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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s View] 시간 속의 게임, 게임 속의 시간
좋으나 싫으나 우리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존재들이 살아온 시간의 시간의 누적을 기록해 역사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 누적 속에서 놀이는 사실 오랫동안 잉여시간 취급을 받아온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 Back [Editor's View] 시간 속의 게임, 게임 속의 시간 21 GG Vol. 24. 12. 10. 좋으나 싫으나 우리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존재들이 살아온 시간의 시간의 누적을 기록해 역사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 누적 속에서 놀이는 사실 오랫동안 잉여시간 취급을 받아온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21세기 들어 놀이에 들어가는 많은 시간들은 더 이상 잉여에 머물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놀이는 그 자체로 돈이 드는 일이 되었고, 놀이를 만들어내는 기업은 상품으로서의 놀이를 팔아 이윤을 얻습니다. 생산의 체계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 21세기의 놀이이고, 아마도 그 대표적인 도구가 디지털게임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시간 속에서 게임은 이제 꽤나 공식적인 시간의 통제 안에 놓입니다. 게임하는 시간을 통제하고 단속하는 모습들은 PC방과 온라인게임사의 정액제 요금, 셧다운제, 일정 시간동안 플레이하면 경고문이 뜨는 것과 같은 직접적 제도 뿐 아니라 게이머들 스스로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내재적 규율로서도 작동합니다. 게임 시간은 어떤 이들에겐 생산의 잉여시간이 아니라 생산시간과 경합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죠. 시간 속의 게임만이 게임과 시간의 전부 또한 아닙니다. 우리는 게임 안에서 작동하는 시간도 목도합니다. 하드웨어의 한계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시간 지연, 누적된 플레이시간이 계량화되는 아이템이라는 개념의 발흥은 이제 게임과 시간이 대단히 복잡한 방식으로 얽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GG 21호는 게임과 시간이 얽히는 여러 모습들의 일부를 포착하고자 했습니다. 이 때의 시간은 물리량으로서일 수도 있고, 다분히 철학적인 개념일 수도 있고, 혹은 산업화와 표준화의 틀 안에서 작동하는 객관적 기준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게임과 시간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일이 디지털게임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사실임을 다시금 체감합니다. GG 21호가 발행되는 2024년 12월의 시간은 사회적으로는 좀더 급박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빠르게 째깍거리는 엄혹한 시간을 빨리 벗어나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재현, 시뮬레이션 그리고 구현이라는 꼭짓점의 버뮤다 삼각지대
게임에서의 기술 구현은 이처럼 재현과 시뮬레이션 둘 중 어느 쪽으로도 수렴되지 않으며, 둘의 합이 성공적인 구현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기술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전적으로 기술 자체의 구현에 몰두하는 것과도 다른 이야기다. 드물게 범례처럼 떠오르는 각각의 개별 작품들을 통해서 여전히 명확히 잡히지 않는 좌표를 다시 한번 확인할 따름이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 초기 3D 그래픽의 미학, 인지적인 디지털 물성에 관하여
2010년대를 중심으로 다시 반짝였던 포스트 디지털 담론에서 이어지는 미술 작업의 비쥬얼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최신의 리얼한 그래픽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차라리 그들의 작업에서 나타난 비쥬얼적 특징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볼 수 있었던 낮은 품질의 3D 그래픽에 가까웠다. 이는 보다 리얼하고 현대적인 3D 그래픽 이미지를 미술 작가 개인이 구현하기에는 소요되는 자본과 기술의 한계가 따른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자면 적당한 수준의 3D 그래픽을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는 굉장히 접근성이 용이해졌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들은 로우-파이하고 한편으로는 레트로, 노스탤지어적인 기억과 선명함이 억압되는 특정한 디지털 이미지의 미학에 기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 Back 초기 3D 그래픽의 미학, 인지적인 디지털 물성에 관하여 02 GG Vol. 21. 8. 10. 작년 앞서 해보기로 발매한 하이퍼 FPS 장르의 게임 〈울트라킬〉은 그래픽만 놓고 보면 도저히 최신 게임으로는 보이질 않는다. 마치 목각인형처럼 보이는 각진 3D 모델링에 저화질의 텍스처는 흡사 도트 이미지로 보일 지경이다. 물론 이같은 조야한 그래픽 비쥬얼은 ‘레트로’ 스타일을 표방하며 제작된 이 게임에서 의도된 것이다. 레트로란 지나간 과거의 특정한 시대적 양식을 다시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울트라킬〉이 참조하는 과거는 90년대 중후반으로, 최초로 비디오 게임에 완전한 3D 그래픽이 도입되기 시작하던 때이다. ‘3D 폴리곤 모델링’과 ‘텍스처 매핑’ 기술의 도입을 특징으로 하는 당시 게임의 3D 그래픽은 가히 혁신적이었다. 물론 지금 와서 본다면 여러모로 조악하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그때는 이와 같은 완전한 3D 그래픽이 게임에서 구현되는 것은 훨씬 나중의 일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였다. 앞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당시로써는 컴퓨터로 연산 가능한 폴리곤 수의 한계로 인해 마치 목각인형처럼 각져 보이는 캐릭터와 오브젝트의 모습과 저화질의 텍스처로 인해 색과 이미지가 뭉개져 보이는 등의 그래픽 결함은 훤히 눈에 보이고 있었다, 물론 그와 같은 게임 리소스에 의한 문제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디스플레이 기기의 해상도 또한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낮았다. 눈에 띄는 문제는 대부분 각짐의 문제와 관련되어 나타났다, 적은 폴리곤 수로 인하여 각져보이는 3D 모델링뿐만 아니라 흔히 ‘계단 현상’으로 불리우며 선이 구불구불하게 보이는 그래픽 문제는 당시 3D 그래픽 초기 역사의 대표적인 결함이었다. 물론 그와 같은 문제들은 컴퓨터의 연산 능력과 디스플레이 기기의 발달 그리고 안티 앨리어싱 기술의 도입 등에 의해 점차 해결되어 갔다. 이제는 가장 뛰어난 게임 그래픽을 살펴볼 수 있는 최신 AAA 게임의 트레일러가 발표될 때 과거와 같은 각진 폴리곤 모델링이나 계단 현상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울트라킬〉의 게임 플레이 이미지 (출처: https://hakita.itch.io/ultrakill-prelude )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울트라킬〉의 그래픽은 초창기 3D 그레픽의 대표적인 결함들을 오히려 전면적으로 드러내며 중요한 비쥬얼 형식으로 삼는다. 〈울트라킬〉은 의도적으로 로우-파이한 3D 그래픽 스타일을 지향하며, 흔히 우리가 3D 게임 그래픽의 결함이나 한계로 여겼던 요소들을 감각적인 스타일로 다시 제시한다. 과거에는 한계로서 여겨졌던 낮은 해상도나 각진 3D 모델링, 뭉개진 텍스처, 어색한 에니메이션 등의 요소가 이제는 특정한 미적 양식이 되어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의 재현 기술 시각예술작가 ‘하룬 파로키’는 자신의 영상 작업 〈평행 I – IV〉(2012-2014)에서 비디오 게임 그래픽의 발전사를 다룬 바 있다. 비디오 게임 역사 초기의 도트 그래픽에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의 리얼한 3D 그래픽까지 게임의 이미지는 점점 사실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리고 바로 이 게임 그래픽 이미지의 ’리얼함‘은 하룬 파로키가 조망한 것처럼 게임의 기술적 발전을 가늠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적인 준거점이 되어 왔다. 얼핏 보면 이러한 그래픽의 발전은 마치 잘 보이지 않던 어떤 사물이 점점 잘 보이게 되는 경우처럼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생각되곤 한다. 이미지가 도달해야 할 결과는 항상 고정되어 있다. 덜 사실적인 것에서 사실적인 것으로 말이다. 그래픽 이미지가 도달해야 할 현실의 비쥬얼이 항상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저 주어진 컴퓨터의 연산 능력과 디스플레이 기기의 기술적 한계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컴퓨터의 연상 능력이 발달하고 디스플레이 기기의 해상도가 좋아지면 그에 따라 그래픽 이미지는 자연스레 리얼해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결코 게임 그래픽 이미지가 사실성을 획득하는 데에 있어서, 마치 잘 보이지 않던 어떤 사물이 잘 보이게 되는 경우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란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게임 그래픽이 보여주는 놀라운 리얼함에 도달하기까지는 ’3D 모델링‘과 ’텍스처 매핑‘, ’랜더링‘, ’광원 효과‘, ’에니메이션’ 등의 프로그래밍 기술과 더불어 ‘해상도’와 ‘프레임’과 같은 디스플레이 기기의 발달을 규정하는 수없이 다양하고 특정한 ’사실성의 기술‘에 의해 가능했다. 그러한 사실성의 기술은 단순히 현실의 비쥬얼을 모방하는 의미를 넘어 현실을 특정한 방식으로 재현한다. 과거의 게임 그래픽을 보게 되면 새삼 놀랄 때가 있다. 출시된 당시에 봤을 때는 분명 그래픽 수준에 깜짝 놀랐던 거 같은데 지금 보니까 어딘가 엉성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당시에 놀랐었다는 게 놀라운 것이다. 나는 여전히 ’크라이실사스‘라고도 불렸던 〈크라이시스〉의 실사와도 같은 그래픽이 주었던 충격과 〈스타워즈: 배틀프론트〉의 포토리얼리즘 그래픽을 보고 놀랐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런 순진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도대체 게임 그래픽이 이보다도 더 좋아질 수가 있을까?” 하지만 지금 우리가 도달한 현재가 발전의 한계에 달했다는 생각은 흔한 환상이다. 이같은 환상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언리얼 엔진5‘의 그래픽 시연 영상을 보고서도 나는 똑같이 생각했다. “도대체 이보다 더 그래픽이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이미 충분히 리얼한 것 같은데 말이다. 끊임없이 더욱 사실적인 이미지로 나아가는 게임 그래픽에 대한 요구 속에서 특정한 게임 그래픽 기술의 특징이 드러나는 것은 하나의 재현 양식이나 특정한 기술적 특징으로 여겨지기보다는 그래픽의 오류 혹은 결함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흔히 폴리곤 하면 떠오르는 각진 면들과 텅 비어있는 내부의 모습은 리얼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며, 매핑된 텍스처 또한 평면 이미지처럼 보여선 곤란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그래픽에서의 사실성의 기술은 바로 그 기술의 고유한 특징을 드러내선 안되는 것이다. 다각형의 모음인 폴리곤 모델링은 자신의 구성 요소인 다각형 면을 드러내는 일, 즉 각져 보여선 안되며, 매핑된 텍스처 또한 최대한 평면성을 감추고 깊이감의 환영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게임 그래픽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도입되는 기술의 흔적을 가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각진 폴리곤‘, ’납작해 보이는 텍스처‘와 같이 그래픽 기술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초기의 3D 그래픽은 흔히 당시 기술적 수준의 한계에 의한 결함을 포함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울트라킬〉이 결함으로 여겨졌던 초기 3D 그래픽의 고유한 특징들을 특유의 미학으로 제시하였듯, 거기엔 단순히 과거 기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고유한 매력이 담겨있다. 낮은 품질 3D 그래픽의 미학 2016년에 발매한 게임 〈back in 1995〉은 제목처럼 특정한 시기를 가리킨다. 1995년, 앞서 언급한 〈울트라킬〉이 모티프로 삼았던 것과 같이 비디오 게임에 완전한 3D 그래픽이 최초로 도입되던 시기이다. 〈울트라킬〉과 마찬가지로 〈back in 1995〉의 그래픽 비쥬얼 또한 초기 3D 그래픽에서 발생하던 온갖 문제들을 담고 있다. 제작자는 말한다. “저해상도 모델, 텍스처 워핑, CRT 에뮬레이션, 고정 CCTV 스타일 카메라 각도를 포함한 레트로 3D 그래픽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세계에 빠져보세요.” https://store.steampowered.com/app/433380/Back_in_1995/ 그러나 게임은 단순히 비쥬얼적인 매력에 기대고 있지만은 않는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이 게임의 장르다. 〈back in 1995〉이 표방하는 ’서바이벌 미스터리 호러‘ 장르는 이 게임의 독특한 로우-파이 3D 그래픽의 미학과 불가분이다. 〈back in 1995〉는 ’서바이벌 미스터리 호러‘장르 속에서 왜 초기의 3D 그래픽이 여전히 설득력을 갖고 매력적일 수 있는지, 이 양식의 고유한 미학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 〈back in 1995〉의 게임 플레이 이미지 (출처: https://store.steampowered.com/app/433380/Back_in_1995/ ) 레트로의 의미는 단순히 지나간 그때의 스타일을 다시 반복하며 애호하는 것 정도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이 굳이 지나간 특정한 과거의 것을 재현하고자 하는 일은 당연하게도 시간성이라는 문제와 관련된다. 문화 연구자 ’사이먼 레이놀즈‘는 근래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레트로 문화에 관해 비판적으로 분석한 자신의 저서 『레트로 마니아』에서 레트로 문화와 시간성에 관해 이렇게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문화가 노스텔지어에 매달려서 앞으로 나갈 힘을 잃은 걸까, 아니면 문화가 더는 앞으로 나가지 않아서 결정적이고 역동적이던 시대에 노스탤지어를 느끼는걸까?” 사이먼 레이놀즈, 『레트로 마니아』 최성민 역, 작업실유령, 2014, p.15 흔히 노스탤지어가 과거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으로 이해되는 것과는 상반되는 레이놀즈의 태도는 노스탤지어적 과거에 대한 과도한 매혹을 짐짓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back in 1995〉의 미스터리 호러 분위기 또한 전적으로 지나간 과거라는 시간, 저화질의 그래픽처럼 뿌예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된다. 작중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켄트는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가 도시 저편의 라디오 타워에 있다고 여기며, 도시 곳곳의 흔적을 더듬으면서 라디오 타워로 향한다. 아마도 개발자 자신의 자아가 강하게 투영된 듯 보이는 그는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적 향수와 억압된 트라우마적 기억 사이를 오간다. 비록 〈back in 1995〉은 부족한 게임성으로 인해 많은 호평을 받진 못했지만, 로우-파이 3D 그래픽과 시간성에 관한 연관 그리고 무엇보다 호러 장르와의 연결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자 한다. 다시 비쥬얼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초창기의 3D 그래픽이 갖고 있던 온갖 결함들은 특히나 낮은 해상도와 관련이 있었다. 이 낮은 해상도는 무엇보다도 ’가시성의 제한‘이라는 특징이 되었는데, 이는 당시의 그래픽만이 가질 수 있었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했었다. 〈back in 1995〉 또한 노골적으로 참조했던 〈사일런트 힐〉시리즈는 그와 같은 시각의 제한에 의해 탄생할 수 있었던 초기 3D 그래픽 게임 역사의 마스터 피스 중 하나다. 〈사일런트 힐〉의 비쥬얼 아이덴티티이기도 한 연기는 사실 당시 하드웨어의 성능 한계로부터 비롯된 눈속임이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당시 하드웨어 성능에 따르면 랜더링 가능한 게임 공간의 디테일에 한계가 있었다. 일정 거리 이상의 공간은 아예 불러올 수도 없었는데, 이와 같은 부족한 디테일을 적절히 숨기기 위해서 게임 공간 전체에 연기를 깔았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는 게임 세계에 대한 플레이어의 시야를 제한하여 이 게임의 미스터리 호러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잘 살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처럼 ’제한된 시야‘에 의해 생겨나는 특유의 미스터리 호러적인 분위기는 〈사일런트 힐〉에서 연기 에피소드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 싶다. 오히려 〈사일런트 힐〉은 연기에 가려진 시야 저편뿐만이 아니라 연기에 가려지지 않은 공간까지도 포함하여 아예 이 게임 세계 전체가 명확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연기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그래픽 텍스처의 저화질은 게임에 음산한 분위기를 더했고, 각진 폴리곤 모델링은 마치 기괴하게 변형된 신체처럼 보였다. 2012년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일부는 HD로 리마스터 되었지만, 이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낡은 게임의 품질 개선은 되려 게이머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게 되었다. 문제는 게임이 너무 잘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개는 대부분 걷혀졌으며, 텍스처의 퀄리티는 업스케일링 되면서 〈사일런트 힐〉 특유의 그로테스크하고 미스터리 호러한 분위기가 전부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지금 와서 살펴보자면 이 잘 보이지 않으며, 명확하지도 못한 세계가 갖는 독특한 미적 특징은 디지털 그래픽 매체에 대한 인지적인 물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게임 그래픽의 발전은 도입되는 기술의 흔적을 감추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초기 3D 그래픽 게임에서는 여전히 도입된 기술의 흔적이 물씬 남아있는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초기 3D 그래픽을 매력적이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플레이 중인 디지털 가상 세계의 고유한 물성이 오늘날의 리얼한 그래픽 이미지들보다도 더 극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 ’Puppet Combo’의 게임 의 플레이 이미지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lgFGZ2hs-A) * ’Puppet Combo’의 게임 의 플레이 이미지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xNMzvoc1Wyw ) 〈back in 1995〉와 〈사일런트 힐〉이 바로 저 명확하지 않은 세계로 인해 느껴지는 잔잔한 공포 혹은 미스터리적 분위기에 집중했다면, 독립 게임 개발 스튜디오 ’Puppet Combo’는 로우-파이 3D 그래픽이 갖는 독특한 물성에 의해 느껴지는 즉물적인 공포감에 집중한다. 주로 80년대의 B급 고어, 슬래셔 무비를 참조하는 이들의 방향성은 언뜻 생각하기에 고어나 슬래셔와 같이 날것의 표현이 중요한 장르적 연출이 어떻게 저화질의 로우-파이한 3D 그래픽 스타일로 충분히 표현될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거친 폴리곤 덩어리로 표현된 신체가 갖는 날것의 물성은 흔히 고어 장르에서 고깃덩이로 추락해버리는 날 것이 된 신체의 물성과 닮아있다. 〈퀘이크〉에서 처치하자마자 순식간에 투박한 고깃덩이로 뒤바뀌어버리는 괴물들의 모습, 〈GTA: 산 안드레아스〉에서 헤드샷에 의해 순식간에 머리는 사라지고 피 분수가 분출되는 모습, 〈폴아웃 3〉에서 사정 없이 절단되는 팔다리와 물리 엔진에 의해 사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시신의 모습은 게임의 고유한 물성에 의해서 출현할 수 있었던 독특한 고어적 순간들이다. * 안가영 작가의 〈KIN거운생활: 온라인 KIN 온라인〉, Machinima, FHD color, 20min 13s, 2020-2021 (출처: https://angayoung.cargo.site/KIN-online ) 낮은 해상도와 프레임, 어색한 에니메이션, 퀄리티가 좋지 않는 폴리곤 모델링과 저해상도의 텍스처 등을 특징으로 하는 독특한 디지털 미학은 비디오 게임에만 국한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근 몇 년간 시각예술 분야에서도 이같은 독특한 이미지 양식을 인용한 작업들이 종종 나타나곤 했다. 미술작가 김희천은 그가 몇 번이나 주제로 삼았던 ‘서울‘이라는 장소의 부유감을 은유하기 위해서 낮은 품질의 3D 폴리곤 모델링 특유의 유령적 물성을 차용한 바 있다. 그의 영상작업 〈바벨〉에서 서울의 지하철 공간을 돌아다니는 멍청하게 생긴 저품질 폴리곤 인간들은 T 포즈로 자세가 고정되거나 허접한 에니매이션으로 이동하며 서로 겹쳐지고 벽을 통과하기도 한다. 또한 아예 비디오 게임을 주요한 참조점으로 삼는 미술작가 안가영 또한 개인이 구현 가능한 조야한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의 미학을 경유하여 작업을 전개하곤 한다. 그의 연작중 하나 〈 KIN거운생활: 온라인 KIN 온라인〉의 그래픽 비쥬얼은 비록 앞서 로우-파이 3D 그래픽의 주요한 특징으로 언급했던 ‘폴리곤 모델링’과 ‘텍스처’의 퀄리티는 훌륭한 수준이지만, 광원 효과의 의도적인 날림에 의해 여전히 그래픽의 이미지의 품질이 현저하게 낮아 보인다. 이와 같은 낮은 품질의 3D 그래픽이 갖는 독특한 유령적 물성은 김희천에게선 서울이라는 장소의 부유감에 의해 인용되었다면 안가영에게는 신체와 정체성의 부유감에 의해 인용된다. 2010년대를 중심으로 다시 반짝였던 포스트 디지털 담론에서 이어지는 미술 작업의 비쥬얼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최신의 리얼한 그래픽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차라리 그들의 작업에서 나타난 비쥬얼적 특징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볼 수 있었던 낮은 품질의 3D 그래픽에 가까웠다. 이는 보다 리얼하고 현대적인 3D 그래픽 이미지를 미술 작가 개인이 구현하기에는 소요되는 자본과 기술의 한계가 따른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자면 적당한 수준의 3D 그래픽을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는 굉장히 접근성이 용이해졌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들은 로우-파이하고 한편으로는 레트로, 노스탤지어적인 기억과 선명함이 억압되는 특정한 디지털 이미지의 미학에 기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안준형 아티스트 폴리티컬 파티 '배드 뉴 데이즈'와 마르크스주의 기반 연구기관 '조사'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게임 매체에 관한 관심을 바탕으로 게임 미디어의 정치성 및 게임 속 이미지의 재현 체계와 그것의 주체성 및 윤리적 문제에 관해 비평적 글쓰기를 수행하고 있다.
- 〈디아블로〉 시리즈의 역사로 바라보는 블리자드의 변화
2021년 2월 20일에 시작된 블리즈컨라인(BLIZZConline)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2005년 10월 처음 개최된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축제로써 기획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의 블리즈컨의 분위기는 분명 예전과 달랐다. 제작자와 게임 팬의 화합의 장이었던 블리즈컨이 끝나면 항상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함성은 잦아들고 작은 수근거림이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 Back 02 GG Vol. 21.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ho Lim A game developer who makes games while chasing the adventure-tales of the heroes of game development past. Has worn many titles over a very long stretch—CEO, designer, indie game developer, project manager—but at heart an ordinary soul who hopes simply to be called a gamer and a game developer.
-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느꼈던 게임의 과거와 미래
2025년 3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정식으로 일반 공개를 시작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은 아직 정확하게 공지는 되지 않았지만 현재(2025년)기준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정부에 등록된 게임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국내에서 이름에 컴퓨터가 들어간 등록박물관은 2023년 기준으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유일하다.) < Back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느꼈던 게임의 과거와 미래 23 GG Vol. 25. 4. 10. 넷마블 게임 박물관 문을 열다. 2025년 3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정식으로 일반 공개를 시작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은 아직 정확하게 공지는 되지 않았지만 현재(2025년)기준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정부에 등록된 게임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국내에서 이름에 컴퓨터가 들어간 등록박물관은 2023년 기준으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유일하다.) 물론 이전에도 게임을 가지고 있는 박물관이 없지는 않았다. 레트로 게임 카페를 표방하는 개인이 운영하는 공간이나 제주도에 있는 컴퓨터 박물관, 지금은 없어졌던 제로하나 박물관에도 과거의 게임을 상당 수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서울이라는 접근성과 게임 업계에서는 대기업에 속하는 넷마블이 운영한다는 지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넷마블의 게임 박물관에 기대하는 부분이 컸다. 필자는 게임 박물관이 일반 공개를 시작한 날과 두번째 주의 평일의 시간을 골라 방문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박물관도 조금씩 개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 언급된 내용이나 정보가 방문 시점에는 다를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이야기하고 싶다. 또한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박물관 개관 준비의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싶다. * 넷마블 박물관 초입 (직접촬영) 넷마블 박물관 직접 가보다. 역사속에서 초기의 박물관은 여러 유산들을 모아서 대중에게 공개하는 형태였다. 넷마블의 게임 박물관도 이러한 형식은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넷마블의 게임 박물관을 처음 방문하면 넓은 공간에서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이 이야기해주는 인류의 게임에 대한 역사를 짧게 훑는 영상을 보여준 후, 보이는 수장고로 넘어간다. 보이는 수장고는 초반의 수장고와 유물에 대한 전시 공간은 게임 관련 유물을 보여주는 주된 공간이며 특히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1980년대 이전의 기기들은 레플리카이긴 하지만 사진이 아니라 실제 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은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큰 장점이다. 2배로 크기를 키운 둘을 위한 테니스나 PDP-1의 레플리카에서 재현한 스페이스워!(Spacewar!)의 동작화면은 국내에서는 쉽사리 보기 힘든 물건이며 전시 공간 마지막에 존재하는 실물 컴퓨터스페이스(ComputerSpace) 역시 마찬가지다. * 보이는 수장고 전경 (직접 촬영) 보이는 수장고 오른편에는 보기 힘든 수장품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보이는 수장고는 뒤에도 공간이 있어 수장품들의 뒷모습들도 확인할 수 있다. 90년대 대기업들에서 정식 발매된 가정용 게임기용 기기들이나 팩과 패키지 매뉴얼들의 실물은 지금은 대부분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가있기 때문에 실물을 실제로 보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물건을 확인할 수 있는 보이는 수장고는 정말 좋은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 보이는 수장고 뒷편 보이는 수장고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소장품 인벤토리는 대형 스크린 5개로 이루어진 키오스크로 수장품들의 이미지가 계속 흘러가면서 이미지를 터치하면 수장품들의 정보를 확인 할 수 있다. 소장품들이 적지 않아서 흘러가는 소장품의 이미지를 보는 것도 즐거움을 준다. * 소장품 인벤토리 이렇게 보이는 수장고가 끝나면, 좀 더 어린 연령대의 관람객들을 위한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게임 개발자를 알아볼 수 있는 체험 키오스크나 게임 개발자들의 테이블과 실제 게임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려주는 프로젝션 아트, 그리고 이어서 <제2의 나라>에서 게임 캐릭터 생성을 체험하는 코너가 나온다. 연령대에 따라 관심사가 갈리는 콘텐츠일 수 있겠지만 <제 2의 나라> 게임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컴퓨터 모니터와 벽면을 넘나드는 캐릭터의 설명은 한번쯤 봐 둘만 하다. * 오른쪽 버튼을 꼭 눌러 보길 바란다. 게임의 사운드 트랙과 함께 박물관의 두번째 아카이브인 라이브러리가 나온다. * 도서 라이브러리 게임 박물관의 라이브러리는 다양한 책들이 존재한다. 해외서적과 함께 최신서적 중심으로 되어있긴 하지만 책은 점차적으로 늘려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 아카이브 키오스크 한편 한 켠엔 1990년부터 2010년대의 한국의 게임 역사를 정리해놓은 디지털 아카이브를 제공하고 있다. 이 디지털 아카이브는 인터랙티브 키오스크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해당 기가 한국에서 있었던 주요 게임 사건과 함께 당시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여기까지 지나면 게임에 등장하는 한국과 함께 마지막으로 올해 11월 30일까지 진행하는 한국 PC 게임 스테이지 특별전을 하고 있다. 보이는 수장고와 마찬가지로 한국 PC 게임 스테이지 역시 90년대 한국 PC 패키지 게임의 실물과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은 실물을 보기 매우 힘들어진 당시 PC게임 패키지와 매뉴얼등의 실물이 실제 전시되어있다. * 게임 체험존 마지막으로는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는 게임 체험 존이 존재한다. 고전 아케이드게임 중심의 체험존이긴 하지만 실제 이야기를 들어보면 넷마블 사내 카페인 'ㅋㅋ다방'은 외부인들도 이용 가능하다보니 어린이들은 자리를 안떠나려고 하고 있고, 보호자들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게임을 좋아하는 데는 연령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게임 박물관 VS 컴퓨터 박물관 한국에서도 컴퓨터 테마의 박물관은 몇 군데 존재하며, 게임 박물관을 표방하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비교를 해볼수 있는 곳이라면 정식으로 국가에 등록된 박물관들과 비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국내에서 현재 컴퓨터 등을 테마로 한 등록된 박물관은 넥슨 컴퓨터 박물관 정도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컴퓨터 역시 수집 대상이 되었고 박물관의 전시품에 포함되고 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 옆에 있는 G밸리 산업 박물관에서도 90년대 국산 가정용 컴퓨터들이 전시되어있으며 국립 중앙 박물관의 어린이 박물관 등에는 PC통신 시절 사용하던 단말기가 통신의 역사를 설명하며 배치되어 있었던 적도 있다. 한양대 박물관에는 국내 초창기의 아날로그 컴퓨터가 존재하며, 한글 박물관 또한 다양한 한글 시대 컴퓨터 소프트웨어들을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조금씩 게임들이 전시되어있는 부분도 찾아볼 수 있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경우 주된 테마는 컴퓨터이기 때문에 게임 박물관과 바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1층의 가정용 게임기의 발전과 실물 가정용 게임기의 전시라든가, 게임 사운드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체험 코너, 그리고 2층의 게임 체험 공간과 라이브러리, 3층의 교육코너와 함께 있는 오픈수장고들은 현재 디지털 기기 및 게임 박물관에서 어떤식으로 전시 및 체험을 진행하는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음을 알수 있다. 오픈 수장고의 경우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경우는 거리가 있고 살펴보기 힘들게 배치되어 있다면 넷마블의 그 것은 좀 더 보기 좋게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라이브러리의 경우는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좀 더 오래되었다 보니 과거 자료를 좀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번에 개관한 넷마블 게임 박물관의 경우는 매우 고가에 거래되는 수집품이 되어버려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국산 가정용 게임들의 실물을 오픈 수장고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한편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가장 자랑하고 있는 콘텐츠인 복원된 바람의 나라나 PC통신 서비스 같은 국내의 환경을 재현한 게임환경들은 넷마블에서는 체험해보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PC통신 체험코너 (2013년 직접 촬영) 조금 강하게 평가하자면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대한 느낌이라면 보기 힘든 유물들이 잘 정리되어있는 유물 쇼룸이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우주 거북선 패키지 라든가, 실물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정식 발매된 국산 게임기들, 레플리카지만 테니스포투(Tennis For Two), MIT PDP-1, 거의 원본에 가깝게 복각해놓은 마지막 코너의 퐁 까지 다큐멘터리나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기기들을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이며, 레트로 게임 마니아나 게임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면 한번 쯤 눈으로 봐야하는 물건들이 정말 많다. 다만 박물관 운영 초기라 이러한 유물에 대한 정보가 부드럽게 전달되는 지는 아쉬움이 있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이라면 유물 옆에 좀 길게 적어놓은 텍스트 패널을 둘 법 하지만 넷마블 게임 박물관의 경우 이러한 설명들을 모두 한 단계 아래에 숨겨놓은 경향이 강하다. 전체 디자인 철학이 그렇게 디자인되었다는 느낌인데, 이렇다보니 좀 거칠게는 쇼룸이라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본다. 대부분의 설명을 QR코드로 들어갈수 있는 음성 안내 페이지나 인터렉티브 키오스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은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나 사람이 많이 몰릴 경우, 혹은 키오스크를 놓치는 사람이라면 유물에 대한 설명을 놓칠수 있다는 점은 박물관의 구성에서 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 인터랙티브 키오스크 과거를 전시한 박물관과 게임 박물관의 미래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대한 평가를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어떤 사람들은 소장품 구색의 아쉬움을 이야기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도서관에 대한 자료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고, 공간의 크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먼저 던져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게임 박물관은 어떤 것을 전시해야 할 것인가. 앞서 말했듯이 넷마블 박물관은 희귀한 게임 관련 유물들이 정말 많다. 물론 게임 팩이나 가정용 게임기에 한정하면 더 많이 모은 수집가들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박물관의 전시는 대부분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명확해진다. “유물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들은 어떻게 전시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은 대부분 구성품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을 즐기고 있다. 가정용 콘솔이나 PC용으로는 패키지들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게임 구매의 주된 흐름은 주문형 게임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게임 패키지의 구성품도 소장용으로 나오는 아주 소수로 찍어 프리미엄이 붙는 패키지 외에는 칩만 들어가있으며, 게임에 대한 설명등은 유튜브나 홈페이지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과거의 게임들은 에뮬레이터나 어밴던웨어 등으로 현재의 기기에서 즐길수 있는 경우가 존재하긴 하지만, 당시 패키지의 물성이나 기기의 물성들을 직접 체험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렇다보니 전문가라는 사람이 매뉴얼을 읽지 않고 기기와 게임의 특성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게임을 평가하는 경우도 발생하기 쉬운 상황이기도 하다. 이러한 게임을 위해서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란 공간은 정말 필요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고전 게임 패키지들이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가 빛을 보기 힘든 상황에서 연구자나 과거 게임의 구성품을 살펴 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편 2000년대 들어서 이러한 물성이 거의 없이 소프트웨어로만 존재하는 게임들은 박물관에 전시하기 참 힘든 상황이 되었다. CD 등으로 나오기라도 했다면 CD 등을 전시하겠지만 USB 디스크등의 실물 조차 안나오고 다운로드로만 존재했던 게임이라면 어떤 것을 전시해야할 것인가.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의문은 게임을 어떻게 아카이브할 것인가와도 연결된다. 특히 온라인 게임 중심의 시장이 진행되어온 한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는 더욱더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게임을 어떻게 아카이브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들은 사실 전세계적으로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다만 점차 이러한 논의들이 활발해져가면서 미국, 유럽, 일본등에서는 단체등이 생기면서 점차 연구나 토론이 늘어나고 있다. 한편 유물로서의 게임만 전시하다보니 당대의 게임 문화, 개발자, 환경들에 대한 전달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도 약점이다. 유물에 대한 설명들도 아쉬운 지점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박물관의 준비 문제라기보다는 이러한 연구 자체가 부족한 한국 게임 학계의 토양에 대해 이야기해야할 것이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게임의 미래도 보존하길 바라며 시작하면서 박물관의 역사에서 유물의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현대의 박물관의 역할은 좀 더 다양해졌다. 앞서 말한 아카이브와 함께 연구, 교육 등이 전시와 함께 따라오는 박물관의 역할이다. 박물관의 입구에서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지들이 존재하며, 라이브러리에 존재하는 <배틀 가로세로> 풍의 퀴즈 게임들은 어린이들이 박물관에서 학습할 수 있는 좋은 체험 프로그램이지만, 이러한 체험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공간의 아쉬움은 있다. 첫번째 방의 게임 영상이나, 제2의 나라 체험관 같은 넓고 화려한 체험관도 좋지만 좀 더 박물관스러운 아날로그한 학습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마블 게임 박물관의 개설이 반갑다. 지금까지의 한국에서는 게임 역사를 정리할 구심점이란 것이 부족했었고 이러한 박물관같은 구심점이 생겨나면 자석처럼 자료와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꾸준한 투자만 계속 된다면 박물관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물들이 모이고 연구가 계속되며 네트워크가 생겨날 수 있다. 이렇게 모인 자료들과 사람들은 새로운 게임의 역사를 조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의 박물관은 유물을 한번 배치하고 끝나는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기획전과 교육 프로그램 업데이트 되는 지식들을 피드백하는 공간이 되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 역시 앞으로의 게임을 아카이브하며 새로운 역사를 정리해나가는 게임 역사를 전시하는 공간의 최전선이 되기를 희망한다. Tags: 넷마블, 아카이빙, 박물관, 학예연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이쿠, 왕자님>, 게 섯거라 이놈아!
버틀러는 이러한 패러디적인 창조성을 원본이라는 것 자체도 원래 본질적으로 원본인 것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가정되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이 동시에 모방본이라는 점에서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모방본도 원본도 원본의 상상적 특성들을 모방하는 것이고,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의 모방적 자질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면 이제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한다는 역설적인 생각까지 가능해진다. 이는 원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와 패러디의 모방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오히려 패러디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하여 더 높은 창조적 위치를 점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 Back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이쿠, 왕자님>, 게 섯거라 이놈아! 10 GG Vol. 23. 2. 10. 〈프린세스메이커〉라는 게임을 아는가? PC용 게임으로 시작하여 모바일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랑받아 온 이 게임은 1991년 최초로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개척해낸 게임이다. 이 새로운 장르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귀엽고 밝은 ‘소녀’다. 게임을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의 딸을 다양한 방식으로 육성시킬 수 있다. 물론 딸이 ‘프린세스’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게임이 시작되면 우리는 우리가 짜놓은 스케줄을 따라 움직이고, ‘아버지’라고 부르며 밝게 웃어주는 딸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아마도 이후 〈프린세스메이커〉 시리즈가 연이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게임 플레이를 통해 발생하는 딸과의 다양한 정서적 감응 때문이 아니었을까. 게이머들은 플레이를 통해 딸과 대화를 나누기도, 바캉스를 즐기기도 하며 8년동안 자라나는 딸에게 애정, 슬픔 혹은 (내가 원하는 엔딩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 등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감정의 발생은 게임의 이야기 진행 방식이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게이머에게 일정한 역할을 부여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게이머는 적어도 마우스를 클릭하는 등의 아주 작은 행동을 통해, 게임의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는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권위는 우리가 행위하고 조작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나 ‘친밀감’과 같은 정서적 교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그러나 나는 이 게임이 재밌으면서도 어딘가 불편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게임 안으로 들어간 게이머인 ‘나’는 내가 사회적으로 주체화한 성별과는 무관하게 딸이 ‘아버지’라 부르는 걸 묵과해야했던 경험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프린세스메이커〉는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딸을 키우는’ 게임이다. 내러티브상으로는 여성 게이머를 고려하지 않은 ‘남성적’ 게임이었다는 의미이다. 여성 게이머는 게임 밖에서는 여성이지만 게임 안에서는 ‘딸을 잘 키워 왕자를 만나도록 애쓰는 아버지’로 남아야 하는 것이〈프린세스메이커〉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의 역설이다. 심지어 〈프린세스메이커〉의 엔딩 중 하나엔 그 딸이 아버지와 결혼을 원해 아내가 되기도 한다. 아니 내 딸이 나(시스젠더 여성+남성애자)와 결혼을 원하다니. 이 얼마나 이성애-전복적인 상황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프린세스메이커〉를 통해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접했던 많은 여성들이 이미 이 당시 탈이성애를 경험하고도 남았을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 딸이 자라면서 다양한 경험을 시도하는 것(다이어트를 하거나,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풍류환을 먹고 가슴이 커진다던가 하는)이 나 자신을 대상화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이 시리즈가 묘하게 불편해졌다. 그렇게 10대가 가고 20대에 접어든 나는 2007년 우리나라의 몇몇 아마추어 여성 게이머가 〈프린세스메이커〉의 성역할을 전도시킨 일종의 패러디 게임 〈어이쿠 왕자님∼호감가는 모양새〉 (이후 〈어이쿠 왕자님〉)를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블로그를 통해 접했다. 이 게임은 딸이 아닌 아들을 키우는 형식이고, 게임 속 주체를 아버지/어머니 중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어이쿠 왕자님〉은 단순히 〈프린세스메이커〉 패러디로서의 특성만 갖는 것이 아니었다. 이 게임은 인디문화의 속성을 공유하는 게임인 동시에 남성 동성애물을 표방한다는 의미의 동인(同人)게임 1) 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이 게임이 PC 게임으로 발매되고 드라마시디까지 제작되는 걸 보면서 굉장한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는 이를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들을 찾기 시작해 논문을 썼다. 그게 무려 15년 전이다. 그런 〈어이쿠 왕자님〉이 2023년 크라우드펀딩으로 다시 돌아왔다. 심지어 펀딩율 1200%를 달성하고, 오디오 드라마까지 풀로 착장한 채. 〈어이쿠 왕자님〉은 단순한 인디/BL 게임으로 호명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어이쿠 왕자님〉과 〈프린세스메이커〉의 첫 번째 차이점은 프린세스메이커 시리즈의 커다란 틀로써 작용하고 있었던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아버지 혹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로 변용하여 제작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 게이머의 젠더 트러블 요소로 작용했던 '아버지 되기'에서 선택적 사항을 더한 것으로 '아버지 혹은 어머니'되기를 통해 여성 게이머로서 느낄 수 있었던 젠더 트러블적 요소를 제거하여 여성 게이머의 주체성을 부각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어이쿠 왕자님〉은 〈프린세스메이커〉가 가진 남성적 요소들을 제거하여 원작과는 다른 의미를 게이머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남성적 요소들이란 남성 게이머가 〈프린세스메이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 요소, 즉 여성을 보는 대상으로 하며 남성의 시각을 주체로 하여 얻는 쾌락적 요소를 말한다. 〈어이쿠 왕자님〉은 〈프린세스메이커〉를 〈프린세스메이커〉로 전복시킴으로써 여성 게이머들에게 보는 대상을 남성으로 치환시키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원작이 가진 의미를 완전히 전복한 것으로 남성을 위한 게임에서 여성을 위한 게임으로 의미화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프린세스메이커〉와 〈어이쿠 왕자님〉이 지닌 가장 큰 차이점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차이점을 복합적으로 변용하여 이성애적인 젠더체계의 틀을 벗어나 남성 성장서사를 남성 동성성애 서사로 패러디 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이쿠 왕자님〉은 부성애와 모성애가 선택적으로 존재하는 게임적 장치와 더불어 남성동성성애의 서사로 패러디함으로써 당시 소수였던 여성 게이머들뿐만 아니라 이를 플레이하는 게이머 모두에게 원본과 원본을 넘어서는 패러디의 의미를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게 했다. 인디게임이 일반적으로 기존의 지배적인 문화, 주류문화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난 게임을 말한다는 점에서 〈어이쿠 왕자님〉 인디게임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인디게임의 생성 동기와 존립 근거가 새로움에서 찾을 수 있다면 〈어이쿠 왕자님〉이 가지고 있는 새로움-창조성은 단순히 개인의 주관적인 기회가 아니라 사회구조와 그 구조내의 행위자와의 충돌, 그리고 그러한 충돌 과정에서 정체성을 생성하고 새로운 생활양식의 변화와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면서 기존 질서에 대한 대안적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어이쿠 왕자님〉을 플레이하는 여성 게이머들은 기존의 사이버 공간에서 이미 원본을 동성성애화하여 패러디한 2차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행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던 세대였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기존의 텍스트 부분 및 내용이나 형식을 변형하고 확대하며 생략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콘텐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데 익숙했던 것이다. 특히 게임이라는 영역은 여전히 생산이 제한된 영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간의 지속적인 생산경험을 통해 여성 게이머들은 자신이 게임 유통과 생산 과정에 진입이 가능하다는 생산자적 자율성과 창조성을 획득하여 〈어이쿠 왕자님〉이라는 게임을 생산해낸 것이다. '인디 집단'자체가 수년간 축적해둔 일상적 생산적 주체의 경험은 고착화된 구조나, 단계가 아닌 잠재적으로 단순한 수용자, 게이머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진화를 통한 창조적 생산자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특히 게임이라는 매체는 실제와 허구 사이의 경계가 붕괴되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게임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새롭게 자기표현을 찾는 능동적 생산자를 관객으로부터 유도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몰입하고 플레이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 게임이라는 공간에서 실제 본인의 성별과 상관없이 스스로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만들고, 억제된 욕구 표현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만들며 주체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젠더를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생물학적 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여성들은 앞서 논의한 다양하고 새로운 주체를 경험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어이쿠 왕자님〉에는 풍자와 익살적인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게임의 배경은 시공간이 모호한 중세 판타지 풍의 바이케 왕국이다. 바이케 왕국을 거꾸로 읽으면 게이바다. 또한 바이케 왕국에 내려오는 전통춤으로는 바닥에 꽂힌 길다란 봉 주위를 돌며 추는 매우 관능적인 춤이라 할 수 있는 'bar dance'(봉춤)이 있으며, 정기적으로 국가에서 주최하는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현재 왕위는 노므헨 국왕이 갖고 있으며, 왕족 '맨슨(이명박)'이 등장하여 해저도로를 건설하자고 굳건히 이야기 하는 이벤트는 당대의 정치상황을 절묘하게 패러디 하여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어이쿠 왕자님〉의 패러디 요소는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존의 패러디의 의미를 더욱 확장시킨다. 패러디의 성립조건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전복과 치환, 다른 의미 담기를 통해서 단순하게 익살과 풍자의 모방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어이쿠 왕자님〉은 기존 텍스트의 담론적 권위나 지위에 의존하여 기존 텍스트의 의미체계와는 전혀 다른 의미체계를 지니는 새로운 텍스트를 생산한다. 패러디 기법인 '낯설게 하기'는 기존 텍스트의 병치, 재구성, 해체를 이용한 담론효과를 산출하는 것이다. 이는 보이는 대상에서의 보는 주체로의 여성, 이성애중심의 젠더체계의 전복이라는 이중적 패러디를 생산하면서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이중적 패러디는 모방의 한 형식이지만 동시에 패러디된 작품을 희생시키지 않는 다는 점에서, 그리고 '차이'의 창조성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유희적이고 해체적이면서 동시에 창조적이라도 말할 수 있다. 버틀러는 이러한 패러디적인 창조성을 원본이라는 것 자체도 원래 본질적으로 원본인 것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가정되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이 동시에 모방본이라는 점에서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모방본도 원본도 원본의 상상적 특성들을 모방하는 것이고,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의 모방적 자질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면 이제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한다는 역설적인 생각까지 가능해진다. 이는 원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와 패러디의 모방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오히려 패러디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하여 더 높은 창조적 위치를 점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1) 현재는 동인이라는 용어는 거의 쓰이지 않고, BL(Boys’ Love)이라는 용어로 대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인은 사실 일본에서 수입되어 처음에 ‘동인지’라는 소수의 문인들이 창작 활동을 위해 만든 문예잡지에서 유래되었다. 그 이후 한국에서 동인은 아마추어라는 뜻을 강하게 내포하게 되었고, 주류 콘텐츠가 될 수 없었던 남성동성애서사 또한 동인의 대표적인 콘텐츠로 자리잡게 되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애증의 가 2023년에 보여준 가능성
<와우>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다. 열성 플레이어들도 나이를 먹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새로운 플레이어의 유입보다 기존 플레이어의 여전한 참여가 <와우>를 유지시키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와우>가 기존 플레이어들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Back 애증의 가 2023년에 보여준 가능성 15 GG Vol. 23. 12. 10.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이하 ‘와우’)>로 원고를 써야 한다고 했을 때, 절대 고인물 플레이어처럼 예전 이야기를 하지는 말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와우>의 9번째 확장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용군단(World of Warcraft: Dragonflight, 이하 ‘용군단’)>은 여러 면에서 ‘예전으로 돌아가는’ 텍스트다. 우선, 오리지널 시절부터 위세를 떨쳤던 용군단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초자연적이었던 어둠땅을 뒤로 하고 아제로스로 돌아오게 한다는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용군단이 한 때 자신들의 왕국이었던 유서 깊은 고향으로 돌아온 가운데, 호드와 얼라이언스 영웅들은 다시 부름을 받고 아제로스에서 신비한 용의 섬을 탐험하고 고대의 비밀을 파헤쳐야 한다. 캠페인의 주요 캐릭터는 당연히 대부분 용족이다. 알렉스트라자, 노즈도르무, 래시온, 칼렉고스 등은 특히 초기 캠페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3번째 확장팩이었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대격변(World of Warcraft: Cataclysm)> 이후 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용군단>이 플레이어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이며, 모험의 주 무대가 어둡고 우울했던 어둠땅을 벗어나 아제로스 하이 판타지로 복귀했음을 의미한다. 설정과 캐릭터가 친숙하다 해도, <용군단>이 <와우>의 20여 년 역사에 현대적인 인상을 더해줌에는 틀림이 없다. 그간 <와우>의 주된 이야기 줄기는 아제로스의 큰 두 대립진영인 얼라이언스와 호드 간 전쟁으로 규정돼 왔다. 특히 전전 확장팩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World of Warcraft: Battle for Azeroth)>에서는 두 진영의 큰 전쟁으로 인해 아제로스가 황폐화될 뻔했다. 하지만 <용군단>은 두 진영 간 갈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용의 섬에서 벌어지는 모험은 얼라이언스와 호드 사이에 누가 섬을 개척하고 점령할지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 아니라, 많은 세력과 NPC들의 공유, 그리고 두 진영의 협력과 공동 탐험에 가깝다. 이는 실제 게임 플레이에도 반영된다. 이제 각기 다른 진영에 있는 플레이어라 할지라도 함께 모여 던전, 공격대 등을 즐길 수 있다. 대립과 경쟁에서, 협력과 탐험으로 게임 세계의 초점이 전환한 것이다. 용의 섬에 봉인돼 있던 드랙티르 종족도 추가되었다. 판다렌처럼 얼라이언스와 호드 양 진영 모두에서 선택 가능한 중립 종족이고, 전용 직업인 기원사로만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다. 늑대인간처럼 용 형태와 인간 형태 모두를 가지며, 전투 중에는 비인간 형태로 고정된다. 기원사는 사슬 방어구를 착용하는 하이브리드 클래스로, 원거리 딜러와 힐러를 오간다. 죽음의 기사나 악마사냥꾼처럼 확장팩 구간 시작 직전인 58레벨에서 시작, 전용 퀘스트라인 진행을 통해 기본 기술을 배워나간다. 신규 직업 외에 종족별 직업도 추가되었다. 이제 모든 종족에서 도적, 마법사, 사제, 수도사, 흑마법사를 플레이할 수 있다. 특성도 네 번째 확장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판다리아의 안개(World of Warcraft: Mists of Pandaria)> 이전으로 돌아갔다. 선택한 직업과 전문화에 대한 하나의 특성 트리 대신, 이제 각 전문화에는 두 개의 트리가 존재한다. 하나는 클래스 전체에 걸쳐 공유되며 방해, 이동강화, 생존과 같은 유용성에 중점을 두고, 다른 하나는 해당 전문화에만 해당하며 전투, 방어, 치유 스킬에 중점을 둔다. 특정 목적 달성을 고려할 경우 선택지가 좁았던 기존과 달리, <용군단>의 특성 트리는 비교적 폭넓은 선택지를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그 특성은 전투할 때를 제외한 거의 모든 때 변경 및 조정이 가능하다. 재미있게도 각 특성 트리의 많은 능력은, 군단의 유물, 어둠땅의 성약의 단 능력과 같은 소스로부터 상당 부분 가져와졌다. UI(user interface) 개편도 특기할 만하다. <와우>의 진입장벽을 높여왔던 대표적인 요소 중 하나가 애드온(addon)이었다. 기존에는 UI 스크립트 기능이 있고 애드온을 통해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었을 뿐, 게임 내에서 기본적으로 UI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지는 않았다. <용군단>에서는 UI를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디자인을 변경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개체 상호작용 기능도 생겨 콘솔패드로 플레이하는 일부 플레이어들의 편의성을 높였다. 여전히 많은 플레이어들이 애드온을 사용하고 싶어 하고 또 사용하고 있겠지만, 앞으로 <와우>를 플레이하는 데 있어 애드온이 필수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졌다. 메인 스토리 퀘스트에의 참여를 권장하는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차기 확장팩을 앞둔 패치 전까지는 대장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4개 지역을 탐험하고 최대 레벨에 도달한 후에야, 영웅 던전, 월드 퀘스트 등과 같은 항목에 대한 참여가 가능하다. 물론 각 구역의 메인 스토리 퀘스트가 대부분 독립형이고 다른 퀘스트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사이드 퀘스트 역시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용군단>의 메인 콘텐츠들을 즐기는 데 있어 메인 스토리 퀘스트를 생략하기는 쉽지 않다. 그 퀘스트가 선형적이긴 해도 상당한 재미를 주는 것은 사실이나, 메인 스토리 퀘스트로의 참여 권장은 <와우>의 자유도가 높아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여전히 주저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용군단>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콘텐츠 중 하나는 용 조련술이다. 만렙 전까지는 캐릭터를 강제로 지상에 묶어두었던 기존 확장팩에서와 달리, <용군단>에서는 초반부터 하늘을 날 수 있다. 용 조련술은 쾌감 넘치는 공중 이동방식으로, 캐릭터들은 용에 올라타 높은 하늘에서 급강하해 속도를 올리고, 다시 고삐를 당겨 쌓은 가속도로 활공을 즐길 수 있다. 반대로 오르막길을 비행하는 일이 어려워졌음은 물론이다. 물론 이 새로운 콘텐츠는 가상의 세계에 현실감을 더하는 요소이자, 진작 이뤄졌을 법한 요소이기도 하다. 날/탈것이 타서부터 내릴 때까지, 거리에 상관없이 똑같은 속도를 내는 기존의 설정이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용 조련술은 이제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정해진 거리를 이동하는 데 있어 동선만이 아니라 속도의 완급과 가속을 고려하게 만든다. 그 밖에도 플레이어들은 시간제한 도전이나 멀티 플레이어 경주를 통해 용 조련에 익숙해지고, 용의 섬 곳곳에서 비룡들의 형상 꾸미기 요소를 수집하거나 기술을 강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용군단>의 레벨 상한인 70레벨을 향해 나아가면서 이루어진다. 용 조련술로 인해 비행은 더 이상 단순히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매력적인 게임 플레이 요소가 된다. 완전히 새로운 요소들을 몇몇 제시하고, 지난 것들 중 의미 있는 요소들을 그보다 더 많이 현대화함으로써 <용군단>은 <와우> 플레이어들이 그동안 좋아해 왔던 캐릭터, 몬스터, 그리고 게임 플레이 시스템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선다. <와우>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다. 열성 플레이어들도 나이를 먹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새로운 플레이어의 유입보다 기존 플레이어의 여전한 참여가 <와우>를 유지시키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와우>가 기존 플레이어들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용군단>에서 발견되는 기존 아이디어의 적용과 변경, 새로운 아이디어의 추가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면서도 다음에 올 일을 포용하는 <와우>의 면모임에 다름 아니다. <용군단>은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배움을 통해 앞으로 갈 방향을 찾았다. 그 방향에서는 다음 확장팩 이후 쓸모가 없게 될 (이번 확장팩의) 새로운 시스템보다는, 애초에 <와우>가 내재하고 있던 시스템들을 개선하는 일이 더 중요한 듯하다. 여전히 <와우>가 진화 중이고, 다음 확장팩이 기대되는 이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그린게이밍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2020년 이래 아이폰은 충전기 미포함으로 출시되고 있다. 애플에 따르면 이는 포장 쓰레기와 전자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서, 판매되는 아이폰 한 대당 소요되는 원자재량 및 포장용 패키지 절감을 통해 운송용 팔레트 한 대당 70% 더 많은 제품을 실을 수 있어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Calma, 2020). < Back 그린게이밍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22 GG Vol. 25. 2. 10. you can 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at below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3a3f169a-8f0a-4d4b-b844-a2fb22042dcc From physical to digital, 실물에서 디지털로 2020년 이래 아이폰은 충전기 미포함으로 출시되고 있다. 애플에 따르면 이는 포장 쓰레기와 전자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서, 판매되는 아이폰 한 대당 소요되는 원자재량 및 포장용 패키지 절감을 통해 운송용 팔레트 한 대당 70% 더 많은 제품을 실을 수 있어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Calma, 2020). 이러한 계산이 정확한 것인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애플의 충전기 미포함 조치는 친환경 전자제품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스마트폰 제조사뿐 아니라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 여타의 제조업체들 또한 친환경적인 제품을 만들거나 최소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렇다면 수익(2024년 기준 1,870억 달러)과 이용자수(2024년 기준 33억2천만명), 그리고 시간(하나의 제품이 매달 30억 시간에 달하는 엔터테인먼트 제공 가능)에 있어 세계에서 최고 수준에 이른 분야(Ball, 2021; Konvoy Ventures, 2023; Sinclair, 2023; Technavio, 2025)는 어떨까? 비디오게임 및 디지털 산업 전반과 환경 간의 관계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비디오게임이 물리적 형태였던 시대(역주: 패키지게임 시대)에 가장 악명 높았던 사건으로는 위키피디아에 전용 페이지도 개설되어 있는 “아타리 비디오게임 매립”사건을 들 수 있는데, 2014년에 출간된 의 저자인 레이포드 귄스(Raiford Guins)는 1980년대에 벌어졌던 여러 사건들에 대해 조사하면서 해당 사건이 있었던 매립지 인근 주민들과 인터뷰를 진행(Guins, 2014)한 바 있다. 이 전설적인 매립지 사건은 비디오게임 산업에 있어 플라스틱 사용의 절감이나 친환경적인 포장 등을 고민하는 지속가능성의 개념이 제기되는 계기가 되었는데(Martin, 2020), 이 시기 비디오게임이 물리적 형태를 지녔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비디오게임과 환경 간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스토어가 열리고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더 많은 게이머들이 실물 카피 대신 게임을 다운로드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비디오게임 산업에 있어 친환경이라는 개념은 서서히 탄소 발자국과 에너지 소비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원의 청정도를 추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현재 우리는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문제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게이머, 퍼블리셔, 개발자, 정책입안자, 연구자 등 모든 측면에 걸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Tapsell & Purchese, 2021). 실제로 이와 관련해서 다양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 기반의 게임 언론 유로게이머(Eurogamer)의 크리스 탭셀(Chris Tapsell)과 로버트 퍼체스(Robert Purchese)는 게임과 환경에 관한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개요를 비롯해서 소비자로서 우리가 보다 책임감 있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심층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Tapsell & Purchese, 2021). 뿐만 아니라 환경을 주제로 하는 게임 제작 이벤트인 그린게임잼(Green Game Jam) 등의 운동이나 이니셔티브도 진행 중이다. “그린 게이밍(Green Gaming)”이라는 용어 또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자들이 찾아낸 비디오게임과 환경과 관련된 문제들은 무엇이며, 학계가 규정하는 그린 게이밍이란 무엇인가? Detour: A little bit about method, 연구방법론 간단히 살펴보기 최근 나는 동료들과 비디오게임과 환경 문제와 관련된 학술 논문과 단행본 및 챕터, 학회 발표문, 논문을 포함한 50개의 문서에 대한 체계적 검토를 진행했다(이 논문은 현재 심사 중이다) (Ho et al., 2024). 우리는 “그린게이밍(Green Gaming)”이나 “에코게임(Ecogames)”와 같은 여러 키워드를 활용해서 Web of Science와 Google Scholar 등 다양한 논문 추천 시스템을 포함한 여러 학술 데이터베이스에서 관련 자료들을 찾았다. 그 결과 400편 이상의 문서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를 제목과 초록 및 본문을 검토하는 여러 번의 스크리닝 과정을 거쳐 50개의 관련 문서를 골라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Main Contributors, (게임과 환경간 연구의) 주요 기여자들 미디어 연구에 뿌리를 둔 전통적인 게임연구(traditional game studies)는 비디오게임에 대한 이해를 구축하는데 기여해왔다. 미디어 연구분야는 비디오게임이 문학이나 예술작품과 같은 텍스트의 일종으로서 이론적, 비평적 분석을 통해 보다 심도 있게 통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경향은 분석 대상의 대부분이 게임연구 분야의 논문이었던 우리 연구팀의 초록, 제목, 카테고리에 대한 단어 분석작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알렌다 챙(Alenda Y. Chang)의 와 벤자민 에이브러햄(Benjamin J. Abraham)의 등의 대표적인 저작들은 비디오게임과 환경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개발자, 퍼블리셔, 소비자들이 비디오게임 산업을 보다 친환경적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에 실린 여러 챕터들에서는 한발 더 나아간 탐구를 볼 수 있다. 비디오게임은 단지 예술 작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도구이자 실현이다. 따라서 다른 영역들 또한 비디오게임이 인간에게 미치는 효과를 이해하거나(심리학) 교육 목적으로 활용하거나(교육이나 건축) 비디오게임을 작동시키는 기술에 직접적으로 기여(컴퓨터 사이언스)하고 있다.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의 논문 대부분은 게임을 보다 친환경적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기술과 방법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라우드 게이밍이 이론상 친환경적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제안(Chuah et al., 2014)되기도 했으나, 스태디아(Stadia)의 실패에서 보았듯, 클라우드 게이밍은 성공적으로 구현되지 못했다. 다른 연구에서는 클라우드 게이밍이 단순히 에너지 부담을 데이터 센터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며 그러한 데이터 센터들이 게임 운영 지원을 위해 일주일 내내 24시간 가동되어야 함을 지적하기도 한다(Aslan, 2020; Mills et al., 2019). Education: From video games to pro-environmental awareness, 교육: 비디오게임으로부터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까지 비디오게임의 핵심 하드웨어인 그래픽처리장치(GPU)는 현실을 시뮬레이션하기에 모자람 없는 성능을 제공해왔다. 현대 기술은 현실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창조해내고 있다. 그 세계에서는 인간, 오우거, 마녀들이 놀랍도록 현실에 가까운 일상을 보낸다. 날씨 또한 사실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는데, 추우면 몸을 떨고 비가 내리면 몸이 젖으며 들고 있던 철검이 번개를 맞기도 있다.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비디오게임의 몰입감과 포토-리얼리스틱한 그래픽은 기술적 관점을 넘어 예전 나의 스승이 수행했던 연구에서 암시했던 부분, 즉 (비디오게임이) 현실과 대중의 인식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자, 과학자, 그리고 교육자들 또한 이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의 제프리 펑(Jeffrey Fung)은 태양계와 항성, 행성들은 시뮬레이션하는 GPU 기반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Fung, 2020). 따라서 환경 문제에 있어 비디오게임의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용도 중 하나는 인식의 제고일 것이다. 연구자들은 특정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시리어스게임 또는 교육용 게임에서 잠재력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킥스타터 프로젝트로 시작하여 후에 미국 교육부의 지원도 받게 된 게임 에서 플레이어들은 생태학적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예측된 유성 충돌을 막기 위해 협력해야 하는 시나리오로 만들어졌다. 이 게임에서 설계된 유한한 자원과 외부적 영향 요인은 현실적인 게임플레이 경험을 만들어내는데, 여기에는 실제 상황에서 부딪히게 될 여러 어려움들이 반영되어있다 (Fjællingsdal & Klöckner, 2019). 연구자들은 또한 시리어스 게임, 상업용 게임, 풍자적 게임, 게이미피케이션 앱들이 게이머의 친환경적 행동 채택을 장려하는 효과를 평가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환경 문제 및 환경 착취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디자인된 이러한 게임들은 플레이어들의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게임 내 지속 가능한 기술들을 일상 생활의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데 있어 중간 정도의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Boncu et al., 2022). 최근에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게임 타이틀을 연구 대상으로 활용한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에드워드 J.크로울리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게임의 교육적 측면을 연구하기 위해 <레드 데드 리뎀션2(Red Dead Redemption2)>의 세계를 활용했다(Crowley et al. 2011). 연구자들은 게임에 묘사된 야생동물종에 대하여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지식을 테스트했보았다. 그 결과 가상세계 내 여러 동물종과의 상호작용은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들(즉 플레이어들)의 종 식별 능력을 향상시켰는데, 특히 유제류와 어류에서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 내에서 물고기를 잡는 플레이어들은 실제로 물고기의 이름, 서식지, 심지어는 소리까지 배우고 기억했다. 그런가 하면 게이머들이 가상 공간에서도 자연스럽게 녹색 식물이 많은 장소에 끌리고 이러한 지역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도 관찰됐다(Truong et al., 2018). Video games are more than playing, 비디오게임은 단순한 플레이 이상이다 비디오게임의 기술적 측면에 직접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컴퓨터 과학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문 분야는 ‘플레이’라는 비디오 게임의 특정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비디오 게임은 영화나 문학처럼 면밀히 검토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간주되어 왔다(Gee, 2006). 그러나 영화나 문학의 경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행위는 상이한 개인들을 가로지르는 번역이 가능하다. 즉 의미에 대한 해석은 개인별로 다를 수 있지만, 소비하는 행위 자체는 개인들 간의 차이를 가로질러 동기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다양한 설정, 선호도, 장르에 따라 개인들 사이에서 상이하게 이해된다. 예를 들어 <콜오브듀티(Call of Duty)>의 플레이경험은 <캔디크러쉬(Candy Crush)>과 매우 다르다. 따라서 전통적인 게임 연구자들은 비디오 게임과의 상호작용을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왔다. 예를 들어, 게이머들이 <레드 데드 리뎀션2>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와 같은 가상 세계에 몰입할 때, 그 플레이는 예상치 못한 학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Crowley et al., 2021; Truong et al., 2018). 이에 더해 모든 게임에는 의도된 플레이 방식이 존재함에도, 스피드런(게임을 가능한 한 빨리 완료하는 것), 챌린지(한 가지 메커니즘만 사용하여 게임 완료하기), 모딩(외형 변경 또는 새로운 게임 만들기)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게이머들은 언제나 새로운 참여 방식을 찾아내 왔다. 이러한 행동들은 플레이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여기에는 비디오 게임에 내재된 무한하고 경계 없는 창의성이 구현되어 있다(Lamerichs, 2024; Scully-Blaker, 2024). 게이머들이 비디오 게임에 보다 빠져들수록 게임에 대한 다른 생각의 가능성 또한 증가한다. 그에 따라 연구자들도 비디오 게임 및 게임산업 전반에 대한 자신들의 관점을 진화시키고 있다(Abraham, 2022a; Fizek, 2024). 연구자들은 게임플레이에만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개발자, 규제, 퍼블리셔에 대해 보다 많은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지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의 저자 벤자민 J.에이브러햄(Benjamin J. Abraham)은 비디오 게임의 탄소 발자국을 생산부터 유통, 그리고 최종적으로 게이머들이 플레이하는 시점에 이르기까지 분석했다(Abraham, 2022a). 여기서 에이브러햄은 비디오 게임이 세계에 미치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포함해 더 큰 맥락에서 스스로를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편 비디오 게임의 하드웨어에 특별히 초점을 맞춘 연구는 드문데, 2019년 에반 밀스(Evan Mills)는 동료들과 비디오 게임 하드웨어의 에너지 사용과 관련된 기술적 연구, 에너지 정책, 컴퓨터 에너지 라벨링 프로그램 및 표준, 그리고 규제가 심각하게 부족함을 발견했다(Mills et al., 2019). 결론적으로 비디오 게임 소비가 실제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여전히 제한적인 상황이라 하겠다. Green Gaming,그린 게이밍 2019년, 나는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Breath of the Wild)>의 세계를 탐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이후의 봉쇄 기간 동안 <동물의 숲: 뉴 호라이즌>의 섬은 낚시, 나무 심기, 꽃 가꾸기와 같은 일상적인 작업으로 가득 찬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해주었다. 콜린 밀번(Colin Milburn)의 '그린 게이밍(green gaming)'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이러한 게임들은 "환경 통제적인 게임(games of environmental control)"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플레이어들이 직접적으로 환경을 제어하고 조작할 수 있는 유형의 게임을 뜻한다 (Milburn, 2018). 게임 연구의 짧은 역사 동안, 연구자들은 비디오 게임과 환경 간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에코게임,' '생태학적 게임,' '지속 가능한 게임,' 또는 '기후 변화 게임' 등과 같은 다양한 용어들을 '그린 게이밍'과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해 왔다(Abraham, 2022b; Abraham & Jayemanne, 2017; de Beke et al., 2024). 하지만 이러한 용어들은 주로 학술적 맥락 내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왔을뿐 아니라, 앞서 설명한대로 플레이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다. 벤자민 에이브러햄이나 에반 밀스 같은 연구자들은 게이밍(gaming)을 소프트웨어의 생산과 유통, 특정 하드웨어의 선택, 이용자의 다변화된 선호도와 행동까지 관여됨으로써 보다 포괄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실제로 '그린 게이밍'을 구글링 해보면 높은 확률로 그 첫 검색 결과로서 HowStuffWorks가 나올 수 있는데, HowStuffWorks에서 다루는 내용의 초점은 게임플레이를 통한 에너지 절약, 하드웨어 재활용, 게임플레이를 통한 환경 인식 제고에 놓여져 있다(Watson, n.d.). 따라서 연구자들에게는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생산, 선택, 구매, 소비하는 것을 포함하는 그린 게이밍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요구된다 할 수 있다. 결국 "그린 게이밍이란, 비디오 게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 모두에 대해 환경을 의식하는 생산, 구매, 소비를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개발자와 게이머들의 행동은 단순히 오락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욕망뿐만 아니라 환경의 지속가능성과 자원 보존에 대한 책임감에 의해 주도된다"(Ho et al., 2024). 기후 변화 및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른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일상 활동에서조차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재고해야 함을 깨달은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라 할 수 있다. 비디오 게임 및 그것이 미치는 환경적 영향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현재 다소 제한적이고 불충분한 상황이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은 젊은 세대에게 지배적인 엔터테인먼트이며, 따라서 이제 질문은 더 이상 비디오 게임의 잠재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임감 있게 비디오 게임을 제작, 선택, 구매, 소비,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을 보다 현실적이고 실천적으로 고민하는 것에 놓여있다 하겠다. 참고문헌 Abraham, B. J. (2022a). Digital Games After Climate Change. Palgrave Macmillan Cham. https://doi.org/https://doi.org/10.1007/978-3-030-91705-0 Abraham, B. J. (2022b). What Is an Ecological Game? In B. J. Abraham (Ed.), Digital Games After Climate Change (pp. 61-88).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https://doi.org/10.1007/978-3-030-91705-0_3 Abraham, B. J., & Jayemanne, D. (2017). Where are all the climate change games? Locating digital games? response to climate change. Transformations, 30, 74-94. Aslan, J. (2020). Climate change implications of gaming products and services University of Surrey]. https://doi.org/10.15126/thesis.00853729 Ball, M. (2021). Netflix and Video Games. MatthewBall.vc . Retrieved April 27 from https://www.matthewball.vc/all/netflixgames Boncu, Ș., Candel, O.-S., & Popa, N. L. (2022). Gameful green: a systematic review on the use of serious computer games and gamified mobile apps to foster pro-environmental information, attitudes and behavi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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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만 또안 호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What’s fair price for video games?
In Korean gamer communities, there's this saying about playing games from the Steam library: "Back then, we never paid to play the game. Nowadays, we never play despite paying the game." The phrase sarcastically highlights the contrast between the game market back in the 80s-90s, when no one actually paid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ith the abundance of pirated and copied games in Korea, compared to now with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when people do not play the game despite after purchase. < Back What’s fair price for video games? 17 GG Vol. 24. 4.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34e447be-d2b1-48f0-85e6-eb63ee2f907b In Korean gamer communities, there's this saying about playing games from the Steam library: "Back then, we never paid to play the game. Nowadays, we never play despite paying the game." The phrase sarcastically highlights the contrast between the game market back in the 80s-90s, when no one actually paid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ith the abundance of pirated and copied games in Korea, compared to now with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when people do not play the game despite after purchase. The internet is flooded with countless games available to play at any time. We are living in an era where people can purchase more game easily through online digital game distribution channels than what humans could possibly play in a lifetime. The normalization of digital distribution, like Steam, has certainly contributed to lowering the entry price of a video game. But coming up with a fair amount of price tag in reality is a bit more complex than that, and it is difficult to say whether the game prices have truly become affordable than before. The regular release price of so-called “AAA” game titles has been steadily on the rise, not to mention all those excessive special editions (e.g., deluxe packages, limited editions) that cost well over ₩100k (approximately $80). As such, in some degree games are affordable form of entertainment, but at the same time, they deemed as expensive. To fully comprehend this contradictory situation, we must start asking ourselves: what is actually a fair price for video games? We do know that a considerable amount of manpower and resources go into video game production. So, being able to come up with a mutual range of fair prices would contribute to the industry in terms of securing sufficient profits for the creator and, thus, the necessary funds for the development of a better game. It would also contribute to its users that fair price can contribute to a continuation of a good product that offer enjoyable and enriching virtual experiences. Challenges in Determining Regular Prices of Video GamesHistorical records suggests that the pricing of video games was not never really calculated based on systematic business forecasts but often by arbitrary guesswork. The normative rules of game prices have frequently changed as well. For example, early arcades operated on fixed-price coin-op business model, where the playable time per coin heavily depended on how the player is good at that particular game. Ironically speaking, the more skilled players play longer while spending less, resulting in fewer profits for arcade operators. (This led to instances where skilled arcade-players in Korean arcades were occasionally kicked out from the premises, with a coin refund, to make way for the next player in line.) As such, the cost of complete gameplay experiences varied from person to person, largely contingent on their gaming proficiency. Of course, it not all gamers back then expected to achieve complete gameplay experiences in every arcades. The emergence of console and PC “package” games introduced the concept of fixed prices in the game industry, which meant people could pay the same price regardless of the amount of gameplay hours of each user. Each cartridge, disk, or CD was sold at a fixed price, gradually forming an average price range for games. But with the rise of online digital distribution channels and their mass-scale discount systems, real-time price controls, and game subscription schemes, the range of regular prices for package-type games has begun fluctuating again. Determining the fair price of a game has become even more complicated with the rise of the micro-transactions in games, which has become increasingly prevalent in the online/mobile game era. Now the cost of a game is not only about the gaming proficiency but also the total amount spent in-game. The gameplay experience of a heavy user who spends $1,000 on micro-transactions in a free-to-play game like Uma Musume: Pretty Derby (Cygames, 2021) would vastly differ from that of someone who didn't spend a dime in that game. In such a vastly different player-base, coming up with a mutual ‘fair’ price is certainly not an easy task. What I would like to note here is that the topic of regular price of a game and the appropriate cost (i.e., what is deemed as appropriate amount of money that one can spend in games) are a different thing. Because, to put it simple, the amount of coins that a player bring to arcade shop is not just about how much each session of a gameplay in that particular arcade cost. Rather, it’s about how many sessions of gameplay that the player is going to (or willing to) pay, multiplied by the cost of each gameplay session. As such, answering the question of 'what is a fair price for a game' is not solely about the determining the sales price tag of a game product, but also about finding a mutual balance between producers and consumers – in a way to maintain a sustainable cycle of produc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While individual purchasing power is certainly an important indicator to look at, but the primary concern lies here is about how goods (in this case games,) can be fairly exchanged between producers and users. Then another thing that needs to be addressed is the issue of today’s digital game distribution method, specifically, its pluralistic nature of game as both a product and a service. In the arcade era, games were primarily operated as a rental business. Then, gradually, they transitioned into owning the game (or game machines) as goods in the home console and PC game era. However, with the normalization of online/mobile games, there has been a shift back to rental services – games that are channeled through server-based, internet-connected platforms. Therefore, we are now living in an era where games cannot be explained by a single value; rather, they are both products and services that intersect and coexist. So there cannot be a simple answer regarding the fair price of games. And this is not even considering all those numerous discounts deals and subscription services. So it is evidently clear that there is no magic number about ‘what is the fair price’ in a game – we cannot do simple math by ticking checkboxes. One ideal approach is perhaps to first examine the amount of money spent on game production and then propose a range of unit prices that could potentially recoup those production costs for its creators within a reasonable timeframe. Then whether that price range is acceptable are ultimately determined consumers, by finding just the right balance between the market’s natural supply and demand. Clearly, it’s not an easy task. But a tasks that must be done. Why should we talk about the fair price of games? The Korean Consumer Price Index (CPI) is calculated based on the cost of 480 essential goods and services, served as a common indicator to determine South Korea’s regular living cost and inflation rate. Among these, 47 fall under the category of “entertainment and cultural activities”, which include activities such as purchasing musical instruments, computers, film tickets, and books, and the costs of travelling and even repairing digital devices. However, game-related expenditures are not included in Korean CPI. Despite numerous reports about the significant increase in South Koreans' usage of games, and despite all those provocative media coverage of somebody ‘spending tens of thousands of dollars on video games in micro-transaction instead of doing something productive’. Some easily solution is to add already existing collectable data such as PC-bang hourly fees and average of online entertainment purchases. Even if so, there are clear limitations; as they do not fully capture the overall game-related spending patterns of general South Korean players. This call for thorough actions in order for us to truly able to say that games have become one of the mainstream media – regarded as one popular media and enjoyed as any other daily leisure activity. This would include polishing our societal system and facilitating infrastructures to finally acknowledge gaming as an act of leisure and cultural fulfillment in contemporary society, and economic analysis on game-related consumptions. For instance, Korea do have basic reports on how much money people spend on games per month and what the highest and lowest prices are – such as the Game User Census Report conducted annually by the Korean Creative Contents Agency. However, there are still rooms for improvement as those numbers are isolated from the overall economic index, such as other consumable indexes in Korean CPI. While the cost of watching films, television shows, and portable multimedia devices is accepted as a ‘valid’ indicator of the livelihood of South Korean households, the cost of playing games is still missing. Now is the time when we should finally acknowledge the significance of the cost of software that is called video games. And not just the price tag of the game itself but also the significance of games in the overall socioeconomic context. This then leads to my question, “What is the fair price of games?” In this complex, ever-connected era of gameplay, the question shouldn’t be limited to “how much should the game product cost” but rather should target the fundamental question of “what games mean” – the value of game-related consumptions intersect with other means of our entertainment, social, and leisure activities. Instead of fixated by the price tag of a game itself, we should start asking ourselves how the game-related expenditures are compared to other leisure and cultural activities. Why do people choose to spend money on games rather than other means of media? What’s unique about games? It is now time to surface these questions that are currently encapsulated within gamers' communities and web forums, further into mainstream societal discourse. Lastly, perhaps we now need to start asking the very fundamental question of “What is the (means of) fair price of games?” Because, controversial topic such as the toxicity of impulsive or excessive game micro-transactions, or the irony of free-to-play (that, there’s no such thing as free to play anything), eventually leads to the fundamental question; what could account for the price of gameplay? What are the fair means of purchasable in gameplay? What can be quantified and what cannot? And how to measure them? We must realize that we no longer live in the era of a simple supply and demand market that can determine the simple one-for-all price of games. Instead, now is the time to embrace this ever-complicated question even to video games as medium itself.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KyungHyuk Lee He has been close to games since childhood, but it was not until 2015 that he started talking about games in earnest. After living as an ordinary office worker, he entered the life of a full-time game columnist, critic, and researcher through a series of opportunities. Books such as "Game, Another Window to View the World" (2016), "Mario Born in 1981" (2017), "The Theory of Game" (2018), "Wise Media Life" (2019), and "The Birth of Reality" (2022); papers such as "Is purchasing game items part of play?" (2019); "Dakyu Prime" (EBS, 2022), Gamer (KBS), "The Game Law", 2019 BC) and "Economy of Game", etc.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institute 'Dragon Lab'.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 지금 우리는 무엇을 '롤플레이'하는가
21세기의 사반세기를 돌아 마주한 것은 언어의 순수에 대한 갈망 하나만이 아니다. 70년대에 탄생하고, 90년대에 완숙하여, 2000년대에 끝없이 분화한 이 장르를 태초의 조건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RPG’라고 부르던 조건은 이제, 수많은 가능성들에 의해 취사적으로 선택되고 조립되고 분화되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제 비디오 게임의 세계에 순수한 RPG라는 것은 규정 불가능하다. < Back 지금 우리는 무엇을 '롤플레이'하는가 23 GG Vol. 25. 4. 10. 비디오 게임 장르로서의 RPG [1] 는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장르다. 이 장르는 태생부터 특정한 테이블 탑 게임을 도달해야 하는 이상적 모델로 삼으며 탄생했다. 초기 비디오게임 RPG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테이블탑 RPG(이하 TRPG)인 《던전즈 & 드래곤즈》(이하 D&D)를 혼자서 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 것에 목표로 두었다. 대부분 미국의 대학 내 인트라넷 시스템이었던 PLATO [2] 를 그 플랫폼으로, D&D를 즐기던 대학생들에 의해 자주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세간에도 잘 알려져있다. 또한 리처드 개리엇의 초기 작품인「아칼라베스」 역시 초기 버전의 제목이 DnD였다는 사실 또한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이 독특한 장르는 이러한 외부적 게임을 디지털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장르다. 물론 다른 장르들, 예를 들어 스포츠나 대전 격투 역시 현실의 ‘게임’을 디지털적으로 구현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RPG는 이들과는 다른 방식의 번역을 요구했는데, 그것은 RPG가 디지털의 방식으로 구현하려는 대상이 육체의 운동이나 정형화된 규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TRPG를 구동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했던 것, 그것은 TRPG의 가장 핵심적인 기반이 참가자들의 ‘언어’라는 사실이었다. TRPG 역시 대개는 적절히 구성된 게임 세계와 가변성이 큰 상황을 판단하기 위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게임을 ‘불편하지 않게’ 유지하기 위한 기반적 틀거리에 한정된다. TRPG는 그 이상의 모든 요소들, 그러니까 게임 내에 등장하는 장애물의 종류, 풀어야 하는 퍼즐이나 수수께끼, 참가자들 이외에 존재하는 세계의 모든 요소가 완전히 구조화되어 있지 않다. 설령 특정한 적 캐릭터에게 수치적 데이터가 있다고 한들, 그들이 어떤 배치로, 어떤 전략으로, 어느 정도의 사기로, 어떤 목적으로, 어떤 마음 가짐으로 플레이어들과 대립하는지는 규정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들 사이의 언어적 합의와 심판의 역할을 맡는 ‘게임 마스터’에 판단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이러한 세계와 게임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상호 반응할 것인가, 당면한 문제를 어떠한 과정으로 해결할 것인가 역시 모두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서 확정된다. TRPG라는 게임이 가진 가장 핵심적인 기반은 언어이며, 비디오 게임으로서의 RPG는 이 기반의 ‘거대함’을 번역하는 것을 요구받은 장르다. *「울티마」(1981)는 자율적으로 접촉 가능한 세계를 통해 거대함의 컨셉을 작동시킨다. 초기 미국의 컴퓨터 RPG(이하 CRPG)들은 이 거대함을 ‘게임 세계’라는 컨셉으로 해석했다. 이를테면 세계는 선형적이거나 순환적이지 않았다. 플레이어는 사전적으로 규정된 세계 내에서 자율적으로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기능을 얻었다. 「울티마」는 탑뷰로 내려다본 세계와 1인칭의 시점으로 구현되는 던전을 모두 가지고 있었으며, 던전의 구성은 난수적이긴 했으나 일정한 패턴을 통해 구현되었다. 플레이어는 어떤 곳에 먼저 들를지, 무엇을 먼저 구매할지 따위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세계와 반응해나가야 했다. 「위저드리」는 그보다는 더 좁은 세계인 다층 구조의 지하 던전을 다루고 있지만, 이러한 구조물과 플레이어는 비선형적 관계를 맺었다. 좁은 지하의 터널 내부에서도 ‘어떤 방’을 ‘어떤 순서로’ 탐험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몫이었으며, 때로는 모험을 포기하고 다시 지상으로 귀환해 상태를 재정비하고 다시 내려가야 했다. 물론 이러한 반응성의 세계는 초기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이를테면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나 「조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CRPG는 이런 어드벤처 게임들과는 전적으로 구분되는 체계를 내장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일종의 ‘수치에 의한 캐릭터 규정과 성장의 체계’다. 이 체계는 전적으로 그들이 원본으로 삼던 D&D의 것을 빌려온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언어라는 구조를 완전히 빌려올 수 없었던 디지털의 방법론에서 이 수치 개념이야 말로 가장 구현의 가능성이 높은 것이기도 했다. 지미 메이허Jimmy Maher는 《CRPG의 르네상스 파트 1》에서 이 문제를 꽤나 신랄하게 비판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CRPG는 전투와 병참 관리가 전부인 게임 엔진 위에 스토리와 세계 구축이라는 얇은 외피를 씌웠고, '롤플레잉role-playing' 게임이 아니라 '롤플레잉roll-playing'이 되었다.’ [3]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구현은 RPG라는 것이 초기 텍스트 어드벤처 혹은 다른 ‘거대한 서사’를 지탱하려는 비디오 게임 장르들과 구분되는 지점을 형성한다. RPG의 주인공은 결과적으로 ‘위대해짐’의 상태를 달성하는 것이다. 요컨 당대의 서사를 내포하는 다른 장르의 주인공들 역시 ‘더 복잡하고 장대한’ 장애물과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장애물과 마주하는 주인공 그 자체가 그에 상응할만한 존재로 변화하지는 않는다. [4] 하지만 RPG가 D&D로부터 빌려온 이 캐릭터 성장의 구조는 플레이어의 캐릭터에게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를 부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더 위대한 상태에 도달해 더 거대한 위협을 무찌르는 에픽epic [5] 의 서사의 구축이 가능해진다. [6] 한편 이러한 장대함의 구조는 TRPG의 ‘언어’라는 컨셉을 대체할만한 또 하나의 컨셉, 즉 ‘에픽의 서사’라는 컨셉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줬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 장르인 RPG는 ‘(거대한) 게임 세계’와 ‘(거대한) 에픽의 서사’라는 두 가지 컨셉을 지닌 장르로 체계화되었다. 그리고 핵심은 이 두가지 컨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컨셉들이 발현시키는 고유한 RPG만의 체감 조건에 있다. 넓고 반응 가능한 세계, 그리고 점차 ‘위대해지는’ 캐릭터의 변화는 플레이어를 게임의 내부에서 ‘정처없이 서성거리’도록 내민다. 이런 구조는 원뿔형의 나선으로 토픽화 된다. 플레이어는 넓은 반응 중심의 게임 세계에서 다양한 대상을 만나며 ‘정처없이’ 움직이고, 이러한 움직임이 캐릭터를 ‘점차 위로 상승’시켜 최종적으로는 꼭대기peak와 접촉한다. 이런 구조는 초기 미국의 RPG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코드를 어느 정도 변용해 받아들인 일본의 RPG(Japanese RPG, 이후 JRPG)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단, 이 하위 장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 퀘스트」는 프로듀서의 지향 [7] 에 의해 ‘게임 세계’보다는 ‘에픽의 서사’가 더 강조되었고, 이후의 JRPG가 그러한 서사에 더 집중하도록 만드는 기반을 부여했다. 이렇게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 RPG라는 것이 탄생한다. 선형 혹은 순환형 세계에서 변화를 가지지 않던 주인공들이 존재하던 세계에 ‘정처 없는’ 플레이가 들어선 것이다. 1990년대 : CRPG의 고전기 이렇게 형성된 RPG라는 장르는 1990년대에 이르러 그 형태가 더욱 졍교해진다. 《롤플레잉 게임 스터디즈Role-playing Game Studies》(2018) 에서 슐스Schules, 피터슨Pterson, 피카드Picard는 ‘게임 제작 수의 폭발적인 증가와 출시되는 게임의 질적 향상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학계와 팬들은 1990년대를 CRPG의 황금기로 간주한다.’ [8] 고 쓰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은 이후의 RPG를 규정했다고 말할 수 있는 몇 개의 게임들, 블리저드의 「디아블로」, 바이오웨어의 「발더스 게이트」, 인터플레이의 「폴 아웃」,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의 「엘더스크롤 II : 대거 폴」, 스퀘어 소프트의 「파이널 판타지 VII」 등이 발매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다수/다종의 제작과 발매는 장르 내부에서의 적극적 분화를 이끌어낸다. 이 시기에 RPG가 유독 비디오 게임계의 주요 화두가 된 것은 비디오 게임 환경의 전적인 이동에 있기도 했다. 1990년대 개인용 PC의 보편화와 더불어 닌텐도, 세가의 적극적 공세는 비디오 게임의 소비 공간을 아케이드에서 가정으로 끌고 들어왔다. 이러한 소비 공간의 변화는 게임의 소비 방식 자체를 ‘일회적 양식’에서 ‘다회적 양식’으로 크게 변화시켰고, 플레이어들은 다회의 플레이가 맥락적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요구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는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월드」같은 플랫포머 게임조차 맥락적 다회 플레이를 의식하는 구성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경혁은 《현질의 탄생》에서 이렇게 적는다. "(게임의 소비 공간의 변화를 통해) 첫 번째로 발견할 수 있는 변화는 긴 호흡의 게임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 엔딩 없이 무제한으로 반복되던 초창기 게임들은 서서히 나름의 서사를 가진, 다시 말해 엔딩이 있는 게임의 형태로 변화했다. (...) 콘솔/PC 게임들이 보여주는 세이브/로드를 통해 초장 시간의 서사를 갖는 게임 플레이는 (...)" [9] 70~80년대에 발흥한 RPG라는 장르는 이러한 비디오 게임 소비의 공간적 변화에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작동한다. 호리이 유지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점점 강해진다는 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했거든요. AVG는 수수께끼가 막히면 할 일이 없어져버리지만, RPG라면 일단 레벨을 올리기만 해도 즐길 수 있잖아요. 수수께끼를 풀고 레벨도 올리면서 계속 나아가면 많이 놀 수 있는데다가,(후략)." [10] 이 시기를 루이스 자네티Louis Gianetti의 장르 사이클에 놓고 본다면 전적으로 고전기 [11] 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고전기는 ‘중간단계로서 균형, 풍요, 안정 같은 고전적인 이상을 구현’ [12] 한다. 즉, 80년대에 만들어진 RPG라는 장르 규칙은 1990년대의 폭발적 증가를 통해 수없이 반복되며 하나의 이상적 형태를 이룬다. 그리고 이 때의 RPG들이 무엇을 그 고전적 이상으로 삼았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RPG를 ‘RPG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만든 것은 사실상 거대한 세계, 에픽의 서사라는 컨셉보다도 그것을 달성시키는 ‘양식 조건’, 수치적 캐릭터 구성과 그 성장 체계에 기울어진 경향이 있다. 그것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RPG를 ‘다른 장르와 다르게 만들어주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무엇인가에 ‘RPG’라는 태그를 달 수 있는 조건은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수치화된 ‘능력치’라는 것이 있는지, 점수화된 경험을 모아 ‘레벨’을 올릴 수 있는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를통해 이 시기에 ‘RPG화’라는 욕망은 이 메커니즘을 어떻게 이식하는지에 달려있었다. 예를들어 시에라 온라인이 이러한 ‘RPG성’을 이식해 만든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 시리즈 「퀘스트 포 글로리」 [13] 의 경우, 역시나 강조되는 것은 이러한 양식 조건이다. 당시의 게임 잡지인 《PC 매거진》 1993년 1월호는 이 게임의 세번째 작품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문구를 사용한다. ‘이전의 「퀘스트 포 글로리」와 마찬가지로, QG3는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CRPG)과 그래픽 어드벤처가 혼합된 게임입니다. 캐릭터의 특성과 능력은 능력치의 리스트에 의해 정의됩니다. 상황의 성공 여부는 스킬 레벨에 따라 달라지며, 연습을 통해 스킬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14] 이러한 규정은 연구자들에게서도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구석이 있다. 2008년 International Journal of Role-playing Games - Issue 1에 실린 마이클 히친스Michael Hitchens와 앤더스 드레이센Anders Drachen의 《롤플레잉 게임의 다양한 얼굴들》에는 싱글 플레이어 디지털 롤플레잉 게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적혀있다. ‘이러한 게임은 캐릭터의 수치적 표현에 의존하며, 펜 앤 페이퍼 게임의 전형적인 스킬과 능력의 수치적 향상에 따라 캐릭터가 성장한다.’ [15] 또한 2012년 발매된 《비디오 게임 대백과》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장을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모든 RPG에는 정량화할 수 있는 특징(테이블탑 스타일 RPG에서 사용되는 캐릭터 시트와 동등한 디지털적 요소)을 가진 플레이어 캐릭터가 있으며 캐릭터의 성장이 성공의 중심 척도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RPG 규칙 시스템에는 자주 '경험치 레벨'이 포함되는데, 이는 게임에서의 성공적인 진행을 통해 새로운 능력과 스킬로 '레벨 업'할 수 있는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다는 의미다.’ [16] *《PC GamePro》에서 배포한 「디아블로」(1996)의 리뷰 프린트 광고. 잡지에 따라서는 Action RPG로 소개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이러한 양식 조건만으로 RPG를 설명할수 있는가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1996년 블리저드의 「디아블로」가 출시된 뒤, 해당 게임을 CRPG로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17] 그럼에도 「디아블로」는 여러 게임 잡지들의 기사 등에서 ‘RPG’로 홍보되었으며 전통적 팬덤의 입장과 무관하게 RPG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즉 업계에서는 RPG라는 게임을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이러한 수치적 캐릭터 규정과 성장 방식을 하나의 문법으로 사용했다. 설령 전통적 RPG의 팬덤이 이를 수용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한편 이러한 비교적 가벼운 규정은 1990년대에 RPG의 제작을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토대가 되어주기도 했으며, 덕분에 다종으로 분화할 토대가 형성되었다는 사실도 생각할 여지가 있다. 이를테면 일본에서 탄생한 SRPG의 경우 세계와의 접촉이 선형적이고 불가역적임에도 불구하고 RPG의 하위 장르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는 개별적인 게임 무대stage에서의 자유로운 전술적 지침이 이러한 ‘정처없는 서성거림’을 일부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1990년대는 그것의 고전기라고 부를 수 있는 조건과 동시에 그것에 다종의 분화를 만드는 수정기의 초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분화는 크게는 RPG의 거대 컨셉을 어떤 맥락에서 접근하느냐를 통해 분화되었다. 요컨대 지리적 요건에 의해서는 일시적으로 서구식 RPG(Western RPG, 이후 WRPG)라고 불리웠던 그것과 JRPG로, 인터넷이라는 기술 조건에 의해서는 단일 플레이어 RPG와 멀티 플레이어 RPG로 분화되었다. 이 때 이 분화를 만들어낸 배경에는 전적으로 RPG의 핵심인 ‘거대한 컨셉’에 대한 각자 다른 접근법이 있었다는 사실을 명시할 필요는 있다. 90년대 말의 RPG 1 : 지리적 분화로서의 WRPG와 JRPG 먼저 지리적 분화는 RPG가 내포한 ‘거대함’의 컨셉을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시켜나가는 양상을 보인다. 이를테면 WRPG는 거대한 ‘세계’에 방점을 찍는 반면 JRPG는 거대한 ‘서사’에 방점을 찍는다. 특히 WRPG는 바이오웨어의 「발더스 게이트」로, JRPG는 스퀘어 소프트의 「파이널 판타지 VII」로 이러한 특징의 엇갈림이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일시적으로 침체기에 들어갔던 CRPG, 특히 D&D를 기반으로 하는 CRPG를 완전히 전복한 작품으로 꼽히는 「발더스 게이트」는 21세기 이후 서양식 RPG의 가장 모범적인 구성을 명백히 한다. 당연히 「발더스 게이트」 역시 에픽의 서사를 추구하지만, 그 내부에서 세계와의 접촉은 두 개념으로 분할되어 작동한다. 먼저 ‘주된 서사’는 챕터의 단위로 분절된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각 챕터의 내부에서 세계를 향한 ‘정처없는 서성거림’을 실행해 세계의 수많은 요소와 접촉하고 상호 작용한다. 물론 이러한 절차 기반의 세계 탐험은 이 게임보다 약 5년에 앞서 발매된 다이나믹스의 「크론도의 배신자」에서 이미 확립된 개념이긴 하나, 「발더스 게이트」는 이러한 세부적 접촉을 관리하는 저널의 역할, 그리고 각각의 접촉이 발생시키는 상당한 수준의 다면적 반응을 통해 세계 자체가 가진 생동성을 극히 도드라지게 만들어냈다. 단순히 세계에 흩뿌려진 작은 서사의 조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을 넘어, 플레이어 캐릭터가 가진 특성이 대화의 양상에 반영되거나, 대화 양상이나 접촉의 순서가 이후의 결과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세계의 생동을 전달한다. 따라서 「발더스 게이트」에서 가장 핵심적인 코드는 결국 ‘세계’가 된다. 이는 그와 유사한 시기에 발매된 두 편의 「폴 아웃」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요소로, 결국 이 시기 WRPG는 초기 CRPG가 가져온 ‘세계’의 맥락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에 반해 「파이널 판타지 VII」는 전적으로 서사의 맥락을 향해만 나아간다. 발매 당시 「파이널 판타지 VII」는 서사의 중간을 채우는 화려한 컷씬으로 그 특징이 규정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파이널 판타지 VII」에는 온갖 기이한 요소들이 산재한데, 특히 이야기의 진행을 메우는 미니 게임의 역할이 그렇다. 「파이널 판타지 VII」에는 챕터와 챕터를 메우는 독특한 구성의 미니 게임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들은 슬로프에서 스노우 보드 타기, 잠수함을 조종해 적기를 격추하기 등 완전히 다른 장르로 발현되곤 한다. 게다가 각각의 미니게임은 (RPG의 규칙적 전제인) 플레이어의 성장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완전 독립된 구성이라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지점을 갖는다. 이들의 이상한 점은 이러한 외부적 플레이를 플레이어에게 강제하는 구성이라는 점에 있다. 마치 스퀘어 소프트는 자신들이 상정한 서사 전체를 ‘체험’시키려는 요량으로, 그러니까 서사가 허용한다면 그것을 게임 플레이로 해석해 체험시키겠다는 강력한 욕망을 가진 것 처럼 보인다. 즉 이 세계는 「발더스 게이트」처럼 플레이어에게 반응하기 보다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반응하길 바란다. 이 반응 요청의 하부 구조에 ‘에픽의 서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기묘한 게임의 세계적인 성공은 JRPG라는 것이 작동하는 원리가 그 무엇보다 ‘에픽의 서사’에 있음을 천명한다. JRPG는 ‘서사’라는 컨셉을 위해서라면 ‘세계’라는 축 마저 납작하게 만들 각오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파이널 판타지 VII」(1997)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서사에 상응하는 미니게임을 갑작스럽게 던지곤 한다. 이들은 21세기 초를 규정하는 다른 중요한 RPG들, 블랙 아일 스튜디오의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이하 「토먼트」)와 스퀘어 소프트의 「파이널 판타지 X」의 분명한 토대가 된다. 21세기 초 사반세기의 RPG의 규정에는 이들로부터 이어지는 지리적 양태를 무시할 수 없는 흔적이 있다. 90년대 말의 RPG 2 : 통신 기술의 기반으로부터의 멀티 플레이어 RPG 한편 20세기 말은 인터넷이라는 기술을 통해 혁명적 디지털 기술의 변모가 존재하던 시기다. 이 조건은 RPG라는 장르에도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데, 본디 RPG가 모델로 삼고 있던 TRPG는 그 자체가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즐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 반응성의 거대 세계라는 컨셉을 다수의 플레이어에게 동시에 감각 시킨다는 조건은 RPG의 이상적 모델과 연결되는 것이다. 사실 MORPG 또는 MMORPG는 그 선조로서 MUG를 가지고 있다. MUG는 기본적으로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 같은 텍스트 어드벤처를 다수의 환경이 동시에 즐기는 것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세계를 공유할 경우, 그 안에는 인식을 위한 ‘동일한 체계’가 필요하다. 결국 텍스트 어드벤처들이 가지고 있는 텍스트의 추상적 이미지만으로는 한계지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결국 ‘수치로 규정되는’ RPG의 양식적 기반이 그 내부에 들어선다. 그리고 인터넷의 전송 가능한 데이터의 수치가 증가함에 따라 텍스트라는 한계지점을 넘어 최종적으로 그래픽으로 운용되는 세계가 구동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MMORPG는 단연 1997년 출시된 「울티마 온라인」이다. 「울티마 온라인」에서 가장 확고히 인식되는 욕망은 세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어떤 면에서 이 게임으로부터는 TRPG의 그것을 넘어서고 싶다는 욕망, ‘거대 세계’라는 컨셉 안에서라면 그것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까지도 느껴진다. 물론 TRPG의 언어라는 컨셉은 무한한 가능성의 조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와 대면하는 게임 마스터라는 접면을 토대로 한다. 하지만 「울티마 온라인」은 모든 플레이어 캐릭터가 직접 세계의 구성 요소가 되어줌으로서, 가상적 세계 그 자체를 인간의 힘으로 ‘구동’시키고 싶어한다. 플레이어는 필요에 따라 여러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는데, 보편적인 RPG의 주인공인 ‘모험을 하는’ 캐릭터 외에도 경제 활동에 투신하는 직업인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들이 게임 내부에서 연결되고, 관계 맺고, 경제적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 「울티마 오리진」의 이상적 모델이다. 따라서 여러면에서 「울티마 온라인」이 상정하는 ‘거대 세계’의 모델은 TRPG의 그것보다 더 커다란 측면이 있으며, 따라서 이 두 세계라는 컨셉은 오히려 구분되어 버린다. 즉, 「울티마 온라인」의 진행은 어느 순간 CRPG의 이상적 모델이었던 TRPG를 지나쳐버린다. 한편 싱글 플레이 RPG, 이를테면 「발더스 게이트」나 「디아블로」 등에서는 네트워크 기능을 통해 동일한 세션을 함께 즐기는 멀티 플레이가 탑재된다. 특히 D&D를 그 원전으로 삼는 「발더스 게이트」는 TRPG의 온라인 세션을 염두에 둔 구성임이 명백했다. 「발더스 게이트」를 동시에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은 세계의 구성물이 되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세계에 반응하는 존재로만 기능하도록 구성되어있다. 사실상 이 구성은 디지털 구조에 게임 마스터의 역할을 뒤집어 씌운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심플한 「디아블로」는 하나의 지하 던전을 함께 헤집고 다니는 반응적 ‘파티’를 구성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이 경험은 사실상 고전 아케이드 게임인 「건틀렛」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것 처럼 여겨질 정도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은 「울티마 온라인」이 품고 있는 ‘다수의 플레이어에 의해 거대 컨셉이 스스로 구현되는 것’과는 거리를 둔다. 어떤면에서 보면 이 두 분화의 관계는 WRPG와 JRPG의 더 거대한 버전처럼도 보인다. 이를테면 「울티마 온라인」은 ‘거대 세계’라는 컨셉을 더욱이 거대하게 만드는 대신, 에픽의 가능성을 극도로 줄여버린다. 「울티마 온라인」에서 감각하는 서사는 본질적이기 보다는 구성적이다. 따라서 체감적인 서사성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조지프 캠벨의 의미에서) ‘신화적’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마찰하며 만들 수 있는 서사에는 역시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여전히 서사의 중심을 게임 시스템이 귀속시키려는 「발더스 게이트」는 더 전통적인 측에 속한다. 캠벨의 주장에 따라 신화적 서사가 ‘신의 세계’에 다녀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신 또는 그에 준하는 존재로서의 서사를 인가하는 자가 절실히 필요해진다. 「발더스 게이트」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게임 마스터라는 역할이며, 그것을 ‘기계 장치의 신’에 맡겨둠으로서 거대 서사라는 컨셉을 기능시킨다. 1990년대의 유산과 21세기 초의 RPG들 앞서 설명한 분화들의 결과는 21세기 초입의 가장 중요한 RPG로 그 효과를 연장한다. 앞서 설명한대로 「발더스 게이트」는 「토먼트」로 ‘거대 세계’라는 컨셉을 유산으로 남긴다. 이때 「토먼트」는 「발더스 게이트」가 가진 하이 판타지적 컨셉들로부터 이탈해 전투와 그에 준하는 세팅보다는 주인공 캐릭터인 ‘이름없는 자’가 어떻게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는지에 더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방법론이 게임 진행의 형식이 되어주는 것을 넘어, 「토먼트」가 궁극적으로 그리는 에픽의 형태에까지 영향을 준다. 이렇게 「발더스 게이트」로부터 「토먼트」로 이어지는, 거대 세계의 컨셉을 통해 에픽의 서사를 달성한다는 개념은 21세기의 WRPG가 반복해서 품는 모델이 된다. 그 경향의 연장에는 바이오웨어의 「스타워즈 : 구 공화국의 기사단」 시리즈와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 베데스다 소프트웍스의 「엘더스크롤」 시리즈, 「폴아웃」 시리즈, 라이온헤드 스튜디오의 「페이블」 등으로 연장된다. 또 한편 「파이널 판타지 VII」에서부터 발흥한 JRPG의 태도는 동 시리즈의 신작이었던 「파이널 판타지 X」로 연장된다. 「파이널 판타지 X」는 이전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가지고 있던,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세계의 직관적 체험’을 포기한 최초의 게임이다. 말미에 하늘을 나는 ‘비공정’을 획득해 세계의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었던 이 시리즈에서 ‘월드 맵’이라는 개념을 포기한 최초의 게임이다. 「파이널 판타지 X」의 세계는 길게 이어진 길쭉한 홈통이 몇개씩 연속으로 연결된 형태이며, 그 홈통들 사이사이를 연결하기 위한 넓은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비공정에 탑승하더라도 플레이어는 그 행선지를 여러개의 선택지 중 하나로 선택하도록 요구받는다. 시각적으로는 세계의 가상 모델을 드러내긴 하지만 플레이어가 임의로 세계를 날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파이널 판타지 X」는 거대 세계라는 컨셉을 최소한도의 크기로 납작하게 만든 뒤, 에픽의 서사라는 컨셉만을 비대하게 증가시킨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면에서 21세기 JRPG를 규정하는 전제가 되어준다. 이를테면 21세기 초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아틀러스의 「페르소나」 시리즈 역시 그렇다. 본디 「진 여신전생」 시리즈의 외전으로 시작한 이 시리즈는 (외전임을 증명하는 ‘여신이문록’이라는 단어를 처음 제거한) 3편부터 그 게임 플레이가 크게 변화한다. 여기서부터 이 시리즈는 세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거대한 부감적 시선을 제거해버린다. 그리고 공간이 아닌 시간을 통해 길쭉한 홈통을 만들고 플레이어를 통과시킨다. 하루하루의 행동을 통해 앞으로 진행하도록 요구하는 게임의 구성은 거대 세계에 응하는 체험이라는 감각을 끊어버리고, 불가역적인 시간의 컨셉 안에 플레이어를 가둬버린다. 「페르소나」는 일정 시기마다 벌어지는 대형 이벤트와 그곳에서 발생하는 인간적 드라마를 공간의 개념보다 더 강조한다. 「페르소나」 역시 에픽의 서사 앞에서 세계의 규모를 납작하게 누르는 시리즈라 할 수 있다. 90년대를 넘어 21세기를 관통하는 또 다른 인기 JRPG 시리즈인 「포켓몬스터」 시리즈 역시, 몇 개의 구역이 홈통이 되어 서사의 핵심 축인 ‘마을’의 연결고리로 작동한다. 물론 이후의 모든 JRPG가 이런 ‘연속된 홈통의 구조’를 가지지는 않겠지만, 이후 JRPG에선 서사의 컨셉이 세계의 컨셉보다 우위라는 것, 서사가 세계를 짓누르는 구성이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지우기 어렵다. *「파이널 판타지 III」와 「파이널 판타지 X」의 비공정 화면의 비교 한편 21세기의 초입에 등장한 또다른 서양의Western RPG인 「디아블로 2」는 「발더스 게이트」의 논제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전작인 「디아블로」로부터 이어진 던전 크롤링 중심의 이 게임은 「로그」로부터 빌려온 무작위 생성의 던전을 그 세계의 핵심 축으로 가진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세계의 반응을 기대하기 보다는 세계에 ‘반응하며’ 탐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구성은 어떤 면에서는 세계만을 비대하게 키워낸 MMORPG에 대응하며 존재하는 것 처럼도 보인다. 이러한 반응성이 극히 적은 게임의 플레이는 웨스트우드의 「녹스」, 가스 파워드 게임의 「던전 시즈」 시리즈, 레이븐 소프트웨어의 「마블 얼티밋 얼라이언스」 등으로 이어지며 WRPG의 한 축을 이룬다. 단 이들은 첫번째 「디아블로」보다는 더 디테일한 서사를 중시하는 면이 있으나, WRPG와 유사한 정도의 반응적 세계를 구축하진 않는다는 면에서 다른 경향을 지닌다. 한편 MMORPG는 계속된 「울티마 온라인」의 논제, 플레이어를 구성물로서 세계를 구성하려는 욕망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매달리는 측면이 있었다. 요컨 NPC에 의한 상행위를 완전히 지우고 플레이어들만으로 경제를 지탱하려 했었던 「애쉬론즈콜 2」나 플레이어를 세력에 귀속시키고 소통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해 플레이어들간의 군집적 결속을 유도하려 했던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이 대표적인 예시가 된다. 특히 1999년 발매된 SOE의 「에버 퀘스트」는 이러한 시스템의 ‘특화된 지점’의 인적 네트워크를 강조하기 보다는, 그 세계의 구성에 있어 협력의 ‘필요성’을 통해 커뮤니티를 작동시키는 독특한 게임이었다. 「에버 퀘스트」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세계의 규모, 문제, 해결의 양상에서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어떤 면에서는 고전적 형태의 레벨 디자인의 변용을 통해) 방법론의 측면을 강화한다. 그 결과 플레이어들은 자의적으로 세계를 생동시켰으며, 「울티마 온라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거대 세계’를 구성해 나갔다. 그리고 21세기의 MMORPG를 확고히 규정한 게임은 블리저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일 것이다. 「WoW」는 그 구성에 있어 이전의 MMORPG들이 거쳐온 다양한 개념들을 규합하고 있긴 하지만, 오히려 「울티마 온라인」의 논제인 ‘플레이어를 구성물로 세계를 구동’하려는 욕망으로부터는 꽤나 이탈해있다. 물론 팩션을 통한 응집이나, 인스턴스 던전과 레이드 등을 통해 발현되는 「에버 퀘스트」적인 커뮤니티 구성은 충분히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WoW」를 더 특별하게 만든 것은 어떤 면에서는 싱글 플레이 RPG로부터 그 방법을 빌려온 ‘세계를 추동하는 거대한 서사’의 컨셉이기도 했다. ‘퀘스트 텍스트가 단순한 플레이버 텍스트가 아닌’ MMORPG로서 「WoW」는 독특한 지점에 있는 게임이다. 말하자면 「WoW」는 MMORPG가 끌고 나간 ‘거대 세계’의 컨셉을 이어받아 플레이어들을 구성물로 삼는 세계를 구축하는 한 편, 플레이어 캐릭터로 하여금 고전적인 RPG의 에픽 서사의 컨셉, 즉 ‘위대해지기’를 체감시키는 텍스트적 힘을 발휘하는 게임이다. 따라서 「WoW」의 강점은 적절한 정도의 수동성이다. 특히 2010년 벌어진 거대 이벤트 ‘대격변’은 그 수동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한다. 세계의 형태, 구조를 뒤바꾼 이 충격적인 이벤트는 플레이어들의 참여적 성질로 벌어진 것이 아니다. 여기엔 오직 부여된 서사만이 존재한다. 어떤 면에서 「WoW」의 플레이어들은 이미 ‘거대 서사’의 컨셉을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이 수동적 변화를 쉽게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21세기 : 레벨링 시스템의 보편화와 장르 재정립의 시대 그러는 한편, 비디오 게임의 주 무대가 완전히 가정으로 바뀌어버린 21세기는 고전적인 RPG의 양식적 모델이 가진 독립성이 붕괴되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21세기는 비디오 게임의 플레이 형식을 맥락적 다회성으로 완전히 정착시킨 시기이기도 하거니와, 기술적 발전으로 말미암아 그 어떤 장르에서도 ‘위대해지기’를 실현할 수 있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캡콤의 「귀무자」 시리즈나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 산타모니카 스튜디오의 「갓 오브 워」 시리즈, 세가의 「용과 같이」 초창기 시리즈는 모두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의 형태에 귀속되어 있는 시리즈이다. 하지만 이들은 플레이어 캐릭터가 강화되는 일종의 성장 테이블을 지녀 장기간 세션의 반복을 통해 점차 에픽의 위대함에 가까워진다. 물론 예시로 든 게임들은 21세기 초에 등장해 그 초석을 마련한 게임들일 뿐이다. 21세기의 ‘커다란’ 게임들이란 대체로 수집, 구매, 강화, 스킬 트리 등의 성장 체계를 기본적인 언어로 삼는다. 따라서 이 약 20년의 시기는 1990년에 세워두었던 RPG의 양식적 모델을 완전히 해체해버린다. 더 이상 RPG는 수치화된 캐릭터 구성과 레벨식 성장이라는 것으로 장르 모델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정처없는 서성거림’이라는 모델 역시 그 존속에 불투명함이 발생한다. 「GTA 3」부터 가속화된 ‘오픈월드’라는 형식의 확산은, RPG라는 규정의 여부와 무관하게 플레이어 캐릭터를 펼쳐진 세계에서 이리저리 떠돌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세계를 향해 어떠한 행동을 취하고 그 반응을 기대한다. 게임 세계의 규모를, 용량이 닿는 한 얼마든지 키울 수 있는 작금의 게임 세계에서 ‘정처없는 서성거림’을 장르 특유의 체감적 모델로 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있는 셈이다. * 아케이드형 벨트 스크롤 액션 게임에 가까운「캐슬 크래셔즈」역시 정처 없이 떠돌거나(좌), 캐릭터를 성장(우)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를테면 소니의 「마블스 스파이더맨」은 RPG인가? 이 게임에는 명백한 형태의 성장 체계(RPG의 양식적 모델)가 존재하며, 또 한편으로는 이미 얼마든지 떠돌 수 있는 맨해튼의 지도(RPG의 체감적 모델)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게임을 ARPG로 부르지 않는다. 이런 구성은 락스테디의 「배트맨 : 아캄 수용소」를 위시한 아캄 시리즈나 레메디 엔터테인먼트의 「컨트롤」, 심지어는 베히모스의 「캐슬 크래셔즈」같은 아케이드 테이스트가 짙은 빗뎀업 게임까지 수도없이 찾아낼 수 있다. 물론 이 게임들에게서는 ‘세계의 디테일한 반응’이나, ‘고전적 성장 시스템’ 등이 부재하다는 점을 들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소소한 어긋남은 RPG라는 장르의 내부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해왔던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게임을 ‘RPG’라고 부르는 것을 저지하는 것일까? 오히려 이러한 물음이, 사반세기가 지난 바로 지금에 와서 RPG라고 하는 것에 대한 본질적 질문과 맞닿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21세기 RPG의 사반세기 : 지금 우리는 무엇을 ‘롤플레이’하는가. 2018년 Routledge로부터 발매된 《롤플레잉 게임 스터디즈》에서는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한 명의 플레이어가 컴퓨터 장치로 플레이한다. ● 플레이어는 가상의 게임 세계에서 하나 이상의 캐릭터의 행동을 생성하고 관리한다. ● 컴퓨터는 모든 비플레이어 캐릭터를 포함한 게임 규칙과 게임 세계의 내부 모델을 실행하고, 인터페이스를 통해 표현을 렌더링하며 플레이어의 입력에 따라 모델과 표현을 업데이트한다. ● 게임 세계는 플레이어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시청각적 표현을 생성하는 계산 모델에 의해 구성된다. ● 게임 세계는 일반적으로 판타지, SF, 호러 또는 이들의 혼합물인 일종의 장르 픽션의 것을 따른다. ● 시도할 수 있는 캐릭터의 행동은 게임 인터페이스를 통해 제공되는 옵션으로 제한된다. ● 캐릭터의 능력과 행동의 결과는 일반적으로 정량적 확률 규칙 시스템 또는 플레이어의 반사 신경과 명령 입력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 게임은 보통 여러 세션에 걸쳐 진행된다. ● 게임 내 이벤트는 일반적으로 게임 세계의 광범위한 스크립트(플레이어가 아닌 캐릭터 행동 포함)를 통해 사전 계획된 플롯을 따라 명확한 종료 지점을 향해 안내되지만, 플레이어는 이러한 플롯이 끝나기 전/도중/후 언제든지 개방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 전투 처리를 위한 광범위한 규칙이 있다. ● 플레이어 캐릭터는 성장 시스템을 통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향상된다. [18] 비교적 최근에 정리된 규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규정이 앞서 제기한 RPG라는 장르 특성의 광범위화에 따른 해체 가능성을 돌파하도록 돕진 못한다. 요컨 상기의 모든 요건은 앞서 말했던 「마블스 스파이더맨」이나 그와 유사한 액션 어드벤처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RPG라는 장르의 개념적 소멸을 앞두고 있는 것인가? 물론 이제와서 ‘21세기에는 모든 게임이 RPG다.’라는 성긴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러한 해체의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가 ‘RPG’라고 하는 것을 어떠한 감각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 좁은 통로를 통과하고, 캐릭터를 강화하고, 적과 조우해 전투하는 일을 겪는다고 해도 「데드 스페이스」는 명백히 RPG가 아니지만 「세계수의 미궁」은 명백히 RPG로 인식된다. 단순히 턴 베이스의 전투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감각도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위쳐」나 「다크 소울」을 RPG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렇게 접근해보자. 지금의 RPG가 무엇인가를 규정 또는 재규정하려는 태도로부터 잠시 이탈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21세기의 RPG는 무엇을 시도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극도로 분화되거나 통합되어버린 세계를 향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접근은 구분짓기categorizing 뿐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 지점에 위치하는 게임들은 액션 어드벤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태도로의 ‘액션 RPG’ 군집이다. 특히 근래에 도드라지는 것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 소울」을 위시한 일련의 느슨한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세계에 대한 극도로 희소한 규정이다. 요컨 소울 시리즈에서 플레이어에 대한 세계의 반응성이란 극도로 폭력적인 방향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어쩐지 프롬 소프트웨어는 이 ‘세계’ 자체가 그러한 반응만을 가지는 곳이라고 규정하려는 뉘앙스가 있다. 쉽게 말해서 이 세계는 ‘말하지 않는다’. 설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이 세계를 규정하는 특징이 그렇다. 오직 이 세계의 언어란 간접화법의 언어, 쉽게 말해 ‘플레이버 텍스트’를 통해 우회하는 언어로서 세계의 규정을 전달한다. 이 세계에 「발더스 게이트」의 논제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이 게임이 ARPG이기 때문 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가 좀처럼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소울 시리즈는 초기 CRPG의 순수함을 유지하려 한다. 말하자면 세계에 대한 반응을 오직 ‘읽어야만’ 하는 세계. 읽는 시간 이외에는 세계가 가져다주는 극도의 폭력에 대항하며, 서성일 수 있는 품을 넓혀야 하는 그런 곳 말이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프로듀서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이런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 "감히 말하자면 「데몬즈 소울」에서는 소위 ‘게임 애호가’의 공통된 가치관, 그러니까 동양과 서양의 구분 이전에 존재하는 ‘게임스러움’ 또는 ‘흥미로운 부분’을 구성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저드리」와 같은 많은 고전 게임이 가지고있는 매우 단순하고 원시적인 게임의 속성 말입니다." [19] 즉 이 군집은 어떤 면에선 ‘행동의 가능성이 극히 제한되던’ 시대의, 디지털 게임의 원시적인 개념들만으로 D&D의 형태를 재현하려고 했던 바로 그 시기를 RPG라고 규정한다. 요컨 이것은 뒤틀린 형태의 에뮬레이션이다. 시대의 기술적 한계를 의도된 불편함과 폭력으로 규정하고는 그것을 최신의 기술로 되짚어 구현하려는 기이한 욕망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군집에는 RPG라는 개념에 대한 원초적인 애정이 존재한다. 이들은 RPG란 언어의 컨셉에 그 핵심이 있다는 사실에 의지한다. *「다크 소울」과 그에 연계된 게임들에 있어 에픽을 창조하는 것은 ‘말’이 아닌 ‘글’이다. 또 다른 먼 군집은 대한민국에서 ‘수집형 RPG’라고 불리우는 군집이다. 이들은 (약간은 강경한 태도를 가지자면) RPG라는 그 어떠한 기반도 가지지 못한 기이한 위치에 머무르고 있다. 이들은 스퀘어 에닉스의 「확산성 밀리언 아서」로부터 비롯된 CCG(Collective Card Game)의 연장선상에 머무르고 있는데, 그 수집의 대상이 ‘카드’가 아니라 수치화된 캐릭터라는 점에서 RPG라는 위치를 점한다. 조은하는 이러한 한국형 수집 RPG의 시초적 게임으로 핀콘의 「헬로 히어로」를 들며, 이 장르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한다. ‘국내 개발사들은 일본 CCG가 스마트폰 환경 하에 효율적으로 재구성한 RPG 시스템을 일부 수용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일본 CCG의 일러스트 카드를 움직이는 2D, 3D 캐릭터로 바꾸고, 과도하게 단순화된 형식적인 전투 시스템을 화려한 스킬과 시네마틱 연출을 통해 볼거리를 만드는 작업들을 시도했다.’ [20] 여기서의 핵심 문구은 아마도 ‘스마트폰 환경 하에 효율적으로 재구성한 RPG 시스템’ 일 것이다. 이 문장에서 발안하는 ‘RPG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1990년대에 형성된, 양식 조건으로서의 RPG 구성요소, 즉 ‘수치화된 캐릭터와 그에 대한 성장 시스템’일 것이다. 요컨 모바일 중심의 이 ‘수집형 RPG’는 그러한 양식 조건이 바로 RPG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일군이다. 여기에는 세계에 대한 반응 추구, 생동성, 체감적인 ‘위대해지기’의 요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요컨대 거대함의 두 컨셉(세계, 서사)이 모두 약화되어 작동하는 셈이다. 물론 수집형 RPG에도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서사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세계과의 면밀한 접촉과 극단적으로 유리된, 텍스트 어드벤처의 그것과 동등한 위상으로 작동한다. 쉽게 말해 수집형 RPG에서 ‘거대 세계의 컨셉’은 실종되어 있고, ‘거대 서사의 컨셉’은 장르 밖에서 작동한다. 오직 RPG라는 형태는 양식으로서 기능하는데 그친다. 물론 이러한 형태의 ARPG적 변용들, 「원신」이나 「젠레스 존 제로」등은 세계와의 생동을 그려내며 조금은 더 원형적인 RPG의 형태로 나아가는 면이 있다. 한편 MMORPG의 군집은 조금 복잡한 양태를 가진다. 라이브 서비스라는 명목 하에, MMORPG는 그 플레이어 요구의 개념이 크게 변화한다. 한 축은 MMORPG의 본질적인 욕망인 ‘게임 세계’의 소유로 뻗어나가는 군집이다. 21세기 초에 서비스를 시작해 여전히 유지되는 「EVE 온라인」을 필두로 경제 체계나 생활 콘텐츠를 채워나가는 경향의 게임들 (「아키에이지」, 「알비온 온라인」, 「검은 사막」, 「코난 엑자일」 등)이 한 축을 이루는 반면, 게임 세계와의 반응보다는 특정한 챕터 등의 절기를 중심으로 서사를 지속적으로 지원받는 서사 중심의 MMORPG(「파이널 판타지 14」, 「스타 워즈 : 구 공화국」, 「엘더스크롤 온라인」,「로스트 아크」 등)가 한 축을 이룬다. 하지만 초기 MMORPG가 추구했던 ‘세계 그 자체의 거대한 운용’을 극히 시도하는 경향은 줄어들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게임이 다루는 세계가 ‘게임 세계’라는 범주를 추월하려는 경향을 억제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쉽게 알 수 있듯 「EVE 온라인」 등이 장기간 발전시켜온 이 가상의 세계는 결코 친절한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MMORPG는 이러한 비대해진 게임 세계가 곧 완전한 가상의 세계가 될 수 없다는 한계 지점에 대한 토로와도 같다. MMORPG가 다루는 게임 세계가 TRPG가 다루는 게임 세계, ‘합의와 관리의 세계’를 추월해버렸을 때, 그 벽의 너머에서 접촉하는 것은 실제 세계의 영향력일 수 밖에 없다. MMORPG는 이미 CRPG의 순수성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는지도 모른다. 이곳은 순수한 게임 세계라기보다는 현실 세계의 튀어나온 작은 혹, 현실세계의 영향이 장단기 반영되는 거울과도 같은 세계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여러면에서, 서사의 컨셉을 다시 끌고온 MMORPG들이 다시금 ‘ 체험 가능한 게임 세계’를 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 시켜주고 있다. 결국 MMORPG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세계라는 컨셉을 중심에 두고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결국 ‘RPG’라는 장르의 논리만으로는 수집할 수 없는 더 거대하고 독립적인 장르가 되어버렸으며, 더욱이 그렇게 나아가게 될 것만 같다. 또 다른 군집은 JRPG의 순수성을 추종하는 군집이다. JRPG의 테이스트가 일종의 보편 가능성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정확히 10년이 지난 2010년에 《JRPG가 고쳐야 할 10가지 방식》 [21] 이라는 굴욕적인 칼럼이 게재되기도 했다. 불과 15년전까지만 해도 JRPG는 고전적 RPG의 순수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온, 어떠한 변용된 돌연변이와도 같았다. 물론 해당 칼럼이 모두에게 호의적으로 읽혔던 것은 아니나, 이러한 칼럼이 쓰여지고 유통된 배경에는 분명 서양 게이머 군집의 JRPG에 대한 기묘한 위화감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배제는 철저히 로컬리티의 결과물이다. 즉 ‘JRPG’라는 단어로부터 전달되는 지정학적 문제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칼럼이 정말로 JRPG가 ‘비교적 질이 낮은’ 장르였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시기까지 RPG란 정말로 동-서라는 세계로 그 형태가 분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15년 정도가 지난 지금, JRPG는 하나의 코드로서 지정학적 한계를 넘어선다. 흥미롭게도 근 10년 사이에 나온 JRPG의 코드를 가진 게임들에는 일본 외의 지역에서 만들어진 게임이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크로스 코드」(독일), 「코스믹 스타 히로인」(미국), 「피어 & 헝거」(핀란드), 「겟 인 더 카, 루저!」(캐나다), 「인디비지블」(미국), 「잭 무브」(대만), 「씨 오브 스타즈」(캐나다), 「클레르 옵스퀴르 : 33 원정대」(프랑스) 등등. 이는 게임 제작자의 세대 분리를 드러내는 통계적 결과일 수도 있다. 요컨대 JRPG를 서구세계에 알린 「파이널 판타지 VII」가 등장한지 약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코드를 자기 내부의 문화적 양식으로 인지하는 서구의 게임 제작자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런 세대론보다 중요한 건 아마도 ‘세계’의 컨셉을 줄이고 ‘서사’의 컨셉을 증가시키는 밸런스의 RPG가 하나의 보편 가능성이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이 군집은 그러한 좁게 뻗은 길을 따르는 ‘위대해지기’ 역시 RPG라는 장르의 코어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드러낸다. 이제 JRPG는 초기 CRPG의 간단한 번안물 이상이다. JRPG 역시 고전적 RPG의 범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명백한 영역을 지닌 하위 장르로 영속할 것이다. *「씨 오브 스타즈」(2023)는 전적으로 90년대 JRPG의 감각을 되살린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는 「크로노 트리거」나 「슈퍼마리오 RPG」 등의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설명해야 하는 군집은, 그 무엇보다 본래의 순수성에 도달하려는 의지를 지닌 군집이다. 이 군집에는 다음과 같은 게임들을 넣을 수 있다. 뮤네이처의 「인격해체」, 안샤르 스튜디오의 「게임 덱」, 점프 오버 디 에이지의 「시티즌 슬리퍼」 그리고 ZA/UM의 「디스코 엘리시움」. 이러한 게임들은 전적으로 TRPG의 핵심인 ‘언어’를 믿는다. 세계는 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 플레이어는 언어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고, 플레이어의 선택은 세계의 구조로 틈입해 세계의 반응을 이끈다. 그 사이에 플레이어가 구체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규정된 난수의 규칙rule을 통해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그리고 게임은 전적으로 언어에 귀속되어야 하므로, 규칙의 사용까지도 플레이어에게 ‘언어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렇다. 이 군집은 RPG라는 장르가 탄생하던 시기에 목적하던 것을 다시금 획득하려 든다. 바로 TRPG를 순수한 이상으로 삼고 그것을 추종한다. 이들의 목적은 ‘TRPG적인’ 플레이를 비디오 게임의 과정으로 번역해 이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군집의 게임이 갑자기 근 몇년 사이에 도드라진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이전에도 아울캣 게임즈의 「패스파인더」 시리즈나 라리안 스튜디오의 「디비니티」 시리즈가 바이오웨어의 명맥을 이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과 (그리고 최근에 발매된 「발더스 게이트 3」와) 현재의 군집이 다른 것은, 이들은 자신들의 이상적 어머니로서 D&D를 유일한 위치에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게임 덱」, 「시티즌 슬리퍼」, 「디스코 엘리시움」에는 정확한 의미에서의 ‘전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캐릭터를 구성하는 수치적 체계가 시각적으로 보이는 ‘물리 세계’에 어떻게 작용하느냐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서사의 중심 체계로서의 ‘언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 [22] 그런 면에서 이 구성의 배경에는 초기 게임 베이스의 TRPG가 아니라 2000년대 이후에 확산된 스토리 중심story-driven의 TRPG가 있다는 느낌을 준다. 마치 이들은 TRPG라는 테이블 게임계의 움직임과 조응하는 방식으로서의 비디오 게임을 지향하는 감각을 준다. 그리고 이 마지막 군집의 등장이 비교적 최근이라는 사실은, RPG라는 장르의 충분 조건이 보편화를 통해 해체되어가는 시대라는 사실과 충돌한다. 즉 모든 비디오 게임이 (비디오 게임 장르로서의) RPG가 되어가는 이 시대에, 이 게임들은 비디오 게임 바깥의 이상을 다시금 불러들여 RPG를 재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작가이자 디자이너인 로베르트 쿠르비츠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롤플레잉 게임을 완전히 혁신하고 싶습니다. 그 혁명을 실현할 때까지 게임을 미세조정 했습니다. 스토리, 선택, 결과의 활용을 혁신하는 것이죠. 스킬의 용례. “스킬"이라는 의미. 저는 실제 삶, 인간의 상상력, 슬픔, 암시의 힘, 춤 등 테이블탑 RPG와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진정한 경험을 실제로 표현하는 평화로운 스킬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23] 그리고 이러한 이상의 달성은 섬세한 그래픽이나 구체적인 컷씬으로는 달성이 불가능한 것이 명백하다. 해결 가능성은 오직 언어, 언어 그리고 언어이다. 오직 언어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 이 게임의 제작자들은 긴 시간을 우회해, 그리고 필요한 바로 이 때에 RPG라는 장르의 핵심으로 다시금 언어를 소환한다. 이때 이 언어의 필요성은 시대의 기술과 미묘한 접합점을 만든다. 이 시점에서 「언커버 더 스모킹건」을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이상향이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과 접촉하며 끝없이 앞질러 나갈 것인가? 글쎄, 그러한 예측까지는 아직 미진한 일인 것 같다. *「시티즌 슬리퍼」(2022)는 매일의 주사위를 굴리고 해당 주사위를 어떠한 업무에 쓰느냐로 하루의 진행이 결정된다. 하지만 결국 그런 행위의 중심에는 최종적으로 출력될 텍스트의 변형이라는 기대가 있다. 결국 RPG의, 약 반세기에 걸친 장르의 역사를 돌자 장르의 가장 순수한 조건과 마주치게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RPG는 언어라는 이상점으로 끝없이 향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조금은 부정하고 싶어진다. 아마도, 언어라는 이상향이 RPG를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할 것이다. 21세기의 사반세기를 돌아 마주한 것은 언어의 순수에 대한 갈망 하나만이 아니다. 70년대에 탄생하고, 90년대에 완숙하여, 2000년대에 끝없이 분화한 이 장르를 태초의 조건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RPG’라고 부르던 조건은 이제, 수많은 가능성들에 의해 취사적으로 선택되고 조립되고 분화되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제 비디오 게임의 세계에 순수한 RPG라는 것은 규정 불가능하다. 우리가 감각하는 모든 가능성, 타 장르와의 융합, 혁신은 다 각기 다른 분류로서의 RPG로 기능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 몇 가지 군집들을 들긴 했지만, 이 내부에서 전부 다루지 못한 다른 가능성들(요컨 로그라이크 군집, 레벨링을 동원하는 메트로바니아 군집 등)도 존재한다. 어쩌면 이제 RPG라고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사유가 전부 통괄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한 장르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21세기의 사반세기를 지나오는 RPG에 대한 가장 유효한 문장을 동원하는 것이 좋을듯 하다. 이 지난한 글을 호세 P. 제이갈과 세바스티안 디터딩이 《롤플레잉 게임의 규정》의 전반부를 열기 위해 사용한 문장으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사실 롤플레잉 게임(RPG)은 어쩌면 가장 논쟁적인 게임 현상, 즉 예외, 특이점, 게임 같지 않은 게임일지도 모릅니다.” [24] [25] [1] RPG는 한국에서는 보통 비디오 게임의 장르로 일컬어지지만, 그 발현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먼저 등장한 테이블탑 또는 라이브 액션 게임을 부르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특정한 수식없이 RPG라는 단어를 사용할 경우 무엇을 지칭하는지에 대한 혼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본 글은 비디오 게임의 장르를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RPG라는 단어는 비디오 게임의 그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맥락에 따라 CRPG라는 단어를 병용한다. 테이블탑 게임은 TRPG로 구분하여 표기한다. [2] Programmed Logic for Automatic Teaching Operations의 약자. 1960년대 초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의 도널드 비처가 중심이 되어 개발한 시스템으로 PLATO IV라는 독립적인 단말을 통해 구동되었다. [3] “So, most CRPGs spread a thin veneer of story and world-building atop game engines that were really all about combat and logistics; they became “roll-playing” rather than “role-playing” games.” (The CRPG Renaissance Part 1. https://www.filfre.net/2025/01/the-crpg-renaissance-part-1-fallout/ ) [4] 이를테면 캡콤의 플랫포밍 액션 게임인 「마계촌」에서 주인공 아서는 최종적으로 마왕 아스타로스라는 거대한 적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단계에서 아서의 변화는 게임 플레이 와중 획득한 아이템에 기반한 것들이며, 이 가역적 변화는 언제든지 아서를 최초의 모습으로 되돌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RPG에서의 성장은 이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불가역성을 전제한 것이다. [5] 여기서 사용하는 에픽을 ‘서사시’로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시’라는 형식보다 그것이 담지하는 서사적 특질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컨 《장르의 해부Anatomy of Genre》에서 존 트루비John Truby는 에픽을 ‘한 인간 또는 집단에 의해 국가 또는 세계가 크게 변화하는 이야기’로 규정한다. [6] 그들이 원본으로 삼는 D&D 역시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초기 D&D는 캐릭터의 진행에 따라 Basic, Expert, Companion, Master, Immortal라는 각기 다른 책을 사용하도록 유도했다. 최종적으로 위대해진 캐릭터는 Immortal 단계에 이르러 불멸자의 시험을 통과해 필멸자를 초월할 수 있게 된다. [7] 호리이 유지는 본래 만화의 스토리 작가를 지향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원래 저는 코이케 카즈오 극화 서당에 다니다가 만화가 지망생을 거쳐 라이터가 된 케이스다 보니 극화 원작을 하자는 마음도 있었고요.” (PLANETS Vol. 7, 「호리이 유지 인터뷰 : 일본 게임의 진화가 향하는 곳」, 2010) [8] ‘The 1990s is generally viewed by academics and fans as a golden age for CRPGs due to the explosion of games that were developed and the quality of games released’(《Role-Playing Game Studies》, 2018, Routedge, Edited by Sebastian Deterding and José Zagal) [9] 《현질의 탄생》, 이경혁, 2022, 이상북스 [10] “だんだん強くなる、というのが面白いなと思ったんですよ。AVGって謎に詰まるとやることがなくなっちゃうけど、RPGならとりあえずレベルさえ上げれば楽しめるので、謎解きつつレベル上げつつでずっとやっていけば、いっぱい遊べるし、。”(PLANETS Vol. 7, 「호리이 유지 인터뷰 : 일본 게임의 진화가 향하는 곳」, 2010) [11] 루이스 자네티는 영화 장르의 변화 사이클을 초창기, 고전기, 수정기, 패러디기로 나눈다.자네티의 장르 사이클은 기본적으로 영화 장르의 이론에 적용하는 개념이지만, 시장을 형성하는 매체 전반의 장르 변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충분히 도움이 되기에 여기에 적용한다. [12] 《영화의 이해》, 루이스 자네티, 2017, K-Books [13] 이 시리즈의 3편은 국내에 동서게임채널을 통해 「영웅의 길 3」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14] ‘Like the other Quest for Glory games, QG3 is a hybrid of Computer Role-Playing Game (CRPG) and graphic adventure. Your character's attributes and abilities are defeined by a list of statistics. SUccess in a task depends on skill levels, and practive improves those skill.’ (《PC Mag》 Jan. 1993) [15] ‘These games rely on quantitative representations of the character, with character development following the quantitative improvement in skills and abilities typical of pen-and-paper games.’ (《Many Faces of Role-Playing Game》, 2008, International Journal of Role-playing Games - Issue 1, Michael Hitchens and Anders Drachen) [16] ‘one feature that is commonly considered a defining one is that all RPGs have playercharacters with quantifiable features (digital equivalents of the character sheets used in tabletop style RPGs), and character progression is used as a central measurement of success. Traditional RPG rule systems often include “experience levels,” meaning that successful advancement in games translates into “experience points” through which a PC can “level up” to new powers and skills.’ (《Encyclopedia of Video-Game》, 2012, Greenwood, Edited by Mark J. P. Wolf) [17] 구글 그룹에서 다음과 같은 유즈넷 대화를 찾을 수 있다. 해당 대화는 1997년 2월에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Diablo : an CRPG, what a joke!」 ( https://groups.google.com/g/comp.sys.ibm.pc.games.rpg/c/7wJEyHTsdkE/m/EnpYnKMTBnUJ?utm_source=chatgpt.com&pli=1 ) [18] 《Role-Playing Game Studies》, 2018, Routedge, Edited by Sebastian Deterding and José Zagal [19] ‘If you dare to say, in "demon’s soul", I think that there is something that constructs game-like or interesting parts before the east-west of Ocean, with the common values of so-called "game lovers" . "Wizardry" It is a very simple and primitive game property that many of the classic games such as had.’ (「Interview with Mr. Hidetaka Miyazaki who gave birth to a world-class hit "Dark Soul" from inexperienced game production」, Gigazine, 2012) [20] 《한국형 수집 RPG 장르 형성 연구》, 조은하, 2018 [21] 《Top 10 Ways to Fix JRPGs》 ( https://www.ign.com/articles/2010/01/12/top-10-ways-to-fix-jrpgs ) [22] 「인격해체」만은 예외적으로 전투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게임이 자신의 부모로 삼고 있는 것은 명백히 카오지움의 《크툴루의 부름》이다. [23] ‘I want to completely revolutionise role-playing games. We need to fine-tune our game until we make that revolution possible. To revolutionise the use of stories, choices, and consequences. The use of skills. What “skill” means. I want there to be peaceful skills that actually represent real life, human imagination, sadness, the power of suggestion, dance... you know, that whole range of authentic experiences you get from tabletop RPGs and from reality.’ (《Choose your own misadventure Part 2》, https://steamcommunity.com/games/632470/announcements/detail/1615021499154801682 ) [24] ‘In fact, role-playing games (RPGs) are maybe the most contentious game phenomenon: the exception, the outlier, the not-quite-a-game game.’ (《Role-Playing Game Studies》, 2018, Routedge, Edited by Sebastian Deterding and José Zagal) [25] 물론 해당 문장은 본문에서 테이블탑 RPG, 라이브 액션 RPG를 통괄하는 RPG라는 범주 전체를 포괄하는 문장으로 쓰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분화해버린 비디오 게임 RPG에게도 충분히 통용되는 의미이리라. Tags: 롤플레잉, 장르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마일즈 모랄레스의 정체성과 브루클린이라는 ‘장소’
마일즈의 불안은 인물(아마도 다른 시간선에서 스파이더맨이어야 했으나 프라울러가 되고 만 마일즈)의 형상을 취하다가 거미로 변모한다. 그의 공포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자격과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었던 셈이다. < Back 17 GG Vol. 24.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young Hong Entered the world of games thanks to ads pitching the Famicom as a must-have for the happy household. A steady devotee of Just Dance. Co-wrote Mario, Born in '81, The Theory of Games, and Media and Gender, among others.
- [인터뷰] 공동연구처럼 돌아가는 스피드런의 세계, 스피드런 유튜버 천제누구
생산을 위해 기획된 방법론인 효율은 오늘날 디지털 게임에서 주요한 플레이 방법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효율적인 플레이를 위한 전략이 동원되고, 최고의 효율을 달성하는 것이 플레이의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효율적 플레이의 정점에, 최단시간 내 게임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는 스피드런(speedrun)이 있다. < Back [인터뷰] 공동연구처럼 돌아가는 스피드런의 세계, 스피드런 유튜버 천제누구 18 GG Vol. 24. 6. 10. 생산을 위해 기획된 방법론인 효율은 오늘날 디지털 게임에서 주요한 플레이 방법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효율적인 플레이를 위한 전략이 동원되고, 최고의 효율을 달성하는 것이 플레이의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효율적 플레이의 정점에, 최단시간 내 게임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는 스피드런(speedrun)이 있다. 스피드런은 어느덧 게임을 즐기는 또다른 장르가 되었지만, 동시에 게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판단력, 좋은 컨트롤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노히트 플레이와 함께 ‘고인물’들의 장르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이번 호에서 GG는 한국의 스피드런 플레이어이자 유튜버 천제누구를 만나 스피드런의 즐거움과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피드런은 이론과 실증의 영역에서 게임을 이모저모 뜯어보고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동시에 모두가 각자의 경험과 실천을 공유해 하나의 ‘빅 데이터’를 쌓아올린다는 점에서, 스피드런은 게이밍에 대한 공통지식을 구성하는 또 다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혁 편집장 :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번 먼저 부탁드릴게요. 천제누구 : 원래는 트위치에 있었지만, 현재는 여러 가지 방송 플랫폼에서 스피드런을 주 콘텐츠로 삼으면서 방송을 하는 천제누구라고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 최근에 트위치 서비스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은 어느 방송 플랫폼이 제일 메이저라고 생각하시나요? 천제누구 : 저는 원래 트위치 스트리머였으니까 네이버 ‘치지직’으로 옮길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고민이 됐어요. 아시다시피 스피드런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활발한 장르잖아요. 트위치는 세계를 무대로 하다 보니 방송을 열어 놓으면 외국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였어요. 아직까지 치지직은 아직 그런 역할까지는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전에 트위치가 서비스 종료 전에 동시 송출을 풀어줬을 때 생방송을 했더니 유튜브에서 제 방송을 보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지금은 유튜브 생방송도 신경쓰면서 방송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해외 시청자와의 창구가 남아 있었으면 한다는 소망이 있는데 치지직이 그 역할을 해주거나 트위치가 그래도 방송송출은 할 수 있도록 남아있었으면 좋겠네요. 이경혁 편집장: 국내 스피드런 유저들이 생각보다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해외 네트워크가 중심이 되는 건가요? 천제누구: 그렇죠. 새로운 빌드라든가 글리치, 플레이 방법들이 주로 스피드런 사이트 내 디스코드에서 공유되거든요. 근데 보면 거진 다 영어권이에요. 그것 때문에 저도 요즘 영어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는데(웃음), 실제로 그래서 스피드런은 어쨌든 해외에 선이 닿을 수밖에 없죠. 제 채널의 주 시청자는 그래도 한국 분들이지만, 다른 스피드런 채널은 해외 시청자가 더 많은 사례도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 사실 스피드런 자체가 언어에 구애받는 콘텐츠가 아니기도 해서 그런 거군요. 천제누구 : 그렇죠. 이경혁 편집장 : 그러면 스피드런을 메인으로 하는 유튜버이신데, 본인의 게임 경험이 궁금합니다. 처음에 어떻게 게임을 시작했고 어쩌다 스피드런까지 오게 되셨나요? 천제누구 : 저도 대학생 때까지는 평범하게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일반적인 게이머였어요. 초중고 시절에는 흔히 말하는 <바람의 나라>로 먼저 시작했구요. <포트리스>, <겟앰프드>를 하다가 <스타크래프트: 자유의 날개>도 마스터 티어까지 잠깐 찍었고. 그 외에는 <사이퍼즈> 정도. <엘소드>라는 게임을 잠깐 했었는데, 그 게임엔 PvE(Player versus Environment) 요소가 있고 PvP(Player versus Player) 요소가 전부 있었어요. 저 같은 경우엔 거래를 잘 해서 좋은 아이템을 맞추기보다는 최소 요건만 맞추는 PvP 쪽에 매력을 느꼈어요. 컨트롤을 잘 해서 플레이하는 게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 본인의 숙련도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쪽으로 게임의 매력을 느끼신 것 같아요. 그럼 스피드런으로 접근하시게 된 계기는 어떤 게임을 통해서였나요? 천제누구 : 2018년에 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당시 가장 유행했던 게임이 <배틀그라운드>였어요. 기왕 방송을 하는 겸 가장 핫한 게임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일단 제 실력이 그렇게 잘 안 되더라고요(웃음). 나중에는 방향을 바꿔서 게임 플레이보다 정보 콘텐츠를 조금씩 만들어봤어요. 적당히 조회수는 나오는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보 콘텐츠 유튜버라면 꾸준히 정보를 제공해 줘야 되는데, 그런 정보가 끊기면 사실 '천제누구'라는 유튜버 자체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닌가. 저만이 잘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쯤 <메탈 슬러그>를 시작했는데요. 현재 <메탈 슬러그>계에서 한국 뿐 아니라 세계를 꽉 잡고 계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제 방송에 놀러오시면서 처음 스피드런이라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고 시작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 <메탈 슬러그>부터가 본인의 스피드런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사실 이 게임이 나온 지는 굉장히 오래 되었는데 플레이하셨던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을까요? 천제누구 : 우선은 플레이를 강렬하고 짧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저도 예전에는 방송 보던 세대였으니 그때 <메탈 슬러그>로 유명했던 분들의 영향도 있었고. 스피드런 유튜버 중에 '서키모스'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의 플레이 방식이 굉장히 구체적이었어요. 예를 들면 <메탈 슬러그> 2나 X에서는 스테이지에서 기차가 나오는 구성이 있습니다. 거기서 각 기차의 구체적인 체력을 언급하고 계산하면서, 무기당 데미지가 얼마니까 어떻게 계산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론적으로 접근을 하시더라구요. 사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면서 게임은 그냥 즐기는 거고 이거를 이론적으로 접근을 한다는 생각을 안 하잖아요. 플레이를 하다 보면 그냥 경험을 축적해서 자기만의 빠른 방법을 개발하는 게 대부분인데. 여기에서 정확하게 어떤 움직임을 취하면 적이 나오다가 스킵이 된다던가. 스피드런에서는 플레이를 그렇게 이론적으로 접근을 한다는 게 굉장히 흥미로웠던 기억이 나요. 실제로 그렇게 몇 번 연습을 따라하니 다 되는 것도 매력적이었구요. 이경혁 편집장 : 스피드런이라는 세계에 매력을 느끼신 것도 있고, 더 중요한 점은 실제로 소질도 있으셨던 것 같아요. 스피드러너로서 스스로의 ‘소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천제누구 : 소질이 없진 않지만, 제가 스피드러너 사이에서 피지컬이 엄청 뛰어나다고 보지는 않아요. 그런데 스피드러너들도 각각 잘 하는 장르가 있고, 자신만의 특색이 있어요. 우선 순수하게 게임 플레이를 잘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빌드가 있어도 그냥 빠르게 잘 성공시켜서 빠른 친구가 있고요. 그 다음으로는 독특한 빌드를 잘 만들어서 한 번씩 혁신을 일으키는 러너들이 있구요. 마지막으로는 이미 나온 빌드를 개량해서 성공확률을 높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피드런은 어떻게 보면 ‘확률’의 문제라고 볼 수 있거든요. 저 같은 경우엔 마지막 유형에 가까운데, 약간 돌아가더라도 최대한 안정성이나 성공률을 높이는 쪽으로 플레이를 하는 편입니다. 은근히 다 똑같은 빌드처럼 보이지만 러너들만의 각자의 특징이 있다는 게 신기하죠. 이경혁 편집장 : 어떻게 보면 스피드런이야말로 연구와 공부가 굉장히 필요한 방법인데. 보통 스피드런을 하실 때 본인이 빌드를 짜거나 플레이 스타일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천제누구 : 보통 제가 스피드런을 시작할 때는 먼저 다른 플레이들을 봐요. 전체적인 게임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플레이의 중심을 어디에 둘지 맥락을 먼저 잡구요. 다른 플레이 영상들을 보면 '이건 줄일 수 있겠는데, 이건 계산할 수 있겠는데, 이 행동은 별로 필요 없지 않을까' 이런 게 보일 때가 있거든요. 거기에서 제가 떠오른 질문들을 혼자 플레이 해보면서 검증을 해봅니다. 그러면서 원래 나왔던 스피드런 기록보다 조금씩 시간을 더 줄여나가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 천제누구님 혼자의 방식이라기보다는 타인의 플레이를 상호 참조하면서 계속 쌓아 올려가는 방식이군요. 혹시, 본인이 플레이 했던 스피드런 중 자랑하거나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천제누구 : 가장 최근에는 을 했었는데 올 보스 카테고리에서 월드레코드를 세웠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던 런이 <엘든링> Any% 글리치 리스 카테고리 인데, 이것도 한 때는 월드레코드를 달성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레지던트이블 시리즈가 제가 주로 관심을 갖는 시리즈인데. 최근에 나온 레지던트이블 작품 뿐만 아니라 레지던트이블 메인 넘버링 작품은 모두 스피드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레지던트이블1부터 레지던트이블8까지 릴레이로 스피드런한 적도 있네요(웃음). 이경혁 편집장 : 애초에 게임이 스피드런을 제일의 목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데, 열과 성을 다해 세부적인 것까지 파고드는 건 분명히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것 같아요. 스피드러너로서 이 ‘스피드런의 재미’는 어디에서 나온다고 보시나요? 천제누구 : 저는 스피드런의 재미를 이야기할 때 육상으로 비유를 많이 듭니다. 예를 들어 100m 달리기를 혼자 달려봤더니 한 16초 정도가 나왔어요. 기록 테이블을 봤더니 평균이 15초네, 하면 내가 평균 점수까진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욕심이 생기겠죠? 그래서 몇 번을 다시 달려보면 단순하게만 하다 보면 어느순간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론을 찾아보게 되는거죠. 보니까 달리는 방법에서 크라우치라는 스타일이 있다더라. 달릴 때 각도는 이렇게 하고 팔은 어떤 식으로 자세를 잡으면 더 빠르게 잘 달릴 수 있더라. 그렇게 이미 나와 있는 다른 연구 결과를 반영해서 달려보면 당연히 더 좋은 기록이 나오겠죠? 그때 기록 테이블을 봤더니 내 위에 한 두세 명밖에 없는 거예요. 어, 이거는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잡을 수 있겠는데? 이제 그런 상황부터는 취미가 아니라 뭔가 진심이 되는 건데(웃음). ‘앞에 있는 몇 명만 잡으면 내가 월드 레코드 잡을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 월드 레코드를 한 번 달성하면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 성취라는 부분이 굉장히 크군요. ‘내가 손만 조금만 뻗으면 닿겠는데’, 그런 생각이 한 번 오면 다를 수 있겠네요. 천제누구 : 그게 첫 번째 재미이자 스피드런을 왜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 될 것 같고요. 두 번째는 아까 연구 같다는 말씀을 해 주셨잖아요. 그런데 스피드런이라는 장르가 생각보다 그 연구라는 것에 많이 부합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릴 적에 막 항상 질문을 하잖아요. 수학을 왜 배울까, 물리와 화학을 왜 배울까. 그런 질문을 공학적인 접근으로 본다면 내가 필요한 만큼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컵을 밀어서 떨어뜨려야 한다면,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컵을 들거나 밀어야겠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공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최소한의 에너지원을 들여서 컵을 떨어뜨려야 되는 것이고, 거기서부터 물리가 들어가는 거거든요. 이 컵은 무게가 얼마고 이렇게 힘을 들 때 마찰력이 얼마니까, 이만큼의 힘을 얼마간 주면 떨어지겠구나. 게임도,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 ‘시간'이라는 목표가 들어가게 되면 그것의 최소 조건을 고려하게 돼요. 그러면 이제 거기서부터 여러 가지 이론이 펼쳐지는 거죠. 이 게임을 이렇게 가면 더 쉽다더라, 조금 돌아가는 것 같아도 더 강화되는 이 아이템을 먹고 가는 게 더 빠르다더라, 이런 게 각각의 스피드러너들이 달리면서 공유가 되고. 이걸 합산하다 보면 거기서 점점 발달하는 거거든요. 이게 마치 과학계랑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이 사람이 이런 논문 내고, 저 사람이 저런 논문 내고 하다가 어느 순간 이런 논문을 조합해봤더니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 것처럼. 스피드런이 기록을 냈을 때의 성취감도 있지만,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방금처럼 내가 스스로 연구를 하고 그것을 실증해내는 것 자체가 엄청 재미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 월드 레코드가 성취의 즐거움이라면, 지금 말씀해 주신 건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설계했던 어떤 이론이 실제로 구현됐을 때의 과정의 즐거움이네요. 그런데 스피드런 레코드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시간이 엄청 들지 않나요? 실제 플레이하셨을 시간은 영상으로 보는 분량의 100배는 넘을 것 같은데요. 천제누구 : 그게 사실 ‘효율의 비효율’인데요(웃음). 아까 스피드런은 ‘확률’이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스피드런이 이론적으로는 분명히 되고 실수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유를 모르겠지만 안 될 때가 있어요. 내가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거나 그냥 내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안 되는 경우도 있구요. 예전에 제가 <세키로> 기록을 냈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래서 제가 짜증을 많이 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니까 영상 댓글에 달리더라고요, ‘이 사람 그냥 좀 더 이성을 찾고 침착하게 하면 기록 세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사소한 걸 자꾸 짜증 내는지 모르겠다'. 아마 생방송을 풀로 보셨던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말을 못하실 거에요(웃음). 하지만 그렇게 반복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플레이가 점점 다듬어 지게 되고, 기록이라는 결과물도 더 빛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 올림픽 100m만 해도, 정말 그 100m를 위해 1만 미터 정도는 더 뛸 텐데. 그 중간 과정은 사람들이 모르지 않습니까? 천제누구 : 그렇죠. 그래서 저는 더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더라도 그냥 무지성으로 계속하기는 사실 쉽지 않아요. 근데 ‘시간’이라는 목적이나 목표가 생기게 되면 하나의 게임도 엄청 오래 즐길 수 있거든요. 스피드런 플레이가 마냥 내가 힘들기만 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그동안 기존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아낼 때도 있고, ‘정말 이 게임은 더 이상 개발할 게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항상 뭔가 새로운 방법들이 또 나오게 돼요. 그런 변화를 익혀서 나 자신이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볼 수 있게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이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 몇몇 게임들은 스피드런 대회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상금 같은 게 좀 있나요? 천제누구 : 예를 들면 SSM(Super Speedrun Marathon)이라고 국내 분이 주최하시는 스피드런 행사가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GDQ(Games Done Quick)라는 게 있습니다. 스피드런 행사는 보통은 모금이나 기부 행사 형식으로 하거든요. 플레이 타임 2~30분 정도의 짧은 게임이라면 대결 같은 걸 해서 상금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도 이미 그 사람이 얼마나 잘하는지 기록으로 나와 있다 보니까. 주최자가 개인적인 상금을 거는 것 외에는 대회보다 행사 같은 게 좀 더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죠. 이경혁 편집장 : 스피드런 자체가 ‘대결’이라는 게 성립을 하기가 조금 애매한 것 같기도 합니다. 천제누구 : 스피드런이라는 게 육상과는 다르게 여러 번 시도를 해서 그 중 하나의 완벽한 결과물을 도출하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스피드런 빌드라는 것도 안정성이 보장되서 결과가 딱 나온다기보다는 어느정도 확률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서요. 이런 랜덤적인 요소를 RNG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확률상으로는 정말 안 좋은 경우의 수가 나오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는 상황이 있을 수가 있어요. 대결 전용 빌드를 따로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특정 게임에서는 아예 안 쓰면 안 되는 빌드들이 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스피드런 같은 경우엔 (대회보다) 행사 쪽으로 더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 아까 연구 얘기를 잠깐 하셨지만,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여기도 정말 학계랑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국내에도 스피드러너들 사이 네트워크 같은 것들도 있을까요? 천제누구 : 국내 스피드러너 자체가 좀 적다 보니까, 가끔씩 제가 하는 스피드런 사이트에 한국 분이 올라오면 찾아보기도 하고 친해지면 종종 방송에 놀러가기도 해요. 그런데 일종의 학문의 갈래라고 해야 되나요? 게임도 그런 갈래가 많다 보니까 각자 다릅니다. 제가 <레지던트 이블>이나 소울류를 많이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슈퍼마리오>에 소양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다만 자기 분야 내에서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정보 공유를 해야 되니까 자주 만납니다. 사실 스피드러너끼리 기록을 경쟁한다고 해서 서로 ‘내 거 절대 안 보여줄 거야' 이런 건 애초에 없어요. 내가 스피드런 사이트에 결과물을 등록하면 어차피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이라서요. 그러다 보니 어떤 새로운 스피드런을 만들었어도 특허 같은 게 딱히 있는 건 아니에요. 이경혁 편집장 : 한 게임만 파는 사람들 중에는 스피드런 말고도 ‘노히트 플레이’ 같은 쪽도 있을텐데, 이런 분야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천제누구 : 그렇죠, 그런 걸 ‘제약 플레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요. 제가 최근에 플레이한 은 스피드런과 동시에 노히트 플레이도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스피드런도 확률을 높이기 위해 정확하게 상대방의 행동 원리를 파악해야 될 때가 있다 보니 노히트와도 연결이 돼요. 스피드러너들이 노히트 플레이를 보면서 적의 패턴을 파악하기도 하고, 역으로 노히트 플레이어들이 스피드런을 보면서 공격을 스킵하는 방식을 참고하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뭔가 순수학문과 공학이 만나는 것처럼,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게임 시스템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만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도 그래서 예전에 스피드런 할 때 노히트 하시는 분들 거 많이 봤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 스피드런 분야의 가장 원조격인 게임이 저는 <슈퍼마리오>인 것 같거든요. 슈퍼마리오 스피드런을 보면 글리치를 엄청 쓰잖아요? 스피드러너에게 ’글리치'라는 건 어떤가요? 글리치를 쓰는 사람도 있고, 글리치를 빼야 한다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천제누구 : 글리치는요, ‘가능성’이죠. 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스피드런에 대한 이미지나 인식이 아직 크게 없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요. 사람들이 가끔씩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스피드런은 이렇게 해야 되는 건가요?' ‘스피드런에서 이것도 써도 되나요?' ’이걸 쓰면 스피드런이 아닌가요?' 사실 이게 의미가 없는 게, 아까 100m 달리기를 예시로 들었었는데요. 저희가 마라톤이나 500m 달리기, 장애물 달리기를 달리기가 아니라 하지 않잖아요. 스피드런도 보면 글리치를 쓰는 쪽과 글리치를 안 쓰는(글리치리스) 카테고리가 있어요. 내가 글리치가 싫다면 글리치 안 쓰는 카테고리를 보면 되고, 내가 글리치가 재미있다면 글리치 쓰는 카테고리를 재밌게 즐기면 됩니다. 글리치 런의 경우, 스피드런을 보시는 분들은 보통 '여기서 글리치를 쓰니까 이렇게 됐네, 와 신기하다' 하고 끝나잖아요. 사실 이게 중간 과정이 다 있어요. 예를 들어 특정 구간에서 벽이 뚫리는 걸 발견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거고, 벽이 뚫리는 걸 보고 나서 스피드런 빌드를 개발하는 사람이 또 따라오고요. 누가 빌드를 개발해 놓으면 내가 한번 이걸 써볼까 해서 실제로 기록 세워놓는 사람은 또 따로 있어요. ‘글리치를 안 쓰면 재미가 없다’는 하는 사람들은 그런 글리치마저 새로운 가능성으로 즐기는 거라 할 수 있죠.그리고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쉬운 ‘얍삽이’만 글리치가 아닙니다. 물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글리치도 있지만 발동 자체가 어려운 글리치도 수두룩합니다. 특히 스피드런에서 글리치를 사용할 때는 안정적으로 사용해야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고 글리치를 쓰는 연습을 정말 많이 해야 합니다. 또 특정 구간을 스킵하는 글리치가 있다고 하면, 소울류 같은 게임은 얻어야 할 능력치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한 스펙으로 보스를 잡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가끔 런을 하면서도 ‘누가 이런 글리치를 발견해서 나를 힘들게 하나’ 라거나 ‘차라리 맘편하게 글리치리스 런을 하는게 낫겠다’ 는 생각은 정말 심심치 않게 드는 생각입니다. 어떤 것이 더 쉬운지 어려운지를 떠나서 각 카테고리별로 어려움이 분명 존재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 하나 더 생각나는 사례가 있는데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보면 쐐기돌 던전이라고 있어요. 옛날에는 그냥 던전에 들어가서 아이템을 먹는 게 목적이었는데 요새는 던전을 몇 초 안에 끝낼 수 있는가가 새로운 콘텐츠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이런 게 전통적인 의미의 스피드런보다는 ‘캐주얼한 스피드런'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스피드런이 지금 한국에서 별로 메이저하지 않은 이유는 캐주얼하지 않아서일까? 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는데. 혹시 여기에 대해서는 좀 어떻게 보세요? 오리지널하고 하드코어한 스피드런이 있다면 캐주얼한 스피드런이라는게 있고, 그렇다면 만약에 그게 인기를 끌 수 있는 걸까? 천제누구 : 우선 저는 그렇게 협력해서 하는 스피드런도 절대 캐주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면 거기서도 시간을 경쟁하는 것이다 보니 전술적으로 나름대로의 고민을 하게 되거든요. 제가 가끔씩 방송에서 하는 말이 있는데, ‘이 게임도 스피드런이 되나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때 농담식으로 ‘Rule 3334’ 라는 게 있는데, 모든 게임에는 스피드런이 있다고 말을 해요. 스피드런 카테고리에 관해 아까 잠깐 언급을 했었잖아요. 글리치 런과 글리치리스 런이 있듯이, 난이도마다도 카테고리가 나눠져 있어요. 예를 들면 ‘뉴게임’이라는 카테고리는 특전이 없는 특수한 초회차 플레이이고. DLC 혹은 다회차 플레이를 해야 하는 스피드런을 ‘뉴게임 플러스’라고 하는 데 그것 역시 스피드런이지요. <니어 오토마타> 같은 경우처럼 모든 엔딩을 보려면 수없이 다회차 플레이를 해야 하는 ‘올 엔딩’ 카테고리도 있어요. 뭔가 우리나라는 아직 '스피드런은 이래야 된다' 는 인식이 있거든요. 스피드런이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종목이라기보다는, 잘 하는 사람들이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 짱잘해' 하면서 보여주는 장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사실. 그러다 보니 스피드런은 썩을 대로 썩은 고인물들이 마지막에 즐기는 콘텐츠라는 인식이 있는데. 쉬운 난이도로 하는 플레이도 모두 스피드런의 장르거든요. 실제로 스피드런 사이트에 가면 제가 1시간 반 만에 깬 게임을 4-5시간 만에 깨는데도 기록에 그냥 신청하는 사람도 있어요. 순위권에 들어가야지만 스피드런이 아니고, 그냥 시간을 더 줄이고 싶어서 기록을 재서 올리고 싶다면 그것도 스피드런이라는 범주에 충분히 포함돼요. 이경혁 편집장 : 정말 달리기랑 비슷하네요. 저도 달리기를 되게 좋아하는데, 뭐 제 덩치로 빨리 뛰겠습니까? (웃음) 그냥 뛰는 게 재밌는 거거든요. ‘무슨 8시간 플레이한 게 어떻게 스피드런이냐' 그런 문화도 있는데, 정작 스피드런 뛰시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신다는 게 되게 핵심인 것 같아요. 근데 완전히 그걸 모르는 사람 입장이라고 가정하고 제가 질문을 해볼게요. ‘아니, 게임은 그냥 재밌자고 하는 건데 스피드런처럼 공부하듯이 파고 들어서 하는 게 재미라고 할 수 있나?' 이런 입장에서 질문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대답을 하시나요? 천제누구 : 어떻게 보면 원래 있던 게임을 단순히 즐기는 거에서 한 발짝 더 나가는 거다 보니 그런 질문도 있을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예를 들어 리듬 게임을 깊게 파는 사람들이 있다면, 리듬 게임이 재미없다던가 나는 그렇게 어려운 건 못 하겠다는 반응은 있지만, ‘리듬 게임을 왜 하냐?' 이러지는 않잖아요. 스팀에서도 업적이라는 게 있잖아요, 업적이 재미있어서 업적 플레이를 한다면 그걸 왜 하냐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오히려 ‘그럴 수 있지, 업적도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지'라고 말하죠. 사실 현재 스피드런에 대한 인식이 그 부분에서 다르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되어 있지 않고 뭔가 특이하게 하는 콘텐츠라는 이미지가 너무 많다 보니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걸 잘 이해해 주지 않는 경향이 좀 있지 않나. 이경혁 편집장: 스피드런은 일종의 선입견을 쓰고 있는 느낌이네요. 정말 자기 만족에 가까운 플레이 방법인데도요. 약간 억울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천제누구: (웃음) 억울하기보다는 빨리 이거를 좀 터뜨리고 싶다? 이런 것도 스피드런이다, 스피드런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게 있죠. 제가 열심히 기록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으면, '아니 이거 왜 이렇게 열심히 하시나요, 어디 대회 나가려고 하시나요', ‘스피드런 사이트에서 월드 레코드 먹으면 뭐가 있나요' 라고들 하시는데 기본적으로는 자기 만족이다. 저 같은 경우 방송 쪽에 욕심이 좀더 있으니까 요즘은 많이들 더 봐주실 만한 게임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사실 저도 좀 아쉬워요. 종종 하나의 게임만 진짜 오래 하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스피드런을 연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런 분들은 한 분야만 계속 연구하신 분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 분들이 제 입장에서는 참 존경스러워요. 한 가지 게임을 계속 플레이 하시면서 현재 기록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해서 시간을 줄이시는 분들을 제가 개인적으로 좀더 높게 여기는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사실 그래서 이건 제 바람인데, 스피드런을 그냥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종류로 봐주시면 좋겠다. 단순한 고인물 콘텐츠보다는 좀 넓은 의미로 스피드런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 정도 결론으로 마무리해 보면 좋을 것 같네요. 이경혁 편집장 : 게임을 조금 더 들여다 파보고, 각각의 톱니바퀴가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계산하는 그 재미. 그게 스피드런의 정수라고 얘기해 볼 수 있겠네요.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는데, 혹시 추가로 말씀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을까요? 천제누구 : 제가 거의 스피드런 포교사처럼 인터뷰를 했잖아요(웃음). 사실 게임을 잘한다는 말은 굉장히 추상적입니다. 한 게임의 고인물이라는 말도 얼마나 고인물인데? 라는 질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단 말이죠. 하지만 스피드런은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록을 세운다면 당당하게 한국 1등, 당당하게 세계 1등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두근거리지 않나요? 단순히 그냥 즐기는 것을 넘어서 내가 노력한 결과가 하나의 객관화된 데이터로 나오는 것도 스피드런의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혹시라도 인터뷰를 읽으시는 분들이 있으면 < speedrun.com >을 한번 검색해 보시라고 하고 싶어요. 거기에서 뭐든지 본인이 좋아하는 게임을 한번 그냥 검색해 보시라. 글리치가 싫으신 분들은 글리치리스를 선택하시고, 글리치가 좋으면 애니퍼센트(Any%)를 선택하셔서 본인이 좋아하는 게임을 한번 봐보셨으면 해요. 그러다가 어떤 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으면 시도를 한번 해볼 수도 있겠죠? 하다 보면 ‘이 사람은 여기서 이렇게 했을 때 그냥 됐는데 왜 나는 안 되지' 이런 게 몇 개 있어요. 이제 거기서부터는 이론의 영역이 됩니다. 거기에서 더 궁금하시다면, 스피드런 사이트 내 해당 게임 디스코드 링크에 들어가서 한번 물어보면 거기 계신 분들이 신나서 가르쳐 주실 겁니다(웃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스피드런의 매력 중 하나는 이론을 통해 플레이를 구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제가 계속 위에서 연구와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했잖아요? 저는 화학과를 나왔는데 과목 중에 실험과목이 있습니다. 실험 조교가 알려주는 실험방법과 이론은 동일하지만 나중에 결과를 보면 각 조의 숙련도에 따라서 기댓값대로 나오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제대로 따라하면 기댓값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겁니다. 스피드런 빌드는 어쨌든 ‘빅데이터’입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연구와 시행착오를 통해서 이론과 빌드를 쌓아 올립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이론을 찾아보시면 스피드런 플레이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니라 이해가 되고 연습하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단지 그것을 내 손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연습은 필수겠지만 말이죠. 제가 방송중에 종종 말하는 ‘여러분들도 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은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스피드런의 매력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고 많이 시도해주셨으면 좋겠네요. Tags: 스피드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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