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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80개 검색됨

  • 남성향 연애 게임에서의 '사랑'

    사랑을 게임 속에 재현해보고자 처음 시도됐던 남성향 연애 게임은 사랑 그 자체보다도 점차 게이머의 즐거움을 유발할 수 있도록 ‘게임성’에 집중하고자 했고, 이는 어느 정도 연애 게임의 진화된 모습으로 정착될 수 있었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 플레이어들은 왜 ‘한글패치’를 하고 있을까?

    이른바 ‘한글패치’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였다. 해당 연구를 진행하면서 여러 커뮤니티 게시글이나 코멘트, 심지어 인터뷰 참여자에게 꾸준하게 보고 들었던 이야기의 대명제는 “게임은 항상 균등하게, 지역에 관계없이 생산/소비되진 않는다”였다. 우리는 일방향적 콘텐츠 전사, 서구 중심 문화적 동질화 등 미디어 제국주의가 팽배한 시대가 아닌, 능동적 미디어 수용자에 의한 재해석과 전유의 시대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으니, 적어도 미디어는 각 지역의 수용자들에 의해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전유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 <바이페즈(双相)>와 게임의 신체화

    2022년 11월 중순, 랩시드(西山居SEED实验室, 시산쥐SEED실험실)에서 인큐베이팅한 중국산 공익게임 <바이페즈>가 정식 출시됨으로써, 국내 최초 게임 형식으로 양극성 장애[역주: 조울증]를 다룬 게임이 됐다.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질환인 양극성 장애는 전 세계에 약 6천만 명의 환자가 있다. < Back <바이페즈(双相)>와 게임의 신체화 13 GG Vol. 23. 8. 10. 2022년 11월 중순, 랩시드(西山居SEED实验室, 시산쥐SEED실험실)에서 인큐베이팅한 중국산 공익게임 <바이페즈>가 정식 출시됨으로써, 국내 최초 게임 형식으로 양극성 장애[역주: 조울증]를 다룬 게임이 됐다.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질환인 양극성 장애는 전 세계에 약 6천만 명의 환자가 있다. <바이페즈>는 수평 액션의 2D 플랫폼 점프게임이다. 게임이 처음 시작되면 다양한 액션 규칙을 통해 플레이어가 백색 피에로를 컨트롤해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한 블록과 기호 사이를 점프할 수 있도록 한다. 레벨을 통과하려면 플레이어는 태양과 유사한 백색의 기하도형을 터치해야 한다. 이 게임의 플레이 메커니즘은 1990년대 ‘소패왕 학습기(小霸王学习机)’[역주: 1980년대 말, 재미 화인기업가가 창립한 소패왕문화발전유한공사(小霸王文化发展有限公司)에서 만든 컴퓨터 학습도구] 카세트(팩)에서 볼 수 있었던 < 콘트라(魂斗罗)> 나 < 모험섬(冒险岛)> , < 슈퍼마리오> 등 평범한 오락게임을 연상시키지만, <바이페즈>의 플레이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구체적인 인지를 통해 양극성 장애의 기본 증상인 조증 위주의 조울증을 번갈아가며 경험할 수 있다. 필자 역시 게임을 하는 동안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더 많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 조울증 환자였던 필자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다양한 치료를 받은 후에야 서서히 정신 상태가 개선된 경험을 한 바 있다. 정신장애 : 게임의 신체화 게임 디자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양극성 장애의 게임 체험은 ‘스크린 안쪽에 표시되는 가상의 신체를 가진 캐릭터’와 ‘스크린 바깥에 구성된 물리적 신체를 가진 플레이어' 1) 사이의 관계 간극을 인위적으로 강화함으로써 게임의 말단 설계에서 실현된다.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두 가지 ‘나’ 사이엔 ‘은폐된 비대칭성’이 존재하며, 게임 플레이의 메커니즘은 일시적이나마 이 둘의 동일화와 주체 전환시 발생하는 현기증의 인지를 온 힘을 다 해 완성하고자 한다. 나아가 플레이어의 실제 공간과 게임의 3D 공간이 스크린 공간(screen space)에 겹쳐지면서 게임의 시점이 분산되고, 플레이어는 자신의 주체성을 의식하지 않은 채 복수의 캐릭터들의 미션 시점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현대 정신병리학 이론에 따르면 게임은 본질적으로 정신분열증 증상으로 플레이어가 여러 인칭과 시각, 주체 사이를 반복적으로 넘나들고, 상징화된 게임세계는 진정한 깊이가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스스로 깊이 있는 체험을 복구해야만 한다. 게임이 만드는 신체화(somatization)는 자기 인지의 보완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보류된다. 게임은 시뮬레이션의 투사라는 측면에서 이미 주체를 분열시키는 구조이지만, 게임에서 조울증 환자의 감정을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면식이론(acquaintance theory)’ 상의 ‘타자 마음의 문제(Problem of other minds)’를 더더욱 복잡하게 포함되기 때문이다. ‘타자 마음의 문제’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마음을 경험한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에 있다. 통속심리학에서는 두 유형의 방법론을 선호하는데, 추리추측을 통한 이론론(the theory theory)과 자신이 상대방의 시야에 있다고 가정하는 가장론(the simulation theory) 2) 이 그것이다. 스포츠 게임의 시뮬레이션(룰 기반, 세계 기반, 액션 기반 등)은 가장론의 방법론에 보다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가장론은 자신과 상대가 사용하는 사적인 감각이 정상적이고, 같은 언어에 의해 서로 통하고 표현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신장애환자의 문제가 있다. 질환을 갖는 시기 동안 개인의 사적 감정은 분열되고 가변적이며,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인해 표현력이 쇠퇴하거나 심지어 사라지는 증상을 보이게 된다. 일상생활에서도 신체의 증상화 징후가 형성된다. 즉, 장애의 문제가 심리적인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신체적인 증상으로 대체되며, 정신적 수준의 피해와 고통이 억제되어 신체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증상은 낙인찍기의 심리화(psychologization)가 이뤄지는 사회환경에서 더 가혹하게 나타나고,신체 경험의 궤적도 더욱 강하게 형성된다. 3) 이렇게 하면 환자는 심리적 증상의 생리학적인 성분을 더 많이 인정하고, 심리적인 영향은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가장론의 인지적인 기초는 정신장애 환자가 타자 마음을 증명하는 것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정상인은 환자의 경험이나 감정을 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장애를 소재로 한 여러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지, 시청각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이론론의 방식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타운 오브 라이트(The Town of Light)>에서 플레이어는 정신분열증 환자 르네(Renèe)의 안내를 받아 정신병원을 돌아다니며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고, 환각을 경험하며, 마지막에는 그녀와 함께 전두엽 절제술의 과정에 의해 각종 고통을 직접 맞닥뜨리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때로 게임은 상호작용을 통해 시청각적 감각을 강화하기도 한다. 게임 <에디스 핀치의 유산(What Remains of Edith Finch)> 속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루이스 핀치(Lewis Finch)는 해리 장애를 앓고 있는데, 편지를 읽을 때 플레이어는 루이스의 정신 상태를 모방함으로써 미로를 걷고 생선을 자르는 이중적인 행위를 수행해야 한다. <아웃 오브 핸즈(Out of Hands)>에선 정서 장애를 겪는 ‘나’의 육체가 무수히 많은 손들이 그러모은 모조품이 되어버리고,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카드 게임은 다양한 부정적 정서와의 싸움이 된다. 하지만 <바이페즈>의 게임 설계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내러티브를 포기하고 감정적인 독백을 통해 내러티브의 존재 가능성을 돌이켜 본다. 이 게임의 제작자 쉬루이샹(徐瑞翔)은 내러티브보다는 구조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게임 데모 시연 당일에도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처음에 게임 메커니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이페즈>는 조울증 환자의 신체화된 증상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위해 보다 가장론적인 접근 방식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스포츠 게임의 현실 세계 모방에 매우 가깝기도 하다. 하지만 고작 하나의 모방은 시청각적 경험에 기반하고, 다른 한 가지는 정신적인 감정에 기반한다. 이 두 모방은 시점이 동일하지 않은데, 마츠모토 켄타로은 이것이 1인칭 시각과 3인칭 햅틱을 결합한 것이라고 한다. <바이페즈>에서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되는 시각은 조울증 환자의 1인칭 시점을 시뮬레이션한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색상과 기호 블록 사이를 오가는 조작된 하얀 피에로의 햅틱은 3인칭이기 때문에, 결국 플레이어는 둘 간의 조율되지 않은 지각의 부조화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 플레이어는 분열 속에서 둘 사이의 지각 부조화를 고칠 수 없고, 그 분열 속에서 정신 부조화의 세계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때문에 이것은 일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더욱 고통스러운 신체화 게임 경험을 갖게 한다. 빨간색과 검정색의 교차 : 시각의 신체화 스포츠 게임이나 피지컬 게임이 아닌 게임의 경우, 신체화는 표현하기 어렵고 통증 연상을 통해서만 시청각적인 감각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하지만, 시청각 감각은 하나의 실험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정신장애를 겪는 환자의 눈에 비친 세상이 두 차례에 걸쳐 전환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의 <절규>가 그 예시다. 이 작품은 불안장애 증세를 보이는 환자의 눈으로 바라본 왜곡된 세계만이 아니라, 불안장애 환자 자신의 모습도 담고 있다. 그 스스로 심각한 불안장애를 겪었던 뭉크는 모더니즘 하에서 소외된 이의 감정에 대한 공감대를 느끼기 위해 독립적이고 빙빙 도는 색채의 상호작용을 그렸다. <절규>에서 감상자는 타인의 눈에 비친 절규만이 아니라, 그림 속 인물의 절규에 영향을 받은 주변세계, 즉 1인칭 시점이 3인칭 시점으로 재조명되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정신장애인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심미적 주체로서 자아는 자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동시에 ‘정상인’의 체험에 의해 비교하면서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또, 만약 게임이 정신장애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대로 재현한다면, 이와 같은 핍진성은 ‘정상인’의 체내에 잠복하고 있는 정신장애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바이페즈>는 반드시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바이페즈>에서 컨트롤하는 하얀색 피에로는 고도로 기하화(geometrization)된 캐릭터다. 플레이어는 이어지는 퍼즐 해석 속에서 그것이 양극성 장애를 앓는 ‘열여섯 여름의 그녀’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하지만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어렵고, 오직 시청자의 관점에서만 캐릭터를 컨트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되는 시각적 세계는 양극성 장애를 가진 사람의 눈에 보이는 1인칭 시점으로, 캐릭터가 바운스할 때마다 스크린이 빨간색과 검정색으로 색깔들이 점프한다. 바운스는 게임 플레이를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수행해야 하는 동작이기 때문에 플레이어 눈의 게임 인터페이스는 빨간색과 검정색 전환이 수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인터레이스된다. 이 때문에 광과민성 간질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광과민성 간질의 신체화 증상은 조증 발작시의 증상과 일부 유사하며, 이는 양극성 증상 을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게임을 시작하는 화면에는 “양극성 장애가 있는 분은 게임 플레이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게임은 광과민증이 있는 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라는 명시적 알림 메시지가 뜬다. 이 알림은 사실상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조울증 환자는 관찰의 대상이 되고, 그들/우리는 구경꾼들의 눈에 비친 세계가 진정으로 그들이 느끼는 그대로 인지 아닌지 느낄 수가 없다. 게임 속 여기저기에서 강렬한 생산 전환을 볼 수 있는데, 특히 해와 달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장면에서 더욱 그렇다. 붉은색 백야와 검정색의 밤이 과도기적인 전환 없이 나타나고, 시각 체험에 있어서도 심각한 불연속성(discontinuity)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잠은 사람들로 하여금 낮과 밤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양극성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수면만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각성 요법과 같은 어떤 의학 치료방식들은 수면 박탈이라는 방식을 통해 정서와 인지능력의 즉각적인 보상을 촉진하도록 설계됐다. 물론 수면 보상을 시행한 이후 재발 확률은 급격하게 증가한다. 4) 게임에서 하얀 피에로가 하는 하는 일은 빨간색 블록과 검정색 블록을 끊임없이 돌리면서 게임으로부터 탈출하거나 통과하는 것이다. 이는 치료의 한 형태이기도 한데, 수면 박탈, 리튬, 빛을 결합한 3중 생체시계 치료법(필자도 경험한 바 있음)이 게임에서 모두 표현되어 있다. 검정색은 수면 박탈, 리튬은 약물 복용, 빨간색은 빛을 강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얀 피에로는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하는데, 이는 수면을 박탈하면서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빛을 지속하는 방식으로 깨어 있는 것이다. 게임을 통과하기 위해 태양을 터치할 수 있는지 여부는 덜 중요해진다. 이 1인칭 시점은 게임의 3인칭 햅틱에 의해 끊임없이 상기되고 강화되어, 플레이어의 시야는 빨간색과 검정색의 시차적 변화, 바운스하는 동작의 시각적인 동선, 그리고 접점을 오가는 단조로운 경험이라는 3중 간섭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3중 간섭 하에서 하얀 피에로는 더 이상 조울증의 화신이 아니며, 대신 실시간 화면(screen of real time)에서 역동적인 빛의 한 지점이 된다. 5)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화면의 위계와 의학적인 관찰을 통해 새로운 시간적 감각을 얻게 된다. 이 때 전자(화면의 위계)는 레이더 추적 방식의 체험인데, 플레이어가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하는 것은 광선총(lightgun)을 사용해 광점을 추적하는 과정이 된다. 후자는 한계 뇌파의 동적인 궤적이 된다. 이와 동시에 체크포인트의 ‘왕복’과 ‘순환’에는 뇌파도계(encephalofluctuograph)와 유사한 구조가 대량으로 등장한다. 뇌전도나 뇌파도계는 모두 ‘정상인’이 정신이상자를 판단하는 척도 중 하나이기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보이는 시각성은 더더욱 ‘과학적으로 관찰된’ 타자의 시야에 의해 사라져버리고, 조울증 환자는 게임 인터페이스에서 광점으로 소외된 채 남루하게 배치되어 탈출하는 것이 점점 더 험난해진다. 컨트롤의 불균형 : 감정의 신체화 “악의 문학적 표현양식" 6) 인 반복은 지옥 신화에서 연이어 묘사된 고통의 영구 형벌로 존재하며, 지옥은 언-오르트(Un-Ort)가 된 순환 공간이다. 또한 지옥 속의 개체는 신체화된 형벌의 대상이 된다. 사르트르는 희곡 <닫힌 방(Huis clos)>에서 실존주의적 해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곧 무한한 것(ad infinitum)의 모방으로 단조로움과 반복을 가져와, 그 속의 주체를 끊임없이(마치 업보를 태우는 불처럼) 불 태워버리는 느낌을 만든다. [역주: 원문의 业火(업화)는 불교 용어로, 죄인을 태우는 지옥불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불타는 감각은 플레이어의 자의식을 괴롭히는 조증과 매우 유사하다. <바이페즈>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통해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하는데, 이 과정에서 3인칭 햅틱이 더해져 플레이어는 과잉 시각화(overvisual)의 평면에 현혹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게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를 강렬한 양극성 정서(특히, 조증 정서)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캐릭터가 아니라, 게임 속의 여러 반복 행동들이다. 이 게임의 메커니즘은 루트를 끝내는 것, 플레이 경험, 시야의 확산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감정의 신체화를 악화시키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 루트를 끝내는 과정에서 게임 프로세스엔 반복적인 작업들이 많이 나타난다. 제작자 쉬루이샹(徐瑞翔)에 따르면 이는 “양극성 장애가 재발하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것인데 (…) 이는 바로 외출을 하고 싶다면 이곳에서 빙빙 돌기만 해야 한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세 번째 스테이지가 시작되면 플레이어는 레벨을 완료하기 위해 메커니즘을 지렛대로 삼기 위해 동일한 인터페이스를 반복해야 한다. 여섯번째 스테이지 이러한 경험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얀 피에로는 촉발된 기관 여러 차례 중복해 통과해야 할 뿐만 아니라(전략 가이드를 참고한다는 전제 하에), 어떤 특수 장면에서는 능동적으로 추락해 게임 인터페이스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빨간색과 검정색 두 가지 색상으로 만들어진 파손된 통관 루트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중복(too repetitive) 메커니즘은 계속해서 플레이어들의 인내심을 낭비하고, 게임의 플레이가능성을 계속 희생시켜, 1인칭 시각성의 자극으로 불안과 무료함을 이중적으로 체험하는 걸 강화한다. 게임 체험에서 이러한 느낌은 더욱 확대된다. 스마트폰 컨트롤 인터페이스에서 이 게임의 조이스틱(摇杆) 체험성은 매우 엉망이다. 손이 시야를 일부 가리게 되어 터치 오류가 날 확률이 매우 높고, 이는 하얀 피에로가 스마트폰에서의 점프 컨트롤이 데스크탑에서보다 더 어렵도록 만든다. 이는 또한 캐릭터가 추락해 죽을 확률도 크게 높인다. 만약 기관을 반복해 오고가는 게 수평적인 불안의 체험이라면, 죽음이 거듭된 뒤 게임을 재개하는 것은 수직적인 불안 경험이 된다. 종횡으로 교차해 만들어진 불안의 장력은 끊임없이 플레이어의 시각과 청각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플레이어가 자신의 손가락 컨트롤에 대해 짜증을 느끼게 만든다. 게임 인터페이스는 색깔 블록 말고도 메커니즘이 작동할 때 움직임의 궤적을 바꾸는 대량의 선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선들은 신체 바깥에 있는 기호의 표본을 만드는데, 이는 하얀 피에로의 빨강-검정 색상 전환과 메커니즘이 촉발하는 컨트롤과 관련되어 글자들의 춤(written dance)을 만든다. 순수하게 물리적인 특성, 즉 비생명의 객체가 생명의 활력(élan vital)을 갖추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그런 다음 “업무 중 지령이 암시하는 억압의 정도에 따라 점차적으로 약화”된다. 7) 시청각적인 경험이든 컨트롤의 감각이든, 모두 게임의 신체화를 통해 정신장애의 신체화를 모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페즈> 플레이어의 지각은 여러 인칭들에 의해 분열되고, 동시에 투시체험은 여러 각도로 분리된다. 그래픽이 중첩되는 방식(즉, 4인칭 단수 시점) 8) 을 통해 각기 다른 카메라의 시선이 마치 뒤샹의 <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역주: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 과 같은 어지러움에 도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하이퍼 시각화된 평면은 스크린 공간에 투사되어, 응시의 단일한 초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인지조화가 이뤄진 ‘정상인’은 게임 도중 초점이 인터페이스의 도처를 조급하게 돌아다니게 되고, 이미 신체화된 양극성 정서장애 환자는 게임을 더욱 어려워 하게 된다. 내러티브 독해 : 결말의 신체화 게임 체험 말고도 <바이페즈>의 숨겨진 결말은 또 다른 의미로 신체화된 독해의 가능성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곧 전두엽이 절제된 미래이다. 게임 속에서 빨간색-검정색이 교차하는 것은 단순히 양극성의, 낮/밤이 교착된 이미지가 아니다. 게임의 다섯번째 스테이지 <미궁>에선 빨간색-검정색이 직접적으로 접점을 이루는 교착점의 조합이 바로 의약품인데, 이는 게임 플레이 영상에서 언급된 바 있는 리튬이다. 바꿔 말해, 또 다른 의미에서 플레이어는 스테이지를 통과하도록 캐릭터를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캐릭터에 의해 컨트롤당하고 있는 셈이다. 플레이어는 약을 복용하는 캐릭터가 가져다주는 보다 평평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두 개의 색깔만으로 이뤄져 있고, 구체성이 없으며, 도처에 함정과 추락으로 가득 찬 평평한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환각제(LSD)를 복용한 후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는 <인식의 문>에서 가장 행복했던 경험이 바로 다양한 색깔들이 뒤엉킨 평면적인 세계를 체험한 것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게임이 말하고 있듯, 약물 치료는 사실 단지 정신질환을 일시적으로 보류할 뿐, 진정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 9) 오랫동안 비판받아온 완치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은 바로 전두엽 절제술이다. “의사들은 가벼운 우울증과 불안증부터 조현병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시행했다. 한마디로 그 당시 의료 전문가들은 전두엽 절제술을 ‘영혼을 위한 수술’이라고 여겼고, 가벼운 우울증부터 심각한 정신분열증까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라도 추락할 수 있는 하얀 피에로(양극성 장애 환자)는 당연히 비정상적이다. 전두엽 절제술 이후 환자는 다시는 양극성 장애를 앓지 않지만, 완전히 순종적인 좀비가 되어버린다. 이 역시 ‘완치’의 결과일 수 있다. 많은 영화 및 TV프로그램들에서, 정신질환자의 경험을 심도 깊게 보여주는 작품일수록 결말은 점점 더 전두엽 절제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1971), <판의 미로(Pan's Labyrinth)>(2006), <서커 펀치(Sucker Punch)>(2011), <니하오, 미친놈(你好,疯子)>(2016) 등 모든 영화들이 그렇다. <바이페즈>에 대한 또 다른, 좀 더 자기 구속적인(self-imposed) 해석도 존재한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하얀 피에로의 치유를 돕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사실 하얀 피에로는 ‘전두엽 절제술’이 이뤄질 미래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하얀 피에로는 이 운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데, 플레이어가 줄곧 피에로를 컨트롤하고 있고, 태양을 향해 그녀를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이다. (빨간색과 검정색이 중첩된 흰색은 전두엽 절제술이 이뤄질 테이블의 흰색 전등을 상징한다.) 피에로는 (철창 안에 갇힌 채)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자신이 완치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미로에 갇힌 채) 적극적으로 약물을 복용하며, 심지어 (반복에 갇힌 채로) 다시 또 다시 이뤄지는 치료에 계속해서 협조한다. 하지만 플레이어(사회 또는 가족)는 결코 믿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컨트롤하며 태양을 향해 컨트롤한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피에로는 아홉번째 스테이지를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나타나는 영상은 피에로가 플레이어에게 한걸음씩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2차원 이미지였던 피에로는 3차원의 주체적 사람이 되고는 “고생했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더 이상 발병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아홉번째 스테이지의 숨겨진 결말은 플레이어가 하얀 피에로를 컨트롤해 태양이 없는 또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해석에 의해 뒷받침된다. 따라서 태양 뒤에 치유의 문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피에로가 전두엽 절제술을 받지 않고도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가능한데, 플레이어는 그 대가로 게임에 대한 길고 지루한 해설을 볼 수 없고, 하얀 피에로가 조울증 환자라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병철은 정신질환의 치유가 본질적으로 일종의 살해라고 여긴다. 그것은 인간성을 죽이며, 그것을 통해 고도로 자기 훈련된 의식의 산업으로 되돌려 놓는다. 여기서 ‘정상인’으로서 우리는 ‘우애로운 빅브라더’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빅브라더)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자기 착취와 자기 계몽(Selbstauslechtung)을 통해 더더욱 원자화되도록 교도한다. “더 높은 생산성을 창출하기 위해 감정의 자본주의(Kapitalismus der Emotion)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das Andere der Arbeit)인 게임을 배우게 됐다. 감정 자본주의는 일상과 일터를 모두 게임화(Gamifizierung)한다." 11) 어떤 면에서 <바이페즈> 역시 게임화의 산물인데, 게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신체화된(소외된) 자아를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죽고 또 부활하는 게임적 리얼리즘(ゲーム的リアリズム)은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특히 모바일 체험이 엉망인 상황에서 그것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인상을 더욱 배가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소외의 경험은 플레이어를 감정 자본주의의 함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러한 경험들은 자기계발의 방식으로 게임을 완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빨간색과 검정색이 교차하는 게임 인터페이스를 비플레이어와 비캐릭터의 4인칭 관점에서 본다면,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이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에서 보여준 엇갈린 톱니바퀴가 다시 우리 앞에 떠오른다. 훈육 사회에서 집중 교정된(konzertierte Orthopädie) 화면들이 꼭 양극성 정신장애 환자의 세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강한 조급증(emotionszustand)의 정서 상태는 양극성 장애 환자의 체험이 아니라, 개체로서의 존재의 흔적이다. 필자 주 1 ) 마츠모토 켄타로(松本健太郎), 「스포츠 게임의 구성 : 현실의 무엇을 모방하는가?」, 덩지안(邓剑) 번역, 천즈난(陈梓楠) 교정, 『게임 왕국의 보물을 탐험하다(探寻游戏王国里的宝藏)』, 상하이서점출판사(上海书店出版社), 2020. 12. 2 ) 이론론은 마음과 행동의 관계에 대한 일련의 이론들을 바탕으로 타인의 심리를 추측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내가 내 몸의 일부를 긁는 행위는 그 부분에 가려움을 느낀다는 신호라고 보면, 타인이 자신의 다리를 긁는 것이 다리가 가려운 상태라고 추정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우리의 추리(reasoning)를 통해 이뤄진다. 가장론은 상대방의 위치(place)와 관점(perspective)에서 자신을 상상함으로써 행동을 예측하고, 가설을 세워 이를 테스트하는 등의 방식으로 행동을 해석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론론과 가장론은 모두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진 다양한 구체적 주장을 포함하는 큰 부류의 이론틀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즈후(知乎)에 게시된 이 내용을 참고하라. 3 ) Karen Hanson. Social Origins of Distress and Disease: Depression, Neurasthenia, and Pain in Modern China by Arthur Kleinman. New Series, Vol. 1, No. 3, Obstetrics in the United States: Woman, Physician, and Society (Sep., 1987), pp. 343-345 4 ) Linda Geddes. Staying awake: the surprisingly effective way to treat depression. https://mosaicscience.com/story/staying-awake-surprisingly-effective-way-treat-depression/ 5 ) 레프 마노비치, 『뉴미디어의 언어(新媒体的语言)』, 구이저우인민출판사(贵州人民出版社), 2020. 6 ) 피터 앙드레 알터, 『악의 미학적 여정: 낭만적 읽기(恶的美学历程:一种浪漫主义解读)』, 닝잉(宁瑛)·왕더펑(王德峰)·종창성(钟长盛) 번역, 중앙편역출판사(中央编译出版社), 2014. 7 ) 클라우스 피아스, 『비디오 게임의 세계(电子游戏世界)』, 숑슈어(熊硕) 번역, 푸단대학출판사(复旦大学出版社), 2021. 8 ) 황원다(黄文达), 「제4인칭 단수: 영화 이미지의 자율성에 대하여(第四人称单数——论电影影像的自主性)」, 베이징전영학원학보(北京电影学院学报), 2010. 9 ) 올더스 헉슬리, 『지각의 문(众妙之门)』, 천창두어(陈苍多) 번역, 베이징옌산출판사(北京燕山出版社), 2016. 10 ) John Kuroski, 「The Twisted History Of The Widely Misunderstood Lobotomy」 https://allthatsinteresting.com/lobotomy-walter-freeman 11) 한병철, 『심리정치 -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문학과지성사, 2015. 필자가 참고한 중국어 번역본은 『精神政治学』, 관위홍(关玉红) 번역, 중신출판사(中信出版社), 2019.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단위안, 但愿 쓰촨사범대학(四川师范大学) 문학원 문예미학 박사.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Three Trends in Western AAA Games Research: Creators, Culture, and Cash.

    The AAA space continues to be one where art, industry, and culture coalesce. What games research attunes us to most is that each of these elements, while moving forward, seems to be stuck in stasis where the problems of the past remain unresolved. In the pleasure of the next big release, the anticipation of the next hype cycle, and the excitement of the next awards ceremony, it’s clear that AAA development is no-doubt heading full-bore into a future of even greater artistic heights, but these heights come with even more troubling extremes. Despite interventions on the part of games journalists and academics, and mobilization attempts from game workers, long-standing and pervasive issues with the legitimacy of games, and the exploitation of workers and players alike, persist. Academic work on the AAA space shines a spotlight on the issues that continue to go unresolved while major gaming studios propel forward in the perpetual quest for artistic recognition, prestige, and the almighty dollar.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Game Researcher)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묘를 파헤치면 주검이 나올까 –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로어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가 몰두하는 대상은 <다크소울> 시리즈의 로어를 관통하는 그윈과 그 친인척들로 엮인 주요 서사로부터 거리가 멀고, 다른 항목과 접점을 만들어 내기에도 희박해보인다. Hawkshaw는 굴하지 않고 꾸준히 <다크소울 1>로 되돌아가, 끝이 명시적으로 선언된 세계 안에서 여백을 ‘착즙’해내고 있다. < Back 31 GG Vol. 26. 8. 10. Tags: 게임 로어, 프롬 소프트웨어, 다크 소울, 블러드본, 플레이버 텍스트, 팬덤 해석, 암시된 디자이너, FromSoftware, Dark Souls, Video Game Lore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ri Kim Interested in the ways games let us experience stories. After poking around here and there, lately played Marathon.

  • 뱀서라이크 - 게이머와 게임의 생존전략

    ‘서바이버즈-라이크’ 장르가 주는 재미는 단순히 간단하고 쉬운 반복 플레이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고 다양한 생존전략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욕망으로부터 즐거움을 끌어내고 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즐거움은 게이머가 게임을 어떻게 즐기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장르가 10, 20년 후까지 존재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많은 표절, 모방 게임이 쏟아지고 있고, 게이머들은 이 행태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특히 무분별한 장르의 남용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 「주류 게임 내 우익 극단주의: 문헌 검토」 의 검토

    2021년 11월, <로블록스>는 한 콘텐츠 제작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당한 루벤 심(Ruben Sim)이라는 인물은 사이버 폭력 집단을 조직해 플랫폼과 플레이어, 개발자들을 위협했다. 이미 수년 전 우익 극단주의적 수사법 사용과 플레이어 괴롭힘으로 차단된 바 있지만, 루벤은 타인의 계정을 빌려 계속 <로블록스>에 접속해왔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young Hong Entered the world of games thanks to ads pitching the Famicom as a must-have for the happy household. A steady devotee of Just Dance. Co-wrote Mario, Born in '81, The Theory of Games, and Media and Gender, among others.

  • [논문세미나] “Sexuality does not belong to the game” - Discourses in Overwatch Community and the Privilege of Belonging

    한때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AAA급 게임 〈오버워치(OVERWATCH)〉. 〈오버워치〉는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내 다양한 논쟁이 오갔던 2010년대 후반을 상징하는 게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 인기를 입증하듯, 〈오버워치〉에는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쏟아져나왔고 이를 통해 드러난 현상과 논의들이 논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기를 풍미한 〈오버워치〉는 작년 10월, 서비스를 종료해 후속작인 〈오버워치 2(OVERWATCH 2)〉로 재탄생했다. 이 글은 Triple A!라는 주제를 맞아, 2010년대 후반을 대표한 AAA급 게임 〈오버워치〉에 관한 한 논문을 다루고자 한다. 바로 오버워치 속 ‘퀴어’를 다룬 논문이다. < Back [논문세미나] “Sexuality does not belong to the game” - Discourses in Overwatch Community and the Privilege of Belonging 10 GG Vol. 23. 2. 10. - 게임제너레이션은 새 연재로 '논문세미나'를 오픈합니다. 디지털게임을 다룬 국내외의 주요한 논문들을 간략하게 정리, 소개함으로써 디지털게임 연구의 결과들이 대중적으로 손쉽게 유통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새 연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1. 들어가며 한때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AAA급 게임 〈오버워치(OVERWATCH)〉. 〈오버워치〉는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내 다양한 논쟁이 오갔던 2010년대 후반을 상징하는 게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 인기를 입증하듯, 〈오버워치〉에는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쏟아져나왔고 이를 통해 드러난 현상과 논의들이 논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기를 풍미한 〈오버워치〉는 작년 10월, 서비스를 종료해 후속작인 〈오버워치 2(OVERWATCH 2)〉로 재탄생했다. 이 글은 Triple A!라는 주제를 맞아, 2010년대 후반을 대표한 AAA급 게임 〈오버워치〉에 관한 한 논문을 다루고자 한다. 바로 오버워치 속 ‘퀴어’를 다룬 논문이다. 트랜스미디어, 팬덤, e스포츠 등 게임문화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타냐 발리살로(Tanja Välisalo)와 마리아 루오살라이넨(Maria Ruotsalaine)은 오버워치 관련 글을 이미 몇 차례 내놓은 적 있는 연구자들이다. 두 연구자는 이번 텍스트로 〈오버워치〉 속 퀴어 캐릭터들을 둘러싼 커뮤니티 의견들을 분석하고, 소속·비소속의 구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오버워치〉 연구자들이 분류한 데이터들을 따라가며, 퀴어 캐릭터들을 둘러싼 커뮤니티 의견이 어떻게 나뉘고 현실 정치와 이어지는지 살피고자 한다. 그 후 소수자 표현이나 한국적 맥락에 대한 고민을 나눌 생각이다. 덧붙여서 이 논문은 2022년에 등록되었지만, 2016년에서 2020년까지의 데이터를 토대로 하므로 현재에 맞지 않는 상황이 보일 수 있다. 그 점을 고려하면서 봐주길 바란다. 2. 커뮤니티에 소속된다는 것 〈오버워치〉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Blizzard Entertainment)가 2016년에 런칭한 팀 기반 FPS 게임이다. 〈오버워치〉는 슈팅 게임이라는 본질 외에도 각각의 캐릭터에게 서사가 부여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오버워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캐릭터들의 설정을 풀어내는데, 2016년에는 트레이서, 2019년에는 솔저: 76가 퀴어라는 사실이 공개돼 화제가 됐었다. 캐릭터들을 향한 플레이어들의 입장은 둘로 나뉘었다. 게임과 섹슈얼리티의 연결을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과 게임을 통해 드러난 다양성을 기쁘게 생각하는 입장이 그것이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입장 차이에서 발생한 토론을 살피며 소속·비소속 장소로써의 〈오버워치〉 트랜스미디어 세계를 분석한다. 어딘가에 소속될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협상과 투쟁이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소속감이 정체성이라는 개념과 유사하게 이해될수록 더욱 그렇다. 그럼 '소속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연구자들은 '(소속감이)애착 욕구 및 개인이나 그룹이 소속되길 바라는 방식을 포착하게 만든다'는 프로빈(Probyn, 1996)의 말을 인용해 이를 설명한다. 정서적인 영역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소속감'은 끊임없이 변화하거나 경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예를 들어, 북미 게임 커뮤니티의 권력은 여전히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커뮤니티에 소속되기 용이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유저들은 커뮤니티에 소속되기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다. '게이머의 싸움'은 보통 게이머 대 게임 회사·개발자의 대립을 연상시키지만, 사실 이 대립은 커뮤니티 내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3. 게임문화 속 LGBTQ 게임문화 속 LGBTQ는 그동안 다양한 층위에서 혐오를 접해왔다. 이를테면 게임의 LGBTQ 캐릭터 자체는 〈오버워치〉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게임 세계 안에서 퀴어 캐릭터의 존재는 대체로 한 명이었고, 그마저도 이성애자 캐릭터들에 의해 온갖 혐오적인 태도와 마주해야 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이하 WoW〉 운영 도중 LGBTQ와 관련해 비판받은 과거가 존재한다. 2006년에 있었던 이 일은 블리자드가 퀴어 친화적인 한 WoW 길드의 홍보를 금지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블리자드는 차별적 괴롭힘이 조장될 수 있는 상황을 막은 거라 발표했지만, 플레이어들의 반발에 의해 이 규정을 곧 철회하였다. 이런 과거들이 있었지만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퀴어 콘텐츠도 게임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퀴어 친화적으로 입장을 바꾸었고 여러 게임사에서 다양한 모습의 성소수자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의 주인공 엘리를 포함해,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에이펙스 레전드(Apex Legends)〉, 〈발로란트(VALORANT)〉 등, AAA급 게임에서 퀴어 캐릭터를 찾는 일은 이제 그리 어렵지 않아졌다. 〈언더테일(Undertale)〉도 이 사례에 들어가는 게임 중 하나다. 논 바이너리(non-binary) 젠더인 주인공이 등장하고 성 중립적 대명사(they/them)를 사용하며 퀴어 스토리라인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이 있더라도 〈언더테일〉이 LGBTQ 게임으로 소개될 수 있느냐는 다른 영역의 이야기다. 연구자들은 〈언더테일〉이 메커니즘 측면에서 게이머들의 향수를 자극했고, 그로 인해 '게이머들의 게임'으로 정의되었다는 루버그(Ruberg, 2018)의 말을 옮긴다. 루버그(Ruberg, 2018)는 〈언더테일〉의 이런 인기가 퀴어 요소를 삭제하고 게임적 부분에만 초점 맞추는, 일종의 스트레이트워싱(straightwashing)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하였다. 이처럼 게임문화 속 퀴어는 여러 사건 및 논의와 함께 해왔다. 연구자들은 ‘정치적 담론과 대중문화 토론은 새로운 형태의 시민권이며, 이것이 대중문화 텍스트에 참여하게끔 강조한다’는 샌드보스(Sandvoss, 2014)의 말을 인용한다. 거기에 플레이어 커뮤니티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소속을 둘러싼 투쟁으로 인해 정치화되기도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이 안에서 투쟁의 수단이자 중심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4. 〈오버워치〉 속 데이터들 연구자들은 2019년에 진행했던 연구로 캐릭터들의 성적지향이 플레이어에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플레이어가 〈오버워치〉에 어떤 식으로 연결되고 소속되는지 알아보기로 한 것이 이번 연구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은 오버워치 공식 포럼과 레딧(Reddit)에서 정보를 수집하였다. 수집된 데이터는 다음의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는 트레이서다. 〈오버워치〉의 상징과도 같은 트레이서는 2016년에 퀴어 캐릭터라는 정보가 공개됐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오버워치〉의 설정들은 게임이 아닌 트랜스미디어로 전달된다. 그래서 트레이서의 퀴어 설정도 단편 만화 '성찰(Reflections)'에서 밝혀지게 되었다. 이후 수석 작가인 마이클 추(Michael Chu)도 트위터로 그녀가 레즈비언임을 공식 인정했다. 이렇듯 오버워치의 첫 퀴어 영웅인 트레이서에 관한 것이 첫 번째 주요 데이터다. 두 번째 는 솔저: 76이다. 2019년에는 솔저: 76도 퀴어 캐릭터라고 드러났다. 그가 게이라는 사실은 트레이서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나타났다. 빈센트라는 이전 애인이 언급되는 단편소설, '바스테트(Bastet)'와 마이클 추의 트윗으로 퀴어라는 게 확정된 것이다. 레즈비언인 트레이서에 이어, 게이인 솔저: 76에 대한 토론이 두 번째 주요 데이터다. 마지막 세 번째 주인공은 시메트라다. 시메트라는 퀴어 캐릭터가 아님에도 게이 아이콘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시메트라의 이런 ‘게이 아이콘화’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구성됐기 때문에 특이점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플레이어들의 성적지향과 시메트라가 어떻게 관계되는지 해석을 시도한다. 연구자들은 수집된 자료를 수사적-수행적 담론 분석(rhetoric-performative discourse analysis)을 통해 살핀다. 이 분석법은 원래 포퓰리즘 및 정치 연구를 위해 개발됐지만, 이 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담론 사이의 관계와 역학, 구성을 살피기 위해 사용한다. 다음으로 연구자들은 포럼 내 토론을 분석하며, 이를 소비자 담론, 진정성 담론, 작가 담론, LGBTQ 재현 담론, 저항 담론, 총 다섯 가지 범주로 설정한다. 이 범주들은 주요 데이터인 트레이서, 솔저: 76, 시메트라와 함께 설명된다. 5. 〈오버워치〉 데이터 분석 1) 소비자 담론 소비자 담론은 퀴어 캐릭터가 게임에 드러나게 된 전말을 추측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퀴어 설정에 불만을 가진 유저들은 블리자드가 관련 플레이어들을 달래고 만족시키기 위해 그리 한 것이며, 게임사는 게임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의견에서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 다른 두 그룹, 게임 플레이에만 집중하는 유저들과 설정에 더 관심 두는 유저들 간 계층구조가 형성된다. 특히 전자는 이상적인 커뮤니티 구성원의 범주를 설정하는 축이 된다. 이들의 불만은 '팬덤'이라는 용어에 관해서도 찾을 수 있었다. 〈오버워치〉 커뮤니티의 '팬', '팬덤'은 특정 담론 맥락에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데, 팬덤이 캐릭터들의 뒷이야기만 상상할 뿐, 게임은 하지 않는다는 게 그 근거다. 누군가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퀴어 캐릭터 공개가 마케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퀴어 캐릭터가 미디어에서의 화제성이나 신규 플레이어 확보를 위한 도구로 이용됐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내러티브 콘텐츠가 다른 게임 콘텐츠들보다 열등한 것으로 판단하고 계층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퀴어 콘텐츠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데 일조한다. 2) 작가 담론 게임은 다인원 작업물이기 때문에 저작자 개념이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가 담론은 영화가 감독을 내세우듯 〈오버워치〉의 수석 작가 마이클 추를 주로 앞세운다. 마이클 추는 게임을 예술작품으로 접근하는 작가 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작가 담론은 퀴어 설정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 담론은 게임에 대한 권한이 디자이너, 개발자, 작가에게 있으므로 플레이어가 불평할 수 있는 건 없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검열과도 연결되어, 게임에 변경을 요구하는 의견들을 ‘비난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포럼의 한 유저는 '퀴어 설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팬 픽션을 쓰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는데, 연구자들은 ‘주류 콘텐츠에서 LGBTQ를 배제하던 일이 역전된 것’이라 분석한다. 하지만 작가 담론 측이 이러한 의견을 내놓는 건 LGBTQ를 지지해서가 아니다. 작가 담론 측은 퀴어 캐릭터에 대한 찬반 의견을 표명하기보다 도리어 토론 자체가 끝나길 바란다. 더 이상의 논의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의 태도는 작가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작가 담론은 〈오버워치〉 커뮤니티 소속 권한을 작가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이 권한은 〈오버워치〉의 흐름을 반대하는 토론에 한해, 작가 담론 지지자에게도 주어지게 된다. 3) 진정성 담론 대중문화와 그 수용을 다룰 때 되풀이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진정성이다. 〈오버워치〉 퀴어 캐릭터들 또한 '진정성'을 가리기 위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여기에는 〈오버워치〉 세계관과 이미 알려져 있던 캐릭터에 대한 사실이 근거로 활용된다. 솔저: 76의 경우, 그의 다른 설정은 공개되지 않고 오직 성소수자라는 사실만 밝혀진 것에 불만을 내비치는 유저가 상당했다. 이들은 대체로 이성애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의 솔저: 76가 동성애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후술할 트레이서의 데이터와 조금 다른 이 반응은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가 다르게 판단되는 지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솔저: 76의 퀴어 설정이 타 캐릭터 스토리에서 공개된 것에 의문을 제기한 유저도 있었다. 솔저: 76에 집중된 콘텐츠가 아니었기 때문에 진정성이 덜하다고 여겨진 것이다. 일부는 솔저: 76의 퀴어 설정을 부정하며 스트레이트워싱하기도 했다. 솔저의 사례만 언급됐지만 진정성에 대한 이 의심은 트레이서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이렇듯 진정성 담론은 캐릭터나 스토리 상의 타당성을 비판하고 〈오버워치〉 전체 맥락과 연관 지어 평가한다. 그 탓에 진정성 담론은 세계관이나 설정 등, 텍스트와 관계된 것들이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담론이 진정으로 권위를 부여하는 건 자신이 〈오버워치〉를 가장 잘 안다고 주장하는 커뮤니티 유저들이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품질 컨트롤러"처럼 위치 지어진다고 말한다. 4) LGBTQ 재현 담론 LGBTQ 재현은 이 연구에서 분석된 모든 논의 안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 단락의 첫 사례로, 트레이서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한 성소수자 유저의 글을 가져온다. 이 유저는 트레이서 같은 캐릭터들이 공감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역설한다. 연구자들은 해당 사례를 들어, 퀴어 캐릭터가 소수자를 재현하는 수단으로 간주된다고 설명한다. 언뜻 소비자 담론과 유사해 보이는 이 담론은 게임이 사회적 기능을 가진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따라서 퀴어 캐릭터의 존재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데, 몇몇 성소수자 유저는 '공격적이거나 혐오적인 태도를 조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LGBTQ 재현에 항의한 이들은 캐릭터들의 섹슈얼리티가 드러났다는 데 초점을 맞춰 비난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트레이서와 그 애인의 키스였다. 항의 측은 이성애를 중립적이며 비성애적인 것으로, 동성애는 '너무' 성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게다가 (동성)섹슈얼리티를 제하는 것이 해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거라 주장한다. 한 마디로 섹슈얼리티가 게임에 속하지 않길 바란 것이다. 이에 연구자들은 ‘캐릭터들의 섹슈얼리티와 그 의미를 부정하는 건 또 다른 형태의 스트레이트워싱’이라는 루버그(Ruberg, 2018)의 말을 인용한다. 이렇듯 게임과 섹슈얼리티의 연결을 불만스러워 하는 유저도 상당했지만, 이보다 많았던 건 '무관심' 측이었다. 한 유저는 '캐릭터는 캐릭터일 뿐, 트레이서의 애인이 왜 그렇게 관심받는지 모르겠다'고 밝힌다. 이것은 대중문화에 깊이 빠진 사람이 미성숙하고 불안정하다고 여기는 고정관념의 반영이다. 캐릭터에 관심 갖는 플레이어는 순수하게 게임만 즐기는 이들에 비해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다. LGBTQ 담론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의견은 '현실의 문제를 게임에서까지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섹슈얼리티 문제는 동성애를 정치적인 주제로 보는 시선이 많기 때문에 게임에서 논하기 예민한 부분이 있다. 그 탓에 트레이서의 성적지향이 공개됐을 때, 그를 반기는 사람들을 일컬어 리버럴, 사회 정의 전사(social justice warriors), 눈송이(snowflakes)라고 칭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민감하고 미성숙한 사람을 뜻하며,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공격하기 위해 쓰는 이 용어들은 게이머게이트(Gamergate) 당시 확산됐다. 트레이서의 설정 공개와 게이머게이트는 사실상 다른 맥락이지만, 해당 용어는 〈오버워치〉 커뮤니티에까지 계승되었다. 5) 저항 담론 솔저: 76과 트레이서는 작가에 의해 퀴어로 설정됐다. 반면 시메트라는 퀴어 설정이 없음에도 ‘게이 아이콘’으로 환영받는다. 시메트라가 ‘게이 아이콘’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첫째로 그녀의 조작성이 큰 이유를 차지했다. 시메트라는 전통적인 FPS 메커니즘을 따르지 않았고, 이것이 ‘게이머 자본’을 획득하지 못한 이들에게 좋은 대안이 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를 ‘퀴어 게임 메커니즘’이라 칭한 엔글(Engle, 2017)의 말을 가져오며, 시메트라가 대안적 존재이므로 퀴어에 친숙해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물론 시메트라가 플레이 메커니즘만으로 퀴어에 친숙해질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시메트라가 게이 아이콘으로 불리는 데에는 게임적 특성 말고도 다른 이유가 함께한다. 그에 앞서, 시메트라가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것을 설명해두어야겠다. 이를 설명한 이유는 시메트라가 약자라는 사실에 마음이 간다고 밝힌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왕’으로 불리는 시메트라의 당당한 모습에서 마돈나(Madonna)나 주디 갈런드(Judy Garland) 같은 게이 아이콘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저항 담론은 소비자 담론과 반대된다. 소비자 담론은 플레이어가 다양한 서비스를 기대하는 고객으로 위치 지어지지만, 저항 담론의 시메트라 플레이어는 커뮤니티 바깥쪽에 자리 잡는다. 하지만 개발자의 의도와는 다르다며 시메트라의 게이 아이콘화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트레이서와 솔저: 76의 퀴어 설정을 지지했던 작가 담론이 비공식 퀴어 독해를 반대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이 반대는 퀴어 관련 게시글과 공간을 규제하며 이루어진다. 이렇듯 시메트라 플레이는 소속을 위한 투쟁이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그럼에도 시메트라를 플레이하고 게이 아이콘이라 칭하는 건 게임 문화 내 이성애적 남성성에 저항하는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5. 〈오버워치〉 커뮤니티를 넘어 소속감은 각 그룹의 플레이어 및 게임 제작자, 사회와의 상호작용, 생산과 소비 사이의 역학에서 구성된다. 그를 추적한 이 연구는 퀴어 영웅의 도입을 둘러싼 논의와 권리를 정의한다. 연구자들은 〈오버워치〉 커뮤니티 내 개개인의 소속이 다양한 문화권과 투쟁에 연결된 점에서 착안해,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도 연결 짓는다. 캐릭터들은 〈오버워치〉를 이해하도록 돕는 동시에 논쟁의 연결점이 된다. 그러나 스트레이트워싱 사례 등, 〈오버워치〉 트랜스미디어 표현의 한계는 존재한다. 연구자들은 게임문화의 포용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트랜스미디어 내러티브에 섹슈얼리티, 젠더, 민족성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소수자 집단을 위해 커뮤니티 의견에 귀 기울일 것을 제언한다. 6. 나가며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게일 루빈(Gayle Rubin)은 그의 저작 〈일탈〉에서 미국의 성 정치 역사를 풀어낸다. 루빈(2011)에 따르면, 2차대전 이후인 1950년대 미국 사회는 ‘성범죄자’와 ‘동성애자’에 대한 불안이 집중된 시기라고 한다. ‘성범죄자’라는 용어는 강간범, 더 나아가 아동 성추행범을 의미하게 만들었고 이는 곧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다(Rubin, 2011). 서술한 사례 속 년도를 보면 알겠지만, 퀴어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100년의 세월도 채 흐르지 않았다. 이후 동성애자 탄압의 역사는 몇십 년간 이어졌다. 루빈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풀어낸 뒤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법적 형태, 사회적 관습, 이데올로기에 흔적을 남긴 싸움과 투쟁의 잔여물은 목전의 갈등이 사라지고 난 먼 훗날에도 섹슈얼리티를 체득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가 성 정치의 중요한 분기점이라는 사실을 이런 모든 신호가 말해주고 있다.”(Rubin, 2011, 293p) 사실 루빈의 글은 미국 성 정치 역사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게임과는 접점이 없어 보이는, 갑작스럽고 거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도 발제자가 이 글을 〈오버워치〉 논문 끝에 연결한 이유는 역사 서술 뒤에 이어지는 루빈의 말 때문이었다. 루빈은 섹슈얼리티가 먼 미래에까지 끼칠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하는데, 사실 이 말 자체는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의 퀴어 탄압 역사를 살피고 지금의 게임문화를 살피면 그 무게가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과연 이 역사가 게임 문화 내 섹슈얼리티 문제에 단 하나의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초기 디지털 스페이스는 인종, 젠더,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희망적 공간으로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이 연구가 〈오버워치〉를 통해 보여주었듯, 오늘날 게임 커뮤니티는 다양한 문화와 투쟁으로 소속·비소속의 여부가 얽히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루빈의 논의를 끌고 와서 한국 게임 문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진다. 연구자들이 〈오버워치〉 커뮤니티 내 소속을 분석하고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 지은 것처럼, 우리도 이를 한국적 맥락과 함께 보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과거 성소수자의 미디어 표현이 중요했던 이유는 미디어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었던 게 크다(Gross, 2001: Shaw, 2014 재인용). 그랬던 미디어는 이제 소수자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거기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수용과 경계가 뒤엉키기 때문에 재현의 문제가 더더욱 복잡해졌다. 그러면 여기서 앞으로의 AAA 게임에 대해서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영향력 있는 AAA 게임 스튜디오들이 LGBTQ 표현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고(Makuch, 2015: Ruberg, 재인용 2018) 그에 따라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게임은 여전히 남성성 중심으로 돌아간다. 캐릭터가 미디어 표현의 책임을 플레이어에게 전가하거나 다양성이 미적 다원주의로 환원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Shaw, 2014). 이런 상황 속에서 AAA 게임은 어떻게 다양성을 표현해나갈 것인가? 플레이어들의 소속·비소속은 어떤 식으로 변화할 것인가? 큰 힘에 따르는 큰 책임을 지게 된 AAA 게임의 추이를 지켜봐야 할듯하다. 참고문헌 Ruberg, B. (2018). Straightwashing Undertale: Video games and the limits of LGBTQ representation. Journal of Transformative Works and Cultures, 28. Rubin, G. (2011) Deviations: A Gayle Rubin Reader. 임옥희·조혜영·신혜수·허윤 (역) (2015). 〈일탈: 게일 루빈 선집〉. 서울: 현실문화. Shaw, A. (2015). Gaming at the Edge: Sexuality and Gender at the Margins of Gamer Culture. Minnesota University Pres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 온라인 게임에 복귀했습니다.

  • 『관을 가진 신의 손』,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감추는 기억

    『프린세스 메이커』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경험이 있다. 시간을 들여서 정성껏 딸을 키웠는데, 마지막에 도착한 엔딩이 기대와 전혀 다른 것이었던 경험이다. 게임자체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수치가 모자랐는지, 어느 계절의 일정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무심코 고른 선택지 하나가 모든 것을 갈랐는지에 대해 게임은 침묵한다. < Back 31 GG Vol. 26. 8. 10. Tags: 기억, 관을 가진 신의 손, 카모카테, 육성 시뮬레이션, 프린세스 메이커, 동인 게임, 호감도 시스템, Raising Simulation Games, Princess Maker, Doujin Games, Japanese Indie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imong Lee From childhood to now, always in the company of Nintendo games. A few months ago, bought a Steam Deck on installment and has been enjoying it to the fullest. Studied business administration at Kyung Hee University and cultural mediatio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and is currently a doctoral student in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Researches digital media content and culture, including games and webtoons.

  • 되돌릴 수 있는가? - 13기병방위권, 호라이즌, 우크라이나

    물론 게임은 현실과 다르다. 게임을 통해 얻은 이러한 통찰을 현실에 적용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회고적 평가를 전제하는 슬로건을 거부하는 것이 시작이다. 과거의 정상적 상태를 회복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원칙과 대안을 논하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 러시아가 지배한 영토가 어디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되는 이유는 애초에 없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Kim is known for his activities as a critical expert on current affairs in various press media. But he is also an active gamer who never let go of games. Some of his publications includes 『a cynical society』, 『Otaku Loved Lenin』, as well as a co-author of 『Now, Here, Far-Rightism』, 『right-wing discontent』, 『Twitter, that 140-character egalitarianism』. His latest publication is 『Democracy where you vote because you don't like that side』.

  • [공모전수상작]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마인크래프트(Minecraft)는 겉시늉의 세상이다. 엉성한 외피 이미지로 포장된 네모난 객체들이 생태계를 이룬다. 또한 현실과 비현실, 매끈함과 모서리, 플레이어와 데이브(주인공), 원형과 변형 등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공존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데이브의 몸으로 젖지 않는 비를 피해 귀가한다. 그리고 온기 없는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인다. 방 안이 따뜻한 빛으로 물들면, 솜 없는 침대에 누워 깨어 있는 채로 잠에 든다. < Back [공모전수상작]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20 GG Vol. 24. 10. 10. 마인크래프트(Minecraft)는 겉시늉의 세상이다. 엉성한 외피 이미지로 포장된 네모난 객체들이 생태계를 이룬다. 또한 현실과 비현실, 매끈함과 모서리, 플레이어와 데이브(주인공), 원형과 변형 등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공존한다.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데이브의 몸으로 젖지 않는 비를 피해 귀가한다. 그리고 온기 없는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인다. 방 안이 따뜻한 빛으로 물들면, 솜 없는 침대에 누워 깨어 있는 채로 잠에 든다. 전술한 과정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엄연히 다르게 작동한다. 현실과 다른 인지 체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상의 객체와 플레이어 사이에 생성되는 보이지 않는 관계망은 현존감(presence)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이는 어느새 스크린 밖으로 나와 현실 위에 포개진다. 마인크래프트의 겉시늉은,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린 장식용 선물 상자와 같다. 그저 작고 가볍게 포장된 이미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솜 없는 침대 현실 세계는 매끈한 표면의 사물로 가득하다. 그러나 마인크래프트 속 세상은 모두 블록 형태로 모서리를 갖고 있다. 입체의 면으로만 이루어진 객체들은 간신히 식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비)현실적으로 단순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부분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물을 인지할 때 그다지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 속 사물은 물리적인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모든 사물은 형상과 관념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물은 겉을 이루는 외형보다 관념으로서 존재하는 순간이 더 많은 듯하다. 그렇기에 마인크래프트의 단순한 묘사는 대상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인지함에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플레이어의 상상력이 부족한 부분을 알아서 채워 넣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인크래프트의 블록 세상에 들어서면, 우리의 인지는 저절로 전이된다. 누구도 네모난 고양이에 대해 이의제기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전이는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이다 [1] . 우리가 기존에 알던 것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부분이 맞닿은 상태로 변형되어 또 다른 형상을 갖게 되는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변형이 되어도 원형을 상기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인지의 지평이 확장되는 것이다. 마인크래프트 속 세상을 거닐면, 기억 저편에 담긴 현실 세계의 이미지가 무수한 형태로 분절되어 떠오른다. 그리고 확장된 인지 체계 위에 포개진다. 무엇이 원본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일은 무의미해 진다. 사실 인지의 전이는 마인크래프트에만 해당된다기 보다 비디오게임 전반에서 일어난다. 상하좌우로만 이동하는 납작한 이차원 게임을 떠올려 보자. 이차원의 세계는 우리가 경험해 본 적 없는 곳이다. 그러나 비디오게임 안에서는 이러한 제약이 문제 되지 않는다. 또한 이차원 게임에서는 마인크래프트보다 고도로 압축된 형상의 객체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두 개의 네모난 픽셀만 보고도 인간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렇듯 비디오게임 내부에서는 고도로 압축된 묘사가 추상적인 레벨에서 소화 과정을 거친다. 인지의 전이는 우리가 가진 고정된 관념과 사고, 그리고 이미지로부터 해방을 선사하며 확장된 감각의 세계를 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젖지 않는 비에 추위를 느끼고, 온기 없는 벽난로에서 몸을 녹이고, 솜 없는 침대에서 푹신함을 느낄 수 있다. * 마인크래프트의 침대 [2] 네모난 고양이의 골골송 [3] 비디오게임 속 객체들은 명백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현존감을 기반으로 게임 속 가상의 객체들과 지각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비디오게임에서의 현존감은 말 그대로 현실을 넘어 게임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상태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험은 가상 환경 내부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이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플레이어가 주관적으로 감각하는 심리적인 공간에 가깝다 [4] .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데이터로 이루어진 가상의 우주로, 현실과 동일한 물리적 실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존감은 비디오게임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현실감 외에도, 플레이어와 가상의 객체 사이에 생성되는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다. [5] 마인크래프트의 싱글 플레이 모드는 온 우주를 플레이어 혼자 쓴다. 플레이어를 제외한 다른 생명체는 모두 NPC(Non Player Character)다. 이러한 점이 플레이어에게 자유로움과 안락함을 주기도 하지만,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마인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다양한 생물, (비)공격적인 몹(mob), 마을 주민은 매우 단순한 행동으로 프로그래밍된 NPC이긴 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살아있다는 것을 감각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 마인크래프트의 고양이 [6] 플레이어는 여러 동물과 상호 작용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신뢰를 쌓으면 반려동물처럼 함께 지내는 것도 가능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마인크래프트의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 플레이어가 바다에서 생선을 낚아 고양이에게 지속적으로 가져다주면 점차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네모난 상자에 다리와 꼬리가 달린 투박한 고양이는 야옹 소리를 내며 사뿐하게 걷고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낸다. 긴 채집 끝에 집으로 돌아가 고양이를 마주하면, 보드라운 반려묘의 감촉이 떠오르며 골골송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렇듯 마인크래프트 속 가상의 생명체와 플레이어 사이에 오가는 상호작용은 단순하고 때로는 단방향적이기도 하지만, 현실에 가까운 관계망을 피워내기도 한다. 홀로 숲이나 동굴에 들어가 재료를 채집하고, 외딴곳에 집을 짓고 살아갈 때는 알지 못했던 플레이어의 생기를 감지할 수 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온종일 낚시만 해야 했던 고양이와 ‘나(플레이어)’ 사이의 결속은 사회적인 풍부함(Social Richness) [7] 으로 이어지는 현존감을 발생시키며 물리적 실체의 필요성을 허문다. 그들은 어떤 생물의 외피를 두르고 단순하게 움직이는 상자처럼 보일 수 있으나, 플레이어를 움직이게 하고 때로는 죽게 만드는 크고 작은 동기가 된다. 즉 가상 세계에서의 삶과 죽음은 이들이 관장한다. 내재적인 모서리 게임은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로 구성된 하나의 무리다. 즉 게임은 시스템적이다. 여기에서 시스템은 광범위한 의미를 담아낸다. 우선 게임의 시스템은 사물과 사물, 사물과 사람,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가지와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가지는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한 갈래로 뻗어 있다. 게임의 시스템은 구조적인 요소와 감각적인 요소를 포괄한다. 따라서 이를 텍스트로서 정의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이 상호작용적인 관계 안에서 복합체를 이룬다는 것이다 [8] . 이는 게임의 시스템에 대한 모호한 정의를 하나로 묶어 냄과 동시에 여러 가지 경우를 포함한다. 비디오게임의 시스템은 무수하게 얽힌 관계망을 기반으로 하나의 복합체를 이루며 내부에서 외부로 점차 뻗어 나간다 [9] . 이렇게 시스템은 또 다시 현실 위에 포개지고 또 다른 우주를 이루게 된다. 마인크래프트에 등장하는 크리퍼(Creeper)는 이름처럼 몰래 다가와 자폭하며 일대를 박살 내는 몹이다. 크리퍼는 일정 조도 이하로 내려가면 어디서든 생성된다. 특히 지하 동굴이나 깊은 숲, 비 오는 날에 자주 출몰한다. 크리퍼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폭발할 듯 빛을 내며 경고한다. 그리고 삽시간에 터져 버린다. 물론 크리퍼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아도 스스로 폭발하기도 한다. 즉 크리퍼의 행보는 예측할 수 없다. 소리 없이 다가와 일상의 한 부분을 통째로 날려버리고는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 [10] 그러나 크리퍼는 사실 현실 도처에 존재한다. 위기는 언제나 소리 없이, 예측 불가능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드러난 거친 모서리를 흉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모서리를 내재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모서리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둘 이상의 면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본 채로 맞닿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또한 무수한 존재자들의 각으로 이루어진 모서리의 세계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어느 한 부분이 맞닿은 채로 커다란 시스템을 이룬다. 이처럼 크리퍼가 부수고 간 자리는 내재적인 현실의 모서리를 보는 눈과, 이를 매만질 수 있는 손으로 확장된다. 마인크래프트의 네모난 블록, 그리고 이를 감싸고 있는 외피는 이미지 너머로 연결되는 또 다른 차원의 경로를 연다. 다시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린 장식용 선물 상자를 떠올려 보자. 이는 분명 선물 같은 외양을 하고 있지만 선물로 기능할 수 없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는 이 작고 가벼운 상자에 담을 수 없는 따뜻한 온기와 안락한 공간을 떠올리고 감각할 수 있다. 온 세상의 모서리와 외피를 매만지며, 지난 겨울 공원에서 우연히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늦더위를 달래 본다. * 지난 겨울의 공원 [1] 곤살로 프라스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김겸섭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p.18. [2] 이미지 출처: https://minecraft.fandom.com/wiki/Bed [3] 고양이가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를 노래하는 것에 비유해 일컫는 말이다. [4] 김영욱, “VR 영상 콘텐츠의 현황과 프레즌스(presence) 향상을 위한 과제”, 문화영토연구 Vol. 4 No.2, 2023, pp14-17. [5] 조수선, 이숙정 외 3명, “뉴미디어 뉴커뮤니케이션”, 이화출판, 2014, pp.107-109. [6] 이미지 출처: https://www.digitaltrends.com/gaming/how-to-tame-cat-minecraft/ [7] 조수선, 이숙정 외 3명, “뉴미디어 뉴커뮤니케이션”, 이화출판, 2014, pp.111-112. [8] 케이티 세일런, 에릭 짐머만, “게임디자인원론Ⅰ”, 권용만, 윤형섭 역, 지코사이언스, 2010, p.113. [9] 위의 책, pp.117-118. [10] 이미지 출처: https://modbay.org/mods/1756-creeper-spores.html 참고문헌 곤살로 프라스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김겸섭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김영욱, “VR 영상 콘텐츠의 현황과 프레즌스(presence) 향상을 위한 과제”, 문화영토연구 Vol. 4 No.2, 2023. 조수선, 이숙정 외 3명, “뉴미디어 뉴커뮤니케이션”, 이화출판, 2014. 케이티 세일런, 에릭 짐머만, “게임디자인원론Ⅰ”, 권용만, 윤형섭 역, 지코사이언스, 20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큐레이터) 박정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시각예술 분야에서 전시, 비평, 워크숍을 한다. (비)과학에 관심을 두고 뉴미디어 아트와 비디오게임을 탐구한다. 최근 참여한 프로젝트로는 연구 <기이한 게임과 으스스한 게임>(2024, 서울문화재단 RE:SEARCH), 전시 (2024, WWW SPACE), 워크숍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 비평>(2024, 아트코리아랩 아트랩클럽), 전시•워크숍 (2024, 하자센터 미디어아트 작업장) 등이 있다.

  • 캣스모폴리틱스(Catsmopolitics): 고양이와 기계가 자본세 지구에 착륙하는 방법

    인종차별, 여성혐오, 소수자 차별, 장기화된 실업, 투기와 불평등, 전쟁과 극우정치가 만연한 오늘날 유일하게 아무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좌파도 우파도, 남성도 여성도, 베이비부머도 청년도, 무슬림도 카톨릭도 고양이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기꺼이 골목길에 사료와 물그릇을 갖다놓으며, 고양이와의 사랑스런 일상을 촬영해 공유한다.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다. < Back 캣스모폴리틱스(Catsmopolitics): 고양이와 기계가 자본세 지구에 착륙하는 방법 08 GG Vol. 22. 10. 10.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인종차별, 여성혐오, 소수자 차별, 장기화된 실업, 투기와 불평등, 전쟁과 극우정치가 만연한 오늘날 유일하게 아무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좌파도 우파도, 남성도 여성도, 베이비부머도 청년도, 무슬림도 카톨릭도 고양이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기꺼이 골목길에 사료와 물그릇을 갖다놓으며, 고양이와의 사랑스런 일상을 촬영해 공유한다.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다. 자연을 정복하고, 기계문명과 산업도시를 건설해 지구의 지배자로 거듭난 인간이지만 고양이 앞에서는 애정결핍 노예가 돼버린다. 오늘날 고양이는 신성불가침이라 할 수 있으며, 어쩌면 지구 역사상 유일하게 인간을 굴복시킨 생명체일지도 모른다. * 필자와 7년간 삶을 함께하고 떠난 고양이, 제리입니다. 이처럼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존재인 만큼, 고양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정도 남다르다. 고양이는 왜 고롱거리는 걸까? 고양이는 왜 발치를 맴돌며 머리를 비비는 것일까? 쥐나 벌레를 선물로 바치는 고양이의 심리는 무엇일까? 동물행동학자가 아닌 일반 사람(집사)들이 고양이의 언어를 이토록 이해하려고 애쓴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우화 속에서 의인화되지만, 고양이는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쉽사리 의인화되지 않는 존재다. 사람들은 고양이 행동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하며, 고양이의 시각에서 사고하려고 든다. 고양이를 의인화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을 의묘화한다. 고양이의 시점에서 스스로를 굽신거리는 집사로 희화화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을 만났을 때 있는 힘껏 몸짓 발짓을 동원하는 노력과 비슷한 맥락이다.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나로부터 벗어나서 타자처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먼 곳에서 왔지만 가까워지고 싶은 존재, 친족이 되고 싶은 반려종으로서 고양이의 사회적 의미는 요즘 아주 의미심장하다. 〈스트레이〉는 이처럼 ‘고양이와 함께 되기’를 꿈꾸는 기묘한 심리를 투영한 게임이다. 고양이를 대상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고양이가 되어보는 것이다. 고양이를 묘사한 문학·영화는 항상 있어왔고, 인기도 많았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인간 사회를 묘사하며,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은 진창에서 벗어나는 노숙자 ‘밥’과 가족이 된 길고양이의 실화를 다룬다. 이슬람 성전 쿠란에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예배 중 자신의 품에 기어들어와 잠든 고양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자신의 옷소매를 자른 일화가 담겨 있다. 그러나 실제 고양이가 되어 발톱을 긁고, 점프하는 게이밍 경험은 그 이상이다. 〈스트레이〉는 고양이를 인간과 동등한 행위자의 관점에 위치시키면서, 객체라고 생각되는 비인간(고양이, 기계, 도시)들이 자아내는 사회적 관계를 SF의 형식 속에서 재배치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고양이에게는 이름이 없다. 어디에서 왔는지, 가족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름이나 가족은 인간중심주의적 개념이며 비인간에게는 불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의 관점에서 인간 세계관을 비평하고자 했던 나쓰메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생동하는 비인간의 세계 게임은 폐허가 된 도시를 기웃거리다 지하로 떨어진 고양이의 탈출 여정을 그린다. 플레이어는 철저히 고양이의 시점에서 공간을 탐색하고 길을 만들어 나가야한다. 인간의 감각, 인간적인 사고방식은 통용되지 않는다. 문을 지나가기 위해서 문고리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문을 긁어서 누군가가 열게 만들어야 하며, 거리의 평면적 공간이 아닌 건물의 수직적 공간을 이동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어디든 네 발로 착지할 수 있는 능력을 선물 받은 고양이에게 인간의 2차원적 운동은 고루할 뿐이다. 이 이름 없는 고양이로 가장 빈번하게 발 디디는 곳은 환풍구, 파이프라인, 테라스 난간이다. 스파이더맨이 아닌 이상 인간은 이런 식으로 공간을 인식하지도, 이동하지도 않는다. 〈스트레이〉에서는 인간적인 감각을 최대한 제쳐놓고 사고해야 한다. 게임은 매우 정교한 레벨링을 통해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수직 도시 스테이지를 설계했으며, 각 페이즈들은 철저히 고양이의 동선에 최적화되어 있다. * 〈스트레이〉에서 인간 지각 요소인 미니맵, 위치표시기, 체력바, 마커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공간을 인식해야 하며, 사물과의 상호작용과 좌표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다소 불편하지만 이러한 비인간 감각에의 연동은 고양이만 갈 수 있는 경로와 퍼즐풀이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이 공간 이동 경험은 낯설고 신비롭다. 기존의 게임 문법과 다르게, 우리는 고양이의 눈높이에서 사물들을 바라봐야 한다. 시선을 넓게 던지고, 어딘가를 항상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미니맵이나 지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데카르트적 좌표계가 공간 인식의 준거가 되지 않으므로, 플레이어는 도시 곳곳의 후미진 공간까지 아주 면밀히 검토하고, 반복적으로 탐색하면서 고양이의 감각으로 경로들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게임들에서, 소실점은 언제나 인간의 눈높이(혹은 총의 조준선)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낯선 이물감이 든다. 길을 헤매고, 화면을 올려다보느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탓에 울렁거림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공간 디자인은 단순히 플레이어를 곤경에 빠트리기 위함이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로서의 경험을 재조직화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인간이라면 떠올리기 어려운 비밀 장소들을 발견하거나 문틈, 창살 사이를 비집고 다닐 수 있으며 수백 미터 아래를 가뿐히 뛰어내려 옆 건물로 이동할 수도 있다. 고양이의 입체적이고 아크로바틱한 운동 속에서 우리가 재발견하는 것은 탈인간적인 물질 감각이다. 무심히 지나친 타이어, 녹슨 드럼통, 콘크리트 쓰레기들은 역설적이게도 고양이가 유유히 지나다니는 길을 열어준다. 이를 통해 〈스트레이〉는 산업문명의 기초가 되는 기계와 도시를 반생태적인 독성 공간이면서 동시에 보잘 것 없는 쓰레기더미로 묘사하는 중의 문법을 도입한다. 미디어학자인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의 말을 빌린다면, 상징과 해석을 강조하는 문학과 다르게 탐색과 항해를 강조하는 게이밍의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이 고양이의 행위성과 입체적인 도시 이동 경험을 중개하고 있는 것이다. 〈스트레이〉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고양이와 함께 되기’ 경험을 극적으로 증폭시킨다. 수직적이고 기하학적인 공간으로 직조되어 있지만, 고양이가 자유롭게 도시 공간을 누비고 다니듯 플레이어는 손쉽게 고양이의 신체 행동과 동기화될 수 있다.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난해한 기믹이 동원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몇 가지 버튼만 적절한 타이밍에 누를 줄 안다면, 그리고 고양이의 관점에서 사고할 줄 안다면 누구든 이 생동하는 비인간 세계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스트레이〉는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즐겼던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예컨대 인디아나 존스 게임 시리즈같은)의 담담한 재해석으로 여겨진다. 그렇다. 〈스트레이〉의 세계에는 오로지 비인간 행위자들만 존재한다. 인간은 기후 재앙으로 멸종한 지 오래고, 인간의 하인 노릇을 하던 로봇종인 ‘컴패니언’과 주인공인 고양이만이 살아남았다. 인간의 흔적은 폐허가 된 지하도시에 즐비한 기계장치들에 검붉은 녹으로만 남아 있다. 인공지능에서 개성을 획득한 ‘컴패니언’ 들은 인간의 사고와 관습을 흉내내기는 하지만 인간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말 그대로 새로운 생명체다. 읽을 수 없는 기계 언어로 쓰여진 간판들, 쓰러지고 부서진 건물들, 우스꽝스러운 복장에 외골수 행동을 하는 컴패니언들 속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명쾌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무엇인가?’ 이다. 함께-되기의 캣스모폴리틱스(catsmopolitics)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실존적 질문은 인간의 실존을 묻는 까뮈의 〈이방인〉이나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처럼 난해하지 않다. 〈스트레이〉의 로봇종과 고양이, 그리고 고양이보그(catborg)인공지능 드론은 서로 돌보고 협생하는 관계다. 이 설정이야말로 게이밍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지적이고 영리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소형 드론 B-12는 플레이어(즉 고양이)에게 계속 자신을 깨우라는 신호를 보내며, 나중에는 플레이어를 돕는 보철물로 합류한다. 고양이 전용 웨어러블에 탑재된 B-12는 생동하는 비인간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 고안된 기계신 같은 존재다. 어두운 공간을 비추고, 고양이가 수집한 아이템을 디지털화해서 저장하며, 컴패니언-고양이 간 소통이 가능하도록 기계언어 번역을 제공한다. 플레이어는 B-12로부터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퍼즐풀이 단서를 제공받지만, B-12가 위기에 처했을 때(과부하로 전원이 꺼지거나 기능이 정지되었을 때)는 거꾸로 구해내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 고양이, 컴패니언(로봇종), 인공지능 드론은 협생 관계이다. 드론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고양이와 합체, 고양이보그(catborg)가 되어 플레이어의 진행을 돕는다. 게임 속 오브젝트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라이트를 비출 뿐 아니라 컴패니언의 기계언어와 고양이의 야옹 소리를 번역해 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인간이 떠난 지하도시의 거주자 컴패니언은 고양이에게 다양한 도구를 제공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며 고양이가 지면으로 나가도록 돕는다. 한편 고양이(플레이어)는 컴패니언의 생존을 위협하는 박테리아 균체 저크(zurk)를 물리치도록 도움을 주게 된다. 비인간 행위자들 간의 ‘함께-되기(becoming with)’의 경험을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는 인간이 야기한 자본주의와 기술의 문제들을 탈인간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상상력을 펼친다. 고양이와 드론, 모든 유기체를 갉아먹는 균체인 저크(zurk)로부터 지하도시에 격리된 로봇종인 컴패니언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 협력한다. 이 비인간-행위자들의 끈끈한 네트워크는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 바깥에서도 객체들만의 정치가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스트레이〉에서 이들의 실존을 위협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와 발명품들이다. 고양이와 드론, 그리고 로봇종의 여정을 가로막는 위협은 멸망한 인간이 고안해낸 것들이다. 기후재앙을 맞이한 인류는 탄소배출을 중단하는 대신 탄소를 먹어치우는 박테리아를 개발한다. 요즘의 기후위기 국면에 대응하는 각국 정부들을 보면 정말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다. 물론 이 선택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박테리아는 처음에는 플라스틱과 탄소를 먹어치우지만, 유기체를 다 먹어치운 다음에는 금속까지 먹어치우는 방향으로 진화해버린다. 저크(zurk) 균체가 된 박테리아는, 동물과 인간 뿐 아니라 기계생명체인 컴패니언들까지 집어삼키고, 그 결과 식량난으로 멸종한 인간에 이어 컴패니언들도 지하 방공호에 긴 세월 격리된다. 이들을 격리하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규율하는 존재는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경찰 로봇, 센티넬(sentinel) 들이다. 센티넬은 격리를 해제하자고 주장하는 인간들을 감시하고 훈육하는 용도로 개발된 로봇들이지만, 인간이 사라진 후에는 밖으로 나가려는 컴패니언들을 억압하는 권력-기계가 된다. 포스트휴먼니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가 비평하는 것처럼, 인간 중심주의가 자아낸 트러블(기후위기, 계급갈등, 프랑켄슈타인 과학)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비인간의 존재를 가로지르는 ‘함께-되기(becoming with)’가 전제되어야 한다. 〈스트레이〉는 그 방법들을 플레이어들의 퍼즐 풀이 속에 아주 적절히 풀어놓는다. 인류가 처한 트러블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옵션은 ‘어떻게 인간을 구할 것인가’ 라는 고전적인 휴머니즘이 아니라 포스트휴머니즘, 즉 어떻게 ‘비인간과 함께할 것인가’의 주제의식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이 게임에서 고양이의 시각에서 사고해야만 했듯이, 사물의 관점에서 상호작용을 재구성해야 한다. 고양이, 로봇, 인공지능 뿐 아니라 균체, 건물, 뗏목, 전기, 라디오, 악기, 금고에 이르기까지 유기체와 무기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함께-되기’가 요청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순히 객체(비인간 행위자)가 되어 상호작용하는 경험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브뤼노 라투르가 지적하듯이, 중요한 것은 끈끈하게 연결된 이 비인간 행위성들 속에서 가능한 정치, 즉 인간과 사물이 동등하게 객체이자 행위자임을 상정하는 가운데 그 네트워크가 창발할 수 있는 잠재적 코스모폴리틱스(cosmopolitics)를 발견하는 것이다. 내가 이 게임의 매커닉을 두고 캣스모폴리틱스(catsmopolitics)라고 부르는 맥락은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 이념으로서의 코스모폴리틱스는 아주 난해하고 사변적이다. 그런데 〈스트레이〉는 비인간인 동시에 인간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양이의 행위성을 투사해, 함께-되기의 경험들을 퍼즐풀이 문법으로 수사하면서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선언한다. ‘캣스모폴리틱스’는 시네마나 문학에서는 달성되기 어렵겠지만, 〈스트레이〉 같은 게임에서는 고풍스럽고 위트넘치는 방식으로 플레이어들을 설득하게 된다. 그루브, 하모니, 에코, 고양이...펑크!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이 게임이 사이버펑크의 외형을 하고는 있으되 사이버펑크의 문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 어원 자체가 다르다. 사이버펑크(cyberpunk)의 펑크는 거칠고, 단순하며 반항적인 하위문화인 펑크(punk, 메탈과 록)에서 온 것이지만 펑크(funk)는 깊이 있고 은은한 냄새, 그루브, 전자음과 리듬과 결부된 재즈적 무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휘황찬란한 네온싸인의 거리와 녹슨 기계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가운데 고양이가 뛰노는 풍경은 아주 흥미롭지만, 〈스트레이〉는 권력의 감시와 대안적인 자유, 증강인간과 넷러너 등 사이버펑크의 전형적인 주제의식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맹신하는 트랜스휴머니즘과 기후재앙 시나리오를 비판적으로 소묘한다. * 사이버펑크(cyberpunk)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본질은 그루브와 조화가 강조되는 에코펑크(echofunk)이다. 부드러운 플로우와 애시드 재즈, 기계와 고양이 간의 따뜻한 상호작용 속에서 생태적인 감각이 되살아난다. 버스킹을 하고, 식물을 키우고, 테크노 음악을 발굴하는 로봇종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황폐한 지구를 떠날 궁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살고 있는 지구에 착륙하는 방법, 캣스모폴리틱스를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 붓터치는 punk가 추구하는 강함(중독, 환각, 메탈, 가죽)이 아니라 funk의 부드러운 플로우 속에서 구현된다. 플레이어는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는 공간, 혹은 이벤트가 벌어지는 페이즈에 들어설 때마다 펑키한 애시드 재즈를 접하게 되는데, 이는 급박한 긴장의 폭발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꾀하는 기존 대중문화의 문법과는 정 반대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감미로운 펑키 무드는 오히려 긴장을 이완시키고 공간의 사물들을 여유있게 살펴보도록 만드는데, 이 때문에 플레이어는 오히려 느긋하게 고양이와 공간의 하모니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음악 뿐 아니라 펑크가 집약되는 공간은 아주 힙하고 히피스러운 소품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플로우에 몸을 맡긴 채, 고양이를 움직여 이 사랑스러운 프랑스 애니메이션풍 미장센을 하나하나 음미하기 시작한다. 소파에 누워 잠을 잘 수도, 카펫 위에 꾹꾹이를 할 수도 있으며 TV와 라디오를 켜거나 끌 수도 있고, 냥점프와 냥펀치로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 모든 행동은 느긋함을 유도하는 게임 매커닉과 펑키한 요소들(음악, 미장센)을 통해 조화되며, 느긋하게 진정된 상태가 아니면 좀처럼 되돌아보기 어려운 주제, 생태과 기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의 친애하는 고양이가 가로되, 기술의 진보는 문명의 진보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스트레이〉는 고양이펑크인 동시에 에코펑크이며, 펑크가 구사하는 모든 느긋함의 미학을 플레이에 조화시키는 게임이다. 무엇보다, 〈스트레이〉의 캣스모폴리틱스 펑크는 인간의 자본주의 기술문명 자체가 프랑켄슈타인이 되어가는 현실, 즉 자본이 지구 지층을 뒤헤집는 자본세(capitalocene) 시대에 대한 가장 비판적이고 사변적인 우화다. 집도, 이름도 없는 고양이가 되어 귀여운 잔꾀를 펼치는 체험을 통해 우리는 지구에 안전하게 착륙하는 방법을 불현듯 깨닫게 될 것이다.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조스 같은 억만장자들은 화성으로 인류를 이주시키자, 태양계에 우주 콜로니를 만들자는 식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있는 지구를 어떻게 떠난단 말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지구를 떠나는 방법이 아니라 지구에 착륙하는 방법이고, 고양이-기계-로봇이 서로 환대하는 모습에서 스스로와 타인을 돌보는 방법일 테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고양이는 이렇게 말한다. “태연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깨달은 듯해도 사람의 두 발은 여전히 지면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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