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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혁명의 잔여물로서의 디스코 음악:〈디스코 엘리시움〉

04

GG Vol. 

22. 2. 10.

 - 이 글에는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의 중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해보지 않은 독자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 


2019년 출시되어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롤플레잉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은 제목만으로는 게임의 형식이나 내용을 유추하기 어려운 게임이다. 가상의 세계인 엘리시움 속의 번화와 퇴보가 겹쳐진 항구도시 레바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어느 알코올중독 부패경찰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게임에서 디스코라는 말이 들어가는 이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


게임에서 디스코는 주인공의 다소 뒤떨어지는 감각을 묘사하는 듯 보인다. 현실세계에서처럼 디스코는 레바숄 안에서도 흘러간 옛 추억, 레트로에 가까운 감성으로서의 음악과 문화로 나타난다. 중년 형사는 이따금 흥에 겨워 자신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디스코 음악을 즐기며 추억하지만, 동시대의 음악은 게임 속 어떤 이벤트에서 드러나듯 디스코의 시절을 지나버린 어떤 흐름이다. 


그저 주인공의 세대를 드러낼 정도로만 쓰인 것으로 보인 가벼운 소재로서의 디스코는 그런데 왜 게임 제목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까? 엘리시움이라는 말이 어떤 평원, 세계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 게임의 제목은 마치 ‘디스코의 세계’로 들리기도 한다. 왜 쇠락한 항구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이 게임의 제목에는 디스코가 들어갔을까?



혁명이 실패한 도시, 레바숄


〈디스코 엘리시움〉의 중심 무대인 레바숄의 항구 마르티네즈 광장 어느 벽에는 총알자국이 잔뜩 남은 흔적이 있는데, 플레이어가 상상력을 동원할 경우 이 벽에 혁명가들을 세워놓고 총살한 흔적을 되살릴 수 있는데, 파리코뮌의 흔적으로 남은 ‘혁명투사의 벽’을 재현한 경우다.


게임 속 레바숄은 도시 국가고, 해양 속 군도로 이루어진 엘리시움 세계 전체에서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크게 번영한 곳이었다. 항만노조의 힘이 매우 강했던 이 도시국가에서는 갈수록 급격하게 벌어지는 빈부격차와 같은 문제가 불거지며 대규모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 혁명은 레바숄 내부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국제 무역중심지로서 갖는 레바숄의 중요성을 인지한 외세 열강이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투사해 혁명을 무력으로 제압함으로써 혁명은 3일천하에 머무르고 만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적 무역중심지가 대규모 혁명에 의해 해방구로 변하고, 그 해방구를 외세 열강이 무력으로 진압한 결과가 번영과 낙후가 공존하는 게임 속 레바숄의 현재 모습이다. 제국주의 시대의 혁명이었던 파리코뮌은 실제로도 파리 시민들의 성공한 혁명을 외세가 개입해 무너뜨린 역사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배경은 실패한 혁명이 남긴 잔해로 그려진다. 왕당파와 공화파로 나뉘어 싸우던 왕년의 용사들이 늙어 공놀이를 함께 하고, 혁명의 중심이었던 항만노조는 정부군과 타협하며 새로운 억압기구로 기능하기도 하는, 실패한 혁명의 도시로 레바숄은 플레이어에게 다가온다.



70년대를 풍미한 디스코


플레이어는 게임 중반부에 어느 폐허가 된 교회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놀고 있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을 만난다. 마약을 심하게 빨고 하드코어 음악에 절어 있는 이 청년들과의 대화에서 플레이어는 주인공이 매우 디스코를 사랑하는 인물임을 알게 된다. 실패한 혁명의 도시라는 배경 위에 얹은 한물 간 음악으로서의 디스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의 디스코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세기의 7-80년대를 장식한 대중음악장르인 디스코는 디스코테크Discotheque를 어원으로 삼는다. 영어로는 레코드 라이브러리Record library로 번역 가능할 이 프랑스어는 특히 댄스 음악으로서 크게 부흥했는데, 그 이전의 댄스홀이 주로 라이브 밴드와 함께 하는 공간이었던 반면 디스코는 녹음된 음반을 틀어 놓고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의미지어졌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현할 수 있는 댄스홀로서의 디스코테크는 등장 초기 미국에선 주로 슬럼과 같은 주변부 지역에서 번성했고, 고고나 지터버그(지루박) 같은 댄스 음악을 밀어내며 서서히 주류 댄스음악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디스코는 1970년대 중반에 이르면 대중적인 인기로 절정에 달하는데, 이 무렵을 상징하는 영화가 존 트라볼타 주연의 〈토요일 밤의 열기〉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인간 남성 춤으로도 유명한 존 트라볼타의 디스코 댄스는 1977년 디스코의 절정 시대를 보여주는 아이콘으로 남은 바 있었다. 이러한 디스코 인기는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오늘날 ‘디스코텍’이라고 부르는, 그리고 심지어는 독특한 용법으로 달라진 ‘콜라텍’이라는 특유의 무도장을 가리키는 무언가로 나타났다. 그 와중에 유흥가 출입이 안되는 10대들을 위한 ‘롤라장’이라는 공간 또한 술을 빼고 롤러스케이트만 넣었을 뿐이지 사실상 디스코 음악으로 공간을 가득 채운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오늘날 80년대 디스코 컴필레이션 음반 이름이 ‘추억의 롤라장’임을 생각해보자.)



침잠하는 개인, 무너지는 풍요, 그리고 디스코


1977년 정점을 찍은 디스코 열풍은 서서히 시들해지는데, 1979년에는 아예 ‘디스코 폭파의 밤’이라는 폭동까지 일어나며 서서히 한물 간 음악으로 취급받기에 이르렀다. 60년대 말 무렵 시작되어 80년대까지의 전성기를 겪은 이 장르의 부흥과 몰락은 여러 모로 동시대의 사회상과 떨어뜨려 생각하기 어려운 지점들을 보여준다.


디스코 붐이 일었던 1970년대 미국 경제는 서서히 둔화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었다. 2차대전의 여파로 대활황이 일어났던 미국 경제는 60년대를 끝으로 황금기를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1974년에 이르면 오일쇼크라는 이슈를 맞으며 미국 공업이 주춤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고유가 시대를 맞으며 대배기량, 저연비의 미국 자동차는 일본과 같은 신흥공업국에서 뽑아내는 고연비 고효율 차량에게 시장을 내주기 시작했으며, 이는 미국 공업의 심장이었던 디트로이트와 같은 도시들의 몰락에 일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공업노동자들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숙련 노동자 중심의 자동차공장들이 문을 닫고, 풀타임 정규직으로 일하던 이들은 세차장이나 패스트푸드점의 파트타임 잡으로 일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노조의 결속력은 약해지고, 일자리의 전반적인 질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과거 60년대와는 사뭇 다른 흐름들이 나타났는데, 68혁명으로 대변되는 변혁을 향한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요구들이 강했던 시기를 살아가던 히피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한 것이었다.


혁명과 반전, 평화를 외치던 이들은 갑자기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고 비즈니스맨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지켜본 70년대 여피들의 아랫 세대, 청년세대들에게 그들은 그저 입으로만 혁명을 외치다 주류질서로 편입한 꼰대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여유롭지 못하게 변한 세상 속에서 개인은 더욱 원자화되었고, 70년대의 20대는 거시적인 사회 변화에의 요구와 같은 쪽보다는 좀더 개인의 삶을 향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록의 시대가 저물고 디스코의 시대로 넘어가는 흐름은 사회경제적인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혁명과 디스코


1970년대에 일어난 경제사회적 변화와 청년노동조건의 변화는 디스코의 발흥과 무관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이야기는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다뤄진다. 대규모 혁명이 일어났지만 처절하게 실패한 상황 속에서 중년이 된 주인공은 실패한 혁명의 시대에 디스코를 들으며 자라난 세대였고, 이제는 그런 디스코마저도 한물 간 시대로서의 현재를 살고 있는 인물이다. 게임 속의 레바숄이 실패한 혁명의 공간이고, 그 속에서 디스코가 유행했다 사라졌다는 설정은 혁명과 음악의 관계를 실어낸 설정이다.


혁명과 음악의 관계는 제작사의 국적인 에스토니아의 배경을 통해서도 이해된다. 발트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는 2차대전 이후 소련에 병합된 국가였지만 소련의 압제에 고통받으며 독립을 꾸준히 요구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였고, 1989년 8월에는 에스토니아 – 라트비아 – 리투아니아를 잇는 600km가 넘는 인간띠를 만들며 다함께 노래를 부르는 이른바 ‘노래혁명’이라는 사건을 연출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혁명과 음악이라는 이 독특한 관계가 게임 안에 구현된 배경으로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디스코 엘리시움〉의 디스코는 게임의 주제와 동떨어진 장식으로서의 소재가 아니라 사실상 게임이 다루는 세계의 중심에 자리하는 소재다. 디스코는 실패한 혁명 이후 개인으로 침잠하기 시작한 이들의 시대를 장식했던 음악이었고, 주인공은 그런 실패한 혁명의 뒷세대로서 젊음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나마도 역사의 뒤안길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여전히 실패한 혁명의 잔재가 가득한 그늘진 도시에서 그렇게 혁명이라는 열정은 주인공과 동시대인들에게 식어버린 과거의 무엇으로만 비춰질 수 있었을 것이다.



혁명은 실패하지만, 그것이 The End는 아니다


그러나 게임은 독특한 퀘스트를 통해 반론을 제시한다. 서브퀘스트 중 하나였던 환상의 생물, 인슐린데 대벌레가 함께하는 엔딩에서다. 애초에 있을 것 같지 않던 환상의 생물인 거대 대벌레를 추적하는 퀘스트는 마치 무지개를 좇는 듯한 불가능한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 같지만, 게임의 최후반부에서 실제로 등장해버리는 인슐린데 대벌레의 존재와 메시지는 혁명과 디스코라는 주제를 묶어내는 결정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실패한 혁명이라고 여겨지던, 인류가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목숨까지도 걸었던 그 무언가들이 정녕 모두 실패한 것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 것인가?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인슐린데 대벌레를 직접 보게 되는 게임 최후반부의 장면은 우리가 혁명이라고 부르는, 인류가 영원히 가 닿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추구해 온 그 어떤 것과 그 실패의 과정들이 정녕 무의미한 것인가를 되물어버린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혁명이라는 단어는 상당부분 고난과 실패의 의미로 다가온다. 게임이 다룬 파리코뮌 혹은 그 이후의 러시아 혁명, 가깝게는 중동에서의 혁명과 홍콩의 우산혁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혁명들이 실패했고 민중들은 다시 고난의 상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그 모든 역사 속 실패한 혁명의 잔해를 딛고 사는 사람들이며, 디스코라는 음악 또한 60년대의 실패가 낳은 아쉬움과 침잠의 흔적일 것이다.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이 굳이 실패한 혁명의 도시를 배경으로 삼아 디스코라는 흘러간 장르를 꺼내붙이는 이유는 이 게임의 주제가 살인사건이 아닌 ‘실패한 혁명의 역사’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신비동물 탐사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무언가를 평생동안 추구해가는 노부부와, 이야기의 끝에 환상처럼 등장해버리는 대벌레의 존재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마찬가지로 환상종으로 여길 수 있을 혁명이라는 실패와 좌절의 역사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질문한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그래서 실패한 혁명의 잔여물로서의 우리 시대에 대한 물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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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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