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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레트로 게임: 8비트 시대의 흔적들

02

GG Vol. 

21. 8. 10.

 - 편집자 주: 이 글은 중국의 게임연구자 Jian Deng이 투고해온 글을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이 너무 길어 번역은 핵심을 놓치지 않는 선에서 축약하였습니다. 원문이 필요하신 경우 별도로 게재한 아티클을 참고해 주십시오.-

원문링크: 



21세기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산업 규모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 이전의 상황이나 흐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그 이전의 역사, 그러니까 ‘8비트 게임 시대’를 고찰함으로써 오늘날 중국 게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이 글은 중국의 8비트 게임 시대를 조망하고 그 역사가 지닌 함의를 논한다. 이 글은 또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초기 게임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두 다리로 걷기”: 패미클론과 학습용 컴퓨터


1980년에 행정부의 지도 하에서 아케이드 게임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했던 중국이 처음으로 게임 콘솔을 개발한 것은 1981년 말의 일이었다. 베이징의 제1경공업연구소(北京第一轻工业研究所)에서 개발한 YQ-1은 〈퐁〉의 여러 버전이 내장된 콘솔로서 제너럴 인스트루먼트(General Instruments)의  AY-3-8500칩을 사용했다. 이 콘솔이 1982년 소량 출시되기 시작한 이래, 항저우나 우시, 상하이, 내몽골, 광저우 등 타 지방의 공장들에서도 유사한 콘솔장치들이 조립/생산되기 시작한다.  


* 1980년대 중국에서 생산되었던 YQ-1 콘솔의 모습(왼쪽), AY-3-8500칩(오른쪽)

1984년에는 2세대 콘솔이 중국 시장에 진입한다. 1985년까지 게임 콘솔은 외국에 거주하는 친척들이 주는 귀하고 비싼 선물이었는데(1986년 기준으로 1000위안 수준), 이러한 상황은 1987년 패미콤이 중국에 소개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가격이 비싼데다 중국의 PAL-D 텔레비전과 연결도 쉽지 않았던 패미콤이었지만, 중국 내수 시장에 “패미(콤)클론(이하 패미클론)”의 생산 기반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중국의 텔레비전에서도 패미콤이 작동할 수 있도록 개조된 패미클론들이 홍콩으로부터 수입되었지만, 이내 홍콩과 대만의 제조사들이 중국 본토에서 직접 콘솔을 복제/개조하기 시작한다. 중국의 국가적 개혁 및 개방을 통해 중국 남부에 거대한 규모의 저렴한 노동력이 이용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개 수십명 정도 규모의 이 공장들은 연간 수십만에서 백만대 규모의 콘솔을 생산하면서 중국 전역에 기술을 활성화시키는 한편 중국 본토의 기업들이 게임산업에 진입하게 되는 계기도 제공했다: 


1987년 초반 선전과 주하이, 닝보 등 중국의 남부 해안가 도시들이 일본산 게임 콘솔 조립 산업을 주도하면서 난천(兰天), 왕중왕(王中王), 천마(天马), 소패왕(小霸王) 등의 패미클론들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당시 중국에는 7백개가 넘는 인기 비디오게임 소프트웨어가 존재했다. (Pan A2)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의 시기에 중국 남부 해안 지역의 콘솔 생산력이 크게 신장되면서 1989년 6-700 위안이었던 게임 콘솔의 가격은 1992년에 100위안 정도로 떨어졌다(Sun 79). 가격이 낮아지면서 평균적인 임금 수준의 노동자 가정에서도 게임용 콘솔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집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1993년에는 텐진의 뉴스타 일렉트로닉스(Tianjin Newstar Electronics Co., Ltd.)가 SUN 워크스테이션 시스템과 통합 회로 설계 소프트웨어(그리고 SM-T 생산라인까지)를 갖추고 중국 최초의 16비트 게임 콘솔 “소교수(小敎授)”의 개발에 성공한다. 이는 기술적으로 엄청난 성취로서, 중국은 당시 독립적으로 16비트 게임 콘솔을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는 소수의 국가들 중 하나가 된다. 


중국 게임 콘솔 역사의 또 다른 흐름으로는 ‘학습기(学习机)’라 불리는 학습용 컴퓨터가 있다. 전지구적으로 게임의 산업적 발전이 활발하던 1980년대에 중국이 주목했던 것은 학습용 컴퓨터였는데, 그 이유는 컴퓨터를 통해 놀이를 훈련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오랜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콘솔 같은 명백한 오락장치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학습용 컴퓨터’라는 위장으로 부모들의 염려를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70년대 말 재개된 대학입시 제도 또한 관련성이 있는데, 대학 입시를 통해 사회 계층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중국 사회에서 지식에 대한 존중과 자신감이 상승했고, 이것이 학습용 컴퓨터의  필요성에 중국인들의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학습용 컴퓨터가 현대적 지식 매체로서 상상적으로 구축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와 같은 맥락이 존재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학습용 컴퓨터의 생산과 대중화 아래에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현대화가 은폐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학습용 컴퓨터를 통해 적당한 가격의 컴퓨터를 보급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주의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수준을 맞추고자 했다.   


학습용 컴퓨터의 역사적 흐름은 덩샤오핑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재집권한 뒤 교육과 과학 그리고 기술의 현대화를 주요 국가적 목표로 삼았던 덩샤오핑은 1984년부터 컴퓨터의 대중화를 직접적으로 챙기기 시작한다. “아동을 위해 컴퓨터의 대중화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그에 따라 중국 사회가 컴퓨터 교육을 중시하게 되고 전국의 초중등 교육기관이 재빠르게 컴퓨터 장비를 구매하기 시작한다. 1986년에는 컴퓨터의 대중화와 교육의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해 과학 기술 위원회, 국가 교육위원회, 전자산업부가 “중화학습기(中华学习机)” 개발에 합의하는 등 사회적/국가적으로 의지가 충만한데다 관련 부처의 지원이 뒤따르면서 학습용 컴퓨터는 이내 중국 전역에 빠르게 확산되어 간다.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 열성적으로 학습용 컴퓨터의 생산과 보급에 나섰음에도, 시장 경제적인 문제가 그 발목을 잡는다. 학습용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지닌 한계도 문제였지만, 진짜 문제는 개혁과 개방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적 의지와 시장 원칙 간 내재하던 모순이었다. 그 목적이 본래 (특히 젊은이들이) 국가의 근대화에 조력할 수 있게 하는데 있었기 때문에, 학습용 컴퓨터의 게임 기능은 우선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의 여러 가정들이 컴퓨터를 구매하도록 이끈 그 시장 경제적 동기는 바로 게임 기능이었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점진적으로 상대적으로 (기능이) 통일되어있던 학습용 컴퓨터로부터 보다 다기능적인 시스템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이동은 기술적 발전이나 국가 소유로부터 사적 생산 및 판매로의 이동이라는 조직적인 움직임이라기 보다는, 1990년대 중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경제적 개혁의 심화에 따른 시장 중심적 권력 관계의 변동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가 점차 시장의 압력에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민간 영역에서 운영되던 학습용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불확실한 시장의 수요 및 다양성에 맞출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끝에 학습용 컴퓨터를 다기능 멀티미디어 제품으로 전환시키고, 게임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에 제품의 디자인 및 마케팅의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장 지향적 조치를 통해 학습용 컴퓨터들은 지배적인 정치적/사회적 권력이 부여했던 자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국가적 서사로부터 점진적으로 벗어난 학습용 컴퓨터들은 사실상 시장의 권위와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들을 긍정하는 게임장치로 변모해갔다. 


* CEC-1 학습용 컴퓨터, Subor SB-486D PC 학습용 컴퓨터


“문화 침략”: 게임 콘솔에서 중국의 8비트 게임소프트웨어까지


이처럼 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중국의 게임산업이지만, 그 상업적 성공을 이끈 것은 1990년대 전세계를 주름 잡던 세가, 닌텐도, PC엔진 등의 일본산 게임 하드웨어의 복제품들이었다. 한편 복제품이 글로벌 게임 소프트웨어 어셈블리 언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생산 표준을 따라해야 했다. 즉 중국이 세계 콘솔 시장 경쟁에 참여하려면 일본의 게임 아키텍처와 로지스틱을 기반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1993년 전력산업 정보센터(电力工业信息中心)와 무장 경찰 과학기술 정보센터(武警科技信息中心站)는 QZM이라는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였는데, 이 시스템은 PC와 패미콤 간 커뮤니케이션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286 또는 386 마이크로 컴퓨터를 개발 플랫폼을 활용해서 닌텐도용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컴파일할 수 있었다. 이 소프트웨어는 즉각적으로 패미콤에 전송되어 실행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소스프로그램이 컴퓨터에서 변환 및 디버그 되었고 성공적으로 작업이 수행될 수 있었다(Pan A2).


이 상황은 개발 패러독스로 이어졌다. 개혁 개방에 따른 사회/경제적 발전과 함께 발생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 했던 중국이 발전의 딜레마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중국은 이미 구축되어있는 세계 시장 질서를 받아들이고 일본 게임산업의 중국 지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자주성을 더 중시할 것인가?


이 패러독스는 또한 중국의 게임산업에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를 강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국 업체들이 일본신 게임장치의 복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시장 자주성을 지니게 된다 할지라도, 8비트 콘솔 제작에 있어 핵심적인 CPU는 여전히 해외에서 들여와야 했던 것이다.  이 문제로 인해 20세기 말에 이르러 중국의 게임산업은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특히 PC용 게임 소프트의 개발로 이동해간다. 


사실 중국의 게임 소프트웨어 산업은 중국이 국가적으로 하드웨어 제조산업을 시작했을 때와 비슷한 시점에 시작되었다. 1982년 ISCAS(중국과학원 반도체연구소)가 로켓런처 게임칩을 생산했던 바로 그 해에 북경 과학위원회(北京科委)는 10개 대학과 연구기관을 모아 콘솔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섰다. 해외 전문가의 지도 하에서 중국은 1983년 초 중국적 특성을 가진 게임 프로그램 〈손오공(孙悟空)〉과 〈칠교판(七巧板)〉등을 개발하여 국제적인 게임기업들에 판매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프로젝트들은 변동하는 외부 환경과 맞물려 사라져간다. 대신 1980년대 후반 들어 불분명한 지식재산권을 가지고 있었던 소규모 기업들 - 얀샨소프트웨어(烟山软件), 파이오니어 카툰(先锋卡通) 등 - 이 8비트 게임의 해킹과 불법복제 사업에 뛰어든다. 이들의 성공은 경제적 생존이 최우선 되는 입장에서 게임 하드웨어 시장이 추구하던 모방 전략을 따른 결과였고, 이는 다시 말해 중국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의 번성이 일본의 8비트 게임 불법복제로 뒷받침된 것임을 의미한다. 


1990년대에 들어와 게임의 내러티브가 보다 복잡해지면서 중국의 게임개발사들은 새로운 도전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끈 〈카게의 전설(The Legend of Kage)〉는 공주를 구하는 닌자의 이야기인데, 그 속에 일본의 닌자 문화를 표현하는 다양한 시청각적 상징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민족주의적인 중국에 있어 이는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기억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게임은 중국 시장에 넘쳐나고 있던 수많은 일본 게임들 중 하나일 뿐이었고, 이러한 상황이 1990년대의 중국 게이머들이 게임의 문화적 식민화와 같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으로 이어지면서 중국 내에 새로운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이 부상하는 계기가 된다. 중국 고유의 특성을 지닌 게임에 대한 수요가 생겨난 것이다. 


이와 같은 플레이어들의 문화적 각성은 중국 IT 산업의 빠른 성장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새로운 IT 인력들의 다수는 게임 산업에 열광적이었는데, 그들은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기반 운영에 있어 가장 낮은 수준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운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Wei 75). 비록 그들이 문화 지식인으로 성장했던 것은 아니었지만(그들은 엔지니어였다),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불안 아래서 중국의 문학과 예술작품에 실린 “대도(载道/도를 떠받든다)의 전통”을 과감하게 차용한다. 그들이 시도한 것은 정치적 도덕 교육에 기반한 보수적인 게임문화의 구축이었고, 이는 1990년대 중국 게임에 팽배했던 독특한 애국주의 기반의 정서를 형성했다. 


1994년 10월 골든디스크 일렉트로닉(金盘公司)은 중국의 첫 PC게임 〈신응돌격대(The Magic Eagle)〉을 출시한다. 1998년에 이르면 15개 개발사들이 55편의 PC용 게임을 출시하는데, 이 게임들은 중국의 PC게임 첫세대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푸저우 웨이싱 컴퓨터 사이언스 & 테크놀로지(外星科技)는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중국 게임산업계에서 이 회사는 중국의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6년부터 이 회사가 생산하고 출시한 270편 이상의 8비트 게임들은 중국 8비트 게임에 있어 핵심이었다. 이 회사를 필두로 1990년대 중국 본토에서는 열군데가 넘는 업체들이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업체들은 무허가로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를 번역하고, 이식하고, 백포트하고, 해킹해서 유통시켰는데, 중국 8비트 게임 시장의 번성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표] 업체별 게임 소프트웨어 출시 현황

이 부분이 바로 8비트 게임 개발 과정의 중국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PC엔진의 출시 이래 세계는 16비트 게임 시대에 접어들었으며,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차세대 콘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의 중국에는 여전히 구식 8비트 게임을 겨냥한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는 중국의 독특한 역사적 맥락과 연관이 있다. 중국의 게임업체들 또한 세계 시장을 열심히 따라잡고자 노력하던 무렵, 뤄양시에서 “2.29” 살인 및 시체 방화사건이 벌어졌다. 허난성 뤄양시에 거주하던 3명의 6학년생들이 게임방 주인에게 살해된 후 벌판에서 불태워졌던 것이다. 이 사건이 보도된 후 국가적 분노가 일어나면서 정부의 엄격한 게임 통제로 이어진다. 2000년 6월 12일 각 부처가 합동으로 “내수 시장을 대상으로 게임 장치와 그 구성요소들의 생산과 판매”를 완전히 정지하는 전자오락실 특별 관리 계획을 공포하였고, 그에 따라 중국 게임 하드웨어의 개발이 정체되기 시작한다. 그 영향으로 중국의 게임 소프트웨어 제조업체들은 대거 PC용 게임 생산에만 집중하게 된다(이 시기는 한국산 온라인게임의 영향으로 주로 온라인게임이 개발됨).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콘솔용 게임 소프트웨어에 천착하던 게임 업체들은 시장 내에 존속하는 8비트 게임 콘솔용 소프트웨어만 개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중국은 차세대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시장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다시 말해, 게임 콘솔 금지 정책은 중국 콘솔 게임의 발전을 억제했고, 그에 따라 8비트 게임 중심성이 비정상적으로 존속되었던 것이다.     



관점에 따른 중국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 분류


중국의 8비트 게임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여기서는 생산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하여 정리해보았다:


1. 일본 게임을 해킹한 게임: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은 중국인들이 8비트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역사적 계기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얀샨 소프트웨어가 남코의 〈배틀시티(Battle City)〉와 코나미의 〈콘트라(Contra)〉를 해킹해서 만든 〈얀샨탱크(얀샨 Tank)〉와 〈슈퍼콘트라 II(Super Contra II)〉가 있다. 얀샨 소프트웨어는 이전에 푸저우의 제16중학교 운영하던 기업이었는데, 그래서 “푸저우 제16중학교(福州16中)”이라는 단어와 "얀샨"(烟山)이라는 단어가 게임 중에 나타난다(이미지 참조). 중국 게임산업상 최초의 인-게임 광고라 할 수 있다.    


* 〈얀샨 탱크〉 내 인-게임 광고

2. 일본 게임의 번역판: 여기에는 주로 1990년대에 웨이싱(Waixing)에서 출시했던 무단 번역게임들이 해당한다. 이 회사가 무단으로 번역한 일본 게임에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시리즈,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등이 있다. 지식재산권의 관점에서 이와 같은 무단 번역 게임들은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중국 게임의 역사 내 그들의 위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해적판 8비트 게임들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비용과 기술의 한계로 인해 게임 플레이 가이드 같은 것들은 대개 번역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중국의 플레이어들은 〈드래곤 퀘스트〉 같은 복잡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JRPG 게임들이 중국에서 별 인기를 얻지 못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웨이싱을 비롯한 중국의 8비트 게임회사들의 번역 시도는 중국의 젊은 플레이어들이 동아시아 하위문화의 젊고 생생한 상상을 저렴한 가격으로 누릴 수 있게 해준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는 주류 정치적 서사에 묶여있던 젊은이들의 사고를 해방시킬 수 있는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다.       


3. 이식된 게임: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은 보다 고성능 플랫폼의 게임들을 패미클론 플랫폼으로 각색하여 이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의 플레이어들은 여러 인기 걸작들을 패미클론 콘솔을 통해 플레이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서 포켓몬은 가장 중요한 이식 대상이었는데, 웨이싱의 포켓몬 시리즈, 난징 테크놀로지(南晶科技)의 젬 시리즈(Gem series), 쉔젠 진코타 테크놀로지(晶科泰, 이하 진코타)와 헹거 테크놀로지(恒格电子, 이하 헹거)의 포켓몬 시리즈, 마스 프로덕션(火星科技, 이하 마스)의 포켓 엘프 시리즈 등이 있다.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이 중국 고전 PC게임 또한 이식해왔다는 것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예를 들어 난징 테크놀로지의 〈신월검흔(新月剑痕)〉 와 진코타의 〈헌원검(轩辕剑)〉 등은 대만 게임으로부터 이식된 것이다.


* 난징 테크놀로지의 〈헌원검〉

4. 그림을 바꾼 게임(换皮游戏): 대개 JRPG 게임을 중국적으로 보이도록 시청각적인 요소들, 예컨대 스토리, 장면, 오프닝 등의 게임 내 시네마틱, 캐릭터 디자인, 장비 액세서리 등에 중국적 요소를 덧입히는 것이다. 즉 원본이 되는 일본 게임(주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게임플레이와 구조에 기반하되, 원본의 스토리를 중국의 것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난징 테크놀로지의 〈헌원검〉 시리즈는 명시적으로 대만의 소프트스타 엔터네인먼트(大宇公司)의 고전 CRPG 〈헌원검〉를 이식한 것이었지만, 〈드래곤 퀘스트〉의 게임 시스템(인터페이스, 레이아웃, 시스템 아키텍처 등)을 도입하여 중국의 스토리를 담았다.   


5. 오리지널 게임: 중국에도 오리지널 8비트 게임들이 있다. 비록 이 게임들이 중국의 8비트 게임을 완전히 혁신적으로 새롭게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지만, 기존의 게임플레이를 활용해서 중국적인 테마를 지닌 게임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드래곤 퀘스트〉의 구조에 기반해서 중국적 스토리와 시청각적 요소들을 입힌 4번의 경우와 달리, 이 오리지널 게임들은 다양한 게임 플레이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중국의 문화적 특성을 지닌 8비트 게임의 개발을 추구했다. 중국의 게임산업의 발전이 아직 미진하던 1990년대의 그와 같은 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당시 일본과 미국의 게임산업이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전세계가 “일본-미국 중심주의”의 게임 역사에 빠져 있었고, 그에 따라 각 국의 게임 역사가 그 자신과 괴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표현하는 8비트 게임의 개발은 “게임 제국”의 변방에 놓인 중국이 반드시 다뤄야 하는 문제였다. 많은 일본의 고전게임들이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활용해온 가운데 종종 무의식적인 변형과 왜곡이 뒤섞여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는 삼국의 “도시’ 개념을 일본 전국시대의 “일본식 성”의 개념으로 변형시켰다. 중국의 입장에서 이는 중국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명백히 잘못된 방식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리지널 8비트 게임은 중국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중국인 고유의 관점을 통해 조망하면서 스토리를 전달하는, 고도의 문화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오리지널 8비트 게임들을 주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역사적 테마를 가진 게임: 주로 1990년대에 등장해서 대개 중국 근대의 역사를 다룬다. 대표작으로 〈임칙서의 금연(Lin Zexu's Smoking Ban, 林则徐禁烟)〉, 〈지도전(Tunnel Warfare, 地道战)〉 등이 있다. 대부분 롤플레잉 게임플레이를 채택하고 스토리상 근대 중국이 직면했던 “노예화와 멸종”의 위기를 강조하면서 아바타를 통해 플레이어들을 국가의 운명과 연결시키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맞서는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를 강조한다. 이러한 게임들의 내러티브 콘텐츠는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던 중국의 게임산업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2. 전기(biography) 게임: 중국의 역사나 소설의 인물을 주요 캐릭터로 삼아 그 캐릭터의 영웅적인 행실을 다룬다. 대개 전통적인 중국 문학적 사고에 영향을 받았으며 권선징악, 의협심, 국가에 대한 충성 같은 주류적 가치를 표현한다.  


* 웨이싱의 〈포청천(Bao Qingtian, 包青天)〉, 난징 테크놀로지의 〈곽원갑(Huo Yuanjia, 霍元甲)〉과 〈황비홍(Huang Feihong, 黄飞鸿)〉, 마스의 〈악비전(Yue Fei Biography, 岳飞传)〉 (왼쪽 위부터)

3. 각색된 게임: 중국의 8비트 게임에 있어 메인이 되는 유형으로, 고전 걸작, 무협 소설, 유명 영화와 TV 드라마, 고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외국의 동화 등을 각색한 게임들이 있다.  


4. 고전 소설을 각색한 게임: 서유기, 수호지, 삼국연의, 홍루몽, 수당연의, 삼협오의, 경화연 등의 고전 소설을 각색한 게임들


* 웨이싱의 〈서천취경 2(The Journey to the West 2, 西天取经2)〉, 〈수호전(Water Margin, 水浒传)〉, 〈삼협오의: 어묘전기(Three Heroes and Five Righteousness: Legend of the Imperial Cat, 三侠五义:御猫传奇)〉, 난징 테크놀로지의  〈홍루몽(Dream of Red Mansions, 红楼梦)〉, 〈수당연의(Sui and Tang Dynasties, 隋唐演义)〉 (왼쪽 위에서부터 차례로)

1) 무협소설을 각색한 게임: 김용이나 구용 같은 작가의 무협소설을 각색한 게임들이다. 중국 게임의 역사에 있어 8비트 무협 게임은 문화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앞서 언급한대로 〈드래곤 퀘스트〉 같은 해외 게임들에 기반한 상상이 넘쳐나는 가운데, 무협 게임만이 유일하게 중국의 전통적 문학 및 예술적 사고가 “보장된 영토”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의 청소년 하위문화가 부상하는 가운데서, 이 게임들은 전통적 문학작품과 예술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나마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자 수많은 중국인 플레이어들이 수천년 간 내려온 고유의 대중 문학 및 예술적 사고에 노출시켜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무협 게임들은 중국 게임의 문학적/예술적 특별성을 반영한 것으로, 이는 “의협심”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 같은 중국 전통의 이데올로기적 자원들이 게임 영역에 나타나도록 만들었다. 


* 웨이싱의 〈초류향(Chu Liuxiang Legend, 香帅传奇之血海飘零)〉과 〈의천도룡기(Massacre Dragon Knife, 屠龙刀)〉, 난징 테크놀로지의 〈천룡팔부(The Demi-Gods and Semi-Devils, 天龙八部)〉와 〈절대쌍교(Handsome Siblings, 绝代双骄)〉, 진코타의 〈초류향신전(New Biography of Chu Liuxiang, 楚留香新传)〉 (왼쪽 위에서부터 차례로)

2) 영화와 드라마를 각색한 게임: 당대의 유명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각색한 게임들. 그러나 이 게임들은 원본 작품의 이름이나 컨셉만을 차용했을 뿐, 게임의 플롯은 완전히 다른 경우도 많았다.  


* 웨이싱의 〈대화서유(A Chinese Odyssey, 大话西游), 난징 테크놀로지의 〈무림외전(My Own Swordsman, 武林外传)〉, 마스의 〈타이타닉(Titanic)〉 (위에서부터 차례로)

3) 고전 신화와 설화를 각색한 게임: 일본이나 유럽 또는 미국의 마법 문화와는 완전히 상이한 고대 중국의 신이나 귀신에 대한 전설과 초자연적인 상상을 활용함으로써 중국 8비트 게임의 문화적 콘텐츠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 웨이싱의 〈봉신방격투(Fighting!The Legend of Deification, 封神榜格斗)〉와 〈천왕항마전(King Defeat Devil, 天王降魔传)〉, 난징 테크놀로지의 〈나타전기(The Legend of Nezha, 哪吒传奇)〉과 〈마도겁(Devil way, 魔道劫)〉 (위에서부터 차례로)

4) 외국 동화를 각색한 게임: 외국의 고전 동화를 활용한 게임들로, 이를 통해 해외의 동화들이 중국의 플레이어들에게 알려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게임들이 원본에 완전히 충실했다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 플레이가 원본인 고전 작품에 대한 경험이라기 보다는 그저 신나게 플레이한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중국의 8비트 게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상 살펴본 중국의 8비트 게임의 역사는 중국 게임의 역사에 있어 어떠한 의미를 지녔으며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지적재산권을 지닌 내수용 8비트 게임의 생산과 판매는 1990년대 초반 웨이싱을 매개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실 내수용 8비트 게임은 적절하지 못한 시기에 등장한 것이었다. 당시 국가적 차언에서 컴퓨터 및 인터넷 기술의 발전에 매진하던 가운데 게임을 사랑하는 수많은 컴퓨터 인력들이 게임 소프트웨어 제작업계에 진입하면서 중국의 PC게임이 발전했다. 중국의 주류 게임사가 콘솔 게임의 역사로부터 컴퓨터 게임(온라인 게임도 포함)의 역사로 빠르게 바뀌어간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의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 제조업계가 우세했었지만 PC게임 부문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8비트 게임은 비가시적인 형태로 “보이지 않게 발전”할 수 있었을 뿐으로, 그에 따라 중국 게임의 역사에 강력한 흔적을 남기지 못했던 것이다. 


2000년도에 있었던 콘솔 금지 정책은 8비트 게임에 있어 유리한 면이 있었는데, 중국 정부가 16비트 게임 콘솔을 비롯한 차세대 고성능 게임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것 - 그리고 그에 따라 차세대 콘솔의 시대로 진입하는 것 - 을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8비트 게임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중국에서는 글로벌한 경향과는 달리 8비트 게임 중심성이 지속되었다. 


비록 중국의 게임 제조업체들이 다양한 8비트 게임을 개발했음에도, 실질적으로 세계 게임 산업 및 중국의 8비트 게임 산업을 혁신하고 발전시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반대로, 게임플레이의 혁신이 게임 혁신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라면, 대부분의 8비트 게임들 - 앞서 언급했던 오리지널 8비트 게임들 포함 - 은 그저 일본의 8비트 게임의 디자인을 모방했을 뿐이며, 중국적인 특성을 지닌 오리지널한 게임플레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시 말해 오리지널리티의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의 8비트 게임은 실패라 할 수 있다. 일본 게임의 질 낮은 복제에 가까운 이 게임들은 혁신적인 가치를 지닌 문학이나 예술작품이라기 보다는 수익을 위해 산업적으로 생산된 하급품에 가까웠고, 그에 따라 8비트 게임들은 중국의 플레이어들로부터 언제나 비판과 조롱을 받곤 한다. 


그러한 8비트 게임일지라도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나름의 장점과 의미가 없지 않다. 다양한 오리엔탈리즘적 담론들로 가득한 게임 영역에서 중국의 이미지는 자주 왜곡되곤 했는데, 예를 들어 에는 외국 게임 개발자들의 중국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상상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중국의 국가적 이미지를 저해하고 그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중국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8비트 게임들은 플레이어들이 상대적으로 “리얼”한 중국을 중국의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특정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국의 8비트 게임들은 치명적인 흠결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8비트 게임들의 플레이가 별로 인상적이지 못한데다 심지어는 버그로 가득해서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온전하게 경험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8비트 게임의 시장 매출은 실질적으로 형편없었으며, 그 게임들이 중국 게임산업의 발전을 주도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그 기저의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좀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고 8비트 게임의 텍스트와 그 생산 과정 및 사회적 텍스트 간의 상호작용을 논의하면서, 중국의 8비트 게임 역사를 오늘날 중국에 대한 하나의 증상이나 은유로서 취하여 그 역사적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8비트 게임은 1990년대 중국 십대들의 사고방식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했다. 1949년 중국 인민공화국이 건립된 이래, 문학과 예술에 대해 사회주의적 관점이 주도해온 환경 아래서 만화나 예술 영화 등 중국의 아이들을 위한 문화상품들은 혁명의 내러티브를 전달하고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교육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러한 문화상품들이 십대들이 좋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긴 했지만, 그것들은 청소년 문화의 영역 내 엄격한 사회주의 교육 및 이데올로기 체계의 연장일 뿐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일본의 8비트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여러 청소년 하위문화 상품들이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중국으로 대거 유입되고 1990년대에 이르러 엄청난 규모를 형성하게 되면서, 기존의 엄격한 문화적 상황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일본 문화 상품의 분방한 문화적 상상력이 중국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일본의 청소년 하위문화가 당국이 엄격하게 통제하는 주류 문화와 첨예하게 충돌하게 되었고, 점진적으로 우세를 점하게 된다. 이른바 중국 십대 청소년들의 “마음의 해방”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8비트 게임 생산은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진행되었다. 중국의 게임 제조업체들은 중국의 이야기들을 8비트 게임 기술과 결합시키고자 했고, 8비트 게임이 중국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해방시키고 있던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중국의 문화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관심이 강화되는 것도 원했다. 그러나 이는 한정된 기술력으로 온전하게 실현될 수 없었고, 플레이어를 유인할 수 있는 혁신에도 실패하면서 8비트 게임은 시장에서 밀려났다. 즉 이 8비트 게임들은 콘텐츠 내에 중국적인 것을 담는 것에 지나치게 치중하다가 게임플레이의 재미 그 자체를 경시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8비트 게임의 상징적 가치가 언제나 그 사용 가치를 넘어섰던 것이다. 대부분의 8비트 게임들의 매출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은 여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향후 8비트 게임의 발전을 도모하고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중국적인 분위기가 확실히 담겨있는 8비트 게임을 계속해서 개발하되 혁신적인 8비트 게임 플레이의 가능성을 탐구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할 때 중국 내 버려진 시장 부문인 8비트 게임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참고문헌

中国音数协游戏工委(GPC),中国游戏产业研究院.2020年中国游戏产业报告[R/OL].(2020-12-18)[2021-09-03].https://pan.baidu.com/s/1RbLCh5fKLCyTfFcZeFPHvA?_at_=1618218156065.
 
中国文化部等,关于开展电子游戏经营场所专项治理的意见[R/OL].(2000-06-12)[2021-09-03]http://www.gov.cn/gongbao/content/2000/content_60240.htm
 
Pan, Song 潘松. “Zhongguo dianshi youxiye fazhan gaikuang” 中国电视游戏业发展概况 [Report on Development of Chinese Video Game Industry]. Diannao bao 电脑报27 August 1993: A02. Print.
 
Wu, Zhensheng, et al乌振声等. “Zhonghua xuexiji yuanli he yingyong(1)” 中华学习机原理和应用(1) [China Learning computer’s Principles and Applications]. Wuxiandian 无线电1(1988):5.Print.
 
Zhu, Zhangying朱章英. “Mantan dianshi youxiji” 漫谈电视游戏机 [The Talk About the Video Games]. Jiayong dianqi家用电器4(1986):24.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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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학자)

쑤저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부교수. 디지털게임 문화연구를 주 관심사로 다루며, 〈澎湃新闻〉에서 게임에 관한 칼럼 등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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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연구자)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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