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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Back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23 GG Vol. 25. 4. 10.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구자 개인들이 겪은 25년의 세월: 세대 혹은 코호트 이경혁 편집장: 21세기가 시작된 지 벌써 한 쿼터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두 분을 모셨는데요. 먼저 조금은 편하게 ‘지난 25년간 내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제가 너무 무거우니 가볍게 제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기억하는 2000년대 초반 게임의 가장 큰 이미지는 댄스 게임이었어요. 99년 6월에 부천역 오락실에 처음 이 등장했는데, 제가 당시 군대를 갔거든요. 딱 두 달 밟아보고 군대를 갔는데 댄스 게임이 굉장히 아른거리더라고요. 이때 흥미로운 점은 ‘게임했던 공간’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의미가 조금 달라졌잖아요? 이런 변화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보라 박사: 저는 97년에서 2001년 사이에 미국에 유학을 가 있었는데요. 당시에 제가 느꼈던 것은 게임이 ‘아이들만의 것’에서 ‘성인들의 취미’로 변해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 ‘플레이스테이션 2’가 미국에서 인기였는데, 그 이유가 DVD 플레이어 기능도 제공하기 때문이었거든요. 그 듀얼 기능이 먹히면서 보였던 변화상 중에 하나가 TV 메인 광고 시간대인 저녁 7시에 게임 광고가 나왔던 지점이었어요. 그전까지 게임 광고는 어린이 채널이나 아이들이 주로 TV를 보는 시간대에 나왔어요. 그런데 ‘드림캐스트’의 <쉔무>나 ‘플레이스테이션 2’의 <파이널 판타지 7> 광고가 영화처럼 만들어졌고 성인들을 타겟으로 하더라고요. 저는 이때부터 비디오 게임이라는 것이 주류의 성인들도 즐길만한 오락으로 등장했다고 보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한국은 2010년대 들어서서 게임이 성인을 대상으로 포커싱하는 변화가 만들어졌는데, 북미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그런 변화가 있었군요. 당시에 20대를 타게팅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북미 게임 시장은 중년을 타게팅할 수 있겠네요. 오영욱 박사: 저는 2000년에 청주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리듬 게임이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를 끌었거든요. 나 이 나오면서 장판 같은 것을 은박지로 납땜해서 채보를 연습하고, 학교 컴퓨터에 연결해서 야자 시간에 놀고, 그랬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90년대에는 오락실하면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확 바뀐 것이 2000년대 초였던 것 같아요.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경험은 밤새 오락실을 빌리는 문화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당시에 PC통신으로 만난 친구들이랑 같이 다니면서 <이니셜 D>, <태고의 달인> 같은 게임들을 했는데, ‘압구정 조이플라자’같은 곳에서 하루를 대여해서 밤새 대결을 했었어요. 몇만 원 내고 게임기를 빌려서 밤새 돌아가면서 게임했던 문화가 있었던 거죠. 게임하는 공간: 오락실, PC방, 그리고 이경혁 편집장: 확실히 2000년대 초반을 상징했던 게임 중에 리듬 게임이 있었지요. 90년대까지 오락실은 스틱과 버튼 위주의 아케이드 스타일이었다면, 여러 기기들이 만들어진 건데요. 그렇게 보면 2000년대부터는 오락실이 특정 연령이나 특정 성별의 공간이라기보단 누구나 손쉽게 올 수 있는 형태로 대중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오영욱 박사: 그렇죠. 당시에 신촌을 지나가다 보면, 지금 독수리 다방 건물 1층을 다 리듬게임으로 해놓고 밖에서 볼 수 있는 구조였어요. 그러면 안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대중적 공간으로 문화가 변해갔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오락실이 변모해온 과정을 오늘날 돌아봤을 때, 일종의 대중화나 캐주얼화라고 볼 수도 있는 걸까요? 나보라 박사: 대중화라기보다는 양성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중화라고 한다면, 시장의 주류가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로 ‘격상’되었다기보다는 공간의 분위기와 이용방식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네요. 사실 붐비기는 예전의 오락실이 더 붐볐거든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이야기할 때, 공간성의 변화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아까 오영욱 선생님이 PC 통신에서 만난 사람들과 게임하던 2000년대 초반을 말씀해주셨는데, 당시에는 온라인 문화의 확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오프라인에서 모여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도 구시대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 2025년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나보라 박사: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에는 오락실이 약속 장소로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있었어요. 아케이드 오락실을 역사적으로 보면, 원래 영화관 옆에 붙어있던 공간이었잖아요? 미국에서도 그랬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기능이 거의 없어진 것 같아요. 오영욱 박사: 일본의 오락실의 경우에는 지금도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의 공간이거든요. 확실히 우리의 문화와 다르죠. 그 중심에는 카드 게임기가 있는데, 카드 게임기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해서 완전히 다른 형태를 보이는 것 같아요. 재밌는 것은 아케이드 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게임기의 순환이라는 점이에요. 일본에서 어떤 아케이드 게임이 유행하면 한 사이클이 돈 뒤에 한국으로 넘어가고, 한국에서 한 사이클이 돌면 동남아로 넘어가고 그런 글로벌 물류 체인 시스템이 아케이드 산업을 지탱하는 점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바다이야기’ 사태도 있었고 법적인 환경이 제공되지 않아서 카드 게임이 넘어오질 않았어요. 디지털게임 연구 이경혁 편집장: 지금 이야기하신 부분이 한국의 게임 환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테마일 것 같아요. 2005년에서 2006년 일어났던 바다이야기 사태는 한국 게임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기도 했는데요. 이 사태가 한국 게임 문화에 어떤 영향을 남겼을까요? 오영욱 박사: 산업적인 영역에서는 너무 많은 논의가 있을 것 같고요.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드려보고 싶어요. 저는 당시에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였고,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면서 게임 연구가 확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나보라 박사님은 당시에도 학계에 계셨는데, 실제로 어땠나요? 나보라 박사: 확실히 바다이야기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인문 분야든 이공계든 게임 연구를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후에는 이공계나 산업쪽으로 지원이 쏠렸어요. 다만 바다이야기 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인가 라고 묻는다면 명확한 상관관계는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원래 정부의 연구 지원 풍토가 대체로 산업, 기술 등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선호하기 때문에 인문사회학적 게임 연구가 각광받긴 힘든 분위기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진거죠.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것을 들으니, 인과관계를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긴 하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이전에는 게임 인문 연구를 왜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었을까요? 나보라 박사: 이 역시 인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데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가지는 특수성도 여러 영향 중에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200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가 전세계 게임 씬의 주목을 받았잖아요. 세계 최초로 게임 방송 채널이 만들어지고, PC방이 대중문화 공간으로 확산되고 그러니까 외국의 게임 기자나 저널리스트들이 와서 신기해했거든요. 그전까진 항상 서구권을 쫓아가던 입장에서, 정부나 기업을 설득할 때도 중요한 특이점이었던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도 중요한 영역이었겠군요. 그러면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지금은 인문학 계열의 게임 연구가 조금 나오고 있나요? 오영욱 박사: 옛날에 비하면 확실히 확 나아졌죠. 지원이나 환경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일단 연구자들이 늘어났고, 관련 논의가 늘어나고 있어요. <제국의 게임> 나왔을 때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이후로 이경혁 편집장님 책이 나온 것처럼 유의미한 논의들이 나오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종합해 보면 그런 흐름은 있네요. 2000년대 초반에 스타크래프트와 PC방을 필두로 소위 말하는 ‘게임 문화의 붐’이 있었고, 이를 따라서 연구나 비평이라는 흐름도 형성이 되어 2006, 7년까지 흐름이 이어졌다가 모종의 이유로 침작하는 시기를 거치고 2010년 후반부터 다시 논의가 나오고 있다. 나보라 선생님은 당시에도 연구하셨고 지금도 연구하시는 입장에서 게임 연구의 환경은 나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나보라 박사: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게임 연구에 대한 소스를 찾을 만한 게 마땅치 않았고, 박상우 선생님 등을 제외하면 나오는 연구라고는 다 영어 연구들인데 이를 접할 수 있는 창구도 많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은 바로바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연구자의 풀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늘 느끼는 것은 결국 구심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당시에는 박상우 선생님의 ‘게임문화연구회’라는 구심점이 있었고, 그다음엔 성균관대의 ‘게임 인문학’이나 중대의 ‘엘리스 온’, 인문학협동조합 등 구심점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어떤 구심점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오늘날 어떤 게임 연구가 필요하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나보라 박사: 2000년대 초반의 게임 연구는 게임 자체, 그리고 게임 연구 자체의 정체성을 찾는 데 많은 방점이 찍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게임이 대중화되었고 여러 가지 매체와 뒤섞이게 되었죠. 그래서 게임만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찾아내는 것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 같아요. 오늘날과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점은 게임이 더이상 젊지 않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이제는 더 다면적인, 학제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게임 아카이빙 이경혁 편집장: 연구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엔 아카이빙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죠. 오영욱 박사님은 언제부터 아카이빙을 하셨나요? 오영욱 박사: 저는 2000년대 초에는 일종의 취미 생활로 작품을 모으다가, 2006년쯤부터 본격적으로 아카이빙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아카이빙을 꾸준히 하신 분의 입장에서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오영욱 박사: 일단 2000년대 초에는 게임이 아카이브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어요. 2006년만 하더라도 <컴퓨터 학습>이나 <게임 월드> 같은 잡지들을 권당 몇천 원으로 팔았거든요. 극단적인 예시지만 제가 2008년에 강원도에서 게임 잡지 6박스를 5만 원에 받아왔어요. 사실 이런 흐름은 미국이랑 일본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2010년대 후반부터 게임이 수집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죠. 2013년에 문을 연 넥슨의 ‘컴퓨터 박물관’ 같은 경우가 게임이 수집의 대상이 되기 딱 직전부터 수집품들을 받았던 형태였어요. 그런데 이후로 수집가들이 수집을 하고 재테크 목적이 들어가면서 체감상 2020년쯤부터는 돈 주고 살 수 없는 가격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카이브를 하는 입장에서 옛날 자료를 모으는 건 거의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원래 잡지나 게임의 내용을 알고 싶어서 샀었거든요. 그런데 가격이 오르고, 한정판이 나오면서 점점 이게 힘들어져요. 일단 실물 패키지라는 것도 이제는 한정판으로 나오는데, 이 게임을 하려면 기기도 사야 하고, 박물관 입장에서 ’직원이 한정판을 줄서서 사야 하나?라고 물으면 어려운 부분들이 있는 거죠. 온라인 미디어 때문에 애매한 영역도 크고요. 인프라와 플랫폼, 그리고 장르 이경혁 편집장: 물성의 변화도 두 시대를 놓고 본다면 너무나 큰 변화죠. 이제는 수집의 용도 외에는 물질 매체의 의미가 사라졌잖아요? 게다가 이런 변화는 단순히 물건을 소유할 수 없다는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버’라는 형태에 게임 소프트웨어가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물성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기승전결도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특히, 요즘 게임에서 엔딩이 없어졌죠. 어떻게 보면 오늘날을 ‘엔딩이 없어진 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오영욱 박사: 이제는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들은 결국 하나의 게임이라기보다, IP라고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은 2000년대 초반에도 엔딩이 없는 온라인 게임들이 있었거든요. <바람의 나라>도 이미 당시에 서비스를 하고 있었고. 재밌는 것은 <스타크래프트>의 사례인데, 판매는 패키지로 했지만 서비스는 엔딩 없이 돌았잖아요? (웃음) 그 결과, 블리자드는 플레이 양에 비해서 돈을 못 벌었죠. 당시에는 ‘패키지를 사면 베틀넷은 평생 무료’ 이게 마케팅 콘셉이었잖아요. 오영욱 박사: 그 이상의 비즈니스 모델을 못 찾은 거죠. 당시에 돈 내고 베틀넷을 하라고 했으면 아무도 안 했을 테니까요. 그때는 그게 그나마 최선이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결제 수단 변화도 되게 크네요. 2010년대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에 ‘오픈 카드’가 가능해지면서, 스마트폰에 카드를 오픈해 놓고 클릭 한 번 하면 그냥 들어가는 이 방식이 2000년대 게임과 지금의 게임을 크게 나누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지로가 있었거든요. 나보라 박사: 옛날에 온라인 게임을 하려면 지로로 보냈어야 했죠. 오영욱 박사: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이 발전했던 거는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결제 모듈, 그런 종류의 그런 온라인으로 쓸 수 있는 결제 모듈, ‘다날’ 이런 게 있어서 가능했죠. 미국에서도 2008년에야 ‘마이크로트랜잭션(소액 결제)’이 주목받는 분위기가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때는 카드 자동결제도 없었고요. 이경혁 편집장: 신용카드의 보편화도 되게 중요한 변화네요. 2001년까지만 해도 신용카드가 그렇게 막 쉽게 발급되지 않는 시절이 있었어요. 오영욱 박사: 결제가 사실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연구가 잘 안 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종류의 편의성들이 게임의 디자인이라든가 장르적인 부분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있을 텐데, 논의가 안 된 거죠. 이경혁 편집장: 지금의 게임 장르 유행이 나오기 위해서는 당연히 인프라의 변화가 있는 거고, 이것처럼 게임 밖의 영역이 게임 내부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겠죠. 특히, 요즘같이 인앱 결제를 베이스로 스토리나 메카닉까지 영향이 가는 거면 당연히 결제 수단 연구가 필요해서 저도 결제 관련 연구들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변화 중에 하나가 요금 종량제와 요금제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PC 통신 때만 해도 전화 요금이라는 거는 사용량 베이스로 갔었어요. 돌이켜 보면 지금처럼 인터넷 요금이 초기 전화 요금처럼 누진제로 갔으면 이 상황은 오지 않았겠죠. 오영욱 박사: 예전에는 데이터양으로 요금을 내거나, 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 무선 어플리케이션 프로토콜) 같은 경우에는 뎁스마다, 명령 하나 당 돈을 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게임 개발도, 플레이도 힘들었을 거예요. 나보라 박사: 실제로 그땐 휴대폰에 인터넷 접속하는 버튼 잘못 누르면 막 끄고 그랬죠. (일동 웃음) 오영욱 박사: 진짜 이런 지점은 외부에서 들어와서 생긴 혁명적인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폰 안 들어왔으면 게임계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나보라 박사: 아이폰 같은 경우엔 앱 스토어도 게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게임 산업 이경혁 편집장: 한국의 게임 역사를 이야기하면 MMORPG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한편으로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고, 많은 변화를 만들기도 했던 한국의 게임 산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는 각광받던 벤처 기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대기업들이 되었잖아요? 그 변화 이면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섞여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는 최근 드라마에 게임사가 배경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장면’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2000년대 초까진 게임을 한다거나, 게임 회사에 다니는 것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는데, 이제는 양지화가 된 측면이 있어요. 나보라 박사: 양지화의 측면에서는 NC의 야구단 창설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가 크긴 했지요. 대중문화에서 굉장히 아이코닉한 순간이었잖아요? 넥슨의 컴퓨터 박물관도 그렇고, 게임계의 위상이나 인식이 바뀐 순간들이 있어요. 오영욱 박사: 이어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MMO RPG가 제한한 한국 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은 한국 게임이 많이 수출되었고 중국은 <던전 앤 파이터>, 대만은 <라그나로크 온라인> 등 국민 게임이 될 정도로 영향력을 보였는데, 지금은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 있어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는데, 인도에서 <배틀그라운드>가 성공한 것처럼 다른 가능성을 여는 작업들이 산업적으로나, 경영적으로나 많이 시도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로스트아크> 정도의 새로운 플레이어가 나오긴 했지만,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어떤 전략과 기획을 가져가야 할지 더 고민이 필요해보여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지점에 있어서는 MMORPG라는 것도 2000년대 초반의 장르는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러면 지금의 메이저 장르는 뭐가 될까요? 나보라 박사: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네요.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메이저 장르’라는 개념이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장르 자체가 다변화됐고 수용자층도 확실히 넓은 저변을 갖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시장에 독이고 한편으로는 시장의 약인 그런 포스트모던한 상황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네요. 이 역시 중요한 변화네요. 2000년대에는 올해의 GOTY를 뽑기 쉬웠는데, 이제는 점점 어려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게이머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이 질문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게이머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2000년대 게이머와 2025년의 게이머. 오영욱 박사: 사실 게이머 자체는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다만, 분화가 생기고 나눠서 싸운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일반인이 하기 어려운 게임이니, 일반인한테 추천하지 말아라” 근데 여기서 누가 일반인이냐, 게이머냐고 싸우는 거죠. 저희 어머니는 예전에도 쓰리매치류 게임을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신데, 이런 분들이 게임을 안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예전에는 지금처럼 갈라서 싸우는 문화는 없었긴 했어요. 나보라 박사: 문화연구 쪽에서는 전형적인 이야기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게임이 하위 문화였는데 지금은 점점 아니게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엔 게이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균질적인 속성을 공유하고 서브 컬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는데, 지금 시점에는 이런 게이머들도 존재하지만, 이들 역시 여러 게이머들 중에 하나일 뿐 다양한 게이머들이 나오고 있다.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정체성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이경혁 편집장: 사실 오늘날에 텔레비전 보는 사람한테 ‘텔레비저너’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게이머가 게이머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고, 지금 게임을 하는 사람을 게이머로 부르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어요. 게이머라는 단어의 사회적 용례는 소멸해 가는 게 아닌가? 옛날에는 ‘게임하는 사람’이 게이머였는데, 지금은 ‘“제가 게이머입니다”하는 사람’이 게이머인 거예요. 왜냐하면 게임하는 행위가 너무나 일반화됐기 때문이죠. 나보라 박사: 말씀하시는 부분을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드네요. 최근 말씀하신 그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업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가장 큰 근거가 ‘본인은 돈을 많이 쓰는 소비자다’는 거잖아요. 따라서 ‘소비자인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권리가 있고 업계는 들어야만 한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게 2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요. 본인이 정말 게임을 사랑하고 매니악하게 파고 든다면, 게임 자체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논의를 만들거나 ‘게임에 대한 감수성’ 같은 부분으로 문화적인 권위를 내세웠으면 좋았을텐데, 문화적인 소양이나 매체에 대한 이해로 하드코어함이 성장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소비자로의 권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쉬운 거죠. 오영욱 박사: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소비자 주의가 팽배하다는 문제가 있죠. 트럭 집회도 그런 지점에서 볼 수 있고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 문제점들을 대면하면서, 확실히 오늘날에는 게임하는 사람을 게이머라고 부르는 것이 무용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치 밥먹는 사람을 ‘밥먹러’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게이밍이 일반 행위가 되면서, ‘행위하는 사람’으로의 의미는 소멸해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ags: 좌담회, 게임역사, 게임연구, 아카이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코스믹 호러에 떨어진 인터페이스

    <에일리언 2>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테크 덕후인 제임스 카메론의 ‘진심’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는 점을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단적인 예로, 첫 시퀀스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캐릭터는 인간도 에일리언도 안드로이드도 아니다. 리플리가 잠들어 있는 우주선 문을 레이저로 깔끔하게 절삭한 뒤에 재빨리 퇴장하는 산업용 로봇 A와 곧바로 이어서 우주선 내부를 스캔하는 산업용 로봇 B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 Back 31 GG Vol. 26. 8. 10. Tags: 데드 스페이스, 게임 인터페이스, 다이제틱 UI, 코스믹 호러, 에일리언 2, AI 에이전트, Dead Space, Diegetic UI, Cosmic Horror, AI Agents, LLM Hallucination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 [논문 세미나]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이브 온라인(Eve Online)〉은 현재 ‘펄어비스’가 인수한 아이슬란드의 게임 제작사인 ‘CCP 게임즈(CCP Games)’가 2003년 출시한 SF 샌드박스 MMORPG이다. 가상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브 온라인〉은 오픈 월드 시스템을 통해 광활한 맵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유저의 다양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RPG이지만 이 게임에는 캐릭터의 직업이 없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이브온라인, 논문, 패러텍스트, 에미텍스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제 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공모전의 당선작과 수상자를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 Back 25 GG Vol. 25. 9. 22. Tags: 게임비평공모전, 공모전, 수상작발표, 공지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와 Player in Environment(PiE), '우연한 아름다움의 섬광'을 찾아서

    윌 라이트의 발언은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출발점을 제공한다. 이 장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통적인 비디오 게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승리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클리어해야 할 최종 보스도, 달성해야 할 명확한 목표도 부여받지 않는다. 대신 플레이어는 스스로 플레이의 명분과 이유를 만들어내야 한다.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Jae Lee Researcher at the K-Culture & Story Contents Research Institute, Kyung Hee University. Researches trends and policy in the content and IT industries, and works as a critic across the content field broadly. Has contributed to projects including "A Survey and Analysis of AI and Digital Policy Trends in Major Countries" (National Information Society Agency), "A Survey and Analysis of Digital Security Trends" (Korea Internet & Security Agency), and "Global Game Industry Trends"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Began working as a critic after winning the Dong-A Ilbo Spring Literary Contest in film criticism, the Korea Manhwa Contents Agency's New Critic Award in comics criticism, and the Game Generation Criticism Award.

  • [논문세미나] From geek masculinity to Gamergate: The technological rationality of online abuse

    이 논문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자행되는 사이버 폭력의 배경을 밝히기 위해 우선 기술 또는 게임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오타쿠 남성성이 있음을 짚어낸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별점·평점이라는 표면

    별점의 역사를 짧게 훑어보자. 최초의 별점은 1820년경 영국의 마리아나 스타크가 펴낸 『유럽대륙 여행가이드』라 알려져 있고, 본격적으로 별점이 대중화된 것은 1920년대 시작된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을 통해서다.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ngsoo Park Majored in art studies as an undergraduate and is currently studying media cultural studi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Writes primarily about film, while keeping a curious eye on visual culture broadly—art, games, and broadcasting among them. Also a film critic, host of the podcast Café Critique, and an organizer of community film screenings.

  •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을까: 터치스크린 시대의 숙련도

    매체라는 말은 A와 B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텔레비전과 영화, 스마트폰을 우리가 매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들이 각각 생각과 생각, 창작자와 수용자,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게임도 같은 의미에서 매체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로블록스〉의 상상된 즐거움

    로블록스는 조악함으로 가득하다. 게임에 보이는 텍스트의 한글 번역은 개발자가 어떤 번역기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질만큼 기괴하고 오류가 많다. 글로벌 게임의 필수 업무인 현지화 작업은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게임의 3D디자인은 대체로 투박한 로우 폴리곤이다. 그 오브젝트를 감싸는 텍스쳐는 단색이거나 대충 그려진 수준이 허다하다. 외형만 그러한가. 캐릭터가 걸어다니는 애니메이션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캐릭터의 몸은 게임 도중에 이유없이 뒤틀리고, 기물 사이에 쉽게 낀다.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 버그로 리포트되는 것들이 로블록스에서는 일상적이다. 게임이 추구하는 주제들 또한 무겁지 않고 가볍다. 게임 일부를 예로 들면, 보모가 되어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좀비가 나타나는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무서운 돼지 귀신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자 전부다. < Back 〈로블록스〉의 상상된 즐거움 01 GG Vol. 21. 6. 10. “조식은 6AM 날카로운 시간에 제공되며 수업은 오늘 7에 시작합니다.” 로블록스는 조악함으로 가득하다. 게임에 보이는 텍스트의 한글 번역은 개발자가 어떤 번역기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질만큼 기괴하고 오류가 많다. 글로벌 게임의 필수 업무인 현지화 작업은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게임의 3D디자인은 대체로 투박한 로우 폴리곤이다. 그 오브젝트를 감싸는 텍스쳐는 단색이거나 대충 그려진 수준이 허다하다. 외형만 그러한가. 캐릭터가 걸어다니는 애니메이션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캐릭터의 몸은 게임 도중에 이유없이 뒤틀리고, 기물 사이에 쉽게 낀다.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 버그로 리포트되는 것들이 로블록스에서는 일상적이다. 게임이 추구하는 주제들 또한 무겁지 않고 가볍다. 게임 일부를 예로 들면, 보모가 되어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좀비가 나타나는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무서운 돼지 귀신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자 전부다. 그런데 이렇게 허술해보이는 게임에 매달 전세계 1억 5천 명의 유저가 접속한다 [1] . 그 중 4,200만명은 로블록스에 매일 접속한다 . 이는 리그오브레전드보다 높은 수치다. 로블록스는 그야말로 전세계를 휘어잡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은 아마도 전세계 1억 5천명 안에 속하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이름만 들어만봤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나, 해본 적이 있더라도 진지하게 즐겨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플레이하는가? 로블록스의 주 유저층은 명확하게 미성년층이다. 그중에서도 조금 더 어린 축에 속하는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인 만 12세 이하가 전체 유저의 절반이 넘는다(54%) [2] . 만약 당신이 옆에 있는 유저와 팀플레이를 한다면, 상대방은 높은 확률로 초등학생일 것이다. 로블록스는 어른을 위한 게임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당연히 게임을 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로블록스라는 플랫폼에 접속하여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게임을 플레이한다. 로블록스 계정을 생성하면 유저는 하나의 아바타를 배정받는다. 유저는 고유한 아바타를 매개로 하여 수만 가지의 게임에 입장한다. 각각의 세계에는 주어진 상황과 룰이 있다. 예를 들면 유저는 〈Twilight Daycare〉를 켜서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기가 되었다가, 머지않아 〈Murder Mystery 2〉게임으로 바꾸어 살인마가 되고, 질릴 때 쯤에 밖으로 나가 〈Tropical Resort Tycoon〉에 접속해 호화 리조트 사장님이 될 수 있다. 로블록스는 유저가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로블록스 스튜디오’라는 개발 도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유저들은 직접 제작한 게임을 게시할 수 있다. 개발자들의 나이 또한 어린 편이다 [3] . 로블록스 내에 올려진 게임의 개수는 1,800만개 [4] 에 이른다. 전세계 애플의 앱 스토어에서 유통되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의 수가 450만개인 것과 비교했을 때 매우 큰 숫자이지 않은가. 그중 로블록스 유저가 가장 많이 접속하는 월드는 〈입양하세요! Adopt Me!〉 [5] 다. 이 게임은 누적 플레이수 200억 회를 기록하고 있다. * 로블록스의 〈입양하세요Adopt me〉 로그인을 하고 로블록스 메인화면으로 가보자. 화면에는 〈입양하세요〉로 시작하는 인기 게임 순위가 있고, 그 밑에 “나를 위한 추천 체험”, “친구가 방문 중인 체험”과 같이 나와 비슷한 취향의 게임들을 알고리즘에 맞게 보여주는 카테고리가 등장한다. 유저는 로블록스라는 하나의 플랫폼에 접속한 뒤 원하는 게임을 선택하여 입장한다. 어떤 게임을 할지 정하기 귀찮다면 현재 가장 인기있는 것을 플레이해도 되고, 친구가 하고 있는 게임을 따라서 해도 되고, 아니면 원하는 주제의 검색어를 넣어 게임을 찾아도 된다. 어찌 보면 우리가 유튜브에서 영상을 선택하고 시청하는 방식과도 비슷하다. 실시간 인기 동영상 순위가 있고, 나의 피드에는 평소 시청 취향에 맞게, 또는 자신과 사회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보는 영상이 추천되는 것처럼 말이다. 잠깐, 앞의 문단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잘 읽어 보면 필자는 문장에서 같은 대상을 지시하더라도 다른 단어를 사용하였다. 게임(game), 체험(experience), 세계(world).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개별적인 게임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하나가 아니다. 이들은 서로 혼용되며 의미의 경계를 두지 않는다. 유저들은 “무슨 게임 할래?”라고 대화하고, 게임화면으로 돌아가는 버튼에는 “체험 계속하기”라고 쓰여있으며, 게임 개발 도구는 “나만의 월드를 제작해보세요!”라고 자신을 홍보한다. 그동안 게임 문화는 게임, 체험, 세계를 구분해왔다. 특정 역할을 체험하는 부류를 시뮬레이션 장르로, 역할을 설정하는 장르를 RPG로, 가상현실을 탐험하는 것을 어드벤처라고 불러왔다. 로블록스의 용어 사용법은 이러한 게임에 대한 규정들을 흩뜨려놓는다. 앞서 언급한 가장 인기있는 〈입양하세요!〉를 예를 들어보자. 유저는 게임에 진입하자마자 부모 또는 아이가 될지 역할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토대로 마을에서 활동하며 퀘스트를 하거나 아이템을 수집하고, 펫을 키우거나 가족을 만들어 다른 유저와 교류한다.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하는 일은 부모나 아이가 되어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자 그 체험 규칙이 허용되는 세계에 입장하는 것이다. 로블록스의 유명 FPS 게임 중 하나인 〈아스널 Arsenal〉은 누적 30억 회의 플레이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게임은 FPS임과 동시에 적과의 긴박한 전투가 펼쳐지는 가상세계이자, 전투병이 되어보는 체험이기도 하다. 또 다른 게임 〈로열 하이 Royale High〉에서는 접속하자마자 호화스러운 궁전이 펼쳐진다. 그곳 나름의 아이템 수집과 퀘스트를 주지만 유저는 굳이 따르지 않아도 무방하며 시스템적으로 강요되지 않는다. 공간을 배회하면서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스타일을 꾸미거나, 밥을 먹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화려한 옷을 입고 상류층처럼 살아보기. 유저가 〈로열 하이〉에 접속한 순간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로블록스는 ‘체험하는 게임’, ‘게임 세계’와 같은 언어 간의 수식관계를 해체하고, 모두를 동격에 놓는다. 체험하는 것,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 곧 게임이 된다. * 로블록스 〈로얄 하이〉 게임 내부로 잠시 들어와보자. 로블록스에서 주된 대화법은 사물과의 충돌(collision)이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앞에 가발 아이템이 놓여있다고 가정했을 때, 캐릭터가 가발을 쓰는 방법은 가발과 몸의 부딪힘이다. 그러면 곧바로 머리에 씌워진다. 많은 게임들은 유료 재화인 로벅스(Robux) [6] 로 아이템을 구매하는 부분 유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아이템을 구입하고 싶은가? ‘구매’라고 쓰여있는 바닥 타일 위에 발을 올리면 된다. 그러면 결제창이 뜰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물체와 부딪혀라. 로블록스 세계에서 아바타와 오브젝트의 마찰은 주요한 소통방식이다. 이미 예상되어지듯, 그러다보면 엄한 물체와 부딪혀 원치않는 입력이 발생할 것이다. 옆에 놓인 물체에 스쳤을 뿐인데 “구매하시겠습니까?”라는 알림창이 대문짝만하게 뜨는 일은 매우 성가시다. 이쯤 되면 게임들이 왜 이렇게 일차원적인 방법으로 게임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화면에 버튼을 띄워 클릭하게 하거나 키보드 특정 키를 누르게하면 더욱 명확했을텐데 말이다. 그 이유는 로블록스가 게임으로 진입하는 유저의 물리적 조건을 차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로블록스에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지대가 교차하고 있다. 이곳에서 유저들은 피씨, 모바일 그리고 태블릿 그 어떤 기계를 사용하든간에 같은 서버에서 만나 게임을 즐긴다. 충돌은 가장 심플한 플랫폼 통합적 작동 방식이며, 더 많은 유저를 한 공간에 모을 수 있는 장치다. 마우스나 키보드와 같은 별도의 장치는 유저들을 나눌 뿐이다. 이 공간은 서로 다른 기계에서 공통으로 게임이 펼쳐질 수 있는 방식을 지향한다. 로블록스를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로블록스는 ‘플랫폼’이다. 게임을 매개하는 거대한 땅으로 보는 것이 조금 더 명확할 것이다. 또는 게임으로 들어가는 포털(portal)로 볼 수도 있다. 포털은 곧 상상된 즐거움을 의미한다. 그 곳에 접속하면 무궁무진한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곳에 접속하면 언제, 어디서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전세계의 어린 유저들이 매일 매일 방문하여 이곳을 여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이 바로 로블록스의 존재 이유다. [1] Statista, 2021년 5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192573/daily-active-users-global-roblox/ [2] Statista, 2020년 9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190869/roblox-games-users-global-distribution-age/ [3] 개발자 Alex Balfanz는 로블록스를 즐겨하던 유저로, 2017년 만 18세의 나이로 유명 게임 〈Jailbreak〉를 제작했다. 출시 후 3주 만에 누적 플레이수 4,400만회를 달성한 이 게임에서 얻은 수익으로 그는 이미 4년치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4] 2020년 11월 기준. [5] Statista, 2021년 3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220905/roblox-most-visited-games/ [6] 로블록스에서 유저가 현금으로 구입하는 유료 통화.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통합 구매(충전)하여 개별 게임 내에서 사용한다. 개별 게임 내에서 발생한 로벅스 수익은 로블록스와 게임 개발자가 3:7의 비율로 배분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Why is the Korean Console Market Size so Small? - A Retrospective of Korean Console Games

    I have a vague memory of a time when I was in upper elementary school, sometime in the early 90's or so, but I can’t recall the exact year. I had gotten a "gaming console". I think I won it in a magazine giveaway. Given the age, I can assume what model it was, but I can only make an assumption. I also do not recall the exact model.  < Back Why is the Korean Console Market Size so Small? - A Retrospective of Korean Console Games 11 GG Vol. 23. 4. 10. You can see the Korean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match=id:58 I have a vague memory of a time when I was in upper elementary school, sometime in the early 90's or so, but I can’t recall the exact year. I had gotten a "gaming console". I think I won it in a magazine giveaway. Given the age, I can assume what model it was, but I can only make an assumption. I also do not recall the exact model. The reason my memory is so fuzzy is simple: I only played with that console a handful of times. The ROM packs had either a single collection of games or none at all, so the minigames on the internal ROM were all there was. The reason, of course, was my parents. I wasn't kept from playing it, but buying a new ROM pack was out of the question, and the very act of connecting it to the TV at home was frowned upon. I had no concept of what a cable was, or why there were so many wires, and I needed an adult to show me how to connect all the right wires, but my parents actively refused to take on that role. To play the console I had to go over to a friend's house, and while their parents would help me connect everything, I wouldn’t say that they looked comfortable doing it. With no games to play and nowhere to play them, the first game console of my life naturally disappeared into a closet and was completely forgotten. I imagine that the gamers who grew up in the '80s and '90s probably shared a similar experience. As a result, console games only make up a small percentage of the South Korean gaming market today. According to the 2020 White Paper on Korean Games, the percentage is 4.5%, but 1.4% of this is taken up by arcade games, which virtually barely remain in existence. This is a far cry from North America's 38.4%, Europe's 37.5%, and South America's 19.1%, as well as the 2022 global ratio of 25.2%. In Asia, console games accounted for a mere 8.7% of the market, in large part likely due to South Korea's small console market. PC and mobile games, on the other hand, account for 25.7% and 54.1% in Asia, respectively, a stark contrast to the rest of the world. * 2020 White Paper on Korean Games, p. 668 The reason for this can be traced back to its humble beginnings in the 80s and 90s. It's a sad story of a market that started small and never experienced the momentum of hegemony experienced by arcades and PC and mobile. Let's go back to those sad days for a moment. The first game console that was sold in South Korea was the Otron TV Sports. It was a console with built-in games, just like the American "Pong" console, and was initially priced at 29,500 won, and later reduced to 198,000 won. In comparison, in 1977, the average monthly salary of a worker was 69,000 won. It was a price that was far from market formation or popularization, so it didn’t mean much apart from the fact that it was the first of its kind. Due to the price, console gaming in Korea never really took off in the era of the family Pong and Atari, and in the '80s, Nintendo was brought to the forefront. However, the idea of Nintendo being imported into South Korea, a country with strong anti-Japanese sentiment at the time, was out of the question. Instead, PC games on the 8-bit MSX platform were imported in the early 80s as a substitute. Even then, they were a luxury, and as of 1982, less than a thousand units were imported into Korea. By the late 80s, South Korea had succeeded in hosting the Asian Games and the Olympics, and the pride from those achievements were through the roof. Naturally, the anti-Japanese sentiment had subsided somewhat, and with Daewoo Electronics releasing its own console called the Zemmix in 1985, much of the unfamiliarity with the new culture that was gaming had dissipated. Still, public sentiment made it difficult for Japanese companies to set up local subsidiaries, so domestic corporations imported consoles under different names. Only then did relevant gaming consoles begin emerging. Samsung imported and marketed the SEGA Master System under the name “Game Boy” which became a hit. Hyundai then imported Nintendo's NES, the North American version of the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and released it as the “Hyundai Comboy”. Thus, the pioneering of the Zemmix, Game Boy, and Combo formed the market. However, this market was not large-scale enough to be called a mass market. While it was a huge success, and was well-known enough for the masses to be aware of its existence, it was a market centered around enthusiasts. This much was evident based on the individual price of each console. * Daewoo’s Zemmix advertisement, priced at 70,000 KRW. (approx. 53 USD today) * Samsung’s Game Boy advertisement, priced at 119,000 KRW. (approx. 91 USD today) * Hyundai’s Comboy advertisement, priced at 139,000 KRW. (approx. 106 USD today) * The prices of console game titles in the latter half of 1992. Therefore, the cost of console games also had to be accounted for on top of the cost of the gaming console itself. With the year 1990 as the standard, these were times when the starting salaries for secondary school teachers and businessmen for large companies were less than 600,000 won. The wealth gap grew from this point on, making it a bit difficult to use 1.5 million won as the benchmark for the average monthly wage of the working class. Nevertheless, unlike with the Otron from a decade earlier, these prices were ‘a bit overwhelming but still manageable.’ In addition, the hegemony of the gaming market was slowly but surely shifting from arcades to PCs. The PC was actually a competitor to the gaming console, despite costing anywhere from 1 million KRW up to 2 million KRW at the time. In fact, they were actually holding their own weight in the competition against gaming consoles priced under 200,000 won. PCs held the advantage with the context that they were ‘preparing for the technological future’ and could be used in various ways for ‘education.’ Unlike the multifunctional PCs, consoles only offered the gaming feature, rendering even the relatively lower cost to be pointless. Furthermore, the biggest difference between consoles and PCs was the space that they took up. In general, a console belonged in the living room, and a PC in the bedroom. Gaming consoles require to be connected to a TV. The TV is a family-shared media, and so belongs in the living room. Usage of the living room TV was determined by the parents, so the children had to fight for the right to play their console games in the living room. In addition, students of that time had to study late in the night, and thus were often unable to spend time in the living room at all. On the off chance that they could, it was difficult to negotiate for TV time in the living room when their parents had just gotten home from work. But with a PC, the space becomes the room, and you don't have to contend with the usage of the living room. Once you were done studying at night, or if your parents were watching TV, you could just head into your own room. The fact that copying and distributing game software was much easier than copying console ROM packs probably also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spread of PC gaming. In the narrative of the transition from playing games in arcades to playing games at home, North America and Europe were different. The distribution rate of the PC was much faster than it was in Korea, so the perception that PCs were multifunctional rather than just used for gaming was already widespread. Essentially, the PC was already a part of the parents’ generation. Their children did not have after-school study programs nor late-night studying, and the parents already had the PC as one of their leisurely options, meaning they could afford to cede some of the power of the living room to their children. Plus, parents became cognizant of the role that consoles played as caretakers. They figured, if they gathered a few of the neighborhood kids in the living room, ordered them a pizza and gave them the game console, they could sneak out for a night at the movies downtown. Korean parents, on the other hand, had their grandparents, other parents, or late-night studying to be the caretaker, and so had no reason to give console games a glance. However, this is less the case in Europe than in North America, which can be explained by the average living space. In North America, where the residential space is much larger, having a console in the living room was no problem; but in Europe, you had to consider it first before making that change. Eastern Europe, in particular, is a former communist region with a high threshold for importing game consoles, a product of the capitalist camp. It also had a smaller living space than the rest of Europe did, which is why it has the lowest console market share. The only exception to this interpretation is the United Kingdom, where English is the native language and so is less mentally distant in regard to American culture. * While from 2014, this data helps us gather that the average residential space in North America and Australia is greater than that of Europe (especially in Russia, the eastern part of Europe.) In 1990, South Korea had an average of 62.94 square feet of living space per household, similar to Denmark in this graph, but for the cultural reasons mentioned above, they did not take advantage of this space. Therefore, we can say that North America and Western Europe saw a shift in gaming hegemony from arcades to consoles to PCs, while Korea and Eastern Europe went straight from arcades to PCs. Given the status of gaming arcades in these countries, we can summarize the narrative in terms of space. In North America and Western Europe, it's downtown to the living room, then the living room to the personal room. In Korea and Eastern Europe, it’s straight from neighborhoods to personal rooms. The narrative of these spaces is now shifting to being ‘directly in your hands’ with the concept of ‘mobile’ platforms, but the context of these spaces goes beyond that. Whether it's a glitzy downtown gaming center in North America and Europe or a dingy neighborhood arcade in Korea, arcades are public spaces built for gaming, so they naturally build a sense of community. Think of all the times you went to your local arcade to watch your friends play and play against other players from other neighborhoods. We could describe arcades as being "socially-friendly gaming spaces". When this gaming space transitions into the private space of the living room, the social aspect fades, but it doesn't disappear. Someone can watch you play games, you can converse with someone while playing, and/or you can play together, all in the living room. Console gaming is a solitary medium, but it's also a great offline social medium. When the gaming space shifted to the personal room, the social aspect became much less important. The room is a strictly private space, which is why it's possible for Korean parents to have their kids playing PC games while the parents can watch TV. The word PC stands for personal computer, after all. So, before the advent of online gaming, gaming in Korea was a one-person media, back when "playing games together" meant each person held a joystick/pad at a separate arcade/console cabinet. You could describe this as both offline anti-socialization + online socialization. The antisocial nature of PC gaming has been brought down to console levels due to the proliferation of the internet. In the case of internet cafes, it was like reverting the room’s space back to an arcade, and the “arcadeification” of StarCraft was an especially huge historical pivot in Korea. It was socially offline when you went to play StarCraft at an internet cafe with a group of friends, but it could also be done online as well. In other words, Korea’s internet cafe culture has diluted the offline, antisocial nature of PC games, but has also developed the social, online nature due to the expansion of infrastructure, and the result is no more than a reinforcement: You do not have to meet people in-person to play MMORPGs together. And so, society’s perception of games changes. In North America and Europe, where the market share is close to 40%, the offline-social view of gaming is still somewhat alive, such as when you invite friends over to play Halo. The fact that one of the slang terms for video games in American English is “nintendo games” is a testament to Nintendo's historical influence, but it also indirectly demonstrates that the social aspect of consoles is deeply woven into the perception of gaming in English-speaking societies. In Korea, on the other hand, after exiting the arcade, you go straight to your room. The perception of offline socialization is almost non-existent. Two characters that illustrate a stark difference are Thor and Koo Kyung. In the movie, Avengers: Endgame, Thor is presented as a gaming addict who plays Fortnite together in the living room with his friends. On the other hand, Koo Kyung, the main character in the Korean drama Inspector Koo, is a gaming addict, but plays MMORPGs alone in her own home. She interacts with her guildmates through the game, but is a reclusive loner otherwise in the world outside. The difference between Thor’s living room and Fortnite, and Koo Kyung’s own room and MMO role-playing game, is the distinct characteristic of Korean gaming – the lack of consoles. * Thor has become disconnected from society, but he still plays his games together with his friends. This can be seen as a remnant of the faintly offline social nature of consoles. * Koo Kyung has also become distanced from society, but unlike Thor, only she exists in her offline space. This can be seen as society’s perception of online, socially-oriented PC games. This historical context, or difference in experience, is where the difference between the social perception from outside of gaming and the gaming that consumers experience looking out from the inside comes from. The number of Korean console games being extremely low does not simply and one-dimensionally mean that fewer games are made for this platform, but also that fewer games that can be used for offline socialization are produced and consumed. Another way to put it is that games made or distributed in South Korea are made with online socialization as the primary, or even sole assumption. And now, we approach the year of 2022. The hegemony of gaming has progressed in the order of arcade, console, then PC, and is currently transitioning into mobile platforms. The offline space for mobile is incredibly narrow because that space is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it's more offline-antisocial than PCs are. Looking at this transition, you can imagine a graph where offline socialization continues to fade and online socialization grows in importance. So, are the weight of the times shifting to be completely online-social? This is a memory from a few years ago. One of my exes was hooked on the augmented reality game, Pokémon GO. They had to meet up with people in order to capture and trade for more Pokémon, and would even occasionally meet up with people from the community near their house to move in groups together around the neighborhood. This was the point where online socialization became offline socialization. Despite having the “look and feel” of a traditional online game, Pokémon GO was bringing people together to play, leaving plenty of room for interpretation as a mobile arcade or mobile internet cafe on the streets. Looking back, I remember seeing celebrities traveling from city to city to play Pokémon GO, with fans chasing them along the way. This was one of the marketing points of the Nintendo Switch. It's a console that's both stationary and portable, so two players who meet offline can play together by connecting their consoles. This proves that the mobile platform actually hides an aspect of offline-socialization. It's a paradox that makes it the first platform to facilitate offline contact because it's portable. It's phenomenally convenient compared to lugging a game console or PC to a friend's house to play together offline. Throw in the possibility of augmented reality (AR) games, and the social aspect of mobile gaming has the potential to guarantee a solid place in society. But can the offline-social aspect of Korean games, which has been missing since the arcade era due to the absence of console games, make a dramatic comeback? Can something beyond the social activities that Pokemon GO fostered be created? That answer lies in the imagination of developers and how users utilize it.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Translator) Esther Yum

  •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 Back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 - <잇 테이크 투>로 본 게임 플레이어의 조건 01 GG Vol. 21. 6. 10. 2021년 상반기의 최대 화제작이자, 신데렐라를 뽑자면 첫번째로 나올 게임은 바로 <잇 테이크 투> 다. 아직도 영화 <깝스>에서 사타구니에 총을 끼우고 발사하던 장면을 연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부터 떠오르는 영화 감독이자, 배우이자, 게임 제작자인 요제프 파레스의 이 최신작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물이다. <잇 테이크 투>는 그 특유의 보편성이 빛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보편적 플레이의 집합체’ 라고 할 수 있다. 어느하나 완전히 새롭거나 원전을 찾기 어렵게 변용된 것이 없으며, 새로움 보다는 잘 편집되고 조율된 플레이의 연결이 빛이 나는 게임이다. 마치 순서대로 차려지는 가정식 백반 같다고나 할까. 이 게임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은 역시 다채로운 레거시 게임 플레이의 끝없는 연결이다. 이 게임은 2인 협동 게임이면서도, 기존 게임들의 장르적 메커니즘을 하나씩 따와 채워넣었다. 전체적으로는 2인 협동 퍼즐이라는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TPS, 비행 슈팅, 대전 격투, 리듬 액션, 플랫포머 등 수많은 클래식 메커니즘을 도구로 삼았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지만, 이 기존의 플레이 메카닉을 자유자재로 섞어넣은 탁월한 감각이 돋보인다. 이는 또한 게임의 한계점을 교묘히 가리는 효과도 낳는데, 앞서 말했듯 이 게임의 플레이 메카닉은 대부분 이미 있었던 클래식한 요소이기 때문에 반복하면서 피로를 느끼거나 자루함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이 게임은 그런 시기가 오기 직전에 새로운 플레이 메카닉으로 갈아치운다. 즉 잘 편집된 게임 플레이의 나열은, 익숙함을 신선함으로 전환하는 역설적 효과를 가져다 준다. 즉, 이 게임의 플레이는 계속해서 ‘적응->숙련->응용’ 의 반복이다. 보통 하나의 핵심 메카닉을 추구하는 게임은 해당 플레이 메카닉에 플레이어가 충분히 익숙해지면 플레이 하기 위한 문턱, 허들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한다. ‘레벨’ 로 대표되는 RPG적 성장 요소가 대표적이다. 이는 닌텐도 스위치로 나온 최근작 <페이퍼 마리오 종이접기 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이 게임은 기존의 게이머들, 특히 대중 게이머들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질만 하지만, <잇 테이크 투>는 반대로 플레이에 걸림돌이 되는 특징 또한 가지고 있다. 플레이 자체에 이런 저런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빛나게 하는 보편성, 하지만 반대로 그 보편성을 가로막는 플레이의 조건’ 의 대조는 다소 아이러니하다. <잇 테이크 투>를 플레이하는 와중에 든 생각은 이 게임이 왜 대단하고, 얼마나 천재적인가 하는 것이었지만, 플레이를 마무리짓고 나서 든 생각은 ‘이렇게 훌륭한데도 왜 국내에서는 폭넓게 플레이되고, 널리 알려지지 못했나?’ 하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을 ‘플레이의 조건’ 에서 찾아보게 됐다. 지난해 직접 올해의 게임으로 뽑았던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 는 이런 맥락의 논란을 몰고 다녔다. 즉, VR이라는 기기가 필요한 게임이 어떻게 올해의 게임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게임의 평가는 대중성 혹은 범용성을 꼭 포함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쉽게 반박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어찌되었건 플레이의 ‘조건’, 그것이 하드웨어이든, 아니면 플레이어가 갖춘 다른 어떤 여건이든 그 조건이 다소 높다면 과연 그 게임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남겼다. 비록 VR이라는 특수한 사례를 제쳐두고서라도, 모든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플레이 하기 위한 조건을 요구한다. 사소하게는 기기 스펙에서부터, 나아가서는 플레이어의 실력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몇몇 게임들은 특유의 게임 플레이나 감각적 요소를 이해하고 향유하기 위한 문화적 기반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 조건이 필수적일 수도, 그저 더해지면 좋은 요소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잇 테이크 투>는 다른 게임에 비해 이례적으로 그 요구 선이 독특하다. 이는 ‘카우치 코옵(Couch Co-Op)’ 이라는 특성과 제작자의 전작과 달리 ‘가족’ 을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카우치 코옵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카우치 코옵은 아직 가정 인터넷이 보급 되지 않은 2000년대 이전 가정용 콘솔 기기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로서, 콘솔 게이밍 기반이 200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한국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2000년대 이후부터 콘솔 게이밍 기기는 네트워크 기능을 막 탑재하고 네트워크를 통한 코옵을 확장하였기에, 한국에서는 하나의 기기 앞에 여럿이 모여 분할 화면과 여러 개의 컨트롤러로 함께 플레이하는 문화가 흔치 않았던 것. 있더라도 <위닝 일레븐> 같은 스포츠 대결 게임 위주의 경험이 고작일 것이다. 한국에서 카우치 코옵과 가장 비슷한 문화를 찾아 보자면 한대의 PC로 다자가 한 게임을 공유하며 플레이하던 경험, 또는 오락실의 클래식 아케이드를 찾을 수 있다. 다행히도 21세기 들어 카우치 코옵을 중시하는 콘솔 게이밍 기기인 닌텐도의 Wii, 스위치 등이 저변을 넓히면서 오히려 한국에서는 Wii 방, 그리고 이후 닌텐도 스위치 커뮤니티를 통해 ‘추억의로서의 카우치 코옵’ 이라는 감각을 간접적으로 조립하여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즉, 한국인에게 ‘카우치 코옵’ 은 내가 스스로 겪고 자란 문화라기 보다는, 수입된 문화에 가깝다. 이 카우치 코옵의 감성은 <잇 테이크 투> 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카우치 코옵의 경험은 주로 청소년기에 형성되며, 일종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기재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경험이 청소년기에 부재한 한국 게이머들에게는 훨씬 덜 개인적으로 다가온다. 이와 더불어, 게이밍 문화에 아직 짙게 남아있는 남성 중심적 기조는 <잇 테이크 투> 를 온전하게 창작자의 주제의식 그대로 받아들여 체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아직까지도 한국, 그리고 세계에서 청년-청소년이 아닌 기성세대에게 게임은 남성의 문화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가 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게임이 2인 협동 게임일 뿐만 아니라 ‘자식을 가진 부부’ 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게임은 각각 이혼 위기를 맞이한 아내와 남편을 플레이하도록 한다. 또한 감정적으로 매우 풍부한 과정을 플레이에 담아두었다. 즉 대리체험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이 게임의 가장 이상적인 플레이어 구성은 역시 ‘부부’ 게이머가 함께 플레이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잇 테이크 투> 는 생각보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게이머 경력을 요구한다. 각종 기존 게임들의 레거시 플레이가 순간적으로 교체되고, 즉각적인 적응이 이 게임의 미덕이다. 비행 슈팅, 대전 격투, TPS 슈팅, 클래식 RPG 등 이 게임이 계속해서 변환하는 게임 메카닉은 코어 게이밍의 영역이며, 캐주얼 게임에 익숙한 게이머는 재미를 느끼기 전에 여러 자잘한 장벽으로 방해받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코어 게이머였던 여성을 찾기 힘든 현재 한국의 기혼 세대에게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가 또다른 분란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즉, 여성들이 게임을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레거시 게임에 대한 선험적인 경험이 필요한 이 게임에서 ‘코어 게이머로서의 경력’ 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것은 상당히 치명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주변에서 부부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까지 현재 부모 세대(40대 이상)에게 게이밍이란 전적으로 남성의 문화, 또는 남성적 게임과 여성적 게임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는 인식, 그리고 행동 양식이 깊게 베어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훨씬 그 빈도가 높아보였다. 실제로 부부가 함께 플레이 했다는 감상, 후기의 절대적인 수가 해외가 더 높았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여성들도 어렸을 때부터 비디오 게임을 접하는 기회가 남성만큼이나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대를 불문하고 ‘여성 게이머’ 에 대한 멸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 불거진 특정 여성 스트리머의 <리그 오브 레전드> 챌린저 논란이 대표적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등 대중적 게이머층을 형성한 경쟁 게임을 중심으로 게이밍은 점점 더 보편적인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대부분의 코어 게이밍 문화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다. 그나마 닌텐도 스위치를 위시로 한 보다 대중적이고 보다 보편적인 게임들을 중심으로 점점 더 여성 코어 게이머 층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이 자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나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말하고 싶은 부분은 결국 그런 게이머 성별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우리 모두에게 불이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게이밍이 어떤 기본 교양, 소양으로 여겨지는 문화였다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카우치 코옵이라는 장벽에 가로 막히지도 않고, 또는 부부 사이에 좋은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로서 이 게임을 플레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카우치 코옵이라는 플레이 방식이 주는 노스탤지어, 그리고 ‘부부의 갈등 해소’ 라는 중심 사건이 플레이어에게 깊이 천착하는 감성은 역으로 한국의 게이머들에게는 거리감을 두게 만든다. 이 두가지가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임을 고려할 때, 게임의 완성도에 비하여 그에 상응하는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한 요인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잇 테이크 투>가 올해의 최고의 게임이 될만한 가장 강력한 후보라는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올해 상반기 출시작 중 이만큼 강렬한 게임 플레이를 보인 사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의의는 순수하게 ‘게임 플레이’, 즉 직관적인 놀이로서의 재미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게임 플레이라는 핵심이 아닌 캐릭터의 외관, 이야기에 삽입된 전형적 요소, 마케팅 같은 외적 요인에 기댄 게임들에게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게임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논한 ‘플레이의 조건’ 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태초의 게임 ‘퐁’ 역시 2인이 아니면 플레이 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물론 어떤 한 문화의 시작점이 수십년이 지나도 절대적인 잣대로 남아있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론 꾸준히 요제프 파레스는 2인 플레이 게임을 만들어왔고, 때문에 전작과 동일한 플레이 저변의 한계를 지니고 있음에도 <잇 테이크 투>가 전작과 달리 널리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대중적 접근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다른 대중적 게임에 비해서는 후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전작에 비해서는 훨씬 진일보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우리가 자리잡은 게이밍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또는 그 변화가 충분히 급격하지 못하다면, 여기서 필요한 덕목은 폭넓은 이해의 관점이다. 협소한 사건 그 자체나 자신의 1차적 경험에만 의존한 해석이 아니라 좀더 광의에서의 이해, 근본적으로 그 감정이 내게는 어떤 식으로 치환될 수 있는지 찾아보는 수용의 자세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불완전 연소한 게임의 가치를 곱씹을 수 있다면 된게 아닐까. 아마 올해 내내, <잇 테이크 투>가 고평가를 받는데 있어서 이 플레이의 조건은 내내 발목을 붙잡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이 게임은 카우치 코옵,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얻은 것이 더 많다고 보기 때문에 충분히 가치있는 시도였다고 평하겠다. 더불어, 게임을 평가할 때마다 하는 말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세상에는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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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덤덤한 덤, 쏠쏠한 덤 : 덤으로서의 게임들

    덤은 언제나 반갑지만, 플레이로 이어지느냐에 따라 쏠쏠한 덤인지 덤덤한 덤인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는 방향도 비용을 치르도록 강제하는 것에서 시간을 쓰기 편하도록 보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꽤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은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이다. 무수히 많고 많아질 게임뿐 아니라 영상과 음악을 비롯한 디지털 콘텐츠들이 하루 24시간 중에서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woong Kang Senior researcher at the Institute for Social Development Studies, Yonsei University. Has written for various game outlets, including Gamers. Books include Game and Cultural Studies (co-authored) and The History of Korean Games (co-authored). Writes a regular game column for the children's magazine Goraega Geuraesseo. Believes that games are a culture that walks alongside us, touching countless moments of ou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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