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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77개 검색됨

  • 혼례-귀신-사랑 : <종이혼례복> 시리즈와 ‘중국식 공포’의 유행

    최근 중국 내 추리 게임에는 ‘중국식 공포’가 유행하고 있다. <페이퍼돌스>(纸人; 리치컬쳐, 2019)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回门; 핀치게임즈, 2021)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의 오래된 저택에 들어가 결혼과 장례, 장례용 종이인형, 풍수 등 민속을 바탕으로 스릴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 Back 15 GG Vol. 23.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ivist, Writer) Xu Jia (Activist, Writer) Myeonggyo Hong Activist and writer. Works at the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Platform C on East Asian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social movements. Author of To My Vanished Chinese Friend and A Ghost Throws a Punch at the World, and translator of Xinjiang Uyghur Dystopia and Dying for an iPhone (co-translated).

  • 제5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디지털게임 비평의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26년의 공모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 Back 제5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31 GG Vol. 26. 6. 10.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디지털게임 비평의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26년의 공모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 공모형식 및 참여방법 - 주제ㅣ 디지털게임에 대한 비평 (세부주제 자유. 기존 GG 아티클 및 공모전 수상작 참조) - 형식: 워드프로세서 파일(HWP, DOC 등) 형식으로 제출. 파일명에 글제목 및 저자명 포함. - 분량: 4천자 ~ 8천자 내외 (이미지 삽입 5개 이하) - 제출방법: 공모전 전용 이메일( ggcriticcomp@gmail.com ) 을 통해 제출 ■ 시상내역 - 총 4편 내외 당선작 선정 및 시상 - 상금 및 상장 수여: 편당 120만원(세전, 원고료포함). - 2026 G-STAR(부산, 11월 예정)에서 시상식 진행 예정 - 당선작 GG 32호(2026. 10) 게재 ■ 일정 - 2026. 09. 11(금) 접수마감 (23:59까지) - 2026. 10. 02(금) 심사완료 및 결과통지 - 2026. 10. 10((목) GG 수상작 게재 - 2026. 11. G-STAR 일정 중 시상식 진행 (세부일정 확정후 별도 통보) ■ 기타 - 제출된 원고는 반환되지 않습니다. - 수상작은 GG에 게재됨과 동시에 GG아티클과 동일하게 전재되어 타 매체에 기고할 수 없습니다. - 응모는 1인당 1작품을 기준으로 하며, 초과 투고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기존 GG 공모전 입상자는 선정에서 배제됩니다. - 제출되는 모든 응모작은 표절검사를 실시하며, 수상 이후라도 표절 문제가 확인될 경우 수상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기타 공모전 관련 문의는 공모전 공식 이메일( ggcriticcomp@gmail.com ) 으로 보내주십시오. ■ 주최: 게임문화재단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온라인게임, 멀티플레이, 그리고 경쟁

    한때는 ‘온라인 게임’이 곧 새로운 미래가 될 거라 믿던 시기도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이벤트까지 거친 후 지금 돌아보면 어떤가? 부분적으로 온라인 시스템을 수용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여전히 오프라인이 중심인 느낌이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Kim is known for his activities as a critical expert on current affairs in various press media. But he is also an active gamer who never let go of games. Some of his publications includes 『a cynical society』, 『Otaku Loved Lenin』, as well as a co-author of 『Now, Here, Far-Rightism』, 『right-wing discontent』, 『Twitter, that 140-character egalitarianism』. His latest publication is 『Democracy where you vote because you don't like that side』.

  • [제4회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심사평

    실망하지 말고 계속 게임을 즐기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토론하며, 끊임없이 글을 생산해주기를 기대한다. 문학적 재능이나 학술적 깊이 하나만으로는 훌륭한 비평문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게임에 대한 애정을 품으면서도 독창적인 문제의식과 충실한 개념 자원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이왕이면 재미있게) 정리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비평가들의 출현을 기대한다. < Back [제4회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심사평 26 GG Vol. 25. 10. 10.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한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응모작 80여 편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상향 평준화’이다. 이전과 비교하여, 대중에게 공개되어도 모자람이 없을 좋은 글의 수가 부쩍 늘었다. 그런 의미에서 양과 질 모두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동시에, 눈이 번쩍 뜨이는 ‘걸작’은 드물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수상작으로 두 편만을 선정한 이유이다. 응모작들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고르게 높아졌음에도, 심사위원들이 중요하게 고려한 글의 형식적 완성도, 독창적인 시각, 비평의 보편성 확보, 그리고 게임에 대한 통찰과 애정이라는 주요 기준들을 모두 만족시킨 작품은 많지 않았던 셈이다. 최종적으로, 류호준의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소외시키는가>와 강현의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 캐릭터 뽑기가 갖는 의의란> 두 편을 제 4회 게임비평 공모전의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소외시키는가>는 언뜻 보면 진부할 수 있는 ‘소외’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았으나, 이를 실존적 차원으로 확장해 게임 매체의 특수성과 연결한 점이 돋보였다. 글의 전개가 체계적이어서 독이성이 뛰어나고, 글의 구조가 수미상관을 이루어 설득력이 높았다. 무엇보다, 결론 부분에서도 자신의 문제의식을 흐트리지 않고 깔끔하게 완결지은 점을 높이 샀다. 다른 응모작들은 훌륭한 논의 전개를 펴다가도 제대로 된 마무리를 하지 못해 감점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글은 그러한 아쉬움을 느낄 수 없었다. 글이나 게임 레퍼런스 활용이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비평의 보편성과 깊이를 확보한 우수작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었다.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은 서브컬처 게임의 ‘뽑기’ 메커니즘과 이용자 애착 관계를 비평적 주제로 삼아, 지금까지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영역을 다룬 흥미로운 시도였다. 글의 비평적 초점이 분산되었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이는 산업적 맥락과 수용자 경험을 함께 담고자 했던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선해하였다. 또한 제목에서 드러나듯, 새로운 현상을 포착하고 이를 비평으로 끌어오려는 ‘시론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즉 저자의 차별적 시선과 통찰력만으로도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비록 수상작에 포함되지는 못했으나, 마지막까지 수상 후보로 논의되었던 몇 편의 응모작을 추가로 언급하여 저자들의 노고를 상찬하고 격려하고자 한다. <게임 속 상점을 재개발하기>는 게임 속 ‘상점’이라는 익숙한 요소를 비평 대상으로 삼은 독창적인 발상이 돋보였다. 게임 속 상점의 본질과 의미, 그리고 각 게임에서 드러나는 맥락들을 잘 엮어낸 수작으로, 저자는 좋은 비평가의 소질을 가졌다고 평한다. 참신성에 비해 보편적 설득력이 미흡한 점이 다소 아쉬웠다. <슈퍼로봇대전: 축제적 시뮬레이션과 재매개된 기억의 양가성>는 문제의식이 매우 흥미로웠다. 글의 깊이도 인상적이었다. 폭넓은 독서량과 게임의 매체적 특성을 이어보려는 저자의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단, 개념 사용이 부정확하거나 과잉 차용되어 독이성을 떨어트린다는 흠이 있었다. <방어의 미학: 타워 디펜스가 재정의하는 게임적 주체성>은 장르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고 글의 흥미도도 높았다. 대신 추상적 개념들을 다소 성기게 활용하여 구체적 논의로 심화되지 못한 점, 즉 비평으로서의 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외부저장소로서의 플레이어>는 좋은 아이디어와 주제를 포착하여 짜임새 있는 내용을 전개했으나, 마지막에 글의 결론을 초점 하나로 수렴시키지 못하고 흩뜨려버렸다는 점이 감점 요인이 되었다. 주제의식에 비해 마무리가 약했다. <양동이와 쇠지렛대로 이룬 반역 게임 속 잔여적 사물성에 관하여>는 게임 속 오브제를 통해 ‘잔여적 사물성’ 개념을 제시한 시도가 신선했다. 글의 논리적 구성도 뛰어났다. 그러나 잘 알려진 사례를 반복적으로 다루어 다소 지루하다는 점, 독창적 논지를 끝까지 잘 밀고 가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논쟁적이고 흥미로운 문제 제기라는 점은 높이 살 수 있었다. 이 다섯 편은 물론이거니와, 아깝게 수상작에 포함되지 못한 좋은 글들이 여럿 있었다. 실망하지 말고 계속 게임을 즐기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토론하며, 끊임없이 글을 생산해주기를 기대한다. 문학적 재능이나 학술적 깊이 하나만으로는 훌륭한 비평문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게임에 대한 애정을 품으면서도 독창적인 문제의식과 충실한 개념 자원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이왕이면 재미있게) 정리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비평가들의 출현을 기대한다. 벌써 4회를 맞이한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이 그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으며, 두 분의 당선자 역시 이 토양 위에서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를 기원한다. 땀과 정성이 배인 글을 보내주신 모든 응모자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큰 감사와 축하를 보낸다.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윤태진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그려진 힘, 그리는 힘, 그림의 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와 이미지, 그리고 리얼리즘

    클레르 옵스퀴르〉는 그 제목부터 미술과 연관성이 명확하다. 잘 알려져 있듯 클레르 옵스퀴르(Clair-obscur)는 이탈리아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키아로스쿠로는 chiaro(밝은)와 oscuro(어두운)의 합성어로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적으로 사용하는 미술 기법을 말한다. 이탈리아 맥락에서는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로 대표되는 바로크 양식의 연출을 꼽을 수 있고, 프랑스어인 클레르 옵스퀴르로 번역해서는 촛불 그림으로 유명한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 같은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 Back 그려진 힘, 그리는 힘, 그림의 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와 이미지, 그리고 리얼리즘 24 GG Vol. 25. 6. 10. *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이하 〈클레르 옵스퀴르〉) 스포일러 주의 “현실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 〈클레르 옵스퀴르〉 르누아르, 베르소의 대사 그려진 힘 게임 〈클레르 옵스퀴르〉는 그 제목부터 미술과 연관성이 명확하다. 잘 알려져 있듯 클레르 옵스퀴르(Clair-obscur)는 이탈리아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키아로스쿠로는 chiaro(밝은)와 oscuro(어두운)의 합성어로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적으로 사용하는 미술 기법을 말한다. 이탈리아 맥락에서는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로 대표되는 바로크 양식의 연출을 꼽을 수 있고, 프랑스어인 클레르 옵스퀴르로 번역해서는 촛불 그림으로 유명한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 같은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클레르 옵스퀴르는 독특한 기법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는 모든 재현적 이미지에서 항상 중요한 문제다. 밝음과 어두움을 통해서 배경과 형상은 분간되고, 빛과 어둠의 균형과 불균형은 매번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계의 모습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완전히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빛과 어둠의 존재가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빛을 통해서 어둠을, 어둠을 통해서 빛을 감각한다. 이러한 문제는 〈클레르 옵스퀴르〉를 관통하는 주제와도 연결된다. 삶과 죽음, 현실과 가상, 과거와 현재, 진짜와 가짜, 그리는 이와 그려진 것, 그림 밖과 그림 속 등등 서로 전혀 다른 것들 사이에서. * Caravaggio,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610. * Georges de La Tour, Magdalene with the Smoking Flame, c. 1640. 〈클레르 옵스퀴르〉에서 플레이어가 탐험하게 되는 세계는 그림 속이다. [1] 플레이어는 게임의 중반 이후인 2막을 끝내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고, 그때까지의 스토리는 반전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돌이켜보면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관에서 마나에 해당하는 마법적 에너지를 크로마(Chroma, 색채)라고 부르는 등 곳곳에서 여기가 그림 속이라는 세계관 설정이 드러난다. 캐릭터 설정은 이러한 세계관 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해 볼 지점이 특히나 많은데, 르누아르는 당연히 그 유명한 화가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를 연상시키고, 페인트리스이자 르누아르의 아내, 베르소의 어머니인 알린은 실제 르누아르의 모델이었던 알린(Aline Charigot, 1859–1915)과 또 다른 화가인 알린(Aline Réveillaud de Lens, 1881–1925)이 겹쳐 보인다. 초반부 주인공 역할을 하는 귀스타브 역시, 게임 속에서도 중요한 건축물로 등장하는 에펠탑을 건축한 에펠(Gustave Eiffel, 1832-1923)과 이 글의 맥락에서 중요한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가 겹쳐 읽히는 캐릭터다. 연상되는 인물들 모두 게임 속 설정과 같은 19세기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의 예술가들이라는 점은 이러한 접근에 개연성을 확보해 주기도 한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마엘은 이 세계가 그림 속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 각성하여 엄청난 힘을 얻는다. [2] 플레이어는 마엘을 통해 게임 초반부에 원정을 떠나게 한 원인인 고마주(Gommage, 프랑스어로 ‘지우다’는 뜻)를 직접 사용할 수도 있게 된다. 그의 아버지인 르누아르처럼 캔버스 세계에서 존재를 지워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각성 이후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기술인 스탕달은 너무 높은 버그성 데미지 때문에 결국 핫픽스로 너프까지 당했다. 그 기술은 작가 스탕달(Stendhal, 1783-1842)의 이름에서 따온 것일 텐데, 스탕달의 문학 작품보다는 이른바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불리는 현상과 더욱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스탕달은 『로마, 나폴리, 피렌체』에서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을 방문했을 때, 그 숭고한 아름다움에 푹 빠져 심장이 마구 뛰고 결국에는 생명이 고갈되는 것 같은 엄청난 황홀경에 빠졌던 경험을 묘사한다. 그 이야기에서 비롯하여 뛰어난 예술 작품의 영향으로 심신에 충격을 받는 것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예술 작품 때문에 실신하는 현상을 뜻하는 그 기술의 이름을 생각하면, 스탕달이 긴급 너프를 당할 정도로 높은 데미지 계수를 가지고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껏 모험한 세계가 모두 그림 속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뒤, 얻는 픽토스의 이름이 ‘그려진 힘’(painted power)이라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전까지 최대 데미지의 상한선이었던 9999를 돌파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중의 핵심 아이템으로, 이 아이템을 얻은 이전과 이후의 게임 경험은 말 그대로 차원이 달라진다. 단지 스토리의 맥락뿐 아니라, 플레이어의 게임적 경험에서도 각성과 한계 돌파를 직접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탁월한 장치인 것이다. 여기에서 또 중요한 논점은 이 세계가 단지 그림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 허무주의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림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각성을 하게 되는 서사 구조에 있다. 물론 이 세계는 아들 베르소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데상드르 가족이 그림 속으로 현실 도피하여 만들어진 곳이지만, 점점 현실을 자각하며 회복하는 단선적인 서사를 그리지 않고, 오히려 캔버스 속 세계에서 만난, 사실 한낱 그림에 불과한 친구들에게 입체적인 서사를 부여한다. 귀스타브, 루네, 시엘과 같은 그림 속 동료들 모두 각각 고유의 이야기를 가지고 플레이어와 복잡한 관계를 맺는다. 데상드르 가족이 키우던 개가 의인화된 캐릭터 모노코, 현실에선 잘 때 안고 자는 인형인 에스키에도 그림 속 세상에선 주체성을 가진 인물이 된다. 최종적으로 엔딩 분기점은 그림 속에 남을 것인지, 현실로 돌아갈 것인지를 플레이어가 선택하게 만든다. 캔버스 속 가짜 친구들과 현실의 진짜 가족들 사이의 선택이지만,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선택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플레이어가 세계관에 몰입하여 그림 속 가짜 친구들과 진짜 관계를 맺게 되는 문제도 있지만, 필자가 중요하게 짚어내는 부분은 게임의 서사와 플레이의 경험이 겹쳐지며 드러나는 두 층위의 그림이다. 게임 속 세계가 단지 그림일 뿐이었다는 층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플레이어가 보고 있는 모니터 속 그림일 뿐이라는, 게임 그 자체의 층위. 여기에서 실제로 스탕달 신드롬을 겪는 것은 우리 플레이어라는 말이다. 〈클레르 옵스퀴르〉를 통해서 근본적으로 데이터 쪼가리와 픽셀에 불과한 이 그림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니 그림이, 게임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리는 힘 엔딩 분기점은 마엘을 선택하여 그림 속 세계에 머물 것인지, 베르소를 선택하여 캔버스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갈 것인지를 플레이어에게 묻는다. 만약, 마엘을 선택하여 그림 속 동료들과 모험을 계속하기를 선택한다면, ‘그리는 삶’이라는 제목의 에필로그가 이어진다. [3] 그림 속 세상에서 페인트리스의 힘을 각성한 마엘은 죽은 동료들을 모두 살려낸다. 베르소가 연주를 준비하고 있는 콘서트장에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고 이제 연주가 막 시작되는 순간, 화면은 마엘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여 담는다. 친구들이 모두 모였지만 전혀 기뻐 보이지 않는 공허한 표정의 얼굴이다. 심지어 마엘의 얼굴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곧이어 암전. 이 게임의 세계관에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현실과 연동된 존재들은 모두 얼굴이 깨져 있다. 페인트리스(알린), 큐레이터(르누아르), 소년(베르소), 그리고 에필로그의 마엘까지. 얼굴 없는 존재는 곧, 거울을 볼 수 없는 존재이다. 돌이켜보면 플레이어는 게임 곳곳에서 거울을 마주하지만, 기술적인 문제인지 거울은 그 어떤 이미지도 반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거울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이곳이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가장 명확하게 알려주는 장치인 알리시아의 편지에도 이 세상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라고 쓰여 있다. 세계 곳곳에는 거울이 비밀 통로로 등장하고, 캔버스의 프레임과 거울의 프레임이 구분되지 않게 그려진다. 게임 속 세계에서 캔버스와 거울은 겹쳐 있다. 마침 위에서 언급했던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에는 예술 작업이 “길 위를 따라다니는 거울”이라고 쓰는 구절이 나온다. [4] 거울은 세계와 예술 작업의 관계를 드러내는 비유이자 장치이다. 거울과 그림은 모두 세계를 반영한다. 게임 속 르누아르도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며 “현실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고 말하는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관점은 귀스타브 쿠르베의 리얼리즘을 연상시킨다. 쿠르베는 “회화란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며, 실재하고 존재하는 사물들의 재현 외에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다.”라며 세계와 그림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5] 물론 쿠르베의 말은 역사화나 종교화와 비교하여 현실을 담아내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리얼리즘이라는 문제는 지금 맥락에서 한번 더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리얼리즘이라는 태도로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가짜, 픽션, 매개, 그리고 그림이라는 점이다. 가짜에 진짜를 담으려는 시도 자체가 리얼리즘인 것일까. 아무리 리얼리즘을 강조해도 세계는 그대로 담기지 않는다. 예술적 매개를 통해 우리가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현실 세계가 어떻게 매개되어 있는지이다. 현실에서 맨눈으로 볼 수 없던 이데올로기적 장막이 그림에서는 거두어지는 경우가 있다. 쿠르베는 그 이전엔 결코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노동자들을 그렸다. 현실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재현되지는 않았던 존재들이 그림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그림을 통해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 Gustave Courbet, The Stone Breakers, 1849. 마엘 엔딩의 에필로그 ‘그려진 삶’은 마치 배드 엔딩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림 속에 남기를 택했기 때문에 플레이어와 동료들은 엔딩 이후에도 세계를 계속 탐험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이른바 엔드 게임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클레아와의 전투, 0원정대의 일원인 시몽과의 전투 등 다양한 모험을 통해 이 캔버스 세계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더 발견한다. 세계관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적인 시몽을 만나기 위해 ‘뤼미에르의 밑그림’에 들어가면, 현실의 르누아르와 연결된 얼굴 없는 빛바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는 “창조에는 행동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날 움직인다”고 말한다. 물론 그는 그림 속에 매몰된 알린을 비판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실천 자체의 힘에 대해 이야기 한다. 현실 도피도 현실 반영도 아닌, 현실 속 존재에게 힘을 주는 실천으로서의 그리기. 그림의 힘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의 『자연사』에는 그림의 기원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부타데스라는 어떤 도공의 딸이 사랑하던 사람과 떨어지게 되어 등불에 비친 실루엣을 따라 벽에 그림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 흔적이 최초의 그림이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 전설은 그림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부재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림과 현실이 맺는 관계, 그리고 실천으로서의 애도. 게임 속 페인트리스가 했던 일도 정확히 같은 것이다. 이미지는 가짜이지만, 우리를 움직인다. 바르트는 “죽음은 사진의 본질(eïdos)”이라고 쓰면서 우리를 찌르는 이미지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6] 픽션이라는 관점에서도 다시 생각해 볼 것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픽션은 실재와 대비되는 허구의 것을 의미하지만, 자크 랑시에르는 픽션(fiction)의 어원인 라틴어 fingere의 뜻이 “-인 체하다”가 아니라 “벼려 만들다”라는 점을 짚어내면서 다른 사유의 경로를 열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픽션은 사건과 형태, 기호의 체계를 구축하고 재조직하는 것이다. 픽션은 상상적 세계의 발명이 아니다. 오히려 주체, 사물, 상황이 공통 세계에 공존하는 것으로서 지각될 수 있는 틀, 사건이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사고되고 연결될 수 있는 틀을 조직하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실재와 픽션 사이의 유사성이나 진위를 문제 삼지 않고, 심지어 예술의 바깥으로서의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실재는 늘 픽션의 대상이다. 즉, 볼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맺어지는 공간을 구축하는 행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7] 픽션이라는 문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픽션이 구축해 낸 실재라는 대상이 아니라, 구축하는 작업의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랑시에르는 실재를 가장하지 않고 실재를 대상으로 삼는 바로 이 픽션의 작업이 예술과 정치를 매개한다고 주장한다. [8] 다시 게임 담론으로 돌아와서 필자는 여기에서 “안에 사람들이 있잖아!”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게임이 온라인으로 실제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모니터 안의 그림들이 정말로 그저 데이터 쪼가리, 픽셀일 뿐이더라도 우리는 그것과 진짜 관계를 맺는다. 그림들은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찌르고, 무엇보다도 변화시킨다. 〈클레르 옵스퀴르〉의 엔딩 분기점은 마치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을 연상시키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른 점이 많다. 〈매트릭스〉에서는 빨간약을 먹고 현실을 자각하는 것이 각성이고, 파란약을 먹고 가상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우매한 상태로 남는 것이지만, 〈클레르 옵스퀴르〉에서는 이 세계가 가상임을 알면서도 각성된 상태로 이곳에 머무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 〈클레르 옵스퀴르〉 ‘그리는 삶’ 에필로그 마지막 장면. 여기에서 깨어 있는 상태로 가상에 머무는 존재는 사실 플레이어 그 자체가 아닐까. 마엘 엔딩 에필로그의 마지막 장면, 마엘의 얼굴이 화면 가득 담기는 상태에서 엔딩 크레딧으로 넘어가며 화면은 온통 검은색이 된다. 그 순간, 검은 화면이 블랙미러가 되면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다. 취해 있으면서 동시에 깨어 있는 존재, 몰입과 각성 사이에 놓인 존재인 플레이어. 플레이어는 진짜를 통해서 가짜를, 가짜를 통해서 진짜를 사유한다. 매개된 현실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세계를 비추어 본다. 리얼리즘의 근본적인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클레르 옵스퀴르〉의 세계관에서 페인터들은 마치 마법적 능력을 지닌 사람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것은 가상의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상상을 형식으로 매개하는 일. 그 일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게임이라는 매개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생각한다. 그림의 힘, 픽션의 힘, 게임의 힘, 그리고 플레이어의 역능. [1] 정확히 이야기하면,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 중 하나인 베르소가 어릴 적 그린 캔버스 속 세계. 현실의 베르소가 죽은 뒤, 그의 어머니인 알린과 아버지인 르누아르, 그리고 누이인 클레아가 덧칠을 하고, 또 그림을 지우면서 형성된 세계가 플레이어가 탐험하고 있는 곳이다. [2] 베르소의 동생인 마엘도 이 세계를 그린 데상드르 가족의 일원으로 크로마를 다루어 그림 속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마엘의 그림 바깥 세계 본명은 알리시아. [3] 반대로 그림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베르소를 선택할 경우, 에필로그의 제목은 ‘사랑하는 삶’이다. [4] 스탕달, 『적과 흑』 2권, 문학동네, 213쪽. [5] Letters of Gustave Courbet, edited and translated by Petra ten-Doesschate Chu,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2, pp. 203-206. [6]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97, 22쪽. [7] 자크 랑시에르, 『해방된 관객』, 양창렬 옮김, 현실문화, 2016, 107쪽. [8] 이나라, 「픽션의 작업: 랑시에르의 예술의 정치」, 『현대미술학회지』, 2018, 78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권태현 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

  •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2024년 진행된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을 다음과 같이 발표합니다. < Back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20 GG Vol. 24. 10. 10. 안녕하세요, 게임제너레이션입니다. 2024년 진행된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을 다음과 같이 발표합니다. 기계장치의 우주 - 레인월드와 아우터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나원영)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박정서) : 미술관이라는 공포 체험 (윤수빈) 게임으로부터의 선택, 선택으로부터의 풍경 (김성은) 이상 네 개 작품을 공모전 수상작으로 발표합니다. 수상작은 GG 20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응모해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게임제너레이션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제약과 위계, 설계와 창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어떻게 플레이어를 운영으로 유도하는가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는 일견 무한한 자유 내지는 전능성을 보장하는 듯하면서도, 이걸 제약하는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궁극적으로 세계의 설계와 창출이라는 거대한 목표로 유도할지 궁리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 Back 제약과 위계, 설계와 창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어떻게 플레이어를 운영으로 유도하는가 27 GG Vol. 25. 12. 10. 기본적으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시설의 설치와 건설, 관리를 중심으로 거시적인 운영과 통제를 이뤄가는 장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면, 개인 가게 운영 같은 예외적인 소재를 빼면 대다수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전능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출발한다는 점에 있다. 플레이어는 삼인칭 전지적 시점 아래 놓인 텅 빈 (또는 개발되지 않은) 공간에 건설 내지는 설치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즉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전지적 시점에서 전능성을 플레이어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게임의 전제를 성립한다. 이 시점의 주체를 설명하기 위해 게임은 종종 플레이어를 보통 지도자나 경영자로 칭하곤 한다. 하지만, 이 전능은 어느 정도 기만적이다.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의 전지전능은 자유를 만끽하라고 부여하는 게 아니라, 설계와 창출이라는 과정과 목표를 달성하라고 부여하기 때문이다. 샌드박스 모드가 아닌 이상,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일정한 서사와 목표를 부여한다. 그 다음 자본과 자원의 제약을 부여하고 게임이 다루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설계해 운영하길 원한다. 이런 제약과 종속, 창출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이 어떻게 무한한 자유에 목적과 형식을 부여해 난관을 설정하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설계와 창출을 유도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숲과 나무, 두 시점 축 간의 제약과 쾌감 우선 운영 시뮬레이션의 시점을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일인칭 시점보다 삼인칭 시점으로 특정 공간 속 거대한 ‘흐름’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숲과 나무의 비유를 빌리자면, 나무를 상세히 배치해 숲으로 만들 능력을 요구하는 장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개별 나무를 보고 만질 수 있는 미시적인 시점이나 순간은 제한되는 데다 게임 디자인의 핵심에서도 벗어나 있다. 간단히 말해 이용객 (이 글에서 이용객은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 전반에 등장하는 손님이나 거주민을 총칭한다)을 통해 일인칭 시점으로 자신이 설계한 공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체험’하는 건 가능하지만 - <심시티>나 <시티즈> 시리즈 같은 게임처럼 일인칭으로 체감하기엔 복잡한 소재적 한계로 (예를 들어 무수한 데이터를 연산 처리해야 하는 도시 운영) 일인칭 시점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 세계를 설계, 나아가 운영하려면 시점의 주체가 보이지 않는, 전지전능한 삼인칭 조감 시점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렇기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일인칭 시점을 제공하는 이용객은 플레이어와 무관한 NPC이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가 이용객 시점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들은 플레이어의 주체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용객은 게임 내 인공지능이 조합한 취향과 생각, 욕구 수치에 맞춰 플레이어가 설계한 공간에 속해,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서 움직일 뿐이다. 장르 자체가 인간으로서는 게임 진행을 할 수 없고, 신이 되길 요구한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이용객은 주체보다는, 객체이자 게임 내 평가 체계의 일부에 가깝다. NPC 인공지능인 ‘이용객’은 플레이어가 설계한 공간과 시설을 이용하고, 감상을 남긴다. 이 감상은 곧 평가 데이터로서 치환된 후 누적되어 총체적인 세계에 대한 평갓값으로 제시된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이 이용객이 어떻게 행동할지 전혀 개입할 수 없지만, 그들이 남기는 감상과 이런 감상이 뭉쳐 만들어지는 빅 데이터 표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신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이용객을 위시해‘빙의’하듯이 시선을 빌어 자신이 설계해 운영하는 공간 속 흐름에 합류해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감상하는 공간은 결국 플레이어 자신이 만든 세계이기 때문에 이런 감상과 미적인 만족감엔 궁극적으로는 자기애적인 성향도 띄게 된다. 관련 팬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소통 역시 이런 두 시선 축의 교차에 기반하고 있다.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의 아름다움을 (물론 이 아름다움엔 단순히 숭고미 이외에도, ‘홀로코스트 타이쿤’으로 대표되는 골계미 역시 포함된다) 삼인칭 조감 시점과 일인칭 관찰자 시점을 오가는 다양한 카메라-눈으로 영상과 스크린숏으로 포착한 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다른 팬들과 소통한다. 인정 욕구와 승인, 성취감이 거시와 미시 두 시선 축을 오가면서 이뤄진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전지전능하며 거시적인 삼인칭 조감 시점을 기본으로 플레이어가 세계를 구축하도록 한 뒤, 세계가 작동하는 모습을 삼인칭 조감 시점과 동시에 수동적이며 미시적인 일인칭 이용객 시점으로도 볼 수 있게 한다. 이런 교차 속에서 게임은 빅 데이터로서 축적된 이용객의 감상/민원 표본을 수치로 치환해 플레이어가 운영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평가로 제시한다. 플레이어는 이 수치를 확인하면서 향후 운영을 어떻게 할지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 삼인칭과 일인칭 시점을 교차할 수 있도록 하면서 거시적 감각과 미시적 감각을 동시에 제공해, 플레이어가 설계한 세계를 체험케 하면서 (어느 정도 자기애적 성향도 있는) 미적 쾌감을 누리도록 한다. 시설의 위계와 조합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이 가장 먼저 플레이어에게 설치하길 요구하는 건 바로 도로나 철도 같은 ‘접근 수단’이다. ‘심시티’나 ‘타이쿤’ 류 게임을 플레이하면 알 수 있지만, ‘접근 수단’을 건설하지 않으면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공간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 접근성은 시설과 손님 간의 관계일 수도 있으며 (놀이공원 운영 시뮬레이션), 도시 내 다양한 개발 구역과 시설일 수도 있으며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 도시 내부 및 도시/국가 간 교통 체계일 수도 있다. (교통 운영 시뮬레이션) 이렇게 시설에 접근할 수단이 마련되고 나면,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시설 설계와 관리 단계로 넘어간다. 이 단계에서 게임은 설치할 수 있는 시설에 위계질서를 부여한다. 놀이공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런 장르 내 시설 간 위계질서가 상징적이고 명징하게 드러내는 하위 장르일 것이다. 이 하위 장르를 대표하는 놀이기구로는 회전목마와 롤러코스터가 있다. 전자는 저자극 놀이기구를 대표하며 후자는 고자극 놀이기구로 대표한다. 하지만 이런 대표성과 별개로 게임 내 위계 차는 명확하다. 애당초 이 장르는 아예 ‘롤러코스터’를 게임 제목에 넣는 경향도 있기에 (<‘롤러코스터’ 타이쿤>, <플래닛 ‘코스터’>) 롤러코스터는 게임의 간판격이며 동시에 상당한 숙련 난이도를 요구하며 플레이어를 유혹한다. 반대로 회전목마는 롤러코스터보다 설치 비용도 저렴하고 간편하지만, 동시에 종합적인 수치 역시 롤러코스터보다 낮다. 장르 팬들 역시 아무리 회전목마를 선호하더라도 그것을 게임의 핵심으로까지 여기지 않는다. 설치 난도 면에서도 둘은 명백히 차이가 있다. 회전목마는 설치한 후 접근 수단을 깔아두는 것만으로도, 작동하며 즐거움 수치 역시 대체로 낮은 변화폭 속에서 균일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는 트랙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즐거움 수치가 천차만별로 변하기에 훨씬 더 공을 들이고 테스트로 확인해봐야 한다. 그렇기에 회전목마, 나아가 낮은 수치의 저자극 놀이기구들은 일종의 상징물이자 시나리오 초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하지만, 가동 이후 운영에서는 유지 보수 이외엔 비중이 줄어들며, 플레이어 역시 롤러코스터 설계나 총체적인 운영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즉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 내에서 ‘시설’은 게임으로서 현실의 시설 특성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수치화해 위계를 부여하고 그 위계에 맞춰 설치하고 운영하길 요구한다. 물론 이 위계질서가 일방적인 상하 관계로만 단정 짓기엔 어렵다. 이런 일방적인 상하 관계를 지양하고 특색의 강조, 상성과 조화로 상승 효과를 내려는 시도 역시 장르의 중요한 어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놀이공원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로 돌아가 보자. 롤러코스터는 훨씬 설치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놀이공원의 꽃으로 고수익을 보장하긴 하지만, 모든 이용객이 롤러코스터를 좋아한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심지어 롤러코스터 속에서도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격렬도나 흥미 수치를 무조건 높게 나오게 설계한다고 해서 높은 인기로 직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회전목마로 대표되는 저자극 놀이기구도 시간이 지날수록 비중이 줄어들긴 하지만, 수요가 아예 사라지진 않는다. 이런 복잡한 위계질서를 잘 보여주는 놀이기구가 있다면 바로 운송 시설이 있다. 운송 시설은 여러모로 롤러코스터와 대조되는 놀이기구다. 기본적으로 운송 시설/기구는 열차나 모노레일 등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롤러코스터처럼 ‘트랙’ 기반으로 설계된다. 하지만 총체적인 즐거움 수치 면에서는 롤러코스터보다는 확실히 밑에 있으며, 이 시설만으로는 정상적인 놀이공원 운영을 할 수 없다. 그 점에서 운송 시설/기구는 롤러코스터처럼 트랙 기반 놀이기구임에도 명백히 회전목마처럼 저자극 놀이기구에 속한다. 그렇다고 운송 시설을 잉여적이고 쓸모없는 놀이기구라 판단하기엔 성급하다. 분명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기 떄문이다. 운송 기구는 탑승하는 이용객의 에너지 감소 수치를 절감하거나 멀리 떨어진 다른 구역으로 수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롤러코스터가 할 수 없는 걸 수행할 수 있다. 어떤 지점에서는 놀이기구이면서도 접근 수단에 가까운 양태를 띄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운송 시설의 이런 복합적인 면모는 상성 등 복잡한 개별 요소들이 얽혀 있으며, 어떤 소수 의견과 즐거움 이외의 수치들이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의 변수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이점이 아닌 약점이나 제약으로 이런 위계질서에 복잡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런 약점 위주로 변수를 구성하는 디자인은 놀이공원 운영보다는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디자인이다. 그렇기에 게임 속 시설들 역시, 이 시설이 과연 지금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도시와 걸맞은지를 판단하도록 요구하는 약점/제약이 많다. 혐오 시설 및 환경 판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오염 등급이라던가 특정 조건 (강가에만 설치할 수 있다던가)을 만족해야 설치할 수 있는 시설들이 대표적이다. 전반적으로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놀이공원 시뮬레이션 게임보다도 세계=도시 규모의 변화에 따라, 시설 활용도 역시 극적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어, 시설 확충이나 교체를 요구하는 경향이 짙다. 여기다 환경, 복지, 세금, 인프라 등 이용객 행복도 수치에 관여하는 변수가 많기에, 이 변수들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규모의 비례에 따라 시뮬레이션 난이도가 올라가는 장르적 경향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신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에서 시설 설치는 큼직한 인프라 위주로 이뤄지는 경향이 크다. 예를 들어 실제 도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거, 상업, 산업, 사무 같은 경우 접근 수단 (대표적으로 도로)을 깐 후 밀도별 구역 타일으로 배치하면 자동적으로 개발된다. 이는 <트랜스포트 타이쿤>이나 같은 교통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특히 후자 같은 경우 일본만의 특수성 때문에 하위 장르 간의 혼종적인 경향성도 띈다.), 좀 더 다루는 범위가 폭넓은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 같은 경우, 지형과 기후 같은 플레이어가 통제할 수 없는 상수나 돌발 별수가 자주 발생하기에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다층적으로 판단하고 보완할 능력이 필요하다. 즉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시설 간 관계는 일정한 위계가 있되 어떤 스펙트럼에 따라 위계와 활용 방식이 정해지며, 이 스펙트럼의 기준이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따라 전체적인 게임 방향성이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스펙트럼의 폭이 얼마나 넓으냐부터 시작해 스펙트럼 내 요소들이 어떤 위계를 띄느냐, 요소들의 조합이 어떤 효과를 내느냐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무한한(듯한) 자유를 길들여 경제 논리에 종속시키기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는 일견 무한한 자유 내지는 전능성을 보장하는 듯하면서도, 이걸 제약하는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궁극적으로 세계의 설계와 창출이라는 거대한 목표로 유도할지 궁리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이 제약은 시점의 제약부터 시작해 (‘만들어낸 세계를 미적으로 만끽하고 싶으면 전지전능한 삼인칭 조감 시점으로 돌아가서 설계해야만 한다’), 시설의 상성과 조합까지 (‘시설은 스펙트럼에 기반한 일정한 위계와 상성 관계가 있으며, 접근 수단과 함께 효율적으로 설계 및 베치해 이용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곳곳에 퍼져있다. 물론 샌드박스처럼 제약 일부를 풀어주는 모드도 제공하지만, 그럼에도 큰 목표는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기에 샌드박스 모드를 플레이할 때도 플레이어는 제약에 맞춰서 세계를 가꿔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특정한 세계 속 요소들이 어떻게 맞물려 들어가는지를 플레이어가 파악하고 따라주길 요청한다. 플레이어가 이런 요소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할 경우, 게임은 플레이어가 설계와 창출에 실패했다고 판정한다. 반대로 제대로 파악해 창출이라는 목표에 도달했을 때 게임은 (자기애적 성향도 일부 포함한) 미적인 쾌감을 안기는 방식으로 보상을 준다.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그 점에서 직접적인 자본 활용 이 외에도 자유를 제약하면서 어떤 창출 체계에 플레이어가 포섭되어 설계하길 요청하고, 상응하는 대가를 보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경제의 논리와 미학에 충실한 장르라 할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지구를 다시 지구로, 지금을 다시 지금으로 만들기: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를 즐기며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는 말을 점점 더 자주 듣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기이한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자본가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가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것을 사업의 최종적인 목표로 여긴다는 이야기가 동시대 자본주의 세계의 신화처럼 전해진다. 테라포밍은 말 그대로 어떤 행성을 ‘지구의 형태로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보통은 지구 바깥의 다른 행성을 지구처럼 만들어 인간이 이주하거나, 식민지로 삼기 위한 계획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개념이다. < Back 지구를 다시 지구로, 지금을 다시 지금으로 만들기: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를 즐기며 05 GG Vol. 22. 4. 10. * 〈호라이즌〉 시리즈 전반에 대한 스포일러 요소가 있습니다. 지구를 지구로 만들기 테라포밍(Terraforming)이라는 말을 점점 더 자주 듣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기이한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자본가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가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것을 사업의 최종적인 목표로 여긴다는 이야기가 동시대 자본주의 세계의 신화처럼 전해진다. 테라포밍은 말 그대로 어떤 행성을 ‘지구의 형태로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보통은 지구 바깥의 다른 행성을 지구처럼 만들어 인간이 이주하거나, 식민지로 삼기 위한 계획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개념이다. 테라포밍이라는 말은 1942년에 발간된 잭 윌리엄슨(Jack Williamson)의 SF소설 『충돌 궤도』(Collision Orbit)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 이후 1961년에는 저명한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Carl Sagan)이 금성을 테라포밍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하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뜬구름이었던 상상에는 조금씩 구체성이 부여되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문학과 영화 그리고 게임 등 다양한 방면의 창작물에서 활용되며 SF의 핵심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아 왔다. 생각해보면 테라포밍은 굉장히 식민주의적인 발상이다. 인간의 생존이나 욕망을 위해 지구 바깥의 행성을 인간의 공간으로 뒤바꾸는 것만큼 궁극적인 식민주의가 있을까. 실제로 테라포밍은 행성 간 자원개발 같은 문제와 함께 다루어지며 식민주의의 알레고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영화 〈아바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테라포밍은 단순한 착취에서 나아가 어떤 생태계를 통째로 전환하는 것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성과 인간/자연 이분법의 극한에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지구 안의 생태계에서도 인간들은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무려 지구 바깥의 다른 별을 ‘지구화’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상상인가. 그러나, 여타 ‘-되기’의 문제가 그렇듯 테라포밍은 지구가 아닌 것을 지구로 만드는 일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하면서 그 자체로 ‘과연 무엇이 지구를 만드는가’하는 질문이 되기도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지구가 아닌 것이 지구가 될 수 있을까. 대체로 물과 에너지원의 존재,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대기 상태, 물질의 합성이 잘 일어날 수 있는 환경 등이 꼽힌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면 어디든 ‘지구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렇게 우리가 딛을 수 있는 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호라이즌〉 시리즈의 세계관은 고유의 탁월한 설정으로 흥미로운 영역을 열어낸다. 〈호라이즌〉 시리즈를 거칠게 요약하면, 지구를 다시 테라포밍하는 것에서 비롯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유저 경험이나 그래픽에 대한 호평도 눈에 띄지만 〈호라이즌〉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세계관에 있다. 〈호라이즌〉 시리즈는 세계가 멸망한 이후의 세계를 다루는 소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이지만, 여러 방면에서 전형성을 크게 벗어난다. 고대와 미래가 이상하게 꼬여있는 새로운 인류의 모습을 그려내고, 무엇보다 자연과 로봇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독특한 세계관은 지구가 완전히 파괴된 이후에 그것을 다시 복구하는 과정을 배경으로 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호라이즌〉의 세계관에서 지구가 멸망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우리의 세계처럼 지구의 환경은 점점 더 악화되었고, 그에 따른 분쟁도 격화된다. 물론 그만큼 환경을 위한 기술도 거듭 발전했지만, 역시나 문제는 자본주의. 테드 파로라는 자본가는 유기물을 스스로 분해하여 에너지로 만들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여 큰돈을 번다. 그러한 기술은 처음에는 생태와 융합을 지향하는 친환경적인 솔루션이었고, 망가져가는 지구 생태계에 희망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군사용 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된다. 2050년대에 들어서면 파로 오토메이티드 솔루션사(社)의 군사용 로봇이 선진국 군대의 대부분을 대체한다. 인류는 전쟁을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군사용 로봇 시스템은 계속 발달하여 자체적으로 에너지원을 찾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통해 로봇들이 스스로 생산하고, 통제하는 일종의 생태적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수준에 도달한다. 그렇게 고도로 발달한 로봇 시스템은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고, 결국 ‘파로 역병’이라고 불리는 결함이 확산되면서 로봇들은 끊임없이 개체 수를 늘려나가며 지구의 모든 유기물과 생명체를 자신의 에너지원으로 바꾸어 나간다. 인간들은 저항해보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지구 상의 모든 생명과 에너지원이 고갈되는 광경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 테드 파로는 로봇들의 군사 목적 활용을 반대하며 퇴사했던 핵심 개발자 엘리자베스 소백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보안을 핑계로 로봇에 접근할 수 있는 코드를 제대로 구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로봇들이 지구를 모두 파괴하기 전에 그들을 멈추는 방법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소백이 찾은 유일한 방법은 지구가 완전히 황폐화된 이후에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즉 지구를 다시 테라포밍할 시스템을 갖추어 놓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지구를 포맷하는 것. 이것이 〈호라이즌: 제로 던〉에서 드러나는 ‘제로 던’ 프로젝트의 전말이다. * 테라포밍 시스템을 총괄하는 ‘가이아’의 홀로그램 모습. 그 프로젝트를 위해 전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은 지구의 멸망을 준비하며 지구를 다시 지구로 만들기 위한 알고리즘을 구축한다. 전체 테라포밍 시스템을 총괄하는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 ‘가이아’를 중심으로 그리스 신들의 이름을 가진 9개의 하위 기능이 각각의 역할을 하며 지구를 다시 지구로 만드는 시스템이 계획된다. 1) 기본적인 세계관은 이 정도로 언급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2017년에 첫 출시된 〈호라이즌: 제로 던〉이 엘리자베스 소백의 복제인간인 주인공 에일로이의 탄생 비화와 이러한 세계관의 구조를 밝혀나가는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신작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는 하데스 시스템의 오류로 문제를 일으킨 가이아의 테라포밍 시스템을 다시 복구하고, ‘제로 던' 당시에 방주를 타고 지구 바깥으로 피신했던 21세기의 고대인들과 조우하는 이야기가 핵심에 있다. 초반부에 백업된 가이아의 데이터를 찾으면, 가이아의 홀로그램과 관계를 맺으며 그의 하위 기능들을 복구해나가는 퀘스트를 통해 게임의 핵심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지구의 명운을 짊어진 인공지능들이 모두 그리스 신들의 이름을 가졌다는 점이 계속 눈에 밟힌다. 이러한 설정뿐만 아니라, 〈호라이즌〉 시리즈 전반의 서구중심주의를 먼저 비판적으로 짚을 필요가 있다. 지구를 죽이고 살린 인물들과 모든 주요 사건이 모두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거나, 심지어 미국 서부의 IT자본들이 그 모든 것의 주체가 된다는 설정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또한 신생 인류 각 부족의 모습이나 풍습을 그려내는 방식에서는 전반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의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을 입체적으로 견지하더라도 가이아가 흑인 여성의 이미지로 재현되었다는 점은 단순한 ‘PC 요소’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 될 수 있다. 가이아는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과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가 주장한 ‘가이아 가설’을 연상시킨다. 가이아 가설은 대기의 원소 구성이나 해양의 염분 농도가 오랜 시간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지구에 살고 있는 다종다양한 생물들의 영향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지구를 무생물적 기반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이 복합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보는 관점이다. 러브록은 지구를 가이아로 부르며 지구가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조정하는 지적인 생명체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이른바 에코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사상적 흐름의 기반이 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가이아의 존재가 〈호라이즌〉의 세계관에서는 테크놀로지와 완전히 결합되어 있다는 점도 재미있는 지점이다. 자연을 총괄하는 여신이 인공지능 알고리듬이라는 설정은 독특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기술과 자연의 이분법을 가로지르게 된다. 여기에서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은 신적인 존재와 실제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나아가 그것은 생태계의 일부, 아니 생태계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설정에서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사이보그 매니페스토』의 “여신이 되기보다 사이보그가 되겠다”는 선언은 한 번 더 뒤집어지면서 전복적인 의미가 발생된다. 지금을 지금으로 만들기 이러한 요소 이외에도 〈호라이즌〉이 흥미로운 여성 서사인 이유는, 단지 주인공 에일로이가 여성이라는 점이나 에일로이가 태어난 노라 부족이 모계 사회라는 설정을 훨씬 초과한다. 2) 오히려 21세기 인류의 지식과 역사를 신생 인류에게 전달했어야 할 남신 아폴로의 이름을 딴 인공지능이 파괴된 상태로 리셋된 지구가 서사의 배경이라는 점이 더욱 근본적인 차이를 만든다. 생물학적인 이분법에서의 여성이 아니라, 남근적 대문자 역사와의 관계 속에서 여성적인 것의 위상을 고민해야 한다. 플레이어가 에일로이와 함께 탐험하는 세계는 고대(21세기)와 역사적 단절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고대의 사물들은 말 그대로 고고학적 사물이 된다. 푸코(Michel Foucault)는 『지식의 고고학』 등 텍스트를 통해서 고고학을 역사와 대별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역사는 세계를 선형적이고 논리적인 시간에 배치하는 작업이다. 또한 역사는 서술하는 주체의 관점에서의 질서이다. 그러나, 고고학은 땅에 파묻혀 있던 것을 갑자기 지금-여기에 튀어나오게 하면서 잘 정리되어 있던 역사적 배열을 깨뜨리곤 한다. 그렇기에 고고학적 사유에는 일종의 변증법이 작동하는 것이다. * 테낙스 부족이 신전으로 삼고 있는 과거의 전쟁기념관에서 포커스로 데이터를 발견했다. 설정에 따라 데이터 손상이 심한 경우에는 내용의 일부가 누락되곤 한다. 〈호라이즌〉 시리즈에서 플레이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는, 에일로이가 관자놀이에 끼고 다니는 ‘포커스’의 활용이다. 일종의 AR기기인 포커스는 플레이어가 버튼을 누르면 주변 공간을 스캔하면서 기존과 다르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낯선 공간에 진입하면 패드의 버튼을 연신 눌러대며 새로운 요소는 없는지, 혹은 유실된 데이터 포인트는 없는지 말 그대로 발굴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그렇게 발견되는 데이터 포인트의 정보들은 게임의 퍼즐 요소에 실질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게임 속 세계의 고대(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근미래인 21세기 중반)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그것은 단지 읽을 거리를 제공할 뿐이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이상하게 뒤틀리는 감각을 주어 흥미롭게 작동한다. 듀얼센스를 잡고 있는 플레이어의 시간에서 현재가 게임 속 에일로이의 시점에서는 고대가 되면서,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지금을 발굴하는 작업하게 된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에서는 북미 대륙의 서쪽으로 나아가면서 동부 출신인 에일로이 입장에서는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종족으로 여겨졌던 테낙스 부족을 만나게 된다. 처음 그들이 등장했을 때, 현대식 군대 제식에서나 볼 수 있는 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이 성지로 삼고 있는 공간은 21세기의 전쟁기념관이었다. 그들은 그곳의 홀로그램 자료들을 기반으로 일종의 종교를 만들어 고대의 전사들을 섬기면서, 전쟁기념관의 프로파간다 영상들이 제시하는 이념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공간 이외에도 〈호라이즌〉에는 데이터가 보관된 서버룸이나, 일종의 시드볼트, 심지어 인류의 유산으로 여겨지는 미술품을 보관하고 있는 수장고가 등장한다. 결코 불가능한 영원성을 전제하면서 시간들을 하나의 지평에 물질적으로 모아내는 장소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이례적인 위상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기도 하다. 이렇게 시간에 대한 감각을 꼬아내는 설정은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전개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점에서도 작동하는데, 가이아의 백업 데이터를 처음 발견하는 곳에서 플레이어는 정말로 뜬금없이 구 인류의 생존 세력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이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엄청난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보호막을 입고 있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활을 쏘는 것 밖에 없는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엄청난 무력감을 느낀다. 플레이어를 당황시키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시간이 꼬여있어서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할지도 헷갈린다. 비슷한 맥락에서 게임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퀜 부족은 에일로이처럼 포커스를 지니고 있어서, 고대의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소벡 박사와 똑같이 생긴 에일로이를 ‘살아있는 선조’(living ancestor)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계관 전반의 이렇게 꼬여있는 시간성을 통해 플레이어는 계속해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다시 돌아볼 수 있다. * 지구로 돌아온 구 인류의 일원인 틸다 판 더 미어는 자신의 수장고에 고대 인류의 미술품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 설정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라익스미술관(Rijksmuseum)과 협업 프로젝트로 이루어졌다. 관련 링크: https://blog.playstation.com/2022/04/06/preserving-art-through-tildas-vault-in-horizon-forbidden-west/ 회복이 아닌 전복 SF, 특히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관은 이렇게 지금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또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세계가 몽땅 망해버린 이후에도 이야기를 이어갈 누군가를 등장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희망의 서사이기도 하다. 파국을 뜻하는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는 아무것도 없는 절멸을 뜻하지 않는다. 어원적으로 그것은 ‘아래로 뒤집다.’ 혹은 ‘반전’이라는 뜻과 통한다. 그러한 세계의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것은 사실 무언가 뒤집어져 쏟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호라이즌〉의 서사도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결국 인류는 승리할 것이라는 인간중심적인 감동을 주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그런 측면을 부정하기 어렵다. 홀로그램으로 과거의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모습이 복원되는 장면 등을 극적으로 연출하고, 인류애를 자극하는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라이즌〉의 세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에일로이의 동료들과 그 시대의 인간들이 ‘우리’ 인간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우리 시대의 인간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들은 지구로 다시 돌아와서도 깽판을 치고 결국 복제인간인 주인공에게 죽임을 당한다. 에일로이와 동료들은 단지 시대적으로 우리 시대 이후의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복제인간이거나 대부분 인공지능 로봇에 의해 배양되어 태어난 말 그대로의 포스트-휴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호라이즌〉은 인류를 회복시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인류를 전복시키는 이야기이다. 〈호라이즌〉은 이렇게 인간 너머의 인간들, 그러니까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이라는 존재를 성찰하게 만드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이런 식으로 〈호라이즌〉은 같아 보이는 것의 다름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것, 지구이면서 지구가 아닌 것, 지금이면서 지금이 아닌 것. 지구를 다시 지구로 만드는 작업은 반복이지만, 차이를 가지고 있는 반복이 된다. 아니, 사실 차이는 반복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여기에서 시간의 문제는 특히 중요하게 작동한다. SF가 가지는 근본적인 가능성은 그러한 시간성에 있다. SF의 시간성은 순간적으로 우리의 지금을 돌아볼 수 있는 틈새를 만든다. 우리는 오직 미래를 통해서만 현재를 볼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아닌 존재들을 통해서만 우리를 돌아볼 수 있다. 1) 가이아의 하위 기능들의 역할을 간략히 정리한 메모를 덧붙인다. 미네르바는 인류가 멸종한 이후에도 파로의 로봇들을 멈추기 위한 코드 분석을 지속하여 결국 로봇들을 멈추는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이다. 그렇게 미네르바가 군사용 로봇을 멈추면, 헤파이토스는 지구 곳곳에 소위 ‘가마솥’(cauldron)이라고 불리는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동물 형태의 생태적 로봇들을 만들어 지구에 순환 시스템을 복구한다. 동시에 아이테르는 대기를, 포세이돈은 바다를 정화하고, 데메테르는 토양을 복원하여 식물이 다시 생장하도록 돕는다. 아르테미스는 생체 동물들의 유전자를 복원하여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고, 엘리우시아는 인간의 유전자를 보관하고 있다가 생태계가 복원되면 인간을 배양하여 태어나게 만들고, 나아가 인큐베이팅까지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인간들은 정보와 지식의 아카이브인 아폴로를 통해 21세기 수준의 지식을 다시 복원하고, 무엇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파로 역병’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공유한다. (사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제로 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파로가 자신의 과오가 영원히 남는 것이 두려워 아폴로를 파괴해버렸기 때문이다. 지구의 테라포밍 이후에 다시 태어난 인류가 고대 문명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데스는, 테라포밍이 오류를 일으키는 것을 대비하여 이 모든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모든 것을 다시 초기화한 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2) 물론 〈호라이즌〉은 거대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지구의 운명을 건 서사이고, 때로는 에일로이가 남성 영웅의 여성 버전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개는 플레이의 중요한 기점 곳곳에서 주어지는 대화의 선택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지점이다. 에일로이는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서사의 인물이 아니라, 게임의 플레이어가 만들어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권태현 글을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계에서 활동하지만 쉽게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들에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예술 바깥의 것들을 어떻게 예술 안쪽의 대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정치적인 것을 감각의 문제로 파악하는 관점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7000eichen@gmail.com )

  • 재현, 시뮬레이션 그리고 구현이라는 꼭짓점의 버뮤다 삼각지대

    게임에서의 기술 구현은 이처럼 재현과 시뮬레이션 둘 중 어느 쪽으로도 수렴되지 않으며, 둘의 합이 성공적인 구현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기술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전적으로 기술 자체의 구현에 몰두하는 것과도 다른 이야기다. 드물게 범례처럼 떠오르는 각각의 개별 작품들을 통해서 여전히 명확히 잡히지 않는 좌표를 다시 한번 확인할 따름이다. < Back 재현, 시뮬레이션 그리고 구현이라는 꼭짓점의 버뮤다 삼각지대 24 GG Vol. 25. 6. 10. * SAM이 보는 세계 찬호께이의 소설 <망내인>은 여느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자살로 여동생을 잃은 주인공이 은둔 해커이자 탐정인 또 다른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장르의 문법에 친숙한 독자라면 결말의 깜짝 반전과 같은 세부적인 디테일은 차치하고라도 이 소설이 나아가는 대략적인 방향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는 익숙한 ‘국밥’의 맛으로만 수렴되지 않는 돌출된 부분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홍콩이라는 배경이 그렇다. 일반적인 경제특구와는 다르게 특별행정구이기도 한 홍콩은 복잡한 역사적인 맥락과 민감한 정치적인 상황들이 맞물려서, 쉽사리 다른 지역으로 번역될 수 없는 특수한 지역성을 제공한다. 다른 하나는 이 소설의 핵심 요소인 해킹에 대한 묘사이다. 매체를 불문하고 픽션 내에서 특정한 기술을 재현한다는 것은 까다로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 특히 해킹의 경우는 악명이 높은데, 어두운 방 안에 있는 여러 대의 모니터에서 알 수 없는 코드들이 마구 지나가는 동시에 해커가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식의 클리셰는 이미 다수의 밈을 통해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망내인>은 마치 해커 입문 수업을 듣는 듯한 현실적이고도 상세한 해킹의 전개 과정과 그 과정 전체가 추리와 직접적으로 결부되는 영리한 플롯을 통해 그러한 함정을 피해 가는 드문 사례이다. 그렇다면 재현보다도 (유저의 인풋에서 비롯된 무수히 많은 결괏값에 의거한) 시뮬레이션에 훨씬 방점이 찍힌 미디어인 게임은 이와 같이 특정한 기술을 ‘구현 materialization’하는 문제에서도 어떤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나 그렇지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뚜렷하게 ‘당연한’ 방향으로 직진하지 않는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사실은 게임이 의도적으로 심각하게 제한된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이다. 하이테크의 사이버펑크 도시를 매우 밀도 높게 구현한 <사이버펑크 2077>의 경우를 봐도 V 가 자신의 몸에 이식하는 사이버웨어는 사이버 사이코라는 도식적인 한계 지점이 존재한다는 것이 다를 뿐, 근본적으로 여타의 판타지 게임들에서 등장하는 마법이 부여된 장비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플레이어는 사이버웨어가 사실은 살과 뼈를 찢고 들어가서 기존의 신체와 불안정하게 접합하는 매우 고어(?)한 포스트 휴머니즘적 장치라는 것과, 그것을 계속해서 추가하다 보면 통제가 완전히 불가능한 사이버 사이코에 이른다는 실존적인 불안을 체감하지 못한다. [1] 결과적으로 이 게임의 주요한 모티프이기도 한 사이버웨어 테크놀로지는 ‘간지 나는’ 성능템으로 납작하게 요약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의 경우를 두고 앞선 해킹의 사례처럼 다시금 재현의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 또한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사이버웨어는 단순히 재현된 것이 아니라 시뮬레이션 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V 의 팔에 고릴라 암즈를 장착할지 투사체 발사 시스템을 장착할지에 따라서 플레이 스타일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선택(인풋)에 달렸다. 그 선택 이후에도 투사체 발사 시스템을 어떤 조합으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무수히 많은 다른 결과들로 이어질 수 있다. 관건은 게임이 제공하는 시뮬레이션의 정교함이 반드시 게임 내 기술의 적절한 구현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복잡한 시뮬레이션과의 상호작용은 (그 촉각적 ‘리얼함’으로 인해서) 그것이 실제의 기술과 부합한다는 환상을 오히려 강화한다. 그러므로 시뮬레이션과 재현이 중첩된 게임 미디어는 기술 구현의 욕망과 닿을 듯 말 듯한 기묘한 평행선을 달린다. 사려 깊은 레벨 디자인과 다양한 종류의 현실적인 제약들(일회용인 방독면 필터와 깨진 방독면을 덕 테이프로 임시로 처리하는 디테일, 제때 청소해 주지 않으면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는 총기, 에어건과 손전등을 계속해서 수동으로 펌프질해야 하는 수고로움 등등), 그리고 대부분의 HUD 를 제거한 다이어제틱한 UI 디자인이 잘 어우러져서 상당한 수준의 시뮬레이션을 가동하는 <메트로: 엑소더스>는 게임이 위치하는 미묘하게 어정쩡한 지점을 잘 드러내는 사례이다. 이 게임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꽤 비현실적인 배경을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총기 전문가 [2] 가 나서서 다양한 총기들의 모양과 기능을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고 평가할 만큼 ‘전통적인’ 재현에도 충실하다. 다시 말해 시뮬레이션과 재현 모두 해상도 측면에서 별달리 아쉬운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확히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게임이라는 특정한 매체가 지닌 아포리아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한다. 총만큼 게임의 역사를 관통하는 기술도 없을 것이다. 게임 업계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극초창기의 슈팅 게임 [3] 이야기는 제외하고, 세부 장르인 FPS로만 한정해서 생각해 봐도 그 기원을 따져 올라가면 1973 년으로 가야 한다. [4] <메트로: 엑소더스>의 시점에 이르면 총을 다루는 캐릭터의 애니메이션과 총기의 반동, 총알의 궤적, 그에 따르는 부가적인 특수 효과와 음향, 총성과 총상에 반응하는 적의 움직임 등 총기의 시뮬레이션과 재현의 모든 면에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몰입감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한다. 그렇다면 이로써 게임에서 총을 구현하는 작업은 특이점에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햅틱 피드백과 적응형 트리거처럼 게임 컨트롤러에 한 스푼의 리얼함을 추가하거나 아예 VR 게임을 통해 답답한 직육면체의 모니터를 벗어난다면 언젠가는 완벽한 해상도에 (그러니까 완벽한 총싸움의 경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여기서 총과 같은 기술을 구현한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총을 쏘는 사람이 방아쇠를 당기면 내부에 있는 공이가 화약이 든 총알을 타격한다. 그렇게 발생한 작은 폭발은 고막이 찢어질 듯한 (음 소거 버튼으로 없앨 수도 없는) 굉음과 어깨가 시큰할 정도의 반동, 매캐한 화약 냄새와 뜨겁게 달아오른 총신, 그리고 땀에 젖은 손을 남긴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원래 없었다는 듯이 유령처럼 작동하는 총 모양의 어떤 것을 우리는 과연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운이 좋게 주요 부위를 피해서 맞는다고 해도 과다 출혈과 쇼크로 사망할 수 있는 위력적인 무기를 들고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총싸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즉 기술은 단순히 진공 상태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의 사용자와 작동하는 환경, 역사적인 맥락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유저를 끝없는 피드 속에 가두기 위한 욕망으로 추동되는 알고리즘의 구조만큼이나 2024년 옥스퍼드 사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뇌 썩음 brain rot’ 또한 소셜 미디어라는 기술의 핵심 요소인 셈이다. [5] 결과적으로 시뮬레이션과 재현이 정교해질수록 기술적 구현의 욕망이 대두되지만 동시에 이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의 틀 안에서 선택적으로 제한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한 총싸움 게임’은 영화 <배틀로얄>이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비슷한 상황을 현실로 구현해 낸 생지옥에서나 가능한 ‘실재the real’로서의 한계 지점인 것이다. 따라서 기술의 구현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미래적 게임이라는 방향성은 ‘블랙 미러’적인 미래와도 다소 불안하게 겹친다. 다만 꼭 그런 방향이 아니더라도 비교적 간단(?)하게 특정한 기술을 높은 수준으로 구현할 방법이 있다. 바로 컴퓨터를 (더 구체적으로는 그것의 UI를) 재현하고,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경찰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는 컴퓨터라는 설정으로 오래된 데스크톱 OS 바탕화면의 미학과 기능을 적극 활용한 <허스토리>나 픽셀로 구현한 스마트폰의 UI 내에서만 게임이 진행되는 <레플리카> 같은 게임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게임들은 기술의 구현이 매체에 의해서 제약받는 정도가 훨씬 덜한데, 왜냐하면 비디오 게임 자체가 컴퓨터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비슷한 포맷의 다양한 게임들이 존재하지만 내가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작품은 <옵저베이션Observation>이다. 전작 <스토리즈 언톨드Stories Untold>에서도 컴퓨터를 직접적으로 구현해서 텍스트 어드벤쳐 게임에 대한 일종의 메타픽션을 만들어 냈던 개발사 No Code는 이 작품으로 게임에서 컴퓨터를 구현한다는 것의 의미를 한층 더 확장한다. AI 시스템인 SAM을 조종하는 플레이어는 매우 다양한 전자적 인터페이스를 경유해서 우주 정거장의 물리적 내/외부뿐만 아니라 버려진 랩탑들의 데이터, 정거장의 모듈 시스템, 그리고 자가 진단을 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까지 도달한다. 그러는 와중에 마이크와 카메라를 통해 계속되는 유일한 인간 생존자인 엠마 피셔 박사와의 대화에 이르면 우리가 에이전틱Agentic AI라고 부르기 시작한 어떤 기술적 흐름의 코스믹 호러적 완성형을 제시하는 듯이 보일 정도다. 다만 이 작품에서 AI가 곧 플레이어라는 것을 상기해 본다면, AI 자체를 구현하는 것이 게임의 지향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오히려 플레이어가 <옵저베이션>을 통해 경험하는 것은 SAM이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우리의 AI친구 샘은 고정된 UI에 머물지 않고 부산스럽게 옵저베이션 정거장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그러나 원격 드론을 조종해서 정거장 바깥의 공허한 우주를 유영하는 순간까지도 플레이어는 인터페이스로 가득 찬 스크린을 벗어나지 못한다. 즉 플레이어는 게임 내내 각기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기보다는 샘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시스템에 내재한 멀티 모달리티multi modality를 체험한 셈이 된다. 키틀러가 이야기하듯 컴퓨터가 그 이전의 미디어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지점은 다양한 종류의 서로 다른 데이터를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인코딩하고 조작할 수 있는 멀티 모달리티에 있다. 물론 컴퓨터 바탕 화면의 미학을 ‘완벽히’ 구현한다면 바탕 화면에서 영상을 본다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멀티 모달리티를 선보일 수 있다. 그런데 그토록 완벽하게 구현된 컴퓨터로서의 게임이라면 나의 윈도우 기기에서 가상 머신으로 작동하는 리눅스 OS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게임 내에서 구현하는 기술의 목표는 재현과 시뮬레이션의 해상도를 최대로 올려서 매우 비슷한 모양의 거의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될 수도 없지만, 된다고 해도 종종 우스꽝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 게임은 유틸리티 소프트웨어가 아닌 것이다. <옵저베이션>은 플레이어 가능한 캐릭터를 AI로 설정함으로써 전형적인 UI가 발산하는 모종의 피로감을 탈피하는 동시에 컴퓨터의 멀티 모달리티를 게임 전체의 플롯과 결부시키는 방식으로 ‘컴퓨터를 구현하는 것’에 성공한다. 게임에서의 기술 구현은 이처럼 재현과 시뮬레이션 둘 중 어느 쪽으로도 수렴되지 않으며, 둘의 합이 성공적인 구현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기술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전적으로 기술 자체의 구현에 몰두하는 것과도 다른 이야기다. 드물게 범례처럼 떠오르는 각각의 개별 작품들을 통해서 여전히 명확히 잡히지 않는 좌표를 다시 한번 확인할 따름이다. [1] 설령 계속해서 사이버웨어를 추가하더라도 V는 디버프를 받을 뿐 사이버 사이코로 돌변하지 않는다. 장비의 무게나 숙련도에 따른 디버프가 존재하는 다수의 판타지 게임들과 더 유사해지는 지점이다. [2] Gamology, “Firearms Expert REACTS to Post-Apocalyptic Weapons in Metro Exodus” YouTube 2021.11.19. https://www.youtube.com/watch?v=ZdgiAvc8FxE [3] 최초의 슈팅 게임 Spacewar! 은 1962년 MIT 랩에서 세 명의 연구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https://en.wikipedia.org/wiki/Spacewar! [4] 최초의 FPS 게임인 Maze War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95409-first-first-person-shooter-fps-videogame [5] 이동현, “영국 옥스포드 사전, 올해의 단어는 ‘뇌 썩음’(brain rot)” 한국일보 2024.12.02.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0221530000146 [6] 이 게임에서 SAM은 정확히 플레이어의 컨트롤에 의해서만 시뮬레이션 된다. 즉 현대의 AI 모델들이 기반한 확률적인 작동과는 궤를 달리한다. 직접 거대 언어 모델LLM을 실시간으로 게임에 연동해서 AI 캐릭터를 생성해 낸 <언커버 더 스모킹 건>과 같은 게임이 AI를 ‘구현’하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웜뱃 잡다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역시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게임에는 특히 관심이 더 많습니다.

  • 夢としてのクソゲ

    「ファミコンを通じて超能力を開発する」というテーマで開発されたゲームがあった。 1980年代当時の日本の超能力ブームのなか、超能力者として知られていた清田益章氏(通称、「エスパー清田」)が監修した『マインドシーカー』(FC,1989)という作品だ。作中に登場する清田氏の指示をこなし、この作品を遊ぶことで、実際に超能力が使えるようになる……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た。 < Back 05 GG Vol. 22.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Culture Researcher) Inoue Akito (Game Culture Researcher)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 USA in Fallout, USA today

    We once thought that the era of Donald Trump had come to an end, but it appears it hasn't. While Trump may have lost the election, his supporters' enthusiasm remains robust. What fuels this enduring energy? Moreover, is the driving force behind Trump's rise aligned with traditional 'American' values or does it run counter to them? It's worth recalling that Trump's campaign slogan was 'Make America Great Again'. Yet, years later, when President Joe Biden won the election after a vigorous anti-Trump campaign, he declared his presidential message as 'America is back.' So, which vision truly represents 'America' – Trump's or Biden's?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fallout3, projectpurity, GECK, fukushima, radioactive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게임 주인공 캐릭터를 둘러싼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 변화가 주로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 < Back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16 GG Vol. 24. 2. 10. 게임 규칙을 넘어선 감정 투영 대상으로서의 등장인물 초창기 게임의 역사 속에서 가족은 게임 안이 아니라 게임 밖의 존재였다 . 플레이어 캐릭터는 대체로 혼자 위험천만한 스테이지들을 돌파해 나갔지만 ,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는 환경은 게임사의 광고에 의해 늘 가족적인 무언가로 일컬어지곤 했다 . 닌텐도 등의 가정용 콘솔 기기는 항상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거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게임하는 장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와 함께 하는 이들은 가족이라기보단 주로 ‘ 동료 ’ 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었다 . 롤플레잉 게임의 파티 시스템 , 여러 게임에 등장하는 조력자 등은 나름의 끈끈함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기능적인 관계맺음을 플레이어와 이어나가는 동료로서의 존재였다 . 2000 년대 들어와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 이코 ’ 는 그런 점에서 눈에 띄는데 ,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시작부터 끝까지 모험을 함께 하는 요르다는 ‘ 동료 ’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엔 사뭇 이질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 플레이어는 딱히 공격력이 없는 요르다의 손을 붙잡고 게임을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 분명 퍼즐과 같은 요소들에서의 해결을 돕는 조력자의 포지션이지만 실제로 ‘ 이코 ’ 를 플레이한 이들이 요르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동료보다는 조금 더 진한 무엇이었다 . 함께 싸우면서도 플레이어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존재로서의 요르다는 동료이자 퍼즐의 열쇠라는 기능적 관계 이상의 존재로 플레이어들에게 각인된 바 있었다 . 유사가족 관계의 조엘과 엘리 ‘ 이코 ’ 로부터 대략 10 여 년이 지난 뒤에 출시된 게임 ‘ 라스트 오브 어스 ’ 는 유사 가족 관계에 놓인 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모험을 풀어가는 새로운 시점을 선보였다 . 중년의 남성 주인공 조엘은 게임 프롤로그에서 딸을 잃었고 , 그런 그에게 임무로서 맡겨진 엘리라는 아이는 잃었던 딸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십대 소녀다 . ‘ 이코 ’ 처럼 둘은 서로 도와 가며 험난한 세계를 헤쳐나가지만 , ‘ 이코 ’ 에 비해 좀더 엘리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변화 혹은 발전이 있었다 .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무대 속에서 조엘과 엘리의 이야기는 단순히 모험의 기승전결을 풀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잘 맞지 않았던 두 사람이 일종의 유사 가족 관계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진한 감동을 만들어낸 바 있었다 .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 라스트 오브 어스 ’ 로부터 받은 감정은 삭막하고 외로운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감정을 함께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유사 가족 관계가 유독 더 따뜻하게 빛났기 때문이었다고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 '갓오브워'에 이르러 혈연 가족으로 등장하는 조연 2001 년 ‘ 이코 ’ 에서 동료를 넘어선 무언가로 , 2013 년 ‘ 라스트 오브 어스 ’ 에서는 유사 가족 관계라고 이름붙여도 좋을 , 플레이어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존재는 2018 년의 ‘ 갓 오브 워 ’ 에서는 본격적으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으로 등장한다 . 전쟁의 신으로 그리스 신화 시대를 휩쓸었던 주인공 크레토스는 후속작에서 아들을 둔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 크레토스의 캐릭터는 이러한 관계설정의 변화를 통해 크게 바뀌는데 , 전작에서는 가족을 잃은 뒤 신의 아들로서 자녀의 포지션을 맡았던 크레토스가 후속작에서는 가족관계 안에서의 아버지 포지션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 실제로 게임 안에서 크레토스와 아들 아트레우스의 관계는 철모르는 아이의 육아를 도맡는 크레토스의 관점으로 그려진다 . 아트레우스는 나름의 전투력은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며 , 내러티브를 통해 크레토스는 아들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풀어낸다 . 후속작 ‘ 갓 오브 워 : 라그나로크 ’ 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사춘기를 맞아 방황하는 아트레우스의 옆에서 자녀의 성장과 함께 부모가 맞는 새로운 도전들이 함께 그려지는 것을 보면 , ‘ 갓 오브 워 ’ 의 북유럽 시리즈는 상당부분 자녀라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맞았지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될 지는 모르는 부모의 입장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나이들어가는 게이머 게임 안에서 기능적 조력자 이상의 감정을 담아내는 캐릭터와 주인공 캐릭터 사이의 관계는 ‘ 이코 ’ 의 2001 년부터 ‘ 갓 오브 워 ’ 의 2018 년 사이 근 20 여년 속에 점차 변화해 왔다 . 이 변화는 지켜야 할 동료에서 ‘ 라스트 오브 어스 ’ 의 유사 가족관계를 거쳐 마침내 혈연관계로 점차 가족이라는 구성을 향해 움직였는데 , 이는 특히 주인공 자체의 변화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 명확하게 ‘ 소년 ’ 의 포지션이었던 ‘ 이코 ’ 의 주인공과 달리 ‘ 갓 오브 워 ’ 의 크레토스는 명백하게 중년 남성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다 . 현실의 시간 변화를 함께 생각해 보면 게임 속 주인공 캐릭터의 나이듦은 마치 현실의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2001 년에 소년이었던 주인공은 2018 년이 되면 열 일곱 살을 더 먹게 되는데 , 만약 2001 년 당시 20 세였던 플레이스테이션 이용자가 2018 년이 되면 37 세가 되는 것이다 . 단순한 생물학적인 나이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 이 20 년 사이의 간극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갖는 주변 인간관계를 크게 변화시키고도 남을 시간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 ‘ 이코 ’ 를 플레이하던 청년은 20 년 후 중장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20 년 전의 게이머들이 지금보다 젊은 세대였다면 , 이제 게이머 집단은 과거보다 조금 더 폭넓은 연령층이 되었다 . 디지털게임 이용자층은 연령과 성별 , 지역과 같은 여러 측면에서 과거보다 보편화되며 넓어졌고 , 과거 단지 어린이들의 놀잇감으로만 여겨졌던 게임은 적어도 ‘ 갓 오브 워 ’ 에 이르면 명백하게 중년기 게이머들을 타겟으로 삼는다 . ‘ 갓 오브 워 : 라그나로크 ’ 에서 다루는 사춘기 자녀의 방황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게임 주인공 캐릭터에 덧씌우는 일은 간접적으로 오늘날의 게이머들이 갖는 평균 연령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의미한다 . 게임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일련의 유대관계와 사랑을 표현한다고 한다면 , 이 사랑은 게이머 집단의 나이듦에 따라 다른 형태로 묘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20 년 전의 게이머들은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젊고 남성중심인 집단이었고 , 그런 그들에게 사랑은 가족보다는 신비함을 간직한 여성 캐릭터에게 투영된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장년이 된 그들에게 사랑의 투영 대상은 이제 자녀라는 , 가족이라는 새로운 테두리 안에서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 이러한 변화는 꽤 곳곳에서 감지된다 . 2023 년 출시된 ‘ 디아블로 4’ 에서는 기존 시리즈에서 보지 못했던 수많은 서브 퀘스트들이 등장하는데 , 이 중 적지 않은 분량이 자녀를 둔 등장인물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 자녀의 훈육을 위해 감옥에 보낸 부모가 결국 자식을 잃은 뒤 후회하는 내용이라거나 , 집나간 아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해오는 등 ‘ 디아블로 4’ 에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감정을 다루고자 하는 퀘스트들이 포함된다 . 비슷하게 2020 년대에 출시된 게임 중 ‘ 잇 테이크스 투 ’ 또한 게이머 집단의 세대 변화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사례다 . 어린 자녀를 가진 중장년기 부부의 이혼 위기를 코믹하게 풀어낸 이 게임 또한 사실상 중년 부부가 만날 수 있는 삶의 시기를 스케치한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오늘날 스탠드얼론 게이머의 중심은 중장년이다 게임 주인공 캐릭터를 둘러싼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 변화가 주로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 .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거치면서 점차 PC 는 가정의 필수 가전제품이어야 할 이유를 상실하기 시작했고 , 게임을 하기 위해 구비해야 하는 게임전용 PC 는 이제 꽤나 고가품의 영역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콘솔게임기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지만 , 일정 수준 이상의 디스플레이가 기본적으로 요구되고 , 타이틀 가격이 8~10 만원을 오가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 아이들의 문화활동으로만 보기 어려운 비용 장벽을 가진 셈이기도 하다 .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유료 기반의 온라인게임들과 달리 , 일정 수준 이상의 공간과 시간 , 비용을 요구하는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들은 이제 확실히 중장년을 메인으로 삼는 활동이 되었다 . 게이머가 나이를 먹어 가는 과정과 함께 게임 콘텐츠 또한 나이를 먹었고 , 나이들어간다는 변화 속에서 게임을 통해 표현되는 게이머와 주인공 주변의 인간관계 또한 다르게 그려진다 . 모두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연애 – 결혼을 거치는 이른바 ‘ 정상가족 ’ 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 적어도 기술복제를 통해 대량유통되는 미디어 콘텐츠인 디지털게임은 산업적 관점에선 정상가족 안에서 부모라는 위치 혹은 그와 비슷한 세대가 겪게 되는 감정의 과정들을 다루고 싶어한다 . 지난 수십 년간 게임에 일어난 변화는 그래서 단지 기술의 발전과 이용자층의 확대만이 아니라 , 이 매체가 다루고자 하는 감정과 관계에도 나타난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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