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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80개 검색됨
- 코스믹 호러에 떨어진 인터페이스
<에일리언 2>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테크 덕후인 제임스 카메론의 ‘진심’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는 점을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단적인 예로, 첫 시퀀스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캐릭터는 인간도 에일리언도 안드로이드도 아니다. 리플리가 잠들어 있는 우주선 문을 레이저로 깔끔하게 절삭한 뒤에 재빨리 퇴장하는 산업용 로봇 A와 곧바로 이어서 우주선 내부를 스캔하는 산업용 로봇 B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 Back 31 GG Vol. 26. 8. 10. Tags: 데드 스페이스, 게임 인터페이스, 다이제틱 UI, 코스믹 호러, 에일리언 2, AI 에이전트, Dead Space, Diegetic UI, Cosmic Horror, AI Agents, LLM Hallucination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 [논문 세미나]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이브 온라인(Eve Online)〉은 현재 ‘펄어비스’가 인수한 아이슬란드의 게임 제작사인 ‘CCP 게임즈(CCP Games)’가 2003년 출시한 SF 샌드박스 MMORPG이다. 가상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브 온라인〉은 오픈 월드 시스템을 통해 광활한 맵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유저의 다양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RPG이지만 이 게임에는 캐릭터의 직업이 없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이브온라인, 논문, 패러텍스트, 에미텍스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제 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모전의 당선작과 수상자를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 Back 25 GG Vol. 25. 9. 22. Tags: 게임비평공모전, 공모전, 수상작발표, 공지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와 Player in Environment(PiE), '우연한 아름다움의 섬광'을 찾아서
윌 라이트의 발언은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출발점을 제공한다. 이 장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통적인 비디오 게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승리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클리어해야 할 최종 보스도, 달성해야 할 명확한 목표도 부여받지 않는다. 대신 플레이어는 스스로 플레이의 명분과 이유를 만들어내야 한다.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Jae Lee Researcher at the K-Culture & Story Contents Research Institute, Kyung Hee University. Researches trends and policy in the content and IT industries, and works as a critic across the content field broadly. Has contributed to projects including "A Survey and Analysis of AI and Digital Policy Trends in Major Countries" (National Information Society Agency), "A Survey and Analysis of Digital Security Trends" (Korea Internet & Security Agency), and "Global Game Industry Trends"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Began working as a critic after winning the Dong-A Ilbo Spring Literary Contest in film criticism, the Korea Manhwa Contents Agency's New Critic Award in comics criticism, and the Game Generation Criticism Award.
- [논문세미나] From geek masculinity to Gamergate: The technological rationality of online abuse
이 논문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자행되는 사이버 폭력의 배경을 밝히기 위해 우선 기술 또는 게임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오타쿠 남성성이 있음을 짚어낸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별점·평점이라는 표면
별점의 역사를 짧게 훑어보자. 최초의 별점은 1820년경 영국의 마리아나 스타크가 펴낸 『유럽대륙 여행가이드』라 알려져 있고, 본격적으로 별점이 대중화된 것은 1920년대 시작된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을 통해서다.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ngsoo Park Majored in art studies as an undergraduate and is currently studying media cultural studi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Writes primarily about film, while keeping a curious eye on visual culture broadly—art, games, and broadcasting among them. Also a film critic, host of the podcast Café Critique, and an organizer of community film screenings.
-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을까: 터치스크린 시대의 숙련도
매체라는 말은 A와 B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텔레비전과 영화, 스마트폰을 우리가 매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들이 각각 생각과 생각, 창작자와 수용자,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게임도 같은 의미에서 매체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로블록스〉의 상상된 즐거움
로블록스는 조악함으로 가득하다. 게임에 보이는 텍스트의 한글 번역은 개발자가 어떤 번역기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질만큼 기괴하고 오류가 많다. 글로벌 게임의 필수 업무인 현지화 작업은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게임의 3D디자인은 대체로 투박한 로우 폴리곤이다. 그 오브젝트를 감싸는 텍스쳐는 단색이거나 대충 그려진 수준이 허다하다. 외형만 그러한가. 캐릭터가 걸어다니는 애니메이션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캐릭터의 몸은 게임 도중에 이유없이 뒤틀리고, 기물 사이에 쉽게 낀다.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 버그로 리포트되는 것들이 로블록스에서는 일상적이다. 게임이 추구하는 주제들 또한 무겁지 않고 가볍다. 게임 일부를 예로 들면, 보모가 되어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좀비가 나타나는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무서운 돼지 귀신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자 전부다. < Back 〈로블록스〉의 상상된 즐거움 01 GG Vol. 21. 6. 10. “조식은 6AM 날카로운 시간에 제공되며 수업은 오늘 7에 시작합니다.” 로블록스는 조악함으로 가득하다. 게임에 보이는 텍스트의 한글 번역은 개발자가 어떤 번역기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질만큼 기괴하고 오류가 많다. 글로벌 게임의 필수 업무인 현지화 작업은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게임의 3D디자인은 대체로 투박한 로우 폴리곤이다. 그 오브젝트를 감싸는 텍스쳐는 단색이거나 대충 그려진 수준이 허다하다. 외형만 그러한가. 캐릭터가 걸어다니는 애니메이션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캐릭터의 몸은 게임 도중에 이유없이 뒤틀리고, 기물 사이에 쉽게 낀다.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 버그로 리포트되는 것들이 로블록스에서는 일상적이다. 게임이 추구하는 주제들 또한 무겁지 않고 가볍다. 게임 일부를 예로 들면, 보모가 되어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좀비가 나타나는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무서운 돼지 귀신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자 전부다. 그런데 이렇게 허술해보이는 게임에 매달 전세계 1억 5천 명의 유저가 접속한다 [1] . 그 중 4,200만명은 로블록스에 매일 접속한다 . 이는 리그오브레전드보다 높은 수치다. 로블록스는 그야말로 전세계를 휘어잡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은 아마도 전세계 1억 5천명 안에 속하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이름만 들어만봤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나, 해본 적이 있더라도 진지하게 즐겨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플레이하는가? 로블록스의 주 유저층은 명확하게 미성년층이다. 그중에서도 조금 더 어린 축에 속하는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인 만 12세 이하가 전체 유저의 절반이 넘는다(54%) [2] . 만약 당신이 옆에 있는 유저와 팀플레이를 한다면, 상대방은 높은 확률로 초등학생일 것이다. 로블록스는 어른을 위한 게임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당연히 게임을 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로블록스라는 플랫폼에 접속하여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게임을 플레이한다. 로블록스 계정을 생성하면 유저는 하나의 아바타를 배정받는다. 유저는 고유한 아바타를 매개로 하여 수만 가지의 게임에 입장한다. 각각의 세계에는 주어진 상황과 룰이 있다. 예를 들면 유저는 〈Twilight Daycare〉를 켜서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기가 되었다가, 머지않아 〈Murder Mystery 2〉게임으로 바꾸어 살인마가 되고, 질릴 때 쯤에 밖으로 나가 〈Tropical Resort Tycoon〉에 접속해 호화 리조트 사장님이 될 수 있다. 로블록스는 유저가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로블록스 스튜디오’라는 개발 도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유저들은 직접 제작한 게임을 게시할 수 있다. 개발자들의 나이 또한 어린 편이다 [3] . 로블록스 내에 올려진 게임의 개수는 1,800만개 [4] 에 이른다. 전세계 애플의 앱 스토어에서 유통되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의 수가 450만개인 것과 비교했을 때 매우 큰 숫자이지 않은가. 그중 로블록스 유저가 가장 많이 접속하는 월드는 〈입양하세요! Adopt Me!〉 [5] 다. 이 게임은 누적 플레이수 200억 회를 기록하고 있다. * 로블록스의 〈입양하세요Adopt me〉 로그인을 하고 로블록스 메인화면으로 가보자. 화면에는 〈입양하세요〉로 시작하는 인기 게임 순위가 있고, 그 밑에 “나를 위한 추천 체험”, “친구가 방문 중인 체험”과 같이 나와 비슷한 취향의 게임들을 알고리즘에 맞게 보여주는 카테고리가 등장한다. 유저는 로블록스라는 하나의 플랫폼에 접속한 뒤 원하는 게임을 선택하여 입장한다. 어떤 게임을 할지 정하기 귀찮다면 현재 가장 인기있는 것을 플레이해도 되고, 친구가 하고 있는 게임을 따라서 해도 되고, 아니면 원하는 주제의 검색어를 넣어 게임을 찾아도 된다. 어찌 보면 우리가 유튜브에서 영상을 선택하고 시청하는 방식과도 비슷하다. 실시간 인기 동영상 순위가 있고, 나의 피드에는 평소 시청 취향에 맞게, 또는 자신과 사회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보는 영상이 추천되는 것처럼 말이다. 잠깐, 앞의 문단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잘 읽어 보면 필자는 문장에서 같은 대상을 지시하더라도 다른 단어를 사용하였다. 게임(game), 체험(experience), 세계(world).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개별적인 게임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하나가 아니다. 이들은 서로 혼용되며 의미의 경계를 두지 않는다. 유저들은 “무슨 게임 할래?”라고 대화하고, 게임화면으로 돌아가는 버튼에는 “체험 계속하기”라고 쓰여있으며, 게임 개발 도구는 “나만의 월드를 제작해보세요!”라고 자신을 홍보한다. 그동안 게임 문화는 게임, 체험, 세계를 구분해왔다. 특정 역할을 체험하는 부류를 시뮬레이션 장르로, 역할을 설정하는 장르를 RPG로, 가상현실을 탐험하는 것을 어드벤처라고 불러왔다. 로블록스의 용어 사용법은 이러한 게임에 대한 규정들을 흩뜨려놓는다. 앞서 언급한 가장 인기있는 〈입양하세요!〉를 예를 들어보자. 유저는 게임에 진입하자마자 부모 또는 아이가 될지 역할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토대로 마을에서 활동하며 퀘스트를 하거나 아이템을 수집하고, 펫을 키우거나 가족을 만들어 다른 유저와 교류한다.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하는 일은 부모나 아이가 되어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자 그 체험 규칙이 허용되는 세계에 입장하는 것이다. 로블록스의 유명 FPS 게임 중 하나인 〈아스널 Arsenal〉은 누적 30억 회의 플레이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게임은 FPS임과 동시에 적과의 긴박한 전투가 펼쳐지는 가상세계이자, 전투병이 되어보는 체험이기도 하다. 또 다른 게임 〈로열 하이 Royale High〉에서는 접속하자마자 호화스러운 궁전이 펼쳐진다. 그곳 나름의 아이템 수집과 퀘스트를 주지만 유저는 굳이 따르지 않아도 무방하며 시스템적으로 강요되지 않는다. 공간을 배회하면서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스타일을 꾸미거나, 밥을 먹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화려한 옷을 입고 상류층처럼 살아보기. 유저가 〈로열 하이〉에 접속한 순간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로블록스는 ‘체험하는 게임’, ‘게임 세계’와 같은 언어 간의 수식관계를 해체하고, 모두를 동격에 놓는다. 체험하는 것,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 곧 게임이 된다. * 로블록스 〈로얄 하이〉 게임 내부로 잠시 들어와보자. 로블록스에서 주된 대화법은 사물과의 충돌(collision)이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앞에 가발 아이템이 놓여있다고 가정했을 때, 캐릭터가 가발을 쓰는 방법은 가발과 몸의 부딪힘이다. 그러면 곧바로 머리에 씌워진다. 많은 게임들은 유료 재화인 로벅스(Robux) [6] 로 아이템을 구매하는 부분 유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아이템을 구입하고 싶은가? ‘구매’라고 쓰여있는 바닥 타일 위에 발을 올리면 된다. 그러면 결제창이 뜰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물체와 부딪혀라. 로블록스 세계에서 아바타와 오브젝트의 마찰은 주요한 소통방식이다. 이미 예상되어지듯, 그러다보면 엄한 물체와 부딪혀 원치않는 입력이 발생할 것이다. 옆에 놓인 물체에 스쳤을 뿐인데 “구매하시겠습니까?”라는 알림창이 대문짝만하게 뜨는 일은 매우 성가시다. 이쯤 되면 게임들이 왜 이렇게 일차원적인 방법으로 게임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화면에 버튼을 띄워 클릭하게 하거나 키보드 특정 키를 누르게하면 더욱 명확했을텐데 말이다. 그 이유는 로블록스가 게임으로 진입하는 유저의 물리적 조건을 차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로블록스에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지대가 교차하고 있다. 이곳에서 유저들은 피씨, 모바일 그리고 태블릿 그 어떤 기계를 사용하든간에 같은 서버에서 만나 게임을 즐긴다. 충돌은 가장 심플한 플랫폼 통합적 작동 방식이며, 더 많은 유저를 한 공간에 모을 수 있는 장치다. 마우스나 키보드와 같은 별도의 장치는 유저들을 나눌 뿐이다. 이 공간은 서로 다른 기계에서 공통으로 게임이 펼쳐질 수 있는 방식을 지향한다. 로블록스를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로블록스는 ‘플랫폼’이다. 게임을 매개하는 거대한 땅으로 보는 것이 조금 더 명확할 것이다. 또는 게임으로 들어가는 포털(portal)로 볼 수도 있다. 포털은 곧 상상된 즐거움을 의미한다. 그 곳에 접속하면 무궁무진한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곳에 접속하면 언제, 어디서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전세계의 어린 유저들이 매일 매일 방문하여 이곳을 여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이 바로 로블록스의 존재 이유다. [1] Statista, 2021년 5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192573/daily-active-users-global-roblox/ [2] Statista, 2020년 9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190869/roblox-games-users-global-distribution-age/ [3] 개발자 Alex Balfanz는 로블록스를 즐겨하던 유저로, 2017년 만 18세의 나이로 유명 게임 〈Jailbreak〉를 제작했다. 출시 후 3주 만에 누적 플레이수 4,400만회를 달성한 이 게임에서 얻은 수익으로 그는 이미 4년치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4] 2020년 11월 기준. [5] Statista, 2021년 3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220905/roblox-most-visited-games/ [6] 로블록스에서 유저가 현금으로 구입하는 유료 통화.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통합 구매(충전)하여 개별 게임 내에서 사용한다. 개별 게임 내에서 발생한 로벅스 수익은 로블록스와 게임 개발자가 3:7의 비율로 배분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Why is the Korean Console Market Size so Small? - A Retrospective of Korean Console Games
I have a vague memory of a time when I was in upper elementary school, sometime in the early 90's or so, but I can’t recall the exact year. I had gotten a "gaming console". I think I won it in a magazine giveaway. Given the age, I can assume what model it was, but I can only make an assumption. I also do not recall the exact model. < Back Why is the Korean Console Market Size so Small? - A Retrospective of Korean Console Games 11 GG Vol. 23. 4.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match=id:58 I have a vague memory of a time when I was in upper elementary school, sometime in the early 90's or so, but I can’t recall the exact year. I had gotten a "gaming console". I think I won it in a magazine giveaway. Given the age, I can assume what model it was, but I can only make an assumption. I also do not recall the exact model. The reason my memory is so fuzzy is simple: I only played with that console a handful of times. The ROM packs had either a single collection of games or none at all, so the minigames on the internal ROM were all there was. The reason, of course, was my parents. I wasn't kept from playing it, but buying a new ROM pack was out of the question, and the very act of connecting it to the TV at home was frowned upon. I had no concept of what a cable was, or why there were so many wires, and I needed an adult to show me how to connect all the right wires, but my parents actively refused to take on that role. To play the console I had to go over to a friend's house, and while their parents would help me connect everything, I wouldn’t say that they looked comfortable doing it. With no games to play and nowhere to play them, the first game console of my life naturally disappeared into a closet and was completely forgotten. I imagine that the gamers who grew up in the '80s and '90s probably shared a similar experience. As a result, console games only make up a small percentage of the South Korean gaming market today. According to the 2020 White Paper on Korean Games, the percentage is 4.5%, but 1.4% of this is taken up by arcade games, which virtually barely remain in existence. This is a far cry from North America's 38.4%, Europe's 37.5%, and South America's 19.1%, as well as the 2022 global ratio of 25.2%. In Asia, console games accounted for a mere 8.7% of the market, in large part likely due to South Korea's small console market. PC and mobile games, on the other hand, account for 25.7% and 54.1% in Asia, respectively, a stark contrast to the rest of the world. * 2020 White Paper on Korean Games, p. 668 The reason for this can be traced back to its humble beginnings in the 80s and 90s. It's a sad story of a market that started small and never experienced the momentum of hegemony experienced by arcades and PC and mobile. Let's go back to those sad days for a moment. The first game console that was sold in South Korea was the Otron TV Sports. It was a console with built-in games, just like the American "Pong" console, and was initially priced at 29,500 won, and later reduced to 198,000 won. In comparison, in 1977, the average monthly salary of a worker was 69,000 won. It was a price that was far from market formation or popularization, so it didn’t mean much apart from the fact that it was the first of its kind. Due to the price, console gaming in Korea never really took off in the era of the family Pong and Atari, and in the '80s, Nintendo was brought to the forefront. However, the idea of Nintendo being imported into South Korea, a country with strong anti-Japanese sentiment at the time, was out of the question. Instead, PC games on the 8-bit MSX platform were imported in the early 80s as a substitute. Even then, they were a luxury, and as of 1982, less than a thousand units were imported into Korea. By the late 80s, South Korea had succeeded in hosting the Asian Games and the Olympics, and the pride from those achievements were through the roof. Naturally, the anti-Japanese sentiment had subsided somewhat, and with Daewoo Electronics releasing its own console called the Zemmix in 1985, much of the unfamiliarity with the new culture that was gaming had dissipated. Still, public sentiment made it difficult for Japanese companies to set up local subsidiaries, so domestic corporations imported consoles under different names. Only then did relevant gaming consoles begin emerging. Samsung imported and marketed the SEGA Master System under the name “Game Boy” which became a hit. Hyundai then imported Nintendo's NES, the North American version of the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and released it as the “Hyundai Comboy”. Thus, the pioneering of the Zemmix, Game Boy, and Combo formed the market. However, this market was not large-scale enough to be called a mass market. While it was a huge success, and was well-known enough for the masses to be aware of its existence, it was a market centered around enthusiasts. This much was evident based on the individual price of each console. * Daewoo’s Zemmix advertisement, priced at 70,000 KRW. (approx. 53 USD today) * Samsung’s Game Boy advertisement, priced at 119,000 KRW. (approx. 91 USD today) * Hyundai’s Comboy advertisement, priced at 139,000 KRW. (approx. 106 USD today) * The prices of console game titles in the latter half of 1992. Therefore, the cost of console games also had to be accounted for on top of the cost of the gaming console itself. With the year 1990 as the standard, these were times when the starting salaries for secondary school teachers and businessmen for large companies were less than 600,000 won. The wealth gap grew from this point on, making it a bit difficult to use 1.5 million won as the benchmark for the average monthly wage of the working class. Nevertheless, unlike with the Otron from a decade earlier, these prices were ‘a bit overwhelming but still manageable.’ In addition, the hegemony of the gaming market was slowly but surely shifting from arcades to PCs. The PC was actually a competitor to the gaming console, despite costing anywhere from 1 million KRW up to 2 million KRW at the time. In fact, they were actually holding their own weight in the competition against gaming consoles priced under 200,000 won. PCs held the advantage with the context that they were ‘preparing for the technological future’ and could be used in various ways for ‘education.’ Unlike the multifunctional PCs, consoles only offered the gaming feature, rendering even the relatively lower cost to be pointless. Furthermore, the biggest difference between consoles and PCs was the space that they took up. In general, a console belonged in the living room, and a PC in the bedroom. Gaming consoles require to be connected to a TV. The TV is a family-shared media, and so belongs in the living room. Usage of the living room TV was determined by the parents, so the children had to fight for the right to play their console games in the living room. In addition, students of that time had to study late in the night, and thus were often unable to spend time in the living room at all. On the off chance that they could, it was difficult to negotiate for TV time in the living room when their parents had just gotten home from work. But with a PC, the space becomes the room, and you don't have to contend with the usage of the living room. Once you were done studying at night, or if your parents were watching TV, you could just head into your own room. The fact that copying and distributing game software was much easier than copying console ROM packs probably also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spread of PC gaming. In the narrative of the transition from playing games in arcades to playing games at home, North America and Europe were different. The distribution rate of the PC was much faster than it was in Korea, so the perception that PCs were multifunctional rather than just used for gaming was already widespread. Essentially, the PC was already a part of the parents’ generation. Their children did not have after-school study programs nor late-night studying, and the parents already had the PC as one of their leisurely options, meaning they could afford to cede some of the power of the living room to their children. Plus, parents became cognizant of the role that consoles played as caretakers. They figured, if they gathered a few of the neighborhood kids in the living room, ordered them a pizza and gave them the game console, they could sneak out for a night at the movies downtown. Korean parents, on the other hand, had their grandparents, other parents, or late-night studying to be the caretaker, and so had no reason to give console games a glance. However, this is less the case in Europe than in North America, which can be explained by the average living space. In North America, where the residential space is much larger, having a console in the living room was no problem; but in Europe, you had to consider it first before making that change. Eastern Europe, in particular, is a former communist region with a high threshold for importing game consoles, a product of the capitalist camp. It also had a smaller living space than the rest of Europe did, which is why it has the lowest console market share. The only exception to this interpretation is the United Kingdom, where English is the native language and so is less mentally distant in regard to American culture. * While from 2014, this data helps us gather that the average residential space in North America and Australia is greater than that of Europe (especially in Russia, the eastern part of Europe.) In 1990, South Korea had an average of 62.94 square feet of living space per household, similar to Denmark in this graph, but for the cultural reasons mentioned above, they did not take advantage of this space. Therefore, we can say that North America and Western Europe saw a shift in gaming hegemony from arcades to consoles to PCs, while Korea and Eastern Europe went straight from arcades to PCs. Given the status of gaming arcades in these countries, we can summarize the narrative in terms of space. In North America and Western Europe, it's downtown to the living room, then the living room to the personal room. In Korea and Eastern Europe, it’s straight from neighborhoods to personal rooms. The narrative of these spaces is now shifting to being ‘directly in your hands’ with the concept of ‘mobile’ platforms, but the context of these spaces goes beyond that. Whether it's a glitzy downtown gaming center in North America and Europe or a dingy neighborhood arcade in Korea, arcades are public spaces built for gaming, so they naturally build a sense of community. Think of all the times you went to your local arcade to watch your friends play and play against other players from other neighborhoods. We could describe arcades as being "socially-friendly gaming spaces". When this gaming space transitions into the private space of the living room, the social aspect fades, but it doesn't disappear. Someone can watch you play games, you can converse with someone while playing, and/or you can play together, all in the living room. Console gaming is a solitary medium, but it's also a great offline social medium. When the gaming space shifted to the personal room, the social aspect became much less important. The room is a strictly private space, which is why it's possible for Korean parents to have their kids playing PC games while the parents can watch TV. The word PC stands for personal computer, after all. So, before the advent of online gaming, gaming in Korea was a one-person media, back when "playing games together" meant each person held a joystick/pad at a separate arcade/console cabinet. You could describe this as both offline anti-socialization + online socialization. The antisocial nature of PC gaming has been brought down to console levels due to the proliferation of the internet. In the case of internet cafes, it was like reverting the room’s space back to an arcade, and the “arcadeification” of StarCraft was an especially huge historical pivot in Korea. It was socially offline when you went to play StarCraft at an internet cafe with a group of friends, but it could also be done online as well. In other words, Korea’s internet cafe culture has diluted the offline, antisocial nature of PC games, but has also developed the social, online nature due to the expansion of infrastructure, and the result is no more than a reinforcement: You do not have to meet people in-person to play MMORPGs together. And so, society’s perception of games changes. In North America and Europe, where the market share is close to 40%, the offline-social view of gaming is still somewhat alive, such as when you invite friends over to play Halo. The fact that one of the slang terms for video games in American English is “nintendo games” is a testament to Nintendo's historical influence, but it also indirectly demonstrates that the social aspect of consoles is deeply woven into the perception of gaming in English-speaking societies. In Korea, on the other hand, after exiting the arcade, you go straight to your room. The perception of offline socialization is almost non-existent. Two characters that illustrate a stark difference are Thor and Koo Kyung. In the movie, Avengers: Endgame, Thor is presented as a gaming addict who plays Fortnite together in the living room with his friends. On the other hand, Koo Kyung, the main character in the Korean drama Inspector Koo, is a gaming addict, but plays MMORPGs alone in her own home. She interacts with her guildmates through the game, but is a reclusive loner otherwise in the world outside. The difference between Thor’s living room and Fortnite, and Koo Kyung’s own room and MMO role-playing game, is the distinct characteristic of Korean gaming – the lack of consoles. * Thor has become disconnected from society, but he still plays his games together with his friends. This can be seen as a remnant of the faintly offline social nature of consoles. * Koo Kyung has also become distanced from society, but unlike Thor, only she exists in her offline space. This can be seen as society’s perception of online, socially-oriented PC games. This historical context, or difference in experience, is where the difference between the social perception from outside of gaming and the gaming that consumers experience looking out from the inside comes from. The number of Korean console games being extremely low does not simply and one-dimensionally mean that fewer games are made for this platform, but also that fewer games that can be used for offline socialization are produced and consumed. Another way to put it is that games made or distributed in South Korea are made with online socialization as the primary, or even sole assumption. And now, we approach the year of 2022. The hegemony of gaming has progressed in the order of arcade, console, then PC, and is currently transitioning into mobile platforms. The offline space for mobile is incredibly narrow because that space is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it's more offline-antisocial than PCs are. Looking at this transition, you can imagine a graph where offline socialization continues to fade and online socialization grows in importance. So, are the weight of the times shifting to be completely online-social? This is a memory from a few years ago. One of my exes was hooked on the augmented reality game, Pokémon GO. They had to meet up with people in order to capture and trade for more Pokémon, and would even occasionally meet up with people from the community near their house to move in groups together around the neighborhood. This was the point where online socialization became offline socialization. Despite having the “look and feel” of a traditional online game, Pokémon GO was bringing people together to play, leaving plenty of room for interpretation as a mobile arcade or mobile internet cafe on the streets. Looking back, I remember seeing celebrities traveling from city to city to play Pokémon GO, with fans chasing them along the way. This was one of the marketing points of the Nintendo Switch. It's a console that's both stationary and portable, so two players who meet offline can play together by connecting their consoles. This proves that the mobile platform actually hides an aspect of offline-socialization. It's a paradox that makes it the first platform to facilitate offline contact because it's portable. It's phenomenally convenient compared to lugging a game console or PC to a friend's house to play together offline. Throw in the possibility of augmented reality (AR) games, and the social aspect of mobile gaming has the potential to guarantee a solid place in society. But can the offline-social aspect of Korean games, which has been missing since the arcade era due to the absence of console games, make a dramatic comeback? Can something beyond the social activities that Pokemon GO fostered be created? That answer lies in the imagination of developers and how users utilize it.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Translator) Esther Yum
-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 Back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01 GG Vol. 21. 6. 10.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잇 테이크 투>는 그 특유의 보편성이 빛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보편적 플레이의 집합체’ 라고 할 수 있다. 어느하나 완전히 새롭거나 원전을 찾기 어렵게 변용된 것이 없으며, 새로움 보다는 잘 편집되고 조율된 플레이의 연결이 빛이 나는 게임이다. 마치 순서대로 차려지는 가정식 백반 같다고나 할까. 이 게임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은 역시 다채로운 레거시 게임 플레이의 끝없는 연결이다. 이 게임은 2인 협동 게임이면서도, 기존 게임들의 장르적 메커니즘을 하나씩 따와 채워넣었다. 전체적으로는 2인 협동 퍼즐이라는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TPS, 비행 슈팅, 대전 격투, 리듬 액션, 플랫포머 등 수많은 클래식 메커니즘을 도구로 삼았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지만, 이 기존의 플레이 메카닉을 자유자재로 섞어넣은 탁월한 감각이 돋보인다. 이는 또한 게임의 한계점을 교묘히 가리는 효과도 낳는데, 앞서 말했듯 이 게임의 플레이 메카닉은 대부분 이미 있었던 클래식한 요소이기 때문에 반복하면서 피로를 느끼거나 자루함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이 게임은 그런 시기가 오기 직전에 새로운 플레이 메카닉으로 갈아치운다. 즉 잘 편집된 게임 플레이의 나열은, 익숙함을 신선함으로 전환하는 역설적 효과를 가져다 준다. 즉, 이 게임의 플레이는 계속해서 ‘적응->숙련->응용’ 의 반복이다. 보통 하나의 핵심 메카닉을 추구하는 게임은 해당 플레이 메카닉에 플레이어가 충분히 익숙해지면 플레이 하기 위한 문턱, 허들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한다. ‘레벨’ 로 대표되는 RPG적 성장 요소가 대표적이다. 이는 닌텐도 스위치로 나온 최근작 <페이퍼 마리오 종이접기 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이 게임은 기존의 게이머들, 특히 대중 게이머들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질만 하지만, <잇 테이크 투>는 반대로 플레이에 걸림돌이 되는 특징 또한 가지고 있다. 플레이 자체에 이런 저런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빛나게 하는 보편성, 하지만 반대로 그 보편성을 가로막는 플레이의 조건’ 의 대조는 다소 아이러니하다. <잇 테이크 투>를 플레이하는 와중에 든 생각은 이 게임이 왜 대단하고, 얼마나 천재적인가 하는 것이었지만, 플레이를 마무리짓고 나서 든 생각은 ‘이렇게 훌륭한데도 왜 국내에서는 폭넓게 플레이되고, 널리 알려지지 못했나?’ 하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을 ‘플레이의 조건’ 에서 찾아보게 됐다. 지난해 직접 올해의 게임으로 뽑았던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이런 맥락의 논란을 몰고 다녔다. 즉, VR이라는 기기가 필요한 게임이 어떻게 올해의 게임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게임의 평가는 대중성 혹은 범용성을 꼭 포함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쉽게 반박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어찌되었건 플레이의 ‘조건’, 그것이 하드웨어이든, 아니면 플레이어가 갖춘 다른 어떤 여건이든 그 조건이 다소 높다면 과연 그 게임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남겼다. 비록 VR이라는 특수한 사례를 제쳐두고서라도, 모든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플레이 하기 위한 조건을 요구한다. 사소하게는 기기 스펙에서부터, 나아가서는 플레이어의 실력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몇몇 게임들은 특유의 게임 플레이나 감각적 요소를 이해하고 향유하기 위한 문화적 기반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 조건이 필수적일 수도, 그저 더해지면 좋은 요소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잇 테이크 투>는 다른 게임에 비해 이례적으로 그 요구 선이 독특하다. 이는 ‘카우치 코옵(Couch Co-Op)’ 이라는 특성과 제작자의 전작과 달리 ‘가족’ 을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카우치 코옵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카우치 코옵은 아직 가정 인터넷이 보급 되지 않은 2000년대 이전 가정용 콘솔 기기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로서, 콘솔 게이밍 기반이 200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한국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 콘솔 게이밍 기기는 네트워크 기능을 막 탑재하고 네트워크를 통한 코옵을 확장하였기에, 한국에서는 하나의 기기 앞에 여럿이 모여 분할 화면과 여러 개의 컨트롤러로 함께 플레이하는 문화가 흔치 않았던 것. 있더라도 <위닝 일레븐> 같은 스포츠 대결 게임 위주의 경험이 고작일 것이다. 한국에서 카우치 코옵과 가장 비슷한 문화를 찾아 보자면 한대의 PC로 다자가 한 게임을 공유하며 플레이하던 경험, 또는 오락실의 클래식 아케이드를 찾을 수 있다. 다행히도 21세기 들어 카우치 코옵을 중시하는 콘솔 게이밍 기기인 닌텐도의 Wii, 스위치 등이 저변을 넓히면서 오히려 한국에서는 Wii 방, 그리고 이후 닌텐도 스위치 커뮤니티를 통해 ‘추억의로서의 카우치 코옵’ 이라는 감각을 간접적으로 조립하여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즉, 한국인에게 ‘카우치 코옵’ 은 내가 스스로 겪고 자란 문화라기 보다는, 수입된 문화에 가깝다. 이 카우치 코옵의 감성은 <잇 테이크 투> 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카우치 코옵의 경험은 주로 청소년기에 형성되며, 일종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기재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경험이 청소년기에 부재한 한국 게이머들에게는 훨씬 덜 개인적으로 다가온다. 이와 더불어, 게이밍 문화에 아직 짙게 남아있는 남성 중심적 기조는 <잇 테이크 투> 를 온전하게 창작자의 주제의식 그대로 받아들여 체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아직까지도 한국, 그리고 세계에서 청년-청소년이 아닌 기성세대에게 게임은 남성의 문화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가 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게임이 2인 협동 게임일 뿐만 아니라 ‘자식을 가진 부부’ 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게임은 각각 이혼 위기를 맞이한 아내와 남편을 플레이하도록 한다. 또한 감정적으로 매우 풍부한 과정을 플레이에 담아두었다. 즉 대리체험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이 게임의 가장 이상적인 플레이어 구성은 역시 ‘부부’ 게이머가 함께 플레이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잇 테이크 투> 는 생각보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게이머 경력을 요구한다. 각종 기존 게임들의 레거시 플레이가 순간적으로 교체되고, 즉각적인 적응이 이 게임의 미덕이다. 비행 슈팅, 대전 격투, TPS 슈팅, 클래식 RPG 등 이 게임이 계속해서 변환하는 게임 메카닉은 코어 게이밍의 영역이며, 캐주얼 게임에 익숙한 게이머는 재미를 느끼기 전에 여러 자잘한 장벽으로 방해받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코어 게이머였던 여성을 찾기 힘든 현재 한국의 기혼 세대에게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가 또다른 분란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즉, 여성들이 게임을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레거시 게임에 대한 선험적인 경험이 필요한 이 게임에서 ‘코어 게이머로서의 경력’ 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것은 상당히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주변에서 부부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까지 현재 부모 세대(40대 이상)에게 게이밍이란 전적으로 남성의 문화, 또는 남성적 게임과 여성적 게임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는 인식, 그리고 행동 양식이 깊게 베어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훨씬 그 빈도가 높아보였다. 실제로 부부가 함께 플레이 했다는 감상, 후기의 절대적인 수가 해외가 더 높았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여성들도 어렸을 때부터 비디오 게임을 접하는 기회가 남성만큼이나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대를 불문하고 ‘여성 게이머’ 에 대한 멸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 불거진 특정 여성 스트리머의 <리그 오브 레전드> 챌린저 논란이 대표적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등 대중적 게이머층을 형성한 경쟁 게임을 중심으로 게이밍은 점점 더 보편적인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대부분의 코어 게이밍 문화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다. 그나마 닌텐도 스위치를 위시로 한 보다 대중적이고 보다 보편적인 게임들을 중심으로 점점 더 여성 코어 게이머 층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이 자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나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말하고 싶은 부분은 결국 그런 게이머 성별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우리 모두에게 불이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게이밍이 어떤 기본 교양, 소양으로 여겨지는 문화였다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카우치 코옵이라는 장벽에 가로 막히지도 않고, 또는 부부 사이에 좋은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로서 이 게임을 플레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카우치 코옵이라는 플레이 방식이 주는 노스탤지어, 그리고 ‘부부의 갈등 해소’ 라는 중심 사건이 플레이어에게 깊이 천착하는 감성은 역으로 한국의 게이머들에게는 거리감을 두게 만든다. 이 두가지가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임을 고려할 때, 게임의 완성도에 비하여 그에 상응하는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한 요인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잇 테이크 투>가 올해의 최고의 게임이 될만한 가장 강력한 후보라는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올해 상반기 출시작 중 이만큼 강렬한 게임 플레이를 보인 사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의는 순수하게 ‘게임 플레이’, 즉 직관적인 놀이로서의 재미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게임 플레이라는 핵심이 아닌 캐릭터의 외관, 이야기에 삽입된 전형적 요소, 마케팅 같은 외적 요인에 기댄 게임들에게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게임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논한 ‘플레이의 조건’ 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태초의 게임 ‘퐁’ 역시 2인이 아니면 플레이 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물론 어떤 한 문화의 시작점이 수십년이 지나도 절대적인 잣대로 남아있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론 꾸준히 요제프 파레스는 2인 플레이 게임을 만들어왔고, 때문에 전작과 동일한 플레이 저변의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잇 테이크 투>가 전작과 달리 널리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대중적 접근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다른 대중적 게임에 비해서는 후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전작에 비해서는 훨씬 진일보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우리가 자리잡은 게이밍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또는 그 변화가 충분히 급격하지 못하다면, 여기서 필요한 덕목은 폭넓은 이해의 관점이다. 협소한 사건 그 자체나 자신의 1차적 경험에만 의존한 해석이 아니라 좀더 광의에서의 이해, 근본적으로 그 감정이 내게는 어떤 식으로 치환될 수 있는지 찾아보는 수용의 자세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불완전 연소한 게임의 가치를 곱씹을 수 있다면 된게 아닐까. 아마 올해 내내, <잇 테이크 투>가 고평가를 받는데 있어서 이 플레이의 조건은 내내 발목을 붙잡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이 게임은 카우치 코옵,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얻은 것이 더 많다고 보기 때문에 충분히 가치있는 시도였다고 평하겠다. 더불어, 게임을 평가할 때마다 하는 말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세상에는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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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플레이의 영화화에서 게임-보기의 영화화로
“치킨 조키!” 주인공 스티브가 외치자 영화관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팝콘을 집어 던진다.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2025)가 개봉한 미국 영화관의 풍경이다. 틱톡 등 숏폼 플랫폼을 타고 바이럴된 컬트적 현상은 지난해 예고편이 공개되자 거센 조롱이 뒤따랐던 것에서 출발한다. 스티브역의 잭 블랙은 게임 팬들이 생각하던 이미지와 큰 괴리가 있었고, CGI로 ‘실사화’된 마인크래프트 특유의 네모난 이미지가 언캐니 밸리를 자극했다. < Back 게임플레이의 영화화에서 게임-보기의 영화화로 24 GG Vol. 25. 6. 10. “치킨 조키!” 주인공 스티브가 외치자 영화관의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팝콘을 집어 던진다. 영화 <마인크래프트 무비>(2025)가 개봉한 미국 영화관의 풍경이다. 틱톡 등 숏폼 플랫폼을 타고 바이럴된 컬트적 현상은 지난해 예고편이 공개되자 거센 조롱이 뒤따랐던 것에서 출발한다. 스티브역의 잭 블랙은 게임 팬들이 생각하던 이미지와 큰 괴리가 있었고, CGI로 ‘실사화’된 마인크래프트 특유의 네모난 이미지가 언캐니 밸리를 자극했다. 2019년 <수퍼 소닉>(2020)의 예고편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어글리 소닉’의 모습에 충격받은 게임 팬들과 같은 상황이었달까. 소닉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마인크래프트 무비> 예고편은 정식 개봉 전부터 다양한 짤로 분해된 밈이되었다. 전혀 스티브 같지 않은 모습의 잭 블랙이 “나는 스티브야!”라고 말하거나, 컬트적 밈의 대상이 된 ‘치킨 조키’처럼 말이다. * <마인크래프트 무비>(2025) 속 ‘치킨 조키’ 어쩌면 이 현상은 원작 게임은 물론 영화 자체와도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관에서 소리 지르고 팝콘을 던지며 날뛰는 관객들은 단지 그 순간을 즐길 뿐, 영화의 나머지 장면을 즐기지 않는다. 원작의 이미지를 실사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어색함과 불쾌함에서 출발한 조롱이 밈의 근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밈을 생산하고 즐기는 이들이 모두 게임의 팬이라 볼 수도 없다. 아이코닉한 게임의 이미지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일치가 이들의 향유 대상이다.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들의 계보에서 이 불일치를 살펴보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불일치를 먼저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미지의 측면에서 게임과 영화는 점차 닮아가고 있다. 게임엔진이 영화의 VFX 작업에 활용된 역사는 사실상 CGI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뿐 아니라 게임과 영화는 대중문화라는 큰 맥락 속에서 상호참조의 대상이다. <레이더스>(1981)를 모티프 삼아 제작된 게임 [툼 레이더](1996)는 그것의 영화판인 <툼 레이더>(2001)의 개봉 이후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의 모델링이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과 유사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제작되어 인기를 끈 ‘트레저 헌트’ 장르의 어드벤쳐 영화들, 이를테면 <미이라>(1999)나 <내셔널 트레져>(2004) 또한 툼 레이더의 자장 안에 있다. [툼 레이더]의 성공은 [언챠티드]라는 새로운 게임 프랜차이즈 탄생에 영향을 주었고, [언차티드 3: 황금 사막의 아틀란티스](2011)에서는 아예 해리슨 포드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광고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다른 한편으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2023)의 후반부 추락하는 기차를 기어오르는 톰 크루즈의 액션은 [언차티드 2: 황금도와 사라진 함대](2009)의 초반부를 오마주한다. 영화사의 맥락에서 톰 크루즈와 기차를 보고 버스터 키튼의 <제네럴>(1927)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물건들을 붙잡고 등반하듯 추락하는 기차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언차티드 2]를 명백한 레퍼런스로 삼고 있다.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993)의 포스터(위), 영화 속 쿠파와 굼바(아래) 다만 이러한 일치와 상호참조는 게임과 영화 사이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누적됨으로써 성립된 것이다. 1993년 개봉한 최초의 게임 원작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는 원작 게임과 영화 사이의 불일치를 강력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This Ain’t No Game”이라는 문구를 포스터에 내세운만큼 게임과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마리오 형제는 배관공으로 일하던 중, 도시 한 가운데 유적지를 조사하던 데이지가 쿠파에 의해 잡혀간 것을 목격하고 뒤쫓는다. 그들은 숨겨져 있던 지하도시 ‘디노하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데이지를 구하기 위한 모험을 택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쿠파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한다”라는 원작의 큰 맥락을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영화가 구현하는 이미지는 게임과 영 딴판이다. 버섯왕국은 브루클린 지하의 공룡도시로 바뀌었고, 거북이를 모티프 삼았던 쿠파는 인간화된 티라노사우루스가 되었으며, 버섯 몬스터 굼바는 퇴화한 공룡인간이라는 기묘한 설명으로 바뀌었고, 요시는 작은 벨로시랩터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버섯이나 꽃을 먹고 파워업된다는 설정은 남아 있으나, 게임에서의 파워업보다는 각성제에 가깝게 묘사된다. 마리오와 루이지의 의상과 직업 정도를 제외한다면 원작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당연하게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혹평과 함께 흥행 참패를 겪었다. 연출자들은 본래 원작과 유사한 동화풍의 비주얼로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였으나, 제작비의 문제로 1980~90년대 유행하던 디스토피아 풍의 비주얼로 변경되었다. 그 과정에서 원작 게임의 요소들이 큰 변화를 겪은 것이다. 여기에는 원작 게임이 가진 세계를 영화로 옮겨오는 것, 마리오와 루이지가 아이템을 먹고 파워업하거나 점프로 벽돌을 부수는 등의 행위들을 곧장 실사영화로 옮겨왔을 때의 문제점도 동반될 것이다. 2023년 닌텐도와 일루미네이션 스튜디오의 합작으로 제작된 극장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애니메이션 혹은 TV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어색하지 않았을 행위들이 ‘실사’라는 맥락에서 구현되기엔 무리가 있다. 나아가 1993년의 시점까지 출시된 [슈퍼 마리오] 게임들에는 “쿠파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한다”라는 이야기의 뼈대만 존재할 뿐 디테일한 서사가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각색된 실사영화의 실패는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쩌면 이 영화는 원작 게임을 철저하게 배반했기에 컬트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극장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제멋대로 변형된 캐릭터들은 (물론 퀄리티의 조악함은 있으나) 컬트적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이후의 작품들, 이를테면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마리오 형제와 그곳을 침공한 쿠파 일당을 격퇴한다는 설정이 2023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애니메이션에서 반복되고,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2017)의 ‘도시 왕국’ 스테이지 또한 이 영화의 영향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작 게임과 영화 사이의 불일치는 기묘한 상호참조로 이어지기도 함을 보여준다.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023, 위)와 <명탐정 피카츄>(2019, 아래) 스틸컷. 극장용 장편영화에 어울리는 내러티브가 결여된 ‘슈퍼 마리오’이니 다른 게임 원작 영화의 예시를 들어보자. <명탐정 피카츄>(2019)는 포켓몬 IP를 활용한 동명의 추리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에서 중후한 탐정의 목소리였던 피카츄의 목소리를 영화에서는 라이언 레이놀즈가 맡으며 캐릭터 성격의 변화가 발생하지만.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라임시티에 온 주인공, 우연히 피카츄와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정, 이상행동을 보이며 난폭하게 폭주하는 포켓몬 등 주요 설정과 이야기 전개는 동일하다. 다만 포켓몬 세계의 영화화에서 중점이 되는 것은 이야기의 문제가 아니다. <명탐정 피카츄>는 포켓몬 팬들이 상상하던 포켓몬과 공존하는 도시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비슷한 시기 공개된 <슈퍼 소닉> 예고편의 ‘어글리 소닉’에 쏟아진 혹평과 반대로, 영화 속 포켓몬의 모습은 (다소 과하게 리얼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팬들이 상상하던 ‘실사화된’ 포켓몬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현했고, 게임 속 평면적인 도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다른 포켓몬 게임이 아닌 명확한 내러티브를 지닌 [명탐정 피카츄](2016)을 경유하여, 충분한 핍진성을 가진 세계로서 이를 구현했기에 가능하다. 동시에 ‘포켓몬’이라는 대상이 지닌 환상성과 가상성은 현실 세계를 베이스 삼은 게임들의 영화화와 다른 방향의 영화화를 가능케 한다. 이를테면 영화판 <히트맨>(2007), <맥스 페인>(2008), <언차티드>(2022) 등은 게임플레이나 게임이 그려낸 세계가 지닌 가상성을 소거한 채 전형적인 ‘액션영화’, ‘범죄영화’, ‘어드벤쳐 영화’가 되었을 뿐이다. * 왼쪽부터 <모탈 컴뱃>(1995), <레지던트 이블>(2002), <수퍼 소닉>(2020),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24) 내러티브의 차원에서 원작 게임을 영화로 충실히 번역하는 것만이 정답인 것만은 아니다.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을 열심히 옮겨온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2016)이나 <어쌔신 크리드>(2016)는 그것의 일부만을 부족하게 옮겨왔을 뿐이다. <사일런트 힐>(2006) 같은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면, 폴 W. S. 앤더슨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2002~2016)나 <슈퍼 소닉>처럼 원작의 몇몇 설정만을 따오고, 오리지널 캐릭터를 추가하며, 원작의 캐릭터가 지닌 성격을 팝콘무비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재구성한 사례가 더욱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HBO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24)의 첫 시즌에서 가장 호평받은 에피소드는 게임에서 그저 우연히 습득할 수 있는 편지를 읽어야 캐치할 수 있는 ‘로어’를 서브플롯으로 확장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영화들에서도 원작 팬들의 플레이 경험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는 필수적이다. <레지던트 이블> 1편에는 [바이오하자드](1996)의 주요 무대인 아크레이 저택이 등장한다. <둠>(2005)은 내러티브상의 설정에선 원작과 큰 차이가 있지만, 1인칭 시점의 롱테이크 액션 시퀀스를 삽입함으로써 FPS 게임의 감각을 가져온다. <수퍼 소닉>의 속도감은 슈퍼히어로 영화 속 스피드스터의 액션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연출되지만, 게임의 시그니처 같은 몸통박치기를 액션에 추가한다. 이러한 방식은 원작의 일부만을 가져와 장편영화의 내러티브로 각색했음에도 게임플레이를 연상시킴으로써 게임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한다. 영화평론가 V. F. 퍼킨스는 영화가 그려내는 세계를 관객이 수용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을 그대로 복제한 리얼리즘에 기반하기 때문이 아니라, 관객에게 영화 속 세계의 존재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는 연출로 인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1] . 게임이 영화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원작과의 불일치가 발생하지만, 게임플레이의 영화적 구현을 시도함으로써 게임의 가상성을 영화의 핍진성 속에 기입하는, 지난 30여 년간의 게임 원작 영화가 누적되며 형성된 하나의 전략이랄까. 이들 영화는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세계가 영화 안에서도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신뢰성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액션, 호러, 어드벤쳐 등 익숙한 장르영화의 문법에 게임플레이적 순간을 기입하는 전략은, 비록 장르적 전형성 속에서 비평가들의 호평을 얻진 못해도 게임을 즐겨온 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성공한다. 1990년대의 <스트리트 파이터>(1994)와 <모탈 컴뱃>(1995)이 그랬고, <사일런트 힐>이나 <명탐정 피카츄>가 그랬으며, 2023년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성공한 전략이다. <마인크래프트 무비> 또한 이 같은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특히 “납치된 공주를 구한다” 수준의 단순한 로그라인조차 존재하지 않는 [마인크래프트]의 영화화는 이러한 전략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나 <반교: 디텐션>(2019) 같은 스토리텔링은 불가능하거니와, 게임 내적으로 부재한 내러티브를 그 바깥의 사건으로 대신한 <그란 투리스모>(2023)나 <테트리스>(2023)와 같은 방식 또한 불가능하다. [팩맨]이나 [갤러그](1981), [테트리스](1985)의 형상을 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이야기의 <픽셀>(2015) 같은 방식을 도입하기에도 어렵다. 물론 ‘스토리 모드’가 존재하지만, 별도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되거나 유튜브의 무수한 팬 무비의 영역에 놓일 뿐이다. 사실 가장 히트한 샌드박스 게임으로서 [마인크래프트]는 머시니마(machinima) 팬 무비의 대표적인 재료가 된다. 이 게임 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마인크래프트 무비>에서도 강조되듯 ‘창의성’이 게임플레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오버월드’가 관객에게 신뢰받는 세계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의 이미지뿐 아니라 창의성이라는 키워드가 하나의 세계로서 작동하는 방식을 그려내야 한다. * <마인크래프트 무비> 속 스티브(좌)와 마을(우) 하지만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창의성과 거리가 멀다. 익숙한 ‘이세계’ 판타지물의 배경이 ‘오버월드’와 ‘네더’로 바뀌었으며, 스티브 일행을 제외한 모든 것이 네모난 큐브 혹은 픽셀 형태의 그래픽으로 표현될 뿐이다. 게임적 가상세계를 배경삼은 최초의 영화 <트론>(1982)부터 스필버그의 야심작 <레디 플레이어 원>(2016)에 이르는 게임 배경의 영화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게임의 가상세계와 현실 사이의 이분법을 고스란히 따른다. 영화 속 ‘마인크래프트’ 세계는 현실과 다른 세계일 뿐 게임이 내세웠던 ‘자유로운 창의성의 세계’가 아니다. 그저 현실과 다른 규칙이 적용되고 다른 존재들이 살아가는 어딘가일 뿐이다. 이는 <마인크래프트 무비>가 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때문에 영화는 게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장면들을 영화 속에 욱여넣는다. 투병생활 중 세상을 떠난 [마인크래프트] 유튜버 ‘테크노블레이드’를 등장시키며 “저건 전설이야”라고 언급하고, 추락 도중 물 블록을 까는 ‘물 낙법’, 레드스톤의 힘으로 움직이는 광차 트랙, 앤더맨으로 가득한 저택 등의 순간을 영화 내내 선보인다. ‘치킨 조키’ 장면도 이러한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게임플레이적 순간을 영화에 기입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숏폼으로 전파되는 밈으로 빠르게 자리 잡길 잠재적으로 요청한다. (실제 제작과정이 그러하진 않았겠지만) 영화의 1차 예고편에서 “나는 스티브야!”라는 대사가 흘러나오는 순간,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한편의 영화라기보단 산산히 분해되고 밈으로 재생산되는 콘텐츠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마치 게임 유튜버들이 10~20분짜리 본영상의 하이라이트를 다시금 숏츠로 뽑아내듯이. 2023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와 같은 작품이 관객 개인의 게임플레이 경험을 연상시킨다면,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타인의 게임플레이를 시청하던 경험을 연상시킨다. 내러티브가 부재한 게임의 내러티브는 게임의 디렉터나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의 경험이 누적되며 생성된다. 출시로부터 어느덧 16년이 흐른 [마인크래프트]는 그 시간만큼 많은 플레이가 누적되어 있고, 각각의 플레이는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유튜브나 트위치의 시청자들은 그 내러티브를 게임의 내러티브로서 수용한다. 게임이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게임을 매개로 펼쳐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마인크래프트] 뿐 아니라 [시티즈: 스카이라인](2015)이나 [플래닛 코스터](2016) 같은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2000~2014) 등의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내러티브 없는 게임의 스트리머·유튜버들이 플레이 과정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 <마인크래프트 무비> 상영 당시 팝콘을 던지지 말라는 극장 안내문 이러한 맥락에서, 서두에 언급한 ‘불일치’는 게임플레이를 통해 형성된 내러티브와 그것의 영화화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의 향유는 ‘게임’의 향유와 ‘영화’의 향유 사이에 놓인 틈새, 플레이와 시청 사이에 놓인 게임 소비 패턴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실 우리는 10년 전 장난감 원작의 영화 한 편이 ‘놀이’를 영화에 기입함으로써 성공한 바 있음을 알고 있다. <레고 무비>(2014)는 그저 평범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의 모험이 사실은 레고를 가지고 노는 어린이에 의한 것이었음을 영화 후반부에 드러낸다. 디지털 게임을 원작 삼은 영화에서도 그것이 가능할까?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그것을 정교한 영화적 내러티브 속 메타적 장치로 활용하진 못한다. 다만 이 영화의 관객들은 영화관에 방문하지만, 그들이 관람하길 바라는 것은 정교한 세계가 아니라 자신들이 게임과 가진 경험 속에서 기억하는 이야기와 순간들의 재현이다.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하나의 완성된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실패했지만, 원작과의 불일치 속에서 의도치 않게 지금의 게임 소비 환경을 영화 외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원작 게임을 멀찍이 벗어나 괴상망측한 장르영화로 향했던 우베 볼의 영화들이나 내러티브의 부재를 게임 바깥의 사건으로 대리한 <그란 투리스모>, <테트리스>와도 다르다. 제작이 예정된 무수한 게임 원작 영화들이 방대한 세계관의 영화화를 예고하고 있을 때,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게임의 세계관이나 게임플레이가 아니라 게임-보기의 영화화가 하나의 방식일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없던 방식으로 보여준다. [1] V. F. 퍼킨스. 『영화로서의 영화』. 임재철 옮김. 서울: 이모션북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여름은 언제 시작할까 - 북미 최대의 게임쇼, E3가 맞이한 변화와 도전
미국에는 100일간의 여름(100 days of summer)라는 개념이 있다. 5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자리잡고 있는 공휴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여름의 시작으로 본다. 한국으로 치면 현충일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메모리얼 데이는 가진 의미와는 상관 없이 그렇게 한국의 절기로 치면 입하같은 날이다. 그리고 여름의 끝은 9월의 첫째 월요일인 레이버 데이다. 노동절 연휴가 되면 이제 여름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대략 이 기간이 100일이기 때문에 이 때를 100일간의 여름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소소한 인기를 끈 영화 500일의 썸머 또한 이런 개념에서 제목을 빌려온 것이다. 여름에 특별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개념. 이 개념에 입각해서 보자면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과 끝은 뭘까?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은 E3고 끝은 게임스컴이다. < Back 여름은 언제 시작할까 - 북미 최대의 게임쇼, E3가 맞이한 변화와 도전 01 GG Vol. 21. 6. 10. 여름은 언제 시작할까? 한국에는 입하라는 날이 있기 때문에 이 날이 공식적으로 여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절기상 여름 말고 사람들은 누구나 본인의 문화적 배경이나 취향에 따라서 서로 다른 날을 여름의 시작으로 생각할 것이다. 미국에는 100 일간의 여름 (100 days of summer) 라는 개념이 있다 . 5 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자리잡고 있는 공휴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여름의 시작으로 본다 . 한국으로 치면 현충일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메모리얼 데이는 가진 의미와는 상관 없이 그렇게 한국의 절기로 치면 입하같은 날이다 . 그리고 여름의 끝은 9 월의 첫째 월요일인 레이버 데이다 . 노동절 연휴가 되면 이제 여름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 대략 이 기간이 100 일이기 때문에 이 때를 100 일간의 여름이라고 부른다 . 한국에서도 소소한 인기를 끈 영화 500 일의 썸머 또한 이런 개념에서 제목을 빌려온 것이다 . 여름에 특별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개념 . 이 개념에 입각해서 보자면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과 끝은 뭘까 ? 게이머들에게 여름의 시작은 E3 고 끝은 게임스컴이다 . 매년 E3 가 열리던 6 월은 게이머들에게 올해 대작들은 뭐가 나오는지 볼 수 있고 더운 여름 집 안에 혹은 사무실에서 ‘돌릴’ 게임이 뭔지 생각해 보는 시기였다 . 화려한 부스들이 가득한 E3 의 행사장에 가지 못하면 무척 아쉽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 역사적으로 봐도 E3 는 ‘산업종사자들을 위한 행사’였던 기간도 꽤 길다 . 일반적인 게이머들은 행사장에 들어갈 수 없었을 때도 많았다는 이야기 . 하지만 E3 는 언제나 일반 게이머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 대형 게임사들이 발표하는 뉴스만으로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북미의 게이머들에게 E3 는 ‘게임의 여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코로나는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 게임의 여름도 . 하지만 2020 년에는 게임의 여름이 없었다 . 코로나가 여름이란 존재를 삭제해버렸다 . E3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오프라인 이벤트들이 취소됐다 . 미국 내에서 2020 년에 가장 크게 유행을 탔던 말을 하나 꼽자면 ‘취소’ (cancel) 였을 정도 . 취소를 망설이면서 시간을 끄는 행사들은 온라인에서 ‘책임감없이 행동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 E3 의 오프라인 이벤트 취소는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다 . E3는 아주 전형적인 공룡이었다 . 기업은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재택 근무로 전환해야 하며 이런 유연성이 바로 기업의 경쟁력이라는인식에 기초해 볼 때 E3 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경직된 회사였다 . 온라인 이벤트로 재빠르게 전향해서 브랜드를 살릴 기회가 없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이벤트를 취소한 뒤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 온라인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할 능력이 없었다 . 게임의 여름은 신호탄 없이 표류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진공상태가 된 이 자리를 누가 채울까 하냐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 온라인 이벤트로 E3 에 모일 시선을 잡아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 자리를 치고 들어가서 가장 눈 길을 끈 것은 제프 킬리였다 . 진공상태를 채우려던 제프 킬리 제프 킬리는 캐나다 출신의 게임 저널리스트이자 게임 행사의 사회자이며 프로듀서다 .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E3 의 메인 행사들을 진행했었다 . 게임계 최대의 이벤트마다 호스트로서 함께 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거대했다 . 본인이 주관하고 프로듀싱하는 ‘아카데미 스타일’의 게임 시상식인 The Game Awards(TGA) 를 시작한 2014 년 경부터 그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 보통 매체에서 선정을 하고 리스트만을 발표하던 기존의 게임 시상식과는 달리 TGA 는 화려한 쇼를 동반했고 그 중심에는 호스트인 제프 킬리가 있었다 . TGA 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GOTY 를 정할 때 메이저로 거론되는 행사에 꼽힐 정도로 급성장을 했다 . 그렇게 본인 자신의 브랜드가 그 어떤 게임계의 인사보다 커져감을 느낀 그는 사실 2020 년에 본인의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오랫동안 해오던 E3 호스트 역할을 고사했다 . 본인이 떠남으로서 무게감이 떨어진 E3 를 대체할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인들의 예상이었다 . 타이밍 또한 절묘했는데 그 동안 영향력이 꾸준히 하락해 온 E3 는 2020 년에 치명타를 맞을 것으로 보였다 . 제프 킬리 외에도 행사장의 디자인을 책임지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하기로 했던 에이전시 iam8bit 또한 e3 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히면서 행사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 그런데 코로나는 이런 계획에 도움도 아니고 타격도 아닌 이상한 상황을 만들었다 . E3 가 없어진 진공상태를 만들었지만 제프 킬리 조차 이런 갑작스런 상황에 완벽히 대비됐을리가 없다 . 그는 업계인들에게 Summer Game Fest(SGF) 라는 행사를 조직할 것이며 원하는 게임제작사나 퍼블리셔들은 누구나 무료로 참여가능하다고 덱을 만들어 돌리기 시작했다 . 딱 봐도 허술한 느낌이 들었지만 급하게 만들어진 것 치고는 나쁘지 않다는 반응도 있었다 . 급조된 100% 온라인 이벤트긴 했지만 제프 킬리 개인의 브랜드를 통해 꽤 많은 게임사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 E3 가 없어진 공간은 누구도 제대로 채우진 못했지만 그나마 제프 킬리가 앞서가고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 승부의 해 2021 년 2021년에는 자연스럽게 대결구도가 형성됐다 . 2020 년을 통채로 날려버린 E3 측은 이번에야 말로 100% 온라인 이벤트를 진행하겠다고 하면서 2 월부터 계획을 발표해나갔다 . 버추얼 부스와 온라인 컨퍼런스를 혼합한 형식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 공식적으로 게임의 여름이 돌아왔음을 알린 것이다 . 지난해 SGF 는 물론 TGA 까지 100% 온라인 이벤트로 진행하면서 경험을 쌓은 제프 킬리는 2021 년을 E3 타도 원년의 해로 정한 것같이 매우 공격적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 E3 의 개최날짜가 발표되자 거의 비슷한 시기를 골라서 SGF 를 개최했다 . 정면승부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 행사가 조금씩 가까워 오자 양측은 게임의 여름을 준비하는 퍼블리셔들에게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 닌텐도 , 마이크로소프트 , 유비소프트 , 소니와 같은 초대형 퍼블리셔들이 어떤 행사에 참가하는지가 이벤트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 주목도가 높은 이벤트에 마케팅 예산을 쏟아부어 자신의 게임을 알려야 하는 중소 퍼블리셔들은 치열한 눈치게임에 들어갔다 . 게임의 여름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SGF 일지 E3 일지에 많은 이목이 쏠렸다 . E3와 SGF 누가 이겼을까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승부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 E3 는 전통의 강자답게 많은 퍼블리셔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 닌텐도 , 유비소프트 , 스퀘어 에닉스 , 엑스박스와 베데스다 등이 E3 의 브랜딩 아래 자신들의 행사를 진행했다 . 하지만 E3 의 버추얼 부스 및 행사의 진행은 최악이라는 평을 면하지 못했다 . 특히나 시스템 오작동으로 버추얼 부스를 운영해야 하는 벤더들이 접속조차 하지 못하는 사고가 기사화 되기도 했다 . 코타쿠가 쓴 ‘ E3 는 매우 실망스럽다’는 직설에 가까운 기사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 SGF가 완승이냐고 하면 그렇게 말하긴 힘들다 . 많은 퍼블리셔들이 SGF 의 브랜드 아래서 행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 하지만 최소한 제프 킬리는 현재 게임계에서 가장 많이 기대를 받는 게임 엘든링을 본인의 행사를 통해서 공개하면서 이른바 ‘대세감’을 보여줬다 . 최소한 SGF 가 E3 와 ‘맞짱’을 뜰만하다는 인식을 심는데 성공했다 . 물론 엘든링을 제외하면 쇼 자체는 AAA 급 타이틀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실망스럽단 의견도 많았다 . 게임쇼의 미래 사실 그렇다면 SGF 와 E3 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 미국에서 격돌을 한 두개의 행사는 게임쇼의 미래를 가늠하게 한다 . 100%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번 이벤트는 과연 우리에게 게임쇼라는 것이 필요한가 되묻게 한다 . 일주일 동안 벌어진 게임계의 축제는 E3 나 SGF 라는 ‘행사의 브랜드 네임’보다는 거대한 게임을 보유하고 언제 어떻게 이를 공개할지 칼자루를 쥐고 있는 퍼블리셔들에게 좌우됐다 . 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동시시청자수를 기록한 것은 닌텐도의 이벤트였다 . 엘든링이 나온 SGF 를 아주 근소한 차이로 제쳤다 .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후속편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 닌텐도의 행사 자체는 닌텐도의 중역들이 어설픈 스피치를 하는 최악의 것이었지만 IP 의 힘으로 310 만명이 넘는 시청자를 끌어모은 것이다 . 그렇다면 닌텐도의 발표가 E3 라는 브랜딩 아래 이뤄지지 않았다면 과연 주목도가 떨어졌을까 ?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따라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 과연 게임쇼라는 커다란 우산을 필요할까 ? 퍼블리셔들이 그 우산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 이것에 대한 답은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개최하기로 결정한 PAX 웨스트 때 다시 한 번 떠오를 것이다 . 코로나는 모든 것을 바꿨지만 가장 크게 바꾼 것은 게임쇼라는 개념 자체일지도 모른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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