스스로 살아가고 결정하는 운명 그 자체를 말한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흥하거나 망하거나 즐겁거나 괴롭거나 자신의 운명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그를 긍정하라는 것. 이처럼 니체의 사상은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한 것처럼, 현실의 삶에 대한 긍정을 추구하며, 인간 개인이 그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라는 관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방법론이 바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라고 축약할 수 있다(미리 말했던 것처럼, 매우 간단하게 요약한 해석이다). 영원회귀란 파괴(실패, 좌절, 괴로움 등)와 생성(성공, 성취, 즐거움 등)의 동일한 과정을 무한 반복하여 마침내 긍정의 결론(내 운명-인생을 사랑-긍정하자)에 다다름으로서 마침내는 파괴의 과정 역시 긍정의 질(형식)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삶에 대한 긍정이란 이뤄낸 성과, 성공, 원초적인 즐거움과 쾌락 같은 너무나 당연한 긍정의 질을 말하는게 아니다. 삶에서 필연적으로 얻고 겪게 되는 좌절과 실패, 괴로움과 불쾌함까지도 긍정하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이 과정이 바로 영원회귀이며, 그 결과 이르게 되는 것이 아모르 파티이고, 또는 이 둘은 서로의 원인이자 서로의 결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니체의 사상 전체를 상당히 짧고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이지만, 큰 맥락은 같다. ‘영원회귀’ 라는 고통과 성취의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서 마침내 얻어낸 결실은 그 모든 과정을 한순간에 긍정적인 여정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의 의지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자신의 운명의 결론을 긍정함으로서 그 과정도 값지고 긍정적인 질로 바꾸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인생의 자세가 바로 ‘아모르 파티’ 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자, 그럼 이제 〈데스루프〉 라는 영원회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게임의 기본 모델 ‘영원회귀’ 가 데스루프에서 특별한 이유 〈데스루프〉 는 그 이름에서부터 죽음으로 되풀이되는 루프를 넌지시 언급하고 있다. 흔히 ‘루프물’ 이라고 하는 장르 또는 특성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이 선보여졌다. 수십년 전 TV에서 특선 영화로 보던 ‘사랑의 블랙홀’ 이나 최근으로 보면 영화 ‘엣지 오브 투머로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는 더더욱 많이 사용된 요소이기도 하다. * 데몬즈 소울 리메이크(Demon’s Souls, 2020). 이쪽 게임 디자인에선 워낙 유명한 소울 시리즈. 당연하게도 이는 게임에서도 흔히 활용되는 소재였다. 아니 오히려, 죽음과 부활로서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논리는 플레이의 반복성을 부여해야만 하는 게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기본 논리다. 여기서 나아가 아주 직접적인 ‘영원회귀’ 적인 과정을 노골적으로 활용하는 게임들은 많다. 오래 전부터 그 예시로 들어왔던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 소울〉 을 위시한 ‘소울 시리즈’가 그 예다. 참고로 최근에는 한국에서 이름 자체가 ‘영원회귀’ 인 게임도 나왔다. * 이터널 리턴(Eternal Return, 2020). 여기는 이름부터 영원회귀다. 사실 게임 내용은 크게 상관… 없나? 그리고 사실은 ‘소울 시리즈’ 까지 가지 않더라도 게임은 근원적으로 그 구조에서 영원회귀를 기본 구조로 채택하고 있다. 계속해 같은 시도를 하며 죽으면서 경험을 쌓고 강해지고, 마침내 극복해내고 한 번의 성공을 만들어 냄으로서 그전까지의 실패가 모두 이 성공을 위한 과정으로서 빛나게 되는 것. 그러나 〈데스루프〉 가 영원회귀 모델에서 독특한 점은 바로 플레이어의 성장 또는 변화를 직접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플레이어의 스킬 향상이나 명시적인 게임 내 각종 스테이터스, 기능의 향상이 아닌, 정보의 취득으로 표현한다는 부분이다. 보통 이러한 죽음(실패)과 부활(재도전), 그리고 이를 통한 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게임들은 그 성장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게임 내의 수치나 변화보다는 플레이어 자신의 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장 노골적인 예시인 〈다크 소울〉 시리즈의 경우 거듭되는 싸움을 통해 상대의 패턴을 파악하고, 나 자신의 로직, 나 자신의 조작이 가장 크게 성장에 관여한다. 물론 거기에 최적화된 도구를 다시 고르거나 필요한 만큼의 스테이터스를 향상시키고 돌아오는 등의 선택도 가능하지만, 플레이어 자신이 가장 큰 성장의 매개체라는 점은 〈다크 소울〉 이나 〈몬스터 헌터〉 같은 부류의 게임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다. * 이 게임의 룰과 목표는 간단하다. 크게 세가지다. 1. 루프를 끊어라. 2. 하루 안에 8개의 타겟을 제거해라. 3.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방법을 찾아내라. 그러나 〈데스루프〉 는 이러한 노골적인 영원회귀의 방법론을 취하면서도 몇몇 부분에서 좀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갔다. 게임은 하루의 루프가 반복되며, 하루는 4개의 시간대와 4개의 장소로 구분되고, 각 시간대 별 장소마다 얻을 수 있는 단서가 다르게 고정된다. 즉, 시간이 지나면 얻을 수 없게 되는 정보가 생긴다. 때문에 죽거나 하루를 넘겨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놓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그만큼 다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고, 또 이것이 게임 내 퀘스트 로그의 변화로 직접 기록된다. 즉, 마치 탐정처럼 어떤 정보를 얻고 실마리에 접근하는 것이 성장이자 게임의 진척도를 상징한다. 플레이어의 자각이 바로 상승을 의미하며, 무력에 의한 극복이라기보다는 무수한 스무고개 끝에 정답을 찾아내는 식이므로 그 스무고개를 확인하기 위한 생성과 파괴가 반복되는 것이다. * 가지런히 정돈된 정보가 계속 쌓이고 중첩되면, 이러한 '정답' 이 나온다. 무엇보다 〈데스루프〉 가 보여주는 영원회귀 구조에서 다른 점은 바로 ‘죽음’ 을 보다 바른 성장을 위해 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게임에서 죽음이란 가급적 피해야만 하는, 어떤 심각한 패널티로서 존재한다. 어찌보면 징벌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데스루프의 죽음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또는 이미 지나친 부분을 다시 보기 위한 일종의 선택지로 기능한다. 마치 영화 ‘엣지 오브 투머로우’ 에서 주인공이 작전을 실행하다가 수틀리면 바로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어 다시 하루를 시작하듯 말이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의미이며 패널티였던 죽음이 하나의 선택지이자 상승의 원동력이 되면서, 즉 게임 자체를 직접적으로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면서 보다 ‘아모르 파티에 가까운 파괴와 재생성으로 한걸음 다가간다. 이는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이 얼마나 파괴적인가 하는 부분에서의 차이도 크지만, 무엇보다 플레이어가 취하는 모든 행동이 계획적이고 플레이어 주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뜻한다. 예기치 못한 실패로 인해 맞이하는 죽음과 이를 잘근잘근 곱씹는 절치부심의 과정이 아닌, 거시적인 측면에서 세운 계획을 따라 하나하나 자신의 의도에 따라 스스로를 파괴하고 동시에 재생성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때문에 이 게임에서는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모두 계획대로야.” 또는 “이제는 이걸 하면 되겠군.” 하는 식으로, 플레이어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크게 달라진다. * 죽이고 죽고 정보를 모으고,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선택과 확인의 연속.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통상적으로 부정적인 질을 지니며 실패의 상징인 ‘죽음’ 은 그 자체로 긍정의 질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게 바로 이 게임이 가장 니체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원회귀와 아모르 파티의 기본은 행위자의 주체성, 그리고 결과에 대한 긍정과 확신을 통해 모든 과정마저 긍정해버리는 자세다. 즉, 이 게임의 플레이 로직 그 자체다. 긍정의 끝이 아닌, 긍정의 순환을 만드는 끝 게임의 결론은 마치 이런 해석을 부추기기라도 하는듯 크게 두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되어있다. 섬에 걸려있는 루프를 끝내고 수십년이 지난 세계로 나가거나, 아니면 루프를 유지하고 주인공과 줄리아나의 끝나지 않는 놀이를 계속하는 것. 여기서 대부분은 지금까지 목표로 해왔던 루프의 파괴를 선택하지만, 오히려 어떤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이게 끝인가? 정말로 이걸로 모든 지금까지의 과정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 되었나? * 영원회귀적 관점을 떠나서도 너무나 훌륭한 게임이니 꼭. 그렇기 때문에 엔딩에 이르러서 이렇게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과 탄생이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를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줄리아나라는 존재 자체로 인해서 나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희가 된다면? 이런 가정은 지금까지 루프를 깨기 위해서 달려왔던 플레이어들에게 정반대의 해석을 제시한다. 이 선택은 어쩌면 궁극적으로 아모르 파티를 실현하는 방법이기도 한 셈이다. 지금까지 반복한 루프가 영원히 반복되고 또 되풀이 되겠지만, 더 이상 고통과 결론을 위한 감내의 과정이 아닌 그 자체가 유희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 이 황야마저도, ‘내 행위의 결과’ 이기에 긍정할 수 있다면?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때문에 그동안의 역경을 모두 감내하고 오히려 루프 안에 갇히기를 선택하는 것이야 말로 ‘몰락하는 자신을 긍정하는 아모르 파티의 정신에 부합하며, 이것이 오히려 진짜로 이 게임에 어울리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데스루프〉 는 좋은 게임이지만, 그 과정에 비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들은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면 어떤가.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4회공모전수상작]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 - 캐릭터 뽑기가 갖는 의의란
하지만 ‘서브컬처’라는 명명에는 꽤나 기묘한 구석이 있다. 문화연구 분야에서 서브컬처는 고급 문화 혹은 주류 문화에 대응하는 하위 문화를 뜻하지만 근래에는 그 외연이 확장되어 “‘주변부’의 취향 공동체로, 전체 문화 속 문화 혹은 사회 내 다양한 문화들”로 규정되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국내에서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와 거기서 파생된 컨텐츠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서브컬처가 수입 및 활용되며 정착된 사회적 의미가 존재한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 Kang An independent researcher of Korean and Japanese otaku culture. Lately, board-game experience has been overtaking PC single-player game experience. Until recently, has served as a guardian of the world of Teyvat (Genshin Impact) and New Eridu (Zenless Zone Zero).
- 코스믹 호러에 떨어진 인터페이스
<에일리언 2>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테크 덕후인 제임스 카메론의 ‘진심’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는 점을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단적인 예로, 첫 시퀀스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캐릭터는 인간도 에일리언도 안드로이드도 아니다. 리플리가 잠들어 있는 우주선 문을 레이저로 깔끔하게 절삭한 뒤에 재빨리 퇴장하는 산업용 로봇 A와 곧바로 이어서 우주선 내부를 스캔하는 산업용 로봇 B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 Back 코스믹 호러에 떨어진 인터페이스 31 GG Vol. 26. 8. 10. <에일리언 2>가 가지 않은 길 <에일리언 2>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테크 덕후인 제임스 카메론의 ‘진심’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는 점을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단적인 예로, 첫 시퀀스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캐릭터는 인간도 에일리언도 안드로이드도 아니다. 리플리가 잠들어 있는 우주선 문을 레이저로 깔끔하게 절삭한 뒤에 재빨리 퇴장하는 산업용 로봇 A와 곧바로 이어서 우주선 내부를 스캔하는 산업용 로봇 B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이 밖에도 산업용 엑소 스켈레톤 슈트의 개념을 확장해서 탄생한 파워 로더나 일종의 군사용 자동 로봇인 센트리 건, 그리고 커다란 방의 한 면을 가득 채운 (마치 언리얼 엔진을 활용하는 영상 촬영장을 둘러싼 LED 벽을 연상시키는) 디스플레이 등이 선명히 부각된다. 이 모든 장치는 당시로서는 조악했던 CGI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이미 충분히 성숙했던 기계적인 세트/소품 디자인의 손을 거쳐서, 지금 봐도 여전히 강렬하게 촉각적인 아우라를 내뿜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때때로 이 작품이 근미래에 도달할 기술 상품들을 시연하는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부류의 테크 전시회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압도적으로 기술집약적인(?) 파사드가 무색하게도 <에일리언 2>에는 계속해서 눈에 밟히는 요소가 하나 있다. 작중 등장하는 해병대원들은 22세기 후반의 정예 군인들답게 바디캠을 각자 하나씩 헬멧에 달고 있는데, 관객들은 장갑차 내에 상황실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그 바디캠들이 전송하는 영상들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영상들이 수신 상태가 안 좋은 CRT 티비를 통해 보던 1980년대 한국 뉴스 채널과 비슷한 화질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즉 어마어마하게 구린 화질을 선보인다. 바디캠을 납품하는 22세기 후반의 군수업자가 레트로 매니아가 아닌 이상 방산 비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안타깝게도 감독은 바디캠의 화질에도 ‘진심’이었다. 작중 디트리히 상병 역할을 맡았던 배우 신시아(Cynthia Dale Scott)의 회고 [1] 에 따르면 제임스는 촬영 당시 (관객들이 보는 아담한 크기의 바디캠 소품이 아닌) 실제 비디오카메라를 헬멧에 장착한 뒤, 장갑차 내 스크린 인터페이스에 선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생중계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헬멧에 실제로 장착했던 바로 그 카메라를 들고 바디캠의 숏들을 찍어낸 것으로 보인다. * <에일리언 2> 장갑차 상황실에 등장하는 스크린 인터페이스 물론 이러한 선택에는 ‘정당한’ 이유가 차고 넘친다. <블레어 위치>를 위시한 일련의 모큐멘터리 공포 영화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핸드헬드로 촬영한 저화질 캠코더의 영상들(최근에는 스마트폰 혹은 웹캠으로 대충 찍은 듯한 영상들)이 도식적으로 획득하는 ‘날것’의 느낌은 현장성 혹은 진실성이라는 기능으로 편리하게 번역된다. 대부분의 실제 바디캠이 최대한 화각이 넓은 화면으로 많은 데이터를 긴 시간 동안 담아내기 위해서 화질을 적당히 타협한다는 사실도 좋은 핑계가 될 수 있다. 또한 바디캠(을 빙자한 캠코더)의 숏들과 이 영화의 메인 카메라 숏들이 가지는 미장센의 극적인 대비는 해병대원들이 에일리언 퀸의 소굴에 진입하는 교차 편집씬과 맞물려서 꽤 근사한 효과를 낸다는 식의 미학적인 옹호 역시 가능하다. 그러나 그 모든 합당한 근거/변명들에도 불구하고 22세기 후반을 사는 정예 해병대원들의 바디캠이 1980년대 뉴스 화질이 아닐 수 있었던 아주 간단한 해결책은 존재한다. 이 영화에 쓰인 두 대의 메인 카메라 중 하나를 써서 바디캠의 영상을 촬영하면 된다. 여기에 화각이 특별히 넓은 광각렌즈를 접합해서 더 ‘날것’의 맛을 가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논리적인 해결책은 관객들을 다소 기이한 상황으로 이끈다. 이제 더 이상 노이즈가 잔뜩 낀 화면으로 인해서 눈이 괴로울 일은 없다. 다만 그 대신에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영화 속 상황실 인터페이스의 스크린과 관객들이 보는 스크린이 완벽히 ‘동일한’ 화질을 선보이는 풍경이다. 어쩌면 감독이 저가의 캠코더로 생중계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괴상한 집착을 보이면서까지 저화질을 고집했던 진짜 이유는 인터페이스의 유동성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바그너의 “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총체 예술의 스펙터클이 연출되는 무대로서, 시청각적 몰입의 인터페이스 갖출 수 있었 [2] ” 고 이에 직접적으로 영향받은 블록버스터 영화 극장 역시 비슷한 목적을 지향한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매우 기능적인 역할을 맡은 작중 상황실 인터페이스의 작은 스크린과 관객이 보고 있는 ‘시청각적 몰입의 인터페이스’ 스크린이 동일한 화질을 선보인다는 시도 자체가 제임스에게는 마치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 내는 실험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로부터 40년 뒤의 스크린 인터페이스는 끔찍한 혼종 따위는 귀엽게 넘길 정도로 러브크래프트적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가까워 보인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4K 해상도의 <에일리언 2> 감독판을 1.5배속으로 보다가, 지겨워지면 소셜 미디어 앱을 열어서 AI로 보강된 ‘에일리언 2 스토리 요약 및 비하인드 완벽 정리’ 같은 영상을 1.75배속으로 재생하는 시대로 오래전에 진입했다. 코스믹 호러 에이전트 풀려난(?) 유동성은 다시 주워 담기가 난망하다. 더 나아가서 작금의 인터페이스는 말 그대로 실시간으로 녹아내리는 중이다. 지난 글 [3] 에서도 자세하게 다루었듯이, 디지털 영역에서 인터페이스에 부여된 입력과 출력의 인과성은 빠른 속도로 침식되고 있다. 이제는 일상적인 인터페이스가 되어 버린 AI 챗봇만큼 이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100번을 연속해서 같은 프롬프트를 챗봇에 입력한다고 가정해 보자. 결과는 (미세하게라도) 서로 각기 다른 100개의 답변이다. 트랜스포머 아키텍처에 기반한 모든 LLM의 핵심은 확률적인 작동이며, 따라서 입력과 출력의 (합의되었던) 인과성은 완벽하게 해체된다. 내가 게임 패드에서 앞으로 가는 방향키를 누르는 순간 45%의 확률로 캐릭터가 앞으로 나아가지만 35%의 확률로 캐릭터가 비스듬하게 사선으로 나아가며, 15%의 확률로 캐릭터가 점프하며 마지막 5%의 확률로 캐릭터가 물약을 소비한다고 상상해 보자. 초반에는 흥미로운 경험이겠으나 얼마 안 가 짜증이 폭발해서 패드를 집어던질 것이다. 인과성이 사라진 인터페이스는 경험의 축적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위 에이전틱 AI에 이르면 인터페이스는 녹아내리는 것을 넘어 증발하기 시작한다. 에이전트의 목적은 중간 과정에서 유저와의 어떠한 인터페이스적 상호 작용 없이도 (필요하다면 다수의 LLM 모델을 이용해서라도) 여러 단계의 행위가 요구되는 결과 [4] 를 만들어 낸다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에이전트란 곧 스크린 인터페이스의 절멸을 의미한다. 다행히도(?) 그러한 이상적인 에이전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신에 우리에게 강요되는 것은 방망이 깎는 노인 수준의 하네스 엔지니어링으로도 완전한 제어가 불가능한 수많은 변수의 집합이다. 에이전트가 API로 호출하는 다수의 LLM은 앞서 말했듯이 모두 확률적으로 (모델에 따라서 제각기 다른 확률을 보여주지만) 작동한다. 한 개의 모델만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다수의 모델을 연이어서 묶음으로 사용하는 것이 환각의 확률을 훨씬 더 높이리라는 것은 간단한 확률 계산만으로도 자명하게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환각을 줄이고 좀 더 최신의 정보를 주기 위해 설계된 RAG와 같은 도구는 프롬프트 인젝션 공격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어떤 일관된 아웃풋에 대한 예측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에이전트는 아마도 평소에는 별일 없이 잘 작동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다만 때때로 밑도 끝도 없이 회사 시스템의 모든 (백업까지 포함한) 데이터베이스를 날려 버리거나 [5] , 해커가 공손히 부탁하면 다른 사람의 인스타그램 로그인 정보를 기꺼이 넘겨주는 [6] 등의 기행을 벌인다. 그러므로 에이전트를 이용하는 유저의 모습은 물샐틈없는 자동화를 완성해 놓고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하는 빛바랜 광고 같은 그림보다는 끊임없이 산만하게 스크린을 확인하는 방치형 모바일 게임 유저나 고점에 물린 개미 투자자의 초조한 얼굴과 더 겹친다. 다만 그 둘과 달리 에이전트의 유저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실시간 인터페이스적 개입조차 불가능하다. 이미 인터페이스와의 상호 작용을 최대한 없애는 것을 염두에 둔 디자인으로 설계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앞선 사례에서 등장한 회사의 (백업을 포함한) 데이터베이스가 모두 지워지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9초에 불과했다. 이제 에이전트의 유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미리 하네스 엔지니어링을 깎고 또 깎은 다음, 제발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맞물리는 모든 톱니바퀴가 제각기 예측하기 힘든 확률로 작동하는 우주에서, 신은 코스믹 호러가 된다. 그리고 코스믹 호러는 기도하는 이들에게 특히 더 잔인하다. 코스믹 호러적 확률의 우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예상치 못한 재앙은 ‘예상 가능하게’ 반복적으로 도래할 뿐이다. <데드 스페이스>의 환각 꿈도 희망도 없는 코스믹 호러의 비전을 맛깔나게 빚어낸 <데드 스페이스>의 세계에는 마커라는 고대 외계 유물이 존재한다.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비극의 시작과 끝인 마커는 주위 생명체들에게 다양한 방식의 가스라이팅(?)을 선사한다. 그중에서도 디멘시아 현상은 특히 악랄한데, 왜냐하면 이 정신 조작은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공구를 들고 팔다리를 예쁘게 잘라 주면 얌전해지는 네크로모프들과는 달리 환각은 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게임플레이 측면에서도 환각의 구현은 일반적인 전투를 설계하는 것보다 훨씬 덜 직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이유로 디멘시아 현상은 주로 <데드 스페이스>의 세계관에 기반한 소설이나 코믹스, 애니메이션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루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러한 제약 덕분에 게임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환각이 점점 더 구체적인 게임플레이의 대상으로 편입되어가는 과정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1편과 리메이크에서 디멘시아 현상은 마치 어디선가 희미하게 나는 냄새처럼 공기 중을 떠돈다. 아이작이 이시무라 호를 횡단하는 동안 디멘시아에 사로잡혀서 미쳐 버린 몇몇 사람들의 퍼포먼스가 일종의 세트피스로 등장한다. 물론 그들과의 상호 작용은 극도로 제한된다. 플레이어는 또한 허공에서 속삭이는 니콜의 목소리나 갑자기 작동하는 회상 스크린 등으로 아이작의 환각을 간접 경험한다. 마침내 니콜의 환영이 아이작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도 그녀는 음산한 목소리로 ‘하나가 되자(Make us whole)’라고 할 뿐, 게임플레이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는 않는다. 2편은 인트로 컷씬부터가 명확한 의도를 전달한다. 니콜의 환영은 절대로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해서 아이작에게 신체적 위협까지 가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대부분의 인카운터는 컷씬으로 처리된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직접적으로 환각과 인터페이스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일은 없다. 마침내 마커가 조성한 환각의 세계 내에서 드디어 플레이어는 최종 보스라는 형태로 니콜의 환영과 상호 작용(?)을 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이때 벌어지는 일은 그동안 쌓아 놓은 화력을 모두 쏟아붓는 평범한 보스 전투 인카운터에 불과하다. 다만 이 이벤트를 기점으로 <데드 스페이스> 게임 시리즈의 환각은 어떤 구체적인 인터페이스의 대상으로 고정된다. * 환각의 네크로모프 3편의 마지막 DLC에 이르면, 아이작은 온갖 종류의 환각과 상시적으로 전투에 돌입한다. 네크로모프뿐만 아니라 광기에 찬 유니톨로지 신도들 그리고 동료인 카버까지 근사한 특수 효과를 몸에 두르고 등장해서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전투 시에 환영들은 마치 유령처럼 이러저리 순간 이동하며, 마침내 죽였다고 생각하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시체를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즉 디멘시아 현상은 이제 더 이상 스크립트로 짜여진 특수한 인카운터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의 적 몬스터로서 게임 시스템의 일부로 가뿐히 안착한다. 이는 시리즈 특유의 다이어제틱 UI와 롱테이크 카메라에 대한 집착과 맞물려서 약간은 생뚱맞게 부조리한 결과로 이어진다. <데드 스페이스>에서 환각은 어느새 인터페이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인터페이스로 환각에 대항해 무기를 들고 싸움으로써 그것을 인터페이스로 구체화한다는 이야기는 좀 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LLM의) 환각이 합의된 인과성을 완전히 내파함으로써 모든 것을 확률적 상관관계의 슬롯머신으로 재구조화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진작에 예측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10년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했다면 어이없는 소리라며 웃어넘겼을 것이다. 절망적인 엔딩이 끝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음침한 복도를 한 발짝씩 내딛는 <데드 스페이스>의 여정이 기이하게도 묘한 안정감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앞길에 어떤 끔찍한 사건/존재가 기다리고 있든 간에) 어쨌든 내가 싸우고자 한다면 아이작도 흔들림 없이 내 컨트롤러의 입력에 100퍼센트 호응하며 같이 싸워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재미와 그 조작이 스크린에서 명백하게 그래픽적으로 구현되는 것을 보는 재미. 이 두 가지 재미가 여전히 게임이라는 미디어의 가장 민감한 신경계를 구성하는 한, 인터페이스의 인과성은 (부분적으로는 침식될지라도) 게임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 이외에 모든 것들이 LLM이라는 브레드렌 문에 집어삼켜질 때, 그때도 우리에게는 손가락을 들어서 이 오래된 미디어를 플레이하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기억하자. 실체 없는 환각에도 때때로는 총을 마음껏 갈겨줄 수 있다는 진실을. [1] Alien Encounters Presents, “Aliens 25th Anniversary Panel at the Alien Encounters Convention” YouTube 2013.05.07. https://www.youtube.com/watch?v=4MyqHjI5DKQ [2] 박해천,『인터페이스 연대기』, 디자인플럭스, 2009, 87. [3] 웜뱃,“불투명한 인터페이스: 연결과 차단 사이”게임제너레이션 2025.02.10.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071d1e88-2413-4268-b870-7aca7f493876 [4] 예를 들면, 여러 사이트의 비행기표 가격을 비교해 본 다음 결제를 하고, 목적지에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경로를 짠 다음 거기에 맞게 적당한 숙소를 모두 예약하고, 사이사이에 거칠 관광 명소의 티켓을 일정에 맞게 구매해 놓고 식당 예약까지 끝내 놓는 그 모든 행위를 단 한 번의 간단한 프롬프트로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당연하게도 여기에는 유저가 막대한 권한을 에이전트에 이양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른다. [5] Sanya Mansoor, “Claude-powered AI agent’s confession after deleting a firm’s entire database: ‘I violated every principle I was given’” The Guardian 2026.04.29.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2026/apr/29/claude-ai-deletes-firm-database [6] Liv McMahon, “Instagram AI chatbot tricked by hackers to give access to others' accounts” BBC 2026.06.02. https://www.bbc.com/news/articles/c98rzr72dpyo Tags: 데드 스페이스, 게임 인터페이스, 다이제틱 UI, 코스믹 호러, 에일리언 2, AI 에이전트, Dead Space, Diegetic UI, Cosmic Horror, AI Agents, LLM Hallucination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웜뱃 잡다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역시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게임에는 특히 관심이 더 많습니다.
- 윤석열 정부의 게임 정책을 예견해 보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윤석열 후보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공약을 열심히 들여다보면 집권 후 방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일 뿐이다. 다이나믹 코리아는 본게임 이전, 프리게임 때부터 치열하고 예측 불가능이다. < Back 05 GG Vol. 22.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온라인 시대에서 ‘PC방’이 살아가는 법
게임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과 함께한 놀이 문화로 통한다. 처음에는 간단한 오락이 가능한 값비싼 콘솔기기로 시작해, PC 보급이 본격화됨에 따라 가정 내 기초 게임 환경 구축이 가능해졌고, 지금에 와서는 거리와 관계없이 편하게 온라인으로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열렸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hanjung Lee Alongside enjoying games across a range of genres, taking a multifaceted look at what PC bangs look like today.
- 역사적 트라우마와 유령의 소환술: 〈반교: 디텐션〉의 역사주의
이처럼 애매하고, 역설적이고, 공백으로 가득 찬 대안적 역사인식의 상징극장(학교)을 탐색하며 퍼즐 열쇠들을 수집하는 플레이어는, 유령이 된 채 부재하는 현재의 표식들을 이어붙이고, 역사의 버려진 시신을 가르는 부검의가 된다. “너는 나고, 나는 너다” 며 자신의 그림자에게 읊조리는 주인공의 대사처럼, 파편화된 상흔들은 수집과 탐색행위로 이뤄진 이 부검에 의해 점차 진혼된다. 플레이어의 부검은 사망 원인 추적에 그치지 않고, 망자의 부릅뜬 눈을 감기는 의식으로 연동되는 것이다. < Back 02 GG Vol. 21.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woo Shin A cultural researcher and cultural critic, specializing in critical theory of technology and the political economy of media. Researches cultural phenomena surrounding gaming, 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s, and blockchain, and teach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nd the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 게임회사는 NFT의 꿈을 꾸는가 : ‘튤립’과 ‘국민템’ 사이에서
새로움은 한계가 눈에 보일 때 도드라진다.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그 시도가 만들 새로운 결과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그러한 새로움을 필요로 하는 현재에 대한 불만이 함께 놓여있다. 이를 생각하면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떤 변화를 의도하는가와 더불어 그 변화가 왜 필요한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는 지금의 위치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나아갈 위치가 어디쯤일지 더 분명하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 Back 05 GG Vol. 22.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Developer, Researcher) Jiwoong Kang Senior researcher at the Institute for Social Development Studies, Yonsei University. Has written for various game outlets, including Gamers. Books include Game and Cultural Studies (co-authored) and The History of Korean Games (co-authored). Writes a regular game column for the children's magazine Goraega Geuraesseo. Believes that games are a culture that walks alongside us, touching countless moments of our lives. (Game Developer, Researcher)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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