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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급과 B급의 차이, 끊임없이 저항하고 결국은 차지하는
우리는 가끔 B급, 다시 말해 A급이 아닌 ‘것’을 하나의 영역으로 묶어 생각한다. 딱 집어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B급은 ‘A급이 아닌 무언가’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B급을 인지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하는 것은 A급에 대한 정의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A는 늘 우리에게 ‘보편’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B를 보고나서야 A가 A임을, 다시 말해 그것이 우리에게 보편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 Back A급과 B급의 차이, 끊임없이 저항하고 결국은 차지하는 05 GG Vol. 22. 4. 10. 1. Intro 우리는 어떤 대상을 구매하거나 이용할 때 등급을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획득하고자 하는 대상에 등급을 매기는 순간, 우리는 상대적으로 어떤 기준을 통해 이 대상이 우월하거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거나, 어떤 영역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게 된다. 우리는 가끔 B급, 다시 말해 A급이 아닌 ‘것’을 하나의 영역으로 묶어 생각한다. 딱 집어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B급은 ‘A급이 아닌 무언가’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B급을 인지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하는 것은 A급에 대한 정의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A는 늘 우리에게 ‘보편’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B를 보고나서야 A가 A임을, 다시 말해 그것이 우리에게 보편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2. 아주 사적인 게임의 역사 난 어렸을 때 남동생이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80년대생인 내가 PC게임을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집에서 하나뿐인 컴퓨터를 차지한 건 남동생이었다. 그 전까지 거실에 한 대 뿐인 텔레비전에 연결해 플레이할 수 있었던 일본산 콘솔 게임기기도 늘 남동생의 차지였다. 당시 컴퓨터 두 대를 들이기엔 기기 값이 너무 비쌌다. 하나를 사면 누군가가 차지하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컴퓨터’의 영역에서 A급은 아마도 남동생이었던 것 같다. 자주 갔던 오락실에서도 플레이는 남동생이, 나는 그것을 뒤에서 지켜보는 역할을 주로 했다. 난 어쩌면 게이머의 영역에서 B급을 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국내에서 게임 잡지가 발간되었고 남동생은 열심히 그 잡지를 구독했다. 그 덕에 나도 게임 잡지를 함께 읽게 됐다. 종종 게임 잡지에서는 새로 출시된 PC 게임을 소개하면서 베타 버전을 부록으로 넣어주기도 했다(지금 생각해보면 불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 내 눈을 사로 잡은건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게임이었다. 당시 RPG 게임이나 어드벤처, FPS가 주류였던 PC 게임 내에서 캐릭터를 기르는 장르가(육성 시뮬레이션) 있다는 걸 그 당시 처음 알았다.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프린세스 메이커〉는 내가 처음으로 서점에 가서 게임CD를 구입하게 된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일본 가이낙스사에서 1991년에 제작했던 이 게임은 악마의 침입으로부터 왕국을 구한 용사가 마리아라는 고아 소녀를 키우고 그의 장래를 설계해주는 역할을 맡으면서 시작된다. 제목처럼 용사는 마리아의 아버지로 그를 프린세스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육성시뮬레이션 장르를 크게 대중화 시켰던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게임은 당시 게임은 남성만의 놀이 문화라는 인식을 깨고 많은 여성층을 확보하여 게임 플레이에 있어 젠더 편향성을 무너뜨리는 계기로 작동했다. 한동안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 게임에 푹 빠져 있던 나는 십대 후반을 기점으로 게임하기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PC방이 생기고, 온라인 게임이 흥행하기 시작하고, 게임채널이 생겨 이스포츠가 활성화되던 그때. 당시 수험생이었던 내가 게임을 할 시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온라인 게임에서 기본이 되는 ‘팀 플레이’가 나는 불편했다. 내가 게임 플레이를 못해서 파티원에게 받을 비난도 싫었고, 상대적으로 끊임없이 익명의 누군가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플레이를 하는 것이 적성에 맞질 않았다. 그러나 이십대가 됐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점차 게임 플랫폼이 컴퓨터에서 개별 모바일로 옮겨가게 되면서 나는 게임을 다시 플레이하게 됐다. 부담없이 싱글 플레이가 가능한 모바일 게임을 지속하다보니, 예전에 했던 PC 게임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는 우연히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어이쿠 왕자님〉이라는 게임 소개글을 읽게 됐다. 〈어이쿠 왕자님〉은 한 인디게임 제작팀이 자체적으로 개발해낸 PC게임이었는데,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모토로 시작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2007년에 제작하고 발매되었던 이 게임은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의 포맷을 패러디한 BL(Boys Love 1) )장르 게임이다. BL장르는 근본적으로 비주류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첫째, (주로) 여성이 생산하고 (대다수의) 여성이 소비하는, 생태계 특성상 젠더 편향적이다. 둘째, BL장르는 여성들 사이에서도 ‘독특한’ 취향의 것으로 특정된다. 대부분 BL장르 소비자들이 여성으로 상정되지만, 그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동인’이나 ‘비공개 커뮤니티’방식으로 자신의 취향을 숨긴 채 활동해 온 역사가 이를 반증한다. 실제로 BL 콘텐츠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취향에 대해 확고하게 이해하고 있으나, 성인이 되어서도 이를 드러내면서 소비하지 않는 경향들을 보인다. BL장르는 원본이라 할지라도 2차 생산의 성격을 갖는다. 이는 BL장르가 주류 콘텐츠가 아니었던(혹은 될 수 없었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인데, 주류의 다음이나 맞은편, 다시 말해 이성애 젠더 질서에 맞서는 방식으로 생산되었기 때문에 의미화 과정에 있어 이용자들이 직접 생산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정체성을 본질적으로 갖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주류적인 특성이 현대로 오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는 콘텐츠 소비 방식이 공적인 것에서 사적인 것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체제에서, 롱테일 전략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성되기 시작한 흐름으로 분석할 수 있다. 심지어 그 당시 나는 내가 키우는 딸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이상하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이쿠 왕자님〉에는 고정된 젠더 정체성인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선택적 주체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거하게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다시 말해 〈프린세스 메이커〉는 보편의 게이머를 ‘남성’으로 상정하고 있었던 것이고, 나는 여전히 게임의 역사에서 그 보편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그 순간 깨닫게 됐던 것이다. 3. B급의 힘 B급은 A급의 반대항에 서 있기 때문에, 주류문화에 매달리지 않는다. 동시에 B급은 반문화적인 성격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B급이 사회가 정한 A급인 주류에 반하는 것이라면, B급은 주류로 표현되는 지배적인 권력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효과에 대해 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윤 극대화를 목적으로 한 거대 자본의 영향 아래에서는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B급은 꾸준히 주류게임의 맞은편에 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의미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푸코가 지적했듯, 권력이 존재하는 곳에 저항이 있다. A급과 B급은 양분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A가 존재하기 때문에 B가 존재하는, 권력의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B급은 A급을 긍정하고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B급 정체성을 긍정하면서 존재한다. B급으로 불리면서도 끊임없이 생산을 지속하는 요인이 바로 여기 있다. B급이 가진 힘은 주류문화의 위계화나 독점화, 권력화에서 탈주하려는 욕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프린세스 메이커〉를 플레이하는 동안 강요되거나 권력으로 작동했던 무언가를 벗어나 〈어이쿠 왕자님〉을 플레이하게 되면서 느꼈던 해방감, 혹은 카타르시스는 결국 B급이라는 패러디의 형태로 드러났던 정체성을 긍정하면서 나타났던 현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A와 B의 존재는 위계가 아니라 서로 공존하며 권력의 줄다리기를 하는 셈이다. B급에서 자주 나타나는 패러디라는 양상을 살펴보면 더욱 그러하다. 패러디는 원본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다. 정상과 비정상, 규범과 일탈, 그리고 주류와 타자를 구분하는 경계가 패러디를 통해 수면위로 떠오른다. 특히 사회가 이상이라고 상정한 것을 모방하고 비트는 것은 자연스러움이 결과적으로 권력을 통해 만들어진 것을 사유하게 한다. 스토리텔링 기법 중 하나인 스핀오프는 기존의 중심이 되었던 원작의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관점에서 이야기를 창작한다. B급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저항하고, 그 가운데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낸다. 낯설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B급의 시각은 A급을 다시 보게하고 권력이 어떤식으로 작동하는지 주체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긴다. 게임의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다른 콘텐츠에 비해 경험의 몰입도가 높다. 그러니 우리는 B급에서 재미를 찾고 새로운 경험을 하길 욕망하는 것이다. A급과 다른 무엇을 또 다시 깨닫게 해주길 바라면서. 1) 남성동성애-서사를 일컫는 용어. 실제 동성애자의 문화와는 거리가 있으며, 남성동성애에 대한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장르라 볼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구독 서비스의 대두 앞에서 떠올리는 생각들
구독 서비스의 미래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과거 부분유료결제와 확률형아이템이라는 결제방식의 변화가 가져온 게임 내부까지의 변화를 겪으며 우리는 다음에 올 결제양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저 시장의 흐름에 맡기기만 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노동과 생산의 영역에서 가격의 결정이 그저 시장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짐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은 오늘날 최저임금제와 같은 여러 보완책들을 이끌어낸 바 있다. 아주 같은 맥락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소비와 이용의 차원으로 들어온 여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련의 ‘여가의 정치경제학’과 같은 생각을 떠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논문세미나] '스트리트파이터'는 무술martial arts인가?
그리고 그 운용기술, 다시말해 주어진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관념과 자세에서 존스는 70년대 무술영화 붐과 2000년대 대전격투 게임이 같은 맥락에 선다고 분석한다. 오늘날 현대 격투기에서 사실상 중국 전통무술의 실전성은 파훼되었지만, 7-80년대에 이소룡 영화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동양무술은 북미에서 실제로 무술 도장의 붐을 이끌어냈고 수많은 청년들로 하여금 괴성을 지르며 신체를 움직이는 무술의 동작을 따라하게 만들었으며, 같은 맥락에서 EVO #37 이벤트 또한 동시대의 수용자들로 하여금 디지털화된 무술과 비슷한 무엇을 따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Back [논문세미나] '스트리트파이터'는 무술martial arts인가? 13 GG Vol. 23. 8. 10. 크리스 고토 존스 (Chris G. Jones) 는 캐나다 빅토리아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 주전공은 동양철학과 일본불교 , 명상과 종교 계통이다 . 논문 < 스트리트 파이터는 무술 martial art 인가 ?> 이 왜 철학연구라조부터 나왔을지를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 철학자인 그는 ‘ 스트리트 파이터 ’ 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디지털 격투 게임이 플레이되는 과정을 살피며 그 속에 배어 있는 대중문화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이 기술미디어 시대에 어떻게 새롭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 2018 년에 나왔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이 논문을 오늘 소개한다 . From dragon to the Beast 대전격투 게임의 기원을 게임학자들이라면 다른 쪽에서 찾겠지만 , 존스는 대중문화사 속에서 대전격투 게임의 선조로 이소룡 Bruce Lee 과 그의 영화들을 꼽는다 . 그는 이소룡의 영화들 , < 용쟁호투 >, < 사망유희 > 와 같은 그의 대표작들이 유행을 탔던 1970 년대와 2004 년 격투 게임의 한 장면을 대비시키는데 , 바로 EVO #37 의 그 유명한 장면 , 우메하라 다이고의 ‘ 더 비스트 이벤트 ’ 다 . https://www.youtube.com/watch?v=JzS96auqau0 워낙 전설적인 e 스포츠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우메하라 다이고 대 저스틴 웡의 ‘ 스트리트 파이터 3’ 대결은 막판 KO 위기에 놓인 우메하라의 켄이 상대 춘리의 초필살기 연타를 가드하지 않고 ( 가드하면 가드 대미지가 들어와 KO 당한다 ) 하나하나 패리해내며 완벽하게 방어해낸 후 , 점프에 이은 초필살기 반격으로 역 KO 시키며 게임을 뒤집은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 존스는 이 장면을 보며 70 년대 이소룡 영화가 선보였던 무술 붐이 2000 년대에는 대전격투 게임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 존스는 7-80 년대 서구권에서 일었던 이소룡을 중심으로 한 무술 붐과 마찬가지로 학계는 2000 년대의 이 영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본다 . 우메하라의 역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리터러시가 필요한데 , 첫째는 ‘ 스트리트 파이터 3’ 의 기본적인 시스템과 규칙에 대한 이해 , 둘째는 이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여 정확한 움직임을 수행하는 신체의 운동능력이다 . 이를 존스는 각각 객체기술 object skill, 운용기술 locomotive skill 이라고 일컫는데 , 현재의 게임연구분야는 텍스트에 중점을 둔 관계로 주어진 규칙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운용기술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 그리고 그 운용기술 , 다시말해 주어진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관념과 자세에서 존스는 70 년대 무술영화 붐과 2000 년대 대전격투 게임이 같은 맥락에 선다고 분석한다 . 오늘날 현대 격투기에서 사실상 중국 전통무술의 실전성은 파훼되었지만 , 7-80 년대에 이소룡 영화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동양무술은 북미에서 실제로 무술 도장의 붐을 이끌어냈고 수많은 청년들로 하여금 괴성을 지르며 신체를 움직이는 무술의 동작을 따라하게 만들었으며 , 같은 맥락에서 EVO #37 이벤트 또한 동시대의 수용자들로 하여금 디지털화된 무술과 비슷한 무엇을 따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존스가 무술을 이야기할 때 중심에 두는 것은 무술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자세와 방식이다 . 존스는 이소룡과 무술영화가 보여주는 체술은 체술의 보여주기에 머무르지 않고 일종의 신비하고 경건한 수련의 자세를 포함한다고 본다 . 이를테면 이소룡이 주요한 장면에서 명상에 가까운 집중을 보여주거나 , 무술영화들이 주인공의 수련을 다룰 때 끊임없는 ( 이른바 ‘ 용맹정진 ’ 으로 대표될 ) 반복숙달이 단순히 육체적 훈련에 머무르지 않고 일종의 정신수양에 가 닿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 존스는 주목한다 .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디지털 대전격투 게임을 다루는 게이머들과 게이머 커뮤니티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 게이머 커뮤니티는 일정 수준에 오른 격투 게이머들의 경지를 수련과 정진을 통해 도달할 수 있으며 , 단순히 육체적인 숙달의 문제 뿐 아니라 정신적인 수양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 이를테면 앞서 이야기한 우메하라의 경우 , 4 초 동안 쏟아지는 춘리의 초필살기 13 개의 연타를 한번도 틀리지 않고 정확한 타이밍에 튕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눈과 손의 반응속도 뿐 아니라 그런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침착과 냉정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이며 , 이러한 자세가 곧 이소룡이 선보인 그것과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 격투 게임과 테크노-오리엔탈리즘, 오타쿠 무술이라는 주제는 서구에서 다분히 오리엔탈리즘적 관점과 엮여 받아들여져 왔다 . 이소룡은 서구인들에게 백인이 아닌 미국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헤게모니적 남성성으로 인식되었다 . 그가 < 맹룡과강 > 에서 척 노리스와 맨손격투를 벌여 승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 이소룡의 무술영화는 < 정무문 > 에서 일제 강점기에 놓인 중국의 상황을 다루는 것처럼 민족 , 인종이라는 테마와 떼어놓기 어려운 주제였고 , 이와 같은 맥락은 현재의 대전격투 프로 게임 씬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 일명 ‘ 아시아인의 손 Asian Hands’ 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 아시아인들이 여러 e 스포츠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고 ( 이는 한국의 ‘ 스타크래프트 ’ 나 ‘ 리그오브레전드 ’ 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같은 맥락에서 서구인들은 과거 이소룡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 아시안 프로게이머들을 일종의 초인적이고 신비주의적인 ,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고 받아들인다 . 이는 단순히 서구인들의 시선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 실제 대회에 출전하는 일본 게이머들은 스스로가 ‘ 우리는 일본인이므로 훨씬 잘 해낼 것이다 ’ 라고 인터뷰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 존스는 신비주의적으로만 언급되는 ‘ 아시아인의 손 ’ 을 이해하기 위해서 키지마 kijima 의 오사카 게이머 관찰연구 결과 (2012) 를 살펴본다 . 존스에게 있어 격투게임에서의 일본 우세는 그들이 뭔가 신비하고 영적인 훈련을 거친다기보다는 아케이드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 서구에서 거의 소멸한 아케이드에서의 대전격투는 일본에선 여전히 주요 상업지구의 대형 오락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 ( 다만 이 지점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애매하다 . 아케이드의 소멸은 규모는 다를지라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반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런 아케이드를 거점으로 삼아 일명 ‘ 무사도 ’ 라고 불리는 특유의 문화로부터 기인하는 도장깨기 dojo-yaburi 가 일본에는 활성화되어 있고 , 이 과정을 통해 일본 게이머들은 끊임없이 강한 상대를 만나며 더욱 수련에 정진할 수 있다는 것이 존스의 분석이다 . 그러나 이런 점보다 대중적으로는 ‘ 신비로운 아시아인들의 놀라운 격투능력 ’ 이 온라인 격투에서도 발휘된다고 이해된다 . 신화적인 무술 담론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무술담론과 현대 격투게임의 이와 같은 융합에는 80 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테크노 - 오리엔탈리즘의 오타쿠적 변형과 재수용이 함께 자리한다 . 홍콩과 도쿄 , 상하이의 네온사인 가득한 ‘ 이국적 ’ 야경으로 그려졌던 80 년대의 테크노 - 오리엔탈리즘은 디지털게임과 맞물리면서 오타쿠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낸다 . 90 년대 이른바 ‘ 쿨 재팬 ’ 의 출현과 함께 일어난 이 변화는 아즈마 히로키의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2001) 을 통해 해석의 기초를 얻게 되었다 . 데이터베이스화한 동물 , 슈퍼 정보처리기로서의 오타쿠는 기존의 다른 매체 오타쿠와 달리 게임 오타쿠를 일정 몰입도에 도달하기까지 강박적 헌신과 지속적 연습을 이어간다는 형식으로 차별화시키며 일명 ‘ 야리코미 ’ 와 같은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 이러한 게임 오타쿠는 무술 담론과 결합한 대전격투 게임과 만나며 오타쿠적 몰입을 무사도적 수련과 정진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대중적 이해를 낳았다고 존스는 이야기한다 . Emperor가 아니라 Demon King인 이상혁의 문제 서구권에서 바라보는 무술 , 혹은 무술의 개념을 가져온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 독자들 입장에서는 흥미로운데 , 무술과 같은 개념은 같은 동아시아권 문화에 있어 우리에겐 좀더 내재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 서구권에서 바라본 것처럼 우리에게 무술은 굉장히 신비로운 것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 이를테면 한국에서도 격투 게임의 어떤 순간들을 무술 , 아니 좀더 우리 식으로라면 격투게임 고수들의 모임을 일종의 무림武林으로 비유하거나 , 무릎 배재민의 파키스탄 원정을 일종의 폐관수련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 분명 존스의 이해와 우리의 이해는 일면 상통하지만 , 과연 우리의 그것이 서구의 것처럼 신비스러운 대상인가를 생각해보면 둘의 차이 또한 명확하다 . 테크노 - 오리엔탈리즘은 디지털게임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오타쿠 문화와 엮이며 독특한 장면을 자아낸다 . 다만 존스의 의견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아마도 ‘ 왜 e 스포츠에서 동아시아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가 ?’ 라는 질문에 대해 존스의 의견은 명확한 단 하나의 답으로는 자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 당장 한국이 우세를 점하는 e 스포츠 종목들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이 존스의 개념 안에서 거론되는 오타쿠로 분류될 수 있는지와 같은 쟁점들을 새롭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 한국에서도 아케이드는 이제 대중적인 문화에서 멀어져가는 추세고 , 오히려 대전격투 게임의 고수들은 네트워크 플레이로 도장을 옮겨 안착한 지 오래다 . PC 방의 존재는 여전히 과거 아케이드와 같은 오프라인 도장 역할을 하고 있지만 , 애초에 ‘ 리그 오브 레전드 ’ 같은 게임은 PC 방의 로컬이 아닌 네트워크상의 5:5 대전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 또한 명백한 해답이 되기는 어렵다 . 결론을 대신하는 한 가지 힌트라면 , 적어도 우리는 왜 동아시아 선수들 , 좀더 우리 입장으로 좁혀 본다면 왜 한국의 e 스포츠는 그토록 높은 성과를 내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변의 접근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한국이 e 스포츠의 선두주자라는 것까지만을 이야기하지만 , 한편으로는 세계 최고의 LOL 플레이어인 페이커 이상혁의 별명이 서구권에서 ‘Emperor’ 가 아니라 ‘Demon King’ 이라는 사실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점을 존스의 글은 돌아보게 한다 . 테크노 오리엔탈리즘과 엮여 돌아가는 오늘날의 e 스포츠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e 스포츠 그 자체 뿐 아니라 , “ 동아시아의 e 스포츠 ” 로 끊임없이 서구에서 타자화되는 경향과 그 결과 또한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 참고문헌 Kijima, Y. (2012). “The Fighting Gamer Otaku Community: What are they ighting about?” In Fandom Unbound: Otaku Culture in a Connected World, eds. Mizuko Ito, Daisuke Okabe, and Izumi Tsuji. Yale University Press, 2012, pp. 249–74.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Lost Ark and the Impression of Korean Games from the Western Perspective
Lost Ark and the Impression of Korean Games from the Western Perspective On February 11th, 2022 after three days of early access, Lost Ark officially released in the west to over one million players. Produced by Smilegate, a Korean developer, and distributed in the west by Amazon Game Studios, the release of Lost Ark is an opportunity to consider the impression that Korean games have made among western audiences. Despite several successful Korean games launching in the West over the last 20 years, the idea of a ‘Korean game’ hasn’t really taken hold in the public consciousness of western players in the same way Japanese games have dominated the gaming landscape. Through a combination of Lost Ark’s management, the engagement of high-profile content creators, and the role of the Korean Lost Ark community in helping the game succeed among the western playerbase, Lost Ark is in a unique position to configure western player expectations about what a Korean game can be. < Back Lost Ark and the Impression of Korean Games from the Western Perspective 05 GG Vol. 22. 4. 10. *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in: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2&match=id:117 Lost Ark and the Impression of Korean Games from the Western Perspective On February 11th, 2022 after three days of early access, Lost Ark officially released in the west to over one million players. Produced by Smilegate, a Korean developer, and distributed in the west by Amazon Game Studios, the release of Lost Ark is an opportunity to consider the impression that Korean games have made among western audiences. Despite several successful Korean games launching in the West over the last 20 years, the idea of a ‘Korean game’ hasn’t really taken hold in the public consciousness of western players in the same way Japanese games have dominated the gaming landscape. Through a combination of Lost Ark’s management, the engagement of high-profile content creators, and the role of the Korean Lost Ark community in helping the game succeed among the western playerbase, Lost Ark is in a unique position to configure western player expectations about what a Korean game can be. To all the Korean games we loved before Lost Ark is far from the first Korean game to make an impact among western players. Since the early 2000s, there have been several Korean MMOs that resonated with a relatively small number of dedicated players. Ragnarok Online (Gravity Interactive, 2003), MapleStory (Wizet, 2003), the Lineage series (NCSoft, 1998, 2003), and more recently games like Blade and Soul (NCSoft, 2012) and Black Desert Online (Pearl Abyss, 2014) have defined Korean games for dedicated players engaged with this segment of the MMO landscape. A substantial number of these Korean games, for better or worse, live in the shadow of World of Warcraft, the perennial market leader in the western MMO market. From the perspective of a former World of Warcraft player, the release of Lost Ark is reminiscent of another Korean MMO release, 2009’s Aion (NCSoft). WoW frequently has content draughts - or the periods in between patches and expansions where players become fatigued by completing the same content. In search of something new, they gravitate to new games, oftentimes new MMOs, to fill their time. These new games, often labeled ‘WoW Killers’ by players, have strong launches as upon release the games are full of promise for a tired MMO player base: familiar yet fresh systems, improved graphics, new locales, new classes to try and new monsters to defeat. In the lead-up to release, players work themselves into a frenzy of hope believing that this new game will be the one that they can dedicate another few years of their lives to playing. Aion was one such game, but as the story so often goes, it had a short-lived moment of glory upon its release, and as WoW released new content players migrated back to their familiar home in the wake of another failed ‘WoW Killer’. It would be easy to think that Lost Ark’s situation is more of the same, and while it has lost over 50% of the 1.3 million players it launched with according to steamcharts, it has crucially survived the release of an important content patch for World of Warcraft’s latest expansion that would have otherwise doomed other competitive MMOs. At this point, Lost Ark is set up to sink or swim on the back of its own management, both by Smilegate and Amazon Game Studios. Lost Ark has the opportunity to succeed or fail on its own merits and is presently positioned to represent Korean games beyond what prior Korean MMOs have been able to do. The only other Korean game with this much potential to shape the west’s understanding of Korean games was PlayerUnknown’s Battlegrounds (PUBG Studios, 2017). Peaking at just over 3 million players after its release and consistently floating above 400,000 thousand players since this time according to steam charts, PUBG was a successful Korean title and a pivotal moment for the last few years of gaming. Along with H1Z1 (Daybreak Company, 2015), PUBG launched us into the battle royale era. However, for all its monetary success and its impact on the industry, PUBG’s legacy as one of the progenitors of the battle royale genre overshadowed its status as a Korean game. In his work, The Rhetoric of the Image, French philosopher Roland Barthes coined the term ‘Italianicity’ to explain how certain signs - the colors of the Italian flag, particular Italian words and names, and a combination of ingredients (tomato, mushroom, pepper) - combine to express the idea of Italian culture.1) While these images are built on cultural stereotypes, they are easily legible from the outside as something that represents Italy, regardless of how Italian those images might actually be. Bringing it back to games, the ‘Koreanicity’ of Korean games, if there is such a thing, has been established primarily through early Korean MMOs, although I would argue even those games haven’t left a strong impression within western gamer culture beyond their niche. PUBG, for all its success, has no obvious tropes of Korean games or clear design quirks of South Korean game development that are clearly legible to the average player. What’s more, the grassroots spread of the game didn’t rely upon marketing the game as a Korean product. The result is an incredibly successful and impactful game with unprecedented reach for a Korean title that didn’t become a representation of Korean games in the West, largely because it was not clearly perceptible as a Korean game except to the most engaged players. Lost Ark, in contrast to PUBG, is set up to represent Korean games to a large western audience. The game launched in Korea in 2019, and has had players across the globe using VPNs to play the game before it was released in their own regions. In anticipation of the NA and EU release of the game, several Youtubers and live streamers produced content breaking down aspects of the Lost Ark metagame in other regions. One such Youtuber, Kanon, produced videos where he is actively translating from Korean to English for a high-level Korean player to establish a tier list for the NA/EU audience.2) Even before many NA/EU players were able to play the game, the game had been clearly established as a Korean game to those most eager for the game’s release. Upon Lost Ark’s launch, there was a substantial demand for the game’s original Korean voiceover pack which was included as free downloadable content with the game’s launch, which indicates that a non-negligible amount of NA/EU players want to play Lost Ark as an authentically Korean game, and also signposts the game’s Korean origins for those who might still have been unaware. At the time of this article, well over a month into the game’s NA/EU life, there are frequent comments on the official forums, the subreddit, and in-game chat that compare the content roll-out strategy of the NA/EU version of the game to what has happened, and what continues to happen on the Korean servers. Whatever else happens, Lost Ark has clearly established itself as a Korean game. The most exciting thing about Lost Ark’s trajectory towards reaching the Western audience as a distinctly Korean product is that it has the ability to set the tone for what a Korean game can be to many players unfamiliar with Korean games. The authors of this article have progressed fairly deep into Lost Ark, with one of the authors having reached the current available endgame on the game’s North American servers. Through that journey, we’ve experienced some extremely satisfying and responsive combat against a variety of compelling bosses. The world of Lost Ark is guilty of being a generic fantasy world, but at the same time aspects of it are also strange and unplaceable compared to other games in the MMO genre. One incredible scene in the Dwarf-inhabited continent of Yorn sees NPCs forge a sword in a non-sequitur broadway musical sequence. The game is full of these odd divergences in tone that somehow manage to work in the context of the game. There is also an unplaceable cuteness to many of the creatures that inhabit this world. From our perspective as players it is difficult to know how many of these features of the game are representative of traits across Korean games, and how many of them are unique to the game that Smilegate and Tripod Studio have produced. That said, there is a tendency among players unfamiliar with Korean games at large to read the elements of the game that we cannot readily associate with more familiar content, to conditions or trends of Korean development rather than of Smilegate and Tripod Studio. These qualities of Lost Ark are becoming holistically representative of Korean design whether or not they actually are, which further develops the idea of ‘Koreanicity’ among western players. While Lost Ark is contributing to a developing ‘Koreanicity,’ it has not escaped prior notions of ‘Koreanicity’ that sprung out of earlier MMOs. In the western discourse about Korean games, there is a tendency to view them as grindy: excessively repetitive experiences that require you to do the same tasks day after day for minor rewards or character power increases. Unfortunately for Lost Ark, one of the most visible systems among the most die-hard players is the ‘honing’ system - a system through which you upgrade your weapons and armor by collecting an array of materials. Early on you are guaranteed to succeed in your upgrades and gathering material is fairly simple, but as you progress through the game you require an increasing number of materials and you start to have low chances of success in upgrading a piece of equipment. This coincides with a second element of the game, which is the ability to put real money into the game to purchase some of these materials. For many players this makes Lost Ark a ‘pay to win’ (p2w) game, which is typically an extremely negative trait for a game to have among western gamers, as many believe it undermines the integrity of the game experience, allowing unfair advantages that undercut individual time investment or player skill. It is not uncommon to see discussions about the pay to win nature of Lost Ark in videos, on the forums, and in the game itself. Many advocates or critiques of the game deploy, or suppress, the pay to win rhetoric to convince their fans to try out or stay away from the game. The pay to win aspect of the game is at the center of what has been the most recent breaking point for Lost Ark. With the release of the March update, a new endgame boss was released, and many players felt pressured to spend real money to progress through the end game, while other players felt as though the gap was insurmountable and began to lose interest. The design choices going forward regarding how to manage this situation will be pivotal for leaving a strong impression on western players about Korean games. It is not just about the form and content of the games, but about how developers support and communicate with players. This facet of Lost Ark is complex because Smilegate and Amazon Game Studio are both responsible for the game, but are leaving different impressions on players. * Players debate pay to win aspects of Lost Ark - Author Screenshot. Prior to the release of Lost Ark the game’s director, Gold River, gave an official interview regarding the release of the game and it was received exceptionally well by the community.3) In contrast, Amazon Game Studio has taken a lot of the blame for the shortcomings of the game, particularly issues with the EU server that caused players to have to wait through excessive queue times to even play the game. In all of this, there is a bigger question about who is making decisions about what is happening around the game, and so far Smilegate is able to avoid much of the criticism for the game, with Amazon Game Studios being the punching bag for disgruntled players. However, in responding to these problems, it is AGS that is the constant voice between players and those who manage the game. One Redditor remarked that Gold River was ‘this game’s Yoshi P’ a reference to Final Fantasy XIV director Naoki Yoshida who frequently addresses the concerns of the Final Fantasy XIV community and has a kind of celebrity status among the players. Equally, a western game industry figure akin to Yoshi P is Jeff Kaplan during his tenure as game director for Overwatch. He too generated a celebrity status within the Overwatch community, conversing with players on forums and through developer update videos on YouTube. The power of the auteur cannot be diminished in how a cultural product will be publicly perceived. When thinking about the public consciousness of Korean games, Gold River can play a key role in shaping how players view not just Lost Ark, but Korean games in general. Pragmatic Players in a Daunting Genre It is worth noting that beyond the “Koreanicity” and elements of extensive grind or pay-to-win in Lost Ark is that of relative access to a typically daunting genre for new players. The release of a new MMO will always spark a flux of populace movement from other MMOs in the west, whether it is produced by a western or non-western studio. Part of the appeal around Lost Ark for one of the authors was that it allowed access at the ground level of an MMO. Not only this, but it offered extensive onboarding and tutorials to guide players new to the game (and perhaps the genre as a whole) into the world of Arkesia. However, this doesn’t mean Lost Ark offers a simplistic MMO experience either past a certain point in gameplay. Simply put, being able to join an MMO at its launch, compared to trying to join a long-established MMO such as World of Warcraft and its decade worth of content, lore, changes, and dedicated player base, makes Lost Ark so appealing to anyone new to the genre. Lost Ark provided an opportunity for those completely new players interested in playing an MMO the ability to do so. What comes with that, as mentioned prior, is also a lack of historical design knowledge and experience in what makes an MMO distinctly Korean. So… What’s Next? The challenge ahead is for Smilegate and Amazon Game Studios to instill confidence in increasingly apprehensive players that they are heard by both entities managing the game. There is a real possibility that, if the future of the game is handled poorly, that Lost Ark as a high-profile Korean release, could reaffirm the most insidious aspects that western players have come to associate with Korean games. Despite all of its charm and the level of polish on its gameplay, if Lost Ark fails to engage a Western audience over the long term and loses players because of the grindy and pay to win elements of the game, it will increasingly solidify those characteristics among western players. Even if Lost Ark maintains its current player count, these elements are still present as an integral part of the game, but some of the other, more unique aspects of Lost Ark as an experience may receive increased visibility. It’s not enough, however, to change the overall perspective on Korean games. As this article has shown, there are very few Korean games that make it to the west, and so the western perception of Korean games and their ‘Koreanicity’ are built on very few points of contact. Lost Ark could be a good point for reinvigorating western interest in Korean games, but it can only change or enhance the perception of western players so much. Ultimately, western players need more high profile Korean games, whether they look like the Korean MMOs of the past, PUBG, Lost Ark, or something altogether new. Western players seem willing to take a chance on something unexpected and “new” in the Western market, even with their pre-existing conceptualisation of what such a game might entail in terms of play. Undoubtedly, there is a plethora of western gameplay and design stereotypes and expectations but whether these actually permeate into the Korean market, an idea of “Westernicity” if you will, is unclear. What we can see here is an asymmetrical cultural exchange of sorts. Western players have an inherently stereotypical view of Korean games, gaming culture, and gamers - not always exported from Korea itself (see: D.Va in Overwatch). They have a limited experience with Korean games which leave them unable to fully engage in a larger discourse and comparison between the two markets. Even with tangential comparisons with the Japanese game market, it stands as such a behemoth alone that dwarfs the Korean market with such strongly established norms and discourse. In this conclusion, the authors find themselves wanting more Korean games to launch and disrupt the western market, to reinvigorate the perception of Korean games beyond what has been established among players up until now. 1) Barthes, Roland and Stephen Heath. Image, Music, Text. New York: Hill and Wang, 1977. 2) Youtube Video “LOST ARK EXPOSED - PVE Interview with KR’s BEST (Jiudau) (accessed March 28th, 2022) https://www.youtube.com/watch?v=_8_kHtaXy8o&t=2919s 3) Reddit Thread, “The Man the Myth, the Legend GOLD RIVER (Accessed March 22nd, 2022) https://www.reddit.com/r/lostarkgame/comments/sn80q4/the_man_the_myth_the_legend_gold_river/ Works cited: Barthes, Roland and Stephen Heath. Image, Music, Text. New York: Hill and Wang, 1977.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Game Researcher) Cortney Blamey Courtney is a Communication PhD student and game designer at Concordia University, Montreal, Canada. Her doctoral research concentrates on the process of meaning-making in games tackling serious themes and exploring this relationship between player and designer in her own critical game design process. Her previous research unpacked Blizzard’s approach to community moderation in Overwatch by investigating both developer and community inputs on forums. She is a member of the mLab, a space dedicated to developing innovative methods for studying games and game players and TAG (Technoculture Arts and Games).
- 캣스모폴리틱스(Catsmopolitics): 고양이와 기계가 자본세 지구에 착륙하는 방법
인종차별, 여성혐오, 소수자 차별, 장기화된 실업, 투기와 불평등, 전쟁과 극우정치가 만연한 오늘날 유일하게 아무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좌파도 우파도, 남성도 여성도, 베이비부머도 청년도, 무슬림도 카톨릭도 고양이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기꺼이 골목길에 사료와 물그릇을 갖다놓으며, 고양이와의 사랑스런 일상을 촬영해 공유한다.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woo Shin A cultural researcher and cultural critic, specializing in critical theory of technology and the political economy of media. Researches cultural phenomena surrounding gaming, 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s, and blockchain, and teach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nd the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 <폴아웃 3>로 보는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인간은 절멸을 앞둔 위기 속에서도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계속 노력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기에 서술한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거나 그것이 우려될 때, 인류는 블레이드 러너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인류는 살아갈 것이고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결정을 신중히 하고 혹시 다른 대안이 없는지 좀 더 찾아보자는 주장은 보편타당성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우려나 악몽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의 발언을 선동으로 규정하는 선동이 더 위험한 세상 아닌가?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후쿠시마, 오염수, 폴아웃3, 프로젝트퓨리티, GECK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Kim is known for his activities as a critical expert on current affairs in various press media. But he is also an active gamer who never let go of games. Some of his publications includes 『a cynical society』, 『Otaku Loved Lenin』, as well as a co-author of 『Now, Here, Far-Rightism』, 『right-wing discontent』, 『Twitter, that 140-character egalitarianism』. His latest publication is 『Democracy where you vote because you don't like that side』.
- [인터뷰] AI로 새로운 게임성을 만든다는 것: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의 이가빈 PD,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의 한규선 PD
크래프톤의 스튜디오 중 하나인 렐루게임즈는 딥러닝 기술을 게임과 접목시켜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여러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음성 역할 시뮬레이터와 프리폼 채팅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게임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평단과 게임사의 관점뿐 아니라, 유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즈큥도큥>)의 이가빈 PD와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하<스모킹건>)의 한규선 PD를 만나, AI 기술의 가능성과 현시점에서의 한계를 짚어보고, 새로운 게임성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게임과 예술] 로딩중인 세계의 권태와 노동에 관한 소고
상희는 유희와 즐거움의 이미지로서 소비되던 게임의 형식을 빌려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노동하는 신체에 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 완전히 개인화된 세계에서 내면적 사유로서 ‘권태’가 가진 정서를 재조명한다. < Back [게임과 예술] 로딩중인 세계의 권태와 노동에 관한 소고 16 GG Vol. 24. 2. 10. 마법과 환상, 신과 영웅이 사라졌다. 과거의 인간은 신이나 영웅이라는 신화적 인물을 만들어 그들의 통제 속에서 예정된 일을 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지금의 운명은 내 손에 달려 있으며, 미래는 나의 치열한 노력으로 구현되는 시간이 됐다. 삶의 방향키가 나에게 쥐어진 만큼, 오늘날 우리에게는 자유와 열정이 뒤따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인스타 릴스, 유튜브 숏츠 등 자극과 도파민이 과잉 생산되는 환경에서 더 큰 쾌락만을 좇는 인물들에게 남는 것은 무기력이다. 과거 부모의 세대를 떠올려보면, 노동과 유희는 분리된 영역으로 자리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퇴근 후 자기만의 취미를 갖거나, 게임을 즐기는 등 삶의 규칙과 질서를 세우는 일이 어색하지 않았다. 한편, 당대의 풍경에서 어느 정치인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공약은, 마지막 산업 시대형 구호로서 공허한 외침으로 느껴진다. 노동과 생산이 강제되는 오늘의 자본 사회에서 우리들의 유희와 놀이 능력을 지키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글은 ‘번아웃 증후군’이 유행처럼 번져가는 오늘날,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의 생태를 살펴본다. 특히 지난겨울 시청각랩에서 진행된 상희 개인전 《Worlding…》(2023.12.10.-12.31)을 중심으로 노동과 실존적 사유로서 권태라는 감정을 이야기해 본다. 전시의 제목이자 작품의 이름인 〈Worlding…〉(2023)은 비동기 온라인 게임의 양식을 활용한 참여형 VR 작업이다. 실시간 게임과 달리 유저간의 상호작용 없이 혼자서 플레이 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때 비동기 온라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개별 플레이어들의 행위는 실시간이 아닐 뿐, 일정한 시차를 두고 흔적으로서 연결된다. 상희는 유희와 즐거움의 이미지로서 소비되던 게임의 형식을 빌려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노동하는 신체에 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 완전히 개인화된 세계에서 내면적 사유로서 ‘권태’가 가진 정서를 재조명한다. 게임 스테이지와 플레이하는 노동 〈Worlding…〉은 구체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출발한다. 관객/플레이어는 전임자에게 특정 과업을 인계받아 일을 시작한다. 임무는 늪지 위에 나타난 거인을 묻는 것. 늪지의 파수꾼이 되길 요청받은 관객은 낮 동안 사체가 된 거대한 육신을 흙으로 퍼붓고, 밤이 되면 처소로 돌아가 전임자가 남긴 일지를 읽는다. 플레이 타임의 대부분은 거인을 묻는 작업에 소요된다. 그러면, 다시 내일이 온다. 어제의 노동이 없었던 일처럼, 전날 묻어놓은 사체가 다시 벌거벗은 채 놓여있다. 마치 시시포스의 형별 같은 노동이 새롭게 반복된다. 앞서 언급했듯, 상희는 게임의 문법을 작업에 빌려왔는데, 그것은 작업의 서사를 스테이지화 하는 지점에서 알 수 있다. 통상 게임 공간은 플레이어의 경험을 구체화하는 수단으로서 의미가 확장된다. 서사는 스테이지 구축을 통해 전개되며 게임의 기승전결을 구성하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스테이지 단계를 따라 퀘스트를 달성한다. 반면, 하루를 단위로 분리되는 〈Worlding…〉의 스테이지에서는 ‘퀘스트’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오늘의 노동량을 채우세요.”라는 문구로 퀘스트를 쥐여주지만, 임무에 따른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 게임이 스테이지를 건너가는 방식으로 서사를 전개한다면 상희의 작업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바 없는 동일한 장면의 무대를 마련하고, 보상 없는 퀘스트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은 화면 속 컨트롤러의 이미지다. 상희는 컨트롤러를 두 개의 손으로 표상하면서, 하루하루 스테이지를 거칠수록 노화를 거치는 손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점점 손은 거무죽죽한 껍데기로 변해간다. 두 개의 손은 거인을 매장하라는 ‘오늘의 노동량’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흙을 퍼붓는다. 두 손으로 컨트롤하지만, 아무것도 만질 수 없고 쥘 수 없는 이미지에 관한 공허한 감각이 느껴진다. 이 무기력한 손의 반복적인 운동은 내일이면 파헤쳐질 거대한 몸집 위로 다시금 흙을 쌓아 올린다. 절대 끝나지 않는 매장이 디지털 구조망에 실체 없이 묶여버린 노동하는 몸을 상기시킨다. 끝을 기다리는 게임 크라우드 워킹, 플랫폼 노동, 나아가 인공지능 노동까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기술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이 활개 친다. 노동 해방이라는 이 듣기 좋은 기획은 미래 신기술이 고된 노동을 줄여주고 우리의 삶을 더 자유롭게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정말로 노동자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었는가? 기술과 사회가 가속할수록, 시스템을 체화한 우리 역시 이전보다 더 빠르고,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물리적으로 사무실을 벗어나도 업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가상과 현실이 불가능해진 것처럼 일터와 일상 간의 경계 역시 허물어진다. 기술을 사용하는 사회적 방식에 따라 핵심부서를 제외한 간접부서를 사내 하도급, 파견근로, 아웃소싱으로 외주화하면서 노동자는 노동자 아닌 형태로 일의 네트워크에 붙들려 있다.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연결된다는 것. 이 말은 노동과 유희의 경계 없이 우리 몸이 항시 노동하는 상태로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가속화된 세계에서 느린 몸은 무자비하게 도태된다. 기술 시스템의 자동화, 자율화가 더 빨리 진행될수록 개개인의 무력화 역시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상희는 게임의 조건으로부터 노동의 수행적인 성질에 관여하고 있다. 실행이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고, 수행이 신체의 반복 훈련을 통해 사건을 발생시키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면, 상희의 작업 속 노동하는 몸은 이미지의 실행으로써 당대 노동이 가진 수행성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이는 작업의 주요한 정서인 지루함과 ‘권태’에서 발견할 수 있다. 흔히 게임은 쾌락과 유희, 혹은 몰입과 중독의 차원에서 논의되곤 하지만, 작가는 권태를 말하기 위해 게임 형식을 빌려온다. 관객으로 하여금 게임이 서사화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스스로 밟을 땅의 형세 만들기를 제안하면서 말이다. 아무도 정해주지 않은 ‘오늘의 노동량’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게임의 타임라인. 컨트롤러를 쥔 물리적인 신체는 VR 공간의 움직임과 연동된 채 지루한 노동을 반복 플레이한다. 관객은 VR 게임에 매핑된 신체 이미지에 자기 몸을 맞춘다. 플레이 초반에는 몸의 불일치한 감각에 집중하지만, 하루하루 동일하게 디자인된 스테이지가 넘어갈수록 관객은 게임 속 신체와 연동하며 점차 뻐근해지는 팔과 어깨를 느낀다. 그렇게 플레이는 고통스럽게 지루해진다. 로딩 중인 세계에서 권태를 재발견하기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는 텅 빈 공간이다. 공동체적 질서, 삶의 방향성이 사라진 공터에서 권태에 쉽게 노출되곤 하는 것이다. 오늘날 혼자 놀고, 혼자 일하고, 혼자 먹는 사회에서 우리는 나르시시즘적 쾌락과 향유의 주체로 자리하게 되며, 가상의 풍경에 매혹된 채 스스로 고립되길 선택한다. 상희는 이런 오늘의 풍경을 가상의 공간에 옮겨두고 있다. 홀로 하는 외로운 노동, 언제 끝날지 모를 지루한 움직임, 타자가 부재한 세계관. 관객이 헤드셋을 벗어두고 떠나면, 늪지에는 새로운 관객, 즉 늪지의 새 파수꾼이 찾아올 것이다. 이들은 서로 마주치지 않는다. 전시 공간의 관객은 전임자의 과업을 이어 그의 노동 행위를 반복한다. 이때 작업에서 특기할 만한 지점은 플레이어가 HMD 헤드셋을 벗어두고 떠난 이후부터 발견할 수 있다. 긴 플레이 타임으로부터 해방되면, 관객은 지끈거리는 머리와 묵직한 어깨를 움직이며 헤드셋을 벗는다. 그리고 나면 VR 공간에서 축적한 개별 관객의 데이터가 종이 위로 출력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거인의 육체를 덮은 땅의 모양새에 따라 데이터가 지형도를 만든다. 고사양 그래픽과 함께 VR에서 구현된 땅이 2차원의 평면적 데이터로 공간에 쌓인다. 그와 동시에 전시 공간 아래 자리 잡은 지하실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전시에 참여한 모든 관객의 실행 데이터가 합산되어 지도의 형상으로 투사된다. 관객은 물리적 공간과 가상 공간이 서로 연동하는 방식으로써 또 다른 노동의 흔적을 발견한다. 말하자면, 〈Worlding…〉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권태로운 세계를 구축하면서 오롯이 흔적으로서 연결된 공동체를 감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권태의 가장 주된 증상은 시간을 시간 자체로 인식하는 것에 있다. 권태의 주체는 시간을 감각하는 자기 자신을 마치 하나의 대상처럼 낯설게 의식한다. 그리고 이는 나와 당신을 구획하는 거리, 혹은 너와 나를 엮어내는 공동의 지형을 관찰하도록 제안한다. 모든 시간이 빈틈없이 꽉 차 버린 사회, 24시간 ‘온라인’으로 동기화된 몸으로부터 권태를 느낄 여유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상희는 너무 많이 묶여있는 몸들을 ‘비동기화’하길 시도한다. 묻히지 않는 거인의 죽음, 어디서 왔는지 그 실체조차 알 수 없는 대상으로부터 권태와 고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요컨대 상희는 재미의 왕국에서 세상의 사건 사고가 하나의 이미지, 또는 껍데기로 소비되는 장면을 포착하고, 분초를 다투는 오늘 사회의 시간에 무게를 싣는 방식으로 속도를 지연시킨다. 그렇게 로딩된 세계가 늘어뜨린 시간 속에서 권태의 자리를 마련하며 오직 홀로, 나를 대면할 실존적 사유를 요청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술비평) 이민주 이민주는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글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린다.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의 관계를 짚은 《동물성 루프》(공-원, 2019, 공동 기획),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미학성과 정치성을 조명한 《논캡션 인터뷰》(의외의조합, 2021, 기획), 연극의 형식을 빌어 전시의 사건성을 모색한 《#2》(두산갤러리, 2023, 공동 기획)를 기획했다. 이미지가 만드는 사건과 수행적 성질에 주목하며 비평적 글쓰기를 고민하고,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번역 관계를 연구한다.
- 노미배 천하제일 와갤요리 대회에 어서 오세요
케이크는 거짓말이다. 〈포털〉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문장이다. 게임 속 인공지능 글라도스는 플레이어에게 모든 테스트 챔버를 통과하면 케이크를 보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제안은 거짓이었다. 정확히는 케이크는 있다. 다만 플레이어가 들어갈 수 없는 방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 짓궂은 장면 이후 플레이어 중 누군가는 화면 너머 케이크, 블랙 포레스트를 진짜로 굽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잠깐 스쳐 지나간 레시피 조각을 짜맞춰 베이킹하고 사진을 올렸다. 글라도스의 케이크는 거짓말이긴 했지만 영원한 거짓말이 되지는 않았다. < Back 노미배 천하제일 와갤요리 대회에 어서 오세요 30 GG Vol. 26. 6. 10. 1. 케이크는 거짓말이‘었’다 케이크는 거짓말이다. 〈포털〉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문장이다. 게임 속 인공지능 글라도스는 플레이어에게 모든 테스트 챔버를 통과하면 케이크를 보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제안은 거짓이었다. 정확히는 케이크는 있다. 다만 플레이어가 들어갈 수 없는 방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 짓궂은 장면 이후 플레이어 중 누군가는 화면 너머 케이크, 블랙 포레스트를 진짜로 굽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잠깐 스쳐 지나간 레시피 조각을 짜맞춰 베이킹하고 사진을 올렸다. 글라도스의 케이크는 거짓말이긴 했지만 영원한 거짓말이 되지는 않았다. 〈포털〉만의 에피소드에 국한할 것도 아니다. 게임 속 음식은 늘 조금은 이상한 자리에 있다. 〈디아블로〉의 빨간 물약은 체력 회복이라는 숫자로 환원되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빵 한 조각은 일정 시간 동안 능력치를 올려주는 효용 아이콘이며, 〈젤다의 전설〉에서 링크가 솥에 재료를 던질 때 화면을 가득 채우는 요리 컷씬조차 영양 정보를 담은 인벤토리 칸으로 정리된다. 어느 경우든 게임 속 음식은 보이지만 먹을 수 없다. 이 어긋남이 게임 요리책이라는 출판 장르를 발생시킨 동력이다. 지난 십 년 사이 영미권 출판 시장에는 이런 책들이 꽤 많이 출간되었다. 〈폴아웃〉 요리책, 〈파이널 판타지〉 요리책, 〈어쌔신 크리드〉 요리책, 〈원신〉 요리책. 표지마다 게임의 로고가 박혀 있고, 사진은 게임 속 음식을 진짜 음식처럼 보이게 찍어두었으며, 안에는 레시피가 빼곡하다. 이 장르에 표준은 첼시 먼로 카셀이 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공식 요리책: 진짜 맛있는 아제로스 요리 백과』다. 책의 실물은 일단 묵직하다. 표지는 와우 특유의 짙은 황금색과 푸른색의 게임 로고가 박혀 있다. 누가 봐도 게임 굿즈처럼 보이는 책이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단순한 굿즈가 아니라, <와우> 세계관을 좋아해서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묶은 결과물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미디어 연구자 니콜 라메리히스는 팬이 게임 속 음식을 부엌에서 만들어 먹는 과정을 “글라도스를 진짜로 이기는 행위”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진짜 맛있는 아제로스 요리 백과』는 그 일을 한 권의 출판물로 정리한 결과다. 2. 헤드노트가 만드는 세계 이 책을 다른 요리책과 가르는 결정적인 장치는 레시피가 아니라 그 위에 붙은 짧은 헤드노트들이다. 보통의 요리책에서 헤드노트는 음식의 유래, 저자의 회상, 조리할 때 유의할 점 같은 것을 적어두는 자리다. 그런데 이 책의 헤드노트는 <와우>를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생소한 이름들을 슬쩍슬쩍 호명한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이런 문장들과 마주치게 된다. “호잰의 위핑 스프만은 건드리지 말 것.” “단팥빵이 리리 스톰스타우트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염소 치즈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제이나 프라우드무어 역시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볶음의 대가인 안시아 아이언 포우가 직접 지도한 조리법 중에 가장 간단한 요리가 바로 당근 볶음이다.” “이 언더시티의 스낵은 호드 종족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와우>를 해본 독자라면 이 이름들이 누군지 곧장 알아챌 것이다. 리리 스톰스타우트는 미스트 오브 판다리아 확장팩의 핵심 인물이고, 제이나 프라우드무어는 얼라이언스의 가장 유명한 영웅 중 한 명이다. 안시아 아이언 포우와 아비가일 쉬일은 게임 안에서 요리 스킬을 가르쳐주는 트레이너 NPC다. 헤드노트들은 <와우> 세계 안에 실재하는 인물들을 부엌의 우스갯소리에 호명하고 있다. 캐릭터 피규어, 일러스트 아트북, 사운드트랙과 같은 게임 굿즈는 현실 세계에서 게임 세계의 사물을 보여준다. 보는 사람은 분명히 현실 세계에 서 있고, 게임은 그 너머의 어딘가에 있다. 그런데 이 책의 헤드노트는 그 거리를 묘하게 흐트러뜨린다. “제이나도 동의할 것이다”라고 쓰는 순간, 책의 화자는 제이나를 마치 독자가 아는 누군가처럼 혹은 잘 알려진 미식가 친구처럼 호명한다. 화자는 현실 세계의 안내자가 아니라 제이나가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아는 <와우> 세계 안의 누군가다. 다른 헤드노트들이 이 감상을 강화한다. “이 조리법은 칼림도어의 먼지진흙 습지대에서 비롯된 원조 조리법과는 다르게 용을 해칠 필요가 전혀 없다.”— 용숨결 칠리 “서부 몰락지대의 낚시꾼들의 원조 조리법이 명실상부 최고다.” — 조개 스프 “한때 멀고어 지역의 타우렌 부족만이 먹던 주식이었다.” — 옥수수 만나빵 “한때 고대 모구 종족이 즐겨 먹던 속 채운 싱싱버섯은 현재 판다렌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 속 채운 싱싱버섯 “원조 조리법”, “한때 어느 종족만이 먹던”, “현재 누구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표현들은 요리책이 아니라 식문화사 연구자의 어조에 가깝다. 음식 하나하나에 발생지가 있고, 종족 간 전파의 역사가 있으며, 지금의 위상이 있다. 헤드노트는 <와우>라는 세계에 진짜 식문화사가 있는 것처럼 발화한다. 마치 그 세계의 어느 학자가 혹은 어느 부지런한 여관 주인이 자기 세계의 음식들을 정리한 책이 있고, 독자가 지금 그 책을 읽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새콤달콤 덩굴월귤 소스의 헤드노트에 이르면 이 인상은 확실히 굳어진다 “푸짐한 요리책에 조리법이 실려 있던 순례자의 감사절 전통 소스이다. 과거에는 아제로스 이외에서는 이 조리법을 구할 수 없었다.” 책은 자기 안에 다른 책을 인용하고 있다. <푸짐한 요리책>이라는 책이 아제로스 안에 존재하고, 거기에 이 소스의 조리법이 실려 있었다는 진술. 그러니까 독자가 지금 읽고 있는 <와우> 요리책은 아제로스 안의 다른 요리책들과 같은 계보에 속한 책이다. “과거에는 아제로스 이외에서는 이 조리법을 구할 수 없었다”라는 진술은 그 가장(假裝)의 증거다. 이 책 자체가 그 이외의 어딘가로 조리법을 처음 전한다는 함의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가장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추적자 과자의 헤드노트는 “다루기 힘든 반려동물을 찾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쓴다. <와우>의 사냥꾼 캐릭터가 펫을 부리는 인게임 메커닉에 대한 농담이지만, 농담의 화자는 그 메커닉을 마치 상식인 것처럼 다룬다. 알 약초구이의 헤드노트는 “꽤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어서 요리 실력을 높이고 싶은 요리사에게 연습용으로 안성맞춤이다”이다. <와우> 안에서 요리 스킬을 레벨업할 때 만드는 연습용 음식이라는 점을 그것이 일반적인 요리 학습의 상식인 것처럼 진술한다. 꿀이끼의 헤드노트는 “보통 버섯장수들에게서 살 수 있는데, 이제는 당신도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다”라고 적는다. “보통 버섯장수들에게서 살 수 있다”는 진술은 아제로스의 상식이고, “이제는 당신도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진술은 책의 존재 의미를 설명한다. 해당 요리책은 아제로스의 음식을 아제로스 바깥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가르쳐주는 책인 척한다. 이 가장은 독자의 위치를 미묘하게 옮긴다. 독자는 한국어판 양장본을 손에 들고 부엌에 서 있다. 그런데 책을 펼치는 순간, 잠깐 동안 아제로스의 어느 여관 주인이 막 펴낸 요리책을 들춰보는 사람이 된다. 호잰의 위핑 스프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듣고, 제이나가 어떤 치즈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모구 종족이 먹던 버섯이 어떻게 판다렌 음식이 되었는지를 배운다. 그 짧은 순간 동안, 부엌은 독자 집이지만 동시에 아제로스의 어딘가다. 3. 수습생 요리사의 부엌 헤드노트가 독자를 아제로스 안으로 데려간다면, 책의 형식과 시각 디자인은 그 안에서 독자에게 어떤 자리를 부여하는가. 먼저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 챕터는 음식 종류로 나뉘어 있다. 사이드, 빵, 수프와 스튜, 메인, 디저트, 음료. 어느 서양 요리책에서나 볼 법한 익숙한 분류다. 호드와 얼라이언스라는 진영은 앞서 본 헤드노트들 속으로 흩어져 들어가 있다. 칼도레이 잣 빵은 나이트엘프(얼라이언스)의 음식이고, 멀고어 향신료 빵은 타우렌(호드)의 음식이며, 판다렌 자두주는 진영을 떠난 중립 종족의 음식이다. 와인의 원산지 표시처럼, 진영은 풍미와 산지의 표지로 남아 있다. 대신 책의 구조를 지배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각 챕터에는 부제가 하나씩 붙어 있다. 사이드는 “간식의 길”, “빵의 길”, 수프와 스튜는 “국물 요리의 길”, 메인은 “본식의 길”, 디저트는 “후식의 길”, “음료의 길”이다. 이 명명법은 미스트 오브 판다리아 확장팩에서 도입된 인게임 요리 전문화 시스템의 차용이다. 게임 안에서 캐릭터의 요리 스킬을 어느 방향으로 전문화할지 선택하던 체계가, 책 안에서는 독자가 어떤 종류의 요리부터 시작할지 선택하는 체계가 된다. 조금 더 책장을 넘기면 더 많은 게임 인터페이스가 인쇄되어 있다. 모든 레시피 상단에는 숙련도 항목이 있고, 수습생, 전문가, 대가 중 하나가 표시되어 있다. 인게임 요리 스킬 등급을 본뜬 분류다. 챕터 시작 부분에는 친절하게도 업적 안내가 있어서, 각 길에서 다섯 개의 레시피를 만들면 업적이 해금된다는, 게임 시스템을 그대로 옮긴 표시가 박혀 있다. 레시피마다 “어울리는 음식” 항목이 붙어서 어떤 다른 요리와 짝지을지 알려주고, 일부 레시피에는 “사용 가능한 요리” 항목이 더해져서 그 음식이 어떤 다른 음식의 재료가 되는지를 알려준다. <와우>의 제작 시스템이 작은 활자로 책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셈이다. 책이 모방하는 것은 <와우>의 세계관만이 아니라 <와우>의 시스템 그 자체이기도 하다. 양파를 다지는 일은 수습생 단계의 행위가 되고, 다섯 개의 빵 레시피를 완성하는 일은 “빵 의 길”의 업적이 된다. 헤드노트가 독자에게 아제로스 안에 들어왔다고 속삭인다면, 인터페이스는 그 안에서 독자가 수습생 요리사라는 직책을 받았다고 알려준다. 사진은 또 다른 방식으로 동일한 작업을 수행한다. 모든 레시피에는 한 면을 가득 채우는 사진이 따라오는데, 그 사진들은 자연광에 가깝다. 한쪽에서 부드럽게 떨어지는 빛이 음식의 표면을 살짝 그늘지게 만들고, 따뜻한 황색조가 전체 화면을 감싼다. 음식 옆에 놓인 것은 나무 도마, 무쇠 팬, 도자기 그릇과 같은 평범한 부엌 도구들이고, 거기에 거친 마, 구리 주전자, 가죽으로 묶인 양피지과 같은 중세풍 소품이 더해진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사진 안에 살짝 숨어 있는 것들이 있다. 음식 뒤로 흐릿하게 처리된 무기 한 자루가 놓여 있거나, 주석으로 만든 맥주잔이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양념 육포의 사진을 예로 들면, 음식 옆에 야영을 연상시키는 덩굴이 놓이고, 나무 도마와 칼, 그리고 숫돌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이 작은 디테일들이 사진의 의미를 바꾼다. 양념 육포는 단순히 잘 찍힌 음식이 아니라, 누군가가 야영지에서 무기를 손질하면서 함께 먹었을 법한 음식이 된다. <와우>를 해본 독자라면 그 야영지를 어렵지 않게 떠올린다. 칼림도어의 어느 황량한 평원, 혹은 동부 왕국의 어느 숲속. 음식 사진 옆 페이지의 펜화도 같은 작업을 한다. 펜화에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그 음식과 연상되는 풍경이 그려진다. 해산물 요리 옆에는 항구의 선박이, 고기 요리 옆에는 전사가 놓이는 식이다. 음식이 어느 세계의 누구의 식탁에 놓이는지를, 펜화가 옆에서 거든다. 사진이 음식의 현실감을 만들고, 펜화가 그 음식이 속한 세계를 환기한다. 이 사진들이 일반적인 푸드 포토그래피와 약간 다른 자리에 있다는 점은 짚어둘 만하다. 보통 푸드 포토그래피는 식욕을 자극하기 위해 찍힌다. 음식을 매혹적으로, 윤기 있게, 먹고 싶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와우> 요리책의 사진은 식욕보다는 정황에 충실하다. <와우>라는 세계에 속한 음식이 그 세계의 어느 자리에서 어떤 사람의 손과 무기와 야영지 곁에 놓이는가 하는 정황과 같은. 사진이 게임 화면의 색감을 흉내내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사진이 게임 화면처럼 보였다면, 그것은 여전히 화면 너머의 음식일 뿐이다. 사진이 자연광과 평범한 부엌 도구를 채택하되 그 옆에 흐릿한 무기를 두는 순간, 비로소 그 음식은 당신의 부엌에서 만들 수 있는, 그러나 동시에 아제로스의 야영지에서 누군가가 먹었을 법한 음식이 된다. 책은 세 가지 장치를 동시에 작동시키고 있는 셈이다. 헤드노트는 독자를 아제로스 안의 누군가가 된 듯한 자리에 앉히고, 인터페이스는 그 자리에 수습생 요리사라는 직책을 부여하며, 사진과 펜화는 그 직책으로 만드는 음식이 어떤 정황에 놓이는지를 보여준다. 세 가지가 한 페이지 안에서 함께 작동할 때, 책은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라 한 세계 전체를 부엌으로 가져오는 장치가 된다. 4. 생존자가 첨삭한 폴아웃 요리책 이 가장은 <와우> 요리책만의 것이 아니다. 게임 요리책이라는 장르는 비슷한 가장의 회로를 공유한다. 그중 빅토리아 로젠탈이 쓴 『폴아웃: 볼트 거주자의 공식 요리책』은 <와우> 요리책과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된다. “볼트텍 라이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독자는 당신이 알던 세계가 —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 분명 종말을 맞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전환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폴아웃> 세계관에서 볼트텍은 핵전쟁을 대비해 거대한 지하 방공호 시설을 운영하는 회사다. 게임의 플레이어 캐릭터는 그 방공호에서 깨어나 핵전쟁 이후의 황무지로 나와 모험을 시작한다. 책은 볼트텍이 방공호 거주자들에게 입주 안내서로 발간한 요리책처럼 가장한다. <와우> 요리책이 아제로스의 어느 식문화 연구자가 펴낸 책인 척한다면, <폴아웃> 요리책은 핵전쟁 직전 어느 미국 기업이 자기 고객들에게 나눠준 라이프스타일 책자인 척하는 것이다. 이 가장은 책 곳곳에서 일관되게 유지된다. 도입부 뒤에는 “볼트텍 방식의 손님 접대” “식이 제한 안내” 같은 절들이 이어진다. 손님 접대 절은 이렇게 적혀 있다. “여덟 명을 초과하는 모임은 별도의 서류 작업이 필요합니다. 부엌 사용은 언제든 박탈될 수 있는 특권임을 유념하십시오.” 식이 제한 절은 채식, 글루텐 알레르기, 유당불내증 대응 가이드를 회사 사보의 어조로 알려준다. “마가린이 너무 많이 비축되어 있습니다 — 부디 가져가 주십시오! 산소 탱크를 둘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농담들이 책의 맥락과 뉘앙스를 만든다. 거주자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권위주의적 회사의 매뉴얼이라는 <폴아웃> 세계의 분위기가, 한 권의 요리책으로 압축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정교함은 그다음에 있다. 책 안에는 두 번째 화자가 손글씨로 끼어든다. 회사 공식 텍스트로 인쇄된 레시피 옆에, 마치 누군가가 책에 연필로 끄적인 듯한 메모가 곳곳에 추가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닭 육수 레시피 옆에는 손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방사능 닭은 잡기 쉽지만, 매우 빠를 수 있으니 조심해서 접근해야 한다.” 핵전쟁 이후의 황무지에서는 일반 닭이 없으니, 방사능에 노출된 변종 닭을 사냥해서 잡아야 한다는 메모다. 베이컨으로 감싼 관자 레시피 위에는 누군가가 제목을 “미스터리 미트 누카럴크”로 고쳐 쓰고, 그 옆에 이런 메모를 남겼다. “누카-월드의 미저들에게서 미스터리 베이컨을 구했다. 그곳에서 돼지를 한 마리도 못 봤다.” 데스클로 달걀말이 레시피 옆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닭 알이 그냥 굴러다니지는 않는다. 그런데 데스클로 둥지는 어디에나 있다. 데스클로 알 두 개로 일반 달걀 여섯 개를 대체할 것.” 이 손글씨 메모의 화자는 회사의 매뉴얼 위에 자기 경험을 덧붙이는 핵전쟁 이후 황무지를 떠도는 한 명의 생존자다. 그는 볼트텍이 알려준 닭 육수 레시피를 받아두되, 핵전쟁 이후에는 닭이 없으니 <폴아웃> 세계의 거대 도마뱀형 괴물의 알로 대체해야 한다는 현실을 메모로 남긴다. 회사의 권위적 어조 위에 생존자의 실용적 어조가 겹쳐지는 셈이다. 한 권의 책 안에 두 개의 화자, 두 개의 시간대, 두 개의 어조가 공존한다. 이 이중 화자 구조가 만드는 효과는 강력하다. <와우> 요리책이 단일한 가장을 일관되게 유지한다면, <폴아웃> 요리책은 두 개의 가장을 동시에 가동한다. 핵전쟁 이전의 권위적 회사와 핵전쟁 이후의 외로운 생존자. 책을 펼치는 독자는 이 두 시간대 사이에 끼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회사가 약속한 안온한 가정생활과 그 약속이 무너진 자리에서 데스클로 알을 깨는 생존자의 현실. <폴아웃>이 다루는 전쟁 이전 미국의 1950년대적 낙관주의와 그것이 폐허로 변한 이후의 디스토피아가 한 권의 요리책에 두 화자로 압축되어 있다. 이 책 역시 인게임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온다. 레시피마다 그 음식을 먹으면 얻는 S.P.E.C.I.A.L. 스탯 효과가 적혀 있다. <폴아웃> 게임 안에서 캐릭터의 능력치를 결정하는 힘, 인내, 지각, 매력, 지능, 민첩, 행운의 머리글자다. 데스클로 달걀말이를 만들어 먹으면 한 시간 동안 지능 +1, 누카콜라 한 잔을 곁들이면 30분 동안 인내 +1 같은 식이다. <와우> 요리책의 수습생/대가 등급이 요리 행위를 게임화한다면, <폴아웃> 요리책의 스페셜 효과는 음식 자체를 게임 아이템화한다. 부엌에서 만드는 모든 요리가 자기 능력치를 어딘가에서 약간씩 올려주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와우> 요리책과 <폴아웃> 요리책을 함께 놓고 보면 두 책이 같은 회로 안에서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가장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와우> 요리책의 가장은 따뜻하다. 호잰의 위핑 스프를 건드리지 말라는 호명, 제이나가 좋아하는 치즈에 대한 농담, 모구 종족에서 판다렌으로 전파된 버섯 요리의 역사. 그 가장 안의 아제로스는 살기에 나쁘지 않은 세계처럼 보인다. 반면 <폴아웃> 요리책의 가장은 차갑다. 거주자를 감시하는 회사의 매뉴얼, 핵전쟁 이후 데스클로 알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생존자의 메모. 그 가장 안의 <폴아웃> 세계는 살아남기 어려운 세계다. 두 책 모두 부엌을 다른 세계로 옮기지만, 그 결은 반대 방향이다. 5. 『또다요』를 계승하는 노미의 레시피 <와우> 요리책에는 후속작이 있다. 첼시 먼로 카셀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공식 요리책 2: 아제로스의 새로운 맛』는 70여 개의 레시피가 수록된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다. 이 2권을 1권과 함께 펼쳐놓고 보면, 카셀이 1권에서 시작한 가장(假裝)을 어디까지 밀어붙였는지가 드러난다. 2권의 결정적인 변화는 화자다. 1권의 화자가 <와우> 세계를 아는 어느 식문화 연구자처럼 음식을 소개했다면, 2권에는 그 자리에 분명한 이름이 붙는다. 판다렌 셰프 노미. 노미는 판다리아 확장팩의 도시 언덕골에서 작은 요리 학교를 운영하는 NPC인데, 게임 안에서는 재료를 받아두고 자꾸 태워먹는 것으로 유명한 캐릭터다. 그 노미가 “판다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때, 나는 요리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고 싶었다.”는 회고로 시작하는 한 권의 책을 펴낸 것이다. 변화의 의미는 카셀도 개인 블로그에서 설명한 적이 있다. 1권과 달리 2권은 게임 세계관 내의 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게임 안에서 어떤 퀘스트의 일부로 주워올 법한 책으로 의도되었다는 말이다. 1권에서 헤드노트들이 슬쩍슬쩍 흩뿌렸던 이 책이 아제로스 안의 어느 식문화 연구자가 펴낸 책인 것처럼 발화하는 가장은 2권에서는 명시적이고 일관된 책의 전제가 된 셈이다. 책의 표지를 펼치면 거기서부터 독자는 노미의 책을 들고 있다. 가장은 책 안에서 곳곳에서 발화된다. 챕터 구분도 달라졌다. 1권이 사이드와 메인과 디저트 같은 음식 종류로 나뉘었다면, 2권은 지역으로 나뉜다. 칼림도어, 부서진 섬, 동부 왕국, 쿨 티라스, 줄다자르, 판다리아, 어둠땅, 나즈자타, 노스랜드, 아웃랜드 그리고 그 너머. 노미가 여행한 곳들이다. 헤드노트들은 노미의 1인칭 회상으로 발화되고, 책 곳곳에 “노미의 메모”라는 작은 박스가 끼어들어 본문에 부연을 덧붙인다. 다크문 도넛 항목 옆에는 “달콤한 게 당긴다면?”이라는 노미의 메모가 따라붙는 식이다. 책 본문도 그 위의 메모도 노미가 쓴 것인 셈인데, 이 한 권 안에서 노미는 본문을 쓰는 셰프이자 그 본문 위에 친근한 부연을 끼적이는 친구의 자리를 동시에 차지한다. 게임 안에서 노미가 가졌던 평판을 카셀은 농담거리로 살리기도 한다. 책 곳곳에서 노미는 “음식을 태우지 않는 법”에 대한 팁들을 강조하기도 한다. 2권에서 또 한 가지 작은 변화는 숙련도 등급이 더 세분화되었다는 점이다. 1권에서 수습생, 전문가, 대가의 세 단계로만 나뉘던 것은, 2권에서는 기초 요리, 수습 요리, 숙련 요리, 전문 요리, 요리의 대가라는 다섯 단계로 펼쳐진다. 게임 세계관 내부의 책이라는 2권의 위치가 등급 분류의 두께까지 영향을 미친 셈이다. 2권의 목차 앞부분에 들어 있는 한 절의 제목은 특히 흥미롭다. “또 다른 요리책에 대해.” 노미가 자기 책 안에서 이전에 출간된 다른 요리책을 직접 호명한다. 자기 책이 시리즈의 두 번째 권임을 알고 있고, 1권의 존재를 자기 세계 안의 사물로 호명하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1권에서 새콤달콤 덩굴월귤 소스의 헤드노트가 “푸짐한 요리책에 조리법이 실려 있던” 한 줄로 슬쩍 열어두었던 책 안에 다른 책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2권에서는 책 자체의 전제가 된다. 자기 참조는 단순한 호명에 그치지 않는다. 2권은 1권의 레시피와 자기 레시피를 같은 식탁 위에 함께 놓는다. 본문의 어느 저녁 메뉴 추천을 보자. “아이스크림을 얹은 스테이크(141쪽), 땅콩 맥주빵(115쪽), 저민 장가르 양송이(또다요), 당근 볶음(또다요).” 페이지 번호와 함께 적혀 있는 두 요리는 책 안의 레시피이고, “또다요”라고 약칭이 붙은 두 요리는 1권에 실린 레시피다. 칼럼의 앞부분에서 인용했던 “볶음의 대가인 안시아 아이언 포우가 직접 지도한” 그 당근 볶음이 여기서 다시 호명된다. 1권과 2권은 따로 서 있는 책이 아니다. 같은 식탁에서 함께 펼쳐지는 두 권의 자매 책이고, 노미는 자신의 식탁에서 두 책의 요리를 함께 차려낸다. 축제 관련 절도 가장의 일부다. 2권 앞부분에는 “축제를 버프하라”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 안에서 노미는 핼러윈 축제와 죽은 자들의 날, 해적의 날 같은 <와우>의 계절 이벤트를 호명한다. 그러면서 두 번 구운 고구마 레시피의 헤드노트는 이렇게 쓴다. “아제로스나 그 주변에서 순례자의 감사절 절반만큼이나 축제 가치가 있는 휴일은 없다.” “아제로스나 그 주변에서”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화자는 <와우> 세계 속에서 옆 동네의 휴일 풍경을 진술하고 있다. 1권에서 인터페이스가 책의 형식으로 차용되었다면, 2권에서 그 차용은 노미라는 화자의 인격적 발화로 변환된다. 노미가 자기가 사는 세계의 축제와 음식 효과를 생활의 일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권은 1권의 단순한 후속작이 아니라 1권이 시작한 가장을 완성하는 책이다. 1권에서 독자는 헤드노트의 농담을 따라가며 아제로스의 어딘가에 잠깐씩 머물렀지만, 책의 표지에는 여전히 현실 세계의 저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2권에서 독자는 노미라는 분명한 화자의 책 한 권을 통째로 들게 된다. 시리즈가 한 권에서 두 권으로 늘어나면서, 카셀의 작업은 게임 굿즈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아제로스의 출판물을 현실 세계로 옮겨오는 일에 가까워진다. 글라도스는 케이크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케이크를 굽기 시작했고, 그 누군가가 책을 쓰기 시작했고, 그 책은 시리즈가 되었고,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은 아제로스 안의 어느 판다렌 셰프가 쓴 책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거짓말이었던 케이크가 진짜 케이크가 되고, 진짜 케이크가 책이 되고, 책이 두 권의 시리즈가 되고, 그 시리즈가 한국어로 옮겨져 누군가의 부엌에 도착하는 그 회로의 한 끝에, 독자는 노미와 함께 서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아카트로닉스’라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라는 것이 있다. 호기심의 방은 말 그대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진귀하고 이국적인 것들, 때로는 괴이한 것들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주로 16-17세기 영국에서 개인 컬렉터들에 의해 만들어진 호기심의 방은 박물관의 기원 중 하나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 공간이 단순히 수집품을 모아두는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수집 공간’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보여졌다. 당대에 가치있던 고미술품이나 유물, 또는 명망있는 화가의 작품이 아니었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상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hwa Hong Studied curatorship and art studies. Recently preparing exhibitions grounded in a growing interest in retro games.
- [논문세미나] ‘We Will Take Your Heart’: Japanese Cultural Identity in Persona V
본 논문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게임, 젠더 연구자인 로렌스 허프스(Laurence Herfs)가 일본 학술지 ‘Replaying Japan’에 2021년에 투고한 논문이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외부자의 시선(특히 서양)에서 일본 게임을 일본 학술지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 Back [논문세미나] ‘We Will Take Your Heart’: Japanese Cultural Identity in Persona V 18 GG Vol. 24. 6. 10. ‘We Will Take Your Heart’: Japanese Cultural Identity in Persona V 본 논문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게임, 젠더 연구자인 로렌스 허프스(Laurence Herfs)가 일본 학술지 ‘Replaying Japan’에 2021년에 투고한 논문이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외부자의 시선(특히 서양)에서 일본 게임을 일본 학술지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본 논문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정치 부패, 사회문화적 문제와 불안으로 시작하여 국가 브랜딩으로 이어지는 문화적 정체성을 <페르소나 5>(이하 페르소나 5)를 통해 살펴본다. <페르소나> 시리즈는 <진여신전생> 시리즈의 외전에 해당하는 작품이었지만, 사회문화, 철학, 심리학적 소재를 테마로 청소년이자 학생인 캐릭터를 내세워, 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로 인기를 얻어 시리즈가 된 JRPG 작품이다. 이러한 특징처럼 페르소나 5 또한 도쿄를 배경으로 자경단이자 학생인 주인공 일행이 일본 내 사회문화적 불안과 부패를 상징하는 적들을 물리치고 국가를 개혁하는 상당히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가볍고, 스타일리쉬하고, 위트있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본격적으로 현실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이 논문이 나올 수 있던 중요한 배경이기도 하다. * 페르소나5, 출처 –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일본의 부패를 탐험하며 페르소나 5는 주인공(플레이어)이 유력 정치인의 여성 폭행을 막았다는 이유로 보호 관찰을 받은 후 도쿄로 전학 가게 되며 시작된다. 이후 플레이어는 ‘죄수(しゅうじん; 囚人)’와 동음이의어인 ‘슈진(しゅうじん; 秀尽)’ 학원 고교에 전학을 가게 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슈진 학원 고교는 마치 어두운 현실을 학교라는 작은 사회로 압축하고 있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학생들을 언어, 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도덕적으로 부패한 교사(어른)인 ‘카모시다 스구루’를 마주한다. 페르소나5는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특정 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이형의 인지 공간(팰리스)을 통해 현실 세계를 표현한다.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작중 튜토리얼 파트인 도입부에서 플레이어는 부패한 현실 속 두 명의 희생자인 ‘사카모토 류지’(학생 체벌)와 ‘타카마키 안’(성폭행과 자살)과 팀을 이루어 카모시다의 팰리스로 들어가 반항 정신의 인지적 표현인 ‘페르소나’와 계약을 맺고 카모시다와 싸우게 된다. 이러한 도입부처럼 게임 스토리는 부패 인물을 제시하고, 게임은 일본 사회 속 다양한 형태의 부패, 학대, 불의 등을 팰리스로 표현하고 이곳을 탐험하고 문제가 되는 부패 인물을 타도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또한 플레이어는 학교가 위치한 도쿄 도심을 탐험하면서 사람들의 생각과 대화를 엿볼 수 있는데, 여기서도 사회에 대한 불안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가 주목한 페르소나 5 속 비판점은 ‘자본주의의 과잉’이다. 부패 인물들은 더 많은 부, 명예, 권력을 얻기 위해 집착한다. 페르소나 5는 사회적 긴장과 불안에 대한 이미지를 부패 인물에 위치시킴으로써 다루고 있다. 페르소나5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극복의 서사를 제공한다. 이처럼 페르소나 5는 일본 수도 도쿄의 사회적 불안과 부패한 인물상을 이미지와 서사로 제시하며, 이를 극복하여 일종의 해방감을 제공한다. 순응하는 침묵 문화 속 일본 청년 문제 페르소나 5는 일본 사회의 관습적 규범인 ‘일본다움’에 대한 메시지나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일본다움’은 집단적이고, 조화를 추구하며, 위계적 관계를 통해 ‘높은 의식 사회’로 묘사된다. 달리 말하면, ‘올바른 것’으로 규정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은 게임 곳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게임은 순응, 위계질서와 같은 ‘일본다움’이 실제로 부패와 고통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개인주의와 반항을 상징하는 ‘마음의 괴도단’은 일본식 순응주의와 이 사고방식의 정반대를 상징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페르소나 5의 중요한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게임 속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도와야 하는 ‘코옵(Co-op)’이다. 모든 코옵은 어떤 식으로든 착취, 괴롭힘, 무시당하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모든 이야기에서 일본인은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자 고군분투하고, 순응하는 침묵 속에서 고통받으며, 타인이 자신을 이용하도록 허락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여기서 침묵을 깨기 위한 은유적 장치가 ‘페르소나’이다. 새로운 멤버가 ‘마음의 괴도단’에 합류할 때마다 반항 정신의 인지적 표현인 ‘페르소나’와 계약을 맺고 깨어난다. 가면을 뜯는 ‘페르소나’ 등장 연출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자아의 정체화를 반영하기도 한다(Lopez & Marquez, 2023). 그러나 저자는 이것이 일본의 순응적인 페르소나 구조인 ‘혼네(本音; 속마음)-타테마에(建前; 겉마음)’의 분열적 알레고리로 보았다. 즉, 페르소나 5는 ‘혼네’를 받아들여야 억압 구조 안에서 진정한 자아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페르소나 5는 청년들이 어른들의 순응 압박과 그에 따른 ‘타테마에’에 고통받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진정한 병리는 청년들의 부담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중 등장하는 정치인 ‘요시다 토라노스케’는 불안정한 일본 청년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청년이 조용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일자리, 안전, 저축이 부족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2010년대 초 일본 언론이 제시한 ‘청년 문제(若者問題)’라는 개념에서 비롯된 일본 청년층의 ‘도덕적 공황’을 둘러싼 대중 담론을 의미한다. 페르소나 5에서는 이런 문화적 불안을 서사로 풀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일행인 ‘사쿠라 후타바’는 후술할 ‘시도 마사요시’에 의한 어머니의 죽음 이후,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오타쿠이자 히키코모리이다. 그러나 후타바는 어머니의 복수를 하는 코옵과 ‘마음의 괴도단’과의 유머러스한 인터랙션과 에피소드를 통해 구원받고 점차 다시금 사회에 적응해 간다. 페르소나 5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일본 청년 문제를 둘러싼 문화적 불안을 풀어나간다. * 사쿠라 후타바 연출, 출처 – https://bbs.ruliweb.com/game/1074/read/9408327 ? 페르소나 5는 ‘순응하는 일본인 스테레오타입’을 극한까지 드러냄으로써 문화적 불안을 비판한다. 이는 스토리 막바지에 이르면서, 일본인들의 순응과 침묵을 통해 국민이 다시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도록 집단적 전체주의를 주장하는 흑막 정치인 ‘시도 마사요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이처럼 게임에서 나타나는 ‘일본다움’의 담론적 이미지는 문화적 스테레오타입을 따른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본 사회를 묘사하는 이 게임은 미디어 속 일본의 스테레오타입과 일치시키며 동시에 비판한다. 이러한 점에서 ‘마음의 괴도단’은 청년 문제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과 ‘혼네’인 페르소나를 통해 ‘타테마에’를 거부하는 성취자로 그려진다. 쿨 재팬 브랜딩으로서의 페르소나 5 페르소나 5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는 제작 초기 시기인 2011~2014년 사이의 미디어 열풍 속 동일본 대지진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재등장을 다룬다는 점이다. 이는 흑막인 ‘시도 마사요시’로 그려진다. ‘마음의 괴도단’이 초기에 만난 부패 인물 중 상당수 또한 현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의 정치적 의도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국가 개혁에 몰두하며 민족주의를 표출한다. 이는 실제 일본 최대 극우 단체인 일본회의가 주장하는 민족주의와 유사하다. 페르소나 5는 시도를 일본 정치의 랜드마크인 국회의사당과 같은 형태의 팰리스로 표현하여 일본 정치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나아가 시도의 팰리스는 붉은 바다 속 침수된 도쿄를 항해하는 호화 크루즈를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를 은유한다. 이처럼 페르소나 5는 두 가지 재해를 혼합하여, ‘시도 마사요시’를 당시 동일본 대지진 시기의 아베 신조의 정치적 이미지와 수사를 강조한다. * 시도 마시요시의 팰리스, 출처 – https://macco-poke.hateblo.jp/entry/persona5R/7_1에서 수정·사용 그러나 저자는 페르소나 5가 반드시 일본 정치의 비판만을 내포하진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일본의 기업 상품 측면에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정부의 국가 재건을 위한 ‘소프트 파워’로서의 ‘쿨 재팬’ 정치 의도로 보았다. 일본은 ‘쿨’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생산하고 강화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과 같은 미디어 문화 산업에 의존해왔다(Tamaki, 2019). 이 맥락에서 페르소나 5는 일본과 ‘일본다움’ 브랜딩에 기여한다. 플레이어는 페르소나 5를 플레이함에 따라 일종의 가상 여행을 하며, 도쿄를 체험하게 된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일본다움’의 물질적 형태에 익숙해진다. 즉, 페르소나 5의 정치,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 권위에 대한 반항적 태도, 사회적 개혁에 대한 요구는 단순한 사회 비판이 아닌, 그 자체로 쿨 재팬 상품이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페르소나 5에서는 국가 브랜딩이 추구하는 것처럼 이미지에 맞지 않는 불편한 요소는 배제되었다. 일본 내 인종, 젠더, 퀴어 문제이다. 특히 밀러(Miller, 2011a)가 쿨 재팬이 추구하는 이미지가 소프트 포르노그라피적 표상에 의존한다고 지적했듯이, 게임 내에서 성적 대상화한 것을 비판하면서도 게임 내 불필요한 성적 대상화가 계속해서 존재했다. 안의 괴도복이나 관련된 서사는 불필요한 성적 대상화의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측면은 쿨 재팬 이데올로기의 상품화된 여성성을 보여준다. 쿨 재팬의 재현은 여성을 가부장적 통제와 욕망의 대상으로 환원시킨다(Miller, 2011b). 즉, 여전히 페르소나 5는 여성들이 자신을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반항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동시에, 여전히 일본의 가부장적이고 성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 타카마키 안 괴도복, 출처 – https://asia.sega.com/persona-remaster/p5r/kr/ 마지막으로 페르소나 5는 쿨 재팬의 비서양적(non-Western)이면서도 비아시아적(un-Asian)인 독특한 이중 정체성을 반영한다. 게임은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마음의 괴도단’의 페르소나는 유럽 문학 속 영웅 또는 무법자에 기반한다. 서구 영웅의 반항적 개인주의라는 서양적 가치는 일본이라는 비서구적 세계에 통합된다. 이처럼 페르소나 5가 제시하는 일본이라는 브랜드는 서양적 가치와 일치하는 아시아지만 아시아가 아닌 역설적이고 독특한 존재이다. 결국 이 게임은 극우주의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일본에 대한 신화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려는 쿨 재팬에 공모하고 있다. 결론을 대신하여 저자는 결론적으로 페르소나 5가 예술로서 사회적 비판과 기업의 이익 사이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페르소나 5는 정치적 부패, 사회적 불안 등을 문화적 표현으로 제시하면서도, ‘쿨 재팬’ 국가 브랜딩의 원천이 된 문화적 인공물이기도 하다. 페르소나 5가 찬사를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이전 시리즈들보다 직설적으로 일본 사회의 현실을 비추고, 비판하는 상징과 스토리, 은유에 있다. 물론 게임 내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청년 문제, 정치 부패 등)가 단순히 일본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많은 타국 게이머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페르소나 5는 이 문제들에 대해 진보적이고, 성찰적인 스탠스를 보여준다. 그러나 본 논문은 일본 밖 외부자의 시선에서 더 깊은 곳을 조명하고 있다. 이 게임이 갖는 정치적 의미, 의도는 일본 외부, 즉, 타자에게 보이는 일본의 국가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혼네-타테마에’ 정체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페르소나 5는 여전히 ‘일본다움’을 내포한다. 다시금 타국 게이머들에게 일본의 보수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게임을 즐기는 데에 있어, 이러한 측면을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게임이 이러한 가치를 띠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논문이 주장하는 궁극적인 바는 아마 게임은 여전히 ‘국경’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는 미디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Herfs, L. (2021). “‘We Will Take Your Heart’: Japanese Cultural Identity in Persona V”. REPLAYING JAPAN, 3, 43-54. Lopez, A.A.L. & Marquez, L.P. (2023). Persona 5 Royal as Philosophy: Unmasking (Persona)l Identity and Reality. In: Kowalski, D.A., Lay, C., S. Engels, K. (eds) The Palgrave Handbook of Popular Culture as Philosophy. Palgrave Macmillan, Cham. Miller, L. (2011a). Cute Masquerade and the Pimping of Japan. International Journal of Japanese Sociology. 20. 18 – 29. Miller, L. (2011b). Taking girls seriously in ‘cool Japan’ ideology. Japan Studies Review. Florida: 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 15, 97-106. Tamaki, T. (2019). Repackaging national identity: Cool Japan and the resilience of Japanese identity narratives. Asi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27(1), 108–126. Tags: 페르소나, 쿨재팬, 오리엔탈리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죽음이라는 기억, 죽음이라는 기록 : 『리턴 오브 디 오브라 딘』
회중시계의 이름은 플레이어에게 내리는 일종의 명령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을 기억하라(memento mortem). 그리고 기억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개념을 상상하라. ‘기록’될 죽음 위에서 죽음의 ‘기억’을 상기하라. 그러므로 결국, 죽음의 장면(mortem)이 아닌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 Back Death as Memory, Death as Record: Return of the Obra Dinn 31 GG Vol. 26. 8. 10. Visual media and memory stand in a relation that resists easy definition. Visual media rest on the explicit premise of showing. Memory, however, is something we recall — not something we can claim to see in any definite form. It only brushes past the mind for a moment, always as a vague shape, a soft-edged image. Nor is this merely a matter of the senses. The relation between memory and accuracy is every bit as confounding. Our memories are not laid out tidily, in the format of a physical medium. Memory mixes, weathers, distorts. “A definite memory” is not a phrase to be uttered so easily. Memory possesses no concrete, solid materiality. That is what grounds the way visual media — video games included — confound the workings of memory. The cinematic form of the flashback makes memory’s operation feel as though it were being visually reproduced exactly as it was. Unless something says otherwise, everything unfolding before the eyes from the moment a flashback begins becomes, by fiat, fact. And a certain apparatus-context is lodged in this relation: the way visual media operate memory behaves as though our memory sat on the same plane as their machinery. Flip the switch on a device fit to summon memory, and it unspools before the eyes like a playback. Memory of this kind is hardly distinguished from record. Indeed — it is an attitude that does not distinguish memory from record at all. Lucas Pope’s Return of the Obra Dinn (hereafter Obra Dinn ) may be the most representative video game exhibiting this phenomenon. The game begins as an insurance adjuster of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takes on the investigation of the Obra Dinn, a ship returned without a single survivor. Receiving from his client Henry Evans a blank logbook along with the pocket watch “Memento Mortem,” the protagonist gains the power to view the moment of death from its remains. The goal becomes to examine each crew member’s death and fill the logbook with their names and causes of death. * Memento Mortem: the sense is close to “remember the event of death.” This pocket watch is an explicit apparatus mediating the playback of memory. Pope’s conceit leads the player to perceive memory as something solid — replayable and fixed. The memory Obra Dinn replays is distinctive in taking the form of a diorama wholly fixed in time and space. The player strolls unconstrained through the world of a frozen memory, observing the middle of things — in medias res — exactly as they stand. In this form, which looks like a waxworks or a museum of everyday life, the essential softness of memory is nowhere to be found. And so, though there are questions that must be raised wherever memory is invoked, players scarcely come into contact with them. Is the memory this instrument reproduces true? Is there no possibility that the device’s function produces some distortion? Why does the game have us skip past such questions and understand the scene as definite? The video game’s “solid memory” carries an even more emphatic definiteness than the cinema’s. The crux lies in the process of verifying memory. Consider films built as one vast flashback — Steven Spielberg’s Saving Private Ryan , James Cameron’s Titanic . Now try denying every memory the film projects. Of course, the moment you take it that way, whatever moving power or theme the viewing yielded will fall apart, and depending on the person the exercise may cause real displeasure — but it is not something one cannot attempt, is it? Suppose Jack and Rose were in fact bitterly at odds, and Rose shoved Jack aside to board the ship — who could verify otherwise? You might fall into an argument with another viewer who loves Titanic , but no one could declare this “possibility of a misled memory” absolutely impossible. That such an absurd claim can be made at all is because there are films — Tim Burton’s Big Fish , Bryan Singer’s The Usual Suspects — that premise the possibility of the flashback itself being deceptive. It is worth recalling that between the former films and these, the only difference is that the possibility of doubt is narratively posed; in the editing of the flashback itself there is none [1] . Obra Dinn , however, presupposes the truth of a definite correct answer. On the basis of gathered clues, the player enters each sailor’s name and cause of death into the logbook, and the game’s mechanics adjudicate whether the entry is correct. (Judgment falls each time three correct answers accumulate, and a confirmed answer can no longer be revised.) The game, that is, settles the question of truth a priori, before one can fall into doubting it. As a past that has an answer, Obra Dinn still holds fast to memory’s solidity. Memory is replayable, and within it lies no possibility of error. What games with mechanics similar to Obra Dinn ’s memory-playback have in common only deepens the question about this solidity. Fullbright’s Tacoma and KeokeN Interactive’s Deliver Us the Moon handle memory-playback mechanisms akin to Obra Dinn ’s. The two SF-themed games happen to share the same device — a holographic record-and-replay apparatus — through which one reconstructs what happened aboard an emptied space station and a lunar base. Their protagonists stand in positions much like that of Obra Dinn ’s. In Tacoma , an employee dispatched by the Venturis Corporation, owner of Tacoma Station, must investigate the station’s failure to respond. In Deliver Us the Moon , likewise, one becomes an investigator for the World Space Agency, sent to determine the state of a lunar base gone silent. All three games feature figures dispatched under investigative orders from a particular corporation or agency — deployed carrying, without exception, an economic mandate (capital, or energy) on their backs. The games’ goals seem to forge some link with the concreteness — the solidity — of the memories they reproduce. Games of Soft Memory It is worth pausing to survey the games of memory set apart from this solidity — representatively, Dontnod Entertainment’s Tell Me Why and Giant Sparrow’s What Remains of Edith Finch (hereafter Edith Finch ). Unlike the games above, these two deal substantially in memory’s softness. In Tell Me Why , visiting the family home long after their mother’s death, the protagonists see the residue of memories of her. These visions are presented as the product of a supernatural sense held by the twin protagonists, Tyler and Alyson. Tyler carries bad memories of a mother who denied his identity, but as the story proceeds he comes to realize those memories are not accurate. The visions Tell Me Why replays do, to be sure, retain a certain quantum of solidity. But the game’s posture is really about the incompleteness of memory as a form. Memory generates truth within a complex relation to what surrounds it. Tyler’s journey is, in a way, a reconsideration of Obra Dinn ’s proposition: does memory carry truth in itself? His journey is nothing other than the process of that proposition being progressively demolished. * Tell Me Why Edith Finch goes further. Its protagonist, Edith Finch, follows the records her mother left to the house where her mother lived as a child. In this house, where each member of the family met a strange death, Edith recalls what they went through in a variety of sensory modes. The sensibility of Edith Finch approaches magical realism. Through the family’s records, Edith re-experiences the “events” they underwent in an unreal register — becoming an animal, becoming the hero of a comic book, or living the fairy-tale world exactly as the person imagined it. In the experience of Edith Finch , truth is sensory. Edith does not see their past as it was; she experiences only its sensory essence, by detour. What the player perceives by way of Edith’s body is not recorded fact but something distilled of the freedom, confusion, pain, and loneliness they must have felt. Inside the game, accordingly, no definite fact exists. Every expression is only Edith’s imaginative transference of a recorded sensation. In both games, the two figures who pursue memory are bound up with the troubles of family history. Their problems are wholly private, and the value the memories generate carries into the life ahead. For them, one might say, the past is preserved not as record but as intact “memory” — a past without the concreteness of a record, the concept that holds the softness proposed above. And are these “memories” not closer to the memories of our own experience? In the film Marjorie Prime , Michael Almereyda has a character observe that when we remember something, we recall not the original but only our most recent memory of it. We all already know that memory’s value is received in translation, through the subjective lens of the moment at which it is recalled. Why Does That Memory Become a Record? Then let us return to the case of Obra Dinn . Why does this game use “solid memory” as its medium? Because, as explained above, what the game’s premise requires is a past that must become a record. And because Tacoma and Deliver Us the Moon alike (unlike Tell Me Why or Edith Finch ) pose a “public” duty to be discharged through the record. Finally, because that public duty is bound wholly to an economic — or productive — problem. To set the correct value; to normalize productivity. Into the relation of Obra Dinn and memory, in the end, intrudes the mediation of a specific concreteness: calculability. The record is a degraded format that has converted memory into something calculable, and calculability is the video game’s fated terminus. This condition tells us why Obra Dinn ’s art had to be the 1-bit dithered image. The bit is computing’s most microscopic unit. The death-ship that is Obra Dinn ’s setting is presented from the outset as a countable — “digitable” — space, determined by the bit of Y or N. But the discussion could hardly end there — no one takes Obra Dinn for a cold-blooded insurance simulation. The interesting fact is that Obra Dinn , together with Tacoma and Deliver Us the Moon , all end by leaving behind doubt about, and resistance to, this “countable world.” Yet unlike Tacoma and Deliver Us the Moon , which depict the pursuit of a better life within such extreme worlds, Obra Dinn takes a far colder stance, for it withholds any interpretation of, or attitude toward, the situation of the figure presented as its “protagonist.” Through that protagonist’s shell, the player ends up watching a dry conclusion in which all these unquiet deaths are simply priced into claims and filed in a report. Dante Douglas of The A.V. Club calls this ending “violence cleansed of meaning” [2] . Douglas’s point is that the very structure that reduces the atrocious deaths the player has witnessed directly to a dry report — permitting no gesture of commemoration or mourning — makes palpable the coldness of capitalism, epitomized by the East India Company. Melissa Kagen, too, writes along these lines in her book Wandering Games : The final tally records what took place, but players flinch before the limited truth each entry holds. The few words written of each fate and deed do not seem enough; the monetary value assigned to each death feels entirely wrong. The very notion of accounting for events so extraordinary and fantastic in so cold a calculus, in so limited a notation, appears bewilderingly inexact [3] . * In the end, every death is reduced to a dry sum of restitution. Obra Dinn begins from the problem of solid memory reproduced by an apparatus. The game’s fluent structure of play immerses us too deeply to recognize this misled definition of memory, and in the process we are firmly cut off from the most universal of questions — why can this memory be pronounced true? But when it is then reduced to something far more solid still, a document of record, the player takes a hard shock at the merciless step between memory and record. And it is this process that brings home a subtle nuance about the very foundation of “memory as record.” What, after all, was the gaze of the adjuster who strolled numbly through dioramas of fixed memory? Does he feel nothing, and merely enter the correct figures in a ledger? Is the “memory” that I — the player — sensed in playing to be shrunk, inside the game world, into nothing but the cold “record” of a report? In “Excavation and Memory,” Walter Benjamin wrote that memory “is not an instrument for exploring the past, but rather a medium” [4] . This is likely the more accurate description of memory as we feel it in reality. Yet at times, reality inverts Benjamin’s intent and turns memory into an instrument. Its harshness — or coldness — is easily softened by a shared sense of purpose: memory as a “language of necessity,” something that at times must be used just so. But when that necessity keeps shrinking the world — when it narrows all the way down to the bit-level question of Y or N — we begin to feel that something is going wrong. Obra Dinn is, in the end, a game of memory — quite literally, “remember the event of death”: memento mortem. And when the event of death (mortem) has dried past all further reduction, only then do we find ourselves wishing to imagine, and to feel our way back into, the life within those diorama-like scenes. In that respect, is Obra Dinn ’s way of using memory not akin to the soft memory of Tell Me Why ? Only, what Obra Dinn mobilizes are not other conditions within the diegesis. It takes instead, as memory’s other condition, the player’s own senses — the desire, the longing, the gloom felt while walking among all those landscapes of death. The pocket watch’s name, then, is a kind of command issued to the player. Remember the event of death (memento mortem). And in order to remember, imagine the concept of death. Upon the death that will be “recorded,” recall the “memory” of death. And so, in the end: remember death (memento mori), not the scene of dying (mortem). The command is also a voice aimed at our world beyond the game — meaning: from all the records of death scattered across this world, too, retrieve the memory. [1] This is not to claim that Saving Private Ryan or Titanic actually speaks in deliberately false memories. Unless the possibility is planted inside the film as a cinematic device, doubting its truth is, admittedly, a perverse mode of reception. If anything, it is this very posture — treating a given memory as perfectly true — that renders the flashback more suspect. [2] Dante Douglas, “Return of the Obra Dinn Starkly Renders the Violence and Greed of Colonialism,” The A.V. Club. https://www.avclub.com/return-of-the-obra-dinn-starkly-renders-the-violen [3] Melissa Kagen, “Late Capitalism: Caring for Corpses in Return of the Obra Dinn,” in Wandering Games (Cambridge, MA: MIT Press, 2022). [4] Walter Benjamin, “Excavation and Memory,” in Selected Writings, Volume 2, Part 2, 1931–1934 , trans. Rodney Livingstone et al.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9), p. 576. Tags: 리턴 오브 디 오브라 딘, 루카스 포프, 기억과 기록, 추리 게임, 1비트 그래픽, 타코마, 딜리버 어스 더 문, Return of the Obra Dinn, Lucas Pope, 1-bit Graphics, Detective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nin Lee Writes and lectures freely across comics, games, and film. A lifework: clearing every Final Fantasy title except the MMORPGs. Mainly plays on the Steam D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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