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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이토 준지풍의 그림체와 크툴루 세계관이 결합된 <공포의 세계>의 장점 역시 동일하다.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변화한 마을 구성원들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경험이야말로 등대에 강림할 고대신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일상의 궤도에서 이상 징후와 균열을 발견할 때 불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 Back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19 GG Vol. 24. 8. 10.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 H.P.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 중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만 실현 가능한 장르를 게임을 통해 재현하는 일은 그 목적이 플레이어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라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 코스믹 호러는 단어 그대로 인간의 사유와 이성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거대한 존재를 마주쳤을 때 경험하게 되는 우주적 공포를 의미한다. 오랜 기간을 통해 축적해 온 문명을 포함한 인간적 가치가 통용되지 않는 불가해한 공포를 목도하는 상황과 그에 대한 매혹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대변하는 특징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은 그가 활동했던 시대보다는 오히려 지금에 와서 적극적으로 향유되고 차용하고 있다. “거기서 크툰을?”이라는 밈으로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을 <하스스톤>의 고대신의 저주 덱만 하더라도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고대신 중 하나인 크툴루 이미지를 빌려온 대표적인 사례다. 크툰(C'Thun)이라는 이름조차 크툴루(Cthulhu)를 연상케 하는 의도적인 작명이다. 게임을 비롯한 서브 컬쳐에서 크툴루가 코스믹 호러를 대표하는 표상이자 오마쥬로 손쉽게 활용되는 이유는 러브크래프트의 작업물 중 드물게 크툴루 만이 소설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외양이 묘사되어 있고 작가의 스케치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시각화할 수 있는 뚜렷한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점은 공포를 야기하는 데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크리쳐를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했던 나 <콜 오브 크툴루>와 같은 게임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던 요인 중 하나는 시각적 재현을 통해서는 공포를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래픽 해상도나 디자인, 크리쳐의 거대함을 체감할 수 있는 상대적 크기의 구현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분명하게 가시화된 것일수록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러브크래프트는 기이한 이야기가 예술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정밀하게 사건을 묘사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분위기의 조성을 제안한 바 있다. 코스믹 호러를 경험하게 되는 소설적 사건은 그 자체가 비현실적이며 허구적인 것이기에 정밀한 묘사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인간의 기분을 명확하게 상징화하는 것이야말로 묘사보다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영역이다. 공포, 그것도 특정한 맥락의 사건을 통해 야기되는 감정의 결을 상징화하는 작업은 시각을 중점적으로 매개하는 매체가 좀처럼 도전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모호함, 불분명함에서 오는 상상이 야기하는 불안감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포 영화는 본질적으로 시각 중심적 매체라는 영화의 장점 일부를 포기하고 카메라의 시야를 제한하고 대상을 어둡고 흐릿한 배경을 통해 부각하는 전략을 취한다. 아울러 관객이 사건을 목도하는 전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감상의 가이드라인으로써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사건 전개의 중심축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영화와 같은 시각 매체 감상자가 경험하는 무력감, 일방향적인 위치에서 수행되는 관음에서 비롯된 공포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글의 마중물로 활용한 인용문과 같이 공포는 대상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 기원하는 감정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에서 앎으로 포섭할 수 없는 존재를 목도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광기에 사로잡힌다. 다만 서술자는 광인으로 대변되는 낯선 타자를 목격할 때 경악하거나, 서서히 잠식되는 광기로 인해 미지의 대상에 매혹되며 변화하는 자신의 내면을 진술하는가로 나뉠 뿐이다. 최소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이 둘은 선행과 후행의 문제일 뿐 어느 쪽을 배제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소설 <벽 속의 쥐>의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는 <다키스트 던전>은 고대신의 유적을 저택에 은닉하고 있는 전대 가주의 편지로 시작된다. 지하의 유적을 탐사하며 결국 고대신의 제물로 후손을 끌어들인 선조의 목적을 저지하더라도 탐사대의 파멸은 불가피하다. 광기에 잠식된 이들은 결코 이전과 동일한 내면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키스트 던전>은 후손의 자살을 암시하는 장면과 새로운 희생양이 될 또 다른 후손을 초대하는 편지로 끝을 맺는다. 이와 같은 서사는 한낱 인간으로서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대한 악의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기하는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을 잘 보여줬다. 그러나 그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다키스트 던전>이 광기를 하나의 변수이자 수치화할 수 있는 요소로 디자인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공포가 대응할 수 없는 미지에서 창출되는 감정이라면 공포 게임의 행위성은 그를 위배하는 방식으로, 달리 말하면 미지를 해소하고 장악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된다. 이 모순적인 결합방식을 시도한 결과물 중 눈여겨볼 만한 대표적인 게임은 크툴루 세계관을 기반으로 추리와 코스믹 호러의 공존을 시도한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이다. 추리는 과학을 포함한 근대적 지식을 동원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지향하는 행위다. 이 경우 만약 이성이 미지를 해체하는 유용하고 적확한 도구라면 해소될 수 있는 공포는 하나의 소재로 활용될 뿐이다. 그러나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의 서사는 이성과 공포의 대결에서 공포에 손을 들어줬다. 홈즈는 어머니를 파멸로 이끈 광기가 자신에게도 유전될 것을 염려하면서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괴이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광기에 접근한다. 그리고 광기에 매혹된 자신이 근대적 이성으로 무장한 이전의 ‘나’는 같은 인간일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성은 미지의 사건을 해결하기에 충분한 도구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질서와 법칙으로 무장한 자신의 세계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불안한 외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홈즈는 이전과는 다른 내면을 가진 인간이 된다. 심지어 고대신을 소환하고자 하는 이교도의 제의를 저지한 후일담에서 짐작할 수 있듯 홈즈의 정신은 그의 정체성이 붕괴되었던 상황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것은 게임을 통해 재현된 캐릭터의 내면일 뿐이며 플레이어의 영역에서 꼼꼼하게 단서를 모아가며 추리하는 플레이 경험은 이 게임이 ‘호러’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전자의 수식어가 약소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차라리 행위성을 제한하는 동시에 특정 행위성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광기를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다키스트 던전>이 광기를 활용하는 방식이 바로 그런 형태다. 플레이어는 지속적으로 특정 확률로 이상상태를 겪는 캐릭터들을 컨트롤하며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관철할 수 없는 세계를 인식한다. 물론 이것은 공포를 직접적으로 창출하기보다는 긴장감을 통해 몰입감을 고조시키는 효과이기는 하다. 그러나 공포를 해소하는 어드벤처식 게임 장르를 대신해 제안할 수 있는 하나의 예시로 고려될 수는 있을 것이다. <드렛지> 역시 광기를 게임적 요소로 활용한다. <드렛지>는 확률의 결과물만 보여주는 <다키스트 던전>보다 광기에 노출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재현한다. 게임 초반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새롭게 마을에 정착하고자 하는 낚시꾼의 일과 사이에는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이질감이 불거져 나온다. 심해에서 건져 올린 것 같은 기괴한 생김새의 어종, 이방인인 주인공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응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의미심장한 대사, 낮과는 전혀 다른 위협이 도사린 밤바다의 풍경은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정작 크툴루의 오마쥬인 것이 분명한 고대신은 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매우 짧게 모습을 드러낸다. 구체적으로 재현되면 될수록, 즉 대상을 명확하게 인지할수록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측면에서 이와 같은 전략은 유의미하다. 오히려 <드렛지>는 미지의 존재가 응시하는 시선을 화면 상단이나 심해의 충혈된 눈으로 표현하거나 광기에 잠식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점차 붉게 번져가는 파라미터 등의 인터페이스로 재현한다. 불분명하고 암시적인 분위기가 캐릭터의 불안을 야기하고 공포라는 감정을 창출하는 것이다. 광인은 타자의 모습으로 재현되기 쉽다. 그러나 <드렛지>는 분열된 자아를 통해 이성의 영역에서는 확신할 수 없는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투신하는 인간의 모습과 미지에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 희생된 아내를 부활시키기 위한 수집가의 광기는 설사 그것이 고대신을 소환해 마을이 소멸하는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다섯 가지의 물건을 모아달라는 의뢰를 수락한 어부는 결국 이것이 스스로 초래한 비극의 후일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광기는 자신의 다른 얼굴이었던 셈이다. 코스믹 호러는 이제까지 믿어왔던 판단 능력에 대한 의심이자 철학의 붕괴, 신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공포다. 정상성, 실재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공포는 지극히 인간적인 발명이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토대, 근거가 전면적으로 붕괴될 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발상이 게임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플레이가 경험하는 공포란 오히려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토 준지풍의 그림체와 크툴루 세계관이 결합된 <공포의 세계>의 장점 역시 동일하다.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변화한 마을 구성원들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경험이야말로 등대에 강림할 고대신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일상의 궤도에서 이상 징후와 균열을 발견할 때 불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인터뷰] 구독 서비스가 게임에 가져올 변화: 스튜디오 사이 유재현 대표

    넷플릭스는 사람들이 다양하고 재미있는 콘텐츠에 기꺼이 구독료를 내고 영상물을 시청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도 넷플릭스와 같은 게임 구독 서비스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게임 구매와 다운로드 형식이 ‘구독 서비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의 선두 주자로 나선 것은 글로벌 게임 업체인 소니와 닌텐도였다. 지금은 애플까지 합세해 게임 구독 서비스를 둘러싼 플랫폼 경쟁이 점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게임 구독 서비스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게임 구독 서비스가 기존의 게임 구매나 다운로드 형식을 대체하게 된다면, 이러한 유통 방식의 변화는 게임 텍스트에 어떤 영향을 줄까? < Back [인터뷰] 구독 서비스가 게임에 가져올 변화: 스튜디오 사이 유재현 대표 09 GG Vol. 22. 12. 10. 넷플릭스의 성공은 미디어 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왔다. 넷플릭스는 사람들이 다양하고 재미있는 콘텐츠에 기꺼이 구독료를 내고 영상물을 시청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도 넷플릭스와 같은 게임 구독 서비스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게임 구매와 다운로드 형식이 ‘구독 서비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의 선두 주자로 나선 것은 글로벌 게임 업체인 소니와 닌텐도였다. 지금은 애플까지 합세해 게임 구독 서비스를 둘러싼 플랫폼 경쟁이 점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게임 구독 서비스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게임 구독 서비스가 기존의 게임 구매나 다운로드 형식을 대체하게 된다면, 이러한 유통 방식의 변화는 게임 텍스트에 어떤 영향을 줄까? 구독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게임 개발자는 게이머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게 될까? 혹시 구독 서비스는 게임 개발자에게 또 다른 고민을 얹어주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게임 구독 서비스는 비단 산업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생산자(개발자)와 수용자(게이머) 모두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은 질문들을 품고 편집장은 게이머이자 1인 개발자인 스튜디오 ‘사이’의 유재현 대표를 만나고 왔다. 편집장: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와 걸어오신 행보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유재현 대표: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사이’(Studio Sai)의 유재현입니다. 저는 VFX 아티스트와 테크니컬 아티스트(Technical Artist)로 디즈니, 라이엇, 댓게임컴퍼니, 그리고 애플 등에서 일하다 현재 스튜디오 사이를 창립했습니다. 현재는 1인 개발자로 ‘이터나이츠(Eternights)’를 만들어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편집장: 게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여쭤보겠습니다. ‘이터나이츠’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 게임을 독자분들께 한두 마디로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유재현 대표: 예. 간단히 말하자면, 데이팅 액션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집장: 데이팅 액션 게임이요? 유재현 대표: (하하) 다들 데이팅 액션이라 하면 그렇게 반응하시더라고요. 근데 말 그대로 정말 데이팅 액션 게임이고요. 조금 더 설명해드리자면, 10대 청소년들이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살아남으면서 데이팅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살아가는 소년 성장물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 스튜디오 ‘사이’에서 개발중인 데이팅 액션 게임 ‘이터나이츠(Eternights)’ 편집장: 방금 말씀해주신 게임인 이터나이츠는 어떤 플랫폼에서 출시를 생각하고 계실까요? 1인 제작자 입장에서는 어떤 플랫폼에 어떤 방식으로 유통시킬 것인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유재현 대표: 이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신경 쓸 게 많아지기는 했어요. 플랫폼마다 버튼 레이아웃이 달라지기도 해서 그런 걸 신경 써야 하기도 하고요. ‘이터나이츠’는 작년 말쯤에 소니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콘솔 독점작이 됐어요. 콘솔로는 플레이스테이션만 나갈 예정이고요. 그리고 PC로는 스팀(Steam)하고 에픽 스토어(Epic Games Store) 이렇게 두 군데에 출시하게 될 예정입니다. 편집장: 사실 1인 개발자로서 게임을 제작하고 출시하는 입장에서 이전하고 많이 다른 게 있다면 구독 서비스잖아요. 예전에는 게임을 출시할 때, 게임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온라인 마켓인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로 올리거나, 프리 투 플레이(Free To Play)를 하게 하되, 인앱(In-App) 결제를 통해 수익을 낸다가 있었는데 구독이라는 개념은 너무 다르잖아요. 구독 서비스를 통해서 이터나이츠를 출시하게 된다면, 게임 내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유재현 대표: ‘구독 서비스로 출시해 보겠냐’는 제안이 오면 엄청 좋을 것 같기는 해요. 근데 걱정이 들기도 하겠죠. 지금 만들어 놓은 이 게임의 경우는 보통 돈을 지불하고, 그만큼의 시간을 들이겠다고 어느 정도 결정한 사람들이 시작하게 되잖아요. 그 플레이어들이 예상하거나 기대하는 페이스가 있을 테고. 게임의 호흡도, 예를 들어서 지금 저희 게임은 신나는 액션이 처음 등장하는 타이밍이 게임 플레이하고 7~8분 후 정도예요. 이런 식으로 게임 유저들을 세계관 안으로 좀 더 끌어들인 다음 액션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전체적인 디자인을 했는데, 구독 서비스로 출시된다고 하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첫 액션까지 그렇게 기다리지 않을 것 같거든요. 아마 2, 3분? 그것도 루즈할 것 같아요. 심지어는 한, 45초 안에 뭔가를 보여 주는 식의 인터랙션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아무래도 구독 서비스를 하면, 지원되는 게임이 많으니까 여러 가지 선택지가 열리잖아요. 이 게임 잠깐 하고, 다른 게임 할 수도 있는 거고. ‘찍먹’이라고 하죠? ‘찍먹’ 해도 돌아올 만큼의 매력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건 호불호의 영역이고요. 그러니까 대중들이 짧은 시간 안에 게임을 오래 플레이할 수 있도록, 그런 장치들에 신경 쓰는 세세한 디자인이 가장 필요하겠다. 아마 그런 쪽의 고민이 가장 많이 들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럼 기존의 게임이 플레이스테이션 플러스 같은 구독 서비스로 출시되면 게임 콘텐츠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유재현 대표: 그건 잘 모르겠어요. 방금 전에는 인스톨하지 않은 상태로 구독 서비스로만 플레이하는 게임의 경우를 말씀드린 거거든요. 근데 인스톨이 전제된 구독이라고 해도 좀 신경 쓰이긴 하겠어요. 구독 서비스라고 하면 아무래도 플레이 초반에 들어가는 큰 액션들에 확실히 신경 쓰고, 앞부분을 좀 더 타이트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어요. 리얼 타임으로 플레이어가 빠르게 해야 하는 것들을 많이 추가하고, 플레이어를 붙잡아 둘 수 있게 즉각적인 리워드를 준다거나. 어떻게 보면 선정적인 부분이나 잔인한 부분 같은 게 많아지지 않을까, 하고 좀 조심스럽게 예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시네마틱한 비주얼 요소들이 분명 초반부에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편집장: 한편으로는, 게임이 갖고 있는 특수성 중 하나로 상호적인 교류가 있잖아요. 이것들이 구독 서비스에서는 조금 다르게 나타날까요? 유재현 대표: 저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메카닉적인 부분이 달라지는 만큼 게임을 어필하는 방식이 기존과는 달라져야 하는 것 같거든요. 좀 부담스럽기도 하겠지만, 제가 그런 상황에 놓여서 게임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면 리액션 측면을 풀어야 하는 과제처럼 받아들일 것 같아요. 편집장: 게임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그런 결제 서비스에 영향을 받는 게 굉장히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게임이 원래 보여 주고자 하는 흐름이 있었는데 그걸 수정해야 하니까요. 결제, 구독이라는 게 애초에 게임 텍스트 외부 원인이기도 하고요. 만약 구독 서비스 때문에 게임을 수정해야 한다면 제작자 입장에서는 아쉬움도 크실 것 같습니다. 유재현 대표: 아쉬움보다도, 어떻게 보면 제작자 입장에서는 따라가야 하는, 배워야 하는 흐름 같기도 해요. 꼭 게임에서의 구독 서비스 때문이 아니고 모든 매체나 모든 콘텐츠가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아요. 한두 장 넘기고 더 읽을지, 안 읽을지 결정할 수 있는 독서 플랫폼이 있는 것처럼? 게임 플레이어가 게임 도중에 리턴 하는 건 정말 자기 마음이잖아요. 결국 유저를 사로잡는 건 제작자의 역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까 일종의 ‘훅’을 초반에 잘 넣는 게 필요한 것 같고요. 플랫폼 변하는 만큼 저도 이것저것 배워 나가야겠죠. 편집장: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런 변화가 게임만의 변화가 아니기는 해요. 텍스트 디자인의 요소가 포함되는 영역에서 이런 변화가 많이 발견되는 것 같고요. 그런데 말씀 듣다 보니까, 제작자 말고 게이머로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좀 궁금해지는 것 같아요. 게임의 경우는 제작자가 가상공간을 만든다는 인식이 강하기도 하고, 현실과는 독립적인 ‘만들어진 세계’로 오랫동안 생각되어 왔잖아요. 그런데 부분 유료 결제나 구독 서비스가 등장하게 되면서 게임이 완전히 독립적인 세계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워진 것 같기도 하거든요. 이용자들도 그런 부분에 대한 반감이 큰 상황이고요. 구독 서비스를 사용해 보셨나요? 유재현 대표: 저는 구독 서비스를 써 본 적이 없어요. 애플만 잠깐 써 봤고, 아직까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게임을 구매해서 플레이하는 게 익숙한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럼 또 궁금해지네요. 구독 서비스가 있다는 걸 아시는데도 사용해 보지 않았던 이유가 있을까요? 유재현 대표: 저는 약간, 게임을 소유하는 게 좋아요. 확실히. 피지컬이든, 디지털이든. 얼마 전에 한국 들어갔을 때에도 게임 타이틀을 한 70개 사 왔어요. 그동안 사고 싶었던 것들이에요. 단순히 ‘게임 산업이 잘 되어야 한다’ 이런 의견 때문이 아니라 정말 개인적으로 갖고 싶어서요. 재미있어 보이면 가지고 싶어요. 물론 플레이 하면서 리턴 하는 경우도 있지만요. 아무튼 저는 마음에 들면 피지컬로 가지고 싶고, 좋아하는 게임은 소유하고 싶고 그래요. 편집장: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경우도, 이번에 플레이스테이션 5를 출시하면서 디지털 에디션을 따로 만들었잖아요.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스팀 이후에 ESD 플랫폼이 보편화되고 나서는 ‘소유’의 개념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피지컬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를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온라인에서, 디지털 계정에 게임 플레이 권한을 가지는 걸 소유로 보기도 하고요. 두 가지 소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재현 대표: 저는 온라인 소유도 소유라고 봐요. 디지털도 많이 소유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구독은 뭔가 불안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구독이라는 게, 내가 확실한 개런티를 가지는 게 아니기도 하고, 좋아하는 게임이 언제든지 구독 클러스터에서 빠져나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마치 제가 좋아하는 물건을 항상 누군가에게 맡겨 놓은 상태? 그 느낌이 싫은 것 같아요. 편집장: 말씀하신 걸 생각해 보면 구글, 애플과 플레이스테이션 앱의 차이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라이트하고 캐주얼한 게임이냐, 아니냐의 문제? 애플 아케이드는 하이퍼 캐주얼에 가까운 게임들로 구성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런 게임들은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좀 떨어지지 않을까요? 유재현 대표: 저는 갖고 싶다는 감정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경험이나, 경험의 무게랑 관련된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그 무게가 스토리의 유무로 많이 갈리는 것 같고요. 게임을 플레이하고, 게임 스토리에 정말 공감하면서 그 게임 안에 살아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고, 그러면 되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되겠죠. 아무래도 저는 게임이 얼마나 라이트하든 게임하면서 유의미한 감정적 울림 같은 걸 느끼면 피지컬 카피라도 갖고 싶거든요. 물론 사람마다 너무 다르겠지만. 아무튼 게임은 상품이고, 그러다 보니까 입소문에 의해서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주변에 영업하게 되는 가장 큰 동기 중에 하나가, 게임 플레이하면서 느끼는 감정적인 흔들림인 것 같아요. 그걸 만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툴 중 하나가 스토리라고 생각해서 그쪽에 집중하게 되고요. 이런 요소들이 있다면 저는 기꺼이 피지컬 카피라도 살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럼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요. 북미에서 개발을 하고 계시다 보니 주변에 다른 개발자들도 있으시잖아요. 그분들과도 구독 같은, 어떤 유통 플랫폼의 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시나요? 유재현 대표: 하긴 해요. 그런데 자기가 포커스 하는 시장이 나눠져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지금 게임 시장이 크고, 플레이어 풀이 엄청 크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다들 자기 취향에 맞는, 자기 스타일의 게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 같아요. 다들 자기 취향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나 같은 사람이 많겠지, 내가 좋아할 만한 게임을 만들면 이 정도 되는 플레이어들 중에서 이걸 할 만한 사람이 어느 정도 확보되기는 하겠지’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편집장: 제작자로서, 혹은 이용자로서 느끼시는 한국과 북미의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한국형 MMORPG라고 부르는 게임들, K-게임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잖아요. 페이 투 윈(Pay to Win)이 강한 게임들. 북미에서는 이런 게임들이 대세가 된다거나, 그런 분위기라는 게 있을까요? 유재현 대표: 아무래도 여기는 좀 더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의 경우는 유저들이 불만이 쌓이거나, 하면 이슈가 되잖아요. 커뮤니티에서 많이 회자되는 메인 이슈랄 게 있고. 그런데 여기는 ‘아, 저쪽에서 저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느낌으로 보고 넘기는 분위기예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없어요. 사람이 많아서일 수도 있는데, 확실히 다양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편집장: 한국은 페이 투 윈이 주류가 되다 보니까 게임 관련 이슈가 더 크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북미는 풀이 다양해서 독점적인 모델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듣다 보니 생각하게 되는데, 북미가 그런 상황이라면 구독이라는 서비스가 새로 생기더라도 확실히 한국이랑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겠네요. 애플 아케이드 같은 건 어때요? 북미에서는 많이 결제하나요? 유재현 대표: 많이는 아닌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3개월 구독하고 끊었는데, 구독한 이유도 독점작 때문이었어요. 독점작이 재미있어 보였거든요. 편집장: 그러면 제작자 입장에서 구독 서비스가 충분히 어드벤티지가 있는 시장 플랫폼이라고 보시나요? 어떨까요? 유재현 대표: 주변 개발자 스튜디오들 보면, 구독 서비스로 게임을 서비스하게 되면 일종의 미니멈 개런티를 받는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미니멈 개런티를 받고 게임을 팔게 되는 거잖아요. 그걸 받고, 플레이 시간이 3만 시간 이상 축적되면 다른 방식의 개런티를 받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되면 아까 처음에 제가 말씀드렸던 ‘초반에 플레이어 사로잡기’, 이건 첫 번째 관문이겠죠.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붙잡느냐, 얼마나 오래 플레이하느냐에 따라서 게임의 가치가 정해지는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구독 서비스에 좀 회의적인 편이에요. 구독 서비스를 통해서 게임을 출시한다고 하면, 제작자 입장에서는 내가 만들고 싶은 방식의 인터랙션이나 호흡에 신경 쓰는 것보다도 플랫폼 성향에 맞춰서 자극적인 게임을 디자인하는 게 중요해지는 것 같거든요. 제작자들도 다 먹고 살려고, 정말 죽기 살기로 게임을 만드는 건데 게임 가치가 그런 식으로 정해지게 되면 아무래도 이전에 느꼈던 감성적인 게임을 재구현하거나 창조하고 싶다기보다는 스킬, 비주얼, 이런 자극적인 디자인을 우선시하게 되겠죠. 편집장: 지적하신 문제는 획일화에 관련된 것 같아요. 결국 구독 시장 안에 들어가서 다른 콘텐츠와 시간 점유 경쟁을 벌일 때 유리한 게임이 구독 서비스 내에서는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시나 보네요. 유재현 대표: 예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런데 저는 좀 다른 고민도 있어요. 구독 서비스 게임들은, 아무래도 유저 입장에서는 한 달에 정액을 내기 때문에 게임을 굳이 오래 할 필요가 없다고 인식되기 쉽잖아요. 그러면 너무 라이트한 게임들만 남게 되지 않을까? 아까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내러티브가 중심이 되는 게임들은 최소 플레이 타임을 할애해야 하고요. 이런 게임들은 초반에 확 끌어당기는 요소들을 보여 주지 못하면 끝까지 플레이하기 힘든 게 사실인데, 앞부분이 잔잔해야 절정 부분의 임팩트가 큰 게임들은 구독 서비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유재현 대표: 힘들죠. 사전 정보가 없으면 진짜 힘들죠. 이 게임 끝까지 하면 분명히 가치가 있다는 걸 아니까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정보가 없으면 비주얼로 정말 휘어 감든지, 아니면 메카닉이나 스토리로 휘어 감든지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웹소설이나 웹툰이 딱 비슷한 예시인 것 같은데, 한 화만에 구독자를 휘어잡는 게 필요하니까요. 그 정도의 자극적인 시작 부분이 게임에서도 필요할 것 같긴 해요. 편집장: 어떻게 보면 구독 결제의 대표적 사례로 웹소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제목에서 다 보여 주고요. ‘만렙 전사가 이세계로 가다!’ 이런 식으로요. 게임에서도 네이밍이 그렇게 중요해질까요? 유재현 대표: 비슷한 현상은 충분히 있을 것 같아요. 제목뿐만 아니라 타이틀 이미지도 그렇고, 마치 유튜브나 스팀에서 타이틀 이미지, 썸네일 구경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사람들이 써 놓은 디스크립션의 첫 부분을 많이 보게 되니까, 딱 라이트 노벨 제목처럼 정보가 많이 압축된 홍보가 필요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편집장: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라이트한 게임들이 구독 서비스와 잘 어울리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구독 서비스가 헤비 게이머를 위한 서비스가 아닐 수도 있겠어요. 유재현 대표: 맞아요. 또 좀 헤비 게임을 즐기는 분들은 플랫폼별로 카피를 갖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엑스박스용, 플러스용, 스위치용, 이런 식으로. 필연적으로 스토리가 길어지는 게임들은 애플 아케이드 같은 구독 서비스랑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거랑 반대로 좋은 예가 있는 게, itch.io ( https://itch.io/)라는 플랫폼이 있거든요.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여러 가지 게임을 해 볼 수 있는데, 정말 훌륭한 내러티브 구성으로 15분 남짓이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들이 몇 개 있었어요. 그런 게임들은 구독 서비스랑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런 게임만 묶어 놓은 구독 서비스가 있다면 무조건 할 것 같아요. 편집장: 말씀하신 것처럼 구독 서비스를 통해서 게임을 제공하게 되면 사람들의 주목도를 끌기 위해서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지겠죠. 마케팅 부서나, 퍼블리싱이나, 이런 일을 함께해 줄 담당자가 없는 1인 개발자에게는 수익 측면의 고민이나 부담도 생길 것 같아요. 노동 강도와 수익이 정비례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유재현 대표: 아직은 조금 판단하기 힘든 것 같아요. 확실히 툴은 더 좋아지고 있고, 이전에 비하면 게임 개발도 훨씬 수월해지고 있거든요. 물론 잘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에 스킬을 계속 쌓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개발 자체가 수월해진 게 크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마케팅 같은 것들은 힘들기야 하겠지만, 한 번 하면 또 익숙해질 거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편집장: 그렇군요.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하태현 문화와 역사, 종교와 게임 등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게임을 즐깁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 궁리하며 살고 있습니다.

  • GXG 2025 게임제너레이션 문화비평대담회 안내

    게임제너레이션은 오는 9월 19일(금) 판교 그래비티 조선호텔에서 열리는 GXG 2025 컨퍼런스에서 문화비평대담회를 개최하며 참여합니다. < Back GXG 2025 게임제너레이션 문화비평대담회 안내 25 GG Vol. 25. 9. 3. 안녕하세요,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입니다. 게임제너레이션은 오는 9월 19일(금) 판교 그래비티 조선호텔에서 열리는 GXG 2025 컨퍼런스에서 문화비평대담회를 개최하며 참여합니다. Cross Culture: View 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번 대담회는 현대 시각예술 기반의 대중문화 매체로 손꼽는 영화, 웹툰, 게임과 현대미술이라는 네 가지 형식이 오늘날 서로 어떻게 관계맺으며 변화해 가는지를 진단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매체간의 크로스오버가 다양해지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이들 미디어가 각각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상호간에 주고받은 영향력은 다가올 미래에 어떻게 발현될 것인지를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이번 행사에는 개그맨이자 영화유튜버인 김경식, 웹툰작가이자 유튜브 스토리캠프를 운영하는 이종범, 현대미술 큐레이터 권태현,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네 사람이 각각 영화, 웹툰, 미술, 게임의 시점에서 확인한 변화의 양상을 이야기합니다. 딱딱하지 않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각각의 매체들을 두고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이들의 경험과 고민을 함께 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Cross Culture: View는 GXG2025 컨퍼런스 행사에 포함되어, 참가를 원하실 경우 사전 등록이 필요합니다. 아래 등록 사이트에서 신청하시면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등록사이트 링크: https://2025gxgconference.co.kr/ 대중문화콘텐츠를 담당하는 미디어의 한 축으로서 디지털게임은 이미 충분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고, 디지털게임 비평 웹진인 게임제너레이션이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고자 하는 시도는 이러한 위상과 연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넘어, 이제 디지털 미디어 시대 전반을 게임의 관점에서 보다 폭넓고 심도깊게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GXG, 대담회, 김경식, 이종범, 이경혁, 권태현, 대중문화, 시각예술, 시각매체, 비평, 문화담론, 토크쇼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논문세미나] <하스스톤>에서 플레이어들은 왜 감정 표현을 오용하는가?

    저자들은 위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 비매너 상호작용의 다섯 가지 형태를 정리한다. 제시된 유형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항복(concede)’은 여기서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모순점인데, 항복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모두가 비매너 플레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Back [논문세미나] <하스스톤>에서 플레이어들은 왜 감정 표현을 오용하는가? 14 GG Vol. 23. 10. 10. Text: Arjoranta, J., & Siitonen, M. (2018). Why Do Players Misuse Emotes in Hearthstone?: Negotiating the Use of Communicative Affordances in an Online Multiplayer Game. Game Studies: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computer game research, 18 (2). 1. 들어가며 누가 뭐라 해도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 수 만을 두는 컴퓨터와 달리, 변칙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큰 재미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플레이어간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여기서의 큰 축을 담당해 왔다. 게임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가상 세계에서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 인연을 맺는다. 이에 대한 기대는 정말 대단한데, 다수의 플레이어들에게 소통과 사교는 항상 게임을 플레이하게 하는 결정적 동기로 이야기 된다(Yee, 2005). 한편 ,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게임은 악성 채팅으로 가득 차있다. 소소하게는 도배부터 심각하게는 욕설까지 게임 내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발견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게임의 스트레스이며 가장 큰 이탈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은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라이엇게임즈(Riot Games)는 인 게임 내 부정적인 텍스트를 신고를 통해 검토하고 친 사회적인 행동에 보상을 주며, <콜오브듀티>(Call of Duty) 팀은 음성 채팅 중재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나아가, 텍스트 기반 의사소통이 언제나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긴다는 인식과 함께 게임 디자인적으로 채팅 기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도 하는데 <하스스톤>(Hearthstone)은 이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번 호에서 다루는 은 <하스스톤>에서 이루어지는 비매너 의사소통 행위(BM)를 추적하는 논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하스스톤>은 채팅이 배제된 게임이기에 이는 ‘텍스트 기반 의사소통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공격적인 의사소통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한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들이 언급한 것과 같이, 이와 같은 접근은 플레이어들이 제한된 자원을 통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의미를 협상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인 게임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이번 호에 맞추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 <하스스톤>이 소통을 제한하는 방법 본론에 들어가기 전 <하스스톤>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제한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사실,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는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하스스톤>만은 아니다. 그의 의도 역시 다양한데, 게임 디자이너들은 공격적인 행동을 줄이고자 할 뿐만 아니라, 게임의 스토리라인이나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의사소통의 가능 방식을 설정한다. 대표적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에서 한 플레이어는 적대 세력의 플레이어와 채팅을 할 수 없으며, <저니>(Journey)에서 플레이어는 버튼으로 소리를 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하스스톤>에서 사용하는 의사소통 전략은 ‘감정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하스스톤>에서는 채팅이 금지되어 있으며, 플레이어 간 의사소통은 여섯 가지의 감정 표현으로 제한되어 있다. 한편, 게임 내 채팅이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닌데 친구추가를 한 상대와는 텍스트 기반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럼에도 채팅 기능은 로비에 한정되며 게임을 당장 함께하는 상대와 나눌 수 있는 것은 감정 표현 뿐이다. 그림1. <하스스톤>에서의 감정표현 연구가 시작된 2015년까지 감정표현은 ‘감사’, ‘칭찬’, ‘인사’, ‘사과’, ‘이런!’, ‘위협’으로 구성되었으나 2016년 4월 24일 ‘사과’가 삭제되고 그 자리에 ‘감탄’이 추가되었다. 1) 이에따라 데이터 수집도 두 차례 이루어졌는데, 연구자들은 ‘사과’가 ‘감탄’으로 대체된 이전과 이후의 데이터를 비교해보며 디자인의 변화에 따른 차이를 살폈다. 사용 가능한 감정 표현은 여섯 종류가 있으나 각각의 대사는 플레이어가 선택한 캐릭터에 따라 약간씩 달라진다. 이를테면 같은 ‘위협’ 표현에 대하여 사제 캐릭터 란두인이 “빛이 당신을 태울 것입니다!”라 한다면, 사냥꾼 캐릭터인 렉사르는 “네놈을 추격해주마!”라고 말한다. 위와 같은 감정 표현은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는데, 방해 받고 싶지 않은 플레이어를 위해 상대방의 감정표현을 차단하는 기능도 있다. 표 1. 하스스톤: 오리지널 영웅과 영웅 별 감정표현 한편 , 유저의 커뮤니케이션이 마냥 주어진 감정 표현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는 커서(터치스크린일 경우 손가락)의 위치, 카드 검토나 주문 선택의 과정을 통해 상대방과 암묵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3. < 하스스톤> 플레이어들이 (잘못된)의사소통을 하는 방법 그렇다면 <하스스톤>의 플레이어들은 실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그들은 주어진 기능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아니면 기능을 벗어나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내는가? 저자들은 <하스스톤> 포럼인 ‘Hearthpwn’ 2) 의 글을 수집하여 이를 살핀다. 그에 따르면, 플레이어들의 비매너 소통에는 ‘감정표현을 사용하는 방식’과 ‘그 외의 방식’이 있다. 1) 감정표현을 사용하기 플레이 중 이루어지는 감정 표현은 주어진 그대로의 의미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 모든 의사소통 행위는 그것이 발화되는 특정 맥락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게임이 시작할 때 하는 인사는 인사로 받아들여지지만 고민으로 시간이 지체되고 있을 때의 인사는 재촉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고맙습니다’는 정말 감사를 표할 수도 있지만 상대의 실수를 조롱하는 데에도 사용 가능하다. 즉, 같은 표현이라도 타이밍이나 상황의 단서에 따라 수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캐릭터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은 의미의 범위를 더욱 확장한다. 이를테면, 같은 ‘감사’인사라도 우서가 하는 ‘고맙네’는 안두인 린의 ‘감사합니다!’는 서로 다른 느낌을 준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각 캐릭터의 어조를 살려 감정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상대방을 약 올릴 수 있는 캐릭터의 대사가 드러난다. 실제로, 본문에 언급된 한 플레이어에 따르면, 제이나의 ‘이런!’은 특히나 얄밉다. 그림 2. 한국 커뮤니티에서 밈(meme)으로 자리잡은 안두인의 감정표현(욕설은 블러처리) 3) 이처럼 , <하스스톤>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그 자체의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섯 종류의 감정 표현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만들어 내며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에 사용된다. 따라서, 몇몇 플레이어들은 문맥적 해석을 제거함으로써 합의된 어휘를 개발하고자 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감정 표현은 각각이 의도된 대로 동일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즉, ‘인사’ 표현은 인사를 하는 의미로 발화되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감정 표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 역시 존재했다. 그들은 채팅을 제한하는 것이 오히려 공격적인 행동 가능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감정 표현을 통한 비매너 소통은 겉으론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제제할 방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편 , 모두가 감정 표현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플레이어들은 감정 표현의 확장된 사용을 재미의 일부로 수용했다. 그들은 각각의 감정 표현이 가지는 미묘한 느낌에 흥미를 가지고 감정표현을 확장시키는 것 자체를 ‘놀 거리’라 생각했다. 2) 플레이를 통하기 <하스스톤 >에서 상대방과 소통하는 방식은 감정표현 뿐만이 아니다. 해당 게임에선 그보다도 훨씬 많은 비언어적 표현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플레이어어는 의도적으로 천천히 플레이하며 시간을 끄는 ‘로핑(roping)’을 할 수 있으며, 승리가 확실해진 상태에서 불필요한 행동을 하며 플레이를 지속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캐릭터나 덱의 선택 을 통해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게임의 가장 단순한 기능도 여러 방식으로 사용되고 다양한 뜻을 전달한다. 플레이어의 창의성이 개입된다면 어떤 것도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저자들은 위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 비매너 상호작용의 다섯 가지 형태를 정리한다 . 제시된 유형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항복(concede)’은 여기서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모순점인데, 항복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모두가 비매너 플레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① 의도적으로 시간을 지연시키는 경우 . 플레이어의 차례가 끝나려 할 때 천천히 타는 밧줄을 가리켜 ‘로핑(roping)’이라고도 함 ② 스패밍 (spaming)을 비롯한 감정 표현을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행위. ③ 항복을 하지 않고 게임을 종료하는 행위 . ④ 승리가 확실 해졌음에도 불필요한 공격으로 플레이를 연장시키는 행위 ⑤ 게임이 끝난 후 , ‘친구 요청’을 보내 상대방에게 공격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 4. 나가며: 비매너라는 회색 지대 한국의 위키피디아 사이트인 ‘나무위키’에는 ‘인성질(하스스톤)’이라는 문서가 있다. 그에 따르면, 인성질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하스스톤에서 제공하는 의사 표현 기능을 이용하여 상대를 희롱하는 행위’ 4) 로 본 논문에서 확인한 비매너 소통에 해당한다. 웬만한 논문보다 긴 길이의 위 문서는 여섯 가지의 감정표현만을 가지고 어떻게 상대를 화나게 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전략들은 본문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 텍스트가 영미권 커뮤니티를 분석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때 나타나는 유사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현상이 유사한 만큼 본문에서 나타나는 문제의식 또한 공유해볼 수 있을 것이다 . 텍스트의 중심 주제인 비매너 플레이는 매우 다층적으로 나타나는 흐릿한 개념이다. 저자들은 비매너 플레이의 다섯 가지 양상을 정리하지만, 항목들에 논쟁의 여지가 있음을 밝힌다. 가령 게임 종료 직전 남은 카드를 모두 사용하는 것은 어떤 플레이어에겐 불필요한 플레이의 연장으로 해석되었으나, 다른 플레이어는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동일한 맥락의 같은 행위라도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에 따라 비매너인지 아닌지가 결정됨을 시사한다. 비매너 상호작용이란 깔끔히 떨어지는 명료한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하스스톤>에서 감정표현을 오용하는 것은 비의도적인 차원을 포함한다. 발화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감정 표현은 비매너인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직접적인 욕설 만이 비매너 플레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 텍스트 기반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도 상대를 향한 공격적인 표현은 언제나 가능하다. 즉, 단순한 감정 표현 몇가지라도 충분히 상대를 괴롭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언어적 소통의 공격성은 회색 지대에 위치한다. 무엇이 비매너인지 아닌지는 주관적이며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회색 지대야 말로 본 논문 제시하는 주목해볼만한 지점일 것이다. 게임에서 비매너 플레이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의 모호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참고문헌 Call of Duty Staff. (2023, 8, 30). 유해성 근절 진행 보고서 – 음성 채팅 중재. URL: https://www.callofduty.com/blog/2023/08/call-of-duty-modern-warfare-warzone-anti-toxicity-progress-report Yee, N. (2005, June). Motivations of Play in MMORPGs. In DiGRA Conference. Riot Games. (2022, 8, 29). 플레이어 관계분석 현황. URL: https://www.riotgames.com/ko/news/an-update-on-player-dynamics-ko 1) https://hearthstone.blizzard.com/ko-kr/news/20097359 2) https://www.hearthpwn.com/ 3) https://www.inven.co.kr/board/hs/3509/2037951 . 인벤 유저의 게시 글. 여기서 저자는 안두인 린의 한국 대사가 성우의 음성 녹음으로 인하여 훨씬 짜증이 난다고 이야기한다. 4) https://namu.wiki/w/%EC%9D%B8%EC%84%B1%EC%A7%88(%ED%95%98%EC%8A%A4%EC%8A%A4%ED%86%A4) Tags: Arjoranta, siitonen, 콜오브듀티, 하스스톤, 비매너, 커뮤니케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 [인터뷰] EBS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PD-자문위원의 코멘터리 대담

    지난 10월 10일, EBS에서 만든 게임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참조: https://youtu.be/5LWXpmdV_BU) 일반적인 게임 다큐멘터리처럼 게임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지 않고 게임의 본질과 가치를 다루고 있으며, 트렌디한 연출에서부터 방송 직후 유튜브에 즉시 공개한 것까지, 제작과정과 유통과정 모두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공개된 유튜브의 댓글에는 ‘제작자가 게임에 진심’이라는 시청자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 Back [인터뷰] EBS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PD-자문위원의 코멘터리 대담 09 GG Vol. 22. 12. 10. 지난 10월 10일, EBS에서 만든 게임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참조: https://youtu.be/5LWXpmdV_BU ) 일반적인 게임 다큐멘터리처럼 게임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지 않고 게임의 본질과 가치를 다루고 있으며, 트렌디한 연출에서부터 방송 직후 유튜브에 즉시 공개한 것까지, 제작과정과 유통과정 모두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공개된 유튜브의 댓글에는 ‘제작자가 게임에 진심’이라는 시청자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그러나 기존의 게임 다큐멘터리와 궤를 달리한다는 것은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뒤따른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제작과정은 어땠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으며, 어떠한 관점으로 게임을 보고자 했던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이번 호에서는 박진우 PD와 자문위원 이경혁 편집장의 대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Q. 마침 다큐멘터리의 PD와 자문위원을 모시게 되었는데요. 이 다큐멘터리에 관한 논의를 처음 시작하신 것은 언제인가요? 이경혁 자문위원: 제가 기억하는 첫 만남은 한예종에서 열었던 크리티컬 플레이어 행사였어요. ‘게임 비평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주제의 행사에서 제가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끝나고 찾아오신 거예요. 게임 다큐를 만들고 싶다고. 그때 앉은 자리에서 2시간을 더 이야기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 굉장히 반가웠던 것이 ‘이제는 게임을 하던 세대가 제작자의 위치로 가는 순간이구나’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다큐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반가웠어요. 그래서 한참 이야기를 했는데 그다음에는 서로 바빠서 잊고 있었어요. (웃음) 박진우 PD: 그렇죠. 서로 바빴죠. 이경혁 자문위원: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났는데 다시 또 연락이 와서 예산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다큐의 시작이라고 하면 5년 전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다큐멘터리가 본격적으로 제작을 시작한 것은 3년 정도이지만, PD님은 예전부터 이 주제를 다루고 싶어하셨으니까, 마치 배추를 절이는 데 2년, 양념에서 묻히는 데 3년 같이 5년을 고민하셨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진우 PD: 맞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었고, 대학 졸업할 때도 졸업 논문을 게임에 관해 썼거든요. 그러다 보니 뭔가 나름대로 파보고 이것저것 읽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관심이 생겼고, 이차적으로는 이러한 작업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PD가 된 다음에도 ‘내가 어떤 프로그램을 할 것이냐’라고 했을 때 게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 과정에서 편집장님이 말씀하셨던 한예종 행사에 갔는데,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필드가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위안과 용기를 얻었어요. ‘이 정도의 콘텐츠가 있으면 다큐를 하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사실 아이템만 가지고는 다큐멘터리가 될 수 없거든요. 그게 2018년 겨울이었어요. Q. 5년이라는 시간이 짧지 않은데, 그 과정에서 생각이 변하거나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박진우 PD: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조바심이 있었어요.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게임에 관한 감각을 잃어버리기 전에 게임 다큐멘터리를 두 개는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어린이 프로그램을 한 3, 4년 정도 제작했는데, 1년, 1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제 어릴 적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제가 게임을 엄청 좋아하고, 가장 열성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던 그 시절과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아서 더 빨리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게임의 주 소비층을 2030이라고 봤을 때, 이 문화에서 제가 조금씩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이 어떤 문화를 좋아하면 예전에는 100% 다 알았는데, 조금씩 모르는 것들이 생기면서 이걸 완전히 놓치기 전에 만들어야겠다고 서둘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나왔던 다큐도 어떻게 생각해 보면 2년 후에 저라면 이런 방식과 이런 드립을 넣는 형태로 만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드립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드리는 건데, 저는 인터넷 상의 반응을 보면서 굉장히 ‘성공했구나’라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있었어요. 박진우 PD: 어떤 씁쓸함이었을까요? 이경혁 자문위원: 유튜브에 댓글이 달리는 데, 이런 댓글인 거죠. ‘이 다큐가 훌륭한 이유는 밈을 잘 쓴 것이다, 이말년이 나왔다, 전용준이 나왔다.’ 그러나 이 다큐의 의미가 그거 하나는 아닌 거죠. 밈이 잘 사용된 것은 맞지만, 한편으로는 이 다큐의 핵심은 결국 게임의 본질에 관한 질문들인데, 이것이 주목받지 못하는 점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있어요. 박진우 PD: 그렇죠. 그 부분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처음에 선생님과 함께 다큐 기획을 할 때도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고, 방송 나간 결과물을 보면서도 어렵다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말씀하신 타겟에 관한 문제예요. 시청자들의 게임 이해가 각기 다르고, 어떤 것을 원하는가 했을 때, 이런 부분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물론 다큐의 본질이 별로였으면, 밈에 대한 반응도 안 나왔겠죠. 그렇지만 저희가 2년 반 동안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찍어놓은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리서치를 굉장히 길게 했어요. 그런 지점에서 오는 아쉬움이죠. 박진우 PD: 사실 내용적인 부분에 있어서 반응이 많이 나왔던 것은 3부였거든요. 전체 기획의 측면에서 봤을 때, 1부가 기본적인 내용이라면 2부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고, 3부가 일종의 심화편으로, 시청자들이 다큐프라임이나 다큐멘터리에 기대하는 정보량과 깊이는 3부의 온도였을 것 같아요. 다만, 제작과정에서 너무 심층적인 논의들은 의도적으로 많이 뺐어요. 핵심적인 내용만 남기고 많이 덜어내고자 했는데, 그래서 어떻게 보면 게임을 해왔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나 공중파 다큐멘터리라는 미디어는 일종의 공인 효과를 만들잖아요? 저희는 그런 지점에 더 초점을 맞추고자 했어요. 다들 느끼고 있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걸 언어화해서 공유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으로 담론을 만든다는 의미가 있잖으니까요. 그렇게 족적을 남김으로써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하기 위해서 가급적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밈이나 인터넷 문화를 많이 가져온 것도 이런 맥락이에요. 재밌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테니까요. *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다큐프라임-게임에 진심인 편’ 시청자 반응. 이경혁 자문위원: 그래서 그런 후속 효과도 굉장했죠. 계속 커뮤니티에 돌았고, 소위 말하는 ‘짤’로 ‘EBS가 이런 것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웃음)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게임을 하나의 매체로서 다루는 시금석’이라는 방향성은 확실히 기존 문법이랑 다른 지향점을 가지게 했는데요. 저희가 시작할 때부터 배제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했거든요. 처음에 저희가 기존 다큐들이 무엇을 다루었는지 쭉 훑었어요. 그러면서 게임 산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고 방향을 정했었죠. 다른 이야기지만, 어려움이라고 했을 때는 그런 것도 있을 것 같네요. 이전에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들을 보니까 미국의 경우에는 비디오 게임 연구의 장이라는 것이 이미 있는 거죠. 거기서 자신들이 쌓아놓은 역사들이 있고, 대학의 전공도 있으며, 전문가들이 있어요. 그러면 다큐 제작진들이 누군가를 컨택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웠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전문가가 없으니까 어려웠죠. 박진우 PD: 맞아요. 그게 되게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였습니다. 자료도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고 리서치에 동원될 수 있는 인력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Q. 그러면 자료나 전문가를 구하기 어려운 문제가 다큐의 방향성을 바꾸셨던 지점도 있을까요? 이경혁 자문위원: 저는 기억나는 게, 초기에 기획했던 콘텐츠 중에는 백인의 인터뷰가 있었어요. 게임계의 100명을 선정해서 가장 좋았던 게임에 대한 인터뷰를 모으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했었죠. 박진우 PD: 저는 여전히 그 기획이 재미있는 기획이라고 생각을 하고, 나중에라도 해보고 싶은데, 당시에 캔슬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 정도가 있었어요. 하나는 여태까지 나왔던 게임 중에서 최고의 걸작을 꼽는다고 하면, 걸작이라는 말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정해진 답이 있는 느낌이랄까요?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을 배제하기가 너무 쉬운 거예요. 결국, 작품론적 관점으로 질문이 흐르게 되죠. 저희 내부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때도 기껏해야 와우(WoW) 정도?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이 두 가지 매체의 게임을 포기하게 되니까 세팅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하나 있었고요. 두 번째로 다큐를 기획할 때는 판데믹 시국이었기 때문에, 해외로 못 나갔었거든요. 그래서 해외의 게임 관련자들을 만날 수 없었다는 요인이 작용했어요. 물론 이 기획 과정에서 프린세스 메이커의 아카이 타카미씨를 만날 수 있게 되어 이번 다큐에 나오시긴 했지만요. Q. 두 분은 그 5년 사이에 어느 정도로 만나신 건가요? 박진우 PD: 처음에 만나 뵙고 그 이후로는 저도 이제 다른 프로그램 한참 제작을 하다가, 다큐프라임 기획안 공모가 떠서 올해는 게임을 본격적으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요. 정리를 하다 보니 한계가 있는 거예요. 이전에 정리해놓은 자료들 중에서는 유실된 것도 있고, 그 사이 지형이 많이 바뀌면서, 전문가 선생님의 도움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경혁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흔쾌히 나와주셨어요. 이경혁 자문위원: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장소가 그렇게 멀지 않아서요. (웃음) 동네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했어요. 우연찮게 작가분도 근처에 사셔서, 초창기에는 거의 하루종일 이야기를 하는 모임들을 꽤 자주 가졌던 것 같아요. 어떤 결론이 나기보다는 탐색을 엄청 많이 했었죠. 박진우 PD: 그래도 꽤 많은 가능성들을 펼쳐놓고 시뮬레이션을 돌렸어요. 그러다가 기획을 다듬어서 지금의 1, 2, 3부 형식을 잡기까지 한 1년 걸렸던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제작이라는 과정이 그런 것 같아요. 완성된 작품은 150분이지만, 할 이야기는 정말 많은데 제한된 150분 안에 무엇을 넣어야 우리의 목표에 들어갈 것인가 하고 훨씬 많은 시간을 고민했죠. 이런 식으로 걸러내는 과정들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박진우 PD: 맞아요. 전체 50분짜리 다큐멘터리에서 내러티브가 전개되는데 필수 불가결하게 쓰이는 시간들이 있어요. 거기서 시간을 더 줄이면 몰입이 안 되거나, 캐릭터가 설명이 안 되거나, 상황이 인지가 안 되거나 이렇게 되거든요. 그러면 구조 자체가 무너지는 거고, 구조가 무너지면 알맹이들은 더 머릿속에 안 들어오는 거죠. 게다가 내용적인 면에서도 깊게 다루거나 더 들어가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거든요. 그래서 진짜 핵심만 남기고 버리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이경혁 자문위원: 결국은 다 필요없고 재밌게 보면 좋겠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남겨줄게! 같은 식으로 만들어지죠. (웃음) 박진우 PD: (웃음) 맞아요. 정확하게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욕심으로는 약간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1부에서는 다큐 중에서 규칙이나 상호작용을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싶었었어요. 그치만 사실 동영상은 일방향 콘텐츠니까 상호작용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나마 최대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느낌이라도 줄 수 있게 중간중간 퀴즈나 퀘스트 같은 것들을 넣으려 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짜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렸죠. 추가적으로 그런 어려움도 있었네요. 인터뷰이들을 어렵게 모셨는데, 제한된 시간에서는 모든 이야기를 담기가 어렵잖아요. 50분 다큐에 한 두 세문장 정도 나오실 수 있는데, 저희가 조사를 할 때에는 평균적으로 3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거든요. 진짜 좋은 말씀이 많았는데, 그걸 다 못 담아내서 너무 아쉬워요. 다만, 저희가 그래도 최대한 모든 분들의 인터뷰를 담아내려고 노력했어요. 이번 작업에서 낭비가 거의 없었거든요. 인터뷰 등을 나갔던 모든 자료들을 다 썼고, 한두 컷이라도 담으려 했죠. 근데 딱 한 분 전반적인 톤과 약간 달라서 못 쓴 분이 있었어요. 방송 나가기 직전까지 어떻게든 녹여내려 고민했는데, 안 돼서 방송 전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요. Q. 말씀하신 것처럼 세 부가 사실 각기 다른 성격으로 구성되어 있다보니까 에피소드 별 비하인드도 다를 것 같은데요. 이경혁 자문위원: 맞아요. 저도 궁금했던 것이, 1부에서 인트로가 충격적이었잖아요? (웃음) 사람들이 말로만 하던 ‘고인의 생전 최고의 플레이를 보시겠습니다’를 직접 그려내니까. 그런데 해당 장면을 촬영하는 배우들은 자기가 뭘 찍는지 아나요? 예를 들어 목사님은 이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시는 걸까? 그런 점에서 저는 PD님이 어떻게 디렉팅을 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박진우 PD: 저희가 앞부분 대본을 드리고, 감추는 것은 없었어요.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를 했는데, 다만 밈에서 출발했던 것까지 정확하게 이해하신 분들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특히 어르신 출연자들도 있고 했었으니까. 한 30대 중후반쯤 되시는 남자 배우 분만 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디렉팅은 그런 거죠. ‘상상도 못했던 걸 봤다고 생각하고 놀래 달라’ 이경혁 자문위원: 아무래도 다 알고 연기하시긴 어렵겠죠. 아, 그 ‘전용준 게임’은 따로 외주 제작한 건가요? 박진우 PD: 네 맞아요. 따로 게임 개발하시는 분을 컨택해서 제작을 했죠. 저희 나름 그 게임 진짜 신경 많이 썼습니다. (웃음) 다큐멘터리가 그냥 한 편의 다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체험을 할 수 있는 다큐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의 확장선이었던 거죠. 영상이라는 일방향적인 매체의 한계를 벗어나보고 싶었고, 그 안에는 나름 많은 비밀과 다큐에서 나왔던 내용을 곱씹어 볼 수 있는 장치들 등을 세밀하게 조정을 하고자 했습니다. 진짜 공을 많이 들였죠. * 다큐프라임의 ‘게임의 신’ 게임 출시 공지. 전용준 게임은 http://www.ebsgodofgame.com에서 바로 접속할 수 있다. 이경혁 자문위원: 이게 진짜 이스터에그가 많더라고요. 박진우 PD: 네. 그런 비밀을 감춰놓음으로써, '게임이 재미를 발생시키는 원리'를 직접 느껴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거든요. 처음에 화면을 켜면 튜토리얼이 짧게 한 장으로 나오는데, 진짜 미니멀하게만 짜놨고, 어떻게 해야 고득점을 하는지, 고득점을 받으면 어떻게 집계가 돼서 뭘 하는지 이런 규칙은 일부러 다 감춰놨어요. 그걸 찾아내는 게 일종의 재미를 발생시킨다고 봤기 때문이죠. 이경혁 자문위원: 나도 그 의도를 보고 그게 게시판이 좀 올라오길 바랐어요. ‘이 게임 고득점 뽑는 법’ 뭐 그런 걸로요. 이런 게 어디에 글이 올라와야 재밌는 거니까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사람들이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아직도 액티브 되어 있죠? 박진우 PD: 네. 한 3년 정도 서버비를 내놨습니다. 제 사비로... (웃음) 그리고 이야기 나온 김에 3부 마지막에 가상의 미술관도 실제로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놨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공들인 것에 비해서 사람들이 많이 안 보셨더라고요. 이경혁 자문위원: 그것도 3년치 서버비를 넣어뒀나요? 사비로? 박진우 PD: 네 (웃음) (가상 미술관은 https://www.ebsgamedocu.co.kr 주소로 접속할 수 있다) 이경혁 자문위원: 그리고 1부에서는 ‘바람의 나라’가 메인이 되고, 송재경씨가 거울에 나오잖아요? 세 게임 중에서 맨 처음으로 바람의 나라를 배치한 이유가 있나요? 박진우 PD: 음. 아무래도 제 유년 시절의 일부분을 책임졌던 게임에 대한 리스펙이 크죠. 이경혁 자문위원: 그래서 저는 바람의 나라 세대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바람의 나라와 송재경씨가 가지는 의미가 또 특별하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지점에서 또 중요한 것이 거울에 관한 지점일 것 같은데요. 거울은 왜 쓰셨나요? 박진우 PD: 우선은 인터뷰 공간에 대한 고민이 좀 있었어요. 인터뷰 샷이라는 게 사실 다양하게 보이지만, 한국에서 전문가들이 나온다고 했을 때 한정적이거든요. 사무실 혹은 집무실, 교수님 방 이런 공간이 가지고 있는 넓이나 장면이 너무 뻔하고, 각도도 제한적이어서 어쨌거나 좀 다르게 구성하고 싶다는 게 출발이었어요. 다만 저희가 전문가 선생님들을 직접 찾아 뵙고 촬영을 하는 형태니까, 인터뷰 샷에 통일감을 줄 수 있는 공통의 오브제가 하나 있어야 되겠다 싶었고요. 그게 게임에 대한 무언가면 더욱 좋겠죠. 다만 뻔하게 콘솔 패드나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 등을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굉장히 고민을 하다가 떠올린 게, 게임에 대한 메타포로서의 거울이었어요. 거울이 우리를 비추듯, 게임이 우리 자신을 반영하기도 하고, 거울에 우리를 투영하기도 하고... 일상에 함께하면서도 저 너머의 현실과 꼭 닮았지만 완전히 현실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무언가. 그런게 게임이라고 봤기 때문에 거울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사각의 프레임이라는게 시각적으로 활용하기도 좋았고요. 자막을 넣는다거나, 거울에 비친 인물에 게임의 일부를 합성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쓰기에 좋았죠. 아울러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사각 프레임’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경혁 선생님이 쓰신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이라는 책의 제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네요. 매체로서 게임을 바라본다는 차원에서 더더욱 그렇네요. 이경혁 자문위원: 무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2부의 세팅이 또 굉장히 재밌잖아요. 제가 볼 때에는 온스테이지 공간의 느낌이 들던데, 어떤 기획이었나요? 박진우 PD: 온스테이지와 같은 공간이냐고 물어보시면, 완전히 같은 공간은 아니고요. 요새 호리존트(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음새 없이 만들어 놓은 세트 벽면)에 조명을 넣는 방식으로 공간을 채우는 영상들이 되게 많아요. 아마 처음에는 공중파의 세트 규모를 소규모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따라가기는 힘들어서 차용한 방법일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이 이제는 오히려 역으로 공중파에 영향을 많이 미치죠. 왜냐하면 그것들이 일종의 공통감이라는 걸 만들어내거든요. 예를 들면 90년대 영상들을 보면, 편집의 호흡이나 샷의 크기 이런 것들이 미묘하게 지금 되게 다르거든요. 이런 감각이 결국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공통감에 기반을 둔다고 하면, 유튜브 콘텐츠에서 나오는 배경들이 지금 공통감의 영역에 올라섰고, 그런 지점에서 온스테이지 같은 느낌을 좀 받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온스테이지의 팬입니다. 제가 예전에 뮤직박스라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거기에 음악 공연을 보여주는 구성이 있었거든요. 당시에 온스테이지를 많이 참고했고 훈련된 면들이 있지요. 이번 다큐에서는 최대한 심플하게 가면서도, 인상적인 비주얼을 만들고자 했고요. 거기도 이제 보면 사람들을 상징할 수 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가령, 집이라든지 음표라든지 이런 것들을 넣기로 했었어요. 사실 그 거울도 되게 비싼 겁니다. (웃음) 거의 한 100만 원 되는 거울인데, 인터뷰를 위해서 샀어요. 사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다 말렸었고, 제가 귀가 얇은 편이라 웬만하면 사람들이 말리면 안 하거든요. 그런데 그거는 해야 한다고 우겨서 넣었어요. (웃음) 그래도 결과물을 보고 다들 만족해서 다행이에요. 이경혁 자문위원: 저는 2부 마지막에 4명 부감 잡는 장면에서 무대 세팅에 놀라움을 느꼈는데요. 아마 저만 그렇게 느끼진 않았을 것 같아요. * 위에서 찍었을 때, Game을 나타낸 무대효과. 이경혁 자문위원: 3부서는 예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은 결론을 명확하게 내리지는 않잖아요. 결론을 강하게 가져가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까요? 박진우 PD: 부담이 없었다고 하면 사실이 아니겠죠. 근데 그게 결론을 굳이 내리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어요. 물론, 강하게 이야기 해볼 수는 있었겠죠. 예를 들어, 다큐에 나왔던 표현을 좀 빌리자면 “게임의 상호작용이 예술이다”,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보면서 반대 의사를 가지신 분들의 말씀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저는 이 주제가 논리적으로 설득할 게 아니라, 그냥 다름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분들이 자연스럽게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의 단초들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우리 다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을 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고, 그런 면에서는 이루려고 했던 소기의 성과들을 조금 이뤘던 것 같아요. 이경혁 자문위원: 또 절묘하게도 화두를 던지는 엔딩이 더 의미가 있었던 모종의 시대적 배경이 있었잖아요? 사실 우리가 논의할 때만 해도 그런 이야기가 없었죠? 박진우 PD: 맞아요. 9월 7일에 ‘문화예술’의 범위에 게임을 추가하는 내용의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죠. 8월 초부터 뉴스에 ‘이번에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고 나왔던 것 같은데, 그걸 처음에 봤을 때는 약간 식은 땀이 흘렀죠. (웃음) 지금은 게임이 최소한 법적으로는 예술의 영역 바깥에 있다는 걸 가정하고 이미 다 만들어 놨는데, 갑자기 그 안에 들어온다니요. 반갑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몇 년을 고민한 걸 엎을 수도 없고, 이거를 모른 체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래서 어떡할까 하다가, 생각해보니 오히려 좋은 거예요. 이런 상황을 살리자. 그게 3부에서 다루는 ‘게임과 예술의 관계’라는 게 먼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마주하고 있고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질문이라는 게 확 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래서 방송 말미에 자막으로 덧붙였습니다. 박진우 PD: 때가 다행히 잘 맞았죠. 그것도 방송 나가기 직전까지 몰랐던 게 국회 본회의에 법안이 통과되고 나면 그다음에 행정상의 절차라고 보통 얘기를 하는데, 그 이후에 행정부로 이관하고 공포하는 그 두 가지 단계가 남아 있더라고요. 물론 거기서 파기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한데, 그래도 확정이 되어야지 법적으로 효력을 갖는 거니까. 근데 그게 방송 3일 전인가 막 이랬거든요. 그래서 일단 다 써놓고 처리가 되었는지 계속 새로고침하고 그런 초조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Q. 마지막으로 이후에 하시고 싶은 작업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박진우 PD: 기획하고 있는 여러 가지 아이템 중 하나는 인디 게임 제작기거든요. 한 케이스로 쭉 따라갈 수도 있겠지만, 여러 케이스를 같이 엮어서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이외에도 게임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더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자문위원: 이번 다큐를 책으로 만들거나 하는 후속 작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진우 PD: 사실 지금의 3부작만으로는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아카데믹한 작업들이 진행된 경우가 조금 더 책으로 발간하기 적합할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게임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더 탐닉하고 싶어요. 책을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게임 다큐를 하다 보면, 작업물들이 충분히 쌓인다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소망이 있습니다. 결국 게임 다큐로 좀 더 많은 걸 해보고 싶어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동적 원근법에 관한 노트

    변화하는 원근법과 그에 맞추어 재편되는 게임 내 공간감, 플레이어의 시각성은 앞으로 우리의 시각 문화에서 더욱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성은 과연 우리의 눈에 어떤 변화들을 불러들일까? 복수 개의 원근법, 회전하는 원근법이 구성하는 세계는 어떤 풍경일까? 우리의 눈은 그런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더 많고 풍성한 논의가 이 글 위에 쌓여 가기를 기대해 본다. < Back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동적 원근법에 관한 노트 01 GG Vol. 21. 6. 10. 미술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에 관해서는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아주 짧게 정리하자면 원근법은 3차원 세계를 2차원 평면에 재현할 때 필요한 방법으로, 입체인 3차원 세계를 실제로는 입체가 아닌 2차원 평면 위에 재현하면서 마치 입체인 것처럼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기술이기도 하다. 화면 안에 적용된 원근법은 화면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드(grid)로 분할한다. 그리고 이 그리드를 기반으로 대상의 크기나 비율, 선명도, 색상, 명암의 방향 같은 요소들이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원근법은 무엇이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지, 관객의 눈은 어디에 어떻게 참여할지 같은 질문들, 더 나아가 화면의 전체적인 풍경을 결정하는 기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원근법은 단순히 멀리 있는 것은 작고 흐리게, 가까이 있는 것은 크고 선명하게 그린다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화면 안의 모든 것이 배치되는 규칙, 어떤 것이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를 결정하는 화면 구성의 내적 논리의 설계 방법론이다. 우리의 눈과 뇌는 화면이 제공하는 원근법에 의거하여 화면 내부를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인식하고 그 내부의 공간감에 우리의 신체를 동기화한다. 따라서 그 자체로는 입체감을 가지지 않는 평면 매체에서 원근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 회화에서 영화에 이르기까지, 원근법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은 언제나 기묘하거나 이상하거나 놀라운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렇다면 모니터라는 평면을 사용하는 게임에서는 어떨까? 게임 내 원근법과 캐릭터의 이동, 크기, 비율 문제는 우리의 플레이 경험에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MMORPG 게임의 경우 몬스터가 아닌 이상 혹은 몬스터조차도 배경 세계의 원근법에 착실히 순종한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게임이 설정한 휴먼 스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며 캐릭터를 제외한 인게임 요소들, 예컨대 건축물, 아이템, 탈 것, 펫, 배경 같은 것들도 캐릭터의 크기에 맞추어 하나의 완결되고 고정된 원근법을 구축하는 데에 집중한다. 반면 1인칭 FPS 게임에서는 이 원근법이 더욱 강화된 형태로 드러난다. 서든어택이나 오버워치 같은 게임들에서는 주로 화면 정 가운데에 십자 모양이나 원, 탄젠트형의 에임(aim)이라고 부르는 조준점이 있다. 이 에임에 맞추어 1인칭 플레이어의 무기를 든 손이 정렬되는 모양을 보고 있으면, 1점 투시 원근법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화면 중앙에 소실점(vanishing point) 하나가 놓이는 1점 투시 원근법의 제1규칙, 가장 중요한 것을 소실점에 놓는다는 규칙은 회화에서 수차례 변용되었고, (프레임이라는 천성 때문에 회화에서보다는 그 정도가 약하지만)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관객의 시선이 쏠리는 곳에 무엇을 둘지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다. 어느 쪽이든 이런 게임들이 상정하는 게임 내 원근법은 우리의 실재와 최대한 유사하게 조성한다는 하나의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게임들의 카메라가 얼마나 인간 같지 않은 시야로 날뛸 수 있느냐에 상관없이, X축과 Y축은 고정되어 있다. 아주 잠시 이색적인 뷰로 한 장면을 비춘다고 하여도 플레이의 기본 전제는 변하지 않는 X축과 Y축이다. 그러나 AOS 게임의 경우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도타나 카오스(CHAOS),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 같은 게임들이 포함되는 AOS 게임의 경우 축약되고 매우 인위적으로 가공된 세계를 배경으로 사용하며 이미 우리의 실재로부터 벗어나 있는 원근법, 그러므로 쉽게 도식화하기가 곤란한 형태의 원근법이 화면을 구성한다. 내가 가장 많이 플레이 해 본 리그 오브 레전드를 두고 논의를 좁혀 보자. 일반적으로 2차원 평면을 사선으로 기울인 쿼터 뷰(Quater View)를 사용하는 2.5차원 게임에서 X축과 Y축은 마름모 모양의 면을 구축하고 그 위에 캐릭터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쿠키런 킹덤과 리그 오브 레전드의 맵을 비교해 보면 전자의 맵은 다이아몬드형, 후자의 맵은 정사각형으로 보기에 약간 다르지만 쿼터 뷰 게임이 설정하는 X축과 Y축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그림 1). (그림 1) 쿠키런 킹덤과 리그 오브 레전드의 소환사의 협곡 지도 (출처: 좌-쿠키런 킹덤 공식 유투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VUIy7RaHcL4, 우-리그오브레전드 나무위키 https://namu.wiki/w/소환사의%20협곡)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특히 더 흥미로운 것은 이 Y축이 Y축이 아니라 X축으로 인식된다는 점에 있다. 퀸의 ‘후방지원’이나 자야의 ‘저항의 비상’ 같은 특정 챔피언의 특정 스킬은 X축 면에서 도약하며 (미니)맵으로 가시화되지 않는 인게임 Y축을 가시화한다. 아예 Y축의 패러미터를 벗어났다가 돌아오는 형식의 스킬을 사용하는 갈리오나 판테온 같은 챔피언들도 있다. 아주 얕은 수준이지만 렉사이 같은 챔피언은 X축 평면 아래, 즉 -Y축의 공간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리그 오브 레전드가 플레이어의 시점을 2차원도 3차원도 아닌 2.5차원 쿼터 뷰로 설정하면서, 앞서 언급한 챔피언들이 스킬 사용으로 지면을 도약하면서 인 게임 원근법을 떠받치는 X축과 Y축이, 그리고 숨겨져 있던 Z축이 등장하며 서로 뒤엉키게된다. (좌, 그림 2) 쿼터 뷰 게임이 상정하는 공간의 구성 원리 (우, 그림 3) 리그오브레전드 게임이 상정하는 공간의 구성 원리 챔피언이 지면을 도약하면 지면 위에서 이동 시 Y축이 자연스럽게 Z축으로 변하고, 챔피언이 도약하는 방향은 Y축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챔피언은 X축의 연장된 면 위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데,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X축의 방향이 달라지고, 여러 개의 방향이 이어지면서 X축은 (그림 2의 Y축이었던) Z축까지 가 닿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원근법에 상관없이, 각 라인은 미니맵에서 보여지는 순서대로 탑-미드-바텀이다.) 즉, 리그 오브 레전드의 원근법은 고정된 축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게임의 원근법은 캐릭터의 이동과 도약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축들을 뒤섞는다. 플레이어는 평균 20분의 플레이 타임 안에서 끊임없이 재배치되는 유동적인 축들에 놀랍도록 매끄럽고 빠르게 적응하는데, 이는 이전의 초지일관(初志一貫)적 시각성과는 물론 다른 양상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하나의 세계가 제공하는 원근법이 이것에서 저것으로, 다시 저것에서 이것으로 전환되는 유동적인 원근법으로 구성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것을 아무런 문제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우리의 변화된 시각성이기도 하다. 이에 덧붙여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스킨이나 캐릭터의 크기가 스킬의 적중 여부를 좌우하기도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챔피언 스킨 때문에 게임 내에서 챔피언의 크기와 부피, 모양, 그리고 스킬의 크기와 부피가 달라지면 조준의 방법도 미세하게 바뀌게 된다. 최근 추가된 서리불꽃 건틀릿(Frostfire Gauntlet) 같은 아이템에는 챔피언 크기를 키우는 옵션이 달려 있다. 인터넷에서 롤 챔피언 크기라고 검색하면 이 옵션이 도대체 왜 있는 거냐는 플레이어들의 의문과 위엄을 위하여, 재미를 위하여, 논타킷 공격을 대신 맞아 아군 보호, 사거리 증가 등의 답변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는 자신의 기존 캐릭터에 맞추어져 있던 원근법의 축 변화와 그로 인해 재구성된 시각성에 기반하는 공간감에 시시각각 적응하고야 만다. 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시각성이 기존과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이 글의 주장을 보완하며,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번 캐릭터의 비율, 스케일, 거리감, 공간감 등 원근법에 관여된 여러 문제들이 관건에 오르게 된다. 많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라면 한 번쯤 “이걸 맞는다고?” 혹은 “이걸 안 맞는다고?” 같은 말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떨 때는 내 캐릭터에 스킬이 닿지 않았는데도 맞았다는 판정, 닿았는데도 맞지 않았다는 판정이 의아하기도 하다. 이처럼 이해되지 않는 판정의 순간은 오히려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이 형성하는 공간감, 하나의 원근법에서 다른 원근법으로 교체되는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변화할 시각성에 관하여 고민하기에 더 없이 적절한 출발점이다. 모니터 평면 안의 크기와 비율, 스케일과 동기화되어 있던 우리 신체의 공간감이 끊기고 기존 원근법의 축이 변화하는 지점, 플레이 시간 내내 계속해서 눈의 새로운 적응을 요구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 게임 원근법의 변화무쌍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현한다. 변화하는 원근법과 그에 맞추어 재편되는 게임 내 공간감, 플레이어의 시각성은 앞으로 우리의 시각 문화에서 더욱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성은 과연 우리의 눈에 어떤 변화들을 불러들일까? 복수 개의 원근법, 회전하는 원근법이 구성하는 세계는 어떤 풍경일까? 우리의 눈은 그런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더 많고 풍성한 논의가 이 글 위에 쌓여 가기를 기대해 본다. [1] 물론 입체 매체, 예를 들자면 조각에서도 원근법은 중요한 문제다. 휴먼 스케일을 벗어나는 고대 그리스 조각들은 사람의 실제 몸과 비교하자면 머리가 훨씬 더 크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조각을 주로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기 때문인데, 실제 사람의 비율대로 제작하면 멀리 있는 머리가 더 작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원근법은 크기와 비율의 문제에 관여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김얼터 리얼리티, 리얼리즘, 픽션, 그리고 매체의 관계에 관심이 있다. 시험에 들게 만들거나 시험하는 사물을 좋아한다. 미술 전시와 전시에 관여하는 텍스트를 생산하는 것으로 일하고 있다.

  • 협업, 경쟁, 방송: MMO로부터 라이브 스트리밍과 온라인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21세기 북미 게임씬

    만약 당신이 2000년 이후에 태어난 게임팬이라면 성장 과정에서 게임 매체를 비교적 쉽게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문화적(countercultural)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현 시점의 게임은 주류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으며, 플레이어들이 직접 제작한 게임 관련 콘텐츠의 양도 엄청나게 방대해져서 게임을 종료한 뒤에도 좋아하는 게임들을 눈과 귀로 계속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 아무리 마이너한 게임일지라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거의 무한히 느껴질 지경이다. < Back 협업, 경쟁, 방송: MMO로부터 라이브 스트리밍과 온라인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21세기 북미 게임씬 23 GG Vol. 25. 4. 10. You can 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at: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c4322a54-d363-4b02-bd95-cca5eefb6413 익숙한 듯한 새로움 만약 당신이 2000년 이후에 태어난 게임팬이라면 성장 과정에서 게임 매체를 비교적 쉽게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문화적(countercultural)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현 시점의 게임은 주류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으며, 플레이어들이 직접 제작한 게임 관련 콘텐츠의 양도 엄청나게 방대해져서 게임을 종료한 뒤에도 좋아하는 게임들을 눈과 귀로 계속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 아무리 마이너한 게임일지라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거의 무한히 느껴질 지경이다. 이처럼 오늘날 게임을 둘러싼 문화적 공간은 게임 자체뿐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나 스팀, 디스코드 같은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넘나들며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새천년(2000년) 전후의 상황은 이와 매우 달랐다. 1999년 캐나다에 사는 어린 게이머였던 나는 주1회 방영되던 30분짜리 TV프로그램 과 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는데, 내가 살던 지역에서 볼 수 있던 게임 관련 TV프로그램은 이 두 편이 전부였다. * 캐나다의 게임 TV프로그램 출처: Videoandarcade YouTube channel. [1] 이 두 프로그램 외에 게임 관련 콘텐츠를 접할 수 있던 채널은 주로 월간 게임 잡지였다. 당시 게임 잡지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었다. 우선 <닌텐도 파워(Nintendo Power)>처럼 자사의 최신 출시작 또는 출시 예정작을 홍보하는 장문의 광고 형식의 공식 잡지가 있었고, 다음으로는 <게임프로(GamePro)> 같은 게임비평지 계열, 마지막으로는 <넥스트 제너레이션(Next Generation)>처럼 최신 하드웨어나 업계 소식을 찾는 취미가들을 겨냥한 잡지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게임 관련 미디어라고는 최신 게임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하는 소수의 출판물과 눈 깜빡할 사이에 장면이 지나가버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두 편 정도에 불과하던 시대로부터, 오늘날처럼 게임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이슈와 수많은 논쟁이 넘쳐나는 일종의 플랫폼으로서 게임 미디어가 방대한 규모로 진화하게 된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어 왔을까? 우선 게임의 소비 환경과 그 문화적 공간은 단독적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게임은 연구자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가 “컨버전스 문화(Convergence Culture)”라 명명한 현상의 한 단면인데, 여기서 컨버전스(융합)란 미디어 기술의 발전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적 요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결합되는 거대한 소용돌이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2] . 게임은 영화, TV, 잡지뿐 아니라, 인터넷이 가능케 한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콘텐츠들과 게임 디자인적 특징들까지 포함하는 복잡다단한 미디어 환경의 일부다. 21세기의 첫 25년간 우리가 함께 게임을 경험한 방식은 엄청나게 변화하였으며, 게임 문화의 발전은 ‘웹2.0’ 및 인터넷의 대중화에 의해 가능해진 컨버전스 시대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제 플레이어들은 문화 생산자로서의 중심적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게임 안팎으로 증대된 연결성을 바탕으로 공공 영역에서 문화를 형성하는데 있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게임 미디어 소비 시장에 있어 선두주자인 트위치나 유튜브가 2006년이 되어서야 등장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그 시기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가 출시되면서 이미 어느 정도 번성하고 있던 온라인 게임 하위문화를 전지구적으로 대중화시킨지 2년 뒤의 시점이었다. 오늘날에는 신규 출시된 클래스나 메타게임적 고려사항들, 보스 공략 등을 설명해주는 수많은 영상들 없이 수백만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모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플레이어들은 온라인 상에서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들을 실험하면서, 도전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복잡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전달할 수 있는 방식들을 즉흥적으로 만들어냈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적 규범과 동료 플레이어들과의 소통 방식을 학습해 나갔다.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들은 플레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한데 엮어주는 새로운 온라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참여했다. 한편 e스포츠는 아직 새로운 영역이었는데, 서구의 일부 열정적인 게이머와 주최자들은 한국의 인상적인 스타크래프트(StarCraft) e스포츠씬 [3] 에서 영감을 얻어 언젠가는 (게임)플레이가 게임이 단순한 취미나 열정 프로젝트를 넘어 게임 개발이 아닌 그 자체로서 하나의 전문적인 직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불태웠다. 이러한 움직임이 전통 미디어 및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 기반의 미디어 제작 방식과 맞물리고, 1990년대 후반의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갈수록 더 많은 일반인들이 대중적으로 유명한 셀럽으로 간주되어가던 트렌드와 엮여 우리를 새로운 게임 문화적 풍경으로 이끌었다. MMO게임과 연결성과 사회성의 새로운 규범 멀티플레이 게임 자체가 새천년 전환기에 새롭게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의 MMO게임붐은 플레이어들을 한데 모으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0년대~ 1980년대 초반까지는 게임 아케이드(오락실)가 게임하는 주요 공간이었으며 [4] , 1990년대에는 가정용 콘솔과 주요 브랜드간 각축전이 주목을 받았다면, 2000년대는 단연 MMO게임의 시대였다. 머드(MUDs, Multi-user Dungeons) 같은 초기의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은 대개 텍스트 기반의 RPG 시스템을 통해 플레이어들을 연결시켰다. 이와 같은 원형적 형태의 MMO게임은 수백명 정도의 플레이어들을 연결시켰음에도 여전히 마이너한 게임 하위문화로 남아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에버퀘스트(EverQuest)> [5] 와 <울티마 온라인(Ultima Online)> [6] 같은 게임들이 어느 정도 인기를 끌긴 했지만, <월드오브워크래프트 [7] 가 독특한 그래픽 스타일과 접근성 좋은 게임플레이를 통해 이끌어낸 대중적인 인기는 다른 차원의 수준이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그 자체로도 강력한 팬덤이 형성되기는 했지만, 이전까지 틈새 장르로 머물러있던 MMO게임을 전례없는 방식으로 대중적인 영역으로 끌어낸 것은 2006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사우스파크(South Park)>의 “Make Love Not Warcraft” 에피소드였다. 이는 단순히 게임을 홍보했다는 수준이 아니라 MMO 장르가 새로운 문화적 존재감을 획득했다는 신호탄이었으며, 이후 수많은 게임사들로 하여금 자사의 MMO 게임들이 그와 같은 성공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서 플레이어들이 다른 땅으로 이동하기 위해 배를 기다리고 있다. 출처: 저자의 스크린샷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성공 이후 차기 대세 장르가 MMO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그 뒤를 이어 경쟁적으로 수많은 MMO게임들이 등장하면서 명백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사실은 예전에는 소수의 머드게임 열성팬들만 경험할 수 있었던 대규모의 플레이 기반 연결성을 MMO게임들이 보다 쉬운 접근성을 통해 제공해주었다는 점이다. MMO장르가 멀티플레이에 있어 경쟁과 협업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체 세대의 플레이어들이 아바타 기반의 플레이 공간 내 온라인 연결성을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이와 같은 플레이 기반의 연결성은 막을 수 없는 홍수와 같은 흐름을 형성했고, MMO장르가 유입시킨 연결성의 DNA는 소셜미디어와 모바일게임이 자사의 플랫폼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유도하는 레버리지로 사용하면서 더욱 많은 장르로 확산되어 갔다. 오늘날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며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공유할 수 있다.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친구들이 무엇을 어떻게 플레이하고 있는지 중요해졌고, 이는 <팜빌(Farmville)> [8] 같은 소셜 게임이나 싱글플레이 콘솔게임에서 업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차세대 MMO로서 게임 방송과 라이브 스트리밍 한편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웹사이트들은 게임 업계에 관한 이슈나 기술 발전에 대한 짧은 칼럼과 함께 게임 리뷰를 게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2010년대 말에 이르면서 가시적으로 변화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사건은 전통적인 게임 저널리즘 매체였던 게임스팟(Gamespot)의 편집장이었던 제프 거츠먼(Jeff Gerstman)의 퇴사와 함께 시작된 게임 웹사이트 자이언트밤(Giant Bomb)의 탄생과 발전이었다. 자이언트밤의 콘텐츠는 게임에 대한 이해가 깊은 플레이어인 동시에 저널리스트인 웹사이트 운영팀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논의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는데, 그에 따라 기존 게임 리뷰나 기사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겉치레나 인위적인 요소가 없어졌고 대신 방송 진행자들이 보여주는 (게임에 대한) 진정성이나 방송 중 발생하는 즉흥적인 순간들이 게임 콘텐츠 그 자체만큼 중요한 부분으로 떠올랐다. 이 모든 사례들에서 커뮤니티는 이용자 경험에 있어 핵심이었다. 트위치와 같은 라이브 스트리밍 사이트는 활성화된 채팅이 없으면 완전히 다른 사이트가 되어버리며, 유튜브의 ‘Let’s Play’나 자이언트밤의 영상들은 (관객들의) 코멘트와 토론이 가득한 커뮤니티의 장으로서 기능한다. 사람들은 화면 속 등장인물들이나 그들이 형성하고 있는 커뮤니티 구성원들로서 자신을 동일시했으며, 이러한 부분은 때때로 플레이하거나 토론 중인 게임 그 자체보다 중요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게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2000년 초반 연결성을 유지시키는 핵심적인 접착제로, 이는 플레이로 연결되는 일종의 건설 중인 사회와 같다고 볼 수 있었다. 북미에서 MMO게임 붐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은 2008년부터 2010년 사이였지만, 플레이어들은 계속해서 MMO게임이 만들어냈던 커뮤니티를 갈망했다. 현 시점에 플레이 기반의 사회성(sociality)를 지탱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개발하고 있는 것은 렌더링된 디지털 판타지 세계 바깥의 사이트들이다. 연구자 셀리아 퍼스(Celia Pearce)는 <미스트 온라인: 우루 라이브(Myst Online: Uru Live)> [9] 가 서비스 종료된 후 그 플레이어들이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나 <데어닷컴( There.com )> [10] 같은 게임으로 옮겨갔음에도 여전히 강한 공동체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들을 게임 디아스포라(video game diaspora)라 지칭했다. 또 다른 게임연구자 미아 콘살보(Mia Consalvo)와 제이슨 베기(Jason Begy) 또한 서비스가 종료된 게임 <파우나스피어(Faunasphere)>의 플레이어들이 여전히 연락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함께 플레이할 새로운 게임을 찾는 등 ‘파우나스피어 플레이어’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플레이어들이 “적극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자신의 플레이 활동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새로운 가상의 ‘고향(home)’을 찾는데 종종 상당한 에너지를 쏟는다”고 언급했다 [11] (편집자 주: 북미와 같은 현상은 한국에서도 일어난 바 있으며, 이는 게임 <일랜시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 이 “새로운 가상의 고향”이 반드시 게임일 필요는 없다. 그 콘텐츠가 플레이와 관련되어 있는 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게임플레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직접 플레이하는 것만큼 - 때로는 그 이상으로 - 만족스러울 수 있는데, 특히 그러한 관람 행위가 이전의 게임 관계망 속 친구나 지인들과 함께 이루어질 때 더욱 그렇다 [12] . 시청자들은 스트리머가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에서 성공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커리어를 구축하는 ‘메타적 성공(meta-success)’에도 관심을 갖는다. 길드원에게 물자를 공급하거나 보스전에서 역할을 맡아 수행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성공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MMO게임은 플레이어들을 게임을 매개로 공유되는 사회적 공간으로 끌여들였다. 그러나 그 가상세계의 경계 너머에 비슷한 플레이 기반의 연결성이 구축되면, 플레이어들과 게임팬들은 더 이상 특정 게임 또는 그 디지털 지리상 위치에 얽매이지 않고도 그러한 연결성과 사회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라이브 스트리밍의 성장은 어떤 종류의 게임이 인기를 얻을지에도 영향을 주었다. “스트리밍하기 좋은(streamable)” 게임이라는 개념은 “플레이 할만한(playable)” 게임만큼이나 중요해졌으며, 플레이하는 것만큼이나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게임들이 시장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s)> [13] , <배틀그라운드(PUBG)> [14 ] , <어몽어스(Among Us)> [15] 같은 게임들은 경쟁을 통해 매 순간 긴장감을 유발하며, 이러한 긴장감이야말로 집단적 관람 경험 속에서 게임을 대리 체험하는 핵심이 된다. 예를 들어 <엘든 링(Elden Ring)> [16] 의 성공은 단순히 게임 자체의 품질에서만 기인했다고 보기 어렵다. 스트리머들이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어럽게 분투하며 수없이 많은 바이럴한 순간들을 만들어내고, 이를 지켜본 관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좌절과 (언젠가는 가능할) 궁극적인 성공을 공유하며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컨버전스가 절정에 달한 순간, e스포츠와 라이브 스트리밍은 완벽한 파트너가 되었다. 트위치가 관심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경쟁 게임을 제공하는 새로운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전 연구에서 나는 이러한 연결이 두 부문(역주: e스포츠와 라이브 스트리밍)의 성장을 도왔다고 언급한 바 있다: "e스포츠는 “2000년 10개였던 토너먼트가 2012년 696개로 증가’ [17] 하였고 현재는 전지구적으로 5억2천3백만명 규모의 시청자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18] . 게임은 지난 수십년간 경쟁적 요소를 지녀왔지만, 현재 그 경쟁성은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대중화되었다. 같은 시기동안 개별 인물들이 자신의 게임플레이를 타인들에게 방송하기 시작하면서 라이브 스트리밍 또한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는데, 이는 새로운 참여적 관객-커뮤니티 [19] 와 유사사회적 관계의 형성 [20] [21] 으로 이어졌다." 플랫폼의 시대 불확실한 미래 온라인게임 산업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은 기술산업 분야의 전략을 차용하여 자체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밸브(Valve)는 스팀을 게임 및 스킨과 같은 디지털 상품의 거래가 소셜플랫폼과 교차하는 하나의 포괄적인 시장으로 발전시켰다. 나는 게임의 독성 문화(toxic culture)를 연구하면서 게임의 플랫폼 시대의 문화적 영향과 형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한 바 있다: "초기 음성 채팅 소프트웨어였던 벤트릴로(Ventrilo)나 팀스피크(Teamspeak) 등은 기초적인 VoIP(Voice over IP) 프로그램으로, 2015년에 출시되어 이용자 친화적 멀티 서버 소셜미디어 허브가 된 디스코드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당시에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하면서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채널이 많지 않았고, 게임 콘텐츠를 다루는 방송사들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게임 문화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 지에 대한 논의도 거의 없었고, 플레이어들이 옮겨 다닐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의 수도 얼마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밸브나 블리자드 같은 게임사들은 디즈니나 HBO같은 대형 미디어 기업들의 전례를 따라 개별적인 게임에 플레이어들을 묶어 두기 보다는, 자사의 독점 플랫폼(Valve의 Steam이나 Blizzard의 Battle.net 등) 내 다양한 게임들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22] [23] . 지금도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진행 중인 플랫폼화(platformization)의 영향 속에서 살고 있다. 현 시점에 명백한 사실은 지난 25년간 게임과 플랫폼, 장르를 초월하면서 플레이어들이 서로 더욱 가깝게 연결되어왔다는 것이다. 온라인 상에서 사람을 사귀고 교류하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 된 가운데, 이는 온라인 게임에서 파생된 독특한 언어로 이루어진 사회적 환경이 인터넷 문화와 결합되면서 이어진 결과다. 플레이어들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방대한 규모의 게임 라이브러리에 접근할 수 있으며, 게임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 엄청난 수의 플레이어들과 연결될 수 있다. 트위치, 스팀, 디스코드 등을 통해 우리가 좋아하는 게임들과 연결된 네트워크는 2차적 지속적인 가상세계(persistent virtual world)를 형성하고 있다. 이 세계는 라이브 스트리밍과 유튜브 영상, e스포츠팀 팬덤, 그리고 다양한 서브커뮤니티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커뮤니티는 게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화적 공간을 누가 소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전례 없는 온라인 접근성에 바탕하고 있는 현재의 게임 풍경은 VR 같은 더욱 현실적이고 몰입적인 환경을 통해 우리를 더욱 가깝게 묶어줄까? 아니면 많은 이들이 소위 “게임 문화 전쟁”이라 부르는 갈등 속에서 플레이어들을 분열시킬까? 현 시점에서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직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게임 문화의 미래가 과거만큼이나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 Videoandarcade YouTube Channel. https://www.youtube.com/watch?v=OWFm2qU0k5o&ab_channel=videoandarcadetop10 (accessed March 26th, 2025). [2] Jenkins, Henry. Convergence Culture: Where Old and New Media Collide. New York: NYU Press, 2006. [3] Jin, Dal Yong. “Historiography of Korean Esports: Perspectives of Spectatorship.” International Journal of Communication 14 (2020): 3727-3745. [4] Kocurek, Carly A. Coin-Operated Americans: Rebooting Boyhood at the Video Game Arcade.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5. [5] Sony, 1999. [6] EA, 1997. [7] Blizzard Entertainment, 2004. [8] Zynga, 2009. [9] Ubisoft, 2003. [10] Pearce, Celia. Communities of Play. Cambridge: The MIT Press, 2009, 7. [11] Consalvo, Mia, and Begy, Jason. Players and their Pets: Gaming Communities from Beta to Sunset.”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5, 91-92. [12] Consalvo, Mia, Marc Lajeunesse, and Andrei Zanescu. Streaming by the Rest of Us: Microstreaming on Twi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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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Zanescu, Andrei, Lajeunesse, Marc, and French, Martin. “Gaming DOTA Players: Iterative Platform Design and Capture.” Proceedings of DiGRA 2019. Kyoto, Japan, August 6-10, 2019, 1-3. [23] Lajeunesse, Marc. “Transgressive…”, 2023. Tags: MMORPG, 온라인게임, 북미, 스트리밍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마크 라제네스, Marc Lajeunesse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온라인 게임의 독성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공평하고 즐거운 놀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게임 내에서 더 많은 긍정적인 조건을 들어내기 위한 독성 현상에의 이해를 추구한다. 스팀 마켓플레이스와 DOTA 2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고 곧 출시될 '트위치 마이크로스트리밍'의 공동 저자이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호러를 즐기는 보통의 방식

    사실 호러 게임은 꽤 마이너한 장르에 속한다. 물론 좀비물의 성격을 차용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장르적 요소를 가져오거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처럼 본격적으로 호러 게임을 표방하는 AAA 게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 Back 호러를 즐기는 보통의 방식 19 GG Vol. 24. 8. 10. ‘게임 보기’의 역사는 ‘게임 하기’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오락실에서 동네 고수의 플레이를 어깨 너머로 바라보던 시기부터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전 세계 게이머의 플레이를 침대에 누워 볼 수 있는 지금까지, 타인의 게임플레이를 관람하는 형태는 변화를 거듭해 왔다. 그러한 맥락 속에서 ‘게임 보기’는 단지 프로게이머들의 대전을 관람하는 스포츠의 형태나 고수의 플레이를 감상하고 감탄하는 것을 넘어 또 하나의 ‘게임 하기’가 되어 간다. ‘게임 보기’를 기존의 게임에서 구성되는 매직서클의 바깥에서 매직서클 내의 세계와 규칙에 동참하는 메타-게이밍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게임과 게이머 사이에 형성된 매직서클을 스트리머와 시청자 사이의 관계로 확장한다. 이때 스트리머와 시청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채팅을 통한 것 이외에도 각 플랫폼 별로 존재하는 후원 기능과 그에 따른 리액션 및 미션을 통해 작동하는데, 이는 스트리머-시청자 사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규칙으로서 매직서클을 구성하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호러 게임 스트리밍을 바라보자. 사실 호러 게임은 꽤 마이너한 장르에 속한다. 물론 좀비물의 성격을 차용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장르적 요소를 가져오거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처럼 본격적으로 호러 게임을 표방하는 AAA 게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AAA 게임의 적지 않은 수가 폭력과 유혈을 동반하는 고어 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점도 호러 게임이 마이너한 장르라는 것의 반례가 될지도 모른다. 다만 본격적으로 호러 게임을 표방하는, 대다수가 인디 게임으로 분류되곤 하는 게임들은 주로 플레이되기보단 스트리머에 의해 송출되고 시청자에 의해 관람된다. <프레디의 피자가게>부터 <파피 플레이타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히트 호러 게임은 출시 직후 스트리밍 플랫폼을 도배하곤 한다. 다만 이런 스트리밍에서의 성공 사례가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수로 직결되진 못한다. 스팀의 동시접속자 수나 인기차트와 같은 지표들은 멀티 플레이 게임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와 같은, 극소수의 성공 사례만을 알려줄 뿐이다. * [그림1, 2] <파피 플레이타임> 스크린샷과 스크린샷(출처: 스팀 상품페이지) 새로이 등장하는 호러 게임들은 그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만 같다. 앞서 언급한 <프레디의 피자 가게>나 <파피 플레이타임>처럼 온라인상에서 밈이 되어버린 게임, 혹은 ‘사이렌 헤드’나 ‘백룸’ 같은 온라인 괴담의 인기에 힘입어 등장한 여러 게임은 게이머 개개인이 그것을 플레이하는 것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반응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스트리머-시청자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소화된다. 나아가 의 성공 이후 우후죽순 등장하는, PC의 마이크를 인식해 소리를 내면 살인마나 크리처에게 살해당하는 구성의 호러 게임들은 스트리머가 점프스케어에 놀라 비명을 지르는 모습 자체가 스트리밍의 주된 콘텐츠임을 드러낸다. 물론 이와 같은 과정은 굳이 호러 게임이 아닌 게임의 스트리밍에도 크게 다르지 않게 작동한다. <배틀그라운드>나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고인물이 수두룩한 게임의 스트리밍 시청자들은 그들의 실력을 보기 위해 미션의 형태로 제약 플레이를 하게끔 한다. 따라서 호러 게임 스트리밍 또한 게임이 제공하는 규칙을 두고 스트리머와 시청자 사이에 발생하는 새로운 유희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실력이 부족한 게임을 대신 해주는 고인물들의 플레이를 보듯 호러 게임이 너무 무서워서 하지 못하는 시청자는 스트리머의 플레이를 본다. 혹은 호러 게임이 제공하는 공포의 상황을 상쇄시켜주는 스트리머의 리액션을 즐기기 위해 그것을 본다고 할 수도 있겠다. 호러 게임과 가장 자주 비교된다고 할 수 있을, 호러 영화 이야기로 잠시 넘어가보자. 호러 영화의 관객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점프스케어를 비롯한 효과를 포함한) 폭력성 앞에 취약한 상태로 놓인다. 동시에 관객은 자신이 스크린 속 살인마나 초자연적 존재에게 직접 위협을 당하지 않는 안전한 객석에 앉아 있을 뿐이기에, 자신의 취약성을 내주고서도 호러 영화의 이미지가 제공하는 폭력을 하나의 유희로서 즐길 수 있다. 이는 영화뿐 아니라 호러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혹은 SCP 재단과 같은 온라인 호러에도 유사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림 3] 스트리머/유튜버 풍월량의 호러 게임 스트리밍 썸네일 (출처: 풍월량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J40TDKZkVw0 ) 다만 호러 게임의 경우 게이머가 직접 게임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이미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지점에서 영화를 비롯한 다른 매체들과 차이를 지닌다. 호러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 앞의 관객이 자신의 취약성을 안전하게 노출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호러 게임의 플레이어는 자신의 취약성을 게임플레이에 내어주어야 한다. 호러라는 장르가 전제하는 이미지(혹은 텍스트)의 폭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곧 호러 게임의 플레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호러 게임의 스트리밍을 본다는 것은 시청자가 자신이 게임을 플레이했다면 내어주었어야 할 취약성을 스트리머에게 양도한다고 할 수 있다. 스트리머는 시청자들을 대리해 호러 게임을 플레이하고, 자신의 취약성을 게임 내부와 스트리밍 플랫폼이라는 외부 양쪽에 내어준다. 물론 스트리머의 실력이나 담력 등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겠으나, 스피드런이나 공략 영상이 아닌 이상 기본적인 전제는 유지된다. 훌륭한 실력으로 호러 게임을 돌파하건, 시청자를 대신해 비명을 지르건, 혹은 호러의 상황을 입담과 재치를 통해 코미디로 승화시키건 말이다. 그러한 지점에서 호러 게임 스트리밍을 시청하는 것은 호러 영화를 보는 것과는 다르다. 호러 영화 속 주인공은 관객을 대신해 공포에 떠는 것이 아니지만, 호러 게임 스트리머는 시청자를 대신하여 공포가 존재하는 곳으로 이동해야만 한다. 따라서 호러 게임 스트리밍이라는 장소는 스트리머와 시청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메타-게이밍의 매직서클을 형성함과 동시에, 스트리머가 시청자의 취약성을 대리하는 장소가 된다. 그렇다면 게임은? 이때 호러 게임은 게이머에게 점프스케어와 음산한 분위기로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콘텐츠이자, 스트리머-시청자 관계에서 발생한 매직서클 안에 포섭된 대상으로 변화한다. 점프스케어에 놀라 비명을 지르는 스트리머를 보던 시청자는, 스트리머가 플레이를 거듭할수록 호러 게임의 묘사에 익숙해지고, 나아가 호러 게임을 일종의 장난감에 가까운 대상으로 대하게 된다. 마치 호러 영화의 오래된 팬들이 슬래셔 영화 속 유혈낭자한 살인이나 고어영화 속 사지절단을 보며 환호하거나, 이러한 반응을 밀고 나가 코미디로 승화시키는 스플래터를 비롯한 호러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지점에서 앞서 이야기한 취약성의 전제를 뒤집어야 한다. 호러 영화의 일반적 관객이 자신의 취약성을 노출시킴으로서 호러의 효과를 얻어낸다면, 호러 영화의 마니아는 자신이 앉아 있는 객석의 안전함을 무기 삼아 호러의 이미지를 즐긴다. 살인, 귀신, 악령, 크리처, 초자연적 현상, 그리고 공포에 휩싸인 등장인물은 공포의 매개가 아니라 유희, 나아가 조롱의 대상이 된다. 호러 게임 스트리밍의 시청자들은 호러 영화 마니아의 태도로 그것을 본다. 시청자들에게 게임 속 살인마나 크리처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스트리머를 골탕 먹이는 존재이다. 시청자들은 어두운 지하실이나 숲속을 굳이 들어가는 호러 영화의 주인공을 바라보듯 스트리머를 바라본다. 일반적으로 호러 영화/게임의 관객/게이머에게 기대되는 것이 공포의 이미지라면, 호러 게임 스트리밍의 시청자가 기대하는 것은 리액션이다. * [그림 4] 조르주 멜리에스 <악마의 집> 스틸컷 사실 이 리액션을 즐기는 것, 특히 무서운 것에 놀라는 타인의 리액션을 즐기는 것이 호러라는 장르를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1896년 조르주 멜리에스가 <악마의 집>을 만들었을 때, 그것의 공포는 카메라 트릭을 통해 박쥐가 사람이 되고 해골이 움직이는 것에서 오는 놀라움이었다. 서커스의 프릭쇼(freak show)가 토드 브라우닝의 <프릭스>로 만들어질 때, 관객들은 ‘비정상’이라 여겨지던 존재들을 목격하고 서로 놀라워했다. 호러 게임의 스트리밍은 그러한 광경을 스트리밍 플랫폼 위에 되살린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스트리머는 리액션을 선보이고, 시청자들은 그것을 보며 즐거워한다. 스트리머의 리액션을 극단적으로 끌어내는 일련의 사운드 반응형 호러 게임들은 여전히 기초적인 호러 트릭을 통해 그 반응을 만들어낸다. 스트리머와 시청자들은 게임의 소재로서 등장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애정하는 호러의 소재들을 바라보며 놀라워하고 반가움을 표하며 즐거워한다. 호러를 즐긴다는 것은 공포를 제공하는 대상에 익숙해진다는 것이고, 그것은 영화를 보든, 게임을 하든, 스트리밍을 시청하든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호러 게임 스트리밍을 보는 것은 차마 호러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는 ‘쫄보’들의 행위에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호러를 즐기는 보통의 방식을,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장소 위에서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QUOVADIS, 게임법 - 국회 안에서 바라본 게임법 진행의 경과와 미래

    물론 전부개정안의 모든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발의하고 보니 보완해야할 부분들도 여럿 보였다. 특히 국내대리인지정제도는 더욱 강화해서 발의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개정안에 빠져 있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심사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또한 다른 게임법 일부개정안과도 병합심사되어 더 좋은 내용으로 고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컴플리트 가챠 규제 법안이나 이용자 권익보호위원회 규정 법안과 함께 병합심사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내딛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국민의 꾸준한 관심은 국회를 일하게 한다. < Back QUOVADIS, 게임법 - 국회 안에서 바라본 게임법 진행의 경과와 미래 01 GG Vol. 21. 6. 10. 게임법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대로 쓰다가 순서를 거꾸로 뒤집었다. 아무래도 현재 게임법이 어떤 단계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시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다. 법안이 발의되고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발의-상임위원회 심사-법제사법위원회 심사-본회의 심사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전부개정안은 상임위원회 심사단계에 있다. 상임위원회 심사는 다시 전체회의 상정-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전체회의 의결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전부개정안은 상정 단계를 지나 법안소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발의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심사가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공청회 순번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여‧야 문체위 소관 법안에 대한 이견으로 심사 속도가 더딘 것이다. 공청회부터 설명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법안의 종류부터 설명해야 한다. 법안은 크게 제정법안, 전부개정안, 일부개정안으로 구분된다. 제정법안은 말 그대로 여태껏 없었던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이다. 전부개정안은 기존에 있던 법이지만 어떠한 이유로 법의 체계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싹 바꾼 형태다. 마지막으로 일부개정안은 어떤 법의 몇몇 조항만 개정하여 발의한 유형이다. 게다가 제정법안과 전부개정안을 대상으로는 한 가지 절차가 더 필요하다. 국회법상 공청회를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일부개정안에 비해 전부개정안과 제정법안을 심사할 때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을 진술인으로 불러 이 법안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 이를 통해 법안을 심사할 때 참고하게 된다. 공청회는 상임위 교섭단체 간사간 협의에 따라 생략이 가능하다. 공청회를 생략하면 법안 심사에 걸리는 시간이 단축될 수 있지만, 반면 심사가 부실해질 수 있고 법사위에서 공청회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류될 우려도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21대 상반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간사는 발의된 모든 문체위 소관 제정법안과 전부개정안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실시하고, 그 순서는 발의순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게임법 공청회는 15번째 순서다. 한참 오래 걸릴 것처럼 보이지만, 여차저차 공청회가 계속 열렸다. 이제 게임법 앞에 놓인 공청회는 불과 네다섯개 정도다. 여‧야 정쟁을 설명하자니 국회의 구성원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하지만 숨기지 않고 세세하게 얘기하겠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문화 및 예술 분야의 법안을 심사하는 1소위원회와 관광‧체육 분야의 법안을 심사하는 2소위원회로 나뉘어 있다. 2소위원회는 꽤 잘 진행되어 왔다. 문제는 1소위다. 일단 문체위 소관으로 발의되는 법안 중 1소위 소관의 법안 수가 2소위 법안보다 많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야간 이견이 컸던 법안들은 거의 다 1소위 법안들이었다. 법안을 심사하다가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정회를 한다. 정회하고 간사간 협상을 시도하는 것인데, 타결이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다. 후자의 경우엔 머리가 아파진다. 정회 시간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지거나, 산회하고 다음 회의 전까지 협의를 이어가기로 하고 회의가 끝나게 된다. 심할 때는 법안소위가 아예 열리지 못하는 회기도 왕왕 있다. 이 경우, 해당 쟁점 법안 뒤에 심사를 기다리던 나머지 법안들까지 심사가 밀리게 된다. 앞서 말한대로 쟁점법안들은 거의 1소위 법안인데, 가뜩이나 법안 수도 많은데 병목현상까지 생기면서 심사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면 게임법이 2소위 소관이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다 아예 심사도 못하고 전부개정안이 폐기되는거 아니냔 불안이 엄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된다. 이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은 법안은 ‘언제’심사될 지의 문제일 뿐, 심사 자체는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부개정안을 제외하고서도 확률형 아이템 관련 법안이 이미 3건이나 발의되어 있고, 발의 절차에 있는 법안이 2건 더 있다. 이처럼 특정 사안에 대해 여러 건이 발의 되어 있는 법안은 심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낮다. 국회에서 일한 지 10년 차다. 그동안 적지 않은 수의 법안을 만들어 왔다. 국민에게 칭찬을 받을 때도, 반박할 수 없는 비판을 들을 때도 있었다. 정말 좋은 내용의 법안인데 생각하지도 못한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임기 만료 폐기될 때도, 일사천리로 통과될 때도 있었다. 법안 하나하나가 모두 내 자식 같고,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법안을 만드는 정책보좌진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때문에, 어떤 법안에 가장 애정이 깊은지 물어보면 답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법안을 추진할 때 가장 힘들었나 물어보면 1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게임법 전부개정안이다. 게임법처럼 이해관계자가 많고, 첨예한 법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게임법이 게임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이 유독 크기도 하다. 역사에 비해 발전 속도가 빠른 산업일수록 이런 경향이 큰데, 게임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게임법 조항 하나만 개정돼도 파급력이 클 때가 많다. 조항 하나에도 이런데, 수십 개의 조항이 새로 쓰여지는 제정법안이나 전부개정안은 말할 것도 없다. 조항만 많은 것이 아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 아래 한데 묶여있는 게임의 종류들도 많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 온라인 pc게임, 모바일 게임, 아케이드 게임, 웹보드 게임, 콘솔 게임, 교육용 게임, VR 게임, 여기에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블록체인 게임까지.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법은 하나다. 물론 게임법 내에서 몇 가지 구분을 둔다고는 하지만, 게임 저마다의 특징을 모두 반영하기란 불가능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한국게임산업협회, 게임문화재단, 모바일게임협회,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한국게임학회 등등… 게임 종류별, 직업별 의견을 내는 목소리들도, 추구하는 바도 각양각색이다. 목적 자체가 이윤추구인 게임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법 하나에 이 모든 내용을 담으면서도 모두가 만족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우리 의원실에서 발의하기 내키지 않았다. 나도 사람인데, 이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았다. 심사 과정 내내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야 할 것이 뻔해 보였다. “욕먹기 싫은건 당연하다. 이해한다. 하지만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국민이 그 노력을 몰라줘도, 언론에 기사가 많이 나오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쉽고 편한 길만 가려고 하지 마라. 나는 그렇게 정치를 배우지 않았다.”이 문제로 이상헌 의원님께 보고드렸더니 하신 말씀이다. 결국 우리 의원실에서 게임법 전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발의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확률형 아이템 이슈는 언론에 많이 다뤄져서 내용을 알고 계신 분들도 많다. 확률형 아이템 이슈를 두고 게임업계와 논쟁하는 동안, 많이 괴로웠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교묘하게 법안과 나를 헐뜯었다. 추측성 음모론도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게임업계인이나 기자들 여러명과 서먹해지기도 했다. 전부개정안의 다른 조항과 연관된 다른 이해당사자들은 내 뒤를 밟는다던지, 면전에서 몸 조심하라는 협박까지도 했다. 그래도 앞을 보고 걸어가야 한다. 전부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이상헌 의원님 말씀대로 힘들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산고(産苦)가 크지만, 통과되고 나면 이용자 권익보호가 보다 강화될 수 있고 게임업계도 한층 성숙해질 것이라 믿는다. 물론 전부개정안의 모든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발의하고 보니 보완해야할 부분들도 여럿 보였다. 특히 국내대리인지정제도는 더욱 강화해서 발의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개정안에 빠져 있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심사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될 것이다. 또한 다른 게임법 일부개정안과도 병합심사되어 더 좋은 내용으로 고쳐질 것이다. 이를테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컴플리트 가챠 규제 법안이나 이용자 권익보호위원회 규정 법안과 함께 병합심사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내딛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국민의 꾸준한 관심은 국회를 일하게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국회 보좌관) 이도경 역대 국회 게임 관련 법안 최다 발의·최다 통과 시킨 것이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와우에서 리치왕 하드모드 서버 퍼스트킬 한 것과 카오스 유명 클랜인 RoMg에서 샤먼을 했다는 사실입...

  • ​Oldies But Goodies - 클래식 게임의 조건

    그래서 다시 클래식 게임이다. 그의 분투는 눈물겹다. 이 보다 더 순수할 수 없을 그 시대만이 줄 수 있는 순정의 게임 경험과 이를 통한 자수성가형 성취감을 제공한 클래식 게임은 게임 미디어의 '형식'으로서 명예의 전당에 봉인되는 순간, 수 많은 아류작과 온전한 장르의 모태가 됨으로써 태를 바꾸어 '미디어'로 존재한다. 이렇게 미디어로 명명된 클래식 게임은 상징으로 일반화되고, 상징을 통해 제시된 '기대'는 클래식 게임 고유의 경험을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재현하고 확장한다. < Back Oldies But Goodies - 클래식 게임의 조건 02 GG Vol. 21. 8. 10. 안타깝지만 게임은 나이에 우호적이지 않다. 생각보다 손이 늦게 움직일 때, 초점이 맞지 않아 어둠 속의 적을 보지 못할 때, 무엇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적에 스릴보다 심장이 더 걱정되기 시작할 때, 게임은 더 이상 친숙한 존재가 아니다. 이럴 땐 나도 모르게 신랄한 비평으로 게임을 탓하며 나이를 감춘다. 그래픽만 근사하고 코어가 약하다는 둥, 영혼 없는 모방작이라는 둥, 그 다음은 어김없이 화려한 '라떼'의 기억, 고통스럽지만 보람찼던 모험을 회상한다. 모눈종이에 매핑하던 순간들, 계단 반 칸에서 떨어져도 죽던 세상 허약한 주인공의 모험담, 늘 그렇듯 어디론가 납치된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쏟아부은 수 많은 시간들, 고독한 모험의 유일한 동반자 개 한 마리를 포기해야 하는 사악한 선택지로 인한 딜레마, 그리고 그 혹독한 시험에서 결국 만나게 되는 엔딩의 충만함까지. 잠깐의 플래시백으로 '라떼'의 영광을 찾아 여전히 생생한 기억 속 게임에 다시 한 번 말을 건넨다. 그런데 과거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몇 가지 기술적 단계가 필요하다. RF 단자밖에 없는 콘솔 게임기를 RGB 단자 TV로, 나아가 hdmi 단자의 TV에까지 연결한다. 물론 권하고 싶지는 않다. 8bit 게임기를 대형 TV에 연결시켜 실시간 시력테스트를 하는 기분은 결코 유쾌한 플레이 경험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과거의 유명한 게임들은 휴대용 게임기, 스팀이나 콘솔 온라인몰에서 리마스터 버전 등으로 출시된다. 내게는 심전도 검사와 같은 최신 게임을 포기하고, 이제야 ‘진짜’ 게임을 플레이한다. 하지만 1시간 남짓, 우리의 대화에 노이즈가 발생한다. 본질에 충실하다 보니 최신 게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편함이 눈에 거슬리고, 군더더기 없다 보니 뼈대만 있는 게임 구조와 단순한 스토리에 지루하고, 더 이상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도트 그래픽의 조악함이 걸림돌이 된다. 이쯤되면 우리가 하는 것이 대화일 수 있을까. 게임 잡지나 웹진에서 다룰 법한 '역사에 남을 100대 게임', '놓쳐서는 안될 고전 게임' 같은 특집도 약효는 일시적이다. 클래식 게임의 역사적 의미, 장점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개인사적 경험담에 공감하면서도 적극적인 플레이 경험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클래식에 대한 존중이 게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영화 잡지를 들춰도 비슷한 취지의 기사는 널려 있다. 문학이나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리스트를 꼼꼼히 적으며 영화들을 찾아보는 씨네필이나 클래식 음악 매니아는 흔하다. 문학에서는 고전 읽기가 일반 대학의 교양과목일 정도로 자연스럽다. 그에 비해 공감과 행위의 괴리가 게임만큼 분명한 장르가 또 있을까. 물론 이러한 차이는 컨텐츠가 의존하는 기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원형적 기술은 가장 오래 전에 등장했지만 지금도 차이가 없는 반면, 파생되어 발전한 기술은 등장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그 변화가 급격하다. 의존하는 기술이 변화함에 따라 컨텐츠 변화 속도도 상이하다. 소설은 수백 년 동안 큰 변화가 없지만, 영화는 몇 십년만에, 게임은 몇 년 만에 그 큰 변화를 겪는다. 결국 기술적 변화가 크면 클수록 컨텐츠의 라이프 사이클은 짧아진다. 게임은 의존 기술과 변화에 있어 가장 격렬한 컨텐츠다. 당연히 게임에도 고전 혹은 클래식 게임이 존재한다. 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만한 게임들의 리스트는 쟁쟁하다. 하지만 영광은 거기까지다. 여전히 현역으로 자부하지만, 환호하는 관중은 없다. 이유는 많다. 최신 게임이 더 접근하기 편하고, 더 진화된 시스템의 경이가 있고, 황홀한 그래픽과 스토리의 스케일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클래식 게임은 게이머들에게 많은 추억을 남겼으며, 지금도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지만, 더 이상 플레이를 통해 소통할 수 없는, 그저 우리 모두의 첫사랑일 따름이다. 한때 우리의 모든 시간과 정열을 바쳐 연모했으나, 이제 다시 만나 뭘 해볼 수 없는 까마득한 과거의 연인이다. 문학과 영화가 빛바랜 소설을 읽고, 흑백 영화를 보면서 클래식에 대해 바치는 실천적 존중이, 클래식 게임에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플레이되지 않는 무용담은 공소한 '라떼의 영광'일 뿐일까. ‘로그라이트’라는 명명(命名) 2017년 스팀에서 ‘앞서 해보기’로 처음 등장한 〈Dead Cells〉(Motion Twins)은 여러모로 화젯거리였다. 8bit나 16bit 시절을 떠올리는 도트 그래픽, 몇 개의 키로 가능한 플랫폼 액션의 경쾌함,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로 직관적이지만 진행할수록 매력적인 게임 시스템 등 클래식 게임 요소가 강한 동시에 최신 게임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스타일, 조작 그리고 편의성을 갖추고 있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OB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완벽한 클래식 게임의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는 한편, 게임에 입문한 NB들에게는 새로운 감각의 경험을 제공했다. 이런 특색 때문에 이런 류의 게임을 ‘레트로 게임’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레트로 게임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레트로 게임은 클래식 게임을 현대라는 거울에 비춘 하나의 상(象), 즉 존재할 수 없는 클래식 게임에 대한 회고적 경험을 거울을 통해 현전으로 구성한 상이다. 따라서 레트로 게임은 시간의 퇴화를 견딘 여전히 건재하는 영광이 아닌, 영광을 추억하는 이를 위한 아카이브이며, 과거에 머물던 영광의 부활이 아닌, 그 영광은 과거에만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는 레퍼런스 없는 시뮬라끄르다. * 〈Dead Cells〉. 이미지출처: 스팀 공식페이지. 물론 〈Dead Cells〉의 가치는 클래식 게임을 재현함으로써 그 위상을 확인 사살했다는 데에 있지만은 않다. 〈Dead Cells〉은 장르적으로 로그라이트(Roguelite)에 해당된다. 이러한 장르명은 21세기 초반까지 널리 사용되고 우리에게 익숙한 액션, RPG, 전략 등과는 현저히 이질적이다. 로그라이트 장르의 명명은 1980년 출시된 〈Rogue〉(Michael Toy & Glenn Wichman)에서 출발한다. 〈Rogue〉는 당시 유행한 던전 크롤러(dungeon crawler)를 기반으로 두 가지 놀라운 시스템을 시도했다. 플레이 캐릭터의 ‘영구적 죽음(permadeath)’과 시작할 때마다 달라지는 맵 시스템이 그것이다. 그로 인해 기존의 모눈종이 지도 제작 실력은 도움이 될 수 없었으며, 플레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캐릭터 사망에 대한 중압감은 가중되는 가혹한 시스템이었다. 금지옥엽 키운 캐릭터가 죽는 매 순간, 키보드와 함께 게이머의 영혼도 파괴되곤 했다. PTSD를 극복하려면 상당한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 〈Rogue〉와 같은 스타일의 게임을 이후 '로그라이크(Roguelike)’라 불렀으며, 이후 캐릭터의 죽음과 함께 아이템이나 스테이터스를 완전히 압수하는 대신, 약소하지만 남겨주는 적선(積善)의 형태로 변화하면서, 'like' 대신 ‘lite’를 붙여 ‘로그라이트’라는 장르로 자리잡는다. 그런데 '로그라이트’라는 장르명은 개발사의 마케팅 기믹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학자 루만(Niklas Luhmann)은 조직 이론의 ‘느슨한 커플링’, ‘조여진 커플링’ 개념을 빌어 반-본질주의 미디어(media)/형식(form) 개념을 제시했다. 모래사장의 모래와 그 위를 걷는 이의 발자국처럼 루만의 미디어/형식은 ‘느슨함/조여짐’의 상대적 정도를 통해 규정된다. 모래사장에 있는 느슨한 모래들이 '미디어'라면, 그 위를 걸어 조금 단단하게 결합된 발자국이 '형식'이다. 다만 이 개념쌍은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느슨한 커플링' 앞에서는 '형식'이 되고, 더 '조여진 커플링' 앞에서는 '미디어'가 된다. 루만의 미디어/형식 개념을 이제 문학과 게임에 적용해 보자. 문학과 『햄릿』, 게임과 〈Rogue〉. 문학과 게임을 문화콘텐츠로서 기여하는 '미디어'라 할 때, 개별 작품 『햄릿』과 〈Rogue〉는 각 미디어의 요소를 더 조여 커플링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햄릿』은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직ㆍ간접소비되지만, 〈Rogue〉는 대개 -이 글에 인용되는 방식처럼- 간접소비될 따름이다. 즉, 게임기자들이 특집 기사를 쓰고, 평론가들이 클래식 게임의 화려한 영광에 열변을 토하지만, 영광의 게임을 애써 플레이하려는 이는 적다. 그래서 클래식 게임은 게임이라는 '미디어' 안에서 '형식'으로 존재하지만, 소비되지 않는 한 존재 의의는 없다. 그렇다고 클래식 게임의 참패(慘敗)는 아니다. 대신 '로그라이크/라이트'가 있다. 〈Rogue〉는 더 이상 플레이되지 않지만, 그를 모태로 하는 '로그 같은' 혹은 '쉬운 로그'들이 여전히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OB와 NB는 기꺼이 그들을 소비한다. 게임이라는 모래사장에서 〈Rogue〉는 모래를 단단하게 해준 첫 발자국이라면, 이제 더 많은 게임들이 그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보태어 보다 단단한 발자국의 결합을 만든다. 결국 게임이라는 미디어에서 형식으로서의 〈Rogue〉는 더 이상 소비되지 않음으로써 존재 의의를 상실했지만, 수많은 '로그라이크/라이트' 게임들이라는 '형식'과 새로운 쌍을 이루며 '미디어'로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왜 게임에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게임은 소프트웨어라는 '미디어'에 대해 '형식'인 만큼, 기능에 대한 창의성 대신, 코딩에 대한 원천 가치를 존중한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한 기능의 재현은 게임에서도 가능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해커 문화라는 지평 위에서 게임은 저작권보다는 코드를 공유하고, 경쟁적으로 코드를 개선해서 양질의 게임을 만드는, 게임만의 독특한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태도를 지닌다. 그 결과 게임은 여전히 90퍼센트 이상의 레거시와 10퍼센트 안팎의 독창성 위에 존재한다. 하나의 형식으로서 개별작품이 또 다른 형식의 결합 요소를 수용할 때 잘하면 ‘오마주’ 잘못하면 ‘표절’이 되는 다른 미디어와 달리, 게임 미디어에서 레거시의 수용은 또 다른 명작의 시발점이 된다. 그래서 게임은 다른 모든 미디어에 비해 자유롭다. 여전히 모든 어른으로부터 필요한 것들을 흡수하여 더 빨리 성장하려는 아이처럼 본능적이며 원초적이다. 모든 원초적인 것들은 경외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한때 생존경쟁에 밀려 아프리카 북단에서 쓸쓸히 멸종되었다는 네안데르탈인 대해 매료된 적이 있으나, 사실 그들은 멸종이 아닌, 호모 사피엔스와의 혼종 교배를 통해 여전히 우리 유전자 속에 남아있다고 한다. 결국 사라졌다고 믿었으나 사실은 여전히 존재하는 네안데르탈인의 노스탤지어처럼, 다양한 언술 속에 재배치되는 작금의 클래식 게임은 '형식'이 아닌, '미디어'로서 새롭게 경험될 수 있다. 기대와 커뮤니케이션 개별 게임이라는 '형식'은 기술 발전과 함께 빠르게 소비 영역에서 이탈한다. 소비되지 않는 게임은 대화의 소재가 되기 어렵고, 커뮤니케이션은 쉽게 중단된다. 루만의 이론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은 자아와 타아가 마주해 발생하는 '이중 우발성(double contingency)' 위에서 구축된다. 자아는 타아가 어떻게 대응할 지 확정할 수 없는 우발성의 조건에서 발신하고, 타아 역시 이 발신이 지닌 가능한 의미의 확정 없이 수신한다. 양쪽에서 발생하는 우발성 속에서 각자에게 기대되던 피드백이 돌아올 때에만 커뮤니케이션은 성립한다. 이중 우발성이 만드는 가능성의 확장 속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가능성의 확장에서 발생하는 복잡성에 대한 감축이다. 개별 작품이라는 형식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역시 복잡성의 감축을 요구한다. 사회학자 파슨스(Talcott Parsons)에 따르면, 이중 우발성의 복잡성 감축은 공통의 경험과 지평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Rogue〉를 플레이한 경험이 있다면, 커뮤니케이션 성립은 수월하다. 하지만 만일 한쪽의 경험과 다른 한쪽의 간접 체험만으로 이뤄진다면, 커뮤니케이션에서 이 복잡성의 감축은 불충분하다. 경험자가 던진 경험의 감정들이 간접 체험자에게는 이해될 수 없으며, 간접 체험자의 표면적 기술(description)은 경험자에게는 공소한 반응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복잡성 감축을 위한 장치가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타아의 대응을 완전한 우발성의 영역에 두지 않고, 비록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가능한 결정의 범위를 예상하는 것이다. 타아에 의한 피드백에 대한 자아의 대응 역시 마찬가지로 아직 결정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정해진 범위 안에서 이뤄지길 기대한다. 많은 유사한 커뮤니케이션이 시도되고, 성립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가능성을 한정하는 의미에 대한 반복적 지시가 등장한다. 즉, 반복적 지시에 따른 감축을 통해 ‘상징’이 사용되고, 상징에 따른 일반화를 통해 자아와 타아 모두 가능성의 영역에 대해 ‘기대’를 통한 복잡성의 감축이 가능해진다. 1994년부터 개발된 〈Ancient Domains of Mystery〉를 플레이한 게이머와 2006년 등장한 〈Dungeon Crawl–Stone Soup〉를 플레이한 게이머가 마주한 경우를 가정해 보자. 각기 상대 게임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커뮤니케이션은 각자의 경험 위에서만 시도된다. 커뮤니케이션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복잡성을 줄여야 하기에 각기 상대의 발신과 수신에서의 탐색 과정을 거치게 되고, 이 과정이 수월하지 않을 때 커뮤니케이션은 실패한다. 만일 이들이 상대가 어떤 범위 내에서 발신 및 수신할 지를 한정하는 기대가 있다면, 복잡성의 감축을 위한 탐색 과정은 한결 단축된다. 이 역할을 하는 것, 즉 커뮤니케이션이 성립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로 기능하는 ‘로그라이크’이다. 각자 상대의 경험이 ‘로그라이크’라는 범위 위에서 의미를 가질 것임을 기대하고 행위하기 때문에, 상대 게임을 정확히 알지 못해도 ‘로그라이크’라는 명명이 가진 의미의 한정을 통해 수신/발신 과정에서 생산된 복잡성을 감축하고 형식인 게임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 〈Ancient Domains of Mystery〉(왼쪽)와 〈Dungeon Crawl–Stone Soup〉(오른쪽). 이미지출처: 게임 공식 홈페이지. '형식'이 아닌, '미디어'로서 역할하는 클래식 게임의 존재 양상은, 이처럼 새로운 명명에 따른 기대를 통해 게임을 둘러싼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할 수 있도록 복잡성의 감축을 유도한다. 게임을 둘러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형성된 의미 시스템이 곧 게임 문화다. 문화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현현하고, 그를 통해서만 유지된다. 다양한 문화적 소재들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커뮤니케이션'될 때만 문화로서 의미가 정위(定位)된다. 따라서 우발성의 복잡성 감축을 유도하는 미디어로 존재 양식을 갖춘 클래식 게임은 게임문화의 유지와 확장에 기여하는 새로운 위상을 확립하게 된다. 게임문화와 클래식 게임 지금까지 클래식 게임을 통해 '기대'가 커뮤니케이션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았다. 물론 ‘기대’는 클래식 게임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클래식 게임이 게임에 대한 긍정적 값을 지닌 커뮤니케이션의 기대로 존재한다면, 역으로 부정적 값을 지닌 기대도 존재할 수 있다. 비호감 게임리뷰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형 양산게임’이라는 표현은 원래 사전적 의미에서는 '한국 게임개발사에서 대량생산된 게임'을 중립적으로 통칭할 뿐이지만, 커뮤니케이션에 작동하는 양상은 이와 달리 매우 부정적이다. 한국형 양산게임이 커뮤니케이션에 제공하는 '기대'는, 장르의 개성이나 세계관의 고유성은 없고, 비즈니스 모델만 강조된, 개발사의 수익률을 위해 고도의 사행성을 장착한 게임이다. 즉, 한국형 양산게임에 대한 '부정적 기대' 역시, 로그라이크의 '긍정적 기대’처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존재하는 우리 게임문화의 또 다른 양상을 규정한다. 한국형 양산게임만이 아니다. 게임과는 어울리지 않는 ‘작업장’이라는 표현이나 경험이라는 게임의 본원적 규정과 어울리지 않는 ‘자동전투’ 시스템, 그리고 온라인 게임을 매개 및 무대로 하여 벌어지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발견되는 차별적이고 공격적이며 상호혐오로 가득한 언술 등 이 모든 것은 부정적 값을 지닌 '기대'로서 커뮤니케이션을 성립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며, 그렇게 성립하는 커뮤니케이션 또한 우리 게임문화의 일면이다. 게임문화는 단순히 세기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게임평론가의 극찬을 받는 소외된 걸작들,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몇 편의 인디게임을 통해 형성될 수는 없다. 게임을 둘러싼 커뮤니케이션과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기대’의 지형이 게임문화의 현 주소를 규정한다. 게임과 관련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게임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원인이라 말하곤 한다. 게임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문제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게임문화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게임문화는 오직 게임을 둘러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존재한다. 여기에는 긍정적 '기대'도 물론 존재하지만, 동시에 부정적 '기대', 심지어 독소(毒素)의 '기대' 또한 포함된다. 면피의 가능성이 존재의 양상을 바꿀 수는 없다. 변화는 오직 커뮤니케이션에서 복잡성의 감축과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대'의 성쇠에 의해서만 규정된다. 그래서 다시 클래식 게임이다. 그의 분투는 눈물겹다. 이 보다 더 순수할 수 없을 그 시대만이 줄 수 있는 순정의 게임 경험과 이를 통한 자수성가형 성취감을 제공한 클래식 게임은 게임 미디어의 '형식'으로서 명예의 전당에 봉인되는 순간, 수 많은 아류작과 온전한 장르의 모태가 됨으로써 태를 바꾸어 '미디어'로 존재한다. 이렇게 미디어로 명명된 클래식 게임은 상징으로 일반화되고, 상징을 통해 제시된 '기대'는 클래식 게임 고유의 경험을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재현하고 확장한다. 폭넓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클래식 게임과 만나고, 긍정하고, 새롭게 다른 방식으로 욕망한다. 이렇게 클래식 게이머의 첫사랑은 라떼의 '추억팔이'가 아닌, 우리 모두의 첫사랑이 되고, 게임의 원형적 경험으로서 게임문화의 일부가 된다. 화려한 영광의 수사로 치장되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순간, 무대에서 퇴장만이 남은 순리에 따르는 대신, 클래식 게임은 '미디어'로서 자신을 추종하는 수많은 '형식'들을 이끌고, 독소의 '기대'와 싸우며 새로운 희망의 기대를 세상에 퍼뜨린다. 그렇다면 나도, 최종 보스까지는 아득하지만, 나이에 우호적이지 않은 게임세상에 사자후를 토하며 그 오랜 세월을 버틴 클래식 게이머의 노익장을 과시하련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평론가) 박상우 몇몇 대학과 대학원에서 게임관련 강의를 했으며, 몇몇 잡지와 신문에 게임 관련 칼럼을 연재했고, 몇 권의 게임관련 책을 썼으나, 내가 산 책이 더 많다. 게임제작 및 퍼블리싱 관련 개발사 컨설팅을 하다가 막판에는 게임회사 대표직도 맡았고, 이제는 은퇴했다. 게임 평론가나 게임 전공 교수, 게임 컨설턴트나 게임회사 대표가 아닌 '게임을 참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 〈디아블로〉 시리즈의 역사로 바라보는 블리자드의 변화

    2021년 2월 20일에 시작된 블리즈컨라인(BLIZZConline)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2005년 10월 처음 개최된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축제로써 기획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의 블리즈컨의 분위기는 분명 예전과 달랐다. 제작자와 게임 팬의 화합의 장이었던 블리즈컨이 끝나면 항상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함성은 잦아들고 작은 수근거림이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 Back 〈디아블로〉 시리즈의 역사로 바라보는 블리자드의 변화 02 GG Vol. 21. 8. 10. 2021년 2월 20일에 시작된 블리즈컨라인(BLIZZConline)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2005년 10월 처음 개최된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축제로써 기획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의 블리즈컨의 분위기는 분명 예전과 달랐다. 제작자와 게임 팬의 화합의 장이었던 블리즈컨이 끝나면 항상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함성은 잦아들고 작은 수근거림이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그저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직전 년도에 발매되었던 〈워크래프트 III: 리포지드〉는 그간 ‘블리자드 = 게임 제작의 명가’라는 평판에 물음표를 던져 주기 충분했고, 때문에 이런 어수선함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전후 사정으로 코로나 시대에 열린 온라인 블리즈컨인 2021년 블리즈컨라인에 팬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행사에서는 기존 발표 신작( 〈오버워치 2〉, 〈디아블로 IV〉)에 대한 개발 중간 보고 형태의 정보가 있었고, 블리자드가 제작했던 초창기 인기작(〈락앤롤 레이싱〉, 〈길 잃은 바이킹〉, 〈블랙쏜〉)의 리메이크 버전에 대한 내용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오래된 블리자드 팬들을 들뜨게 만드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디아블로 II〉의 리마스터 버전인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이 올해 발매 된다는 이야기였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기업인이자 요리 연구가(이자 열성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플레이어)인 백종원씨가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의 최초공개 트레일러에 남긴 댓글은 순식간에 이슈화가 되면서 이 게임의 무게감을 증명했다. *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zG-4gDDazg 블리자드의 대표 IP 중 하나인 〈디아블로〉 시리즈의 첫 작품은 1996년 12월 31일 세상에 선보였다. 블리자드의 초기 협력사이자 합병 이후 블리자드 노스로 이름이 바뀐 콘도르에서 처음 제안했던 〈디아블로〉의 형태는 턴 방식의 로그라이크 게임이었다. 하지만 3 시간 동안 제작한 실시간 형태의 프로토타이핑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우리가 익히 아는 실시간 핵 앤 슬래시 형태의 액션 롤플레잉 게임인 〈디아블로〉가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출시 당시 다른 게임과 완전히 차별화되는 게임성과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 블리자드 최초로 도입된 베틀넷 시스템을 통한 협동 및 대결 플레이 같은 특별한 장점들은 〈디아블로〉를 그해 최고의 게임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다. 북미 출시 이후 국내에서도 PC 통신 게임 동호회를 중심으로 게임에 대한 기대감이 점차 높아지고 있었으나,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운영하던 게임물 심의 장벽에 가로막혀 꽤 오랜 기간 동안 국내 정식 발매가 되지 않는 일이 있기도 했다. 당시 〈디아블로〉 1의 국내 유통사였던 SKC는 몇 차례의 발매 연기 속에 일부 영상 장면 등을 삭제한 검열판으로 심의를 통과하여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게임을 발매하였다. * 출처: 컴퓨터 게이밍 월드 1997년 2월호 102 페이지. 〈 디아블로 〉는 잘해야 10만 부 팔릴 것이라 예상한 제작진의 기대를 가뿐하게 넘어 발매 첫 해 100만 부, 이듬해에는 전세계 200만 부 판매를 달성한다. 자연스럽게 후속편에 대한 이야기가 제작진 사이에서 논의되었다. 그리고 〈디아블로 1〉의 출시부터 3년이 지난 2000년 6월 29일 시리즈의 후속편인 〈디아블로 II〉가 발매되었다. 국내에서 〈디아블로〉는 게임 매니아들끼리 만 회자되는, 잘 만든 게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 중 하나로 추진되었던 IT 인프라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이를 통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와 PC 방의 급격한 확산.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 힘입어 그저 그런 컴퓨터 게임이 아닌 대한민국 대중 문화의 위치를 차지한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다음 작품으로 내 놓은 〈디아블로 II〉는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게임이 되어있었다. 이러한 관심을 입증하듯, 〈디아블로 II〉는 15만 부의 선주문을 받은 상태로 북미와 거의 동시 발매가 이루어졌다(당시 해외 게임이 국내 동시 발매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의 관심과 달리, 새로운 대한민국의 전통 놀이로 취급되던 〈스타크래프트〉에 비해 〈디아블로 II〉의 인기는 금세 시들해 졌다(어디까지나 〈스타크래프트〉에 비교해서일 뿐이지만). 국내에서만 약 300만 부를 팔아 치운 〈디아블로 II〉는 운영 문제와 함께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국산 대작 MMORPG 게임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디아블로 II〉는 서비스 중이며 PC 방 점유율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 디아블로 II 〉 이후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IP에 기반을 둔 게임에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새로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워크래프트 III: 혼돈의 지배〉와 확장팩인 '얼어붙은 왕좌'가 각각 2002년과 2003년 출시되었다. 여기에 더해 2004년 11월 23일 서비스를 시작한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2021년 현재까지 총 8개의 확장팩을 출시하며 지금까지도 많은 유저를 보유하고 있는 블리자드의 대표 게임이 되었다. 이렇게 제작사로부터 외면 받은 줄 알았던 〈디아블로〉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 것은 200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월드 와이드 인비테이셔널에서였다. 〈디아블로 3〉는 〈스타크래프트 II〉와 더불어 전세계 블리자드 팬들의 초 기대작이 되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울 왕십리역에서 진행된 전야제 행사에서 〈디아블로 3〉의 한정판을 구매하기 위해 전날 새벽부터 수천명의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인원을 예상 못한 행사 주최측의 준비 미비로 그야말로 디아블로가 재림한 듯한 혼돈이 연출되었다.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소장판 판매도 판매 시작부터 쇼핑몰 서버가 다운되는 등의 혼란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에서의 〈디아블로 3〉 한정판 대란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했는데, 한정판을 사들여 웃돈을 더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는 사람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디아블로〉 시리즈에 등장하는 종족인 네팔렘을 차용하여 만들어진 ‘되팔렘’이라는 단어는 인터넷 게시판 뿐만 아니라 이후 기성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상은 이후 벌어진 쓰나미 같은 사태에 비하면 그저 지나가는 가랑비에 불과했다. 2012년 5월 15일, 〈디아블로 3〉를 구매한 게이머들은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이콘을 클릭했다. 하지만 그들을 반기는 건 Error 37 이라는 메시지 창 뿐이었고 정작 게임은 실행조차 되지 않았다. 사유는 이랬다. 불법 복제를 막고 경매장 등의 기능을 위해 야심 차게 도입했던 서버 인증 시스템이 몰려드는 사용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현상이 계속 발생한 것. 이 문제는 게임 발매 후 한 달이 다 되도록 해결이 되질 못했고, 결국 국내 지사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는 게임 환불을 결정한다. * Error 37, 서버 롤백, 계정 오류 같은 기술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경매장 시스템, 게임의 난이도 배치와 말도 안되는 아이템 드랍 시스템 등으로 인해 초창기 게임의 평가는 계속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는 특유의 뚝심으로 게임의 문제점을 하나 하나 개선해 나가고, 핵심 기능 중 하나였던 경매장 시스템을 날려버리는 특단의 결정을 내리면서까지 결국 죽은 게임을 살려내는데 성공한다. 2015년 8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부가 판매되는 기록을 달성하였다. 전작과 12년의 갭이 있었던 〈디아블로 3〉와 달리, 다음 후속작은 비교적 빠른(?) 6년만에 발표되었다. 2018년 11월 최초 공개된 〈디아블로 이모탈〉은 디아블로 시리즈 최초의 모바일 게임이란 점, 그리고 그리고 게이머들에게 반발이 심한 극단적인 부분 유료화 정책으로 유명한 중국 게임 개발사와의 협업으로 개발 중이라는 점 때문에 팬들의 많은 우려를 샀다. 다행이 얼마 전 진행된 알파 테스트에서 우려는 어느정도 씻겨진 상태이지만, 블리자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비단 팬들 만이 아니었다. 블리자드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우려했을까? 새로운 차기작인 〈디아블로 IV〉의 제작을 공개하였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출처: 〈디아블로 IV〉 공식 시네마틱 영상 | 세 명이 오리라 2021년 현재 〈디아블로 〉시리즈는 한 편이 신규 발매되었으며, 두 편의 신작이 개발 중에 있다. 과연 이 시리즈의 미래는 계속될 수 있을까? 블리자드는 신규 IP 제작에 매우 신중한 행보를 보여왔다. 회사의 대표 IP 인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는 모두 20세기인 말인 1990년대 처음 대중에 선보였고, 21세기 들어 완전한 오리지널 신규 IP는 오버워치 하나에 불과하다. * 출처: 블리자드 홈페이지 . 이는 블리자드의 개발 스타일과 큰 연관이 있다. 블리자드의 개발자들은 혁신적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 다기 보다는 기존의 게임 메커니즘을 철저하게 분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를 자신들이 충분히 만족할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는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었다. 여기에 시리즈를 계속해 가면서 자기 자신을 복제, 발전해 왔던 것. 이것이 블리자드의 스타일이다.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로부터 시작해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으로 끝나는 블리자드의 클래식 프로젝트는 그간 블리자드가 보여줘 왔던 행보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동떨어져 있다. 이들의 장기는 기존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 기존 것에서 한 발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프로젝트는 찬란했던 시대의 흑백 사진을 컬러로 바꾸는데 급급하다는 인상이다. 블리자드의 얼음 폭풍이 점차 잠잠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비단 회사를 둘러싼 온갖 구설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실리콘 앤 시냅스라는 이름으로 1991년부터 시작된 블리자드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블리자드의 미래를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색을 점차 잃어가는 게임 제작사를 바라보는 오래된 팬들의 마음은 어쩌면 안타까움 그 이상이 아닐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 개발자) 임현호 과거의 게임 개발 영웅들의 모험담을 쫓으며 게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게임 개발자. 매우 긴 기간 동안 대표, 기획자, 인디 게임 개발자, 프로젝트 매니저 등의 여러 타이틀을 달고 살았으나 게이머이자 게임 개발자로 불리길 희망하는 소시민.

  • [인터뷰] 디지털게임 다양성/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스마일게이트 D&I실 이경진 실장

    "이런 사람도 게이머고 저런 사람도 게이머고,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대중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에버랜드에서도 ‘게임문화축제’라고 해서 게임 IP를 가지고 행사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게임이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가 되어서 놀이공원에 아이들하고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게이머라고 했을 때도 게이머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해요." < Back [인터뷰] 디지털게임 다양성/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스마일게이트 D&I실 이경진 실장 20 GG Vol. 24. 10. 10. 지난 2024년 8월, <스마일게이트>는 창작자를 대상으로 게임 접근성과 콘텐츠 다양성을 주제로 한 레퍼런스북 두 권을 출간했다. <게임 접근성 개념과 사례>에서는 장애를 포함하여 다양한 조건에 처해 있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제한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게임 접근성’에 관한 개념과 현황, 사례를 담고 있다. <콘텐츠 다양성 개념과 사례>는 ‘문화다양성’ 개념을 소개하고, 미디어와 게임 속에서 문화다양성이 구현된 사례를 다루고 있다. GG는 이번 호 인터뷰에서 스마일게이트 이경진 실장을 만나 기업이 D&I(Diversity & Inclusion)를 강조하는 맥락을 살피고, 문화로서의 디지털 게임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접근성과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사회적, 상업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들어보았다. 이경혁 편집장: 이 인터뷰를 기획하게 된 것은, 한국의 게임사들이 접근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 내에서 이런 모습들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목적에서 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제적으로 (접근성/다양성 책자라는) 결과물을 내신 거잖아요. 항상 첫 발을 내딛는 게 저는 쉽지 않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국내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많았던 것도 아닐 테고, 제로베이스에서 처음 이 작업을 하실 때 겪었던 어려웠던 점이나 생각나는 점이 있으신가요? 이경진 실장: 입사를 하고 6개월 정도 있다가 미국의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 게임 개발자 회의)에 처음 갔어요. 전 세계의 개발자들 수만 명이 모여 컨퍼런스를 여는데, 당장 수익 증진에는 거리가 먼 주제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거를 저희 같은 부서에서 하는 게 아니라 개발자들이 나와서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노하우를 공유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접근성 같은 경우에는, 게임이 대중적인 여가 매체로서 확산되어 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게임을 만드는 데 있어 과연 다양한 배경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걸 어떻게 청취하고 있는가’를 보았을 때 상당히 부족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우선적으로 장애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그랬는데, GDC의 게임 접근성을 발표하는 스피커 분들은 실제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이었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고용하거나 커뮤니티를 연계해서 장애 당사자들의 피드백을 청취하는 채널이 있더라고요. 근데 우리는 회사에는 그게 부족하니까, ‘이 일은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야 될까를 고민하다가 직접 사용자를 고용하는 게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장애인 게임 테스터 고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실제로 고용 기회가 많았었나요? 이경진 실장: 오히려 그 지점에서 (직접 사용자를 고용할) 기회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저희 접근성 테스터 중 선천적으로 청각장애가 있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은 여섯 살 때까지 말을 못하다가 보청기를 사용하면서 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경우였어요. 이 친구에겐 게임이 친구였고 삶 그 자체였더라구요. 비장애인들은 게임 업계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게 많잖아요. 이렇게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 장애인의 비율만큼이라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 기회가 더 있어야 되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싶었어요. 일례로 (보수적으로) 인구의 5%가 장애인이라고 계산했을 때 그 비율만큼의 우리 게임에 연결된 직업도 있어야 하고 그걸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직업 공고를 낸 거죠. 이 기회에 고용을 통해 제대로 된 직업을 만들어서 (장애인 게임인력을) 전문적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시작할 때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저희의 의도나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고 고용공단에서도 이걸 굉장히 의미 있게 받아들였어요. 왜냐하면 장애인 전형으로 나오는 일반 직업들은 거의 ‘네일 아트’라든지 ‘세차’라든지, 특정 산업에서 만들어내는 생산품과는 거리가 먼 서비스 관련 직업들이 많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고용공단에서) 이거는 새로운 케이스고, 한국 게임 업계에서 적어도 이 판교 지역에서는 더 퍼져나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지원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덕분에 저희 공고에도 막판에 지원자가 많이 들어왔어요. 면접을 보게 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게임을 꼽고 그걸 직업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근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아까 말씀드린 청각장애인 테스터 친구를 오늘 만났는데 문득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자기는 이 직업이 아니었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으로 깊게 고민을 하고 일로서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걸 생각조차 못했을 것 같다고. 이경혁 편집장: 접근성과 다양성 문제를 세팅하는 과정에 있어, 말씀하신 것처럼 회사에서는 의무적으로 해야 되는 부분도 있을 거고 사회 환원의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그냥 비즈니스의 확장이라 볼 수도 있잖아요. 조금 어려운 질문일수도 있겠습니다만, 회사 입장에서도 여러 목적이 있었을 텐데, 혹 시장적인 목적과 윤리나 도덕적 목적 두 가지로 이원화를 한다면 어느 쪽이 더 비중이 크다고 보세요? 이경진 실장: 굉장히 좋은 질문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저도 처음에 이 가설을 가슴에 품었을 때는 사회적인 가치 추구라는 목적에 무난하게 부합하는 일이라고만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테스터들이) 게임을 사랑하는 유저이기도 하기 때문에, 게임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살펴보며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자에게 피드백과 리포트를 주는데, 거기서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결국에는 접근성 테스터들이 게임 콘텐츠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게임을 한 손으로 플레이하는 사람, 발가락으로 플레이하는 사람, 눈으로만 플레이하는 사람 등 신체적 조건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직접 만나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디테일한 문제를 잡아갈 수 있고, 결국은 접근성이라는 게 출발은 ‘소수’에서 시작하지만 그게 도착하는 곳은 ‘다수’이거든요. 그래서 ‘접근성이란 결국은 다수를 위한 품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요. 품질 향상은 더 많은 유저들을 끌어올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거고요. 이경혁 편집장: 접근성과 관련된 업무는 게임 개발보다는 테스터 쪽에 주로 방점이 찍히는 것이지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게임 내 문제를 발견하는 데 방점이 있어요. 계속 여러 게임을 테스트하면서 접근성의 맥락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발견하고, 그 문제가 강하게 보이면 보고하고요. 그리고 다른 유사한 장르 게임을 많이 플레이 하다 보니 ‘이 장르의 어떤 게임은 어떤 요소로 색각이상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 게임은 그걸 못하고 있다’ 라는 식으로 피드백하기도 해요. 그리고 청각장애 같은 경우에는 청각적 요소를 시각화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모든 소리를 시각적인 정보로 표현해 놓으면 게임을 하는 데 장애가 대부분 없어지거든요. UX/UI 디자인적으로 청각 정보를 어떻게 시각화한 여러 레퍼런스 (사례) 들은 게임 디자인시 도움이 많이 되는 부분이죠. 이경혁 편집장: 사실 그런 부분은 어떤 특정 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지하철에서 소리를 꺼놓고 게임할 때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 쪽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 것 같구요. 제가 자주 하는 얘기가 ‘저상버스가 들어오면 우리 엄마 무릎이 편하다’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접근성이 모두를 위한 보편성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주셨듯 테스터 쪽에는 소위 말하는 당사자성을 가진 테스터들이 들어오면서 이런 접근성의 문제를 보기 시작하신 거네요. 그러면 개발 부서에서는 접근성 테스터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뭔가 변화했다라는 느낌을 받으셨을까요? 이경진 실장: 저도 사실 그게 가장 걱정됐었어요. 개발 부서의 경우 제한된 인력과 시간 때문에 (접근성 문제가) 우선순위에 밀릴 수도 있고, 개발하는 단계에서 사실은 버그 하나 더 잡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이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접근성 문제가 어느 정도 인지가 된 것 같아요. 신작 개발하시는 부서에서, 우리 게임이 글로벌 유저한테 다가가려면 접근성 문제 파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접근성 리뷰를 요청드리고 싶다고 얘기를 하셨어요. 글로벌 서비스 개발 조직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접근성 문제 때문에 우리 이거 몇 번이나 뒤집었다’ 이런 얘기들도 하고, 그래서 이제는 산업에서도 진짜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런 문화가 아예 없었다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라고 했을 때,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요? 이경진 실장: 우리가 테스터를 1월에 뽑아서 처음 접근성 리뷰 공유회를 연 게 6월이었거든요. 당시 개발자들도 많이 오셨는데, 한 팀장님께서 자기가 십수 년 동안 게임 개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이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오늘 이런 관점의 필요성을 너무 느꼈고 앞으로 개발할 때 고려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대요. 개발자에게 직접 실제 적용에 대한 피드백을 듣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네요.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는데 걸린 시간인 것 같아요. 개발팀 미팅 단계에서 누군가 ‘우리 이거 접근성 측면에서 괜찮을까요’라고 말할 수 있거나, 전체 게임 개발을 리드하시는 분이 ‘이거 접근성도 고려해 보세요’라고 언급하는 단계까지요. 이경혁 편집장: 1년 반 정도 작업한 결과 그래도 이제는 성과가 나는 것 같다는 것이군요. 예상하신 만큼의 시간인가요? 저는 이 인터뷰를 다른 게임사의 관련 부서들이 좀 고려했으면 싶어서요. 선행 부서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를 알면 대략의 가이드라인을 가져가기 쉽지 않을까, 그런 느낌으로 여쭤보는 거거든요. 이경진 실장: 저는 솔직히 생각보다 조금 빨랐어요. 아무래도 <스마일게이트> 구성원들에 이 문제에 관심도가 높으신 분들이 꽤 있어서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또 궁금한 게, 얼마 전에 접근성 기기 전시회도 여셨지만 사실 <스마일게이트>가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회사는 또 아니지 않습니까? 근데 많은 경우에 접근성은 하드웨어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잖아요. 접근성을 담당하시는 부서 입장에서 생각하시는 ‘여기까지는 가야 한다’는 수준이 있을 텐데, 소프트웨어 쪽이다 보니 우리 회사의 영역이 아닌 부분도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그런 케이스도 많이 겪어보시나요? 이경진 실장: 저희는 지금 저희가 통제 가능한 부분들에 집중을 하고 있다 보니 직접적으로 그런 상황을 겪지는 않았는데요. 그런데 보조기기가 시중에 나와 있는 곳들이 꽤 있어요. 경기도 재활공학센터와 저희가 더 긴밀하게 소통을 하고 있어 접근성 보조기기 전시도 가능했었던 거구요. 그리고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직접 더 많이 만나야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더 찾아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원데이 패널 프로그램을 통해 게임 유저들 중 보조기기 사용하시는 분들을 초청해서 만나려고 하고 있는데 아직은 이 풀(pool)이 너무 적은 상황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 회사가 아무리 스스로 접근성을 더 갖추고 싶다 하더라도 그런 기기 인프라가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편으로 지금 하시는 작업이 어떻게 보면 사내에서 소위 말하는 프로세스를 바꾸는 작업 이상으로 대외적으로 협업 혹은 협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일거고, 그런 차원에서 중요하지 않나 싶어서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접근성에 대한 저변확대를 위해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저희가 경기도재활공학센터와 지금 논의하고 있는 건, 현재 센터에 장애인 유저가 대략 1천 명 정도 이용하시는 센터에 50평 정도의 공간이 있거든요. 거기에 이 책 수익금을 활용해서 컴퓨터 및 보조기기를 셋업하고, 장애인 유저들이 항시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 플레이 랩’, ‘게임 리빙룸’ 개념으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굉장히 재밌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책을 팔아서 수익이 나셨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책 팔아서 수익 내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근데 그래도 좀 유의미한 판매가 난 것 같습니다. 이경진 실장: 수익 자체는 일단 저희가 수익을 바랐던 게 아니어서 특별히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책을 내려고 했었던 거는 사실 뭔가를 처음 할 때는 언어가 없잖아요. 이걸 뭐라고 명명을 하고 이런 콘셉트 자체를 뭐라고 명료하게 표현을 해야 될지를 모르는데, 그걸 언어로 표현을 해 놓으면 이 가치가 좀 더 확산되고 이게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한테 우선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첫 발자국을 찍는다는 차원에서 책을 낸 것이었어요. 최대한 우리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언어를 만들고, 그 다음에 더 노력을 해서 또 버전업을 해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내게 된 거죠. 이경혁 편집장: 이번에 내신 책도 약간 연작의 일환이라 보면 될까요? 혹 그렇다면 3권과 4권에 대해서 플랜을 듣고 싶은데요. 이경진 실장: 네, 이번 책을 보시면 시리즈 개념으로 넘버링이 되어 있거든요. 3권, 4권에 대한 플랜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건 없지만, 저희가 했었던 것들이 좀 쌓이면 저희들의 내부적인 사례를 좀 더 많이 얘기 해볼까 합니다. 게임 접근성 단행본의 3챕터에 저희 사례가 좀 들어가 있거든요. 앞으로도 저희의 행보에 대한 기록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요. 책 말고도 교육 영상을 만든 게 있어요. <다양한 플레이어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 포용적 게임 디자인> 인데요. 이건 게임에 국한해서 게임 개발자들을 위해서 만든 영상으로 된 교육 콘텐츠에요. 현재는 사내에서 교육 영상을 확산하는 단계에 있고, 앞으로는 대학 및 산업 기관을 중심으로 미래의 게임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확산시키려는 계획이에요, 필요성에 공감하는 기관들과 업무 협약을 맺어서 저희가 무료로 콘텐츠를 공급하고 대학에서 실습 등을 통해 이런 것들을 다뤄주는 형태를 생각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건 좀 사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다양성과 포용성 관련하여 교육할 수 있는 역량이 지금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일까요? 이경진 실장: 다양성, 포용성 문제가 사실 전통적인 패러다임의 결은 아니잖아요. 이 주제로 커리큘럼을 다루고 실습을 연계하고자 하는 국내 교육기관(대학) 이나 학회와의 협력을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학회에서 <포용적 게임 디자인> 교육 콘텐츠를 토론을 위한 기초 지식으로 활용하고 해외 연사들을 초대하여 컨퍼런스를 여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아요. 이 작업을 처음 할 때 미국의 비영리 게임접근성 교육기관인 <에이블게이머즈>의 전문가들, 그리고 인클루시브 게임 디자인 관련된 해외 전문가들과 협업을 했었는데 그런 분들을 초청해서 전문 포럼을 여는 거죠. 이렇게 학회나 콘텐츠 산업 쪽과 같이 만들어 나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계속 이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결국 이거는 하나의 회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번에 접근성 전시 때도 놀랐던 게, 소위 말하는 범-회사에서 담당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오시기도 하셨잖아요. 그러한 움직임이 지금은 좀 어떤가요? 이경진 실장: 해외의 경우 페어 플레이 얼라이언스(Fair Play Alliance) 같이 게임사들과 플레이어들이 같이 모여서 우리가 게임 산업과 플레이어들을 더 많이 늘리기 위해 어떻게 같이 서로 돕고 시장 자체를 키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같이 하거든요. 한국에서도 서로 활발히 소통하며 교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저도 전문 프로그래머는 아니지만, 사실 많은 IT들이 어떤 표준을 세팅하는 과정을 보면 보통 국제포럼을 통해 하나의 기술을 어떻게 표준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공동으로 발의하고 통과시키는 과정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접근성 쪽이 그런 국제적 협업 과정이 되게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미국 같은 경우도 미국에서 쓰는 접근성 가이드가 있고 그것을 보편화하려고 노력하지만, 희한하게 그런 것들이 국제적인 협업으로는 잘 안 나온다는 이상한 느낌이 있지요. 다른 IT 기술 표준들은 그렇게 작동을 하는데 왜 접근성 문제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경진 실장: 저도 그 생각을 되게 많이 했는데요. 일단 북미 차원에서는 이 흐름을 주도하고 협력하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유독 아시아 시장과는 커넥션이 되게 약해요. 아시아 게임 시장이 굉장히 급속도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커넥션이 많이 약해서, 근데 이제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희가 게임 접근성을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사내에서 관심 있는 개발자들이 예전보다는 좀 많아졌다는 걸 느껴요. 프론트엔드 개발자인데 이런 가치에 자기가 공감을 해서 더 공부하고 싶다던지, 개인적으로 관심을 알려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사실 그런 분들 한두 분씩 보면서 이걸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죠. 이경혁 편집장: 회사가 이 정도의 의지를 갖고 이만큼 추진을 한 거고, 성과도 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공공은 어떤가 궁금해요. 지금 공공과 협업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정부에서 좀더 관심을 갖고 뭔가 더 지원하면 정부의 입장에서도 성과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경진 실장: 접근성 문제와 관련된 노력을 보인 게임사 대상 세액 공제 지원 정책 필요성에 대한 컨퍼런스가 지난달에 열렸었어요. 게임 접근성은 다른 콘텐츠에 비해 기술적 의존도와 난이도가 높아, 민간 업계의 주도적인 참여 없이는 공공 영역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추진하는 움직임이에요. 게임 접근성 필요성에 대한 담론은 이미 많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공공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다루는 움직임이라 이제는 속도가 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는 공공에서도 실제 기업들을 움직여야 된다는 걸 인지를 하셨구나 싶어 반가웠어요. 민간을 움직이지 않으면 이게 안 되는 거라는 거를 인지를 하고, 민간을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구나라고 느꼈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앞으로 각 게임사에 접근성과 다양성 관련 부서들이 더 생길 수 있을거라고 전망하고 있는데요. 사내에서 개별적으로 움직여 만드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국 안에서 일종의 연합체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게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가끔 그런 협회들이 무의미하게 공회전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이런 질문을 드리게 됩니다. 특히 회사 단위를 넘어 좀 초월적인 협력이 필요할 때 동력을 만들 수 있는 외부 기관의 존재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경진 실장 :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보태면 좋긴 한데, 거기서 빠지면 안 되는 그룹이 개발자라고 생각해요. 실제 소비자에게 닿을 수 있는, 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협력의 주축이 돼야 한다고 봐요. 실리콘밸리를 보면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꺼내고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과 논의하면서 혁신이 만들어지잖아요. 그런 식으로, 저희도 접근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이 문제에 대해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확산시킨다면 공회전 가능성이 좀더 낮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요. 저희의 경우 아까 말씀드린 사내 접근성 공유회를 주축으로 해서, 접근성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내 전문가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형태로 점점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당사자성을 가진 사람의 게임 개발이라는 게 더 늘어나는 게 최적이겠죠. 그런데 장애를 가진 사람이 게임 개발을 하는 것 또한 그것도 일종의 학습 루트가 필요한 과정인데, 거기에 접근하는 것만 해도 사실은 지금 문제잖아요. 장애가 있지만 게임 개발을 하고 싶고 뭔가를 배우고 싶은데, 거기서만 나올 수 있는 접근성의 문제도 저는 클 거라고 생각해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당사자성이 있는 개발자들이 더 많아지는 게 저희가 보고 싶은 그림이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게임 접근성 테스터라는 직무 타이틀을 만들었지만, 이 일을 하다가 기획을 하고 싶거나 코딩을 배워서 개발 직무를 하고 싶다면 할 수 있게끔 지원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장애에 구애 없이 모두가 성장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그간 한 번도 협업하지 않았던 유형의 사람들과 협업이 늘어나게 되고 이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어요.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오버랩 되어야 다름이 교차하는 시점에서 혁신이라는 게 일어나고 문제가 발견이 되거든요. 그 교차점까지 데려다 주는 게 저희의 역할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자꾸 제가 초회사적인 기구의 필요성을 생각하는 게 그 지점이거든요. 결국 개발자 양성을 어떤 특정 회사만이 해결할 문제는 아닌데 그거를 (기업) 밖에서 누가 추진할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좀 들어서요. 예를 들어 각종 게임 교육 기관들이 있는데 거기에 일정 수준의 장애인 TO를 만든다거나, 아니면 교육 환경 분야에서 애초에 접근성 문제가 해결된 개발 환경을 구축하고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등의 방안은 제가 알기로는 아직 그렇게 준비가 안 된 걸로 알고 있어서요.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이 문제의 판을 좀 더 키우려면 협의체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경진 실장 : 그것도 이 토양을 만드는 데 한 몫할 수 있겠죠. 저희는 사실 그래서 접근성 문제에 그간 관심이 없었는데 듣고 보니 필요하더라, 그러고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것이지만 이거더라, 하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도록 노력하는게 목표입니다. 접근성 측면에서 한번 더 고민을 해봐야 되겠다라는 인식이 생기고, 개발 미팅에서도 이 언어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나와주겠죠. 그리고 사실 한국에서는 이 (접근성 문제를 수용하는) 속도가 어떻게 보면 되게 빠를 거라고도 생각하는데요, (해외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를) 따라잡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수한 점이 있으니까 시동만 걸리면 우리가 정말 잘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매번 실장님 하시는 거 보고 뿌듯한 것도 있고, 한편으론 이걸 하면서 얼마나 고생이실까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 중의 한 부분이 다양성 부분에 있어요. '접근성'하고 '다양성'은 또 조금 온도가 다르거든요. 다양성을 다루는 데 있어서 한국의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에 대해서 해주실 말씀이 있으세요? 이경진 실장: 네, 접근성과 다양성은 많이 다르죠. 우선, 접근성에 비해 다양성을 해석하는 관점은 다양합니다. 그래서 일단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해서 매우 존중하고, 다양한 해석은 본인의 경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결정한다고 봐요. 사실 어려운 얘기긴 한데, 너무 사상적인 내용이 주입이 되어서 실패한 게임들이 있잖아요. 게임이 재미가 본질이여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약한데 개연성이 부족한 채로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넣으면 이슈로 번지는 케이스가 많았어요. 그래서 다양성과 게임의 성공여부는 연관성은 있지만 인과성으로 보긴 어려워요.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요. 거기서 좀 더 그 재미라는 요소를 한 유형으로 환원하지 말고, 즉 주류 플레이어들에게만 집중하지 말고,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있다는 거를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다양성을 다룰 때에는 글로벌 협업이든 당사자 협업이든 당사자성이 있는 사람들, 전문가들이랑 직접 협업을 하는 게 되게 중요하고 이게 약했을 때는 역효과가 있다고 봐요. 이경혁 편집장: 저희 GG에도 가끔 캐나다 연구자들이 기고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에 <스마일게이트> 하면 뭐가 떠오르냐 물어보니 보통 소위 말하는 'K-게임'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현재 서비스되는 게임들이 지금 로컬라이제이션이 얼마나 되고 있는지의 문제도 저는 산업적 의미에서의 다양성 문제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 접근성과 다양성 작업을 하시면서 사실 그런 부분에서 좀 실무적인 문제들도 많이 보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경진 실장: 일단 게임을 만들고 원 빌드로 글로벌하게 배포하면 효율성 측면에서 좋긴 해요. 대부분은 유니버셜하게 통용되긴 하지만 지역별로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요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저희 책에 담기도 했고, 그래서 그렇게 특정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있는 요소들은 꼭 로컬라이제이션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피해야 할 것도 있지만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서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는 부분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선호하고 공감하는 요소를 활용하는 거죠. 이걸 잘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검증하는 절차가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 점에서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있는 회사 같은 경우 굉장히 유리하죠. 예를 들어 게임에서 일본 캐릭터를 묘사한다면 일본 오피스에 있는 동료들한테 의견을 구하면 되고, 한국 캐릭터를 구현한다면 한국에 연결해서 그 자원을 활용하면 되니까. 국내 인력 중심으로 운영하는 회사 같은 경우에 글로벌한 다양성 협업을 위한 내부 자원의 활용 면에서 글로벌 회사에 비해서 불리할 수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제부터가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는데요, 사실 지역에 대한 다양성은 쉽지만 오히려 젠더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얘기는 좀 해봐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젠더 문제에 대한 내외부의 반응은 어떤가요? 이경진 실장: 직접적으로 그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분쟁이나 토론이 나오는 등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어요. 지금에 와서는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게, 다양성과 관련된 담론과 언어들을 얘기했을 때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분명히 극단적으로 싫어하거나 고개를 젓는 사람들도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양 극단을 제가 보는 것은 다양성 문제에 있어 어느 정도의 밸런스를 조정해야 되는지를 배우는 데 굉장히 큰 학습이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이것도 결국 스펙트럼의 문제라 할 수 있겠는데, 이런 반응이 양쪽에서 동시에 나오는 상황이었다는 거죠. 이경진 실장: 그렇지만 저는 정말 극단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서로에 대해서 더 알아보는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걸 좀 느꼈거든요. 사실 우리가 단순하게 구체성이 없이 서로 싫어하는 게 많았었기 때문에 한번 얘기를 해보자. 뭐가 싫으냐 이게 싫다. 그럼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이 따져보면서 얘기를 해보니까 대화가 되더라는 거죠.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서 저는 균형을 잡는 게 굉장히 어렵지만 되게 필요하고 노력을 해야 되는 부분이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이경혁 편집장: 그게 근데 너무 힘들잖아요. 모든 일 중에 제일 힘든 게 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심지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한다 해도 그 결과가 이렇게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닌 거라고 생각을 해서요. 이경진 실장: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저와 생각이 많이 다른 게이머들을 만날 때 무서웠지만, 그렇기 때문에 많이 만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얘기를 해봤어요. 실제로 만나니 너무 흥미로운 대화를 했던 기억이 있고요,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교차점을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구나. 그리고 웬만하면 좀더 실질적인 것을 가지고 얘기를 하려고 해요. 단순히 떠도는 관념적인 것들에서 벗어나서 뭐라도 책이라도 하나 만들고 게임이라도 하나 만들고, 실체가 있는 걸로 만들어서 대화를 하려고 하죠. 제 경우 예전에 일했던 산업하고도 환경이 다르다 보니 되게 조심하고 한마디라도 더 물어보게 되고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그런 상황을 보니 어떻게든 더 많은 게임사들이 이 얘기를 같이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사실 또 게이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보니, 남들이 게이머를 획일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또 기분이 나빴던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게이머들도 (다양성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 있는 거고, 사실 저는 이 다양성 얘기가 게이머의 다양성 문제로도 갈 수밖에 없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이경진 실장: 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지금 말씀해 주셨어요. 이런 사람도 게이머고 저런 사람도 게이머고,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대중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에버랜드에서도 ‘게임문화축제’라고 해서 게임 IP를 가지고 행사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게임이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가 되어서 놀이공원에 아이들하고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게이머라고 했을 때도 게이머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이니까 할 수 있는 다양성이 오히려 더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영화가 못하는 다양성이 있을 거고, 근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하면 게임사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 다양성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게임 디자인의 굉장히 중요한 목표가 아닐까 싶고. 그래서 저는 다양성을 윤리로 보지 않으려 합니다. 이경진 실장: 맞아요. 규범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봐요. 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다양성을 얘기했을 때 ‘이거 PC 주입 아니야’라고 리액션이 나오는 사람이 적어지는 것(웃음). 나중에는 다양성의 가치는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발더스 게이트 3>을 보면 자유도가 엄청 높잖아요. 처음 설정 단계부터 민감한 부위에 대한 노출 여부, 외형에 대한 다양성 및 접근성에 대한 옵션들이 고도화 되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원하는 취향의 폭을 최대한으로 구현을 해놨는데 게임에 이런 자유도가 있어서 좋다라는 평이 더 많았거든요. 다양성 이슈에서는 사실 그런 방향을 좀 더 추구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공감을 일으키는 아이템을 구매하는 욕구가 다 다르듯이, 게임 내 디자인적 요소들도 다양하게 표현하는 거죠.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을 연결 시키면, 기업에서도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서 성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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