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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s View] AAA의 반대편을 향한 탐색

    이를 테면 B급 게임이라고 불리는 게임들이 그러합니다. 특유의 감성을 아예 하나의 코드로 삼아 발전하는 B급 장르는 영화나 만화 등에서의 감성을 이어가며 게임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얹지만, 이른바 ‘똥겜’으로 불리는 그룹들 또한 존재합니다. 그저 못 만들었다고만 평가하기에는 그곳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 Back [Editor's View] AAA의 반대편을 향한 탐색 05 GG Vol. 22. 4. 10. 게임의 세계에도 늘 웰메이드 작품만이 넘쳐나는 것은 아닙니다. 화려한 그래픽과 웅장한 스케일 대신 어딘가 엉망진창인 것 같은 게임들이 아마 타이틀 수로만 따진다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요. 그런 게임들이라고 묶어 이야기하기엔 너무 많은 효과들이 일어납니다. 소자본이지만 빛나는 아이디어로 무장해 게이머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인디 게임들의 존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또 게임 생태계를 이루는 매우 중요한 축이죠. 하지만 소자본이지만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진 게임이 아닌 경우도 마찬가지로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게임들을 주목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를 테면 B급 게임이라고 불리는 게임들이 그러합니다. 특유의 감성을 아예 하나의 코드로 삼아 발전하는 B급 장르는 영화나 만화 등에서의 감성을 이어가며 게임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얹지만, 이른바 ‘똥겜’으로 불리는 그룹들 또한 존재합니다. 그저 못 만들었다고만 평가하기에는 그곳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메이저로도 불리지 않고 인디라는 이름과도 걸맞지 않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B급, 혹은 ‘똥겜’이라 불리는 게임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B급과 똥겜의 정의는 모호합니다만, 적어도 웰메이드나 AAA의 반대편 어딘가쯤이라는 방향만큼은 명확해 보입니다. 개념을 정의하기보다는, 그 근처 어딘가에 존재하는 게임의 의미를 넓게 둘러볼 것입니다. B급 게임이 무엇인지, A급과는 무슨 차이일것인지를 검토하고, 심지어 한때 AAA의 대명사였던 한 게임에 ‘똥’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과정도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똥겜’이란 말의 원조격일 일본의 ‘쿠소게’에 대해서는 실제 일본의 게임연구자가 가진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했습니다. Trends 섹션에서는 새롭게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는 차기 정부의 게임 관련 정책의 방향을 짚어보고, 최근 뜨겁게 상승하는 키워드인 NFT에 관한 엔지니어와 사회학자의 시선을 엮어보고자 했습니다. 더불어 북미 등의 서구권에서 한국 게임의 의미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로스트아크’와 같은 사례를 통해 질문해봅니다. 게임과 미니맵의 관계,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에 관한 이야기, 게임을 다룬 소설과 미술에 관한 이야기 등으로 이번 호도 알차게 꾸몄습니다. 여러모로 신작들이 쏟아지는 4월, 게임 하기도 바쁜 시절이지만 GG를 찾아주시는 것도 잊지 말아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미소녀 게임 속 에서의 여성 재현 문제

    누구에게나 이상(理想)이 있다. 거창하게는 미래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소소하게는 입고 싶은 옷이나 만나고 싶은 작품에 대한 것일 수도 있겠다.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상 중에서도 특히나 사람에 대한 이상은 우리 일상에서 자주 언급되고 구체화된다.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 스타일이 세련된 사람, 지적인 사람, 활발한 사람, 나보다 키가 큰 사람, 나이가 적은 사람 등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물음에 할 수 있는 대답은 무궁무진하다. 그렇다면 이것을 사람이 아닌 캐릭터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가 보면 어떨까? < Back 미소녀 게임 속 에서의 여성 재현 문제 04 GG Vol. 22. 2. 10. 누구에게나 이상(理想)이 있다. 거창하게는 미래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소소하게는 입고 싶은 옷이나 만나고 싶은 작품에 대한 것일 수도 있겠다.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상 중에서도 특히나 사람에 대한 이상은 우리 일상에서 자주 언급되고 구체화된다.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 스타일이 세련된 사람, 지적인 사람, 활발한 사람, 나보다 키가 큰 사람, 나이가 적은 사람 등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물음에 할 수 있는 대답은 무궁무진하다. 그렇다면 이것을 사람이 아닌 캐릭터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가 보면 어떨까?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탓일까, 캐릭터들은 우리가 꿈꾸는 인간상을 그대로 보여주며 이상적인 이미지를 구축해나가는 선두 주자가 되곤 한다. 게임 캐릭터로 따져보자면 미소녀 게임의 히로인들이 여기에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그중에서도 예시를 들만한 캐릭터가 누군고 했을 때, 최근에 출시된 게임까지 갈 것도 없다. 90년대 초반에 나와 지금까지 회자하고 있는 〈동급생 同級生〉이나 〈도키메키 메모리얼 ときめきメモリアル〉 시리즈만 봐도 게임을 소비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이상, 환상의 미소녀 상은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다. 바로 ‘가와이’한 미소녀 상이다. 일본은 어린아이처럼 미숙하고 귀여운 걸 추구하는 가와이(かわいい·귀여운, 사랑스러운) 문화가 1980년대 이후 정착되었는데, 이 가와이 문화는 ‘귀여움’이라는 말 아래 미성숙함과 성숙함의 경계를 불명확하게 만든다. 귀엽고 순진하면서도 성적으로 성숙한 캐릭터들의 유형은 미소녀 게임과 가와이 문화가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임을 시사하는 듯하다. 동시에 미성숙과 성숙이라는 정반대의 요소들이 병치 되면서 이용자들의 모순된 욕망이 드러난다. 한마디로 미소녀 게임은 가와이 문화의 정수라고도 볼 수 있는 거다. * 〈동급생〉과 〈도키메키 메모리얼〉. 돌이켜보면 게임 속 첫사랑이었던 그녀들은 소꿉친구, 같은 반 친구, 아는 누나, 체육계 유망주, 보건교사 등 다양한 타입으로 나타나곤 했다. 각자가 떠올리는 그녀들의 모습이나 직업은 아마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를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미소녀 유형이 없던 건 아니다. 〈동급생〉의 사쿠라기 마이와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후지사키 시오리는 빼어난 미모, 우수한 성적을 가져 모두가 동경하는 교내 아이돌로 그려졌다. 게임 밖의 아이돌이기도 했던 두 소녀는 그들이 등장했던 게임만큼이나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이들의 특징은 훗날 등장한 미소녀 캐릭터들에게 그대로 답습되었다. 사쿠라기 마이, 후지사키 시오리라는 조상의 복제가 이루어진 셈이다. 학교를 무대로 한 미소녀 게임일수록 이들의 존재감은 더욱 짙게 드리워진다. 이 외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새롭게 태어난 소녀들의 유형은 학교가 배경이 되지 않아도 어딘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미소녀 게임의 캐릭터들은 성격, 외모, 직업, 주인공과의 관계 면에서 설득력 있게 구성된 ‘척’하며 소비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여성의 틀을 계승한다. 틀을 갖고 태어난 히로인들의 행복은 오로지 플레이어, 즉 주인공인 남성만이 줄 수 있다. 과거 여성이 남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림하는 걸 당연한 행복으로 여겼듯 가상의 미소녀들도 그러한 모습을 보인다. 마치 당신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모든 미소녀 게임이 결혼은 곧 해피엔딩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소녀들의 존재의의가 주인공 남성이라는 건 언제나 변함이 없다. 보통 미소녀 게임은 평범하디 평범하기 그지없던 주인공이 여러 미소녀와 갑작스레 얽히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플레이어는 자신을 위협하는 다른 남성이 없는 이 세계를 만끽하며 소녀를 고른다. 그리고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몇 가지 선택지를 지나고 그녀와의 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공략이 진행되는 동안 소녀들은 수줍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누구 하나 주인공에 대한 흥미는 거두지 않는다. 특히나 풋풋한 첫사랑이 키워드가 되는 게임 속 그녀들은 플레이 기간 내내 꿈 같은 나날을 선사한다. 첫 만남, 첫 데이트, 첫 키스, 첫 경험에 이르도록 모든 과정이 이벤트의 연속이다. 크고 작은 고난을 겪은 후 CG로 공개되는 이 장면들은 그동안 키워온 사랑을 증명한다. 소녀들은 자신의 몸을 주인공에게만 내비치고 공유하면서 행복한 엔딩에 가까워진다.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잘 가꾸어진 몸과 속옷을 보여주는 서비스신은 덤이다. 여성의 몸은 목적을 달성하면 받을 수 있는 보상으로 간주되곤 하는데, 그 시선은 게임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하여 공략 캐릭터는 주인공에게 보호받음과 동시에 침범당한다. 정서적으로 보호받는 것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표시로 몸의 침범을 허락하는 거다. 남성을 따뜻한 손길로 보듬어주며 성적인 부분도 해결해주는 미소녀의 모습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성녀와도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야말로 환상이다. 기억에 남는 첫 만남부터 아픈 과거, 그를 딛고 행복을 거머쥐기까지 플레이어의 클릭은 소녀들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렇게 해서 쥐게 된 엔딩은 소녀들의 존재에 대한 의문마저 낳게 만든다. 자신의 모든 ‘처음’을 플레이어와 공유하지 않은 소녀는 히로인이라는 자리에서 실격하게 되는 건가, 하는. 어쨌거나 서술한 히로인들은 게임이기에 맛볼 수 있는 환상적 여성의 결정체다. 예쁘고 어딘지 순진하면서 순결한, 그렇지만 플레이하는 ‘나’에 한해서만큼은 개방적인. 그럼 이런 이상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소녀들은 어떨까? * 〈여자교도소〉. 출처: 스팀 공식 페이지. 최근 스팀을 살펴보면, 선정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난 게임일수록 특정 카테고리 인기 군에 머무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여자교도소 Woman’s Prison〉는 앞서 이야기한 게임들과 다르게 사랑보다는 육체적 관계를 부각해 보여준다. 캐릭터들은 욕망에 매우 충실하여 처음 본 남성과의 접촉에도 거리낌이 없다. 애초부터 포르노 이미지를 목적으로 설계된 미소녀들은 첫사랑의 그녀들과는 다르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남성을 유혹하고 이용하는, 마녀와도 같은 측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설거지론이 생각났다는 리뷰가 달리기도 한 이 게임은 이상적인 여성상에서 탈락한 미소녀들의 집합소다. 이들은 진정한 행복처럼 여겨지는 연애, 결혼은 제쳐두고 성적 자극만을 탐닉한다. 모든 처음을 함께 한 미소녀들과 만나기 전부터 닳고 닳아있던 미소녀들. 두 부류의 소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결국 포르노 이미지로의 귀화다. 그런데도 둘은 상반된 운명을 맞는다. 육체적 관계를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소녀들은 가정적이고 화목한 것과는 다른 결의 엔딩을 보게 되는 거다. * 〈당신과 그녀와 그녀의 사랑〉과 〈두근두근 문예부!〉. 출처: 스팀 공식 페이지. 일반적인 가와이함과 마녀 같은 성질을 동시에 지닌 미소녀들도 존재한다. 〈당신과 그녀와 그녀의 사랑 君と彼女と彼女の恋〉이나 〈두근두근 문예부! Doki Doki Literature Club!〉 같은 작품에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폭력적인 일도 마다치 않는 소녀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초반부의 이들은 여느 미소녀들처럼 귀여운 면모만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원하는 엔딩에 방해되는 인물을 없애버리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이 목도된다. 성인가 게임인 전자의 경우에는 소녀가 플레이어를 사로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몸을 이용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이런 극단을 달리는 행위들은 예상할 수 있듯 주인공 남성과의 사랑을 이유로 한다. 폭력적인 행위의 이유도 남성, 그것을 멈출 수 있는 열쇠도 남성. 그들에게 남성은 맹목적인 삶의 원동력이다. 앞서 말한 ‘마녀’들과는 다른 사유지만, 어떻게 보면 이들도 플레이어의 선택지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마녀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폭력적 행위는 진짜 마녀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가져온다. 상상도 못 한 전개에 공포는 생길지언정, 거부감이나 분노 이전에 이해를 불러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게임 서사에 따른 차이인가? 아니면 캐릭터 메이킹의 차이인가? 사실 이런 포르노 이미지 속 여성은 여성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포르노 안의 신체는 특정한 맥락에서 과장되며 보는 이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것이 실재하는 몸이라고 인식하게끔 한다. 과장된 이미지는 사회 갈등의 접점에 서 있는 걸 이따금 목격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게임 내 여성 이미지, 포르노 이미지도 사회의 한 면을 보여주는 코드가 된다. 실재한다고 인식된 몸은 어느덧 ‘이상적인 형태’라는 이름 아래 자리 잡는다. 우리가 ‘여성’ 하면 긴 생머리, 뽀얀 피부, 큰 가슴, 가느다란 팔다리, 잘록한 허리 등 외적 요소를 주로 떠올리는 것도 그래서일 거다. 이처럼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해온 이미지들은 게임 안에서 재생산되고 어떨 땐 게임 밖으로도 확대된다. 이는 외적인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관념의 영역까지 포함한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 공주 이야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판 중 하나가 바로 고전적인 여성상을 재현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주들은 이야기를 주도해나가는 주인공이라는 부분에서 완전한 주체처럼 보이나, 그들의 서사를 완성해주는 건 늘 구원자인 왕자였다. 완벽하게 다른 장르지만 미소녀 게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소녀 게임’이라고 이름 붙어있어도 극을 끌어나가는 건 소녀가 아닌 남성이고 소녀의 서사를 완성하는 것도 당연히 남성이다. 왕자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공주 이야기가 남성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었다면, 주 소비층이 남성인 미소녀 게임은 역으로 여성에 대한 환상을 부추긴다. 귀여운 외모, 부족한 남성 자신을 보듬어 줄 사랑, 성에 관련된 거라면 뭐든 들어주는 여성에 대한 환상을 말이다. 그렇게 미소녀는 가와이 문화에, 포르노 이미지에, 고전적인 여성상의 답습에 사로잡히게 된다. 누군가는 ‘그것이 이런 게임의 의의 아니겠느냐’라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미소녀 게임은 미소녀와 즐기면 그게 다인 게임이라고. 하지만 판타지가 판타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그를 방해하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특정한 여성상이 요구되는 사회 안에서, 과연 미소녀 게임은 아무 생각 없이 즐겨도 될 이미지와 서사의 집합체일 뿐인가? 미소녀 게임과 현실의 여성상이 어떤 방식으로 맞닿아 있는지, 판타지로 만들어진 게임이 어째서 판타지 그 자체로만 즐겨지지 않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볼 때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 온라인 게임에 복귀했습니다.

  • 채찍과 당근의 자강두천,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은 플레이어의 행동 패턴을 유도하고 또 감정선을 조절하는데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때론 위협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면서, 무작정 사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범위 안에 플레이어의 경험을 위치시키기 위해 수많은 요소가 무대 뒤에서 암약한다. 마치 영화 ‘캐빈 인 더 우즈’ 에서 미스터리 단체의 직원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하나씩 위협을 던져주며 가지고 놀듯이 말이다. 만약 이런 시선으로 공포 게임을 본다면, 이제는 한 번쯤 그 의도와 예상을 부숴주겠다는 불순한 생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yungKyu Lee Game journalist (2014–), writer (2006–), gamer (1996–).

  • 내 마음의 퍼즐 상자: 〈애니멀 웰〉과 〈리프 이어〉의 세계에 대해

    이 글은 《게임제너레이션》 20호에 실린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의 후속편으로, 지난 글의 결론부에서 언급만 하고 넘어갔던 장르명인 ‘메트로브레이니아(metroidbrainia)’에 대한 논지를 심화해 〈애니멀 웰 (Animal Well, 2024)〉과 〈리프 이어 (Leap Year, 2024)〉를 뜯어보는 것이 목표다. 그러므로 우선 곧장, 메트로브레이니아가 무엇인지를 정리하며 글을 열겠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nyoung Na Began writing popular music criticism in 2016 through the webzine weiv, and in 2022 published Alternate Reality Ghost through the webzine ma-te-ri-al. Tends to play small games in short sessions on a laptop. To be continued.

  • 게임 속의 일지: 대리하는 기억, 보충하는 기억, 통치하는 기억

    나는 망설임 없이, 하지만 큰 기대도 없이, J키를 누른다. 일지. 저널. 혹은 퀘스트 로그 등등. 퀘스트와 이야기 전개를 중심으로 삼는 게임들에는 하나같이 일지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일지에는 내가 잊은 모험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어느 마을에서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으며, 어떤 부탁을 수락했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적혀 있다. < Back 게임 속의 일지: 대리하는 기억, 보충하는 기억, 통치하는 기억 31 GG Vol. 26. 8. 10. 내가 왜 폐허에 와 있었지 폭풍 같은 한 학기 강의가 모두 끝났다. 바쁜 만큼 학기 중에는 연구에 할애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바쁠 때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 가장 먼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은 슬프다. 정규학기와 계절학기가 진행되는 동안, 게임을 켜지 못했다. 내 캐릭터와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반년 만에 <발더스 게이트 3>을 켰다. ‘내가 왜 폐허에 와 있었지?’ 그리고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모니터 속 내 캐릭터가 어째서 폐허가 된 마을에 와 있는지 몰랐다. * <발더스 게이트 3> 2막의 무대가 되는 라이스윈 마을 폐허의 일러스트 인지 기능 장애는 아니다. 아닐 것이다. 그렇다기엔 이미 오랜 시간 같은 일을 겪어 왔다. 방대한 퀘스트, 서사, 세계를 구현한 롤플레잉을 좋아하는 게이머들은 종종 이런 일을 겪곤 한다. 광활한 게임 속 세계에서 어디를 방문했고 어디는 아직 방문하지 않았는지, 수많은 퀘스트 중 무엇을 해결했고 무엇이 진행 중인지, 다음으로 무엇을 하려 했는지, 캐릭터를 어떻게 성장시키려 했는지, 동료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 인벤토리를 가득 채운 잡동사니들을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했는지. 나는 마치 기억을 잃은 채 폐허 한복판에서 갓 깨어난 것처럼 멍하니 화면만 바라본다. 텅 빈 응시는 화면 우상단에 멈춘다. ‘일지 [J]’ 나는 망설임 없이, 하지만 큰 기대도 없이, J키를 누른다. 일지. 저널. 혹은 퀘스트 로그 등등. 퀘스트와 이야기 전개를 중심으로 삼는 게임들에는 하나같이 일지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일지에는 내가 잊은 모험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어느 마을에서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으며, 어떤 부탁을 수락했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적혀 있다. * <발더스 게이트 3>의 퀘스트 일지 “우리는 라파엘의 오랜 적을 상대해야 한다.” 기억이 돌아온 것 같지는 않다. 라파엘이 정확히 누구였는지, 오랜 적은 또 누군지, 그리고 내가 왜 이 일을 맡겠다고 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런데도 나는 일지에 따라 캐릭터를 ‘영묘’로 이동시킨다. 일지가 그러라고 하니까. 오토의 수첩은 기억하고 있었다 철학자 앤디 클라크(Andy Clark)와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는 그들의 논문 「확장된 마음(The Extended Mind)」에서 오토라는 인물을 제시한다. 오토는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생물학적 기억에 안정적으로 보존하지 못한다. 그래서 필요한 정보를 수첩에 기록하고, 무언가를 알아야 할 때마다 그것을 펼쳐본다. 오토가 과거 일터의 동료를 떠올려야 한다고 해보자. 그는 그 동료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대신 수첩을 확인한다. 클라크와 차머스의 주장은 ‘수첩이 기억에 도움이 된다.’라는 것이 아니다. 수첩의 정보가 오토의 사고와 행동에 안정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인지 과정 바깥에 놓인 우연한 도구가 아니라 그 과정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 즉 인지 과정이 두개골 안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마음은 더 넓게 퍼져있다. 사물은 물론이거니와 신체에까지. *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자신의 신체를 수첩으로 사용한다. 게임의 일지는 클라크 및 차머스가 말하는 확장된 마음에 부합하는 유력한 사례다. 플레이어는 NPC가 한 말을 모두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할 필요도 없다. 필요할 때 로그를 펼치면 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대화를 대체하는 그 기록을 대체로 의심하지 않으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탐험하고,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수집한다. 몇 달 동안 게임을 하지 않았더라도, 일지라는 확장된 기억, 확장된 마음을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의 행위를 다시 조직한다. 하지만 오토의 수첩과 게임의 일지 사이에는 작아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클라크와 차머스가 확장된 마음을 논할 때 명시적으로는 다루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저자성이다. 오토의 수첩의 저자는 오토 자신이다. 반면, 게임의 일지는 다르다.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기억시키기로 한 것이 적혀 있다. 물론 일지의 내용이 플레이어의 행위를 완전히 배신할 수는 없다. 게임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했던 행위에 부합하는 내용을 일지에 기재한다. 내가 직접 적지 않아도, 내 행위에 부합하는 내용을 게임 시스템이 대신 적어준다면, 저자성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록을 넘어서는 일지의 기억 그럼에도 저자성은 유의미한 차이를 형성한다. 저자성의 문제는, 일지가 ‘사실을 기록’하여 플레이어의 기억을 대신하는 것을 넘어 플레이어의 마음이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지까지 규정한다는 데서 발생한다. ‘북쪽 숲으로 가라.’ ‘탈주한 노예를 되찾아 올 것.’ ‘고블린으로부터 마을을 방어하라.’ ‘라파엘의 오랜 적을 상대해야 한다.’ 게임의 일지는 선을 넘는다. 이래라저래라 명령한다. 일지의 기억은 그저 과거의 사실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들은 대개 전망 기억(prospective memory)이다. 즉, 미래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도를 기억하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반년 만에 돌아온 플레이어가 행위를 이어가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일지의 핵심은 사건을 기록하는 것 이상이다. 벌어진 사건을 넘어 의도와 전망까지 건드린다. * <발더스 게이트>의 일지는 플레이어의 감정, 판단 등을 대신 기술한다. 게임의 일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느끼지도 않은 감정을 대신 기술하거나, 하지도 않은 판단을 대신 내리기도 한다. “내 목숨을 노린 시도야 우스웠지만 , 이보다 더한 위협이 뒤따를 것 같아 두렵다 .” 1998년에 출시된 <발더스 게이트>의 일지는 플레이어를 대신해 위와 같이 말한다. 내 목숨을 노린 시도는 ‘우습게’ 여겨졌으며, 반면 이보다 더한 위협은 ‘두려움’을 일으켰다. 일지가 대신 써준 정서는 게임의 서사에 지극히 부합한다. 그럴 수 있다. 일지가 기술한 대로 느낀 플레이어도 전 세계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다만 나의 경우엔 아니었다. <발더스 게이트>를 수십 회 플레이한 당사자로서, 단 한 번도 그런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다. 새벽에 몰래 게임을 하다 징치(懲治)를 당할까 봐 두려웠다면 모를까. 저자성의 차원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이 이곳이다. 당연히 오토는 할 일에 관한 전망 기억을 수첩에 적을 수 있다. 일주일 뒤에 할 일, 특정 인물을 만났을 때 할 말 등, 미래를 향한 의도와 전망은 명령의 형식으로 수첩에 기재된다. 감정과 판단도 충분히 가능하다. 행복했던 기억과 그때의 감정을 잊지 않고 그것이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오토는 자신의 감정을 수첩에 적을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수첩에 담긴 명령, 감정, 판단의 ‘열람자’는 ‘저자’와 일치한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여전히 ‘의식 내용으로서의 사실’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그것은 자기지배의 일환이다. 그에 비하여 일지의 저자는 플레이어가 아니다.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어의 행위에 부합하는 내용을 대신 기록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의식에 없던 내용을 기술해 나갈 때, 그때 비로소 오토의 수첩과의 차이가 발생한다. 자기지배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하는 기록, 보충하는 기록 나의 감정, 판단, 의도에 대한 기록이 자기지배의 일환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원본적 의식에 없던 것을 개발자가 텍스트를 통해 보충한 결과인 상황, 그것이 바로 게임의 일지다. 그 지점에서 나타나는 것은 ‘대리보충(supplément)’이자 타의에 의한 통치다. 왜냐하면 그 순간 게임의 일지는 그저 외장 저장장치이기를 그만두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의 의도, 감정, 판단을 특정한 방향으로 인도하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지는 플레이어의 마음을 확장할 뿐 아니라, 그 마음을 통치한다. 물론 플레이어의 행위 역시 일지를 통치한다. 플레이어의 행위에 따라 서로 다른 텍스트가 일지에 기록된다. 일견하기에 기준은 플레이어의 행위처럼 보인다. 순수한 반영론자들은, 일지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의 기억을 대신하는 보조물일 뿐이고, 완전한 기억을 지닌 플레이어에게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을 무엇이며, 살아 있는 의식의 초라한 사본이자 미메시스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진짜배기는 언제나 플레이어의 생생한 의식이고, 일지는 그 의식이 부재할 때 빈자리를 잠시 메우는 외적 도구에 불과하다. 원본이 있고, 그것의 열화판이 있다. 살아 있는 말이 있고, 그것을 뒤늦게 받아 적은 기록이 있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문제 삼은 것이 바로 이 일방적, 위계적 관계다. 서구 형이상학은 오랫동안 문자를 말의 부차적 기호로, 살아 있는 현전(現前)에 덧붙은 파생물이자 위험한 잉여로 다루어 왔다. 말은 정신에 가깝고, 문자는 그 말을 베낀 사본이라는 것이다. 데리다는 이 구도를 ‘대리보충’이라는 한 단어의 이중성으로 무너뜨린다. 대리보충은 더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대신하는 것이다. 대리보충은 한편으로 이미 충만한 것에 덧붙는 잉여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원본의 선행하는 결핍을 대신 메우는 대체물이다. 이 두 기능은 분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실이 폭로하는 것은, 대리보충이 채우는 그 원본이 처음부터 완전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핍은 나중에 벌어진 사고가 아니라 애초의 조건이었다. 게임의 일지가 정확히 그러하다. 반년 만에 폐허에서 눈을 떴을 때, 일지의 기록이 수행하는 것은 반년 전의 내 의식에 대한 정확한 재현이 아니다. “라파엘의 오랜 적을 상대해야 한다.”라는 기록은 나의 굳은 의지를 받아 적은 것이 아니다. 그런 굳건한 마음 같은 것은 없었다. 그것은 일지가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복종한다. 내 캐릭터의 목숨을 노린 시도에 대한 조소와 불안 같은 것은 없었다. 그것은 일지가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선에 따라 이후의 서사를 대한다. 일지는 플레이어의 의식의 열화판이 아니라, 애초에 플레이어의 의식이라는 원본에 비어 있던 자리를 채워주는 대리보충이자, 플레이어에 대한 통치다. * <발더스 게이트 3> 서사의 핵심인 일리시드(illithid) 종족은 정신 조종을 통해 다른 존재의 의식에 명령, 감정, 판단을 주입할 수 있다. 대리보충은 보조물로 시작하지만 끝내 원본의 지위를 찬탈하고 지배적 위치에 선다. 섬겨야 할 주인이 처음부터 없었으므로, 대리보충은 아무도 섬기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주인이 된다. 물론 또 다시 후속하는 대리보충에 의해 제위를 선양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오토의 수첩이 타율적 통치로 전화하지 않는 것은, 열람자와 저자가 모두 오토 자신이어서 결핍의 자리에 여전히 자기지배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 시스템에 저자의 자리를 넘겨준 일지는, 마음을 확장하는 동시에 확장된 그 마음을 통치한다. 확장과 통치는 대리보충이라는 하나의 운동이 지닌 두 얼굴이다. ‘내가 왜 폐허에 와 있었지?’ 반년 전의 내 의식에 현현했던 판단, 의도, 감정이 누락된 자리. 그 자리에 일지가 들어선다. 나는 J키를 누르고, 일지가 말하는 대로 영묘로 향한다. 내가 그리로 가는 것은 그리로 가려던 기억이나 의도가 내게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일지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다. 폐허에서 깨어난 플레이어는 도구를 손에 쥔 주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읽는 텍스트에 의해 비로소 세워지는 자다. 그에게는 일지 바깥이 없다.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에게 기록이 전부였던 것처럼. Tags: 퀘스트 로그, 발더스 게이트 3, 확장된 마음, 대리보충, 자크 데리다, RPG, 게임과 철학, Baldur's Gate 3, Extended Mind Theory, Quest Log, Jacques Derrida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철학연구자) 최건 철학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게임애호가 및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의, 강연, 연구, 저술, 번역 활동에 임해왔으며, 현재는 인하대 등에서 학생들과 사유를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 즐기는 사람들을 지켜라 - 만화는 어떻게 멸시와 비하를 딛고 일어섰는가

    1972년 6월 29일 동아일보에선 “불량만화 화형식”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불량만화는 사회악의 근원이다”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운 ‘한국아동도서보급협회’는 서울 남산 야외음악당(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위치한 자리다!)에서 ‘어린이 악서 추방대회’를 열고 만화책을 모아 불태웠다. 이 단체는 만화를 두고 ‘유소년의 정서발달을 해친다’, ‘제대로 된 지식을 전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주류의 시선에서, 당시 만화는 ‘악서’였던 셈이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Min Lee Has run the comics/webtoon review podcast "Webtoonista" since 2013. Received the Award of Excellence in the 2017 Korea Manhwa Contents Agency comics criticism competition and in the professional division of the 2019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comics criticism competition. Has worked as an editor at the webzine "Webtoon Insight" since 2019. Reads comics, writes about them, and digs into the many things underlying the market built around comics. The novel Children of the Rune, StarLeague, the LCK, and countless webtoons made me who I am today.

  • 대항해시대 2 한글 폰트 구합니다 ─ 비제도권 게임 로컬라이제이션의 짧은 역사

    90년대 정식 퍼블리셔를 통해서 게임들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들어오면서 당시 게이머들은 이전보다 풍족하게 한국어로 된 게임을 누릴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이전에도 게임의 한국어화 시도도 존재했으며 당시를 살아온 게이머들은 기억하고 있겠지만 당시에도 정식으로 출시되기 힘든 게임들의 비공식적인 이용자 한국어 패치가 존재했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夢としてのクソゲ

    「ファミコンを通じて超能力を開発する」というテーマで開発されたゲームがあった。 1980年代当時の日本の超能力ブームのなか、超能力者として知られていた清田益章氏(通称、「エスパー清田」)が監修した『マインドシーカー』(FC,1989)という作品だ。作中に登場する清田氏の指示をこなし、この作品を遊ぶことで、実際に超能力が使えるようになる……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た。 < Back 夢としてのクソゲ 05 GG Vol. 22. 4. 10. * 이 글의 한글 번역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culturemagazinegg.wixsite.com b3ca971a-22ba-428a-8fde-4af1a167b94f "패미컴을 통해 초능력을 개발한다"라는 테마로 개발된 게임이 있었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의 초능력 붐 속에서 초능력자로 알려졌던 키요타 마스아키(清田益章; 통칭, 에스퍼 키요타)씨가 감수한 〈마인드시커〉라는 작품이다. 플레이 과정에서 조언자 격으로 등장하는 키요타씨의 지시를 받아 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핵심 컨셉은 "실제로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였다. 超能力開発ゲーム『マインドシーカー』 「ファミコンを通じて超能力を開発する」というテーマで開発されたゲームがあった。 1980年代当時の日本の超能力ブームのなか、超能力者として知られていた清田益章氏(通称、「エスパー清田」)が監修した『マインドシーカー』(FC,1989)という作品だ。作中に登場する清田氏の指示をこなし、この作品を遊ぶことで、実際に超能力が使えるようになる……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た。 筆者も、このゲームを昔、実際にやってみたことがある。しかしながら、そもそもゲームが要求する課題に応えることができない。「では、まず透視をしてみましょう」とか、「予知をしてみましょう」というような課題が次々に出てくる。残念ながら、かすかな超能力も秘めていなかった(?)筆者にとっては、初期の課題からしてすでに達成困難だった。そのため、超能力は得るには至らなかった。 『マインドシーカー』は、まともにクリアすることができず、まともに楽しむことも難しく、(おそらく)超能力を開発することもできない。それゆえ、この作品は、何一つ成功を収めているとは言えない作品であると言ってもいい。 そう、何一つ成功を収めていないのだ。 しかし、それでも、この作品には、特筆すべきものがあると言いたい。 それは、作り手と、遊び手の、ゲームへの「夢」が詰め込まれているということだ。そのあまりに直接的な夢のあり方の痕跡を確認できるという意味において、この作品ほどわかりやすい作品は珍しい。本稿では、この「夢」をどのように評価するべきかということを少しだけ書いてみたいと思う。 夢の装置としてのコンピュータ・ゲーム 『マインドシーカー』の発売された当時、コンピュータ・ゲームという文化が、かつて担っていた面白さの一部は、このようなものだった。すなわち、人々の無制限な夢を実現してくれる機械であるということだった。 コンピュータの中のキャラクターと対戦ができる。登場人物と話ができる。モニターに向かって銃を撃ったら反応を返してくれる。声を入力することができる……今では当然とも思えるこれらのことは、1980年代に多くの人の目の前に急速に日常に現れた新しいテクノロジーのあり方だった。「コンピュータが進化すれば、ゲームでなんでもできるようになる」という、無責任な夢を多くの子供が信じたし、ゲームの作り手は、その夢をどんどん具現化していった。それが1980年代の、ファミコンがヒットし、ゲームというメディア自体が多くの人の、果てしない夢を、ある意味で無責任に担ってしまうことが可能だった時代の風景だった。 もっとも、テクノロジーが人々の「夢」を無責任に背負うという構図それ自体は、コンピュータば・ゲームに限ったことではない。佐藤俊樹は、情報社会の未来を語る情報社会論の言説が何度も何度も同じ夢を繰り返しみてきたということを1996年に指摘している(『ノイマンの夢・近代の欲望』1996,講談社選書メチエ)。1970年代にも夢は語られ、1980年代にも夢は語られ、繰り返し、繰り返し「情報技術が社会を変える」という「神話」が語られてきたという。佐藤は、図書館のなかに溜まっている情報社会論を議論する構図がほとんど変化していない、ということをある日、発見し、そのことに驚いたという。 「コンピュータがどう社会を変えていくか」という言説が、オトナが社会に見る夢を際限なく拡大させる装置であるとするならば、1980年代のコンピュータ・ゲームは、子供が遊びに見る夢を際限なく拡大させていく装置であったと言ってもいい。1980年代の世界は、その夢の「素朴さ」という点において、2022年現在とは隔絶したものがある。もちろん、2022年現在においても、人々はAIに過剰な夢を託し、もっと本格的なVRゲームの実現を心待ちにしている。しかし、1980年代に見られた夢とは、どうも、その性質が異なっている。 誰が、1980年代のクソゲーの担い手だったのか? 何が異なっているのかといえば、無茶な夢の担い手が、一体誰だったのかということだ。 1980年代の伝説的なクソゲーを作ったのは、ポッと出の新人 や、他業界の素人 には限らなかった。「クソゲー」の担い手は、しばしばゲーム業界の中心人物だった。 『マインドシーカー』の開発プロデューサーは、あの『パックマン』の生みの親である岩谷徹が勤めている。そして、開発の中心にいた鈴木浩司は、その後1997年にRPGのあり方に大きな波紋を投げかけた『moon』の開発に関わり、今で言うインディーゲーム文化の先駆けとなる作品に大きな貢献を果たした人物でもある。 ゲーム業界の重要人物が、「クソゲー」に関わるという構図は、実は珍しくない。アメリカの家庭用ゲーム機のマーケットの崩壊(いわゆる「アタリショック」)を導く要因の一部となった「伝説のクソゲー」として参照される『E.T.』(Atari 2600,1982)の開発担当者Howard Scott Warshawも、当時のアタリ社におけるスター開発者だった。『Yar’s Revenge』(Atari 2600,1981)というAtari 2600において最も売れたとされるタイトルの開発者である 。Howard Scott Warshawは、無茶な話を勢いよく引き受けて、『E.T.』を作った。 ちなみに、日本の1980年代の代表的なクソゲーである『たけしの挑戦状』は、今で言うところの「オープン・ワールド」の実装を夢見て、華々しく失敗した作品ということができるが、これはゲーム業界の内部ではなく、タレントのビートたけしによる素朴な発案だった 。 彼らは、コンピュータ・ゲームに人々が見ていた「夢」を引き受け、そして失敗したのである。 今思えば、それは、あまりにも馬鹿馬鹿しく、未熟で、粗末なものだった。そう、言うことはできる。そして、時代の寵児たちが、馬鹿馬鹿しい失敗をできたということは、ゲーム業界全体が若い時代特有の特権だったといってもいい。馬鹿げた夢をひきうけ、それに無謀に挑戦することが許されたのだ。それは、出来上がった作品を見てみれば、不幸なプロジェクトだったようにも見えるかもしれない。 しかし、2022年の現在から見てみれば、業界のトップスターが、ひどく馬鹿げた企画に、馬鹿げた予算をかけ、馬鹿げた情熱を注ぐということは、ほとんど見ない風景になってしまった。もちろん、突拍子もない企画でヒットを狙おうとすることや、失敗するプロジェクト自体は今でも存在する。しかし、そこにトップクリエイターが最初から張り付き、巨額の予算がかけられるということ自体は、ゲーム開発に関わるリスクの意識が発達した現代の大規模開発では、なかなか見られないものになった。 繰り返すが、1980年代のクソゲーのもつ「愚かさ」は、開発者たちの無能さゆえではない。むしろ、未熟で有能な人々が、夢を煮詰めたプロジェクトに全力で取り組んだものの痕跡が、1980年代の「クソゲー」なのである。 新しいものをつくる装置としてのクソゲー これほどまでに、素朴な欲望の発露によって、大作を作ろうとする志しは、今となっては、むしろ眩しくすらある。 「超能力を開発できるゲーム」など、馬鹿らしいにもほどがあるし、1980年代に大規模なオープン・ワールドのゲームをつくろうなどという野望もあまりに無理があった。   この後、コンピュータ・ゲームという世界のなかに漂う「夢」を引き受ける一つのピークとして生まれた作品は、1999年の『シェンムー』(DC,1999)だっただろう。『シェンムー』もまた、夢が詰め込まれた作品だった。『シェンムー』はもう一つの現実世界をゲームの中に実装しようという多くの人が夢見ることの一つを、愚直に実現しようとした作品の一つだ。この作品が残したのは赤字だけではなく、失敗とも成功ともなんとも言い難い強烈な印象だった。今の「オープン・ワールド」と言われる作品の多くは、直接にせよ間接にせよ『シェンムー』の試行錯誤の結果を反映させてつくられている。 コンピュータに人々が見る「夢」は多くの場合、無責任なものだ。 それはしばしば愚かだったり、詐欺まがいであると言ってもいい。その愚かさはしばしば滑稽なものになり、出来上がったものは笑いを誘う。人々が何かを笑うときというのは、ある認識の枠組みを外側からメタ視点に立てるようになっている瞬間でもある。夢は、その内側にまどろんでいるときには尊く、その外側に出れば、ときには笑いを誘う。「夢」を見るとういうことは、その意味で滑稽であることが宿命付けられたものだと言っていい。 ゲーム業界が成熟するほどに、笑えるほどに愚かな作品をつくることは大手のトップクリエイターの仕事としては難しくなった。その結果、1990年代も後半になってくると、より小さなゲームの開発元が果敢なクソゲーも、単に開発力不足によるクソゲーも、その両方を担うようになっていった。現代では広大に広がるインディーマーケットがその主力を担っている。 我々は、笑えるほどに愚かしいものをつくることによって、新しいものをつくることができるとも言える。我々が新しいものを見たいと思い、前に進みたいと思う欲望と、笑えるほどに愚かな作品をつくってしまうことは表裏一体の現象である。 私は『マインドシーカー』を起動して、久々に遊んでみると、そこにはもちろん、笑ってしまうような馬鹿馬鹿しさがある。たしかに、ゲーム自体は馬鹿らしいのだ。しかし、このゲームは、同時に輝いているようにも感じてしまう。それは、その馬鹿らしさを可能にしているものの存在を背後に感じ取ってしまうからだ。夢をみて見たいと思う人々の子供のようなワクワクとした気持ちが、この作品の裏側には横たわっている。それは無茶なものだったとしてもいい。 それこそが世界の多様さと豊かさのありようだ、と私は考える。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Inoue Akito ゲーム研究者。現在、立命館大学講師。国際大学GLOCOM助教、関西大学特任准教授などを経て現在に至る。「ゲームとは何か」という問いを中心に据えつつ、ゲームのアーカイブや、ゲームを応用した社会的課題の解決に関わるプロジェクトなどにも取り組んでいる。 Game researcher. Currently a Senior Lecturer at Ritsumeikan University. After completing a master's degree at Keio University's Graduate School of Media and Governance, he worked as an assistant professor at International University of Japan GLOCOM and a specially appointed associate professor at Kansai University before assuming his current position. He is also involved in projects related to game archives and databases. He is the author of "Gamification" (NHK Publishing, 2012).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Prompt2Videogame: 더빙의 오래된 미래

    이러한 맥락을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데스티니의 ‘목소리’뿐 아니라 그 너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1조 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가질 GPT-4(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모델)에 연동된 데스티니는 플레이어와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녀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사를 반복해서 중얼거리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말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잠재적인 사운드’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리 녹음을 했거나 혹은 기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사운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따라 반응이 3가지 정도로 나뉘는 고전적인 NPC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역시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대화의 분기가 한 10가지쯤 될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도 없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긴밀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하며, 그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대사나 대화에 있어서 데스티니에게 기존 게임 사운드의 특성들을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 소화 불량 커비의 사물 머금기

    커비는 왜 인간이 사물을 쓰던 방식과 다른 접근을 취할까? 커비가 사물과 상호 작용하게 된 배경에는 이번 〈디스커버리〉가 펼쳐지는 무대에 있다.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도착한 곳은 커비의 세계와 인간 세계가 충돌한 곳이다. 이제까지 커비의 모험이 주로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별 모양의 행성 팝스타에서 이루어졌다면,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종횡무진하는 이 세계는 플레이어에게 어딘가 익숙하다. < Back 소화 불량 커비의 사물 머금기 06 GG Vol. 22. 6. 10. 신세계에서 발견한 물건을 베어 물면 커비가 변형! 다양한 액션으로 대모험! 1) * 커비의 다양한 머금기 변형 종류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는 2022년 3월 25일 커비 시리즈의 30주년을 맞이하여 발매된 게임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커비를 소개한다. 횡스크롤 게임 플레이에서 벗어난 첫 번째 전방향 3D 액션 게임으로 큰 화제가 된 〈디스커버리〉는 출시 2주만에 210만 장이 판매되는 등 현 시점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난이도를 고려하여 섬세하게 개발된 플레이 시점, 이전과는 차별화된 스테이지 디자인 등 여러 요소들이 이목을 끌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괄목할 만한 것은 이번 게임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커비의 머금기 변형이다. 영어로는 ‘마우스풀 모드(Mouthful Mode)’, 한국어로는 ‘머금기’라고 불리는 상호 작용은 커비가 사물을 빨아들이다 반 머금을 때 특정한 행동이 가능해지는 특수한 능력이다. * 물건을 반만 머금기 직전 자동차를 다 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커비의 모습 게임은 평화롭게 자신의 행성을 산책하던 커비가 하늘에 난 구멍이 만든 푸른색의 폭풍에 휘말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포털을 통해 미지의 세계에 도착한 커비는 스테이지를 활보하다가 길 한가운데에 뒹굴고 있는 사물을 만나게 된다. 다른 것과 달리 반짝이는 이 사물은 커비의 접근을 유도한다. 사물 앞에서 커비는 관성적으로 자신이 늘 하던 빨아들이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한 입에 모두 삼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커비는 이내 반 정도를 뱉어낸다. 자동차, 꼬깔콘, 고리, 전구, 계단, 지게차 등을 만나며, 우주와 같은 자신의 위장 속에 사물을 삼키지 못한 커비의 입과 몸은 사물의 형태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고안되어 특정한 능력을 보유하지 않는 사물을 머금으면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발생할까? 불, 물, 칼, 폭탄 던지기와 같은 명확한 정체성이 없는 사물이 커비와 접촉하면 커비는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사물과 커비가 맺는 특별한 관계가 생성된다. 이는 더 나아가 게임 내에 사물이 존재하는 양상에 대한 재고찰을 돕고 플레이어와 사물이 주체와 객체로 고착화되는 공식을 뒤집으면서 다른 상호 작용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머금기 변형이 등장한 배경에는 2D에서 3D로의 전환이 있다. 2020년,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발매된 전작 〈커비 파이터즈 2〉만 해도 횡스크롤 스타일을 고수하였다. 개발진들은 2D 커비의 귀여운 특성을 살리면서도 이를 어떻게 3D 액션 플레이로 연계할 것인가 고민하였고, 이 과정에서 머금기 변형이 새로운 능력으로 등장하였다. 2) 다양한 것을 먹고 늘어났다 줄어드는 모습은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기묘한 커비의 개성을 3D로 구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3D에서는 2D와 달리 상하좌우의 부피감을 인지할 수 있기에 넘어지기, 가속하기, 늘어나기, 사방으로 움직이기 등 다양한 방식의 움직임을 플레이 요소에 더하는 것이 장려되며, 이러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장치로 사물이 사용된 것이다. 제작진의 의도와 다르게 머금기 변형은 단순히 3D 효과를 부각하는 것을 넘어 게임 내에서 사물의 위상을 바꾸었다. 사물은 커비의 능력을 경유하여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번역되고, 주변 환경을 연결하기도, 또 해체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을 자세히 들여다보기에 앞서 짚어야 할 것은, 커비의 머금기 변형은 변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커비의 위장은 흔히 우주와 같이 무한하다고 알려져왔으나 이번 시리즈에서는 사물을 온전하게 흡수하지 못하며, 대상을 완전히 모방하고 변신하려는 커비의 시도는 실패한다. * 캡처 능력을 활용하여 굼바에 빙의한 마리오 〈디스커버리〉가 참고하여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와 비교하면 변신과 변형의 차이가 더 명확해진다. 커비의 3D 월드는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로부터 스테이지 구성 혹은 시점 변화 등의 요소를 계승하였다. 머금기 또한 마리오의 ‘캡처’ 능력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물을 이용하여 퍼즐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캡처는 마리오가 자신의 모자인 캐피를 던져 특정한 대상에 맞추면 그 대상으로 빙의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주로 적에 빙의했을 뿐 아니라 마리오가 본래 지니고 있던 고유한 특성에서 기인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또한 완전한 빙의로 인해 마리오스러운 플레이를 운용하는 것에 실패한다. 실제로 이 캡처 능력은 마리오의 캐릭터성을 중시 여기는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반면 커비의 머금기는 커비의 정체성과도 같은 흡입하기와 뱉기를 활용하면서도 더 나아간다. 사물을 ‘머금었다’라는 제약은 커비의 사물-되기를 방지한다. 사물을 머금은 커비는 커비도 사물도 아닌, 커비-사물 혹은 사물-커비의 중간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게 된다. 애매모호한 존재가 되어 버린 커비의 상태는 커비 본래의 특성을 플레이어에게 이해시키면서도 오히려 역으로 플레이에 재미를 부여한다. 사물을 뱉고 나면 다시 탄력적으로 원래의 크기와 능력으로 돌아가는 커비를 통해 이 일시적인 결합은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강조한다. 커비의 번역은 새로운 관계 맺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커비는 처음 보는 사물을 낯선 방식으로 쓴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사물의 용도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하고 커비만의 방식으로 사물들을 번역한다. 이는 더 나아가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쓰임을 익히게 하고 게임 내의 필수적인 요소로 이해하게 만든다. ‘플레이어 - 사물 - 커비’의 삼자관계는 플레이어가 커비를 조종하는 일방향적인 관계를 다각화한다. 커비는 왜 인간이 사물을 쓰던 방식과 다른 접근을 취할까? 커비가 사물과 상호 작용하게 된 배경에는 이번 〈디스커버리〉가 펼쳐지는 무대에 있다.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도착한 곳은 커비의 세계와 인간 세계가 충돌한 곳이다. 이제까지 커비의 모험이 주로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별 모양의 행성 팝스타에서 이루어졌다면, 〈디스커버리〉에서 커비가 종횡무진하는 이 세계는 플레이어에게 어딘가 익숙하다. 커비가 마주치는 잔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즉 인류 문명이 멸망한 뒤 자연이 울창해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곳곳에는 허름한 쇼핑몰, 놀이 기구만 살아남은 놀이공원, 폐공장, 빈 도심 등이 배경으로 펼쳐진다. 인류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동차, 토관, 자판기 등 여러 사물만이 남아 있다. 커비의 세계에는 부재한 사물들이다. 따라서 커비는 본래의 용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물을 조우하며,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빨아들이기를 통해 이용한다. 사물은 정해진 능력이 없고 목적에 따라 달리 사용되기 때문에 커비가 사물을 빨아들이면 능력을 복사하는 대신 사물의 일부 특성이 소환된다. 커비는 이를 자신의 쓰임새에 맞게 용도를 전환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머금기는 가속의 기능을 활용하여 막힌 곳을 뚫는 데에 사용하고, 삼각 머금기로는 파열된 수도관이나 금이 간 바닥에 구멍을 뚫고, 돔 머금기는 저수 탱크 열기, 로커 머금기는 버둥거려서 길 만들기, 고리 머금기는 풍력을 이용한 동력원으로 사용하거나 바람으로 적 날리기, 자판기 머금기는 캔을 뱉어 길을 뚫는다든지 적 물리치기, 계단 머금기는 옆 혹은 앞으로 넘어지기, 토관 머금기는 데굴데굴 구르기, 작업차 머금기는 높은 곳에 닿기, 아치 머금기는 글라이더로 변형하여 비행하기 등이 있다. * 간판에서 떨어진 철자 O를 고리로 머금기 위해 다가가는 커비 * 트래픽콘 외에도 삼각형 모양의 아이스크림 조각상 하단부도 삼각 머금기의 대상이다 본래 트래픽콘이 차량을 통제하거나 위험을 표시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과 달리, 커비는 이를 원뿔로 인식하고 금이 간 바닥이나 수도관을 터트려 길을 만든다. 또한 커비는 트래픽콘을 도움닫기 삼아 높은 지형물에 올라가기 위해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높게 점프하는 커비의 본래 능력의 연장선상에서 새롭게 번역된 사물의 쓰임이다. 한편 고리 머금기의 경우에는 보다 다양한 사물로부터 비롯되는데 바닥에 떨어진 글자, 시계 또한 그 대상이 된다. 본래의 용도가 무엇이었든 커비는 고리 모양이라면 이를 머금어 바람을 불어 보트를 움직이거나 적을 날려버리며, 이러한 고리의 사용법은 커비의 내뱉는 능력에서 파생된다. 시계의 기능이나 철자 O로 읽는 것은 커비의 능력이나 필요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마찬가지로 트래픽콘과 아이스크림 콘은 본래 사물의 목적, 기능과 관계없이 커비에게는 동일한 물체로 인식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언어로 이해되었던 사물은 커비의 언어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지고 끝없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며 역할을 부여받는다. 번역은 다른 체계의 대상을 같게 만드는 동시에 차이를 형성하는 과정이며 네트워크를 건설한다. 3) 기존의 연결 고리를 끊고 다른 요소들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커비와 사물의 만남은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게임에서 사물로 변형된 커비가 도달할 수 있는 곳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디스커버리〉에는 커비가 스테이지를 돌파하는 목적 외에도, 더 좋은 설계도를 획득하거나 실종된 웨이들 디를 구하는 미션 등이 주어진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장치들을 통과해야 하는데, 사물을 머금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길들이 여럿 있다. 사물을 머금을 때 비로소 위로 도달할 수 있고, 막혔던 길이 뚫리거나 숨겨졌던 길을 발견하는 등의 과정은 특정한 사물로 인해서 발생하는 네트워크를 가시화한다. 유니티의 매뉴얼에 따르면 게임 내 사물은 그 개체 자체로는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이다. 4) 사물은 게임에서 항상 몰입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사물과의 상호 작용성은 플레이어의 몰입을 이끄는 요소로 여겨졌다. 몰입을 더하기 위해 게임의 사물들은 주로 현실의 형태와 물리 엔진을 모사하는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다. 플레이어의 몰입과 관심을 계속해서 붙잡기 위해 최대한 우리 세계에 가까운 방식으로 작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직관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플레이어가 게임의 주요한 서사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고자 하는 위함도 있다. 따라서 게임 그래픽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사물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고전적인 측면이 있다. 한편 〈디스커버리〉에서 사물의 문법을 번역하고 비틀어 상이한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사물을 중심으로 두고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고안하게 한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발견한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넣고 360도 돌려 글귀를 읽는 방식과는 상이하다. 이를 테면 게임에서 다양한 종류의 사물과의 상호작용은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블랙박스(black-box)를 빗겨나갈 수 있게 해 준다. 블랙-박스는 사람들이 외부의 입-출력에만 의존하여 내부의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며 다종의 행위자들이 연루된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서 네트워크에 점점 무관심해지는 것을 일컫는다. 5) * 머금기에 익숙해진 플레이어는 트래픽콘을 내려 찍는 감각으로 인식하게 된다 연결과 해체의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게임 내에서 사물은 단순히 퍼즐의 한 요소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전체이자 요소로 등장한다. 게임이 기묘하게 비트는 현실의 규칙들은 오히려 사물과의 관계를 재고하고 이에 대한 새로운 사용법을 익히도록 한다. 이처럼 사물의 관계 맺기 양식을 다양화하는 게임들은 플레이어의 몰입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끈다. 특히 이번 커비 게임에서 사물의 지위는 단순히 부차적인 힌트나 아이템과 같은 보관의 용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머금어 창조적으로 이용하여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방식을 통해 재고찰된다. 계단이 높은 곳을 걸어서 올라가는 곳이 아니라 옆으로 쓰러져 눕는 사물이 되었을 때 계단 끝의 모서리, 딱딱함, 둔탁함은 다른 감각으로 찾아온다. 트래픽콘을 통행 금지의 표식이 아닌 뒤집은 모서리가 내리찍을 지면과 연결하여 인식하게 된다. 소화 불량 상태를 벗어난 커비의 모습이 괜히 아쉬워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는 동료 멜트미러와의 대화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음을 밝힙니다. 1) “Kirby Speical Ability” 『星のカービィ』公式ポータルサイト, https://www.kirby.jp/ability/special/mouthful-mode.html. 2022년 5월 30일 접속. 2) “개발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닌텐도, 2022년 3월 24일. https://www.nintendo.co.kr/interview/arzga/03.php 2022년 5월 29일 접속. 3) 브뤼노 라투르, 『인간·사물·동맹』, 홍성욱 역 (서울: 이음, 2010), p. 25. 4) “Unity Manual: GameObjects”. Unity Documentation, 2021년 3월. https://docs.unity3d.com/Manual/GameObjects.html 2022년 5월 30일 접속. 5) 브뤼노 라투르, 『인간·사물·동맹』, 홍성욱 역 (서울: 이음, 2010), p. 24.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획자) 박유진 시각 문화의 경계 안과 밖에서 읽고, 쓰고, 상상한다. 다른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방법론에 관심이 많으며 플랫폼을 만들고 매개자로부터 배우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자 한다. 현재는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 균열을 내는 실천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아레시보 Arecibo》를 기획했다. (@_ehpark)

  • One Hundred Pounds of Bear Meat: Educational Games and the Lasting Legacy of The Oregon Trail

    Writing about The Oregon Trail has become its own genre at this point. So much has been published on MECC’s classic game that all the clever references to dysentery, one of the many afflictions the player characters will experience on their journeys, have already been used. This is a testament to the game’s legacy and its lasting presence that bridges gaming culture and mainstream American popular culture. < Back One Hundred Pounds of Bear Meat: Educational Games and the Lasting Legacy of The Oregon Trail 06 GG Vol. 22. 6. 10. -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in here: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24 Writing about The Oregon Trail has become its own genre at this point. So much has been published on MECC’s classic game that all the clever references to dysentery, one of the many afflictions the player characters will experience on their journeys, have already been used. This is a testament to the game’s legacy and its lasting presence that bridges gaming culture and mainstream American popular culture. The game has had such an impact on American youth of the 1980s that ‘The Oregon Trail Generation’ has been used to describe the first generation of people who grew up with videogames present in their classrooms. This article revisits The Oregon Trail and idea of the The Oregon Trail generation, and considers why the game has resonated with players for decades. A Brief History of the Oregon Trail and The Oregon Trail The actual Oregon Trail, after which the game is named and themed, was a road used by American settlers migrating west to Oregon, California and Colorado from the 1840s until the completion of the transcontinental railroad in 1869. David Dary estimates that at its height, the road was used by at least 250,000 people, mostly families, who traveled for over four months across perilous terrain to reach their new homes. Unsurprisingly, this was a dangerous undertaking and according to the National Historic Oregon Trail Interpretive Center, at least 20,000 people died while traveling the trail. The story of the migrants and the trail became a crucial piece of American history taught in schools and celebrated in literature, films, and eventually in The Oregon Trail game. The Oregon Trail has had several iterations. Developed by Don Rawitsch, Bill Heinemann and Paul Dillenberger, the earliest version of The Oregon Trail developed out of a board game Don Rawitsch designed to teach westward migration to his own classroom. The game was then picked up by MECC, a Minnesota-based educational game developer, where the original designers converted the game into a text-adventure computer game that was distributed among Minnesota schools in 1975. The game first saw success in Minnesota and was later sold in schools across the United States with the help of a partnership between MECC and Apple, who were pushing to get their Apple II computer system into every American school. As the Apple II successfully worked its way into the fabric of the American education apparatus, The Oregon Trail was reworked for this new pervasive computer system in 1985 and became the version of the game that would be redistributed across American schools in a range of formats. Since then, the game has become a full-on brand with even more iterations in addition to contemporary board and card games. For this article I will focus on the 1990 version of the game. Playing The Oregon Trail In The Oregon Trail you assume the role of a family of travelers, and beginning in the town of Independence, Missouri, you attempt to traverse the long road across America to Oregon City. You begin by choosing an occupation, either a banker, a carpenter, or a farmer, who will have a set amount of funds with which to purchase oxen to pull the cart, clothes to shield yourself from the elements (or more likely to be stolen off your back by thieves), bullets for hunting, rations for survival, and wagon parts to repair the unavoidable damage your vehicle will take. Bankers will have the most funds but gain the fewest points, while farmers have the least, but are rewarded with tons of points for completing the game successfully. After choosing your occupation, the game asks you to name your party of five travelers. This is an exercise in cruelty, as whatever party you bring into existence here will be ground down through all manner of torment on their (likely doomed) journey West. Part of the magic of The Oregon Trail is its facade as an innocuous educational game with pleasant colors and a sprinkling historicity in its early screens. This illusion quickly gives way soon after Matt the shopkeeper takes your money in exchange for 3 yoke of wandering oxen that will surely ferry your family to their grave. * Playing The Oregon Trail, 1991 As you depart Independence you are given information about the weather, your stock of rations, the health of your group, and the distance to the next landmark on your trip. You’re able to choose how many miles you travel per day, and how many rations you consume, all the while experiencing the dire effects of travel in the wilderness upon the bodies of your party. Monitoring the health of your party seems to be the core mechanism of the game, but there is often little to be done for the many afflictions and events that besiege your travelers besides resting when you reach an outpost and making sure you don’t run out of food. The most famous single line of the game is without a doubt “You have died of dysentery,” which has become a popular meme that reflects the likelihood that your party will perish. If we consider what this means for the game in our cultural memory, it is both an educational game and an oddly compelling misery simulator. On my recent playthrough of the game I was robbed by thieves twice, afflicted by cholera and measles, bitten by snakes, and all the children broke their legs, and this was only a fraction of the misfortune that befell my group. If your group perishes you are met with a gravestone adorned with pithy text that essentially taunts you to try again, and many players did just that despite how hopeless the game could seem. Upon running out of rations you will need to gather your bullets and your rifle and go on the hunt. In the version of the game I played you could hunt squirrels, deer, buffalo, and bears. Hunting is represented by a minigame where rocks and shrubbery block the path of your bullets from hitting animals that pass across the screen. Smaller animals provide very little meat, but buffalo and bears provide tons of meat, of which you can only ever carry one hundred pounds back to the wagon. If you want to feed your family for the journey and you are anything but a wealthy banker, you will need to spend a substantial amount of time hunting, and the travelers might die anyway. While the gamified struggles of the travelers are the strongest associations with the game, you also pass by artistic renditions of landmarks across the trail as an engagement with geographical Americana. You trade and speak with other travelers and Indigenous Peoples along the trail, although unsurprisingly the history presented here is grounded in Americentric tropes that don't reflect the reality of American settlement. Katharine Slater notes that “Although various editions of The Oregon Trail seem to make an effort to move beyond explicit stereotypes, the game nevertheless perpetuates a racist narrative that privileges the ethos of white settlement through its refusal to engage directly with the genocidal consequences of westward expansion.” Had The Oregon Trail done a better job of conveying the details of what settlement and settlers did to Indigenous Peoples, it probably wouldn’t have ended up in schools in the first place. Part of the game’s reach was its appeal to a settler-colonial curriculum. While some of this is speculation, it is clear The Oregon Trail is not a particularly accurate or nuanced historical document, and yet the game became the poster child for educational games and continues to resonate with players. It has also become synonymous with a generation. The Oregon Trail Generation The concept of ‘The Oregon Trail Generation’ is a challenging one. The term refers to people who were born between 1977 and 1985, also labeled as ‘Xennials,’ a ‘micro-generation’ between Generation X and Millennials.’ This ‘micro-generation’ is so named because they grew up as computers were passing into the mainstream, particularly through the presence of homeroom computers or computer labs in schools that were often bundled with copies of The Oregon Trail. In practice, ‘The Oregon Trail Generation’ is a bit troubling as a label because the association with age, technological emergence, access, and aptitude doesn’t reflect how technology made its way into homes and schools from 1970 through to the 2000s. There were plenty of people from Generation X who developed technical competencies with the technology (and many who in fact designed the technology in the first place), and there were also many homes and schools that weren’t equipped to effectively expose students to these technologies until well into the Millennial generation. While the temporal parameters of The Oregon Trail Generation don’t really work, the term does point to students who grew up with educational games in the classroom as having a different experience than what came before. It is more accurate to think of the ‘The Oregon Trail Generation’ as a group that is parallel to Xennials but not limited to the same temporal boundaries. They should primarily be defined as the students or even independent Generation X learners who had regular exposure to educational games in the classroom or in their personal lives. In this sense we’re referring more to people who grew up accustomed to educational games as a part of the overall process of engaging with the world, of which The Oregon Trail was a fundamental part for many learners, although it was far from the only game in this genre to make a lasting impact. What was it about The Oregon Trail and other popular educational games like The Carmen Sandiego series (Broderbund, 1985), or for my classmates and I, Cross Country Canada (Ingenuity Works, 1986), that produced such strong feelings and positive memories about these kinds of games? When I was growing up it was not uncommon to rush to the one computer in the back of the classroom to play Cross Country Canada, another The Oregon Trail-inspired educational game, if we had spare time in class. As young learners we were compelled to play: we were actively anticipating learning geography by playing a game that allowed us to traverse Canada’s highways. It wasn’t just something we were doing because we were in school and it was expected of us, it was part of our days that we looked forward to. * Driving Canada's Highways in Cross Country Canada, 1986 Going back to The Oregon Trail, why might this be? Does The Oregon Trail represent history well? Not particularly: it retreads familiar tropes of the settling of the American West, including extremely dated representations of Indigenous Peoples - but like many other games branded with the ‘educational games’ label, it also provided a level of attachment to the material that can’t be overlooked. The cultural legacy of this game, despite its reputation for producing challenge, misery, and digital dysentery, is one of pop culture presence and fond remembrance among those who played it. This is partly because The Oregon Trail and its educational game offspring provided a sensory connection to a curriculum-safe rendition of topics that were so often off-putting to students because the delivery mechanisms of dusty chalk and hard-to-read projected acetate sheets simply did not work for all kinds of learners. Traditional modes of teaching can produce a familiar experience despite what subject was being taught, and for many students they weren’t as compelling as naming our family and sending them to their untimely end on the long trail west. The Oregon Trail stands out because at the time it was central to a new way of learning - a break in the routine - that added color, drama, and choice to an often rote learning routine. So why haven’t educational games reached the same heights culturally since The Oregon Trail? Well for one, the technology of some classrooms has increased substantially, and the classroom PC isn’t as novel a teaching tool as it once was. What’s more, at the time of The Oregon Trail’s rise, far fewer people were playing games or had games in their home, so educational games had far less competition from mainstream games and were more impressive as an experience. As time passed the kinds of educational games that school boards purchased were severely outclassed aesthetically and in playability by the games young people had at home. In some cases we were left playing games from the early 1990s in classrooms in the early 2000s. Other educational games did leave a mark on students but they weren’t first, nor were they implemented at the same time as a large-scale technological advancement in education across the United States with the introduction of the Apple II. The Oregon Trail was the right game at the right time, but it also resonated with those who played it. It has become emblematic of the many educational games that came after, as the aesthetic and design choices became prominent across other games. It is not a perfect historical document, but as a learning tool it drew students in to play the game and engage at least a little with the subject, and there is no doubt that culturally we have held onto fond memories of the experience. Much like the game’s limit on one hundred pounds of bear meat, as learners and players we could only carry a small piece of what the game provided for us, and in this case a substantial portion of what we carried were memes about dysentery. But that doesn’t mean that The Oregon Trail didn’t succeed as an educational game. Games like The Oregon Trail are just one component of our educational journey that build our interest in particular topics or allow us to explore subjects in ways other media cannot. But all the elements of our learning: our teachers, our books, our study habits, are what get us even further down our own perilous trail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재현, 추상, 그리고 시뮬레이션의 정치

    자동으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일에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물을 아래가 아니라 위로 쏘아 올리던 고대 로마의 분수부터 폭포 아래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물레방아까지, 우리는 스스로 ‘작동(作動)’하는 대상에서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그리스의 헤론이 만든 회전하는 증기 장치에서 근대 산업기술 사이를 비집고 등장한 다양한 오토마타까지, 작동하는 무언가가 주는 즐거움은 기술의 고도화 여부와 관계없이 인류 문화 한켠을 차지해 왔다.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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