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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80개 검색됨

  • 우크라이나 사태의 de jure와 de facto

    러시아 안에서 차르가 된 푸틴은 그렇게 러시아 바깥까지 제패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디 그런 장면은 역사 다큐멘터리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만 보면 좋겠다. 현실에서는 진짜로 사람이 죽고 다치기 때문이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발리언트 하츠>, 전쟁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작품이 1차 세계대전이라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전쟁의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던졌을 질문들처럼, 게임은 여전히 전쟁이라는 경험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는 매체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1차세계대전, 어드벤처, 반전운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aein Park A gamer who searches games for inspiration in life. Keenly interested in analyzing the ways games convey their intentions and concepts.

  • [축사] 창간을 축하합니다

    이렇듯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서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게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계속 공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이번에 창간하는 ‘게임 제너레이션’이 게임의 역사, 게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게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등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담론의 장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정부와 게임업계, 이용자들이 소통하는 대표 창구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 Back [축사] 창간을 축하합니다 01 GG Vol. 21. 6. 10. 안녕하십니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희입니다. 게임문화 웹진 ‘게임 제너레이션’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이번 창간을 위해 애쓰신 관계자분들과 함께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게임은 전 세대를 아우르며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문화입니다. 특히 종합 예술로서 이야기와 캐릭터 디자인, 음악, 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 작업이 필요하고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우리 이스포츠 선수들의 뛰어난 실력과 관객들의 열정을 바탕으로 이스포츠 최강국으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서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게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계속 공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이번에 창간하는 ‘게임 제너레이션’이 게임의 역사, 게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게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등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담론의 장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정부와 게임업계, 이용자들이 소통하는 대표 창구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한국 게임산업의 발전과 한·중·일 이스포츠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나아가 대한민국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게임 제너레이션’의 무궁한 발전과 함께 한국 게임문화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황희

  • [인터뷰] 게임 전시가 줄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의 균열 : <게임 사회> 기획자 홍이지 학예연구사 인터뷰

    게임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2년 10월에 방영했던 EBS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을 기억할 것이다. 해당 다큐멘터리 3부에서는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이라는 제목으로,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담론들을 다루었다. 비단, <게임에 진심인 편>뿐만 아니라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어디로 둘 것인지에 관한 질문들은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경로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질문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쌓여왔던 담론의 두께만큼 다양한 관점이 혼재해있기 때문이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인터뷰,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북리뷰] 스테이지를 전환하자는 제안, 〈모럴컴뱃〉

    따라서 필요한 것은 ‘컨트롤러를 집어들고 게임을 계속 즐기면서’(246쪽) 게임에 대해 계속 대화하는 것이다. 〈모럴컴뱃〉은 게임에 대한 대화를 하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310개에 달하는 각주는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연구와 부정적인 연구를 포함하면서 게임에 관한 주요한 사건에 관한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다. 게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든 이 책의 자료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호기심이 찾는 여정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 Back [북리뷰] 스테이지를 전환하자는 제안, 〈모럴컴뱃〉 02 GG Vol. 21. 8. 10. 2018년 3월, 미국 백악관은 유튜브 공식 계정에 “Violence in Video Games”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시했다. 게임의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을 모은 1분 28초 길이의 이 영상은 게시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반발은 크게 두 가지 맥락에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게임의 폭력성을 강조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으로만 영상을 구성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용이 그러하다 보니 성인만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영상을 연령 제한을 두지 않고 전체 공개로 등록한 것이다(후자는 문제가 제기된 후 링크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고 성인만 재생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비영리단체인 Games for Change는 “#GameOn - 88 Seconds of Video Games”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 공식 계정에 게시했다. 게임의 아름답고 장대한 장면을 백악관 영상의 길이만큼 보여준 이 영상은 게임에는 다채로운 장면이 있다는 응답과 더불어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게임제작자와 게이머에게 품위 있는 격려를 보냈다고 평가받으며 큰 호응을 얻었다. 얼핏 보면 게임의 폭력성을 주제로 논박이 벌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 후로 별다른 논의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게임의 유해성을 주제로 한 논쟁은 ‘늘 있으면서 때로 두드러지는’ 것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백악관이 게임의 폭력성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연이어 발생한 학교 내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해 느슨한 총기 규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었다.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백악관은 총기 사고의 원인을 느슨한 총기 규제 대신 ‘폭력적인 게임’으로 돌리기 위해 이 영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Games for Change의 영상에 굳이 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게임의 폭력성 논쟁의 핵심, ‘도덕적 공황’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오래된 오해를 심층적으로 탐색한 〈모럴컴뱃〉이 만일 이 사건보다 늦게 발간되었다면 저자들은 분명 이에 관한 내용을 책에 포함했을 것이다. 이 책에 담은 저자들의 논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을 강조해 폭력적인 게임이 현실에서 폭력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암시하는 영상과 그 편향적인 메시지를 백악관이 특정한 의도를 위해 강조하는 과정이 저자들이 제시한 개념인 ‘도덕적 공황(Moral Panic)’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이나 활동에 대한 공포가 그것이 실질적으로 사회에 가하는 위협에 비해 과도해지는 현상(41쪽)”인 ‘도덕적 공황’은 새로운 트렌드에 공포를 느끼는 사회의 유력인사, 그러한 공포가 유해하다고 강조하는 미디어와 정치가, 공포의 유해성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작성한 연구자가 공포를 반복 재생산하는 구조를 만든다(53쪽). 이 개념을 통해 게임의 유해성에 대한 논쟁이 왜 끝이 보이지 않는지, 그리고 게임의 유해성에 관한 논쟁에서 제시되었던 논의의 조각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볼 수 있다. 게임에 관한 도덕적 공황의 핵심은 게임이 유해하다고 ‘믿는’ 것이다(저자들은 이에 대해 ‘착각상관’(Illusory Correlation)이나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과 같은 심리학 개념으로도 설명한다). 믿음은 토론으로 좌우되기 어렵다. 게임의 유해성에 대한 논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게임이 유해하다고 믿는 이들이 게임이 유해하다는 주장과 근거에만 눈과 귀를 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함께 믿는 사람이 줄어들어 약해질 때 비로소 바뀔 수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이 약해진다는 것은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이 줄어든다는 것이지, 게임이 유용하다는 믿음이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염려와 의심이라는 발단 그렇다면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은 어떻게 약해질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은 논쟁의 해소 가능성과 더불어 게임을 즐기고 누리는 문화의 확산과도 연관된다.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이 약해진 토대 위에서 게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묻고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믿음’을 다른 표현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은 게임에 대한 편견에서 촉발된다. 그 편견은 게임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염려와 의심에서 비롯될 수 있다. 염려와 의심은 대상에 대한 두려움과 반감으로 이어지지만, 대상을 충분히 이해할 때 해소된다. 그런 점에서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은 게임에 대한 염려와 의심이 도덕적 공황을 통해 주관적 확신으로 공고화된 결과이다. 믿음의 결과에만 집중하면 게임의 유해성에 대한 논쟁이 해소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염려와 의심이라는 발단에 집중한다면 다른 가능성을 기약할 수 있다. 이러한 염려와 의심이 믿음으로 공고화하는 과정에 미치는 요인에 대해 저자들은 3가지를 제시한다. 새로운 매체에 대한 공포, 세대 차이, 그리고 정치화된 연구이다. 먼저 새로운 매체에 대한 공포는 새로운 매체가 겪는 일종의 통과의례에 가깝다. 만화도 그랬고 TV도 그랬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만화와 TV에 대한 두려움 역시 유해성을 중심으로 문제가 제기되었다(그리고 게임과 마찬가지로 제기된 문제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한 두려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잦아든다. 미디어를 두고 벌어지는 도덕적 공황은 시간이 해결해주듯(89쪽), 만화와 TV에 이어 게임도 ‘그다음 차례’(250쪽)가 되어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을 두고 살펴볼 만한 의문 세대 차이는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응과 연관된다. 저자들은 이를 ‘골디락스 효과’(the Goldilocks Effect)라 부른다. 골디락스 효과는 각 세대가 자신들이 주로 활용하는 미디어가 적당하여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앞선 세대는 고루하기 짝이 없고 다음 세대는 통제 불능이라고 생각한다는 태도로 모든 세대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60쪽). 이는 게임의 유해성을 주로 제기하는 기성세대가 게임에 대한 이해가 낮은 이유와도 연결된다. 게임을 잘 이용하지 않으니 게임을 잘 이용하는 사람만큼 모르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게임에 대해 염려와 의심을 제기하는 건 일견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앞서 새로운 매체에 대한 공포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게임 다음의 매체가 무엇이 될지 모른다. 게임과 연결될 수도 있고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만일 게임과 다른 매체가 등장하고 새로운 세대가 그것을 즐긴다면, 현재 게임을 잘 아는 세대 역시 그에 대해 염려와 의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그래도 게임은 지금의 만화와 TV처럼 나름의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게임에 대한 염려와 의심은 ‘살펴볼 만한 의문’(220쪽)이다. 그런데 이러한 염려와 의심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반박만을 해온 것은 아닌지, 대화 대신 대결을 선택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게임의 유해성에 대한 질문이 유해성 여부만을 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에 대해 유해성을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또 그러한 질문은 어떤 배경과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살피면서 게임의 유해성을 파악한다면, 염려와 의심을 해소하고 게임에 대한 이해 위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시도되었던 ‘게임제목묻기운동’은 가치 있는 시도로 주목할 만하다. 게임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주장에 대해 ‘어떤 게임이 그러한지’, ‘어떤 유해성이 있는지’ 묻자고 제안하는 이 운동은 반박에 반박으로 맞서는 대립을 거듭하는 게임의 유해성 논쟁에서 새로운 물꼬를 트고자 하는 시도였다. 게임의 유해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단체가 이 물음에 응답하지는 않았으나, 이 물음에 어떠한 답이 돌아온다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럴컴뱃, 누구 대 누구의? 저자들이 도덕적 공황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제시한 ‘정치화된 연구’(55쪽)는 게임의 유해성에 대한 염려와 의심이 그러하다고 믿는 근거로 작용한다. 결과를 과도하게 일반화하거나 잘못 추론한 연구(71쪽)는 폭력적인 게임이 실제로 현실에서 폭력을 일으키게 만든다는 염려와 의심이 맞는다고 생각하게 했다. 연구 결과는 사회 유력인사, 미디어와 정치인 등을 통해 확대되고 그 결과 연구자는 명성과 연구 재원을 확보한다. 그런데 특정한 목적을 위해 편향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연구 윤리에 어긋난다. 미국 연구윤리국은 연구 윤리의 출발점으로 정직성, 정확성, 효율성, 객관성을 꼽는데, 근거가 충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적 게임과 현실의 폭력적인 행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결론 맺는 연구들은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부당한 편견을 피하는 객관성을 특히 어긴 것이다. 게임이 유해할지도 모른다는 ‘살펴볼 만한 의문’을 두고 도덕적 공황의 구조 위에서 사회 유력인사, 정치가, 미디어, 연구자 누구도 살펴보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 중 누구에게 이 가장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할 의무가 있었을까? 저자들은 기존에 이루어진 연구들이 어떠한 점에서 객관적으로 충분하지 않은지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했지만 이 책의 제목을 통해 어쩌면 이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을지 모른다(역자도 밝혔듯(251쪽) 이 정도를 밝힌 것만으로도 굉장한 용기로 봐야 할 것이다). 저자들은 ‘폭력적 게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처음 이루어졌던 시기와 비교해 최근 게임이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리라 생각하는 학자와 의사의 비율이 낮다는 것을 제시한다(243쪽). 그런 점에서 책의 제목인 ‘모럴컴뱃’의 여러 중의적인 의미 중에서도 저자들은 책에서 ‘반-비디오게임 제국’과 ‘반란군 연합’으로 비유한 것처럼(83쪽) 게임의 유해성을 연구하는 시니어 연구자와 주니어 연구자 간의 전쟁이라는 의미에 무게를 두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쟁이 게임에 대한 낮은 이해와 편견(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연구자에게도 게임에 대한 염려와 의심이 있었을 것이다)에서만 촉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이 약해지는 것이 게임이 유용하다는 믿음이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시했다. 이를 적용하면, 젊은 연구자들이 과거와 비교해 게임이 유해하다고 덜 생각한다고 해서 게임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게임에 대한 연구가 확인한 것은 ‘비디오게임 플레이에 효능만 있는 것도, 유해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정도’(222쪽)이기 때문이다. 감정과 신체적 측면에서 게임이 유용한 효과를 제공한다는 결과가 확인된 사례가 있긴 하다. 그런데 현재는 이를 일반화하기보다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수행된 폭력적 매체 효과에 대한 연구를 통해 게임의 폭력성이 지닌 위험을 믿는 연구자가 줄어든 것처럼(243쪽) 게임의 가능성에 대해 계속해서 연구해나가는 것이 필요한 단계인 것이다. 연구 윤리를 준수하면서! 필요한 질문들 윤리는 연구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 유력인사와 미디어 그리고 정치가에게도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윤리가 있다. ‘폭력적 게임’을 둘러싼 도덕적 공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게임의 유해성 대신 다른 질문들이 제기되었을 것이다. 그 질문들은 게임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게임 리터러시’라는 용어로 최근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 게임보다 앞선 미디어를 통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확인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이를 뒤늦게 적용하게 된 셈이다. 만일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을 좀 더 일찍 다루고 있었더라면 게임이 인간의 공격성을 부추긴다는 것을 확인하겠다고 많은 사람이 한창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PC방의 전원을 내리는 실험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이 폭력적인 내용이 공격성의 증가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강제로 중단되면서 느끼는 짜증’(204쪽)일 뿐임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질문이 필요할까. 저자들은 게임의 유해성을 다룬 연구의 불충분한 근거를 지적하는 것 못지않게 현실에서 폭력적 행위가 발생하기 어려운, 하여 더더욱 게임과 연관 짓기 어려운 사회적 조건들을 제시한다. 이러한 접근은 그동안 게임의 유해성에 대한 논쟁에서 정작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를 주목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게임을 통해 폭력적인 상황을 경험한 게이머가 현실에서 게임과 똑같은 폭력을 재현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믿음’은 얼마나 인간을 불신하는 것인가! 따라서 게임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은 게임을 이용하는 인간을 중심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인간은 게임을 통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인간이 게임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어떠한 것인지, 그러한 즐거움은 게임 이전의 미디어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이러한 질문은 이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 속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과 그 믿음이 사라진 데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다르다. 질문의 목적지가 살펴볼 만한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대한 이해와 호기심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논쟁을 넘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임의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제안에 가깝다. 게임의 폭력성이 ‘존재한다-그렇지 않다’를 벗어나면 할 수 있는 질문은 너무나 많다. 먼저 게임의 상호작용성을 꼽을 수 있다. 게임 이전의 매체와 게임을 구분하는 중요한 차이인 상호작용성은 게임의 정체성과도 연관된다. 게이머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특징을 게임에 대한 이해가 낮은 세대는 특히 궁금해할 것이다. 게임이 아닌 다른 매체에도 상호작용성이 적용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게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게임에 대해 정말 살펴야 할 의문들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있다. 저자들도 제시했듯 게임에서의 경험은 게임 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게임에서 형성되는 이용자 간의 관계는 게임 밖의 경험으로도 이어진다. 이는 게이머가 게임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 더는 현실과 단절된 것이 아님을 뜻한다.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논쟁이 게임이 제공하는 ‘안전하게 과장된’(35쪽) 경험을 단단히 잘못 이해한 것에 불과한 것을 확인했다면, 차별과 혐오와 같은 현실의 문제가 게임에서도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새로운 과제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컨트롤러를 집어들고 게임을 계속 즐기면서’(246쪽) 게임에 대해 계속 대화하는 것이다. 〈모럴컴뱃〉은 게임에 대한 대화를 하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310개에 달하는 각주는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연구와 부정적인 연구를 포함하면서 게임에 관한 주요한 사건에 관한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다. 게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든 이 책의 자료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호기심이 찾는 여정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 [인터뷰] AI로 새로운 게임성을 만든다는 것: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의 이가빈 PD,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의 한규선 PD

    크래프톤의 스튜디오 중 하나인 렐루게임즈는 딥러닝 기술을 게임과 접목시켜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여러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음성 역할 시뮬레이터와 프리폼 채팅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게임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평단과 게임사의 관점뿐 아니라, 유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즈큥도큥>)의 이가빈 PD와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하<스모킹건>)의 한규선 PD를 만나, AI 기술의 가능성과 현시점에서의 한계를 짚어보고, 새로운 게임성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 Back [인터뷰] AI로 새로운 게임성을 만든다는 것: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의 이가빈 PD,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의 한규선 PD 19 GG Vol. 24. 8. 10. 바야흐로 AI의 시대이다. 미래 기술로 인식되던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고, 그중에서도 게임은 기술적 도입의 가능성을 넓힐 수 있는 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게임을 만드는 공정에서 AI 기술이 활용된다고 'AI 게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순 없을 것이다. AI 기술을 이용해서 게임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이 다양해지고 그로 인해서 새로운 게임성이 만들어질 때, 'AI 게임'의 시대가 열린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만들고자 하는 게임 기획자들이 있다. 특히, 크래프톤의 스튜디오 중 하나인 렐루게임즈는 딥러닝 기술을 게임과 접목시켜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여러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음성 역할 시뮬레이터와 프리폼 채팅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게임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평단과 게임사의 관점뿐 아니라, 유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즈큥도큥>)의 이가빈 PD와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하<스모킹건>)의 한규선 PD를 만나, AI 기술의 가능성과 현시점에서의 한계를 짚어보고, 새로운 게임성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경혁 편집장: 최근 게임씬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렐루게임즈의 PD님들을 모셨는데요.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와 맡으신 게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가빈 PD: 안녕하세요. 저는 이가빈이라고 하고요. 게임 디자이너 출신으로, 지금은 '마법 소녀 그 긴 거' 담당 PD를 맡고 있습니다. 저희는 음성 인식을 통해서 유저들의 목소리를 게임의 데미지로 바꾸어 공방을 주고받는 형태의 게임을 만들었고요. 딥러닝을 본격적으로 사용해서 (게임 내) 판정이나 자연어 인풋, 에셋에도 딥러닝이 들어가게끔 만들었습니다. 한규선 PD: 저는 한규선이고요.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라는 게임 PD입니다. 저희 게임은 근미래의 탐정이 돼서 로봇 용의자들과 대화를 하는 게임이거든요. 그래서 사건 현장에 가서 증거들을 수집하고 그 증거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용의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때, GPT가 사용되어서 게이머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고, 무슨 말이든 로봇 용의자가 받아치면서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저희 게임의 가장 큰 특장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두 게임을 다 굉장히 재미있게 즐겼는데요. 플레이하면서 레퍼런스에 대한 생각이 들었어요. 먼저, <즈큥도큥> 같은 경우에는 옛날 플래시 게임 중에 <장미와 동백>이라는 게임이 떠올랐는데요. 혹시 이 게임을 아시나요? 이가빈 PD: 실제로 많이 참고했어요. 특히 그 게임의 대화나 컨셉에서 화족(근대 일본의 귀족 계급)이 나오잖아요? 화족이라고 하면 고고한 컨셉인데, 실제로 인물들은 상욕을 하고 뺨을 때리거든요. 그렇게 반전을 넣은 것을 보면서 컨셉에 반전을 주는 지점이라거나 B급 감성 같은 것들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참고를 많이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실제로 참고를 하셨군요. 저는 <즈큥도큥>를 보면서 그 게임 생각이 많이 났거든요. 익숙한 컨셉이지만 이걸 더 직관적으로 살려낸 느낌이 들었어요. 한편으로, <스모킹 건>을 보면서는 게임이 아니라, <크라임씬> 생각이 많이 났거든요. 플레이하는 입장에서 보면 <크라임씬>을 유저가 직접 하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사건의 전말' 같은 것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한규선 PD: 오! 맞아요. 저도 <크라임씬> 팬이었고, <대탈출>이나 그런 프로그램들을 다 좋아하거든요. 실제로 처음 기획할 때에는 사실 인간 용의자를 상정하고, <크라임씬> 같은 컨셉을 아예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GPT나 AI 기술이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아서, 인공지능이 말을 잘 못했거든요. 그래서 용의자를 로봇으로 설정한 게 그런 한계를 어느 정도 커버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스토리를 풀어나가거나 게임의 컨셉을 지키는 입장에서 더 잘 표현되는 지점들이 생겼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도 처음에는 '왜 굳이 로봇 이야기일까?'라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유저에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더라구요. <장미와 동백> 이경혁 편집장: 지금 두 게임 다 렐루게임즈 소속이고, 다른 인터뷰에서도 말씀하셨던 것처럼 AI 기술을 중요하게 다루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더 사람들의 관심도 받고,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먼저, GPT를 쓰기 때문에 아무래도 비용이 많이 나갈 것 같은데, 매출과 비교했을 때 효용이 있나요? 이가빈 PD: 사실 얼마를 벌어도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죠. (웃음) 서비스를 할 수록 비용이 나가거든요. 한규선 PD: 추리 게임 장르 같은 경우에는 장르적 특성도 있는 것 같고요. 만약에 다시 하라고 그러면 조금 더 대중적인 장르를 할 것 같아요. 사건의 전말이 공개됐을 때, 플레이어들은 다시 플레이할 만한 필요성을 많이 못 느끼거든요. 그래서 더 넓은 시장으로 가는 걸 목표로 하고 있고, 그렇게 되면 조금 더 유의미한 매출이 발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매출과 관련된 질문을 드린 이유는, 오늘날 AI에 관련된 담론 때문인데요. 일각에서는 스토리텔링 기반의 게임에서 콘텐츠를 만들 때 AI가 적용되면 리소스적인 효율성이 나올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게임을 만드시는 입장에서 스토리를 AI가 만든다고 하면, 조금 더 경제적인 효율성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한규선 PD: 스토리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저희 같은 경우에는 오리지널 스토리를 다 쓰고 있거든요. 이야기나 대사 같은 것들을 제작팀이 다 쓰고 있고, GPT나 AI에 맡기는 부분은 일부 리소스 정도이지,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려면 아직은 AI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제작팀마다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가빈 PD: 저희도 비슷해요. GPT나 LLM 같은 경우엔 인간 상식의 평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만약, 스토리를 라이트하게 쓰고자 한다면 쓸 수는 있는데, 극단으로 가는 자극적인 스토리나 상상력이 많이 필요한 부분, 혹은 강한 조미료를 뿌려야 하는 부분은 맡기기 힘든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규선 PD: AI는 절대로 아스파탐을 못 떠올릴 거예요. 아마. (일동 웃음) 이경혁 편집장: 그렇군요. 오늘날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AI는 모든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역으로 그려지곤 하지만, 실제로 작업하시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만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여쭤보았습니다. 한규선 PD: 그래도 보조도구로는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이가빈 PD: 맞아요. 도구로써는 정말 좋은 역할을 해줘요. 저희도 주문 같은 걸 만들어야 한다거나, 스토리에서 메꿔야 할 빈 공간이 있을 땐 AI에 물어보고 참고도 합니다. 일단, 어딘가에 물어볼 곳이 있다는 사실은 무조건 좋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좋아요. 이상한 답변을 주더라도 내가 물어볼 곳이 있고 진지하게 같이 고민을 해준다는 건 좋은 거죠. 이경혁 편집장: 약간 그런 느낌일까요? 옛날 수도승들이 벽하고 대화하는 느낌? 한규선 PD: 제가 느끼기에는 어떤 질문의 정수까지는 닿지 못하는데, 아는 것은 많은 친구 느낌이에요. 질문을 하면 아는 것이 많아서 뭐든 대답은 하는데, 정수에는 미치질 못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데 사실 AI가 제작 도구로써도 활용되지만, 다른 방식으로도 게임씬에 들어오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요. 가령, <스모킹 건> 같은 경우에는 AI가 배우의 역할도 하지 않나요? 게임을 만드실 때, 거기 나오는 안드로이드에게 일종의 액팅 지도를 해야 하지 않나요? 한규선 PD: 실제로 액팅 지도가 들어가 있어요. 등장하는 캐릭터가 한 18개 정도 되는데, 그 캐릭터성을 다 다르게 표현하려 했거든요. 정보를 가지고 있는 형태는 유사할 수 있어도, 그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는 각자 다 다르게 하고자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캐릭터마다 다 세팅을 하시는군요. 중간에 오타쿠 의사 로봇이 나올 때, 저는 연기 지도가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기존의 게임 디렉터와 다르게, 약간 영화 감독 같은 작업이 되었겠는데요? 이런 작업은 기존의 게임 개발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장면들이잖아요. 한규선 PD: AI를 활용한 작업은 저희에게 익숙합니다. 저희는 2019년부터 이런 작업을 4년째 했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4년간 작업을 하시면서 AI를 활용한 작품 중에서 괜찮은 레퍼런스가 되었을 게임이 있었나요? 이가빈 PD: 내부에서 만든 게임이 주로 떠오르긴 하는데요. 사실 저희 <즈큥도큥>의 전신이 되는 게임 중에 <워케스트라>라는 게임이 있었어요. 이 게임은 음성으로 군대를 움직여서 전략 전투를 하는 게임이었는데요. 개발 테스트에서 음성으로 누굴 공격하라거나 어떤 스킬을 쓰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저는 주체적으로 말을 못 고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옵션을 제공하고 어떤 말을 해야할지 제공해야겠다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해서 만든 것이 <즈큥도큥>였어요. 한규선 PD: 저희도 이전에 프로토타이핑했던 <데몬>이라는 게임이 있었는데요. GPT가 악령이에요. 이 악령의 이름을 말하면 이기는 게임이거든요. 그래서 얘한테 정보를 숨겨놓고, 그걸 찾아서 성불시키는 게임이었는데, 뭐 개발 과정에서 처참하게 망했죠. (웃음) 이경혁 편집장: 저는 되게 재밌어 했을 것 같은데요? 한규선 PD: 저도 지금 만들면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당시에 가빈 PD님이 테스트를 엄청 깊게 해주셨거든요. 그 과정에서 게임에 정보를 숨기는 것이 어렵구나 하는 점을 배우고, 그다음에 추리 게임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스모킹 건>에서도 그런 장면을 봤었던 것 같아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기사에 실을 수는 없겠지만. 한규선 PD: 와! 맞아요. 그거를 이런 식으로 알아차리실 줄은 몰랐는데... 저만 알고 있는 건데... 맞아요. 이경혁 편집장: 기사를 읽으시는 분들도 전신이 되는 게임의 컨셉이나 노하우가 어디에 담겨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으실 수 있겠네요. 이경혁 편집장: <즈큥도큥>에 대해서도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렐루게임즈에서 여러 인터뷰가 있었지만, <즈큥도큥> PD님은 인터뷰에 거의 나오신 적이 없잖아요? 이가빈 PD: 네. 이번이 첫 인터뷰예요. 이경혁 편집장: 아시겠지만, 지금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다니󰡓, 왜 이런 걸 만들어서, 만든 사람 주소 알아야 된다 뭐 이런 글들이 나오고 있어요. (웃음) 그러면서 우스갯소리지만, 커뮤니티에서는 '이걸 만든 사람은 지금까지 대체 어떤 게임을 했기에 이런 걸 만들 수 있냐'는 궁금증도 올라오거든요. 그런데 저도 그건 궁금하더라구요. 한규선 PD: 저도 궁금하네요. (웃음) 이가빈 PD: 개발자는 어떤 게임을 해놨냐는 질문에 두 가지 분류의 답이 있을 수 있잖아요? 먼저 만들어 온 게임으로 치면, 저는 <테라>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테라> 콘솔로 넘어갔다가, 지금은 없어진 프로젝트인데 소울라이크 게임에서 전투를 담당하는 디자이너였어요. 그리고는 라는 AI 활용 퍼즐 게임에서 처음 AI를 만났죠. 그전까지는 던전 만들고, 전투 만들고, 칼과 방패를 들고 몬스터들과 싸우는 게임들의 콘텐츠 디자이너였어요. 플레이한 게임도 사실은 그것들과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은데요. 소울라이크도 했었고, 시뮬레이션을 되게 좋아했었어요. 갓오브워나, 시티 빌더 류도 포함해서 경영 쪽이나 아니면 <용과 같이>도 재밌게 했었어요. 한규선 PD: 내면에 흑염룡이 있으셨군요. (웃음) 이가빈 PD: 그렇게 싱글 플레이를 위주로 했었고요. 딱히 그 안에서 '그런' 게임은 없었다. (일동 웃음) 상상하신 것처럼 집에 가서 뺨 때리고 그러지 않았어요. 저도 여러분과 같은 게임을 하면서 모두가 다 밟는 코스를 밟아왔어요.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웃음) 이경혁 편집장: 한편으로, 게임 제목에 대해서도 많은 추측과 이야기들이 있는데요. 어떤 의도로 게임 제목을 정하셨나요? 이가빈 PD: 그게, 원래는 가명이었어요. 어떤 게임을 만들지 소개하는 게임 기획 단계에서 원래는 '최대한 읽기 수치스러운 이름으로 정해야지' 하면서, 제가 생각했을 때 읽기 부끄러운 단어들을 이렇게 다 띄워놓은 건데, 출시할 때가 되니까 이름을 지을 시간이 없어서 (웃음) 바빠 죽겠는데 이름까지 처음부터 다시 정하려면 힘드니까. (그냥 냈어요) 한규선 PD: 최고의 선택이었다. (일동 웃음) 이경혁 편집장: 수치스러운 이름이라고 하셨는데, 게임 내용에서도 저는 참 이게 어렵더라고요. 방에 아무도 없어도 피드백을 주잖아요. 처음에는 뭣 모르고 시작했다가, 제 목소리라는 걸 깨닫고 그때의 수치감은... (웃음) 한규선 PD: 저도 디자이너지만, 디자이너로서 봤을 때 되게 혹독한 게임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보통은 그냥 자기 목소리 녹음을 해서 들어도 굉장히 어색한데 거기에 이펙트도 먹이고, 에코도 넣어서. 이가빈 PD: 원래 시작은 감정 모델로 음성을 보내서 데미지를 계산하는 통신 시간을 채우기 위함이었어요. 음성 데이터가 갔다 오는 시간이 꽤 걸리거든요. 유저에게 그 딜레이를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까 어떤 시스템이든 만들어야 했는데, 저희는 거기에서 유저의 메인 경험 안에 수치심이라는 걸 넣고자 했어요. 그리고 이 시간을 활용해서 수치심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죠. 이경혁 편집장: 멀티플레이를 제공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요? 이가빈 PD: 그렇죠. 멀티플레이랑 PVE가 근본적으로 다른 건 뭐냐면, '진심으로 이기고 싶은 상대이냐? 아니냐?'. 그러니까 유저의 몰입도 측면에서 조금 더 내가 많은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냐? 없냐?를 결정짓는 부분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멀티를 딱 한 번 해보고 도저히 못 하겠어서 접었는데, 서로 모르는 사람이 길에서 만나서 바지를 누가 더 길게 내리는가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일동 웃음) 이가빈 PD: 그런데 그 시원함도 있죠. 일탈감? 해방감? 한규선 PD: 저희 팀 같은 경우에도 게임 출시하고 난 다음에 이제 쉴 수 있다고 했을 때, 다들 <즈큥도큥>를 한 번씩 키는 거예요. 그 해방감이 있죠. 이가빈 PD: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사실은 되게 별거 아니거든요. 이게 처음에 되게 창피하고 그렇지만, 사회적 체면을 내려놔야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점점 무뎌져 가는 부분들이 있어요. 저희는 그런 지점들을 고민하면서 게임을 만들었어요. 저희 팀원들의 경우에도 사실 매일 이걸 해야 하거든요. 처음에는 수치스럽다가, 지금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요. 한규선 PD: 다만, 저는 그게 무서울 때가 있어요. (일동 웃음) 처음에는 옆에서 게임을 하면 막 킥킥대면서 그랬는데, 지금은 심각하게 주문을 외우는데도 다들 일상화되어 있어요. 이가빈 PD: 그렇죠. 결국 수치심엔 내성이 생겨요. 몇 번 하고 나면 무뎌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게 또 리스크이지 않나요? 게임이 장기적으로 갈 수 있는지를 본다면 그 해방감과 상쾌함이 순식간에 끝나는 것도 문제잖아요. 이가빈 PD: 맞아요. 그러니까 계속 더 강한 수치심을 느끼게끔 개발하고 있어요. (일동 웃음) 그런데 저는 이 해방감이 짧아도 좋고, 언젠가 끝나도 좋으니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드리고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스모킹 건>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시나리오가 거의 SF 형태인데 크레딧에 나오는 작가분들이 원래 SF 작품 활동을 하시는 분들인가요? 한규선 PD: 아, 시나리오는 주로 제가 썼고요. 원래 SF를 생각하고 한 건 아니었어요. 처음에 로봇이 살인범 이려면은 두 가지 경우밖에 없더라고요. 하나는 스스로 자유 의지를 가지고 살인을 한 경우든지, 아니면 사람의 조종이 있어야 하든지 두 경우이죠. 그런데 시나리오를 확장하려다보니, 아이디어가 점점 커졌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제가 흥미롭다고 느꼈던 점은 로봇 3원칙을 안 썼다는 점이었거든요. 보통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 클리셰인데도, 그걸 안 쓰신 이유가 있을까요? 한규선 PD: 저도 처음에 검토를 했었는데, 로봇 3원칙 자체가 특정 작품에서 나온 이야기더라고요. 그래서 이 개념을 사용할지 고민을 하다가, 그냥 우리만의 방식으로 풀어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런 세계관을 구축하신 것도 대단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추리 게임을 좋아해서 더 관심이 가는데, 시즌제를 만드실 계획은 혹시 없으신가요? 한규선 PD: 시즌 2를 만들고는 싶어요. 시나리오도 어느 정도 생각해놓은 게 있거든요. 마지막 부분에 보면 회수하지 않은 떡밥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다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시즌 2를 언급해주셨는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AI를 활용한 게임이 종합적인 연출의 능력들도 필요하다 보니 다른 장르의 게임들에도 활용할 여지가 많을 것 같아요. 혹시 다른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하셨나요? 한규선 PD: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처음 써봤거든요. 그런데 종합적으로 연출하고 상상력을 표현하는 일들이 너무 재밌는 작업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NPC라는 영역을 발견했죠. 그래서 나중에는 이런 기술과 시나리오를 조금 더 대중적인 장르에 접목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예를 들어 RPG라든지, 시나리오가 탄탄하게 있는 게임에다가 이런 기술을 도입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발더스게이트> 같은 게임에 자유 대화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군요. 한규선 PD: 네. 맞습니다. 그런데 핵심은 그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대화를 통해서 거래를 한다든지 설득을 한다든지 이런 시스템이 메인인 어드벤처 게임도 만들어보고 싶고, 시즌 2를 만들어도 시즌 1에서 배웠던 노하우들을 확장시켜서 플러스 알파로 넣고 싶은 기술들이 많습니다. 특히, <스모킹 건>에서 말로 NPC를 제어하는 파트가 있거든요. 이후 작업에서는 이런 기능을 확대하면서 완전 새로운 게임성을 느끼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한편으로 <스모킹 건>의 시점이 1인칭이잖아요. 주인공 캐릭터를 아예 안 보여주는데, 1인칭으로 설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한규선 PD: 최근에 어떤 분이 리뷰 쓰신 내용에 공감이 갔는데, 플레이어가 직접 입력하는 게임 형식이기에 이 캐릭터를 규정하는 데 괴리감이 클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실제로 유저들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어떤 사람은 굉장히 강압적으로 게임을 진행하고, 어떤 사람은 친절한 탐정이 되거든요. 이렇게 사람마다 플레이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제가 캐릭터를 규정해버리면 느낌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캐릭터를 규정하지 않은 거고요. 그리고 게임 내의 인터랙션 요소가 제4의 벽이라고 그러잖아요. 현실까지 이어지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도 모두 플레이어가 탐정이 되는 경험을 주고 싶었던 점들과 연결돼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두 게임 다 AI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또 다른 공통점으로 플레이어마다 각기 다른 방식의 플레이를 보인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제작자의 입장에서 유저들의 데이터들을 보실 때, '이런 플레이는 생각도 못 했는데'라고 떠올린 적이 있으세요? 이가빈 PD: 저희 게임에선 똑같은 문장을 어떻게 연기하느냐에서 다른 플레이 모습들이 나오는데요. '향아치'라는 유튜버분께서 조선시대 양반들이,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창을 하듯이 말씀을 하시는데, 이렇게까지 다양한 컨셉을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한규선 PD: <스모킹 건>은 사건 해결을 위해 추리를 하는 내용들이 정해져 있지만, 그 외의 부분은 사실 다 열려 있어요. 예를 들어, 저녁 식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게끔 되어 있죠. 그런데 저희가 이 게임을 처음 디자인했을 때, 그런 자유의 영역이 재미의 요소가 될 순 있어도 이걸로 5시간을 플레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추리 자체의 완성도라든지 이야기의 깊이가 없으면 이 게임을 끝까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유저분들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니까 자유 대화하는 부분까지 충분히 즐기시더라구요. 특히, 게임에서 에코라는 친구가 말을 되게 잘하는데, 많은 분들이 이 친구와의 대화를 즐기시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추리의 영역은 결말이 정해져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한편으로는 결말이 있어도 사건을 플레이어가 조립하는 과정은 각자 달랐던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기존의 게임이 메시지를 전달할 때, 고정된 메시지가 일단 나가고 플레이어마다 그 메시지를 다르게 해석했다고 한다면, <스모킹 건>은 고정된 메시지가 나가는 것이 아닌 지점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유저가 완전히 사건을 다르게 구축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으신가요? 한규선 PD: 네. 예를 들어서 어떤 캐릭터가 어떤 일을 했느냐에 대해서는 해석하는 게 되게 다양하게 열려 있어요. 물론, 전체적인 사건의 전말은 기준점이 마련되어 있지만, 그 사이사이는 플레이어가 메꾸게끔 기획했는데 그걸 되게 즐기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이 상상을 하셔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오고, 그런 부분을 정식 스토리에 반영한 경우도 많아요. 이경혁 편집장: 요즘 AI를 활용하는 게임 개발 프로젝트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지요. 혹시 PD님들은 렐루게임즈 외에 다른 곳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도 알고 계신가요? 이가빈 PD: 스팀에서만 찾아봐도 AI를 활용한 프로젝트들이 많아요. 사소하게는 에셋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죠. <도키도키(두근두근 AI 심문게임)> 같은 게임이나 <페이크북>도 그렇고, 저희도 (관련된 게임이 나오는 소식에 대해) 약간 촉각을 곤두세워보는 것 같아요. 특히, AI로 게임을 만들었다고 하면 궁금해져요. 저희는 AI 기술의 가능성도 알지만, 시행착오도 겪어봤잖아요. 그러다 보니, AI와 관련된 한계를 어떻게 처리했을지, 어떤 돌파구를 찾았을지 이런 점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것처럼 에셋에 도입하는 경우는 많지만, 한편으로 게임에 AI를 넣는 것과 게임을 AI로 만드는 것은 다르잖아요? 저는 렐루게임즈의 시도가 좋았던 지점이 게임의 규칙과 메커니즘에 AI를 넣었다는 점이거든요. 한규선 PD: 렐루게임즈의 규칙이랄까 대원칙이 하나 있는데, 게임의 코어에 딥러닝이 들어가지 않으면 저희는 프로젝트 승인 자체가 되질 않아요. 아이디어 단계에서 이 게임이 코어에 딥러닝 기술을 필요로 하느냐를 살펴보고, 거기에 게임적 재미를 어떻게 부여할지 살피게 됩니다. 만약 AI 기술과 관계없이 재미있는 게임 기획을 가져오면 승인이 안 날 거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제안도 안 해요. 이가빈 PD: 저희는 만드는 중에도 계속 체크를 해요. 이게 진짜 딥러닝 없이 불가능한 게임인지. 이경혁 편집장: 그렇군요. 그런데 게임을 만들면서도 AI 기슬이 발달하잖아요? 그러면 <호라이즌 제로 던>의 엘리자베스 소벡 박사가 가이아를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드실 것 같은데, 변화하는 기술을 보며 어떤 기분이 드세요? 한규선 PD: 저희 게임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AI가) 말을 되게 못했어요. 예전에는 비용이나 속도 문제 때문에 GPT 3.5를 썼었는데, 그때 로봇은 말도 잘 못하고 약간 떨어지는 느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GPT 4로 바꾸니까, 로봇이 초등학생이다가 갑자기 대학을 준비하는 애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나 감격스러운 순간이 있었어요. 특히, 유튜버분들이 플레이하는 거 보면 옛날에는 조금 불안한 지점이 있었는데, 요즘은 저도 놀랄 정도로 말을 잘하고, 󰡒내 새끼, 잘한다󰡓 이렇게 될 때가 있거든요. (웃음) 앞으로는 더 발전할 거라고 봐요. 어떻게 보면 지금 자유대화가 가능한 NPC의 상용화 앞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하는데, 저는 앞으로 그렇게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이경혁 편집장: 맞죠. 대화형 인공지능의 영역에서 사람들은 오류가 있는지의 여부를 중요하게 살펴보지만, 저는 오류가 있어도 괜찮은 영역이 놀이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모킹 건>의 시나리오를 보면 오류가 생기는 지점도 상정을 하시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반가웠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 AI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나오는 주제가 편향성이잖아요? 인간이 AI의 편향성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들도 나오고 있는데, 현업에서 AI를 다루시는 입장에서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가빈 PD: 저는 편향성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AI를 따라가더라도 어디까지 얼마나 따라갈 것인지에 대한 취사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오히려 그런 의존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AI 기술을 원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있어요. 한규선 PD: 저도 동감하는 지점이,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들은 오히려 쉽지만, 어슴푸레한 뭔가가 있다고 하면 오히려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유의미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지점들은 연구할수록 더 확립될 거고요. 이가빈 PD: 조금 더 첨언하자면, 가끔은 AI를 따라가다 보면 역으로 발견할 수 있는 지점들도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임들을 모아서 어떤 아웃풋이 나왔는지 발견하다 보면 사람들이 어디서 재미를 느끼는지, 왜 이런 게임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한규선 PD: 저희 회사에서 만든 는 AI로 생성하는 퍼즐 게임이거든요. 여기서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스테이지들이 있고, 이것을 얼마나 생성하는지가 중요한 과제였어요. 이런 지점에서 '재미 자체를 학습하는 딥러닝'을 만드는 것이 회사의 중요한 장기 프로젝트 중 하나예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지점들에선 게임 분야가 더 AI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들이 많은 것 같네요. 이가빈 PD: 처음에 저는 게임에 AI 기술을 적용하기 조금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모든 게임은 행동에 대한 피드백과 학습이 일어나고, 거기서 몰입이 생기면서 유저들이 즐기게끔 설계가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딥러닝을 도입하면 유저의 행동 자체도 모호해지고 피드백도 모호해지는 부분들이 나오게 되거든요. 예를 들어, 게임에서 자연어로 질문을 하면 이거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보다 훨씬 모호한 행동이에요. 그러면 피드백도 모호할 수밖에 없죠. 유저들도 행동을 하면서 이게 얼마나 스스로에게 유의미하고 보상이 될지 모르다 보니,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좌우하느냐가 AI 게임 개발의 핵심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한규선 PD: 그런 지점에서 오늘날 AI에 관한 기사도 많고, 관련 게임에 대한 이야기도 쏟아져 나오지만, 실제로 AI나 자연어 기술을 활용한 게임이 많이 나왔는지 묻는다면 아니거든요. 기술 발전에 비해서 게임 분야의 활용이 좀 더디거나 오히려 보수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렐루게임즈가 주목받는다고 한다면,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이 이유가 될 것도 같고요. 그래도 이렇게 일종의 거품이 생기는 지점들은 사람들의 기대치가 있다는 의미이니, 앞으로 AI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가 밝혀지면 더 많은 발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두 게임 다 AI를 사용했지만, 기술을 활용한 방식이 다르고 게임성이 다르기 때문에 홍보 전략도 달라질 것 같은데요. 그런 지점에서 어떤 분들이 우리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한규선 PD: 일반적으로 추리 게임이라는 장르는 정해진 선택지를 따라서 진행하기 마련인데, <스모킹 건>은 그런 지점에서 새로운 방식의 플레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추리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즐거워하실 것 같고요. 그리고 수다 떨기 좋아하시는 분들? 시시콜콜한 대화를 즐거워하시는 분들도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과 로봇, AI 사회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나 고민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엔딩까지 재미있게 플레이하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이가빈 PD: <즈큥도큥>는 뭐랄까요. 햄버거집에 가서 주문 못하시는 분들? 부끄러움을 되게 많이 타시거나 그런 분들이 한번 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렸을 때는 저도 짜장면 집에 전화 못하고 되게 창피하고 그랬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한 번 하고 나면 모르는 사람한테 말을 붙일 수 있는 용기가 생겨요. 그런 것처럼 극단적인 체험을 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시뮬레이티드 셀프: 놀이하는 인간이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는 방식에 대하여

    세계는 불확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생동하는 물리적 실재를 파악할 수 없으며, 단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가정법에 따른 결과론, 혹은 결정론은 입자들의 불확정한 위치에 선형성을 부여하는 매력적인 시뮬레이션이다. ‘만약 ~라면 어땠을까?’ ‘만약 ~한다면 어떨까?’는 확률의 세계에서 확고한 인과관계를 부여할 뿐 아니라 대안적인 실재를 상상하도록 어떤 유희의 프레임을 제공한다. 만약 조선이 자생적 근대화에 성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적인 유희를 즐길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절차들을 상정함으로써 확률의 시공간을 결과의 시공간으로 바꿔놓게 된다. < Back 시뮬레이티드 셀프: 놀이하는 인간이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는 방식에 대하여 14 GG Vol. 23. 10. 10. 불확정성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현미경 세계는 불확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생동하는 물리적 실재를 파악할 수 없으며, 단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가정법에 따른 결과론, 혹은 결정론은 입자들의 불확정한 위치에 선형성을 부여하는 매력적인 시뮬레이션이다. ‘만약 ~라면 어땠을까?’ ‘만약 ~한다면 어떨까?’는 확률의 세계에서 확고한 인과관계를 부여할 뿐 아니라 대안적인 실재를 상상하도록 어떤 유희의 프레임을 제공한다. 만약 조선이 자생적 근대화에 성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적인 유희를 즐길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절차들을 상정함으로써 확률의 시공간을 결과의 시공간으로 바꿔놓게 된다. 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주사위 놀이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즐긴다. 놀이는 언제나 불확정성을 데카르트 좌표계로 옮겨놓는 과정이다. ‘시뮬레이션’은 모의실험인 동시에 유희의 근원이며, 인간은 오래 전부터 시뮬레이션과 유희를 접목시켰다. 가장 오래된 게임인 바둑과 장기는 전쟁에 대한 각기 시뮬레이션이었다. 그러나 전장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불확정성으로 가득하다. 날씨, 사기, 진군 속도, 무기, 영양상태, 파발마의 속도, 말의 종자 등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승패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전쟁 시뮬레이션은 전장의 요소들을 극도로 추상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폰은 앞으로만 전진하고, 나이트는 뛰어넘으며, 승패는 킹을 잡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킹을 쓰러트리는 순간 결정된다. 그러나 놀이하는 인간은 어두운 방 안의 헬륨 풍선의 위치를 찾는 사람처럼 좌표에 도달하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즐긴다. 시뮬레이션은 추상화 될수록 명료해지지만, 명료함은 복잡성을 제거하므로 역설적이게도 유희를 완성하는 동시에 방해한다. * H.G. 웰스가 1913년에 제작한 워게임 (좌)와 게임즈 워크숍의 워해머 40K(우) 대안적인 현실 또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선지자이자 미래의 고고학자이기도 했던 H.G. 웰스가 전쟁 게임에 광적으로 집착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전장의 요소들을 바꿔가며 놀이를 즐기는 워게임 매니아였고, 스스로 워게임 시뮬레이션을 제작했을 정도였다. 게티스버그 전투를 묘사한 웰스의 워게임 <리틀 워즈>는 단순히 모형을 가지고 하는 병정놀이가 아니라 엄격하고 복잡한 규칙에 따라 부대를 이동시키고, 포 구경에 따라 성냥개비 또는 몽당연필을 실제로 발사할 수 있는 장치와 태엽으로 움직이는 기관차 등이 구현된 ‘워게임 시뮬레이션’ 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병정놀이를 빙자한 워게임을 즐기는데, <워해머> 시리즈의 매니아들은 직접 제작하거나 구매한 피규어를 갖고 며칠 내내 광적인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문제는 워게임이 시뮬레이션과 놀이 사이에서 교묘히 표류한다는 것이다. 웰스와 같은 편집광은 혼자만의 세계에서 재미있게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모든 놀이는 동료와 상대, 그리고 공동체를 동반한다. 공통으로 적용되는 룰이 없다면 놀이가 될 수 없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이 명료화되는 과정, 즉 연성화된 규칙과 단순한 절차들의 발명은 시뮬레이션이 놀이로 전화하는 필연적인 의례다. 동료, 또는 상대방과 담소를 나누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절차는 무엇일까? 순서대로 한 번씩, 한 수씩 주고받는 것이다. 불확정성의 시공간을 일시 정지하고, 그 안에 깊이 들어가 불확정성의 요소들을 조작함으로써 어떤 ‘배치(assemblage)’를 만들어내는 것이 게임의 주된 목표가 된다. 이제 워게임은 역동적인 동시에 정주적인 것이 되었다. 전장에서 정지는 곧 죽음이지만, 워게임에서 정지는 더 복잡한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다. ‘턴제’가 된 시뮬레이션은, 불확정성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현미경이자 놀이를 구조화하는 프레임이 된다. 시뮬레이션의 재배치: 시뮬라시옹에서 에르고딕으로 * 헥스타일로 명료화된 시뮬레이션의 지도학. 전쟁을 소재로 하는 보드게임을 넘어 문명, 경영, TRPG등 게이밍 전체를 떠받드는 프레임이 된다. 프레임은 단순하면서 단단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소재를 버틸 수 있는 강도를 지녀야 한다. 전자게임이 등장하기 전 단계의 보드게임은 워게임 시뮬레이션이 주조했던 추상적 시공간, 즉 타일 중심의 규칙을 연성화해 다방면에 도입했다. 따라서 입자(atom) 세계의 시뮬레이션이 비트(bit) 세계의 시뮬레이션으로 재편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사위를 인간이 직접 손으로 굴리느냐, 혹은 컴퓨터가 대신 굴려주고 계산해주느냐의 차이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 시뮬레이션을 둘러싼 많은 결과들이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대두되게 되었다. 시뮬레이션의 가장 큰 장벽인 자연 연산 부문이 기계 연산으로 대체되면서, 워게임의 딜레마였던 복잡성과 명료성이 교집합을 이룰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디지털 게이밍에서는 불확정성과 결정성의 요소들은 하나가 될 수 있다. 확률론적 결정론, 혹은 인과율과 양자얽힘이 공존하는 세계가 곧 디지털 게임의 시뮬레이션이다. *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앤 매직3(좌상), 문명2(우상), 듄2(좌하), 워크래프트2(우하) 시뮬레이션이라는 건축물의 형태가 턴제에서 실시간으로 바뀌어도, 그 프레임인 ‘타일’에 의한 공간직조는 변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원본없는 실재, 초월적 실재인 시뮬라시옹이 물자체로 이뤄진 실재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소비자본주의의 풍경을 두고 ‘실재의 폐허’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 영토에 경계를 긋고 유희의 공간을 창출하는 게이밍의 세계에서 실재의 폐허는 거꾸로 시뮬레이션의 천년왕국이 된다. 시뮬라크르가 더 정교해질수록, 그것들의 어셈블리지가 불확정성과 인과성을 더 광범위하게 포섭할수록 근사한 에르고딕(ergodic)은 골계미를 더해간다. 왜 골계미인가? 동일성의 반복이 아닌 차이의 반복을 통해 프레임의 강도를 더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재와 달리 게이밍에서는 아무리 강도 높은 프레임이라 해도 마음대로 형태를 바꾸거나 심지어 재설계할 수 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파도의 강도를 상상하며 모래성을 쌓는 아이처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가동시킨다. 그들은 육면 주사위를 던질 뿐 아니라 즐기며, 평균 3에 수렴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던진다. 어제는 중국 문명을, 오늘은 영국 문명을, 내일은 인도 문명을 즐길 것이다. 오전에는 외교를 통한 승리를, 오후에는 전쟁을 통한 승리를 추구할 것이며 똑같이 게임을 즐기는 ‘시뮬레이티드 셀프(simulated self)’ 들과 이런 전략을 토론하고, 공유하고, 경쟁할지도 모른다. 시뮬레이티드 셀프, 혹은 시뮬레이티드 리얼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웰스의 워게임에서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실시간 전술 시뮬레이션에 이르기까지 시뮬레이션은 패러다임 전환이라 부를만한 변화를 겪은 적이 없다. 웰스가 고안해낸 타일과 턴 기반의 규칙들은 불변하기 때문이다. ‘실시간’은 결국 윤곽선을 가린 타일 위에서 동시에 기물을 움직이는 워게임에 다름아니다. 느긋하게 식사하거나 담소를 나눌 턴이 사라졌기 때문에 전장의 안개(fog of war)가 치열함을 더한 새 요소로 가미되었을 뿐이다. 오히려 실시간 전술 게임은 ‘시뮬레이션’이란 관면에서 보면 인지와 반응속도에 더 의존하는 형식이다. 커맨드 앤 컨커, 스타크래프트 등의 게임은 점점 도태되고 즐기는 플레이어도 점점 줄어드는 반면, 턴 기반의 시뮬레이션 게임은 다양한 변주를 통해 재탄생되고 있는 현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젊은 게이머들은 치열한 실시간 경쟁과 화려한 그래픽보다 오히려 도트 그래픽으로 잘 짜여진 정적인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예컨대 <데이브 더 다이버>), 턴제 시뮬레이션 방식의 게이밍에서 더 큰 새로움을 만끽한다. * <발더스 게이트3> 와 <재기드 얼라이언스 3>와 같은 전통적인 턴제 시뮬레이션 기반 게임의 선풍적인 인기는 레트로(retro)라기보단 재매개(remediation)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게이밍이 다양한 형식적 실험과 편향을 넘어 고유한 시공간적 프레임을 자아내는 의례로서 시뮬레이션이 대두되고 있다. 요컨대 워게임에 열광했던 웰스나, 전설적인 시리즈, <재기드 얼라이언스> 시리즈, <문명>과 <심시티>를 즐기는 플레이어, 그리고 최근 전대미문의 비평적 성공을 거둔 <발더스 게이트>를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보드판 위에서 기물을 움직인다 할 수 있으며, 각자의 컨셉과 설정을 구조화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천년왕국은 더욱 진화할 것이다. 아마도 시뮬레이션의 패러다임 전환은 ‘시뮬레이티드 셀프’에서 ‘시뮬레이티드 리얼’로의 이행으로 이뤄질 것인데, 이는 형식이 아닌 기술을 통해서 성취될 가능성이 크다. 생성 인공지능의 도입은 우리가 게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비인간 요소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예컨대 NPC, 몬스터등이 생성 인공지능을 탑재해 비인간 인격체가 된다고 생각해보라) 함께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 속에 인게임-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이 뒤섞이면 어떻게 될까? 핍진성은 실재에 근접하거나 보드리야르가 우려했던 실재의 폐허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이를 피할 수는 없다. 엔비디아를 위시한 많은 빅테크가 시뮬레이션 내에서의 비인간 행위자의 가능성을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비트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은 그래픽의 평면이 매끄러워 지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들이 매끄러워지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발더스 게이트>의 몬스터와 동료들이 비인간 인격체라면 우리는 어떤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킬수 있을까? 생성 인공지능과 게이밍의 절합을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의 친애하는 웰스 경은 어쩌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시뮬레이티드 리얼’을 목격하고 돌아와, 투명인간이 된 채 홀로 워게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을 수도 있다. 앞으로 게이밍과 시뮬레이션에서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시뮬라크르들을 조작하는 주체가 누가 될 것인지,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술미학적 상상력일 것이다. Tags: 에르고딕, 시뮬레이션, 턴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 Back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23 GG Vol. 25. 4. 10.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하지만 제목만 봤을 때, 이것이 게임에 관한 다큐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게임을 소재로 한 다큐들이 <하이 스코어>(2020), <낫 어 게임>(2020), <프리 투 플레이>(2014), <인디 게임: 더 무비>(2012)처럼 제목에서부터 ‘게임’에 대한 내용임을 알려왔다는 점과 다르게, 이 다큐는 게임 다큐라는 사실보다는 ‘이벨린’이라는 인물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벨린은 누구이길래 주목받게 되었는가? 걸을 수 없는 소년에게 쥐어진 게임기 다큐는 1990년대 홈 캠코더로 촬영된 한 소년의 어린 시절 영상으로 시작된다. 이 소년의 이름은 ‘마츠 스틴’.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가족의 사랑 속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몸 상태에 이상이 감지된다. 거동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의지하거나, 늘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 의자는 점점 휠체어로 대체되고, 화면 너머로 마츠가 중증 질환을 앓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츠가 앓은 병은 ‘듀센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 질환이다. 어린 시절 발병해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점차 소실되는 병으로, 걷거나 음식을 먹는 등 일상적인 신체 활동이 서서히 불가능해진다. 점점 불편해지는 몸은 사회생활을 가로막았고, 대인 관계 또한 큰 장벽에 부딪혔다. 다른 아이들이 운동을 하거나 어울려 놀 때, 마츠는 그들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곤 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홈비디오 속에서 유난히 자주 포착되는 물건이 있다. 바로 게임기다. 마츠는 게임보이, 닌텐도64와 같은 콘솔 게임기를 즐겨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부모가 이를 제지하기 마련이지만, 마츠의 부모는 달랐다. 게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던 마츠에게, 그가 원하는 만큼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 가족들과 휴양지 여행을 떠난 어린시절 마츠의 두 손에는 게임 보이가 들려있다.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아제로스 대륙을 여행한 마츠 2000년대에 들어서며 블리자드의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가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은 판타지 세계관 ‘아제로스’ 대륙으로 접속해, 아바타의 몸을 빌려 또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마츠도 이에 동참하여 노트북으로 와우 세계에 접속했고,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마츠는 <와우> 세계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와우>를 플레이한 10년 동안 총 플레이 타임은 약 2만 시간 가까이에 달했다. 아제로스의 방대한 대륙을 여행하며 그는 다양한 국적의 유저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의 신체는 점점 움직이기 어려워졌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에도 제약이 따랐다. 처음에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해 조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마츠는 특수 장비의 도움을 받게 된다. 게임에 필요한 조작키가 원형으로 배치된 이 맞춤형 장치는 마츠를 위해서 특별하게 제작된 것이었고, 이 덕분에 다른 유저들과 함께 게임 플레이를 지속할 수 있었다. * 마츠가 사용하는 컴퓨터 조작 장치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알린 마츠의 죽음 듀센병 환자의 평균 수명은 보통 20대에 머무른다. 마츠 역시 병세가 악화된 끝에, 2014년 가족들의 깊은 슬픔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계속 재생되던 홈비디오 테이프는 멈추었고, 가족들은 애통스러운 감정으로 그를 추억한다. 그리고 마츠가 오랜 시간을 보냈던 온라인 세계에도 이 사실을 알리고자, 가족들은 그가 생전에 운영했던 온라인 블로그에 부고 소식을 게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츠를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츠를 ‘이벨린’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벨린이 <와우> 세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전해온 것이다. 다큐 제목에 등장한 ‘이벨린’은 마츠의 <와우> 캐릭터명이다. 긴 머리를 가진 건장한 남성 도적. 이벨린의 모습은 휠체어 위의 왜소한 현실의 마츠와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마츠는 이벨린으로서, <와우>의 길드 ‘스타라이트’에 오래 몸담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었다. 유가족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활발한 사회적 삶이 그 안에 있었다. * 게임에서 다른 유저들과 활발하게 사회생활했던 이벨린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현실에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기 어려웠던 마츠는, 이벨린으로서 연인을 만나 사랑을 경험하기도 했다. ‘루머’라는 캐릭터와 숲속에서 데이트를 하며 첫사랑을 나눴고, 루머의 현실 인물인 ‘리세트’가 가족과 갈등을 겪었을 땐 직접 편지를 써 그녀의 부모와 화해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또 한 명의 길드원이 자녀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자, 마츠는 그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도록 주선해 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왔다. 그는 단지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돕고 응원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마츠 덕분에 삶이 더 나아졌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게임만 하며 고립된 삶을 산 듯 보였던 마츠. 그러나 그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었다. 이벨린이라는 이름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깊은 삶을 살아냈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가족은, 마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이전에는 제한된 삶으로 여겼던 그 생애가 사실은 너무도 풍성하고 비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뒤늦은 기쁨과 안도 속에서 치러진다. * 홈비디오 속의 마츠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채팅으로 기록된 과거의 시간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이 과거를 다시 그려내는 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가 과거에 기록된 영상이나 사진을 편집하거나, 당시 인물들을 인터뷰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반면, 이 작품의 핵심 기록물은 다름 아닌 ‘채팅 기록’이다. 마츠는 음성 채팅 없이 텍스트로만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그가 나눈 모든 의사소통은 대화 로그로서 기록되어 있었다. 일부러 아카이브 하지 않아도, 이미 보존되고 기록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보존된 이벨린의 문장들은 사후에도 그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흔적이 되었다. 제작진은 이 채팅 기록을 대역 성우가 낭독하도록 하여 현재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성우들이 읽은 대본은 모두 이벨린이 나눴던 채팅과 동일한 문장이었고, 이 음성은 애니메이션에 더빙되어 영상으로 제작되었다. 재연 애니메이션은 실제 게임 내 캐릭터와 주변 사물, 배경, 다른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으로까지 장면 하나하나로 연출되어 게임 속에서 녹화되었다. * 이벨린의 목소리를 맡은 에드 라킨(Ed Larkin)외에도 모든 성우가 장애인이다.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Behind The Scenes | Netflix”) 여기에 제작진은 마츠의 삶을 더욱 면밀하게 재현하기 위해 또 다른 층위를 더했다. 채팅을 읽는 성우들을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한 것이다. 이벨린과 이벨린의 첫사랑 루머, 주변 길드원, 친구들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로 입혀졌다. 루머를 연기한 성우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가상 캐릭터’가 아닌, 실제 사람이 뒤에 있는 ‘아바타’였기 때문에 깊은 존중감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실제로 이 상황에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섬세하게 고려하면서 연기해야만 했다고 인터뷰에서 덧붙였다. 연극 대본처럼 남은 채팅 기록 덕분에 게임 속 캐릭터로 과거를 재현하는 이 방식은 게이머의 삶을 다큐로 풀어내는 방식 중에서 매우 신선하고 도전적인 시도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재현’과 ‘재연’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 다큐로서의 과거를 충실히 복원했다기보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감정적으로 과장된 재연이 되는 듯한 느낌이 남기 때문이다. 특히 이벨린이 루머와 숲속 호숫가에서 연애하며 첫키스를 나눴던 사건을 정면 카메라로 촬영하여 보여줄 때는, 마츠의 매우 사적인 기록, 그러니까 원치 않는 사춘기 소년의 일기장을 억지로 들춰보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기도 했다. 물론 마츠가 살아생전에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여했기 때문에, 이 역시 그가 의도한 연출일 수도 있겠다. * 데이트를 즐기는 이벨린과 그의 첫사랑 루머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현실 도피라는 오해 마츠는 매일 아침, 이벨린으로 접속해 아제로스 대륙(게임 속 세계)을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현실에선 달릴 수 없었지만, 게임 속에서는 원 없이 달릴 수 있었다. 현실의 제약이 닿지 않는 가상 세계는 마츠에게 해방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이벨린이라는 존재로 살아가며 자유로운 신체로 움직였고,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넘어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능동적인 주체로서 자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자칫 ‘게임은 현실 도피처’라는 식의 해석으로 단순화되기 쉽다. 실제로 마츠는 자신의 블로그에 “게임은 탈출구이고, 모니터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향하는 관문”이라고 썼다. 게임을 탈출 혹은 도피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은, 현실의 고통과 결핍에서 심리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몰입이나 위안으로만 게임을 설명하곤 한다. 이때 현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억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잠시 보류될 뿐이다. 더 나아가 장 보드리야르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러한 가상 세계는 실재를 대체하는 이미지에 불과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해방의 감정’만을 소비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다큐가 게임을 낭만화하고, 단선적인 감동 구조로만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 매일 30분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대륙을 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벨린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Behind The Scenes | Netflix”) 그러나 마츠의 사례는 단순한 현실 도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가상 세계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했고, 사람들과의 대화와 연대를 통해 현실로도 울림을 확장시켰다. 게임 속에서 나눈 말과 관계는 다시 현실에서 목소리가 되었고, 그 메아리는 여전히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벨린의 첫사랑 루머의 목소리 역을 맡은 켈시(Kelsey Ellison)는 자신도 장애인으로서 가상 세계로의 탈출이 주는 자유를 공감하는 한편, 마츠가 도피주의(escapism)를 잘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하루 종일 누워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는 마츠를 수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적어도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동적인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데에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츠가 단지 억압된 현실의 신체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족하다. 자유/억압의 이분법적인 규정보다, 완전히 새로운 문법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했던 인물로 바라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존재의 전환, 존재의 확장으로서 바라봄이 더 정교하고 정당할 것이다. 마츠는 생전 이렇게 말했다. “이벨린은 저의 확장판이에요. 저의 다른 면모이죠” 존재의 확장이라는 비범함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단순한 감동 서사를 넘어, 가상 세계 안에서의 삶이 어떻게 존재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츠는 게임으로 도피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확장했고, 새로운 문법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었다. 가상 세계가 현실의 억압을 완전히 지워주진 않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한계를 넘는 관계를 만들고, 사회적 의미를 생산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살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다큐가 보여주는 진짜 이벨린의 ‘비범함’이라는 평가는 마츠가 이벨린으로서 보여줬던 활약뿐만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조건 속에서 여전히 현실을 향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채팅 기록, 함께 시간을 보낸 동료들, 그리고 이 다큐를 본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벨린’은 마츠가 단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했던 하나의 주체였음을 증명한다. * 이벨린이 죽은 이후, 블리자드는 이벨린이 자주 다니던 엘린 숲 한켠에 이벨린을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곳에 모여 그를 다시금 기억했다. 그리고 블리자드는 이벨린의 캐릭터에 관한 유료 아이템 판매하고 그 수익을 듀센 치료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출처: 유튜브 영상 “Rest in Peace, ibelin) Tags: 다큐멘터리, WOW, MMORPG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이토 준지풍의 그림체와 크툴루 세계관이 결합된 <공포의 세계>의 장점 역시 동일하다.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변화한 마을 구성원들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경험이야말로 등대에 강림할 고대신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일상의 궤도에서 이상 징후와 균열을 발견할 때 불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 Back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19 GG Vol. 24. 8. 10.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 H.P.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 중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만 실현 가능한 장르를 게임을 통해 재현하는 일은 그 목적이 플레이어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라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 코스믹 호러는 단어 그대로 인간의 사유와 이성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거대한 존재를 마주쳤을 때 경험하게 되는 우주적 공포를 의미한다. 오랜 기간을 통해 축적해 온 문명을 포함한 인간적 가치가 통용되지 않는 불가해한 공포를 목도하는 상황과 그에 대한 매혹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대변하는 특징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은 그가 활동했던 시대보다는 오히려 지금에 와서 적극적으로 향유되고 차용하고 있다. “거기서 크툰을?”이라는 밈으로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을 <하스스톤>의 고대신의 저주 덱만 하더라도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고대신 중 하나인 크툴루 이미지를 빌려온 대표적인 사례다. 크툰(C'Thun)이라는 이름조차 크툴루(Cthulhu)를 연상케 하는 의도적인 작명이다. 게임을 비롯한 서브 컬쳐에서 크툴루가 코스믹 호러를 대표하는 표상이자 오마쥬로 손쉽게 활용되는 이유는 러브크래프트의 작업물 중 드물게 크툴루 만이 소설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외양이 묘사되어 있고 작가의 스케치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시각화할 수 있는 뚜렷한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점은 공포를 야기하는 데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크리쳐를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했던 나 <콜 오브 크툴루>와 같은 게임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던 요인 중 하나는 시각적 재현을 통해서는 공포를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래픽 해상도나 디자인, 크리쳐의 거대함을 체감할 수 있는 상대적 크기의 구현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분명하게 가시화된 것일수록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러브크래프트는 기이한 이야기가 예술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정밀하게 사건을 묘사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분위기의 조성을 제안한 바 있다. 코스믹 호러를 경험하게 되는 소설적 사건은 그 자체가 비현실적이며 허구적인 것이기에 정밀한 묘사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인간의 기분을 명확하게 상징화하는 것이야말로 묘사보다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영역이다. 공포, 그것도 특정한 맥락의 사건을 통해 야기되는 감정의 결을 상징화하는 작업은 시각을 중점적으로 매개하는 매체가 좀처럼 도전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모호함, 불분명함에서 오는 상상이 야기하는 불안감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포 영화는 본질적으로 시각 중심적 매체라는 영화의 장점 일부를 포기하고 카메라의 시야를 제한하고 대상을 어둡고 흐릿한 배경을 통해 부각하는 전략을 취한다. 아울러 관객이 사건을 목도하는 전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감상의 가이드라인으로써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사건 전개의 중심축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영화와 같은 시각 매체 감상자가 경험하는 무력감, 일방향적인 위치에서 수행되는 관음에서 비롯된 공포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글의 마중물로 활용한 인용문과 같이 공포는 대상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 기원하는 감정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에서 앎으로 포섭할 수 없는 존재를 목도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광기에 사로잡힌다. 다만 서술자는 광인으로 대변되는 낯선 타자를 목격할 때 경악하거나, 서서히 잠식되는 광기로 인해 미지의 대상에 매혹되며 변화하는 자신의 내면을 진술하는가로 나뉠 뿐이다. 최소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이 둘은 선행과 후행의 문제일 뿐 어느 쪽을 배제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소설 <벽 속의 쥐>의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는 <다키스트 던전>은 고대신의 유적을 저택에 은닉하고 있는 전대 가주의 편지로 시작된다. 지하의 유적을 탐사하며 결국 고대신의 제물로 후손을 끌어들인 선조의 목적을 저지하더라도 탐사대의 파멸은 불가피하다. 광기에 잠식된 이들은 결코 이전과 동일한 내면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키스트 던전>은 후손의 자살을 암시하는 장면과 새로운 희생양이 될 또 다른 후손을 초대하는 편지로 끝을 맺는다. 이와 같은 서사는 한낱 인간으로서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대한 악의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기하는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을 잘 보여줬다. 그러나 그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다키스트 던전>이 광기를 하나의 변수이자 수치화할 수 있는 요소로 디자인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공포가 대응할 수 없는 미지에서 창출되는 감정이라면 공포 게임의 행위성은 그를 위배하는 방식으로, 달리 말하면 미지를 해소하고 장악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된다. 이 모순적인 결합방식을 시도한 결과물 중 눈여겨볼 만한 대표적인 게임은 크툴루 세계관을 기반으로 추리와 코스믹 호러의 공존을 시도한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이다. 추리는 과학을 포함한 근대적 지식을 동원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지향하는 행위다. 이 경우 만약 이성이 미지를 해체하는 유용하고 적확한 도구라면 해소될 수 있는 공포는 하나의 소재로 활용될 뿐이다. 그러나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의 서사는 이성과 공포의 대결에서 공포에 손을 들어줬다. 홈즈는 어머니를 파멸로 이끈 광기가 자신에게도 유전될 것을 염려하면서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괴이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광기에 접근한다. 그리고 광기에 매혹된 자신이 근대적 이성으로 무장한 이전의 ‘나’는 같은 인간일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성은 미지의 사건을 해결하기에 충분한 도구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질서와 법칙으로 무장한 자신의 세계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불안한 외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홈즈는 이전과는 다른 내면을 가진 인간이 된다. 심지어 고대신을 소환하고자 하는 이교도의 제의를 저지한 후일담에서 짐작할 수 있듯 홈즈의 정신은 그의 정체성이 붕괴되었던 상황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것은 게임을 통해 재현된 캐릭터의 내면일 뿐이며 플레이어의 영역에서 꼼꼼하게 단서를 모아가며 추리하는 플레이 경험은 이 게임이 ‘호러’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전자의 수식어가 약소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차라리 행위성을 제한하는 동시에 특정 행위성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광기를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다키스트 던전>이 광기를 활용하는 방식이 바로 그런 형태다. 플레이어는 지속적으로 특정 확률로 이상상태를 겪는 캐릭터들을 컨트롤하며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관철할 수 없는 세계를 인식한다. 물론 이것은 공포를 직접적으로 창출하기보다는 긴장감을 통해 몰입감을 고조시키는 효과이기는 하다. 그러나 공포를 해소하는 어드벤처식 게임 장르를 대신해 제안할 수 있는 하나의 예시로 고려될 수는 있을 것이다. <드렛지> 역시 광기를 게임적 요소로 활용한다. <드렛지>는 확률의 결과물만 보여주는 <다키스트 던전>보다 광기에 노출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재현한다. 게임 초반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새롭게 마을에 정착하고자 하는 낚시꾼의 일과 사이에는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이질감이 불거져 나온다. 심해에서 건져 올린 것 같은 기괴한 생김새의 어종, 이방인인 주인공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응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의미심장한 대사, 낮과는 전혀 다른 위협이 도사린 밤바다의 풍경은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정작 크툴루의 오마쥬인 것이 분명한 고대신은 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매우 짧게 모습을 드러낸다. 구체적으로 재현되면 될수록, 즉 대상을 명확하게 인지할수록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측면에서 이와 같은 전략은 유의미하다. 오히려 <드렛지>는 미지의 존재가 응시하는 시선을 화면 상단이나 심해의 충혈된 눈으로 표현하거나 광기에 잠식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점차 붉게 번져가는 파라미터 등의 인터페이스로 재현한다. 불분명하고 암시적인 분위기가 캐릭터의 불안을 야기하고 공포라는 감정을 창출하는 것이다. 광인은 타자의 모습으로 재현되기 쉽다. 그러나 <드렛지>는 분열된 자아를 통해 이성의 영역에서는 확신할 수 없는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투신하는 인간의 모습과 미지에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 희생된 아내를 부활시키기 위한 수집가의 광기는 설사 그것이 고대신을 소환해 마을이 소멸하는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다섯 가지의 물건을 모아달라는 의뢰를 수락한 어부는 결국 이것이 스스로 초래한 비극의 후일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광기는 자신의 다른 얼굴이었던 셈이다. 코스믹 호러는 이제까지 믿어왔던 판단 능력에 대한 의심이자 철학의 붕괴, 신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공포다. 정상성, 실재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공포는 지극히 인간적인 발명이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토대, 근거가 전면적으로 붕괴될 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발상이 게임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플레이가 경험하는 공포란 오히려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토 준지풍의 그림체와 크툴루 세계관이 결합된 <공포의 세계>의 장점 역시 동일하다.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변화한 마을 구성원들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경험이야말로 등대에 강림할 고대신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일상의 궤도에서 이상 징후와 균열을 발견할 때 불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깊이 읽기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소개한다. 백서가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에 대해서는 지난 10호에서 살핀 바 있고, 그 내용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므로 이 글에서 반복하지는 않도록 한다. 물론 그 중에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음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 Back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깊이 읽기 17 GG Vol. 24. 4. 10. 2024년 3월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가 발간됐다. 백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발행하는 정기간행물로,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규모, 업종별 현황, e스포츠 동향, 산업 전망, 교육기간 현황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현황 및 특성,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와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 또는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공공과 민간 영역을 막론하고 게임산업이나 이용에 대한 다른 광범위한 조사가 없는 데다, 다른 콘텐츠산업(출판, 만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 솔루션) 현황과의 비교 속에서 이뤄지는 조사인 만큼 그 데이터가 갖는 의미는 크다 하겠다. 주로 수치 중심의 데이터를 다루지만,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산업·이용 양상과 관련 이슈, 트렌드들에 대해서는 질적으로도 분석함으로써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즉, 게임백서는 게임산업과 이용에 관한 한 해 동안의 양적·질적 데이터가 망라돼 있는 결과물인 셈이다.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소개한다. 백서가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에 대해서는 지난 10호에서 살핀 바 있고, 그 내용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므로 이 글에서 반복하지는 않도록 한다. 물론 그 중에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음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중요한 데이터와 흐름들에는 약간의 해석을 덧붙이고자 한다. 2022년 한 해 동안(2024년 초에 발간된 2023 백서이지만, 기준 데이터는 2022년의 것이다)의 게임산업과 이용을 둘러싼 양상, 이슈, 트렌드를 살피고,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짚어본다. 한국 게임시장 규모: 22조원 돌파, 성장률 둔화, 플랫폼별 균형 있는 성장 2022년 한국 게임시장은 22조 2,149억 원 규모로, 2021년(20조 9,913억 원) 대비 5.8% 성장했다. 2020년 21.3%, 2021년 11.2% 성장했음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조금씩 둔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플랫폼별 시장에서 두드러지는 지점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바일 게임시장의 굳건한 강세다. 그간 모바일 게임시장 규모는 빠르게, 큰 폭으로 팽창해왔다. 다만 전체 시장에서 모바일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49.7%, 2020년 57.4%, 2021년 57.9%, 2022년 58.8%로, 최근 들어 아주 크게 늘고 있지는 않다. 모바일 게임시장 비중의 확장세 둔화가 앞으로도 계속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다른 플랫폼들의 비중 역시 아주 크게 달라지고 있지는 않아, 당분간 아주 큰 폭으로 비중이 늘지는 않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비중이 크게 늘지는 않았음에도 매출액 13조 720억 원으로 전년(12조 1,483억 원) 대비 8.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게임 제작 및 배급업 중 아케이드게임(8.9%)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둘째, 아케이드와 PC 게임시장의 성장세가 아주 크지는 않은 가운데, 콘솔 게임시장이 1년 만에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됐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은 전년 대비 8.9% 성장해 2,976억 원 규모를, PC 게임시장은 3.0% 성장해 5조 8,053억 원 규모를 나타냈다. 하지만 2019년 전년 대비 31.4%, 2020년 57.3% 성장하다가 2021년 –3.7%의 성장률을 보였던 콘솔 게임시장은 1조 1,196억 원 규모로, 전년(1조 520억 원) 대비 성장률 6.4%를 기록했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던 해당 게임시장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오프라인 활동 수요 폭증으로 대폭 증가했다가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4.3% 감소했던 PC 게임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선호경향의 혜택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플러스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전체 게임시장 내 점유율은 26%대로 성장에 있어 한계가 드러났다. 콘솔 게임시장의 경유 성장률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됐다 해도, PC 게임시장과 유사하게 점유율이 2021년과 비슷한 5% 초반이다. 2022년 콘솔 게임기기나 타이틀 관련해 시장의 변화를 주도할 흐름이 발견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큰 폭의 하락을 보여 왔던 PC방 및 아케이드 게임장 매출액이 2021년에 이어 소폭 증가했다. PC방 매출은 2019년 2조 409억 원에서 2020년 1조 7,970억 원으로 큰 역성장(-11.9%)을 기록했고, 아케이드 게임장은 2019년 703억 원에서 2020년 365억 원으로 시장이 거의 반토막(-48.1%) 났었다. 이는 물론 코로나19만이 아니라 PC 게임시장의 성장 정체와 모바일게임으로의 이용 집중, 가정에서 플레이되는 콘솔게임의 인기 폭증 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 유통시장 매출은 정부의 아케이드 게임산업 활성화 정책, PC 및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성장, 그리고 야외 활동 본격화 등과 맞물려 반등했다. 종합적으로, 2022년 한국 게임시장은 지난 4년, 그러니까 코로나19 전후를 비교해봤을 때 아주 크게 확대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2019년 9.0%, 2020년 21.3%, 2021년 11.2%, 2022년 5.8%), 플랫폼별로 비교적 균형 있게 성장해온 듯 보인다. 그동안 ① 크게 성장하는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콘솔게임), ② 성장이 정체된 플랫폼시장(PC게임, 아케이드게임), ③ 크게 역성장하는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개되던 흐름이, ① 여전히 성장 중이나 조금씩 안정화되는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② 성장세 둔화와 뚜렷한 플랫폼시장(PC게임), ③ 하락세 혹은 보합세에서 다시 성장세로 전환된 플랫폼시장(콘솔게임, 아케이드게임) 및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 그림 1. 한국 게임시장의 규모 및 성장률(2013~2023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28쪽. * 표 1. 한국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 및 성장률(2019~2022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0쪽. 세계 게임시장 내 한국의 위상: 세계 4위로 3위인 일본을 바짝 추격 2022년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2021년 대비 0.9% 증가한 2,082억 4,900만 달러로 집계됐다. 2021년 성장률이 5.9%였음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볼 수 있다. 엔데믹 이후 세계 게임시장은 가시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 전염병, 전쟁 등 외부 악재와도 맞물려 불확실성도 심화되는 상황이다. 전체 게임시장의 성장을 견인해왔던 모바일게임이 마이너스 성장(-0.5%)했고, PC게임의 성장률도 0.1%에 그쳤다. 콘솔게임이 2021년과 비슷한 수준인 2.6%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아케이드게임도 2021년(9.5%)에 비하면 크게 성장했다 보기는 어렵다(4.1%). 2016년 이후 세계 게임시장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해온 모바일게임은 2022년에도 916억 8,100만 달러 규모로, 점유율 44.0%를 기록했다. 그 뒤는 콘솔게임(591억 4,100만 달러, 28.4%), PC게임(363억 5,200만 달러, 점유율 17.5%), 아케이드게임(210억 7,600만 달러, 10.1%) 순이다. 표 2. 세계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2020~2025년). (단위: 백만 달러, %). 출처: PwC(2023), Enterbrain(2023), JOGA(2023), iResearch(2023), Play meter(2016); NPD(2023);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742~743쪽. 2022년 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8%다. 2019년 점유율이 6.2%, 2020년이 6.9%, 2021년 7.6%였음을 감안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비중이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순위도 2020년 5위에서 2021년 4위로 한 순위 올라간 후, 2022년에도 마찬가지로 4위를 유지했다. 2020년 0.8%, 2021년 1.4% 차이였던 5위 영국과의 거리도 2.2%로 더 크게 벌렸다. 3위인 일본과의 차이는 1.8%로 영국과의 차이보다 적다. 2021년 2.7% 차이에서 0.9%나 좁힌 것을 감안하면, 향후 몇 년 간 한국이 일본을 앞지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위인 미국(22.8%)과 2위 중국(22.4%)의 차이도 0.4%밖에 나지 않아, 둘의 순위가 바뀔지도 관건이다. * 표 3. 세계 게임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과 위상(2022년). * 출처: PWC(2023), Enterbrain(2023), JOGA(2023), iResearch(2023), Playmeter(2016), NPD(2023);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767쪽에서 재인용. 한국게임 수출·입 규모: 수출 3.6% 증가, 수입 16.7% 감소, 아케이드게임만 수출 감소 2022년 한국게임 수출액은 89억 8,175만 달러(약 11조 6,040억 원, * 한국은행 2022년 연평균 매매기준율 적용)로 집계됐다. 전년(86억 7,287만 달러)과 비교했을 때 3.6% 증가한 수치다. 2017년 증가율 80.7%를 기록한 이후 2018년 8.2%, 2019년 3.8%로 수출성장세가 주춤하다가, 2020년만 23.1%로 반짝 높은 수치를 보이고 2021년 5.8%, 2022년 3.6%로 다시 이전 증가율 수준이 된 셈이다. 플랫폼별로는 역시 모바일게임의 수출규모가 55억 6,300만 달러(2021년 53억 3,030만 달러)로 가장 컸고, PC게임이 31억 9,467만 달러(2021년 31억 4,562만 달러)로 뒤를 이었다. 콘솔게임 수출규모는 1억 8,651만 달러(2021년 1억 5,674만 달러), 아케이드게임 수출규모는 3,757만 달러(2021년 4,021만 달러)로 나타났다. 전년대비 수출규모를 비교하면, 대부분 플랫폼에서 증가세를 보인 가운데 아케이드게임만이 전년대비 6.6%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표 4. 한국 게임 수출·입 현황(2016~2022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1쪽의 표를 재구성. 수입은 전년대비 16.7% 감소한 2억 6,016만 달러(약 3,361억 원)를 기록했다. 2017년 이후 계속 감소해왔던 수입 증가율이 4년 만인 2021년 잠깐 반등했다가 다시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2016년부터 7년 간 수입액 증가율이 수출액보다 높았던 건 2018년과 2021년뿐이었고, 나머지 해에는 수출액 증가율이 수입액 증가율보다 높게 나타났다. 다른 모든 플랫폼의 수입액 규모에서 감소세가 나타나는 가운데(아케이드게임 –66.3%, 콘솔게임 –48.3%, 모바일게임 –13.4%), PC게임만이 5.4% 증가했다. 2021년 완전히 반대로 모든 플랫폼 수입액이 전년대비 크게 증가하고 PC게임만이 감소했던 것을 감안하면 특기할 변화라 하겠다. * 표 5. 한국 게임 플랫폼별 수출·입 규모 비교(2021년 vs. 2022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2쪽의 그림을 재구성. 게임 이용현황: 전체의 62.9%가 이용, 이용률 11.5% 감소, 모바일게임 이용률이 최고 만 10~65세의 일반인(n=10,000)을 대상으로 2022년 6월 이후 게임 이용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2.9%가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게임 이용률은 2020년 이후 증가세를 보이다가(2019년 65.7% → 2020년 70.5% → 2021년 71.3% → 2022년 74.4%), 다시 2019년 수준으로 하락한 셈이다. 게임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n=6,292)들에게 있어 이용률이 가장 높은 플랫폼은 모바일게임(84.6%)이었다. PC게임(61.0%), 콘솔게임(24.1%), 아케이드게임(11.8%)이 뒤를 이었다. 또, 게임 이용경험이 있는 응답자(n=6,292)의 99.4%가 평소에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응답했다(전년 대비 0.4%p 증가). 업무/학업 외 목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 사용하는 기기를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이 93.2%로 가장 높았고, 데스크톱PC가 60.1%, 노트북이 56.4%, 태블릿PC가 42.8%였다. PC방 이용현황에 대한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게임 이용자들(n=6,292)의 56.8%가 2022년 6월 이후 1년 간 PC방을 이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18.3%가 월 1회 이상 PC방을 이용하고 있었다. 성별로는 여성보다 남성이, 연령별로는 20대가 이용률이 가장 높았다. 게임 이용자의 1회 평균 PC방 이용시간은 169.2분, 미이용자는 126.5분이었다(42.7분 차이). PC방에서 게임을 한다고 응답한 사람(n=3,229)에게 PC방에서 게임하는 이유를 질문했을 때, 1+2순위 응답을 기준으로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56.7%)와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55.7%)를 꼽은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연령대가 낮을수록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를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게임업계 노동환경: 코로나19 이후 사업체 규모별 격차 심화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게임업계 생산환경은 신기술 기반으로 급격하게 변화를 맞았다. 메타버스, 블록체인, P2E(play to earn), 인공지능과 관련된 신기술 개발·도입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관련기술 보유 인재에 대한 주요 게임사들의 확보 경쟁도 심화됐다. 이에 따라 주요 게임사들의 인력과 인건비 지출이 함께 증가했는데, 특히 개발직군의 임금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22년 2분기 이후 10대 상장 게임사의 정규직 인력은 오히려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코로나19 특수의 종료, 인건비 급등에 따른 비용 부담, 신작 미출시 혹은 실적 미흡 등의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외적 환경도 긍정적이지 않다. 엔데믹이 본격화되는 국면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악화, 전쟁, 중국의 게임규제 강화 흐름들도 한국 게임업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단기간 내 인력상황이 급변한다는 것은, 그만큼 게임시장의 노동환경이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상대적으로 큰 회사들까지 그렇다면, 작은 회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유연화를 둘러싼 논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 출범 후인 2022년 6월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 및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 등을 포함하는 유연근로제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게임업계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단계적으로 적용되고 안착화되어 가는 분위기에서, 이러한 계획은 사측과 노조를 중심으로 한 종사자측 입장을 다시 한 번 갈라놓는 계기로 작용했다. 노동시간 유연화를 찬성하는 사측의 논거는 주 52시간제 자체가 게임업계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 중국 등 글로벌 게임사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우려가 커진다는 것, 현장에서 유연근로제의 활용률이 떨어진다는 것 등이었다. 반면 노조측은 노동시간이 유연화될 경우 그간 게임업계 노동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었던 크런치 모드가 다시 활성화될 우려가 크며, 과로사 등 여러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결국 노동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 우려한다. 그에 따르면 일부 기업들이 시행 중인 휴양지 워케이션, 주 4일 근무제 도입 등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큰 기업에서 노조에 가입해 있는 종사자들은 교섭권을 바탕으로 처우와 복지 등에 있어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반면, 노조가 부재하고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소게임사 종사자들의 경우 노동환경 악화의 위험성이 더 커질 수 있다. 이처럼 2022년 국내 게임업계 노동환경은 안팎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속에서, 일부 긍정적인 변화, 그리고 고용, 노동시간, 처우 등에 있어 대체로 불안정한 요소들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였다. 바로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국내 게임시장이 쇠퇴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당분간 노동환경은 더욱 안 좋아질 확률이 높다. 한국 게임시장 전망: 안정기에서 쇠퇴기로, 그리고 불확실성의 증대 한국의 게임들이 질적·양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전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 게임시장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지만, 시장규모가 갈수록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 게임시장 규모는 2022년 대비 10.9% 감소한 19조 7,900억 원을 형성할 전망이다. 2013년 전후로 마이너스 성장한 적 없던 한국 게임시장이, 그리고 이제 20조 규모에 안정적으로 접어든 듯 보였던 한국 게임시장이 이처럼 위축될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엔데믹으로 향유 가능한 여러 엔터테인먼트와 야외 활동이 많아진 때문이자,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부진이 현실화되고 있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게임시장의 주축인 모바일 게임시장은 꾸준히 전체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유지는 하겠지만, 그 성장률은 한국 경제 전반의 움직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PC 게임시장은 멀티 플랫폼화와 충성도 높은 플레이어들의 존재에 힘입어 현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콘솔 게임시장 역시 멀티 플랫폼화, 니치마켓을 추구하는 게임 개발사들의 진입 등 성장에 긍정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지만, 차세대 콘솔기기가 언제 출시돼 얼마나 인기를 끌지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될 듯하다.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크지 않은 아케이드 게임과 게임장은 특별한 전기 없이 아케이드 게임을 즐기는 세대들의 엔터테인먼트 트렌드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가정 보유 PC의 고사양화가 상당히 진행되고 PC방을 찾을 유인이 낮은 상황에서 PC방의 인기는 갈수록 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인건비, 개발비, 간접비 등 제반비용의 상승은 게임업계의 영업이익에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불경기가 심화되고 사람들의 전반적인 가처분소득도 감소 중이다. 글로벌 게임시장도 마찬가지지만, 한국 게임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예측이 어려운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다. 시장규모의 축소가 예상된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될지, 또 얼마나 계속될지, 그것에 정부, 업계, 그리고 플레이어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구체적이면서도 다양한 논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도시 밖도 자본의 바깥은 아니다 - 〈동물의 숲〉과 자본주의

    ‘문명 6’에 등장하는 ‘쇼핑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업지구가 아닌 주거지역에 지을 수 있는 건물로 등장한다. 건물의 효과 또한 쇼핑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조금 다른데, 단순히 상업수익이 나는 곳이 아니라 거주민의 쾌적도와 지역의 관광을 크게 올려주는 효과가 핵심이다. 우리의 여가는 시스템 밖을 꿈꾸지만, 그 밖을 향하는 경로까지도 자본주의 시스템은 상품화한다. 설령 무인도에서의 고요한 삶을 꿈꾸더라도 그조차도 Inc. 가 붙은 기업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숲〉의 설정은 애초에 그런 삶을 생각하며 게임 시스템에 접속하게 되는 시대에 대한 거친 스케치로도 읽힌다. < Back 도시 밖도 자본의 바깥은 아니다 - 〈동물의 숲〉과 자본주의 04 GG Vol. 22. 2. 10.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동숲〉)은 여러 모로 게임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 새로운 콘솔 플랫폼이었던 ‘스위치’의 흥행에 일조했으며, AAA급 게임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전통적인 게이머 타겟층과는 사뭇 다른 지점에서 붐을 일으켜 한편으로는 게이머의 범주 확장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동숲〉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붐을 일으키며 게이머가 아닌 이들의 입에도 오르내릴 수 있는 수준의 흥행을 가져왔다는 점은 이 게임의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널리 퍼져나가는 게임은 그만큼 사회와 관계맺는 영향력의 면적 또한 넓을 수 밖에 없다. 하나의 게임이 만들어낸 세계와 그 세계의 법칙은 내적 완결성을 갖추고 아름답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게임이용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사람들로 하여금 무작위 팀 매칭 기반의 협업 플레이라는, 마치 대학교 조별과제 같은 협업의 방식을 일상화시킨 것과 비슷하게 〈동숲〉의 게임 구조 또한 플레이어에게는 일련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물론 그 메시지가 대단히 강력한가,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부분이 많지만, 한 게임이 제시하는 완결된 세계가 주는 메시지의 의미 자체를 살펴보는 일은 그리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게임은 깊게든 얕게든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사는 세계 혹은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에 대한 해석과 재현으로 이루어진다. 〈동숲〉의 게임규칙 또한 이러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인도에 정착해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휴양의 섬은 누구의 것인가? 〈동숲〉은 기본적으로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강렬하게 무엇을 추구해야 한다는 요구를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플레이어는 휴양과도 같은 목적으로 준비된 무인도에 입도하며, 거기서 간단한 텐트를 치면서 이런저런 활동을 시작한다. 무엇을 하건, 언제까지 하건 딱히 게임은 급하게 달성해야 할 무언가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매우 느리고 담담한 템포가 게임 전반을 지배한다. 그러나 느린 템포가 곧 게임이 완전한 샌드박스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동숲〉은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게 플레이어로 하여금 도전해야 할 다음 과제를 은근하게 제시하며 게임의 진행에 일련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텐트로 만들어진 집은 조금씩 튼튼하고 넓은 집의 모양으로 발전해 나가며, 낚시와 수집의 결과물들은 박물관과 수족관 안에서 빈 자리를 채워나가며 쌓여간다. 게임이 제시하는 이 모든 과제들은 제한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게임을 진행시키기 위해 거쳐야 할 요소들로 제시된다. 도전을 요구하는 갈등을 제시하는 게임의 방식은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를테면 집 구매를 위한 대출의 방식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인 플레이 결과로는 〈동숲〉에서 플레이어는 집 건축의 시기가 도래했을 때 충분한 금액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인다. 매우 자연스럽게도 너구리는 플레이어에게 ‘그래서 대출이 준비되어 있습니다’를 제시하고, 플레이어 또한 자연스럽게 이 대출을 받아들이며 집의 개축이 시작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표면적인 방식은 동일하지만, 이때부터 〈동숲〉의 플레이는 조금 달라진다. 기존의 방식이 되는대로 플레이하며 돈을 모으는 식이었다면, 대출 이후부터는 원금상환을 위한 플레이로 변화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상환이 돈으로만 이뤄지지는 않는다. 게임 안에서는 딱히 돈을 크게 벌 만한 요소들이 직접적으로 제시되지는 않으며(단 하나의 예외는 후술한다) 오히려 여러 활동으로 쌓는 마일리지 포인트가 주요 대출상환의 방법으로 이용된다. 상환의 압박은 현실처럼 거세지 않고 다양한 방법, 무기한에 가까운 상환기한처럼 유연하게 제시되지만 그렇다고 근본적인 구조인 대출 – 상환 시스템이 사라지는 것 또한 아니다. 대출이라는 방식을 통해 부동산(집)을 구매하고 개축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제는 보편적인 일로 다가오긴 하지만, 게임에서의 방식은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다른 방식, 돈을 모아 집을 사는 일과 비교해볼 때 그 효과가 잘 드러난다. 더 넓고 많은 장식물과 비품을 갖춰둘 수 있는 좋은 집을 갖기 위해 먼저 막대한 자금을 열매 주워팔기와 물건만들어 팔기로 시도한다고 생각해 보자. 집의 효용을 맛보기 전까지 이런저런 활동으로 푼돈을 모으는 시간은 길고 지루해진다. 그러나 자금이 충당되기 전에 먼저 집 공사가 시작되고 대출장부에 이름만 올라가는 〈동숲〉의 방식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대출자금의 긴 상환을 잊게 만들 만큼의 효용을 제시한다. 이는 게임 디자인의 일환이지만 동시에 오늘날 부동산과 같은 고가의 거래물이 대출을 끼고 돌아가는 매우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차피 장기간에 걸친 축적으로만 살 수 있는 물건이라면, 적절한 신용보증이 되는 상황이라면 효용을 먼저 누리고 천천히 자금을 갚아 나가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먼저 누리고 나중에 내되, 선불과 후불만큼의 시간차는 금리로 계산되어 상환액에 포함되는 것이 오늘날의 대출 구매 방식이다. 〈동숲〉은 표면적으로는 대자연 속의 힐링, 복잡한 도시를 떠난 무인도에서의 맑고 아름다운 삶을 제시하지만 그런 삶의 중심을 이루는 주택구매라는 포인트는 자연속의 힐링이라는 주제와는 사뭇 다른,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핵심이 뼈대에 자리한 대출구조를 통해 연출된다. 비슷하게 무인도의 삶을 소재로 삼았던 게임 〈심즈 2: 캐스트 어웨이〉는 (물론 여기는 조난에 가까운 상황이지만) 섬에서의 삶을 구현할 때 별도의 화폐경제나 대출 같은 방식이 포함되지 않는다. 같은 무인도의 자연 속 삶이지만 〈동숲〉은 여기가 현대 문명과 완전히 동떨어져있지 않은 곳임을 건축회사와 대출구조, 상점 등을 통해 끊임없이 플레이어에게 주지시킨다. 많은 이들의 탄식과 환호성을 불러왔던 게임 속 시스템인 ‘무 상인’의 존재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 일요일마다 방문하는 행상 ‘무파니’의 무는 딱히 다른 용도가 주목받지 않는, 말그대로 투자수익을 위한 미니게임의 용도로 게임 안에 의미지어진다. 막대한 채무를 손쉽게 돌파할 수 있는 루트로서의 무 투자는 마일리지 도전과제가 있을 만큼 추천되는 플레이인데, 무 값의 변동은 게임 내 다른 요소들과 완전히 무관하며 오직 매수가와 매매가의 차이만이 중요하게 다뤄질 뿐이다. 평화로운 섬에서의 휴양 중에 그것도 매주 일요일마다 찾아오는 ‘무파니’의 존재 또한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연에서의 휴양이라는 컨셉과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이다. 〈동숲〉, 사이버공간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스타필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풍광에서의 휴양이라고는 하지만 〈동숲〉이 보여주는 그 힐링의 현장은 우리의 이상과는 다르게 매우 자본주의적인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힐링공간이다. 플레이어가 전입해 온 이 평화로운 섬에 먼저 와 기다리는 것은 너굴 주식회사의 인프라임을 게임 도입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곤충채집과 조개줍기, 낚시와 정원가꾸기는 모두 너굴 주식회사가 제공하는 휴양 프로그램의 일환임을 게임은 시작부터 끝까지 여러 가지 요소들을 통해 강조한다. 휴양을 위해 도시는 벗어났지만, 플레이어는 여전히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날 수 있는 출구로서의 무인도 또한 주식회사라는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경로이며, 낭만적인 휴양도 거대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인프라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동숲〉은 시사한다. 심지어 그 시스템이 부과한 채무를 손쉽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 또한 일종의 투자 게임인 무 투매라는 점에서 〈동숲〉이 제시하는 휴양의 세계는 한편으로는 섬뜩하다. 우리가 늘 동경하고 욕망하는, 세계의 짜여진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조차도 결국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 욕망을 포착하고 만들어낸 상품일 뿐이라는 점에서다. 〈동숲〉이 드러낸 현대인의 여가와 휴양에 관한 단면은 실제 현실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말의 여가를 위해 이른바 ‘교외’로 불리는 곳을 향해 나들이를 떠난다. 실제로 도시의 삭막한 환경을 벗어나 산과 강을 찾기도 하지만, 그 교외에 위치한 복합 엔터테인먼트 쇼핑몰들의 존재는 〈동숲〉이 보여준 상품으로서의 휴양을 현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예시들이다. ‘스타필드’와 같은 브랜드 쇼핑몰들은 도시의 번화가에 자리한 백화점과 달리 ‘교외’를 중심으로 자리잡으며, 방문객들로 하여금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쇼핑’이라는, 소비와 여가를 결합시킨 활동을 통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상품관계 속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문명 6’에 등장하는 ‘쇼핑몰’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업지구가 아닌 주거지역에 지을 수 있는 건물로 등장한다. 건물의 효과 또한 쇼핑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조금 다른데, 단순히 상업수익이 나는 곳이 아니라 거주민의 쾌적도와 지역의 관광을 크게 올려주는 효과가 핵심이다. 우리의 여가는 시스템 밖을 꿈꾸지만, 그 밖을 향하는 경로까지도 자본주의 시스템은 상품화한다. 설령 무인도에서의 고요한 삶을 꿈꾸더라도 그조차도 Inc. 가 붙은 기업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숲〉의 설정은 애초에 그런 삶을 생각하며 게임 시스템에 접속하게 되는 시대에 대한 거친 스케치로도 읽힌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트롤링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게임이나 플레이어의 폭력성이나 가학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게임 시스템 활용의 하나이자, 전체 플레이의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실천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Back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트롤링 14 GG Vol. 23. 10. 10. 게임과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게임하는 과정 내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행위다. 특히 갈수록 많은 게임들이 혼자서는 플레이하기 어려운 형태를 취하는 상황에서, 많은 플레이어들이 게임 안과 밖을 오가며 자유롭고 활발하게 커뮤니케이션한다. 플레이어들은 멀티 플레이어 게임 플레이를 통해 게임 시스템이 부여하거나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뿐 아니라, 언어 대화와 비언어 표현을 통해 흥미롭고 창의적인 상호작용을 경험한다. 이제 대부분의 멀티 플레이어 게임들에는 플레이어들 간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정보(내적) 인터페이스가 기본적으로 포함된다. 플레이어들은 그러한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게임 관련 정보를 교환하고, 전술·전략을 세우며, 때로는 사적인 일상을 나누기도 한다. 보다 원활하고 재미있는 게임 플레이, 그리고 새로운 게임 플레이 커뮤니티의 형성에 있어 (정보 인터페이스를 경유한) 플레이어(들) 간 커뮤니케이션은 필수적인 요소다. 그렇게 커뮤니케이션은, 게임 플레이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플레이어들 간에 이뤄지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꼭 게임 플레이를 원활하고 재미있게 만들거나, 새로운 커뮤니티의 형성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 비중의 커뮤니케이션이 그 반대의 상황을 가능케 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다른 플레이어(들)을 조롱·모욕·비방하거나, 게임 플레이의 흐름을 막거나 뒤엎고 의미 없게 만드는 커뮤니케이션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질 때, 플레이어(들)은 모든 게임 내 정보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거나 괴롭히는 등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기는 데 전념한다.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기는 커뮤니케이션은 (일부 발화자에게는 재미나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줄지 모르나) 대개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그들로 하여금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대응을 하게 만들며, 때론 게임 바깥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현피, 고소 등)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멀티 플레이어 게임들은 시스템적으로 대비책을 마련해놓고 있다. 채팅창에 아예 욕설을 입력할 수 없게 하거나, 긍정적이지 못한 커뮤니케이션을 한 플레이어에 대한 다른 플레이어들의 신고가 누적되면 제재(채팅 금지, 접속 금지 등)를 가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물론 시스템으로 강제하는 법칙이 아니라 해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매너를 지키는 것은 일종의 약속된 규칙이다. 하지만 게임 내 많은 상황에서 특정 플레이어들은 참지 못한다. 일부 플레이어들은 고의로 긍정적이지 못한 커뮤니케이션을 남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언어 커뮤니케이션뿐 아니라,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도 빈번하게 이뤄진다. 심지어 시스템적으로 언어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게끔 설계된 게임, 그리고 조롱·모욕·비방을 위한 표현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위주의 게임에서조차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기는 커뮤니케이션은 행해진다. 어떤 상황에서든 플레이어들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그 방법은 상대에게 먹히고, 곧 게임 내에서 통용된다. 명시적인 언어 커뮤니케이션에 비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고 맥락적이다. 그렇기에 잘 발견되지 않고, 시스템적 제재도 덜 받거나 받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게임 내에서 통용되고 문법화된다는 것은, 그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언어 커뮤니케이션만큼이나 명시적인 트롤링(trolling) 기법이 됨을 의미한다. 트롤링이란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불편하거나 화를 낼만한 행동을 의도적으로 해서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행위를 말한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특히 그 중에서도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모욕하거나 비방하는 등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살피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왜 그리고 언제 이뤄지는지, 트롤링과의 연관 속에서 발생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게임 안과 밖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왜 그리고 언제 이뤄지는가 게임에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경우는 세 가지 정도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세 경우는 상호배타적이지 않으며, 특정 상황에서 연결되거나 둘 이상의 유형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첫째, 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이뤄지는 경우다. 많은 멀티 플레이어 게임들이 문자·음성 채팅과 같은 언어 커뮤니케이션뿐 아니라, 짧은 감정 표현, 이모티콘 등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을 제공한다. 이 때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커뮤니케이션까지는 필요 없거나 언어 커뮤니케이션만으로는 특정 감정이나 정보를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에 주로 사용된다. 둘째,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어려운 경우다. 긴박한 상황이거나, 양손과 온 신경을 항상 써야 하는 상황에서 짧은 감정 표현, 인장, 스마트 핑(packet internet groper: ping)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보다는) 긴 메시지를 함축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끔 돕는다. FPS(first person shooter)나 AoS(aeon of strife) 같은 게임류, 그리고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의 레이드(raid)와 같은 특정 게임 상황에서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물론 이 때 게임 안에서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만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게임 바깥으로는 음성 채팅을 활용한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병행하는 일 또한 가능하다. 첫째 경우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냄으로써 게임 커뮤니케이션 전반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면, 둘째 경우는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빈 곳을 메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플레이어 간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경우다. 시스템적으로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데 특정 상황에 의해 하지 못하는 것과, 애초에 시스템적으로 언어 커뮤니케이션이 막혀 있고 비언어 커뮤니케이션만이 허용되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며 이는 후자에 한한 이야기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구현하기 위한 작업과는 반대 축에서, 게임 디자이너들은 플레이어(들) 간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기 위한 작업에도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노력은 대체로 플레이어 간에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하는 일이, 서사 진행에 방해가 되거나 플레이에 적합하지 않거나 플레이어(들) 기분에 악영향을 줄 확률이 높은 게임들을 위한 것이었다. 가령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에서 플레이어는 얼라이언스와 호드라는 적대적인 두 진영 중 하나를 선택해 캐릭터를 만들게 되는데, 각기 다른 진영 플레이어 간에는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다. 오직 제스처를 통해서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 디자인은 두 진영 사이에 서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방식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플레이어(들) 간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는 게임을 할 때조차도, 플레이어들은 부정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한 방법을 찾아낸다. 대표적인 방법이 ‘감정 표현’을 활용하는 것이다. TCG(trading card game) <하스스톤(Hearth Stone)>에서 플레이어는 본인이 선택한 영웅을 클릭(PC로 플레이하는 경우)하거나 터치(모바일로 플레이하는 경우)함으로써 간단한 감정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그 자세한 메시지는 영웅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메시지는 ① 감사, ② 칭찬, ③ 인사, ④ 감탄, ⑤ 이런!, ⑥ 위협의 6가지 감정 표현을 담아낸다. 혹자는 그 메시지 자체가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플레이어가 직접 입력하는 것이 아니며, 세부 내용을 고르거나 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클릭/터치 한 번으로 발화자가 기재하지 않은 메시지를, 그것도 특정 감정에 대한 것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하스스톤>의 인스턴트 감정 표현은 한 단어로 적은 이모티콘이자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6개의 감정 표현에는 사실상 ‘⑥ 위협’ 정도를 제외하고는 부정적 메시지가 존재한다 보기 어렵다. 하지만 특정 맥락에서 플레이어는 6개 중 한 개 이상의 감정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을 조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대 플레이어 턴에서 시간이 지연될 때 ‘③ 인사’를 연타하면, 그것은 상대에 대한 재촉을 나타낸다. 상대가 실수하거나 상대에게 큰 피해를 준 후 ‘① 감사’ 표현을 하는 일은 누가 봐도 조롱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전사 캐릭터 중 하나인 ‘정신 나간 천재 박사 붐(이하 ‘붐’)’은 반말은 기본이고 특유의 길면서도 도발적인 어휘(예를 들어, ① 감사: “고마워! 넌 마지막에 처리해줄게”)와 (심지어) 억양으로 인해 그 어떤 다른 캐릭터들보다도 상대 플레이어의 짜증을 유발한다. (앞선 두 번째 사례를 붐이 한다고 생각해보자...) AoS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이하 ‘LoL’)>에서도 챔피언들 감정 표현이 존재한다. 컨트롤(Ctrl) 버튼 1부터 4까지를 누름으로써 각각 농담, 도발, 춤, 웃음을 사용할 수 있다. 동작이 큰 챔피언은 감정 표현을 하지 않을 곳에서 감정 표현을 (연타)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소위 ‘인성질(게임 플레이에서 나쁜 매너를 보이는 행위)’을 할 수 있다. 게임이 안 풀리는 상대방을 향해 시끄럽게 웃어대거나 촐싹대는 움직임을 반복하는 행위는 상대 플레이어(들) 기분에 아주 큰 타격을 주기도 한다. 이유는 알기 어렵지만 에서 시스템적으로 상대의 감정 표현을 차단할 수 있게끔 해놓기는 했다. ‘인장’을 통한 인성질도 빼놓을 수 없다. 인장은 게임 내 승패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상대 플레이어를 도발하고 조롱하는 데에는 유용하게 쓰인다. 라인전 시작 전 머리 위에 숙련도 인장을 띄우며 선전포고하는 것부터 시작해, 죽은 상대 챔피언 앞에서 인장을 연속으로 펼치는 행위, 심지어 e스포츠(e-Sports) 대회에서 상대 플레이어의 전 소속팀이나 승리 팀의 인장을 사용하는 행위 등이 이에 속한다. 특히 AoS 장르 게임들에서 자유 사용되는 ‘스마트 핑’을 반복적으로 날림으로써 특정의 긍정적이지 못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있다. 스마트 핑이란 팀원에게 특정 메시지(공격, 수비, 경고, 지원 요청 등)와 관련된 신호를 보내 플레이를 원활하게 해주는 기능을 말한다. 핑을 날리면 모든 파티원들이 그 신호를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핑 남발을 막기 위한 회수 제한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Heroes of the Storm>에서는 플레이나 커뮤니케이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같은 편 플레이어(들)에게 반복적으로 핑을 찍음으로써, 해당 플레이어(들)의 부족한 실력이나 그(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플레이 방식을 바꿈으로써 같은 편이나 상대 편 플레이어(들)에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부러 대충 플레이하거나, (특히 턴제 게임에서) 천천히 플레이하거나, 진행 중인 게임을 중간에 종료하거나(물론 멀티 플레이어 게임에서 이 경우에는 대체로 시스템적 제재가 가해진다), (특히 RTS(real-time strategy)에서) 동일 진영을 공격하는 행위 등이, 굳이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 플레이어(들)을 자극하는 방법들이라 하겠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만 사용 가능한 게임들에서, 경기가 끝난 후 상대방에게 친구 요청을 보내 (상대방이 요청을 받으면) 본격적(?)인 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는 플레이어들도 있다. 그 밖에도 부정적 의미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하며, 끝없이 새롭게 개발되고 통용된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과 트롤링, 그 의미 그렇다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트롤링은 게임 안과 밖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첫째,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트롤링은 게임의 시스템적 디자인과 플레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이 어떻게 서로 얽히고 충돌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사례다. 멀티 플레이어 게임에서는 시스템적으로 허용되든 그렇지 않든,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허용되기만 한다면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대폭 제한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친근하고 편안한 커뮤니케이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게임 디자이너들의 목표와는 노골적으로 배치된다. 메시지 내용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떠나 생각해본다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새로운 맥락이나 용도로 바꿔 쓰는 일은 플레이 차원에서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의 진화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진화는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상대에게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마려는 플레이어(들)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상대에게 받아들여지고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지의 과정을 고찰할 수 있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둘째, 부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보내는 플레이어와 그것을 받는 플레이어를 보다 입체적으로 상상할 필요가 있다. 맥락 바깥의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는 감정 표현이나 스마트 핑을 반복하는 행위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정 게임 내에서만 작동하는 관습과 코드에 익숙하지 않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커뮤니케이션처럼 명시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플레이어에 따라 특정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민감도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범위가 다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보내는 플레이어의 의도도 다양하다. 어떤 플레이어(들)은 상대 플레이어(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려 한다. 또 다른 플레이어(들)은 상대 플레이어(들)을 조롱·모욕·비방하는 데서 재미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플레이어는 극소수이거나, 아주 특정한 맥락에서만 그런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 믿는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부정적 커뮤니케이션의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고, 플레이 과정에서 느낀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얼핏 언어 커뮤니케이션만큼 노골적이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정 맥락에서는 언어 커뮤니케이션이 할 수 없는 표현을 가능케 함으로써 더 큰 효과를 획득하게 될 수 있다. 플레이어(들)에 따라, 그들이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그와 관련되는 의도와 수용도에 따라 보내는 메시지와 받는 메시지의 효과와 의미가 더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다. 마지막으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대 플레이어(들)을 조롱하거나 모욕하거나 비방하는 등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를 ‘트롤링’으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재고가 요구된다. 글 말미에 어울리지 않는 말일 수 있겠다. 트롤링은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불편하거나 화를 낼만한 행동을 의도적으로 해서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행위를 총칭할 뿐이며, 그 범위가 당연히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부정적 커뮤니케이션을 보내는 플레이와 그것을 받는 플레이어 간 메시지에 대한 이해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점은 차치하고)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언어 커뮤니케이션보다 모호한 만큼, 그 커뮤니케이션의 자장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 간 관습과 코드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며, 기본적으로 중의적이다. 의도는 있을지언정, 그 반응은 의도와 같지 않을 수도 있다. 항상 반응을 의도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발신하는 일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다. 게임에서의 트롤은 놀이로서의 플레이 진행을 방해하는 존재들인데,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이 언제나 게임 플레이를 게임 플레이 답지 않게 만든다고도 보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트롤링으로 칭하는 일이 적절하든 그렇지 않든, 그리고 앞으로 계속 그렇게 칭해지든 그렇지 않든,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앞으로도 게임 내에서 죽 이어지거나 어쩌면 더욱 활발하게 가시화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글에서 살펴본 류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게임의 시스템적 디자인과 플레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 사이의 충돌, 커뮤니케이션이 제한적으로만 이뤄질 수 있는 게임에서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역동성 혹은 진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낳는 메시지 의미에 관한 플레이어 간의 합의 또는 협상 문제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풍부한 커뮤니케이션이 반드시 풍부한 시스템적 설계나 정보 인터페이스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 논의의 초점을 맞췄지만, 사실 이는 긍정적인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나아가 언어 커뮤니케이션과의 조화 속에서 언제나 함께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게임이나 플레이어의 폭력성이나 가학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게임 시스템 활용의 하나이자, 전체 플레이의 맥락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실천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플레이어(들)이 허용하는 적정선 하에서, 이런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은 게임 커뮤니케이션의 일부이자 플레이의 일부다. Tags: 하스스톤, 핑, 스마트핑, 트롤링,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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