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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리뷰] 게임콘솔 2.0: 현대 게임기의 계보와 궤적을, 사진으로 읽다
어린 시절을 비디오 게임을 벗 삼아 왔기에 게임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쯤 위키백과를 뒤적거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위키백과 문서에 실린 고전 게임기들의 사진 퀄리티가 너무 조악했다는 점이었다. 지금의 웹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당시 웹 문서들의 사진자료는 디지털카메라 보급 초기이기도 해서 개인이 형편 되는 대로 찍어 자가 제공한 사진들 일색이었으므로, 그때 눈으로 봐도 거개가 저해상도 저퀄이기 일쑤였다. 물론 하드웨어 제작사가 말끔하게 찍은 공식 사진자료가 있기는 하나, 당연히 제작사에 저작권이 있는데다 언론사 등에나 한정적으로 제공되기에, 공공자료로 개방되어 인용용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고퀄리티 사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 Back [북리뷰] 게임콘솔 2.0: 현대 게임기의 계보와 궤적을, 사진으로 읽다 11 GG Vol. 23. 4. 10. 한 남자의 자원봉사에서 시작된 ‘디지털 박물관’ 에반 아모스(Evan Amos)라는, (북미 게임기 시장 대붕괴 시기로 유명한) 1983년에 태어난 한 미국인 남자가 있다. 어린 시절을 비디오 게임을 벗 삼아 왔기에 게임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쯤 위키백과를 뒤적거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위키백과 문서에 실린 고전 게임기들의 사진 퀄리티가 너무 조악했다 는 점이었다. 지금의 웹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당시 웹 문서들의 사진자료는 디지털카메라 보급 초기이기도 해서 개인이 형편 되는 대로 찍어 자가 제공한 사진들 일색이었으므로, 그때 눈으로 봐도 거개가 저해상도 저퀄이기 일쑤였다. 물론 하드웨어 제작사가 말끔하게 찍은 공식 사진자료가 있기는 하나, 당연히 제작사에 저작권이 있는데다 언론사 등에나 한정적으로 제공되기에, 공공자료로 개방되어 인용용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고퀄리티 사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건 내가 기여할 수 있겠다’라는 점에 눈뜬 아모스는, 독학으로 사진기술을 배운 후 자신의 Wii를 피사체로 삼아 DSLR과 전문장비로 깔끔하게 고화질 사진을 찍어 2010년 8월 28일 영어 위키백과에 공공재(public domain) 형태로 공개 했다. 그의 첫 ‘기여’였다. 이 ‘무료봉사’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 온라인 중고장터에 공고를 내기도 하고 사설 수집가들에게서 기기를 제공받기도 하고 뜻있는 사람의 기부까지도 받아가며 일종의 ‘사회활동’으로까지 발전해, 2015년이 되자 위키백과 산하의 디지털 자료 아카이브 사이트인 위키미디어 공용 에 자신의 사진이 모인 대규모 저장소인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 을 만들기에 이른다. 현재 영어판을 포함한 각국 위키백과의 고전 게임기·컴퓨터 본체 사진은 거의 전부가 이 아모스의 자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심지어 모든 사진의 라이선스가 공공재라 마음껏 갖다 써도 문제없다. 서양권 및 일본에 공식 발매된 어지간한 게임기·컴퓨터라면, 여기에서 아모스가 찍은 인쇄물 퀄리티의 초고화질 사진자료(유명 기기라면 내부구조와 기판 사진까지 있다)를 손쉽게 다운로드받아 상용·비상용을 막론하고 자유롭게 가공하거나 인용·사용할 수 있다. 고전 게임기나 컴퓨터에 관련된 정보글이나 기사, 책 등을 (특히 직업적으로) 만들어온 사람이라면, 많은 경우 아마도 직간접적으로 아모스의 사진자료 신세를 졌을 것이다. 심지어는 아모스의 이름조차 여태껏 몰랐더라도. 10년 이상에 걸쳐 구축된 아모스의 귀중한 사진 라이브러리는 이제 전 세계의 수많은 박물관·출판사·저작자·웹사이트 등에서 절찬리에 활용되고 있으며, 필자 역시 다년간 비디오 게임 관련 기사·특집·컬럼 등을 저작하는 과정에서 ‘기기 사진이 필요할’ 때마다 방문하여 애용해 왔다. 이 계열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저작물에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인용하거나 가져다쓸 수 있는 사진자료 라이브러리가 존재한다 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아모스에게는 오랫동안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느낌을 항상 갖는다. 그 ‘디지털 박물관’의 공식(?) 도록 지난 12월 29일 한국어판이 출간된 「게임 콘솔 2.0 : 사진으로 보는 가정용 게임기의 역사」는 이 아모스가 자신이 그간 찍어온 사진들을 소재로 삼아 2018년 북미에서 첫 출간한, 말하자면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의 공식 도록 에 가까운 느낌의 책이다(‘2.0’이 붙은 이유는, 기기 및 내용을 증보하여 2021년 재출간한 개정판을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모스는 사진가 겸 비디오 게임 아키비스트로 활동하면서 2013년 킥스타터 크라우드펀딩을 열어 1,018명의 투자자와 $17,493의 자금을 모아 신규 기기들(덕분에 일본 게임기·PC 상당수가 추가될 수 있었다)을 확충했는데, 「게임 콘솔」은 그 크라우드펀딩 덕분에 탄생한 결과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단순한 사진자료집에 그치지 않고 ‘1970년대 초창기부터 현 시점(2021년 기준)에 이르기까지, 비디오 게임의 역사를 하드웨어 사진 중심으로 훑는 가벼운 역사서’처럼 꾸민 것이 이 책의 최대 특징으로서, 기기마다 기본적인 발매시기, 하드웨어 사양, 간단한 소개글, 발매 당시의 의의와 시대상황 등을 정리해 깔끔한 사진과 함께 넣었고, 중요한 기기의 경우 분해하여 내부 기판 및 구조까지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1972년의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부터 2020년의 Xbox Series S/X와 플레이스테이션 5에 이르기까지 근 40년 9세대에 걸친 하드웨어 발전사의 온퍼레이드로서, 패미컴이나 메가 드라이브처럼 충분히 유명한 기기들뿐만 아니라 페어차일드 채널 F나 벡트렉스처럼 북미 비디오 게임 역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여야 알까 말까한 마이너한 게임기까지 풍부하게 소개하고 있다. 말미에는 일종의 부록으로서, 지금 시대에 고전 게임을 즐기는 데 있어 발생하는 애로사항 및 대처법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지면·자료 관계성 등의 문제로 누락됐지만 언급할 가치가 있는 마이너 기종ㆍ파생기종들에 대한 사진 및 소개문도 실려 있다. 꾸준히 개정판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며 기본적으로는 사진 위주의 도록 컨셉이고 방향성 자체도 워낙 확고하고 유니크한 책인지라 장점과 의의가 압도적이고, 고전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추천할 만한 훌륭한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사진으로 보는 가정용 게임기의 역사’라는 부제부터가,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을 잘 압축해낸 문장인 셈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일단 (미국 책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한계이겠으나) 서술의 중점이 결국 미국 및 영미권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게임 콘솔의 역사에서 미국만큼이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하드웨어 및 그 사회상·사정이라, 영미권 중심의 서술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보인다는 것은 분명한 한계점이다(비단 이 책뿐만이 아니라 서양 저자가 쓴 일본 게임 역사서나, 반대로 일본 저자가 쓴 서양 게임 역사서에서 흔히 보이는 빈틈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 등 비영미권의 하드웨어 중 누락된 것이 제법 있어(예를 들어, MSX는 일본은 물론 유럽권에서도 수많은 기종이 발매되었으나 책에는 단 한 기종만 수록했다) 아쉬움을 더한다. 또한,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서 ‘게임기’만큼이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컴퓨터’ 쪽의 누락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아쉽다. 코모도어 64나 ZX 스펙트럼처럼 서양권 8비트 컴퓨터 계보 초기의 인기 기종들이 실려 있긴 하나 비중이 크지는 않으며, 애플 Ⅱ나 IBM PC처럼 빼놓고 지나가면 안될 법한 기종의 누락도 있다. 저자의 서문에는 ‘책 내의 세대 구분에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컴퓨터를 포함시키기 어려웠다’라는 대목이 있고, 바나모 온라인 게임 박물관의 라이브러리 내에서도 레트로 컴퓨터 쪽은 상대적으로 구색이 불충분한 편이라, 이쪽은 고전 컴퓨터 쪽을 다루는 별도의 책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일단 책 제목이 ‘게임 콘솔’이기도 하니까). 소소하게는 영미권 외 국가의 오리지널 기종들의 빈자리가 큰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예를 들어 한국 오리지널 기종의 경우 이 책에서는 유이하게 GP32와 삼성 엑스티바(‘누온’ 제하로 실려 있다)가 들어가 있다. 모두 북미에 시판된 적이 있는 기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의의만큼이나 한계점도 큰 책이라는 점은 짚어두지 않을 수 없겠으나, 고전 컴퓨터·게임기를 다루는 외서가 예나 지금이나 한국어판으로 원활히 번역 소개되는 경우가 드문 현실을 고려하면 이 책의 한국어판 정식 발간은 큰 의미가 있다. 아모스의 활동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혹시 후일의 「게임 콘솔」 개정판에 한국의 오리지널 하드웨어가 추가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애호가들에게도 새로운 발견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월간 GAMER'Z 수석기자) 조기현 ‘국민학교’ 때 친구 집에서 금성 FC-150과 패미컴을 처음 접했고, APPLE II+ 호환기종으로 컴퓨터에 입문했다. 중·고교 시절을 16비트 PC 게이머로 보낸 후 플레이스테이션을 접하며 가정용 게임기 유저로 전향, 게임으로 영어와 일본어 독해법을 익혔다. 이후 2002년부터 현재까지 (주)게임문화의 월간 GAMER'Z 수석기자로 재직중이다. 8~90년대 한국 게임 초창기의 궤적을 텍스트로 복각해보고 싶어 한다. 저서로는 〈한국 게임의 역사〉·〈우리가 사랑한 한국 PC 게임〉(모두 공저), 감수로는 〈페르시아의 왕자 : 개발일지〉와 〈여신전생 페르소나 3·4 공식설정자료집〉 등이 있으며, 2019년부터 레트로 게임기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해설하는 무크집 〈퍼펙트 카탈로그〉 시리즈 연작의 한국어판을 번역·감수하고 있다. 최신간은 〈패미컴 퍼펙트 카탈로그〉와 〈세가 초기 게임기+겜보이 퍼펙트 카탈로그〉(근간 예정)다.
- [Editor's view]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근래들어 출시되는 많은 게임들을 묶을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는 ‘복고’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 넘은 게임들이 새로운 플랫폼과 형식으로 다시 현역 복귀 신고를 줄줄이 하고 있는 분위기다. 왕년의 인기 게임들은 함께 성장해 이제는 중장년에 이른 게이머들에게 추억을 앞세우며 다시금 인기를 몰았다. 가장 최근 출시한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은 20여년 전 게임규칙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PC방 게임순위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 Back [Editor's view]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02 GG Vol. 21. 8. 10. 근래들어 출시되는 많은 게임들을 묶을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는 ‘복고’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 넘은 게임들이 새로운 플랫폼과 형식으로 다시 현역 복귀 신고를 줄줄이 하고 있는 분위기다. 왕년의 인기 게임들은 함께 성장해 이제는 중장년에 이른 게이머들에게 추억을 앞세우며 다시금 인기를 몰았다. 가장 최근 출시한 <디아블로 2: 레저렉션>은 20여년 전 게임규칙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PC방 게임순위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게임의 역사도 어느새 반세기가 넘어가기 시작한 만큼, 게임에도 이제는 복고라는 말이 어울리기 시작했다. 많은 인디게임들이 내세우는 8비트 도트그래픽 풍은 시대가 지나고 기술이 변하는 와중에 하나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고전 게임들이 안겨줬던 감성들은 이른바 ‘정신적 후속작’들을 통해 계승되기도 한다. <게임 제너레이션> 2호의 테마는 ‘레트로, 클래식, 복고’다. 복고 열풍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게임의 역사가 나름의 숙성을 거쳤다는 반증이고, 우리는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고 있는 어떤 일련의 흐름들에 주목할 필요를 떠올린다. 과거지향적이면서도 마냥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 레트로 게임들과 그 계승작들은 오늘날 우리에겐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보고자 했다. 인트로의 두 글은 각각 클래식 게임을 상정한다면 어떤 조건일지에 대한 고민과, 오늘날 레트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의 저변에 자리한 노스탤지어로서의 감성을 다룬다. 메인 기획에서는 레트로 시절에 존재했던 한국 게임비평의 흔적들을 더듬고, 인류 최초의 디지털게임 세대로 일컬어볼 수 있을 노년 게이머의 존재에 대한 질문들을 던져보고자 했다. 인디게임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레트로 양식의 재구현은 어떤 맥락일지를 검토하고, 한국이 아닌 북유럽에서 이뤄지고 있는 레트로게임에 관한 담론들을 받아보았다. 트렌드 섹션의 세 꼭지 중 첫번째는 9월 팬데믹 상황에서 진행된 부산인디커넥트 2021 현장 직관의 경험을 듣고자 했다. 현직 변호사가 보는 <역전재판>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디아블로2: 레저렉션>의 출시를 기점으로 블리자드라는 대형 게임사의 변화를 지켜보고자 했다. 2호의 아티클들은 1호보다 숫자를 늘려 좀더 풍부하게 구성하고자 했다. 조이스틱이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게임과 게이머의 공진화를 살펴봄으로써 기술문화연구의 측면에서 게임에 접근하는 시선의 의미를 볼 수 있었고, <퀘이크> 리마스터에 대한 비평은 메인기획에서도 다룬 레트로의 유유한 흐름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구성되는지에 대한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세계 최대 게임시장이면서도 정작 알려진 바는 적은 중국의 초창기 게임사에 대한 해외기고글은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새로운 정보들을 제공한다. 새로 신설한 북리뷰 코너에서는 매 호마다 게임을 다루는 서적과 논문, 연구자료들을 접하기 쉽게 정리하고자 한다. 첫 글로는 게임의 폭력성 문제를 다루며 올해 번역 출간된 <모럴 컴뱃>을 함께 읽는다. 게임을 다루는 젊은 작가들의 시도는 각각 게임에서 벌어지는 모험에서 나타나는 젠더 문제와 초창기 3D그래픽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한 접근을 다룬다. 인터뷰 기사는 오래된 레트로게이머이자 유튜버인 ‘꿀딴지곰’과 나눈 레트로게임 이야기와 ‘서울2033’으로 알려진 인디게임개발사 반지하게임즈 이유원대표와 나눈 인디게임 이야기를 정리했다. 프로그램 자체는 아카이빙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정작 프로그램을 통해 플레이어가 만들어낸 플레이는 설령 화면을 녹화한다 하더라도 보존이 쉽지 않은 것이 디지털게임이라는 매체의 독특한 점일 것이다.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남은 편린을 여러 필자들과 함께 되짚으면서 떠오른 것은 지나간 나의 게임 플레이 순간들이었다. 말로 설명하려 해도 쉽게 전달되지 않는, 그러나 나의 기억 안에서만큼은 너무나도 짜릿했던, 혹은 생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어떤 순간들은 기록하고 보존할 수 없기에 더욱 아련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노랫말대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 레트로 게임을 거쳐 간 이들의 플레이일지도 모르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쇼의 미래를 묻다
‘게임기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최근 술자리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후배가 물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필자는 게임기자를 대변할 깜냥도 없을뿐더러, 글밥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굳이 게임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게임의 쓸데없음과 효율성의 미학: 게이머는 왜 하필 게임에서 효율적 행위를 추구할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게임 하느라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거야!’ 이어서 등짝 스매싱이 날아온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장시간 게임에 몰두하는 청년, 청소년들은 ‘가정-내-관리자’로부터 고함을 동반한 힐난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 고통을 수반한 손길까지 언제든 주어질 수 있음을 감수해야 했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무용성, 아름다움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eon Choi Drawing on identities both as a philosophy researcher and as a game enthusiast and researcher, has engaged in teaching, lecturing, research, writing, and translation, and currently enjoys the pleasure of sharing thought with students at Inha University and elsewhere.
- 탈출 없는 삶에서 의미를 만드는 게임적 방법
〈하데스 Hades〉는 혹평이 거의 없는 좋은 게임의 정석 같은 게임이다. 2020년 하반기 최고작으로 뽑히며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s, TGA) 올해의 게임 노미네이트, 각본상, 인디 게임상, 액션 게임상을 수상했고, 메타크리틱 게임 리뷰에서 93점의 높은 점수를, 현재 스팀에서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SF 문학상인 네뷸러상과 휴고상까지 수상하니, 국내의 한 게임 비평지에서는 “하데스는 깔 게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렇게 길게 수상 목록과 긍정적인 평가를 굳이 덧붙이는 이유는 〈하데스〉가 보편적으로 잘 만든 게임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ju Choi Sunju has worked with attention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echnology and humans and the social phenomena it gives rise to. Interested in how new technologies reshape the concept of art, wrote a paper on the artistic potential of AI-generated works, and pursues a range of activities exploring the underside of media. Currently a curator at the Coreana Museum of Art's *c-lab. Books include Idologic Syndrome (2021, co-authored) and The Art of the Singularity (2019).
- 전쟁, 게임, 게임 속 전쟁 그리고 비남성
전쟁이라는 주제는 비남성을 향한 가해와 피해의 이야기가 자주 교차한다. 이때 보이는 ‘전쟁이 나면 보호해 주지 않겠다’, ‘전쟁이 나면 마음대로 강간하고 다닐 거다’와 같은 말들은 다분히 위협적이다. 전쟁이라는 키워드에서 폭발하게 되는 남성성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경계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키워드에 게임이라는 레이어가 얹어질 때, 이 위협은 사라진다.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전쟁의 성질이 상당수 무화되는 것이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페미니즘, 비남성, 전쟁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ahin Park Interested in the boundary between the real and the virtual. Recently returned to a certain online game.
- 서구의 관점에서 본 〈로스트 아크〉와 한국 게임
3일간의 얼리 억세스 기간이 지난 2022년 2월 11일 〈로스트 아크〉가 서구의 백만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출시되었다. 한국의 개발사 스마일게이트(Smilegate)가 제작하고 서구의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Amazon Game Studios)가 배급을 맡은 〈로스트아크〉는 서구 게이머들의 한국 게임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지난 20여년 간 몇몇 한국산 게임이 서구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음에도, 게임 분야에서 뚜렷한 일본산 게임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한국 게임'에 대한 개념은 아직 서구권 게이머들 사이에서 명확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다. 서구권에서의 성공을 도모하기 위한 게임의 운영관리 방침, 유명 콘텐츠 제작자들의 참여, 그리고 한국의 〈로스트 아크〉 커뮤니티의 역할 등을 통해 〈로스트 아크〉는 한국의 게임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서구 게이머들의 기대를 형성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놓여있다. < Back 서구의 관점에서 본 〈로스트 아크〉와 한국 게임 05 GG Vol. 22. 4. 10. * 이 글의 영어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2&match=id:107 3일간의 얼리 억세스 기간이 지난 2022년 2월 11일 〈로스트 아크〉가 서구의 백만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출시되었다. 한국의 개발사 스마일게이트(Smilegate)가 제작하고 서구의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Amazon Game Studios)가 배급을 맡은 〈로스트아크〉는 서구 게이머들의 한국 게임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지난 20여년 간 몇몇 한국산 게임이 서구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음에도, 게임 분야에서 뚜렷한 일본산 게임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한국 게임'에 대한 개념은 아직 서구권 게이머들 사이에서 명확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다. 서구권에서의 성공을 도모하기 위한 게임의 운영관리 방침, 유명 콘텐츠 제작자들의 참여, 그리고 한국의 〈로스트 아크〉 커뮤니티의 역할 등을 통해 〈로스트 아크〉는 한국의 게임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서구 게이머들의 기대를 형성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놓여있다. 우리가 사랑했던 예전 한국 게임들에게 〈로스트 아크〉가 서구권 플레이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최초의 한국 게임인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이래 여러 편의 한국산 MMO게임이 상대적으로 소수의 헌신적인 플레이어들과 공명해왔다. 〈라그나로크 온라인(그라비티 인터랙티브, 2003)〉, 〈메이플스토리(위젯, 2003)〉, 〈리니지(NC소프트, 1998, 2003)〉시리즈를 비롯해서 비교적 최근작인 〈블레이드 앤 소울(NC소프트, 2012), 〈검은 사막 온라인(펄어비스, 2014)〉 등이 헌신적인 플레이어를 확보했던 한국산 MMO게임들이었다. 이들 게임 중 상당수는 좋든 싫든 서구 MMO 시장의 영원한 리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의 그늘에 놓여있었다. 전(前) WoW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로스트 아크〉의 출시는 2009년에 출시됐던 한국산 MMO 〈아이온(NC소프트)〉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WoW는 종종 콘텐츠 고갈을 겪었는데, 패치 또는 확장팩이 나오기 전까지 플레이어들이 동일한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피로를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것을 찾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종종 새로운 MMO 게임에 끌리곤 했다. 'WoW 킬러'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새로운 게임들은 피로감에 찌든 MMO 플레이어들을 위해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시스템, 향상된 그래픽, 새로운 지역들, 새로운 직업과 새로운 몬스터 등 많은 것을 약속하면서 출시되곤 했다. 출시와 함께 플레이어들은 이 새로운 게임이야말로 자신이 새롭게 수년을 쏟아부을 만한 바로 그 게임이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플레이했다. 〈아이온〉이 바로 그러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자주 보아왔듯 이 게임의 전성기는 짧게 지나갔고, WoW가 새로운 콘텐츠를 내놓으면서 플레이어들은 실패한 'WoW킬러'를 뒤로 한 채 익숙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로스트 아크〉의 상황 또한 비슷할 것이라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출시 때 스팀차트에서 기록했던 백삼십만 플레이어의 50% 이상이 빠져나간 한편, 타 MMO게임이었다면 말살되었을 WoW의 최신 확장팩 패치에도 불구하고 〈로스트 아크〉는 살아남았다. 현 시점에서 〈로스트 아크〉는 스마일게이트와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의 운영에 따라 가라앉을 수도, 살아남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로스트 아크〉가 고유의 장점을 통한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가운데, 현 시점에 이 게임은 기존의 한국산 MMO게임이 성취했던 바를 넘어서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의 위치에 와 있다. 〈로스트 아크〉 외에 서구권에 한국 게임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데 있어 이 정도의 가능성을 보여준 한국 게임으로는 〈배틀그라운드(PUBG, 2017)가 유일하다. 출시 후 삼백만 유저를 기록한 뒤 현 시점 스팀차트 상 사십만명이 넘는 유저를 유지하고 있는 〈배틀그라운드〉는 성공한 한국 게임으로서 지난 몇년 동안 게임 분야 내 매우 중요한 시기를 만들어냈다. 〈H1Z1(Daybreak Company, 2015)〉과 함께 배틀로얄 시대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PUBG의 한국산 게임으로서의 입지는, 배틀로얄 장르의 선도자로서 거둔 경제적 성공과 업계에 끼친 영향력에 비하면 무색한 수준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저서 〈이미지의 수사학(The Rhetoric of the Image)〉에서 '이탈리아성(Italianicity)'이라는 용어를 통해 특정한 기호 - 이탈리아 국기의 색깔, 특정한 이탈리아식 단어와 이름, 재료의 조합(토마토, 버섯, 피망 등) - 을 조합해서 이탈리아의 문화라는 인식/개념을 표현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1) 문화적 스테레오 타입을 바탕으로 구축된 이와 같은 이미지들은 - 그것이 실제로 이탈리아의 것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 이탈리아를 표현하는 어떤 것들로서 쉽게 읽힌다. 다시 게임으로 돌아와, 만약 한국 게임에 '한국성'이란 게 있다면 아마도 주로 초기 한국 MMO 게임들을 통해 주로 구축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랬다 할지라도 그 게임들이 서구 게임문화권 내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PUBG는 성공했지만, 그 게임에는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한국 게임이라는 특정한 흔적이나 한국 게임 개발사 고유의 독특한 특징 같은 것이 없다. 또한 한국산임을 마케팅하여 게임의 인기가 확산됐던 것도 아니었다. 한국의 게임으로서 전례 없는 놀라운 성공과 영향력을 달성했음에도 〈배틀그라운드〉가 서구 세계에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으로서 인식되지 못한 이유는, 열성 플레이어들 외에 이 게임이 한국의 게임이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감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PUBG와는 달리, 서구의 많은 게이머들은 〈로스트 아크〉를 한국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다. 2019년에 한국에서 〈로스트 아크〉가 출시된 후 전 세계 게이머들은 각 권역에 게임이 출시되기 전부터 VPN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북미와 유럽 출시가 예상되면서 유튜버나 스트리머들이 타 권역의 〈로스트 아크〉를 메타적으로 분석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유튜버 캐논(Kanon)은 북미/유럽의 플레이어들을 위한 티어 리스트를 위해 적극적으로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해서 영상을 제작했다.2) 수많은 북미나 유럽권 게이머들이 〈로스트 아크〉를 플레이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전부터 사람들은 이미 이 게임이 한국의 게임임을 명확히 인지했던 것이다. 게임이 출시된 뒤에는 출시 때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콘텐츠로 포함되어있던 오리지널 한국어 음성팩에 대해 상당한 수요가 있었다. 이는 적지 않은 수의 북미/유럽 게이머들이 한국의 게임으로서 〈로스트 아크〉를 플레이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또한 게임의 기원을 미처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게임이 한국산임을 알려주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북미와 유럽에서 출시된 지 한 달이 훌쩍 넘은 이 시점에 〈로스트 아크〉 공식 포럼이나 커뮤니티 게시판, 인-게임 채팅 등에선 북미/유럽 버전에서의 콘텐츠 롤아웃 전략을 한국의 서버에서의 상황과 비교하는 대화나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여하튼 〈로스트 아크〉는 한국의 게임으로서 명확히 자리잡은 모양새다. 〈로스트 아크〉와 한국 게임의 '한국성' 분명한 한국의 게임으로서 서구의 수용자들에게 다가간 〈로스트 아크〉의 궤적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한국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게이머들에게 한국 게임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감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모두 〈로스트 아크〉를 꽤 많이 플레이했는데, 우리 중 한 명은 북미 서버 내 엔드 게임까지 완료했을 정도다. 이 여정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매력을 지닌 보스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전투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를 표방하는 〈로스트 아크〉지만, 타 MMO게임과 비교할 때 낯설고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측면 또한 존재한다. 예컨대 드워프가 거주하는 욘 대륙에서는 검의 주조 장면을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타일로 연출한 놀라운 장면을 볼 수 있다. 〈로스트 아크〉는 이와 같은 남다른 느낌의 다양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러한 것들이 게임 내에서 맥락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 또한 게임 세계 내 여러 크리처들은 다른 데서는 볼 수 없었던 귀여움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플레이어로서 볼 때 게임의 이와 같은 특성들 중 어떤 것이 한국 게임 전반을 대표적인 속성인지, 혹은 스마일게이트나 트라이포드 스튜디오가 만들어온 게임의 고유한 속성인지 알아채기는 어렵다. 사실 한국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친숙하지 않은 게임 요소들을 스마일게이트나 트라이포드 스튜디오의 것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한국적인 상황이나 경향으로 해석하곤 한다. 〈로스트 아크〉의 이와 같은 속성들은 - 실제 여부와 무관하게 - 전체적으로 한국식 게임디자인의 전형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는 나아가 서구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한국성'의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로스트 아크〉가 '한국성'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고는 있지만, 초창기 MMO게임들로부터 확산되어간 기존의 '한국성' 개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서구 담론장에서 한국 게임은 과도한 노가다(grindy)에 대한 평이 많은데, 이는 사소한 보상이나 캐릭터의 성장을 위해 매일 같이 똑같은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지나친 반복성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으로 - 〈로스트 아크〉로서는 불행하게도 - '연마(honing)'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연마는 일련의 재료를 모아 무기와 갑옷을 업그레이드 하는 시스템으로, 초기에는 업그레이드 성공이 확실하고 재료를 모으는 작업도 꽤 단순하지만, 게임이 진행이 될수록 필요한 재료의 수가 증가하고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낮아진다.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이는 〈로스트 아크〉가 'Pay to Win(P2W)' 게임임을 의미하는데, 서구의 게이머들은 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개별적으로 투자한 시간을 무용하게 하고 플레이어 스킬을 약화시키는 불공정한 어드밴티지를 허용함으로써 게임의 진정성을 훼손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로스트 아크〉의 이와 같은 P2W적 속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동영상이나 포럼, 혹은 게임 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임의 많은 옹호자들이나 비평가들은 이 p2w을 활용하거나 덮으면서 팬들에게 게임을 권하거나 혹은 멀리하라고 설득하고 있다. * 플레이어들은 〈로스트 아크〉에서의 페이 투 윈에 대해 게임 속 채팅창에서 논의하곤 한다. 〈로스트 아크〉의 P2W 측면은 가장 최근의 분기점에 있어 핵심적인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3월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엔드게임 보스가 등장했는데, 많은 플레이어들이 엔드 게임의 진행을 위해 현금을 써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고, 그 격차가 도저히 대처 불가하다고 느낀 일부 플레이어들은 게임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 선택의 문제는 한국 게임에 대한 서구 게이머들의 인상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지 게임의 형식과 콘텐츠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개발자들이 플레이어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로스트 아크〉에 있어 이는 복잡한 문제인데, 왜냐하면 스마일게이트와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 모두 게임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게임의 플레이어들에게 각기 상이한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로스트 아크〉의 출시를 앞두고 이루어진 책임자 골드 리버(Gold River, 금강선 디렉터)의 공식 인터뷰는 게이머 커뮤니티로부터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3) 반대로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는 게임의 단점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특히 유럽 서버의 과도한 대기시간이 문제가 됐다. 게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에 대한 결정의 주체가 누군지 라는 보다 큰 질문을 상기할 때, 지금까지 게임과 관련된 비판에 있어 스마일게이트는 상당부분 비켜간 반면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는 불만족한 플레이어들의 펀치백이 되어왔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응하는데 있어 플레이어들과 게임을 운영하는 측 사이에서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가 끊임없이 소통을 해왔음은 중요한 부분이다. 한 레딧 유저는 골드 리버가 〈로스트 아크〉의 '요시P(Yoshi P)'라고 언급했는데, 요시P란 게임 커뮤니티의 관심사를 자주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진 〈파이널 판타지 XIV〉 디렉터 나오키 요시다를 뜻한다. 그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셀럽 같은 인물인데, 서구권에서 요시P와 비슷한 인물로는 〈오버워치〉의 디렉터였던 제프 캐플란(Jeff Kaplan)을 들 수 있다. 그 또한 〈오버워치〉 커뮤니티 내에서 셀럽의 지위에 올랐는데, 포럼 같은 곳이나 유튜브상에 개발자 업데이트 영상을 통해 플레이어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하기 때문이다. 제작자/감독의 역량은 문화 상품이 대중적으로 어떻게 인식될 지에 있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국 게임에 대한 대중적 인식에 대해 생각해볼 때, 골드 리버는 플레이어들이 단지 〈로스트 아크〉 뿐이 아니라 한국 게임 전반에 대해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진입장벽 높은 장르의 실용주의 플레이어들 "한국성"이나 과도한 노가다, 또는 p2w적인 요소 외에, 〈로스트 아크〉가 진입장벽 높은 장르의 게임에 새롭게 진입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상대적으로 수월한 입장을 제공한다는 것 또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MMO게임의 출시는 - 그것이 서구의 것이든 비서구권의 것이든 - 서구에서 언제나 다른 MMO게임으로부터의 대규모 이주를 발생시킨다. 저자 중 한 명이 〈로스트 아크〉에 매혹되었던 이유 중 하나도 MMO 게임을 그라운드 제로에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로스트 아크〉는 게임(그리고 아마도 장르 그 자체)를 처음 접한 플레이어에게 아케시아의 세계를 안내해주는 광범위한 튜토리얼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로스트 아크〉가 단순화된 MMO 경험을 제공한다는 뜻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 새롭게 출시되는 MMO에 참여하는 것을 WoW 처럼 십년이 넘어가는 콘텐츠와 스토리, 변화상, 헌신적인 플레이어 기반을 지닌 오래된 MMO 게임을 시작하는 것과 비교해볼 때, 이 장르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로스트 아크〉라는 게임이 매력적일 수 있다. 즉, 〈로스트 아크〉는 MMO게임 플레이에 흥미를 가진 완전한 초보 플레이어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결여된 것은, 앞서 말했듯이, 명백히 한국의 것인 MMO란 어떤 것일지에 대한 역사적 디자인 지식과 경험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로스트 아크〉의 운영 주체인 스마일게이트와 아마존 게임 스튜디오 앞에 놓인 과제는 자신들이 게임 운영에 대한 우려를 듣고 있다는 믿음을 플레이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만약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유명 작품으로서 〈로스트 아크〉는 서구 게이머들이 한국 게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부정적인 측면을 제대로 각인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로스트 아크〉가 지닌 모든 매력과 게임플레이에 있어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만약 반복적인 노가다와 p2w요소로 인해 서구 플레이어들의 장기적인 참여 확보에 실패한다면, 이는 서구 게이머들이 지닌 선입견의 고착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한 요소들이 여전히 게임 내 주요 부분으로서 제공되면서 이용자 수가 유지된다 할지라도, 〈로스트 아크〉가 지닌 그 밖의 보다 독특한 측면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한국산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관점을 바꾸는데 충분하지 않다. 지금까지 보았듯, 서구에 진출한 한국산 게임은 매우 소수이며, 따라서 한국 게임 및 '한국성'에 대한 서구의 인식은 매우 제한된 접촉 경험에 따라 형성된 것이다. 〈로스트 아크〉가 한국 게임에 대한 서구의 흥미를 제고하는데 좋은 출발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서구 플레이어들의 인식을 바꾸거나 개선할 수 있는 정도는 딱 그 정도에 그칠 것이다. 궁극적으로 서구 게이머들에게 필요한 것은 좀 더 많은 명작 한국 게임 - 그것이 과거의 한국산 MMO게임 스타일이든, PUBG 타입이든, 〈로스트 아크〉 같든, 또는 새로운 어떤 것이든 간에 - 이다. 서구의 게이머들은 그 플레이가 어떤 것일지 기존의 경험을 통해 개념화 되어있을지라도, 예상 밖의 "새로움"을 기꺼이 시도할 의향이 있어 보인다. 의심할 여지 없이 서구식 게임 플레이나 게임 디자인의 전형성이 넘쳐나는 가운데, 그러한 서구의 게임들이 실제로 한국의 시장에 침투할 때 그 "서구성"의 개념이 어떠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문화 교환에 있어 비대칭적 상황을 볼 수 있다. 서구의 게이머들은 한국의 게임과 게임문화 그리고 게이머들에 대해 정형화된 시각을 지니고 있는데, 그러한 시각이 항상 한국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다(예를 들어 〈오버워치〉의 디바를 보라). 서구 게이머들의 한국 게임에 대한 경험은 한정적이며 따라서 그들이 서구와 한국의 시장을 비교하거나 관련된 보다 큰 담론장에 참여하기는 어렵다. 견고하게 구축된 규범과 담론장을 지닌 일본 게임 시장의 그 거대한 규모와 비교해보면 한국 시장은 왜소해 보인다. 그에 따라 저자들은 지금까지 게이머들 사이에서 구축되어온 한국산 게임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더 많은 한국의 게임들이 서구 시장에 출시되어 파고 들기를 희망해본다. 1) Barthes, Roland and Stephen Heath. Image, Music, Text. New York: Hill and Wang, 1977 2) Youtube Video “LOST ARK EXPOSED - PVE Interview with KR’s BEST (Jiudau) (accessed March 28th, 2022) https://www.youtube.com/watch?v=_8_kHtaXy8o&t=2919s 3) Reddit Thread, “The Man the Myth, the Legend GOLD RIVER (Accessed March 22nd, 2022) https://www.reddit.com/r/lostarkgame/comments/sn80q4/the_man_the_myth_the_legend _gold_river/ _gold_river/ 참고문헌 Barthes, Roland and Stephen Heath. Image, Music, Text. New York: Hill and Wang, 1977.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마크 라제네스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온라인 게임의 독성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공평하고 즐거운 놀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게임 내에서 더 많은 긍정적인 조건을 들어내기 위한 독성 현상에의 이해를 추구한다. 스팀 마켓플레이스와 DOTA 2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고 곧 출시될 '트위치 마이크로스트리밍'의 공동 저자이다. (게임연구자) 코트니 블레이미, Courtney Blamey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 재학중인 게임디자이너. 시리어스 게임에서의 의미발생 과정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중이며, 게임디자인에서 플레이어와 디자이너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오버워치에서의 커뮤니티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블리자드의 접근방식을 개발자 및 게임커뮤니티에 관한 조사를 통해 풀어낸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게임과 게임 플레이어, TAG(Technoculture Arts and Games)를 연구하기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개발하는 데 전념하는 공간인 mLab의 회원이다.
- [Editor's View]
GG 13호는 1년만에 돌아온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특집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많은 분들의 응모가 있었지만, 모든 글을 함께 읽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입니다. 첫 회 공모전과 달리 올해부터는 수상작 안에서 별도의 등급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최우수, 우수보다도 게임비평과 담론에 참여하는 사람의 존재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한 결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호 메인 테마에서 당선작 7편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 Back [Editor's View] 13 GG Vol. 23. 8. 10. GG 13호는 1년만에 돌아온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특집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많은 분들의 응모가 있었지만, 모든 글을 함께 읽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입니다. 첫 회 공모전과 달리 올해부터는 수상작 안에서 별도의 등급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최우수, 우수보다도 게임비평과 담론에 참여하는 사람의 존재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한 결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호 메인 테마에서 당선작 7편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공모전을 진행하면서 편집장으로서는 나름의 인사이트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 해에는 저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정신이 없었는데, 두 번째 해보니 공모전과 비평이라는 흐름 안에서 일련의 특징도 존재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오늘날의 공모전이 일련의 정례화 단계에 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요즘은 공모전 홍보 전문 사이트와 커뮤니티가 있고, 특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모전 참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다만 그러다보니 GG의 게임비평공모전도 게임문화담론에 대한 관심이 없는 분들 또한 지나치게 단순화된 글이 투고되는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일련의 스펙 쌓기를 위한 스팸성 투고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공모전을 주최하는 입장에선 조금 씁쓸한 일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일반적인 게임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만을 비평으로 담고자 하는 글의 수가 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게임비평에서 저는 어떤 특정한 양식만이 '진정한' 비평이 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는 것이 유의미한 비평의 주제가 된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평을 넓게 잡는다고 해도 고유한 관점과 그를 설명하기 위한 충분한 논거는 우리가 게임비평의 장을 넓히고 사람을 늘려가는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전제라고 생각합니다. 전업으로 글을 쓰고 말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갑자기 '각 잡고 글쓰기'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전에 지원해 주신 많은 분들의 원고를 보며 아직 제가 해야 할 일이 많고 많다는 사실을 체감합니다. GG는 내년에도 제3회 공모전을 진행하고, 공모전을 통해 만난 새로운 사람들과 계속 게임문화를 이야기해 나갈 것입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서도 늘 GG가 가고자 하는 게임비평의 길에 함께 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게임문화/비평에 대한 작은 바람 -권력투쟁을 위한 비평의 역할과 책임에 관하여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동생이 꽤나 발칙한 사고를 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요 귀여운 녀석이 게임에 미쳐 부모님 몰래 수십만 원어치의 현질을 했고, 그걸 들켜 죗값을 달게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장성한 아들을 둔 우리 엄마는 비슷한 일을 이미 여러 번 겪은 바, 대수롭지 않게 ‘애들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라며 심심한 위로를 건넸지만 이모는 ‘이노무 시키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발을 동동거렸다. < Back 게임문화/비평에 대한 작은 바람 -권력투쟁을 위한 비평의 역할과 책임에 관하여 01 GG Vol. 21. 6. 10. 시작하며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동생이 꽤나 발칙한 사고를 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요 귀여운 녀석이 게임에 미쳐 부모님 몰래 수십만 원어치의 현질을 했고, 그걸 들켜 죗값을 달게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장성한 아들을 둔 우리 엄마는 비슷한 일을 이미 여러 번 겪은 바, 대수롭지 않게 ‘애들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라며 심심한 위로를 건넸지만 이모는 ‘이노무 시키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며 발을 동동거렸다. 실로 익숙한 흐름의 대화였다. 게임을 ‘중독’이라는 프레임 안에 가둬 악마화하거나 정신병리학적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우리 엄마가 나의 오빠를 키우던 때에도 구사한 문법이니 말이다. 같은 배에서 태어났지만 오빠와 달리 나는 디지털 게임을 즐겨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쥬니어 네이버’ 세대답게 나 역시 ‘슈 게임’을 하며 유년시절을 보냈고 조금 더 머리가 큰 뒤로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피카츄 배구’나 ‘보글보글’, ‘테트리스’, ‘카트라이더’ 등을 하며 점심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게임을 즐겨 하지 않던 나조차도 추억 저편에 게임이 있을 정도라면,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의 유년시절은 온통 게임으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게임이 우리 일상으로 들어온 지는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뿐인가.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의 레드 카펫 위에서 한국영화를 알리고, 방탄소년단이 빌보드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K팝을 알릴 때, 모니터 너머의 가상 세계에는 이미 ‘한국 vs 비한국’이라는 대결 공식이 생겼을 정도로 한국 게임문화의 위상은 최정점에 놓여있던지 오래다. 상황이 이쯤 되면 이제는 게임도 엄연한 취미이자 하나의 문화로 봐 줄 법도 한데, 여전히 게임은 하찮고 저급한, 그래서 ‘문화’라는 이름조차 아까운 취급을 받고 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걸까? 우선적으로는 타성에 젖은 사고방식 때문일 테다. 시대가 변했고, 세대교체가 여러 번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간 시절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한 편견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뿌리 깊게 남아있고, 그로 인해 게임은 문화가 아닌 잠깐의 일탈이나 못된 유흥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뿐일까? 세상만사가 단 하나의 절대적인 이유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면, 게임이 문화영역에서 제 몫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또한 외부적 편견 탓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그 밖의 다른 요인도 있을 것이며, 나는 그것을 ‘비평’으로 지목할 셈이다. ‘게임비평’? 사실 게임이 맥락적인 조건 속에서 주조되는 하나의 문화적 텍스트이자 실천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여타의 문화예술처럼 비평이 따라붙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하지만 게임비평은 여전히 생소하고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타 영역의 비평에 비해 그다지 활발하게 전개되지 않은 탓이며 비평의 무능과 게으름, 그것이야말로 이 글이 쓰인 배경이자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계급투쟁의 영토로서 영화/비평 문화비평 중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것은 단연 미술비평과 문학비평이다. 초기에는 양자 모두 작품의 고유한 특징과 미학적 가치를 규명함으로써 예술가의 창작 활동이 갖는 의미를 파악하고 작품과 세계가 맺는 관계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미술사’ 또는 ‘문학사’와 함께 발맞춰 전개되었지만, 근대 전환기에 이르러 예술이 인간 이성의 지적인 활동으로 간주되자 비평은 역사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19세기 무렵이 되자 비평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는데, 예술 시장의 확대와 부르주아 계층의 급속한 팽창으로 인해 단순히 작가와 문화 향유자 사이를 중개하던 비평가의 역할이 특권 집단의 배타적인 취향을 형성하는 역할로 변모한 까닭이다. 특히나 미술과 문학은 일찍이 상류층의 취미이자 고급예술의 대표적 형태로서 문화사에 기입되어 왔기에 비평이 제 스스로 그것의 차별성과 우월성을 강조하여 대중문화와의 구별짓기를 수행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으며, 이때부터 비평은 문화예술의 지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었다. 반면 영화와 영화비평의 관계는 위와는 다소 다른 양상으로 진화·발전을 이룩해왔는데, 영화는 근대의 산물이기에 태초부터 고도화된 자본 및 기술, 매체 등과 밀접한 연관을 지닐 수 밖에 없으며, 그 중에서도 신문과 잡지는 1895년 12월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 발명과 영화의 탄생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조푸앵(Mise au point)>(1897)이나 <르파시나퇴르(Le Fascinateur)>(1903)와 같은 영화 전문 잡지가 창간되면서 근대 영화비평의 초석이 마련되었는데, 달리 말해 영화는 미술이나 문학과 달리 탄생부터 그것에 대한 글쓰기와 함께한 셈이다. [1]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 발명 초기, 영화가 ‘미래가 없는 발명’이라 말했지만 그들이 틀렸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우려와 달리 영화는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 사실주의 등 온갖 종류의 장르 및 스타일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며 자기 식대로 소화했고 제작과 평론, 관람을 한데 모으는 비옥한 토지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대중매체로서 영화의 영향력이 증대함에 따라 점차 영화 산업에도 활기가 돌고 영화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는데, 1920년대에 들어서자 영화 칼럼을 고정으로 싣지 않는 주간지가 없을 정도로 영화 비평은 몸집을 부풀렸고 정기 간행물 형태의 전문 영화 잡지 역시 앞다퉈 창간됐다. [2] 그리고 이때부터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비평에 참여하면서 그 수준도 현저하게 끌어올려졌는데 알렉상드르 아스트뤽(Alexandre Astruc), 앙드레 바쟁(André Bazin), 장 조르주 오리올(Jean George Auriol), 로제 레나르트(Roger Leenhardt), 자크 도니올-발크로즈(Jacques Doniol‐Valcroze) 등은 철학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영화 미학을 심도 깊게 탐구하고, 비평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이하 <카이에>)와 <포지티프(Positif)> 역시 이러한 지적 계보 속에서 탄생했다. [3] 이렇게만 보면 영화/비평은 나름대로 순탄하게 독자적인 예술의 지위를 차지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전문 영화비평이 등장한 초기만 하더라도 영화는 연극이나 문학의 빈곤한 확장으로 여겨졌으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는 제국주의적 충동에 사로잡힌 이데올로기적 매체라는 편견이 빠르게 확산됐다. 게다가 전쟁 이후 맹렬한 기세로 성장한 할리우드 영화 산업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는데 쉽게 말해, 영화가 미술이나 문학과 같이 하나의 예술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영화만의 미학적인 속성과 가치를 규명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이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완전히 말소시켜야 했고, 그와 더불어 일반 대중들의 저속한 유희거리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던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 역시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내야 했던 것이다. 특히 초창기 영화이론가 리초토 카누도(Ricciotto Canudo)가 영화를 ‘제7의 예술’이라 선언한 이후 영화비평은 영화가 고유한 내적 세계와 미학적 가치를 지닌 예술의 한 형태이며, 그에 대해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모든 행위는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지성의 작용이라 주장했는데, 이는 아스트륔의 ‘카메라 만년필론(camera-stylo)’에서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다. 아스트뤽는 1948년 <레크랑 프랑세(L'Écran française)>의 지면을 빌어 영화감독은 화가나 작가에 비견되는 예술가로, 감독이 사용하는 촬영 기자재는 소설가가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만년필과 같다고 썼다. [4] <레크랑 프랑세>의 또 다른 필자였던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역시 이미지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이자 실천적 행위라고 말하며 ‘사유-이미지(Images-pensée)’를 주창했고, 영화비평의 전성기인 ‘황색 시대’ [5] 를 견인한 앙드레 바쟁 또한 카메라의 힘이 현실에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무언가를 드러내는 것에 있다고 역설하며 영화의 독자성을 강조했다. [6] 이렇듯 영화가 ‘근(현)대 예술’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비평의 역할은 실로 막대했다. 비평이 촉발시킨 영화 미학에 관한 물음과 논쟁은 당대 많은 부르주아-엘리트의 관심을 끌었고, 이것이 영화의 인식 개선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결정적으로 영화는 1960년대를 기점으로 한 단계 더 큰 도약을 하며 명실상부한 ‘예술’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순수한 의미의 시네필 문화를 수호하던 비평계가 누벨바그 운동에 직면하며 폭넓은 지적 조류에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그간의 비평은 의식적으로 비정치성을 강조해왔는데, 이는 영화-이미지 이면에 놓인 감독(작가)의 천재성과 영화의 특수성을 세간에 드러냄으로써 영화와 비평을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으려는 기획의 논리적 확장이었다. 요컨대 “영화를 ‘본다는 것’은 감독이 마련한 자신만의 일관되고 독특한 세계관이 담긴 작품 세계로서의 미장센에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주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앞서 이념적 해석이나 정치적 성향은 필요치 않다.” [7] 만약 “이를 강요한다면 영화의 시각적 구성을 볼 수 없게 만드는 편향된 ‘읽기’를 필연적으로 야기할 것” [8] 이며, 이는 결국 영화를 도구적으로만 참조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세대교체로 인해 젊은 감독들은 구시대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화적 조류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비평도 변혁을 요구받았는데, 비평 역시 세계의 일부라면 모종의 투쟁에 연루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흐름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누벨바그의 거장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다. 그는 영화 안에는 언제나 미지의 상태로 남겨진 의미와 기능, 형식들이 존재하기에 자기 자신에게로 닫혀서는 안 되며, 이 미완성이야말로 영화의 진정한 힘이기에 영화는 결코 고립된 채 이해될 수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고 주장했다. 리베트 이전의 비평이 작품의 내적 탐구를 통해 영화를 진지한 사유와 토론의 대상으로 격상시키는데 주력을 기울였다면, 리베트 시대의 비평은 작품의 안과 밖을 잇는 시도를 통해 영화의 이론적 정립과 과학적 글쓰기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리베트는 <카이에>를 이끄는 동안 영화의 의미 확장과 저변 확대를 위해 인류학과 문학 이론, 라캉의 정신분석학,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 등과 같은 새로운 분야의 지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했는데, 당시 리베트와 함께 <카이에>를 이끌던 필진들 역시 블랑쇼,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융 등을 인용하면서 철학과 영화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 영화를 다르게 사유하고 감각할 수 있는 방법 등을 강구했다. 이제 비평은 근대인의 미적 체험의 대상으로서 영화에 주목하는 대신 그것이 자극하는 무의식과 불안에 초점을 맞추고 적극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더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영화의 목표가 “사람들로 하여금 둥지 밖으로 나오도록 신화를 깨부수는 것” [9] 으로 변모함에 따라 비평이 중요하게 포착해야 할 것 또한 작품이 높인 맥락, 즉 영화가 탄생한 환경적인 조건이나 현실 세계와의 연관성, 그리고 그것의 표현 방식 등으로 이동하게 된 셈이다. [10] 그리고 몇 년 뒤 영화/비평은 또 한 번의 변화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세르주 다네(Serge Daney)의 회고처럼 1968년에 일어난 ‘68혁명’은 어느 누구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거나 그에 관해 쓸 수 없게 만들었다. 68혁명의 주창자들이 이끈 정치경제학적 변혁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여파로 프랑스 사회 내 모든 가치가 의문시되었고 영화 역시 황색 시대에 구축된 제도와 관습, 원칙, 규율 등이 1968년 이후의 상황을 다루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전 시네필리아에 대한 거부가 만연해지자 영화에 대한 새로운 언어와 사유 체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이러한 요구 담론의 지속적인 형성 및 축적은 ‘영화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을 열어내는 것으로 이어졌다. 권력투쟁의 이중 전선, 한국영화/비평 그렇다면 한국영화는 어떨까? 한국영화사에 비평 집단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이었지만 이때의 평론은 서구의 초기 영화비평처럼 일간지나 잡지 등지에서 영화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감상을 나누는 정도였으며, 보다 선명한 문제의식을 지닌 비평가 집단이 출현한 것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5.16의 발발로 활동이 중단되었던 ‘한국영화비평가협회’에 10여명의 문학평론가를 영입하며 1965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새롭게 출범한 것이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하나의 비평적 공동체로 묶어준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새로운 ‘세대성’이었다. 해방직후의 비평은 ‘민족영화 건설’이라는 모토를 내세웠고, 1950년대 전후 비평 역시 ‘한국영화의 근대화’라는 역사적 과업을 이어받았지만, 이 새로운 비평 집단은 영화의 문학성(서사성)이나 외적 현실로부터 벗어나 이미지-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강조하고 내적 세계를 포착함으로써 영화 고유의 미학적 가치를 강조했다. “리얼리즘을 초극해야 한다” [11] 는 한국영화의 암묵적인 전제는 바로 여기서 탄생했다. 영화는 본디 기록의 매체이니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하되, 거기에 안주하거나 머물러서는 안되며 그것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리얼리즘은 한국영화의 절대적 명령이 아닌 하나의 선택적 가치에 불과하며, 영화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이라는 오브제가 아니라 그 오브제를 다루는 영상-이미지이다. [12] 이러한 흐름만 놓고 본다면 한국영화/비평이 걸어온 길 역시 서구의 궤적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근대 도시의 통속적이고 저속한 볼거리로 여겨지거나, 인접한 예술의 하위호환 버전으로 간주되거나, 정치적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부각되다가 대대적인 세대 교체와 함께 그것의 역사적, 매체적, 미학적 특성을 규명하며 종국에는 예술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한국영화는 언제나 이중의 도전에 직면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앞서 언급한 세계영화문화의 공통된 목표였다면, 다른 하나는 문화 열강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국가·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국가·민족 고유의 미학적 가치를 내세우는 것은 무엇보다 식민국 또는 후진국이라는 역사적 오명을 벗어던지고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의 힘의 획득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한국영화/비평의 정치적 무의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풀어 말하자면 50년대 한국영화는 일제의 잔재를 지우고 식민지적 외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를 대안으로 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내세우는 테크놀로지나 스펙터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며 거리두기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 60~70년대의 한국영화비평은 기술과 예술을 엄격히 구별하고 전자보다 후자에 우위를 부여했는데, 이는 한국영화가 안고 있는 기술적 낙후성에 대한 불안과 좌절로부터 비롯된 의식적 부인으로 보인다. 한국영화의 물적 토대를 감안했을 때 할리우드가 선보이는 기술과 기교는 분명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것을 졸렬한 기술-자본이 만들어낸 말초적 쾌락이라 호명하며 예술성의 고양을 주창한 것이다. [13]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한국영화의 기술력을 논할 때는 다소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가령 국내 최초의 컬러영화가 등장하자 비평단은 이를 한국영화의 획기적인 진전이라 상찬하고, 국산 시네마스코프가 제작되었을 때는 한국영화를 해외영화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위대한 업적이라 호평했다. [14] 이것이 너무 까마득한 역사처럼 느껴진다면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를 장악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그에 대한 평단의 반응을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우리나라는 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에 편승했는데 당시 물밀듯 밀려 들어온 해외 문화로 인해 자국 문화의 위기설이 나돌았고, 이때 전 지구적 자본의 풍랑에 맞서 한국의 영화산업을 이끌 대표 주자로서 부상한 것이 ‘한국형 블록버스터’였다. 민족주의적 서사를 채택하며 처음 등장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막대한 자본과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기술력을 등에 업고 인기몰이를 했는데, 이에 대한 비평 역시 60~7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컨대 영화 시장의 개방으로 국내에 대거 유입된 해외 스펙터클 영화에 대해서는 자국의 영화를 말살시키는 ‘위협’의 딱지를 붙였지만,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대해서는 해외 문물로부터 국가·민족의 고유한 정신과 가치를 지켜낼 문화예술의 지위를, 더 나아가 IMF 외환 위기와 구제 금융을 겪으며 좌절한 한국사회를 다시 일으킬 산업분야의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15] 해외영화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술-자본에 대한 한국영화/비평의 이중적인 태도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영화는 외래 문화로 출발했으나 영화가 테크놀로지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기술은 근대성의 상징이자 욕망의 대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영화/비평이 보이는 이중적 태도는 한국사회의 역사적 조건이 만들어낸 모순, 또는 지정학적 특수성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16]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한국영화/비평의 과제는 서구의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의 영화/비평은 영화에 근대 문화예술의 지위와 자격을 부여하고 그것을 철학적 사유와 이론적 고찰의 대상으로 격상시키는 것과 더불어 외래 문화와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독자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온 까닭이다. 이렇듯 한국영화/비평은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대중문화)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문화 열강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저항과 해방을 꾀한, 이른바 ‘권력투쟁의 이중 전선’이라 할 수 있다. 맺고 새로 시작하며: 현대 문화예술로서의 게임을 위하여 긴 우회로를 거쳤으니 다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 보자. 글을 시작하며 나는 게임이 현대의 일상문화와 한국의 문화산업 한복판에 놓여 있음에도 대체 어떤 이유로 여전히 천대를 받고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비평 문화의 비활성화를 언급했었는데, 이 글의 목적이 비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통한 비평의 각성에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를 뒤집어 말하는 것이 더 적확하고 명쾌한 설명일 테다. 즉 게임비평의 소극적인 태도, 나태함, 약간의 무기력함과 무능함 등의 논리적인 귀결은 게임문화 전반에 대한 폄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길게 서술했듯 영화 역시 고전 미학의 권위에 짓눌려 꽤나 오랫동안 문화예술계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고, 그것을 극복하여 지금의 위상을 차지하게 된 데에는 비평의 공이 컸다. 특히나 한국영화의 경우 서구 문화의 계급투쟁 계보를 이으면서도 독자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이중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현재의 한국게임문화에 주는 시사점이 많아 보인다. 다만 그것이 주는 교훈을 통해 보고 배우는 과정에서 실수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영화 비평은 수십 년 전부터 ‘위기설’이 감돌 정도로 그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데, 빠른 속도로 몸체를 부풀리는 OTT 플랫폼으로 인해 영화 관람의 형태가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디지털 담론장 형성과 지식-정보의 범람으로 인해 아마추어 비평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문 비평의 지나친 엘리트주의나 미학주의는 대중예술로서 출현한 영화의 본분을 망각하고 특권 계층의 전유물과 같은 부르주아적 성향을 보여 많은 이들의 반감을 샀다. 이는 영화를 미학적 탐구와 학문적 고찰의 대상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주관비평에서 객관비평으로의 전환을 요구하던 과거의 비평적 요구가 절대화됨으로써 초래된 결과였다. 기실 비평적 주체는 늘 제3자로서 중립적인 해석자의 역할을 수행해왔고, 지워진 비평 주체의 주관성은 역설적으로 비평가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보증해 주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비평 행위는 단순히 제3자로서 사실을 기록하거나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매개로 사태에 개입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보고,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것은 언제나 삶을 살아가는 것과 동시적이며, 따라서 어떤 것에 대해 쓰고, 읽고, 말하고, 듣고, 보는 주체는 오늘의 시간을 지나쳐가는 주체와 겹쳐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평의 전문성을 보장한답시고 현실과 유리된 언어를 구사하거나, 자신들만의 리그에서나 통할법한 논리를 내세우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비평의 핵심적 역할이 세계와 텍스트 사이에 오솔길을 놓고 장 안팎의 행위자들을 이을 연결고리를 마련하는 것이라면, 이 새롭게 마련된 비평-플랫폼의 책임은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마주침의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데에 있다. 지적 자본을 내세운 이들의 날카로운 시선과 신랄한 목소리, 열정 자본으로 무장한 이들의 뜨거운 열기와 유쾌한 분위기, 문화 자본으로 다듬어진 섬세한 감수성과 고아한 취향, 현장의 목격자 및 관찰자들의 순수한 호기심과 앎에 대한 열망 등이 뒤섞일 때, 그래서 저마다 활발하게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담론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때 게임은 비로소 현대 대중문화예술로 호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두에 이 새로운 비평-플랫폼이 서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게임문화가 현대 대중문화의 치열한 계급전쟁에서 권력을 탈환하고 개별 학문의 지위를 차지하여 대학의 문턱을 넘는 날이 오기를, 한평 남짓한 책상 앞에서 펼치는 우아한 지적 활동이자 역동적인 취미로서 존중받는 날이 오기를, 그리하여 현질까지 해가며 기를 쓰고 게임을 한 우리 귀염둥이의 노력이 사춘기 소년의 한심한 일탈이 아닌 꿈을 위한 진지한 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게임 제너레이션〉의 건투를 빈다. [1] 박희태, 「프랑스 영화비평의 현재」, 『프랑스문화예술연구』 47, 프랑스문화예술학회, 2014, 390쪽. [2] 에밀리 비커턴, 정용준·이수원 역, 『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비평의 길을 열다』. 이앤비플러스, 2013, 31-33쪽. [3] 박희태, 「프랑스 영화비평의 현재」, 『프랑스문화예술연구』 47, 프랑스문화예술학회, 2014, [4] http://www.newwavefilm.com/about/camera-stylo-astruc.shtml [5] <카이에>는 노란 겨자색 표지에 커다란 흑백사진을 실은 30페이지짜리의 잡지로 1950년대 파리에서 가장 ‘우아한’ 잡지로 여겨지곤 했는데, 특히 별다른 헤드라인 스틸 사진을 사용하여 표지를 구성한 것은 <카이에>가 영화 미학에 큰 비중을 두겠다는 다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6] 에밀리 비커턴, 앞의 책, 51-52쪽. [7] 에밀리 비커턴, 앞의 책, 65쪽. [8] 에밀리 비커턴, 앞의 책, 65쪽. [9] Rivette, Cahiers 204, September 1968. [10] 에밀리 비커턴, 앞의 책, 85-90쪽. [11] 이영일, 『영화예술』, 1965년 4월호, 24-29쪽. [12] 문재철, 「60년대 중반 영화비평담론의 새로움」, 『영화연구』 41, 한국영화학회, 2009, 61-79쪽. [13] 문재철, 「한국 영화비평의 정치적 무의식에 대한 연구」, 『영화연구』 37, 한국영화학회, 2008, 132쪽. [14] 문재철, 「한국 영화비평의 정치적 무의식에 대한 연구」, 『영화연구』 37, 한국영화학회, 2008, 133쪽. [15] 이 시기가 한국영화 담론의 황금기였다는 사실을 추가로 덧붙일 필요가 있는데, 비약적인 기술 발전과 해외 문화 유입으로 인해 디지털 매체를 기반으로 한 대중문화가 급속도로 팽창하자 대중문화론이 지식인 사회에서 각광 받기 시작했고, 영화를 학문적으로 제도화하려는 시도가 확대된 것이다. 이 시기의 영화는 이전과 달리 영상문화 전반에 걸친 지적 담론을 구성하고, 인문사회과학과의 상호텍스트적인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해갔는데, 그 결과 한국사회에서도 영화가 엄연한 분과학문으로 인정받아 영화아카데미 설립 및 운영, 전문 예술대학의 건립, 종합대학의 영화학과 설치 등과 같은 다양한 결실을 맺었다. [16] 문재철, 「한국 영화비평의 정치적 무의식에 대한 연구」, 『영화연구』 37, 한국영화학회, 2008, 135-136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한송희 자기소개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편의상 “영화연구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스스로는 영화를 매개로 세계를 탐구하는 문화연구자로 정체화하고 있다. 주로 재현, 표상, 담론의 정치학에 관심을 기울이며, 무한히 확장하고 분할되다 중첩되기도 하는 세상의 모든 경계에 애정을 쏟고 있다. 나와 나 아닌 것, 안과 밖, 이곳과 저곳, 우리와 저들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하면 더 무르고 희미하게 만들어 느슨한 연결을 가능케 할까, 가 최근의 가장 큰 관심사다.
- 스트리밍 어드벤처 : 서사라는 꿈과 퍼즐이라는 전의식으로
어드벤처 게임이란 상당히 이상한 맥락의 장르명이다. 농담을 조금 보태자면, 서사가 있는 비디오 게임 중 ‘어드벤처’를 경험하지 않는 게임이 어디 있겠는가? 어니스트 아담스Ernest Adams는 『 Fundamental of Game Design』에서 ‘많은 모험적인 특징을 가진 게임들이 어드벤처 장르가 아니며, 반대로 많은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들이 모험을 다루지 않는다.’라며 이 장르명이 가진 이상한 아이러니를 언급한다. < Back 스트리밍 어드벤처 : 서사라는 꿈과 퍼즐이라는 전의식으로 29 GG Vol. 26. 4. 10. 어드벤처 게임이란 상당히 이상한 맥락의 장르명이다. 농담을 조금 보태자면, 서사가 있는 비디오 게임 중 ‘어드벤처’를 경험하지 않는 게임이 어디 있겠는가? 어니스트 아담스Ernest Adams는 『 Fundamental of Game Design』에서 ‘많은 모험적인 특징을 가진 게임들이 어드벤처 장르가 아니며, 반대로 많은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들이 모험을 다루지 않는다.’라며 이 장르명이 가진 이상한 아이러니를 언급한다. 물론 이 명명에는 명백히 역사적 근거가 있다. 이 장르가 지칭하는 ‘어드벤처’는 모험이라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돈 우즈Don Woods와 윌리엄 크라우더William Crowther가 제작한 최초의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Colossal Cave Adventure」(1976)에서 가져온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후 간단히 부르기 위해 제목을 「어드벤처Adventure」로 축약한 이래, 이 게임과 유사한 게임들을 묶어 ‘어드벤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근간의 ‘게임명-like’의 방식으로 장르명을 붙이는 경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 DOS 버전의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 어드벤처 장르는 초기 비디오 게임이 가진 한계, 그러니까 길고 복잡하며 기존 매체와 유사한 형식의 서사를 담지 못하던 그 때에 대안으로 등장했다. 일단 그 시초인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가 텍스트와 문자 입력식 파서(Parser) [1] 를 이용했던 것은 TRPG의 형식을 비디오 게임에 적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장르에 시각적 요소를 이식한 로버타 윌리엄스Roberta Williams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유사한 서사를 재현하기 위해 「미스터리 하우스Mystery House」(1980)를 만들었다는 사실 또한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초기 비디오 게임 전반이 기존의 매체를 일정량 재매개remediation하는 일이야 흔했겠지만, 어드벤처는 그러한 목적을 꽤나 진지하게 다룬 장르다. 다른 곳도 아닌 조지 루카스의 ‘루카스 아츠Lucas Arts’가 이 장르의 대표적인 제작사였다는 사실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들은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2] 장르로 두 편의 「인디아나 존스」게임을 만들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완된 영화 아이디어를 이용해 「더 디그The Dig」 (1995)를 만들었다. 앞서 언급한 로버타 윌리엄스도 이후 애거사 크리스티의 미스터리를 떠오르게 하는 「로라 보우」 연작을 만든다. 더 드리머스 길드The Dreamers Guild는 할란 엘리슨Harlan Ellison의 명작 SF 단편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1995)를 동명의 어드벤처 게임으로 만들었다. 델핀 소프트웨어Delphine Software가 만든 첩보 어드벤처 게임인 「오퍼레이션 스텔스Operation Stealth」(1990)가 북미판에선 「007 제임스 본드 : 더 스텔스 어페어007 James Bond : The Stealth Affair」로 둔갑한 웃지못할 사례도 존재한다. 따라서 어드벤처라는 장르가 하나의 ‘장르’로 규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사라는 개념을 취득하겠다는 ‘꿈’같은 욕망이 있다. 그리고 이 ‘서사성’이란 기존 매체에 대한 전유적 성질을 가진다. 제이 데이비드 볼터Jay David Bolter와 리처드 그루신Richard Grusin은 이 재매개를 흥미있게 바라본다. 그들은 비디오 게임(특히 「미스트Myst」(1993))를 두고 ‘영화와 비슷해보이면서 더 나은 것’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루신과 볼터는 「미스트」가 필름 누아르에서의 탐정의 시점을 차용하고 있지만, 그 서사적 평온함은 오히려 비할리우드적 영화들(이를테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과 더 유사하다고 말한다. 탐정으로서의 플레이어는 끝없이 세계를 탐색하지만 그 뒤를 기대하게 만들어야 할 폭력, 공포, 폭로는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스트」에 안토니오니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퍼즐 풀이’다 [3] . 볼터와 그루신의 연구 대상은 특정 장르가 아니라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 전체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사유가 「미스트」로 대표되는 어드벤처 게임의 본질과 연결되었다는 지점이 흥미롭다. 클라라 페르난데즈-바라Clara Fernández-Vara는 「Introduction to Game Analysis」에서 어드벤처 게임을 ‘플레이어가 퍼즐을 해결함에 따라 게임의 스토리를 열어주는 일련의 서사적 퍼즐로 구성’된다고 규정한다. ‘어드벤처’라는 장르는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이래 다종의 하위 장르로 분화했으며, 따라서 이들을 명백한 하나로 규합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핵심을 ‘서사’와 ‘퍼즐’이라는 양대의 축에 두는 것은 가능하다. 어드벤처 게임은 본질적으로 ‘서사장르’다. 하지만 단순히 서사를 출력하기만 해서야 비디오 게임으로서의 구조는 구축될 수 없다. 따라서 동원되는 것이 바로 ‘퍼즐’이다. 여기서 말하는 ‘퍼즐’은 광의의 의미를 가진다. 이를테면 춘소프트의 「 카마이타치의 밤」같은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은 어떠한가? 이런 게임에선 「미스트」나 「원숭이섬의 비밀」등에서 볼 수 있는 명시적이고 발상적인 퍼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텍스트 어드벤처가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하이퍼 텍스트적인 성질이 퍼즐을 대신한다. 텍스트 어드벤처는 상황과 함께 가능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그 경중에 차이는 있겠지마는, 어찌되든 각 선택은 이후 출력되는 텍스트(=서사)의 방향을 결정한다. 따라서 이 게임에서 퍼즐은 ‘서사’라는 미로 전체가 된다. 여기서 퍼즐은 형식이 아니라 구조다. 어드벤처는 ‘퍼즐’이라는 구조를 통해 ‘서사’를 체감시킨다. 꼭 텍스트 어드벤처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원숭이 섬의 비밀」(1990)의 디렉터인 론 길버트Ron Gilbert는 「 Why Adventure Games Sucks」(1989)에서 어드벤처 게임이 지향해야 할 요소로 ‘목표의 명확성’과 더불어 ‘퍼즐과 서사의 결합성’을 거론한다. 이 기치 아래에서 서사적 목표와 퍼즐적 목표는 일체화한다. 쉽게 말해 ‘문’이라는 목적이 발생하면 플레이어는 그 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는 것은 서사를 추동하는 것이다. 어드벤처 장르에 있어서 플레이어의 주요 수행은 결국 퍼즐 풀이다. 그리고 서사는 이 퍼즐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주어진다. 플레이어는 퍼즐과 서사라는 양대의 축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하며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이 관점이 현재에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규정하는 중요한 준거틀이 된다. 비디오 게임에 서사가 보편화 되어버린 지금 시기에, 과연 ‘무엇’을 어드벤처라는 범주로 확정할 수 있을까? 어드벤처는 결국 (광의의 개념에서의) 퍼즐과 그것을 지탱하는 (구체성과 무관한 개념에서의) 서사라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장르다. 퍼즐은 아이템 수색, 결합, 비밀번호 탐색, 문 열기 따위의 보편적인 방식을 넘어 대화의 양상 조정, 진행 방향의 지시, 인간 관계의 관리, 추리와 해답, 단순 수집과 정보 처리 등을 모두 포함한다. 서사 역시 단방향성이나 순차성을 넘어 「미스트」나 「곤 홈Gone Home」 (2013)같은 환경 스토리텔링, 「파이어워치Firewatch」(2016)같은 비의적이고 내적 서술에 가까운 방식을 모두 포함할 수 있다. 보는 것과 플레이하는 것 어드벤처 게임이 기존의 매체, 특히 영화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 어드벤처라는 장르의 욕망은 아무리봐도 플레이 가능한playable 서사의 구축을 향하고 있다. 「 미스트」같은 퍼즐 중심의 게임이 서사의 직접성을 극히 줄였지만, 오히려 「곤 홈」같은 워킹 시뮬레이터 [4] 들은 환경 스토리텔링이라는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서사’의 텍스처를 확장한다. ‘영화와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은 시에라 온라인의 문제작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1995)나 FMV 같은 하위 장르의 게임들에서 읽을 수 있다. 물론 대상으로 삼는 영화는 ‘서사 영화’임이 자명하다. 따라서 어드벤처 장르는 서사를 ‘보는 것’에서 ‘플레이하는 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에 장르적 준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드벤처는 비디오 게임의 모든 장르 중 가장 기존 미디어와 강하게 관계하며, 그 긴장의 한복판에 있다. 타입문의「Fate/Stay Night」(2004)을 두고 ‘이것은 문학’이라는 우스개가 나오는 배경에도 아마 이러한 긴장이 있었을 것이다. 즉 어드벤처에는 전(前) 매체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다. * 「판타스마고리아」 문제는 서사 수용이라는 행위에 드는 본질적 수동성에 있다. 서사는 왜 재미있는가? 혹시 수동적이기 때문에 재미있지는 않는가? 브라이언 업튼Brian Upton은 서사를 ‘읽거나 보는’ 행위에도 일정한 플레이의 양식이 있다고 정의한다 [5] . 하지만 이 플레이는 어디까지나 정신적 작동일 뿐 물리적 수행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헤비 레인Heavy Rain」(2010)에서 서사를 추동시키기 위해 아기의 기저귀를 직접 갈아야 할 때, 여기엔 무언가 이상한 저항감이 발생한다. 플레이어는 뒷 이야기를 알고 싶을 뿐이지 생전 처음보는 아기의 기저귀를 갈기 위해 스틱과 버튼을 허우적 대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텐데 말이다. 한편 비디오 게임 플레이에는 노동과도 같은 측면이 있다. 줄리안 퀴클리흐Julian Kücklich는 플레이Play와 레이버Labour를 합쳐 플레이버Playbour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물론 퀴클리흐가 규정한 플레이버는 플레이어들의 자발적인 노동으로서의 모딩Modding을 일컫는 것이었다 [6] . 하지만 이 개념은 점차 범주가 넓어져 이제는 게임 플레이 내부의 노동화된 행위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조이스 고긴Joyce Goggin은 플레이버의 의미를 아이템 파밍이나 레벨 그라인딩같은 반복적 행위에까지 플레이버의 범주를 확장한다. 범주는 유동적인 것이며, 플레이버의 문제는 전통적인 노동과 여가의 경계를 뒤흔든다 [7] . 이 논의를 다시 어드벤처 장르로 던져보자. 올드 미디어에서 서사는 조건없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1989)에서는, 베네치아 도서관 지하에 무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얼마지나지 않아 석판을 획득하는 인디애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루카스 아츠가 만든 동명의 게임(1989)에서 지하 무덤은 상당히 복잡한 미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석판을 획득하기까지 상당히 많은 양의 퍼즐을 풀어야 한다. 어드벤처 게임의 흥미로운 지점은 퍼즐 풀이라는 메커닉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사의 측면에서 보자면야, 이것은 불필요한 노동의 강요와도 같다. 어드벤처 장르가 전(前) 매체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앞선 규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솔직히 말해 어드벤처 게임에는 일부 ‘피곤한’ 구석이 있다. 대행화된 노동과 매체의 아이러니컬한 우회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게임을 즐기지 않은 사람들의 36%가 그 이유로 ‘게임의 흥미가 감소했으며 게임방송 시청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 자료에 즉시 플레이버의 논의를 가져오는 것은 지나친 연결일 수 있겠다. 하지만 2022년 NewZoo가 발표한 「Gamer Segmentation」연구 자료에 의하면. 게임의 플레이보다 게임 방송을 더 많이 보는 게이머들, 소위 The Backseat Viewer 집단은 ‘게임을 하기에 적합한 기기를 갖추지 못했거나 시간이 없기 때문에’ 게임 방송을 본다고 답했다. 말하자면 (기기 마련의 조건을 경제적 조건으로만 한정짓지 않는다면) 이런 구성에는 필히 게임의 플레이를 하기 위한 ‘자원의 소모’가 일정량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커뮤니티 플레이 게임 방송의 현장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종목은 경쟁형 게임이다. 하지만 종합 게임 스트리머들에게 있어 소위 ‘서사 게임’ 플레이는 적은 비중이라고 할 수 없다. 일부는 음성이 지원되지 않는 게임의 텍스트를 스트리머가 직접 ‘연기’해 전달하기도 하고, 게임의 불투명하거나 혼란스러운 서사를 시청자들과 논의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게임이 어드벤처 게임의 형식에 포함되는 호러 장르 게임은 특히 스트리밍계의 인기 콘텐츠다. 공포 게임 전문 스트리머라고 할 수 있는 수탉은 2026년 3월 기준 구독자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 덕분에 이러한 ‘방송’의 방식을 게임의 내부에 이식하는 어드벤처 게임들도 존재한다. 퀀틱 드림은 당사의 게임에 사용할 수 있는 트위치 확장 프로그램인 ‘Community Play’를 제공해 시청자들의 의견을 수집할 수 있도록 한다. 「애즈 더스크 폴즈As Dusk Falls」의 경우 게임 내부에 ‘방송 모드’가 탑재되어 플랫폼의 채팅을 통해 선택지 투표가 가능하도록 유도한다. 어드벤처 게임을 위시한 ‘서사 게임’은 이미 게임 방송이라는 구조에 상당히 적응해있는 상태다. 앞서 말했듯 어드벤처 장르는 퍼즐과 서사라는 두 개의 축으로 움직이는 장르다. 이 때 퍼즐은 수행이고 서사는 결과다. 그것이 어드벤처 게임이 스스로 매개하고 있는 전(前) 매체와의 차이점이다. 이렇게 정리했을 때, 어드벤처 게임에서의 ‘유희 노동’은 전적으로 서사가 아니라 퍼즐에 매여있다. 어드벤처 게임을 플레이 한다는 것, 특히 그 안에서 서사를 추동하기 위해 게임 메커닉에 집중한다는 것은 ‘퍼즐’이라는 플레이버 수행에 대한 몰입이다. 만약 이 수행이 없는 상태로 서사만을 즐긴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어드벤처 게임이 매개하고 있는 전(前) 장르의 수용에 한없이 가까워진다. 지하동굴의 퍼즐에서 골머리를 썩지 않는다면, 석판을 획득하는 인디애나를 즉시 관람하는 「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다. 즉 누군가가 퍼즐이라는 노동을 대행해준다면, 관람자의 위치는 다시금 전(前) 매체 수용자의 자리로 돌아가버리게 된다. *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의 지하 묘지 따라서 르네 글라스René Glas가 규정한 대리적 플레이Vicarious Play [8] 란 상당히 이상한 역학을 만든다. 어드벤처 게임에서 퍼즐 수행을 타인에게 ‘맡겨버리고’, 그 결과물인 서사만 취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서사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적 변곡을 ‘가로지른 뒤’, 다시 이전 미디어의 형식으로 ‘귀환해버리는’ 우회된 경로를 그리는 수용자성이다. 이 때 ‘게임’이며 동시에 ‘영화’인 이상한 형식이 만들어진다. 물론 다른 장르 역시도 그러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드벤처 게임에서 (그 전제조건을 따져보았을 때) 퍼즐이라는 요소가 상실된다는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 결과는 매개하는 다른 매체와의 친연성의 즉시적 증가다. 퍼즐이 포기된 어드벤처 게임에는 무엇이 남는가? 그것은 (재매개로서의) 서사 뿐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어드벤처 게임의 현재는, 오히려 그것이 (기술적 한계 때문에) 우회적으로 매개하려 했던 바로 ‘그것’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물론 여전히 어드벤처 게임의 팬덤은 존재하고, 퍼즐을 직접 수행하는 플레이어는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비중에서 이러한 ‘대행된 모험Vicarious Adventure’의 비중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퍼즐과 서사라는 양대의 축으로 지탱되던 어드벤처 게임은, 이제 수행적 노동을 위임해 서사라는 결과만을 취하려는 수용자들의 손에 의해 재구성되고 있다. 기술적 한계를 넘어 서사를 체감시키려 했던 이 야심의 장르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트리밍 플랫폼이라는 환경 속에서 ‘서사만을 관람’하는 매체로 선회하려 한다. 어찌보면 서사를 얻기 위한 퍼즐 풀이라는 행위가 일종의 유희 노동playbour으로 분류될 수 있게 되었을 때에, 외주화를 통한 수용의 등장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노동이 대행되고 서사만이 남은 이 기이한 우회로 속에서 어드벤처 장르는 (볼터와 그루신이 말했던) ‘더 나은 무언가’가 되려는 에너지를 소실하고 전(前) 매체의 그림자로 되돌아가고 있다. 긴 세션과 복잡함을 담지하기 어려웠던 초기 비디오 게임은 서사라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꿈은 문학 또는 영화를 향한 재매개적 형식으로 그려졌다. 그렇게 보자면 어드벤처 게임은 비디오 게임의 꿈과 같은 장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구체성의 엔진은 퍼즐과 서사의 진동이라는 독특한 모델의 ‘비디오 게임’을 성립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대행된 플레이를 통한 퍼즐의 소거는 오히려 초기 비디오 게임이 꾸던 바로 그 꿈과 맞닿는다. 하지만 어쩐지 그 꿈에는 현재는, 지나치게 꿈이 되어서 현실 감각이 소실되어 가는 것 같은 이상한 아이러니를 만든다. 물론 당연하게도 영화를 보는 것과 어드벤처 게임의 스트리밍을 보는 것은 결코 같지 않다. 게임 플레이 관람에는 대행된 수행 육체와 결과로서의 서사라는 이중화된 관람 경험이라는 특이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래도, 꿈과 연결되기 위한 전의식preconscious으로서의 퍼즐은, 그것의 감각을 완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공허함으로 향하는 것만 같다. 비디오 게임에서의 서사의 일상화, 그리고 (퍼즐보다 전투를 중시하는) 액션 어드벤처의 주류화는 일견 고전적인 어드벤처 장르의 축소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어드벤처 게임은 오히려 ‘서사와 퍼즐 사이의 변증법적 진동’을 통해 그 생존을 연장했다. 그렇기에 ‘서사의 전달’이라는 가장 꿈같던 그 목적에 한없이 가까워진 지금이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장르의 가장 기묘한 시간처럼 보인다. 물론 그럼에도 어드벤처 게임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여전히 퍼즐이라는 전의식의 불투명함에 매료된 자들이, 서사라는 꿈을 꿈으로 남겨두기 위해 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보자면, 그러니까, 어쩌면 처음부터, 서사의 매체가 되려는 꿈을 꾼 게 원인이었을지도 모를 일 아닐까. 시에라 온라인 게임의 제목을 얄궂게 빌리자면, 완전한 서사 매체라는 목적이야로 비디오 게임의 ‘판타스마고리아’였던 것 아니었을까. [1]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도록 텍스트를 이용해 자연어 명령어를 적어넣는 행위를 말한다. 초기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직접 텍스트를 타이핑해 게임을 진행해야 했다. [2] 포인터를 이용해 특정한 오브젝트와 명령어를 클릭해 진행하는 어드벤처의 하위 장르. [3] 제이 데이비드 볼터 & 리처드 그루신, 『재매개』, 커뮤니케이션북스(2006) [4] 워킹 시뮬레이터를 어드벤처의 하위 장르로 포섭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서사는 있지만 퍼즐의 구조가 상당히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퍼즐이라는 개념을 광의적으로 해석한다면 환경 스토리텔링이 가진 정보의 수집과 결합을 퍼즐의 영역에 넣을 수 있다. 자이언트 스패로우의 「왓 리메인즈 오브 에디스 핀치」같은 게임은 워킹 시뮬레이터면서 일부 복잡하지 않은 퍼즐을 삽입하기도 한다. [5] 브라이언 업튼, 「플레이의 미학」, 에이콘(2019) [6] Julian Kücklich(2005), Precarious Playbour: Modders and the Digital Games Industry, The Fibreculture Journal [7] Joyce Goggin(2011), Playbour, farming and leisure, Ephemera: Theory & Politics in Organization, 2011, Vol 11, Issue 4, p357 [8] 르네 글라스는 스트리머의 유희적 몰입Ludic Immersion을 지켜보는 비유희적 참여Non-Ludic Engagement라는 구분으로 이 개념을 정리한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게임 플레이라는 인지적/육체적 수고를 스트리머에게 ‘위임’하는 구조를 가진다. 대리 플레이의 결과, 시청자는 그 결과로서의 서사와 감정적 보상만을 취사적으로 취하게 된다. René Glas(2015), Vicarious play: Engaging the viewer in Let's Play videos, European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Communication 5 (1):81-86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인터뷰] SNS의 규칙을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바꾸는 여정 : <페이크북> 제작사 반지하 게임즈 이유원 대표
SNS가 현대인의 소통창구로 자리 잡은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교통, 통신의 기술이 해마다 급격하게 발전하고, 문화적 양상은 그보다 더 빠르게 급변하기에 오늘날 SNS의 특징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SNS 활동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 출시되었다. 심지어 게임을 만든 회사가 일상의 규칙성을 게임의 매커니즘으로 녹이는 데 특화된 ‘반지하 게임즈’이다. 그들은 어떤 고민을 통해 SNS의 규칙을 게임화하였을까? GG 2호 이후 오랜만에 반지하 게임즈의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 Back [인터뷰] SNS의 규칙을 게임의 메커니즘으로 바꾸는 여정 : <페이크북> 제작사 반지하 게임즈 이유원 대표 22 GG Vol. 25. 2. 10. SNS가 현대인의 소통창구로 자리 잡은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교통, 통신의 기술이 해마다 급격하게 발전하고, 문화적 양상은 그보다 더 빠르게 급변하기에 오늘날 SNS의 특징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SNS 활동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 출시되었다. 심지어 게임을 만든 회사가 일상의 규칙성을 게임의 매커니즘으로 녹이는 데 특화된 ‘반지하 게임즈’이다. 그들은 어떤 고민을 통해 SNS의 규칙을 게임화하였을까? GG 2호 이후 오랜만에 반지하 게임즈의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이경혁 편집장: 오랜만에 GG 인터뷰로 다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신작 <페이크북>을 내셨는데요. 사실 <페이크북>이라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저도 좀 인연이 있지요. 이전에 이 프로젝트를 고민하실 때 저희 사무실을 찾아오셨잖아요? 이유원 대표: 네. 맞습니다. 처음 기획할 때에는 특이한 컨셉에 소위 말하는 ‘인디게임’스러운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는데, 그때 스토리가 중요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고민이 많았는데요. 게임의 재미를 주는 여러 형태가 있다고 보았을 때, 이야기를 쭉 보는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이 대표적으로 스토리가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이 게임으로 주고 싶었던 것은 특정한 ‘이야기’가 아니고, SNS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거기서 유저가 상호작용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나 참신함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 뵙고 난 이후에 이 게임 시스템을 가장 잘 보여주는 스토리가 뭘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때 말씀해 주셨던 것들이 결국 중요한 결정들을 하는데 항상 생각이 나는 조언들이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그런 느낌을 좀 받았어요. ‘제작자분들이 실제로 SNS에서 신상을 꽤 털어봤구나’라는 생각이었는데요. (일동 웃음) 그런 말씀을 많이 들으시나요? 이유원 대표: 이번에 게임을 출시하고서 스트리머분들이 되게 많이 플레이해주셨어요. 어제도 ‘한동숙’ 님이 플레이해주셨고요. 그런데 그분들 플레이를 보면서 시청자분들이 채팅으로 ‘이 사람 SNS를 얼마나 한 거냐?’, ‘이 사람 인터넷 귀신이다’ 라고들 하시는데, 그걸 들을 때 처음엔 되게 놀랐어요. ‘이게 그 정도인가?’, ‘이건 다 아는 내용 아닌가?’, ‘이 정도는 다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공감을 잘 못했는데, 계속 이런 반응이 나오니까 ‘아, 제가 좀 많이 했었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 그런데 사실 저는 SNS를 그렇게 많이 안 하거든요. 오히려 이 게임을 만들면서 열심히 보려고 했었고, 정확하게는 SNS를 많이 한다기보단 인터넷에 있는 웃긴 상황이나 우리가 맞닥뜨릴 법한 경험 같은 것들 좋아했던 것 같아요. 사실 인터넷에서 웃긴 이야기가 올라와서 사람들이 퍼내고, 댓글로 싸우고, ‘누가 알고 봤더니 누구였더라’ 하는 그런 것들이 메타적으로 보면 재밌는 문화잖아요? 그런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경험들을 녹여서 게임을 만든 것이 조금은 주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경험을 게임으로 녹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유원 대표: 네. <페이크북>이 신상을 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어드벤처 게임이고, 스토리를 따라가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비주얼 노벨 같은 느낌이어서, 저희도 작업하면서 단순한 ‘신상 털기’를 넘어서는 참신함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는 기획 공수가 컸었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새롭게 재미를 느낀 점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 텍스트 게임을 만들거나 일반적인 라이브 하는 게임을 만들 땐, 재미있는 장치를 만드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 <페이크북>은 처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게 엄청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새로운 감각이어서 기획하는 입장에서도 되게 재미있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영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사실 이런 스토리텔러 게임들이 제작자 입장에서 굉장히 어려운 게, 100개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도 플레이어가 100개를 다 해보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열심히 만들었는데, 플레이어가 하지 않는 부분들은 아쉽지 않나요? 이유원 대표: 사실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제가 텍스트 게임을 오래 만들어서 그런지, 그런 거에 대해서는 생각을 크게 안 하는 것 같아요. 텍스트 게임은 상호작용성이 중요하니까, 결국 플레이어들이 가지 못하는 분기가 있는데요. 오히려 모든 분기를 다 파악하게 만드는 순간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고, 실제로 <페이크북>을 플레이하시는 분들 반응을 보면, 당연히 못 가는 분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재미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한편으로 게임을 하면서 궁금했던 게, ‘왜 하필 페이스북이었나?’이었거든요. 사실 요즘 페이스북이 10대, 20대들이 사용하는 SNS의 이미지는 아니잖아요? <데이브 더 다이버>에서도 SNS가 나오는데, 거기선 인스타그램을 따라갔어요. 그런데 더 나중에 나온 게임이 페이스북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저는 특이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페이스북을 모티브로 삼으신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이유원 대표: 사실은 기획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요. 인스타그램이나 모바일 UI처럼 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아예 게임을 모바일로 출시하자는 의견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일단, PC 게임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첫 번째로, PC 게임에 진출하고자 하는 저희 회사의 내부 전략적인 이유가 있었고요. 두 번째로는, <페이크북>을 만들 때 ‘게임을 몰입해서 하지 않으면 유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게 결국 현실에 있는 인터넷 세상을 재현하는 모습이다 보니까요. 그리고 모바일 환경에서 하다 보면 흐름이 끊긴다거나 너무 작은 화면으로 봐서 와닿지 않을 수 있기에 집중된 상태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PC가 적합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PC 게임 시장은 이미 너무 많은 게임이 나오고 있기에 특이하고 컴팩트한 컨셉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면서 여러 세대의 공감대를 살 수 있는 방향으로 페이스북을 선정했죠. 아무래도 다른 SNS를 활용하면 그 SNS를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SNS를 따라한 것이다’라는 게 확 와닿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인스타그램은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있을 수 있지만, 페이스북은 나이대에 상관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향수를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부분 중에 굉장히 공감하는 건 PC 앞에서 해야 하는 게임이라는 점인 것 같아요. 제작자로서 그 차이를 많이 느끼시는 거잖아요? 이유원 대표: 네. 모바일 게임을 만들 때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못 해봤는데, 일단 몰입을 저해할 만한 요소들이 굉장히 많아요. <페이크북>은 이야기의 진지함이 담겨있는 파트도 있다 보니까, 수시로 껐다 켰다 하면서 방해를 받으면 좀 아쉬울 것 같다는 기획자적인 아쉬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실제 SNS를 따라 한 게임인데, 플레이하다가 실제 SNS 알림이 뜨거나 카톡 알림이 뜨면 몰입이 얼마나 깨지겠어요? 그런 것들을 방지하고 싶어서 기획 초반에 팀원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그 선택에서 역으로 우리의 인식 속에 페이스북이 어떤 미디어인지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이 들어요. 페이스북은 PC로 보아야 글이나 내용에 집중을 할 수 있고, 모바일로는 잘 다가오지 않는 SNS인 거죠. 그래서 ‘PC 게임을 만들 땐 결국 페이스북 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거든요. 이유원 대표: 저도 페이스북을 생각했을 때, 컴퓨터로 했던 기억이 더 많이 나는 것 같아요. 그 기억이 남아 있어서 영향을 받은 점도 있겠네요. 이경혁 편집장: 그리고 <페이크북>의 UI를 되게 유심히 보다 보면 이게 지금의 페이스북 UI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 전의 모습이랄까요? 그런 지점에서 페이스북이라는 특정 코호트에 맞춘 SNS를 가져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원 대표: 눈썰미가 진짜 좋으시네요. 저희는 옛날 페이스북 UI를 가져오고 싶었는데, 말씀을 들으면서 제 예전의 향수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확실히 페이스북 UI는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저희도 조사 차원에서 페이스북 UI의 변천사를 정리해 놓은 사이트를 찾을 수 있었는데, 타겟으로 한 건 2010년대의 페이스북이에요. 왜냐하면 그때의 UI가 한편으로는 투박하지만, 한편으로는 필요한 것만 배치되어서, 뭐랄까요... 본질에 집중한?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정확하게 왠지는 몰라도 옛날 페이스북 생각이 많이 났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디자인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저는 콘텐츠 측면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페이스북에서는 이런 활동을 잘 안 하거든요. 이유원 대표: 그렇죠. 요즘은 페이스북이든 스레드든 사람들이 뭔가를 일부러 재밌게 쓰려고 하거나 내용이 있는 글을 쓰려고 하는데, 당시의 페이스북은 ‘배고파’, ‘심심해’ 같이 그냥 아무 말이나 올리기도 하고, 진지하거나 웃긴 글도 올리고 그런 감성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보니까, 기획적으로도 (<페이크북>에선) 글이랑 그림이 막 올라오면서 이 사람의 사생활도 볼 수 있고, 생각도 볼 수 있고, 무슨 캐릭터인지 빨리 캐치할 수 있는 점에서 적합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페이스북을 선택하는 지점에서의 모종의 향수가 있다고 표현을 하셨는데, 한편으로는 페이스북이 트위터나 다른 SNS와 다르게 싸이월드처럼 지인과의 연결된다는 점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페이스북은 실명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레트로한 지점도 있고요. 그런 부분이 페이스북의 향수를 만드는 지점도 있을까요? 이유원 대표: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일상의 재밌는 경험에서 핵심 메커니즘이 뭘지 생각을 하고 게임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페이크북>을 만들 때에도 페이스북에서 저랑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랜덤한 사람들을 많이 타고 다녔어요. 페이스북의 경우에는 친구들 리스트가 공개되어 있잖아요? 그러면 그걸 타고 네다섯 거리 건넜을 때, 진짜 저와는 평생 만나보지 못할 것 같은 분들이 떠요. 그런데 그분들의 일상을 보면 아주 사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인스타처럼 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인적인 섬이 있고 거기의 네트워크가 있는 형태다 보니 신기하고 생경한 재미를 주는 거예요. 그때 이 사람에 대해 알면 알수록 놀랍고 그런 점들에서 <페이크북>이 주는 재미는 이런 거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페이크북>을 보면 누군가는 바보 같을 정도로 자기 사생활을 엄청 올리고 그걸 보면서 얘네가 이렇게 친하고 이런 관계망들을 알게 되잖아요. 그렇게 탐방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지금 게임 이용자의 주 연령대는 어떻게 될까요? 이유원 대표: 그 부분을 정확하게 체크해 본 적은 없지만, 20대 초반보다는 중후반쯤에서 좀 더 인기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좀 재미있어요. 스트리머분들이 게임을 하실 때, 채팅창에서 ‘옛날에는 다 그랬어’ 이런 식의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사실 게임 내용에서 댓글에다가 자기 전화번호를 적어서 응모하는 그런 것들은 지금 시대에서 상상하기 힘든 그런 문화니까. (웃음) 한편으로는 지금 10대 분들이 보시기에는 마치 예전 세대가 PC 통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말씀해주신 것처럼 유튜브에서는 반응이 아주 좋았잖아요? 이유원 대표: 네. 되게 많이 스트리머 분들이 해주셨었고, PC 게임은 모바일 게임과 다르게 되게 이제 호의적으로 많이 플레이해주시다 보니까 뿌듯했습니다. 보통 모든 개발자가 그러겠지만, 게임을 출시하고 난 뒤에는 버그가 나오면 어떡하지, 막히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함께 기획 의도대로 반응이 나올 때의 성취감이 있는데, 그런 지점이 개발하면서 엄청 큰 힘이 됐고 성장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돼서 좋았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스트리머분들 말씀이 나와서 그러는데, 이번 작품에서 까메오를 많이 쓰셨잖아요? 이유원 대표: 네. 맞아요. 처음 기획 과정에서부터 이게 실제 SNS를 옮겨 놓은 것이다 보니, 스트리머 분들이나 인플루언서분들이 나오시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먼저 저희와 친분이 있는 분들부터 아닌 분들까지 광범위하게 연락을 드렸어요. 사실 이게 콜드 메일이잖아요? 그래서 안 받아주실 만도 한데, 거의 한 90-95%는 다 흔쾌히 답장을 주시더라고요. 순전히 호의로 해주시는 건데도 생각보다 더 호의적으로 말씀을 해주셨고, 안 된다고 하셨어도 사정을 설명해주시고 하셔서 그런 과정들이 감사하고 재밌었습니다. 실제로 게임이 나왔을 때의 유저분들의 반응도 좋고, 스트리머분들이 게임하실 때 채팅창의 반응을 볼 때 희열이 있었죠. 이경혁 편집장: 텍스트 베이스의 게임이다 보니까 해외 진출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장벽이 좀 있잖아요. 그 부분에 대한 상황이나 이후 계획은 어떻게 보고 계세요? 이유원 대표: 일단, 7월에 BIC(인디게임커넥트페스티벌)에서 ‘비트 서밋’(인디 게임 페스티벌)에 가는 것을 지원해주면서, 번역을 해야 해요. 그런데 번역에 두 가지 방법이 있거든요. 하나는 로컬라이제이션을 정말 잘 하는 방법이 있고, 하나는 지금의 문화적 색채를 유지하면서 언어만 대응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 지금은 양방향으로 많이 알아보고 있어요. 만약에 해외 유저분들도 형식이 파격적이라며 재미있어하신다면, 앞으로 더 확장될 영역이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조금 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한편으로 요즘 한국의 대중 문화에 관한 해외의 관심도가 높다 보니, 현지화를 안 하더라도 그냥 한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로컬라이제이션을 하는 방향도 여러 가지잖아요. 현지 회사랑 합작을 해서 거기서 변화를 주는 방법도 있을 거고요. 이유원 대표: 네. 맞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방법들을 열어놓고 알아보고 있어요. 해외 퍼블리셔를 만나는 것도 생각하고 있고요. 사실 <페이크북>이 저희의 첫 번째 PC 게임이다 보니, 성적이나 흥행에 대해서 되게 걱정이 많았었는데 정말 후회 안 하고 만족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플레이해주시고 그런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어서, 사실 작년을 되게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반지하게임즈는 <서울 2033>처럼 발매 이후에도 패치를 한다거나 확장팩을 선보이는 모습들을 보이곤 했는데요. 혹시 이번 작품도 패치나, DLC 같은 형태로 확장시킬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유원 대표: 네. DLC를 생각하고 있고 욕심은 많습니다. 이 포맷이 좋기 때문에 이야기를 바꾸어가면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요. 일단은 DLC 쪽으로 해서 추가되는 스토리들을 보여드리는 식으로 준비를 할 것 같고요. DLC 외에도 나중에 이 포맷을 다시 쓰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인터넷 서핑하는 재미라는 걸 주는 게임이 좀 고유할 것 같아서, 발달하는 AI 기술에 접목시킬 생각도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그 외의 차기작에 대해서 계획도 여쭙고 싶어요. 이유원 대표: 저는 텍스트 게임을 더 많이 해보고 싶어요. <서울 2033>이 벌써 6, 7년 되었는데, 하다 보니까 노하우가 많이 쌓였거든요. 물론, 혹자는 텍스트 게임이 수익성이 없고, 글을 쓰는데 노고가 많이 들어가며, 비즈니스 모델도 적립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제가 좋아하기도 하고 노하우도 쌓였으니 더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요. 최근에 저희가 AI 관련 기술들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노하우를 접목시켜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로망이 있어요. 신작으로는 PC 게임 더 도전하고 싶은 것도 있는데요. 이번에 나온 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컴팩트한 규칙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저희가 원래 잘하던 건데, PC 버전으로 그런 류의 게임을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페이크북>은 사람들의 네트워킹이 모종의 재미를 주었는데, 이런 재미를 메타적으로 느끼게 만들어서 지금까지의 전작들이 서로 연결되는 차기작도 나올 수 있을까요? <서울 2033>의 인물이 나오는데, <페이크북>의 인물과 접점이 있고, 또 그 사람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수확의 정석>의 인물이고 하는 그런 그림이요. 이유원 대표: 언제 별도의 작품으로 진지하게 기획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저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저희는 결국 팬덤의 사랑으로 먹고 살기 때문에, 그래서 반가움을 드리는 작업들을 자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결국 저희 게임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반지하의 특정 프로젝트나 캐릭터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잖아요? <서울 2033>을 구매해주시는 분들이 <페이크북>을 찾아주시고, 또 입소문이 나면서 유입이 되고. 그래서 그런 점들이 되게 중요한 면인 것 같아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전쟁, 게임, 그리고 게임화라는 이름의 수치화
전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유명 게임 프랜차이즈의 대사도 있지만,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영역에서 전쟁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러한 진화는 ‘전쟁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답이 특정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은 내 이웃과 친구들의 비극 혹은 그걸 막기 위한 결단인가, 아니면 권력을 잡거나 방어하기 위해 장기판의 말을 옮기는 것과 같은 형식의 게임에 불과한가? < Back 전쟁, 게임, 그리고 게임화라는 이름의 수치화 25 GG Vol. 25. 8. 10. 전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유명 게임 프랜차이즈의 대사도 있지만,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영역에서 전쟁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러한 진화는 ‘전쟁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의 답이 특정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은 내 이웃과 친구들의 비극 혹은 그걸 막기 위한 결단인가, 아니면 권력을 잡거나 방어하기 위해 장기판의 말을 옮기는 것과 같은 형식의 게임에 불과한가? 전자라면 전쟁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태도는 최대한 그것을 막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후자라면?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며 따라서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효율적으로 찾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우리의 현실은 어디에 있는가? 이는 게임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워게임’은 현대 전쟁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이다. 워게임의 시초는 ‘크릭스슈필(Kriegsspiel)’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보드 게임이다. 1800년경 프로이센의 퇴역 장교 등을 중심으로 개발된 이 게임은 곧 프로이센군의 공식 훈련 교재가 되었다. 또 ‘크릭스슈필’은 민간의 상업용 보드게임의 조상 중 하나로도 간주된다. 전쟁을 상징과 규칙으로 환원하고 이에 근거한 판단과 결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군용의 ‘워게임’과 오늘날 우리가 가정에서 즐기는 전쟁 소재의 게임은 공통지반을 갖고 있다. 양자는 비슷한 경로를 따라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게임으로 발전했다. 수많은 측면에서 다른 점을 갖고 있지만 본질이라는 측면에선 사실상 같은 것인 셈이다. ‘워게임’의 본질을 사실 우리는 그간 수많은 전략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간파해왔다. 우리가 익히 알듯, 힘이 없는 개인의 입장에서 전쟁은 각 개인의 겪는 비극의 총합이다. 그러나 ‘워게임’은 제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전쟁을 제3자적 입장, 그러니까 전지적 시점에서 상징화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비극’과 같은 서사적 요소들은 게임 시스템 그 자체와 일단 분리된다. 가정용 게임에서도 우리는 늘상 이러한 일을 겪는다. 가령 리얼타임전략시뮬레이션(RTS)을 떠올려 보자. 현실에서 병사는 총알 한 개에 목숨을 잃는다. 현대전을 소재로 한 어떤 RTS 게임에서 병사 유닛은 수십 발의 총알을 맞아야 비로소 죽는다. 총알을 운 좋게 피한 것일까? 게임의 화면으로 표현되지 않는 은폐 엄폐 동작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공격을 당한 횟수에 비례해 유닛의 체력이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병사는 분명 피격당했다. 치명적 부상을 입지 않은 것 뿐일까? 이 경우는 체력이 탄환이 몸에 명중할 때마다 비균등하게 감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체력은 입은 피해에 따라 균등하게,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해진 산식에 의거한 계산에 따라 감소한다. 이런 방식으로 총을 맞는 것이냐 피하는 것이냐의 문제, 즉 총을 맞는 순간 이 병사가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은 어떻게 되느냐와 같은 개인의 실존과 관련한 문제는 게임 시스템 안에서 소거된다. 전쟁을 주제로 한 게임의 이런 측면은 전쟁 규모의 재현과 관련해서도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때가 종종 있다.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와 같은 전략롤플레잉(SRPG) 게임의 경우 전쟁에 준하는 세력의 대립 등을 묘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작 하나의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아군은 아무리 많아야 십수명의 캐릭터가 전부이다. 하나의 캐릭터는 하나의 사람이 아닌 한 무리의 부대를 상징하는 것일까? 그러나 무기의 장비, 체력 회복, 사망 등의 요소는 명백하게 개인화 되어 있다. <랑그릿사>의 경우 지휘관 외 병사 유닛을 따로 배치할 수 있도록 해 현실감을 높였지만 그래봐야 한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유닛 수는 수십 명 정도이다. 전쟁이 아닌 패싸움 수준이다. 그렇다면 사태는 좀 더 간단한 논리로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작 몇십 명의 병사를 휘하에 거느리고 뽐내는 황제가 꼭 세상을 지배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를 게임적 맥락에서 전쟁의 이야기로서 수용한다. 시적 허용이 아닌 게임적 허용, 좀 더 나아간 개념으로 한다면 ‘게임화’의 단면이다. 이러한 게임들이 대개 턴 방식을 규칙으로 취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당연히 실제의 전쟁이 ‘너 한 번 나 한 번’식의 턴제로 진행되지는 않는다(물론 턴제의 형식은 동시턴 방식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턴 방식을 강제하는 것은 두 가지 조건이다. 첫째는 전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변수에 대한 실시간 대응을 재현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을 일정 기준에 따라 정지시킨 상태에서 게이머에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 순차적 결정을 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둘째는 ‘게임’이 ‘겨루기’라는 형식을 어느 정도는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양측에 똑같은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 두 가지 점을 고려한 ‘게임화’의 결과물이 턴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게임화’는 현실을 상징화 하는 과정에 반영되는 일종의 편집 기술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편집을 통해 전쟁의 무엇을 덜어내고 게이머에게 무엇을 경험하도록 할 것인가?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사의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는 전략에 충실한 쪽으로 기운다. 이 게임에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감성은 없다. 게이머는 철저히 이해타산에 맞춰 결정을 내리는 냉혹한 전쟁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실제 현대의 전쟁 지도자에게 실제 전장에서 특정 병사의 영웅적 활약상이나 동료애에 기반한 미담 같은 것은 본질이 아니다. 그에게 전쟁은 지도와 숫자로 이루어진 ‘게임’일 뿐이다.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가 그리는 전쟁은 그러한 세계에 존재한다. 전투 역시 상당 부분은 숫자로만 표현된다. 전장의 실제 모습을 재현하는데 집중하는 것은 주로 1인칭 슈팅(FPS) 게임이다. 가령 유명 영화의 장면을 오마주한 <콜 오브 듀티> 초기작의 경우 누구에겐 총알만 주고 누구에겐 총만 주는 방식으로 부족한 물자 문제를 때웠던 소비에트군의 부조리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 게이머는 죽은 아군의 시체에서 소총을 확보해 자신이 받은 실탄을 장착해 사용해야 된다. 만일 전선에서 후퇴해 도망가려고 하면 바로 뒤에서 독전을 하는 정치장교의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이런 형식의 FPS에서 게이머는 전쟁 지도부의 전략과 전체 전쟁의 양상을 잘 알 수 없지만 전쟁터에서 어떻게든 작전을 수행하고 살아 남아야 하는 병사의 처지를 실감할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사의 <토탈 워> 시리즈는 그 이름답게 전쟁의 모든 면을 보여주기 위한 총력전을 펼치는 시도처럼 느껴진다. <토탈 워>에는 전쟁 지도자의 냉혹한 계산과 전장의 스펙터클이 함께 공존한다. 물론 무게추는 전략 전술을 경험하는 것에 쏠려 있다. <토탈 워>의 의의는 다른 전쟁 게임과 비교해 실제 전장에서의 상징화 수준을 현실에 가깝게 내린 것에 둘 수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전략 수준의 결정이 실제 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전략 전술을 잘못 짠 영향으로 떼죽음을 당하는 중세 병사들을 보고 있으면 현장 지휘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시도를 통해 게이머가 전장의 비극이라는 서사적 측면을 대리 체험하는 면이 분명히 있지만, 결과적으로 익숙해지는 것은 전쟁의 기술적 측면이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콜 오브 듀티>가 영화였다면 관객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등장 인물이 전우의 시체에서 획득하는 소총의 종류 같은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게이머는 게임 속에서 바로 자신이 획득한 장비이기에 그것이 모신나강 라이플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내 소총이 모신나강이라면 적군이 쓰는 총은 무엇인가? 각각 어떤 특징이 있는가? 발사음은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게이머는 전쟁의 비극을 그린 서사 안에서도 적군과의 교전을 직접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전투의 기술적 측면을 간접 학습하게 된다. 가령 총격전을 벌이기 전에 은폐 엄폐를 하기 좋은 지형을 찾는다든가, 교전 중에 실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게이머는 자연스럽게 전쟁을 내면화 할 수 있다. 실제 FPS를 모병 홍보 또는 훈련 과정의 일부에 활용하려고 한 시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주장이 억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리즈는 미 육군이 직접 개발한 홍보용 FPS 게임이다. 는 미국과 영연방 및 나토 국가 등의 훈련 소프트웨어로 등을 기반으로 했다. 더 이전으로 올라가면 전술 훈련을 목표로 한 실험적 시도로서 의 MOD였던 의 존재도 있다. 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말이다. ‘게임을 하면 살인에 둔감해진다’와 같은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가령 ‘살인’은 사회적으로 금지된 행위이다. 대다수 게임이 살인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엄하게 금지된 행위에 대한 게이머의 경각심이 희미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일 그렇다면 벌써 세상은 살인과 절도의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시리즈의 인기를 생각해보자. 시리즈의 성공으로 세상이 ‘자동차 도둑놈’들의 세상이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가 허용하거나 나아가서는 권장하는 분야에 대한 게임의 영향이라면 어떨까? 게임은 게이머의 사회에 대한 인식 및 태도에 분명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전쟁은 비극이지만, 오늘날 게임이 전쟁의 준비에 이미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우리 사회는 전쟁을 이미 ‘불가피한 게임’으로 받아들이고 전쟁의 본질을 ‘효율적으로 이기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효율적으로 이기는 방법을 찾는 것’은 사회적으로 허용되며, 심지어 권장된다. 그렇기에 거기에 게임이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하고 있는 거다. 실제 ‘워게임’의 일반화는 전쟁의 양상을 바꿨다. 두 가지 면에서다. 첫째, ‘워게임’으로 통칭되는 시뮬레이션은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 위험을 낮추는 요인으로 기능한다. 실제 전쟁을 치르기 전에 서로 간의 치열한 시뮬레이션 및 계산에 따른 ‘장군-멍군’식 대비 대책으로 미리 충돌을 방지할 수 있다. 둘째, 그럼에도 결국 군사적 충돌을 감행하게 된다면? ‘워게임’은 효율적이고 유연한 전략 수립을 가능하게 해 승리의 가능성을 높인다. 최근 강대국이 개입한 전쟁의 양상은 어떤 형태로든 이런 양상을 띄고 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가장 본질적 이유는 게임이 ‘숫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게임도 숫자, 전쟁도 숫자, 세상도 숫자이다. 모두가 숫자를 향할 때 효율과 최대 이익이라는 공통분모가 만들어진다. ‘게임에 사상을 담지 말라’는 구호가 게이머들 사이에서 종종 나오지만, 이렇게 게임에는 이미 지배이데올로기라는 형태로 사상(ideology)이 반영되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란을 공습하고 가자 지구에서 인종학살을 지속하는 이스라엘의 사례를 보며, 그리고 그러한 전쟁의 구실이 되는 정치, 그 정치를 떠받치는 대중적 동력의 실재를 확인하며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우리의 삶은 숫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늘 숫자로 상징화 되지만, 언제나 잔여물이 남으며 그것은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은 앞에서 쓴 전쟁의 또다른 의미, 즉 전쟁의 본질은 우리 삶의 비극이라는 진실을 상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러한 일은 곧 전쟁이 숫자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숫자가 아닌 게임이 존재할 수 있을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제기하는 의문이 ‘반전 메시지’를 담은 게임의 가능성에 대한 건 아니라는 거다. 과 같은 게임은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결국 게이머가 주되게 수용하는 것은 ‘효율적 관리 및 생존’이라는 장르적 요소다. 게임을 바라보고 수용하는 관점의 경로의존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므로, 오히려 여기서 필요한 건 그러한 경로의존성을 벗어날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 즉 해석이며 비평이다. 숫자의 세계에서 숫자가 될 수 없는 것들에 주목하고 그런 것들을 짚어 내줘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게임과 우리의 삶 모두에 죽음이 아닌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다. Tags: 수치화, 워게임, 재현윤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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