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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심즈>는 특정 대상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라이프 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대명사 격에 위치한 시리즈다.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며, 때에 맞춰 공과금을 내야 하는 생활을 다루는 <심즈> 시리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예화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심즈> 시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최초에 <심즈>를 구상했을 때 이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 Back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20 GG Vol. 24. 10. 10. "Video games are great. They let you try out your craziest fantasies. For example, on The Sims, you can have a job and a house." "비디오 게임은 위대하다. 게임은 당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정신 나간 공상까지 이뤄준다. 예를 들어 <심즈The Sims>에서, 당신은 직업과 집을 가질 수 있다." -인터넷 상에서 발견한 익명의 농담 * 심즈3(The Sims™ 3) 스팀 소개 이미지, EA 제공 <심즈>는 특정 대상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라이프 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대명사 격에 위치한 시리즈다.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며, 때에 맞춰 공과금을 내야 하는 생활을 다루는 <심즈> 시리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예화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심즈> 시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최초에 <심즈>를 구상했을 때 이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게임”의 기획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세계를 구하거나 제트기를 조종하는” 게임들과 비교하면 <심즈>에 흥미로운 요소가 없다고 생각했다(Barnes). “가장 정신 나간 공상”이라고 일컬어진 대목은 물론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 공상은 <심즈>에서 플레이어가 서는 출발선과 관련을 맺는다. <심즈>를 최초로 시작할 때, 플레이어는 ‘심’이라고 불리는 아바타를 하나 혹은 여럿 만들어낸다. 심의 성격과 취향, 생김새를 빚어낸 플레이어는 주어진 초기 예산을 바탕으로 그의 심들에게 거주지를 지정한다. 자신의 거주지를 거점으로 심들은 <심즈>의 가상 세계에 진입하고 직업을 구해 본격적으로 생계와 살림을 꾸려 나간다. 심의 생계와 살림은 ‘허기’, ‘용변’, ‘재미’, ‘수면’, ‘위생’과 ‘사교’로 대표되는 그들의 여섯 가지 욕구를 충족하거나 억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플레이어는 단순히 즉각적인 욕구를 충족하기를 넘어서 다종다양한 야망을 이룰 수 있도록 심의 일상을 구조화해 나갈 수 있다. 『커밍 업 쇼트』에서 제니퍼 M. 실바(Jennifer M. Silva)는 포스트산업 노동 계급의 세대가 “성인이 되는 경험”을 “블루 칼라 일자리가 아니라 그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생겨난 유동성과 유연성”으로서 정의하는 보편적인 경향을 확인한다(실바 54-55). <심즈> 시리즈는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 중산층 교외의 삶을 테마로 삼아 출발했다. “당신은 직업과 집을 가질 수 있다”로 끝나는 펀치라인은 플레이어의 심에게 주어지는 출발점 자체가 “가장 정신 나간 공상”의 영역에 속하게 된 유동성과 유연성의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당신’의 현실에서 불가능한 바를 게임 속에서 이룬다는 대리 충족의 논리는 우리가 라이프 시뮬레이션, 혹은 생활 시뮬레이션을 유희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깔끔한 설명을 내놓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왜 우리가 가상 세계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기를 감수하는가? 그게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의 가능성이 확정적으로 열려 있는, 개연성 있는 허구적 세계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더 좋은 삶’에 대한 정의는 물론 개인화되고 다양화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떠한 정의에서나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그 좋은 삶의 가능성을 유지하는 목적 지향적인 행동으로 의미 지어지고, 반복할 만한 가치와 쾌감을 띄는 것은 동일할 것이다. ‘진짜 현실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는 아바타와 플레이어 사이의 강한 동일성을 근거로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설명은 생활 시뮬레이션의 다양한 플레이 양상 중 한 가지 버전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여러 생활 시뮬레이션 중에서도 적어도 <심즈>는 아바타와 플레이어 사이의 강력한 동일시를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아바타를 가상 세계의 중심에 두고서 등 뒤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혹은 아바타의 1인칭 시점으로 주변을 관망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다. 하나의 아바타만 조작하는 플레이가 장려되는 것도 아니다. <심즈 4>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시점에 일치된 카메라로 심들이 자리한 공간을 원형 극장처럼 360도 돌려가며 관망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정밀 카메라를 조작하는 듯한 감각으로 한 아바타의 움직임을 쫓거나 상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도 있고, 하나의 심, 하나의 가정만을 조작하지 않고 다른 동네에 사는 여러 가정을 돌아가며 조작할 수도 있다. 거주지만이 아니라 심들이 방문할 수 있는 술집, 클럽, 헬스장을 지을 수 있고, 심의 생활을 플레이하는 도중 잠시 시간을 정지시키고 인테리어를 바꿀 수도 있다. 이러한 가단성은 ‘놀이터’, ‘모래사장’ 혹은 ‘장난감’으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다루는 논리를 뒷받침한다. ‘놀이터’의 은유는 게임 연구가 곤살로 프라스카(Gonzalo Frasca)의 논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시뮬레이션의 교육적이고 윤리적인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던 프라스카는 카이와와 피아제의 개념을 참조하며 “루두스”와 “파이디아”의 이원론을 비디오 게임에 도입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루두스적인 게임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규칙들을 가지며 “체스보드”, “운동장”, “축구장”과 같은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게임이라면, 파이디아적인 게임은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규칙들을 갖지 않으며, 전통적으로 “놀이터”에서 펼쳐지는 역할극과 같은 놀이 행위다(프라스카 11). 그는 ‘루두스’의 위상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고 “파이디아”의 위상이 최종 심급이며, “괴물과 트롤”이 아니라 “우리와 매우 친숙한 실제 사람”을, 그리고 그들이 삶을 관리해가는 체계를 모델화했다는 점에서 <심즈>가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이슈들”을 다루기에 적합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프라스카, 46). 프라스카는 “루두스”의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 “파이디아”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의 동기, 이 특정한 유형의 게임을 함으로부터 얻어지는 쾌와 재미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조작을 촉구하고 전제하는 매체의 잠재력을 논의할 때, 게임 디자인에 호응하거나 그것을 ‘오용’하는 조작의 동인, 곧 관습적 경로를 따라가면서 변주하는 쾌감을 살피지 않는 건 반쪽짜리 논의가 될 테다. ‘놀이터’의 은유를 통해 말하자면, 젠더화된 소꿉놀이, 아름다운 모래성을 짓고 파괴하는 손짓, 이파리와 자갈 따위를 배치해 개미의 진로를 방해하는 감각 등이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거나 강화하며 재미를 만들어내는지 질문하는 게 역시 필요한 것이다. 오히려 프라스카가 시뮬레이션의 급진적 가능성이 충분히 개화되지 못한 형태로서, 혹은 보편화될 수 없는 형태로서 평가했던 플레이 유형들로부터 우리는 <심즈> 시리즈와 같은 생활 시뮬레이션이 선사하는 재미에 대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으로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에 대한 프라스카의 언급을 살펴보자. 심들의 생에서 특별한 순간들을 스냅사진으로 찍을 수 있도록 하는 이 기능을 플레이어는 디자인된 의도를 넘어서 “그들의 심들이 주연하는 스토리들을 창조”하려고 활용한다(프라스카, 228). 플레이어들은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는 어떤 상황을 창조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고 “텍스트적인 주석”을 덧붙이는 등의 편집을 가미함으로써 “스토리보드”를 구성하고 이를 온라인상에서 공유한다(프라스카 ,81). 심들의 자율성으로 인해서, 가족 앨범 스토리의 시퀀스에 추가할 만한 제대로 된 스냅사진을 찍는 건 많은 시간과 정성이 소요될 수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심즈>의 많은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시간과 정성을 감수하고 스냅사진 기능을 활용해 대체로 “통속적이거나 멜로드라마적”인 “선형적인 내레이션”을 만들어냈다(프라스카, 81). 게임이 고정된 내러티브로 환원되는 걸 경계했던 프라스카는 “만화를 창조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는 것은 사진을 찍기 위해 무비카메라를 활용하는 것과 같다”고 평하며 좀 더 친숙한 영상과 애니메이션의 문법적 관습에 기댄 이러한 실천들이 시뮬레이션이란 매체의 가능성이 완벽하게 표현된 형태는 아니라고 본다(Frasca 82). 하지만 프라스카의 이러한 부인 속에서 플레이어들이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포토앨범’ 기능을 활용하는 강력한 동인이 시뮬레이션된 세계로부터 선형적인 이야기를 함축한 시퀀스를 발생시키고자 하는 욕구이며 “사진을 찍기 위해서 무비카메라를 활용”하는 비효율적인 행위에서 오는 쾌락임이 드러난다. 프라스카의 논의는 주로 심즈 프랜차이즈의 첫 판본을 다루고 있다. 시리즈는 UI와 그래픽, AI의 정교함 상에서 기술적으로 발전했고, ‘포토 앨범’의 기능 역시 정교화되었다. ‘심즈 일지’로 불리는 스토리텔링 형태도 이에 발맞춰 복잡성을 획득했다. 게임 내에서 제공하는 스크린샷 기능, 모더(modder)들이 배포하는 특수한 조명 효과, 포토샵 보정 기능 등을 활용하여, 플레이어들은 심들의 반복되면서도 변화하는 일상을 기록하고 그것을 시퀀스를 가지도록 배치한다. ‘일지’라는 규정은 개인화된 경험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대체로 ‘심즈 일지’는 ‘나’를 주어로 하지 않고 심에게 부여된 가상의 이름을 주어로, 즉 3인칭으로 서술된다. 플레이어들은 아바타에 동일시되기보다는 카메라의 줌인과 줌아웃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카메라 감독과 같은 위치에 선다. ‘심즈 일지’의 제작 과정은 특정 시퀀스나 내러티브를 환기하는 요소들을 정교하게 배치하고 주변 환경을 조성하며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갖고서 움직이는 심들을 수고스럽게 조작함으로써 이뤄진다. 하지만 ‘심즈 일지’를 만드는 유저들은 이러한 조작 과정을 최종적인 내러티브 산물로부터 세심하게 삭제한다. <심즈 4>의 경우 ‘심즈 일지’를 더욱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게임 내에 스크린샷과 녹화 기능을 단축키로 제공한다. 플레이어는 심들을 기동하고 조작하는 버튼 인터페이스와 ‘욕구’와 관련된 UI를 편리하게 배제한 채로 스크린샷을 저장할 수 있다. 저장된 스크린샷의 개연성 있는 배치와 텍스트 주석을 통해서 ‘일지’는 심들에게 개인화된 역사성을 부여한다는 환상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환상을 지탱하는 강력한 근거인 기록물은 버튼을 누른 뒤 다시 하위 버튼을 누르는 식의 마우스 연타, 특정 행동을 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의 계측, 원하는 상황을 연출해 내도록 돕는 모드의 다운로드 등 게임 내외적으로 이뤄지는 복잡한 조작을 거쳐 연출되지만, 이러한 조작 절차는 자주 비가시화된다. ‘심즈 일지’로부터 우리는 자신의 시뮬레이션에 대한 조작 과정이 전면화되기를 원치 않는 플레이어들의 소망을 읽을 수 있다. 인터페이스를 배제하는 스크린샷의 기능은 ‘포토앨범’ 스토리텔링에 이미 잠재되어 있던 수요에 게임 디자인이 반응한 결과다. 게임사에서 새로운 DLC를 예고할 때 보이는 티저 이미지 등에서도 역시 조작 인터페이스는 드러나지 않게 처리된다. <심즈> 시리즈의 트레일러들은 마우스와 키보드 클릭이 필요치 않은, 일일 연속극의 예고편을 차라리 연상시킨다. ‘심즈 일지’를 작성하는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상호작용하며 시뮬레이션을 조정해 나가는 차원의 인터페이스는 기록 과정에서 전면화되지 않기를 넘어서 은폐되어야 한다. 시뮬레이션된 세계가 띄는 허구적인 리얼리티는, 이 시뮬레이션의 전제 조건들과 설정들을 조작하는 인터페이스의 은폐를 통해서 추체험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XC94CHpni1Y * The Sims 4 그로잉 투게더: 공식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The Sims 제공 은폐를 실천하는 다양한 전략들 중 흥미로웠던 심즈 일지의 양태는 심들이 하는 대화를 상상적으로 구성하고 스크린샷의 하단에 ‘자막’을 달아서 표시하는 형식이다. 심들은 옹알이처럼 들리기도 하는 “심리시(Simlish)”라는 가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걸로 가정되어 있는데, 자막 형식의 사용은 마치 실재하는 언어를 플레이어의 모국어로 번역해낸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이 같은 편집은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를 없는 체하는 기만과는 다르다. 오히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은폐의 전략들을 활용하면서, 플레이어는 ‘현실’에 대한 편집자이자 촬영 감독의 자의식을 표현해낸다. 게임 커뮤니티와 게임 내 상호작용을 포괄하여, 게임 내외적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자의식의 표현이 <심즈> 시리즈가 전하는 쾌의 중핵을 이룬다. 앞서 언급한 ‘모더’들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심즈> 시리즈는 모딩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프랜차이즈다. 나는 <심즈 4>를 정확히 밝히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긴 시간 동안 플레이했는데, 이는 <심즈 4>가 시리즈 중 가장 진보했거나 흥미로운 판본이기 때문은 아니다. 심즈 유저들과 모더의 커뮤니티가 현시점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성화되어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타냐 시보넨(Tanja Sihvonen)의 정의를 빌려오자면, 모딩(Modding)은 “공식적으로 발매된 컴퓨터 게임, 그 게임의 그래픽과 소리, 캐릭터를 사용자 정의 콘텐츠를 통해서 확장하고 변경하는 다양한 방식”을 가리키는데, 이는 “새로운 게임 메카닉, 새로운 게임 플레이 레벨”을 창조하는 것까지 의미할 수 있다(Sihvonen 6). 모더들은 게임 플레이 상의 편의성과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증대하기 위하여 게임의 전제들을 뒤바꾸기도 하고, 심의 외양과 건축물을 꾸밀 수 있는 사용자 정의 콘텐츠(custom contents)를 창조한다. <심즈>의 모더 역시 모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코딩 절차나 포토샵, 블랜더와 같은 툴의 사용을 전면화하기보다는 허구적 리얼리티의 편집자로서 자의식을 표현하는 다양한 전략들을 취한다. 그 전략들이 자주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현대적 직업의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표현된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 가령 게임 속 심에게 입힐 수 있는 새로운 복장들을 만들어내는 모더들은 심들의 옷을 갈아 끼우는 게임 플레이 기본 화면을 통해 자신의 옷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보단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은 심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모델 화보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공유 페이지의 전면에 내세우는 게 일반적이다. Sentate와 같은 모더들은 그가 제작한 의상 모델링을 걸치고서 <심즈 4> 내에서 워킹을 하는 심 모델들이 출연하는 패션쇼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0LzV7vMvQuU * Sentate Haute Couture 2022 Collection (Sims 4 CC), Sentate 제공 케이팝 아이돌과 한국의 예능인을 닮은 심을 창조하는 유튜버 심즈 아무나AMUNA 역시 그가 세심한 조작을 통해서 빚어낸 심을 ‘출연’시켜 뮤직비디오나 한국 예능의 문법을 패러디한 영상들을 만들어낸다. 한편, <심즈> 시리즈에서 깔끔하게 지워지거나 코믹하게 그려질 따름인 폭력과 비극적인 사고를 구현하는데 관심이 있는 모드 “Life is Tragedy”의 경우 과잉의 부정적 감정 표현을 선보이는 막장 멜로드라마의 제스처들과 컬트 영화의 황당무계한 폭력들을 함께 빌려온다. 모더의 홈페이지는 자신의 모드로 <심즈> 상에서 연출할 수 있게 되는 장면들을 슬래셔와 코미디에 각각 반 발자국씩 걸쳐 있는, B급 영화의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섬네일을 통해 예고한다. <심즈> 시리즈의 모더와 플레이어 모두 다양한 층위에서 시뮬레이션의 전제들을 조작하고 변경하며 상상적으로 현실을 구성하는 이들이란 점에서 시뮬레이터로 느슨하게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시뮬레이터가 화려하게 인테리어한 건축물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플레이어의 심이 생활해갈 수 있는 환경으로서 공유한다면, 또 다른 이는 하이틴 드라마나 컬트 무비의 PD이자 촬영 감독이 되고, 패션 디자이너와 뮤직비디오 촬영 감독으로서 의식을 표현하기도 한다. 시뮬레이터의 무궁무진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자기표현은 <심즈> 시리즈의 폭넓은 자유도나 소위 ‘현실’과의 근접성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시뮬레이터의 자기 상은 매스미디어의 문법들, 그 심상들과 함축을 조립하고 편집하는 소위 ‘창작자’의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자의식을 대체로 참조한다. ‘자기 브랜딩’의 영역을 유희화하는 수준에까지 말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심즈> 시리즈가 무한한 자유도를 보장한다기보다는, 그것에 함축된 통속성, 현대적 분업과 ‘창조적’ 생활의 맥락이 시뮬레이터의 즐거움을 장르화하고 구체화하는 차원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 텍스트, 게임의 이데올로기적 함축과 인터페이스와의 관계, 그리고 그 게임에 지배적인 장르들이 교차하여, 시뮬레이터의 자의식과 그것을 표현하는 즐거움이 띌 수 있는 형상들을 빚어낸다.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하며 그 제반 조건을 변화시키고 조작하며 편집적인 현실을 생성하는 과정은 시뮬레이터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시뮬레이터의 자기 표현 과정 역시 게임적인 쾌가 펼쳐지는 장소이며, 게임 디자인과 플레이가 상호 개입하며 기틀을 잡아가는 구조물로서 식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 문헌 곤살로 프라스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김경섭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제니퍼 M. 실바. 커밍 업 쇼트 :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 문현아, 박준규 역, 리시올, 2020 Barnes, Adam. “The Sims Turns 20: Creator Will Wright Reflects on the Battle He Waged to Get One of the Best Games of All Time Made.” Gamesradar , GamesRadar+, 4 Feb. 2020, www.gamesradar.com/the-making-of-the-sims/ . Sihvonen, Tanja. Players Unleashed ! Modding the Sims and the Culture of Gaming . Amsterdam University Press, 2009.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북리뷰]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중요한가?
이 책은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게이머, 게임 캐릭터, 게임 산업 관련 종사자 앞에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과 불편함,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순히 ‘이런 사례가 있고 그래서 나쁘다’는 식의 단편적인 나열이 아니라 앞서 밝힌 문제들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연 지금까지 여성을 위한, 여성을 그린, 여성에 의한 게임이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 Back [북리뷰]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왜 중요한가? 13 GG Vol. 23. 8. 10. 이 책은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게이머, 게임 캐릭터, 게임 산업 관련 종사자 앞에 ‘여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과 불편함,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순히 ‘이런 사례가 있고 그래서 나쁘다’는 식의 단편적인 나열이 아니라 앞서 밝힌 문제들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연 지금까지 여성을 위한, 여성을 그린, 여성에 의한 게임이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지고 있다. ‘게임하는 여성’, ‘게임 속 여성’, ‘게임을 만드는 여성’ 들은 게임과 관련된 다 영역에서 눈에 띄는 양적 증가세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접근하기 위해 BJ갓건배와 클러저스 사건, 여성 게이머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으로 시작한 ‘혜지’부터 게임 커뮤니티에 만연한 트롤링 문제, 게구리 선수의 실력 인증 논쟁, 게이머게이트 등 이 사회를 시끄럽게 뒤흔든 게임과 관련된 사건들을 사례로 들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건들이 단순히 게임을 매개로 한 성별 간의 갈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그들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초대받지 않은 침입자’ 이 책에서는 여성 게이머들에 대한 이야기를 메건 콘디스의 연구를 중심으로 ‘섹시한 보조’, ‘어리바리한 초보’, ‘게임 덕후인 척하는 거짓말쟁이’라는 세 가지 타입으로 분류하여 다루고 있다. 여성 게이머들은 이러한 전형적 이미지로 인해 게임 내에서 주로 ‘보조’일 (간주할) 뿐이다. 또한 진정한 게임을 즐기기 보다는 캐주얼 게임과 같은 ‘가짜 게임’을 주로 플레이하는 존재로, 종종 게임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최상위급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게임을 능숙하게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는 과도한 동경과 추앙의 대상으로 포장되기도 하며 (‘여왕벌’), ‘그럴 수가 없다. 분명 무엇인가 꼼수를 사용했을 것이다.’라는 시선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여성 게이머들은 자신을 감추거나 ‘진짜 게이머’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여성 게이머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증명하고 인증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여성 게이머들이 자신들을 위한 영역이 아닌 곳에 불쑥 들어온 ‘초대받지 않은 침입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텔레비전의 광고에서 조차 이러한 이미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이 책에서는 게임 이용 조사 결과나 자료 등을 바탕으로 실제로 여성 게이머의 비율은 남성과 큰 차이가 없다는 재미있는 통계를 제시한다. 더불어 ‘진짜’ 게임이 아니라고 폄하되는 캐주얼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더 많으며 이와 같은 경향은 성별과 연령에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여성 게이머에 대한 시선이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들은 ‘초대받지 않은 침입자’라는 라벨링으로 인해 여성 프로 게이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미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성별에 따른 능력 및 실력 차이에 대한 견고한 신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성 게이머가 남성 게이머에 비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이는 게임을 논의할 때 기존의 신체적 혹은 물리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특정 성 역할에 대한 편견과 인식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은 다수가 아닌 소수의 게이머들(혹은 소수로 폄하되고 있는 게이머들)에 대한 편견이 우리 사회 전반에 여전히 존재하기에, 이러한 편견과 차별 어린 시선이 여성 게이머들의 게임 즐기기와 경험을 어떤 식으로 방해하고 있으며 게임 커뮤니티 형성에 어떠한 걸림돌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진짜 게임’도 아니다-‘진짜’를 찾아라. 여성 게이머들은 종종 게임 커뮤니티에서 ‘진짜 게이머’가 아니라는 편견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은 앞서 살펴보았다. 저자들이 밝힌 바와 같이 남성 게이머들이 주로 플레이한다고 알려진 하드코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열정적이고 진정한 게이머로서 인식되며, 여성 게이머들이 관심을 가지고 즐기는 것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대해졌다. 여성 게이머들은 주로 ‘진짜 게임’이 아닌 ‘가짜 게임’을 좋아한다는 인식과 ‘진짜 게임’ 혹은 ‘진짜 게이머’에 대한 신념은 현재 우리의 게임 문화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저자들은 하드코어-캐주얼 게임이 명확히 정의된 것이 아니라는 예스파 율의 지적을 인용하며 “하드코어- 캐주얼 구분은 애초부터 명확하게 고정된 것도 아니지만, 현실에서의 반복적 용어 사용은 어느새 이 구분을 남성적-여성적 구조로 전이시켰다.”(71쪽) 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의 ‘진짜-가짜’, ‘남성-여성’과 같이 단순하게 이분화한 논쟁은 무의미하다고도 주장한다. 오히려 여성 게이머의 증가와 같은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게임도 게이머도 다양화되고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이 책에서 그리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진짜 게임’, ‘가짜 게임’을 논의하기에 앞서 ‘총을 쏠 수 있는지’를 묻는 불편한 환경 속에서 ‘진짜’ 게임을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장르와 플레이 스타일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그 세계의 주류를 구성하고 있더라도 잘못된 관념이라면 언젠가는 깨고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재현하는가. 이 책에서는 게임 속 여성 캐릭터에 대한 잘못된 재현 방식과 편파적인 역할 배분, 그리고 라라 크로프트의 재현을 둘러싼 계속되었던 논쟁을 들어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여성 캐릭터 재현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 중 하나로 게임에서는 때때로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는 캐릭터가 등장하며 남녀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초기의 픽셀 중심 그래픽과 비교하여 게임 그래픽 영역에서는 기술적으로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져 왔으며, 게임 캐릭터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도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기존과는 다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분명히 주목할 만한 새로운 흐름이다. 그런데도 이 책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여전히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은 쉽게 성적 대상화가 되거나 폭력, 착취를 받는 형태로 재현되곤 한다. 특히 저자들은 무분별한 재현의 양적 증가는 오히려 기존의 잘못된 고정적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성 재현 문제는 게임이 가지는 플레이라는 상호작용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 재현 이상의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는 저자들이 설명한 것과 같이 “게임의 메카닉적인 요소와도 깊은 관련을 맺는다는 점”(132쪽) 을 인지해야 하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바로 지금’, 주의 깊게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게임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다양한 상호작용을 만들고 그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데에 중요한 미디어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장난 파이프라인’이 아니다. 저자들은 게임 산업에서의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 핵심적인 업무와는 관련이 적은 일을 하는 이들로 인식되고 있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 게이머들 혹은 게임 내에 재현되는 여성 캐릭터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성 게임 개발자들이 경험하는 차별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여성 게임 노동자들이 커리어를 이어 나가기 위해 겪는 어려움을 ‘고장 난 파이프라인’으로 비유하여, 이러한 문제들이 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들은 “성평등 의식이 높다고 평가받는 스웨덴에서조차 여성 게임 제작 노동자의 능력이 과소평가된다는 비판과 반성이 있었다. “게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와 “여성은 진짜 게이머가 될 수 없다.”는 믿음이 결합해 남성 중심의 노동 문화를 형성했다는 것이다.”(211쪽)라는 설명을 통해 게임 산업 전체에 퍼져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 능력에 대한 불신, 선입견 등의 문제들은 전 세계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게임 산업 여성 노동자들과 관련된 사례들은 분명 게임 업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특정 성별의 노동자들이 다수인 직업군에서도 그와 비슷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렇게 게임 산업 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고찰을 함께 담으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노력이 게임 산업에 만연한 불평등과 편견을 조금씩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게임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게이머는 총을 쏴야만 하는가?-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 게임 나라로 오세요.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 책의 타이틀이자 저자들의 중요한 고찰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게임은 아이들을 ‘게임뇌’로 만들며 중독시키는 유치하고 저급한 문화로 여겨져 왔다. 또한 전자 오락실, PC방으로 대표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소도 젊은 세대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유해한 기피의 대상이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이 책의 주요 대상인 ‘게임하는 여성’, ‘게임 속 여성’, ‘게임을 만드는 여성’들을 향한 차별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있다. 저자들은 약 290쪽에 걸쳐 이러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해체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여성 게이머, 여성 캐릭터, 여성 게임 산업 노동자와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분석함으로써 지금까지 비주류로 소외되었던 이들을 포함하여 "즐거운 게임을 모두가 즐겁게 하기 위한"(280쪽)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할 수 있는 게임 문화 형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하고자 한다. 상식적이지 않은 차별과 편견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당연시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의문과 논의가 게임 문화의 포용성을 높이며 게임 산업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저자들이 “게임이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일상적 여가·오락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미 도래했거나.”(269쪽)라고 언급한 것처럼 게임은 이제 더 이상 특정 성별이나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진짜 게이머’와 ‘가짜 게이머’에 대한 논쟁 역시 게임 문화 속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과도기적인 현상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진정한 게이머’, ‘진짜’의 기준을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나 애정의 정도로 증명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처럼 생각된다. ‘진짜’를 위해 혹은 ‘가짜’라는 비난을 피하려고 방아쇠를 당기거나 칼을 휘둘러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이 ‘진짜’ 게임인지, 게임에 대한 본인의 애정이 ‘찐’인지 아닌지를 물건의 진위를 감정받는 것처럼 증명할 필요는 없다. 여성 게이머라고 해서 특정 장르의 게임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총을 쏘는 것을 즐기는 게이머가 있다면 수집하고 레시피를 조합하여 음료를 만들거나 상자에서 꺼낸 물건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행위를 무한반복 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들을 누가 ‘진짜’ 게이머가 아니라고 그들이 플레이하는 것이 ‘진짜 게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이들이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이를 반영한 각기 다른 장르와 주제, 캐릭터를 다루는 게임을 접함으로써 비선형적인 경험을 확장할 수 있는 게임 문화를 위해 나아갈 시기라고 이 책은 우리 사회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가 총을 쏠 수 있지만 모두가 쏠 필요는 없으며 굳이 쏠 수 있는지 혹은 잘 쏘는지에 대한 증명이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환경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더는 강요하고 차별하는 사회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는『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는 당장 완전한 해결책을 제안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게임 문화를 위한 논의의 출발점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의를 가진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리츠메이칸대학 기누가사 종합 연구 기구 전문 연구원) 신주형 주로 시리어스 게임과 시리어스 게임을 플레이하는 장소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리츠메이칸대학 게임 연구 센터 (RCGS)의 게임 아카이빙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 보다 책임감 있는 재현을 실천하는 게임을 향해
어떤 매체에 대한 담론은 해당 매체가 겨냥하는 수용자 또는 이용자가 어떤 존재이며 그들이 매체와 맺는 관계에는 어떤 의도들이 담겨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가지를 드러낸다. 북미와 유럽의 게임 관련 공공 담론에 있어 오랫동안 게임은 - 거칠게 말해 - 번쩍이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오락에 하릴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십대 소년들을 위한 것으로서 인식되어왔다. < Back 보다 책임감 있는 재현을 실천하는 게임을 향해 04 GG Vol. 22. 2. 10. - You can see the english version in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86 어떤 매체에 대한 담론은 해당 매체가 겨냥하는 수용자 또는 이용자가 어떤 존재이며 그들이 매체와 맺는 관계에는 어떤 의도들이 담겨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가지를 드러낸다. 북미와 유럽의 게임 관련 공공 담론에 있어 오랫동안 게임은 - 거칠게 말해 - 번쩍이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오락에 하릴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십대 소년들을 위한 것으로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정형화 되어있는 게이머에 대한 인식에 의문을 표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실제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처음 게임을 접하게 된 유아들, 〈워드퓨드(Wordfeud)〉 같은 게임에 빠진 은퇴한 여성, 손주와 〈카운터 스트라이크〉 게임을 함께 하는 할머니 게이머 등이 포함된다. 또한 〈포트나이트〉를 배회하며 함께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게이 게이머나 잠든 아기 옆에서 닌텐도 스위치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젊은 엄마도 포함될 수 있다. 게임 문화의 규범 비평 디지털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당연히 - 정형화된 유형의 플레이어들이 아니라 - 나름의 개별적인 방식으로 게임을 경험하는 실제 플레이어들이다. 지난 십 년간 게임 저널리스트, 문화 비평가, 학자들은 주류 게임 내 젠더와 인종, 장애, 나이, 신체에 대한 재현의 문제에 대해 논의해왔다. 이러한 논의가 밀도 있게 시작된 것은 북미였지만, 이제는 유럽에서도 규범 비평(norm critique)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게임 내 재현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3가지로 나뉜다. 첫째, 게임이 사람들의 다양한 정체성 또는 정체성의 여러 측면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둘째, 게임의 이용자층에서 주변화되어있는 사람들에 대한 재현이 어떠한가, 셋째,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그들의 업무 환경은 어떠한가. 이 세 가지 요소는 공공 담론상에서 상호적으로 얽혀서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게임에서 여성이 부정적으로 재현될 경우 여성 플레이어들이 그 게임으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라고 여겨지며,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의 양상이 개선되면 게임 내에서도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개선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어느 정도 사실일지라도,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을 게임학자들은 지적한다.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 게임들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가 수적으로 적고,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서 한정되는 등 오랫동안 불균형이 존속되어왔으며, 여성 캐릭터들의 외모가 시각적으로 성적인 매력이 지나치게 부각되어왔음은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1983-2014년 사이에 출시된 5백편이 넘는 게임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90년대 후반에 정점을 찍은 여성 신체의 성적 대상화는 2006년 이후부터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감소 추세는 업계 전반적으로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게임이 진지한 주제에 대한 자각을 일깨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면서 시작된 느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Hellblade: Senua’s Sacrifice)〉를 출시한 영국의 게임사 닌자씨어리(Ninja Theory)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타밈 안토니아데스(Tameem Antoniades)는 인터뷰를 통해 이 게임이 단순한 오락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신병으로 인한 고통이 어떠한 경험인지 플레이어들이 진정으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2018년 덴마크에서 인디게임 데모로 출시된 〈포가튼(Forgotten)〉은 알츠하이머로 인한 고통이 어떠한지를 표현했다. 이 게임은 현재 오토스코피아 인터랙티브(Autoscopia Interactive)에서 개발 중이다. 유럽의 인디게임 업계 또한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고 주변화된 인물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게임개발사 픽셀 헌트(The Pixel Hunt)가 개발한 〈Bury me, My love〉는 유럽을 횡단해서 프랑스 파리까지 이동하는 한 시리아 난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2021년 가을에는 영국의 AAA 게임사 플레이그라운드 게임즈(Playground Games)가 인기 레이싱 게임 〈포르자 호라이즌(Forza Horizon)〉의 다섯번째 판을 내놓으면서, 게임 내에서 의수나 의족을 찬 캐릭터를 생성하는 것과 성 중립적인 대명사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졌음을 주류 언론의 헤드라인을 통해 알렸다. 많은 논쟁이 게임 캐릭터에 대한 재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가운데, 포용적인 게임 디자인이 이 특정한 문제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부상하고 있는 인디게임 산업은 AAA 산업의 잘 다듬어진 모델 너머에 존재하는 경험들을 전달하고자 하는 게임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한 게임들은 또한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있을 수 없는 플레이어들에 맞는 플레이 모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은 IO인터랙티브(IO Interactive) 같은 소수의 거대 스튜디오를 제외하고 대부분 소규모의 인디 게임 개발자들로 구성되어있는 덴마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 〈포가튼(Forgotten)〉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는 짧은 게임이다. 기억 상실과 왜곡의 감각을 주기 위해서 게임 캐릭터들의 얼굴이 흐려져 있다. 플레이어층의 확장 이처럼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는 변화상은 플레이어층의 다양화라는 두번째 문제로 부분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게임산업은 새로운 수용자층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플레이어들에 호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게임 내 주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재현과 플레이어층의 다양성 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으며, LGBTQ 등 주변화된 집단의 사람들은 게임 내 LGBTQ 캐릭터가 부정적으로 재현될지라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주류 매체조차 게임 내 주변화된 사람들에 대한 문제적 재현에 관심을 가지면서, 게임사들이 그와 같은 부정적인 정형화를 반복 재생산하는 것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은 공공 담론 그 자체가 게임업계로 하여금 강력한 구매력을 지닌 집단을 겨냥하여 새로운 이용자층으로 포섭하도록 장려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 내 주변화된 정체성에 대한 부정적 묘사의 문제는 상황의 한 단면을 설명하는데 그칠 뿐이다. 많은 주변화된 집단들은 여전히 괴롭힘과 차별, 폭력을 경험하고 있는데, 특히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할 때 심각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플레이어의 주변화 문제를 다루는 유럽 내 담론이 주로 (젊은) 여성 플레이어의 경험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종이나 사회·경제적으로 주변화된 사람 등 여타의 주변화된 집단의 상황은 여전히 공공 담론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주변화된 정체성을 지닌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을 존중하면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음에도, 게임 업계가 여전히 그러한 집단이 지닌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대를 통한 노동 조건의 개선 지난 수년 간 게임 업계 내 주변화된 사람들의 문제는 상당한 주목을 받아왔다. 업계 내 주변화된 노동자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1ReasonWhy 해쉬태그를 통해 업계 내 차별과 성차별주의, 괴롭힘에 대해 알리기 시작하면서 십년 전부터 주목 받아온 이 문제는, 지난 몇년 동안 유럽의 AAA 업체 내 유해 업무 문화나 성적 부정행위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다시 헤드라인에 오르기 시작했다. 북유럽에서는 아직 이와 유사한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러 매체에서 폭력이나 가해 행위의 몇 가지 사례를 다룬 바 있다. 노동조합은 명백히 이와 같은 문제에 대처하는 기관으로서 주변화된 노동자들을 위한 환경의 개선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강력한 노동조합의 전통을 지닌 스칸디나비아 반도임에도 이 권역 내 게임 업계의 노동자 조합은 아직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주변화된 인물에 대한 책임감 있는 게임 내 재현이나 남성 게이머라는 정형화된 규범의 바깥에 놓인 플레이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문화의 조성 등과 같은 다양한 논의들이 벌어지고 있는 공공 담론의 다른 한편에서는 업계 내 조직의 변화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울려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다 요르겐센 이다 요르겐센은 덴마크의 코펜하겐 IT 대학(IT University of Copenhagen)에서 게임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주로 젠더 재현, 게임 문화, 매체로서의 게임 등과 관련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서던 덴마크 대학(the 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에서 박사후 과정 중에 있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USA in Fallout, USA today
We once thought that the era of Donald Trump had come to an end, but it appears it hasn't. While Trump may have lost the election, his supporters' enthusiasm remains robust. What fuels this enduring energy? Moreover, is the driving force behind Trump's rise aligned with traditional 'American' values or does it run counter to them? It's worth recalling that Trump's campaign slogan was 'Make America Great Again'. Yet, years later, when President Joe Biden won the election after a vigorous anti-Trump campaign, he declared his presidential message as 'America is back.' So, which vision truly represents 'America' – Trump's or Biden's? < Back USA in Fallout, USA today 14 GG Vol. 23. 10. 10. We once thought that the era of Donald Trump had come to an end, but it appears it hasn't. While Trump may have lost the election, his supporters' enthusiasm remains robust. What fuels this enduring energy? Moreover, is the driving force behind Trump's rise aligned with traditional 'American' values or does it run counter to them? It's worth recalling that Trump's campaign slogan was 'Make America Great Again'. Yet, years later, when President Joe Biden won the election after a vigorous anti-Trump campaign, he declared his presidential message as 'America is back.' So, which vision truly represents 'America' – Trump's or Biden's? The Fallout game series also raises questions about 'what is the USA', although it's unclear whether this was the developers' precise intention. Let's consider the New California Republic (NCR) as an example, the epicentre of the Fallout world. NCR is a nation rebuilt by the power of its people from the ashes of destruction and appears to serves as a metaphor for how Americans perceive their nation's founding narrative – the USA that was built by the people, on the lands that European settlers deemed as 'uninhabited'. Furthermore, NCR represents a highly advanced civilisation with a touch of snobbism and expansionism, yet an attempt to avoid excessive conflicts with the outside world. This mirrors the historical fact that the USA, while aspiring to become a global power/player, maintained an isolationist foreign policy for a significant period before World War II. The protagonists in the Fallout series are typically residents of the vaults . For instance, in Fallout 1 and Fallout 2 , the protagonists have close ties to and support the NCR or its preceeding entities. These protagonists emerge from the vault that preserves remnants of the 'old world' and in the game, for the first time, encounter the 'new world' outside in a state of ruin. This reminds me of historical events when the European settlers from the 'civilised' world initially set foot in the 'barbaric' new world in ruin, seeking to establish colonies. As its name suggests, the New California Republic (NCR) establishes itself in the west, pushing into the wasteland, which notably evokes memories of the 'Western frontier'. America's westward expansion was driven by heightened nationalism under the leadership of Andrew Jackson and, in the process, resulted in significant conflicts and the destruction of native peoples and their cultures. This parallels the situations that gamers encounter through the various factions' conflict for control of the Hoover Dam in Fallout: New Vegas . Caesar’s Legion, an antagonistic faction in Fallout: New Vegas , consistently asserts authoritarian control over its territory. This reflects how colonist might have appeared from the perspective of indigenous people during the westward expansion. Historical accounts reveal that Native Americans resisted this expansion by forming alliances with or receiving military support from, British or French troops stationed in the region. In the context of the modern-day United States, Caesar’s Legion seems to draw inspiration from extremist groups like the Islamic State (IS) – also known as the 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ISIS). However, it's a well-known fact that modern Islamic extremists have their roots in military groups formed during the Cold War, in response to the imperialistic expansion of both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This parallel is mirrored in the game Fallout , where Caesar, the leader of Caesar’s Legion, was formerly associated with the 'Followers of the Apocalypse', a humanitarian and intellectual medical group. In a way, Caesar’s Legion can be seen as an anti-civilisational phenomenon born out of the frustrations with a failing civilisation. When players confront Caesar’s Legion in the game, they are also confronted with the historical ironies that the USA faces in its own history. The Enclave, a villainous group that appears in both Fallout 2 and Fallout 3 , serves as a significant element prompting questions about the ‘truly American'. To settlers, the Enclave represents an 'old world' power aiming to dominate the wasteland by controlling knowledge and employing force, with their actual power centre concealed in a distant location. This scenario bears resemblance to how historical Great Britain might have been perceived by the colonists in America across the Atlantic before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Interestingly, the vault residents, despite sharing similar cultural and societal norms, opt to coexist with the wasteland and resist the Enclave. This mirrors the stance of the colonial intellectual class that led the War of Independence against Britain. Yet, there’s one crucial factor that I must point out. Historically, the dominant conflict within American political society during westward expansion revolved around the clash between the ‘old world’ and the ‘new world’, with the old world associated with power, knowledge, and the clerical system. For instance, America's evangelical church, which gained popularity during the Great Awakening, found itself in conflict with the established colonial clergy and intellectual elite. The evangelical doctrine of the time, which permitted ordinary worshipers to serve as preachers, obviously challenged the traditional churches of the 'old world'. From the evangelical perspective, these established churches were perceived as mere institutions that monopolised knowledge, power, and divinity. Coming from this historical trace, Richard Hofstadter once noted that American anti-intellectualism can trace its roots to a deep-seated antipathy toward knowledge and power, creating a point of convergence between anti-intellectualism and democracy. Within this context, we can interpret the vault residents as symbolic representations of colonial elites who have a favourable disposition towards the wasteland but can never truly become a part of the wasteland. This dynamic helps explain the ambivalent feelings that Fallout players have towards the Brotherhood of Steel (Brotherhood), another faction aiming to monopolise intellectual and military resources in the post-apocalyptic new worl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wasteland's inhabitants, the Brotherhood appears as nothing more than elite exploiters who make oaths of 'good faith', reminiscent of how settler communities may have perceived colonial intellectuals and clergy that misuse power. This narrative framework forces the players, empathising with the vault residents, to feel both sympathetic and rebellious against the Brotherhood. Fallout 4 sought to encapsulate these recurrent historical themes within the USA more condensedly and comprehensively. The game leveraged the spatial characteristics of the game’s New England region as a narrative instrument to reincarnate the early US history. The game's protagonist, who retains memories of the era preceding the Great War (translator's note: a fictional conflict in the Fallout series, posited to have occurred between the USA and China, culminating in a nuclear apocalypse), also serves as a bridge for players to engage with the game's narrative and the history. In Fallout 4 , players can construct and establish settlements, akin to the initial settlers who migrated to the American continent. Here, the Commonwealth Minutemen, one of the in-game factions that the protagonist first encounters in the game, play a pivotal role in bridging the historical context. Within this framework, the history of the US is portrayed as having begun sometime when patriots organised a militia for the nation’s independence. It is this thematic backdrop that explains the game design elements of small-scale city-building simulations in Fallout 4 . Moreover, in Fallout 4 , the Institute (translator’s note: one of the factions in Fallout 4) appears to allude to a period in history marked by the confluence of anti-intellectualism and anti-communism, known as McCarthyism in the US. The game's aesthetics are notably influenced by the country's post-war culture of the 1950s – the very essence of the Fallout universe aesthetics – which vividly encapsulates the era of McCarthyism. US scholars have attributed that rise of McCarthyism in the US to a series of political events, including the Soviet Union's successful nuclear test, China's expansion of communism, and the stalemate situation of the Korean War. These incidents compelled Americans to perceive a formidable ‘outside threats’ beyond their reach, subsequently prompting the US populace to embrace McCarthyism as a means of countering this perceived menace from within. In essence, McCarthyism aligns with a recurring historical pattern in the US, characterised by public apprehension in the face of power struggles, conflicts between old-world and new-world elites, and tensions involving intellectuals. This explains the in-game characters' reactions to the Institute in Fallout 4 . For example, we can observe the hostile responses of Fallout 4 characters toward "synths", the artificial humanoids produced by the Institute. They exhibit a deep-seated fear of synths, often calling them the 'boogeyman', and engage in witch hunts to locate and expose these synths. This behaviour fundamentally mirrors the way McCarthyism indiscriminately labelled intellectuals, government officials, and artists as 'communists' without any substantiated rationale. Another intriguing aspect of the story is the presence of a counteracting faction in the game, an underground movement that defines synths as oppressed beings and strives to liberate sentient synths from their creators. This faction, known as The Railroad, strikingly resembles a historical phenomenon, a covert network called the Underground Railroad, which aided the escape of black slaves from the South to free states in the North. By contextualising the game's narrative within the historical backdrop of the US, the synths first mirror the unjustly accused victims who were branded as 'communists' during McCarthyism. Simultaneously, they symbolise the oppressed history of ethnic minorities facing racial discrimination. The plot takes an intriguing turn as it becomes clear that the Institute's objective, mobilising synths, was ultimately aimed at the reconstruction of the world. It's worth revisiting that the Institute bears resemblances to communism in the historical context of McCarthyism. Throughout history communism underwent significant trial and error, resulting in substantial civilian casualties. However, even if one is compelled to acknowledge that communism represented an effort to address prevailing issues, the question arises: What might occur if the US were to embrace certain elements of communist ideology in the present day? Or, what if the US society were to recognise the social and economic value of immigrants (the synths) as an essential component for global stability? Furthermore, these same questions can be posed from an entirely opposite perspective, considering the metaphorical resemblance of synths to both 'communists' and 'slaves'. For instance, if we were to perceive the rise of Trumpism and the Bush administration's invasion of Iraq as attempts to resolve inherent prevailing issues in America, and strive for a better world, where do we go from there? Fallout: New Vegas and Fallout 4 give players multiple decision-making scenarios in this ‘where do we go from there?’ situation. Players can either opt to align themselves with a particular faction introduced in the storyline, aiming to undermine or annihilate their adversaries, or they can forge their own group. The commonly perceived 'true ending' of the game unfolds when the protagonist embarks on a journey, envisioning a new future shaped by human hands. Nevertheless, whether this path truly represents the best choice among the available options remains a matter of uncertainty. But regardless of the option the player decides to choose, the game's outcome often serves as a reflection of certain episodes from US history, as previously discussed. The ongoing political struggle in the US, exemplified by the conflict between the Trump and Biden administrations, therefore, can be seen as another iteration of the US’s historical pattern. Biden brings Trump, and Trump brings Biden – a cycle of perpetual conflict. The fictional world of Fallout emerges as a consequence of ‘resetting’ these recurring conflicts followed by the massive destruction. Yet, the humanity still hurtling down to the path of self-destruction through warfare. However, even within what may appear to be an endless cycle, one can choose to explore uncharted territories, akin to the Yes Men in Fallout: New Vegas or the Commonwealth Minutemen in Fallout 4 . Just as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once emerged, all these elements contribute to the complex tapestry of the US as what it is. Perhaps it is the reminiscent of Fallout 's timeless slogan, "War never changes". Tags: fallout3, projectpurity, GECK, fukushima, radioactive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olumnist) Minha Kim Kim is known for his activities as a critical expert on current affairs in various press media. But he is also an active gamer who never let go of games. Some of his publications includes 『a cynical society』, 『Otaku Loved Lenin』, as well as a co-author of 『Now, Here, Far-Rightism』, 『right-wing discontent』, 『Twitter, that 140-character egalitarianism』. His latest publication is 『Democracy where you vote because you don't like that side』.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 <시티즌 슬리퍼>: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인류는 늘 유한성에 저항해 왔다. 이러한 저항은 단지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착화된 이념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한성에 대한 저항은 어떤 의미인가? 이 글에서는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으로부터 그 답에 다가서고자 한다. 여기에서 몸은 지극히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신체를 뜻한다. 그리고 꿈은 희망과 절망을 의미한다. ‘꿈을 꾸는 것’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이기 때문이다. < Back <시티즌 슬리퍼>: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22 GG Vol. 25. 2. 10. ※ 스포일러가 간접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 슬리퍼(Sleeper) [1] 인류는 늘 유한성에 저항해 왔다. 이러한 저항은 단지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착화된 이념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한성에 대한 저항은 어떤 의미인가? 이 글에서는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으로부터 그 답에 다가서고자 한다. 여기에서 몸은 지극히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신체를 뜻한다. 그리고 꿈은 희망과 절망을 의미한다. ‘꿈을 꾸는 것’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헛된 기대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자신의 꼬리를 물고 놓지 않는 우로보로스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몸에 새겨진 꿈이란, '나'에게 얽매여 있는 내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여러 주체들의 염원이다. 신체와 사회라는 이중벽 모든 생명은 신체를 갖고 살아가는 한 여러 한계를 지닌다. 인간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비롯해 사회에 종속된다는 점에서 복합적인 제약을 지닌다.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난 일들도 결국 '나'를 제외한 세계에 연루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 미래에, 나의 신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이러한 상상은 사실 공상 과학 영화나 문학, 그리고 게임에서 자주 다루어져 왔다. 주로 인간의 신체를 영구적으로 개조하거나 안드로이드에 의식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는 단지 기술 발전에 대한 인류의 환상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신체에 내재한 사회적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 새로운 신체를 획득하는 것에 대한 상상은 나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조망하고,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어떤 조건들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즉 한정된 신체를 넘어선다는 것은 그저 강력한 힘이나 영생을 얻고자 하는 일만을 지시하진 않는다. 게임 개발사 점프 오버 디 에이지(Jump Over the Age)의 <시티즌 슬리퍼(Citizen Sleeper)>(2022)는 앞서 서술한 논의를 아우르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자신의 신체와 출신지를 떠나 눈(eye)이라는 도시에 이제 막 도착한 '슬리퍼'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슬리퍼는 인간의 의식과 로봇의 몸을 가진 존재다. 그런데 눈의 시민은 대다수가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슬리퍼는 철저히 외부인으로 취급된다. 그는 자유와 행복을 찾아 이곳으로 도망쳐 왔지만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내일'이라는 꿈을 간직한 채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슬리퍼라는 '주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TRPG(Tabletop Role-Playing Game) 기반의 내러티브적 설정을 활용한다. 즉 시스템의 불가변성과 플레이어의 자율성을 동시에 수용함으로써, 견고하고 거대한 사회에 맞서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이 게임의 시스템은 현대 사회에 내재한 이데올로기를 투사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신체와 사회로 쌓아 올려진 이중벽을 마주한 채 슬리퍼로서의 꿈을 지켜내야 한다. 시스템 사이를 떠도는 ‘나’ TRPG 시스템은 가상 세계에서 통용되는 공동의 규칙을 갖는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그 범위 안에서 행동을 수행해야 한다. <시티즌 슬리퍼>의 주요 규칙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이클마다 무작위로 주사위가 부여되며, 그 값은 슬리퍼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슬리퍼의 몸 상태가 나쁘면 주사위의 개수가 줄어들고 행동 성공률이 낮아진다. 주사위는 돈을 벌고, 노동을 하고, 사람을 사귀는 등 행동하는 데에 쓰인다. 반복이 불가능하거나 연한이 정해진 행동이 있다. 주사위를 모두 소진하면 더 이상 행동을 수행할 수 없으며 사이클을 종료해야 한다. 방금 살펴본 것들은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으로 제한적이다. 또한 게임의 시스템은 내러티브 안에서 심리적인 제약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과거 노예 로봇이었던 슬리퍼는 눈에서 사회적 약자에 속한다. 이는 에피소드 초반부터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는 매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여러 번 고민한다. 간혹 도와주는 사람이 등장하지만, 눈의 사회는 그들의 호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게다가 슬리퍼의 몸체는 의도적 구식화를 겪고 있다. 일정 기간 내에 제조사에서 판매하는 전용 영양제를 투여하지 않으면 기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곳에서는 쉽게 구할 수가 없다. 이로써 슬리퍼의 컨디션은 급격히 나빠지고 행동 성공률도 낮아지게 된다. 눈의 사회는 슬리퍼의 주체성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앞서 살펴본 두 요소는 슬리퍼의 행동에 제약을 준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이 모든 과정 사이에 자신의 관점을 투영함으로써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다. 우선 <시티즌 슬리퍼>는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능력과 성격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한눈에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정보다. 그러므로 플레이어는 자신을 중심으로 캐릭터를 바라보게 된다. 즉 플레이어의 내면이 캐릭터의 자아에 투사되는 것이다 [2] . 그리고 이는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플레이어이자 캐릭터인 '나'를 통해 슬리퍼의 주체성으로 발현된다. 또한 눈이라는 낯선 사회로의 진입은 플레이어와 슬리퍼에게 동등하게 주어진다. 예측 불가능한 삶에 갑작스럽게 불시착한 그들은 서로 결속을 다진다. 그뿐만 아니라 플레이어는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에 즉각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에피소드는 주로 등장인물 간의 대화로 진행되는데, 이때 플레이어는 슬리퍼의 태도와 행동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심지어 주어진 임무를 모두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 초반에는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 점차 적응하면서 진취적인 태도로 나서게 된다. 이처럼 <시티즌 슬리퍼>의 시스템은 플레이어의 행동에 일정 부분 제약을 주지만, 결정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플레이어에게 거부와 순응, 저항의 강도, 가치의 추구 등에 대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슬리퍼로서의 꿈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삶의 주도권은 자꾸만 사회로 되돌아가려 한다. 슬리퍼라는 존재가 가진 근원적인 한계일까? 이곳에서는 '내일'을 맞이할 권리가 이상하리만치 멀게 느껴진다. 슬리퍼, 꿈의 의미 <시티즌 슬리퍼>는 개인이 대항할 수 없는 사회의 불가변성을 시스템의 중심에 두었다. 그리고 신체가 가진 제약도 결국 그로부터 비롯됨을 플레이어 스스로 인지해 나가도록 했다. 이 게임에서의 자율성은 슬리퍼의 행동에 대한 결정권을 넘어, 사회에 내재한 비판 거리를 취할 수 있는 권한으로 확장된다. 특히 에피소드마다 제공되는 시적인 글은 슬리퍼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뿐만 아니라, 그 존재가 함축하는 의미를 다각도로 바라보게 한다. 이 글의 마지막 장에서는 처음에 제시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인류가 한정된 신체로부터의 해방을 염원해 온 이유에 조금이나마 다가서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발견한 '슬리퍼'와 '꿈'에 담긴 의미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슬리퍼는 인간의 신체로부터 벗어난 존재다. 즉 과거에 지니고 있던 어떤 제약에서 이미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슬리퍼는 신체와 사회라는 이중벽에 또다시 직면했다. 슬리퍼의 본체인 인간은 떠나온 곳 어딘가에 여전히 잠들어 있다. 즉 슬리퍼는 살아 움직이는 누군가의 꿈인 것이다. 또한 슬리퍼에게는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데이터화되어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다. 이는 대체로 무더움, 차가움, 쓰라림, 딱딱함 등 '로봇의 몸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감각'에 대한 것들이다. 슬리퍼는 몸에 대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 날 때마다 감각과 사고 사이에 지연을 느껴 혼란스러워한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몸에 대한 감각은 슬리퍼의 기억 안에 정보로만 남아 있다. 그렇다면 슬리퍼는 인간인가, 로봇인가? 사실 이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슬리퍼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눈의 사회,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물론 플레이어에게는 이에 대항할 권리가 주어졌다. 그러나 이 또한 슬리퍼에 내재한 꿈으로 흡수되고야 말았다. 결국 한정된 신체로부터의 해방은 '나'를 규정하는 사회,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집단적 이념에 균열을 내는 일이다. 즉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하고 지켜내기 위한 예사로운 투쟁이다. 사실 슬리퍼의 꿈은 정말 사소했다. 그는 단지 살고 싶었다. <시티즌 슬리퍼>의 결말은 그 꿈이 희망이었는가 절망이었는가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저 '내일을 꿈꿀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메시지가 암시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슬리퍼는 모순된 존재다. 누군가의 이루어진 꿈이 다시 꾸는 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의 속성은 본래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희망과 절망, 현실과 이상, 기대와 좌절,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돌고 도는 것이 바로 꿈의 의미다. 저마다의 몸에 새겨진 꿈은 이 궤도를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지 않아도 된다. [1] 이미지 출처: https://www.pointnthink.fr/en/interview-gareth-damian-martin-2/ [2] 이승제, 정의준, 김정애, “ 청소년 대상 TRPG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위한 콘텐츠 개발연구 -청소년의 정서적 외로움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 겨레어문학 제73집, 2024, p.61-6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박정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시각예술 분야에서 전시, 비평, 워크숍을 한다. (비)과학에 관심을 두고 뉴미디어 아트와 비디오게임을 탐구한다. 최근 참여한 프로젝트로는 연구 <기이한 게임과 으스스한 게임>(2024, 서울문화재단 RE:SEARCH), 전시 (2024, WWW SPACE), 워크숍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 비평>(2024, 아트코리아랩 아트랩클럽), 전시•워크숍 (2024, 하자센터 미디어아트 작업장) 등이 있다.
-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 Back [Editor's View] 생존본능에서 장르에 이르기까지의 공포 19 GG Vol. 24. 8. 10. 공포는 흔히 생존본능에서 만들어졌다고들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한 것들을 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위험을 보고 무서움을 느낍니다. 덕분에 살아남아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실존하는 위험으로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분리해내기에 이르렀고, 많은 예술을 통해 분리된 감정은 호러라는 장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디지털게임에 이르면 호러는 한층 더 강력해집니다. 게임은 플레이어를 공포의 현장 한가운데에 밀어넣기 때문에 많은 경우 게임에서의 공포는 관조가 아닌 개입과 참여를 통해 전달됩니다. 무서운 것을 보는 것과, 직접 무서운 일을 일으키거나 맞닥뜨리는 것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역대급 폭염이 덮친 2024년 8월 GG의 탐색은 호러를 향합니다. 후발 매체로서 디지털게임은 공포라는 감정을 자신이 매우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많은 기존 매체들의 문법을 학습해 왔고, 게임 특유의 호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적지 않은 수로 쏟아지는 공포 게임들이 이 실험과정의 활발함을 보여주는 단서들일 것입니다. 한켠에서는 무서워서 공포 게임을 손도 못 대는(저를 포함합니다) 사람부터, 호러 게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상 붙잡고 있는 마니아까지의 다양함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게임에서의 호러가 어떤 의미인지를 폭염 속에서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이번 19호를 기점으로 GG는 만 3년을 채웠습니다. 게임에 관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가 나름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끊이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놀라곤 합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 디지털게임을 무겁게 이야기하는 일은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GG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걸어온 길보다 더 머나먼 앞날의 길에도 독자분들과 함께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는 9월 초까지 진행되는 게임비평공모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인터뷰] 디지털게임 다양성/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스마일게이트 D&I실 이경진 실장
"이런 사람도 게이머고 저런 사람도 게이머고,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대중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에버랜드에서도 ‘게임문화축제’라고 해서 게임 IP를 가지고 행사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게임이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가 되어서 놀이공원에 아이들하고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게이머라고 했을 때도 게이머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해요." < Back [인터뷰] 디지털게임 다양성/접근성 가이드북 제작, 스마일게이트 D&I실 이경진 실장 20 GG Vol. 24. 10. 10. 지난 2024년 8월, <스마일게이트>는 창작자를 대상으로 게임 접근성과 콘텐츠 다양성을 주제로 한 레퍼런스북 두 권을 출간했다. <게임 접근성 개념과 사례>에서는 장애를 포함하여 다양한 조건에 처해 있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제한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게임 접근성’에 관한 개념과 현황, 사례를 담고 있다. <콘텐츠 다양성 개념과 사례>는 ‘문화다양성’ 개념을 소개하고, 미디어와 게임 속에서 문화다양성이 구현된 사례를 다루고 있다. GG는 이번 호 인터뷰에서 스마일게이트 이경진 실장을 만나 기업이 D&I(Diversity & Inclusion)를 강조하는 맥락을 살피고, 문화로서의 디지털 게임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접근성과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사회적, 상업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들어보았다. 이경혁 편집장: 이 인터뷰를 기획하게 된 것은, 한국의 게임사들이 접근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 내에서 이런 모습들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목적에서 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제적으로 (접근성/다양성 책자라는) 결과물을 내신 거잖아요. 항상 첫 발을 내딛는 게 저는 쉽지 않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국내에 참고할 만한 사례가 많았던 것도 아닐 테고, 제로베이스에서 처음 이 작업을 하실 때 겪었던 어려웠던 점이나 생각나는 점이 있으신가요? 이경진 실장: 입사를 하고 6개월 정도 있다가 미국의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 게임 개발자 회의)에 처음 갔어요. 전 세계의 개발자들 수만 명이 모여 컨퍼런스를 여는데, 당장 수익 증진에는 거리가 먼 주제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거를 저희 같은 부서에서 하는 게 아니라 개발자들이 나와서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노하우를 공유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접근성 같은 경우에는, 게임이 대중적인 여가 매체로서 확산되어 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게임을 만드는 데 있어 과연 다양한 배경을 가진 플레이어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걸 어떻게 청취하고 있는가’를 보았을 때 상당히 부족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우선적으로 장애를 가진 플레이어들이 그랬는데, GDC의 게임 접근성을 발표하는 스피커 분들은 실제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이었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고용하거나 커뮤니티를 연계해서 장애 당사자들의 피드백을 청취하는 채널이 있더라고요. 근데 우리는 회사에는 그게 부족하니까, ‘이 일은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야 될까를 고민하다가 직접 사용자를 고용하는 게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장애인 게임 테스터 고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실제로 고용 기회가 많았었나요? 이경진 실장: 오히려 그 지점에서 (직접 사용자를 고용할) 기회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저희 접근성 테스터 중 선천적으로 청각장애가 있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은 여섯 살 때까지 말을 못하다가 보청기를 사용하면서 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경우였어요. 이 친구에겐 게임이 친구였고 삶 그 자체였더라구요. 비장애인들은 게임 업계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게 많잖아요. 이렇게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 장애인의 비율만큼이라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 기회가 더 있어야 되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싶었어요. 일례로 (보수적으로) 인구의 5%가 장애인이라고 계산했을 때 그 비율만큼의 우리 게임에 연결된 직업도 있어야 하고 그걸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직업 공고를 낸 거죠. 이 기회에 고용을 통해 제대로 된 직업을 만들어서 (장애인 게임인력을) 전문적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시작할 때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저희의 의도나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고 고용공단에서도 이걸 굉장히 의미 있게 받아들였어요. 왜냐하면 장애인 전형으로 나오는 일반 직업들은 거의 ‘네일 아트’라든지 ‘세차’라든지, 특정 산업에서 만들어내는 생산품과는 거리가 먼 서비스 관련 직업들이 많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고용공단에서) 이거는 새로운 케이스고, 한국 게임 업계에서 적어도 이 판교 지역에서는 더 퍼져나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지원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덕분에 저희 공고에도 막판에 지원자가 많이 들어왔어요. 면접을 보게 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게임을 꼽고 그걸 직업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근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아까 말씀드린 청각장애인 테스터 친구를 오늘 만났는데 문득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자기는 이 직업이 아니었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으로 깊게 고민을 하고 일로서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걸 생각조차 못했을 것 같다고. 이경혁 편집장: 접근성과 다양성 문제를 세팅하는 과정에 있어, 말씀하신 것처럼 회사에서는 의무적으로 해야 되는 부분도 있을 거고 사회 환원의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그냥 비즈니스의 확장이라 볼 수도 있잖아요. 조금 어려운 질문일수도 있겠습니다만, 회사 입장에서도 여러 목적이 있었을 텐데, 혹 시장적인 목적과 윤리나 도덕적 목적 두 가지로 이원화를 한다면 어느 쪽이 더 비중이 크다고 보세요? 이경진 실장: 굉장히 좋은 질문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저도 처음에 이 가설을 가슴에 품었을 때는 사회적인 가치 추구라는 목적에 무난하게 부합하는 일이라고만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테스터들이) 게임을 사랑하는 유저이기도 하기 때문에, 게임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살펴보며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자에게 피드백과 리포트를 주는데, 거기서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결국에는 접근성 테스터들이 게임 콘텐츠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게임을 한 손으로 플레이하는 사람, 발가락으로 플레이하는 사람, 눈으로만 플레이하는 사람 등 신체적 조건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직접 만나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디테일한 문제를 잡아갈 수 있고, 결국은 접근성이라는 게 출발은 ‘소수’에서 시작하지만 그게 도착하는 곳은 ‘다수’이거든요. 그래서 ‘접근성이란 결국은 다수를 위한 품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요. 품질 향상은 더 많은 유저들을 끌어올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거고요. 이경혁 편집장: 접근성과 관련된 업무는 게임 개발보다는 테스터 쪽에 주로 방점이 찍히는 것이지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게임 내 문제를 발견하는 데 방점이 있어요. 계속 여러 게임을 테스트하면서 접근성의 맥락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발견하고, 그 문제가 강하게 보이면 보고하고요. 그리고 다른 유사한 장르 게임을 많이 플레이 하다 보니 ‘이 장르의 어떤 게임은 어떤 요소로 색각이상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 게임은 그걸 못하고 있다’ 라는 식으로 피드백하기도 해요. 그리고 청각장애 같은 경우에는 청각적 요소를 시각화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모든 소리를 시각적인 정보로 표현해 놓으면 게임을 하는 데 장애가 대부분 없어지거든요. UX/UI 디자인적으로 청각 정보를 어떻게 시각화한 여러 레퍼런스 (사례) 들은 게임 디자인시 도움이 많이 되는 부분이죠. 이경혁 편집장: 사실 그런 부분은 어떤 특정 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지하철에서 소리를 꺼놓고 게임할 때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 쪽으로도 확장될 수 있는 것 같구요. 제가 자주 하는 얘기가 ‘저상버스가 들어오면 우리 엄마 무릎이 편하다’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접근성이 모두를 위한 보편성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주셨듯 테스터 쪽에는 소위 말하는 당사자성을 가진 테스터들이 들어오면서 이런 접근성의 문제를 보기 시작하신 거네요. 그러면 개발 부서에서는 접근성 테스터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뭔가 변화했다라는 느낌을 받으셨을까요? 이경진 실장: 저도 사실 그게 가장 걱정됐었어요. 개발 부서의 경우 제한된 인력과 시간 때문에 (접근성 문제가) 우선순위에 밀릴 수도 있고, 개발하는 단계에서 사실은 버그 하나 더 잡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이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접근성 문제가 어느 정도 인지가 된 것 같아요. 신작 개발하시는 부서에서, 우리 게임이 글로벌 유저한테 다가가려면 접근성 문제 파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접근성 리뷰를 요청드리고 싶다고 얘기를 하셨어요. 글로벌 서비스 개발 조직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접근성 문제 때문에 우리 이거 몇 번이나 뒤집었다’ 이런 얘기들도 하고, 그래서 이제는 산업에서도 진짜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런 문화가 아예 없었다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라고 했을 때,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요? 이경진 실장: 우리가 테스터를 1월에 뽑아서 처음 접근성 리뷰 공유회를 연 게 6월이었거든요. 당시 개발자들도 많이 오셨는데, 한 팀장님께서 자기가 십수 년 동안 게임 개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이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오늘 이런 관점의 필요성을 너무 느꼈고 앞으로 개발할 때 고려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대요. 개발자에게 직접 실제 적용에 대한 피드백을 듣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네요.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는데 걸린 시간인 것 같아요. 개발팀 미팅 단계에서 누군가 ‘우리 이거 접근성 측면에서 괜찮을까요’라고 말할 수 있거나, 전체 게임 개발을 리드하시는 분이 ‘이거 접근성도 고려해 보세요’라고 언급하는 단계까지요. 이경혁 편집장: 1년 반 정도 작업한 결과 그래도 이제는 성과가 나는 것 같다는 것이군요. 예상하신 만큼의 시간인가요? 저는 이 인터뷰를 다른 게임사의 관련 부서들이 좀 고려했으면 싶어서요. 선행 부서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를 알면 대략의 가이드라인을 가져가기 쉽지 않을까, 그런 느낌으로 여쭤보는 거거든요. 이경진 실장: 저는 솔직히 생각보다 조금 빨랐어요. 아무래도 <스마일게이트> 구성원들에 이 문제에 관심도가 높으신 분들이 꽤 있어서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또 궁금한 게, 얼마 전에 접근성 기기 전시회도 여셨지만 사실 <스마일게이트>가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회사는 또 아니지 않습니까? 근데 많은 경우에 접근성은 하드웨어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잖아요. 접근성을 담당하시는 부서 입장에서 생각하시는 ‘여기까지는 가야 한다’는 수준이 있을 텐데, 소프트웨어 쪽이다 보니 우리 회사의 영역이 아닌 부분도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그런 케이스도 많이 겪어보시나요? 이경진 실장: 저희는 지금 저희가 통제 가능한 부분들에 집중을 하고 있다 보니 직접적으로 그런 상황을 겪지는 않았는데요. 그런데 보조기기가 시중에 나와 있는 곳들이 꽤 있어요. 경기도 재활공학센터와 저희가 더 긴밀하게 소통을 하고 있어 접근성 보조기기 전시도 가능했었던 거구요. 그리고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직접 더 많이 만나야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더 찾아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원데이 패널 프로그램을 통해 게임 유저들 중 보조기기 사용하시는 분들을 초청해서 만나려고 하고 있는데 아직은 이 풀(pool)이 너무 적은 상황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 회사가 아무리 스스로 접근성을 더 갖추고 싶다 하더라도 그런 기기 인프라가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편으로 지금 하시는 작업이 어떻게 보면 사내에서 소위 말하는 프로세스를 바꾸는 작업 이상으로 대외적으로 협업 혹은 협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일거고, 그런 차원에서 중요하지 않나 싶어서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접근성에 대한 저변확대를 위해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저희가 경기도재활공학센터와 지금 논의하고 있는 건, 현재 센터에 장애인 유저가 대략 1천 명 정도 이용하시는 센터에 50평 정도의 공간이 있거든요. 거기에 이 책 수익금을 활용해서 컴퓨터 및 보조기기를 셋업하고, 장애인 유저들이 항시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 플레이 랩’, ‘게임 리빙룸’ 개념으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굉장히 재밌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책을 팔아서 수익이 나셨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책 팔아서 수익 내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근데 그래도 좀 유의미한 판매가 난 것 같습니다. 이경진 실장: 수익 자체는 일단 저희가 수익을 바랐던 게 아니어서 특별히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책을 내려고 했었던 거는 사실 뭔가를 처음 할 때는 언어가 없잖아요. 이걸 뭐라고 명명을 하고 이런 콘셉트 자체를 뭐라고 명료하게 표현을 해야 될지를 모르는데, 그걸 언어로 표현을 해 놓으면 이 가치가 좀 더 확산되고 이게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한테 우선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첫 발자국을 찍는다는 차원에서 책을 낸 것이었어요. 최대한 우리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언어를 만들고, 그 다음에 더 노력을 해서 또 버전업을 해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내게 된 거죠. 이경혁 편집장: 이번에 내신 책도 약간 연작의 일환이라 보면 될까요? 혹 그렇다면 3권과 4권에 대해서 플랜을 듣고 싶은데요. 이경진 실장: 네, 이번 책을 보시면 시리즈 개념으로 넘버링이 되어 있거든요. 3권, 4권에 대한 플랜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건 없지만, 저희가 했었던 것들이 좀 쌓이면 저희들의 내부적인 사례를 좀 더 많이 얘기 해볼까 합니다. 게임 접근성 단행본의 3챕터에 저희 사례가 좀 들어가 있거든요. 앞으로도 저희의 행보에 대한 기록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요. 책 말고도 교육 영상을 만든 게 있어요. <다양한 플레이어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 포용적 게임 디자인> 인데요. 이건 게임에 국한해서 게임 개발자들을 위해서 만든 영상으로 된 교육 콘텐츠에요. 현재는 사내에서 교육 영상을 확산하는 단계에 있고, 앞으로는 대학 및 산업 기관을 중심으로 미래의 게임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확산시키려는 계획이에요, 필요성에 공감하는 기관들과 업무 협약을 맺어서 저희가 무료로 콘텐츠를 공급하고 대학에서 실습 등을 통해 이런 것들을 다뤄주는 형태를 생각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건 좀 사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다양성과 포용성 관련하여 교육할 수 있는 역량이 지금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일까요? 이경진 실장: 다양성, 포용성 문제가 사실 전통적인 패러다임의 결은 아니잖아요. 이 주제로 커리큘럼을 다루고 실습을 연계하고자 하는 국내 교육기관(대학) 이나 학회와의 협력을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학회에서 <포용적 게임 디자인> 교육 콘텐츠를 토론을 위한 기초 지식으로 활용하고 해외 연사들을 초대하여 컨퍼런스를 여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아요. 이 작업을 처음 할 때 미국의 비영리 게임접근성 교육기관인 <에이블게이머즈>의 전문가들, 그리고 인클루시브 게임 디자인 관련된 해외 전문가들과 협업을 했었는데 그런 분들을 초청해서 전문 포럼을 여는 거죠. 이렇게 학회나 콘텐츠 산업 쪽과 같이 만들어 나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계속 이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결국 이거는 하나의 회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번에 접근성 전시 때도 놀랐던 게, 소위 말하는 범-회사에서 담당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오시기도 하셨잖아요. 그러한 움직임이 지금은 좀 어떤가요? 이경진 실장: 해외의 경우 페어 플레이 얼라이언스(Fair Play Alliance) 같이 게임사들과 플레이어들이 같이 모여서 우리가 게임 산업과 플레이어들을 더 많이 늘리기 위해 어떻게 같이 서로 돕고 시장 자체를 키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같이 하거든요. 한국에서도 서로 활발히 소통하며 교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저도 전문 프로그래머는 아니지만, 사실 많은 IT들이 어떤 표준을 세팅하는 과정을 보면 보통 국제포럼을 통해 하나의 기술을 어떻게 표준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공동으로 발의하고 통과시키는 과정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접근성 쪽이 그런 국제적 협업 과정이 되게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미국 같은 경우도 미국에서 쓰는 접근성 가이드가 있고 그것을 보편화하려고 노력하지만, 희한하게 그런 것들이 국제적인 협업으로는 잘 안 나온다는 이상한 느낌이 있지요. 다른 IT 기술 표준들은 그렇게 작동을 하는데 왜 접근성 문제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경진 실장: 저도 그 생각을 되게 많이 했는데요. 일단 북미 차원에서는 이 흐름을 주도하고 협력하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유독 아시아 시장과는 커넥션이 되게 약해요. 아시아 게임 시장이 굉장히 급속도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커넥션이 많이 약해서, 근데 이제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희가 게임 접근성을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사내에서 관심 있는 개발자들이 예전보다는 좀 많아졌다는 걸 느껴요. 프론트엔드 개발자인데 이런 가치에 자기가 공감을 해서 더 공부하고 싶다던지, 개인적으로 관심을 알려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사실 그런 분들 한두 분씩 보면서 이걸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죠. 이경혁 편집장: 회사가 이 정도의 의지를 갖고 이만큼 추진을 한 거고, 성과도 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공공은 어떤가 궁금해요. 지금 공공과 협업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정부에서 좀더 관심을 갖고 뭔가 더 지원하면 정부의 입장에서도 성과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경진 실장: 접근성 문제와 관련된 노력을 보인 게임사 대상 세액 공제 지원 정책 필요성에 대한 컨퍼런스가 지난달에 열렸었어요. 게임 접근성은 다른 콘텐츠에 비해 기술적 의존도와 난이도가 높아, 민간 업계의 주도적인 참여 없이는 공공 영역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추진하는 움직임이에요. 게임 접근성 필요성에 대한 담론은 이미 많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공공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다루는 움직임이라 이제는 속도가 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는 공공에서도 실제 기업들을 움직여야 된다는 걸 인지를 하셨구나 싶어 반가웠어요. 민간을 움직이지 않으면 이게 안 되는 거라는 거를 인지를 하고, 민간을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구나라고 느꼈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앞으로 각 게임사에 접근성과 다양성 관련 부서들이 더 생길 수 있을거라고 전망하고 있는데요. 사내에서 개별적으로 움직여 만드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국 안에서 일종의 연합체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게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가끔 그런 협회들이 무의미하게 공회전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이런 질문을 드리게 됩니다. 특히 회사 단위를 넘어 좀 초월적인 협력이 필요할 때 동력을 만들 수 있는 외부 기관의 존재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경진 실장 :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보태면 좋긴 한데, 거기서 빠지면 안 되는 그룹이 개발자라고 생각해요. 실제 소비자에게 닿을 수 있는, 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협력의 주축이 돼야 한다고 봐요. 실리콘밸리를 보면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꺼내고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과 논의하면서 혁신이 만들어지잖아요. 그런 식으로, 저희도 접근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이 문제에 대해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확산시킨다면 공회전 가능성이 좀더 낮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요. 저희의 경우 아까 말씀드린 사내 접근성 공유회를 주축으로 해서, 접근성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내 전문가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형태로 점점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당사자성을 가진 사람의 게임 개발이라는 게 더 늘어나는 게 최적이겠죠. 그런데 장애를 가진 사람이 게임 개발을 하는 것 또한 그것도 일종의 학습 루트가 필요한 과정인데, 거기에 접근하는 것만 해도 사실은 지금 문제잖아요. 장애가 있지만 게임 개발을 하고 싶고 뭔가를 배우고 싶은데, 거기서만 나올 수 있는 접근성의 문제도 저는 클 거라고 생각해요. 이경진 실장: 맞아요. 당사자성이 있는 개발자들이 더 많아지는 게 저희가 보고 싶은 그림이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게임 접근성 테스터라는 직무 타이틀을 만들었지만, 이 일을 하다가 기획을 하고 싶거나 코딩을 배워서 개발 직무를 하고 싶다면 할 수 있게끔 지원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장애에 구애 없이 모두가 성장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그간 한 번도 협업하지 않았던 유형의 사람들과 협업이 늘어나게 되고 이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어요.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오버랩 되어야 다름이 교차하는 시점에서 혁신이라는 게 일어나고 문제가 발견이 되거든요. 그 교차점까지 데려다 주는 게 저희의 역할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자꾸 제가 초회사적인 기구의 필요성을 생각하는 게 그 지점이거든요. 결국 개발자 양성을 어떤 특정 회사만이 해결할 문제는 아닌데 그거를 (기업) 밖에서 누가 추진할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좀 들어서요. 예를 들어 각종 게임 교육 기관들이 있는데 거기에 일정 수준의 장애인 TO를 만든다거나, 아니면 교육 환경 분야에서 애초에 접근성 문제가 해결된 개발 환경을 구축하고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등의 방안은 제가 알기로는 아직 그렇게 준비가 안 된 걸로 알고 있어서요.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이 문제의 판을 좀 더 키우려면 협의체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경진 실장 : 그것도 이 토양을 만드는 데 한 몫할 수 있겠죠. 저희는 사실 그래서 접근성 문제에 그간 관심이 없었는데 듣고 보니 필요하더라, 그러고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것이지만 이거더라, 하고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도록 노력하는게 목표입니다. 접근성 측면에서 한번 더 고민을 해봐야 되겠다라는 인식이 생기고, 개발 미팅에서도 이 언어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나와주겠죠. 그리고 사실 한국에서는 이 (접근성 문제를 수용하는) 속도가 어떻게 보면 되게 빠를 거라고도 생각하는데요, (해외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를) 따라잡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수한 점이 있으니까 시동만 걸리면 우리가 정말 잘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매번 실장님 하시는 거 보고 뿌듯한 것도 있고, 한편으론 이걸 하면서 얼마나 고생이실까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 중의 한 부분이 다양성 부분에 있어요. '접근성'하고 '다양성'은 또 조금 온도가 다르거든요. 다양성을 다루는 데 있어서 한국의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에 대해서 해주실 말씀이 있으세요? 이경진 실장: 네, 접근성과 다양성은 많이 다르죠. 우선, 접근성에 비해 다양성을 해석하는 관점은 다양합니다. 그래서 일단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해서 매우 존중하고, 다양한 해석은 본인의 경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결정한다고 봐요. 사실 어려운 얘기긴 한데, 너무 사상적인 내용이 주입이 되어서 실패한 게임들이 있잖아요. 게임이 재미가 본질이여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약한데 개연성이 부족한 채로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넣으면 이슈로 번지는 케이스가 많았어요. 그래서 다양성과 게임의 성공여부는 연관성은 있지만 인과성으로 보긴 어려워요.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요. 거기서 좀 더 그 재미라는 요소를 한 유형으로 환원하지 말고, 즉 주류 플레이어들에게만 집중하지 말고,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있다는 거를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다양성을 다룰 때에는 글로벌 협업이든 당사자 협업이든 당사자성이 있는 사람들, 전문가들이랑 직접 협업을 하는 게 되게 중요하고 이게 약했을 때는 역효과가 있다고 봐요. 이경혁 편집장: 저희 GG에도 가끔 캐나다 연구자들이 기고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에 <스마일게이트> 하면 뭐가 떠오르냐 물어보니 보통 소위 말하는 'K-게임'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현재 서비스되는 게임들이 지금 로컬라이제이션이 얼마나 되고 있는지의 문제도 저는 산업적 의미에서의 다양성 문제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 접근성과 다양성 작업을 하시면서 사실 그런 부분에서 좀 실무적인 문제들도 많이 보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경진 실장: 일단 게임을 만들고 원 빌드로 글로벌하게 배포하면 효율성 측면에서 좋긴 해요. 대부분은 유니버셜하게 통용되긴 하지만 지역별로 특정 문화권의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요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저희 책에 담기도 했고, 그래서 그렇게 특정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있는 요소들은 꼭 로컬라이제이션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피해야 할 것도 있지만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서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는 부분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선호하고 공감하는 요소를 활용하는 거죠. 이걸 잘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검증하는 절차가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 점에서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있는 회사 같은 경우 굉장히 유리하죠. 예를 들어 게임에서 일본 캐릭터를 묘사한다면 일본 오피스에 있는 동료들한테 의견을 구하면 되고, 한국 캐릭터를 구현한다면 한국에 연결해서 그 자원을 활용하면 되니까. 국내 인력 중심으로 운영하는 회사 같은 경우에 글로벌한 다양성 협업을 위한 내부 자원의 활용 면에서 글로벌 회사에 비해서 불리할 수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제부터가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는데요, 사실 지역에 대한 다양성은 쉽지만 오히려 젠더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얘기는 좀 해봐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젠더 문제에 대한 내외부의 반응은 어떤가요? 이경진 실장: 직접적으로 그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분쟁이나 토론이 나오는 등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어요. 지금에 와서는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게, 다양성과 관련된 담론과 언어들을 얘기했을 때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분명히 극단적으로 싫어하거나 고개를 젓는 사람들도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양 극단을 제가 보는 것은 다양성 문제에 있어 어느 정도의 밸런스를 조정해야 되는지를 배우는 데 굉장히 큰 학습이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이것도 결국 스펙트럼의 문제라 할 수 있겠는데, 이런 반응이 양쪽에서 동시에 나오는 상황이었다는 거죠. 이경진 실장: 그렇지만 저는 정말 극단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서로에 대해서 더 알아보는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걸 좀 느꼈거든요. 사실 우리가 단순하게 구체성이 없이 서로 싫어하는 게 많았었기 때문에 한번 얘기를 해보자. 뭐가 싫으냐 이게 싫다. 그럼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이 따져보면서 얘기를 해보니까 대화가 되더라는 거죠.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서 저는 균형을 잡는 게 굉장히 어렵지만 되게 필요하고 노력을 해야 되는 부분이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이경혁 편집장: 그게 근데 너무 힘들잖아요. 모든 일 중에 제일 힘든 게 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심지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한다 해도 그 결과가 이렇게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닌 거라고 생각을 해서요. 이경진 실장: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저와 생각이 많이 다른 게이머들을 만날 때 무서웠지만, 그렇기 때문에 많이 만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얘기를 해봤어요. 실제로 만나니 너무 흥미로운 대화를 했던 기억이 있고요, 그렇게 만나고 그렇게 교차점을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구나. 그리고 웬만하면 좀더 실질적인 것을 가지고 얘기를 하려고 해요. 단순히 떠도는 관념적인 것들에서 벗어나서 뭐라도 책이라도 하나 만들고 게임이라도 하나 만들고, 실체가 있는 걸로 만들어서 대화를 하려고 하죠. 제 경우 예전에 일했던 산업하고도 환경이 다르다 보니 되게 조심하고 한마디라도 더 물어보게 되고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그런 상황을 보니 어떻게든 더 많은 게임사들이 이 얘기를 같이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사실 또 게이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보니, 남들이 게이머를 획일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또 기분이 나빴던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게이머들도 (다양성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 있는 거고, 사실 저는 이 다양성 얘기가 게이머의 다양성 문제로도 갈 수밖에 없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이경진 실장: 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지금 말씀해 주셨어요. 이런 사람도 게이머고 저런 사람도 게이머고,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라고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가 대중 문화로서의 게임의 위상을 스스로 높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에버랜드에서도 ‘게임문화축제’라고 해서 게임 IP를 가지고 행사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게임이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가 되어서 놀이공원에 아이들하고 함께 가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게이머라고 했을 때도 게이머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이니까 할 수 있는 다양성이 오히려 더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영화가 못하는 다양성이 있을 거고, 근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하면 게임사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 다양성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게임 디자인의 굉장히 중요한 목표가 아닐까 싶고. 그래서 저는 다양성을 윤리로 보지 않으려 합니다. 이경진 실장: 맞아요. 규범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봐요. 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다양성을 얘기했을 때 ‘이거 PC 주입 아니야’라고 리액션이 나오는 사람이 적어지는 것(웃음). 나중에는 다양성의 가치는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관점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발더스 게이트 3>을 보면 자유도가 엄청 높잖아요. 처음 설정 단계부터 민감한 부위에 대한 노출 여부, 외형에 대한 다양성 및 접근성에 대한 옵션들이 고도화 되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원하는 취향의 폭을 최대한으로 구현을 해놨는데 게임에 이런 자유도가 있어서 좋다라는 평이 더 많았거든요. 다양성 이슈에서는 사실 그런 방향을 좀 더 추구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공감을 일으키는 아이템을 구매하는 욕구가 다 다르듯이, 게임 내 디자인적 요소들도 다양하게 표현하는 거죠.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을 연결 시키면, 기업에서도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서 성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 Back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03 GG Vol. 21. 12. 10.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가장 먼저 이야기 할 만한 부분은 - ‘게임’만이 아니라 - ‘플레이’에도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와 본격화되는 게임에 대한 학술적 (특히 인문사회학적) 연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게임의 특성은 ‘상호작용성’이었는데, 이는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게임’이 플레이어들의 ‘플레이’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일단 완결된 상태로 수용자들에게 제시되는 기존의 매체들과는 달리, 게임의 이와 같은 특성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는 상이한 방식으로, 그러니까 그것을 플레이하는 사람의 의도나 취향에 따라 그 경험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와 같은 (수용자의) ‘능동성’은 한동안 게임학 연구에 있어 주요 의제였으며 심지어는 ‘게임 세대론’이 등장하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게임의 역사 연구 분야에서는 ‘게임’에 한정되어 그 발전과정이 기술되어온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을 만든 개발자나 업체 또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게임들의 개발과정 등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나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의 접근은 소위 ‘능동적’이라던 게이머들은 사라지고 소수의 천재적 개발자들이 내놓은 혁신적인 게임을 그저 열심히 소비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게임 소비자들만 남게 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하이스코어〉 1편부터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개발한 니시카도 토모히로와 1980년 아타리배 전국 게임대회 챔피언 리베카 하이네먼을 병치시킨 것은, 그래서 눈여겨 볼 만하다. 게임을 만들어낸 개발자조차 불가능한 게이머들의 엄청난 플레이가 게임의 디자인만이 아니라 그 플레이 또한 뛰어난 창의성과 혁신의 산물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존의 논의에서 게이머의 능동성은 대체로 모드나 머시니마 등 플레이 너머의 (생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왔는데, 사실 게임의 ‘플레이’ 자체가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라 능동적인 창조 행위였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따른다면 플레이어들의 이와 같은 창의성이야말로 e스포츠가 발원할 수 있었던 근간이라 할 만한데, 기존 e스포츠 담론에서 이러한 측면은 소외되어온 감이 있다. 〈하이스코어〉에서 e스포츠는 메인 주제가 아니지만, 게임의 발전과정에 있어 ‘플레이’의 측면을 적극적으로 발굴함으로써 현재 산업적 측면에 치중되어있는 e스포츠 담론에서 향후 하나의 문화로서 e스포츠의 방향성을 고민할 수 있는 시사점으로 삼을 만한 지점이다. * 아타리 전국 게임대회 챔피언 출신인 리베카 하이네먼의 등장은 게임이용자라는 플레이의 또다른 한 축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깊다. 이미지: 넷플릭스 또 하나 〈하이스코어〉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다양성’이다. 게임은 전통적으로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젊은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꽤나 균질한 집단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져 왔으며, 이는 최근 몇 년간 게임계에서 PC(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균질성의 신화는 성장기 때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들이 업계에 입문하는 특성상 또래들과 게임을 즐기던 남성 청소년 중심의 하위문화적 특성이나 취향이 업계에도 고스란히 전이되면서 형성된 것인데, 게임을 플레이하는 집단이 다양해지면서 그와 같은 문화적 속성을 공유하지 않는 타 게이머들과 마찰을 겪으면서 갈등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에서 〈하이스코어〉가 게임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최초의 카트리지 교환형 콘솔 채널F의 개발자 제리 로슨을 조망한 것은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다. 채널F가 개발되었던 7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흔치 않았던 유색 인종으로서 초기 게임산업의 발전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그 오래된 신화에 균열을 가하기 때문이다. 사망한 인물이라 자세한 인터뷰를 담을 수 없었던 점은 아쉽지만 - 이미 많이 늦었다는 방증이겠다 - 채널F처럼 게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콘솔의 개발자가 이처럼 까맣게 잊혀져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 속에서 그처럼 묻혀져 있을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를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그들의 유산은 게임의 발전과정 안에 오롯이 녹아있을 것이며, 그것을 발굴해낸다면 게임의 문화적 가치와 의미는 또 얼마나 풍성해질지 가늠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 채널 F의 개발자 제리 로슨을 향한 조명은 이 다큐가 게임산업 발전사 속에서 소외되는 누군가를 잊지 않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EA의 간판 스포츠게임 〈매든 NFL〉 시리즈의 열혈팬으로서 후에 EA에 입사하여 〈매든 NFL 95〉에 사상 최초로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킨 흑인 남성 동성애자 게이머(이자 개발자) 고든 벨라미의 이야기 또한 게임 역사 내 다양성에 대한 화두를 이끌어낸다. “세상의 규칙이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을 평생 체감하며 살아가는 소수자들에게 있어 “모두에게 공평한 규칙이 적용되는” 게임의 세계란 그저 한낱 게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벨라미의 이야기는, 게임 문화 내 다양성이 지니는 중요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게임 캐릭터의 짙은 피부는 물리적으로 화면 내 작은 픽셀들의 바뀐 색조합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변화는 평생을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의 정당성을 위해 싸워야 하는 소수자들에게는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혹은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란 것을. 물론 소수자들에 한해 게임이 정체성이나 의사 표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게임이 소수자들에게 중요한 소통과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 세상에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매체였기 때문이라는 점은 생각해볼 만하다. 이미 주류의 취향과 가치관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기성 매체와 달리, 젊은 매체는 비주류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담길 수 있는 여지를 지니며, 그와 같은 개방성과 다양성에 기반한 ‘가능성들’이야말로 이 매체의 ‘젊음’이 지녔던 문화적 가치였던 것은 아닐까. 초기 인디 게임의 사례로서 미국 사회 내 동성애자 혐오 정서에 대항하는 패러디 게임 〈게이블레이드〉의 존재는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단순한 오락물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서의 가능성 말이다. 이처럼 게임의 ‘젊음’을 조망한 〈하이스코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절 게임의 산업과 문화를 이끌었던 주요 인물들의 노색이 완연한 모습은 역으로 게임의 ‘나이듦’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나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 시절 우리가 즐겨 플레이했던 게임, 그러니까 부모님과 선생님의 눈을 피해 짜릿하게 즐겼던 우리끼리의 그 오락이 더 이상 그 때의 그것이 아님을 새삼 일깨워준다. 게임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은 한 때 젊었던 게임이 지녔던 그 가능성들이 여전히 유효한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다른 가능성과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혹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 것인지 등이 아닐까? 다른 말로 바꾸자면 이 과거의 흔적 또는 유물들을 현재와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나아가 미래를 위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게임의 역사를 다루는 다큐로서 〈하이스코어〉에서 아쉬운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기존에 다뤄지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이나 사건을 발굴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였지만, 그러한 발굴을 통해 새롭게 논의해 볼 수 있는 오늘날 게임의 가치나 의미를 끌어내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놀런 부쉬넬, 니시카도 토모히로, 로베르타 윌리엄스, 존 로메로 등 기존 게임사의 주요 인물들과의 인터뷰 또한 기존의 게임사 다큐나 저술에서 이미 이야기했던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과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오늘날과 미래에 대해 지닌 견해를 물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꿈꾸고 가꿨던 그 게임이 오늘날의 게임과 얼마나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하여 그 다름은 또 어떤 의미인 것인지와 같은 논의가 담겨 있었더라면, 과거에 비추어 오늘날을 돌아보고 미래를 고민하는 역사적 탐구의 궁극적인 목적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게임사를 다루는 저술이나 프로그램에서 으레 첫 장에 위치하는 놀런 부쉬넬을 맨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하이스코어〉는 게임의 역사가 곧 혁신의 역사라는 관점을 분명히 내비췄는데, 개인적으로는 2020년이라는 시점에 나온 게임 다큐로서 좀 안일한 (혹은 진부한) 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의 역사가 정말로 재미를 좇는 혁신의 과정에만 한정된다면, 자동사냥이나 확률형 아이템 등이 디폴트화 되고 메타버스나 NFT, P2E 등이 대두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러한 화두들이 북미에서는 한국 만큼 현안이 아니어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서글프)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그러한 화두들이 결국엔 게임의 미래와 직결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재미를 좇는 혁신의 역사’라는 〈하이스코어〉를 비롯한 기존의 게임 역사 저술이나 다큐의 역사관에서 벗어난 작품이 나와주길 기대해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방치형게임, 누가 어떤 마음으로 운영할까? 〈어비스리움〉운영진 인터뷰
스마트폰이 상용화되면서 일상의 많은 것이 컴팩트해졌다. 손안의 기기는 지갑이 되기도 하고 영화를 찍는 촬영 장비가 되기도 한다. 게임 또한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다양한 갈래를 보이고 있는데, 방치형 게임이 그중 하나다. ‘지금부터 당신의 수족관이 시작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어비스리움〉은 외로운 산호석이 친구를 찾아 힐링한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없던 산호석 주변에 각종 물고기와 산호가 늘어나는 모습은 한 사람의 사회적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유저가 힘들여 움직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 Back 방치형게임, 누가 어떤 마음으로 운영할까? 〈어비스리움〉운영진 인터뷰 03 GG Vol. 21. 12. 10. 스마트폰이 상용화되면서 일상의 많은 것이 컴팩트해졌다. 손안의 기기는 지갑이 되기도 하고 영화를 찍는 촬영 장비가 되기도 한다. 게임 또한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다양한 갈래를 보이고 있는데, 방치형 게임이 그중 하나다. ‘지금부터 당신의 수족관이 시작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어비스리움〉은 외로운 산호석이 친구를 찾아 힐링한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없던 산호석 주변에 각종 물고기와 산호가 늘어나는 모습은 한 사람의 사회적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유저가 힘들여 움직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방치형 힐링 게임’이라는 타이틀로 세상에 나온 〈어비스리움〉. 〈어비스리움〉이 외로운 산호석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플레로게임즈의 최덕수 팀장, 장연정 사원과 이야기해보았다. Q. 〈어비스리움〉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나마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어비스리움〉은 올해 7월에 5주년을 맞은 게임입니다. 현재 시장에서 ‘힐링게임’이라는 키워드로 불리고 있고요. 성장 압박을 심하게 받지 않고 원할 때 켜두기만 해도 힐링 되는 형태의 게임이라고 많이들 얘기합니다. 서비스하는 입장에서는 힐링을 강요하기보다는 예쁘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Q. ‘방치형 힐링 게임’이라는 게 나름 선구적인 포지션입니다. 회사나 직원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었는지요. A. 네. 회사 차원에서는 〈어비스리움〉을 하나의 IP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핀오프 작품도 이미 두 개 낸 상태고요. 앞으로도 내놓을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관을 확장해나갈 가능성을 계속해서 살피는 중이에요. Q. 콘텐츠로써의 게임은 이용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5년 동안 고객들에게서 받은 피드백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을까요? A. SNS에 스크린샷 찍은 걸 포스팅해 주는 유저들이 종종 있어요. 하나같이 저희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예뻐서 항상 감탄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어비스리움〉 물고기 도감을 운영하는 유저들도 있는데 그 포스팅도 즐겁게 보고 있고요. 또, 대부분의 게임사가 그렇지만 저희는 매달 업데이트를 하거든요. 이 업데이트를 진행했을 때 꼭 예상을 뛰어넘는 유저들이 있어요. 한 달 치 콘텐츠를 준비했는데 세 시간 만에 완료한다던가.(웃음) 피드백이라고 말하기 어려울진 모르겠지만 유저들의 이런 플레이를 기쁘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Q. 이번 호의 테마는 ‘보는 게임’입니다. 그 ‘보는 게임’ 안에서도 ‘방치형 게임’을 찾아오게 됐는데요, 〈어비스리움〉을 운영하시는 입장에서 ‘방치형 게임’은 뭐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A. 사실 〈어비스리움〉을 ‘유저들이 방치하도록 만들어야지’ 하고 운영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보는 즐거움을 위해 위젯처럼 시계가 나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더 보기 좋게 만드는 건 있는데요, 따지고 보면 방치형 게임 전반의 플레이 스타일인 것 같아요. 우선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하나의 콘텐츠를 길게 늘여놓은 걸 ‘방치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장 폭 자체가 크진 않은데 숫자를 길게 늘여놓고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거죠. 그게 방치 게임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임성이라고 봅니다. 별개로 〈어비스리움〉은 단순 방치에서 그치지 않는 형태의 콘텐츠들도 추가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방치형 게임 그 자체를 즐기는 유저들과 업데이트하고 세 시간 이내에 완수하는 유저들 모두에게 선택지를 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Q. ‘방치형 게임’이라는 단어를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긴 합니다. 사실 ‘방치형 게임’은 소위 ‘진정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로부터 공격받는 포지션이기도 하죠. ‘방치형 게임은 진정한 게임이 아니다’라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게임’이라는 건 대부분 콘솔게임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런 입장이거든요. 모순적이죠.(웃음)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인데, 굉장히 조작감이 많은 게임이 있었어요. 그런데 리텐션의 측면이라든가 매출 지표적인 측면에서 성적이 좋지는 않았어요. 고정 유저층이 있긴 했지만, 지금 모바일 게임에 요구되는 목소리는 그런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조작하는 맛이 있는 게임을 바라는 유저와 아닌 걸 선호하는 유저가 양립하는 건 맞지만요. Q. 그럼 ‘진정한 게임’이라는 건 비판적인 목소리 크기 차원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잖아도 저는 그게 항상 궁금했거든요. 왜 아직도 커뮤니티는 콘솔 쪽만 활발하고 모바일 게임 쪽은 아닌가. 혹시 이거에 관해 의견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제가 게임 서비스하면서 그런 목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게임 조작하는 건 재밌는데 너무 피곤해.’ 그래서 원래 의도는 아니었지만, 오토 기능이나 한 번에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계속 넣을 수밖에 없었어요. 커뮤니티에서 의견이 잘 나오지 않는 건 그런 유저 경향도 다소 반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그럼 질문을 확장해보죠. 예쁜 물고기들이 오가는 수족관을 디지털 액자처럼 보여줄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상상해볼게요. 그러면 그것과 〈어비스리움〉은 어떤 차이를 갖고 있을까요? A. 내 폰 안에 들어있는 내 어비스리움은 내 고유의 아이디가 박혀있는 뭔가로 인지되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유튜브 같은 데서 캡처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과 내 수조 안에 무언가를 넣는 건 또 다른 측면이거든요. 그래서 디지털 액자보다는 어비스리움 쪽이 ‘내 소유’라는 인식이 강하지 않나 싶어요. ‘이 게임 안에 들어가 있는 이 수조는 온전한 내 거다.’라는 전제가 깔리는 거죠. Q. 지금 말씀에서 어떤 힌트를 얻은 느낌이네요. ‘방치형’이라는 장르 안에는 ‘소유’라는 개념이 대단히 크게 들어가는 거 같습니다. A. 맞습니다. 그리고 방치형 게임이 예전에는 ‘스트레스 없는 빠른 성장’으로 많이 나왔는데 요즘 나오는 것들을 보면 주로 달고 있는 부제가 ‘키우기’예요. 그런 부분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걸 키운다.’라는 열망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남들이 보면 다 똑같은 캐릭터고 성장하는 폭도 같지만 다른 사람이 만렙을 찍은 것과 내가 찍은 건 다르니까요. Q. 말씀해주시는 중간에 ‘키우기’라는 키워드가 나왔어요. 어떻게 보면 게임 역사 속에서 ‘키우기’라는 건 전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무언가였죠. 그런데 ‘전투가 빠진 성장’이라고 하면 그게 무슨 재미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A. 전투를 통해 얻게 되는 건 결국 경험치라는 수치잖아요? 그 수치로 캐릭터 레벨업을 시키고 다른 무언가를 계속 달성해나가는 거고요. 저희 게임 같은 경우에는 전투는 빠졌지만 산호석이라는 캐릭터를 성장시킵니다. 그리고 이 산호석이 성장하면 ‘생명력’을 계속 뱉어내는데, 이 생명력은 RPG로 비유하자면 경험치나 재화랑 마찬가지예요. 그런 맥락에서 생명력은 곧 전투의 결과물과 같으니, 그게 ‘보는 게임’ 나름의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성장’이라는 것도 파고들면 어려운 개념이죠. 많은 사람이 빠른 성장을 원하지만 정말로 빠르게 성장하면 할 게 없어지는 상황이 초래되기도 하고요. ‘어디서 어디까지가 적절한 성장인가’가 늘 애매한 것 같습니다. 실제 운영하시는 입장에서는 성장 밸런스를 어떻게 맞추려고 하시나요? A. 일단 성장이라는 것 자체가 PC 온라인 게임 시절이랑 많이 달라진 것 같긴 합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이 없었거든요. 처음 자동 전투가 들어왔을 때도 ‘이게 무슨 재미야’라는 의견이 주류였는데 지금은 그걸 다 하고 있죠. 그래서 저희도 이 부분이 항상 숙제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단순히 저희 게임만의 문제도 아니고 또 모바일 게임만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추구하는 재미 영역이 다르니까 느긋하게 방치형으로 즐기는 유저도, 업데이트 몇 시간 만에 확 크는 유저도 있는 거겠죠. 그 사이를 찾아서 모든 유저들이 업데이트 텀 동안 즐길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긴 한데, 유저들의 성향이 극단을 달리는 현상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추세 같습니다. Q.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비스리움〉의 물고기들을 눌러보면 응원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테이블 위 화초처럼 볼 수 있으면서도 응원의 메시지가 나오는, 이런 것들이 〈어비스리움〉이 추구하는 ‘힐링’이 아닐까 싶은데 혹시 ‘힐링’ 이외에도 특별히 전하고자 하는 게 있으신지요. A. 〈어비스리움〉 시리즈의 모든 스토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키워드가 우정과 애정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방치형이기에 힐링이다.’라는 걸 넘어서, 게임의 키워드 자체를 유저들에게 전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푸시 메시지에서도 응원의 의미를 담으려 노력하고 있고요. Q. 듣다 보니 같은 힐링 계열이지만 게임과는 또 다른 영역인 명상 앱도 생각이 나네요. 〈어비스리움〉이 명상 앱과는 어떤 차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유저들이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하는 것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이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서 어떤 위로 같은 걸 받길 원하고 있어요. 메시지를 작성하는 저희도 스스로를 위로하는 측면이 없잖아 있고요. ‘위로’라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그러면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아까 〈어비스리움〉이 디지털 액자 같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캔버스로 보면 또 어떤 시각일까요? 그러니까 미술 작품으로 이해해보면 어떠냐는 거죠. A. 이 게임이 미술 작품으로서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고민은 한 적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동세대에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제작진들이 스스로가 감동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구조다’ 정도로 답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적인 걸로 보자고 하면 너무 거창한 느낌이라. 그래도 굳이 이야기해보자면, ‘그냥 내 감정에 공감해주길 바라.’라고 무겁지 않은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해요. 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것처럼요. 예술도 여러 종류 있겠지만, ‘미술’이라는 단어에 깔린 거창한 것들과는 확실히 거리가 느껴지긴 합니다. 물론 그런 식으로 해석 가능한 측면도 있겠지만 의도 자체는 동세대의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동세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게임인 게 크고요. 그렇게 해서 녹여낸 감성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거라 믿고 있습니다. Q. 〈어비스리움〉이 작품을 만드는 도구가 되는 거로 생각해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A. 그런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샌드박스 같은 느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힐링 받을 수 있는 물고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고기를 꺼내놓고 그 풍경을 즐기는 걸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Q. 그런 힐링을 ‘내가’ 이뤄냈다고 하는 게 핵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미술을 할 줄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 원하는 느낌을 낼 수 있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즐거움이 SNS 사진 공유를 하게 만드는 바탕이 되는 것 같고요. A. 네. 저희가 따로 안내는 안 했는데요, 사실 동일한 종류의 작은 물고기를 여러 마리 생성해두면 무리 지어 움직입니다. 그 풍경을 보면서 신기하다, 재밌다 하는 유저들도 많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도 그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이런 부분을 확장해서 보자면 말씀 해주신 거랑 같은 거죠. Q. 그런 물고기에 대해 다루려면 모든 제작진이 어류 도감 같은 레퍼런스를 많이 보시겠네요. A. 많이들 보고 있긴 합니다. 최근에는 범위를 넓혀서 포유류까지 보고 있습니다. Q. 도감 말고도 따로 특별히 참고한다거나 영감을 받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A. 저희가 매 업데이트 때마다 테마를 다르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업데이트 콘텐츠를 꾸릴 때마다 참고할만한 데이터가 너무 없다는 것에 부딪히곤 해요. 업데이트가 잦은 편이다 보니 더 그렇죠. 그래서 어류 자체에만 집중하지 않고 매달 눈에 띄는 예쁜 거, 지금 트렌드가 되는 어류, 포유류, 새 같이 여러 가지를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방치형 게임’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짧게 짧게 플레이되던 기존의 게임들과는 다르게 느릿한 시간 속에서 느껴지는 안온한 감각도 있는 것 같고요. A. 키우기 게임의 경우에는 만렙이 되면 환생하거나 옷을 갈아입히는 것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잖아요? 그게 일반 RPG에서는 전투 한 번 끝난 거랑 마찬가지거든요. 다른 게임은 그런 식으로 하루면 끝날 걸 방치형은 며칠 더 늘여놨으니 기술적으로 방치될 수밖에 없죠. 그래도 그렇게 방치함으로써 느껴지는 어떤 편안함이 분명 존재하는듯합니다. 맞는 말씀 같아요. Q.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는 현대인의 시간관, 놀이, 여가와 엮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방치 게임이 다른 놀이, 다른 게임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오히려 없애는 경향이 있지 않나 우려도 드네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저 게임을 플레이한다고 해서 방치형 게임을 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서로 다른 형태의 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 경우에도 다른 게임을 하고 있어도 옆에서는 방치형 게임이 계속 돌아가고 있거든요. 다른 게임 하다가 죽으면 어비스리움 한 번 보고.(웃음) 그래서 이 둘은 완전한 별개의 놀이가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한테 ‘너 온라인 게이머니, 모바일 게이머니, 콘솔 게이머니.’ 이런 식으로 물어본다면 적어도 두 개 이상은 말하지 않을까 싶고요. Q. 제가 모바일 게임 관련 인터뷰하면서 흥미롭게 본 게 있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게임을 병행하는 경우가 대다수더라고요. 드라마 시청 시간을 침범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바일 게임, 방치형 게임은 굉장히 안정적인 게임이 되는 것 같습니다. A. 아까도 한 이야기지만, 모바일 게임에 관해서 ‘무슨 게임 하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합니다. 이게 다르게 표현하자면 ‘모바일 게임에 이 정도로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이 정도로 조작하고 싶지 않다.’일 수도 있거든요. 그 방면에서 방치형 게임이 요구하는 것과 패키지 게임이 요구하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모바일 게임에서 패키지 게임 같은 게임성을 요구하는 이들은 방치형 게임을 하지 않겠죠. 그 때문에 안정적이라는 인상이 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Q.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을 던지면서 마무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으십니까. A. 장연정 사원: 〈어비스리움〉은 시간을 쪼개 짬짬이 플레이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짧은 시간 안에서도 힐링이 될 수 있는 게임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고요. 〈어비스리움〉이 일상 속 작은 휴식 같은 게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최덕수 팀장: 개인적으로는 지금 〈어비스리움〉 시스템이 조금 복잡하지 않나 싶습니다. 구체화가 되어있는 건 아니지만 우선 고령자가 봤을 때 글자가 잘 보이도록 만들고 싶고요.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심플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 온라인 게임에 복귀했습니다.
- 왜 한국 콘솔시장은 작을까? - 한국 콘솔게임에의 회상
8, 90년대에 성장한 게이머들은 아마 대부분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한국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2020 게임백서에 따르면 4.5%인데, 사실상 명맥만 남았다고 볼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의 비율이 1.4%다. 북미의 38.4%와 유럽의 37.5%, 남미의 19.1%는 물론이고 2022년 세계 시장 비율인 25.2%와도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시장의 콘솔 게임 비율은 8.7%인데, 한국의 작은 콘솔 시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반면 PC 게임과 모바일 게임은 아시아에서 각각 25.7%과 54.1%로 다른 권역에 비해 차이가 극명하다. < Back 왜 한국 콘솔시장은 작을까? - 한국 콘솔게임에의 회상 03 GG Vol. 21. 12. 10. 대충 초등학교 고학년 때인 90년대 초였던 것 같지만, 정확히 몇 년도였는지 불확실한 옛날 기억이 있다. 나에게 ‘게임기’가 생겼다. 아마 어떤 잡지에서 경품에 당첨되어 받았던 것 같다. 시대를 감안하면 어떤 기종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짐작일 뿐이다. 기종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이렇게 흐릿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그 게임기를 몇 번 만져보지 못했다. 롬팩도 게임 모음집 하나가 있었거나 아예 없어서 내장 롬의 미니게임뿐이었다. 이유는 당연히 부모님 때문이었다. 사용권을 빼앗긴 것은 아니었지만, 새 롬팩을 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집의 TV에 그 게임기를 연결하는 행위 자체로도 눈길이 곱지 않았다. 게다가 단자가 무엇인지, 선은 왜 이리 많은지, 아무런 개념조차 잡혀 있지 않았던 내게는 연결 방법을 알려줄 어른이 필요했지만, 부모님은 그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거부했다. 내가 그 게임기를 돌려보려면 친구 집에 가야만 했고, 친구 부모님은 연결을 도와주긴 했으나 불편한 기색이었다. 할 만한 게임도 없는데 게임할 공간도 없으니 자연히 내 인생 최초의 게임 콘솔은 벽장과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8, 90년대에 성장한 게이머들은 아마 대부분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한국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2020 게임백서에 따르면 4.5%인데, 사실상 명맥만 남았다고 볼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의 비율이 1.4%다. 북미의 38.4%와 유럽의 37.5%, 남미의 19.1%는 물론이고 2022년 세계 시장 비율인 25.2%와도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시장의 콘솔 게임 비율은 8.7%인데, 한국의 작은 콘솔 시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반면 PC 게임과 모바일 게임은 아시아에서 각각 25.7%과 54.1%로 다른 권역에 비해 차이가 극명하다. *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 p. 668 그 이유는 8, 90년대의 미약한 시작에서 이어져 내려왔을 것이다. 작은 규모로 시작한 시장이, 단 한 번도 아케이드와 PC와 모바일에게서 헤게모니를 가져오는 모멘텀을 겪지 못한 채로 성장해왔다는 슬픈 스토리다. 그 슬픈 시절로 잠깐 가보자. 한국에서 처음 판매된 게임 콘솔은 오트론 텔레비전 스포츠다. 게임 내장형 콘솔로 미국의 ‘홈 퐁’과 똑같았으며, 최초 가격은 29500원, 이후 인하해서는 19800원이었다. 77년 기준으로 노동자 평균 월급이 69000원이던 시절이다. 시장 형성이나 대중화와는 거리가 먼 가격이었으니, 최초라는 점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가격으로 인해 가정용 퐁과 아타리의 시대에는 한국의 콘솔 게임이 자라나지 못했고, 닌텐도를 필두로 한 80년대가 왔다. 하지만 강력한 반일 정서가 지배하는 한국에 닌텐도가 수입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어불성설이었다. 때문에 80년대 초반에는 8비트 MSX를 플랫폼으로 하는 PC 게임이 이를 대체하듯이 수입되었다. 그나마도 고가품이었으니, 82년 기준으로 국내 도입 대수는 천 대가 채 안 되었다고 한다. 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한국은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을 했고, 그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자연히 일본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고, 85년에 대우가 재믹스라는 자체 콘솔을 출시하면서 게임이라는 신문물에 대한 낯설음도 많이 반감되었다. 그래도 일본 기업이 현지 법인을 만들어 진출하는 것은 대중의 정서상 어려웠기에, 국내 기업이 별도의 이름으로 콘솔을 수입했다. 이제야 의미 있는 게임 콘솔이 등장하는 것이다. 삼성이 세가의 세가 마스터 시스템을 ‘겜보이’라는 명칭으로 수입해 판매했고, 이게 히트를 거뒀다. 이에 현대는 닌텐도의 NES, 즉 북미판 패미컴을 수입해 ‘현대 컴보이’로 출시했다. 이로써 재믹스, 겜보이, 컴보이의 삼국지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 시장의 규모는 대중적이라고 부를 정도로 크지는 못했다. 히트를 했고, 대중이 존재를 알 정도의 규모는 되었지만, 매니아 위주의 시장이 되었다. 각 콘솔의 가격만 봐도 그 결과가 자명하다. * 대우 재믹스 광고, 가격이 7만 원이다. * 삼성 겜보이 광고. 가격이 11만9천 원이다. * 현대 컴보이 광고. 13만9천 원이 가격이다. * 92년 하반기의 콘솔 게임 타이틀의 가격. 따라서 게임 콘솔에 더해 이 가격까지 감안해야만 콘솔 게임을 위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나온다. 1990년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중등 교원과 대기업 사원의 초봉이 60만 원이 안 되던 시절이다. 이 시기부터는 빈부 격차가 벌어지면서 노동자 평균 월급을 기준으로 삼기가 좀 어려워지는데, 그나마도 150만 원이었다. 따라서 게임 콘솔은, 10년 전의 오트론과는 달리, ‘구매는 가능하지만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또한 게임 시장의 헤게모니는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아케이드에서 PC로 옮겨가고 있었다. 게임 콘솔의 경쟁자는 사실 PC였던 셈인데, 당시 싸게는 100만 원에서 비싸게는 200만 원 이상을 호가하던 PC가 20만 원 이하의 게임 콘솔과 경쟁한다는 것은 가격 경쟁력에 있어 상대가 안 될 것처럼 보이긴 한다. 하지만 PC에게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한다는 맥락이 있었고, ‘교육용’도 가능한 다용도라는 강점이 있었다. 이에 비하면 게임 기능 하나만 있는 콘솔은 상대적으로 싼 가격만큼이나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콘솔과 PC에는 가장 큰 차이, 공간적 차이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콘솔의 공간은 거실, PC의 공간은 방이다. 게임 콘솔은 TV와 연결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TV는 가족 공통의 미디어이니 거실에 있다. 거실 TV의 용도는 부모 세대가 결정하니, 당시의 자녀 세대가 콘솔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거실의 권력을 얻어내야만 했다. 또한 당시의 학생들은 야간 자율학습을 겪던 세대다. 따라서 거실에 존재할 시간 자체가 없는 경우도 꽤 많았으며, 설사 야자가 없더라도 퇴근한 부모를 상대로 거실 TV의 사용권을 협상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PC라면 공간이 방으로 바뀌면서 거실 권력에 대항할 필요가 없어진다. 야자를 끝내고 와서, 혹은 부모가 TV를 시청하고 있는 시간에,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된다. 당시 게임 소프트웨어의 복사 유통이 콘솔 롬팩의 복사보다 훨씬 손쉬웠다는 점도 PC 게임 확산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아케이드에서 게임을 하는 시대가 집에서 게임을 하는 시대로 바뀔 때의 서사에서, 북미나 유럽은 이와 달랐다. PC의 보급이 한국보다 빨랐으며, 따라서 PC에 대한 인식은 게임용보다 다용도에 가까웠다. 즉 PC는 이미 부모 세대의 것이었다. 자녀 세대들은 학원과 야자가 없으며, 부모 세대에게는 여가 생활 선택지에 PC가 추가된 구도다. 따라서 자녀들에게 거실 권력의 일부를 내주는 여유가 가능하다. 게다가 콘솔의 보모 기능을 부모들이 깨닫게 된다. 동네 아이들 몇 명을 거실에 모아놓고 피자 한 판과 게임 콘솔을 쥐어줄 경우, 부모 세대는 시내로 영화를 보러 잠시 외출할 수 있다는 식의 계산이다. 반면 한국의 부모에게 보모 역할은 조부모나 학부모나 야자가 해주었으니 게임까지 눈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다만 유럽의 경우엔 북미보다 이런 경우가 덜했는데, 그 원인을 평균 거주 공간에서 찾는 해석이 가능하다. 주거면적이 월등히 넓은 북미의 경우엔, 거실에 콘솔을 구비해도 상관없는 주거면적이지만 유럽의 경우엔 고려를 한 번 거쳐야 하는 것이다. 특히 동유럽은 과거 공산권이어서 자본주의 진영의 상품인 게임 콘솔의 수입에 대한 문턱이 높기도 했고, 주거면적 또한 다른 유럽에 비해 좁은 편이어서인지 콘솔 점유율이 가장 낮다. 이 해석에서 유일한 예외는 영어가 모국어라서 미국 문화와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영국이다. * 2014년의 자료이긴 하지만, 북미와 호주의 평균 거주 공간이 유럽(특히 동유럽인 러시아)보다 넓음을 알 수 있다. 1990년 당시 한국의 가구당 평균 주거 면적은 이 그래프의 덴마크와 비슷한 62.94였지만, 상기한 문화적 이유로 인해 이 공간의 이점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북미와 서유럽은 게임의 헤게모니가 아케이드에서 콘솔을 거쳐 PC로 옮겨갔지만, 한국과 동유럽은 아케이드에서 곧장 PC로 이동했다고 서술할 수 있겠다. 해당 국가에서 아케이드 게임장이 갖는 위상을 고려해서 공간 위주로 서술을 요약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북미와 서유럽의 경우엔 시내에서 거실로, 다시 거실에서 방으로. 한국과 동유럽의 경우엔 동네에서 방으로. 이 공간의 서사는 이제 모바일의 득세로 인해 ‘내 손’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해당 공간이 함축하는 맥락은 그 이상이다. 아케이드는 북미와 유럽처럼 시내의 번쩍번쩍한 게임 센터이건, 한국의 우중충한 동네 오락실이건,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공적 공간이니 자연히 커뮤니티의 성격 또한 갖게 된다. 고수의 플레이를 구경하고, 다른 동네의 고수와 대전하기 위해 그 동네 오락실을 갔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이를 ‘아케이드는 소셜 친화적 게임 공간이다’라고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공간이 거실이라는 사적 공간으로 바뀌면 소셜의 색채는 옅어지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거실에서의 게이밍은 누군가가 구경할 수 있고, 그에 대해 대화할 수 있고, 함께 플레이할 수도 있다. 콘솔 게임은 1인 미디어이긴 하지만 오프라인 소셜 미디어로서도 활용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방으로 게임 공간이 바뀌자 소셜의 비중은 극도로 줄어들어버렸다. 방은 철저하게 사적 공간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부모들이 TV를 볼 동안 자녀가 PC 게임을 하는 구도가 가능했다. PC라는 단어 자체가 Personal Computer의 약자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온라인 게임의 등장 이전의 한국에서 게임은 1인 미디어의 이미지였다. ‘게임을 같이 한다’의 의미가 아케이드/콘솔에서 조이스틱/패드를 각각 하나씩 잡고 게임을 하는 의미였던 시절이었다. 이를 오프라인 안티소셜 + 온라인 소셜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을 것이다. PC 게임 자체의 안티소셜적 성격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콘솔 수준으로 희석되었다. PC방의 경우엔 방의 공간을 다시 아케이드로 되돌리는 흐름이었고, 특히 한국에서는 스타크래프트의 아케이드화가 굉장히 큰 역사적 방점이었다. 혹은 비록 친구들끼리 모여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러 갔던 모습은 오프라인 소셜이긴 하지만, 온라인으로도 이 모습은 가능하다. 즉 한국의 PC방 문화는 PC 게임의 오프라인 안티소셜 성격을 옅게 만들긴 했지만, 인프라의 확장으로 인해 온라인 소셜의 성격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현재 결과로는 보강의 의미 이상이 되지 못했다. MMORPG를 같이 하기 위해 오프라인에서 만날 필요까지는 없으니까. 그리하여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달라진다. 점유율 40%에 육박하는 북미와 유럽이라면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헤일로를 하는, 게임의 오프라인 소셜적 이미지가 어느 정도 살아 있다. 미국식 영어에서 비디오 게임을 지칭하는 속어 중 하나가 nintendo game인 것은 닌텐도의 역사적 영향력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콘솔의 소셜적 측면이 영어권 사회가 갖고 있는 게임에 대한 이미지에 녹아들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한국은 아케이드를 빠져나온 후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오프라인 소셜의 이미지는 없다시피 하다. 이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 속 두 캐릭터가 토르와 구경이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는 게임 폐인이 된 토르가 등장하는데, 그는 친구들과 함께 거실에서 포트나이트를 플레이하고 있다. 반면 드라마 ‘구경이’의 주인공 구경이는 마찬가지로 게임 폐인이지만, 자기 집에서 MMORPG를 플레이한다. 그는 게임을 통해 길드원들과 소통하고 있지만 게임 바깥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다. 토르의 거실과 포트나이트, 구경이의 집콕 MMORPG의 차이가 콘솔이 빠져있는 한국 게임의 특수성이다. * 토르는 사회와 단절한 상태지만 그의 게임은 여전히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하는 게임이다. 콘솔이 가진 옅은 오프라인 소셜의 성격이 남아있는 형태로 볼 수 있다. * 구경이 또한 사회와 단절했지만 토르와 달리 그의 오프라인 공간에는 구경이 혼자만 존재한다. 온라인 소셜 위주인 PC게임의 사회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게임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회적 이미지, 게임 내부의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게이밍 경험의 차이가 이 역사적 맥락 혹은 경험의 차이에서 나오게 된다. 한국의 콘솔 게임이 극도로 적다는 의미는, 단순히 해당 플랫폼의 게임을 덜 만든다는 1차적 의미만이 아니라, 오프라인 소셜로도 활용이 가능한 게임을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한다는 의미다. 달리 표현하면 한국에서 만들거나 유통되는 게임은 온라인 소셜을 기본으로, 혹은 아예 온라인 소셜만을 상정하고 만들어진다는 귀결도 가능하다. 그리고 시대는 이제 2022년을 바라보고 있다. 게임의 헤게모니는 아케이드-콘솔-PC 순으로 이어졌고, 그 다음인 모바일로의 이행이 진행 중이다. 모바일의 오프라인 공간은 ‘내 손’이니 매우 협소하며, PC 이상의 오프라인 안티소셜 성격을 보여준다. 이 이행 과정을 보면 오프라인 소셜의 성격은 계속 옅어지면서 온라인 소셜의 비중이 늘어나는 그래프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럼 이제 시대의 무게추는 온라인 소셜로 완전히 옮겨가는 것일까? 몇 년 전의 기억이다. 내 예전 애인 한 명은 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고를 깊게 플레이했다. 그는 더 많은 포켓몬을 포획하고 교환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비정기적으로 집 근처의 커뮤니티 사람들을 만나 함께 동네 여기저기로 몰려다녔다. 온라인 소셜이 오프라인 소셜로 바뀌는 지점이었다. 기존 온라인 게임의 ‘정모’와 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모여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거리의 모바일 아케이드나 모바일 PC방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다. 그러고 보면 포켓몬고를 플레이하려고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유명인과 그를 쫓아가는 팬들의 모습도 기억이 난다. 닌텐도 스위치의 마케팅 포인트 중 하나도 이 부분이었다. 거치형인 동시에 휴대형인 콘솔이므로 오프라인에서 만난 두 플레이어가 서로의 콘솔을 연동해 동반 플레이가 가능한 것이다. 이는 모바일이 사실은 오프라인 소셜의 측면을 숨기고 있음을 증명한다. 휴대가 가능하기에 오프라인 접촉이 용이한 최초의 플랫폼이 되는 역설이다. 오프라인으로 동반 플레이를 하기 위해 게임 콘솔이나 PC를 싸들고 친구 집에 가는 것에 비하면 경이적으로 편하다. AR 게임의 가능성까지 고려했을 때 모바일 게임의 소셜적 측면은 확고한 영역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콘솔 게임이 빠진 탓에 아케이드 이후로 사라졌던 한국 게임의 오프라인 소셜적 측면이 극적인 부활을 할 수 있을까? 포켓몬고가 오프라인에서도 작동하는 소셜 활동을 만들어낸 것 이상의 무엇이 생겨날 수 있을까? 답은 개발자의 상상력과 유저의 활용력에 달려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변호사의 눈으로 본 역전재판
벌써 오래 전 이야기다. 토요일 아침이면 신문을 펼쳐 TV 편성표를 살펴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특히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에서 어떤 영화를 방영하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는데, 넷플릭스도 IPTV도 없던 시절이니, 시간도 돈도 없는 학생에게는 영화를 볼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편성표 옆에는 영화평론가들이 영화를 간단히 소개하며 별 5개 만점으로 나름의 평가를 달아두었는데, 별점이 높은 영화가 방영되는 날에는 종일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 Back 변호사의 눈으로 본 역전재판 02 GG Vol. 21. 8. 10. 벌써 오래 전 이야기다. 토요일 아침이면 신문을 펼쳐 TV 편성표를 살펴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특히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에서 어떤 영화를 방영하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는데, 넷플릭스도 IPTV도 없던 시절이니, 시간도 돈도 없는 학생에게는 영화를 볼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편성표 옆에는 영화평론가들이 영화를 간단히 소개하며 별 5개 만점으로 나름의 평가를 달아두었는데, 별점이 높은 영화가 방영되는 날에는 종일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주말 저녁, TV에서 “어 퓨 굿맨(A few good men)”을 방영했다. 너무 오래 전 영화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대강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미소를 중심으로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군 관타나모 기지에서 해병대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쿠바를 코앞에 둔 최전방에서 해병대를 지휘하는 제섭 대령은(잭 니콜슨 분)은 부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에게 린치를 가하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린치를 당하던 병사가 결국 사망에 이른 것이다. 하버드 출신의 군법무관 캐피 중위(탐 크루즈 분)가 린치를 가한 해병대원들의 변호인으로 선임된다. 제섭 대령은 로스쿨을 막 졸업한 풋내기 법무관이 공판에서 자존심을 건드리자 결국 폭발하고, 자신이 린치를 명령했음을 시인한다. 탐 크루즈와 잭 니콜슨이라는 걸출한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가 인상 깊었던 “어 퓨 굿 맨”은 필자가 법조인이라는 직업을 동경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어찌 법조인뿐이겠는가. 필자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인디아나 존스(Indiana Jones)를 보고 고고학과에 진학할 계획을 세우거나 탑 건(Top Gun)을 보고 공군사관학교에 가겠다고 결심했던 친구들을 한두 명씩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영화든 드라마든 법정물은 보지 않게 됐다. 필자뿐만 아니라 주변 법조인들 중에도 법정물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얘기를 들어보면 법조인들이 법정물을 보지 않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 정도인데, 법정물을 보고 있으면 분명 쉬고 있는 건데도 일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는 것과 드라마나 영화 속 법조인이나 재판의 모습이 현실과 크게 달라 감정이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배 한 명은 극장에서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노효정 감독의 2001년 영화 “인디언 썸머”에는 피고인이 허위 진술을 하자 판사가 훈계하는 장면이 나온다. “피고인, 법정에서 거짓말하면 위증죄로 처벌 받는 거 알죠?” 선배는 이 장면을 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위증죄는 선서한 증인, 즉 제3자가 허위의 진술을 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죄이기 때문에, 피고인은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위증죄로 처벌할 수 없다. 법조인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선배가 왜 웃는지 알지 못하는 주변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린 선배를 매섭게 쏘아봤다고 한다. 물론, 현실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했는지만으로 법정 영화나 드라마의 작품성을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예술 장르에는 나름의 문법과 미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캡콤의 대표적 법정 게임인 역전재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소송”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도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무서운 단어들일 것이다.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벌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소송은 상당히 진지하고 심각한 소재다. 그렇다면 역전재판은 왜 굳이 이런 무거운 소재를 사용한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요한 하위징아의 대표작 “호모 루덴스”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을 동물과 구별 짓는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는데, “생각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이나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호모 파베르)”을 강조하는 견해도 있지만,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하는 인간”에 주목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하위징아가 “호모 루덴스”에서 소송도 놀이로 보았다는 점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소송은 옳고 그름, 즉 정의를 판단하는 행위가 되었지만, 고대의 소송은 놀이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으며, 현대의 소송에도 놀이의 요소가 상당부분 남아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예를 들면, 소송에서 당사자가 승리하기 위해 말싸움을 하는 것은 놀이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판사가 착용하는 법복이나 가발은 소송이라는 놀이를 일상적 세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도구라는 것이다. 하위징아에 따르면, 소송은 중세의 마상시합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처럼 소송의 놀이적 성격을 고려한다면, 소송을 소재로 게임을 만든다는 건 어색한 게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역전재판은 대표적인 법정 게임이다. 역전재판 이후 출시된 다른 법정 게임들도 역전재판의 문법을 상당 부분 차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전재판은 사실상 법정 게임의 전범(典範)이라고 할 수 있다. 게이머는 주인공 나루호도가 되어 의뢰인의 누명을 벗겨야 한다.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 패턴은 비슷하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가 체포된다. 주인공이 증거를 수집하거나 증인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는 단서가 발견되고, 주인공은 이를 기초로 법정에서 증인을 탄핵하여 의뢰인의 무죄를 밝히고, 진범을 찾아낸다. 역전재판의 핵심적인 재미는 증인의 증언에서 모순점을 찾아내거나 증언과 반대되는 증거를 제시해 증인을 탄핵하는데 있다. 다시 말해서 증인과의 두뇌싸움에서 느끼는 게이머의 지적 희열이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동력인 것이다. 이런 두뇌싸움이 게이머를 즐겁게 하려면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에 개연성이 있으면서도 적절한 난이도가 유지되어야 한다. 추리가 너무 쉽거나 단순하면 게이머가 쉽게 지루함을 느끼며, 개연성이 없거나 주어진 단서만으로 범인을 추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면 게이머가 게임을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역전재판은 전반적으로 개연성과 난이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역전재판이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으로 인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다행히 자주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역전재판은 비주얼 노벨(Visual Novel) 장르의 게임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면 등장인물의 진술을 잘 기억해야만 한다. 중요 등장인물의 경우에는 진술의 양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일정 수준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게이머에게는 이런 상황이 상당히 피곤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역전재판은 효과적인 연출로 텍스트 중심의 단조로운 인터페이스를 극복했다. “이의 있음”, “받아랏” 같은 음향효과와 함께 나타나는 “분노의 삿대질”은 증인을 몰아세우거나 진범을 추궁하는 재미를 배가한다. 위증이 밝혀지면 폭발하거나 땀을 흘리는 증인들의 개성 있는 모습도 무척 흥미롭다. 특히 주인공이 법정에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결정적인 모순을 지적했을 때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배경음악은 역전재판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어 퓨 굿 맨”을 보며 법조인을 동경하게 된 것처럼, 누군가는 역전재판을 플레이하다가 법조인이 되겠다는 계획을 세울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증거나 증언을 바탕으로 모순을 밝혀내는 능력이 법조인의 중요한 자질인 것은 맞지만, 이는 법조인에게 요구되는 여러 가지 능력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설사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깨알 같이 많은 법률과 판례를 공부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프로이드가 “때때로 담배는 그저 담배일 뿐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게임은 그저 게임일 뿐이다. 그러니 역전재판에서 발견한 자신의 재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자.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법조인이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역전재판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모든 증거와 증언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쪽 말만 듣고 판결할 수 없다.”는 유명한 법언도 바로 이런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확증편향과 편가르기가 난무하는 한국사회에서 이것만이라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역전재판을 플레이할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변호사) 이병찬 어릴 때부터 게임을 사랑해 온 14년차 변호사입니다. 비디오 게임이 가져다 줄 새로운 미래에 관심이 많습니다. 보통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 “중꺾마”의 장본인,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인터뷰
흥미로운 점은 해당 표현을 처음 사용한 문대찬 기자가 ‘게임 전문지’가 아니라, 종합일간지의 기자라는 점이다. 문대찬 기자가 소속된 쿠키뉴스는 2005년에 만들어진 온라인 뉴스 서비스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인터넷 종합일간지가 게임을 다룬다는 점을 넘어, 게이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미디어 일반에 진출하면서 만들어지는 변화를 보게 한다. ‘중꺾마’의 대중화만 하더라도 게임과 게임 산업의 맥락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게임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장된 사례이다. 이번 호에서 편집장은 ‘중꺾마’의 장본인인 문대찬 기자와 만나, 게임이 서브컬쳐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Back [인터뷰] : “중꺾마”의 장본인,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인터뷰 10 GG Vol. 23. 2. 10. 작년 한 해, 한국 사회를 관통한 밈이 있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이 밈은 2022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일명 ‘롤드컵’에서 프로게임단 DRX의 데프트(김혁규) 선수 인터뷰로부터 기인했다. 데프트 선수가 직접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인터뷰를 했던 쿠키뉴스의 문대찬 기자가 인터뷰를 요약하는 과정에서 〈DRX 데프트 "로그전 패배 괜찮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표현하며, 해당 문구가 탄생한 것이다. 상대적 약팀이라고 평가받던 DRX가 우승을 하자 해당 표현은 일종의 사회적 밈이 되었고, 이후 다른 e스포츠나 연예계,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 상황에서 사용되며 전국민적인 인지도를 쌓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유행했던 밈인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하냐?: 누군가의 불평에 대한 반응)과 같이 부정적인 성격이 아니라, 끈기와 의지, 꿈을 희망하였기에 ‘중꺾마’는 정치권, 스포츠계, 기업을 넘어 조선일보나 KBS, MBC, SBS, JTBC 등 기성 언론에까지 사용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해당 표현을 처음 사용한 문대찬 기자가 ‘게임 전문지’가 아니라, 종합일간지의 기자라는 점이다. 문대찬 기자가 소속된 쿠키뉴스는 2005년에 만들어진 온라인 뉴스 서비스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인터넷 종합일간지가 게임을 다룬다는 점을 넘어, 게이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미디어 일반에 진출하면서 만들어지는 변화를 보게 한다. ‘중꺾마’의 대중화만 하더라도 게임과 게임 산업의 맥락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게임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장된 사례이다. 이번 호에서 편집장은 ‘중꺾마’의 장본인인 문대찬 기자와 만나, 게임이 서브컬쳐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경혁 편집장: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문대찬 기자: 쿠키 뉴스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서 이제 7년 차 기자인 문대찬입니다. 게임과 e스포츠를 취재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원래는 스포츠 기자로 들어왔는데, 저희 팀 자체가 게임 스포츠 팀이거든요. 그래서 2019년 말부터 e스포츠랑 게임 쪽 팀장울 맡게 되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나 그 이전부터 e스포츠를 보신 거죠? 문대찬 기자: 네. 어렸을 때 임요환 선수 팬이었거든요. 그래서 당시에는 e스포츠를 봤었고, 최근에도 후배 기자들 기사를 봐줘야 하니까 e스포츠 동향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죠.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e스포츠를 취재한 것은 작년이 첫 번째 시즌이었어요. 종합지 기자의 e스포츠 취재기 이경혁 편집장: 첫 해에 대박을 터트리신 거군요. (웃음) 스타 리그를 보시다가 이제는 LOL 리그를 취재하게 되셨는데, 그 둘 사이에는 간격과 차이가 조금 있잖아요. 어떤 부분이 조금 다르시던가요? 문대찬 기자: 간극이 있죠. 그런데 저는 오히려 기자를 하면서 (스타리그때 보다) e스포츠를 좀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e스포츠 보다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를 조금 더 좋아했었거든요. 그런데 e스포츠를 취재하다 보면 다른 스포츠보다 선수들과 1대1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보장되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선수 한 명, 한 명을 알아가게 되고 e스포츠의 매력에 확 빠졌어요. 지금은 진짜 누구보다 e스포츠에 열광하면서 챙겨보게 되었죠. 이경혁 편집장: 선수들도 인터뷰에 협조적인가 보네요. 문대찬 기자: 네. 최근 들어서는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해졌어요. 그리고 그중에서도 정말 프로 의식이 넘치는 선수들이 있거든요. 그중 한 명이 데프트 선수예요. (‘중꺾마’가 나온) 그 인터뷰도 정말 특별했던 게, 이번 시즌에는 패배 인터뷰가 도입됐지만, 원래 시즌 중에는 패배한 선수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롤드컵이나 국제대회에서만 허용이 되었는데, 사실 그날도 DRX가 패하면서 저는 걱정이 되었어요. 선수들 기분도 안 좋을 거고, 그러면 나올 수 있는 내용도 얼마 없을 거니까요. 그런데 데프트 선수가 너무나 프로 의식이 넘치게 인터뷰를 열심히 해줬어요. 저는 원래도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묻기보다 선수들이 성장하는 서사에 초점을 맞춰서 인터뷰를 하는 편인데, 데프트 선수가 그날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해준 덕분에 저도 그 방향으로 더 집중해서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패배 인터뷰라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우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중꺾마’는 그 상황 속에서도 선수와 미디어의 적극적인 교감에서 나온 결과물이겠네요. 그런데 궁금한 것이 ‘중꺾마’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을 때, 크레딧에 대한 욕심이 안 생기기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문대찬 기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처음에 이 표현이 화제가 되었을 때, 이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저는 결국 미디어와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해당 선수가 빛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아쉬움이나 그런 건 없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래도 문화체육부 장관이 DRX에게 표창장을 줄 때, 인간적으로 기자님도 같이 받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거든요. (웃음) 문대찬 기자: 팬들도 그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런 말씀들이 고마웠죠. (웃음) 그리고 처음에는 진짜 실감이 안 났어요. 그런데 (언론)업계 분들을 만나다 보니 이분들이 다 이야기를 해주시고, 어떤 선배 기자님은 “오늘이 너의 날이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참 감사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은 선수들의 반응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최근에 어떤 선수와 인터뷰를 했는데, “오늘 ‘중꺾마’ 기자님 만난다고 해서 긴장을 했다”면서 “‘중꺾마’ 같은 걸 만들려다가 말실수를 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게임단 관계자님들도 선수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도 더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렇게 선수들한테 제가 인터뷰를 하고 싶은 기자가 된 점이 가장 뿌듯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만족스러워요. 게이머 DNA를 가진 기자 이경혁 편집장: 정말 많이 달라졌겠네요. 선수 입장에서도 ‘기회가 왔다’고 생각할 수 있고, 요즘 기자는 부정적인 댓글을 들을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데, 그런 걸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멋있습니다. 이제는 ‘중꺾마의 장본인’이 아니라, ‘인간 문대찬’에 대해서 조금 들어보고 싶은데요. 아까 말씀하신 스타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문대찬 기자: 사실 저는 딱 거기까지 봤어요. 최연성한테 결승전에서 패하고 눈물 흘렸을 때요. 그 이후로는 마음이 아파서 스타크래프트를 못 봤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택뱅리쌍’으로 대표되는 후기 리그 시대는 못 보신 거군요. 스타를 직접 하기도 하셨나요? 문대찬 기자: 스타는 저도 친구들이 한창 하니까, 같이 많이 했었죠. 다만 저는 스타에서 아무래도 멀티테스킹이 어려웠어요. 롤은 곧잘 하는데, 스타는 그게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1:1 게임을 부담스러워해요. 누군가와 함께 짐을 짊어지고 하는 게임들을 좋아해서 롤이나 배틀 그라운드 같은 게임들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저는 게임을 혼자서 즐긴다기보다 어떤 사회적 커뮤니티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럼 어릴 적에는 어떤 게임들을 하셨어요? 처음 해보신 게임을 기억해보신다면 뭐가 될까요? 문대찬 기자: 제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갔을 때, 지금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컴퓨터를 사주셨어요. 그때 CD가 같이 들려왔었는데,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여러 가지 고전 게임들이 들어가 있는 CD였어요. 거기에 알라딘 게임이 있었는데, 제 기억으로 그게 제 인생 첫 번째 게임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도 한 목숨 죽으면 동생이 한 목숨 하고 그렇게 플레이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웃음) 이후에는 막 엄청 깊게 어떤 게임들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 빠지면 저는 되게 오래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마구마구를 진짜 열심히 했었거든요. 여기에도 친구들이 꽤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했으니까 돈을 많이 쓸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덱을 맞출 정도로 했었죠. 이경혁 편집장: 그렇게 게임을 하시면서 이제는 기자가 되셨는데, 사실 중요한 점은 게임 전문 기자가 아니라 종합지 기자이신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궁금한 것이 있는데, 게임과 e스포츠를 다루는 스포츠 기자와 다른 정치부나 경제부 등의 기자들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요? 문대찬 기자: 사실 회사 내에서도 다른 부서 기자분들과 교류할 일이 거의 없어요. 회사에서도 사실 e스포츠나 게임을 다룬다고 하면 뭔가 큰 걸 하고 잘하는 것 같은데 (라고만 생각하시고) 잘 모르시죠. 그래서 종합 매체에서 게임을 한다는 게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어요. 장점은 일단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는 영역이다 보니까 조금 더 자유롭게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이직을 하지 않고 오래 있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야하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성장 과정에서도 학원을 안 가고 싶으면 안 갔어요. 부모님께서도 그렇게 해 주시는 편이었고요. 그런데 저희 회사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예요. 특히 게임과 e스포츠를 종합 매체에서 다루고 있는 매체가 저희랑 저희 계열사인 국민일보밖에 없어요. 그 상황에서 다른 매체 같은 경우는 (게임을 다루기에) 힘든 부분들이 있는데 저희는 배려도 많이 받고, 게임 전문지가 가지고 있는 이해관계 같은 것들도 없어요. 야간의 일정을 하더라도 다음 날 오전에 쉴 수 있게 해주고 그런 식이어서 저희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거죠. 다만, 단점도 회사의 많은 분들이 게임이라는 분야에 대해 잘 모르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사를 쓰더라도 저희는 엄청 쉽게 썼고, 이것보다 더 쉽게 쓸 수 없는데, 어떤 분들은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다거나 하는 반응들을 보이셔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희 팀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던가 그런 측면들이 있죠. 사실 ‘중꺾마’가 처음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을 때 보고를 했어요. 그런데 당시 사내에선 큰 관심을 못 받았거든요. 단순히 ‘게임계 유행어’ 정도로 생각하신 것 같아요. 월드컵 때 중꺾마가 큰 관심을 받으면서 뒤늦게 노를 젓기 시작했는데, 그런 부분들이 아쉽죠. * 쿠키뉴스 홈페이지 메인 배너, ‘중꺾마’가 들어가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종합지에서 게임을 다룬다는 것에 의미가 되게 크다고 생각해요.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이 영역을 산업적으로만 접근한다거나 하면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이런 맥락에서 종합지에서 게임을 전문적으로 다루시는 분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전망이 좀 있을까요? 문대찬 기자: 그래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롤 파크에 오시는 통신사나 언론사 기자님들이 엄청 많아졌었어요. 기자실이 부족할 정도로요. 특히 결승전에는 무조건 거의 오시고, 이제 개막전도 많이 오셔요. 실제로 경제지나 이런 곳에서도 젊은 기자들에게 e스포츠 좋아하는지 많이 물어보신대요. 좋아한다고 하면 가보라고 해서 취재하시고, 그런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런 기자들이 갈수록 성장하면 점점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이 대중화되려면 미디어 종사자도 많이 늘어야 할 건데, 그런 부분에서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군요. 마지막으로 게임 기자로의 어려움을 여쭙고 싶은데요. 기자님의 기사를 볼 때, 단편적이지 않은 게임들을 다뤄주시는 지점들이 인상 깊었거든요. 그런데 일반 독자들도 함께 볼 수 있는 기사를 쓰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으실까요? 문대찬 기자: 정말 그 부분이 가장 큰 고민이기는 해요. 게임에 대해서 잘 아는 일부 독자층을 만족시키는 기사를 쓸 것이냐? 아니면 이제 종합지의 신분으로, 모두가 다 알 수 있는 기사를 쓸 것이냐? 사실 노력도 많이 해봤어요. 가령, ‘한타’ 같은 용어들도 어려워하세요. 그런데 이걸 쉬운 용어로 바꾸기가 참 어려운 거죠. 홈런 같은 건데, 홈런을 뭐라고 다르게 표현하지는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게임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으신 것이어서, 저희도 정말 많은 단어들을 바꿔봤어요. 한타는 대규모 교전이라고 쓰거든요. 그런 식의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고, MMORPG도 다중 접속 역할 분담 게임 이런 식으로 최대한 풀어서 쓰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 맥락에서 저희가 만든 기획 중에 ‘쿡기자가 해봤다’라는 기획이 있어요. 이걸 많은 분들이 좋아하세요. 왜냐하면 저희가 거기에 참석하는 기자들의 명함 같은 것들을 만들어놓았거든요. 이 기자는 어떤 게임을 선호하고, 게임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고 시작을 해요. 어떤 기자가 혼자서 기사를 쓰면 그 판단은 해당 기자의 취향에 따라서 독자들에게 전달이 되는데, 각기 다른 취향을 가진 기자 셋이 모여서 한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까 게임사 입장에서도, 독자들에게도 선택을 할 수 있게 정보를 전달드릴 수 있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향들로 많이 생각을 해보고 있어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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