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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의 조건 : 게임은 스포츠 종목이 될 수 있는가?
예들 들어 ‘대통령배 전국 아마추어 이스포츠 대회’, ‘이스포츠 대학리그’, ‘동호인대회’, ‘전국장애학생e페스티벌’, ‘한중일 이스포츠대회’,‘세계이스포츠대회’의 공식 종목들이 궁극적으로 국내 게임 산업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일이다. < Back 게임의 조건 : 게임은 스포츠 종목이 될 수 있는가? 15 GG Vol. 23. 12. 10.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라는 질병으로 분류할 때 우리나라는 2007년 제정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게임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게임물의 이용에 관한 사항을 정해 게임 산업의 진흥 및 국민의 건전한 게임문화를 확립하는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게임은 문화다’라는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오랜 시간 게임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해온 사회적 담론의 벽이 높았던 탓에, 게임의 미래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할 기회를 놓친 것 같았다. 예컨대 WHO의 질병 분류 제시안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반영될 수 있는 시기는 현실적으로 2026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게임이 질병으로 등재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할 시간은 있었다. 게임 안에 오락성, 산업성, 경제성, 중독성, 폭력성, 선정성 같은 보통 우리가 인지하고 경험하는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다면, 게임의 어떤 특성이 미래에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우리는 어느 때 보다 진지하게 논의를 해봐야 함에도, 부정적 프레임 안에 게임을 가두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려고만 했지 게임이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왜 젊은 세대로부터 관심을 받는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부족했다. 특히 이스포츠가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면, 게임은 스포츠 종목이 될 수 있을까? 2018년도 게임은 국제 스포츠 대회 종목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시범 종목인 이스포츠에서 6개의 게임 즉 MOBA 장르 게임으로 잘 알려진 ‘리그오브레전드’, ‘펜타스톱’, RTS 장르의 ‘스타크래프트’, ‘클래쉬로얄’, 스포츠 장르 ‘PES 2018’, 수집형 카드 게임(CCG) ‘하스스톤’에 출전한 국가대표들이 메달 경쟁을 벌였다.이후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는 이스포츠를 2022년 중국-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승격시켰는데, 개최국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1년 연기된 아시안 게임이 2023년 9월 개막을 했고 이스포츠는 첫 국제스포츠 대회 정식종목으로 주목을 받았다.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을 키우고 있는 중국에서 한국과 이스포츠 신흥 강국들이 7개의 종목(배틀그라운드 모바일, 도타2, 리그오브레전드(LoL), FIFA온라인4, 스트리트 파이터 5, 펜타스톰, 몽삼국 2)에 메달을 두고 경쟁을 한 것이다 1) .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군 면제라는 보상도 받았다 2) . 아시안 게임에서 활약한 이스포츠는 지난 11월에 다시 큰 이슈를 만들었다. 5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2023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통칭 '롤드컵‘ 결승전에서 우리나라의 SK텔레콤 게임단 T1이 중국 웨이보 게이밍을 꺾고 우승을 한 것이다. 롤드컵 결승전이 열린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는 1만 18000석의 입장권이 10분 만에 매진되었고. 경기 당일 광화문 광장에는 1만 5000명의 관중들이 모여 거리 응원을 했고, CGV는 영화관에서 준결승전부터 생중계 티켓 판매를 했는데, 결승전 당일 전국 CGV 티켓이 매진될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1990년대 후반 ’스타크래프트‘로 시작한 이스포츠 전성기는 2011년 등장한 ’리그오브레전드‘로 다시 부흥기를 맞이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예컨대 2011년 첫 롤드컵 총상금은10만달러(약1억3000만원)였지만, 한국과 중국 프로팀이 참여하면서 상금 규모가 커져 올해는 총상금이 222만달러(약28억원)였고, 고척돔 티켓 판매만으로 40억원의 수익을 창출했으며, 전 세계에서 롤드컵 결승전을 시청한 사람은 1억명, 누적 접속자는 4억명을 기록했다. 게다가 롤드컵을 관람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과 코카콜라, 오포, 레드불, 유튜브 게이밍 등 기업의 후원과 광고 투자를 고려할 때 2023년 롤드컵의 경제효과는 약 2000억원으로 추정된다. 3) 이스포츠에 대한 경제적 효과로 인해 사회적 관심 높아졌고, 게임의 성장 가치가 알려진 것은 분명하다. 한국은 2012년 「이스포츠(전자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약칭 이스포츠법)을 제정하면서 국가 차원에서 이스포츠를 진흥하고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당시 한국보다 큰 이스포츠 시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도 야구, 축구, 농구 같은 일반 스포츠처럼 이스포츠 선수를 ‘프로선수’로 인정하면서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고자 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 게이머들에게 스포츠 종목 선수들과 같은 비자를 발급하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2023년. 10대와 20대가 가장 선호하는 스포츠 중 하나로 꼽는 이스포츠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사람 간 기록 또는 승부를 겨루는 경기는 스포츠 대회에서만 볼 수 있었던 시대가 이제는 ‘게임물’을 매개로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상상하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경기에 열광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스포츠는 스포츠일까? 이 질문은 이스포츠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국내외 학계가 벌인 논쟁중 하나이다. 스포츠학자들은 스포츠의 개념적 정의를 기준으로 이스포츠를 이와 비교했는데, 현대사회 스포츠의 개념을 연구한 슈츠(Suits, 1978; 2018)에 따르면, 스포츠의 조건에는 규칙이 있는 게임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허용되는 수단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규칙을 갖춘 게임이 기술(skill), 신체성(physical skill), 폭넓은 지지자들(wide following), 안정성(stability)을 충족할 때 비로소 ‘스포츠’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게임은 신체 활동으로 구성된 기술이 필요하며, 지지자들이 있어 지속 가능할 때 스포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이어(Meier, 1988)는 모든 스포츠가 제도화된 것은 아니며, 관습과 전통과 같은 규제적 측면은 스포츠 본질에 부수적인 것이라는 관점에서 스포츠에서 제도화가 필수 요소가 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구트만(Guttmann, 1978)은 현대 스포츠의 특징에 주목했는데, 현대 스포츠는 세속주의(secularization), 공정성(equality), 전문화(specialization), 합리화(rationalization), 관료주의적 조직화(bureaucratization), 수량화 (quantification) 그리고 기록 추구(quest for records)라는 7가지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고, 그중에서도 스포츠가 되기 위해서는 ‘경쟁적 규칙’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반면 짐 패리(Jim Parry, 2019)는 스포츠를 인간의 활동, 신체 활동, 신체적 기술, 경쟁, 규칙 그리고 제도화라는 6가지 요소로 정의했는데, 이후 현대 스포츠를 정의하는 척도가 됐다(박성주. 2021). 스포츠의 신체성을 강조한 패리는 2018년 이스포츠가 스포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썼는데, 그는 이스포츠는 큰 근육을 움직여 활동하지 않고, 건강하지 못하며 교육적 가치가 없고 신체적 탁월성이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외 학계에서 이스포츠 선수, 프로게이머의 신체성을 측정하는 실증연구가 활발하다. 예를 들면 FPS(First-Person Shooter) 게임 유저와 일반인의 반응속도를 비교하거나, 선수들의 등, 목, 어깨, 눈, 손의 움직임을 중점적으로 분석하면서 사격, 바둑 선수와 비교하는 논문이 발표되었고, 이스포츠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통증의 종류, 게임 시간, 손놀림을 측정하면서 신체 활동을 증명하는 연구들이 패리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스포츠의 개념과 정의가 세분화되고 다양해진 만큼, 이스포츠가 스포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듯 하다. 그런데 이스포츠 대회는 종목에 따라 대회 성격과 규모가 다르다. ‘게임물’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간에 기록 또는 승부를 겨루는 일이 이스포츠라 정의하고 있는데, 그 ‘게임물’ 즉 종목은 특성과 기준이 있다 4) . 이것은 올림픽종목의 선정 절차와 기준과 비교할 때 공통점도 있지만, 역시 게임물의 특수성이 종목 선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글로벌 게임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은 이스포츠 국제대회 종목 선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이스포츠 공식 종목은 최초 8개 게임이 발표됐는데 5) , 소유권 즉 IPR(Intellectual Property Right)이 분명한 게임의 개발사 현황을 보면,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다. * 출처 : 스포츠경향. 2022.4.24. 이스포츠 산업에 이스포츠 종목 즉 게임에 대한 저작권을 소유하려는 초국적 글로벌 IT·미디어기업들의 투자와 자본 유입이 국내보다 치열하고 활발하다 보니, 게임 산업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우리나라가 이스포츠에서도 위축되거나 해외 시장에 편입되기 쉬운 구조에 놓인 것도 묵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스포츠가 스포츠 리그로 체계화되는데 필요한 법률적, 제도적 검토를 충분하지 못한 채 이스포츠 시장의 변화를 맞이하는 바람에 여전히 다양한 종목과 대회들이 비효율적이거나, 비체계화된 제도에 발목을 잡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이 이스포츠가 될 수 없음에도, 이스포츠 종목 게임을 훈련하는 것과 중독성 강한 게임을 하는 것이 같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을 만한 공익 캠페인조차 시도된 적이 없는 실정이라 한국이 이스포츠 종주국이라던 명성은 빛이 바랜 지 오래다. 현재 이스포츠의 지원 활성화 및 육성 사업이 문화체육관광부 내 콘텐츠 정책국(제1차관)의 게임콘텐츠산업과에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문화체육 관광부는 이스포츠법 제12조에 따라 이스포츠 종목 다양화를 촉진하기 위해 종목을 선정하는 기관으로 2014년 한국이스포츠협회를 선정했고, 협회는 그 결과를 매해 공개하고 있다. 이스포츠 종목선정표에는 종목을 정식종목과 시점 종목으로 나누고 있고, 정식종목은 전문종목과 일반종목으로 나뉜다. 각 종목에는 게임 이름과 지적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 IPR)을가지고 있는 종목사 6) 가 같이 명시되어 있는데, 종목마다 갱신, 등급변경 상황이 함께 표시된다. * 출처: https://www.mcst.go.kr/kor/s_notice/notice/noticeView.jsp?pSeq=17136 이스포츠협회 ‘이스포츠 종목선정 심의규정’에 따르면, 이스포츠 종목이란 이스포츠 종목선정기관의 심의를 통해 선정된 ‘게임물’을 말하며, 이스포츠 적격성은 문화적 영향력, 대전방식, 관전 및 중계 요소 등 게임물의 콘텐츠 측면에서 이스포츠 종목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요건을 말한다(심의규정 제1장 제2조). 이스포츠 종목선정 심의위원회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게임물 중에서 동 법 제21조에 따라 등급분류를 받은 게임물의 윤리성, 공공성, 공익성, 창의성, 자율성, 독립성을 고려하는데, 사회적 통념까지도 존중하는 것을 기본 정신으로 한다(제1장 제3조, 제4조). 하지만 ‘이스포츠 종목선정 심의 규정 시행 세칙’에서도 게임물의 사회적 가치 즉 윤리성, 공공성, 창의성 특히 사회적 통념같이 가변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정성 평가 부분은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세부 개념 및 설명이 공개되어 있지 않다. 이스포츠 종목은 정식종목과 시범종목으로 나뉘는데, 정식종목은 직업선수가 활동할 수 있는 대회나 리그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 저변이 충분하다고 인정받은 ‘전문종목’과 직업선수 활동 저변은 부족하지만, 종목사의 투자계획이 명확하고 지속적인 육성을 통해 발전 가능성이 있는 종목을 ‘일반종목’으로 분류된다. 시범종목은 적격성은 인정받았지만, 현재 저변 및 환경이 미비하여 향후 정식종목으로 선정되기 위해 만 2년의 유예기간을 가지는 종목을 말한다(제2장 제6조). 제3장 심의 기준에 따르면, 위원회는 종목선정 심의를 신청한 게임물에 대해 게임물의 콘텐츠 측면에서 적격 여부(문화적 영향력, 대전방식, 관전 및 중계요소)를 평가하고, 이스포츠 종목으로서 지속될 수 있는 저변과 환경(게임물의 이용자 지표 및 대회 참여 이용자 지표, 전문 이스포츠팀 존재 여부, 선수 등록 및 관리체계, 대회와 관련된 규정, 기록, 기술지원 등 경기환경, 국제적 활성화)을 갖추고 있는지 심의한다. 특히 위원회가 게임물의 종목사가 해당 게임물을 이스포츠 종목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시행해온 국내 투자 실적과 계획을 평가하기 때문에, 종목사는 최소 1년 이상 국내 이스포츠 사업비및 상금에 투자한 비용 실적과 최소 1년 이상 향후 투자 계획이 무엇인가를 제출해야 한다(제3장 제8조). 또한 종목사는 심의종류 별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데, 우선 신청 게임물이 PC게임물, 비디오 게임물, 아케이드 게임물, 모바일 게임물인지 구분하고, 개인전인지 단체전인지, 선정 심의인지 보완지시, 이의신청 재심인지, 내용수정 재심의인지에 따라 수수료가 최소 30만원에서 140만원까지 다양하다. 또한 종목선정 심의 규정 시행 세칙에 따르면, 이스포츠 종목선정 시 인정하는 대회가 명시되어 있는데, 대회 주최가 누구인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즉 인정대회에는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이스포츠협회, 국제이스포츠연맹, 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 등 국제종합경기대회가 주최한 대회가 포함되는데, 여기엔 한국이스포츠협회와 국제이스포츠연맹이 승인하고 이스포츠 산업지원센터로부터 받은 이스포츠대회가 포함된다(최은경, 2020) 7) .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이스포츠가 정식 종목이 되었다고 하지만, 대학체육회는 한국이스포츠협회를 2021년 12월에야 준회원으로 승인했고, 지난 10여년 간 이스포츠협회가 선정한 종목의 변화를 보면 종목 규정이 갖는 모호함과 종목사의 지위에 대한 비현실적 규정들이 있어, 올림픽과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를 앞두고 꾸준히 선수 활동을 하기엔 이스포츠 종목 즉 게임물은 시장의 변화에 아주 민감하다. 년도 정식종목 시범종목 전문종목 일반종목 2023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EA SPORTS FIFA 온라인4 8)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발로란트 서든어택 클래시 로얄 A3: 스틸얼라이브 하스스톤 스타크래프트2 크로스파이어 이터널리턴 eFootball 2023 오디션 브롤스타즈 2022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EA SPORTS FIFA 온라인4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오디션 클래시 로얄 브롤스타즈 A3: 스틸얼라이브 eFootball PES 2021 하스스톤 스타크래프트2 크로스파이어 2021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EA SPORTS FIFA 온라인4 브롤스타즈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오디션 eFootball PES 2021 클래시 로얄 A3: 스틸얼라이브 없음 2020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 EA SPORTS FIFA 온라인4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오디션 eFootball PES 2020 클래시 로얄 브롤스타즈 A3: 스틸얼라이브 2019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 EA SPORTS FIFA 온라인4 클래시 로얄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하스스톤 스타크래프트2 PES 2018 오디션 펜타스톰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2018 리그 오브 레전드 FIFA 온라인3 클래시 로얄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하스스톤 스타크래프트2 PES 2018 펜타스톰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오디션 스페셜포스 2017 2차 리그 오브 레전드 FIFA 온라인3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스타크래프트2 오디션* 스페셜포스 2017 1차 리그 오브 레전드 FIFA 온라인3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스타크래프트2 스페셜포스 2016 리그 오브 레전드 FIFA 온라인3 서든어택 하스스톤 스페셜포스 2015 리그 오브 레전드 FIFA 온라인3 서든어택 하스스톤 스페셜포스 2015년 이후 2023년까지 이스포츠협회에서 발표한 전문, 일반, 시범 종목을 보면 새로운 버전 출시, 종목사의 서비스 중단, 사용자 감소 같은 게임 시장의 현실이 반영되지 못한 경우가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국내외 아마추어 및 프로 대회 종목과 연관성이 낮은 종목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특히 게임사가 주도해 개최하는 유명 대회나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유치하는 대회 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던 아마추어 대회들, 예들 들어 ‘대통령배 전국 아마추어 이스포츠 대회’, ‘이스포츠 대학리그’, ‘동호인대회’, ‘전국장애학생e페스티벌’, ‘한중일 이스포츠대회’,‘세계이스포츠대회’의 공식 종목들이 궁극적으로 국내 게임 산업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일이다. 인간이 경쟁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새로운 놀이, 오락, 스포츠를 만들어 함께 즐기고자 하는 본능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창의적 영상미와 스토리, 세계관이 담긴 게임물이 사람을 연결하고 있는 이스포츠는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혁신적 놀이 문화이다. 물론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진 게임물이 계속해서 출시되고 있고, 각 게임물의 장르에 따라 주어진 복잡하고 정교한 규칙은 사람 간 대결의 형식을 다양하게 변주한다. 그리고 지난 20년 세계 곳곳에서 이스포츠는 다양한 사건과 경험을 통해 게임이 문화를 넘어 스포츠 종목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물론 살펴보았듯이 대회 종목으로서의 게임물에 대한 제도적, 구조적, 사회적, 문화적 논의가 정교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게임은 이 시대의 문화이며, 미래의 게임은 문화 그 이상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1) 한국은 ‘FC 온라인’에서 곽준혁 선수가 동메달, ‘스트리트 파이터 V’에서 김관우 선수 금메달,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한국팀이 금메달,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한국팀이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출전한 4개 종목에서 모두 성적을 냈다. http://www.e-sports.or.kr/#wrap 2) 2020년 21대 국회 국정감사에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스포츠 선수들의 병역 연기권을 검토해 보겠다고 발언하면서 2022년으로 예정됐던 항저우아시안게임 이스포츠 정식종목의 출전을 염두에 뒀다고 볼 수 있다. 3) 중앙일보. 2023. 11.25. “페이커 보자” 해외 관광객 5만명, 롤드컵 경제효과 2000억. 4) 한국콘텐츠진흥원(2013)은 이스포츠 종목은 내적 특성으로 공정성, 건전성, 대중성, 관전성, 스타플레이어, 대회 진행의 용이성이 있고, 외적 특성으로 종목의 소유권 존재, 인터페이스 구조(존재적 특성)과 경기 진행을 위한 완결성(형식적 특성)이 필요하다고 정의했다(최은경,2022). 5) 항저우 아시안 게임이 연기되면서 최초 발표된 종목 중 ‘하스스톤’이 최종 대회 종목에서 제외됐다. 6) 종목사란 해당 종목의 개발사 또는 유통사를 말한다 (이스포츠 종목선정 심의규정 제2조 8항) 7) 제 2조 (인정대회) 이스포츠 종목선정 심의규정(이하 ‘심의규정’이라 한다) 제2조 제4호에서 인정하는 대회목록은 다음 각 호와 같다. 8) 현재 ‘FC 온라인’으로 이름 변경됨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최은경 현 한신대학교 이스포츠 융합 대학원 주임 & 평화교양대 영상콘텐츠 전공 교수. 영국 러프버러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전남과학대학교 e스포츠과 조교수
-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이토 준지풍의 그림체와 크툴루 세계관이 결합된 <공포의 세계>의 장점 역시 동일하다.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변화한 마을 구성원들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경험이야말로 등대에 강림할 고대신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일상의 궤도에서 이상 징후와 균열을 발견할 때 불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 Back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19 GG Vol. 24. 8. 10.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 H.P.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 중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만 실현 가능한 장르를 게임을 통해 재현하는 일은 그 목적이 플레이어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라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 코스믹 호러는 단어 그대로 인간의 사유와 이성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거대한 존재를 마주쳤을 때 경험하게 되는 우주적 공포를 의미한다. 오랜 기간을 통해 축적해 온 문명을 포함한 인간적 가치가 통용되지 않는 불가해한 공포를 목도하는 상황과 그에 대한 매혹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대변하는 특징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은 그가 활동했던 시대보다는 오히려 지금에 와서 적극적으로 향유되고 차용하고 있다. “거기서 크툰을?”이라는 밈으로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을 <하스스톤>의 고대신의 저주 덱만 하더라도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고대신 중 하나인 크툴루 이미지를 빌려온 대표적인 사례다. 크툰(C'Thun)이라는 이름조차 크툴루(Cthulhu)를 연상케 하는 의도적인 작명이다. 게임을 비롯한 서브 컬쳐에서 크툴루가 코스믹 호러를 대표하는 표상이자 오마쥬로 손쉽게 활용되는 이유는 러브크래프트의 작업물 중 드물게 크툴루 만이 소설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외양이 묘사되어 있고 작가의 스케치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시각화할 수 있는 뚜렷한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점은 공포를 야기하는 데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크리쳐를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했던 나 <콜 오브 크툴루>와 같은 게임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던 요인 중 하나는 시각적 재현을 통해서는 공포를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래픽 해상도나 디자인, 크리쳐의 거대함을 체감할 수 있는 상대적 크기의 구현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분명하게 가시화된 것일수록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러브크래프트는 기이한 이야기가 예술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정밀하게 사건을 묘사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분위기의 조성을 제안한 바 있다. 코스믹 호러를 경험하게 되는 소설적 사건은 그 자체가 비현실적이며 허구적인 것이기에 정밀한 묘사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인간의 기분을 명확하게 상징화하는 것이야말로 묘사보다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영역이다. 공포, 그것도 특정한 맥락의 사건을 통해 야기되는 감정의 결을 상징화하는 작업은 시각을 중점적으로 매개하는 매체가 좀처럼 도전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모호함, 불분명함에서 오는 상상이 야기하는 불안감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포 영화는 본질적으로 시각 중심적 매체라는 영화의 장점 일부를 포기하고 카메라의 시야를 제한하고 대상을 어둡고 흐릿한 배경을 통해 부각하는 전략을 취한다. 아울러 관객이 사건을 목도하는 전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감상의 가이드라인으로써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사건 전개의 중심축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영화와 같은 시각 매체 감상자가 경험하는 무력감, 일방향적인 위치에서 수행되는 관음에서 비롯된 공포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글의 마중물로 활용한 인용문과 같이 공포는 대상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 기원하는 감정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에서 앎으로 포섭할 수 없는 존재를 목도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광기에 사로잡힌다. 다만 서술자는 광인으로 대변되는 낯선 타자를 목격할 때 경악하거나, 서서히 잠식되는 광기로 인해 미지의 대상에 매혹되며 변화하는 자신의 내면을 진술하는가로 나뉠 뿐이다. 최소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이 둘은 선행과 후행의 문제일 뿐 어느 쪽을 배제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소설 <벽 속의 쥐>의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는 <다키스트 던전>은 고대신의 유적을 저택에 은닉하고 있는 전대 가주의 편지로 시작된다. 지하의 유적을 탐사하며 결국 고대신의 제물로 후손을 끌어들인 선조의 목적을 저지하더라도 탐사대의 파멸은 불가피하다. 광기에 잠식된 이들은 결코 이전과 동일한 내면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키스트 던전>은 후손의 자살을 암시하는 장면과 새로운 희생양이 될 또 다른 후손을 초대하는 편지로 끝을 맺는다. 이와 같은 서사는 한낱 인간으로서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대한 악의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기하는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을 잘 보여줬다. 그러나 그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다키스트 던전>이 광기를 하나의 변수이자 수치화할 수 있는 요소로 디자인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공포가 대응할 수 없는 미지에서 창출되는 감정이라면 공포 게임의 행위성은 그를 위배하는 방식으로, 달리 말하면 미지를 해소하고 장악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된다. 이 모순적인 결합방식을 시도한 결과물 중 눈여겨볼 만한 대표적인 게임은 크툴루 세계관을 기반으로 추리와 코스믹 호러의 공존을 시도한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이다. 추리는 과학을 포함한 근대적 지식을 동원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지향하는 행위다. 이 경우 만약 이성이 미지를 해체하는 유용하고 적확한 도구라면 해소될 수 있는 공포는 하나의 소재로 활용될 뿐이다. 그러나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의 서사는 이성과 공포의 대결에서 공포에 손을 들어줬다. 홈즈는 어머니를 파멸로 이끈 광기가 자신에게도 유전될 것을 염려하면서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괴이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광기에 접근한다. 그리고 광기에 매혹된 자신이 근대적 이성으로 무장한 이전의 ‘나’는 같은 인간일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성은 미지의 사건을 해결하기에 충분한 도구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질서와 법칙으로 무장한 자신의 세계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불안한 외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홈즈는 이전과는 다른 내면을 가진 인간이 된다. 심지어 고대신을 소환하고자 하는 이교도의 제의를 저지한 후일담에서 짐작할 수 있듯 홈즈의 정신은 그의 정체성이 붕괴되었던 상황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것은 게임을 통해 재현된 캐릭터의 내면일 뿐이며 플레이어의 영역에서 꼼꼼하게 단서를 모아가며 추리하는 플레이 경험은 이 게임이 ‘호러’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전자의 수식어가 약소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차라리 행위성을 제한하는 동시에 특정 행위성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광기를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다키스트 던전>이 광기를 활용하는 방식이 바로 그런 형태다. 플레이어는 지속적으로 특정 확률로 이상상태를 겪는 캐릭터들을 컨트롤하며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관철할 수 없는 세계를 인식한다. 물론 이것은 공포를 직접적으로 창출하기보다는 긴장감을 통해 몰입감을 고조시키는 효과이기는 하다. 그러나 공포를 해소하는 어드벤처식 게임 장르를 대신해 제안할 수 있는 하나의 예시로 고려될 수는 있을 것이다. <드렛지> 역시 광기를 게임적 요소로 활용한다. <드렛지>는 확률의 결과물만 보여주는 <다키스트 던전>보다 광기에 노출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재현한다. 게임 초반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새롭게 마을에 정착하고자 하는 낚시꾼의 일과 사이에는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이질감이 불거져 나온다. 심해에서 건져 올린 것 같은 기괴한 생김새의 어종, 이방인인 주인공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응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의미심장한 대사, 낮과는 전혀 다른 위협이 도사린 밤바다의 풍경은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정작 크툴루의 오마쥬인 것이 분명한 고대신은 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매우 짧게 모습을 드러낸다. 구체적으로 재현되면 될수록, 즉 대상을 명확하게 인지할수록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측면에서 이와 같은 전략은 유의미하다. 오히려 <드렛지>는 미지의 존재가 응시하는 시선을 화면 상단이나 심해의 충혈된 눈으로 표현하거나 광기에 잠식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점차 붉게 번져가는 파라미터 등의 인터페이스로 재현한다. 불분명하고 암시적인 분위기가 캐릭터의 불안을 야기하고 공포라는 감정을 창출하는 것이다. 광인은 타자의 모습으로 재현되기 쉽다. 그러나 <드렛지>는 분열된 자아를 통해 이성의 영역에서는 확신할 수 없는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투신하는 인간의 모습과 미지에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 희생된 아내를 부활시키기 위한 수집가의 광기는 설사 그것이 고대신을 소환해 마을이 소멸하는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다섯 가지의 물건을 모아달라는 의뢰를 수락한 어부는 결국 이것이 스스로 초래한 비극의 후일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광기는 자신의 다른 얼굴이었던 셈이다. 코스믹 호러는 이제까지 믿어왔던 판단 능력에 대한 의심이자 철학의 붕괴, 신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공포다. 정상성, 실재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공포는 지극히 인간적인 발명이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토대, 근거가 전면적으로 붕괴될 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발상이 게임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플레이가 경험하는 공포란 오히려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토 준지풍의 그림체와 크툴루 세계관이 결합된 <공포의 세계>의 장점 역시 동일하다.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변화한 마을 구성원들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경험이야말로 등대에 강림할 고대신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일상의 궤도에서 이상 징후와 균열을 발견할 때 불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나는 아직까지도 현역 게이머 - 레트로게이머 꿀딴지곰 인터뷰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 기억에서 희미해진 4,000여 개의 고전 게임을 찾아주고 이제는 유튜브로 영역을 넓혀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그는 국내 몇 없는 ‘레트로 게이머’이자 ‘레트로 게임 컬렉터’다. 그를 만나 레트로 게임의 현주소와 그가 생각하는 과거, 현재 게임의 접점을 물었다. 쉼 없이 흘러나오는 전문용어와 자세한 게임의 예시들 그리고 이제 중년이 된 그가 회고한 어린 날의 추억 이야기로 현장엔 웃음이 마를 새가 없었다. 그날의 대화를 정리한다. < Back 02 GG Vol. 21.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Received a master's degree with a thesis on "women indie musicians." Writes mainly about music and is currently a contributor to the popular music webzine IZM.
- 온라인게임, 멀티플레이, 그리고 경쟁
한때는 ‘온라인 게임’이 곧 새로운 미래가 될 거라 믿던 시기도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이벤트까지 거친 후 지금 돌아보면 어떤가? 부분적으로 온라인 시스템을 수용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여전히 오프라인이 중심인 느낌이다. < Back 온라인게임, 멀티플레이, 그리고 경쟁 08 GG Vol. 22. 10. 10. 한때는 ‘온라인 게임’이 곧 새로운 미래가 될 거라 믿던 시기도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이벤트까지 거친 후 지금 돌아보면 어떤가? 부분적으로 온라인 시스템을 수용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여전히 오프라인이 중심인 느낌이다. 우리는 온라인에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첫째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감각이다. ‘경쟁’을 유도하는 게임 시스템이라면 인간을 상대로 하는 편이 가장 재미있다. AI와 경쟁하는 것은 아무래도 흥미가 떨어진다. 가정용 게임기가 ‘2인용’ 컨트롤러를 동반해 등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온라인을 활용한 FPS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등도 이러한 맥락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경쟁’만이 이런 감각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협력해 공통의 과제를 달성하는 것 또한 게임을 ‘함께’하는 일의 묘미다. 온라인을 활용한 게임 자체는 PC통신 시대에 이미 등장했는데, 이른바 MUD(Multi User Dungeon) 게임이 그것이다. 오늘날에는 전세계 이용자들과 함께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MMORPG들이 이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 사람이 공통의 과제를 해결한다는 사실 자체가 만들어내는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게 우리가 온라인 게임에 거는 두 번째 기대, 일상과는 분리된 또다른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공통 과제를 달성하려면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협력을 할 수 없는 상대와는 필연적으로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교류하고 협상하며 손을 잡았다가 다시 놓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하나의 ‘사회’가 성립되고 작동하는 과정이 게임 내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게임 사회가 현실 사회와 분리돼있으므로, 이 안에서의 ‘나’ 역시 현실 사회와 분리돼있다. 따라서 ‘나’는 게임 안의 ‘아바타’에 대안적 자기상을 투영한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현실 사회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게임 내 사회를 대한다. 따라서 게임과 현실은 형식상 분리돼있으나 내용적으로는 유사성을 가진다. 혹시 그렇지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나’는 게임 내에서 ‘대안적 나’로 존재하기 위해 게임 내 법칙이 어느 정도 현실을 따르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현실의 나’는 게임 시스템과 상호 교류하며 긴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게임 내 세상이 현실처럼 부조리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게임 내의 현실 모사가 마치 ‘성경공부’ 같을 필요까지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현실의 부조리는 게임 시스템에 어느 정도 실감이 날 만큼만 반영되어야 한다. 이용자가 감당할 수 없는 부조리조차 현실과의 유사성이라는 명목으로 게임에 재현되면 ‘대안적 나’를 게임 내에서 추구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게임의 이용자인 우리는 현실의 무엇에 대한 재현까지 용납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방식을 보면 이게 드러난다. 초창기 MMORPG의 설계자들은 게임 내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종합격투기 링처럼 여겨지기 보다는 대안적 사회로서 소비되기를 바랐다. 울티마 온라인이나 에버퀘스트와 같은 사례를 보면 그렇다. 초기 울티마 온라인의 경우 최대 7개의 부문 스킬에 대해서만 ‘그랜드 마스터’ 자격을 가질 수 있었다. ‘채광’, ‘낚시’, ‘벌목’과 같은 생산 기술부터 ‘검술’, ‘궁술’ 등의 전투 기술에 이르기까지, 전체 스킬의 종류는 50가지에 달한다. 이용자 입장에선 이 중 자기 캐릭터 컨셉에 맞는 스킬 7개 스킬만을 선택해야 하는 거다. 레벨을 올리면 ‘아바타’를 한도 끝도 없이 강화할 수 있는 현대 게임 디자인과는 다른 형태다.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다른 사람과의 협동을 장려하고 레벨 올리고 사냥하는 것 외의 활동을 유도하는 것인데, 이용자는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감당하게 된다. 과거 MMORPG 이용자들이 자기 경험담을 연재의 형식으로 올린 글이 인기를 얻었던 것도 이런 특성이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초창기 MMORPG의 형태는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한 경쟁 위주, 즉 자기 캐릭터를 강화하고 여기에 맞춘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울티마 온라인류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이용자의 시스템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기대’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노력’에 상응한 ‘보상’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력’의 결과가 수치화 되어 정확히 측정되어야 한다. 즉, 온라인 게임 일부의 이러한 변화는 ‘현실의 자신’이 사회에 바라는 법칙이 게임 시스템 내에서도 작동하기를 바란 결과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의 반영이 ‘게임의 재미’에 미친 영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오늘날 게임을 대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태도는 ‘노력’과 ‘보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 느껴질 때가 많다. 어느 시점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보상을 달성할 수 있는지를 알아 내야 남보다 빨리 ‘강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효율성’의 추구가 ‘재미’의 대부분을 뒤덮어버린 듯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최강 종족’에 관련한 밈은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테란, 프로토스, 저그 중 최강의 종족은 무엇인가 하는 논쟁은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게 뭐든 제4의 종족, Korean이 최강이라는 결론에 이견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스스로 ‘민속놀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 내 스타크래프트 이용자 숫자가 많았던 때문이다. ‘고수’가 등장할 확률은 어느 나라든 낮지만 모수가 크면 절대적 숫자는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사회 전반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큰 한국 사회의 현실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가능하지 않을까? 개발자가 유도한대로 정해진 시스템에 맞춰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규칙의 허점을 찾아내고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하면서 경쟁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에 한국인들이 특히 익숙했던 것 아니냐는 추론이다. 우리는 이미 스타크래프트 뿐만이 아닌 뉴스에서도 법제도를 교묘하게 악용한 사기꾼의 사례나 입시 제도를 둘러싼 논란 등에서 비슷한 예들을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공적인 틀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한국이 각자도생의 ‘저신뢰 사회’라는 사실은 OECD의 설문조사나 해외 연구기관의 통계, 프랜시스 후쿠야마라는 학자의 주장 등을 통해 상당 부분 뒷받침 되고 있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가 발표한 ‘2019 레가툼 번영지수’를 보면 한국은 사회자본 부문에서 전체 167개국 중 142위를 기록했다.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이런 근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나마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게임 장르에선 이러한 각자도생의 본능이 ‘재미’를 크게 훼손하지는 않을 수 있다. 정신적 피로를 안기는 ‘채팅’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나 앞서 짚었듯 우리가 온라인 게임에 거는 기대가 현실의 부조리까지 전부 재현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용자가 거의 모든 게임을 대하면서 나타나는 ‘효율성 추구’는 ‘경쟁’이 중심이 되지 않는 게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재미의 폭을 제한하는 결과가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는 ‘효율성 추구’가 게임과 현실의 벽을 무너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스펙 쌓기로 피곤한데 게임에서까지 그래야 하는가? 문제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온라인 게임의 특성상 뭘 만들어도 여기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각자도생의 현실 사회도 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이리 저리 조율돼 반영된 결과이다. 바로 그 사람들을 가상현실이라는 다른 시스템 안에 넣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는 거다. 그렇다면, 경쟁을 위해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시스템의 반대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게임일까? 앞서 언급한대로 ‘대안적 나’를 추구할 수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게임이다. 남들과 경쟁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게임의 형식은 어떻게 가능할까? 오늘날 이 모델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게 ‘온라인 없는 오픈월드’이다. ‘오픈월드’의 핵심은 그것 자체가 현실과 분리된 또 다른 현실세계의 정밀한 모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오픈월드’라면 그 안에서 다른 외부의 개입 없이도 이용자가 하고자 하는 모든 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최대한도로 구현하기 위해 유명 오픈월드 게임들은 사실적 그래픽으로 넓은 세계를 묘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물론 이런 것들은 외적 표현에 불과하다. 문제는 내용이다. 온라인 게임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접속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매일 새로운 사건과 드라마가 창출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가 없는 오프라인 오픈월드는 어떻게 ‘사회’일 수 있는가? 수많은 ‘퀘스트’가 등장하는 식의 구성이 ‘오픈월드’의 필수가 된 건 이런 이유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출력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를 인공지능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튜링 머신의 아이디어와 유사한 결론이다. 이용자가 예측할 수 없고 언제나 새롭게 느낄 만큼의 수많은 사건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대안적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이게 ‘오픈월드’의 한계를 규정짓는 요소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퀘스트’는 어디까지나 ‘퀘스트’일 뿐이다. 게임 내 사건이 더 이상 ‘사건’일 수 없다면, ‘오픈월드’가 ‘현실 사회’의 모사처럼 보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런 점에서 역사적 인물, 사건 등 배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또 하나의 타개책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어쌔신 크리드 오딧세이’에서 우리는 결코 요구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질문’의 방식으로 돌려 표현하는 소크라테스에게 ‘퀘스트’를 수주하면서 현실의 역사에 속해있다는 감각을 갖게 되고, 이것이 게임 내에서 ’사회’의 존재를 체감하는 또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굳이 그 시대의 최강자가 되기 위한 최단 경로를 밟는 것에 몰두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중요한 어떤 인물이 되어 보면 되는 것이다. 물론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이런 저런 설정은 완전한 역사적 인물로의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쌔신 크리드’가 그리는 세계에 완전히 녹아들기 위해서는 역사와 현실을 넘나드는 초현실적 액자 구성을 받아들여야 하고 외계인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고대인들의 사회를 둘러싼 갖가지 설정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어쌔신 크리드’는 이상적인 ‘오픈월드’를 구현하는데 전적인 노력을 쏟은 게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쨌든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현실과의 접점을 찾는 것으로 ‘오픈월드’의 ‘구멍’을 메꾸는 시도는 ‘효율성 추구’의 함정으로부터 게임을 구원하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아예 이 대목에만 집중한 게임도 있다. ‘대항해시대’를 비롯해 역사 시뮬레이션 시리즈로 유명한 코에이의 ‘태합입지전’ 시리즈는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 사례로 들 수 있다. 18년만에 리마스터 된 5편의 경우 장엄한 자연 환경의 묘사나 월드맵의 끝없는 물음표 같은 것은 없다. 이 게임은 철저하게 그림과 숫자로만 이뤄져있다. 그럼에도 게이머는 일본 전국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이 되어 주체적으로 역사에 개입하는 경험을 느낄 수 있다.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죽기 전에 아케치 미쓰히데를 제거한다든가, 그 전에 반란을 일으켜 독립을 꾀하는 등의 대안역사적 시도를 해볼 수 있는데, 아예 이런 정치적 문제와는 관계가 없는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미니게임으로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상징화 해 대체한 시도는 따로 주제를 잡아 다뤄볼만한 기법이다. 이제 다시 애초의 문제의식으로 돌아와보자. ‘역사’를 설정으로 삼는 ‘오픈월드’를 통해 가상 사회와 현실의 접점을 만들고 그 안에서 대안적 시도를 허용하는 게임 디자인이 가능하다면, ‘현재’나 ‘미래’를 근거로 한 것도 동일한 효과를 거두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한 ‘오픈월드’ 게임의 존재는 이 가능성을 시사한다.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에서, 혹은 각자도생의 현실에서 정말로 이용자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를 묻고, 모두에게 득이 되는 선택을 스스로 고안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그게 ‘게임적 재미’로서 의미를 갖게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게임을 만드는 이들이 그러한 과업에 지속적으로 도전할 수 있다면, 게임은 비로소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온라인 게임’의 어떤 이상이 기계적 효율성 추구의 굴레에서 벗어나 ‘오프라인’에서도 의미를 갖게 되는 가장 직선적이면서 또한 가장 어려운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보편과 토착의 긴장 속에 도사리는 지정학적 미학: 〈7인의 사무라이〉에서 〈고스트 오브 쓰시마〉에 이르기까지
〈라스트 사무라이〉가 일본 대중문화에 심취한 와패니즘의 대명사인 반면, 〈킬 빌〉은 오리엔탈리즘을 전유하는 대중주의다. 무사도와 신성한 사무라이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라스트 사무라이〉의 상당 부분은 뉴질랜드 로케이션으로 촬영되었고, 〈킬 빌〉은 이소룡과 사무라이를 섞고 중국계 미국인 배우 루시 리우에게 기모노를 입혀 대문자 오리엔탈(The Oriental)을 혼성모방한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woo Shin A cultural researcher and cultural critic, specializing in critical theory of technology and the political economy of media. Researches cultural phenomena surrounding gaming, 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s, and blockchain, and teach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nd the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 [축사] 창간을 축하합니다
이렇듯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닌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서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게임의 가능성과 가치를 계속 공유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이번에 창간하는 ‘게임 제너레이션’이 게임의 역사, 게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게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등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담론의 장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정부와 게임업계, 이용자들이 소통하는 대표 창구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ee Hwang
- 왜 스네이크는 들개가 되었는가
1987년 코지마 히데오(小島秀夫, Hideo Kojima) 감독이 제작한 〈메탈 기어(Metal Gear)〉는 여러 가지 의미로 특이한 게임이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콘트라(Contra)〉 시리즈, 그 외 많은 게임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스테이지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사뭇 새로운 감각이었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inho Jang Doctoral student in the Department of Genre Technology and Subculture Studies, Graduate School of Hanyang University. Received a master's degree in American literature studies and is interested in questions of human identity. Recent interests include the question of nonhuman identity in science fiction literature and the possibility of coexistence.
- 재현, 추상, 그리고 시뮬레이션의 정치
자동으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일에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물을 아래가 아니라 위로 쏘아 올리던 고대 로마의 분수부터 폭포 아래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물레방아까지, 우리는 스스로 ‘작동(作動)’하는 대상에서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그리스의 헤론이 만든 회전하는 증기 장치에서 근대 산업기술 사이를 비집고 등장한 다양한 오토마타까지, 작동하는 무언가가 주는 즐거움은 기술의 고도화 여부와 관계없이 인류 문화 한켠을 차지해 왔다. < Back 재현, 추상, 그리고 시뮬레이션의 정치 27 GG Vol. 25. 12. 10. 오토마타와 시뮬레이션 사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일에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물을 아래가 아니라 위로 쏘아 올리던 고대 로마의 분수부터 폭포 아래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물레방아까지, 우리는 스스로 ‘작동(作動)’하는 대상에서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그리스의 헤론이 만든 회전하는 증기 장치에서 근대 산업기술 사이를 비집고 등장한 다양한 오토마타까지, 작동하는 무언가가 주는 즐거움은 기술의 고도화 여부와 관계없이 인류 문화 한켠을 차지해 왔다. 디지털게임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시뮬레이션’은 이러한 작동의 세계를 한발 더 밀고 나간 개념이다. 단순히 작동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작동에 직접 개입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시뮬레이션의 독특한 즐거움이다. 무언가를 원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만든다는 말은, 동시에 그 과정에서 언제든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뮬레이션’이 본래 게임 장르가 되기 이전에는 현실 세계의 현상과 질서를 모델링을 통해 재현하는 기술적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실제 장치나 제도를 구현하는 데 드는 비용—경제적 비용뿐 아니라 실패가 낳는 기회비용까지—을 절감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작동의 실패는 언제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셈이다. 단순히 작동을 구경하는 즐거움은 게임화된 시뮬레이션 속에서는 실패의 위험을 관리하고 극복해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무엇’을 만들어냈다는 성취의 즐거움으로 확장된다. * 골드버그 장치(위)와 <요절복통 기계>(1992)는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전자가 완성된 작동 장면을 감상하는 데 초점이 있다면 후자는 장치를 ‘만드는 과정’ 자체의 즐거움에 집중한다. 우리가 즐기는 시뮬레이션 게임에는 이 두 가지 즐거움이 나란히 담겨 있다. <팩토리오>에서 플레이어가 설계한 자동화 공장이 오차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풍경은 시각적 쾌감을 넘어서는 스펙터클이다. 동시에 그 완성된 체계를 직접 만들었다는 뿌듯함도 있다. 오토마타를 바라보는 즐거움과, 그 오토마타를 스스로 설계했다는 즐거움이 하나의 장르 안에서 조우한다. 완성된 레고 테크닉을 바라보는 기쁨과 레고를 조립하는 과정의 기쁨이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즐거움은 시뮬레이션 장르의 고유한 지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대전격투 게임을 떠올려보자. <철권>에서 플레이어는 복잡한 프레임 사이로 움직이며 상대의 체력을 깎아나간다. 여기서도 실패의 가능성이 전제되어 있고, 이를 넘어 승리했을 때의 기쁨은 분명 크다. 하지만 기술과 기술이 매끄럽게 연계되는 순간은 게임 속에 실시간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짧은 리플레이를 통해 스쳐 지나간다. 완성된 순간 자체를 오래 관조하는 구조가 아니다. 때로는 컷신처럼 게임 외부로 튀어나오거나, e스포츠나 영상 콘텐츠의 형태로 아예 바깥에 존재한다. 반면 <산소미포함>에서 완성된 지하도시가 철컹거리며 돌아가는 광경을 바라보거나,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 자체적으로 굴러가는 완성된 공원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시뮬레이션 장르의 플레이어들에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다. 완성물을 관조한다는 것은 ‘복잡성을 장악했다’는 증명과도 같다. 복잡한 체계를 단순화된 규칙으로 조정해 낸 결론이 단순히 ‘승리!’라는 순간이 아니라, 그 완성된 작동이 펼쳐 보이는 논리적 풍경 전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조금 현실적인 비유를 들자면, 제국을 완성한 권력자가 느끼는 ‘잘 돌아가는 제국’의 감각에 가깝다.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인프라를 하나의 질서 하에 묶어낸 진시황이 느꼈을 법한 그 만족감—시뮬레이션 게임이 겨냥하는 지점은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시뮬레이션에서 추상되는 것들 시뮬레이션 게임에 ‘제국의 지배자’가 되는 즐거움이 있다면, 조금 뜬금없게 들릴 수도 있다. 물론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이 모두 권력지향적일 리 없다. 현실에서 권력을 행사하려면 엄청난 리스크와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타인을 억압하거나 제거하는 폭력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적 법과 제도를 통해 이러한 욕망을 통제해 왔다. ‘게임’으로서의 시뮬레이션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본래의 시뮬레이션이 그랬듯이 현실의 비용—물리적·경제적·윤리적 비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놀이를 위한 시뮬레이션은 제한된 가상세계 안에서 적당한 성취를 맛보게 하고, 그 과정은 현실보다 훨씬 가볍다. 이 가성비 높은 즐거움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 바로 ‘추상화’다. 현실에서 어떤 욕망을 구현하려면 수많은 조건들이 따라붙지만, 놀이로서의 시뮬레이션은 그중 많은 요소를 과감히 생략한다. 전략 시뮬레이션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를 보자. 플레이어는 군웅할거의 시대에서 천하통일을 목표로 한다. 영토는 인구와 생산력 같은 기본 스탯을 가지고 있고, 내정을 통해 수치를 끌어올린다. 군대를 징병하려면 농업·상업 개발과 인구 증가를 통해 얻은 금과 식량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내정’이라는 복잡한 개발 과정은 게임 안에서 그저 장수에게 하나의 커맨드를 실행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렇게 간단히 처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실의 토지개발 과정을 그대로 모사하면 게임의 주제—군웅할거의 경쟁—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이 주는 즐거움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현실과의 대응 여부가 아니라, 재미를 기준으로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지가 결정한다. <심시티>도 마찬가지다. 이 게임은 도시의 성장과 번영을 탁월하게 그려내지만, 그 우상향 그래프의 바탕에는 경제력, 특히 땅값과 세금 구조가 놓여 있다. 그렇기에 디테일을 구현하면서도, 예컨대 땅값 상승으로 기존 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현실의 복잡한 요소들은 과감히 추상한다. 결국 시뮬레이션 게임을 평가하는 하나의 질문은 “무엇이 추상되었는가?”다. 이 기준을 플레이어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기에 장르 안에서도 다양한 논점이 발생한다. 실제 전투기와 흡사한 디테일이 ‘진정한 시뮬레이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에이스 컴뱃>이 납득되지 않는다. 반면 <팰콘 4.0>의 <자본론>보다 두꺼운 매뉴얼 앞에서 좌절한 이들에겐 정도면 충분히 ‘현실적인 시뮬레이션’이다. 추상과 정치 이 지점에서 ‘시뮬레이션’과 ‘시뮬레이션 게임’은 분리되어야 한다. 양자는 정치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무엇을 추상하고 무엇을 남겼느냐가 즐거움의 기준이 되는 순간, 게임은 의도치 않은 정치적 해석에 휘말릴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심시티>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여기에 속한다. <문명> 시리즈는 이런 문제가 훨씬 더 첨예하게 드러나는 사례다. 이 게임은 인류사를 데이터와 연산을 기반으로 재구성하며 플레이어에게 ‘다른 시간선’을 만들어낼 기쁨을 준다. 실존 역사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의 원천이다. 하지만 제작사는 이 현실과 가상 사이의 간극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서구 백인 남성 중심으로 쓰인 기존 역사 서술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지도자의 성비를 조정하고, 말리·하와이·폴리네시아 같은 비서구 문명을 적극 편입했다. 최근 시리즈일수록 점령과 정복 중심의 승리 조건에서 벗어나 과학·문화·종교·외교 승리 등 다양한 엔딩을 제시하며 제국주의적 서사의 편향을 완화하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역사에 승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따라붙는다. 이는 결국 ‘추상’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고정된 서사를 보여주는 대신 여러 요소를 배치해 플레이어가 조합하도록 설계한다. 이 과정에서 재미를 위해 무엇을 추상할지 결정하는 순간, 의도와 다르게 정치적 메시지가 발생할 수 있다. 재미를 위한 삭제가 ‘의도적 누락’으로 읽힐 때, 게임은 본래의 목적을 떠나 새로운 의미를 낳는다. 플레이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세계를 구성하는 데이터의 일부가 빠져 있다는 사실은, 그 세계가 이미 정치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실 모사와 재미, 혹은 즐거움의 문제로서의 시뮬레이션 게임 커뮤니티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는 “게임은 재미가 최우선!”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온전히 동의하진 않는다. 게임만이 재미를 추구하는 매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나 다큐멘터리도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재미’를 준다. 특히 현실의 논리를 재현하는 시뮬레이션 장르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현실의 구조를 기반으로 삼되, 재미를 위해 일부 요소를 추상해야 한다. 이는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요구와 ‘재미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충돌하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시뮬레이션 게임은, 앞서 언급한 오토마타 비유를 조금 바꿔 말하면 마치 건프라 조립 세트에 가깝다. 완성품을 감상하는 즐거움과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이 하나의 패키지로 묶여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결국 현실의 특정 논리를 어떤 방식으로든 모사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현실의 모든 요소를 담아내는 시뮬레이션은 이미 게임이 아니라 실제 시뮬레이션 시스템이다. 게임으로 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상이 필요하고, 그 추상은 곧 ‘무엇을 빼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선택을 포함한다. 이 선택이 바로 정치다. 따라서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은, 어쩌면 상당히 정치적인 행위다. 무엇이 빠져 있고, 무엇이 강조되었는지, 그 결과로 만들어진 세계가 어떻게 ‘완전한 작동’처럼 느껴지는지를 살펴보는 일. 이러한 감상과 이해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다 비평적으로 즐기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누가 미국을 묻는다면 패드를 들어 GTA를 플레이하게 하라
이토록 GTA는 찬사와 공격, 열광과 거부를 동시에 받아왔다. 한편에서는 미국 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문화적 기록물로 평가받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도덕·질서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공격받았던 것이다. 2기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치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지금, 미국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쉬지 않고 꺼내온 GTA 시리즈가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할 수 있겠다. < Back 누가 미국을 묻는다면 패드를 들어 GTA를 플레이하게 하라 28 GG Vol. 26. 2. 10. This Is America [1] 그랜드 테프트 오토(Grand Theft Auto, 이하 GTA) 시리즈는 디지털게임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 아니다. 1997년 첫 작품 이후, GTA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4억 장 이상 판매되었다. 이는 비디오게임 역사상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기록한 누적 4억 장의 판매고는 시리즈가 나타낸 미국의 욕망과 폭력이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하나의 공통 기억이자 문화적 표준으로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특히 13년 전 출시된 는 출시 72시간 만에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영화·음악·게임을 통틀어 가장 빠른 엔터테인먼트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은 이후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판매되며, GTA에서 비롯된 문화적 공통기억은 을 통해서 인터넷 공간으로 진출했다.평단 역시 GTA의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리메이크판 트릴로지 제외) , (이하 GTA VC), (이하 GTA SA), , 는 모두 주요 매체에서 연속적인 ‘올해의 게임(Game of the Year)’ 수상과 90점대 메타크리틱 점수를 기록했다. 의 메타크리틱 점수는 97점이다. 학계에서도 GTA 시리즈를 미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풍자물로 인정하고 있다. [2] 이러한 시리즈의 위상은 차기작을 향한 집단적 열광에서도 확인된다. 2023년 12월 공개된 의 첫 공식 트레일러는 공개 24시간 만에 9천만 회 이상 조회되며, 유튜브 역사상 가장 빠르게 확산된 게임 트레일러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의 발매가 2025년 가을에서 2026년 11월로 연기되자마자 락스타게임즈의 모회사 테이크투인터랙티브의 주가는 8% 떨어졌다. GTA는 현대 디지털게임 '씬' 전체를 대표하는 '킬러 타이틀'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이 시리즈는 단순한 상업적 성공작이 아니라 지난 30여 년간 미국 사회의 욕망·폭력·자본·권력 구조를 노골적으로 재현해 온 대중문화의 거울이었다. 당장 이번 트레일러도 과잉 SNS 문화와 기이한 범죄, 노골적인 사회 불평등, 마약 범죄와 총기 문제에 대한 은유가 가득하다. GTA는 게임 안팎으로 사회적 해석의 대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GTA는 대중적 찬사와 기대를 받는 동시에 출시 이래 줄곧 보수 진영과 정치권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기도 했다. 락스타게임즈가 3D 게임을 표방하고 게임에 스토리라인을 강조하기 시작한 [3] 이래 "범죄를 조장하는 시뮬레이터"나 "사회 악"이라는 비판을 마주해야 했다. 미국 정가에서는 GTA는 '살인 훈련 프로그램'으로 규정하고 온갖 총기 사고의 원흉으로 GTA를 지목했다. 2005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은 '핫 커피 스캔들'이 터지자 연방거래위원회에 락스타게임즈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락스타게임즈의 공동 창립자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댄 하우저는 2018년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GTA 시리즈 신작을 출시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사람들이 얼마나 화를 낼지 상상도 안 된다"라며 자신들의 게임이 “2분 만에 구식이 될 풍자”가 될까 우려했다. 오늘날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듯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게임은 현실을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광기를 뒤늦게 쫓아가는 것에 대한 걱정인 것이다. [4] 이토록 GTA는 찬사와 공격, 열광과 거부를 동시에 받아왔다. 한편에서는 미국 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문화적 기록물로 평가받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도덕·질서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공격받았던 것이다. 2기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통치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지금, 미국이라는 지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쉬지 않고 꺼내온 GTA 시리즈가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할 수 있겠다.이 글은 GTA 시리즈를 단순한 범죄 게임으로 보지 않는다. GTA는 지난 30여 년간 미국과 미국의 도시 [5] 가 폭력을 조직하고, 배분하며, 정당화하는 방식을 플레이 가능한 구조로 구현해 온 시뮬레이터다. 본문은 에서 에 이르기까지, 이 시리즈가 어떻게 갱스터 서사에서 국가 권력의 관리 체계로 이행했는지를 탐구해본다. 의 티저 이미지 Concrete Jungle [6]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두 가지를 밝혀두려 한다. 하나, 분량 문제상 등 외전격의 타이틀에 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둘, 이 글은 와 를 건너뛰고 락스타게임즈가 오픈월드 게임의 형태를 채택하기 시작한 부터 시작한다. 오픈월드와 여기에 따라붙는 굵고 가는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형식은 부터 시작되어 발전했다. 그리고 이 오픈월드는 언제나 미국의 특정 도시를 변주한 가상 공간 위에서 전개되어 왔다. 이 지리적 선택은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니다. 락스타게임즈는 오픈월드 가상 도시를 통해서 미국 사회가 처한 문화적 병리와 권력 구조를 꼬집는다. 2001년작 의 무대인 리버티 시티는 뉴욕을 모티프로 한 최초의 3D 오픈월드 도시다. ‘알곤퀸’은 맨하탄, ‘브로커’는 브루클린, ‘듀크’는 퀸즈가 떠오른다. 플레이어는 범죄자로서 이 도시를 떠돌며, 마피아와 야쿠자, 카르텔 등 여러 범죄 조직과 관계를 맺는다. 3편은 여러 조직의 이권 다툼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2001년의 시공간 [7] 보다는 갱스터 무비의 관습적 답보에 가깝다. 또 3편 주인공 클로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침묵하는 주인공(Silent Protagonist)으로 등장하는 데다, 클로드와 그를 배신한 전 여자친구 카탈리나와의 복수전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주요인물의 배신, 배금주의와 부패한 공권력, 자동차 도둑질과 도로에서 추격전 등을 비롯한 오픈월드 GTA 시리즈의 골격이 되는 요소는 3편에서부터 시작됐다. . 사진은 리마스터 버전. 2002년작 는 2001년부터 15년 전인 1986년으로 돌아간다. 무대는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바이스 시티. 해당 작품 또한 전편처럼 갱스터 무비를 향한 오마주가 강하게 느껴진다. 특히 저택에서 펼쳐지는 총격전 미션과 캐릭터의 옷차림 등은 <스카페이스>나 <칼리토> 같은 브라이언 드 팔마 영화가 강하게 연상된다. 디스코클럽, 아날로그 전자기기 등등 개발진의 15년 전에 대한 향수 또한 만날 수 있다. 자동차 추격전에 그쳤던 전작과 달리 보트, RC 헬기 등의 탈것 옵션이 추가되었다. 디스코 음악, 파스텔톤 건물, 네온사인, 야자수가 가득한 에서 인물들의 탐욕은 보다 본격적으로 전시된다. 전작에서 침묵의 클로드와 그의 새 파트너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엔딩 장면처럼 곡절 끝에 새로운 길을 향해 걸어간다. 리버티 시티를 떠나가면서 이야기를 맺는 것이다. 토미 버세티는 자신들을 괴롭히는 범죄 조직으로부터 탈출하는 대신, 그들에 맞서 자기 패밀리를 세워 바이스 시티를 접수하려 한다. 의 토미 버세티는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락스타게임즈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신화가 어떻게 폭력과 착취로 전환되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메인 미션 폭동(Riot)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텐데, 토미가 수행하는 파업 진압 미션은 아메리칸 드림의 밑바닥에 깔린 추악한 공식을 폭로한다. 그의 성공을 향한 자유의지는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약자를 파괴하는 ‘용병술'로 변모한다. 락스타게임즈는 에 쿠바계와 아이티계 이민자를 등장시키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실제 마이애미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던 이민자 문제를 게임에도 반영한 것이다. 쿠바 갱들과 아이티 갱들은 각각 리틀 아바나와 리틀 아이티를 거점으로 이권 다툼을 벌이는데, 버세티는 아이티 갱의 부두술에 세뇌당해 쿠바 갱을 공격한다. 이 퀘스트에서 “모든 아이티인을 죽여라”라는 대사가 노출되고, 공분한 재미(在美) 아이티 교민사회는 2003년 락스타게임즈를 고소했다. 이뿐 아니라 리틀 아이티의 정육점에서 사람의 내장(Human Organ) [8] 을 판매 중이라는 정보까지 확인되면서 락스타게임즈는 적잖은 비판을 마주해야 했다. 이 일로 락스타게임즈는 사과하고 게임 내 일부 표현을 수정했다. 는 쿠바 갱과 아이티 갱의 갈등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고발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는 뒤에 소개할 에 이르러 성취된다. Killing In The Name [9]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2004)의 배경은 미국 서부로 확장됐다. 로스 산토스는 LA, 산 피에로는 샌프란시스코, 라스 벤투라스는 라스베이거스로 구성됐다. 지금 플레이해도 광대한 규모의 맵은 1990년대 미국 전체를 하나의 사회적 단면도로 압축한다. 특히 로스 산토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LA 폭동, 갱 전쟁, 인종 차별, 그리고 경찰 조직의 구조적 부패를 정면으로 소개한다. 여기서 도시는 더 이상 추상적 범죄 공간이 아니라, 인종·계급·공권력이 충돌하는 정치적 장이 됐다. 주인공 칼 존슨(CJ)의 여정은 개인적 성공담이 아니라, 부패한 도시 시스템 속에서 ‘후드’를 지키기 위한 방어전이다. 고향(리버티 시티)에서 버림받은 토미 버세티가 새 터전(바이스 시티)의 왕이 되기를 바랐다면, CJ는 동고동락한 형제들과 함께 스트리트의 부활을 꿈꾼다. 이는 GTA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보기 드문 태도다. 범죄를 통해 도시를 점유해 나가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는 공권력에 의해 해체될 위기에 놓인 집단을 부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많은 저작이 지적하듯이 갱스터 문화를 미국 도시 빈민의 자기 방어로 연결지은 것이다. [10] 그러나 CJ의 시도는 이 시리즈가 꾸준히 보여준 배신에 의해, 그리고 이런 배신을 막후에서 종용하는 공권력에 의해 좌절된다. 의 세 지역을 지배하는 실질적 권력은 갱이 아니라 경찰이다. 사무엘 잭슨이 목소리를 연기한 프랭크 텐페니를 중심으로 한 부패 경찰 서사는 90년대 미국의 가장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부패 경찰 조직 ‘C.R.A.S.H'의 텐페니 경관은 CJ에게 살인 누명을 씌워 협박하며, 갱단 간의 유혈 사태를 방조하거나 오히려 부추긴다. 이는 당시 실제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LAPD의 부패 스캔들을 직접적으로 투영한 설정이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법과 질서"라는 명분이 어떻게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는지 추체험시킨다. 경찰들은 범죄와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블랙 앤 화이트>를 플레이하듯이 필요에 따라서 범죄를 관리하고, 조절하고, 필요할 때 특정 집단을 희생시킨다. 게임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1994년의 폭동도 경찰측 개입에 의해 ‘유색인종’간 갈등으로 비화됐다. 에서도 마약은 단속되지 않고 유통 경로만 바뀌며, 갱들의 전쟁은 경찰이 요리하기 좋은 균형 상태로 유지된다. CJ는 이 과정에서 범죄자이면서 동시에 국가 폭력의 희생자-실행자가 된다. 법 바깥에서 움직이지만, 그가 저지르는 폭력은 공권력의 묵인과 지시에 의해 정당화된다.요컨대 는 국가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선택이라는 형태로 위장되는가를 플레이 가능한 구조로 구현한 게임이다. CJ는 경찰의 협박을 "부당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폭력을 내면화하고 동시에 타인에게 실행한다. 게임의 컷씬들은 그렇게 CJ 지역의 질서를 지키는 하청노동자가 되어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후드를 향한 대의 또한 위협을 받는 모습을 두루 비춘다.게임 중반 이후 맵이 도시를 벗어나 사막과 시골, 군사 기지로 확장되는 이유도 바로 이 부분에서 설명된다. 로스 산토스의 문제는 로스 산토스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마약은 월경(越境)하고, 가장 강력한 폭력이 숨쉬는 곳은 스트리트가 아니라 경찰서나 군사기지 Area 69 [11] 다. 카지노 산업은 검은 돈을 세탁하게 된다. 이때부터 CJ는 라이벌 갱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하고도 추상적인 시스템의 내면과 싸우게 된다. 후반부에 이르러 CJ는 명백한 성공을 거둔다. 그는 돈을 벌고, 조직을 확장하며, 도시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이 성공은 해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갱은 기업처럼 운영되고, 충성은 계약으로 대체되며, 폭력은 효율의 문제로 환원된다. CJ는 더 이상 후드를 지키는 청년이 아니라, 자신이 증오하던 시스템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마름에 가까워진다. Flashing Lights [12] 를 기점으로 GTA 시리즈는 본격적으로 미국이라는 국가가 폭력을 조직하고 분배하며 정당화하는 방식을 해부하는 정치적 텍스트로 기능한다. (기존의 톤, 유머는 유지하면서 말이다.)그리고 이 문제의식은 다음 작품인 에서 이민자와 아메리칸 드림, 금융자본, 9.11 테러 이후의 미국이라는 보다 노골적인 형태로 이어진다. 는 리버티 시티로 돌아온다. 의 리버티 시티는 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잔혹하다. 플레이어는 ‘자유’가 아닌 총성과 배신, 그리고 무차별적 자본 논리만이 작동하는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여기서 도시는 기회의 공간이 아니라, 개인을 끊임없이 소외시키고 폭력으로 내모는 구조 그 자체로 제시된다. 이민자·마피아·부패한 정치와 자본이 뒤엉킨 “포스트산업 도시”의 축소판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게임이 영국인의 시선에서 제작되었다는 점은 흥미를 더한다. [13] 2008년 는 다시 리버티 시티로 돌아오지만, 그 톤은 이전과 현격히 다르다. 9·11 테러 이후의 뉴욕을 반영한 이 도시는 불안과 감시, 냉소로 가득 차 있다. 동유럽 이민자 니코 벨릭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미국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다. 이민자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되거나 범죄 세계로 흡수되며,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의 도시는 “기회의 땅”이라는 신화를 해체하고, 아메리칸 드림이 정상적으로 작동 불가능해진 풍경을 우울하게 전시한다. 니코 벨릭은 GTA 시리즈에서 가장 명확하게 외부자로 설정된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가 접하는 리버티 시티 또한 완전히 낯선 이국이다. 게임에서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니코 벨릭의 슬라브 억양 영어를 비웃는 컷씬을 왕왕 만날 수 있다. 토미 버세티와 CJ는 감옥에서 갓 나왔지만 일단은 미국인이었던 반면, 니코 벨릭의 는 그가 미국인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하여 는 세계화 시대의 뉴욕을 드러내고 있다. 리버티 시티에는 이탈리아계 이주민, 러시아계 이주민, 한국계 이주민 등등이 어울리는 메트로폴리탄이다. 리버티 시티는 더 이상 시절 놀이터가 아니다. 금융자본, 부동산 개발, 이민 노동, 정치 로비, 범죄 조직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얽힌 공간으로 제시된다. 소년병 출신으로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살아남은 설정으로 역대 시리즈 주인공 중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그를 위협하는 것은 총이 아니라 밀입국자라는 신분이다. 촘촘하게 짜여진 사회 시스템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니코는 도시의 청소부, 살인청부업자의 역을 자임한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있어서는 거리낌이 없는 니코지만, 정작 게임에서는 인정(人情)을 중요한 포인트로 내세운다. 게임에서는 관계도가 퍼센트의 확률로 제시되어 친밀도가 높은 NPC에게는 게임을 유리하게 만드는 여러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니코는 몇 명 주요 NPC에게서 결정적인 배신을 당하게 된다. 게임 내내 배신을 당하는 니코 벨릭은 엔딩에 들어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두 갈래 길 중에 어느 것을 골라도 범죄와 그리 연관이 깊지 않은 NPC가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두 개의 엔딩 모두 미국과 미국의 자유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비추며 막을 내린다. 거래 엔딩은 여인상의 뒷면을 비추면서, 배신 엔딩은 여신상을 양각으로 비추면서 마무리된다. 니코 또한 전작의 CJ처럼 대도시에서 폭력의 하청을 맡고 그로 인해 얻은 보상으로 많은 돈을 벌지만,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아메리칸드림을 박살난 것에 따른 보상이었다. 니코 벨릭은 그렇게 미국인이 되었다. 의 자유의 여신상. 전작에서 락스타를 괴롭혔던 당시 상원의원 힐러리 클린턴과 똑 빼닮은 모습. 모드가 아니라 바닐라 버전에 이렇게 나온다. I Fought the Law [14] 2013년작 의 로스 산토스는 이러한 모든 층위를 집대성한 공간이다. 이 도시는 의 로스 산토스가 지녔던 인종 갈등과 부패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가져오되, 국가에 대응하는 갱 스트리트의 역할은 약화시켰다. 2010년대에 들며 국가행정은 스트리트를 완벽하게 통제하게 됐다. 대형 갱 전쟁은 사라졌으며, 소규모 마찰만이 도시의 새벽을 시끄럽게 만들 뿐이다. 아울러 의 리버티 시티가 은유한 금융자본, 이민자의 미국은 ‘스마트’한 현대 사회상에 맞게 발전했다. 이 방식은 이전보다 훨씬 냉소적이고 파편화되어 있는데, 스마트폰의 사용, 소셜네트워크, 모바일 주식 트레이딩 등의 기능은 로스 산토스 위에 샌드박스적 재미를 더했다. 락스타게임즈는 시리즈 최초로 에 세 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켰다. 마이클 드 산타, 프랭클린 클린턴, 트레버 필립스는 각각 현대 미국이 배출한 세 가지 주체 모델을 상징한다. 이들은 협력하지만 결코 하나로 수렴하지 않으며,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경멸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필요에 따라서 연대한다. 세 명의 인물이야말로 가 말하려는 핵심이다. 마이클은 신자유주의 시대 백인 중산층의 정신적 빈곤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은퇴한 은행 강도”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사회에서 정체성을 상실한 가장의 초상에 가깝다. (중년 가장의 애처로움은 어딜 가나 비슷하겠으나 한국에는 없는) 증인 보호 프로그램의 비호 속에서 락포드 힐즈(GTA판 베버리 힐즈)의 대저택에 살고 있지만, 가족과의 관계는 붕괴 직전이고, 소비로 유지되는 평온은 꺼림칙하고 불안하다. 마이클의 집은 미국적 부르주아의 완성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 자리를 일군 마이클은 공허를 느끼며 심리상담사를 찾는다. 마이클이 느끼는 이 공허는 범죄의 위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합법적 성공”에 완벽히 편입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백약이 무효하던 마이클은 대도시 안에서의 범죄를 벌이면서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남성성의 위기를 폭력과 모험으로부터 보충하려는 것이다. 게임 속 마이클은 대저택에서 홀로 서부극이나 갱스터 무비를 감상하고, 총기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 마이클의 특수 능력은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만들어 상대 명중률을 높이는 불릿 타임이다. 프랭클린은 의 CJ와 비슷한 듯 다른 선상에 서있는 인물이다. 그는 스트리트 갱 문화에 속해 있지만, 완벽한 통제(와 여전한 방치) 속에서 그 세계는 사실상 무너졌다. 그러므로 프랭클린 또한 더이상 갱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다. 프랭클린에게 후드는 더 이상 지켜야 할 공동체가 아니라, 탈출해야 할 출발점이다. 그는 범죄를 계급 이동의 사다리로 인식하며, 마이클을 통해 상위층의 세계로 진입하기를 꿈꾼다. 프랭클린은 운전에 각별한 재주가 있고, Theft Auto, 차 도둑에서 출발해 로스 산토스를 주름잡는 대도로 거듭난다. 그러나 는 ‘뒷골목을 벗어나고 싶다’는 프랭클린의 성공욕이 얼마나 집요한지를 계속 보여준다. 프랭클린은 마이클, 그리고 트래버와 함께 은행과 보석상을 털며 성공궤도에 안착한다. 고급 주택을 손에 넣고, 부동산 사업을 벌이고, 스포츠카를 구매하면서 눈부신 성공을 거둔다. 그에게 더 이상의 후드는 없다. 프랭클린은 국가 공권력이 강력하게 막고 있는 범죄를 통해서 밑바닥에서 상류층에 올라가는 데 완벽히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트레버 필립스는 이 두 인물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그는 규범, 소비, 국가, 가족이라는 모든 제도를 거부한다. 그는 환경 변화에 척수 반응하는 동물처럼 행동한다. 공군 비행기조종사 후보생이었던 그는 사적 쾌락을 위해서 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정신이상자로 묘사된다. 일반적인 인간상의 틀거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그는 현대 미국에서 괴물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과장해서 보여준다. 트레버는 GTA 시리즈 캐릭터 중 유일하게 교외(Suburb)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촌뜨기(영어 버전에서는 Redneck으로 표현)다. 트레버는 니코 벨릭처럼 미국인으로 편입되려는 나름의 시도를 했지만 (각각 공군장교 임관과 불법 이민으로) 과거에 대한 죄책감이나 가족에 대한 애정 따위는 하나도 없다. 트레버는 시스템이 배설한 찌꺼기들이 모여 만들어진 괴물처럼 묘사되며,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시스템이 가장 효율적으로 부려 먹을 수 있는 '사냥개'가 된다. 국가 권력은 도덕적 금기를 거리낌 없이 위반하는 그의 광기를 빌려 자신들의 추악한 목적을 달성한다. 트레버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존재라 믿지만, 실제로는 시스템이 차마 직접 수행하지 못하는 지저분한 폭력을 대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몇 번의 예외 빼고. [15] 이 세 인물을 하나로 묶는 것은 FIB(연방수사국의 패러디)다. 에서 국가는 더 이상 부패한 경찰 몇 명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국가는 기업화되었고, 정보기관은 회사처럼 운영된다. FIB는 범죄를 단속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기획하고, 배분하고, 필요에 따라 제거한다.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대형 미션 대부분은 정보기관의 사적 목적을 위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가 이 모든 비판을 웃음과 패러디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토크쇼, 라디오 광고, SNS 패러디는 날카롭지만 동시에 무력하다. 비판은 소비 가능한 콘텐츠로 전환된다. 이 점에서 는 가장 현대적이다. 엔딩 시점에서 프랭클린에게 주어지는 선택은 배신, 복종, 혹은 제3의 길이다. 그러나 어느 선택도 근본적인 변화를 낳지 않는다. “모두 살린다”는 선택은 플레이어 사이에서 정답처럼 여겨지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감시하던 FIB 요원들을 제거하고 자유를 얻은 것처럼 나타난다. 그렇다고 그것이 곧 세 주인공이 겪은 범죄나 자신들이 근거한 도시문명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의 엔딩 부분 End Of The Road [16] GTA 시리즈가 지난 30여 년간 구축해 온 범죄의 연대기는 그것도 세계 제일의 자리를 차지한 미국의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자기 파괴적인 욕망을 잉태하는지를 드리우는 서사시다. GTA의 시공간은 헐리우드 영화의 느와르적 오마주로부터 출발해, 도시가 유지하기 위한 어두운 폭력을 범죄자들이 대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역대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도드라진 공통점은 자동차를 훔쳐서 달아나고 그것으로 돈을 버는 설계다. 이는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교통을 통해 완성되며, 신호를 위반하고 역주행하면서 경찰을 따돌리는 경험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과거의 GTA부터 추구하는 재미의 기본이다. 가까운 훗날 이 게임의 이동 시스템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 이러한 기본 위에서 락스타게임즈는 외부자의 시선에서 미국의 총기 문화와 과도한 애국주의, 기복 신앙에 가까운 자본주의를 기괴한 코미디로 치환하여 보여주는 날카로운 풍자 정신을 유지해 왔다. 이들은 뿌리 깊은 수직적 불평등과 공권력의 시스템적 부패,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의 해체 과정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도시의 마천루, 쥐가 끓는 슬럼가, 그리고 버림받은 교외지역은 서로 극명하게 대비되며 법과 질서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그 상위층에 끼지 못한 외부자이며 범죄를 통해 폭력을 대행하면서 계급 상승의 경로를 확보한다. 게임사의 같은 시리즈인 레드 데드 리뎀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부와 국가는 무법자와 별 다를 게 없다. 공권력이 범죄를 소탕하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관리하고 조절하는 모습을 통해 국가가 거대한 범죄 조직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GTA 시리즈는 미국 사회의 시대적 병리를 정조준하며, 미국 도시문명의 민낯을 게임이라는 미디어로 마주하게 하는 시뮬레이터다. 출시를 앞둔 는 트럼프 행정부 재집권기라는 독특한 시대적 배경 속에 등장한다. 현실이 이미 풍자를 초월해버린 '풍자 불가능한 시대'의 게임이 아닐까? 락스타게임즈가 선보이는 레오니다(플로리다)는 얼마나 광기로 가득 차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미국의 현실과 겨루었을 때 경쟁력이 있을까? 오늘날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행패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이 GTA 속 세상과 얼마나 다른지 묻게 된다. 아직 가 출시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만 보아도 GTA 시리즈는 미국의 허상을 폭로하는 가장 지독한 텍스트라고 단언할 수 있다. [1] Childish Gambino - This Is America (Official Video) | 해당 곡의 히트 이후, 미국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을 개탄하는 밈(Meme)으로 쓰이고 있다. 한국 인터넷에서 왕왕 사용되는 ‘이게 나라냐’와 유사한 결의 유행어. [2] 가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힌다. [3] 의 스토리는 디스토피아 도시에서 주인공이 범죄를 저지르면서 돈을 모으는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4] 현재 댄 하우저는 락스타게임즈를 떠났다. 댄 하우저의 앱서드 벤처스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Absurdaverse’라는 제목의 SF 어드벤처를 개발 중이다. 는 하우저 형제 중 형 샘 하우저만 참여한 첫 신작인 셈이다. [5] GTA 시리즈에 한정하여 논의를 전개하는 본고에서는 미국, 국가, 공권력, 사회, 도시문명, 시스템 등등을 하나의 개념으로 보고 섞어서 쓰고 있다. 이 모든 개념어들은 각기 다른 대상을 지칭하지만, 필자는 적어도 GTA 시리즈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대상이라고 본다. [6] Bob Marley & The Wailers - Concrete Jungle (Live at The Old Grey Whistle, 1973) | 의 12번째 메인 미션 이름이기도 하다. [7] 은 북미에 2001년 10월 최초 출시됐다. 그리고 그해 리버티시티의 모델이 되는 뉴욕에서 9.11 테러가 있었기 때문에 마케팅 과정을 준비하던 락스타게임즈는 강도 높은 막판 수정을 가해야만 했다. [8] 놀랍게도 락스타게임즈의 게임에서 인육에 대한 묘사는 이것이 유일한 사례가 아니다. 에는 버스에 사람들을 태워서 핫도그 공장에 판매해버리는 미션(Hot Dog Homicide!)이 존재했다. 의 트레버 필립스도 취미로 인육을 먹는 듯한 대사가 몇 차례 나온다. 레드데드리뎀션 시리즈에도 식인에 대한 간접 묘사(돼지농장, 머프리 패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 [9] Rage Against The Machine - 'Killing in the Name' [HD] | Live at Pinkpop 1993 | 수록곡이기도 하다. [10] 엘리야 앤더슨이 아틀랜틱誌에 기고한 <거리의 코드>(The Code of the Streets)는 흑인 커뮤니티를 관찰하면서 공권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 리스펙(Respect)이 어떻게 생존을 위한 방어수단이 되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경찰을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 '강해 보여야 살아남는다'는 압박을 가지게 됐고 여기서 폭력은 타인의 공격을 차단하는 억제력으로 작동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디르 벤카티쉬의 <괴짜사회학>(Gang Leader for a Day)은 시카고 갱단을 10년 동안 추적 관찰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벤카디쉬는 갱단이 단순히 마약을 파는 집단이 아니며 국가가 포기한 지역 사회에서 치안, 복지, 일자리 제공 등의 유사 정부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11] 미국의 네바다 Area 51을 패러디한 군사 기지. CJ 이 지역에 발만 걸쳐도 바로 최고 범죄 단계로 간주되어 군인과 일전을 겨뤄야 한다. 스토리상 제트팩을 얻기 위해 CJ는 반드시 이 군사기지에 침입해야 한다. [12] Kanye West - Flashing Lights ft. Dwele | 삽입곡 [13] GTA를 개발하는 락스타 노스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본사를 둔 영국 기업이다. 이 외부적 배경은 게임의 미국 풍자가 가지는 객관성과 과감함을 설명한다. 락스타게임즈의 공동 창립자인 댄과 샘은 모두 영국인으로 태어나 미국인이 되었다. GTA 시리즈에 영국식 블랙 유머가 깊게 녹아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14] The Clash - I Fought the Law (Official Video) | 의 미션 이름이기도 하다. [15] 트레버 필립스와 관련한 흥미로운 서브 미션 줄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민 국경 수비대(The Civil Border Patrol)와의 이벤트다. 트레버는 마을에서 불법이민자로부터 미국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활동한다는 두 사람의 순찰대를 만난다. 이내 이들과 함께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오는 멕시코인을 단속하는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붙잡은 사람들 상당수는 캘리포니아가 멕시코 영토이던 시절부터 거주하던 사람들이었다. 격분한 트레버는 언제나처럼 국경 수비대원들을 사살하며 이 서브 퀘스트는 종료된다. 락스타게임즈는 수비대원 중 한 명을 영어조차 할 수 없는 러시아 이민자로 등장시켜 이민자가 세운 나라에서 이민자를 단속하는 행위가 결국 인종차별적 목적을 내포하고 있음을 풍자한다. [16] Boyz II Men - End Of The Road | 의 마지막 미션 이름이기도 하다. Tags: 락스타, GTA, 미국, 범죄, 느와르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대항해시대 2 한글 폰트 구합니다 ─ 비제도권 게임 로컬라이제이션의 짧은 역사
90년대 정식 퍼블리셔를 통해서 게임들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들어오면서 당시 게이머들은 이전보다 풍족하게 한국어로 된 게임을 누릴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이전에도 게임의 한국어화 시도도 존재했으며 당시를 살아온 게이머들은 기억하고 있겠지만 당시에도 정식으로 출시되기 힘든 게임들의 비공식적인 이용자 한국어 패치가 존재했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분투형 게임과 전쟁: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
이와 같은 현상은 지난 세기 걸프전 이후 더욱 가속화된 ‘전쟁의 게임화’에 관한 분석에서 거울상을 발견한다. 게임의 한 장면처럼 보도되는 폭격의 현장에서부터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병사 훈련, 그리고 드론을 동원한 전쟁에 이르기까지. 게임이 전쟁을 재현(mimesis)할 때, 전쟁은 게임을 모사(mimesis)한다. < Back 분투형 게임과 전쟁: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 25 GG Vol. 25. 8. 10. 블리자드 사(社)는 전쟁을 사랑했다 아니, 이름부터 ‘워’ 크래프트(Warcraft)였으니까. <워크래프트>는 한때는 게이머들에게 숭앙의 대상이었던 블리자드 사의 실시간 전략(Real-Time Strategy, RTS) 게임이자,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 인간과 오크 사이의 전쟁을 그린 <워크래프트> 친구 집에서 처음 접하고 머릿속에서 도무지 떠나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플레이하다가 밤을 새운 게 아니다. 머릿속에서 게임 플레이를 회상하고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하다가 불현듯 아침을 맞았다. 우주 전쟁, 그러니까 <스타크래프트(Starcraft)>가 출시되었을 때, 또 그랬다. 블리자드는 악마와도 싸운다. 액션 롤플레잉 게임 <디아블로(Diablo)>는 주인공이 겪는 고투의 후경에 성전(聖戰)을 배치한다. 한국의 올드 게이머들로서는 KOEI를 빠뜨릴 수 없다. KOEI의 <삼국지 2(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Ⅱ)>는 워크래프트보다도 먼저 심취했던 게임이었다. 삼국지가 소재인 게임에서 무얼 하겠는가? 전쟁이지. 조부모님 댁에 있는 삼촌의 컴퓨터에 설치해 두고, 몰래 밤새워 플레이하곤 했다. 몰래는 무슨 몰래. 연로한 분들의 이마에 주름을 늘게 하는, 앞날이 걱정되는 손자가 되었다. 심지어 ‘대항해시대 2’의 해전조차 좋았다. 그때는.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배틀필드(Battlefield)>, <메달 오브 아너(Medal of Honor)>, <월드 오브 탱크(World of Tanks)>, <월드 오브 워쉽(World of Warships)>,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Company of Heroes)>, <토탈 워(Total War)> 등등. 연극,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른 매체들도 전쟁과 전투를 소재로 삼는다. 그런데 게임계에는, 정말 많다. 왜 그렇게 전쟁을 재현하는 데 진심이냐고 게임 개발자들에게 묻는 건 아예 당위적이기까지 하다. 대체 게임과 전쟁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길래. 이런 마당에 전쟁을 재현하는 게임에 대한 윤리적, 정치적 분석이 게임 연구의 한 흐름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건 짝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와 같은 현상은 지난 세기 걸프전 이후 더욱 가속화된 ‘전쟁의 게임화’에 관한 분석에서 거울상을 발견한다. 게임의 한 장면처럼 보도되는 폭격의 현장에서부터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병사 훈련, 그리고 드론을 동원한 전쟁에 이르기까지. 게임이 전쟁을 재현(mimesis)할 때, 전쟁은 게임을 모사(mimesis)한다. * 게임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던 걸프 전쟁 당시 바그다드 공습 보도 화면 * 서로 거의 흡사한 실제 전투기에서의 폭격 화면과 게임 화면 그런데 정말 게임이 전쟁을 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쟁 역시 게임을 모사한다면, 분석은 게임을 전쟁의 재현물로 보는 것에 국한할 수 없다. 양자의 접점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접근을 통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를 향해 점근(漸近)한다. 게임과 전쟁이 집결하는 공간의 성격은 하나로 귀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곳은 싸우는 공간이다. 물론 조용한 전쟁이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싸움’의 범주 바깥에 자리한 게임들도 많다. 하지만 다툼, 쟁투, 분투, 고투가 게임과 전쟁 양쪽 모두에서 대주주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점에 있어서 게임과 전쟁을 일방적 관계가 아닌 상호-참조적 관계를 맺고 있다. 분투형 플레이와 목표의 지위 게임과 전쟁이 분기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은 그 싸움의 목표다. 전쟁의 목적이나 목표는, 당신이 이데올로기 비판을 수행하거나 배면의 진의를 의심하는 이가 아니라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명확하다. 모든 위정자는 그들의 전쟁의 목표와 이유를 다중에게 선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목표는 실질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게임에서는 그게 좀 어려운 경우가 있다. 친구와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를 함께 플레이한다고 해보자. 달뜬 얼굴로 내 캐릭터를 두들겨 패는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왜 이렇게까지 때리는 거야?”라고 묻는 것이다. 속 깊고 다정하며 사회적 지능 뛰어난 우리의 실제 친구는 내가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하고 장난스러운 위로와 함께 기분을 풀어주려 할 테지만, 반사실적 가정을 이어가 보자. * 대전 격투 게임의 플레이 과정은 정말 분투 그 자체다. 가상의 이 친구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래야 이기지.”라고 답할 것이다. 친구와 즐겁게 게임을 하다 패색이 짙다는 이유로 기분이 상한 우리는, 행위의 근본적 성격을 묻는 것으로 옹색함을 감출 수 있다. 친구에게 진지한 탐구자의 얼굴을 하고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이기려는 거야?”라고 묻도록 하자. 아니, 정말로, 그들은 왜 그렇게까지 할까? 격투 게임에서 승리하면 하늘에서 뭐라도 떨어지나? 뭔가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닐 텐데 내 친구는 대체 무엇을 위해 내 캐릭터를 그렇게 열심히 때릴까. 철학자 C. 티 응우옌 (C. Thi Nguyen)은, 게임 외적 보상이 관건이 아니라면, 그 목적이 둘로 나뉜다고 본다. 하나는 승리다. 승리하고 성취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며 그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내 친구는 나의 캐릭터를 두들겨 패고 나를 이겼다는 사실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다른 목적도 있다. 바로 ‘싸움 그 자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철학자 버나드 슈츠(Bernard Suits)는 그의 저서 The Grasshopper: Games, Life and Utopia 에서 게임 플레이를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자발적인 시도”로 정의한다. 골프를 생각해 보자. 골프 공을 홀에 넣는 것이 관건이라면 우리는 그냥 손으로 공을 들고 홀에 넣으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클럽이라는 비효율적인 도구를 사용해 온갖 규칙 속에서 공을 치려 애쓴다. 어째서일까? 슈츠에 따르면, 바로 그 ‘비효율성’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고투와 분투의 과정 자체가 게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목표 달성이라는 결과보다, 그 과정의 고군분투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때 장애물 너머에 있는 목표는 사실 무의미하다. 그것은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즐기기 위해 가정된 목표에 불과하다. 고투하는 그 과정을 위해 마련된 가상의 목표와 비효율적인 도구, 각종 규칙은 게임을 벗어나기만 하면 실제로는 불필요한 장애물이다. 그것은 고투 자체를 즐긴다는 목적에 의해서 의미와 필요를 획득한다. 성취, 보상, 승리보다는 그 싸우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과 의미의 원천이다. 응우옌은 이러한 슈츠의 게임 이론을 수용한다. 응우옌에 의하면, 유희를 위한 일시적 목표를 상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분투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은 게임에 존재하는 고유한 플레이 방식 중 하나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게임 플레이를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라고 응우옌은 명명한다. 분투형 플레이를 즐기는 게이머들은 승리에 뒤따르는 외적 보상이나 게임에서의 승리보다 분투, 고투, 싸움 그 자체를 즐긴다. 따라서 이제 우리의 친구는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다. “친구야, 내가 너를 그저 이겨 먹으려는 게 아니야. 승리라는 일시적 목표를 수용함으로써 너와 겨루는 과정 자체를 즐기려는 거야.” 게임과 전쟁의 분기(였던 것) 어색하게 문어체로 말하면서도 어딘가 포용력 있어 보이는 이 친구의 풍모와 달리, 응우옌의 이론은 모든 게임을 아우르는 포괄적, 일반적 설명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유독 고유하게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논할 뿐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목적, 목표, 성취, 결과보다는 과정과 수행 중심적 참여를 가능케 하는 매체적 특성에서 발생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게임이 이러한 매체로서 기능할 때 그것이 전쟁과 확실하게 분기한다는 점이다. 특히 이 목표의 차원에서 그러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 전쟁과 전투에선 실질적 목표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저 분투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주조된 일회적 목표 따위가 아니다. 저기 어딘가에 실제로 방공 포대가 존재하고 이라크의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이 존재하며 그를 호위하고 있는 적군이 존재한다. 그것이야말로 실질적이고 명확한 목표다. 그것들은 미군의 전쟁 수행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형편 좋게 마련된 도구가 아니다. 분투형 플레이를 가능케 하는 게임 내에 설정된 목표는, 전쟁의 그것과 명확하게 구별된다. 군인들에게 주어지는 실제 전쟁의 목표와 달리, 분투형 게임의 목표는 본질적으로 불필요한 것이자 언제든 폐기할 수 있는 것이며 일회적인 것이면서 가상의 것이다. 전쟁의 목표가 전쟁 중의 행위를 성립시키기 위해 마련된 도구가 아닌 것에 비하여, 분투형 게임의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 내의 행위성을 조형하기 위해 마련된 도구의 일환이다. 그렇기에 그 게임의 행위성을 버리는 순간, 분투를 즐기려는 ‘유희적 태도’를 버리는 순간, 게임의 목표는 의미를 상실한다. 양자의 차이는 목표를 달성하고 마주하는 순간 더욱 돌출한다. 분투형 게임의 경우, 목표의 달성은 유희의 종식을 의미한다. 분투형 플레이를 성립시키는 것에서 의미를 부여받았던 목표였기에, 분투형 플레이가 중단되는 순간 그 목표는 의미를 상실한다. 논리적 귀결일 뿐이다. 성취 지향적 플레이의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분투형 플레이에서는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건 어떤 현재성이 아니라 지난 분투 과정을 곱씹을 시간이다. 달성되는 순간 그것은 투명해진다. *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한 장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씬 레드 라인’ 같은 영화는 서로의 목표물이 되는 병사들이 얼마나 적나라하고 구체적인 존재인지 보여준다. 전쟁에서 달성된 목표는 더 붉다. 화염의 붉음이든 선혈의 붉음이든, 전쟁에서 달성된 목표는 진하고 구체적인 감각적 결과물을 행위자의 눈과 손 앞에 차려 놓는다. 목표가 달성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접근한 이가 마주하는 결과물의 감각적 구체성은 전혀 가볍지 않다. 쉽게 윤리적 무게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그간의 분투 과정을 반추하고 곱씹을 여유 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가 초래한 결과물이 어떠한 것인지, 그것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이러한 결과일 것이라고 정말 인지하고 각오하고는 있었는지, 그 결과물은 빨갛고 무겁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물어온다. 그리고 이제 이 분기가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행위성의 정제, 예술, 그리고 정교한 야만 이러한 게임과 전쟁의 분기점은 현대의 전쟁이 게임의 면모를 닮아감에 따라 희미해진다. 이는 단순히 전쟁에서 수행되는 행위성이 게임에서의 그것과 유사하다든가, 아니면 유사한 인터페이스와 조작을 통해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행위가 수행된다는 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태는 목표의 추상화와 그로 인한 행위성의 부각에 있다. 응우옌은 그의 저서 『게임: 행위성의 예술』에서 게임을 Art of Agency, 즉 행위성의 예술이라고 명명한다. 게임에는 유희적 목표, 전-유희적 목표, 유희적 태도, 규칙, 불필요한 장애물 등이 다양하게 배치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게임에서 특정한 행위성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분투형 플레이는 바로 이 행위성을 경험하는 최적의 플레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은 이 행위성의 구현에서 미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행위성을 소재로 삼는 예술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게 응우옌의 주장이다. 게임이 목표와 성취로부터 해방되고 분투 행위에서 의의를 발견함으로써 그것은 행위성의 예술이 된다. 목표로부터 해방된 게임이 예술의 가능성을 획득하는 것에 비하여, 전쟁에서는 다른 양상이 관찰된다. 전쟁이 게임의 수행성을 닮아가는 것은 여러 방식으로 나타나지만, 그 행위성이 목표와 유리되는 것을 빠뜨릴 수 없다. 전투기 조종사는 목표 대상을 육안으로 관찰하지도 않은 채, 레이더를 보고 버튼을 눌러 미사일을 발사한다. 목표 대상의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드론 전쟁은 더욱 노골적이다. 드론 조종사는 게임 컨트롤러와 유사한 장비로 ‘스크린 속’ 목표를 제거한다. 자폭형 드론이 목표에 적중하는 순간, 공포와 고통에 비명을 질렀을 법한 적군 병사는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이러한 방식의 전쟁을 수행하는 자는 목표에 접근할 기회로부터 면제되거나, 또는 그것을 박탈당한다. 면제와 박탈 사이의 모호성 속에서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정밀 타격률’, ‘효율적 자원 운용’과 같은 데이터다. 즉, 그의 행위성에 대한 반추를 수치화하고 정돈한 것들이다. 그렇게 본디 구체적인 목표물들은 추상화된다. 그것은 모니터 안의 영상, 명멸하는 신호, 수치화된 데이터 등으로 추상화된다. 목표물이 추상화되는 곳에서 전쟁 수행자에게 더 분명하게 남는 것은 그의 행위성이다. 비로소 전쟁의 수행자는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분투와 전투에서 성립하는 행위성을 더욱 정교하게, 합리적으로 다듬어 간다. 그들은 마치 ‘분투형 플레이어’와 흡사한 조건에 놓이게 된다. 더 나아가, 이때 사상되는 것은 전쟁 목표물의 빨갛고, 무겁고, 뜨끈하고도 축축한 구체성이다. 죽음, 파괴, 트라우마는 스크린 속 데이터나 수리에 담기지 못하는 구체적이고 참혹한 현실이다. 그리고 앞서 지적했듯이 이러한 구체성은 전쟁 행위의 당사자에게서 여하한 윤리적 무게로 치환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면제인지 박탈인지 모를 공백의 정체가 확연해진다. 목표물과 거리가 멀어지는 현대의 전쟁 수행자는 이 피 튀기는 사후 정산서로부터 눈을 돌릴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선 목표를 달성하고 결과를 야기한 행위자로서의 윤리적 ‘책임’은 증발하고 행위성의 정교한 도야만이 남는다. 그것은 정교하고도 섬세한 야만이다. * 드론 공격을 성공시키고 환호하는 병사의 모습 분투형 게임과 전쟁: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 지금까지의 논의는 게임과 전쟁이 거울상의 관계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게임과 전쟁은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으로서 서로를 비춘다. 분투형 게임에서는 실제로는 무의미한, 무가치한 목표를 설정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처럼 일회적인 가장과 유희적 태도를 취한다. 이를 통해 분투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하거나 행위성을 조형한다. 목표가 일회적, 유희적 대상으로 왜소화되었기에 오히려 게임은 행위성의 예술적 가능성을 표현하는 매체가 될 수 있었다. 현대의 전쟁에서는, 무의미한 것이 유희적 태도를 통해 의미를 일시적으로 획득하는 것과 정반대의 사태가 벌어진다. 전장에 선 군인들은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척 가장하지 않는 것에 그칠 수 없다. 생사가 오고 가는 현장에서 그들의 목표를 진정으로 추구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한다. 목표를 달성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 역시 적나라한 구체성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전쟁에서 목표물은 굳이 접근하고 목격하고 손에 쥘 필요가 없는 것으로 유리되고 추상화된다. 그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거나 상관없게 되어버림으로써, 분투형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인들에게도 점차 분투와 행위성만이 남는다. ‘목표’와 ‘결과’와 ‘책임’이 휘발되어 가는 이러한 사태는, 예술적 가능성을 마련했던 분투형 게임에 대하여, 실로 행위성의 뒤집힌 거울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Tags: 응우옌, 행위성, 전쟁, 예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철학연구자) 최건 철학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게임애호가 및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의, 강연, 연구, 저술, 번역 활동에 임해왔으며, 현재는 인하대 등에서 학생들과 사유를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 방치형RPG 비판 - 동시대 게임의 사회적 상상력의 문제
2010년대에 ‘방치’는 많은 비디오게임(이하 ‘게임’)의 핵심적인 플레이 방식으로 자리잡았고, 심지어 새로운 장르인 ‘방치형 게임(idle game)’까지 형성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게임 매체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모바일 게임의 성장을 추동했는데, 가령 캐주얼 모바일 게임인 ‘타비카에루(旅かえる)’는 5년 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방치형 게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Back 17 GG Vol. 24.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ivist, Writer) Deng Jian (邓剑) Associate Professor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Soochow University. Focuses on digital game cultural studies as a primary research interest, and writes a column on games, among other pieces, for The Paper. (Activist, Writer) Myeonggyo Hong Activist and writer. Works at the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Platform C on East Asian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social movements. Author of To My Vanished Chinese Friend and A Ghost Throws a Punch at the World, and translator of Xinjiang Uyghur Dystopia and Dying for an iPhone (co-transla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