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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346개 검색됨
- 개발자, 문화, 그리고 현금: 서구 AAA 게임계의 세 가지 경향
AAA게임은 예술, 산업, 문화가 결합되는 영역으로서 지속되어왔다. 게임 연구는 그러한 요소들이 - 진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 과거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대 차기작 출시에 대한 기대 및 차기 하이프 사이클에 대한 예측 그리고 다가올 시상식에 대한 흥분 속에서, AAA게임 개발이 보다 높은 예술적 수준의 미래를 향해 최고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높이에 도달하기까지 훨씬 큰 극단의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게임 언론계나 학계의 간섭, 그리고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 관련 운동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적법성, 노동자와 플레이어에 대한 착취 등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Game Researcher)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리뷰: 이용률 급락의 구조적 맥락과 데이터가 말하지 않는 것들
게임을 떠난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답은 “동영상 시청으로 갔다”다. 게임 대신 선택한 여가활동의 86.3%가 ‘OTT·영화·TV·애니메이션 시청’이었다. 이 항목이 나타내는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고 중첩적임은 차치하고, 그 수치가 압도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hinKyu Kang Editorial board member of Culture/Science, a journal specializing in cultural theory. Researches media and culture, including games, broadcasting, comics, and fandom. Books include Fandom in Flux: From Play to Labor, From the Real to the Virtual (2024), Subculture Criticism (2020), IP: The Beginning of Every Story (2021, co-authored), Third Life: New Lifestyles in the Age of Technological Revolution (2020, co-authored), and The Theory of Games: From Play to Digital Games (2019, co-authored). Papers include "Fun Without Winning: Sociality, Agency, and Striving Play in Parent-Child Game Play" (2024), "Fandom That Consumes Communication: Idol Fan Platforms and the Reconfiguration of Fandom" (2022), "How Does 'In-Game Spending' Become Play?: Focusing on In-Depth Interviews with Whale Game Players" (2022, co-authored), and "Gamifying Broadcasting: From Producerly Text to Playerly Text"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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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30 맛과 냄새가 없는 매체인 디지털게임에서 음식과 요리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컨슘 미> 리뷰: 개인적 게임의 등장과 먹는 행위의 의미적 변화 <컨슘 미(Consume Me)>는 여러모로 특이한 면이 많은 게임이다. 중국계 미국인 개발자 제니 지아오 샤(Jenny Jiao Hsia)와 그의 동료 AP 톰슨(AP Thompson)이 개발한 이 게임은 2025년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에서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시머스 맥널리 상을 수상했다. 글로벌 게임 씬에서 가장 권위있는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 언론에서 이 게임이 리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산업 담론에만 관심 많은 한국의 게임 웹진은 차치하고라도 1,000건이 넘는 스팀 게임 리뷰 중에서도 한국어 리뷰는 단 3건에 불과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메타크리틱에 따르면 <컨슘 미>를 비평한 매체는 17군데로 이 가운데에는 《Edge》, 《Eurogamer》 등 주요 게임 매체를 포함하여 《Guardian》과 같은 종합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유독 국내에서는 <컨슘 미>에 대한 거의 아무런 비평도 일어나지 않았다. Read More Why Farming Games Became “Healing”: Between Pixel Farming and Real Fields In farming simulation games such as Stardew Valley and Story of Seasons, players are given the chance to become farmers living in idyllic rural settings. These games share a similar narrative premise: leaving the city behind, inheriting a family farm, and beginning a new life. What the player first encounters is usually a long-abandoned plot of land overrun with weeds, rocks, and dead trees. The core experience of these games lies in gradually clearing the neglected farm, cultivating the soil, planting crops, tending livestock, and ultimately enjoying the rewards of steady daily labor. Along the way, interactions with the townspeople offer moments of warmth and community. Read More [editor's View] 먹지 못하는 매체가 먹는다는 본능을 다루는 방식에 관하여 동물의 생존에는 먹는 행위가 필수적입니다. 인간도 동물이니 먹지 않으면 죽고,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는 일과 연관됩니다. 다만 인간의 먹거리를 먹이가 아니라 음식, 식량이라는 다름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인간의 먹는 행위가 단순한 생리적 욕구 해결과 생존본능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드러냅니다. Read More [고스트] 시리즈: 찬바라의 뒤섞인 계보 위에서 패링하기 찬바라를 적극 수용한 게임도 다채로운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1980년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 [사무라이](侍, 1979), 데이터 이스트의 제목부터 [찬바라](ちゃんばら)인 횡스크롤 액션 게임부터 [사무라이 스피리츠](サムライスピリッツ, 1993), [부시도 블레이드](ブシドーブレード, 1997) 등의 대전 격투 게임, 닌자 잠입 액션을 표방한 [천주](天誅, 1998), 최근의 [세키로: 쉐도우 다이 트와이스](セキロ: シャドウズ ダイ トゥワイス, 2019)까지, 사무라이와 닌자를 주인공 삼은 대부분의 액션 게임을 찬바라 게임의 범주에 집어넣어도 무방할 것이다. 미소녀 좀비 액션을 표방한 [오네찬바라](お姉チャンバラ, 2004) 같은 게임도 있으니 말이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즐거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게임하기: 인도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와 문화적 불협화 이번 글에서 다룰 논문은 인도 라자스탄 주의 우다이푸르라는 소도시에서 성인모색기(emerging adult,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에 있는 남성 청년들의 게이밍 하위문화를 풀어내고자 하는 글이다. <대항문화로서 인도 게이밍 존(Indian Gaming Zones as Oppositional Subculture)>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글은 온라인 게임 플레이가 우다이푸르 청년들에게 어떻게 게이머라는 대안적 하위문화 정체성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이들은 즐거움과 죄의식 속에서 왜 게임을 그토록 중독적으로 경험하는지를 탐색한다. Read More “이걸 누가 읽는다고.” ─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와 기록에 관하여 아마 슬슬 건강검진이 필요한 나이의 게이머 중에 페르시아의 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1989년에 나온 게임이니 젊은 게이머에게는 낯선 게임일 수도 있겠다. 가장 위대한 게임을 고르라면 1등이 아니더라도 100개 안에는 거의 반드시 들어갈 게임이고, 7세대 콘솔까지는 정규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며, 2025년에도 외전인 “로그: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왔고, 흥행 성적은 아쉬웠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영화도 있으니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IP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Read More 《용과 같이》는 한국을 어떤 맛으로 기억하는가― 야키니쿠에서 김치까지, 게임 속 한식의 풍경 무엇보다 (외국) 음식은 게임에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등장한다. 한식은 한국이라는 타지의 음식이며, 많은 경우 (재일)한국인이 운영 또는 소비하는 한식당에서 판매되고 게임 내에서 (재일)한국인의 거점으로 기능한다. 시리즈 내 한식과 함께 또 다른 ‘외국 음식’으로 존재하는 중식의 경우도 상황은 같다. Read More 「오믈렛에 넣을까요?」 : Taste good or Taste fool! 비디오게임이 미각의 재현에 언제나 주춤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먼저 미각을 전달할 ‘출력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치명적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이 사실의 재현매체도 아니거니와, 아직까지 맛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음식 그 자체밖에 없다는 점에서 크게 문제될 만한 사유는 아니다. 그러니 또 다른 문제 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Read More 게임에 재현된 농업의 유형들과 재현의 의미에 대하여 디지털게임이 농업을 다루는 일은 보기 드물지 않다. 적지 않은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농업의 과정을 재현함으로써 그 속에서 재미를 만들려고 하고, 농업 자체의 재현이 아닐지라도 농업이라는 개념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과정을 게임 규칙 안에 편입시키는 시도를 많은 게임사들이 이어 온 바 있다. 다만 이 때 ‘농업’, ‘농사’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어보면, 같은 농업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살펴보며 의미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Read More 게임에서 재현과 미학적 아우라: <1979 레볼루션: 블랙 프라이데이>와 <믹스테이프>의 고체적 서사에 대하여 실재에 가까운 재현은 매체가 태어난 이래로, 매체를 만드는 창작자와 그것을 소비하는 이용자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이상이자 욕망이었다. 게임 또한 ‘실재에 가까운 재현’이라는 이상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행동을 조작하고 결정하게 하며 그 결과를 다시 확인시키는 일련의 모달리티를 통해, 게임은 다른 매체가 좀처럼 도달하지 못한 실감을 구현해왔으며,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느끼는 실감은, 게임이 실재에 다가서는 고유한 방식이었다. Read More 그 만두는 정말 맛이 없었을까? 2000년대 요리 플래시 게임에 대한 회상 고향만두 아저씨는 혹평을 쏟아내며 만두를 뱉었다. 어린아이의 고사리 손으로 정성스레 빚은 만두가 계속해서 퇴짜를 맞는다. 만두소에 참기름이 들어가나? 또아리 모양의 만두는 팬에 구우면 안되나? 마우스를 쥐고 이리저리 고민하는 플레이어의 모습이다. 2000년대 플래시 게임을 했던 어린이들의 대부분은 이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Read More 노미배 천하제일 와갤요리 대회에 어서 오세요 케이크는 거짓말이다. 〈포털〉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문장이다. 게임 속 인공지능 글라도스는 플레이어에게 모든 테스트 챔버를 통과하면 케이크를 보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제안은 거짓이었다. 정확히는 케이크는 있다. 다만 플레이어가 들어갈 수 없는 방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 짓궂은 장면 이후 플레이어 중 누군가는 화면 너머 케이크, 블랙 포레스트를 진짜로 굽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잠깐 스쳐 지나간 레시피 조각을 짜맞춰 베이킹하고 사진을 올렸다. 글라도스의 케이크는 거짓말이긴 했지만 영원한 거짓말이 되지는 않았다. Read More 먹지 않으면 죽는다 – 게임에서의 음식과 먹는 행위 유난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으레 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말 안에는 단순히 맛이 좋다는 것을 뛰어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피곤했던 하루가 풀리는 감각, 살아 있길 잘했다는 감각, 그러니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감각.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감각이 바로 ‘살맛’이다. 무엇을 먹는가는 곧 어떻게 사느냐와 연결되고, 인간다운 삶의 기준으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음식은 인간에게 영양 섭취 이상의 의미로 자리 잡혀있다. Read More 보는 요리, 플레이하는 서바이벌: 요리 서바이벌 예능과 게임 사이의 빈 자리 요리하는 게임은 많다.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재료를 조합하고, 제한 시간 내 접시를 완성하는 게임 말이다. 그런데 정작 텔레비전 방송이 오랫동안 다듬어 온 ‘요리 서바이벌’은 디지털 게임 안에서 좀처럼 장르로 자리 잡지 못했다. 이 비대칭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왜 요리는 방송에서 그토록 잘 작동하는 게임이 되었는데, 게임에서는 요리의 질을 두고 겨루는 경연의 중심에 서지 못할까? Read More 음식, 요리 - 인류의 오래된 문화행위는 디지털공간에서 새롭게 의미지어지는가 오락실에서 <닌자 거북이>를 붙들어 본 이들은 너덜너덜해진 주인공 닌자거북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피자 한 조각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깎여나가던 체력이 어디선가 굴러나온 피자를 밟는 순간 차오르곤 했다.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회복 메커니즘은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인데, 게임 속 피자를 그저 밟았다고 적에게 두들겨맞아 상처입은 체력이 회복된다는 맥락은 뭔가 앞뒤가 안맞기 때문이다. Read More 저자성이란 농담?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을 읽으며 브라이언 히카리 하츠하임의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은 코지마 히데오가 감독하거나 제작 과정에 참여한 게임을 다양한 매체 이론을 따라 살펴본다. 반전, 반핵의 주제 의식을 일관적으로 지켜나가는 스토리텔러이자 ‘모든 것을 감독하는 책임자’, 게임 업계의 유명 인사 등으로 읽혀 온, 혹은 그렇게 읽히고자 유도해 온 코지마의 행적 역시 집중적으로 비춘다. 하츠하임은 주로 코지마의 인터뷰와 서적,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와 출시 당시의 리뷰를 제시하며 그가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관철하려고 했으며 제작 과정에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도해한다. Read More 제5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디지털게임 비평의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26년의 공모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Read More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할 수 있을까? - 예수 시뮬레이터 예수의 몸에 들어온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지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목수의 체력을 갖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파쿠르는커녕 사다리도 타지 못했다) 과연 예수가 ‘낙뎀’을 받는지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아쉽게도 역시 신은 낙뎀을 받지 않았다. Read More 편집장이 답하는 제5회 게임비평공모전 Q&A ***응모를 고민하는 분들이 자주 묻는, 혹은 묻고 싶었을 질문들에 편집장이 직접 답합니다*** Read More 하지만, 게임 요리에서는 아무 맛이 나지 않는걸 그러나, 다른 여느 일상의 메커니즘처럼 요리를 게임에 구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핵심 가치인 맛이라는 스테이터스를 플레이어들에게 현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게임에서 이러한 행위, 또는 메커니즘은 수치화를 기반으로 재창조될 수 밖에 없고, 요리 또한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 수치화가 대략 가늠이라도 잡히는 다른 요소에 비해 맛이라는 가치를 파라미터로 표현할 수 있을까? Read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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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16 디지털 연산매체는 사랑을 다룰 수 있을까? 다룬다면 어떻게 다룰까? 게임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방향으로의 사랑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징과 결부되며 어떤 특이점들을 드러내고 있을까?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게임 주인공 캐릭터를 둘러싼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 변화가 주로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 Read More 2023 동아시아 인디게임 답사기: bitsummit 그리고 G-eight 제일 더운 7월에 개최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일본의 인디 게임 행사 “BitSummit”과,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회차를 맞이한, 그리고 날짜도 거의 비슷하게 12월 초에 개최하지만 훨씬 따뜻한 대만 타이베이의 “G-Eight”이 오늘 답사기의 주인공들이다. Read More How far can the ‘economics of crowdfunding’ go?: The comparative case of and If we were to choose two of the most talked-about RPG games in 2023, many would agree to pick (Bethesda Game Studios, 2023) and (Larian Studios, 2023). It appears that gamers generally favor over due to disappointing elements in its game design, despite it still managing to achieve good sales records thanks to the developers’ publicity. The game seems to have demonstrated the limitations of the so-called Bethesda-style RPG games, whereas was praised for its rich interactivity and engaging role-playing elements. Some claim that this Belgium-made game has made a new mark in the RPG genre, listing it as one of the most critically acclaimed RPGs of 2023 alongside The Legend of Zelda: Tears of the Kingdom (Nintendo, 2023). Read More Ordinary Corrupted Dungeon Love: ‘플레이어블’을 구하지 못한 서사와 갈등, <디아블로4> 다만 지난 10년간의 행보를 돌아볼 때 걱정되는 것은 그 장엄한 세계관을 구축했던 블리자드 기획진의 에고다. Read More [Editor's View] 0과 1을 기반으로 한 계산을 딛고 서는 매체이지만 디지털게임 역시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감정을 다룬다. 우리는 수시로 사랑은 계산가능한 감정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 익숙한 관용구는 사랑을 다루는 연산장치인 디지털게임 앞에서 조금 곤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Read More [게임과 예술] 로딩중인 세계의 권태와 노동에 관한 소고 상희는 유희와 즐거움의 이미지로서 소비되던 게임의 형식을 빌려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노동하는 신체에 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 완전히 개인화된 세계에서 내면적 사유로서 ‘권태’가 가진 정서를 재조명한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From geek masculinity to Gamergate: The technological rationality of online abuse 이 논문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자행되는 사이버 폭력의 배경을 밝히기 위해 우선 기술 또는 게임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오타쿠 남성성이 있음을 짚어낸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No homosexuals in Star Wars? BioWare, ‘gamer’ identity, and the politics of privilege in a convergence culture 콘디스는 <스타워즈: 구 공화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진정한’ 게이머의 조건은 무엇인지,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살핀다. 콘디스는 ‘진정한’ 팬 또는 게이머 무리가 미디어 환경을 장악했으며, 이들이 유토피아적 공간을 이룩하고 게임 내 특권적 지위를 이루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Read More [인터뷰] 척박한 사회에 다정함을 심고 있는 당신을 위해: 인디게임 개발자 somi 그가 돌아왔다. ‘죄책감 3부작’으로 한국 인디게임씬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인디게임 개발자 somi가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라는 제목의 신작으로 돌아왔다. Read More ‘모에’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서브컬처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한 애착 유발 구조의 고찰 2022년 즈음부터, 한국의 게임 업계는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 표현 기법을 내세우는 게임들을 ‘서브컬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만화‧애니메이션풍으로 묘사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이라는, 이름이라기보다 차라리 서술에 가까운 호칭으로 일컬어졌던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간결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Read More 개척, 애정, 확장성: 스타워즈 제다이 폴른 오더 그리고 제다이 서바이버 이번에 얘기한 스타워즈 제다이 폴른 오더와 스타워즈 제다이 서바이버를 플레이해보며, 스타워즈라는 새로운 문화에 발을 내딛는 시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Read More 게임과 데이팅 세계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온다. 그리고 그 일상은 현재 ‘디지털화’되었다. 연애관계의 돌입과 사랑의 속삭임을 우리는 ‘가상적으로, 디지털로, 플랫폼을 통해’ 수행(play)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관심은 인스타그램의 DM으로, 페이스북의 댓글로, 카카오 톡의 메신저로 꾸준히 접속하여 수치화된다. Read More 게임에서 사랑이 재현되는 두 가지 형태 – 자기애와 애착 캐릭터에 대한 애착(attachment)은 단순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는 애착의 대상인 캐릭터가 절대 연애의 주체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플레이어를 만족시킬만한 일러스트와 계량화된 수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Read More 게임으로 사랑을 담아 내기 - <댓 드래곤 캔서>가 ‘게임’으로 제작된 이유는 무엇일까? <댓 드래곤 캔서>는 게임으로 제작되었지만, 당시의 조류에 있어서 일반적인 형식을 취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은 왜 반드시 게임이여야 했을까? Read More 게임의 로맨스가 진짜 사랑은 아니지만 중요해, CRPG의 로맨스 하지만 예로부터 어떤 게임을 설명할 때 “야, 이 게임에서는 섹스도 가능해!!” 라고 하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게임인지 저절로 호기심을 동하게 만들었듯, ‘연애’ 는 사람들을 흥분케하는 콘텐츠였다. Read More 게임적 리얼리즘과 리얼리즘적 ‘게임’ - 상징계·상상계·실제계의 진실 게임적 리얼리즘의 비밀이 바로 여기 있다. 현실의 논리를 ‘게임 플레이’로 ‘번역’해 이데올로기적 설득에서 현실의 핵심을 빼앗는다는 게임적 리얼리즘의 비밀은 비디오 게임의 검열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 Read More 남성향 연애 게임에서의 '사랑' 사랑을 게임 속에 재현해보고자 처음 시도됐던 남성향 연애 게임은 사랑 그 자체보다도 점차 게이머의 즐거움을 유발할 수 있도록 ‘게임성’에 집중하고자 했고, 이는 어느 정도 연애 게임의 진화된 모습으로 정착될 수 있었다. Read More 매너리즘을 넘어서는 전통의 긍지: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잘 짜인 레벨 디자인. 플랫포밍의 역사라 부를 수 있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시리즈는 1985년 첫 작품이 등장한 이후에도 현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 시리즈는 40년 정도의 시간을 거치며 시리즈는 수많은 변화를 거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인 플레이 양상은 변화하지 않았다. 달리고. 뛰고. 밟으면서 코스를 돌파한다는 핵심적인 요소다. Read More 북미의 루트박스: 한국과 다르면서 또 같은 관계자 A는 “미국게임업계의 모바일 게임을 경시하는 풍조는 오히려 업계관계자들 특히나 게임개발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고 말하며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들은 좋은 개발자를 영입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작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들이 많다. 인게임 결제가 있는 게임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크다보니 오히려 수가 적고 따라서 로트박스 문제는 관심 밖이라는 느낌이 있다”고 말하며 루트박스가 커뮤니티 안에서 크게 회자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Read More 슈퍼 히어로 '게임'의 과거와 오늘 원전인 수퍼히어로 만화는 여전히 독자적 산업을 잘 이끌고 있다. 그리고 영상 컨버전이 최근에 들어 절정을 찍었다면, 게임 컨버전은 비교적 신생이다. Read More 피카츄는 나와 함께 잠드는 것이 기대되는 모양입니다....-<포켓몬 GO>와 <포켓몬 슬립>의 현실 침투 작전 왜 포켓몬 컴퍼니는 ‘수면 엔터테인먼트’라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의 조합으로 우리의 수면 습관을 관리하고 싶어 하며, 왜 이 수면 측정 앱은 흥행에 성공했는가? Read More
- About GG | 게임제너레이션 GG
게임문화재단이 만들고 (주)크래프톤이 후원하는 격월간 게임문화비평전문웹진. 게임비평 및 연구결과 수록. 게임문화 교양웹진, 게임 제너레이션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게임문화 담론을 선도해 나가고자 2021년 8월에 창간한 게임비평 전문 웹진입니다. 2개월에 한 번씩 GG는 동시대 디지털게임의 주요 주제를 선정해 다양한 시각에서 그 의미를 탐색하고 밝히고자 합니다. GG의 철학 GG는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디지털게임이 차지하는 영향력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디지털게임이 일상이 된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는 게임을 하는 이도 안하는 이도 게임으로부터 영향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문화적 의미를 밝히는 것이 GG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현대 대중문화담론이 처한 위기는 무거움과 가벼움 양 쪽 모두를 딛고 있습니다. 학술적인 깊은 논의들은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지 못하고 있으며, 널리 퍼지는 이야기들은 게임문화담론의 깊이를 품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GG는 '학술지보다 가볍게, 웹진보다 무겁게'라는 슬로건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보다 게임문화를 보다 무겁게 다루는 일이 충분히 대중적일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러한 독자와 필자를 찾아내고 담론장에 유통하는 일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GG를 만드는 사람들 척박한 게임문화담론을 개척하는 일에는 많은 인력과 자원, 시간이 들어갑니다. GG는 게임문화재단에서 제작을 맡고 있으며, 그 후원을 (주)크래프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크래프톤의 후원은 전적으로 후원에 머무르며, 웹진 제작과정과 방향성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러한 후원을 바탕으로 GG는 많은 게임연구자들과 협업하며 게임문화담론의 생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망라한 젊고 명망있는 게임연구자들, 게임의 문화적 비평에 의지를 가진 비평가들이 GG와 함께합니다. 더불어 새로운 필진의 발굴을 위해 GG는 매년 1회 게임비평공모전을 주최, 동시대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자 노력중입니다. GG가 꿈꾸는 미래 한국은 게임문화에 있어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문화담론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비단 한국어권에 머물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GG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게임문화담론을 전세계와 공유하고자 하는 미래를 꿈꿉니다. 해외의 다양한 게임연구, 담론, 비평을 공유하고, 또 한국에서 생산된 논의들을 해외로 내보내는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넘어 전세계와 함께 디지털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서의 GG를 우리는 상상합니다.
-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 편안한(cozy)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고백하자면 나는 싸우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이미 충분히 긴장하며 사는데, 게임에서까지 쫓기고 싸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게임들에 자꾸 손이 간다. 그리고 이런 게임은 생각보다 많다. 어질러진 물건을 정리하고, 이삿짐을 풀고, 농사를 짓고, 물약을 만들어 팔고, 산을 오르고, 택배를 배달한다. 비슷한 결의 게임들이 하나의 흐름을 이룬 지는 꽤 오래됐고, 우리는 이런 게임들을 흔히 ‘힐링 게임’이라고 불러왔다. < Back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 편안한(cozy)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31 GG Vol. 26. 8. 10. @pixabay JerzyGórecki 아침 출근 전에 집 한 채를 청소하고 나왔다.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져 아침 식사를 마치고도 삼십 분이 남은 날이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버려진 별장 한 채를 청소하기로 했다. 그곳은 눈 내리는 설산 한가운데의 숲속 산장이었다. 거실에서는 벽난로가 뭉근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온통 눈 덮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겨울 스포츠를 즐길 때 사용하는 숙소인 듯했다. 집주인이 보내온 의뢰서에는 야외에 쌓인 눈을 치우고 실내를 청소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유가 된다면 오래된 계단을 손보고,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위해 장식을 구매해서 집안을 꾸며달라는 부탁도 덧붙여져 있었다. 걸레를 들고 별장 안을 돌아다녔다. 창문이 많은 집이라 유리를 닦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다는 작업까지 마친 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집을 바라봤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별것 아닌 일인데도 마음은 뿌듯했다. 집주인은 넉넉한 사례금을 지급했고, 그사이 도전과제 하나가 달성됐다. 이제 노트북을 닫고 출근할 시간이다. <하우스 플리퍼 House Flipper>와 함께한 나쁘지 않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상하게도 현실에서는 별로 즐겁지 않은 청소가 게임에서는 꽤나 편안하게 느껴진다. * <하우스 플리퍼>에서 플레이어는 집을 수리하고, 청소하고, 꾸며서 수익을 얻는 업자가 된다. 의뢰는 끊이지 않고 들어오지만 느리게 작업한다고 아무도 타박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1인 사업자다. 힐링 또는 코지(cozy)라는 표현 <하우스 플리퍼>는 방치된 집을 청소하고 수리해 돈을 버는 게임이다. 적이 쫓아오지 않고, 청소에 제한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의뢰인이 원하는 가구를 제대로 배치하지 못하면 돈을 조금 덜 벌 수 있을 뿐, 실패라고 부를 만한 상황도 거의 없다. 갈등이나 긴장, 승패 같은 전통적인 게임의 요소 대신에 걸레질과 페인트칠 같은 단순한 노동이 게임의 주된 활동이 된다. 고백하자면 나는 싸우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이미 충분히 긴장하며 사는데, 게임에서까지 쫓기고 싸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게임들에 자꾸 손이 간다. 그리고 이런 게임은 생각보다 많다. 어질러진 물건을 정리하고, 이삿짐을 풀고, 농사를 짓고, 물약을 만들어 팔고, 산을 오르고, 택배를 배달한다. 비슷한 결의 게임들이 하나의 흐름을 이룬 지는 꽤 오래됐고, 우리는 이런 게임들을 흔히 ‘힐링 게임’이라고 불러왔다. 하지만 힐링이라는 단어를 오래 들여다보면 이상한 구석이 생긴다. 힐링(healing)은 치유를 뜻하고, 치유는 대개 상처나 고통을 전제로 한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플레이어는 회복이 필요한 사람이 되고 게임은 그 사람을 치료하는 일종의 처방전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힘든 날에만 이런 게임을 플레이했던 건 아니다. 별일 없이 평범한 날에도 집을 정리정돈하고, 농장을 돌보고, 자연과 함께하는 일은 여전히 즐거웠다. 영어권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힐링’ 대신 ‘코지(cozy)’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코지는 아늑함이나 포근함, 친숙함처럼 서로 겹쳐 있는 여러 감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코지라는 말을 그대로 옮겨 쓰기보다, 그 핵심에 위치한 감각인 ‘편안함’이라 부르려 한다. 그렇다면 게임에서의 편안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일까? 파스텔톤의 색을 사용하고 음악을 잔잔하게 만들면 되는 것일까? 적이 등장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플레이어가 아무것도 잃지 않는 상황이면 되는 것일까?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과 연구자들도 이 막연한 분위기를 그저 ‘편안하다’고 부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도대체 무엇이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는지를 설명해보려 했다. 확실한 건, 그저 예쁘고 귀여운 게임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편안함에는 조건이 있다 편안함의 정체를 파고드는 여정은 게임 디자이너들로부터 시작되었다. 2017년, 8명의 게임 디자이너는 정기 워크숍에 모여 게임에서 편안함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를 논의했다. 이들이 제시하는 편안함의 조건은 세 단어로 요약된다. 안전함(safety), 풍요로움(abundance), 부드러움(softness). 안전함: 위험이 도사리지 않고, 실수해도 잃을 것이 없는 상태. 풍요로움: 결핍이나 다급함이 없는 상태. 부드러움: 느린 템포, 따뜻한 색채, 잔잔한 청각적 요소로 안전과 풍요를 전달하는 감각. 편안함은 이 세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질 때 구현될 수 있고, 디지털 공간에서 실현된 상상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편안함의 환상’이기도 하다. 게임 디자이너들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욕구가 계층을 이룬다는 오래된 심리학 이론을 빌려온다.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고 안정감을 확보해야 비로소 타자와의 관계나 자아실현 같은 상위의 욕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편안한 게임은, 하위 욕구가 기본값으로 충족된 세계다. 굶지 않아도 되고, 쫓기지 않아도 되고, 무언가를 잃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서는 플레이어가 당장 생존과 관계없는 일에 마음을 쓸 수 있다. 집을 꾸미거나, 물건을 모으거나, 누군가와 친밀감을 쌓거나, 아무 목적 없이 풍경을 바라보는 일 같은 것들이다. 단, 여기서 핵심적인 전제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모든 활동은 오직 플레이어의 '자발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발성이 결여된 강요는 편안함을 깨뜨린다. 편안함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그래픽도 음악도 아닌 자발성이다. 특히 정리정돈을 소재로 한 게임들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청소라는 행위가 편안해서’가 아니라, 손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마음까지 다급해질 필요는 없으며, 활동의 총량(끝)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분석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우스 플리퍼>에서 청소가 편안했던 이유도 어느 정도는 설명된다. 현실의 청소는 피로하다. 무엇을 버릴지 결정해야 하고, 어디에 치울지 생각해야 하며,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청소가 힘든 이유는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선택,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질러진 물건의 질서를 찾아주는 <어 리틀 투 더 레프트 A Little to the Left>나, 손님이 재촉하지 않는 물약 상점의 연금술사 게임 <포션 크래프트 Potion Craft> 역시 마찬가지다. 실패에 대한 패널티를 없애거나 재촉하지 않음으로써,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어 리틀 투 더 레프트>, <언패킹>, <이지 딜리버리 co.>, <어 쇼트 하이크. 이들은 힐링 또는 코지(편안한) 게임으로 언급되고 있다. 같은 편안함, 세 가지 쓰임 흥미롭게도, 편안한 게임이라고 해서 반드시 편안한 스토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2020년 게임 연구자들은 편안한 미학이 게임 안에서 사용되는 방식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 번째 경우 ‘일치형’ 편안함은, 게임의 겉모습과 플레이 경험이 일치하는 경우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편안한 게임들이 이에 속한다. <어 쇼트 하이크 A Short Hike>는 주인공이 휴가를 떠난 섬에서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여정을 보여지만, 서둘러 도착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되고, 낚시를 해도 되고, 동전을 줍다가 다른 길로 새도 된다. 게임의 화면이 보여주는 세계와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행동이 모두 같은 방향, 즉 서두르지 않고 머물러도 된다는 쪽으로 동시에 향하는 유형이다. 두 번째 경우 ‘불일치형’ 편안함은, 겉으로는 편안해 보이지만 그 안에 슬픔이나 상실처럼 무거운 이야기를 담는 경우다. 편안함을 겉에 한 겹 감싸는 것이다. <댓 드래곤 캔서 That Dragon, Cancer>는 부드럽고 따뜻한 색채 속에서, 가족 상실의 슬픔을 전달한다. 무거운 이야기를 직접 마주하게 만드는 대신 익숙하고 편안한 세계 안에 놓아두는 것이다. <언패킹 Unpacking>도 비슷하게, 이삿짐을 풀어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해놓는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게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의 이별, 성장 등 삶의 굴곡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경우 ’상황형’ 편안함은 게임 전체는 긴장되어 있지만 특정한 순간이나 장소에서만 편안함을 제공하는 경우다. 편안함을 장르라고 부르는 일이 더욱 어려워진다. <다크 소울 Dark Souls>이나 <돈 스타브 Don’t Starve>의 모닥불을 예로 들 수 있다. 게임 전반이 긴장감을 주지만, 모닥불 앞만큼은 전투와 위험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편안한 장소가 된다. 상황적으로 등장하는 편안함의 유형이다. 결국 편안함은 게임 장르라기보다 게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재료에 가까워 보인다. 어떤 게임에서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고, 어떤 게임에서는 무거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표면이 되고, 또 어떤 게임에서는 긴장된 상황 사이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장소가 된다. 같은 감각이 게임마다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편안함이 게임 안에 들어 있는 것이라면,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이 모두 편안함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결국, 편안함은 플레이어가 만드는 것 질문에 대한 답은 최근 연구에서 나온다. 편안함이 게임 안에 이미 장착되어 있다기보다, 플레이어가 느끼는 주관적 감각이라는 사실이다. 2026년 연구에 따르면 편안함의 바탕에는 친숙함과 예측 가능성이 존재한다. 게임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고, 그 행동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할 수 있으며, 게임 속 공간에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익숙해질수록 플레이어는 그 세계를 더욱 편안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우리가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비교한다. 집이 편안한 것은 어두운 밤에도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알고 불을 켜는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많은 편안한 게임들은 게임에서만 작동하는 별개의 행동양식을 알려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직관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한다. 어떤 장소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고, 게임이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반응하는지도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긴장하며 돌아다니던 공간이 어느 순간에는 익숙한 동선이 된다. 게임 세계가 더 이상 낯선 장소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장소로 바뀌는 순간, 그곳에서도 일종의 ‘집 같은 느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흥미롭게도 공포 게임도 누군가에게는 편안할 수 있다. 처음 플레이했을 때는 어디서 괴물이 튀어나올지 몰랐던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적의 위치와 패턴을 모두 알게 될 수 있다. 어느 문을 열면 무엇이 나오는지 알고, 어느 복도에서 적을 만나게 되는지 알고, 도망쳐야 할 곳과 숨어야 할 곳도 알고 있다면 처음의 공포는 조금씩 다른 감각으로 바뀐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데이브 더 다이버 Dave the Diver>는 바다를 탐험하며 물고기를 잡는 편안한 게임으로 자주 꼽히지만, 평소에 낚시에서 잔인성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조금도 편안하지 않은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일한 게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휴양지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사냥터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편안함은 게임 안에 이미 들어 있는 속성이라기보다, 게임이 만들어놓은 조건과 플레이어의 경험이 만나는 곳에서 생겨나는 것에 가깝다. * <포션 크래프트>에서 플레이어는 물약 상점의 주인이 되어 손님에게 물약을 제조하고 판매한다. 안전한 공간으로의 도피일까?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은 다르다. 누군가는 긴장을 통해 푼다. 강렬한 전투나 타격의 쾌감을 느끼고, 두뇌 싸움에서 승리하는 기쁨, 어제보다 강해진 캐릭터가 주는 성장을 실감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반면 누군가는 긴장이 제거된 저스트레스 공간으로 떠난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고, 아무것도 잃지 않는 공간에서 하루 종일 곤두선 신경을 내려놓는 것이다. 같은 스트레스 앞에서 정반대의 처방이다. 오랫동안 게임 산업의 주류 언어는 승리, 경쟁, 도전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편안한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이 주류 문법에 질문을 던진다. 그런 점에서 편안한 게임의 부상은 주류 문화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실천이라 볼 수 있다. 게임 연구자 스컬리 블레이커(Rainforest Scully-Blaker)는 이러한 실천을 “급진적 느림“(Radical Slowness)이라고 이름 지으며, 발전, 자본축적, 소비 등의 자본주의적 루프와 호흡에 반대하는 저항하는 행위로서 플레이어의 명상, 휴식, 망설임 수행을 짚어내기도 했다. 누군가는 편안하고 평화로운 세계로 떠나는 플레이어를 향해 '현실 도피'라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스트레스가 과잉인 현대 사회에서 위협이 제거된 세계로 들어가 불안을 잠재우는 행위로서의 게임하기로 보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도피라는 말의 부정적 어감을 다르게 생각하여, 폭풍우 치는 날 처마 밑으로 피신하는 일은 하나의 실천일 뿐, 긍정적이라거나 부정적이라는 가치 판단을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을까. 그러니 편안한 게임을 현실 도피라고 부르는 것이 틀렸다고 할 필요는 없고, 반대로 무조건 좋은 것으로 포장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잠시 현실을 벗어나는 일이 언제나 현실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때로는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잠깐 다른 곳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참고 자료 Group Report: Coziness in Games: An Exploration of Safety, Softness, and Satisfied Needs(2017) Towards the aesthetics of cozy video games(2020) Coziness in Games: Second Homes, Audiences, and Esthetics(2026) Tags: 코지 게임, 힐링 게임, 하우스 플리퍼, 어 쇼트 하이크, 포션 크래프트, 게임 디자인, Cozy Games, House Flipper, A Short Hike, Wholesome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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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 게임과 행위 원리 – 놀이와 협박
플레이어는 게임을 왜 플레이하는가? 이 질문은 노는 자가 왜 노는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될 수 있다. 최근의 논의들 중에는 게임을 예술로 ‘인정’받고자 어떠한 실용성이나 사회 · 정치적 참여 등에 기여한다며 생산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게임은 그러한 효용적 가치들을 충분히 발생시킬 수는 매체인 것으로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것이 플레이어가 게임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가 정말로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실천과 효용을 함양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500시간 동안 앉아 있는가?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 Back [공모전] 게임과 행위 원리 – 놀이와 협박 13 GG Vol. 23. 8. 10. 플레이어는 게임을 왜 플레이하는가? 이 질문은 노는 자가 왜 노는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될 수 있다. 최근의 논의들 중에는 게임을 예술로 ‘인정’받고자 어떠한 실용성이나 사회 · 정치적 참여 등에 기여한다며 생산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게임은 그러한 효용적 가치들을 충분히 발생시킬 수는 매체인 것으로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것이 플레이어가 게임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가 정말로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실천과 효용을 함양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500시간 동안 앉아 있는가?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게임, 즉, 놀이의 형태는 고양이의 놀이이다. 사람이 레이저나 막대기, 털 장난감 등으로 인공적으로 놀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고양이들은 자연 상태에서도 자기들끼리 여태까지 잘만 놀아 왔고 지금도 잘만 놀고 있다. 고양이는 자연 속에서 나뭇잎이나 막대기, 빛, 곤충이나 동물 시체 등을 갖고 논다. 이러한 놀이는 언뜻 사냥을 연습하기 위해 그 행위들을 가상으로 모방하여 시뮬레이션하는 모습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상 가장 중요한 순간, 정말로 곤충이나 작은 동물들을 사냥해서 잡아 그 시체를 뜯어 먹기 바로 직전에 보이는 유희의 형태를 본다면 그들 놀이의 본질에는 어떠한 가상도 모방도 연습도 없으며, 실용성이 아니라 오직 즐거움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이미 죽어서 차갑게 식어 움직이지 않는 시체나 척추가 부러진 채로 아직 죽어가고 있어 반항도 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그저 꿈틀거리기나 하는 초주검의 동물을 붙잡고 양손으로 데굴데굴 굴리거나 입으로 물어 공중으로 던진다던지 하는 행위는 그 어떤 다른 ‘실제 행위’도 모방하지 않고 있고 그저 그 자체로서가 이미 고유한 실제 행위이다. 그리고 이 놀이 행위들은 그 어떤 실용적 경험치에도 봉사하지 않고 그저 식사 이전의 재미, 신남, 기쁨 등만을 생산해 내고 있을 뿐이다. 즉, 놀이로서 게임은 즐거움을 생산하는 행위 그 자체로서가 목적이다. 다른 외부적 목적에 부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게임 <핫라인 마이애미>의 결말 장면에서 이러한 게임의 행위 목적성을 아주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핫라인 마이애미>는 게임의 진행 과정에 따라 두 가지 서로 다른 결말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흔히 말하는 ‘보통의 결말 (normal ending)’과, ‘숨겨진 결말 (secret ending)’의 구조이다. 두 가지 결말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두 인물은 해당 게임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들을 배후에 숨어서 조종하고 있던 ‘청소부 (janitor)’들이다. <핫라인 마이애미>의 주요 사건에 대해 잠깐 설명하겠다. 어느 날부터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동물 마스크를 배달받고, 이렇게 동물 마스크를 배달받은 사람들은 모르는 이들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전화의 내용은 어떤 특정 장소로 가서 배달받은 동물 마스크를 쓰고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이라는 명령이다. 이 전화의 발신자가 바로 청소부들이고, 주인공은 청소부들에게 명령을 받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이야기의 막바지에 다다라서 자신이 지금까지 따라온 명령의 발신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게 된다. 주인공은 결국 청소부들의 비밀 본부를 찾아내고. ‘보통의 결말’에서 이들에게 ‘왜’ 이러한 일들을 벌이게 되었는지 물어볼 수 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청소부 A: 그야 심심했으니까 그렇지! 청소부 B: 왜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해야 하겠어? 너는 우리가 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일들을 저질러 왔잖아, 안 그래? 청소부들은 주인공이 제기한 ‘왜’에 대해 순수하게 ‘즐거움’을 위해서였다고 밝힌다. 주인공이 청소부들에게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며 주인공은 그저 자신들의 “장기 말”에 불과하다고 대답한다. 청소부들은 주인공과 같은 사람들을 조종하며 갖고 노는 ‘놀이자’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주인공 또한 청소부들의 명령에 따르면서 직접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실제 자신의 손으로 사람들을 살해하는 “훨씬 더 끔찍한 일들을” 저지름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위치에 처해 있었다. 주인공은 청소부들에게 “너희들은 왜 사람을 죽이는 거야?”라고도 물어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청소부들은 그 질문 속의 주어 설정이 굉장히 잘못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아무도 안 죽였어, 너가 죽였지...” 즉, 이 ‘보통의 결말’은 청소부들과 주인공 모두의 행위가 다른 어떤 목적으로도 변명 될 필요 없이 오로지 즐거움만을 위해 실행되었던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청소부들이 주인공을 향해 “너”라고 부를 때 우리는 그것이 주인공을 조종해 사람들을 죽이며 즐거움을 얻은 또 다른 놀이자, 플레이어도 가리킬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면 주인공에게 명령하고 주인공을 갖고 노는 놀이자로서의 청소부와 청소부의 명령을 수행하며 즐거움을 획득하는 놀이자인 주인공의 구도처럼, 플레이어에게 명령하고 플레이어를 갖고 노는 게임이라는 놀이자와 게임이 명령하는 사항들을 이행하며 즐거워하는 플레이어라는 놀이자의 구도 또한 형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전반부에서 만나게 되는 닭 마스크의 환영은 주인공-플레이어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게임과 플레이어 사이에서 생산되는 즐거움이 가지는 본질적인 행위 원리의 진실을 시사한다. "너는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걸 좋아하니?" 즉, 주인공이 모르는 전화 속 목소리의 명령을 따르는 것도, 플레이어가 이 게임이 명령하는 사항들을 기쁜 마음으로 따르는 것도, 결국 이 행위자들 모두가 그 명령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단 하나의 행위,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것”으로부터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진실 말이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명령하는 사항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맞닥뜨릴 수 있는 튜토리얼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너에게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여기 와 있다. 이 게임은 좌우 스틱으로 조작된다. R 버튼을 눌러 때린다. 얼굴을 노려라! 우선 네가 누군가를 쓰러뜨렸으면 그를 마무리까지 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너는 X 버튼을 누른다. 알겠나? R을 눌러 때려라! X를 눌러 끝내라! 내 말 알아듣겠나? 실수하지 말아라! 튜토리얼에서부터 <핫라인 마이애미>는 플레이어가 이 게임 속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 살인 행위뿐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탑다운 형식으로 내려다보이는 조그만 사람 형상을 조작해 또 다른 조그만 사람 형상들을 쏘고 때리고 찢어발기는 게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이 게임을 그럼에도 계속해서 플레이하는 ‘원인’은 우리가 이러한 가학 행위에서조차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즐거움이다. <핫라인 마이애미>의 속편에서도 우리의 행위 원리에 대한 같은 진실이 드러나는 장면이 존재한다. <핫라인 마이애미 2>의 16번째 장, “사상자들 (Casualties)”에선 죽음이 거의 확정된 임무에 자신들의 부대원들을 보내게 된 “대령 (the Colonel)”이란 인물이 임무 전날 밤, 죽은 퓨마의 안면 피부를 벗겨 미간 부위에 피로 성조기를 그려 놓은 다음 그것을 자신의 얼굴에 쓰고 나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게 보이나? ... 내 얼굴이 보이냐고? 이것이 내 진정한 본성(nature)이다! 보이지, 안 그래? 이게 나야! 이게 우리 모두란 말이다. 우린 동물이야! ... 부인할 길은 없어! 우리가 빌어먹을 동물들이라는 것을! 그들은 우리가 학살하거나 학살되도록 내보내고 있지... 그런데도 우리는 여기 앉아서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할지, 그리고 어떻게 할지를 말해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우리 자신의 의지는 없다. 그저 영혼 없는 복종일 뿐이야! 우리는 우리가 지금 왜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우리가 아는 것은 그저 저 아래, 깊은 곳에서, 우리는 이걸 즐기고 있다는 거야. 파괴와 폭력... 이것들은 그저 우리 본성의 일부일 뿐이지.” 위의 대사를 말하는 “대령”이 퓨마라는 동물의 얼굴을 벗겨 마스크로 쓰고 미간에 피의 성조기를 그려 놓았던 것, 그리고 이 피의 성조기는 바로 청소부들이 암약하는 비밀 단체의 상징이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대령”의 발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 바로 이 게임의 제작자들이 말하고자 했던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디오니소스적인 실재의 차원에서 우리가 자연 (nature)의 의지와 공명하며 그 모든 것들을 깊이 즐기고 있기 때문에 진실을 드러낸다. 여기서 갑작스레 왜 대령이 청소부들의 상징을 사용했다고 해서 제작자들의 입장을 대표하게 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독자도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명의 청소부들과 마찬가지로 이 게임의 개발자도 단 두 명이다. 그리고 플레이어에게 보여지는 청소부들의 얼굴그래픽은 게임 개발자들 자신들의 얼굴을 픽셀로 캐리커쳐한 형상이다. 즉, 청소부들은 이 게임의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페르소나인 것이다. 주인공이 청소부들에게 그들이 “누구 밑에서 일하고 있는 것”인지를 추궁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 밑에서도” 일하고 있지 않은 “독립”적인 작업자들이며 “모든 것을 우리끼리 다 했”다고 당당하게 밝힌다. 마치 이 게임을 제작한 두 명의 독립 개발자들이 스스로에게 가지는 자부심과 마주하는 듯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청소부들의 대사를 통해 이 게임의 개발자들이 자신들은 순전히 즐겁기 위해 창작 행위를 한 것이며, 그 어떤 누구의 명령이나 협박과 같은 외부적 조건 따위에 의해 행하게 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청소부들이 주인공을 “장기 말”이라고 불렀던 것은, 플레이어가 주인공을 조종하며 자신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개발자들도 게임을 통해 플레이어를 갖고 놀고 있었던 것임을 의미한다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는 <핫라인 마이애미>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에서 참이다. 게임은 항상 플레이어에게 퀘스트, 도전과제 그리고 R 버튼을 눌러 때리고 X 버튼을 눌러 마무리하는 조작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명령을 제공하고 그 명령의 가짓수가 곧 게임의 부피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때 게임의 명령을 플레이어가 따르게 되는 이유는 어째서일까? 우선 첫 번째로 <핫라인 마이애미>의 주인공처럼 그저 재밌어서 따르는 경우가 있다. <핫라인 마이애미>의 주인공이 그에게 아무런 위협이나 조건 따위가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화 속 목소리에 그대로 따랐던 것은 그가 청소부들의 지시사항, 그러니까 대량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게임은 자신의 명령이 플레이어에 의해서 제대로 실행될지의 여부를 항상 즐거움만에 맡기지는 않는다. 즉, 자신이 명령받은 행위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 이들마저도 제대로 명령을 따르도록 만들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강제와 협박 같은 외부 목적적 수단들이 필요하고, 많은 경우에 게임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조건적이고 강제적인 명령 방식이 드러나는 장면을 우리는 <핫라인 마이애미>의 ‘숨겨진 결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숨겨진 결말’은 플레이어가 청소부들을 만나러 가기 전에 특정 패스워드를 찾아 놓고 비밀 본부에 있는 컴퓨터에 해당 패스워드를 집어넣어야지만 볼 수 있다. 이렇게 ‘숨겨진 결말’을 보기 위한 조건을 만족한 뒤 청소부를 만나면 주인공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이런 정신 나간 계획을 생각해 낼 수 있었지?” 청소부 A: 정신 나가...? 네가 깨달아야 하는 건 말이야- 청소부 B: 사람들이 네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만들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시 결과가 따를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거야. 청소부 A: 우리 사회 전체가 이 원칙 위에 지어져 있지. 여기서 청소부들은 게임 바깥의 현실에도 적용되는 조건 명령 방식, 협박에 대해 꽤 좋은 비평을 남기고 있다. 청소부들이 말하는 “우리 사회”가 위에서 최근 게임에 대한 논의들이 그 목적성에 대한 변명으로 천착한다고 언급했던 정치 · 사회의 표본이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하리라. “하지 않았을 시 결과가 따를 거”라는 협박으로 행위의 원인 항을 강제로 채우는 법, 규범, 도덕, 국가 등은 청소부들의 대사 그대로 “이 원칙 위에 지어져 있”다. 그런데 “이 원칙”,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정신분석에서 상징계의 근간을 이루는 ‘언어’가 거세 협박을 통해 신경증 환자들에게 습득되는 과정부터가 바로 “이 원칙”의 실사례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와 사회의 체계가 신경증 환자와 같은 모범 시민들에게 명령하는 방식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러한 현실의 명령 방식이 플레이어를 향한 게임의 또 다른 명령 방식으로 나타나는 양상에 좀 더 집중하기로 하자. 왜냐면 미리 말하건대,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이러한 명령 방식들은 플레이어-행위자의 즐거움에 기반한 비조건적이고 자발적인 명령 이행보다 현저하게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핫라인 마이애미>에서 “R을 눌러”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X를 눌러” 쓰러진 상대방의 머리를 밟아 으깨라는 명령에는 그 어떤 조건절도 선행하지 않지만, 게임은 때때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의 조건절을 플레이어 행위의 원인으로 설정하고자 ‘협박’을 일삼기도 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의 협박은 HUD에 떠올려져 있는 ‘체력 바’와 같이 주인공의 죽음, 즉, ‘게임 오버’의 위협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형태의 UI에서 행해진다. 이러한 방식의 명령들은 처음에 즉각적으로 플레이어를 게임플레이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UI의 대화 방식으로는 효과적이다. 당장 ‘죽음’이라는 협박이 가지는 급박함이 우선 게임에 몰입하기 이전까진 게임 외부의 경험적 현실에 안주하고 있던 플레이어의 주의를 끌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게임 안의 현실 속으로 몰입해 들어가 끊임없이 즐거움을 탐색하는 플레이어에게 저러한 협박은 그다지 지속적으로 효과를 발하지는 못한다. 물론 체력을 채우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그 행위들 자체에서 직접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플레이어는 게임플레이를 멈추지 않고 지속해 나갈 수 있지만, 이 시점에서 UI가 원래 가했던 협박의 조건절, ‘나를 채우지 않으면 주인공은 죽게 되고 너는 게임을 더 이상 플레이할 수 없게 된다’는 문구는 그 전과 같은 효력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으면 뭐 어떻단 말인가? 게임은 언제든지 다시 플레이할 수 있다. ‘게임 오버’는 영원한 것이 아니며 그저 죽기 전까지의 플레이 과정을 다시 돌려 플레이해야 한다는 일시적인 불편 정도밖에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불편과 싸우는 것 자체 또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플레이의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소위 ‘죽음’이 플레이어의 행위를 강제하는 협박으로 기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심지어 게임 속에서 일부러 자의적으로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한다. 체력이 바닥났으나 회복 수단까지 다 떨어졌을 경우, 스테이지를 거의 다 클리어했으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충분한 점수를 얻지 못했을 경우, 이러한 경우들에는 이제 게임 내에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의 가능성이 소진되어 더 이상 원하는 만큼의 즐거움을 얻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그저 빨리 죽고 다시 시작해 즐거움의 가능성을 원래대로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혹은 그냥 죽는 것 자체가 재밌어서, 죽는 행위 자체가 발생시키는 즐거움을 위해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죽기도 한다. 특히 주인공의 죽음 자체가 즐거움의 원천이 되는 게임들, 그러니까 주인공이 죽을 수 있는 방식이 매우 다채롭고 흥미로워 일부러 그 가능한 모든 죽음의 시나리오들을 전부 실험해 보도록 만드는 게임들의 경우에는 ‘게임 오버’의 협박이 더더욱이나 가당치도 않은 것이 된다. 특히 <데드 스페이스>, <사일런트 힐>, <바이오 하자드> 등의 호러 장르 게임들에선 괴물, 환경 등 주인공의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 각각이 저마다 고유하고 독창적인 죽음의 방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새로운 위협 요소와 마주칠 때마다 이 요소는 주인공을 어떻게 죽이게 될 것인지를 실험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서 혹자는 물을 수도 있다. 실재적 차원의 현실에서도 우리는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고, 단 한 번의 죽음이 곧 삶의 영구적인 끝을 의미하는데,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죽음에 플레이어가 급박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가 진정으로 게임 속 현실에 몰입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고. 그리고 그렇다면 게임에서 조건 없는 즐거움의 명령이 조건적인 협박식의 명령보다 유효하다는 걸 현실에서의 행위 원리와 비교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고. 우선 진정한 의미에서는 실재적 차원에서도 이미 언제나 “죽음의 경험이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 전에, 게임 속 세계 자체에서 플레이어의 의지에 따라 무한히 반복되는 죽음과 부활이 실재적으로 벌어지는 일인 것으로 간주되는 게임들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1) 보편적으로 게임들은 그 안에서 주인공이 죽었을 때 플레이어가 ‘불러오기’ 혹은 ‘이어하기’ 등의 기능을 이용해 다시 주인공을 부활, ‘재생성 (respawn)’시키는 과정을 게임플레이 바깥의 메뉴 영역에 국한되어 벌어지는 일인 것으로 ‘가정’한다. <핫라인 마이애미>의 예만 보더라도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몇 번이고 반복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카타나 제로>와 같은 게임들의 경우에는 주인공도 주인공이 속한 세계도 모두 주인공의 영원히 반복되는 죽음을 실재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인식한다. <카타나 제로>에서 주인공은 ‘크로노스 (Chronos)’라는 이름의 마약을 투여해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의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플레이하는 게임 속 전투 상황, 즉, 주인공의 끝없는 죽음을 포함한 그 모든 상황들은 주인공의 계산 속 경우의 수들인 것이다. 이렇게 됐을 경우 게임 내의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은 오직 주인공이 죽지 않고 모든 적을 처치한 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간 바로 그 경우의 수뿐일 테지만, 우리는 이 또한 허위에 불과함을 알고 있다. 니체는 “주관과 객관이라는 대립 그 자체가 미학에서는 도대체 부적합하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한 대로 “삶과 세계는 미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된다면 현실과 실재를 구분하는 데에도 주관과 객관이라는 기준은 전혀 무의미할 터이다. 2) “겨우 일주일이 지났지만, 마치 일년처럼 느껴지”고 “모든 말이 길어지고, 모기는 점점 더 시끄러워”지는 주인공 그 자신의 주관적 현실에선 그 모든 죽음의 경험들은 더욱 생생해질 여지도 없을 만큼 실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카타나 제로>에서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죽음은 주인공에게도 전혀 희석되지 않은 채로 아주 선명하게 실재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아가 <핫라인 마이애미>를 포함해 아무리 많은 게임들이 게임 내 세계 안에서 주인공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그 죽음을 경험하는 주인공 자신조차 자신의 죽음에 무지하다 하더라도, 정작 플레이어는 그 무한한 경우의 수를 모두 자신의 경험 안에서 플레이한다. 그렇다면 플레이어의 ‘주관적’ 실재에서 그 모든 죽음은 언제나 ‘실제’로 일어난 일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다시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근본적인 목적으로 돌아올 수 있다. 게임 내에서 명령되는 사항들을 플레이어가 이행하는 원리 중에서 조건절로 협박하는 명령보다 조건 없이 플레이어 자신의 즐거움을 자극하는 명령들이 언제나 더 강력하고 효과적이라면, 애초에 현실에서 플레이어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500시간 동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게 하는 원동력 또한 의심의 여지 없이 오직 즐거움뿐이리라. 그리고 굳이 게임이 예술의 영역 안으로 포섭되어야만 할 필요도 없겠지만, 게임은 플레이어가 그 어떤 외부적 목적도 전혀 안중에 놓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 안에서 즐거움만을 끌어내기 위해 플레이한다는 지점에서만 예술과 궤를 함께할 수 있다. 아니면 예술이 게임과 궤를 함께하든가. 물론 이 포섭과 범주의 선후는 중요하지 않다. 둘은 인간 행위라는 점에서 목적과 원리가 동일하니까. 아무튼, 그러니까 말하자면, 애초에 예술 현상이 무슨 외부적 효용을 위해 벌어진단 말인가? 1) 안티 오이디푸스, 547p. 2) 비극의 탄생, 99p.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 「오믈렛에 넣을까요?」 : Taste good or Taste fool!
비디오게임이 미각의 재현에 언제나 주춤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먼저 미각을 전달할 ‘출력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치명적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이 사실의 재현매체도 아니거니와, 아직까지 맛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음식 그 자체밖에 없다는 점에서 크게 문제될 만한 사유는 아니다. 그러니 또 다른 문제 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 Back 「오믈렛에 넣을까요?」 : Taste good or Taste fool! 30 GG Vol. 26. 6. 10. 맛시모 몬타나리는 「Food is Culture」에서 요리를 언어적 체계로 비유한다. 각 재료는 어휘소로 기능하고, 조리법은 문법이 되어 최종적으로 의미체계(요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직접 요리를 해보면 이 서술의 그럴싸함을 느낄 수 있다. 진간장인지 양조간장인지, 물로 어느 정도 비율로 희석하는지에 따라 간장의 용도가 달라지는 그 감각은 확실히 동의 어휘의 용례와 배치에 따른 의미 변화와 닮아있다. 맛의 체계라는 것은 그만큼의 복잡함을 담지한다. 최근 전세계 요리들의 관계를 고작 2mb에 담았다며 화제를 모은 KAIKAKU.AI 에서 발표한 「Epicure: Navigating the Emergent Geometry of Food Ingredient Embeddings」에서도 각 재료를 어휘(vocabulary)와 토큰(token)으로 규정해 관계의 의미론적 해석을 진행했다는 것을 보면, 몬타나리의 사유는 상당히 앞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비디오게임이 미각의 재현에 언제나 주춤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먼저 미각을 전달할 ‘출력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치명적이다. 물론 비디오게임이 사실의 재현매체도 아니거니와, 아직까지 맛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음식 그 자체밖에 없다는 점에서 크게 문제될 만한 사유는 아니다. 그러니 또 다른 문제 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맛’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게임 메커닉적으로 재현하는 문제가 말이다. 몬타나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게임 내부에 늘어선 어휘소들이 그 조립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된다. 그런데 차라리 언어인 쪽이 더 편할 지도 모른다. 언어는 발화 그 자체로 그 맥락을 짚을 수 있다는 점에서 최종 출력의 형식이 상대적으로 투명하다. 하지만 미각은 그 본질적인 전달 불능성 덕분에 더 곤란한 상태다. 어휘소의 맥락적 차이가 다른 ‘맛’으로 발현되는 것을 어떻게 수치화된 세계에 투영할 것인가. 사실 이는 영 가망이 없는 일이다. 요리 메커닉을 가진 여러 게임들이 적용하고 있는 ‘능력치 버프’ 같은 건 솔직히 궁여지책일 뿐이다. 냉면에 만두를 곁들인다고 지능이 상승하지는 않으니까. 그러니 「고향만두 게임」처럼 고정된 레시피가 아니면 다 틀렸다고 길길이 날뛰는 사장님이 등장하게 된 것 아닐까 싶다. 문법적이라고 전제할 때 이에 수반하는 부침은 그 연계의 복잡성에 있다. 김치와 에이스 크래커를 같이 먹으면 김치전의 맛이 난다(실제로 난다!)는 사실은, 김치와 에이스 크래커를 분리해 먹을 때와는 다른 의미화, 그러니까 다른 ‘풍미’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에 야채 크래커를 같이 씹으면 야채전의 느낌이 날까? 해물향이 강한 과자와 함께 먹는다면? 개별화된 재료가 가지는 의미소가 ‘더하거나 빠짐으로써’ 그 최종적 의미를 좌우한다는 감각은 무엇보다 ‘적당히 예상치 못한 의미 창출의 인과관계’라는 점에서 재현이 쉽지 않다. 재차 재현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인과관계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의미 자체는 개별 요소들의 조합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변용성이 있지만, 하나의 법칙(=레시피)으로 결정되면 그 결과는 재현가능한 영역에 오른다. 지금껏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오히려 이 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게임은 다름아닌 단어를 직접 타이핑해 게임 오브젝트를 생성, 퍼즐을 푸는 5th cell의 「스크리블너츠」 시리즈다. 결국 몬타나리가 이겼다. 요리는 언어가 맞는 것 같다. * 「스크리블너츠 언리미티드」 이제 「오믈렛에 넣을까요?」(이하 「오믈렛」)의 이야기를 할 시간이다. 물론 이 게임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요리’를 다룬다고 하긴 어렵다. 오믈렛은 이미 잘 만들어져 있고, 플레이어는 그저 토핑을 올릴 뿐이다. 하지만 앞서 김치와 에이스 크래커의 사례는 이 「오믈렛」의 게임플레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종의 재료가 배치되는 방식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본래 이 게임은 2024 GMTK 게임잼에서 4일만에 기본이 완성된 게임으로, 초기에는 배치라는 역학이 들어간 유사 「발라트로」같은 느낌의 게임이었다. 현장에서 호평을 받아 곧 얼리액세스로 출시 했으며, 이후 여러 의견들을 받아 재료의 종류, 태그에 의한 분류, 인접과 비인접에 따른 판정 차이, 끈적임/매움(불탐)/상함/포장됨 등의 재료 상태 같은 것들이 끼어들며 더 복잡한 연결 방식을 다루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발매된 게임은 무엇을 배치하느냐에 국한된 플레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제는 어떤 태그의 재료를 어떤 재료에 인접시키거나 떨어뜨려 놓느냐, 특정 재료가 어떤 방향을 향하느냐, 오믈렛 위에 특정 태그의 재료가 몇개나 있느냐… 같은 복잡한 조합들을 고려해야한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오믈렛」은 현존하는 게임 중 가장 다이내믹하게 식재료의 조합과 조합 효과를 가진 게임이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그래서, 「오믈렛」이 만들어낸 이 콤비네이션이 실제로 풍미를 작동시킬 수 있을까? 지금껏 요리의 가능성, 식재료의 조합에 의한 의미화의 가능성 따위를 말했지만 이런 가능성의 추적은 그저 비디오게임을 다시금 ‘시뮬레이션’으로 만들려는 욕망일 뿐이다. 애초에 맛을 출력할 수 없는 이 매체가 맛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든 어차피 수치화된 세계에 가상적으로 부여된 출력물에 불과하다. 재료의 조합에 다양성은 줄 수 있더라도 그 결과물을 ‘그럴싸하게’ 세계에 입히는 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그리고 「오믈렛」은 이 불가능성을 너무 잘 아는 게임이다. * 랍스터 꼬리가 아무 채소나 붙여 먹는다고 뛰어난 풍미를 낼 수 있을까? 이 게임이 재료의 조합과 맛의 창출을 진지하게 다뤘다면 지금만큼 즐거운 게임이 되진 못했을 것이다. 「오믈렛」의 테마, 그러니까 동물 교직원에게 지급하는 급식이라는 설정과 ‘하나만 삐끗해도’ 해고되어버린다는 우스꽝스러운 설정은 이미 요리라는 행위를 그다지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따라서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한 재료의 교직을 만들어내는 시스템 역시도 그다지 진지한 시스템이 아니다. 이런 태도는 테마를 뛰어넘는다. 이 게임의 요리는, 그야말로 엉망이다. 식재료라고 하는 것은 정갈하게 내려오지 않는다. 자른 당근이나 프렌치 프라이가 포장도 벗기지 않은 채 그대로 눈 앞에 떨어진다. 이 정도는 약과다. 통조림이 깡통 그대로 레일 위로 올라온다. 매운 음식은 너무 매운 나머지 불타고 있으며 가만히 놔두면 새카맣게 타버린다. 심지어는 다른 재료가 붙어있다면 그 재료에 불이 옮겨붙기까지 한다. 물론 이 설정들은 게임에 유쾌한 퍼즐의 요소를 부여한다. 불붙은 재료는 빠르게 흔들어서 불을 끌 수 있다(물론 불이 붙은 동안 음식을 내면 +3이라는 꽤 높은 점수를 준다!). 종이나 비닐 포장 정도는 매운 음식의 불을 붙여서 태우면 벗겨낼 수 있다. 아니면 식재료(!)로 제공되는 가위를 이용해 잘라내도 된다. 통조림 역시 식재료로 제공되는 렌치를 이용해 뚜껑을 떼고 흔들면 내부의 물건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요소에 대한 상찬은 시뮬레이션으로의 회귀나 다름없다. 「오믈렛」은 오히려 이러한 ‘요리 시뮬레이션’으로의 가능성으로부터 이탈하려고 애쓴다. 「발라트로」의 ‘조커’처럼 상시적으로 효과를 주는 ‘도우미’는 게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관계와 효과를 뒤집는다. 곰팡이 핀 식재료에 오히려 보너스를 주는 ‘향상된 곰팡이’가 대표적이다. 이 도우미를 선택하면 오믈렛 위에 곰팡이 가득한 식재료를 가득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된다. 영양학이나 안전, 아니 하다못해 맛의 문제는 여기서 완전히 배제된다. 어차피 만족도는 점수로 체크되고 점수가 높다면 만사형통이기 때문이다. * 이렇게 곰팡이 투성이라도 점수만 높다면 상관없다. 그렇다면 「오믈렛」이라는 게임은 바로 맛(또는 요리)과 비디오게임의 충돌지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껏 맛의 재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명했지만, 결국 비디오게임이 맛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맛이라는 것의 효용을 어떻게 수치화와 결부시킬 수 있을까? 맛있음의 정도를 수치화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시장이 반찬’이라는 통속적인 잠언처럼 맛이 기능하는 바는 식재료 자체가 아니라 상황과 인식, 감정 등에 따라서 복잡하게 요동친다. 또한 설령 동일한 조건을 부여하더라도 맛 그 자체의 수치적 치환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상한 던전」 시리즈의 ‘만복도’처럼 배부름의 정도야 표기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오믈렛」이라는 게임이 가진 유쾌함은 이 충돌에서 발생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수치를 부여해야하는 게 숙명이라면 오히려 현실로부터 이탈해버리자. 「오믈렛」은 상대적으로 정교한 시뮬레이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도 그곳으로부터 가장 멀리 이탈하려고 애쓴다. 애초에 ‘가장 정교한 시뮬레이터’ 따위가 환상이며 오독이지 않겠는가. 다양한 가능성과 시뮬레이션의 정도는 어차피 다른 문제다. 완전한 현실이 될 수 없다면 비현실의 힘을 가능한 한 유쾌하게 증가시켜버리자. 따라서 「오믈렛」은 비디오게임의 양가적 논제, 약점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탄탄한 기반인 부분을 드러낸다. 그것은 현실 시뮬레이션의 근본적 불가능성이다. 「오믈렛」은 정말 과감한 메타적인 농담이나 다름없다. 그래, 비디오게임은 리얼리티의 시뮬레이션을 목적하지도 않고 실현하더라도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다. 맛을 어떻게 현실에 가깝게 재현할 것인가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몰입해봐야 그다지 효용이 없다는 의미다. 플레이어들이 현실에서 곰팡이 덩어리 오믈렛을 누군가의 입에 처넣을 게 아니고서야, ‘어차피 이정도의 효과입니다’라며 적당히 타협시키면 그만이다. 실제로 랍스터 꼬리에 채소를 얹으면 맛있으니까 배치하는 게 아니다. 그저 규칙이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먹여선 안된다는 것을 구태여 먹도록 만들고 그 맛을 음미하는 모습(=점수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며 일탈의 쾌감을 느끼는 게 더 의미있는 일 아닐까. 그래, 비디오게임은 종종 일탈의 쾌락을 시도할 수 있도록 놔둔다는 점, 아니 때로는 그것을 매우 긍정해준다는 지점에서 즐길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바보같은 긍정을 받을 때에는, 비디오게임과 시뮬레이션을 동음이의어의 위치로 슬쩍 바꿔치기하고 싶어진다. 그래야 나의 바보같은 일에 대한 긍정이 현실화되는 기분이 드니까. *오직 성과는 점수로만 이해된다. 따라서 점수만 만족한다면, 언젠가 인간에게 금지된 걸 먹여보고 싶었다는 바보같은 욕망조차 긍정받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지연시간을 두고 벌이는 개발자와 이용자의 개선과 적응
현대 게임 서버의 개발자들은 0.3초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게임 서버를 개발한다. 이부분을 명시적으로 정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0.2초~0.5초에서 지연이 발생했을 때도 자연스럽게 게임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설계해야 한다는 부분은 경험을 통해서나 혹은 선배 개발자들의 조언을 통해 이어져 내려오기도 한다. < Back 21 GG Vol. 24.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중국의 레트로 게임: 8비트 시대의 흔적들
21세기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산업 규모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 이전의 상황이나 흐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그 이전의 역사, 그러니까 ‘8비트 게임 시대’를 고찰함으로써 오늘날 중국 게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이 글은 중국의 8비트 게임 시대를 조망하고 그 역사가 지닌 함의를 논한다. 이 글은 또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초기 게임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 Back 02 GG Vol. 21.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Deng Jian (邓剑) Associate Professor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Soochow University. Focuses on digital game cultural studies as a primary research interest, and writes a column on games, among other pieces, for The Paper. (Game Researcher)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협업, 경쟁, 방송: MMO로부터 라이브 스트리밍과 온라인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21세기 북미 게임씬
만약 당신이 2000년 이후에 태어난 게임팬이라면 성장 과정에서 게임 매체를 비교적 쉽게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문화적(countercultural)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현 시점의 게임은 주류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으며, 플레이어들이 직접 제작한 게임 관련 콘텐츠의 양도 엄청나게 방대해져서 게임을 종료한 뒤에도 좋아하는 게임들을 눈과 귀로 계속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 아무리 마이너한 게임일지라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거의 무한히 느껴질 지경이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MMORPG, 온라인게임, 북미, 스트리밍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Game Researcher)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역전재판 456 오도로키 셀렉션> : 법정 미스터리와 내재적 오리엔탈리즘의 그림자
”이의있음!“ <역전재판>하면 가장 먼저 이 대사가 떠오른다. 나는 이 게임 시리즈를 2009년부터 하기 시작해서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주 재미있게 하고 있다. 주인공 변호사의 ”이의있음“ 이란 외침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한다. 2009년 당시만 해도 한글판이 정식 발매되지 않았던 때라서 모바일 폰으로 영문판을 사서 플레이했고, 스마트폰, 스마트패드가 생긴 뒤에는 어플리케이션을 구입해서 일본어판으로 플레이 했다. <역전재판>은 2019년이 되어서야 1,2,3편의 합본판이 한글화가 되어 정식 출시되었다. 그리고 올해 초 4,5,6편의 합본판이 출시된다는 소식에 너무나 반갑고 기대가 컸다. 어른이 되어서 하는 <역전재판>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했다. 변호사가 외치는 ”이의없음“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만들까? < Back <역전재판 456 오도로키 셀렉션> : 법정 미스터리와 내재적 오리엔탈리즘의 그림자 18 GG Vol. 24. 6. 10. 본문은 <역전재판> 시리즈의 주요 설정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의있음!“ <역전재판>하면 가장 먼저 이 대사가 떠오른다. 나는 이 게임 시리즈를 2009년부터 하기 시작해서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주 재미있게 하고 있다. 주인공 변호사의 ”이의있음“ 이란 외침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한다. 2009년 당시만 해도 한글판이 정식 발매되지 않았던 때라서 모바일 폰으로 영문판을 사서 플레이했고, 스마트폰, 스마트패드가 생긴 뒤에는 어플리케이션을 구입해서 일본어판으로 플레이 했다. <역전재판>은 2019년이 되어서야 1,2,3편의 합본판이 한글화가 되어 정식 출시되었다. 그리고 올해 초 4,5,6편의 합본판이 출시된다는 소식에 너무나 반갑고 기대가 컸다. 어른이 되어서 하는 <역전재판>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했다. 변호사가 외치는 ”이의없음“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만들까? * <역전재판 456> 메인 타이틀 <역전재판> 시리즈는 대표적인 법정 미스터리 게임이다. <게임제너레이션> 2호에 "변호사의 눈으로 본 역전재판"이라는 기사가 수록된 바도 있다. 2001년 일본에서 첫 작품을 출시한 이후로 스핀오프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11개의 시리즈가 발매된 <역전재판>은 전세계 팬들에게 추억의 게임이자 다음 시리즈를 계속해서 기다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역전재판> 시리즈는 주인공인 변호사가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을 변호하여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 게임이다. 게임은 크게 재판을 위한 증거와 정보를 수집하는 탐정 파트와 피고인, 증인, 검사와 협상을 하는 법정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1인칭 비주얼 노벨 장르인 <역전재판>은 사건의 흐름을 파악하고 진범을 밝혀내는 과정을 변호사인 주인공의 시점으로 보여주기 위해 변호사가 탐정의 역할을 수행한다. 탐문 조사와 증거 수집 등이 탐정 파트에서 진행되고, 법정 파트에서는 피고인의 변호를 위해 변호사가 심리 중에 진범을 기소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의 변호사 역할을 보조하는 조력자로 미스터리한 존재가 등장하는데, 바로 ‘영매사’다. ‘영매’는 역전재판을 본격 미스터리 법정 추리극으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장치다. 미스터리 서사에는 '서스펜스'와 '본격 미스터리' 두 가지 종류의 이야기가 있다. 이 두 가지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는데, 서스펜스가 수수께끼에 대한 ‘흥미’가 추진력이 되어 독자를 끌어들이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본격 미스터리는 수수께끼가 논리적으로 ‘해명’되는 과정이 주안이 되는 이야기를 뜻한다. 이는 2018년 오사카에서 개최된 "GAME CREATORS CONFERENCE'18(GCC'18)" 에서 <역전재판1, 2, 3, 4>의 제작자인 타쿠미 슈가 <역전재판> 시리즈에 대해 설명하며 했던 말이다. 그는 <역전재판>을 ‘본격 미스터리’라고 설명하면서, "본격 미스터리에서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 약속된 규칙과 전제만 있다면 어떤 요소든 논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역전재판> 초기 시리즈의 '영매'라는 오컬트적인 요소다. <역전재판> 시리즈의 등장인물 중에는 영매사가 존재하고, 법정에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와 증언을 시키거나, 주인공인 나루호도 류이치는 영매가 된 영혼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이 게임에서 ‘영매’라는 장치는 ‘단서’와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미스터리 서사를 완성시킨다. <역전재판>은 선형적이고 단일한 스토리라인을 따르는 미스터리 서사물에 가까운 게임이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영매는 선형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는 추리 미스터리 장르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생겨나는 '반복'과 '전형'을 타파하고자 만들어진 하나의 장치로 볼 수 있다. <역전재판>을 문학의 미스터리 장르와 비교한 유승환(2017)은 <역전재판>이 게임이라는 장치를 통해 이야기(서사)를 놀이의 대상으로 만들고, 독자(플레이어)들이 게임의 서사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체험의 공간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게임의 내러티브와 ‘영매’와 같은 색다른 게임적 요소를 통해 게임 속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재판 자체가 하나의 체험이자 놀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역전재판>은 그저 단순히 법정에서 피고인을 무죄로 만드는 게임이 아니라, 변호사 주인공이 증거와 정보를 수집하는 탐정 역할도 수행하고, 신비로운 존재인 영매사에게 새로운 단서와 조언을 얻기도 하면서 억울한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미스터리=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일종의 추리 게임이 된다. 호평을 받았던 초기 시리즈에 이어서, 이러한 서사 전개의 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후기 시리즈인 <역전재판 456>가 차례대로 출시되었다. 초기 제작자인 타쿠미 슈가 하차한 뒤, 야마자키 타케시가 디렉팅에 참여한 후기 시리즈에서도 영매처럼 ‘단서’와 ‘조력’의 역할을 하는 색다른 게임 시스템이 새롭게 등장한다. 반복되는 구조상 지루함을 깨부숴주는 장치로써 주인공 오도로키 호스케의 '잡아내다'나 키즈키 코코네의 '심리 스코프'가 그 예다. 이 두 가지 시스템은 피고인이나 증인이 새로운 증언을 하도록 만드는 장치로 활용된다. ‘잡아내다’는 상대방의 버릇을 찾아 어떤 증언을 할 때 긴장을 하는지, 무엇을 숨기려고 하는지를 잡아낸다. ‘심리 스코프’는 상대방의 증언과 감정의 ‘모순’을 찾아 새로운 단서를 끄집어낸다. * <역전재판 4>의 ‘잡아내다’ / <역전재판 5>의 ‘심리 스코프’ <역전재판 6>에서 처음 등장한 '아니마의 비전'은 죽은 자가 사망하기 직전 몇 초 가량의 감각을 재현하여 보여주는 영적인 능력이다. 이 영적 능력은 전작들의 장치들이 단순히 ‘단서’나 ‘조력’의 역할을 했던 것과는 달리, 오컬트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허용된다. 이는 <역전재판 6>의 배경이 1~5편과는 다르게 일본이 아니라 ‘쿠라인 왕국’이라는 가공의 국가를 무대로 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이다. 쿠라인 왕국은 영매가 가능한 자만이 왕이 될 수 있는 신정국가로, 죽은 자의 혼(=아니마)을 신앙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매의 역할도 기존 작들과는 다르게 나타나고 법정에서도 ‘아니마의 비전’이 더욱 크게 자리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아니마의 비전’만으로 손쉽게 피고인에게 유죄가 내려질 만큼 이 장치는 결정적인 증거로 작동한다. <역전재판 6>은 시스템적으로 완벽하게 논리적 부정을 하지 못하도록 현실국가 일본이 아닌 가상의 국가를 무대로 세우고, 오컬트적 요소를 지닌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서 게임 난이도는 높이고 색다른 미스터리적 재미를 가져왔다. * <역전재판 6>의 ‘아니마의 비전’ 그렇다면 갑자기 왜 <역전재판 6>의 배경은 일본에서 쿠라인 왕국으로 옮겨왔을까? 그것은 아마도 타쿠미 슈가 언급했듯이 미스터리를 위해 준비한 새로운 게임 시스템인 ‘아니마의 비전’을 ‘작가와 독자 사이에 약속된 규칙과 전제’를 통해 논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기 위함일 것이다. <역전재판 6>에는 ‘아니마의 비전’ 뿐만 아니라 미스터리를 위해 활용된 설정이 한 가지가 더 있다. 쿠라인 왕국에는 '변호죄'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는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이를 변호한 변호사도 동일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설정이다. 이는 게임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주인공이 변호에 실패하면 사형에 처해져 게임오버가 된다'는 게임적 리얼리즘(아즈마 히로키, 2012)의 요소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변호죄'는 플레이어가 조금 더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늘어지는 스토리에 긴장감을 주는 패널티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전의 작품들과 <역전재판 6>의 가장 큰 차이점 혹은 흥미로운 지점이 여기에 있다. <역전재판 6>에서 쿠라인 왕국의 공주는 '아니마 비전'만이 진실이며 범죄자를 변호하는 변호인은 모두 악인이라고 규정한다. 이 어린 공주에게 깨달음을 주는 사람은 다름아닌 일본인 변호사(주인공)다. 또한 변호죄로 인해 변호사가 모두 죽거나 사라져버린 쿠라인 왕국에서 23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아내는 이 역시 일본인 변호사다. 쿠라인에도 변호사 출신 혁명파가 존재하지만 독재 권력 앞에서 힘을 못 쓰고 결국 혁명의 기폭제가 되는 것은 일본인 주인공이다. 이러한 설정들은 기존 편들과는 다르게, 우월적 위치에서 다른 나라를 일깨우고 지도하는 일본(혹은 일본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오리엔탈리즘과는 다르지만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을 재현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주인공의 시선은 다정하며 타 문화를 업신여기지는 않지만, 왜인지 모르게 현실 국가인 일본에서 가상 국가인 쿠라인 왕국으로 배경을 옮겨오면서, 일본 혹은 일본인(주인공)의 위치는 과거 동양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위치가 된 것 같다. 쿠라인 왕국에 대한 묘사도 서양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힌두교의 빈디 장식과 유사해 보이는 이마의 점과 의상 디자인, 배경으로 등장하는 건물양식, 산스크리트어와 비슷한 언어체계 등 쿠라인 왕국의 설정에는 힌두교와 불교 문화권의 요소들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특히 작중에서 혁명군의 깃발에 그려진 용의 그림은 부탄의 국기와 매우 흡사하다. 실제로 <역전재판 6>을 접해본 이용자들은 쿠라인 왕국의 묘사가 부탄이나 티베트 지역 등 히말라야 인근의 국가들의 문화적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다양한 추측들을 하고 있다. 정체불명의 동양적 이미지들이 혼종된 쿠라인 왕국은 게임이 창조해 낸 가상의 국가가 아닌 정체성 없는 기묘한 국가의 모습으로 <역전재판 6>의 무대가 되었다. 쿠라인 왕국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같은 동양권 국가들 내에서도 오리엔탈리즘을 내재화한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으로 다른 동양의 국가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한다. 물론 <역전재판>의 게임적 재미 때문에 게임을 즐기는 이들에게 이런 문제의식은 무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가상의 동양 국가 쿠라인 왕국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내재한 채로 재현된 것이라면, 이는 제작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충분히 비판과 우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역전재판>이 동양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역전재판 6>의 ‘쿠라인 왕국’과 관련된 스크린샷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서는 서양의 관점에서 바라본 동양에 대한 편견이 수많은 텍스트들과 권위에 의해 객관과 보편의 지위를 획득했다고 말한다(Edward W. Said, 1991). 이러한 인식은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동양 국가들간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동양 내부에서 다시 서로를 대립적으로 구별하는 의식과 담론인 내재화된 오리엔탈리즘을 의미한다. 그러한 양상 중 하나인 일본적 오리엔탈리즘은, 아시아의 일원으로 자신을 동일한 하는 것이 아닌 타자적 시각으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일본을 구별하려는 자의식이 강화된 동일시와 객관화의 산물이다(강상중, 1997; 윤지관 외, 2006). 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시선이나 서구의 제국주의를 수용한 일본은 아시아에 대해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을 지니게 되었다(최유경, 2009). 일본에서 만들어진 게임에서 등장하는 종교적이고 신비한 가상의 동양권 국가가 제3세계적인 묘사로 등장하고, 다양한 동양 문화권의 요소를 뒤섞어 쿠라인이라는 가상 국가를 창조했다는 점,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이미지들만 취사선택하여 재구성한 측면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이질감은 피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역전재판 6>은 오리엔탈리즘적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미국 연방정부와 많은 주정부, 기관들이 공식 문서에서 '오리엔탈(Oriental)'이라는 단어 사용을 지양하고 있다. '오리엔탈'이라는 단어가 아시아인들을 비하하거나 고정관념화하는 차별적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동양인을 하나의 단일 집단으로 환원시키고, 서구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로 대상화하는 시각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에 따라 2016년 이후 미국 연방정부 법전과 공문서에서는 '오리엔탈'이라는 표현 대신 '아시안(Asian)'이란 표현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특정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오리엔탈리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예술계에서 '오리엔탈풍'과 같은 단어는 아직까지도 사용되고 있고, 오리엔탈리즘적 고정관념은 일상 도처에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다. 동양의 내재적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설명한 진태원(2014)은 동양인들 자신도 그 틀에 따라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상상하도록 만들어 '오리엔탈리즘과 다른' 동양을 사고하는 것을 어렵도록 만든다고 했다. 한국적 미스터리 장르와 오컬트 장르의 교차성에 대해 설명한 박인성(2022)은 주술적인 요소 역시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통해 오컬트 장르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장르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환경과 로컬적인 특수성, 문화의 시대적 상황과 교섭하면서 더욱 개성적으로 갱신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에 <역전재판 6>에서 ‘아니마의 비전’과 유사한 시스템을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일본을 배경으로 일본인 영매사 캐릭터가 수행했다면, 이는 또다른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신비 현상이나 무속, 로컬리티의 성공으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 초자연적이거나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된 미스터리 장르 게임은 <역전재판> 이후로도 계속 등장해왔다. 데스게임 학급재판이 펼쳐지는 <단간론파> 시리즈나 한국에서 개발한 초능력 추리 어드벤처 게임인 <스테퍼 케이스>, 타임루프를 주제로 한 <레이징 루프> 등이 그 예시이다. 이 요소들은 미스터리 추리 장르에 있어서 스토리의 기발함, 다시 말해 ‘상상력의 확장’을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역전재판 6>에서 보여준 쿠라인 왕국의 요소들 역시 위와 같은 ‘상상력의 확장’을 위한 장치임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일본의 내재적 오리엔탈리즘적 요소로 읽힐 위험이 있다. 게임과 서사를 확장하고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게임 시리즈가 나이를 먹어가듯이 게임 이용자도 나이를 먹는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게임적 요소나 상상력의 확장을 위한 요소, 이념, 재미 모두 시대에 맞게 성장하거나 진화해야 한다. 나루호도 류이치와 오도로키 호스케, 키즈키 코코네의 법정 이야기를 이대로 멈추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이 작품을 아주 오랫동안 좋아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 시리즈가 출시되면 좋겠다고 바라는 입장에서 이 게임의 문화적 비평이 어렵게 느껴졌던 것과는 별개로, <역전재판>이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뻔하게 반복되는 구조와 서사라는 평가를 '역전'할 수 있는 새롭고 기발한 이야기의 법정 미스터리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이어지는 역전에 ”이의없음!!!“ 참고자료 강상중. (1997).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이산. 강신규. (2021). 《서브컬처 비평》. 커뮤니케이션북스. 박인성. (2022). 미스터리란 무엇인가 한국적 장르 서사와 미스터리 ① - 오컬트와 미스터리의 친연성과 교차성. 계간 미스터리, 270-284.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2012).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장이지 역. 현실문화. 유승환. (2017). 게임과 서사의 충돌과 그 극복의 노력. 『스토리앤이미지텔링』 제14집. 윤지관, 정정호, 태혜숙, 설준규, 성은애, 김성곤, 이경원, 고부응, 이석구, 김상률, 오길영. (2006).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화해와 공존으로》. 책세상. 진태원. (2014). "오리엔탈리즘과 다른 동양은 존재하는가". 한겨례. 책과 생각. 최유경. (2009). 조선을 향한 일본의 오리엔탈리즘 - 일본근대 미술 속의 조선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Tags: 오리엔탈리즘, 판타지, 법정물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콘텐츠연구자) 이미몽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닌텐도 게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스팀덱을 할부로 구매하여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선 문화매개를 전공했고, 현재는 일본의 리츠메이칸 대학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입니다. 게임과 웹툰 등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와 문화를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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