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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쥐와 함께 6년을 살아 온 인디게임사, <카셀게임즈> 황성진 대표
올해로 창립 6년 차를 맞은 카셀게임즈의 황성진 대표를 만나, 그의 창작 철학과 개발 과정에 대한 고민, 인디게임사 운영의 현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향한 구상까지 진솔하게 들어보았다. < Back [인터뷰] 쥐와 함께 6년을 살아 온 인디게임사, <카셀게임즈> 황성진 대표 25 GG Vol. 25. 8. 10. 이번 호 GG는 서강대학교 게임교육원 출신 학생들이 설립한 인디 게임 개발사 카셀게임즈를 주목한다. 카셀게임즈의 첫 작품 <래트로폴리스(Ratropolis)>는 카드 게임과 디펜스 장르의 요소를 결합하여 쥐들의 도시를 지키는 게임으로, 스팀 ‘탑셀링’ 카테고리 1위를 차지하며 게임 팬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뒤를 이은 차기작 <래토피아(Ratopia)>는 쥐들을 통치하여 사회를 건설하는 샌드박스-던전형 도시 경영 시뮬레이션이며 2023년 경기게임오디션에서 2위를 수상하는 등 가능성을 입증했다. 올해로 창립 6년 차를 맞은 카셀게임즈의 황성진 대표를 만나, 그의 창작 철학과 개발 과정에 대한 고민, 인디게임사 운영의 현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향한 구상까지 진솔하게 들어보았다. 중소 인디게임사의 살아남기 이경혁 편집장: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게임사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황성진 대표: ‘카셀게임즈’는 서강대학교 평생교육원이라는 게임 교육 전문기관에서 교육받던 학생들이 창업해서 만든 게임 개발사입니다. 대학생 때 만든 <래트로폴리스>에 많은 분들께서 사랑과 응원을 주셔서 창업 기반을 다졌고, 지금은 차기작 <래토피아>를 개발하고 있구요. 회사 규모도 조금씩 키워나가면서 생존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한국에서 중소형 인디 개발사로 6년을 무사히 헤쳐나온 게 쉬운 일은 아니셨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중견급이라 할 수도 있을텐데요, 출시하신 작품 2개가 나름 시장에서 성과를 유의미하게 보이고 있는데 소회가 어떠신지요. 황성진 대표: 주변에 개발자 모임 가면 뵙고 싶었던 분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는 걸 보며 마음이 아픈데요. 저희도 응원해 주신 국내 팬 분들이나 정부나 기업체 지원이 아니었으면 현상 유지가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까지 주변에서 좋게 평가해 주시는데도 중소 개발자들의 어려움이 크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직 더 발전해야 된다는 걸 느끼고, ‘다음 작품은 더 대박나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하게 됩니다. 이경혁 편집장: 인터뷰는 카셀게임즈라는 회사 얘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실제로 6년간 중소 게임사를 이끌며 겪었던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있었을 텐데요. 가장 힘들었던 점이나, 정부나 기관에서 개선해야 한다고 느끼는 문제점들이 있었을까요? 황성진 대표: 팀원들도 회사 생활이 처음이었고 저 역시 비슷하다 보니, 조직 내부에서 운영방향이나 비전, 체계를 정립하는 법을 배우고 서로 맞춰나가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대외적 차원에서 어려웠던 점은 법 이슈나 해외 사이트의 심의절차 정도가 생각나구요. 아니면 보험이나 퇴직금 문제들. 이런 것들을 저도 잘 모르다 보니 갑자기 지출이 확 나가면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어요. 전부 무지에서 비롯된 것들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곳을 창업하기 전에 다른 회사 경험은 없으셨던 거군요. 황성진 대표: 네. 제 경우 단기 인턴이나 지인 회사 일을 도와드린 수준의 경험만 있었고, 저희 다른 팀원들도 거의 다 알바생이었습니다. 그나마 같이 오래 협업했던 프로그래머 분이 회사나 사업 운영경험이 있으셔서, 공부를 따로 해서 회사처럼 운영하기 위한 노력들을 공유해 주셨어요. 지금 제가 대표직이긴 하나 경영 쪽은 그분이 좀 더 주도적으로 얘기해 주시고 협의하는 식으로 맞춰가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람들이 ‘청년 창업’이라는 얘기를 쉽게 하지만 기업 경험을 많이 못 해 본 청년에게 창업 지원만 하는 게 과연 충분한가 싶어요. 특히 게임 개발사는 콘텐츠를 만들고 운영하는 능력과 기업을 운영하는 능력이 모두 필요한데, 이 둘은 서로 성격이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기업 운영과 관련된 교육이나 지원을 따로 받은 경험이 있으셨을까요? 황성진 대표: 그렇진 않았어요. 경기콘텐츠진흥원 등에서 창업교육 관련 프로그램들이 있긴 하지만 저희는 그 단계는 좀 건너뛴 상태였구요. 멤버들도 어떻게 보면 사원보다는 팀원의 형태에 가깝다보니, 경직된 회사 문화보다는 서로의 피드백을 통해 바꿔나가는 능동적인 운영형태를 원하기도 했어요. 기존의 일반적인 기업이 갖는 체계에 저희 개발자들을 맞추는 게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지금 팀원이 7명 정도인데, 앞으로 회사가 더욱 커진다면 이런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을 텐데 계속 규모를 확장할 계획이 있으신 거죠? 황성진 대표: 추후 회사가 확장될 여지가 있다고 보지만, 아무래도 체계를 정립하고 규칙을 만들 때 생기는 문제들이 우려되긴 합니다. 기존의 멤버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규칙을 만드는 순간 그걸 관리해야 하는 관리자의 코스트도 있고. 없었던 게 규칙으로 생기면 그걸 지켜야 된다는 문제도 있을거구요. 이경혁 편집장: 동아리와 회사의 경계에 있는 조직들이 겪는 문제 같네요. 소규모일 때는 별 문제가 안 되다가 조직이 커지고 원래 우리 그룹이 아니었던 사람이 들어올 때 새로 생기는 문제에 대한 감각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황성진 대표: 네. 그렇다보니 신규 채용을 하고 나서도 자체적으로 조직 체계를 정리하는 시간도 한번 가져보고 이런 식으로 진행해 왔던 것 같아요. 저희 팀 운영을 하면서도 이런 점들이 쉽지 않은데, 다른 인디 개발사 대표님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더라고요. 다른 게임사는 팀원 간 조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리더쉽을 발휘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이경혁 편집장: 여러 고민이 많으시겠지만, 반대로 카셀게임즈가 6년간 회사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한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게임 개발 지망생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떠신가요? 관련 강연도 좀 하셨던 것 같은데요. 황성진 대표: 강연에서는 주로 저희가 게임을 어떤 식으로 개발해 왔고 그 과정에서 제가 느끼고 배운 점에 대해 얘기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느낀 점이나 배운 점들 모두 맥락은 똑같았어요. ‘우리는 가진 게 하나도 없으니까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된다’. 워낙 열악한 상황이니 남들보다 어떻게든 돈이 덜 드는 선에서 홍보 효과를 보려 노력하고, 꾸준히 개발 일지를 써서 공유하고 네트워킹에 열심히 참여하고 공모전 유저 피드백 같은 소통도 더 열심히 해야지 발전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취지로 얘기한 기억이 나네요. IP가 된 '쥐' 이야기 이경혁 편집장: 카셀게임즈의 작품 이야기로 넘어가볼까 합니다. <래트로폴리스>가 대표님의 첫 작업이신가요? 황성진 대표: 제게는 팀을 결성해 만든 게임으로서는 여덟 번째 작품이구요. 다른 팀원들의 경우에도 세 번째 프로젝트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로젝트를 만들 때마다 단순히 학교에서 배운 프로세스를 적용해서 평가받고 끝내는 형태가 아니라 실제 유저에게 어떻게 재미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만들곤 해요. <래트로폴리스>는 마지막 학기에 했던 프로젝트였고,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황에서 상용화 가능한 버전으로 도전하고 싶어 만든 게임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팀원들이 출시까지 함께 해주어 진행하게 됐습니다. 래트로폴리스 이경혁 편집장: 국내도 그렇지만 <래트로폴리스>는 특히 해외 반응이 좋았던 걸로 기억해요. 황성진 대표: 저도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국내에서도 잘 만든 인디 게임들이 굉장히 많지만 노출이 안 되어 묻히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공모전 수상으로도 도움을 받았고, 국내 스트리머들이 많이 플레이해 주시다 보니 한국 유저의 게임 구매율이 높아지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스팀에서 상위권을 유지해서 해외 유입도 지속될 수 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겸손하게 말씀해 주셨지만, 해외 반응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이 게임의 장르적 특이성 때문이라고도 생각했거든요. <래트로폴리스>는 한국의 소규모 개발사가 보통 만드는 장르들과는 차별화된 점도 있으니까요. 이 장르를 선택하게 된 배경이 있었나요? 황성진 대표: 인디 게임을 좋아하다보니 매번 출시작들을 탐구하곤 하는데, <슬레이 더 스파이어>가 워낙 인기였잖아요. 저도 정말 재미있게 한 게임인데 이 게임의 특성이 심플한 2D 위주라는 점에 주목해서 이런 시스템을 사용해서 게임을 만들어보려 했어요. 우리가 만들기에 기술력이 너무 뛰어난 모델은 (모티브로) 어렵지만, 노력해서 어느 정도는 따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면 용기가 생기거든요. 또 저희만의 차별점을 챙겨야 하기에 제가 즐겨했던 다른 게임들과도 조합해 봤어요. 처음엔 <문명>과 조합했더니 템포가 좀 느리고 요즘 트렌드에 잘 안 맞는 느낌이었어요. 이후 <킹덤>이라는 또 다른 게임을 참고해 실시간 전투나 디펜스를 참고해 조합했더니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대성공했던 해외 인디 게임 2개를 버무렸다 보니 운이 좋게도 해외 반응도 따라왔던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그래도 턴제 게임인 <슬레이 더 스파이어>를 <킹덤> 류의 실시간 액션으로 녹여낸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두 게임이 근본적으로 가진 차이도 있고요. 황성진 대표: 저희만의 차별성은 실시간과 피지컬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었어요. 다만 <킹덤>에 있는 뷰를 가져왔지만 그곳의 조작 방식이나 주인공 캐릭터를 등장시키지는 않을 거고,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시스템을 가져왔지만 거기서 발생하는 턴제의 신중한 결정 같은 걸 포함하지는 않겠다. 그 게임에서 호평받는 시스템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따라가면 (게임이) 완전히 비슷해질 수 있기 때문에 겹치지 않는 쪽으로 가려고 노력했어요. <슬더스>나 <킹덤>의 특정 부분들을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유저 의견도 많았는데, 처음 이 게임을 만드려 했던 우리의 취지에 벗어나지 않도록 재고를 많이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가로선상에서 일어나는 전투는 <팔라독> 같은 당시 유행하던 모바일 횡스크롤 디펜스 게임의 영향도 크지 않았나 싶었어요. 황성진 대표: 오히려 <팔라독>이나 <냥코 대전쟁> 같은 게임은 거의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긴 했는데 서로 비슷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우연이거나 개발자들의 생각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두 게임을 베이스로 하여 새로운 메카닉을 만들어낸 건데, 이 메카닉의 외피가 ‘쥐’인 것도 흥미로워요. 캐릭터로 쥐를 선택하신 배경도 있을까요? 황성진 대표: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제가 평소에 이 얘기를 워낙 많이 해서 신선도는 떨어질 것 같지만요(웃음). 예전에 기획했던 게임 중 쥐들의 도시인 탑을 올라가서 보스를 잡는 리듬액션 게임이 있었습니다. 그런 컨셉이 마음에 들어서 이번 작품에서도 쥐가 주인공인 게임을 하고 싶었구요. 또 당시 모바일에서 고양이 컨셉 게임이 많이 나오는 상황이라 고양이보다 쥐로 가면 이목을 끌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실험쥐 자체의 느낌이 참 인디게임과 비슷한 것 같아요. 신약 실험시 많은 실험쥐들에게 약을 투여하고 검사해서 그 중에 하나가 효과가 있으면 디벨롭해서 상용화된 약품으로 전 세계에 배급을 하잖아요. 인디 게임 또한 게임성에 대한 여러 실험들을 하고, 그게 <슬더스>처럼 잘 되면 대기업에서도 활용하게 되고 전 세계 사람들이 플레이할 기회가 생겨나는 거죠. 그런 부분 때문에 쥐라는 컨셉에 빠져들게 됐어요. 이경혁 편집장: 출시한 게임 두 가지가 모두 쥐를 디자인으로 한 것도 재미있었어요. 황성진 대표: 두 번째 게임까지 꼭 쥐로 캐릭터를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저희의 생존 전략이기도 했어요. 전작에서 어느 정도 유저 풀이 생기다 보니 어떻게든 이 유저분들도 차기작까지 하게끔 끌고 가게 하는 게 우리가 전략적으로 좀 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해서요. 캐릭터의 모습은 더 예쁘고 귀엽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쥐들이 뭐랄까 전작보다 좀더 다양한 표현을 하더라고요. 카셀게임즈의 두 번째 게임으로 <래토피아>라는 게임이 나왔는데 전작과 장르가 완전히 다릅니다. <래토피아>는 어떤 게임일까요? 간단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황성진 대표: <래토피아>는 도시를 건설하고 경영하는 샌드박스 게임입니다. 플레이어가 쥐들의 도시의 지도자가 되어 마음대로 도시를 통치하면서 통치자의 고충도 한번 느껴보고, 쥐들의 도시가 발전하는 걸 보며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는 그런 평화로운 게임이에요. <래토피아> 이경혁 편집장: 게임을 해보면 정말 쥐들이 굴을 파잖아요. 굴을 파서 도시를 만들고 운영하는 컨셉의 게임들도 적지 않을텐데, <래토피아> 제작 과정에서는 어떤 레퍼런스를 많이 보셨을까요? 황성진 대표: 가장 많이 참고한 게임은 클레이사의 <산소미포함>이었고 <크래프트 더 월드>라는 게임도 많이 참고했습니다. 그 외 2D 어드벤처 게임인 <스팀월드 디그>나 <테라리아>도 있고, 땅을 파는 게임들이 워낙 많다보니 그런 것들도 은연 중에 많이 참고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개인적으로 그런 장르를 참 좋아하고 저 같은 경우 <캡틴 오브 인더스트리>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래토피아>도 처음 데모판을 해보며 국내에서 이런게 나와 참 반가웠던 기억이 있었어요. 이쪽 장르는 사실 처음 만들어 보셨을 텐데 이 장르에 처음 손을 댔을 때는 어떠셨나요? 황성진 대표: 저도 <산소미포함>도 원래 좋아했고 시뮬레이션 게임의 광팬이거든요. 학교 처음 들어갈 때부터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싶었구요. 그런데 전에도 주변에 말해보면 “뭔 소리냐, 우리는 테트리스 만드는 데도 세 달이 걸린다”는 얘기를 듣곤 했어요(웃음). 시뮬레이션은 개발이 그만큼 어려운 장르라 나중에 성공했을 때 도전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래트로폴리스> 이후 차기작 장르 논의할 때 <산소미포함>을 공유해 드렸더니 팀원들이 마음에 들어하셨어요. 게임이 워낙 어렵고 한두 시간 플레이해서는 알 수 없는 게임이지만, 저희가 자신감도 있었고 하다 보니 그렇게 개발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당시에 제가 완전 몰입해서 빠져들었던 게임 장르를 선택했고, 그 게임에서 더 개선했으면 재미있게 했었을 것 같은 부분을 녹여내려고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래토피아>를 <산소미포함>처럼 어떤 기계공학적인 스타일로 만들지는 않으셨던 것 같아요. 황성진 대표: 그렇죠. 그거는 저조차도 너무 어려웠고, 유저 평가나 팀원들과 회의에서 그 부분이 취향에 안 맞는 것 같다는 분들이 많으셔서 좀 더 가벼운 스타일로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전투 시스템이 있으면 재밌겠다는 의견도 있어서 <래트로폴리스>에서 했던 전투 디펜스를 섞어보려 했구요. 이경혁 편집장: 메카닉 자체는 라이트해지되, 전투나 실시간 액션이 좀더 들어간 형태로 결과물이 나온 셈이네요. 현재 <래토피아>의 시장 반응은 어떻습니까? 황성진 대표: 아직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차가운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기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뭔가 저희가 크게 성장하거나 팀원 증원이나 사무실을 저희가 스스로 구할 수 있을 정도의 그런 성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전작의 경우에는 게임 스트리머들의 푸시도 좀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번에는 어땠나요? 황성진 대표: 이번 작품은 아무래도 저희 출시 직전에 <33 원정대>가 워낙 이목을 끌기도 했고, 스트리머 시장 자체도 많이 바뀌었다 보니 주목을 크게 받지는 못했습니다. 다행히 유튜버 풍월량님이 나중에 한 번 플레이하셔서 한국에 좀 알려졌던 것 같아요. 저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저희만의 착각이었고(웃음) 실제 국내 매출은 풍월량님 유튜브가 올라간 시점부터이지 싶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래트로폴리스>와 <래토피아>를 비교해보면 전작은 스테이지 기반이라 스트리밍으로 보여주기가 확실히 편할 것 같거든요. 후자는 특별한 엔딩이 없는 스타일이다보니 중간에 들어가서 보기도 애매하고 시작부터 쭉 긴 시간을 따라가기도 애매한 문제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성진 대표: 그것도 큰 것 같아요. <래토피아>가 스트리머 분들이나 아니면 전시회 같은 데서 하기에 적합한 게임은 전혀 아니거든요. 이번 작품 같은 경우에는 그래서 홍보적인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해외 반응은 어떤가요? 이 게임 장르는 국내보다 해외가 더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황성진 대표: 7월부터 저희가 정부지원으로 해외 인플루언서 대상 마케팅을 진행해보고 있는데요. 초창기 <래트로폴리스>처럼 스팀 탑 차트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유입되는 효과는 얻지 못하다 보니 그렇게 드라마틱한 효과는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얼리액세스 때는 해외 반응이 높았지만 정식 출시 이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나고 있지 않아서요. 다만 <래토피아>는 저희가 서비스하고 유저분들을 더 만나면서 길게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뮬레이션 게임 플레이어들이 성향 자체가 신중하기도 하고 게임도 출시 직후보다 어느 정도 안정화된 게임을 선호하시는 영향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아까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33 원정대>와 출시 시점이 겹쳤었군요. 알고 내셨던 걸까요? 이런 걸 다 피해 갈 수도 없는 거고 어렵네요. 황성진 대표: 네, 원래는 작년 말에 내려고 했다가 계속 부족한 부분들이 밟혀서 개선하다 보니 밀리게 됐거든요. 4월 말까지 갔다가 <33> 소식을 듣고 또 미루었지만 출시 약속은 지켜야겠다 싶어 5월 초로 잡은 건데. 어떻게든 여러 요인을 생각해본다면 그렇지만, 실은 <33>과 저희 유저 풀이 그렇게 겹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서 그냥 저희가 부족했던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래토피아> 같은 게임을 만들 때 제일 어려운 게 규모의 연산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식량을 얼마를 먹고 얼마간 활동할 수 있고 피로도가 얼마가 쌓이는지 처음에 설정한 기본적인 변수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개체가 늘고 공간이 넓어지면서 방대한 연산을 필요로 하게 되잖아요. 그때부터 기획자가 이 복잡한 연산의 결과를 얼마나 일일이 피드백을 해서 고쳐나갈 수 있는가가 제일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고 <산소미포함>이 그런 걸 되게 잘해냈다고 봐요. 실제 기획할 때 그 규모의 경제라 부르는 부분에서 마주했던 어려움 같은 건 없으셨어요? 황성진 대표: 제가 기술적인 담당은 아니다 보니 팀원분들의 의견을 듣고 그에 맞춰 기획 갈무리를 했거든요. 개체 수가 100명이 넘는 도시를 지향하기 때문에 지원하지 못하는 기존 게임의 기능을 어떻게 돌릴 수 있을지도 많이 논의했어요. 여러 아이디어를 건의하긴 했지만 기술적 검토 결과 최적화에 문제가 생기거나 구현이 어려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거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최적화가 안 좋아지면 결국 부정적인 유저 경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험에서도 최대한 최적화에 영향 없이 콘텐츠를 추가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요즘 인디게임 개발사에서는 그런 점 때문에 AI를 넣어서 해결하자는 얘기를 하시는 대표님들이 좀 계십니다. AI가 참 효율적인데 어떻게 좀 붙여볼까라는 고민들을 다들 하시다보니 어떻게 생각하시나 싶은데, 카셀게임즈도 AI에 대한 검토를 하시는 편인가요? 황성진 대표: <래토피아>의 경우 AI가 활성화되기 이전 기반 시스템들을 만들어서 잘 접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AI 답변을 믿고 수정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AI가 아예 저희 시스템 전체를 이해를 해야 거기에 적합한 솔루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인디게임에서 실험적인 시도들이 나오고 결과가 좋으면 대기업이나 다른 팀들에서 그걸 활용하고 발전시킬 텐데요. 아무래도 결국 연산이나 최적화 규모가 커지는 문제다 보니 저희 입장에서 얼리 어댑터처럼 적용하기에는 형편이 그렇게 여유가 있지는 않을 것 같구요. 이경혁 편집장: 슬슬 마지막 얘기로 가야 될 것 같은데, 향후 <래토피아>는 어떤 업데이트 방향을 보고 계신지 궁금하고 차기 신작에 대한 고민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황성진 대표: <래토피아>는 일단 계속 유지보수를 하면서 후속 업데이트를 준비 중입니다. 제가 작성해 놓은 업데이트 리스트에만 몇백 개가 있고 실은 오늘도 10개 정도를 추가하긴 했는데(웃음) 너무 많은 수치라 유저들의 니즈가 큰 것들 위주로 선별해서 진행하려 합니다. 차기작 같은 경우에는 제가 출산을 했고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프로그래머 분께서 총괄 핸들을 맡아서 진행하고 계세요. 장르는 다키스트 던전류의 턴제 RPG가 되었고, 오토 배틀러 형태도 약간 고려를 하고 있습니다. 개발 속도는 빠르게 되고 있어서 올해 말쯤 데모 버전이나 프로토타입 정도가 완성될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카셀게임즈의 세 번째 작품도 ‘쥐 시리즈’로 가게 될까요? 황성진 대표: 맞아요. 그리고 아트 담당자님들의 역량도 더 커졌기 때문에 더 귀엽고 애니메이션이 더욱 발전된 형태로 나갈 것 같습니다. 늘 유저분들이 보내주시는 응원에 감사하고, 저희들이 열심히 개발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많은 기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ags: 인디게임, 인터뷰, 게임산업, 래토피아, 래트로폴리스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할 수 있을까? - 예수 시뮬레이터
예수의 몸에 들어온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지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목수의 체력을 갖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파쿠르는커녕 사다리도 타지 못했다) 과연 예수가 ‘낙뎀’을 받는지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아쉽게도 역시 신은 낙뎀을 받지 않았다. < Back Can Religiosity and Gameness Coexist? — Jesus Simulator 30 GG Vol. 26. 6. 10. This past April, two games— I Am Jesus Christ and Jesus Simulator —became a talking point among gamers. Heavy with religious color from the titles alone, these games drew the attention of reviewers and the games press even before release, and the journalists who played them discussed the works' significance and limits while disclosing their own religious backgrounds: Protestant, Buddhist, Catholic, and so on. In truth, religious material appearing in games is nothing strange. Religion is the IP with the highest recognition worldwide, so its worldviews, figures, and narratives make excellent material to handle in a game. The Diablo series, too, actively borrowed the Christian worldview of angels and demons, and there are games like Fight of Gods that put deities on stage in earnest. Even so, what made these two games an issue was the peculiarity that they are built in the form of following Jesus's actual deeds. The two games do not take Jesus as a motif or deploy him as one more IP; they set out to reproduce, just as it is, the life he leads in Scripture.[1] So what, exactly, does it mean to reproduce the life of Jesus as play within a game? Or rather, before that: games prize agency, while Scripture has its development and conclusion already fixed—so are religiosity and gameness even compatible? I, who identify as both a scholar of religion and a scholar of games, started the game with a glad and fluttering heart. The Gameness of Religion The instant I opened my eyes, now inside the body of Jesus, the first place I ran to was the highest piece of terrain nearby. (I actually wanted to climb to the roof of the tallest building first, but despite possessing a carpenter's constitution, the Lord could not so much as climb a ladder, never mind do parkour.) I was curious whether Jesus would take fall damage. Alas—predictably, God does not take fall damage. Jesus jumping from high ground to take fall damage. This question matters both religiously and in game terms. At the Council of Nicaea in 325, Jesus was defined as God possessing full divinity, but at the Council of Chalcedon in 451 the doctrine of two natures was settled—that he is fully God and at the same time fully human. So if the aim had been perfect religious fidelity, Jesus ought to take fall damage. There would be no need to quantify the damage, but the fact that he can be struck is what matters. More disappointing than that, though, was that I came to feel the limits of the freedom this game pursues. If the purpose is to follow the divine Jesus's life, then fall damage would be an unnecessary feature. As if to prove this hypothesis, I clicked the mouse and pressed the keyboard, yet Jesus would not throw even the most ordinary punch. Paradoxically, because Scripture is such a famous IP, many people have already chewed, torn, tasted, and savored it—in text (the Bible), in voice (sermons and homilies), and in films and dramas. So when the creators went to the trouble of making Scripture into a game, would they not have tried to offer some different experience? To define the concept of "gameness" precisely, a great deal of academic discussion would have to drag on inconclusively; but if we are hoping for something only the medium of the game can give, what is different? At this point I had hoped for agency—the kind that lets content and user interact. The text of Scripture is perfect and inerrant, not a stroke of it to be touched; but if it is being reproduced as a game, I thought, surely there could be some degree of freedom. Yet neither game[2] granted any such freedom. Rather, the place where I discovered something specific to games was not freedom but another area. Even though this is a game in which the character's freedom can be regarded as virtually nonexistent, I Am Jesus Christ strangely enough implements an open-world field. Apart from going to do the next quest, there is nothing the character is built to do, yet they laid out a vast Judean wilderness all the same. A warning appeared that leaving the quest zone would incur a penalty—but can a gamer endure that? Of course not. I, too, ran straight for the edge of the wilderness. The Faith stat visible in the upper right. When you keep running off in the opposite direction from your quest, the Holy Spirit restrains you and the "Faith" stat drops. You cannot leave the map, and even when your Faith runs out you are returned to your original spot—so there was no real freedom—but the interesting thing is this Faith stat itself. In this game, "Faith" works like the "mana" that lets you use the "skills" (?) of transformation (miracles such as turning water into wine), healing, exorcism, resurrection, and God's Gaze.[3] And this mana pool rises in proportion to the number of believers. Of course, in practice you almost never fail to work a miracle because of a lack of mana. Miracle skills are basically unlocked through quests, and doing quests automatically raises your number of followers. And even if gamers like me voluntarily wander off and become lost sheep, right-clicking to pray fills the Faith stat back up, so there is no occasion on which Jesus, short of faith, fails to perform a miracle. Still, this growth element of faith and follower-count can be seen as something specific to the game. Anyone who has practiced a religious life in depth can sympathize with the wish that "it would be nice if faith were quantified." How much more at ease one would feel to read the sutras and make 108 prostrations and know how much merit one had accumulated. This is all the more true in a religious environment where faith operates as a kind of symbolic power. In Protestantism, ever since the Reformation, one has had to be sure of one's own faith and also to prove it. So everyone, pastor and new believer alike, is anxious. To put it precisely, no one can affirm that their faith is, right now, whole. But what if a system were given in which attending dawn prayer earns 10 experience points and reading the Bible cover to cover earns 1,500; in which reaching level 10 grants the gift of tongues, level 20 the gift of interpretation, and level 100 the gift of healing? Anyone could be sure of the growth of their faith according to their own deeds. Believers thus carry a desire to confirm the growth of a faith that exists only abstractly. Even for non-Protestants, the "talent feast" ( dallant janchi ) most people attended at least once as a child is an emblem of this human desire. Just when the talent feast became a fixture in Korean churches as a system is not known, but the talent feast—where you are immediately rewarded for how often you came to church and how diligently you attended—has been used as a part of religious education in the Sunday-school instruction of children. (At the feast, children spend "talents," play-money named for the biblical Parable of the Talents, earned through attendance and good conduct.) Of course, theologically it leaves much room for dispute. Tying the talent to a material reward inverts the parable's original meaning, and it is, besides, an event run on market logic. Moreover, while the desire to grow one's faith is general, the desire to confirm and make visible the growth of faith collides with Protestantism's core doctrine of Sola Gratia ("by grace alone").[4] For underlying it is the notion that faith can grow according to one's own conduct and righteousness rather than the grace of God. This desire conforms, rather, to the neoliberal principle of self-improvement. As George Ritzer argued in 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 , it can be seen as a case in which the logic of McDonaldization—predictability and calculability—penetrates every domain of society: education, medicine, religion, leisure.[5] And yet the human being is an imperfect creature. Within the abstract activity called religion, humans pursue growth and want, too, to confirm it. When the life of Jesus was gamified, the new experience it gave me was precisely this: it confirmed the gameness that was already present in religion. Just as we clear quests and hunt to make a better character, there is, within religion from the start, an inherent structure of game-like desire for growth. Whether these games caught that point well is, of course, a separate matter. The Religiosity of Games Regrettably, these games failed to dissolve a growth system well into the life of Jesus. So let us turn our gaze elsewhere. Owing to its atrocious feel and its seemingly AI-generated quality, Jesus Simulator is poorly rated; but I Am Jesus Christ has been rated "Very Positive" from right after release up to now. It fails to give game-like fun on many fronts—freedom, growth systems—and the minigame that repeats whenever you perform a miracle is bewildering past the point of mere tedium; yet go to the Steam reviews and many people have left positive verdicts, saying "this is not a simple game but a spiritual experience." However lacking the gameness may be, they say, directly experiencing Jesus's life and miracles from a first-person view gave a moving feeling different again from reading Scripture or sitting in a church pew. So what kind of religious experience did these people have in the game? A simple minigame of pressing WASD repeats throughout the game. There was, certainly, something new. Even though the contents of Scripture are very familiar to me from early religious education, there was the experience of seeing on a map—and running around on foot through—the scriptural place-names I had only ever heard of, and the experience of having Scripture's vaguely imagined historical setting concretely reconstructed. Take the Cleansing of the Temple, which every Christian knows: the event in which, when Jesus went up to Jerusalem at Passover, he overturned the tables of the money changers and dove sellers in the temple court and raged, "Do not make my Father's house a house of trade." Reading this in Scripture, I naturally read past it; but actually visiting the Jerusalem temple in the game, it was not a scale where overturning a few tables would bring the chief priests and scribes over to confront you. There were many merchants inside and outside the enormous temple, and—fittingly for a marketplace—amid the din, a moderate commotion could not have drawn everyone's eyes. And yet the game's quest had me smash several animal pens and birdcages, and above all, when I smashed an animal pen, the sheep and goats inside did not vanish but roamed the whole market, throwing it into chaos. Where most games focus only on quest completion and choose to cut resources on what comes after, this game tried to draw a definite situation in time and space. But can this be called a religious experience that a game can give? Strictly speaking, this is closer to an experience of representation than a religious experience. It is the experience of the gaps in imagination being filled as Scripture's text is rendered three-dimensional—of directly seeing, walking, and performing what one had read and heard. It is on a different plane from a religious experience accompanied by transcendence or the sacred. What is disappointing is that the potential of the religiosity of games does not stop at the experience of representation alone. In today's religious-studies scholarship, religion and the religious are thought of as distinct. If religion (Religion) refers to institutionalized systems of belief—doctrine, scripture, community—the religious (the Religious) refers to the whole orientation toward transcendence, the sacred, and ultimate meaning that humans experience, even without belonging to a particular institutional religion. Collective ecstasy at a concert, sports cheering, political fandom, meditation apps—diverse religious experiences can be made regardless of any particular denomination or confession of faith. Games are one more place where this "religious" can emerge. Not simply "experiencing again what one already knows," but feeling shared elation when, in World of Warcraft , you succeed at a raid together after staying up several nights, or asking after the meaning of life, death, and community in RimWorld —games hold the possibility of producing diverse sensations: the uncertainty and contingency humans cannot control, collective emotion, the pursuit of meaning. What is more, games can offer a different mode of religious experience even within institutional religion. The psychologist of religion William James, in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 defined religious experience not by institution or doctrine but as the inner experience of the individual. True religious experience, he said, comes not from something like scriptural knowledge but is ineffable, accompanied by a noetic quality, transient, and arriving passively. To make a game from this perspective would mean—rather than an exorcism system bizarre both theologically and in game terms—offering choices like driving in the nails into Jesus from the standpoint of a Roman soldier, or making the player deny Jesus from the standpoint of Peter, so that the player meets an intense religious experience at an unexpected moment. Waiting for a "Hungry Jesus" In this context, let us look at the game again. The game tried hard to reproduce the life of Jesus. It strove to keep period accuracy down to the ethnicities of the people who appear, the events of Scripture, even the trees planted along the road. The 감람나무 ( gamnamu ) of Korean Scripture—which also surfaces in a familiar 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hymn drawn from Habakkuk 3:17, in the line about the olive's fruit ceasing and nothing growing in the fields—is in fact a mistranslation: the Korean term denotes the Chinese olive rather than the true olive of Israel. Yet olive trees, the real thing, are easy to spot all over the game. They agonized over implementing the natural environment of the time. But when representation itself becomes the purpose, the best one can call it is an "educational game." No—even "educational game" is closer to an excuse. When I asked a non-Christian acquaintance who this game's target would be, they said "a game for Christians to play," while a Christian acquaintance said "an educational game for non-Christians." In the end it is unclear whom the representation is even for. This is not to say representation is meaningless, but that so long as it stays at representation, the possibility the medium of the game holds is not fully realized. The Assassin's Creed series drew attention as a tool for history education not simply because it reproduced history. As the player's agency and choices intervened in historical events, new meaning—impossible through text—was produced. The reason I felt let down throughout the game is exactly this point. Between games and religion there are far more points of contact than one might think. The gameness of religion and the religiosity of games are both still-insufficiently-explored fields of possibility. In particular, the game makes the player not one who watches but one who performs. And religion has always demanded performance—praying, prostrating, fasting, making pilgrimage. The heart of religious practice has always lain in doing with the body. In that sense, games and religion may have stood, from the very beginning, in the closest possible place to each other. So what is needed to realize this possibility? This argument is not about simply making games more fun. The Jesus in the game has no hunger gauge and no system for eating food. And so Satan's temptation to turn stones into bread is not a temptation. Because he takes no damage from falling, the trial of being told to throw himself from the top of the Jerusalem temple is not a trial. The heart of Jesus's temptation in the wilderness is the anguish and vulnerability of being fully human. If that anguish is not implemented within the system, the player can never experience it as performance. From Gadamer's hermeneutic perspective, the meaning of a text is newly generated in the process of the reader performing it. In this context, representation is not mere copying but the production of new meaning. A hungry Jesus, a Jesus who takes fall damage, a Jesus who agonizes before temptation. Only when Jesus as fully human is implemented within the game can the game become, beyond representation, a medium that lets us experience the religious. [1] Some argue for using seonggyeong (성경) on the grounds that it is a more authoritative term than seoseo (성서) and has been used more universally in history; but this essay follows the tradition of the 1968 Common Translation Bible Committee, in which Catholics and Protestants jointly took part, and writes seoseo. (Both render as "the Bible"/"Scripture" in English.) [2] The above concerns I Am Jesus Christ; Jesus Simulator, which begins from the Annunciation, had even less freedom. [3] This, too, is a concept with much theological trouble in it, but let us move on. [4] Of course, the most central religious principle among Protestantism's five solas, born of Martin Luther's Reformation, is Sola Fide ("by faith alone"). Even so, the driving force by which that faith is given and made to grow comes from God. [5] George Ritzer criticized this social phenomenon as "the irrationality of rationality."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디지털게임 비평의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24년의 공모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 Back 19 GG Vol. 24. 7. 2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북한 게임 리버스-엔지니어링하기: 지적 재산권, 소액결제, 그리고 검열을 중심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게임 산업보다는 자급자족식 민족주의와 주체사상 이데올로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십여 년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휴대용 디지털 기기 보급이 증가하고(Yoon, 2020) 여가활동에 대한 공적인 지원이 더해지면서(Evans, 2018), 북한 도시 중상류층의 일상적인 여가로서 게임이 떠오르고 있다. < Back 북한 게임 리버스-엔지니어링하기: 지적 재산권, 소액결제, 그리고 검열을 중심으로 06 GG Vol. 22. 6. 10. ***편집자 주: 유사한 지리적, 언어적, 문화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북한은 아주 머나먼 곳이며, 특히 디지털게임에 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농담처럼 평양의 유일한 스팀 IP를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우리는 북한의 디지털게임에 대해 궁금해해야 합니다. 이 글은 게임연구 전문 저널인 gamestudies.org에 익명으로 게재된 북한의 게임에 관한 논문을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으며, gamestudies 관리자를 통해 원저자로부터 한글번역 허가를 구하여 게임제너레이션에 게재하였습니다. 참고문헌 등은 원문 사이트에서 보다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 링크: http://gamestudies.org/2201/articles/anonymous 초록: 이 글은 북한 게임 산업의 역사 및 그 불법복제 의존성에 대해 살펴본다. 오늘날 북한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비디오게임은 해외의 유명 게임을 개조한 것으로, 여기서는 리버스-엔지니어링 방법론을 통해 북한의 개조판 게임에 대한 분석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그와 같은 개조의 목적이 소액결제 같은 시스템을 북한의 상황에 맞게 수정하여 들여오는 것, 그리고 콘텐츠의 민감한 요소들을 검열해서 민족주의적으로 또는 사회주의적으로 수정하는 것에 있음을 밝힐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불법복제 게임은 민족주의적이고 포스트-식민주의적인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면서도 자본주의적 소비 진작과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상반된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들어가는 말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아케이드용 해적선 전투 게임기 앞에 놓인 전투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장치의 밑바닥에는 'No Step!'이라는 영어로 쓰여진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다른 아케이드 게임기들도 살펴본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노동자들을 향해 'Do not step'과 'Caution' 등 게임기에 영어로 쓰여있는 지시문을 우리말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Han, 2020, p. 14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게임 산업보다는 자급자족식 민족주의와 주체사상 이데올로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십여 년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휴대용 디지털 기기 보급이 증가하고(Yoon, 2020) 여가활동에 대한 공적인 지원이 더해지면서(Evans, 2018), 북한 도시 중상류층의 일상적인 여가로서 게임이 떠오르고 있다. 교육용 소프트웨어와 더불어 게임은 현재 북한 IT 유통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 . 완전히 국산으로 만들어진 게임도 몇몇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필자가 "현지화 수입(localized imports)"이라 부르는 방식 - 해외의 게임을 국가 승인 개발사가 북한의 디지털 환경에 적합하도록 다양한 수준에서 번역하고 개조하는 방식 - 을 거쳐 공급되고 있다. 이러한 개조는 엄밀히 말해 북한이 최근에 정립한 저작권법 위반이자 그 자신도 가입 되어있는 국제 저작권 협약 위반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는데, 저작권법은 반-제국주의적 또는 민족주의적 차원에서 종종 불법복제가 장려되곤 하는 개발도상국에서 느슨하게 적용되어왔기 때문이다(Wang, 2003). 북한에서도 이와 같은 합리화 - 게임 내 외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검열해서 제거해야 할 필요성에서부터 지적재산권의 불공정성에 대한 경제학적 비판에 이르는 - 가 확인되는 한편, 이와 같은 합리화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 게임의 불법복제를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굉장히 엄격한 기술 및 법 체계와 공존하고 있다. 북한 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소프트웨어는 국가의 "중앙 소프트웨어산업 지도 기관(Central Guidance Organ of Software Industry)"에 등록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디지털 기기는 중앙기관에서 암호화 방식으로 승인을 받지 않은 경우 애플리케이션의 실행이 OS차원에서 금지 되어있다. 반면 저작권법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 예상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는데 2) , 즉 플레이어를 자본주의적 소비자로 "호명"해서 디지털 아이템에 돈을 쓰게 만드는 인-게임 결제 전략을 위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북한의 게임산업에 대한 분석을 통해 기술적 인공물에 있어 이데올로기적 적응성과 탄력성에 대한 연구를 제공할 것이다. 게임은, 여타의 기술적 인공물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발현되는 맥락(Bijker, Hughes & Pinch, 1987)이나 수입되는 맥락(Choi, 2017)이 이데올로기적이고 경제적인 사회적 구성물이다. 그런데 만약 게임이 수입된 이데올로기적 환경이 그것이 원래 생산되었던 곳과 다르다면, 심지어 적대적이라면 어떻게 될까? 북한에서 게임은 리버스-엔지니어링(게임의 속성들을 이해하거나 변경, 또는 비활성화하기 위해 프로그램의 컴파일 바이너리를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그것이 원래 기원한 국가의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저항의 도구가 된다. 다른 문화적 수입품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은 북한에서 문화적 침투를 통해 (특히 미국) 제국주의에 복종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Ra, 2005, Kim, 2009). 해외 기업의 국내 시장 침투나 북한 수입업자들의 로열티 지불 또한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행위라는 비난을 받아왔다(Hwang, 2017). 북한식 불법 복제는 외래 문화 요소를 제거하고, 자국의 프로파간다를 주입하고, 개조된 소프트웨어에 대해 완전한 소유권을 주장함으로써 그와 같은 제국주의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현지화 된 북한 버전일지라도 원본 게임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은 부분적으로 여전히 발견된다. 게임 내 소액결제 시스템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소비가 지속적으로 유발되는 패턴은 북한의 사회적 기반에서 벗어난 것이다. 또한 북한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 여러 거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을 비롯한 여러 문화 상품에 대한 이용권한(license) 시스템을 수용하여(Stallman, 1997) 디지털 기기를 통해 전송되는 콘텐츠에 대한 감시와 통제에 활용하고 있다. 해적 행위(Piracy), 게임의 역사 그리고 리버스 엔지니어링 게임에 있어 해적 행위는 단순히 파일을 무허가로 복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보호장치를 "크래킹cracking"하는 것, 크로스-플랫폼 호환을 위한 에뮬레이션 제작, 속성을 바꾸거나 추가하여 게임을 "모딩"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의 행위자, 실천, 그리고 테크놀로지를 아우른다. 이와 같은 해적 행위는 상업용 비디오게임의 발전과 병행되어 왔으며, 업계(International Intellectuall Property Alliance, 2021)와 게임학 연구자들(Postigo, 2003; Kretzschmar & Stanfill, 2019)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아왔다. 게임 해적 행위에 대한 초기 연구들은 해적 행위자의 자유주의적인 혹은 반체제적인 에토스를 강조했다(McCandless, 1997; Tetzlaff, 2000; Goldman, 2005; Coleman, S., & Dyer-Witheford, 2007). "디지털 졸리 로저(역주: 해골이 그려진 해적기로 해적 행위자들을 상징한다)들의 조용한 전복 행위"(Kline et al., 2003, p. 217)를 글로벌 자본주의나 초국가적 거대기업 또는 저작권을 통한 지적 공유재산의 불공정한 점유 등에 대해 저항하는 반체제적인 또는 반식민주의적 입장으로서 읽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은 지하 네트워크와 불법적인 경제를 지나치게 낭만화(Nicoll, 2019)하고, 북미와 서구의 중산층 출신 남성 해적들이라는 특정한 소수 집단의 자기-특성화를 무비판적으로 반복해왔다는 비판(Wasiak, 2012)을 받았다. 예를 들어 냉전시대 후반 체코슬로바키아(Švelch, 2018)와 폴란드(Wasiak, 2014)에서 저작권은 생소한 개념이었고, 그에 따라 그에 대한 이해도, 법적인 집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부 유럽의 공산당이 초기 비디오게임 시장에 대한 검열이나 규제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 해적 행위는 그에 대항하는 기업이나 정부의 검열 없이 번성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남한(Nicoll, 2019; Jo, 2020)이나 홍콩(Ng, 2019), 또는 1990년대 중국(Liao, 2016)에서 그랬듯, 제한 없는 소프트웨어 복제행위는 은밀한 행위였다기 보다는, 정부의 간섭이 윤리적 차원에서 그치고 국제적인 저작권 협약이 강제되지 않는 일종의 (일상적) 규범에 가까운 행위였던 것이다. 학술 영역에 있어 이와 같은 변화는 해적 행위에 대한 연구를 기존에 한정되고 양극화된 것 - 범죄 행위 또는 반자본주의적/자유주의적인 저항으로 보는 - 으로부터 벗어나 이용자 중심적으로 게임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도록 이끌었다. 야로슬로프 스벨치(Švelch, 2018, p. 152)는 "국제적인 유통 인프라가 구축되기 전의 1980년대 그리고 이후 디지털 유통이 자리잡은 이후에도 주변부는 중심보다 거대했으며, 소형 컴퓨터들의 상당수는 해적판 게임의 실행에 활용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해적 행위의 일상성을 인정하는 것은 게임의 역사가 몇몇 소수의 거대 기업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게이머 커뮤니티와 공유의 네트워크, 창의적인 개조자들(modders), 그리고 모험적인 거래자들의 역사이기도 함을 인정하는 것이다(O'Donnell, 2013). 그 활용과 이용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전세계 게이머들이 외래의 테크놀로지와 콘텐츠를 전유하고 자국용으로 순화하는(domesticate) 방식을 강조함으로써 "주변부"를 실험과 혁신이 벌어지는 독특한 다수의 장소들로서 재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유(appropriation)에 대한 분석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면서 현지화와 혼종화의 과정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 게임의 현지화를 다뤘던 콘살보의 작업(Consalvo, 2016)은 일본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일본 게임에 대한 언어·문화적 각색을 매우 상세하게 다루었지만, 그 초점이 선진 시장 경제를 가진 국가들에 한정되어 있어 일본 게임이 문제가 되거나 금지되어 있는 국가에서 일본 게임에 깔린 정치적 담론과 전제가 어떻게 현지화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 1980년대 폴란드의 해커들이 사회주의적인 것보다 "서구적인" 것들을 선호했음을 기술했던 바시악(Wasiak, 2014)도 사회주의 경제 내 새롭게 부상했던 소비주체들에 대해 서구 유럽이 끼친 문화적 영향력이나 상업적인 행위의 확산이 지닌 함의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중국 시장 내 해적판 일본 게임의 확산을 다뤘던 랴오(Liao, 2016)는 중국 정부의 "테크노-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기술하면서도 아시아권 내 일본 제국주의 문제나 중국에 시장의 논리가 유입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해적 행위를 통한 현지화의 그와 같은 과정이 기술적인(technological) 만큼이나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해적 행위를 저항 행위로 퉁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해적판 테크놀로지가 특정한 이데올로기 프레임 내에서 작동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항해서 작동하는 방식들을 다룬 최근의 연구들과 궤를 함께 한다. 예를 들어 남한의 게임 해적 행위가 "신식민주의" 내에서 작동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항해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다룬 니콜(Nicoll, 2019)의 작업 3) 이나 해적판 영화시장에 대한 분석(Lobato, 2012, pp. 74-74) - 해적 행위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실천적인 비판인 동시에 "자유 기업 체제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읽힐 수 있다는 - 이 있다. 나는 북한 게임 산업의 해적 행위가 글로벌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것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자본주의의 많은 측면들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국가 검열을 통해 자본주의적 상징들을 제거하고 문화 보존이라는 명목 하에 외래적인 콘텐츠를 국내식으로 수정한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해적판) 게임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지적 재산 모델이 도입되고, 그 플레이어들을 소비주의적으로 충동질하며,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자 감시에 활용하는 것을 도모하고 있다. 북한 내에서 게임 해적 행위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 및 현대 미국 중심의 신제국주의에 대한 대응으로서 강력하게 진화된 민족주의로 나타나고 있다(Shin, 2006). 한편 저작권과 지적재산권 개념 그 자체는 지속적으로 북한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제국주의적 독점"의 "차별적인 특성"의 사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Hwang, 2017, p 62). 저작권 무시가 해외 자본에 대한 저항 행위가 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 따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모딩(modding)을 통한 복제 게임의 재전유는 종종 강렬한 민족주의적인 담론으로 가득 차 있는데, 때에 따라 반-일본 또는 반-미국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이렇게 수복된 게임은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 무기로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급진적인 입지를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지배와 복종이라는 오래된 식민주의 관계를 극복하려는 탈식민국의 공식적인 노력은 종종 바로 그 관계를 다른 모습으로 재생산하고 고착화하는 것을 가장(disguise)하는데 그치곤 한다(Mbembe, 2011, p. 45). 마찬가지로, 탈식민화와 반-제국주의의 어휘들은 대중의 해방과 자주보다는, 권위주의 체제와 글로벌 기업들, 그리고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기업가들"의 경제·정치적 지배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Comaroff & Comaroff, 2009). 북한의 해적판 게임 산업은 글로벌 시장 논리에 대항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자국의 경제가 자본주의적으로 시장화되는 것을 고양시키고 있으며, 그러한 가운데서 외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은 내부적인 종속을 도모한다. 이 글은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집해 온 북한에서 판매 중인 불법복제 모바일 게임에 대해 맥락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와 같은 현상을 탐구한다. 게임의 외부적인 특성에 대한 관찰만으로는 충분치 않았기에, 필요한 경우 소스코드의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는 리버스-엔지니어링 방법론을 활용했다. 게임 역사에서 해적 행위가 주요 연구 주제였다면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통해 어떤 방식의 해적 행위가 게임에 대해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주요 분석 방법이었을 것이지만, 아직까지 리버스-엔지니어링이 해적판 게임 연구, 나아가 보다 일반적인 게임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 활용된 적은 없다 4) .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게 될 것처럼, 이 방법론은 해적 행위에 의해 게임의 바이너리에 가해진 수정과 개조에 대한 명확한 맵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데올로기가 컴퓨터 코드상에서 어떻게 번역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북한의 게임 역사와 현재의 게임 생태계 북한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전자 및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다룬 것은 1960년대 초반부터였다. 북한이 최초로 생산한 디지털 컴퓨터는 1961년 국립과학원(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서 소련제 디자인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었다(Hŏ, 1961). 냉전 시기에는 불가리아나 폴란드, 루마니아 등 사회주의 국가와 일본, 프랑스, 서독 등 자본주의 국가 양쪽 모두로부터 컴퓨터를 수입했다(Berthelier, 2019). 하지만 이 컴퓨터들의 용도는 경제 계획의 수립이나 과학적 연구, 또는 산업적인 활용 등에 한정되었다(Orlowski, 1985). 당시 컴퓨터에 대한 접근은 매우 엄격히 통제되었으며, 따라서 유희적 활용을 위한 여지는 거의 없었다. 북한에 최초로 소개된 게임은 범용 컴퓨터가 아니라 게임에 특화된 아케이드 장치에서 실행되는 게임이었다. 1980년 평양 호텔의 로비에 타이토의 아케이드용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기가 설치됐는데, 이는 2년 전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평양 호텔처럼 이 게임도 외국방문객들만 접할 수 있었으며, 플레이하려면 100엔 동전을 투입해야 했다. 이후 남은 80년대 동안 다른 게임기는 수입되지 않았다. 1990년에 들어오면서 바뀌는 당의 정책 그리고 일본 아케이드 게임산업의 발전상은 북한의 첫 오락실 개장으로 이어진다. 그 전부터 김일성과 김정일은 10여년 간 이어져온 생산성 하락 극복을 위해 북한 경제를 "계산기화(computerize)"할 것을 주문했는데(Kim, 1995; Kim, 1990), 그에 따라 1987년 3차 7개년 계획 때부터 북한 산업의 디지털화 계획이 수립되었다. 새로운 디지털 지식층의 육성은 과학 교육을 강조하면서 어린 세대가 컴퓨터와 친숙해져야 함을 의미했다. 따라서 김일성이 1991년 북한 최초의 오락실 개장 - 평양 만경대 지역에 700평방미터 공간에 100여대의 오락기를 갖춘 - 을 지원했던 것은 "세계의 최신 과학 트렌드에 맞춰 능숙하게 현 시대의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다룰 줄 아는 자립적이고 다재다능한 젊은 혁명 인재의 양성"(Chosŏn Ilbo, 1991)이라는 목표에서 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당이 새롭게 품기 시작한 디지털을 향한 야망이 북한에 게임이 도입된 유일한 요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락실의 게임기들 - 그 중 일부는 오늘날 평양에서도 여전히 작동 중이다 - 은 〈웨스턴건(Western Gun, Taito, 1975)〉이나 〈서브마린(Submarine, Bandai, 1978)〉 등의 1세대 게임으로, 이는 재일 한국인들로 구성된 "애국적 무역상(Patriotic traders)"이 보낸 것이었다(North Korean Central Communication Agency, 1992, p. 205). 1980년대 중반 하드웨어의 성능이 향상되고 신작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일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기 시작한 게임기들이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재일 한국인 내 조직 - ‘청년’ - 을 통해 평양에 도입되었던 것이다(Ryang, 2016). 1990년대엔 더 많은 아케이드 게임기들이 평양의 놀이공원이나 상점, 식당 등에 도입됐는데(Kyunghyang Sinmun, 1992), 게임기 외부에 적힌 제목이나 기호들은 종종 한글로 번역되어 표기됐지만, 게임 화면에서는 원래 언어가 그대로 사용됐다. 한편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게임을 개조하거나 만드는 것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의 주류 소프트웨어 기업으로는 조선콤퓨터센터와 평양정보센터를 들 수 있는데, 두 기업 모두 경제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산업 구축 및 산업적 활용을 위해 1990년에 세워졌다. 주요 업무로는 레이더 신호 처리 시스템, 오피스 작업, CAD 소프트웨어, 전문가 시스템, 처리 자동화 등이 있다(Department of Defense, 1996; 1995). 이러한 전략적 영역들 가운데 딱히 게임 개발 작업을 수행한 분야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모두 인공지능(AI)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알렌 뉴웰이 언급했던 것처럼 "게임을 플레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언제나 인공지능 분야에서 선호되는 영역"이었는데(Newell, Shaw & Simon, 1963, p. 37), 조선콤퓨터센터의 엔지니어들은 실제로 1990년대 후반 자신들의 인공지능 연구를 바탕으로 바둑 기반의 〈은별바둑(1997)〉과 한국 전통의 체스 게임(역주: 장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반의 〈평양체스(1997)〉라는 게임 두 편을 제작했다. 이 두 게임은 여러 국제 게임 AI 컨퍼런스에서 수상했으며 남한과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상업화되어 오늘날까지 판매 중에 있다 5) (Nam, 2002). * 평양정보센터가 2005년 상용화한 〈소년 장군〉 게임. 이어지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주로 해외의 소비자를 겨냥한 게임을 개발했는데, 이는 북한의 여타 소프트웨어 산업 전략과 맞춘 것이었다. 컴퓨터가 많지 않은데다 내수 소비는 더 기대하기 어려운 북한의 상황에서 수출 시장은 외화 획득의 기회와 함께 좀 더 많은 수익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에 합작투자 연결망을 연 조선콤퓨터센터는 2002년 자사의 온라인 바둑 게임(〈My Baduk〉)을 상용화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남한의 사업가와 파트너십을 맺고 온라인 카지노(DK Lotto, DK Casino & Jupae)를 구축했다 6) . 포커와 슬롯머신, 블랙잭, 복권 등을 제공하는 이 카지노는 2005년 남한에서 도박 방지 입법화 관련 이슈가 불거지기 전까지 남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Choe, 2004). 같은 해 평양정보센터는 싱가폴에 위치한 지사를 통해 〈소년 장군〉을 출시했는데([그림1]참조), 이 게임은 전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모바일용 영어 게임으로, 원작은 일본과 중국의 침략자들로부터 한국을 지키는 고려 시대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유명 만화/애니메이션 시리즈다. 2008년에 이르러 북한은 독일과 합작으로 만든 기업 노소텍(Nosotek)을 통해 플래시 및 모바일 게임을 외주 개발하기 시작한다(Williams, 2010; Campbell & Lim, 2010). 상업용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들에는 북한의 문화 상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데올로기적 내용이 거의 없다. 그러나 2013년부터 북한의 지원을 받는 웹 포털 〈우리민족끼리〉에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플래시 게임([그림2])이 올라오면서 북한 이데올로기의 게임화(gamification)가 시작된다. 브라우저에서 플레이 가능한 이 시리즈는 조지 W.부시와 아베 신조를 파리로 등장시킨 일종의 두더지 잡기 게임과 남한의 보수적인 이명박 대통령을 패러디한 "이명쥐" 대통령에게 펀치를 날리는 게임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한글로만 만들어진 이 게임들이 겨냥한 것은, 웹에 접속할 기회가 거의 없는 북한의 주민들이라기 보다는, 남한의 주민들 그리고 세계에 퍼져있는 한국 이주민이라 할 수 있다. * 우리민족끼리 포털에 출시된 정치적 플래시게임들. 2010년대 들어와 북한의 휴대폰 이용자 수가 크게 증가한 가운데, 2013년부터 5.11 공장에서 중국 모델을 기반으로 한 내수용 안드로이드 휴대폰을 생산하기 시작한다(Political Reporting Team, 2013). 이러한 휴대폰은 개인용 PC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그에 따라 게임용 플랫폼으로서 휴대폰이 빠르게 부상한다. 모바일 게임이 대중화되고 많은 인기를 모으면서 이제는 공공연하게 게임 중독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 방송이 등장할 정도가 되었다(Zwirko, 2021). 그러나 북한의 휴대폰들이 세계 여타의 폰들과 동일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북한의 모바일 게임은 인프라 구조의 한계 그리고 국가의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통제에 맞춰 독특한 생태계를 구축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DVD나 MP3 플레이어 같은 장치들이 보급되고 모든 유형의 미디어(해외의 콘텐츠 포함)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복제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북한 당국은 문화적 -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 생산에 대한 독점을 유지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소비할 콘텐츠를 더욱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전통적인 감시와 통제 방식이 빠르게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보다 기술적인 솔루션을 도입하는데, 현재 북한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디지털 장치 내 OS에는 암호화 서명 기반의 시스템이 내재되어 있어 비승인 프로그램의 설치와 장치 간 미디어 파일 공유가 금지되어 있다(Schiess, 2018). 즉 북한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설치되는 게임은 검열을 통과한 뒤 국가 기관의 암호화 서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국가적 통제에 더해, 게임의 유통 또한 휴대폰 이용자들의 제한된 연결성에 맞춰져 있다. 북한에서 휴대폰 이용자들의 인터넷 접속은 드물지만 WiFi나 셀룰러 데이터를 통한 인트라넷 접속은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인트라넷을 사용하는데 드는 비용이나 데이터 비용 등은 평균적인 소비자 입장에서 여전히 비싸며, 공공 WiFi 같은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온라인 앱 스토어 같은 일반적인 유통 경로는 솔루션이 될 수 없다. 일부 특정한 앱의 경우 인트라넷 연결을 통해 라이센스나 인-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앱들은 우선 오프라인에서 설치되어야 하며, 일단 실행되면 그 이용자는 지불 기록 증명과 이용권한 파일만 처리되는 구매 과정 - 따라서 앱 전체를 다운로드 받는 비용을 피하는 - 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 - 국가적 통제와 연결성 - 에 대한 솔루션이 제공되는 곳은 "정보기술 교류실" 또는 "정보기술 봉사"라는 이름이 붙은 물리적 상점이다. 국가로부터 승인받은 앱의 유통 및 설치에 대한 허가를 받아 운영하면서 휴대폰이나 컴퓨터 수리 같은 서비스도 제공하는 이 상점들이 바로 북한의 주요 게임 제공업자다. 상점 벽에는 신작 포스터가 붙어있으며 소비자들은 카탈로그를 통해 여러 게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상점들은 평양 내에서는 흔히 볼 수 있으며, 그보다 드물긴 하지만 지방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 평양의 정보기술교류실(2018). 리버스-엔지니어링 된 게임을 리버스-엔지니어링하기: 방법론 북한의 상점에서 볼 수 있는 게임들은 전세계 여느 온라인 샵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판매되고 있는 게임 대다수는 〈팜빌(Farmville)〉, 〈캔디크러쉬(Candy Crush)〉, 〈앵그리버드(Angry Birds)〉 같은 해외 게임들과 매우 유사한데, 그 이유는 그 게임들이 실제로 해외의 게임들이기 때문이다. 즉 북한측이 마치 북한산 게임인 것처럼 보이도록 해외의 게임들을 번역 및 개조하고 리패키징한 것이다. 예를 들어 〈피버 포 스피드(Fever for Speed, Agame, 2017)〉의 개조판 홍보 포스터를 보면, 제목이 〈만리차경주〉로 바뀌어 있고 7) 평양 컴퓨터스튜디오의 신제품인 것으로 홍보되고 있다. 또한 붉은색 공산당 스카프를 맨 어린이 캐릭터가 관객을 바라보는 모습의 배경에는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원"이라는 북한의 유명한 국가 슬로건이 적혀 있다. 오리지널 국산 게임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대부분은 교육용 게임이나 전통적인 아날로그 게임들(체스나 바둑, 체커 등)의 전자식 버전에 한정되어 있다. * 평양의 한 IT 상점에 걸려있는 〈피버 포 스피드 3D〉의 현지화된 개조판 게임 홍보 포스터. 지금부터는 이데올로기와 게임, 검열 간의 관계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평양에서 구매할 수 있는 현지화된 수입 게임 7편을 살펴볼 것이다. 북한이 접근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 그래서 현지 작업이나 데이터 수집을 더욱 어려운 - 국가이긴 하지만, 그 유명세는 상당히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다. 앙드레 슈미트(Schmid, 2021)가 "북한 연구는 결국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듯이, 남한,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유럽에는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아카이브와 자료들이 존재한다(상당 부분 디지털화 되어 온라인상에서 무료로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북한에서의 현장조사도 완전히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 이 연구에 사용된 게임들은 여행 비자를 지닌 외국인들이라면 북한 내 어느 도시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드웨어 구입은 좀 더 제한적이긴 하지만, 게임과 소프트웨어는 안드로이드 버전이 돌아가는 기기라면 어느 가게에서나 설치할 수 있다. 진짜로 어려운 일은 실제로 게임이 제작되는 과정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다. 정보가 대단히 부족하고, 게임 개발사 방문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개발사들이 자사의 게임 상당수가 해외에서 유래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양 같은 도시에서 게임의 소비자들과 대화하는 것은 (자주 접할 수 있기에) 어렵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본 게임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으며 시장 진입 전에 모든 게임들은 수정/개조 작업을 거치게 되어 있다. 게임의 원본과 북한의 개조 버전을 비교함으로써 어떤 요소들이 검열되는지, 어떤 개발사들이 지워지고 수정되고 또는 강조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인데, 이 글에서는 보다 알아채기 쉬운 외양상의 변화들부터 시작해서 게임 내 소스코드에 보다 깊숙이 내재된 수정/변화상을 살펴볼 것이다. 원본과 현지화 버전을 나란히 실행시키면서 화면상에서 나타나는 변화들을 확인하면, 게임 에셋이나 번역 또는 게임의 흐름 상의 변화들을 표면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 그러나 나름의 가치있는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음에도, 이 방법은 두 게임 간 차이를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개조 버전의 어떤 속성이 (연구자가) 재현할 수 없는 특정한 조건 - 예컨대 북한의 인트라넷에 연결되어야 한다든가 - 에서만 활성화된다면, 그러한 부분은 간과되기 쉬울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림5]는 광흥 스튜디오가 만든 게임의 디컴파일 자바소스 코드의 조각들인데, 이는 게임의 이용권한 및 인-게임 아이템의 온라인 구매에 관한 것이자 통합권한관리 라이브러리다. 그러나 (북한의) 게임들은 그러한 속성의 일부만 사용하거나 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즉 코드를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게임의 권한체크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북한의 게임들은 결제를 위해 인트라넷과 QR코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더해 우리는 권한관리 라이브러리가 원본 게임 위에 덧입혀진 북한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코딩 스타일 상의 차이나 패키지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소프트웨어 프로텍션과 결제 모듈 같은 것들이 일반적임(새 게임을 쉽게 추가할 수 있도록 재사용 라이브러리가 생성되므로)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 활용된 이용권 프로텍션의 수준이나 강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게임 내 모든 단어가 한글로 굉장히 주의 깊게 번역된 것과는 달리, 변수나 함수, 클라이언트 서버 메시지 등의 이름을 짓는 데는 영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 이용권한 라이브러리의 코드 조각들. 이 앱은 해당 사이트 이용자의 남은 "포인트"를 확인하고 게임이나 인-게임 아이템 구매를 위해 http를 경유하여 인트라넷에 연결해준다. 따라서 스크린상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어떤 개조가 있었는지, 그 내부의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 "워크스루 방법론"(Light, Burgess & Duguay, 2016) 같은 기존의 분석 방법론은 바로 그와 같은 한계를 지닌다. 코드 기반 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물(relic)들 - 미사용된 속성이나 기능 또는 애셋들, 개발자 코멘트 등 - 뿐만 아니라 "후드 아래(under the hood)"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호하게 남겨둔 채 "앱의 스크린이나 속성 그리고 활동의 흐름"만을 기록하는데 그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유저 인터페이스를 중심으로 앱을 분석함으로써 분석자가 놓칠 수 있는 사항들 - 예컨대 특정 속성을 활성화할 수 있는 조건이 맞지 않았던 것인지 여부 같은 - 을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비디오게임이라는 기술적 인공물의 "블랙박스"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소스 코드와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 게임 개발사들이 원본 게임의 원 바이너리를 활용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디지털 포렌식 및 리버스-엔지니어링 기술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게임은 컴파일된 실행파일로서 유통되는데, 다시 말해 원본의 소스 코드가 기계어로 번역되어 데이터 파일이 포함된 애플리케이션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계어는 비트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간 관찰자가 해석하기 어려운데, 이를 보다 인간 친화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로 원본의 소스 코드를 바꾸어주는 툴이 여럿 있다. 디컴파일러는 원본 개발자가 썼던 본래의 코드에 가깝게 실행 파일들을 추출하는 것을 가능케 해 준다. 하지만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가 쉽게 디컴파일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보다 낮은 수준의 어셈블리 언어로 기계어를 좀 더 쉽게 해독해주는 역어셈블러를 사용해야 할 때도 있다. 북한에서도 게임 제작은 자바 프로그래밍언어로 코딩된 안드로이드 응용프로그램 패키지(APK), 유니티 게임 엔진으로 개발된 게임을 위한 라이브러리, 원래 C나 C++로 쓰여진 네이티브 코드 라이브러리 등 여느 모바일 게임들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Shim et al. 2018). 각 게임에 대한 분석을 위해 우선 압축 유틸리티를 사용해서 각 게임의 실행 파일, 라이브러리 파일, 에셋 파일을 애플리케이션 패키지로부터 추출했다. .obb나 .assetbundle 등 다른 파일 포맷으로 저장된 에셋인 경우 DevX의 유니티 언패커 툴을 사용했다. 그러고 나서 에셋들을 살펴보았는데, 이는 원본과 현지화된 게임을 종합적으로 비교하기 위해서다. 어떤 경우 애플리케이션 내 제거되거나 교체된 에셋 파일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럴 땐 Java와 C# 코드용 디컴파일러를 써서(각각 Jad-X와 ndSPY) 코드에 접근했다. 디컴파일이 불가한 네이티브 코드 라이브러리는 NSA가 개발한 리버스-엔지니어링 툴인 기드라(Ghidra)를 사용해서 역어셈블 작업을 수행했다. 이 연구에서 수행한 분석 방법은 실제로 실행하지 않고도 애플리케이션을 제어하고 데이터 플로우를 재구축할 수 있는 정적 분석(static analysis)인데, 이는 특정한 실행 환경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프로그램의 모든 기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가능한 분석방법이다. 애플리케이션의 엔트리 포인트를 추적하고 나서는 "후드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게임이 로딩되면서 코드 상의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코드의 로직을 따랐다. 기술적으로 원본과 현지화 버전 간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부분적으로 자동화하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상당한 차이 및 작은 코드 뭉치들의 구조적인 변경으로 인해 기존의 솔루션에 의존하거나 새로운 실용적 솔루션을 개발해야 했다. 또한 사용자 인증 모듈 같이 관심이 있는 특정 속성들을 설치하고 디컴파일 및 역어셈블된 코드로부터 그 로직을 재구축하였다 8) . 정적 분석을 통해 비활성화되거나 활성화가 요구되는 흥미로운 속성들이 발견되었을 때는 일시적으로 그 실행파일들을 수정하여 최종 이용자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확인하였다. 연구 결과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이 5개 카테고리로 구분했다: "재전유" 카테고리에서는 용어 그대로 법적 소유권 및 저작권 표기가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 살펴본 결과이고, "현지화"와 "이데올로기적 각색" 카테고리는 모두 게임의 외양을 해독하고 원본과 현지 버전의 애셋을 비교한 결과인데, 두 카테고리가 가끔 교차되는 지점이 없진 않지만, "현지화" 카테고리는 좀 더 문화적 번역에, "이데올로기적 각색"은 게임 내에 변형(transformation)되거나 추가 혹은 제거된 이데올로기적 콘텐츠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액결제"와 "게임 이용권한 및 프로텍션 모듈"은 대부분 디컴파일된 코드에 대한 해석으로, 이는 게임 바이너리에 새로운 결제 방식이 삽입된 방식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재전유: 북한 게임을 실행할 때 가장 먼저 화면에 뜨는 것은 북한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법에 따른 저작권 보호 메시지와 게임에 대한 크레딧을 소유한 개발사의 이름이다. 유저 인터페이스 상의 원본 게임 개발사나 퍼블리셔를 지칭하는 모든 언급은 전부 지워져 있지만, 바이너리상에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요소들이 남아있어 원래 타이틀을 확인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원본 게임 개발사에 문의해보니 자사의 게임이 북한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업체는 하나도 없었다. 현지화: 북한에서는 유럽, 미국, 러시아, 호주, 남한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게임들이 출신이 모호한 상태로 유통되고 있다(중국산 게임 또한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 연구에선 확인되지 않았다). 영어만 사용한 게임은 한국어로 번역되었고, 한글 제공 게임일지라도 남한식 철자법과 표현, 폰트를 사용한 경우 번역을 거쳤다. 남한의 언어는 영어에서 차용한 단어가 많아 북한 이용자들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텍스트 말고도 과도하게 외래적이라 여겨지는 것들도 바뀌었다. 예를 들어 페더웨이트 게임즈(Featherweight Games)의 〈로데오 스탬피드(Rodeo Stampede, 2016)〉는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 구정 등의 시즌에 맞춘 음악뿐 아니라 서부 아프리카와 라틴, 네팔 등지의 분위기가 섞인" 사운드 트랙을 제공하는데, 현지화 버전인 〈날으는 동물원(Pyongyang Morning Star Technical Development Center, 2018)〉에서는(역주: 원문에서는 〈Flying Zoo〉로 나와있으며 실제 북한에서 사용하는 한글 제목은 확인불가) 북한의 유명한 연주곡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수정은 단순히 소비자 취향에 맞춘 것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국가 혁명에 이바지하고 인민의 사고와 감정에 맞춘" 음악을 선호하는 공식 정책에 따른 것이다(Kim, 1991, p. 19). 원본과 현지화 버전 간 스프라이트 시트(sprite sheets) 비교는 [그림 6-1]과 [그림 6-2]를 통해 〈게임 오브 워리어즈(Game of Warriors, G-Station Studio, 2016; Kwanghung, 2018)〉 내 다양한 요소들의 다양한 수정과 변형 사례를 제시해보았다. 캐릭터 머리는 좀 더 아시아적인 얼굴의 2D 그래픽으로 바뀌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의 전통적인 장비를 쓰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여기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캐릭터 중에는 한국의 전통 군사복을 입은 경우도 있었다). 바뀐 의상과 그림체는 북한의 SEK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만든 고려 시대 배경의 〈소년 장군〉 같은 인기 역사 만화/애니메이션과 유사하다. 영어 원본에는 "invading forces"로 표기된 적은 한국어 "오랑캐"로 바뀌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침략자였던 만주족을 멸시할 때 사용하는 명칭이다. 이처럼 의상의 변형을 통해 게임을 한국의 역사 내 재배치시키는 가운데, 이는 다른 한편으로 콘텐츠의 노골성에 대한 점잖은 정도(modesty)과 민감도(sensitivity)의 상이한 기준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원작 게임에서 말을 타고 등장하는 붉은 머리의 바바리안 캐릭터의 드러난 맨살은 북한 버전에서 어두운 푸른색 셔츠로 덮였다. 이와 같은 커버업은 학교에서 배우고 주변에서 강제되는 행동 규칙인 "사회주의 도덕"에 맞춘 것이다. 이러한 도덕은 북한인들이 지녀야 할 매너나 예의범절 그리고 적절한 복장 등을 규율하는데, 북한에서는 군인, 나아가 남성들이 팔꿈치 윗부분이나 무릎 아래를 노출하는 것이 올바르지 못한 복장으로 여겨진다. 게임에서 졌을 때 나타나는 해골 스프라이트의 경우 북한판에서는 두개골이 두 개의 칼 뒤에 숨겨지고 해골의 팔은 지워지는 등 덜 적나라하게 표현된 것을 알 수 있다. (레드 몬스터의 두드러지는 이빨이나 뿔 달린 헬멧 등의) 다른 요소들과 더불어 (바바리안 캐릭터의 벨트와 오른쪽 위에 위치한 헬멧 같은) 다른 곳에 나타난 두개골 또한 제거되거나 수정되었는데, 이는 그러한 모티브들이 일부 이용자들에게 부적절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 〈게임 오브 워리어즈〉 스프라이트의 원본 버전(왼쪽)과 현지화 버전(오른쪽). 이데올로기적 각색: 지금까지 살펴본 현지화 양상은 대개 게임을 현지 문화 등에 맞추는 것에 초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문화적 측면에는 언제나 정치적 차원이 동반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남한의 것들이 체계적으로 누락되고 북한의 언어로 재번역되는 이유는 단순히 상호이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외래어를 다수 차용한 남한의 언어가 북한의 언어에 비해 열등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남한의 외래어 남용이 언어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외래 권력에 복종하는 것임을 반영한다는 것이다(Chong, 2019). 뿐만 아니라, 남한의 경우 영어 원어를 말 그대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북한의 번역은 훨씬 더 주의 깊게 콘텐츠에 접근한다. 예를 들어 〈게임 오브 워리어즈〉에서 플레이어는 팽창주의 정복자의 역할을 맡아 적의 도시를 "정복"한 후 그것을 "식민지"로 바꾼다[그림 7]. 남한은 역사적으로 식민지 문제에 민감함에도 불구하고 "식민지"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판에서 정복된 도시들은 해방된 마을과 성으로 표현된다. 원본에서 깃발의 문장들은 정복된 적 도시를 표현하지만 북한판에서 이는 "해방"과 "강점"으로 대체되는데, 이 두 용어는 직접적으로 한국의 (일제)강점기와 북한의 전(前)지도자 김일성에 의한 해방을 의미한다. 북한식으로 현지화된 이 게임은 한국의 고대 역사를 참조한 동시에, 원본의 정복과 팽창의 로직을 북한의 역사 기술에 있어 가장 많이 반복되어온 - 외래 침략자들로부터 한국의 해방이라는 - 내러티브로 재구성되었다. * 원본 〈게임 오브 워리어즈〉의 도시 정복 튜토리얼 화면(왼쪽)과 북한판 화면(오른쪽). 북한판에서는 "마을 해방 --- 마을을 해방하였습니다. 더 많은 자원을 얻으려면 성을 갱신하십시오"라고 쓰여있다. 몇몇 수정사항들이 북한의 민족주의나 주체사상을 반영하거나 강화한다면, 다른 것들은 문제가 될 수 있는 상징들을 중화(neutralize)시킨다. 북한판 게임에서 다양한 형태의 돈(지폐, 동전, 보물 등)이 변형되는 방식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림의 검 양쪽으로 쌓여있는 달러가 그려진 골드 코인은 북한판 그림에서 완전히 사라져 있으며, 게임 내에서 달러 코인은 금색 별로 대체되었다. 시리어슬리(Seriously)의 게임 〈베스트 프렌즈(Best Friends, 2014)〉의 북한 버전인 〈멍청한 달팽이(Kwanghung, 2018)〉의 경우(역주: 원문에는 〈Stupid Snail〉이라 표기되어있으며 실제 북한에서의 한글판 제목은 확인불가) 원본 게임에서 주류 통화로 사용되는 골드바(gold bar)가 노란 보석으로 대체되었다. 한편 〈시티 아일랜드 2(City Island 2, Sparkling Society, 2014)〉의 북한 버전의 경우, 골드바는 남았지만 게임 내 통화를 상징하는 미국 달러처럼 생긴 초록 지폐는 "유희 점수"를 의미하는 회색 종이로 대체되었다. 〈날으는 동물원〉의 경우 원본에서 Z에 두 개의 세로로 된 선이 관통한 모양의 코인이 북한판에서 삭제되었다. 이처럼 인-게임 통화의 재현 형태에 대해 일관된 처리 방식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 개발자들의 지속적인 수정과 변형 작업은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 - 부와 돈 - 가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변형된 코인, 골드바, 지폐 등은 화폐로서의 기능을 유지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돈의 단위로서 자신들의 기능은 빼앗긴 것이다. 이처럼 통화 상징들이 중화된 가운데, 목표가 수익의 극대화에 있는 게임들은 그 로직을 유지했다. 〈날으는 동물원〉에서 게임의 목표는 여전히 희귀 동물을 포획해서 주인공의 동물원을 발전시키고 보다 많은 관객들을 유입시킴으로써 수입을 증대시키는 것에 있으며, 〈시티 아일랜드 2〉의 경우 요령 있는 부동산 투자를 통한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소액결제: 이처럼 돈에 대한 재현을 순화시키려는 노력은 북한판 게임의 인-게임 통화가 실제 돈으로 구매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매우 역설적이다. 현지화된 게임에서 원본 게임에 딸린 광고나 구글 플레이 같은 결제 플랫폼 링크는 제거되는데, 여기서 인-앱 결제 방식은 제거되지 않고 남은 채 북한의 인프라에 맞도록 변형된다. 즉 북한 게임 산업의 행위자들에게 그 수익이 재배치되도록 수정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한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게임의 소스코드를 확인하면 새로운 소액결제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어있는지 알 수 있다. 대개 게임의 소액결제 시스템은 시리얼 넘버 시스템이나 암호화 키 파일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작동한다. 아이템 구매는 해당 아이템을 해제할 수 있는 시리얼 넘버와 게임에서 생성되어 - 오프라인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 텍스트 키나 QR코드를 교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텍스트 키 또는 QR 코드는 암호화 해시 함수(cryptographic hash function)를 이용자의 기기(모바일기기식별코드나 시간, OS 빌드의 식별자 등)의 다양한 식별자에 적용함으로써 생성된다. 이는 이용자들이 동일한 시리얼 넘버로 여러 기기에서 아이템을 해제하는 것을 방지해주며, 무엇보다도 시리얼 넘버를 제3자에게 증여하거나 재판매하는 것을 막는다. 따라서 이 시스템은 최종 이용자가 자신이 구매한 것에 대해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을 제한함으로써 (물리적 앱 상점이) 상품의 유통권 독점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2차 시장을 통한 이용자 간의 수평적인 흐름이 아닌, 이용자로부터 유통사와 개발사로 흐르는 수익의 흐름에 대한 소유권을 확고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광흥 스튜디오가 유통 중인 게임에 대한 리버스 엔지니어링 작업을 통해, 이용자의 기기가 국가의 인트라넷에 연결되어 있을 경우 온라인 소액결제가 일부 게임에서 가능함을 확인했다. 결제는, 전자식 지불카드가 아니라, 이용자 계좌와 게임이 개발사의 인트라넷 사이트상에서 연결되어 구매한 사람의 계좌에서 포인트가 차감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짐작컨데 계좌상의 포인트는 전자식 결제로 또는 더욱 높은 확률로 오프라인 상점에서 현금으로 구매하게 되어있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구매와 마찬가지로, 공유나 재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이용자의 계좌가 기기 고유의 식별자와 묶여있는 것이다. 게임 이용권한 및 프로텍션 모듈: 게임 내 소액결제 시스템과 더불어, 게임 그 자체의 결제도 오프라인 IT 상점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무단 복제와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게임들은 강력한 암호화 방식(4096 bits RSA)으로 보안된 라이선스 키 파일에 의존하고 있으며, 라이선스 시스템은 종종 (사용권 파일 체크를 우회하기 위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나 바이너리 수정을 방지하는) 파일 무결성 검사나 (디컴파일 또는 디어셈블된 소스 코드를 해독 불가하게 만들어 바이너리에 대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방지하는) 코드 난독화 같은 소프트웨어 프로텍션 방식을 이용해서 추가적인 보안을 하기도 한다. 게임 프로텍션 모듈의 환경설정이나 강도는 개발사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전부 불법복제를 방지하기 위해 고도화된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 국가가 승인한 스튜디오에 의한 해외 게임의 불법복제 뿐 아니라 - 스튜디오가 만든 현지화된 불법복제 게임에 대한 무단 불법복제가 그처럼 고도의 방지책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만연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북한 게임의 결제 및 라이선스 시스템 내에서, 물리적 앱 상점은 게임 개발자와 이용자가 상호작용하는 플랫폼으로서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이와 같은 경제적 중간층(economic middle layer)는 흥미롭게도 디지털 앱 스토어와 비슷하게 - 생태계를 둘러싸는 울타리 쳐진 정원(walled garden)이나 유저 락-인(lock-in) 테크닉, 독점 유지, 그리고 게이트 키핑 전략을 통한 콘텐츠와 자본의 흐름 통제 등의 - "플랫폼 자본주의"(Srnicek, 2017)적 특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게임 개발사나 앱 상점들이 이용자 데이터 수집 및 게임을 통한 수익 창출을 하지 않고 인-앱 구매가 유일한 수익 원천이라는 점은 플랫폼 자본주의와 다른 부분이다. 디지털 기기들이 여전히 거대한 규모로 데이터를 수집하지만, 이는 전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저작권, 감시, 그리고 소비 북한의 게임산업은 저작권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태도를 보여준다. 여러 국제 저작권 조약에 가입했고 세계 지식재산권 기구의 오랜 멤버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게임 개발사들은 해외 게임의 저작권을 무시하면서 리버스-엔지니어링을 수행하고 게임을 개조하면서 현지 시장에서 재판매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소비자에게는 자사의 게임들이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고 있음을 명확히 밝히는 한편, 불법복제를 방지하고 지적 재산을 수익화하기 위한 복잡한 테크닉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중성이 게임 산업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50여년 간의 북한 법학 학술저널과 경제학 저널을 살펴보면 지적 재산에 대한 경제적, 법적 담론들이 넘쳐난다 9) . 북한의 학자들은 저작권 보호가 보다 빈곤하고 기술적 발전이 떨어지는 국가들을 희생시켜 선진국의 부를 불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불공정한 행위라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Hwang, 2017). 예를 들어 1980년대 말 남한이 국제 저작권 규제를 따르기로 한 결정은 "미 제국주의"가 남한의 "괴뢰 정권"을 통해 강제한 또 하나의 강탈 책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Chon, 1988, p. 82). 어떤 경제학자는 저작권, 특허, 지적 재산 연관 법률에 대해 "제2의 인클로저 운동"이라고 기술했는데,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것이다(An, 2005, pp. 139-140). 국제 저작권법 또한 강국들이 자국의 규율을 독립적인 해외 영토에 강제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국가의 주권을 위협한다며 비판한다(Chon, 1998; Chong, 2004; Lee, 2013).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저작권과 지적 재산에 대해 훨씬 긍정적인 평가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지식 경제의 구축"과 보다 체계적인 입법의 추구가 필수라는 것이다(Kim, 2014). 이러한 변화는 저작권을 인정한 1998년의 개헌, 2001년 북한의 첫 저작권 법 및 2003년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보호법 추인과 더불어 진행되었다. 같은 해 북한은 베른 협약에 가입하기도 했다. 저작권 보호를 향한 이와 같은 갑작스러운 입법상 변화는, 일반적으로 1990년대 국가 경제의 붕괴를 경험한 뒤 재산권에 대한 법적 정의가 개정되면서 진행된 것이자 남한과 북한간 상호 화해를 추구하는 소위 햇볕 정책과 함께 강화된 것으로 생각된다(Shin, 2005). 이와 같은 새로운 접근은 북한 문화상품의 남한 내 상품화 증대 및 그에 따른 로열티 수익 증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5년에는 북한의 소설을 출판한 남한의 출판사가 로열티 미지급으로 저작권 소유자들에게 피소되기도 했다(Lee, 2005). 하지만 이와 같은 두 개의 입장에 있어, 특히 국가적 이익과 주권을 우선시하는 북한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에서 볼 때, 근본적인 모순은 없다. 북한 경제학자들과 법학자들은 지적재산권 법을 "입법적 식민화"라고 보았던 리처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의 주장(Stallman, 2006, p. 335)을 반복했으며, 그러한 비판은 부유한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국가들에 대해 저작권을 행사하는 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따라서 북한은 그러한 비판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대로, 보다 선진화된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북한의 권리 소유자들이 해외에서의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국가적 이익을 수호하고 있다. 보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북한의 - 국외에서보다 - 국내에서의 저작권 활용 양상이다. 선진국의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국의 저작권 권리를 해외에서 추구하는 것은, 경제 및 문화적 제국주의를 향한 저항이나 반항으로서 볼 여지가 없지 않다. 하지만 북한 내 저작권 적용에 대해서는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북한의 국내 저작권 시행은, 창작자에 대한 보상이라기 보다는, 통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컴퓨터 소프트웨어 보호법 통과는 국내외의 모든 소프트웨어를 국가 기관 - 중앙 소프트웨어산업 지도 기관 - 에 등록하는 것이 소프트웨어의 "과학성, 객관성, 적시성(timeliness)"을 확보하는 것이자 개발자의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보증하기 위한 전제조건임을 규정한 것이었다. 이러한 등록 과정은 해당 소프트웨어의 오리지널리티와 보안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제시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앙의 국가 조직이 효과적으로 소프트웨어의 유통을 통제하고 "국가의 방식과 관습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이는 모든 작업물을 검열할 수 있는(Computer Software Protection Law, 2003, p. 6)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작권은 소프트웨어의 흐름을 감시하고 파일 공유를 방지하는데 사용되는 암호화 서명 체계를 뒷받침하는 법·제도적 장치가 되는 셈이다. 지적 재산의 보호가 대량 감시 및 디지털 기기를 통해 국가가 승인한 것 외 다른 콘텐츠에 접근하는 것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저작권은 노동 가치로부터 가격이 결정되는 경제 체제 하에서 인-게임 소액결제가 지닌 자본주의적 로직을 정당화하고 있다. 디지털 상품은 한계 생산 비용이 없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와 게임은 언제나 북한 경제학자들에게 문제적으로 인식되어왔다(Lee, 1998).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고정된 노동량과 연결시키는데 있어서의 그 어려움은 역으로 훨씬 유연한 가격 모델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게임의 경우 이를 통해 소액 결제 기반의 수익화 시스템이 번성할 수 있었다. 이 수익화 시스템은 현지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문제가 있는 대상으로서 제거되는 대신, 북한 시장에 맞게 각색되었다. 이러한 측면은 북한의 문화적 환경 내에서 게임이 독특해지는 지점인데, 게임이 이용자를 (현지화된 특성이나 이데올로기적 표현을 통해) 시민으로서 호명하면서 동시에 소비자로서도 호명하기 때문이다. 소비(consumerism)가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서 완전히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Betts, 2014; Gerth, 2020), 중앙 계획식 생산 및 사치나 불필요한 지출에 대한 멸시, 계층적 구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이상, 소비상품의 부족 등은 사회주의 내에서 소비를 드문 현상으로 만들었다(Stitzel, 2005; Tsipursky, 2016). 특히 북한의 경우 소비상품은 인민의 실질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으로, 수익 창출을 위해 "인공적으로 구매 욕구를 촉진"하는 시도는 "물질적 문화의 삶을 망치는" 자본주의적 행태라는 비판을 받았다(Kim, 2015, p. 32). 소비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목적이 있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문청완은 소니(Sony) 등 자본주의 기업이 컴퓨터나 게임을 생산하는 것을 그 상품의 "실제적인 쓸모"와는 무관한 생산이라 보았다. 북한이었다면 동일한 상품(컴퓨터)이 교육이나 생산적인 활동을 관리한다는 목적을 표명하며 기획되었을 것이다(Mun, 2009). 이러한 형태의 소비를 보여주는 흔적들은 북한의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Schmid, 2017), 예를 들어 국가 선전 포스터, 잡지, 상점 등은 상품과 소유의 미학을 활용하면서 소비자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상품을 꾸미고 전시하였다 10) . 이러한 형태의 소비는 일상적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국가의 사회주의식 생산 방식이 성취한 물질적 풍요를 보여주는데 활용되고 있다(Dobrenko, 2007, p. 282). 의심스러운 소비 또한 - 비공식적으로나마 - 흔했고, 희귀하거나 비싼 소비 상품들이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는 다양한 사례들을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Choi, 1991). 하지만 이상의 기존 소비 양상과 게임의 소액결제 모델은 상당히 다르다. 주지하다시피 인-게임 구매는 지속적인 소비 패턴을 도모하고 플랫폼 자본주의의 지대 추구 시장을 유지하도록 진화해왔다(Nieborg, 2015; Almaguer, 2018; Joseph, 2021). 소액 결제 시스템의 이와 같은 수익 극대화 로직은 북한에서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데, "타임 랩스"나 잠긴 레벨, 구매해야 하는 보너스 등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유료화 장벽을 북한의 플레이어들이 돈을 써서 우회하는 방식이 장려되고 있다(Burroghs, 2014). 자본주의 세계의 플랫폼이 북한 소프트웨어 산업 중앙 지도 기관의 독점적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대체되었을 뿐인 것이다. 기존의 소비 양식은 언제나 물리적 자원의 결핍/부족이라는 현실 그리고 계획 경제를 통한 물질적 풍요와 공정한 배분에의 약속 사이에서 협상해야 했다. 그러나 소액결제에서는 결핍/부족이 적용되지 않는다. 추가적인 저장소나 연산 작용 없는 아이템의 무한 증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템들은 또한 이미 원본 게임에 코딩되어 있고, 해적판에서는 추가적인 개발이나 디자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이용자의 구매가 현지화 된 지불 시스템을 만든 노동에만 지불됨을 의미한다. 지불할 권리에다 지불하는 셈이다. 따라서 게임에 엮인 소비 형태는 목적이 있는 소비나 게임 개발에 투입된 노동으로부터 분리된다. 대신 그것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재정적 수익의 추출이다. 북한의 불법복제를 통한 해외 게임의 현지화는, 지정학적,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는 작고 빈곤한 후기-식민 국가의 관점에서 볼 때, 해외로부터의 영향을 제한하고 불공정한 지적 재산 규제에 저항하는 시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수익화에 기반한 소액결제가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은, 게임이 북한이 국가적으로 주장해온 가치에 반하는 소비주의적인 수익 추구 행위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과 같이 폐쇄적인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 이러한 행위의 발생은 일종의 해방 신호로서 환영할만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수익화를 추구하는 게임의 부상이란 그 이용자와 생산자가 소련의 2차 경제를 연상시키는 "비사회주의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주체성의 증대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루딕(ludic) 경제는 전복과는 거리가 멀다. 그 경제 체계가 단일한 주체에 의해 엄격한 감시 시스템 하에서 국가의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 당국이 지적 재산 체제 및 그와 연관되는 수익화 시스템을 빠르게 수용해서 활용하는 양상을 보면, 그것이 대량 감시와 소비자 착취와 엮여있음을 알 수 있다. 수익 극대화, 자본 축적, 독점 등의 자본주의 경제 논리를 고스란히 반영한 메카닉을 지닌 채 기존의 수익화 시스템과 통합된 게임의 북한 내 인기는, 나아가 놀이(ludicity)의 문화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속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자유화된 시장의 경쟁적 속성에서부터 로빈후드(Robinhood)앱에서 나타난 게미피케이션화된 주식과 옵션 거래, 그리고 암호화폐 기반의 P2E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게임과 탈중앙화된 금융 간의 혼합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이미 게임과 유사한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Giddings and Harvey, 2018). 그렇다면 그러한 게임에 대한 북한 이용자들의 열정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놀이적인(ludic)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본주의의 게미피케이션이 그러한 것을 - 북한의 검열 체계 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 좀 더 보편화하고 있는 것일까. 1) 2019년과 2020년에 평양에서 6군데 IT 상점에서 접했던 소프트웨어 카탈로그들을 비공식적으로 살펴본 것에 기반한 판단이다. 알렉 시글리의 기사(Sigley, 2019)를 참조할 것. 2) 여기서 사용한 사회주의 경제체제라는 용어는, 상품의 가격이 민간 주체에 의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간 평등을 표명하는 정치적 목표에 맞춰 (그러나 그러한 목표가 실현되거나 실질적으로 추구될 필요는 없는) 중앙 계획 당국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는 체제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북한이나 소련, 중국을 위시한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행했던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마르크스 등 여러 학자들이 말했던 사회주의를 제대로 실현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나 생산 수단의 소유(및 국가가 노동자의 대리로서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것 등)에 대한 문제 등은 논외로 배제한다. 또한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사회주의 국가 내의 특정 조직이나 기관에서 사용한 경우(예컨대 공산당이라든가 청년 공산당 조직 등)를 제외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대중적인 정의는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이 중앙 계획 경제체제를 운영하는데 있어 나타나는 다양한 차이라든지 여러 문화적 요인들이 사회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끼친 영향 같은 것 등 다양한 입장들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나아가 각 국의 경제체제가 거쳐온 역사적 변화과정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력을 지니지 못한데, 예컨대 김정은의 경제 정책은 조부인 김일성 시대의 정책과 상이하며, 둘 다 상이한 시점에 상이한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이유로, 국가 주권이나 소비, 사적 소유 등과 관련해서 북한 사회주의의 특성을 논할 때는 부가적으로 역사적 맥락과 사례를 제공할 것이다. 3) 니콜은 조영찬(Cho, 2016)의 논의를 빌어 남한에 비디오게임 및 야구가 유입된 것이 일본과 미국의 "신식민주의"에 따른 결과라고 기술한다. 문화 제국주의적인 요소(Mohammadi, 1995)들과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점령하다시피한 국내외 게임 시장을 통해 들어온 전(前)지배세력이자 경제적 제국주의 국가(즉 미국과 일본)의 게임들에 담긴 가치나 상징, 미학적 요소들이 결합되어있다는 것이다. 니콜은 나아가 불법복제로부터 성장한 한국의 게임산업이 국가적 - 그리고 민족주의적 - 상징으로 게임을 재전유함으로써 그 과정을 전복시키면서도 그러한 과정에 여전히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한편 리버스-엔지니어링 분석은 학계 외의 게임 보존가들 사이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5) https://www.silverstar.co.jp/ 6) 해당 게임의 웹사이트는 www.mybaduk.com, www.dklotto.com, www.dkcasino.com, www.jupae.com을 통해 호스팅되었으며 지금도 the Internet Archive에서 접할 수 있다. 7) '리'란 동아시아권에서 400미터 정도되는 거리를 지칭하는 전통 단위다. 8) 사용된 방법론이나 툴에 대한 정보를 더 알고 싶다면, 다음의 링크를 통해 리버스-엔지니어링된 북한 게임들의 소스 코드 변경사항과 암호화 방식을 살펴볼 것: https://digitalnk.com/blog/2019/04/21/reverse-engineering-a-north-korean-sim-city-game/ 9) 여기에 해당하는 저널로는 〈경제연구〉, 〈정치법률연구〉, 〈김일성 종합 대학 학보〉가 있다. 10) 예를 들어 1970년대에 북한이 발행한 〈Korea Today〉 잡지(nos. 914(1972), 201(1973), 203(1973), 12(1974) 등)에 실린 백화점이나 산업박람회, 농산물박람회 사진을 보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불명 Anonymous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중국 학부모』의 과잉 경험과 리얼리즘의 신화
‘리얼리즘 게임’이라 불리는 『중국 학부모(中国式家长)』는 서민적인(接地气)1) 콘텐츠 덕분에 “매우 현실적”이고 “삶에 근접해 있다”는 등 일관된 평가를 받았다. 이 게임은 현장 조사에서 얻은 실제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실제 경험을 과잉 경험으로, ‘현실감’을 ‘현장감’으로, 실제 상황을 ‘공감(感同身受)’으로 대체하며, 궁극적으로 사회구조 문제를 가족윤리 문제로 축소한다. 또, “부모를 용서하라”는 감정주의적 결말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게임의 기초적인 설정 - 세대속성의 대물림(다음 세대 아이가 윗세대의 우세속성을 물려받는다) - 이 모든 ‘리얼리즘’ 게임에서도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란 점이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게임의 ‘리얼리즘’은 바로 계급 상승의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과잉 경험과 그 이면에 깔린 리얼리즘의 신화는 『중국 학부모』로 하여금 진짜 문제를 은폐하는 동시에 폭로자가 되도록 한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ivist, Writer) Zhou Siyu Master's program, Graduate School of Literature, Nankai University. (Activist, Writer) Myeonggyo Hong Activist and writer. Works at the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Platform C on East Asian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social movements. Author of To My Vanished Chinese Friend and A Ghost Throws a Punch at the World, and translator of Xinjiang Uyghur Dystopia and Dying for an iPhone (co-translated).
- 게임과 예술 :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문에 현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게임이 일정한 미적인 속성을 체계적이고 인공적으로 구성한 형식이 아니면 무엇일까. 너무나 당연했다. 사진과 영화가 아날로그 기술적 혁신에 대응하는 형식이었다면, 게임은 디지털 혁신에 대응하는 고도의 예술형식이라고 보는 게 당연하고 타당했다. “모든 예술형식의 역사를 보면 거기에는 위기의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는 이들 예술형식은 변화된 기술수준, 다시 말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통해서만 비로소 아무런 무리 없이 생겨날 수가 있는 효과를 앞질러 억지로 획득하려고 한다. < Back 게임과 예술 :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 12 GG Vol. 23. 6. 10.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문제를 은폐하는 것이다" - 베르그송 1. 게임은 예술인가 우문에 현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게임이 일정한 미적인 속성을 체계적이고 인공적으로 구성한 형식이 아니면 무엇일까. 너무나 당연했다. 사진과 영화가 아날로그 기술적 혁신에 대응하는 형식이었다면, 게임은 디지털 혁신에 대응하는 고도의 예술형식이라고 보는 게 당연하고 타당했다. “모든 예술형식의 역사를 보면 거기에는 위기의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는 이들 예술형식은 변화된 기술수준, 다시 말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통해서만 비로소 아무런 무리 없이 생겨날 수가 있는 효과를 앞질러 억지로 획득하려고 한다.” 1) 더욱이 게임은 일찌감치 여느 예술 못지않게 당대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과 감정을 담아냈다. 어쩌면 그 이상이다. 게임은 사람들과 ‘호흡’한다고, 게임을 통해서 사람들끼리 ‘공명’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도대체 게임의 어떤 점에서 예술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MMORPG에서 여럿이 함께 난관을 하나씩 극복하며 최종보스를 잡는 경험도, 싱글 액션게임에서 고독한 게이머가 산산히 흩어진 세계(와 조각난 이야기)를 힘겹게 짜맞추어 나가는 과정도, 예술적 경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게임은 기존의 예술적 형식과 경험을 반복하는 동시에 갱신하며, 예술·세계·경험을 확장시킨다고 봐야 했다. 물론,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는 과정이 녹록하지 않고, 여러 불편한 과정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는 있었다. 전례가 있지 않은가. 영화 사진 만화 등 뒤늦게 등장한 예술형식들은 이 통과의례를 거쳤으며, 여전히 시험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임이라고 예외는 될 수 없을 테니,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고난의 시기’만 잘 넘기면, 어렵지 않게(?) 정착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당연히 준비할 거리는 있었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문학과 미술 같은 예술과 똑같지는 않았기에 ‘설명’이 필요했다. 새로운 형식들을 추동한 것이 무엇인지, 그 때문에 다른 특성을 띠는 게 무엇인지, 밝혀야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꼬였다. 이 점에서 게임은 영화에 비해서 운이 나빴다. 그것도 매우. 2. 서사, 그 예견된 잘못된 만남 생각해 보면, 문학은 언제나 준비된 상태였고, 그만큼 성공할 때가 많았다. 미술과 음악은 물론이고, 최근에 등장한 영화까지 문학의 위성예술로 만들고자 했던 전례를 생각해 보라. 문학의 이른바 ‘멀티’ 행보는 유구하게 악명 높다. 2) 역사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미술이었다. 역사와 함께 태어났지만, 미술은 언제나 ‘찬밥’ 신세였다. ‘시는 회화와 함께’ut pictura poesis라는 테제처럼, 미술은 문학이 되고 싶었고, 문학의 기준에 따랐다. 아니, 따라야 했다. 더욱이 문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비롯해 이후에도 쟁쟁한 문학·이론이 뒷받침했다.(서구에서 성경은 역사·서사 자체였다) 역사는 (그리고 종교와 이념과 체제는) 언제나 문학의 편이었다. 역사 자체가 그것들이 뒤섞인 ‘이야기’story이지 않은가. 그들은 마음대로 미술과 음악 등에 마수를 뻗쳤고, 서사를 형식에 상관없이 우격다짐 밀어 넣었다. 미술은 그렇게 종교화나 역사화가 되었고, 음악은 가극이 되었다. 미술의 경우 20세 중반이 돼서야 겨우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다. “평면, 그 2차원성은, 회화예술이 어떤 다른 예술과도 공유할 수 없는 유일한 조건이며, 따라서 모더니스트회화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평면성 그 자체에로 향하는 것이다.” 3)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을 ‘평면성’flatness으로 규정하고, 비미술적인 것에 전면전을 선포했다.(물론, 문학이 완전히 ‘청소’된 것은 아니었고, 현재도 여전히 곳곳에서 진지전이 벌어지고 있기는 하다) 영화는 비교적 형편이 나았다. 기술적 태동기를 짧게 거친 후, 영화의 잠재력을 알아차린 전위대가 일찍부터 달라붙었다. 만 레이가 대표적일 것이다. 초현실주의와 다다 등, 그들은 선언부터 하는 집단이었다. 그들은 문학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필요하다면 스스로 비문학적 문학을 하는 예술집단이었다. 예술의 외부인 자본과 산업도 한몫 거들었다. 그것들은 영화형식의 기술적 본성을 완전히 실현시켰다. 강철에서 다리로 뛰는 철마가 아니라 바퀴로 구동하는 기차를 제작했듯, 영화의 형식을 완전히 개방시켰다. 매체의 양적 속성을 합리화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른바 순수이론 영역은 오해를 양산했다. ‘기술적 반응과 질료적 실현’은 ‘순수예술·대중문화’의 범주로 엉뚱하게 굴절되어, 결국은 ‘머릿수’ 논쟁으로 곡해되어 전파됐고, 두고두고 ‘서열놀이’가 이어졌다. 이후, 벤야민의 이론을 통해서 교정될 수는 있었지만, 완전히 일소됐다고 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게임은 영화에 비해서 운이 나빴다. 더욱이 게임은 영화와도 매우 달랐다. 돌연변이나 괴생명체 같다고 할까. 영화는 그래도 사진과 연극이란 징검다리로 기존의 예술과 연결됐고, 예술적 전위들이 재빠르게 합류할 수 있었다. 반면에 게임은 모든 게 기존의 예술과 단절되어 발원했다. 최초의 게임 〈퐁〉을 생각해 보라. 출력되는 모니터, 입력하는 인터페이스, 장치내부의 숨겨진 이진수체계 등, 기존의 예술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형식이 달랐다. 더욱이 생산자도 생산환경도 개발자에 실험실이었으니, 완벽한 이종(異種)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이후, 문학 미술 음악 등 기존의 예술을 내용으로 ‘흡수’하면서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태로 가시화됐지만, 사진과 영화에 비해서 처음에 느꼈던 이질적인 ‘거리’는 컸으면 컸지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했다. 게임이 성숙하고 형식이 완연한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자, 설명이 요구됐다. 게임은 예술인가, 예술이면 무엇 때문인가, 꼬리에 물 듯 질문이 이어졌고, 예술적 ‘인정과 인증’이 필요해졌다. 문학은 언제나 그렇듯 독보적으로 빨랐다. 역시 서사가 전가의 보도였다. 장장 2000년 넘게 호령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생각해 보라. 장수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곰곰 생각하면, 문학은 참 이상하다. 미술이나 음악은 다른 곳에 차용돼도 청구하지 않는데, 문학은 늘 청구한다. 때로는 월권을 서슴지 않는다. 게임이 운이 나빴던 것은 (영화처럼)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개발과 예술의 거리는, 비평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이 상황은 나아졌다고는 해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새로운 형식을 실험할 사람도 빠르게 나타나지 않았다. 4) 이론적 무주공산, 누구에게 이보다 쉬운 등반은 없었을 것이다. 놀이론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자 불가피한 대응이었을 것이다. 게임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관련된 전거를 찾았고, 자연스럽게 인류학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곳에 게임·놀이가 있었으니까. 더욱이 ‘행위’를 설명하기도 적합해 보였다. 그것은 일찍이 다른 문화·예술 형식이 들추어낸 적이 없었다. 주지하다시피, 놀이는 미분화된 원시종합적 (예술)형식이다. 모든 게 녹아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며, 정치와 사회를 배우고, 미술도 음악도 춤도 익힌다.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하면, 사람과 이론에 따라 선택되는 속성의 조합은 무한해진다. 어떤 이는 도박과 가면놀이를, 또 어떤 이는 다른 무엇들을 선택해 조합할 것이다. 이 작업은 끝이 없고, 발굴되는 유적이 늘어날 때마다 가설이 늘어나는 고고학처럼, 게임이 다양해질수록 선택되는 속성들의 조합도 똑같이 늘어날 것이다. 이후, 이렇게 성립한 ‘서사 대 놀이’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승패를 영원히 가릴 수 없는 카드게임과 전혀 다를 없었다. 이쪽이 이 카드(반례)를 내밀면, 저쪽은 저 카드(반례)를 내밀고, 이것이 영원히 진행된다. 이 미학적 PvP에서 문학이 졌을까. 사실 역사에서 문학이 지는 법은 거의 없었다. 역사는 (이념은 종교는 체제는) 언제나 문학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개개의 논쟁에 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도는 영원히 남는다. 이 문학적 ‘문제’를 제거하지 않는 한, 문학적 ‘해’solution와 씨름해 봤자 소용이 없다. 이 문제는, 이 논쟁은, 이미 문학의 승리를 영구히 한다. 그것이 진정한 ‘전리품’이며, 그런 식으로 폐쇄적인 담론구조를 만들어, 또 다른 생산적 담론을 은폐하고 차단하는 것은 훌륭한 ‘덤’이다. 3. 게임, 해석과 비평의 사이에서 모든 비평은 ‘텍스트’라는 것을 무엇보다 유념해야 한다. 하지만, 이 ‘언어의 유혹’은 너무나 강력해서, 떨치기 힘들다. 그것은 본능에 가깝다. 비평조차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평의 내재적 운명이다. “모든 예술은 벙어리인 것이다…시는 언어를 사용하되 사심 없는 언어를 사용한다. 즉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지 않는다.” 5) 비평이 예술에 대해서 말하는 권리라면, 그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말할 것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비평의 태도는 모든 곳에서 ‘언어’를 발견하는 구조주의자와 비슷하다. 6) 그들은 떨어지는 낙엽에서도 서사를 발견할 것이다. 따라서, 비문학적인 것을 비평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다. 다른 매체의 고유한 굴곡을 ‘평평하게’ 다듬고 눌러서, 서사의 고속도로를 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언어는 언어로 분해하는 게 가장 쉽다. 그러한 해석에 반대해야 하며, 그것이 제1의 공리가 돼야 한다. 앞서 미술의 경우 장장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서사에서 겨우 독립했다고 말했다. 회화론은 1430년대에 와서야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트가 처음으로 제창했고, 이때 처음으로 ‘의미 있는’ 그림에서 ‘정확한’ 그림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는 무엇보다 기하학의 세속적 형식인 원근법 덕분이었다. 말하는 방법이 아닌 보는 방법은, B.C. 4세기 경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등장한 이후, 장장 1800년이 필요했다. 본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 본래의 형태를 그리는 것이 그만큼 힘들었던 것이다. 알베르티의 회화론은 소중한 자산이었지만, 카드 한 장에 불과했다. 카드게임을 할 만큼 패가 두둑히 마련된 것은, 20세기를 거치며 수많은 실천과 이론이 축적된 이후였다. 특히 러시아 구성주의자(미래파)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1915년) 같은 작업은 텍스트가 한치도 침입해 들어갈 틈이 없었다. 기껏해야 작품 전까지 작가의 행로나 그의 태도나 같이 활동한 집단을 묘사할 따름이다. 언어가 주변을 웅성거리며 맴도는 그곳은, 텍스트의 무덤이다. 7) * '검은 사각형'. 카지미르 말레비치. *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 블라디미르 타틀린. 그래서 〈에디스 핀치의 유산〉이나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같은 게임을 조심해야 한다. 물론, 좋은 게임들이란 사실은 틀림없다. 몇 시간 몰입해 끝내고 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솟구칠 것이다. 변신이나 미로 같은 구조를 보면 카프카를 언급하고 싶어질 수도 있고, 전체주의와 반영웅을 보면서 근대체제의 우의allegory로 분석하고 싶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입장에 따라서는 윤회까지 떠올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이 무엇일까. 예를 들어, 〈디아블로 3〉 2회차 경험을 생각해 보라. 과연 게이머가 레아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생각할까. 티리엘의 (지위) ‘하강’을 보면서 희랍비극의 과오harmatia 개념을 끄집어낼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이머의 머릿속에는 이번에 할 빌드와 하늘에서 ‘찰랑’ 빛나며 떨어지는 전설 아이템만 주시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이 346회차 하니까 서사적 경험은 1/346으로 줄었군 하면서, 게임의 평균회차로 서사적 경험을 ‘나누면’ 문제가 해결될까. 혹은 딱 한 차례 경험한 게이머를 심층면접해서 따로 정리해 ‘본질적’ ‘핵심적’ 서사적 경험을 증류하면 충분할까. 이런 식의 접근법은 넌센스다. 여기서 서사는 놀이동산에 입장할 때 필요한 ‘입장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인물도 사건도 심지어 개연성까지 타락시켰지만, 게이머가 게임을 계속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게임에서 서사는 기껏해야 필요조건 중 하나지, 결코 충분조건이 아니다. 8)9) * '에디스 핀치의 유산'(위), '바이오쇼크'(아래) 4. 미술이라는 전례, 미래의 전령으로서 게임 현대에 미술은 문학과 반대의 길을 걸었다. 본질로 부르든 핵심이라고 하든 ‘하나’를 고수하는 대신에, 그 하나마저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미술을 영역이라고 한다면, 무대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틀고 연극도 하고 강의도 하는 등, 실행가능하고 상상가능한 모든 행위가 ‘전시’되며, 심지어 요리도 한다. 미술은 말 그대로 ‘일반예술’이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게임은 미술과 비슷하다. 여러 다른 예술을 흡수하는 동시에, 심지어 경제 사회 정치 등 다른 부문까지 끌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과 게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미술이 ‘사용’하는 수준이라면, 게임은 각각의 부문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윌리엄 깁슨) 깁슨의 말대로 미래가 널리 퍼져 있지 않을지는 몰라도, 게임이 미래의 일부를 선취해 게이머를 ‘훈련’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최소한 게임이 전위에 서 있다는 뜻이다. 일찍이 하우저는 연극을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부대끼며 대화하고 논쟁하며, 근대적 시민으로 형성됐다는 것이다. 현대에는 고독한 개인의 ‘묵독적 (혹은 해석적) 태도’가 연극은 물론 영화까지 점령했지만, 초창기 영화도 연극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했다. 10)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서 왁자지껄하게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장면을 상기해 보라. 그곳에서 지금과 같은 개인의 정적이고 수동적인 감상은 없었다. 그 경험은 집단적이었고 역동적이었다. “대중은, 예술작품을 대하는 일체의 전통적 태도가 새로운 모습을 하고 다시 태어나는 모태이다. 양은 질로 바뀌었다…정신분산으로서의 오락Zertreuung과 정신집중Sammlung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다…영화는, 관중으로 하여금 비단 비평적 태도를 갖게 함으로써만이 아니라 그와 아울러 이러한 영화관에서의 관중의 비평적 태도가 주의력을 포함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종교의식적 가치를 뒷면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관중은 시험관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그러나 그는 정신이 산만한 시험관인 것이다.” 11) 벤야민은 이 분산적 태도에서 새로운 사회(사회주의), 예술(영화), 주체(대중)를 모색했다. 벤야민은 영화를 분석하며 미래를 진단했지만, 그의 묘사는 게임에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물론, 그것이 연극이나 영화처럼 민주주의적 경험은 아닐 것이다. 벤야민이 기대했지만 실패했던 미래의 사회도 미래의 예술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과거의 예술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문학적 패악은 끝나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각작용aesthesis 일반’의 변화다. 미시적 습속들의 변화, 말하는 화법들,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는 방식들, 물건을 교환하고 결제하는 행태들,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들, 혹은 작업장의 봇들이나 디지털 사회범죄 같은 문제들 등등, 그 밑바닥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지만 꾸준하고 착실하게 변화를 추동하는 기술적 동향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 모든 변화의 기원을 게임에서 찾자는 게 아니다.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경험과 태도의 변화를 게임이 주도하며, 게이머를 (혹은 인류를) 훈련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관찰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잘 만든 AAA게임에 주목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게임과 다른 사건과 다른 기획을 주시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어차피, AAA게임들은 본성상 비평(제도)에 친화적이다. 그런 게임들은 언제나 할 ‘이야기들’이 많고, (게임 외적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넘쳐난다. 그러면 다른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예를 들어, 통계적 피드백을 게임에 접목해 게임행위를 미묘하게 비트는 행태 같은 것.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뻔한 서사적 결말들보다, 게임행위에 개입하는 통계수치의 ‘효과’를 분석하는 게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중요한 (윤리적) 판단을 할 때마다 통계수치와 비교해 보는가. 통계적 지표는 관찰대상이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지표의 기능을 상실한다. 피드백 루프가 발생해, 게이머가 행동을 선택할 때 지표로 삼는 순간, 지표기능이 교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별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렇게 미묘하게 인간·게이머의 ‘결정구조’를 변화시키는 방식들, 거칠게 말해서 수치에 따라 윤리적 판단을 하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저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12) 게임 외부에서 흥미롭게 볼 만한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메타의 메타버스 기획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블리자드 인수계획 같은 게 있겠다. 언뜻 보기에 메타의 메타버스는 과거 〈세컨드 라이프〉를 상기시킨다. 둘 다 커뮤니티 서비스의 3차원 확장인데, 게임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세컨드 라이프〉는 현실의 ‘보완재’에 불과했다면, 메타의 기획은 ‘대체재’를 지향한다는 것. 실패했지만 메타가 2019년 암호화폐 리브라를 발표했던 것도 생각해 보라. 메타의 메타버스는 온전한 세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인류 이주계획’인 것이다. 이 계획에서 게임이 직간접적으로 매개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달리 다가오는가.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도 의미심장하기는 비슷하다. 최근 인공지능 때문에 주가를 올리고 있지만, 게임 쪽 확장도 광폭이다. 다섯 손가락에 손꼽히는 RPG 스튜디오 베데스다를 인수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까지 노리고 있다. 독점 논란 때문에 여의치 않아 보이지만, 성사만 된다면 어떤 양상이 벌어질지 사뭇 흥미롭다. 알다시피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사회’다. 시작은 달랐지만 이런저런 흐름들이 게임을 매개로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까. * 메타의 '메타버스' 한때 예술은 미래의 안테나라고 했다. 이제 게임은 현재에 도착한 미래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균등하고 불균질적일 지라도. 1)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2000, 224~5. 2) 한국에서도 비슷한 패악이 되풀이됐다. 2000년대 초중반, 영화비평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을 때, 계간지 〈창작과비평〉은 ‘문학적으로’ 영화비평을 딱 한 번 시도했다. 편집위원 김영희가 앞장섰는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김소영이 〈창작과 비평〉의 월권을 거세게 비판하며, 일단락(?) 되었다. 3) 클레멘트 그린버스, “모더니스트 회화,” 〈현대미술비평 30선〉, 계간미술편중앙일보사, 1992, 67쪽. 4) 이후 매체예술이나 뉴미디어 형태로 미술에서 반응하기 시작하긴 했다. 2000년 개최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디지털 호모 루덴스〉가 초창기 상황을 보여준다. 5) 노스럽 프라이, 〈비평의 해부〉, 한길사, 2000, 48쪽. 6) 들뢰즈, “구조주의를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 518쪽. “사실상 오로지 언어적인 것에만 구조가 존재한다…무의식은 그것이 말하는 한에서, 그리고 언어인 한에서 구조를 지닌다. 신체는 징후들이라는 언어를 통해 말하는 한에서 구조를 지닌다. 사물들은 기호들의 언어인 침묵의 담론을 취하는 한에서 구조를 지닌다.” 7) 그러나 러시아 구성주의의 미래는 ‘배드 엔딩’으로 끝났다. 미래의 사회(였던) 소련에서 미래의 미술은 스탈린이 집권한 이후 현재가 된 사회에서 과거의 문학에 패배했다.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는 일리야 레핀의 아류이자 후계자들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갈음됐다.(벤자민 부흘로, ‘팍투라’에서 ‘팍토그람’으로, 〈현대미술과 모더니즘론〉, 시각과언어사, 1995 참고) 8) 영화나 게임에서 비평가의 진술과 관객과 게이머의 선호가 충돌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쓰기 좋은 소재와 관객과 게이머의 경험은 ‘우연히’ 일치한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더욱이 이야기하기 좋은 게임이 반드시 좋은 게임인 것도 아니다. 조금 과장하면, 졸작은 졸작대로 할 말이 많다. 9) 〈엘든링〉 같은 게임에서 파편화된 이야기 조각들을 찾는 게 ‘또 다른’ 게임행위가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게이머가 서사와 무관하게 시간을 통제하며 행동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행태는 루카치가 생각했던 근대적 주체의 의미찾기 같은 게 아니다. 죽은 시체에서 단서찾기 같은 것으로, 에른스트 블로흐가 ‘죽은 이야기’라며 비판했던 범죄소설의 형식과 비슷하다. 영웅적인 주체가 의미를 찾는 여정이 약물중독자의 수수께끼 풀이로 귀결되는 것을 주류 (문학) 이론가들은 못내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장르문학 딱지를 붙이며 서열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지금도 그렇기는 하다. 10) 1973년 〈록키 호러 픽쳐 쇼〉가 우발적으로 인기를 끌며, 이 정적이고 묵독적이고 해석적인 태도를 공격했다. 이 컬트영화가 영화제도와 관객성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 소규모 ‘반란’은 이내 진압되었다. 지금은 영화역사서 아니면, 흔적조차 찾기 힘들게 되었다. 반면 게임에서 행위는 ‘디폴트 값’이다. 11)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2000, 228~9쪽. 12) 현재 미국은 범죄자의 재범가능성을 엄격한 수학적 통계적 알고리즘에 따라 평가하고 반영한다.(데이비드 섬프터, “편향없음은 불가능하다,” 〈알고리즘이 지배한다는 착각〉, 해나무, 2022) Tags: 예술 미술 비평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김상우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다. 미술 , 매체, 게임 세 가지로 세상을 응시하며 미술기획과 글쓰기하며 활동했다. 〈죄악의 시대〉(2010), 〈딱 한 판만〉(2009) 등의 전시를 기획했고, 〈게임과 문화연구〉를 같이 썼고, 〈친밀한 살인〉, 〈튜링스 맨〉 등의 책을 옮겼다.
- 디지털 연산장치와 확률이라는 조합의 아이러니
디지털게임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이 매체의 물적 기반인 컴퓨터의 시작이다.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설계된 이 전자장치는 애초에 암호해독이나 탄도 계산 같은 전쟁 기술을 보조하는 도구로 만들어졌는데, 그런 도구로 사람들은 놀이하는 방법을 찾아내 즐기고 돈을 번다. 전쟁용 전자장비를 활용해 만든 놀이들의 상당수가 전쟁과 전투를 재현하려 든다는 점까지를 생각한다면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 Back 17 GG Vol. 24.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인터뷰] DRX 무릎이 말하는 게이머와 조이스틱의 관계
그렇다면 조이스틱에서 발생하는 감각과의 경험을 생생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오랜 기간 세계 최정상급으로 활동하고 있는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라면, 아주 미묘한 감각과 게임 간의 상호작용을 더 면밀히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십여 년간 탑 티어를 놓지 않으며 수많은 게임기기를 이용해본 게이머라면, 조이스틱의 변천에 따른 감각적 차이를 잘 설명해주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를 품고 이번호에서 편집장은 글로벌 이스포츠 전문기업 DRX 소속 철권 프로게이머인 '무릎' 배재민 선수를 만나고 왔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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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y personal gaming history I have two distinct memories of fear. The first time I was truly scared while playing a game was during the first Resident Evil in what has become a notorious scene from the game. Though at the time Resident Evil felt more like a slower action game than a horror game, there was one key moment when the player walks down a hallway when suddenly one dog, then another bursts through the windows from the outside causing fright, disorientation, and panic. This is an example of a pretty standard jump scare in games (and other media), and though it did frighten me at that moment, I didn’t carry any greater fear of those dogs and what they represented beyond a slightly heightened anxiety while I walked the halls of Spencer Mansion.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Game Researcher) Cortney Blamey
- 8bit era in china
This article looks to the 8 bit gaming history in China to illuminate the Chinese gaming industry of today, one that earned 2786.87 billion yuan in 2020 (GPC et al. ) . While becoming the world's largest game market, Chinese gaming industry has also attracted worldwide attention. However, despite our fascination with the great success of the Chinese gaming industry in the 21st century, we should not forget the road ahead. Looking back on the early challenges that China's 8 bit gaming industry ever faced is an essential prerequisite for us to understand the industry’s current success. Therefore, this paper will analyze the Chinese 8 bit game and its history. < Back 02 GG Vol. 21.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라는 실험: 아웃오브 인덱스의 여정
아웃 오브 인덱스 (Out Of Index: 이하 OOI) 는 국내 유일의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다. 자바 언어의 에러 메시지 중 ‘배열을 벗어났다’는 뜻의 ‘Array Index Out Of Bounds’ 에서 영감을 얻은 페스티벌의 이름은, ‘장르’나 ‘트렌드’ 와 같은 단어로 설명되어지는 일반적인 분류(Index) 밖에 자리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다루고자 하는 페스티벌의 철학을 담고 있다. < Back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라는 실험: 아웃오브 인덱스의 여정 03 GG Vol. 21. 12. 10. "시장성, 대중성 보다는 개발자들의 창작과 실험 그 자체에 초점을 둔 게임 페스티벌을 만들어보자." 아웃 오브 인덱스 (Out Of Index: 이하 OOI) 는 국내 유일의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다. 자바 언어의 에러 메시지 중 ‘배열을 벗어났다’는 뜻의 ‘Array Index Out Of Bounds’ 에서 영감을 얻은 페스티벌의 이름은, ‘장르’나 ‘트렌드’ 와 같은 단어로 설명되어지는 일반적인 분류(Index) 밖에 자리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다루고자 하는 페스티벌의 철학을 담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IgEP3hAhCI * Out Of Index 2019 하이라이트 영상 OOI는 다양한 실험 작품들을 통해 게임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줌으로써, 개발자들이 스스로의 창조성을 발현하고 게임 산업 전체의 창작의식을 고취하는데 주된 의의를 두고 있다. 아울러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창조적 실험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창작자들을 대중들에게 소개하여 궁극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실험'을 해나갈 수 있는 씬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지난 여섯번의 OOI를 돌이켜보고, 그 동안 페스티벌이 변화해 온 과정을 소개하려고 한다. * 이미지 출처: https://www.rockpapershotgun.com/the-2013-gdc-experimental-gameplay-workshop 2014년 OOI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자면 행사의 큰 영감이 된 Experimental Gameplay Worshop(EGW)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EGW는 매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Game Devleoper Conference(GDC)의 인기 세션 중 하나로, 전세계에게서 접수된 실험적인 프로토타입들 중 우수작들을 발표하는 자리다. 창의적인 게임플레이로 전설적인 작품들이 된 ‘괴혼', ‘Portal', Braid’ 같은 작품들이 초기 버전을 EGW에서 공개한 바 있으며, 도쿄게임쇼에서도 EGW의 영향을 받아 실험적인 게임을 발표하는 Sense Of Wonder Night라는 부대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나는 GDC 2013의 EGW 세션에서 내 게임 ‘6180 the moon’을 발표했는데, 게임의 상업적 완성도를 떠나서 창의적인 시도 자체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는 강의장의 분위기는 게임 개발자로서 내게 아주 큰 인상으로 남았다. * 출처: https://blog.naver.com/kor_nvidia/220066159515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 나라에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무래도 이걸 직접 경험해 본 내가 가장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동료 개발자들과 함께 OOI를 만들었다. EGW는 컨퍼런스의 강연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발표한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 해 볼 수가 없었던 것이 매우 아쉬웠는데, OOI에서는 행사를 크게 둘로 나누어 멋진 실험들을 발표하고, 발표된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해 볼 수 있는 작은 파티를 만들기로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전세계에서 예상보다 많은 작품들이 접수되었고, 선정된 게임에 대한 반응 역시 매우 좋았다. 무엇보다 우리와 같은 성향을 가진 게임 개발자들이 서로를 발견하게 된 것이 좋았다. OOI 2014 당시 선정작 14개 작품들 중 세 작품이 한국 게임이었는데 그 중 두 개 작품의 개발자들이 OOI 기획단에 합류해서 페스티벌을 함께 기획하고 있다. 초기 페스티벌의 작품 선정 방식 역시 EGW의 방식을 따랐다. OOI의 작품 공모에 작품을 접수하려면 ‘이 게임이 왜 실험적인가' 라는 질문에 개발자 스스로가 답해야 한다. 이렇게 접수된 작품들 중 기획단의 자체 논의를 통해 공식 선정작을 결정한다. 기획단에서 선정작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중 하나는 ‘왜 이 게임을 선정했는가' 라는 질문에 기획단 스스로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페스티벌이 회를 거듭하면서 자연스럽게 몇 가지 선정 유형들이 생겼는데, 참가자들이 쉽게 영향을 받고 자신의 실험을 시작할 수 있도록 바람을 넣을 수 있는 ‘간단하지만 멋진 실험'들과 새로운 I/O 장비들을 만들거나 기존의 장비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작품들, 그리고 기존 장르의 문법들을 의도적으로 비틀고 파괴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주로 선정해왔다. * OOI 2019 전시작 〈Hi-5 Heroes〉 2018년 부터는 새로운 전시 기획을 시작했다. 작품 공모를 통한 선정작 전시 외에 기획단이 직접 큐레이팅 한 초대전이 그것이다. 2018년에는 가까운 일본의 실험 작품들을 초대하여 전시했고, 2019년에는 개발자들이 직접 만든 전용 컨트롤러를 가지고 플레이 해야 하는 게임들을 모아서 전시했다. 작품 공모를 통해 전시작을 선정할 경우 각각의 작품들이 저마다 다른 철학과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페스티벌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가 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고 판단했고, 한편으로는 초대전의 형식을 빌어 기획단에서 페스티벌 참가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멋진 실험들을 공모 접수작이라는 선택의 제약 없이 하나의 메시지로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 OOI 2018. 전시 기획과 더불어 페스티벌의 공간 구성과 관련한 실험 역시 시도하였는데 2018년, 2019년 2년간 플라노 건축사사무소와의 협업을 통해 페스티벌의 공간 컨셉을 설정하고, 각 게임의 특성에 맞는 시연 부스를 제작했다. 테이블 위에 시연용 PC를 배치하는 것에서 벗어나 참가자들에게 전시작들을 공감각적으로 전달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다른 게임 이벤트들과 완전히 차별화된 방식의 공간 구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플라노 건축사사무소의 OOI 2018 공간 컨셉 구축 설명: https://www.plano.kr/article-pixel-forest ) 2020년 부터는 아예 작품 접수 데드라인을 없앴다. 수 년간 페스티벌을 개최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OOI의 작품 공모 시작일 부터 실험을 시작해서 마감일에 그 실험을 끝내고 작품을 접수하는 개발자들이 있다는 거였다. 기획단 입장에서는 매우 즐거운 일인 것은 분명한데, 다른 한 편으로는 페스티벌의 작품 공모 기간이 개발자들의 실험에 제한 시간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창작자는 언제나 실험에 몰두해야 하며, 실험에는 마감일이라는 것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마감일을 없애고 작품을 상시 접수 하기로 했고, 아직 우리 페스티벌을 모르는 개발자들의 멋진 실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도 작품을 추천할 수 있도록 작품 접수 양식을 정비했다. OOI는 항상 특이한 게임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기획단의 목표는 단지 특이한 게임을 소개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전시작들을 소개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전시작을 만든 개발자들이 어떤 생각와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참가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OOI 기획단에서 생각하는 페스티벌의 주된 참가자는 언제나 게임 개발자들이다. 게임 개발자들이 페스티벌에 와서 동료 개발자들이 만든 작품들을 체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각 작품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비로소 그들이 자신의 스튜디오에 돌아가서 자신의 실험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페스티벌 안에서 더 다양한 ’말’들이 생겨날 수 있기를 바란다. 초기에는 선정된 개발자의 짧은 발표만을 듣고 그들이 만든 게임을 직접 체험하는 정도에서 그쳤기 때문에, 대부분의 발화가 거의 개발자들의 입에서만 나올 수 밖에 없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기획단은 이후 꾸준히 페스티벌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을 담고 더 많은 논의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실험해왔다. * OOI 2019 게임 토크 - 〈다시 만난 오징어〉 2015년에는 기획단의 시각에서 각 선정작을 왜 선택했는지를 설명하고 참가자의 작품이해을 넓히는 방식으로 발표를 확장했는데, 많은 참가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발표 & 크리틱 방식을 수년간 유지해왔는데, 이 크리틱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체 선정작을 모두 훑느라 수 시간을 소모하는 긴 발표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현재는 전체 발표를 여러개의 세션으로 적절히 나누고, 이 세션들이 전시를 방해하지 않고 페스티발 한 쪽 구석에서 따로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발화의 주체가 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개발자들의 발표와 기획단의 크리틱은 모두 단방향이었기 때문에 상호 소통을 통해서 논의의 깊이를 더하고 싶었다. 그래서 2018년 부터 GDC에서 열리는 인디 게임 페스티벌(IGF)의 파이널리스트 인터뷰 시리즈인 Road to the IGF에서 영감을 받아 선정작 개발자와의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데, 기획단으로서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 개최되는 OOI 2021에서는 기획단 외부의 인터뷰어들을 섭외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논의에 동참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사실 페스티벌 안에서 다양한 대화가 가능하게 하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참가자에게서 발화를 끌어내는 것이다. OOI에서는 ‘신선한 게임 플레이’ 라는 주제를 많은 이벤트에서 흔히들 사용하는 방식은 일종의 피드백 보드를 만들어서 참가자들이 직접 노트를 작성해서 보드에 붙일 수 있게 하는 식인데, OOI 기획단에서는 이 방법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메모지에 글을 써서 작품 옆에 있는 보드에 붙이는 방식은 단순 인상평일 수 밖에 없고, 간단한 의견을 써서 보드에 붙이고 끝나는 행위에는 소통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논의의 시발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OOI 기획단은 7회째에 접어드는 현시점에서도 참가자에게서 시작되는 대화를 효과적으로 끌어내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OOI 2021에서는 온라인이라는 플랫폼의 특성을 살려 채팅을 기반으로 한 실시간 문자 소통을 실험할 계획이나, 좀 더 섬세한 기획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아웃 오브 인덱스 (Out Of Index) 는 ‘분류 밖'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변화와 실험을 계속해왔다. 다른 예술 매체와 같이 창작자의 손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창작자가 아닌 게이머의 손으로 비로소 완성되어야 하는,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가진 특성은 게임 페스티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페스티벌 참가자들이 작품을 즐기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한 페스티벌 기획은 기획단에게 있어 게임 디자인의 또 다른 영역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OOI의 페스티벌 디자인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OOI가 만들어가고 있는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더 많은 참여를 바란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 개발자) 박선용 놀 게 없으면 만들어서 놀고, 놀이터가 없으면 만들어서 친구들을 모으는 사람. 그래서 게임을 만들고, 개발자 커뮤니티를 만들고, 게임 이벤트를 만듭니다.
-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할 수 있을까? - 예수 시뮬레이터
예수의 몸에 들어온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지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목수의 체력을 갖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파쿠르는커녕 사다리도 타지 못했다) 과연 예수가 ‘낙뎀’을 받는지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아쉽게도 역시 신은 낙뎀을 받지 않았다. < Back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할 수 있을까? - 예수 시뮬레이터 30 GG Vol. 26. 6. 10. 올해 4월, 와 라는 두 게임이 게이머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제목만 보아도 종교적 색채가 짙은 이 게임들은 출시 전부터 리뷰어들과 게임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게임을 해본 기자들은 개신교, 불교, 가톨릭 등 자신의 종교적 배경을 밝히며 이 게임의 의의와 한계를 이야기했다. 사실 종교적 소재가 게임에 등장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종교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IP이기에, 종교의 세계관과 인물, 서사는 게임으로 다루기 좋은 소재이다. <디아블로> 시리즈도 기독교의 천사와 악마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차용했고, <신들의 전쟁(Fight of Gods)>처럼 본격적으로 신을 등장시킨 게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두 게임이 이슈가 된 것은 게임이 예수의 실제 행적을 따라가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특이점 때문이다. 두 게임은 예수를 모티브 삼거나 하나의 IP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1] 에 나오는 그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예수의 삶을 게임 안에서 플레이로 재현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아니, 그 전에 근본적으로 게임은 행위성(agency)을 중시하고, 성서는 전개와 결론이 정해져 있는데,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 가능한가? 스스로를 종교연구자이자 게임연구자로 정체화하는 나는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종교의 게임성 예수의 몸에 들어온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지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목수의 체력을 갖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파쿠르는커녕 사다리도 타지 못했다) 과연 예수가 ‘낙뎀’을 받는지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아쉽게도 역시 신은 낙뎀을 받지 않았다. * 낙뎀을 받기 위해 높은 지형에서 점프하고 있는 예수 이 질문은 종교적으로도, 게임적으로도 중요하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는 온전한 신성을 가진 신으로 규정되었지만,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양성론(兩性論), 즉 온전한 신이면서 동시에 온전한 인간이라고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적으로 완벽하게 고증하고자 했다면, 예수는 낙뎀을 받아야 했다. 데미지를 수치화할 필요는 없겠지만,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쉬운 점은 이 게임이 추구하는 자유도의 한계가 체감되었다는 점이다. 신성한 예수의 생애를 따라가고자 하는 목적이라면, 낙하 데미지는 불필요한 기능일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증명하듯, 마우스와 키보드를 눌렀지만 예수는 그 흔한 펀치조차 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성서는 너무 유명한 IP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문자(성서)로도, 음성(설교/강론)으로도, 영화와 드라마로도 이미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그러면 제작자는 성서를 굳이 게임으로 만들었을 때 뭔가 다른 경험을 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게임성’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려면 너무 많은 학술적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져야 하겠지만, 게임이라는 매체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무엇이 다를까? 나는 이 지점에서 콘텐츠와 유저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행위성을 기대했다. 한 점 한 획도 건드릴 수 없는 완전무오한 성서의 텍스트이지만, 게임으로 재현한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자유도는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게임 모두 [2] 그러한 자유도는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게임으로의 특수성을 발견한 부분은 자유도가 아닌 다른 영역이었다. 캐릭터의 자유도가 사실상 전무하다고 볼 수 있는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의아하게도 는 오픈월드 필드를 구현하고 있었다. 다음 퀘스트를 하러 가는 것 외에는 캐릭터가 할 수 있는 일이 구현되어 있지 않음에도 광활한 유대 광야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비록 퀘스트 지역을 벗어나면 패널티가 주어진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게이머라면 이를 참을 수 있는가? 당연히 그럴 수 없다. 나 역시 광야의 한계를 향해 달려나갔다. * 우측 상단에 보이는 믿음 수치 그렇게 계속 퀘스트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면, 성령이 만류하면서 ‘믿음’ 수치가 떨어진다. 맵 밖으로는 나갈 수 없으며 믿음이 다 떨어져도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자유도는 역시 없었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믿음이라는 수치 자체이다. 이 게임에서 ‘믿음’은 변형(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등의 기적), 치유, 퇴마, 부활, 신의 시선 [3] 이라는 ‘스킬’(?)을 쓸 수 있게 만드는 ‘마나’와 같다. 그리고 이 마나통은 신자 수에 비례해서 올라간다. 물론, 실제로 게임 내에서 마나의 부족으로 기적을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기적 스킬은 퀘스트를 통해 해금되고, 퀘스트를 하면 신도 수가 자동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또한, 나와 같은 게이머들이 자발적으로 방황하여 길 잃은 양이 된다고 하더라도, 우클릭으로 기도를 하면 믿음 수치가 차오르기 때문에 예수가 믿음이 부족하여 기적을 행하지 못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믿음과 신자 수라는 이 성장 요소는 게임으로서의 특수성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 생활을 깊게 해본 사람이라면, ‘신앙이 수치화되면 좋겠다’는 바람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불경을 읽고 108배를 올려서 내가 얼마나 많은 공덕을 쌓았는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특히, 신앙이 일종의 상징권력으로 작동하는 종교 환경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개신교에서는 종교 개혁 이후 자신의 신앙을 자신이 확신하고 또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목사든 초신자든 누구나 불안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앙이 지금 온전하다고 확언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에 새벽 기도 참석은 10 경험치, 성서 통독은 1500 경험치를 얻고, 레벨 10을 달성하면 방언의 은사를, 20을 달성하면 방언 통역의 은사를, 100을 달성하면 신유의 은사를 획득하는 시스템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누구든 자신의 행위에 따라 신앙의 성장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신앙인이라면 추상적으로만 존재하는 신앙의 성장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 아니더라도 어릴 적 한 번쯤 참석해 본 달란트 잔치는 이러한 인간적 욕망의 표상이기도 하다. 달란트 잔치가 정확히 언제부터 한국 교회에 시스템적으로 정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얼마나 교회를 나오고 얼마나 열심히 참석했는가에 대해 즉각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달란트 잔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주일학교 교육에서 종교 교육의 일환으로 활용되어 왔다. 물론, 신학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달란트를 물질적 보상과 연결짓는 것은 비유의 본래 의미를 역전시키는 셈일뿐더러, 시장 논리로 운영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앙을 성장시키고 싶어하는 욕망은 일반적이지만, 신앙의 성장을 확인하고 가시화하고자 하는 욕망은 개신교의 핵심 교리인 ‘솔라 그라티아(오직 은혜로, Sola Gratia)’ [4] 와 충돌한다. 신의 은혜가 아닌 자신의 행실과 의에 따라 신앙이 성장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은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원칙에 부합하는 형태이다. 조지 리처가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측 가능성과 계산 가능성이라는 맥도날드화의 논리가 교육, 의료, 종교, 여가 등 사회 전 영역으로 침투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5]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종교라는 추상적 활동 내에서 인간은 성장을 추구하고, 또 이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예수의 삶이 게임화되었을 때, 나에게 주는 새로운 경험은 이처럼 원래 존재하던 종교의 게임성을 확인시켜주는 점이었다. 더 좋은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퀘스트를 깨고 사냥을 하듯이, 종교 안에는 원래부터 성장에 대한 게임적 욕망의 구조가 내재해 있다는 것. 물론, 이 게임들이 이러한 점을 잘 캐치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게임의 종교성 애석하게도 이 게임들은 예수의 삶에 성장 시스템을 잘 녹여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시선을 돌려보자. 흉악한 조작감과 AI로 만든 것 같은 퀄리티로 인해 는 평가가 좋지 않지만, 는 출시 직후부터 지금까지도 평가가 ‘매우 긍정적’이다. 자유도나 성장 시스템 등 다방면으로 게임적 재미를 주지 못하고, 기적을 행할 때 반복되는 미니게임은 지루함을 넘어 당황스러움을 안겨주지만, 스팀 후기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영적인 체험이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남겨놓았다. 설령 게임성은 다소 부족할지언정, 1인칭 시점으로 예수님의 생애와 기적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성서를 읽거나 교회 의자에 앉아 있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게임에서 어떠한 종교적 체험을 한 것일까? * WASD를 누르는 단순한 미니게임이 게임 내내 반복된다 분명 새로운 점은 있었다. 조기 교육으로 인해 성서의 내용이 매우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말로만 듣던 성서의 지명을 지도로 보고 발로 뛰어다니는 경험이나, 막연하게만 상상하던 성서의 시대적 배경이 구체적으로 재구성되는 경험이 존재했다. 가령,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성전 정화 사건은, 유월절에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성전 뜰에서 환전상과 비둘기 장수들의 상을 뒤엎으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분노한 사건이다. 이를 성서로 읽을 때는 자연스럽게 읽고 넘어갔는데, 실제로 게임 속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가보니 단순히 상 몇 개 엎었다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이 와서 따질 정도의 규모가 아니었다. 거대한 성전의 내외부로 장사꾼들이 많았고 심지어 시장통답게 시끄러운 상황에서 적당한 소란으로는 모두의 시선을 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게임의 퀘스트는 나에게 여러 개의 동물 우리와 새 우리를 부수게 시켰고, 무엇보다 동물 우리를 부쉈을 때 안에 있던 양과 염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온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퀘스트 달성에만 초점을 두고 이후 처리는 리소스를 줄이는 선택을 하는 반면, 이 게임은 확실한 시대적, 공간적 상황을 그려내려 했다. 그런데 이것이 게임이 줄 수 있는 종교적 경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종교적 경험이라기보다 재현의 경험에 가깝다. 성서의 텍스트가 입체적으로 구현되면서 상상력의 공백이 채워지는 경험, 즉 읽고 듣던 것을 직접 보고 걷고 수행하는 경험이다. 초월이나 성스러움을 동반하는 종교적 경험과는 층위가 다르다. 아쉬운 점은 게임의 종교성이 가지는 포텐셜이 단순히 재현의 경험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종교학계에서는 종교와 종교적인 것을 구분하여 사유한다. 종교(Religion)가 교리, 경전, 공동체 등 제도화된 신앙 체계를 가리킨다면, 종교적인 것(the Religious)은 특정 제도 종교에 귀속되지 않더라도 인간이 경험하는 초월, 성스러움, 궁극적 의미에 대한 지향 전반을 가리킨다. 콘서트장에서의 집단적 황홀감이나 스포츠 응원, 정치 팬덤, 명상 앱 등 특정 교단이나 신앙 고백과 무관하게 다양한 종교적인 경험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은 이러한 ‘종교적인 것’이 출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다. 단순히 ‘알고 있는 것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에서 며칠 밤을 새 함께 레이드를 성공했을 때 함께 희열을 느낀다거나, <림월드>에서 삶과 죽음, 공동체의 의미를 묻는 등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우연성, 집합 감정, 의미 추구 등 다양한 감각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품고 있다. 게다가 게임은 제도 종교 내에서도 다른 방식의 종교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종교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종교적 경험을 제도나 교리가 아닌 개인의 내면적 경험으로 정의했다. 그는 진정한 종교적 경험은 성경 지식 같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깨달음을 동반하며, 순간적이고, 비의지적으로 찾아온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관점에서 게임을 만든다면, 신학적으로도 게임적으로도 해괴한 퇴마 시스템이 아니라, 로마 병사의 입장에서 예수에게 못을 박는다거나 베드로의 입장에서 예수를 부인하게 만드는 선택지를 제공하여 플레이어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강렬한 종교적 경험과 마주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배고픈 예수’를 기다리며 이러한 맥락에서 게임을 다시 살펴보자. 게임은 예수의 삶을 재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인종이나 성서의 사건들, 심지어 길에 심어져 있는 나무까지 고증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라는 CCM에도 나오는 성서의 감람나무는 번역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올리브 나무를 잘못 번역한 것인데, 게임 곳곳에서 올리브 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시의 자연환경을 구현하고자 고민한 것이다. 그러나 재현 자체가 목적이 되면 좋게 보아야 '교육용 게임'이 될 뿐이다. 아니, 교육용 게임이라는 것도 사실 핑계에 가깝다. 비기독교인 지인에게 이 게임의 타깃 대상이 누구일지 물었더니 "기독교인들이 할 게임"이라고 했고, 기독교인 지인은 "비기독교인을 위한 교육용 게임"이라고 했다. 결국 누구를 위한 재현인지 불분명한 셈이다. 재현 자체가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재현에 머무는 한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가능성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역사 교육 도구로 주목받은 것도 단순히 역사를 재현해서가 아니다. 역사적 사건에 플레이어의 행위성과 선택이 개입하면서 텍스트로는 불가능한 새로운 의미가 생산되었다. 게임을 하는 내내 아쉬웠던 이유도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게임과 종교 사이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접점이 존재한다. 종교의 게임성, 게임의 종교성 모두 아직 충분히 탐구되지 않은 가능성의 영역이다. 특히, 게임은 플레이어를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수행하는 자로 만든다. 그리고 종교는 언제나 수행을 요구해왔다. 기도하고, 절하고, 금식하고, 순례하는 것. 종교적 실천의 핵심은 언제나 몸으로 행하는 데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과 종교는 처음부터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이 논의는 게임을 단순히 더 재밌게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 속 예수에게는 허기짐 게이지도, 음식을 먹는 시스템도 없다. 그래서 사탄이 돌을 빵으로 바꾸라던 유혹은 유혹이 아니다. 높은 데서 떨어져도 데미지를 받지 않기에,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도 시험이 아니다. 예수의 광야 시험이 가진 핵심은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취약성이다. 그 고뇌가 시스템 안에 구현되지 않는다면 플레이어는 결코 그것을 수행으로 경험할 수 없다. 가다머의 해석학적 관점에서 보면 텍스트의 의미는 독자가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성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재현은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생산이다. 배고픈 예수, 낙하 데미지를 받는 예수, 유혹 앞에서 고뇌하는 예수.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예수가 게임 안에 구현될 때, 비로소 게임은 재현을 넘어 종교적인 것을 경험하게 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 [1] 일각에서는 '성경'이 ‘성서’보다 더 권위 있는 표현이며 역사적으로도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을 근거로 '성경'의 사용을 주장하지만, 이 글에서는 1968년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참여한 '성서 공동번역위원회'의 전통을 따라 '성서'로 표기하고자 한다. [2] 상기한 내용은 에 관한 내용이지만, 수태고지부터 시작되는 는 더욱 자유도가 없었다. [3] 이 역시 신학적으로는 문제의 소지가 많은 개념이지만, 넘어가자. [4] 물론,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나온 개신교 5대 강령 중 가장 핵심적 종교 원칙은 ‘솔라 피데(오직 믿음으로, Sola Fide)’이다. 그럼에도 그 믿음이 주어지고 성장하게 되는 원동력은 신으로부터 나온다. [5] 조지 리처는 이러한 사회 현상을 두고 ‘합리성의 비합리성’이라고 비판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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