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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게임 전시가 줄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의 균열 : <게임 사회> 기획자 홍이지 학예연구사 인터뷰

    게임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2년 10월에 방영했던 EBS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을 기억할 것이다. 해당 다큐멘터리 3부에서는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이라는 제목으로,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담론들을 다루었다. 비단, <게임에 진심인 편>뿐만 아니라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어디로 둘 것인지에 관한 질문들은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경로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질문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쌓여왔던 담론의 두께만큼 다양한 관점이 혼재해있기 때문이다. < Back [인터뷰] 게임 전시가 줄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의 균열 : <게임 사회> 기획자 홍이지 학예연구사 인터뷰 12 GG Vol. 23. 6. 10. 게임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2년 10월에 방영했던 EBS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을 기억할 것이다. 해당 다큐멘터리 3부에서는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이라는 제목으로,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담론들을 다루었다. 비단, <게임에 진심인 편>뿐만 아니라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어디로 둘 것인지에 관한 질문들은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경로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질문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쌓여왔던 담론의 두께만큼 다양한 관점이 혼재해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구획하려 하는 시도 자체가 구태의연하다는 인식까지 존재한다. 그런데 실제로 게임과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엄숙한 미술관, 그것도 한국 미술계에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23년 5월 12일부터 9월 10일까지 게임을 주제로 한 <게임 사회> 전시를 연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국에서 게임의 문화적 지위가 변화했음을 나타내는 것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로의 게임이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는지, 게임으로의 예술이 가지는 특수성은 무엇인지 등 우리 사회에 새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이에 해당 전시에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했던 편집장은 <게임 사회>를 기획한 홍이지 학예연구사와 만나 게임과 예술의 관계를 더 깊게 고찰하고자 하였다. 다만, 전반적인 전시에 관한 소개는 국립현대미술관 콘텐츠( https://www.youtube.com/watch?v=_mZEphegRDc) 에도 잘 나와 있기에, 인터뷰에서는 게임을 전시하는 것의 의의와 한계, 또 앞으로의 가능성들을 사유하고자 하였다. 이경혁 편집장: 안녕하세요. 학예연구사님. 먼저 자기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릴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는 대학에서는 조각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이제 전시 기획을 전공을 한 뒤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을 하다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무한 지 3년 되었습니다. 홍이지라고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전시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전시에 대한 반응들이 뜨겁더라구요. 인터넷에서도 많은 여론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게임 관계자들과 미술 관계자들이 이번 전시를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를 것 같은데, 현장에서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비단 미술계와 게임계로 나뉘는 것뿐 아니라, 게임계 안에서도 게이머가 보는 전시가 다르고, 게임 업계에 계시는 분이 보는 전시가 다르고, 게임을 콘텐츠로 기획하시는 기획자분이 보는 관점도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저희가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은 것이 저는 재밌어요. 이 전시 하나만으로도 저희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대화를 할 때마다 너무 흥미로워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게임 전시라는 것이 리터러시의 문제가 있죠. 전시에서 애초에 게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알아볼 수 있는 지점들도 있고요. 사실은 일반적인 미술관도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는 상황인데, 미술 전문가로서 게임에 관한 전시가 다른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과 다른 특이점이 있을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사실 처음 기획 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이 전시의 기획 의도를 한 방향으로 읽으시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각자의 리터러시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더욱 피드백이 궁금한 전시이기도 했어요. 일반적으로는 미술관에서 전시를 올려도 피드백은 거의 없거든요. 개인의 호불호나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코멘트 정도는 있지만, 전시 전반의 경험에 관한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 전시는 오픈한 지 일주일 됐는데도 피드백이 너무 적극적이어서 굉장히 놀라워요. 그게 게임 전시의 특이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이전에 우리 미술관에서 비슷하게 피드백을 받았던 전시는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였어요. 강아지들이 들어왔을 때,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모종의 엄숙주의나 결계가 해제되면서 이 공간을 다르게 점유하고 경험했을 때 확실히 훨씬 더 적극적인 피드백이 있었던 것 같고, 또 그거를 염두하고 만들었던 전시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코로나 때, 저희 미술관이 몇 개월 동안 문을 닫았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얼마나 장소가 좋아요? 위치도 훌륭하고. 코로나 때 병상이 없을 때에도 여기를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았거든요. 저희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미술관이 기능을 하지 못할 게 뻔한데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미술관에 대한 경험과 이용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죠. 이번 기획도 이런 맥락에서 기획한 지점이 있어요. 다만, 피드백 중에는 기획자가 누구이며, 얼마나 게임을 해봤는지 묻는 질문들도 있어요. (웃음) 물론, 제가 게임을 하기는 하지만, 모든 게임을 섭렵하고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에요. 그러나 외부 기획자가 미술관에 와서 하는 전시와 여기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공공성을 주제로 해서 만드는 전시는 분명히 접근이 되게 다를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 층위를 보는 것도 중요하기는 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공공미술로의 기획이 가질 수 있는 특수성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요. 아무래도 디지털 게임 전시도 있다보니 기계들이 많잖아요? 그 지점에서도 공공미술에서의 의의나 어려움들이 만들어질 것 같은데, 기계들은 괜찮나요? 잘 돌아가나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네. 괜찮아요. 저희가 우려했던 것보다 그래도 안정화는 빨리 됐고,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전시되고 있어요. 저희 오픈하고 그다음 날 단체 관람객이 900명이었거든요. 그때가 진짜 위기였긴 했어요. 관람객분들이 개별로 혹은 두 세분씩 오실 때는 미술관의 분위기나 문법을 인지하고 오세요. 그런데 900명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오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기계들은 별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의 기획의도 이면에 있던 고민들에 대해서도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미디어 아트 작품이 굉장히 많던데, 전시가 끝나면 이 작품들은 어떻게 되나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사라져요. 실체로 남아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고요. 처음부터 저희가 작품들을 파일 형태로 받았는데, 어차피 전시가 끝나면 파일을 바로 폐기하고 그걸 사진을 찍어서, 소장품 대여처에 보내줘야 돼요. 김희천 작가님의 작품에 쓰인 큰 LED 이런 거는 패널도 그냥 다 해체해 버리는 거예요. 렌트기 때문에. 저희는 자산 취득을 할 수가 없어서 장비가 비싸도 렌트를 해야 돼요. 이 현장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면.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아카이빙을 한다 해도 사실상 ‘전시의 재현’이라는 건 불가능한 형태군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렇죠. 이경혁 편집장: 음. 게임 매체가 원래 그렇긴 하죠. 게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원래 애초부터 재연이 불가능한 거니까요. 그래도 파일을 가지고 계신거면, 나중에 오페라처럼 다른 무대에서 다른 연출로 재현할 수는 있는 거겠네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네. 그런데 그것도 조금 문제가 있긴 해요. 제가 이번에 MoMA(Museum of Modern Art: 미국의 유명 근현대 미술관)랑 스미스소니언(미국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주는 박물관)에서 각각 작품을 빌렸는데, 최종 협약서에 사인할 때까지 1년 가까이 걸렸거든요. 애초에 MoMA와 스미스소니언이 2010년 초반에 게임을 소장하기로 했는데, 당시에는 지금이랑 문법이 많이 달랐던 거죠. 지금의 관점에서 당시 계약서는 명확한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에 체결된 거였거든요. 게다가 당시의 판단으로는 (게임 관련 전시물을) 어디까지 소장해야 되는지에 관한 연구가 너무 미비했기 때문에, 누구의 권한을 어디까지 일임받아서 관리할지에 대한 부분도 각각 다 달랐던 거죠. 어떤 게임사는 ‘전시할 때마다 허락을 받아야 한다’, 어떤 곳은 ‘전권을 다 준다’ 대중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너무 달라졌고, 또 담당자들도 다 바뀌어서 판단을 유보했기 때문에, 저희가 이번에 전시할 때에는 MoMA에게 먼저 허락을 받고, MoMA의 모든 리스트를 보면서 게임 회사들에게 다시 또 허락을 받았어요. 그때 어떤 게임사는 알아보고 연락 준다고 하고 두 달, 여름 휴가라고 한 달, 어떤 곳은 ‘우리가 MoMA랑 계약을 했다고요?’ 하는 곳도 있고,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게다가 MoMA가 2010년에 전시를 하고 그 이후로는 아무도 전시를 안 했기 때문에, 저작권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컨디션이 많이 바뀐 거예요. 그 사이에 데이터 파일도 굉장히 압축이 많이 되고, 전시물을 상영하는 방식도 달라졌고... 그래서 나중에 다시 재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이경혁 편집장: 한편으로 MoMA에서 전시된 작품들도 실제 상용 작품들이고, 사실은 직접 컨택을 해서 전시해도 상관없지 않나요? 그런데 MoMA와 계약한 작품들을 빌려왔던 의도가 따로 있으셨을지 궁금해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희도 그 지점에 대해서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게임을 미술사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지점이었어요. 포스트 디지털 미술사의 맥락에서, 그러니까 89년 인터넷이 발달한 이후를 디지털 미술사로 정립을 하고 있는 와중인데, 이 디지털 미술사의 맥락에서 게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 미술사에서는 게임을 거의 다루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연구하고 있던 맥락 안에 게임을 긴급하고 진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었는데, 이러한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MoMA의 사례가 주효했어요. 애초에 게임을 접해본 적이 없으신 분들에게도 ‘MoMA도 게임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설득에 도움이 되는 것이죠. 이경혁 편집장: 그렇다면 역사적 맥락 외에도 ‘미술 전시로서의 게임’이 가지는 특수성이 있을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물론 있지만, 그걸 구현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단순한 체험으로 제공되는 것 외에, 저희가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미디어 작품처럼 뭔가 감상의 여지가 생기고, 이걸 통해서 특정한 순간을 경험하고 그러기에는 미술관에서의 공간이 한정적이고, 너무 찰나인 거죠. 경험의 시간 자체가.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사실 이번 전시 중에서 특히 심시티 같은 경우는 어떤 감각을 느끼는 체험을 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들죠. 결국, 전시장의 한계라는 것은 공연 공간에서, 줄을 서서 공연 기기를 잠깐 대여하는 방식에서부터 나올 것 같은데요. 오락실 게임은 이런 논리가 가능하겠지만, 심시티나 마인 크래프트가 공적 공간에 올라왔을 때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시연 외에도 미술 작품과는 다르게 게임은 일반적으로 협업해서 만들어지잖아요? 그러면 아티스트가 누구인지 특정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도 있지 않니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맞아요. MoMA도 게임 전시는 항상 디자인 분과에서만 하는데, 시연이 어렵다는 점과 크레딧의 문제가 닿아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게임 전시의 형태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지점도 있고, 아직은 예술로서 게임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관한 관점의 차이들도 큰 것 같아요. 저희가 빌릴 때도 게임사의 반응에 따라서 그 게임사가 게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거든요. 가령, 제노바 첸(Sky : 빛의 아이들, Flower, Journey 제작자)은 확실히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뭔가를 요구했을 때, 모든 걸 조건 없이, 질문을 하지도 않고, 무상으로 전부 제공해줬는데요. 확실히 게임이 예술로 보여줄 수 있는 자리라는 거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저희가 지금 헤일로 2600을 보여주고 있는데,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을 통해 에드 프라이즈(Ed Fries, 헤일로 2600 개발자)의 연락을 받았어요. 저희는 모든 전시품을 똑같은 컨디션으로, 너무 향수를 불러일으키려고 하지 않는 방향에서, 관람객들에게 중립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에드 프라이즈는 자신의 작업이 아트이기 때문에, 전시할 때 게임이 이용되었던 당시의 CRT 모니터로 바꿔 달라는 연락이 온 거예요. “접근성 확장을 위해서 전시에 버튼과 조이스틱을 쓴 것은 알겠지만, 내 작업은 이미 종결된 그 시기의 ‘작품’이기 때문에 다시 번역된 상태로 제공이 되는 형태는 반대한다.” 그런 거죠. 이런 지점에서는 게임과 전시에 대해서 고민들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예술이냐고 하다가 지금은 백남준 류의 비디오 아트가 미술계에 자리가 생겼잖아요? 게임도 그런 게 가능할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는 어떤 측면에서는 (게임이) 이미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만큼 자리 잡혔다고 생각해요. 싱글 채널 비디오 아트에서 옛날에는 작가가 선형적인 타임라인 안에서 촬영을 해서 편집을 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CGI가 안 들어가는 작업을 찾기가 힘든데, 그 CGI 작업 자체가 유니티 아니면 언리얼을 너무 많이 쓰기 때문에, 이미 게임의 문법으로 영상 언어를 만들고 있고, 그 과정에서 메타버스나 NFT를 경험해 본 작가들이 너무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게임의 작법을 어떻게 적용시키고 잘 만들지에 있어 기술력에 대한 갈구가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작가들도 고민하는 게, 그런 기술력을 써서 작업을 만들면 1, 2년 사이에 빠르게 낡아버린다는 감각을 느끼게 되는거죠. 이제는 딱 보면 ‘이거는 심즈 미감, 이거는 플레이스테이션 1 미감, 이거는 언리얼 엔진 5 미감’ 이런 걸 바로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너무 금방 낡아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김희천 작가가 개발을 할 때도 큰 화면에 굉장히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만들 수 있었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거는 풀레이스테이션 1 미감에 로우 폴리곤을 써서, 시간대를 흐트러뜨리고 싶은 의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 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77220)에서 언급한 예시 중에 라라 크로프트가 있었는데요. 옛날에,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에는 게이머들 각자의 라라가 있었던 거예요.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라라. 그런데 기술이 발달해서 실사화가 되니까 모두가 실망했다는 거죠. 자기의 라라가 아니라서. 그런 상상의 여지를 열어두고 게임을 하던 그 시기가 현대 미술과도 닿아있는 것이, 예술을 감상하고 체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딱 그 부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요. 이경혁 편집장: 확실히 게임계에서는 그런 기술적 맥락들이 중요하죠. 사실 초창기 레트로 게임들은 지금처럼 폴리곤 방식으로 안 만들고, 도트로 이제 디자인을 했잖아요. 근데 도트디자인에서는 박모라고 하죠? CRT 특유의 번짐을 포함해서 디자인을 한 게 있었죠. 그런 미감들은 시대적인 맥락에서 감상되고, 이해되는 지점들이 있지요. 그런 맥락에서 생각나는 것이 이번 전시에서 <슈퍼 마리오 무비>는 다양하게 감상될 것 같은데, 이전 게이머들에게는 그 화면이 익숙하거든요. 게임팩을 처음 꽂았을 때, 뭔가 지직거리면서 나오는, 그래서 다시 훅훅 불고 게임팩을 꽂는 익숙한 화면인데, 그 경험이 없거나 그 시절을 안 겪은 요즘 게이머들은 무슨 화면인지 모르는 거죠. 그런건 도록에 아무리 써도 잘 알 수가 없죠.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런 지점이 현대 미술과 게임의 접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제가 브로셔에 쓴 글이 있어요. 게임을 하는 것과 현대 미술을 감상하는 과정이 되게 비슷하다고 써놓은 게 있거든요. 저는 실제로 그랬던 것이, 제가 게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 미술계에 계신 많은 분들은 제임을 잘 모르시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외부에서 ‘저 미술관에서 일해요’라고 하면 ‘저는 현대 미술은 하나도 모르겠어요’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 거죠. 이렇게 서로 문법이 다르고, 시간을 들여서 익히지 않으면 온전히 즐길 수 없는 두 대상을 공공미술관에서 다룬다는 점에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이번 전시에 ‘접근성’을 무게감 있게 다룬 것도 연장선 상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해주신 접근성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이번 작업을 하시면서 접근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게임계의 바깥에 계신 입장에서 게임 접근성의 현재를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희가 전시를 기획할 때, 컨트롤러를 이용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Xbox Adaptive Controller (Xbox 접근성 컨트롤러: 국립재활원의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에서도 소개되었던, 장애인의 게임 접근을 돕기 위한 컨트롤러)로 전시할 수 있는 게임이 거의 없는 거예요. 특히 국내 게임은 하나도 없었죠. 그런데 지스타가 열렸을 때, 넥슨에서 ‘카트라이더: 드리프트’가 나오니까 그거를 이 컨트롤러로 쓸 수 있게 기술적으로 검토를 해달라는 이야기가 국립재활원에서 있었고, 국립재활원 연구에 참여했던 가족들에게도 ‘단 하나라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국내 게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서 마지막에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넣은 지점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엑스박스 컨트롤러는 국내에서 팔지도 않고,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죠. 그리고 우리나라 게임 시장에서 게임에 대한 (장애인과 여러 소수자의) 접근성을 확장해야 한다는 논의는 많이 있었지만, 여전히 게임은 산업으로 분류되고 게임에 대한 평가도 이용자가 얼마인지 등 가시적인 숫자로 평가되기 때문에,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떨어지는 거예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에서 한편으로는 이번 전시 이후에도 게임의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는 전시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사실 미술관과 접근성은 게임보다 먼저 논의들을 거쳤잖아요? 이제는 미술관이, ‘한국에서 장애인이 갈 수 있는, 가장 접근성이 높은 공간’ 중 하나로 꼽히는데, 거기에서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부족한 ‘게임’이 이야기된다는 지점이 유의미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런데 저는 매일 내려가서 Xbox Adaptive Controller를 쓰시는 분들을 보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금방 익숙하게 잘하세요. 저희 딸이 11살인데, 저희 딸한테 마인 크래프트를 이 컨트롤러로도 시켜봤는데,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어서 하긴 하더라고요. 확실히 접근성에 관한 논의들은 실제로 경험해보면서 느끼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죠. 어떤 컨트롤러에 익숙한지에 대한 문제를 확장하면 장애인 접근성에 관한 논의와 같은 맥락이에요. 그러니까 사실 접근성 관련 논의가 비단 장애인으로만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보편성에 관한 논의이고, 오히려 메이저를 향해 가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지요. 그래서 이러한 고민들을 손쉽게 ‘돈 안되는’, ‘착한 일’로 인식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맞아요. 사람들이 접근성을 자꾸 소수자의 문제라고 쉽게 인식하지만, 크게 보면 사실 키오스크의 사례도 같은 맥락이죠. 만약 키오스크에서 에러가 떴을 때, 핸드폰을 많이 쓰는 세대는 직관적으로 초기 화면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해력이 있는데, 그게 전혀 없는 사람들은 그냥 손 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문해력이 없는 사람도 배려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거죠. *김희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동시에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상호작용의 현장 이경혁 편집장: 앞서 게임계의 다양한 반응과 그 지점에서 공공미술로의 특수성 같은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미술계의 반응은 좀 어떤가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미술계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긴 한데요. 먼저 제가 예전에 <유령팔>이라는 전시를 했던 걸 많이들 아시니까, 연장선에서 봐주시는 분들은 포스트 디지털 미술사 맥락에서 읽어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또 어떤 분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게임 전시를 해서 카타르시스가 있다고 봐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또 어떤 분들은 새로운 세대가 (미술계로) 진입해서, 경험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있다고 봐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과 미술이라는 콜라보가 참 쉽지 않은 영역이었는데, 이후에는 어떻게 관계를 가져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좀 해야 할 시기 같아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래서 미술 쪽에 비평하시는 분들 중에선 게임의 미감과 질감이 다음 세대의 미디어 아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왜냐하면 언리얼 풍이나 유니티 풍의 미감이나 마감이 단순히 작업물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작업 방식이나 사고 방식에도 영향을 주잖아요. 재미있는 사례로, 최근에는 실제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온 것을 느끼는데요. 저는 실제 전시 장소에서 물리적인 양감과 구조를 이해하며 작품을 감상하고 설치하는데, 어떤 작가분들은 실제 전시장에 와서도 사진을 찍은 다음, 사진으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보는 것이 낫지 않나?’고 했더니, 자기는 핸드폰 스크린으로 보는 게 훨씬 이해가 빠르다고 말하는 거죠. 이처럼 프로그램이나 기술이나 게임의 문법이 여러 변화를 만든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런 논의들이 게임이라는 매체를 시각적인 대상으로 볼 때 한정되는 문제이기도 한데요. 어떻게 보면 게임의 또 다른 정체성이자 특징인 규칙, 그리고 그 규칙과 상호작용하면서 겪게 되는 어떤 감정의 변화라는 것을 어떻게 다룰지도 고민할 수 있는 영역인 것 같아요. 미술이 게임의 방법론을 가져간다면 사실 이 고민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전시라는 방식으로 우리가 이런 영역을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홍이지 학예연구사: 좋은 예시가 김희천 작가 작업인 것 같아요. 김희천 작가 작업은 앞 부분에서 유니티로 만든, 모바일 게임을 하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게임의 아바타 같은 사람이 미술관을 돌아다니는데, 이후 실제 인물이 연기를 하는 파트가 끝나면 전시장에 구현된 35대의 CCTV가 이미지를 수집하고, 수집된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변환되어서 출력되는 파트가 있거든요. 실제 게임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건 이 부분이죠. 우리는 보통 앞부분을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뒷부분을 게임으로 보지 않는데, 작가님에게는 이 부분이 게임인 거고, 내러티브가 있는 기존의 미디어 작품의 문법으로 해석했을 때 실시간 반영이 작품에 즉흥적으로 개입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이전의 영상 작품과는 다르게 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게임의 문법 쪽으로 가지를 뻗어간다면, 어차피 집에서도 경험을 할 수 있는데, 전시장에 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웃음) 홍이지 학예연구사: 그렇죠. (웃음) 다만, 전시장이 어떤 풍경을 만들었는지가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실제적으로 어떤 콘텐츠가 상영되는 지보다, 사람들의 행동 양식, 반응, 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는 것이 유효한 지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전시장에 와서 보는 미디어 작업이 어떤 경험의 차이를 만드느냐에 대한 문제인데, 우리가 예술을 통해서 온당하게 다뤄야 할 내용에 대해서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 사회적 주제에 대해서 모두가 드나드는 공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가 굳어질 수 있는 사회 문법에 균열을 줄 수 있어요. 그런 균열을 만드는 공간이 미술관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맞습니다. 게임 자체로는 이미 예술을 하고 있어요. 다만, 그중에 전시될 수 있는 방식이 미술관에서 전시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모든 게임이 미술관을 가야하는 것도 아니며, 의미가 생기는 것도 아니지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홍이지 학예연구사: 저는 81년생인데, 어렸을 때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여자애가 무슨 게임이야? 오락실에 가 있는 오빠나 빨리 데려와서 저녁 먹으라고 해.’ 라는 말을 듣고 자랐거든요. 그래서 오빠를 데리러 가면, 오빠는 친구들이랑 ‘스트리트 파이터’ 하고 있고, 오빠가 저한테 200원 주면 테트리스하고, 보글보글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것처럼 저는 어릴 적부터 게임을 접했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남성적 문화라는 점에서 게임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적 경험을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도 게임에 몰입하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경험들을 하게 되고, 그런 경험들 때문에 이런 전시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유령팔>도, 85년 이후 세대들이 포스트 미디엄을 다루고 있는 특성과 달라진 창작 환경에 대해서 짚어보고자 기획했어요. 물리적인 감각이나 스케일 감이나 물질에 대한 감각을 인지하는 세대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현대미술에도 그런 맥락에서 게임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의 전시도 이런 고민들을 담는 지점에서 세대적 경험에 균열을 만들어갈 것 같습니다. Tags: 인터뷰,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Towards more responsible representational practices in games

    How we talk about a medium reveals a lot about who we consider its target audience or user and what purposes we attribute to their engagement with the medium. The public discourse on digital games in both Europe and North America, have for many years been characterized by the idea, that digital games was, roughly speaking, for young, teenage boys, who spend hours upon hours painted by the luminescence of the computer screen and immersed in mindless entertainment. This was of course never true. < Back Towards more responsible representational practices in games 04 GG Vol. 22. 2. 10. - 이 글의 한글 번역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88 Towards more responsible representational practices in games How we talk about a medium reveals a lot about who we consider its target audience or user and what purposes we attribute to their engagement with the medium. The public discourse on digital games in both Europe and North America, have for many years been characterized by the idea, that digital games was, roughly speaking, for young, teenage boys, who spend hours upon hours painted by the luminescence of the computer screen and immersed in mindless entertainment. This was of course never true. Recently, however, many people have begun questioning this stereotype gamer and exploring the diversity of people who actually play games. But who are these ‘other’ players then? They may be toddlers who play their first game on their parents’ smartphone, the retired woman immersed in a game of Wordfeud, the ‘granny gamer’ playing CS: Go with their grandchild. But they may also be gaymers socializing around a game of Fortnite, or the young mother playing on her Nintendo Switch while her baby sleeps next to her and so on. Critiquing the norms of game culture Digital games are of course not played by stereotypes but by actual players who experience the games they play in unique and individual ways. During the last 10 years, game journalists, cultural critics and scholars have discussed the issue of representation of gender, ethnicity, disability, age, and bodies and in mainstream games. Although these discussions took off with the greatest intensity in North America, they are now also gaining speed in a European context under the heading of norm critique. The discussions about representation in games are essentially about three things: First, how does games portray different identities or aspects of peoples’ identities, if at all. Second, what is the representation of marginalized people in the player base of different games. And third, how are marginalized people represented in the game industry and under what conditions are they working. These three things are often intertwined in public discourse. It is often assumed that if a game represents someone, e.g., women, in a negative way, female players will generally turn away from the games. It is also often assumed that better representation of marginalized people in the game industry will result in better portrayals of these people in the game. Although there is certainly some truth to this, game scholars have also pointed out, that reality is much more complex than that. Games addressing serious topics Several studies have revealed a long-lasting imbalance in the number of female game characters, their roles and function in the game, and found that in their visual appearance, female characters have typically been highly sexualized. An analysis of over 500 games released between 1983 -2014 shows, that the sexualization of the female body peaked in the late 90’s and have been declining since 2006. This decline may mark a slow change in the way that the overall game industry thinks about their own games and its ability to address and raise awareness of serious topics. When British game company Ninja Theory, for example, released their game Hellblade: Senua’s Sacrifice in 2017, creative director of the company, Tameem Antoniades, explained in an interview that they wanted the game to be more than just entertainment, as they tried to offer an experience of how it is to suffer from psychosis, that would feel true to player. Similarly, Forgotten, a Danish indie game demo released in 2018, aimed to represent what it feels like to suffer from Alzheimer disease. The game is currently under development by Autoscopia Interactive. The European indie game industry has also started considering how to tell stories from the perspectives of socially and economically marginalized people. Bury me, my love, developed by French game company The Pixel Hunt, tells the story of a Syrian refugee as she makes her way through Europe to Paris. When another British AAA-game company, Playground Games, released the fifth installment in their racing game series Forza Horizon in Autumn 2021, it reached the headlines of mainstream media, that the character creation module in the game allowed players to choose gender-neutral pronouns to their character, as well as fit their characters with prosthetic limbs. Although much debate focusses on the representation of game characters, inclusive game design is of course not limited to this specific issue. The emergence of the indie game industry also sees an increase of games that delivers experiences that go beyond the well-tested model of the AAA-industry and offers modes of play that catered to players who cannot afford sitting several hours fixed in front of a computer. This is particularly true in Denmark where the game industry is mostly comprised of small-scale, indie developers, except from a few bigger studios such as IO Interactive. *Forgotten is a short game that aims to convey the experience of how it is to live with Altzheimer’s disease. In the image, the faces of game characters are blurred to give a sense of memory loss and disorientation. Expanding the player base This slow change can in part be explained by the second issue – the diversity of the player base. It seems that the game industry is becoming increasingly willing to try to reach a new target audience and in different ways cater for the diversity of the player base. Research shows that there is no direct causal relation between the representation of marginalized identities in games, and the diversity of the player base, and that marginalized groups, such as LGBTQ-people, have played games despite negative portrayals of LGBTQ characters in the game. As even mainstream media have gained an interest in the problematic portrayals of marginalized people in games, it becomes increasingly difficult for game companies to continue to reproduce these negative stereotypes. On the other hand, this public discourse also serves as an incentive to the game industry to latch onto new target demographics with strong spending powers. However, negative portrayals of marginalized identities in games only account for half of the problem. Many marginalized groups still experience bullying, discrimination and abusive behavior when playing especially online games. Here,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when it comes to the marginalization of players, the discourse in Europe primarily revolves around the experience of (young) female players. The conditions of other marginalized groups, such as various ethnicities, socially- and economically marginalized people, and so on, are still lacking in the public discussions. This means, that while game have begun to tackle the issue of how to respectfully convey the stories of these marginalized identities, the game industry, have still not grasped the potential of addressing these groups as players. Improving working conditions through unionizing The marginalization of people in the game industry have received considerable attention in the last couple of years. Although this issue already attracted attention ten years ago, when marginalized workers, and especially female workers, of the game industry began spreading stories of discrimination, sexism, and harassment under the hashtag #1ReasonWhy , these issues have made the headlines again the last couple of years, as toxic work culture, sexual misconduct and abusive behavior have been exposed in the European AAA-industry. In the context of North Europe, scandals of a similar magnitude have yet to be exposed, although media stories have documented some cases of abusive conduct. Trade unions appear as obvious institutions to tackle such issue and better the conditions for marginalized workers. But even though the Scandinavian countries generally have a strong tradition for unionizing, it should be noted that worker in the Scandinavian game industry are still not by large unionized. Therefore, while many discussions are ongoing in the public discourse about how games responsibly represent marginalized people and how to provide an inclusive culture for players falling outside the normative stereotype of the male gamer, the is still call for a change in the organization of the game industry.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Ida Jørgensen Holds a PhD in game studies from the IT University of Copenhagen, Denmark where her research revolved around gender representation, game culture and games as media. Today she works as a postdoctoral researcher at the 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북리뷰] 『유령』: 소설이 탈북민과 게임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하여

    두 영상이 유튜브 이용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탈북자’가 가상의 ‘평양’이지만 ‘김일성 동상’을 향해 총을 쏜다. 이때 시청자들이 호응하는 것은 게임 플레이 그 자체보다는 김일성 동상을 보자마자 총을 쏘는 탈북자의 모습이다. < Back 04 GG Vol. 22.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chan Lee Completed doctoral coursework in the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Graduate School of Sungkyunkwan University. Claims to be a researcher not of North Korean literature but of Chosŏn literature—yet has become a devotee of the non-mainstream rather than the mainstream: the popular, the pulp, the genre, and everything else of that kind.

  • Ordinary Corrupted Dungeon Love: ‘플레이어블’을 구하지 못한 서사와 갈등, <디아블로4>

    다만 지난 10년간의 행보를 돌아볼 때 걱정되는 것은 그 장엄한 세계관을 구축했던 블리자드 기획진의 에고다. < Back Ordinary Corrupted Dungeon Love: ‘플레이어블’을 구하지 못한 서사와 갈등, <디아블로4> 16 GG Vol. 24. 2. 10. 세계관 집착이 가져온 엔드 콘텐츠의 부재 <디아블로4>는 초반의 성과를 이어가지 못한 채, 이견을 다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객관적으로 실패했다. <디아블로4>의 실패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동했겠으나,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패착을 뽑자면 장르적 소구점을 견고히 세우지 못한 점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디아블로4>는 초반의 흥행과 기대감조차 무색하게 시즌3 ‘피조물의 시즌’ 공개에도 게임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게임메카를 포함한 주요 매체는 <디아블로4>가 MMORPG와 핵앤슬래쉬, 온라인 게임과 패키지 게임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렸다고 입을 모았다. 플레이의 패키징 방향을 놓쳐버린 콘텐츠 기획은 개발의 방향마저 잃어버린 듯 보였고, 플레이어들은 <디아블로4>의 플레이에서 어떤 재미를 느끼고 기대감을 걸어야 할지 난감해야 했다. 그나마 자랑으로 삼을 수 있던 탄탄한 스토리는 완결을 보고 난 뒤, 2회차 3회차 플레이는 소비의 역치를 충족하지 못하고 그 힘을 잃어버렸다. 이 모든 난관을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을 찾는다면, 아마 ‘앤드 콘텐츠의 부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블리자드 개발진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디아블로4>의 엔드 콘텐츠를 부재하도록 만들게 되었나? 혹자는 블리자드가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Activision과 <캔디 크러쉬>의 King을 인수한 뒤, 게임 개발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사업에 눈이 멀어 게으른 기획과 방만한 운영 끝에 현 상황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지적할 것이다. 또는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업을 짊어지고 있었음에도 컴퓨터를 존중하지 않는 방식으로 뜬구름을 잡더니 결국 스토리와 같은 허무맹랑하고 현학적인 소구점에 집착한 나머지 현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하는 평자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의견 모두 블리자드가 지난 10년간 <스타크래프트2> <디아블로3>를 공개하며 직면해야 했던 비판이다. 위의 비판 모두 경영진의 방심이라고 지적되어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 비판 모두 다소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두 비판 중 조금 더 타당해 보이는 쪽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디아블로4>는 서사, 그것도 애정 서사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이 게임으로서 갖추어야 할 장르적 소구를 크게 흔들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동안 블리자드가 10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해온 것은 경영진의 방만한 태도 때문이 아니라, 블라자드가 본인들의 장점이라고 여겨왔던 세계관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궁극적으로 개선해야 할 플레이의 재미를 혁신시키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디아블로의 실패 요인, ‘엔드 콘텐츠의 부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블라자드가 집착한 세계관에 대한 집착이 어떤 패착을 가져왔는지 톺아보아야 할 것이다. 주인공은 반드시 플레이어블해야 한다 <디아블로> 시리즈에 있어 중세기독교의 역사와 톨킨을 떠올리게 만드는 중간계를 섞어놓은 세계관은 그 자체로 <디아블로>의 정체성이었다. <디아블로>가 구축한 장엄한 세계관은 독창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널리 알려진 요소들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여 걸출한 IP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더불어 플레이어는 우수하게 조율된 타격감을 통해 <디아블로>가 구축한 매력적인 세계관을 탐방하는 재미에서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걸 수 있었다. 이는 블리자드가 빠르게 팬덤을 끌어모으는 바탕이 되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특징은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1> <디아블로2>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에게 서사적 주인공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게임으로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플레이의 미덕이 있다. 게임은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것이며, 플레이어는 어떤 방식으로든 플레이에 개입되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조금 더 쉽게 풀어보기 위해 시리즈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디아블로2>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디아블로>라는 게임 내에서 주인공의 지위는 어디까지나 ‘소서리스’ ‘네크로멘서’ ‘바바리안’ 등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캐릭터에 집중되어 있었다. 플레이어는 게임이 마련한 서사를 경험하기 위해서 플레이어블한 캐릭터를 플레이해야만 했다. 주인공은 단순히 서사를 탐험하고 전달하는 매개가 아닌, 선택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가는 존재에 가깝다. <디아블로2>의 이러한 특징을 대변하는 요소를 뽑자면 많은 플레이어가 <디아블로> 시리즈를 넘어 핵앤슬래시 역사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회자하곤 하는 “Act 5: Lord of Destruction”를 생각해볼 수 있다. “Act 5: Lord of Destruction”까지 <디아블로> 세계관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앞서 언급했던 서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플레이어블 한 존재로 보기는 어렵다. 차라리 이야기를 전승하기 위해 던전을 돌아다니는 캐릭터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디아블로2>의 마지막, 다시 말해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플레이어는 자신이 던전을 돌아다니며 레벨을 올리는 수련을 수행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자각하며 ‘끝판왕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소명을 부여받는다. 이는 게임을 플레이한 이유에 대해 단순하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며 그동안 플레이어가 겪었을 서사적 경험을 하나의 소구로 정리한다. 더불어 “Act 5: Lord of Destruction”에서 이용된 시네마틱 시퀀스는 그러한 플레이어의 기대를 배가시키며 게임 서사로서 날카롭고도 뾰족한 소구점을 만들어낸다. 게임에 어울리는 서사, 게임에 어울리는 갈등 여기서 중핵이 되는 것은 <디아블로2>가 가지고 있는 소구의 바탕이 ‘운명을 바꾸기 위한 숙명적 결투’와 같이 커다랗고도 직접적으로 체감이 가능한 갈등 위에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갈등을 십분 활용하며 선형적이며 결말이 정해진 서사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쾌감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이드 소프트웨어의 <둠 리부트>(2016)와 <둠: 이터널>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에서 스토리란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는 존 카맥의 격언 아닌 격언으로 유명한 둠 시리즈이지만, <둠>은 게임 스토리로서 갖추어야 할 명료하고 직관적인 이야기의 갈등 구조를 갖추고 있다. 던전에 악마와 갇히게 되었으니 악마들을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의 단순한 소구는 둠가이라는 인상적인 먼치킨 캐릭터를 구현하는 바탕이 되었고, 그 바탕 위에서 플레이어는 둠가이를 컨트롤하며 경쾌한 악마 대학살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야기 자체에 무심한 듯 보이지만, 갖추어야 할 기본기는 <둠>과 달리 <디아블로4>는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콘텐츠에 어울리는 갈등’이라는 기본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디아블로4>는 릴리트와 이나리우스의 어긋난 사랑이라는 갈등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릴리트와 이나리우스가 어쩌다가 갈등을 겪게 되었고,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 관찰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그들의 행위에 유의미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결말조차 그들의 어긋난 사랑을 담는 그릇으로 남겨지는 식으로 귀결되고 만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게임으로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플레이의 미덕’이 부재해 있다. 플레이어가 무엇을 플레이하든, 릴리트와 이나리우스는 그들의 선택을 한다. 여기서 고민해봐야 하는 것은 <디아블로4>가 가지고 있는 애정서사 그 자체가 아니라 애정 서사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릴리트-이나리우스 간에 벌어진 사실상의 부부 갈등이 게임에 적합한 갈등이었냐는 것이다. 물론, 릴리트와 이나리우스의 애정 서사는 <디아블로>라는 IP의 세계관을 두텁게 만들었다. 때문에 <디아블로4>의 시네마틱 시퀀스들은 그 어느때보다 강렬했으며, 그 자체로 게임의 소구점이 되었다. 그 세계관에 대한 ‘감상’이 소구점이 되다 보니, 가장 플레이어블한 엔드 콘텐츠 역시 방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블리자드는 플레이어가 시네마틱 시퀀스를 보기 위해 던전을 통과하는지, 아니면 서사의 주인공을 되는 경험을 위해 던전을 통과하는지 (최소한 본편에서는) 심도 있게 피드백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정도다. 이 때문에 <디아블로>는 장엄한 서사시를 경험하게 만들기 위해 던전을 통과해야 하는 값비싼 예술 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쉽게는 이는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대중을 상대로 세일즈하는 텐트폴 상업 게임에서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블리자드 역시 세계관에 집착하며 벌여놓았던 문제들을 수습하고 극복하기 위해 서사의 주요한 인물들을 릴리트와 이나리우스가 아닌 메피스토로 두는 등 세계관 내에서 인물들의 배치를 바꿔가는 식의 스토리 이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시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주인공의 자리로 옮겨놓기 위한 시도들이라고 기대해본다. 다만 지난 10년간의 행보를 돌아볼 때 걱정되는 것은 그 장엄한 세계관을 구축했던 블리자드 기획진의 에고다. 플레이어가 플레이어인 이유는, 플레이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임은 게임이다. 나아가 영화가 되려는 게임의 욕망은 그다지 독특하지 않다. 많은 개발자와 기획자들은 영화스러운 게임을 꿈꾸고, 플레이어 역시 영화스러운 플레이를 기대한다. 그러나 영화인 게임이 영화스러운 게임인 것은 아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원)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연구원. 콘텐츠와 IT 산업의 동향과 정책을 연구하며, 콘텐츠 전반에 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국 AI 및 디지털 정책 동향 조사·분석」(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디지털 보안 동향 조사 및 분석」(한국인터넷진흥원)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 참여했으며,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 신인상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 [논문세미나] From geek masculinity to Gamergate: The technological rationality of online abuse

    이 논문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자행되는 사이버 폭력의 배경을 밝히기 위해 우선 기술 또는 게임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오타쿠 남성성이 있음을 짚어낸다. < Back [논문세미나] From geek masculinity to Gamergate: The technological rationality of online abuse 16 GG Vol. 24. 2. 10. 2014년 미국에서 ‘게이머게이트(Gamergate)’라고 불리는 희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특정 게임 개발자에게 온라인 상 집단 공격이 쏟아졌고 가해 집단은 ‘게이머’로 표상되는 익명의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들이었다. 이들이 목표물로 삼은 대상은 여성이었으며 “저 XX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게임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심리가 그들의 공격 속에 숨어있었다. 2023년 말, 한국에서 게이머게이트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형 게임 회사의 게임 홍보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한 여성 애니메이터가 남성을 비하하는 특정 표식을 애니메이션 안에 의도적으로 심었다며 온라인 이용자들이 집단적 공격을 가한 ‘뿌리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2014년의 미국의 게이머게이트와 2023년의 한국의 뿌리 사태는 10년의 시차가 발생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여성 게임 업계 종사자를 향해 다양한 방식의 폭력을 가했다는 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두 사건을 함께 놓고 바라볼 수 있을까? 이번 논문 세미나에서 다룰 논문은 “오타쿠 남성성에서 게이머게이트까지: 사이버 폭력의 기술적 합리성(From geek masculinity to Gamergate: The technological rationality of online abuse)”이다. 저자는 게이머게이트 사건처럼 사이버 폭력이 발생한 배경에 *오타쿠 남성성이 있음을 짚고, 트위터나 포챈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사이버 폭력을 상당 부분 조장했음을 논문을 통해 밝히고 있다. *오타쿠 남성성이라고 번역한 개념의 원제는 ‘Geek Masculinity’다. ‘Geek’은 한국어로 보통 괴짜라고 해석된다. 따라서 ‘괴짜 남성성’이라고 번역 할 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특정 대상에 집착하고 사회적으로 폐쇄성을 보이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매몰된 사람들을 오타쿠라고 왕왕 부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살리기로 했다. 게이머게이트의 시작 게이머게이트 사건의 배경에는 2013년의 게임 가 있었다. 우울증 환자가 겪는 어려움을 1인칭 시점에서 담아낸 텍스트 기반 게임으로, 여성 게임 개발자 조이 퀸(Joey Quinn)이 개발했다. 퀸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게임의 서사를 구성하면서 다른 우울증 환자들이 이 게임을 통해 삶에 도움을 얻기를 희망했다. 게임은 유명 배우 로빈 윌리암스의 자살 소식과 같은 날 스팀에서 발매되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게임 매체에서 기사로 다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포챈(4chan)에서는 환영 받지 못했다. 포챈 이용자들은 게임 발매 이후 개발자 조이 퀸을 비난하는 담론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게임은 마치 소설을 읽듯 단조로운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진정한 게임’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게임에서 표현하는 우울증은 사실 여성들의 문제이자 개인의 무능력으로 인한 것이 아니냐는 논조도 있었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퀸의 게임이 당시 게임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자 이를 부정적으로 보면서 게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게임 발매 1년 뒤인 2014년, 포챈에 올라온 하나의 글로부터 문제가 촉발됐다. 이 글은 퀸과 과거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하는 애론 조니가 작성한 것으로, 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내용이었다. 퀸이 자신을 두고 바람을 폈는데 그 대상은 게임 평론가였고, 퀸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게임 업계에 악용하여 게임이 실제 수준보다 높게 평가 받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글은 원래 포챈에 올라오기 전 다른 웹사이트에 처음 게재되었다. 하지만 게시판 관리자로부터 검열되어 빠르게 삭제되었고 조니는 퀸에 대한 비난 담론이 이미 있었던 포챈으로 자리를 옮겨 글을 재업로드한 것이다. 게임계 사이버 폭력의 대명사가 된 ‘게이머게이트’ 사실 이 주장은 조니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이건 아니건 커뮤니티 이용자들에게 그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커뮤니티는 퀸을 게임 업계를 망치려 한 악인으로 지목했다. 이어 퀸을 향한 비난 및 조롱이 담긴 글들이 빠르게 생산되고 또 재생산 되었다. 집 주소와 연락처 같은 신상 정보는 윤리의식 없이 무차별적으로 유통되었다. 걷잡을 수 없는 집단 사이버 폭력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포챈에서 시작된 폭력의 흐름은 다른 곳으로 일파만파 번져나갔다. 에잇챈(8chan)과 같은 타 온라인 커뮤니티나 레딧(Reddit), 트위터(Twitter)로 퍼져갔다. 포챈과 에잇챈은 특히 ‘오타쿠’(geek) 성향의 ‘남초’ 커뮤니티들로 알려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신상 정보가 노출된 퀸에게 자살 권유, 강간 협박, 살해의 위협이 이어졌다. 퀸은 친구들이 있는 안전한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기도 했으며 이러한 신상 털기와 신변 위협은 퀸 뿐만이 아니라 퀸 주변의 게임 개발자나 사태를 비판하는 평론가들, 더나아가 게임 업계 내 여성과 소수자 전반에게 가해지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이 사건이 ‘게이머게이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애덤 볼드윈이라는 극우 성향의 미국의 배우가 있다. 그는 트위터를 중심으로 우파 정치 메시지를 전파하는 인물 중 하나였는데, 과거 1970년대 미국 정부에서 조직적으로 사실이 은폐된 ‘워터게이트’(watergate) 사건의 이름을 따와 게임계에서도 일부 종사자들로 인해 사실이 은폐되고 있다며 #gamergate 라는 해쉬태그를 트위터에 처음 만들었다. 그리고 좌파 성향의 페미니스트로 인해 위협이 발생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추가했다. 이에 동조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트위터에서 게이머게이트 해쉬태그를 달고 무분별한 악플을 일삼고 심지어는 ‘십자군 전쟁’ 밈 이미지에 이입하면서 피해자들과 이들에 동조하는 일반인들까지 집단적으로 괴롭혔다. 온라인 커뮤니티발 대규모, 연쇄, 집단 사이버 폭력 사태였던 게이머게이트는 온라인 대안 우파의 세력 확산에 불을 지피면서 결론적으로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된 배경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 기술을 취해 남성성을 획득한 오타쿠들 오늘날 게이머게이트와 같은 사이버 폭력(online abuse)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이다. 이에 따라 논문은 이러한 사이버 폭력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기 위해 컴퓨팅 기술의 발전 과정 속에서 나타난 ‘오타쿠 남성성’에 주목한다. 우선, 논문에서는 초기 컴퓨터가 여성의 도구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세계 대전 당시,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기 위해 개발된 컴퓨터를 주로 여성 과학자들이 다뤄왔다. 전후에도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인식이 지속되어, 컴퓨팅 분야에서는 낮은 임금으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주로 종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컴퓨터는 전문가들이 다루는 도구로 변모하게 되었고, 1960년대 들어서는 남성 공학자들의 전유물로 간주되었다. 1980년대에는 컴퓨터와 게임을 소유 및 정복하는 이미지가 남성 문화에 적합하다고 대중문화를 통해 여겨지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남성성은 힘이 세다거나 건장한 외모, 사교적인 태도 등으로 여성들에게 호감을 얻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컴퓨팅 분야에서 기술적 능력을 가진 경우에는 예외가 될 수 있었다. 프로그래머나 컴퓨터 엔지니어 중에서 대인관계나 공감성 면에서는 부족할 수 있지만 기술적 능력을 갖춘 사람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실리콘 밸리 신화에서는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괴팍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도 성공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게임과 같은 기술 문화, 온라인 문화에 능숙한 오타쿠(논문에서는 ‘geek’)들은 자신의 입지를 지켜내기 위해 기술 지식과 적성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 논문의 분석이다. 논문에 따르면, 이러한 오타쿠 문화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대신하여 기술이라는 대안적 루트를 통해 남성성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만약 게임이나 인터넷 문화 같은 기술의 영역에 남성적 정체성을 흔드는 다양한 사용자가 나타난다면, 침범하지 못하도록 방어하고 유지시키는 목적에서 기술 문화가 위협을 받게되면 공격적인 충동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폭력을 더 키운 것은 ‘플랫폼 기술’ 온라인 플랫폼들의 소통 문화와 상호작용 메커니즘은 폭력적이고 격렬한 교류를 초래했지만 사용자를 타인의 학대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공하지 않았다. 게이머게이트 사건에서 포챈과 에잇챈이 주요 무대 및 자료 생산장으로 부각되었다. 익명 사용자로부터 작성된 글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며, 빠르게 댓글이 달리고, 밈이 전파되지만 이전에 작성된 글을 손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작성자가 내용에 책임감을 지지 않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있다. 트위터는 자신의 트윗에 대한 다른 사용자의 답글을 삭제할 수 없게 하며 논쟁이 쉽게 발생할 수 있도록 설계 되었다. 따라서 자료를 신속하게 유통하는 유통망이자 집단적이고 연쇄적인 공격을 허용 할 수 있었다. 물론 트위터에는 부당한 대우에 맞서고 이름을 밝히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지만, 평판, 고용, 사용자의 심리적 건강에 큰 피해를 입히는 대량 표적 공격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런데 게이머게이트 사건은 논란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는 측에 의해 한 층 더 복잡해진다. 극우 저널리스트 마일로 야노풀로스(Milo Yiannopoulos)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게이머게이트를 옹호하며 중요한 존재로 부상했다. 그는 여성 게임 평론가인 아니타 사키시안(Anita Sarkkesian)을 모욕하는 유튜브 동영상으로 유명세를 얻었는데, 이 영상은 핵심 메시지는 게이머게이트였고 사키시안을 향한 모욕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동영상은 수백만 회 시청을 기록하며 광고 수익을 창출했고, 그는 후원 플랫폼인 페트리온 계정을 운영하면서 거액의 후원도 받았다. 이러한 개인뿐만 아니라 게이머게이트의 트래픽으로 다양한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가 수익을 얻는 비즈니스 모델이 추가로 작동하여 논란은 더욱 잔혹하게 진행되었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는 ‘기술적 합리성’ 개념을 통해 1964년에 인간과 기계, 기술은 독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술 또한 사회가 만들어낸 요소로, 특정 장치나 도구를 넘어서 사회적 관계, 사고와 행동의 패턴이 모두 기술에 포함된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기술은 사회적 관계를 재생산하며 사회적인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포챈과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 서비스는 이러한 기제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고, 더 이상 자유분방하고 중립적인 유틸리티가 아닌 합리성에 의해 젠더 불평등을 유지시킨 것이다. 게이머게이트를 통해 바라보는 뿌리 사태 이 논문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자행되는 사이버 폭력의 배경을 밝히기 위해 우선 기술 또는 게임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오타쿠 남성성이 있음을 짚어낸다. 만약 다른 정체성이 기술 영역을 침범했을 때 오타쿠 남성성은 그에 대한 방어 기제로서 공격적인 충동 반응을 보이는데, 이러한 양상이 온라인 상에서 당사자를 향한 허위 소문 유포, 모욕, 조롱, 신상 털기, 신변 위협 등의 폭력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투명한 공론장이라는 신화에 둘러싸인 온라인 플랫폼들은 사실상 폭력을 더 키우는 존재였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하는 사이버 폭력의 상황에서 합리성의 원칙에 의해 왜곡된 의견을 재생산하는데 일조 하기도 하고, 공격을 용이하게 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접목시켜 이익을 취하기도 했다. 논문을 통해 적용하면, 2023년의 한국의 ‘뿌리 사태’는 남성을 비하하는 표식이 게임 애니메이션마다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고 믿는 음모에 휩싸인 한국 오타쿠 남성성 주체들이 일으킨 사이버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을 초 단위의 프레임으로 슬라이스 하여 캐릭터의 움직임이나 화면의 구름 표현에서 집게 손가락 모양을 어름풋이 끼워 맞추는 허무한 주장들은 오타쿠 남성성의 근간을 유지해주는 게임이 다른 정체성으로부터 위협을 받는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애니메이터는 10년 전 미국의 피해자들과 똑같은 수법으로 비난과 모욕을 받고, 개인 정보를 노출 당하고, 고용과 신변의 위협을 받는 꼴이었다. 비록 음모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해소되어 더 큰 폭력으로 더해지진 않았지만 애니메이터를 고용했던 사업체는 평판에 위협을 받고 금전적인 피해를 떠안게 되었다. 다만 뿌리 사태에서 하나 더 짚고 갈 점은, 폭력을 더 키운 기반이 포챈이나 트위터가 아닌 원청을 준 게임사였다는 점일 것이다. 물신주의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유저 이탈의 두려움 때문에 사실 관계 확인보다는 폭력의 편에서 설 수밖에 없던 그들의 대처는, 과거의 논문이 다 짚어내지 못한 새로운 해석점을 요구하고 있다. 참고문헌 Salter, M. (2018). From geek masculinity to Gamergate: The technological rationality of online abuse. Crime, Media, Culture, 14(2), 247-264.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여벌의 생명선_2인용 로컬 협동게임 속 목숨의 구도

    이혼을 결정한 부부 코디와 메이의 영혼은 부모의 이혼을 막고 싶은 딸 로즈가 빈 소원 때문에 조그마한 목각 인형에 씌게 된다. 자기들 나름의 추론을 거쳐서, 인형으로 전락한 부부는 딸의 눈물이 저주를 풀게 해주리라고 판단한다. 두 사람은 세계에 육박하게 거대해진 아이의 놀이방을 헤매면서, 로즈가 가장 좋아하는 코끼리 인형 큐티를 찾는다. 큐티를 망가뜨리면 속상한 아이가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ngHoon Majored in literature. Loves games and comics. The Sims 4 isn't really a favorite, yet has logged some 1,500 hours in it—unsure whether that's a source of shame or just funny. Also goes by the pen name Ttuibuchi.

  • [공모전] 모순된 세계의 충돌을 '다시' 그릴 때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지를 좇는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고, 누군가에게는 믿음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며, 현재 우리가 가진 논리나 통용되는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믿음. < Back 13 GG Vol. 23.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aein Park A gamer who searches games for inspiration in life. Keenly interested in analyzing the ways games convey their intentions and concepts.

  • 프리 포 올에서 협력을 유도하기 – 아크 레이더스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정말이지 천차만별의 형태를 보인다. 게임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서로 적대적인가, 우호적인가,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실시간인가 비동기인가 같은 각종 요소에 따라 어떤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가의 큰 틀이 정해지곤 한다. < Back 프리 포 올에서 협력을 유도하기 – 아크 레이더스 28 GG Vol. 26. 2. 10.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정말이지 천차만별의 형태를 보인다. 게임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서로 적대적인가, 우호적인가,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실시간인가 비동기인가 같은 각종 요소에 따라 어떤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가의 큰 틀이 정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라는 변수는 항상 본래의 의도, 예측보다 거대하고 강력해서, 게임의 흐름과 문화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고 가버린다. 그 정도에 따라, 어떤 게임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서비스를 아예 틀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게임은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어버리는 무서운 일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이러한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의 플레이 유도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가 있었다. 바로 ‘아크 레이더스’ 다. ‘아크 레이더스’ 는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에서 시작된 익스트랙션 슈터의 유행을 따르는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분명히 독자적이고 다른 형태의 게임 플레이를 향유했다. ‘아크 레이더스’ 가 수많은 SNS 피드와 릴스, 숏츠를 장악한 원동력은 온갖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긴박한 프리 포 올(Free for all)의 전장에서 맺어지는 갑작스러운 유대와 배신에 있었다. 이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모두가 적이 되는 전장에서 낭만의 협력을 추구하게 된걸까?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게임 제작자들의 의도와 그에 맞춘 설계가 뒷받침된 덕분이긴 하지만, 단순히 한두가지 변화로만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각 게임의 문화는 플레이어와 제작자의 WWE 게임 플레이를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플레이어의 반응을 유도하는 능력이다. 이에 대해서 여러 명작을 만들어낸 개발자들이 수도 없이 강연을 진행하거나 코멘트를 남겼을 정도다. ‘포탈 2’ 코멘터리 모드에서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며 플레이어의 방향성을 정하기 위해 게임을 수정해온 경험을 들을 수 있고,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관련 강연에서도 개발자들은 오픈월드 게임이지만 철저히 플레이어들의 흐름, 방향을 유도하고 정하는 식으로 오픈월드를 설계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때문에 잘 짜여진 게임 플레이는 기본적으로 게임 제작자의 탁월한 의도와 유도방식에 플레이어가 나름의 방식으로 호응하여, 큰 틀에서는 정해진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세부적으로 제각각 플레이어들의 개성이 드러나는 독자적 플레이가 만들어질 때 나온다. 너무 기본적인 플레이 노선을 벗어나게 되거나, 너무 틀에 박힌 플레이만 가능하다면 게임 플레이는 금새 지루해지고 재미를 느끼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이러한 플레이 유도를 철저히 잘 계산하여 디자인할 수 없다면, 좀더 포괄적인 방향으로 한계선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게 기본이다. 하지만 긴 호흡의 라이브 서비스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식은 꾸준히 시도되어 왔다. PVP 게임은 아니지만, ‘헬다이버스 2’ 가 좋은 예이다. ‘헬다이버스 2’ 는 전체 지도 하에서 개발자들이 그때그때 플레이어들의 참여도와 성공률을 파악하며 다음 진행 루트를 제시하고, 그 안에서 플레이어들이 커뮤니티를 통해 단결하면서 게임 플레이 흐름을 정하고, 또다시 그에 따라 실제로 게임 내 플레이와 환경이 변화하는 게임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이는 기존의 라이브 서비스 게임들보다 한발 더 나아간 셈이었다. 기존의 라이스 서비스 게임들은 이미 사전에 설계된 플레이 과정을 제시하고, 이를 플레이어들이 개별 진척도로 이루어내는 일종의 비동기식에 가까운 방법을 추구했다. 하지만 게임들이 점차 커뮤니티 밀착이 강해지고, ‘헬다이버스 2’ 라는 특유의 게임 테이스트와 결합하여 전체 플레이어가 하나의 캠페인에 참가하는 온라인 공동 캠페인의 방식을 도입함으로서 전체 플레이어가 훨씬 ‘멀티플레이어 게임’ 에 걸맞는 플레이를 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헬다이버스 2’ 에서 함께 플레이하는 건, 비단 나와 함께 전장에 투입된 3명의 플레이어들 뿐만 아니라 함께 커뮤니티를 구성해나가는 모든 이들이었던 셈이다. 이런 예시처럼, 멀티플레이라는 개념 역시 꾸준히 발전해왔다. 그리고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키워드로 삼고 있는 익스트랙션 슈터의 문화를 바꾼 ‘아크 레이더스’ 의 방법론은 사실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비롯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YO65XXU3sl0 ‘아크 레이더스’ 는 분명 PVP 라는 대전제가 붙어있는 게임이지만, PVP 게임이라면 왜 이런 기능이 있는지 의문이 들만한 디테일이 많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이모트휠 최상단에 위치한 “쏘지마!(Don’t Shoot!)” 으로, 싸우라고 만든 게임에서 쏘지 말라는 이모트가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셈이다. 그리고 정확히 그 반대에는 “같이 팀할래?” 가 있고, 다른 쪽에는 “고마워!”, “맞아.”, “아니오.’ 가 위치해 있다. 즉, 이 게임의 이모트휠은 굉장히 실용적이고 목적성 강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존재한다. 여기에 거리에 따라 들리도록 설정되어 있는 음성채팅이 적극 권장되는 게임이기에, 보통 가장 빠르고 편리한 대화수단인 총탄만큼이나 사람 목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이미 이보다 이모트가 훨씬 부실했던 게임인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에서도 총소리만으로도 한국인끼리 우호적인 싸인을 보내는 문화가 있었음을 감안할 때(흔히 말하는 짝짝 짝짝짝 대한민국! 패턴) 이 이모트는 굉장한 발전이다. 거기다 부활 킷을 들면 적대 플레이어라도 살려낼 수 있고, 연주 가능한 악기가 존재하며, 여러 부착물, 지뢰 등의 작동 방식도 피아 식별 규칙이 일반적인 게임과 조금 다른 부분들도 많다. 즉, 커뮤니케이션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디테일을 통해 예상 못한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기본 목적과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이러한 디테일들은 결국 플레이어들이 협동을 하고자 할 때 얼마든지 그 시도와 신뢰 형성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여지가, 마침내 이루어진 협력을 각별하게 한다. 기간제 이벤트로 벌어지는 벙커 이벤트는 한두명이 아닌 세션 전체의 인원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당연히 그만큼 성공하는 일보다 실패하는 일이 많고, 때로는 뒤따르는 배신으로 깊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쉽지 않은 과정이 있기에 마침내 이루어낸 협력이 더욱 각별하게 여겨지고는 한다. 반대로, 배신의 과실도 그만큼 더욱 달콤하게 다가온다. 낯선 이를 만나 무방비 상태에서 함께 파밍을 했다면 대강 그가 어떤 아이템을 들고 있을지 알 수 있을 터. 또 때로는 가학적인 행위가 재미를 주기도 하는 PVP 게임인 만큼 상대방의 절망을 최고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최후의 배신이란 종종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즉, 이렇게 협력이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은 협력만큼이나 배신과 폭력도 더 달콤하게 만드는 셈이다. 또한 이러한 게임 시스템, 환경을 문화현상으로 비화하게 한, 게임에서 벌어진 일을 게임 밖 커뮤니티로 꺼내 공유할 수 있는 수단 자체의 발전도 특기해볼 만 하다. 엔비디아의 섀도우 플레이, OBS 같은 툴에서 제공하는 기능들은 이미 지나간 플레이도 저장하여 편집, 가공하기 쉽도록 되어 있고, 유튜브 등의 플랫폼 역시 이러한 쉬운 공유를 돕는다. 그렇게 소수의 플레이어가 직접 겪은 상황들이 넓게 퍼져나가 어떤 교훈이 되고, 예시가 되어주면서 새롭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들 또한 “이 게임은 무작정 서로 총질만 하는 게임은 아니다.” 라는 사전 지식을 갖출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중요한 건, 앞서 이야기했듯 결국 이러한 게임 제작자의 안배가 가득 들어있다 하더라도 플레이어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하느냐이다. 아무리 랜덤하게 조우한 상대와 즉석에서 협력을 할 수 있도록 도구와 방법을 많이 준비해놓았더라도, 협력의 확실한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철저히 목적 중심으로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불필요한 사치가 될 뿐이다. 결국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공통된 목적의식, 또는 이러한 일시적 동맹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공통의 적, 아크가 등장한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라는 명제 아래, 아크라는 공통의 무자비한 위협 앞에서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계산을 굴리게 된다. 아크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공정하게 적대적이고 특유의 행동 패턴이 명확하기에 분석 가능한 적이다. 불확실성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늘리지만, 아크의 행동 패턴은 명확하기에 플레이어들의 계산은 명확해진다. 일시적인 동맹으로 아크를 우선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공동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 여기에 단순히 수집 퀘스트를 진행중이거나, 탈출 직전의 공생 아니면 공멸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선택의 여지는 매우 뾰족해진다. 플레이어의 행동 방향이 명확해질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이러한 게임의 매 순간마다 주어지는 목적성이 있기에, 플레이어들은 필요에 따라 일시적 동맹을 맺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즉, 단순히 커뮤니티 밈이자 재미를 위한 돈슛단을 넘어서서, 실제로 이러한 플레이가 상황과 플레이어에 따라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이 되는 셈이다.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 회색분자를 길들이기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따라오는 시스템이 바로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이다. 그 자체로서 오직 긍정적인 효과만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논쟁이 있지만,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이 이 게임에서 가져다주는 이점은 명확하다. 서로 비슷한 성향의 플레이어들을 묶어 그들이 겪는 허탈함이나 스트레스를 감내 가능한 선으로 낮추는 것이다. * 개발진 인터뷰를 통해, 속칭 카르마 매치메이킹, 또는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이 실존함을 알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 GamesRadar+) 하지만,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은 한가지 더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사실 어쩌면 이거야말로 핵심이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으로, 협력과 폭력 사이의 회색지대를 주 무대로 삼는 이들을 향한 것이다. 익스트랙션 슈터가 극히 매니악하고 저변이 넓지 못한,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되는 이유중 하나는 바로 ‘억울한 죽음’ 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훨씬 강력한 장비로 무장한 플레이어만을 만나거나, 또는 ‘아크 레이더스’ 처럼 협력이 가능한 게임이라면 자신은 명확히 적대한 적이 없음에도 일방적으로 살해당하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당한다면 그 플레이어의 피로도는 수직상승하게 된다. 바로 이른바 양민학살, 불공정한 상황에서의 일방적 살육만을 즐기는 부류의 플레이어들이 그러한 불쾌감을 유발하는 주된 요인이다. 물론 이들이야말로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게임 타입의 정체성과도 같은 플레이어들이지만, 이런 플레이어들이 더 많아지고 마주치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플레이어들은 고립되고 빠르게 수가 감소하기 마련이다. 즉, 이들은 장기적으로는 게임 서비스 유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부류이기도 하다. ‘아크 레이더스’는 바로 이러한 플레이어들의 비중을 줄이는데 게임의 여러 요소를 할애하고 있다. 이 게임에서 살육을 하려면 자신 또한 살육당할 위험에 놓여야만 한다는게 이 게임의 룰이라는걸 주지시킨다. 이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게임이론의 ‘팃 포 탯(Tit for Tat)’ 과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물론 ‘팃 포 탯’ 의 중요 전제인 협력/적대 대상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고, 그동안 협력/적대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전제가 일반적인 게임에서는 배제되지만, 비슷한 성향의 플레이어들을 한데 묶어놓는 이러한 매치메이킹에서는 매칭된 다수의 플레이어가 비슷한 성향의 그룹으로서 특정될 수 있기에 명확한 개인 대 개인의 데이터는 아니더라도 상대의 행동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즉, 게임이론 하에서의 팃 포 탯이 각각 대상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면,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은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유사한 상대와 매칭된다는 전제에 대한 신뢰로 상대 유저에 대한 기대를 조정하여 행동을 결정한다는 근거의 차이가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비슷한 면이 있다. 이러한 기대치를 통해 팃 포 탯의 선제 협력, 즉각적인 응징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와 비판도 있다.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에 대해 가해지는 주된 비판은 게임 플레이의 촉매제와도 같은 이러한 플레이어들을 게임에서 배제시킨다는 점이다. 이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 또한 익스트랙션 슈터의 플레이이며 아예 사라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조건적인 폭력이나 무조건적인 협력만 남는다면 그 폭력도 협력도 이만큼 각별해지지 않을테니 말이다. 이는 꽤나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게임 상에 오직 이런 플레이어들만 남게 된다면 흔히 말하는 뉴비 제초의 연쇄로 인해 더는 플레이어들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는걸 의미한다. 그만큼 이들은 아예 사라져서는 안되지만 적절한 비중으로 억제되어야 하고, 때문에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은 매우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개발진은 밝히고 있다. 즉, 아무리 비슷한 성향의 플레이어들이 모이더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플레이를 펼칠 여지가 남아있음이 명확해야, 이를 플레이어들이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더 공정해져야 하는 부분은, 협력 대신 폭력을 선택한 플레이어들이 무조건적인 악, 또는 처벌받아야할 대상으로 여겨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러한 폭력의 긴장감이 없다면 이 게임은 매우 시시한 협력 게임이 되어버릴 뿐이다. 때문에 ‘가능성’ 측면에서, 폭력과 협력 중 어느 것도 순간적인 판단으로 뒤집힐 수 있다는 긴장감은 이 게임 내내 유지되어야만 한다. 이에 대해 ‘아크 레이더스’ 의 개발자들도 공격성 기반 매치메이킹이 전투 성향의 플레이어들에게 주어지는 패널티가 아님을 항상 강조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이를 통해 일방적인 양민학살만 즐기는 플레이어들을 회색지대에서 빼내어, 보다 예측 가능한 플레이어의 범주에 넣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시스템은 절대적인 판단자가 아니며, 플레이어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시스템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점 역시 주요한 포인트다. 오래된 기록은 휘발되고 플레이어의 최근 행동에 기반하고 시스템의 판단 방식이 플레이어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기에, 마치 모범수인척 착하게 하루 정도를 보내다가 낮은 공격성의 플레이어들 속에 섞여 들어가 살육을 벌이는 것 까지는 막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또한 게임의 텐션을 유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이 게임이 정말 간단하게 서로 공격만 가능하게 하거나, 서로 협력만 가능하게 하는 이분법적인 게임 디자인을 따르지 않고 이러한 복잡한 유도체계를 활용한 이유도 이러한 변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긴장감과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배후의 연출자가 탁월할 때 무대는 다채로워진다 이렇게 수많은 안배에서 볼 수 있듯, 게임 플레이를 만들어나가는 주도권은 플레이어에게 있지만 그 책임은 게임 제작자에게 있다. 고양이를 길들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정말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말 같지만 실제로 수많은 게임들의 플레이 구조가 완성되는 과정은 이러했다. 그럼 핵심은 어떤 영리한 방법으로 주도권을 쥔 이들을 알게모르게 자신이 원하는대로 몰아갈 것인가? 이며, ‘아크 레이더스’ 개발진이 내놓은 답안이 이러할 뿐이다. 익스트랙션 슈터의 주된 재미는 불확정성에서 오곤 한다. 어떤 상황을 겪을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두가 변수이고, 그러한 변수는 통제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교묘하게 플레이어마다 다른 기대치를 충족시키도록 조율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게임은 배후의 연출자가 되기를 택했다. 그게 바로 이 게임이 그동안의 다른 익스트랙션 슈터, 그리고 PVP 슈터와 확연하게 다른 면이다. Tags: 익스트랙션슈터, 코옵, 슈터, 1인칭, FFA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테라 닐」: 안전한 절멸의 행성으로부터

    「테라 닐」 역시 시작시에는 건설을 위해 마련된 빈 공간을 보인다. 하지만 그 공간은 자연의 존재감 조차도 희박하다. 이 모든 공간은 ‘오염된 불모의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플레이어는 이 장소를 자원화해 부강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 자체를 자연의 공간으로 되돌릴 책임을 부여받는다. 즉 이 빈 공간에 올려놓는 모든 ‘건물’들은 그 자체가 자본적 축적을 위함이 아닌, 이 빈공간에 자연의 가능성을 심어놓기 위한 도구로 기능한다. 플레이어는 각 스테이지가 요청하는 정도의 ‘자연 회복’을 달성해야만 한다.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nin Lee Writes and lectures freely across comics, games, and film. A lifework: clearing every Final Fantasy title except the MMORPGs. Mainly plays on the Steam Deck.

  • <고룡풍운록>을 통해 보는 무협추리게임

    <고룡풍운록>은 무협과 추리를 어떻게 결합시켰을까? 이 무협 추리 게임은 어떤 역사가 누적돼 탄생한 걸까? 어떻게 해서 과거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었는가? 이 글은 <고룡풍운록>의 내용, 역사적 맥락, 혁신적인 디자인 및 윤리 개념의 4가지 관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 게임의 핵심을 보여주고자 한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ivist, Writer) Feng Tien Shao (Activist, Writer) Myeonggyo Hong Activist and writer. Works at the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Platform C on East Asian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social movements. Author of To My Vanished Chinese Friend and A Ghost Throws a Punch at the World, and translator of Xinjiang Uyghur Dystopia and Dying for an iPhone (co-translated).

  • 게임 역사 초창기의 기록들: 닌텐도 뮤지엄 방문기

    2024년 10월 2일, 닌텐도 뮤지엄(Nintendo Museum)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 발표 이후 3년만의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역사와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이 박물관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박물관은 1969년에 세워진 우지 오구라 공장(Uji Ogura Plant)을 개조한 것인데, 이 공장은 닌텐도가 일본 전통 카드 게임인 화투와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제작하던 시절부터 비디오 게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까지 함께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닌텐도의 변천사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다시금 과거와 현재를 모아놓은 셈이다. < Back 22 GG Vol. 25.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onwoo Lee Interested in games played together, and studies the relationality of games. Hopes that games can bring joy to everyone, all at once.

  • 몰입은 정말 즐거움의 중심에 있는가? - 칙센트미하이의 flow를 다시 생각하다

    2021년에 출간된 는 바로 그 생략을 지적한다. 제목을 한글로 옮기면 “몰입에 반하여”가 되듯, 이 책은 몰입 이론의 무분별하고 무비판적인 사용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관건은 몰입 이론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자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론을 충분히 재검토해서 이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고, 어떤 가치를 전제하며, 사회적으로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몰입의 반대나 해체가 아닌 재검토에 가깝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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