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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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10. 10.
한때 대한민국을 휘어잡던, ‘한국인의 민속놀이’라는 별칭이 너무도 잘 어울렸던 ‘스타크래프트’는 이제 다른 의미로서의 민속놀이가 되었다. 모든 한국인이 할 줄 안다고 생각하기에 붙었던 민속놀이라는 이름은 이제 ‘틀딱들이나 하는 게임’이라는 의미로 변해가는 중이다. 새롭게 태어나 온라인게임에 진입하는 청소년들은 더 이상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하지 않고, 혹시라도 중년들이 ‘라떼는 말이야~’로 ‘스타크래프트’ 이야기를 시작하면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또 한켠에서 ‘스타크래프트’는 여전히 성업중이다. 출시된 지 20여 년이 지난 게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스타크래프트’는 여전히 PC방 점유율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적지 않은 유튜버들의 콘텐츠 기반이 된다. 심지어는 공식리그 종료 후 다양한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자체적인 리그가 자생할 정도니 그 생명력은 명실상부한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게임의 것임을 느낄 수 있다.
흘러간 옛 게임이 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로부터는 계속 플레이되는, ‘스타크래프트’의 오늘이 보여주는 독특한 모습은 과거 ‘스타크래프트’ 열풍의 중심에 있었던 90-00년대 기준 2-30대가 중년이 되면서 겪게 된 변화로부터 기인할 것이다. 지상파 TV 프로그램에서 ‘스타크래프트’ 성대모사를 해도 전국민이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사실상 모든 젊은이들이 직간접적으로 ‘스타크래프트’에 엮여 있었던 어떤 시기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아마도 한국 게임 역사 속에서 가장 대중적인 게임이었을 영광의 순간을 만들었던, 그 많던 스타크래프트 플레이어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게임과학연구원 게임과사람 센터는 2023년 중년 게이머 연구를 수행하면서 이와 같은 질문을 마주했다. 2020년대 기준으로 중년이 된 약 30여명의 게이머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듣게 된, 그들이 ‘스타크래프트’를 떠나게 된 이유를 정리해 본다. 그냥 나이가 들어서, 오래된 게임이라서와 같은 당연한 이야기 이상으로 우리를 둘러싼 게이밍 환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되새기게 하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라이트게이머는 로컬 플레이를 즐겼고, 그 로컬이 붕괴되어 떠났다
우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들을 간단히 짚고 지나가보자. 당연히도 당시 10대, 20대였던 플레이어들은 신체적 노화와 여가시간의 변화를 맞이하며 ‘스타크래프트’로부터 떠났다. 사실상 ‘스타크래프트’의 왕좌를 물려받았다고 평가받는 ‘리그 오브 레전드’로 왕년의 게이머들이 넘어가지 못한 이유도 대체로 여기에 있다. ‘스타크래프트’는 끝난 것 같고, 다른 게임은 뭐가 있나 보는데 새롭게 등장한 게임은 ‘스타크래프트’보다 복잡해 보이고, 멀티플레이 대전에서 딱히 이기기도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한 중년들은 아예 온라인 대전 게임을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신체 노화(이는 실제로 생물학적 노화보다는 ‘나는 늙었다’라는 자기인지가 더 중요한 개념으로 쓰인다) 속에서도 ‘스타크래프트’라는 콘텐츠 자체를 좋아하는 이들은 조금 색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일명 ‘컴까기’로의 전향이다.
"스타의 최대 장점은 1대 7 pc 게임이 된다는 거예요. 혼자서 게임을 하기 좋죠. 치트키 써가면서 신나게 두들겨 패고 막 그런 것들이 되잖아요. 진짜 스트레스 해소인데, 규칙이랑 하는 법은 다 아니까요. (중략) 스타는 단축키가 몇 개 없어서 그나마 쉬워요." (C01)
인터뷰대상자 C01은 가볍게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던 게이머였다. 중년이 된 이후에도 그는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지만, 과거만큼의 연습시간도 동체시력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배틀넷 대전을 포기했다. 그는 집 PC에 설치된 ‘스타크래프트’로 1:7 AI대전(일명 컴까기)을 즐기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멀티에서 승패를 가리는 대전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으면서도 여전히 적당히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방식으로서의 ‘컴까기’는 그에게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배우는 수고로움까지도 회피할 수 있는 적절한 여가로 남는다.
C01의 인터뷰가 중요한 것은 그가 ‘스타크래프트’ 마니아로 분류되는 게이머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2000년대 ‘스타크래프트’ 붐을 형성한 인구의 대다수는 라이트 게이머였다. 커뮤니티에 모여 전략을 연구하고 e스포츠 중계를 챙겨보며 빌드를 연구하고 수련하는 하드코어 이용자보다 대중적 붐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는 라이트게이머들의 머릿수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마니아들은 여전히 유튜브와 배틀넷에 남지만, 이들은 한 번의 열풍이 지나가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빠져나간 이유는 그들이 ‘스타크래프트’에 열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 콘텐츠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친구들이랑 다같이 몰려다니는 재미였죠. 혼자 있으면 굳이 pc방에 가진 않았을 것 같아요." (C08)
"스타를 하더라도 과거만큼 당연히 열심히 하지는 않는 것 같고 가끔씩 물어보면 그래서 같이 만나서 게임을 하기가 쉽지는 사실은 않은 것 같아요." (C06)
라이트게이머의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그 자체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교류의 수단으로서가 더 강했다. 배틀넷에서 익명의 상대와 1:1로 실력을 겨루기보다 이들의 플레이는 주로 다같이 모여 PC방에 가서 2:2, 3:3의 대전을 벌이는 형태였다. 간혹 모인 친구들의 숫자가 홀수가 나오면 함께 팀을 짜서 배틀넷에 들어가거나, 이른바 ‘깍두기’를 껴주는 방식으로 플레이가 진행되었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온라인 멀티플레이라고 부르는 방식과는 구분된다. ‘로컬 플레이’라고 이름붙여볼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기능을 사용하지만, 라이트게이머들의 플레이는 가급적 오프라인에서 이미 관계가 형성된 이들과 함께 즐기는 형태로 귀결되었다. 이들은 익명의 상대와 승부를 벌이는 것 자체에는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부담스러움을 느꼈고, 승패와 무관하게 함께 게임하고 노는 일을 중시했다.
올해 초에 국내에 번역된 C. T. 응우옌의 <행위성의 예술>에는 비슷한 개념이 등장한다. 응우옌은 플레이를 그 목적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성취형 플레이와 분투형 플레이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면, 성취형 플레이란 게임이 텍스트 안에서 제시하는 규칙으로서의 목표가 플레이어의 목적과 일치하는 경우이고, 분투형 플레이는 그 목표와 목적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경우다. 배틀넷 기반의 온라인 익명 매치 멀티플레이가 성취형 플레이라면, PC방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지인들끼리 모여 벌이는 ‘스타크래프트’ 대결은 분투형 플레이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붐의 중심을 이뤘던 라이트게이머들은 자신들이 ‘스타크래프트’를 떠난 이유로 더 이상 게임을 같이 할 사람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그대로이고 적지 않은 이들이 배틀넷 상에 존재하지만, 애초에 배틀넷 익명 대전이 아닌 로컬 플레이를 즐겼던 이들에게는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게임하던 로컬 커뮤니티 – 학교, 동네, 회사 등 – 가 해체되면서 더 이상 게임을 같이 할 사람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수많은 ‘스타크래프트’ 라이트게이머들은 결국 나이가 들면서 생활하는 커뮤니티가 변화하며 ‘스타크래프트’를 왕년의 놀이로 추억하게 된 것이다.
PC는 점점 더 보편 디바이스가 아닌 환경으로 가고 있다
2000년대의 라이트게이머들이 떠난 자리는 새롭게 자라난 세대가 채우면 될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의 로컬 플레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차지했으니 ‘스타크래프트’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여기에 더해 새롭게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스타크래프트’는 다소 먼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바로 PC라는 ‘스타크래프트’ 구동 플랫폼의 위상이 맞은 변화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리그 오브 레전드’도 곧 맞이하게 될 변화일 것이다.
“집에 PC가 있으면 집에서도 (스타를)하죠. 밤에 집에서 혼자 배틀넷 들어가서도 멀티 했어요.” (C03)
“이것도 사실은 좀 불법 영역이긴 한데... 군대 내의 공식 PC방 말고도 업무용 PC에 스타를 깔아서 다른 사무실하고 연결해서 플레이하기도 했었어요. 원래는 안 되는 거지만.”(C06)
‘스타크래프트’는 기본적으로 PC에서 구동되는 게임이다. PC기반의 RTS게임은 키보드 + 마우스라는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고, ‘스타크래프트’의 조작은 실제로 마우스 없이는 플레이가 매우 어려운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다.
초심자가 새로운 게임 하나를 배우기 위해서는 의외로 기본적인 인터페이스에 대한 적응이 중요하다. 처음 3차원 공간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은 전후좌우로의 이동감각조차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스틱을 사용해 복잡한 커맨드를 넣는 대전격투 게임은 그 숙련도 자체가 문제가 되어 뉴비 유입을 저해하는 요소로도 기능한다.
‘스타크래프트’의 키보드 + 마우스 컨트롤은 언뜻 보기에 쉬워 보이지만, 그것은 우리 시대가 키보드 + 마우스라는 인터페이스가 보편화된 시대라는 전제 안에서 성립하는 이야기다. 지금의 중년 세대는 1990년대에 이른바 ‘PC 교육 의무화 정책’을 거치면서 어린 시절부터 PC를 다루는 법을 익혔고, 각 가정에는 일종의 필수 가전제품처럼 PC가 한 대씩 놓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20년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가정이 구비하는 PC의 비율은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2009, 2003)의 ‘인터넷이용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한국 가정의 PC 보유율은 80.9%였으나, 2022년에는 56.2%로 10여년 사이 30%p 이상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PC 외의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디지털 디바이스 전반을 포괄하는 ‘컴퓨터 보유율’이 2022년 기준 81.0%라는 점을 고려하면 모바일 디바이스의 대중화 이후 가정에서의 데스크탑 PC 보유율이 크게 저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때 집에 들어오면 발가락으로 PC 전원버튼부터 누르는 것으로 시작되는 PC생활의 시대는 저물어가는 중이다. PC의 키보드와 마우스로 처리하던 많은 일들은 이제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통해 훨씬 더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다. 가정 및 개인용 디지털 디바이스로서의 PC가 태블릿, 스마트폰에 자리를 넘겨주는 과정에서 키보드 + 마우스라는 기본 인터페이스의 보편성은 점차 소실되어가기 시작했다.
"일단은 지금 pc는 사용을 할 수가 없죠. 그런 고사양 노트북도 지금 갖고 있지 않을 뿐더러, 왜냐하면 지금 주로 문서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러고 이제 애들이 있으니까 컴퓨터나 이런 걸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은 주로 하는 거는 피시방에 가거나 아니면은 핸드폰이나 태블릿으로 주로 하니까. 가능하면 이제 모바일 기기에 다가 넣고 하려고 하고 있어요." (A03)
인터뷰에 응한 많은 중년 라이트게이머들에게 PC기반 게임은 이제 상대적으로 하드코어한 무언가로 인식되고 있었다. 각종 컴퓨터 쇼핑몰에 가보면 볼 수 있는, 게이밍 PC라고 이름붙은 PC의 가격이 사무용보다 훨씬 비싸게 나오는 장면이 이를 증명한다. 게임용 PC는 어느 정도 게임에 관심과 의지가 있는 이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비용을 치르면서 구매하는 무엇이 되었고,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친구들과 함께 적당히 즐기고는 싶은 수준의 라이트 게이머들은 PC보다는 다른 디지털 디바이스에서 작동하는 게임으로 중심을 옮기게 된 것이다.
PC로 로컬플레이 하던 이들이 모바일 온라인 시대를 맞이하다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하나의 문화현상이 등장하는 것보다 퇴보하는 것의 원인을 찾는 일은 훨씬 어렵고 쉽게 일반화할 수 없다.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이 떨어지고 체력이 예전같지 않은 문제부터 경제생활에 종사하며 여가시간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가장 일반적이라면, 이 연구과정에서 나는 그만큼의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라이트게이머들에게는 결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했을 더 많은 이유들을 마주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라이트게이머들이 지적한 두 가지 이유, 로컬플레이의 소멸과 PC환경의 퇴조라는 두 지점은 단지 ‘스타크래프트’ 시절에만 머무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게임과 게이머의 변화까지를 아우르는 무엇이라는 점이었다. 자칫 우리는 게임과 게이밍을 생각할 때 그 대상을 고정된 무언가로 잠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이 대상이 얼마나 역동적이며 다양한 변수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게이머라고 부르는 집단은 결코 과거의 그들이 고정되지 않은 채 새로 들어오는 이와 나가는 이로 진폭을 만들며, 그 개개인 또한 시간과 환경의 변화 속에 각자의 이유로 변해간다. 사람의 변화도 그러할진대, PC라는,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매우 보편적이고 당연했던 어떤 기기가 다음 세대 혹은 PC게임에 딱히 열정이 없는 누군가에게는 이제 매우 어색한 기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를 포함한다면 우리는 게이머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만 한번 더 짚어내는 데 그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