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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스포츠 리그는 라이엇 게임즈의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일 것이다. LCK는 국내와 해외 등지의 LOL 게이머들과 프로 선수들의 팬덤을 아우르는 최대의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관객들은 경기를 관전하는 짜릿함과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렇게 LCK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 (Emmy) 상을 거머쥐어 그 저력을 톡톡히 증명해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LCK 프로듀싱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예원 PD를 만나 LCK 제작의 비화를 듣는 것은 물론 이스포츠의 전망까지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 Back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01 GG Vol. 21. 6. 10.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스포츠 리그는 라이엇 게임즈의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일 것이다. LCK는 국내와 해외 등지의 LOL 게이머들과 프로 선수들의 팬덤을 아우르는 최대의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관객들은 경기를 관전하는 짜릿함과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렇게 LCK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 (Emmy) 상을 거머쥐어 그 저력을 톡톡히 증명해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LCK 프로듀싱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예원 PD를 만나 LCK 제작의 비화를 듣는 것은 물론 이스포츠의 전망까지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편집장: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진예원: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이스포츠 브로드캐스터 및 글로벌 프로듀서를 담당하고 있는 진예원이다. 주요 업무는 LCK 글로벌 영문 방송을 총괄하는 것이다. LCK는 중국어나 영어 이외로도 6개 국어로 진행되고 있다. 각 방송이 원활하게 제작, 상영될 수 있도록 관련 업무를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일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편집장: 현재 이스포츠가 대중문화로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무엇인가? 또 이스포츠만의 독특한 특색이라면 어떤 것이 있나? 진예원: 이제 이스포츠는 단순히 게임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종합적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로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관객층의 변화에서 가장 뚜렷이 읽어낼 수 있다. 과거 롤드컵의 주 시청자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고 있는 실제 게이머가 많았다. 이 시청자들은 게이머이자 시청자이다. 프로 선수의 수준 높은 게임 플레이를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프로 선수의 플레이를 자신의 게임에 접목시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리그 시청에 새로 유입되는 층은 좀 다르다. 이 시청자들은 본인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도 리그 자체를 즐겨 보시는 분들이다. 축구를 직접 하지 않아도 월드컵 시청을 즐길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월드 챔피언십 같은 대형 이벤트를 제작할 때는 이 점을 특히 유의한다. 게임 중계라는 기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스펙터클한 연출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스포츠의 또 다른 독특한 점이라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선수분들도 스트리밍과 다큐 제작 등 콘텐츠 생산을 하고 있고 이런 콘텐츠들을 기반으로 2차, 3차 생산을 하는 열정적인 팬분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들어내는 콘텐츠 또한 이스포츠 콘텐츠의 일부로 포함할 수 있겠다. 편집장: 국내와 해외 방송을 동시에 관리하며 양쪽의 방송 콘텐츠와 팬덤의 반응을 꾸준히 지켜보고 계시다. 국내와 해외 방송에 차이가 있는지? 각 방송에 대한 반응은 다른 편인지? 진예원: 국내 시청자들의 경우 주로 LCK를 시청하기 때문에 LCK 중심의 피드백이 많다. 그런데 해외 시청자들은 LCK뿐만 아니라 여러 리그를 함께 시청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형 커뮤니티인 레딧(reddit)같은 경우 리그 오브 레전드 커뮤니티에서 모든 리그에 대한 정보며 하이라이트 영상, 게임 분석 등을 전부 수용한다. 팬덤의 성향 또한 차이가 나는 편이다. 국내 팬덤의 경우 자신이 응원하는 특정한 팀이나 선수를 보러 경기를 시청한다. 해외 팬덤은 프로 게임 경기 자체의 수준높은 플레이 자체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캐스팅에서도 국내와 해외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캐스터들은 플레이에서 주목하는 요소가 각각 다르다. 동일한 플레이를 봐도 다른 관점에서 플레이를 보기 때문이다. POG 노트를 할 때 한국과 중국 등 다양한 해설자가 참여하고 있다. 영어 방송 캐스터는 게임 플레이의 흐름에 집중해서 승리로 가는데 실질적인 기여를 한 선수에 주목한다. 반면 국내 캐스터는 슈퍼플레이나 한타 싸움에서의 영웅적인 활약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다. 또 해외 캐스터분들은 국내 시청자들이 보기에 당연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부분에 코멘트를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겨울 시즌 게임에서 날이 너무 건조해서 커다란 가습기를 몇 대씩 가동했던 적이 있었다. 국내 팬분들은 ‘큰 가습기를 쓰는구나’, 하고 넘어가는걸 해외 팬분들은 ‘저 증기는 뭐냐’, ‘선수 귀에서 김이 나온다’, 하면서 정말 재밌어하셨다. 이런 한국만의 맥락을 캐스터분들께서 설명해준다. 국내 선수들이 하나같이 이마를 가리는 앞머리 모양을 하고 뿔테안경을 쓰는데, 왜 한국 사람들은 스타일이 비슷한지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시기도 한다. 팬의 입장에서 궁금하고 또 따라해보고 싶은, 그런 흥미로운 문화로서 한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섞여서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스포츠 종주국이 갖는 장점이 아닐까? 편집장: 이스포츠 방송 제작에 대해 좀 더 묻겠다. 이스포츠에 있어 게임 화면을 구현한다는 것이 게임 종목에 따라 달라지나? 이를테면 리그 오브 레전드와 배틀그라운드를 연출하는 것에 있어서 차이가 있나? 진예원: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초창기와 현재의 관전 모드는 많이 다르다. 초창기 중계가 다양한 카메라 각도를 활용하여 게임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었다면 현재 중계는 챔프의 등 뒤에서 게임을 보는 구도를 쓰는 등, 마치 애니메이션 같은 연출을 하고 있다.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FPS 게임은 총과 칼을 쓰는 등 게임의 룰을 몰라도 누구나 상황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다. 반면 리그 오브 레전드는 다양한 챔프와 스킬, 아이템이라는 요소가 있어 직관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그 요소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선수 개인의 게임 플레이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이스포츠로서의 배틀그라운드는 접근성은 좋되 스펙터클은 약한, 넓고 얕은 게임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옵저버의 영향도 있겠다. LCK에는 옵저버 팀이 있는데 한 게임을 여럿이서 지켜보며 적절한 화면을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옵저버 팀은 준프로급 실력을 갖춘 분들로 구성되어있다. 옵저버 팀은 맵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싸움을 추적하고 경기의 큰 흐름에서 승패에 결정적인 기점이 되는 장면을 잡아내야 한다. 이를 해내려면 반드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LCK 옵저버 팀의 실력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진PD는 2020 WORLDS FINAL 제작에 참여하며 에미상 스포츠부문을 수상하는 커리어를 쌓기도 했다. 편집장 : 지난 LCK 결승전은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해 무관중으로 진행되었다. LCK의 결승 무대가 중요한 행사인 만큼 제작자로서 많이 허전하지는 않았나? 진예원: 코로나 이후로 대규모 현장 행사에 제약이 걸린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난 LCK 결승전을 돌이켜보면 오로지 무관중 상황이어서만 할 수 있는 다양한 연출을 새로이 시도해볼 기회가 되었다. 이를테면 AR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면서 도시에 떠있는 스튜디오에서 경기를 하는 연출을 했다. 가상과 현실이 절묘하게 섞여있는 독특한 연출을 새로 시도해볼 수 있었다. 또 지난 결승에서는 LCK 영어방송 최초로 분석 방송과 프리쇼를 진행하고, 프리쇼에도 조영길 캐스터를 섭외하는 등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승 게임이라는 스펙터클을 제공하기는 어려웠지만 보다 풍성해진 콘텐츠 통해 시청자에게 새로운 종류의 만족감을 드릴 수 있었다. 오히려 무관중 상황이었기에 제작 측면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기도 했던 셈이다. 특히 지난 LCK 결승 오프닝 무대에서는 TFT 모바일 광고였던 ‘두둥등장’ 영상을 방영하기도 했는데, 국내와 해외 안팎으로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주셨다. 편집장: 다음은 조금 씁쓸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현재 이스포츠에서 부동의 1위는 LCK지만 그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현장에서도 이런 반응을 느끼는지? 진예원: 전반적으로 다른 리그의 퀄리티가 상향평준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LCK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가 타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재작년까지도 그런 위기감이 있었지만 작년 경기때는 LCK만의 위상을 잘 보여주었다. 다른 지역, 특히 중국의 자본력이나 지원에 비하면 우리는 단일 국가 단위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이만한 성과를 거둬나가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편집장: 이스포츠 산업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명실상부한 1위이다. 그런데 리그 오브 레전드의 독주도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게임에도 수명이 있다. 이 인기는 얼마나 갈 것이라고 예상하나? 진예원: 참 어려운 문제다. 이스포츠와 게임 업계의 특성상 변화가 빠르고 또 변화의 양상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모바일 이스포츠도 성장하는 중이고 모바일이 언제 PC를 넘어설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장르의 게임이 언제 개발되는지, 그리고 그 게임이 이스포츠 종목으로 적합한지 여부에 따라서도 이스포츠 시장은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위험은 언제나 짊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 안팎으로 이 게임을 오래 지속하려는 노력들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라이엇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게임에 지속적인 리뉴얼을 해나가고 있다. 새로운 챔프들을 업데이트하는가 하면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관에 기반한 여러 파생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만화 등으로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KDA는 리그 오브 레전드 아이피를 확장하여 케이팝과도 연계한 좋은 사례이다. TFT와 같은 전략적 팀전투도 이스포츠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바깥을 살펴보면 이스포츠를 기반으로 한 여러 제도들이 해외를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다. 대학에 이스포츠 전공이 생기는가 하면 칼리지 이스포츠의 형태로 지역 리그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반들이 리그 오브 레전드, 더 나아가 이스포츠의 확고한 자리매김을 도울 원동력이 될 것이다. 편집장: 마지막 질문이다. 조금 뻔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이스포츠 문화의 현장에서 이스포츠라는 단어를 어떻게 평가하나? 진예원: 이스포츠만의 독특한 시간 감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입사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오후 2시에 출근을 하는데 캐스터분들이 ‘좋은 아침!’ 이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아침이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건 이스포츠식 시간이라면서 다들 밤을 새고 이제 일어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또 시간 감각 자체가 무척 빠른 것도 있다. 중계 메인 캐스터들의 일정도 바쁘게 돌아가지만 그 사이 유튜브나 커뮤니티 등지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콘텐츠를 따라가고 사건사고를 체크하느라 하루가 무척 빠르게 지나간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 One Hundred Pounds of Bear Meat: Educational Games and the Lasting Legacy of The Oregon Trail

    Writing about The Oregon Trail has become its own genre at this point. So much has been published on MECC’s classic game that all the clever references to dysentery, one of the many afflictions the player characters will experience on their journeys, have already been used. This is a testament to the game’s legacy and its lasting presence that bridges gaming culture and mainstream American popular culture.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Game Researcher)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그 많던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들은 어디로 갔을까

    자칫 우리는 게임과 게이밍을 생각할 때 그 대상을 고정된 무언가로 잠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이 대상이 얼마나 역동적이며 다양한 변수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게이머라고 부르는 집단은 결코 과거의 그들이 고정되지 않은 채 새로 들어오는 이와 나가는 이로 진폭을 만들며, 그 개개인 또한 시간과 환경의 변화 속에 각자의 이유로 변해간다. < Back 그 많던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들은 어디로 갔을까 14 GG Vol. 23. 10. 10. 한때 대한민국을 휘어잡던, ‘한국인의 민속놀이’라는 별칭이 너무도 잘 어울렸던 ‘스타크래프트’는 이제 다른 의미로서의 민속놀이가 되었다. 모든 한국인이 할 줄 안다고 생각하기에 붙었던 민속놀이라는 이름은 이제 ‘틀딱들이나 하는 게임’이라는 의미로 변해가는 중이다. 새롭게 태어나 온라인게임에 진입하는 청소년들은 더 이상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하지 않고, 혹시라도 중년들이 ‘라떼는 말이야~’로 ‘스타크래프트’ 이야기를 시작하면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또 한켠에서 ‘스타크래프트’는 여전히 성업중이다. 출시된 지 20여 년이 지난 게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스타크래프트’는 여전히 PC방 점유율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적지 않은 유튜버들의 콘텐츠 기반이 된다. 심지어는 공식리그 종료 후 다양한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자체적인 리그가 자생할 정도니 그 생명력은 명실상부한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게임의 것임을 느낄 수 있다. 흘러간 옛 게임이 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로부터는 계속 플레이되는, ‘스타크래프트’의 오늘이 보여주는 독특한 모습은 과거 ‘스타크래프트’ 열풍의 중심에 있었던 90-00년대 기준 2-30대가 중년이 되면서 겪게 된 변화로부터 기인할 것이다. 지상파 TV 프로그램에서 ‘스타크래프트’ 성대모사를 해도 전국민이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사실상 모든 젊은이들이 직간접적으로 ‘스타크래프트’에 엮여 있었던 어떤 시기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아마도 한국 게임 역사 속에서 가장 대중적인 게임이었을 영광의 순간을 만들었던, 그 많던 스타크래프트 플레이어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게임과학연구원 게임과사람 센터는 2023년 중년 게이머 연구를 수행하면서 이와 같은 질문을 마주했다. 2020년대 기준으로 중년이 된 약 30여명의 게이머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듣게 된, 그들이 ‘스타크래프트’를 떠나게 된 이유를 정리해 본다. 그냥 나이가 들어서, 오래된 게임이라서와 같은 당연한 이야기 이상으로 우리를 둘러싼 게이밍 환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되새기게 하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라이트게이머는 로컬 플레이를 즐겼고, 그 로컬이 붕괴되어 떠났다 우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들을 간단히 짚고 지나가보자. 당연히도 당시 10대, 20대였던 플레이어들은 신체적 노화와 여가시간의 변화를 맞이하며 ‘스타크래프트’로부터 떠났다. 사실상 ‘스타크래프트’의 왕좌를 물려받았다고 평가받는 ‘리그 오브 레전드’로 왕년의 게이머들이 넘어가지 못한 이유도 대체로 여기에 있다. ‘스타크래프트’는 끝난 것 같고, 다른 게임은 뭐가 있나 보는데 새롭게 등장한 게임은 ‘스타크래프트’보다 복잡해 보이고, 멀티플레이 대전에서 딱히 이기기도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한 중년들은 아예 온라인 대전 게임을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신체 노화(이는 실제로 생물학적 노화보다는 ‘나는 늙었다’라는 자기인지가 더 중요한 개념으로 쓰인다) 속에서도 ‘스타크래프트’라는 콘텐츠 자체를 좋아하는 이들은 조금 색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일명 ‘컴까기’로의 전향이다. "스타의 최대 장점은 1대 7 pc 게임이 된다는 거예요. 혼자서 게임을 하기 좋죠. 치트키 써가면서 신나게 두들겨 패고 막 그런 것들이 되잖아요. 진짜 스트레스 해소인데, 규칙이랑 하는 법은 다 아니까요. (중략) 스타는 단축키가 몇 개 없어서 그나마 쉬워요." (C01) 인터뷰대상자 C01은 가볍게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던 게이머였다. 중년이 된 이후에도 그는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지만, 과거만큼의 연습시간도 동체시력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배틀넷 대전을 포기했다. 그는 집 PC에 설치된 ‘스타크래프트’로 1:7 AI대전(일명 컴까기)을 즐기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멀티에서 승패를 가리는 대전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으면서도 여전히 적당히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방식으로서의 ‘컴까기’는 그에게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배우는 수고로움까지도 회피할 수 있는 적절한 여가로 남는다. C01의 인터뷰가 중요한 것은 그가 ‘스타크래프트’ 마니아로 분류되는 게이머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2000년대 ‘스타크래프트’ 붐을 형성한 인구의 대다수는 라이트 게이머였다. 커뮤니티에 모여 전략을 연구하고 e스포츠 중계를 챙겨보며 빌드를 연구하고 수련하는 하드코어 이용자보다 대중적 붐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는 라이트게이머들의 머릿수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마니아들은 여전히 유튜브와 배틀넷에 남지만, 이들은 한 번의 열풍이 지나가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빠져나간 이유는 그들이 ‘스타크래프트’에 열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 콘텐츠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친구들이랑 다같이 몰려다니는 재미였죠. 혼자 있으면 굳이 pc방에 가진 않았을 것 같아요." (C08) "스타를 하더라도 과거만큼 당연히 열심히 하지는 않는 것 같고 가끔씩 물어보면 그래서 같이 만나서 게임을 하기가 쉽지는 사실은 않은 것 같아요 ." (C06) 라이트게이머의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그 자체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교류의 수단으로서가 더 강했다. 배틀넷에서 익명의 상대와 1:1로 실력을 겨루기보다 이들의 플레이는 주로 다같이 모여 PC방에 가서 2:2, 3:3의 대전을 벌이는 형태였다. 간혹 모인 친구들의 숫자가 홀수가 나오면 함께 팀을 짜서 배틀넷에 들어가거나, 이른바 ‘깍두기’를 껴주는 방식으로 플레이가 진행되었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온라인 멀티플레이라고 부르는 방식과는 구분된다 . ‘로컬 플레이’라고 이름붙여볼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기능을 사용하지만, 라이트게이머들의 플레이는 가급적 오프라인에서 이미 관계가 형성된 이들과 함께 즐기는 형태로 귀결되었다. 이들은 익명의 상대와 승부를 벌이는 것 자체에는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부담스러움을 느꼈고, 승패와 무관하게 함께 게임하고 노는 일을 중시했다. 올해 초에 국내에 번역된 C. T. 응우옌의 <행위성의 예술>에는 비슷한 개념이 등장한다. 응우옌은 플레이를 그 목적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성취형 플레이와 분투형 플레이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면, 성취형 플레이란 게임이 텍스트 안에서 제시하는 규칙으로서의 목표가 플레이어의 목적과 일치하는 경우이고, 분투형 플레이는 그 목표와 목적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경우다. 배틀넷 기반의 온라인 익명 매치 멀티플레이가 성취형 플레이라면, PC방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지인들끼리 모여 벌이는 ‘스타크래프트’ 대결은 분투형 플레이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 붐의 중심을 이뤘던 라이트게이머들은 자신들이 ‘스타크래프트’를 떠난 이유로 더 이상 게임을 같이 할 사람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그대로이고 적지 않은 이들이 배틀넷 상에 존재하지만, 애초에 배틀넷 익명 대전이 아닌 로컬 플레이를 즐겼던 이들에게는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게임하던 로컬 커뮤니티 – 학교, 동네, 회사 등 – 가 해체되면서 더 이상 게임을 같이 할 사람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수많은 ‘스타크래프트’ 라이트게이머들은 결국 나이가 들면서 생활하는 커뮤니티가 변화하며 ‘스타크래프트’를 왕년의 놀이로 추억하게 된 것이다. PC는 점점 더 보편 디바이스가 아닌 환경으로 가고 있다 2000년대의 라이트게이머들이 떠난 자리는 새롭게 자라난 세대가 채우면 될 일이다 . 그러나 새로운 세대의 로컬 플레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차지했으니 ‘스타크래프트’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여기에 더해 새롭게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스타크래프트’는 다소 먼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바로 PC라는 ‘스타크래프트’ 구동 플랫폼의 위상이 맞은 변화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리그 오브 레전드’도 곧 맞이하게 될 변화일 것이다. “집에 PC가 있으면 집에서도 (스타를)하죠. 밤에 집에서 혼자 배틀넷 들어가서도 멀티 했어요.” (C03) “이것도 사실은 좀 불법 영역이긴 한데... 군대 내의 공식 PC방 말고도 업무용 PC에 스타를 깔아서 다른 사무실하고 연결해서 플레이하기도 했었어요. 원래는 안 되는 거지만.”(C06) ‘스타크래프트’는 기본적으로 PC에서 구동되는 게임이다. PC기반의 RTS게임은 키보드 + 마우스라는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고, ‘스타크래프트’의 조작은 실제로 마우스 없이는 플레이가 매우 어려운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다. 초심자가 새로운 게임 하나를 배우기 위해서는 의외로 기본적인 인터페이스에 대한 적응이 중요하다. 처음 3차원 공간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은 전후좌우로의 이동감각조차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스틱을 사용해 복잡한 커맨드를 넣는 대전격투 게임은 그 숙련도 자체가 문제가 되어 뉴비 유입을 저해하는 요소로도 기능한다. ‘스타크래프트’의 키보드 + 마우스 컨트롤은 언뜻 보기에 쉬워 보이지만, 그것은 우리 시대가 키보드 + 마우스라는 인터페이스가 보편화된 시대라는 전제 안에서 성립하는 이야기다. 지금의 중년 세대는 1990년대에 이른바 ‘PC 교육 의무화 정책’을 거치면서 어린 시절부터 PC를 다루는 법을 익혔고, 각 가정에는 일종의 필수 가전제품처럼 PC가 한 대씩 놓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20년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가정이 구비하는 PC의 비율은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2009, 2003)의 ‘인터넷이용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한국 가정의 PC 보유율은 80.9%였으나, 2022년에는 56.2%로 10여년 사이 30%p 이상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PC 외의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디지털 디바이스 전반을 포괄하는 ‘컴퓨터 보유율’이 2022년 기준 81.0%라는 점을 고려하면 모바일 디바이스의 대중화 이후 가정에서의 데스크탑 PC 보유율이 크게 저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때 집에 들어오면 발가락으로 PC 전원버튼부터 누르는 것으로 시작되는 PC생활의 시대는 저물어가는 중이다. PC의 키보드와 마우스로 처리하던 많은 일들은 이제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통해 훨씬 더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다. 가정 및 개인용 디지털 디바이스로서의 PC가 태블릿, 스마트폰에 자리를 넘겨주는 과정에서 키보드 + 마우스라는 기본 인터페이스의 보편성은 점차 소실되어가기 시작했다. "일단은 지금 pc는 사용을 할 수가 없죠. 그런 고사양 노트북도 지금 갖고 있지 않을 뿐더러, 왜냐하면 지금 주로 문서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러고 이제 애들이 있으니까 컴퓨터나 이런 걸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은 주로 하는 거는 피시방에 가거나 아니면은 핸드폰이나 태블릿으로 주로 하니까. 가능하면 이제 모바일 기기에 다가 넣고 하려고 하고 있어요." (A03) 인터뷰에 응한 많은 중년 라이트게이머들에게 PC기반 게임은 이제 상대적으로 하드코어한 무언가로 인식되고 있었다. 각종 컴퓨터 쇼핑몰에 가보면 볼 수 있는, 게이밍 PC라고 이름붙은 PC의 가격이 사무용보다 훨씬 비싸게 나오는 장면이 이를 증명한다. 게임용 PC는 어느 정도 게임에 관심과 의지가 있는 이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비용을 치르면서 구매하는 무엇이 되었고,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친구들과 함께 적당히 즐기고는 싶은 수준의 라이트 게이머들은 PC보다는 다른 디지털 디바이스에서 작동하는 게임으로 중심을 옮기게 된 것이다. PC로 로컬플레이 하던 이들이 모바일 온라인 시대를 맞이하다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하나의 문화현상이 등장하는 것보다 퇴보하는 것의 원인을 찾는 일은 훨씬 어렵고 쉽게 일반화할 수 없다.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이 떨어지고 체력이 예전같지 않은 문제부터 경제생활에 종사하며 여가시간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가장 일반적이라면, 이 연구과정에서 나는 그만큼의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라이트게이머들에게는 결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했을 더 많은 이유들을 마주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라이트게이머들이 지적한 두 가지 이유, 로컬플레이의 소멸과 PC환경의 퇴조라는 두 지점은 단지 ‘스타크래프트’ 시절에만 머무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게임과 게이머의 변화까지를 아우르는 무엇이라는 점이었다. 자칫 우리는 게임과 게이밍을 생각할 때 그 대상을 고정된 무언가로 잠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이 대상이 얼마나 역동적이며 다양한 변수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게이머라고 부르는 집단은 결코 과거의 그들이 고정되지 않은 채 새로 들어오는 이와 나가는 이로 진폭을 만들며, 그 개개인 또한 시간과 환경의 변화 속에 각자의 이유로 변해간다. 사람의 변화도 그러할진대, PC라는,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매우 보편적이고 당연했던 어떤 기기가 다음 세대 혹은 PC게임에 딱히 열정이 없는 누군가에게는 이제 매우 어색한 기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를 포함한다면 우리는 게이머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만 한번 더 짚어내는 데 그치고 만다. Tags: 스타크래프트, 중년, 중년게이머, PC, 로컬플레이, 응우옌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게임과 예술 :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문에 현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게임이 일정한 미적인 속성을 체계적이고 인공적으로 구성한 형식이 아니면 무엇일까. 너무나 당연했다. 사진과 영화가 아날로그 기술적 혁신에 대응하는 형식이었다면, 게임은 디지털 혁신에 대응하는 고도의 예술형식이라고 보는 게 당연하고 타당했다. “모든 예술형식의 역사를 보면 거기에는 위기의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는 이들 예술형식은 변화된 기술수준, 다시 말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통해서만 비로소 아무런 무리 없이 생겨날 수가 있는 효과를 앞질러 억지로 획득하려고 한다. < Back 게임과 예술 :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 12 GG Vol. 23. 6. 10.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문제를 은폐하는 것이다" - 베르그송 1. 게임은 예술인가 우문에 현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게임이 일정한 미적인 속성을 체계적이고 인공적으로 구성한 형식이 아니면 무엇일까. 너무나 당연했다. 사진과 영화가 아날로그 기술적 혁신에 대응하는 형식이었다면, 게임은 디지털 혁신에 대응하는 고도의 예술형식이라고 보는 게 당연하고 타당했다. “모든 예술형식의 역사를 보면 거기에는 위기의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는 이들 예술형식은 변화된 기술수준, 다시 말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통해서만 비로소 아무런 무리 없이 생겨날 수가 있는 효과를 앞질러 억지로 획득하려고 한다.” 1) 더욱이 게임은 일찌감치 여느 예술 못지않게 당대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과 감정을 담아냈다. 어쩌면 그 이상이다. 게임은 사람들과 ‘호흡’한다고, 게임을 통해서 사람들끼리 ‘공명’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도대체 게임의 어떤 점에서 예술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MMORPG에서 여럿이 함께 난관을 하나씩 극복하며 최종보스를 잡는 경험도, 싱글 액션게임에서 고독한 게이머가 산산히 흩어진 세계(와 조각난 이야기)를 힘겹게 짜맞추어 나가는 과정도, 예술적 경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게임은 기존의 예술적 형식과 경험을 반복하는 동시에 갱신하며, 예술·세계·경험을 확장시킨다고 봐야 했다. 물론,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는 과정이 녹록하지 않고, 여러 불편한 과정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는 있었다. 전례가 있지 않은가. 영화 사진 만화 등 뒤늦게 등장한 예술형식들은 이 통과의례를 거쳤으며, 여전히 시험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임이라고 예외는 될 수 없을 테니,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고난의 시기’만 잘 넘기면, 어렵지 않게(?) 정착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당연히 준비할 거리는 있었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문학과 미술 같은 예술과 똑같지는 않았기에 ‘설명’이 필요했다. 새로운 형식들을 추동한 것이 무엇인지, 그 때문에 다른 특성을 띠는 게 무엇인지, 밝혀야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꼬였다. 이 점에서 게임은 영화에 비해서 운이 나빴다. 그것도 매우. 2. 서사, 그 예견된 잘못된 만남 생각해 보면, 문학은 언제나 준비된 상태였고, 그만큼 성공할 때가 많았다. 미술과 음악은 물론이고, 최근에 등장한 영화까지 문학의 위성예술로 만들고자 했던 전례를 생각해 보라. 문학의 이른바 ‘멀티’ 행보는 유구하게 악명 높다. 2) 역사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미술이었다. 역사와 함께 태어났지만, 미술은 언제나 ‘찬밥’ 신세였다. ‘시는 회화와 함께’ut pictura poesis라는 테제처럼, 미술은 문학이 되고 싶었고, 문학의 기준에 따랐다. 아니, 따라야 했다. 더욱이 문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비롯해 이후에도 쟁쟁한 문학·이론이 뒷받침했다.(서구에서 성경은 역사·서사 자체였다) 역사는 (그리고 종교와 이념과 체제는) 언제나 문학의 편이었다. 역사 자체가 그것들이 뒤섞인 ‘이야기’story이지 않은가. 그들은 마음대로 미술과 음악 등에 마수를 뻗쳤고, 서사를 형식에 상관없이 우격다짐 밀어 넣었다. 미술은 그렇게 종교화나 역사화가 되었고, 음악은 가극이 되었다. 미술의 경우 20세 중반이 돼서야 겨우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다. “평면, 그 2차원성은, 회화예술이 어떤 다른 예술과도 공유할 수 없는 유일한 조건이며, 따라서 모더니스트회화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평면성 그 자체에로 향하는 것이다.” 3)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을 ‘평면성’flatness으로 규정하고, 비미술적인 것에 전면전을 선포했다.(물론, 문학이 완전히 ‘청소’된 것은 아니었고, 현재도 여전히 곳곳에서 진지전이 벌어지고 있기는 하다) 영화는 비교적 형편이 나았다. 기술적 태동기를 짧게 거친 후, 영화의 잠재력을 알아차린 전위대가 일찍부터 달라붙었다. 만 레이가 대표적일 것이다. 초현실주의와 다다 등, 그들은 선언부터 하는 집단이었다. 그들은 문학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필요하다면 스스로 비문학적 문학을 하는 예술집단이었다. 예술의 외부인 자본과 산업도 한몫 거들었다. 그것들은 영화형식의 기술적 본성을 완전히 실현시켰다. 강철에서 다리로 뛰는 철마가 아니라 바퀴로 구동하는 기차를 제작했듯, 영화의 형식을 완전히 개방시켰다. 매체의 양적 속성을 합리화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른바 순수이론 영역은 오해를 양산했다. ‘기술적 반응과 질료적 실현’은 ‘순수예술·대중문화’의 범주로 엉뚱하게 굴절되어, 결국은 ‘머릿수’ 논쟁으로 곡해되어 전파됐고, 두고두고 ‘서열놀이’가 이어졌다. 이후, 벤야민의 이론을 통해서 교정될 수는 있었지만, 완전히 일소됐다고 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게임은 영화에 비해서 운이 나빴다. 더욱이 게임은 영화와도 매우 달랐다. 돌연변이나 괴생명체 같다고 할까. 영화는 그래도 사진과 연극이란 징검다리로 기존의 예술과 연결됐고, 예술적 전위들이 재빠르게 합류할 수 있었다. 반면에 게임은 모든 게 기존의 예술과 단절되어 발원했다. 최초의 게임 〈퐁〉을 생각해 보라. 출력되는 모니터, 입력하는 인터페이스, 장치내부의 숨겨진 이진수체계 등, 기존의 예술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형식이 달랐다. 더욱이 생산자도 생산환경도 개발자에 실험실이었으니, 완벽한 이종(異種)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이후, 문학 미술 음악 등 기존의 예술을 내용으로 ‘흡수’하면서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태로 가시화됐지만, 사진과 영화에 비해서 처음에 느꼈던 이질적인 ‘거리’는 컸으면 컸지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때부터 발생했다. 게임이 성숙하고 형식이 완연한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자, 설명이 요구됐다. 게임은 예술인가, 예술이면 무엇 때문인가, 꼬리에 물 듯 질문이 이어졌고, 예술적 ‘인정과 인증’이 필요해졌다. 문학은 언제나 그렇듯 독보적으로 빨랐다. 역시 서사가 전가의 보도였다. 장장 2000년 넘게 호령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생각해 보라. 장수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곰곰 생각하면, 문학은 참 이상하다. 미술이나 음악은 다른 곳에 차용돼도 청구하지 않는데, 문학은 늘 청구한다. 때로는 월권을 서슴지 않는다. 게임이 운이 나빴던 것은 (영화처럼)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개발과 예술의 거리는, 비평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이 상황은 나아졌다고는 해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새로운 형식을 실험할 사람도 빠르게 나타나지 않았다. 4) 이론적 무주공산, 누구에게 이보다 쉬운 등반은 없었을 것이다. 놀이론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자 불가피한 대응이었을 것이다. 게임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관련된 전거를 찾았고, 자연스럽게 인류학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곳에 게임·놀이가 있었으니까. 더욱이 ‘행위’를 설명하기도 적합해 보였다. 그것은 일찍이 다른 문화·예술 형식이 들추어낸 적이 없었다. 주지하다시피, 놀이는 미분화된 원시종합적 (예술)형식이다. 모든 게 녹아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며, 정치와 사회를 배우고, 미술도 음악도 춤도 익힌다.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하면, 사람과 이론에 따라 선택되는 속성의 조합은 무한해진다. 어떤 이는 도박과 가면놀이를, 또 어떤 이는 다른 무엇들을 선택해 조합할 것이다. 이 작업은 끝이 없고, 발굴되는 유적이 늘어날 때마다 가설이 늘어나는 고고학처럼, 게임이 다양해질수록 선택되는 속성들의 조합도 똑같이 늘어날 것이다. 이후, 이렇게 성립한 ‘서사 대 놀이’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승패를 영원히 가릴 수 없는 카드게임과 전혀 다를 없었다. 이쪽이 이 카드(반례)를 내밀면, 저쪽은 저 카드(반례)를 내밀고, 이것이 영원히 진행된다. 이 미학적 PvP에서 문학이 졌을까. 사실 역사에서 문학이 지는 법은 거의 없었다. 역사는 (이념은 종교는 체제는) 언제나 문학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개개의 논쟁에 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도는 영원히 남는다. 이 문학적 ‘문제’를 제거하지 않는 한, 문학적 ‘해’solution와 씨름해 봤자 소용이 없다. 이 문제는, 이 논쟁은, 이미 문학의 승리를 영구히 한다. 그것이 진정한 ‘전리품’이며, 그런 식으로 폐쇄적인 담론구조를 만들어, 또 다른 생산적 담론을 은폐하고 차단하는 것은 훌륭한 ‘덤’이다. 3. 게임, 해석과 비평의 사이에서 모든 비평은 ‘텍스트’라는 것을 무엇보다 유념해야 한다. 하지만, 이 ‘언어의 유혹’은 너무나 강력해서, 떨치기 힘들다. 그것은 본능에 가깝다. 비평조차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평의 내재적 운명이다. “모든 예술은 벙어리인 것이다…시는 언어를 사용하되 사심 없는 언어를 사용한다. 즉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지 않는다.” 5) 비평이 예술에 대해서 말하는 권리라면, 그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말할 것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비평의 태도는 모든 곳에서 ‘언어’를 발견하는 구조주의자와 비슷하다. 6) 그들은 떨어지는 낙엽에서도 서사를 발견할 것이다. 따라서, 비문학적인 것을 비평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다. 다른 매체의 고유한 굴곡을 ‘평평하게’ 다듬고 눌러서, 서사의 고속도로를 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언어는 언어로 분해하는 게 가장 쉽다. 그러한 해석에 반대해야 하며, 그것이 제1의 공리가 돼야 한다. 앞서 미술의 경우 장장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서사에서 겨우 독립했다고 말했다. 회화론은 1430년대에 와서야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트가 처음으로 제창했고, 이때 처음으로 ‘의미 있는’ 그림에서 ‘정확한’ 그림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는 무엇보다 기하학의 세속적 형식인 원근법 덕분이었다. 말하는 방법이 아닌 보는 방법은, B.C. 4세기 경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등장한 이후, 장장 1800년이 필요했다. 본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 본래의 형태를 그리는 것이 그만큼 힘들었던 것이다. 알베르티의 회화론은 소중한 자산이었지만, 카드 한 장에 불과했다. 카드게임을 할 만큼 패가 두둑히 마련된 것은, 20세기를 거치며 수많은 실천과 이론이 축적된 이후였다. 특히 러시아 구성주의자(미래파)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1915년) 같은 작업은 텍스트가 한치도 침입해 들어갈 틈이 없었다. 기껏해야 작품 전까지 작가의 행로나 그의 태도나 같이 활동한 집단을 묘사할 따름이다. 언어가 주변을 웅성거리며 맴도는 그곳은, 텍스트의 무덤이다. 7) * '검은 사각형'. 카지미르 말레비치. *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 블라디미르 타틀린. 그래서 〈에디스 핀치의 유산〉이나 〈바이오쇼크 인피니트〉 같은 게임을 조심해야 한다. 물론, 좋은 게임들이란 사실은 틀림없다. 몇 시간 몰입해 끝내고 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솟구칠 것이다. 변신이나 미로 같은 구조를 보면 카프카를 언급하고 싶어질 수도 있고, 전체주의와 반영웅을 보면서 근대체제의 우의allegory로 분석하고 싶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입장에 따라서는 윤회까지 떠올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이 무엇일까. 예를 들어, 〈디아블로 3〉 2회차 경험을 생각해 보라. 과연 게이머가 레아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생각할까. 티리엘의 (지위) ‘하강’을 보면서 희랍비극의 과오harmatia 개념을 끄집어낼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이머의 머릿속에는 이번에 할 빌드와 하늘에서 ‘찰랑’ 빛나며 떨어지는 전설 아이템만 주시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이 346회차 하니까 서사적 경험은 1/346으로 줄었군 하면서, 게임의 평균회차로 서사적 경험을 ‘나누면’ 문제가 해결될까. 혹은 딱 한 차례 경험한 게이머를 심층면접해서 따로 정리해 ‘본질적’ ‘핵심적’ 서사적 경험을 증류하면 충분할까. 이런 식의 접근법은 넌센스다. 여기서 서사는 놀이동산에 입장할 때 필요한 ‘입장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인물도 사건도 심지어 개연성까지 타락시켰지만, 게이머가 게임을 계속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게임에서 서사는 기껏해야 필요조건 중 하나지, 결코 충분조건이 아니다. 8)9) * '에디스 핀치의 유산'(위), '바이오쇼크'(아래) 4. 미술이라는 전례, 미래의 전령으로서 게임 현대에 미술은 문학과 반대의 길을 걸었다. 본질로 부르든 핵심이라고 하든 ‘하나’를 고수하는 대신에, 그 하나마저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미술을 영역이라고 한다면, 무대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틀고 연극도 하고 강의도 하는 등, 실행가능하고 상상가능한 모든 행위가 ‘전시’되며, 심지어 요리도 한다. 미술은 말 그대로 ‘일반예술’이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게임은 미술과 비슷하다. 여러 다른 예술을 흡수하는 동시에, 심지어 경제 사회 정치 등 다른 부문까지 끌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과 게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미술이 ‘사용’하는 수준이라면, 게임은 각각의 부문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윌리엄 깁슨) 깁슨의 말대로 미래가 널리 퍼져 있지 않을지는 몰라도, 게임이 미래의 일부를 선취해 게이머를 ‘훈련’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최소한 게임이 전위에 서 있다는 뜻이다. 일찍이 하우저는 연극을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부대끼며 대화하고 논쟁하며, 근대적 시민으로 형성됐다는 것이다. 현대에는 고독한 개인의 ‘묵독적 (혹은 해석적) 태도’가 연극은 물론 영화까지 점령했지만, 초창기 영화도 연극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했다. 10)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서 왁자지껄하게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장면을 상기해 보라. 그곳에서 지금과 같은 개인의 정적이고 수동적인 감상은 없었다. 그 경험은 집단적이었고 역동적이었다. “대중은, 예술작품을 대하는 일체의 전통적 태도가 새로운 모습을 하고 다시 태어나는 모태이다. 양은 질로 바뀌었다…정신분산으로서의 오락Zertreuung과 정신집중Sammlung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다…영화는, 관중으로 하여금 비단 비평적 태도를 갖게 함으로써만이 아니라 그와 아울러 이러한 영화관에서의 관중의 비평적 태도가 주의력을 포함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종교의식적 가치를 뒷면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관중은 시험관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그러나 그는 정신이 산만한 시험관인 것이다.” 11) 벤야민은 이 분산적 태도에서 새로운 사회(사회주의), 예술(영화), 주체(대중)를 모색했다. 벤야민은 영화를 분석하며 미래를 진단했지만, 그의 묘사는 게임에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물론, 그것이 연극이나 영화처럼 민주주의적 경험은 아닐 것이다. 벤야민이 기대했지만 실패했던 미래의 사회도 미래의 예술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과거의 예술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문학적 패악은 끝나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각작용aesthesis 일반’의 변화다. 미시적 습속들의 변화, 말하는 화법들,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는 방식들, 물건을 교환하고 결제하는 행태들,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들, 혹은 작업장의 봇들이나 디지털 사회범죄 같은 문제들 등등, 그 밑바닥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지만 꾸준하고 착실하게 변화를 추동하는 기술적 동향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 모든 변화의 기원을 게임에서 찾자는 게 아니다.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경험과 태도의 변화를 게임이 주도하며, 게이머를 (혹은 인류를) 훈련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관찰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잘 만든 AAA게임에 주목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게임과 다른 사건과 다른 기획을 주시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어차피, AAA게임들은 본성상 비평(제도)에 친화적이다. 그런 게임들은 언제나 할 ‘이야기들’이 많고, (게임 외적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넘쳐난다. 그러면 다른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예를 들어, 통계적 피드백을 게임에 접목해 게임행위를 미묘하게 비트는 행태 같은 것.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뻔한 서사적 결말들보다, 게임행위에 개입하는 통계수치의 ‘효과’를 분석하는 게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중요한 (윤리적) 판단을 할 때마다 통계수치와 비교해 보는가. 통계적 지표는 관찰대상이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지표의 기능을 상실한다. 피드백 루프가 발생해, 게이머가 행동을 선택할 때 지표로 삼는 순간, 지표기능이 교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별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렇게 미묘하게 인간·게이머의 ‘결정구조’를 변화시키는 방식들, 거칠게 말해서 수치에 따라 윤리적 판단을 하는 사회를 상상해 보라.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저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12) 게임 외부에서 흥미롭게 볼 만한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메타의 메타버스 기획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블리자드 인수계획 같은 게 있겠다. 언뜻 보기에 메타의 메타버스는 과거 〈세컨드 라이프〉를 상기시킨다. 둘 다 커뮤니티 서비스의 3차원 확장인데, 게임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세컨드 라이프〉는 현실의 ‘보완재’에 불과했다면, 메타의 기획은 ‘대체재’를 지향한다는 것. 실패했지만 메타가 2019년 암호화폐 리브라를 발표했던 것도 생각해 보라. 메타의 메타버스는 온전한 세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인류 이주계획’인 것이다. 이 계획에서 게임이 직간접적으로 매개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달리 다가오는가.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도 의미심장하기는 비슷하다. 최근 인공지능 때문에 주가를 올리고 있지만, 게임 쪽 확장도 광폭이다. 다섯 손가락에 손꼽히는 RPG 스튜디오 베데스다를 인수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까지 노리고 있다. 독점 논란 때문에 여의치 않아 보이지만, 성사만 된다면 어떤 양상이 벌어질지 사뭇 흥미롭다. 알다시피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사회’다. 시작은 달랐지만 이런저런 흐름들이 게임을 매개로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까. * 메타의 '메타버스' 한때 예술은 미래의 안테나라고 했다. 이제 게임은 현재에 도착한 미래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균등하고 불균질적일 지라도. 1)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2000, 224~5. 2) 한국에서도 비슷한 패악이 되풀이됐다. 2000년대 초중반, 영화비평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을 때, 계간지 〈창작과비평〉은 ‘문학적으로’ 영화비평을 딱 한 번 시도했다. 편집위원 김영희가 앞장섰는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김소영이 〈창작과 비평〉의 월권을 거세게 비판하며, 일단락(?) 되었다. 3) 클레멘트 그린버스, “모더니스트 회화,” 〈현대미술비평 30선〉, 계간미술편중앙일보사, 1992, 67쪽. 4) 이후 매체예술이나 뉴미디어 형태로 미술에서 반응하기 시작하긴 했다. 2000년 개최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디지털 호모 루덴스〉가 초창기 상황을 보여준다. 5) 노스럽 프라이, 〈비평의 해부〉, 한길사, 2000, 48쪽. 6) 들뢰즈, “구조주의를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 518쪽. “사실상 오로지 언어적인 것에만 구조가 존재한다…무의식은 그것이 말하는 한에서, 그리고 언어인 한에서 구조를 지닌다. 신체는 징후들이라는 언어를 통해 말하는 한에서 구조를 지닌다. 사물들은 기호들의 언어인 침묵의 담론을 취하는 한에서 구조를 지닌다.” 7) 그러나 러시아 구성주의의 미래는 ‘배드 엔딩’으로 끝났다. 미래의 사회(였던) 소련에서 미래의 미술은 스탈린이 집권한 이후 현재가 된 사회에서 과거의 문학에 패배했다.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는 일리야 레핀의 아류이자 후계자들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갈음됐다.(벤자민 부흘로, ‘팍투라’에서 ‘팍토그람’으로, 〈현대미술과 모더니즘론〉, 시각과언어사, 1995 참고) 8) 영화나 게임에서 비평가의 진술과 관객과 게이머의 선호가 충돌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쓰기 좋은 소재와 관객과 게이머의 경험은 ‘우연히’ 일치한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더욱이 이야기하기 좋은 게임이 반드시 좋은 게임인 것도 아니다. 조금 과장하면, 졸작은 졸작대로 할 말이 많다. 9) 〈엘든링〉 같은 게임에서 파편화된 이야기 조각들을 찾는 게 ‘또 다른’ 게임행위가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게이머가 서사와 무관하게 시간을 통제하며 행동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행태는 루카치가 생각했던 근대적 주체의 의미찾기 같은 게 아니다. 죽은 시체에서 단서찾기 같은 것으로, 에른스트 블로흐가 ‘죽은 이야기’라며 비판했던 범죄소설의 형식과 비슷하다. 영웅적인 주체가 의미를 찾는 여정이 약물중독자의 수수께끼 풀이로 귀결되는 것을 주류 (문학) 이론가들은 못내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장르문학 딱지를 붙이며 서열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지금도 그렇기는 하다. 10) 1973년 〈록키 호러 픽쳐 쇼〉가 우발적으로 인기를 끌며, 이 정적이고 묵독적이고 해석적인 태도를 공격했다. 이 컬트영화가 영화제도와 관객성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 소규모 ‘반란’은 이내 진압되었다. 지금은 영화역사서 아니면, 흔적조차 찾기 힘들게 되었다. 반면 게임에서 행위는 ‘디폴트 값’이다. 11)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2000, 228~9쪽. 12) 현재 미국은 범죄자의 재범가능성을 엄격한 수학적 통계적 알고리즘에 따라 평가하고 반영한다.(데이비드 섬프터, “편향없음은 불가능하다,” 〈알고리즘이 지배한다는 착각〉, 해나무, 2022) Tags: 예술 미술 비평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김상우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다. 미술 , 매체, 게임 세 가지로 세상을 응시하며 미술기획과 글쓰기하며 활동했다. 〈죄악의 시대〉(2010), 〈딱 한 판만〉(2009) 등의 전시를 기획했고, 〈게임과 문화연구〉를 같이 썼고, 〈친밀한 살인〉, 〈튜링스 맨〉 등의 책을 옮겼다.

  • Frights, Fears, and Fallout: Layers of Horror in Popular Gaming

    In my personal gaming history I have two distinct memories of fear. The first time I was truly scared while playing a game was during the first Resident Evil in what has become a notorious scene from the game. Though at the time Resident Evil felt more like a slower action game than a horror game, there was one key moment when the player walks down a hallway when suddenly one dog, then another bursts through the windows from the outside causing fright, disorientation, and panic. This is an example of a pretty standard jump scare in games (and other media), and though it did frighten me at that moment, I didn’t carry any greater fear of those dogs and what they represented beyond a slightly heightened anxiety while I walked the halls of Spencer Mansion. < Back Frights, Fears, and Fallout: Layers of Horror in Popular Gaming 19 GG Vol. 24. 8. 10. Introduction - What Kind of Fear? In my personal gaming history I have two distinct memories of fear. The first time I was truly scared while playing a game was during the first Resident Evil in what has become a notorious scene from the game. [1] Though at the time Resident Evil felt more like a slower action game than a horror game, there was one key moment when the player walks down a hallway when suddenly one dog, then another bursts through the windows from the outside causing fright, disorientation, and panic. This is an example of a pretty standard jump scare in games (and other media), and though it did frighten me at that moment, I didn’t carry any greater fear of those dogs and what they represented beyond a slightly heightened anxiety while I walked the halls of Spencer Mansion. The second - and more persistent - memory I have of being scared in games comes from the early hours of Fallout 3 . [2] While wandering the capital wasteland the player can stumble upon the Super-Duper Mart, a dark and gloomy grocery store that has been taken over by post-apocalyptic raiders. * Raiders Inside the Super-Duper Mart - Fallout 3 Unlike the dogs from Resident Evil, the threat is known, expected, and mostly visible as the player can see some of the raiders. The raiders are silhouetted - moving in and out of the shadows as a green-tinted fluorescence faintly lights up the ransacked aisles of this former grocery store. Faintly in the distance the ceiling stocks a different kind of meat: bodies. Human remains are draped from the ceiling by chains as an indication of what fate awaits the player if they are discovered here. Because I arrived here early in the game I had only a few resources and lacked the power to fight out of the situation, but I felt I needed what the raiders had if I was to make it out in the post-apocalyptic wasteland of Fallout 3 . As I snuck about the store trying to loot what I could without confrontation, my heart rate went up over the many minutes it took to work my way through the store, and when I heard footsteps or saw a raider around the corner that I didn’t anticipate I would feel a slight moment of panic. When it was all said and done there wasn’t a single jump scare in the Super-Duper Mart, but I left that sequence of Fallout 3 with a persistent memory of fear that sticks with me to this day. These two examples of my earliest scares in games show us that there are different kinds of fear and horror that we can respond to in different ways. Throughout this article we look at how jump scares and sudden frights compare to our everyday fears and the longform terror that certain approaches to storytelling, game mechanics, environment, and atmosphere can produce. Sudden Frights Sudden frights, better known as “jumpscares,” populate many horror games. When we play horror games, we know what we’re signing up for - an experience riddled with tension and anxiety and moments of shock and horror. Players excitedly opt in to having the pants scared off of them. There is a certain enjoyment derived from being scared in the way of sudden frights. From haunted houses in amusement parks to horror films, the anticipation of what frights are to come becomes part of the entertainment. To discuss what makes things go bump in the night, we’ll take a closer look at the some of the game design in Outlast [3] and Amnesia: The Dark Descent [4] and how they afford sudden frights for players. Spoilers ahead for both games. Outlast is a first-person survival horror game. You play as journalistic investigator Miles Upshur, who goes to Mount Massive Asylum after receiving a tip that there are some shady dealings and situations happening at the institute. Equipped with a camcorder, Miles explores the asylum discovering everyone is either a) dead, b) clinically unwell, or c) clinically unwell murderers. He comes across “Father Martin,” a self-proclaimed acolyte to “the Walrider,” which is revealed to be a nanomachinic phantasm controlled by one of the patients locked away in the very depths of the institute. Similar to Outlast , Amnesia is also a first-person survival horror game, but with more sophisticated puzzle elements. The game starts with the player waking in a stone room of a castle, no recollection of who they are except that they are called Daniel. They are directed by letters written from past Daniel to kill a man called Alexander who is residing within the depths of the castle. There is a lurking threat of a “Shadow” enclosing in on the castle to kill Daniel, as well as horribly disfigured monsters that stalk each of the castle’s areas. What is stand-out for these two games, and many other horror games like them, is the use of the unknown as a device for generating fear in players. We fear that which we do not, or cannot know. In Amnesia this takes shape in the literal lack of knowledge as a result of Daniel’s self-inflicted amnesia, and in Outlast it is the context of Miles as an investigative journalist - the player inhabits the roles of two relatively clueless protagonists traversing unfamiliar grounds. This is also reflected in the environmental design of these two games. Both the castle in Amnesia and the asylum in Outlast include maze-like corridors and shadowy corners to keep the player guessing what might be around the corner or lurking in the darkness. Haahr explored the variety of ways that horror games modify a player’s vision to contribute to feelings of fear and unease: obscuration (shadows and mist), distortion (warping the player’s vision), and mediation (viewing the world through a secondary lens - like the camera in Outlast ) are found in both games [5] . Even the use of a first-person perspective in both games restricts the player’s field of view, emphasizing the feeling of catching a glimpse of something in the corner of your eye. Or, the “peeking” mechanic in Outlast , where Miles can quickly glimpse around a corner can suddenly have the player confronted by an enemy who spots him. Fear as an affect mounts in the anticipation of an attack from something we do not know [6] . With this modification of vision, tension is built over time, all with the purpose of breaking it. * Corridors in Amnesia: The Dark Descent[7] Compared to environmental design, audio design in these games help to offer players insight into what might be just out of sight. While the ambient sound of creaking wood and whistling wind might set the player on edge, certain sounds can signify an enemy or threat is nearby. In Amnesia , the groaning of the Monsters signal their proximity to Daniel, and in Outlast the jingling of chains, or heavier footsteps signal the bosses of certain areas hunting Miles. Though these audio cues offer instructions to the player, these enemies are still “audible but unseen” [8] - they are unknown to the player visually, adding to their frightening nature. The exposure of the enemy to the player after hearing them trail them for some time adds to the jumpscare feeling when they are finally spotted. In contrast to ambient sounds, when being chased, the audio ramps up immediately from ambient to intense music and heavy breathing as the player attempts to evade the threat. This scenario typically emerges when the player is spotted however, so while there is of course fear and panic in the sudden chase, they are somewhat emotionally prepared for the pursuit. However, when (from seemingly thin air) an enemy appears behind the player - who has been diligently surveying their shadowed surroundings and listening for audio cues - the jumpscare is a resounding success. An unpredictable appearance after having all the tools to know when and where a threat is reveals to the player just how powerless they are [9] . Powerlessness is an important element in generating sudden frights. At the opening of both games the player is instructed that they can only run, hide, or die. There is no option to fight the threats pursuing them. It is a total subversion of the typical power fantasy videogames offer. The player is not a gallant fighter equipped with magic and strength, they are just some guy trying to escape a hellish space. When an adversary suddenly appears there is no defending yourself - they are a palpable threat. Additionally, resource management, a mechanic taken from the genre defining Resident Evil , adds to this powerless player feeling. In Amnesia and Outlast the resources are related to keeping the area around brighter: tinderboxes and oil in Amnesia , and batteries for the camera in Outlast . In Amnesia , being exposed to dark areas drains your sanity until you die, whereas in Outlast the camera’s night vision allows you to see enemies more clearly. Without this night vision feature, moving through the asylum is significantly more treacherous. Players (unless they know the locations of all the resources) are typically on the precipice of not having enough resources throughout the game - this scarcity threatens their survival. Sometimes players might have to expose themselves to frights in order to reach areas with more resources, as some rooms may be in closer range to enemies paths. The toss up between gaining resources and risking being caught vs. fleeing the area entirely and guaranteeing safety is the strategic decision players must make throughout the survival horror experience. * Nightvision with the camera in Outlast [10] . Even guaranteeing safety is trepidatious in sudden fright games. Resident Evil had safe rooms where the player could save the game. Amnesia and Outlast have no such mechanic. However, in Outlast there are certain story moments and cutscenes that show Miles progressing with the game’s objectives: find a key, get to the security room, etc. Players are led to believe in the early game that these cutscenes showing success in moving to the next step in escaping emulate the videogame “checkpoint” moment, a moment of respite from the tension, but one of the first major jumpscares happens right as Miles reaches the security console and is grabbed by Father Martin and injected with an anesthetic - putting him to sleep and trapping him deeper in the asylum. Like powerlessness, the not-so-safe-checkpoint is a subversion of expectations in how videogames typically go and contributes to sudden frights. A final tangential note on sudden frights comes from beyond the two discussed games and looks to player deaths in games. In games like Alien [11] and Tomb Raider [12] the ways that Ripley and Lara Croft die can be attributed to sudden frights. There is a gratuitous gore that takes place in all the creative sequences in Ripley getting caught by the Xenomorph, or Lara missing a grab in a quick-time event that surprises the player, expecting initially a fall to her death or a fade to black. The variety of these death sequences means until the player has seen all the animations, they preempt their failure with bated breath to see which horrible way they’ve caused Ripley or Lara to die this time. Sudden frights are an anticipation of fear, the enjoyment we derive from being spooked, and the pay off for well-designed gameplay experiences. We scream, laugh it off, knowing it can’t really hurt us, and continue playing, awaiting the next jumpscare on the horizon. There’s a reason horror games with sudden frights propelled many early YouTubers’ careers - frights are enjoyable, memorable, and it is fun to watch someone else get scared alongside you. Sudden frights rely on the standards and expectations of the horror game genre to do what it does successfully. Persistent Motivating Fears While describing the role our emotions play relative to the actions we are compelled to take while playing videogames, Nele Van De Mosselaer writes about the experiences of Charles, a fictional videogame player. Charles represents a common type of occurrence in videogames, as he confronts a slime in a horror game: “He is shocked when a green slime monster suddenly comes creeping towards him on screen. Charles shrieks in terror and hurriedly moves the control stick on his controller to run away from the slime. After seeing that it is much faster than he is, he fears for his life, turns around and starts pounding the monster with his fists. The monster moans in pain, but manages to kill him.” [13] Van De Mosselaer notes Charles' motivation to take these particular actions in the game. First running and then attempting to kill the slime “...seemed at least partly inspired by his fear for the fictional monster: it was his fear that made him hurriedly move his control stick away from the monster and start mashing his attack button when the monster came too close. Imagine a less anxious Charles who doesn’t fear the slime monster, but rather feels anger towards the creature because it already killed him three times before. It is likely that this Charles would not be similarly motivated to use his control stick to run away from the monster, but would rather move the stick towards the monster and start pressing his attack button more deliberately.” [14] We could extrapolate from Van De Mosselaer’s example that even the slightest fears play a strong role in motivating the ways we play across various genres and game mechanics. Beyond the pure affective reaction to a fright that triggers a startle response, fear compels a great deal of our gameplay actions and our metagaming decisions in contemporary game design. In a horror game the enemy being a horrific zombie instead of an unremarkable adversary can potentially change the fight response into a flight response, but what is fear’s role when we take conventional notions of horror out of the equation? Humans have a range of phobias (the dark, spiders, ghosts) that are played up within horror and horror-adjacent genres, but we also harbor many everyday fears (will I lose my job, will my partner leave me, I don’t want to become ill, etc) that also drive our everyday actions. Let’s think about the play pattern of some popular gacha games with limited time events like the HoYoverse games, or persistent games like Lost Ark [15] or World of Warcraft [16] that encourage you to play every day to grind for in-game currency. FOMO, or the “ Fear of Missing Out” is a key driving force in these kinds of gaming models. The idea that a player may miss a limited opportunity or may fall behind other players is a legitimate fear in these kinds of games, and compels players to play compulsively. Often these games are more associated with addictive play patterns, but the fear of dropping to lower social status within the playerbase is an equally motivating drive for players to play often and take action even if it is less bombastic than Slenderman or a zombie. It is also extremely common for character death in games to be a fail state for the player. On one hand we could say that this taps into the quite pervasive human fear of death, but players mostly know that death in a game and death in real life don’t have the same stakes. Still, dying in a game does tap into our pre-established associations with loss and the drive to avoid it. Games can turn this dial up or down by making that loss more or less permanent. In games like the Diablo or Fire Emblem series for example, players can opt to make ‘hardcore’ characters or choose ‘permadeath’ when beginning the game. This is where a single character death in game means that a character is lost forever without the ability to retry or start from a checkpoint. These kinds of playstyles are popular and add a level of tension and excitement to these games, and they do so precisely because the fear of loss and even fictional death can create new emotional stakes for every decision a player makes about their characters. Nuclear Anxiety and Lingering Terror In Brian Massumi’s opening chapter to The Politics of Everyday Fear , the names of high-profile accident victims like Buddy Holly and James Dean, famous disasters like Chernobyl and Bhopal, and infamous diseases like Tuberculosis and AIDS are prominently displayed throughout the chapter in large bold font. [17] The shared connection between these words is their symbolic power to evoke a range of persistent fears and anxieties from within us. Not only can they put memories of tragic and horrifying events from the past into our minds, but they also impress possible horrors of the future upon us: Future horrors that we’ve come to anticipate because of our knowledge of the past. That frightened anticipation is better known as terror, and within that terror we experience anxiety because of the possibility that those future horrors may do us harm. [18] Returning to my first examples of Resident Evil and Fallout 3 , I can better explain why the raiders of the Super-Duper Mart stuck with me compared to the shock of Resident Evil ’s dog jump scare. Compared to the dogs, the persistent symbolism of what the raiders represent in the post-apocalyptic American landscape of the wasteland has been consistently evoked since that first encounter. At first this happened throughout Fallout 3 , but I encountered that feeling again and again throughout the franchise, as one of the persistent themes of the Fallout series is the depths to which desperate people can go. Nestled within larger fears that the series draws upon - such as the still-looming specter of nuclear conflict and those associated fears [19] - is a much simpler and small-scale possibility that the people around us may turn to violence and that I, and those that I love, may suffer the horror that follows because pieces of our societies are becoming less and less sustainable. David Peckham channels the work of the neuroscientist Joseph LeDoux, who contends that “anxiety ‘is the price we pay for our ability to imagine the future.” [20] A franchise like Fallout helps us imagine one of those possible futures, and it does so by drawing on historical and emergent fears that exist within our world. Rather than simply evoking the panic response through a jump scare like Resident Evil ’s dogs, trying to stealth through the Super-Duper Mart became a walk through many layers of fear that only grew over time. Horror, terror, panic, and anxiety were bundled together in a complete package of fear. The atmosphere of the room and the hanging bodies produced horror and anticipatory terror that I would be caught with dire consequences for my character. I experienced slight panic that I would be discovered as I heard footsteps or thought I was discovered. Ultimately, and most importantly, the implications of the raiders within the world of Fallout and how it represents a horrific possibility for our own world has compelled me to carry that memory beyond the boundaries of the game itself as a lingering idea of what it is possible for us and our world to become. Games have the possibility to immerse us in horrific situations more than any other medium, but immersion alone isn’t enough to produce meaningful and powerful horror. True horror comes not just from our reactions to sudden sounds and horrific creatures, but from the heightened state of those startling moments alongside dire implications for our world and our existence within it. If a game can use a scare to evoke this kind of looming threat - no matter how far off it may seem - that is when we become truly afraid. Sudden frights come from the unexpected, whether the source is mundane or supernatural. In contrast, persistent fear and anxiety arises from the ‘what ifs?’. In Fallout ’s case, it’s the ‘what if?’ of the all-too-real breakdown of society. There’s an enjoyment and comfort you can derive from being spooked by something you know isn’t real, but what is more unsettling to consider than the perils of our own possibilities? [1] Capcom, 1996. [2] Bethesda Softworks, 2008. [3] Red Barrels, 2013. [4] Frictional Games, 2010. [5] Mads Haahr, ‘Playing with Vision: Sight and Seeing as Narrative and Game Mechanics in Survival Horror’, in Interactive Storytelling, ed. Rebecca Rouse, Hartmut Koenitz, and Mads Haahr (Cham: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8), 193–205, https://doi.org/10.1007/978-3-030-04028-4_20 . [6] Sara Ahmed, ‘The Affective Politics of Fear’, in The Cultural Politics of Emotion (Edinburgh, UNITED KINGDOM: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4), 62–81, http://ebookcentral.proquest.com/lib/concordia-ebooks/detail.action?docID=1767554 . [7] Amnesia: The Dark Descent Full HD 1080p/60fps GTX1070 Longplay Walkthrough Gameplay No Commentary, 2016, https://www.youtube.com/watch?v=hyUf3Ctx-Ck . [8] Rebecca Roberts, ‘Fear of the Unknown: Music and Sound Design in Psychological Horror Games’, in Music In Video Games (Routledge, 2014). [9] Tanya Krzywinska, ‘Hands-on Horror’, Spectator 22, no. 2 (2002): 12–23. [10] OUTLAST | Full HD 1080p/60fps Longplay Walkthrough Gameplay No Commentary,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zZNfd04GO-U . [11] Creative Assembly, 2014. [12] Crystal Dynamics, 2013. [13] Nele Van De Mosselaer, “How Can We be Moved to Shoot Zombies? A Paradox of Fictional Emotions and Actions in Interactive Fiction.” Journal of Literary Theory 12(2), 2018: 286. [14] Ibid., 286-287. [15] Smilegate, 2019. [16] Blizzard Entertainment, 2004. [17] Brian Massumi. “Everywhere You Want to Be: Introduction to Fear.” The Politics of Everyday Fear.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3; 3-38. [18] Joseph LeDoux. Anxious: Using the Brain to Understand and Treat Fear and Anxiety. New York: Penguin Books, 2015. [19] Ryan Scheiding. “War Never Changes? Creating an American Victimology in Fallout 4.” Representing Conflicts in Games: Antagonism, Rivalry, and Competition. Edited by Björn Sjöblom, Jonas Linderoth, and Anders Frank. London: Routledge, 2023; 135-152. [20] Joseph LeDoux, Lecture, New York State Writers Institute 2016. Cited in David Peckham, Fear: An Alternative History of the World. London: Profile Books, 2023, 7.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Game Researcher) Cortney Blamey Courtney is a Communication PhD student and game designer at Concordia University, Montreal, Canada. Her doctoral research concentrates on the process of meaning-making in games tackling serious themes and exploring this relationship between player and designer in her own critical game design process. Her previous research unpacked Blizzard’s approach to community moderation in Overwatch by investigating both developer and community inputs on forums. She is a member of the mLab, a space dedicated to developing innovative methods for studying games and game players and TAG (Technoculture Arts and Games).

  • [게임과 예술] 로딩중인 세계의 권태와 노동에 관한 소고

    상희는 유희와 즐거움의 이미지로서 소비되던 게임의 형식을 빌려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노동하는 신체에 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 완전히 개인화된 세계에서 내면적 사유로서 ‘권태’가 가진 정서를 재조명한다. < Back [게임과 예술] 로딩중인 세계의 권태와 노동에 관한 소고 16 GG Vol. 24. 2. 10. 마법과 환상, 신과 영웅이 사라졌다. 과거의 인간은 신이나 영웅이라는 신화적 인물을 만들어 그들의 통제 속에서 예정된 일을 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지금의 운명은 내 손에 달려 있으며, 미래는 나의 치열한 노력으로 구현되는 시간이 됐다. 삶의 방향키가 나에게 쥐어진 만큼, 오늘날 우리에게는 자유와 열정이 뒤따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인스타 릴스, 유튜브 숏츠 등 자극과 도파민이 과잉 생산되는 환경에서 더 큰 쾌락만을 좇는 인물들에게 남는 것은 무기력이다. 과거 부모의 세대를 떠올려보면, 노동과 유희는 분리된 영역으로 자리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퇴근 후 자기만의 취미를 갖거나, 게임을 즐기는 등 삶의 규칙과 질서를 세우는 일이 어색하지 않았다. 한편, 당대의 풍경에서 어느 정치인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공약은, 마지막 산업 시대형 구호로서 공허한 외침으로 느껴진다. 노동과 생산이 강제되는 오늘의 자본 사회에서 우리들의 유희와 놀이 능력을 지키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글은 ‘번아웃 증후군’이 유행처럼 번져가는 오늘날,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의 생태를 살펴본다. 특히 지난겨울 시청각랩에서 진행된 상희 개인전 《Worlding…》(2023.12.10.-12.31)을 중심으로 노동과 실존적 사유로서 권태라는 감정을 이야기해 본다. 전시의 제목이자 작품의 이름인 〈Worlding…〉(2023)은 비동기 온라인 게임의 양식을 활용한 참여형 VR 작업이다. 실시간 게임과 달리 유저간의 상호작용 없이 혼자서 플레이 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때 비동기 온라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개별 플레이어들의 행위는 실시간이 아닐 뿐, 일정한 시차를 두고 흔적으로서 연결된다. 상희는 유희와 즐거움의 이미지로서 소비되던 게임의 형식을 빌려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노동하는 신체에 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 완전히 개인화된 세계에서 내면적 사유로서 ‘권태’가 가진 정서를 재조명한다. 게임 스테이지와 플레이하는 노동 〈Worlding…〉은 구체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출발한다. 관객/플레이어는 전임자에게 특정 과업을 인계받아 일을 시작한다. 임무는 늪지 위에 나타난 거인을 묻는 것. 늪지의 파수꾼이 되길 요청받은 관객은 낮 동안 사체가 된 거대한 육신을 흙으로 퍼붓고, 밤이 되면 처소로 돌아가 전임자가 남긴 일지를 읽는다. 플레이 타임의 대부분은 거인을 묻는 작업에 소요된다. 그러면, 다시 내일이 온다. 어제의 노동이 없었던 일처럼, 전날 묻어놓은 사체가 다시 벌거벗은 채 놓여있다. 마치 시시포스의 형별 같은 노동이 새롭게 반복된다. 앞서 언급했듯, 상희는 게임의 문법을 작업에 빌려왔는데, 그것은 작업의 서사를 스테이지화 하는 지점에서 알 수 있다. 통상 게임 공간은 플레이어의 경험을 구체화하는 수단으로서 의미가 확장된다. 서사는 스테이지 구축을 통해 전개되며 게임의 기승전결을 구성하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스테이지 단계를 따라 퀘스트를 달성한다. 반면, 하루를 단위로 분리되는 〈Worlding…〉의 스테이지에서는 ‘퀘스트’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오늘의 노동량을 채우세요.”라는 문구로 퀘스트를 쥐여주지만, 임무에 따른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 게임이 스테이지를 건너가는 방식으로 서사를 전개한다면 상희의 작업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바 없는 동일한 장면의 무대를 마련하고, 보상 없는 퀘스트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은 화면 속 컨트롤러의 이미지다. 상희는 컨트롤러를 두 개의 손으로 표상하면서, 하루하루 스테이지를 거칠수록 노화를 거치는 손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점점 손은 거무죽죽한 껍데기로 변해간다. 두 개의 손은 거인을 매장하라는 ‘오늘의 노동량’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흙을 퍼붓는다. 두 손으로 컨트롤하지만, 아무것도 만질 수 없고 쥘 수 없는 이미지에 관한 공허한 감각이 느껴진다. 이 무기력한 손의 반복적인 운동은 내일이면 파헤쳐질 거대한 몸집 위로 다시금 흙을 쌓아 올린다. 절대 끝나지 않는 매장이 디지털 구조망에 실체 없이 묶여버린 노동하는 몸을 상기시킨다. 끝을 기다리는 게임 크라우드 워킹, 플랫폼 노동, 나아가 인공지능 노동까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기술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이 활개 친다. 노동 해방이라는 이 듣기 좋은 기획은 미래 신기술이 고된 노동을 줄여주고 우리의 삶을 더 자유롭게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정말로 노동자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었는가? 기술과 사회가 가속할수록, 시스템을 체화한 우리 역시 이전보다 더 빠르고,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물리적으로 사무실을 벗어나도 업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가상과 현실이 불가능해진 것처럼 일터와 일상 간의 경계 역시 허물어진다. 기술을 사용하는 사회적 방식에 따라 핵심부서를 제외한 간접부서를 사내 하도급, 파견근로, 아웃소싱으로 외주화하면서 노동자는 노동자 아닌 형태로 일의 네트워크에 붙들려 있다.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연결된다는 것. 이 말은 노동과 유희의 경계 없이 우리 몸이 항시 노동하는 상태로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가속화된 세계에서 느린 몸은 무자비하게 도태된다. 기술 시스템의 자동화, 자율화가 더 빨리 진행될수록 개개인의 무력화 역시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상희는 게임의 조건으로부터 노동의 수행적인 성질에 관여하고 있다. 실행이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고, 수행이 신체의 반복 훈련을 통해 사건을 발생시키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면, 상희의 작업 속 노동하는 몸은 이미지의 실행으로써 당대 노동이 가진 수행성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이는 작업의 주요한 정서인 지루함과 ‘권태’에서 발견할 수 있다. 흔히 게임은 쾌락과 유희, 혹은 몰입과 중독의 차원에서 논의되곤 하지만, 작가는 권태를 말하기 위해 게임 형식을 빌려온다. 관객으로 하여금 게임이 서사화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스스로 밟을 땅의 형세 만들기를 제안하면서 말이다. 아무도 정해주지 않은 ‘오늘의 노동량’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게임의 타임라인. 컨트롤러를 쥔 물리적인 신체는 VR 공간의 움직임과 연동된 채 지루한 노동을 반복 플레이한다. 관객은 VR 게임에 매핑된 신체 이미지에 자기 몸을 맞춘다. 플레이 초반에는 몸의 불일치한 감각에 집중하지만, 하루하루 동일하게 디자인된 스테이지가 넘어갈수록 관객은 게임 속 신체와 연동하며 점차 뻐근해지는 팔과 어깨를 느낀다. 그렇게 플레이는 고통스럽게 지루해진다. 로딩 중인 세계에서 권태를 재발견하기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는 텅 빈 공간이다. 공동체적 질서, 삶의 방향성이 사라진 공터에서 권태에 쉽게 노출되곤 하는 것이다. 오늘날 혼자 놀고, 혼자 일하고, 혼자 먹는 사회에서 우리는 나르시시즘적 쾌락과 향유의 주체로 자리하게 되며, 가상의 풍경에 매혹된 채 스스로 고립되길 선택한다. 상희는 이런 오늘의 풍경을 가상의 공간에 옮겨두고 있다. 홀로 하는 외로운 노동, 언제 끝날지 모를 지루한 움직임, 타자가 부재한 세계관. 관객이 헤드셋을 벗어두고 떠나면, 늪지에는 새로운 관객, 즉 늪지의 새 파수꾼이 찾아올 것이다. 이들은 서로 마주치지 않는다. 전시 공간의 관객은 전임자의 과업을 이어 그의 노동 행위를 반복한다. 이때 작업에서 특기할 만한 지점은 플레이어가 HMD 헤드셋을 벗어두고 떠난 이후부터 발견할 수 있다. 긴 플레이 타임으로부터 해방되면, 관객은 지끈거리는 머리와 묵직한 어깨를 움직이며 헤드셋을 벗는다. 그리고 나면 VR 공간에서 축적한 개별 관객의 데이터가 종이 위로 출력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거인의 육체를 덮은 땅의 모양새에 따라 데이터가 지형도를 만든다. 고사양 그래픽과 함께 VR에서 구현된 땅이 2차원의 평면적 데이터로 공간에 쌓인다. 그와 동시에 전시 공간 아래 자리 잡은 지하실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전시에 참여한 모든 관객의 실행 데이터가 합산되어 지도의 형상으로 투사된다. 관객은 물리적 공간과 가상 공간이 서로 연동하는 방식으로써 또 다른 노동의 흔적을 발견한다. 말하자면, 〈Worlding…〉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권태로운 세계를 구축하면서 오롯이 흔적으로서 연결된 공동체를 감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권태의 가장 주된 증상은 시간을 시간 자체로 인식하는 것에 있다. 권태의 주체는 시간을 감각하는 자기 자신을 마치 하나의 대상처럼 낯설게 의식한다. 그리고 이는 나와 당신을 구획하는 거리, 혹은 너와 나를 엮어내는 공동의 지형을 관찰하도록 제안한다. 모든 시간이 빈틈없이 꽉 차 버린 사회, 24시간 ‘온라인’으로 동기화된 몸으로부터 권태를 느낄 여유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상희는 너무 많이 묶여있는 몸들을 ‘비동기화’하길 시도한다. 묻히지 않는 거인의 죽음, 어디서 왔는지 그 실체조차 알 수 없는 대상으로부터 권태와 고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요컨대 상희는 재미의 왕국에서 세상의 사건 사고가 하나의 이미지, 또는 껍데기로 소비되는 장면을 포착하고, 분초를 다투는 오늘 사회의 시간에 무게를 싣는 방식으로 속도를 지연시킨다. 그렇게 로딩된 세계가 늘어뜨린 시간 속에서 권태의 자리를 마련하며 오직 홀로, 나를 대면할 실존적 사유를 요청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술비평) 이민주 이민주는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글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린다.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의 관계를 짚은 《동물성 루프》(공-원, 2019, 공동 기획),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미학성과 정치성을 조명한 《논캡션 인터뷰》(의외의조합, 2021, 기획), 연극의 형식을 빌어 전시의 사건성을 모색한 《#2》(두산갤러리, 2023, 공동 기획)를 기획했다. 이미지가 만드는 사건과 수행적 성질에 주목하며 비평적 글쓰기를 고민하고,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번역 관계를 연구한다.

  • [논문 세미나]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이브 온라인(Eve Online)〉은 현재 ‘펄어비스’가 인수한 아이슬란드의 게임 제작사인 ‘CCP 게임즈(CCP Games)’가 2003년 출시한 SF 샌드박스 MMORPG이다. 가상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브 온라인〉은 오픈 월드 시스템을 통해 광활한 맵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유저의 다양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RPG이지만 이 게임에는 캐릭터의 직업이 없다. < Back [논문 세미나]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12 GG Vol. 23. 6. 10. 1. 들어가며 〈이브 온라인(Eve Online)〉은 현재 ‘펄어비스’가 인수한 아이슬란드의 게임 제작사인 ‘CCP 게임즈(CCP Games)’가 2003년 출시한 SF 샌드박스 MMORPG이다. 가상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브 온라인〉은 오픈 월드 시스템을 통해 광활한 맵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유저의 다양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RPG이지만 이 게임에는 캐릭터의 직업이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콘텐츠를 하면서(혹은 파고 들면서) 직업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PVP, 탐험, 채굴, 운송 등 게임 내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구축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또 게임 내 자체적인 경제가 형성되어 있다. 유저들 간의 거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경제는 〈이브 온라인〉만의 독특한 자유도이기도 하다. 〈이브 온라인〉의 유저 사이의 역학 관계는 게임의 자유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지금의 〈이브 온라인〉이 있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저들의 옴니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논문 세미나에서 리뷰할 논문인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는 2015년 ‘Games and Culture’ 저널에 게재된 논문이다. 저자인 마커스 카터(Marcus Carter)는 시드니 대학에서 HCI, AR, VR 등과 함께 게임을 연구하는 연구자이다. 그는 평소 대규모 멀티플레이어 유저 활동에 대해 초점을 두고 연구를 해왔다. 〈이브 온라인〉이나 〈DayZ〉와 같은 온라인 게임에서 유저 사이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사회적 플레이 연구를 진행해왔다. 해당 논문은 〈이브 온라인〉의 PVP 콘텐츠에서 이루어지는 유저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이브 온라인〉의 PVP 콘텐츠 중 독특한 하나는 바로 대규모 PVP이다. 전쟁으로 표현되는 대규모 PVP는 게임 내 서버가 단일 서버라는 특징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인 MMORPG의 경우, 여러 서버로 나누어져서 각 서버만의 길드는 유저들을 묶는 그룹이 된다. 길드가 대체로 큰 규모라고 해도 200명 내외에 그친다. 그러나 〈이브 온라인〉의 경우는 다르다. 게임 내 길드와 같은 시스템인 코퍼레이션(Corporation)과 얼라이언스(Alliance) 기능과 함께 비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세력 단위인 코얼리전(Coalition)이 타 게임의 채널이나 서버와 같은 인원수로 구성된다. 수천~만 명으로 구성된 코얼리전은 게임 내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 이러한 그룹 사이의 분쟁은 실제 전쟁과 같이 다양한 전술과 전략이 동원되는데, 이 중 ‘프로파간다’에 주목하고 있다. 2. 〈이브 온라인〉의 전쟁 〈이브 온라인〉의 우주는 ‘하이섹(High-sec)’, ‘로우섹(Low-sec)’, ‘널섹(Null-sec)’의 세 가지 유형의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는 보안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 〈이브 온라인〉의 보안은 NPC 팩션인 ‘콩코드(CONCORD)’를 통해 이루어진다. 적대 행위(PVP 등과 같은)나 자신의 보안 정도가 지역의 보안 정도보다 낮다면 콩코드에게 공격받게 된다. 이는 게임이 제공하는 어느 정도의 유저 보호 안전장치이다. 그러나 이 지역 중 널섹은 완전한 무법 지대이다. 여기서는 콩코드의 보호 기능이 제공되지 않고, 유저는 완전히 혼자만의 경쟁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유저들은 코퍼레이션과 얼라이언스 등의 그룹화를 통해 널섹에서의 활동에서 안전을 확보한다. 널섹은 아직 유저에 의해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다. 이에 자신들의 공간으로 확보하게 되면, 게임 내 자원이나 그 소유권을 주장하여 통제할 수 있는 지역이다. 이는 마치 자신들만의 서버를 얻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즉, 결과적으로 게임 내 부와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간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코퍼레이션 규모의 그룹으로는 통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얼라이언스나 이들이 모여 코얼리전을 구성하기도 한다. 얼라이언스나 코얼리전 간의 소유권 분쟁이 〈이브 온라인〉의 전쟁 양상이다. 유저 간의 전쟁은 수천~만 명의 유저가 참여하여, 몇 주 동안 이루어지는 전쟁은 수차례의 전투를 포함하기도 한다. 게임 내 전쟁은 군사 지휘 구조를 수립하기도 하고 광범위한 전략과 전장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룹 사이의 외교적 노력을 통해 다른 코얼리전의 그룹을 전쟁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거나, 자신의 코얼리전으로 들어오도록 회유하고, 위협하는 등의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일들이 동반된다. 〈이브 온라인〉의 전쟁은 지역을 확보하여 자원을 독점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함선을 구축하는 것은 자신들의 게임 플레이와 함께 이후의 다른 지역을 점령하기 위한 전쟁을 위해서도 필요한 행위가 된다. 3. 패러텍스트(paratext) 여기서 저자는 〈이브 온라인〉의 전쟁 속 복잡한 계략과 전술의 중심에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유저가 만들어내는 텍스트나, 비디오 및 이미지인 프로파간다가 있다고 본다. 인터넷 밈을 활용한 비유나 농담, 게임의 역사, 인종, 문화,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자극하는 프로파간다 미디어는 자신 세력의 지지를 강화하거나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전쟁 캠페인에서 승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브 온라인〉에서 프로파간다가 취하는 다양한 형태를 개괄하고 이러한 비디오, 텍스트 및 이미지가 새로운 형태의 패러텍스트로 개념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패러텍스트는 제라르 주네트(Gerard Genette)의 문학 이론에서 파생된 것으로 제목, 리뷰, 목차 또는 책 표지와 같이 문학 텍스트를 둘러싼 자료를 의미한다. 주네트는 이러한 패러텍스트가 문학 텍스트의 수용 및 소비를 보장하는 주변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패러텍스트 개념은 미아 콘살보(Consalvo, 2007)에 의해 게임 연구에 도입되었다. 게임 산업에서 콘살보의 패러텍스트 개념 적용은 게임 잡지, 전략 가이드 등과 같이 게임을 둘러싼 주변 산업을 의미한다. 이러한 미디어가 특정한 방식으로 게임 플레이 경험을 형성하기 위해 작동하고 있고, 이를 구조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보았다. 제네트의 패러텍스트는 유동적인 텍스트의 가능성과 현대 게임과 패러텍스트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역동성을 고려하진 않았다. 콘살보 또한 “게임은 플레이가 한 가지 방법뿐이며 불변하지 않고, 주변 담론보다 더 정적이고 고정적일 수 있으며, 그러한 담론은 컴퓨터 게임의 패치(즉 패러텍스트 그 자체)보다 훨씬 쉽게 변화, 수정, 업데이트 또는 철회될 수 있다”고 보았다(Consalvo, 2007: p.12). 그러나 저자는 〈이브 온라인〉의 경우, 기존 패러텍스트 양상이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이브 온라인〉은 샌드박스 게임으로, 유저에게 다양한 어포던스(affordance)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종종 예상치 못한 방식의 플레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유저가 게임 세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다른 가상 세계 게임과는 대조적이다. 〈이브 온라인〉에서 대부분의 게임 플레이 방식은 유저 주도로 만들어진다. 또한 이와 함께 계속해서 업데이트, 패치 및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게임 내 세계와 콘텐츠가 변화하고 있다. 이에 〈이브 온라인〉은 단순히 프로파간다 미디어가 존재하고 영향을 미치는 정적인 텍스트가 아닌 그 자체로 역동적인 텍스트라고 보았다. 4. 〈이브 온라인〉 속 얼라이언스 ‘GSF’와 ‘TEST’의 전쟁 TEST는 소셜 커뮤니티 ‘레딧(Reddit)’과 비공식적으로 연관된 ‘디레딧(Dreddit)’의 상위 얼라이언스이다. 디레딧의 회원이 되기 위한 요건은 레딧에서 3개월 동안 활성 상태인 계정이거나 기존 멤버의 추천이다. 대부분의 코퍼레이션에서는 기존 멤버의 추천이나 최소한의 스킬이나 재산을 요구하기 때문에 다른 그룹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이에 TEST의 멤버는 〈이브 온라인〉에 서툴다는 평판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전쟁이나 전투에서 패배한 상대를 당황케 하기도 하고, TEST 그 자체의 손실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이 특징은 동질감을 가진 다수의 멤버를 확보할 수 있는 강점이기도 했다. 저자가 디레딧과 TEST에 합류하여 연구를 시작했을 때, 가장 가까운 얼라이언스 중 하나는 TEST와 비슷한 구조인 GSF(GoonSwarm Federation)이었다. 이들은 게임 내 트롤링과 비방을 일삼으면 독특한 문화와 명성을 얻고 있는 온라인 게시판인 ‘ SomethingAwful.com ’ 포럼과 비공식적 관계를 맺고 있는 ‘GoonWaffe’의 상위 얼라이언스였다. TEST의 창설 이후 이들과의 충돌이 있었는데, 이때 당시 GSF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GSF는 TEST에게 ‘뉴비’ 얼라이언스라는 점에 조언, 보호 같은 지원과 함께 비 침략 협정을 제안하여 몇 년 동안 거대한 연합을 구성했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Space bros.”라고 지칭될 정도였다. * TEST Alliance 로고(왼쪽) – 출처: https://pleaseignore.com/. GSF 로고(오른쪽) – 출처: https://evemaps.dotlan.net/alliance/Goonswarm_Federation 이들 사이의 전쟁은 TEST가 독립적으로 거대한 규모가 된 시점에서 시작된다. TEST는 GSF의 적이었던 NC(Northern Coalition)과 PL(Pandemic Legion)과 함께 새로운 코얼리전인 HBC(Honey Badger Coalition)을 결성하여 한때 3만 명 이상의 유저를 연합하여 GSF와 그 코얼리전인 CFC(ClusterFuck Coalition)에 대항하는 그룹을 형성했다. HBC와 TEST의 리더였던 몬톨리오(Montolio)는 〈이브 온라인〉에서 모든 얼라이언스의 동맹화하려 했다. 그러나 TEST와 GSF 주축의 HBC와 CFC 코얼리전 사이에서 이루어진 냉전은 게임 내 많은 정치적 사건들을 동반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 프로파간다였다. GSF와 CFC의 리더인 더 미타니(The Mittani)는 자신의 〈이브 온라인〉 뉴스 웹사이트인 ‘ themittani.com ’에서 프로파간다 공세를 통해 몬톨리오를 게임 내 전쟁 발발 이전에 정치적으로 리더 자리에서 사임시킬 수 있었다. 1) TEST 얼라이언스와 Rebel 얼라이언스 TEST의 새로운 리더였던 소트 드래곤(Sort Dragon)은 능력 부족으로 인해, TEST의 새로운 지도부 멤버였던 부다부다(BoodaBooda)가 TEST가 HBC로부터 독립했다. 그는 몬톨리오가 만들어왔던 것을 허물고 다시 HBC의 얼라이언스들과의 연합을 끊고 CFC와의 대립을 위해 반란(Rebel)을 선언했다. 이와 함께 ‘Rebel Command’라는 새로운 비공개 포럼이 만들어지고 Rebel 얼라이언스에 대한 프로파간다 주제가 포럼을 장악했다. Rebel 얼라이언스를 지지하는 TEST의 멤버들은 이 주제에 뛰어들어 여러 새로운 프로파간다를 제작했다. 이들은 소트 드래곤과 CFC를 ‘악의 제국’으로 간주하며, TEST 얼라이언스를 반란군으로 선전했다. 반란 프로파간다 이미지와 수사법은 〈이브 온라인〉 포럼이나 레딧, 게임 내 채팅, TEST 채팅 등을 통해 널리 공유되어, 부다부다에 동조할 수 있도록 하는 내러티브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반란군이라는 약자 포지셔닝은 〈이브 온라인〉 내에서 TEST에 대한 약자 인식과도 관련되어 있어서 레딧을 통해 신규 멤버를 모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Rebel 얼라이언스의 프로파간다 이미지(Carter, 2015) * 부다부다의 프로파간다 이미지(Carter, 2015) 2) The Great Fountain 전쟁(대분수 전쟁) 〈이브 온라인〉의 새로운 확장팩은 널섹에서 특정한 광물을 찾을 수 있는 위치에 대한 변화를 가져 왔다. 이러한 변화는 CFC에 대한 자원의 절대적인 통제권과 이러한 지역을 지키는 얼라인어스의 보호를 무력화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동맹이 아닌 TEST 얼라이언스가 점령한 공간이 순식간에 게임 내에서 가장 가치 있는 지역이 되었다. 이에 CFC와 GSF의 리더 더 미타니는 GSF가 가난해졌다고 주장하면서 거대한 프로파간다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CFC는 확장팩 업데이트 이후 며칠 만에 Fountain(이하 파운틴)으로 알려진 이 지역에 대한 침공을 발표했다. TEST, PL, N3(HBC 이후 새로이 결성된 코얼리전)의 연합군은 거의 일주일 동안 파운틴에서 CFC에 대항하여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전쟁에서 또한 다양한 프로파간다 이미지가 동원되었다. * 전쟁 프로파간다(Carter, 2015) 대분수 전쟁은 냉전 시대처럼 주로 군사적, 전투적 승리가 아닌 전략과 첩보에 기반한 승리를 거두었다.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에서는 비난받는 행위이지만, 배신과 배반과 같은 행위는 〈이브 온라인〉이 유저에게 어필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이다. TEST 얼라이언스가 파운틴 내 시스템을 CFC에게 빼앗긴 첫 번째 배신은 TEST의 전 리더였던 소트 드래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CFC와 협력하여 자신이 갖고 있던 시스템 통제권을 넘겼고, CFC가 이를 장악했다. 이후 더 큰 배신은 잠입한 N3 코퍼레이션이 연합군과의 합의에 따라 해체되면서 재산을 약탈당하는 사건이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TEST의 군사 책임자는 TEST 내 멤버들에게 전투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TEST의 정체성에 대한 프로파간다를 하기도 했다. 그의 프로파간다는 다른 얼라이언스에게 “죽음이 보장된 상황에서도 TEST는 단결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파간다였다(BoodaBooda, 2013; Carter, 2015 재인용). 대분수 전쟁의 마지막 전투에서 동원된 프로파간다는 상대방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봉사자인 멤버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 TEST 강탈 전쟁 패배 후 부다부다는 사임하고 TEST는 통제권을 포기하며, 새로운 리더 스키어X(SkierX)의 아래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PVE 활동을 하는 유저들을 사냥하고 지불 협상을 위해 대기하여 현금을 받는 대가로 동맹이 될 것이라는 계획을 통해 적 연합군이 소유한 4개 지역에서 강도 저직을 운영하며 소규모 얼라이언스 및 코퍼레이션에게 임대하는 조직범죄 집단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TEST의 행보에 따른 프로파간다 테마는 마피아에 기반하며 미국-이탈리아 범죄 조직에 대한 대중문화적 비유를 불러일으키고, 〈대부〉나 〈스카페이스〉와 같은 상징적인 영화의 장면을 변용했다. 스키어X는 이 프로파간다 이미지가 레딧 유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멤버를 늘리기 위한 강력한 선전은 레딧에서 TEST의 관심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TEST가 시도한 강탈은 대규모 그룹에서 시도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참신함은 새로운 유저를 유치하고 기존 기반을 활성화하는 방법으로서 TEST 운영진에게 어필할 수 있는 측면도 있었다. TEST는 이후 다시 결속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 TEST 얼라이언스의 강탈(Carter, 2015) 5. 에미텍스트(emitext)로서의 프로파간다 저자는 〈이브 온라인〉 속 전쟁 전후로 전개된 프로파간다가 게임을 둘러싼 주변부 산업이 아닌 게임 내에서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나타나는 패러텍스트의 한 형태인 에미텍스트라고 주장한다. 주네트의 문학 텍스트와는 달리 현대 디지털 게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게임 세계의 환경과 어포던스는 게이머 행동의 결과로 변경되기도 하고 변형될 수 있다. 특히 〈이브 온라인〉의 샌드박스 특징은 이를 더욱 잘 보여준다. 1) 플레이로서의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를 에미텍스트로 이해하는 핵심은 〈이브 온라인〉의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제작되는 방식이다. 〈이브 온라인〉 유저의 일부만이 대분수 전쟁에 직접 참여했고, 그 대부분은 보병에 불과했다. 이들은 특정 시간에 〈이브 온라인〉에 접속하여 아군과 함께 비행하고 대규모 함대전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몇 소규모의 유저 그룹은 자신들의 얼라이언스를 이끌고,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고, 자원을 관리하며 전쟁의 병참을 조율하는 워게임(wargaming)을 했다. 프로파간다는 이러한 보병 지원자를 모집하고 참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얼라이언스 지도자들은 프로파간다가 대규모 콘텐츠 제작 경험을 주도하는 데 도움이 되면서, 멤버들에게 맥락, 내러티브, 소속감을 부여하는 데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프로파간다의 이 효과는 저자가 살펴본 바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프로파간다가 강조하는 것은 어떤 전술과 전략을 사용할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프로파간다 제작자들은 얼라이언스의 승리나 전쟁과 같은 유형의 플레이 자체보다 얼라이언스 멤버를 위한 콘텐츠 제작에 더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즉,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저들이 어떤 목적이든 함께 플레이하고 싶게 만들고, 함께 즐기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이브 온라인〉은 결국 게임의 맥락에서 전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프로파간다 이미지 그자체는 결국 〈이브 온라인〉 내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전략적인 전쟁 게임의 일부이자 그 자체로 플레이가 된다. 2) 〈이브 온라인〉 프로파간다와 역사, 문화비유로서 프로파간다. 〈이브 온라인〉에서 프로파간다는 얼라이언스 지도부가 자신의 구성원 또는 상대 얼라이언스에 대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로 역할을 한다. 여기서 제시되는 프로파간다 사례의 주제는 각각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유저를 특정한 내러티브로 설득하려는 시도이다. 〈이브 온라인〉 프로파간다 제작의 경향성은 실제 역사적 프로파간다 이미지와 효과를 재사용하는 것이다. 프로파간다에서 역사적 프로파간다를 활용하는 방식은 사회, 역사, 문화적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대의 패러텍스트가 존재하는 방식을 반영한다. 프로파간다 제작자는 역사적 이미지를 모방하면서 프로파간다로 이용하여 더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다. 프로파간다 이미지에는 영화나 TV 드라마에 대한 패러디와 참조가 곳곳에 존재한다. 이와 같은 프로파간다는 유저들이 공유하는 너드(Nerd)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활용하여 더욱 효과적으로 프로파간다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즉, 이를 통해 〈이브 온라인〉 얼라이언스의 문화적 정체성을 정치화한다. 이러한 프로파간다는 유저에게 명확한 너드 문화적 내러티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주변부의 대중 매체와 문화를 연결하여 〈이브 온라인〉 전쟁의 정치적, 배신, 첩보 활동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브 온라인〉은 이미 게임 속 역사가 있고, 게임 내 이벤트와 플레이에 대한 수용 및 의미 부여에 영향을 미친다. 게임사가 주도하여 관리하는 역사 위키 프로젝트는 〈이브 온라인〉 내의 다양한 역사를 기록하여 의미 부여하여 문화적 유물로 기능하게 한다. 이러한 역사와 마찬가지로 프로파간다는 유저의 역사로서 〈이브 온라인〉의 문화적 유물이 된다. 〈이브 온라인〉의 프로파간다는 게임의 역사와 얼라이언스의 역사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며, 유저는 플레이로서의 프로파간다를 통해 게임에 의미를 가져다주며 게임 내 영향을 미친다. 프로파간다는 게임 내 공유된 관심사와 역사를 바탕으로 유저들이 상상하는 커뮤니티의 모습을 동질화하여 커뮤니티의 결속을 강화한다. 3) 에미텍스트로서의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 이미지의 차원은 유저의 게임 경험을 형성하고 플레이 행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패러텍스트로서의 성격을 보여준다. 게임 가이드나 개발 일지와 마찬가지로 프로파간다는 게임이 수용되고 경험되는 방식을 구성하여 게임의 존재를 정의하고 보장한다. 그러나 여전히 패러텍스트의 논의는 고정적인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브 온라인〉과 같은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새로운 게이머 문화 및 전략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 게임과 게임 플레이 방식, 게이머 경험이 만들어지고 이에 게이머의 경험에 의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새로운 전술이나 유저 유입 및 이탈 등, 자체적인 규범과 비공식적인 규칙을 변화시키고, 게임 플레이의 집단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플레이의 경계는 게임 내부에서 포럼, 채팅방, SNS 등과 같이 끊임없이 유동하는 장소로 확장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패러텍스트의 분석과 더불어 게임 플레이로서 나타나는 게임 내 프로파간다는 게임과 엄격한 공간적 관계가 없는 새로운 패러텍스트인 에미텍스트가 된다. 5. 결론을 대신하여 나가며 이번 논문에서는 〈이브 온라인〉에서 이루어진 거대한 전쟁인 대분수 전쟁 속 프로파간다를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보는 관점을 살펴보았다. 사실 〈이브 온라인〉뿐만 아니라 게임 내부로 반영되어 자신들만의 즐거움을 창출하기 위한 행위들은 여러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게임을 수정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모딩이나 온라인 게임의 메타를 만드는 행위 등은 게임, 게이머, 게임사로 하여금 많은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이는 게임 그 자체를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얻게 되는 즐거움을 위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게임 플레이 행위는 게임을 구성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지금의 게임 플레이 개념은 게임 텍스트뿐만 아니라 게임 텍스트 밖에서 이루어지는 온라인 커뮤니티 참여나 SNS 등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콘살보의 패러텍스트 논의 또한 게임을 둘러싼 외부 산업을 게임과 함께 바라보고자 제시되었다. 그러나 게임 텍스트 밖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정말로 단순히 게임과 공간적(개념적)으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이 논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프로파간다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프로파간다를 제작하는 것은 분명하게 게임 텍스트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제작을 위해 동원되는 자원 또한 말이다. 이것이 활용되는 것은 게임 내부이기도 하다. 이는 마치 게임 내에 여러 자원을 가져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의 관점은 단순히 게임 너머에서 발생하는 외부적인 행위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게임의 내부라고 볼 수 있는 그 경계를 좀 더 확장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 논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이라 생각한다. 이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게임의 정의에서부터 게임 플레이, 메타게임 등과 같은 개념까지 논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게임과 이와 연관된 플레이 행위의 경계가 단순히 게임 텍스트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은 본 논문의 유의미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게임을 한다’라고 했을 때, 한 번쯤 ‘게임은 무엇일까?’, ‘게임을 하는 건 어디까지일까?’를 사색해보는 것은 게임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참고문헌 Consalvo, M. (2007). Cheating: Gaining advantage in videogames. MIT Press. Carter, M. (2015).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Games and Culture, 10(4), 311–342. Tags: 이브온라인, 논문, 패러텍스트, 에미텍스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실패한 혁명의 잔여물로서의 디스코 음악:〈디스코 엘리시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혁명이라는 단어는 상당부분 고난과 실패의 의미로 다가온다. 게임이 다룬 파리코뮌 혹은 그 이후의 러시아 혁명, 가깝게는 중동에서의 혁명과 홍콩의 우산혁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혁명들이 실패했고 민중들은 다시 고난의 상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그 모든 역사 속 실패한 혁명의 잔해를 딛고 사는 사람들이며, 디스코라는 음악 또한 60년대의 실패가 낳은 아쉬움과 침잠의 흔적일 것이다.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이 굳이 실패한 혁명의 도시를 배경으로 삼아 디스코라는 흘러간 장르를 꺼내붙이는 이유는 이 게임의 주제가 살인사건이 아닌 ‘실패한 혁명의 역사’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 Back 04 GG Vol. 22.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디지털 연산장치와 확률이라는 조합의 아이러니

    디지털게임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이 매체의 물적 기반인 컴퓨터의 시작이다.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설계된 이 전자장치는 애초에 암호해독이나 탄도 계산 같은 전쟁 기술을 보조하는 도구로 만들어졌는데, 그런 도구로 사람들은 놀이하는 방법을 찾아내 즐기고 돈을 번다. 전쟁용 전자장비를 활용해 만든 놀이들의 상당수가 전쟁과 전투를 재현하려 든다는 점까지를 생각한다면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 Back 디지털 연산장치와 확률이라는 조합의 아이러니 17 GG Vol. 24. 4. 10. 디지털게임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이 매체의 물적 기반인 컴퓨터의 시작이다 .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설계된 이 전자장치는 애초에 암호해독이나 탄도 계산 같은 전쟁 기술을 보조하는 도구로 만들어졌는데 , 그런 도구로 사람들은 놀이하는 방법을 찾아내 즐기고 돈을 번다 . 전쟁용 전자장비를 활용해 만든 놀이들의 상당수가 전쟁과 전투를 재현하려 든다는 점까지를 생각한다면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 컴퓨터 – 디지털게임이라는 물적 기반과 콘텐츠 사이의 관계에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있는데 , 난수 random number 다 . 디지털 기술 기반의 컴퓨터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난수 생성이 불가능한 장치다 . 요즘은 듀얼코어 이상에서 몇 가지 방법으로 난수를 만드는 법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 애초에 주어진 데이터를 신속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기에서 외부 입력 없이 자체적으로 랜덤한 수를 뽑아낸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 하지만 그 컴퓨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디지털게임이라는 매체에서 난수는 결정적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난수를 만들 수 없는 기계를 딛고 성립한 매체에서 난수가 필수요소에 가깝다는 점은 이 매체의 근본에 운과 확률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 달리 정리해보면 , 결국 운과 확률로 만들어지는 게임의 흐름을 보조하기 위해 일련의 전자 연산장비가 도구로 활용된다고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 모든 디지털게임이 무작위의 결과물들만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 오히려 최근의 이른바 AAA 급 게임에 이르면 영화의 작법을 따라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를 쭉 따라가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 이런 영역에서 디지털 주사위는 정해진 결론을 향하는 과정에서의 우연을 만드는 정도로 역할을 줄여나가는 추세다 . 하지만 우리가 이른바 ‘ 게임만의 독특한 재미 ’ 를 이야기할 때는 대부분 이 주사위의 힘이 개입한다 . ‘ 테트리스 ’ 에서 다음 블록이 예측되는 순간 , 이 게임은 상황대처가 아닌 암기력의 게임이 되고 말 것이다 . 액션 게임 등에서 확률로 표기된 치명타가 일정 타격 수마다 반복될 때 , ‘ 하스스톤 ’ 같은 카드게임 류에서 카드 덱이 랜덤이 아니라 순서를 지정할 수 있게 될 때 이들이 가진 재미는 사라진다 . 이런 맥락에서라면 주사위의 개입을 통해 다양해진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곧 플레이어의 플레이 행위가 된다 . 실재하는 우주와 세계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경우의 수를 가상공간 안에 그대로 구현할 수는 없겠지만 , 적어도 통제된 환경 안에서 디지털게임은 무작위 확률을 통해 상황을 ‘ 흩뜨러뜨린다 ’. 그리고 이를 정렬하고 재구성하여 주어진 과제를 클리어할 수 있을 만큼의 정돈을 만들어내는 것이 확률 개념을 상대할 때의 플레이가 갖는 역할이다 . 이 때 디지털 주사위가 만드는 확률의 역할은 ‘ 모르는 영역 ’ 의 창조다 . 확률을 통해 표현되는 디지털게임의 규칙들은 모두 ‘ 모름 ’ 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 테트리스에서 다음 블록이 무엇이 나올지 , ‘ 다크 소울 ’ 에서 보스가 다음 순간에 어떤 패턴으로 공격해 들어올지에 대해 디지털 주사위는 각 순간별로 플레이어에게 다음 순간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을 연출한다 . 디지털게임 소프트웨어는 끊임없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 늘어난 엔트로피를 줄여나가는 것이 플레이의 목적이 된다 . 온라인 네트워크가 보편화된 이후의 디지털게임에서는 이 엔트로피값의 증가에는 주사위 이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추가되는데 , 바로 플레이어다 . 싱글 플레이 시절에는 불가능했던 ,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맞상대하게 되는 대전형 멀티플레이의 순간에는 디지털 주사위가 제공하는 것 이상의 새로운 ‘ 모름 ’ 이 덧붙는다 . 상대가 어떤 패턴을 익숙하게 쓰는지 , 선호하는 캐릭터나 스타일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온라인 익명 매치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 이 때의 랜덤성은 아마도 매치메이킹이 되는 순간일 것이다 . 어느 정도 게임 결과에 따라 매기는 랭킹에 의해 기대승률 50% 를 맞추는 보정이 이뤄진다고는 하지만 , 여전히 멀티플레이에서 내가 누구와 게임하게 될 지는 ‘ 모름 ’ 의 영역이다 . 이 랜덤한 매치메이킹의 효과는 랜덤을 애초부터 잘 만들 줄 모르는 디지털 연산장치의 확률 제시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 모든 모르는 영역을 파훼하고자 하는 플레이어의 힘은 멀티플레이 영역에 들어오면서 사실상 영원히 상대적인 극복의 굴레에 들어앉는다 . CPU 가 만들어내는 제한된 랜덤 상황은 결국 고정되어 있고 , 이는 어떻게든 파훼된다 . 수많은 게임 플레이 경험이 누적되며 플레이어의 숙련도는 계속 향상되지만 , 소프트웨어의 난이도는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 난이도 – 숙련도 경합에서 난이도의 제시가 상대방 플레이어라는 주사위보다 더한 경우의 수를 가진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 끝없이 향상되는 두 사람의 숙련도 덕택에 이 경합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순환의 고리를 돌게 된다 .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연산장치는 굳이 ‘ 모름 ’ 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일을 더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맞는다 . ‘ 모름 ’ 이라는 엔트로피를 기준으로 정리해 본다면 , 그래서 디지털 주사위는 사실 사람 혹은 사건이라는 실제로는 훨씬 더 예측불가능한 세계를 매우 낮은 레벨에서 재현해 낼 뿐이라고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 랜덤을 만들 줄 모르는 기계는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현실의 일부를 프로그래밍된 가상공간 안에 일부 재현할 뿐이다 . 다만 통제된 환경 안에서 펼쳐지는 아주 작은 수준의 경우의 수는 오히려 그 엔트로피를 충분히 낮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 모름 ’ 이며 ,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이 ‘ 모름 ’ 에 도전할 가치가 충분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 이른바 ‘ 공략 ’ 이라고 불리는 많은 패러텍스트들이 플레이와 동떨어지지 않은 맥락에서 생산되는 것이 바로 이 이유에서다 . 게임 공략들은 게임 텍스트가 제시하는 ‘ 모름 ’ 의 상황에 펼쳐진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기 위한 활동의 결과물들이다 . 어떤 이는 랜덤하게 떨어지는 아이템의 드랍률을 수집 , 분석해 최종적인 아이템 루팅 테이블을 만들고 이를 확률로 정리해 정례화한다 . 누군가는 주사위의 결과물에 다양한 수식적 치장을 가한 공격 / 방어의 메커니즘을 분석해 수식의 구조를 밝히고 , 이를 통해 최적의 공략 루트를 도식화한다 . 확률이라는 이름으로 온 사방에 분산된 채 높은 엔트로피를 지니고 있던 게임의 주사위가 만들어낸 세계는 공략이라는 정리된 장 앞에서 질서정연하게 정리된다 . 같은 맥락은 디지털 주사위가 아닌 사람과의 플레이에서도 나타난다 . ‘ 리그 오브 레전드 ’ 의 랜덤 매칭이 갖던 높은 엔트로피는 op.gg 와 같은 전적 사이트를 통해 체계적으로 나의 상대나 아군이 어떤 전적과 승률을 가지고 있는지를 일목요연한 데이터로 가공되며 해소된다. 게임 텍스트 내부에서의 플레이와는 별개로 , 확률이 만들어내는 ‘ 모름 ’ 의 영역에 존재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는 텍스트 밖에서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줄어든다 . 결국 , 디지털게임이 만들어내는 재미도 요약해 보면 1,000 피스 퍼즐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완성된 그림을 무질서한 1 천개의 조각으로 쪼갠 뒤 , 이를 다시 맞추는 일에 재미라는 의미를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 우리는 확률 기계가 제한적으로 생성해 낸 수많은 경우의 수 사이를 헤매며 다시금 이를 정리하고픈 욕망에 휩싸인다 . 게임 텍스트 안에서는 클리어와 엔딩 도달이라는 결과로 , 게임 텍스트 밖에서는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체계화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연산장치가 만들어낸 가상세계의 데이터 엔트로피가 분명 정리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사실에 흥분하며 또 도전한다 . 설령 이 기계가 근본적으로 랜덤값을 만들기 어려운 장치라 해도 , 마치 화투장 48 개를 가지고 흩어놓은 뒤 다시 맞추는 패 떼기 놀이와 같이 ,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사실은 엔트로피 놀이에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 아니 , 오히려 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윤상의 노래 ‘ 달리기 ’ 에서처럼 ,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 흥분하며 게임에 달려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산성비에서 마법 주문까지, 타자 게임이라는 장르의 귀환

    독일의 매체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그의 저서 <축음기, 영화, 타자기>에서 타자기가 인간의 신체와 언어를 분리시킨 장치였다고 말한다. 손으로 글을 쓰던 시절, 신체는 사유의 흐름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타자기 앞에서 언어는 데이터가 될 뿐 자판의 배열과 기계의 리듬에 맞춰 재편된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유도된 걷기와 우연한 만남의 장소 – AR 산책 게임의 지금

    일종의 ‘비동기 멀티플레이’로서 산책 게임들은 사람들을 게임이 유도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게끔 하지만 때로는 상상치 못한 연대를 가능케 한다.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에서 누군가 설치해둔 집라인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따봉’을 눌러본 기억이 있는가. 산책 게임은 각자의 황량한 디지털 디스토피아를 산책하게끔 하지만, 이따금 고개를 돌리면 엄지를 치켜세울 직접 타인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 Back 22 GG Vol. 25.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ngsoo Park Majored in art studies as an undergraduate and is currently studying media cultural studi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Writes primarily about film, while keeping a curious eye on visual culture broadly—art, games, and broadcasting among them. Also a film critic, host of the podcast Café Critique, and an organizer of community film screenings.

  • No Game for Young Men

    While some critics pointed out similarities between Kart Rider and Nintendo’s Mario Kart series, this controversy did not concern its players, especially the young kids already enjoying the game—myself included. Kart Rider marked a pivotal moment in Nexon’s history, peaking at 200,000 concurrent players (in a country of 50 million people), dominating the PC-bang market, and reaching 10 million registered accounts in 2005, within just a year of its release. In 2023, after 18 years of service, Kart Rider was replaced by its sequel, Kart Rider: Drift, though the reception to this successor has been mixed and is still unable to surpass the legacy of its predecessor. < Back No Game for Young Men 20 GG Vol. 24. 10. 10.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64ec6d72-3c26-4dc7-b6bc-91c99e7c0b02 Unfortunately, I am not one of the “young men” nor do I have kids—yet. So I felt a bit uneasy when the Game Generation (GG) editorial team first asked me to write about recent trends in the game industry with a focus on children's gameplay. My initial response to the team was, “How about finding a new writer who’s a parent, someone who has kids?" I tried to politely decline the offer. However, the editor-in-chief replied, “Wouldn’t it be more objective to discuss this issue from the perspective of someone without kids?” And there I was, realizing not only how excited we were about this topic but also how cleverly they had lured me into it. Well, at least I was once a child myself. I belong to the South Korean generation that was once called the “PC-bang Zerglings,” named after a unit in the Starcraft (Blizzard, 1998) game series. It was the mid-2000s, a time when Kart Rider (Nexon, 2004) was seen as a nationwide kids' phenomenon in South Korea. Every Saturday, I would rush to the PC-bang with my classmates. I’ll probably never forget the experience of eagerly pressing the "Shift" key (for drifting in Kart Rider) amidst the haze of acrid cigarette smoke (FYI, smoking was still allowed in those places back then).Online games like Lineage (NCsoft, 1998) and Mu (Webzen, 2001) were widely popular among adult players in Korean PC-bangs at that time. There were also several games that kids could play, such as Maple Story (Nexon, 2003), QPlay (also known as Quiz Quiz) (Nexon, 1999), and Mabinogi (Nexon, 2004). Of course, some kids were eager to move past their childhood and went straight to playing FPS games or more 'adult-like' MMORPGs. However, there was always one game that every kid knew how to play: the legendary Kart Rider. * Kart Rider was truly a nationwide form of entertainment enjoyed by people of all ages in South Korea. At the heart of this phenomenon were the young players. Kart Rider was incredibly popular in Korea at the time. The magazine “Cine 21”, a highly regarded publication that covers a wide range of cultural sectors like films and media, once referred to the game as “Kookmin” (meaning “national” or “of the people”) due to its widespread acceptance among the Korean public [1] . The magazine attributed the game’s popularity to its "child-like play experience", highlighting its simple gameplay mechanics and charming cartoon-style characters that stood out from previous racing games. While some critics pointed out similarities between Kart Rider and Nintendo’s Mario Kart series, this controversy did not concern its players, especially the young kids already enjoying the game—myself included. Kart Rider marked a pivotal moment in Nexon’s history, peaking at 200,000 concurrent players (in a country of 50 million people), dominating the PC-bang market, and reaching 10 million registered accounts in 2005, within just a year of its release. In 2023, after 18 years of service, Kart Rider was replaced by its sequel, Kart Rider: Drift, though the reception to this successor has been mixed and is still unable to surpass the legacy of its predecessor. Jung-ju “Jay” Kim, the founder of Nexon, once remarked, “It is amazing to see how children and their parents willingly spend their own money and wait in long lines in queue to enjoy Disney content”, adding, “They do so happily of their own will, without being forced or being lured” [2] . This reflected Nexon's approach to its young players in the 2000s: to create games that would naturally attract kids (and their parents), encouraging them to engage and enjoy happily at their own will. This philosophy is evident in many of Nexon’s early 2000s game portfolios, with Kart Rider at the forefront. Another major success that followed was Maple Story, although I won’t delve into the game’s ups and downs over the years, like recent controversies around Maple Story’s heavy and toxic micro-transactions. Interestingly and ironically, Nexon is currently researching and developing a blockchain version of Maple Story [3] . There was a time when the world felt simpler, and Koreans shared similar experiences nationwide. The label “Kookmin (people of the nation)” was frequently attached to various phenomena in the 2000s—Kookmin actors for acclaimed actors, Kookmin popular dishes for widely-enjoyed new menus, and famous Kookmin songs that everyone listens to together. The game Kart Rider was indeed among these “Kookmin” icons. However, two decades later, in the 2020s, the world has become more diversified, complex, and arguably more fragmented. People no longer gravitate toward a single cultural trend; instead, the ability to recognize and embrace individual preferences has become more important. Henceforth, the era of “Kookmin” is over. For example, my grandmother wouldn’t know Pani Bottle or JB Kwak, some of the most famous YouTubers among South Korean Gen Z. Similarly, Gen Z has little interest in her favourite trot music shows, a genre that is popular among Korean boomers. With that in mind, here’s a quiz for our adult Korean readers: Have you heard of “Sibling War (also known as “hhnm”)? This YouTuber, with over 2.8 million subscribers, is overwhelmingly popular with South Korean kids, particularly those in elementary school. As such, mass media is no longer what it once was. There is no longer a singular, large-scale media that is embraced by all generations. In the past, Koreans would rush home to watch the same K-drama on TV and eagerly discuss the plot with friends and colleagues the next morning. Those days are now a thing of the past. It has become increasingly difficult to know what kinds of content different segments of society, particularly children, are consuming. Combined with the country’s historically low birth rate (Korea has the lowest birth rate among OECD countries, with 0.7 births per woman in 2023), Korea is becoming a less appealing place for young people as their population rapidly declines. It is now harder for adults to meet, interact with, and understand the younger generation. Unless you have children, it’s nearly impossible to know what Korean kids are enjoying or demanding these days. Fortunately for me, I have a nephew. So I decided to "interview" him to find out what content kids are currently into. Soon after I started the conversation, we quickly realized we had one topic in common; the legendary Pokémon series. With my excitement, my nephew said, “Yes, I also know the 1st generation Pokémon!” But the conversation didn’t last long. It soon became clear that, aside from Pokémon, we didn’t share many common media experiences. Readers might want to try this with their younger relatives and see how many things they have in common. But be prepared for responses like, “Who watches The Haunted House (2016) these days?” or “Nah, Pororo the Little Penguin (2003) is for babies!” (Even if your nephew might still look like a baby to you.) And neither of these are digital games. If we take a look at games, there are even fewer games to talk about with children these days. One reliable source on this trend is the "Comprehensive Report on Children and Adolescents’ Game Usage" published by the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in 2023. The study found that 65.2% of children and adolescents in Korea play some form of smartphone game. Popular titles include sandbox games like Minecraft and Roblox (23.7%), followed by first-person or third-person shooting games (23.5%) such as Brawl Stars, Valorant, and Sudden Attack [4] . Game genre (%) RPGs (e.g., Cookie Run: Kingdom, Dungeon Fighter Online, Maple Story, World of Warcraft, Blade & Soul, Mabinogi, etc) 8.9 AOS games (e.g., League of Legends, Arena of Valor, Dota, etc) 9.2 FPS/TPS games (e.g., Brawl Stars, Sudden Attack, PUBG, Overwatch, Valorant, etc) 23.5 RTS games (e.g., Clash of Clans, Clash Royale, Starcraft, etc) 2.6 Sports games (e.g., FIFA, Director Manru, Magumagu, FreeStyle Street Basketball 2, etc) 10.5 Casual games (e.g., Candy Crush Saga, Friends Pop, etc) 3.8 Sandbox games (e.g., Minecraft, Roblox, etc) 23. Others (e.g., web games, board games, racing games, arcade games) (e.g., Kart Rider, TalesRunner, Crazy Arcades, Animal Crossing: New Horizons, Modoo Marble, Super Star, etc) 17.8% * Games that are most enjoyed by children and adolescents in Korea (source: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2023) Sandbox games are those where players can freely create their own worlds and experiences, much like playing in a sandbox. Roblox, for example, is a platform accessed by over 150 million children globally each month. Essentially, it’s difficult to know what's trending in the virtual world of Roblox without logging in and observing or participating, like how you wouldn’t know what’s trending on YouTube without understanding how the platform functions. These days, children are exposed to a wide range of games within the Roblox platform and the Roblox world itself is regarded as a virtual gaming experience. According to my nephew's keen analysis, one of the most popular games on the Roblox platform right now is “Adopt Me!” However, he says there are “too many (naïve) kids” in the game, so he recently switched to another Roblox game called “Murder”, where the players reportedly behave a bit better. Overhearing our conversation, my nephew’s guardian expressed concern about the violence in “Murder” and immediately suggested banning him from playing—and seeking my support. But to secure the continuous access of knowledge from my informant, I responded, “Nah, he will be fine”. It’s also interesting to see that Sudden Attack (Nexon, 2005) is still listed as one of the games enjoyed by minors today. Perhaps that is because this new generation no longer gets game-related information from TV or magazines as we did in the past. Instead, minors in South Korea seem to discover games by watching game streamers and influencers that they follow. Recent studies have also found that these young players tend to enjoy games in a relatively reactive manner. For instance, they start playing the game when it becomes a common topic of interest within their social circle, like school friends. Coming from that context, it appears Sudden Attack’s old-style polygon graphics, as the game was released nearly two decades ago in 2005, doesn’t seem to bother young Korean players at all—as they value social experience through the game, and thus, as long as the game is enjoyable with their peers. My nephew (currently my only source of information) is too young to play Sudden Attack, as the game is rated 15+. But it was clear that he wasn’t interested in playing the game anyway because no one in his immediate schoolmates was playing the game (or even allowed to play it). Then it’s not worth the effort to go through the hassle of getting parental consent, installing and playing the game when there’s no social benefit thereof. Come to think of it, I think accessing the game by fake-using our parent’s ID was much easier back then in the 2000s before the time of two-factor authentication—I’ve been there, done that. According to Gallup Korea Research Group, 44% of males and 13% of females in their teens listed “gaming” as their favourite hobby [5] . This evidently indicates that gaming still remains a popular leisure activity among the younger generation. However, it’s unfortunate that fewer and fewer new games are being released in Korea targeting the younger audience. If we refer back to the 2023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report, the only Korean game title on the list is Cookie Run: Kingdom (Devsisters, 2021), and that’s already three years old. It seems the Korean game industry no longer finds interest in making games for children with the decline in Korea’s birth rate and the overall number of younger population. Perhaps it’s no longer a profitable business. I can already see that it’s probably easier to pitch your game business to shareholders by saying, "We’re making games for adults in their 40s with disposable income" than saying that you’re interested in making games for teenagers. There was a time when games were considered childish—something that only youngsters would enjoy. Back then, kids would gather at arcades and PC-bangs. Now, it’s far less common to see young people in those places perhaps due to the declining number of children or the decline of arcades and PC-bangs. Or, it’s perhaps both. Let’s take a look at mobile games. In the Korean Apple App Store, the top five game apps in the “Kids” section are: YouTube Kids in first place, followed by the colouring game Quiber in second, the sandbox game Toca Boca World in third, Band Kids in fourth, and i-Nara in fifth. To me, only Quiber and Toca Boca World can really be considered “games,” while the others are more like social media or e-learning apps. YouTube Kids is also ranked first in Google Play’s kids’ section. Notably, both major mobile app platforms in Korea are dominated by apps focused on providing wholesome, educational content for minors. It’s interesting that Roblox, arguably the most popular game among children, isn’t on the list. It is directly provided by its developer, Roblox Corporation, and it is filled with games made by young creators. This makes me wonder: Is this a country where games for children can and will continue to exist? Will we ever see new games targeting younger players emerge in Korea again? * App Store’s “Kid” section, retrieved on May 31st 2024. There are hardly any games on the list. [1] Sang-woo Park, 「How the Kart Rider became a “kookmin” game 」<카트라이더>는 어떻게 국민 게임이 되었나)」, Cine21, 2005.09.16. [2] Jae-hoon Kim, Ki-joo Shin, 「PLAY: Gamer kids who became the founders of global game corporation – the story of Nexon (플레이: 게임 키드들이 모여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까지, 넥슨 사람들 이야기)」, 민음사, 2015.12.7. [3] Jae-seok Kim, 「Nexon is dreaming of Blockchain-based Maple Story (넥슨이 그리는 블록체인 메이플스토리의 꿈)」, Thisisgame.com , 2024.03.23. [4] 「Comprehensive Report on Children and Adolescents’ Game Usage 2023 (2023 아동청소년 게임행동 종합 실태조사)」, Korea Creative Contents Agency, 2024.03.05. [5] 「50 things that Koreans enjoy – cultural sector (한국인이 좋아하는 50가지 [문화편])」, Gallup Korea Research Group, 2024.05.2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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