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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의 일지: 대리하는 기억, 보충하는 기억, 통치하는 기억

31

GG Vol. 

26. 8. 10.


내가 왜 폐허에 와 있었지

     

폭풍 같은 한 학기 강의가 모두 끝났다. 바쁜 만큼 학기 중에는 연구에 할애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바쁠 때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 가장 먼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은 슬프다. 정규학기와 계절학기가 진행되는 동안, 게임을 켜지 못했다. 내 캐릭터와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반년 만에 <발더스 게이트 3>을 켰다.

     

‘내가 왜 폐허에 와 있었지?’

     

그리고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모니터 속 내 캐릭터가 어째서 폐허가 된 마을에 와 있는지 몰랐다.

 

     * <발더스 게이트 3> 2막의 무대가 되는 라이스윈 마을 폐허의 일러스트

     

인지 기능 장애는 아니다. 아닐 것이다. 그렇다기엔 이미 오랜 시간 같은 일을 겪어 왔다. 방대한 퀘스트, 서사, 세계를 구현한 롤플레잉을 좋아하는 게이머들은 종종 이런 일을 겪곤 한다. 광활한 게임 속 세계에서 어디를 방문했고 어디는 아직 방문하지 않았는지, 수많은 퀘스트 중 무엇을 해결했고 무엇이 진행 중인지, 다음으로 무엇을 하려 했는지, 캐릭터를 어떻게 성장시키려 했는지, 동료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 인벤토리를 가득 채운 잡동사니들을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했는지. 나는 마치 기억을 잃은 채 폐허 한복판에서 갓 깨어난 것처럼 멍하니 화면만 바라본다. 텅 빈 응시는 화면 우상단에 멈춘다.

     

‘일지 [J]’

     

나는 망설임 없이, 하지만 큰 기대도 없이, J키를 누른다. 일지. 저널. 혹은 퀘스트 로그 등등. 퀘스트와 이야기 전개를 중심으로 삼는 게임들에는 하나같이 일지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일지에는 내가 잊은 모험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어느 마을에서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으며, 어떤 부탁을 수락했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적혀 있다.


* <발더스 게이트 3>의 퀘스트 일지

     

“우리는 라파엘의 오랜 적을 상대해야 한다.”

     

기억이 돌아온 것 같지는 않다. 라파엘이 정확히 누구였는지, 오랜 적은 또 누군지, 그리고 내가 왜 이 일을 맡겠다고 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런데도 나는 일지에 따라 캐릭터를 ‘영묘’로 이동시킨다. 일지가 그러라고 하니까.

     

     

오토의 수첩은 기억하고 있었다

     

철학자 앤디 클라크(Andy Clark)와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는 그들의 논문 「확장된 마음(The Extended Mind)」에서 오토라는 인물을 제시한다. 오토는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생물학적 기억에 안정적으로 보존하지 못한다. 그래서 필요한 정보를 수첩에 기록하고, 무언가를 알아야 할 때마다 그것을 펼쳐본다.

     

오토가 과거 일터의 동료를 떠올려야 한다고 해보자. 그는 그 동료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대신 수첩을 확인한다. 클라크와 차머스의 주장은 ‘수첩이 기억에 도움이 된다.’라는 것이 아니다. 수첩의 정보가 오토의 사고와 행동에 안정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인지 과정 바깥에 놓인 우연한 도구가 아니라 그 과정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 즉 인지 과정이 두개골 안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마음은 더 넓게 퍼져있다. 사물은 물론이거니와 신체에까지.


*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자신의 신체를 수첩으로 사용한다.

     

게임의 일지는 클라크 및 차머스가 말하는 확장된 마음에 부합하는 유력한 사례다. 플레이어는 NPC가 한 말을 모두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할 필요도 없다. 필요할 때 로그를 펼치면 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대화를 대체하는 그 기록을 대체로 의심하지 않으며, 그 신뢰를 바탕으로 탐험하고,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수집한다. 몇 달 동안 게임을 하지 않았더라도, 일지라는 확장된 기억, 확장된 마음을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의 행위를 다시 조직한다.

     

하지만 오토의 수첩과 게임의 일지 사이에는 작아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클라크와 차머스가 확장된 마음을 논할 때 명시적으로는 다루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저자성이다. 오토의 수첩의 저자는 오토 자신이다. 반면, 게임의 일지는 다르다.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기억시키기로 한 것이 적혀 있다. 물론 일지의 내용이 플레이어의 행위를 완전히 배신할 수는 없다. 게임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했던 행위에 부합하는 내용을 일지에 기재한다. 내가 직접 적지 않아도, 내 행위에 부합하는 내용을 게임 시스템이 대신 적어준다면, 저자성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록을 넘어서는 일지의 기억

     

그럼에도 저자성은 유의미한 차이를 형성한다. 저자성의 문제는, 일지가 ‘사실을 기록’하여 플레이어의 기억을 대신하는 것을 넘어 플레이어의 마음이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지까지 규정한다는 데서 발생한다.

     

‘북쪽 숲으로 가라.’

‘탈주한 노예를 되찾아 올 것.’

‘고블린으로부터 마을을 방어하라.’

‘라파엘의 오랜 적을 상대해야 한다.’

     

게임의 일지는 선을 넘는다. 이래라저래라 명령한다. 일지의 기억은 그저 과거의 사실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들은 대개 전망 기억(prospective memory)이다. 즉, 미래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도를 기억하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반년 만에 돌아온 플레이어가 행위를 이어가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일지의 핵심은 사건을 기록하는 것 이상이다. 벌어진 사건을 넘어 의도와 전망까지 건드린다.


* <발더스 게이트>의 일지는 플레이어의 감정, 판단 등을 대신 기술한다.

     

게임의 일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느끼지도 않은 감정을 대신 기술하거나, 하지도 않은 판단을 대신 내리기도 한다.

     

“내 목숨을 노린 시도야 우스웠지만, 이보다 더한 위협이 뒤따를 것 같아 두렵다.”

     

1998년에 출시된 <발더스 게이트>의 일지는 플레이어를 대신해 위와 같이 말한다. 내 목숨을 노린 시도는 ‘우습게’ 여겨졌으며, 반면 이보다 더한 위협은 ‘두려움’을 일으켰다. 일지가 대신 써준 정서는 게임의 서사에 지극히 부합한다.

     

그럴 수 있다. 일지가 기술한 대로 느낀 플레이어도 전 세계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다만 나의 경우엔 아니었다. <발더스 게이트>를 수십 회 플레이한 당사자로서, 단 한 번도 그런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다. 새벽에 몰래 게임을 하다 징치(懲治)를 당할까 봐 두려웠다면 모를까.

     

저자성의 차원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이 이곳이다. 당연히 오토는 할 일에 관한 전망 기억을 수첩에 적을 수 있다. 일주일 뒤에 할 일, 특정 인물을 만났을 때 할 말 등, 미래를 향한 의도와 전망은 명령의 형식으로 수첩에 기재된다. 감정과 판단도 충분히 가능하다. 행복했던 기억과 그때의 감정을 잊지 않고 그것이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오토는 자신의 감정을 수첩에 적을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수첩에 담긴 명령, 감정, 판단의 ‘열람자’는 ‘저자’와 일치한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여전히 ‘의식 내용으로서의 사실’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그것은 자기지배의 일환이다.

     

그에 비하여 일지의 저자는 플레이어가 아니다. 게임 시스템이 플레이어의 행위에 부합하는 내용을 대신 기록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의식에 없던 내용을 기술해 나갈 때, 그때 비로소 오토의 수첩과의 차이가 발생한다. 자기지배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하는 기록, 보충하는 기록

     

나의 감정, 판단, 의도에 대한 기록이 자기지배의 일환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원본적 의식에 없던 것을 개발자가 텍스트를 통해 보충한 결과인 상황, 그것이 바로 게임의 일지다. 그 지점에서 나타나는 것은 ‘대리보충(supplément)’이자 타의에 의한 통치다. 왜냐하면 그 순간 게임의 일지는 그저 외장 저장장치이기를 그만두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의 의도, 감정, 판단을 특정한 방향으로 인도하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지는 플레이어의 마음을 확장할 뿐 아니라, 그 마음을 통치한다.

     

물론 플레이어의 행위 역시 일지를 통치한다. 플레이어의 행위에 따라 서로 다른 텍스트가 일지에 기록된다. 일견하기에 기준은 플레이어의 행위처럼 보인다. 순수한 반영론자들은, 일지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의 기억을 대신하는 보조물일 뿐이고, 완전한 기억을 지닌 플레이어에게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을 무엇이며, 살아 있는 의식의 초라한 사본이자 미메시스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진짜배기는 언제나 플레이어의 생생한 의식이고, 일지는 그 의식이 부재할 때 빈자리를 잠시 메우는 외적 도구에 불과하다. 원본이 있고, 그것의 열화판이 있다. 살아 있는 말이 있고, 그것을 뒤늦게 받아 적은 기록이 있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문제 삼은 것이 바로 이 일방적, 위계적 관계다. 서구 형이상학은 오랫동안 문자를 말의 부차적 기호로, 살아 있는 현전(現前)에 덧붙은 파생물이자 위험한 잉여로 다루어 왔다. 말은 정신에 가깝고, 문자는 그 말을 베낀 사본이라는 것이다. 데리다는 이 구도를 ‘대리보충’이라는 한 단어의 이중성으로 무너뜨린다. 대리보충은 더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대신하는 것이다. 대리보충은 한편으로 이미 충만한 것에 덧붙는 잉여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원본의 선행하는 결핍을 대신 메우는 대체물이다. 이 두 기능은 분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실이 폭로하는 것은, 대리보충이 채우는 그 원본이 처음부터 완전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핍은 나중에 벌어진 사고가 아니라 애초의 조건이었다.

     

게임의 일지가 정확히 그러하다. 반년 만에 폐허에서 눈을 떴을 때, 일지의 기록이 수행하는 것은 반년 전의 내 의식에 대한 정확한 재현이 아니다. “라파엘의 오랜 적을 상대해야 한다.”라는 기록은 나의 굳은 의지를 받아 적은 것이 아니다. 그런 굳건한 마음 같은 것은 없었다. 그것은 일지가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복종한다. 내 캐릭터의 목숨을 노린 시도에 대한 조소와 불안 같은 것은 없었다. 그것은 일지가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선에 따라 이후의 서사를 대한다. 일지는 플레이어의 의식의 열화판이 아니라, 애초에 플레이어의 의식이라는 원본에 비어 있던 자리를 채워주는 대리보충이자, 플레이어에 대한 통치다.

  

* <발더스 게이트 3> 서사의 핵심인 일리시드(illithid) 종족은 정신 조종을 통해 다른 존재의 의식에 명령, 감정, 판단을 주입할 수 있다.

     

대리보충은 보조물로 시작하지만 끝내 원본의 지위를 찬탈하고 지배적 위치에 선다. 섬겨야 할 주인이 처음부터 없었으므로, 대리보충은 아무도 섬기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주인이 된다. 물론 또 다시 후속하는 대리보충에 의해 제위를 선양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오토의 수첩이 타율적 통치로 전화하지 않는 것은, 열람자와 저자가 모두 오토 자신이어서 결핍의 자리에 여전히 자기지배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 시스템에 저자의 자리를 넘겨준 일지는, 마음을 확장하는 동시에 확장된 그 마음을 통치한다. 확장과 통치는 대리보충이라는 하나의 운동이 지닌 두 얼굴이다.

     

‘내가 왜 폐허에 와 있었지?’

     

반년 전의 내 의식에 현현했던 판단, 의도, 감정이 누락된 자리. 그 자리에 일지가 들어선다. 나는 J키를 누르고, 일지가 말하는 대로 영묘로 향한다. 내가 그리로 가는 것은 그리로 가려던 기억이나 의도가 내게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일지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다. 폐허에서 깨어난 플레이어는 도구를 손에 쥔 주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읽는 텍스트에 의해 비로소 세워지는 자다. 그에게는 일지 바깥이 없다.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에게 기록이 전부였던 것처럼.

Tags:

퀘스트 로그, 발더스 게이트 3, 확장된 마음, 대리보충, 자크 데리다, RPG, 게임과 철학, Baldur's Gate 3, Extended Mind Theory, Quest Log, Jacques Der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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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연구자)

철학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게임애호가 및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의, 강연, 연구, 저술, 번역 활동에 임해왔으며, 현재는 인하대 등에서 학생들과 사유를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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