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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나올 수 있는가? 소유하는 슈터, 익스트랙션 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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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4. 10.

카지노에 처음 발을 들인 사람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게임의 규칙 아닌 칩의 의미와 활용이다. 현금을 칩으로 바꾸는 순간 돈은 돈이기를 잠시 멈추고 특정한 촉감과 무게, 색깔을 가진 플라스틱 조각이 된다. 현금이 다른 법칙의 교환도구로 넘어가는 이 교환 속에서 칩이라는 매개를 통해 인간은 상실의 감각을 유예한다. 카지노 게임에서 잃는 것은 현금이지만, 슬롯이 알리는 실패 결과에도 우리는 돈을 잃었다는 생각에는 잠시 가 닿지 못한다. 잃어도 잃은 것 같지 않은, 그 유예의 틈새에 카지노가 존재한다.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장르가 점점 외형을 갖춰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카지노에 입장해 현금을 칩으로 바꾸는 그 순간이 떠올랐다. 이 장르를 단순히 새로운 슈팅 게임의 변종으로만 분류하는 것은 카지노를 그저 간단한 규칙의 놀이시설만으로 보는 것만큼 무언가를 놓치는 일이다. 2025년 엠바크 스튜디오가 정식 발매한 <아크레이더스>가 발매 2주 만에 400만 장을 넘기며 주목받은 것은 단순히 게임이 잘 만들어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익스트랙션 슈터라는 이 장르는 슈팅 게임이 지금껏 다루지 않았던 어떤 감각을 건드렸고, <아크레이더스>는 그 장르의 가장 흥행한 대표작으로서 이해된다. <아크레이더스>의 성공 이후 쏟아지기 시작한 이 장르 자체는 왜 유행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그래서 게임 타이틀 하나가 아니라 장르에 물어야 할 질문이 되며, 나는 그 답의 일환으로 카지노의 칩을 떠올렸다.



승리의 의미는 어떻게 희미해져가는가


슈팅 게임의 역사를 거칠게 세 세대로 나눠보면 이야기가 좀 선명해진다. <카운터스트라이크>나 <레인보우식스> 같은 1세대 팀 기반 슈터에서 승리의 기대값은 대략 50%였다. 나와 동수의 적이 있고, 우리는 같은 조건을 동등하게 부여받은 적과 마주해 싸운다.


이 방식의 게임 규칙에서 재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승리’다. 팀 구성 수, 전장 지형의 유불리, 들고 있는 무기와 장비는 양 팀 모두에게 동일하게 영향을 주도록 세팅된다. 심지어 팀 매칭마저도 누적된 각 플레이어들의 승리 횟수와 랭킹값을 통해 가급적 모든 매칭의 기대승률이 50%에 수렴하게 세팅된 것이 팀 기반 슈터의 핵심에 자리한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것은 결국 그 동일한 조건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플레이어의 ‘실력’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실력이 발휘된 결과로서의 승리만이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재미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슈터 장르에서 배틀로얄이 등장하고 인기를 끌면서부터는 50%라는 기대승률의 대전제가 급격히 무너진다. 100명이 뛰어내려 한 명만 살아남는 <배틀그라운드>에서 승리의 기대값은 1%다. 100명의 참가자들이 모두를 상대로 전투를 벌여 살아남은 마지막 한 명만이 Winner Winner Chicken Dinner를 먹기 때문이다. 2인 팀이면 50팀의 서바이벌이니 2%, 4인 팀이면 25팀의 경쟁으로 기대승률은 4%까지 올라가겠지만 여전히 팀 기반 슈터의 기대승률 50%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치다.



승리가 가장 중요한 재미라고 팀 슈터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는 기대승률이 50%일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배틀로얄 슈터의 기대승률은 한참 낮은 편이지만, 흥미롭게도 배틀로얄에서는 승리만이 유일한 재미가 되지 않는다. 모든 플레이는 언제나 99명이 지는 구조지만 승리하지 못한 99명 누구도 져서 재미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배틀로얄 슈터다.


승리 자체의 재미는 구조적으로 없어지기보다는 오히려 강화되었다. 1%의 확률을 뚫고 따내는 승리는 50%에서 가져오는 것보다 훨씬 더 격렬한 성취감을 일깨워낸다. 다만 그 1%에 도달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가 되는데, 패배의 연속이 될 99% 확률의 경험자들에게 패배로 가는 과정은 ‘승리하지 못한 경험’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파밍하고 교전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 되었고, 팀원과 나누는 보이스채팅이 승리 갈망의 빈자리를 채웠다. 반드시 ‘치킨을 먹지’ 않아도 즐거운, 연패에 빠지면 화도 났던 팀 기반 슈터의 50% 승률과 달리 99%, 다시말해 게임을 하면 사실상 승리할 기대값이 없다는 환경에서는 그저 전투의 과정 자체가 재미가 되었다는 뜻이다. 배틀로얄은 승리보다 과정을 파는 장르였던 셈이다.


익스트랙션 슈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장르에서 이제 승리는 단일한 기준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아크레이더스>나 이 장르를 처음 정립한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에서 게임의 대규칙은 적을 전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 탈출하는 것이다. 제한 시간 안에 스폰된 오픈월드에서 탈출구를 찾아 살아 돌아오면 된다. 싸워도 되고, 숨어도 된다. 필드의 적을 다 죽여도 시간 안에 탈출하지 못하면 게임오버다. 그리고 이 탈출 성공 여부가 기본적이고 작은 성공의 기준이라면, 거기에 더해지는 또 하나의 승리 비슷한 조건은 ‘무엇을 가지고 나왔느냐’다.




가상공간에 세워진 또 다른 나


팀 배틀, 배틀로얄과 같은 기존의 대전형 슈터와 익스트랙션 슈터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이 아이템의 획득과 보전, 처리 방식에 있다. 팀 배틀과 배틀로얄은 제로베이스로 앞선 판에서 얻은 것은 다음 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각 세션에서 획득한 아이템은 다음 세션이 시작될 때 리셋되며, 획득한 세션에서만 유의미하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이래로 이어져 온 꽤나 유서깊은 방식이기도 했는데, 이유는 이 방식이 깔끔하고 공정하고 명료했기 때문이었다. 획득한 어드밴티지가 누적된다는 것은 게임을 오래 플레이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기득권을 출발의 베이스로 삼게 되지만, 기존의 대전형 게임들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새로운 배틀 세션에 영향을 주는 것은 오직 플레이어의 손과 뇌에 쌓인 경험과 숙련도 뿐이었다.


익스트랙션 슈터는 대전 게임의 역사에 자리한 이 오래된 원칙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필드에서 파밍한 부품들은 귀환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경험치가 쌓이고 레벨이 오르며, 이는 게임 안에서 유의미한 어드밴티지로 작동한다. 이동속도가 빨라지고, 생존력이 높아진다. 오랜 시간 파밍을 거쳐 조립한 하이엔드 무기는 다음 세션의 전투력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단지 획득을 통한 성장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익스트랙션 슈터 플레이어의 가장 큰 고민은 이번 세션에 어떤 아이템을 들고나갈 것이냐이다. 생존에 실패하면 지금 들고 나간 아이템은 고스란히 날아가기 때문이다. 획득과 망실이라는 성장과 역성장의 흐름은 레버리지를 타고 게임의 긴장감을 새롭게 일궈낸다. 그리고, 이는 사실 대전 게임의 오래된 맥락의 규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롤플레잉, MMORPG의 규칙으로부터 넘어온 것에 가깝다.



싱글플레이 롤플레잉 게임에서 아이템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소유할 수 있는 무언가로 간주된다. 온라인 기반으로 펼쳐지는 MMORPG라면 아이템의 소유는 한 세션이지만 사실상 이 게임의 시작과 끝을 모두 포괄하는, 서버가 유지되는 한 영속적인 소유로 인정된다. 이와 반대로 팀 배틀, 배틀로얄 시절의 아이템은 계정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회성 세션에서 일회성으로 임대하는 개념에 가깝다.


소유란 무엇일까? 마르크스는 소유를 단순히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사회적 관계로 정의한 바 있다. 이 개념을 빌려오면, 배틀로얄의 아이템은 소유가 아니다. 한 세션 안에서 일시적으로 점유하다 반납하는 대여에 가깝다. 반면 익스트랙션 슈터에서 아이템은 게임 규칙이라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진짜 소유의 형태를 획득하기 시작한다. 누적되고, 이월되고, 나의 다음 판을 바꾼다. MMORPG를 통해 구성된 온라인 기반의 사이버 커뮤니티가 가상공간에 발생하고 그 안에서 아이템의 소유가 만들어진 것처럼, 슈터에도 소유와 이를 통한 누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누적이 만들어내는 것이 단순한 캐릭터 수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파밍의 역사, 레벨업의 흔적, 조립해 온 장비들이 쌓이면서 게임 안에 나와는 구별되는 또 다른 자아가 생겨난다. 현실의 내가 아니라, 가상공간 안에서 시간을 들여 세워온 나. 그 가상의 자아는 가상공간 안에서 유의미한 자신만의 소유물을 가짐으로써 형성된다.



현실이 아닌 곳에서 발생하는 불안


가상공간에 형성된 자아와 그 소유는 나에게 얼마나 실재하는가? 풀 장비를 세팅하고 들어갔다가 탈출에 실패해 모두 잃었을 때의 허탈감을 경험한 플레이어라면 이 질문에 대해 꽤나 실재하는 소유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이른바 ‘빤스’라고 통칭되는, 탈출과 생존에 실패했을 때도 회수할 수 있는 안전 포켓이 익스트랙션 슈터에서 작동하고 있는 이유도 그 상실의 허탈감을 방어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기능일 것이다. 비록 가상공간에서만 유의미한 아이템일지라도 이를 쌓아올리는 과정과 리스크를 생각해 본다면 소유를 잃을 때의 허탈감은 마냥 아무 일 없듯이 넘겨버릴 수 있는 것이라고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가상공간에 쌓아올린 무언가를 잃을 수 있다는 이 불안은 그러나 현실로부터 투영된 것이 아니다. 취업이 불안해서, 관계가 불안해서 게임 안의 소유를 잃는 것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불안은 가상공간 안에서 자생한다. 게임이 만든 규칙이 가상 자아의 소유에 실재성을 부여하고, 그 실재성이 독립적인 상실의 감각을 만들어낸다.


이 소유의 개념으로 다시 슈터 장르의 변화를 살펴보면 패배의 리스크가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1세대 팀 배틀에서 리스크는 팀이 분산해 가졌다. 지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고, 다음 판의 나는 이번 판의 실패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다. 배틀로얄도 크게 다르지 않다. 100명이 죽고 1명이 남는 구조지만, 누구도 다음 판을 빈손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평등하다. 리스크는 철저히 그 세션 안에서만 존재한다.


익스트랙션 슈터는 소유라는 개념을 추가하며 이 구조를 뒤집는다. 소유의 개념이 슈터에 덧붙으며 리스크는 온전히 개인의 누적 위에 얹힌다. 탈출에 실패하면 내가 오랜 시간 쌓아온 것이 사라진다. 팀이 나눠 지는 것도 아니고, 다음 판의 제로베이스로 리셋되는 것도 아니다. 그 손실은 오로지 나의 것이다. 앞선 장르들이 리스크를 세션 안에 가두어 두었다면, 익스트랙션 슈터는 리스크를 플레이어의 시간 전체 위에 펼쳐놓는다. 이것이 이 장르가 슈팅 게임의 역사 안에서 만들어낸 가장 근본적인 변화일지도 모른다.



포획을 알면서도 들어가는 이유


라이브서비스로 돌아가는 익스트랙션 슈터에서 소유 기반으로 장르의 중심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라이브서비스의 본질은 플레이어의 시간을 포획하는 것이고, 그 포획이 곧 수익이다. 파밍의 누적, 레벨업의 쾌감, 하이엔드 장비를 향한 욕망. 이것들은 플레이어를 다음 세션으로, 또 다음 세션으로 끌어들이는 설계다. 익스트랙션 슈터는 MMORPG에서 익숙하게 제련된 이 포획 메커니즘을 슈터라는 장르 안에 특히 정교하게 구현한 장르이기도 하다.


슈터 장르의 역사에서 소유는 언제나 주변부의 개념이었다. 무기는 세션 안에서 잠깐 쓰는 도구였고, 캐릭터는 다음 판이면 리셋되었다. 그런데 익스트랙션 슈터는 이 장르에 처음으로 소유를 중심에 놓는다. 파밍한 부품이 남고, 레벨업의 결과가 이월되고, 장비의 손실이 실재하는 감각으로 남는다. 이것은 단순한 시스템 변화가 아니다. 소유라는 개념이 슈터 장르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게임을 바라보는 틀 자체가 달라진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가 인간의 삶에 가져온 변화를 진단하면서 소유 지향적 존재 방식이 결국 불안을 내면화한다고 보았다. 가진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소유에 늘 따라붙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익스트랙션 슈터를 보면 앞선 슈터 장르들과의 차이점을 읽을 수 있다. 배틀로얄의 핵심 쾌감이 승자독식,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는 외부적 승인에 있었다면, 익스트랙션 슈터의 쾌감은 훨씬 내부로 파고든다. 내가 목표한 장비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설정한 기준을 내가 달성했느냐라는 기준으로 게임은 방향을 틀며, 승리의 기준이 타인과의 비교에서 떨어져 나와 개인의 소유 감각 안으로 들어온다. 프롬이 경고한 불안을 감수하면서도 이 장르를 선택하는 플레이어들은 어쩌면 그 불안마저 자신의 것으로 갖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지고 나올 수 있느냐


처음의 카지노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칩의 역할은 상실의 감각을 유예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익스트랙션 슈터는 그 반대의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게임은 오히려 상실의 감각을 매우 선명하게 만들어낸다. 풀 장비를 잃는 순간의 허탈감은 유예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정확히 이 게임의 핵심 재미다.


가상공간이 현실의 반영이라거나, 현실의 불안이 게임으로 흘러들어온다는 식의 분석은 이미 오래된 틀이다. 익스트랙션 슈터가 보여주는 것은 그보다 좀 더 급진적인 무언가에 가깝다. 가상공간이 현실로부터 독립적인 삶의 층위로 자리잡았다는 것. 그 안에서 세워진 자아가 독자적인 소유를 갖고, 그 소유의 상실이 독립적인 감각으로 작동한다는 것. 이것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말과는 다르다. 경계는 여전히 있다. 다만 그 경계 너머에 이제 또 하나의 실재가 생겨나고 있다는 말에 가깝다.


<아크레이더스>를 포함한 익스트랙션 슈터 장르의 부상을 그래서 나는 단순한 게임 트렌드로 읽지 않는다. 이 장르의 핵심 질문, 가지고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은 슈팅 게임의 역사 안에서 한 번도 중심에 놓인 적 없었던 것이다. 그 질문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장르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동시대 게이머들이 위험과 성취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이전 세대와 분명히 달라졌다는 징후로 읽힌다. 그 변화가 정확히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 모호하다. 하지만 그 모호함 자체를 여전히 즐기면서 다음 세션을 준비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장르의 가장 솔직한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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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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