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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77개 검색됨
- 리눅스와 함께 춤을: 시뮬레이션에 체증 유발하기
그렇다면 한 줌도 안 되는 리눅스 데스크톱 점유율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웹 브라우징을 넘어서 결제까지도 클라우드에 기반한 LLM 에이전트에 맡기라고 압박하는 바야흐로 총체적 ‘ 자동 사냥’ 의 시대 아니던가. 에이전틱agentic OS를 부르짖으며 너의 컴퓨터는 그저 LLM이 수행한 결과들을 출력해 주는 단말기에 불과하니 잔말 말고 코파일럿의 세례를 받으라는 ‘ 권유’ 를 사실상 명령처럼 따라야 하는 현실 아닌가.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 플레이할 결심: 공포 게임을 못_잘_안 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적 자기반성을 토대로
나는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공포 게임이 무섭기 때문이다. 무서워하라고 만든 게임을 무서워해서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긴 한데 뭔가 아쉽긴 아쉽다. 바로 내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공포 게임에도 명작이 참 많다. < Back 플레이할 결심: 공포 게임을 못_잘_안 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적 자기반성을 토대로 19 GG Vol. 24. 8. 10. 나는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공포 게임이 무섭기 때문이다. 무서워하라고 만든 게임을 무서워해서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긴 한데 뭔가 아쉽긴 아쉽다. 바로 내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공포 게임에도 명작이 참 많다. 〈암네시아〉(Amnesia), 〈블레어 위치〉(Blair Witch),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맨 오브 메단〉(Man od Medan), 〈디 이블 위딘〉(The Evil Within),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Dead by Daylight),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Alien: Isolation), 〈화이트데이〉(White day),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 〈사일런트 힐〉(Silent Hill), 〈디텐션: 반교〉(Detention: 返校)는 플레이해 보지 않았지만 제목도 게임 속 장면들도 너무 친숙한 작품 또는 시리즈들이다. 고백하자면 이중 적지 않은 게임들을 소장하고 있다. 책 구매도 독서이듯 게임 구매도 플레이의 일환이기에 아직 플레이하지 않았을 뿐 언젠가 하긴 할 것인데 아직 그 시기를 가늠하기 힘들 따름이다. 그렇지만 명작으로 불리는 게임들을 제대로 플레이하지 못하고 있으니,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무서움은 피하는 게 상책이니 공포 게임은 떠올리지 않아버리기 쉽지만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다시 고개를 돌려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질문들이 이어진다. 공포 게임은 왜 무서운가? 공포 게임의 재미는 무엇인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는 공포를 즐기는 것일까,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일까? 공포 영화를 통해 비추어 본 공포의 정체 가장 궁금해지는 것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마음이다. 이들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즐거움을 느낄까, 괴로울까? 만약 그것이 즐거움이라면 어떤 즐거움일까, 한편 그것이 괴로움이라면 거기에 어떤 매력이 있을까? 공포 영화를 대상으로 유사한 질문을 던진 시도가 있다. 공포 영화를 관람하는 이들이 공포 영화의 무서움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괴로움을 느끼는지를 연구한 [1] 풍원과 나은경은 공포 영화를 관람하며 느끼는 즐거움이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 중 어느 한쪽이 아니라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양가적인 감정의 복합적인 즐거움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공포 영화의 무서움을 통해 “짜릿하고, 신선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는 것이 긍정적인 즐거움이라면, “끔찍하고, 불쾌하고, 징그럽고, 스트레스를 받는” [2] 느낌을 받는 것은 부정적인 괴로움인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면서 복합적인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를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마음에 적용하면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게이머가 경험하는 두려움은 긍정적인 즐거움과 부정적인 괴로움 모두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로 이어지는 출발점인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이 허구에 불과한데도 관객이 무서워하는 이유를 연구한 [3] 안의진은 콜린 래드포드(Colin Radford)가 제시한, 영화의 허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모순적인 관객을 뜻하는 ‘픽션 패러독스’(Fiction Paradox) 개념 [4] 을 활용해 관객이 공포 영화를 보면서 무서움을 느끼는 맥락을 설명한다. 관객은 영화에 등장한 괴물이 진짜 있다고 믿어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허구인 것을 알고 실제로는 그 괴물이 누구의 안전도 해치지 않음을 (두려움의 범위와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영화를 통해 느껴지는 공포감을 ‘즐거운 흥분’으로 받아들인다 [5] . 이는 관객이 공포 영화를 통해 느끼는 공포는 감각을 토대로 하는 것으로, 관객이 공포 영화에서 괴물을 보면서 공포를 느끼는 것이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는 모순적인 과정이 아니라 없다는 것을 아는 채로 즐기는, 합리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관객이 공포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은 영화 속 괴물이 정말 눈앞에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실감이 나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괴물이 눈앞에 있는 셈 치고 ‘무서워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포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두려움이 관객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공포 영화를 즐겨 본다’는 것도 자연스레 가능해진다(여전히 엄두는 안 나지만). 공포를 경험해서 얻는 재미가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두려움이란 주어지는 동시에 선택되기도 한다는 점은 두려움이 제한된 조건에서만 경험하는 비일상적이고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과 연결된 것임을 뜻한다. 이를 염두에 두면 공포 영화에 대한 다른 여러 논의들, 가령 특정 작품에서 표현한 공포가 갖는 의미를 당시의 사회적 정서를 토대로 해석 [6] 한다거나, 영화가 만들어진 허구적 세계에만 해당하는, 극장 안에 갇히는 공포와 극장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더 강렬해지는 공포 [7] 로 두려움의 정체와 영역을 확장하여 구분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종합하면 공포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두려움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며, 이 두려움을 통해 우리는 즐거운 동시에 괴로울 수 있다. 이를 공포 게임에 적용하면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경험하는 두려움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며, 게이머는 이 즐거움과 괴로움 사이에서 복합적인 재미를 느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공포는 영화의 공포와 어떻게 다른가 어쩌면, 마음먹기에 달린 일인지 모른다. 공포 영화/게임에서 경험하는 두려움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함께 발휘되는 양가감정이라면, 마음의 방향을 어디로 두느냐에 따라 재미의 모양새가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공포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는 데 필요한 건 마음의 방향을 옮기는 것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게 잘 안된다. 마음먹기로 결심은 하는데 실행에 옮기기 전에 매번 주춤하게 만드는 고비가 있어서다. 바로 게임의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이다. 영화와 달리 게임은 공포 상황을 직접 헤쳐 나가야 한다. 내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공포 상황도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포 게임에서 경험하는 두려움은 영화를 관람할 때와 달리 즐거움으로든 괴로움으로든 어느 정도 견디면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방향을 달리하는 것 외에도 그 방향을 꼭 붙들고 있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를 감내하면서. 더군다나 공포 상황이 펼쳐진 현장에 실제로 있는 것 같은 임장감을 토대로 한 VR 게임이라면? VR 공포 게임이 게이머의 두려움을 유발하는 요인을 분석한 He Zhang 등의 연구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중심으로 게이머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게 느끼면서 몰입된 공포를 경험한다 [8] 고 제시한다. 귀신이 갑자기 등장하거나,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린다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발생할지 모른다고 긴장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두려움은 (영화든 게임이든) 스크린을 통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경험하는 두려움과는 다르다. 게임에서 경험하는 공포 상황은 여전히 허구이지만, 그것이 허구임을 아는 채로 즐기기까지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더 생기기 때문이다. 게임에 따라 상호작용성이 다양하게 적용되면서 두려움을 경험하는 구체적인 맥락이 달라지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인디 게임을 사례로 두려움을 ‘허구 감정’(fiction emotion)과 ‘게임플레이 감정’(gameplay emotion)으로 구분해 공포 게임 플레이를 통해 어떤 감정적 경험을 하는지 탐색한 Jan-Noel Thon의 연구는 인디 게임이 시청각적/서사적/놀이적 요소를 통해 대형 스튜디오와 다른 방식으로 두려움을 전달함을 제시한다 [9] . 적은 예산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대신 독창적인 표현을 시도할 수 있는 공포 인디 게임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두려움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포 VR 게임과 인디 게임의 사례는 임장감이 두려움에 대한 몰입을 강화하고 독창성이 두려움의 범위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영화와 비교해 게임이 새롭게 제공하는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공포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두려움이 게임에서도 유효하다면 그것은 어떤 경험일까. 공포 게임에서 가상의 캐릭터와 인간과 유사한 정도에 따라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에 차이가 있는지 탐색한 Angela Tinwell 등의 연구는 가상의 캐릭터가 인간과 유사할수록 무섭게 느낀다는 것을 제시 [10] 한다. 현실과 맞닿은 지점에서 두려움을 더 효과적으로 느끼는 셈이니 게임을 통해 경험하는 공포는 영화와 유사한 부분은 있지만, 동시에 더 넓고 짙은 셈이다 [11] . 공포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겠다던 결심이 번번이 좌절되거나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지 않은 데에는 나름 정당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굳게 마음을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암, 그렇고말고!) 그렇다고 깔끔하게 포기할 생각이 들진 않는다. 더 넓고 짙은 두려움이 가득한 세계이지만 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상호작용성은 시도를 요구한다. 그 시도가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것을 요청한다. 그 시도는 일련의 규칙을 기반으로 한다. 시도하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는 분투의 과정을 통해 게이머는 게임에 펼쳐진 세계를 경험하고 탐색한다. 공포 게임에서 무서움은 실패를 유도한다. 게임에 구현된 규칙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부정적인 괴로움을 먼저 떠올리게 해 도전을 반복하면서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게 한다. 이 무서움을 반드시 극복할 필요는 없다. 공포 게임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즐겁고도 괴로운 양가감정이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공포의 형식이 아니어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게임도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그동안 선제적으로 고개를 돌렸던 두려움이 현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괴로운 동시에 즐거울 수 있음을 믿고 공포 게임의 세계로 다시 다가가 보려 한다. 분명 그 과정은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을 것이다. 무서우라고 만든 게임을 안 무서워할 도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보려 한다. 실눈을 뜨고서라도, 발걸음을 아주 더디게 내딛게 되더라도. [1] 풍원, 나은경. (2021). 공포영화를 보는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한 수용자 반응의 차이 연구: 관람자의 현실 공포 경험 및 관람 환경(장소/매체/동행)의 영향을 중심으로. 언론과학연구, 21(2), 118-155. [2] 풍원과 나은경의 논문, 136-137쪽. [3] 안의진. (2013). 관객은 허구에 불과한 공포영화의 괴물을 왜 무서워하는가?. 미디어, 젠더 & 문화,(26), 41-70. [4] 래드포드는 영화의 허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모순적’이라고 규정하기 위해 세 가지 전제를 제시했다. 첫째, 인간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나 사건에 감정 반응을 하는데, 둘째, 영화를 볼 때 영화의 인물이나 사건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셋째, 그런데 인간은 영화를 보며 감정 반응을 한다. 안의진은 이 전제를 공포 영화에 적용해 ‘인간이 공포 영화의 괴물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려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믿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공포 영화의 괴물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다’고 제시한다. [5] 안의진의 논문, 64쪽. [6] 송아름. (2011). 1990년대의 불안과 <여고괴담>의 공포. 한국극예술연구, (34), 291-324. [7] 김지미. (2012). 영화 가짜 공포와 진짜 공포. 황해문화, 76, 349-356. [8] Zhang, H., Li, X., Qiu, C., & Fu, X. (2023). Decoding Fear: Exploring User Experiences in Virtual Reality Horror Games. Chinese CHI 2023, Denpasar, Bali, Indonesia. doi:10.1145/3629606.3629646. [9] Thon, J.-N. (2020). Playing with Fear: The Aesthetics of Horror in Recent Indie Games. Eludamos: Journal for Computer Game Culture, 10(1), pp. 197–231. doi: 10.7557/23.6179. [10] Tinwell, A., Grimshaw, M., & Williams, A. (2010). Uncanny behaviour in survival horror games. Journal of Gaming & Virtual Worlds, 2(1), 3-25. [11] 현실과 맞닿은 공포에 대해서는 풍원과 나은경의 연구에서도 유사하게 지적되었다. 공포 영화를 관람하며 느끼는 두려움의 정도를 나이별로 구분하였을 때 연령이 더 높을수록 두려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영화에서 제시된 공포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경험했을수록 두려움을 더 느끼는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 레트로를 다시 소환하는 인디게임의 방식들
이런 점에서 레트로 장르를 계승하는 인디 게임들이 평론가와 대중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올드 게이머와 뉴 게이머를 이어주는 인디 게임들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팬덤은 게이머의 확장된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올드 게이머에겐 추억을, 뉴 게이머에겐 신선함을 말이다. 어찌 보면 레트로 게임, 장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누군가에겐 레트로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겐 새로운 게이밍일 수 있다. 인디 개발자들의 레트로 장르 경의와 찬사는 게임 과거 게이밍과 현대 게이밍을 이어주는 가교를 만들어 주고 있다. < Back 02 GG Vol. 21.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 게임이 새로운 브랜딩 전장이 될 때: 나이키, 로블록스, 그리고 베트남 사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 게임 시장은 향후 디지털 브랜드 참여 및 혁신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며, 특히 동남아시아 내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새로운 마케팅 전환점에서 발 빠르게 대응하고 현명하게 투자하는 브랜드는 차세대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나이키랜드, 로블록스, 베트남, 메타버스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Editor-in-Chief in GameGeneration) DOAN Nguyen Huyen Anh, NGUYEN Thanh Binh, TRAN Tien Bang, PHAN Quang Anh (Editor-in-Chief in GameGeneration)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게임, 폭력, 범죄 연구의 타임라인
2023년 8월 11일, 검찰은 신림동에서 거리에서 서있던 20대 남자를 흉기로 공격하여 사망하게 하고 3명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에 대해 “현실과 괴리된 게임중독 상태에서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젊은 남성을 공격하였다”라고 설명하며, 사건의 원인을 게임중독으로 지목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논란에 대해서 각계에서 의견을 밝혔지만, 게임과 범죄 간의 연구들을 기반으로 한 의견들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폭력성, 연구리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hangSeok Yoo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and Entertainment at Kyung Hee University. Drawing on eleven years of experience in the entertainment industry—at companies including Nexon, NCSOFT, and CJ Entertainment—conducts research on consumer behavior and industrial policy across entertainment at large, from the game industry to tourism. Works primarily with the tools of economics, and lately has taken a strong interest in the business models of games and the behavior of game users. Having succumbed to the school's relentless pressure, has to date published research in 29 domestic and 17 international academic journals, with continuing publications in internationally renowned journals such as the Journal of Media Economics,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and Information Processing & Management.
- e스포츠의 미래를 위하여 - 젠지글로벌아카데미 백현민 디렉터
이러한 시선을 바꾸고 e스포츠라는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리더들이 필요한데, 이 리더들은 e스포츠에 대해서 열정만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분야에 대한 전문가여야 합니다. 그 분야가 마케팅이 될 수도 있고, 영업이나 스폰서십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많아지면서 e스포츠가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e스포츠 배경이 아니라 교육 배경을 가지고 있고 저희 CEO님 같은 경우에도 메이저리그 야구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e스포츠를 사랑하면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업계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공모전] 모순된 세계의 충돌을 '다시' 그릴 때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지를 좇는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고, 누군가에게는 믿음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며, 현재 우리가 가진 논리나 통용되는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믿음. < Back 13 GG Vol. 23.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aein Park A gamer who searches games for inspiration in life. Keenly interested in analyzing the ways games convey their intentions and concepts.
- [논문세미나] Do Videogames Simulate? - 비디오게임 연구의 오래된 전제에 대한 고찰
시뮬레이션 철학자 폴 험프리스(Paul Humphreys, 1991)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핵심 용도를 세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여기에는 분석적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수학 모델의 해를 구하는 해결책 제공이다. 둘째, 실제 실험이 불가능하거나 비윤리적이거나 너무 비싼 경우 컴퓨터로 가상의 실험을 수행하는 수치 실험이다. 셋째, 자연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모델을 만들고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이론 모델 탐구다. < Back [논문세미나] Do Videogames Simulate? - 비디오게임 연구의 오래된 전제에 대한 고찰 27 GG Vol. 25. 12. 10. TEXT: Karhulahti, V.-M. (2015). Do Videogames Simulate? Virtuality and Imitation in the Philosophy of Simulation. Simulation & Gaming , 46 (6), 838–856. doi: 10.1177/1046878115616219 현생과 부동산 이슈로 포기하기는 했으나 한동안 버킷 리스트에 레이싱 게임용 휠과 페달, 전용 시트가 장착된 거치대를 올려둔 적이 있다. <이니셜 D>로 운전을 배운 사람에게 레이싱 게임이 전달하는 사실감은 드리프트 순간 아스팔트의 질감이나 타이어의 마찰력까지도 구현된 듯한 착각을 꽤 오랫동안 불러일으킨다. 비단 레이싱 게임만은 아니다. 과 같은 비행 시뮬레이터는 조종석의 복잡한 계기판을 정밀하게 재현하고, 실제 기상 조건까지 반영한 비행기 운전 경험을 구현한다. 이처럼 몰입감 높은 게임 플레이 경험 덕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게임이 현실을 시뮬레이션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용인해 왔다. 이는 단순히 플레이어의 감상에만 머무르는 말은 아니다. 게임 연구에서 ‘게임은 본질적으로 시뮬레이션’이라는 명제는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여졌다. 재현을 토대로 하는 다른 매체와 게임의 변별력이 시뮬레이션에 있다는 주장 역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물리학자, 컴퓨터 과학자, 혹은 분석철학자에게 “모든 게임은 시뮬레이션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들은 분명 의아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시뮬레이션(simulation)’이라는 단어가 해당 분야에서는 게임 연구에서 포괄적으로 사용되는 것과는 달리 더 엄격하고 구체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시뮬레이션이라는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정의 자체가 본질적으로 다르기도 하다. 과학과 공학에서 시뮬레이션은 단순한 ‘모방’이나 ‘재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분야에서 시뮬레이션은 과학적 지식을 얻기 위한 정밀한 도구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슈퍼컴퓨터의 복잡한 모델을 떠올려 보자. 이 시스템은 대기의 움직임, 해류의 패턴, 빙하의 융해 속도, 태양 복사 에너지 등 수많은 변수를 실제 물리 법칙에 기반한 수학 방정식으로 계산한다. 항공사에서 조종사 훈련에 사용하는 수백억 원대의 비행 시뮬레이터 역시 특정 항공기 모델의 공기역학, 엔진 특성, 기상 조건, 비상 상황까지 정밀하게 재현한다. 시뮬레이션 철학자 폴 험프리스(Paul Humphreys, 1991)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핵심 용도를 세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여기에는 분석적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수학 모델의 해를 구하는 해결책 제공이다. 둘째, 실제 실험이 불가능하거나 비윤리적이거나 너무 비싼 경우 컴퓨터로 가상의 실험을 수행하는 수치 실험이다. 셋째, 자연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모델을 만들고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이론 모델 탐구다. 이 모든 과학적 시뮬레이션의 공통점은 ‘참조 시스템’이 반드시 그리고 명확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후 모델은 ‘지구의 기후’를, 비행 시뮬레이터는 ‘보잉 747’이라는 실제 항공기를 참조한다. 얀 클라버스(Jan Klabbers, 2009)의 정의처럼, 시뮬레이션은 “유효한 대응 규칙을 통해 참조 시스템을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모델이다. 그 목적은 단순히 현실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거나 미래를 예측하고, 혹은 특정 기술을 훈련하는 데 있다. 반면 게임 연구에서는 이 용어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네임드 몬스터 오닉시아도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고, <포켓몬스터>의 피카츄도 시뮬레이션이라고 지칭한다. <다크 소울>의 망자의 저주나 <젤다의 전설> 속 마법 시스템 역시 시뮬레이션이라는 범주 안에 쉽게 포함되곤 한다. 여기서 과학자들의 질문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 피카츄의 참조 대상은 무엇이며, 마법 시스템이 모방하려는 현실의 메커니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것이 핀란드의 게임 연구자 벨리-마티 카훌라띠(Veli-Matti Karhulahti)가 2015년 학술지Simulation & Gaming에 기고한 「비디오게임은 시뮬레이션하는가?(Do Videogames Simulate?)」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에서 제기한 핵심 비판이다. 카훌라띠 는 게임 연구가 ‘시뮬레이션’이라는 용어를 과학적·철학적 정의와 무관하게, 지나치게 느슨하고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 연구자들은 시뮬레이션의 핵심인 ‘참조 시스템’과 ‘모방’이라는 개념을 사실상 제거해버리고, “컴퓨터로 구동되는 모든 동적 시스템”이라는 의미로 용어를 확장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 리얼’ 개념이 게임 연구에 수용된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시뮬라크르(simulacra)’는 더 이상 원본을 참조하지 않는 복제품, 즉 원본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의미한다. 게임 연구자들은 이를 차용해, 게임 속 드래곤은 원본이 없으므로 현실의 드래곤을 모방한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 실재하는 시뮬레이트된 드래곤이라고 주장했다. 에스펜 올셋(Espen Aarseth, 2006)은 “우리는 컴퓨터 게임에서 용을 시뮬레이트할 수 있으며, 실제 세계의 대응물이 없더라도 그 용은 여전히 허구의 용이 아니라 시뮬레이트된 용”이라고 썼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 시뮬레이션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논리적 비약이다. 이러한 용어의 불일치는 단순히 학자들 사이의 말장난에 그치지 않는다. 카훌라띠 가 지적했듯이, 이는 “무관세 학제성(duty free interdisciplinarity)”의 전형이다. 한 분야의 용어를 그 분석적·역사적 맥락 없이 무비판적으로 가져다 쓰는 전형적인 사례로, 실제로 게임 연구가 다른 학문 분야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데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 예를 들어 교육용 게임의 딜레마를 볼 수 있다. 교육학 연구자가 게임 기반 학습의 시뮬레이션 효과에 대해 논문을 쓸 때, 그들에게 시뮬레이션이란 화학 실험이나 역사적 사건과 같은 실제 학습 상황을 재현하는 특정 메커니즘만을 의미한다. 하지만 게임 연구자는 점수, 레벨업, 퀘스트를 비롯한 게임의 모든 동적인 요소를 시뮬레이션으로 이해할 수 있어, 두 연구자는 시뮬레이션이라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완전히 다른 대상을 논의하게 된다. 카훌라띠 는 배리 앳킨스(Barry Atkins, 2003)를 인용해, 이러한 교육용 게임을 “시뮬레이터의 사생아”라고 부른다. 교육적 메시지와 유희적 경험 사이에서 필연적인 타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 시뮬레이션 개발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의사들은 해부학적으로 100% 정확하고 실제 수술의 물리적 반응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과학적 시뮬레이터를 기대한다. 반면, 게임 디자이너는 조작이 재미있고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으며 게임 메커니즘이 흥미로운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양측에서 완전히 다른 기대치를 만들어 내 프로젝트를 표류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철학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만약 게임 속 드래곤이 시뮬레이션이라면, 그것의 참조 시스템은 무엇일까? 일부 학자들은 디자이너의 생각이라 답한다. 하지만 카훌라띠 는 이 주장을 날카롭게 반박한다. 비물질적 참조 시스템인 디자이너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질적 참조 시스템인 실제 현상을 부정하는 것이며, 이는 시뮬레이션 검증의 수단인 테스트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시뮬레이션은 과학적 도구로서 가장 중요한 속성인 검증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게임이 시뮬레이션인지 아닌지는 과연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이 논쟁은 두 가지 주요 관점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플레이어 중심 관점이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현실의 무언가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그것이 곧 시뮬레이션이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하며 실제 건축 공학의 원리를 탐구한다면, 그에게 <마인크래프트>는 건축 시뮬레이션이 된다. 또 다른 플레이어가 를 플레이하며 도시 교통 시스템의 혼잡도를 연구한다면, 그것은 도시 생활 시뮬레이터가 된다. 이 관점의 극단적인 예는 자넷 머레이(Janet Murray, 1997)가 제시한 <테트리스> 해석이다. 머레이는 <테트리스>를 1990년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미국 직장인의 삶을 시뮬레이션한다고 해석했다. 블록으로 형상화된 끝없이 밀려오는 업무를 필사적으로 줄 맞추듯 처리하지만, 결국 과부하에 이르러 게임 오버에 이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관점은 심각한 철학적 문제를 안고 있다. 만약 플레이어의 주관적 해석이 게임의 본질을 결정한다면, ‘시뮬레이션’이라는 개념은 어떤 것도 구별해내지 못하는 무의미한 용어가 되어버린다. <테트리스>가 직장 생활의 시뮬레이션이라면, <캔디 크러쉬>는 제과 산업의 시뮬레이션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시뮬레이션을 ‘은유’나 ‘알레고리’와 혼동하는 것이다. 카훌라띠 가 제안하고 옹호하는 것은 두 번째 관점, 즉 ‘시뮬레이션의 의도적 철학(intentional philosophy of simulation)’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게임은 스스로 무언가를 시뮬레이트하지 않는다. 게임이 시뮬레이션인지 아닌지는 그것을 설계한 설계자의 명확한 의도에 달려 있다. 여기서 ‘의도’란 단순히 디자이너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심리적 상태가 아니다. 그 의도는 반드시 ‘기능적 증거(functional evidence)’로서 게임 아티팩트 자체에 물질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즉, 디자이너가 특정한 현실의 참조 시스템을 모방하려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게임을 설계했으며, 물리 법칙, 경제 모델, 생태계 순환과 같은 모방을 위한 기능적 메커니즘이 게임 코드와 시스템 속에 실제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심시티>의 개발자 윌 라이트는 실제 도시 계획 이론과 제이 포레스터(Jay Forrester)의 시스템 동역학을 연구하여, 교통 체증, 공해, 범죄율, 세금 징수 시스템 등이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도시 모델을 게임에 구현하려 했다. 여기에는 명확한 ‘의도’와 ‘참조 시스템’, 그리고 ‘기능적 증거’가 모두 나타난다. 따라서 <심시티>는 명백한 시뮬레이션 혹은 시뮬레이터다. 반면, <테트리스>의 창시자 알렉세이 파지트노프는 어떤 현실 시스템도 모방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펜토미노>라는 수학적 퍼즐에서 영감을 받아, 떨어지는 블록이라는 순수하게 재미있는 게임 메커니즘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따라서 <테트리스>를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며, 범주의 오류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참조하지 않는 게임 속 요소들, 즉 드래곤, 마법, 좀비, 외계인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들은 무엇일까? 단순한 허구(fiction)일까, 아니면 환상(fantasy)일까? 카훌라띠 와 현대 게임 철학의 맥락을 빌려 여기서 ‘가상성(virtuality)’이라는 대안적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서 가상은 단순히 ‘가짜(fake)’나 ‘현실의 반대(unreal)’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같은 철학자들이 발전시킨 개념에 따라,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잠재성을 지닌, 현실의 또 다른 양태”로 이해된다. 인공 생명 연구의 선구자 크리스토퍼 랭턴(Christopher Langton, 1986)은 가상성을 “너무나 생생해서 생명의 모델이기를 멈추고 생명 그 자체의 예시가 되는” 영역이라고 정의했다. 게임 속 드래곤이나 좀비는 현실 세계의 불완전한 복사본,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게임 세계라는 고유한 맥락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독립적인 대상이다. 철학자들은 이를 ‘가상화된 픽타(virtualized ficta)’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셜록 홈즈를 생각해 보자. 셜록 홈즈는 현실의 런던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코난 도일의 이야기 세계라는 허구적 진실 속에서는 베이커가 221B번지에 살며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왓슨 박사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실제적인 인물로 자리한다. 마찬가지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드래곤 오닉시아는 그 게임 세계 안에서 실제로 기능한다. 먼지진흙 습지에 서식하고, 화염 숨결을 사용하며,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현실의 어떤 도마뱀도 시뮬레이션하지 않지만, 아제로스라는 세계 내에서는 완벽하게 일관적이고 실제적인 가상적 대상이다. 이러한 구분은 게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게임 속 드래곤은 현실감이 떨어지는 나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게임 세계 속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성공적인 가상적 창조물로 재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시뮬레이션’과 ‘가상성’의 엄밀한 구분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게임의 범주를 훨씬 더 정교하게 구분하고 이해할 수 있다. 명확한 현실 참조 시스템과 모방 의도를 가진 시뮬레이션 게임은 처럼 정확성과 사실성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반면, 현실의 일부와 가상적 요소를 결합한 부분적 시뮬레이션 게임은 <심시티>나 <콜 오브 듀티>처럼 현실적 기반 위에 게임적 규칙을 더한다. <다크 소울>이나 <파이널 판타지>와 같은 가상성 게임은 현실 참조 없이 창조된 독립적 가상 세계의 일관성과 독창성으로 평가받는다. 마지막으로 <테트리스>나 <포탈>과 같은 추상적 혹은 절차적 게임은 세계의 재현이 아닌 순수한 규칙과 메커니즘, 즉 절차 자체에 집중한다. 이러한 개념적 구분이 단순히 학자들의 현학적 유희에 그치지 않고, 실제 게임 산업과 문화에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실천적인 이유가 있다. 연구의 명확성 측면에서, 게임 연구가 교육학, 의학, 공학 등 다른 학문과 성공적으로 대화하고 협력하려면 ‘시뮬레이션’과 ‘가상성’이라는 공통의 언어와 명확한 구분이 필수적이다. 또한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게임 개발팀 내부에서 우리는 중세 전투를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을 만든다고 합의했다면, 이것은 단순히 중세 판타지 게임을 만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발 방향성을 제시하며, 역사적 고증이나 물리 엔진의 정확성에 자원을 집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비평의 기준도 확립된다. 비행 시뮬레이터가 실제 비행과 다르다고는 비판할 수 있지만, <엘든 링>의 마법이 현실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고는 비판하지 않는다. 이는 애초에 시뮬레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법적·윤리적 논쟁도 정교화할 수 있다. <콜 오브 듀티>가 실제 전쟁을 시뮬레이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둠>에서 악마를 사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윤리적 질문을 제기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1998년 이후 한국은 스스로나 해외로부터의 평가로나 자타공인 게임 강국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게임 강국 한국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다소 불균등한 지점이 존재하는데, 여기서의 게임강국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플레이’의 강국이라는 점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 Back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14 GG Vol. 23. 11. 5.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그토록 많은 이들이 플레이하지만 왜 아직도 문화라는 말에 의문부호가 붙는가? 1998 년 이후 한국은 스스로나 해외로부터의 평가로나 자타공인 게임 강국으로 불려 왔다 . 그러나 게임 강국 한국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다소 불균등한 지점이 존재하는데 , 여기서의 게임강국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 플레이 ’ 의 강국이라는 점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 한국에서 제작된 게임 중 전세계적 흥행을 이끌어낸 게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적어도 2017 년의 ‘ 배틀그라운드 ’ 이전까지는 마땅한 작품을 꺼내들기 힘들었다 . 산업의 규모나 소비자시장에서라면 압도적일지 몰라도 , 씬을 대표할 특정한 타이틀 하나를 뽑아들기 어려운 형국은 e 스포츠 선수 풀이나 소비자 시장규모 , 제작산업 규모가 보이는 강세와 비교해볼 때 의아스럽다 . 탄탄한 소비자층과 시장을 보유하면서도 마땅히 내세울 타이틀이 드물었던 한국 게임계에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이 작용했겠지만 , 이를 하나로 통틀어 말해 본다면 아무래도 게임문화의 부재라고 부를 수 있을 어떤 상황일 것이다 . 게임을 잘 하고 많이 하지만 , 막상 그 게임을 두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저 수출액이 얼마 , 어느 대회에서 몇 위를 이야기하는 것 이상의 문화를 우리는 유의미한 규모로 가져 본 적이 드물다 . 그러나 디지털게임의 가능성은 산업적 규모나 플레이로서의 성취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 많은 게임들은 다른 예술장르처럼 인간과 사회 전반에 대한 밀도있는 통찰을 각자의 방식으로 담고 풀어냈으며 , 이를 향유하는 대중들은 작품에 담김 함의를 읽어내고 이를 다시 사회로 재환원시키는 과정을 거쳐 왔다 .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을 통틀어 문화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 충분히 발달한 게임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한국에는 게임을 문화로 소화할 인프라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 웹진 ‘ 게임제너레이션 ’ 의 시작은 바로 이 고민으로부터 출발했다 . 노는 것을 터부시해온 산업화 일변도의 한국에서 게임비평은 쉽지 않았다 왜 게임을 문화로 다루지 못해왔는가 ? 이 질문에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 한국 특유의 강한 교육열은 디지털게임 초기에 주대상이었던 청소년층으로 하여금 이 새로운 매체에 대한 손쉬운 접근을 불허한 바 있었다 . 학교와 정부 , 사회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을 불량청소년들의 집합지로 낙인찍었고 , 게임하는 이들을 사회낙오자에 준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한참 산업화에 열을 올리던 8-90 년대에는 비단 청소년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노는 일은 시간의 낭비 , 게으름의 영역에 속했다 . 2000 년대 들어와서야 한국은 일주일에 이틀의 휴일을 얻을 수 있었고 , 직장 노동자들에게 질병이나 가정사가 아닌 이유로 휴가를 내고 쉰다는 건 게으름뱅이라는 낙인을 부르는 일이었다 . 노는 일을 터부시하던 급속한 산업발전기의 경험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놀기 위해 장비를 사고 시간을 내야 하는 디지털게임이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 그러나 적어도 21 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놀이에 대한 터부는 과거와 같은 규모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 우리는 주 5 일제의 도입이 오히려 여가부문의 산업을 촉진시키고 노동자로 하여금 충분한 휴식을 통해 더 나은 생산성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 노는 일 playing 이 그저 쉬는 일 resting 이 아닌 , 또다른 의미의 창발성임을 터득한 바 있다 . 산업자본주의에서 이른바 인지자본주의 시대로 전환하면서 쏟아지는 고부가가치의 무형 콘텐츠산업의 중심은 언제나 노는 일이었다 . 영화를 보고 , 만화를 보고 , 음악을 즐기는 과정이 한국 산업의 중심을 차지함에 따라 노는 일의 중요성은 과거와 다르게 인식되었고 , 디지털게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인식의 변화를 겪어 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다른 매체와 비교할 때 게임에서는 그 문화적 영향력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지한다 . 여기에 개입하는 또다른 원인은 오랫동안 서브컬처의 영역에서 단지 ‘ 그들만의 이야기 ’ 로 치부되던 게임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위치를 옮겼지만 여전히 담론장에서는 이를 소화할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 있다 . 간단히 말하자면 , 평론의 부재다 . 음악 , 영화 , 미술 , 문학 등 기존의 많은 매체양식들이 예술 혹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씬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평론의 역할은 지대했다 . 작품의 의미를 해설하고 널리 알리며 , 완성된 작품을 단지 그 작품 하나만의 의미에 두지 않고 동시대와 과거 , 현재 , 미래를 엮으며 다른 모든 사회요소와의 관계망 속에서 다시 읽어내는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작품이 곧 우리가 사는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은 , 혹은 우리 자신이 투영된 어떤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 만약 디지털게임에서도 이와 같은 평론의 장이 형성된다면 우리는 그때부터 비로소 게임문화라는 새로운 담론을 유의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페다고지, 담론, 그리고 실천: 게임문화담론을 위해 필요한 방법들 2021 년 8 월 ‘ 게임제너레이션 ’ 이 첫 호를 내면서 선택한 주제가 그래서 ‘ 문화로서의 게임 ’ 이었다 . 그동안 한국에서 게임은 ‘ 게임은 문화다 ’ 라는 선언으로는 존재했지만 , 실천방안으로서의 문화적 개입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 게임을 문화담론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 우리는 문화입니다 !’ 라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게임을 중심에 두고 문화를 이야기하는 실천이다 . 그러한 실천을 수행할 장으로서 ‘ 게임제너레이션 ’ 은 만들어졌다 . 지난 14 개 호 동안 ‘ 게임제너레이션 ’ 은 디지털게임을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 그리고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 네트워크 , 게임 결제와 같은 디지털게임을 구성하는 인프라가 얼마나 사회적 상황과 맞물리는지를 살펴보았고 , 과거의 게임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인 방치형 게임 , 온라인 / 오프라인의 구분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 예술과 게임의 관계 , 게임이 가지고 있는 지역성과 같은 주제 뿐 아니라 ‘ 게임제너레이션 ’ 은 게이머 , 특히 그 중에서도 소수자들이 게임 안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 그리고 그런 소수자들은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에 얼마나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살피며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에 주목해 왔다 . 문화담론의 장 구축을 위해 ‘ 게임제너레이션 ’ 은 이러한 주제들을 다룸에 있어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접근하고자 했다 . 첫째는 ‘ 페다고지 Pedagogy’ 다 . 디지털게임에 대해 그동안 축적된 다양한 관점에서의 연구결과들을 취합하고 , 이를 일반 대중들에게 접근하기 쉽게 가공하여 대중화함으로써 전문지식에의 접근성을 높여 담론장의 기초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 둘째는 담론 Discourse 의 구축이다 . 다양한 전문가집단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각각의 디지털게임이 만들어낸 결과를 관찰 , 분석하고 , 이를 통해 비평이라는 방식으로 게임과 사회의 관계를 고찰하여 디지털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다 . 셋째는 실천 Implementation 이다 . 준비된 담론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자와 필진을 육성하기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하고 , 새로운 필자 확보를 위해 폭넓은 연구결과들을 리뷰하며 동시에 국내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트렌드와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북미 , 유럽 , 일본 , 중국 등의 주요 게임선진국과 네트워크를 구축 , 강화하는 작업을 ‘ 게임제너레이션 ’ 은 이어가고 있다 .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를 메꿔나가며 만드는 게임문화담론의 가능성을 위해 서브컬처로 오랜 세월을 지내 온 디지털게임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마주하는 문화적 빈곤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 디지털게임에 대한 무거운 인문사회적 접근은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성과들은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지 못하고 ,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함 많은 게임웹진들은 플레이 바깥에 존재하는 게임과 사회의 관계를 다루지 못한다 . ‘ 게임제너레이션 ’ 은 게임 담론이 가진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의 간극을 채워나감으로써 비로소 디지털게임을 문화예술의 한 영역으로 안착시키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 ‘ 웹진보다 무검게 , 학술지보다 가볍게 ’ 라는 ‘ 게임제너레이션 ’ 의 슬로건은 곧 문화담론으로서 게임을 위치시키는 데 가장 시급한 방법론에의 선언이기도 하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UX를찾아서] 오버워치에는 미니맵이 없다
미니맵은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UI(User Interface)중 하나로, 게임의 상단이나 하단 구석에 항상 압축적이고 간략하게 표시되는 작은 지도를 말한다. 특히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 게임이나 FPS(First Person Shooter) 장르에서 게이머의 시야는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미니맵이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확장된 버전의 전체 지도는 특정 버튼을 눌렀을 때 보이는 토글(toggle) 화면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반면, 미니맵은 대부분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Head Up Display)로서 화면에 상시 표시된다. < Back [UX를찾아서] 오버워치에는 미니맵이 없다 05 GG Vol. 22. 4. 10. 미니맵은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UI(User Interface)중 하나로, 게임의 상단이나 하단 구석에 항상 압축적이고 간략하게 표시되는 작은 지도를 말한다. 특히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 게임이나 FPS(First Person Shooter) 장르에서 게이머의 시야는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미니맵이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확장된 버전의 전체 지도는 특정 버튼을 눌렀을 때 보이는 토글(toggle) 화면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반면, 미니맵은 대부분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Head Up Display)로서 화면에 상시 표시된다. 게이머는 미니맵을 통해 전체적인 게임 세계 속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그리고 주변 환경과 사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게임에는 크게 두 가지의 공간 감각이 동원된다. 아바타의 신체를 경유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얻는 감각을 지각된 공간감각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전체적인 게임 세계 속 스스로의 위치와 관계를 파악함으로서 얻게 되는 인지된 공간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니맵은 그러한 두 차원의 공간감을 통합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 미니맵은 게이머가 게임 세계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주며 게임의 그래픽이나 서사가 미처 채워 넣지 못한 공간감을 보조해 준다. 나아가 공간을 사회적 행위의 결과물로서 구성된 것으로 본다면, 게임 환경을 그려내는 3D 그래픽이나 프로그래밍 된 물리법칙과 마찬가지로 미니맵 또한 게임 공간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참여한다. 이 글에서는 게임 속 미니맵이 무엇을 그려내고 재현하는지 보다는 미니맵이라는 비유를 통해 조망하는 시점과 가시성이 어떤 위계 관계를 만들어내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는 게임 내에 구현되는 공간을 넘어, 게임을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서열체계와 그것이 의미하는 사회적 맥락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다만, 이 글이 이론이나 구체적인 분석을 포함하기 보다는 관련된 역사와 사건들을 간략하게 제시하는 “미니맵”과 같은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히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미니맵의 작은 역사 * 〈Rally X〉(1980) 우측의 미니맵(위)과 〈Defender〉(1981)(아래) 상단의 미니맵. 미니맵의 초기 형태는 지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미니맵은, 지금과 비교해서 굉장히 단순한 그래픽을 사용했던 1980년대 아케이드 게임들, 가령 〈Rally X〉(1980)이나 〈Defender〉(1981) 같은 게임들에서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아케이드 게임에서는 주로 단조롭고 비슷한 지형지물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미니맵은 지도의 역할보다는 근처의 적들을 보고 피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는 레이더 기능을 하는 것에 가까웠다. 미니맵이 조금 더 ‘지도’와 유사한 형태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1986년에 발매된 〈젤다의 전설〉에서 부터이다. 화면 좌측 상단의 회색 사각형은 젤다의 전설이 배경이 되는 하이랄의 전체 지형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안의 초록색 점은 현재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구역이 전체 지형 중에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오늘날 다양한 정보와 기능을 포함하는 오늘날의 미니맵과는 달리, 당시의 미니맵은 플레이어의 위치 외의 정보를 포함하지 않았으며 상호작용도 전무한 수준이었다. 1986년작 젤다의 전설에서 미니맵의 그래픽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는데, 플레이어 캐릭터가 이동하더라도 플레이어가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초록색 점은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젤다의 전설〉(1986). 왼쪽 상단의 회색 사각형이 미니맵의 역할을 한다. * 〈젤다의 전설〉(1986)의 전체 맵. 이것이 미니맵에서 회색 영역으로 표시된다. 〈슈퍼 메트로이드〉(1994)에서는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해 플레이어가 탐험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플레이어가 이미 탐색한 지역을 붉은색으로 표시해주는 기능을 도입한 것이다. 플레이어가 아직 탐색하지 않은 미지의 지역을 가리거나 까맣게 남겨두어 정보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전장의 안개(fog of war)는 1977년 작 〈엠파이어(empire)〉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지만, 이를 미니맵에 도입한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평가받았다. * 〈슈퍼 메트로이드〉(1994). 우측 상단 미니맵에 플레이어가 지나온 지역이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 ‘전장의 안개’를 처음 도입한 〈엠파이어〉(1977). 이런 ‘전장의 안개’는 다른 게이머와 대적하는 멀티 플레이어 RTS(Real-Time Strategy) 장르 게임에서 자주 이용되는 게임 메커니즘이다. 아군 유닛을 전장의 안개가 낀 지역에 정찰 보내 시야를 확보하고 적군의 위치와 진입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이 같은 게임들에서 필수 전략으로 여겨진다. 일부 악의적인 유저들은 불공정한 방식으로 승리하기 위해 전장의 안개를 없애주는 불법 프로그램(맵핵; map hack)을 사용하기도 한다. * 아군이 정찰하지 않은 지역의 정보가 ‘전장의 안개’로 차단되는 〈스타크래프트〉(1998). 왼쪽 하단이 미니맵이다. 이런 ‘전장의 안개’가 적용된 미니맵은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적인 지도와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근대의 지도 제작은 식민 지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고 자주 미지의 땅에 대한 탐험과 타 민족과의 전쟁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마치 RTS 대전 게임에서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미지의 검은 땅을 정찰하고, 적군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도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축소하고 기호화 시켜 표현한 재현물이라면, 그러한 지도를 재현한 미니맵은 게임 공간의 재현, 그리고 지도의 재현이라는 의미에서 재현에 대한 재현이 된다. 2000년대 이후 MMO, RPG, 오픈 월드 어드벤처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에서 미니맵은 점점 더 많은 정보를 포함하게 되었다. 도로, 몬스터, 적군, 친구, 퀘스트 가능 여부, 상점과 여관 등 건물들, 목적지까지의 거리, 방위 등 많은 정보들이 기호와 아이콘으로 표시되어 플레이어에게 제공되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들면서부터는, 화면의 한 구석을 차지하던 이런 미니맵이 유명 트리플-에이 게임 시리즈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7년, 한 코타쿠(Kotaku) 기자는 “지난 15년 동안 부상한 대악마, 비디오 게임 미니맵의 지배가 마침내 끝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2017년부터 줄줄이 발매된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 〈호라이즌 제로 던(Horizon Zero Dawn)〉, 〈파 크라이(Far Cry) 5〉에서 미니맵이 사라지거나 그 자리를 작은 나침반이 대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선택에 대해 어쌔신 크리드의 디렉터 진 게스돈(Jean Guesdo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미니맵에서 하나의 아이콘에서 다른 아이콘으로 이동하는 이러한 방식을 깨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쏟은 노력과 자원 때문에 우리는 플레이어가 주변 풍경을 바라볼 수 있기를 정말로 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미니맵을 나침반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한 이유입니다. 나침반은 여전히 힌트와 정보를 제공하지만, 당신 역시 세계에 참여하고 더욱 관여해야 합니다.” 게임에서 미니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미니맵이 세계로부터 눈을 돌리고 조잡한 아이콘과 목적지를 가르키는 화살표만 따라가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처음 게임에 미니맵이 도입되었을 때, 게이머들에게는 비디오게임이라는 매체 자체가 일종의 미지의 땅이었다. 그러나 게임이 등장하고 40-5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미 베테랑 탐험가가가 된 게이머들에게 미니맵은 오히려 세계의 아름다움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걸리적거리는 요소가 된 것이다. * 〈GTA 3〉 왼쪽 하단에 위치한 동그란 미니맵. 내려다보는 자와 그러지 못하는 자 FPS 장르 게임들인 〈배틀그라운드(PlayerUnkown’s Battlegrounds〉(2017)와 〈포트나이트(Fortnite)〉에는 미니맵이 있지만, 〈오버워치(Overwatch)〉(2016)에는 미니맵이 없다. 2016년, 〈오버워치〉의 치프 디자이너 제프 카플란(Jeff Kaplan)은 왜 〈오버워치〉에 미니맵을 추가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초보 유저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앞으로도 미니맵을 도입할 생각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미니맵을 제공했을 때, FPS 장르에 익숙한 고수 유저들과 초보 유저들 간의 실력 간극이 더 크게 벌어지기 때문에 초보 유저들을 배려하기 위해 미니맵을 제공하지 않도록 선택했다는 것이다. 전장의 안개를 구현하는 RTS 장르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전 게임들에서는 정보 싸움이 승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다만 〈오버워치〉에서는 적의 위치나 진입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UI가 구현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고지대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운용하는 캐릭터 조합과 전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고지대를 선점했을 때 적군에 비해 공격할 수 있는 각도가 잘 나온다거나 후방 유닛을 공격하기가 쉬워진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야를 확보해 진입경로와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 〈오버워치〉에서는 이러한 고지대를 선점할 수 있는 점프기나 z축 이동기가 있는 유닛들을 선택하는 전략이 유행하기도 했다. 물론 〈오버워치〉에서도 미니맵과 유사한 화면을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오버워치〉의 프로 레벨 경기를 시청하는 것이다. 공식 〈오버워치〉 리그는 게임 리그 시청자들에게 게임의 상황을 최대한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의 화면을 제공한다. 그러한 시점 중 하나가 바로 이 탑-다운(Top-down) 시점이다. 이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 옆에 띄워주는 화면은 아니라는 점에서 엄밀히 말해 미니맵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진영과, 유닛들의 진입 경로와 대치 구도를 아이콘을 통해 설명하는 화면이라는 점에서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 〈오버워치〉 리그의 탑-다운 뷰. * 〈오버워치〉 리그의 중계 화면. 뿐만 아니라 과거 〈오버워치〉 리그의 공식 중계 사이트였던 트위치(Twitch)에서는 〈오버워치〉 리그 올-액세스 패스(Overwatch League All-Access Pass)를 구매하는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시점과 각도로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준 바 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스펙타클을 제공해주었다. 경기가 중계되고 있는 메인 화면과 더불어,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캐릭터의 몸에 그대로 들어가 마치 그의 몸에 빙의한 듯한 시점으로 경기를 시청할 수도 있었고, 위에서 본 탑-다운 시점과 같이 위에서 모든 유닛들을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정작 게임을 플레이하는 선수들의 캐릭터는 게임 내 중력법칙에 묶여 게임 속 땅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 했던 반면 (물론 특정 기술을 사용해 잠시 동안 공중에 떠 있을 수는 있다) 게임을 시청하는 사람과 중계진은 자유롭게 떠다니며 선수-캐릭터들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시점에 대한 일종의 공간적인 비유로서, 프로 선수와 시청자 간의 높고 낮은 위치 설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오버워치〉 리그를 플레이하는 프로 선수 안에서도 고지대를 선점한 플레이어와 그렇지 못한 플레이어가 있는 것처럼,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선수와 리그 경기를 시청하는 시청자 사이에는 가시성의 격차가 존재한다. 〈오버워치〉의 플레이어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높은 지대로 올라가야한다. 하지만 아무리 고지대를 선점하더라도 선수는 관객이 볼 수 있는 광경을 볼 수 없다. 반면 관객은 선수의 시점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그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시야와 정보의 불균형함은 제레미 벤담이 제안하고, 미셸 푸코가 근대적인 공간의 전형으로서 비평했던 파놉티콘의 구조를 연상시킨다. 미셸 푸코는 학교, 병원, 군대와 같은 공간들도 본질적으로는 파놉티콘 구조를 띄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감시 체계는 그러한 시설 안의 재소자들(학생, 환자, 군인들)을 유순하게 길들인다고 보았다. 파놉티콘 구조는 오늘날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정보의 세계에도 편재한다. 빅 테크 회사들이 이용자의 성별, 나이, 위치, 검색 기록과 시청 기록 등 갖가지 정보를 수집해 맞춤 광고를 내놓는다는 것은 오늘날 더 이상 놀라운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버워치〉와 같은 대전 게임에서 미니맵이 사라지는 것은, 앞서 제프 카플란이 말했듯,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소수의 고수가 정보를 독식하는 것을 견제하고 게임이 극단적으로 서열화 되는 것에 맞서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여전히 이스포츠의 관객에게는 선수가 볼 수 없는 것도 전부 내려다 볼 수 있는 마치 신과 같은 눈이 부여된다. 물론 이러한 시선의 위계가 게임 리그를 시청하는 재미의 큰 부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모든 것을 조망하는 절대적인 관찰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김지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 비평공모전 4년을 거쳐 온 편집장의 회고
그렇게 시작한 게임비평공모전을 네 번째 거쳐오는 동안 나에게도 적지 않은 경험이 쌓였고, 어쩌면 게임비평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을 듯 싶다. 이 글은 어찌 됐건 2020년대 이후 꾸준하게 게임비평의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고자 뛰어 왔던 한 개인의 회고록일 것이지만, 그 경험은 단지 개인 혼자 되새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해 지면 한 켠을 빌어 이야기를 새겨두고자 한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Editor's View]
0과 1을 기반으로 한 계산을 딛고 서는 매체이지만 디지털게임 역시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감정을 다룬다. 우리는 수시로 사랑은 계산가능한 감정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 익숙한 관용구는 사랑을 다루는 연산장치인 디지털게임 앞에서 조금 곤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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