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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77개 검색됨

  • <오웰> - ‘감시자본주의' 시대의 정치 불안

    많은 누리꾼들은 검색엔진에서 막 검색한 키워드가 곧바로 온라인 쇼핑몰의 추천상품이 되고, 방금 전 친구들과 나눈 잡담의 소재가 갑자기 모바일 웹브라우저에 광고로 뜨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려깊은’ 서비스는 사람들이 상념과 공포에 빠뜨리고 그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인터넷상의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수집은 주목할 만한 이슈였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빅브라더, 파놉티콘, 전체주의, 감시, 혁명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ivist, Writer) Liang Chenglin (梁成林) (Activist, Writer) Myeonggyo Hong Activist and writer. Works at the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Platform C on East Asian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social movements. Author of To My Vanished Chinese Friend and A Ghost Throws a Punch at the World, and translator of Xinjiang Uyghur Dystopia and Dying for an iPhone (co-translated).

  •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yungKyu Lee Game journalist (2014–), writer (2006–), gamer (1996–).

  • 수퍼히어로물의 다음 세대를 건져올린 <디스패치>

    가장 미국적인 문학 장르인 수퍼히어로는 경이(amazing)적 판타지의 장르다. 주인공 히어로와 빌런이 사용하는 초능력이라는 경이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때문에 판타지이며 개연성 대신 핍진성만이 작동하는 장르다. 이 장르는 만화와 라디오 드라마를 거쳐 영상 영화를 지나 게임까지 와 있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히어로물, 코믹스, 골든에이지, 북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모험가들은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 게임과 노스탤지어

    2015년 9월 1일 게임 개발자 론 길버트(Ron Gilbert)는 자신의 블로그에 ‘Happy Birthday Monkey Island(원숭이 섬 생일 축하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 그가 1990년에 개발한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서 〈원숭이 섬의 비밀〉을 함께 만들었던 당시의 팀과 ‘이 게임이 25년간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 오래전에 받은 한 통의 팬레터 사진1)을 첨부한다. 당시 12살이라고 밝히고 있는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pson)이 그에게 보낸 것이다. < Back 모험가들은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 게임과 노스탤지어 02 GG Vol. 21. 8. 10. 편지와 절벽을 함께 떠올리며 2015년 9월 1일 게임 개발자 론 길버트(Ron Gilbert)는 자신의 블로그에 ‘Happy Birthday Monkey Island(원숭이 섬 생일 축하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 그가 1990년에 개발한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서 〈원숭이 섬의 비밀〉을 함께 만들었던 당시의 팀과 ‘이 게임이 25년간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 오래전에 받은 한 통의 팬레터 사진 1) 을 첨부한다. 당시 12살이라고 밝히고 있는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pson)이 그에게 보낸 것이다. 게임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해서 당신처럼 훌륭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는 말로 끝나는 여느 팬레터 같지만, 사실 이 편지의 용건은 다른 데에 있다. “어떻게 하면 원주민들에게서 ‘안내자의 머리’를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거나 힌트를 줄 수 있나요(Could you please tell me or give me a hint on how to get the navigating head from the natives)?” 톰슨은 게임의 공략법을 구하기 위해 개발자에게 직접 편지를 쓴 것이다. 이 편지에서 모험은 단지 컴퓨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게임의 주인공 가이브러쉬(Guybrush)가 해적이 되기 위해 모험을 떠나 아이템과 힌트를 찾고 장애물을 넘고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이 12살 어린이도 자신의 모험 중 맞닥뜨린 시련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힌트와 아이템을 구하고 있었다. 12살의 모험가 톰슨은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에는 아직도 ‘원숭이 섬’을 떠나지 못하는 몇몇 어른들이 등장한다. 1999년 론칭된 이후 시간이 흘러 이용자도 얼마 남지 않고 더 이상 업데이트도 되지 않는 게임 〈일랜시아〉에 접속하는 ‘내언니전지현(감독 박윤진의 게임 캐릭터)’과 그의 친구들이다. 그들은 〈일랜시아〉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돌고 돌아 〈일랜시아〉를 다시 찾는다 2) " . 영화는 내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찬 현실 세계와 집단적 향수의 공간이 되어버린 게임 세계를 번갈아 비춘다. 그러다가 영화의 후반부에는 내언니전지현과 길드원들이 게임 맵의 절벽 앞에 다 함께 모여 차례로 유언을 남기고 그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죽지 않는 절벽 낙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놀이 혹은 퍼포먼스인데, 어쩐지 이 낙하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어떤 곳에 가닿기 위한 움직임처럼 보였다.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원숭이 섬에서, 그곳에 남은 최후의 어른들은 얼마간 슬프고 무모한 모험을 떠나고 있었다. 이 여정은 시간을 거스르고자 한다. 톰슨의 편지를 읽으며 절벽 앞에 서 있는 내언니전지현을 생각했다. 12살 톰슨으로 돌아가고 싶은 내언니전지현을 떠올리며 과거의 게임들이 다시 인기를 얻는 최근의 현상이 단지 플랫폼, 그래픽 스타일, 뉴트로 산업, 복고 열풍 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느꼈다. 왜 어떤 어른들은 ‘안내자의 머리’를 얻기 위해 직접 편지를 써야 했던 어린 시절 주변에서 서성대는가? 29살의 내언니전지현은 왜 더 이상 개발되지 않는 과거의 섬에 계속 남아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가? 우리는 왜 어린 시절의 모험담을 잊지 못하며 심지어 이미 퇴색해버린 모험의 세계로 다시 시간을 거슬러 모험을 떠나는가? 그때의 모험과 지금의 모험은 어떻게 다시 만나는가? * 다큐멘터리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 공식 스틸컷.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조국은 왜 향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동화 속의 나라가 되는가?” 3) 노스탤지어는 동시대 문화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들 중 하나다.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과거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적어놓은 댓글들, 어린 시절 접속했던 게임을 잊지 못해 다시 찾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오래전 유행가가 다시 순위 역주행을 했다는 기사는 우리에게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래전 문화, 예술, 그리고 미디어의 많은 부분이 복고, 레트로 열풍의 흐름 안에서 소개되면서 더 이상 그것을 경험한 적 없는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이 되고 있다. 최근 〈슈퍼 마리오〉, 〈소니 더 헤지호그〉부터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리니지 리마스터〉까지 수많은 옛날 게임들이 다시 사랑받는 것을 보면,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게임에도 해당되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이러한 현상에 보다 구체적인 세대 구분을 적용할 경우, 90년대에 오락실에서 게임을 했던 3-40대가 그 게임을 다시 찾는 경향은 ‘레트로’, 오래전 콘솔 게임과 비디오 게임에 대한 실제 경험이 없는 1-20대가 그 게임을 하나의 유행으로 즐기는 경향은 ‘뉴트로’로 해석되고는 한다. 이때 ‘과거의 게임과 음악과 영화와 물건들이 어떻게 다시 인기를 얻었는가?’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은 그보다 ‘우리는 왜 낡고 조악하고 엉망진창인 과거의 것들에 노스탤지어를 느끼는지’ 질문하고 싶다. 왜 우리는 숱한 좋은 것들을 놔두고 다시 보잘것없는 것에 매혹되는지, 이를테면 더 그래픽이 뛰어난 다른 게임들을 ‘돌고 돌아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일랜시아〉로 돌아가는지’ 묻고 싶다. ‘과거는 어떻게 유행이 되었는지’가 아니라 ‘우리는 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지’, 이 글은 그것이 궁금하다. 노스탤지어는 일반적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의미했지만 점점 그 대상이 구체적인 시공간으로서의 고향을 넘어 확대되어, 마치 고향과 같은 과거의 어떤 기억과 경험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폭넓게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고향을 그리워하기 위해서는 고향을 떠나거나 고향을 잃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처럼, 노스탤지어의 감정에는 그 대상에 대한 상실과 결핍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에 노스탤지어를 느낀다고 말할 때, 우리는 하나의 고향으로서 해당 시공간, 기억, 경험을 이미 떠났거나 잃어버린 상태이다. 결국, 노스탤지어는 우리가 현재 무엇을 상실하고 결핍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거뿐 아니라 현실과 미래와 연결되는 감정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공유하는 노스탤지어의 감정은 그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상실과 결핍을 반영한다. 우리가 현재 무엇을 상실하고 결핍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서 ‘고향’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향은 사전적으로는 ‘태어나고 자라난 고장’을 의미하지만, 단지 지리적인 의미를 넘어 언어와 습관을 공유하는 집단 혹은 자신이 기원을 느끼는 어떤 추상적인 시공간이 될 수도 있다. 고향은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되는 고정된 기원과 정체성 그 자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노스탤지어는 정체성이 위기를 맞이한 순간에 사회적 현상으로 두드러진다. 범람하는 노스탤지어는 그 자체로 현대사회가 정체성의 훼손을 겪고 있음을 암시한다. 4) 오늘날 노스탤지어는 때로는 그 대상이 모호한 채로 느끼는 근원적인 ‘뿌리 뽑힘’, ‘집 없음’ 등의 감정이며, 이는 현대인들이 필연적으로 겪는 감정이기도 하다. 5) 〈내언니전지현과 나〉에서 주인공인 ‘나’(내언니전지현)가 때로는 ‘나’가 부캐(부 캐릭터)이고 〈일랜시아〉 속 ‘내언니전지현’이 본캐(본 캐릭터) 같다고 말할 때, 그리고 길드원들이 입시, 졸업, 취업, 결혼 등의 어려운 난관으로 가득한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성취감을 얻기 위해 〈일랜시아〉를 다시 방문했다고 말할 때, 이 감정에는 ‘성취감이 가능한 곳으로서의 고향’인 ‘일랜시아’와 그 세계 속 ‘내언니전지현’에게서 뿌리를 느끼는 ‘나’의 불안이 씁쓸하게 개입한다. 도트 그래픽과 단순한 조작법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심지어 직접 플레이하지 않아도 숫자가 올라가는 이 허술하고 단순한 세계는 그 자체로 복잡하고 치열한 현실 세계에 대한 도피처일 뿐 아니라 대응물이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과거의 초라한 세계와 그 세계에서 살았던 유년 시절은 이제 안온하고 편안한 고향의 모습이 되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3-40대가 어린 시절 열심히 했던 슈퍼마리오 게임을 그리워하는 것, 10-20대가 슈퍼마리오 게임을 해본 적 없지만 해당 이미지와 플롯에 이유 모를 애착감을 느끼는 것이 세대의 특정한 경험으로 구분되어 생산과 소비의 관점에서 다르게 해석되기 이전에, 어떤 근원적인 노스탤지어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옛날 게임의 엉성한 세계가 우리 각자의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엉성함 그 자체가 오늘날 우리가 결핍하고 상실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동화라는 가장 엉성한 세계, 그리고 그 동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 어릴 적 우리는 영화, 음악 혹은 소설에서와 달리 게임 속에서 ‘직접’ 걷고, 움직이고, 말하고, 성취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노스탤지어를 가장 많이 불러일으키고, 다른 여가들보다 더 직접적이고 긴밀하게 그리움의 대상으로 데려다 놓을 수 있다. 우리는 (영화에서처럼) 악당을 물리친 영웅을 보았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악당을 물리쳤던 순간을 기억한다” 6) . 다시 〈원숭이 섬의 비밀〉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모험가가 길을 찾는 장면을 보았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험가가 되어 (편지를 쓰고 힌트를 얻어) 길을 찾는 순간을 기억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감독인 조지 루카스가 만든 게임회사 루카스아츠의 〈원숭이 섬의 비밀〉은 1990년에 나왔지만 여전히 어드벤처 게임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19년 후인 2009년에 리메이크되며 많은 게임 이용자들과 스트리머들, 시청자들이 〈원숭이 섬의 비밀〉에 다시 찾기도 했다. 한편,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정말 그야말로 ‘엉성한 세계’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엉성함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이 게임의 주인공 가이브러쉬 쓰립우드는 해적이 되고 싶지만 입만 살아 있는 캐릭터다. 그는 해적들과 검술 결투를 벌여 이겨야 하는데, 이때 승부를 결정하는 것은 검술 능력이 아니라 얼마나 말을 잘 받아칠 수 있는가의 정도이다. 이 세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악당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침 뱉기 대회’를 치러야 하고, 여기서 녹색 침을 뱉기 위해서 녹색 술을 마셔야 하는데 이때의 공략법은 노란 술과 파란 술을 섞어 마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실없는 농담과 엉뚱한 상상력은 모험의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원숭이 섬의 비밀〉은 코믹 어드벤처라는 이름으로 천진하고 엉뚱한 규칙과 규범이 작동하는 세계를 만들어놓고 이용자는 그 안에서 모험을 떠나야 했는데, 8-90년대는 이러한 어드벤처(모험) 장르의 게임들이 가장 부흥했던 시기였다. 12살의 톰슨에게는 현실 논리의 바깥에 있는 이 ‘유치한’ 세계 속에서 ‘안내자 머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래서 톰슨은 직접 편지를 써서 힌트를 얻기로 한다. 실제로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그 시절의 수많은 톰슨‘들’은 스스로 그 얼토당토하지 않은 세계의 모험가가 되었다. “동화는, 신화가 우리의 가슴에 가져다준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 인류가 마련한 가장 오래된 조치들이 무엇이었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동화가 태곳적에 인류에게 가르쳐주었고 또 오늘날에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가장 현명한 조언이 있다면 그것은 신화적 세계의 폭력을 꾀와 무모함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7) 성취가 쉬운 단순한 세계(〈일랜시아〉)와 엉뚱한 상상력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세계(〈원숭이 섬의 비밀〉), 그리고 그러한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 단순하고 엉성하고 허술한 것들에 몰입하고 있던 어린 시절은 ‘지금, 여기’와는 먼 곳에 동화로 남아 있다. 게임은 그 동화로부터 시작한다. 무모한 것으로 신화의 폭력을 해결하는 것, 그것이 가능한 세계가 게임이고 그것을 믿는 세계가 유년 시절이라면 어쩌면 게임은 필연적으로 유년 시절과 노스탤지어와 깊이 관계 맺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 시절의 모험가였던 수많은 톰슨들은 그 조악하고 허술한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됐지만 신화적 세계의 폭력, 현실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악몽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고향을 찾는다. 현실의 절벽을 피해 게임 속 절벽 앞에서 모인 어른들은 옛날 옛적 고향으로 가기 위해 아래로 뛰어내린다. 무모하고 무용하지만, 재밌는 모험이 될지도 모른다. 1) https://grumpygamer.com/monkey25 2) 김소미. (2020. 8. 13). ‘내언니전지현과 나’ 박윤진 감독 – 그 시절의 꿈과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씨네21. URL :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5976 3) Fodor, N. (1950). Variety of Nostalgia, Psychoanalysis, vol, 37. p25. 4) 이하림 (2020). 생경한 그리움 : 경험한 적 없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잔재의 이미지. 미디어, 젠더 & 문화, 35(2), 189-243. 5) Smith, K. (2000), Mere Nostalgia: Notes on a Progressive Paratheory, Rhetoric & Public Affairs, Vol.3, No. 4,.505-527. 6) Hill, M. (2015. 11. 22). Nostalgia Is Running Video Games. The Atlantic. URL: https://www.theatlantic.com/entertainment/archive/2015/11/nostalgia-video-games/416751/ 7) Benjamin, W. 이야기꾼 :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작품에 관한 고찰. In 최성만 (역) (2019). 〈발터 벤야민 선집 9〉. 서울: 길. 448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각문화연구자) 이하림 기억과 이야기와 이미지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쓴다. 공적 기억과 사적 기억이 교차하는 영상 작업에 관심이 있다. 경계에 놓여있는 것들, 정착하고 못하고 부유하는 존재들에 마음이 간다. 요즘은 머뭇대며 다가가는 것, 뒤돌아보며 걸어가는 것이 글과 생활의 방법인 것 같다고 생각 중이다.

  • 숏폼 콘텐츠 유행이 우리에게 남긴 것

    다만 이러한 현실 추수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BM을 긍정해 나가면서 한국 게임 시장은 더욱 노골적으로 메타버스, P2E, NFT 등 현행 법률로 합법화되기 어려운 영역까지 허용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최근의 게임 회사들은 플레이의 외부적 요소로 취급되던 현금과 결제, 캐릭터의 성장 요소를 더욱 외재화하여 환금성을 부추기게 된다면, 이는 한국 게임업계가 그동안 트라우마로 안고 있었던 “바다 이야기” 사태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 Yeop Lee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 Contents at Soonchunhyang University. Researches game storytelling and game design as central concerns, and led the founding of the Busan Indie Connect Festival—a leading indie game festival—where serves as head of the jury. Also a juror for the Independent Games Festival (IGF), one of the most prestigious indie game events internationally. Books include Digital Storytelling (co-authored, 2003), Digital Games: A New Territory of Imagination (2005), Indie Games (2015), Stories Become Transformers (co-authored, 2015), Mario, Born in '81 (co-authored, 2017), The Theory of Games (co-authored, 2019), and Games Are Games: Game × Ecosystem (co-authored, 2021).

  • 최적화하는 재미, 최적화된 세상 - 자동화 시뮬레이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최적화와 효율을 위함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최적화 게임’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산업 자본주의의 최적화를 이뤄온 과정을 따라간다. 물론, 최적화의 재미를 느끼는 게임에서 최적화의 행위를 성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하는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비가시화된 존재들이, 자본주의로 최적화된 우리 사회의 비가시화된 영역을 생각해보게 한다면 그것 또한 게임이 줄 수 있는 의미이지 않을까?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채찍과 당근의 자강두천,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은 플레이어의 행동 패턴을 유도하고 또 감정선을 조절하는데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때론 위협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면서, 무작정 사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범위 안에 플레이어의 경험을 위치시키기 위해 수많은 요소가 무대 뒤에서 암약한다. 마치 영화 ‘캐빈 인 더 우즈’ 에서 미스터리 단체의 직원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하나씩 위협을 던져주며 가지고 놀듯이 말이다. 만약 이런 시선으로 공포 게임을 본다면, 이제는 한 번쯤 그 의도와 예상을 부숴주겠다는 불순한 생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Back 채찍과 당근의 자강두천,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 10 GG Vol. 23. 2. 10. 밸브의 게임 ‘포탈 2’ 에는 특이하게도 코멘터리 모드가 있다. 이는 일종의 영화 DVD 에 들어있는 코멘터리 특전처럼, 개발자들이 어떻게 게임을 만들고 고쳐나갔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이 이 게임을 만든 과정은 마치 소설을 짓는 것과 같은 작성과 무수한 퇴고의 연속이다. ‘포탈 2’ 는 퍼즐을 중심으로 한 게임이고, 이들의 고민은 그렇다. 이 퍼즐을 어떻게 풀도록 설계했는가? 그 설계가 어떻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나? 보완하기 위해 어떤 변화를 주었나? 플레이어가 이 설계를 어떻게 이해하도록 할 것인가?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유도한 플레이에서 벗어나는가? 그 벗어난 플레이가 허용 가능한가, 아니면 게임의 핵심을 해치고 있는가? 이러한 수많은 고민이 뭉쳐 어떻게 최종 버전의 게임이 완성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 ‘포탈 2’ 코멘터리 모드 지금까지도 기억이 나는 예시가 하나 있다. 이 퍼즐의 최초 버전은 플레이어의 시작 위치와 출구가 바로 보이는 탁 트인 형태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자 플레이어들은 퍼즐을 정상적으로 풀어내지 않고 출구 근처로 바로 포탈을 만들어 퍼즐을 ‘무시’ 했다. 그러자 개발자들은 시작 위치와 출구 사이에 큰 벽을 설치했다. 그러자 이제는 플레이어들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퍼즐을 제대로 풀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벽을 반쯤 투명한 유리벽으로 바꾸어 출구가 보이면서도 동시에 플레이어가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자 비로소 플레이어들은 퍼즐을 제대로 풀면서 기획자의 의도대로 게임을 플레이해 나갔다. 이 과정 자체가 바로 게임의 UX 디자인에 대한 매우 적절한 설명이다. ‘포탈 2’ 의 제작사 밸브는 ‘하프 라이프’ 시절부터 이처럼 잘 유도된 플레이어 경험을 짜는 능력이 뛰어난 회사였다. 이와 함께 밸브의 게임 중 또다른 작품은 새로운 방식으로 특정 장르적 UX에 접근한다. 공포 게임이자 4인 협동 게임, ‘레프트 4 데드’다. 그때까지 공포 게임은 놀이공원의 다크라이드와 유사한 방식이 주류였다. 즉 주어진 동선, 레일이 있고, 이 동선을 따라가면서 발동하는 트리거들로 적이 등장하거나, 이벤트가 발생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레프트 4 데드’ 는 이런 다소 고전적인, 배치된 오브젝트나 동선 설계처럼 게임 내에 이미 구성되어 변하지 않는 고정 요소를 넘어서서 실시간으로 플레이를 측정하고 이에 따라 플레이 환경을 바꾸는 ‘감독 AI 시스템’ 을 도입했다. 이는 이전부터 있었던 적응형 난이도 시스템의 변형이지만, 공포 게임에 적극적으로 사용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낳았다. * ‘레프트 4 데드’ 의 감독 AI는 당시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감독 시스템의 요지는 이렇다. 플레이어의 스테이터스, 잔탄량, 위치 등 여러 모니터링 정보를 통해 플레이어의 현재 스트레스를 가늠한다. 그렇게 측정된 스트레스치를 기반으로 더 많은 적을 등장시킬지, 적을 줄일지, 또는 치료제를 제공할지, 다음 아이템 드롭에서 총알을 제공할지 등을 판단한다. 이 때문에 플레이어가 겪는 현재의 경험은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게 적절한 상승과 하강의 곡선을 타도록 조율된다. 이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감독 시스템 자체보다는, 이러한 실시간 모니터링을 기반으로 한 난이도 조정 툴이 필요할 만큼 공포 게임의 UX는 다른 게임에 비해 독특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여러 게임의 테마 중에서 공포 게임은 그 경험을 설계하기에 가장 어려운 편에 속한다. 이름 자체는 공포이지만, 결국 그 안에서 벌어지는 플레이란 플레이어가 공포를 최대한 회피하고, 또는 그 원인을 찾아내 공포를 해소하는데 중점을 둔다. 이는 공포 게임이 다른 공포 콘텐츠(즉, 공포 영화 같은)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포 영화는 콘텐츠 수용자 입장에서 그저 관찰할 수 밖에 없는 일방적인 수용의 입장에 놓이게 되지만 공포 게임에서는 그 공포에 저항하고, 직접적으로 해소하는 역할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암네시아’ 시리즈로 대표되는, 공포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제거할 수 없고 피해다녀야 하는 게임들도 그처럼 플레이어의 회피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훨씬 능동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래서 공포 게임에서의 경험 설계는 더 나아가 어떻게 ‘공포’ 가 총합으로서 긍정적인 체험이 될 수 하는가 하는 고민도 담겨있다. 공포는 그 자체로는 상당히 부정적인 감정이며 불쾌함을 유발하고, 우리가 공포 게임에서 느끼는 쾌락은 그 공포 이후에 이를 극복하고 다시 평정 상태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즉, 좋은 공포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그 UX는 항상 시련과 극복의 연쇄가 될 수 밖에 없다. 공포 게임은 이러한 시련의 과정을 설계하는 방법, 그리고 공포라는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 등에서 많은 고민과 발전의 과정이 있어왔다. 여기에 더불어 사람은 어떤 감각 요인, 또는 자극에 적응하고 둔감해진다는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즉 공포, 또는 공포를 직접 느끼기 바로 전 단계의 긴장은 항상 적정 범위 내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그 적정 범위는 변동성이 있으며 심지어 순간적으로 큰 폭의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다른 게임들에 비해 감정이 관여하는 바가 큰 경험이기에 특히나 그런 면이 부각된다. 최근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칼리스토 프로토콜’ 과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 는 한명의 창조자에게서 출발한 공포 게임이지만 긴장감의 조절에서 서로 다른 방법론을 채택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은 굉장히 전통적인 방법의, 맵 곳곳에 수많은 트리거를 숨겨두는 방법과 적 AI 의 강화를 필두로 이 긴장감을 조율한다.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는 원작에 없던 감독 시스템을 고정된 트리거 들을 제외하면 매 플레이마다 다른 패턴으로 적이 등장한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의 개발자는 한 인터뷰에서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을 ‘호러 엔지니어링’ 이라고 칭했다. 이는 비단 전투 뿐만 아니라 게임 전체의 흐름을 조절하는 요소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은 각 전투의 거리를 좁히고 밀도를 높여, 정해진 레일을 뚫고 가면서 일정 구간을 통과하면 저장하고 다시 일정 구간을 뚫고 가는 일종의 갱신을 하는 느낌의 플레이 구성이다. 하지만 ‘데스 스페이스 리메이크’ 는 리메이크를 통해 오픈월드의 느낌을 가져왔고, 때문에 하나의 레일을 따라 트리거를 배치하는 식으로는 플레이어가 만들어내는 여러 변수에 대처할 수 없기에 감독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직접 레일 위의 난이도 조건을 조절하느냐, 또는 감독 시스템을 활용하느냐는 그 결과물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말그대로 방법론의 차이이다. 예컨대 게임의 맵을 디자인하는데 있어 미리 정해진 맵을 제공할 것인지, 특정 패턴에 기반한 절차적 생성 기법을 활용할 것인지 하는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 중요한건 어떤 방법을 쓰느냐가 아닌 최종적으로 어떤 플레이어의 행동을 유도하고 의도했는지다. 아무리 감독 시스템을 활용한다 하더라도 그 최종 상태에 대한 기준이 잘못되었다면 제대로 된 행동 패턴을 유도하기 어렵다. 그리고 플레이어의 감정선을 조절하기 위한 노력들도 살펴볼 수 있는데, 첫번째로는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대리인, 즉 게임 내 아바타와 실제 플레이어와의 거리감 조절이다. 이를 위한 도구 중 하나가 공포 게임의 UX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부분이 구성 요소 중 하나인 UI 다. 두 게임의 공통 조상인 ‘데드 스페이스’ 를 포함해 이들 게임은 다이제틱 UI 를 사용한다. * 몰입감에 극도로 집중한 UI를 보여주는 ‘칼리스토 프로토콜’ 다이제틱 UI 와 논-다이제틱 UI 에 대한 가장 빠른 설명은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2’ 로 가능하다. 이 게임에서는 하나의 게임으로 이 두가지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데, 트럭에 부착된 계기반으로 속도를 확인하면 다이제틱 UI, 그게 아니라 화면 구석에 고정된 네비게이션 창으로 속도를 확인하면 논-다이제틱 UI를 사용하는 것이다. 즉 논-다이제틱 UI 는 플레이어와 게임 속 세계 사이에 한겹의 필터가 있는 것과 같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과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 는 이 부분을 제거하고 캐릭터의 등에 달린 장비로 HP를, 총기에 달린 부품으로 잔탄량을 표시하고 인벤토리, 아이템 정보 등도 게임 내 홀로그램 같은 방식으로 처리된다. 이런 UI는 필수적인 부분 외의 정보량을 제한하며 현실감을 더 적게 저해하기에 소위 말하는 ‘몰입감’ 을 강조하게 된다. 어느 시점부터 다이제틱 UI 는 공포 게임의 기본 소양처럼 되었는데, 몰입 엔터테인먼트로서 공포 게임은 감정선을 플레이어가 자신이 조종하는 캐릭터가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차원(현실-게임 속)의 경계를 드러내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다이제틱 UI 를 위시한 여러 몰입 기믹을 사용하더라도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전투 음악 같은 음향효과가 그렇다. 이런 요소는 오히려 현실감을 위해서는 현장의 소리 외엔 없어야 하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런 음향효과들은 일종의 가이드로서 플레이어의 감정선과 고양감을 다가올 사건에 앞서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아무런 전조도 없이 뒤에서 튀어나온 적에게 바로 공격당해 죽는다면,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전조없이 일방적으로 당한, 소위 ‘억까’ 라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적이 등장하기 직전, 또는 등장 후 공격받기 전 특정한 음향이나 또는 전투음악 같은게 흘러나온다면 플레이어는 위협을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곧 위협이 다가온다는 걸 심리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이는 철저히 비현실적이고 게임이기에 가능한, 일종의 초현실적 요소이지만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에서는 필수적인 부분이다. 즉, 공포 게임은 일방적으로 플레이어를 겁주고 위협하는게 아니라 꽤나 정당하게 주고 받으며 플레이어와 놀아주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어떤 수를 써볼까?” “음… 일단 한 번 죽게 만들까요?”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은 플레이어의 행동 패턴을 유도하고 또 감정선을 조절하는데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때론 위협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면서, 무작정 사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범위 안에 플레이어의 경험을 위치시키기 위해 수많은 요소가 무대 뒤에서 암약한다. 마치 영화 ‘캐빈 인 더 우즈’ 에서 미스터리 단체의 직원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하나씩 위협을 던져주며 가지고 놀듯이 말이다. 만약 이런 시선으로 공포 게임을 본다면, 이제는 한 번쯤 그 의도와 예상을 부숴주겠다는 불순한 생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불투명한 인터페이스: 연결과 차단 사이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도록 디자인된 ‘작동이 되지 않는’ 인터페이스는 그저 배경으로 남는 것일까? 이 질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 인터페이스의 분류 방법을 경유할 필요가 있다. < Back 불투명한 인터페이스: 연결과 차단 사이 22 GG Vol. 25. 2. 10. 컴퓨터를 격파하는 법 인터넷을 배회하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분노에 찬 누군가가 컴퓨터나 모니터 (혹은 프린터와 같은 여타의 주변 기기들)를 때려 부수는 밈과 마주친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온 이 밈의 시작은 1997년에 무려 이메일을 통해서 바이럴된 영상이다. [1] 시기를 고려하면 놀랍지 않게도 이 영상은 인터넷 최초의 바이럴 영상 중 하나로 여겨진다. 즉 컴퓨터를 ‘격파’하는 밈은 그 자체로 밈의 역사이자 현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 카타르시스 충만한 밈은 어째서 죽지도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일까. 바꿔 말하면 이 밈은 왜 여전히 작동하는 것일까. 물론 부수지 말아야 할 것을 부숴버리는 쾌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좀 더 농담을 다큐로 받아 보자. 특정한 세부 장르의 서로 다른 작품들이 어떤 공통된 내러티브적 요소들을 공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컴퓨터 격파 밈’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뼈대를 갖추고 있다. 모니터 안의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좌절 혹은 공포에 휩싸인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그 모니터 혹은 컴퓨터 전체를 때려 부순다. * 전설이 되어 버린 “badday.mpg” 흥미로운 지점은 그들에게 좌절 혹은 공포를 준 대상과 그들이 때려 부수는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모니터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오롯이 모니터의 스크린과 키보드 혹은 프린터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상징적 인터페이스(GUI)에서 받은 충격을 엉뚱하게 기계적 인터페이스(스크린, 키보드)에 화풀이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러한 간극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은 모니터 속 전자 회로의 논리적 구조에 직접 접속이라도 할 것처럼 주먹으로 모니터를 꿰뚫어 버린다. 인터페이스는 연결하지만, 또 차단한다. 그에 따라 우리의 신체는 진화/퇴화와 최적화 사이를 불안정하게 진동한다. ‘컴퓨터 격파 밈’은 인터페이스가 처한 아포리아에 관한 우화이면서 동시에 ‘완벽한’ 해결책도 제시하는 것이다. 너무 심각하게 고민할 것 없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 버리라고. 그런데 매듭이 끊어지는 순간 도래하는 것은 카리스마에 압도된 고요함 같은 것이 아니라 터무니없다는 웃음이다. 안타깝지만 진심 어린 펀치로도 그 모든 복잡다단한 인터페이스의 레이어들을 뚫고 추상 기계라는 ‘물자체’에 다다를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주먹이 가닿을 수 있는 부분은 오직 인터페이스 뿐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밈의 과도한 액션들은 일종의 부조리극으로 기능한다. 밈을 보는 사람들은 뜬금없이 강렬한 타격에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 동시에 인터페이스에 내재한 긴장 관계가 이런 식으로 해소될 수 없음을 갑작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끊어야 할 매듭도 없다는 진실도. 이것이 ‘컴퓨터 격파 밈’이 지금까지 작동을 멈추지 않은 이유이다. 인터페이스에 대한 탐구는 계속된다. 유동하는 인터페이스 인터페이스는 편재한다. 이 문장은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이제는 거의 모두가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일과 여가를 가리지 않고 쓰게 되는 랩탑/컴퓨터 그리고 우후죽순 늘어나는 식당/카페의 키오스크까지, 사람들은 지금도 손가락을 열심히 놀려서 무언가를 쓰다듬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처럼 디지털 기기들이 일상을 완전히 에워싸기 전에도 인터페이스는 도처에 있었다. 현재의 디지털 환경을 가능하게 만든 핵심적인 조건 중 하나인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기 전의 시기를 떠올려 보자. 1930년대의 경성을 정처 없이 떠도는 소설가 구보씨의 의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인터페이스에 직면한다. 구보씨가 타고 다니는 ‘전차’에서부터 백화점의 ‘승강기’, ‘전기 보청기’, ‘경성역’, ‘자동차’, ‘축음기’, ‘자전거’, ‘전화’, “'간다(神田)' 어느 철물점에서” 구입한 “한 개의 '네일 클립퍼'”까지. 요컨대 인터페이스는 ‘편재해 왔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명백한 시대적 차이는 차치하고라도 1930년대의 경성과 2020년대의 서울은 편재하는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연속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을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서는 ‘도처에 있음’이라는 말 속에 혼재하는 다른 두 인터페이스의 맥락을 서로 떼어놓고 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폰 노이만 구조의 발명이 그 둘 사이를 가르는 가장 선명한 구분 선이 될 수 있을 텐데, 왜냐하면 이 구조의 컴퓨터는 (애니악ENIAC과는 달리) 소프트웨어적으로 프로그램을 구현할 수 있게 됨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더 고도의 추상화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저 인터페이스의 측면 뿐 아니라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의 측면에서도 인터페이스와 하드웨어 작동 사이의 부분적인 단절은 더욱 심화한다 . [2] 이 구도는 박해천이 쓴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상기시킨다. “ 기계 테크놀로지는 우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리적 형식으로 존재했다. 이런 시각적 연속성 덕분에, 특정한 조형 언어로 그것을 상징화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반면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스크린을 통해서만 자신의 현존성을 드러낼 뿐, 언제나 조형 언어의 상징적 질서로부터 미끄러져 나간다. 실제로 디지털 제품의 전자 회로는, 우리가 경험하는 물리적 세계와 감각적으로 불연속적인, 그래서 종종 ‘탈물질적’이라고 과장되곤 하는 미세한 전자들의 운동에 의해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 [3] 관건은 (기계 테크놀로지와는 달리) 트랜지스터에 기반한 디지털 기기들에는 인터페이스가 ‘잘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인터페이스 자체를 독립적인 개념으로서 부각하면서 내적인 완결성을 갖춘 하나의 체계가 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인터페이스 역시 디지털 테크놀로지로부터 “미끄러져 나간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개인 컴퓨터에서 가상 머신virtual machine을 구축하거나 혹은 가상화virtualization 기술을 사용한 서버들이 밀집된 데이터 센터에 기반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때, 실행 중인 프로그램은 API를 통해서 가상의 하드웨어가 제공하는 컴퓨팅 리소스를 할당받는 방식으로 물리적인 하드웨어와의 관계로부터 다시 한번 추상화한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의 경험 또한 이와 같은 미끄러짐을 가시적으로 잘 드러낸다. 특히 비디오 게임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데, 왜냐하면 게임은 하드웨어적인 연산을 요구하는 소프트웨어인 동시에 그 연산을 ‘시스템적으로’ 비껴가는 놀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게임이 그래픽 하드웨어의 발전과 밀접하게 맞물려 왔던 역사적 맥락은 이 미디어가 초기부터 지금까지 선형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식의 목적론적인 환상을 강화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되는 지점은 게임이, 테크크런치 디스럽트Techcrunch Disrupt와 같은 행사에서 어떤 스타트업이 공들여 만든 데모처럼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혁신적인 컴퓨팅 기술을 향한 집착은 게임의 욕망과 완전히 겹치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의 역사는 한정된 컴퓨팅 자원의 제약 속에서 인터페이스적 ‘눈속임’의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 사례들로 가득하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들은 당시 디스플레이 기술의 한계를 텍스트로 극복해 보려는 텍스트 어드벤쳐 게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 [4] 에서 장르의 기원부터 인터페이스-하드웨어의 긴장 관계를 내포한다. 이러한 특성은 이 장르의 커뮤니티가 누구보다도 깐깐한 ‘고인물’들로 가득하다는 맥락과 결합하면서 장르적 전형archetype의 핵심으로 전면화한다. 따라서 하드웨어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2023년에 발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스테이시스: 본 토템>은 마치 살아있는 화석처럼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이 ‘응당’ 따라야 하는 많은 관습적인 디테일을 유지한다. 이를테면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서 ‘작동이 되는’ 인터페이스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이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의 의미인데, 그것을 찾지 못하면 게임이 실패한 숨은그림찾기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게임에서 ‘퍼즐’은 먼저 적절한 인터페이스를 발견한 다음 그것과 올바르게 상호작용을 하는 법을 알아내는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과정 중에 플레이어들은 상황적인 증거를 긁어모아서 머릿속으로 ‘연산’하거나 혹은 ‘숨은그림’이 숨겨진 스크린을 마우스로 하릴없이 여기저기 찔러보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쓰게 된다. 결국 작동하는 인터페이스와 상호 작용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또한 본격적인 하드웨어적 연산이 발생하는) ‘실감나는’ 과정은 실제 게임 플레이 중 극히 일부 순간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도록 디자인된 ‘작동이 되지 않는’ 인터페이스는 그저 배경으로 남는 것일까? 이 질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 인터페이스의 분류 방법을 경유할 필요가 있다. 게임 유저 인터페이스UI는 크게 다이어제틱(diegetic) UI와 논다이어제틱(nondiegetic) UI로 나뉜다. 이런 식으로 나뉘는 기준은 게임이 창출하는 허구의 세계가 UI를 인지하고 그에 따라 반응하는가의 여부다. [5] 일례로 <디아블로> 시리즈의 시그니처와도 같았던 (지금은 사라진) 오버레이 맵은 전형적인 논다이어제틱 UI라고 볼 수 있다. * 와우의 압도적인(?) UI HUD(head-up display)로 대표되는 논다이어제틱 UI는 군사적인 기원에 걸맞게, 플레이어들이 더 효율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추상화된 형태(막대그래프,미니맵,그리드 인벤토리 시스템 등)로 빠르게 전달한다. 알렉산더 R. 갤러웨이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미지의 다이어제틱한 공간의 가치는 강등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매우 복잡한 논다이어제틱 의미작용에 의해서 결정된다" [6] 라고 썼다. 이 문장은 논다이어제틱 UI가 낭만적인 판타지 픽션의 공간을 어떤 식으로 ‘전쟁상황실’로 탈바꿈시키는지 간결하게 짚어낸다. 반면 <스테이시스: 본 토템>은 다이어제틱 UI에 대부분의 상호 작용을 의존한다. 추상적인 형태의 정보 전달은 지양되며, 플레이어들은 아이소메트릭 뷰로 표현된 이 디스토피아의 공간에 좀 더 시각적인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심지어는 인벤토리 창에 있는 아이템을 다른 공간에 있는 캐릭터에게 클릭 한 번으로 넘기는 (매우 논다이어제틱하게 느껴지는) 기능마저 QSD(Quantum Storage Device)라는 이름의 기술로 그 세계 내에서 정당화된다. 이처럼 UI는 스테이시스의 ‘배경’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플레이어들은 배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떼어다가 아이템으로 만들 수도 있다. 또는 그 아이템들을 이리저리 주물럭거리거나, 조합해서 다시 배경으로 되돌려 놓을 수도 있다. ‘작동하지 않는’ 인터페이스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다소 기묘한 순서의 과정을 거쳐서 ‘작동하는’ 인터페이스가 되기도 한다. 그와 같은 프로세스를 여러 번 겪다 보면, 배경/전경 그리고 ‘작동하는/작동하지 않는’의 임의적인 이분법은 희미해진다. 플레이어들은 탐정이라도 된 듯이 집요하게 인터페이스를 쫓지만, 인터페이스는 마치 유령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출몰했다가 다시 사라진다. 입력과 출력의 이벤트 호라이즌 이렇듯 인터페이스와 하드웨어 사이의 어긋남은 (기술의 발전 경로에서 비롯된) 어느 정도 내재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에 비해 인터페이스와 유저들의 신체 사이에서의 ‘단절’은 플레이어들의 심리가 결부된 디지털 게임의 산업적인 추세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후자의 케이스에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앞서 이야기했던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맥락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다시 말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인터페이스의 미끄러짐은 하드웨어의 ‘실제적인’ 작동과는 다소 독립적으로 디지털 인터페이스 자체의 논리를 유도한다. 그것의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오히려 폴더의 리얼리티 효과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용자가 폴더를 더블 클릭한 이후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즉 사용자가 납득하고 예측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 사건들이 전개될 때, 아이콘의 리얼리티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과성의 원리’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핵심 원리라고 할 수 있다....(중략).... 결과적으로 스크린의 기호 체계는 입력과 출력의 인과율이 지배하게 된다.” [7] 애초에 유저들을 기만하기 위해 설계된 다양한 종류의 다크 패턴이나 유저 인터페이스의 인과성 자체를 거의 사보타주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광고 페이지들을 제외하면, 위 인용문에서 제시된 원리는 2025년 현재도 많은 디지털 인터페이스에서 동일하게 유지된다. 즉 인터페이스가 하드웨어의 작동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과는 별개로 스크린 내에서는 원인(입력)에 따른 결과(출력)가 확고하게 ‘인과적’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에서는 이러한 인과성의 원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한다. 먼저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에 걸쳐 있는 케이스부터 시작해 보자. 입력 버퍼링은 특히 플랫폼 게임이나 대전 격투 게임과 같은 장르를 개발할 때 널리 쓰이는 트릭이다. 이 두 장르의 공통점은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세심하고 복잡한 컨트롤이 요구되며, 실패할 시 패널티가 즉각적으로 부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런 버퍼 윈도우 없이 게임을 디자인하게 되면 (입력과 출력의 타이밍이 ‘정확’하더라도) 플레이어들은 게임이 불공평하며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개발자들은 점프한 캐릭터의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다시 점프 버튼을 누른다고 해도 그 입력이 캐릭터의 다음 행동에 반영이 되도록 하는 식으로 적당한 수준의 버퍼 윈도우를 설정한다. 혹은 대전 격투 게임에서 필살기를 쓰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복잡한 버튼 연타와 조이스틱 움직임을 다른 행동 중에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다음 액션에 반영된다. 물론 이와 같은 입력과 출력 사이의 의도적인 지연은 여전히 인과성 내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게임마다 다른 버퍼 윈도우의 임의적인 길이는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트리트 파이터 6>의 경우 상당히 긴 버퍼 윈도우로 인해서 입력한 필살기의 커맨드가 전혀 엉뚱한 순간에 발현되는 불만들이 플레이어들에게서 자주 제기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게이머들은 일상적으로 인과성의 작은 ‘균열’을 종종 감지한다. 그런데 이 케이스에서 더 눈여겨봐야 할 점은 입력 버퍼링이라는 트릭 자체가 플레이어의 주관적 경험에 초점을 맞춘 ‘최적화’를 위해 고안되었다는 사실이다. 게임과 여타 유틸리티 앱의 목적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게임의 최적화는 생산성의 향상 따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대부분의 유틸리티 프로그램들의 목적은 효율적인 일 처리다. 따라서 입력과 출력의 확고한 인과성은 업무를 최적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된다. 게임의 목적은 ‘효율적인 일 처리’가 아닌 모든 것이다. 그러므로 “입력과 출력의 인과율”은 노는 데에 방해가 된다면 적당히 무시해도 된다. 아니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 완전히 깨뜨리는 것도 괜찮다. 단,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그것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감각/착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인터페이스를 완벽히 컨트롤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얻는 효능감은 게임플레이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최적화란 인터페이스적 감각 속임인 셈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전자오락, 게이머, 인터페이스의 공진화> [8] 에 등장하는 한국 조이스틱의 특수한 진화 과정이다. 과거 오락실에서는 소모품인 조이스틱을 주기적으로 교체하거나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게이머들은 오래되어서 유격이 심한 조이스틱에 익숙해진 채로 동작이 큰 그들 나름의 게임플레이를 발전시켰다. 따라서 이후에 등장한 조이스틱들은 새 제품이라 유격이 적었음에도 한국 게이머들의 습관에 맞춰서 일부러 입력값을 민감하지 않게, 즉 의도적으로 ‘멍청하게’ 만들어 왔다는 이야기다. 입력 버퍼링의 사례에서 균열을 잠시 엿볼 수 있었다면, 한국 조이스틱의 예시는 게임의 최적화가 입력과 출력의 인과율을 어떤 식으로 교란하는가에 대한 어떤 범례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유저 편의성’을 향한 인과율의 침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간다. 딥러닝을 활용해서 더 적은 컴퓨팅 파워로 업스케일링을 구현하는 기술로서 출발했던 엔비디아의 DLSS(Deep Learning Super Sampling)는 최근 출시한 DLSS 4에 이르면 래스터화로 렌더링된 프레임 하나당 뉴럴neural 렌더링으로 생성된 프레임이 최대 3개까지 더해지는 일종의 실시간 AI 그래픽 생성 기술로 탈바꿈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적 성취가 인터페이스의 인과성과 대체 무슨 상관일까. 이를 연결 짓기 위해서는 게임의 프레임과 입력 지연시간 사이의 관계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 생성된 프레임이 더해질수록 입력 지연시간은 꾸준히 상승한다. 통상적으로 게임의 초당 프레임 개수가 많아질수록 입력 지연시간은 줄어든다. 스크린을 초당 30번 리프레쉬하는 것보다는 60번 리프레쉬 할 때 플레이어가 입력한 값이 바로 다음 프레임에 반영되는 시간 간격이 훨씬 짧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이 높아질수록 게임의 ‘손맛’은 더욱 찰져진다. 특히 거의 자동반사적인 컨트롤이 요구되는 멀티플레이어 FPS 게임을 주로 즐기는 플레이어들이 프레임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와 같은 반비례 관계는 프레임의 일부분을 뉴럴 렌더링에 의존하는 DLSS 업스케일링까지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런데 뉴럴 렌더링만을 이용해서 프레임을 완전히 새로 ‘생성’해 내는 DLSS 4의 멀티 프레임 생성MFG 단계에 이르면, 흥미롭게도 프레임의 개수가 몇 배로 불어나는 동안 입력 지연시간은 극적으로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소폭 상승한다. [9] 여기서 곧바로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곱절로 더해진 뉴럴 렌더링된 프레임들이 플레이어의 입력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렌더링 된 프레임들 사이의 ‘빈 시간’을 픽셀 하나하나의 다음 위치를 예측하는 식으로 꼼꼼하게 채워 넣는 AI 연산의 복잡한 과정에는 유저의 ‘인풋’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멀티 프레임 생성 기능을 최대로 설정해 놓고 게임을 플레이할 때, 스크린에 출력되는 대부분의 이미지는 나의 입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다른 무언가라고 봐야 한다. 입력과 출력의 확고했던 인과율은 느슨하고 불투명한 상관관계로 대체된다. 연결이 되지 않아.... 인터페이스는 직접적으로는 상호 작용이 불가능한 것들을 맞붙이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그러나 그 필요성이 이것은 그저 투명하고 ‘필연적인’ 연결 장치라는 서사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인터페이스는 연결하지만, 또 차단하며, 때로는 연결된 관계 전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일그러뜨리기도 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그것은 ‘확장된 기계’나 ‘확장된 신체’로서 단순히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신체를, 그러니까 연루된 모든 것들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할 수 있는 능동적인 행위자다. 따라서 인터페이스는 어떤 번역을 위한 도구로 혹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장치로 납작하게 이야기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표면 장력이 어마어마한 총체적인 디지털 표면에 가깝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투명한 표면 아래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많은 경우 바로 그 표면이 우리의 감각을 끊임없이 ‘최적화’한다. 플레이어의 입력 없이도 다음 프레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동 사냥’이 전면화된 시대에 우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 가는 중이다. 인터페이스에서 오는 미세한 감각에 오랜 시간을 쏟아온 게이머라면 말 그대로 몸으로 동의할 것이다. 게임은 진정으로 우리의 인생을 바꿔버린 것이다. [1] 클라우드는커녕 소셜 미디어도 이제 막 태동하던 시절이라 이 막대한(?) 용량의 영상은 이메일 주소를 타고 돌며, 다수의 이메일 서버를 다운시켰다. Joe Veix, “The Strange History of One of the Internet's First Viral Videos” Wired 2018.01.12. https://www.wired.com/story/history-of-the-first-viral-video/ [2] 스위칭 소자를 직접 배선으로 이은 하드웨어적인 프로그래밍에 기반한 애니악조차도 진공관과 스위치의 미세한 움직임들을 2진법으로 추상화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3] 박해천,『인터페이스 연대기』, 디자인플럭스, 2009, 166. [4] AG Staff, “An overview of genre history, by The Art of Point-and-Click Adventure Games: Part I” Adventure Gamers 2020.06.12. https://adventuregamers.com/articles/view/an-overview-of-genre-history-by-the-art-of-point-and-click-adventure-games [5] 영화에서 배경음악은 대표적인 논다이어제틱 사운드 중 하나다. 공포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으스스한 음악이 그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6] Alexander R. Galloway, The Interface Effect (Cambridge, UK: Polity Press, 2012), 51. [7] 박해천,『인터페이스 연대기』, 디자인플럭스, 2009, 174. [8] 전은기, “전자오락, 게이머, 인터페이스의 공진화” 게임제너레이션, 2021.08.10.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9adda44f-a475-4385-9b30-35cd4146581f [9] Digital Foundry, “Nvidia GeForce RTX 5090 Review: The Fastest Gaming GPU (A Lot Of) Money Can Buy” YouTube 2025.01.24. https://www.youtube.com/watch?v=Dk3fECI-fmw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웜뱃 잡다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역시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게임에는 특히 관심이 더 많습니다.

  • 압둘 와합과 〈21DAYS〉를 플레이하다

    필자는 최근 압둘 와합과 〈21Days〉를 같이 플레이해 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을 다룬 이야기가 드문 가운데 그것도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게임적 형식이라는 점이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압둘 와합(Abdul Wahab Al Mohammad Agha)은 시리아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활동을 하다 시리아 내 한국 유학생들을 친구를 둔 인연으로 2009년에 처음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2011년 고국의 민주화 시위 이후 복잡하게 전개된 내전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는 ‘헬프 시리아’라는 단체를 만들며 시리아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난민들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 Back 압둘 와합과 〈21DAYS〉를 플레이하다 04 GG Vol. 22. 2. 10. 시리아 난민을 다룬 시리어스 게임 〈 21Days 〉(2017)는 독일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 모하메드 쉐누가 자신의 가족들을 기다리며, 21일동안 노동과 교육, 외로움과 편견으로부터 견뎌내는 경험을 다루고 있다. 서울대 정보문화학 연합전공 수업 〈게임의 이해〉를 통해 만난 현유지, 고은비, 최우빈, 김진형, 이원석 등이 이정엽 교수의 코디네이팅을 받아 출시했다. 제작자들은 게임연구자 이안 보고스트의 시리어스 게임이론을 기초로 플레이어가 퀘스트 완료에 성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실패하도록 만듦으로써 난민의 현실을 드러내는 게임 디자인을 추구했다. 필자는 최근 압둘 와합과 〈21Days〉를 같이 플레이해 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을 다룬 이야기가 드문 가운데 그것도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게임적 형식이라는 점이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압둘 와합(Abdul Wahab Al Mohammad Agha)은 시리아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활동을 하다 시리아 내 한국 유학생들을 친구를 둔 인연으로 2009년에 처음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2011년 고국의 민주화 시위 이후 복잡하게 전개된 내전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는 ‘헬프 시리아’라는 단체를 만들며 시리아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난민들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난민에 대한 막연한 혐오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스토리텔링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토리텔링은 나와 다른 자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그들 또한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유일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이야기라도 게임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특이성이 있을까? 당사자 입장을 가진 플레이어로서 압둘 와합이 느낀 바를 중심으로 기록해 보았다. 이는 컴퓨터 게임이라는 형식에 대해, 타자의 입장을 플레이한다는 윤리적 당위를 넘어서 그 입장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설계하는 것이 더 좋을 지 논평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몇 가지 비판적인 발언으로 시리아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감에 따라 여권 갱신 등이 자유롭지 않아 활동에 제약이 생긴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귀화뿐이었다. 압둘 와합은 2020년 10월 한국에 귀화했다. * 교사 김혜진이 저술한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2021, 원더박스) 표지 - 게임 하기 앞서 Q: 압둘 와합은 게임을 즐겨했었나? A: 유년시절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주로 경험해 보았다. 축구게임같은 스포츠 게임을 친구들과 했었다. 게임을 자주 하기에는 언제나 부모님의 잔소리가 많으셨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웃음) 요즘 사람들처럼 깊게 파고 든 적은 없었다. Q: 오늘 플레이할 게임은 조작이 어렵거나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지는 않으니 저와 상의하면서 플레이하면 될 것 같다. A: 좋다. - 0Days 압둘 와합은 게임의 첫장면, 난민관리국에서 모하메드의 난민인정이 신속하게 이뤄지는 부분에서 놀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 게임이 시작부터 가장 어려운 것을 해결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에서는 난민인정을 받기까지 신원조회부터 적응교육까지 여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는 “게임에서지만 가장 어려운 것을 시작부터 이루게 되어 기쁘네요.”라고 말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같은 상황은 게임 디자인 안에서 의도된 것이었다. 그 동안 난민 소재의 시리어스 게임들이 주로 유럽지역 탈출루트 이동의 어려움이나 난민캠프에서 어려움을 극적으로 게임화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21days〉는 그러한 고난이 끝나고도 발생하는 일상의 어려움을 시뮬레이션 하고자 했다. 그들이 한 사회에 들어와 겪는 노동의 고단함과 차별 또한 난민의 고통이지만 표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임 상에서 주인공 모하메드는 자신의 난민인정 이후 아내와 아들을 독일에 무사히 도착하게 해 UN의 가족결합원칙 하에 난민인정을 받게 만드는 일을 목표로 삼게 된다. 이제부터 플레이어는 이를 위해 브로커를 고용할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압둘 와합은 모하메드가 받아든 난민인정 증명서의 국적이 ‘RYSIA’인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것이 제작진의 오타인가 싶었지만 이 또한 의도된 것으로 실제하는 시리아 난민뿐 아니라 모든 난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특정 국가를 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게임적 의도는 게임이 끝난 후 제작자에게 문의하여 압둘 와합에게 알려주었다. - 1 Days 우리는 모하메드를 난민관리국이 소개해 준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도록 했다. 공사장 반장에게 일에 대해 설명을 받는 데, 자막 곳곳에 ㅁㅁ표시로 구멍이 나서 자세한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다. 아직은 모하메드의 언어능력이 좋지 않아 독일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벽돌을 나르는 일 같은데, 대충 알아듣고 한 것으로 처리가 되었다. 3시간 30분을 일하고 80시리를 받았다. 압둘 와합은 이 같은 게임적 표현이 재밌다고 평가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와 일할 때도 열심히 일하라는 것인지, 그만 두라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워 고생한 경험이 떠올라요”라고 말했다. 모자란 언어능력이 신경쓰여 공사장 아래 위치한 어학원에 등록해 독일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압둘 와합은 이 부분은 게임적인 연출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난민들은 어학교육을 이수하는 조건으로 생활비를 보조받기에 자신이 개인적으로 등록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언어학습은 〈21Days〉의 중요한 요소로 언어능력이 모자랄 때, 일을 맡지 못하거나 노동 시 급료가 깍이는 패널티가 있다. 심지어 어학원 등록비는 40시리로 비싸다. 벌면 족족 어학원비로 나가도록 디자인되어 있어 이 게임의 난이도에 영향을 끼친다. 필자는 지속적인 언어학습이 없을 때 외국인이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압둘 와합에게 주었다. 노동도 하고 공부도 했으니 우리는 모하메드에게 음식을 먹이기로 했다. 더 싼 맥도날드가 있었으나 그곳에는 돼지고기가 섞인 음식이 많아 실제로도 무슬림들은 꺼려 한다고 한다. 첫날이니 아랍 음식점으로 가서 케밥과 허머스, 페투쉬, 팔라펠 중 무엇을 먹을 지 골랐다. 압둘 와합은 웃으며 비싼 음식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비싼 순서가 팔라펠→페투쉬→허머스→케밥 순서가 아니라 케밥(고기)→페투쉬(샐러드)→허머스(병아리콩으로 만든 소스형 음식)→팔라펠(병아리콩으로 만든 고로케) 순이 대충 맞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게임상에서 케밥은 가성비가 좋은 음식이니 우리는 앞으로도 자주 케밥을 먹어야 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 2Days 어제보다 떨어진 멘탈 지수가 신경쓰였다. 혹시 지도상에 보이는 모스크에 가서 기도를 하면 이 수치가 올라갈 수 있을 지 궁금했다. 모스크에 가는데, 교통비가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게임에서 이동은 곧 시간과 돈을 소모한다. 궁금하다고 아무 곳이나 가기보다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스크에 가니 같은 처지에 있는 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대화 도중 모하메드는 “그래도 이 나라만큼 난민들을 환영하는 나라는 없어”라고 대답했다. 압둘 와합은 게임에서 언급하고 있는 독일 메르켈 총리는 난민들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정치가라고 평가했다. 메르켈은 각종 난민문제로 지지율이 흔들리는 가운데 뚝심있게 난민유입 정책을 체계적으로 세워나가 여론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모스크에서 기도를 하니 멘탈 수치가 올랐다. 압둘 와합은 한국에 와서 고국이 어려움에 휩싸일 때,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내 계획은 무엇이고 그 진행과정대로 진행하고 있는 지, 나는 왜 무엇을 위해 고생해야 하나 같은 질문을 던지며 매일 기도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이 게임에서 모스크에 가서 기도하는 일이 멘탈점수를 높이는 것은 사실적인 표현이라고 말했다. 귀가하는 도중 숙소 앞에서 노래하는 버스커에게 팁을 주었다. 무려 10시리나 되었기에 몇 번을 망설이다가 주었다. 혹시나 독일인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압둘 와합은 멘탈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고독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정이 게임 상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지 기대하며 우리는 버스커 친구에게 돈을 주었다. 그는 시리아에 파병된 아들을 둔 자로 훗날 자신이 일하는 라이브 카페를 소개해 주었다. -3 Days 아내가 보내달라는 200시리를 보내야 하는 날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의 사치?를 반성하고 일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배고픔 수치가 절반 이상 떨어져도 계속해서 오전 오후로 일하기로 했다. 공사장에 일이 없어 레스토랑에 취직해 설겆이를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어학원은 다니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급해도 공부를 멈추면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앞에는 난민을 혐오하는 남자가 “ㅁㅁ나는 무슬림”이라고 모하메드에게 외쳤다. 굶어가면 모은 돈 중 200시리를 아내에게 송금했다. 배고픔 수치가 너무 떨어져 있어, 싫어도 맥도날드에 가서 핫도그를 먹고 이른 잠을 청했다. - 4 Days 아침부터 교통비가 없는 상황이 되어 모하메드는 40분이나 걸려 모스크에 가야 했다. 압둘 와합은 별 다른 현지인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못하고 직장과 모스크 정도만을 가야하는 게임안의 상황이 너무 리얼하며 동시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럽식 레스토랑이 선택지에 생겼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고 동시에 돼지고기가 든 음식이 많았다. 게임 상에서 먹을 수는 있었지만 플레이어인 압둘 와합은 선택하지 않았다. 공원에 들려 “우리 나라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 주장하는 노인을 만났다. 압둘 와합은 자신이 만났던 어떤 한국 할아버지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결국엔 그 사회에서도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외국인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이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물론 공원에는 모하메드에게 선의를 보이는 시민도 있었다. 다시 돈을 벌어야 하니 공사장까지 걸어가 노동을 했다. - 5 Days 아내의 편지가 도착했다. 가방을 도둑맞아서 송금한 돈을 다 잃어버렸다고 한다. 가족에게 3일안에 다시 200시리를 보내야 하게 되었다. 교통비가 없어 역시 또 공사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오전 오후 일을 했으니 아랍식당에 가는 호사를 누리기로 했다. 배고픔이 조금 가시면서 멘탈도 약소하게 오르게 되었다. 버스커 친구가 일하는 카페 블루노트에 갔더니 입장료 25시리를 지불하라고 한다. 술과 음악을 즐기는 현지인들을 부러워 하며 친구의 노래를 들었다. 취객 중 하나가 이민자였는데, 그는 모하메드에게 “어허 독해져야 해”라고 충고했다. 순간 매우 한국적인 충고라서 압둘 와합과 나는 한참 웃었다. 압둘 와합은 아직 해금되지 않은 지역 중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문화원과 유원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장소를 모하메드가 다녀야 그 사회에 대한 호기심도 유지하고 멘탈도 건강해진다는 논리였다. 실제 본인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었다. 모하메드는 이제 숙소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버스커 친구와 이런 저런 속내를 털어놓으며 고향에 있던 부모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압둘 와합은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자 대개의 나이든 부모님들이 피난을 고사하고, 젋은 자식들부터 탈출시켰다고 말해 주었다. - 6 Days 아내에게 돈 독촉하는 편지가 왔다. 플레이어에게 긴장감을 주려는 게임 내 장치는 이해되지만 돈 이야기만 들어야 하는 모하메드의 상황이 피로하게 느껴졌다. 돈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맥도날드로 가서 가장 싼 햄버거를 먹었다. 조금 먼 곳에 주유소 일자리가 해금되어 있어 세차 일을 했다. 압둘 와합은 독일의 난민 정책은 실제로는 난민에 대한 직업훈련코스가 정비되어 있어, 게임처럼 공사장과 식당, 주유소 같이 일용직만 전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독일 외 지역 대개의 난민들은 저런 악순환 고리 속에서 바보가 되어가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사실적인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공원에서 다시 만난 할아버지는 역시 또 난민혐오적 발언을 한다. 모하메드는 최대한 정중하게 대답한다. 압둘 와합은 이 상황이 모하메드의 심성이 착한 것이 아니라 싸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언행이라고 해석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뭔가 한탕을 노리는 룸메이트를 만났다. - 7 Days 주유소에 일이 없어 공사장으로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계속 했더니 멘탈과 배고픔이 계속 떨어졌다. 아내에게 돈을 송금해야 하기 때문에 모하메드에게 밥도 먹지 않고 일만 시켰다. 이른 오후에 숙소에 들어가 잠을 잤다. - 8 Days 아내로부터 브로커를 고용하기 위해 250시리가 필요하다고 편지가 왔다. 압둘 와합과 나는 모하메드의 멘탈과 배고픔 수치의 관리를 완전히 포기하고, 오직 빠르게 일만 시키기로 했다. 배고픔이 거의 바닥을 치니 캐릭터는 느려지고 멘탈 수치는 점점 감소되고 만다. 모하메드는 공원의 할아버지와 티격태격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IS에 대해 욕하고 있기에, 우리도 그 IS를 피해서 도망친 사람들이라고 답변했다. 압둘 와합에게 이 할아버지의 생각이 혹시 바뀔 수 있을까 질문해보았다. 압둘 와합은 자신의 경험으로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하메드는 이 날도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다. - 9 Days 아내는 기차역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연락을 했다.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남자를 또 숙소 앞에서 만났다. 배고픔과 멘탈 수치가 바닥이 치는 가운데, 일할 의욕도 공부할 의욕도 잃어버렸다. 모스크에 가서 간신히 멘탈수치를 높였다. 하지만 이미 바닥난 멘탈과 배고픔에 모하메드는 일할 의욕을 잃었다. 멘탈수치를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카페 블루노트에 가서 음악을 들었지만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숙소로 이른 귀가를 했다. 룸메이트는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뭔가 나쁜 일인 것처럼 보였다. 잠을 잤다. 아내가 말한 250시리를 모으지 못한 상황이다. - 10 Days 아내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아들 압둘이 아프다고 한다. 오늘까지 반드시 기차표를 살 돈을 보내야 하는데 여의치 않았다. 일할 의욕이 사라져서 모스크에 갔다. 약간의 멘탈 회복이 되어 공사장에 갔으나 결국 작업명령을 못 알아들어 사고를 치게 되었다. 급료가 깎였다. 결국 아내에게 보낼 돈을 다 벌지 못하고 숙소에 왔다. 숙소에 도착하니 룸메이트가 3층 카심의 방으로 오라는 쪽지를 남겼다. 주인 없는 방에 가서 룸메이트 메흐디의 지갑이 떨어진 것을 보게 되었다. 훔칠까 말까 고민하다 훔쳤다. 이것만 훔치면 아내에게 돈을 보낼 수 있으니까. 아내에게 송금하고 돌아오니 메흐디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화가 나 있었다. - 11 Days 아내가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했다. 내일까지 다시 200시리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모하메드는 멘탈도 체력도 바닥이 나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 12 Days 도저히 방법이 없어 모하메드는 모스크에 갔다. 멘탈 수치가 조금 올랐지만 돈도 없고, 여전히 배고프다. 어학원을 다닌 지 오래되니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도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내에게 송금하지 못했다. - 13 Days 아내와 아들에게서 소식이 없다. 모하메드는 이제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렸다. 이렇게 배드엔딩을 보게 된 압둘 와합과 나는 매우 허탈한 마음이었다. 우리는 모하메드의 가족이 도착하기 까지 21일 중 겨우 13일을 버틴 것이었다. 이 게임을 더 나은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1Days〉는 일반적인 세이브 로드 시스템이 없었다. 완전히 새로 시작하거나 지난 날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이후의 날짜는 되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재플레이가 가능했다. 다음날 터키로 실제 출국을 앞 둔 압둘 와합이 사정상 빠진 이후, 필자는 게임 4일차로 되돌아 가 플레이 해 보았다. 하지만 게임 상의 모하메드가 겪는 현실은 소매치기의 유혹과 범죄가담 등으로 더욱 더 암울해져 갔다. 노동조건은 가혹해지고 건강상태는 나빠지니 필연적으로 옳지 못한 길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가족과 상봉하는 날짜가 다가오지만 내용상으로 결코 좋은 엔딩이 아니었다. 이 게임은 성실한 노동자가 된 모하메드의 행복한 가족상봉은 애초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스팀에 진열된 이 게임에 대한 평가로 누군가 ‘순진한 프로파간다’라고 적어놓았는데 세상에 프로파간다를 이렇게 암울하게 재현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난민들의 입장을 미화시키기는 커녕, 그들의 행동이 필연적으로 어긋나도록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깔끔하게 클리어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실패시켜 그 원인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 게임 플레이 후 소감 1회차 게임이 끝난 뒤 압둘 와합에게 아래와 같이 질문하였다. Q: 난민문제에 대한 게임적 접근법에 대한 본인의 의견은? A: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뉴스나 영화도 좋지만 게임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특이성이 분명 있다고 본다. 5년 전에 한 시리아 출신인 압둘라 알 카람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직접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난민 포비아와 이슬람 포비아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는 플레이어들에게 게임을 통해 시리아 사태를 경험시켜 난민들에 대한 선입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압둘라 알 카람의 게임 [〈 Path Out 〉(2017)]의 초반부 한 씬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내전이 발발하기 직전 시리아인의 평범한 생활상을 경험하던 중 플레이어는 도시의 골목에서 낙타를 발견하게 된다. 대개의 플레이어는 당연히 낙타를 향해 타기 위해 돌진한다. 그 때 프로그래머는 게임 화면에 실사화면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시리아인들이 낙타를 타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며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일갈한다. 게임 플레이와 다큐적 표현, 가벼움과 진지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그 때부터 게임의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게이머 세대에게 게임을 통해 세계의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매우 필요하다. Q: 〈21Days〉는 의도적으로 배드엔딩만을 보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A: 그렇다. 아마도 이 게임은 난민의 고난을 체험시켜 현실을 환기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 게임을 통해서 직접 당사자가 되는 경험을 주는 이런 시뮬레이션은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개발자 분들이 난민이 하나의 사회에 편입되는 과정을 테마로 후속작을 따로 만들어주시도 좋을 것 같다. (웃음) 중간 중간 모하메드가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데 실은 이런 결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하다. 희망이 높은 자는 범죄의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는 디자인도 멋지지 않을까? Q: 게임적인 구조 안에서 희생되는 현실의 디테일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이러한 현실적인 요소들 하나 하나 다 신경쓰다 보면 게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게임은 복잡한 현실에 대한 최대한 단순한 구조적 분석을 바탕으로 하기에 중요한 것은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Q: 만약 이 게임에 해피엔딩이 가능하려면 어떤 요소를 추가해 달라고 말하고 싶은가? A: 게임 안에 희망(hope)이라는 수치를 추가하고, 모하메드의 선택지에 여행과 놀기를 집어넣어 반영하고 싶다. 실제로 이러한 장소들은 난민으로서 내게 큰 도움이 된 적이 있다. 현지 독일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음) 난민이나 이주노동자가 그 사회에 잘 적응하는 방법은 그 곳을 즐겁게 느끼는 일에서 시작한다. 실제로 이 게임의 주인공처럼 일만 하는 사람은 고독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 사례를 자주 보았다. 일만 하다가 멘탈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다. - 재현에서 아쉬웠던 점 압둘 와합은 모하메드가 게임상에서 아내에게 돈을 송금할 때 ATM기를 사용하는데, 실제로는 그리 용이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갓 난민지위를 얻은 자가 유럽밖으로 돈을 보내는 일에는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차라리 모하메드쪽에서 브로커를 고용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게임 상에서 아내에게 메시지를 받을 때, 컴퓨터 메일로 받는데 실제로는 스마트폰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내의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동하는 가운데 컴퓨터를 쓰는 행위보다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편이 기동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난민들이 되도록 좋은 스마트폰을 갖고 있으려는 이유다. - 게임과 사회 게임 플레이가 반드시 퀘스트 수락과 클리어만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으며, 때로는 현실의 부조리를 시뮬레이션해 보다 나은 질문을 유도하기 위해 설계될 수 있다는 것을 〈21Days〉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게임체험을 내적 구조 안에 갇힌 유희가 아니라 현실 밖으로 질문하는 하나의 사고방식으로 여길 때 게임은 사회와 또 다른 연결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게임의 개념을 무엇이든 접속 가능한 매개의 개념으로서 상상하면 게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재미의 회로와 현실의 회로 사이를 연결하는 일은 여전히 발명중이며, 이 발명품들로 게임의 역사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계보를 가질 것이다. 옳음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다름을 위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21Days〉를 응원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오영진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다.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03.20-21)와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 연계 메타버스 〈끝나지 않는 항해〉(2012.06~19)를 연출했다.

  • 어려움에 직면한 유럽의 게임 구독 서비스

    스태디아는 실패했고, 엑스박스 게임패스는 성공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게임팬들로부터 어느 정도 회의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서 이와 같은 유형의 서비스가 미래 시장성을 가지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단 오늘날 게임 시장에서 하드코어 게이머는 소수다. 유럽에서 게임은 나이를 뛰어넘어 매우 광범위하게 확산 되어있는 활동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6~60세 연령대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많은 수가 아마도 휴대폰으로 무료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그친다 할지라도, 따라서 현 시점에 클라우드 게임이 그리 매력적인 상황은 아니라 할지라도, 구독 기반 게임의 부상은 그리 먼 시점의 일이 아닐 수 있다.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Ida Jørgensen Holds a PhD in game studies from the IT University of Copenhagen, Denmark where her research revolved around gender representation, game culture and games as media. Today she works as a postdoctoral researcher at the 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 (Game Researcher)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In Search of Our UX: Remembering Arcade Co-op Play

    Back then, there was a kind of ritual among my schoolmates. No matter what games we played, the final stage of the night was always . Gals Panic, put simply, was a territory-capture style game where you control your marker in 8 direntions-up, down, left, right, and diagonally-to claim areas and win. < Back In Search of Our UX: Remembering Arcade Co-op Play 28 GG Vol. 26. 2.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www.gamegeneration.or.kr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 그 시절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는 일종의 의식이 있었다. 무슨 게임을 하든 가장 마지막 코스는 <갈스패닉 S2>로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다. <갈스패닉>이란 쉽게 말해 땅따먹기 게임으로 상하좌우에 대각선까지 8방향으로 기체를 조작해 구역을 확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거짓말에 가깝다. <갈스패닉>에서는 땅을 따먹으면 그 구역에는 ‘갈’이 등장했고, 특정 퍼센테이지를 완수하면 온전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었다. 이 게임의 핵심 인기 요인은 일러스트였다. Every evening, the arcade was filled with passionate cheering Back then, there was a kind of ritual among my schoolmates. No matter what games we played, the final stage of the night was always . Gals Panic , put simply, was a territory-capture style game where you control your marker in 8 direntions-up, down, left, right, and diagonally-to claim areas and win. But stopping the explanation there would be almost a lie. In , once a territory was claimed, a “gal” appeared within that space, and upon reaching a certain percentage, a complete illustration was revealed. The game’s core appeal lay precisely in those illustrations. That was why, at the machine tucked away in the far corner of the arcade, cooperative play emerged as a means of meeting the game’s requirements. Whoever happened to have the most spare change that day became the sponsor, while the friend with the best control took the seat. Others called out incoming bullet patterns or the remaining time; some explained the next pattern, others how to trap enemy monsters. Since this was an era when you couldn’t photograph the finished result with a phone camera, the only option was to take the illustration in with your eyes. Everyone tried their hardest to store the image in their memory. This user experience (UX) is precisely the intriguing story I wish to tell. The arcade was, in every sense, a space optimized for cooperative play (Co-op). Beyond the previously mentioned Gals Panic, many other games also featured Co-op play. By virtue of the arcade’s nature—a place where many people gathered in the same physical space—even those who were not seated at the machine could participate, communicating with one another and collectively working through puzzles. In Search of Our UX In retrospect, the arcade was a space especially suited to two-player games. Most arcade machines were equipped with two seats, which naturally led to many games structured around competition between Player 1 and Player 2—but there were just as many that emphasized working together toward a shared goal. The first game that comes to mind is . Although the game was designed to allow players to choose from four characters—snow, lightning, water, and wind—in arcades it was typically limited to two-player play due to hardware constraints. Much of the fun lay in each player trapping monsters into balls and then bursting them at precisely the right moment. Belt-scrolling action games like the arcade versions of and could be said to represent the very essence of Co-op play. Two players would sit shoulder to shoulder at a cramped machine, bumping into one another as they frantically mashed the buttons. A quiet ethic of generosity was at work: yielding health recovery items to each other, or giving up buff items—or weapons—that would better suit the other player’s character. We would exchange high fives after clearing a mission, and at times, even if I had survived, I would gladly drop another 100 won to revive Player 2 rather than continue alone. Yes—paying money for someone else’s play was considered an undeniably cool thing to do in the arcade. Unless one resorted to unacceptable behavior—taking over someone else’s game, extorting money in a nearby shady alley, or secretly adding credits with a coin-up trick—everyone had to insert a 100-won coin into the machine to play. Within this strict 100-won rule, the reciprocity of sharing one’s single credit can occasionally be found in the online gaming era, in practices like quietly slipping help to newcomers. Even then, the weight of the gesture is different—it is often merely a veteran player distributing a fraction of their surplus resources. The Happiness of 100 Won With a bit of humor, the rule that everyone had to put in 100 won per game can be directly linked to what we now call P2W—Pay to Win. Because players who kept feeding more coins into a given machine naturally became more skilled, those who invested heavily in a game held a clear advantage in PvP. Once a player’s skill surpassed a certain threshold, however, they became a kind of “monster” who could see an entire game through on a single coin—earning the wary glances of the arcade owner. There was someone who would insert just one 100-won coin and spend the entire day playing , defeating everyone who challenged him. Soccer games were popular then, as they are now, so many people were waiting to play, but because he dominated the machine, its turnover rate was extremely low. In the end, what stopped him was an anonymous tip reporting that he was skipping mandatory evening self-study to be at the arcade. Friends much younger than him speculated that it was probably the arcade owner who had made the call. My personal favorite arcade game was , a shooter developed by Psikyo. I was completely absorbed by its distinctive Japanese look and feel and its thrilling gameplay. I would often walk with a close friend to a neighboring district’s arcade that had a cabinet, and that journey itself feels incomparable to anything today. In 2022, who would walk twenty minutes just to pay 100 won for a single round of a game? Game magazines existed, but it was difficult to find arcade strategies in them at the time, so during those twenty minutes on foot, my friend and I would discuss which characters to choose and how we might clear each stage. In , there was a hidden character named Ain. By inputting the command up, up, up; down, down, down; up, up, up, up, up, up, up on the selection screen, the character could be unlocked. Choosing such a hidden character for someone who didn’t know the command could itself be seen as a form of cooperation. In that sense, Co-op also functioned within PvP games like . Much like selecting “Orochi Iori” for a friend in KOF ’97—officially known as Insane Iori with Blood of Orochi Under the Night of the Moon. 3 Meters to a ‘Real-Life fight’ Couples often played games like or at the arcade. The sound of laughter, mixed with the rapid pounding of domed buttons, remains part of the memory. In many ways, feels like it presented a prototype for , which was named Game of the Year by multiple outlets in 2021. Both are two-player games, and both carry the risk that excessive immersion in play can result in damage to the relationship itself. Back when I was a regular arcade-goer, I once witnessed a couple arguing while playing , with one accusing the other of not going easy on them—“Why won’t you let me win?” In truth, fights between couples were usually just playful affirmations of affection, often endearingly minor in scale. But during competitive fighting games, there were occasions when disputes between two burly men escalated to the point that all gameplay in the arcade came to a halt. At the arcade in my neighborhood, there was once a physical fight during after one player repeatedly used Devil’s laser attacks, prompting the other to shout, “Stop using cheap tactics.” In arcade fighting games, after all, your opponent’s face sits directly across from your own. What Does Offline Co-op Mean to Us Today? We now live in an online era. Even to play —a game often regarded as a tribute to offline Co-op, with its many embedded mini-games—two people no longer need to meet in the same physical space. With a single click on an online “invite friend” button, they can depart together into the game world. So what meaning does offline cooperative play still hold for us? To be sure, the Nintendo Switch still offers many excellent party games, and even without software, solving puzzles together at an escape room café could also be considered a form of Co-op. Yet offline Co-op seems to have been pushed out of the mainstream, relegated to the realm of nostalgia. The experience of multiple people reacting together to a single screen is becoming a special event rather than an everyday occurrence. When offline Co-op in arcades was at its peak, access to the internet for new information was (relatively) scarce. Few households had consoles or PCs capable of running games, and of course, not everyone carried a phone in their pocket. The only way to leave a record of one’s play was to inscribe one’s initials on the leaderboard. In offline Co-op, each and every game mattered. In the online era, access to “a single game” has improved beyond comparison. Yet alongside this, we also see people who, shielded by the veil of anonymity during gameplay, unleash words they would otherwise hesitate to utter. In online random matchmaking, people sometimes insult casually—and disappear just as casually. Having lived through both eras, this is not an attempt to claim that “the arcade days were better.” The offline Co-op culture of old arcades also included various abuses carried out by so-called neighborhood toughs. Nevertheless, if we take the term UX literally—as the totality of user experience—then the distinctive environment of the arcade explored here deserves to be recorded as a special chapter in the history of game UX.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북리뷰] 게임콘솔 2.0: 현대 게임기의 계보와 궤적을, 사진으로 읽다

    어린 시절을 비디오 게임을 벗 삼아 왔기에 게임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쯤 위키백과를 뒤적거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위키백과 문서에 실린 고전 게임기들의 사진 퀄리티가 너무 조악했다는 점이었다. 지금의 웹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당시 웹 문서들의 사진자료는 디지털카메라 보급 초기이기도 해서 개인이 형편 되는 대로 찍어 자가 제공한 사진들 일색이었으므로, 그때 눈으로 봐도 거개가 저해상도 저퀄이기 일쑤였다. 물론 하드웨어 제작사가 말끔하게 찍은 공식 사진자료가 있기는 하나, 당연히 제작사에 저작권이 있는데다 언론사 등에나 한정적으로 제공되기에, 공공자료로 개방되어 인용용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고퀄리티 사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 Back [북리뷰] 게임콘솔 2.0: 현대 게임기의 계보와 궤적을, 사진으로 읽다 11 GG Vol. 23. 4. 10. 한 남자의 자원봉사에서 시작된 ‘디지털 박물관’ 에반 아모스(Evan Amos)라는, (북미 게임기 시장 대붕괴 시기로 유명한) 1983년에 태어난 한 미국인 남자가 있다. 어린 시절을 비디오 게임을 벗 삼아 왔기에 게임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쯤 위키백과를 뒤적거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위키백과 문서에 실린 고전 게임기들의 사진 퀄리티가 너무 조악했다 는 점이었다. 지금의 웹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당시 웹 문서들의 사진자료는 디지털카메라 보급 초기이기도 해서 개인이 형편 되는 대로 찍어 자가 제공한 사진들 일색이었으므로, 그때 눈으로 봐도 거개가 저해상도 저퀄이기 일쑤였다. 물론 하드웨어 제작사가 말끔하게 찍은 공식 사진자료가 있기는 하나, 당연히 제작사에 저작권이 있는데다 언론사 등에나 한정적으로 제공되기에, 공공자료로 개방되어 인용용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고퀄리티 사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건 내가 기여할 수 있겠다’라는 점에 눈뜬 아모스는, 독학으로 사진기술을 배운 후 자신의 Wii를 피사체로 삼아 DSLR과 전문장비로 깔끔하게 고화질 사진을 찍어 2010년 8월 28일 영어 위키백과에 공공재(public domain) 형태로 공개 했다. 그의 첫 ‘기여’였다. 이 ‘무료봉사’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 온라인 중고장터에 공고를 내기도 하고 사설 수집가들에게서 기기를 제공받기도 하고 뜻있는 사람의 기부까지도 받아가며 일종의 ‘사회활동’으로까지 발전해, 2015년이 되자 위키백과 산하의 디지털 자료 아카이브 사이트인 위키미디어 공용 에 자신의 사진이 모인 대규모 저장소인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 을 만들기에 이른다. 현재 영어판을 포함한 각국 위키백과의 고전 게임기·컴퓨터 본체 사진은 거의 전부가 이 아모스의 자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심지어 모든 사진의 라이선스가 공공재라 마음껏 갖다 써도 문제없다. 서양권 및 일본에 공식 발매된 어지간한 게임기·컴퓨터라면, 여기에서 아모스가 찍은 인쇄물 퀄리티의 초고화질 사진자료(유명 기기라면 내부구조와 기판 사진까지 있다)를 손쉽게 다운로드받아 상용·비상용을 막론하고 자유롭게 가공하거나 인용·사용할 수 있다. 고전 게임기나 컴퓨터에 관련된 정보글이나 기사, 책 등을 (특히 직업적으로) 만들어온 사람이라면, 많은 경우 아마도 직간접적으로 아모스의 사진자료 신세를 졌을 것이다. 심지어는 아모스의 이름조차 여태껏 몰랐더라도. 10년 이상에 걸쳐 구축된 아모스의 귀중한 사진 라이브러리는 이제 전 세계의 수많은 박물관·출판사·저작자·웹사이트 등에서 절찬리에 활용되고 있으며, 필자 역시 다년간 비디오 게임 관련 기사·특집·컬럼 등을 저작하는 과정에서 ‘기기 사진이 필요할’ 때마다 방문하여 애용해 왔다. 이 계열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저작물에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인용하거나 가져다쓸 수 있는 사진자료 라이브러리가 존재한다 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아모스에게는 오랫동안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느낌을 항상 갖는다. 그 ‘디지털 박물관’의 공식(?) 도록 지난 12월 29일 한국어판이 출간된 「게임 콘솔 2.0 : 사진으로 보는 가정용 게임기의 역사」는 이 아모스가 자신이 그간 찍어온 사진들을 소재로 삼아 2018년 북미에서 첫 출간한, 말하자면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의 공식 도록 에 가까운 느낌의 책이다(‘2.0’이 붙은 이유는, 기기 및 내용을 증보하여 2021년 재출간한 개정판을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모스는 사진가 겸 비디오 게임 아키비스트로 활동하면서 2013년 킥스타터 크라우드펀딩을 열어 1,018명의 투자자와 $17,493의 자금을 모아 신규 기기들(덕분에 일본 게임기·PC 상당수가 추가될 수 있었다)을 확충했는데, 「게임 콘솔」은 그 크라우드펀딩 덕분에 탄생한 결과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순한 사진자료집에 그치지 않고 ‘1970년대 초창기부터 현 시점(2021년 기준)에 이르기까지,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하드웨어 사진 중심으로 훑는 가벼운 역사서’처럼 꾸민 것이 이 책의 최대 특징으로서, 기기마다 기본적인 발매시기, 하드웨어 사양, 간단한 소개글, 발매 당시의 의의와 시대상황 등을 정리해 깔끔한 사진과 함께 넣었고, 중요한 기기의 경우 분해하여 내부 기판 및 구조까지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1972년의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부터 2020년의 Xbox Series S/X와 플레이스테이션 5에 이르기까지 근 40년 9세대에 걸친 하드웨어 발전사의 온퍼레이드로서, 패미컴이나 메가 드라이브처럼 충분히 유명한 기기들뿐만 아니라 페어차일드 채널 F나 벡트렉스처럼 북미 비디오 게임 역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여야 알까 말까한 마이너한 게임기까지 풍부하게 소개하고 있다. 말미에는 일종의 부록으로서, 지금 시대에 고전 게임을 즐기는 데 있어 발생하는 애로사항 및 대처법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지면·자료 관계성 등의 문제로 누락됐지만 언급할 가치가 있는 마이너 기종ㆍ파생기종들에 대한 사진 및 소개문도 실려 있다. 꾸준히 개정판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며 기본적으로는 사진 위주의 도록 컨셉이고 방향성 자체도 워낙 확고하고 유니크한 책인지라 장점과 의의가 압도적이고, 고전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추천할 만한 훌륭한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사진으로 보는 가정용 게임기의 역사’라는 부제부터가,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을 잘 압축해낸 문장인 셈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일단 (미국 책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한계이겠으나) 서술의 중점이 결국 미국 및 영미권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게임 콘솔의 역사에서 미국만큼이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하드웨어 및 그 사회상·사정이라, 영미권 중심의 서술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보인다는 것은 분명한 한계점이다(비단 이 책뿐만이 아니라 서양 저자가 쓴 일본 게임 역사서나, 반대로 일본 저자가 쓴 서양 게임 역사서에서 흔히 보이는 빈틈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 등 비영미권의 하드웨어 중 누락된 것이 제법 있어(예를 들어, MSX는 일본은 물론 유럽권에서도 수많은 기종이 발매되었으나 책에는 단 한 기종만 수록했다) 아쉬움을 더한다. 또한,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서 ‘게임기’만큼이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컴퓨터’ 쪽의 누락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아쉽다. 코모도어 64나 ZX 스펙트럼처럼 서양권 8비트 컴퓨터 계보 초기의 인기 기종들이 실려 있긴 하나 비중이 크지는 않으며, 애플 Ⅱ나 IBM PC처럼 빼놓고 지나가면 안될 법한 기종의 누락도 있다. 저자의 서문에는 ‘책 내의 세대 구분에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컴퓨터를 포함시키기 어려웠다’라는 대목이 있고,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의 라이브러리 내에서도 레트로 컴퓨터 쪽은 상대적으로 구색이 불충분한 편이라, 이쪽은 고전 컴퓨터 쪽을 다루는 별도의 책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일단 책 제목이 ‘게임 콘솔’이기도 하니까). 소소하게는 영미권 외 국가의 오리지널 기종들의 빈자리가 큰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예를 들어 한국 오리지널 기종의 경우 이 책에서는 유이하게 GP32와 삼성 엑스티바(‘누온’ 제하로 실려 있다)가 들어가 있다. 모두 북미에 시판된 적이 있는 기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의의만큼이나 한계점도 큰 책이라는 점은 짚어두지 않을 수 없겠으나, 고전 컴퓨터·게임기를 다루는 외서가 예나 지금이나 한국어판으로 원활히 번역 소개되는 경우가 드문 현실을 고려하면 이 책의 한국어판 정식 발간은 큰 의미가 있다. 아모스의 활동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혹시 후일의 「게임 콘솔」 개정판에 한국의 오리지널 하드웨어가 추가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애호가들에게도 새로운 발견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월간 GAMER'Z 수석기자) 조기현 ‘국민학교’ 때 친구 집에서 금성 FC-150과 패미컴을 처음 접했고, APPLE II+ 호환기종으로 컴퓨터에 입문했다. 중·고교 시절을 16비트 PC 게이머로 보낸 후 플레이스테이션을 접하며 가정용 게임기 유저로 전향, 게임으로 영어와 일본어 독해법을 익혔다. 이후 2002년부터 현재까지 (주)게임문화의 월간 GAMER'Z 수석기자로 재직중이다. 8~90년대 한국 게임 초창기의 궤적을 텍스트로 복각해보고 싶어 한다. 저서로는 〈한국 게임의 역사〉·〈우리가 사랑한 한국 PC 게임〉(모두 공저), 감수로는 〈페르시아의 왕자 : 개발일지〉와 〈여신전생 페르소나 3·4 공식설정자료집〉 등이 있으며, 2019년부터 레트로 게임기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해설하는 무크집 〈퍼펙트 카탈로그〉 시리즈 연작의 한국어판을 번역·감수하고 있다. 최신간은 〈패미컴 퍼펙트 카탈로그〉와 〈세가 초기 게임기+겜보이 퍼펙트 카탈로그〉(근간 예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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