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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모전]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Ready or Not 비평을 중심으로

    이 말은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의 CEO이자 영국 해군 출신이기도 한 리틀 존스가 한 말이다. 90년대말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에서 택티컬 FPS의 시초인 ‘레인보우식스’가 탄생한다. 톰 클랜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지금은 당연시되는 밀리터리 택티컬 FPS의 기본 공식들이 대부분 정립하여 FPS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 Back [공모전]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Ready or Not 비평을 중심으로 13 GG Vol. 23. 8. 10. “당신 앞에 움직이는 모든 걸 총으로 쏘는 게임들은 성공적이었지만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반면 전략 위주의 게임들은 속도가 너무 느려서 지루했죠. 우린 두가지를 적절히 섞어 놓고 싶었습니다.” 이 말은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의 CEO이자 영국 해군 출신이기도 한 리틀 존스가 한 말이다. 90년대말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에서 택티컬 FPS의 시초인 ‘레인보우식스’가 탄생한다. 톰 클랜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지금은 당연시되는 밀리터리 택티컬 FPS의 기본 공식들이 대부분 정립하여 FPS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택티컬 FPS의 조건 택티컬 FPS의 조건은 ‘레인보우 식스’가 출시되면서 정립된 밀리터리 택티컬 FPS의 공식이나 요소가 많기 때문에 ‘레인보우 식스’에 들어간 요소를 보면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첫번째로는 현대 특수전이 나오게 된 점. 그 당시 게임은 미래의 첨단 무기를 쏘면서 싸우거나 우주 해병이 악마들을 찢어 죽이는 게임같이 ‘하이퍼FPS장르’가 활약했지만 ‘레인보우식스’에서는 처음으로 인질극, CQB등 대테러 특수전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특히 인질과 테러범이 뒤섞이는 상황은 게이머들에게 참신하게 다가왔고, 위에 ‘리틀 존스’의 말처럼 보이는 타겟을 마음대로 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두번째로는 현대적인 군용 장비. 전투복, 주무장, 부무장, 보조장비를 구분해서 착용할 수 있게 하며, 이 장비들 역시 실제 군용 장비들로 구현이 되어 현실감을 불러일으킨다. 세번째는 피격판정에 대해서 세세하게 나눠진 부분도 ‘레인보우 식스’가 가져온 차별성이라 볼 수 있다. 팔, 다리, 머리를 맞았을 때 몸의 상태가 달라지며, 팔에 총탄을 맞았을 경우 명중률이 떨어지게 되고, 다리에 총탄을 맞을 경우엔 속도가 느려지게 되고, 머리는 즉사인 현실적인 표현으로 더욱 긴장감 있는 전투를 하게 하였다. 마지막은 분대전술로 총알 한발만 맞아도 전투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작전 수행을 위해 분대원들과 함께 전략적(tactical)으로 움직여야 한다. 도어브리칭, 엄호사격, 사주경계, 은엄폐같은 실제 특수작전에서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소들이 구현되었고 이동 지시는 BLITZ(전력질주), NORMAL(기본 이동 상태), SAFETY(천천히 조용하게)를 선택하여 분대원들을 이동시킬 수 있고 교전상황에서의 명령은 CLEAR(거점 확보 후 사주경계), ENGAGE(선제 사격 및 제압), ADVANCE(일렬로 진입), ESCORT(인질 호송)로 나뉘어 분대원들이 상황에 맞는 할 일을 시킬 수 있었다.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 Ready or Not은 Void Interactive에서 21년도 12월 중반 출시하여 이틀만에 ‘스팀 전 세계 최고 인기 제품’ 1위에 오른 뒤 오랫동안 선두를 지켰다. 이는 그 당시의 ‘헤일로인피니트’와 ‘포르자호라이즌 5’ 그리고 ‘레드데드리뎀션2’등 다수의 트리플A급 게임들을 넘었다는 점에서 놀랍고, 출시 후에도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계속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00년대 이후로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의 초기작들과 SWAT 4와 같은 현실성을 지향하는 택티컬 슈팅 게임들은 사실상 명맥이 끊겨 Ready or Not이 이러한 게임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의 재탄생을 목표로 하여 최초 공개 이후로 많은 게이머들이 관심을 갖고 지지한 부분도 있겠지만 결국 게임이 성공하기 위해선 게임의 화려한 마케팅 말고도 게임 속 내용이 중요하다. 마케팅이 성공적이면 게임 판매량은 높을 수 있겠지만 유저들의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선 게임 속에 담긴 내용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케팅만 잘 되고 게임이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면 포장지만 그럴싸한 빈 껍데기였다 생각한다. 요즘은 dlc라던가 업데이트를 통해 사후지원을 해주는 게임도 많지만 처음 기대를 갖고 구매한 유저들은 실망하고 평가는 좋지 않을 것이다. Ready or Not이 택티컬 FPS로써 가지고 있는 것 Ready or Not은 택티컬 FPS 게임으로써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앞에 말한 ‘레인보우 식스’의 택티컬 FPS 조건을 따라가며 현대적인 감각으로 발전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일단 택티컬 FPS니 당연시하게 현대 특수전은 기본. Ready or Not은 여러 상황의 장소를 선택할 수 있고 주택, 주유소, 호텔, 나이트클럽 등 다양한 상황이 있다. 이는 장소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장소마다 용의자가 일으킨 사건, 행동이 다르다. 맵 선택 시 미션의 타입을 선택할 수 있는데 첫번째로는 RAID(습격). 교전 수칙이 느슨하고, 일반적으로 더 많은 용의자와 적은 민간인들이 존재한다. 말그대로 습격이기 때문에 용의자들을 체포해도 좋지만 다른 미션에 비해 굳이 체포할 필요는 없다. 두번째로는 ACTIVE SHOOTER(총기 난사). 총기 난사범이 모든 시민들을 죽이기 전에 그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미션이다. 세번째로는 BOMB THREAT(폭탄 해체)로 폭탄의 위치를 파악하고 해제가 목적. 또한 용의자들과 민간인들도 폭발물 근처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네번째로는 HOSTAGE RESCUE(인질 구출)로 인질 구역의 위치를 파악하고 진입해야 하며, 용의자가 팀과 플레이어를 감지할 경우 인질범들이 시민들을 사살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용의자가 눈치채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미션. 특수작전을 위해선 역시 장비를 갖추고 가야 하는데 Ready or Not도 최근 나온 택티컬 FPS답게 무기 및 장비 폭이 넓다. 주무기(PRIMARY WEAPON)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대응이 가능한 돌격소총(ASSAULT RIFLE)과 CQB에 특화된 연사 화기인 기관단총(SUBMACHINE GUN) 그리고 강력한 산탄을 사용하는 산탄총(SHOTGUN). 그 외에도 투척물 발사기나 비살상 플레이를 위한 저살상(LESS LETHAL)무기도 있다. 주무기 폭만 넓은 것이 아니라 보조무기도 357 매그넘, M45A1, 테이저등 여러 총기가 있고, 주무기와 보조무기에서 총기 모딩으로 전방 손잡이, 총열 부착물 등 선택하여 작전에 맞게 준비할 수 있게 된다. 화기 준비가 되었다면 전술 장비도 갖추고 상체 보호 장비(예시로 방검복)와 장갑재(예시로 케블라), 머리장비(예시로 NVG)까지 임무 환경에 맞게 준비하여 다양한 장비를 고르기만 해도 만족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레인보우식스’과 유사한 부상 페널티의 차이가 구현되어 있다. 다리가 부상당했다면 속도가 느려지고 문을 차지를 못하게 될 것이며, 팔을 부상당했다면 반동이 심해져 사격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플레이어가 부상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출혈할 수도 있기 때문에 출혈 시에는 꼭 붕대를 감고 다시 교전해야 한다. 택티컬 FPS로써의 여러 요소가 있지만 제일 중요하다 생각되는 건 역시 분대전술. Ready or Not은 문에 시점을 보고 있는 쪽에 따라 다르게 활성화된다. 문 아래를 보고 미러건 장비 시 문 너머를 확인할 수 있고, 도어웨지 장비 시 문을 막을 수 있어 변수를 차단 효과를 볼 수 있다. 문 가운데를 보고 상호작용키를 누를 시 90도로 그대로 열리지만, 손잡이 쪽을 상호작용할 경우 문을 살짝 열고 문 엿보기가 된다. 문 엿보기의 필요성은 문을 열었을 때 안쪽에서 용의자 반응 유무를 통해 인원파악과 용의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함정이 있는 지 확인할 수도 있고 섬광을 넣고 진입을 할 때도 문을 다 열고 섬광을 던지면 용의자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에 살짝 열린 틈으로 섬광탄을 넣고 진입하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 솔로 플레이일 경우에도 마우스 가운데 버튼으로 AI 팀원에게 지시를 다양하게 내릴 수 있는데 CLEAR WITH FLASHBANG을 선택할 경우 AI가 문을 살짝 열고 섬광을 집어넣은 다음 섬광이 터지면서 대열을 갖추어 진입하게 된다. 또한 섬광 외에도 폭발물을 이용해 돌입할 수도 있고 산탄총을 사용하여 안전하게 문을 정리하는 방법 등 다양하다.멀티 플레이어일 경우는 서로 합을 맞추면 재미있게 할 수 있지만, 솔로 플레이어일 경우 마우스 가운데 버튼으로 지시하게 되는데 클릭 시 해당 명령을 행동할 인원을 금색일 경우 전체 분대가 수행하고 파란색일 경우 분대의 반, 빨간색도 나머지 분대의 반 인원이 행동하게 나눠져 있어 편리하다. 행동의 경우에는 1, 2, 3번의 명령이 나눠져 있는데 1번 명령은 스택업, 미러건으로 체크, 트랩 제거, 웨지도어 설치가 있고 2번 명령은 그냥 돌입과 섬광탄, 스팅어, CS가스 투척 후 돌입이 있다. 3번은 브리칭으로 발로 차서 브리칭, 샷건으로 브리칭, C2로 브리칭이 있다. 내가 완전한 택티컬 FPS 경험은 많지 않아서 어렵다 느끼기에 혼자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러한 두려움에도 AI 플레이어들이 잘 커버해주고 수집해야 하는 증거도 알아서 수집하여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초반에 맘 편하게 게임할 수 있었던 점은 혼자서도 멀티 플레이어만큼은 아니지만 분대전술을 할 수 있게 잘 되어 있고, SWAT4의 정신적 후속작인 Ready or Not이 SWAT4보다 아군AI가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다. Ready or Not이 가지고 있는 현실성과 메시지 위에서 Ready or Not에 기존 택티컬 FPS의 규칙이나 요소가 잘 담겨있는 지 보면서 ‘이미 현실성이나 고증이 잘 되어 있는 거 아니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더 말할 부분이 있다. 현 시대의 택티컬 FPS가 Ready or Not이외에도 Zero Hour나 Ground Branch가 있지만 그것들보다 Ready or Not이 가지고 있는 차별성과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내가 Ready or Not을 중심으로 택티컬 FPS 장르에 대해 비평하는 이유이다. ‘그럼 얘네가 가진 차별성과 메시지가 무엇인데?’라는 질문이 올 것이고 나는 역시 내용물, 게임 속에 담긴 배경과 사건에 주목한다. “로스 수에뇨스의 거리는 무법지대입니다. 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배회하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범죄 발생률이 최고조에 달할 정도로 치안 공백이 심각합니다. 게임의 스토리 배경은 연속 강력범죄로 큰 혼돈에 빠진 가상 미국의 항만 대도시 ‘로스 수에뇨스시’의 SWAT 팀이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내용으로 작전은 다른 대원들과 함께 최대 5명으로 진행하게 된다. 게임 로비에 들어가게 되면 경찰서의 모습이 보이고 로비 각 위치에서 위에서 말한 장비 착용이나 미션 선택 등을 해볼 수 있다. 임무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로 신규 플레이어가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하기 좋은 파크 213번지 주택 맵으로 얘기를 해보겠다. 이 임무는 약물 유통에 직접적으로 개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파크의 213번지를 수색하는 임무이다. The detectives have been following a new lead to locate source of methamphetamine storage in Los Suenos, tracing a potential "affordable housing" development in 213 Park. 메스암페타민은 흔히 히로뽕, 필로폰이라 불리는 마약으로 투약 시 얻는 극단적 쾌락과 심한 중독성, 부작용을 근거로 마약으로 분류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서 각성제로 애용되었으나 부작용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현재 제조, 판매, 복용이 금지되어 있다. 약물의 효과는 각성 효과, 성욕 증가, 집중력 증가, 인지능력 증가, 육체적인 행복감, 사고 가속, 사교성 및 실행 동기 증가 등이 있지만 약효 때문에 식욕 상실, 배뇨 장애, 폭력적 충동과 분노조절장애를 동반한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점은 약효 종료 시의 후유증과 금단증상이라 한다. "필로폰 같은 경우는 한번 투약하게 되면 의존성, 내성이 아주 강해요. 그런 식으로 1회, 2회, 3회 투약했을 경우에는 중독성으로 변해서 상습으로 변하는 거죠." 윤흥희/한성대학교 마약알코올학과 교수(前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 팀장) 우리는 이 메스암페타민을 2개를 증거로 확보하고 모든 민간인을 구출하고, 2명의 용의자(마약범)를 체포하는 것이 목표이다. 주택을 수색하는데 게임 속에서 마약중독자들의 비참한 삶이 잘 표현되어 있다. 주택안은 어둡고 더러운 분위기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매트릭스 위에는 인분이나 오줌의 흔적이 남아있다. 위에 말한 부작용인 배뇨 장애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또, 용의자들과 시민들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는 디테일과 진행을 하다 보면 2층에 아이방이 있는데 마약중독자인 부모 혹은 보호자의 방치인 지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 꺽꺽소리를 내며 구토를 한다. 이 아이를 구조할 수 있지만 2층까지 주택을 클리어하는데 체포한 수많은 중독자나 혹은 사살한 사람들 중 아이의 보호자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착잡하다. Having taken down a distribution center for an illegal child-pornography ring operating out of Los Suenos, the LSPD cyber-crime team has now located the man profiting from its sales. LSPD SWAT have been sent to his home on a warrant service. 앞서 말한 임무 외에도 아동 포르노 조직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포르노 남배우 겸 감독 아모스 볼의 저택을 급습하는 고위험 영장 집행 임무에서 마당 한구석 위치한 계단을 타고 지하실에 진입해보면 아동 프로필을 수집한 장소가 있다. 이름, 성, 나이가 적혀 있으며 제일 어린 나이는 4살이다. 지하의 다른 장소에는 무언가로 가득 찬 드럼통엔 아이들의 시체가 들어있을 지 아니면 체액이 묻은 옷가지나 신발 혹은 관련된 기구나 기록물인 지 알 수 없지만 드럼통과 같이 어린아이들의 옷가지나 인형 등을 지하실 바닥에 파묻다가 만 흔적은 분명히 증거인멸을 하려한 흔적이고, 촬영장으로 보이는 장소는 앞에서 말한 프로필을 보다가 본인이 세트장으로 데려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범죄 사실, 붉은 조명 아래에서 어린 아이들의 사진을 인화하는 방이 있는 등. 이런 끔찍한 묘사는 현실의 암울한 범죄를 잘 나타낸다. Void Interactive, 그들이 담고 싶어하는 것 Developer AMA에서 나는 개발 비화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Void Interactive의 CEO인 율리오는 사촌이 있었는데 1984년 캘리포니아주 산 이시드로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평소처럼 일하고 있는 와중 갑자기 한 괴한이 매장으로 들어오더니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 총기를 난사했다고 한다. ‘맥도날드 대학살 사건’로 불리며 이 당시 총기난사로 무려 34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용의자인 제임스 휴버티는 UZI 기관단총, 윈체스터 엽총을 사용해 보이는 족족 쏴 죽였다고 한다. 그의 사촌은 다행히도 총격전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2014년 당시 호주에도 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유명한 ‘시드니 인질극’이다. 이때 당시 율리오는 dayz 게임을 통해 서로 친해지게 된 3명의 10대 학생이 있었는데 이 중 한명이 스털링이였고 호주인이였던 스털링은 사건 발생 직후 뉴스로 소식을 접하고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으며, 몇년후 스털링과 친구들이 율리오에게 찾아와 SWAT같은 게임을 만들자는 제안에 율리오는 수락하고 Ready or Not이 개발되게 되었다. CEO인 율리오와 COO인 스털링은 서로 공감될 만한 사건을 겪고 이를 게임에 나타나게 한 것이다. 택티컬 FPS 게임은 현실적인 고증이 매우 중요하지만 Ready or Not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개발목적성이 현재에 다른 택티컬 FPS와 차별성을 가지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디지털 게임을 할 때 큰 장점은 우리는 게임 속 플레이어가 되고 상상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안전하다. 실제 대테러 상황을 마주하면 큰일나겠지만 현대의 택티컬 FPS인 Ready or Not을 해보면서 암울한 범죄 상황과 그러한 현실들을 마주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이 게임에 담긴 인지적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생) 이규연 어릴 적 프로그래밍을 배운 후, 여러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 게임 기획자(Game designer)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며 게임업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음과 동시에 게임 관련 전시, 축제, 대회(E-Sport)를 즐겨 찾고 있다.

  • 『중국 학부모』의 과잉 경험과 리얼리즘의 신화

    ‘리얼리즘 게임’이라 불리는 『중국 학부모(中国式家长)』는 서민적인(接地气)1) 콘텐츠 덕분에 “매우 현실적”이고 “삶에 근접해 있다”는 등 일관된 평가를 받았다. 이 게임은 현장 조사에서 얻은 실제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실제 경험을 과잉 경험으로, ‘현실감’을 ‘현장감’으로, 실제 상황을 ‘공감(感同身受)’으로 대체하며, 궁극적으로 사회구조 문제를 가족윤리 문제로 축소한다. 또, “부모를 용서하라”는 감정주의적 결말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게임의 기초적인 설정 - 세대속성의 대물림(다음 세대 아이가 윗세대의 우세속성을 물려받는다) - 이 모든 ‘리얼리즘’ 게임에서도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란 점이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게임의 ‘리얼리즘’은 바로 계급 상승의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과잉 경험과 그 이면에 깔린 리얼리즘의 신화는 『중국 학부모』로 하여금 진짜 문제를 은폐하는 동시에 폭로자가 되도록 한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ivist, Writer) Zhou Siyu Master's program, Graduate School of Literature, Nankai University. (Activist, Writer) Myeonggyo Hong Activist and writer. Works at the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Platform C on East Asian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social movements. Author of To My Vanished Chinese Friend and A Ghost Throws a Punch at the World, and translator of Xinjiang Uyghur Dystopia and Dying for an iPhone (co-translated).

  •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라는 실험: 아웃오브 인덱스의 여정

    아웃 오브 인덱스 (Out Of Index: 이하 OOI) 는 국내 유일의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다. 자바 언어의 에러 메시지 중 ‘배열을 벗어났다’는 뜻의 ‘Array Index Out Of Bounds’ 에서 영감을 얻은 페스티벌의 이름은, ‘장르’나 ‘트렌드’ 와 같은 단어로 설명되어지는 일반적인 분류(Index) 밖에 자리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다루고자 하는 페스티벌의 철학을 담고 있다. < Back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라는 실험: 아웃오브 인덱스의 여정 03 GG Vol. 21. 12. 10. "시장성, 대중성 보다는 개발자들의 창작과 실험 그 자체에 초점을 둔 게임 페스티벌을 만들어보자." 아웃 오브 인덱스 (Out Of Index: 이하 OOI) 는 국내 유일의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다. 자바 언어의 에러 메시지 중 ‘배열을 벗어났다’는 뜻의 ‘Array Index Out Of Bounds’ 에서 영감을 얻은 페스티벌의 이름은, ‘장르’나 ‘트렌드’ 와 같은 단어로 설명되어지는 일반적인 분류(Index) 밖에 자리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다루고자 하는 페스티벌의 철학을 담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IgEP3hAhCI * Out Of Index 2019 하이라이트 영상 OOI는 다양한 실험 작품들을 통해 게임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줌으로써, 개발자들이 스스로의 창조성을 발현하고 게임 산업 전체의 창작의식을 고취하는데 주된 의의를 두고 있다. 아울러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창조적 실험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창작자들을 대중들에게 소개하여 궁극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실험'을 해나갈 수 있는 씬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지난 여섯번의 OOI를 돌이켜보고, 그 동안 페스티벌이 변화해 온 과정을 소개하려고 한다. * 이미지 출처: https://www.rockpapershotgun.com/the-2013-gdc-experimental-gameplay-workshop 2014년 OOI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자면 행사의 큰 영감이 된 Experimental Gameplay Worshop(EGW)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EGW는 매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Game Devleoper Conference(GDC)의 인기 세션 중 하나로, 전세계에게서 접수된 실험적인 프로토타입들 중 우수작들을 발표하는 자리다. 창의적인 게임플레이로 전설적인 작품들이 된 ‘괴혼', ‘Portal', Braid’ 같은 작품들이 초기 버전을 EGW에서 공개한 바 있으며, 도쿄게임쇼에서도 EGW의 영향을 받아 실험적인 게임을 발표하는 Sense Of Wonder Night라는 부대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나는 GDC 2013의 EGW 세션에서 내 게임 ‘6180 the moon’을 발표했는데, 게임의 상업적 완성도를 떠나서 창의적인 시도 자체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는 강의장의 분위기는 게임 개발자로서 내게 아주 큰 인상으로 남았다. * 출처: https://blog.naver.com/kor_nvidia/220066159515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 나라에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무래도 이걸 직접 경험해 본 내가 가장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동료 개발자들과 함께 OOI를 만들었다. EGW는 컨퍼런스의 강연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발표한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 해 볼 수가 없었던 것이 매우 아쉬웠는데, OOI에서는 행사를 크게 둘로 나누어 멋진 실험들을 발표하고, 발표된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해 볼 수 있는 작은 파티를 만들기로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전세계에서 예상보다 많은 작품들이 접수되었고, 선정된 게임에 대한 반응 역시 매우 좋았다. 무엇보다 우리와 같은 성향을 가진 게임 개발자들이 서로를 발견하게 된 것이 좋았다. OOI 2014 당시 선정작 14개 작품들 중 세 작품이 한국 게임이었는데 그 중 두 개 작품의 개발자들이 OOI 기획단에 합류해서 페스티벌을 함께 기획하고 있다. 초기 페스티벌의 작품 선정 방식 역시 EGW의 방식을 따랐다. OOI의 작품 공모에 작품을 접수하려면 ‘이 게임이 왜 실험적인가' 라는 질문에 개발자 스스로가 답해야 한다. 이렇게 접수된 작품들 중 기획단의 자체 논의를 통해 공식 선정작을 결정한다. 기획단에서 선정작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중 하나는 ‘왜 이 게임을 선정했는가' 라는 질문에 기획단 스스로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페스티벌이 회를 거듭하면서 자연스럽게 몇 가지 선정 유형들이 생겼는데, 참가자들이 쉽게 영향을 받고 자신의 실험을 시작할 수 있도록 바람을 넣을 수 있는 ‘간단하지만 멋진 실험'들과 새로운 I/O 장비들을 만들거나 기존의 장비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작품들, 그리고 기존 장르의 문법들을 의도적으로 비틀고 파괴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주로 선정해왔다. * OOI 2019 전시작 〈Hi-5 Heroes〉 2018년 부터는 새로운 전시 기획을 시작했다. 작품 공모를 통한 선정작 전시 외에 기획단이 직접 큐레이팅 한 초대전이 그것이다. 2018년에는 가까운 일본의 실험 작품들을 초대하여 전시했고, 2019년에는 개발자들이 직접 만든 전용 컨트롤러를 가지고 플레이 해야 하는 게임들을 모아서 전시했다. 작품 공모를 통해 전시작을 선정할 경우 각각의 작품들이 저마다 다른 철학과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페스티벌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가 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고 판단했고, 한편으로는 초대전의 형식을 빌어 기획단에서 페스티벌 참가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멋진 실험들을 공모 접수작이라는 선택의 제약 없이 하나의 메시지로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 OOI 2018. 전시 기획과 더불어 페스티벌의 공간 구성과 관련한 실험 역시 시도하였는데 2018년, 2019년 2년간 플라노 건축사사무소와의 협업을 통해 페스티벌의 공간 컨셉을 설정하고, 각 게임의 특성에 맞는 시연 부스를 제작했다. 테이블 위에 시연용 PC를 배치하는 것에서 벗어나 참가자들에게 전시작들을 공감각적으로 전달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다른 게임 이벤트들과 완전히 차별화된 방식의 공간 구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플라노 건축사사무소의 OOI 2018 공간 컨셉 구축 설명: https://www.plano.kr/article-pixel-forest ) 2020년 부터는 아예 작품 접수 데드라인을 없앴다. 수 년간 페스티벌을 개최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OOI의 작품 공모 시작일 부터 실험을 시작해서 마감일에 그 실험을 끝내고 작품을 접수하는 개발자들이 있다는 거였다. 기획단 입장에서는 매우 즐거운 일인 것은 분명한데, 다른 한 편으로는 페스티벌의 작품 공모 기간이 개발자들의 실험에 제한 시간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창작자는 언제나 실험에 몰두해야 하며, 실험에는 마감일이라는 것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마감일을 없애고 작품을 상시 접수 하기로 했고, 아직 우리 페스티벌을 모르는 개발자들의 멋진 실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도 작품을 추천할 수 있도록 작품 접수 양식을 정비했다. OOI는 항상 특이한 게임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기획단의 목표는 단지 특이한 게임을 소개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전시작들을 소개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전시작을 만든 개발자들이 어떤 생각와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참가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OOI 기획단에서 생각하는 페스티벌의 주된 참가자는 언제나 게임 개발자들이다. 게임 개발자들이 페스티벌에 와서 동료 개발자들이 만든 작품들을 체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각 작품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비로소 그들이 자신의 스튜디오에 돌아가서 자신의 실험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페스티벌 안에서 더 다양한 ’말’들이 생겨날 수 있기를 바란다. 초기에는 선정된 개발자의 짧은 발표만을 듣고 그들이 만든 게임을 직접 체험하는 정도에서 그쳤기 때문에, 대부분의 발화가 거의 개발자들의 입에서만 나올 수 밖에 없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기획단은 이후 꾸준히 페스티벌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을 담고 더 많은 논의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실험해왔다. * OOI 2019 게임 토크 - 〈다시 만난 오징어〉 2015년에는 기획단의 시각에서 각 선정작을 왜 선택했는지를 설명하고 참가자의 작품이해을 넓히는 방식으로 발표를 확장했는데, 많은 참가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발표 & 크리틱 방식을 수년간 유지해왔는데, 이 크리틱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체 선정작을 모두 훑느라 수 시간을 소모하는 긴 발표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현재는 전체 발표를 여러개의 세션으로 적절히 나누고, 이 세션들이 전시를 방해하지 않고 페스티발 한 쪽 구석에서 따로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발화의 주체가 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개발자들의 발표와 기획단의 크리틱은 모두 단방향이었기 때문에 상호 소통을 통해서 논의의 깊이를 더하고 싶었다. 그래서 2018년 부터 GDC에서 열리는 인디 게임 페스티벌(IGF)의 파이널리스트 인터뷰 시리즈인 Road to the IGF에서 영감을 받아 선정작 개발자와의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데, 기획단으로서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 개최되는 OOI 2021에서는 기획단 외부의 인터뷰어들을 섭외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논의에 동참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사실 페스티벌 안에서 다양한 대화가 가능하게 하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참가자에게서 발화를 끌어내는 것이다. OOI에서는 ‘신선한 게임 플레이’ 라는 주제를 많은 이벤트에서 흔히들 사용하는 방식은 일종의 피드백 보드를 만들어서 참가자들이 직접 노트를 작성해서 보드에 붙일 수 있게 하는 식인데, OOI 기획단에서는 이 방법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메모지에 글을 써서 작품 옆에 있는 보드에 붙이는 방식은 단순 인상평일 수 밖에 없고, 간단한 의견을 써서 보드에 붙이고 끝나는 행위에는 소통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논의의 시발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OOI 기획단은 7회째에 접어드는 현시점에서도 참가자에게서 시작되는 대화를 효과적으로 끌어내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OOI 2021에서는 온라인이라는 플랫폼의 특성을 살려 채팅을 기반으로 한 실시간 문자 소통을 실험할 계획이나, 좀 더 섬세한 기획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아웃 오브 인덱스 (Out Of Index) 는 ‘분류 밖'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변화와 실험을 계속해왔다. 다른 예술 매체와 같이 창작자의 손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창작자가 아닌 게이머의 손으로 비로소 완성되어야 하는,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가진 특성은 게임 페스티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페스티벌 참가자들이 작품을 즐기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한 페스티벌 기획은 기획단에게 있어 게임 디자인의 또 다른 영역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OOI의 페스티벌 디자인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OOI가 만들어가고 있는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더 많은 참여를 바란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 개발자) 박선용 놀 게 없으면 만들어서 놀고, 놀이터가 없으면 만들어서 친구들을 모으는 사람. 그래서 게임을 만들고, 개발자 커뮤니티를 만들고, 게임 이벤트를 만듭니다.

  • 쿨타임과 숨고르기

    숨고르기가 중요한 이유는 지속에 있다. 게임은 승패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재미있지만, 이겼을 때만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과정이 충분하다면 지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다.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을 우선시한다면 패배는 게임을 지속하는 것을 방해하며, 다른 게임을 선택할 때 이길 수 있느냐를 가장 염두에 두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게임에 흥미를 느끼는 동안 지더라도 다시 도전하고, 다른 게임을 선택할 때 자기만의 취향과 기준으로 고를 수 있다. 숨고르기는 게임을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 Back 쿨타임과 숨고르기 21 GG Vol. 24. 12. 10. 자투리 시간은 과연 남는 시간일까 ‘자투리 시간’이 사회적 화두였던 적이 있다. “일과(日課) 사이에 잠깐씩 남는 시간”이라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특정할 수 없는 시간이 때론 무언가를 더 이룰 수 있는 기회로, 때론 어떻게 보낼 것인지 모색해야 하는 과제로 여겨졌다. 자투리 시간을 언급한 신문기사를 통해서도 시기에 따라 다른 맥락으로 읽혔음을 파악할 수 있다. 1983년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자오락실이 성행하고 있음을 다룬 기사에서는 대학생들이 남는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소개한다. 십여 년 뒤인 1994년도에는 점심시간을 취미나 자기계발을 위해 사용하는 젊은 회사원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 이들은 점심시간을 “직장상사를 ‘모시고’ 식사하면서 잡담을 나누는 ‘한가한 시간’이 아니라, 바쁜 생활 중에도 자신을 계발하고 취미를 살리는 ‘황금의 자투리시간’으로 여긴다고 소개한다. 그로부터 10년 사이 자투리 시간은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성격이 되었다. “(입시를 위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한자와 영단어를 외우는 것이 쌓이면 학습량이 제법 될 것”이라는 칼럼은 허투루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 해야 성취를 이룰 수 있을 정도로 경쟁적인 분위기를 시사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무엇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사회적인 토론과 성찰 없이 일단 더 나은 삶을 살려면 남들보다 노력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로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사회에서 강렬히 자리했던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혹은 강요)는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압박했던 셈이다(청소년의 수면권 보장을 근거로 게임 셧다운제를 추진하면서 청소년의 심야 학습에 대한 보호에 대한 반론에는 딱히 응답하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모두가 자투리 시간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마지막 퍼즐로 여겼던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휴대전화로 자투리 시간에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지그시 ‘염려’하는 기사도 있다. 무선 인터넷과 스마트 디바이스가 대중화되면서 자투리 시간을 보내는 방법의 선택지가 늘었다. 장소에 관계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자투리 시간의 경계도 불분명해졌다. 순서를 두고 차례차례 진행되던 일들이 여러 갈래에서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잠깐씩 남는 시간’이라는 것이 불분명해지면서 남는 시간에 하던 일이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 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자투리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무엇을 할지 떠올리는 것 대신 무엇을 먼저 할지 선택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2015년에 ‘스낵 컬쳐’라는 이름으로 짧은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컨텐츠가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는 개인의 자투리 시간을 점유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자투리 시간은 개인이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게 된 걸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2024년도 기사들은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현금처럼 활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모으는 ‘앱테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스마트 미디어 사용 시간을 제한하고 숏폼 시청 대신 책을 읽는 등 일부러 자극적인 콘텐츠와 거리를 두는 ‘도파민 디톡스’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소개한다. 자투리 시간을 ‘남김 없이’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환경 속에서 개인들이 일상의 균형과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쿨타임, 시간과 시간 사이에 놓인, 선택해야 하는 게임 플레이 중 행동과 다음 행동 사이의 시간인 쿨타임은 자투리 시간과 두 가지 면에서 유사하다. 첫째, 시간과 시간 사이에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자투리 시간이 하루의 어떤 과업과 그다음 과업 사이에 있는 시간이라면 쿨타임은 게임 중의 어떤 행동과 그다음 행동 사이에 있는 시간이다. 분량은 각기 다르지만 시작과 끝은 정해져 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주에 제약이 따른다. 둘째,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스스로 선택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투리 시간의 맥락이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달라졌음에도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꾸준히 당사자의 몫이었다. 쿨타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의 성격이나 설정된 조건에 따라 상황은 다르지만 그 시간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는 게이머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쿨타임은 어떻게 보내야할까? 게이머의 선택인 만큼 정답은 없지만 쿨타임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따져 보는 것이 이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쿨타임을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반드시 활용해야 하는 전략적인 요소로 여겨 쿨타임에 과연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하는 반문에 대한 나름의 답도 될 것이다. 먼저 살펴볼 것은 쿨타임은 왜 (하필) ‘쿨’타임이냐는 것이다. ‘핫’(hot)과 ‘콜드’(cold) 사이를 뜻하는 ‘쿨’(cool)은 유무형의 멋짐을 표현하는 문화적 맥락의 의미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쿨타임이 ‘쿨다운’(cooldown)을 차용한 표현임을 고려하면 쿨타임의 ‘쿨’은 차갑고 서늘하며 침착하다는 사전적 의미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특정한 기술이나 아이템만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거나 캐릭터 능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등 쿨타임이 게임에서 플레이가 과잉 또는 과열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과도 부합한다는 점에서 쿨의 사전적 의미와도 연결된다. 여전히 궁금하긴 하다. 쿨타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균형과 침착함이라면, ‘쿨’말고 다른 표현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핫과 콜드 사이에는 ‘웜’(warm)도 있고, 중간 혹은 완화한다는 의미의 ‘모더레이트’(moderate)나 균형 잡힌이라는 의미의 ‘밸런스트’(balanced)도 있다. 차분함을 뜻하는 ‘논살란트’(Nonchalant)나 냉정함을 뜻하는 ‘상프루아’(Sangfroid)는 왠지 어감도 좋다. 그런데 이 단어들에 ‘타임’을 붙이면 나름대로 약어를 만들어 입맛을 살려봐도 여전히 ‘쿨’만 못하다. 이렇게 느끼는 건 ‘쿨’이 게임 말고도 일상적으로 다양하게 쓰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적 맥락도 있긴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쿨타임이라 부를 수 있느냐다. ‘로딩’도 쿨타임이라 할 수 있을까?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장소나 레벨이 전환될 때, 목표 달성을 실패해 체크/세이브 포인트로 다시 돌아가거나, 리스폰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쿨타임에 해당할까? 로딩은 게임 플레이 자체가 유보되는 반면 쿨타임은 특정 행위만 제한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이로 인해 로딩은 게임 전략의 일부로 활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 쿨타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쿨타임의 초점을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는 순간, 즉 쿨타임이 종료되는 시점인 ‘쿨하게 다운된 상태’에 두는 것이다. 그런데 초점을 쿨하게 ‘다운되어가는’ 과정으로 옮기면 로딩도 쿨타임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피파〉 시리즈의 로딩 또는 대기 화면에서 플레이 연습을 할 수 있다거나, 레이싱, 대전 액션 게임 등에서 스테이지 종료 후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여준다거나, 로딩 화면에서 게임에 대한 각종 정보나 팁을 제공하는 것은 게임 전략의 일환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도, 이어질 다음 플레이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쿨타임의 기능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로딩은 게임이 다음 단계를 연산하는 과정이지만 이 시간동안 게이머는 특정한 동작을 연습하거나 미리 조작해보면서 워밍업을 하거나, 앞서 잘한 혹은 잘하지 못한 플레이를 되새기거나 복기하고, 게임에 대한 정보를 숙지하면서 이제 이어질 플레이를 어떻게 할지 구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a tempo, 자기만의 페이스로 이처럼 균형과 침착함을 추구하는 쿨타임의 범위를 로딩까지 포함한다면 쿨타임을 게임 플레이 중 숨을 고르는 시간으로 표현할 수 있다. 숨고르기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될 수 있다. 앞서 사용한 스킬을 다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또는 유닛 생산이 마무리되어서 추가 생산을 지시할 수 있을 때까지 ‘벼르는’ 것도 숨고르기가 될 수 있다. 앞서 플레이한 내용을 만족스러워하거나 불만족스러워하며 어떤 부분을 잘 했거나 그렇지 않았는지 복기하는 것도 숨고르기가 될 수 있다. 게임이나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로딩에 걸리는 시간동안 가만히 있는 것도 (물론) 숨고르기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행위들이 게임 플레이와 플레이 사이를 잇기 때문이다. 승리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쿨타임에 할 수 있는 행위의 범위가 ‘이기려면 해야만 하는 행위’로 좁혀지겠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즐거움을 목적으로 한다면 쿨타임에 무엇을 할 것인지는 ‘자기만의 페이스’(my own pace)에 따라 게이머 스스로 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숨고르기가 중요한 이유는 지속에 있다. 게임은 승패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재미있지만, 이겼을 때만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과정이 충분하다면 지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다.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을 우선시한다면 패배는 게임을 지속하는 것을 방해하며, 다른 게임을 선택할 때 이길 수 있느냐를 가장 염두에 두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게임에 흥미를 느끼는 동안 지더라도 다시 도전하고, 다른 게임을 선택할 때 자기만의 취향과 기준으로 고를 수 있다. 숨고르기는 게임을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다시, 쿨타임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무엇을 선택하든 자기만의 페이스에 따라 게이머 스스로 정하면 된다. 게임에서 쿨타임이 마련된 것은 게임 디자인적인 배경 때문이었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게이머에게 달렸다. 게임의 쿨타임은 해당 게임을 안정적으로 (그리고 오래) 플레이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게이머가 플레이하는 게임은 그 게임말고도 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쿨타임을 두고 치킨을 먹는 것은 치킨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인 것처럼 게임에서의 쿨타임도 게임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일 필요가 있다. 하여 나는 쿨타임에 숨고르기 말고도 ‘관조’도 함께이길 바란다. 게임을 하고 있음을, 할 게임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더해진다면 지금 하고 있는 게임과 앞으로 하게 될 게임이 더 큰 기대와 재미를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투리 시간에 부러 밖으로 나가 볕을 쬐고 산책하는 것이 일상을 더 윤택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 [북미통신]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하는 북미 게임계의 DEI 기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하자마자 한 달안에 70개가 넘는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취임 첫 날 바로 서명하고 공포한 행정명령들은 향후 정책적 방향을 가늠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 하나가 백악관 행정명령 14151호다. 행정명령의 제목은 ‘급진적이고 낭비적인 정부 DEI 프로그램의 종료’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DEI, 트럼프, 북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hoon Hong Lives in California and works in the game industry. Aims to offer insight to as many people as possible through podcast appearances and contributions to various outlets. Hopes to spend a lifetime writing engaging pieces across every field, from fashion to games.

  • [공모전수상작]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2022년 만우절 주간, 레딧의 거대한 땅따먹기 픽셀아트 프로젝트인 r/place에서 <레인 월드 (Rain World, 2017)>와 <아우터 와일즈 (Outer Wilds, 2019)>의 서브 레딧끼리 자그마한 동맹을 맺었다. ‘아우터 와일즈 원정대’의 로고를 중앙에 두고 양 게임인 플레이어 캐릭터인 슬러그캣과 화로인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예쁘게 공유된 캔버스를 보고 있자면, 임시적이거나 느슨하게 맺어졌을 몇몇 r/place 동맹들에 비해 두 게임 간의 연합이 제법 어울리게 느껴졌다.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를 만큼? < Back [공모전수상작] 기계장치의 우주: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불능감에 대해 20 GG Vol. 24. 10. 10. “난 신의 마음속에 있어. 하지만 여기가 거기란 걸 어떻게 알지?” - 듀나, 「두 번째 유모 [1] 」 들어가며 2022년 만우절 주간, 레딧의 거대한 땅따먹기 픽셀아트 프로젝트인 r/place에서 <레인 월드 (Rain World, 2017)>와 <아우터 와일즈 (Outer Wilds, 2019)>의 서브 레딧끼리 자그마한 동맹을 맺었다. ‘아우터 와일즈 원정대’의 로고를 중앙에 두고 양 게임인 플레이어 캐릭터인 슬러그캣과 화로인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예쁘게 공유된 캔버스를 보고 있자면, 임시적이거나 느슨하게 맺어졌을 몇몇 r/place 동맹들에 비해 두 게임 간의 연합이 제법 어울리게 느껴졌다.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를 만큼? 그러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범박하게 2D 플랫포머와 3D 어드벤처라 둘 수 있을 만한 형식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끼리는 엮을만한 공통점이 은근히 많았다. 이를 대표적으로는 양쪽에서 플레이어들이 주되게 맞닥뜨리고 불평하는 곤란들로 가장 분명히 확인할 수 있겠다. 간략한 튜토리얼을 제외하면 곧장 광막한 세계에 내던져 놓고 알아서들 돌아다니라는 불친절함. 초반에 명시되지 않아 잔뜩 헤매게 하고 시행착오 이후에서야 간신히 손에 잡히는 최종목표. 콧물 방울처럼 미끄러지는 슬러그캣과 술에 취한 듯 갈팡질팡하는 화로인 우주선 같이 초심자의 손에 영 익지 않는 조작감. 호전적인 포식자부터 불안정한 땅바닥까지 무참하게 들이닥치는 장애물. 그렇게 종종 부당하게 정도로 엄습하는 죽음 및 자연이라는 형태로 가차 없이 밀어붙여지는 시간제한. 읽기에 친숙하지 않다면 알아먹기 힘들거나 때론 철학적 뜬구름 잡는 듯 느껴지는 ‘고대인’ 관련 로어. 그리고 기타 등등. 달리 말하자면, 이 둘은 여러 겹에서 플레이어에게 불능한 감각을 가져다주는 게임들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면에서 두 작품에 무언가 플레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에서는 모의·제어·정보라는 세 주제어로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가 어떻게 불능감을 활용하는지를 짚어보며, 무심한 세계의 작동법을 익히고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양 게임만의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2] 모의 가끔가다 보면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가 통상적인 비디오 ‘게임’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생태계와 자그마한 태양계를 작동시키는 ‘시뮬레이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두 게임은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을 일대일로 복사한다기보다는 이를 바탕으로 상상된 허구적인 세계를 꽤나 그럴싸하게 말이 되는 법칙들로 모의하는 편이다. 이들 세계는 공교롭거나 당연하게도 SF적인 아이디어를 중추 삼아 만들어졌는데, 〈레인 월드〉는 ‘반복자’라고 불리는 거대한 슈퍼컴퓨터 구조물들이 한때 고대인들이 거주했던 지상으로 냉각 용수를 십몇 분마다 한 번씩 폭우처럼 쏟아붓는 세계에서 발생한 생태계를, 〈아우터 와일즈〉는 모종의 이유로 22분 만에 폭발하는 항성을 중심으로 여섯 개의 행성이 공전하는 직경 20km짜리의 태양계를 모의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세계가 크고 작은 단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뀌는 중이며, 그 운동과 변화 모두가 엄밀히 지정된 경로를 따르지 않는 대신 특정 절차에 맞춰 세세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 내 지역의 구조나 행성의 궤도라던가 중요한 NPC나 아이템의 위치 등은 전반적으로 고정되어 있으나, 특정 지역에서 도마뱀이나 지네 같은 생명체가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다거나 특정 행성에서 바다 어디에 떠 있는 섬들이 언제 토네이도에 휘말리는지 등은 분명히 정해져 있지 않기에 쉽게 예측할 수가 없다. 두 게임이 유난하게 ‘현실적’이거나 ‘진짜 같게’ 느껴진다면, 이 허구적인 세계가 현실을 (임의적인 오류의 가능성까지) 모의해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일 테다. 이때 두 게임이 각 세계에서 주되게 모의하는 것이란 다름 아니라 현실과 제법 가깝게 작동하는 일련의 법칙들이다. 〈아우터 와일즈〉에서 이는 주로 물리법칙으로, 화로인(의 우주선)은 작중의 무자비한 중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지라 비행 중에 조금만 조종이 엇나가더라도 가까운 중력장에 휩쓸려 치명적인 충돌 사고를 일으키기가 일쑤다. 한편 〈레인 월드〉의 경우에는 (역시 무자비한 중력이 있다만) 수많은 생명체가 슬러그캣뿐만 아니라 서로끼리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가 유기적으로 구현되어 있어, 플레이어는 이 생태계의 일부가 되어 포식-피식 관계의 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물론, 두 게임은 (이를테면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Microsoft Flight Simulator, 1982~)〉가 추구해 온 것만큼) 현실상의 법칙을 최대한 정밀하게 재현하기보다는 작중 세계에서 그럴싸하게 말이 될 정도까지만 이를 구현한다. 엄밀하지는 않아도 ‘핍진’할 모의를 통해, 플레이어는 생태계의 구조와 태양계의 법칙을 모의하는 세계를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금만 숙달하면 그 구조와 법칙 또한 얼마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달리 말해, (비디오 게임이 “실재하거나 상상된 물리적이고 문화적인 과정을 모의하는 복잡한 규칙” [3] 에 부합한다는 보고스트의 논의를 염두에 두면) 두 게임에서 물리법칙과 생태구조와 같은 “현실의 부분을 게임이 재현할 때, 의미 있는 특정 부분을 단지 포착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의 구조를 ‘모의’해서 해당 체계의 작동 방식, 즉 그것의 원리를 게임이 보여주는” [4] 셈이다. 여기서, 나는 두 게임이 생태계와 태양계의 법칙을 참조해 전반적으로는 정교하게 작동하는 세계를 보이는 와중에도 언제나 임의적인 돌발상황이 발생할 여지를 열어두기로 선택했다는 점에 집중하고 싶다. 그 덕에 플레이어는 두 게임의 세계와 특별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모의된 세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은 이곳들이 굳이 플레이어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제작자들 또한 이를 어느 정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듯, 〈레인 월드〉의 사망 화면은 종종 슬러크캣이 불의의 사고로 죽어버린 이후에도 곧장 메인 메뉴로 넘어가지 않고 여전히 평소처럼 행동하는 생명체들을 지켜볼 수 있게 해주며 〈아우터 와일즈〉에서는 태양계로부터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행성들이 항성을 맴돌다가 초신성 폭발에 덮쳐지는 모습을 (화로인 또한 거기에 휘말려 죽기 전까지는) 그저 가만히 지켜볼 수가 있다. 종종 플레이어의 선택과 행동에만 반응하는 여러 비디오 게임 세계와 달리, 이러한 세계는 그런 플레이어를 상관하지 않거나 플레이어에게 상대적으로 무심한 채 모의된 법칙으로 운동하고 변화하는 셈이다. 이때, 플레이어에 대한 세계의 상대적인 무관심함은 종종 물리법칙과 생태구조에서 (우주선이 모래 기둥에 휩쓸린다거나 생물들의 난투극 한복판에 진입한다거나 등) 우연히 발생하는 사고와 허망한 죽음으로 이어지며 플레이어의 불능감을 키워주기도 한다. 즉 이들 세계는 플레이어가 굳이 방문해 상호작용하지 않더라도 늘 자기들만의 모의된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하며, 낙오된 슬러그캣이든 출항하는 화로인이든 간에 오로지 플레이어의 행위에 맞춰 움직이기 위해서만 제작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플레이어 없이도 복잡한 자동장치처럼 알아서들 모의되는, 어찌 보자면 “세계로부터 인간을 뺀 (...) 우리-없는-세계” [5] 에 가깝게 작동하는 두 게임의 세계는 플레이어를 행위자이기보다는 차라리 관측자의 위치로 빼둔다. 그렇기에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세계를 방문하는 플레이어들이 종종 크나큰 불능감을 느끼는 이유는 (흔히 코스믹 호러의 이해·사유 불가함을 설명할 때 강조되는) 세계의 광대한 규모보다도, 특유의 모의 방식에서 자연스레 감지할 수 있을 세계의 무관심함 때문일 테다. 이곳들은 잘해봤자 미니어처 크기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모의된 법칙과 구조에 따라 움직이는 무심한 세계에서 종종 공포와 경이를, 혹은 양쪽 감정으로 갈라지기 이전의 압도되는 감각을 느낀다. 이렇게 무심하게 모의된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불능감을 가치 있는 플레이의 일부로 활용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제어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또 다른 공통점은 앞서 언급했듯 게임 초반부터 플레이어를 아무 목적 없이 야생에 거의 내버려두다시피 한다는 점이다. (〈아우터 와일즈〉에서는 화로인의 행성에서 비행 연습이라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만, 〈레인 월드〉에서는 슬러그캣의 기초적인 조작법마저도 아주 간략히 알려줄 뿐이다). 초반에 분명한 최종목표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게임은 세계 한복판에 던져진 플레이어에게 제어에 대한 불능감 또한 강력하게 만들어 낸다. 이때 제어의 불능감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플레이어가 위험천만한 세계를 뚫고 가게 한다는 점에서 특히 직격으로 작용할 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두 게임을 플레이하는 가장 큰 재미는 플레이어가 슬러그캣 혹은 화로인으로서 자신의 조작법을 익힐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이 생태계와 태양계의 작동법 또한 알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조작법에 숙달해 가는 플레이어의 능력 및 심리가 불능(감)에서 차차 전능(감)으로 이동하며, 무심하게 모의된 이 세계에서 차차 숙련된 제어력을 얻어가는 분투의 경험이 두 게임을 진행하는 핵심적인 동기가 되는 셈이다. 전능한 제어의 재미란 우선 플레이어가 슬러크캣과 화로인(의 우주선)을 더욱 능숙하게 다루며 살아남는 데에서 일어나는데, 이러한 특성은 당연하게도 다른 게임에서 얼마든 발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는 플레이어가 조작과 생존에 숙련되어 가는 과정을 레벨 업이나 스킬 해금과 같이 전면적으로 수량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를 띤다. 슬러그캣이 공중제비를 날렵하게 돌고 화로인이 우주선을 안전하고 부드럽게 착륙할 수 있더라도, 여전히 다양한 생물에게 한 방에 잡아먹히고 큰 충격을 받으면 한 방에 골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게임적인 의미에서 ‘업그레이드’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레인 월드〉에서 식량을 든든히 채우고 피난처에서 휴식하면 다른 지역으로 입장하는 통행권으로 사용되는 ‘카르마’가 하나씩 올라가는 정도일까). 도리어, 주된 업그레이드는 캐릭터가 아닌 플레이어의 조작 기술과 쉽사리 수량화되지 않을 자기효능에서 일어난다. 그러니까,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자격증 취득 등이 요구되지 않는) 다양한 잔기술을 익혀나갈 때 종종 그리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이때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의 모의적인 성질은 생태계의 구조와 태양계의 법칙을 모의하는 것을 바탕삼아 제어의 영역에서도 그러한 세계에서의 특정한 조작법 및 생존법을 모의하면서도 배가된다. 세계에서 움직이는 방법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자연스레 이 세계 자체에 익숙해지는 과정으로 이어져, 처음에는 위협적이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여러 생물과 행성은 최소한 친숙하고 때로는 감탄해 볼 만한 무언가가 되어가며 플레이어의 불능감을 차차 긍정적인 전능감으로 바꿔나간다. 모의된 세계 및 제어에 대한 플레이어의 불능(감)이 어떻게 조절되는지의 문제는 물론 게임의 행위성과 분투에 대한 응우옌의 논의를 주요하게 참조했다. 이를테면 현실상의 물리법칙과 생태구조를 그럴싸하게 말이 되도록 조형하면서도 임의적인 돌발상황 또한 종종 발생하도록 모의된 세계란 “능력과 장애물의 조합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기 행위성의 특정 부분에 (…) 집중하도록 압력을 가한” [6] 설계이며, 무심한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무능력함을 유려하고 정확하게 묘사한 그림이자, 실천적 무능력으로 된 공포물” [7] 로서의 이들 게임에서 발생하는 ‘불화’를 제어의 숙달을 통해 차차 ‘합일’로 이끌어가는 과정이 곧 플레이어가 불능(감)에서 전능(감)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우리가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에서 슬러그캣과 화로인(의 우주선)을 조종하며 겪는 경험이란, 모의된 세계의 외관을 띤 채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유동적이고 유기적으로 제한하는 규칙들로 이뤄진 정교한 세계에서 최대한의 제어력을 얻어나가려는 분투다. 그 무엇에도 익숙하지 않던 초반에는 그저 죽지만 않고 하나의 루프를 살아남거나 이동에라도 능숙해지는 게 최우선의 임시 목표였지만, 플레이어가 제어에 숙달하고 자율성이나 행위성을 얻어가며 전능해지는 과정에서 목표는 이 놀라운 세계 자체에 대한 탐구로 비약한다. 불능(감)에서 출발해 전능(감)에 도착하는 두 게임의 분투적인 특성은 이러한 기계장치의 우주를 플레이어가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지를 증명해 나가는 하나의 시험대가 된다. 이야기를 조금 미루고 있었지만,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가 크고 작은 시험을 거쳐 제어와 더불어 세계를 익혀나가기 시작한 플레이어에게 보상하는 특별한 방식이 빛나는 것도 이 덕일 테다. 정보 그러니까,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에 ‘서사’가 있다면 이는 어떠한 이야기일까? 여담을 먼저 말하자면, 두 게임의 여러 기묘한 점 중 하나는 결말을 보는 최적화된 방법이 플레이어가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최초의 상태에서도 얼마든 실행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리고 조작법을 최소한으로 익히고 공략을 참조한다면) 당신은 두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특정 경로를 따라 〈아우터 와일즈〉에서는 십몇 분 만에 또 〈레인 월드〉에서는 몇십 분 만에 최종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세계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하고 불능할 뿐인 초반의 플레이어는 최적화된 경로는커녕 그를 따라 닿는 최종목표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그 대신에, 두 게임에서는 앞서 설명했듯 불능했던 플레이어가 차차 전능한 행위성을 획득하는 분투의 여정 그 자체가 나름의 이야기가 된다. 더불어, 플레이어가 얻어가는 제어력에 이 세계에 대한 각종 정보를 보상하는 게임의 메커니즘은 세계의 조작법 및 작동법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깔린 ‘서사’까지도 서서히 밝혀나가며 이 세계에 숨겨져 있던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드러낸다. 세계에 대한 정보는 사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친절한 〈아우터 와일즈〉에는 어느 정도 주어진 채 시작한다. 플레이어에게는 조종하는 화로인은 아주 오래전에 이 태양계에 거주했다가 멸종한 고대 종족인 노마이의 언어를 옮기는 새 번역기를 가지고 각종 행성의 유적지를 탐사하는 것이 일단의 목표로 제시되며, 여기에 태양이 왜 22분 만에 폭발하며 자신이 어쩌다가 이 타임 루프에 빠졌는지를 밝혀야 하는지도 우선의 목표로 추가된다. 〈아우터 와일즈〉의 행성 곳곳에 유기적으로 깔린 퍼즐들은 해결될 때마다 플레이어에게 노마이 언어로 쓰인 자그마한 정보 덩어리들을 보상한다. 진입할 수 없던 곳에 접근하는 방법부터 이 자그마한 태양계의 숨겨진 여러 비밀까지 다양하게 밝혀지는 정보들은 훌륭하게 도식화된 항해 일지에서 긴밀한 연결망을 만들어 나가며, 이는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임시·단기 목표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면서도 종래에는 하나의 거대한 지도처럼 합쳐지며 최종목표에 대한 청사진이 된다. 이러한 정보들의 체계야말로 〈아우터 와일즈〉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구성하는 요소로, 분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은 이 태양계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과정과도 중첩된다. 달리 말하자면, 〈아우터 와일즈〉에는 선형적인 내러티브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몇 개의 ‘서사’들의 중첩되어 있다. 낯선 세계를 이해해 나가려는 플레이어의 분투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인 만큼, 그저 배경이나 환경인 줄로만 알았던 세계가 얼기설기 얽힌 정보의 총합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과정 또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곧 〈아우터 와일즈〉에서 플레이어가 겪는 업그레이드란 특정한 수치들이 누적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 쌓여가는 형태로 이뤄지는 셈이다. 세계에 대한 제어권을 얻어가면서 정보를 얻고, 해당 정보를 짜맞춰 다음 목표를 설정하며 최종장에 다가가는 일련의 과정이 〈아우터 와일즈〉를 진행하는 핵심적인 설계라면, 〈레인 월드〉에서 이는 훨씬 간접적이고 느슨하게 제시되는 편이다. 이 세계 곳곳에 흩어진 진주알에는 반복자와 고대인의 기록과 역사가 적혀 있으며, 반복자들이 이 정보에 대해 표하는 반응까지 더하면 작중의 생태계가 이 모양 이 꼴이 되기 전까지 이 세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상이 이뤄진다. 무엇보다도 〈레인 월드〉를 정석적으로 플레이하는 동안에는 실제로 두 반복자에 방문해 그들의 말을 듣는 단계를 거쳐야 하기도 말이다. 이러한 정보는 〈아우터 와일즈〉에 비해 게임의 최종목표를 달성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에 아주 필수적이지는 않은 편이지만, 어느새 작중의 온갖 생명체에 빠삭해지고 전능하게 생존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로어’의 형태로 다가온다. 낙오된 슬러그캣이 잔혹하면서도 매혹적인 세계를 구석구석 누비며 세계의 과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거대한 구조물인 줄로만 알았던 반복자들 또한 이 생태계와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도 그들의 ‘서사’ 또한 플레이어에게 넌지시 전달된다. 이렇게 〈레인 월드〉의 세계를 차차 알아가는 과정에는 단순한 조작 및 생존 방법과 생태계의 여러 특성을 익히는 것 이외에도 파편 난 과거의 서사를 수집하는 과정이 추가되며, 이는 〈아우터 와일즈〉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어에게 수량화된 업그레이드와는 조금 다르게 세계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게 하는 과정에서 전능감을 부여한다. 플레이어 캐릭터가 오래된 폐허를 돌아다니며 잊힌 역사를 수집하는 과정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두 게임은 이 세계의 뒷이야기를 수집할 만한 서사 조각으로 제시해 플레이어 스스로 짜맞추게 하기에, 정보의 측면에서도 불능(감)을 전능(감)으로 바꿔나가는 방식을 활용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금, 이 또한 이른바 ‘환경적 스토리텔링’을 적극 활용하는 게임들에서 (때로는 〈시스템 쇼크 (System Shock, 94)〉같은 이머시브 심 장르와 엮어) 오랫동안 보아왔던 방식일 테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두 게임 모두 특유의 모의법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무심하게 작동할 뿐인 세계를 제시하며, 제어와 정보에 불능하며 불능감을 느끼는 플레이어가 이 세계를 다양한 층위로 익혀나가게 한다는 점에서 게임 내 세계와 특별한 관계를 맺을 테다. 그렇게 따져보자면 두 게임의 ‘서사’란 로어 조각의 형태로 곳곳에 산개한 과거사보다도, 차라리 이를 포함해 플레이어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주어진 세계의 수많은 정보를 알아가는 플레이 과정 전체가 될 것이다. 한 차례의 플레이 주기 동안 그저 정신없이 살아남는 것에 급급하던, 물리법칙과 생태구조에 휘말려 우스운 슬랩스틱이나 끔찍한 호러를 연출하던, 어쩌면 새로이 얻은 정보들에 경이와 경외 또 경악을 느끼던 말이다. 적어도 이 세계의 아주 자그마한 구석이라도 아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면, 그 또한 하나의 근사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는 무심하게 모의된 세계와 전능하게 익히기가 까다로운 제어, 그리고 서사를 조각내 만든 정보를 제각각의 불능(감)으로 묶어, 플레이어가 이 세계를 헤쳐가고 알아가는 과정 자체에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이야기를 생산하는 ‘기계장치의 우주’일 테다. 나가며 작년에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 그리고 두 게임의 DLC를 나란히 플레이하며 글감을 착상하고 올해 상반기에 〈튜닉 (Tunic, 2022)〉과 〈애니멀 웰 (Animal Well, 2024)〉을 플레이하며 이를 머릿속에서 굴리는 동안, 이들 게임(특히나 홍보상에서 꽤나 이목을 모았던 〈애니멀 웰〉)을 중심으로 단어 하나가 영어권 웹을 떠도는 광경을 보았다. ‘메트로브레이니아(metroidbrania)’라는 이 신종 장르명은 메트로배니아에 ‘브레인’을 추가한 말장난으로, 플레이어가 다양한 지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맵을 탐사하면서 처음에는 진입 불가했던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 및 기술을 얻는 메트로배니아의 기본적인 설계에서 특히나 ‘두뇌’를 요구하는 요소가 강조되는 유형의 게임을 지칭한다. 이 ‘두뇌’란 물론 게임 내에 숨겨진 비밀과 작동법과 같은 정보에 대한 비유로, 기존 메트로배니아에서 플레이어가 특정 임무를 달성해야만 추가적인 이동 능력 및 기술을 획득하는 것에 비해 ‘메트로브레이니아’에서는 게임과 세계에 대한 특정 정보 자체가 바로 그러한 능력 및 기술이 되는 셈이다. 언급된 네 게임은 종종 그러한 ‘메트로브레이니아’를 대표할 만하고 어쩌면 새로운 장르로 묶일 수 있을 만한 게임으로 불리는 듯한데, 과연 이들 게임이 그렇게까지 지식 정보의 획득과 두뇌 훈련의 필요성만을 강조할까? 〈튜닉〉과 〈애니멀 웰〉 또한 (〈아우터 와일즈〉나 〈레인 월드〉와 비슷하게도) 각각 3D 어드벤처와 2D 플랫포머의 기본적인 틀을 바탕으로 그저 특정 정보의 획득뿐만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조작과 탐험 (〈튜닉〉의 경우에는 전투) 또한 동등한 분투의 수단으로 취급하며 이들을 정교하게 엮는데 말이다. 이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머릿속을 떠돌기만 하던 정보 조각들이 문득 하나로 짜맞춰질 때의 쾌감, 모든 것이 전부 다 그럴싸하게 말이 되는 것만 같고 이 세계의 가려진 뒷면을 잠시 엿보고 온 듯한 짜릿함, 무엇보다도 이를 전부 알아먹은 스스로가 영리하게 느껴지는 전능한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레인 월드〉와 〈아우터 와일즈〉가 (미처 다루진 못했지만 〈튜닉〉과 〈애니멀 웰〉도) 오로지 두뇌와 지식만을 플레이의 중추로 삼지는 않았을 테다. 도리어 내가 여기서 즐긴 전능감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찾아다니다 보니, 이 게임들이 모의와 제어와 정보와 같은 수많은 장치가 맞물리고 불능감을 연료로 사용해 플레이어에게 가장 효과적인 전능감을 제공하는 기계와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알아가는 즐거움을 도무지 제어력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만 느껴질 뿐인 현실이 아니라 알맞은 규모와 규칙으로 작동하는 허구에 실어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런 게임은 세계를 익혀나가는 법을 익혀나가도록 하는 연습 경기장이 된다. [1] 『두 번째 유모』, 알마, 2019, 301쪽. [2] 두 게임의 특성을 흥미롭게 확장한 DLC인 〈다운푸어 (Downpour, 2023)〉과 〈에코스 오브 디 아이 (Echoes of the Eye, 2021)〉는 아쉽게도 번외로 두고, 이 글은 본편에만 집중하겠다. [3] Ian Bogost,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oegames, MIT Press, 2007, p.35. [4] 옥선영, 「게임 속의 세계는 세기말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는가?」,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통권 98호, 한국게임학회, 2021, 12쪽. 원문에서 simulate는 ‘모사’로 번역되었으나 여기서는 ‘모의’로 통일했다. [5] 유진 새커,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 김태한 옮김, 필로소픽, 2022, 13쪽. [6]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옮김, 워크룸프레스, 2022, 206쪽. [7] 응우옌, 같은 책, 177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나원영 2016년에 웹진 [weiv]를 통해 대중음악 비평을 시작했고, 2022년 웹진 ma-te-ri-al을 통해 <대체 현실 유령>을 출간했다. 아무래도 작은 게임을 랩톱에서 짧게 하는 편이다. 계속됩니다.

  • 종교성과 게임성은 양립할 수 있을까? - 예수 시뮬레이터

    예수의 몸에 들어온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주위에서 가장 높은 지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목수의 체력을 갖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파쿠르는커녕 사다리도 타지 못했다) 과연 예수가 ‘낙뎀’을 받는지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아쉽게도 역시 신은 낙뎀을 받지 않았다. < Back Can Religiosity and Gameness Coexist? — Jesus Simulator 30 GG Vol. 26. 6. 10. This past April, two games— I Am Jesus Christ and Jesus Simulator —became a talking point among gamers. Heavy with religious color from the titles alone, these games drew the attention of reviewers and the games press even before release, and the journalists who played them discussed the works' significance and limits while disclosing their own religious backgrounds: Protestant, Buddhist, Catholic, and so on. In truth, religious material appearing in games is nothing strange. Religion is the IP with the highest recognition worldwide, so its worldviews, figures, and narratives make excellent material to handle in a game. The Diablo series, too, actively borrowed the Christian worldview of angels and demons, and there are games like Fight of Gods that put deities on stage in earnest. Even so, what made these two games an issue was the peculiarity that they are built in the form of following Jesus's actual deeds. The two games do not take Jesus as a motif or deploy him as one more IP; they set out to reproduce, just as it is, the life he leads in Scripture.[1] So what, exactly, does it mean to reproduce the life of Jesus as play within a game? Or rather, before that: games prize agency, while Scripture has its development and conclusion already fixed—so are religiosity and gameness even compatible? I, who identify as both a scholar of religion and a scholar of games, started the game with a glad and fluttering heart. The Gameness of Religion The instant I opened my eyes, now inside the body of Jesus, the first place I ran to was the highest piece of terrain nearby. (I actually wanted to climb to the roof of the tallest building first, but despite possessing a carpenter's constitution, the Lord could not so much as climb a ladder, never mind do parkour.) I was curious whether Jesus would take fall damage. Alas—predictably, God does not take fall damage. Jesus jumping from high ground to take fall damage. This question matters both religiously and in game terms. At the Council of Nicaea in 325, Jesus was defined as God possessing full divinity, but at the Council of Chalcedon in 451 the doctrine of two natures was settled—that he is fully God and at the same time fully human. So if the aim had been perfect religious fidelity, Jesus ought to take fall damage. There would be no need to quantify the damage, but the fact that he can be struck is what matters. More disappointing than that, though, was that I came to feel the limits of the freedom this game pursues. If the purpose is to follow the divine Jesus's life, then fall damage would be an unnecessary feature. As if to prove this hypothesis, I clicked the mouse and pressed the keyboard, yet Jesus would not throw even the most ordinary punch. Paradoxically, because Scripture is such a famous IP, many people have already chewed, torn, tasted, and savored it—in text (the Bible), in voice (sermons and homilies), and in films and dramas. So when the creators went to the trouble of making Scripture into a game, would they not have tried to offer some different experience? To define the concept of "gameness" precisely, a great deal of academic discussion would have to drag on inconclusively; but if we are hoping for something only the medium of the game can give, what is different? At this point I had hoped for agency—the kind that lets content and user interact. The text of Scripture is perfect and inerrant, not a stroke of it to be touched; but if it is being reproduced as a game, I thought, surely there could be some degree of freedom. Yet neither game[2] granted any such freedom. Rather, the place where I discovered something specific to games was not freedom but another area. Even though this is a game in which the character's freedom can be regarded as virtually nonexistent, I Am Jesus Christ strangely enough implements an open-world field. Apart from going to do the next quest, there is nothing the character is built to do, yet they laid out a vast Judean wilderness all the same. A warning appeared that leaving the quest zone would incur a penalty—but can a gamer endure that? Of course not. I, too, ran straight for the edge of the wilderness. The Faith stat visible in the upper right. When you keep running off in the opposite direction from your quest, the Holy Spirit restrains you and the "Faith" stat drops. You cannot leave the map, and even when your Faith runs out you are returned to your original spot—so there was no real freedom—but the interesting thing is this Faith stat itself. In this game, "Faith" works like the "mana" that lets you use the "skills" (?) of transformation (miracles such as turning water into wine), healing, exorcism, resurrection, and God's Gaze.[3] And this mana pool rises in proportion to the number of believers. Of course, in practice you almost never fail to work a miracle because of a lack of mana. Miracle skills are basically unlocked through quests, and doing quests automatically raises your number of followers. And even if gamers like me voluntarily wander off and become lost sheep, right-clicking to pray fills the Faith stat back up, so there is no occasion on which Jesus, short of faith, fails to perform a miracle. Still, this growth element of faith and follower-count can be seen as something specific to the game. Anyone who has practiced a religious life in depth can sympathize with the wish that "it would be nice if faith were quantified." How much more at ease one would feel to read the sutras and make 108 prostrations and know how much merit one had accumulated. This is all the more true in a religious environment where faith operates as a kind of symbolic power. In Protestantism, ever since the Reformation, one has had to be sure of one's own faith and also to prove it. So everyone, pastor and new believer alike, is anxious. To put it precisely, no one can affirm that their faith is, right now, whole. But what if a system were given in which attending dawn prayer earns 10 experience points and reading the Bible cover to cover earns 1,500; in which reaching level 10 grants the gift of tongues, level 20 the gift of interpretation, and level 100 the gift of healing? Anyone could be sure of the growth of their faith according to their own deeds. Believers thus carry a desire to confirm the growth of a faith that exists only abstractly. Even for non-Protestants, the "talent feast" ( dallant janchi ) most people attended at least once as a child is an emblem of this human desire. Just when the talent feast became a fixture in Korean churches as a system is not known, but the talent feast—where you are immediately rewarded for how often you came to church and how diligently you attended—has been used as a part of religious education in the Sunday-school instruction of children. (At the feast, children spend "talents," play-money named for the biblical Parable of the Talents, earned through attendance and good conduct.) Of course, theologically it leaves much room for dispute. Tying the talent to a material reward inverts the parable's original meaning, and it is, besides, an event run on market logic. Moreover, while the desire to grow one's faith is general, the desire to confirm and make visible the growth of faith collides with Protestantism's core doctrine of Sola Gratia ("by grace alone").[4] For underlying it is the notion that faith can grow according to one's own conduct and righteousness rather than the grace of God. This desire conforms, rather, to the neoliberal principle of self-improvement. As George Ritzer argued in 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 , it can be seen as a case in which the logic of McDonaldization—predictability and calculability—penetrates every domain of society: education, medicine, religion, leisure.[5] And yet the human being is an imperfect creature. Within the abstract activity called religion, humans pursue growth and want, too, to confirm it. When the life of Jesus was gamified, the new experience it gave me was precisely this: it confirmed the gameness that was already present in religion. Just as we clear quests and hunt to make a better character, there is, within religion from the start, an inherent structure of game-like desire for growth. Whether these games caught that point well is, of course, a separate matter. The Religiosity of Games Regrettably, these games failed to dissolve a growth system well into the life of Jesus. So let us turn our gaze elsewhere. Owing to its atrocious feel and its seemingly AI-generated quality, Jesus Simulator is poorly rated; but I Am Jesus Christ has been rated "Very Positive" from right after release up to now. It fails to give game-like fun on many fronts—freedom, growth systems—and the minigame that repeats whenever you perform a miracle is bewildering past the point of mere tedium; yet go to the Steam reviews and many people have left positive verdicts, saying "this is not a simple game but a spiritual experience." However lacking the gameness may be, they say, directly experiencing Jesus's life and miracles from a first-person view gave a moving feeling different again from reading Scripture or sitting in a church pew. So what kind of religious experience did these people have in the game? A simple minigame of pressing WASD repeats throughout the game. There was, certainly, something new. Even though the contents of Scripture are very familiar to me from early religious education, there was the experience of seeing on a map—and running around on foot through—the scriptural place-names I had only ever heard of, and the experience of having Scripture's vaguely imagined historical setting concretely reconstructed. Take the Cleansing of the Temple, which every Christian knows: the event in which, when Jesus went up to Jerusalem at Passover, he overturned the tables of the money changers and dove sellers in the temple court and raged, "Do not make my Father's house a house of trade." Reading this in Scripture, I naturally read past it; but actually visiting the Jerusalem temple in the game, it was not a scale where overturning a few tables would bring the chief priests and scribes over to confront you. There were many merchants inside and outside the enormous temple, and—fittingly for a marketplace—amid the din, a moderate commotion could not have drawn everyone's eyes. And yet the game's quest had me smash several animal pens and birdcages, and above all, when I smashed an animal pen, the sheep and goats inside did not vanish but roamed the whole market, throwing it into chaos. Where most games focus only on quest completion and choose to cut resources on what comes after, this game tried to draw a definite situation in time and space. But can this be called a religious experience that a game can give? Strictly speaking, this is closer to an experience of representation than a religious experience. It is the experience of the gaps in imagination being filled as Scripture's text is rendered three-dimensional—of directly seeing, walking, and performing what one had read and heard. It is on a different plane from a religious experience accompanied by transcendence or the sacred. What is disappointing is that the potential of the religiosity of games does not stop at the experience of representation alone. In today's religious-studies scholarship, religion and the religious are thought of as distinct. If religion (Religion) refers to institutionalized systems of belief—doctrine, scripture, community—the religious (the Religious) refers to the whole orientation toward transcendence, the sacred, and ultimate meaning that humans experience, even without belonging to a particular institutional religion. Collective ecstasy at a concert, sports cheering, political fandom, meditation apps—diverse religious experiences can be made regardless of any particular denomination or confession of faith. Games are one more place where this "religious" can emerge. Not simply "experiencing again what one already knows," but feeling shared elation when, in World of Warcraft , you succeed at a raid together after staying up several nights, or asking after the meaning of life, death, and community in RimWorld —games hold the possibility of producing diverse sensations: the uncertainty and contingency humans cannot control, collective emotion, the pursuit of meaning. What is more, games can offer a different mode of religious experience even within institutional religion. The psychologist of religion William James, in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 defined religious experience not by institution or doctrine but as the inner experience of the individual. True religious experience, he said, comes not from something like scriptural knowledge but is ineffable, accompanied by a noetic quality, transient, and arriving passively. To make a game from this perspective would mean—rather than an exorcism system bizarre both theologically and in game terms—offering choices like driving in the nails into Jesus from the standpoint of a Roman soldier, or making the player deny Jesus from the standpoint of Peter, so that the player meets an intense religious experience at an unexpected moment. Waiting for a "Hungry Jesus" In this context, let us look at the game again. The game tried hard to reproduce the life of Jesus. It strove to keep period accuracy down to the ethnicities of the people who appear, the events of Scripture, even the trees planted along the road. The 감람나무 ( gamnamu ) of Korean Scripture—which also surfaces in a familiar 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hymn drawn from Habakkuk 3:17, in the line about the olive's fruit ceasing and nothing growing in the fields—is in fact a mistranslation: the Korean term denotes the Chinese olive rather than the true olive of Israel. Yet olive trees, the real thing, are easy to spot all over the game. They agonized over implementing the natural environment of the time. But when representation itself becomes the purpose, the best one can call it is an "educational game." No—even "educational game" is closer to an excuse. When I asked a non-Christian acquaintance who this game's target would be, they said "a game for Christians to play," while a Christian acquaintance said "an educational game for non-Christians." In the end it is unclear whom the representation is even for. This is not to say representation is meaningless, but that so long as it stays at representation, the possibility the medium of the game holds is not fully realized. The Assassin's Creed series drew attention as a tool for history education not simply because it reproduced history. As the player's agency and choices intervened in historical events, new meaning—impossible through text—was produced. The reason I felt let down throughout the game is exactly this point. Between games and religion there are far more points of contact than one might think. The gameness of religion and the religiosity of games are both still-insufficiently-explored fields of possibility. In particular, the game makes the player not one who watches but one who performs. And religion has always demanded performance—praying, prostrating, fasting, making pilgrimage. The heart of religious practice has always lain in doing with the body. In that sense, games and religion may have stood, from the very beginning, in the closest possible place to each other. So what is needed to realize this possibility? This argument is not about simply making games more fun. The Jesus in the game has no hunger gauge and no system for eating food. And so Satan's temptation to turn stones into bread is not a temptation. Because he takes no damage from falling, the trial of being told to throw himself from the top of the Jerusalem temple is not a trial. The heart of Jesus's temptation in the wilderness is the anguish and vulnerability of being fully human. If that anguish is not implemented within the system, the player can never experience it as performance. From Gadamer's hermeneutic perspective, the meaning of a text is newly generated in the process of the reader performing it. In this context, representation is not mere copying but the production of new meaning. A hungry Jesus, a Jesus who takes fall damage, a Jesus who agonizes before temptation. Only when Jesus as fully human is implemented within the game can the game become, beyond representation, a medium that lets us experience the religious. [1] Some argue for using seonggyeong (성경) on the grounds that it is a more authoritative term than seoseo (성서) and has been used more universally in history; but this essay follows the tradition of the 1968 Common Translation Bible Committee, in which Catholics and Protestants jointly took part, and writes seoseo. (Both render as "the Bible"/"Scripture" in English.) [2] The above concerns I Am Jesus Christ; Jesus Simulator, which begins from the Annunciation, had even less freedom. [3] This, too, is a concept with much theological trouble in it, but let us move on. [4] Of course, the most central religious principle among Protestantism's five solas, born of Martin Luther's Reformation, is Sola Fide ("by faith alone"). Even so, the driving force by which that faith is given and made to grow comes from God. [5] George Ritzer criticized this social phenomenon as "the irrationality of rationality."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인벤토리 시스템은 어떻게 효율을 재미로 연결시켰는가?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꽉찬 인벤토리에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2023년 대흥행을 이루었던 <발더스게이트3>에서는 아이템의 무게가 발목을 붙잡는다. 일반적으로 처음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는 어떤 아이템이 좋은 아이템이고, 어떤 아이템이 ‘잡템’인지 알 수 없어서 보부상처럼 모든 아이템을 들고 다닌다. 그러다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면 아이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때 무엇을 들고 다닐 것이고 무엇을 버리는 것이 효율적인지에 관한 고민이 시작된다. 그래서 유튜브나 커뮤니티에는 ‘발더스게이트 인벤토리 관리 꿀팁’ 글들이 무수히 올라와 있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인벤토리, 롤플레잉, 아이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古典名著邂逅现代科技: 《黑神话:悟空》与中国的3A游戏想象

    但就在这“一切朝钱看”的时代与产业环境里,名不见经传的《黑神话:悟空》(흑신화:손오공,后文简称《黑神话》)却在2020年8月20日如电影《大话西游》(대화서유)里“身披金甲圣衣、驾着七彩祥云”的盖世英雄一般横空降世,不仅搅动整个中国游戏业,甚至点燃了社会舆论对中国游戏业的期待。人们在民族主义情绪的激荡下,憧憬着古典文学《西游记》与现代科技虚幻引擎(Unreal Engine)的“邂逅”能第一次铸就伟大的中国3A游戏。 < Back 古典名著邂逅现代科技: 《黑神话:悟空》与中国的3A游戏想象 10 GG Vol. 23. 2. 10. 이 글의 한글번역본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本文的韩文译本可在以下链接中看到: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97 自2017年始,中国游戏业的实际销售收入就稳居全球第一。当然,这不意味着中国游戏业取得了成功——因为3A游戏才是评价一国游戏产业综合实力的唯一标准。然而刺痛国内玩家的是,中国一直未能开发出自己的3A游戏,甚至欠缺相关尝试。换言之,就中国游戏业的商业成长而言,“这是一个最好的时代”,但就文艺创造而言,“这是一个最坏的时代”。 但就在这“一切朝钱看”的时代与产业环境里,名不见经传的《黑神话:悟空》(흑신화:손오공,后文简称《黑神话》)却在2020年8月20日如电影《大话西游》(대화서유)里“身披金甲圣衣、驾着七彩祥云”的盖世英雄一般横空降世,不仅搅动整个中国游戏业,甚至点燃了社会舆论对中国游戏业的期待。人们在民族主义情绪的激荡下,憧憬着古典文学《西游记》与现代科技虚幻引擎(Unreal Engine)的“邂逅”能第一次铸就伟大的中国3A游戏。 目前,《黑神话》仍是一款制作中的游戏,预计于2024年夏天发售。互联网上一共出现了八部与游戏相关的视频,分别是2020年8月20日①“首爆演示视频”、2021年2月9日②“辛丑年贺岁视频”、2021年8月20日③“UE5实机测试集锦”、2022年1月2日④“游戏科学虎年贺岁小短片”、2022年8月20日⑤“6分钟实机剧情片段”、⑥“游戏插曲《戒网》”、⑧“《黑神话:悟空》全球独家 8分钟实机试玩”,以及2023年1月16日⑦“游戏科学兔年贺岁小短片”。①~⑦为游戏科学官方播出,可在游戏官网( https://www.heishenhua.com)上观看,⑧由合作方英伟达(NVIDIA)独家推出,可在网站哔哩哔哩(LINK)上欣赏。由于完整的游戏尚未问世,我们还无法对《黑神话》进行充分的游戏批评。但可以肯定的是,这款未完成的游戏所凝聚的不只是玩家对国产3A游戏的憧憬,更是他/她们对转变当下中国游戏业以资本增殖为唯一目的的粗暴的产业发展方式的美好愿望。 顾名思义,《黑神话:悟空》的故事底本是中国古代四大名著之一的《西游记》。一般认为,《西游记》最迟于高丽王朝末期传入韩国,它在表面上是讲唐僧、孙悟空、猪八戒、沙僧、白龙马历经九九八十一难去西天取经的故事,实则是以神魔小说的形式曲折地反映现实的社会矛盾。不过从已有的视频内容看来,该游戏不是简单地临摹《西游记》,而是借鉴了《续西游记》(章回体小说)、《大话西游》(电影)、《悟空传》(网络文学)、《斗战神》(MMORPG)等以《西游记》为蓝本的跨媒体作品的想象力,通过后现代的“戏仿”(parody)手法对原著加以解构(deconstruction),“以游戏特有的形式对原著的精神和内涵进行了呈现”。 在上述“原型”作品中尤其值得注意的是,《斗战神》这款腾讯从2010年开始运营的MMORPG。该游戏自立项开始就被定位为腾讯的“自我救赎”之作,但《斗战神》在取得“开门红”之后,却由于各方面的因素——当然核心原因仍是资本逻辑与游戏精神之间不可调和的矛盾——自第三章“白骨夫人”的主线剧情后便迅速衰落,成为21世纪中国游戏史里最大的憾事之一。《斗战神》的主策划正是如今《黑神话》的制作人冯骥(Yocar),而《黑神话》的不少制作成员也参与过《斗战神》的创作。冯骥等人在离开腾讯之后创立了游戏科学。游戏科学在推出《百将行》《战争艺术:赤潮》等手机游戏后,试图挑战3A游戏这一中国游戏业从未染指的高峰,于2020年8月打出“白骨之后,重走西游”这一旨在破镜重圆的理想主义旗帜,再次制作“西游世界观”的游戏——《黑神话》。毋庸置疑,《黑神话》不只是《斗战神》的精神续作,其中还蕴含了这一代中国游戏制作人对于游戏理想的坚持,以及对于充满“铜臭味”的21世纪中国游戏史的批判。当然更重要的是,它指向中国游戏史又一次自我超克的尝试。 不过,光有优秀的文化主题与赤诚的一腔热血显然不够,评价3A游戏的首要标准还是游戏技术。在2020年8月20日第一次播出实机演示画面后,制作人冯骥在新浪微博中坦陈:“13分钟的B1,到处是拼凑的痕迹。胡乱的数值,生硬的落地。小体型体操,大体型乏力。穿模的金蝉,无反馈的水体。粗糙的判定,声音还特么分离。十万天兵掉帧掉到PTSD。”显然当时的《黑神话》还面临着诸多亟待解决的技术难题。但从如今播出的《黑神话》画面可知,游戏科学似乎已在一定程度上解决了上述难题,甚至可以认为,该游戏在某些细节上的质量可媲美《只狼》《赛博朋克2077》等国际顶尖3A游戏。例如正如游戏科学所言,“西游世界观”里大量存在的是较少被全球游戏业处理的四足妖怪,而非简单的两足人型怪,如何才能更好地表现这类妖怪的行动特征,就成为必须处理的难题。《黑神话》因此专门针对这一难题开发了面向四足动物动作捕获的运动模拟系统“陆吾”(luwu)。 不过,中国游戏业亟须解决的还不是尖端却琐碎的技术问题,而是如何使一款游戏从“高精尖”的游戏商品变成富含人文思想的文艺作品,最终实现技术与人文的双重超越。从《黑神话》的制作与宣传中,我们似乎看到了这种双重超越的可能性,即《黑神话》正在酝酿属于中国游戏监督们的“作家性”。这里的“作家性”不是一个只牵扯游戏如何设计才好玩的平庸词汇,它指向游戏作品如何才能被升华为一种人文思想的载体,其中渗入了游戏监督对于社会历史状况的深刻思考。换言之,“作家性”是游戏文本与社会文本互动的结果,它可使玩家在游戏过程中“读出”游戏中隐含的时代语言。 从现有资料看来,《黑神话》的制作人冯骥对于“西游世界观”的驾驭已比较接近日本游戏监督对于游戏思想的阐释。游戏策划出身的他,同时也是游戏科学的创始人,这就使他可以心无旁骛地将自己对于“西游世界观”的理解注入《黑神话》,而无须过多顾及游戏设计之外的商业社会的现实压力。在这样的创作背景下,我们自然可从《黑神话》及其宣传文案中读出一种完全不同于之前任何西游题材游戏的彻底的理想主义色彩——游戏中的角色塑造、动作设计、剧情设置、动画展现、镜头切换、场景搭建,甚至官网文宣等,无不透露出《黑神话》不计成本的高品质与追求卓越的野心。 这样的理想主义,正是在游戏作品中孵化“作家性”的前提。对此,冯骥等人应是有清楚认识的。十三年前,冯骥曾写下如此豪言壮语:“伟大的游戏总是来自伟大的思想,伟大的思想通常来自伟大的游戏设计师”。不难揣测,《黑神话》之中应会注入游戏科学团队关于日常生活世界的总体思考与深度观察,最大可能地丰富“西游世界观”的当代内涵。不过该游戏里究竟会被注入什么样的“伟大的思想”呢?似乎目前公开的游戏视频尚不足以为我们提供确实的判断依据。我们仅能从一些蛛丝马迹中捕风捉影——或许《黑神话》延伸了《悟空传》《斗战神》对现实世界以及“西游世界观”的批判性反思。 这意味着,《黑神话》对于“西游世界观”的再诠释,可能同样不会局限于《西游记》故事本身,即“猴子自是当仁不让的主角,却远非故事的全部”,而是“用顶尖的画面,丰富的细节,沉浸的战斗体验,足量的剧情演绎”重新创造一个新的以东方神魔世界为表象的元叙事空间,歌颂“狡猾的妖精、凶残的鬼怪、多情的星君、怯懦的神仙”心底掩藏的爱恨情仇,“谱写东方的超级英雄史诗”。因此《黑神话》中“伟大的思想”可能不是如欧美漫威宇宙一般的英雄赞歌,而是细腻地刻画取经路上的每一位“平凡”角色,跟他/她们产生共情,理解他/她们的内心世界。用元叙事的故事手法将被神格化的神仙圣佛与被污名化的妖魔鬼怪重新人格化,使得玩家可以走近这些被英雄光环遮蔽的“小人物”身边,感受它们平凡却饱满的“人性”。 众所周知,《西游记》是一部影射现实社会的阴暗面的奇书。因此对于以之为蓝本的《黑神话》而言,或许最大的难题不是3A游戏技术本身,而是如何在中国第一款3A游戏中设置社会批评的议题,并找出解决社会问题的可能方案。《黑神话》究竟会是高端的“数码玩具”,还是社会批评的媒介?明年将会揭晓答案!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rofessor) jian deng (邓剑) He is a post-doctoral researcher at the Graduate School of Journalism and Communication at Peking University. It deals with digital game culture research as its main interest, and continues to publish columns on games in 闻湃澎.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유럽 속의 타자, 게임 속의 동유럽

    서구, 오늘날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 불리는 이 말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북미와 유럽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근대를 이루는 많은 기술적, 정치적, 문화적 배경들의 원산지로서 서구는 일종의 기원으로 여겨지며, 그 중에서도 특히 근대적 의미로서의 북미가 사실상 유럽으로부터의 문명 이주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대 세계의 많은 부분은 유럽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불멍을 넘어, 소비자본주의 너머: 게임 〈리틀 인페르노〉 비평(우수상)

    물건을 태워서 종잣돈을 늘리고 새로운 물건을 해금한다. 그리고 일종의 업적이기도 한 특정 물건의 조합을 찾아 태우는 재미는 분명 게임으로서의 즐거움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주된 게임성을 경험하게 하는 시스템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회의하고 그 밖을 사유하기를 적극적으로 재촉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세지가 게임적 시스템과 충돌한다. < Back 불멍을 넘어, 소비자본주의 너머: 게임 〈리틀 인페르노〉 비평(우수상) 07 GG Vol. 22. 8. 10. 장르를 막론하고 게임에서 재미를 주는 가장 주요한 시스템 중 하나는 바로 자본의 재투자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튜토리얼에서 주어진 초기 자금을 가지고 물건을 구매하고 재판매하여 차익을 만들고, 그것을 더 큰 자본으로 불리는 경험은 게임에서 재미와 성취감을 고양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다. 여기 게임 〈리틀 인페르노 (Little Inferno)〉가 있다. 이 게임은 바로 이 과정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게임의 구성이 끊임없는 재화의 소비와 재투자의 연속으로만 구성되어있으며 그 밖에 플레이어가 누릴 수 있는 여타의 콘텐츠는 전무하다. 이러한 형태의 게임 플레이 경험은 자본의 투자가 더 많은 자본을 만들어내는 ‘클리커’류 게임과도 비견될 수 있다. 그러나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투자한 자본으로 더 많은 자본을 벌어들인다는 쾌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돈이 더 많은 돈을 불러온다는, 어떻게 보면 현실의 자본주의 구조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게임 시스템을 차용하는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동시에 그러한 시스템이 과연 지속가능한지를 묻는다. 태워라! 애태워라! 그리고 다시 태워라! 게임의 배경이 되는 어느 도시는 끊임없이 퍼붓는 눈과 수천 개의 굴뚝에서 내뿜는 연기로 가득하다. 흰 눈과 검은 연기로 얼룩진 흑백의 도시는 흡사 산업혁명이 막 시작된 19세기 영국을 연상케 하지만, 정작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도시의 모습을 직접 보는 일은 없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맞은 편에 놓인 화덕을 바라보게 되며, 개인용 화덕인 ‘리틀 인페르노’의 구매를 축하한다는 ‘투모로우 코퍼레이션’ 회장의 축하 편지를 받게 된다. 회장은 ‘리틀 인페르노’에 물건을 태움으로써 플레이어가 바깥의 음산한 날씨로부터 차단되어 ‘따뜻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약속한다. 그러나 곧 그 편지는 바로 화덕으로 올려진 다음 플레이어가 일으킨 불꽃으로 태워져 동전 두어 닢을 뱉어낸다. 이것이 바로 앞으로 이어질 게임 플레이의 시작이다. 플레이어는 주어진 자금을 바탕으로 물건 카탈로그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액자, 토끼 인형, 누군가의 신용카드, 커피 컵, 상한 초밥, 접시 뿐만 아니라 작은 달과 행성, 심지어 태양까지- 구매한다. 그리고 그 잡동사니는 오로지 태워지기 위해 구매되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구매한 물건은 배송이 끝나면 박스 형태로 화면 하단에 도착하게 되며, 플레이어는 포장을 풀고 물건을 화덕에 올려놓은 다음 불꽃을 만들어 물건이 타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때 다 타고 난 물건은 처음 구매했을 때 지불했던 자금보다 더 많은 양의 동전을 남기며, 플레이어는 이 돈을 모아 다시 카탈로그를 살펴 새로운 물건을 구매한다.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어떻게 보면 이처럼 단순한 게임 경험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물건을 태우는 경험 자체의 심미성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이를테면 옥수수를 태우면 팝콘이 되어 터져나온다던가, 은행 모형을 태우면 지폐가 마구 튀어오른다던가, 상한 초밥을 태우면 벌레떼가 날아오른다던가 하는 식으로 태우는 물건의 특성을 고려한 섬세한 애니메이션과 사운드 효과가 돋보인다. ‘불멍’의 즐거움과 안전하게 파괴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음에 빠져든 플레이어는 곧 카탈로그를 펼치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또 어떤 물건을 구매하여 태울지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된다. * 태우는 물건들마다 고유의 시각적, 청각적 효과가 있다. 게임플레이의 쾌락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요소는 구매한 물건이 바로 배송되지 않는 시스템이다. 게임 초반에는 배송까지 약 5초에서 10초가 걸리던 물건들이, 게임 중후반으로 넘어갈 수록 2분에서 5분까지도 기다려야 주문한 물건들을 받아볼 수 있다. 물건이 배송되길 기다리면서 태울 물건이 있다면 모르되, 게임을 해나갈수록 플레이어는 어느 순간 물건 배송을 기다리며 텅 빈 화덕에 의미없는 불꽃만을 일으키며 초조해할 뿐이다. 보통 대기시간으로 인한 패널티라는 시스템은 모바일 게임에서 주로 차용된다. 마냥 기다리기엔 지루한 대기시간이라는 패널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광고 시청을 제공하고 대기시간을 없애주는 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혼자 플레이하는 콘솔 게임에 차용되었다는 것은 특기할만한 지점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일상적으로 하지 않던가? 물건을 주문하고 그 물건이 택배로 도착하기까지 며칠의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비슷한 초조함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인고의 시간이 지나 물건이 도착했을 때 기다리던 물건을 받아본다는 쾌락은 비로소 극대화된다. * 본격 택배 기다리기 시뮬레이터 그런데 게임플레이가 제공하는 ‘불멍’과 ‘안전한 파괴’, 더 나아가 ‘구매행위’ 자체가 주는 쾌락은 어느 순간 의문으로 바뀐다. 이 의문은 카탈로그의 모든 아이템을 구매하고 불태운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또 다른 상품 카탈로그라는 점에서 시작된다. 물건의 구매와 소비는 연쇄적이다. 이 굴레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플레이어는 어느 순간 묻게 된다. 언제까지 불태우기 위해서만 물건을 사고 거기서 더 많은 돈을 얻어 다시 물건을 사는 짓을 반복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게임 초반부터 의미심장하게 제기된 ‘끝은 나게 되어있다 (There’s bound to be an end)’라는 대사에서 암시된다. 계속 사는(buy) 것으로 살아갈 (live) 수 없다 2005년작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등장하여 반짝 인기를 끌었던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는, 그것이 상품화된 양상과는 정 반대되는 메세지를 보내는 작품이다. 작중 주인공인 모모는 조개껍데기와 빛나는 돌 조각, 낡은 천으로 만들어진 텐트만 가지고도 어린이다운 제약없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누구보다 즐겁게 놀 줄 아는 소녀이다. 그런데 모모를 회유하기 위해 나선 악당인 ‘시간도둑’은 그런 초라한 장난감 대신 크고 화려한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 것을 제안한다. 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방식은 조개 껍데기를 갖고 노는 방식과는 다르다. 바비 인형을 제대로 갖고 놀기 위해서는 일상복과 파티용 드레스, 운동을 위한 테니스복을 사주어야 한다. 어느 순간 바비 인형과 그 모든 물건이 질린다면 바비 인형의 남자친구인 부비 보이가 있다. 부비 보이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만을 위한 향수와 신발, 갖은 옷들을 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끊임없는 구매와 질림의 연쇄 속에서 길들여진 어린이들은 특유의 상상력이 제약당한 채 모든 일에 지루함만을 느끼는 어른이 되고 만다. 게임 〈리틀 인페르노〉 역시 동화 〈모모〉가 사유한 인간의 소비주체화라는 문제의식을 같은 선상에서 공유한다. 그것은 게임 안에 삽입된 개인용 화덕 장난감 ‘리틀 인페르노’ 광고를 봐도 알 수 있다. ‘리틀 인페르노’ 광고는 끊임없이 사들인 장난감에 질린 아이들이 그 잡동사니를 불태우는 쾌락을, 그리고 다시 다른 물건들을 사들이는 쾌락을 제공한다는 것을 우스꽝스러운 블랙코미디로 묘사한다. 검은 두 손은 얼어붙은 지구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을 가리고 입술을 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어준다. 이에 안심한 아이들은 여지껏 사들였다 질려버린 장난감을 박스채 가져와 화덕 안에 던져넣는다. 이처럼 게임 안에서 ‘리틀 인페르노’ 화덕 장난감이 ‘어린이’들을 겨냥한 ‘개인용’ 장난감이라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를 통해 ‘리틀 인페르노’를 소유한 어린이들을 전인격적 주체가 아닌 소비주체로 호명한다. 동시에 자본을 투자해 더 많은 자본을 얻은 다음 그 잉여 자본을 (물건 구매를 통해) 재투자한다는 시스템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본가가 자본의 양을 불리는 방식이라 지적했던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리틀 인페르노’를 소유한 어린이들은 소비자본주의 체제에서 구매를 위한 구매와 투자를 위한 투자라는 체제의 원칙을 자연스레 주입당하는 셈이기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0TniR3Ghxc * 구매에 이은 파괴에서 오는 쾌락 소비자본주의가 주조한 개인에게는 오로지 눈앞에 놓인 화덕과 구매할 물건이 실린 카탈로그만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 몇 년째 이유도 모른 채 지속되는 폭설을 경고하는 날씨 알림 편지도, 바로 옆집에서 말을 걸어오는 이웃의 편지도 화덕에 올라 불태워질 뿐이다. 플레이어로서는 구매와 파괴와 더 많은 구매라는 일련의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로 발생한 기후변화도 인지할 수 없을 뿐더러, 구매와 파괴라는 구조가 과연 맞는 것이냐는 질문을 해오는 이웃과도 연대는 커녕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조차 없다. 따라서 변화는 자신의 화덕을 폭발시키고 만 이웃으로부터 먼저 찾아온다. ‘투모로우 코퍼레이션’의 회장은 이 사건을 그저 안전문제로 치부하고 말지만, 처음으로 방 안의 화덕에서 벗어나 바깥을 보게 된 이웃은 자신이 겪은 일은 사고가 아니었다며, 자신은 햇빛이 좋은 해변가에 있다며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신과 같이 화덕을 폭발시키고 밖으로 나오길 종용한다. 이웃과 같이 자신의 화덕도 폭발시킨 플레이어는 이웃과 마찬가지로 처음으로 화덕에서 눈을 떼고 집 밖으로 나가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사람들은 각자 집에 틀어박혀 수천 개의 굴뚝으로 검은 연기를 내보내는데 열중하느라 길거리는 텅 비어있다. 불태울 물건들을 배송하느라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단 한 명의 집배원을 제외하면 말이다. * 텅 빈 거리를 처음으로 나선 주인공 발걸음을 옮기던 주인공은 ‘리틀 인페르노’를 판매하는 회사인 ‘투모로우 코퍼레이션’에 도달하게 되고, ‘리틀 인페르노’를 기획하고 판매한 회장조차 ‘끝은 나게 되어있다 (There’s bound to be an end)’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로켓을 타고 지구를 떠난다. 2012년에 처음 출시된 이 게임은 약 10년 만에 현실이 된 전지구적 기후위기, 일론 머스크와 같은 세계적 부호와 ‘지구를 버리고 화성을 식민화하자’라는 구호까지 예견한다. 그리고 이 예견은 바로 ‘지속불가능한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마침내 플레이어는 열기구를 타고 다니며 기상정보를 전해주던 기상 캐스터를 만나게 된다. 기상 캐스터는 열기구를 태워줄 수 있다며, 원하는 만큼 나아갈 수는 있겠지만 한번 떠나기로 결정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경고한다. 게임은 기상 캐스터와 함께 열기구를 탄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며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란 무슨 뜻인가? 당연하게 여겨졌던 구매-투자-더 많은 돈-재투자라는 소비자본주의의 굴레를 한 번이라도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일으키는 어마어마한 기후위기와 사람들간의 고립, 소외, 연대 불가능성을 인식하게 된다면 다시는 물건을 불태우며 ‘불멍’과 ‘물건 구매’에서 안락한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 열기구를 탄 기상캐스터의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이 서늘한 불꽃을 응시하라 물건을 태워서 종잣돈을 늘리고 새로운 물건을 해금한다. 그리고 일종의 업적이기도 한 특정 물건의 조합을 찾아 태우는 재미는 분명 게임으로서의 즐거움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주된 게임성을 경험하게 하는 시스템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회의하고 그 밖을 사유하기를 적극적으로 재촉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세지가 게임적 시스템과 충돌한다. 넘어선다. 따라서 〈리틀 인페르노〉는 자신의 게임성을 뛰어넘는 일종의 메타성을 가진다. 이 게임은 자신의 게임성을 구성하는 시스템을 의심하고 회의하도록 플레이어들을 이끎으로써 게임성과 반대되는 메세지를 전하기 때문이다. 눈을 가리고 당장의 쾌락에 매몰되도록 사람들을 이끄는 소비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이 게임은, 따라서 소비자본주의로 인한 기후위기가 닥친 현실 세계에 대한 일종의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당장 지구 곳곳에 산불, 가뭄과 식량난, 전염병이 창궐하는데도 소비주의적 삶의 방식이 영원하리라는 믿음이 지배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위화감을 한 번이라도 느꼈다면, 그런 당신에게 게임 〈리틀 인페르노〉를 추천한다. 물건을 태우는 불꽃을 바라보면서도 그 불꽃이 일기까지의 과정과 불꽃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떠올리며 서늘함을 느끼게 될테니 말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 Can “Black Myth: Wukong” Be Truly Understood Beyond Chinese Cultural Borders?

    As a cultural epicentre of East Asia for centuries, China has consistently brought its classical literature to games. From the earliest days of video games, Chinese developers have adapted their classic literature like “Investiture of the Gods (Fengshen Yanyi)” and “Strange Tales from a Chinese Studio (Liaozhai Zhiyi)” into virtual worlds.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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