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결과
공란으로 643개 검색됨
-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을까: 터치스크린 시대의 숙련도
매체라는 말은 A와 B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텔레비전과 영화, 스마트폰을 우리가 매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들이 각각 생각과 생각, 창작자와 수용자,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게임도 같은 의미에서 매체다. < Back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을까: 터치스크린 시대의 숙련도 11 GG Vol. 23. 4. 10. 매체라는 말은 A와 B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텔레비전과 영화, 스마트폰을 우리가 매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들이 각각 생각과 생각, 창작자와 수용자,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게임도 같은 의미에서 매체다. 그러나 이 매체라는 말은 조금 더 파볼 여지를 갖는다. 이를테면 텔레비전 매체는 물리적 매개체로서 텔레비전 수상기라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시청각 정보를 시청자에게 매개한다.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물리적 매체 안의 콘텐츠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 다시말해 디스플레이 기기, 스피커,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 또한 매체로 불린다. 디지털게임에서 물리적 매체는 PC, 스마트폰, 콘솔게임기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다만 다른 매체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물리적 매체 영역 하나를 게임은 더 가지고 있는데, 바로 입력 인터페이스다. 물리적 피드백을 제공했던 게임 인터페이스들 조이스틱과 패드, 키보드와 마우스, ‘펌프 잇 업’의 발판에 이르기까지 디지털게임에는 사용자와 게임소프트웨어 사이를 연결하는 입력장치로서의 인터페이스가 중요한 매체로 자리한다. 게임 소프트웨어가 제시하는 규칙의 세계는 사용자가 규칙에 조응함으로써 완성되며, 때문에 디지털게임에는 사용자의 의도를 기호화하여 소프트웨어에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플레이어가 자신의 의도를 소프트웨어에 되먹이는 과정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 감각으로 받아들인 소프트웨어의 신호는 뇌에 이르러 체계화된 상으로 구성되고, 이를 토대로 플레이어는 상황을 추론하여 해법에 맞는 의도를 다시 쏘아보낸다. 경우에 따라서는 음성이나 몸짓 같은 경우도 인터페이스로 기능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경우 이 과정을 매개하는 방식은 손과 같은 기관을 이용해 특정한 버튼을 눌러 정보를 입력하는 방식이다. 버튼을 누른다는 말로 대표되는 게임 인터페이스의 활용에는 디지털게임이라는 매체가 단순히 시청각매체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닌 특정한 상황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촉각이다. 스틱과 패드, 키보드와 마우스와 같은 일반적인 게임 인터페이스들은 대체로 특정한 버튼을 누르거나 스틱을 일정한 방향으로 밀고 당기는 동작을 요구하는데, 이 때 스틱과 버튼, 키들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 입력이 제대로 들어갔음을 알리는 특정한 촉각적 신호를 보내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오락실부터 유구하게 이어지는, 플레이어들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 ‘아! 눌렀는데!’는 이 촉각의 피드백과 게임 소프트웨어의 피드백이 보여주는 불일치(이기도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변명이기도 한)의 순간을 보여준다. 내 손에 들어온 감각으로는 제 때 스틱을 당기고 버튼을 눌렀지만, 소프트웨어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는 판정을 결과로 낼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순간에 손가락이 미끄러져 버튼을 제 타이밍에 누르지 못했거나 하는 순간 소프트웨어가 결과값을 출력하기 전에 이미 촉각 신호로부터 ‘아, 망했구나!’를 먼저 체감하기도 한다. 비단 버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스틱은 움직임의 제한값 – 다시말해 얼마나 오른쪽 방향으로 밀어낼 수 있는지의 한계를 스틱을 움직이다가 최대값의 벽에 부딪혔다는 촉각의 신호로 판단한다. 격투 게임에서 스틱이나 패드를 이용해 연속적으로 방향 커맨드를 입력해야 할 때 우리는 경우에 따라 스틱을 돌리는 모션을 취하곤 하는데, 이를테면 ←↙↓↘→같은 커맨드를 연속으로 입력할 때 우리는 반시계 방향으로 스틱을 끝까지 밀어 돌리게 된다. 이 때 그려지는 스틱의 움직임은 스틱의 가동범위 안에서 촉각을 통해 호의 모양으로 인지된다. 현실의 물리적 피드백이 사라지는 시대 소프트웨어와 상호작용해야 하는 디지털게임의 인터페이스는 그렇게 오랫동안 물리적이고 촉각적인 방식에서 비롯되는 또다른 피드백과 함께 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독특하게도 이런 피드백이 사라진 새로운 게임 인터페이스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바로 터치스크린이다. 모바일 기기들의 보편화되면서 모바일 기반의 게임들이 크게 대중화되었고, 그와 함께 터치스크린은 게임 인터페이스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단지 인터페이스의 중심이 바뀌었다는 말만으로 다 설명할 수 있는 변화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앞서 언급한, 촉각을 통한 피드백이 과거의 인터페이스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매끈한 유리 평면에서 이루어지는 플레이어의 입력은 더 이상 촉각적인 피드백과 함께 하지 못한다. 이른바 가상패드라고 불리는, 터치스크린 안에서 표현하는 별도의 입력방식을 통해 우리는 손가락으로 마치 스틱을 미는 듯한 움직임을 입력하지만, 이 때 손가락은 과거 스틱과는 달리 한없이 미끄러져나간다. 특정한 버튼을 누르면 여전히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입력에 반응하지만, 과거와 같이 게임 소프트웨어 바깥에서 주어지는 ‘눌렸음’의 촉각적 신호는 사라진다. 햅틱과 같은 기술을 통해 일정부분 보완한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물리적 방식에 기반한 촉각 신호와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일련의 가치판단으로 귀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들은 특유의 감각에 걸맞는 게임 규칙들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궁수의 전설’이나 ‘탕탕특공대’처럼 오로지 스와이프 동작만으로 이동과 공격을 묶어버리되 고전적인 입력방식의 형식을 유지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고, 아예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에 적합한 장르와 시점으로 넘어가버린 소셜네트워크게임류도 있다. 과거 스틱/패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대전격투게임과 같이 특정한 장르는 아무래도 소화하기 어려운 것이 터치스크린이겠지만, 이 또한 이후 장르가 어떻게 바뀔지는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숙련도가 머무는 곳은 어디였을까 촉각 피드백이 사라진다는 점을 조금 더 폭넓은 개념, 인터페이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인간-소프트웨어 사이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형태가 보편화되고 이 과정에서 물리적 피드백이 점차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를테면 간혹 이야기되는 뇌파를 통한 게임 컨트롤을 예로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속 캐릭터의 행동을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컨트롤할 수 있는 경우를 상정한다면 이 과정에서 또한 물리적 인터페이스가 제공하던 촉각적 피드백은 사라진다. 컴퓨터와 신경망을 직접 연결하는, 마치 ‘사이버펑크 2077’같은 세계에서의 게임이라면 아마도 인터페이스의 촉각 피드백은 무의미할 것이다. 오히려 이런 상상 속에서라면 디지털기기가 가상으로 만들어내는 햅틱과 같은 촉각 피드백은 플레이어가 인터페이스를 활용할 때 나타나기보다는 차라리 마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촉각 수트를 입고 적의 공격을 유사하게 그려내는 것과 같은 방식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인터페이스가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물리적 피드백은 점차 사라지고, 그 빈자리는 가상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피드백이 메꾼다. 촉각은 아니지만 VR 헤드셋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플레이어가 VR 헤드셋을 쓰고 시선을 돌리면 센서는 플레이어 머리의 동작을 읽어낸 뒤 시선이 돌아간 만큼의 시야를 렌더링하여 실시간으로 뿌려주는 피드백을 제공한다. 현실에서 플레이하지만 인터페이스의 물리적 피드백이 사라질수록 우리가 체감하는 감각은 더욱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온전한 가상의 세계에 강하게 귀속된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띤다. 첫 번째는 말그대로 디지털게임이 그려내고자 했던 가상세계가 보다 제작자의 의도 그대로 전달될 수 있게 변화한다는 점이다. 시청각 뿐 아니라 촉각까지도 의도한 바 대로 피드백해줄 수 있다는 것은 현재도 적용되고 있는 콘솔 게임의 게임패드들에서 이미 시도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듀얼센스가 제공하는 트리거의 장력 변화나 특정한 상황에 제공하는 햅틱 등은 결국 촉각을 동원해 소프트웨어가 제공하고자 하는 정보를 보다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고자 함일 것이다. 두 번째는 잘 거론되지 않는 점인데, 이는 결국 플레이어 – 소프트웨어라는 길항구도 안에서 중립적인 영역이 사라져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앞서도 이야기했던 이른바 ‘눌렀는데!’는 바로 그 물리적 피드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터페이스 시대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변명이 될 것이다. 물론 신경망을 연결한다고 해도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접속노드가 이상한데?’, ‘핑이 별로네’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손에 직접 누른 타이밍에 들어오던 촉각적 피드백을 근거로 삼던 시절과는 달리 이 때의 항변은 오로지 소프트웨어가 제공한 결과값과 자신의 의도가 만드는 차이로만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인터페이스가 갖는 물리적 한계는 한계로만 머무르기보다는 디지털게임의 발전과정 안에서 그 또한 극복, 혹은 마주해야 할 어떤 대상으로 자리하며 게임 플레이 안에 함께 녹아들어 온 바 있었다. 터치스크린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는 그 물리적 피드백의 공백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짝 체험하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게임들이 그 물리적 한계와 함께 어우러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신체가 유발하는 레이턴시를 넘어서는 완벽한 가상세계와의 합일을 꿈꾸게 하는 것도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이지만, 동시에 특유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부었던 인간의 노력과 그 성과들, 이른바 ‘피지컬’이라고 불렸던 일련의 숙련도가 만들어내던 재미의 영역은 그대로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영역에 눌려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17
GG Vol. 17 아곤과 알레아의 경합으로 일컬어지는 놀이의 전통 끝자락에서, 디지털게임은 운과 확률을 동원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경우의 수 판타지 세계를 열어내는 데 성공했다. 한편으로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여겨지면서도, 또다른 측면에서는 과도한 확률 의존으로 비판받는 오묘한 확률과 게임의 세계를 고찰해 본다. 22대 국회의원선거 공약이 말하는 대한민국과 디지털게임 민주주의 국가의 운영은 행정부만큼이나 입법부도 중요하다. 입법부를 구성하는 선거가, 쓰는 입장에서는 한창 진행중이고 읽는 입장에서는 투표 직전이거나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게임 또한 문화이자 산업으로서,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단 단속이나 규제의 의미만이 아니고 진흥과 지원의 의미로도 그렇다. 그리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게임 공약을 분석했던 시도에 이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등장한 게임 관련 공약을 살펴본다. Read More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깊이 읽기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소개한다. 백서가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에 대해서는 지난 10호에서 살핀 바 있고, 그 내용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므로 이 글에서 반복하지는 않도록 한다. 물론 그 중에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음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Read More MMORPG 레이드와 확률에 대응하는 플레이어 게임은 ‘불확실성’의 매체다. 보통 게임에서 불확실성은 두 차원으로 작동하는데, 하나가 게임의 결과와 관련된다면, 다른 하나는 게임 시스템에 의해 제공되는 특정 기회의 작동과 관련된다. 고도의 플레이 스킬을 요구하는 게임이든 운 중심으로 플레이되는 게임이든, 플레이어가 그에 참여해 플레이한 결과가 어떤 것일지는, 실제 플레이를 끝내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Read More Randomness is a double-edged sword. The opposite reception of randomness in AAA and indie game sectors It seems fascinating that the same mathematical phenomenon could become the foundation of the most acclaimed and the most despised design principles of modern gaming. As I will argue in this article, this is precisely what happened to randomness. Read More What’s fair price for video games? In Korean gamer communities, there's this saying about playing games from the Steam library: "Back then, we never paid to play the game. Nowadays, we never play despite paying the game." The phrase sarcastically highlights the contrast between the game market back in the 80s-90s, when no one actually paid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ith the abundance of pirated and copied games in Korea, compared to now with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when people do not play the game despite after purchase. Read More [Editor's View] 재현의 도구냐, 사행성의 도구냐를 묻는 오늘날의 디지털 주사위 알 수 없는 미래를 재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음악과 문학, 영화 등 기존의 많은 매체들이 시간선을 따라 정해진 사건을 풀어가는 형태였던 것과 달리 디지털게임은 '알 수 없음' 자체를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 왔다. 물론 현실에 존재하는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완벽하게 모사할 수는 없고, 제한된 방법으로서의 확률 계산을 통해 게임은 그 알 수 없는 미래라는 상황과, 그 상황에 놓인 인간의 머뭇거림과 결단을 그려내고자 한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디지털게임에 나타나는 알레아의 세 층위 연구자인 임해량, 이동은은 알레아를 주술적 알레아, 시스템적 알레아, 영웅적 알레아 세 층위로 나누고, 그를 <하스스톤>의 일부 상황과 연결해 바라본다. 연구자들은 놀이가 가지는 우연성이 사행성 담론에 매몰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이것이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을 발굴해 내고자 한다. 즉 이 연구는 알레아를 새로이 탐색하려는 시도이다. Read More 게임 개발자가 바라보는 확률의 구현 게임에서는 확률이 필수 불가결이라는 의견도 있고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게임에서 확률을 실제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는 알고 있을까? Read More 디지털 연산장치와 확률이라는 조합의 아이러니 디지털게임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이 매체의 물적 기반인 컴퓨터의 시작이다.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설계된 이 전자장치는 애초에 암호해독이나 탄도 계산 같은 전쟁 기술을 보조하는 도구로 만들어졌는데, 그런 도구로 사람들은 놀이하는 방법을 찾아내 즐기고 돈을 번다. 전쟁용 전자장비를 활용해 만든 놀이들의 상당수가 전쟁과 전투를 재현하려 든다는 점까지를 생각한다면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Read More 랜덤함: AAA와 인디게임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양날의 검에 관하여 요약하자면 현재 게임 산업 내 랜덤성의 인기와 그것에 대한 두 개의 극단적인 인식은, 처음에는 놀랍게 여겨질 수 있으나 우연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는 랜덤성이 과거의 아날로그 게임들에서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Read More 마일즈 모랄레스의 정체성과 브루클린이라는 ‘장소’ 마일즈의 불안은 인물(아마도 다른 시간선에서 스파이더맨이어야 했으나 프라울러가 되고 만 마일즈)의 형상을 취하다가 거미로 변모한다. 그의 공포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자격과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었던 셈이다. Read More 모든 게임의 확률은 여전히 주사위다 비록 이제는 멀티코어를 활용하거나 별도의 알고리즘, 하드웨어를 이용해 진정한 의미의 난수를 디지털에서도 생성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그 벽은 높다. 주사위라면 단 몇백원 만에 유의미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확률놀음을 할 수 있는데, 그 이상의 것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Read More 방치형RPG 비판 - 동시대 게임의 사회적 상상력의 문제 2010년대에 ‘방치’는 많은 비디오게임(이하 ‘게임’)의 핵심적인 플레이 방식으로 자리잡았고, 심지어 새로운 장르인 ‘방치형 게임(idle game)’까지 형성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게임 매체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모바일 게임의 성장을 추동했는데, 가령 캐주얼 모바일 게임인 ‘타비카에루(旅かえる)’는 5년 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게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Read More 셧다운제부터 게임 사전심의까지 - 21대 국회에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그럼에도 유독 지난 국회에서는 ‘친게임’이라 부를 만한 국회의원이 다수 활동했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기록했다. 게임이라는 의제에 대한 정치권의 높은 관심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어져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게임 정책을 힘주어 발표하거나, 게임 전문 유튜버, 매체와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Read More 유보된 이야기와 넓어진 유희공간- <용과 같이 8> 이 글에서 다루는 <용과 같이>는 전통적으로 자유도가 높은 게임으로 취급되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카무로쵸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 수두룩하고, 선형적인 이야기 속에서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으며, 무수한 미니게임이 게임의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Read More 확률이 만드는 스킵: 즐거움과 귀찮음 사이를 맥동하는 플레이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을 풍부한 경우의 수로 뽑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확률은 디지털게임에서 직면하는 상황의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며 빛을 발한다. ‘다키스트 던전’에서 랜덤하게 튀어나오는 스트레스 상황과 영웅의 기상은 플레이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나락에서 극락까지의 폭넓은 감정 변화를 만들어내고, ‘슬레이 더 스파이어’에서 매 라운드마다 주어지는 랜덤한 카드보상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예측불가능한 도전에 대해 예측과 적응으로 돌파하게 만드는 즐거움의 원천이다. Read More
-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채팅 비활성화와 게임 커뮤니티 문화
2019년 브리아나 우는 게임이 단순한 모방 범죄와 폭력성을 유발하고 있다는 담론에서 벗어나 이제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와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게임을 모방한 사건이나 게임 중독자의 일탈 행동 등 개인의 책임을 묻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이머 문화와 커뮤니티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 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 Back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채팅 비활성화와 게임 커뮤니티 문화 03 GG Vol. 21. 12. 10. * 〈리그 오브 레전드〉 2021년 11월 21일 패치 노트 2021년 11월 21일,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게임 내 전체 채팅 기능이 사라졌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게임의 명성만큼이나 해로운 상호작용을 지닌 게임으로도 유명하다. 롤의 채팅 기능은 게임을 위한 전술을 교환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대신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번 패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팀원 간 채팅은 여전히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운영적인 측면에서는 기존에 존재하고 적극적으로 활용되던 기능을 삭제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고, 팀 내 채팅마저 삭제될 경우 당장 타인과 함께 플레이하지 않는 유저들 간에 전술을 교환할 수 있는 수단이 미흡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패치를 주목했다. 누군가는 진작 생겨야 할 기능이었다며 환영했고, 반쪽짜리 기능일 뿐이라며 못 미더워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체 채팅은 사라졌지만 게임이 끝나자마자 결과 화면에서 바로 상대 팀원에게 욕설을 퍼붓는 게이머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물론 이번 패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이미 제공되는 채팅 끄기 기능을 왜 쓰지 않냐면서 이번 패치로 인해 자신이 채팅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빼앗겼다고 주장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 뿐만 아니라,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많은 게이머들은 게임 중 발생하는 폭력적인 대화들을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이미 게임 문화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폭력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익명의 상대방에게 더 쉽게 저주를 퍼부을 수 있는가? 기존의 MMORPG 게임은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일정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됐다. 상위 컨텐츠를 플레이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 부대낄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면 (좋건 싫건 간에) 게임 속에서 사회 규범이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유저들과의 대결인 PVP 보다는 PVE 가 주목적이기 때문에 원망의 대상이 몬스터나 개발사 쪽으로 가지 유저로 가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MMORPG 중 PVP가 유명한 게임들의 경우 채팅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거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AOS 게임은 부계정을 만들기가 타 장르에 비해 쉬운 편이다. 캐릭터의 숙련도를 정하는 것은 캐릭터의 레벨이나 전설적인 장비가 아닌 자신의 피지컬, 즉 순수한 실력이다. 게임 규칙을 지키지 않아 채팅이 막히고 아이디가 정지되더라도 다른 아이디로 접속하면 전과 같은 환경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 타인과 경쟁하는 게임에서 원망의 대상은 자신에게 패배의 경험을 제공하는 상대방이다. 같은 편이어도 예외는 없다. 끊임없는 조작이 필요한 AOS 게임의 특성상 채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부정적인 경험(캐릭터의 사망, 승패가 가려진 후)을 한 직후밖에 없는데, 이때의 흥분되는 감정들이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쏟아지기 쉬울 수밖에 없다.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증오 표현과 성희롱을 하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 게임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속된 말로 게임을 던지는) 것도 불사하는 행동, 때로는 게임 밖으로 까지 뻗어나가 사이버 괴롭힘과 스토킹까지 지속하는 이런 행위들을 서구권 게임 업계에서는 독성 행동(Toxicity, 일부 논문에서는 유해 행동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했다. 게이머게이트 사건 이후, 게임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독성 행동이 어떤 기반에서 생겨나게 되었는지, 이런 행동들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사회문화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북미의 경우 게임 커뮤니티에서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이들의 경우 대부분은 보수적인 성향을 띄며 여성 보다는 남성의 수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어리거나 젊은 게이머가 많았으며, 백인이고, 이성애자의 비율이 높아 주류 사회의 포지션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공격성은 위보다는 아래로 향하였고, 타인이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빼앗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약자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욕설 대상은 여성과 타 인종, 성소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1)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이런 경향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단일민족 국가 정체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타인종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욕설은 상대적으로 덜 하지만 그 부분을 여성에 대한 욕설이나 성희롱으로 채운다. 주목할만한 사실로는 상대방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더라도 어떤 캐릭터를 고르는지, 어떤 플레이 스타일을 가졌는지를 보고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되는 순간 상대방을 여성이라 단정하고 공격하는 경향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2) 공통적으로 독성 행동은 나이가 어릴수록, 여성보다는 남성이, 팀워크를 통해 경쟁하는 게임을 경험했을수록 더 흔하게 발생한다. 남성 게이머는 나쁘고 여성 게이머가 덜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을 하는 유저들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온라인 활동을 하는 이용자들의 수가 애초에 적기 때문이다. 게임 이용자들 중 1.4%만이 적극적인 온라인 활동을 한다. 댓글을 남기는 비율을 포함해도 10% 미만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 중 악성 유저의 수는 소수이지만, 이 소수가 게임과 게임 커뮤니티의 의견을 과대표하게 되면서 이들의 의견이 게이머 전체의 의견인 양 노출되게 된다는 점이다. 3) 이런 독성 행동은 게임 밖 커뮤니티에서 특히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자신을 드러낼 필요성이 없는 익명 사이트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한데 문제는 한국의 경우 게임 커뮤니티의 상당수를 익명 사이트(대표적으로 디시인사이드가 있다.)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카페나 팬 사이트와 다르게 익명 사이트들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한다. 이들은 친목과 규칙을 거부하고 쉽고 빠르게 글을 쓴다. 날것의 감성을 강조하여 원색적인 표현을 쓸 수록 반응이 좋기 때문에 자극적인 글들이 많고, (루머를 포함한) 최신 정보도 다른 곳에 비해 빠르게 올라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당연히 게임 개발자나 운영자들 또한 익명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게 되고, 원색적인 단어에 놀라던 사람들도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자극에 익숙해져 “잘못된 것 같긴 하지만, 원래 게임이 그렇다.” 는 식으로 무뎌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익명 사이트 문화가 게임 문화의 일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런 익명 사이트는 몇몇 유저가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쉽다. 독성 행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타인의 독성 행동을 학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디시인사이드의 경우 유저 수가 작은 마이너 갤러리가 하나 있다고 하자. 이 곳이 아무리 ‘DC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도 사람이 증가하면 독성 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된다. 이들은 수가 소수일 때는 침묵하다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한 두 명 보이기 시작하면 그동안 게시판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말을 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곧 마이너 갤러리의 분위기는 다른 갤러리와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하게 되는 식이다. 이들은 하나의 익명 사이트만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익명 사이트에서 동시에 비슷한 행동을 한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게시물을 여러 사이트에 공유하고, 각종 혐오 문화를 밈(MEME)과, 동영상, 짤방을 통해 재생산하여 퍼뜨리다 보면 대형 커뮤니티까지 이런 글들이 확대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침묵하기를 선택하고, 그것을 견딜 수 없을 때가 되면 커뮤니티를 떠난다. (게임 이용자들의 절반이 커뮤니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러다 보면 게임 커뮤니티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추구하게 된다. 남들보다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 것들은 남성이어도 쉽게 웃음거리가 된다. 수준 미달인 상대방을 놀리기 위해 원색적인 욕을 서슴없이 하며, 그것들을 가식 떨지 않는 솔직함으로 표현한다. ‘상남자’스럽지 않은 것은 계집들이나 게이들이 하는 일이며, 자신들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서클 안에 속하는 우리들 뿐이다. 그 곳에서 말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분명 게임 속 커뮤니케이션 문화에 질려 떠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 채팅 기능이 없는 〈스플래툰〉과 〈포켓몬 유나이트〉 독성 행동에 대한 해결 방법은 아직은 일반론적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다만, 〈에이펙스 레전드〉(Apex Legends) 등 몇몇 게임에서 채팅 기능을 제거하고 핑(Ping) 시스템을 통한 간접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도입한 이후 많은 게임에서 핑 시스템을 적극 차용하고 있으며 채팅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게임들 또한 등장하고 있다. 핑 시스템이 완벽한 대안이라는 말이 아니다. 핑을 쉴 새 없이 찍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감정 표현을 통해 상대방을 비꼬는 행위는 여전히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채팅 기능이 삭제되는 것 만으로도 타인의 노골적인 적대적 감정을 원치 않는 순간에 맞닥뜨리는 빈도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게이머도 게임사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발매될 게임들 중 의사 소통의 수단으로 채팅을 사용하는 게임들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 시스템적으로 다양한 대안을 세운다 하더라도 헤게모니 적 남성성을 과시하는 커뮤니티가 살아 있는 한 게이머들의 독성 행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AI 봇의 차단을 피해가며 사람들의 기분을 망치기 위한 방법을 자랑스럽게 공유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 게이머를 참교육한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나눈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영상들을 유튜브 클립과 이미지를 통해 재생산되며 집단 내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이 선을 넘은 행위로 게임을 정지당하더라도, 게임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이들의 게시물과 동영상이 남아 있다. 자극적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고, 이는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런 문화는 점점 더 부추겨질 수 밖에 없으며, 알고리즘으로 인해 유입되어 그 문화를 학습한 다른 이용자들에 의해 독성 문화는 계속해서 퍼져나갈 수밖에 없다. “비디오 게임은 총기 난사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게이머 문화는 증오를 조장한다.” 4) 2019년 브리아나 우는 게임이 단순한 모방 범죄와 폭력성을 유발하고 있다는 담론에서 벗어나 이제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와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게임을 모방한 사건이나 게임 중독자의 일탈 행동 등 개인의 책임을 묻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이머 문화와 커뮤니티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 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1) Weird (2020.12.09),Toxicity in Gaming Is Dangerous. Here's How to Stand Up to It, (https://www.wired.com/story/toxicity-in-gaming-is-dangerous-heres-how-to-stand-up-to-it/) 2) 이현준,(2021), ‘혜지’가 구성하는 여성에 대한 특혜와 남성 역차별 : 공정성에 대한 남성 온라인 게임 이용자들의 열망은 어떻게 여성혐오로 이어지는가?, 방송과 커뮤니케이션 17-19p 3) 박소영, (2020.08.19), 게임이용자 중 1.4%만 적극적 온라인 활동... "남성 게이머 과대표됐다",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80901430002130) 4) Wu, B. 2019. Video Games Don’t Cause Mass Shootings. (https://www.washingtonpost.com/outlook/video-games-dont-cause-mass-shootings-but-gamer-culture-encourages-hate/2019/08/09/655409a0-b9f2-11e9-a091-6a96e67d9cce_story.html)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게임 리뷰어) 딜루트 타인이 공들여 만들어낸 가상 세계와 이야기를 분석하는 행위를 즐겨 합니다. 선호하는 장르는 RPG이며 최근에는 보드게임을 즐겨 하고 있습니다.
- 콘솔게임 시장으로 진입하는 한국 게임산업을 바라보며
자주는 아니고 진지하지도 않지만 가끔 닌텐도 스위치 구매를 후회할 때가 있다. 최근 2년 넘게 스위치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오직 개인적인 게임 취향 탓이다. 무거운 테이스트에 충분한 핍진성을 통해 몰입감이 있는 게임을 선호하는데, 밝은 테이스트에 캐주얼한 게임이 많은 닌텐도가 잘 맞지 않음을 너무 늦게 즉 스위치 구매 후에 깨달았다. < Back 콘솔게임 시장으로 진입하는 한국 게임산업을 바라보며 11 GG Vol. 23. 4. 10. 자주는 아니고 진지하지도 않지만 가끔 닌텐도 스위치 구매를 후회할 때가 있다. 최근 2년 넘게 스위치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오직 개인적인 게임 취향 탓이다. 무거운 테이스트에 충분한 핍진성을 통해 몰입감이 있는 게임을 선호하는데, 밝은 테이스트에 캐주얼한 게임이 많은 닌텐도가 잘 맞지 않음을 너무 늦게 즉 스위치 구매 후에 깨달았다. 그래도 주기적으로 향후 출시 예정 타이틀을 둘러 보기는 한다. 콘솔은 어린 시절부터의 로망이었고(이 쓸데없는 개인사는 과거 칼럼인 ‘왜 한국 콘솔시장은 작을까? - 한국 콘솔게임에의 회상’ 의 도입부를 참조하면 좋다) 이왕 산 스위치이니 어떻게든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얼마 전 ‘베요네타 3’이 출시되어 실로 오랜만에 스위치를 켜보았다. 예정 신작 리스트를 볼 때마다 확인하는 부분은 한국어화가 되어 있는가이다. 영어여도 게임 진행을 할 수는 있는 정도의 어학 능력이 있긴 하나, 즉각적으로 독해가 가능한 모국어를 따라갈 수준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산 콘솔 게임이 적은 것은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더 코마’가 스위치로 발매되었을 때 즐거웠던 기억은 오래 남아 있다. 한국 게임의 콘솔 점유율이 낮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앞서 링크한 과거 칼럼에서 분석했던 바, 한국은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소로 인해서 당시 청소년이었던 게임 유저들이 거실의 권력을 가져가지 못했다. 대신 자기 권력이 작동하는 ‘방’에서 가능한 PC 게임이 가정 내 게임의 헤게모니를 가져갔다. 그 결과 약하지만 확실한 오프라인 소셜의 콘솔 게임보다 확고한 온라인 소셜의 PC 게임이 주류가 되었고, 오프라인 소셜의 성격이 지배적인 아케이드(PC방 포함) 게임의 전통은 역설적 오프라인 소셜 기능을 가진 모바일로 계승되었다. 이것이 모바일-콘솔 우선의 세계 여타 시장, 특히 북미 및 유럽 시장과 모바일-PC 우선의 한국 시장의 차이를 낳은 원인이며 과정이었다. (이제 저 과거의 글을 읽을 이유가 없어졌다!) 스위치 구매를 이따금 회의하는 가운데, 요즘은 PS5 구매를 고민하고 있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와 같은 PS 독점의 트리플A 게임을 하고 싶기 때문인데, 스위치의 전례가 있다 보니 출시작과 출시 예정작을 면밀히 훑고 있다. 즐길 게임이 최소 두 자릿수는 있어야 저 돈이 아깝지 않을 테니까. 그러다 보면 괜히 살 마음 없는 엑스박스의 출시작 리스트도 보게 된다. 호기심엔 답이 없다. 이 지점에 오면 눈에 들어오는 경향성이 있다. 각 콘솔의 출시 예정작 중에서 한국산 게임들의 비중이 점차 늘어난다. NC소프트의 ‘쓰론 앤 리버티’,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퍼스트 디센던트’ 등에 넷마블이 유명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하는 ‘나혼자만 레벨업’ 등이 눈에 띈다. 여기에 네오위즈 작품인 ‘P의 거짓’, 위메이드의 ‘나이트크로우’, 개인적으로는 내 안의 변태를 깨우는 그래픽이라 위험작으로 분류한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 등등까지. 여기에 ‘크로스파이어: 시에라 스쿼드’와 같은 콘솔 기반의 VR 게임들까지 합하면 숫자와 무게감은 더욱 늘어난다. 전통적으로 콘솔 진출에 소극적이었던 한국 게임사들이 대대적인 도전을 하고 있다. 2022년 한국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율은 유저의 이용률로 볼 때 17.9%에 불과하다. 이를 세계 전체 게임 시장으로 확장해보면 시장 규모 대비 1.7%다. 자본 규모로는 1조 원 가량에다 5% 정도 비중의 작은 시장이다. 한국이 미국-중국-일본에 이어 세계 게임 시장의 7.6%를 차지하는 세계 4위 시장임에도, 혹은 감안하지 않아도 작다. 그나마 한국 콘솔 게임 시장은 최근 7년 동안 꾸준한 성장을 해오긴 했다. 2015년에 1.8% 비중에 불과했던 이 시장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라는 히트작이 발매된 2020년에는 6.4%까지 성장했다. 다만 바로 대형 히트작이 없었던 바로 다음 해에 5.5%로 떨어지긴 했지만,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서는 한국 게임사들의 출시 예정작이 출시되면 다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 출처 :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하지만 게임 개발 현장과 전문가들의 지적은 콘솔 성장보다 PC와 모바일의 성장에 집중되어 있다. 일단 최고 파이인 모바일의 비중과 매출에서 성장세가 둔화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팬데믹 특수를 탔던 2020년에 잠시 성장세가 늘어났을 뿐이다.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시장이 성장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 더욱 눈에 띈다. 이런 상황은 PC 게임 시장 또한 마찬가지다. 유명 IP의 신작이 출시되면 잠시 매출이 늘어나는 정도인데, 이건 시장이 이미 한계에 도달한 후라는 의미다. * 출처 :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이미 시장에서의 신호는 PC와 모바일에서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음이 관측되고 있다. 게임사 입장에서 당장 오늘 먹을 것은 있지만 내일, 다음 주, 다음 달, 내년의 먹거리가 불확실해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시장과 개발 현장이 성숙해지고 법적 예술의 지위도 확보된데다 노조들이 제 역할을 하려고 나서기 시작하면서, 인건비 상승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개발 비용 증가다. 그리하여 한국 게임사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블록체인과 NFT를 접목해서 환금성이 높은 게임을 만들어보는 시도가 있다. 하지만 이 시도는 기존의 과금유도 게임과 기본 구조가 같고, 한국 국내 시장에서는 게임사의 현금 환금을 금지하는 법안이 합헌이라는 판결까지 나와 갈 길이 애매하다. 메타버스 개념을 활용하는 방안도 시도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환경만 제대로 조성된다면 이용자가 곧 컨텐츠 창작자가 되어주기 때문에 컨텐츠 개발 소요가 많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반면 시장에 안착한 후에는 여타의 MMO 게임과의 차별성을 두는 부분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온라인 성범죄의 플랫폼이 되는 등 신종 범죄에 이용 당하는 부작용도 관찰된다. 게임 개발의 노하우를 다른 분야에 적용시켜 가상인간이나 버튜버를 만드는 수익 모델도 제시가 되었지만, 일단 이건 게임 분야가 아니니 논외로 하자. 이런 와중에 느리게나마 확실하게 성장 중인 국내 콘솔 시장과, 이미 확고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북미/유럽의 콘솔 시장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현재 한국의 게임 수출 대상국 1위는 압도적으로 중국인데, 이런 중국의 게임 시장 상황은 최근 몇 년 동안 좋지가 않다. 중국 게임사의 개발 역량이 양질의 측면에서 궤도에 오르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데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게임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을 줄이는 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콘솔 게임에 진출하는 것은 중국 시장 대신 북미/유럽 시장을 개척하는 2중의 개척이며, 필수불가결한 개척이 된다. 여기에 더해서 진출 정체 상태인 중국 시장에서조차 콘솔 게임은 성장 중이다. 2021년 대비 2022년의 중국 콘솔 시장의 매출은 17% 증가했다. 비록 불법인 그레이마켓 매출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혹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잠재 성장 예상은 더 높다. 그렇다면, 판호만 얻어낼 수 있다면, 이 성장하는 콘솔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 모로 한국 게임사에게 콘솔이 다음 개척지가 될 이유들이다. * 출처 : 니코파트너스 그리고 배틀그라운드가 흥행했다.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게임 개발 현장에 준 메시지 중 하나는, 기존 MMO 게임처럼 온라인 퍼블리싱 판매가 아닌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에서의 판매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 게임이 ESD에서 판매가 가능하다면, 그 ESD는 스팀일 수도 있고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일 수도 있고 닌텐도샵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배틀그라운드의 2017년 이후 대작과 인디 가릴 것 없이 많은 게임이 스팀을 비롯한 ESD를 통해 출시되었다. 스팀 기준으로 판매 및 접속 성적을 보면 ‘블레스’, ‘섀도우 아레나’ 같은 게임들은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지만, ‘스컬’, ‘플레비 퀘스트: 더 크루세이즈’, ‘영원회귀: 블랙서바이벌’ 등은 나쁘지 않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고 보면 스위치에서 할 게임이 없다고 징징대던 내가 닌텐도샵에서 ‘더 코마: 커팅 클래스’를 샀던 시기도 배틀그라운드 이후인 2019년이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의 콘솔 게임 시장 진출 시도는 약간의 절박함도 묻어 있다. 집 안에서는 더 이상의 산출이 어려운데, 바깥에서 희망의 씨앗을 보았기에, 그리로 가는 것이다. 당장의 먹거리는 있지만 통계 지표는 그 먹거리가 조만간 포화 상태가 될 것을 경고하고 있으니까. 이는 제국주의에 비유할 수도 있고 이민자에 비유할 수도 있다. 사실 비유의 측면에서는 두 가지 모두 같은 동인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의 시장 성장이 한계이니 외국으로 나간다는 제국의 동인과, 국내에서 원하는 성취나 생존을 이루기 어려우니 외국으로 나간다는 이민의 동인은 사실 포화 상태에서 추동력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같다. 단지 서있는 입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뿐이다. 매출 통계 보고서를 받아든 현장의 경영자와 개발자는 절박한 이민자의 마인드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절박함은 보상 받을까? 앞서 스팀에 진출했다가 실패를 맛본 게임들의 예를 들었는데, 최근에는 ‘칼리스토 프로토콜’이 비평적으로 실망을 끌어내면서 사실상 실패의 성적을 거뒀다. 이후에 올 도전들이 이런 식이 되면 큰일난다. 이미 ‘P의 거짓’과 ‘퍼스트 디센던트’는 아류작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눈길을 받고 있다. 우리가 출시 예정작의 미래를 전망할 때 쓸 수 있는 가장 쉬운 단어는 ‘완성도’다. 특히 콘솔이면 소위 ‘패키지 게임’이 우선 떠오르기에 차차 고쳐나갈 수 있는 온라인 기반 게임보다도 출시 직후의 완성도가 더욱 중요하다. 가장 흔히 그리고 가장 먼저 짚는 요건이고,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하나마나 한 말이다. 그러니 자칫 놓치기 쉬운 완성도의 중요 요소를 짚어 보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경영 분야에서 비유를 빌려온다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원리가 있다.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동명의 저서에서 제시한 비유적 개념이다. 렉서스는 세계화, 보편성의 아이콘이고 올리브나무는 전통성, 문화적 오리지널리티의 아이콘이다. 이 짝패는 또한 개방성과 폐쇄성, 수출과 내 수의 상반된 개념을 의미하기도 한다. 프리드먼은 반대의 두 가치 중 하나를 선택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국적 요소에 의해 만들어져 다양한 국가로 팔려나가는 렉서스만을 택해 개방 일변도, 세계화로 나아가기만 하면 큰 시장에서 거대한 성과를 얻어낼 수는 있어도 지구 반대편의 악재로 인한 도미노 현상에 얻어맞을 수가 있다. 때 되면 찾아오는 금융 위기가 가장 확실한 예시다. 이것을 문화 분야로 번역하면 ‘상품에 줏대와 무게감이 없어진다’. 반면 동네 올리브나무를 놓고 싸우는 분쟁은 지엽적이고 유치해 보이지만, 동시에 지역의 뿌리이기도 하다. 프리드먼은 국가를 최후의 올리브나무라고 규정한다. 가족, 지역, 민족, 종교 등은 ‘우리’를 규정하는 판단 준거다. 배타주의와 혐오를 낳기 쉽고 확장성은 0에 가깝지만, 이 또한 렉서스만큼이나 확고한 인간 욕망의 한 축이다. 다시 이를 문화 분야의 언어로 번역하면 ‘확고한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컨텐츠’가 된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장면은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의 1편, 도입부 컷신에서 흘러나왔던 전설적인 대사다. “Wow, What a Mansion!” 본래의 일본어 대사는 “대단한 저택이군” 정도의 문장이지만 허술한 영어 번역과 방만한 연기로 인해 저런 어처구니없는 감정선의 대사가 만들어졌다. 또는 드라마 ‘로스트’에서 한국 장면이랍시고 동남아 식생이나 60년대 간판을 등장시켰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제작진들이 렉서스를 제대로 타고 저쪽의 올리브나무에 도착하는 임무를 해내지 못한 경우다. * 1편의 왓어맨션은 밈이 되었지만 7편의 현지 재현도는 강력한 효과를 냈다. 반면 성공한 경우는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의 7편이다. 루이지애나 외딴 늪지에 위치한 베이커 저택의 음침함을 현실성 있게 표현해내기 위해, 제작사는 텍사스 출신의 작가를 기용하고 로컬라이제이션 디렉터를 따로 기용했다. 이는 해당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렉서스에 제대로 탑승한 시도였다. 반대의 경우는 드라마 ‘킹덤’이 있다. 일본도 중국도 아닌 조선의 복식과 정부 시스템이 등장하는 이 드라마에서 세계인의 관심을 끈 것은 의외로 복식, 특히 갓이었다. 생소하지만 멋져 보이는 ‘cool hats’에 대한 관심은 올리브나무가 렉서스를 타고 넘어가 전파에 성공한 경우다. 유사한 성과를 보인 게임으로 ‘고스트 오브 쓰시마’를 들 수도 있겠다. * 드라마 속 복식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킨 드라마 ‘킹덤’. 이는 우리 동네 올리브나무를 설득력 있게 파는 방법에 대해 큰 힌트가 된다. 렉서스 개념과 올리브나무 개념은 서로 정반대의 원리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둘을 한 콘텐츠 안에서 구현하려고 한다면 둘의 지향점이 같아진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현실성 혹은 핍진성이다. 그리고 이 지향점의 끝은 몰입감으로 이어지고, 이는 완성도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향후의 콘솔 도전기에서 개인적인 기대작은 올리브나무를 제대로 분석해 딱 맞는 렉서스에 싣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펄어비스의 ‘도깨비’가 되겠다. 이 게임 역시 멀티 플랫폼으로 콘솔을 지원할 예정인데, 트레일러를 통해 본 예상 장점으로는 현대 한국적 환경을 훌륭히 녹여낸 배경이 있다. 한국적이라 하여 고궁이나 한복을 우선 내미는 구시대의 우를 범하지도 않고, 반대로 그런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지도 않으며, 전통과 현대가 맥락을 넘어 뒤섞여 있는 현실 한국의 특색을 그대로 녹여냈다. 딱히 이런 배경을 선택하지 않은 다른 게임의 경우에도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원리는 적용될 수 있다. ‘쓰론 앤 리버티’에서는 ‘기상이 전술에 미치는 영향’을 얼마나 현실감 있게 구현해내는지가 이 게임의 올리브나무가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 명의 게이머로서, 아무쪼록 모든 출시 예정작들이 자신의 올리브나무를 잘 파악하길 바란다. 가능하면 닌텐도 스위치 버전으로 살 것 같지만, 어느 날의 내가 간이 커져서 PS5를 질렀을 수도 잇으니 장담은 못 한다. 다만 어느 버전이든 충분한 몰입감을 주는 핍진성 구축에 성공하였기를. 그리하여 우리의 게임 라이프가 PC와 모바일을 넘어 콘솔의 로망에 다시 가닿기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아케이드가 할 수 있는 미래의 역할
오락실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아케이드 게임장은 1980~1990년대의 많은 게이머에게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남아있다. 점차 가정용 게임기와 PC가 보급되며 집에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어가는 환경에서도, 집에서 절대 즐길 수 없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게임을 동전 하나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의미를 넘어 게임 환경의 선두를 달린다는 이미지마저 주는 곳임을 뜻했고, 실제 게임 산업의 선두를 달리는 분야가 아케이드 게임이기도 했다. < Back 아케이드가 할 수 있는 미래의 역할 04 GG Vol. 22. 2. 10. 오락실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아케이드 게임장은 1980~1990년대의 많은 게이머에게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남아있다. 점차 가정용 게임기와 PC가 보급되며 집에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어가는 환경에서도, 집에서 절대 즐길 수 없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게임을 동전 하나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의미를 넘어 게임 환경의 선두를 달린다는 이미지마저 주는 곳임을 뜻했고, 실제 게임 산업의 선두를 달리는 분야가 아케이드 게임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아케이드 게임장은 매리트가 많이 사라져, 한국에서는 그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시기이다. 가정용 게임기와 PC의 그래픽 성능이 더욱 좋을 정도로 더 이상 시각적으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온라인 환경이 발전한 결과 집에서 편하게 게이머들이 전 세계 상대들과 마음껏 경쟁을 할 수 있는 것도 크다. 오히려 실력으로만 놓고 보면 전 세계와 경쟁을 즐길 수 있는 지금이 경험적 측면에서 훨씬 풍부한 것도 사실이다. 아케이드에서 형성되었던 게이머들의 커뮤니티 역시 개인 SNS로 얼마든지 전 세계와 소통을 할 수 있는 지금은 발걸음을 옮길 만한 매리트로 이어지지 않는다. 더해 아케이드는 가장 저렴하게 게임을 즐길 방법이었으나, 지금은 기본 무료 게임들과 모바일 게임의 보급으로 고유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으며, 에뮬레이터 프로그램으로 인해 아케이드 게임을 돈을 내고 즐기는 것이 아깝다는 그릇된 인식조차 생긴 상황이다. 결국 아케이드 게임장은 살아남기 위해 재미보다 감성을 공략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코인노래방과 인형 뽑기를 위주로, 여전히 집에서는 즐기기 어려운 체감형 게임 위주로 환경을 세팅하며, 스틱과 버튼으로 조작하는 게임은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인기 레트로 게임들로 편성하였다. 사실 2000년 이후 아케이드 게임 산업이 크게 줄어 신작 게임이 나오는 일이 드물어졌기 때문에, 이처럼 레트로 게임들로 꾸민 것은 그나마 소비자의 관심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이면서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인구가 훨씬 많고, 아케이드 게임 산업이 발달했던 미국이나 일본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미 미국의 아케이드 게임장은 테마파크나 레저시절에 같이 편승하여 체감형 게임 위주로 운영되고 있으며, 가장 게임 시장에서 아케이드의 영향력이 강했던 일본 역시 상징과 같았던 유명 게임장들이 연달아 문을 닫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인구의 규모가 커 여전히 새로운 게임들이 조금씩이나마 출시되고 있지만,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팬데믹 상황을 이야기하기가 민망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아케이드 게임장은 오랜 기간 매리트를 잃고 서서히 규모가 줄어들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 ‘동네 오락실’이라는 용어가 무색할 정도로 지역에 오락실이 있다는 사실조차 놀라는 시대가 되었다. 아케이드 게임장의 위기에 관련 회사들은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5년 전부터 도입된 VR기기이다. 아케이드가 주는 매력 중 하나가 집에서는 즐기기 어려운 새로운 체험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노린 발상이다.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이었지만, 어떻게든 아케이드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겠다는 이 시도는 VR 산업이 예상보다 커지지 못하면서 소프트웨어의 부족과 기술 정체, 팬데믹 상황까지 겹쳐 현재까지 유의미한 결과를 이루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다. 더해 새로운 시도가 연달아 빠른 속도로 이어지다 보니 업계의 시도만큼 정책이 따라가지 못해, VR 테마파크를 건설하는 데 있어 법률 관련 문제가 미흡했거나, 아케이드 업체 입장에서 체감 게임이 주가 되는 이상 금형 비용 지원이 중요한데 정부는 여전히 소프트웨어 개발비를 기준으로 산업 육성 차원에서 지원하는 부분 등 산업 발전을 위해 손발을 맞추는 것도 버거운 모양새였다. 설상가상으로 비디오 게임 소매업체도 디지털 게임 구매의 가속화로 수익이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이 흐름이 아케이드 게임과 전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 게임을 위해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이유 자체가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아케이드는 미래의 역할을 진지하게 파악해야 할 때가 왔다. 새로운 시대는 피할 수 없고, 아케이드는 결국 변해야 한다. 비디오 게임 소매업체의 경우,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 속에 “사람들이 매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공간”에 대한 실험을 이미 전 세계에서 2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이 같은 실험에서 가장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곳은 미국 게임스탑의 컨셉 스토어이다. 협동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대형 TV와 소파, TRPG로 대표되는 테이블 게임, 함께 게임을 즐기기 위해 앉을 수 있는 12~36개의 게임 부스, 레트로 코너, 수집품 전시장 등의 코너를 준비했으며, TRPG의 경우 큰 히트를 기록해 일부 매장은 프리랜서 던전 마스터를 고용하기도 했다. 구매하기 전 즐기는 것을 넘어, 같은 게임이라도 이 공간에서 즐긴다는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PC방 서비스에 복합 게임 공간이 결합한 상황인 게임스탑의 실험 목적은 “게임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것”도 있으며, 게임스탑은 여전히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는 상황이지만 현재까지 유의미한 결과를 이루어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 같은 복합 오프라인 공간은 한국도 몇 곳이 존재하며, 모두 나름의 생존전략을 찾아 오프라인 및 온라인 이벤트로 수년 이상 활발하게 공간을 가동하고 있다. 2022년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실제 생활에서 게임들과 게임을 즐기기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결과를 끌어낸 것이다. *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있는 게임스탑의 컨셉 스토어. 이 같은 사례로 미루어 볼 때, 결국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커뮤니티 형성이고, 아케이드는 여전히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형성은, 대상의 정보를 온라인보다 훨씬 많이 빠르게 습득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낯익은 얼굴이 밸런타인데이에 나와 같은 오락실에 나타났을 때 동질감을 느끼는 망상부터, 상대가 처한 환경을 보다 직접적으로 알 수 있기에, 특유의 커뮤니티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여전히 유효하다. 그만큼 게임에 있어 인성 역시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e스포츠 문화에 아케이드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킬러 콘텐츠와 오프라인 커뮤니티 특유의 예의 있는 교류가 합쳐진다면, 팬데믹이 지나 다시 한번 아케이드 게임 공간은 다시 사람들이 매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될 것이라 믿는다. * 디시디아 파이널 판타지 아케이드는 세 명이 팀을 이루어 다른 팀과 싸우는 게임으로, 낯선 사람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팀을 이루는 순간,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유대감이 생겨난다. 따라서 현재 가장 큰 숙제는 커뮤니티를 이끌어갈 만한 아케이드만의 경쟁력 높은 콘텐츠이다. 소속 커뮤니티가 뭉쳐 지역 최강 → 국내 최강 → 세계 최강으로 향한다는 흐름은 2022년의 게임 업계에서 아케이드를 떠나 게임 커뮤니티의 단합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재의 아케이드는 네트워크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어 실제 자신의 세계 랭킹을 확인하는 것이 한국도 가능한 시대이고, 점포끼리 대전도 가능하다. 안타까운 것은 콘솔 시장을 이끄는 소프트 메이커들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을 이끄는 구성이기도 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이 같은 인프라를 위해 달려들 기술력과 자본들 있는 아케이드 소프트 메이커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체험을 위해 구글 코리아가 기획한 게임 프로젝트인 구글 플레이 오락실 행사 역시, 애초 구글이 기획을 한 행사였기에 국내 게임사들의 다양한 모바일 게임을 전시하며 오락실이라는 명칭과 달리 유사 게임쇼 형식에 머무는 결과로 그쳤다. 90년대 출간된 만화 중 게이머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브레이크 에이지’라는 만화가 있다. 작가가 미국의 아케이드 게임인 배틀 테크를 본 뒤 이와 연관된 미래를 상상하며 그린 이 만화는, 제한된 리소스 안에서 자신이 로봇을 자유롭게 커스텀 할 수 있는 통신대전형 체감 게임인 ‘데인저 플래닛(Danger Planet)’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출간 이후 버추어 온, 아머드 코어 등 조작이나 개념이 비슷한 게임이 출시될 때마다 ‘드디어 데인저 플래닛 같은 게임을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가’라는 말이 따라다닐 정도의 인기를 얻었고, 결국 2010년 중반에 재판이 출간하게 되었다. 실제 이 만화로 인해 게임 업계에 뛰어든 사람도 적지 않다. 사람들이 이 만화에 열광한 이유는, 게임의 개념이나 등장인물들의 매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다. 체감형 아케이드 게임이 주는 박력이 상상됨과 더불어 남녀노소가 게임을 통해 건전한 교류를 하는 따뜻한 모습과, 지금의 NFT 개념과 비슷하게 자신이 만든 커스텀 기체를 판매하고 쉽게 구할 수 없는 부품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 및 실력만 있다면 개발사와 플레이어 모두 수익을 낼 수도 있는 건설적인 환경이 게이머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게임이 30년 전에는 SF에 그쳤을지 모르나, 현재의 기술로 만화 내용의 구현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현재의 아케이드 산업은 코인 노래방, 인형 뽑기, 체감형 게임으로 유지되는 상황이며, 시장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홀로그램 등 새로운 기술을 체감할 수 있는 최첨단 체감형 게임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지만,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는 킬러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이다. 다행인 것은 이 문제가 실제 전 세계의 대형 아케이드 게임 제작사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며, 올해도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 차례차례 등장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아케이드 산업을 살리겠다는 개발사들의 시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상, 아케이드는 향후 다시 한번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게이머들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저 업계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열정이 꺾일 정도로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IGN코리아 대표) 이동헌 1999년 월간 게임라인을 시작으로 게임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기간을 게임 개발사에서 보낸 뒤, 게임 제작자보다 글로서 게임 문화에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2018년부터 IGN Korea를 운영하고 있다.
- 자아와 투쟁하던 이야기로 세상을 구하게 만드는 방법 - 헬블레이드 2: 세누아의 전설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묘사하는 것은 때로 놀라울 만큼 쉽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천재나, 비현실적인 실력을 가진 전사를 만들 수도 있다. 어떤 문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고,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곤란함은 그들의 비범함 앞에서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 Back 자아와 투쟁하던 이야기로 세상을 구하게 만드는 방법 - 헬블레이드 2: 세누아의 전설 21 GG Vol. 24. 12. 10.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묘사하는 것은 때로 놀라울 만큼 쉽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천재나, 비현실적인 실력을 가진 전사를 만들 수도 있다. 어떤 문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고,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곤란함은 그들의 비범함 앞에서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일상적인 세계 속의 이례적인 인물이든, 이례적인 세계 속 일상적인 인물이든, 이들의 능력과 서사는 우리의 상상과 언어가 허락하는 한에서 필요한 만큼 설정될 수 있다. 아무리 극단적이고 허황되더라도. 여기엔 이들이 창조된 인물이기에 가지는 편리한 이점들이 있다. 이들이 가진 능력의 이면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 뛰어난 능력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그 능력을 얻으며 걸어오는 길은 어땠는지, 어떤 부침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고, 때이른 지위와 성공의 대가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이를 ‘구태여’ 설명하는 것은 이들의 서사를 간혹 다채롭게 만들어줄 부차적 이야깃거리로 소비된다. 대개의 영웅 이야기에서는 영웅들의 뛰어난 능력과 업적을 칭송하며, 이를 한층 낭만적으로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는 바로 그 행보에 놓인 고통과 좌절이다.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과 사건은 순수한 백지 또는 기초적인 도덕주의자의 상태에 머물러있던 인물을 영웅으로 만든다. 이 고통은 마치 '훈장 같은' 흉터로 남아 영웅을 더욱 빛나고 고귀한 존재로 장식한다. 고통과 좌절을 겪은 영웅은 마침내 이를 극복하고 더 성장, 발전한다. 고통이 남긴 트라우마는 영웅의 의지와 용기 앞에서 무력화되고, 더 이상 그를 번민케 하거나 괴롭히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은 숭고한 영웅 이야기의 일부지만, 이 길이 때로는 어둠과 추악함을 내포하고 있으며, 매 순간 어떤 대가를 견뎌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세누아의 전설: 헬블레이드 IISenua’s Saga: Hellblade II(2024, 이하 전설)>이 직시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전작인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Hellblade: Senua’s Sacrifice(2017, 이하 희생)>은 세누아가 겪는 개인적인 문제들을 부차적인 이야깃거리가 아닌 서사의 핵심으로 다루며, 그녀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스스로를 구해보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내면을 여행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리고 뒤이은 <전설>에서는, 이 세누아가 타인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외부 세계로의 여행을 묘사하겠다 선언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고통을 파고들며 논하던 작품이, 이제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논하는 주인공을 논해보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고통을 어떻게 묘사하고 활용할 것인가? 그녀가 이 유산을 끌어안고 여정을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POV: 세누아의 시선으로 보는 현실과 비현실 한 켈트 전사가 죽은 연인을 되살리기 위해 저승으로의 여정을 떠난다. 이것이 <희생>의 기초적인 로그라인이다. 게임을 실행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당신은 세누아가 몇 가지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고, 존재하지 않는 형상들을 본다. 그녀를 학대한 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심어진 부정적 자기 인식과 죄책감이 그녀의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 전투가 다가올수록 당신은 서서히 깨닫는다. 이 여정은 죽은 연인을 되살리는 여정이 아닌, 세누아가 스스로 짊어진 죄책감과 고통으로부터 일어서기 위한 여정이다. <전설>에서 시작되는 여정은 <희생>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따른다. <희생>에서 헬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홀로 떠났던 세누아는 이제 그녀의 민족을 침략한 노스먼의 땅이라는 현실의 공간으로 향한다. 더 이상의 침략을 막고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현실적인 대의도 가졌다. 자신의 과거와 개인적인 상실에서 기인한 고통에 맞섰던 세누아는 이제 그녀의 칼날을 내면에서 외면으로 돌려, 외부 세계에서 타인들을 괴롭히는 세상의 고통에 맞서려 한다. 그리고 게임을 실행한 당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떻게 <전설>이 시리즈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성의 이야기를 시도하려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익숙한 목소리의 해설자가 당신을 반긴다. 세누아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목소리들은 여전히 그녀의 귓전을 맴돌고 있다. 아버지 진벨의 망령은 잊을만하면 나타나 세누아를 덮친다. 그리고 그녀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적은 여전히 그녀 자신이다. [그림 1] * 전작에서처럼 세누아의 과거와 진벨의 망령에서 비롯된 비현실적 공간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해설자, 목소리들, 진벨의 망령은 <희생>의 전반에 걸쳐 플레이어에게 세누아의 내면을 묘사했다. 명백하게도 세누아 본인의 생각과 직관을 상징하는 이 요소들은 <전설>에서도 역시나 내밀하고 자세하게 작동하며, 세누아가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과 그녀의 모든 행동 및 선택에 반응하고, 평가하고, 주석을 단다. 세누아가 마주하는 모든 현실 또는 비현실의 세계는, 플레이 내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그녀의 내면을 풀이하는 이 장치를 통해 다듬어져 묘사된다. 사실상 플레이어들은 변함없이 세누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작품의 초점은 세누아의 여정 자체가 아닌, 여정을 겪는 세누아의 내면에 맞춰져 있다. 떨쳐내지 못한 어둠을 동력으로 찾아가는 이정표 세누아의 새로운 여정은 분명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의 여정이다. <희생>에서 겪었던 여정과는 달리,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매 성취를 입증하고 평가받는다. 어떤 문제를 얼마나 해결해 무엇을 얻어냈는지가 중요해지며, 대개 이런 여정의 경우 감정이 논해지는 순간들은 마치 베일을 들추듯 제한된 장면에서의 특별한 기회로 허락된다. 그러나 <전설>은 상술했던 수단을 통해 여정의 매 순간 세누아의 내면을 플레이어에게 들려주는 것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고통으로 얼룩진 과거를 뒤로한 채 영웅이 되어가는 인물의 내면을 관찰할 기회가 되는 것일까? 세누아가 노스먼의 땅에 도착하자마자 진벨의 망령이 그녀에게 말한다. ‘전부 두고 온 줄 알았느냐’고. 그녀가 벗어났다고 생각한 악몽이 다시 등장할 때마다, 세누아는 어김없이 타격을 입는다. 사람들이 죽거나 다칠 때마다 세누아는 자신을 탓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저주받은 아이라고 세뇌하면서 시작된 이 비합리적인 죄책감은 여전히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더 이상 인신공양을 할 필요가 없게끔 거인을 물리치겠다고 외치는 순간에도, 역시나 인신공양으로 신을 달랬던 아버지에게 배웠던 것을 떠올리며 확신을 잃는다. 세누아가 거인을 물리칠 때마다, 사람들이 그녀를 신뢰한다. 그녀의 능력에 대한 평판이 쌓이고 새로운 동료가 생긴다. 영락없는 성취와 성장의 순간이지만, 목소리들은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는 세누아의 내면을 들려준다. 아우구스트르가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목소리는 그녀를 신뢰할지 불신할지를 끊임없이 논한다. 은신족은 세누아를 시험할 때마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들을 집요하게 공략하고, 세누아는 매번 이 함정에 걸려든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극복하는 것은, 이 작품에서 그녀가 이뤄내야 하는 최종적인 성취로써 묘사되지 않는다. 이 문제들은 극복할 수도, 물리칠 수도 없다. 지난번 닥친 어둠에서 살아남았어도, 이번에 닥친 어둠 역시 두렵긴 매한가지다. 작품은 세누아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모습이 아닌, 이 문제들을 가진 상태의 세누아, 이 문제들에 익숙한 세누아가 여정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이 땅의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감각, 내면의 의심, 불안과의 끊임없는 투쟁, 발목을 잡히는 감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노스먼의 땅에서 거인들의 실체를 알아채는 순간, 세누아는 공포가 만든 거짓에 지배당했던 익숙한 경험, 이를 꿰뚫어 보기 위해 싸워야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곳의 사람들이 자신처럼 진실을 되찾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자신만의 사명을 찾아낸다. * 야른비에른 숲 레벨은 세누아와 같은 문제들을 겪게 된 동료들을 안내하며 숲을 빠져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더 나아가 <전설>은 이 지점에 세누아가 최종적인 성취를 달성할 수 있는 해답을 심어둔다. 그녀가 내면에서 겪었던 문제들, 그녀가 <희생>에서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맞서야 했던 문제들이 외면으로 끌려 나오자, 결코 죽일 수 없다는 거인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세누아만의 무기로 벼려진다. 이해와 공감의 전략적 무기화 세누아는 자신의 동족을 고통스럽게 하는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침략자들인 노스먼의 땅으로 향한다. 그러나 처치해야 할 적이라고 생각했던 노예 상인에게서, 한때 저승으로 가는 여정에서 자신을 잠식했던 어둠의 싹을 발견한다. 이 순간 그는 더 이상 세누아가 물리쳐야 하는 잔혹한 괴물이 아니라, 어떠한 이유로 그녀가 과거에 걸었던 길을 걷고 있는 연약한 인간이 된다. <전설>은 세누아가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적인 외부 세계를 묘사함과 동시에, 세누아의 앞에 펼쳐진 여정의 모든 요소들에 세누아가 본인을 투영할 수 있는 측면을 만든다. 토르게스트르는 그녀처럼 억압적인 아버지의 그림자에 갇혀있고, 파르그림르는 그녀처럼 특별한 직관과 시선을 가졌으며, 아우구스트르는 그녀처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싸운다. 사람들은 고통과 두려움에 빠져있으며, 세누아는 이 땅에 만연한 도탄의 감각에 익숙하다. 그녀는 자신이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이 그 과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도 떠올린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는 세누아는 이 여정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앞서 말했듯, 작품 전반에 걸쳐 그녀의 여정을 추동하는 것은 그녀가 극복하지 못한 이 문제들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녀가 이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녀의 여정에 이정표가 되어준다. 학살당한 이들의 고통을 잊지 못해 노스먼의 땅으로 향한 세누아는 어둠의 싹을 품고 있는 노예 상인을 이해하고, 자신이 찾던 고통의 근원이 따로 있음을 알아챈다. 마침내 진정한 근원을 마주하게 된 세누아는 이들조차 고통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이해하고, 이들을 해방시킴으로써 여정을 완수한다.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최종적인 적들은 이 땅에 살고 있는 3명의 거인들이다. 신들에게 버림받은 노스먼의 땅에서 사람들을 두려움과 고통으로 지배하고, 바다 건너 세누아의 동족에게까지 공포를 퍼뜨리는 악의 근원이다. 그리고 세누아가 이 고통의 근원을 제거하는 방법은 그녀의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 거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 작품에서 등장하는 보스전은 보스를 처치하는 것이 아닌 보스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은신족은 세누아에게 거인들의 사연을 들려줄 때, 이들의 고통을 초래한 사회적 배경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아닌, 사람들이 상처받았고, 공포를 느꼈고, 각박해졌고, 호전적으로 변했음을 설명한다. 이는 작품 내에서의 특정한 상황이 아닌, 현실에서의 어떤 상황에서든 벌어질 수 있는 통상적인 문제들로 그려지며, 세누아가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 - 이해와 공감을 작동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최소한의 맥락을 제공하는 서술이다. 이를 통해 은신족은 그녀만이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없었던 일퇴이가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는가? 자신이 초래한 죽음들에 대한 샤우바리시의 죄책감을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끝없는 힘을 탐했던 고디의 집착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들을 거인으로 만든 고통의 근원들을 찾아 나서는 전후에는 세누아가 느꼈던 동일한 고통의 경험이 병치된다. 연인과 이웃들을 지키지 못했던 분노,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느꼈던 죄책감, 그리고 거인을 물리치는 구원자라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집착. 결코 죽일 수 없는 거인들을 해방하고, 거인에 대한 두려움에 압도된 사람들을 해방시켜 고통의 근원을 뿌리뽑는 이 임무는, 여전히 자신의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한 세누아만이 발휘할 수 있는, 고통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라는 능력을 통해 완수된다. 너무나 뛰어난 나머지 스스로 상처 입을 정도로 치명적인 이 약점은, 그녀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게 만드는 서사적 열쇠로 사용된다. 전작이라는 뼈대에 영웅 서사의 살을 붙이다 <희생>이 주인공 세누아가 겪는 내적 고통을 중심 소재로 다루고 있었다면, <전설>은 동일한 주인공으로 하여금 현실적인 과업을 수행하게끔 만든다. 이 상반된 방향의 서사에서 작품은 늘 주인공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서사를 경험하는 당사자의 입장이라는 일관된 시각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작품은 전작에서 서사의 중심이었던 여러 문제로부터 세누아를 극적으로 해방시킨 채 지나간 과거의 요소로 치부하지 않고, 도리어 이를 활용해 타인마저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 서사를 꾸려나간다.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물. 이해와 공감은 작품에서 단순한 메시지가 아닌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전략으로써 사용된다. 사태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고, 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거인을 쓰러뜨릴 수 있는, 세누아만이 발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묘사하는 것은 때로 놀라울 만큼 쉽다. 이들이 가진 능력의 이면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설>은 이를 설명할 뿐 아니라, 이와 무관해 보이는 목표를 가진 서사의 뼈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사실, 단순히 전작의 묘사적 장치들을 작품의 전반에 걸쳐 삽입하는 것, 그것만으로 전작에서 형성한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새로운 방향의 서사를 만들어나갈 수 있겠는가. 세누아의 고통을 직시해야 했던 이들은, 세누아 뿐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박해인 게임에서 삶의 영감을 탐색하는 게이머. 게임의 의도와 컨셉을 전달하는 방식들을 분석하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 [Editor's View] 연결되고 재현되는 신체, 그리고 비평과 대중 사이를 잇는 가교로서
사람으로 태어난 게이머에게 몸은 필요조건입니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상호작용을 요구하며, 이에 대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신체의 기능을 사용해 응답해야 합니다. 사람이 게임 안쪽에 재현되는 경우라면 신체의 중요성은 더 무거워집니다. 게임 속에 그려진 신체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에 의해 조작되는 신체이며, 이 결과물들은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신체를 사고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 Back [Editor's View] 연결되고 재현되는 신체, 그리고 비평과 대중 사이를 잇는 가교로서 22 GG Vol. 25. 2. 10. 사람으로 태어난 게이머에게 몸은 필요조건입니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상호작용을 요구하며, 이에 대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신체의 기능을 사용해 응답해야 합니다. 사람이 게임 안쪽에 재현되는 경우라면 신체의 중요성은 더 무거워집니다. 게임 속에 그려진 신체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에 의해 조작되는 신체이며, 이 결과물들은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신체를 사고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디지털게임 연구와 비평의 많은 부분들은 실제로 게임과 신체의 관계에 주목합니다. 크게는 두 가지, 게임 소프트웨어와 조응하는 게임 외부의 신체와 게임 소프트웨어 안에 재현되는 게임 내부의 신체가 그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신체는 게임과 맞닿으며, 디지털게임의 이해를 위한 여러 요소들 중 신체와 게임의 관계는 형태소에 가까운 수준으로 우리의 게임에 대한 이해를 구성합니다. 게임에 처음 신체가 그려지기 시작한 초창기 게임에서부터 이러한 신체에 대한 관찰과 재현, 연결은 이어져 왔습니다. 조이스틱이라는 장치의 출현, 게임 내 체력 바의 구현, 온라인게임에서의 피로도 문제 등은 결코 게임 안에 독립적으로 디자인된 요소가 아닌, 현실의 신체를 모사하고 재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물들입니다. GG 22호는 그렇게 중요하면서도 아직 우리가 깊이 살펴보지는 못한 주제인 게임과 신체의 관계를 재조명합니다. 게임과 신체라는 테마로 글들을 모아내는 과정은 다른 주제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사실 이미 많은 것들이 이야기된 상황이지만 이를 하나로 모아 좀더 깊게 탐구하는 과정만이 모자랐음을 깨닫습니다. 수많은 게임 - 신체 사이에 대한 연구결과들과 사유의 조각들이 존재했지만 이를 통합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공간이 부족했다는 것은 게임제너레이션이 해야 할 일이 아직 한참 남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디지털게임은 이제 뉴미디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대중화, 보편화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매체가 된 만큼이나 이제 게임에 대한 비평과 연구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쌓여갑니다. 다만 이미 축적된 전문 연구자들의 논의를 어떻게 대중사회로 끌어 오고, 이를 통해 게임 제작자와 플레이어 모두에게 새로운 변화의 동력을 제공하는 과정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반성 속에 저희는 다음 호를 준비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학술과 대중이라는 어느 순간부터 유리된 듯한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가교로서 GG는 끝없이 둘 사이를 왕복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기울어진 협곡에서 - <당신엄마가 당신보다 잘 하는 게임〉에 부쳐
사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공평하다는 것이다. 게임은 모니터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할 방법이 없고, 오로지 그가 제때에 버튼을 누르고 있는지 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게임은 인종, 성별, 계급에 상관없이 오로지 실력과 그것을 위해 쏟는 노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승자가 될 수 있다. 이는 인터넷이 보편화 되던 시절 즈음에 유행하던 “전자민주주의”라는 장밋빛 구상, 즉 익명성을 전제로 하는 온라인에서는 모두가 계급장을 떼고 의견 대 의견으로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의 게임 버전이었다. < Back 기울어진 협곡에서 - <당신엄마가 당신보다 잘 하는 게임〉에 부쳐 05 GG Vol. 22. 4. 10. 평등한 게임이라는 환상 사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공평하다는 것이다. 게임은 모니터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할 방법이 없고, 오로지 그가 제때에 버튼을 누르고 있는지 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게임은 인종, 성별, 계급에 상관없이 오로지 실력과 그것을 위해 쏟는 노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승자가 될 수 있다. 이는 인터넷이 보편화 되던 시절 즈음에 유행하던 “전자민주주의”라는 장밋빛 구상, 즉 익명성을 전제로 하는 온라인에서는 모두가 계급장을 떼고 의견 대 의견으로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의 게임 버전이었다. 이런 주장은 다양한 이유로 게임에 접근조차 어려운 사람들, 예컨대 장애인이나 극 빈곤층 등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는 한계를 이미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간 많은 게임 커뮤니티들에서 어린 고수들에게 게임의 도道를 사사 받은 풋내기 성인들의 경험담 같은 것들을 심심찮게 봐왔다. 어쨌거나 게임의 세계에서는 게임 잘하는 사람이 최고라는 사실은 유효하다. 하지만 생각해볼 것은 오늘날 게임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환경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재능하나로 돌파하는 천재들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현실이 그런지는 따져볼 일이다. 데이터 과학자인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통념을 배반하는 데이터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가령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NBA(전미농구협회)를 가난한 흑인들이 재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장으로 여긴다. 하지만 정작 데이터는 반대다. NBA는 점차 중산층 이상의 배경을 가진 선수들로 채워지고 있고, 그들이 가난한 선수들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저자는 그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든다. 하나는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양육된 아이들이 좋은 영양 상태를 유지하면서 더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절제하고, 인내하고, 규칙을 지키는 등의 사회적 능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1). ‘게임을 누가 그렇게까지 하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게임이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던 시절’에는 무시당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게임은 다른 무엇보다도 ‘돈’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는 것을 놔두는 것은 책임방기에 속한다. 동시에 이런 개입들은 필연적으로 게임을 더 돈이 되는 방향으로 끌어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우리는 Pay to win이라는, 돈을 많이 낼수록 강해지고 승리하는 게임들의 승승장구와, 하나의 게임을 잡다하게 쪼개서 팔아치우는 부분유료화의 전면화를 목도하고 있다. 물론 실력만으로 경쟁하는 게임들이 있다. 하지만 자녀가 게임에 재능이 있다고 해서 프로게이머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최신형 컴퓨터를 사주고 프로게이머 학원에 보내주는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로게임계에서 걸핏하면 터져 나오는 ‘인성’논란이나, 과거의 행적에 대한 문제들은 앞선 예처럼 교육과 양육환경의 문제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프로스포츠들에 비하면 아직은 덜 체계화 되어 있을 수는 있지만, 만약 e-sports가 진짜로 다른 인기 스포츠들만큼의 위상을 획득한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물론 모두가 프로게이머가 되려고 게임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경쟁하면서 즐거움을 맛보고 싶은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별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뉜다. 무엇보다 이런 것들은 티어로 알 수도 없고, 반영되지도 않는다. 엄마가 모욕이 된 세계 오늘날의 인터넷이 그렇듯이, 게임은 익명성을 기반으로 평등하게 소통하기보다는 무차별적 모욕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혹자는 누구에게나 무차별적으로 모욕하는 것이니 그것 또한 평등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욕이 진짜로 ‘무차별적’인지는 살펴봐야 한다. 박서련의 단편 소설인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2)은 동명의 소설집의 표제작이다. 소설은 무용을 전공할 뻔하고, 외국계 게임회사에 다니는 남자와 결혼해 아들을 하나 낳은 중산층 가정주부인 ‘당신’3)의 이야기를 다룬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게임실력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아이에게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해주려고 하는 헌신적인 부모인 당신은 고민 끝에 게임과외를 떠올린다. 최초로 찾아온 것은 명문대를 다니며 챌린저 티어인 남자 대학생이다. 그는 게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을 나무라며 부모라도 아이가 하는 게임을 알아야 한다고, 그러니 자기가 가르쳐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게임을 가르쳐 주겠다던 그는 그걸 빌미로 손을 잡고 가슴에 팔꿈치를 갖다 대며 성추행을 한다. 이제 어리지로 순진하지도 않은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챘고, 단호하게 그를 내쫓는다. 불쾌감을 뒤로하고 새롭게 만난 과외선생은 다이아 티어의 명문대를 다니는 여대생이다. 당신은 그에게 여성적 매력이 없음을 안도하며 아이의 과외선생으로 낙점하지만, 그는 아이가 아니라 당신이 게임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과외선생의 등쌀에 떠밀리듯 당신은 게임을 시작한다. 그런데 당신은 놀랍게도 재능이 있었다. 당신은 승리를 쌓아가며 오랜만에 온전한 성취감을 맛본다. 순식간에 아이의 티어인 브론즈를 넘어 골드에 진입한 당신은, 때마침 아이의 라이벌이 아이와 전교회장 출마를 두고 게임으로 승부를 내자고 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당신은 불신하는 아이를 이겨 실력을 입증하고, 아이의 라이벌을 게임으로 불러내 보기 좋게 압살해버린다. 하지만 사실 게임을 그다지 잘 하지도 못했던 아이의 라이벌은 패배에 승복하지 않고 아이의 계정에 접속해 있는 당신에게 조롱의 메시지를 쏟아낸다. 그리고 당신은 알게 된다. 게임에서 ‘엄마’는 그 자체로 욕설로 받아들여지고, 당신이 엄마라고 타이핑할 때마다 ‘XX’가 그것을 대체한다는 것을. 아이의 라이벌은 계속해서 우회적으로 너희 엄마를 외치지만, 게임은 엄마인 당신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게임에서 이긴 것은 당신이지만, 당신은 눈물을 흘리며 패배감을 맛본다. 게임, 엄마, 여성 이 소설은 여성과 게임의 관계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사례들을 엮어 한편의 악몽으로 만들었다. 하나의 악몽은 엄마의 것이다. 소설 속의 ‘당신’은 새로운 세대의 교육받은 엄마이고, 자녀 양육에 관한 최신의 정보와 자원을 충분히 습득하고 있는 중산층이다. 훈육과 금지보다 이해와 도움을 통해 자녀를 양육하려고 하고, 과도한 애정관계를 형성해 아이를 의존적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소위 깨인 엄마이기도 하다. 물론 소설은 이런 듣기 좋은 이야기가 현실에서는 조금도 먹혀들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신은 아이의 미래를 자신의 계획과 계산을 통해 성취하려고 하는 전형적인 헬리콥터 맘이고, 아이에게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아이는 의존적이고 버릇없게 자라고 있다. 당신은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전전긍긍하고 모든 것에 일일이 대응하려 하는 미숙한 어른임에도, 자신이 아이를 빈틈없이 케어하고 있다는 허위의 자족감에 빠져 있다. 따라서 소설은 엄마인 당신을 온전한 피해자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당신은 당신이 빠져있는 함정에 매몰되어 있거나 심지어 공모하고 있는 존재에 가깝다. 게임문화에서 엄마의 표준적인 모습은 당장 게임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라고 닦달하는 존재이지만, 소설 속의 당신은 이런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녀의 모든 영역을 빈틈없이 조망하고 싶어 하는 욕망 혹은 그래야만 한다는 압박 때문에 게임에 직접 뛰어들게 되는 인물로 나타난다. 그러나 금지든 방임이든 개입이든 간에 게임은 엄마들에게 불안의 영역이다. 그것이 내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게임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담론이나 연구들은 온전한 논의가 아니라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정해두고 말하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때문에 엄마들은 대부분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게임에 맞서는 것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이런 역할들을 엄마가 도맡게 되는 것은 여전히 양육과 돌봄이라는 문제가 엄마의 문제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엄마의 일’로 여겨지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한 사람의 모든 삶이 평가되는 종류의 문제이다. 하지만 학업성적이나, 일의 성과 같은 것에 비해 양육은 지극히 평가가 어렵다. 사회적으로는 아이가 명문대에 입학하고 고소득 직업을 갖는 것 정도가 성공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인생의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이런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결국에는 엄마의 잘못이 되고야 만다. 이 함정을 빠져나가는 방법은 양육의 책임을 모든 가족과 사회에 실질적으로 분산하고, 엄마들에게 합당한 사회적 인정과 자리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엄마에게 대부분의 책임을 지운다. 직장에서는 자기만 조직에 헌신적이지 않은 이기적인 존재이며, 밖에서는 이기적인 ‘맘충’이고, 가족들에게는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는’ 엄마이자 아내다. 게임에 대한 ‘엄마’들의 적대는 이런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방어적인 반응이다. 자신의 의무는 아무것도 줄어든 것이 없는데, 남편과 자녀가 시간과 돈을 게임이라는 잘 알지도 못할 것에 쏟아 붓고 있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수 있겠는가? 다른 한편의 악몽은 여자에 대한 것이다. 게임에서 가장 심한의 모욕은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여성형이다. 게임을 못한 것이 남자일지라도 욕을 먹는 것은 애꿎은 엄마와 전국의 아무 상관없는 ‘혜지’들이고, 평생을 모쏠로 살아온 사람일지라도 ‘남자친구 따라서’ 게임을 시작한 줏대 없는 게이머 취급을 당한다. 그런가하면 많은 남자게이머들이 여자게이머를 잠재적 연애대상으로 여긴다. 엄마, 선생님, 여가부(!)처럼 여자는 게임을 방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지만, 게이머 여성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마저도 그 여성은 나보다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존재이며, 게임을 ‘가르쳐’줘야할 존재일 것이라는 가정이 붙는 경우가 대다수다. 게임을 잘하는 여성이 등장하더라도 그의 실력은 언제나 ‘합리적 의심’에 휩싸이고, 폄훼당하기 일쑤다. 자신이 그 여성게이머보다 게임을 못하더라도, 게임실력을 의심하고 훈수를 둘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남성게이머들이 넘쳐난다. 게임문화의 공식적인 입장은 ‘게임만 잘하면 되지 네가 무엇이든 상관없다’이지만, 이것으로는 게임문화 전반에 넘쳐나는 여성혐오와 소수자혐오를 설명할 수 없다. 딜루트는 《나는 게이머입니다, 아 여자고요》에서 많은 게임커뮤니티의 주류담론들이 모두를 동등한 게이머로만 대해야 하며, 친목질을 방지하고 성별을 밝히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드러내선 안 되는 성별은 오직 ‘여성’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서로를 형이라고 지칭하고, 여성 게이머 이슈에서는 입을 모아 조롱하기에 바쁘지만 그런 것에 문제를 제기할 때 만 “남자건 여자건 그냥 각자 게임을 하면 그만”이라고 답한다는 것이다.4) 최근 몇 년간에 걸쳐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게임업계의 성차별, 남성중심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많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아시아시장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북미나 유럽에서도 이런 흐름에 대한 불만을 가진 게이머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곳의 책임 있는 단위들이 하다못해 말이라도 차별에 대한 반대를 뚜렷하게 표하는데 반해, 한국과 아시아는 모든 것을 소비자-게이머들의 뜻이라며 회피하기에 바쁘고, 거기에서 힘을 얻은 일부 남성게이머들은 차별을 정당화하고 앞장서서 여성과 소수자를 탄압하기에 열을 올린다. 이렇듯 오늘날의 게임문화는 엄마에게도 여성에게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이 이렇게 특정한 남성 집단들의 전유물이 된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런 새로움도 품을 수 없음을, 그래서 결국에는 고립되고 도태될 것임을 예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에서 ‘당신’은 게임을 통해 그간 얻지 못했던 승리감을 맛본다. 그가 현실에서 다뤄야 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결코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없고, 끝나지도 않는 종류의 것들이다. 그러나 게임은 짧은 시간동안 승리와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해준다. 어쩌면 당신은 패배 역시 기뻤을지 모른다.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조차 없는 세상과는 다르게 명확하게 판정을 내려주고, 심지어 언제든지 다시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였다. 게임은 이미 현실세계에 만연한 여성혐오로 침식되어 있었고, 게임은 그를 “XX”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게임의 세계 역시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 할 수 없고, 현실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협곡에서도 똑같은 기울기로 존재한다. 때문에 그는 게임에서마저도 자신의 존재를 끝없이 의심하며 또 다른 싸움을 벌여야 한다. 나는 게임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지겨워진다. 왜 우리는 우리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에 기어코 현실의 가장 나쁜 것들을 끌고 들어오고야 마는가? 왜 누군가를 모욕하고 신뢰를 깨트리는 것에서 음침한 즐거움을 얻는 이들에게 질질 끌려 다녀야 하는가? 왜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 편히 게임하는 것 대신에 진짜게이머와 가짜게이머를 구분하는 의미 없는 언쟁에 휘말려야 하는가? 게임은 가히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 중 하나지만, 그것이 나아가는 방향은 우려스럽다. 더 약탈적인 비즈니스모델,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무지와 무시, 독성을 가득 머금고 여성과 소수자를 혐오하는 커뮤니티문화. 이 흐름들을 멈출 수 없다면, 게임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것과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버릴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만큼의, 우리와 닮은 ‘게임문화’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니 더 손을 쓰지 못하게 되기 전에 게임을 되찾자. 이 모든 것들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1)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모두 거짓말을 한다》, 더 퀘스트, 2018. 2) 박서련,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민음사, 2022. 3) 당신은 이름이 아닌 2인칭 대명사이다. 4) 딜루트, 《나는 게이머입니다, 아 여자고요》, 동녘, 202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평론가, 사회학연구자) 최태섭 지은 책으로 《모두를 위한 게임 취급설명서》, 《한국, 남자》, 《잉여사회》 등이 있다.
-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Back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19 GG Vol. 24. 8. 10. PC ESD플랫폼 ‘스팀’에는 늘상 좀비물이 넘쳐흐른다. AAA급 타이틀은 말할 것도 없고, 저예산의 소규모 게임들로 가면 온통 좀비 천국이다. 좀비의 인기는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호러 장르라면 좀비는 더욱 본격적이긴 하다.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게임 속 좀비의 등장과 변화 단순하게 좀비라는 개념을 처음 게임 안에 가져다 놓은 게임을 꼽으라면 1984년의 <좀비 좀비Zombie Zombie>를 꼽을 수 있겠지만, 이 게임의 경우는 좀비 게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도의 특성만을 보여주었다. 좀비 영화가 나름의 흥행을 이어가던 시절, 이 게임은 그저 영상물로서 갖는 좀비의 인기를 비디오게임으로 가져오는 정도에 머물렀다. 고층 빌딩 위에서 좀비라고 불리는 적들을 밀어 낙사시키는 방식의 간단한 규칙 안에서 적 캐릭터들의 행동은 굳이 좀비가 아니어도 무방할 패턴이었기에 본격적인 좀비 게임의 시작이라고 <좀비 좀비>를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 <좀비 좀비>는 좀비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게임규칙 면에서 좀비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블 데드Evil Dead>(1984)나 <고스트 앤 고블린(일명 ‘마계촌’) Ghost N Goblins>(1985) 등의 게임부터는 우리에게 익숙한 좀비의 행동패턴이 게임 캐릭터 안에도 들어오는 흐름을 볼 수 있다. 다소 느릿한 움직임과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패턴을 통해 적 유닛으로서의 행동에 좀비 특유의 방식들이 녹아들기 시작하지만, 여기서도 언데드라고 불리는 그룹과 엄밀하게 구분해 좀비라고 부를 수 있는 만한 유니크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다. * <이블 데드>와 <마계촌>부터는 언데드와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좀비의 행동적 특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본격적으로 좀비라는 개념이 게임 안에서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대중적 게임을 꼽으라면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1996)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언데드와 구분되는, 명확한 좀비로서의 외형과 움직임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게임 안의 공간이 어느 정도 3차원 공간으로 잡히는 시기와 엇비슷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적으로서 좀비가 갖는 특성 중 하나인 느릿한 움직임이 3차원 공간에서의 공격방식인 ‘조준하고 쏘기Aim and shoot’에서 좀더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케이드 오락실에서 실감형 게임으로 직접 전자총을 들고 조준해 사격하는 방식인 <하우스 오브 데드House of Dead>(1997)이 주요 대상으로 좀비(혹은 언데드)를 대상으로 한 것도 어느 정도 같은 영향력 하에 나타난 일로 보인다. * 3차원 공간에서의 에임 앤 슛에서 좀비의 행동은 좀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느릿한 움직임’이라는 좀비의 특성은 고정된 것은 아니기에 함부로 속단하기 어렵다. 오히려 2010년대 이후의 게임들에 등장하는 좀비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군집으로서의 양상이다. <데이즈 곤Dayz Gone>(2019), <그들은 수백만They are billions>(2017)등은 결코 느리다고 볼 수 없는 움직임의 좀비들을 투입하면서 대신 엄청난 숫자의 물량으로 밀려들어오는 좀비로부터 버터내야 하는 도전을 안기는 형태로 변화했다. 오늘날 좀비를 주적으로 삼는 많은 게임들에서 나타나는 좀비의 특성은 그래서 단일하다기보다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디지털게임과 좀비 디지털게임의 초창기부터 좀비라는 대상은 적으로 자주 활용되었는데,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좀비가 활용되는 것과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디지털게임의 특수성이 도드라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워킹데드>같은 드라마들에서 좀비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적대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외형과 유사해 더욱더 불쾌감과 공포감을 주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게임의 경우에는 이러한 적에게 공격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사회적으로 디지털게임은 폭력성에 관한 오해를 자주 받곤 하지만, 실제로 게임 안에서 강렬하고 적극적인 폭력행동을 수행하는 일은 게이머에겐 때론 버거운 윤리적 부담감을 안겨주는 일이 적지 않다. 유명한 사례인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에서의 ‘노 러시안’ 미션에서 많은 게이머들이 무고한 민간인에게 화력을 투사하라는 명령 앞에서 머뭇거렸다는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이것이 비록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폭력의 사용이 매우 높은 심리적 장벽 앞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런 면에서 특히 액션이 중심이 되는 게임이라면 좀비는 매우 그럴듯하게 윤리적 문제를 비껴나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좀비의 신체는 인간의 신체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명백하게 이는 인간이 아님을 드러낸다. 작은 머리와 직립보행하는 두 다리, 양 팔을 가진 좀비의 신체는 액션게임에서의 조준과 식별 과정에서라면 실루엣상으로는 인간을 향한 사격과 동일하지만, 인간을 닮은 이들 폴리곤 위에 덧씌워진 텍스처는 아주 강력하게 이들이 인간이 아님을 어필한다. 사격의 기술적 과정에서는 인간을 쏘는 것과 동일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좀비라는 존재는 막대한 화력을 투사할 때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앞서 이야기한 윤리적 장벽을 우회하며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좀비를 대상으로 하는 게임들의 상당수가 중화기를 동원한 강한 화력을 선보이는 구조로 만들어지는 것도 같은 의미다. 미니건이나 소형 전술핵과 같은 대량살상이 가능한 병기들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지만, 이를 인간을 향해 쏘는 일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좀비와 같은 대상이라면 보다 강력한 무기를 디자인하고 그 화력을 맛볼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근현대 화기가 갖는 위력이 만드는 강한 스펙터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좀비라는 타겟은 다른 매체와는 다른 게임만의 특징으로 거듭난다. 이러한 윤리적 문제는 좀비가 아닌 다른 대상으로도 나타나는데, <콜 오브 듀티: 나치 좀비> 나 <스나이퍼 엘리트: 나치 좀비 아미>와 같은 나치와 좀비를 결합한 게임들이다. 나치와 좀비의 콜라보레이션은 매우 간단한 의도가 담겨 있다. 중화기로 화력을 들이부어라! 이들은 ‘죽어도 싼’존재이기 때문이다! * 나치와 좀비를 콜라보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게임 속 좀비의 새로운 트렌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 속 좀비는 한 시기, 한 모습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며, 매 시기마다 그 시기에 가장 걸맞는 형태로 변화해 온 바 있다. 그리고 이런 좀비는 윤리 문제를 넘어선 강한 화력의 투사대상이라는 관념 바깥으로도 확장되는 중이다. <식물 대 좀비Plants VS Zombies>에서 좀비는 전통적인, 위협적이지만 느릿한 존재이지만 공포보다는 코믹한 형태로 재구성된 대상이다. 코믹한 좀비는 혼자 사는 너드 아저씨 주인공의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들어오지만, 이를 막아내는 것은 감자, 해바라기, 콩 같은 앞마당의 채소들이다. 외부의 조력 없이 혼자 자신이 사는 집의 앞마당yard을 침공해오는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게임 속 플레이어의 활동은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물이지만, 이 때의 좀비는 공포가 제거된 대상이다. * <식물 대 좀비>에서 좀비는 공포를 뺀 대상으로 나타난다.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에는 동충하초 같은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좀비가 적으로 나오지만, 사실상 이 게임에서 가장 무섭고 위협적인 적은 좀비가 아니라 사람이다. 자주 이야기되는,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이야기가 <라스트 오브 어스> 세계관과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고, 이 속에서 좀비는 ‘차라리 사람보단 낫더라’라는 이야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폴아웃>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구울이라는 집단을 상정하는데, 방사능에 피폭되어 인간의 골격을 하고 있지만 외형은 좀비와 닮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명확하게 좀비라는 존재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좀비들과는 달리 지성을 갖고 집단을 이루며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존재이며, 플레이어의 동료나 아군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좀비라는, 한때 ‘절대로 인간이 아님’을 강변하며 존재하던 개념 또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를 묻던 그 장면들처럼, 최근의 적지 않은 게임들은 완벽한 상상 속 창작물인 좀비 또한 반드시 인간으로부터 분리되고 구분지어져야만 하는 대상인가를 역으로 묻는다. 어떤 면에서, 좀비에 대한 이야기는 포스트휴먼에 관한 최근의 논의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뱀서라이크 - 게이머와 게임의 생존전략
‘서바이버즈-라이크’ 장르가 주는 재미는 단순히 간단하고 쉬운 반복 플레이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고 다양한 생존전략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욕망으로부터 즐거움을 끌어내고 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즐거움은 게이머가 게임을 어떻게 즐기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장르가 10, 20년 후까지 존재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표절, 모방 게임이 쏟아지고 있고, 게이머들은 이 행태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특히 무분별한 장르의 남용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 Back 뱀서라이크 - 게이머와 게임의 생존전략 09 GG Vol. 22. 12. 10. 2021년 겨울, 게임 ESD 플랫폼 스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디게임이 있다. 흔히 ‘뱀파이어 서바이벌(이하 뱀서)’이라고 불리는 〈뱀파이어 서바이버즈(Vampire Survivors)〉이다. 당시 ‘앞서 해보기’로 단돈 3,300원에 출시한 이 게임은 저렴한 가격과 더불어 저사양, 간단한 게임 플레이로 전문 유튜버나 게임 스트리머뿐만 아니라 일반 게이머들 사이까지 유행했다. ‘뱀서’는 투박한 도트 그래픽과 2D 탑 다운(Top-down) 뷰를 이용한 고전 아케이드 슈팅 스타일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마치 팩 인 비디오가 개발한 〈람보〉 시리즈나 〈GTA〉 시리즈 1, 2편과도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게임은 2021년 말~2022년 초 사이에 나온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어떻게 보면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전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고전 게임에 추억이나 경험이 있는 혹은 레트로 스타일의 인디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에게는 즐겁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게임에 추억이나 경험이 없는 그 밖의 게이머에게는 매력적으로 어필되기 힘들다. 그런데도 다양한 게이머에게 이토록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도 ‘뱀서’의 인기는 식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비슷한 게임들이 올 한 해 쏟아져 나왔다는 점이다. 〈20 Minutes Till Dawn〉과 같은 도트 스타일, 〈Brotato〉와 같은 카툰풍, 〈Beautiful Mystic Survivors〉와 같이 미소녀 3D 버전의 유사 게임도 출시되고 있다. ‘뱀서’ 스타일의 시작은 한국의 1인 개발사 LEME가 만든 모바일 게임 〈매직 서바이벌〉이다. 종종 게이머들은 〈매직 서바이벌〉같은 장르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고 이야기한다. 필자도 게임에서 등장하는 시스템이나 표현들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유사한 것 같은 느낌의 원인은 〈매직 서바이벌〉의 장르적 특징이 복합적인 장르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게임 틀은 고전 아케이드 슈팅이다. 적이 발사하는 탄막을 피하고 적을 처지하는 구조가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 방식이다. 결국 ‘이런 스타일과 장르의 원조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고전 게임 계보까지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고전 게임과는 〈매직 서바이벌〉은 어떠한 차별점이 있는 것일까? * 〈매직 서바이벌〉 인 게임 화면. 겉으로 보이는 고전 게임 스타일과는 다르게 〈매직 서바이벌〉에서 현대 게임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심은 ‘로그라이트’와 ‘캐주얼’이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로그라이트(Rogue-lite)’ 장르는 1980년 출시된 최초의 2D 그래픽 RPG인 〈로그(Rogue)〉가 지닌 영구적인 죽음, 절차적 생성과 같은 핵심 원칙을 적용하되, 죽더라도 다음 게임 플레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일정량의 보상을 가져가게 된다는 특징을 가진다. 게이머는 다음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아이템을 미리 장착하는 등의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다. 캐릭터가 죽을 때마다 여전히 게임을 다시 시작하지만, 진정으로 0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매직 서바이벌〉은 로그라이트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로그〉를 단순 수용이 아닌 변용 했다. 이러한 점이 레트로 장르에 대한 실천적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 게임은 간단한 게임 플레이 방식과 쉬운 접근성을 바탕으로 한 캐주얼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 그럼에도 파고들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하다. 이는 어떻게 보면 ‘하드코어’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캐주얼게임을 ‘하드코어’의 반대급부로 보는 것은 캐주얼의 단편적인 면만 강조한다. 예스퍼 율(Juul, 2010)은 캐주얼 게임이 일반적으로 ‘하드코어’ 게임과 상반되는 형태의 게임이라는 관점과 달리, 초창기 게임의 ‘단순함’으로부터 재발견된 범주로 본다. 이러한 점에서 단순히 〈매직 서바이벌〉이 캐주얼게임이기에 고전 게임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캐주얼’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 즉, 〈매직 서바이벌〉은 단순한 고전 게임의 모방과 무분별한 수용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조금 더 자세한 게임 플레이 메카닉은 후술하겠지만, 〈매직 서바이벌〉과 같은 게임은 그 자체로 새로이 등장한 장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실제로 ‘뱀서’의 제작자도 장르와 스타일의 기반이 〈매직 서바이벌〉이라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 ‘뱀서’는 〈매직 서바이벌〉을 참고하면서도 해당 게임이 가진 문제점을 개선하여 출시되었다. 개발사는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장르를 탄탄하게 개량하고 있다. 게이머나 커뮤니티 혹은 게임 웹진에서도 ‘like vampire survivors’라는 용어를 쓸 정도이니 말이다. 이른바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라이크’라 불리는 장르는 기존 장르와 어떤 부분이 차별화되는 것일까? ‘서바이버즈-라이크’에서 살아남는 방법 * 〈뱀파이어 서바이버즈〉 메인 메뉴와 인 게임 화면. 그렇다면 게임을 조금 더 살펴보자.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는 제작사에서 “로그라이트 요소를 갖춘 고딕 호러 케주얼 게임” 이라 밝히고 있다. 소개 문구만 보면 감이 잘 안 온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레트로 비트 사운드와 함께 단순한 메인 메뉴가 반겨준다. 처음 시작하는 게이머는 콜렉션, 강화나 잠금 해제 메뉴 모두 아무것도 이용할 수 없다. 이것들 전부 잠금 되어있거나 메뉴 상단에 보이는 돈은 0이기 때문에 강화도 할 수 없다. 결국 게이머는 어쩔 수 없이 시작 버튼을 누르고 캐릭터를 골라서 시작한다. 캐릭터는 풀밭에 놓이게 된다. 어떤 튜토리얼도 주어지지 않지만, 캐릭터는 자동으로 채찍질하고 있고, 멀리서 박쥐가 캐릭터를 향해 날아온다. 이후 게이머는 WASD나 방향키로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공격이 캐릭터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임은 일련의 과정을 설명해주지 않지만, 게이머는 경험적으로 알아차리고 터득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제작사가 밝힌 “케주얼”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레고리 트레프리(Trefry, 2010)는 〈Casual Game Design〉에서 캐주얼 게임의 몇 가지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뱀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의 속성은 “규칙과 목표가 명확해”야 하고, “게이머가 빠르게 게임 플레이에 숙련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Trefey, 2010). 이처럼 ‘뱀서’는 게임에서 분명하게 플레이 방식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 메커니즘은 감각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손쉬운 접근성을 제공한다. 게이머는 그저 방향키를 움직여 캐릭터를 조작하고, 자동 공격을 몬스터에 맞추기만 하면 된다. 이걸 반복적으로 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즉, 게임을 계속해서 플레이하기 위해 몰려오는 적들을 물리치거나 피한다는 단순 명쾌한 목표가 제시된다. * 레벨업 메뉴와 보물상자 연출 화면.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캐릭터는 박쥐, 언데드와 같은 몬스터를 처치하면서 보석을 습득하면 경험치를 얻게 된다. 이를 통해 레벨이 올라간 캐릭터는 세 가지의 선택지를 골라서 무기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능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은 RPG 게임의 캐릭터처럼 성장한다. 이 과정을 어느 정도 반복하다 보면 기존 몬스터와 색이 다른 몬스터를 볼 수 있다. 열심히 색이 다른 적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면 처치할 수 있다. 여기서 색이 다른 보석 혹은 보물 상자가 나타난다. 보물상자를 습득하게 되면 특별한 연출이 나오면서 돈과 강화 아이템이 나오게 된다. 이는 랜덤하게 더 많은 돈과 아이템을 얻게 되는 기회가 된다. 게이머는 이 과정을 마치고 나면 또 하나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가운데 상단에 표시된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게 되면 빛나는 몬스터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되면 다음 단계의 스테이지로 넘어가듯이 보스가 등장한다. 난도가 높은 탄막들이 날아오고, 캐릭터는 이를 피하면서 보스를 공격한다. 하지만 초반 플레이에서 보스를 쓰러뜨리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캐릭터는 결국 죽게 되고, 게이머가 게임 오버 화면을 보고 나면 다시 메인 메뉴로 돌아온다. 하지만 메인 메뉴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 바로 돈이 생겨서 캐릭터 강화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몇몇 요소들이 해금된다. 게이머는 다음 게임에서 이것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즉, 우리는 처음부터 더 강해진 캐릭터로 게임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서바이버즈-라이크’ 플레이는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실천된다.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면서 조금씩 얻게 되는 돈을 통한 업그레이드와 새로이 얻게 되는 해금 요소들로 캐릭터는 오랜 시간 버틸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러한 요소들이 스테이지를 도전하는 게이머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게이머는 처음에 몇 가지 안 되는 무기들만 고를 수 있지만, 해금되는 요소들을 통해 다양한 무기와 아이템, 그리고 진화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닿는다. 이를 통해 캐릭터는 더 많은 적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이 점점 쌓이면서 캐릭터는 강해진 적과 보스를 물리칠 수 있다. 게이머는 이를 반복하며 일정 시간까지 버티게 되면 승리한다. 하지만 게임이 끝났다고 완전히 클리어한 것은 아니다. 다음 맵이 해금되면서 게이머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시한다. 게이머도 새로운 무기, 캐릭터와 함께 새 스테이지에 도전한다. ‘로그라이트’ 메커니즘은 게이머에게 계속해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는 동기를 제시하면서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게이머는 항상 캐릭터와 무기의 선택을 고민하면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고자 한다. 랜덤하게 제시되는 선택지는 판마다 신선함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게임은 게이머의 조작과 캐릭터 강화로 운을 극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순전히 운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점이 게이머에게 실질적인 플레이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기존 로그라이크, 로그라이트 게임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아주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타 장르와 차이점은 ‘서바이벌’에 있다. ‘서바이버즈-라이크’ 게임은 분명하게 생존 게임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흔히 생존 게임이라 부르는 장르는 현실감을 부여한 시뮬레이션 장르나 오픈 월드 액션 어드벤처 장르의 ‘하드코어’ 게임을 떠올린다. 하지만 생존 게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는 생존전략에 있다. 생존 게임 게이머는 생존하기 위해 맵 곳곳에 있는 자원과 물자를 모으고, 새로운 무기와 아이템을 만들거나 습득하며 앞으로의 위험에 대비한다. 생존주의가 생존 게임 장르의 기초 문법이다. ‘서바이버즈-라이크’는 생존전략을 핵심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게이머는 캐릭터를 조작해서 어느 방향이든 갈 수 있다. 맵을 돌아다니다 보면 무작위로 생성된 다양한 오브젝트가 존재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캐릭터는 자동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근처에 가기만 해도 오브젝트를 공격하게 된다. 이윽고 오브젝트가 파괴되고 아이템들이 나온다. 여기서 게이머는 적을 처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맵에 배치된 아이템들을 통해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 알게 된다. 이를 알게 된 게이머는 더 많이 맵을 돌아다니게 되고 다양한 지형을 발견한다. 게임별로 재단, 집터, 건물, 거목 등과 같이 다양한 지형으로 배치된다. 여기서 게이머는 랜덤하게 강화용 아이템이나 특수한 이벤트들을 마주치게 된다. 즉, 더욱 강한 무기나 아이템들을 얻을 기회는 단순히 적을 처치하는 것 외에도 맵에 배치된 오브젝트를 통해 제공된다. 맵에서 자원과 물자를 모아 더욱 강한 캐릭터를 만드는 행위는 시간이 지나고 등장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준비이다. 비록 질병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시뮬레이션 된 현실성은 없지만, 게이머는 살아남기 위해 자원을 모으고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는다. 이는 게임 방식과도 연관이 있다. 게이머는 능동적으로 게임을 클리어할 수 없다. 일정 시간을 채워야만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다. 즉, ‘서바이버즈-라이크’는 주어진 생존환경에서 살아남아야만 클리어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다. 게임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내러티브를 통해 생존 본능을 자극한다. 혼자 남아 있는 캐릭터와 나만 공격하는 적은 일종의 ‘배틀로얄’ 구도와 같다. 우리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갈구한다. 게임 내 아이템이 됐든, 캐릭터를 조작하는 게이머의 손가락이 됐든 살기 위한 움직임이 존재한다. 이러한 점이 게이머에게 생존 본능과 함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다양한 게이머가 이 장르를 좋아해 주는 데에는 단순히 레트로 인디게임이라는 점 때문은 아니다. 게임 기반에는 다양한 레트로 장르에 대한 각색과 생존주의가 깃들어 있다. 이 같은 지점이 기존 레트로 인디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뿐만 아니라 캐주얼 게이머, 하드코어 게이머까지 어필할 수 있는 ‘서바이버즈-라이크’가 가진 재미 요소이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더 재밌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후속 게임들은 〈뱀파이어 서바이버즈〉를 모방한다. 특히 일부 게임이 ‘서바이벌’이 아닌 ‘서바이버즈’라는 제목을 달고 출시한다. 분명하게 원조는 〈매직 서바이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도 몇몇 게임은 ‘뱀서’에 새로운 요소를 더하거나 불편한 부분을 제거하여 출시되기도 한다. 사뭇 달라진 게임 스타일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즉, 많은 후속 게임이 ‘뱀서’에서 영감을 얻고 있지만, 그 형태는 미묘하게 다르다. 또 하나는 〈매직 서바이벌〉은 본래 모바일 게임이었지만, 상당수의 게임이 PC 플랫폼으로도 출시되었다는 점이다. 간단한 조작법과 짧은 플레이 타임은 모바일에 적합했지만, PC로 넘어오게 되면서 더 많은 연산이 가능해진 점은 많은 적과 큰 규모를 강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게이머는 게임 플레이를 위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후속 게임들은 ‘뱀서’에서 틀을 가져와서 지금 상황에 알맞게 바꾼다. 어째서 이들은 모방을 넘어 변화하는가? 이는 당연한 논리이다. 게임 시장은 급격하게 변하는 환경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게임이 개발되고 있고, 일주일만 해도 수십 개의 PC게임이 출시한다. 모바일 환경을 포함하면 더욱 많아진다. 이 중에서 ‘서바이버즈-라이크’ 게임 또한 분명하게 존재할 것이다. 필연적으로 대다수 게임은 흥행에 실패할 것이다. 장르를 선점하고 있는 게임들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환경에 맞게 변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진화’라 부른다. 진화는 진보가 목적이 아니다. 진화는 생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변화, 즉, ‘변이’다. 변이가 바로 진화의 제1 조건이다 . 개발자들은 ‘서바이버즈-라이크’가 우후죽순 나오는 지금 시장에서 모범이 되는 게임을 모방하고 변이하는 생존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에게 장르의 진화는 생존을 위한 것이다. 게임들은 어떤 변이가 게임 시장에 더 잘 맞을지 이리저리 모습을 바꾸고 있다. 그리고 결국 유리한 형질을 가진 게임은 살아남아 장르를 확립할 것이다. 마치 자연 선택의 원리처럼 말이다. * 〈탕탕특공대〉 인 게임 화면. 이 생존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한 사례가 바로 〈탕탕특공대〉이다. 이 게임은 ‘서바이버즈-라이크’가 지향하는 바를 실천함과 동시에 게임이 오랫동안 플레이 될 방법을 고안해냈다. 모바일 환경에 맞게 플레이할 수 있는 횟수를 제한하는 ‘스태미나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한 게임 내의 육성 시스템은 간소화했지만, ‘장비 가챠 시스템’을 도입하여 캐릭터가 영구적으로 들고 갈 수 있는 업그레이드 요소는 오히려 강화했다. 게이머는 캐릭터의 능력치를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비를 착용함으로써 시작 무기를 바꾸거나 더욱 높은 공격력과 방어력을 통해 이점을 갖고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게이머는 ‘서바이버즈-라이크’ 게임이 주는 즐거움과 게임 플레이 경험을 온전히 얻을 수 있다. 오히려 〈탕탕특공대〉는 라이브 게임 서비스를 통해서 더 오랫동안 게임을 즐길 수 있게 유도하고 있다. 이것이 기존 후속 게임과는 다른 생존전략이다. 나가며 ‘서바이버즈-라이크’ 장르가 주는 재미는 단순히 간단하고 쉬운 반복 플레이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고 다양한 생존전략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욕망으로부터 즐거움을 끌어내고 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즐거움은 게이머가 게임을 어떻게 즐기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장르가 10, 20년 후까지 존재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표절, 모방 게임이 쏟아지고 있고, 게이머들은 이 행태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특히 무분별한 장르의 남용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기 게임이 많이 출시하고 있는 현 게임 시장에서 ‘서바이버즈-라이크’가 짧은 시간이지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은 게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생존전략을 세우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비하고 있다. 앞으로의 추이가 기대된다. 참고문헌 Trefry, G. (2010). Casual Game Design: Designing Play for the Gamer in ALL of Us (1st ed.). CRC Press. Juul J. (2010). A casual revolution : reinventing video games and their players. MIT Pres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Alan Wake 2 – The brilliant sequel to a cult classic
Before we delve a bit deeper into the Dark Place that has Alan trapped, I shall talk more about the developers of the Alan Wake series, Remedy Entertainment (henceforth Remedy), and their impact on Finnish games industry. < Back Alan Wake 2 – The brilliant sequel to a cult classic 15 GG Vol. 23. 12. 10. ***You can se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36aa6690-bf8c-4d72-ab97-33b03e4db055 Alan Wake 2 . The long-awaited sequel to the 2010 game that follows the protagonist of the same name, Alan Wake , who is a bestselling crime fiction author. The first game takes place in a fictional city of Bright Falls in the northwestern United States of America. Alan suffers from the infamous writer’s block and decides to travel for a vacation to Bright Falls with his wife Alice. They end up residing in a cabin on an island in the middle of a lake. However, after a nightmarish evening and a fight with his wife, Alan wakes up in a car he does not remember driving off road, or how he got there. The locals tell Alan that there has not been cabin in the lake for decades, and this marks the beginning of the spiralling story where Alan tries desperately to find his wife. Things get complicated when hallucinations and events of a book he does not remember writing start to come to life around him. Alan Wake 2 continues the story of the writer who has been trapped in an alternative dimension for over a decade navigating a warped version of New York City. He attempts to escape back to reality by writing a story involving an FBI agent Saga Anderson, the second protagonist of the game. Saga’s story takes place in the very same Bright Falls. Things turn to worse when different versions of Alan work against him and it is up to the writer to destroy them before they inflict too much damage and terror in the real world. Both games belong to the genres of third-person shooter and survival horror, somewhere between Resident Evil series and Silent Hill series in its tempo and pacing with action scenes. Before we delve a bit deeper into the Dark Place that has Alan trapped, I shall talk more about the developers of the Alan Wake series, Remedy Entertainment (henceforth Remedy ), and their impact on Finnish games industry. Remedy Entertainment – from Death Rally to first Alan Wake Remedy is a Finnish powerhouse with multiple massively popular game franchises and releases. With first game published all the way back in 1996, Death Rally , Remedy has been very well-known developer in Finland and globally. What really helped Remedy to become so powerful could be attributed to luck to some degree, but even more should be attributed to their ambition to push not only the gaming as experience but themselves with design decisions. The lucky part? Death Rally was published by Apogee (later 3D realms ) who also published Duke Nukem 3D around the same time. The popularity of Duke Nukem 3D helped Remedy to be part of a big publisher to ensure the future of the company. Death Rally managed to sell over 100 000 copies in the late 1990s, and that was more than enough to pave way for the next chapter for Remedy , Max Payne . Max Payne was released in 2001 and was the first massive international success for a Finnish game development team and truly started the shift of working on games from being “just for the nerds” to “a career to be taken seriously”. Max Payne is most known for its film noir style of storytelling and setting, but even more Max Payne is known for its “Bullet Time” mechanic where player can slow time and aim faster than their opponents. In 2002, Remedy sold the rights to the game series to Take-Two Interactive for ten million dollars, while Rockstar Games would publish the sequel The Fall of Max Payne in 2003. The games have sold reportedly over eight million copies, further ensuring the legacy of Remedy and Max Payne as the important events in Finnish game industry. With the tonal change and de-stigmatization regarding video games, more opportunities started to rise for those interested in studying and making games. There have been video games as topic for courses and classes in higher education institutes (HEI) in Finland ever since 2003 with multiple HEIs offering degree programmes focusing on video games at all levels from Bachelor’s to Master’s and all the way to doctorate degrees. The success story of Remedy is not the only catalyst for video games and gaming becoming so permeated in everyday life in Finland, but it is the first one to gather sizeable international attention. The history of video game industry in Finland goes back to the 1980s when hobbyism towards programming and the rising popularity of game consoles, and later in the 1990s Personal Computers (PC), gave birth to the “demoscene” (computer art subculture) that is still active. Programmers turned their hobbyism and experiences partaking in demoscene into a business. The very first development groups that started from demoscene with successful games are Bloodhouse (known for their Stardust and Super Stardust games) and Terramarque , who fused later to Housemarque . Housemarque is still going strong as their latest game, Returnal (2021), has been a commercial success. Further success stories from game companies, such as Remedy and Housemarque , have ensured that game industry, education, hobbyism, demoscene and gaming as career are still surging onwards with no end in sight. After Max Payne , Remedy spent time to develop new game ideas and after two years in 2005 Alan Wake was born. Microsoft Game Studios was chosen as the collaborator. The game was finally published in 2010 for Xbox 360, and somewhat later in 2012 for Windows PCs. Alan Wake did not sell as many copies initially as expected, but the game has since sold over four million copies and has become a cult classic in survival horror genre. In many ways Alan Wake was intended to be the opposite of Max Payne as Remedy wanted Alan’s story to focus more on the narrative and atmosphere than action. Not only that, but Max Payne was a cop which is suitable career for action, whereas Alan as an author is rather atypical choice. Further, the first Alan Wake is structured like a television program with episodic storytelling and progression. Remedy has said that they felt Alan Wake to be first season with the downloadable content to work as a bridge to what lies beyond the conclusion of the game. After Alan Wake – from 2010 to 2023 In retrospective it might be easy to say that Alan Wake was impactful enough to warrant a sequel soon after its release in 2010, but metrics that mattered to the publisher, namely sales, weren’t enough to justify a direct sequel at the time. Further, Microsoft reportedly wanted a new intellectual property (IP) focusing on interactive storytelling. So, back to the drawing board for Remedy to start the process from the scratch. In 2013 Remedy announced Quantum Break to be released in 2015 but was delayed avoiding competition with exclusive games set to be released for the Xbox One only. Quantum Break shifted the focus from dark and harsh environment to a cleaner science fiction where events take place in the 2010s. Quantum Break is about a time travel experiment gone wrong bringing a growing fracture in time while an existence threatening the end of the world looms around. The protagonist must use their time control abilities to prevent that. As is the case with previous games from Remedy , the game is also third-person shooter with further focus on action than Alan Wake . Remedy advertised Quantum Break as an “entertainment experience” and “transmedia action-shooter video game and television hybrid”. This means that Quantum Break incorporates a live action television show to be watched at certain points during the game play, called “junction points” in-game. The television show reflects the choices player makes and sets the stage for the next episode in the game. The gambit of doing two side-by-side productions for the same entertainment artefact paid off as the game received positive reception with its story, gameplay, visuals, and the performances of actors being praised. However, the inclusion of television show to be so closely interacting with the game was something that garnered rather mixed opinions. But that is the price to pay when you truly push the creative boundaries which Remedy is known for. Quantum Break was the best-selling new IP published by Microsoft during Xbox One console generation until it was eventually broken two years later by Sea of Thieves . After Quantum Break , Remedy separated from Microsoft and had their initial public offering (or stock launch) in 2017. The publishing rights to Quantum Break are still owned by Microsoft , but Remedy acquired the publishing rights to Alan Wake from Microsoft in 2019. The first new IP after this decade long partnership with Microsoft was a project called P7. At the same time Remedy announced that they were developing a story mode to the sequel of Crossfire by Smilegate . This shift in company practice from a partnership deal to a publicly owned company meant that project P7 needed to be developed more efficiently and in shorter amount of time to prevent the delays and inflation of the development costs. Alan Wake took seven years to publish and Quantum Break five years. Remedy managed yet another success story by completing the project P7 in three years. This project has become known as Control (2019). Control shifts the focus again, but this time the shift happens in how the game world reacts around the player rather than tonal change in story telling. Control focuses on the protagonist, Jesse Faden, exploring the paranormal headquarters of a secret U.S. government agency Federal Bureau of Control (FBC), called the Oldest House. Jesse is the new Director of the Bureau and must utilize various abilities and interact with the environment to defeat enemy only known as the Hiss that has invaded and corrupted reality. FBC studies Altered World Events and collects Objects of Power from these events inside the Oldest House, which itself is an Object of Power. The Game starts with Jesse arriving to the headquarters to seek answers related to her brother after a prior event in their youth that led to the brother being kidnapped and an Object of Power claimed by the FBC. It is up to Jesse to prevent the spread of the Hiss outside the Oldest House, understand what Hiss’ aims are and where her brother is. The town where she lived with her brother was called Ordinary. Control , like so many previous titles before by Remedy , was met with a commercial and critical success with its storytelling, world building, audiovisual presentation and the characters being praised. Even though Control has its contained story, literally in more than one way, its world is shared by a certain writer trapped in their own Dark Place, after all. The plunder of CrossfireX Before the massive success of Alan Wake 2 gets the spotlight it much deserves, there is one very, very important lesson Remedy had to learn from. That is the development of the story mode to the CrossfireX (2022) that Remedy worked on since 2016 as another project alongside Control . Short story short, Remedy missed the mark with the story mode massively even after that long time in development with reviews reporting bad pacing and tempo and shallow characters. Essentially many other game development studios could have done the same as Remedy did. The “mark of Remedy” was not in the story. What did Remedy learn from this? I strongly believe it is about playing to your strengths as studio and keeping your identity, rather than trying to play into others’ hand. However, the silver lining is that CrossfireX was shut down after mere sixteen months in May 2023 after its release in February 2022. The game is dubbed to be a massive misfire with awful controls, bland story mode, and very cliche multiplayer experience that didn’t reach its target audience in the Western markets. In the West, the first-person shooter genre is dominated by Call of Duty , Halo , Overwatch , and Battlefield , and it would have required more than an amazing story by Remedy to get a sizeable enough market share. Bringing it all together for Alan Wake, again After this both short and lengthy history of Remedy ’s past games, it is time to return to one version of our reality in this current time. The sequel to Alan Wake and why everything written above matters. Much like Bethesda has its imprinted style, so has Remedy . In Alan Wake 2 , Remedy successfully incorporates lessons learned from their previous games with continued passion to push the boundaries of what games are and how they are experienced. The Remedy style of episodic gameplay is present, and so are intersecting timelines and character stories. Furthermore, the player has the freedom to choose the order they engage in the stories being told, and the exploration of the perceived reality being shifted when one is going through their Dark Time. Alan Wake 2 continues the story of the author who has been trapped in the Dark Place for thirteen years. Alan feels that the only way for him to escape back to the real world is to write a horror story that takes place in Bright Falls where the events of the first game took place. The game combines survival horror and crime investigation game play styles with Remedy -esque focus on detail and storytelling through atmosphere that is always uneasy . One of the ways Remedy is pushing the medium of episodic presentation of games further is the given freedom in which order players want to complete the stories being told. The initial start and the eventual end are using forced perspective of Saga Anderson and Alan, respectively. These two separate stories will become intertwined with each other increasingly as the game progresses over its roughly twenty-hour duration. The success of Alan Wake is yet another feather in their cap, as Remedy truly shows through Alan Wake 2 that they have learned their lessons and are building upon their strengths. It is joyful to see the passion to provide entertainment experience through quality game play and storytelling in Alan Wake 2 , while the developers are experimenting with various puzzles and honing certain experiences to build upon for future games. 2023 has been a massively successful year for gamers with numerous amazing games released which each would have won numerous awards in any other year. Alan Wake 2 being released late in 2023 and still it managed to be nominated in eight categories for the 2023 Game Awards ceremony and won the Critics’ Choice Award at the Golden Joystick Awards 2023 earlier this year. The only game to rival Alan Wake 2 in this behemoth of a gaming year is Baldur’s Gate 3 in the number of nominated categories. Remedy went all out on Alan Wake 2 and that shows, and it is very delightful to see. Remedy is brining high quality survival horror to the front pages and setting the trend of their future with this sequel. This will bode only good news for Remedy and the Finnish game industry because the continued success of Remedy in the post-covid era shows that with proper development environment and direction of resources amazing things happen. In a world filled with scummy monetization practices, Remedy shows that when passion and love for games is given time and space to flourish, the success is nothing but guaranteed. Remedy is one of the flagship companies turning the ship from live services to complete packages and complete entertainment experiences. A feature-complete game is more wanted and treasured by the players than a shiny skin of a horse for more than half the price of a sixty-dollar, or nowadays seventy-dollar, game. The Future , The Present and The Past - Remedy Connected Universe Finally, or another beginning. What complicates the storytelling of Remedy games is the confirmation of Remedy Connected Universe becoming canon in Control ’s second expansion called “ AWE ” that features our dear writer, Alan Wake and the Dark Presence. However, in the base game of Control , players can find documents that FBC has been made aware of what is going on with and around Alan Wake. The creative director of Remedy , Sam Lake, made it clear that Control and Alan Wake games share the universe and Control: AWE was merely the first crossover. Sam Lake has mentioned earlier that they have at Remedy had the idea of connected universe for multiple years and through Control and Alan Wake they can finally utilize that aspect. Alan Wake 2 fully embraces this connection with FBC and what happens in the Bright Falls. Safe to say that Saga Anderson’s career as FBI agent gathers certain attention further pulling these universes together as she works to investigate and solve the murders in Bright Falls. Further connections between these worlds are in place and two of them are present in the spin-off Alan Wake’s American Nightmare . Namely, the town called Ordinary (see above about Jesse’s past) and another character that is quite head-scratching to deal with. Oh, and not to forget about Ahti, the FBC’s janitor having good times in Bright Falls. Remedy has confirmed to be working on the sequel to Control , and it can be assumed it further combines the workings FBC and Jesse to the ones of Saga and Alan. How? Who knows currently, but right now you can immerse yourself to Alan Wake and Saga Anderson in a fantastic survival horror game that does not let you go from its grasp. Be ready, be prepared, and don’t burn your light too fast. One of the best horror games in years is here and its a testament to Remedy ’s learned lessons and utilizing their own strengths to new height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ostdoctoral Researcher) Henry Korkeila PhD, MSc, is postdoctoral researcher whose recent work has focused on the avatarization of our analog cultures as they inevitably turn into digital cultures. Special focus has been on avatars themselves, usage of avatars in their different contexts including multiple online video game genres. He has approached avatars through the types of capital, or resources, they have. His recent works in progress continue to explore the cultures of MMOs, and game accessibility and inclusivity at large.
- 합리적 트릭스터: 플레이어와 설계자 사이의 숙련화 게임
게임에 몰입한 플레이어에게 수지타산이나 합리성만큼 낯선 단어는 없을 것이다. 게임 플레이야말로 가장 비합리적인 행위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유용한 생산물을 안겨주지 않는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주변으로부터 ‘공부를 그렇게 했어봐라’ 는 말을 듣는 이유는 게임이 기본적으로 인생에서 효율적인 시간에 해당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인간의 노동은 삶의 여러 토대를 제공하지만, 게임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일지언정 물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 Back 합리적 트릭스터: 플레이어와 설계자 사이의 숙련화 게임 18 GG Vol. 24. 6. 10. 게임에 몰입한 플레이어에게 수지타산이나 합리성만큼 낯선 단어는 없을 것이다. 게임 플레이야말로 가장 비합리적인 행위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유용한 생산물을 안겨주지 않는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주변으로부터 ‘공부를 그렇게 했어봐라’ 는 말을 듣는 이유는 게임이 기본적으로 인생에서 효율적인 시간에 해당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인간의 노동은 삶의 여러 토대를 제공하지만, 게임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일지언정 물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간의 다양한 행위 중에서도 가장 합목적적인 행위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합리적인 행위가 곧 게임 플레이인 것이다. 열역학 법칙으로 보면, 게임은 엔트로피가 가장 높은 부문에 해당한다. 이처럼 모순적인 게임플레이의 위상은 ‘어떤 게임을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예컨대 자동차를 만들 때 설계자는 물리학적 효율성에 온 힘을 기울이면 된다. 에너지 효율, 내구성 등이 우선이고 감성의 영역인 디자인은 그 다음에 온다. 그런데 게임의 설계자들은 이 둘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게이밍에서 절대적 효율성, 절대적 감성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두 행성 간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라그랑주점을 포착하듯 플레이어와 설계자 사이에서는 치열한 두뇌 게임이 펼쳐지고, ‘설계적 효율성’ 과 ‘플레이의 효율성’은 복잡계의 영역으로 간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고도 노동 집약적인 산업과 밀접해 있기 때문에 특히 트리플A 게임은 이 라그랑주점을 찾는 노하우를 생산의 표준으로 만들고자 한다. 반면 플레이어들은 이 안정적인 균형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점으로부터 벗어나 예상치 못한 궤도를 탐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영화나 방송 산업이 장르 문법이나 컨벤션을 활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게임플레이 자체가 이중적이고 모순적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도 설계자도 틀에 박힌 수학적 질서도를 사랑하는 동시에 그것을 한편으로는 혐오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같은 플레이어와 설계자 사이의 긴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최근 위기를 겪고 있는 유비소프트와 엔씨소프트의 게임들이다. <어쌔씬 크리드> 시리즈로 유명한 유비소프트는 ‘유비식 오픈월드’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글로벌 퍼블리셔다. 유비소프트에서 제작한 대다수의 게임들은 아주 비슷한 플랫포머 구간을 가지고 있는데, 게임 속 메인 진행에 간접적으로만 영향을 미치는 사이드 스토리를 수행하면서 플레이 시간을 늘리고 게이머로 하여금 나머지 공간을 탐색하도록 유도하는 파트다. 화려한 그래픽과 연출, 실감나는 전투 등으로 치장된 메인스토리 진행을 하다 보면 플레이어는 반드시 ‘유비식 오픈월드’를 마주하게 된다. 이 구간은 제작하기 쉽다. 심지어는 자사에서 같은 엔진으로 개발한 다른 게임의 프리셋과 소스, 레벨링 노하우를 가져다 쓸 수도 있다. 유비소프트에 ‘게임 제작의 테일러리즘’이라는 웃지못할 라벨이 붙여진 이유는 이처럼 플레이어들과의 치열한 라그랑주점 찾기를 2순위로 미뤄두고 도입한 개발 프로세스의 균질화가 게임의 매커닉과 플랫폼구간에서 노골적으로 현상되기 때문이다. 이러니 유비식 오픈월드에 익숙한 플레이어들은 플랫포머 구간에 들어서는 순간 한숨을 쉬며 1년차 예비군이 훈련장에 와서 으레 하듯이 뻔하고 관습적인 게임 플레이를 이어나간다. 똑같은 농담, 비슷한 목표와 성취, 하찮은 심부름, 좀 더 원활한 다음 페이즈 진행을 위한 아이템 수집 등…이 때부터 플레이를 지배하는 것은 치열함이 아니라 관성이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관성에 익숙한 존재다. 관성도 플레이의 중요한 요소다. 똑같은 던전에 들어가서 수십 번씩, 땅 짚고 헤엄치듯 한 손으로 클리어해나가는 플레이어들, 스피드런을 즐기는 사람들과 그것을 관음증처럼 지켜보는 게임 ‘시청자’들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한 네트워크 속에서 게임플레이의 암묵지는 결국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성은 악성이 된다는 이야기다. <어쌔씬 크리드> 에서도, <와치독> 에서도, <디비전> 에서도, <고스트리콘>에서도 똑같은 감각으로 비슷한 사이드퀘스트 구간을 헤매다 보면 설계자도 플레이어들도 반발하게 된다. 엔씨소프트의 게임들은 유비소프트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실패하고 있다. 유비소프트가 개발 층위에서의 테일러리즘을 도입했다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면, 엔씨소프트는 플레이 층위에서 포드주의를 도입했다가 과소소비라는 파국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비슷비슷한 사이드퀘스트와 아이템 수집 등으로 이뤄진 유비식 오픈월드는 적당히 플레이하면서 넘기면 된다. 그런데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은 여기에 비즈니스 모델까지 더했다. 플레이어들을 처음부터 ‘린저씨’로 호명하고, 그들이 게임 설치에 앞서 두둑한 현금부터 준비할 것을 가정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관습적인 플레이가 뭔지를 먼저 끼워넣는 식이다. 패키지 관광객들을 싣고 하루에 수십 군데를 투어하지만, 그 장소들은 모두 협약을 맺은 곳이거나 쇼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들이다. 한국의 특성은 이렇게 성공한 한 선구적인 사례들을 후발 주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카피한다는 데 있다. 이제 우리는 ‘리니지 라이크’의 모든 게임들에서 ‘유비식 오픈월드’와 같은 ‘한국식 과금 구간’을 본다. 심지어는 플레이타임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 현금결제 창이 뜰지도 플레이어들은 예측하게 된다. 엔씨를 포함해 그간 한국 게임사들이 ‘생산한’ 게임들은 이 문법을 따라 포드주의적 자동화까지 도입, 방치형 게임이나 자동사냥으로까지 진화했다. 이 게임들은 게임플레이의 관성과 새로움 사이의 경합, 개발자와 플레이어간의 합리적 두뇌게임을 제거하고 모든 것을 교환의 법칙으로 환원한다. 레벨업도, 좌충우돌도, 글리치도 어뷰징도 없는 세계 – 얼마나 매끄러운가? 그러나 이런 식의 포드주의는 필연적으로 ‘탈숙련화’를 야기한다. 노동의 탈숙련화가 아니라 개발의 탈숙련화, 플레이의 탈숙련화다. 개발자들은 새로운 기술과 엔진을 실험하지 못해 뒤처지고, 플레이어들은 다른 게이밍의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해 도태된다. 포드주의가 야기한 문제, ‘탈숙련화’는 자본주의의 역설이자 자동화의 고질병이다. 포드사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어셈블리 라인에 완전 자동화 결합 시스템을 도입했고, 일시적으로 매출은 엄청나게 증대됐다. 대량의 노동자들은 해고되거나 회사를 떠났고, 공장에 남은 사람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자동화 기기 옆에서 빗질이나 허드렛일 따위를 하는 존재가 됐다. 그러나 탈숙련화가 진행되자, 역설적이게도 미국 전체 노동자의 삶이 위기에 빠졌다. 여기엔 두 가지가 있다. 포드 공장에 도입된 모델이 하나의 플랫폼이 되어 다른 제조업 부문에서도 우후죽순 도입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실업 상태가 되거나 비숙련 단순직종으로 이동, 자동화 공장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고 재고가 증가하는 역설이다. 숙련노동자들이 사라지자 생산 현장에서 공유되던 암묵지 노하우들도 사라졌고, 결국 미국의 완전자동화 산업은 일본의 반자동화 산업에 헤게모니를 내주게 되었다. 포드주의는 야심찬 자동화를 추구했지만 그로 인해 빈부 격차가 커지고, 노동자들의 삶이 불안정해질 뿐 아니라 공산품들의 품질도 떨어지는 결과를 야기했다. 유비나 엔씨의 제국이 조금씩 몰락하는 가운데, 게임 설계자들은 ‘탈숙련화’가 게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임을 이제는 상기해야 한다. 경제적이고 수학적인 효율성은 게이밍에서 다각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플레이어는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광기어린 사람들이고, 설계자들은 정교한 건축술을 구사하지만 동시에 베토벤의 영감으로 창조하기도 하는 입법자들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글리치를 찾거나, 최단시간 레벨업 경로, 보스 제거에 가장 효율적인 세팅을 찾아내고자 하지만 그 과정 자체는 능동적면서 복잡한 시행착오가 동반되어야 재미를 느낀다. <세키로>나 <다크 소울> 시리즈에 몰입한 사람들은 왜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손가락 관절염을 느끼며 한 보스를 붙잡고 소리를 질러댈까? 역사에 문외한인 <문명>의 플레이어는 왜 17세기에 스텔스기를 완성하는 세종대왕과 몇날 며칠 자웅을 겨루는가? 자학적인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합리성을 향한 복잡성의 과정, 게이밍의 역학적 질서도와 복잡성이 교차하는‘에르고딕(ergodic)’에 탑승한 승객이어서이다. 그들은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게임패드를 집어 던져가며 가장 어려운 난이도로 보스를 클리어한 다음, 이를 깨기 위해 동원한 다양한 전략과 방법, 세팅, 꼼수까지 자랑스럽게 소셜미디어나 유튜브에 자랑할 것이다. 이렇게 공유되고 축적되는 숙련 비법은 모든 플레이어들에 의해 재즈 스탠다드 음악 연주처럼 변주될 것이고, 개발자들도 이를 참고할 것이다. ‘숙련화’ 된 플레이어와 개발자들에 의해 긍정적 피드백(positive feedback) 루프가 완성된다. 게이밍이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플레이어와 개발자 모두를 놀라게 하며 희열에 차게 만들고, 새로운 매커닉과 창의적인 구조가 만들어진다. 탈숙련화가 아니라 숙련화, 소외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유비식 플랫포머 승객’ 이나 ‘린저씨’들과 그들을 고객으로만 호명하는 개발사들에는 그런 피드백 루프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유비소프트와 엔씨 및 이들의 ‘탈숙련화’ 모델을 참조로 하는 모든 게임개발사들은 비즈니스 모델이나 제작효율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숙련된 플레이어들로부터 숙련된 플레이를 확보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잘 활성화된 게임은 당연히 <마인크래프트>다. 플레이어가 설계자가 되고, 설계자가 자신이 창조한 게임을 플레이한다. 노하우는 오픈소스 환경에서, 커뮤니티에서 공유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전문가집단과 협업을 하거나 공동 프로젝트까지 한다. 숙련화된 설계자와 플레이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은 모두가 ‘합리적 트릭스터’ 다. 우리는 합리적 트릭스터들이 최근 열광하는 숙련화 게임의 두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로는 <스텔라 블레이드> 같은 게임이 전통적인 게임 서사와 미장센으로 뉴트로로 돌아오는 방식,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긴 하지만 생성AI를 활용한 게이밍의 등장이다. 이 두 시나리오 모두 테일러리즘이나 포드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산업 부문에서나 게이밍에서나 완전히 화려하게 자동화된 기술진보가 아니라 결국 합리적 효율성과 주체적 효능감 사이를 횡단하는 사람들, ‘합리적 트릭스터’들이 길을 여는 것을 본다. ‘트릭스터’의 감각을 상실한 게임의 설계자와 플레이어들은 더 이상 체스를 두지 못한다. 트릭스터는 질서를 가장한 혼돈을 창출하기 좋아하는 악당이고, 꾀를 내어 난제들을 교묘히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현자다. 게이밍은 수많은 트릭스터들이 머리를 맞대고 누가 누구를 어떻게 속일까, 황금율을 어떻게 파괴할까 고민하면서 자신들만의 라그랑주점을 찾아나가는 장이다. 문학이나 시네마에서는 이런 것들이 기만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시네마의 관객은 종종 맥거핀을 찾아내고 실망하거나 핍진하지 못한 연출에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게이밍에서 좋은 설계자들은 재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플레이어들을 어떻게 기만할지를 숙고한다. 플레이어들은 설계자의 주권을 깨트리는데서 희열을 느낀다. 게이밍은 플레이어와 설계자 사이의 탈숙련화 게임이 아닌 숙련화 게임을 통해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확실히, 8비트 게임의 등장 이후 수십 년간 축적된 게이밍 경험은 유비식 오픈월드나 한국형 과금 게임에 종언을 고하고 있다. Tags: 오픈월드, 트릭스터, 포디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Editor's View] 연결되고 재현되는 신체, 그리고 비평과 대중 사이를 잇는 가교로서](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d7b2758a51c7467cb550da0d64068a8f~mv2.png/v1/fit/w_176,h_124,q_85,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d7b2758a51c7467cb550da0d64068a8f~mv2.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