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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결과

공란으로 1280개 검색됨

  • 코스믹 호러에 떨어진 인터페이스

    <에일리언 2>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테크 덕후인 제임스 카메론의 ‘진심’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는 점을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단적인 예로, 첫 시퀀스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캐릭터는 인간도 에일리언도 안드로이드도 아니다. 리플리가 잠들어 있는 우주선 문을 레이저로 깔끔하게 절삭한 뒤에 재빨리 퇴장하는 산업용 로봇 A와 곧바로 이어서 우주선 내부를 스캔하는 산업용 로봇 B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 Back 31 GG Vol. 26. 8. 10. Tags: 데드 스페이스, 게임 인터페이스, 다이제틱 UI, 코스믹 호러, 에일리언 2, AI 에이전트, Dead Space, Diegetic UI, Cosmic Horror, AI Agents, LLM Hallucination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 [논문 세미나]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이브 온라인(Eve Online)〉은 현재 ‘펄어비스’가 인수한 아이슬란드의 게임 제작사인 ‘CCP 게임즈(CCP Games)’가 2003년 출시한 SF 샌드박스 MMORPG이다. 가상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브 온라인〉은 오픈 월드 시스템을 통해 광활한 맵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유저의 다양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RPG이지만 이 게임에는 캐릭터의 직업이 없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이브온라인, 논문, 패러텍스트, 에미텍스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제 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모전의 당선작과 수상자를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 Back 25 GG Vol. 25. 9. 22. Tags: 게임비평공모전, 공모전, 수상작발표, 공지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와 Player in Environment(PiE), '우연한 아름다움의 섬광'을 찾아서

    윌 라이트의 발언은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출발점을 제공한다. 이 장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통적인 비디오 게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승리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클리어해야 할 최종 보스도, 달성해야 할 명확한 목표도 부여받지 않는다. 대신 플레이어는 스스로 플레이의 명분과 이유를 만들어내야 한다.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Jae Lee Researcher at the K-Culture & Story Contents Research Institute, Kyung Hee University. Researches trends and policy in the content and IT industries, and works as a critic across the content field broadly. Has contributed to projects including "A Survey and Analysis of AI and Digital Policy Trends in Major Countries" (National Information Society Agency), "A Survey and Analysis of Digital Security Trends" (Korea Internet & Security Agency), and "Global Game Industry Trends"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Began working as a critic after winning the Dong-A Ilbo Spring Literary Contest in film criticism, the Korea Manhwa Contents Agency's New Critic Award in comics criticism, and the Game Generation Criticism Award.

  • [논문세미나] From geek masculinity to Gamergate: The technological rationality of online abuse

    이 논문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자행되는 사이버 폭력의 배경을 밝히기 위해 우선 기술 또는 게임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오타쿠 남성성이 있음을 짚어낸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별점·평점이라는 표면

    별점의 역사를 짧게 훑어보자. 최초의 별점은 1820년경 영국의 마리아나 스타크가 펴낸 『유럽대륙 여행가이드』라 알려져 있고, 본격적으로 별점이 대중화된 것은 1920년대 시작된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을 통해서다.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ngsoo Park Majored in art studies as an undergraduate and is currently studying media cultural studi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Writes primarily about film, while keeping a curious eye on visual culture broadly—art, games, and broadcasting among them. Also a film critic, host of the podcast Café Critique, and an organizer of community film screenings.

  •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을까: 터치스크린 시대의 숙련도

    매체라는 말은 A와 B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텔레비전과 영화, 스마트폰을 우리가 매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들이 각각 생각과 생각, 창작자와 수용자,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게임도 같은 의미에서 매체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로블록스〉의 상상된 즐거움

    로블록스는 조악함으로 가득하다. 게임에 보이는 텍스트의 한글 번역은 개발자가 어떤 번역기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질만큼 기괴하고 오류가 많다. 글로벌 게임의 필수 업무인 현지화 작업은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게임의 3D디자인은 대체로 투박한 로우 폴리곤이다. 그 오브젝트를 감싸는 텍스쳐는 단색이거나 대충 그려진 수준이 허다하다. 외형만 그러한가. 캐릭터가 걸어다니는 애니메이션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캐릭터의 몸은 게임 도중에 이유없이 뒤틀리고, 기물 사이에 쉽게 낀다.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 버그로 리포트되는 것들이 로블록스에서는 일상적이다. 게임이 추구하는 주제들 또한 무겁지 않고 가볍다. 게임 일부를 예로 들면, 보모가 되어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좀비가 나타나는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무서운 돼지 귀신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자 전부다. < Back 〈로블록스〉의 상상된 즐거움 01 GG Vol. 21. 6. 10. “조식은 6AM 날카로운 시간에 제공되며 수업은 오늘 7에 시작합니다.” 로블록스는 조악함으로 가득하다. 게임에 보이는 텍스트의 한글 번역은 개발자가 어떤 번역기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질만큼 기괴하고 오류가 많다. 글로벌 게임의 필수 업무인 현지화 작업은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게임의 3D디자인은 대체로 투박한 로우 폴리곤이다. 그 오브젝트를 감싸는 텍스쳐는 단색이거나 대충 그려진 수준이 허다하다. 외형만 그러한가. 캐릭터가 걸어다니는 애니메이션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캐릭터의 몸은 게임 도중에 이유없이 뒤틀리고, 기물 사이에 쉽게 낀다.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 버그로 리포트되는 것들이 로블록스에서는 일상적이다. 게임이 추구하는 주제들 또한 무겁지 않고 가볍다. 게임 일부를 예로 들면, 보모가 되어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좀비가 나타나는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무서운 돼지 귀신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자 전부다. 그런데 이렇게 허술해보이는 게임에 매달 전세계 1억 5천 명의 유저가 접속한다 [1] . 그 중 4,200만명은 로블록스에 매일 접속한다 . 이는 리그오브레전드보다 높은 수치다. 로블록스는 그야말로 전세계를 휘어잡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은 아마도 전세계 1억 5천명 안에 속하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이름만 들어만봤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나, 해본 적이 있더라도 진지하게 즐겨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플레이하는가? 로블록스의 주 유저층은 명확하게 미성년층이다. 그중에서도 조금 더 어린 축에 속하는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인 만 12세 이하가 전체 유저의 절반이 넘는다(54%) [2] . 만약 당신이 옆에 있는 유저와 팀플레이를 한다면, 상대방은 높은 확률로 초등학생일 것이다. 로블록스는 어른을 위한 게임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당연히 게임을 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로블록스라는 플랫폼에 접속하여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게임을 플레이한다. 로블록스 계정을 생성하면 유저는 하나의 아바타를 배정받는다. 유저는 고유한 아바타를 매개로 하여 수만 가지의 게임에 입장한다. 각각의 세계에는 주어진 상황과 룰이 있다. 예를 들면 유저는 〈Twilight Daycare〉를 켜서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기가 되었다가, 머지않아 〈Murder Mystery 2〉게임으로 바꾸어 살인마가 되고, 질릴 때 쯤에 밖으로 나가 〈Tropical Resort Tycoon〉에 접속해 호화 리조트 사장님이 될 수 있다. 로블록스는 유저가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로블록스 스튜디오’라는 개발 도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유저들은 직접 제작한 게임을 게시할 수 있다. 개발자들의 나이 또한 어린 편이다 [3] . 로블록스 내에 올려진 게임의 개수는 1,800만개 [4] 에 이른다. 전세계 애플의 앱 스토어에서 유통되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의 수가 450만개인 것과 비교했을 때 매우 큰 숫자이지 않은가. 그중 로블록스 유저가 가장 많이 접속하는 월드는 〈입양하세요! Adopt Me!〉 [5] 다. 이 게임은 누적 플레이수 200억 회를 기록하고 있다. * 로블록스의 〈입양하세요Adopt me〉 로그인을 하고 로블록스 메인화면으로 가보자. 화면에는 〈입양하세요〉로 시작하는 인기 게임 순위가 있고, 그 밑에 “나를 위한 추천 체험”, “친구가 방문 중인 체험”과 같이 나와 비슷한 취향의 게임들을 알고리즘에 맞게 보여주는 카테고리가 등장한다. 유저는 로블록스라는 하나의 플랫폼에 접속한 뒤 원하는 게임을 선택하여 입장한다. 어떤 게임을 할지 정하기 귀찮다면 현재 가장 인기있는 것을 플레이해도 되고, 친구가 하고 있는 게임을 따라서 해도 되고, 아니면 원하는 주제의 검색어를 넣어 게임을 찾아도 된다. 어찌 보면 우리가 유튜브에서 영상을 선택하고 시청하는 방식과도 비슷하다. 실시간 인기 동영상 순위가 있고, 나의 피드에는 평소 시청 취향에 맞게, 또는 자신과 사회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보는 영상이 추천되는 것처럼 말이다. 잠깐, 앞의 문단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잘 읽어 보면 필자는 문장에서 같은 대상을 지시하더라도 다른 단어를 사용하였다. 게임(game), 체험(experience), 세계(world).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개별적인 게임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하나가 아니다. 이들은 서로 혼용되며 의미의 경계를 두지 않는다. 유저들은 “무슨 게임 할래?”라고 대화하고, 게임화면으로 돌아가는 버튼에는 “체험 계속하기”라고 쓰여있으며, 게임 개발 도구는 “나만의 월드를 제작해보세요!”라고 자신을 홍보한다. 그동안 게임 문화는 게임, 체험, 세계를 구분해왔다. 특정 역할을 체험하는 부류를 시뮬레이션 장르로, 역할을 설정하는 장르를 RPG로, 가상현실을 탐험하는 것을 어드벤처라고 불러왔다. 로블록스의 용어 사용법은 이러한 게임에 대한 규정들을 흩뜨려놓는다. 앞서 언급한 가장 인기있는 〈입양하세요!〉를 예를 들어보자. 유저는 게임에 진입하자마자 부모 또는 아이가 될지 역할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토대로 마을에서 활동하며 퀘스트를 하거나 아이템을 수집하고, 펫을 키우거나 가족을 만들어 다른 유저와 교류한다.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하는 일은 부모나 아이가 되어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자 그 체험 규칙이 허용되는 세계에 입장하는 것이다. 로블록스의 유명 FPS 게임 중 하나인 〈아스널 Arsenal〉은 누적 30억 회의 플레이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게임은 FPS임과 동시에 적과의 긴박한 전투가 펼쳐지는 가상세계이자, 전투병이 되어보는 체험이기도 하다. 또 다른 게임 〈로열 하이 Royale High〉에서는 접속하자마자 호화스러운 궁전이 펼쳐진다. 그곳 나름의 아이템 수집과 퀘스트를 주지만 유저는 굳이 따르지 않아도 무방하며 시스템적으로 강요되지 않는다. 공간을 배회하면서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스타일을 꾸미거나, 밥을 먹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화려한 옷을 입고 상류층처럼 살아보기. 유저가 〈로열 하이〉에 접속한 순간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로블록스는 ‘체험하는 게임’, ‘게임 세계’와 같은 언어 간의 수식관계를 해체하고, 모두를 동격에 놓는다. 체험하는 것,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 곧 게임이 된다. * 로블록스 〈로얄 하이〉 게임 내부로 잠시 들어와보자. 로블록스에서 주된 대화법은 사물과의 충돌(collision)이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앞에 가발 아이템이 놓여있다고 가정했을 때, 캐릭터가 가발을 쓰는 방법은 가발과 몸의 부딪힘이다. 그러면 곧바로 머리에 씌워진다. 많은 게임들은 유료 재화인 로벅스(Robux) [6] 로 아이템을 구매하는 부분 유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아이템을 구입하고 싶은가? ‘구매’라고 쓰여있는 바닥 타일 위에 발을 올리면 된다. 그러면 결제창이 뜰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물체와 부딪혀라. 로블록스 세계에서 아바타와 오브젝트의 마찰은 주요한 소통방식이다. 이미 예상되어지듯, 그러다보면 엄한 물체와 부딪혀 원치않는 입력이 발생할 것이다. 옆에 놓인 물체에 스쳤을 뿐인데 “구매하시겠습니까?”라는 알림창이 대문짝만하게 뜨는 일은 매우 성가시다. 이쯤 되면 게임들이 왜 이렇게 일차원적인 방법으로 게임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화면에 버튼을 띄워 클릭하게 하거나 키보드 특정 키를 누르게하면 더욱 명확했을텐데 말이다. 그 이유는 로블록스가 게임으로 진입하는 유저의 물리적 조건을 차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로블록스에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지대가 교차하고 있다. 이곳에서 유저들은 피씨, 모바일 그리고 태블릿 그 어떤 기계를 사용하든간에 같은 서버에서 만나 게임을 즐긴다. 충돌은 가장 심플한 플랫폼 통합적 작동 방식이며, 더 많은 유저를 한 공간에 모을 수 있는 장치다. 마우스나 키보드와 같은 별도의 장치는 유저들을 나눌 뿐이다. 이 공간은 서로 다른 기계에서 공통으로 게임이 펼쳐질 수 있는 방식을 지향한다. 로블록스를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로블록스는 ‘플랫폼’이다. 게임을 매개하는 거대한 땅으로 보는 것이 조금 더 명확할 것이다. 또는 게임으로 들어가는 포털(portal)로 볼 수도 있다. 포털은 곧 상상된 즐거움을 의미한다. 그 곳에 접속하면 무궁무진한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곳에 접속하면 언제, 어디서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전세계의 어린 유저들이 매일 매일 방문하여 이곳을 여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이 바로 로블록스의 존재 이유다. [1] Statista, 2021년 5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192573/daily-active-users-global-roblox/ [2] Statista, 2020년 9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190869/roblox-games-users-global-distribution-age/ [3] 개발자 Alex Balfanz는 로블록스를 즐겨하던 유저로, 2017년 만 18세의 나이로 유명 게임 〈Jailbreak〉를 제작했다. 출시 후 3주 만에 누적 플레이수 4,400만회를 달성한 이 게임에서 얻은 수익으로 그는 이미 4년치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4] 2020년 11월 기준. [5] Statista, 2021년 3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220905/roblox-most-visited-games/ [6] 로블록스에서 유저가 현금으로 구입하는 유료 통화.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통합 구매(충전)하여 개별 게임 내에서 사용한다. 개별 게임 내에서 발생한 로벅스 수익은 로블록스와 게임 개발자가 3:7의 비율로 배분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Why is the Korean Console Market Size so Small? - A Retrospective of Korean Console Games

    I have a vague memory of a time when I was in upper elementary school, sometime in the early 90's or so, but I can’t recall the exact year. I had gotten a "gaming console". I think I won it in a magazine giveaway. Given the age, I can assume what model it was, but I can only make an assumption. I also do not recall the exact model.  < Back Why is the Korean Console Market Size so Small? - A Retrospective of Korean Console Games 11 GG Vol. 23. 4.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match=id:58 I have a vague memory of a time when I was in upper elementary school, sometime in the early 90's or so, but I can’t recall the exact year. I had gotten a "gaming console". I think I won it in a magazine giveaway. Given the age, I can assume what model it was, but I can only make an assumption. I also do not recall the exact model. The reason my memory is so fuzzy is simple: I only played with that console a handful of times. The ROM packs had either a single collection of games or none at all, so the minigames on the internal ROM were all there was. The reason, of course, was my parents. I wasn't kept from playing it, but buying a new ROM pack was out of the question, and the very act of connecting it to the TV at home was frowned upon. I had no concept of what a cable was, or why there were so many wires, and I needed an adult to show me how to connect all the right wires, but my parents actively refused to take on that role. To play the console I had to go over to a friend's house, and while their parents would help me connect everything, I wouldn’t say that they looked comfortable doing it. With no games to play and nowhere to play them, the first game console of my life naturally disappeared into a closet and was completely forgotten. I imagine that the gamers who grew up in the '80s and '90s probably shared a similar experience. As a result, console games only make up a small percentage of the South Korean gaming market today. According to the 2020 White Paper on Korean Games, the percentage is 4.5%, but 1.4% of this is taken up by arcade games, which virtually barely remain in existence. This is a far cry from North America's 38.4%, Europe's 37.5%, and South America's 19.1%, as well as the 2022 global ratio of 25.2%. In Asia, console games accounted for a mere 8.7% of the market, in large part likely due to South Korea's small console market. PC and mobile games, on the other hand, account for 25.7% and 54.1% in Asia, respectively, a stark contrast to the rest of the world. * 2020 White Paper on Korean Games, p. 668 The reason for this can be traced back to its humble beginnings in the 80s and 90s. It's a sad story of a market that started small and never experienced the momentum of hegemony experienced by arcades and PC and mobile. Let's go back to those sad days for a moment. The first game console that was sold in South Korea was the Otron TV Sports. It was a console with built-in games, just like the American "Pong" console, and was initially priced at 29,500 won, and later reduced to 198,000 won. In comparison, in 1977, the average monthly salary of a worker was 69,000 won. It was a price that was far from market formation or popularization, so it didn’t mean much apart from the fact that it was the first of its kind. Due to the price, console gaming in Korea never really took off in the era of the family Pong and Atari, and in the '80s, Nintendo was brought to the forefront. However, the idea of Nintendo being imported into South Korea, a country with strong anti-Japanese sentiment at the time, was out of the question. Instead, PC games on the 8-bit MSX platform were imported in the early 80s as a substitute. Even then, they were a luxury, and as of 1982, less than a thousand units were imported into Korea. By the late 80s, South Korea had succeeded in hosting the Asian Games and the Olympics, and the pride from those achievements were through the roof. Naturally, the anti-Japanese sentiment had subsided somewhat, and with Daewoo Electronics releasing its own console called the Zemmix in 1985, much of the unfamiliarity with the new culture that was gaming had dissipated. Still, public sentiment made it difficult for Japanese companies to set up local subsidiaries, so domestic corporations imported consoles under different names. Only then did relevant gaming consoles begin emerging. Samsung imported and marketed the SEGA Master System under the name “Game Boy” which became a hit. Hyundai then imported Nintendo's NES, the North American version of the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and released it as the “Hyundai Comboy”. Thus, the pioneering of the Zemmix, Game Boy, and Combo formed the market. However, this market was not large-scale enough to be called a mass market. While it was a huge success, and was well-known enough for the masses to be aware of its existence, it was a market centered around enthusiasts. This much was evident based on the individual price of each console. * Daewoo’s Zemmix advertisement, priced at 70,000 KRW. (approx. 53 USD today) * Samsung’s Game Boy advertisement, priced at 119,000 KRW. (approx. 91 USD today) * Hyundai’s Comboy advertisement, priced at 139,000 KRW. (approx. 106 USD today) * The prices of console game titles in the latter half of 1992. Therefore, the cost of console games also had to be accounted for on top of the cost of the gaming console itself. With the year 1990 as the standard, these were times when the starting salaries for secondary school teachers and businessmen for large companies were less than 600,000 won. The wealth gap grew from this point on, making it a bit difficult to use 1.5 million won as the benchmark for the average monthly wage of the working class. Nevertheless, unlike with the Otron from a decade earlier, these prices were ‘a bit overwhelming but still manageable.’ In addition, the hegemony of the gaming market was slowly but surely shifting from arcades to PCs. The PC was actually a competitor to the gaming console, despite costing anywhere from 1 million KRW up to 2 million KRW at the time. In fact, they were actually holding their own weight in the competition against gaming consoles priced under 200,000 won. PCs held the advantage with the context that they were ‘preparing for the technological future’ and could be used in various ways for ‘education.’ Unlike the multifunctional PCs, consoles only offered the gaming feature, rendering even the relatively lower cost to be pointless. Furthermore, the biggest difference between consoles and PCs was the space that they took up. In general, a console belonged in the living room, and a PC in the bedroom. Gaming consoles require to be connected to a TV. The TV is a family-shared media, and so belongs in the living room. Usage of the living room TV was determined by the parents, so the children had to fight for the right to play their console games in the living room. In addition, students of that time had to study late in the night, and thus were often unable to spend time in the living room at all. On the off chance that they could, it was difficult to negotiate for TV time in the living room when their parents had just gotten home from work. But with a PC, the space becomes the room, and you don't have to contend with the usage of the living room. Once you were done studying at night, or if your parents were watching TV, you could just head into your own room. The fact that copying and distributing game software was much easier than copying console ROM packs probably also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spread of PC gaming. In the narrative of the transition from playing games in arcades to playing games at home, North America and Europe were different. The distribution rate of the PC was much faster than it was in Korea, so the perception that PCs were multifunctional rather than just used for gaming was already widespread. Essentially, the PC was already a part of the parents’ generation. Their children did not have after-school study programs nor late-night studying, and the parents already had the PC as one of their leisurely options, meaning they could afford to cede some of the power of the living room to their children. Plus, parents became cognizant of the role that consoles played as caretakers. They figured, if they gathered a few of the neighborhood kids in the living room, ordered them a pizza and gave them the game console, they could sneak out for a night at the movies downtown. Korean parents, on the other hand, had their grandparents, other parents, or late-night studying to be the caretaker, and so had no reason to give console games a glance. However, this is less the case in Europe than in North America, which can be explained by the average living space. In North America, where the residential space is much larger, having a console in the living room was no problem; but in Europe, you had to consider it first before making that change. Eastern Europe, in particular, is a former communist region with a high threshold for importing game consoles, a product of the capitalist camp. It also had a smaller living space than the rest of Europe did, which is why it has the lowest console market share. The only exception to this interpretation is the United Kingdom, where English is the native language and so is less mentally distant in regard to American culture. * While from 2014, this data helps us gather that the average residential space in North America and Australia is greater than that of Europe (especially in Russia, the eastern part of Europe.) In 1990, South Korea had an average of 62.94 square feet of living space per household, similar to Denmark in this graph, but for the cultural reasons mentioned above, they did not take advantage of this space. Therefore, we can say that North America and Western Europe saw a shift in gaming hegemony from arcades to consoles to PCs, while Korea and Eastern Europe went straight from arcades to PCs. Given the status of gaming arcades in these countries, we can summarize the narrative in terms of space. In North America and Western Europe, it's downtown to the living room, then the living room to the personal room. In Korea and Eastern Europe, it’s straight from neighborhoods to personal rooms. The narrative of these spaces is now shifting to being ‘directly in your hands’ with the concept of ‘mobile’ platforms, but the context of these spaces goes beyond that. Whether it's a glitzy downtown gaming center in North America and Europe or a dingy neighborhood arcade in Korea, arcades are public spaces built for gaming, so they naturally build a sense of community. Think of all the times you went to your local arcade to watch your friends play and play against other players from other neighborhoods. We could describe arcades as being "socially-friendly gaming spaces". When this gaming space transitions into the private space of the living room, the social aspect fades, but it doesn't disappear. Someone can watch you play games, you can converse with someone while playing, and/or you can play together, all in the living room. Console gaming is a solitary medium, but it's also a great offline social medium. When the gaming space shifted to the personal room, the social aspect became much less important. The room is a strictly private space, which is why it's possible for Korean parents to have their kids playing PC games while the parents can watch TV. The word PC stands for personal computer, after all. So, before the advent of online gaming, gaming in Korea was a one-person media, back when "playing games together" meant each person held a joystick/pad at a separate arcade/console cabinet. You could describe this as both offline anti-socialization + online socialization. The antisocial nature of PC gaming has been brought down to console levels due to the proliferation of the internet. In the case of internet cafes, it was like reverting the room’s space back to an arcade, and the “arcadeification” of StarCraft was an especially huge historical pivot in Korea. It was socially offline when you went to play StarCraft at an internet cafe with a group of friends, but it could also be done online as well. In other words, Korea’s internet cafe culture has diluted the offline, antisocial nature of PC games, but has also developed the social, online nature due to the expansion of infrastructure, and the result is no more than a reinforcement: You do not have to meet people in-person to play MMORPGs together. And so, society’s perception of games changes. In North America and Europe, where the market share is close to 40%, the offline-social view of gaming is still somewhat alive, such as when you invite friends over to play Halo. The fact that one of the slang terms for video games in American English is “nintendo games” is a testament to Nintendo's historical influence, but it also indirectly demonstrates that the social aspect of consoles is deeply woven into the perception of gaming in English-speaking societies. In Korea, on the other hand, after exiting the arcade, you go straight to your room. The perception of offline socialization is almost non-existent. Two characters that illustrate a stark difference are Thor and Koo Kyung. In the movie, Avengers: Endgame, Thor is presented as a gaming addict who plays Fortnite together in the living room with his friends. On the other hand, Koo Kyung, the main character in the Korean drama Inspector Koo, is a gaming addict, but plays MMORPGs alone in her own home. She interacts with her guildmates through the game, but is a reclusive loner otherwise in the world outside. The difference between Thor’s living room and Fortnite, and Koo Kyung’s own room and MMO role-playing game, is the distinct characteristic of Korean gaming – the lack of consoles. * Thor has become disconnected from society, but he still plays his games together with his friends. This can be seen as a remnant of the faintly offline social nature of consoles. * Koo Kyung has also become distanced from society, but unlike Thor, only she exists in her offline space. This can be seen as society’s perception of online, socially-oriented PC games. This historical context, or difference in experience, is where the difference between the social perception from outside of gaming and the gaming that consumers experience looking out from the inside comes from. The number of Korean console games being extremely low does not simply and one-dimensionally mean that fewer games are made for this platform, but also that fewer games that can be used for offline socialization are produced and consumed. Another way to put it is that games made or distributed in South Korea are made with online socialization as the primary, or even sole assumption. And now, we approach the year of 2022. The hegemony of gaming has progressed in the order of arcade, console, then PC, and is currently transitioning into mobile platforms. The offline space for mobile is incredibly narrow because that space is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it's more offline-antisocial than PCs are. Looking at this transition, you can imagine a graph where offline socialization continues to fade and online socialization grows in importance. So, are the weight of the times shifting to be completely online-social? This is a memory from a few years ago. One of my exes was hooked on the augmented reality game, Pokémon GO. They had to meet up with people in order to capture and trade for more Pokémon, and would even occasionally meet up with people from the community near their house to move in groups together around the neighborhood. This was the point where online socialization became offline socialization. Despite having the “look and feel” of a traditional online game, Pokémon GO was bringing people together to play, leaving plenty of room for interpretation as a mobile arcade or mobile internet cafe on the streets. Looking back, I remember seeing celebrities traveling from city to city to play Pokémon GO, with fans chasing them along the way. This was one of the marketing points of the Nintendo Switch. It's a console that's both stationary and portable, so two players who meet offline can play together by connecting their consoles. This proves that the mobile platform actually hides an aspect of offline-socialization. It's a paradox that makes it the first platform to facilitate offline contact because it's portable. It's phenomenally convenient compared to lugging a game console or PC to a friend's house to play together offline. Throw in the possibility of augmented reality (AR) games, and the social aspect of mobile gaming has the potential to guarantee a solid place in society. But can the offline-social aspect of Korean games, which has been missing since the arcade era due to the absence of console games, make a dramatic comeback? Can something beyond the social activities that Pokemon GO fostered be created? That answer lies in the imagination of developers and how users utilize it.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Translator) Esther Yum

  •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 Back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01 GG Vol. 21. 6. 10.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잇 테이크 투>는 그 특유의 보편성이 빛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보편적 플레이의 집합체’ 라고 할 수 있다. 어느하나 완전히 새롭거나 원전을 찾기 어렵게 변용된 것이 없으며, 새로움 보다는 잘 편집되고 조율된 플레이의 연결이 빛이 나는 게임이다. 마치 순서대로 차려지는 가정식 백반 같다고나 할까. 이 게임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은 역시 다채로운 레거시 게임 플레이의 끝없는 연결이다. 이 게임은 2인 협동 게임이면서도, 기존 게임들의 장르적 메커니즘을 하나씩 따와 채워넣었다. 전체적으로는 2인 협동 퍼즐이라는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TPS, 비행 슈팅, 대전 격투, 리듬 액션, 플랫포머 등 수많은 클래식 메커니즘을 도구로 삼았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지만, 이 기존의 플레이 메카닉을 자유자재로 섞어넣은 탁월한 감각이 돋보인다. 이는 또한 게임의 한계점을 교묘히 가리는 효과도 낳는데, 앞서 말했듯 이 게임의 플레이 메카닉은 대부분 이미 있었던 클래식한 요소이기 때문에 반복하면서 피로를 느끼거나 자루함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이 게임은 그런 시기가 오기 직전에 새로운 플레이 메카닉으로 갈아치운다. 즉 잘 편집된 게임 플레이의 나열은, 익숙함을 신선함으로 전환하는 역설적 효과를 가져다 준다. 즉, 이 게임의 플레이는 계속해서 ‘적응->숙련->응용’ 의 반복이다. 보통 하나의 핵심 메카닉을 추구하는 게임은 해당 플레이 메카닉에 플레이어가 충분히 익숙해지면 플레이 하기 위한 문턱, 허들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한다. ‘레벨’ 로 대표되는 RPG적 성장 요소가 대표적이다. 이는 닌텐도 스위치로 나온 최근작 <페이퍼 마리오 종이접기 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이 게임은 기존의 게이머들, 특히 대중 게이머들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질만 하지만, <잇 테이크 투>는 반대로 플레이에 걸림돌이 되는 특징 또한 가지고 있다. 플레이 자체에 이런 저런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빛나게 하는 보편성, 하지만 반대로 그 보편성을 가로막는 플레이의 조건’ 의 대조는 다소 아이러니하다. <잇 테이크 투>를 플레이하는 와중에 든 생각은 이 게임이 왜 대단하고, 얼마나 천재적인가 하는 것이었지만, 플레이를 마무리짓고 나서 든 생각은 ‘이렇게 훌륭한데도 왜 국내에서는 폭넓게 플레이되고, 널리 알려지지 못했나?’ 하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을 ‘플레이의 조건’ 에서 찾아보게 됐다. 지난해 직접 올해의 게임으로 뽑았던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이런 맥락의 논란을 몰고 다녔다. 즉, VR이라는 기기가 필요한 게임이 어떻게 올해의 게임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게임의 평가는 대중성 혹은 범용성을 꼭 포함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쉽게 반박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어찌되었건 플레이의 ‘조건’, 그것이 하드웨어이든, 아니면 플레이어가 갖춘 다른 어떤 여건이든 그 조건이 다소 높다면 과연 그 게임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남겼다. 비록 VR이라는 특수한 사례를 제쳐두고서라도, 모든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플레이 하기 위한 조건을 요구한다. 사소하게는 기기 스펙에서부터, 나아가서는 플레이어의 실력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몇몇 게임들은 특유의 게임 플레이나 감각적 요소를 이해하고 향유하기 위한 문화적 기반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 조건이 필수적일 수도, 그저 더해지면 좋은 요소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잇 테이크 투>는 다른 게임에 비해 이례적으로 그 요구 선이 독특하다. 이는 ‘카우치 코옵(Couch Co-Op)’ 이라는 특성과 제작자의 전작과 달리 ‘가족’ 을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카우치 코옵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카우치 코옵은 아직 가정 인터넷이 보급 되지 않은 2000년대 이전 가정용 콘솔 기기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로서, 콘솔 게이밍 기반이 200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한국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 콘솔 게이밍 기기는 네트워크 기능을 막 탑재하고 네트워크를 통한 코옵을 확장하였기에, 한국에서는 하나의 기기 앞에 여럿이 모여 분할 화면과 여러 개의 컨트롤러로 함께 플레이하는 문화가 흔치 않았던 것. 있더라도 <위닝 일레븐> 같은 스포츠 대결 게임 위주의 경험이 고작일 것이다. 한국에서 카우치 코옵과 가장 비슷한 문화를 찾아 보자면 한대의 PC로 다자가 한 게임을 공유하며 플레이하던 경험, 또는 오락실의 클래식 아케이드를 찾을 수 있다. 다행히도 21세기 들어 카우치 코옵을 중시하는 콘솔 게이밍 기기인 닌텐도의 Wii, 스위치 등이 저변을 넓히면서 오히려 한국에서는 Wii 방, 그리고 이후 닌텐도 스위치 커뮤니티를 통해 ‘추억의로서의 카우치 코옵’ 이라는 감각을 간접적으로 조립하여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즉, 한국인에게 ‘카우치 코옵’ 은 내가 스스로 겪고 자란 문화라기 보다는, 수입된 문화에 가깝다. 이 카우치 코옵의 감성은 <잇 테이크 투> 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카우치 코옵의 경험은 주로 청소년기에 형성되며, 일종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기재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경험이 청소년기에 부재한 한국 게이머들에게는 훨씬 덜 개인적으로 다가온다. 이와 더불어, 게이밍 문화에 아직 짙게 남아있는 남성 중심적 기조는 <잇 테이크 투> 를 온전하게 창작자의 주제의식 그대로 받아들여 체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아직까지도 한국, 그리고 세계에서 청년-청소년이 아닌 기성세대에게 게임은 남성의 문화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가 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게임이 2인 협동 게임일 뿐만 아니라 ‘자식을 가진 부부’ 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게임은 각각 이혼 위기를 맞이한 아내와 남편을 플레이하도록 한다. 또한 감정적으로 매우 풍부한 과정을 플레이에 담아두었다. 즉 대리체험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이 게임의 가장 이상적인 플레이어 구성은 역시 ‘부부’ 게이머가 함께 플레이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잇 테이크 투> 는 생각보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게이머 경력을 요구한다. 각종 기존 게임들의 레거시 플레이가 순간적으로 교체되고, 즉각적인 적응이 이 게임의 미덕이다. 비행 슈팅, 대전 격투, TPS 슈팅, 클래식 RPG 등 이 게임이 계속해서 변환하는 게임 메카닉은 코어 게이밍의 영역이며, 캐주얼 게임에 익숙한 게이머는 재미를 느끼기 전에 여러 자잘한 장벽으로 방해받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코어 게이머였던 여성을 찾기 힘든 현재 한국의 기혼 세대에게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가 또다른 분란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즉, 여성들이 게임을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레거시 게임에 대한 선험적인 경험이 필요한 이 게임에서 ‘코어 게이머로서의 경력’ 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것은 상당히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주변에서 부부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까지 현재 부모 세대(40대 이상)에게 게이밍이란 전적으로 남성의 문화, 또는 남성적 게임과 여성적 게임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는 인식, 그리고 행동 양식이 깊게 베어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훨씬 그 빈도가 높아보였다. 실제로 부부가 함께 플레이 했다는 감상, 후기의 절대적인 수가 해외가 더 높았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여성들도 어렸을 때부터 비디오 게임을 접하는 기회가 남성만큼이나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대를 불문하고 ‘여성 게이머’ 에 대한 멸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 불거진 특정 여성 스트리머의 <리그 오브 레전드> 챌린저 논란이 대표적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등 대중적 게이머층을 형성한 경쟁 게임을 중심으로 게이밍은 점점 더 보편적인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대부분의 코어 게이밍 문화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다. 그나마 닌텐도 스위치를 위시로 한 보다 대중적이고 보다 보편적인 게임들을 중심으로 점점 더 여성 코어 게이머 층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이 자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나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말하고 싶은 부분은 결국 그런 게이머 성별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우리 모두에게 불이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게이밍이 어떤 기본 교양, 소양으로 여겨지는 문화였다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카우치 코옵이라는 장벽에 가로 막히지도 않고, 또는 부부 사이에 좋은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로서 이 게임을 플레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카우치 코옵이라는 플레이 방식이 주는 노스탤지어, 그리고 ‘부부의 갈등 해소’ 라는 중심 사건이 플레이어에게 깊이 천착하는 감성은 역으로 한국의 게이머들에게는 거리감을 두게 만든다. 이 두가지가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임을 고려할 때, 게임의 완성도에 비하여 그에 상응하는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한 요인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잇 테이크 투>가 올해의 최고의 게임이 될만한 가장 강력한 후보라는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올해 상반기 출시작 중 이만큼 강렬한 게임 플레이를 보인 사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의는 순수하게 ‘게임 플레이’, 즉 직관적인 놀이로서의 재미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게임 플레이라는 핵심이 아닌 캐릭터의 외관, 이야기에 삽입된 전형적 요소, 마케팅 같은 외적 요인에 기댄 게임들에게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게임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논한 ‘플레이의 조건’ 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태초의 게임 ‘퐁’ 역시 2인이 아니면 플레이 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물론 어떤 한 문화의 시작점이 수십년이 지나도 절대적인 잣대로 남아있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론 꾸준히 요제프 파레스는 2인 플레이 게임을 만들어왔고, 때문에 전작과 동일한 플레이 저변의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잇 테이크 투>가 전작과 달리 널리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대중적 접근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다른 대중적 게임에 비해서는 후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전작에 비해서는 훨씬 진일보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우리가 자리잡은 게이밍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또는 그 변화가 충분히 급격하지 못하다면, 여기서 필요한 덕목은 폭넓은 이해의 관점이다. 협소한 사건 그 자체나 자신의 1차적 경험에만 의존한 해석이 아니라 좀더 광의에서의 이해, 근본적으로 그 감정이 내게는 어떤 식으로 치환될 수 있는지 찾아보는 수용의 자세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불완전 연소한 게임의 가치를 곱씹을 수 있다면 된게 아닐까. 아마 올해 내내, <잇 테이크 투>가 고평가를 받는데 있어서 이 플레이의 조건은 내내 발목을 붙잡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이 게임은 카우치 코옵,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얻은 것이 더 많다고 보기 때문에 충분히 가치있는 시도였다고 평하겠다. 더불어, 게임을 평가할 때마다 하는 말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세상에는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About GG | 게임제너레이션 GG

    게임문화재단이 만들고 (주)크래프톤이 후원하는 격월간 게임문화비평전문웹진. 게임비평 및 연구결과 수록. 게임문화 교양웹진, 게임 제너레이션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게임문화 담론을 선도해 나가고자 2021년 8월에 창간한 게임비평 전문 웹진입니다. 2개월에 한 번씩 GG는 동시대 디지털게임의 주요 주제를 선정해 다양한 시각에서 그 의미를 탐색하고 밝히고자 합니다. GG의 철학 GG는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디지털게임이 차지하는 영향력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디지털게임이 일상이 된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는 게임을 하는 이도 안하는 이도 게임으로부터 영향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문화적 의미를 밝히는 것이 GG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현대 대중문화담론이 처한 위기는 무거움과 가벼움 양 쪽 모두를 딛고 있습니다. 학술적인 깊은 논의들은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지 못하고 있으며, 널리 퍼지는 이야기들은 게임문화담론의 깊이를 품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GG는 '학술지보다 가볍게, 웹진보다 무겁게'라는 슬로건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보다 게임문화를 보다 무겁게 다루는 일이 충분히 대중적일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러한 독자와 필자를 찾아내고 담론장에 유통하는 일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GG를 만드는 사람들 척박한 게임문화담론을 개척하는 일에는 많은 인력과 자원, 시간이 들어갑니다. GG는 게임문화재단에서 제작을 맡고 있으며, 그 후원을 (주)크래프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크래프톤의 후원은 전적으로 후원에 머무르며, 웹진 제작과정과 방향성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러한 후원을 바탕으로 GG는 많은 게임연구자들과 협업하며 게임문화담론의 생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망라한 젊고 명망있는 게임연구자들, 게임의 문화적 비평에 의지를 가진 비평가들이 GG와 함께합니다. 더불어 새로운 필진의 발굴을 위해 GG는 매년 1회 게임비평공모전을 주최, 동시대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자 노력중입니다. GG가 꿈꾸는 미래 한국은 게임문화에 있어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문화담론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비단 한국어권에 머물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GG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게임문화담론을 전세계와 공유하고자 하는 미래를 꿈꿉니다. 해외의 다양한 게임연구, 담론, 비평을 공유하고, 또 한국에서 생산된 논의들을 해외로 내보내는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넘어 전세계와 함께 디지털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서의 GG를 우리는 상상합니다.

  • 게임을 연구한다는 것 -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가 던지는 질문들

    북유럽에서는 디자인 학부가, 북미에서는 영화학과가, 일본에서는 사회과학이나 이공계가 게임 연구를 주도하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그들은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본다. 이 책은 단순한 게임 연구의 용어사전이 아니다. 여기에는 일본 게임 연구 공동체가 지난 20년 동안 축적해온 고민이 농축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학문적 경계 위에 서 있는 한국 게임 연구자들 역시 공유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 Back 게임을 연구한다는 것 -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가 던지는 질문들 27 GG Vol. 25. 12. 10. 게임 연구, 어디에 속하는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게임 연구를 한다고 자기소개를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게임 연구요? 그럼 코딩하시나요? 게임 개발 쪽인가요?" 게임을 연구한다는 말이 곧 기술 연구나 프로그래밍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물론 게임 연구에는 기술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미디어 연구, 문화 연구, 장르 연구, 철학이나 미학 연구 등 게임을 바라보는 지평은 다양하다. 그러나 '게임 연구'라는 말은 여전히 명확한 윤곽을 갖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혼란은 비단 연구를 하지 않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게임 연구자들 스스로도 게임 연구가 어느 학문 분과에 속하는지 명확히 답하기 어렵다. 게임 연구는 어디에 속하는가? 미디어학과 강의실, 컴퓨터공학과 실험실, 문화연구 세미나실 가운데 어느 곳이 그 자리가 될 수 있을까? 2025년 5월 일본에서 출간된 『クリティカル・ワード ゲームスタディーズ ― 遊びから文化と社会を考える』(이하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의 네 명의 편저자 – 이노우에 아키토(井上明人), 마츠나가 신지(松永伸司), 요시다 히로시(吉田寛), 마틴 로스(Martin Roth) – 는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대신, "게임 연구는 기존의 대학 분과나 학문 제도로는 수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북유럽에서는 디자인 학부가, 북미에서는 영화학과가, 일본에서는 사회과학이나 이공계가 게임 연구를 주도하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그들은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본다. 이 책은 단순한 게임 연구의 용어사전이 아니다. 여기에는 일본 게임 연구 공동체가 지난 20년 동안 축적해온 고민이 농축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학문적 경계 위에 서 있는 한국 게임 연구자들 역시 공유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일본 게임 연구가 바라보는 지평 그렇다면 일본의 게임 연구자들은 게임 연구의 이 불안정한 위치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에서 서문을 통해 드러나는 일본 게임 연구의 현주소는 흥미롭다. 편저자들은 게임 연구가 "새롭고 영역횡단적인 학문"이기에 전체와 현위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을 인정한다. 앞서 국가별로 게임 연구가 주도되는 학문의 영역이 다르다고 언급했듯, 이러한 지역적 편차는 게임 스터디즈가 아직 확립된 학문 분과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게임이라는 대상 자체가 단일한 학문적 렌즈로는 포착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게임 제작에 요구되는 기능이 프로그래밍부터 영상, 시나리오, 세계관 설정,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듯, 게임 연구 역시 문과도 이과도 아닌, 혹은 문과이면서 동시에 이과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책의 구성에도 반영된다. 네 명의 편저자는 각기 다른 전문 분야와 배경을 가진다. 편저자들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각각의 연구자가 자신의 전문 분야 내에서 각자의 게임 연구에 임해도 좋다"며, 학문적 다원주의를 적극 옹호한다. 일본 게임 연구가 주목하는 것들 이러한 학문적 다원주의는 구체적으로 어떤 주제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을까? 그 답은 책이 다루는 주제들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책의 제1부 이론편은 '룰(Rule)', '미디어(Media)', '놀이(Play)', '픽션(Fiction)',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소셜(Social)', '인공물(Artifact)',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 등 8개 핵심 개념을 다룬다. 주목할 점은 하나의 개념을 네 명의 편저자가 각각 다른 관점에서 해설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룰' 개념을 둘러싸고 "게임은 룰인가", "룰 개념의 다의성과 다양한 성질", "룰은 게임을 정의하는가"라는 세 가지 소제목 하에 서로 다른 시각이 제시된다. 이는 단일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가 다양한 견해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형성하도록 유도하는 교육적 전략이다. 제2부 키워드편은 27개 항목으로 구성되며, 현재 게임 문화와 게임 연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주제들을 다룬다. 여기에 수록된 키워드들을 살펴보면, 현재 일본 게임 연구가 어떤 영역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드러난다. 이 항목들은 크게 다섯 가지 주제로 묶인다. 첫째, 기술적·물질적 기반 주제다. 'NFT', '에뮬레이션', '아카이브', '플랫폼' 같은 파트들은 게임을 단순히 의미의 텍스트가 아니라 특정한 기술적·경제적 조건 속에서 작동하는 미디어로 파악한다. 특히 아카이브와 에뮬레이션 파트는 게임의 보존과 접근성 문제를 다루는데, 이는 게임이 점점 더 '사라지는' 미디어가 되어가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개입이다. 플랫폼 개념은 게임이 중립적 공간이 아니라 특정한 권력 관계와 경제 구조 속에 배치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둘째, 사회문화적 쟁점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다. '젠더와 섹슈얼리티', '접근성과 장애의 표상', '게임 행동 장애(Gaming Disorder)' 같은 파트들은 게임을 둘러싼 정치성을 전면화한다. 젠더 파트는 게임 문화의 남성중심성과 배제의 구조를 분석하고, 접근성 파트는 장애인 게이머들의 경험이 어떻게 주변화되어왔는지를 다룬다. 게임 행동 장애 파트는 WHO의 질병 분류를 둘러싼 논쟁을 다루면서, 게임 플레이를 병리화하는 담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게임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광범위한 사회 현상과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셋째, 플레이어의 창조적·전복적 실천에 대한 주제다. '게임 실황', 'UGC(User-Generated Contents)', '치트', '내비게이션' 같은 파트들은 게임이 개발자가 설계한 대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게임 실황은 게임 플레이를 관람 가능한 퍼포먼스로 전환하는 실천이고, UGC는 플레이어를 공동 창작자로 위치시킨다. 치트는 게임의 룰을 의도적으로 위반함으로써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다. 이러한 항목들은 게임 연구가 '텍스트 분석'에서 '실천과 문화 연구'로 확장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넷째, 게임의 사회적 확장에 대한 주제다. '스포츠', '투어리즘',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같은 파트들은 게임이 더 이상 오락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업무, 교육, 건강관리 등 삶의 다양한 영역이 게임의 논리로 재편되는 현상을 가리키며, 투어리즘 파트는 <포켓몬 GO> 같은 게임이 실제 공간의 이동과 경험을 재조직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스포츠 파트는 e스포츠의 부상과 함께 게임과 전통적 스포츠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을 다룬다. 다섯째, 메타적 성찰에 대한 주제다. '비평(Criticism)', '윤리(Ethics)', '역사 서술', '내러티브(Narrative)', '몰입' 같은 개념들은 게임을 연구하는 방법론 자체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윤리 파트는 게임 내 폭력 표현, 착취적 과금 모델, 개발 노동 조건 등 게임을 둘러싼 다층적 윤리적 쟁점들을 다룬다. 역사 서술 파트는 게임이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과 그것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탐구한다. 비평 파트는 게임 비평의 언어와 방법이 무엇인지, 게임을 평가하는 기준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묻는다. 제3부 북가이드편은 20개의 필독 문헌을 소개한다. 하위징아(Huizinga)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카이와(Caillois)의 『놀이와 인간(Man, Play and Games)』 같은 고전부터, 예스퍼 율(Jesper Juul)의 『하프 리얼(Half-Real)』,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의 『설득적 게임(Persuasive Games)』 같은 현대 게임 연구의 주요 저작까지 망라한다. 흥미롭게도 편저자들은 일본어 문헌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밝히는데, 이는 "일본 독자에게 익숙하지 않거나 접근이 어려운 외국어 문헌 소개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어쩌면 내용보다 형식에 있을지 모른다. 서문에서 편저자들은 독자에게 "이 책을 도중에 내던지고 즉시 자신만의 게임 스터디즈를 시작해도 좋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 책에는 다양한 전문 분야와 연구 테마를 가진 많은 저자들이 다루는 현재진행형의 게임 스터디즈가 담겨 있으므로, 끝까지 읽는 것을 권장한다"고도 덧붙인다. 이는 게임 연구라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영역에서 학술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게임 연구자들의 마음가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2000년대 이후 게임 연구 커뮤니티와 연구 서적이 서서히 쌓여 왔고, 이 책은 그 축적의 위에 서서 ‘입문용 지도’를 제안하는 위치에 있다. 이러한 모습은 일본의 게임 연구 씬뿐만 아니라 한국의 게임 연구 현장에서도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본 게임 연구는 명확한 학문적 경계나 방법론적 합의가 부재한 상황을 문제로 보기보다, 오히려 가능성으로 전환하려 한다. "문과도 이과도 아니다", 기존 학문 제도의 바깥에 머물러 있다는 진단은 패배주의적 자조가 아니라, 새로운 학문적 실험을 위한 생각의 전환에 가깝다. 일본의 지형, 한국의 질문 사실 한국과 일본의 게임 연구 지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미학, 철학, 미디어 이론, 기술사 등 인문학적이고 이론 지향적인 게임 연구 관점뿐만 아니라, 기술 개발 연구, 디자인학 연구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진행되며, 지역이나 대학별로 강조하는 학문 분과도 다르다. 한국 역시 커뮤니케이션학, 미디어학, 문화연구는 물론이고 게임 정책 연구, 산업 분석, 기술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접근이 공존한다. 두 나라 모두 게임 연구를 단일한 학문 체계 안에 정착시키기보다는, 여러 분과의 경계를 넘나들며 각자의 방식으로 게임이라는 대상을 탐구해왔다. 그렇다면 이 책이 한국 게임 연구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비교의 프레임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한국과 일본의 게임 연구는 문화적 맥락과 제도적 환경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게임 연구는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는 비슷한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하고 있다. 젠더 담론, 게임 병리화 담론, 아카이브와 보존 문제, 플레이어 실천의 의미 등 한국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쟁점들을 일본 게임 연구가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는 일은, 우리 자신의 연구 지형을 새로운 각도에서 성찰하게 만든다.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는 단순히 일본 게임 연구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한국 게임 연구자들에게도 "당신은 게임을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고 볼 수 있다. 나가며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는 완결된 지식 체계를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게임 연구라는 영역이 여전히 형성 중이며, 다양한 관점들 사이의 긴장과 대화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임 연구는 확립된 지식 체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는 탐구의 과정이며, 따라서 단일한 방법론이나 관점으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게임 연구가 제도화된 학문 권위가 아니라 개방적이고 실험적인 지적 실천이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35개의 키워드와 20개의 필독서는 하나의 '정전'(正典, canon)이라기보다, 계속 수정되고 확장될 '잠정적 지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제시하는 비전이 순탄하게 실현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임 스터디즈가 기존 학문 제도에 수용되지 않는다는 진단은, 동시에 제도적 지원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학문적 다원주의는 지적 풍요로움을 약속하지만, 공통의 언어와 방법론이 부족해지는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한국 게임 연구에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일본 게임 연구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점검하고, 미래의 방향을 탐색하며, 동시에 새로운 참여자들을 초대한다. 한국의 게임 연구자와 게임 문화 연구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귀중한 비교 참조점이자, 우리 자신의 게임 연구 지형을 성찰하게 만드는 거울이 될 것이다. 우리는 게임을 어떤 학문적 렌즈로 바라보고 있는가? 국내 게임 문화의 고유성과 글로벌 게임 연구 담론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찾을 것인가? 『크리티컬 워드 - 게임 스터디즈』를 비롯해 다른 나라의 게임 연구 동향을 살펴보는 일은, 이 질문들을 다시 꺼내어 놓게 만드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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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세대의 문화담론 플랫폼 게임제너레이션은 크래프톤의 후원으로 게임문화재단이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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