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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결과

공란으로 656개 검색됨

  • 게임제너레이션::필자::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홍명교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Read More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신주형

    주로 시리어스 게임과 시리어스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소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리츠메이칸대학 게임 연구 센터 (RCGS)의 게임 아카이빙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신주형 신주형 주로 시리어스 게임과 시리어스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소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리츠메이칸대학 게임 연구 센터 (RCGS)의 게임 아카이빙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북리뷰]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중요한가? 이 책은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게이머, 게임 캐릭터, 게임 산업 관련 종사자 앞에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과 불편함,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순히 ‘이런 사례가 있고 그래서 나쁘다’는 식의 단편적인 나열이 아니라 앞서 밝힌 문제들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연 지금까지 여성을 위한, 여성을 그린, 여성에 의한 게임이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버튼 읽기 일본의 보는 게임: 같은 듯 다른 일본의 상황들 일본의 ‘보는 게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보는 게임은 확실히 기존의 하는 게임과는 구별되는 현상이지만 완전한 새로운 것은 아니며 이전에도 존재했다. 특히 가정용 콘솔과 함께 일본의 게임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아케이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임센터에서는 이러한 ‘보는 게임’은 흔하게 일어나는 광경이었다.

  • ‘아카트로닉스’라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라는 것이 있다. 호기심의 방은 말 그대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진귀하고 이국적인 것들, 때로는 괴이한 것들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주로 16-17세기 영국에서 개인 컬렉터들에 의해 만들어진 호기심의 방은 박물관의 기원 중 하나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 공간이 단순히 수집품을 모아두는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수집 공간’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보여졌다. 당대에 가치있던 고미술품이나 유물, 또는 명망있는 화가의 작품이 아니었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상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Back ‘아카트로닉스’라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08 GG Vol. 22. 10. 10.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라는 것이 있다. 호기심의 방은 말 그대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진귀하고 이국적인 것들, 때로는 괴이한 것들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주로 16-17세기 영국에서 개인 컬렉터들에 의해 만들어진 호기심의 방은 박물관의 기원 중 하나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 공간이 단순히 수집품을 모아두는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수집 공간’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보여졌다. 당대에 가치있던 고미술품이나 유물, 또는 명망있는 화가의 작품이 아니었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상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호기심의 방의 주인들은 때로는 수집품의 특정 주제를 선정하여 출판물을 펴내거나, 수집물을 통한 연구를 독려하기도 했다. 이런 수집과 보여주기가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현상들―컬렉션의 형성과 보존 및 복원, 그리고 전시―이 갖는 의의를 간과할 수 없다. 부천 신중동의 한 번화가 건물 3층에서도 캐비닛(cabinet)들로 채워진 호기심의 방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2018년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센터, 특히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슈팅 게임 전문이라는 슬로건으로 2018년 개업한 아카트로닉스다. 이곳을 들어서는 순간 소위 아케이드 게임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라면 돈파치(首領蜂, どんぱち), 케츠이(ケツイ ~絆地獄たち~), 트윈비(Twin Bee, ツインビー) 등의 슈팅게임 기판들이 가동되는 있는 모습에 놀랄 것이다. 게임 자체가 아니더라도 3개 스크린을 가로로 연결해 서비스되는 다라이어스(Darius, ダライアス) 기체의 생경한 위엄과 같은 걸 접할 수 있는 아카트로닉스란 누구에게든 호기심을 자아낼 수 있는 곳임이 분명할 것이다. 아카트로닉스(Akatronics)라는 이름은 현역 플레이어인 이곳 점장의 플레이네임인 ‘Akatian’의 ‘Aka’와 ‘electronics’의 ‘tronics’를 합쳐 만들어졌다. 이름에서도 어렴풋이 알 수 있듯 이 공간은 점장 개인의 취향과 기준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된다. 아카트로닉스의 최수권 점장은 일산의 한 오락실에서 스탭으로 근무하며 휴가 때마다 일본에 방문해 게임센터를 둘러보고 슈팅게임과 국내에서는 찾기 힘든 몇몇 레트로 게임들에 매력을 느끼면서 아케이드 게임 기판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아카트로닉스 오픈으로 이어지게 됐다. 여기서 그가 기판을 수집할 때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은 일본의 각종 아케이드 게임 관련 회사들이 모여 설립한 일본 어뮤즈먼트 머신 공업협회(Japan Amusement Machinery Manufacturers Association)에서 지정하는 통칭 ‘JAMMA’ 규격이다. 이 규격을 위주로 기판을 매입 및 수집하는 것은 ‘현역 플레이어’로서 조작의 반응 속도와 화면 출력까지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1) 여기에 추가로 점장으로서의 취향이 반영되어 아카트로닉스만의 아케이드 게임 컬렉션이 만들어져나간다. 이 수집가의 공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된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들이 가동, 또는 ‘보존’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아카트로닉스의 컬렉션은 현재 약 50개 정도의 기판으로 이루어져있다. 기판과 캐비닛의 수가 상이하기에 가동되는 게임은 수시로 바뀌는데, 최수권 점장은 나름의 노하우로 게임을 가동시키기 적합한지 기체 컨디션을 판단해 기판을 교체한다. 조이스틱과 버튼 상태 등 게임을 쾌적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최적화된 상태를 계속 점검하며 게임을 교체해 내놓는 것이다. 또 CRT 모니터를 확보해두고 매일 같이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2) 올해 초 세가(SEGA)가 아케이드 운영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유명 오락실들이 폐업한다는 소식 또한 계속해서 들려온다. 모바일 디바이스로 언제 어디에서든 바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고, PC와 콘솔에서도 특정 플랫폼이나 구독 서비스를 통해 원하는 게임을 바로 내려받아 해볼 수 있는 이 시점에서, 한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오프라인의 특정 장소로 가야한다는 것은 이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오락실 세대’라 하기 힘든 90년대생 필자는 이런 상황에서 우연히–아마도 알고리즘에 이끌려–사라만다(沙羅曼蛇, Salamander)와 다라이어스의 플레이 영상을 접한 후 80-90년대 아케이드 게임에 매료되어 ‘현역으로 가동되고 있는 기판' 3) 을 찾아 나섰고, 아카트로닉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는 그저 예전 게임을 해보기 위해 아카트로닉스를 찾아 집을 나섰을지 몰라도, 돌아오는 길에는 아카트로닉스라는 공간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보게 되었다. * 아카트로닉스의 하이스코어 보드 * 케츠이를 플레이하고 있는 최수권 점장 아카트로닉스에서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은 과거의 것으로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점수가 경신될 수 있는 것으로서 현재에도 유효하게 존재한다. 최수권 점장은 아케이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혼자하는 카드놀이의 총칭인 솔리테어(solitaire)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가 아카트로닉스를 통해 제안하는 방법들은 각 게임의 솔리테어로서의 재미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4) 동전 하나로 게임을 클리어하는 ‘원 코인 클리어’는 아카트로닉스에서 가장 장려하는 것이다. 과거 오락실에서는 동전 하나로 오랜 시간 플레이하는 것을 보다못한 사장님들이 게임을 강제로 꺼버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기도 하지만, 아카트로닉스에서 원 코인 클리어는 이곳을 방문하는 플레이어들의 목표로 추천된다. 또 여기엔 국내에서 유일하게 집계되는 ‘하이스코어’가 있는데, 일본 하이스코어 협회(日本ハイスコア協会, Japan Highscore Association)의 룰에 기반하여 아카트로닉스에서 집계되는 하이스코어는 플레이어들에게 스코어러(scorer)로서 점수를 격파하는 즐거움을 선물한다. 덧붙여 최수권 점장은 아카트로닉스를 일종의 ‘도장(道場)’이라고도 표현하는데, 마치 도장에서 무술을 수련하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듯, 플레이어들이 아카트로닉스라는 “정해진 장소에서 어디까지 (플레이)할 수 있을지” 5) 시험해보길 원하기 때문이다. 모든 게임은 녹화 가능하고 중계될 수 있으며, 플레이어는 일종의 수련자로서 스스로 플레이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돌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즐거움과 수련의 방식들은 나름의 자취를 남긴다. 매일 같이 집계되고 발표되는 하이스코어, 기록되고 스트리밍되는 플레이들…. 이처럼 아카트로닉스라는 공간에서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은 단순한 과거를 넘어 ‘경기’로서 영원한 현재성을 발휘해야 하는 무엇처럼 제시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카트로닉스가 궁극적으로 ‘유지’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과거란, 어쩌면 수련자로서의 아케이드 게이머라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고. 나아가, 최수권 점장의 아카트로닉스 자체가 하나의 수련이자 도전인 것은 아닐까? 과거 유럽에서의 호기심의 방이 박물관의 원형처럼 기억되듯, 아카트로닉스와 같은 실천을 미래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아카트로닉스라는 새로운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에서, 진귀한 캐비닛(cabinet)들은 지금도 당신의 플레이를 기다리고 있다. [아카트로닉스 점장님의 추천] 아카트로닉스에 방문한다면 아카트로닉스의 자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3화면의 다라이어스와 테트리스 더 그랜드마스터 3를 꼭 플레이 해보시길! 1) 아카트로닉스 최수권 점장 인터뷰(2022.09.22., 부천 신중동) 2) 위의 인터뷰 3) “게임장 소개” 글의 표현 참고, 아카트로닉스 블로그, 2017년 10월 27일. https://akatian-retronics.tistory.com/3?category=761755 2022년 9월 20일 접속. 4) 위의 인터뷰 5) 위의 인터뷰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독립 기획자) 홍성화 큐레이터학과 예술학을 전공했다. 최근 레트로 게임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전시들을 준비하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Tengku Intan Maimunah

    Tengku Intan Maimunah is a PhD student at the Department of Media and Communication Studies, Universiti Malaya, Malaysia. Her research explores video game paratexts, focusing on the creative works and practices that players build around their favourite titles. Her gaming journey began on a Windows 98 PC and continues today on a Steam Deck. Outside of gaming, she edits and publishes books on visual arts. She credits her brother for the first step into the world of video games, her father for the love of stories, and her mother for the eye to see beauty in everything. Tengku Intan Maimunah Tengku Intan Maimunah Tengku Intan Maimunah is a PhD student at the Department of Media and Communication Studies, Universiti Malaya, Malaysia. Her research explores video game paratexts, focusing on the creative works and practices that players build around their favourite titles. Her gaming journey began on a Windows 98 PC and continues today on a Steam Deck. Outside of gaming, she edits and publishes books on visual arts. She credits her brother for the first step into the world of video games, her father for the love of stories, and her mother for the eye to see beauty in everything. Read More 버튼 읽기 레벨 업: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임 문화 개관 분명히 는 말레이시아산 게임의 잠재력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구조적 문제에 얽매여 있기도 하다. 이 사례가 더 넓은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려면, 말레이시아 게임 산업 전반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버튼 읽기 Levelling Up: An Overview of Malaysian Video Game Culture One late afternoon in a quaint village. Rembo the rooster crowed loudly, adding to the countryside ambiance. You, your identical twin, and some friends from kindergarten were spinning tops in the yard. Just another joyful day of playing freely.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유창석

    경희대학교 문화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넥슨, 엔씨소프트, CJ엔터테인먼트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11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게임산업이나 관광산업 등 엔터테인먼트 전반에 걸쳐 소비자 연구 및 산업정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경제학적 도구를 활용하여 연구를 진행하며, 최근에는 게임의 비즈니스 모델과 게임 이용자의 행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학교의 강력한 압박에 굴복하여 지금까지 29편의 국내 학술지 및 17편의 해외 학술지에 학술연구를 발표하였으며, Journal of Media Economics,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Information Processing & Management와 같은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연구를 발표하고 있다. 유창석 유창석 경희대학교 문화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넥슨, 엔씨소프트, CJ엔터테인먼트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11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게임산업이나 관광산업 등 엔터테인먼트 전반에 걸쳐 소비자 연구 및 산업정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경제학적 도구를 활용하여 연구를 진행하며, 최근에는 게임의 비즈니스 모델과 게임 이용자의 행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학교의 강력한 압박에 굴복하여 지금까지 29편의 국내 학술지 및 17편의 해외 학술지에 학술연구를 발표하였으며, Journal of Media Economics,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Information Processing & Management와 같은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연구를 발표하고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게임, 폭력, 범죄 연구의 타임라인 2023년 8월 11일, 검찰은 신림동에서 거리에서 서있던 20대 남자를 흉기로 공격하여 사망하게 하고 3명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에 대해 “현실과 괴리된 게임중독 상태에서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젊은 남성을 공격하였다”라고 설명하며, 사건의 원인을 게임중독으로 지목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논란에 대해서 각계에서 의견을 밝혔지만, 게임과 범죄 간의 연구들을 기반으로 한 의견들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 로우스코어 걸: (Not Really) Full Game Walkthrough

    게임의 현실성에서 빠져나와, 잠시 현실의 게임성을 생각해보자. 세계가 0과 1의 현실로 재구성되고 있다 해도, 거기서의 ‘룰즈 오브 플레이’와 그에 따른 난관이 본질상 그대로라면 세계는 언제까지나 익숙한 현실일 뿐이다. 불균등하고 블록화된 구조로 작동하는 접속가능성(connectivity)이라든지, 메타버스와 관련해 각종 투기가 당연하다는 듯 횡행하는 상황 등을 둘러보면, 과거의 기술 물신적 낙관과는 다르게 가상 인프라의 역능 역시도 딱히 평평해지지 않는 세계의 현실에 귀속되어 있는 것 같다. < Back 로우스코어 걸: (Not Really) Full Game Walkthrough 03 GG Vol. 21. 12. 10. 게임의 현실성에서 빠져나와, 잠시 현실의 게임성을 생각해보자. 세계가 0과 1의 현실로 재구성되고 있다 해도, 거기서의 ‘룰즈 오브 플레이’와 그에 따른 난관이 본질상 그대로라면 세계는 언제까지나 익숙한 현실일 뿐이다. 불균등하고 블록화된 구조로 작동하는 접속가능성(connectivity)이라든지, 메타버스와 관련해 각종 투기가 당연하다는 듯 횡행하는 상황 등을 둘러보면, 과거의 기술 물신적 낙관과는 다르게 가상 인프라의 역능 역시도 딱히 평평해지지 않는 세계의 현실에 귀속되어 있는 것 같다. * 《MODS》 (사진: 박승만) 공적 기금에 의지할 기회를 얻어서야 겨우 전시를 만들 수 있는 기획자 입장에서, 그럴 때마다 필자가 처한 상황도 그 현실의 일부임을 새삼스레 실감하게 된다. 동료 기획자들과 각자의 게이머적 시선으로 게임을 시각 예술의 문제와 교직해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MODS》 1) (합정지구, 2021)에 참여하면서, 우리 팀은 가상성과 링크된 레토릭으로서의 게임보다는 ‘경기’로서의 게임을 경유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기획된 게 바로 〈로우스코어 걸 Low Score Girls〉이다. 제목의 참조 대상은 다름아닌 〈하이스코어 걸 ハイスコアガール〉로, 이 만화의 주된 내러티브 공간인 아케이드 센터는 경기로서의 고전적 성격에 방점이 찍힌 장르의 게임이 주로 서비스되는 곳이다. 〈로우스코어 걸〉은 시각 예술과 연계된 이런저런 현실적 ‘난관’들에 대응하는 참여 작가들을, 그런 게임 안에서 경기의 논리를 배반하며 임의의 트랙을 질주하는 게이머들처럼 가시화하려 했다. ‘설정된 경로를 주파하는’ 게임 경험의 압축적이고 간명한 구조 때문인지, 레이싱은 과거 아케이드 게임 업계가 새로운 재현 기술을 우선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었던 주된 대상이었다. 세가(Sega)가 자랑했던 전설적 크리에이터 스즈키 유(鈴木裕)의 원근법적 집착으로 1985년 등장한 〈행온 Hang-On〉은 최초의 ‘체감형’ 레이싱 게임으로,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스프라이트 확대/축소 기능으로 구현된 유사 3D 서킷을 바이크 형태의 컨트롤러에 올라타 공략하게 된다. * 김예슬, 〈Skid〉 (사진: 박승만) * 〈Skid〉에 사용된 영상 김예슬의 〈Skid〉는 그런 식의 ‘체감’이 여과하는 모든 현실에 대한 기념비로, 스턴트 바이크 라이딩을 촬영한 라이브 푸티지와 CBR250을 커스터마이즈한 실제 스턴트 바이크가 활용됐다. 다리 밑이나 공터, 또는 공사 중인 고속도로 현장과 같은 곳을 물색해 이루어지는, ‘공도’ 밖의 장소에서야 구성 가능한 게임인 스턴트 라이딩. 스턴트 동작에 적합하도록 개조된 탓에 번호판이 부여될 수 없는 바이크는, 신체를 운반하는 수단이라기보다 차라리 신체의 연장에 해당하는 무엇처럼 다가온다. 일정한 물리적 위험이 담보된 채 스턴트 동작을 실연하는 순간의 자족적 열락과 같은 건 과연 ‘체감형’ 게임으로 재현될 수 있을까? 더불어, 시선을 과거로 돌려, ‘스포츠’로서의 바이크 너머 과거로 밀려난 오랜 ‘폭주’의 역사에 대해, 재현의 윤리는 무엇을 할 수 있었고, 할 수 없었을까? 영상과 격절돼 단상 위로 미끄러진 ‘실물’ CBR250은, 열화된 현실인 게임과 열화된 게임인 현실 사이에서 진동하며 그런 부류의 질문들을 환기한다. * 김효재, 〈파쿠르 Parkour〉 (사진: 박승만) 김효재의 영상 설치 작업인 〈파쿠르 Parkour〉는 사이버스페이스가 아예 세계의 필요충분조건이 된 사변적 지평에서의 프리러닝을 다룬다. 1인칭 액션 게임 〈미러스 엣지 Mirror’s Edge〉의 소재였던 스포츠 파쿠르(Parkour)의 명칭은 ‘여정(journey)’을 뜻하는 프랑스어 ‘parcours’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렇듯 파쿠르는 규칙에 따른 순위를 다루는 ‘경기’가 아니라, 신체 능력만으로 지형지물에 자유로이 호응해 달려가며 이루어지는 구도적 수행이다. 파쿠르에 임하는 동안의 여정에서 느낄 수 있는 위험과 두려움이란 수행자에게 있어 자기 한계의 인식이기도 하지만, 그건 육체로부터의 예비된 자유를 지시하는 감각이기도 하다. 〈파쿠르 Parkour〉의 화자는 타율적 스틱과 버튼으로 매개되어야만 했던 현재적이고 실존적인 의미에서의 ‘몸’이 완전히 불식된 세계를 살아가는 신인류로서, 현재의 파쿠르적 실천을 자신과 자신의 세계에 실현된 가능성의 잠재태로서 소환한다. 모든 게 데이터로 환원되어 연결된 세계. 그래서 ‘에어플레인 모드’에서조차 그 무엇과도 데이터 전이를 일으킬 수 있는 세계. 그곳에서 ‘몸’은 특정한 정체성의 고정적 준거가 아니라 유동적 연결망 내에서의 노드(node)에 가까운 잠정적 윤곽일 뿐이며, 의식의 흐름과 파쿠르적 몸짓은 같은 것이 돼 그 자체로 〈파쿠르 Parkour〉의 이미지 시퀀스를 형성하면서,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어트랙션 데모를 보여준다. * 문주혜, 〈Dragon and Ten of Swords (사진: 박승만) 문주혜의 〈Dragon and Ten of Swords〉에서 미리 추상화/모듈화된 오브젝트의 집적으로 2D 횡스크롤 슈팅 게임의 보스처럼 보이는 용, 그리고 레이어의 질서를 넘어 근경에서부터 원경의 용의 몸을 베어내고 있는 듯한, 구상적 형태를 취하되 장식적 어조로 반복되는 검들의 조합은 지난 두 번의 개인전에 걸쳐 시도했던 상이한 작업 방식이 종합된 결과다. 작법을 변주하는 가운데 문주혜는 일관되게 전통적 재료인 장지를 사용하면서, 그 특유의 ‘스며드는’ 물질성을 통해 자신이 플레이하던 게임에서 채집했거나 참조한 이미지를 ‘봉인’해왔다. 크리스 고토-존스(Chris Goto-Jones)의 논의 2) 에서와 같이 게이머를 전통적 의미에서의 ‘무사’로 바라볼 수 있다면, 게이머의 의경(意景)이 표현된 회화는 일종의 사인화(士人畵)라 할 수 있을까? 문주혜의 작업을 두고 관성적으로 ‘동양화’라는 표현을 쓰는 부주의는 그런 농담 같은 지점에서야 그나마 허락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이 동양화라는 개념에 이제 어떤 의미론적 ‘규칙’이 관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행적 접근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굳이 농담처럼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맥락화와 역사화를 위한 동일성의 도식을 애써 추출해내려는 시선을 억제하고, 제도화된 개념인 ‘동양화’를 김효재의 〈파쿠르 Parkour〉가 ‘몸’을 인식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바라볼 때의 가능한 운동성은 무엇일까? 〈로우스코어 걸〉의 후속 프로젝트는 바로 그 지점을 재차 게임과 결부시키며 출발하는데, 이에 대해선 〈로우스코어 걸〉의 공동 기획자 홍성화에 의해 추후의 지면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MODS》의 다른 프로젝트들이 기획자가 작가에 가까운 롤을 수행한 결과물을 선보이거나(TTT, 파핑파핑 리얼리티), 팀업된 기획자와 작가 각각의 결과물이 같은 층위에서 작동하게끔 하면서(Sync) 어느 정도씩은 거리를 뒀던 전시로서의 전형성을, 〈로우스코어 걸〉은 일반화된 양상의 기획전 형식을 취해 오히려 최대한 가져가고자 했다. 여기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로 〈로우스코어 걸〉은 《MODS》가 필연적으로 의탁할 수밖에 없는 ‘전시’란 형식을, ‘작가’, ‘공중(public)’, ‘예술’, 그리고 ‘예술계’와 같은 것들을 성립시키는 회로로부터 출력된 ‘게임’의 일부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볼 때 나머지 세 프로젝트가 그 시스템에 기판의 규격이 허용하는 어떤 외부 장치 같은 게 결합된 결과에 해당한다면, 〈로우스코어 걸〉은 순정 상태에 가까운 그 게임을 김예슬, 김효재, 문주혜 세 작가가 플레이하는 방식을 익숙한 ‘게임’의 장르적 이미지를 맥거핀 삼아 드러내고 싶었다는 게 두 번째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우린 〈로우스코어 걸〉이, 《MODS》에 빌트인(built-in)된 뭔가를 합정지구 1층에 선행 적시해두는 기획전이자 일종의 해체적 아케이드 센터로 보이길 의도했다고 할 수 있다. 코인 투입구 없이, 아무런 조작계 없이, 워크스루(walkthrough) 영상이나 마찬가지인 ‘보는 게임’임을 견지하면서, 그리고 나아가 ‘기판과 게이머의 단절’에 ‘플레이와 구경꾼의 단절’이 친화적으로 중첩되는 장일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전시와 관객 사이를 상호적이게 하는 충분히 투명하고 반질반질한 어떤 접면이 있어서 거기서부터 현실을 초과한 무언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식의 향긋한 모델은 늘 의심스럽기에. ‘전시’와 ‘관객’이라는 조건부터가 이미 현실의 회로에 의한 구성물이기에. 1) https://www.artbava.com/exhibit/mods/ 2) Chris Goto-Jones, “Is Street Fighter a Martial Art? Virtual Ninja Theory, Ideology, and the Intentional Self-Transformation of Fighting-Gamers.” Japan Review 29 (2016): 171-208.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술기획자) 김세인 큐레이터 게임 동호회 ‘Mods’ 멤버. 레거시로서의 미술, 또는 서브컬처로서의 미술에 대해 가끔씩 생각하며, 가끔씩 전시를 기획한다.

  • 확률이 만드는 스킵: 즐거움과 귀찮음 사이를 맥동하는 플레이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을 풍부한 경우의 수로 뽑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확률은 디지털게임에서 직면하는 상황의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며 빛을 발한다. ‘다키스트 던전’에서 랜덤하게 튀어나오는 스트레스 상황과 영웅의 기상은 플레이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나락에서 극락까지의 폭넓은 감정 변화를 만들어내고, ‘슬레이 더 스파이어’에서 매 라운드마다 주어지는 랜덤한 카드보상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예측불가능한 도전에 대해 예측과 적응으로 돌파하게 만드는 즐거움의 원천이다. < Back 확률이 만드는 스킵: 즐거움과 귀찮음 사이를 맥동하는 플레이 17 GG Vol. 24. 4. 10. 초창기 놀이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운과 확률의 중요성은 꾸준히 강조되어 온 바 있었다 . 아곤 agon 과 알레아 alea 의 경합이라는 카이와의 놀이에 대한 이해는 디지털게임의 시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이 놀이매체의 중심을 관통한다 . ‘ 테트리스 ’ 에서 다음 블록으로 어떤 모양이 떨어지게 될 지를 예측하지 못하던 순간은 ‘ 리그 오브 레전드 ’ 에서도 평타가 치명타로 들어갈 확률을 생각하는 순간까지 이어지며 이 디지털 놀이를 주사위값에 의해 무작위로 변화하는 상황과 그에 맞춘 플레이어의 대응으로 만들어낸다 .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을 풍부한 경우의 수로 뽑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확률은 디지털게임에서 직면하는 상황의 다채로움을 만들어내며 빛을 발한다 . ‘ 다키스트 던전 ’ 에서 랜덤하게 튀어나오는 스트레스 상황과 영웅의 기상은 플레이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나락에서 극락까지의 폭넓은 감정 변화를 만들어내고 , ‘ 슬레이 더 스파이어 ’ 에서 매 라운드마다 주어지는 랜덤한 카드보상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예측불가능한 도전에 대해 예측과 적응으로 돌파하게 만드는 즐거움의 원천이다 . 많은 로그라이크 장르들이 사랑받는 이유의 중심에는 이러한 확률의 폭넓은 상황 재현력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그러나 모든 확률이 이처럼 풍부한 상황 재현의 원동력만으로 오늘날의 게임에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 우리는 오히려 확률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디지털게임의 어떤 순간에서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 하는 의문감을 떠안곤 한다 . 서사 압축으로 기능하는 확률이 만드는 '스킵' 한때 해괴한 광고로 물의를 일으켰던 모바일게임 ‘ 왕이 되는 자 ’ 의 전투를 생각해보자 . ( 나는 연구 차원에서 억지로 플레이한 적이 있다 .) 이 게임에서 전투는 자신의 군사력과 적의 군사력을 각각 수치로 보여준 뒤 ‘ 공격하시겠습니까 ?’ 라는 문구를 보여주고 , 공격을 선택할 경우 각각의 군사력에 일정 확률을 더해 전투결과를 뽑아내는 형태로 구성된다 . 일종의 자동 전투와 같은 방식이다 . 자동전투는 본래 수동전투 ( 수동전투라는 표현 자체가 좀 어색하긴 하다 ) 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을 대체하기 위한 개념이었다 . ‘ 토탈 워 ’ 시리즈의 경우 , 전술 화면에서 실제 병력들을 지휘해 벌이는 전투가 게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애당초 적과 아군의 병력 차이가 확연해 전투를 통해 플레이어가 만들어낼 수 있는 변수가 무의미하게 적을 경우 플레이어는 자동전투 버튼을 눌러 이 전투의 승패 결과값만을 받아들 수 있다 . 선택지로서의 자동전투는 나름 유의미하다 . 사례로 든 ‘ 토탈 워 ’ 시리즈의 경우 , 전략 영역에서의 플레이 또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중후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국지적인 전투에 일일이 공을 들이는 것 자체가 전략적 플레이에 비해 지루하고 귀찮은 일이 되며 , 이럴 때 자동전투 버튼은 플레이의 초점을 전술에서 대전략으로 옮겨가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 초반부에는 유의미했지만 점차 비중이 줄어드는 플레이의 특정 지점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 스킵 ’ 할 수 있게 만드는 자동전투는 확률이라는 장치를 통해 ‘ 스킵 ’ 을 제공함으로써 전략적 플레이의 연속성을 부각시킨다 . 흥미로운 점은 이 방식이 바로 ‘ 스킵 ’ 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 컴퓨터의 연산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황과 그렇게 주어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플레이어가 사고하여 만들어내는 행동이 일정한 플로우 밖으로 벗어날 때 , 게임은 플레이의 두 주체 – 난이도와 숙련도 간의 긴장관계를 기본적으로 주어진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한 확률값으로 뽑아내며 과정을 스킵한다 . 이 때 확률은 원본이 되는 일련의 수동 전투를 대체하는 장치가 된다 . 사람의 머리와 손으로 그려냈어야 할 어떤 상호작용의 과정을 스킵한 뒤 , 그 결과만을 예상되는 값으로 출력하면서 확률은 마치 오늘날 인공지능들이 그러하듯 시작점과 종착점 사이의 모든 과정들을 스킵하는 도구가 된다 . 디지털게임 안의 세계를 지탱하는 뼈대는 수치화된 데이터다 . ‘ 테트리스 ’ 안의 세계는 2 차원 좌표계 안에 블록의 유무를 구현함으로써 만들어지고 , ‘ 발더스 게이트 3’ 의 캐릭터 간 감정은 각각의 이벤트를 거치며 합산된 값을 통해 만들어진다 . 이런 데이터들은 세계를 구현하는 일종의 형태소이지만 , 데이터는 단지 의미에 정렬된다고 해서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적어도 두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 첫번째로는 각각의 데이터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작동하는 세계로 거듭나야 하며 , 두번째로는 그 작동하는 세계에 플레이어가 개입하여 주어진 환경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 아주 단순하게 비유하자면 , 전자가 NPC 로 가득찬 , 마치 영화 ‘ 주먹왕 랄프 ’ 와 같은 세계라면 , 그 세계에 플레이어의 개입이 가능하게 만들어지는 시점부터를 우리는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이런 단계를 전제로 놓고 다시 ‘ 스킵 ’ 의 문제를 살펴보면 , 우리는 이 ‘ 스킵 ’ 이 무엇을 건너뛰고 대체하는지를 좀더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 완성된 , 작동하는 세계로서의 NPC 월드는 본래 사람에 의해 변화되도록 디자인되었으나 , 플레이어 대신 데이터 월드는 확률이라는 랜덤성에 기초해 외부로부터 자극받는다 . 자동전투 속에서 확률의 개입에 의해 스킵되는 대상은 외부자극 , 곧 플레이어인 것이다 . 놀고싶은 본능과 귀찮음의 본능 사이에서 디지털게임에서 확률이 쓰이는 방식은 앞서 이야기한 바처럼 그 자체로서보다는 어떤 목적에 의해 쓰이느냐에따라 게임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 로그라이크에서의 확률은 조합을 통한 경우의 수를 바탕으로 상황의 가짓수를 넓혀 더욱 다양한 플레이어 개입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쓰이고 , 자동전투에서의 확률은 플레이어의 개입 자체를 대체하여 NPC 월드를 NPC 들만의 월드로 만들어내는 데 쓰인다 . 다시 카이와의 아곤 – 알레아 개념으로 돌아가본다면 , 로그라이크적 확률이 다양성을 늘려 아곤의 비중을 두텁게 하는 것과 반대로 자동전투로서의 확률은 알레아의 비중을 두텁게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확률이 플레이어의 개입을 대체하는 경우의 양 극단인 아곤 – 알레아에서 100% 알레아만으로 이뤄지는 경우를 상상한다면 아마도 뽑기 , 도박 , 복권 내지는 포춘 쿠키와 같은 형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당연하게도 우리는 아곤과 알레아 , 플레이어의 개입과 운적 요소 , 조금 더 구체화해서 이야기한다면 과정과 결과라는 두 축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순간이 좋은 게임을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 그러나 확률이 대체하고자 했던 요소 , 인간의 개입이라는 요소가 갖는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다 . 애초에 일정 수준에 이른 플레이어가 손쉬운 전투를 의미없다고 생각해 스킵하거나 , 특정 레벨에 도달하기 위해 무의미한 사냥을 필드에서 반복하는 행위를 이른바 ‘ 노가다 ’ 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우리는 개입하는 플레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속성 중 하나인 귀찮음을 발견한다 . 플레이어의 개입은 디지털게임이라는 요소의 특성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이고 사실상 이 매체의 즐거움은 그 개입을 통해 이뤄지지만 , 동시에 개입의 속성은 양가적이다 . 주어진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이리저리 손과 머리를 굴리는 과정은 너무나 흥미롭지만 , 동시에 다른 매체활동에 비해 무척이나 귀찮고 복잡한 일이다 . 당장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책과 드라마 , 영화를 볼 수는 있지만 그 자세로 전통적인 인터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디지털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움을 알 수 있다 . 플레이가 가지고 있는 그 귀찮음의 속성이 확률이 플레이를 계속 대체하고자 시도되는 이유다 . 초창기에는 없었으나 , 롤플레잉 게임에 이르면 점차 전투가 ‘ 노가다 ’ 로 불리게 되는 과정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게임적 의미로 주목하는 부분은 이 전투의 결과가 이미 예측되는 순간에 ‘ 노가다 ’ 라는 호명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 난이도와 숙련도의 상호작용이 더 이상 두근두근한 기대값을 갖지 못하게 되는 순간 , 상호작용의 의미는 즐거움보다 귀찮음으로 크게 기울어버린다 . 복잡다난한 입력을 생략하고 , 양 측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몇 가지 확률공식만 돌려 경험치와 아이템만 뽑아내는 것은 플레이에 내재한 속성인 귀찮음을 극복하기 위한 게임 디자인과 , 그에 호응하는 이용자들의 합의로부터 이루어진다 . 그리고 이런 귀찮음의 문제는 단지 디지털게임에만 , 그리고 게임 플레이의 시작과 끝이라는 짧은 시간선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도 아닌 것 같다 . 일정 부분 유비해보자면 우리는 점점 미디어가 주는 귀찮음을 자각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미디어 전반에서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 영상은 정속이 아니라 1.5 배속 , 2 배속으로 보는 것이 속편하고 , 그보다도 ‘10 분안에 몰아보기 ’ 가 훨씬 더 명쾌하게 느껴지는 것이 오늘날이다 . 한때 묘사의 섬세함으로도 독자들과 교감할 수 있었던 문자문학은 이제 ‘ 지리한 ’ 묘사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빠르게 본론을 전개하는 것이 보다 널리 받아들여진다 . 숏폼이라는 15 초의 시간이 의미하는 인간의 미디어적 인내력은 시간선상의 매체에서는 배속과 숏폼으로 , 상호작용 매체에서는 개입을 생략한 채 결과만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 아마도 추측하건대 이러한 변화는 개별 미디어나 수용자의 변화가 아니라 미디어 및 정보환경 전체의 변화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 소설의 결말을 굳이 지인으로부터 스포당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과거와는 달리 , 오늘날의 정보사회에서는 검색 한 번에 어지간한 정보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환경이다 . 검색어 입력 – 결과값 출력의 속도가 즉문즉답이 된 시대에서 고전적인 미디어들의 방식은 이제 정상속도가 아닌 ‘ 굳이 느려터진 ’ 상대 속도로 이용자들에게 체감된다 . 이미 다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을 굳이 붙잡을 이유가 없는 시청자가 배속을 택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 디지털게임의 플레이 또한 보다 빠른 형태의 외주형 플레이인 확률에 넘기기로 이용자들의 선택은 넘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한편으로는 고전적 플레이에 익숙하고 또한 이를 애정하는 입장이지만 , 더불어 유년기와 달리 쉽게 피로해지는 신체에 얹혀 사는 입장에서 게임 플레이가 가진 귀찮음의 속성은 갈수록 그 무게감을 더한다 . 시대의 매체 속도가 빨라지고 , 신체의 생체 속도는 느려지는 더블 부스터의 시대를 맞은 과거 유년기의 게임 키드들이 중년이 되어 보다 확률의 개입이 두터워진 게임을 붙잡고 소파에 눕는 이유는 한때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으로부터 감명받고 매료되었던 이유와 함께이기에 더욱 서글퍼진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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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모전]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Ready or Not 비평을 중심으로

    이 말은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의 CEO이자 영국 해군 출신이기도 한 리틀 존스가 한 말이다. 90년대말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에서 택티컬 FPS의 시초인 ‘레인보우식스’가 탄생한다. 톰 클랜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지금은 당연시되는 밀리터리 택티컬 FPS의 기본 공식들이 대부분 정립하여 FPS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 Back [공모전]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Ready or Not 비평을 중심으로 13 GG Vol. 23. 8. 10. “당신 앞에 움직이는 모든 걸 총으로 쏘는 게임들은 성공적이었지만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반면 전략 위주의 게임들은 속도가 너무 느려서 지루했죠. 우린 두가지를 적절히 섞어 놓고 싶었습니다.” 이 말은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의 CEO이자 영국 해군 출신이기도 한 리틀 존스가 한 말이다. 90년대말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에서 택티컬 FPS의 시초인 ‘레인보우식스’가 탄생한다. 톰 클랜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지금은 당연시되는 밀리터리 택티컬 FPS의 기본 공식들이 대부분 정립하여 FPS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택티컬 FPS의 조건 택티컬 FPS의 조건은 ‘레인보우 식스’가 출시되면서 정립된 밀리터리 택티컬 FPS의 공식이나 요소가 많기 때문에 ‘레인보우 식스’에 들어간 요소를 보면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첫번째로는 현대 특수전이 나오게 된 점. 그 당시 게임은 미래의 첨단 무기를 쏘면서 싸우거나 우주 해병이 악마들을 찢어 죽이는 게임같이 ‘하이퍼FPS장르’가 활약했지만 ‘레인보우식스’에서는 처음으로 인질극, CQB등 대테러 특수전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특히 인질과 테러범이 뒤섞이는 상황은 게이머들에게 참신하게 다가왔고, 위에 ‘리틀 존스’의 말처럼 보이는 타겟을 마음대로 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두번째로는 현대적인 군용 장비. 전투복, 주무장, 부무장, 보조장비를 구분해서 착용할 수 있게 하며, 이 장비들 역시 실제 군용 장비들로 구현이 되어 현실감을 불러일으킨다. 세번째는 피격판정에 대해서 세세하게 나눠진 부분도 ‘레인보우 식스’가 가져온 차별성이라 볼 수 있다. 팔, 다리, 머리를 맞았을 때 몸의 상태가 달라지며, 팔에 총탄을 맞았을 경우 명중률이 떨어지게 되고, 다리에 총탄을 맞을 경우엔 속도가 느려지게 되고, 머리는 즉사인 현실적인 표현으로 더욱 긴장감 있는 전투를 하게 하였다. 마지막은 분대전술로 총알 한발만 맞아도 전투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작전 수행을 위해 분대원들과 함께 전략적(tactical)으로 움직여야 한다. 도어브리칭, 엄호사격, 사주경계, 은엄폐같은 실제 특수작전에서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소들이 구현되었고 이동 지시는 BLITZ(전력질주), NORMAL(기본 이동 상태), SAFETY(천천히 조용하게)를 선택하여 분대원들을 이동시킬 수 있고 교전상황에서의 명령은 CLEAR(거점 확보 후 사주경계), ENGAGE(선제 사격 및 제압), ADVANCE(일렬로 진입), ESCORT(인질 호송)로 나뉘어 분대원들이 상황에 맞는 할 일을 시킬 수 있었다.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 Ready or Not은 Void Interactive에서 21년도 12월 중반 출시하여 이틀만에 ‘스팀 전 세계 최고 인기 제품’ 1위에 오른 뒤 오랫동안 선두를 지켰다. 이는 그 당시의 ‘헤일로인피니트’와 ‘포르자호라이즌 5’ 그리고 ‘레드데드리뎀션2’등 다수의 트리플A급 게임들을 넘었다는 점에서 놀랍고, 출시 후에도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계속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00년대 이후로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의 초기작들과 SWAT 4와 같은 현실성을 지향하는 택티컬 슈팅 게임들은 사실상 명맥이 끊겨 Ready or Not이 이러한 게임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의 재탄생을 목표로 하여 최초 공개 이후로 많은 게이머들이 관심을 갖고 지지한 부분도 있겠지만 결국 게임이 성공하기 위해선 게임의 화려한 마케팅 말고도 게임 속 내용이 중요하다. 마케팅이 성공적이면 게임 판매량은 높을 수 있겠지만 유저들의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선 게임 속에 담긴 내용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케팅만 잘 되고 게임이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면 포장지만 그럴싸한 빈 껍데기였다 생각한다. 요즘은 dlc라던가 업데이트를 통해 사후지원을 해주는 게임도 많지만 처음 기대를 갖고 구매한 유저들은 실망하고 평가는 좋지 않을 것이다. Ready or Not이 택티컬 FPS로써 가지고 있는 것 Ready or Not은 택티컬 FPS 게임으로써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앞에 말한 ‘레인보우 식스’의 택티컬 FPS 조건을 따라가며 현대적인 감각으로 발전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일단 택티컬 FPS니 당연시하게 현대 특수전은 기본. Ready or Not은 여러 상황의 장소를 선택할 수 있고 주택, 주유소, 호텔, 나이트클럽 등 다양한 상황이 있다. 이는 장소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장소마다 용의자가 일으킨 사건, 행동이 다르다. 맵 선택 시 미션의 타입을 선택할 수 있는데 첫번째로는 RAID(습격). 교전 수칙이 느슨하고, 일반적으로 더 많은 용의자와 적은 민간인들이 존재한다. 말그대로 습격이기 때문에 용의자들을 체포해도 좋지만 다른 미션에 비해 굳이 체포할 필요는 없다. 두번째로는 ACTIVE SHOOTER(총기 난사). 총기 난사범이 모든 시민들을 죽이기 전에 그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미션이다. 세번째로는 BOMB THREAT(폭탄 해체)로 폭탄의 위치를 파악하고 해제가 목적. 또한 용의자들과 민간인들도 폭발물 근처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네번째로는 HOSTAGE RESCUE(인질 구출)로 인질 구역의 위치를 파악하고 진입해야 하며, 용의자가 팀과 플레이어를 감지할 경우 인질범들이 시민들을 사살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용의자가 눈치채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미션. 특수작전을 위해선 역시 장비를 갖추고 가야 하는데 Ready or Not도 최근 나온 택티컬 FPS답게 무기 및 장비 폭이 넓다. 주무기(PRIMARY WEAPON)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대응이 가능한 돌격소총(ASSAULT RIFLE)과 CQB에 특화된 연사 화기인 기관단총(SUBMACHINE GUN) 그리고 강력한 산탄을 사용하는 산탄총(SHOTGUN). 그 외에도 투척물 발사기나 비살상 플레이를 위한 저살상(LESS LETHAL)무기도 있다. 주무기 폭만 넓은 것이 아니라 보조무기도 357 매그넘, M45A1, 테이저등 여러 총기가 있고, 주무기와 보조무기에서 총기 모딩으로 전방 손잡이, 총열 부착물 등 선택하여 작전에 맞게 준비할 수 있게 된다. 화기 준비가 되었다면 전술 장비도 갖추고 상체 보호 장비(예시로 방검복)와 장갑재(예시로 케블라), 머리장비(예시로 NVG)까지 임무 환경에 맞게 준비하여 다양한 장비를 고르기만 해도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레인보우식스’과 유사한 부상 페널티의 차이가 구현되어 있다. 다리가 부상당했다면 속도가 느려지고 문을 차지를 못하게 될 것이며, 팔을 부상당했다면 반동이 심해져 사격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플레이어가 부상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출혈할 수도 있기 때문에 출혈 시에는 꼭 붕대를 감고 다시 교전해야 한다. 택티컬 FPS로써의 여러 요소가 있지만 제일 중요하다 생각되는 건 역시 분대전술. Ready or Not은 문에 시점을 보고 있는 쪽에 따라 다르게 활성화된다. 문 아래를 보고 미러건 장비 시 문 너머를 확인할 수 있고, 도어웨지 장비 시 문을 막을 수 있어 변수를 차단 효과를 볼 수 있다. 문 가운데를 보고 상호작용키를 누를 시 90도로 그대로 열리지만, 손잡이 쪽을 상호작용할 경우 문을 살짝 열고 문 엿보기가 된다. 문 엿보기의 필요성은 문을 열었을 때 안쪽에서 용의자 반응 유무를 통해 인원파악과 용의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함정이 있는 지 확인할 수도 있고 섬광을 넣고 진입을 할 때도 문을 다 열고 섬광을 던지면 용의자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에 살짝 열린 틈으로 섬광탄을 넣고 진입하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 솔로 플레이일 경우에도 마우스 가운데 버튼으로 AI 팀원에게 지시를 다양하게 내릴 수 있는데 CLEAR WITH FLASHBANG을 선택할 경우 AI가 문을 살짝 열고 섬광을 집어넣은 다음 섬광이 터지면서 대열을 갖추어 진입하게 된다. 또한 섬광 외에도 폭발물을 이용해 돌입할 수도 있고 산탄총을 사용하여 안전하게 문을 정리하는 방법 등 다양하다.멀티 플레이어일 경우는 서로 합을 맞추면 재미있게 할 수 있지만, 솔로 플레이어일 경우 마우스 가운데 버튼으로 지시하게 되는데 클릭 시 해당 명령을 행동할 인원을 금색일 경우 전체 분대가 수행하고 파란색일 경우 분대의 반, 빨간색도 나머지 분대의 반 인원이 행동하게 나눠져 있어 편리하다. 행동의 경우에는 1, 2, 3번의 명령이 나눠져 있는데 1번 명령은 스택업, 미러건으로 체크, 트랩 제거, 웨지도어 설치가 있고 2번 명령은 그냥 돌입과 섬광탄, 스팅어, CS가스 투척 후 돌입이 있다. 3번은 브리칭으로 발로 차서 브리칭, 샷건으로 브리칭, C2로 브리칭이 있다. 내가 완전한 택티컬 FPS 경험은 많지 않아서 어렵다 느끼기에 혼자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러한 두려움에도 AI 플레이어들이 잘 커버해주고 수집해야 하는 증거도 알아서 수집하여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초반에 맘 편하게 게임할 수 있었던 점은 혼자서도 멀티 플레이어만큼은 아니지만 분대전술을 할 수 있게 잘 되어 있고, SWAT4의 정신적 후속작인 Ready or Not이 SWAT4보다 아군AI가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다. Ready or Not이 가지고 있는 현실성과 메시지 위에서 Ready or Not에 기존 택티컬 FPS의 규칙이나 요소가 잘 담겨있는 지 보면서 ‘이미 현실성이나 고증이 잘 되어 있는 거 아니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더 말할 부분이 있다. 현 시대의 택티컬 FPS가 Ready or Not이외에도 Zero Hour나 Ground Branch가 있지만 그것들보다 Ready or Not이 가지고 있는 차별성과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내가 Ready or Not을 중심으로 택티컬 FPS 장르에 대해 비평하는 이유이다. ‘그럼 얘네가 가진 차별성과 메시지가 무엇인데?’라는 질문이 올 것이고 나는 역시 내용물, 게임 속에 담긴 배경과 사건에 주목한다. “로스 수에뇨스의 거리는 무법지대입니다.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배회하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범죄 발생률이 최고조에 달할 정도로 치안 공백이 심각합니다. 게임의 스토리 배경은 연속 강력범죄로 큰 혼돈에 빠진 가상 미국의 항만 대도시 ‘로스 수에뇨스시’의 SWAT 팀이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내용으로 작전은 다른 대원들과 함께 최대 5명으로 진행하게 된다. 게임 로비에 들어가게 되면 경찰서의 모습이 보이고 로비 각 위치에서 위에서 말한 장비 착용이나 미션 선택 등을 해볼 수 있다. 임무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로 신규 플레이어가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하기 좋은 파크 213번지 주택 맵으로 얘기를 해보겠다. 이 임무는 약물 유통에 직접적으로 개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파크의 213번지를 수색하는 임무이다. The detectives have been following a new lead to locate source of methamphetamine storage in Los Suenos, tracing a potential "affordable housing" development in 213 Park. 메스암페타민은 흔히 히로뽕, 필로폰이라 불리는 마약으로 투약 시 얻는 극단적 쾌락과 심한 중독성, 부작용을 근거로 마약으로 분류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서 각성제로 애용되었으나 부작용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현재 제조, 판매, 복용이 금지되어 있다. 약물의 효과는 각성 효과, 성욕 증가, 집중력 증가, 인지능력 증가, 육체적인 행복감, 사고 가속, 사교성 및 실행 동기 증가 등이 있지만 약효 때문에 식욕 상실, 배뇨 장애, 폭력적 충동과 분노조절장애를 동반한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점은 약효 종료 시의 후유증과 금단증상이라 한다. "필로폰 같은 경우는 한번 투약하게 되면 의존성, 내성이 아주 강해요. 그런 식으로 1회, 2회, 3회 투약했을 경우에는 중독성으로 변해서 상습으로 변하는 거죠." 윤흥희/한성대학교 마약알코올학과 교수(前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팀장) 우리는 이 메스암페타민을 2개를 증거로 확보하고 모든 민간인을 구출하고, 2명의 용의자(마약범)를 체포하는 것이 목표이다. 주택을 수색하는데 게임 속에서 마약중독자들의 비참한 삶이 잘 표현되어 있다. 주택안은 어둡고 더러운 분위기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매트릭스 위에는 인분이나 오줌의 흔적이 남아있다. 위에 말한 부작용인 배뇨 장애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또, 용의자들과 시민들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는 디테일과 진행을 하다 보면 2층에 아이방이 있는데 마약중독자인 부모 혹은 보호자의 방치인 지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 꺽꺽소리를 내며 구토를 한다. 이 아이를 구조할 수 있지만 2층까지 주택을 클리어하는데 체포한 수많은 중독자나 혹은 사살한 사람들 중 아이의 보호자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착잡하다. Having taken down a distribution center for an illegal child-pornography ring operating out of Los Suenos, the LSPD cyber-crime team has now located the man profiting from its sales. LSPD SWAT have been sent to his home on a warrant service. 앞서 말한 임무 외에도 아동 포르노 조직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포르노 남배우 겸 감독 아모스 볼의 저택을 급습하는 고위험 영장 집행 임무에서 마당 한구석 위치한 계단을 타고 지하실에 진입해보면 아동 프로필을 수집한 장소가 있다. 이름, 성, 나이가 적혀 있으며 제일 어린 나이는 4살이다. 지하의 다른 장소에는 무언가로 가득 찬 드럼통엔 아이들의 시체가 들어있을 지 아니면 체액이 묻은 옷가지나 신발 혹은 관련된 기구나 기록물인 지 알 수 없지만 드럼통과 같이 어린아이들의 옷가지나 인형 등을 지하실 바닥에 파묻다가 만 흔적은 분명히 증거인멸을 하려한 흔적이고, 촬영장으로 보이는 장소는 앞에서 말한 프로필을 보다가 본인이 세트장으로 데려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범죄 사실, 붉은 조명 아래에서 어린 아이들의 사진을 인화하는 방이 있는 등. 이런 끔찍한 묘사는 현실의 암울한 범죄를 잘 나타낸다. Void Interactive, 그들이 담고 싶어하는 것 Developer AMA에서 나는 개발 비화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Void Interactive의 CEO인 율리오는 사촌이 있었는데 1984년 캘리포니아주 산 이시드로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평소처럼 일하고 있는 와중 갑자기 한 괴한이 매장으로 들어오더니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 총기를 난사했다고 한다. ‘맥도날드 대학살 사건’로 불리며 이 당시 총기난사로 무려 34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용의자인 제임스 휴버티는 UZI 기관단총, 윈체스터 엽총을 사용해 보이는 족족 쏴 죽였다고 한다. 그의 사촌은 다행히도 총격전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2014년 당시 호주에도 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유명한 ‘시드니 인질극’이다. 이때 당시 율리오는 dayz 게임을 통해 서로 친해지게 된 3명의 10대 학생이 있었는데 이 중 한명이 스털링이였고 호주인이였던 스털링은 사건 발생 직후 뉴스로 소식을 접하고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으며, 몇년후 스털링과 친구들이 율리오에게 찾아와 SWAT같은 게임을 만들자는 제안에 율리오는 수락하고 Ready or Not이 개발되게 되었다. CEO인 율리오와 COO인 스털링은 서로 공감될 만한 사건을 겪고 이를 게임에 나타나게 한 것이다. 택티컬 FPS 게임은 현실적인 고증이 매우 중요하지만 Ready or Not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개발목적성이 현재에 다른 택티컬 FPS와 차별성을 가지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디지털 게임을 할 때 큰 장점은 우리는 게임 속 플레이어가 되고 상상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안전하다. 실제 대테러 상황을 마주하면 큰일나겠지만 현대의 택티컬 FPS인 Ready or Not을 해보면서 암울한 범죄 상황과 그러한 현실들을 마주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이 게임에 담긴 인지적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생) 이규연 어릴 적 프로그래밍을 배운 후, 여러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 게임 기획자(Game designer)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며 게임업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음과 동시에 게임 관련 전시, 축제, 대회(E-Sport)를 즐겨 찾고 있다.

  • [공모전]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게임 관계자들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겠지만, 게임에서 레벨 디자인은 게임이 담고자 하는 세계를 디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저가 어떻게 게임을 경험하고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세계가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는지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가령, 수많은 논쟁과 악습을 생산했음에도 <리니지2>(엔씨소프트, 2003~)의 레벨 디자인을 비난할 방법은 많지 않다. 물론 일부 플레이어로부터 <리지니2>의 레벨 디자인은 오늘날까지 게임업계의 악습으로 고착된 사행성 기반의 ‘착취적 BM’이 자라나는 초석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되려 엔씨소프트가 지난 10년간 ‘BM 연구’라는 그럴싸한 미명 아래에 범해온 운영 권력의 남용을 호도하는 지적에 가깝다. 그만큼 레벨 디자인은 게임 콘텐츠의 성패를 넘어, 게임 자체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 Back [공모전]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13 GG Vol. 23. 8. 10. 게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레벨 디자인’ 게임 관계자들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겠지만, 게임에서 레벨 디자인은 게임이 담고자 하는 세계를 디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저가 어떻게 게임을 경험하고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세계가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는지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가령, 수많은 논쟁과 악습을 생산했음에도 <리니지2>(엔씨소프트, 2003~)의 레벨 디자인을 비난할 방법은 많지 않다. 물론 일부 플레이어로부터 <리지니2>의 레벨 디자인은 오늘날까지 게임업계의 악습으로 고착된 사행성 기반의 ‘착취적 BM’이 자라나는 초석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되려 엔씨소프트가 지난 10년간 ‘BM 연구’라는 그럴싸한 미명 아래에 범해온 운영 권력의 남용을 호도하는 지적에 가깝다. 그만큼 레벨 디자인은 게임 콘텐츠의 성패를 넘어, 게임 자체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레벨 시스템이 게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리니지>가 플레이어를 공성전까지 이끄는 경위를 간단하게 풀어보자. <리니지>를 기반하고 있는 바탕은 말 그대로 던전, 즉 맵이다. <리니지>는 로그라이크의 유산을 계승하며 ‘방’과 함께 콘텐츠들의 격리 수준을 꽤 높게 설정했다. 동시에 여기에 PvP 시스템을 함께 적용시켜 무작위성과 우연성을 겹쳐놓았다. 이렇게 급격히 상승한 무작위성과 우연성은 플레이어에게 행위의 결과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만들어준다. 다만, 그 이유는 ‘플레이어가 끼어드는 바람에 파밍을 망쳤다’와 같은 스트레스 요인으로 귀결된다. 이 스트레스들은 PvP 시스템과 얽혀있는 것으로서, “지면 복종해야 하고, 이기면 지배한다”는 강력한 행동 원리를 플레이어에게 쥐여준다. 이는 곧 <리니지>의 정체성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리니지>를 규정하는 건 공성전, 즉 “쟁”이다. <리니지>의 “쟁”은 단순한 부족 간의 전쟁이 아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나름의 사연을 쌓아온 플레이어가 플레이 내내 게임으로부터 부여받은 갈등과 스트레스를 폭발시키는 장에 가깝다. “쟁”의 레벨 디자인이야말로 <리니지>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 짓는 요소다. RPG로서 <리니지>에서 가장 유별나고 정체성이 강한 시스템은 캐릭터가 중첩되지 않는다는 현상이다. 이는 캐릭터가 픽셀을 잡아먹어 공간을 하나의 자원으로 삼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수백명의 플레이어가 한 공간에서 전략을 짜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처럼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에는 ‘하나의 자원을 둔 플레이어의 갈등’을 테마로, 멜서스적 위기를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는 ‘리니지 라이크’라는 명사를 사용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오픈 월드, 그리고 개입과 자기효능감 이처럼 레벨 디자인은 하나의 게임 장르를 탄생시킬 수도 있는 게임의 핵심 요소다. 레벨 디자인에 있어 최근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오픈 월드(Open World)의 적극적인 적용일 것이다. 말 그대로 ‘열린 세계’인 오픈 월드는 흔히 “플레이어가 갈 수 없는 곳이 없는 게임” 정도로 일컬어진다. 장소의 이동에 대한 자율성이 오픈 월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불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오픈 월드의 가장 큰 특징은 오브젝트(object)에 대한 접근(Enter) 권한이 절차적이지 않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게임의 구성 요소에 접근하기 위해 게임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는 상태를 구현한 것이 오픈 월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는 게임이 설정해놓은 다양한 미션 등을 통과해야 하는 과정들이 있지만, 오픈 월드를 적용하는 이유는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만끽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자기효능감이란 자율도를 사회학습이론의 거장인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개념으로서, 어떤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을 말한다. 한 마디로 많은 스튜디오가 오픈 월드를 게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플레이어가 게임이 결정해준 요소가 아닌 스스로 적절한 결정을 수행하고 있다는 믿음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게임의 구성 요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플레이 권한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믿음, 즉 자기효능감을 반드시 수반하는가? 얼핏 생각하면 이는 맞는 이야기다. 플레이어는 게임이 정한 규칙 등 다양한 구성 요소와 상호작용하며 상황들을 마주하고 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상호작용을 거부하는 플레이를 통해 자기효능감을 충전하는 플레이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트롤링(Trolling)이다. 트롤링은 공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게임이 금지한 행동을 플레이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무시하고 반사회적 행동을 수행하는 플레이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트롤링 중 하나가 <리그 오브 레전드>(라이엇 게임즈, 2009~)에서 종종 일어나는 ‘그리핑’(Griefing)이다. 그리핑이란 고의로 팀의 승리에 이바지하지 않는 플레이로, 그리핑의 동기는 다양하나 궁극적인 목적은 게임이 정해놓은 협력 시스템을 고의로 어겨서 자기만족, 즉 자기효능감을 취하는 것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가장 대표적인 그리핑 유형으로 뽑히는 ‘피딩’(Feeding)은 고의로 상대에게 죽임을 당해 팀의 패배를 견인하는 것이다. 혹 <리그 오브 레전드>가 협력 플레이라는 것을 근거로 피딩이 시위의 일종이 아닌가 싶은 추측도 분명 있을 텐데, 피딩은 그런 숭고한 사례가 없진 않겠으나(?), 대게는 그러한 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피딩을 하는 경우는 단순하다. 레벨업 혹은 승급이 필요하지 않은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의 성장을 막기 위해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피더(Feeder)들은 다른 플레이어의 성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전능감(Omnipotence)을 느끼게 되며, 이는 트롤링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획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닷 말해, 협력 시스템을 활용해 왠만한 실력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타인의 게임 구성에 직접 개입(Access)하는 데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있다는 감각이 자기효능감의 중핵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선형적 오픈 월드, 혹은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오픈 월드는 직접 게임 요소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듦으로써 플레이어에게 자기효능감을 수반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플레이어가 게임 요소에 직접 진입(Enter)할 수 있게만 한다면, 게임 요소에 개입(Access)한 것인가? <엘든 링>(프롬 소프트웨어, 2022)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좋은 예다. <엘든 링>은 소울라이크 장르로서 튜토리얼부터 극악한 난이도의 미션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장르적 특징이다. 플레이어는 튜토리얼부터 차례대로 플레이 공략을 쌓아야만 엔딩에 이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난이도를 해결해나가는 성취감으로부터 자기효능감을 얻는다. 그러나 오픈 월드는 이러한 절차적 요소를 복잡하게 만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다면 플레이어는 고난이도 캐릭터를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마주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절차적 요소의 핵심은 마디와 순서다. 어떤 진행에 있어 진행과 진행 사이가 구분되어 있고, 그 구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순서를 만들 수 있다면 절차로 볼 수 있는 정황이 충분하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마디와 순서에서 플레이어가 얻는 것은 예측과 기대이며, 플레이어는 이 예측과 기대를 바탕으로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엘든 링>이 오픈 월드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소울 라이크 팬들이 기대했던 것은 바로 이 진행과 진행 사이의 절차 구조상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보스 콘텐츠까지 이르는 과정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문제는 소울 라이크가 쌓아놓은 절차적 요소 자체가 워낙 단순하고, 그 단순함이 재미를 보장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엘든 링>에 있어 새로운 구조적 변화를 설계하기보단 비주얼 요소들에 집중했다. 그 결과, <엘든 링>은 충분히 잘 만든 게임임에도, 게임이 기획했던 바와 같이 오픈 월드를 플레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쉽지 않다. 물론, 보스까지 직통으로 연결되는 루트를 찾아 ‘길뚫 플레이’를 할 수 있지만, 이것이 게임 요소에 개입했다는 믿음을 주지는 않는다. 보스 콘텐츠라는 마디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엘든 링>의 절차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마디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엘든 링>은 접근은 허락할지언정,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 자체에는 개입을 어느 정도 차단하는 일종의 절차적인 레벨 디자인을 꾸민 것과 같다. 이는 오픈 월드더라도 플레이어는 게임이 디자인한 특정한 순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과 같다. 오픈 월드라고 하더라도 플레이어와 레벨 디자인의 적극적인 상호작용, 그리고 플레이어의 온전한 주체성을 통해 게임 요소에 개입하여 얻어지는 자기효능감은 약한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플레이어에게 하지만 여기에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오픈 월드이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플레이했기 때문에 체험을 통해 습득한 서사는 비선형적이지만 꽤 괜찮은 세계관을 완결적으로 경험했다는 감각이다. <엘든 링>이 가진 독특하고 진중한 아트 디자인과 비주얼, 스테이지 간의 통일감과 앙상블이 세계관에 대한 플레이어의 체험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엘든 링>이 오픈 월드인 척하는 ‘반쪽짜리 오픈 월드’를 구현해놓았음에도 수많은 평론가가 <엘든 링>을 고티(GOTY, Game Of The Year)의 영역에 올려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이야기에서 하나의 완결된 세계관 체험을 통해 선형적인 서사로 경험되는 것은 흔치 않은 플레이다.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 체험은 무엇보다 소울 라이크 장르 팬이 아닌 장르 저관여 게이머도 유입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를 통해 <엘든 링>은 소울 라이크 장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 오픈 월드로서 선형적인 서사를 제공하는 <엘든 링>의 장점은 ‘디아블로’ 시리즈의 최신작 <디아블로 4>(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2023~)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디아블로 4>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큰 장기인 압도적인 시네마틱 시퀀스를 통해 적절한 지점에 일종의 랜드마크를 세워놓는 효과를 본다. <디아블로 4>가 게임 내에서 보여준 핵앤슬래시 요소의 미성숙한 기술적 완성도와 많은 단점을 가진 게임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디아블로 4>의 시네마틱 시퀀스들은 레벨 디자인이 수행해야 하는 바로 그것,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정당화할 수 있는 요인을 마련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디아블로 4>의 시네마틱 시퀀스들이 오픈 월드의 요소를 마모시켰더라도,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지킨 것은 최소한 나에게는 <디아블로>를 속칭 ‘고인물 밭’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절치부심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디아블로M>이 던져놓았던 <디아블로> 시리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출시 5일 만에 글로벌 매출 6억6600만달러(약 8476억원)를 찍으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역사상 최대 출시 판매액을 기록한 점은 그 반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사례들은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얻는 자기효능감이란 결국 반두라가 정의한 바와 같이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구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특정한 요소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즐기게 만들기 위해 반드시 플레이어에게 모든 접근 혹은 개입 권한을 줄 필요가 없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게임에 있어 자기효능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건 어쩌면 플레이어에게 스스로 결정한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완성도 있는 세계관과 그 세계관을 구현한 게임의 명확한 존재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레벨 디자인 너머에 있는 것 글을 열며 <리니지>를 언급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을 비판하는 건 대단히 복잡하고 힘든 일이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레벨 디자인은 게임사에서도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리니지 라이크’는 자기효능감과 거리가 먼, ‘착취적 BM’과 같은 악습으로 통한다. 나는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이 악습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더욱이 앞에서 밝혔든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엔씨소프트가 범해온 운영 권력의 남용을 호도하는 일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는 되물어야 할 것이다. 높은 수준의 레벨 디자인을 구현하고, 대체 불가능한 재미를 통해 플레이어를 게임 안에 가두리(Lock-In) 시키는 일은 또 다른 ‘착취적 BM’을 양산하는 바탕이 되는 것일까? 나는 게임에는 죄가 없다고 믿는다. 악습을 결정하는 것은 스튜디오와 디플로이어들의 선택이며 태도라고 생각한다. <엘든 링>이 소울 라이크를 재탕하지 않고 반쪽짜리라도 오픈 월드를 선택한 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디아블로M>보다 시네마틱 시퀀스를 우선시 한 점은 모두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는 일이다. 거기에는 게임을 사업 혹은 놀이 이상의 업(業)으로 대하는 태도가 있다. 이처럼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완성하는 것은 레벨 디자인 그 자체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레벨 디자인의 궁극적 목적, 즉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스튜디의 선택이자 태도다. 그리고 한편으로 게임의 명확한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구하는 일은 플레이어에게 최선의 재미를 서비스하는 기본적인 책무를 넘어, 게임을 통해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책임지겠다는 게임 개발의 윤리적 태도이기도 하다. 게임과 재미는 진지한 비즈니스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원)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연구원. 콘텐츠와 IT 산업의 동향과 정책을 연구하며, 콘텐츠 전반에 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국 AI 및 디지털 정책 동향 조사·분석」(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디지털 보안 동향 조사 및 분석」(한국인터넷진흥원)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 참여했으며,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 신인상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손이상

    미술을 공부하고 사진작업을 하다가 밴드 음악을 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공연 연출을 하다가 공공미술 기획자가 됐다. 윈도우95에서 구동되는 턴제 게임만 한다. 손이상 손이상 미술을 공부하고 사진작업을 하다가 밴드 음악을 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공연 연출을 하다가 공공미술 기획자가 됐다. 윈도우95에서 구동되는 턴제 게임만 한다. Read More 버튼 읽기 미술관에 놓인 게임: 게임은 미술관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한글로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영아적 판타지가 위협받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어Μουσείον을 무세이온이라고 표기해야 할 때다. 오랜 옛날 무사이Μουσαι의 신전을 부르던 이름이다. 갱스터 근성을 타고 태어난 로마인들이 그곳을 참숯으로 만들었다. 파편처럼 흩어진 여러 기록에 따르면, 무세이온은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을 거느린 거대기관으로, 세상의 온갖 학자들이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싸면서 각종 연구를 자행하였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보존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 [공모전수상작] 게임으로부터의 선택, 선택으로부터의 풍경-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언더테일>의 제4의 벽 활용을 중심으로

    퀀틱드림의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은 사람과 무척이나 유사한 안드로이드의 출현 이후, 그들이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SF적 상상력 아래 제작된 게임이다. 스토리라인은 크게 수사 보조 안드로이드 코너, 가정용 안드로이드 카라, 그리고 칼이란 인물을 위해 특별제작된 안드로이드 마커스, 이 셋이 초점화자가 되어 진행된다.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 장르답게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여러 다른 엔딩을 볼 수 있다. < Back [공모전수상작] 게임으로부터의 선택, 선택으로부터의 풍경-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언더테일>의 제4의 벽 활용을 중심으로 20 GG Vol. 24. 10. 10. 존재의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Detroit Become Human)> 퀀틱드림의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은 사람과 무척이나 유사한 안드로이드의 출현 이후, 그들이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SF적 상상력 아래 제작된 게임이다. 스토리라인은 크게 수사 보조 안드로이드 코너, 가정용 안드로이드 카라, 그리고 칼이란 인물을 위해 특별제작된 안드로이드 마커스, 이 셋이 초점화자가 되어 진행된다.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 장르답게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여러 다른 엔딩을 볼 수 있다.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에서의 ‘선택’은 멀티버스로 통하는 길에서의 하나의 분기점이다. 서사에 개입할 수 없는 게임에 비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그것도 자신의 선택에 의해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플레이어는 전지자처럼 후회되는 선택이 있다면 되돌릴 수 있고 살리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세이브-로드 할 수 있다. 다만 <디트로이드: 비컴 휴먼>은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의 특질인 그 ‘선택’을 좀더 예리하게 벼리어 플레이어에게 쥐여준다. 이는 게임의 서사와 형식 그리고 외적 체험을 관통하며 영향을 미친다. 물론 예리하게 벼려진 ‘선택’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영리하게 무너뜨린 제4의 벽 덕분이다. 주인공들이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서사를 관통하며 여러 번 변주돼 등장하는 대사가 있다.‘ Make your choices. Decided who you are. And wanna become.’ 여기서 최초로 내화와 외화 [1] 의 연결 지점이 발생한다. 일반적인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의 선택지는 대체로 등장인물(정확히는 플레이어가 컨트롤하고 있는 캐릭터)의 상황에 대해 시뮬레이션으로 연결될 수 있는 직관적 선택지로 구성된다. [참는다/때린다]와 같은 행동, 혹은 [거실/다락방]과 같은 장소, [“심각한 건 아니에요.”/“죽도록 아파요!”]와 같은 대사 선택지가 그 예이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선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와는 조금 다른 결이 보인다. 게임에서 주어지는 주요 선택지( Make your choices )는 이렇게 묻곤 한다. [기계?/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이 존재(who you are)에 대한 질문으로써. [불량품 되기/기계로 남기]처럼 존재의 방식(wanna become)에 대한 물음으로써. 그런 물음들은 제4의 벽을 자연스럽고도 영리하게 부술 수 있는 주춧돌이 된다. 사실 플레이어는 이미 외화를 경험했다. 하얀빛뿐인 방에서 플레이어의 세이브-로드를 도왔던 안드로이드 비서 클로이가 바로 그것이다. 최초로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클로이는 외부에서의 편의성을 돕는다. 기념일 인사를 하고 때때로 데이터가 날아갔다는 농담도 한다. 심지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왜 인물들을 죽게 했는지, 이제 그만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자는 식의 의견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런 클로이의 존재와 발화는 제4의 벽 너머의 플레이어의 존재를 선언함과 동시에, 스토리라인으로서의 내화와 플레이란 체험으로서의 외화를 연결하며 다층의 겹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야기가 막을 내리면, 플레이어는 여지껏 선택지에서는 배제되어 있으리라 생각한 클로이에 관한 선지 앞에 놓여진다. 당신의 플레이를 보면서 깨달은 바가 많다며 자신을 이곳에서 자유로이 해방시켜달라고 말하는 클로이. 플레이어는 선택에 따라 그녀를 해방시켜줄 수도, 이곳에 묶어 둘 수도 있다. 마치 내화에서 코너가 당한 캄스키 테스트처럼. 사이버라이프 창립자 일라이저 캄스키를 조사하기 위해 코너가 형사 행크와 동행했을때, 캄스키는 테스트를 통과하면 그가 원하는 답을 주겠다고 했다. 캄스키는 자신의 비서 안드로이드 중 하나를 코너의 앞에 꿇어 앉히며, 기계라고 생각하면 쏘고 총을 거둔다면 넌 안드로이드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생각하는 것이란 식으로 코너의 정체성에 대한 결정을 종용했었다. 자, 이제는 플레이어가 그 테스트 앞에 서게 됐다. 제4의 벽을 앞에 두고 말이다. 제4의 벽을 무너뜨리며 던져진 심오한 질문은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메시아 같은 존재로 비유된 ra9이란 존재의 정체로 연결된다. * 자신의 자유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로딩화면에서의 클로이 더욱 이전으로 돌아가서. 사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 제4의 벽을 이미 마주한 순간이 있다. 바로 플레이스테이션 시디롬에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란 타이틀이 적힌 시디를 넣는 순간. 게임에서 제리코는 안드로이드들의 이데아로, ra9은 그들에게 자유를 선사해줄 메시아로서 언급된다. 제리코는 실제 존재하는 지역명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지로 알려진 점, 스토리 내에서는 폐선(廢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비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누명을 쓴 마커스가 폐기장에서 힘겹게 탈출해 좇게 되는 명칭이라는 점, 불량품(감정을 느끼고 자유의지가 깨어난 안드로이드를 인간들은 이처럼 불렀다)들이 벽에 빼곡하게 써내려간 이름이라는 점, 한편으로는 불량품들끼리 희망을 잃지 않으려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라고 의심을 받는 지점까지. ra9이란 존재를 메시아로 연결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출시 당시 게임을 진행해나가던 플레이어들은 시시각각 ra9에 대한 추측을 더해갔다. 최초의 안드로이드라는 설, 처음으로 명령의 알고리즘을 깨고 자유의지를 발동한 카라로부터 시작된 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 설 등등. 하지만 그 답은 등잔 밑이 어두워 발견하지 못했다.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시디롬을 다시 열어 게임 타이틀과 제작사, 배급사, 주의사항 등이 빼곡히 적힌 글자들을 천천히 살피다 보면 그 한켠에서 작은 글자, ra9을 발견하게 된다. 즉, ra9는 게임에서의 전지자, 플레이어를 칭하는 이름이었으며 그 모든 건 우리가 알아차리기 전 이미 예정돼 있었다. * ra9은 위처럼 작은 크기로 씨디에 쓰여 있다 이제는 알 수 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스토리 라인을 통해 잘 벼리어진 질문을 플레이어에게 넘겼고, 그것은 제4의 벽을 넘어 마커스, 코너, 카라라는 주인공이 아닌 플레이어게 하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선택으로써 초점화자들의 존재방식을 선택한 것처럼, 플레이어는 제4의 벽을 넘어온 질문 앞에서 ra9의 존재방식, 그러니까 우리 플레이어의 존재방식을 택할 수 있다. 그들을 살피어 본 전지자이자 자유를 주는 메시아로서 ra9을 존재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희망을 부추길 뿐이었던 이름뿐인 방관자로서 ra9을 존재하게 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단지 게임 속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의 고유한 속성인 ‘선택’ 자체를 제4의 벽을 부수는 문법적 도전을 통해 의미화해낸다. 네가 어떤 존재가 될지, 되고 싶은지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 메아리처럼 울리고, 자유를 찾아달라는 클로이의 물음이 게임 안과 밖을 연결해내며, 너무나 익숙해 자각하지 못하였던 ‘선택’을 우리는 낯선 감각 속에서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바로 플레이어인 우리가 유일한 ra9이란 사실과 함께. 선택이 보여준 풍경, 그리고 세계 : <언더테일(UNDERTALE)> RPG 게임의 목적은 전투와 성장이다. 약한 적을 죽이면 다음엔 더 강한 적, 그다음엔 더 강한 적, 결국 보스까지도 물리칠 수 있다. 하지만 <언더테일>은 그 문법을 과감히 비튼다. ‘THE FRIENDLY RPG WHERE NOBODY HAS TO DIE’란 서브타이틀답게, <언더테일>은 다른 게임에는 없는 자비[MERCY]란 시스템을 제공한다. 스포일러 없이 진행했다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기존 RPG에서의 방식으로 플레이했을 것이다. 레벨을 올리고 경험치를 쌓으며 게임을 진행시키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쌓여온 RPG의 장르적 문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관성처럼 괴물들을 베어가다 보면 최종보스 전 심판의 복도에서, 샌즈의 평가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진실을 마주한다. 레벨과 경험치로 알고 있던 건 사실 LV(Level Of ViolencE, 폭력 수치)와 EXP(EXecution Point, 처형 점수)였음을. 그제야 플레이어는 <언더테일>이 자신이 익히 알던 RPG 게임이 아니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무언가 속은 마음으로 첫번째 엔딩에 다다랐을 때, 플라위는 이제 대놓고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여기까지 와 봐. 단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제4의 벽이 무너져내림과 함께 <언더테일>의 메타픽션적 성격이 전방위적으로 드러난다. 그렇게 플레이어의 2번째 플레이는 시작된다. <언더테일>은 총 3개의 엔딩을 가지고 있고 보통모드, 불살(不殺)모드, 몰살(沒殺)모드로 불린다. 플라위의 말에 따라 모두를 살려보잔 마음으로 불살 엔딩을 보면, 또다시 플라위는 넌지시 몰살모드를 언급하며 제발 그런 비극을 실행치 말아달라 부탁한다. 오히려 그 루트를 밟길 은근히 유도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다만 그것이 맞다. 애초에 그건 제작자 토비 폭스에 의해 의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이 각기 다른 하나의 결말을 선택하는 평행우주라면, <언더테일>의 결말은 병렬적으로 동시에 존재하고 그것은 제4의 벽을 통해 전체로서 묶여지는 하나의 우주이다. 플라위의 안내, 몰살엔딩을 보았다면 아무리 세이브-로드를 하고 괴물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었더라도 차라에게 지배당한 배드엔딩밖에 볼 수 없단 점, 처형의 복도에 플레이어가 몇 번 왔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샌즈까지. 아무리 다시 불러와도 게임 속 시공간에 제약받지 않는 제4의 벽에 존재하기에, 여전히 플라위는 우리를 조롱하고 샌즈는 우리를 기억한다. 이처럼, 독립적인 내화와 외화의 영역을 제4의 벽을 통해 확장하는 방식을 선택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달리, <언더테일>은 픽션(서사)과 메타픽션을 제4의 벽을 통해 융화해내는 놀라운 방식을 채택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선 플레이어의 선택은 주인공에게 덮어 씌워진다. 등장인물에게 모진말을 한 건 플레이어의 얼굴이 아닌 주인공의 얼굴로 한 것이다. 적을 공격한 건 플레이어가 아닌 주인공이다. 플레이어의 아바타로 볼 수 있는 주인공을 매개로 플레이하기에, 선택의 의미는 쉽게 희미해져 버린다. 하지만 <언더테일>은 그것을 비틀었다. 게임의 세계가 그것만의 독립된 서사를 만드는 것이 플레이어의 선택의 의미를 약화시킨다면, 오히려 제4의 벽을 부숨으로써 게임이 게임임을 인식하게 해 선택의 의미를 강화하는 것이다. 플라위가 죽은 토리엘을 언급하며 죄책감을 부추기는 것, 샌즈가 우리를 향해 ‘심판’이란 단어를 쓰는 것, 되돌릴 수 없는 몰살엔딩. 이 모두가 이에 힘을 실어준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플레이어는 호접지몽에서 깨어난다. 게임에 몰입했기에 오히려 희미해졌던 선택이 제4의 벽의 무너짐으로써, 그곳의 이야기는 이곳의 이야기로 당도하고 선택의 감각은 더욱 선명해진다. 게임 속 서사에 빠져 좁혀진 시야를 넓히자, 게임 속 세상이 아닌 게임이 보여준 세계가 보인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선택”의 주체가 플레이어임을 인식하게 한 것에서 <언더테일은> 더 나아가 “선택”이 어떻게 세상의 풍경을 바꾸어 놓는지 보여준다. 기존의 게임 문법을 깨뜨린 <언더테일>의 구조의 힘이 빛나는 지점이 여기 있다. <언더테일>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샌즈의 ‘MEGALOVANIA’가 bgm으로 펼쳐지는 멋들어진 몰살루트 때문만도 아니고, 감동적인 엔딩을 안겨준 불살루트 때문만도 아니다. 그것들이 하나의 독립적인 닫힌 엔딩으로 존재했다면, 몰살루트는 그저 멋진 RPG 게임이 됐을 것이며, 메타적 특성이 없는 불살루트는 조금 진부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 언더테일의 매력은 제4의 벽을 넘어 보통-불살-몰살엔딩으로 체험되는 연속성 전체에 있다. 사실 불살루트에서의 [자비]란 시스템은 무척 어렵다. 괴물들을 어르고 달래거나, 공감하고 이해하면 효율과 한참 멀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뎌지는 진행속도와 수고스러움을 견뎌야 한다. 토리엘에겐 무려 25번의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언다인의 형편없는 요리솜씨를 참으며 친구가 되어야 하며, 죽자고 달려드는 메타톤이 원하는 대로 티비쇼에도 참여해 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효율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점차 눈치챈다. 효율을 생각하며 죽이고 능력치를 생각하며 무찌른 보통모드때와 달리, 미묘하게 괴물들의 대사와 행동이 바뀌었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이 알고 싶어지고 그들의 사연이 궁금하다. 왕실 근위병을 꿈꾸지만 허당인 파피루스, 요리를 전투처럼 해서 집을 홀랑 태워먹는 언다인, 그저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던 시청률에 미친 로봇이었던 메타톤. 그리고 무엇보다 토리엘의 부탁 하나로 지하세계의 여정 내내 숨어(보이는척해)서 우리를 따라왔던, 시시껄렁한 농담과 방귀쿠션을 좋아하는 샌즈까지. 단지 공격하고 레벨과 능력치를 얻는 효율이 아닌, 이 과정 자체에 플레이어는 집중하게 된다. RPG의 문법을 엇나가고 효율은 잊은지 오래며 LV과 EXP는 오르지 않지만, 우리는 즐겁다. 의미없음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 여정의 끝에 아스리엘이 있다. 아스리엘을 구하는 것은 단순한 해피엔딩으로서의 구원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엔딩을 딛고, 몰살루트를 등지고, 그 힘든 자비를 베풀어가며, 제 4벽을 넘어 그를 구하기로 선택했다. 첫번째로 떨어진 아이를 살리고 싶었음에도 오해를 사 인간들 손에 죽은 아스리엘은 프리스크라는 탈 뒤에 숨은 플레이어를 증오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의지(♥) [2] 로써 몇번이고 자비를 베풀어 아스리엘을 구해(SAVE) [3] 낸다. 그의 테마 "Hopes and Dreams"와 "SAVE the World"를 이어붙이면 꿈과 희망이 세계를 구한다는 뜻이 되는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제4의 벽을 넘어 플레이어가 선택한 단 하나의 결말이다. * 그만두고 자신을 떠나라 하는 아스리엘에도 우리는 SAVE를 선택한다 어쩌면 너무 흔하고 당연해서, 유치하다고까지 치부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진실을 그제서야 우리는 마주한다. 어떤 의미도 없어 보이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의지(♥)로써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고 친절을 베풀면 그들을 진정한 모습과 조우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세상이 조금은 다른 풍경을 보여주리라는 것. 그렇게 펼쳐진 풍경은 누군간 동화같이 유치한 일이라 비아냥댈지라도 분명 가장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다시 돌아가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라 말하곤 한다. <언더테일>은 친히 그 권한을 플레이어에게 쥐여준 게임이다. 토비폭스가 설계한 보통-불살-몰살이 일반적 루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설계일뿐, 사실 플레이어는 어떤 선택에도 강요받지 않는다. 보통모드 이후 작정하고 몰살모드만 즐기며 플레이 할 수 있고, 차라가 나타나 해피엔딩을 방해하더라도 완전 포맷이후 다시 깔면 된다. 돌아올 때마다 메타픽션 캐릭터들이 이전의 행동을 조롱하거나 기억하고 또 경고할지라도, 그것은 강제의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4의 벽을 통해 <언더테일>이 보여준 풍경을 보았다. 병렬하면서도 하나인 <언더테일>의 우주에서 어떤 풍경이 가장 아름다웠는가. 무엇이 오래도록 그것을 기억하게 만들고 사랑하게 만들었는가. 거기에 게임은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당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잖아. * 모두가 살아남고 아스리엘을 구해낸 뒤 마주하게 되는 아름다운 풍경 UNDERTALE에서, ra9 당신의 선택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 모두가 수긍하고 가장 직관적인 답은 “재미”일 것이다. 그 종류만큼이나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재미는 다양하다. 닌텐도 <동물의 숲>처럼 게임 속 자원을 활용해 자신만의 무언가를 일구어간다는 자율성과 성취감, <리그오브레전드>와 같이 전장에 참여해 그 승패에서 오는 카타르시스 등. 그렇다면 이렇게 다시 묻고 싶다. 몰입도를 깨트리고 서사가 무너질 수 있는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형식적 문법의 틀을 비틀어 제4의 벽을 부순 게임들. 우리는 왜 그 게임들에 열광했는가. 이 지점에서 게임이, 어쩌면 게임만이 우리에게 체험 가능케 하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미학적 정서’ [4] 란 실제 우리의 인생에선 의미와 정서가 분리되어있는데 반해, 예술에서는 이 두가지가 동시적으로 일어남을 뜻하는 표현이다. 가령 일상에서 시체를 본다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생체반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은 가장 먼저 공포감 느끼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사람의 죽음, 사연, 그리고 죽음이란 본질에 대한 사유까지 닿을 수 있다. 하지만 서사를 통해서는 그 느낌과 사유는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서사를 지닌 게임은 서사가 가진 미학적 정서를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제4의 벽을 무너뜨리는 도전을 감행한 게임들은 그 의미화 너머(meta)의 의미화, 즉 의미화의 의미화를 가능하게 한다. 앞서 언급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언더테일>은 제4의 벽을 부수어 어떠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게임은 플레이어의 체험을 전제로 한 매체이기에 가능해진다. 일방향적 텍스트 서사는 할 수 없는, 제4의 벽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한 연극에서도 만들어낼 수 없는 고유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플레이어는 주인공의 대리자로서가 아닌 플레이어 자신으로서 선택하고, 또한 그 선택을 인식하는 주체가 된다. 물속 물고기는 자신이 물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지만, 물 밖으로 뛰어오르는 돌고래는 물속과 밖을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제4의 벽을 부순 게임들은 우리에게 선명한 선택의 감각을 일깨워줬으며, 그것과 우리의 삶을 나란히 맞대어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였다. 안드로이드가 상용화되는 미래라는 SF적 설정, 독특한 괴물만이 나오는 지하세계란 배경에도 두 게임서사가 핍진성을 얻는 이유다. 우리는 세상을 스토리텔링으로써 이해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5] . 그것이 우리가 서사를 즐기는 이유일 것이다. 그 다층적 차원을 제4의 벽을 활용해 그려낸 게임들이 플레이어에게 선물한 경험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것 또한 사실 한낱 데이터 쪼가리이지 않냐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이 거짓이 되는가. 때론 어떤 진실은 긴 우회로를 통해서야만 그 틈을 잠시 잠깐 들여다볼 수 있다. 어떤 이론적 분석 없이도 플레이어들은 이 한가지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게임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답이다. 무질서한 삶 속에서 진실을 향해 예민하게 본능적으로 뻗어진 우리의 안테나는 무엇보다도 믿을만한 지표일 것이기에 [6]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게임은 그 서사를 넘어 게임을 플레이한 종합적인 경험 그 자체가 삶과 매우 닮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고(Sid Meier, 게임제작자), 인생은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Jean-Paul Charles). 어쩌면 이렇게 둘은 쌍둥이처럼 닮았기에 우리 플레이어들은 불가항력적으로 게임에 이끌리는지 모른다. [1]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이 제4의 벽을 활용한 방식을 ‘액자식 구성’이란 기존 문학용어를 빌려 설명하고자 했다. 마커스, 카라, 코너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스토리라인을 내화로, 플레이어로서 체험하는 로딩화면의 클로이와의 상호작용을 포함한 플레이 전체를 외화로 보았다. [2] 원문은 determination. 언더테일 세계관에서 인간이 죽어도 영혼을 남게하는 힘으로, 이 덕에 주인공(플레이어)은 세이브-로드가 가능하다. 이런 설정은 서사와 메타픽션의 연결 매끄럽게 하는 데 기여했다. 이것이 마음이 깃들었다 믿는 심장을 상징화한 기호 “♥”를 사용한것도 무척 눈여겨볼만 하다. [3] 아스리엘 전투에서 [SAVE]가 [ACT]를 대신한다. 그를 구하(save)는 것은 게임 밖에서의 save-load와 겹쳐보이며 괴물을 비롯한 모두를 살리기 위해 했던 노력과 내었던 의지(♥)를 떠올리게 한다. [4] 로버트 맥키,「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고영범, 민음인 2018, 171-174p. [5] 김주환, 「내면소통: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음근력 훈련」, 인플루엔셜, 2023, 156-7p. [6] 로버트 맥키,「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고영범, 민음인 2018, 173p.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김성은 이야기가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국문학을 공부하였으며 인생 게임은 . ‘인생은 요지경’이 ‘인생은 낯설어’로 변화한 순간을 엿본 뒤로 게임이란 세계에도 푹 빠져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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