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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77개 검색됨

  • QUOVADIS, 게임법 - 국회 안에서 바라본 게임법 진행의 경과와 미래

    물론 전부개정안의 모든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발의하고 보니 보완해야할 부분들도 여럿 보였다. 특히 국내대리인지정제도는 더욱 강화해서 발의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개정안에 빠져 있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심사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또한 다른 게임법 일부개정안과도 병합심사되어 더 좋은 내용으로 고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컴플리트 가챠 규제 법안이나 이용자 권익보호위원회 규정 법안과 함께 병합심사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내딛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국민의 꾸준한 관심은 국회를 일하게 한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Kyung Lee My proudest achievement is having proposed and passed more game-related bills than anyone in the history of the National Assembly. But an even greater source of pride is landing the server-first kill on Lich King hard mode in WoW, and having played the shaman in RoMg, the famous Chaos clan...

  • 영상기술, 매체, 도구, 방법론으로서의 머시니마에 대한 소고

    도입부에 적어둔 것처럼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즈니의 스턴트 시뮬레이터 게임 [스턴트 아일랜드 Stunt Island](1992)에서 인게임 기능으로 처음 도입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해당 게임은 가상의 섬에서 다양한 스턴트 시퀀스를 제작하고, 그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주된 플레이였다. < Back 영상기술, 매체, 도구, 방법론으로서의 머시니마에 대한 소고 26 GG Vol. 25. 10. 10. 머시니마(machinima)는 머신(machine)과 영화(cinema)의 합성어로, 비디오게임을 통해 제작된 영화를 부르는 용어다.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 기술이 일반화되며 출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영화 분야에서 CGI를 활용한 VFX 기술이 도입되며 이미 맹아를 싹틔우고 있었다. <트론 Tron >(1982)을 통해 본격적으로 CGI가 도입된 이래, 3D 애니메이션과 VFX의 기술적 발전사는 게임엔진의 발전사와 궤를 함께한다. 게임엔진은 실시간 랜더링이 가능하다는 지점에서 영화제작에 있어 프리비주얼 단계에 사용되거나, 버추얼 프로덕션으로서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언리얼이나 유니티 등의 게임엔진이 활용된다 [1] . 이를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2016) 제작과정을 담은 블루레이 부가영상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마치 영화 속 ‘오아시스’에 접속하듯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기기를 쓴 스필버그는 버추얼 프로덕션으로 제작된 영화 세트장을 살펴보며, 마치 VR 게임을 하듯 카메라 동선을 짜고 세트장의 디테일을 변경한다[ 링크 ]. 라이브 스크린을 활용한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이나 디즈니+ 드라마 <만달로리안 Mandalorian >(2019~) 또한 게임엔진을 적극 활용해왔다. 비슷한 방식으로, 미술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 작업들 또한 게임엔진을 적극 활용한다. 국내에선 여러 전시와 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된 미디어 아티스트 루양의 <물질 세계의 위대한 모험>(2020)과 <도쿠_환상을 뒤엎는 이분법적 충돌>(2023)은 자신을 직접 3D 스캐닝한 젠더리스 아바타 ‘도쿠’를 사용한 여러 작품을 내놓았다.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 안가영은 (2021)을 통해 예술가들이 아바타를 사용해 도피한 세계를 그려낸다. 이들 작품은 게임엔진인 유니티로 제작되었다. 이처럼 영화, 그리고 무빙이미지 기반의 미디어아트 작업에서 게임엔진이 도입된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국내외 영화/애니메이션 전공에서 게임엔진을 활용한 실기 강의도 개설되어 있다. 머시니마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글에서 게임엔진을 사용한 작업을 왜이리 길게 이야기하는가? 이는 게임과 영화 모두 움직이는 이미지에 기반해 있다는 점에서 비교되는 매체이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CGI의 기술적 발전사를 공유하고 서로의 프로덕션에 서로가 활용된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허나 이보다 중요하게, 머시니마로 지칭되는 작품의 유형이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문제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루양이나 안가영의 작업은 특정한 게임을 통해서 제작된 작품이 아니다. 게임적인 특징들, 이를테면 아바타나 메타버스와 같은 용어들로 지칭되는 디지털 가상세계의 묘사를 위해 게임의 이미지가 채택된 것에 가깝다. 이는 게임엔진으로 가상의 게임을 제작한 뒤 그 플레이영상을 토대로 제작된 송민정의 <악사라 마야 AKSARA MAYA>(2019), 김경묵의 <폐쇄회로>(2020) 등을 정말로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때문에 본 글에서는 머시니마를 이미 출시된 게임을 통해 제작된 영화들로 한정하고자 한다. 머시니마의 짧은 역사 머시니마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도입부에 적어둔 것처럼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즈니의 스턴트 시뮬레이터 게임 [스턴트 아일랜드 Stunt Island ](1992)에서 인게임 기능으로 처음 도입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해당 게임은 가상의 섬에서 다양한 스턴트 시퀀스를 제작하고, 그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주된 플레이였다. 게임 안에서 영화의 한 시퀀스를 직접 만들어 보는, 전-머시니마(pre-machinima) 형태를 의도치 않게 취했던 게임이랄까. 이러한 녹화 기술은 이후 [둠 Doom ](1993)이나 [퀘이크 Quake ](1996) 등의 FPS 게임에서 리플레이를 기록하는 데모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주로 공략 영상이나 스피드런을 남기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되던 녹화 기술이 머시니마로 만들어진 최초의 사례 중 하나는 <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 >(1996)이다. 이 작품은 [퀘이크]의 클랜 레인저스(Rangers)가 제작한 것으로 100초 분량의 멀티플레이를 자유 시점의 카메라로 담아낸다. 제목의 ‘캠퍼’는 FPS 게임에서 맵 구석에 엎드려 누군가 오길 기다리는 플레이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 작품 또한 그러한 게임플레이를 내용으로 삼는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양한 ‘퀘이크 영화’가 등장하며 인기를 끌게 된다. 같은 해인 1996년, 또 다른 최초의 머시니마 중 하나라 불리는 < 기적 Miracle >(1996)이 갤러리를 통해 공개된다. 전투기 시뮬레이터 [F/A-18 Hornet](1996)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전투기가 물 위를 활주로처럼 달리는 모습을 담은 100초 가량의 영상이다. 이 작품의 경우 미술작가 밀토스 마네타스(Miltos manetas)의 작품으로, ‘퀘이크 영화’와 달리 작가의 개인전을 통해 갤러리에서 공개되었다. 다시 말해, 머시니마는 그 출발점부터 게이머와 미술가라는 두 주체에 의해 온라인과 갤러리라는 두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던 예술형식이라 할 수 있다. [스턴트 아일랜드] 플레이 화면 레인저스 <캠퍼의 일기> 스틸컷 이 시기에 머시니마라는 용어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머시니마라는 용어는 ‘퀘이크 영화’에 매료된 휴 행콕(Hugh Hancock)이 영화제작자인 고든 맥도널드(Gordon McDonald)와 함게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트레인지 컴퍼니(Strange Company)를 설립한 이후 만들어낸 용어이다. 1999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행콕과 스트레인지 컴퍼니는 몇 편의 머시니마를 제작했고, 2000년 머시니마 제작자를 위한 온라인 허브 웹사이트 ‘머시니마 닷컴’ [2] 을 오픈한다. 2002년에는 머시니마 예술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achinima Arts & Sciences)를 설립하기도 하고, 이 단체를 통해 최초의 머시니마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휴 행콕은 [퀘이크]로 제작한 < Eschaton - Darkening Twilight >(1997)나, 게임사 모놀리스 프로덕션(Monolith Productions)에서 개발한 게임엔진 ‘리스테크’를 활용한 독립적인 머시니마 제작을 위한 프로젝트 리스테크 필름 프로듀서(Lithtech Film Producer)를 통해 제작한 < 오지만디아스 Ozymandias >(1999) [3] 등을 제작하기도 한다. 2006년에는 최초의 장편 머시니마 < 블러드스펠 Bloodspell > 또한 공개한다. 다른 한편으로 P2P 플랫폼과 유튜브의 등장을 통해 머시니마는 일종의 팬 무비의 지위를 갖기 된다. 루스터 티스(Rooster Teeth)가 [헤일로 Halo ](2001)을 통해 제작한 < Red vs. Blue >(2003) [4] 는 ‘편가르기’가 중심인 게임 내 전쟁 상황에서 병사들이 “우리는 왜 싸우지?”라는 의문을 갖는다는 내용의 블랙코미디로, P2P 서비스를 통해 배급/배포된 이후 2006년부터는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다. 이후 18개 시즌에 한편의 장편으로 구성된 장기 시리즈로 연재된다. 코리 아켄젤 <슈퍼마리오 무비> 스틸컷 필 솔로몬 <엠파이어> 스틸컷 다만 이렇게 대중적인 주목을 받아 온, 혹은 팬 무비로서 인기를 얻은 머시니마는 최근 힘을 잃고 있다. 머시니마 닷컴은 워너에 인수된 이후, 2019년 1월 워너에 의해 폐쇄된다. 그곳에서 운영하던 머시니마 유튜브 채널 ‘Machinima Inc.’ 또한 폐쇄된다. 2024년에는 루스터 티스가 폐업 소식을 알려 왔다. 물론 [하프라이프 2 Half-Life 2 ](2004), [카운터스트라이크: 소스 Counter-Strike: Source ](2004), [블랙 메사 Black Mesa ](2012) 등의 에셋을 활용한 머시니마 스키비디 토일렛(Skibidi Toilet)과 같은 시리즈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하다. 다만 2014년 트위치의 등장 이후 게임 스트리밍 시장이 활성화된 이후 다양한 방식의 게임플레이 영상이 유튜브 등지에 업로드되는 상황에서 ‘팬 무비’로서의 머시니마는 힘을 잃는다. 이를테면 팬 무비로서의 ‘퀘이크 영화’는 있지만 ‘GTA 영화’나 ‘마인크래프트 영화’는 (물론 존재는 하지만) 팬 무비보다는 실험영화나 미술의 영역에서 소화되는 상황이다. 영국의 작가 듀오 래리 아키암퐁(Larry Achiampong)과 데이빗 블랜디(David Blandy)가 함께 제작한 <파농을 찾아서 Finding Fanon > 시리즈(2015~2016)와 그것의 외전인 시리즈(2016)는 [GTA V](2013)의 촬영용 모드를 활용하여 제작되었는데, [GTA V]가 풍자하는 백인중심적이며 폭력적인 세계관 속에서 탈식민주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의 유실된 희곡을 선보인다는 컨셉의 작품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Super Mario Bros. ](1983)의 카트리지를 임의로 조작해 글리치를 일으키고 그것을 통해 제작한 코리 아켄젤(Cory Arcangel)의 <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 Super Mario Cloud >(2002)나 <슈퍼 마리오 무비 Super Mario Movie >(2005) 또한 갤러리를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특히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의 경우 마치 회화와 같은 방식으로 전시되었다. 그 밖에도 [GTA V](2013), [마블 스파이더맨 Marvel’s Spider-man](2018), [어쎄신 크리드 오리진 Assassin’s Creed Origins ](2017) 등 다양한 게임에서 글리치로 인해 한없이 추락하는 캐릭터들을 담은 <페더폴 Featherfall>(2019)나 필름 작업을 이어오던 실험영화 감독 필 솔로몬(Phil Sonomon)이 [GTA IV](2008)로 앤디 워홀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엠파이어 Empire>(2008)와 같은 작품들은 미디어아트와 실험영화의 교차점에서 머시니마를 실험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비디오에세이, 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 도입부에서 완성된 게임이 아니라 게임엔진을 활용한 작업들을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라는 하나의 의문을 제시했다. 또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자면, 게임플레이의 녹화 장면을 기록하여 만든 모든 영상물을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다. 2021년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된 기획전 ‘GAME x CINEMA’ [5] 는 네 개의 섹션으로 여러 ‘게임 영화’를 구분했다. <트론>이나 <레디 플레이 원> 등 ‘게임 소재’의 영화들, <슈퍼 마리오>(1993)나 <반교: 디텐션>(2019) 등의 ‘게임 원작’ 영화들, 게임과 플레이어, 제작자와의 관계를 다룬 여러 편의 ‘게임 다큐멘터리’들, 그리고 마지막이 머시니마다. 극장 대신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된 이 기획전에서 머시니마로서 소개된 작품들의 구성은 꽤나 다양하다. 앞서 언급한 나 <오지만디아스>, <캠퍼의 일기>, <페더폴> 등 P2P, 유튜브, 머시니마 닷컴, 혹은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소개된 여러 작품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튜브를 통해 주로 소개된 여러 비디오 에세이들이 있다. 1세대 유튜버라 할 수 있는 AVGN의 [ 캐슬바니아 2: 사이먼의 원정 Castlevania II: Simon's Quest ](1987) 리뷰부터, 비디오게임 스피드런에 관한 유튜버 서머닝 솔트(Summoning Salt)의 비디오에세이, <4-2: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장 악명 높은 레벨의 역사 4-2: The History of Super Mario Bros.' Most Infamous Level >(2018), 역시 비디오게임에서 카메라 시점의 문제를 다룬 유튜버 닉 로빈슨(Nick Robinson)의 비디오에세이 <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This Is What a 'Second Person' Video Game Looks Like >(2019) 등이 머시니마로서 소개되었다. 이들은 머시니마인가? 혹은 아닌가? 닉 로빈슨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다큐멘터리 영화제들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만났다 We Met in Virtual Reality >(2022), <니트 아일랜드 Knit’s Island >(2023),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 Grand Theft Hamlet >(2024) 등은 각각 [VR Chat](2014), [데이즈 DayZ ](2013), [GTA V] 등을 통해 제작된 다큐멘터리이며, 이들 작품은 일종의 메타버스로서 기능하는 멀티플레이 게임 안에서의 생활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갖는다. 특히 이들 작품은 별도의 모드를 사용하는 대신 게임 내 캐릭터의 시점을 그대로 녹화해 사용하는데, 때문에 영화의 감독은 촬영감독이자 게임 플레이어로 활동하게 된다. 일종의 자기민속지(Auto-Ethnography)적 성격을 갖는 문화인류학적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랄까. 이와 같은 자기민속지적 맥락은 영화의 적지 않은 부분을 넥슨의 MMORPG [일랜시아](1999)의 게임플레이 녹화화면이 차지하는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rld of Warcraft ](2004) 속 녹화되지 못한 순간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재연(reenactment)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2024) 등과도 연결된다. 다만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게임플레이 녹화화면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머시니마적 성격을 갖는, 게임을 ‘통해서’ 제작된 성격을 갖는다면,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머시니마보단 부분적으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갖는다. 머시니마는 결국 영화제작의 도구이자 배경으로서 게임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온라인 기획전 ‘이것은 가상이 아니다’를 통해 소개된 머시니마 다큐멘터리와 비디오 에세이들은 게임이 메타버스로서, 재연의 방식으로서 갖는 민속지적 성격과 미학적 실험을 드러낸다. 앞서도 언급한 필 솔로몬의 <엠파이어>나 토탈 리퓨절(Total Refusal)의 <근무 중 이상 무 Hardly Working >(2022)와 같은 작품은 플레이어의 개입 없이도 게임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그려낸다. 전자가 알고리즘에 따라 변화하는 게임 내 날씨, 빛, 소음, NPC 움직임의 기록이라면, 후자는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는 [레드 데드 리뎀션 2 Red Dead Redemption II ](2018) 속 NPC들을 쫓는다. 마리 풀스턴(Marie Foulston)의 <더 그래니즈 The Grannies >(2021)처럼 게임 내 글리치를 찾아다니는 게임개발자 클랜을 담아내는 사례도 있다. 혹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세컨드 라이프 Second Life ](2003)나 [마인크래프트 Minecraft ](2009)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담은 <메이드 인 세컨드 라이프 Made in Second Life: The Movie >(2023)과 <유토피아를 찾아서 Tracing Utopia >(2021)가 있다. 혹은 없어진 이민자 마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해당 마을의 풍경을 [마인크래프트]로 재현한 프로젝트 <쏘텔 재팬 타운의 기억 Redefining Community: The Evolution of Sawtelle Japantown >(2018)처럼 다큐멘터리에서 재연의 영역을 머시니마로 구현한 작품 또한 존재한다. 이들 작품은 각자의 방식대로 게임을 다큐멘터리적 대상으로, 혹은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하고, 머시니마는 그곳에 개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해당 기획전의 프로그래머 강진석은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들을 “가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 세계의 일부이며 기록할 만한 것으로 재설정하는 작업” [6] 으로 정의한다. 즉, 이들 작품은 게임을 다큐멘터리가 다룸직한 세계로, 우리가 생활하고 살아가는 세계의 일부이자 확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발언하는 머시니마이다. 토탈 리퓨절 <근무 중 이상 무> 스틸컷 조셉 드라페 <이라크에서의 죽음> 스틸컷 그렇다면 비디오 에세이로서의 머시니마는 어떠한가? 시네마테크KOFA의 기획전에서 상영된 유튜버들의 비디오 에세이와, 미술관이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된 비디오 에세이/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들은 서로 다른 차이를 갖는가? 물론 유튜브의 비디오 에세이들 또한 게임과 세계, 그리고 (머시니마)영화 관한 충분한 비평적 함의를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라크에서의 죽음 dead-in-Iraq >(2007)이나 <나만의 풍경: 미군이 되는 법 My Own Landscapes >(2020)처럼 게임의 군사적 활용이나 <몬도 카네 Mondo Cane >(2018)처럼 디지털 윤리에 관한 문제를 던지는 머시니마 작업, 다시 말해 하룬 파로키(Harun Faroki)의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 >(2009~2010)이나 <평행 I-IV Parallel I-IV >(2012~2014)에서 던진 문제의식과 공명하는 작업은 하나의 경향성을 이룬다. 혹은 <구성된 순간 The Constructed Moment >(2017)이나 <말로우 드라이브 Marlowe Drive >(2017), <지옥으로의 하강 Descent into Hell >(2021)처럼 게임플레이 경험을 사적 감정의 에세이로 풀어내는 일련의 경향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영화적 비디오 에세이로 여겨지는 일련의 머시니마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는 머시니마 사이의 차이라면 그것이 영화제나 미술관 등 제도적 승인을 받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AVGN처럼 밈이나 격한 말투로 남기는 리뷰가 되었건, 게임의 디자인이나 스피드런 같은 특정한 방식의 게임플레이에 관한 탐구이건, 마치 영화의 숏과 몽타주를 분석하고 사조를 탐구하는 일련의 영상 비평들과 같은 비평적 행위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7] 혹은 비디오 에세이가 비평적 성격이 강한 영화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면, 게임에 관한 비디오 에세이 또한 머시니마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경계는 매우 흐릿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게임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분석하고 리뷰할 수 있는 대상이자,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작품들이 존재하며, 하나의 예술이자 문화의 형식이며, 접근이 용이한 예술적 도구로 자리잡았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샘 크레인, 피니 그릴스 <그랜트 테프트 오토의 햄릿> 스틸컷 머시니마의 한계와 미래? 재차 도입부의 문장으로 되돌아가서, 머시니마는 게임(machine)과 영화(cinema)의 합성어다. 다만 살펴본 것처럼 머시니마는 태생부터 영화관(cinema)이 아니라 온라인이나 갤러리/미술관에서 출발했다. 게임의 이미지를 영화관의 스크린 환경에서 실험하고자 한 필 솔로몬의 실험영화와 같은 사례들이 있지만, 최초의 장편 머시니마인 <블러드스펠>은 극장이 아닌 온라인 혹은 DVD를 통한 배급만을 진행했을 뿐이다. <니트 아일랜드>나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과 같은 최근의 장편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들 또한 몇몇 영화제에서만 극장상영 되었을 뿐, 일반 배급은 VOD나 무비(MUBI) 같은 OTT 플랫폼을 통해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머시니마는 영화(cinema)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순한 영화(movie)이거나 미술관을 위한 무빙-이미지이거나 그저 또 하나의 콘텐츠인가? 물론 영화의 지위과 예전과 같지 않지만, 우리는 머시니마가 정말로 영화의 지위를 가져본 적은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머시니마 제작을 위해 동원되는 게임의 가짓수가 생각보다 협소하다는 지점 또한 하나의 한계다. 초창기 머시니마가 [둠], [퀘이크], [헤일로] 등 녹화 기능과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FPS 게임을 주된 플랫폼 삼았다면, 현재에 이르는 시점 동안에는 주로 [세컨드 라이프], [심즈 The Sims ] 시리즈(2000~2014), [마인크래프트]처럼 자유롭게 상황과 배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샌드박스형 게임, 혹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GTA V], [레드 데드 리뎀션]처럼 광활한 공간과 다양한 NPC, 멀티플레이 기능과 여러 모드를 동원할 수 있는 게임들이 주로 사용되곤 한다. 이는 멀티플레이나 오픈월드 게임의 특징, 다양한 인물과 상황이 창출되거나 설정될 수 있으며 그것을 다양한 카메라 시점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이들 작품이 채택되는 것일테다. 그렇다면 다른 머시니마를 떠올려 볼 수는 없을까? 이를테면 [프로젝트 좀보이드 Project Zomboid ](2013)로 제작해 쿼터뷰만으로 구성된 머시니마 픽션이라던가, [스타듀 밸리 Stardew Valley ](2016)나 [모여봐요 동물의 숲 あつまれ どうぶつの森 ](2020)으로 제작된 머시니마, 혹은 선명한 세계관과 내러티브를 지닌 [마블 스파이더맨]이나 [호라이즌 제로 던 Horizon Zero Dawn ](2017),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 ](2019)의 머시니마 팬 무비는 불가능한 것일까. 휴 행콕 <오지만디아스> 스틸컷 어떤 면에서 지금의 게임과 게임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공간, 그들이 게임의 구성요소들을 가지고 유희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갈 공간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는 지점이 새로운 머시니마 플랫폼으로서의 게임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머시니마의 사례는 아니지만, 과거 [메이플스토리](2001) 공식 가이드북에 ‘싸비’라는 유저가 인게임 스크린샷을 활용해 제작한 스크린툰 기억하는가? 게임 전체의 내러티브와 관계없이 한 길드의 이야기를 써내려 갔던 그러한 만화가, 지금의 [메이플스토리]에서 가능할까? 때문에 최근 게임들의 팬 무비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8] 으로 유튜브에 업로드되거나, 시청자와 대화하며 개별적인 맥락의 이야기를 게임플레이와 함께 써내려가는 스트리머의 영상이 하나의 장르로 인식됨으로써 ‘이야기 기계’로서의 머시니마가 힘을 잃은 것일 수 있다. <캠퍼의 일기>나 처럼 게임플레이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리던 초창기 머시니마는 머시니마의 예술적/영화적 가능성을 점쳐보고자 했던 <오지만디아스>나 <블러드스펠>과 같은 작품들과 공존했다. 하지만 현재 영화제나 미술관에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머시니마는 게임을 창작 도구로 활용한 작품들이 아니라 게임이 자체적으로 갖는 사회적/예술적 기능에 관심을 둔 작품들이다. 유튜버들의 게임 리뷰, 스트리머의 게임플레이 영상, 게임에 관한 비평적 비디오 에세이, 게임 내에서 촬영된 다큐멘터리 등의 경계가 흐려지고, 게임에서 촬영한 무수한 콘텐츠가 오르내리는 지금, 머시니마의 방향은 영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직면하는 것을 향한다. 게임은 영화의 재료이자 도구라기보단 영화의 대상이 되었고, 그 안에서 머시니마라는 장르는 비디오 에세이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자연스레 이행한다. 일종의 메타비평으로서의 머시니마가 현재의 모습이라면, 미래의 머시니마는 어떤 모습일까? 혹은, 새로운 머시니마 극영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무수한 머시니마 속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머시니마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언급된 머시니마 리스트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 1996 <기적 Miracle> 1996 1997 <오지만디아스 Ozymandias> 1999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 Super Mario Cloud> 2002 2003 <슈퍼 마리오 무비 Super Mario Movie> 2005 <블러드스펠 Bloodspell> 2006 <이라크에서의 죽음 dead-in-Iraq> 2007 <엠파이어 Empire> 2008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 2009~2010 <평행 I-IV Parallel I-IV> 2012~2014 <파농을 찾아서 Finding Fanon> 2015~2016 2016 <구성된 순간 The Constructed Moment> 2017 <말로우 드라이브 Marlowe Drive> 2017 <쏘텔 재팬 타운의 기억 Redefining Community: The Evolution of Sawtelle Japantown> 2018 <몬도 카네 Mondo Cane> 2018 <4-2: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장 악명 높은 레벨의 역사 4-2: The History of Super Mario Bros.' Most Infamous Level> 2018 <페더폴 Featherfall> 2019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This Is What a 'Second Person' Video Game Looks Like> 2019 <나만의 풍경: 미군이 되는 법 My Own Landscapes> 2020 <더 그래니즈 The Grannies> 2021 <유토피아를 찾아서 Tracing Utopia> 2021 <지옥으로의 하강 Descent into Hell> 2021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만났다 We Met in Virtual Reality> 2022 <근무 중 이상무 Hardly Working> 2022 <니트 아일랜드 Knit’s Island> 2023 <메이드 인 세컨드 라이프 Made in Second Life: The Movie> 2023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 Grand Theft Hamlet> 2024 [1] 김철현, 「게임 엔진과 영화 제작 현황」, 『방송과 미디어』, 30(1), 2025. 35-43쪽. [2] http://machinima.com/ . 머시니마 닷컴은 워너에 인수된 이후 2019년 1월 폐쇄된다. [3] 퍼시 비시 셀리의 동명 시를 원작 삼는 작품으로, “게임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이 작품을 호평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4] 링크의 영상은 2015년 ‘리마스터’된 영상으로, 2014년 [헤일로]의 리마스터 게임이 출시됨에 따라 머시니마 또한 리마스터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리마스터’의 가능성은 머시니마가 갖는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5] 프로그램 상영작과 소개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337 [6] 강진석, 「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 『다큐멘터리 매거진 DOCKING』, 2025, http://www.dockingmagazine.com/contents/40/340/ [7]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은 영상을 글로 비평하는 것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로, 영화에 대한 비평을 영화로서 시도하는 하나의 장르다. 비디오를 통해 영화의 수집과 편집이 용이해진 1980년대 출발하였으나, 디지털 영화로의 전환과 유튜브/비메오 등의 플랫폼 이후 더욱 활발해졌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논문을 참조할 수 있다. 이선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형식’과 ‘활동’으로서 영화비평: 시네 토크, 팟캐스트, 비디오 비평을 중심으로」, 『프리뷰』, 20(2). 2023. 83-120쪽. [8] 이를테면 [스타듀 밸리]나 [할로우 나이트 The Hollow Knight ](2018), [발더스 게이트 3 Baldur’s Gate 3 ](2023) 등 인기 인디게임의 팬 무비들은 머시니마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곤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사라진 컨트롤러 : 가상현실 게임 속의 컨트롤러의 특징들

    가상 현실 게임에서 대부분의 경우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컨트롤러는 게임 내에서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스팀(Steam)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가상현실 게임인 〈하프라이프: 알릭스 (Half Life: Alyx)〉나 PSVR2의 대표작인 〈호라이즌 콜 오브 더 마운틴 (Horizon Call of the Mountain)〉을 비롯한 다양한 슈팅 및 액션 게임에서도 대부분 손을 보여주는 방식의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 Back 사라진 컨트롤러 : 가상현실 게임 속의 컨트롤러의 특징들 11 GG Vol. 23. 4. 10. * 그림 1. 실제 손과 컨트롤러(좌)와 가상 현실 내에서 사라진 컨트롤러(우). 이미지 출처 : https://uploadvr.com/importance-believable-vr-hands-presence/ 가상 현실 게임에서 대부분의 경우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컨트롤러는 게임 내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림1). 예를 들어, 스팀(Steam)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가상현실 게임인 〈하프라이프: 알릭스 (Half Life: Alyx)〉나 PSVR2의 대표작인 〈호라이즌 콜 오브 더 마운틴 (Horizon Call of the Mountain)〉을 비롯한 다양한 슈팅 및 액션 게임에서도 대부분 손을 보여주는 방식의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가상현실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최대한 실재감(sense of presence)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가상현실 컨트롤러가 어떻게 생겼길래 가상현실 속에서 볼 수 없을까? 그림 2를 살펴보면, VR 컨트롤러는 기본적으로 콘솔용 게임 컨트롤러를 반으로 나눈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각 컨트롤러의 옆면에는 검지로 누르는 트리거 버튼과 주먹을 쥐면 자연스럽게 눌리는 그립 버튼이 있다. 또한, 컨트롤러의 윗면에는 엄지로 조작할 수 있는 두 개의 버튼과 조그 스틱이 있고, 시스템 메뉴를 호출하는 버튼도 있다. 모든 상황에서 일인칭 시점의 주인공이 무채색 VR 컨트롤러를 들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장르를 불문하고 가상현실 속의 일인칭 시점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에 걸림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게임 개발자들은 이러한 컨트롤러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 그림 2. 메타 퀘스트 2의 컨트롤러, 측면(회색 부분)에 위치한 트리거 및 그립 버튼과, 상단(검은 부분)에 위치한 조그 스틱, 두 개의 버튼, 시스템 버튼이 보인다. * 〈하프 라이프 알릭스〉에서 보이는 손. 이미지 출처 : https://www.roadtovr.com/half-life-alyx-update-1-4-1-example-pistol-modding/ 사용자의 외부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는 가상현실 헤드셋의 특성 때문에 가상현실 속의 가상현실 컨트롤러를 어떻게 보여줄지 결정하는 것은 가상현실 게임 디자이너들에게 필연적이었다. 컨트롤러 디자인은 기기 제작사가 아닌 게임 디자이너에게 일부 위임되었다. 가상현실 컨트롤러의 외형은 게임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다르게 재정의될 수 있다. 대다수 디자이너들은 마치 컨트롤러를 들고 있지 않은 것처럼 가상 현실 속에서 컨트롤러를 숨기고, 컨트롤러를 쥐지 않은 ‘가상 손’을 그렸다. 이것은 캐릭터의 손을 보면서 가상 환경 속의 객체와 상호작용하는 것이 플레이어가 그 환경에 실재하고 있다고 느끼게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상 손으로 표현된 컨트롤러의 문제들 가상 손이라는 디자인 옵션은 가상현실 게임 디자인에서 전형적인 문법이 되어가고 있지만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사용자가 실제 손과 가상 손 사이의 감각적인 불일치(discrepancy)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플레이어의 고유감각과 촉각이 느끼는 손의 모양과 가상 현실에서 그려진 손의 모양이 다른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손으로 표현된 컨트롤러는 일반적으로 트리거 버튼은 검지에, 그립 버튼은 중지부터 소지까지 대응되어 버튼이 눌리면 손가락이 접히는 애니메이션이 재생된다. 이 경우에는 실제 손과 비슷하게 가상 손이 표현되기 때문에 비교적 자연스럽게 보인다. 반면, 실제 컨트롤러의 상단의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 엄지를 움직일 때, 가상 손 엄지의 움직임은 생뚱맞고 이질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가상 현실 속에서 본다면, 아무 이유 없이 접었다 폈다 하는 엄지를 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적 불일치는 플레이어들의 실재감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된다. 두 번째는 조작 방법 학습의 어려움이다. ‘가상 손'이 사용되는 경우에 실제 컨트롤러와 이를 조작하는 손이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게임 컨트롤러의 조작에 익숙해지기 쉽지 않다. 친구와 함께 VR 게임을 해본 경험이 있는가? 있다면 가상 현실 헤드셋을 착용한 친구에게 지금 뭐가 보이냐고 외치고, 왼쪽 컨트롤러에서 Y 버튼을 누르라고 외치고, Y 버튼은 볼록한 버튼 2개 중에 앞이라고 목소리를 높여본 일이 있을 것이다. 자기 손과 컨트롤러를 직접 볼 수 없는 것은 앞서 설명한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유가 된다. 가상현실 컨트롤러에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많은 버튼이 있고, 각 버튼은 가상 현실 속에서 수행할 수 있는 복잡한 행위들과 연결이 되어 있다. 게임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모든 버튼 맵핑을 빠르게 학습하고 이를 빠르게 실행에 옮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임 컨트롤러의 조작을 학습할 때는 적어도 버튼들과 이를 조작하는 손을 볼 수 있었지만, 가상 손으로 표현된 컨트롤러에서는 플레이어의 손가락이 의도한 버튼에 가 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고, 의도한 버튼이 어떤 기능이 있는지 떠올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더욱 어려워진다. 이러한 경험은 플레이어의 전반적인 퍼포먼스를 떨어뜨리고 게임에 대한 흥미를 감소시킬 수 있다. 필자는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플레이하면서 크고 작은 감각적 불일치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조작 방법의 학습에 관한 것이었다. 플레이 도중에 잠시 실제 컨트롤러 모양을 보여주며 어떤 상황에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시각적으로 안내해주었지만,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안내는 사라지고 가상 손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로 인해서 간단한 동작을 수행하는데도 여러 버튼을 눌러 시행착오를 겪는 일이 많았고, 이는 게임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가상현실에 대한 기대와 현실 컨트롤러 대신에 가상 손을 보여주는 것은 플레이어들에게 현실에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 위함이다. 앞서 언급한 단점들을 감수하고서라도 게임 디자이너들이 가상 손을 선택하는 이유는 시각적인 실재감을 그만큼 중요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재감은 가상 현실에서 항상 우선해야 할 가치일까? 가상현실 헤드셋을 착용한 경험이 모든 면에서 현실과 같을 필요는 없다. VR에서는 현실과 다르지만, 성공적으로 관습화된 상호작용 방식들이 있다. 레이 포인팅의 예를 들어보자. 어떤 대상을 선택하고자 할 때, 만지거나 찌르듯이 직접 컨트롤러를 가져다 대는 대신에 컨트롤러 전면에서 나가는 레이(ray)를 이용해서 가리키고 선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터페이스 조작에서 레이를 활용한 방식은 직접 컨트롤러를 옮겨 선택하는 방식보다 더 선호된다. 현실과는 다르게 원거리에 있는 대상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순간이동이라는 이동 방식의 예도 들 수 있다. 특정한 위치로 이동하려고 할 때, 현실과 같이 걸어서 이동하거나 연속적으로 캐릭터의 위치와 시점을 업데이트하길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실제 공간은 좁고 가상 공간은 훨씬 더 넓은 경우가 많아 직접 걸어서 게임 속 공간을 모두 탐험하기는 어렵다. 부드럽게 캐릭터를 이동시키는 것도 쉽게 멀미를 일으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이동을 많이 해야 하는 게임에서는 이동할 위치를 가리키고 그 위치까지 한 번에 이동하는 순간이동 방식이 많이 채택된다. 레이 포인팅과 순간이동은 현실의 경험과는 아주 다르지만 가상 현실 속에서는 일반적이다. 우리가 현실적이라고 여기는 방식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사용자의 의도를 실현한다. 결과적으로 가상현실에 안에서 제시하는 내용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VR 컨트롤러는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쉽게 정답을 맞힐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시각적인 실재감을 추구하는 데에서 벗어나,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컨트롤러를 시각화하는 것도 가능한 방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효율적이라는 것은 전체적인 시스템을 사용자가 쉽고 빠르게 익숙해지도록 돕는 것을 포함한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VR 게임을 만들고 있을 게임 디자이너들이 가상 현실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컨트롤러 표현 방식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현철 학부에서 산업디자인 및 뇌인지과학을 공부하고, 석사 과정에서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시각인지연구실에 소속된 박사 과정 학생이다. 행동 및 생체 데이터를 활용하여,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경험을 평가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 Inside BIC 2021- 감염병 시대의 인디게임페스티벌 참관기

    부산행 전날, 병원에 들러 코로나 PCR 진단검사를 받았다.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BIC Festival)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PCR 음성 확인증(혹은 백신 접종 완료증)을 제시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년 BIC-2020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감염병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었지만, 올해는 철저한 방역 절차 아래 오프라인에서도 행사가 개최되었다. 이렇듯,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의 대표적인 정서를 하나 꼽아보자면 ‘불안’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염자가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어딜 가든 짙게 깔려 있다. < Back Inside BIC 2021- 감염병 시대의 인디게임페스티벌 참관기 02 GG Vol. 21. 8. 10. 부산행 전날, 병원에 들러 코로나 PCR 진단검사를 받았다.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BIC Festival)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PCR 음성 확인증(혹은 백신 접종 완료증)을 제시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년 BIC-2020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감염병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었지만, 올해는 철저한 방역 절차 아래 오프라인에서도 행사가 개최되었다. 이렇듯,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의 대표적인 정서를 하나 꼽아보자면 ‘불안’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염자가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어딜 가든 짙게 깔려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에 게임은, 그 중에서도 인디 게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떠안은 채 9월 9일 부산으로 향했다. 서면 e스포츠 경기장에 도착해 PCR 확인 스티커를 받고, 온도체크와 QR 체크인을 완료한 후, 전시장의 게임 부스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올해 BIC-2021 행사의 일부로 기억되었다. BIC 페스티벌은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참여하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글로벌 인디게임 축제다. 2015년에 처음 개최된 이후, BIC 참가작들은 창의적인 게임 메커니즘을 시도 하거나 더 이상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하면서 게임의 표현양식을 확장시켜 왔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상업적인 요소를 추구하는 참가작도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다양한 실험적인 게임들이 선보여지는 자리다. 안전한 성공의 공식만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디 게임은 불안을 기꺼이 감내하는 사람들의 게임이기도 하다. 나아가 불안은 게임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인 요소다. 게임 연구자 예스퍼 율(Jesper Juul)은 플레이어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게임은 지루한 게임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다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한다.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다는 불안함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게임인 것이다. 물론 게임에서 우리는 실패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에서의 실패는 그다지 무겁지 않다. 많은 경우, 사람은 게임에서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금방 털어낼 수 있다. (당신이 가챠 게임에 엄청난 액수를 낭비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게임은 실패와 불안에 대한 면역을 길러주는 백신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이번 BIC-2021의 참가작 들 중 일부를 현재의 코로나 상황과 연관 속에서 리뷰해보고자 한다. 전세계적인 감염병 유행이라는 초유의 상황 속에 이번 BIC-2021 참가작들을 맥락화해서 기록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게임 페스티벌의 특성상 완성된 게임이 아닌 데모버전의 게임들을 짧은 시간동안 플레이 해 보았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건택틱스〉 -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과거에는 사람이었던 존재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인간성을 상실하고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공격받은 사람은 또 다시 감염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한다. 좀비 감염병이 창궐한 상황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아군과 적군이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다. 누구나 좀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포 더 던〉, 〈배틀LIVE〉, 〈페이티드 얼라이브〉, 등, 감염에 대한 공포를 형상화하는 좀비가 등장하는 게임을 올해 참가작 중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의 〈건택틱스〉가 눈길을 끌었다. 3*3의 사각형 안에서 캐릭터 카드를 이동시키며 좀비와 싸우거나 피하거나를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좀비 서바이벌 카드 게임이다. 제한된 칸 안에서만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적인 사고가 중요하다. 사실 이 게임에서 ‘좀비’는 끝없이 몰려오는 적을 상징할 뿐, 아무리 많은 좀비를 처치하더라도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이 해결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좀비를 없애면 새로운 좀비 카드가 생산되어 필드에 나타나고, 다음 스테이지를 해금하면 더 강력한 좀비들이 나타난다. 게임 속 상황은 일견 절망적으로 보인다. 몇 달이면 코로나가 없었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믿었지만 1년 넘게 확진자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금 우리의 상황 같기도 하다. 하지만 〈건택틱스〉를 플레이하다보면 불안과 긴장 속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하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스테이지에서 패배하더라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필드에서 주은 코인으로 캐릭터의 능력을 향상시켜 더 나은 조건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어쩔 때는 좀비에게 포위당해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일도 생기지만, 그런 불안함 또한 이 게임을 스릴 있는 것으로 만드는 즐거움 중 하나다. * 〈건택틱스〉 플레이 화면. 〈디바이스0101〉 - 고립의 공포 낯선 방에서 눈을 뜬다. 모든 문은 잠겨있다. 플레이어는 숨겨진 아이템을 찾고 퍼즐을 풀어서 방을 탈출해야 한다. 복고풍 도트 그래픽과 퍼즐요소가 가미된 미스터리 어드벤처 게임이다. RPG메이커 제작툴을 이용해 만들어진 〈디바이스0101〉은 과거에 유행하던 방 탈출 게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주인공이 기억을 잃은 이유, 다른 가족들의 행방,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등, 초반부 스토리가 흡입력이 있어 완성이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편, 외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로 표상되는 위험이 존재하며 별장 내부에 고립되어 있는 게임 속 상황은, 오늘날 바이러스의 전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집에 머무르는 요즘 우리의 모습과도 맞닿아있는 것도 같다. * 〈디바이스0101〉 플레이 화면. 〈셔터냥〉, 너와 나를 이어주는 카메라 〈셔터냥〉은 길을 잃은 고양이가 카메라를 이용해 소녀에게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따뜻한 분위기의 플랫포머 게임이다. 마우스 왼쪽 클릭을 하면 고양이가 머리에 쓴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오른쪽 클릭을 눌러 찍은 사진을 맵에 배치할 수 있다. 다양한 오브젝트들을 복제해 그 위를 점프하고 이동하는, 제작자들이 ‘카메라 액션’이라고 이름 붙인 창의적인 게임 메커니즘이 돋보인다. 마찬가지로 카메라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게임으로 이 있다. 플레이어는 액션 영화를 촬영하는 배우이자 카메라가 되어, 건물들 사이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배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 혼자 플레이할 때는 왼손 키보드로 배우를 이동하는 동시에 오른손 마우스로는 카메라를 조종하고, 두 사람이 플레이하는 경우에는 각각 키보드-배우와 마우스-카메라를 담당해 플레이하면 된다. 카메라 화면 밖으로 배우의 모습이 완전히 벗어나면 게임 오버다. 왼손과 오른손의 조화, 배우를 조종하는 사람과 카메라를 조종하는 사람의 협동이 요구되는, 창의적이면서도 컨트롤 난이도가 있는 게임이다. 두 게임에서 게임 화면 속 ‘카메라’ 화면이 등장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모니터 속에 또 다른 화면이라는 점에서 두 게임 모두 메타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그것이 독특한 게임 컨트롤 메커니즘과도 연관되어 있어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때 각각의 카메라는 두 존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셔터냥〉에서는 소녀와 고양이가 만날 수 있도록 매개해주는 역할을, 에서는 카메라와 배우의 협동을 이끌어낸다. 교실문이 잠기고, 많은 기업들은 비대면 출근을 시행하는 비대면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영상 통화나 화상 채팅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유지하고 있다. 〈셔터냥〉과 은 이 같은 매개된 연결감각이 반영된 게임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셔터냥〉 플레이 화면. * 〈Ready Action〉 플레이 화면. 〈더웨이크〉 -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혼수상태에 빠진 한 남자가 일기장을 남겼다. 일기장은 남자의 거짓말을 암호로 바꾸어 기록해주었다. 〈레플리카〉와 〈리갈던전〉에 이어 ‘죄책감 3부작’을 마무리하는 개발자 소미(Somi)의 신작 〈더웨이크〉이다. 플레이어는 일기장의 암호를 해독해 나가며 남자의 과거 기억들을 따라가게 된다. 일기장의 주인인 남자는 어린 시절 형제와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혐오하면서도 연민하며,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전철을 밟을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런 모순된 감정을 남자는 “거짓”되었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어쩌면 내 삶은, 이 한 문장이 전부였구나, 싶다. ‘내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다.’“ 게임은 언뜻 한 남자의 개인적인 일생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기록’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도 하다. 진실은 때로는 모순되며 논리적이지도 않다. 사건은 생략되고, 누락되거나, 혹은 강조되면서 여러 방식으로 비춰질 수 있다. 누락되어서 읽히지 않았던 암호가 해독된 후, 일기는 조금 더 복합적인 진실을 보여준다. 먼 훗날 우리는 코로나19 판데믹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하게 될까? 배달 플랫폼, 게임, 메타버스 산업의 성장을 촉진했지만, 동시에 청소년들의 학업 성취도를 낮추고 소중한 학창 시절 추억을 쌓을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성공적인 방역 관리 체계를 보여주었지만,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 주거 격차가 문제로 떠올랐다. 이런 2021년을 우리는 나중에 어떻게 떠올리게 될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김지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 〈디아블로3〉는 왜 ‘똥3’, ‘수면제’가 되었는가?

    누구든 이 글의 제목이 표시하고 있는 의문에 현혹되어 본문을 읽기 시작한 독자라면 그의 추억 속에서 디아블로가 스타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민속놀이’에 준하는 반열에 올려져 있음직하다.1) 특정 게임을 민속놀이에 비유하는 표현은, 물론 오래도록 익숙해진 대상에 대한 게이머들의 애정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어느 로맨스도 항상 분홍빛으로만 채색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애정은 옅어지고 힐난과 혐오의 감정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때마다 변하게 된 것은 ‘나’와 대상이거나 양자가 달라지면서 마땅히 뒤따른 관계의 양상이지 ‘사랑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 Back 〈디아블로3〉는 왜 ‘똥3’, ‘수면제’가 되었는가? 05 GG Vol. 22. 4. 10. 이 글은 〈게임과 공포 서사를 통해 살펴본 언어화와 공포의 비대칭적 상관관계에 대한 비교연구: 〈디아블로3〉, 현대 괴담, 고전 원귀서사를 중심으로〉(비교문학 86, 2022.2.)라는 표제로 공개된 논문을 웹진 형식에 맞추어 적절하게 개고한 글이다. 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15374 ‘갓겜’의 전락 누구든 이 글의 제목이 표시하고 있는 의문에 현혹되어 본문을 읽기 시작한 독자라면 그의 추억 속에서 디아블로가 스타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민속놀이’에 준하는 반열에 올려져 있음직하다. 1) 특정 게임을 민속놀이에 비유하는 표현은, 물론 오래도록 익숙해진 대상에 대한 게이머들의 애정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어느 로맨스도 항상 분홍빛으로만 채색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애정은 옅어지고 힐난과 혐오의 감정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때마다 변하게 된 것은 ‘나’와 대상이거나 양자가 달라지면서 마땅히 뒤따른 관계의 양상이지 ‘사랑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 대명사가 된 ‘똥3’. Google을 이용하여 ‘똥3’를 표제어로 삼아 검색해보면 무려 3천만 건 이상의 〈디아블로3〉에 관한 페이지가 결과로 주어진다(2022년 3월 현재 기준). 여기서 검토 가능한 정보들 대다수가 ‘똥3’을 곧 〈디아블로3〉의 대명사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확인된다. 이 글이 일단 주목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변이의 순간이다. 2012년, 〈디아블로3〉가 발매되었다. 시리즈의 전작과 신작 사이에 놓인 십여 년의 격차는 팬들의 기대를 더욱 부풀렸다. 출시 직후부터 〈디아블로3〉는 블리자드 사의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도 유례없이 많은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2) 그만큼 성공가도를 달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유저들 의 평가는 기존과 사뭇 달랐다. 일각에서는 “〈디아블로3〉를 하면 할수록 졸음이 쏟아진다”라고 호소했으며, 캐릭터가 죽었는데도 이미 유저는 태연히 잠든 사진들이 ‘유머 짤’로 퍼지기 시작했다. 한 웹진에서는 〈디아블로3〉를 비롯해 이른바 ‘수면제’라 불리는 게임들의 숙면 유도 효과를 검증하는 내용으로 아예 기사 한 꼭지를 채웠다. 3) 그 어떤 저예산의 아마추어 게임일지라도 지루함을 분명히 몰아내기만 한다면 이 점 하나만으로 그 게임은 자기의 탁월성을 증명한다. 기본 조건을 〈디아블로3〉가 어겼다고 여기는 일부 유저들은 게임 타이틀을 아예 ‘똥3’이라고 바꾸어 부르기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은 〈디아블로3〉가 잠을 부른다는 평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하였음을 방증하면서도, 일종의 전락이라 이르기 충분한 낙폭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상당한 기대감을 아우르면서 출시 직후까지 ‘갓겜’으로 불리던 상황이 어느새 ‘수면제’, ‘똥3’이라는 조롱 성격이 가득한 밈의 유행으로 대체된 것이다. * 죽었습니다. 4) 위 이미지들은 PC방에서 〈디아블로3〉 플레이 중에 잠들어버린 유저와 플레이 화면을 지켜보던 중에 잠들어 버린 고양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중 캐릭터의 사망 상태를 알리는 문장은 게임 자체에 대한 은유로도 쓰인다. 공포의 공백: 무섭지 않다 〈디아블로3〉는 왜 ‘똥’이 되었는가? 지루함과 잠은 결과이지 원인일 수 없다. 사람들은 몇 가지 요인들을 꼽아보기도 한다. 시스템적으로 전보다 단순해진 레벨링, 한정된 배경의 던전을 계속 전전하는 파밍, 이 과정의 반복이 지나친 나머지 화면 연출이 암만 화려하고 맵이 아무리 임의로 생성되더라도 그것들을 단조롭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유저의 인지 상태 등이 그것이다. 반복 속에서 차이가 희소해질수록 지루함이 찾아드는 법이다. 그러나 반복은 전작들에도 포함되어 있던 요소였고 더욱이 반복으로 인해 결국 잠들고 말았다는 평은 전작들에 대해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주의해서 기억하도록 하자. 물론 예의 레벨링 및 파밍에서 일어난 어느 변화가 신작의 흥미를 한껏 줄여버린 원인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만 고려할 때 쉽게 놓치고 마는 부분이 있다. 애초에 이 시리즈가 공포 요소를 상당히 강조하는 게임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따라서 〈디아블로3〉가 전작에 비해 더 이상 플레이 중에 공포가 체험되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전히 있는 것들이 현재에는 달리 작동해서 가져온 결과에 대해 논하는 것보다, 있었던 것의 부재가 지금 가져온 결과에 대해 먼저 살피는 것이 사태의 중층성을 파헤치는 초석일 수 있다. 요컨대 1996년 마지막 날에 발매된 〈디아블로〉는 던전크롤링과 핵앤슬래시의 구현에 충실했다. 가공할 만한 몬스터, 과장된 유혈, 잔혹하게 도살된 인간들의 형상이 탐험 공간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서 공포와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기에도 알맞았다. 이를테면 특유의 외침과 함께 등장하는 부쳐(butcher)와의 첫 맞대결에서 압살당한 경험은 여전히 유저들 사이에서 소름 끼치게 충격적이었다고 회자될 정도다. 2000년에 발표된 〈디아블로2〉는 여전히 신비를 잃지 않은 초월자들의 등장과 암흑에 가까운 공간 연출 등으로 유저의 긴장을 적절히 고조시키고 공포감을 부풀리는 데에 많은 신경을 썼다. 문제는 3편에서 이런 장점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엇이 과연 공포를 몰아냈을까? 이 자리에서는 다소 생경하게 들릴 수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언어화’다. * 부쳐(도살자)와 그의 소굴(〈디아블로 1〉). 훼손된 시체가 즐비한 방에 들어서자마자 ‘ah, fresh meat!’라고 외치며 달려드는 막강한 적에 압도되어버렸던 그 순간을 유저들은 절대 잊지 않는다. 이미지출처: Steve Burke, “Most Memorable Moments of the Diablo Franchise.” Gamers Nexus, 2012.5.14. www.gamersnexus.net/gg/844-most-memorable-diablo-moments 공백의 공포: 호러 바쿠이 디아블로 시리즈가 후속편을 이어가면서 나타낸 변화의 방향은 어느 정도 일관성을 띤다. 바로 온갖 언설과 언어적 존재들이 서사의 빈자리에 들어서며 늘어난다는 점에서 그렇다. 1편은 ‘최하층에 다다라 거대한 악을 물리친다’라는 단순한 목적을 곧 서사의 골자로 삼았으며 게임 체험의 거개를 전투로 채웠다. 유저가 가야 할 곳, 해야 할 일 등의 정보가 NPC들에 의해 거의 최소한으로 주어지고, 악마의 출처나 살육의 목적도 모두 베일에 감춰져 있었다. 그리고 디아블로라는, 게임 타이틀이 가리키는 악마 자신이며 최대 숙적인 그는 마지막에 쓰러질 때까지 그 이름을 제외하고서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정도로 비언어적이다. 1편에 비하여 2편은 세계관을 확대하고 세부적인 요소까지 규정했다. 선택 가능한 영웅 캐릭터들이 추가되었고 다변화된 지역을 배경으로 디아블로를 비롯해 그 형제들이 등장한다. 악마는 사실 오래전부터 천사와 대립하여 싸우고 있었으며, 더 강한 무력을 얻어 이 같은 쟁투에서 승리를 취하고자 인간 세계에 혼란을 몰고 왔다는 전사(前史)도 제시되었다. 이렇게 더 많은 사건과 내화(內話)를 배치하여 서사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면서도 다른 초월자의 존재, 세계의 기원 등 해명되지 않은 것들을 여럿 남겨놓음으로써 다음 편을 기대하도록 안배하기도 했다. 3편에서는 이야기의 구체성을 더하고 볼륨을 키우는 이러한 경향성이 굳어진다. 더 많은 캐릭터와 지역, 더 장구한 역사와 아티팩트, 다원화된 세계들 간의 더 깊은 갈등, 더 교묘한 음모, 더 복잡한 사연들이 새롭게 엮이고 관계를 형성한다. 작중 인물의 발화와 대화는 물론, 책자나 일지로 가장된 독백뿐만 아니라 시네마틱 영상, 내레이션을 통해, 이 이야기-언어는 인물 표현과 서사 부분에서 풍부함과 상세함을 더한다. 작중 해설가나 다를 바 없던 역을 담당한 캐릭터 케인이 죽음으로 퇴장한 이후에도 설명과 다변의 과잉상태는 달라지지 않는다. 살육과 폭력을 과묵하게 자행하던 악마도, 그런 악마를 저지하기 위해 분주하던 천사도, 모두가 자기에 대해 말을 (그것도 많이!) 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 그리하여 디아블로 세계관이 낱낱이 해명된다. 그런데 이렇게 추가된 언설들이 아무리 다양해지고 서로 교차하더라도 그것들 사이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설명이 없던 부분에는 이야기를, 말이 없던 존재에게는 육성을 부가하는 방식으로, 이전 작들이 남겨놓은 서사상의 공백을 모두 메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적인 두려움을 제작진들이 해소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블리자드 사의 이 같은 행위 양상을 가리킬 수 있는 오랜 표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호러 바쿠이’이다. 이 관용구는 언필칭 그대로 ‘공백(Vacui)에 대한 공포(Horror)’를 의미하며, 어떤 여백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모든 자리를 패턴으로 채우려고 하는 특정 시기의 예술 양식이나 기법을 지시하기도 한다. 문제는 빈자리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채움의 강박이 과도한 언어화를 낳았으며 정작 게임이 전달할 수 있는 공포 정서를 축출해버렸다는 데 있다. 어째서 그러한가? 우선 이러한 현상이 게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여러 영역에서도 일반적으로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일러두기로 한다. * 호러 바쿠이 혹은 채움의 강박. Jean Duvet, 〈The Fall of Babylon〉 이미지 출처: Mads Soegaard, “Horror Vacui: The Fear of Emptiness.” Interaction Design Foundation, 2020.9. interaction-design.org/literature/article/horror-vacui-the-fear-of-emptiness . 16세기에 활동한 뒤베의 판화는 도상의 모든 면을 특별하게 의도한 알레고리로서 의미를 갖추도록 만들고 있다. 언어화는 공포를 잠식한다 “공포는 총성(bang)이 아니라 그것의 예측(anticipation)에서만 일어난다”라고 진술한 것은 히치콕이었다. 공포의 감정은, 감각과 언어로서 인지되는 사태의 바깥에 인간의 상상력이 미쳤을 때라야 어떤 예기(豫期)와 함께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 어떤 규정성과 동질성 너머에 놓인 상상의 공간, 이 빈자리야말로 공포가 당당하게 차지하게 되는 자신만의 영토다. 이는 공포가 공백에서 발생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언어는 근본적으로 의미의 담지체로서 규정성을 발생시킨다. 어떤 사태를 포착한 단 한 장의 사진에 인과관계가 담긴 이야기를 덧붙이자 그것이 사태의 의미로 대체돼 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경험한다. 또한 언어는 인간의 인식, 사고, 정서, 행동 등에 담긴 질서를 근본적으로 반영한다. 그래서 어떤 존재가 언어를 구사하는 언어적 존재로 재현된다는 것은 그 존재가 이미 인간적 질서를 공유하고 그것에 동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언어화는 규정성을 부여하거나 이질적 거리를 단축함으로써(즉 동질성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빈자리를 채운다. 이러한 사실들은 〈디아블로3〉의 과잉된 언어화가 이미 잘 드러내주고 있기도 하다. 세계관, 전사(前史), 배경에 대한 다변들은 결국 게임 내 세계, 악마와 괴물, 천사에게서도 신비함을 탈각한다. 그들이 미지의 존재가 아니게 됨으로써 그들은 공포의 영역에서도 추방을 당한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구석을 찾아볼 수 없게 된 대상은 신비하고 공포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성가시거나 혹은 친근한 존재가 될 뿐이다. 경외와 두려움은 동근원적이다. 그리고 미지의 존재와 세계는 그 정체가 밝혀짐과 동시에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기를 멈추고 우리에게 친숙해지고 만다. “ 그래서 떨어졌습니다. 내 의지로.” (〈디아블로3〉). 대천사 티리엘은 스스로 날개를 찢고 지상으로 떨어진다. 이 하강은 초월적이고 비의적 존재에서 인간적이고 탈신비화된 존재로의 변신이기도 하다. 미지의 대상이 설명됨으로써 정체가 폭로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언어적 존재로 변하여 묘사될 때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이어진다. 악마와 천사들은 〈디아블로3〉에 이르러 무척이나 수다스러운 존재로 나타났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꺼리는지, 무엇을 의심하는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엇을 두려워하는지에 대해 그들은 말한다. 이와 동시에 악마와 천사는 공포를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게다가 악마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그 악마를 격퇴시키기 위해 진격하고 있는 유저 자신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저가 공포를 느끼기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우리는 공포에 떨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심지어 우리 자신이 유발하는 공포에 의해 떨고 있는 그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민속놀이’의 부흥을 기대하며 지루함이나 잠은 공포와 대척점에 서 있다. 어떤 것이 충분히 음산하고 무섭다면, 그것은 우리를 잠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공포를 다루는 많은 매체들이 ‘잠 못 드는 밤’을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른 요인들도 물론 고려해야 할 테지만 ‘수면제’나 ‘똥3’이라는 밈에는 〈디아블로3〉의 과도한 언어화로 인해 공포를 재현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 반영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포는 공백과 짝을 이루어 실현되며, 언어화는 공백을 메움으로써 공포를 비워버린다. 이처럼 단순한 진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수많은 괴담이나 호러 영화를 두고 의식적으로 연결하여 공통된 특성을 골라내 보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해원(解冤)을 모티프로 삼은 고전적인 귀신이야기는 어떠한가? 사람을 사로잡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귀는 그저 공포의 대상일 수 있지만, 그 악귀가 어떤 원한에 사로잡혀 있는지 스스로 호소하며 탄원하는 순간 우리의 두려움은 줄어들고 급기야 달아나버리기까지 한다.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나폴리탄 괴담류’들은 어떠한가? 그중 성공적인 것들은 이야기-언어로 공포가 둥지를 틀 수 있는 인지상의 공백을 만드는 기교를 구사한다. 즉 규정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그것을 벗어난 상대적인 빈틈을 절묘하게 주조하면서, 그 빈틈에 어떤 경악할만한 것이 있을지 우리가 예감하도록 하여 심리를 불안하게 자극하다가 서서히 스며드는 공포 한가운데로 우리를 포획하고 마는 것이다. 공포 구현에 있어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사했던 여타의 매체나 작품들이 후속편에 이르러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둠〉은 호러 요소로 과거 큰 인기를 끌었고 세기를 넘어서도 리부트를 비롯하여 새로운 후속편들을 다수 이어갔다. 그러면서 서사의 연장ㆍ삽입, 세계관ㆍ인물ㆍ사물에 관한 설정과 관계망의 추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공포가 발원하는 자리인 공백을 그러한 설명과 규정성의 과잉이 잠식해버린 결과에 대해 이 자리에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편 지난 여름 〈디아블로2 레저렉션〉의 공개는 오랜 향수와 함께 신선한 열기를 불러왔다. 〈디아블로3〉가 출시된 지도 벌써 십수 년이 지난 상황에서 시리즈 후속작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제작진이 네 번째 작품을 더욱 어둡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겠다고 약속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5) 이것이 인상적인 까닭은 3편에서 공포의 부재를 가져온 그들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더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작품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디아블로4〉가 그들의 계획대로 ‘갓겜’의 진면목을 이어가는 데 성공하려면 언어적 미니멀리즘은 불가결하다. 1) 특정 게임을 민속놀이로 일컫는 용례 가운데 하나는 다음 기사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삼대가 즐기는 한국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 《게임톡》, 2019.1.29. gametoc.hankyung.com/news/articleView.html?idxno=50637; 리마스터 판 〈디아블로2: 레저렉션〉이 2021년 여름 공개된 후 일대 선풍이 한동안 일어 디아블로 역시 민속놀이에 비유하는 움직임도 없지 않았으나 대세를 이루지는 못했다. 2) 〈디아블로3〉는 출시 첫날 350만 장, 1주일 후 630만 장 판매량을 보였다. 발매가 이뤄진 2012년 한 해 동안의 글로벌 판매량은 약 1,200만 장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계측이 이뤄진 2013년 당시 기준으로만 보아도 전작 〈디아블로〉와 〈디아블로2〉를 합친 것을 압도한 수치였으며, 〈스타크래프트〉의 기록마저 넘어선 것이라고 한다. 〈'디아블로3' 1200만 장 판매, 확장팩 발표 없었다〉, 《머니투데이》, 2013.2.8. news.mt.co.kr/mtview.php?no=2013020814008169621 3) 〈한 판만 해도 꿀잠…최고의 수면제 게임은?〉, 《데일리게임》, 2016.11.2. game.dailyesports.com/view.php?ud=2016110117545981392_26 4) 이미지들의 출처는 다음과 같은 웹페이지들이며, 오래전부터 이들 밈이 광범하게 유포되었기에 원출처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 〈부작용 없는 완벽한 수면제〉(유머 게시판 사용자 콘텐츠), 《루리웹》, 2018.10.04. 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744/read/39367858, 〈죽었습니다〉(유머 게시판 사용자 콘텐츠); 《이토랜드》, 2019.9.12. etoland.co.kr/bbs/board.php?bo_table=etohumor02&wr_id=650119&mobile=1 5) Andy Chalk, “Blizzard is trying to make Diablo 4 characters look cool while keeping them ‘grounded in reality’.” PCGAMER, 2021.7.1. pcgamer.com/blizzard-is-trying-to-make-diablo-4-characters-look-cool-while-keeping-them-grounded-in-reality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장지영 한국어문학을 전공으로 삼아 주로 근대 비평과 문화사를 공부했으며 식민지 시기 및 해방기의 학술과 관련한 지성사 연구를 이어왔다. ‘게임보이’로서 지냈으나 게임을 잘/많이 하지/알지 못했음을 뒤늦게 안 게이머이다. (철학연구자) 최건 철학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게임애호가 및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의, 강연, 연구, 저술, 번역 활동에 임해왔으며, 현재는 인하대 등에서 학생들과 사유를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 두려움, 공포 그리고 폴아웃: 게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공포의 양상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해오면서 기억하고 있는 공포의 유형으로는 2가지가 있다.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겁을 먹은 것은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의 악명 높은 장면을 플레이했을 때였다. 당시 <레지던트 이블>은 호러 게임이라기 보다는 속도가 느린 액션 게임쪽에 가까웠는데, 게임 내에서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뒤이어 또 다른 한 마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왔을 때 두려움과 혼란, 공포를 느꼈다. < Back 두려움, 공포 그리고 폴아웃: 게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공포의 양상 19 GG Vol. 24. 8. 10. 들어가는 말: 공포에도 종류가 있다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해오면서 기억하고 있는 공포의 유형으로는 2가지가 있다.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겁을 먹은 것은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1] 의 악명 높은 장면을 플레이했을 때였다. 당시 <레지던트 이블>은 호러 게임이라기 보다는 속도가 느린 액션 게임쪽에 가까웠는데, 게임 내에서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뒤이어 또 다른 한 마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왔을 때 두려움과 혼란, 공포를 느꼈다. 이는 게임(및 여타 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준적인 점프 스케어(역주: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 기법)였다. 당시 이 장면으로 겁을 먹긴 했지만, 스펜서 저택의 복도를 돌아다닐 때 약간 불안해진 것 말고는 그 개들 또는 그 개들이 상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지는 않았다. 게임을 하면서 겁에 질렸던 두번째 - 그리고 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 기억은 <폴아웃3(Fallout 3)> [2] 에서 였다. 게임 초반 플레이어는 캐피탈 웨이스트랜드를 돌아다니면서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약탈자들이 점유하고 있는 어둡고 칙칙한 식료품점 수퍼-두퍼 마트(the Super-Duper Mart)를 발견하게 된다. <레지던트 이블>의 개들과 다른 점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내가 이미 알고 있으며 이 곳에서 약탈자들이 나타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약탈자들의 모습은 가시적이기까지 한데, 한 때 식료품점이었던 이 황폐한 장소의 복도를 초록빛 형광등이 희미하게 비추면서 생기는 그림자로 인해 약탈자들의 실루엣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멀리서 희미하게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종류의 고기가 천장에 걸려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는 바로 시체고기인데, 인간 신체의 부속물들이 천장의 쇠사슬로 연결되어 늘어져 있는 이 모습은 플레이어도 만약 발각된다면 그렇게 될 운명임을 알려주는 지표다. 게임 초반에 이 장소에 도달했었기 때문에 자원이 별로 없어 이 상황에서 싸울 수 있는 힘이 부족한 상태였으나, <폴아웃3>의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웨이스트랜드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약탈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필요할 것임은 분명했다. 적들과 마주치지 않고 필요한 것을 찾아내기 위해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는 동안 내 심장박동은 점점 빨라졌고, 예상치 못하게 모퉁이에서 발소리를 듣거나 약탈자를 발견하게 되면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수퍼-퍼 마트에서는 단 하나의 점프 스케어도 없었지만, <폴아웃3>의 이 시퀀스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정말 무서웠던 기억으로 내게 남아있다. * <폴아웃 3>의 수퍼두퍼 마트와 레이더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내가 겪었던 이와 같은 두 종류의 공포 경험은, 두려움과 공포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으며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상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점프 스케어 및 깜짝 놀라게 되는 공포(sudden frights)와 일상적인 공포간 차이, 그리고 스토리텔링, 게임 메커닉, 환경, 분위기에 대한 특정한 접근 방식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기적 형태의 공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Sudden Frights 깜짝 놀래키기 깜짝 놀래키는 것, 즉 "점프스케어"는 많은 호러 게임에서 사용되어왔다. 우리는 호러 게임을 플레이할 때 긴장과 불안, 충격과 공포로 가득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플레이어들은 기꺼이 겁에 질리는 것을 기대한다. 갑작스러운 공포(sudden frights)에는 특정한 즐거움이 있으며, 그래서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에서부터 호러 영화에 이르기까지 어떤 (놀래키는) 공포가 다가올 것인가에 대한 기대는 늘 엔터테인먼트의 일부가 된다. 밤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아웃라스트(Outlast)> [3] 와 <암네시아: 다크 디센트(Amnesia: The Dark Descent)> [4] 의 게임 디자인이 어떤 식으로 플레이어들을 깜짝 놀래키면서 공포를 주는지를 알아보자. 스포일러 주의 <아웃라스트(Outlast)>는 1인칭 서바이벌 호러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마운트 매시브 정신병원(Mount Massive Asylum)에서 수상쩍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를 가는 기자 마일즈 업셔(Miles Upshur)가 되어 게임을 플레이한다. 마일즈는 캠코더를 들고 정신병원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거기에 있던 모두가 a) 죽었거나, b) 임상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c) 임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살인자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마일즈는 “마틴 신부(Father Martin)”와 마주치게 되는데, 이 인물은 자칭 “월라이더(Walrider)”의 수행자로서 후에 정신병원 깊숙한 곳에 감금되어있던 어떤 환자가 조종하는 나노머신의 환영인 것으로 밝혀진다. <암네시아(Amnesia)> 또한 비슷한 1인칭 서바이벌 호러 게임인데, 다만 퍼즐적 요소가 좀 더 복잡하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어떤 성 안의 방에서 깨어나면서 시작하는데, 자신이 다니엘(Daniel)로 불린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게임은 성 깊숙한 곳에 있는 알렉산더(Alexander)라는 남자를 죽이라는 예전의 자신(다니엘)이 쓴 편지에 따라 진행되는데, 성 안에는 각 구역마다 끔찍하게 변형된 모습의 괴물들과 다니엘을 죽이려는 “섀도우”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 두 게임 및 유사한 유형의 호러 게임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두려움을 자아내기 위해 미지의 것(the unknown)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혹은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암네시아>에서 이는 다니엘이 자초한 기억상실증의 결과로서 발생한 말 그대로의 무지(알지 못함)의 형태로 나타나며, <아웃라스트>에서는 취재하는 기자로서의 마일즈라는 인물 설정에서 나타나는데,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생소한 장소를 별 다른 단서 없이 돌아다니는 두 명의 주인공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은 게임 내 환경 디자인에도 반영되어 있다. <암네시아>의 성과 <아웃라스트>의 정신병원에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을 무언가를 계속 추측하게 만드는 미로 같은 복도와 그림자 진 어두운 코너가 디자인되어 있다. 연구자 매즈 할(Mads Haahr)은 호러 게임에서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 플레이어의 시각을 변형시키는 다양한 방식들을 분석한 바 있는데, 흐릿하게 만들기(그림자와 안개), 왜곡(플레이어의 시각을 워핑(warp)하는 것), 그리고 매개(<아웃라스트>의 캠코더처럼 2차 렌즈로 세상을 보도록 하는 것) 등은 두 게임 모두에서 발견된다 [5] . 두 게임의 1인칭 시점 또한 플레이어의 가시 범주를 제한하는데, 이는 내 눈에 보이는 주변부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아웃라스트>에서 마일즈가 코너를 빠르게 살필 수 있는 "엿보기(peeking)" 메커닉은 플레이어가 자신을 발견한 적과 갑자기 맞닥뜨리게 만들기도 한다. 하나의 효과로서 공포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예측될 때 고조된다 [6] . 이와 같은 시각의 변형과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긴장이 점점 고조되는데 이 모든 과정의 목적은 그 긴장을 깨뜨리는 것이 된다. * <암네시아: 다크 디센트>의 복도. [7] 한편 청각 디자인은 플레이어에게 시야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나무가 삐꺽거리고 바람이 부는 소리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바짝 긴장하도록 하는 한편, 특정한 소리는 어떤 적이나 위협이 근처에 있음을 알려준다. <암네시아>에서 몬스터들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는 그들이 다니엘 근처에 있음을 의미하며, <아웃라스트>에서 체인이 쩔그렁거리는 소리나 무거운 발자국 소리는 마일즈를 잡으러 특정 구역의 보스들이 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청각 신호들이 플레이어에게 지침을 주지만, 이 적들은 여전히 "들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8] 존재로서 플레이어에게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공포감을 더한다. 한동안 플레이어의 뒤를 쫓는 소리가 들리다가 마침내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점프 스케어 같은 느낌을 배가시킨다. 일반적인 환경음과 달리, 적에게 추격당할 때의 소리는 강렬한 음악과 함께 헐떡이는 숨소리로 빠르게 바뀐다. 플레이어가 적에게 발견되는 이 시나리오는 갑작스럽게 추격전이 벌어지면서 당연히 공포와 패닉을 유발시키지만, 플레이어는 이러한 추격전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자가 드리워진 주변을 부지런하게 살피고 청각 신호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플레이어의 뒤에서 적이 나타나면 점프 스케어는 크게 성공한다. 언제 어디서 위협이 발생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갖추고도 예측하지 못한 적의 등장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9] . 무력함은 깜짝 놀라는 공포(sudden frights)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다. 두 게임의 오프닝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이 달리거나 숨거나 혹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에 대한 위협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옵션이 없는 것이다. 이는 권능에 대한 판타지를 제공해왔던 비디오게임의 전형에 대한 완전한 전복이다. 플레이어는 마법과 힘으로 무장한 용감한 전사가 아니라 단지 지옥같은 공간에서 도망치려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갑자기 나타난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방법이 없으며, 이는 완벽히 위협적인 상황이다. 이에 더해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장르를 정의할 수 있는 메커닉인 자원 관리(resource management) 또한 플레이어의 무력감을 배가시킨다. <암네시아>와 <아웃라스트>의 경우 자원은 플레이어의 구역을 좀 더 밝게 유지하는 것과 연관되는데, <암네시아>에서의 틴더박스나 기름, <아웃라스트>의 캠코더용 배터리가 이에 해당한다. <암네시아>에서는 어둠에 노출되면 죽을 때까지 정신이 쇠약해지고, <아웃라스트>에서는 캠코더의 나이트비전으로 어둠 속의 적들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나이트 비전이 없다면 정신병원 안을 돌아다니는 일이 훨씬 더 위험해질 것이다. 플레이어는 (모든 자원의 위치를 아는 것이 아닌 한) 대개 게임하는 내내 자원 부족의 위기를 겪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은 플레이어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일부 구역은 적의 경로와 가까운 곳에 있어 플레이어는 종종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를 무서운 상황에 노출시키기도 한다. 자원을 확보하되 잡힐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그 구역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안전을 도모할 것인지는 서바이벌 호러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플레이어들에게 던져지는 전략의 문제다. * <아웃라스트>의 야간투시경 화면. [10] 깜짝 놀래키는 유형의 게임에서는 안전을 확보하는 것마저 불안할 수 있다. <레지던트 이블>의 경우 플레이어가 게임을 저장할 수 있는 세이프룸이 있지만, <암네시아>와 <아웃라스트>에는 그러한 메커닉이 없다. <아웃라스트>의 경우 마일즈가 게임의 목표에 맞춰 진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스토리 장면이나 컷신 - 열쇠를 찾은 것, 경비실로 가는 것 등 - 있다. 게임 초반에 플레이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이러한 컷신들이 긴장을 잠시 풀 수 있는 비디오게임의 "체크포인트"와 같은 것이라 여기게 된다. 하지만 마일즈가 보안실에 도달하자마자 마틴 신부에게 붙잡혀 마취된 후 정신병원 깊숙한 곳에 갇히게 되는데, 이 부분은 게임 내 주요 점프 스케어 중 하나다. 무력함과 마찬가지로 '그리 안전하지 못한 체크포인트'는 전형적인 비디오게임의 흐름을 뒤집으면서 플레이어를 깜짝 놀래키는데 기여한다. 깜짝 놀래키는 공포와 관련하여 언급할 마지막 부분은 지금까지 논의한 두 게임을 넘어 게임 내 플레이어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에일리언(Alien)> [11] 이나 <툼레이더(Tomb Raider)> [12] 같은 게임에서 리플리(Ripley)나 라라 크로프트(Lara Croft)는 (갑작스러워) 깜짝 놀래키는 방식으로 죽는다. 리플리가 제노모프(Xenomorph)에게 잡히는 장면이나 라라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건 속에서 손을 놓치는 장면 등은 플레이어를 깜짝 놀래키면서 그녀들이 죽거나 또는 어둠 속으로 추락할 것임을 예상하게 하는데, 이 모든 시퀀스에는 잔인한 유혈이 등장한다. 이러한 다양한 죽음의 시퀀스는 실패를 예감한 플레이어가 이번에는 어떤 끔찍한 방법으로 리플리나 라라를 죽게 한 것인지를 숨 죽인 채 온갖 애니메이션들을 봐야 함을 의미한다. 갑작스럽게 놀래키는 유형의 공포는 두려움에 대한 기대감, 겁을 먹으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 잘 디자인 된 게임플레이 경험에 대한 보상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로 우리를 다치게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다음의 점프 스케어를 기대하고 비명을 지르다가 웃어제끼면서 플레이를 이어간다. 갑작스러운 공포를 제공하는 호러 게임들이 초기 유튜버들의 커리어를 띄워준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갑작스러운 공포/놀래킴은 즐겁고 기억에 남으며 다른 누군가가 겁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공포/놀래킴은 호러 게임 장르의 기준과 기대치를 충족할 때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Persistent Motivating Fears 지속적으로 동기를 유발하는 공포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특정한 행동을 취할 때 우리의 감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하면서, 넬 반 데 모셀러(Nele Van De Mosselaer)는 허구적 게임 플레이어 찰스의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여기서 찰스는 공포 게임에서 슬라임과 맞닥뜨리는 등 비디오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을 대표한다: “화면 속에서 갑자기 초록색 슬라임 괴물이 자신을 향해 기어오자 찰스는 깜짝 놀랐다. 공포로 몸이 움츠러든 그는 콘트롤러의 스틱을 급하게 움직이면서 슬라임으로부터 도망쳤다. 자신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괴물을 보자 목숨이 위태로워진 찰스는 몸을 돌려 주먹으로 괴물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괴물은 고통스럽게 으르렁 거리면서도 찰스를 죽일 수 있었다 [13] ” 모셀러는 처음에는 도망치던 찰스가 몸을 돌랴 슬라임을 죽이려는 행동을 취하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괴물에 대한 찰스의 두려움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가 느낀 공포가 그로 하여금 괴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콘트롤 스틱을 급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었고, 또한 괴물이 너무 가까이 왔을 때는 공격 버튼을 눌러대도록 만든 것이다. 슬라임 괴물을 두려워 하지 않는 또 다른 찰스를 상상해보자. 그는 이미 세번이나 죽임을 당해서 괴물에 대해 (공포보다는)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이 찰스는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콘트롤 스틱을 사용하기 보다는, 괴물을 향해 가기 위해 스틱을 움직일 것이며 공격 버튼을 보다 열심히 눌러댈 것이다 [14] .” 모셀러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바란, 사소한 수준의 두려움일지라도 다양한 장르와 메커닉에 걸쳐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에 동기를 부여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공포(fear)는 놀람을 유발하는 순수한 정서적 반응을 넘어 오늘날의 게임 디자인에서 게임 내 행동과 메타게임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호러 게임 속에서 평범한 적 대신 끔찍한 좀비가 등장한다면 적에 대한 공격적 대응이 도피하는 반응으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공포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방정식에서 제외한다면 공포의 역할은 무엇일까? 인간은 다양한 것(어둠, 거미, 유령 등)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호러 게임이나 호러 관련 장르에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매일같이 다양한 공포(실직하면 어쩌지, 내 파트너가 나를 떠나면 어쩌지, 아프고 싶지 않아 등)를 접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을 주도한다. 한정 시간 이벤트를 제공하는 호요버스의 인기 가챠 게임들이나 <로스트 아크> [15]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16] 등 인게임 머니를 벌기 위해 매일 플레이하도록 유도하는 지속형 게임의 플레이 패턴에 대해 생각해보자.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는 이러한 유형의 게임 모델에 있어 핵심적인 원동력이다. 한정된 기회를 놓치거나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뒤쳐질 수 있다는 생각은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에 있어 플레이어들이 강박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만드는 합법적인 두려움이다. 이러한 게임들은 종종 중독적인 플레이 패턴과 더 연계되지만, 플레이어 집단 내에서 사회적 지위가 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슬렌더맨이나 좀비보다는 덜 폭력적으로 보일지라도 플레이어로 하여금 더 자주 게임을 플레이하고 행동을 취하게 만드는 동기가 된다. 게임에서 캐릭터가 죽어 플레이어가 실패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이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광범위한 두려움을 활용하는 것인 한편, 그럼에도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 죽음과 현실에서의 죽음이 동일한 위험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게임에서 죽는 것은 이미 우리 안에 정립되어있는 상실 및 그것을 피하려는 욕구를 자극한다. 게임은 상실을 어느 정도 영구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아블로(Diablo)>나 <파이어엠블렘(Fire Emblem)> 같은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시작할 때 '하드코어' 캐릭터를 만들거나 '영구 사망(permadeath)'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이는 게임 내에서 캐릭터가 한 번 사망하면 재시도를 하거나 체크포인트 같은 데서 부활할 수 없어 영원히 캐릭터가 삭제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스타일의 게임플레이는 꽤 인기가 있으며 게임 플레이에 긴장감과 흥분도를 높린다. 사람들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그것이 허구적인 것일지라도 자신이 캐릭터에 대해 내리는 모든 결정에 새로운 감정적 이해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Nuclear Anxiety and Lingering Terror 핵에 대한 불안과 지속되는 두려움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의 책 의 도입부를 보면 버디 홀리(Buddy Holly)나 제임스 딘(James Dean) 같은 유명인 사고 희생자들이나 체르노빌이나 보팔 등의 유명한 재앙, 그리고 결핵이나 에이즈 같은 악명 높은 질병의 이름들이 챕터 내에 크고 굵은 글씨로 눈에 띄게 표기되어 있다 [17] . 이러한 단어들은 우리 내면에 지속적인 공포와 불안을 일으키는 상징적 힘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한 것들은 과거의 비극적이고 끔찍한 사건에 대한 기억들을 우리의 마음 속에 집어넣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공포 - 과거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예상하게 되는 미래의 공포 - 를 각인시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두려운 예측은 겁에 질리도록 하는 공포(terror)로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공포 안에서 미래의 공포가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18] . 다시 <레지던트 이블>과 <폴아웃3>로 돌아오자. 이제 나는 <레지던트 이블>의 개들이 촉발시켰던 점프 스케어보다 수퍼-두퍼 마트의 약탈자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미국의 풍경을 담은 웨이스트랜드 내에서 약탈자들이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그들과의 첫 조우 이래 지속적으로 환기되었기 때문이다. 폴아웃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가 인간이 얼마나 절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폴아웃3>를 플레이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이었고, 이후 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내내 그런 느낌을 반복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거대한 두려움 - 여전히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핵 분쟁 및 그에 따른 두려움과 같은 [19] - 속에는 우리 사회가 갈수록 지속가능성을 잃어감에 따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 있고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그에 따른 공포로 인해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는 훨씬 더 단순하고 작은 가능성을 제시한다. 데이비드 페캠(David Peckham)은 "불안은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 대해 우리가 치르는 대가" [20] 라고 말한 신경과학자 조셉 르두(Joseph LeDoux)의 연구를 언급한 바 있다. 폴아웃과 같은 시리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존재하는 역사적인 그리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공포를 바탕으로 다가올 수 있는 미래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 <레지던트 이블>의 개들처럼 점프 스케어를 통해 단순히 사람이 깜짝 놀라는 반응을 일으키는 것 보다는, 수퍼-두퍼 마트에 잠입을 시도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는 여러 겹의 공포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호러, 공포, 패닉, 그리고 불안이 한데 아우러져 공포의 완전한 패키지로서 함께 제공되는 것이다. 그 공간의 분위기와 매달려있는 사체들은 내가 내 캐릭터에 가할 수 있는 끔찍한 결과를 예측하게 하는 공포를 야기한다. 발자국 소리를 듣거나 발각될 것 같다는 생각은 약간의 패닉을 느끼게 한다. 궁극적으로 폴아웃 세계의 약탈자들이 지닌 함의 및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지닌 끔찍한 가능성을 표상하고 있는 방식이야말로 게임 그 자체의 경계를 넘어 우리와 우리의 세계가 어떻게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나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기억하게 만든다는 점이 제일 중요하다. 게임은 그 어떤 매체보다도 우리가 공포스러운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의미있고 강력한 공포를 만들어내는데 있어 몰입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진정한 공포는 갑작스러운 소리나 끔찍한 괴물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서 발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및 그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라는 존재가 지닌 끔찍한 의미가 그러한 놀램과 함께 고조될 때 발생한다. 만약 게임이 이런 종류의 위협을 - 그것이 아무리 먼 곳에 있는 것일지라도 - 야기하기 위해 겁주기/놀래키기(scare)를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움을 느낄 때다. 갑작스럽게 놀래키는 공포(sudden frights)은 그 원천이 일상적인 것이든 초자연적인 것이든 간에 예상치 못했을 때 발생한다. 반대로 지속적인 공포와 불안은 '만약에(what if)?'로부터 야기된다. 폴아웃의 경우 너무나 현실적으로 무너진 사회의 모습을 '만약에?'으로 다루었다. 진짜가 아님을 알면서도 겁을 먹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위안도 분명 있겠지만, 우리 자신이 지닌 위험의 가능성 보다 더 불안한 것이 과연 있을까? [1] Capcom, 1996. [2] Bethesda Softworks, 2008. [3] Red Barrels, 2013. [4] Frictional Games, 2010. [5] Mads Haahr, ‘Playing with Vision: Sight and Seeing as Narrative and Game Mechanics in Survival Horror’, in Interactive Storytelling, ed. Rebecca Rouse, Hartmut Koenitz, and Mads Haahr (Cham: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8), 193–205, https://doi.org/10.1007/978-3-030-04028-4_20 . [6] Sara Ahmed, ‘The Affective Politics of Fear’, in The Cultural Politics of Emotion (Edinburgh, UNITED KINGDOM: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4), 62–81, http://ebookcentral.proquest.com/lib/concordia-ebooks/detail.action?docID=1767554 . [7] Amnesia: The Dark Descent Full HD 1080p/60fps GTX1070 Longplay Walkthrough Gameplay No Commentary, 2016, https://www.youtube.com/watch?v=hyUf3Ctx-Ck . [8] Rebecca Roberts, ‘Fear of the Unknown: Music and Sound Design in Psychological Horror Games’, in Music In Video Games (Routledge, 2014). [9] Tanya Krzywinska, ‘Hands-on Horror’, Spectator 22, no. 2 (2002): 12–23. [10] OUTLAST | Full HD 1080p/60fps Longplay Walkthrough Gameplay No Commentary,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zZNfd04GO-U . [11] Creative Assembly, 2014. [12] Crystal Dynamics, 2013. [13] Nele Van De Mosselaer, “How Can We be Moved to Shoot Zombies? A Paradox of Fictional Emotions and Actions in Interactive Fiction.” Journal of Literary Theory 12(2), 2018: 286. [14] Ibid., 286-287. [15] Smilegate, 2019. [16] Blizzard Entertainment, 2004. [17] Brian Massumi. “Everywhere You Want to Be: Introduction to Fear.” The Politics of Everyday Fear.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3; 3-38. [18] Joseph LeDoux. Anxious: Using the Brain to Understand and Treat Fear and Anxiety. New York: Penguin Books, 2015. [19] Ryan Scheiding. “War Never Changes? Creating an American Victimology in Fallout 4.” Representing Conflicts in Games: Antagonism, Rivalry, and Competition. Edited by Björn Sjöblom, Jonas Linderoth, and Anders Frank. London: Routledge, 2023; 135-152. [20] Joseph LeDoux, Lecture, New York State Writers Institute 2016. Cited in David Peckham, Fear: An Alternative History of the World. London: Profile Books, 2023, 7.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마크 라제네스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온라인 게임의 독성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공평하고 즐거운 놀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게임 내에서 더 많은 긍정적인 조건을 들어내기 위한 독성 현상에의 이해를 추구한다. 스팀 마켓플레이스와 DOTA 2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고 곧 출시될 '트위치 마이크로스트리밍'의 공동 저자이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RTT : 현대의 전면전을 디지털 세계에 격리하기

    결국 RTT/워게임이 만들어지고 플레이되는 이유와 목적을 이해하는게 우선이다. 최초 프로이센 왕국에서 이루어진 워게임이 그러했듯, 결국 이 게임들은 전술의 개념적 검증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고자 하며 그래서 그 최초의 워게임의 특징을 답습하는 양상을 띄게 된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RTT, 현대전, 전술, 시뮬레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yungKyu Lee Game journalist (2014–), writer (2006–), gamer (1996–).

  • 실패한 혁명의 잔여물로서의 디스코 음악:〈디스코 엘리시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혁명이라는 단어는 상당부분 고난과 실패의 의미로 다가온다. 게임이 다룬 파리코뮌 혹은 그 이후의 러시아 혁명, 가깝게는 중동에서의 혁명과 홍콩의 우산혁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혁명들이 실패했고 민중들은 다시 고난의 상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그 모든 역사 속 실패한 혁명의 잔해를 딛고 사는 사람들이며, 디스코라는 음악 또한 60년대의 실패가 낳은 아쉬움과 침잠의 흔적일 것이다.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이 굳이 실패한 혁명의 도시를 배경으로 삼아 디스코라는 흘러간 장르를 꺼내붙이는 이유는 이 게임의 주제가 살인사건이 아닌 ‘실패한 혁명의 역사’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 Back 04 GG Vol. 22.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Back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19 GG Vol. 24. 8. 10. PC ESD플랫폼 ‘스팀’에는 늘상 좀비물이 넘쳐흐른다. AAA급 타이틀은 말할 것도 없고, 저예산의 소규모 게임들로 가면 온통 좀비 천국이다. 좀비의 인기는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호러 장르라면 좀비는 더욱 본격적이긴 하다.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게임 속 좀비의 등장과 변화 단순하게 좀비라는 개념을 처음 게임 안에 가져다 놓은 게임을 꼽으라면 1984년의 <좀비 좀비Zombie Zombie>를 꼽을 수 있겠지만, 이 게임의 경우는 좀비 게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도의 특성만을 보여주었다. 좀비 영화가 나름의 흥행을 이어가던 시절, 이 게임은 그저 영상물로서 갖는 좀비의 인기를 비디오게임으로 가져오는 정도에 머물렀다. 고층 빌딩 위에서 좀비라고 불리는 적들을 밀어 낙사시키는 방식의 간단한 규칙 안에서 적 캐릭터들의 행동은 굳이 좀비가 아니어도 무방할 패턴이었기에 본격적인 좀비 게임의 시작이라고 <좀비 좀비>를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 <좀비 좀비>는 좀비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게임규칙 면에서 좀비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블 데드Evil Dead>(1984)나 <고스트 앤 고블린(일명 ‘마계촌’) Ghost N Goblins>(1985) 등의 게임부터는 우리에게 익숙한 좀비의 행동패턴이 게임 캐릭터 안에도 들어오는 흐름을 볼 수 있다. 다소 느릿한 움직임과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패턴을 통해 적 유닛으로서의 행동에 좀비 특유의 방식들이 녹아들기 시작하지만, 여기서도 언데드라고 불리는 그룹과 엄밀하게 구분해 좀비라고 부를 수 있는 만한 유니크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다. * <이블 데드>와 <마계촌>부터는 언데드와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좀비의 행동적 특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본격적으로 좀비라는 개념이 게임 안에서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대중적 게임을 꼽으라면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1996)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언데드와 구분되는, 명확한 좀비로서의 외형과 움직임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게임 안의 공간이 어느 정도 3차원 공간으로 잡히는 시기와 엇비슷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적으로서 좀비가 갖는 특성 중 하나인 느릿한 움직임이 3차원 공간에서의 공격방식인 ‘조준하고 쏘기Aim and shoot’에서 좀더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케이드 오락실에서 실감형 게임으로 직접 전자총을 들고 조준해 사격하는 방식인 <하우스 오브 데드House of Dead>(1997)이 주요 대상으로 좀비(혹은 언데드)를 대상으로 한 것도 어느 정도 같은 영향력 하에 나타난 일로 보인다. * 3차원 공간에서의 에임 앤 슛에서 좀비의 행동은 좀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느릿한 움직임’이라는 좀비의 특성은 고정된 것은 아니기에 함부로 속단하기 어렵다. 오히려 2010년대 이후의 게임들에 등장하는 좀비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군집으로서의 양상이다. <데이즈 곤Dayz Gone>(2019), <그들은 수백만They are billions>(2017)등은 결코 느리다고 볼 수 없는 움직임의 좀비들을 투입하면서 대신 엄청난 숫자의 물량으로 밀려들어오는 좀비로부터 버터내야 하는 도전을 안기는 형태로 변화했다. 오늘날 좀비를 주적으로 삼는 많은 게임들에서 나타나는 좀비의 특성은 그래서 단일하다기보다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디지털게임과 좀비 디지털게임의 초창기부터 좀비라는 대상은 적으로 자주 활용되었는데,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좀비가 활용되는 것과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디지털게임의 특수성이 도드라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워킹데드>같은 드라마들에서 좀비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적대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외형과 유사해 더욱더 불쾌감과 공포감을 주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게임의 경우에는 이러한 적에게 공격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사회적으로 디지털게임은 폭력성에 관한 오해를 자주 받곤 하지만, 실제로 게임 안에서 강렬하고 적극적인 폭력행동을 수행하는 일은 게이머에겐 때론 버거운 윤리적 부담감을 안겨주는 일이 적지 않다. 유명한 사례인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에서의 ‘노 러시안’ 미션에서 많은 게이머들이 무고한 민간인에게 화력을 투사하라는 명령 앞에서 머뭇거렸다는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이것이 비록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폭력의 사용이 매우 높은 심리적 장벽 앞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런 면에서 특히 액션이 중심이 되는 게임이라면 좀비는 매우 그럴듯하게 윤리적 문제를 비껴나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좀비의 신체는 인간의 신체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명백하게 이는 인간이 아님을 드러낸다. 작은 머리와 직립보행하는 두 다리, 양 팔을 가진 좀비의 신체는 액션게임에서의 조준과 식별 과정에서라면 실루엣상으로는 인간을 향한 사격과 동일하지만, 인간을 닮은 이들 폴리곤 위에 덧씌워진 텍스처는 아주 강력하게 이들이 인간이 아님을 어필한다. 사격의 기술적 과정에서는 인간을 쏘는 것과 동일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좀비라는 존재는 막대한 화력을 투사할 때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앞서 이야기한 윤리적 장벽을 우회하며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좀비를 대상으로 하는 게임들의 상당수가 중화기를 동원한 강한 화력을 선보이는 구조로 만들어지는 것도 같은 의미다. 미니건이나 소형 전술핵과 같은 대량살상이 가능한 병기들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지만, 이를 인간을 향해 쏘는 일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좀비와 같은 대상이라면 보다 강력한 무기를 디자인하고 그 화력을 맛볼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근현대 화기가 갖는 위력이 만드는 강한 스펙터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좀비라는 타겟은 다른 매체와는 다른 게임만의 특징으로 거듭난다. 이러한 윤리적 문제는 좀비가 아닌 다른 대상으로도 나타나는데, <콜 오브 듀티: 나치 좀비> 나 <스나이퍼 엘리트: 나치 좀비 아미>와 같은 나치와 좀비를 결합한 게임들이다. 나치와 좀비의 콜라보레이션은 매우 간단한 의도가 담겨 있다. 중화기로 화력을 들이부어라! 이들은 ‘죽어도 싼’존재이기 때문이다! * 나치와 좀비를 콜라보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게임 속 좀비의 새로운 트렌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 속 좀비는 한 시기, 한 모습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며, 매 시기마다 그 시기에 가장 걸맞는 형태로 변화해 온 바 있다. 그리고 이런 좀비는 윤리 문제를 넘어선 강한 화력의 투사대상이라는 관념 바깥으로도 확장되는 중이다. <식물 대 좀비Plants VS Zombies>에서 좀비는 전통적인, 위협적이지만 느릿한 존재이지만 공포보다는 코믹한 형태로 재구성된 대상이다. 코믹한 좀비는 혼자 사는 너드 아저씨 주인공의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들어오지만, 이를 막아내는 것은 감자, 해바라기, 콩 같은 앞마당의 채소들이다. 외부의 조력 없이 혼자 자신이 사는 집의 앞마당yard을 침공해오는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게임 속 플레이어의 활동은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물이지만, 이 때의 좀비는 공포가 제거된 대상이다. * <식물 대 좀비>에서 좀비는 공포를 뺀 대상으로 나타난다.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에는 동충하초 같은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좀비가 적으로 나오지만, 사실상 이 게임에서 가장 무섭고 위협적인 적은 좀비가 아니라 사람이다. 자주 이야기되는,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이야기가 <라스트 오브 어스> 세계관과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고, 이 속에서 좀비는 ‘차라리 사람보단 낫더라’라는 이야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폴아웃>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구울이라는 집단을 상정하는데, 방사능에 피폭되어 인간의 골격을 하고 있지만 외형은 좀비와 닮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명확하게 좀비라는 존재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좀비들과는 달리 지성을 갖고 집단을 이루며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존재이며, 플레이어의 동료나 아군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좀비라는, 한때 ‘절대로 인간이 아님’을 강변하며 존재하던 개념 또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를 묻던 그 장면들처럼, 최근의 적지 않은 게임들은 완벽한 상상 속 창작물인 좀비 또한 반드시 인간으로부터 분리되고 구분지어져야만 하는 대상인가를 역으로 묻는다. 어떤 면에서, 좀비에 대한 이야기는 포스트휴먼에 관한 최근의 논의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아서 왕의 죽음: 〈레드 데드 리뎀션 2〉, 기사 로맨스, 종말과 지연의 이중주(장려상)

    락스타 게임즈의 웨스턴 RPG 〈레드 데드 리뎀션 2〉(이하 〈레데리2〉)는 여러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주인공 아서 모건을 아서 왕에 빗댄다. 이들이 미국 서부 개척 시대 끝물의 무법자를 별안간 중세 원탁의 기사에 견준다면, 에필로그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잭의 독서는 여태 플레이한 내용을 또 한 편씩의 기사 로맨스로 요약한다1). 오늘날 낭만적 사랑을 다루는 장르로 통용되는 로맨스(romance)는 본디 서양 중세에 등장한 서사 문학 양식이자 장르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기사 개인의 모험과 탐색, 사회적 규범과 폭력적 충동 사이의 긴장, 숙녀와의 사랑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 Back 아서 왕의 죽음: 〈레드 데드 리뎀션 2〉, 기사 로맨스, 종말과 지연의 이중주(장려상) 07 GG Vol. 22. 8. 10. 아서: 우리 집안은 영국인도 아니었다고. 숀: 아무렴, 아서왕이시여! 미키: 좋은 이름이에요. 강한 이름입죠. 왕 같은 이름! 저만의 왕 같은 분이세요, 아서 씨. 존: 서부 모험 얘기가 재밌나 보지? 잭: 이젠 별로요. 기사 얘길 읽고 있었어요. 있잖아요, 원탁의 기사들요. 존: 거기 왕 이름이 뭐더라? 잭: 아서 왕도 있고, 랜슬롯 경이랑, 귀네비어 왕비랑, 잔뜩 더 있어요. 존: 그 이름… 잭: 좀 맘에 들어요. 존: 그거 알아? 아빠도 그래. 락스타 게임즈의 웨스턴 RPG 〈레드 데드 리뎀션 2〉(이하 〈레데리2〉)는 여러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주인공 아서 모건을 아서 왕에 빗댄다. 이들이 미국 서부 개척 시대 끝물의 무법자를 별안간 중세 원탁의 기사에 견준다면, 에필로그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잭의 독서는 여태 플레이한 내용을 또 한 편씩의 기사 로맨스로 요약한다 1) . 오늘날 낭만적 사랑을 다루는 장르로 통용되는 로맨스(romance)는 본디 서양 중세에 등장한 서사 문학 양식이자 장르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기사 개인의 모험과 탐색, 사회적 규범과 폭력적 충동 사이의 긴장, 숙녀와의 사랑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본디 〈레데리2〉가 장르적 상상력을 빚진 할리우드 웨스턴 시네마의 원형적 트로프가 중세 기사 로맨스와 공유하는 바가 많다는 점, 나아가 웨스턴 장르의 발달에 크게 영향을 미친 일본 사무라이 시네마가 중세 유럽 봉건제와 흔히 비교되는 에도 시대 사회 구조를 모티프 삼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인유 자체는 그리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다. 그러나 〈레데리2〉의 기사 로맨스 인유는 단지 두 장르의 표면적 유사성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사 로맨스 장르를 참조점 삼아 〈레데리2〉는 내러티브는 물론 오픈월드까지 아우르는 고유한 주제의식을 구축한다. 자기기만의 루도내러티브 협박, 갈취, 폭행, 재물절도, 가축절도, 침입, 강도, 강간, 밀렵, 살인미수, 탈옥 2회. 이는 〈레데리2〉에서 자행 가능한 범죄를 열거한 것이 아니다(이 게임이 제공하는 범죄-유희의 목록에 성폭력은 포함되지 않는다). 영국 중세 말, 로맨스 『아서 왕의 죽음』을 집필한 기사 토마스 말로리 경의 화려한 범죄 경력이다. 아서 왕 전설을 집대성하며 그처럼 고귀한 기사도의 공동체를 그려낸 장본인이 정작 “기사도라기보다 모범적인 깡패질의 기록”(Cooper x)에 수렴하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말로리의 독자들을 꾸준히 당혹스럽게 만들어 왔다. 명예로운 신념이 이끄는 삶에 대한 선망과 직업범죄자로서의 삶의 이력을 한 사람 안에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 어쩌면 〈레데리2〉의 플레이어야말로 말로리의 자아분열적 모순을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단지 앞의 질문이 무법자 아서 모건을 플레이하는 경험을 요약하는 문장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레데리2〉가 자기기만이 얼마나 강력하게 자기모순을 지탱하는 기제인지, 나아가 자기성찰이 과연, 어떻게, 얼마나 가능한지 묻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 아서의 일기. “매번 끝이 없다. 현상금사냥꾼. 핑커튼. 법집행인. 가는 곳마다 문명이 더 늘어선다. 어쩌면 앞으론 이게 다일지도 모른다. 차차 알게 되겠지. 이곳이 슬슬 기분나쁘다. 서부의 탁 트인 땅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나마 남아있는 땅으로라도. 하지만 그곳마저도 내가 기억하던 모습이 아니다.” 손글씨에 드로잉을 곁들인 일기는 이 과묵한 무법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내밀한 창구이자, 플레이어의 정서가 주인공 및 게임의 내러티브와 호응하도록 조율하는 가이드로 기능한다. 1899년. 오프닝에서부터 〈레데리2〉는 한 시대의 끝을 배경으로 삼겠다 선언한다. 〈레데리2〉의 세계는 문명 대 야생이라는 오래된 신화적 내러티브의 시공간이다. 선형적 흐름으로 표상되는 근대 ‘역사의 진보’와 함께 백인 문명은 기어이 서부의 야성을 길들였다. 제도적 권력보다 개인의 물리적 폭력이 훨씬 선명한 실체를 지니던 서부의 경계적 공간에서 활개 쳤던 무법자들은 이제 국가권력·자본주의·물리적 폭력의 결합체인 미연방 및 핑커튼 요원들에게 뒤쫓기는 처지다. 아서가 20년을 충성한 반 더 린드 갱은 낯선 풍경들 사이에 갇혀 이리저리 내몰리며 몰락의 수순을 걷고, 시나리오 후반부터 급격히 쇠약해지는 아서의 병든 육신은 플레이 경험을 세계의 풍경과 동기화시킨다. 역사의 흐름과 인간 문명의 발전을 ‘황금시대’로부터의 점진적 쇠퇴로 인식하는 중세 역사관처럼, 〈레데리2〉의 게임 세계는 새 시대의 도래를 기념하기보다 이전 시대의 종말을 애도한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무법자의 존재론으로 거듭난다. 우리 시대는 다 지나갔으며 세상이 더는 우릴 원치 않는다는 아서의 한탄은 무법자들의 좌절감과 위기의식을 간명하게 요약한다. 〈레데리2〉 재현의 철학의 대변자이기도 한 동시대 사상가 에블린 밀러가 문명 대 야생의 신화적 구도를 구세계 문명의 퇴폐와 신세계 자연의 순수로 변주하고 후자로의 회귀를 주장한다면, 밀러를 정신적 지주로 삼는 더치 반 더 린드의 리더십은 이를 다시 문명 대 무법자의 구도로 전유함으로써 범죄에 반체제적 투쟁이라는 대의를 덧씌운다. 더치와 아서는 무법자가 현재에서 미래로 돌이킬 수 없이 나아가는 근대 역사의 선형적 시간성과 불화하는 존재라는 핵심적 인식을 공유한다. 더치가 설파하는 사회 개혁이나 원시의 지상낙원 타히티로의 도피라는 비전은 아서의 향수와 마찬가지로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좋았던 과거’를 향한다. 하지만 무법자들의 세계관은 역사적 현실에 시대착오와 자기기만이 뒤섞여 만들어진 왜곡의 결과물이다. 그들 마음속의 더 조화롭고 더 단순했던 과거, 생계형 강력범죄자가 환영받았던 과거는 존재한 적 없다. 따지고 보면 문명 대 야생의 이분법에서 무법자가 야생의 영역에 속하며 문명과 적대해 왔노라는 단순명쾌한 환원부터가 환상이다. 그들은 스스로도 문명 없이는 존재 불가능한, 서부 개척 시대 백인 문명 경계의 최전선이지, 야생이나 자연의 일부였던 적은 없다. 인간 제도가 없는 타히티(식민주의적 환상이다)로의 탈출을 꿈꾸지만, 텐트에서 축음기로 오페라를 감상하고, 대도시에서 목격한 세련된 삶에 매혹을 숨기지 못하는 더치의 모순처럼. 인지왜곡을 바탕으로 무법자들은 시대착오를 반복한다. 익숙한 방식 이외에는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할 다른 방법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금을 기대하고 전차역 금고를 턴다거나(물론 푼돈밖에 없다) 석유 재벌 콘월을 살해하는(시스템화된 자본주의는 가령 적대 갱의 리더를 죽이면 전체가 와해되는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식의 행동은 집단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과오는 막연한 위기의식과 그럴듯한 수사를 갖췄을 뿐, (게이머에게는 『호모 루덴스』로 더 유명할) 요한 하위징아가 『중세의 가을』에서 조명한, 중세 말 부르고뉴와 네덜란드 등지 기사들의 시대착오적인 “기사도적 환상”이나(92), 리 패터슨이 초서를 통해 진단한, 중세 후기 영국 기사계급의 “자기인식의 실패”(230)에서 비롯한 정체성의 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된다. 급변하는 역사적 풍경에 맞서 만들어낸 자기기만적 세계관의 폐쇄회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까닭이다. 추억보정이란 이름의 인지왜곡을 걷어내고 나면 과거의 실체는 어떤 모습일까? 갱이 돌이킬 수 없이 와해되는 순간에야 아서와 존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더치는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었던 적이 있는가? 기실 이는 아서를 대체해 다음 세대 주인공이 될 존 마스턴이 꾸준히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존: 가끔은 세상이 우리가 기억하던 그런 모습이었던 적이 있긴 했는지 모르겠어. 우리들이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사람들이었던 적이 있긴 했는지. 아서: 내가 그랬지, 그렇게 땅굴 파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마스턴. 그런 생각 아무 도움 안 돼. 이동 중 발생하는 이 대화는 무법자들의 세계관과 자기인식이 어딘가 뒤틀려 있음을 일찍부터 암시하는 중요한 실마리지만, 플레이어가 목표 지점까지 너무 빨리 도착하면 대사를 출력할 시간이 부족해 생략된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충직한 아서처럼, 당장의 임무 완수를 최우선 삼는 플레이어는 무법자들의 인지왜곡을 회의하거나 성찰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아서가 묵살했던 존의 질문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아서의 결핵이 밝혀지는 시퀀스에서, 오직 명예 수치를 높게 쌓은 아서에게만, 보이스오버로 되돌아온다. 아서의 자기성찰은 오직 그를 조종하는 플레이어가 반복적인 선행을 통해 아서 내면에 선한 마음이 있으며, 그가 명예와 범죄 사이에서 자기분열적 모순을 치열하게 경험하고 있노라는 루도내러티브를 구성할 때라야만 가능해진다. 그렇게 죽음을 앞두고서야 아서는 선한 신념에 이끌리면서도 범죄를 일삼는 자기모순을 지탱해 온 것이 다름 아닌 스스로의 기만이었으며, 끝내 자신의 죽음을 결정한 것이 바로 그 자기기만이었음을 깨닫는다. 반면 명예 수치가 낮은 아서에게 자기성찰의 기회는 없다. 자기 자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맞느냐는 질문은 악인에 가까운 아서의 뇌리를 죽는 순간까지 스치지 않는다. 또다른 ‘아서 왕의 죽음’으로서〈레데리2〉는 자기인식의 실패가 이끄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체험 가능한 서사로 구현한다. 종국에는 〈레데리2〉의 철학을 대변해 온 에블린 밀러도 같은 운명을 맞는다. 서구 문명의 병폐를 비판하는 내내 스스로 그 일부였음을 뒤늦게 깨달은 밀러의 최후를 목도한 뒤 존은 일기에 적는다. 그 많은 학식도 가엾은 밀러 씨를 “자기 스스로 생각했던 것만큼”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진 못했노라고. 궁극적으로 이는 〈레데리2〉 자신조차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과오다. 〈레데리2〉는 무법자들을 역사적 몰락의 풍경에 깊이 연루된 존재로 묘사하기 위해 이들을 오히려 탈역사화하는 모순을 범한다. 에스더 라이트는 〈레데리2〉가 서부의 역사를 곧 서구 근대 문명 진보의 역사로 표상하는 전통을 성찰하는 태도를 취하지만, 종국에는 서구·백인·남성 중심 진보의 서부 역사관을 재생산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Rockstar Games,” “Women out of Date”). 이 재생산 과정에서 게임은 번번이 반 더 린드 갱이나 ‘옛 서부’의 과거를 상징적 인간 역사 이전의 상태로 표상하려는 충동에 시달린다. 결국 〈레데리2〉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무법자들이 범하던 과거의 편집이라는 오류를 좀더 교묘한 방식으로 수행한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레데리2〉에서 성찰은 가능하지만, 오직 최후의 순간에야 가능하다. 그리고 이 필연적인 완성이자 종말의 순간을 지연하는 것이 〈레데리2〉의 전략이다. 지연하는 오픈월드, 팽창하는 게임 오픈월드 시스템을 빼놓고 〈레데리2〉를 제대로 논의하기는 불가능하다. 세기전환기 미국 땅을 방대하고, 치밀하며, 상호작용 가능한 공간으로 구현한 〈레데리2〉의 게임 세계는 발매 이래 꾸준히 찬사의 대상이었고, 아직까지 번번이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하지만 이는 게임을 둘러싼 불평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레데리2〉의 오픈월드가 동시대 게임 테크놀로지로 구현 가능한 플레이어 자유도와 비선형적 게임 경험의 지평을 확장하는 반면, 상술한 메인 시나리오는 극단적으로 선형적인 플레이 경험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레데리2〉에서 시나리오 미션과 오픈월드 상호작용, 선형성/비선형성 간 괴리와 불협화음은 전례 없이 극대화된다. 로맨스의 오랜 관심사이기도 했던 이 긴장을 〈레데리2〉는 오직 디지털게임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주제화한다. 서사의 비집약성과 비선형성은 문학 양식이자 장르로서 로맨스를 특징짓는 요소다. 로맨스는 결말을 향해 내달리기보다 산만하게 떠돌아다니며, 우연한 조우를 통해 모험의 원래 목적과 상관없는 곁가지로 빠지기를 반복한다. 로맨스의 이러한 성격은 서사의 필연적 선형성에 저항하는 충동으로 해석되곤 한다. 패트리샤 파커는 로맨스가 불가피한 결말을 끝없이 지연하는 팽창의 양식이라고 정의한 바 있고(4, 63), 리 패터슨은 로맨스가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에 주목함으로써 역사적 의식을 억누르는 힘을 지닌 장르라고 해석한다(107). 기사 로맨스의 주인공인 편력기사(knight errant)의 errant는 모험의 방랑을 뜻하지만, 인식적·도덕적 탈선을 뜻하는 error에서 파생된 말이기도 하다. 로맨스의 팽창하는 모험은 이야기를 지연하고, 필연적인 종말과 완성의 순간을 유예하며, 선형적 시간성에 저항하며 서사적·물리적·도덕적 방황 자체의 즐거움에 주목하는 일이다. 이는 〈레데리2〉가 역사에 뒤쫓기는 무법자 아서 모건을 플레이하는 경험을 통해 구현하는 바이기도 하다. * “실패: 잘못된 말에 안장을 얹었습니다.” 일단 시나리오 미션에 진입하면, 시시각각 개입하는 시스템 인터페이스의 지시사항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다간 온갖 기상천외한 사유로 게임오버를 당하기 십상이다. 〈레데리2〉의 시나리오는 선형적 시간성에 관한 자의식적 루도내러티브를 구성한다. 증기기관차처럼 내달리는 근대 선형적 역사의 흐름을 구시대의 무법자는 거스를 수 없다. 〈레데리2〉가 전작 〈레드 데드 리뎀션〉(이하 〈레데리1〉)의 프리퀄임을 고려하면, 예정된 종말의 미래로 치닫는 〈레데리2〉의 시간의 흐름은 더더욱 필연적이고 불가피하게 다가온다. 아서나 플레이어는 한 시대의 끝을, 갱의 분열과 몰락을, 아서 자신의 죽음을 결코 막을 수 없다. 시나리오 미션이 구성하는 게임플레이의 선형성 역시 플레이어 행위자성의 감각을 저해한다. 시나리오 미션 내내 플레이어는 시스템 인터페이스의 개입을 끊임없이 마주한다. 정확히 특정 지점으로 이동해 정확히 특정 행동을 수행하라는 지령은 종종 강제적인 조작 매뉴얼에 가까워지고, 여기서 이탈해 비선형적 플레이를 추구하는 시도는 게임오버로 차단된다. 결국 이 손쓸 수 없는 몰락의 이야기를 진행하며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자유란 기껏해야 번번이 돌아오는 전투 구간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살상을 자행할지 정도뿐인데, 이는 아서가 시대의 변화 앞에 좌절감을 느끼며 폭력적 충동을 다스리기 어렵다고 고백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주체를 좌절시키는 (역사와 게임 시스템의) 선형적 힘이야말로 〈레데리2〉의 서사와 플레이경험이 동기화되는 지점이다. 반면 〈레데리2〉의 비선형적 오픈월드 시스템은 이 선형적 시간성에 저항하는 지연과 팽창의 경험을 극대화한다. 오픈월드는 게임플레이를 시나리오로부터 이탈시키고, 사건과 사건 사이의 틈을 비집고 팽창시킴으로써 선형적 시간의 흐름을 지연한다.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두 세계는 암묵적으로 전혀 다른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 시나리오 미션에서 반 더 린드 갱의 몰락이 조밀한 인과관계 속에서 긴박하게 진행되는 반면, 오픈월드에서는 밤낮이 수없이 바뀌며 아서의 수염이 자라고 체중이 변할지언정 갱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선형적 플레이를 조작 단위로 강제하던 시스템 인터페이스의 개입이 몰입적 플레이를 강조하는 오픈월드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은 물론이다. 오픈월드의 전례 없는 규모와 디테일, 높은 상호작용성은 물리적 플레이타임은 물론, 시나리오에서 좌절되었던 행위자성의 감각마저 팽창시킨다. 실패·도피·배신의 드라마의 구심점인 갱 캠프를 떠나 플레이어는 드넓은 자연을 탐험하며 수백 종의 동물들을 관찰하고 사냥하거나, 길에서 우연히 조우하는 행인과 상호작용하거나, 마을에 들어가 목욕과 이발을 한 뒤 포커를 치고 짐승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고, 갱의 명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온갖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비선형적 활동에 역동적으로 반응하는 오픈월드는 자유로운 자기실현의 감각을 통해 플레이어를 끝없이 붙들어 놓는다(비약적으로 불어나는 플레이타임이 암시하듯 이 행위자성 감각의 팽창이야말로 게임플레이의 즐거움의 요체인지도 모른다). 〈레데리2〉 오픈월드의 비선형적 플레이경험은 선형적 역사의 시간에 맞서 종말의 미래를 끝없이 유예하는 지연의 시간성을 구성한다. 결핵으로 소진되어 가는 아서의 생명조차 선형적 시간이 지배하는 시나리오 미션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영원하다. 역사 바깥에, 비선형적 편력의 세계에 머무는 한 아서 왕은 죽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자기기만일 것이다. 서부의 가을, 또는 “끝없는 여름” 〈레데리2〉는 개인을 좌절시키는 역사의 흐름과 그것을 뿌리치려는 개인의 충동 간 긴장을 게임화한다. 이는 아서의 죽음 이후 에필로그와 포스트게임의 플레이어 캐릭터로 거듭나는 존 마스턴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에필로그에서 존은 폭력의 세계에서 벗어나 정직한 삶을 일구고, 옛 배신자에게 복수함으로써 과거에 매듭을 짓는다. 엔딩크레딧 시퀀스는 〈레데리2〉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레데리1〉을 예고한다. 마침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 존과 애비게일의 결혼식 장면과 정부 요원들이 그의 자취를 추적해 오는 장면이 교차하고, 그 위로 게임 클리어 업적을 달성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업적 이름은 “끝없는 여름”이다. 크레딧이 모두 지나가고 나면 마침내 시나리오 미션의 제약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포스트게임 오픈월드를 존과 플레이어는 영원히 누빌 수 있다. 〈레데리2〉의 결말로부터 〈레데리1〉의 오프닝으로 향하는 이 거역 불가능한 선형적 시간 한가운데서, 머지않아 또다시 찾아올 폭력과 죽음의 미래는 끝없는 여름의 정지된 시간 속에 언제까지고 유예된다. 하지만 이는 다가올 미래를 없는 일로 만들지는 못한다. 머지않아 불청객이 방문할 것이고, 존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폭력의 세계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유로워졌다고 믿었던 순간 자기 손으로 일군 농장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을 것이다. 결국 〈레데리2〉의 존은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착오에 빠진다. 그는 무법자였던 과거를 청산함으로써 개인의 역사로부터의 자유를, 복수를 통해 되찾은 돈으로 은행빚을 청산하고 자기 소유 농장을 유유자적 경영함으로써 동시대 사회라는 역사로부터의 자유를 얻는다. 포스트게임 오픈월드의 영원한 여름의 시간 속에서 선형적 시간은 힘을 잃고, 무한한 활동의 자유 속에 행위의 인과는 의미를 상실한다. 물론 이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로부터 4년 뒤, 〈레데리1〉은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 엔딩크레딧 시퀀스 위로 뜨는 에필로그 클리어 업적 달성 메시지, “트로피 획득! 끝없는 여름”. 하지만 이 여름이 어떻게 끝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개인이라는 (미국적인) 꿈이 얼마나 큰 착각이며 자기기만이었는지 무자비하게 폭로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결국 존 마스턴은 다시금 세상이 자기가 생각하던 그런 곳이 아니었음을,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운명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모든 것이 가을을 가리키고 있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한 서부의 여름은 영원할 것이므로. 그렇게 아서 왕의 죽음 뒤에도 존과 플레이어는 다시 한번 종말을 지연하고 인식적 과오 속에서 즐거움이 팽창하는 ‘로맨틱한’ 편력을 계속한다. 끝없는, 여름이었다. 1) 오늘날 낭만적 사랑을 다루는 장르로 통용되는 로맨스(romance)는 본디 서양 중세에 등장한 서사 문학 양식이자 장르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기사 개인의 모험과 탐색, 사회적 규범과 폭력적 충동 사이의 긴장, 숙녀와의 사랑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참고문헌 Cooper, Helen. Introduction. Le Morte Darthur: The Winchester Manuscript, by Sir Thomas Malory, edited by Cooper, Oxford UP, 2008, pp. vii-xxx. Huizinga, Johan. Autumntide of the Middle Ages: A Study of Forms of Life and Thought of the Fourteenth and Fifteenth Centuries in France and the Low Countries. Translated by Diane Webb, edited by Anton van der Lem and Graeme Small, Leiden UP, 2020. Parker, Patricia A. Inescapable Romance: Studies in the Poetics of a Mode. 1979. Princeton UP, 2015. Patterson, Lee. Chaucer and the Subject of History. U of Wisconsin P, 1991. Red Dead Redemption 2. Rockstar Games, 2018. Wright, Esther. “Rockstar Games, Red Dead Redemption, and Narratives of ‘Progress.’” European Journal of American Studies, vol. 16, no. 3, 2021, pp. 1-19. ---. “Women Out of Date.” Bullet Points Monthly, December 2018, https://bulletpointsmonthly.com/2018/11/12/women-out-of-date/. Accessed 11 June 202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선오 영문학을 전공하고 중세 로맨스에서 여성의 사랑이 재현되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게임은 오랫동안 꾸준히 플레이해 왔지만, 특히 중학생 때 코에이의 대항해시대 프랜차이즈를 접하지 않았더라면 삶의 궤적이 전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비디오게임, 영화, 드라마 등 동시대 미디어가 역사, 역사적 배경, 그리고 역사와 개인(특히 여성)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 당신의 기억을 <언패킹>: 정리 게임이 기억을 다루는 방법

    기억은 세부 사항이 완전히 보존된 텍스트의 형태가 아닌 부분적인 이미지의 집합으로 우리에게 떠오른다. 이때 사물은 기억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자신과 관련된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소환한다. < Back Unpacking Your Memories: How an Organizing Game Handles Memory 31 GG Vol. 26. 8. 10. * The title screen of Unpacking Suppose an accident robbed you of your memory. To recover it — to know who you are — you would first turn to the records your past self left behind. Diaries, photographs, social media posts, messenger logs: we live leaving countless records of ourselves. And every record is a curated memory. A “record,” written with the intent of preserving some fact for later, differs from the traces we leave without meaning to. A shoe sole worn down along the inner edge, by a habit of putting weight on the inside of the foot, is a trace, not a record. Unlike records, into which intention and interpretation enter from the moment of their making, traces arise outside intention and are not usually treated as objects of interpretation. The trace is, by birth, humbler than the record. Yet a trace can sometimes describe its owner more faithfully than any record. Records can be written to deceive, but a trace, possessed of physical substance, is honest. For someone who has lost their memory, then, the surest clues to who they are may lie not in a diary or a feed but among the objects of the room they once lived in. Even if need and taste — intentions, both — govern our first decision to own a thing, with time the thing itself becomes our trace, because the relationship between object and owner keeps being renegotiated beyond its original terms. A trace is born of that relationship, lodges in the object, and changes with the years. This grants traces a self-sustaining life that records lack. As Walter Benjamin put it in “Unpacking My Library,” the essay he wrote while sorting his own books: “Not that they come alive in him; it is he who lives in them.” [1] This vitality, hidden from our awareness most of the time, erupts without warning whenever we set out to consciously change how we relate to our things. To redefine a relationship with an object is to judge its worth anew. Keep it, or let it go? Within reach and in view, or into a corner? To ground the judgment we ask again: Do I still need this? How long have I had it? How did I use it? When, and how, did it come to be mine? Reading traces this way, we summon memories from the unconscious. Anyone who has sorted moving boxes or attempted a deep clean knows how the tidying falls by the wayside once the memories attached to some object take over. Unpacking , an organizing game released in 2021, gathers exactly those moments into the shape of one person’s life. * Each completed stage adds a photo to the album. To organize is to bring what is scattered or disordered into order, and humans have evolved to find in this act not just psychological calm but real pleasure. Little else, in fact, fits the form of play so well. For Johan Huizinga, who gave us the concept of Homo Ludens, play is an activity freely entered into yet governed by strictly binding rules, accompanied by the pleasure of absorption. Organizing in daily life falls outside play only because it is labor rather than something done for fun — it belongs to the sphere of ordinary life. Still, organizing and play have shared more than one property across their long histories, and the emergence of an “organizing game” genre feels natural enough. Browse the games under Steam’s “Organizing” tag and you find “Puzzle” and “Relaxing” attached alongside — A Little to the Left , A Storied Life: Tabitha , and Whisper of the House are representative. Organizing as a game, in other words, is understood as the pleasure of solving puzzles with set answers, enjoyed in comfort, without score-chasing or overly elaborate rules. Unpacking , too, is classed as a puzzle game. Unboxing your belongings in a new home and finding each thing its place: that is the whole of play. Not every object has one exact spot, so players are free to decorate to taste, but things do have their proper kinds of space according to use, and a minimum of rules must be honored. As the stages progress, the boxes multiply and the homes grow larger, and the sorting grows more involved. Yet Unpacking designs its organizing as something more than puzzle plus decoration. Here, the play of organizing is the work of composing memory and identity through objects — through traces. Unpacking tells one person’s life, from childhood to making a home of her own, entirely through her things. The protagonist moves at each of life’s turning points: the first room of her own, a college share house, early working life, moving in with a partner for the first time, the return to her parents’ home after a breakup, a new love and a new place. The player is given only the year of each move and the changing inventory of possessions. Complete a stage, take the photo, and a brief reflection appears — a remark on the new home, the mood of moving day — but nothing concrete about who she is. * Belongings pulled at random from their boxes, not yet put away. (Screenshot by the author) The player has no part in the packing. Each new stage opens on an unfamiliar home stacked with boxes, and the player must unpack like someone who has lost her memory. Across the two decades from 1997 to 2018, possessions persist, disappear, or newly appear, and from these traces the player comes to infer who the protagonist is and what she has lived through. In 2010, she moves into her boyfriend’s apartment — her first time living with a partner. Wedging her things in among his, you register the difference in taste. He plays guitar; he brews his own coffee. In 2012, after the breakup, she returns to her parents’ home. The pushpin through his face in a photograph suggests it did not end well. Yet the ukulele and the drip coffee she took up through him remain her hobby and her taste. That the ukulele, the songbooks, and the coffee gear keep reappearing from the 2010 stage onward is, by itself, enough for the player to surmise the course of a life. * A living room that shows the protagonist’s tastes. (Screenshot by the author) Consider the objects that recur from the very first stage. She draws for a living. That she goes on using the art-supply brand of her childhood well into her professional career suggests firm tastes and confidence in them. The stuffed pig she carried around until its seams gave out shows the same stubbornness: her model since childhood, it becomes the hero of the picture book she publishes once she is an author. The pig is not the only thing she cannot let go once she has loved it. The sketchbooks of her school days and her favorite book series claim shelf space in every home she moves to. The video games and board games that multiply with every move are her oldest hobby, and when she buys what she loves she collects the whole set — the disposition of a collector. Yet imagining her life is no part of the puzzle. The sole condition for advancing is putting things where they belong. Even so, the player is drawn, irresistibly, into inference. You cannot know what a box holds or in what order its contents will emerge, so each item, as it comes out, has to be looked at and appraised. In doing so the player comes to remember the objects — to recognize what recurs and what has newly arrived. There are plenty of ways to make this an explicit element of play: have players deduce the story toward a correct answer, or gather key clues. Many organizing and puzzle games build their narrative exactly so. A Storied Life: Tabitha , framed around sorting a late grandmother’s belongings, has you restore a memoir from clues gathered while tidying; Whisper of the House brings in NPC dialogue and a layer of mystery — “anomalies” — to make its story legible. As the puzzle of organizing joins with narrative, objects become things to interpret, and organizing becomes the act of examining them. * The memoir screen of A Storied Life: Tabitha . ⓒSecret Mode Here is where Unpacking parts ways with other organizing games. Between organizing in life and organizing in a game lies a difference of purpose beyond the question of voluntariness. When the discovery of narrative is posed as a game’s explicit goal, the placement of objects hardens from something to interpret into clue, into evidence. And then, paradoxically, the object is severed from the very memory and meaning it carries: a player whose first purpose is assembling the story strips from each thing only the meanings that fit the whole. But a human life as it is actually lived has no grand theme, no dramatic arc. Sorting through things in reality, we may recall the story lodged in each one, but binding them into a single narrative is impossible; we can only grope through scattered memories. And as Henri Bergson argued in Matter and Memory (1896), memory comes to us not as a text with every detail preserved but as a collection of partial images. Objects, as elements of those images, summon whatever is associated with them, indiscriminately. The memories we meet while organizing appear before us just so — unannounced. What makes the play of Unpacking distinctive is that it realizes this real-world mechanism by which organizing and memory are joined. In organizing games, the owner of the things is always a fictional other. The player holds no memories of the objects to be sorted. And yet the player can assemble, however faintly, the protagonist’s self — as if holding memories of her, or as if recovering memories that were lost. Finding places for objects, with no explicit narrative at all, turns out to be enough. For memory does not dwell only in us; it dwells also in the things with which we have kept relation. Let me borrow Benjamin’s reverie once more: “Everything remembered and thought, everything conscious, becomes the pedestal, the frame, the base, the lock of his property. The period, the region, the craftsmanship, the former ownership — for a true collector the whole background of an item adds up to a magic encyclopedia whose quintessence is the fate of his object.” [2] Organizing in Unpacking , then, is leafing through the encyclopedia written of its protagonist. Just as reading an encyclopedia does not deliver the world entire, finishing the tidying does not tell you exactly who she is. Everything remains conjecture. This loose mode of understanding is written into the game’s flexible rules mentioned above: no object has one fixed and final place. Which is why we, in reality, keep organizing too. Finding the right place admits no correct answer, and so the task never ends — not for our things, and not for ourselves. Sort through the overflow, and through the memories that surface with it, and you may at least arrive at a fair guess at who you are. [1] Walter Benjamin, “Unpacking My Library: A Talk about Book Collecting,” in Illuminations , trans. Harry Zohn (New York: Schocken Books, 1969), p. 67. [2] Ibid., p. 60. Tags: 기억, 언패킹, 정리 게임, 코지 게임, 사물과 기억, 발터 벤야민, Unpacking Game, Cozy Games, Environmental Storytelling, Memory in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ujin Park A day-job creator of current-affairs YouTube and podcasts, and an ordinary gamer. Often takes part in telling game stories infused with current affairs.

  • 게임의 문화적 존재론: 천출(賤出), 기술적 총아, 참여문화

    이 작품의 결말은 AR 안경을 쓰고 이루어지는 놀이와 장난스러운 일이 등장인물의 연애 관계를 넘어 트라우마를 발생시키고, 이러한 과정에서 이를 사용하는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게 되면서 파국을 맞게 된다. 부모들은 AR 안경을 압수해버리려고 하는데, 이 때 주인공인 유코와 그의 친구들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한 번 그 세계에 몸담아서 그 세계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게임의 세계를 이미 경험해버렸기 때문에 이제 게임 이전 시대로 되돌아 갈 수 없다. 그렇다면 게임이 만들어 낸 달콤함과 고통 모두를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 Back The Cultural Ontology of Games: Lowborn, Technology's Darling, Participatory Culture 01 GG Vol. 21. 6. 10. Some ten-odd years ago, I had occasion to deliver a new-business pitch built around the keyword "metaverse" before the chairman of a major conglomerate—the kind of name you would recognize. It was the era when Second Life , the virtual world built by Linden Lab, was drawing attention under that very banner. The general manager from the conglomerate who was preparing the proposal alongside us kept giving our team the same warning: "The chairman truly detests games. He won't even let his own children play them. So our proposal for this new venture must never, under any circumstances, look like a game. In the presentation, we can't write so much as the 'g' in 'game.'" And yet—of all things—our concept was a fusion of a metaverse authoring tool in the vein of Second Life with an MMORPG along the lines of World of Warcraft , then at the height of its popularity. Because the chairman so disliked games, the core elements—the game mechanics and the like—were first swapped out for the phrase "fun factor," then for the English word "funness," and in the final version dropped altogether. The package was dressed up as a metaverse, of course, but here was software that plainly contained game-like elements designed to draw users in, and the fact that it could not be called a game was deeply ironic—and, at the same time, revealing of a double standard toward games. * Second Life . The mindset that wants to build a new platform like the metaverse and amass wealth from it, yet insists the platform's service must never be a game, belongs to the same logic that judges games and the act of playing them to be, by ordinary social standards, worthless and of no use. Latent in this aversion to games is the perception that games are culturally without value. Studies have shown that the more ignorant of games a person is, the more negatively they tend to regard them; yet this game phobia, crossing every generation and age group, has treated games as a fundamentally lowborn culture. Watching a film or listening to music counts as rest and as an investment toward the labor to come, while playing a game is dismissed as a waste of time. The many game regulations spearheaded over the years by politicians, the media, women's organizations, and religious groups—the Shutdown Law (a nighttime gaming curfew for minors), the cooling-off system, the proposed game-addiction bill, the move to register gaming addiction as a disease code—have done much to cast the game, as a new medium, as something at odds with established social values. Beneath the surface lies a mainstream society—politicians and media included—that is, in part, afraid of the younger generation who play these games. Korean society has long held up, as its ideology, an obsessive valuation of education and labor above all else.[1] It has therefore always made scapegoats of the various forms of popular culture that pull one's children and family away from the arena of study and work. If comics and animation were the scapegoats of the 1970s and '80s, then from the 1990s on—once games had settled in as a common form of popular culture among teenagers and twenty-somethings—national regulation and media criticism of games followed. Looking at what underlies this backlash, one can surmise that the reaction was so strong precisely because games had been more widely loved than other media. According to the 2020 White Paper on Korean Games , the game participation rate across the population reaches 70.5 percent.[2] Among them the rate for teenagers reaches 91.5 percent, with those in their twenties at 85.1, thirties at 74.0, forties at 76.6, and fifties at 56.8—showing that games are enjoyed across nearly every age bracket. The industrial growth and sheer scale Korean games have achieved since the 2000s have come to overwhelm every other category of cultural content. And yet the pride felt by those who work in the industry appears remarkably small. In May 2019, when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unanimously approved registering gaming disorder as a disease code, a range of opposing movements arose in Korea as well, led by the game industry, academia, and trade associations. One campaign raised at the time, unfolding mainly on social media, hoisted the slogan: "Games are not a disease. Games are culture." A pastime played by more than 70 percent of the population could hardly fail to be a form of popular culture—yet the campaign drew no broad support from game users online. This was because most of the industrial contribution of a sector with annual revenues exceeding 15 trillion won had been built on probability-based items (loot boxes) and enhancement systems. As the so-called "pay-to-win" system—where whoever pays more secures a more advantageous position—became the mainstream of the domestic market, the very users who had always sided with the industry over the Shutdown Law, the cooling-off system, and the game-addiction bill now turned their support into petitions demanding that the industry be regulated. Underlying this "games are culture" movement, led by industry, academia, and trade bodies, was a sense of grievance at having long been treated by society as a fundamentally lowborn culture. For in declaring "games are culture," the makers of games effectively conceded that, by common consensus, games had until then amounted to a culturally deficient form. Perhaps this inferiority complex surfaced because of the domestic industry's original sin: probability-based items and enhancement systems. But because most of the affirmative cases one could cite for games-as-culture were drawn from abroad, the claim won little echo even among game users, and ended as a movement internal to the industry. Still, I find myself wondering how things might have gone had the industry, instead of merely projecting resolve, responded with a little more composure. Had it acknowledged that outside perceptions of games were poor while also showing some willingness to reflect on the very things—probability-based items and the like—that keep games from being seen simply as culture, users would have regarded it far more favorably than they do now. Instead, two contradictory desires—to make money as money, and to be recognized as culture—became entangled, giving rise to the question: "Games are obviously culture, so why should we have to be recognized as culture by anyone?" That games became such a contentious medium owes, as Miguel Sicart has pointed out, to the fact that games carry rules that prompt action.[3] This prompting of action is at once the decisive difference that sets games apart from other media and the mechanism that, having induced an action, compels the player to fix attention on the next situation in the chain. Unlike other media, the game carves out—for the player—a gap of time and space for the player to enter, and has the player fill that gap. From the player's side, the time and space within the game become a stage one must step into, fill, and act upon. In this way games have created an environment that offers users a space to participate while drawing them into sustained immersion. * A scene from This War of Mine . The actions that occur within a game, moreover, are necessarily bound up with the appraisal of value. Because a game can induce its users to perform particular actions, it functions as a powerful persuasive medium, one that urges specific conduct. It is no accident that the past decade has seen a rapid rise in social impact games, which call on players to attend to a range of social problems. As is always noted in discussions of the genre, the examples are not only foreign ones like This War of Mine or Missing . At home, too, social impact games have been actively produced and have taken prizes at major indie game contests: the Unfolded series, which centers on the tragedy of the Jeju April 3 incident (the 1948 suppression and massacre on Jeju Island); 21 Days , a simulation of Syrian refugees trying to settle in Germany; and Pechka , which traces the life of Choi Jae-hyung, who led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Russia's Maritime Province. As games' expressive power grows more refined, and as techniques for systemically persuading the player circulate among developers, the game is being reborn as the most effective medium for communicating with—and persuading—a new generation. To probe the question "Are games culture?" more closely, then, we first need to distinguish between "games" and "gaming." "Gaming" is the act of actually playing a game, but it is also a concept that encompasses the many activities appropriated around play—watching game streams on YouTube or Twitch, sharing information and impressions on game webzines, and so on. In other words, a game is in itself a cultural product carrying a certain value, and it is only through the process of gaming that it becomes a cultural mode of conduct. Before gaming became a universal cultural mode, it existed as an alternative to mainstream culture, within the bounds of a subculture epitomized by the otaku; but now, when more than 70 percent of the population takes part in playing, the game has become the single most representative popular medium of our time. In that process, to be sure, the tightly belonging subcultural identity once embodied by the otaku has loosened and weakened somewhat. With the arrival of online networked environments in video games, users became able to form communities within games and to sustain social activity, exchanging views in real time. Since the advent of the smartphone, such game-borne social activity has overrun the limits of time and space and is dissolving the boundary between work and play. Every day, tens of millions gather on YouTube, Twitch, and Discord to watch and debate one another's play and to produce entertainment of their own. Sandbox and metaverse platforms like Minecraft and Roblox teem with countless sub-games and missions made by users themselves. Recent gaming culture has steadily evolved away from the solitary, stand-alone game toward forms that draw out the user's active participation. As the recent metaverse boom flared up again, it brought to mind a Japanese animation I personally enjoyed, Den-noh Coil . Set around 2025–26 in the fictional Japanese town of Daikoku, the work follows the entangled fates of two schoolgirls who transfer there—Okonogi Yuko and Amasawa Yuko. Though made in 2007, it features, as if foreseeing the future, AR glasses that connect to the internet at any moment as a central motif. The story arrives at catastrophe: the games and pranks carried out through the glasses move beyond the characters' romantic entanglements to generate trauma and, in the process, to threaten the lives of those who use them. The parents try to confiscate the glasses, and at this point the protagonist Yuko and her friends offer a message of their own—that, having once dwelt in that world and come to know it, they cannot go back to how things were. Is our own life not much the same? Having already experienced the world of games, we can no longer return to the age before them. What remains, then, is only the task of enduring and accepting both the sweetness and the pain that games have wrought. * A scene from Den-noh Coil . Having stepped inside the game, can we ever step back out? [1] Lee Dong-yeon, "Who's Afraid of Games?," in Game Phobia (Seoul: Communication Books, 2021), 78. [2]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2020 White Paper on Korean Games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2020), 495–496. [3] Miguel Sicart, The Ethics of Computer Games , trans. Kim Gyeom-seop (Seoul: Communication Books, 2014), 6.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 Yeop Lee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 Contents at Soonchunhyang University. Researches game storytelling and game design as central concerns, and led the founding of the Busan Indie Connect Festival—a leading indie game festival—where serves as head of the jury. Also a juror for the Independent Games Festival (IGF), one of the most prestigious indie game events internationally. Books include Digital Storytelling (co-authored, 2003), Digital Games: A New Territory of Imagination (2005), Indie Games (2015), Stories Become Transformers (co-authored, 2015), Mario, Born in '81 (co-authored, 2017), The Theory of Games (co-authored, 2019), and Games Are Games: Game × Ecosystem (co-authored,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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