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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급과 B급의 차이, 끊임없이 저항하고 결국은 차지하는

    우리는 가끔 B급, 다시 말해 A급이 아닌 ‘것’을 하나의 영역으로 묶어 생각한다. 딱 집어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B급은 ‘A급이 아닌 무언가’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B급을 인지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하는 것은 A급에 대한 정의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A는 늘 우리에게 ‘보편’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B를 보고나서야 A가 A임을, 다시 말해 그것이 우리에게 보편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 Back A급과 B급의 차이, 끊임없이 저항하고 결국은 차지하는 05 GG Vol. 22. 4. 10. 1. Intro 우리는 어떤 대상을 구매하거나 이용할 때 등급을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획득하고자 하는 대상에 등급을 매기는 순간, 우리는 상대적으로 어떤 기준을 통해 이 대상이 우월하거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거나, 어떤 영역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게 된다. 우리는 가끔 B급, 다시 말해 A급이 아닌 ‘것’을 하나의 영역으로 묶어 생각한다. 딱 집어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B급은 ‘A급이 아닌 무언가’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B급을 인지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하는 것은 A급에 대한 정의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A는 늘 우리에게 ‘보편’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B를 보고나서야 A가 A임을, 다시 말해 그것이 우리에게 보편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2. 아주 사적인 게임의 역사 난 어렸을 때 남동생이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80년대생인 내가 PC게임을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집에서 하나뿐인 컴퓨터를 차지한 건 남동생이었다. 그 전까지 거실에 한 대 뿐인 텔레비전에 연결해 플레이할 수 있었던 일본산 콘솔 게임기기도 늘 남동생의 차지였다. 당시 컴퓨터 두 대를 들이기엔 기기 값이 너무 비쌌다. 하나를 사면 누군가가 차지하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컴퓨터’의 영역에서 A급은 아마도 남동생이었던 것 같다. 자주 갔던 오락실에서도 플레이는 남동생이, 나는 그것을 뒤에서 지켜보는 역할을 주로 했다. 난 어쩌면 게이머의 영역에서 B급을 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국내에서 게임 잡지가 발간되었고 남동생은 열심히 그 잡지를 구독했다. 그 덕에 나도 게임 잡지를 함께 읽게 됐다. 종종 게임 잡지에서는 새로 출시된 PC 게임을 소개하면서 베타 버전을 부록으로 넣어주기도 했다(지금 생각해보면 불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 내 눈을 사로 잡은건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게임이었다. 당시 RPG 게임이나 어드벤처, FPS가 주류였던 PC 게임 내에서 캐릭터를 기르는 장르가(육성 시뮬레이션) 있다는 걸 그 당시 처음 알았다.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프린세스 메이커〉는 내가 처음으로 서점에 가서 게임CD를 구입하게 된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일본 가이낙스사에서 1991년에 제작했던 이 게임은 악마의 침입으로부터 왕국을 구한 용사가 마리아라는 고아 소녀를 키우고 그의 장래를 설계해주는 역할을 맡으면서 시작된다. 제목처럼 용사는 마리아의 아버지로 그를 프린세스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육성시뮬레이션 장르를 크게 대중화 시켰던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게임은 당시 게임은 남성만의 놀이 문화라는 인식을 깨고 많은 여성층을 확보하여 게임 플레이에 있어 젠더 편향성을 무너뜨리는 계기로 작동했다. 한동안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 게임에 푹 빠져 있던 나는 십대 후반을 기점으로 게임하기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PC방이 생기고, 온라인 게임이 흥행하기 시작하고, 게임채널이 생겨 이스포츠가 활성화되던 그때. 당시 수험생이었던 내가 게임을 할 시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온라인 게임에서 기본이 되는 ‘팀 플레이’가 나는 불편했다. 내가 게임 플레이를 못해서 파티원에게 받을 비난도 싫었고, 상대적으로 끊임없이 익명의 누군가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플레이를 하는 것이 적성에 맞질 않았다. 그러나 이십대가 됐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점차 게임 플랫폼이 컴퓨터에서 개별 모바일로 옮겨가게 되면서 나는 게임을 다시 플레이하게 됐다. 부담없이 싱글 플레이가 가능한 모바일 게임을 지속하다보니, 예전에 했던 PC 게임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는 우연히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어이쿠 왕자님〉이라는 게임 소개글을 읽게 됐다. 〈어이쿠 왕자님〉은 한 인디게임 제작팀이 자체적으로 개발해낸 PC게임이었는데,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모토로 시작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2007년에 제작하고 발매되었던 이 게임은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의 포맷을 패러디한 BL(Boys Love 1) )장르 게임이다. BL장르는 근본적으로 비주류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첫째, (주로) 여성이 생산하고 (대다수의) 여성이 소비하는, 생태계 특성상 젠더 편향적이다. 둘째, BL장르는 여성들 사이에서도 ‘독특한’ 취향의 것으로 특정된다. 대부분 BL장르 소비자들이 여성으로 상정되지만, 그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동인’이나 ‘비공개 커뮤니티’방식으로 자신의 취향을 숨긴 채 활동해 온 역사가 이를 반증한다. 실제로 BL 콘텐츠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취향에 대해 확고하게 이해하고 있으나, 성인이 되어서도 이를 드러내면서 소비하지 않는 경향들을 보인다. BL장르는 원본이라 할지라도 2차 생산의 성격을 갖는다. 이는 BL장르가 주류 콘텐츠가 아니었던(혹은 될 수 없었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인데, 주류의 다음이나 맞은편, 다시 말해 이성애 젠더 질서에 맞서는 방식으로 생산되었기 때문에 의미화 과정에 있어 이용자들이 직접 생산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정체성을 본질적으로 갖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주류적인 특성이 현대로 오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는 콘텐츠 소비 방식이 공적인 것에서 사적인 것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체제에서, 롱테일 전략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성되기 시작한 흐름으로 분석할 수 있다. 심지어 그 당시 나는 내가 키우는 딸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이상하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이쿠 왕자님〉에는 고정된 젠더 정체성인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선택적 주체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거하게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다시 말해 〈프린세스 메이커〉는 보편의 게이머를 ‘남성’으로 상정하고 있었던 것이고, 나는 여전히 게임의 역사에서 그 보편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닫게 됐던 것이다. 3. B급의 힘 B급은 A급의 반대항에 서 있기 때문에, 주류문화에 매달리지 않는다. 동시에 B급은 반문화적인 성격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B급이 사회가 정한 A급인 주류에 반하는 것이라면, B급은 주류로 표현되는 지배적인 권력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효과에 대해 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윤 극대화를 목적으로 한 거대 자본의 영향 아래에서는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B급은 꾸준히 주류게임의 맞은편에 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의미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푸코가 지적했듯, 권력이 존재하는 곳에 저항이 있다. A급과 B급은 양분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A가 존재하기 때문에 B가 존재하는, 권력의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B급은 A급을 긍정하고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B급 정체성을 긍정하면서 존재한다. B급으로 불리면서도 끊임없이 생산을 지속하는 요인이 바로 여기 있다. B급이 가진 힘은 주류문화의 위계화나 독점화, 권력화에서 탈주하려는 욕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프린세스 메이커〉를 플레이하는 동안 강요되거나 권력으로 작동했던 무언가를 벗어나 〈어이쿠 왕자님〉을 플레이하게 되면서 느꼈던 해방감, 혹은 카타르시스는 결국 B급이라는 패러디의 형태로 드러났던 정체성을 긍정하면서 나타났던 현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A와 B의 존재는 위계가 아니라 서로 공존하며 권력의 줄다리기를 하는 셈이다. B급에서 자주 나타나는 패러디라는 양상을 살펴보면 더욱 그러하다. 패러디는 원본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다. 정상과 비정상, 규범과 일탈, 그리고 주류와 타자를 구분하는 경계가 패러디를 통해 수면위로 떠오른다. 특히 사회가 이상이라고 상정한 것을 모방하고 비트는 것은 자연스러움이 결과적으로 권력을 통해 만들어진 것을 사유하게 한다. 스토리텔링 기법 중 하나인 스핀오프는 기존의 중심이 되었던 원작의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관점에서 이야기를 창작한다. B급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저항하고, 그 가운데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낸다. 낯설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B급의 시각은 A급을 다시 보게하고 권력이 어떤식으로 작동하는지 주체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긴다. 게임의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다른 콘텐츠에 비해 경험의 몰입도가 높다. 그러니 우리는 B급에서 재미를 찾고 새로운 경험을 하길 욕망하는 것이다. A급과 다른 무엇을 또 다시 깨닫게 해주길 바라면서. 1) 남성동성애-서사를 일컫는 용어. 실제 동성애자의 문화와는 거리가 있으며, 남성동성애에 대한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장르라 볼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게임, 폭력, 범죄 연구의 타임라인

    2023년 8월 11일, 검찰은 신림동에서 거리에서 서있던 20대 남자를 흉기로 공격하여 사망하게 하고 3명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에 대해 “현실과 괴리된 게임중독 상태에서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젊은 남성을 공격하였다”라고 설명하며, 사건의 원인을 게임중독으로 지목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논란에 대해서 각계에서 의견을 밝혔지만, 게임과 범죄 간의 연구들을 기반으로 한 의견들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폭력성, 연구리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hangSeok Yoo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and Entertainment at Kyung Hee University. Drawing on eleven years of experience in the entertainment industry—at companies including Nexon, NCSOFT, and CJ Entertainment—conducts research on consumer behavior and industrial policy across entertainment at large, from the game industry to tourism. Works primarily with the tools of economics, and lately has taken a strong interest in the business models of games and the behavior of game users. Having succumbed to the school's relentless pressure, has to date published research in 29 domestic and 17 international academic journals, with continuing publications in internationally renowned journals such as the Journal of Media Economics,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and Information Processing & Management.

  • 셧다운제부터 게임 사전심의까지 - 21대 국회에서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

    그럼에도 유독 지난 국회에서는 ‘친게임’이라 부를 만한 국회의원이 다수 활동했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기록했다. 게임이라는 의제에 대한 정치권의 높은 관심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어져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게임 정책을 힘주어 발표하거나, 게임 전문 유튜버, 매체와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다. < Back 17 GG Vol. 24.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규모의 문화상품 - 블록버스터 영화와 트리플A 게임

    약간의 오해를 감수하고 말해보자면, 어느 순간부터 게임 시장은 트리플A 게임과 인디게임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는 트리플A 게임과 종종 비교되곤 하는 영화의 블록버스터 개념과도 차이를 보인다. 소위 상업영화라 불리는 범주 속에 블록버스터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업영화가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중저예산의 로맨스, 코미디, 호러 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이 영화들은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등 비상업적 영역에 속해 있지 않다. 다만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어 제작, 유통, 홍보되는 영화가 아닌 작은 규모의 상업영화일 뿐이다. 게임은 그 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영화는 소수의 블록버스터를 ‘텐트폴 영화’라 부르며 그에 속하지 않는 다수의 저예산 상업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으로 구성된 시장을 지닌다. 게임도 몇몇 트리플A 게임이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스트레이〉(2022), 〈잇 테이크 투〉(2021)와 같은 인디게임들이 흥행을 기록하고 〈뱀파이어 서바이버즈〉(2022)처럼 유행을 선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게임은 트리플A 게임이든 인디게임이든 상업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비상업적 게임”이라는 어색한 어감의 단어조합은 극소수의 예술적 게임, 혹은 전시나 공공성을 위해 만들어진 몇몇 게임만이 속해 있을 뿐이다.   < Back 규모의 문화상품 - 블록버스터 영화와 트리플A 게임 10 GG Vol. 23. 2. 10. 약간의 오해를 감수하고 말해보자면, 어느 순간부터 게임 시장은 트리플A 게임과 인디게임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는 트리플A 게임과 종종 비교되곤 하는 영화의 블록버스터 개념과도 차이를 보인다. 소위 상업영화라 불리는 범주 속에 블록버스터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업영화가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중저예산의 로맨스, 코미디, 호러 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이 영화들은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등 비상업적 영역에 속해 있지 않다. 다만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어 제작, 유통, 홍보되는 영화가 아닌 작은 규모의 상업영화일 뿐이다. 게임은 그 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영화는 소수의 블록버스터를 ‘텐트폴 영화’라 부르며 그에 속하지 않는 다수의 저예산 상업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으로 구성된 시장을 지닌다. 게임도 몇몇 트리플A 게임이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스트레이〉(2022), 〈잇 테이크 투〉(2021)와 같은 인디게임들이 흥행을 기록하고 〈뱀파이어 서바이버즈〉(2022)처럼 유행을 선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게임은 트리플A 게임이든 인디게임이든 상업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비상업적 게임”이라는 어색한 어감의 단어조합은 극소수의 예술적 게임, 혹은 전시나 공공성을 위해 만들어진 몇몇 게임만이 속해 있을 뿐이다. 이는 게임과 영화라는 서로 다른 매체의 차이일까? 혹은 게임시장과 영화시장이 구성된 방식의 차이인 것일까? 게임이 ‘블록버스터 게임’이라는 말 대신 ‘트리플A 게임’이란 용어를 새로이 만들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운동이자 사회운동으로 전유되었던 영화와 달리 게임은 태생부터 상업적인 것이었기 때문일까?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질문들에 관한 나름의 답안지를, 블록버스터와 트리플A 게임이라는 개념을 비교해가며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트리플A 게임 이상으로 수익을 내는 모바일 게임이라든가 트리플A 게임이라 불러도 무방한 스케일을 지닌 온라인 게임처럼, 트리플A 게임과 인디게임 사이에 속한 무수한 게임들이 있다. 하지만 논의의 편의를 위해 이 글에서는 싱글 플레이 중심의 게임들을 중심으로 말하고자 한다. ∗ 〈죠스〉 포스터(왼쪽, 출처: IMDB)와 MCU 포스터(오른쪽, 출처: IMDB) 1. 블록버스터 영화와 트리플A 게임의 태동 영화에서 블록버스터(Blockbuster)라는 단어는 2차대전 시기 제작된 전쟁 영화 〈봄바디어〉(1943)의 홍보문구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본래 “한 블록을 날려버릴 수 있는 폭탄”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던 단어이기에, 종전과 함께 잠시 자취를 감춘다. 1950년대 TV 보급에 맞서 〈쿼바디스〉(1951), 〈십계〉(1956), 〈벤허〉(1959) 등 스펙터클을 강조한 대규모 서사극이 등장하며 다시 등장한 이 용어는, 1975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가 대성공을 거두며 완전히 자리 잡게 된다. 1970년대 당시의 블록버스터는 대자본이 투입된 영화라기보단 다수의 상영관에서 상영되고 월드와이드 4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거둔 영화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죠스〉와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1977)의 성공 이후, 할리우드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1981, 1984, 1989), 〈E.T.〉(1982), 〈백 투 더 퓨처〉 3부작(1985, 1989, 1990), 〈타이타닉〉(1997) 등 다수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생산하며 1980~90년대에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는 완전히 자리 잡게 된다. 동시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었음에도 실패한 영화들 또한 블록버스터를 홍보문구로 사용하며, 대규모 성공을 거둔 영화에서 점차 대자본이 투입된 영화로 개념이 이동하게 된다. 〈트론: 새로운 시작〉(2010),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2012) 등 흥행에 실패한 블록버스터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대체로 영화를 구현하는 데 많은 자본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SF, 판타지, 전쟁, 슈퍼히어로 장르 등을 생산해낸다. 폭발, 대규모 전투 등이 포함된 액션 장면이 삽입될 수 있는 장르들이 주로 채택된다고 할 수 있다. 회수해야 할 금액이 큰 만큼 고어나 누드 등 선정적인 표현은 가급적 지양되며, 많은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물론 여러 반례(많은 관객이 해설을 요구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처럼 수위 높은 신체훼손을 묘사하는 영화)도 존재하지만, 문자 그대로 소수의 사례에 속한다. 블록버스터라는 용어의 가장 정확한 예시로는 아무래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꼽을 수밖에 없다. 묘사를 위해 대자본을 요구하는 장르적 특성, 대다수의 관객이 무리 없이 관람할 수 있는 수위, 지나치게 클리셰적이라 비판받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관객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선형적인 서사 등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 〈파이널 판타지 VII〉 플레이 장면 (출처: 스팀 상품페이지) 트리플A 게임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 후반 몇몇 게임 개발사에서 사용하며 등장하였다. AAA라는 용어는 채권 신용등급의 용어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리플A 게임의 시초로 꼽히는 게임은 스퀘어 에닉스 〈파이널 판타지 VII〉(1997)다. 시리즈 최초의 3D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놀라운 수준의 그래픽, 오케스트라가 동원된 음악 등이 도입되었다. 그 중 영화처럼 연출된 FMV(혹은 컷씬)는,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1998)가 발매 전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공개하며 큰 호응을 이끌어냈던 것 등과 함께 떠올린다면 흥미로운 사례다. 트리플A 게임이 자신의 규모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비상호작용적인, 고쳐 말하자면 영화적인 장면들을 대거 투입하는 것은 지금의 트리플A 게임들과도 연결되는 특징이다. 이후 세가의 〈쉔무〉(1999) 등이 등장하였고, 〈둠〉(1993~)이나 〈툼레이더〉(1996~) 등 기존 히트작의 후속편이 트리플A 게임의 규모로 제작되며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슈퍼 마리오〉 (1985~)나 〈젤다의 전설〉 (1986~)처럼, 지금은 고전으로 자리잡은 시리즈의 후속편들 또한 마찬가지다. 블록버스터 영화와 달리 트리플A 게임의 장르는 비교적 다양하다. 이는 게임 매체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스타크래프트〉나 〈시드 마이어의 문명〉(1991~)와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부터 〈배틀필드〉(2002~)나 〈콜 오브 듀티〉 (2003~) 등의 FPS 슈팅 게임, 〈심즈〉 (2000~)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철권〉 등의 대전격투 게임, 〈포르자〉(2005~)와 같은 레이싱 게임, 〈피파〉(1993~)와 〈위닝 일레븐〉(1995~) 등의 스포츠 게임 등 무수한 장르가 트리플A 게임의 범주에 속한다. 다만 지금의 시점에서 트리플A 게임을 말할 때 주축이 되는 것은 오픈월드다.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2011)과 〈GTA V〉(2013)가 비슷한 시기 대성공을 거두며 오픈월드를 트리플A 게임의 대표적인 장르로 만들었다. 2022년 한 해 공개된 트리플A 게임인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와 〈엘든 링〉은 처음부터 오픈월드를 표방했으며, 액션 어드벤처에 가깝게 분류되는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도 전작에 이어 부분적으로 오픈월드의 방식을 차용해온다. 선형적인 내러티브의 게임이지만,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2020)의 경우엔 몇몇 구간을 소규모 오픈월드처럼 구성하기도 하였다. 2023년 발매 예정인 트리플A 게임 중 〈호그와트 레거시〉,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 〈스타필드〉 등 또한 오픈월드를 표방하고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트리플A 게임은 다양한 장르에서 제작되고 있으며 트리플A 게임=오픈월드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트리플A 게임이라는 용어가 연상시키는 장르가 오픈월드임을 부정하긴 어렵다. 하나 흥미로운 지점이라면, 트리플A 게임에서의 폭력 묘사는 블록버스터 영화와 정반대의 방식을 택한다. 많은 트리플A 게임이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발매되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블록버스터 영화 대부분보다도 수위 높은 고어와 유혈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크래프톤의 트리플A 게임 〈칼리스토 프로토콜〉(2022)와 같은 최근의 사례만 놓고 보아도, 고어 묘사 자체를 일종의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영화와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작품 속 폭력에 개입하기 때문에, 플레이 영상만 봤을 때는 얼핏 기존 블록버스터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위의 게임들도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기도 한다. 이를테면 〈호라이즌〉 시리즈(2017~)처럼 비교적 가벼운 수위의 게임들도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이다. ∗ 〈아바타〉 포스터 (출처: IMDB) 2. 영화와 게임의 플래그십으로서 두 개념 블록버스터와 트리플A 게임은 제작에 투여되는 자본의 크기만큼이나 기술을 선도하는 역할 또한 수행한다. 영화의 사례는 손쉽게 떠올려볼 수 있다. 〈트론〉(1982)이 처음 영화에 CGI를 도입한 이후 〈터미네이터 2〉(1992)의 T-1000과 〈쥬라기 공원〉(1993)의 공룡 등으로 이어지는 기술의 발전은 〈반지의 제왕〉 삼부작(2001~2003), 〈폴라 익스프레스〉(2004), 〈트랜스포머〉(2007) 등을 거치며 발전과 비판을 반복하여 받아왔다. 〈아바타〉(2009)는 그 정점에 있었으며, 속편 〈아바타: 물의 길〉(2022)은 그것을 다시금 증명하였다. 물론 〈아바타〉를 이야기할 때 3D를 빼놓을 수 없다. 〈아바타〉의 대성공은 3D 영화의 (일시적) 유행을 불러왔다. 물론 〈아바타〉 개봉 이전에도 3D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폴라 익스프레스〉도 3D로 개봉했었고, 〈아바타〉 직전에 개봉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008)와 〈블러디 발렌타인〉(2009)도 있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1952년 〈브와나 데블〉을 시작으로 1954년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까지 70여 편의 3D가 쏟아져 나왔던 시기도 있다. 〈아바타: 물의 길〉이 다시금 3D를 부흥시킬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블록버스터의 규모를 통해 가능해지는 기술의 도입은 어떤 기술적 유행을 만들어낸다. CGI의 발전이나 퍼포먼스 캡처처럼 유행을 넘어 상식이 된 기술의 경우들 또한 블록버스터가 지닌 규모를 통해 가능했다. 더 나아가 블록버스터에 투여된 자본과 기술은 시장의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일반관보다 높은 가격이 책정되는 3D 영화는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주도한 IMAX의 부흥이 특히 그러하다.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우 IMAX 화면비 장면을 삽입하는 것은 관례가 되었다. 이는 당연하게도 일반관보다 1.5배에서 2배 가까운 가격이 책정되는 IMAX 상영관으로 관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유인책이다. 물론 IMAX 상영관은 그 수가 적기 때문에 그것이 영화 한 편의 수익을 극적으로 바꿔 놓지는 못한다. 이는 IMAX를 포함해 돌비시네마, 4DX 등 여타 특별관도 마찬가지다. 다만 “IMAX 특별관 매진행렬!!”과 같은 홍보문구가 형성하는 시장장악력을 무시할 수 없다. 더불어 〈덩케르크〉(2016)나 〈놉〉(2022)의 경우처럼, 그것이 성공적이든 실패했든 종종 IMAX를 미학적 선택의 결과물로 내놓는 블록버스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포스터 (출처: 닌텐도 스토어) 트리플A 게임의 경우 조금 더 적극적인 유인책으로 활용된다. 트리플A 게임의 시초격인 〈파이널 판타지 VII〉은 5세대 콘솔 경쟁 속에서 플레이스테션을 완전히 자리잡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새로운 세대의 콘솔이 등장할 때마다 소위 레퍼런스 게임이라 불리는 고사양 게임들이 등장하여 기기성능을 뽐낸다. 2020년 플레이스테이션5의 런칭 타이틀로 출시된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2020) 같은 경우는 기기의 새로운 기능을 소개하는 레퍼런스 게임으로 기능했다. 〈라쳇 앤 클랭크: 리프트 어파트〉(2021)처럼 기기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사양을 활용하는 독점타이틀 또한 마찬가지다. 혹은 닌텐도 스위치의 런칭 타이틀이었던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2017)이라든가 플레이스테이션5의 런칭 타이틀이자 기기 독점 타이틀인 〈데몬즈 소울〉 리메이크(2020)처럼, 기기의 판매를 유인하기 위해 기존 트리플A 게임 프랜차이즈의 후속작이나 리메이크를 독점 발매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트리플A 게임은 스스로의 규모를 감당하기 위해 첨단의 사양을 지닌 기기를 요구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기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트리플A 게임의 기술적 성취는 블록버스터의 것과 다소 방향성을 달리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바타〉의 3D나 〈인터스텔라〉(2014)의 IMAX는 작품의 내적인 성취를 위해 도입된 기술이지,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는 산업적 요구가 작품에 앞서 존재하지는 않는다. 물론 〈아바타〉 이후에 등장한 질 낮은 3D 블록버스터들과 마케팅을 위해 IMAX를 도입하는 영화들이 무수히 존재하지만, 산업적 유행에 휩쓸려 제작된 기획영화들을 선구자 격의 영화들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독점발매는 게임시장만의 독특한 방식이다. 영화시장에서도 종종 독점개봉작을 발견할 수 있지만, 이 작품들은 와이드릴리즈에 투여되는 비용부담을 절감하기 위한 중저예산 상업영화, 혹은 독립영화의 전략적 선택에 가깝다. 이는 게임 매체의 독특한 지위 때문이다. 다른 대중문화, 이를테면 문학, 만화, 음악, 영화와 같은 것들은 손 쉽게 복제가 가능하며 다양한 기기에 어렵지 않게 이식할 수 있다. 책처럼 문화상품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완전히 동기화된 경우도 있고, 스트리밍 플랫폼의 도입으로 음악과 영화는 거의 모든 전자기기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게임은 하드웨어의 성능적인 부분을 요구한다. 특히나 고사양을 트리플A 게임의 경우가 그렇다. 비록 경험적 차원에서는 구별될지라도, 블록버스터 영화는 IMAX관에서 보든 넷플릭스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보든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다. 물론 엑스박스의 클라우드 게이밍처럼 빠른 인터넷 환경만 갖춰진다면 저사양의 기기에서도 트리플A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아직 음악과 영화의 스트리밍 시장만큼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사이버펑크 2077〉(2020) 발매 당시 많은 게이머가 PC사양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래픽카드를 구입했던 것을 떠올려보자. 아직까지 트리플A 게임은 PC나 콘솔 등 ‘하드웨어’와 깊게 결부된 것으로 다뤄지고 있다. 때문에 블록버스터 영화가 3D나 IMAX의 플래그십으로 작동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다. 반면 트리플A 게임이 차세대 콘솔 혹은 최신의 그래픽카드를 시장에 도입하기 위한 플래그쉽으로 기능한다는 명제는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전자가 참이라 가정한다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CGI 기술의 도입을 위해 〈쥬라기 공원〉을 만들었다던가, 크리스토퍼 놀란이 IMAX를 영화시장에 도입하기 위해 영화들을 만들고 있다고 말하는 셈이 된다. 그들의 영화가 시장과 산업의 유행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후적인 결과에 가깝다. 더불어 영화의 흥행은 영화의 개봉시점에서 1~2주 안에 결정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이버펑크 2077〉이 애니메이션 〈사이버펑크 엣지러너〉(2022)와 지속적인 업데이트에 힘입어 뒤늦은 성공을 거두었거나,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뉴비’를 끌어 모으는 여러 트리플A 게임의 사례와는 다르다. 물론 트리플A 게임 또한 발매 시점에 구매가 몰리게 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다. 영화업계에서 블록버스터에 대해 플래그십이라는 말 대신 ‘텐트폴 영화’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큰 흥행을 거둘 수 있는 프랜차이즈 영화, 화려한 멀티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를 대목 시즌에 개봉시켜 빠르게 큰 수입을 올리는, 블록버스터를 제작사와 배급사의 지지대처럼 활용하는 것은, 영화 한 편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수입의 대부분이 개봉 초기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의 경우 발매일로부터 수 년의 시간이 흐른 뒤라 해도 플래그십의 기능을 수행한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하기 위해서 닌텐도 스위치가 필요하고,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가 불러온 논쟁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플레이스테이션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플래그십의 기능을 다 한 게임의 경우 다른 콘솔이나 PC를 통해 일종의 재발매를 거치기도 한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와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가 발매에 맞춰 전작을 PC로 발매한 것처럼 말이다. 트리플A 게임, 아니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수익을 낼 수 있는 기간이 영화 콘텐츠에 비해 길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블록버스터가 단발적으로 수익을 내는 상품이라면, 트리플A 게임은 플랫폼(콘솔 같은 하드웨어부터 게임패스 같은 플랫폼 서비스까지를 포괄하는 의미에서)을 견인하는 장기적인 수입창출 상품이다. 이 지점에서 트리플A 게임이 굳이 ‘블록버스터 게임’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폭탄의 이름에서 따온 블록버스터라는 명칭은 단발적으로 많은 수익을 거두는, 문자 그대로 박스오피스의 폭탄 같은 존재를 말한다. 앞서 적은 것처럼, 게임시장은 영화시장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트리플A 게임은 단기적으로 폭발적인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플랫폼의 장기적인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유인책으로 작동한다. ‘AAA’의 어원이 채권 신용등급에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트리플A 게임은 기기의 성능, 플랫폼의 지속가능성, 엔딩까지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시간적 비용 등을 모두 보장하고자 하는 단어처럼 다가온다. * 〈데스 스트랜딩〉 포스터 (출처: 에픽게임즈 스토어) 3. 영화적인 게임, 게임적인 영화, 각자의 재료가 되기까지 각각의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이나 역할은 다르지만, 블록버스터와 트리플A 게임은 제작방식과 작품 내부의 차원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다. 블록버스터에서 CGI와 모션 캡처의 발전은 그대로 트리플A 게임의 기술적 발전으로 연결되었다. 한 가지 부정적인 면모를 우선 짚고 넘어가자면, 블록버스터와 트리플A 게임 양측 모두에서 기술의 발달과 함께 크런치 모드에 관한 논란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트리플A 게임 개발사인 너티독은 〈언차티드 4: 해적왕과 최후의 보물〉(2016) 발매 당시 처음으로 회사 내 크런치 문제가 논란이 되었으며, 이는 스튜디오의 최근작인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 발매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지적되었다. 〈더 위쳐〉 시리즈(2007~)와 〈사이버펑크 2077〉의 CDPR과 〈GTA〉 시리즈(1997~)의 락스타게임즈 또한 같은 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업계에서의 크런치 모드 논란은 최근에서야 터져 나왔다. 2022년 한 해에만 3편의 영화와 3편의 드라마를 내놓은 대표적인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그 대상이다. VFX를 맡았던 몇몇 이들이 작업 분량에 비해 적은 시간, 무수한 재작업 요구, 저임금 등의 상황을 폭로하며 크런치 모드가 비단 게임업계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렸다. 다만 크런치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글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문제가 있음을 언급하는 정도에서 지나가고자 한다. 영화에서 모션 캡처는 〈토탈 리콜〉(1990)에서 처음 도입되었고, 〈스타워즈: 보이지 않는 위험〉(1999)의 자자 빙크스와 〈반지의 제왕〉 삼부작의 골룸 캐릭터를 거쳐 〈아바타: 물의 길〉의 나비족까지 이어지고 있다. 21세기로 넘어오며 3D CGI 위주의 시장으로 변화한 게임업계 또한 모션 캡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였고, 〈비욘드: 투 소울즈〉(2013)이나 〈데스 스트랜딩〉(2019)처럼 모션 캡처를 통해 유명 영화배우가 게임에 대거 출연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혹은 〈레드 데드 리뎀션 2〉(2018)처럼 모션 캡처로 말의 움직임을 게임 내에 구현하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CGI의 발전에 따라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와 같은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포토-리얼리즘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려 했다. 〈라푼젤〉(2010)의 옷감 표현이나 〈굿 다이노〉(2015)의 자연물 표현, 〈겨울왕국 2〉(2019)의 눈을 구현하던 물리엔진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역으로 포토-리얼리즘한 CGI 이미지가 과거 〈폴라 익스프레스〉나 〈베오울프〉(2007)가 그랬던 것처럼 불쾌한 골짜기를 자극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포토-리얼리즘이 작품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의 영역으로 다루어지며 최근의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들은 다른 방식의 이미지를 선보이곤 한다. 코믹스의 표현을 구현해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 포토-리얼리즘적 현실과 대비되는 세계를 비교적 단순한 선들로 표현한 〈소울〉(2020), 유화풍의 그림체를 가져온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2022) 같은 사례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사 블록버스터 영화와는 다른 경우라 할 수 있겠지만, 똑같이 실사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는 게임에서 포토-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모습은 종종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킨다. 게임엔진이 그대로 영화에 사용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언리얼 엔진 4가 영화 및 영상업계 전반에서 사용되었고, 언리얼 엔진 5의 경우엔 〈매트릭스: 리저렉션〉(2021)과 콜라보한 데모 게임 〈매트릭스: 어웨이큰스〉(2021)를 9세대 콘솔로 공개하기도 했다.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의 2차 매체 부가영상을 보면 게임엔진이 영화의 프리 비주얼 등에서 활용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해당 영상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VR 헤드마운트를 쓰고 게임처럼 구현된 CGI 세트장에 접속하여 디렉팅을 진행한다. 굳이 기술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트리플A 게임은 처음부터 영화와 모종의 친연성을 지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파이널 판타지 VII〉의 FMV씬과 〈스타크래프트〉의 시네마틱 트레일러처럼, 초기의 트리플A 게임은 자신들의 규모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영화적으로 연출된 장면들을 넣어 두었다. 이러한 방식은 더욱 강화된 방식으로 이어진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1996~)의 한 장면처럼 연출된 〈언차티드 4〉의 추격전은 QTE 방식의 조작을 택해 액션을 플레이하는 감각과 함께 관람한다는 감각을 함께 전달한다. 현재 실사 드라마로 방영중이기도 한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13)는 영화적인 플롯과 장면연출로 호평 받음과 동시에, 같은 이유로 비판받기도 했다. 지극히 게임적인 체험과 무수한 영화인이 출연하는 컷씬으로 양분된 〈데스 스트랜딩〉 같은 분열적인 사례도, 인터랙티브 드라마 장르를 채택하며 게이머의 여러 선택들로만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2018)처럼 영화와 게임의 경계선상에 있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반대로 FPS의 시점을 채택한 〈하드코어 헨리〉(2016), 여러 전쟁 게임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았던 원테이크 영화 〈1917〉(2019), 인터랙티브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영화’로 분류되는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2018) 등 게임적 요소라 불리는 것을 가져온 영화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관련한 논의는 필자의 이전 글 [영화와 게임의 스침]( http://www.critic-al.org/?p=5927)을 참고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qQssqOmBZw *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 로고 애니메이션(https://www.youtube.com/watch?v=5qQssqOmBZw) 당연한 이야기지만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무수한 영화와 영화를 원작으로 삼은 무수한 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최근 몇 년간 〈명탐정 피카츄〉(2019), 〈슈퍼 소닉〉(2020)과 〈슈퍼 소닉 2〉(2022), 〈모탈 컴뱃〉(2021),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2021) 〈언차티드〉(2022) 등을 내놓았다. 흥미로운 것은 〈언차티드〉인데,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의 첫 장편영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영화 본편 상영 전 등장하는 프로덕션의 로고 영상을 보면 〈호라이즌 제로 던〉의 에일로이, 〈갓 오브 워〉의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조엘과 앨리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기존 플레이스테이션 독점작의 실사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이 스튜디오는 현재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HBO와 손잡고 제작해 방영 중이며, 앞으로 〈고스트 오브 쓰시마〉, 〈그란 투리스모〉 등의 영화와 〈갓 오브 워〉, 〈호라이즌〉 등의 드라마를 제작할 예정이다. 하나의 IP가 여러 매체를 통해 소화되는 전략은 오랜 기간 보아왔던 것이지만, 트리플A 게임의 IP를 대거 보유한 퍼스트 파티가 직접 스튜디오를 차려 실사화를 진행하는 것은 첫 사례다.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는 실패한다는 징크스가 있지만,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2016)과 〈언차티드〉, 〈슈퍼 소닉〉 등이 흥행에 성공하며 징크스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이 영화들에 대한 평가는 별개이겠지만 말이다. 트리플A 게임의 블록버스터 영화화, 블록버스터 영화의 트리플A 게임화는 IP의 소유권 위주로 재편된 지금의 미디어 생태계에서 당연한 일로 다가온다. 대부분의 게이머와 관객들은 이러한 상황에 싫증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미 플레이한, 관람한 이야기를 다른 매체로 이식할 뿐인 이 작품들에서 어떤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지금껏 이야기해온 영화와 게임의 친연성, 블록버스터 영화와 트리플A 게임이 같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곱씹으며 이 작품들을 다시 마주한다면 흥미로운 접점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1981~)에서 〈툼 레이더〉, 〈내셔널 트래져〉(2004), 〈언차티드〉로 이어지는 보물 사냥꾼의 계보를 그려본다든가, 〈소닉 더 헤지훅〉의 모션이 〈슈퍼 소닉〉에서 구현되는 방식에 관해 고민해보면서 말이다. 그러한 접점을 발견하는 것이 두 계열의 거대한 오락문화를 더욱 흥미롭고 다채로운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북리뷰] 도망쳐 도착한 곳의 낙원: 가브리엘 제빈,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심지어 게임을 업으로 삼은 이에게도. 그때 게임이 경이로웠던 것은 삶의 고통과는 무관한 신비 그 자체였기에 노스탤지어는 더욱 짙은 그리움을 부른다. 그럼 지금의 당신에게 게임은 어떤 경험인가. 지금 다시 플레이하면 분명 지루하게 느낄 그 시절의 게임들과 비교하면 오늘의 게임은 어떤 의미인가. 여전히 신비로운가, 혹은 신비를 잃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는 이 소설이 그렇게 묻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북리뷰, 소설, 게임개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Eol Jo Started out as a terrestrial broadcasting producer and now creates a wide range of content. Mainly plays console games—an introvert who dislikes multiplayer.

  • : 기억에 접근하는 인터페이스

    궁극적으로 본작은 바로 이런 물질적 감각의 복원을 통해, 작중 주인공이 끝내 현재로 불러들이기를 거부했던 기억마저 플레이어의 수행 속에서 다시금 호출하도록 강제한다. 모든 내막이 종합되는 에피소드 4(“The Last Session”)가 밝히듯 주인공에게 인터페이스는 스스로의 끔찍한 과오—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회피하고 봉합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막이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역설적으로 그 방어막을 끈질기게 통과해 기억(진실)을 다시 구성하게 만드는 유력한 수행인이 된다. < Back 31 GG Vol. 26. 8. 10. Tags: 스토리즈언톨드, 인터페이스, 기억, 재매개, 텍스트어드벤처, 미디어고고학, 마크피셔, storiesuntold, nocode, gamestudies, hypermediacy, mark fisher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hanmi Jeong Pursues scholarship in the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at Sungkyunkwan University. A devotee and an observer of subculture. In the midst of tracking down new methodologies for thinking through the times.

  • 22대 국회의원선거 공약이 말하는 대한민국과 디지털게임

    민주주의 국가의 운영은 행정부만큼이나 입법부도 중요하다. 입법부를 구성하는 선거가, 쓰는 입장에서는 한창 진행중이고 읽는 입장에서는 투표 직전이거나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게임 또한 문화이자 산업으로서,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단 단속이나 규제의 의미만이 아니고 진흥과 지원의 의미로도 그렇다. 그리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게임 공약을 분석했던 시도에 이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등장한 게임 관련 공약을 살펴본다. < Back 17 GG Vol. 24.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Editor's View] 언어와 문화를 건너는 다리로서의 번역과 현지화

    디지털게임은 근본적으로는 언어 외적 규칙에 의해 작동하는 매체입니다. 근본주의자(?)라면 잘 만든 디지털게임이라면 번역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이 매체의 중심은 언어와 무관합니다. 그러나 모든 매체는 다른 매체와 섞이기 마련이며, 풍성해진 디지털게임의 재현 도구는 비단 언어 뿐 아니라 문화 및 사회의 관습, 제도, 윤리와 긴밀하게 엮이며 발전해 온 바 있습니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RTT : 현대의 전면전을 디지털 세계에 격리하기

    결국 RTT/워게임이 만들어지고 플레이되는 이유와 목적을 이해하는게 우선이다. 최초 프로이센 왕국에서 이루어진 워게임이 그러했듯, 결국 이 게임들은 전술의 개념적 검증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고자 하며 그래서 그 최초의 워게임의 특징을 답습하는 양상을 띄게 된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RTT, 현대전, 전술, 시뮬레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yungKyu Lee Game journalist (2014–), writer (2006–), gamer (1996–).

  • 고전 명작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해후: 『검은 신화 : 오공』과 중국 AAA게임의 상상

    2017년부터 중국 게임산업의 실제 매출은 확고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 중국 게임산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AAA게임이야말로 한 나라의 게임산업의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게이머들에게 뼈아픈 점은 중국이 내내 자체적인 3A게임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관련된 시도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상업적 성장 측면에서 중국 게임산업은 ‘최고의 시대’이지만, 문화예술과 창조성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시대’라는 것이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ivist, Writer) Deng Jian (邓剑) Associate Professor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Soochow University. Focuses on digital game cultural studies as a primary research interest, and writes a column on games, among other pieces, for The Paper. (Activist, Writer) Myeonggyo Hong Activist and writer. Works at the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Platform C on East Asian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social movements. Author of To My Vanished Chinese Friend and A Ghost Throws a Punch at the World, and translator of Xinjiang Uyghur Dystopia and Dying for an iPhone (co-translated).

  • 떨리는 몸으로 플레이하기: 기대, 탐험, 그리고 인식

    텅 비어있는 것 같은 어두운 복도를 걸어간다. 내 발소리와 금속 파이프에서 들려오는 끼익거리는 소리만이 이 고요함을 깨뜨린다. 손전등이 비추는 곳 너머의 어둠 속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어 두려움이 엄습한다. 다음 방에 들어서자, 무거운 숨소리가 들려오고, 훼손된 사람의 신체가 불빛에 드러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그 모습에 나는 속이 메슥거린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Aska Mayer A Doctoral Researcher at Tampere University Game Research Lab and the Finnish Center of Excellence in Game Culture Studies. Aska’s research is focused on bodily perceptions of digital games and technology, as well as apocalyptic media. (Game Researcher) Yeonwoo Lee Interested in games played together, and studies the relationality of games. Hopes that games can bring joy to everyone, all at once.

  • <오웰> - ‘감시자본주의' 시대의 정치 불안

    많은 누리꾼들은 검색엔진에서 막 검색한 키워드가 곧바로 온라인 쇼핑몰의 추천상품이 되고, 방금 전 친구들과 나눈 잡담의 소재가 갑자기 모바일 웹브라우저에 광고로 뜨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려깊은’ 서비스는 사람들이 상념과 공포에 빠뜨리고 그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인터넷상의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수집은 주목할 만한 이슈였다. < Back <오웰> - ‘감시자본주의' 시대의 정치 불안 18 GG Vol. 24. 6. 10. 원문: 《奥威尔》:“监视资本主义”时代的政治焦虑. https://www.thepaper.cn/newsDetail_forward_16494534 많은 누리꾼들은 검색엔진에서 막 검색한 키워드가 곧바로 온라인 쇼핑몰의 추천상품이 되고, 방금 전 친구들과 나눈 잡담의 소재가 갑자기 모바일 웹브라우저에 광고로 뜨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려깊은’ 서비스는 사람들이 상념과 공포에 빠뜨리고 그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인터넷상의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수집은 주목할 만한 이슈였다. 2020년 9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The Social Dilemma)>가 온라인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은 다방면으로 확산됐다. 주로 자본주의의 이윤 지향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윤리적 감시와 도덕적 성찰이 부족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혼란을 드러낸다. 이러한 플랫폼에서 일했던 여러 내부자들은 여러 유명 사이트가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지속적으로 특정 주제로 시청자를 유도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며, 사람들이 플랫폼용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자본 지향에 대한 성찰은 사회적 반응의 한 단면일 뿐이다. 소셜미디어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이해하고 의견을 발표하고 소통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면서, 정보의 정확성과 이견의 포용성 등에 대한 관심은 ‘감시자본주의’에 휘말려 정치적 불안감을 형성한다. 이에 따라 사이버 세계에서의 권위적 경향은 촉각을 곤두세우는 대상이 됐으며, 근래에는 반복적으로 논란거리로 부각되기도 했다. 2016년 10월 게임 개발사 오스모틱 스튜디오(Osmotic Studios)에 의해 <오웰: 당신의 눈을 떠라>라는 디스토피아 게임이 출시됐다. 2018년 2월, 속편 <오웰: 무지가 힘이다>가 발행됐다. ‘오웰’이라는 감시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묘사함으로써 디지털 생활에 잠재된 엄청난 위험을 보여주려는 두 게임의 시도는 게임 제작자들이 인터넷 시대의 정치적 위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특성화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관점을 제공한다. 특성화된 사회 통제 : 자유국가의 감시계획 이 게임의 내러티브는 ‘더 네이션(The Nation)’이라는 가상 국가에서 일어난다. 불안한 이웃나라 정세와 국내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오웰'이라는 극비 감시 프로그램을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정보당국은 해외 지원자들을 조사요원으로 모집해 정보부서 직원의 지도 아래 정부 내 인사들이 열람할 수 없도록 돼 있는 자국민 파일을 감시하고, 사람들의 전자기기를 해킹해 반사회적 인물이나 테러리스트의 혐의가 있는지 검사하도록 한다. 플레이어는 조사관으로서 오웰 시스템을 직접 조작해 각종 혹은 공개적이거나 은밀한 정보 채널을 빌려 이른바 ‘위험 인물'의 사생활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 게임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자유광장 폭발 사건에서 시작된다.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당국은 폐쇄회로 영상을 보면서 경찰 습격으로 형사사건에 휘말린 젊은 여성이 폭발장치 설치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의심한다. 수사관들은 곧 그녀의 가족 정보, 소셜미디어 계정을 수집하여 그녀가 폭발 사건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플레이어들은 용의자를 특정할 근거가 의심스럽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감정적으로 흘러가는 논쟁, 인터넷 친구나 커뮤니티의 정치적 경향이 기록되며, 이는 사회적으로 위험한 인물이라는 낙인으로 활용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 및 언론 등의 의심스러운 증거를 통해 조사관은 특정 개인의 다양한 네트워크 흔적과 사적인 채팅 및 전화통화 녹음 내용까지 계속 모니터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에피소드2가 시작되면 회색 영역을 넘나드는 수사 임무 뒤에 있는 권위주의적 권력의 추진력은 더욱 적나라해진다. 같은 시간대에 반정부 블로그 ‘피플스 보이스(People's Voice)’의 라반 바르트(Raban Vhart ) 편집장은 주류 언론을 비판해 두터운 팬을 얻고 있다. 그가 유력지 ‘내셔널 비홀더(The National Beholder)’를 거듭 비난하자 오웰의 수뇌부는 그의 가족까지 수사 대상에 올리기로 하고 바르트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려 한다. 정부 관료는 앞 에피소드에서처럼 조사원의 유죄추정만 시사하는 게 아니라, 조사원에게 직접 위법 증거를 찾아내 체포영장을 발부하도록 한다. * 게임 속 ‘더네이션’에서 가장 권위 있는 뉴스 사이트 ‘내셔널 비홀더’ 흔히 디스토피아 게임의 배경 묘사에서는 권력당국의 사회적 통제 수단을 경계가 모호하고 제지하기 어려운 정치폭력으로 묘사한다. 같은 장르의 게임, 예를 들어 2016년 발매된 <비홀더(Beholder)>의 경우에도 주인공은 도시 세입자를 감시하는 건물 관리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권력을 아래를 향해 무한정 뻗어나가는 공포정치의 풍경으로 연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체주의적 상상과 비교했을 때 <오웰>은 국가권력의 구현에 대해 훨씬 더 복잡하며, 당대 미디어 권력의 작동 논리에 가깝다. 게임 속에서 수사관들은 ‘내셔널 비홀더’ 뉴스 업데이트를 통해 주류 언론의 홍보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유력 언론은 국경 충돌과 테러 사건을 대량으로 보도하고, 헤드라인 뉴스를 통해 ‘더네이션’ 범죄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희소식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한다. 이들은 게임 배경에 대한 설명을 통해 왜 ‘오웰’ 시스템이 개인의 사생활 침해에 대해 대중의 항의를 받지 않을 수 있었는지 교묘하게 해석한다. 1978년 출간된 <위기 관리: 노상강도, 국가, 법과 질서(Policing the Crisis: Mugging, the State and Law and Order)> 책에서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을 비롯한 버밍엄학파 저자들은 전통적인 자유주의 국가들이 권위주의적 통제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영국에서는 언론 보도로 인한 작은 강도 사건이 대규모의 도덕적·법적 공황 상태로 이어지면서 사회가 갑자기 질서를 잃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다양한 운동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우려와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고, 법의 엄격한 집행과 사회거버넌스 정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홀의 입장에서 볼 때 범죄가 핵심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도덕적 해이 때문도, 사회질서의 혼란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우선하는 것은 미디어[로 인한] 사태라는 점이다. 그것은 영국 정부 당국이 뉴스 보도에 대해 의도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가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복지국가가 쇠퇴하면서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대중의 동의가 약해지면서 정치운동이 빈발했고, 자본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부족해져 뉴스 주도권에서 상업매체의 방해를 받았다. 사회적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긴박한 정세하 다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사회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 미디어 사태로 인한 사회적 공황은 일석이조의 훌륭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경찰과 법원 시스템, 주류 언론의 범죄 문제 집중으로 가뜩이나 불안한 사회가 갑자기 부정적인 감정의 분출구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이후의 결과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폭력이 예상되는 소외계층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정부의 엄격한 사회적 통제를 묵인하게 됐고, 영국 정부 역시 공포에 떠밀려 모인 여론을 바탕으로 언론 통제권을 더 확장했다. 1991년 필립 슐레진저(Philip Schlesinger)가 집필한 에서도 저자는 테러로 분류되는 대형 사건들이 언론 통제의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건들에서 영국 정부 당국은 언론 보도의 정치적 경향과 내용을 합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당국이 테러에 대한 해석권을 장악하고 이성적이고 의도적인 납치사건을 비논리적인 테러로 해석하는 데 직접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역설적으로 정부가 언론 통제를 강화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앞서 게임 속 ‘더네이션’의 사회 상황을 살펴본 결과, 게임 제작자들이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유주의 국가들이 사회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사회적 통제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웰>에서 ‘더네이션’이 위치한 지역은 불안정하다. 이웃나라 ‘파게스(Parges)’에서 오랜 내란이 이어지고 있어 ‘더네이션’은 군대를 파병해 지역 안보를 유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더네이션’이 더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적 갈등이 첨예하다. ‘파게스’로부터 대량의 난민이 유입되고, 퇴역 군인들이 취업난을 겪으며, 자국의 지식인들은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오웰’의 시스템은 주류 언론의 여론에 부응해 사회 통제라는 비장의 수단이 된다. 게임은 시스템 조사관의 관점에서 정보 부서, 반론 단체 및 일반 네티즌을 포함한 다양한 집단들에 대한 관점과 감정을 반영하며, 이러한 정보는 또한 현대 사회의 위기에 대한 게임 제작자의 개인적 이해를 반영한다. 인터넷 생태계 묘사하기 : 복잡한 개인, 모호한 국가 1. 이견집단의 내재적 긴장감 <오웰>은 디스토피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를 지나치게 편평하게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특히 반체제 인사들의 경우에도 인물군상을 차별적으로 형상화하지 않는다. 제작자들은 저항하는 사람들의 정의만 부각시키기보다는 사회적 환경과 다양한 인물들과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네이션’의 사회 위기와 권력 통제는 신분 간 격차가 큰 시민들에게 각기 다른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성적인 능력을 발휘해 사회적 위기에 대처한다. 에피소드1에서 정부 정보당국은 ‘생각(The Thought)’이라는 엉성한 인터넷 동호회에 초점을 맞춰 폭발사건의 진범을 찾으려 한다. 수사관들이 이들을 감시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좌편향의 이 집단이 사회 환경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행동 이념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생각’의 창시자 에이브러햄 골드펠스(Abraham Goldfels)는 당국의 미디어 거버넌스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고, 청년들을 조직해 미디어 윤리에 대해 토론하는 데 열정적이었다. 정부가 오웰 시스템의 윤리계획에 참여해달라고 제안했을 때 그는 개방적 자세로 이에 참여했지만, 조사원으로서 도저히 임무를 중립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퇴했다. ‘생각’의 동인이었던 해리슨 오도넬(Harrison O'Donnell)은 ‘생각’의 블로그에 여러 차례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다가 주류 언론 ‘내셔널 비홀더’의 칼럼니스트로 변신했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펑크 신분을 감추려 애쓴다. 취업난과 정신질환, 폭력적 저항이 많은 편집증적 사고를 지닌 퇴역 군인 니나 마테르노바(Nina Maternova)는 끝까지 반발을 제기하고 정치문제에 대한 민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유광장에서 폭탄을 터뜨린다. 에피소드2에서 반체제 인사들의 모습은 더 어두워진다. ‘피플스보이스’ 편집장 라반 바르트는 ‘파게스’ 난민으로서 ‘파게스’의 국가적 재난과 개인적 불행은 ‘더네이션’에 의해 의도된 설계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과 추종자들은 그의 음모론에 대한 집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 게임 속 ‘피플스보이스’ 편집장 라반 바르트는 “국가기관에 맞선 전쟁을 시작한다”는 글을 게시한다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에 서 있고, 다른 배경과 경력을 가진 반체제 인사들은 단순히 사회적 사명감에 의해 소환되는 단순한 저항자가 아니다. 정치이념의 성숙도에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에이브러햄 골드펠스는 오랫동안 사회비판적 활동을 해온 지식인으로서 당국의 정책에 대해 보다 인내하며 체제 내 개혁의 가능성을 믿었던 반면, 다른 반체제 인사들은 안정적인 정치적 입장가 부재했다. 해리슨 오도넬의 정치적 태도는 급진적인 듯하면서도, 좌절할 때는 현실에 쉽게 고개를 숙인다. 니나와 바르트의 과격 행동은 ‘더네이션’에 대한 위화감과 관련이 깊지만, 그 배후의 가치에 대한 고민은 얕다. 이처럼 내부적 긴장감이 넘치는 인물군상을 부각해 보면, 정부 당국의 미디어 거버넌스 논리를 게임 안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보 교류가 빈번한 인터넷 시대에 사회 상황에 대한 여러 집단들의 능동적 반응은 편리한 미디어 조건으로 인해 더 쉽게 발견되고, 관심받고 인식되며, 더 큰 사회적 영향을 미친다. 급진적인 반대 의견과 행동이 확산될 가능성을 예상하는 것 외에도, 권력자들은 더 엄격한 사회적 통제를 고려해야 할 ‘강제’를 받을 수 있다.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적 리스크 때문에 오웰식의 시스템이 게임에 등장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반체제 인사들의 복잡성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단순히 정치적 압박의 저항자로만 보는 것은 정부와 민중 간 미묘한 관계를 적절하게 묘사하기 어렵게 만들고, 국가기구에 대한 게임의 주장을 너무 가볍게 보이게 할 수 있다. 2. 전능한 정부의 이미지 안타깝게도 <오웰>은 반체제 인사에 대한 묘사만큼 국가기관에 대한 묘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으로 인해 게임 내 당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사회 통제 수단 간 관계는 효과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에피소드2에서 ‘피플스보이스’의 조직자 라반 바르트는 ‘더네이션’이 ‘파게스’ 정국에 개입해 현지 내란을 일으켰으리라는 음모론에 사로잡혀 있다. 나아가 그는 ‘더네이션’ 정부가 ‘피플스보이스’에 대한 보복으로 자유광장 폭발 사건을 일으켰고, 자기 아내를 살해했다고 믿고 있다. 오랜 정신적 편집증 때문에 그는 ‘더네이션’ 정부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처음에 수사관들의 시각에서 보면 라반 바르트의 정부 고발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그는 파게스에 있는 학교에서 우발적인 폭탄테러를 당했고, 그의 아내는 감시받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의도치 않게 폭발 사건에 연루된다. 하지만 수사가 진척될수록 게임 제작자들은 역설적으로 바르트의 입에서 나오는 음모론을 따라가도록 구현한다. 그것은 즉, 정부가 조직적으로 바르트를 도발하여 그가 편집장이란 직위를 통해 파게스 선거에 간접 개입하도록 했고, 이로 인해 바르트가 받는 항간의 소문들은 모두 오웰 시스템이 주관하는 통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 속 ‘더네이션’ 정부의 모습은 너무 전능한 나머지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게임은 정보의 홍수가 쏟아지는 인터넷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디스토피아 게임의 진부한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는다. 국가기관은 급변하는 여론 동향과 민중의 반응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미디어에 대한 권력구조의 상실과 관련한 제작자들의 우려를 투영한 측면이 크다. 인터넷의 힘은 실재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인터넷이 겉보기에는 더 큰 자유를 가져다주었지만 이로 인한 개인의 사생활 손실과 사회적 통제 강화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크게 느끼고 있다. 기술과 권력의 불균형에 직면하여 제작자들은 미디어가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믿음이 없기에 <오웰> 역시 권력의 자리에 대해 인식하거나 이입하지 않는다. 또, 끊임없이 확장되는 권력의 미디어 권력,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주저하지 않는 미디어 거버넌스의 논리가 부분적으로는 온라인 여론의 복잡성과 실제 영향력에 대한 통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다. 현실에 대해 편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에피소드2는 국가기관의 형성에 대해 전체주의화되기 시작한다. 오웰 시스템은 더 이상 수사관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정보 당국의 리더가 직접 수사에 개입해 바르트의 ‘흑색선전’을 찾아내 ‘피플스보이스’의 명성을 떨어뜨리고, 바르트 가족의 메신저 계정을 해킹해 이들을 체포할 수 있는 불법 증거를 찾도록 독려한다. * 에피소드2의 ‘인플루언서’ 메커니즘엔 댓글러 활용 여론공세로 비판여론 공격하기 기능이 있다 물론 이러한 전체주의적 상상력이 결코 목적 없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필립 슐레진저는 정치폭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막스 베버(Max Weber)와 기든스(Anthony Giddens)를 인용해 자유주의 국가에서 전체주의적 성향은 당국이 정치상황이 급박하다고 생각하고 민중들이 이를 묵인할 때 어떤 국민국가도 도덕적 전체주의를 피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역설적인 점은 미디어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통해 사회 정세의 긴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당국에 의해 장악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3. 수사관 모델: 윤리적 계획은 가능한가? <오웰> 플레이의 핵심인 수사관 모델은 이런 현실적 우려에 대한 활로를 모색해보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즉 사회적 통제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실제 범죄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권력의 침투를 피할 수 있는 거버넌스 방법이 있는지 여부이다. 정부 지도자는 ‘더네이션’ 시민들의 사생활 정보에 직접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수사관들은 특정 사건이나 집단을 중심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지만, 수사 대상자의 위협성 여부를 판단할 때는 결정적인 의견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윤리적 비전이 개인에 대한 정치 폭력의 침해를 해결하지 못할 것임을 행간에서 암시하기도 한다. <오웰>의 두 에피소드 모두 수사관들이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취향, 사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보를 정보당국에 제공하는데, 게임 내러티브의 전개는 복수의 엔딩으로 이어지도록 설정됐다. 반체제 인사들이 오웰의 감시 계획을 폭로했는지, 아니면 오웰 시스템이 사회적 위기를 통제했는지 여부는 수사관의 도덕적 선택에 크게 의존한다. 동시에 권력구조는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도자가 수사관에게 내리는 대부분의 명령은 수사관이 피의자를 유죄로 판단하도록 강제하거나 유도할 의향을 갖고 있다. 에피소드1에서 플레이어는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하지만 폭발사건에 연루된 ‘생각’의 멤버 카산드라와 니나는 체포된다. 이와 비교했을 때 게임의 엔딩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생각’의 멤버들이 오웰 시스템의 위험성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성공해 당국이 계획을 취소하더라도 시스템의 계획은 여전히 암암리에 진행된다. ‘더네이션’의 승인으로 수사관이 된 시민은 위험 인사로 기록 및 저장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헤게모니를 다투는 과정에서 갖는 관성 때문에 공식 통제를 받는 오웰 시스템이 중립적 성격의 매개체 기술로 사용될 가능성은 없다. <오웰>의 정치적 불안 결국 오웰의 서사는 스스로가 설정한 딜레마에 빠진다. 이 게임은 ‘더네이션’ 당국의 상징에 대해 제작자들이 온라인 매체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내비친다. 권력과 과학기술의 우위를 쥐고 있는 권력자를 상대로 권위주의적 성향의 사회통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오웰>에는 권위 있는 언론과 일반 대중, 반체제 인사들 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단순하게 표현된다. 당국은 유력 매체에 공개된 정보를 통해 항상 사람들의 감정을 조작하고 적시에 반체제 인사들을 격분시켜 그들이 예정된 계획에 복무하도록 한다. 이 게임의 제작자들이 정치적 힘의 복잡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비관적 미래상에 더 공감하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쳐진’ 인터넷 세계 권력구조 현상에서 취약계층의 저항은 항상 존재할 수 있지만, 강자가 항상 국민의 동의와 묵인을 얻는다면 권력은 계속 확장될 것이다. <오웰>의 게임 상징은 이런 관점의 ‘자기실현’이다. 한편으로 게임 속 네티즌의 이미지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는 감정적 집단으로 축소되고, 반체제 인사들은 대중들로부터 공감받지 못하는 외톨이로 묘사된다. 다른 한편, 인터넷 디스토피아에 대한 제작자의 과도한 관심은 인터넷 밖 현실의 표현 공간을 밀어낸다.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표현을 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사회적 상황에 대한 판단이 결여되어 있는 ‘오합지졸’인 것은 아니다. 인터넷 세계에서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냉정한 관점이 어쩌면 진짜 이견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온건한 견해가 일상에서는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주류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기술과 권력의 결합이 <오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매우 긴밀하더라도, 우리는 인터넷 세계가 오늘날 정치 지형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각종 뉴스와 인기검색어, 상업광고가 전방위적으로 다루는 인터넷 세계는 결국 사람들의 실생활, 실제의 사회적 감정이나 견고한 관점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오웰>에서 표현된 상징들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진정한 정치적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인터넷 세계에 ‘이용자’로 진입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이 부족한 현대인들의 경우에는 정치적 다툼의 공간은 급속하게 축소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헤드라인 뉴스와 감정적인 관점에 의해 빈번하게 끌올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념을 확고하게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견고한 관점을 형성해 주류와 경쟁할 가능성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점차 인터넷에 의존해 정보를 얻고, 자신의 인식을 구축하거나 소통하고, 심지어 생계를 유지한다. 인터넷 세계의 이질적인 권력구조는 긴장감 넘치는 국가-개인 관계를 대체하는 압도적인 ‘현실’로 인식되고 있다. <오웰>의 엔딩은 이런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디스토피아적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이 아닐지라도, 권력에 맞선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현실’과 조심스레 거리를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비관적인 인터넷 풍경의 배후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가능성의 사회를 봐야 할 것이다. 통제 불능의 폭력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꿈꾸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정치가 작동할 수 있는 논리를 보다 정교하게 이해해야 한다. Tags: 빅브라더, 파놉티콘, 전체주의, 감시, 혁명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량청린 梁成林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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