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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656개 검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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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 Vol. 8 온라인이 보편화되면서 게임 또한 계정 생성과 로그인을 통해서 접근가능한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 서버로부터 분리되어 작동하는 오프라인 게임 시대로부터 진화해 온 현대의 게임에서 오프라인 게임은 어떤 유산을 남겼고 어떻게 역사에 남을 것인가? BIC 2022 탐방기 9월 1일부터 9월 4일 까지 부산역 근처 부산항 국제전시 컨벤션센터에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디게임 행사가 열렸다.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발이다. 올해로 8번째를 맞은 이 행사는 코로나로 인해 2020년 은 완전 비대면으로, 2021년엔 사전선정자만 오프라인으로 참여할수 있게 한정적으로 열렸다. 코로나가 완저히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진적으로 해제되면서 3년만에 완전 오프라인으로 열린 셈이다. Read More Editor's View: 오프라인은 어떤 의미인가? GG 8호가 주목한 주제는 ‘오프라인 게임’입니다.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으로 오늘날의 게임들은 온라인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지만, 게임의 역사를 돌아보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오프라인 기기 기반의 플레이들이 만들어 온 맥락이 온라인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Read More [북리뷰] 피, 땀, 리셋 - 리셋 버튼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 세계에서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며 살아간다는 것 비디오 게임 제작은 어렵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규모의 수많은 게임들이 기획되고, 제작되지만 실제 완성되는 것은 극히 미미한 수에 불과하다. 게임이 제작 도중 엎어지는 이유는 수 없이 많다.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 제작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고, 근사한 아이디어를 구현해 봤더니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와서 더 이상 개선을 할 수 없어 개발 중단을 선언하게 되는 경우도 매우 많다. 2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경험과 주변의 사례를 지켜본 바를 바탕으로 감히 멋대로 주장하건데, 개발을 시작한 비디오 게임이 단지 완성되어 세상에 공개되는 비율만 따져도 아마도 고작 10% 미만에 불과할 것이다. Read More [인터뷰] e스포츠의 현장감은 어디서 오는가: 라이엇게임즈 함영승 PD 그런데 따지고 보면 뭔가 이상하다. ‘현장 중계를 가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말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경기를 보는 것이 아쉽다는 의미인데, 게임의 배경은 이미 온라인 세계가 아니던가? 그러면 e스포츠에서 현장감은 무엇을 의미할까?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소환사의 협곡’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인데, 대체 팬들은 어떠한 지점에서 현장감을 느끼는 것일까? 전통적인 스포츠에서 이야기하는 현장감과 e스포츠의 현장감은 그 성질이 다를까? 이러한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이번 호에서는 MBC에서 전통 스포츠를 중계하다가 지금은 LCK 중계를 하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함영승 PD를 만나고 왔다. Read More ‘대항해시대 오리진’, 멀티플레이의 계층화와 사이버 농노들 비동기 멀티플레이는 모바일 게임의 시류에서 도드라진 방식이다. 모바일, 그리고 무선 네트워크라는 아직 태동기에 불안정성이 남아있던 플랫폼들은 참여자들이 동시에 접속하지 않으면서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계를 필요로 했고, 이것은 비동기 멀티플레이라는 방안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현재 이 방식은 비단 모바일 플랫폼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특유의 선택적 연결성 덕분에 많은 게임에서 채용되곤 한다. Read More ‘아카트로닉스’라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라는 것이 있다. 호기심의 방은 말 그대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진귀하고 이국적인 것들, 때로는 괴이한 것들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주로 16-17세기 영국에서 개인 컬렉터들에 의해 만들어진 호기심의 방은 박물관의 기원 중 하나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 공간이 단순히 수집품을 모아두는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수집 공간’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보여졌다. 당대에 가치있던 고미술품이나 유물, 또는 명망있는 화가의 작품이 아니었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상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Read More 〈포켓몬 고〉는 당신의 시공간에 침투한다 〈포켓몬 고〉는 2016년 글로벌 출시된 증강 현실 모바일 게임이다. 증강 현실이란 더해진 현실이라는 뜻이니, 현실 위에 정보 레이어가 한 겹 더해졌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지리 데이터 위에 포켓몬스터 데이터를 덧씌워보니 게임이 탄생했다. 출시 초기 〈포켓몬 고〉는 플레이어의 GPS를 추적하여 구글 맵 위에 포켓몬들을 등장시키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만 보여주던 포켓몬스터 트레이너의 삶을 살아보도록 선보였다. Read More 북미의 보드게임: 원조국가의 또다른 면모들 십수년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낯설던 단어는 비디오 게임이었다.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자라온 나에게는 ‘게임’이라고 하면 컴퓨터나 콘솔을 이용해서 하는 게임을 지칭하는 것이었지만 미국에서는 달랐다. 테이블탑 혹은 보드 게임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매우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내가 아는 게임은 반드시 비디오 게임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걸 알게됐다. Read More 사파의 탄생과 몰락 아케이드에서 가동 중인 대전 격투 게임을 가정으로 온라인으로 즐기는 것이 가능했던 최초의 시기는 94년 말 미국에 출시된 메가드라이브 용 X-Band로, 당시로서는 강력한 2,400bps 전송속도의 모뎀을 통해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2 같은 게임들을 미지의 상대와 가정에서 대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콘솔 능력의 한계로 아케이드 게임 자체를 그대로 옮길 수 없던 시기였으니, 진정한 의미의 (열화 없는) 아케이드 게임을 온전히 집에서 즐기는 환경은 사실상 14.4kbps의 모뎀을 새턴에 연결하여 즐길 수 있었던 96년에 발매된 버추어 파이터 리믹스가 최초라 할 수 있다. Read More 온라인 시대에서 ‘PC방’이 살아가는 법 게임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과 함께한 놀이 문화로 통한다. 처음에는 간단한 오락이 가능한 값비싼 콘솔기기로 시작해, PC 보급이 본격화됨에 따라 가정 내 기초 게임 환경 구축이 가능해졌고, 지금에 와서는 거리와 관계없이 편하게 온라인으로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열렸다. Read More 온라인 시대의 살아있는 화석, 보드게임 이야기 1938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어 그 존재가 알려진 실러캔스라는 어류 개체가 있다. 실러캔스는 약 3억 7천 5백만년 전 지구상에 출현하여, 약 7천 5백만년 전 절멸했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러캔스는 살아있었다. Read More 온라인게임, 멀티플레이, 그리고 경쟁 한때는 ‘온라인 게임’이 곧 새로운 미래가 될 거라 믿던 시기도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이벤트까지 거친 후 지금 돌아보면 어떤가? 부분적으로 온라인 시스템을 수용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여전히 오프라인이 중심인 느낌이다. Read More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 그 시절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는 일종의 의식이 있었다. 무슨 게임을 하든 가장 마지막 코스는 <갈스패닉 S2>로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다. <갈스패닉>이란 쉽게 말해 땅따먹기 게임으로 상하좌우에 대각선까지 8방향으로 기체를 조작해 구역을 확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거짓말에 가깝다. <갈스패닉>에서는 땅을 따먹으면 그 구역에는 ‘갈’이 등장했고, 특정 퍼센테이지를 완수하면 온전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었다. 이 게임의 핵심 인기 요인은 일러스트였다. Read More 캣스모폴리틱스(Catsmopolitics): 고양이와 기계가 자본세 지구에 착륙하는 방법 인종차별, 여성혐오, 소수자 차별, 장기화된 실업, 투기와 불평등, 전쟁과 극우정치가 만연한 오늘날 유일하게 아무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좌파도 우파도, 남성도 여성도, 베이비부머도 청년도, 무슬림도 카톨릭도 고양이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기꺼이 골목길에 사료와 물그릇을 갖다놓으며, 고양이와의 사랑스런 일상을 촬영해 공유한다.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다. Read More 해제: 온라인 시대의 오프라인 게임 폴더와 디렉토리 기반으로 오프라인 PC에서 파일 관리를 하던 세대들은 요즘처럼 클라우드에 파일을 올려두는 방식을 낯설어 한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올라오는 시대다. 바야흐로 온라인이 기본이 되는 시대. 과거에는 PC 한 대에서 데이터를 처리하고 네트워크로 파일을 옮기는 일을 부가적으로 생각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정보의 존재위치 자체가 관계망 위에 놓이는 것이 기본인 시대가 되었다. Read More 혼자-서 오롯이,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은 : 싱글 플레이에 던지는 물음 오래전 어느 PC게임 잡지의 칼럼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칼럼에서 글쓴이는 재미있게 플레이하던 게임을 끝내는 것이 아쉬워 엔딩을 앞두고 진행을 멈춘 채 머뭇거린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칼럼의 핵심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그 ‘머뭇거림’의 정취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Read More

  • 게임제너레이션::필자::나현수

    나현수 나현수 Read More 버튼 읽기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 : 진정한 이용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 지난 대선에서 유력 후보들의 공약이기도 했던, 확률형 아이템 확률공개 법제화가 2023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위 법은 1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잘 알 것으로 예상되지만, 확률형 아이템은 구입 당시에는 그 종류나 효과가 명확하지 않고, 일정한 행위 (요컨데 뽑기를 한다거나, 특정 장비를 강화를 하는 등의 행위) 를 할때 확률에 따라 그 종류나 효과가 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량청린 梁成林

    량청린 梁成林 량청린 梁成林 Read More 버튼 읽기 <오웰> - ‘감시자본주의' 시대의 정치 불안 많은 누리꾼들은 검색엔진에서 막 검색한 키워드가 곧바로 온라인 쇼핑몰의 추천상품이 되고, 방금 전 친구들과 나눈 잡담의 소재가 갑자기 모바일 웹브라우저에 광고로 뜨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려깊은’ 서비스는 사람들이 상념과 공포에 빠뜨리고 그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인터넷상의 개인정보 보호 및 데이터 수집은 주목할 만한 이슈였다.

  • 모바일게임 이용자의 입장에서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에 대해 생각해보기

    2022년 9월 29일 구글 스태디아의 서비스 종료가 발표되었다. 스태디아는 클라우드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서비스로 또 한가지의 특징은 월정액으로 구글이 계약해서 제공하는 여러 게임을 플레이할수 있는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 서비스였다는 점이다. 다만 따로 돈을 내야하는 게임도 있어서 완전한 구독형 서비스는 아니었다. 제공하는 게임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고 최신 게임을 하려면 월정액 요금 외에도 추가적인 비용을 내야했기 때문에 구글 스테디아는 이용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 구글의 의지 부족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 Back 모바일게임 이용자의 입장에서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에 대해 생각해보기 10 GG Vol. 23. 2. 10. 2022년 9월 29일 구글 스태디아의 서비스 종료가 발표되었다. 스태디아는 클라우드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서비스로 또 한가지의 특징은 월정액으로 구글이 계약해서 제공하는 여러 게임을 플레이할수 있는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 서비스였다는 점이다. 다만 따로 돈을 내야하는 게임도 있어서 완전한 구독형 서비스는 아니었다. 제공하는 게임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고 최신 게임을 하려면 월정액 요금 외에도 추가적인 비용을 내야했기 때문에 구글 스테디아는 이용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 구글의 의지 부족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일반 이용자에게 구독형 서비스로 가장 자리잡고 인지도가 높은 것은 넷플릭스일 것이다. 넷플릭스는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구독 서비스이고 돌이켜보면 장난감 대여 서비스나 아동도서 대여 서비스,등 현실에도 월정액 모델이 없지 않았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먼저 자리잡긴 했지만 콘텐츠를 압도적으로 확보하고 자체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월정액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비지니스모델을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것이 넷플릭스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넷플릭스는 사람들에게 월정액으로 콘텐츠를 대여한다 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상당수 줄이는데 성공했고 많은 콘텐츠 업체들이 넷플릭스의 뒤를 이어 월정액 서비스를 만들고 독점 콘텐츠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는 음악CD나 DVD를 사지 않고 스트리밍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가 되었다. 게임은 어떨까. 우선 과거의 게임의 판매형태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해보자. 게임 패키지 구매가 일반적이었던 북미나 유럽, 일본의 게임시장에서는 가정용 게임기를 중심으로 게임 하나에 돈을 지불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심지어 온라인 게임의 초기에는 패키지를 사면 클라이언트 파일이 담긴 디스크 혹은 CD와 함께 몇 달 정도의 이용권을 넣어주는 형태의 판매가 일반적이었다. 한국에서도 〈라그나로크 온라인〉 같은 경우가 비슷한 모델로 예약을 받았으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경우 CD 4장의 패키지를 제공했다. 하지만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오픈베타에서 유료화로 넘어가는 형태가 일반적이었으며 외국보다 인터넷 속도가 빠른 탓에 클라이언트의 용량이 크더라도 굳이 CD를 받아 설치하는 것보다는 다운로드 받아 설치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90년대에는 패키지 게임의 판매가 일반적인 형태였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패키지 게임 시장은 자리잡지 못했고 불법복제가 불가능하고 월정액등으로 계속 수입이 확보되는 온라인 게임 형태가 국내에 자리잡았다. 초기에는 오픈베타라는 이름으로 시범서비스를 한 후 월정액으로 넘어가는 형태의 비지니스 모델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가벼운 웹보드 게임들이 무료로 서비스를 시작한 후 유료화로 넘어가는 대신 부분유료화 정책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퀴즈퀴즈〉가 무료서비스 때의 회원수를 회복했는데도 불구하고 유료화 1년 반만에 월정액 모델을 포기하고 부분유료화 전략을 택하면서 게임 비지니스 모델의 방향은 정해진 것일 수도 있겠다. 이용자에게 게임에 무료로 접근할 수 있게 한 후 유료로 게임 내 콘텐츠를 파는 전략은 한국에서 자리잡은 이후 소셜게임붐 모바일게임 붐과 함께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한국의 부분유료화 전략은 microtransaction(소액결제)와 Freemium(프리미엄) 이란 형태로 빠르게 서구로 퍼져나갔다. 한편 현재까지도 서구 게임의 중심이 되는 가정용 게임기 중심의 게임시장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예전엔 단일 게임 패키지를 구매하면 더 이상 게임으로 수입을 내기 힘들었지만 네트워크 연결이 일반적이 되면서 게임기도 인터넷이 없으면 100% 동작하지 않게 되었으며 한번 판매한 게임에도 다운로드 콘텐츠(DLC) 등으로 이용자에게 추가적인 비용을 받으며 콘텐츠를 제공하게 되었다. 특히 AAA게임들은 늘어나는 개발비를 위해 게임을 출시한 후 나중에 추가 콘텐츠를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되었으며 이 모델은 이후 판매 초기부터 DLC를 포함하여 등급을 나눠 고가 상품을 판매하거나, 시즌패스라는 이름으로 이후의 DLC를 미리 판매하는 형태가 자리잡았다. 게임기에도 인터넷 서비스가 붙게 되면서 게임기를 관리하는 플랫폼 홀더들도 서비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온라인 서비스에도 과금을 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의 경우 라이브 골드라는 추가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단독 게임은 실행할 수 있었지만 게임에서 제공하는 멀티플레이를 즐길 수 없었다. 이러한 형태는 다른 게임기들도 받아들이면서 게임기를 사고 추가적인 온라인 서비스를 구매해야만 멀티플레이가 가능했다. 멀티플레이 외에도 자사의 퍼스트 파티 게임이나 이전 세대 게임기의 게임들을 서비스 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정용 게임기에도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 서비스가 자리잡았다. 아직 클라우드를 통해 게임을 스트리밍 하는 것은 기술적인 한계가 있긴 하지만 게임기가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것이 일반적이 되면서 인증을 온라인에서 하게 함으로써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게임을 인증을 통해 구동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게 되었다. 이를 통해 가정용 게임기들은 스트림이이 아니더라도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이용자들은 어차피 멀티플레이등의 콘텐츠를 이용하려면 금액을 지불하는데 추가로 돈을 조금 더 지불하고 게임사에서 제공하던 퍼스트파티 게임이나 고전게임을 즐기게 되었다. * XBOX 게임패스 화면. 발매 직후 포함되는 데이원으로 서비스 되는 게임들이 눈에 띈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패스를 제외하면 이런 구독서비스보다는 다른 독점 콘텐츠들이 게임기의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고 각 플랫폼 홀더들은 회원들을 늘리기 위해 고민은 하는 것 같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패스처럼 적극적으로 발매일부터 구독자에게 게임을 제공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조금 냉정하게 바라보자면 가정용 게임기나 PC로 AAA 게임들을 중점적으로 즐기는 이용자들에게 게임패스는 어차피 멀티로 게임을 할 것 그냥 돈을 조금 더 내고 고전게임들을 즐기거나 하는 정도일 것이다. 게임에서 구독 서비스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앞서 이야기했던 단일 온라인게임의 월정액 구독 모델과 함께 지금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을 분리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 서비스가 어떻게 자리 잡았고 그것이 가정용 게임기나 개인용 PC에서는 어떻게 서비스되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러한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은 모바일에서도 서비스되고 있지만 각 서비스의 플랫폼 홀더들이 투자하고 있는 것만큼 많이 알려져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게임 이용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모바일 게임의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서비스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모바일 게임들의 구독 서비스들이 적극적으로 알려져 있지 못한 이유는 아무래도 산업적으로는 성과가 증명되지 못했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우리는 〈원신〉과 〈리니지〉같은 게임이 구글 플레이에서 어떤 매출순위를 기록하고 얼마나 큰 금액의 매출을 내는지는 꾸준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매출의 뒷편에는 흔히 약탈적인 BM이라 이야기하는 확률형 아이템 뽑기, 부분유료화를 통한 강화와 경쟁, 압도적일 만큼 많은 이용자를 모아서 30초씩 시간을 뺏는 광고모델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러한 수익은 이용자를 붙잡아 놓을 수만 있다면 꾸준히 수입을 가져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동작한다. 물론 이 경지를 추구한다고 모든 게임개발사가 쉽게 도달할 수 있지는 않다. 코어 게이머들은 가챠나 경쟁을 통해 비용을 지불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게임사에서 VIP라고 부르는 슈퍼고래들은 한 달에 몇천만 원을 쓰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인기 있는 캐릭터 게임들의 경우 원하는 캐릭터를 뽑으려면 작게는 몇십에서 크게는 백만 원이 넘게 드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게임들을 모든 이용자에게 이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경쟁에서 이기고 싶지 않다면, 혹은 원하는 캐릭터 없이 소소하게 게임을 즐기려면 그것도 가능하다. 욕심을 품지 않는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모바일 게임의, 특히 캐릭터 게임이나 경쟁 중심의 RPG장르를 즐기는 게이머들은 게임에 돈을 쓰는 것에 크게 거부감이 없는 상태다, 게임개발사에서 흔히 ARPPU라고 부르는 ‘결제이용자당 평균 결제 금액’이 압도적으로 높은 게임들이다. 그 반대편에는 캐주얼 게임이 있다. 이러한 게임들은 이용자들을 많이 모으고 해당 이용자들에게 아주 소액을 결제하거나, 혹은 게임에 돈을 쓰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계속 광고를 보게 만드는 콘텐츠이다. 퍼즐이나 방치형 게임이 이런 형태일 것이다. 결국 모바일 게임을 하려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 해야한다. 게임에서 계속 큰 금액을 쓰면서 원하는 콘텐츠를 즐길 것인가, 아니면 보상을 2배씩 얻기 위해 매일매일 출석하며 30초씩 광고를 보던가이다. 이것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게임 개발사가 게임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로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리니지라이크라 부르는 경쟁과 그를 위한 강화가 섞여있는 확률형 콘텐츠 모델과 〈블루아카이브〉, 〈우마무스메〉 등 이야기와 캐릭터를 가챠로 파는 모델, 그리고 광고와 소비형 아이템을 가득 붙인 캐주얼 게임 모델 정도일 것이다. 다른 방법들은 이 모델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아니면 망했다. iOS에서 게임기의 풀프라이스에 가까운 비용을 받고 콘텐츠를 팔려고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마켓에 다른 게임들이 공짜로, 그러니까 옆에 “앱내결제”딱지를 붙인 공짜로 판매되고 있지 않았다면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한편 아이들에게도 모바일기기가 하나씩 있는 것이 보편적으로 되면서 이제 아이들이 가장 처음 접하는 게임들은 이러한 “앱 내 결제” 딱지가 붙은 “받기” 버튼만 누르면 받아지는 공짜 게임들이다. 그리고 버튼을 눌러서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은 실제로 돈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아무렇지도 않은 감각이다. 그렇다 보니 가정에서 보호자 몰래 게임에 큰돈을 써서 문제가 되는 것을 심심찮게 뉴스로 볼 수 있다. 이렇다보니 휴대폰 OS 제작사들도 보호자들이 피보호자들의 이용 형태나 결제들을 관리할 수 있도록 계속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이를테면 iOS의 경우 피보호자가 구매를 요청하면 보호자에게 알림이 가고 보호자가 허락해야 결제가 진행된다. 여기서 광고는 완전히 논외이다. 모바일 게임의 광고들을 보면 이미 실제 게임과는 안드로메다 정도 떨어진 광고를 보여주면서 이용자의 클릭을 유도하는데 성인게임 광고가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문제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계속 광고에 노출되는 것이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무료게임의 경우. 특히 미성년자 대상의 무료게임의 경우 돈을 쓰지 못하는 상황의 이용자에게 수익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 광고밖에 없는 상황에서 안타깝지만 미성년자들이 계속 게임 광고에 노출되는 것이 적절한가는 고민을 해볼 지점이라 생각한다. 한편 보호자 입장에서는 고민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어떤 게임을 하는지 신경쓰는 것을 넘어서 게임안에서 어떤 광고가 나오는지까지 신경써야한다면 ‘게임기를 한대 사주는게 속 편하겠네’ 라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차라리 게임기를 사주세요.’ 라고 이야기한다. 많은 구독서비스에는 구독을 걸어놓고 실제로 게임을 하지도 않으면서 아니면 영화를 보지도 않으면서 매달 돈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렇다. 애플아케이드와 넷플릭스에 꾸준히 돈을 내고 있던 나는 어느 날 별 생각없이 애플아케이드를 훑다가 〈쿠킹마마〉를 발견했다. 〈쿠킹마마〉는 NDS가 유행하던 시기에 한국어 버전이 나와서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고, 코로나로 원격수업등이 늘어나면서 집에는 패드가 하나 더 있는 상황이었다. 심심해하는 아이가 광고가 나오는 게임보다는 어쨌든 이게 낫지 않을까 하고 〈쿠킹마마〉를 열어보고는 이 게임에는 광고도 아이템 결제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탭을 통해 간단한 색칠놀이나 그림그리기 앱들을 시켜준 보호자들은 알 것이다. 아이가 추가 그림을 고르고 싶어한다면 결제를 해야한다는 것을. * 애플 아케이드 탭의 화면. 이렇게 되니 애플아케이드의 게임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애플아케이드의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애플 기기에서는 독점서비스인 게임들이 많으며 가끔 전 기기를 통틀어서 애플기기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많다. 초기에 iOS에서 유행했던 게임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광고나 부분유료화 결제를 피하고 싶고 모바일게임을 처음 접해서 모든 것이 새로운 이용자들에겐 딱 적절한 큐레이션이다. * 구글 플레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들. 한편 넷플릭스의 구독서비스에도 게임이 포함되고 있다. 밴더스니치 같이 영상 콘텐츠에 선택지를 넣는 경우도 있고 이 기능을 통해 퀴즈게임들을 만들기도 했지만 정말 게임들도 존재한다. 넷플릭스의 게임들은 좀 더 성인 취향이고 실제로 아이들은 접근할 수 없다. 초반엔 〈기묘한이야기 RPG〉 등 넷플릭스의 기존 콘텐츠를 활용한 게임들이 예고되었지만 〈12분〉이나 〈캔터키루트제로〉, 〈옥센프리〉 같은 인디게임들도 추가되었다. 특히 이러한 인디게임들은 넷플릭스를 가입해야만 게임을 할 수 있으며 〈옥센프리〉 같은 경우는 한국어로 번역된 게임을 하려면 현재로서는 넷플릭스가 유일한 방법이다. 가장 흥미로운 경우는 〈고양이와 스프〉일 것이다. * 고양이와 스프 기본판과 넷플릭스판. 〈고양이와 스프〉는 기본 버전과 넷플릭스 버전이 두 개가 존재한다. 독점이 아니라면 무슨 차이지? 라는 의문이 들 텐데 넷플릭스 버전에선 광고와 아이템 결제가 모두 들어내어져 있다. 우리가 흔히 방치형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더 많은 자원을 얻으려면 광고를 보세요. 가 없고 매일 게임 플레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플레이포인트를 재화로 사용하여 광고 대신 콘텐츠를 얻을수 있는 구조이다. 체감상 밸런싱도 조금 빠르게 올릴 수 있어 보인다. 이를 통해 매우 쾌적한 30초 대기가 없는 방치형 게임이나 퍼즐게임들을 넷플릭스를 통해 체험해볼 수 있다. 물론 돈으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답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고양이와 스프 구매화면 비교 좌. 일반판, 우. 넷플릭스판. 이러한 구독형 게임이 미래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지금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게임, 넷플릭스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는 구독형 게임들에도 해당한다. 이미 콘텐츠를 개인이 소유할수 없는 시대라고 하면 할 수 없겠지만 넷플릭스에선 생각보다 서비스에서 내려가는 영화들이 상당하다. 즐겁게 즐기고 있는 모바일 게임이 어느 날 계약기간의 종료로 서비스를 중지합니다. 라는 사태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키운 게임 캐릭터가 그렇게 사라지면 상실감이 상당할 것이다. 이 것은 구독형이 아니라 서비스 중심의 온라인게임에서는 항상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온전히 게임 서비스가 개발사가 아니라 플랫폼에 달려있다면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 서비스가 지속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구글 역시 서비스를 포기하는 와중에 게임 서비스가 중심이 아닌 업체라면 이것으로 얻는 이득보다 비용이 더 크다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서비스가 중지될 수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의 산업적인 지표는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것에 가깝다. 애플아케이드에는 유명 게임 개발자의 독점 콘텐츠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런 콘텐츠가 계속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기대나 소식이 적고 넷플릭스 이용자들 중 아주 일부만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더 많은 수익을 위해 구독에 아이템 판매를 추가할지도 모른다. 게임사 입장에서도 성공만 하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 대신 상대적으로 적은 돈이 들어올 이러한 구독형 서비스에 입점하는 것이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모바일게임에서 이야기하는 약탈적인 BM에서 숨을 돌릴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이곳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각 서비스 플랫폼들이 큐레이션하고 한국어로 번역한 게임들을 광고나 추가결제 없이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모바일에서 지금 이러한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서비스 말고는 없지 않을까. 장기적으로 자리만 잡는다면 현재의 모바일 게임 비즈니스 모델과 어울리지 않는 게임들을 구독서비스에서 계속 만날 수 있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평소에 비디오게임에 큰 비용을 지출하고 싶어하지 않는 캐주얼 게이머들에게는 안전하게 추천할 수 있는 게임들이기도 할 것이다. 이미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다면 한번 쯤 훑어보는 것은 어떨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혼자-서 오롯이,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은 : 싱글 플레이에 던지는 물음

    오래전 어느 PC게임 잡지의 칼럼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칼럼에서 글쓴이는 재미있게 플레이하던 게임을 끝내는 것이 아쉬워 엔딩을 앞두고 진행을 멈춘 채 머뭇거린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칼럼의 핵심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그 ‘머뭇거림’의 정취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 Back 혼자-서 오롯이,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은 : 싱글 플레이에 던지는 물음 08 GG Vol. 22. 10. 10. 오래전 어느 PC게임 잡지의 칼럼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칼럼에서 글쓴이는 재미있게 플레이하던 게임을 끝내는 것이 아쉬워 엔딩을 앞두고 진행을 멈춘 채 머뭇거린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칼럼의 핵심과 거리가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그 ‘머뭇거림’의 정취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경험해야 할 다른 게임이 이미 많이 쌓여있고 또 앞으로 더 그럴 것을 생각하면 엔딩을 향해 박차를 가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텐데, 그 발걸음을 붙들고 서성이게 하는 힘의 정체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 호기심에 대한 답은 찾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엔딩을 앞두고 일부러 멈춰 서성거린 적은 없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경험한 특정한 순간들이 오래도록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코 ico〉에서 게임을 저장하기 위해 ‘요르다’와 함께 처음 소파에 앉았을 때나, 〈Gibbon: Beyond the Trees〉에서 긴팔원숭이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섰을 때가 그랬다. 그 순간들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경험한 일련의 과정들을 떠올리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해당 게임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인 동시에 게임에서 겪은 바들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칼럼을 쓴 이의 지인이 마침내 머뭇거림을 지나 엔딩으로 향했건 끝내 멈추었건 그에게도 그 게임의 어떤 특정한 순간이 선명하게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그 머뭇거림의 순간을 게임 크리에이터가 의도했을까 하는 새로운 호기심도 생겼다. 게임을 끝내는 걸 아쉬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게이머가 느끼는 만족감이 크다는 뜻이겠지만, 거기서 느낄 보람과 별개로 그 머뭇거림이 크리에이터가 의도한 결과인지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이 호기심은 굳이 선명한 답을 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호기심을 품는 순간, 게임을 만든 이가 어떤 의도를 품었을지 궁금해하면서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을 ‘혼자’ 던져보는 경험은 중요하다. 게임 플레이 형식을 가리키는 용어인 ‘싱글 플레이’는 한 사람의 게이머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련의 과정을 혼자 진행하는 것을 의미 한다. 싱글 플레이의 의미는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방식이 확장되는 변화와 함께 달라져 왔다. 흥미로운 것은 그 변화가 ‘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싱글 플레이가 게임을 하는 본래의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출발하면 간단하다. 메인 메뉴에서 게임을 새로 시작할지 이어서 할지 선택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 방식의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다. 여럿이 함께하는 ‘코옵 플레이’(Cooperative Play)를 생각하면 싱글 플레이의 의미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램페이지Rampage〉나 〈황금 도끼Golden Axe〉처럼 여러 명이 동시에 플레이하거나, 〈스코치드 어스Scorched Earth〉처럼 차례를 기다리며 순서대로 플레이하는 등 다른 유형이 이미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들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련의 과정을, 같은 장소에서 진행한다는 점에서 싱글 플레이에 포함된다. 싱글 플레이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는 네트워크에 있다. 싱글 플레이와 대비되는 용어인 ‘멀티 플레이’가 대표적이다. 같은 장소나 가까운 범위 안에서 유선 통신망으로 기기들을 연결해 여러 명이 함께 플레이하는 ‘랜 플레이’(Local Area Network Play)를 주로 의미하는 ‘멀티 플레이’는 인터넷의 활용이 높아지면서 이제 ‘여럿이 하는 게임’ 정도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멀티’가 복수나 다중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임을 생각하면 딱히 축소되었다고 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온라인 게임’이 복수와 다중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연결’을 더 풍부하게 갖춤으로써 ‘멀티 플레이’를 대체하게 되었다. ‘온라인 게임’의 기반이 되는 인터넷은 이제 ‘사회 기반 시설’로 자리 잡았다. 사회와 일상의 많은 영역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03년 1월 인터넷 대란이나 2018년 11월 통신망 장애 등으로 인해 겪은 불편을 통해 우리 생활의 많은 방식이 온라인을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체감한 바 있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넘어 서버에 접속한 여러 사람이 함께 플레이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온라인 게임 외에도 인터넷은 싱글 플레이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연결’한다. 텔테일 게임즈의 〈더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는 에피소드를 마치면 주요 선택지에서 다른 게이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여준다. 선택의 순간에 다른 게이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잠깐 떠올리거나, 다른 게이머들의 선택 결과와 자신의 선택을 비교하면서 게임의 여운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장치는 게이머가 느끼는 즐거움을 풍부하게 한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쌓은 업적을 중심으로 순위를 나타내는 ‘리더 보드’ 역시 다른 게이머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이것이 게임 플레이에 얼마나 동기를 부여하느냐는 게이머마다 다르겠지만,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다른 게이머가 있다고 인식함으로써 게이머가 다른 게이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환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비슷한 경우를 ‘엑스박스 게임패스’로 대표되는 게임 구독 서비스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게이머들의 게임 이용 행태를 분석하는 에이전시인 GameDiscoverCo는 2022년에 엑스박스 게임패스 구독자들이 게임을 어떻게 이용했는지에 관한 자료를 발표했다. 1) 이 중 이목을 끈 결과는 게임의 최초 출시일에 공개되는 ‘데이 원’(Day One) 타이틀 이용에 관한 기록이었다. 구독자들의 게임 플레이 기록이 하나의 새로운 차트로 다루어진 셈인데, 개별 게이머들의 게임 플레이 정보가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는 자료였다. 즉, 싱글 플레이를 혼자 플레이하더라도 그 경험 자체가 서버로 전달되면서 게이머는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2) 이러한 예들이 싱글 플레이의 의미 중 게임을 플레이하는 인원에 대한 것이라면, 또 다른 부분인 게임을 플레이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는 DLC(Downloadable Contents)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DLC는 시작부터 결말까지 일련의 과정을 일단락 지은 싱글 플레이 게임에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콘텐츠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기존 게임의 줄거리에서 갈라지는 ‘외전’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결말이 될 수도 있다. 매체를 통해 게임이 유통되던 시기에는 이러한 콘텐츠가 ‘확장팩’(Expansion Pack)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졌다. 그런데 온라인을 통해 확장할 수 있는 콘텐츠의 범위가 스킨, 캐릭터, 아이템부터 새로운 싱글 미션이나 스테이지까지 다양해지면서 ‘DLC’가 ‘확장팩’을 대신하게 되었다. ‘업데이트’라는 관점에서 보면 DLC는 단순히 콘텐츠를 추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게임의 오류를 수정하는 패치의 기능과 시스템을 변경하는 등의 변화도 포함한다. 이를 통해 일단락 지어진 싱글 플레이 경험이 다시 이어지거나 새로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만들어졌다. 결말이 존재한다는 것을 싱글 플레이만의 특징으로 꼽기가 애매해진 셈이다. 이처럼 온라인을 중심으로 게임을 만들고 플레이하는 방식이 확장되면서 싱글 플레이의 본래 의미는 달라졌다. 혼자이되 완전한 혼자가 아니고, 결말이 있되 그것이 완전한 끝은 아닌 것이다. 온라인이 다양한 방식과 정도로 접목되면서 본래의 의미에 충실한 싱글 플레이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새로 하든 이어 하든, 혼자 하든 여럿이 하든 싱글 플레이 게임과 온라인 게임 모두 “룰에 따라 일정한 시공의 한계 속까지 완료하는 자유로운 임의의 행동 또는 활동으로 인간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자 문화현상의 한 가지 표현 형태” 3) 라는 점에서 싱글 플레이의 변화는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확산’되었다. 온라인이 다양한 방식과 정도로 사회와 삶 전반에 접목된 것처럼 싱글 플레이는 지금의 게임에 다양한 방식과 정도로 접목된 것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게임 시대’라 부를 정도로 많은 게이머가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하는 4) 현재, 본래 의미의 싱글 플레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이루어진 싱글 플레이의 변화가 축소가 아닌 확산이라면, ‘머뭇거림’과 ‘의도에 대해 던지는 질문’ 역시 유효할 것이다. 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질문을 던지는 건 고독하고 쓸쓸한 일이다. 하지만 크리에이터가 만든 세계를 탐색하면서 의도와 까닭을 짐작하는 것, 그리고 실패를 거듭할지라도 자기만의 페이스에 온전히 집중하며 플레이 해나가는 것은 게이머와 게임 크리에이터의 비동시적인 대화인 동시에 게이머가 자기와 마주하는 동시적인 과정이다. 엔딩을 앞두고 플레이를 멈추도록 붙든 것은 어쩌면 게임 크리에이터의 의도가 아닌 게이머 그 자신의 목소리였지도 모른다. 한편, 싱글 플레이를 통해 게이머가 던지는 ‘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은 영영 어딘가로 흩어지고 마는 걸까. 같은 게임을 두고 뚜렷하게 기억하는 장면이 게이머마다 다를 것이듯, 그 질문 역시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게임 크리에이터의 답을 구하지 않더라도, 게이머들끼리 자신의 질문을 서로에게 건네고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 질문과 답들이 게임의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게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나누어질 필요가 있고 더 많은 비평의 장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1) https://newsletter.gamediscover.co/p/xbox-game-pass-titles-in-2022-whats 2) 이와 관련해서 2013년 Xbox One 출시 당시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제시했다가 철회한 중고 정책을 생각해볼 수 있다. MS는 중고 거래에 제약을 둘 목적으로 Xbox One을 최소 24시간에 한 번씩 온라인에 연결되도록 강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거센 비난에 직면한 후 중고 정책과 온라인 연결 강제에 대한 계획을 모두 철회했다. 이 경험이 MS가 게임패스 서비스를 추진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으나, 당시 온라인 연결을 강제해 확인하고 싶어 했을 게임 이용 정보를 게임패스를 통해 큰 반감 없이 확인할 수 있게 된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다. 3) 도쿄 지방재판소 1979년 제10867호 손해배상청구사건 판결주문 중 발췌, 〈팩맨의 게임학〉(이와타니 토루 저, 김훈 역, 비즈앤비즈, 2012년) p.53. 4) 한국의 게이머들은 온라인 게임을 확실히 더 많이 플레이하고 있다. 이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해마다 발간하는 〈대한민국 게임백서〉의 ‘국내 게임 플랫폼의 시장 규모 및 점유율’과 〈2021 게임이용자 패널연구(2차년도)〉의 ‘게임이용자 1순위 이용게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 부분 화면 게임 플레이는 어떻게 게임 플레이를 재규정하는가

    그러나 방치형 게임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관습화된 감이 있다. 초창기의 시도가 장르 규칙으로 굳어지면서, 메커니즘(부재 시간의 플레이 편입, 실감 가능한 성장을 가시화하는 대시보드형 인터페이스, 자동화의 단계적 해금 등), 과금·보상 구조(보상형 광고, 프리미엄 가속재 혹은 패스, 온보딩 메타 등), 이용 행태(백그라운드 혹은 세컨드 스크린 소비, 효율 중시 공략 문화 등) 차원 모두에서 자유도 강화나 새로운 실험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보긴 어려운 실정이다. < Back 부분 화면 게임 플레이는 어떻게 게임 플레이를 재규정하는가 26 GG Vol. 25. 10. 10. 방치형 게임의 역설과 관습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이용자의 시간과 관심을 두고 벌이는 끊임없는 경쟁의 장이다. 이런 장에서 ‘방치형 게임’류는, 플레이어의 지속적·적극적 개입 없이도 플레이가 자동으로 진행되고 자원·보상이 누적되도록 하는 독특한 메커니즘을 통해 주류로 부상했다. 물론 플레이어의 개입이 적게 이뤄진다는 점은, 소셜 게임이나 캐주얼 게임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플레이가 진짜 게임 플레이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방치형 게임을 단순히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그것을 플레이하는 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따지기보다,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플레이되고 있는 방치형 게임이 어떻게 플레이되고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지를 논의하는 일이 생산적일 듯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방치형 게임의 성공은 플레이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규정을 수반한다고도 할 수 있다. 방치형 게임의 인기요인은 역설적으로 플레이어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전통적인 게임에서 플레이가 능동적인 수행을 의미했다면, 방치형 게임에서의 플레이는 자동화를 통해 수행의 필요성을 약화 혹은 무화하고 플레이어의 역할을 시스템 관리자로 변화시킨다. 재미 역시 순간적인 조작의 쾌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원 배분과 업그레이드 순서 등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수립하고, 그 결과가 기하급수적인 성장으로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는 만족감에 기인한다. 그러나 방치형 게임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관습화된 감이 있다. 초창기의 시도가 장르 규칙으로 굳어지면서, 메커니즘(부재 시간의 플레이 편입, 실감 가능한 성장을 가시화하는 대시보드형 인터페이스, 자동화의 단계적 해금 등), 과금·보상 구조(보상형 광고, 프리미엄 가속재 혹은 패스, 온보딩 메타 등), 이용 행태(백그라운드 혹은 세컨드 스크린 소비, 효율 중시 공략 문화 등) 차원 모두에서 자유도 강화나 새로운 실험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보긴 어려운 실정이다. 부분 화면 인터페이스의 혁신: <러스티의 은퇴> 사례 등장 그런 중 방치형 게임의 인터페이스 자체를 혁신한 사례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러스티의 은퇴(Rusty’s Retirement)>다. <러스티의 은퇴>는 인디 개발사 미스터 모리스 게임즈(Mister Morris Games)가 제작한 방치형 농장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2024년 4월 스팀(Steam)을 통해 출시되었다. 미스터 모리스 게임즈는 2022년 <로봇 하이쿠(Haiku the Robot)>로 이름을 알렸는데, <러스티의 은퇴>에 그 세계관의 로봇 캐릭터들이 등장해 팬들에게 친숙함을 더한다. 방치형 농장 시뮬레이션이라는 비교적 친숙한 장르를 채택했음에도 <러스티의 은퇴>를 혁신 사례로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모니터 일부 화면만을 활용하게 함으로써 ‘게임이 위치하는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가로 혹은 세로 띠 형태로 모니터 하단이나 우측 약 1/3 정도 크기만 차지하도록 설계된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다른 작업을 하면서도 시선만 살짝 옮겨 농장의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간단한 조작을 통해 운영을 할 수 있게끔 한다. 멀티태스킹 디자인을 위해 이용자 인터페이스(UI) 요소도 효율화돼 있는데, 초기 설정을 통해 항상 게임 화면이 다른 창 위에 표시되고, 필요한 정보(로봇 범위 표시나 작물 언락 조건 등)가 마우스 오버 툴팁으로 제공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UI 확대 및 축소, 다른 모니터로 이동, 인터페이스 크기 조정 등의 편의 설정이 지원돼 플레이어 환경에 맞게 화면을 구성할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플레이어가 집중할 일이 있을 때 ‘집중 모드(Focus Mode)’를 켜면 게임 속 작물 성장속도가 절반으로 느려지고 그동안에는 농장이 천천히 돌아간다. 집중 모드를 통해 플레이어는 다른 일에 몰두해야 할 때 게임 진행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지 않게 하고, 다시 여유가 생기면 모드를 해제하여 정상 속도로 돌리는 식으로 현실 작업과 게임 속도를 조율할 수 있다. 모니터 일부 화면만을 활용하는 공간적 측면만이 아니라, 게임 세계 속 시간적 측면, 그리고 게임 바깥 플레이의 시간적 측면까지를 고려한 설계인 것이다. 시간적 분리에서 공간적 분리로 초기 방치형 게임은 플레이어가 웹 브라우저의 다른 탭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 백그라운드에서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확인하는 단순한 즐거움에 초점을 맞췄다. 이는 게임 플레이의 ‘시간적 분리’와 관련된다. 장르가 발전하며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자동화가 도입되면서 게임의 핵심도 ‘효율성의 극대화’가 되었는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방치형 게임들도 플레이어에게 상당한 인지적 부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게임을 ‘방치’하기 위해 플레이어가 더욱 ‘적극적으로’ 최적의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방치형 게임이 기존 게임의 틀을 많이 바꿔놓았음에도 중요한 문제 하나는 해결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바로 ‘화면 점유’였다. 게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어찌 됐든 하고 있던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화면을 전환해 보고 있던 화면에 게임을 띄우거나, 게임이 띄워져 있는 다른 화면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러스티의 은퇴> 같은 게임을 통해 이제는 방치형 게임에서 ‘공간적 분리’까지 이뤄지게 되었다. 엠비언트 게이밍과 주변적 노동 기존의 게임은 전체 화면을 장악함으로써 플레이어를 가상세계에 몰입시켜왔다. 그것이 방치형 게임이든 그렇지 않든 마찬가지였다. 반면, <러스티의 은퇴>는 스스로가 ‘보조적’인 공존을 추구한다. 사용되지 않는 디지털 공간을 게임화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의식적 주의를 포착하면서도 지속적인 심리적 관여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을 구현했음을 의미한다. 게임이 항상 시야의 가장자리에 존재함으로써, 플레이어는 화면 전환 없이 농장의 상태를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이는 맥락 전환 비용을 제거하여 주된 작업의 흐름을 거의 방해하지 않으며, 기존 방치형 게임이 주지 못했던 플레이어와 게임 사이의 지속적인 연결감을 제공한다. 화면 주변부를 활용하는 디자인은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게임을 ‘활동’이 아닌 ‘환경’으로 전환하는 이른 바 ‘앰비언트 게이밍(ambient gaming)’ 경험을 창출한다. 화면 한구석에서 로봇들이 움직이고 작물이 자라는 모습은 마치 디지털 분재 같기도 하다. 시각적 자극 역시 주된 인지 부하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낮게 설계되었다. 오히려 복잡한 업무 사이에 이루어지는 짧은 개입(씨앗 심기, 로봇 배치 등)이 마이크로 브레이크(micro-break) 역할을 함으로써 긍정적인 심리적 환기를 제공한다. 시선을 잠시 돌렸을 때 자원이 쌓여있는 모습은 즉각적이면서 작은 도파민 분출을 유도한다. <러스티의 은퇴>는 키오와 리처드슨(Keogh & Richardson, 2017)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백그라운드 게임(background game) 같아 보이기도 한다. 백그라운드 게임은 말 그대로 플레이어가 일상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기기나 게임 서버의 처리 능력을 배경에서 사용하며 과업을 진행하고 자원을 축적하는 게임을 말한다. 더욱이 그 백그라운드 게임이 플레이어의 일상, 그것도 일과 여가 사이에 자연스럽게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플레이어로 하여금 ‘주변적 노동(ambient labor)’을 수행하게 만든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퀴클리흐(Kücklich, 2005. 1)의 ‘놀이노동(playbor)’ 개념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백그라운드 게임은 플레이어가 단순 반복적인 과업을 수행하거나, 혹은 그 노동을 전혀 하지 않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는, 매우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노동 형태의 축약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단순 과업이 완료되기를 기다리는 행위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러스티의 은퇴>는 이러한 주변적 노동을 통해 명확한 성장 시스템을 제공하며 만족감과 안정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플레이어의 생산성을 배려하는 유희적 설계를 보여준다. 이는 일부 플레이어에게 업무 중 게임을 한다는 심리적 허들을 낮추는 측면도 있다. 은퇴의 미학과 효율성의 아이러니 위에서는 주로 <러스티의 은퇴>가 제공하는 부분 화면 플레이가 게임 플레이를 어떻게 기존과는 다른 것으로 바꿔놓는지에 초점을 맞춰 논의했지만, 게임의 테마 자체도 흥미롭다. 제목에서 나타나는 ‘은퇴’라는 테마는 직접적인 스토리텔링보다는 게임의 상황 설정과 플레이 체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주인공인 로봇 러스티는 제작사의 전작 <로봇 하이쿠>의 세계관에서 긴 모험을 마치고 조용한 삶을 찾은 캐릭터다. 시·공간 배경은 인류 멸망 후 로봇들만 남은 미래로, 맵 곳곳에 과거 인간 문명의 잔해 위에서 러스티와 동료 로봇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군다는 설정이다. 전작에서 기계들이 지배하는 포스트-아포칼립스 세계관을 그렸다면, <러스티의 은퇴>는 그 세계에서 인간이 사라진 지 오래인 지구를 로봇들이 다시 녹색으로 재건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무엇보다 ‘은퇴’라는 테마는 게임 전반에 걸쳐 느긋한 톤으로 구현돼 있다. 러스티가 은퇴한 로봇답게 느릿느릿 움직이기에, 플레이어 역시 서두를 필요 없이 농장 일을 지켜보며 간간이 지시만 내리면 된다. 러스티에게는 이제 급한 일이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 역시 느긋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게임에서 시간 제한요소(계절 변화에 따른 작물 재배, 하루 동안 해야만 할 일 등)가 발견되지 않으며, 어떤 것이든 아무리 오래 방치해 두어도 패널티가 없다. 모든 일을 자신의 페이스대로, 천천히 즐기도록 유도하는 게임이 <러스티의 은퇴>다. 이러한 느림의 미학은 가끔 모니터 구석에 시선을 두고 몇 가지 관리만 하면서 적당히 게임을 즐기려는 플레이어의 플레이 방식과도 딱 맞아떨어진다. 그런 점에서 <러스티의 은퇴>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과도한 효율 추구’에 대한 메시지, 즉 지나친 생산성과 효율성에의 강조에서 잠깐 벗어나 한눈을 팔게 만드는 딴짓 거리로도 읽힌다. 하지만 실제 플레이를 살피면 아이러니가 발견된다. 처음에는 여유롭게 시작하는 듯 보였던 농장이 점점 자동화되고 기계화될수록 플레이어는 더 큰 수익과 효율을 추구하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농장이 자동으로 돌아가 저절로 수확이 굴러 들어오는 상황을 목도하게 되는데, 이는 은퇴 후에까지 생산성과 최적화를 향해 달려가는 현대인의 삶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게임이 이를 가시적이거나 풍자적으로 그리진 않지만, 플레이어로 하여금 방치형 게임 특유의 끝없는 성장에 빠져드는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찰을 유도한다. 요컨대 <러스티의 은퇴>는 겉으로는 평화로운 은퇴 생활의 모상을 제공하면서도, 플레이어에게 스스로 얼마나 최적화에 집착하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이중적 매력을 지니는 게임이다. 게임 플레이의 새로운 지평을 향하여 <러스티의 은퇴>는 제약을 통한 혁신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게임이 언제, 어떻게 플레이될 수 있을지에 대한 상상력을 넓혀준다. 전통적인 게임/플레이 개념에 도전하면서도 새로운 참여방식을 제공함으로써 주의력 경제와 디지털 노동의 새로운 형태도 구현한다. 이러한 방치형 게임의 지속적인 변화(혹은 진화?)와 주류 게임 장르로의 편입은, 이들이 단순 틈새 장르를 넘어 새로운 게임 플레이의 장을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백그라운드 게임 플레이의 조건 하에서 비물질적 노동, 모바일 미디어 실행, 그리고 게임과 놀이 간 경계가 희미해지는 양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당분간 방치형 게임 ‘현상’과 그 변화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Brendan, K. & Richardson, I. (2017). Waiting to play: The labour of background games. European Journal of Cultural Studies, 21(1). Retrieved from https://journals.sagepub.com/doi/full/10.1177/1367549417705603 Kücklich, J. (2005. January). Precarious playbour: Modders and the digital games industry. Fibreculture, 5. Retrieved from http://journal.fibreculture.org/issue5/kucklich_print.html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 Back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19 GG Vol. 24. 8. 10.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게임 사회> 전시가 보여주듯, 현재 예술 장 내에서는 ‘전시로서의 게임’이라는 새로운 실험들이 다양한 기획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활동은 전시장 벽에 설치된 지도(게임 맵)를 통해 기록된다. 전시 초기에 텅 비어있었던 지도는 게임의 참여자이자 전시의 또다른 생산자인 관객들의 경험들로 채워지고, 이후 회차를 플레이하는 새로운 관객들에게 다시 영향을 주었다. GG에서는 이와 같은 기획을 꾸린 작가 상희와 성훈을 만나 ‘대화형 게임’이라는 전시의 기획의도와 진행과정, 의미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경혁 편집장 :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선 작가님들 본인에 대한 소개를 해주시고요, 전시 제목과 전시의 의의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저는 상희라는 이름으로 작업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입니다. 2023년에 만들었던 <원룸바벨>이라는 VR 작업을 계기로, 게임 형식을 차용하는 작업을 계속해서 만들었습니다.. 게임의 디자인적 요소를 작업에서 활용할 때 제가 만들려는 이야기나 전하고 싶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가상의 내러티브를 경험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게임같은 매체가 없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제 작업에서도 그런 식으로 관객들에게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성훈: 저는 성훈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면서, 상희님 작업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역시 게임의 시나리오를 맡았습니다. 게임 속에 나타나는 공간의 특수성에 특히 관심을 두고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상희: 본 전시의 제목은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이며,구요. 지금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고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이 거대한 지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이벤트를 저희가 ‘조우’라고 지칭하는데, 그 조우들의 결과가 (지도에) 계속해서 축적되고 기록되는 형식이어서 그걸 전시의 메인 이름으로 하게 됐어요. 전시를 준비할 때 기획자들과 논의하면서 ‘지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도에서 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나 이야기가 기록된다는 것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전시회의 메인 제목이 되었고, 부제인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은 이 지도를 무대로 사용해서 플레이하게 되는 대화형 게임의 이름입니다. 성훈 작가님과 저, 김지연 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게임이고요. TRPG의 형식을 차용해서 만든 게임이라 디지털적인 요소가 부재한 ‘오프라인 보드게임’을 지향했습니다. 퍼포머와 대화를 하면서 플레이하게 되는 게임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은 전시에서 사용하는 게임의 이름인 거고, 이 전시 자체는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군요. 제가 첫 회차에 플레이어로 참여를 하고, 지금 두 번째 방문을 하면서 비교해 보니 흥미로웠던 게 지도의 변화였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이쪽(벽면)이 썰렁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상희: 맞아요. 그때만 해도 게임을 끝까지 가신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경혁님과 일행분들이 바다로 처음으로 탈출하셨었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 걸 보면 결국 이 전시가 끝나고 가장 강렬하게 남는 건 이 지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도와 관련된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기로 하고요, 우선 이 게임의 배경이 일종의 재난 상황에 처한 지방 도시에서, 흰개미라는 인간 외적 존재와의 만남과 분투를 테마로 하고 있는데요. 게임의 장르적 특성을 논의하기에 앞서 이런 배경 상황을 구성하셨던 맥락이 궁금합니다. 상희: 우선, 일단은 저희 둘 다 같은 부산 출신인데요.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할 때 항상 관심이 가는 주제가 ‘고향'과 고향을 떠나와서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되는 사람들의 정서였어요. 제가 작업했던 <원룸바벨>도 서울 원룸에서 살고 있는 2-30대 청년들의 공간과 정서를 VR로 번안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들이 계속 주제로 선택되는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성훈 작가가 게임의 배경으로 지방 소도시와 벌레라는 주제를 선택했던 맥락도 있었어요. 성훈: 얼마 전에도 러브버그나 빈대가 서울에 등장했다는 뉴스들이 막 나왔다가 사라진 일이 있었잖아요. 도시 공간에서 벌레들이 철저히 방역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도시’와 ‘벌레’가 서로 적대적으로 묘사되는 방식에 흥미가 있었어요. 도시 공간에 빈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21세기 서울에서 이게 말이 되냐, 서울이 빈대가 나오는 도시로 전락했다는 식의 반응들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빈대를 모두 무서워했죠. 관련해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르포 기사가 있는데요. 그 기사의 핵심은 빈대가 쪽방촌 등 주거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예전부터 항상 있었다는 점이에요. 빈대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도시 빈민의 공간에 항상 공존하고 있었는데 도시의 주요 거리에 출몰하면서 갑자기 조명을 받게 되었다는 얘기였어요. 그런 반응을 보면서, 도시와 벌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이 게임에 나오는 벌레들은 (인간 플레이어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나요? 상희: 맞아요. 물론 게임 속에서는 기존의 문명을 완전히 파괴하고 소진시키며, 그 폐허 속에 자신들의 도시를 세우지만, 한편으로는 흰개미라는 종 자체가 공생을 추구하기에 자신들이 만든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을 공격하지는 않아요.. 자신의 집이 그들의 집이기도 함을 받아들인다면, 살게 내버려 둡니다. 성훈: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 전개에 따라 흰개미는 어떤 플레이어들을 다른 존재로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이 다름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의 판단은 생각하기에 달린 것 같아요. 인간에게 이질적인 어떤 생물에게 우리가 보기에 인간적인 방식으로 행동해주기를, 인간적인 방식으로 호의를 표현해주기를 요구할 수는 없지요. 그들은 자기들만의 어떤 논리가 있고, 인간들은 그게 우리한테 호의적이냐 아니면 적대적이냐 이런 종류의 판단 기준들을 각자 제멋대로 갖고 있을 뿐인거고요. 그래서 퍼포먼스를 계속하면서 인간의 이해 범주를 넘어선 일들이 다른 생물 종에 의해 일어날 때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반응할지 이런 것들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전시와 게임의 형식과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TRPG를 이용한 대화형 게임’이라는 형식을 구상하셨는데요, 원래부터 TRPG를 플레이하신 경험이 있었나요? 상희: TRPG 자체는 작년 초쯤에 시작했어요. 저도 보드게임을 많이 하니까 그런 게임이 있다는 거는 알고 있었는데, 작년에 <발더스 게이트 3>을 길게 플레이하면서 DND(던전 앤 드래곤) 장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발더스 게이트>가 특히 TRPG 시스템의 UI 구현이 잘 되어 있고, 저에게는 저희가 지금 즐기고 있는 RPG 같은 게임들이 어떤 역사 속에서 발전해 왔는지를 알게 된 게임이었어요. TRPG도 원래는 RPG라고 불리다가 디지털 RPG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앞에 T가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제일 초창기의 게임들을 찾아보고 싶었고, ‘초기의 RPG'로서 어떤 근원적인 경험이 있을 것 같아서 그때 리서치 개념으로 TRPG 플레이를 시작했어요. TRPG 자체는 숙련도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사실 진입하기가 되게 어려운 장르였어요. 처음에는 (TRPG 커뮤니티에) 가서 ‘저희 좀 시켜주십시오’ 했어요. 사실 이분들도 넓은 아량으로 해주시는 거거든요, 왜냐면 저희가 초보라서 못 하고 저희랑 하면 재미없기 때문인데(웃음). 다행히 저희가 갔던 커뮤니티는 소위 뉴비들을 끌어주는 분위기가 있었고. 커뮤니티 자체가 포용적인 분위기여서 좋다고 느껴졌어요. ‘대화’를 하는 게임이다 보니 그런 (포용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는 걸까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발더스 게이트> 이후로 TRPG 커뮤니티들에 굉장히 많은 유입이 있었죠. 그래서 그렇다면 원조는 뭘까 하고 궁금해지기 시작하신 거네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의 출발이 된 게임이 <발더스 게이트>였다면 ‘나레이터’의 존재도 꽤 큰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다른 게임과 달리 <발더스 게이트>에서는 계속 나레이터가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전시에서 나레이터 역할을 하시잖아요? 그 역할을 TRPG를 특별히 오래 해오신 게 아니라면 사실 하기가 쉽진 않았을 텐데, 그걸 하면서 어떠셨어요? 상희: 저는 일단 제 자신이 부끄러움이 많은 타입이라서. 근데 사실 마스터가 부끄러움이 많으면 안 되고 뻔뻔해야 되고, 거의 <발더스 게이트>의 나레이터 같은 연극적인 태도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렇게 해야 참여자들이 따라오고 몰입을 해요. 저희 전시에서 주요 타겟으로 삼고 전달 방식을 고민했던 관객들은 TRPG를 처음 해보거나 이러한 형식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미술 전시를 보러 오는 일반 관객들이었어요. 왜냐하면 이런 류의 게임에 익숙하신 분들은 금방 잘 따라와 주실 테니까요. 이런 작업에 익숙치 않은 일반 관객분들과 함께 하려면 저희의 역량이 또 되게 중요했어요. 저희가 잘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시거든요. 그래서 테스팅 플레이를 하면서 많이 연습했고, 성훈 작가가 진짜 잘 하셔서 제가 이 분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저 같은 경우는 대사를 말하고 뒤에서 묘사하는 방식의 관찰을 하는 편인데, 성훈 작가는 굉장히 캐릭터처럼 연기도 하고 말을 하더라고요. 제가 플레이어로 참여했을 때 훨씬 경험이 좋았어요. 재밌고 잘 따라가게 되고, 저도 이런 식으로 배워서 시도해 보고. 성훈: 연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더 끌어내려고 하는 스타일의 마스터도 있어요. 그런 마스터 개개인의 특성이 달라진다는 것도 TRPG의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회 같은 경우에는 한 사람이 마스터를 고정으로 쭉 이어나가셨던 건가요? 상희: 저랑 (성훈 작가가) 번갈아서 마스터를 했어요. 중간중간 지도가 변화하는 과정도 메모로 업데이트 하고, 저희가 대개 플레이할 때 둘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되는지 서로 체크했구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실 이 전시에 오시는 분들 중에 TRPG를 처음 해보는 사람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분들은 이 문법 자체를 모르셨을 것 같아요. 상희: 네, TRPG에 관심이 있어서 오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과연 TRPG라는 게 뭔지 궁금해서 오신 분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저희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건, 이게 ‘TRPG 전시’가 아니잖아요. TRPG를 차용한 ‘대화형 게임’이라는 걸 플레이하며 ‘대화형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거니까. 일반 관객들에게 경험되었을 때도 저는 이게 분명히 재밌는 형식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한편으로는 ‘이게 그래서 진짜 재밌을까, 사람들이 이걸 금방 캐치해서 따라올 수 있을까’, 이런 걱정도 컸었는데요. 생각보다 정말 다들 재밌게 하셨어요. 이런 대화라는 형식 자체가 정말 직관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디지털 게임은 항상 어떤 조작을 익혀야 하는 일종의 ‘배리어’가 느껴지는 형식이잖아요. 이번 전시는 같이 천천히 얘기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성격이다 보니 곧잘 잘 하셨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전시를 진행하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너무 제각각이었을 것 같은데요. 퍼포먼스를 같이 한 관객 중에 기억에 남는 관객이 좀 있으셨나요? 상희: 최근에 플레이하셔서 기억이 나는 분이 있는데요. 지금 보시는 지도에 있는 이 표시는 이전 회차 플레이어를 뜻하거든요. 이 사람이 마지막에 (플레이가) 끝나면 이런 마크를 남기면서 마지막 말을 남기고, 여기에 이 사람의 유해와 같은 육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데. 다음 회차 플레이어가 이걸 확인하면 저희가 알려 드려요. 이 사람은 지금 이런 상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도 그렇게 하신 분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저 이 사람 머리를 잘라갈게요’ 하시는 거예요(웃음). 실제 시체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시신(이라는 설정)이니까 사람들이 일단 그대로 두거나 건드리더라도 조심스럽게 하는데, 그분은 도시에 이 사람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니까 잘라간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결정이 굉장히 재미있는 전개였어요. 그리고 성훈 작가가 이 전시의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 세계관을 구축했는데요, 게임 내 NPC들 중에 같이 데리고 도시를 나가거나 고립 상태에서 구출할 수 있는 NPC들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지금 (지도의 동쪽) 연립주택에 아이 NPC가 있는데, 이게 이 쪽(서쪽)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머무는 엄마의 아들이에요. 여기서 만나면 우리 아들을 구해 와달라고 부탁을 하거든요. 근데 아무도 저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으시더라구요. 아이를 데리고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지 않거나, 돌아 가다가 게임 오버가 되기도 하구요. 그런데 언젠가 소방관으로 플레이하셨던 분이 그 아이 NPC와 같이 탈출했던 게 기억에 남았어요. 다들 저 아이는 못 나가겠다고 반 포기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구해주시더라고요. 그 아이를 구하려면 소지품 란을 아이가 가지고 있는 공룡 인형으로 가득 채워야 해서, 자기 물건과 장비를 다 버려야 되는데 그래도 그 패널티를 안고 가시는 게 좋았어요. 이경혁 편집장: 살다 보면 참 커뮤니케이션이 원하는 대로 안 될 때도 많잖아요. 전시에서 관객들과 서로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난점들은 없으셨나요? 상희: 이 퍼포먼스에 오시는 분들 자체가 어느 정도 이 게임을 하고 싶어하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보니까, 그래도 적극적으로 개입과 참여를 하려고 하시는 편이에요. 성훈: 어떤 분들의 경우 캐릭터가 독특하신 경우도 있었어요. 자체적인 캐릭터가 사람들과 만나기를 피하고 굉장히 과묵하다는 설정이었거든요. 이 세계는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어떤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겪으면서 더 재미를 찾아갈 수 있는 구조인데, 그분은 '은신 플레이'처럼 게임 진행을 하셨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가 마스터로서 어떤 방식으로 재미를 제공을 해야 되는지, 그 분의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도 이 전시에 참여해서 세 명이서 팀 플레이를 했었잖아요? 그때 약간 짜증 났던 건(웃음), 우리 멤버가 클리어를 목적으로 하려고 (게임 내 상호작용을) 전부 피하는 거에요. 그때 저희가 한 명이 플레이를 하고 한 명이 조수고, 저는 ‘마음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구조였죠. 상호작용을 안 하려고 할 때마다 저는 ‘앉아봐’, ‘그 상자 제발 열어봐’ ‘말좀 걸어봐’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웃음). 근데 그걸 보면서 저는, 만약에 어떤 사람들이라면 전시의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일종의 하이스코어 경쟁처럼 게임을 최단 시간으로 돌파하려고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 경우는 다행히 안 겪으신 것 같아요. 상희: 네, 맞아요. 그리고 게임 관련 설명과 안내를 드릴 때, 이 게임이 승리라던가 패배라는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참여자와 마스터 둘이 되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다들 게임 내에서 자기 캐릭터만의 얘기를 구축하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아까 편집장님 팀의 멤버 분도, ‘살아나갈 것이다’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집념’이라는 캐릭터를 갖추신 거죠. *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에서 전시 참여자이자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채워나갔던 지도. 회차가 반복될수록 지도의 내용은 풍부해지고 이후 회차의 플레이에 영향을 준다. 이경혁 편집장: 그런 걸 보면 게임 기획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준비해야 하는 거네요. 1시간 반의 플레이로는 사실 지도의 모든 영역을 다 볼 수는 없고, 플레이가 계속 누적되다 보면 사람들이 지도 안에서 절대 안 가는 어떤 영역이 생기게 될 텐데요. 기획자 입장에선 정말 정성을 다해 준비한 거라 조바심이 나실 것 같기도 해요. 상희: 맞아요. 전시 처음에 지도가 많이 안 밝혀졌을 때는 끝까지 못 가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오픈 월드 류의 게임을 할 때 그동안 가보지 못한 영역, 지도 상에서 안개 혹은 어둠으로 표현되는 영역을 빛으로 밝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이 ‘여기 아무도 안 갔네요’, 하면서 가시기도 하고, 결국에는 그런 식으로 맵이 다 밝혀졌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결국 이 지도 데이터의 누적이라는 게, 그냥 지도에만 추가되는 게 아니라 다음 번 플레이에도 영향을 주는 형태인 것이고. 앞선 세계의 변화가 뒷 세계의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는 형태로 설계가 되는거네요. 상희: 맞아요. 예를 들어서 아까 말씀드린 퀘스트에서 아들을 구하게 되면 패스트푸드점의 엄마가 같이 도시를 떠나가게 되는데, 그 이후에 이곳에 온 사람은 이 엄마가 남기고 간 쪽지만 읽을 수 있는 거예요. ‘아이를 구해줘서 고마워요. 혹시 못 보셨을까 봐 여기 쪽지를 두고 갑니다.' 이렇게요. 그리고 이 엄마의 아이가 원래는 강박이 있는 아이여서 재료별로 햄버거를 계속 분류하고 있었는데, (이후 회차에서는) 분류하던 흔적만 남아 있고 그걸 했던 사람이 누구였고 이걸 왜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혹시 관객 중에 2회차 플레이를 해본 분들은 좀 있으신가요? 상희: 있긴 있었지만 전부 테스트 플레이(참여자)였구요. 다만 저희가 한 이틀 정도는 오픈 세션이란 걸 열어서 아예 플레이를 공개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거든요. 그때 관람객 한 분이 두 회차를 연달아 보고 가셨어요. 두 번을 관람하니까, 이를테면 (첫 회차에) 어느 길이 무너졌는데, 그 다음 회차에 같은 길목에 도착한 사람은 그 무너진 길을 파헤쳐서 건너가야 되는 이런 연속된 사건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이 좋았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이경혁 편집장: 그걸 기록하는 것도 두 분이 굉장히 노고를 들이셨을 것 같은데요. 상희: 게임상의 큰 변화는 지도상의 기호로 계속 표시를 하기 때문에 기억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책상에 지도를 붙인 판넬이 있어요., 지금까지의 정보를 기록하고 새로운 변화를 써놓는 (마스터 전용) 판넬입니다.. 거기에 기억해야 되는 정보들, 예를 들면 특정 물건 3개를 요구하는데 그 3개를 다 갖다 줘야 떠나는 어떤 NPC의 경우에,. 누가 무엇을 주었다, 이런 식으로 업데이트해 놓고. 쪽지나 포스트잇 같은 걸로 표시하기도 해요. 이경혁 편집장: 보통은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면 이렇게 손을 뗄 수가 있는데, 이거는 (지속적으로 참여해야 된다는 점에서) 작가가 일종의 오브제가 아닌가 싶네요. 상희: 그렇죠. 작가도 자꾸 작업에 참여해야 되고, 전시기간에 계속 상주하게 되고요. 근데 그런 작업이 저한테는 계속 관객들과 참여적으로 연계된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이 작품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런 점을 흥미롭게 짚어볼 것 같아요. ‘전시를 시작할 때와 전시를 닫고 나서 작가에게는 무엇이 변했을까’ 그게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아직 완전히 전시가 닫힌 것은 아니지만, 막바지에 달하고 있는 입장에서 작가님 스스로가 자신을 성찰했을 때, 무엇이 변화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상희: 일단 저에게 있어선 관객들과의 관계가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저는 기존에 해온 작업들도 인터렉티브한 성격이 있다보니, 관객들이 와서 직접 플레이하셔야 하는 작업들이 많아요. 전시장에는 언제나 제가 있었어요. 제가 (프로그램) 개발을 했다 보니까, 갑자기 오류가 나면 고쳐드리거나 플레이 방식에 대해 안내를 드려야 하다보니 전시장에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관객분들이 전시를 끝내고 나서 감상을 나눠주는 걸 어려워하시는 편이에요. 전시장이란 공간 자체가 그런 걸 어렵게 만들다 보니 당연하긴 해요. (작가와 관객 사이의) 어떤 권위적인 분위기가 있고. 제가 궁금하다고 해서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거죠. ‘어떠셨어요?’ 하면 ‘아, 재밌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이러고 바로 도망치듯 하시고(웃음). 그런게 항상 저도 아쉽고, 관객들도 당시 말을 못해서 아쉬우신 게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1시간 반 동안 계속 플레이를 하면서 (관객과) 단독적으로 관계를 맺잖아요. 그 안에서 생성되는 라포(rapport)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게임이 끝나고 나면 너무 자연스럽게 이게 어땠는지 감상을 남기시는 거예요. 어떤 게 재밌었는지에 대해서도 서로 얘기를 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여기 섹션(전시장 한 쪽의 공간)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나서 관객들끼리 소회를 공유하는 목적으로 만들어둔 거거든요. 이 공간의 모티브가 된 게, TRPG 하시는 분들이 게임이 끝나고 나면 그 게임이 어땠다고 합평회처럼 얘기를 하세요. 그런 문화가 매우 좋았어서 저희도 전시에 도입했어요. 관객분들이랑 더욱 깊게 관계 맺는 형식이다 보니 저에게도 굉장히 큰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이 전시가, 메인 게임의 앞에 프리(pre-) 단계가 있고 포스트(post-)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프리 단계에서는 게임 참여자들에게 전날 설문을 한번 하시잖아요. 이렇게 전시 앞뒤로 프리 단계와 포스트 단계를 두고 보면, 작가 입장에서는 관객 개개인을 좀 더 보게 되지 않습니까? 어떤가요? 관객분들의 전시 관람 전과 관람 후의 변화 같은 것도 좀 느끼시는지요? 상희: 일단 관람 전에는 (게임을 플레이할) 사람들의 플레이 성향을 알고 싶어서 설문을 조사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게임 내 어떤 캐릭터가 어울릴지를 골라드리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질문에 답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실제로 이 ‘고향’이라는 곳에 돌아와서 플레이하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과정이 즐거웠고. 그 사람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감정들이 (플레이를 하면서) 카타르시스가 되어서 다 풀리고, 후반부에는 또 같이 정리하면서 얘기하는 과정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은 사전 설문을 통해 캐릭터를 구성하고, 플레이 종료 후에는 각자의 개인적 경험과 소회를 집단적 궤적으로 모아 나간다. 이경혁 편집장: 사실 어떻게 보면 장르적으로는 굉장히 큰 도전을 하신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이 전시의 게임이 TRPG를 베이스로 했지만, TRPG를 하려면 아까 말씀하셨듯 보통 TRPG 카페를 가잖아요. 실제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TRPG를 모티브로 했지만 이게 ‘퍼포먼스’로서 나오기 위해서는 어떤 특징이 있어야 된다라는 생각을 아마 하셨을 것 같은데. 무엇을 더 강조하려고 하셨을까요? 상희: 우선은 현실적인 완결성이 중요했어요.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만들다가도, 1시간 반의 러닝타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무조건 끝나야 되는 형식을 만들고자 했고요. 그리고 퍼포먼스 형식이니까 플레이함에 있어서 ‘룰’을 최소화하고자 했어요. 룰이 너무 많아서 생길 이해의 어려움을 줄였고, 룰에 대해서도 실제로 설명을 많이 안 드립니다. 참여자들이 행동을 하나씩 할 때마다 조금씩 알려드려요. 어떤 분께서 ‘저 이렇게 하고 싶어요’, 행동을 제안하시면 그것을 주사위를 굴려서 확인해 봅시다 라고 하면서, 점진적으로 계속 룰을 알려드리고 있어요. 그렇게 해도 다 알려드릴 수 있는 룰이어서. 원래 보드게임들은 룰 설명만 1시간 하고 난 뒤 플레이를 시작하는 느낌이잖아요. 이 전시에서는 그런 게 없이, 어떤 장벽 없이 관객들이 바로 플레이할 수 있는 그런 직관적인 플레이를 만들려고 신경을 썼습니다. 성훈: 저는 이 전시를 퍼포먼스 차원에서도 얘기해보고 싶은데요. 공연예술의 경우 똑같은 공연을 10번씩 보러 가는 문화도 있잖아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항상 매번 공연이 다 조금씩 다르다라는 얘기를 듣는데. 그런 것처럼 이 전시도 어떤 의미에서 ‘공연’이라고 할까요? 이 전시가 그 공연의 매번 다른 특성을 극대화한 걸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매번 갈 때마다 실제 인간이 진행하고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절대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고, 매번 지도가 바뀌어 나가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고, 스티커이기 때문에 뗄 수가 없잖아요. 그런 형식에서 퍼포먼스적 측면이 접목되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TRPG라는 것을 상징하는 게 일종의 ‘룰 북’이기도 하잖아요. 룰 북의 두께만 봐도 이걸 언제 읽나 고민이 되긴 하더라구요. 상희: 맞아요. 저희 게임도 일종의 가제본처럼 룰 북을 만든 게 있거든요. 내용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이 정도 두께가 금방 나오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장벽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룰 북은 일단 가제로 만든 거고요, 저희가 좀더 정리해서 아예 보드게임으로 출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 전시의 지도 형식 자체도 보드게임에서 착용을 했거든요. '레거시 보드게임'이라고 해서 한 번만 플레이하는 보드게임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마이 시티> 같은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별로 맵을 밟으면 그걸 스티커를 붙이면서 계속 변형시키는 형식이거든요. 많은 레거시 보드게임이 그런 일회적 형식을 따릅니다. 이 작업도 결국에 맵을 변형시켜서 똑같은 게임 플레이의 반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근데 한편으로는 그게 참여한 플레이어와 저희만 알 수 있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플레이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기도 해요. 이 맵을 보면 '아, 이때 내가 이렇게 해서 맵을 바꿨었지',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런 형식을 따와서 뭔가를 붙이면서 계속 흔적을 남기는 형태로 이 전시를 만들고 싶었는데요. 정말 보드게임을 출시하면 그런 레거시 보드게임의 형태로 출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이경혁 편집장: 이 전시는 굳이 미술과 음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본다면, 음악에 가깝지 않나 싶은데요. 고정된 악보가 있고, 매번 연주마다 애드립과 카덴차가 나오는 거죠. 심지어 플레이리스트는 이미 정해져 있고. 그러니까 이건 그냥 콘서트라고 불러야 되는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아까 듣다가 생각난 질문인데요, 원래 (작가님이) 디지털 개발을 하셨었지요. 첫 작품도 디지털로 시작을 하셨는데, 언-디지털로 넘어온 작품을 택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아까 간단하게는 TRPG에 관심이 생겼다고 해주셨는데요. 실제로 게임을 만들어보면, 같은 게임 제작 방법론이라고는 하지만 어딘가부터는 서로 완전히 다른 부분들도 있잖아요. 상희: 처음에 했던 디지털 작업들은 3D 그래픽을 기반으로 하고, 게임 엔진을 사용해서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잖아요. 이걸 만들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요새 대형 제작사에서 나오는 게임들을 보면, 그래픽이 나날이 발전되는 정도가 차원을 달리 하잖아요. 현실과 차이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지고 정교해지고, 엄청 많은 자본을 투여해서 만들어지는 형식이지요. 그런 그래픽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런 그래픽들이 공허하다는 감각도 있었어요. 거기에 어떤 이야기들이 더 있을 수 있을까 고민도 들었고요. 저희도 게임을 만들다 보면 어떤 그래픽적인 스펙타클에 게임을 조응하게끔 만들어야 하고, 화려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압박이 있기도 한데요. 그런데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의 형식은 아니었어요. 반면, TRPG라는 장르는 뭔가 그래픽적인 게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냥 이야기를 만들면서 플레이하는 형식이라는 점이 재밌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전시를 담당했던 김지연 디자이너와 초기에 같이 작업을 하면서 플레이 테스팅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이 작업에서 저에게 제일 중요했던 건 지도였기 때문에, 저는 초기엔 일종의 게임 월드처럼 지도를 자세한 형식으로 만들고 싶어했어요. 그때 김지연 디자이너가 되게 중요한 지점을 짚어줬던 게, ‘지도는 오히려 훨씬 더 단순해야 된다’는 거였어요. 요소가 많이 없어야 된다. 왜냐하면 TRPG를 플레이할 때 우리가 어떤 시각적인 게 많이 없어야 상상을 더 할 수 있고 그게 더 재미있기 때문에.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김지연 디자이너가 시각화를 해줘서 만든 게 지금 개미굴 같은 이 지도의 형식이에요. 그래서 게임이 어떤 시각적인 요소를 완전히 제외하더라도 참여자의 상상력을 이용한다면 오히려 더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예전에 김지연 디자이너가 토크 때 ‘우리의 최고의 GPU는 인간의 뇌다’라는 얘기를 했었는데요. 결국에 저희가 상상했을 때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고 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시각적인 부분은 오히려 (과거로) 회귀해서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작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 작가님들이 이 작업을 준비하시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뭘까를 생각해 봤는데요. 시간적인 제약도 있고, 공간적인 제약도 있죠. 제가 궁금해지는 건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이러한 전시도 공짜는 아니에요. 이 작업의 물리적 베이스, 다시 말해 소요 비용이나, 펀딩이나 후원이 어떻게 들어왔었는지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상희: 우선, 지금 이 공간은 <팩션>이라는 전시공간이고 이 전시는 여기서 열린 공모를 통해 지원을 받았어요. 그리고 저는 여기서 제일 큰 비용이 뭐였냐 하면 결국 ‘저희’였다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저희의 몸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걸 때우는 방식이었고. 그래서 (전시 공간은) 무조건 집에서 가까워야 되고, 자주 와서 이곳을 계속 보수할 수 있고, 공간을 관리하고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여야 해서 이곳 삼선동에서 전시를 하기로 결정했구요. 비용 같은 경우에는 다 자비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원래 펀딩을 받으려고 했지만, 제가 다른 작업 펀딩을 받고 싶은 게 있어서 그걸 먼저 냈었고. 이 전시는 저희 생각으로는 기획이 대박이기 때문에 무엇을 내도 다 뽑힐 것이라 기대를 했지만(웃음) 제작비를 따오겠다 했는데 못 딴 거죠. 그래서 저희 돈으로 했는데 또 생각보다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지는 않았어요. 저희가 다 직접 만들고 한 게 있어서. 이경혁 편집장: 저는 당연히 이 전시도 다른 곳에서 펀딩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상희: 그렇죠, 그래서 저희는 후속 지원을 고려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희의 기획이 이런 형식을 잘 이해하시는 분들께는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졌겠지만, 한편으로 펀딩을 해 주시는 분들이나 지원 프로그램 심사위원들에게는, 특히 TRPG 자체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래픽이 없는데 대화로 게임을 한다고? 도대체 무슨 소리지?’ 이렇게 난해하게 들리셨을 것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저는 지금처럼 (전시를 통해) 결과가 완전히 다 나왔고 우리 기획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마련된 상태에서, 후속 지원을 요청하거나 이 전시를 완전히 대중적인 퍼블리시를 할 수 있는 포맷으로 지원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해요. 지금은 미술 전시회 형식으로만 하고 있는데, 저희가 추후 하고 싶은 건 아예 ‘게임’으로 출시하는 것이에요. 일례로 여기 붙어 있는 지도도 보드게임 컴포넌트처럼 다 들어 있는 것이고. 이 보드게임 패키지를 사시면 플레이를 어디서든 직접 할 수 있게 되고 그때는 어떤 물리적인 제약도 거의 없어지는 거죠. 엄청 긴 세션을 하셔도 되는 것이고, 각자의 플레이 방식대로 맞춰서 게임하실 수 있게 될 거에요. 다른 한편으로는 기획이 맞는다면 지역에 가서 일종의 팝업으로 해볼 생각도 했었어요. 이 게임이 설치형이잖아요, 그리고 광주라든가 부산에서는 요새 그런 형식의 전시를 많이 하니까. 그렇게 팝업을 통해 지방에서 TRPG 하시는 분들과 협업해서, 계속해서 더 큰 지도를 설치하고 채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성훈: 전시에 와주셨던 큐레이터 중 한 분이 재밌는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이 게임이 한국의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굉장히 지역적인 맥락을 가지고 오려고 하니까, 차라리 실제로 어떤 도시에 가서 그 도시의 랜드마크 등을 반영해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실제 매핑을 통해 굉장히 퍼블릭한 게임으로 만드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물리적 제약이 워낙 지금 크게 느껴지다 보니까 계속 이 게임의 물리적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뭘까를 생각을 하는데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이 펀딩인 것 같네요. 제일 좋은 것은 지자체의 예산을 가져오는 것 같은데요(웃음). 혹시, 미술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상희: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고, 아무래도 완전히 모르는 이야기이다 보니 신선하다는 반응도 많았어요. 게임 디자인이라는 형식이나 게임 메카닉을 갖고 와서 기획한다는 것을 재밌어 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이 전시가 또 주목을 받는 게, 결국에는 지금의 어떤 (예술 관련) 이론이나 담론이 게임과 연관되어 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행위성 같은 개념들은 굉장히 게임적이거든요, 한편으로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당연한 얘기죠. 그런 것들이 미술적인 개념들과 이렇게 영합하면서 시너지가 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최근 들어 확실히 미술계에서 게임을 베이스로 작업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졌다고 느낍니다. 주변에 미술하는 분들이 게임 갖고 작업하시는 걸 보면 좀 어떠세요? 본인의 세대 근처에서, ‘게임’을 미술의 주요 소재로 쓰겠다라는 경향이 좀 있다고 느끼시는지요? 상희: 네, 그런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저희는 PC통신이 당연한 시대였고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가 집에 있는 세대여서 디지털 게임을 많이 하기도 하고. 어떤 정서라든가 감성이 게임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세대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 기존에도 게임을 주제로 하는 작가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어요. ‘게임을 사용한 작업이 예술의 형식이구나’(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 전에 작업했던 사람들은 게임 제작자라는 인식이 좀 강했는데 최근에 ‘아트 게임’이라는 용어도 나오면서, 이게 예술 작업으로 보이게 된 건 최근의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제 (전시가) 거의 마무리가 됐지 않습니까? 전시가 끝나고 나면 지도는 향후에 어떻게 될까요? 상희: 일단 전시가 끝나고 나면 이 지도 자체는 철거를 잘 해서 손상 없이 떼갈 예정이고요. 그 전에 확대 촬영이라고 해서 사진이나 그림을 스캐너에 넣는 것처럼 촬영하는 기법이 있는데, 그걸로 지도 자체의 아카이빙을 잘 하려고 해요. 그때 (경혁님이) 오셨을 때도 이 게임이 되게 오프라인한 경험인데, 이걸 어떻게 디지털로 남길 것이고 이후 사람들이 여기에 어떻게 접근해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해 주신 기억이 나요. 저희도 그래서 이 지도를 웹에 아카이빙하거나 이후에 이 게임을 어떤 식으로 퍼블리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이즈를 보면 기존의 도록이나 영인본처럼 남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은 들어요. 마지막으로, 이 기획 이후에 후속작처럼 기획하고 싶은 게임의 형태는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상희: <언-리얼리스트의 유럽>이라고 11월에 작업하려는 작품이 있어요. 유가가 더 비싸지고 환경세 등이 부과되는 근미래에 일반인이 해외여행을 가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설정이에요.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점점 일어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제는 메타버스로 유럽 여행을 해야 되는 거죠. 그 여행을 실제로 VR 같은 기계, 실제 VR은 아니지만 VR이라 부르는 오락실 기계 같은 것에 앉아서 플레이하게 되는 형식의 게임인데요. 그래픽적 요소가 많이 없고 플레이어가 뭔가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하면서 참여하는 그런 형식의 게임을 상상하고 있어요. 이번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게 최소한의 그래픽을 가지고 (참여자들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어서 후속작에서도 그런 견지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한국 게임비평의 궤적과 방향

    세계 최초의 게임잡지는 1981년 영국에서 발간된 <컴퓨터와 비디오게임(Computer & Video Games: CVG)>이다. 2004년부터 온라인으로만 발행되다, 2015년에는 온라인사이트까지 폐쇄하고, (www.gamesradar.com)로 리디렉션됐다. Gamesradar+는 여전히 기대작이나 신작 리뷰, 업계동향뿐 아니라 알찬 내용의 작품비평을 제공해 주고 있다. 한국에서 게임잡지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90년대 초반이다. 1980년대 PC 보급시기와 맞물려 닌텐도(Nintendo)의 ‘패미콤(Famicom)’을 국산화한 ‘현대 컴보이’가 소개됐다. 이후 세가(Sega)의 16비트 ‘메가 드라이브(Mega Drive)’를 삼성전자가 국내버전으로 바꾼 ‘수퍼 겜보이’가 발매되고, 콘솔게임에 대한 관심 급증이 게임전문잡지의 탄생을 추동했다. < Back 한국 게임비평의 궤적과 방향 01 GG Vol. 21. 6. 10. 1. 세계와 한국 최초의 게임잡지 세계 최초의 게임잡지는 1981년 영국에서 발간된 <컴퓨터와 비디오게임(Computer & Video Games: CVG)>이다. 2004년부터 온라인으로만 발행되다, 2015년에는 온라인사이트까지 폐쇄하고, ( www.gamesradar.com )로 리디렉션됐다. Gamesradar+는 여전히 기대작이나 신작 리뷰, 업계동향뿐 아니라 알찬 내용의 작품비평을 제공해 주고 있다. * 〈CVG〉(왼쪽)와 〈Gamesradar+〉(오른쪽) 한국에서 게임잡지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90년대 초반이다. 1980년대 PC 보급시기와 맞물려 닌텐도(Nintendo)의 ‘패미콤(Famicom)’을 국산화한 ‘현대 컴보이’가 소개됐다. 이후 세가(Sega)의 16비트 ‘메가 드라이브(Mega Drive)’를 삼성전자가 국내버전으로 바꾼 ‘수퍼 겜보이’가 발매되고, 콘솔게임에 대한 관심 급증이 게임전문잡지의 탄생을 추동했다. * <게임월드> 창간호 한국 최초의 게임잡지는 1990년 8월에 발간된 <게임월드>로 알려져 있다(조기현, 2012, 58쪽). 이어 <게임뉴스>(1991), <겜통>(1992), <게임챔프>(1992), <게임정보>(1993) 등이 발간되면서 게임잡지들의 각축전이 시작됐다. 당시 플레이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보는 신작소개나 발매일정, 공략이었지만, 게임잡지는 게임의 긍정적 면모나 문화적 성격을 부각하는 기사를 싣는 등 게임 인식전환에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게임을 분석할 필자를 모집해 그들의 글을 싣거나(1992년 <게임월드>, 1993년 <게임정보> 등), 미국이나 일본 게임저널의 기사를 번역하거나(1994년 <게임채널> 등), 게임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글들을 연재(1996년 박병호의 <경향신문> 연재, 1999년 박상우의 <시네21> 연재 등)하는 등, 유사비평 혹은 비평의 초기형태라 할 수 있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이뤄진 것 역시 특기할 부분이다. 2. 번들 CD에 집중했던 PC게임 잡지들 1990년대 중반부터 PC게임이 급격히 성장함에 따라 대부분의 게임잡지들도 PC게임에 집중했다. 당시 잡지들의 대표적 특징으로 번들(bundle) CD 제공을 들 수 있다. 초기 번들 CD는 시류지난 게임의 재고털이를 위해 제공된 것으로, 플레이어들에게 호응을 얻고 산업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게임잡지의 판매부수를 결정하는 주된 변수로 자리매김했다. 경쟁심화 속에서 잡지사들은 고전 명작게임 위주로 제공하던 번들 CD에 조금씩 최신작을 담게 됐다. 1980년대 게임잡지들이 차별화된 게임정보와 공략을 내세워 고정 독자층을 확보·유지했다면, 1990년대 게임잡지들은 번들 CD로 독자층을 나눠 먹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신작을 유치하기 위한 잡지사들의 과도한 경쟁은 번들 CD 구매비용의 증가로 이어졌고, 이는 잡지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이후 PC게임 복사가 확산되고, 네트워크 환경발달과 함께 온라인게임이 태동하면서 PC게임 시장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동시에 게임잡지에도 시련이 찾아왔다(김득렬, 2012. 1. 4.). 3. 종이잡지에서 웹진으로 종이잡지에서 웹진으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약 10년간 이어온 게임잡지 역사는 2000년대 들어 비디오게임 및 PC게임 산업과 함께 쇠퇴했다. 게임잡지는 힘을 잃어 갔지만 게임 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게 되는데, 온라인게임의 인기가 그것이다. 게임잡지들도 이에 편승해 온라인 기반 게임관련 잡지들로 변모해 갔다. 그러나 전문적인 게임비평보다는 상대적으로 다소 가벼운 비평, 게임 자체와 공략에 대한 정보제공, 부록 중심이었던 게임잡지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자리를 내주면서 대부분 폐간됐다. 인터넷의 발달은 기존 출판잡지에 좌절과 시련을 부여했지만, 플레이어들에게는 오히려 정보 공유와 전달을 가속화하는 기반으로 작용했다. 물론 플레이어들이 게임정보를 걸러내 원하는 것만 소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보다 전문적인 접근에 대한 수요도 모두 채울 수는 없었다. 이는 방대한 게임정보를 체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채널을 찾는 계기로 작용했고, 게임웹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김득렬, 2012. 1. 4). 2021년 6월 기준 오프라인을 통해 발간되고 있는 게임전문지로는 <게이머즈(Gamer’z)>가 유일하다. 물론 온라인상으로는 <인벤>, <게임메카>, <디스이즈게임>, <포모스>, <게임조선>, <게임포커스>, <데일리게임>, <게임어바웃>, <게임동아>, <경향게임스>, <더게임스> 등 많은 게임웹진이 존재한다. 하지만 <게이머즈>뿐 아니라 다른 웹진들도 여전히 전문적인 비평보다는 리뷰와 공략 중심의 정보제공에 치중하고 있다. 4. 게임비평 확산을 위한 여러 시도들 오히려 게임의 안과 밖을 보다 꼼꼼히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게임전문지가 아닌 다른 공간을 통해 더 활발히 이뤄져 왔다. 물론 그조차도 전문성과 안정성을 가진 것이라 보긴 어렵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런 시도가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문, 영화 잡지나 기타 대중문화 잡지, 컴퓨터 잡지 등이 게임비평에 종종 지면을 할애하긴 했지만, 단편적인 기획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민간재단인 게임문화재단에서 2012년 3월부터 월간지 <게임컬처(Game Culture)>를 발간, 업계나 학계 등에서 활동하는 편집진들을 활용해 양질의 게임 관련기사와 비평을 게재했으나, 2012년 12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 수순을 밟았다. 한편, 게임비평의 궤적을 살핌에 있어 ‘게임비평공모전’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게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관심을 증대시켜 문화적·학술적 가치를 제고한다는 취지 아래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 NHN(주), 더게임스가 공동 주관하여 2008년부터 ‘게임비평상’을 제정했다. 전경란(2013)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게임비평공모전에서 가작 이상의 상을 받은 30편의 비평들을 분석, 비평들이 게임의 다양한 측면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 영역 및 접근방식은 제한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한 바 있다. 게임의 내용과 형식적 특징, 즉 게임 플레이에서부터 게임 구조, 게임 세계 등을 중심으로 고루 비평을 행한 반면, 기존의 문화 장르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과 방법론을 적용한 탓에 제반 게임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공모전은 아마추어 게임비평가들을 발굴하고 게임비평 저변을 확대한 국내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2012년 제5회를 끝으로 더 이상 개최되지 않고 있다. * 제1회 게임 비평상 공모전 포스터 비평가들의 단행본 작업도 의미가 적지 않다. 박상우의 <게임, 세계를 혁명하는 힘(2000)>과 <게임이 말을 걸어올 때(2005)>, 이상우의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2012)>, 이경혁의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들의 <81년생 마리오: 추억의 게임은 어떻게 세상물정의 공부가 되었나?(2017)>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경유해 게임이 우리 일상과 사회·문화에서 갖는 의미를 비교적 새롭게, 다각도로 포착했다는 장점을 갖는다. 하지만 상호참조 없이 본격 비평서임을 자처하며 게임인문학에 대한 다분히 기초적인 논의(특히, 내러톨로지나 루돌로지와의 연관 속에서)를 유사하게 반복하고 있다는 점, 이후 보다 발전적이면서 지속적인 작업으로 연결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 (왼쪽부터) 박상우, 이상우, 이경혁, 인문합협동조합의 게임비평서 현재진행형이라 아직 그 성과를 말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게임비평에 대한 주목할 만한 시도들이 있다. 이경혁은 2014년 11월 미디어 비평지 <미디어스>에 게임비평 ‘Play the Game’의 연재를 시작으로, 여러 온라인신문, 게임사 블로그, 잡지 그리고 <국방일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평작업을 하고 있다. 개별 게임 텍스트에서부터 한국 게임문화의 역사적 유물로서의 오락실과 e스포츠(e-Sports), 게임산업, 플레이/어, 게임을 둘러싼 부정적인 담론, 그리고 게임 텍스트에 담긴 사회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논의범위 또한 넓다. 2021년 6월 기준 비슷하게 활동하는 비평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가 보일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5. 게임비평의 문제점 한국 게임비평의 외재적 문제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게임에 대한 강한 규제와 부정적 담론 확산으로 산업이 위축됨에 따라 게임비평이 활성화될 수 있는 토대도 척박해졌다. 강한 규제와 부정담론은 게임을 ‘나쁜 것’,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든다. 둘째, 게임전문지가 다수 존재함에도 전문적인 비평을 행하고 있지 못하다. 해외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영국의 ( www.pcgamer.com )나 미국의 <컴퓨터 게이밍 월드(Computer Gaming World)>( computergamingworld.com )과 같은 게임전문지는 단순한 리뷰나 공략보다 심층적인 정보나 비평을 제공한다. 게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이뤄지는 웹진 <코타쿠(Kotaku, kotaku.com )>, 개발자와 연구자들이 게임 제작취지와 게임에 대한 비평, 연구결과 등을 게재하는 <가마수트라(gamasutra)>( www.gamasutra.com )등도 전문적인 게임비평공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물론 국내외의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플레이어의 성향, 게임에 대한 비평토양 등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게임전문지들이 보이는 리뷰나 공략에의 지나친 집중은 전문지들이 주된 광고주인 게임 퍼블리셔나 게임사들의 홍보매체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만든다. 내재적 측면의 문제점으로는 게임만이 가진 텍스트적 특징으로 인한 비평의 어려움을 꼽을 수 있다. 기호와 서사로 구성되기 때문에 다른 문화장르와 유사한 것 같지만, 게임은 독특한 향유구조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향유구조가 텍스트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게임은 사전에 모두 제작된 상태로 향유자에게 제공되는 다른 문화장르와 달리 플레이어가 그것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불완전한 텍스트인 채로 남는다. 플레이어는 불완전한 게임 텍스트에 참여해 게임과 상호작용하는 주체이며, 플레이어의 참여는 곧 완전한 텍스트로서의 게임을 가능하게 만드는 필요조건이다. 때문에 게임에서는 창작주체와 수용주체의 구분이 애매해진다. 게임 텍스트는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게임이 단순히 알고리즘의 구현물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스토리 및 허구적 상황을 경험하게 하는 서사 환경을 지님을 의미한다(강신규, 2016). 따라서 게임비평은 텍스트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경험이 제공되는지, 경험이 이뤄지고 나면 다음 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까지를 논의 범위에 포함(김연희, 2012. 12. 12)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은 플랫폼별·장르별로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아 그것을 비평하는 데 하나로 모으기 어려운 다양한 관점과 방법들이 요구된다. 다른 문화장르들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면 게임은 ‘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전문가나 수준급의 플레이어라 해도 접해 보지 않은 게임을 비평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게임은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지식을 가진 향유자들이 너무 많은 문화 장르이기도 하다. 게임을 하려면 대체로 같이 즐길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크게는 장르나 플랫폼, 작게는 개별 타이틀에 따라 향유 공동체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경험 제공’이라는 특성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정보를 공유하고 평가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 요컨대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다른 사람의 플레이나 관련 정보를 ‘접하고’ 그것을 다시 게임‘하는’ 데 활용한다(강신규·채희상, 2011). 직접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정보와 경험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 정보와 경험 바깥에 위치하거나 안으로 깊이 들어와 있지 못한 게임비평 주체가 그것을 온전히 읽어 내기 어려운 이유다. 6. 게임비평의 조건들 ‘게임비평’이란 게임의 가치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말한다. 이 때 ‘비평’은 기존의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등의 비평에서 사용하는 개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각 비평이 그런 것처럼, 게임비평 역시 다른 비평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비평의 대상과 조건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때문에 게임비평의 조건을 살피기 위해서는 비평 일반조건과 게임의 변별적 특성을 반영한 조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 비평의 조건은 고유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비평대상의 형질변화와 비평에 요구되는 역할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는 것이다. 비평하는 사람에 따라 비평조건에 대한 인식이 다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그 조건에 대해 최소한의 합의 가능한 지점들을 모색하는 일은 가능할 듯하다. 1) 비평의 일반조건 기본적으로 비평은 비평주체(비평가), 비평대상(넓은 의미의 작품), 창작주체(제작자/창작자/작가), 수용주체(향유자/수용자/독자)라는 네 요소를 필요로 한다. 창작주체에게는 창작에 피드백을 주는 반응으로 작용하고, 수용주체에는 수용 선택여부나 수용방법 등을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비평이다. 비평주체는 비평을 통해 비평대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인해볼 기회를 얻는다. 비평주체/대상, 창작/수용주체가 비평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들이라면, 비평의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비평은 감상문 수준을 넘어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둘째, 비평가에 대한 공인절차고 요구된다. 셋째, 전문학술지, 일간지, 잡지, 웹진 등 비평이 발표될 매체가 필요하다. 매체는 비평활동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신뢰할만한 것이어야 한다(김봉석·박정숙·박기수·한상정, 2015. 5. 8). 세 조건은 각각 비평의 전문성, 안정성, 지속성과 관련된다. 이를 종합했을 때, 비평이란 ‘비평주체가 신뢰할 만한 매체를 발표공간으로 삼아, 비평대상과 관련된 사안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한 뒤 평가를 내리는 전문적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무엇보다 비평의 힘은, 대상이 지닌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열어주는 수준을 넘어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닌 사회적 함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나가는 과정에서 나온다. 게임비평도 마찬가지다. 게임이 주는 단순한 즐거움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과 게임이 보일 수 있는 비전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그것을 통해 일상의 변화와 시대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비평은 비평대상의 성취를 읽어내고, 그런 읽기를 통한 생생한 인식을 사회로 확산하는 작업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전제들이 요구된다. 먼저, 게임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토론을 위한 비판적 풍토를 조성한다. 다음으로, 게임과 게임비평을 지지하고 체계화한다. 마지막으로, 개인 혹은 사회의 게임 향유경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비판적 도구·해석·평가를 제공한다. 2) 변화의 고리와 게임비평 하지만 비평의 일반조건은 게임비평이 당면한 상황과는 꽤 거리가 있다. 특히, 한국에서 게임비평은 느슨하게 형성돼 있고, 기존의 예술·문화장르에서처럼 고정된 형태로 제도화돼 있는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평은 대상이 무엇이 됐든 본질적으로 유연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게임과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게임비평이라면, 그것은 게임의 변화, 그리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출렁거리는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게임 개념도 계속 재구성된다. 메타버스(metaverse) 시대 게임은 온라인게임 태동 이전 게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 예술이나 문화장르에 비해 접근성이 높고 폐쇄성이 강한 게임문화의 경우, 전문가 집단의 체계적인 비평이 형성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개별 게임의 향유가 향유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된다는 점도 게임비평의 제도적 형성을 어렵게 하는 큰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게임비평은 없는 게 아니라 어쩌면 너무 많은 곳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도화된 비평이 미미할 뿐, 제도 바깥의 비평열기는 그야말로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전통적 관점에서 제도화된 비평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게임비평은 그야말로 ‘넘쳐난다’. 블로그,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소셜 미디어 등 온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게임비평을 자처하는 작업들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과 디바이스를 통해 게임 향유경험이 축적되고 그로 인한 일정 수준의 커뮤니티가 형성됨으로써 플레이어들은 이제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지식을 갖게 됐다. 이는 플레이어들을 준 비평가로 만드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플레이어들을 골고루 만족시킬 만한 고유의 비평체계가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적극적인 향유=비평을 통해 비평의 저변이 넓어졌다거나 비평이 민주화됐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상황은 게임비평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그 정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기존 예술·문화 장르의 비평 장(場)이 이미 제도화된 전문적 비평영역과 온라인을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된 아마추어 비평영역 사이의 갈등과 연대가 교차하는 역동적 공간이 되고 있다면, 제도화된 비평영역의 부재로 인해 가뜩이나 분명하지 않았던 게임비평의 정체는 더욱 불분명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게임비평의 조건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연결된다. 기존의 비평개념으로는 작금의 현상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전문적인 비평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게임담론의 생산주체가 되는 일, 그리고 게임발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능동성을 발휘하는 일로 기능할 수 있을까? 제도화돼 있지 않다면 그 자체로 가능성이 될 수는 없을까? 비평의 민주화를 통해 제도권 내 비평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낯선 상상력을 발굴할 여지가 열리게 된 것은 아닐까? 이 질문들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도화되지 않은 비평의 장에서 쏟아지는, 이른바 ‘중심 없는 주변부’의 비평들을 규정하는 조건이 새롭게 구성돼야 한다. 비평의 장 자체를 흔드는 변화 속에서 비평과 비평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보다, 새로운 조건 마련을 통해 비평의 외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게임 향유자는 수동적으로 비평을 소비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온라인 공간을 통해 능동적으로 비평을 생산·배포·공유하는 새로운 비평주체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비평을 행하는 온라인 공간 역시 해당 공간에 들어오는 비평독자들이 비평을 읽고 소감을 밝히는 새로운 비평의 장이자 역동적인 비평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남은 것은 그들의 비평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비평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냐의 문제다. 하지만 애초에 ‘고급/좋은’ 비평과 ‘저급/나쁜’ 비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적 비평이 추구해온 것처럼 고급독자만을 위한 전문적 의미의 비평만이 비평은 아니다. 게임의 특성, 그리고 그 향유자를 감안한다면 전통적 비평개념의 수정 혹은 확장은 필연적이다. 그 명확한 기준과 범위를 제시하는 일은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질을 지니며, 비평주체와 독자 간 갈등과 연대 속에서 성립한다. 물론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비평 고유의 목적과 역할은 지켜져야만 한다. 그것이 아니면 비평이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강신규, 2016). 7. 게임비평이 나아갈 방향 그렇다면, 게임비평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 첫째, 독창적인 이론과 방법론의 발굴이다. 게임비평만을 위한 이론과 방법론을 찾는 일이 쉽지 않음에도, 게임이 처한 현실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 맥락에 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비평이론과 방법론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비평대상이 다르면 비평의 언어도 달라져야 한다. 게임이 가진 고유속성에의 천착을 통하 스스로의 정체와 역할을 구성했을 때, 비로소 게임비평의 변별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 비평, 마르크스주의 비평, 여성주의 비평, 신비평, 독자반응 비평, 구조주의 비평, 해체 비평, 신역사주의와 문화 비평, 레즈비언·게이·퀴어 비평 등 텍스트를 풍성하고도 심도 깊게 살필 수 있는 기존의 비평이론과 방법론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게임의 미학 안에서 통합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게임 플랫폼이나 장르에 따라 비평을 세분화·전문화함으로써 전체 비평의 틀을 다지는 일도 고려해볼 만하다. 매체전환(media transformation)과 미디어믹스(media mix)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비평의 양식이나 형식을 발굴하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 둘째, 비평의 역할 재/정립이다. 흔히 발견되는 비평의 자의식 부재, 해설이나 주례사 비평으로의 쏠림은 비평의 역할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데 기인한다. 비평은 비평대상을 흡수하거나 투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시선과 함께 배출하거나 반사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평의 주된 역할은 ‘먹음’이 아니라 ‘되먹임’이다. 비평주체와 대상 사이에 이뤄지는 되먹임의 반복을 통해 비평을 둘러싼 주체가 공진화(coevolution)하는 것이 비평의 효과다. 하지만 게임비평의 역할은 여기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특정 텍스트에 대한 치밀한 해독에서, 장 내 주요 행위자들이 직면한 문제들, 그리고 해당 장에 제기되는 도전과 응전의 방향성들을 보다 긴 호흡으로 치밀하게 조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향후 게임비평이 창작주체와 수용주체가 형성하는 문화의 변화를 탐구하는 동시에, 기민하게 변화하는 텍스트들의 정립상과 사회적 활용, 그리고 산업으로서 게임이 당면하고 있는 변화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구체적인 전망과 대비책을 마련하고, 이를 두껍게 읽어내는 역량까지 배양해야 함을 시사한다. 비평이 이차적인 글쓰기로서의 지위에 만족하는 한, 비평이 비평대상을 이끌어가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게임비평은 텍스트를 넘어 텍스트화되지 않은 현실에까지도(물론 게임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게임비평의 역할은, 비평으로서 타개해나가야 할 문제와 게임적 사회와 삶에 대한 반성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그것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는 것이다. 셋째, 제도권/비제도권을 막론하고 이제 비평논의에 대해 있어 요구되는 것은 ‘총체적’ 통합의 불가능성 혹은 불필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비평과 비평 아닌 것, 비평공간과 비평공간 아닌 곳, 비평가와 비평가 아닌 사람 사이를 구분하는 선은 수명을 다했다. 전문가 수준의 향유자, 전문가에게 없는 경험치를 지닌 향유자, 어디서나 격전이 벌어지는 비평공간, 기존의 정형화된 비평을 넘어서는 비평이 넘쳐난다. 더 이상 서로를 구분하는 선 자체가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임비평이 나아갈 방향 논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돼야 한다(강신규, 2021). 하지만 문제는 게임비평에 잘 된 비평과 그렇지 못한 비평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게임비평을 할 줄 모른다는 말은, 더 정확히 지적하자면 잘된 비평을 쓸 줄 모른다는 말이다. 비평을 할 바에야 잘 된 비평을 쓰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처음부터 그런 비평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처음부터 잘 된 비평을 쓰려고 하는 욕망은 내내 문제가 된다. 하나의 창조적 작업임에도 창조하는 즐거움보다 결과만 탐하게 되어, 남의 것을 모방하게 되고, 얻어들은 지식을 체계없이 나열하게 되고, 허황되게 꾸미게 되는 것이다. 나만의 게임경험과 그 경험과정에서 얻게 된 지식들이 잘된 비평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비평이 잘된 비평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전통적인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먼저 나름의 체계와 전문성을 갖춰야만 한다. 다른 비평에 대한 필요이상의 냉소함도 지양할 필요가 있다. 비평의 총체적 통합이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비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어디서든, 그리고 그게 누구든) 타인의 비평을 주의 깊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관점이 지닌 타당성을 물으면서, 타인과 자신의 비평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려는 노력이다. * 이 글은 저자의 저서 <서브컬처 비평(2021)> 내용을 중심으로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참고문헌 강신규 (2016). 하위문화 비평의 궤적과 방향: 만화·애니메이션·게임비평을 중심으로. <문화과학>, 85호, 128~158. 강신규 (2021). <서브컬처 비평>. 커뮤니케이션북스. 강신규·채희상 (2011). 문화적 수행으로서의 e스포츠 팬덤에 관한 연구: 팬 심층인터뷰 분석을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 & 문화>, 18호, 5~39쪽. 김득렬 (2012. 1. 4). 게임잡지 연대기 2부–게임잡지 몰락에서 웹진탄생까지. <게임메카>. URL: http://www.gamemeca.com/feature/view.php?gid=125137 김봉석·박정숙·박기수·한상정 (2015. 5. 8). [좌담회] 우리 만화 비평을 말한다: 만화 담론의 현재와 비평의 길찾기. <크리틱엠>. URL: http://criticm.com/?p=734 김연희 (2012. 12. 12). 게임의 러브레터, 게임비평. <사이언스타임즈>. URL: http://www.sciencetimes.co.kr/?p=110623&post_type=news&news-tag= 박상우 (2000). <게임, 세계를 혁명하는 힘>. 씨엔씨미디어. 박상우 (2005). <게임이 말을 걸어올 때>. 루비박스. 이경혁 (2016).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로고폴리스. 이상우 (2012). <게임, 게이머, 플레이: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 자음과모음. 인문학협동조합 (2017). <81년생 마리오: 추억의 게임은 어떻게 세상물정의 공부가 되었나?>. 요다. 조기현 (2012). 해외 게임기의 한국 상륙. 윤형섭·강지웅·박수영·오영욱·전홍식·조기현. <한국 게임의 역사> (52∼63쪽). 북코리아. 전경란 (2013). 게임비평에 대한 연구: 게임비평 텍스트의 메타분석적 접근.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13권 3호, 19~30쪽. <미디어스> ‘Play the Game’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431) (computergamingworld.com) (www.gamasutra.com) (www.gamesradar.com) (kotaku.com) (www.pcgamer.com)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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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발자, 문화, 그리고 현금: 서구 AAA 게임계의 세 가지 경향

    AAA게임은 예술, 산업, 문화가 결합되는 영역으로서 지속되어왔다. 게임 연구는 그러한 요소들이 - 진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 과거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대 차기작 출시에 대한 기대 및 차기 하이프 사이클에 대한 예측 그리고 다가올 시상식에 대한 흥분 속에서, AAA게임 개발이 보다 높은 예술적 수준의 미래를 향해 최고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높이에 도달하기까지 훨씬 큰 극단의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게임 언론계나 학계의 간섭, 그리고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 관련 운동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적법성, 노동자와 플레이어에 대한 착취 등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Back 개발자, 문화, 그리고 현금: 서구 AAA 게임계의 세 가지 경향 10 GG Vol. 23. 2. 10. 2022년 12월 8일 할리우드 스타일로 “최고의 게임을 기념하는”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가 9번째로 개최되었고, 1억 3백만명의 시청자들이 시상식을 생방송 스트리밍으로 지켜보았다. 1) 오스카 시상식과 비슷하게, 이 행사는 크고 작은 게임들에 대한 업계 인식의 융합이자, 게임의 예술적 또는 기술적 장점에 대한 검증이자, 게임 마케팅의 방향성이 드러나는 문화적 공간의 지표라 할 수 있다. 작은 규모의 게임도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더 게임 어워드는 AAA마케팅 및 최신 블록버스터 게임들에 대한 문화적 장치(cultural apparatus)다. 실제로 더 게임 어워드는 축하공연이나 수락 연설같은 것을 없앤 속사포 스타일로 시상식을 진행한다. 이는 트레일러나 퍼스트룩, 게임플레이 프리미어 등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인데, 주로 정교한 음악 프레젠테이션이나 리드인(lead-ins) 등이 포함된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메탈기어 솔리드(Konami)〉와 〈데스 스트랜딩(Kojima Productions, 2019)〉 등으로 유명한 슈퍼스타 개발자 히데오 코지마(Hideo Kojima)가 등장하기도 했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Sony, 2022)〉나 GOTY 수상작 〈엘든링(FromSoftware, 2022)〉 같은 거대 AAA 작품들이 스크린에 나타나는 비중에 있어 절대적이었던 가운데 그보다 소규모인 게임들 또한 잊혀졌던 것은 아니었으나, 더 게임 어워드는 주로 큰 예산으로 만들어진 주류 게임들을 축하하고 홍보하는 행사였다. 행사의 밤은 이제는 유명해진 어느 젊은 청년의 히데타카 미야자키(Hidetaka Miyazaki) 수락 연설 난입 사건과 함께 종료됐는데, 이는 우리가 주류 게임 문화로서 아무리 격식을 갖춘다 할지라도 그 수면 아래에는 밈-주도의 사회적 일탈이 끓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더 게임 어워드에서 드러난 사회경제학적 권력의 융합은 서구의 AAA게임에 대한 연구에서 나타나는 3가지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첫째는 거대 예산 게임의 창의적 영역과 예술적 장점이고, 두번째는 그러한 거대 규모 프로젝트를 제작하고 출시하는 개발사와 노동 환경과 관련된 문화적 영역으로, 이는 게이머 커뮤니티에서 발생하고 있는 게임 문화와 엮어있다. 셋째는 프리미엄 엔터테인먼트 경험으로서 게임을 마케팅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수익 요소에 관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AAA게임의 맥락에서 이와 같은 경향을 둘러싸고 생성되고 있는 담론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게임의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장점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게임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위해성과 혜택에 대해 미디어와 학계에서 엄청난 관심을 쏟았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아동과 청소년에 대해 폭력적인 게임 콘텐츠가 미칠 영향에 큰 관심이 모였다. 2) 이 시기 여러 게이머들과 일부 연구자들이 어렴풋이나마 게임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 이해하고 있긴 했지만, 게임을 수준 낮은 미디어 형식으로 보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펠런 파커(Felan Parker)의 언급대로, 게임 및 게임이 지닌 예술적 특성에 대한 논의는 미국 영화비평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의 악명 높은,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자주 회자되는 “게임은 절대로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언급 이후 2005-2010년 사이에 등장했다. 3) 이와 같은 언급으로 촉발된 논쟁에 언론과 학계의 관심이 모아진 가운데, 그와 같은 ‘비-예술’의 전제로부터 게임이 벗어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감독들이 그러하듯, 게임 디자이너를 자신이 만든 게임에 뚜렷한 예술적 스타일을 남길 수 있는 작가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4 ) 그리고 이러한 경향을 몇달 전 게임 어워드에서 나타났던 핵심 게임 감독들의 높아진 격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AAA게임은 높은 가시성 그리고 생산 및 마케팅을 위한 엄청난 예산 덕에 새로운 콘솔을 위한 플래그십 게임으로서의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AAA게임은 또한 게임 디자인에 있어 기술적 한계를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2010년 초반 인디게임 붐이 일기 전까지 예술적 게임 담론을 점유해왔다. 브랜든 커우(Brendan Keogh)는 AAA게임 개발사들이 수익 창출을 중시하는 거대 퍼블리셔 밑에서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게임들이 관습적이거나 안정지향적으로 전통적인 AAA게임의 틀에 맞춰 개발되어왔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5) 그럼에도 비디오게임 작가의 전설은 지속되었는데, 게임담론장에서 2010년대에 비해 ‘인디’게임들의 비중이 훨씬 적어진 가운데, 히데오 코지마의 〈데스 스트랜딩(Kojima Productions, 2019)〉 같은 게임은 관습에서 탈피한 게임플레이와 미학을 만들어냈다. AAA게임들은 부분적으로 ‘인디’적인 디자인 및 미학의 요소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왔다. 6) 물론 매년 출시되는 스포츠 시리즈 게임이나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Acitivision)〉 같은 FPS 프랜차이즈처럼 관습을 무시하지 않는 친숙한 AAA게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게임 시상식- 나아가 보다 확장된 게임 저널리즘 - 은 기존하는 친숙한 장르적 관습을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살짝 새롭거나 도전적인 것을 제공함으로써 자신들이 작가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주는 인디적인 감성을 살짝 가미한 형태의 AAA게임들을 칭송한다. 게이머와 업계는 그와 같은 방식을 지지하는데, 그 이유는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논쟁이 여전히 대중문화계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접근이 게임플레이를 하나의 가치있는 활동으로 보이게 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판매율을 높이고 소비자 기반을 넓힐 수 있도록 하는 게임의 숨겨진 문화적 속성을 승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AAA개발사 내부의 작업 방식은 안타깝게도 게임 작가에 대한 강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는데, 학계에서 이 문제를 다룬 바 있다. AAA 노동 문화에 있어 과도한 업무량과 젠더적으로 편향된 작업환경은 눈에 띄는 특징이다. 게임업계의 과도한 업무량에 대한 초기 연구로는 2006년 다이어-위데포드와 드 퓨터(Nick Dyer-Witheford and Greig de Peuter)의 작업을 들 수 있는데, 노동 착취, 번아웃, 이직률, 그리고 이 극단적인 노동 문화 내 노조 결성을 향한 투쟁 등을 다뤘다 7) . 12년 후인 2018년에는 코타쿠의 전 작가 제이슨 슈라이어(Jason Schreier)가 당시 〈레드 데드 리뎀션 II(Red Dead Redemption II, 2018)〉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락스타 게임즈(Rockstar Games)의 ‘크런치 문화’를 폭로했다. 8 ) 근 20여년의 세월동안 거대 예산 게임 개발분야의 문제로 알려져 왔음에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크런치 모드는 여러 분석과 연구의 핵심적인 주제로서 다뤄지고 있는데, 특히 학계에서는 노조 결성 및 노동자 권리와 관련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9) 이와 관련해서 개발사 내 젠더 격차 문제가 있다. 2013년 게임 디벨로퍼 매거진(Game Developer’s Magazine)이 실시했던 설문조사를 인용한 연구에서, 드 윈터와 코큐렉은(Jennifer deWinter and Carly Kocurek)은 “급여에 있어 젠더 격차는 (96%가 남성인) 프로그래밍과 엔지니어링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게임 관련 고용 부문에서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10) 그 이유가 여성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여성이 게임업계에 진출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짐작과는 반대로, 연구자들은 여성들이 게임 문화의 여성혐오적이고 해로운 요소의 영향을 받은 개발사 내 업무 문화에 의해 훨씬 더 소외받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보다 빨리 번아웃하게 되고 업계를 떠나게 됨을 밝혀냈다. 11) 게임문화를 다룬 여러 연구들은 AAA게임들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처럼 게임문화와 작업환경 간에 무한으로 반복되는 고리 때문이다. 게임문화나 개발사 내 업무 환경에 있어 그 어떠한 변화라도 게임문화 내 노동 공간과 놀이 공간 사이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중요하다. 최근 AAA게임을 비롯한 게임 전반에 걸쳐 많은 관심이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화에 쏠렸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소액결제, 확률형 아이템, 배틀 패스가 핵심이었다. 이러한 경향이 모바일 및 그리고 프리-투-플레이(free-to-play) 게임과 연관되는 것이긴 하지만, AAA게임의 정의가 규정되어있는 것은 아니므로 프리-투-플레이 모델의 카테고리에 AAA 게임이 배제되어야 할 본질적인 의미는 없다. 배틀패스를 다뤘던 다니엘 조세프(Daniel Joseph)의 연구가 보여주었듯, 〈에이펙스 레전드(Apex Legends)〉, 〈도타2(DOTA 2)〉, 〈포트나이트(Fortnite)〉 등 거대 개발사에서 만든 대작들도 프리-투-모델이나 소액결제를 주요 수익화 모델로서 활용할 수 있다. 12) 조세프가 주목한 것은, 게임사들이 소비자로부터 효과적으로 돈을 뽑아내기 위해 그러한 모델을 통해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방식으로 게임을 쇼핑 플랫폼으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3) 게이머들로부터 보다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게임 서비스나 시즌제 모델이 크게 강조되면서 소액결제 방식이 AAA게임들의 제작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모델들이 얼마나 약탈적으로 진화할 지 크게 우려 된다. 이는 단지 착취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익화 방식이 AAA게임의 제작 및 소비 방식을 변질시킨다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은 또한 AAA 게임 개발에 있어 노동 문제에 더해 새로운 형태의 크런치 모드를 만들고 있다. 조세프가 지적하듯 〈포트나이트〉 개발자들은 “...(중략)...게임의 엄청난 성공 및 다음 시즌과 배틀 패스를 끊임없이 개발해야 하는 문제로 인해 주당 100시간에 이르는 노동 시간을 보고”하고 있다. 14) AAA게임은 예술, 산업, 문화가 결합되는 영역으로서 지속되어왔다. 게임 연구는 그러한 요소들이 - 진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 과거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대 차기작 출시에 대한 기대 및 차기 하이프 사이클에 대한 예측 그리고 다가올 시상식에 대한 흥분 속에서, AAA게임 개발이 보다 높은 예술적 수준의 미래를 향해 최고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높이에 도달하기까지 훨씬 큰 극단의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게임 언론계나 학계의 간섭, 그리고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 관련 운동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적법성, 노동자와 플레이어에 대한 착취 등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메이저 게임 개발사들이 예술적 인정과 명성 그리고 전능한 달러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속에서, AAA 영역에 대한 학계의 작업은 계속해서 해결되지 못한 채 존속하는 문제들을 비출 것이다. 참고문헌 1. Zheng, Jenny. “The Game Awards 2022 Received Over 103 Million Views, Sets New Viewership Record.” Gamespot. December 16th, 2022. 2. Ivory, James D., “A Brief History of Video Games.” The Video Game Debate: Unraveling the Physical, Social, and Psychological Effects of Digital Games. Edited by Rachel Kowert and Thorsten Quandt.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6, 16-17. 3. Parker, Felan. “Roger Ebert and the Games-as-Art Debate.” Cinema Journal 57, no 3 (2018):77-79. 4. Ibid., 95-96. 5. Keogh, Brendan. “Between Triple-A, Indie, Casual, and DIY: Sites of Tension in the Videogames Cultural Industries.” The Routledge Companion to the Cultural Industries. Edited by Kate Oakley and Justin O’Connor.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5. 153-154. 6. Lipkin, Nadav. “Examining Indie’s Independence: The Meaning of ‘Indie’ Games, The Politics of Production, and Mainstream Co-optation.” Loading… The Journal of the Canadian Game Studies Association 7, no 11 (2012): 8-15. 7. Dyer-Witheford, Nick, and de Peuter, Greig. “‘EA Spouse’ and the Crisis of Video Game Labour: Enjoyment, Exclusion, Exploitation, Exodus.” Canadian Journal of Communication 31, no 3 (2006): 599-617. 8. Schreier, Jason. “Inside Rockstar Games’ Culture of Crunch. Kotaku. October 23rd, 2018. 9. Cote, Amanda, and Harris, Brandon, C. “‘Weekends Became Something Other People Did’: Understanding and Intervening in the Habitus of Video Game Crunch.” Convergence: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New Research into Media Technologies 27, no.1 (2021): 161-176. 10. deWinter, Jennifer and Kocurek, Carly. “” Gaming Representation: Race, Gender, and Sexuality in Video Games. Edited by Jennifer Malkowski and Treaandrea M. Russworm.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7, 65. 11. Ibid. 12. Joseph, Daniel. “Battle Pass Capitalism.” Journal of Consumer Culture 21, 1 (2021):68-83. 13. Ibid., 81. 14. Ibid.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마크 라제네스, Marc Lajeunesse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온라인 게임의 독성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공평하고 즐거운 놀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게임 내에서 더 많은 긍정적인 조건을 들어내기 위한 독성 현상에의 이해를 추구한다. 스팀 마켓플레이스와 DOTA 2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고 곧 출시될 '트위치 마이크로스트리밍'의 공동 저자이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소수자들의 게임에 대한 세 가지 소고

    디지털게임은 한때 ‘소수자’들의 매체이기도 했다. 소수자라는 개념이 단순히 적은 숫자를 가진 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게임 초창기에 한국에서 게이머는 소수자에 가까웠다. 전자오락실은 불량한 이들이나 다니는 곳으로 낙인찍혔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엄연한 자영업장인 오락실에 학교 교사들이 들이닥쳐 ‘손님’인 학생 게이머들을 강제로 끌고나가는 영업방해 행위도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연일 불량한 오락실과 게임 때문에 망가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쏟아냈고(이 부분은 아직도 유지되는 바 또한 있다) 게임은 눈치보면서 해야 하는, 말그대로 여가오락 문화 부문에서의 소수자 포지션이었다. < Back 소수자들의 게임에 대한 세 가지 소고 04 GG Vol. 22. 2. 10. 디지털게임은 한때 ‘소수자’들의 매체이기도 했다. 소수자라는 개념이 단순히 적은 숫자를 가진 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지털게임 초창기에 한국에서 게이머는 소수자에 가까웠다. 전자오락실은 불량한 이들이나 다니는 곳으로 낙인찍혔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엄연한 자영업장인 오락실에 학교 교사들이 들이닥쳐 ‘손님’인 학생 게이머들을 강제로 끌고나가는 영업방해 행위도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연일 불량한 오락실과 게임 때문에 망가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쏟아냈고(이 부분은 아직도 유지되는 바 또한 있다) 게임은 눈치보면서 해야 하는, 말그대로 여가오락 문화 부문에서의 소수자 포지션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을 소수자들의 매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콘솔게임 같은, 한국에서 수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킬 수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소수자라는 개념은 단지 숫자의 많고 적음으로 분류하는 말은 아니다. 특히 급격히 게이머 범주가 넓어지기 시작한 모바일 시대 이후를 생각한다면 게임은 오히려 대중문화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 위상을 바꿔온 바 있었다. 대중문화콘텐츠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면서 디지털게임과 소수자의 문제는 좀더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대중문화라는 이름과 함께 하는 디지털게임의 이야기를 할 때 크게 세 맥락의 소수자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이 매체에 접근가능한 매체이용자로서의 접근성 관점에서 바라보는 소수자 문제이고, 두 번째는 이 매체가 콘텐츠 안에서 재현하고 재구성해내는 대상으로서의 소수자 문제다. 그리고 온라인게임이라는 특성에 따른, 게임 안에서 게이머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재현을 통해 나타나는 소수자 문제가 마지막으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은 대중문화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단지 ‘모두가 즐긴다’는 말로 그 의미를 뭉뚱그려선 안된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시도되었던,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실천과 개선의 방향까지를 대중문화로서의 매체는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더욱 넓어지는 게이머 저변 안에서 커진 덩치만큼 우리의 디지털게임은 대중문화로서 갖춰야 할 지향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 또 그 실천이 얼마만큼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를 고찰해 볼 때다. 접근성 관점에서의 소수자 이슈들 서구권의 게임연구들에서는 오랫동안 ‘비디오게임’의 주이용자층을 ‘젊은 백인 남성’이라는 그룹 안에서 살피며 게이머집단에서의 주류화와 그에 따른 마이너리티의 발생을 논의해온 바 있었다. 그러나 이용자집단의 문제는 게임 저변이 점차 넓어지면서 과거와는 사뭇 다른 형태로 게이머집단의 구성이 변화하는 흐름이 존재한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서구의 ‘젊은 백인 남성’에서 ‘백인’은 빠지게 되며, ‘젊은’ 또한 게이머집단이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서 점차 희미한 정체성이 되어가는 중이다. 콘텐츠가 타겟으로 삼는 소비자집단이 호응하는 피드백 속에서 남성 중심의 게임콘텐츠와 게이머집단이라는 점은 여전히 주류집단의 존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게임 플랫폼의 다양화와 모바일기기를 통한 대중화 속에서 남성중심적인 게임이라는 말도 과거만큼의 집중도를 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지는 추세다. 전반적인 대중화의 과정에서 오히려 두드러지는 것은 특유의 인터페이스로 인해 접근성 자체가 제한되는 경우인 장애인 게이밍, 혹은 노화나 미디어 리터러시 문제로 인해 접근이 어려워진 노년 게이밍과 같은 영역일 것이다. 여전히 손쉽게 게임에 접근할 수 없는 여러 환경들이 존재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난 호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게임 접근성에 대한 고민들이 점차 누적되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대중문화로서의 게임이 가져야 할 범용성의 위상에 대한 변화들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매체의 재현에서 드러나는 소수자 문제 오랫동안 디지털게임이 주류 게이머가 아닌 대상을 향해 만들어낸 대상화된 재현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받아온 주제였다. 수동적 대상이나 트로피처럼 등장하는 게임 속 여성의 문제, 존재 자체가 지워진 성소수자 문제, 비서구권 캐릭터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의 반복과 같은 문제들이 꾸준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고, 이는 2000년대 이후 디지털게임 시장이 소비자 확장의 상황을 맞이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오버워치>의 저격수 캐릭터 ‘아나’는 그런 변화를 상징할 만한 캐릭터다. 60대 노년 여성에 장애를 가진 비서구 아랍권 출신의 캐릭터는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라기보다는 마치 과거 인종차별과 대상화에 적극적이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변화한 양상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더욱 넓어진 시장에서 대중문화콘텐츠로 어필하기 위해 이뤄진 시장적 조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의도가 어떤 것이건간에 게임에서의 소수자 재현 문제에 변화가 일어나는 확인 가능하다.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가 리부트되면서 변화한 캐릭터나, 가 게임 내 NPC들의 인종적 다양성을 컴퓨터 사양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옵션을 추가하는 것과 같은 변화는 분명 소수자 재현 문제에 있어 유의미한 변화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변하지 않는 부분들도 적지 않다는 점 또한 공존한다. 게이머 저변의 확대로부터 비롯되는 시장의 압박에 의한 변화가 시작되었지만 아직까지는 글로벌 릴리즈가 중심인 AAA급 대형 게임들에 한정된 변화이며, 대중문화로서의 게임콘텐츠 전반에 걸친 변화라고 이야기하기엔 이제 겨우 첫 발을 뗀 수준이라는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게이머 속에서의 소수자 문제 콘텐츠 내부에서 발생하는 소수자 이슈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불거지는 이슈는 게이머 스스로로부터 발생하는 이슈들이다. 온라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멀티플레이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디지털게임은 생산자로부터 소비자로 이어지는 메시징 이상으로 게이머간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나타나는 맥락이 더욱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에서 수시로 나타나는 여성, 성소수자, 인종, 장애인에 대한 비하들부터 게임 캐릭터 등을 활용한 2차창작에 이르기까지 게이머들이 직접 생산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폭넓게 나타난다. 게임 규칙 내적으로서의 트롤링이나 일반적인 욕설, 모욕이 아니라면 아직까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나 혐오발언 등이 별도로 제재받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는 않다. 현실의 현행법상에서도 차별금지법 등이 입법에서 난항을 겪는 것을 생각하면 게임 속에서의 소수자 차별 문제는 더 험난한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된 콘텐츠 이상으로 이용자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소수자에 대한 대상화, 혐오 문제는 디지털게임과 소수자 문제를 다룰 때 더욱 큰 영향력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전망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왜 게임이 소수자 문제를 신경써야 하는가 접근성, 콘텐츠, 상호작용 세 측면 모두에 걸쳐 디지털게임과 소수자 문제를 살펴보는 이유는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결국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모두의 게임’이라는 대중문화로서의 디지털게임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소수집단에 의해 향유되는 것이 아닌, 이름 그대로 ‘대중’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매체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대중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과 그에 따라 해당 매체가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무가 요구된다. ‘게임은 문화다’ 라는 말은 실제 한국사회를 이루는 대중문화의 일각으로 디지털게임이 자리하고자 할 때 요구되는 최소한의 윤리와 공공성을 갖추고자 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대중화 시대를 맞아 게임이 갖게 된 영향력은 기존에 비할 바 없을 정도로 커졌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이 매체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부담 또한 막중해질 수 밖에 없다. 디지털게임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장벽 허물기, 게임 콘텐츠 안에서 사회적으로 소수자인 이들을 향한 부당한 표현을 줄이기, 그리고 게이머들 스스로가 이 매체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무례가 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기. 이런 여러 요소들이 함께 할 때서야 우리는 비로소 당당하게 ‘게임은 문화다’라는 말을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실천이 따라가지 않는 한, 디지털게임은 적어도 좋은 의미로의 문화에 다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산업계와 이용자 모두 이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해제: 온라인 시대의 오프라인 게임

    폴더와 디렉토리 기반으로 오프라인 PC에서 파일 관리를 하던 세대들은 요즘처럼 클라우드에 파일을 올려두는 방식을 낯설어 한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올라오는 시대다. 바야흐로 온라인이 기본이 되는 시대. 과거에는 PC 한 대에서 데이터를 처리하고 네트워크로 파일을 옮기는 일을 부가적으로 생각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정보의 존재위치 자체가 관계망 위에 놓이는 것이 기본인 시대가 되었다. < Back 해제: 온라인 시대의 오프라인 게임 08 GG Vol. 22. 10. 10. 폴더와 디렉토리 기반으로 오프라인 PC에서 파일 관리를 하던 세대들은 요즘처럼 클라우드에 파일을 올려두는 방식을 낯설어 한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올라오는 시대다. 바야흐로 온라인이 기본이 되는 시대. 과거에는 PC 한 대에서 데이터를 처리하고 네트워크로 파일을 옮기는 일을 부가적으로 생각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정보의 존재위치 자체가 관계망 위에 놓이는 것이 기본인 시대가 되었다. 디지털게임도 시대변화에 발맞추며 변화했다. 기기 한 대 안에서 모든 플레이를 처리하던 시절 만들어졌던 디지털게임들은 온라인이 기본이 된 시대를 맞이하며 싱글플레이 중심에서 네트워크 기반의 온라인 멀티플레이로 그 중심을 옮겨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단지 싱글  멀티라는 간단한 명명으로 뭉뚱그리기 어려울 만큼 넓은 진폭을 보여 왔다. 그러나 오프라인 시대는 온라인이 대세가 됐다고 갑자기 휙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지나간 듯한 한 시대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로 자리매김하고 다음 시대의 현상에 흔적을 남기며 지속적으로 공생한다. 이번 호, 그리고 이 글에서는 온라인이 기본이 된 시대에 여전히 의미를 남기고 있는 오프라인 시대의 게임들을 되짚어본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게임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몇 개의 기준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기반에서 가상공간의 의미는 외적으로 변화했다 온라인 시대 들어 게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점은 게임 텍스트 안쪽보다는 오히려 바깥쪽, 특히 구매방식의 변화다. 오프라인 싱글플레이를 가능케 한 것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구매 혹은 대여해 텍스트가 제시하는 가상세계를 온전히 영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오프라인 시절에는 게임 속 가상세계는 언제나 완성된 것이어야만 했고, 그 안에서 완결되는 무엇이어야만 했다. 이를테면 오늘날 온라인RPG 등에서 만나볼 수 있는 ‘미구현’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추가 DLC를 구매하거나 패치를 통해 열리는 새로운 공간은 상품 형태로 거래되는 게임소프트웨어 기반에서는 등장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오프라인 기반 시절과는 사뭇 다른 가상세계를 낳았다. 이제 우리가 겪는 게임 속 시공간은 설령 그것이 멀티플레이가 없는 공간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고정된 텍스트 속의 공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마치 인쇄된 책과 같았던 오프라인 시절 클라이언트에서만 작동하던 가상세계는 그 실물공간을 서버라는 위치로 옮기면서 언제 어떤 이유로도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되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과거 ‘마그나 카르타’ 처럼 버그로 작동이 불가능한 세계 대신 언제든 패치로 되살아날 수 있는 세계의 등장이지만, 동시에 공식 서버가 사라지면 다시 옛날 책 꺼내들듯 쉽게 뽑아들기는 어려운 곳으로 게임 속 세계가 옮겨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싱글플레이는 이제 과거와 같지 않은 무엇이 되어간다 싱글플레이 게임은 공간과 시간을 대여하는 아케이드 시절을 벗어나 기기와 소프트웨어를 개인이 소유하고 플레이할 수 있는 콘솔, PC 시대로 접어들면서 세이브/로드를 기반으로 점차 긴 시간동안 스토리 진행을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수백 시간에 이르는 싱글플레이 스토리라인 진행 동안 이야기를 밀고나가는 것은 오로지 단일한 플레이어의 개입 뿐이었지만, 이러한 싱글플레이 진행은 온라인 시대를 맞으며 앞서 이야기한 이유와 같은 맥락에서 오로지 나만의 이야기만으로는 남지 않는 형태가 되었다. ‘데스 스트랜딩’과 같은 비동기식 멀티플레이(이를 멀티플레이라고 부를지 싱글플레이라고 부를지가 애매하지만)는 온라인 시대의 싱글플레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플레이어는 분명 혼자 플레이하지만, 그 공간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영향력에 의해 변화하고 발전한다. 설령 직접적인 변화를 게임 안에 구현하지 않는다 해도, 싱글플레이의 클리어 스코어를 전세계 단위로 비교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변화는 싱글플레이의 과거와 오늘을 다르게 만들어낸다. * '데스 스트랜딩'은 싱글플레이 같지만 비동기방식을 통해 타인의 영향력을 게임 안에 당겨오면서 독특한 고립감을 연출해내며 오프라인 시대와는 다른 싱글플레이를 선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게임 텍스트 안쪽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온라인이 보편화된 오늘날에는 완전한 스탠드얼론 싱글플레이라 하더라도 공략과 포인트들이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퍼지면서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손쉽게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공략을 파악하고 최적경로를 향해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시대의 싱글플레이와 제한된 정보상황에서 오직 플레이어의 경험만으로 뚫고나가야 하는 시대의 싱글플레이를 같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싱글플레이가 갖는 매력이 온라인 시대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게임들은 혼자 세계 안을 휘저을 수 있는 싱글플레이를 꾸준히 모드이건 단독이건 가리지 않고 출시하고 있고, 멀티플레이만큼의 수익은 아니지만 플레이어들 또한 이에 적잖은 호응을 보내고 있다. 싱글플레이에 타인의 기여 혹은 개입을 적절히 섞는 게임제작자들의 시도 또한 어디까지를 싱글플레이로 보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조심스런 탐색으로 이어지고 있음은 온라인 시대에도 여전히 싱글플레이의 의미가 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오프라인 코옵과 온라인 랜덤매칭은 다르다 아마도 플레이 면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온라인 시대 이후 코옵 분야일 것이다. 오프라인 시대의 코옵 플레이는 반드시 시공간을 같이 점유하는 둘 이상을 필요로 했음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콘솔 게임의 코옵은 모르는 사람과 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고, 아케이드에서 또한 경쟁형 멀티플레이는 가능할지라도 모르는 사람과 코옵을 하는 것은 매우 생경한 일이었다. (혼자 ‘라이덴’을 플레이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동전을 넣고 2P를 시작했다고 생각해보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게임을 할 수 있는 온라인 시대가 되면서 이른바 PVE라 불리는 새로운 방식이 주는 재미는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바 있었다. 이른바 MMORPG의 레이드는 대규모의 인원이 합을 맞춰 공략을 풀어내는, 마치 잘 맞춘 매스게임과 같은 쾌감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타난 것은 이른바 트롤링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코옵이라는, 이름에 ‘협동’이 들어가는 어떤 플레이에 오프라인 기반의 지인 네트워크가 아닌 오로지 게임플레이만을 위한 새로운 관계 속 익명의 누군가가 함께 하게 된 상황으로부터 비롯된다. ‘잇 테익스 투’는 그러한 난감함을 잘 드러내준 게임이었다. 2인 코옵으로 반드시 풀어내야만 하는 이 게임은 온라인 매칭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모르는 사람과 플레이하는 것은 매우 난감한 형태의 디자인이었다. 아케이드/콘솔 시절의 코옵을 되살린 듯한 이 게임은 우리가 오늘날 겪는 온라인 멀티플레이라는 말에 사실은 ‘익명기반의 랜덤매칭 멀티플레이’라는 말이 가려져 있음을 드러냈다. 지인간에 가능한 코옵이 있고, 익명 매칭으로도 가능한 코옵이 있다는 구분은 생각처럼 우리에게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 '잇 테익스 투'로부터 우리는 오늘날의 멀티플레이가 사실은 랜덤매칭 기반의 익명 멀티플레이임을 깨닫는다. 온라인 시대의 오프라인 게임 정보의 물리적 위치기반이 바뀌는 것이 얼마나 거대한 변화인지는 비단 게임이 아니어도 2000년대 전후를 살아온 많은 이들이 깨닫고 있을 것이다. 오롯이 가상공간 안의 것으로 여겨지는 게임도 다르지 않아서, 온라인 시대라는 이 변화는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시작된 디지털게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켰다. 이는 우리가 온라인을 100% 가상공간의 무엇으로만 생각해선 안된다는 포인트를 남겨주며, 과거 온라인 이전에 만들어진 어떤 형식이 온라인 시대에도 새로운 변화 속에 꾸준히 이어진다는 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오프라인 시절의 흔적과 유산을 온라인 시대에 찾는 것은 그저 ‘옛날엔 이랬지~’같은 회상이나 ‘라떼는 말이야~’에 그칠 일은 아니다. 반세기가 넘어가는 게임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기반의 변화가 일어난 변곡점으로서 우리는 온라인 시대의 대두를 이해해야 하며, 그 변화 속에서 무엇이 이어지고 무엇이 소멸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오프라인 시대의 게임을 온라인 시대에 다루는 일은 그런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게임 주인공 캐릭터를 둘러싼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 변화가 주로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 < Back '이코'에서 '갓오브워'까지: 사랑의 대상과 게이머의 나이듦에 대하여 16 GG Vol. 24. 2. 10. 게임 규칙을 넘어선 감정 투영 대상으로서의 등장인물 초창기 게임의 역사 속에서 가족은 게임 안이 아니라 게임 밖의 존재였다 . 플레이어 캐릭터는 대체로 혼자 위험천만한 스테이지들을 돌파해 나갔지만 ,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는 환경은 게임사의 광고에 의해 늘 가족적인 무언가로 일컬어지곤 했다 . 닌텐도 등의 가정용 콘솔 기기는 항상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거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게임하는 장면을 보여주고자 했다 .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와 함께 하는 이들은 가족이라기보단 주로 ‘ 동료 ’ 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었다 . 롤플레잉 게임의 파티 시스템 , 여러 게임에 등장하는 조력자 등은 나름의 끈끈함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기능적인 관계맺음을 플레이어와 이어나가는 동료로서의 존재였다 . 2000 년대 들어와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 이코 ’ 는 그런 점에서 눈에 띄는데 ,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시작부터 끝까지 모험을 함께 하는 요르다는 ‘ 동료 ’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엔 사뭇 이질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 플레이어는 딱히 공격력이 없는 요르다의 손을 붙잡고 게임을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 분명 퍼즐과 같은 요소들에서의 해결을 돕는 조력자의 포지션이지만 실제로 ‘ 이코 ’ 를 플레이한 이들이 요르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동료보다는 조금 더 진한 무엇이었다 . 함께 싸우면서도 플레이어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존재로서의 요르다는 동료이자 퍼즐의 열쇠라는 기능적 관계 이상의 존재로 플레이어들에게 각인된 바 있었다 . 유사가족 관계의 조엘과 엘리 ‘ 이코 ’ 로부터 대략 10 여 년이 지난 뒤에 출시된 게임 ‘ 라스트 오브 어스 ’ 는 유사 가족 관계에 놓인 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모험을 풀어가는 새로운 시점을 선보였다 . 중년의 남성 주인공 조엘은 게임 프롤로그에서 딸을 잃었고 , 그런 그에게 임무로서 맡겨진 엘리라는 아이는 잃었던 딸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십대 소녀다 . ‘ 이코 ’ 처럼 둘은 서로 도와 가며 험난한 세계를 헤쳐나가지만 , ‘ 이코 ’ 에 비해 좀더 엘리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변화 혹은 발전이 있었다 .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무대 속에서 조엘과 엘리의 이야기는 단순히 모험의 기승전결을 풀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잘 맞지 않았던 두 사람이 일종의 유사 가족 관계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진한 감동을 만들어낸 바 있었다 .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 라스트 오브 어스 ’ 로부터 받은 감정은 삭막하고 외로운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감정을 함께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유사 가족 관계가 유독 더 따뜻하게 빛났기 때문이었다고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 '갓오브워'에 이르러 혈연 가족으로 등장하는 조연 2001 년 ‘ 이코 ’ 에서 동료를 넘어선 무언가로 , 2013 년 ‘ 라스트 오브 어스 ’ 에서는 유사 가족 관계라고 이름붙여도 좋을 , 플레이어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존재는 2018 년의 ‘ 갓 오브 워 ’ 에서는 본격적으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으로 등장한다 . 전쟁의 신으로 그리스 신화 시대를 휩쓸었던 주인공 크레토스는 후속작에서 아들을 둔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 크레토스의 캐릭터는 이러한 관계설정의 변화를 통해 크게 바뀌는데 , 전작에서는 가족을 잃은 뒤 신의 아들로서 자녀의 포지션을 맡았던 크레토스가 후속작에서는 가족관계 안에서의 아버지 포지션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 실제로 게임 안에서 크레토스와 아들 아트레우스의 관계는 철모르는 아이의 육아를 도맡는 크레토스의 관점으로 그려진다 . 아트레우스는 나름의 전투력은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며 , 내러티브를 통해 크레토스는 아들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풀어낸다 . 후속작 ‘ 갓 오브 워 : 라그나로크 ’ 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사춘기를 맞아 방황하는 아트레우스의 옆에서 자녀의 성장과 함께 부모가 맞는 새로운 도전들이 함께 그려지는 것을 보면 , ‘ 갓 오브 워 ’ 의 북유럽 시리즈는 상당부분 자녀라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맞았지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될 지는 모르는 부모의 입장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나이들어가는 게이머 게임 안에서 기능적 조력자 이상의 감정을 담아내는 캐릭터와 주인공 캐릭터 사이의 관계는 ‘ 이코 ’ 의 2001 년부터 ‘ 갓 오브 워 ’ 의 2018 년 사이 근 20 여년 속에 점차 변화해 왔다 . 이 변화는 지켜야 할 동료에서 ‘ 라스트 오브 어스 ’ 의 유사 가족관계를 거쳐 마침내 혈연관계로 점차 가족이라는 구성을 향해 움직였는데 , 이는 특히 주인공 자체의 변화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 명확하게 ‘ 소년 ’ 의 포지션이었던 ‘ 이코 ’ 의 주인공과 달리 ‘ 갓 오브 워 ’ 의 크레토스는 명백하게 중년 남성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다 . 현실의 시간 변화를 함께 생각해 보면 게임 속 주인공 캐릭터의 나이듦은 마치 현실의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2001 년에 소년이었던 주인공은 2018 년이 되면 열 일곱 살을 더 먹게 되는데 , 만약 2001 년 당시 20 세였던 플레이스테이션 이용자가 2018 년이 되면 37 세가 되는 것이다 . 단순한 생물학적인 나이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 이 20 년 사이의 간극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가 갖는 주변 인간관계를 크게 변화시키고도 남을 시간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 ‘ 이코 ’ 를 플레이하던 청년은 20 년 후 중장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20 년 전의 게이머들이 지금보다 젊은 세대였다면 , 이제 게이머 집단은 과거보다 조금 더 폭넓은 연령층이 되었다 . 디지털게임 이용자층은 연령과 성별 , 지역과 같은 여러 측면에서 과거보다 보편화되며 넓어졌고 , 과거 단지 어린이들의 놀잇감으로만 여겨졌던 게임은 적어도 ‘ 갓 오브 워 ’ 에 이르면 명백하게 중년기 게이머들을 타겟으로 삼는다 . ‘ 갓 오브 워 : 라그나로크 ’ 에서 다루는 사춘기 자녀의 방황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게임 주인공 캐릭터에 덧씌우는 일은 간접적으로 오늘날의 게이머들이 갖는 평균 연령이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의미한다 . 게임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일련의 유대관계와 사랑을 표현한다고 한다면 , 이 사랑은 게이머 집단의 나이듦에 따라 다른 형태로 묘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20 년 전의 게이머들은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젊고 남성중심인 집단이었고 , 그런 그들에게 사랑은 가족보다는 신비함을 간직한 여성 캐릭터에게 투영된다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중장년이 된 그들에게 사랑의 투영 대상은 이제 자녀라는 , 가족이라는 새로운 테두리 안에서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 이러한 변화는 꽤 곳곳에서 감지된다 . 2023 년 출시된 ‘ 디아블로 4’ 에서는 기존 시리즈에서 보지 못했던 수많은 서브 퀘스트들이 등장하는데 , 이 중 적지 않은 분량이 자녀를 둔 등장인물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 자녀의 훈육을 위해 감옥에 보낸 부모가 결국 자식을 잃은 뒤 후회하는 내용이라거나 , 집나간 아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해오는 등 ‘ 디아블로 4’ 에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감정을 다루고자 하는 퀘스트들이 포함된다 . 비슷하게 2020 년대에 출시된 게임 중 ‘ 잇 테이크스 투 ’ 또한 게이머 집단의 세대 변화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사례다 . 어린 자녀를 가진 중장년기 부부의 이혼 위기를 코믹하게 풀어낸 이 게임 또한 사실상 중년 부부가 만날 수 있는 삶의 시기를 스케치한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오늘날 스탠드얼론 게이머의 중심은 중장년이다 게임 주인공 캐릭터를 둘러싼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는 트렌드 변화가 주로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곱씹어볼 여지를 남긴다 . 태블릿과 스마트폰을 거치면서 점차 PC 는 가정의 필수 가전제품이어야 할 이유를 상실하기 시작했고 , 게임을 하기 위해 구비해야 하는 게임전용 PC 는 이제 꽤나 고가품의 영역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콘솔게임기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지만 , 일정 수준 이상의 디스플레이가 기본적으로 요구되고 , 타이틀 가격이 8~10 만원을 오가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 아이들의 문화활동으로만 보기 어려운 비용 장벽을 가진 셈이기도 하다 .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유료 기반의 온라인게임들과 달리 , 일정 수준 이상의 공간과 시간 , 비용을 요구하는 PC/ 콘솔 기반의 스탠드얼론 게임들은 이제 확실히 중장년을 메인으로 삼는 활동이 되었다 . 게이머가 나이를 먹어 가는 과정과 함께 게임 콘텐츠 또한 나이를 먹었고 , 나이들어간다는 변화 속에서 게임을 통해 표현되는 게이머와 주인공 주변의 인간관계 또한 다르게 그려진다 . 모두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연애 – 결혼을 거치는 이른바 ‘ 정상가족 ’ 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 적어도 기술복제를 통해 대량유통되는 미디어 콘텐츠인 디지털게임은 산업적 관점에선 정상가족 안에서 부모라는 위치 혹은 그와 비슷한 세대가 겪게 되는 감정의 과정들을 다루고 싶어한다 . 지난 수십 년간 게임에 일어난 변화는 그래서 단지 기술의 발전과 이용자층의 확대만이 아니라 , 이 매체가 다루고자 하는 감정과 관계에도 나타난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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