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결과
Search this site
공란으로 1277개 검색됨
- 게임백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과 알려주지 않는 것들
2023년 1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를 발행했다. 백서는 연 1회 발행되며,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수출입, 제작 및 배급업체, 종사자, e스포츠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이나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 Back 게임백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과 알려주지 않는 것들 10 GG Vol. 23. 2. 10. 2023년 1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를 발행했다. 백서는 연 1회 발행되며,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수출입, 제작 및 배급업체, 종사자, e스포츠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이나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게임에 대한 다른 광범위한 조사가 거의 없는 데다, 다른 콘텐츠들과의 비교 속에서 이뤄지는 조사인 만큼 그 데이터가 갖는 의미는 크다. 게임에 대한 백서가 나오는 것처럼, 다른 콘텐츠산업들에 대해서도 백서가 나온다. 그 백서들의 발행주체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한국표준산업분류체계와 콘텐츠산업 특수분류체계, 그리고 문화산업진흥기본법과 콘텐츠산업기본법 내 분류체계를 결합해 콘텐츠산업을 11개로 분류한다. 이를 콘텐츠산업 통계조사 특수분류체계라 하는데, 여기에는 게임 외에도 출판, 만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 솔루션이 포함된다. 분류된 11개 콘텐츠산업 조사에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항목(예를 들어, 산업규모, 수출입규모, 관련업체 수, 종사자 수 등)을 적용한다. 이를 통해 전체 콘텐츠산업에서 개별 콘텐츠산업이 갖는 위상을 점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단순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개별 콘텐츠산업의 양상과 관련 이슈, 트렌드들에 대해서는 질적 분석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게임백서는 게임산업과 이용에 관한 한 해 동안의 양적·질적 데이터가 모두 포함돼 있는 백과사전과도 같은 존재라 하겠다.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잡아 소개한다. 물론 단순히 내용을 정리해 옮기기만 할 것이라면, 조사 요약본이나 관련 기사들을 참고하는 것이 낫다. 여기서는 그 데이터와 흐름들에 약간의 해석을 덧붙이고, 말미에 백서에 대한 간단한 제언까지를 추가하려 한다. 이를 통해 한 해 동안의 게임산업과 이용을 둘러싼 양상, 이슈, 트렌드들을 살피고, 그것들이 갖는 의미, 앞으로 백서가 나아갈 방향을 점검해본다. 한국의 게임시장 규모: 20조원 돌파, 크지 않은 성장률, 플랫폼별 고른 성장 2021년 한국 게임시장 규모는 20조 9,913억 원으로, 20조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전년(18조 8,855억 원) 대비 11.2%나 증가한 수치로, 같은 기간 한국 경제성장률(4.1%)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콘텐츠산업 통계조사 특수분류체계에 따른 총 11개 콘텐츠산업(게임, 출판, 만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솔루션) 중 게임이 방송, 출판, 지식정보에 이어 4번째로 20조원 규모를 기록하게 되었다. 게임백서에서는 게임 플랫폼을 게임이 구동되는 하드웨어 형태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면서 아케이드게임, 콘솔게임, PC게임, 모바일게임의 네 가지로 구분하는데, 이 플랫폼별 이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바일 게임시장의 안정화 다. 모바일 게임시장 규모는 갈수록 팽창해왔고, 한국 전체 게임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지도 오래됐다. 다만 2019년 49.7%에서 2020년 57.4%로 7.7%나 증가했던 것과는 달리, 2021년은 57.9%로 적어도 전년과 비교했을 때 아주 크게 늘지는 않았다. 물론 모바일 게임시장 비중의 확장세 둔화가 2022년에도 계속될지 다시 반등에 오를지는 확실히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른 플랫폼들의 비중이 전년 대비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감안했을 때 당분간 아주 큰 폭으로 비중이 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비중이 크게 늘지 않았다 해서 모바일 게임시장이 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매출액 12조 1,483억 원으로 전년(10조 8,311억 원) 대비 12.2% 성장률을 기록했다. 둘째, 아케이드와 PC 게임시장이 크게 성장한 반면, 2년 연속 가장 크게 성장했던 콘솔 게임시장은 마이너스 성장 했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은 전년 대비 20.3% 성장해 2,733억 원 규모를, PC 게임시장은 15.0% 성장해 5조 6,373억 원 규모를 나타냈다. 하지만 2019년 전년 대비 31.4%, 2020년 57.3% 성장했던 콘솔 게임시장은 1조 520억 원 규모로, 전년(1조 925억 원) 대비 –3.7%의 성장률을 보였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약진은 코로나19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던 해당 게임시장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에 따라 회복세에 접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PC 게임시장의 성장에는 넥슨 〈서든어택〉, 스마일게이트 〈로스트아크〉, 엠게임 〈열혈강호 온라인〉 등과 같은 인기게임들의 매출 증가가 한몫했다. 반대로 콘솔 게임시장의 마이너스 성장에는 시장 파급력을 일으키는 게임이 적었던 탓이 컸다.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플레이 공간이 집 밖으로 확장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타 콘텐츠 분야에서 흥행작이 연이어 등장하는 등 가정 내 게임 플레이 증가에 긍정적이지 못한 요인들이 꽤 있었음에도 PC게임은 선방했지만 콘솔게임은 그러지 못했다. 셋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큰 폭의 하락을 보여왔던 PC방 및 아케이드 게임장 매출액이 소폭이라곤 해도 증가 했다. PC방 매출은 2019년 2조 409억 원에서 2020년 1조 7,970억 원으로 큰 역성장(-11.9%)을 기록했고, 아케이드 게임장은 2019년 703억 원에서 2020년 365억 원으로 시장이 거의 반토막(-48.1%) 났었다. 물론 코로나19 외에 PC 게임시장의 성장 정체와 모바일게임으로의 이용 집중, 가정에서 플레이되는 콘솔게임의 인기 폭증 등도 오프라인 유통업소의 쇠락과 무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야외 활동 본격화, 정부의 아케이드 게임산업 활성화 정책, 그리고 PC 및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성장 등에 힘입어 게임 유통시장 매출은 반등했다. 종합적으로, 2021년 한국 게임시장은 지난 3년을 비추어봤을 때 크게 팽창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2018년 성장률 8.7%, 2019년 9.0%, 2020년 21.3%, 2021년 11.2%), 플랫폼별로 비교적 균형 있게 성장했다 볼 수 있다. 그동안 ① 크게 성장하는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콘솔게임), ② 성장이 정체된 플랫폼시장(PC게임, 아케이드게임), ③ 크게 역성장하는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개돼던 흐름이, ① 안정적으로 성장한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② 성장세가 둔화된 플랫폼시장(콘솔게임), ③ 하락세 혹은 보합세에서 다시 성장세로 전환된 플랫폼시장(PC게임, 아케이드게임) 및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 그림 1. 한국 게임시장의 규모 및 성장률(2012~2021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26쪽. * 표 1. 한국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2020~2024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28쪽. 2022년에도 한국 게임시장은 2021년 대비 8.5% 성장해 22조 7,723억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반적인 성장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많은 요소들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코로나19의 영향 감소다. 실외 활동이 다시 본격화됨에 따라 아케이드게임, PC방과 아케이드게임장 등의 이용 활성화가 예상된다. 대신 같은 이유로 PC와 콘솔게임 이용은 전보다 어느 정도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게임시장의 경우 꾸준히 성장하겠지만, 시장 안정세에 따라 성장세는 둔화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매출액 성장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인건비, 개발비, 간접비 등 제반비용의 상승으로 인해 실제 한국 게임업계의 영업이익은 조금씩 감소할 듯하다. 세계 게임시장 내 한국의 위상: 세계 4위, 미국·중국·일본이 전체 시장의 절반 차지 2021년 기준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2020년 대비 8.7% 증가한 2,197억 5,800만 달러였다. 특히 모바일과 PC게임이 각각 11.1% 증가하여 전체 게임산업의 성장을 견인했다. 아케이드게임은 10.5%, 콘솔게임은 2.2% 성장했다. 콘솔게임을 제외하면 모든 플랫폼이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한 셈이다. 2016년 이후 세계 게임시장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해온 모바일게임은 2021년에도 1,002억 3,400만 달러 규모로, 점유율 45.6%를 기록했다. 그 뒤는 콘솔게임(551억 4,000만, 25.1%), PC게임(372억 4,300만 달러, 점유율 16.9%), 아케이드게임(271억 4,200만 달러, 12.4%) 순이다. *표 2. 세계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2019~2024년). (단위: 백만 달러, %) 주 1) 2018년부터 기존 온라인게임과 PC패키지게임을 PC게임으로 통합하여 통계산출 2) PC 게임시장 규모는 가입비, 아이템 구매가 포함된 수치이며, 한국의 경우 PC방 매출액은 미포함 3) 아케이드 게임시장 규모는 아케이드게임기 판매액과 게임장 운영수익을 합한 규모 4) 모바일게임의 경우 휴대폰과 태블릿 기반 게임이 포함 5) 콘솔 게임시장 규모는 Console 및 Portable console game 매출액을 합한 것이며, 유럽 시장 산정 시 동유럽/아프리카/중동시장까지 포함 6) 콘솔게임의 경우, 게임기 매출을 포함하고 있는 국내 기준과 동일하게 맞추기 위해서 각 권역별로 게임기 매출을 포함 7) PwC 등 통계 발표기관에서 과거 시장규모 데이터를 변경한 경우, 백서에서 해당 변경사항을 반영해 과거 통계치를 수정 8) 환율적용 기준: 외환은행에서 발표하는 연평균환율(매매기준율 최초) 적용 * 출처: PwC(2022); Enterbrain(2022); JOGA(2022); iResearch(2022); Play meter(2016); NPD(2022) 2021년 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6%로 나타났다. 2019년 점유율이 6.2% 6.2%, 2020년이 6.9%였음을 감안하면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중이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순위도 2020년 5위에서 4위로 한 순위 올라간 후 마찬가지로 유지했다. 2020년 0.8% 차이였던 5위 영국과의 거리도 1.4%로 조금 더 벌렸다. 앞으로 한국은 5위부터 7위까지를 차지하고 있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과는 비슷한 선상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반면, Top3가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게임시장 전체의 50%가 넘으며, 3위인 일본과 4위인 한국 간 규모차이도 커(10.3% vs. 7.6%), 당분간 한국이 3위권 안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동아시아 3개국이 전세계 게임시장의 1/3이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 표 3. 세계 게임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과 위상(2021년). (단위: 백만 달러, %). 출처: PWC(2022), Enterbrain(2022), JOGA(2022), iResearch(2022), Playmeter(2016), NPD(2022);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88쪽에서 재인용. 한국게임 수출·입 규모: 수출 5.8%, 수입 15.3% 증가, 아케이드 게임 수출·입 급증 2021년 한국게임 수출액은 86억 7,287만 달러(약 9조 9,254억 원, * 한국은행 2021년 연평균 매매기준율 적용)로 집계됐다. 전년(81억 9,356만 달러)과 비교했을 때 5.8% 증가한 수치다. 2017년 증가율 80.7%를 기록한 이후 2018년 8.2%, 2019년 3.8%로 수출성장세가 둔화되다가, 2020년만 23.1%로 반짝 높은 수치를 보이고 다시 이전 증가율 수준으로 돌아온 셈이다. 플랫폼별로는 역시 모바일게임의 수출규모가 53억 3,030만 달러로 가장 컸고, PC게임이 31억 4,562만 달러로 그 뒤를 이었다. 콘솔게임 수출규모는 1억 5,674만 달러, 아케이드게임 수출규모는 4,021만 달러로 나타났다. 전체 수출규모 성장을 견인한 것은 모바일게임으로 전년대비 4.8%의 성장률을 보였고, 아케이드게임의 경우 15.9%, PC게임의 경우 8.3%로 모바일게임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이긴 했으나 수출액 자체가 많지는 않았다. 한편, PC게임 수출규모만이 전년 대비 8.2%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표 4. 한국 게임 수출·입 현황(2015~2021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 29쪽의 표를 재구성. 수입은 전년대비 15.3% 증가한 3억 1,233만 달러(약 3,574억 원)를 기록했다. 2017년 이후 계속 감소해왔던 수입 증가율이 4년 만에 반등한 것이다. 수출액보다 수입액 증가율이 높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2015년부터 지난 6년 간 수입액 증가율이 수출액보다 높았던 건 2018년뿐이었다. 다른 모든 플랫폼의 수입액 규모에서 증가세가 나타나는 가운데(아케이드게임 264.1%, 콘솔게임 47.6%, 모바일게임 18.5%), PC게임만이 23.8% 감소했다. 물론 아케이드게임 수입액 증가율이 세 자릿수이긴 하나, 액수로 환산했을 때 그 규모가 크지는 않다. * 표 5. 한국 게임 플랫폼별 수출·입 규모 비교(2020년 vs. 2021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2).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84쪽의 그림을 재구성. 게임 이용현황: 전체의 74.4%가 이용, 이용률 3.1% 증가, 모바일게임 이용률이 최고 만 10~65세의 일반인(n=6,000)을 대상으로 2021년 6월 이후 게임 이용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4.4%가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n=4,462)들에게 있어 이용률이 가장 높은 플랫폼은 모바일게임(84.2%)이었다. PC게임은 54.2%, 콘솔게임은 17.9%, 아케이드게임은 9.4%였다. 또, 게임 이용경험이 있는 응답자(n=4,462) 중 99.0%가 평소에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응답했다. 업무/학업 외 목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 사용하는 기기를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이 90.4%, 데스크톱 PC가 59.4%, 노트북/넷북이 54.3%, 태블릿PC가 35.9%였다. PC방 이용현황에 대한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게임 이용자들(n=4,462)의 11.4%가 평균 주 1회 이상 PC방을 이용하고 있었다. 성별로는 여성보다 남성이, 연령별로는 20대가 이용률이 가장 높았다. PC방에서 게임을 한다고 응답한 사람(n=1,868)에게 PC방에서 게임하는 이유를 질문했을 때,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1순위: 35.0%, 1+2순위: 57.3%)와 ‘PC 사양(성능)이 좋아서’(1순위: 26.7%, 1+2순위: 51.9%)를 꼽은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10대와 20대에서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를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게임업계 종사자 인식: 코로나19 이후 사업체 규모별 격차 심화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직업 만족도, 국내 게임산업에 대한 기대 및 전망, 게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 이후 전반적으로 임금・보수 상승, 비대면 회의 증가, 온라인 협업툴 사용의 증가, 구직 또는 경력 유지・발전 기회의 증가 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기할 점은, 이러한 긍정적 변화가 주로 100인 이상 사업체 종사자들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5인 미만 사업체 소속 종사자들의 경우 게임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에 있어서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환경과 관련해서도 일거리와 사업기회가 크게 축소되면서 임금과 보수, 업무강도, 고용안정성, 경력 발전기회 등 전반적인 요소에 대해 마찬가지로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 사업체 대상 조사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유지됐다. 회사규모가 커질수록 매출과 인력고용, 투자 및 자금조달, 신규사업 기회, 해외진출 및 유통 기회 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파악됐다. 그에 비해 규모가 작은 회사들은 사업기회가 오히려 축소된 경향이 강했다. 코로나19 이후 산업 양극화가 더욱 노골적으로 심해진 셈이다. 관련해 백서에서는 게임업계 노동환경 이슈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분석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점, 종사자들 스스로가 인식하는 개인 역량수준이 매우 낮고 교육훈련 기회가 부족하므로 개선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 중소규모 업체들의 사업환경 개선 및 역량 강화를 통해 생태계 균형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 등을 시사점으로 꼽았다. 백서가 앞으로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 이상에서 백서의 주요 데이터들, 그리고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살펴보았다. 백서가 게임에 대한 국내 유일, 최대규모의 조사인 만큼 방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음엔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백서가 갖고 있는 아쉬운 점, 그리고 백서가 나가야 할 방향을 간단하게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태생적인 요소이긴 하나 2021년도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 백서를 2023년 초에 내서 활용하게 하는 것이 갖는 한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데이터를 (그것도 다른 콘텐츠산업들과 함께) 추출해 다듬고 모으는 작업, 이슈 및 트렌드를 정리하고 그것들을 풀어 쓸 필자를 찾아 원고를 받고 책으로 묶는 작업이 갖는 노력을 부정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러 여건들을 차치하고 오직 활용도 제고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차년도 중반 정도에는 발행해 독자들로 하여금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물론 매출, 수출, 종사자 등의 양적규모에 대해서는 백서가 아닌 〈반기별 콘텐츠 산업 동향분석 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끔 되어 있지만 말이다. 둘째, 게임 ‘문화’에 대해 다시 다루는 것이다. 2017년까지의 백서에서는 게임 문화를 다뤘다. 국내외 e스포츠 동향을 정리하고, 게임이 우리 사회·문화에서 갖는 의미를 돌아보며, 인디게임과 같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아왔던 분야를 발굴했다. 문화만이 아니다. 게임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 개발 동향을 살피고, 게임정책과 지원사업에 대해서도 논의를 펼쳤다. 하지만 상·하 두 권으로 발행되던 백서가 2018년부터 한 권으로 통합되면서 문화, 사업, 기술, 정책 등에 대한 논의가 다른 챕터로 녹아들거나 삭제됐다. 문화에 대한 논의는 생략되거나 축소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확대해야 한다. 2022년 9월 문화예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게임도 문화예술진흥법 상 문화예술의 범위에 편입됐다. 물론 법적으로 문화예술이어야만 게임이 진정한 문화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은 애초부터 영상, 미술, 음악, 서사 등이 융합된 종합적인 문화예술이었다. 당연히 그랬던 것이 이제 법적으로까지 인정받은 것일 뿐이다. 법안 통과로 게임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개선될 여지가 크고, 게임산업 육성을 위한 공적지원 역시 더욱 확대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게임산업은 긍정적이지 못한 인식으로 인해 지원이나 육성보다는 규제의 대상으로 비춰져 온 측면이 크다. 당연히 기존 문화예술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의 산업적 측면만이 아닌, 문화적 측면에 대한 공적 차원의 관심이 더욱 요청된다. 백서에 문화 챕터 하나를 추가하는 일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닐 터다. 그럼에도 백서를 통해 한 해 간의 게임문화를 정리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백서가, 그리고 게임이 다가간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덧붙여, 기존에 포함됐던 e스포츠 동향, 게임의 사회·문화적 의미, 인디게임 등의 발굴뿐 아니라, 게임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들이나 출판물들, 관련 저널 및 잡지 현황, 비평 장의 흐름 등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체인소 맨>의 한국적 수용과 문화적 증폭’(2026), ‘극사실주의의 게임적 재구성: <나는 SOLO>의 상호/텍스트성과 수용구조’(2026),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등이 있다.
- 보드게임에서 협력은 어떻게 장르가 되었나?
비디오게임에 아케이드 코옵, 카우치 코옵, 온라인 코옵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 게임이 존재하듯, 보드게임에도 많은 협력 게임이 있다. 그러나 보드게임을 가볍게 접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보드게임에도 협력 장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u A pacifist who enjoys war games. Also a game designer who has made board games on themes such as anti-colonial struggle, nonviolent social movements, and psychiatric empowerment, including Intifada: Freedom for Palestine, Change the World: From the Square to the National Assembly, and The Rainbow in My Head.
- [공모전수상작] 게임으로부터의 선택, 선택으로부터의 풍경-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언더테일>의 제4의 벽 활용을 중심으로
퀀틱드림의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은 사람과 무척이나 유사한 안드로이드의 출현 이후, 그들이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SF적 상상력 아래 제작된 게임이다. 스토리라인은 크게 수사 보조 안드로이드 코너, 가정용 안드로이드 카라, 그리고 칼이란 인물을 위해 특별제작된 안드로이드 마커스, 이 셋이 초점화자가 되어 진행된다.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 장르답게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여러 다른 엔딩을 볼 수 있다.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eun Kim Loves all things that carry a story. Studied Korean literature; the game of a lifetime is Life is Strange. After glimpsing the moment when "life is a kaleidoscope" turned into "life is strange," has been falling deep into the world of games too.
- [공모전]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
게임 세계의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것은 어린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무료 플래시 게임이 세상에 존재하는 비디오 게임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커비와 똑 닮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플래시 게임에 빠져 있었다. 정식 게임판의 커비보다 이 안광 없는 가짜 “커비”와 먼저 면을 익혔다. 그때의 기준으로도 비춰봐도 결코 흥미진진한 게임은 아니었다. < Back [공모전]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 13 GG Vol. 23. 8. 10. 1. 게임 세계의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것은 어린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무료 플래시 게임이 세상에 존재하는 비디오 게임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커비와 똑 닮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플래시 게임에 빠져 있었다. 정식 게임판의 커비보다 이 안광 없는 가짜 “커비”와 먼저 면을 익혔다. 그때의 기준으로도 비춰봐도 결코 흥미진진한 게임은 아니었다. 이 “커비”도 정식 게임판의 커비처럼 적을 빨아들이거나 뱉으면서 납작한 2차원 세계를 전진해나갔다. 숨을 참으면 둥둥 뜰 줄도 알았다. 다만 이 “커비” 게임의 어떠한 장애물도 시간을 바쳐 극복할 가치가 없었다. 몬스터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의무라도 지키듯이 듬성듬성 떨어져 돌아다니며 내외했다. 모아봐야 아무런 효능이 없는 별들이 잘도 모였다. 탈출해야 하는 구덩이는 얕았고, 점프해 올라타야 하는 발판은 낮았다. 분량은 짧았다. 조물주는 이 세계를 완성하지 않고서 소피를 보러 떠난 것 같았다. 그렇게 떠나버리고서, 무언가를 미완으로 남겨두고 떠나왔다는 사실조차 영영 잊어버린 것이다. 십분 이상 잡고 있을 가치가 없는 조잡하고 공허한 게임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매혹되었다. "커비"는 무성의하게 마지막 발판에 도착해 승리의 깃발을 올린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면, 발판이 사라지고 발판 없는 바다가 이어졌다. "커비"는 이 바다 위로 날아갈 수 있었다. 키만 주의해서 누르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날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콜럼버스라고 상상하는 어린이 제국주의자는 이 바다에 매혹되었다. 언젠가 그 넓디넓은 바다를 횡단하고, 인내하는 자들을 위하여 마련된 히든 스테이지를 발견하리라 믿었다. 그렇게 수 시간 동안 같은 화면을 바라보며 키를 눌렀다. 숨을 참으며 둥둥 떠다니는 커비를 지켜보았다. 영원에 육박하는 시간이 더 지났다. 영원은 그 채도 높은 평면의 바다, 수면에 닿으면 바로 숨이 넘어가는 지옥의 바다, 파도 한 번 치지 않는 적막의 바다가 무한히 반복되는 병풍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해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사실을 이해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나는 분통을 터뜨렸고, 사기극에 휘말렸다고 믿었으며, 땅이 꺼지는 허무로 괴로워했다.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의 실존이란 무엇인지 자문하고 또 자문하고, 시대의 진리가 될 답변을 거의 얻을 뻔했다... 2. 게임 세계의 종점, 그것은 사실 신대륙일 필요도 없었다. 최소한 세계 끝자락의 상어라도, 상어의 지느러미라도, 이마를 찧어야 하는 벽이라도 발견하면 족했다. 더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 전진의 여지는 필연적인 근거를 갖고 생성된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제는 추억이 된 커비 플래시 게임을 제작한 익명의 인물은 진행을 가로막는 벽이나 끝이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러나 아바타의 공간적 이동의 여지를 마련한 게임에 있어서, 플레이어는 단순히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출발선에서 시작해 결승선에 달하는 플레이어의 움직임은 제작자의 의도와 게임 장르의 오락적 규약의 다발들 사이의 교류를 통해서 그려지는 필연적 배치에 의한 것이다. 플레이어는 이 필연적 배치 안에서 자신이 예상치 못한 무언가와 조우를 강제당하기를 원한다. 정확히는 예상한 범위 내에서 예상치 못한 조우를 강제당하기를 원한다. 스테이지로 나뉜 플랫포머 게임에서, 그 최후의 대단원이 되어 줄 조우는 마지막 스테이지에 일어날 것으로 흔히 기대된다. 측면의 얼굴만 보여주는 수줍음 많은 플레이어의 아바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한다. 하나의 스테이지는 다른 스테이지로 향하기 위해 돌파해야 하는 이차원적 통로면서, 그 돌파를 방해하는 물리적 저항이기도 하다. 공중에 떠 있는 발판은 점프를 지시한다. 밧줄은 위로 올라가기를 지시한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발판은 타이밍에 맞는 점프를 지시한다. 구덩이 속 뾰족뾰족한 가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점프를 지시한다. 스테이지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플레이어가 아바타를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지시하는 추상들의 구문이기도 하다. 게임의 공간적 끝, 게임의 마지막 행위, 게임의 마지막 무대(stage)를 보고자 하는 소망은 그러므로 중첩되고, 혼재되며, 나뉘어 떨어지지 않는다. 플랫포머 게임에서 최후의 공간, 최후의 조우에 대한 소망은 더불어 충족된다. 가령 <슈퍼 마리오Super Mario> 시리즈는 쿠파와 같은 강대한 보스와 대결하고 납치된 피치 공주를 구조하는 스테이지를 항상 대단원의 스테이지로 삼는 전통을 갖고 있다. 반면 <슈퍼 마리오> 의 안티테제이고자 하는 게임 <브레이드Braid>는 플레이어가 마지막 스테이지에 이르러서야 여태까지의 여정과 전진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도록 무대를 배치한다. 주인공이 공주를 구하고자 달려온 게 아니라, 그 주인공으로부터 달아나는 공주를 쫓고 있었다는 진실 말이다. 스테이지 게임 저변에 깔린, 명쾌하고 명료하며 직선적인 이야기는 한편으로 스테이지 간의 근원적인 단절을 숨기고, 좌우로 길게 봉합된 스테이지의 연쇄를 통과하며 전진하고 있단 환상을 유지한다. 오르페우스 신화에의 변용인 게임 <돈룩백Don’t Look Back>은 공간적 연속성이란 환상을 선형의 이야기가 지탱하는 구조를 잘 보여준다. 말 없고 추상적인 픽셀의 세계에서 주인공은 케르베로스와 하데스를 상대하고, 붉은 용암을 뛰어넘으며, 에우리디케의 혼을 만나 함께 무사히 지하 세계를 빠져나온다. 그러나 주인공은 오르페우스 신화의 대안적이고 희망적인 결말이 아니라, 묘지를 떠난 적조차 없는 자기 자신의 뒷모습을 마주한다. 스테이지 구조의 수미상관은 이 아바타가 전진하는 게 아니라, 죽은 자가 구원되지 않고 단지 썩어갈 뿐이란 사실로부터 달아나고 있었음을 표명한다. 묘지를 애초에 떠난 적조차 없다는 진실은 스테이지 게임의 불안정한 틈새를 벌려 보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며 플레이어는 이전 스테이지와 이후 스테이지를 지나친다. 그 통로의 연속성은 시간적 선후 관계와 공간적 연결을 혼동하는 결과물로서만 담보될 수 있다. 이 연속성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지, 혹은 순식간에 믿음직스럽지 못해질 수 있는지를 전진과 회귀의 구조를 통해 <돈룩백>은 보여준다. <돈룩백> 시작 화면 플랫 포머 게임들은 이처럼 이차원적인 움직임으로서의 전진에 대한 비평을 게임 내적인 논리에서 마련한다. 그 비평은 특히 게임이 제공하는 최후의 조우와 최후의 공간을 중첩하는 방식에 따라서 특유의 완결된 형식미를 갖춘다. 그러므로 가짜 커비 게임에서, 게임의 끝을 아직 마주하지 않았다는 감각이 마음을 부글부글 끓게 했고, 그 끝이 한참 전부터 반복 재생되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형식미가 부재하며 의미화되지 않는 전진과 그 전진의 최종 국면이란 게임 세계에서 용납될 수 없어 보였다. 3. 게임 세계의 종점으로 향하는 선로가 증식한다. 무료 플래시 게임을 섭렵한 뒤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더 좋은 사양의 콘솔 기기, 게임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공간, 대형 제작사의 게임을 구매할 돈 등을 통해 얻은 접근성으로, 나는 소위 "오픈 월드Open-World" 게임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게임의 종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소망은 "오픈 월드" 게임의 진화로 인해 더욱 복잡다단하게 변화한다. “자유롭게 배회하는Free-Roaming” 게임이라고도 불리는 “오픈 월드”는 형식미가 부재하며 의미화되지 않는 무한한 전진을 장려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오픈 월드”는 게임의 3차원적인 종점에 해당하는 경계 지대를 필연적으로 탐색할 필요는 없도록 공간을 구조화한다. 우선, “오픈 월드"는 게임 디자인 차원에서 엄밀히 정의된 개념이기보다는 사용자들이 특정 게임 경험을 유형화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임을 밝혀야겠다. 게임 기술의 발전과 컴퓨터 사양에 크게 의존하는 ”오픈 월드“는 게임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서 상대적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어떤 오픈 월드는 거짓 오픈 월드고, 어떤 오픈 월드는 진정한 오픈 월드란 식의 판정을 벌이는 토론은 포럼에서 아주 흔히 보이고, 이는 오픈 월드가 게임을 분류하는 항목인 동시에 가치의 척도로서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사용자들은 근 10년 이내에 발매된 동시대의 오픈 월드 게임을 말하며 함께 GTA, 젤다의 전설, 위쳐 3, 레드 데드 리뎀션 시리즈, 폴아웃 3 이후의 폴아웃 시리즈 등을 떠올린다. 내러티브를 가진 ”오픈 월드“로서 잘 알려진 이 대형 게임들에 대한 대체적 진술로서 ”오픈 월드“를 묘사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사용자들은 이동 제약의 제거를 기대하고, 이동 제약의 제거를 실감할 수 있도록, 오픈 월드 게임은 제작 단계에서 복수의 진로, 단 하나의 선택지가 아닌 선택지의 다발을 염두에 두게 된다. 오픈 월드 게임은 더불어 영영 멀어지는 지평선이 있는 광대한 풍경으로 플레이어를 초대한다. 1인칭 카메라를 통해 플레이어는 지평선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로 화하며, 3인칭 카메라의 경우, 지평선 앞에 자리한,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아바타의 뒷모습을 비춘다. 이 카메라는 360도로 돌아갈 수 있는 경우가 잦지만, 원근법상 현실적인 축적과 눈높이를 갖고서 게임 세계에 떨어진 플레이어의 아바타를 비춰야 한다. 플레이어는 지도를 켜거나 미니맵을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실시간 위치를 식별한다. 또한, “오픈 월드”는 게임 스테이지(stage)에 의한 분단과 로딩을 최대한 제거하고자 한다. 그리고 변형의 가능성으로부터 닫혀 있는 방해물이었던 오브젝트(object)는 되도록 플레이어의 조작을 통해 이동 혹은 변형 가능한 원자재로서 나타나야 한다. 더불어 게임의 내러티브와 여러 가지 목표들은 플레이어가 직선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저마다의 진로를 개발해내고, 방사선과 같이 뻗쳐 나가는 확산적인 배회를 장려한다. <위쳐 3>의 전체 맵 스테이지 게임의 형식미는 방해물을 뛰어넘으면서 돌파해 가야 하는 진로이자 그 진로에 대한 저항력으로서 공간을 추상화한다. 그러므로 더는 전진할 수 없는 최후의 공간은 여정의 결말이 펼쳐지는 대단원의 무대와 동일시된다. 반면 “오픈 월드”에서, 맵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지역은 끝자락이라는 이유만으로 최후의 조우가 벌어지는 공간적 배경으로 배치될 필연성을 갖지는 않는다. 경향적으로 “오픈 월드”의 주요 이벤트는 전체 지도의 중심부에 밀집되어 있다. 게임의 여러 사건과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지점을 표시하는 지도의 마크가 얼마나 밀집되어 있는지를 통해 우리는 그 경향성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중심부는 플레이어가 게임의 중반 즈음에 진입하고, 그 이후 가장 자주 드나들게 되는 곳이며, 사방으로 “열려 있다”는 점에서 “오픈 월드”의 공간적 한계에서 오는 이질감을 가장 옅게 느끼는 장소이다. <위처 3>의 “노비그라드”나 <폴아웃 4>의 “다이아몬드 시티”에서 그러하듯이, 중심부는 자주 동시대인의 지리적 현실성에 대한 감각에 반응하여 상공업이 활발한 도시, 문명의 중심부, 서로에게 이방인인 자들이 모이고 자본이 축적되는 메트로폴리스로 나타난다. 사건과 갈등과 정치가 중심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플레이어는 이곳에서 수많은 사연을 지닌 NPC들을 마주친다. 축적해놓은 재물과 귀중품을 팔 상가를 찾을 수도 있다. 중심부는 게임의 엔딩을 보고자 하는 플레이어는 한 번은 반드시 발을 디뎌야 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을 갖는 게임이 무한히 확장되며 무한한 자유를 갖고서 배회하고, 무한히 다양한 사건과 조우할 수 있는 공간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하기는 불가능하다. “자유로운 배회”도 복수의 다발을 가진 플레이어의 진로도 지향될지언정 결국에는 제한될 운명이다. 지도의 어느 경계에 이르러 플레이어는 한 발자국도 더 뻗어 나아갈 수 없는 종막에 도달한다. 경계 너머는 로딩되지 않는다. 경계 너머가 애당초 만들어진 바 없으며, 그러므로 두 영역을 나누는 경계조차 애초에 존재한 바 없기 때문이다. 경계 대신 항시 존재해왔던 건 벽이다.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의 영상 작업 <평행 1~4> 연작이 우스꽝스럽고 집요한 충돌을 통해 보여주듯이, 그래픽은 플레이어가 렌더링의 끝을 표지하는 투명한 벽에 가로막힌 게 아니라, 산맥, 강줄기, 절벽과 같은 자연적 지형지물에 의해 진행이 불가하다고 주장하고, 그 주장만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일은 실패하고 만다. 파로키의 <평행> 연작만을 보면 오픈 월드에 있어 경계 너머란 현실성을 자처하는 게임 세계의 가상성과 허위를 폭로하는 시각적 신기루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신기루는 그 착시의 효과가 존속되어야만 하는 신기루다. 오픈 월드가 자청하는 현실주의의 설득력이 지탱되기 위하여 공간은 단절되어서는 안 되고 계속해서 연장되어야 한다. 이곳이 곧 끝이지만, 게임 내적으로 이곳이 곧 끝이라고 선언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설. 경계 부근은 열린 세계의 닫힌 지역이라는 점에서 오픈 월드의 모순이 격화되는 장소다. 그리고 그 모순을 요철 없이 매끄럽게 만들기 위하여, 게임은 시각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다양한 전략을 활용한다. 오픈 월드 게임은 활발하게 변방, 오지, 무인지대에 대한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상상력을 동원한다. 자주 변방은 천연자원의 제공처로서 나타난다. 오픈 월드 맵의 주변부는 상대적으로 NPC의 인적이 드물며, 사건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황무지, 야생지, 원시림인 경우가 잦다. 자연물은 투명한 벽을 가리는 시각적인 눈속임의 기능으로만 머물지는 않는다. 오픈 월드의 경계지에 도달한 플레이어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하여 게임은 진귀한 광물 자원과 희귀한 동물 가죽을 찾는 등의 보상을 준비해둔다. 손상되지 않은 천연자원을 제공하는 변방을 그리는 가장 대표적인 게임 공간으로서,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북서쪽 산맥 부근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로키 산맥을 본뜬 이 산맥은 되짚어 돌아갈 수 없는 서부 개척 시대와의 단절을 가파르게 물리적으로 표시하며 경외감을 일으킨다. 두꺼운 옷을 인벤토리에 챙기지 않으면 동상을 입게 되는 이 산맥 부근은 희귀한 알비노 물소와 백마가 서성거리며, 가죽이 손상되지 않아 가치가 높은 야생 동물들이 뛰노는 곳이기도 하다. 아트 디렉터 아론 갈버트는 한 인터뷰에서 램브란트와 같은 목가 화가에 덧붙여서 알버트 비어슈타트Albert Bierstadt와 같은 19세기 미국 풍경 화가로부터 <레드 데드 리뎀션 2>가 영감을 받았음을 밝힌다.1) 램브란트만큼 잘 알려져 있진 않은 알버트 비어슈타트는 미국의 자연을 발명하고자 하는 국가주의적 수요에 발맞춰서 문명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서부의 야생지를 그리며 명성을 얻은 자연주의 화가다. 그에 대한 당대의 논평 하나는 그의 풍경화를 “숭고한 자연의 형태와 무례한 야만인의 삶”을 담아낸 “순수히 미국의 풍경”이었노라고 상찬한다. 변방이 만들어진 제국의 자연으로서, 제국의 문명이 결국에 극복하고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서 재현되거나 혹은 해석되어 온 역사는 길고 강고하다. 그것은 변방을 변방으로 여기지 않으며 살아온 선주민의 역사를 망각하는 방식으로 강고해져 왔다. 자연에 대한 사실주의적 재현으로서 널리 알려진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풍경과 알버트 비어슈타트의 연결 고리는 형식 없는 자연이란 언제나 이미 형식으로서 현현함을 한 번 더 상기시킨다.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목가적 풍경과 대조적으로, <사이버펑크 2077> 세계의 최남단 변방은 동시대의 갱신된 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를 반영하듯이 메트로폴리스가 토해낸 폐기물이 마천루만큼 드높게 쌓여가는 매립지로 상상된다. 최북단 변방은 가동을 멈춘 유정으로, 주인공의 인격에 빌붙어 사는 전직 로커이자 테러리스트 귀신인 조니의 시체가 유기된 곳이다. 실상 자본주의에 대한 은유 없는 논평일 때가 잦은 사이버 펑크 세계관에서, 변방은 중심부 도시의 폐기물이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 채 부표로서 매여 있는 토성의 고리이며, 과거의 산업 폐기물과 과거의 저항이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 폐기되는 곳이다. 또한 모두의 발길이 닿지는 않는 맵의 주변부는 그 게임의 서사적 필연성 외부를 맴도는 존재들을 끌어들여 플레이어를 위한 의외의 조우를 성기게 마련한다. <위쳐 3>은 <레드 데드 리뎀션 2>와 달리 비옥한 자연이 아니라 전란으로 황폐해진 늪지대 벨렌을 의미심장한 변방으로서 제시한다. <위쳐 3>의 세계는 중세에서 르네상스에 걸쳐있는 유럽 생활사와 민속 신앙 속 이물들이 동위에서 뒤얽힌 세계다. “노맨즈랜드”라는 별칭을 가진 벨렌은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기 전의 게롤트가 초중반에 머물며 능력치를 올린 뒤 떠나는 출발점과 같은 장소다. 탈영병을 린치하는 것이 이 동네 오락의 전부고, 돼지와 사람이 뒤엉켜 자는 오두막 몇 개가 비스듬하게 기대선 게 마을의 전부다. 흙길은 가축 오물과 노상 방뇨한 오줌이 끊기지를 않는 장마 속에서 고여 매일 뻘과 다름없는 상태다. NPC에게 말을 걸어도 욕설을 하거나 가래침을 뱉을 뿐이다. 주인공 게롤트는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며 중세 대학 도시, 부농들의 과수원과 농장, 르네상스 극단과 범죄 조직이 들끓는 대도시와 같은 흥미진진한 공간들을 통과한다. 그 과정에서 불쾌한 사람들과 불쾌한 공기만 넘치는 벨렌은 돌아갈 이유가 크게 없는 장소이자 변경지대가 된다. 푼돈을 받고서 역사보다 오래되고, 미신적으로 숭배받는 괴물들을 처단하고 다니는 걸 업 삼은 게롤트는 빈곤한 밭과 아이에 매여 돼지와 엉켜 잘 도리뿐인 NPC와 달리 자유로운 이동의 특권을 가지고, 괴수의 미신적인 힘을 조소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의 압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무적의 게롤트도 상대하지 못하는 여성 괴물들이 벨렌의 가장 가난한 경계 지대에서, 늪 지대의 가장 깊은 곳에서 군림한다. 운명의 여신처럼 세 자매인 그들을 게롤트는 스토리 상으로도 퀘스트로도 결코 완전히 죽이거나 이기지는 못한다. 거듭해서 성장하며 거듭해서 정복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특권이 닿는 영토 너머에서 그들은 존재한다. 게롤트는 잊혀진 세 자매의 영토로 돌아와서 그가 비웃던 미신적인 힘에 사로잡히기를 자처한 것처럼 죽은 자의 유품을 구한다.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는 무익한 싸움을 하고서 덫에 걸린 개처럼 무명의 죽음을 맞는다. 벨렌은 최악의 결말, 최악의 상실을 할당받은 변방, 중세인들 사이에서 근대인과 같이 자유롭고 합리적인 남성 주체이고자 했던 게롤트의 의외의 악몽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변방은 자주 지배적인 현실주의를 반영하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현실주의와의 분절을 도리어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데스스트랜딩>의 타르 강을 떠올려 보자. <데스스트랜딩> 세계에서는 죽은 자가 “BT”로 불리는 반물질 유령으로 변모하기 때문에 시체가 시한장치가 달린 핵탄두와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살육은 편리한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무기는 기본적으로 비살상으로 주어지지만, 어쩌다 사람을 죽이게 되면 언제나 트럭에 시체를 켜켜이 쌓는 동작을 진행하고, 안전한 방식으로 폐기하기 위해 달려 가야 한다. 소각로로, 혹은 타르로 가득한 호수와 강으로. <데스스트랜딩> 최북단 변방은 시체를 한 구 한 구 다시 옮겨서 소각해야 하는 소각로보다 편리하게 수장시킬 수 있는 폐기처다. 플레이어는 거대한 타르 강에 시체를 밀어 넣기 위하여 그곳을 찾게 된다. 그 강은 투명한 벽과 달리, 그 무엇도 가라앉은 뒤로 떠오를 수 없고 다가서는 무엇이든 먹어치우고자 하는, 입이 달린 경계로서 숨 쉰다. 시체는 느릿느릿하게 타르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 경계는 벽이라기보다는 현세에 현신한 테티스 강과 같다. 강은 그러나 탐욕스럽거나 두렵기보다는 모든 더러운 육체와 녹슨 폐기물(두 가지는 다르지 않아 보인다)을 삼킬 수 있는 자애로운 구순으로서 상호작용한다. 오픈 월드의 변방은 공간의 차등화와 분절화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논평인 동시에, 현실주의에 반하는 새로운 지리학을 체현하는 픽션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가능성을 지닌다. 오픈 월드의 모순이 집약되어 있다고 하는 변방은 도리어 서사적 필연성과의 느슨한 관계 속에서 그 “열린 세계”의 정체성을 축약해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1 )Gies, Arthur. “The Painted World of Red Dead Redemption 2.” Polygon, 26 Oct. 2018, www.polygon.com/red-dead-redemption/2018/10/26/18024982/red-dead-redemption-2-art-inspiration-landscape-painting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모든이에게 게임을! 국립재활원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인터뷰
그 중에서도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자립생활지원기술연구팀은 보조기기의 국산화를 위해 2020년부터 노인·장애인 보조기기연구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경제적 가치 부문과 사회적 가치 부문으로 나뉜다. 전자가 개인이 부담하기에 지나치게 비싼 해외 보조기기를 국내에서 연구개발하고 상용화하는 프로젝트라면, 후자는 장애인과 노인에게 꼭 필요한 보조기기 수요를 공모를 통해 파악하여 수요자와 함께 개발하고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이다. < Back 모든이에게 게임을! 국립재활원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인터뷰 04 GG Vol. 22. 2. 10. 필자는 약 반 년의 기간 동안 “그레이 게이머 연구”에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50대에서 70대를 망라하는 노인 게이머들의 게임 경험을 청취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60대 할머니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들었던 이야기였다. 평소 둔하고 무딘 손가락 때문에 애니팡 같은 쓰리매치 게임을 할 수 없었던 그 분은 펜슬이 달린 갤럭시 노트로 핸드폰을 바꾸면서 펜으로 꼭꼭 집어가며 원래는 할 수 없던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즐거워하셨다. 이 일화가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다. 노년 게이머는 게임이 싫어서, 또는 게임의 재미를 몰라서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게임을 하는데 있어 자신의 신체에 잘 맞는 도구가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 주목하여 모두가 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위해 게임 보조기기를 제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번 지면에서는 “누구나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슬로건 아래 뇌병변 장애인을 위한 게임 보조기기를 개발한 국립재활원의 보조기기 개발팀을 소개하고 프로젝트에 대해 나눈 대담을 소개할 예정이다. Q: 국립재활원과 보조기기 개발팀의 역할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일반 병원이 사고를 당한 환자들의 치료에 중점을 둔다면,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은 사고에서 장애를 가지게 된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보조기기는 필수이다. 그 중에서도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자립생활지원기술연구팀은 보조기기의 국산화를 위해 2020년부터 노인·장애인 보조기기연구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경제적 가치 부문과 사회적 가치 부문으로 나뉜다. 전자가 개인이 부담하기에 지나치게 비싼 해외 보조기기를 국내에서 연구개발하고 상용화하는 프로젝트라면, 후자는 장애인과 노인에게 꼭 필요한 보조기기 수요를 공모를 통해 파악하여 수요자와 함께 개발하고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이다. * 노인·장애인과 함께 보조기기를 개발하는 국립재활원 열린제작실 전경 Q: 기존에도 재활을 위해 게임이 사용되는 사례가 있지 않았나? 그러한 “재활 게임”과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재활 게임은 재활 과정 자체를 좀 더 쉽게 거쳐갈 수 있게 고안된 기능성 게임이다. 재활을 위해서는 같은 동작을 수백 번씩 반복해야 한다. 이 과정을 좀 덜 지루하게 해낼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 재활 게임이다. 반면,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에서는 장애인들이 게임 플레이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즉 ‘레저’의 의미에서의 게임을 위해 보조기기를 개발하였다. * 보조장비를 만들기 위해 열린제작실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도구들. Q: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과 성과를 소개해달라.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는 2020년 말 뇌병변장애인(장애가 심한 뇌성마비)의 어머님 다섯 분이 “장애인도 게임할 수 있나요?” 라는 신청을 함께 해 주셔서 시작하였다. 그 이후 자조모임의 형태로 뇌병변장애인과 가족,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게임보조기기를 개발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회의, 워크숍과 사용성평가 등을 진행하면서 각 신청인에게 적합한 형태의 보조기기를 개발, 개조하였다. 특히 모임에서 집중하였던 것은 조작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기존의 게임과 컨트롤러는 뇌병변장애인이 사용하기에 지나치게 복잡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적합한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데 집중하였다. 간단한 조작으로도 여러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가진 독자적 컨트롤러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물론 개발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장애인들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호자나 활동지원사들이 그에 맞는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분들부터 게임 플레이에 익숙해져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의 성과를 취합한 결과 게임접근성 보조기기 12종(개발 10종, 개조 2종)을 개발하였고, 활용 매뉴얼 책자 ’누구나 게임을 할 수 있다’를 발간하였다. 책자는 추후 pdf파일 형식으로 무료로 공개될 예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은 게임을 보다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성취감을 얻고 간접경험을 얻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할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게임플레이가 장애인의 사회 복귀와 적응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야 말로 가장 큰 발견이자 수확이 아닐까. * 장애인의 기능수준을 고려하여 다양한 조이스틱을 떼었다 붙였다 하며 조작을 할 수 있는 게임 컨트롤러. 출처: 국립재활원 공식 유튜브 *게임 컨트롤러의 실물. Q: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게임 접근성에 보다 주의를 기울일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앞서 사업 성과에서 소개했듯, 장애인들에게 있어 게임은 성취감을 주고 간접경험을 제공받으며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이다. 장애인이 한 명의 인격체로서, 또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해 게임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크다. 게임을 하다 보면 컴퓨터를 해보고 싶고, 그러다 보면 직업 훈련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영어를 배우기를 원하는 등, 게임으로 쌓이기 시작한 성취의 감각은 연이어 쌓여나가 삶에 대한 의지로 형태가 변한다. 또한 게임 접근성의 문제는 노년 게이머 문제 와도 결부되어 있다. 지금의 젊은 게이머들 또한 나이가 들 것이다. 노화에 따른 반응속도의 저하와 시력 저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에 대비하여 게임을 조작하는 플레이어가 처한 다양한 신체적 조건을 상상하고 그것을 지원할 방법을 찾아낼 상상력과 기술이 지금부터라도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Q: 게임 접근성을 위해 국내 게임 개발사 및 퍼블리셔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많은 해외 사례를 참고했다. 놀랍게도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장애 형태를 지닌 사람들도 각자에 맞는 게임 보조기기를 통해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여가를 즐겨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에 맞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장애인 게임과 관련된 연구와 이를 지원하기 위한 'Xbox Adaptive Controller (Xbox 접근성 컨트롤러)'와 ‘로지텍의 Adaptive gaming kit (어댑티브 게이밍 키트)’, ‘Nintendo의 Flex Controller’ 등의 연구 인프라와 그 결과물이 사회에 잘 자리 잡혀 있었다.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에서 주로 콘솔 게임이 연구 대상이 된 것 또한 이러한 해외의 상황,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장애인 게이밍에 대한 국내 게임 산업의 무관심과 맞닿아 있다. 플레이어의 다양한 신체적 조건을 고려한 해외 콘솔 게임과 다르게 (닌텐도 Wii의 경우, 영유아의 게임 플레이를 위한 접근성 설정을 지원한다) 국내 게임은 주로 PC게임과 스마트폰 게임으로 양분되어 있고, 어느 쪽도 이 게임들의 경험에 맞는 컨트롤러나 소프트웨어 차원의 접근성 지원은 전무했다. 프로젝트 참여자들 또한 국내 게임에 대한 반응이 더욱 좋았던 만큼, 국내 게임 제작사와 퍼블리셔들은 먼저 장애인 게이머와 노년 게이머 또한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게임에 잘 맞는 인터페이스가 게임 플레이의 경험을 더욱 높여주는 만큼 보다 다양한 게이머들이 처한 조건을 상상하고 구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이후 후속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어떤 연구가 가능할 것인가? 이전 질문과 이어서, PC게임이나 스마트폰 게임에 이식할 장애인용 컨트롤러를 개발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내 게임과 연계하여 진행한다면 더욱 뜻깊을 것이다. 더하여 이번에 진행된 프로젝트는 뇌병변장애인들만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분류하는 장애의 기준은 15가지나 된다. 다른 장애유형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접근성과 컨트롤러 연구가 더 진행되어도 좋을 것이다. 더불어 이번에 진행되었던 게임보조기기들이 상용제품으로 나와, 사용자들이 쉽게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 보조기기연구개발팀은 게임보조기기 외에도 노인과 장애인의 여가활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보조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사진은 다양한 그림도구를 휠체어에 부착하는 그림그리기 보조기기. * 입술로 움직이고 바람을 불면서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는 입술마우스. 상용제품이 높은 가격으로 접근이 쉽지 않아 저비용 제작이 가능한 키트화에 성공했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 일상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하기 위해 안경을 쓰는 것이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이라면, 장애인들이 보다 즐겁고 편안하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 여러 보조기기를 쓰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가 놓인 신체적 조건이 다르며,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 모두가 일상을 위해 일정 정도 보조기기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는 지극히 모호한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게이머 또한 각자 다른 신체적 조건 아래 놓여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깊이 고려한 게임이 설계되고 시장에 나왔을 때, 그 안에서 우리는 모두가 진정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에서 소통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 합리적 트릭스터: 플레이어와 설계자 사이의 숙련화 게임
게임에 몰입한 플레이어에게 수지타산이나 합리성만큼 낯선 단어는 없을 것이다. 게임 플레이야말로 가장 비합리적인 행위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유용한 생산물을 안겨주지 않는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주변으로부터 ‘공부를 그렇게 했어봐라’ 는 말을 듣는 이유는 게임이 기본적으로 인생에서 효율적인 시간에 해당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인간의 노동은 삶의 여러 토대를 제공하지만, 게임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일지언정 물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오픈월드, 트릭스터, 포디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woo Shin A cultural researcher and cultural critic, specializing in critical theory of technology and the political economy of media. Researches cultural phenomena surrounding gaming, 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s, and blockchain, and teach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nd the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yungKyu Lee Game journalist (2014–), writer (2006–), gamer (1996–).
- <페르소나 3 리로드> 일본 정치와 함께 톺아보기
<페르소나 3>는 <페르소나 시리즈> 전체로 보면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여신전생 시리즈>의 외전 격으로 개발된 시리즈의 핵심 정체성을 확립한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여신전생 시리즈>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던전RPG를 표방하는데, 던전 탐색에 악마 소환 및 합체를 결합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페르소나 시리즈>도 큰 틀에서는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전 시절의 1인칭 시점을 고수하진 않지만, 게임의 핵심 축은 여전히 던전과 전투이다. < Back <페르소나 3 리로드> 일본 정치와 함께 톺아보기 18 GG Vol. 24. 6. 10. <페르소나 3>는 <페르소나 시리즈> 전체로 보면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여신전생 시리즈>의 외전 격으로 개발된 시리즈의 핵심 정체성을 확립한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여신전생 시리즈>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던전RPG를 표방하는데, 던전 탐색에 악마 소환 및 합체를 결합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페르소나 시리즈>도 큰 틀에서는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전 시절의 1인칭 시점을 고수하진 않지만, 게임의 핵심 축은 여전히 던전과 전투이다. 그런데 <페르소나3>는 여기에 주인공과 다른 등장인물과의 관계가 중심이 되는 ‘커뮤 시스템’을 추가했다.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얼마나 발전시켜 놓았는지에 따라 악마 개념을 대신한 페르소나의 성능에 더해 일부 스토리 라인에도 영향을 주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페르소나 3>에선 던전과 전투만큼이나 일상 파트에서의 스케쥴 관리가 중요해졌다. 방과 후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가 던전-전투의 성과를 좌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남는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우리가 현실에서도 늘 고민하는 문제이다. 실제로 게임 중에 ‘오늘은 무엇을 할까’하고 고민할 때에는 단지 선택지를 고르는 것임에도 묘한 현실감이 느껴진다. 반면 던전과 그 안에서의 전투는 그게 아무리 현실적으로 묘사되더라도 결국 게임 속에 있다는 느낌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만일 게임이 오로지 ‘오늘은 무엇을 할까’만을 선택하는 것으로만 디자인 되어 있다고 하면, 던전RPG로서의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라는 고민이 게임 고유의 요소인 던전-전투와 연계된다는 게 이 시스템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페르소나 3>는 이전의 시리즈에 비해 게임과 현실을 잇는 가교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후속작인 <페르소나 4> 역시 기본적으로는 같은 형식이지만 일상의 재현에 보다 무게를 둔 느낌이다. 덕분에 고교 시절 친구들과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대리 체험하는 비중이 커졌다. 즐겁고도 그리운 느낌이 게임 전반을 지배한다. 3편에서 ‘타르타로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일직선 구조의 던전도 <페르소나 4>에서는 캐릭터별 특징에 맞는 던전이 스테이지별로 따로 구현되었는데, 이런 구조는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의 캐릭터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섀도’와 싸울 수 있도록 해주는 ’페르소나’의 개념도 조금 달라졌는데, 3편에선 단순히 소질과 각성의 문제였다면 <페르소나 4>에선 부정하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마주하면서 얻게 되는 ‘인격의 갑옷’이라는 개념이다. 이렇게 되면 각 등장 인물의 ‘부정하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해진다. 동료 캐릭터의 서사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거다. <페르소나 5>는 3편과 4편을 합친 모양새다. 분위기는 4편의 아기자기함 보다는 3편의 염세에 가깝다. 그러나 등장인물 간의 관계나 각각의 캐릭터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선 4편을 연상하게 된다. 던전 역시 일직선 구조의 ‘메멘토스’와 캐릭터의 내면과 연계된 ‘팰리스’가 병존하고 있다. 3편과 비교해 다소 간략화 된 느낌이었던 전투 파트는 5편에선 오히려 더 복잡해졌고 변수 역시 많아졌다. 섀도를 설득해 페르소나로 흡수하는 시스템은 심지어 3편 이전으로의 회귀다. 이런 점에서 보면 <페르소나 5>는 시리즈 전체를 종합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관점을 스토리를 중심에 놓는 것으로 바꿔보면 더 흥미로운 대목이 드러난다. 사실 <페르소나 3>는 서사 구조만 놓고 보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류로 볼만하다. 주인공과 동료들이 모여있는 공간을 주기적으로 공격하는 대형 섀도, 그럴듯한 명분으로 싸움의 목적을 오인하게 하는 ‘흑막’, 주인공과 너무 가까워진 나머지 자신의 본래 목적 달성 여부를 고민하는 강적, 인류의 집단적 바람이 원인이 된 종말과 같은 요소들이 그렇다. 그런데 이는 시기적으로 보면 다소 식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코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방영된 시기는 1995년 말에서 1996년 초까지다. <페르소나 3>는 2006년에 출시되었다. 이 10년의 간극에도 불구 <페르소나 3>는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걸 스토리를 중심에 놓고 평가한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같은 작품의 성공은 버블붕괴로 인한 사회적 혼란 및 이와 맞물린 비관주의의 확산과 떼어 놓고 평할 수 없다. 1990년대의 일본은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부문에서 혼란기였다. 정치적으로는 자민당이 스캔들과 비리 등으로 정권을 잃었다가 사회당과의 연정 등을 통해 간신히 되찾으면서 55년 체제가 붕괴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경제적으로는 버블 붕괴로 인한 주요 금융회사의 도산이나 부동산 주가 폭락 등 자산시장의 경색이 문제가 되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옴진리교가 일으킨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한신 아와지 대지진 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이 작품을 향한 절대적 지지에는 이 모든 사태가 빚어낸 혼란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페르소나 3>가 나온 2006년의 상황은 1990년대의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되는 국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자민당을 부숴버리겠다”는 구호와 함께 등장해 비교적 안정적 정치 기반을 구축하면서 ‘개혁’ 담론을 주도했는데, 이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우정민영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를 이상화 해 밀어 붙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보면 2000년대 중반까지의 일본은 ‘버블붕괴’라는 폐허를 뒤로 하고 불안 속에서도 무언가를 새롭게 재건한다는 느낌으로 나름의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런 시점에, 일상의 평화에 젖어 오히려 종말을 바라는 인류, 이대로 세상의 종말을 평화롭게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감수하더라도 종말을 막기 위해 싸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시선에 비유한다면 ‘돌아보는 시선’이다. 분명 어떤 점에서는 나름의 진정성이 있는 것이지만, 지금 당장 눈 앞에 닥친 자신의 문제라는 절박함은 상대적으로 희박한 것이다. 이게 <페르소나 3>의 서사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아류로 느껴지는 이유다. <페르소나 3>에 투영된 것이 지나간 것에 대한 ‘돌아보는 시선’이라면, <페르소나 4>는 ‘자신의 발 밑을 내려다보는 시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시선이 보는 세계는 지극히 개인화 되어 있다. 세계의 위기는 주인공이 잠시 살고 있는 이나바시라는 시골 마을에 국한된다. 본편에서 숙적은 주인공을 돌봐주는 삼촌의 직장 동료이다. 심지어 <페르소나 4> 최대의 반전은 주인공에게 최초의 시련을 부여하는 ‘흑막’이 기껏해야 동네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위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실제 게임을 해보면 바로 이 보잘 것 없는 설정들에 현재성이 실려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페르소나 4>는 2008년 7월에 출시됐는데 시기적으로 3편의 출시일과(2006년 7월)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즉, <페르소나 4>는 3편과 동시대성을 공유하며 동전의 앞뒷면을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페르소나 3>과 <페르소나 4>는 비유하자면 같은 화자의 다른 이야기인 셈이다. 여기서 화자는 버블 붕괴 여파가 어느 정도 수습된 시점을 현재로 삼고 있다. 현재 시점에 비관주의가 득세했던 과거를 모사하며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게 <페르소나 3>, 과거를 뒤로 하고 눈 앞의 이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게 <페르소나 4>다. 따라서 <페르소나 3>가 세계의 종말을 주인공의 자기 희생을 통해 막는 얘기일지라도, 그건 근본적으로는 현재의 소중한 삶을 지키기 위한 제스처라는 해석을 피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런데, <페르소나 3>으로부터 꼭 10년이 지나 나온 <페르소나 5>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크게 바뀌게 된다. <페르소나 5>는 3편이나 4편처럼 현재에 안주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애쓴 티가 역력하다. 예를 들면 <페르소나 5>에서의 ‘페르소나’는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는 ‘반역의 의지’를 내비치는 것으로서 각성한다. 주인공들은 마음의 괴도단을 구성해 유력한 개인들을 개심시키는 것으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는 한계가 있고, 오히려 기득권에 의해 반격을 당하는 상황에 내몰리기 까지 한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그에 굴하지 않는 것을 넘어, 세계가 왜곡된 원인인 세상의 질서 그 자체와 맞서는 데까지 전진한다. 이를 통해 확인하게 된 진실은 대중의 무세계성(worldlessness)에 기반한 욕망이 한데 모여 통제를 원하게 되었고, 그러한 의사를 대리하는 신을 자처하는 존재로부터 세계가 실제 통제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상징하는 존재는 금빛으로 번쩍이는 성배의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주인공들은 이 거짓된 신에 맞서 또 다른 반역을 일으켜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 여기서 게임 제작진의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3편과 4편에 비하면 선동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이다. <페르소나 5>에서 반복되는, 이전에서 없었던 이러한 코드는 어디서 나온 걸까? <페르소나 4>이후의 현실엔 크게 세 가지 전환점이 있었다. 첫 번째, 2009년 자민당이 다시 한 번 정권을 잃고 민주당이 집권하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두 번째, 2011년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세 번째, 2012년 아베 신조가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해 다시 자민당 집권기가 열렸다. 아베 신조 정권은 1차 집권기(2006년)에 달성하지 못한 과제를 뒤늦게라도 확실하게 추진하겠다는 인상을 남기며 이런 저런 우파 지향의 의제를 밀어 붙였다. 그 결과 2015년에는 이른바 안보법제 논란으로 국회 주변에 12만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일어나는 일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이는 일본 사회 및 시민운동의 특성에 비추어 보면 매우 이례적인 일로 당시 언론은 1960년 안보투쟁 이래의 55년만의 최대 규모 운동으로 이 사안을 다뤘다. 이것이 <페르소나 5> 발매 직전까지 있었던 일이다. 다들 반역을 외치는 <페르소나 5> 특유의 분위기가 현실의 어떤 부분을 반영한 것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상황은 또다시 변화되었다. 아베 신조의 장기 집권은 더 이상 없다. 현재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아베 신조와 같은 강압적이고 일극지향적인 이미지를 갖지는 않는다. 지지율은 저조하지만 원내에서의 정치적 기반은 탄탄한 편이다. 일본 사회의 우향우는 지속되고 있지만 안보법제 폐지 투쟁 때와 같은 격렬한 반대 운동은 없다. 밖의 상황은 심상찮지만 적어도 일본 내의 분위기를 보면 당분간은 이러한 어딘가 불안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가 이어질 것 같다. 바로 그러한 때에, 과거 그러한 시기를 ‘돌아보는 시선’으로 기억한 <페르소나 3>가 <페르소나 3 리로드>로 되돌아왔다. <페르소나 3 리로드>는 <페르소나 3>를 거의 그대로 현대에 되풀이 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페르소나 5>의 혁명은 실패했고, 우리는 그 이전으로 뒷걸음질쳐 온 것인가? 아니면. 또다른 현 시대에 맞는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과거의 유산을 활용하려는 것인가? 확실한 것은 누구도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르소나 시리즈>는 여전히 새 작품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갖게 하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Tags: 일본, 정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모에’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서브컬처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한 애착 유발 구조의 고찰
2022년 즈음부터, 한국의 게임 업계는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 표현 기법을 내세우는 게임들을 ‘서브컬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만화‧애니메이션풍으로 묘사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이라는, 이름이라기보다 차라리 서술에 가까운 호칭으로 일컬어졌던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간결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hoon Lee A gamer who searches games for inspiration in life. Keenly interested in analyzing the ways games convey their intentions and concepts.
-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리뷰: 이용률 급락의 구조적 맥락과 데이터가 말하지 않는 것들
게임을 떠난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답은 “동영상 시청으로 갔다”다. 게임 대신 선택한 여가활동의 86.3%가 ‘OTT·영화·TV·애니메이션 시청’이었다. 이 항목이 나타내는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중첩적임은 차치하고, 그 수치가 압도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 Back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리뷰: 이용률 급락의 구조적 맥락과 데이터가 말하지 않는 것들 28 GG Vol. 26. 2. 10. 1. 게임은 더 이상 국민 여가가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5년 12월 공개한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는 한국 게임문화의 구조적 전환점을 포착했다. 전국 10~69세 국민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게임 이용률은 50.2%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9.7%p, 그리고 2022년 74.4%에서 불과 3년 만에 24.2%p가 감소한 수치이다. 2015년 조사 시작 이래 최저치이자, 과반을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50.2%라는 숫자는 단순한 통계치 하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지난 십수 년간 게임 산업과 담론을 지배해 온 ‘게임의 보편화’라는 신화에 가해진 균열이다. 국민 대부분이 게임을 즐긴다고 자랑해왔던 그간의 조사결과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게임 이용률이 70%대로 상승했다가, 엔데믹 전환 이후 급락세로 반전되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팬데믹 특수의 종료와 엔데믹 이후의 야외 활동 증가 정도로만 해석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2019년 이미 65.7%였던 이용률을 감안하면, 현재의 50.2%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훨씬 밑도는 수치다. 즉, 구조적 하락세 위에 팬데믹이라는 일시적 변수가 중첩되었다 사라진 것이며, 팬데믹 이후 드러난 것은 팬데믹 이전부터 있어 왔을, 아니면 최소한 팬데믹과 함께 진행돼 왔을 게임 이용기반의 침식이다. 연령별 격차는 더욱 극명하다. 10대의 이용률은 80.9%로 여전히 높지만, 60대는 23.1%에 불과하다. 이는 게임이 특정 세대의 전유물로 고립되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주목할 점은 10대 이용률 역시 절대 수치는 높지만, 2022년 대비 하락세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10대 인구 자체의 급감과 맞물려, 게임산업의 미래 이용자 풀 자체도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손에 쥔 ‘디지털 네이티브’이자 당연한 ‘예비 게이머’로 간주해온 측면이 있지만, 더 이상은 그런 이야기도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2. ‘동영상 시청’이라는 대체재의 부상 게임을 떠난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답은 “동영상 시청으로 갔다”다. 게임 대신 선택한 여가활동의 86.3%가 ‘OTT·영화·TV·애니메이션 시청’이었다. 이 항목이 나타내는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중첩적임은 차치하고, 그 수치가 압도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서·웹툰·웹소설(40.3%)’, ‘운동·스포츠 관람(37.5%)’이 뒤를 이었지만, 그 합조차 ‘OTT·영화·TV·애니메이션 시청’에 미치지 못한다. 디지털 여가를 둘러싼 주의력 경제의 헤게모니가 ‘플레이’에서 다시금 ‘시청’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응답자가 항목 내 ‘OTT’에 유튜브나 틱톡 같은 숏폼 플랫폼을 포함하거나, ‘영화·TV·애니메이션’을 보고 해당 장르를 재가공한 숏폼 콘텐츠를 함께 떠올렸다면 디지털 여가의 주의력 경제 헤게모니 이동론은 더욱 탄력을 얻는다. (실제 보고서 중반부의 FGI에서 인터뷰이들은 OTT를 비롯한 동영상 시청과 관련해 숏폼을 함께 언급한다.) 이러한 대체재 선택은 우연이 아니다. OTT·영화·TV·애니메이션은 게임과 동일한 ‘스크린 시간’을 두고 경쟁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소비구조를 갖는다. 게임은 능동적 참여와 일정 수준의 몰입을 요구하는 반면, OTT·영화·TV·애니메이션 영상은 (물론 콘텐츠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나) 수동적 시청만으로도 즉각적 만족을 제공한다. 특히 숏폼 콘텐츠까지 확장해 생각하면, 그것들은 15초에서 1분 내외의 짧은 호흡으로도 이용자들의 도파민을 분출시키며, 별도의 진입 장벽이나 학습 곡선 없이도 누구나 바로 소비할 수 있다. FGI 결과는 이러한 맥락을 생생하게 전한다. 50대 게임 미이용자들은 OTT를 보는 것이 편하며, 게임을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20~30대 미이용자 사이에서도 게임은 집중해야 하는데, OTT나 숏폼은 틀어놓기만 하면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다. 팬데믹 이후 확산된 동영상 시청 문화는 사람들에게 ‘노력 없는 혹은 힘을 들이지 않는’ 휴식의 경험을 각인시켰고, 게임의 능동성은 이제 강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얻기 위해 뒤따르는 피로로도 인식된다. 이는 단순한 선호의 변화가 아니라, 여가 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나타낸다. 과거 게임이 제공했던 도전과 성취의 쾌락은, 알고리즘이 최적화한 무한 스크롤의 수동적 쾌락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 특히 비여가시간에 일과 학습에 많은 집중을 해야 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여가 시간은 ‘재충전’의 시간이지 ‘또 다른 도전’의 시간이 아니다. 게임 미이용 이유 1위가 ‘이용 시간 부족(44.0%)’이지만, 그들은 같은 시간에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이는 절대적 시간 부족이 아니라, 게임에 투자할 ‘심리적 여력’의 부족을 의미한다. 3. 비즈니스 모델의 피로감 게임 이용률 하락의 또 다른 요인은 비즈니스 모델의 피로감이다. 조사에서 게임 미이용 이유 2위는 ‘게임 흥미 감소(36.0%)’였고, ‘게임 이용동기 부족(33.1%)’도 상위권에 올랐다. FGI에서 20~30대 이용자들은 반복적인 과금 구조, 새로운 경험의 부족, 돈을 쓰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는 구조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했다. 특히 한국 게임 시장을 지배해 온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모델은 단기 수익 극대화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신규 이용자의 유입을 막는 장벽으로 기능했다. 시간과 노력 대신 돈을 써야 강해지는(Pay to Win) 구조로의 이행은, 많은 게임 플레이를 취미가 아닌 투자, 심하게는 도박과 유사한 행위로 인식되게끔 만들었다. 2025년 조사에서 게임 내 신규 상품 구매 경험이 있는 이용자는 37.8%에 불과했다. 이는 대다수 이용자가 무과금 혹은 최소 과금으로 게임을 즐기려 함을 뜻하며, 동시에 수익은 소수의 ‘고래 유저’에게 집중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에서 신규 이용자는 과금(특히 고래) 이용자를 위한 들러리 역할로 전락하기 쉽고, 당연히 게임에 진입을 안 하거나 게임을 이탈하는 선택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4. 플랫폼 전쟁의 새로운 국면 플랫폼별 이용률 변화는 시장 재편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모바일은 여전히 89.1%로 압도적이지만, 전년 대비 2.6%p 감소했다. PC는 58.1%로 2.9%p 줄었다. 반면, 콘솔은 28.6%로 4.5%p 증가하며 유일하게 성장세를 보였다. 플레이스테이션 5 프로, 닌텐도 스위치 2 등 현세대 콘솔은 완성도 높은 패키지 게임 중심의 생태계를 구축했고, 이는 모바일의 P2W 피로감에 질린 이용자들에게 유의미한 대안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보인다. 조사에서 콘솔 게임 이용 이유 1~2위가 각각 ‘이용 환경의 익숙함, 편리 또는 편안함(59.4%)’, ‘플랫폼 독점 콘텐츠/플랫폼 고유 매력(18.7%)’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모바일 게임 이용 이유 1위가 마찬가지로 ‘이용 환경의 익숙함, 편리 또는 편안함’이긴 하나 응답률이 72.0%로 높다는 점, 그리고 ‘플랫폼 독점 콘텐츠/플랫폼 고유 매력’이 7.8%로 3위에 그친다는 점과 대비된다. 국내 게임사들도 이러한 흐름을 감지하고 콘솔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모바일 시장의 성장 둔화가 명확해진 지금, 80조 원 규모의 글로벌 콘솔 시장은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받는다. 이에 많은 게임사들이 기존 PC → 모바일게임 중심에서 콘솔로 플랫폼을 확장 중이다. 다만, 콘솔을 중심으로 하되 멀티 플랫폼 형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한 흐름 중 하나다. 이는 고품질 그래픽, 사실적 묘사, 액션 손맛 등을 구현하는 데 있어 콘솔이 최적의 플랫폼이고, 바로 그러한 점이 게임 개발 및 출시과정에 반영돼 있음을 의미한다. 거기에다 멀티 플랫포밍 전략은 최근 글로벌 게임 비즈니스의 추세이기도 하다. 모바일 시장 자체의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SensorTower)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 한국 모바일게임 다운로드 수는 약 2억 1천만 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했다(유예나, 2026). 다운로드 감소는 신규 유입 둔화를 의미하며, 이는 시장이 성숙을 넘어 포화 단계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시장이 포화 단계에 접어들면 소수의 검증된 타이틀에 이용자가 집중되고, 신작의 성공 확률은 급격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5. 잃어버린 10대 조사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10대 게임 이용률의 질적 변화다. 10대 이용률은 80.9%로 여전히 높지만, 절대 인구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 2023년 0.72명, 2024년 0.75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며, 2020년부터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되었다. 이는 현재 10대 인구가 향후 10년 간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임을 가리킨다. 게임 이용률이 유지되더라도, 모집단 자체가 줄어들면 절대적인 이용자 수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10대의 여가시간 자체가 감소하고 있으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은 여가 시간마저 동영상 이용에 잠식당하고 있다. 학부모 세대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여전하다. 조사에서 게임 이용에 부정적인 주변 사람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0.1%였으며, 특히 ‘조/부모님(20.6%)’, ‘친구/연인/배우자(14.8%)’가 주를 이뤘다. 그런 중에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예방 및 해소를 위해 부모 및 자녀가 함께 게임 사업자에게 게임 서비스 시간이나 기간 제한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게임시간 선택제’에 대한 인지도는 28.3%에 그쳐,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구조적 변화와 긍정적이지 못한 환경이 지속되는 속에서 10대가 게임을 계속 여가로 선택할까? 현재 20~30대가 보여주는 게임 이탈 현상을 고려하면, 전망은 어둡다. 게임 업계와 정부 입장에서 미래 이용자 풀에 대한 고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6. 게임 문화의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가 보여주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게임의 문화적 위상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임은 더 이상 국민 여가가 아니며, 특정 연령층의 전유물로 축소되고 있다. 동영상 플랫폼이라는 오래된 경쟁자는 게임보다 더 쉽고, 더 빠르게, 더 적은 에너지로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제 소위 게임과 관련된 일에 종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근본적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여가 활동 간의 경쟁은 어떻게 작동하나, 게임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은 무엇인가, 디지털 콘텐츠 소비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며 그 안에서 게임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그래서 결국 지금 우리는 게임을 무엇 때문에 하는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어떻게 내려가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게임을 돈을 쓰는 곳이 아니라 경험을 얻는 곳으로,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즐기는 것으로,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덜 쉽지만 훨씬 더 의미 있는 유희를 주는 것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는 부분이다. 이는 게임 메카니즘과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인 혁신,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와 즐거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50.2%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이 수치가 바닥이 되어 반등의 계기가 될지, 아니면 더 깊은 추락의 중간 지점이 될지는 지금의 업계, 정부, 그리고 이용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다. 참고자료 유예나 (2026). [2025년 하반기 국내 모바일 게임 결산] 매출 28억 달러로 상반기 대비 8.3% 상승… 넥슨 사상 첫 퍼블리셔 1위. <센서타워>. URL: https://sensortower.com/ko/blog/2H2025-mobile-games-recap-in-Korea 지표누리 – 합계출산율. URL: 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5061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체인소 맨>의 한국적 수용과 문화적 증폭’(2026), ‘극사실주의의 게임적 재구성: <나는 SOLO>의 상호/텍스트성과 수용구조’(2026),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등이 있다.
- 대중문화의 변화 위에서 게임의 미래를 묻다: GXG2025 컨퍼런스 GG 세션,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라는 제목은 게임 행사에서 게임 비평 잡지가 기획한 자리의 이름이라고 보기에 너무나 방대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로서의 게임을 이해하려면 현실의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는 매체들과 게임이 어떻게 협응하는지, 또 대중문화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야 한다. < Back 대중문화의 변화 위에서 게임의 미래를 묻다: GXG2025 컨퍼런스 GG 세션,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 26 GG Vol. 25. 10. 10. 9월 19, 20일. 판교에서 열렸던 GXG2025 (Game culture X Generation 2025) 행사가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게임, 문화로 즐기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던 해당 행사에서 GG 역시 하나의 세션을 기획하였는데, 영화, 웹툰, 미술, 게임의 종사자 및 관련자를 모시고 대중문화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물론, <시각예술콘텐츠의 오늘과 미래>라는 제목은 게임 행사에서 게임 비평 잡지가 기획한 자리의 이름이라고 보기에 너무나 방대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로서의 게임을 이해하려면 현실의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는 매체들과 게임이 어떻게 협응하는지, 또 대중문화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야 한다. 게다가 실재 대담회는 이러한 의의나 제목의 무게보다 훨씬 더 가볍고 재미있게, 그럼에도 핵심적인 요인들을 짚어가며 이루어졌다. 대중문화의 변화 지난 23호에서 GG는 ‘21세기가 들어선 이후 게임의 사반세기사’를 다룬 적이 있다. 그렇다면 다른 대중 매체들은 해당 기간에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2002년부터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출발! 비디오 여행>의 김경식, 2008년부터 웹툰 연재를 했던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미술을 강의하고 연구하며 전시를 만드는 큐레이터 권태현, 그리고 GG의 편집장인 이경혁은 각자의 삶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중매체 영역의 변화를 체감했던 사람들이었기에 해당 질문에 관한 ‘썰’들이 풀어져 나왔다. 공통적으로 대두된 변화는 공간의 변화이다. 이제는 극장에, 만화방에, 오락실에 가지 않더라도 대중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 과거에는 약속을 잡더라도 ‘극장 앞에서’ 만나고, 여가 생활을 누리려면 특정 공간에 가는 행동 패턴이 익숙했지만, 지금은 문화활동을 위해 어딘가를 가는 행위가 오히려 특별함을 담게 되었다. 두 번째 변화는 제작자와 수용자라는 고전적인 미디어 이분법에서 ‘창작자로서의 수용자성’을 갖고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서 오늘날엔 셀 수 없이 많은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누구나 쉽게 문화콘텐츠를 만들게 될 수 있었던 기술적, 문화적 변화가 존재한다. 다만, 중요한 점은 일편 뻔해 보이는 이런 변화들이 아니다. 발표자들은 이러한 변화들 위에서 매체성 자체가 변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극장에 사람들이 가지 않기에 이른바 ‘영화의 위기’ 담론이 대두되었지만,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영상들이 각광받는 현상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한다. 영화 감독에 의해 만들어지고 영화계에서 상을 받는 영화만이 영화가 아니라는 시각이 생기는 것이다. 웹툰은 더하다. 이종범 작가는 웹툰의 탄생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연극과 영화가 같은 매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제는 없듯이, 웹툰은 만화와 별개의 매체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했다. 과거에는 만화 잡지의 제한된 지면을 두고 만화가들이 경쟁해야 했다면, 웹툰은 열린 공간을 두고 사람들에 의해 선택받게 했다는 점에서 다른 성격을 보인다. 특히, 도전 만화나 공모전을 통해 독자들이 선택하게끔 한 문화는 웹툰의 시장 중심적 성격을 강화시켰다. 이종범 작가는 “시장이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시장이 좋아하는 쪽으로 쏠릴 수도 있다는 의미”라며, 오늘날 인기 웹툰에 비슷한 소재가 넘쳐나는 현상은 시장에 따라 움직이는 신생 예술 형식의 일반적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미술계는 비슷한 형식의 변화 위에서 또 다른 방식의 차이점이 만들어졌다. 권태현 작가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파인아트(Fine Art)는 아방가르드이며, 백만 명이 만 원씩 내는 시장 구조가 아니라 100억을 쓰는 한 사람에 의해 시장이 형성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21세기 이후 점점 대중들의 관심이 쏟아지면서, 최근에는 주말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에 사람이 줄을 서는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비록 파인아트 관계자들도 ‘대중과의 괴리’를 고민했었지만, 그들 역시 지금의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의 현상은 미술의 내용이 변화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증대’나 ‘참여문화의 중요성 대두’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태현 작가는 “미술계도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면서 전시를 기획할 때 핸드폰으로 전시가 어떻게 보이는지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이경혁 편집장이 언급한 게임계의 변화도 흥미롭다. 과거에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게임 중독을 걱정했는데, 요즘에는 ‘쇼츠를 보지 말고 차라리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게임 세대가 나이를 먹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부모님 세대는 게임을 모르는 세대였기에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걱정했는데, 그 아이들이 커서 부모가 된 세대는 게임을 예전처럼 위험하게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들은 게임 세대가 아니게 되었다. 이경혁 편집장은 실제로 <하얀마음 백구>와 같은 어린이용 게임이 나오지 않는다며, 게이머의 연령대가 높아졌음을 지적했다. 변화된 환경에서의 대중매체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근본적으로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이 깔려있다. 그러면 오늘날의 환경에서 대중매체는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는가? 먼저,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디지털 환경에서 기준으로 삼을 보편감각이 무엇인지에 관한 고민이 나왔다. 미술 작품을 만들 때도 3D 툴이 사용되고, 웹툰의 배경은 AI가 그리며, 프로그래밍 개념 없이도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이기에 오늘날에는 ‘디지털’이나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특별하지 않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인터넷 환경이 기성 미디어와 다르게 검열이 없고 자유롭고 해방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의미 부여가 없어졌으며 일상적인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든 만들 수 있다는 말은 누구든 영향력을 선점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게이트 키핑’ 역할을 하던 의사결정권자가 없어진 이후 이 영향력은 시장의 선택을 긴급하게 따라간다. 가령, 웹소설 사이트의 경우, 누군가의 이혼 기사가 뜨면 다음 날 랭킹에 ‘이혼한 뒤 OO했다’, ‘OO하고 이혼했다’ 등의 제목이 올라오고, 관세 전쟁 기사가 뜨면 ‘전생했더니 트럼프가 된 건에 대하여’ 등의 제목이 올라온다고 한다. 이에 이종범 작가는 “디지털 리터러시를 비롯해서 직업 윤리, 창작 윤리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는 고민을 이야기했다. 수용자의 관점에서는 콘텐츠 수용의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었다. 영화계는 처음에 쇼츠로 영화 홍보가 되기 시작했을 때 이를 반겼다고 한다. 그러나 쇼츠의 영상이 미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지 않게 만들면서 업계는 유튜브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개그맨 김경식은 <출발! 비디오 여행>과 같은 영상들이 영화의 희노애락을 담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시청 방식의 변화가 시대적 변화일 것이라 이야기했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존에는 ‘게임 플레이’라는 것이 컴퓨터나 플스 앞에 앉아서 직접 게임을 하는 것이었지만, 유튜브 게임 스트리밍이 나오면서 직접 게임을 하지 않아도 해당 게임을 했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두고 실제로 게임을 한 것인지 아닌지 싸움이 발생하지만, 이경혁 편집장은 이 싸움 자체를 주목했다. 이러한 싸움이 생긴다는 사실 자체가, 게임을 즐긴다는 방식에 다양성이 생겼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대중매체가 발전하면서 변한 것은 환경이나 매체의 속성만이 아니다. 얼핏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던 것 같은 각 매체의 경계는 이미 흐려졌고, 이제는 서로의 영향을 쉽게 주고 받는다. 게임 엔진을 통해 미술과 웹툰을 만들기도 하고, 최근에는 국내에서 머시니마 영화제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콘텐츠 자체로 보아도 <나 혼자만 레벨업>처럼, 웹소설이 웹툰이 되고, 웹툰이 드라마가 되며, 게임이 되는 시대이다. 현업에 있는 발표자들 역시 이를 당연한 시대의 변화로 인식하고 있었다. 서사성만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체험을 전유시킬 수 있기에, 예술 형식과 예술 형식 사이를 오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는 방식이 바뀌는 조건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지금 동시대의 미디어 환경에서 중요한 국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 앞에서 게임은 어떤 대중매체가 될 것이며, 어떤 대중문화를 만들 것인가? 게임 엔진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구현할 수 있는 드림 엔진이 된 오늘날, 게임이 이끌어갈 한국 대중문화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 것인가? 정답은 없지만, 깊은 고민에 다가갈 수 있는 대담회였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박물관/미술관 속의 게임들과 그 역사
최근 들어 미술관에 게임이 전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와 같이 게임을 소재로 한 전시가 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단순히 그 오브제의 집합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작품들이 연계되어 만드는 다양한 맥락을 통해 그 작품의 의미는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 Back 박물관/미술관 속의 게임들과 그 역사 12 GG Vol. 23. 6. 10. 최근 들어 미술관에 게임이 전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와 같이 게임을 소재로 한 전시가 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단순히 그 오브제의 집합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작품들이 연계되어 만드는 다양한 맥락을 통해 그 작품의 의미는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이 미술관에 전시되었다는 사실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술적인 차원에서 볼 때 게임은 종래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채우고 있는 유물이나 회화 등의 작품과 비교할 때 동적일뿐더러 상호작용적으로 작동된다.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로 무장한 젊은 세대에게 이러한 동적인 행위성 덕분에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다소 수동적이었던 기존의 작품 관람 패턴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게임이 게임만을 소재로 한 박물관을 갖게 되고, 다른 미술관에서 당당하게 전시를 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게임이 독자적인 박물관을 가지게 되고, 사회적인 편견을 넘어 미술관에 전시되게 된 역사를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 사례를 소개하려고 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최초의 게임들 * MoMI에서 최초로 박물관에 전시된 아케이드 게임들 비디오 게임이 본격적으로 산업의 태동을 맞이한 시점을 1972년 아타리의 〈퐁〉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989년에 이르러서야 게임은 처음으로 박물관에 전시될 기회를 갖게 된다. 미국 뉴욕의 Museum of the Moving Image (MoMI)는 “Hot Circuits: A Video Arcade”라는 이름의 전시에서 아케이드 게임들을 전시했다. 이 박물관의 창립 이사였던 로셸 슬로빈(Rochelle Slovin)은 비디오 게임이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고 물리적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컴퓨터 스페이스(1971)〉나 〈퐁(1972)〉 같은 초기 아케이드 게임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아스테로이드〉, 〈스페이스 인베이더〉, 〈슈퍼 브레이크 아웃〉, 〈트론〉 등 14종의 아케이드 게임이 전시되었다. MoMI의 이 초기 전시들은 이 박물관이 수집하고 있는 ‘동영상(moving image)’라는 개념에 부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움직이는 영상 이상의 인터랙션을 안겨주었기에 이러한 게임들을 전시할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본질적으로 게임은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운 좋게 게임에 호의적인 큐레이터를 만나 전시하게 된 새로운 매체 정도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위의 사진처럼 MoMI의 전시는 단순히 기존에 존재하던 아케이드 게임을 그대로 수집하여 가져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집된 게임의 예술적인 특질을 추출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 해당 게임을 만든 개발자들에게도 본인들이 예술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작가적 정체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로셸 슬로빈은 이러한 아케이드 게임들의 기술적인 특징이나 게임이 소비되는 사회적인 맥락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는 이 전시에 관한 에세이에서 “비디오 게임을 평가한다는 것은 TV과 영화, 그리고 현재의 뉴미디어를 지배하는 비디오-컴퓨터의 혼합 사이에서 구미디어와 뉴미디어 사이의 첫 번째 연결 고리를 만드는 중요한 단계”라고 썼다.1) 그는 1989년의 전시 이후 20년이 지난 2009년의 시점에서 당시의 전시들이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처럼 하나의 트렌드나 유행이 아니라 오히려 중요한 무언가의 시작”이었으며, “비디오 게임이 전 세대의 젊은 미국인들을 컴퓨터에 적응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당대의 아케이드 게임이 가진 기술적인 시각화가 다른 매체와 다른 비디오 게임 고유의 독자적인 미학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초기 비디오 게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게임이 컴퓨터의 사고방식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게임이 탄도학이나 군사 시뮬레이션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초기 형태의 컴퓨터와 칩은 힘과 벡터라는 순수한 수학만을 다루도록 설계되었다. 그들이 비디오 게임으로 재현되었을 때, 여기에는 순수한 수학의 강한 흔적이 여전히 존재했다. 이는 시각적 엔터테인먼트의 독특한 순간이었다. 기술이 게임의 원동력이자 콘텐츠가 되었다. 이것은 내가 본 것처럼 기술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내용과 기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기 위한 의미였기 때문에 이것은 박물관에 유용한 오리엔테이션이었다. 비디오 게임은 물리 법칙을 거의 감각적으로 시각화하고 느끼는 방식을 혁신 했다. 힘과 벡터 같은 물리적 법칙을 수학 공식을 통해 기술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기의 비디오 게임은 박물관에 전시될만한 맥락을 처음으로 획득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젋은 미국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을 게임이 적응시키고 있다는 사회적인 맥락이 형성되었다는 점을 그는 주목했던 것이다. 이는 이 때를 즈음하여 게임이 단순히 아케이드만을 통해 소비되지 않고, 가정용 게임기나 개인용 컴퓨터를 통해 다양한 플랫폼으로 소비되고 있음에 착안하여, 초기의 아케이드 게임이 가질 희소성과 보존 가치에 주목했다. 이 때부터 MoMI는 초기 아케이드 게임뿐만 아니라 랄프 베어로부터 기증받은 인류 최초의 가정용 게임 콘솔인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의 프로토타입 버전인 ‘브라운 박스’ 등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는 현재에도 MoMI의 주요 컬렉션을 이루고 있다. 미디어 아트 옆에 놓인 게임 MoMI의 이 전시 이후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비디오 게임의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는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1998년 미국 미네소타 주에 위치한 워커 아트 센터(Walker Art Center)에서 열린 “Beyond Interface” 전시나 2000년 UC 얼바인 대학에서 열린 “Shift-Ctrl”전, 2001년 뉴욕 Museum of Modern Art (MoMA)에서 열린 “010101: Art for our Times”, 그리고 같은 2001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Bitstreams”전이 그것이다. 이 당시 전시의 특징은 게임을 독자적으로 전시하기보다 게임과 디지털 미디어아트를 동일선 상에 놓고 병렬적인 차원에서 이들의 유사성을 더듬어 나가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 휘트니 미술관 Bitstreams에 전시된 제레미 블레이크의 미디어 아트 Station to Station (2001)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이르면 게임은 미국과 유럽, 일본과 한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나름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 당시였다. 〈스타크래프트〉를 위시하여 e스포츠의 가능성이 시작되었고, 3D 그래픽 카드의 출시를 통해 게임의 시각적인 표현력도 우수해지던 때였다. 물론 막 시작된 3D 그래픽의 표현 수준은 아직 언캐니 밸리의 위험한 구간을 통과하기 어렵던 때였지만, 도트나 벡터 그래픽을 바탕으로 한 2D 그래픽의 표현 수준은 슈퍼패미컴이나 PC엔진과 같은 4세대 가정용 콘솔에서 절정에 이르러 하나의 스타일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미 그 이전부터 몇몇 작가들은 컴퓨터 그래픽과 인터랙션을 하나의 표현 도구로 삼고 이를 통해 뉴미디어 아트를 선보이고 있었다. 이 당시 미술관에 전시된 게임은 독자적인 전시로 구성하기는 어렵지만, 디지털 아트라는 범주를 새롭게 설정하면서 그 맥락에 묻어가면서 전시 맥락을 획득한 경우라 볼 수 있다. 도구로서의 디지털은 쉬운 복제와 편집 가능성을 바탕으로 기존 작품의 권위를 쉽게 패러디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당시에 나왔던 리디아 와초프스카의 〈브레이크 아웃〉 패러디는 기존의 비디오 게임 매커닉을 패러디하여 디지털 아트가 재구성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 Lidia Wachowska, Breakout Animation Steal, 2002. 문제는 이처럼 게임이 디지털 아트와 더불어서 미술관에 점차 전시되면서 ‘예술 게임(art game)’과 ‘예술적 형식으로서의 게임(games as a art form)’이 구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술가나 미디어아트 작가들이 게임적 요소를 하나의 도구로 삼아 예술가적 자의식을 가지고 제작한 예술 게임과 상업적 게임 중 예술성이 뛰어난 게임인 ‘예술적 형식으로서의 게임’은 지향하는 바가 분명히 다르다. 전자의 경우 2000년대 전후를 위시하여 지속적으로 미디어 아트 포맷 형태로 미술관에 숱하게 전시되었으나, 예술적 형식으로서의 게임은 상업적 속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도 하거니와 이를 제작한 개발자의 예술적 자의식이 없거나 크게 도드라지지 않기 때문에 미술관에 전시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다른 맥락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이란 게임이 소비되는 사회적인 맥락에 있어서 흔히 게임의 본질적인 매체 효과로 간주되는 ‘재미’를 넘어 게임이 영감(inspiration)을 줄 수 있는 미학적 자질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석파정 서울미술관, “안봐도사는데지장없는전시” (2019) 2019년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열렸던 “안봐도사는데지장없는전시”는 게임만을 다룬 것은 아니었지만, 작품 중 여러 예술적 형식으로서의 게임을 전시한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호주의 게임 개발사 Mountains에서 개발하고 안나푸르나 인터랙티브에서 퍼블리싱한 모바일 게임 〈플로렌스(Florence)〉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이 전시는 게임이 우리 사회 속에 어느새 미적 감각을 전달해줄 수 있는 주요 매체로 자리매김했음을 일깨워준다. 독자적인 게임 박물관을 향하여 필자 역시 2010년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린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전시를 기획하면서 게임을 미술관에 넣어보려 노력한 적이 있다. 놀공발전소와 함께 준비했던 이 전시에서 우리는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출시된 주요 게임 콘솔과 애플 II, MSX 등 한국에서 주요한 의미를 가진 개인용 컴퓨터들을 플레이 가능한 형태로 비치했고, 그 중 예술적으로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게임들을 게임 역사 순서대로 전시한 바 있다. 물론 이 때에도 게임만으로 미술관 전시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미술관 내외의 반감이 상당하여 상당수의 전시를 디지털 중심의 미디어 아트로 채워야 했었다. 때문에 필자는 전시 시작 입구 쪽에 백남준의 〈TV 촛불〉을 초를 켠 채로 세워놓았다. 백남준의 〈TV 촛불〉은 TV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게임이든 미디어아트이든 그 뿌리는 같으며, 이를 어떻게 채울지가 더 중요하다는 선불교 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으로 나에게는 다가왔던 것이다. 이 작품의 선정은 미디어아트 없이는 게임만의 독자적인 미술관 전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견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일종의 소극적 저항이었던 셈이다. * 백남준, TV 촛불 이는 현재 제주도에 위치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오픈 수장고를 통해 선보이고 있는 방식과 유사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폭넓은 게임 콜렉션을 자랑하는 미국 뉴욕 주 로체스터에 위치한 The Strong Museum이나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Computerspielmuseum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오픈 수장고 형식을 채택하고 있다. 물론 이 박물관들은 모두 전시된 게임 이상의 수많은 콜렉션을 보유하고 있고, The Strong Museum만 게임업계나 학계 관계자들에게 폐가식 형태로 이를 공개하고 있다. The Strong Museum 내에 위치한 International Center for the History of Electronic Games는 게임 그 자체를 수집, 보존, 전시하는 것을 넘어 실제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최대한 존중하여 보관하고자 하는 곳이다. * 〈페르시아의 왕자〉 디렉터인 조던 메크너의 스토리보드와 모션 캡쳐 노트 필자가 이 박물관의 센터를 방문했을 때 놀런 부슈넬, 윌 라이트, 조던 메크너, 시드 마이어 등 유명 게임 개발자들의 다양한 게임 메커닉 스케치와 아타리 2600 등과 같은 올드 게임 콘솔의 디자인 설계도 등을 열람할 수 있었으며, 이를 분류하는 체계 역시 이미 규정이 확립되어 있었다. 게임을 보존해야 할 미디어로 간주하고 이를 철저하게 시행하고 있는 사회적 인식이 확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The Strong Museum의 사례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해준다. 1) Rochelle Slovin, “Hot Circuits: Reflection on the first museum retrospective of the video arcade game”, 2009. http://www.movingimagesource.us/articles/hot-circuits-20090115 Tags: 아카이빙, 박물관, 전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공모전수상작] 게임으로부터의 선택, 선택으로부터의 풍경-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언더테일>의 제4의 벽 활용을 중심으로](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cac5a8b484cc40c3bc1db19f5be7a05c~mv2.jpg/v1/fit/w_176,h_124,q_80,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cac5a8b484cc40c3bc1db19f5be7a05c~mv2.jpg)
![[공모전]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9451f09f94eb4f4dba8bd6e10916f1c5~mv2.jpg/v1/fit/w_176,h_124,q_80,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9451f09f94eb4f4dba8bd6e10916f1c5~mv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